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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선감학원에서 벌어진 일들을 그때도, 지금도 모두 알고 있다. 그 섬에서 함께 자라면서 모두의 마음 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그렇기에 영배씨의 친구인 병호씨는 7년 전, 선감18동 통장을 하면서 선감학원 진상 규명을 위해 활동했다. 그리고 30년 만에 영배씨를 다시 만났고 단번에 친구임을 알아봤다.병호씨와 윤기씨는 선감학원 피해 진상이 반드시 규명돼야 하고, 국가가 명확하게 사과해야 하며 피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병호씨는 "최근에 선감학원 피해자들을 지원해준다고 하는데 형평성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경기도민만 해준다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선감학원 원생이었던 인천 사는 동창이 경기도로 옮기려고 알아본다더라. 이 친구들, 다 예순이 넘었고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도 많다"고 안타까워했다.윤기씨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발굴작업도 하면서 진상 규명 움직임을 보이는데 잘 됐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나. 강제로 끌려와서 고생만 했는데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선감학원에 끌려가는 순간부터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피해자들은 '나는 부랑아가 아니'라고 울부짖는다. 그 울부짖음을 그들과 유년을 함께 보낸 섬의 친구들도 들었다.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잡아간 국가도 알고 있었다. 아동복지 국가공무원이 앗아간 소년의 삶소년을 부랑아로 전락시킨 그 시발점엔 국가공무원이면서 아동복지전문가였던 '아동복리지도원'이 있었다.길거리, 집 앞 골목 등에서 소년들을 잡아 단속의 명목으로 선감학원에 보낸 이들은 주로 경기도, 도내 각 시군에 배치된 아동복리지도원들이었다. 국가는 이들에 대해 아동에 대한 전문성을 요구했다. 실제로 학위 등 자격요건을 엄격하게 따져 아동복지 전문가들이 선발됐으며, 자격요건에 위배된 이들은 '해임'까지 감행할 만큼 까다롭게 관리됐다.당시 아동복리지도원은 1970년 보건사회부령 제348호에 따르면 교사 자격증을 소지하거나 1년에 1번 진행되는 자격시험을 통과해야만 될 수 있었다. 시험은 사회사업개론과 법제대의 그리고 아동관계법령 및 실무 4과목에서 평균 60점 이상을 받아야 하고 매 과목마다 40점의 과락도 면해야 한다. 지금 시점의 사회복지사 자격시험과 비교하면 사회복지정책·법제론 등 8개 과목에서 매 과목 4할 이상, 전 과목 총점의 6할 이상을 득점해야 하는 현재와 매우 유사하다.경쟁률도 꽤 높은 편이었다. 1971년 6월 7일에 시행된 아동복리지도원 자격시험은 500명 가까이 지원해 경쟁률 5:1을 뚫고 전국에서 총 93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당시 경기도에선 10명이 합격했다.학위·자격 따져 전문가 선발했지만상담 등 아동 위한 행정절차는 없어인적사항 묻고 명단만 작성 떠나보내 이들의 자격요건도 엄격하게 관리됐다. 경인일보가 확보한 1976년 4월 고양군(현 고양시)의 '아동복리지도원 임용의 적정' 문서를 보면 "아동사업의 특수성에 비추어 아동복리지도원 임용 기준을 시달한 바 있으나, 위배한 결격자를 임용하는 사례가 없도록 유념하고, 결격자는 즉시 해임 조치할 것"이란 공문을 경기도가 전 시군에 하달했다. 이때 도는 교사자격증 미소지와 무자격으로 5명을 해임시켰다.아울러 아동복리지도원에 대한 자격 검증은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1976년 5월 고양군에 발송된 문서를 살펴보면 "경상북도의 합동감사 결과 아동복리지도원 43명 중 6명이 무자격 임용돼 교체하라는 지시가 있다. 각 시군은 규정에 따라 조치한 뒤 최종임용상황을 보고할 것"이라며 재조사를 지시했다.치열하고 엄격하게 채용된 경기도 아동복리지도원은 길거리, 기차역, 골목 등지에서 배회하는 아이들을 선감학원에 보내는 데 활용됐다. 피해자들이 이들에게 "부모(가족)가 있다" "집 주소를 알고 있다"고 아무리 호소해도 일단 붙잡고 나면 선감학원으로 보내는 게 그들의 일이었다. 실제로 피해자들은 선감학원에 강제 수용되기 전에 상담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당시 아동복리지도원으로 근무했던 이들의 진술 역시 마찬가지다. 부랑아 단속업무만을 집행했을 뿐 이들 본연의 목적대로 아동을 위한 제대로 된 행정절차를 이행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고 진술한다. '단속 후 쫓기듯이 아이들에게 인적사항을 묻고 명단만 작성해 선감학원으로 보내라'는 지시에 따라야 했기 때문인데, 상담을 통해 아동의 상태를 살피는 등의 '아동복지'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한 건, 국가가 유독 이들의 전문성에 집착한 데는 아동복리지도원의 본래 역할인 '아동의 건전 육성'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이다. 실제 1976년 고양군 문서에도 "요보호아동의 보호사업을 적극 전개하고 아동의 건전 육성을 도모하기 위해 각 시군에 배치된 아동사업요원(아동복리지도원)의 자질 향상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고 적혀 있는데, 국가는 보호가 필요한 소년들이 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도, 교육하기 위해선 현장에서 아동들을 대면하는 아동복리지도원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터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였다. 국가는 아동복리지도원을 부랑아 단속에만 집중하도록 강요했다. '부랑아처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아동복리지도원들은 아동을 단속의 대상으로만 취급해야 했다.문서상 나타나는 '건전 육성' 허울뿐현실은 반대… 부랑아 단속 집중 강요 김진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연구원은 "선감학원, 형제복지원 모두 마찬가지다. 아동들이 단속했을 때 아동복리지도원들이 아동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한 후 집에 돌려보내거나 보호가 필요한 경우 임시보호시설에 보내는 등 아동복지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하지만 경기도는 그런 분류가 없이 단속하면 바로 선감학원으로 보냈다"며 "선감학원은 서울시립임시아동보호소와 같은 아동보호소가 아니라, 부랑아수용시설이었다. 결국 전문적인 자격을 갖춘 인력을 뽑아 놓고 전문적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고 단순한 단속업무에만 역할이 한정됐다"고 설명했다.우리는 지난 2개월여간 이어온 선감학원 특별기획 시리즈를 통해 줄곧 '아동복리지도원으로 활동했던 이들'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때는 용기 내지 못했지만, 지금도 그 섬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살아가는 나이 든 소년들을 위해 용기 내주길 기다렸다. 아쉽게도 우리와 소년들의 기다림에 응답은 없었다.할머니와 함께 외출했고, 형이 일하던 수원역에 잠시 놀러 갔다 단속된 진성(가명·11월26일자 2면 보도)씨는 말했다."선감학원에 오면서부터 고아가 됐어요. 선감학원에 오기 전엔 형제도 부모도 있었는데, 여기 오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지금까지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나는 부랑아가 아니었어요. 정말 부랑아가 아닙니다." /특별취재팀※특별취재팀정치부 공지영 차장, 신현정·고건 기자, 사회교육부 배재흥·김동한 기자, 디지털콘텐츠팀 김동현 기자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경인일보가 정보공개 청구로 입수한 1976년 4월 고양군(현 고양시)의 '아동복리지도원 임용의 적정'관련 문서(왼쪽)와 1976년 5월 고양군(현 고양시)의 '아동복리지도원 임명에 따른 지시' 문서. 경기도가 각 시군에 아동복리지도원의 자격을 규정하고, 다시 엄격히 관리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선감학원에 수용된 원생 중 일부는 선감국민학교에 다니며 또래 친구를 사귀었다. 선감학원 피해자들을 동창으로 둔 이들은 "당시에도 친구가 부랑아가 아닌 걸 알고 있었다"고 똑똑히 증언했다. 사진은 과거 선감국민학교 학생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경기도교육정보기록원
