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에 박힌 두꺼운 못을 지지대 삼아 무작정 위로 올라갔다. 고압전선이 휘감은 꼭대기에 다다를수록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다급한 마음과 달리 팔다리의 힘은 차츰 빠졌다. 이른 봄에 불어온 찬바람마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별수가 없었다. 그냥 버텼다. 용역이 모두 물러간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여자는 땅을 밟을 수 있었다. 19일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에서 또 한번 대치가 벌어졌다. 지난 8일 펜스 강제 철거 사태(3월11일 3면 보도=용주골이 맞이한 '세계여성의 날'… “방관의 역사 지우기")가 일어난 지 11일 만이다. 현장에서는 성매매 종사 여성과 용역·시 관계자·경찰 등 180여명이 'CCTV 설치'와 '펜스 철거'를 두고서 팽팽하게 맞섰다. 갈등은 이른 아침인 오전 8시께부터 시작됐다. 파주시에서 보낸 용역이 크레인을 끌고 용주골 내부로 진입했다. 이들은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초입 주차장 인근 전봇대에 CCTV를 설치하고자 했다. 앞서 지난 1월30일에도 같은 장소에 CCTV를 달려고 했으나, 이곳 성매매 종사 여성들이 고공농성을 하는 등 강하게 저항하면서 철수했다. CCTV 설치는 성매매 집결지를 '간접적으로' 폐쇄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물리력을 동원해 영업하지 않는 유리방을 철거하는 것보다 효과가 크다. 아무리 '방범 목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도, 공공에서 관리하는 CCTV가 성매매 집결지를 녹화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영업은 위축된다. 신상이 노출될 위험도 높아진다. 이날도 성매매 종사 여성 두 명이 아파트 3층 높이 전봇대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였다. 이 중 한 명은 전봇대 맨 위까지 올라가 한 시간 반가량 시위했다. 전봇대 아래서는 동료 성매매 종사 여성 80여명이 항의를 이어갔다. 고압 전선이 흐르는 등 상황이 위험해지자 한 시간 뒤인 9시께 에어 매트가 바닥에 깔렸고, 오전 10시께가 돼서야 용역이 모두 떠났다. 그러나 안심하긴 일렀다. 겨우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오후 1시께 또 다른 용역이 용주골 내부로 들이닥쳤다. 지난 8일 펜스를 없애기 위해 연풍교 초입에 자리한 '물방울 슈퍼' 인근으로 찾아왔던 그 용역이었다. 이날은 진입로를 바꿔 연풍교 뒤편으로 들어왔다. 성매매 종사 여성과 연대 시민은 서로 팔짱을 끼고 '인간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또 다른 여성들은 펜스 바로 옆에 달라붙어 함부로 펜스를 철거하지 못하게 막았다. 한 시간가량 이어지던 대치는 오후 2시30분께 용역이 그대로 철수하면서 마무리됐다. 주홍빛연대 차차의 여름씨는 “이곳에서 삶을 살아가면서 일하는 여성들과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조율하는 시도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사람을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최소한의 태도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항의했다. 이날 이른 아침과 오후, 두 번의 싸움 끝에 이곳 여성들은 CCTV 설치와 펜스 철거를 막아냈다. 그러나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용역에 일분일초 마음을 놓지 못한다. 용주골 성매매 종사 여성 A(40대 초반)씨는 “대치하는 중간중간 모욕적인 욕을 같이 듣는다. '미친X'…. 아가씨들이 지나가는 시민들한테 무시를 당하는 처지이긴 하나, 우리의 생존을 지키려 싸우는 건데 이런 욕까지 듣는다"면서 “아가씨들, 그리고 연대해주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파주시가 진지하게 들어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사람사는 이야기] '광명시민전력협동조합' 이끄는 전형근 이사장 에너지 전문기업 파트너 제안에 설립탄소중립 실천·수익 창출로 이익배분2041년까지 市에 기후대응 기금 기부광명시민전력협동조합은 2021년도 산업통상자원부 '지역 에너지신산업 활성화 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돼 '공유플랫폼기반 시민주도형 그린뉴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한 에너지협동조합이다.현재 재활용품선별장 1~5호기, 광명국민체육센터 6호기, 광명시보건소 7호기, 광명시립노인요양센터 8호기 등 8기의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해 플랫폼 형식으로 하나의 대형 발전소처럼 운영하고 있다.광명시민전력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전형근(67) 이사장. 그는 광명시에서 대표적인 '사회적경제' 전문가로 손꼽힌다.1995년부터 20여 년을 조계종 총무원에서 일했던 전 이사장은 조계종의 추천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현 국립공원공단) 상임감사로 3년간 근무한 뒤 2017년부터 소하동 금강정사의 행원사회적협동조합 상임이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사회적경제 전문가로 활동을 시작했다.전 이사장은 "2021년 행원사회적협동조합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던 중 에너지 전문기업의 민간 파트너 제안이 와 조합을 설립하게 됐다"며 "어렵게 발전소를 설치했지만 안정적인 수익과 배당이 이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그는 "13년차를 맞은 행원사회적협동조합은 사회적기업이자 마을기업,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청소년 도시락과 방과후학교급식을 하고 있는데 3년 전부터 손익분기점을 넘었다"며 "자립을 통해 사회적기업으로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에 공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됐다"고 말했다.이처럼 '사회적경제'에 몸담게 된 계기에 대해 전 이사장은 "대학생 시절과 졸업 후 10여년 동안 시민단체에 몸담으면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또 '신재생에너지와 사회적기업은 다른 듯하지만 최종적인 지향점이 같다'고 강조한 전 이사장은 "신재생에너지는 탄소중립과 환경문제, 기후에너지를 대응하기 위해 활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또한 "공적 활동을 중요시하는 사회적기업은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공동체 정신이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둘 다 똑같은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마지막으로 태양광발전소 추가 설치 계획을 소개한 전 이사장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는 첫 번째 탄소중립을 실천하고 두 번째 수익을 창출하고 이익을 나누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태양광발전소 건립 후 발전사업에 따른 수익 일부를 오는 2041년까지 광명시 기후대응기금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광명/문성호기자 moon23@kyeongin.com광명시민전력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전형근(67) 이사장은 "신재생에너지와 사회적 기업의 최종 지향점은 같다"고 설명했다. 2024.3.18 광명/문성호기자 moon23@kyeongin.com
이취임식 행사… 운영위원회 출범 조명자 전 수원시의회 의장이 경인일보 미래사회포럼 총동문회장으로 취임했다.미래사회포럼은 18일 수원파티움하우스 4층 연회장에서 '미래사회포럼 총동문회 회장 이·취임식'을 열고 제6대 운영위원회의 출범을 알렸다.이날 행사에는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비롯해 임종명 수원시 고교총동문연합회장과 미래사회포럼 1기부터 11기까지의 동문 원우들이 참석했다. 또 이영재 경인일보 대표이사 사장, 윤인수 주필, 이윤희 편집국장, 이덕진 마케팅본부장, 홍준원 출판국장 등 경인일보 임직원들도 참석해 미래사회포럼 6대 운영위원회의 출범을 축하했다.허원 5대 회장은 이임사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못다 한 부분을 신임 조명자 회장이 멋지게 이끌어 주실 것이라 믿는다"며 "5대 운영위원단을 이끌며 도와준 모든 동문께 감사하다"고 말했다.조명자 6대 회장도 취임사를 통해 "역량이 닿는 한도 내에서 미래사회포럼이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하겠다"며 "동문회원님들이 지역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 그러기 위해선 미래사회포럼의 600여명 동문회원들의 많은 참여와 도움이 필요하다"고 포부를 밝혔다.이영재 대표이사 사장은 "내년이면 80년을 맞는 경인일보의 오랜 역사에 미래사회포럼 동문들이 든든히 지탱해주었다"며 "수도권 최고라는 단어를 공유하는 미래사회포럼이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한편 미래사회포럼은 경인일보와 (사)경인미래사회발전연구원이 주최하는 최고의 리더십 아카데미다. 지난해 11기까지 607명의 동문을 배출했으며 오는 5월 12기 원우 입학을 앞두고 있다.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18일 오후 수원시 파티움하우스에서 열린 '미래사회포럼 총동문회 5·6대 총동문회장 이취임식'에서 조명자 6대 총동문회장(왼쪽)과 허원 5대 총문회장이 감사패 수여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3.18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3~6월 원미산 진달래·도당산 벚꽃·춘덕산 복숭아·장미축제 '도시사파리 예술시장' '시티투어 특별코스' 등 행사 눈길5월16~19일 '리 웨이크 페스티벌'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바이올린 한수진·오르간 최민지… 6월17일 임윤찬 초청도조용익 시장 "꽃향기·클래식 가득한 '친환경 여행지'로"부천시가 봄을 맞는 상춘객들의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올해 상반기 '2024 부천 봄꽃 관광주간'과 '부천아트센터 개관 1주년 페스티벌 리 웨이크(RE : wake)'를 선보이며, 봄꽃 향기와 클래식 선율을 관광객들에게 선사한다. 