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천)

[줌인 ifez]'용유~잠진도 제방도로' 확장 공사 최근 마무리

총연장 700m, 너비 6m→10~12m'무의대교' 개통 이어 접근성 향상'공항서로~남북로'등 도로망 추진인천경제청 "기반시설 확충 속도"인천 무의도 접근성이 향상됐다. 무의도와 잠진도를 잇는 '무의대교'가 지난해 4월 개통된 데 이어 '용유~잠진도 제방도로' 확장 공사가 최근 완료됐기 때문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이들 도로망 신설·개선 사업이 용유·무의 지역 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10일 인천경제청에 따르면 용유·무의 지역을 관광·레저 허브로 조성하기 위해 추진한 용유~잠진도 간 제방도로 확장 공사가 지난달 말 완료됐다. 이번 공사는 용유~잠진도 제방도로와 접속도로(총연장 700m) 너비를 6m에서 10~12m로 확장한 것이다. 인천경제청은 2018년 8월 공사를 시작해 약 1년 8개월 만에 마무리했으며, 총 70억원을 투입했다.무의대교 개통에 이어 용유~잠진도 제방도로 확장 공사가 완료되면서 무의도 접근성이 한층 개선됐다. 인천경제청이 704억원을 들여 건설한 길이 1.3㎞, 너비 12m의 무의대교는 지난해 4월 개통했다. 무의대교 개통 이전에는 배를 이용해야 했다. → 위치도 참조인천경제청은 무의도 내부 도로망 확충 사업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지역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추진 중인 '큰무리마을~하나개입구 도로 확장 공사'를 조속히 완료하기로 했다. 또 '하나개~광명항'과 '하나개~하나개해수욕장' 도로 사업을 연내 착공하고, 용유 지역 '공항서로~남북로' 도로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인천경제청 정상철 용유무의개발과장은 "중구청과 협의해 무의도 내부 도로 확장과 주차장 건설 등 기반시설 확충 사업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며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용유·무의 지역이 해양문화·관광레저 중심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인천경제청은 무의도에서 'LK'와 '쏠레어 복합리조트'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무의 LK 개발사업은 무의도 남단(인천 중구 무의동 산349-1번지 일원 124만6천106㎡)에 체류형 관광레저 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무의 쏠레어 복합리조트는 실미도 인근 지역(무의도 705-1번지 일원 44만5천98㎡)에 호텔·컨벤션·테마파크·문화시설 등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이들 사업은 실시계획 수립을 위한 단계에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최근 확장 공사가 완료된 용유~잠진도 제방도로. /인천경제청 제공

2020-05-10 목동훈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12)]항로

# 대한민국 '항로 역사'1929년 첫 항로 대구~서울~평양~신의주1971년 국내 항공사 첫 미주 노선권 확보'인천' 153도시 취항… 2030년 300곳 목표'5·24조치'후 北 영공통과 막혀 우회해야공항 활주로를 박차고 떠오른 비행기는 그때부터 이름 그대로 비행(飛行)을 한다. 도착 공항의 활주로 품에 무사히 안기기 전까지 비행기는 보이지 않는 하늘길을 따라 날아야 한다. 도로가 필요한 자동차, 철길이 있어야 하는 기차와 달리 비행기는 하늘을 자유롭게 떠다니기만 하면 된다고 흔히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비행기도 국제 협약과 나라별 국내법에 따라 반드시 정해진 길로만 다녀야 한다. 특히 남북 대치 상태에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군사적 이유에서 더더욱 그렇다. 한국항공협회 항공역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정기 항로는 1929년 4월 1일 일본이 도쿄와 중국 다롄 간 항로를 만들면서 중간 기착지로 둔 대구~서울~평양~신의주 노선이다. 그해 6월 21일 서울~울산 단독 노선이 개설되기도 했으나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최초로 개설한 정기 항로는 1936년 10월 신용욱이 설립한 조선항공사업사의 서울~이리 노선이다.대한항공이 본격적으로 민영항공시대를 열었던 1960년대 후반 우리나라의 국제 정기 항로는 일본 노선 3개와 방콕, 홍콩 등 아시아 항로가 전부였다. 태평양을 횡단하는 미주 항로는 1949년 맺은 한미항공협정에 따라 미국 항공사들이 독점했고, 유럽 노선도 없었다.1969년 한진이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설립한 대한항공은 미국 진출을 위해 정부에 한미항공협정의 개정을 건의했고, 미국이 우리 정부의 협상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항로 개설의 물꼬가 텄다. 1971년 3월 26일 호놀룰루를 거쳐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노선권을 우리 정부가 확보했다. 이듬해 4월 19일 대한항공은 서울~도쿄~호놀룰루~로스앤젤레스 정기 항로를 개설했다. 이어 1979년 뉴욕 노선을 취항했고, 미국 전역으로 항로를 개척해 나갔다. 대한항공은 동시에 유럽 항로 개설에도 적극 나서 1973년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스위스 취리히(197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197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1980년)를 취항했다. 대한항공 50년사를 보면 7개 도시에 불과했던 국제선 취항지는 10년여 만인 1979년 15개국 20개 도시로 늘어났다.# 1983년 9월 1일 '격추'미·소대립기, KE007편 소련영공 침범사할린 상공서 미사일 269명 전원 사망관성항법장치 오작동 '경로 이탈' 추정美, 군용기술 공개… 오늘날 널리 활용미주 항로는 미국과 소련이 극렬히 대립하던 냉전 시기에 탄생했다. 서울에서 미국이나 유럽을 가려면 러시아 영공을 지나는 게 최단 거리 노선이었는데 당시 소련이 영공 통과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경유하는 우회 항로를 이용해야 했다.이런 상황에서 뉴욕발 대한항공 여객기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도중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공격에 격추당하는 비극적 참사가 발생했다.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KAL기 격추 사건이다.승객과 승무원 269명을 태우고 1983년 8월 31일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KE007편은 다음날 오전 6시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앵커리지에 기착했다가 서울을 향해 비행하던 KE007편은 9월 1일 새벽 3시 26분 교신이 끊겼고, 관제 레이더에서 사라졌다.항로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도상에 미리 찍어둔 점과 점을 서로 연결한 길이다. 비행기는 이 점을 지나가며 목적지까지 이동한다. 이런 하늘 위의 무수히 많은 점을 '웨이포인트(Waypoint)'라고 하는데 1947년 설립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정한 위도와 경도로 이뤄진 특정 좌표다. 비행기는 관제사와 의무적으로 웨이포인트를 통해 항공기 위치 정보를 교신한다.KE007편은 알래스카에서 출발해 소련의 캄차카 반도 남쪽 해상에 있는 웨이포인트를 따라 비행해야 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정상 항로에서 북쪽으로 100마일(160㎞)이나 떨어진 캄차카 반도 부근의 소련 영공을 통과해버렸다. 사할린 상공까지 뒤따라온 소련 전투기가 쏜 미사일 2방에 민항기는 산산조각 나 바다로 추락했다. 탑승자 269명이 전원 사망한 참담한 사건이었다.당시 비행기는 관성항법장치(INS)로 위치를 파악해 이동하는 자동항법기술을 사용했는데 이 기술은 가속도와 관성이라는 물리법칙을 이용해 위치를 0.01초 마다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관성항법장치의 오작동으로 항로를 이탈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비무장 민항기 격추와 관련한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격추 사건을 계기로 당시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군사용으로 개발해 활용하던 GPS(위성항법장치)를 민간에 개방하기로 했다. GPS는 위성과 수신기로 좌표를 구하는 방식이다. 냉전의 희생양이 된 우리 국적기는 GPS의 민간 도입을 불러왔고, 지금은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에 없어서는 안 될 기술이 됐다. 관성항법장치는 오차 누적으로 항로를 이탈할 우려가 있지만, GPS는 전파교란에 취약하기 때문에 비행기에서는 두 기술이 모두 활용되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로 미·소 갈등이 해빙기에 접어들면서 1989년 소련 영공 통과가 허용됐고, 1995년부터는 중국과 몽골의 영공도 개방됐다. 그런데 냉전이 종식되고 한참이 지나고도 아직 막혀있는 하늘길이 있다. 바로 남과 북의 항로다.남북은 2007년 10·4 선언으로 백두산 관광에 합의하고, 서울(김포공항)과 백두산(삼지연공항)의 직항로 개설을 추진하기로 했으나 보수 정권으로 바뀌면서 아직도 중단돼 있는 상태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남북이 다시 화해 분위기에 접어들었고, 그해 11월 북한이 먼저 항공실무회담을 열어 영공 통과 등 신규 항로 개설에 대한 논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동안 남북 정기 직항로만 없었을 뿐 남한의 비행기가 내륙을 제외한 북측 해상의 영공을 통과하는 무착륙 비행은 가능했었는데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단행된 5·24 조치로 이 길마저도 가로막혔다. 이 때문에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일본으로 돌아가야 해 시간과 연료를 허비하고 있다. 영공을 통과하려면 해당 국가에 통과료를 내야 하는데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한일 갈등이 첨예했던 지난해 우리 국적기가 일본에 지불하는 영공통과료가 과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 6월까지 대한항공 등 9개 국적 항공사가 일본에 지급한 영공통과료는 2천126억원이었다. 반대로 일본 항공사가 우리나라에 낸 통과료는 82억2천만원에 불과했다.남북은 서해와 동해에 항로를 개설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협의했는데 급변하는 남북 분위기 탓에 열매를 맺지는 못했다. 북한에 지불해야 하는 영공통과료가 유엔의 대북 제재를 위반한다는 우려도 있었다. 남북 직항로는 남북 대화나 스포츠 이벤트, 문화공연 등 단발성 교류 사업과 이벤트 때마다 깜짝 등장했다. 일반적으로 남한에서 평양을 가려면 일단 중국을 들렀다가 북한 고려항공으로 갈아타야 한다. 2000년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의 첫 평양 직항로 주인공은 1973년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스웨덴의 총리였다. 2000년 5월 3일 당시 방북 중이던 스웨덴 페르손 총리 일행을 태운 특별기가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해 서해항로를 거쳐 인천공항에 들어왔다. 2001년에는 평양에서 열리는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하는 소설가 황석영 등 방북단 394명이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순안공항을 향한 적이 있었다.2005년 당시 안상수 인천시장이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의 북측 선수단·응원단 참가를 논의하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을 찾기도 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북한 선수단도 인천공항으로 입국했고, 2018년 2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특사 자격으로 남한을 찾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도 마찬가지였다. 인천시는 남북 평화시대를 대비해 인천공항을 대북 교류 거점공항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인천국제공항은 지난해 기준 153개 도시를 취항하고 있다. 아시아가 106개로 가장 많고, 유럽 25개, 북미 15개 순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030년까지 비아시아권 도시 100개를 포함해 총 300개 취항도시를 목표로 항공 네트워크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올해는 예기치 않게 불어닥친 코로나19 여파로 하늘길이 굳게 닫혀 있는 상태다.전 세계 국가의 국내선 중 승객을 가장 많이 실어나르는 항로는 다름 아닌 한국의 김포~제주노선이다. 국제 항공운송정보 사이트인 OAG(Official Airline Guide)가 지난달 23일 발간한 '가장 바쁜 경로 2020(Busiest routes 2020)'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김포~제주 노선은 좌석수 기준으로 1천742만6천873명이 이용했다. 이는 하루 평균 4만8천명에 달한다. 2위는 삿포로~도쿄(1천249만명), 3위는 후쿠오카~도쿄(1천140만명) 노선이다. 국제선 1위는 홍콩~타이페이 노선으로 796만명이다.가장 경쟁이 치열한 국제노선 10개 가운데 인천공항이 포함된 노선은 5개나 된다. 홍콩~인천, 다낭~인천, 인천~타이페이, 인천~오사카, 인천~도쿄(나리타)는 8~9개 국내외 항공사가 정기 항로를 개설해 운항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인천~도쿄의 운항 횟수는 연 1만4천828회나 된다.세계에서 가장 긴 국제 항로는 미국 오하이오주 뉴어크와 싱가포르를 잇는 노선으로 8천277마일(1만3천320㎞)이다. 가장 짧은 국제항로는 콩고공화국 브리자빌~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 노선으로 겨우 13마일(20.9㎞)에 불과하다.글/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1979년 3월 29일 대한항공 뉴욕 여객노선 취항식. /대한항공 제공1972년 4월 19일 김포국제공항 격납고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 태평양 상공의 여객기 취항을 기념하며 촬영한 사진. /대한항공 제공1983년 9월 1일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에 의해 격추돼 추락한 뉴욕발 대한항공 여객기. /KTV국민방송 대한뉴스 화면 캡처