문을 열자 마주한 건 '고집'스럽게 즐비한 3천여 권의 책들이었다. 70여 평 규모에 책장, 책상, 바닥엔 온통 책뿐이었다. 정말이지 '책고집'이란 이름에 충실한 장소였다. 요즘 행궁동이 20~30대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로 부상한 터라 그럴듯한 디저트 메뉴 한두 개만 추가하면 충분히 SNS 카페 명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주인의 별명인 '최고집'을 쏙 빼닮은 탓인지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책고집은 2014년 온라인 독서 동아리로 출범한 인문독서공동체다. 현재 전국 회원 수는 무려 3천여 명이 넘는다. 2018년 12월엔 수원화성 장안문 성곽 안쪽 골목에 위치한 옛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경기지부 사무실 자리에 '작은 도서관 책고집'을 열었다.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57) 책고집 대표가 직접 사비를 털어 마련해 운영한다.최 대표는 인문학을 '사람에게 온기를 전하는 학문'으로 정의한다. 그의 지론이 책고집 프로그램에 투영돼 있다. 이곳에선 회원들이 독서와 글쓰기를 하며 서로 소통한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등 내로라하는 각계 전문가들이 수준 높은 강연을 하기도 한다."남들은 이 좋은 공간을 놀리고 있다고 한다. 단가 높고 맛있는 음식 몇 개를 추가하면 돈벌이도 될 텐데 뭐하고 있냐 묻기도 한다. 하지만 책고집은 소득, 성별, 계층 상관없이 책을 보고 인문학 강연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다 사라지는 추세에 이런 공간이 하나쯤은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가서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 찾아' 강연"사회복지사가 되겠다"… 30대 노숙인에 희망 주는 결실 맺기도 최 대표는 2005년부터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가서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강연 장소는 노숙인센터, 노인복지관, 장애인복지관, 교도소 등이다. 따라서 강연 대상도 노숙인, 어르신, 장애인, 교도소 재소자, 한부모 가장 등 소위 말해 우리 사회 소외계층이다.강연만 하고 돌아선 건 아니었다. 끝난 후엔 수강생들과 밥도 먹고 술잔도 기울였다. 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위로하고자 했다. 돈이 될 리는 없었고 처음 함께했던 동료 대다수가 떠나기도 했다. 그들에게 인문학 강연을 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느냐 반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곳에서 강연하라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그럴 때마다 최 대표는 신념을 되새겼다. 그는 "인문학 강연을 처음 할 때부터 결핍되고 소외된 사람들이 자신을 성찰하고 희망을 찾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야학을 통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때 야학 교사를 했던 내 신념"이라고 강조했다. 신념을 밀고 나가자 좋은 결실을 보기도 했다. 강연을 들은 노숙인이 목표가 생기고 꿈을 찾은 것이다. 최 대표는 "강연이 끝난 뒤 한 30대 노숙인 친구가 따라 나왔다. 사회복지사분들이 고맙긴 한데 거리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본인이 직접 해보겠다고 말하더라. 내 소신이 틀리지 않았구나 느꼈던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하지만 그런 최 대표도 코로나19를 피해 가지는 못했다. 대면으로 강연과 모임을 하던 책고집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자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19 발발 첫해인 2020년은 전년도에 비해 강연 수가 절반으로 줄고, 회원들의 발길도 그만큼 끊겼다.최 대표는 "임대료와 직원 월급 등 책고집을 운영하는 데 드는 고정비가 1년에 4천만원에서 5천만원 정도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 2년 동안 진 빚이 꽤 된다. 어렵지만 이제야 희망이 좀 보인다. 다시 열심히 뛰어야 한다"며 웃어 보였다.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자 최 대표는 직접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8월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어르신 인문학 강연을 시작했다. 수원시 우만종합사회복지관에서 평균연령 70대 중반의 어르신 20여 명을 대상으로 처음 진행했다. 반응이 좋아 지난 10월 복지관 두 곳에서 추가로 강연했다.어르신들의 호응은 좋았다. 전문적인 물리학과 도시재생학 강연부터 판소리, 글쓰기, 그림 그리기까지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강연도 있었다. 최 대표는 "강연이 끝나자 어르신들께서 '왜 이제 왔냐'고 물으셨다. '왜 이렇게 일찍 끝나느냐'면서 우는 분도 계셨다.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낯선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이실까 생각이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왜 이제 온거야"… 판소리·글쓰기 체험한 어르신들 뜨거운 반응'정조의 도시' 이름에 걸맞게 수원 정체성 알리는 프로그램 구상 하지만 좋은 반응과 달리 어르신들을 위한 인문학 강연을 진행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선뜻 후원하려는 지자체나 후원회가 없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어르신 인문학 강연을 열려고 한 지자체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런데 거기서 '어르신은 표가 안 된다. 청년이나 주부를 위한 강연을 기획해 오면 후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예산을 표로만 생각하다니 정말 충격적인 발상이었다"고 털어놨다.그럼에도 최 대표는 앞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인문학 강연을 늘릴 예정이다. 동네 식당 같은 동네 인문학의 중요성을 명심하기 때문이다."동네 식당은 음식뿐 아니라 정을 나누는 공간이다. 어르신을 비롯해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찾는 식당은 동네 식당이다. 이곳에선 허기뿐만 아니라 텅 빈 마음도 달랜다. 그런 동네 식당 같은 동네 인문학을 하고 싶다. 어르신들에게 거창한 인문학이나 철학 강연을 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 신호 지키는 게 민주주의예요'라고 얘기할 수 있는 인문학 말이다. 책고집의 꿈은 동네 식당 같은 동네 인문학을 하는 것이다."17년째 '거리의 인문학', '동네 인문학' 외길 인생을 걸어온 최 대표는 책고집에서 '정조의 도시'인 수원의 정체성을 알리는 강연을 구상하고 있다.최 대표는 "영국에 갔더니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를 참 자랑스러워하더라. 그래서 영국에선 1년 365일 셰익스피어의 문학 연극이나 강연들이 매일 열린다"면서 "하지만 수원은 정조의 도시라고 하지만 그에 걸맞은 이름값은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자랑스러운 정조의 도시인 만큼 책고집에 가면 늘 정조 강연을 볼 수 있도록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글/김동한기자 dong@kyeongin.com, 사진/김명년기자 kmn@kyeongin.com■최준영 대표는?▲1966년생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등단▲성프란시스대학교(노숙인 인문학 강좌) 교수▲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 교수▲경기문화재단 편집주간 및 출판팀장▲군포시청 홍보기획팀장▲저서 9권 출간 : '결핍의 힘', '동사의 삶', '동사의 길', '최준영의 책고집', '결핍을 즐겨라',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유쾌한 420자 인문학',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행복한 인문학'노숙자, 어르신 등 소외계층에게 인문학 강연을 하는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57) 책고집 대표가 수원시에 위치한 '작은 도서관 책고집'에서 '동네 인문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섬 안에 숨어있던 선감학원의 이야기가 세상 밖에 나온 것은 목격자의 용기 덕이다. 