봄꽃 관광주간은 진달래·벚꽃·복숭아꽃·튤립·장미 등 5대 봄꽃을 지역 내 명소에서 3월부터 6월까지 즐길 수 있도록 꾸몄다. 부천아트센터 개관 1주년 페스티벌은 5월16일부터 19일까지 나흘간 진행되며, 피아니스트 백건우를 필두로 K-클래식을 이끌어갈 차세대 영 아티스트(Young Artist)를 소개한다. 볼 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한 봄맞이 프로그램도 시민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부천에서 만나는 5색(色) 봄꽃 여행부천을 대표하는 복숭아꽃, 원미산 일대에 피어나는 진달래 등 부천의 봄은 꽃으로 가득하다. 올해부터는 부천의 5대 봄꽃을 '봄꽃 관광주간'으로 한데 묶어 소개한다. 3월부터 6월까지 부천의 명소에서 개화 시기에 맞춰 다섯 가지 꽃을 볼 수 있다.오는 23일 선포식 이후 가장 먼저 진달래가 봄꽃 관광주간의 문을 활짝 연다. '제24회 원미산 진달래축제'는 오는 30일부터 31일까지 원미산 진달래 동산에서 열린다. 이어 '제26회 도당산 벚꽃축제'는 내달 6일부터 7일까지 양일간 부천시 도당산 벚꽃동산에서 펼쳐진다.꽃의 향연은 계속된다. '제19회 춘덕산 복숭아꽃축제'가 4월7일 하루 동안 진행된다. 튤립을 볼 수 있는 '부천무릉도원수목원 봄꽃 전시회'는 4월20일부터 5월19일까지 한 달 동안 부천자연생태공원에서 열리며, 꽃의 여왕 장미를 만나는 부천백만송이장미축제는 5월25일부터 6월9일까지 부천백만송이장미원에서 개최된다.봄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온통 꽃으로 물들게 될 이번 관광주간에는 풍성한 즐길 거리도 함께 마련된다. 우선 부천문화재단의 '도시사파리 예술시장'이 시민의 발길을 끈다. 행사는 '플리마켓' 형태로 진행되며, 지역예술가에게는 판로를 지원하고 관광객에게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부천문화원의 시티투어버스도 '오색봄꽃 버스여행' 특별코스를 운영한다. 관광주간 동안 5대 봄꽃 별로 1회씩 총 5회 진행되며, 부천의 주요 관광지와 봄꽃 축제장을 연계해 이색 코스를 관광객들에게 선보인다. 여기에는 ▲ 로봇 전시를 도슨트와 함께 관람하는 '로보파크' ▲ 환상적인 미디어아트 체험이 가능한 '레노부르크뮤지엄' ▲ 영화나 드라마 속 음향효과를 만들어보는 '폴리(Foley) 스튜디오' ▲ 쓰레기소각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부천아트벙커B39' ▲ 전통공예품을 만들어보는 '한옥체험마을' ▲ 부천시립박물관 등 지역 내 관광명소가 다수 포함돼 있다. 신청은 부천문화원 홈페이지와 유선으로 가능하며, 선착순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코스별 일정과 상세 내용은 부천문화원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나만의 튤립 소원 꽃밭 만들기', '온라인 스탬프 투어' 등 특화 프로그램도 준비돼 꽃과 함께 알찬 봄나들이를 계획할 수 있다.조용익 시장은 "부천은 수도권 교통 허브로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쉽고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는 도시"라며 "지하철과 버스 등으로 이동 가능한 탄소중립도시이자, 친환경 여행지로서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높였다.■ 부천아트센터에서 만나는 '백건우·임윤찬' 공연우리나라 최고의 클래식 공연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부천아트센터가 오는 5월 1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최고의 음향을 갖췄다는 찬사를 받으며 클래식 아티스트와 시민들을 만나온 센터는 1주년 페스티벌로 다시 깨어나는 봄의 의미를 담은 '리 웨이크(RE: wake)'를 준비했다.5월16일부터 19일까지 나흘간 진행되는 이번 페스티벌은 클래식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백건우와 다음 세대를 이어갈 젊은 예술가의 만남을 통해 K-클래식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오프닝 공연은 다양한 미니멀리즘 음악을 국내에 소개하며 클래식의 동시대성을 강조해 온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맡는다. 아드리엘 김 예술감독의 지휘로 막스 리히터의 어텀 뮤직 2개가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다.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15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2위를 입상한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과 2017년 네덜란드 슈니트거 오르간 국제 콩쿠르 1위를 수상한 '오르가니스트 최민지'가 협연한다.둘째 날인 17일 오전에는 BAC 예술포럼이 열려 국내 클래식 시장과 공공극장의 지속 가능한 방안을 이야기한다. 같은 날 오후에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무대가 이어진다. 올해 1월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김선욱과 2023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우승에 빛나는 피아니스트 정규빈이 함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한다.셋째 날은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로 꾸며진다. 이번 공연은 아티스트의 생애 첫 모차르트 프로그램이다. 그의 '모차르트 프로그램Ⅰ' 앨범 발매를 기념한 첫 번째 연주로 의미가 깊다.페스티벌 피날레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장식한다. 세계적인 지휘자 요나스 알버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석권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첼리스트 최하영이 부천아트센터의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 1번'과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1번'을 선보인다. 더불어 부천아트센터 개관 1주년 기념 특별초청 공연으로 카네기홀을 뒤흔든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이 6월17일 예정돼 부천의 봄은 물론 여름도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조 시장은 "오는 5월부터 도시 전체에 봄꽃과 함께 클래식의 향기가 가득할 것"이라며 "봄을 만끽하기 위해 모이는 관광객을 통해 소비 촉진과 지역경제 활성화도 유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누구나 마음 놓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덧붙였다. 부천/김연태기자 kyt@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부천시를 찾은 관광객들이 원미산 진달래동산에 만개한 진달래와 벚꽃을 감상하고 있다. 지난해 자료사진. /부천시 제공부천백만송이장미원에 핀 장미 사이로 시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지난해 자료사진. /부천시 제공지난해 부천시청 잔디광장에서 열린 도시사파리 예술시장에서 시민들이 체험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다. /부천문화재단 제공국내 최고의 음향시스템으로 찬사를 받는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부천아트센터. /부천시 제공피아니스트 백건우.
'신상 아이템' 1030 유혹… '브랜드 협업' 팬심 공략 인천Utd 블루마켓 상설운영 1개월만 1600명 결제수원 삼성, 강등에도 유니폼 판매량 작년 2배 늘어SSG 랜더스, 홈·원정 2만1천장 완판·모자 4천개KT, 직관때 사용 '비트배트' 최고 인기상품 등극여성 팬들 주요 소비층 자리잡으면 관련시장 커져젊은층 일상속 구단 굿즈 착용·활용 등 니즈 높아'언더마이카'와 한국시리즈 우승 기념 의류 선봬관람객 위한 효과적 마케팅 서비스 등 기획 고심프로축구 K리그와 프로야구 KBO리그가 개막하면서 경인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스포츠 구단들의 유니폼과 상품 판매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10~30대 젊은 연령대의 팬들이 주요 소비층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이들을 공략하기 위한 각 구단의 마케팅 전략도 한층 다양해지고 있다.■ 인천Utd '블루마켓' 개장 한달만에 2천명 방문… 수원삼성 'K리그2 강등' 악재에도 변함없는 팬심지난 12일 오후 1시께 찾은 인천 중구 신포동 '인천유나이티드 블루마켓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 평일 점심시간이 막 지날 무렵이었지만, 인천유나이티드 유니폼과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인천의 스타플레이어인 무고사와 김도혁 선수의 유니폼을 구매하는 20대 여성팬들, 인천유나이티드 로고가 새겨진 텀블러를 사가는 40대 남성 등 블루마켓을 찾은 고객들의 연령대도 비교적 다양했다.인천유나이티드는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 가운데 최초로 지난해 12월 신포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개장했다. 당시에는 이틀 동안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유니폼과 협업 상품을 판매했는데, 1천여명의 팬이 이곳을 찾는 등 높은 호응을 받았다. 인천유나이티드는 팝업스토어 종료 이후 2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달 17일부터 블루마켓 플래그십 스토어를 상설 매장으로 운영하고 있다.상설 매장으로 전환한 지 1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유니폼과 각종 머천다이징(MD) 상품을 결제한 사람만 1천600명을 넘는다는 게 블루마켓 관계자의 설명이다. 블루마켓 관계자는 "매장 오픈 초반에는 예약제로 운영해 한꺼번에 많은 고객이 매장에 들어올 수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기대 이상의 반응"이라며 "지난 1일 열린 개막전을 전후로 많은 팬이 이곳을 찾아왔다"고 했다.국내 프로축구에서 막강한 팬덤을 지니고 있는 '축구 명가'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삼성) 역시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유니폼과 상품 판매량이 늘었다. 지난해 성적 부진으로 인해 K리그2로 강등되는 악재를 맞았지만, 수원삼성을 향한 팬심은 식지 않았다. 지난 3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전에는 1만4천196명의 관중이 운집해 K리그2 사상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다. 