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은 한국전쟁의 부산물이자 분단된 남북 민족분열의 비극을 표출하는 상징이다. 빨치산은 프랑스어 '파르티잔(partisan)'에서 유래했으며 노동자나 농민 등 비정규 군인들로 무장된 유격대를 뜻한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빨치산은 한국전쟁 전후로 좌익 계열과 인민군 패잔병들에 의해 전국의 산지에서 조직된 유격대를 일컫는다. 특히 호남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북한으로 되돌아가지 못한 인민군들이 지리산의 험준한 산악지형을 이용해 끝까지 저항했고 한국군은 이를 토벌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다. 한국전쟁 발발직후인 1951년 1월부터 4월까지 전남에서 한국군의 게릴라 대규모 토벌작전(3기)에 사살된 빨치산은 6천921명에 달하고 603명이 생포됐다. 지리산에서 빨치산을 진압하다가 목숨을 잃은 군인, 경찰, 민간인은 7천287명에 달한다.퇴각하지 못하고 지리산 입산한 북한군군·경 보급로 차단-식량 약탈 등 일삼아남한 좌익과 조직, 저항하다 6921명 사살진압과정 국군·경찰 등 7287명 목숨 잃어'부역자 혐의' 사살된 민간인 피해도 심각 ■ 한국전쟁은 끝났지만 귀순하지 못한 빨치산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호남지역에 남아있던 북한군은 퇴각하지 못한 채 지리산 인근에 입산해 빨치산이 됐다.북한군이 후퇴하자 호남·영남·충청지역에 있던 인민군 및 당 요원들은 퇴로가 차단된 채 남한에 남겨진 이들이었다. 빨치산은 남한의 공산주의자와 북한군 패잔병, 유격대원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후방에서 교란작전을 펼쳤다. 패잔병들은 중앙당으로부터 '인민군이 다시 남하할 때를 대비해 후방에서 유격활동을 벌이라'는 지시를 받고 군·경의 눈을 피해 지리산 등 산악지대에서 끝까지 저항을 한 것이다. 특히 관공서를 습격하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민가를 약탈하기도 했다.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1950년 10월 이후 군경합동작전이 전개됐고 백야전 전투사령부가 창설돼 빨치산 진압작전을 전개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군병력 이외에도 경찰병력도 많이 동원됐다. 1950년 12월 16일에는 지리산지구전투경찰사령부를 설치했다. 이들은 빨치산 진압작전을 위해 지리산 중심의 주요 고지를 포위·수색하고 근거지를 공격했다. 군경의 주요 시설을 경계·방어하면서 첩보활동을 펼쳤다.군경은 빨치산 진압과 더불어 귀순 유도를 적극적으로 시행했다. 군인과 경찰은 지리산 인근에 '삐라'(전단지)를 대량으로 배포해 빨치산의 귀순을 유도했지만 빨치산들은 귀순보다는 저항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빨치산은 인민유격대 전남총사령부와 그 산하 6개 지구대를 창설해 끝까지 저항했다. 6개 지구는 무등산 광주지구, 담양 추월산 가마골 노령지구, 구례·광양 백운지구, 화순 모후산 지구, 장흥 유치지구, 영광·함평 불갑산 지구 등이었다.■ 빨치산의 근거지, 화순 백아산 전투빨치산 세가 가장 강했던 곳은 전남도당 본부가 있던 화순 일대로, 이곳에서는 1950년 10월부터 1952년 4월까지 1년 6개월동안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조선노동당 전남도당은 인민군 점령기에 광주에 설치됐던 당 본부를 화순군 백아산 기슭에 있는 북면 용곡리 용촌마을로 옮겼다.백아산은 해발 810m로 산비탈이 가파른데다 고지가 여러 곳이라 한 곳을 점령당해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쉽고, 화순 모후산, 곡성 통명산 등으로 이동하기에도 용이했다.또한 화순은 화순 탄광 노동자들로 조직된 좌익 세력이 강했으며, 1946년 화순 탄광 노동자 봉기 이후 미 군정의 검거를 피해 많은 좌익 인사들이 산으로 숨어들어 빨치산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빨치산은 지리산 곳곳에 거점을 두고 군·경 보급로 차단, 식량 약탈, 경찰서·지서 습격, 통신망 절단, 무기약탈 등을 일삼았다. 이에 한국 정부는 1950년 10월부터 국군 11사단을 내려보내 이른바 '백아산 소탕전'을 벌였다.이 때 국군은 '성벽을 굳게 하고, 들에 있는 것을 말끔히 치운다'는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을 폈다. 백아산 주변의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을 소개(疏開·폭격 등에 대비해 대피시키는 것)하는 '초토화 작전'이었다. 이로 인해 화순군 이서면 21개 마을, 북면 24개 마을, 담양군 남면 대덕면 5개 마을 등 모두 50개 마을이 소각됐다.전투가 길어지자 1951년 11월에서 1952년 2월 사이에는 미군 폭격기를 동원해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네이팜탄(소이탄)을 투하해 백아산 일대를 불태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빨치산은 폭격기 1대를 추락시킬 정도로 강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많은 병력을 잃고 약화됐다.백아산 일대에는 1953년 7월에 휴전이 성립된 이후에도 잔존 빨치산의 활동이 이어졌으나, 1954년 2~3월 백야전 사령부의 토벌 작전으로 부대장·위원장 등 남은 지휘관마저 대거 잃은 끝에 1955년 3월 섬멸된다.■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빨치산과 교전이 치열했던 화순에서는 민간인 피해도 많았다. 낮에는 국군이 마을을 불태우거나 주민들을 '빨치산에게 부역했다'며 살해하고, 밤에는 빨치산에게 우익 인사의 가족이라거나 '협조하지 않는다'는 등 이유로 살해당했다. 당시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 정도였다.이와 관련한 진실 규명은 지난 2005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출범한 뒤에야 윤곽이 드러났다. 제1기 진화위 조사에 따르면 1950년 8월부터 1952년 4월까지 화순군 9개 읍·면에서 빨치산에 의해 111명이 희생된 사실이 확인됐다. 진화위는 화순에서 추가로 31명이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도 자행됐다. 제1기 진화위는 1950년 10월부터 1951년 3월까지 화순·담양·장성·영광·함평 등지에서 291명의 주민이 국군 제11사단 20연대 1·2·3대대, 9연대 2대대에 의해 '빨치산' 혹은 '부역자'라는 혐의로 사살되거나 연행된 후 행방불명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희생자 수는 화순이 사살 56명, 행방불명 5명으로 가장 많았다.특히 진화위는 '견벽청야' 작전을 수행하던 중 빨치산에게 협력했다고 의심되는 주민들을 무차별 사살해 작전 상의 위험을 제거하고 빨치산 토벌의 전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구사해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분석했다.■ 박동기 남녘현대사연구소장 "이념 관계없이 빨치산 학술적 연구 필요"만연한 '레드 트라우마' 관련 논문 부족국가 차원서 피해자 진상규명 이뤄져야"늦게 오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하지요. 아직까지 한국전쟁 당시 피해자들의 5%밖에 밝혀지지 않았어요. 국군, 빨치산을 막론하고 국가 차원에서 피해자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합니다."박동기(사진) 남녘현대사연구소장은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과 군·경의 충돌이 격했던 당시 피해에 대한 조사를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박 소장은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지리산 빨치산 등을 연구해 온 역사연구가다. 박 소장은 빨치산은 결국 남·북의 정치적인 이득에 따라 파생된 단체라고 설명했다. 1948년 이승만과 한민당 등이 남한 단독 선거와 단독 정부 노선을 추진하자 이에 반발해 제주4·3사건이 발생했고, 이것이 10·19 여순사건으로 이어지면서 빨치산 활동까지 연결된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특히 호남 지역에서 국군과 빨치산의 전투로 인한 피해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정학적으로 호남은 평야지대라 농경지가 많고, 그만큼 소작농이 많아 토지개혁을 통해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자는 공산당의 주장에 동조할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군으로부터 가족이 살해당한 피해자, 빨치산의 요구에 못 이겨 입산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피해자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하지만 빨치산의 구체적인 전투과정과 피해 상황 등을 밝힐 연구는 유독 미진했다고 설명했다. 사회에 만연한 '레드 트라우마' 때문에 공산당과 관련된 역사적 연구를 하려는 사람도 없고, 그와 관련된 논문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증언을 해 줄 피해자들은 마을 이웃들이 이유 없이 죽어가는 장면을 목도해 트라우마가 심하다는 점, 가족이 모조리 죽임을 당한 탓에 당시 상황을 설명할 이가 남아있지 않은 점 등을 꼽았다. 