선감학원 부원장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선감도에 왔던 일본인 이하라 히로미츠가 눈감아야 했던 유년의 기억을 끄집어낸 덕분에 일제 당시, 억울했던 선감 소년들의 삶이 세상에 알려졌다.그러나 그의 용기가 무색하게, 그것이 끝이었다. 광복을 맞고 대한민국, 그리고 경기도가 선감학원을 운영하는 30여년 간 소년들의 삶은 그 이전과 변한 것이 없었다. 운영의 주체만 달라졌을 뿐, 소년들은 계속 부랑아가 돼야 했고 노예와 다름없이 살아야 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선감학원을 기억하는 건 일제시대의 소년이다.소년들은 기다렸다. 그때도, 지금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던 그 사실을 용기 있게 꺼내 함께 공감하고 위로하길 기다렸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손 내밀어 주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고. 선감학원 특별기획 세번째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가장 전하고 싶었던 그 이야기들을 조각조각, 어렵게 모았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아직 그 섬에 버려진 소년을 기억하고 공감하며 위로하는 마음으로. → 편집자 주·관련기사 3면 ([선감학원 특별기획 PART3·(1)]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탈출하려다 바다에 뛰어들어…"1956년 공익제보에 '참상' 기사화 "선감도를 탈출하려는 아이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죽고 있습니다."1956년 여름, 당시 윤상철 경인일보(본보와 다른 언론사로 1962년 폐간됨) 기자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경기도가 운영하는 아동복지시설인 '선감학원'에서 원생들에게 예산을 제대로 쓰지 않는다는 '공익 제보'였다. 윤 기자는 당시 편집부 기자였던 이창식 기자와 선감도로 향했다. 낯선 이들이 나타나자, 선감학원은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원생을 만나고 싶다는 기자에 "수업 중이다", "수련 중이다"로 일관하며 막아섰고, 예산 집행 문제를 물어도 "애들한테 먹일 것 먹이고 줄 거 주고 입힐 거 다 입혔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원생 한 명과 마주쳤다. 당시를 떠올리며 이창식 기자(현 경인일보 전 편집국장)는 고개를 저었다."그때가 8월 한여름이었는데, 아이들 옷이 여간 남루한 게 아니야. 13~18세이면 한창 영양을 보충해줘야 하는데, 삐쩍 마르고 새까맣더라고. 때가 낀 것이 제대로 먹지 못한 것 같았고…." 보이는 모습만 봐도 아이들이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원생들의 생활관도 볼 수 있었는데, 흡사 군대 내무반과 같은 모습이었다. 침상 위에 놓인 국방색 모포를 들추니,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원생들이 생활하는 건물이었는데, 양쪽에 침상이 있고 모포만 위에 놓여 있더라고. 깔끔하지도 않았어요. 우중충하고 전기가 들어오는지도 모를 만큼 어두웠어요."보도뒤 더 폐쇄적, 후속취재 못해조각조각 흩어진 당시 이야기 모아 그렇게 1956년 8월 31일 '기아에 떠는 원생'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육지와 떨어진 섬에 숨어있던 소년들의 비극이 처음으로 세상과 마주한 순간이었다.두 기자는 추가 취재를 시도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보도 이후 경찰서에 불려가야 했고 선감학원은 더 폐쇄적으로 변했다. 새로운 사실이 더 나오지 못했고, 그렇게 선감학원 취재는 끝이 났다./특별취재팀※특별취재팀정치부 공지영 차장, 신현정·고건 기자, 사회교육부 배재흥·김동한 기자, 디지털콘텐츠팀 김동현 기자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이창식 편집국장 회고록. /이창식 전 국장 제공1961년 이창식 전 경인일보 편집국장이 당시 관선 경기도지사인 박창원 육군 준장 등과 선감학원에 방문했던 사진. /이창식 전 국장 제공언론사 최초로 선감학원 비리를 폭로한 1956년 8월31일자 경인일보 사회면 기사. /이창식 전 국장 제공과거 선감학원을 현장 취재했던 이창식 전 경인일보 편집국장이 취재진에게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동현기자 kdhit@kyeongin.com
이미 60여년 전 수면 위로 올라온 진실이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가까운 서쪽 바다 선감도라는 섬, 그 곳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어린 소년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 그 곳에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배우지도 못한 채 하루 10시간씩 어른도 감당키 어려운 노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 것을 눈감았다면, 그건 무관심이다. 무관심이 부른 비극은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1956년 세상에 처음 드러난 선감학원 운영 실태 '기아에 떠는 원생…희열보다 비애가 커지는 아방궁' (1956년 8월 31일 경인일보)→1956년 8월 28일 현재 174명의 부랑아를 수용하고 있는 선감학원의 운영 실태는 입에 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육지와 동떨어진 도서라는 점 때문에 부정 적발이 쉽지 않았다. (중략) 원생들은 헐벗고 배곯고 교육보다는 강제 노역에 혹사 당했다. 일부 원생들은 뭍으로 탈출하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익사한 참사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했다. (중략) 우선 의아의 초점은 막대한 예산 가운데 학원 운영비로 744만1천700환, 사무비로 425만4천300환이 지출된 점이 이해하기 어렵다. (중략) 원아의 옷차림이 초라한 것은 고사하고 학원 사무실과 직원 화장실은 호화찬란해서 원생들의 생활관과 조화롭지 못했다. 운영비 744만환으로 마련한 급식은 '꽁보리밥'에 '호박죽' 그나마도 때에 따라서는 '간장'이 전부였다. 상주 직원이 14명, 섬 안에 함께 사는 가족까지 합치면 100명이 넘었다. 이는 가족을 위한 선감학원이라고 비난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기사에는 상세히 쓰지 못했지만 직원 화장실을 두고 이 기자는 "호화찬란했다"고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도 기막힐 노릇이라고 했다. "56년 엔 일반 가정도 모두 푸세식 화장실을 쓸 때에요. 최고급 호텔이나 가야 서양식 양변기가 있었지. 원생들 화장실은 푸세식인데, 직원들 화장실엔 양변기가 있었고 아주 호화찬란했지. 너무 차이가 나서 씁쓸했지."1956년 원생 강제노역 혹사 보도"직원 화장실엔 호텔같은 양변기" 강제노역, 탈출과정의 익사, 열악한 의식주. 선감학원의 총제적 문제들이 두 기자의 용기있는 보도로 어렵사리 세상 밖에 나왔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61년, 이 기자는 다시 한 번 선감학원을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관선 경기도지사였던 박창원 육군 준장을 따라 선감학원 시찰에 동행하면서다. "나로서는 매우 궁금했지. 아이들 생활이 좀 달라졌을까 걱정도 됐고. 그때도 8월 여름이었어요. 하지만 6년 전이나 후나 똑같았어요." 박창원 준장은 도착하자마자 원생 생활관으로 직행했다. "그때와 달리 도지사가 간다니까 정리해놓았는지 모포가 네모 반듯하게 접혀있더라고. 근데 박 준장이 모포를 지휘봉으로 딱 들었어요. 모포가 쫙 펴졌는데, 다들 놀랐지. 구멍이 숭숭 뚫려서 너덜너덜해. 6년 전이랑 달라진 게 없는거야."드러난 사실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그 후로 이따금 선감학원의 실상을 다룬 보도들이 나오기도 했다. 경인일보 보도 이후 1963년 경향신문에는 부모가 있는 아이가 선감학원에 붙잡혀 갔다가 극적으로 상봉했다는 기사와 함께 1964년엔 선감학원이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마구잡이로 수용했다는 기사도 보도됐다.1963년에는 "과잉·마구잡이 단속"1964년 "위험 무릅쓴 탈출" 보도 '당챦은 부랑아로' (1963년 7월 12일 경향신문)→길을 잃고 방황하다 불량아 단속에 적발돼 아동보호소를 전전긍긍하던 12세 소년이 그를 찾아 헤매던 부모들과 8개월 만인 11일 하오 5시 극적인 상봉 후 그리던 집으로 돌아갔다 (중략) 부모는 아이가 선감으로 이송된 것을 확인, 선감학원에서 수원 혜광원으로 이송되어 수용 중인 것을 알고 찾아온 것이다.'