2020-05-06 김민재

[줌인 ifez]제2외곽순환 '인천~안산' 구간별 순차적 개통 필요성

인천 '신항'서 발생하는 물동량'아암대로' 분담처리 할 수 있어2개 구간 통행료 수익 조기창출'송도JC~남송도IC' 工期가 문제나머지 구간 '우선 개통' 목소리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안산 구간(인천~안산 고속도로) 건설사업은 인천 중구 신흥동과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을 연결하는 것이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주변을 지나간다. 인천~안산(약 20㎞)은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12개 구간(총 263.4㎞) 중 유일한 미착공 구간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인천항만공사는 인천~안산 고속도로를 순차적으로 개통해달라고 각각 국토교통부에 건의한 상태다. 인천~안산 고속도로 전체 구간 중 시급한 구간부터 시공·개통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인천항만업계도 지난 4·15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에 순차적 개통을 요구했다. 인천경제청, 인천항만공사, 인천항만업계가 순차적 개통을 요구한 이유를 자세히 알아봤다.인천~안산 고속도로는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일부 구간으로, 수도권 지역의 교통 혼잡을 개선하는 인프라다. 송도국제도시 등 주변 지역 개발에 따른 교통 수요를 효과적으로 분담하는 기능을 한다. 특히 인천 신항에서 발생하는 물동량을 '아암대로'와 분담할 수 있기 때문에 인천항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인천~안산 고속도로는 ▲남항나들목~송도분기점 ▲송도분기점~남송도나들목 ▲남송도나들목~시화나래나들목 등 3개 구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우선 시공·개통이 필요한 구간은 '남항나들목~송도분기점'과 '남송도나들목~시화나래나들목'이다. → 그래픽 참조'남항나들목~송도분기점' 구간은 북항·내항·남항과 신국제여객터미널(올 6월 개장 예정) 물동량을 처리하는 데 필요하다. '남송도나들목~시화나래나들목' 구간은 신항 물동량의 원활한 수송을 돕게 된다.문제는 '송도분기점~남송도나들목' 구간 공사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구간 공사는 신항 준설토 투기장 호안 축조 공사와 연계 추진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사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이 구간 때문에 인천~안산 고속도로 전체 개통 시기가 늦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남항나들목~송도분기점'과 '남송도나들목~시화나래나들목' 구간을 우선 시공·개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인천~안산 고속도로의 순차적 개통은 인천항의 물류 흐름을 조기 개선할 뿐만 아니라 송도국제도시 교통 현안을 해결하는 장점도 있다. 신항 등 항만 인근 구간이 우선 개통하면, 송도 주변 도로를 통행하는 화물차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화물차가 송도 중심부에 진입할 수 없도록 통행금지 구역을 설정해 놓았지만, 송도 외곽 도로는 화물차 통행량이 많다. 이 때문에 교통사고 발생을 우려하는 송도 주민들이 적지 않다. 인천항만업계 관계자는 "순차적 개통으로 물류 흐름 개선과 교통량 증가에 따른 교통 민원을 해소할 수 있다"며 "2개 구간을 우선 개통하면 통행료 수익 조기 창출도 가능하다"고 했다.제21대 총선 인천 연수구을(송도동, 옥련1동, 동춘1·2동)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당선자는 '인천~안산 고속도로 조기 착공으로 화물차 우회 도로 확보'를 공약했다. 신항 배후 부지(송도국제도시 10공구)에 마리나 복합리조트를 조성하는 사업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신항 배후 부지에 마리나 복합리조트를 조성하려면, 인천~안산 고속도로 '송도분기점~남송도나들목' 구간 설계 변경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순차적 개통 방식으로 화물차 우회 도로를 조기에 확보하면서 마리나 복합리조트 개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한편 인천경제청은 인천~안산 고속도로의 순차적 개통을 국토부에 건의하면서 해상 교량 일부 구간의 교각 간 거리를 넓혀달라고 요청했다. 송도 워터프런트 개발사업과 관련해, 선박이 송도 남측 수로를 통항할 수 있도록 설계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송도 워터프런트 조성사업은 기존 호수와 수로를 연결해 'ㅁ'자 형태의 물길·뱃길(길이 16㎞, 너비 40~300m)과 그 주변에 친수 공간을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로, 현재 1-1단계(송도 6공구 인공호수 일대) 공사가 진행 중이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20-05-03 목동훈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11)]활주로