그날의 진상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못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견벽청야' 작전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고립된 삶을 산 탓에 피해 사실을 알릴 방법을 알 방도가 더욱 없다고 밝혔다.박 소장에 따르면 당시 민간인 학살의 주축은 아이러니하게도 '국군'이었다. 대략 국군이 20명을 살해하면 빨치산에 의해서는 1명이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국군이 수적으로 압도적일뿐 아니라 작전지역 일대 마을을 모조리 불태우는 작전을 썼고, 좌익 부역자 색출 등을 명분으로 적법한 절차 없이 비무장·무저항 상태의 민간인을 집단살해했다는 진술이 잇따르고 있기도 하다.박 소장은 "빨치산과의 전투는 그 자체로 이념으로 갈라선 시대의 아픔을 오롯이 보여주는 아픔이다"라며 "대한민국에서 빨치산을 연구한다고 하면 좋지 않은 시선을 받게 마련이지만, 이념에 관계없이 까칠한 역사를 정리하려는 학술적 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광주일보=유연재기자1952년 곡성경찰 소속 대원들이 빨치산 진압작전에 참여해 사로잡은 빨치산 포로들. /전쟁기념관 제공내무부장관 명의로 발행된 귀순허가증은 신분을 보장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고, 2개의 허가증을 인쇄해 빨치산들의 귀순을 유도했다. /호남호국기념관 제공휴전 이후 빨치산 진압작전이 계속되면서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빨치산들을 회유하고 귀순을 유도하기 위해 제작한 1954년 4월 15일 발행된 '지리산 특보'29호. /호남호국기념관 제공1952년 2월 15일 지리산 일대 빨치산 진압작전에 참여한 곡성 경찰서 대원들의 모습. /전쟁기념관 제공6·25 전사자 유해발굴팀이 2022년 4월 화순 백아산에서 국군 전사자로 추정되는 유해 한 구를 발굴하고 있다. /호남호국기념관 제공
"아기가 저를 쏙 빼닮아서 포기할 수 없었어요. 사랑스런 아이의 눈망울과 마주쳤을 때 가슴이 뭉클했죠." 원래 비혼주의자였던 최수아(23)씨는 전 남자친구와의 원치 않는 임신으로 어린 나이에 홀로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게 감당이 안돼 입양절차를 밟고 있었다. 하지만 미혼모 시설에 입소해 아이를 양육하던 중 죄 없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기 싫어 입양을 포기하고 용기를 내 홀로서기 세상살이에 도전했다. 7개월 된 아들 우진이가 좀 더 크면 시설 퇴소 후 독립하기 위해 사이버 대학에 진학해 보건행정학을 틈틈이 공부 중이다. 병원 사무행정직에 취업해 아이를 떳떳하게 키울 생각이다.최수아씨, 입양 중 아이 눈망울에 뭉클 '철회'사이버대학 공부하며 시설 퇴소후 독립 꿈꿔 베트남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러 한국에 유학 온 타오씨는 뜻밖의 임신으로 아이를 출산해 2년간 시설에서 딸 라희를 키워 퇴소를 앞두고 있다. 이처럼 임산부, 미혼모 가정 등 10여 세대가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성애를 갖고 자립을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베트남 유학생 타오씨, 출산후 2년간 딸 키워잇단 영아유기에 미혼모들 제도적 지원 목청최근 영아 유기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미혼모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혼모단체는 보호출산제에 앞서 미혼모에 대한 사회의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혼모 보호시설인 용인 생명의 집은 낙태 위기에 있는 미혼 임산부들과 해산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 여성들에게 복지 혜택을 주고, 출산 후 아기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양육 또는 입양을 하도록 주선하고 있다. 김소영 용인 생명의집 원장은 "미혼모들이 세상의 편견과 자신들이 처해있는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용인 생명의 집에서 생활하는 김아름, 최수아, 타오씨 등 미혼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최수아씨가 아들 우진이를 재우고 있다. 잠든 아이의 모습에 하루 고단함이 사라진다.경제적으로 독립해 아들과 함께 살기위한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최수아씨가 사이버대학 보건행정학 수업을 듣고 있다.아이들 빨래를 너는 베트남 타오씨. 딸이 성장해 이제 퇴소를 준비하고 있다.엄마의 손놀림에 마냥 즐거운 아이. 무럭무럭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미혼모로서의 마음이다.엄마와 함께 동화책을 보는 아이. 아이들 성장에 도움이 되는 장난감, 동화책, 보행기 등 사랑의 물품이 후원을 통해 전해진다.10여 세대의 미혼모들이 함께 식사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서로 의지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며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민선 8기 경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미래 먹거리'다. 미래성장산업국을 비롯한 대대적인 민선 8기 첫 조직개편안의 방향도 '경기도의 미래'가 초점이었다. 현재에만 안주하지 않고 반도체, 첨단 모빌리티,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 뛰어들어 경기도의 미래를 그려 나가겠다는 포부를 고스란히 담은 것이다. 이러한 자신감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곳이 바로 국내 유일 지자체와 대학의 공동연구기관인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하 융기원)'이다.지난 4월 차석원 서울대 기계공학 교수가 제10대 융기원장으로 취임했다. 연료전지와 미래 모빌리티, 에너지·환경 등 다양한 융합연구를 이끌어온 차 원장은 미래 먹거리를 좇는 경기도의 적임자로 꼽힌다. 수차례 이어진 실패에도 무릅쓰고 다시 도전할 때 세계를 놀라게 한 기술이 탄생하듯, 경인일보와 만난 차 원장은 공공을 위한 기술을 연구하는 융기원의 '도전'을 응원해 달라고 강조했다.국내 첫 자율주행 '판타G버스'처럼 도민 체감할 '공공성 기술' 개발 강조경기도 반도체는 핵심과제… 앵커기업-지역업체 연결 '중간 역할' 소화정부 R&D 예산 감액 대해선 효율적 사용·과감한 투자 균형 필요 '소신' "처음 융기원 건물이 이곳에 들어서기 전에 장애인 관련 사업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만 해도 판교에 자율주행협력버스가 돌아다니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전하면서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융기원은 이를 할 수 있는 기관이 돼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경기도에서 이뤄진 1번, 2번의 작은 도전이 축적돼 경기도의 인프라가 되고 산업 생태계가 마련됐습니다.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고 이를 축적한다는 것은 융기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미래를 현실로 만들다지난 7월 성남 판교 테크노밸리에 '이상한(?)' 버스가 출몰했다. 외관은 일반 시내버스와 같지만, 버스 기사는 운전대를 잡고 있지 않았다. 기사가 운전하지 않아도 버스는 혼자 움직이고 멈춘다. 그동안 일반 승용차에서만 볼 수 있던 '자율주행기술'을 대중교통인 버스에 접목한 국내 최초 자율주행협력버스 '판타G버스'다.기존 자율주행 차량은 카메라 등 자체 센서에만 의존하다 보니 사망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자율협력주행은 통합관제센터로부터 도로 인프라 정보 등을 받아 스스로 위험 상황을 감지한다. 자율주행 대중교통의 '초석'을 융기원이 마련한 것인데, 지난달 25일 기준 2천697명이 이용할 정도로 반응도 뜨겁다.판타G버스는 제로 셔틀 때부터 축적한 융기원의 자율주행기술 노하우를 담은 역점사업이자, 차 원장이 강조한 '도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다.그는 "융기원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공공성을 가진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페이퍼 연구가 아니라 도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증화 연구 사업으로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데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대표적으로 판타G버스 실증화 사업, 반도체 산업 육성 사업 등 경기도의 과학기술 관련 정책을 현장에 접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판타G버스는 시범 운행을 하면서 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교의 자율주행 인프라를 고도화할 계획이다. 더 정밀하고 효율적이며 경제적인 시스템으로 고도화해 기술을 축적할 예정"이라고 부연했다.융기원이 행정안전부 예산 지원을 통해 추진 중인 '라이다 기반 중장거리 산불 조기 감시 기술 개발' 역시 도민 밀착형 기술개발 중 하나다. 