자유에의 탈출…부랑아 수용소 선감학원생들' (1964년 10월 26일 경향신문)→국가에서 운영하는 부랑소년 수용소인 소년원에 대부분의 원생이 부모나 연고자가 있고 자유 없는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탈출하는 일이 잇달아 일어나 동심이 흐려지고 있다. (중략) 금년 들어 103명이 사방이 바다로 싸인 섬으로부터 탈출을 기도하는 등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또한, 선감학원생 427명 중 3분의 2가 부모나 연고자가 있는 소년들인데 일과에 짜인 부자유스러운 생활과 먼저 들어온 원생들의 까다로운 하명상복관계와 종일하는 일에 지쳐 위험을 무릅쓰고 바닷물로 탈출을 기도하는 것이다. (중략) 선감학원장 문기성씨는 "원아들이 모두가 연고자가 있다"고 말하면서 "부자유스러운 생활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탈출하려고 갖은 수단을 쓰고 있다"고 실정을 말했다. 이들 기사를 살펴보면 지금 선감학원의 실태로 고발되는 다수의 내용이 그대로 보도됐다. 1963년 기사에는 길을 잃은 아이가 선감학원에 수용됐다가 또 다른 아동보호소로 전원된 후 부모와 상봉했는데, 이를 두고 과잉단속이 부른 빗나간 아동복지라고 비판하며 부랑아가 아닌 아동을 마구잡이로 잡아간 선감학원 수용실태가 고발됐다. 1964년 기사는 선감학원 원생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을 시도한다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해당 기사에 등장하는 '지유성' 원생은 정확한 집 주소를 알고 있었고 부모가 있었으며 인천으로 전국체육대회를 구경 왔다 선감학원에 끌려왔다는 진술을 했다. 1982년 폐쇄까지 원생들 고통 지속 지유성 원생처럼 당시 전국체전에서 선감학원으로 잡혀 온 부랑아가 82명이라며 기사에는 연고지와 부모가 있는 아동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로 1982년 선감학원이 문을 닫을 때까지 특이할만한 언론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무관심 속에 원생들이 겪은 비극은 수십년 간 이어졌다. 원생들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특별취재팀※특별취재팀정치부 공지영 차장, 신현정·고건 기자, 사회교육부 배재흥·김동한 기자, 디지털콘텐츠팀 김동현 기자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과거 선감학원을 현장 취재했던 이창식 전 경인일보 편집국장이 취재진에게 당시 보도된 기사를 보여주고 있다. /김동현기자 kdhit@kyeongin.com1961년 이창식 전 경인일보 편집국장이 당시 관선 경기도지사인 박창원 육군 준장 등과 선감학원에 방문했던 사진. /이창식 전 국장 제공언론사 최초로 선감학원 비리를 폭로한 1956년 8월31일자 경인일보 사회면 기사. /이창식 전 국장 제공
"술에 '숙성의 미학'을 담은 우리 조상의 발효비법을 널리 알리고 좋은 일도 하고 싶은 바람입니다."농업법인 '양주골 이가 전통주' 이경숙 대표는 바쁜 일정에도 짬짬이 시간을 내 양주 시내 고등학교를 돌며 청소년들에게 우리 전통주에 깃든 철학을 들려주고 있다.길게는 반년이 걸리는 숙성의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인내와 정성이 필요한지를 배우며 청소년들은 은연중 어딘가 삶과 닮아있음을 깨닫게 된다.이 대표는 "처음엔 젊은 세대에 우리 전통주를 알리겠다는 욕심에 강의를 시작했지만, 고민 많은 우리 청소년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어머니에게 '이화주 비법' 전수 재현농업법인 설립 주부상대 제조법 교육여가·수입 동시에 노인 누룩빚기 계획 이가 전통주는 고려 시대부터 내려온 '온주법'을 바탕으로 빚는 '이화주'의 일종이며, 이화주는 현재까지 전국 여러 지역에서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이 대표는 어머니로부터 '의성 김씨' 가문에 전해지는 이화주 비법을 전수받아 재현해 내고 있다.현재는 양주시에 농업법인을 설립해 운영하며 봉사활동으로 주부들에게 간단한 전통주 제조법 강의에 나서고 있다. 이 대표의 이화주 강좌는 입소문을 타며 수강생도 꾸준히 늘고 있다.이 대표는 "생각보다 전통주에 관심이 있는 주부가 많으며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적극적이고 창업 아이템으로까지 구상할 정도"라며 "의외의 반응에 놀랐다"고 했다.재료가 되는 누룩 빚기에만 6개월, 이어지는 숙성에 또 6개월을 쏟아야 하는 긴 기다림이 청소년과 젊은 주부들에게 오히려 매력으로 느껴지는 모양이다.이에 자신감을 얻은 이 대표는 사업 못지 않게 사회봉사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숨겨진 전통주의 매력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려는 마음에서다.이 대표는 "지역에서 많은 노인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거나 빈곤에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도움이 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전통주 빚기를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여가 활용과 수입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노인 대상 누룩 빚기 과정을 운영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양주/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농업법인 '양주골 이가 전통주' 이경숙 대표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짬을 내 양주시 내 고등학교를 돌며 청소년들에게 우리 전통주에 깃든 철학을 들려주고 있다. 2022.12.19 양주/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
"우리는 지금 양으로 술을 먹는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좋은 술을 즐기는 문화가 돼야 한다."지난달 26일 평택생명농업센터에서 열린 '제12회 대한민국 명주대상'에서 심사위원과 특별심사위원으로 참석했던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BTS 진이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밝힌 전통주에 대한 소신이다. 그렇다면 예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기법으로 술을 빚는 것만이 전통주를 지키는 것일까. 이는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나만의 취향'을 찾는 MZ세대를 사로잡아야만 진정한 K-전통주로 불릴 수 있다.평택시 오성면에 위치한 농업회사법인 '좋은술'은 대통령 만찬주와 아세안 정상회의 건배주 등의 화려한 수식어를 갖고 있다. 또 지난 11월 경인일보가 주최한 '2022 경인 히트상품'에서 기업체부문 금상(주류)을 차지하는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한다.설립 10여년 만에 대통령 만찬주 등 명성다섯번 발효 오양주 현대화 '천비향 약주'지역쌀 '참드림' 사용 수개월간 저온숙성 '좋은술'이라는 이름처럼 이예령(57) 대표가 빚은 오양주 '천비향'과 삼양주 '택이', 색이 있는 막걸리 '술예쁘다' 등 탁주부터 약주와 화주, 증류주까지 향이 좋고 풍부한 맛으로 입소문이 났다.농업회사법인 '좋은술'은 설립 10여년의 역사가 짧은 회사다. 2012년 한국가양주협회가 주관하는 한국전통주학교 과정을 이수한 이 대표 등이 공동출자해 이듬해인 2013년에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의왕에 있던 양조장도 2017년에 이 대표의 집이 있는 평택으로 옮겨 오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대부분의 술은 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잘 섞어 한 십여 일이 지나면 술이 완성되는데 '천비향 약주'(도수 16%)는 이러한 발효과정을 다섯 번 거친다. 이런 발효과정을 거친 오양주인 천비향 약주는 그만큼 정성을 많이 들인 술이다.천비향 약주는 인공감미료나 화학조미료와 같은 첨가물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가장 최근에 도정한 평택쌀과 누룩, 정제수, 밀로만 만들었다. 직접 손으로 3개월간 빚어내고, 3개월 이상 저온 숙성을 거쳐 배꽃향과 누룩향이 어우러진 깊고 풍부한 풍미를 만들어낸다.이 대표는 천비향 약주를 빚을 때 가장 중요한 재료로 쌀을 꼽았다. 평택 지역에서 재배한 가장 품질 좋은 쌀인 '참드림'으로만 빚는 술이 바로 천비향 약주다.이 대표는 "최상의 맛을 내기 위해 오랜 숙성 과정을 철저히 지켜야 하고 술을 빚는 쌀과 누룩 등의 원료 품질도 깐깐하게 따져야 한다"며 "평택에서 생산되는 쌀은 토질, 기후, 재배품종, 재배방법, 수확, 건조, 저장 및 건조 등 미질을 좌우하는 여건을 모두 갖추고 있어 술을 빚기엔 최고"라고 평가했다.