이·착륙 '마의 11분' 안전 핵심항공기 하중 지탱 포장두께 1m 넘어표면은 매끄럽되…또 미끄러우면 안돼눈·비 등 악천후에도 마찰계수 0.4 이상 유지작은 노면 이물질도 사고 가능성차량 운행자들 'FOD' 의무 수거해야음파·엽총 활용 '버드 스트라이크' 예방백령도 '사곶해변' 세계적 희귀 천연 활주로활주로(滑走路)는 비행기에 있어서 어머니의 품과 같은 존재다. 비행기가 그 품을 떠나는 순간이 운항과정에서 가장 위험하다. 그 품에 살포시 안겼을 때 승객들은 드디어 안도하게 된다. 활주로를 뜨고 내리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활주로는 한자 말 그대로 미끄러져 달리는 길을 말한다. 좋은 이륙과 훌륭한 착륙은 이 미끄러짐에 있다. 미끄러지듯 날아오르고, 미끄러지듯 내려앉아야 한다. 비행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을 꼽으라면 단연 활주로다.활주로는 이 세상 어떤 도로보다도 단단하다. 500t이 넘는 항공기가 시속 200㎞ 안팎의 속도로 지상으로 내려올 때 받는 하중을 견뎌야 한다. 이 때문에 일반도로의 두께는 15~30㎝이지만 활주로는 몇 배 더 두껍다. 인천공항 활주로의 포장두께는 105㎝에 이른다. 하중을 견디는 것 외에도 안전을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우선 활주로 표면이 매끄러워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미끄러워도 안 된다. 매끄러우면서도 미끄러우면 안 된다니, 참으로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공항 운영기관들은 항공기의 이·착륙에 적합한 마찰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신경을 쓴다. 인천공항은 지난달 모두 7차례에 걸쳐 마찰력 정기측정을 진행했다. 전문적인 용어를 쓰자면, 마찰력은 0~1μ(마찰계수)로 표현되며, 1에 가까울수록 마찰력이 커 제동하기에 좋고 0에 가까울수록 미끄러워 제동거리가 길어진다. 인천공항의 이번 측정에서는 평균 0.78μ를 기록했다. 지극히 정상 수준이다. 마찰력이 0.6 이하로 떨어지면 유지보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또 비가 오거나 눈이 왔을 때에도 마찰력을 측정하는 데 0.4 이상을 유지하도록 한다. 0.26 이하가 되면 항공기 이·착륙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활주로에는 항공기 이·착륙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건이 있어서는 안 된다. FOD(Foreign Object Debris)는 활주로 있는, 제거해야 하는 모든 것을 일컫는다. FOD를 제거하는 것은 공항 안전에 중요한 요소다. 인천국제공항에는 3개의 활주로가 있다. 제1·2활주로의 길이는 3천750m, 제3활주로는 4천m다. 항공기는 이·착륙할 시기가 가장 중요하면서도 위험한 때다. 이륙할 때 3분, 착륙할 때 8분을 '마의 11분(critical eleven minute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항공기가 활주로에서 주행하는 거리는 이륙할 때가 더 길고, 활주로가 받는 하중은 착륙할 때가 더 크다. 항공기는 뜨기 위해 양력을 받아야 하는 데 충분한 속도가 필요하고, 착륙할 때는 속도를 줄인다. 대형 항공기인 A380은 이륙할 때 3천m, 착륙할 때 2천100m가 필요하다. 활주로는 이륙할 때 필요한 길이와 착륙할 때 받는 하중을 모두 만족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항공기가 이륙하기 전이나 착륙한 뒤에 이동하는 도로를 유도로(taxiway)라고 한다.인천공항에서도 활주로나 유도로 FOD 제거작업이 수시로 이뤄진다. 활주로 외에도 계류장 등 항공기와 가까운 곳에서 운행하는 차량과 장비가 1만여대에 이른다. 차량에서 떨어진 나사나 볼트, 장비 등이 바닥에 있으면 항공기가 이동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아무리 작은 것들이라고 해도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바퀴와 부딪쳐 튕겨 나가게 되면 주변의 장비나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인천공항 계류장 등을 오갈 수 있도록 허가받은 차량의 운전자는 FOD를 발견하면 의무적으로 수거해야 한다.인천공항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FOD는 무엇일까. '타이어 찌꺼기'라고 한다. 항공기가 착륙할 때 타이어 바퀴가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생긴 마찰열로 인해 타이어 일부가 녹아 활주로에 달라붙는 것을 타이어 찌꺼기라고 한다. 인천공항공사는 고압의 물을 뿌리는 방식으로 바닥에 붙은 타이어 찌꺼기를 정기적으로 제거한다. 인천공항공사 유덕기 운항안전팀장은 "지금은 고무제거를 위해서 첨단장비를 활용하지만 오래전에는 활주로를 관리하는 직원들이 일일이 손으로 활주로에 달라붙은 고무를 제거하기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인천공항은 다행히 FOD로 인한 항공기 사고는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인천공항을 운영하는 인천공항공사는 항공기 안전을 위해 FOD 수거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한다. 이·착륙시설에 대한 점검을 하루 4차례 진행하고, 계류장 등을 순찰하며 과속을 하거나, 장비 사용 후 이를 방치하는 등의 규정 위반자를 적발해 낸다. 유덕기 팀장은 "활주로와 유도로, 계류장 등 접근이 제한된 공간인 '에어사이드'에서 공항 운영기관은 안전관리부터 사건·사고 등에 대한 조사까지 진행한다"며 "공항 안전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고 했다. 항공기 운항에 영향을 주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요소는 '새'다. 사람이나 육상동물은 지상에서 통제가 가능하지만, 하늘을 나는 새는 막기가 쉽지 않다. 공항에 새들이 날아다니고, 그 새들이 항공기에 부딪히거나 엔진으로 빨려들어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새로 인한 항공기 사고, 버드 스트라이크다. 이들 새가 각 공항 당국의 골칫덩이 중 하나다.인천공항도 연간 10건 안팎의 버드 스트라이크가 발생한다. 운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적도 한 차례 있는데, 2014년 3월 필리핀항공 여객기가 이륙 후 조류 충돌로 인해 엔진이 손상됐고, 다시 인천공항으로 회항해야 했다. 외국에서도 조류 충돌로 인한 항공기 운항 장애가 잇따르고 있다.인천공항공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조류를 퇴치하기 위해 힘쓴다. 조류들이 싫어하는 음파를 내보내는 '음파퇴치기'를 도입했고, 엽총으로 공항으로 들어오는 조류를 내보내기도 한다.활주로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세계 최초의 항공기는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1867~1912)와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1871~1948) 형제가 만들었다. '라이트 형제'는 1903년 12월 17일 조종이 가능한 비행기를 제작해 세계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했다. 이때 항공기를 띄웠던 곳은 평평한 모래바닥이었다. 이곳이 최초의 활주로인 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활주로는 항공기가 나아가는 데 장애물이 없는 평평한 곳일 뿐이었다.하지만 모래바닥은 항공기를 이륙시키기에 좋은 조건이 아니다. 항공기의 무게를 못 이기고 모래에 바퀴가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빠르고, 더 무거운 항공기 개발이 이뤄지면서 뜨고 내리는 전용장소인 '공항'이 생겨났다. 그 공항에서 활주로는 핵심시설이 되었다. 1916년 건설된 여의도비행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항이다. 주로 군사용으로 사용됐으며, 활주로와 격납고로만 이뤄졌다. 이때 활주로 길이는 지금보다 훨씬 짧았다. 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1930년대 각 비행장의 활주로는 500~750m였다. 대구비행장이 500m였고, 여의도에 있는 '경성비행장'이 750m로 가장 길었다. 활주로의 길이는 항공기의 크기·무게에 비례한다. 항공기가 무거울수록 이륙하기 위해서는 더 빠르게 긴 거리를 내달려야 하고, 착륙할 때도 제동할 때까지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 일제강점기 운항했던 항공기는 탑승인원이 10명이 채 되지 않았고, 무게는 10t 안팎에 불과했다. 폭과 길이도 현재 여객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주로 포장된 도로에서 항공기가 뜨고 내리지만, 평평하고 단단한 모래바닥이 활주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인천 옹진군 백령도 사곶해변은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천연활주로다. 석영 성분의 모래가 두껍게 쌓여 이뤄진 사곶해변은 썰물 때가 되면 길이 2㎞, 폭 200m의 평평한 모래 바닥을 드러낸다. 길게 펼쳐진 이 해변은 한국전쟁 때 UN군이 활주로로 이용했다. '옹진군지'는 "콘크리트 바닥처럼 단단하여 자동차의 통행은 물론이고 천연비행장으로 쓰였다"고 기록하고 있다.한국전쟁 참전용사인 '바넷 월리스 로버트(Barnet Wallis Robert)'가 직접 찍어 옹진군에 제공한 사진은 사곶해변에 착륙한 항공기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2000년대 들어 이곳은 활주로로 쓰이진 않았다고 한다. 다만 헬기 이·착륙 장소로는 활용되기도 한다.전 세계 모든 공항에 활주로가 있고, 이 활주로에는 모두 이름이 있다. 활주로 이름은 활주로의 위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지어지는 데 이름만으로도 그 기능을 알 수 있다. 공항 활주로 양 끝에 표시된 숫자와 알파벳이 활주로 이름이다. 이름을 짓는 기준은 방위각이다. 전체가 360도인 방위각 중 끝자리를 떼어낸 것이 활주로의 이름이다. 활주로 각도가 150도라면 15라고 표기되며, 그 정반대는 180도가 더해지기 때문에 33이 되는 식이다. 활주로 이름은 조종사에게 중요하다. 항공기 조종 방향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공항의 활주로 이름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다.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인천공항 활주로 마찰력을 측정하는 모습. /인천공항공사 제공/인천공항공사 제공/인천공항공사 제공인천공항 활주로 전경. 인천공항은 모두 3개의 활주로가 있다. 1·2활주로의 길이는 3천750m, 3활주로는 4천m다. /인천공항공사 제공/인천공항공사 제공한국전쟁 참전군인인 '바넷 월리스 로버트(Barnet Wallis Robert)'가 1950년도에 촬영한 사곶해변에 항공기가 착륙해 있는 모습. 로버트 가족은 이 사진을 2003년에 옹진군에 기증했다. /옹진군 제공