유니폼 판매량 역시 온라인 스토어와 수원월드컵경기장 내 오프라인 매장 수량을 합쳐 5천장에 달했는데, 이는 지난해 개막전 판매량보다 2배 이상 많은 물량이다.리그 강등 영향으로 판매량이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던 연간 회원권 역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는 게 구단 측 설명이다. 올 시즌 우선 예매 권리가 보장된 5만원 상당의 '블루 패스 멤버십'은 2천장 이상 팔리는 등 팬들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2024시즌 앞두고 유니폼 새 단장한 SSG·KT, 개막 앞두고 팬들 관심↑KBO리그 역시 오는 23일로 예정된 개막전이 다가오면서, 새 시즌을 기다리는 팬들의 기대감이 유니폼 판매량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경인지역 프로야구단인 kt wiz와 SSG 랜더스는 공교롭게도 올해 시즌을 앞두고 유니폼을 새롭게 선보였는데, 개막까지 2주가 남은 가운데 유니폼과 상품 판매량이 예년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SSG 랜더스는 지난달 7일부터 새 유니폼 판매를 시작했는데, 2만1천장의 홈/원정 유니폼이 '완판'됐고, 모자도 4천개가 넘게 팔리는 등 지난해보다 판매 속도가 빠르게 진행됐다는 게 구단 측 설명이다.kt wiz의 경우 올 시즌 선수단이 착용할 새 유니폼의 판매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으나, 지난해 한국시리즈 진출에 힘입어 유니폼과 상품 판매량이 2배 이상 증가한 만큼 올해도 매출 규모가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다. kt wiz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관중 방문이 없었던 2020~2022년을 제외하면, 2019년 대비 지난해 유니폼 판매량은 126% 늘었다"며 "경기를 직관할 때 팬들이 사용하는 '비트배트(무선주파수를 통한 중앙 제어형 무선 응원도구)'도 굿즈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라고 했다.■ 2030 젊은 팬 대거 유입이 판매 증가 이끌었다… 브랜드 협업상품으로 팬심 공략 나서는 구단들이처럼 프로스포츠 유니폼·상품시장의 판이 커진 건 10~30대 젊은 층, 특히 여성 팬들이 주요 소비층으로 자리 잡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에는 경기를 보면서 입기 위한 목적의 유니폼 구매 비율이 높았지만, 코로나19 이후 유입된 젊은 팬들은 평소에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는 문화가 자리하기 시작했다는 게 이유다.김재웅 SSG 랜더스 마케팅팀장은 "젊은 팬들은 일상 속에서 구단 굿즈를 입거나 사용하고 싶어하는 니즈가 있다"며 "구단도 이런 트렌드에 따라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방향으로 상품을 제작 중"이라고 했다.팬들이 원하는 상품을 내놓기 위해 구단들은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 스포츠 크리에이티브 브랜드인 '오버더피치'와의 협업이 대표적이다. 인천 유나이티드와 수원 삼성은 오버더피치와 협업해 지난해부터 기획상품을 내놓고 있는데, 인천유나이티드는 지난해 창단 20주년을 맞아 2003년 첫 시즌의 유니폼에서 영감을 받은 의류를 선보였다. 수원 삼성도 올해 초 K리그 출범 40주년을 기념해 2번째 우승을 차지했던 2002시즌의 유니폼을 오버더피치가 재해석한 '올드 유니폼'으로 출시했다.SSG랜더스는 2022년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30초 완판 브랜드로 유명한 '언더마이카'와 한국시리즈 우승 기념 의류를 선보였고, 모기업 브랜드인 스타벅스와 SSG닷컴과 연계한 굿즈를 판매해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KT위즈는 올 시즌 새 유니폼을 스포츠 유니폼 전문 디자인 유튜버 '주모튜브(jumotube)'와 협업해 제작했다. 일상에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이나 의류를 입은 사진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공유하는 젊은 팬들의 니즈를 공략하기 위해 2030 세대의 호응이 높은 브랜드나 디자이너와 손을 잡고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김재웅 SSG 마케팅팀장은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은 (기존의 마케팅보다)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고, 팬들의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며 "경기장을 방문하는 관람객의 여러 유의미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마케팅 서비스와 상품을 기획하고자 한다"고 했다. /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인천유나이티드가 지난달 17일 인천 중구 신포동에 문을 연 '블루마켓 플래그십 스토어'. 2024.3.14 /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인천 미추홀구 문학동 'SSG 랜더스필드'에 위치한 랜더스 스토어. /SSG 랜더스 제공
우리는 '지역정당'을 원한다 ③ 2024년 봄, 국민들이 또 회초리를 쥐고 섰다.우리동네 대표선수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정치성향을 분류하자면 크게 2가지다. 아무도 못 믿거나, 아묻따 믿거나. 참고로 아묻따는 '아무것도 묻고 따지지 않는다'는 요즘 은어다. 아무도 못 믿는 이들을 집계해보니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30%대를 기록하고 있다. 좋게 말해 어떤 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 이정도면 무당층이 하나의 정당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아묻따 믿는 이들은 아이돌 사생팬과 모습이 흡사한데 강력한 '팬덤'으로 무장한 극렬지지층으로, 이들 역시 양극단에 30%대씩 차지하고 있다.기이한 현실을 두고 전문가들은 거대 양당 정치의 폐해라고 진단한다. 3김 시대보다 더한 극단의 정치를 만들어놓고는 선거철이 다가오니 정치인들도 양당정치가 문제라고 한다. 그러면서 '제3지대' '신당' 바람을 일으켰다. 제3지대가 성공하면 우리 정치가 달라질까. 정치가 우리 삶에, 내 피부에 와닿을 수 있을까. 경기도민이 겪는 고질적인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인천시민이 고통받는 쓰레기 매립장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우리동네 대표선수를 자처하며 표를 달라 구걸하던 이들이 선거가 끝난 후 '서울 여의도 후보선수'로 전락하는 현상이 끝날 수 있을까.그래서 묻는다. 아니 따진다. 이준석 신당도 되고, 이낙연 신당도 되고, 하물며 허경영당도 되는데왜 지역정당은 안되느냐고총선 D-28, 지역 정치 없는 한국 정치 현주소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28일 앞둔 현재,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단어는 '전략공천'이다. 어떤 선거구에 특정 상대후보를 겨냥해 거물급 인사 또는 상징적 인물을 공천하는 것이다. 오직 '이기기 위해서'. 선거에서 이기는 게 최대 목표라면 주민은 잊혀지기 쉽다. 지역은 오직 쟁취해야 하는 '선거구'일 뿐, 인지도와 경력, 힘으로 무장한 후보를 내세운다.선거철만 되면 등장하는 전략공천을 두고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어티 상임이사는 "불쾌하다"고 잘라 말했다. 주민들 의사와 상관없이 갑자기 중앙당에서 지역에 지역과 관련없는 사람을 내려보냅니다. 주민들 입장에서 굉장히 불쾌해요. 이들에겐 공천권이 투표보다 더 중요하다 보니 유권자인 주민을 신경쓰는게 아니라 본인 정당 사람들 눈치를 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대표적인 사례는 '명룡대전'이라 불리는 인천 계양을이다. 현재 계양을을 지역구로 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맞서기 위해 국민의힘이 전략공천을 통해 후보로 지명한 사람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장관이다. 선거기사 중 보도량이 가장 많을 만큼 인물 면에선 화제성이 높은 지역이지만, 계양을은 없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쟁터'로 계양을을 빌려줬을 뿐, 주민도 없고 의제도 없다.실제로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전략공천 지역은 전체 지역 중 약 10%를 차지해왔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는 253개 지역구 중 더불어민주당은 28곳에 후보자를 전략공천했다. 그 중 11곳이 경기도 지역구였다.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도 253석 중 23곳에 전략공천했으며 그 중 경기지역은 6곳이었다.이번 선거도 양상은 비슷하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이번 총선에서 전략공천을 의미하는 '우선추천 지역구' 선정 기준에 따라 경기지역 최소 34곳에 전략공천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선정 기준은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패배한 곳, 재·보궐 선거를 포함해 최근 국회의원 선거에서 3연패한 곳 등이다. 현재 국민의힘은 경기지역 17개 선거구에 전략공천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발표한 전국 전략선거구로 현역의원 불출마 지역 7곳과 현역의원 탈당 지역 10곳을 선정했다. 그중 경기지역은 6곳이다. 이 17곳 외에 새롭게 추가한 경기지역 전략선거구는 12곳으로, 총 18곳이 경기도 전략선거구가 됐다.지역정치에서 '주민'이 사라지고 '지역의제'가 실종되는 폐단은 비단 이 뿐이 아니다.2022년 제8회 지방선거에선 494명 후보자가 투표 없이 당선됐다. 이른바 '무투표당선'. 로또같은 행운의 주인공들은 그 이전인 7회 지방선거(89명) 때보다 4년 새 5배 이상 증가했다. 경기지역에서는 기초의원 50명과 기초의원 비례대표 4명이 투표없이 당선됐다. 7회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역 무투표 당선자는 4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10배가 넘는 증가다. 중대선거구제 하에선 기초의회의원의 경우 후보자 수가 선거구 당선인 수와 같으면 등록 후보자 전원이 당선되기 때문이다.문제는 이런 행운 역시 기성정당들이 독식한다는 점이다. 지난 지선에서 무투표당선자의 소속정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뿐이었다. 