전통술은 누룩 상태와 발효 온도에 따라 맛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술은 발효실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바닥에서 발효통을 10㎝ 정도 띄우고, 온도는 평균 24℃, 습도는 40% 내외를 유지한다.이 대표는 사라진 가양주 가운데 오양주를 현대 방식으로 재현하고 상품화에 성공했다. 천비향은 알코올 도수 14도인 생주와 16도인 약주 제품이 있다. 그리고 3개월 발효, 3개월 이상 저온숙성을 거친 오양주 '천비향 약주'를 증류해 1년 이상 숙성한 '천비향 화주'도 생산하고 있다.사실 최근 고급 막걸리 붐이 일면서 이른바 K-전통주를 찾는 젊은 층이 많이 늘었지만 불과 이 대표가 처음 양조장을 시작했을 무렵인 10여년 전만 해도 막걸리(약주)는 싸구려 술이라는 선입견을 벗어나기 힘들었다.길지 않은 역사에도 '좋은술'은 전통주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더욱이 부담 없는 가격과 맛, 젊은 층의 눈길을 사로잡는 디자인까지 2030세대에게도 인기가 높다.천비향에 이어서 알코올 도수를 8도까지 내린 '택이', 빨간색을 띠는 '술예쁘다' 등의 막걸리를 선보였는데 '술그리다'와 '술예쁘다'는 10월9일 한글날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술로 알코올 도수도 10.9도다.이름도 순우리말이다. 비교적 낮은 도수와 이색적인 라벨 디자인으로 젊은 여성에게 인기가 높다. 좋은술은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 여성 고객이 70~80%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 온라인 판매가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한다.이 대표는 또 전통 방식만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누룩을 만드는 것에도 집중한다. 밀 누룩 전문 누룩업체 '송화곡자'의 것을 쓰고, 이화곡(맵쌀 누룩)과 홍국 누룩(붉은 쌀누룩) 등 쌀누룩은 직접 만든다. 쌀누룩을 띄울 때는 미생물 발효를 활성화하기 위해 평택에서 나는 쑥과 풀, 무궁화꽃을 넣는다.증류 과정 무궁화 넣어 은은한 향 가미도저알콜 '택이' 막걸리 '술예쁘다' 등 선봬전통주 활성화 위한 체험 프로그램 운영 전통주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기 위해 전통주 강의와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는 이 대표는 2019년에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면서 체험객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판매로 이어져 마케팅에 도움이 됐다.전통주 만들기, 술지게미 잼 만들기, 술거르기(채주), 누룩 소금 만들기 등의 체험을 하고 '좋은술 특별 마리아주 한상차림' 등의 식사도 가능해 반응이 뜨겁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주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개발한 것이 무궁화주다.무궁화꽃으로 술을 담글 수 있다는 얘기도 처음 들어봤지만 무궁화주를 상품화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무궁화를 식품 원료로 쓰지 않아서 수급 자체가 어렵자 지난해부터 유리온실을 빌려 유기농으로 무궁화 300그루를 재배하고 있다.이 대표는 "무궁화꽃을 말려서 오양주를 만들고 증류할 때 넣으면 술에서 무궁화꽃 향이 은은하게 난다"며 "무궁화꽃으로 잼과 떡을 만들고, 무궁화묵 등 술과 어울리는 안주를 만들 거예요. 술지게미 등 원료를 활용한 간편식과 밀키트 등 가공 상품을 개발할 계획도 있다"고 전했다.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앞으로도 정말 맛있고 멋진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국내외에서 많은 방문객이 찾아와 체험하고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김종호·문성호기자 moon23@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이예령 좋은술 대표는 전통 방식만 고집하지 않고 명품 막걸리 등 전통주에 환호하는 MZ세대를 사로잡는 새로운 누룩을 만들어 색다른 K-전통주를 선보이고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천비향 약주'는 5번의 발효과정을 거쳐 빚어진 오양주다. 사진은 발효과정의 누룩.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아세안 정상회의 건배주인 '좋은술'은 전시된 상패를 통해 '2022 경인 히트상품'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엿볼 수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좋은술'에서는 전통주뿐만 아니라 술지게미로 잼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경기도 31개 지자체 중 여주시만큼 역동적으로 민선 8기를 시작한 곳도 드물다. 이충우 시장은 취임하자마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일방적인 용수 공급 문제로 정부와 SK하이닉스에 각을 세웠다. 작은 지자체의 초임 시장으로서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하지만 협상 시작 4개월 만에 SK하이닉스와의 상생 협약을 이끌어냈다. 40년 여주 발전을 막아온 중첩규제에 관한 중앙정부의 긍정적인 검토 의견까지 현실화 된다면 10년 여주 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것이 지역의 중론이다.오래 묵은 현안 과제들도 뚝심 있게 밀어붙여 최근 공론화 과정을 거쳐 여주시 신청사 이전 예정지를 발표했다. 오는 23일에는 2곳으로 압축된 가축분뇨공동자원화시설 부지도 확정 발표한다. 민선 8기 여주시의 6개월 시정을 돌아보며 지방자치제가 나아갈 바를 살펴본다.특별한 희생에는 정당한 보상 뒤따라야이 시장은 취임 직후인 지난 7월5일 경기도가 주관한 용인반도체클러스터 현장 시찰과 간담회에서 "정부와 SK는 상생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일방적인 공업용수 공급에 문제를 제기하며 강하게 맞섰다. 이 시장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운영을 위해 여주 남한강에서 일일 26만5천t의 물을 가져가야 하는데, 국가와 경기도의 경제발전 측면에서 뜻을 함께해야 하지만 '상생'에는 어느 한쪽의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제동을 건 것이다. 국책사업이란 명분으로 힘없는 작은 지자체에 충분한 협의나 합리적인 지원 없이 희생을 강요하는 중앙정부와 SK 측에 처음으로 부당함을 지적한 것이다.용수공급에 관한 이야기는 이 시장이 후보 시절 마을을 방문하다 들은 것이 계기였다. 이어 당선 직후 인수위 보고를 받으면서 이 시장은 '우리가 지금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란 판단이 들었는데 그 불만이 간담회 자리에서 터졌다. 이 시장은 "간담회에서 여주시가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너무 억울하더라. 그래서 '난 그렇게 못한다. 여주 시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맞섰다"고 설명했다.일방적 공업용수 공급 문제제기 강경 맞서친기업 일부 언론 '지역 이기주의' 몰기도 이렇게 시작된 싸움은 지난 7월28일 여주시의회가 반대 성명을 발표하면서 힘을 보탰다. 그러나 모두가 우호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친기업의 입장에 선 일부 언론에서 '지역 이기주의'라며 시를 몰아세웠다. 이 시장은 "이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묵묵히 온갖 규제를 감내하며 40년 가까이 견뎌온 여주시민들이 받았을 상처에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이후 지난 8월11일 여주 관내 20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남한강 물이용 상생위원회'가 결성됐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들고 일어난 것이다. 1천장의 반대 현수막이 내걸리고, 서명운동과 함께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거세게 반발하자 정부와 SK하이닉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단합된 투쟁이 이어지자 수차례 협상 요청에도 꿈쩍 않던 SK하이닉스는 물론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경기도의 정책 담당관들이 잇달아 상생 방안을 찾기 위해 시를 찾았다. 김선교 국회의원과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의 당정 간 중재도 큰 힘이 됐다. 