2020-04-22 정운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10)]인간, 하늘을 날다·(下)

첫 비행사 여성 권기옥·남성은 이윤호1922년 안창남 '금강호' 고국방문 비행일본서 우수한 성적 면허 '스타덤' 올라같은해 인천서 운행… 소감 수기로 남겨'한반도에서 처음으로 하늘을 난 이는 누구일까?'그리 간단히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한반도 상공의 첫 비행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었고, 우리나라 사람으로 처음 비행기를 조종한 인물과 처음으로 한반도 상공을 비행한 우리나라 조종사도 다르다. 한반도라는 '장소'에 방점을 두느냐, 한반도 사람이라는 '인물'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최초 비행'의 주인공은 달라진다.1903년 12월 17일 라이트 형제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동력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데 성공했다. 그 후 두달이 채 지나지 않은 1904년 2월 8일 인천 앞바다에서는 러일전쟁의 신호탄이 된 제물포해전이 발발했다. 비행기가 등장한 1900년대 초 한반도는 세계열강의 먹잇감이 돼 있었고, 곧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비행이라는 당대 최첨단 기술을 자력으로 도입할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었다. 그럼에도 '항공 여명기'라 불리는 20세기 초 한반도 상공에도 비행기는 떴다. 조선인에게는 쉽사리 비행이 허락되진 않았다. 그래서 일제에 협력하면서 당국의 허락을 얻어 비행하거나 일본을 벗어나 저항하기 위해 비행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이 때문에 해방 이후 여느 분야가 그랬듯 우리나라 항공산업과 공군은 항일·친일이 뒤섞여 있었다.여러 자료를 종합해 보면, 일본 최초의 민간인 비행사 나라하라 산지(奈良原三次·1877~1944)와 그의 제자가 처음으로 한반도 땅에서 비행기로 날았다. 나라하라 산지는 1913년 4월 3일부터 3일간 서울 용산연병장에서 시험비행했다. 그가 제작한 50마력짜리 '나라하라식' 비행기를 탔다. 당시 조선인 6만명이 몰렸다고 한다.1950년 4월 공군본부가 발간한 월간 '공군' 창간호를 보면, 1914년 일본군의 중국 칭다오 공격 때도 일본 비행기가 수차례 한반도를 오갔다. 1917년 9월에는 미국인 곡예비행사 아서 스미스(Arthur Roy Smith·1890~1926)가 조선을 찾아 서울, 평양 등지에서 곡예비행쇼를 선보였는데, 이 비행쇼에 매료된 여러 젊은 조선인이 훗날 우리나라의 초창기 비행사로 성장했다. 드디어 '처음으로' 한반도 상공을 난 조선인 비행사는 독립운동가 안창남(1901~1930)이다. 서울 출생인 안창남은 1919년 도일(渡日)해 도쿄 오구리비행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이후 비행학교 교관으로 활동했다. 1921년 5월 일본 제국비행협회 첫 민간 비행사 시험에 응시한 안창남은 3등 비행사 시험에 합격해 일본의 민간 비행면허번호 '2번'을 달았다.이듬해 11월 안창남은 지금으로 따지면 '택배 빨리 보내기 대회'인 도쿄~오사카 간 현상우편비행대회에 참가해 악조건을 이겨내고 좋은 성적을 거두며 일본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조선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동아일보 주최로 안창남의 '고국 방문 비행'이 성사됐다.1922년 12월 금의환향한 안창남은 같은 달 10일과 13일 여의도비행장에서 '금강호'를 이끌고 역사적인 고국 방문 비행행사를 열었다. 사이토 마코토(齋藤實·1858~1936) 조선 총독도 행사에 참석했다. 금강호는 당시 보통 비행기의 반밖에 되지 않는 작은 비행기였다고 하는데, 부품을 해체한 뒤 도쿄에서 인천항을 통해 배로 싣고 들여와 다시 조립했다. 한겨레 길윤형 기자가 2019년 쓴 '안창남 서른 해의 불꽃같은 삶'을 보면, 안창남은 5만 군중이 운집한 여의도비행장에서 1천m 고도에 도달해 서울 시내를 돈 뒤 '거꾸로 내리박히다 다시 두어 번 가로 재주넘는 묘기' 등 특수비행을 선보였다.여의도 비행이 끝난 13일 안창남의 다음 행선지는 인천이었다. 안창남은 처음으로 인천 상공을 비행한 조선인이 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당시 인천은 어땠을까. 안창남은 1923년 1월 1일 발간된 잡지 '개벽' 제31호에 기고한 수기 '공중에서 본 경성과 인천'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인천에서는 200m의 저공비행을 하였으므로 시가 길거리에 모여 서서 쳐다보고 손뼉을 치는 모양까지 자세히 보였습니다. 그리고 비행기가 온 것을 알고 공설운동장에 이르는 세 갈래 신작로로 달음박질하면서 모여드는 것까지 보여서 나는 그것을 보고 반갑고 기꺼운 미소를 금치 못하였습니다.'옛 인천기상대를 지나 인천공설운동장 상공을 지난 안창남은 분명 인천 앞바다에 떠있는 영종도와 주변 섬들을 보았을 터다. 그 섬들이 훗날 인천국제공항으로 '상전벽해'가 될 줄을 안창남은 상상이나 했을까. 일제가 가장 일본다운 도시로 만들고 싶어했던 인천이 안창남의 서울 다음 행선지로 낙점된 것은 선전 효과를 고려하면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1923년 9월 도쿄에서 관동대지진 직후 학살될 뻔한 안창남은 이듬해 중국으로 넘어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1930년 4월 산시성 타이위안에서 비행기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안창남이 조선인 최초의 비행사는 아니었다. 항공역사를 연구하는 이윤식 작가가 2012년 펴낸 '항공독립운동과 임도현 비행사'를 보면, 재미교포 이윤호(Lee George)가 1918년 3월께 미 육군항공대에 입대해 비행훈련을 받고 있다는 신한민보 기사가 있고, 1919년 1월 2일자 신한민보는 이윤호가 조종사로 제1차 세계대전 중 유럽 전선에 참전했다고 보도했다. 1920년대 조선인 비행사 중에는 일본에서 비행학교를 나온 장덕창(1903∼1972)과 신용욱(1901∼1961), 중국에서 훈련받은 군 비행사 서왈보(1886~1928), 중화민국 공군 장교로 활동한 최용덕(1898~1969) 등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는 독립운동가 권기옥(1901~1988)이다.항일운동 최용덕 등 7인 공군창설 주역김정렬·박범집은 '일제육사 장교' 출신1948년 첫 민간 항공사 '대한국민공사'도산·국영화… 조중훈 인수 '대한항공'1920년대 우리나라 비행장은 용산연병장, 여의도비행장, 평양육군비행장이 있었다. 1930년대에 울산비행장, 대구비행장, 청진비행장, 광주비행장, 신의주비행장, 함흥비행장, 나리·오산·해주·강릉불시착장 등이 추가됐다. 김포국제공항의 전신인 김포비행장은 1942년 개장했다. 인천 부평에 있던 군수기지인 일본 육군 조병창에도 헬기 전용 비행장이 있었다. 모두 일본의 군사적 목적으로 조성됐다.조선과 일본 간 정기항공편도 있었다. 월간 '공군' 창간호를 보면, 1927년 6월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항공법을 시행하고 1929년 9월부터 한일 간 1주일에 3회씩 여객수송을 시작했다. '항공독립운동과 임도현 비행사'에서 소개한 해방 전 민간항로는 '도쿄~진해~하이난다오', '도쿄~울산~대구~경성~평양~신의주', '도쿄~울산~경성~함흥~톈진' 등이다. 일본 국적 항공사인 일본항공이 이들 노선을 운영했다.조선인으로는 앞서 언급한 신용욱이 운영한 조선항공사업사가 1936년 '경성~이리~광주' 정기항로를 개척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조선총독부는 조선항공사업사의 '경성~중국 하이난다오' 간 국제노선을 전쟁에 징용된 조선인 수송을 전담하도록 했다.일본 본토가 미군 폭격의 사정권에 들어오자, 1944년 10월 신용욱 주도로 군수업체인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가 설립됐다. 이 시기 기업가 박흥식(1903~1994)이 주도한 또 다른 군수업체 조선비행기공업주식회사도 창립했다. 그러나 해방 직후 이들 회사는 문을 닫았다. 신용욱은 1948년 10월 최초의 민간 항공사인 '대한국민공사'를 설립해 항공사업을 이어갔다. 1962년 경영악화로 도산한 대한국민공사는 국영기업인 '대한항공공사'로 바뀌었고,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대한항공공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대한항공은 그렇게 태어났다.해방 후 공군 창설은 일본군 장교 출신과 항일운동가 출신인 '7인의 간부'가 주도했다. 항일운동가 출신은 최용덕과 이영무(1905?~?)다. 국무총리까지 오른 김정렬(1917~1992), 박범집(1917~1950) 등은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 항공부대 장교였고, 장덕창 등은 민간 비행학교 출신 베테랑 조종사였다.태평양전쟁 때 일본 항공 전대 소속으로 참전한 김정렬은 1993년 출간된 회고록 '항공의 경종'에서 일본 육사 출신, 소년비행학교 출신, 일본 학사장교 출신, 지원병 출신, 중국군 출신, 일본 항공대 군무원 출신, 일본 민간 항공사 출신, 국내 항공분야 종사자 출신이 대한민국 공군 창설 작업에 참여했다고 했다. 김정렬은 해방 직후 비행사 90여명, 3년 이상 경력의 정비사 300여명 등 항공분야에 약 500명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초기 공군은 육군 산하 항공기지부대로 있다가 1949년 10월 1일 육군으로부터 독립했다. 당시 연락기 20대에 병력 1천600명 규모였다.항공 여명기의 '전설'로 남은 안창남은 애석하게도 해방 후 항공산업과 공군을 일으켜 세울 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었다. 그러나 공군은 월간 '공군' 창간호에서 "오늘날 독립된 대한을 보지 못한 채 또는 독립된 우리 공중을 날아보지 못하고 불행히도 비행기 사고로서 이역의 이슬이 되신 선배 또는 일본의 전쟁으로 전사한 동포"로 안창남 등을 부르며 대한민국 공군과 항공계 발전의 '수호신'으로 삼았다.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일러스트/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동아일보 1922년 12월 11일자 신문에 실린 안창남 '고국 방문 비행' 행사 화보. 이 행사는 동아일보사가 주최했다. 출처/동아디지털아카이브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왼쪽에서 두번째). 1935년 중국 공군에 복무할 당시 사진으로 알려졌다. 출처/월간 '공군' 2014년 6월호우리나라 첫 여성 비행사인 권기옥의 중국 국민혁명군 총사령부 동로항공사령부 비행사 위임장. 권기옥은 중국 공군에서 10여년 동안 복무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출처/국가기록원'고국 방문 비행' 당시 비행기 '금강호'에 오른 안창남 사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1922년 12월 11일자 신문에 실렸다. 출처/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2020-04-15 박경호