두명을 선출하는 지역구는 거대 양당에서 한명씩 공천하는 현상이 비일비재다. 지방자치의 꽃인 지방선거조차 거대정당 중심으로 치러지다보니, 특정 정당이 우세한 '텃밭'에는 소수정당들조차 출마를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거대양당이 굳건히 자리잡은 탓에 무소속이나 군소정당에선 출마를 주저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공직선거법상 무투표 당선인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선거공보물과 명함을 받아볼 수도 없고 공약을 홍보하는 현수막조차 볼 수 없다. 이를 개정하려는 법안이 2022년 국회에 발의됐지만 계류중이다. 해당 지역구 주민들은 법대로 '깜깜이' 선거를 치를 수 밖에 없다.윤현식 노동정치사람 연구위원은 "무투표당선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획일화됐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잘라 말했다. 윤현식 연구위원은 지난해 '주민에게 허하라 지역정당'을 공동출간한 데 이어 '지역정당'을 출간한 지역정치 전문가다. 무투표당선자들 현황을 살펴보면 거대 양당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군소정당에서 후보를 내봤자 떨어질 것을 아니깐 나오지 않아요. 따라서 정치적 다양성이 말살됐고 선거법상 무투표당선자는 선거 운동을 할 수 없어 유권자의 선택권과 통제권도 박탈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지방자치를 시작한 지 30년이 흘렀다. 자치는 둘째치고, 지역에 주민의 목소리를 담은 정당 하나 못 만드는 지난 30년 동안 지역의 정치는 '실종'됐다.왜 지역정당인가 OECD 회원국 중 정당 설립 요건을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하는 국가는 한국과 독일 정도다. 정당법이 아예 없는 국가가 상당수며 있더라도 설립요건을 정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독일의 경우도 정당의 개념과 목적에 대해서만 규정할 뿐, 중앙당의 위치·시도당의 갯수와 같은 구체적인 설립 요건에 대해서 제한을 두지 않는다. 특히 다양한 지역정당 활동을 보장하는 유럽 분위기로 인해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등은 지방선거에서 지역정당이 20%대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다.가까운 일본도 지역정당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본은 정당조성법 등에 따라 정치단체 중 국회의원 5명 이상이 소속된 단체, 최근 실시한 중·참의원 선거에서 전국 유효투표 수 중 2% 이상의 득표를 한 단체를 정당 설립 요건으로 규정한다. 이같은 요건만 맞출 수 있다면 지역적 제한이 없기 때문에 지역정당이 가능한데, 실제로 일본의 지역정당은 지역의 자율성 회복을 위해 기존 정당정치가 반영하지 못한 다양한 의제를 설정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윤현식 연구위원은 "우리같은 정당법을 갖고 있는 나라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당법을 비교할만한 나라가 어디냐는 질문을 많이받는데 선진국 중에 정당법이 있는 나라는 거의 없어요. 특히 민주국가에는 더욱 그렇죠. 복수당적금지규정 정도만 있습니다. 정당의 존립 자체가 유권자의 권리로 결정하는 게 자연스러운 생리인데, 법으로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죠. 1962년 군사독재정권에 만든 법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게 아이러니한 일입니다정당법의 탄생은 사실 5·16 군사정변 이후 군사독재정권이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 연고의 경쟁자를 억제하기 위해 만들었다. 지역정당을 막는 '전국정당조항'은 1962년에 제정될 당시의 체계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정당 설립 요건을 일부 완화했지만 여전히 정당법은 정당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작동되고 있다. 군사독재시절, '독재'를 공고히 하는데 악용된 정당법이, 민주주의가 무르익은 지금은 기득권 양당정치를 공고히 하는 데 쓰이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정당법이 개정된다면 지역정당은 물론, '의제정당'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다양한 색채의 정당들이 생기고 국회의 구성 자체가 다변화되면 현재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로 지목받는 거대 양당정치를 타개할 수 있다는 것. 윤현식 연구위원은 "지역정당이 가능해진다면 특별한 의제를 기치로 내건 단일의제정당도 가능해진다. 유럽에는 노동당, 페미니즘당도 있고 해적당도 있는데 이 당은 지적재산권 등 정보통신분야를 주로 다루는 정당"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정당 운동은 정치의 체계를 더 크게 확장시켜보자는 데 그 힘이 있다"며 "대구가 국민의힘의 아성이라고 하지만 대구시민 모두가 국민의 힘이 좋아서 찍는 게 아니고, 광주광역시 역시 민주당이 마냥 좋아서, 옳아서 찍는 게 아니다. 20대 총선에 국민의힘이 호남을 휩쓸었던 현상도 민주당에 실망한 상황에서 대체재가 등장하니 가능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라 지금 87년 이후에 양당 이외에 정권을 가져간 당이 없다"고 꼬집었다.지역정당 창당을 목표로 달려온 주민들은 다시 도움닫기에 나섰다. 이용희 직접행동영등포당 대표는 대중에게 관중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뛰어보자고 적극 제안할 생각이다. 이용희 대표는 "지역정당 단체들은 그간의 활동을 통해 지역정당이 무엇이고, 대한민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영등포당은 '청소년 정치학교'를 계획하고 있는데, 청소년이 생각하는 첫 정치란 무언인가를 고민하고 청소년들이 기득권의 정치 모습과 다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과천풀뿌리가 지역정당을 선언하고 만든 '과천시민정치당'은 헌재 판결 이후 구성원이 2~30명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활동이 축소됐다. 하지만 남은 이들은 다시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2026년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조직을 재정비 중이다. 지난해 열었던 주민 현안 토론회 '정치살롱', 영화상영회, 하계 정치학교 등 기존 활동과 함께 바뀐 시대에 따라 시민사회 활동에 전략을 세워 과천의 새로운 바람을 꾀고있다. 이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과천에 살면서 수의사로, NGO 출신 활동가로, 회계사로, 지역활동가로 생업에 몸담으며 내가 사는 지역을 함께 책임지고 변화시키기 위해 수년간 애써온 평범한 이웃이다. 지역정당은 현재 정치체제를 깊게 고민하며 지역에서부터 정치의 변화를 이뤄가자는 시도이고, 차근히 그 경험을 해보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손흥민 선수의 플레이를 보기만 하지말고, 매주 동네 조기 축구회에 나가서 우리도 직접 우리만의 플레이를 하며 세상을 바꿔보자는 것입니다 /공지영·김산·이영선기자 jyg@kyeongin.com사진 왼쪽부터 원희룡, 이재명2014년 지방선거 과천풀뿌리 주민후보 선거운동. 2014.5.
"소방관 처우개선 자긍심… 의원 내려놓고 정치불신 불 끌것" 우레탄폼 등 가연성 심재 사용금지한 '건축법 개정' 입법활동 큰 의미개정법 소급안돼 평택 냉동창고 대형화재때 소방관 3명 순직 '무력감'뒤에서 목소리만 내는게 부끄러워 돌아가… 의정부시민으로 남을것"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출동하는 119 구조대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무이한 목표다."권력의 맛을 보면 내려놓기가 어렵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을 안타까워해도 그 자리를 대신하긴 어렵다. '세상의 이치'를 기준으로 보면 오영환 국회의원이 겨우 초선으로 '불출마' 선언을 한 진심을 믿기 어렵다. 또 그 잣대로 보면 다시 시험쳐서 구조대원으로 돌아가겠다는 진의를 알기 어렵다.그래서일까. 오 의원은 불출마 선언을 한 지난해 4월10일 이후 지속적으로 '왜'를 질문받고 있다.■ "내려놓음으로써 정치 신뢰 회복에 밀알이 될 것"더불어민주당은 오영환 의원에게 복잡미묘한 감정으로 남은 것 같다. 전략공천으로 정치 기회를 부여한 감사한 정당이면서도 민주당 초선의원으로서 활동하는 동안 그는 정치에 한계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오 의원은 '정치에 염증을 느꼈냐'는 질문에 "염증은 안 맞는 표현"이라면서도 "갈등과 혐오의 정치현실을 바꾸지 못한 데 대한 반성과 성찰, 제 역량의 부족을 느꼈을 뿐"이라고 답했다.그는 4년 전 한 언론사와 한 '영입인재' 인터뷰에서 "정책을 보완할 방법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권력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공격하는 것에 몰두하는 정치"를 '정치를 위한 정치'라고 비판하고 개선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리고 4년 뒤 그는 "지금의 정치는 극단적 대결, 승자독식, 모욕과 비난 일변도 공격이 최우선이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내가 몸담은 정당 진영의 목소리만을 앞세워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는 오늘날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잃는 근본원인"이라고 질타했다. 또 "대화 설득 협의 정신의 사회적 대타협 정치가 복원돼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힘"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오 의원은 "그런 역할을 제가 속한 당이 먼저 해주길 바랐지만…"이라고도 덧붙였다. 4년 전 청년 정치인의 푸른 꿈은 양당 대결구도에서 꺾인 셈이다.하지만 오 의원이 국회를 떠나는 이유가 '실망' 때문은 아니다. 그는 불출마로 마지막 희망을 심었다.