작은 불씨로 시작한 산불은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는 재난인 만큼, 이를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융기원은 산불 연기와 발화점 위치를 모니터링하는 라이다 기술을 개발, 산불을 조기에 탐지하고 장기간 실증을 거쳐 산불 예방에 기여하는 세계 선도적 기술 개발에 나섰다.■ 반도체 산업, 기술 확산부터 인력 양성까지경기도에서 반도체 산업은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과제다. 수원, 화성, 이천 등 경기 남부권을 중심으로 반도체 클러스터가 구축돼 있고 최근 정부가 용인에 세계 최대 반도체 산업단지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중심은 경기도인 셈이다.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 중 유일하게 연구·개발(R&D) 전문연구기관인 융기원에도 반도체 산업은 역점 사업으로 꼽힌다. 국내 취약분야 반도체 기술 개발부터 인력 양성까지 융기원은 반도체 산업 기술 확산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먼저 테스트베드(시험대)를 구축해 도내 반도체 기업 실증을 지원하고 이들이 국내 반도체 산업 취약분야의 기술을 개발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 반도체 산업 전문 인력양성 지원에 한창이며 '반도체 연구센터 구축사업'도 순항 중이다.더욱이 융기원은 반도체 산업에 지역 기업을 연결해주는 중간적인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빠르면 올해 안에 구축될 반도체 연구센터 구축사업의 초점 역시 산업체와 교류하며 이들이 필요로 하는 기능, 기술, 산업 등에 맞춰져 있다. 내년부터 이곳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분석 장비가 투입되는데, 이 역시 비용 등의 이유로 반도체 관련 장비를 갖추지 못한 도내 기업을 지원하는 사업이다.차 원장은 "반도체 산업을 보면 앵커 기업, 즉 하나의 중심이 되는 기업이 있고 지역 기업을 연결하는 협의체가 있다. 융기원은 도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 해당하는 지역 기업을 연결하는 중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반도체 연구센터 구축사업으로 반도체 연구소를 만들고 있는데, 올해 안에 구축을 완료하고 내년부터는 장비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분석 장비가 투입된다. 기존 융기원이 수행 중인 소·부·장 사업에 더해 현재 장비를 갖추지 못한 도내 기업이 입주해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더불어 그는 인력양성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융기원은 인력양성기관은 아니지만, 그동안 쌓은 지식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경기대, 명지대 등 도내 대학과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했고 올해부터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산업 전문인력 양성에도 나섰다.특히 그는 지역에서 이뤄지는 여러 기술개발은 대한민국 기술 생태계 구축에 도움을 준다고 힘줘 말했다.차 원장은 "연구원들은 매일 현업에 파묻혀 있다 보니, 내가 하는 연구가 대한민국, 세계에서 어느 수준에 있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기술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그다음에 해야 할 연구 방향을 판단할 수 있고 이 과정을 통해 기술 확산이 이뤄진다"며 "경기도에서 이뤄지는 실증 사업 등 지역에서 이뤄지는 기술 개발과 연구는 이처럼 현재 우리의 연구가 어느 수준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기술을 교류할 기회다. 기술 확산의 틀을 갖추고 생태계를 구축하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했다.■ 속도감 있는 기술 확산, "제도적 지원 필요"최근 정부가 내년도 R&D 예산을 올해보다 약 14% 줄이면서 과학계 반발이 거세다. 정부와 여당은 선택과 집중을 내세웠지만, 중장기적인 기초과학 연구가 위축될 것이라는 등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다. 차 원장은 이러한 최근 일련의 상황에 대해 예산의 효율적 사용이 중요하다면서도 반도체 기술 국산화 등 투자할 부분에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소신을 밝혔다.그는 "낭비되는 부분보다 투자해야 할 부분이 많다면 예산을 증액하는 것이 당연하나, 그것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예산이 없다면 삭감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예산의 효율적 사용도 중요하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세부적인 부분을 보면 해야 될 게 매우 많다. 과감하게 투자해야 할 부분은 (투자) 해야 한다. 미래 모빌리티나 AI 등 신 산업 부문에 대해서도 선진국 대비 우리나라의 수준을 파악하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아울러 차 원장은 기술 확산을 위해 경기도와 정부 등 정책 기관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빠르게 기술 개발에 착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러한 노하우를 계속해서 축적할 수 있도록 지원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차 원장은 "기술 확산을 하려고 할 때 부딪히는 정책들이 매우 많다. 자율주행협력버스만 해도 위험성을 고려해야 하나, 기술 초기에는 문제도 생긴다. 판타G버스의 경우 관련 버스 보험 상품을 새로 만들어야 했는데 이 과정만 2년이 걸렸다"며 "기술 확산을 위해서는 여러 경험을 많이 하며 노하우를 축적하는 방법밖에 없다. 특혜나 예외만 아니면 작은 부분이라도 도전하고 실험하도록 제도적 보완,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글/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사진/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차석원 원장은?1971년생으로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학사, 미국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기계공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공과대학 대외부학장, 서울대 국제협력본부 부본부장, 산업통상자원부 대한산업기술지원단장 등을 역임했다.2005년부터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서울대 차세대자동차연구센터 센터장, 제10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분야는 연료전지, 미래 모빌리티, 스마트 제조, 에너지·환경 등 폭넓고 다양한 융합연구를 맡았다.지난 4월 제10대 융기원장으로 취임한 차석원 서울대 기계공학 교수는 경인일보와 만나 "융기원의 '도전'을 응원해 달라"고 강조했다.
하남문화재단 생활문화팀 이선우 팀장은 지난 4월부터 주말을 제때 쉬어 본 적이 없다. 매주 금·토·일요일 팀원들과 함께 하남 전역에서 열리는 길거리 공연인 'Stage 하남!'의 운영사항 전반을 확인하고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이 팀장이 속한 생활문화팀은 'Stage 하남!' 전담팀이다. 생활문화팀은 매주 주말 열리는 공연을 위해 평일에는 장소 및 가수 섭외, 공연 프로그램 기획 등을 추진하며 쉴 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136개팀이 'Stage 하남!' 무대에 올랐다. 공연만 총 59회 펼쳐졌다.이 팀장은 "주말 동안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점은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공연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리 잡아가는 공연 프로그램과 관람객, 시민들의 열띤 호응 등을 뒤로할 수 없어 더욱 열심히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지난달 26일부턴 'Stage 하남!'의 하반기 일정이 본격 시작됐다. 주말마다 하남 전역 길거리 공연 전담상반기만 136개팀 총 59회 '쉴 틈 없어'사업 1년도 안돼 벌써 젊은 사람들 발길 이 팀장은 시민들이 원하는 공연을 준비하고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더욱 분발한다는 각오다.그는 "물론 공연을 준비하는데 예산이 풍족하면 더욱 질 좋은 공연을 만들 수도 있지만 부족한 예산 속에서도 시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는 거리공연뿐만 아니라 연령별 인구분포 등 지역별 특색에 맞춘 특별공연도 준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그의 최종 목표는 하남을 '버스킹'의 성지로 유명한 서울 대학로처럼 만드는 것이다.이 팀장은 "하남에서 '버스킹'이 열리기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서울과 하남을 연결하는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젊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오기 시작했다"며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지만 매회 공연마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하남시가 제2의 '버스킹 성지'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미소를 지었다.공연 준비를 위해 묵묵히 뒤에서 열심히 일해주고 있는 팀원들에게도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그는 "주말에 쉬지 못하고 일하며 'Stage 하남!'을 하반기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직원들이 열심히 도와준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생활문화팀은 일이 아닌 시민들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하남/김종찬기자 chani@kyeongin.com