[줌인 ifez]인천 주요후보들 '송도·청라·영종' 선거 공보 살펴보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오는 15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4·15 총선 인천지역 후보들은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선거구를 누비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송도·청라·영종 등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이 해당하는 선거구는 총 4개다. IFEZ 지구별 선거구는 ▲송도=연수구을(송도1~4동 등) ▲청라=서구갑(청라1~2동 등)과 서구을(청라3동 등) ▲영종=중구·강화군·옹진군(중구 일원 등)이다. 후보자 수는 연수구을 4명, 서구갑 5명, 서구을 3명, 중구·강화군·옹진군 4명 등 총 16명이다.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국가혁명배당금당은 4개 선거구에 후보를 냈다. 정의당은 연수구을(이정미)과 서구갑(김중삼)에 후보를 냈으며, 중구·강화군·옹진군에는 우리공화당 조수진 후보가 출마했다. 무소속은 서구갑(김용섭)에 1명이 있다.경인일보는 연수구을, 서구갑, 서구을, 중구·강화군·옹진군 선거구 주요 정당 후보들의 IFEZ 관련 공약을 분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들에게 배포한 '선거 공보'를 기준으로 했다. → 그래픽 참조'서울 접근성 부족' 주민의견 반영GTX-B 조기개통·M버스 등 집중인천 1호선 추가 연장안도 큰 관심■ 송도 '내가 현안 해결 적임자'송도국제도시 관련 공약은 현안 해결에 집중돼 있다.연수구을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후보, 미래통합당 민경욱 후보, 정의당 이정미 후보는 교통분야 공약으로 GTX-B노선 조기 개통 및 서울남부광역급행철도 연계,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안산구간 조기 착공, M버스(광역급행버스) 노선 확충과 준공영제 도입, 송도 내부 순환선(트램) 건설, 인천 3호선 남부순환선 추진, 인천 1호선 추가 연장 등을 내놓았다. 이는 서울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송도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안산구간 조기 착공 공약은 인천항 신국제여객터미널(송도 9공구)과 신항(송도 10공구) 활성화를 위한 것으로, 화물차가 송도 내부에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측면도 있다. 송도 순환 트램은 GTX-B노선 개통 효과를 극대화하는 인프라다. GTX-B노선 역사가 송도에 1개만 생기기 때문에 트램이 지선(支線) 기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천 1호선 추가 연장은 인천항 신국제여객터미널 활성화와 배후 부지(골든하버 프로젝트)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공약인데, 송도 8공구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강화하는 효과도 기대된다.교통분야 다음으로 눈에 띄는 공약은 '의료기관 건립'과 '인천타워 건립사업 재추진'이다. 3명의 후보는 송도 세브란스병원 조기 개원과 응급실을 갖춘 2차 의료기관 개설, 인천타워 재추진을 공약했다. 연세대가 추진 중인 송도 세브란스병원은 애초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인천타워 건립사업은 송도 6·8공구에 151층 높이로 계획했었는데,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무산됐다. 인천타워 건립사업을 다시 추진해 송도의 랜드마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후보들의 생각이다. 송도의 오피스 공실률은 높은 편이어서 사업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경제분야는 'ㅁ'자형 송도 워터프런트 개발, 바이오 산업 및 스타트업 육성, 규제 완화, 송도 자산 이관 중단 및 제도개선 등의 공약이 있었다. 이들 후보는 송도에 세계적 수준의 중앙도서관을 건립하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의료복합타운·로봇랜드 등 '답보''프로젝트' 상당수가 시작에 불과GTX-D노선 경유 한목소리 강조■ 청라 '개발 프로젝트 정상화 추진'청라국제도시는 개발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있다. 주민 수는 계획인구를 넘었지만, 개발 프로젝트 상당수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제3연륙교(청라~영종 연결 도로), 청라의료복합타운, 청라국제업무단지, 로봇랜드 등이 그렇다.인천시는 제3연륙교를 올해 착공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국토교통부 협의과정에서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청라의료복합타운 개발사업은 지난달 30일 사업자 선정에 실패해 재공모를 준비하고 있으며, 청라국제업무단지는 사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민간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로봇랜드는 사업계획 변경이 필요한 상황이다.서구갑 더불어민주당 김교흥 후보는 제3연륙교 착공 및 청라 주민 무료 통행, 청라의료복합타운 조성, 청라국제업무단지 개발, 로봇랜드 개발 및 AR·VR 테마파크 조성 등을 공약했다. 미래통합당 이학재 후보는 제3연륙교 조기 완공 및 서구 주민 무료 통행 추진, 청라의료복합타운 사업 추진, 청라국제업무단지와 로봇랜드 활성화 등을 약속했다.두 후보는 GTX-D노선이 청라를 경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후보는 영종~청라~가정~강남~하남노선, 이 후보는 인천공항~청라~루원~강남 노선을 각각 제시했다. 지역 현안인 청라소각장 증설 논란에 대해선 둘 다 "폐쇄하겠다"고 했다.서구을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후보와 미래통합당 박종진 후보의 공통공약은 GTX-D노선 추진, 서울 9호선과 공항철도 직결 운행, 서울 7호선 청라 연장선 조기 개통, 청라소각장 반대·폐쇄 등이다. 신 후보는 청라 시티타워 건립 및 스타필드 조성사업을 챙기겠다고 했고, 박 후보는 청라에 실용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하겠다고 했다.주민·공항종사자 위한 병원 화두제3연륙교·내부순환트램도 제시'공항철도 환승 할인'등 함께 목청■ 영종 '의료·교통·항공산업 책임지겠다'영종국제도시 현안 중 하나는 종합병원 유치다. 영종은 주민과 인천공항 종사자·이용객을 위한 종합병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영종에 종합병원을 유치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중구·강화군·옹진군 더불어민주당 조택상 후보는 '국립 영종종합병원 건립', 미래통합당 배준영 후보는 '종합(대학)병원 유치 및 응급실 24시간 가동을 위한 정부 지원 확대'를 내놨다.두 후보는 교통분야 공약으로 제3연륙교 및 영종 내부 순환 트램 추진, 공항철도 환승 할인 등을 제시했다. 조 후보는 'GTX-D노선 신설'과 '제2공항철도 및 9호선 급행열차 조기 추진', 배 후보는 '제2공항철도 추진 및 영종대교 상부 이용료 감면', '서울·인천 도심행 버스 노선 증차 및 요금 지원'도 약속했다.두 후보 모두 항공MRO(수리·정비·분해조립)단지 조성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약했다.■ 공약 실행 방안은 부족IFEZ 해당 선거구 후보들이 선거 공보를 통해 다양한 공약을 내놓았지만, 재원 조달과 구체적 실행 방안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다. 유권자 표심을 얻고자 지역현안 해결에 집중하다 보니 차별화된 공약을 찾기도 힘들었다. 한두 단어만 다를 뿐 공약 내용 대부분이 비슷비슷한 것이다. 이미 추진되고 있는 사업을 공약으로 제시하거나, 인천시나 인천시의회 또는 인천시교육청이 해야 할 일을 공약한 후보도 적지 않았다. 특히 신도시 특성상 교통과 개발 공약이 많았는데, 임기 내에 완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제21대 총선 후보들의 '선거 공보'는 선관위 정책·공약알리미 홈페이지(policy.nec.go.kr)에서 볼 수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20-04-12 목동훈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9)]인간, 하늘을 날다·(上)