오 의원은 열악한 소방관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입법 활동에 자긍심을 느낀다고 설명하다가 "온전히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오만한 생각을 국민이 가장 싫어하신다"면서 "저는 애초에 최선을 다하고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는 결단이, 그 모습이 국민께 어쩌면 정치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는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권력기관에서 평범한 직업인으로 돌아가는 행보가 '다른 정치의 사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4년간 순직 소방관 10인…"뒤에서 법안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부끄럽다"정치문화 개선의 꿈은 꺾였지만 소방정책의 푸른 꿈은 하나 둘 성과를 냈다. 그것은 '입법의 힘'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오 의원은 "순직소방관을 추모하는 문화를 만든 것이나, 공상추정법을 개정해 국가가 업무와 질병 연관성을 증명하도록 한 것이나, 화재예방법 화재조사법을 제정한 것도 의미가 있었다"고 했다.그중 기쁨(喜)과 슬픔(哀)을 안긴 '건축법 개정'은 특별하다. 이천 냉동물류창고 화재에서 4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원인이 된 우레탄폼 등 가연성 심재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이다.오 의원은 "가연성 건축자재의 문제는 20년 동안 반복해 지적됐음에도 건축계의 경제성 논리, 정부의 소극적 태도, 정치 역시 건축업계 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기에 개정이 안 됐다. 그런데 21대에서는 그것을 해결했다. 감사했다"고 표현했다.그렇지만 이 법은 그를 불출마와 현장 복귀로 이끈 법이기도 했다. 법이 의결된 뒤 2022년 1월 6일 평택신축냉동창고에서 대형 화재가 나 이영석·박수동·조우찬 소방관이 순직했다. 오 의원은 "입법 노력이 성과로 나타났음에도 개정법이 소급적용되지 않아 순직했다. 그때였던 것 같다. 아무리 입법을 해도 동료들의 순직을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과 죄책감이 시작된 것이.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오 의원은 "4년 동안 여당일 때든 야당일 때든 결과를 도출하려 애를 썼지만, 그동안 선후배 소방관 10명을 현충원에 묻으면서, '나는 역할을 했다'고 느끼는 것조차 자괴감이 들었다. '더 큰 변화, 정의를 위해 이 자리에서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말하는 것 자체를 견딜 수 없다"며 "사지로 가는 동료의 뒤에서 서서 목소리만 내는 것이 부끄럽다. 끝내 저는 소방관의 사명, 그것이 저의 시작이자 끝이고 전부다"라고 담담히 털어냈다.그는 그것을 '소방관 DNA'라고 표현했다. "저는 구조대원으로 10년을 근무했다. 생사가 오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손을 잡아 생명을 구해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순간에서 평생 자유로워질 수 없다. 현장에서 생명을 지켜낸 사람은 그 이상의 귀한 가치를 못 찾는다"고도 했다.그러나 소방관의 정치 진입에 대해서는 "꼭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오 의원은 "소방관의 인력문제가 해소되지 못했다. 국가직 전환이 이뤄졌지만, 소방청-지방소방청으로 이어지는 지휘권 일원화, 조직 일원화, 국가 책임 일원화가 완성돼야 전국 국민이 평등하게 안전을 담보 받을 수 있다. 안정적 전문적 지휘권한 정책 속에서 소방관도 안전활동을 추구할 수 있다"고도 했다.아직 과제가 산적하니 '나의 바통을 누군가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오 의원은 "반드시 소방관 국회의원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 새로운미래 영입인재로 들어간 문재인 정부 조종묵 초대 소방청장이 계시다. 새로운미래 비례대표 1번을 받으셨다. 상징성·전문성을 간직한 분이기에 그런 역할을 해주시리라 믿는다"고 지지 의사도 내비쳤다.■ 의정부…목 메 말·잇·못 "제 딸의 고향에서 이웃을 지키는 것으로 보답할 것"오영환 의원의 선의와는 달리, 일년전부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지역 민심은 떨떠름했다. 잘했다는 박수보다는 우리 지역을 왜 버렸냐는 질타가 더 거셌다. 다음 선거에 불출마 선언이 곧 의정활동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역민의 섭섭함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오 의원은 의정부에 대해 묻자 말을 잇지 못했다. 오 의원은 "의정부 시민 생각하면…가슴이 찢어진다"면서 "계속 의정부 시민으로 있겠다. 지역구를 너머 딸의 고향이고 삶의 터전이 됐다. 유권자가 당신을 대표할 누군가를 골라 이름 옆에 도장을 찍는 경험이 사실 특별하고 감사하고 평생 뼈에 새길 일이어서 욕을 먹더라도 여기에 살며 삶의 순간들을 나누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그의 임기는 오는 5월29일까지다. 지역사무실 보증금으로 월세를 낼 정도로 불출마의 타격이 컸지만, "마지막까지 정치인의 사명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소방관 시험 준비가 잘 돼가냐는 질문에 "시험은 국회의원으로서 주어진 의무와 책임에 집중한 뒤에 하겠다. 의원직에 있는 동안 다음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시험에 합격할 자신이 있냐 묻자 "최선을 다할 자신은 있다. 단 한 번에 합격해야 한다. 생계를 책임진 데다 대출도 있고, 아이가 있는 가장이다. 부담스럽다"고도 했다.오 의원을 통해 평범한 삶으로 환류하는 정치가 되새겨지길 바라본다.글/권순정기자 sj@kyeongi@kyeongin.com, 사진/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오영환 의원은?▲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2022년 3월~2023년 4월)▲더불어민주당 재해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2020년 9~10월)▲제21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2020년 6월~)▲중앙119구조본부 수도권119특수구조대 항공대원(2017년 7월~2019년 12월)▲서울시119특수구조단 산악구조대원(2012년 11월~2015년 1월)▲광진소방서 119구조대원(2010년 10월~2012년 11월)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가장 위험한 곳에 제일 먼저 출동하는 119구조대원으로 복귀를 목표로 최선을 다하겠다"며 포부를 밝히고 있다.오영환 의원이 소방 구조대원으로 근무할 당시 입었던 제복의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다.
1표 차이로 멀어진 지역정당, 지역엔 정치가 있을까 ② 2024년 봄, 국민들이 또 회초리를 쥐고 섰다우리동네 대표선수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정치성향을 분류하자면 크게 2가지다. 아무도 못 믿거나, 아묻따 믿거나. 참고로 아묻따는 '아무것도 묻고 따지지 않는다'는 요즘 은어다. 아무도 못 믿는 이들을 집계해보니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30%대를 기록하고 있다. 좋게 말해 어떤 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 이정도면 무당층이 하나의 정당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아묻따 믿는 이들은 아이돌 사생팬과 모습이 흡사한데 강력한 '팬덤'으로 무장한 극렬지지층으로, 이들 역시 양극단에 30%대씩 차지하고 있다.기이한 현실을 두고 전문가들은 거대 양당 정치의 폐해라고 진단한다. 3김 시대보다 더한 극단의 정치를 만들어놓고는 선거철이 다가오니 정치인들도 양당정치가 문제라고 한다. 그러면서 '제3지대' '신당' 바람을 일으켰다. 제3지대가 성공하면 우리 정치가 달라질까. 정치가 우리 삶에, 내 피부에 와닿을 수 있을까. 경기도민이 겪는 고질적인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인천시민이 고통받는 쓰레기 매립장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우리동네 대표선수를 자처하며 표를 달라 구걸하던 이들이 선거가 끝난 후 '서울 여의도 후보선수'로 전락하는 현상이 끝날 수 있을까.그래서 묻는다. 아니 따진다. 이준석 신당도 되고, 이낙연 신당도 되고, 하물며 허경영당도 되는데왜 지역정당은 안되느냐고지역풀뿌리들, 지역정당을 위해 뭉치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1년여 앞둔, 2021년. 보수와 진보, 진영정치를 넘어 마타도어가 난무하는, 역대급 '비호감' 대통령선거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K-팝 아이돌에서 보아온 '팬덤'정치가 도를 지나쳐 서로를 물어뜯기만 하는, 참인지 거짓인지도 알수 없는 정보들이 난무했다. 정작 우리 삶과 직결된 정치적 비전과 정책의 구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이 시기, 지난 지방선거의 '참패' 이후 과천풀뿌리도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2016년 지방선거에서 시의원을 배출한 이후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재편됐던 조직 체계도 시의원이 사라지면서 버팀목을 잃었다. 공교롭게도 이 즈음 과천은 재개발이 본격화되며 새로운 이주민들이 대거 유입됐고, 구도심 주민이 중심이었던 공동체 활동도 침체기를 맞았다. 이대로 포기할 것인가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그러다, 그들을 만났다. '지역정당네트워크'. 전국 각지에서 과천풀뿌리처럼 지역자치 공동체를 운영해 온 40여개 단체들이 결성한 연합체다. 이들이 뭉친 목적은 지역에만 정당하지 못한 '정당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 지역정당을 향한 공동체들의 움직임은 과천풀뿌리만이 아니었다. 서울 은평구와 영등포구에서, 경남 진주에서도 지역정당을 향한 갈망이 컸다. 이들 지역자치 공동체를 모아 지역정당네트워크를 결성한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상임이사는 "과천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풀뿌리 정치 활동들이 활성화돼있지만, 벽에 가로막힌 이유는 지역정당을 금지하는 정당법의 위헌적 조항 때문"이라며 "지역정당 합법화라는 하나의 목표로 지역자치공동체의 활동에 물꼬를 틀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네트워크의 취지를 설명했다.이들 단체들은 머리를 맞댔다. 정당법의 불공정함을 제대로 알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방법으로 '헌법 소원'을 선택했다. 2021년 10월 가장 먼저 과천풀뿌리가 '과천시민정치당'을 출범했다. 현행법상 뻔히 등록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선거관리위원회에 창당 접수를 했고, 반려 회신을 받았다. 