그리고 지난 11월21일 국회에서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용수 인프라 상생협력 협약식'이 체결됐다.정부-지자체-기업 상생 협약… 10년 여주 발전 초석상생협약 내용은 크게 SK하이닉스와 중앙정부, 기관으로 간추려진다. SK하이닉스는 시에서 조성하는 산업단지에 20개 이상 반도체 기업이 유치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용인시와 안성시 수준의 지역상생 사회공헌사업(ICT사랑방, 행복 IT Zone, 행복 도시락 및 노인·청소년 사업 등)을 오는 2025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그리고 여주지역 반도체 인력양성을 위해 여주대에 반도체 강좌 편성과 유휴 장비 지원, 관내 중·고등학교 이공계 진로 멘토링을 지원하며 쌀 소비촉진을 위해 매년 여주쌀 200t을 구매하기로 약속했다.중앙부처와 경기도에서는 자연보전권역 내 공장 신·증설 관련 폐수 배출이 없는 공장의 신·증설 규모를 2천㎡까지 가능하도록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령' 개정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자연보전권역 내 6만~10만㎡ 규모의 도시개발사업(창동)에 적극 협의해 주기로 했다.자연취락지구 등 마을이 형성된 지역에 대한 하수처리구역 확대와 소규모 마을하수도 확충, 수질오염총량제 지역개발부하량 여주시장의 자율권 확대, 한강수계관리기금 주민지원사업 확대 등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하기로도 했다.경기도는 여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국내외 신산업 기술기업 유치활동과 산업단지 1개소를 추진하기로 했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주거복지향상 및 대학생·청년 등 취약계층을 위해 수요에 부합하는 공공임대주택(300호)을 건설하기로 약속했다.협상안 성과 20여 업체 2천~3천명 고용창출이 시장은 "협상안에 모든 분야의 요구를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적잖은 성과가 있었다. 산업단지가 조성되면 20여 개 SK하이닉스 협력업체와 신산업 기업체가 들어오고, 이를 위해 하수처리구역 및 하수처리시설 확충과 공공임대주택이 건설되면 2천~3천명의 일자리 창출과 인구유입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 "국토 균형발전이나 수질 보전이라는 정부의 국정 목표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적어도 10년 여주 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여주의 발전을 옭아매는 중첩규제 완화를 위해 팔당 유역 7개 시·군과 연대해 법 개정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복합행정타운도 여주역세권 일원으로 결정이 시장은 '시민들의 불편을 하루라도 빨리 끝낸다'라는 신념으로 취임 당일 '여주시 복합행정타운 건립 추진 계획'을 제1호로 결재했다.그는 "올해 안에 최종후보지를 결정하겠다"며 그 방안으로 후보지 선정 타당성 조사 용역과 공론화 과정을 결합했다. 타당성 조사 용역에서 추려진 다수의 후보지를 공론화위원회에 안건으로 제안해 시민들의 의견 수렴·숙의 과정을 거친 뒤 최종 후보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복합행정타운' 의견수렴 거쳐 연내 장소 결정 이 과정을 거쳐 시는 지난 9일 공론화위의 권고안대로 후보지를 여주역세권 좌측 일원(가업동)으로 확정했다. 내년 초부터 신청사 건립에 따른 기본계획 및 타당성 조사 용역을 비롯한 각종 행정절차를 조속히 추진해 임기 내 착공을 목표로 차질 없이 추진한다는 계획이다.이 시장은 "청사 이전으로 우려되는 원도심 공동화 문제와 이를 극복할 활성화 대책을 내년 상반기부터 전문기관 용역을 통해 마련할 것"이며 "하동 제일 시장과 옛 경기실크 부지, 현 극장 예정지와 옛 극장 부지 주변, 창동 먹자골목 등에 도시재생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해 많은 사람이 찾아올 수 있도록 시민, 상인회와 충분히 협의해 빠르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여주/양동민기자 coa007@kyeongin.com여주시복합행정타운 후보지 결정을 위한 공론화위원회는 시민대표참여단으로 참여한 시민 189명을 대상으로 지난 3~4일 이틀간 심도 있는 숙의 토론을 거쳐 최종 후보지를 결정했다. 여주/양동민기자 coa007@kyeongin.com여주남한강물이용상생위원회와 1천여 명의 시민들은 지난 9월5일 여주시청 앞에서 '남한강 물이용 상생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여주남한강물이용상생위원회 제공이충우 여주시장. /여주시 제공
"청라대교, 하늘대교, 메타브릿지파크, 공항대교, 영종국제대교, 청라영종대교, 영종청라대교…." 2025년 개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제3연륙교'의 명칭을 무엇으로 결정할지를 두고 인천 중구 영종도 주민과 서구 청라지역 주민 간 논쟁이 뜨겁다.이들은 서로 자신이 사는 지역명이 포함된 이름으로 제3연륙교 명칭을 확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서구 청라주민은 이미 '영종'이라는 지역명이 붙은 영종대교가 있고, 제3연륙교가 청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청라대교로 명칭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청라는 돔구장, 의료타운, 로봇랜드, 국제금융단지 등 대규모 사업 추진이 예정된 만큼 제3연륙교 명칭을 청라대교로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청라시민연합 관계자는 "청라대교로 정해야 한다는 주민 여론이 우세한 상황에서 청라가 아닌 다른 지역명을 붙이는 건 어렵다고 보고 있다"며 "제3연륙교가 청라대교로 명명되도록 주민들과 지속해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중구 주민은 영종도의 영종하늘도시를 떠올릴 수 있는 하늘대교나 제3연륙교의 상징적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제3의 명칭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구 주민은 연륙교가 섬 주민 이동을 목적으로 만드는 만큼, 다른 지역도 섬 명칭을 위주로 다리 이름을 정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영종국제도시 총연합회 관계자는 "하늘대교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가장 크지만, 영종국제대교, 공항대교 등 다양한 주장이 나오는 만큼 내주부터 주민 설문조사를 거쳐 토론회를 열 예정"이라며 "제3연륙교는 추후 관광지로도 활용되는 곳으로 특정 지역 명칭을 앞세워 주민 갈등을 만들기보다 영종, 청라를 떠나서 인천 전체를 나타내는 이름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구 "돔구장·의료타운 등 지역명 필요"의회 '명칭 지정 촉구 결의안' 통과 시켜중구 "하늘 넣거나 제3의 명칭 찾아야"의회, 국제도시 위상·상징성 반영 결의안 제3연륙교 명칭을 두고 기초단체 의회 간 대립도 지속하고 있다. 지난달 서구의회는 '제3연륙교 명칭 청라대교 지정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제3연륙교에 지역명을 붙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에 중구의회는 오는 19일 '제3연륙교 명칭 영종국제도시의 위상 및 상징성 반영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킬 예정이다.제3연륙교는 길이 4.68㎞, 폭 30m 왕복 6차로로, 영종과 청라를 연결한다. 지난해 착공돼 2025년 개통이 목표다. 총 사업비 규모는 6천500억원이다. 인천과 영종도를 잇는 다리 중 유일하게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제3연륙교 주탑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180m 높이의 해상 전망대가 설치된다. 집라인과 하늘 자전거 등 체험형 시설이 함께 들어서 관광 명소로도 활용될 전망이다. → 위치도 참조반복되는 명칭 논란인천에는 육지와 영종을 잇는 연륙교로 영종대교(제1연륙교), 인천대교(제2연륙교)가 있다. 영종대교는 서구 경서동과 중구 운북동을 연결하는 총 길이 4.42㎞ 다리로, 2000년 11월 준공됐다. 인천대교는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와 영종을 잇는데, 총 길이만 12.3㎞에 달한다. 지난 2009년 개통됐다. 이들 연륙교의 명칭 결정 과정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특히 제2연륙교 때는 현재 이름인 인천대교를 시작해 월미대교, 팔미대교, 제물포대교, 황해대교 등 다양하게 언급됐다. 지역 사회에서는 연륙교 명칭을 놓고 치열한 논의가 이뤄졌고, 지역성이 강조되면서 인천대교가 최종 명칭으로 결정됐다. 