마젤란 3년걸린 '세계일주' 오늘날 48시간안에1903년 라이트 형제, 36m 비행후 '압도적 단축'1차 세계대전 기간 유럽 '군용기'로 폭발적 보급전쟁 통해 빠른 발전… B-29, 일본에 원폭 투하전투기 기술 도입… 민간항공 '점보기 시대'로7월 15일 조선은 처음으로 서양국가(미국)에 외교 사절단인 보빙사(報聘使)를 파견했다. 보빙사 일행은 인천 제물포항에서 배를 타고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입항했고, 열차로 갈아탄 끝에 인천을 떠난 지 두 달여 만인 9월 18일 뉴욕에 당도했다. 2020년 4월 현재 인천국제공항에서 뉴욕 JFK공항까지는 대한항공이 운항하는 초대형 여객기 A380(에어버스)을 타면 직항으로 14시간20분이 걸린다. 인천~뉴욕 간 직항로는 약 1만1천㎞다.두 달과 열네 시간, 137년 사이 세계를 이토록 좁힌 건 비행기다. 우리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는 사이에 인천에서 뉴욕으로 이동하는 시대를 너무도 당연한 듯 여기는데, 코로나19 팬데믹(세계 대유행)으로 하늘길이 막힌 요즘은 '날지 못하는 인간'의 고립감이 어떠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bal Harari)는 2015년 펴낸 '사피엔스'에서 지난 500년 동안의 과학혁명을 이렇게 설명한다.'16세기 이전에는 지구를 일주한 인간이 아무도 없었다. 상황은 1522년에 바뀌었다. 마젤란의 배가 7만2천㎞를 항해한 끝에 스페인으로 돌아온 것이다. 항해에는 3년이 걸렸으며, 탐험대의 거의 전원이 희생됐다. (중략) 1873년에 쥘 베른은 필리어스 포그라는 부유한 영국인 모험가가 세계를 80일 만에 일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한 이야기를 썼다. 오늘날에는 중산층 정도의 수입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 48시간 만에 쉽고 편안하게 지구를 일주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혁명의 핵심은 '시간의 단축'이다. 인류가 기원전 3천500년~3천년께 바퀴를 발명해낸 것도 작은 힘으로 빠른 시간에 물건을 나르거나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19세기 말 자동차 발명과 그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 대중화된 자전거도 기원전에 등장한 바퀴로부터 이어진 과학혁명이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다 추락한 이카로스(Icaros)처럼 비행은 인간의 오랜 욕망이었다.비행기 발명가로 널리 알려진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1867~1912)와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1871~1948), 이른바 라이트 형제는 정확히 설명하면 역사상 처음으로 '유인 동력 비행기'를 날리는 데 성공한 인물들이다. 자전거포를 운영하기도 했던 라이트 형제의 초기 비행기는 대부분 부품을 자전거에서 동원했다고 한다.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기는 최대 출력이 12마력인 엔진을 동체에 달아 2개의 프로펠러를 가동하게 하는 날개 폭 12m에 길이 6m 크기의 '플라이어'(Flyer)다. 1903년 12월 17일 오전 처음 성공한 비행에서 11㎞/h 속도로 12초 동안 36m를 날았다.라이트형제 이전에도 하늘을 나는 사람들은 있었다. 1783년 최초의 열기구와 수소기구가 하늘에 떴고, 그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탄 열기구가 22m를 날아올라 비행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는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이용해 떠오르는 비행선의 시대였다. 프랑스 파리에 살던 브라질인 아우베르투 산투스두몽(Alberto Santos-Dumont·1873~1932)이 비행선 개발자 겸 조종사로 유명했는데, 그가 1899년 길이 20m짜리 1인승 비행선으로 에펠탑 주위를 선회하는 게 파리에서 가장 큰 볼거리였다. 산투스두몽이 공중에서 주머니에 든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보는 게 위험해서 당대 최고의 보석세공사 까르띠에(Cartier)가 고안해 전달한 시계가 바로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다. 오늘날 명품 브랜드가 된 그 까르띠에도 결국은 하늘을 나는 데서 탄생했다. 라이트 형제를 필두로 한 동력 비행기가 상업성을 인정받은 때는 형제가 1908년 유럽으로 건너가 잇따라 시험 비행을 성공한 이후부터다. 비행기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신기한 볼거리'에서 '전쟁의 주력'으로 실용화한다. 시험 비행으로 유럽을 순회한 라이트 형제의 목적도 결국은 군납품 계약이었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발행인 폴 호프먼(Paul Hoffman)이 2003년 쓴 '광기의 날개'를 보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러시아·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등 유럽국가들이 보유한 항공기는 약 700대에 불과했다. 전쟁 초기에는 비무장 정찰기로 썼다. 그러다 한 조종사가 상대편 비행기에 권총을 쏘기 시작했고, 곧 비행기에 기관총을 달았다. 1914년 8월 독일군 타우베(Taube) 단엽기가 파리의 한 기차역에 소형 폭탄 5개를 투하하면서 '공중 폭격'도 시작됐다. 이때 프랑스 여성 1명이 사망해 첫 폭격의 희생자로 기록에 남았다.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8년, 라이트 형제가 유럽에서 시험 비행한 지 10년 만에 이탈리아에서 220마력의 엔진에 최대 속도 220㎞/h까지 낼 수 있는 군용기가 등장했다. 이 기간 전쟁 참여국이 생산한 군용기는 약 18만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성장시킨 항공기술은 곧바로 민간수송분야에 적용됐다. 1919년 2월 독일이 2인승 정찰기를 개조한 복엽기로 정기여객노선을 개설했고, 4월부터 항공우편 수송을 시작했다. 그해 8월 영국도 런던~파리 간 정기 여객기를 띄웠는데, 런던에서 출발한 여객기는 구름 위에 솟은 에펠탑을 보고 목적지를 식별했다.당시 비행사들은 육안으로 항공기를 몰아야 했다. 항공수송사업 경쟁은 위험을 무릅쓰고 야간비행까지 강행하게 했다. '어린왕자'(1943)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ery·1900~1944)도 비행사 출신이다. 생텍쥐페리가 1931년 발표한 자전적 소설 '야간비행'을 보면 조종사들이 밤에 운전하는 것을 얼마나 힘겨워 했는지 알 수 있다.'엄청난 바람에 맞서 왼쪽으로 몸을 기울인 그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떠도는 저 희미한 불빛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것은 빛도 아니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감지되는 아주 미세한 어둠의 농도 변화이거나 눈이 피곤해서 생긴 착시 현상이었다.'현재와 비슷한 모습의 근대적인 여객수송기는 193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탄생했다. 1933년 보잉사가 개발한 B-247(10석), 록히드사가 개발한 L-10(객석 10석)이 상용화됐고, 유나이티드항공사 등 여객기를 운항하는 항공사가 본격적으로 민간항공 노선을 운영했다. 여성들로 구성된 최초의 항공기 승무원도 이때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민간 여객기는 52석 규모까지 성능을 향상했다.항공기술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다시금 전환점을 맞았다. 참전국은 일일이 그 이름을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형화·고속화한 다양한 기종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경쟁적으로 개발해 전장에 투입했고, 어마어마한 파괴력으로 위협을 가했다. 비행기 속도를 700㎞/h 이상으로 끌어올린 '제트엔진'과 '레이더'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도입됐다. 미국 보잉사는 '슈퍼 하늘의 요새'(Super fortress)라 불린 폭 43m, 길이 30m에 무게가 64t에 달하는 당시 초대형 폭격기인 B-29를 개발했다. 미군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폭격기가 바로 B-29다.이 거대한 폭격기가 대형 민간 여객수송기의 뿌리다. 보잉사는 B-29 폭격기를 기본으로 설계한 여객기 377 스트라토크루저(Stratocruiser)를 1947년 7월 출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전쟁, 베트남전, 걸프전 등을 거치면서 각국 신형 전투기들의 성능이 극대화 되었다. 특히 1990년대 걸프전쟁은 영미권 국가의 F-14, F-15, F-16, 스텔스 전투기 등 최신 군용기의 성능 시험장이 됐다. 전쟁이 비행기의 성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민간 항공기는 그 뒤를 따라가는 구조가 반복됐다.1940년대 군용기에 도입된 제트엔진이 1950년대 들어서는 보잉의 B-707, 더글러스의 DC-8 등 민간 여객기에도 탑재됐다. 1960년대 말에는 제트엔진을 단 중·단거리 수송기가 전 세계에 보급되면서 기차여행보다 항공여행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었다. 현재 인천국제공항을 오가는 B-747(500여석), A380(650여석) 등 이른바 '점보기'는 여객기가 점점 대형화한 결과다. 수천년 동안 하늘을 날고자 했던 인류는 1903년 비로소 자신의 힘으로 비행하게 되었는데, 그 66년 뒤인 1969년 우주를 날아 달에 착륙했다. 인간이 욕망한 바는 결국 과학으로 실현되었고, 그 발전 속도는 인류조차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흐르고 있다. 특히 항공기술의 발전이 전쟁과 군비경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우리를 아프게 한다.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역사상 처음으로 '유인 동력 비행기'를 날리는 데 성공한 인물들인 윌버(오른쪽), 오빌 라이트 형제. 이들이 1908~1909년 유럽을 순회하며 첫 유인 동력비행기 시험 비행을 선보이는 모습(사진 오른쪽).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2020-04-08 박경호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8)]우여곡절 '인천공항' 이름표