지난 6월7일 여주시의회에서 보류됐던 여주시의 '여주도시관리공단의 공사 전환을 위한 조례 및 조직변경, 출자동의안'이 오는 14일부터 열리는 제67회 여주시의회 임시회에 다시 안건으로 제출되면서 재심의 결과에 촉각이 쏠리고 있다. 공사 전환은 이충우 여주시장이 후보자 시절부터 구상해온 도시개발과 발전을 위한 모델이자,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도시개발로 '신바람 나는 경제도시',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민선 8기 공약과도 맞물려 있다.시는 이를 위해 타당성 연구용역과 실무추진단 운영, 우수사례 벤치마킹을 하는 등 취임 초부터 필요한 절차를 밟아왔다. 특히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조성과 관련해 SK하이닉스와 상생 협약이 체결되고 여주시의 교통 여건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짐에 따라 인구 유입에 대비한 정주 여건 개선과 도시개발사업의 수요 증가에 대비해 지역의 이익을 실현할 개발사업의 주체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지금이야말로 타당성과 필요성을 모두 갖춘 공사 전환을 위한 적기"임을 강조하고 있다.14일부터 열리는 시의회임시회 안건 제출市, 지역 이익 실현할 개발사업 주체 촉구시의회는 재정위기 vs 경제활성화 엇갈려지방공기업이 직면하는 리스크 예방하고재무 건전성 유지·전문성 있는 사업 검토심도있는 논의로 시민 기대 현실화 해주길 '공사 전환 타당성 검토 연구용역'(2022년 12월)에 따르면 공사 전환에 대한 찬성 여론도 78.2%로 압도적이다. 도시개발 전담 기관이 생기면 지역의 요구와 이익에 충실한 개발사업이 가능해지고 그에 따른 지역 경제 활성화로 균형 발전도 이룰 수 있다는 시민들의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반면 이를 심의할 여주시의회 조례심사특위 위원들의 의견은 크게 둘로 갈린다. 공사의 부실한 경영이 자치단체에 재정 위기로 이어지지 않을지를 염려하는 부정적인 시각과 도시공사 전환으로 부족했던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인 도전이 필요하단 긍정적인 시각이다.박시선 의원은 "지난 회기에 제기된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 경제가 불확실한 시기에 민간투자 유치와 안정된 재정 운용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며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상숙 의원은 "여주시가 역세권 개발 등 도시개발사업을 앞두고 지역 경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겠다는데 이를 막아야 할 이유가 없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분명히 했다.문제는 낙관적 전망에 기초한 당위론과 경기 불황에 따른 부정적인 경제 전망이 맞서면서 공사의 운영 방식이나 구체적인 사업에 대한 분석, 검토는 미뤄둔 채 공사 전환이 여야 구도에 따른 찬반의 문제로 단순화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따라서 이번 재심의에서는 지역 경제 활성화란 시민들의 기대를 어떤 공적 시스템과 운영 방식으로 현실화시킬 것인지, 공사의 추진 목적에 맞춰 개별 사업별로 구체적으로 따져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공사의 설립 목적은 크게 공익성과 수익성이다. 지방공기업의 운영이 지방 정치의 민주화와 지방 경제의 자립에 목적을 두는 것과 같다.시가 계획하는 도시개발공사의 사업 영역은 기존 공단의 위·수탁 사업 외에 도시개발사업과 산업단지개발 사업, 공공시설물 건립 대행, 옛 하동 제일시장과 경기실크 부지의 도시재생사업 등이다. 도시개발사업은 가남역세권, 여주역세권 제2지구, 현암1지구 등 세 곳으로 타당성 검토에 따르면 이들 사업에 어림잡아 약 9천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1조2천억여원의 분양 수입이 예상된다. 현재 시가 추진 중인 산업단지는 가남, 점동, 북내, 강천 일원에 모두 15곳이다. → 위치도 참조시는 산업단지가 완공되면 약 70개의 기업이 여주에 들어서고, 최소 1천500여 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공공시설물로는 세종대왕면 청사를 포함해 6개 면의 청사 건립도 공사의 사업 범위다.이처럼 다양한 사업 영역이나 규모에 견줘 공사 조직안의 기본 방향은 오히려 평이하다. 현행 공단의 조직과 인력을 최대한 유지, 승계하되 개발사업팀을 신설해 담당 부서와 인력을 추가한다는 것이다. 기존 공단의 업무에 수익사업을 하나 더 추가한 데에 그친 것이다. 지방공기업들이 새로운 경제환경에 적응하고 수익성을 넘어 보다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엄청난 쇄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느슨해 보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여기에는 이윤 추구가 가능한 사업(택지개발 사업, 공공시설물 건립 대행)과 수익보다는 지역 경제 활성화나 공공복지에 우위를 둔 사업(산업단지개발 사업, 도시재생사업, 위·수탁 사업)에 대한 최소한의 구분조차 없다. 이는 공공성과 수익성을 조화롭게 추구하고자 하는 공기업이 짜임새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는 물론이고 사업에 최적화된 전문 인력 채용을 위한 공정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재심의 초점이 언제든 지방공기업이 직면할 수 있는 재무, 신뢰, 윤리, 갈등, 정책 리스크를 예방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제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독일 지방공기업 사례에 밝은 최승필(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의 지방공기업은 끊임없는 자기 혁신으로 새로운 공공 경영의 규칙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모범이 되고 있다"고 그 특징을 요약한다. 특히 그는 "여주시와 비슷한 인구를 가진 뷔르츠부르그 시의 경우 공기업을 지주회사 체제로 만들어 자회사가 손회사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고도의 공공성과 전문성을 강화해나가고 있다"고 전한다. 대신에 약점이 되는 작은 기업 규모는 '민간과의 협업'을 통해 극복해 나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지방공기업이 성공하려면 공공성을 입증하고 수익성을 담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재무 건전성 유지와 설립 목적에 맞게 전문성을 갖추는 등 각 사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검토가 수반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주시민들은 이번 제67회 임시회에서 지역 경제 살리기에 기로가 될 '공사 전환' 관련 조례 개정안을 놓고 근거에 기반한 문제 제기와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 실질적이고 깊이 있는 논의가 오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여주/양동민기자 coa007@kyeongin.com여주시는 도시공사 전환을 통한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도시개발에 나서 '신바람 나는 경제도시',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 나간다는 방침이다.사진은 여주시 전경. /여주시 제공지난 6월 열린 제66회 여주시의회 제1차 정례회 제2차 본회의에서 조례등심사특별위원회(위원장·박시선)는 총 44건의 조례 규칙안과 7건의 동의안에 대한 심사 결과 '여주도시공사 설립 및 운영 조례안', '여주도시관리공단 조직변경 동의안', '여주도시공사 출자 동의안'에 대해 보류 결정했다. /여주시의회 제공여주시가 추진 중인 산업단지는 가남, 점동, 북내, 강천 일원에 모두 15곳이다. 여주시는 산업단지가 완공되면 약 70개의 기업이 여주에 들어서고, 최소 1천500여 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주시 제공여주시가 추진 중인 산업단지는 가남, 점동, 북내, 강천 일원에 모두 15곳이다. 여주시는 산업단지가 완공되면 약 70개의 기업이 여주에 들어서고, 최소 1천500여 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남여주 일반산업단지 조감도. /여주시 제공