연륙교뿐만 아니라 지역 내 문화·체육시설, 공항, 철도 노선 등의 이름을 결정할 때도 명칭 논란이 불거지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2006년에는 인천시가 부평구 지역에 시립 체육관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체육관 명칭을 인천 출신 레슬링 선수의 이름을 활용해 '장창선체육관'으로 결정하려고 하자, 체육관 인근 주민들은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명칭으로 정해져야 한다며 반발했다. 인천시는 주민과 관계자 의견 수렴을 거쳐 '인천삼산월드체육관'으로 결정했다.같은 해 인천국제공항 명칭을 인천-세종국제공항으로 바꾸려는 정치권 시도도 있었지만, 지역 시민단체가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2012년에는 인천 연수구가 수인선(수원~인천)명칭을 인수선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당시 연수구는 인천이 수원보다 대도시라는 점에서 인수선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철도 노선 명칭은 일관성이 유지돼야 한다는 측면에서 반영되지 않았다.주요 시설물을 둘러싼 명칭 논쟁이 벌어지는 배경엔 지역 인지도·경쟁력이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다. 주요 시설물의 이름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명칭이 포함될 경우 지역의 신뢰성과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창수 인하대학교 초빙교수는 "주요 시설물 명칭에 지역명이 포함돼 불리게 되면, 해당 지역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는 등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이는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고 주민 긍지, 자부심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제3연륙교 명칭, 대중성·목적성 부합해야"제3연륙교의 경우, 인천국제공항으로 연결되는 도로이자 관광시설 조성도 예정된 만큼, 시민은 물론 수도권 주민들의 이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때문에 제3연륙교 명칭은 대중성과 목적성을 충분히 반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최병길 인천대 도시환경공학부 교수는 "시설물 명칭은 의미 부여에 치우치기보다는 '얼마나 많은 시민에게 익숙하냐'를 주요하게 봐야 한다"며 "정보 전달 측면에서 누구나 명칭을 들었을 때 도로 위치, 목적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공항·철도노선 결정 과정서도 논쟁 발생인천경제청 "최대한 많은 목소리 들을것"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제3연륙교 개통 시기에 맞춰 서구, 중구로부터 명칭 의견을 받아 필요한 행정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제3연륙교 명칭은 인천시 지명위원회, 국가 지명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결정된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2024년에 지역별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겠다"며 "제3연륙교 명칭을 정하는 시기에 맞춰 최대한 많은 목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일러스트/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제3연륙교 조감도. /인천경제청제3연륙교는 영종과 청라를 연결하는 길이 4.68㎞의 왕복 6차로 다리다. 이 다리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를 두고 영종과 청라 주민 간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사업을 추진하는 인천경제청은 개통을 한해 앞둔 2024년께 제3연륙교 명칭을 결정할 예정이다. 사진은 제3연륙교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청라국제도시 남청라 IC인근.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인천의 경제·산업을 설명하는 많은 키워드가 있다. 전통적으로는 인천항을 중심으로 한 '해양', 남동·부평·주안 국가산업단지를 기반으로 한 '뿌리산업'과 '제조업'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송도국제도시는 '바이오산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성장 가능성과 인프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산업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산업이 '항공'분야다. 인천국제공항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항이 운영되고 있지만, 항공관련 산업은 인천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항공산업 분야에서 인천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도심항공교통(UAM·Urban Air Mobility) 활성화의 최적지로 인천이 주목받고 있다. 또 항공 MRO(정비·수리·분해조립) 산업도 활성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2017년에 문을 연 항공우주산학융합원(이하 산학융합원)은 인천에서 기업 육성, 인재 양성 등의 활동을 하면서 항공산업이 성장하기 위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설립 때부터 6년째 산학융합원을 이끌고 있는 유창경 원장은 "이제 인천은 다른 무엇보다 '항공 도시'로서 위상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UAM은 자동차와 철도에 이은 새로운 대중교통 수단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기술이다. 짧은 거리를 항공 수단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교통 체증이 발생하지 않고 최단거리에 가까운 동선을 이용할 수 있어 이동 시간이 획기적으로 짧아진다. 정부와 기업들은 오는 2025년 상용화를 위해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유 원장은 인천이 UAM 선도도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UAM은 처음 시작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실증을 어디서, 어떻게 진행하는 지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인천은 인천국제공항을 오가는 초기 노선이 개설될 수 있고, 이를 위해 실증을 진행할 수 있는 바다를 끼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했다. 이어 "실증을 시작으로 인천은 UAM 관련 기업들이 집적돼 있는 중심 도시가 될 수 있다"며 "인천은 UAM 운영사업자부터 수리·정비, 관련 인프라 구축, 부품 개발 등 다양한 산업이 생태계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산학융합원은 인천에서 UAM 실증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인천에서 UAM 서비스가 가장 먼저 시작될 수 있도록 하는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관련한 기업을 유치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하늘을 나는 택시'인 UAM은 현재 교통수단을 대체하지는 않더라도 새로운 교통체계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30년 후에는 한국에 1만대가, 세계적으로는 100만대가 운용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유 원장은 "UAM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게 될 것이고, 관련 산업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그 중심에 인천이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내년에는 특히 미국과 프랑스 등 UAM 관련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더욱 공고히 하는 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공항 오가는 초기 노선 개설·실증 가능한 바다 인접 최대 장점관련 인프라 구축·부품 개발 등 다양한 산업 생태계 조성 기대최근 정비·수리 중요성 부각… 市·공항공사, MRO 육성 활발 산학융합원이 주력하고 있는 또 하나의 산업은 항공 MRO다. 