1992년 신공항 명칭공모 '세종' 최다 득표서울·아리랑 등에도 밀려 '인천' 8위 불과1995년 '영종' 결정… 시민단체 반대 운동"변경" 60만명 요구 서명… 현재 이름으로인천국제공항이 지난달 29일 개항 19주년을 맞았다. 문을 연 지 19년, 인천국제공항은 대한민국의 관문이자 인천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인천국제공항 이용객들은 그렇게 '인천'을 기억한다. 그래서 공항의 이름은 '이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세계 각국의 공항 이름은 그 소재지 명칭이나 그 나라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따는 게 일반적이다. 대부분은 인천공항처럼 도시 이름을 붙이고 있다.인천국제공항에 '인천'이라는 이름표는 쉽게 단 게 아니다. 인천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우여곡절도 많았다. 인천국제공항 명칭 논의가 시작된 건 1992년부터다. 1990년 영종도 신공항 건설 계획이 확정된 뒤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1992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신공항 명칭 공모를 실시했다. 공모 결과 586종, 1천644건의 이름이 모였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했다고는 하지만 참여자가 너무 적었다. 1천644건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건 101표를 받은 '세종공항'이었다. 국제공항인 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인 세종대왕의 이름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2위는 70표를 얻은 '서울공항'이 차지했고, '아리랑공항', '새서울공항' 등이 뒤를 이었다. '인천공항'은 8위(30표)에 그쳤다. '영종공항'이 6위(54표)로 인천을 앞선 게 눈에 띈다.공모 결과가 발표되자 인천 지역이 들끓었다. 인천시의회가 신공항특별위원회를 꾸려 1992년 7월부터 신공항 명칭에 '인천'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천 지명이 배제될 경우, 신공항 건설 저지 운동까지 펼치겠다고 했다. 국내 최대 공항이 건설되는 땅인 '인천'을 상징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결국 이듬해 정부는 공모 당선작 없이 ▲인천공항 ▲세종공항 ▲서울·영종공항 등 3편의 가작만을 발표했다.1995년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의 명칭 결정을 앞두고 경인일보는 신공항의 명칭으로 '인천국제공항'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1면에 실었다. 1995년 1월 23일자 신문을 보면, "'인천과학아카데미' 대학 등 학계에서도 인천의 국내외적인 인지도, 지역 이름을 따르는 공항 명칭의 통상적 기준, 영문 발음·표기상의 문제, 주민 여론·지역 정서 등을 고려해 인천국제공항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며 "인천의 경우 6·25 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등으로 국내·외적 인지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영문 표기상으로도 양호하다"고 보도했다. 다른 후보인 세종은 외국인들에게 인지도가 낮은 데다 지역 대표성이 없고, 영종의 경우 발음 및 표기가 어렵다는 점을 들어 적절치 않다고 했다.하지만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은 1995년 1월 26일, 공항명칭 선정 심사위원회를 열고 신공항의 명칭을 '영종국제공항'으로 정했다. 영종이라는 이름이 건설 초기부터 널리 알려졌고, 지역성을 고려한 판단이라고 그 이유를 들었다. 결론이 내려졌음에도 인천 시민들은 '인천'이라는 명칭을 포기하지 않았다. 같은해 4월, 인천기독교연합회총회·인천YMCA 등 시민 단체들은 '인천국제공항 명칭제정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영종국제공항' 명칭 제정에 반대했다. 1995년 4월 19일자 경인일보에는 "시민 자존심 '영종' 용납 못해"라는 제목의 위원회 창립총회 개최 기사가 실렸다. 이날 창립총회에는 당시 심정구 국회의원 등을 비롯해 심상길 인천시의회 의장, 최기선 전 인천시장, 이종인 인천상의 부회장 등 500여 명의 각계 인사가 참여해 인천국제공항 명칭 제정을 촉구했다. 이때 최기선 전 시장은 1994년에 터진 '북구청 세무비리'와 관련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 있던 상황이었다. 명칭 변경을 촉구하는 인천 시민 동의까지 받았는데, 이에 서명한 시민이 약 60만명에 달했다. 당시 인천시의 인구가 약 235만명(KOSIS 국가통계포털 기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시민 4명 중 1명이 '인천국제공항'을 위해 적극 나섰던 셈이다.신공항 명칭은 당시 초대 민선시장 선거를 앞둔 후보들에게도 최대 현안이었다. 초대 민선 인천시장 후보로 나선 최기선·신용석·강우혁 등 3명의 후보는 영종국제공항으로 정해진 이름을 '인천국제공항'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결국 건설교통부는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의 결정을 뒤집고 1996년 3월 21일 수도권 신공항의 명칭을 '인천국제공항'으로 확정, 발표했다. 건설교통부는 전 세계 공항의 90% 정도가 지역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 공항이 소재한 인천시의 이름을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영종국제공항'은 국제적 인지도가 낮고, 발음도 어려워 피했다고 덧붙였다.정부 발표로 신공항을 둘러싼 명칭 공방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세종국제공항 명칭추진위원회'까지 꾸려 명칭 선정 이후에도 공항명 변경을 주장했고, 인천 지역 사회도 이에 대응하는 대책위를 구성해 인천국제공항의 명칭을 바꿀 수 없다고 맞섰다.결국 개항을 1년여 앞둔 2000년 건설교통부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등에 공항명칭을 '인천국제공항'으로 제출해 마무리 지었다. 현재 인천을 오가는 모든 항공권에는 인천국제공항의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공항코드인 'ICN'이 표기돼 있다. 인천 영문(INCHEON)의 알파벳 첫 글자인 I와 중간의 C, 마지막 N의 조합이다.2006년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이계진 의원은 인천국제공항의 명칭을 '인천-세종국제공항'으로 바꿔야 한다며 인천국제공항공사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다시 한 번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인천의 90여개 시민단체는 '인천지역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범시민협의회'를 구성해 이런 움직임에 맞섰고, 다시 한 번 '인천국제공항'을 지켜냈다.'서울 인천국제공항' 소재지 국제표기 논란 市 제외 요구에도 아시아나 안내방송 유지세계 4만여개 공항 대부분 '지역명칭' 사용"이름짓기도 서비스상품 브랜딩 과정 일부" 2011년부터는 인천국제공항을 둘러싸고 새로운 논란이 불거졌다. 정부가 발간하는 항공정보간행물(AIP), ICAO, IATA 등에 '서울'로 등록된 인천국제공항의 소재지를 인천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서울시가 강서구에 있는 김포공항의 이름을 서울공항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건설교통부는 2000년, 공항 이용 승객이 많은 중심 도시의 이름을 소재지로 명시하는 것이 국제 관례라며 ICAO 등에 서울을 인천국제공항의 소재지로 등록한 바 있다. 소재지는 서울, 공항명은 인천국제공항인 '서울 인천국제공항'이 된 것이다. 인천시는 국내 항공사에도 '서울 인천국제공항'이라는 안내 방송에서 '서울'을 제외해 줄 것을 요구했다. 현재 대부분의 항공사가 이를 수용한 상황이다. 대한항공뿐 아니라 진에어, 티웨이항공 등 대부분 저비용항공사 역시 서울 인천국제공항이 아닌 인천국제공항으로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 '서울 인천국제공항'으로 안내 방송하는 국내 항공사는 아시아나항공이 유일하다. 인천시는 올해 아시아나항공에도 재차 안내방송 변경을 요구할 계획이다. 인천시 항공정책팀 권정은 주무관은 "인천은 인구 300만에 경제자유구역까지 형성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해외 교류가 많아져 서울로 안내할 경우 인천을 찾는 외국인들의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며 "올해 하반기, 이 같은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아시아나항공에 다시 한 번 서울이 아닌 인천국제공항으로 안내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장기적으로 해외 항공사에도 요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도쿄 나리타공항이나 하네다공항처럼 IATA 등에 등록된 소재지와 공항명을 함께 안내하고 있는데, 인천국제공항도 이와 같은 경우"라며 "안내방송에 서울도 함께 방송하는 것은 오히려 고객에게 혼선을 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세계 대부분 공항이 인천국제공항과 같이 지역 이름을 공항명으로 쓰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7개 모든 공항의 이름이 지역명으로 돼 있다. 인천국제공항, 김포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 대구국제공항, 청주국제공항 등이다. 라이트 형제가 1909년 미국 메릴랜드 주에 건설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항으로 알려진 '칼리지 파크(College Park)' 공항도 지역명을 공항 이름으로 정했다. '칼리지 파크'는 메릴랜드 주 중부 지역 이름이다. 북한의 주요 국제공항인 '평양 순안국제공항'도 지명을 활용했다. 유명인의 이름을 딴 공항도 적지는 않다. 미국 뉴욕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이탈리아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국제공항, 인도 뉴델리의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등이 대표적이다. 뉴욕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의 경우, 1948년 개항할 때는 뉴욕국제공항으로 지명을 공항 이름으로 정했지만,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이후 케네디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1963년 명칭을 변경했다. IATA 공항코드도 현재는 이름의 약자를 딴 'JFK'로 쓰고 있다. 영종도와 같이 섬에 건설돼 그 섬의 이름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홍콩의 국제 관문인 '홍콩 첵랍콕(Chek Lap Kok) 국제공항' 등이다. 첵랍콕은 홍콩의 서부 해역에 있는 섬으로, 1998년 개항과 동시에 섬 이름을 공항명으로 쓰고 있다.한국항공대 이상학 경영학부 교수는 "마케팅 측면에서 볼 때 공항의 이름을 짓는 건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최고의 서비스 상품을 브랜딩하는 하나의 과정"이라며 "지역 입장에서는 당연히 공항 이름에 지역명을 넣고 싶어 하고, 공항 입장에서는 항공사나 승객 유치를 위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명칭을 쓰려고 열을 올리기 때문에 이름을 지을 때 조정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4만 개가 넘는 공항이 있다. ICAO가 공항코드를 부여한 공항이다. 한국항공협회가 2년 주기로 발간하는 항공연감의 주요 공항을 보면, 공항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다. 전 세계 7천300여개의 주요 공항 중 약 23%(1천700여곳)가 미국에 몰려 있다. 반대로, 공항이 없는 주권 국가도 있다. 가톨릭 교황국인 바티칸시국, 입헌군주제 국가인 유럽의 리히텐슈타인 등이다. 바티칸시국으로 가려면 이탈리아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을 이용해야 한다.글/공승배기자 ksb@kyeongin.com2007년 1월 18일 오전 인천 송도라마다호텔에서 '인천국제공항 명칭변경 추진관련 대책 간담회'가 열렸다. '인천지역경쟁력강화를위한범시민협의회' 주최로 진행됐으며, 당시 안상수 인천시장, 박창규 시의회 의장, 김정치 인천상공회의소 회장, 지역 국회의원 및 기관단체 대표들이 참석했다. /경인일보DB경인일보 1995년 1월 23일자 1면에는 "영종도건설 신공형 명칭, '인천국제공항' 바람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인천 지역사회에서는 인천의 국내외 인지도, 지역이름을 따르는 공항명칭의 통상적 기준 등을 고려해 인천국제공항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인천국제공항 전경. 활주로 인근에는 인천국제공항을 나타내는 'INCHEON'이 표시돼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경인일보DB