프로축구 K리그1 인천 유나이티드가 창단 이후 첫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시민프로축구단 인천은 지난 8월 22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2023~2024 ACL 플레이오프(PO)에서 베트남의 하이퐁FC를 연장 접전 끝에 3-1로 제압했다. 특히 PO 연장전 종료 직전 인천 제르소의 쐐기골은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전반 5분 선제골을 허용한 인천은 전반 16분 천성훈의 헤더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하이퐁의 역습에 고전하던 인천은 연장 전반 에르난데스의 결승골로 앞서 갔으며, 연장 후반 제르소의 쐐기골로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ACL PO서 베트남 하이퐁FC 3-1 제압전체 40팀 4팀씩 10조 중 G조 '16강 목표'19일 日 요코하마와 첫 원정경기 펼쳐10월 3일 인천경기장서 일로일로 상대 당시 제르소는 인천의 역습 상황에서 하이퐁의 골키퍼가 전진 수비를 펴는 틈을 타서 발 빠르게 볼을 탈취 후 하이퐁의 빈 골문에 볼을 차 넣었다. 골문을 향해 드리블하던 제르소는 슈팅하기 직전 인천 서포터스석을 향해 격한 세리머니를 펼쳐 보였다. 이날 승부의 하이라이트이자 마침표였다.제르소는 경기 후 "우리가 드디어 아시아로 향하고, 새 역사를 쓴다고 팬들에게 말하고 싶었으며, 그 순간을 팬들과 함께하고 싶었다"고 세리머니의 의미를 설명했다.이 경기의 승리로 인천은 울산 현대, 전북 현대, 포항 스틸러스와 함께 K리그 4개 팀이 출전하는 ACL 조별리그 참여가 확정됐다. 지난해 K리그1에서 4위에 오르며 이번 ACL PO 티켓을 획득한 인천이 창단 20주년을 맞이한 올해 아시아 무대를 향한 항해를 이어가게 된 것이다.조 추첨은 PO 이틀 후인 8월 24일(이하 한국시간) AFC 본부가 있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됐다. 인천은 조 추첨 결과 요코하마 F.마리노스(일본), 산둥 타이산(중국), 카야FC-일로일로(필리핀)와 함께 G조에 편성됐다.ACL은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로 나눠 20팀씩 40개 팀이 본선 무대를 밟는다. 4개 팀씩 10개 조를 이뤄 각 조 1위와 2위 중 상위 6개 팀이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조별예선과 준결승까진 동아시아와 서아시아 팀 간의 경기는 없으며, 결승전에 가서야 이뤄지는 형태다. 모든 경기는 홈 앤드 어웨이로 치러진다. 우승팀에겐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 출전할 자격이 주어진다.2023~2024 ACL 조별리그 일정은 1경기 9월 18~20일, 2경기 10월 2~4일, 3경기 10월 23~25일, 4경기 11월 6~8일, 5경기 11월 27~29일, 6경기 12월 11~13일이다.인천은 9월 19일 오후 7시 요코하마 국제 종합경기장에서 요코하마와 첫 경기를 펼친다. 이어서 10월 3일 오후 7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일로일로를 상대한다. 10월 25일 오후 7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산둥과 홈 경기를 가진 후 11월 7일 지난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산둥과 원정 경기를 치른다. G조의 16강 진출 팀에 대한 윤곽이나 경우의 수가 드러날 즈음에 인천은 11월 28일 오후 7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요코하마와 홈 경기를 치른다. 인천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는 12월 13일 오후 5시 리살 기념 종합운동장에서 일로일로와 원정 경기로 진행된다. → 표 참조■ 2023~2024 ACL G조의 팀들인천이 속한 G조는 한 마디로 '죽음의 조'이다. 약팀이 없다. 4팀 모두 각 리그에서 올 시즌 경쟁력을 보이며 순위 싸움을 펼치고 있다. 인천이 16강 토너먼트에 오르기 위해선 최소 조 2위 안에 들어야 하는데, 험난한 여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천과 첫 경기를 펼칠 요코하마는 지난해 J1리그 우승팀이다. 올 시즌도 8월 26일 기준 승점 50(15승5무5패)으로 비셀 고베(승점 49)에 간발의 차로 앞서며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8월 초 우리나라 대표팀의 미드필더인 남태희가 카타르 생활을 청산하고 이 팀으로 옮기면서 우리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이 밖에도 팀의 레전드로 평가받는 고(故) 유상철 감독을 비롯해 안정환, 윤일록 등 다수의 우리 선수들이 요코하마에서 활약한 바 있다. 2021년 중국 슈퍼리그 우승팀이며 FA컵에선 지난 시즌까지 3연패 중인 산둥은 우리나라의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팀으로도 유명하다. 산둥은 올 시즌에도 리그에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승점 44(12승8무4패)로 선두인 상하이 하이강(승점 53)에 이어 2위에 올라있다. 슈퍼리그의 강팀으로 자리 잡은 산둥은 ACL에도 자주 나서고 있는데, 유독 K리그 팀만 만나면 힘을 못 쓰는 점은 다행이다. 역대 ACL에서 K리그 팀 상대로 16전 2승4무10패다.일로일로는 필리핀 일로일로를 연고지로 하는 클럽이다. 올해 필리핀 리그는 지난 6월 마무리된 가운데, 일로일로는 승점 55(18승1무3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일로일로는 2021 ACL PO에서 U-23 선수들을 내보낸 상하이 하이강에 1-0으로 승리하며 첫 ACL 본선 진출권을 획득한 바 있다. 하지만, 조별리그에서 6전 전패를 당하며 짐을 쌌다. 이번 ACL에서도 일로일로는 G조 4팀 중 가장 약체로 평가받는다.올해 창단 20주년인 인천은 때맞춰 아시아를 향한 항해를 시작한다. '잔류왕' '생존왕'의 이미지도 날려버릴 기회이다. 인천은 시·도민구단 중 유일하게 2부리그를 경험하지 않았다. 1부 잔류 과정 또한 주로 최하위권에 자리하다가 시즌 막판 강등권에서 탈출해 생존하면서 '잔류왕' '생존왕' 등의 별명을 얻었다. 그러던 인천이 2021시즌엔 파이널A 진입엔 실패하지만, 조기 잔류를 확정하면서 8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듬해엔 9년 만의 파이널A 진입과 함께 4위에 오르며, ACL PO 티켓을 획득했다. PO를 통과한 인천은 첫 ACL 본선 무대에 나선다. 올 시즌 K리그1 6위(31일 기준)에 올라 순위 경쟁 중인 인천이 올해도 리그 상위 스플릿(1~6위)과 함께 ACL 16강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한다면 인천시민과 팬들의 자존감과 자부심은 최고치로 올라갈 걸로 보인다.ACL 16강전부터 결승전은 내년 2월~5월 펼쳐진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2023~2024 ACL 플레이오프에서 연장 전반 결승골을 넣은 에르난데스(오른쪽)와 결승골을 어시스트한 제르소가 하트 세리머니를 펴고 있다. /인천Utd 제공
미국 정부가 생산한 문서·사진·도면과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기록물을 보관하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은 방대한 한국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참전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관련 시기에 집중적으로 한국 자료가 만들어졌는데, 하도 많아서 그 규모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미국 NARA는 역사학자에게 마치 이집트 고대 피라미드 같은 발굴의 대상이다. 파도 파도 끊임없이 자료가 나온다. 민감한 정보를 담아 열람이 제한됐다가 추후 공개된 '기밀 해제 문건'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1865년 4월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1861~1865) 제16대 미국 대통령 암살 사건에 관한 새로운 자료가 최근까지도 나오고 있다. 미국 NARA에선 자료를 1장이나 1건이 아닌 '높이'(피트·ft) 단위로 센다고 한다. 1피트는 30.48㎝다.한국전쟁 전후 시기를 주로 연구하는 역사학자 전갑생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해마다 7개월 정도는 미국 NARA에 머물며 자료를 수집한다. 미국 NARA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국립기록관에 살다시피 한다. 올해 상반기도 4개월은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한국 관련 자료를 발굴하다 최근 귀국했다.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진 전쟁 당시 폭격, 민간인 학살, 포로수용소 등에 관한 사진과 문건이 그의 손에 들려 국내로 들어온다.기록물 수십만건 수집 '3년짜리 프로젝트'美 NARA, 자료 많아 건수 아닌 높이 계산애스컴 기지 인천사람들 고용돼 생계 유지한국인 하청업체·베이커리 등 재구성 계획 전갑생 연구원은 지난달부터 인천 사회적기업 '모씨네(MOCINE) 사회적협동조합'과 함께 인천 부평 미군기지 '캠프 마켓' 기록물 수집 작업을 시작했다. 