연이어 서울 은평구·영등포구, 경남 진주에서도 '지역정당'으로 출범해 선관위에 창당접수를 했지만 "서류는 완벽하신데, 안되는 거 아시면서 왜 이러세요"라며 역시 반려됐다.'정당법은 위헌이다' '지역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정당법은 위헌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 정당법은 역설적이게도 정당활동을 제약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독재정권에서 만들어 낸 법의 틀을 끌어안은 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정치는 어땠는가. 중앙정치가 단단하게 움켜쥔 독점 권력을 휘두를 때마다 지역정치는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지방선거는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의 선거운동원 선출 선거에 다름아니지 않았는가. 지역민의 인정을 통해 지역에서 선출되는 지역의 민주적 정치인이 아니라 중앙당의 지지도와 공천에 따라 중앙정치에 줄대고 줄서는데에만 급급한 중앙정치의 하수인에 불과하지는 않았는가. 이러한 현실에는 '중앙정치가 지역정치를 식민화했다'는 표현도 과하지 않다.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역정당의 거센 바람의 앞에서, 2022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사회는, 한국정치는 처절히 반성해야 한다.' 지역정당네트워크 정당법 위헌 헌법소원심판 청구 기자회견문 中 2022년 2월. 선관위로부터 받은 4개 회신을 근거로 지역정당네트워크는 헌법재판소에 '정당법 위헌'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동시에 시민공천절차를 거쳐 주민후보 1명을 후보등록해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치른 과천풀뿌리는 낙선했다. 지난 4년 양당에 치우친 시의회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음에도 전체 의석 7석 중 국민의힘 5석, 더불어민주당 2석을 채웠다. 거대양당 정치는 더 강고해졌다. 암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과천 주민들에게 헌법 소원은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심리는 예상보다 길어졌고 해를 넘기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지역정당을 꿈꾸는 공동체들은 피가 마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9월26일. 헌법재판소는 장고 끝에 '악수'를 뒀다. 정당법 제4조, 제17조, 제18조, 제41조 제1항 및 제59조 제2항 중 제41조 제1항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청구인들의 심판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헌법재판소 결정문 9명의 헌법재판관 중 5명이 위헌, 4명이 합헌의견을 냈다. 수치상으로 5 대 4, '이겼다'. 그런데 졌다. 위헌 정족수인 6명에 미치지 못해 기각당했다. 현재의 정당법은 결국 지역정당을 허하지 않고 유지되었다. 내용으로는 이겼는데, 형식에서 진 것이다.위헌의견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역정당네트워크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부분은 정당법에서 중앙당을 서울에 두고 5개 이상의 시·도당을 둬야한다는 전국정당조항이었다. 이에 대해 "전국정당조항은 정당의 등록 및 등록유지 요건으로 작용하는데 그러한 요건을 갖추어야만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직이 된다고 볼 뚜렷한 근거가 없다"고 했다. 또 "현재 존재하는 49개 정당 중 국회에서 의석을 확보한 정당은 6개에 불과하고 1945년 8월 15일 이후 설립된 정당의 평균수명은 3년도 채 되지 않는다. 참신하게 등장하는 신생정당이나 유력한 제3당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제3당이나 군소정당이 성공한 사례도 찾기 힘들다. 이처럼 거대 양당에 의해 정치가 이루어지고 소수당이 사라져가는 정당정치의 현실에서 지역정당이나 군소정당, 신생정당이 정당등록요건을 갖추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며 거대양당의 그늘 속에 봉우리도 피우지 못하는 소수정당의 현실을 지적했다. 아울러 "이는 각 지역 현안에 대한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지방정치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정당의 출현을 사전에 배제하여 정당체계를 폐쇄적으로 만들고, 유권자들에게 다양한 정치적 관점에 대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차단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특히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은 전국정당조항에 대한 위헌과 합헌의 의견 중 '교집합'이 되는 부분이다. 바로 '지역주의'다. 합헌의견에는 "지역적 연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당정치 풍토가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의 정치현실에서는 특히 문제시되고 있고, 지역정당을 허용할 경우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지역 간 이익갈등이 커지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든 반면 위헌의견에는 "지역정당의 출현으로 인한 지역주의 심화의 문제는 정당등록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정치문화적 접근으로 해결하여야 하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전국 어디에서든 정치 참여가 가능하고 지방자치가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모든 정당이 중앙당을 수도에 두고 전체 국민의 의사를 균형 있게 반영하기 위해 정당활동을 수행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또한 "지역대립의 완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전국정당조항이 과연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실효적인 수단으로 기능하여 왔는지, 모든 전국정당들이 특정 지역의 민심에만 의존하지 않고 전체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여 왔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건국이래 지역정당은 커녕, 소수정당조차 발디딜 틈 없이 거대 양당 중심의 전국정당들이 대한민국 정치를 지배해왔는데, 합헌의 논리대로라면 어느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 국민의 다원적 정치의사를 균형있게 결집해온 전국정당들만 있던 우리 정치에는 애초에 '지역주의'가 성립될 수 없어야 한다. 지역주의가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현실을 돌아보면, 지역주의를 심화시키는 당사자는 오히려 현재의 '전국정당'인 셈이다.구자동 과천풀뿌리 대표는 "재판부의 지역주의와 우리의 지역주의는 결이 다르다"라고 강조했다.재판부가 보는 지역주의는 호남은 민주당, 영남은 국민의힘이라는 프레임에서 이들의 세력만 커질 것이라고 보는 거에요. 지역정당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떨어지는 거죠. 우리가 말하는 건 지역의 고민과 문제점은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제일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 정치는 삶의 주체인 시민이 실종돼있어요.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나의 삶을 위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정치활동이 이뤄져야 합니다 지역정당네트워크는 정당이란 '의견을 모으는 그릇'이라고 규정했다. 지역정당은 전국정당이 담을 수 없는, 지역주민의 목소리를 담아 지역을 위한 공론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지난 2022년 지방선거의 참패에 이어 헌법소원 청구도 기각되며 지역정당네트워크는 동력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처음 풀뿌리를 시작했을 때와 달리 세태의 변화로 지역네트워크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사회 공동체는 어느 순간 와해수준에 이르렀다. 이웃사촌처럼 붙어다녔던 주민문화가 사라지고 '개인'만 남은 세상이 돼버렸다. 지역정당네트워크 중 가장 활발하다고 평가받던 과천풀뿌리도 세자리였던 조직원 수가 두자리로 감소했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며 조직 활동이 위축됐다."이겼지만, 진 결과를 받고나니 참 허망했습니다. 지역정당을 허용하는 결과를 받았다면 지역기반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탄력을 받았겠지만 제대로 브레이크가 걸렸죠. 그런데 말입니다. 지역에는, 양당이 담을 수 없는 목소리가 있어요. 이번 총선을 잘 보세요. 내리꽂는 사람으로 계속 지역 정치인이 바뀌면 자치력을 높이기보다 다음 공천 받는데 더 목을 맬거에요.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노력하지 않겠죠." /이영선·공지영·김산기자 zero@kyeongin.com/지역정당네트워크 페이스북 캡처2022년 정당법 위헌 주장 집회 모습. 2022.5.182021년 직접행동영등포당 헌법소원심판 청구. 2021.11.30