인천은 전 세계 항공기가 오가는 인천공항이 있지만, 수리·정비 등의 분야는 활성화하지 못했다. 국적항공사들이 외국에서 항공기를 수리·정비하면서 연간 2조원이 유출된다는 통계도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산업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하면서 인천시와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이 MRO산업 육성에 힘쓰고 있다.특히 국내 기업인 샤프테크닉스케이가 미국항공사인 아틀라스항공, 이스라엘 국영기업인 IAI와 협력해 인천공항에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아틀라스항공은 항공기 수리·정비센터, IAI는 항공기 개조센터다. 또 대한항공도 영종도에 대규모 엔진정비센터를 건립하고 있다. 이들 세 기업이 인천공항에서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하면 인천공항은 여객·화물뿐 아니라 MRO 분야에서도 글로벌 공항으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유 원장은 "인천은 MRO 산업이 발전하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며 "산학융합원은 이들 기업이 더 빠르게 인천에서 관련 산업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인천시와 함께 다양한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산학융합원은 MRO 인력 양성사업, 재직자 교육훈련 등을 진행하고 있다. 기업과 연계해 맞춤형으로 교육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취업으로 MRO 관련 기업에 취직하고, 재직자는 역량이 높아지는 효과를 얻는다. 기업은 교육·훈련에 드는 시간·비용을 줄일 수 있다. 유 원장은 "인력 양성사업은 결국 기업과 산업의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산학융합원은 고가인 항공장비를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프라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유 원장은 "항공정비 산업은 다양한 전후방 산업을 필요로 한다"며 "인천이 가지고 있는 제조업 경쟁력은 항공 정비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산학융합원은 인하대학교 항공우주캠퍼스, 기업연구관 등을 포함하고 있다. 산학융합원은 설립 이후 5년간 1천억원 규모로 정부의 연구과제를 수주했는데, 다수의 연구는 산학융합원 소속 연구원뿐 아니라 대학, 기업과 공동으로 수행했다. 유 원장은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더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기업은 경쟁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며 "드론 기업인 파블로항공 등 산학융합원의 많은 입주기업이 입주기간 큰 성장을 거뒀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UAM과 MRO 등 항공관련산업이 인천의 핵심 산업이 될 것으로 자신했다. 이와 함께 산업이 확장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 원장은 "항공산업 활성화는 지역 주민들이 더 좋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며 "새로운 서비스를 가장 먼저 경험하고 활용하는 도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많은 일자리와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지만, 지역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더욱 빠르게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인천 시민들이 항공분야와 미래가치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유창경 원장은?▲1989년 인하대학교 항공공학과 졸업▲2006년 KAIST 항공우주공학과 박사학위 취득▲1991~2006년 국방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2021~2022년 인하대학교 연구처장·산학협력단장▲2020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2020년 제30회 과학기술우수논문상▲인하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국방전문위원회·정책조정위원회 위원(2019년~)▲한국항공우주학회 부회장(2021년~)▲한국모빌리티학회 부회장(2020년~)▲항공우주산학융합원 원장(2017년~)항공우주산학융합원 유창경 원장은 인천이 앞으로 '항공산업 도시'로 불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인천국제공항과 바닷가를 가지고 있는 인천이 도심항공교통(UAM) 산업의 선도도시이자 중심도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항공 MRO(정비·수리·분해조립) 산업이 활성화하면서 인천의 항공 도시로서 위상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용인시 공식 캐릭터 '조아용'을 소재로 한 페이퍼 토이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어린아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종이접기를 통해 귀여운 형상의 조아용을 만드는 일에 푹 빠졌다.조아용 페이퍼 토이는 용인예술과학대학교 토이캐릭터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이수정(3학년) 학생의 손에서 탄생했다. 용인시 복지정책과 담당자는 지난 4월 어린이날을 앞두고 조아용을 활용해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신제품 개발을 고민하던 끝에 용인예술과학대 디자인 전공 교수의 추천을 받아 이씨와 연결됐다. 별도의 보수가 없는 재능기부 형태였음에도 이씨는 큰 고민 없이 시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이씨는 "마침 학교에서 '3D 모델링 디자인'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여기서 배운 부분을 활용하면 조아용을 입체적으로 구현해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무엇보다 내가 용인시민이니까 용인시를 위한 일에 재능을 기부하는 일은 꽤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3D 모델링 디자인' 배워 입체적 구현친환경·비용 저렴… 다양한 분야 활용8월 말부터 출시… 500개 가량 판매 이씨는 최근 키덜트족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은 페이퍼 토이 상품 개발에 나섰다. 페이퍼 토이는 종이를 소재로 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고 비용도 저렴한 데다, 표현의 범위가 다양해 디자인 분야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상품을 디자인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페이퍼 토이의 주 연령층인 어린아이들이 쉽게 만들 수 있도록 난이도를 맞추는 일도, 완성 단계에서 적당한 크기의 실물이 나와야 한다는 점도 생각보다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이씨는 "아이들이 만들기에 너무 어렵지도 너무 쉽지도 않아야 해 단순히 도면을 디자인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며 "출력해서 직접 접어보고 다시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수십 번 넘게 반복했다"고 귀띔했다.이씨가 도면을 완성하기까진 꼬박 3개월이 걸렸고, 마침내 일반 머그컵 크기의 조아용 페이퍼 토이 완제품이 출시됐다. 8월 말부터 판매되기 시작해 현재까지 500개가량 팔리며 조아용의 인기를 높이는 데 크게 한몫하고 있다.이씨는 "내가 개발한 상품이 실제로 판매가 되고 또 좋은 반응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굉장히 신기하고 뿌듯하다"며 "더욱이 판매 수익은 어려운 이웃의 자립을 돕는 일에 쓰인다고 하니 더 마음이 좋다"고 말했다. 용인/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용인예술과학대학교 토이캐릭터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이수정(3학년) 학생은 재능기부를 통해 조아용 페이퍼 토이를 직접 디자인했다. 2022.12.12 /용인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