인천시가 캠프 마켓 아카이브 구축을 목적으로 추진한 '캠프마켓 관련 기록물 수집 및 구술 채록' 작업인데, 3년짜리 프로젝트다. 연구 시간 범위는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다. 전 연구원과 모씨네 협동조합이 수집한 자료는 인천시가 역사, 교육, 문화 콘텐츠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전 연구원은 캠프마켓에서 1930년대 말 일제 군수공장(일본육군조병창) 시기부터 해방을 거쳐 1949년 한국전쟁 직전 미군이 잠시 한반도에서 철수한 시기까지 생산된 자료만 수십만 건이라고 했다. 최근 캠프마켓이 폐쇄된 시기까지 시간 범위를 확대하면 미국 NARA와 세계 각국이 보유한 관련 자료는 수백만건 규모가 될 수 있다는 게 전 연구원 설명이다."미국이 생산한 자료뿐이 아닙니다. 해방 이후 부평 일본육군조병창에 관한 첫 조사 보고서는 미군이 아닌 영국군이 냈습니다. 영국군 조병창 보고서를 보면 국내 어느 연구자도 발표하지 않은 조병창 평면도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포로 90%는 영국군과 호주군이었는데, 연합군이 점령지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수용소에 갇힌 포로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영국군이 미군보다 먼저 조병창 보고서를 작성한 것도 이러한 이유로 보입니다."캠프 마켓 기록물 수집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 단계다. 전 연구원은 해외에 흩어진 사진, 영상, 문서를 수집해 세계사적 흐름에서 캠프 마켓을 보고자 한다. 캠프 마켓은 일제강점기, 미·일이 서로 적국이던 2차 세계대전, 해방 공간, 한국전쟁, 한국전쟁 이후 미·일 동맹 강화와 반공이데올로기 확산 등 굵직한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는 캠프마켓을 인천 지역의 시각으로 재구성하고 분석할 계획이다."해방 이후 미국 제24군단 직속 부대였던 군수지원사령부(애스컴·ASCOM 24th Corps)는 부평 조병창을 베이스 캠프로 전국 미군기지에 의료, 통신, 기계, 각종 물품을 배송하는 역할을 합니다. 미군의 군수 보급기지인데, 애스컴에는 미군만 있는 게 아니라 상당수 인천 사람들이 미군기지에 노동자로 고용돼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또 상당 부분의 미군기지 건물을 수리하거나 새로 짓는 사업을 부평과 인천에 있었던 업체들이 수주한 기록이 있습니다. 미군이긴 하지만 한국인이 없으면 운영이 어려운 메커니즘이었습니다. 캠프 마켓 베이커리시설(빵공장)은 인천 쪽에서 재배한 보리를 군납해서 빵을 만들었습니다. 지역에서 나이 드신 몇몇 분만 기억하고 있는 사실인데, 애스컴 기지에서 발행한 신문에서 특집으로 다룬 내용입니다."미군기지 주변 지역은 명암이 뚜렷하다. 전 연구원은 "저임금 노동, 인종 차별, 미군 범죄 등 미군기지 관련 문제가 많았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특히 미군 범죄에 관한 자료는 일부만 공개되고 아직 가려진 것이 많다"고 말했다.경남 거제 출신인 전갑생 연구원은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비롯한 한국전쟁기 포로수용소와 민간인 학살, 경남 지역사 등을 연구했다. 그는 2016년 캠프 마켓의 유엔군 포로수용소를 답사하면서 인천에 관심을 가졌다.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가 진행한 '인천 역사자료 디지털 아카이브 사업'으로 한국전쟁 관련 자료를 수집·분석해 2020년 '인천과 한국전쟁 이야기'(글누림)를 펴냈다. 인천에서 한국전쟁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을 내세운 군사적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데, 전 연구원은 그 이면에 있는 사람과 도시 이야기를 미국 NARA에서 발굴한 자료들로 풀어냈다."인천에서 한국전쟁에 관한 군사 중심적 이야기를 평화라는 측면으로 전환해 일반 대중들이 쉽게 볼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했습니다. 냉전 문화나 포로수용소, 민간인 학살 등 제가 오랜 기간 관심을 가진 주제가 모두 인천에 함축돼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1880~1964) 책상에는 매일 전황을 요약한 보고서가 올라왔습니다. 대규모 작전인 인천상륙작전 전부터 그 보고서에는 인천에 관한 내용이 아주 자세히 나오는데, 그 자료들에는 민간인에 대한 내용이 단 한 줄도 없습니다. 미군은 인천상륙작전 대상지인 월미도와 인천항 일대 민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폭탄을 투하한 이후 효과를 물적·인적 피해, 자연재해와 연결해 분석했습니다."전 연구원은 최근 모씨네 협동조합과 '캠프 마켓 오수정화조 기록화 프로젝트', '산업유산 아카이브' 등을 진행했고, '인천시립박물관과 학술조사사업' 등 인천을 주제로 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갑생 연구원은 다음 달 중순 자료 수집을 위해 또다시 미국으로 출국한다. 그는 "인천은 아주 작은 항구였지만, 제물포라는 지명이 있을 때부터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까지 이어지는 큰 흐름을 볼 수 있는 지역이라고 생각한다"며 "시야를 넓히면 인천이 가진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전갑생 연구원은?1971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부터 한학과 역사에 관심을 가졌으며 대학에서 국문학과 한국 현대사를 전공했다.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원, 국가기록원 국외자료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현재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 아카이브연구소 수석연구원, 한국냉전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주요 저서로는 '경남, 섬의 역사'(2021·선인), '인천과 한국전쟁 이야기: 한국전쟁 70년, 평화를 묻다'(2020·글누림), '일본군 위안부 미국 관계 자료'(2020·선인), '주권의 야만(밀항, 수용소, 재일조선인'(2017·한울아카데미) 등이 있다.전갑생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이 지난 28일 경인일보 인천본사 회의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3년 동안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과 함께 진행할 '캠프마켓 관련 기록물 수집 및 구술 채록'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전갑생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이 지난해 7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아카이브에서 한국전쟁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모습.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시민참여 중심의 운영을 통해 자원봉사의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하겠습니다."지난해 말 취임한 임강영(46) 파주시 자원봉사센터장은 "코로나19 이전에는 연간 30시간 이상 봉사자가 1만명에 이르렀으나 지난해에는 2천여 명에 불과했다"면서 "앞으로는 봉사참여자의 가치를 높이는 시민참여 중심사업으로 적극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임 센터장은 10여 년 새마을회 사무국장직을 수행하면서 파주시 새마을회가 전국 최고의 새마을 조직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민선 8기 파주시 자원봉사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젊은 사람이 너무 정치적이지 않느냐'는 세간의 비판적 시각을 의식한 듯 "능력과 결과로 보여드리겠다"며 봉사활동에 시민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코로나이후 급감… '봉사의 가치' 높여커뮤니티공간·공용주방 설치 서둘러'모범 센터 만들기' 임기중 최종 목표 임 센터장은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봉사문화 정착을 위해 시민참여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각종 정보와 인센티브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면서 "현장 참여 근로봉사자 외에도 공연문화 활성화를 위해 문화예술분야 재능기부 봉사자도 적극 육성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그는 특히 "봉사자를 위한 커뮤니티 공간을 별도 마련해 봉사자 간 소통을 위한 각종 모임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활용하고, 도시락 봉사 등 음식 관련 행사의 경우 각 단체별 조리할 장소가 없어 겪는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공용주방' 설치를 서두르고 있다"고 덧붙였다.임 센터장은 또 "파주시 자원봉사센터가 직원들에게는 좋은 직장이 되면서 전국에서 가장 모범이 되는 봉사센터로 만드는 것이 임기 중 최종 목표"라면서 "전국 시·군 봉사단체와의 교류는 물론 새로운 방식의 봉사사업 확대에도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그는 '끝맺음을 처음과 같이하면 실패가 없다'는 노자의 말을 인용하며 "첫걸음을 내딛는 마음으로, 늘 자원봉사자 편에서 힘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한편 파주 출신의 임 센터장은 스포츠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재원으로, 2011년 파주시체육회 사무국장을 맡아 파주시 생활체육 발전에 기초를 다졌으며, 2013년부터 10년 동안 파주시새마을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양대 체육학과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파주/이종태기자 dolsaem@kyeongin.com