말 안듣는 머슴… 지역 주민이 직접 정치 나섰다 ①2024년 봄, 국민들이 또 회초리를 쥐고 섰다 우리동네 대표선수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정치성향을 분류하자면 크게 2가지다. 아무도 못 믿거나, 아묻따 믿거나. 참고로 아묻따는 ‘아무것도 묻고 따지지 않는다’는 요즘 은어다. 아무도 못 믿는 이들을 집계해보니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30%대를 기록하고 있다. 좋게 말해 어떤 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 이정도면 무당층이 하나의 정당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아묻따 믿는 이들은 아이돌 사생팬과 모습이 흡사한데 강력한 ‘팬덤’으로 무장한 극렬지지층으로, 이들 역시 양극단에 30%대씩 차지하고 있다.기이한 현실을 두고 전문가들은 거대 양당 정치의 폐해라고 진단한다. 3김 시대보다 더한 극단의 정치를 만들어놓고는 선거철이 다가오니 정치인들도 양당정치가 문제라고 한다. 그러면서 ‘제3지대’ ‘신당’ 바람을 일으켰다. 제3지대가 성공하면 우리 정치가 달라질까. 정치가 우리 삶에, 내 피부에 와닿을 수 있을까. 경기도민이 겪는 고질적인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인천시민이 고통받는 쓰레기 매립장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우리동네 대표선수를 자처하며 표를 달라 구걸하던 이들이 선거가 끝난 후 ‘서울 여의도 후보선수’로 전락하는 현상이 끝날 수 있을까.그래서 묻는다. 아니 따진다. 이준석 신당도 되고, 이낙연 신당도 되고, 하물며 허경영당도 되는데왜 지역정당은 안되느냐고경기도 지역정당의 태동 '과천'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광역시·도에 각각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한다 정당법 제3조 2023년 9월 26일. 정당법 제3조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 청구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문제 없음(합헌)'의 결론을 내렸다. 현행 정당법은 지역에 중앙당을 둔 지역정당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 조항이 '지역정당'을 금지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헌재가 결과적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인데, 속사정을 알고보면 묘하다.헌법재판관 9명의 의견은 5명과 4명으로 첨예하게 갈렸다. 심지어 5명은 '위헌', 4명은 '합헌' 의견을 냈다. '지역정당 허용'을 뜻하는 위헌의견이 다수였는데도 결정 정족수(6명)에 1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 결정이 내려졌고 결과적으로 합헌이 됐다. 쉽게 말해 지역정당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법은 여전히 허용하지 않겠다는, 참으로 야속한 결론이다.수도 소재 중앙당·시 도당 구성해야 '정당' 인정지역에 중앙당을 둔 지역정당 허용하지 않는 법헌법재판소 두드린 4개 단체 "깊은 유감" 성명 2년여의 심리 끝에 난 결과였지만 크게 주목도 받지 못했다. 대중에게 지역정당은 개념도 생소할 뿐 아니라 정치변화를 '말'만 하는 기성정치권에선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아서다. 결정 사실도 8일이 지나서야 뒤늦게 알려졌고, 후속보도도 이어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를 정당으로 인정해달라"며 2년 전 헌법재판소를 처음 두드렸던 4개 단체만이 외로이 들고일어섰을 뿐이었다. 2023년 10월1일. 4개 단체들은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동성명을 냈다.이 4개 단체는 수년 동안 지역에서 활발하게 정치활동을 이어온 자칭 지역정당들이다. 비록 "안되는 거 알면서 왜 그러세요?" 라는 무시와 무관심 속에서도 이들은 끝까지 나아갔고 법의 정점에 있는 헌법재판관들마저 팽팽하게 의견이 갈리는 '화두'를 던져냈다. 하마터면(?) 정당법 개정의 주역이 될 뻔한 이들이기도 하다. 이 유별난 단체 중에서도 가장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실제 지역정치에 뛰어들어 기성정치를 무릎꿇린 '형님' 지역정당의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형님은 경기도, 특히 '작은 계획도시' 과천에 터 잡고 있다. 과천은 1980년대 정부청사가 들어서면서 개발된 계획도시다. 인구 8만여명, 면적도 전국에서 두 번째로 좁다. 작아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 행정을 비롯해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가 오고 가기 쉽고, 그 안에서 의견을 교류하는 것도 용이하다. 옹기종기 모여 살다 보니 지역 현안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의견을 나누는 게 문화처럼 자리잡았다. 대안학교학부모회, 친환경먹거리모임, 지역화폐모임, 마을기업운영위원회… 주제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생활과 연계한 지역 모임들이 여럿 생겨났다.이렇게 자주 얼굴 보고 이야기하다보니, 무엇이라도 함께 해보는 일에 보람과 재미를 느꼈다. 내친김에 본격적으로 '지역정치'를 통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자는 데 생각이 모아졌다. 당적에 관계없이 과천 주민들의 생각을 실현시켜줄 만한 후보를 골라 '밀어주기'를 실행했고 밀어준 후보들은 시의회에 입성했다. 그 결과 정당공천제가 도입된 2006년 지방선거에 과천시의회 의석 7명 중 주민들이 밀어준 후보가 2명, 2010년 지방선거엔 4명이 당선됐다. 주민들 덕에 '뺏지'를 달았고 주민들을 위해 뺏지를 활용할거라 기대가 커졌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머슴이 말 안들으면 주인이 직접 나선다2010년 지방선거 이후 굳건하다 믿었던 시의원과 주민들의 관계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지역현안을 두고 '중앙당의 기조'를 핑계로 주민 다수의 의견과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는가 하면, 과천을 전혀 모르는 외지인 출신 정치인이 선거철에 지지받을 요량으로 주민들에게 접근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과천주민들 사이에선 "우리가 밀어준 시의원들이 진정 주민을 대표하는 것이 맞느냐"는 회의가 커졌다.주민들이 직접 준비하고 참여하는 지역행사가 열리면 끝날 때쯤 와서 사진만 찍고, SNS에 마치 자기가 다 한냥 홍보만 하는 경우가 많았죠. 선거철 전후엔 특히나 자주 찾아왔었구요. 이런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지역정치에 대한 효능감도 떨어지고 상실감도 커져갔습니다 주민들의 성토가 커지는 중심엔 '파프리카'가 있었다. 생협, 공동육아, 학부모회처럼 당시 과천 주민모임들은 대체로 중년 여성들이 중심이었고 파프리카 역시 그런 모임 중 하나였고 조직력이 큰 편이었다. 특히 이들이 힘을 모아 밀어준 시의원들은 모두 남성이었는데, 각종 행사에서 여성 주민들이 무보수로 봉사하는 것은 당연시 여기면서도, 주민공용 공간·양육시설 등 정작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정책 요구는 '무리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프리카가 느낀 박탈감은 비단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러 모임 사이에서 분위기는 점점 심각해졌다. '이럴 바엔 직접 나서자'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마침 선거를 앞두고 있었고 주민들은 특정 정치인 지지 모임을 박차고 나와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할 정치 참여 공동체를 꾸리기로 했다. 산발돼있던 과천 주민 모임들이 '과천풀뿌리'라는 빅텐트로 모였다. 생각이 정리되고 뜻이 모이니 과천의 주민들답게 일사천리로 일이 추진됐다. 2013년 11월. 과천풀뿌리는 창립준비위원회 출범과 동시에 이듬해 6월에 실시하는 지방선거 대비에 착수했다. 목표는 시의원 당선. 10명으로 시작한 조직원은 공개토론회와 회원모집 등을 거쳐 금세 세자리수로 불어났다.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은 커졌다. 하지만 예상치못한 데서 암초를 만났다. '지역정당 불가(不可)'. 과천풀뿌리는 정당으로 등록되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정당법'을 통해 정당 설립에 조건을 두고 있는데, 중앙당을 서울에 두고 전국단위 당원 규모를 충족해야 한다는 창당 조항에서 발목이 잡혔다. 과천은 '서울'이 아니라서, 한마디로 서울이 아닌 지역에 중앙당을 만들면 정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주민 의견과 반하는 의사결정… 시의원과 '균열'"진정 주민을 대표하는 것이 맞느냐"는 회의감과천풀뿌리, 창립위 출범과 동시에 지선 대비하지만 '지역정당 불가'하다며 인정 받지 못해무소속 후보가 됐고 많은 제약… 집회도 불가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무소속 후보가 됐고 선거에 많은 제약이 따랐다. 으레 정당의 후보들은 정당활동을 명분삼아 여는 집회조차 개최할 수 없었다. 정치후원금을 모금하는 것조차 금지됐다. 선거는 '돈'이라고 하는데, 무소속의 주민후보는 어쩔 수 없이 뜻을 함께하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봉사에 많은 부분을 의지해야 했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으려 했다. 처음으로, 우리 손으로 우리 동네 일꾼을 뽑는 과정에서 정당 체제는 필수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되레 소속 없는 '진짜 주민후보'라는 진정성이 전해지길 기대했다고 한다. 법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최대한 정당 꼴을 갖춰 절차도 진행했다. 2014년 1월부터 총회를 열고 공천 절차, 주민 후보가 지켜야 할 원칙 등을 확정했다. 3월에는 '시민공천파티'를 열어 2개 선거구에 각 1명씩, 시의원 후보 2명을 최종 확정했다. 회원 121명 중 참석인원 69명, 찬성률 95.6%(66명)라는 압도적인 지지가 뒤따랐다. 회계사로 일하면서 주민후보 1호가 된 안영(54)씨는 처음 공천이 확정됐던 당시를 "얼떨떨했다"고 회상했다.(저는) 평소 나서는 사람도 아니고 처음부터 후보로 거론됐던 것도 아닌데, 의견을 나누다 보니 후보로 추천을 받게 됐어요. 뭐라도 해보겠다고 하나둘씩 같이 이뤄가다 보니 그 과정 자체가 굉장히 행복했어요. 후보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이렇게 다같이 참여하는 주민들의 대표로 나선다는 생각에 점점 책임감도 커졌습니다진짜 주민자치가 나타났다 2014년 5월. 후보자 등록을 마치고 선거운동본부가 출범됐다. 주민들은 본인들의 차에 주민후보를 홍보하는스티커와 공보물을 붙였다. 지하철역 앞, 사거리마다 20~30명 주민들이 연두색과 분홍색 옷을 맞춰 입고 섰다. 처음 해보는 선거유세운동이라 어색했지만 율동도 함께 하며 신나게 운동을 해나갔다. 무소속이지만, '주민후보'라는 홍보문구를 신기하게 보는 이웃들에게 과천풀뿌리를 설명하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선거의 달이 숨가쁘게 지나갔다. 2014년 7월1일. 민선 6기 과천시의회는 새누리당 3석·새정치민주연합 2석·무소속 2석으로 문을 열었다. 무소속 2석은 간호사, 회계사로 일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과천의 주민후보들 몫이었다. 또 이 즈음 과천풀뿌리도 창립총회를 열고 비영리법인형태의 공식단체로 거듭났다. 주민후보에서 '주민'의원이 된 이들은 의정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의정활동을 해보니 의원이 가진 권한도 생각보다 막강했다. 