2만 중공군 포로는 제주도에 왜 왔을까?3년1개월(1천129일) 동안 벌어진 6·25전쟁에서 중공군 포로는 약 2만1천700명으로, 미군 4천439명보다 5배나 많았다. 전쟁이 한창일 당시 포로수용소는 육지와 떨어진 섬인 제주도가 후보지였다. 1950년 말 중공군의 공세로 서울을 다시 빼앗기자, 제주도의 포로수용소 설치는 유력해졌다. 다만, 리지웨이 미8군사령관은 제주도가 피난민으로 초만원이 된 점, 이 섬은 임시정부가 들어설 최후의 보루로 여기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육지와 비교적 거리가 가깝고 물 공급이 가능한 거제도가 포로수용소로 낙점됐다. 휴전 협상이 진행되고 전쟁이 끝날 조짐이 보이자 생포되거나 항복한 포로 송환은 쟁점이 됐다. 포로수용소는 냉전과 이념 대결의 축소판으로 또 다른 전쟁터였다.유엔군, 폭동·유혈사태 계속돼 분리 작전'반공' 모슬포·'친공' 제주비행장에 수용'중공 수립 3주년' 시위 발생… 45명 사망성당 건립 공사 투입시키며 교화 노력도정전협정 체결이후 각각 대만·중국 송환 2만명에 달했던 중공군 포로들은 반공(反共)과 친공(親共)으로 대립했고, 서로를 죽이고 학대하는 유혈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폭동과 유혈 사태가 끊이지 않자, 유엔군사령부는 1952년 2월 '분리 작전'에 돌입했다. 그해 7월까지 약 2만명에 이르는 중공군 포로를 거제도에서 제주도로 보냈다.당시 중화민국(대만)으로 가길 원했던 반공포로 1만4천여 명은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지역에, 중화인민공화국(중국)으로 송환을 원했던 친공포로 5천900여 명은 제주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 부지에 수용됐다. 친공포로들은 1952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3주년을 맞아 시위를 벌였다. 미군 2개 소대가 진입하는 과정에서 포로 45명이 사망하고, 120명은 부상을 당했다.유엔군사령부는 "폭동(시위)은 집단 탈주를 위해 시작됐으며, 포로들은 탈옥 후 한라산 빨치산과 합류할 계획을 세웠다"고 발표했다.이 사건 이후 경비를 맡은 미군과 친공포로의 갈등은 심화됐으며, 포로수용소 주변에 살았던 주민들은 불안감에 떨어야했다.반공포로가 수용된 모슬포지역에서는 유혈 사태가 일어났다는 기록은 없지만, 주민들은 '사제 수류탄 폭발 ', '포로끼리 패싸움 후 시체 유기 사건' 등을 언급,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당시 모슬포에는 육군 제1훈련소(1951~1956년)가 설치됐고, 한국군도 포로수용소 경비 업무를 맡았다. 지붕으로 얹은 양철판 밑에 기름을 먹인 종이(루핑)를 바른 수용소 환경은 열악했다."포로수용소 건물은 나지막하고 검은 루핑 지붕이어서 여름철에는 실내 열기가 대단했다. 나무판자로 물방아와 비슷한 선풍기를 만들어 포로들이 줄을 교대로 당기며 바람을 만들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미군부대를 출입했던 이발사 서병수씨가 당시 수용소의 열악한 사정을 증언한 내용이다.중공군 포로들은 채소밭을 일궜고, 미군의 감시 아래 수용소 인근 송악산에 오르거나 바닷가에서 미역을 채취하기도 했다.설리반(sullivan) 군종신부는 이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포로들은 늪지를 매립하고 돌을 나르며 모슬포성당 건립 공사에 투입됐다.성당이 완공되자 '통회의 집'으로 불렸다. 포로들이 한국에 많은 피해를 입힌 죄를 뉘우치며 지은 집이라는 뜻을 담았다. 나중에는 사랑으로 포로들을 용서하자는 의미로 '사랑의 집'으로 변경됐다.1953년 6월 8일 전쟁포로 송환 협의가 이뤄졌고,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됐다.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에 패해 대만으로 쫓겨 간 장제스 국민당 정부는 정전 협정 체결 전인 1953년 초부터 반공포로와 교섭하며 이들의 대만 송환을 준비했다.1953년 7월 29일 대만 정부는 제주에 있는 반공포로들에게 출판물과 영상물 제공과 함께 위문단 파견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중공군 포로의 대만행은 국민당 정부가 내전에는 졌지만, 이데올로기에서는 승리했다고 선전할 수 있는 기회였다.한 달 후인 8월 28일 대만 정부가 파견한 위문단이 제주도에 도착했다. 대만 공군은 수송기 8대를 동원, 37t의 위문품을 전달했다.당시 대만 언론에 소개된 위문품은 1인당 설탕 1홉, 소고기·채소 통조림 1개, 파인애플, 바나나 2개, 러닝셔츠 1벌이었다.1년 남짓 제주도에 수용된 1만4천여 명의 반공포로들은 대륙 행을 거부하며 팔뚝에 '반공(反共)'이나 '살주발모(殺朱拔毛)' 같은 문신을 새겼다. 홍군 총사령관 주더(朱德)를 죽여 버리고 마오쩌둥(毛澤東)을 없애겠다는 뜻이다.반공포로 1만4천여 명은 제주도를 떠나 1954년 1월 20일 인천항에서 미군 수송선에 올랐다. 1월 23일 대만 지룽항에 도착한 이들은 반공의사(反共義士)로 대접받았다. 제주비행장에 수용됐던 친공포로 5천여 명도 선박과 육로를 통해 1953년 8월부터 9월까지 본국으로 돌아갔다. ■ [인터뷰] 김웅철 향토사학자 "1년 넘게 수용, 외교사 중대 사건"장례식 사진 보유… 당시 생활상 소개직접 채소 재배·자치대 조직해 '열병'"수용소 터 매입 후대에 참상 알려야""70년 전 중공군 포로 2만명이 1년 넘게 제주도에 수용된 것은 전쟁사나 외교사에 중대한 사건이다. 제주 섬에서 벌어진 반공포로와 친공포로의 갈등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이자, 이념 갈등이었다."역사사진 자료집 '강병대(육군 제1훈련소) 그리고 모슬포'를 발간한 김웅철 향토사학자(73)는 반공포로들이 도열, 이국땅에서 숨진 동료의 시신에 청천백일기를 덮고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 담긴 귀중한 사진을 갖고 있다.김씨는 "중공군들은 모슬포~사계리 도로 개설과 모슬포성당 기초 공사에 동원됐고, 일부는 아일랜드 출신 설리반 군종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며 "채소를 즐겨먹으면서 농장대를 조직, 수용소 인근 밭에서 채소를 직접 재배했다"며 당시 생활상을 소개했다. 이어 "포로들은 또 '자치대'를 조직,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군대식 열병을 했고, 양철 조각으로 만든 피리를 불며 애환을 달랬다"며 밝혔다.김씨는 "반공포로는 모슬포지역 3곳에, 친공포로는 현 제주공항 화물청사 인근 1곳에 설치됐는데 수용소 건립으로 민가가 철거되고 토지가 강제 징발되면서 마을주민들이 적잖은 피해를 봤다"고 했다.대정읍 상모리에는 중공군 포로수용소 건물 외벽이 남아 있다. 길이 20m, 높이 2m의 석축 벽에는 창틀 모양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김씨는 "냉전시대, 제주에 수용된 중공군 포로 70%가 대만 행을 선택한 것은 국제사회에 큰 이슈였지만, 지금은 수용소 터와 건물이 마늘밭(사유지)에 남아있고, 70년 넘게 방치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수용소 터를 매입하고 복원해 전쟁의 참상과 역사의 교훈을 후대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제주일보=좌동철 기자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1953년 서귀포시 모슬포 포로수용소에 머물던 반공포로가 대만 행을 앞두고 짐을 꾸리고 있다. 소지품으로 장제스(蔣介石·장개석) 대만 총통 사진이 눈길을 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제공1953년 모슬포 포로수용소 전경. 제주 현무암과 양철 지붕으로 설치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제공1953년 모슬포 수용소에 있던 반공포로들이 열병식을 재현하기 위해 북을 치고 나팔을 불고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제공김웅철 향토사학자가 중공군 반공포로들이 모슬포 포로수용소에서 거행한 장례식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런 얘긴 안 하려 그랬는데."현관 바닥에 앉아 신발 끈을 묶던 아주머니가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점심시간 끼어 있으면 대충이라도 먹을 거는 주고 그래야 아줌마들이 좋아해. 새댁이 잘 몰라서 그러나본데."(일의 기쁨과 슬픔·2019·장류진)정부, 노동시장 축소·비용 인상 부담에 정책 도입경제적 양육 부담 줄여 저출산 극복 '큰그림' 효과동남아 노동자 한정에… 중국인 반발 가능성 높고"내국인 일자리가 먼저" 한국 노동계 반응도 싸늘서민 감당하기엔 만만치 않은 비용… 실효성 의문단축근무 등 양육시간 보장은 않고 탁상행정 비판실수요자들 "신원보증 확실해야 안심하고 맡길 듯" ■ 하반기부터 외국인 가사근로자 한국 상륙외국인 가사근로자가 한국에 온다. 기간은 6개월, 장소는 서울이다. 필리핀 등에서 100명이 오는데 이들은 가정집에서 가사와 육아를 맡게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가사 및 육아도우미는 12만1천명 수준. 지난 2013년 25만1천명에서 불과 10년 이내에 절반이 줄었다. '파출부'라 불리던 가사근로자가 사라진 자리를 '이모님'이 메우기 시작했다. 가사와 육아에서 가사 노동을 최소화하고 육아만을 담당하며 보육과 등·하원을 책임지는 구조로 노동시장이 변화했다.종일 근로·신도시 기준,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중국 국적자 50대는 270만원, 60대는 250만원이라는 '스탠더드'도 정해져 있다. 한국인을 쓰면 300만원이 넘어간다. 지속적인 노동시장 축소와 매년 오르는 비용이 겹쳐 '외국인 가사근로자'라는 시범사업에 이르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펼쳐질 시범사업, 확대될 본사업은 경기도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외국인 가사근로자, 경기도에 영향은지난해 전국 혼인건수 19만1천690건 중 경기도에서 일어난 혼인은 5만4천178건으로, 서울(3만5천752건)보다 많은 것은 물론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출생아수 역시 전국 24만9천명 탄생에 경기도가 7만5천300명으로 가장 수치가 높았다. 혼인·출생아 통계는 곧 경기도 가사근로자 시장이 가장 크다는 의미다.정부가 하반기 시작하는 외국인 가사근로자 시범사업은 6개월 동안 진행된다. 가사 근로자 서비스 제공기관에 정부 인증을 부여하고, 기관은 경력·지식·연령·어학능력 등을 검증한다. 이 과정에서 범죄 우려가 있는 지원자는 걸러내고 선발된 인력에게 한국 언어·문화·노동법을 교육한 뒤 가정에 투입한다.처우는 최저임금 적용, 직무는 청소·세탁·주방·가족구성원 양육이다. 아이를 키우는 20~40대 부부는 하루 중 일부·하루 종일 등 외국인 가사근로자가 필요한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다.24일 현재 정부 인증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은 '가사랑' 홈페이지에 목록이 공개돼 있다. 전체 인증기관 49곳 중 경기도 소재 기관은 19곳으로, 이들 기관 전체에 전화를 걸어 외국인 가사근로자 고용 유무를 확인했다. 그 결과,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기관은 단 2곳이었다.■ 중국인 배제된 외국인 가사근로자필리핀 등을 대상으로 한 외국인 가사 근로자 시범사업 전이기에 현재 고용 가능한 외국인은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중국 국적자, 즉 '조선족' 밖에 없다.인증기관인 D업체는 "한국인만 쓴다. 중국인도 지원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또 다른 D업체 역시 "중국인 가사근로자를 고객들이 선호하지 않아 한국인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기관도 상황은 대동소이했다. K업체는 "내국인 만으로도 가사 근로자 시장은 충분하다"고 했고, H업체는 "고객들이 외국인을 싫어하기 때문에 내국인부터 채용한다"고 설명했다.다만, Y업체는 "내국인 5명, 중국인 2명으로 운영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중국인을)고용해 왔다"고 했고 N업체는 "가사 서비스는 아니고 요양 보호사만 운영하고 있는데 전체 인력 240명 중 중국인이 1명 있다"고 말했다.현재 중국인 가사 근로자는 인증기관을 통하지 않고 대부분 지인 소개나 스스로 공고를 보고 일을 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인 가사 근로자 사업처럼 안정적인 일자리 알선 플랫폼이 없는 것이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의 '이주가사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 자료집'(2017)에 따르면 가사노동을 하는 조선족의 70%는 소개소 등을 통해 일자리를 구했고, 고용센터와 외국인 취업기관 등 공식적인 인프라를 거쳐 취업한 사례는 없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 한정한 외국인 가사 노동자 사업에 대한 중국인의 반발이 크다. 노순자 수원중국동포협회장은 "중국 동포는 주로 영주권을 취득한 F4비자를 가지고 가사 근로자로 일한다. 가사 도우미 사이 커뮤니티가 있어 소개로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국 동포는 조상이 한국인이고 말이 통하는 장점이 있는데 필리핀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문화도 언어도 다르다. 일회성 교육으로 한국문화를 배우기 힘들다.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중국 동포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게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노 회장은 "중국 동포는 H2(방문취업) 비자를 가지고 일하는 남성, F1(방문동거자) 비자를 가진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사는 2가지 경우가 많다. 여성은 거의 30~40대인데 이 사람들이 가사 근로자로 일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내국인 가사 시장 축소…" 한국 노동계의 우려이번에 시행될 외국인 가사근로자 사업은 비전문취업자 비자인 E9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한국 노동시장에 흡수된 중국인 노동자들뿐 아니라 한국 노동계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최영미 돌봄유니온 위원장은 "정부 정책의 문제점은 실태 조사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외국인 근로자 고용에 관한 법상 수요조사 후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 명시돼 있는데 그런 수요 부분이 파악되지 않았다. 보충성에 맞춰 내국인이 모자라는 부분에 외국인이 투입돼야 한다. 내국인 가사근로자 사이에서도 '지금 있는 일자리를 안정시키고 더 많이 일을 하게 해야 되지 않나', '그사람들이 우리나라 문화를 얼마나 안다고?'라는 반응이 가장 많이 나온다"고 전했다.또 "야근수당, 연장수당, 특근수당, 사회보험료(사용자분), 기업이윤 등을 따지면 실제로 월 250만원을 지출해야 하는 것인데 실제 이만큼 돈을 감당할 수 있는 건 중산층이나 고소득층 뿐이다. 정부는 시범사업 대상으로 한부모 가정도 거론하는데 한부모 가정이 쓰기엔 부담이 크다. 결국 돈 있는 사람만 쓰게 될 정책이라면 차라리 노인 요양이나 산모 바우처를 지원하듯 아이돌봄사업을 키우고 가사 서비스 산업 지원을 확대해 내국인 일자리부터 만드는 게 나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외국인 가사 근로자 사업 성공하려면외국인 가사 근로자 사업의 또 다른 쟁점은 저출산 극복 효과다. 경제적 양육 부담을 줄임으로써 저출산 대책이 된다는 논리인데 이에 대한 반대 근거도 만만치 않다. 양육할 시간을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방향이 틀렸다는 지적이다.정치하는 엄마들 박민아 활동가는 "단축 근무, 노동시간 유연화로 양육 시간을 보장하는 정책으로 가야 하는데 '너희는 일해라, 아이는 우리(정부)가 책임질게'식으로 나온다. 경제적으로 힘든 가정은 외국인도 고용하기 힘들기에 실효성도 의문"이라면서 "필리핀 가사 근로자에게 영어로만 대화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외국어)교육적 측면인건데 가정은 아이들이 가장 편안하게 있어야 하는 곳인데 영어를 쓰라고 하는 것보다 편하게 있게 해주는 게 더 교육적일 것"이라고 짚었다.실제 수요자의 입장은 어떨까. 수원에 거주하는 30대 주부 신모씨는 "서울 중구 직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용산이 가깝고 근방에 대사관이 많아서 그런지 인근 거주 부모들이 외국인 시터(가사 근로자)를 쓰는 일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동남아 출신 가사 근로자가 좋다·싫다는 입장은 없다. 다만 신원 보증이 확실해야 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 시스템이 확실해야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낯선 외국인과의 공존'일의 기쁨과 슬픔'(장류진·2019)에 수록된 단편 '도움의 손길'은 타인인 가사 근로자와 집주인인 주부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가사 근로자가 청소하는 네 시간 남짓 주인공은 집 안에서 공존하는 불편함을 이기지 못해 카페로 자리를 옮긴다. 가사 근로자가 떠난 뒤 침실 베란다 새시를 열어 먼지 청소를 했는지 검사하고 빨래를 '아이세탁' 모드로 돌렸는지 확인한다. 갖은 시험을 통과했지만 배신하는 건 오히려 가사 근로자 쪽이다. 끼니를 챙기지 않는 '새댁'을 탓하며 떠나는 가사 근로자를 뒤로한 주부에겐 묘한 씁쓸함만이 남는다.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으로 타자가, 그것도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발을 들인다. 저출산 대책과 내국인 노동시장 보호, 경제성과 무용론, 중국인과 동남아시아라는 길항 관계 속에 외국인 가사 근로자 도입이 가시권에 접어들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