주민일 때는 잘 볼 수 없었던 깜깜이 예산심의도 회계사 출신 주민의원의 꼼꼼한 지적 앞에선 꼼짝하지 못했다. 또 '예산 읽어주는 의원' 행사를 열고 이해하기 어려운 예산 목록과 그 맥락을 쉽게 풀어 설명하기도 했다. 본예산은 물론 추경안까지 심의때마다 앞서 주민을 대상으로 '모의 시의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주민들이 증액·삭감한 예산들은 매 심의마다 주민의원이 직접 전달했다.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조직은 내실 다지기에 박차를 가했다. 과천풀뿌리는 활동소식지를 발간하고 자유롭게 참석 가능한 정기모임도 열었다. 동네에 입소문이 나면서 조직 규모도 나날이 커졌다. 내친김에 과천풀뿌리는 '판'을 키웠다. 주민들이 체감하는 '자치(自治)'의 효능감이 높아지면서 다음 선거가 다가올수록 분위기가 고조됐다. 이윽고 2018년 지방선거가 도래하자 과천시장 후보까지 내기로 결정했고 정의당, 녹색당 등 소수정당과 연대도 주도했다. 여전히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은 법적으로 '불가'한 상황이었기에 '과천시민정치 다함'(이하 다함)이라는 소수정당들과의 연합을 결성해 제3지대 단일후보를 내는 차선책을 선택한 것이다. 적어도 주민들에게 양당 이외의 선택지를 제공하고 어엿한 정치참여 주체로 인정받기 위함이었다. 다함은 시민공천파티를 열었고, 소수정당 당직자들까지 포함해 경선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시장과 시의원 후보 모두 과천풀뿌리 소속 주민후보들이 선출됐다. 장밋빛 전망이 이어지는 가운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암초'가 등장했다. 선거를 불과 한달여 앞두고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11년만에 남과 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군사분리선을 오가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말 그대로 선거판에 '북풍'과 함께 민주당 바람이 불었다. 과천시정 20년 만에 민주당 시장후보가 과반 지지로 당선됐다. 시의회도 더불어민주당이 5석, 자유한국당이 2석을 석권했다. 주민후보는 단 한명도 당선되지 못했다. 과천의 지역정치는 거대양당이 장악했다. 당시 시의원 주민후보로 출마했던 구자동(54)씨는 쓰라린 기억을 떠올렸다.주민 모두가 자발적으로 열심히 참여했고, 시장 후보까지 내면서 정치 참여의 규모도 커졌는데, 모조리 다 떨어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남북정상회담은 얼마나 큰 변수였냐면, 과천이 소위 '보수 텃밭'이라 매번 민주당계 정당은 시의원 선거에서 1명만 입후보를 했었는데, 이때는 2명을 내더라구요. 아마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내부적으로 계산을 했겠죠자치 잃은 지방의회, 자치와 거리 먼 '정당법' '주민의원'이 없는 민선 7기 과천시의회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임기 시작한 지 채 반년도 안된 2018년 11월, 여당(민주당)의 한 시의원이 세금으로 운용되는 공무해외연수를 통해 자신의 가족이 살고 있는 캐나다에 다녀온 사실이 폭로됐다.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전국적으로 지방의원 자질 논란을 낳았고 해당 의원은 탈당했다. 민선6기부터 협치를 위해 이어온 의원 정례 간담회도 여·야 갈등이 계속되며 폐지됐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는 각 당의 내부 분란이 커지며 '서로를 오가는' 탈당과 입당이 반복됐고 여대야소(5:2)였던 원내 구성이 여소야대(3:4)로 역전되는 촌극도 빚어졌다. 다수를 차지한 야당 의원들은 여당 의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의결하고 의장직을 차지하기도 했다.주민들이 직접 지역정치에 참여하는, 신선한 '자치' 바람은 불과 4년 만에 '아사리판'으로 전락했다. 대중이 늘 보아왔던, 익숙한 그 지방의회의 전형으로 돌아왔다. 그 시점도 참 공교롭게 과천시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거대양당이 의석을 모두 장악한 때였다. 거대양당 소속 지방의원들이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중앙당에 예속되면서 자치는 사라지고 정쟁만 남은 셈이다.중앙당의 영향력이 강한 한국의 정당 현실에서 정당공천은 지방정치의 중앙 예속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역의 일꾼을 선출하는 선거 과정에서도 지역의 현안이나 지역민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되기보다 중앙정치의 이슈가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사례를 볼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지방선거 정당공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2018) 연구보고서 中 지방의회에 거대양당 소속 의원의 비중이 클수록 지역 현안에 집중하기 힘든 구조로 변질된다. 이런 부작용이 드러난 사례가 2년 전 출범한 민선 8기 경기도의회다. 유례 없는 여야 동수(78:78)로 양당이 정확히 반씩 의석을 차지했다. 제3지대 몫은 단 1석도 없었다. 어느 때보다 협치가 원활한 의정운영에 핵심이 됐지만, 임기 시작 직후부터 의장단· 원 구성 문제로 파행을 거듭했고, 두 달 가까이 지나서야 개원할 수 있었다. 여기에 도의회 야당(국민의힘)은 초반부터 당내 파벌 싸움으로 삐걱거리더니 대표의원 자리를 두고 법정 싸움까지 이어졌다. 이 여파로 지난해 일부 상임위원회는 행정사무감사를 열지도 못하는 사상 초유 사태를 맞았다.현재의 정당법이 계속되는 한, 주민들의 지역정치는 여전히 '무소속'일 수 밖에 없고 자치를 쟁취하기 위한 분투도 어쩌면 결말이 정해져 있을지 모른다. 과천풀뿌리 대표를 역임했던 추경숙(58)씨는 과천에 살기 전, 서울시 도봉구에서 2002년부터 4년 동안 구의원을 지냈다. 2006년 정당공천제가 도입되기 전, 지방의회를 경험한 경숙씨는이런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지방의원이 정당 영향력 바깥에 있을 때는 아무래도 주민들이 관심 갖는 주제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 정책으로 입안되는 흐름도 지금보다는 활발했었구요. (저는) 정당공천제 도입에 크게 반발했는데, 결국 저를 포함해 정당으로 넘어가지 않았던 의원들은 다음 선거에서 모조리 떨어졌죠 과천으로 와서도 주민들과 함께 하나둘씩 직접 이뤄가면서 어쩌면 양당의 장벽을 허물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하기도 했었는데, 결국 한계를 절감하게 됐죠. '삶이 정치고 정치가 삶인데, 이 사이를 멀게 만드는 게 정당법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김산·공지영·이영선기자 mountain@kyeongin.com2022년 정당법 위헌 주장 집회 모습. 2022.5.182014년 설립된 비영리법인 주민공동체 '과천풀뿌리' 전현직 대표들이 취재진에 10년간 활동 연혁을 설명하는 모습. 2024.2.20 /이영선기자zero@kyeongin.com2014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주민후보를 최종 확정한 과천풀뿌리 '시민공천파티' 모습. 2014.3.222014년 지방선거 과천풀뿌리 주민후보 선거운동. 2014.52014년 과천풀뿌리 창립총회 모습. 2014.7.12
"제일 먼저 느끼는 봄기운… 주민들이 직접 일군 명소" 위원 50명과 위험요소 진단·재정비거름주기·묘심기·배수 확인 구슬땀"마다 않고 함께 봉사했기에 성장""산수유꽃축제를 찾는 청소년에게는 꿈을 만들 수 있는 체험공간으로, 또 다른 이들에게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축제로 만들겠습니다."김재원 이천백사산수유꽃축제추진위원장은 지난 10일 추진위원 50여 명과 함께 축제장을 찾아 각종 위험요소를 진단하고 주변 청소 등 재정비에 힘썼다.김 위원장은 이천 산수유마을 어귀에 살고 있다. 그는 약 20년전부터 100년 이상된 산수유나무 반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고 축제 추진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또 매년 2월부터 5월까지는 본업인 운수업과 농사일 대신 마을 일을 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그는 현재 추진위원장이란 직함을 갖고는 있지만 매년 2월에는 추진위원의 자격으로 산수유 나무 거름주기, 가지치기, 죽은 나무 새로운 묘 심기 등에 구슬땀을 흘린다. 그리고 축제를 앞두고는 주차장 정비, 도로 정비, 배수 여부 등을 살피며 안전우려지역의 위험요소 제거 등에 나서는 등 20여 년간 산수유마을을 지켜온 산증인이다.산수유마을인 백사면 도립리, 경사리, 송말리 등에는 수령 500년의 산수유나무를 포함한 1만여 그루의 산수유나무가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이들 나무의 관리는 물론 축제 추진위원들의 몫이다. 이천백사 산수유꽃축제가 관 주도에서 현재 민간 주도의 축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김 위원장을 비롯해 열일 마다하지 않고 산수유나무를 지켜오며 봉사해 온 추진위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김 위원장은 "산수유꽃축제는 몇몇만이 즐길 수 있는 축제가 아니라 이제는 모든 이들이 제일 먼저 봄의 희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축제명소로 성장했다"며 "틀에 박힌 행사보다는 주민들의 자치적 역량으로 축제를 스스로 개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그는 "축제의 최우선은 안전이다. 그 다음은 방문객들의 즐거움과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장화 차림에 하천 둑의 흙을 퍼 올리고 임시주차장 흙다짐을 위해 농기계 롤링작업을 하는 추진위원분들이 있었기에 관람객들이 편하게 축제장을 방문해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추진위원들의 노력에 감사함을 전했다.김 위원장은 "이천시의 4대 축제 중 하나인 이천백사 산수유꽃축제가 문화·예술분야에서 질적 변화를 이뤄 축제 운영의 경쟁력 및 시민문화 수준 향상에 기여하고 시민들의 단합과 소통이 이뤄지는 수준 높은 지역축제로 발전하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한편 이천시가 주최하고 이천시백사산수유꽃축제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제25회 이천백사 산수유꽃축제는 오는 22~24일 사흘간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경사리·송말리 일원에서 펼쳐진다. 이천/서인범기자 si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