2020-04-01 공승배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7)]단절된 섬 이어준 대교

영종대교, 초기 인천공항 유일 접근로 역할인천대교, 2009년 개통후 인천도심 가까이제3연륙교, 청라 연결 5년뒤 완공목표 추진市, 신도~강화도~해주·개성 '평화도로' 구상공항물류 시너지… 국가도로망 반영 협의중'다리(橋)'는 바다와 강, 계곡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든 구조물이다. 둘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 인연을 맺어주거나 끊어진 관계를 다시 연결해 주는 것을 '다리를 놓는다'고들 한다.영종도는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육지와 단절된 섬이었다. 지금이야 영종대교와 인천대교를 타고 아무 때나 섬과 육지를 오갈 수 있지만, 옛날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했다.영종도는 다리가 놓이면서 내륙 생활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됐다. 제1연륙교인 영종대교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통해 서울과 직접 연결됐고, 제2연륙교인 인천대교는 제2경인고속도로를 통해 인천·경기 남부권과 이어졌다. 그리고 앞으로 들어설 제3연륙교는 경인고속도로와 연결될 예정이다.영종도는 또 하나의 다리를 꿈꾸고 있다. 바로 남과 북을 잇는 서해평화도로다. 이는 구조물로서의 다리이기도 하지만, 끊어진 남북관계를 다시 연결해주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영종도와 인천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 게 인천공항이듯이 남북의 중매쟁이도 바로 공항이 될 것이다. 인천공항이 있기에 영종도를 중심으로 한 다리들은 남북간 인적·물적 교류의 핵심 인프라가 될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 위치도 참조1990년 6월 인천 영종도가 수도권 신공항 입지로 확정되면서 다리 건설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섬을 육지와 연결하는 연륙교 계획과 함께 서울 도심에서 공항까지 45분 이내 도착을 목표로 한 고속도로 건설계획이 확정됐다. 2000년 11월 22일 개통한 영종대교는 인천공항 개항 초기 유일한 접근로였다. 우리나라 사회간접자본시설(SOC) 역사상 최초로 민자 사업으로 진행됐다. 영종대교는 공항과 경기도 고양을 연결하는 36.6㎞ 길이의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의 해상 구간이다. 인천 중구 운서동과 서구 경서동을 잇는 길이 4.42㎞의 다리를 49개의 교각이 떠받치고 있다. 상층엔 도로, 하층엔 철로(공항철도)가 놓여 흔하지 않은 복층 구조 다리라는 점이 특징이다. 11개 건설사의 출자로 설립된 민간사업시행자인 신공항하이웨이(주)가 총 사업비 1조7천342억원(육상구간 포함)을 투입해 건설했다.인천 송도국제도시와 공항을 연결하는 인천대교는 2009년 10월 16일 개통했다. 총 길이가 21.348㎞에 달하고 이 가운데 해상구간이 12.34㎞로 영종대교의 약 4배다. 사업비는 민자구간 1조5천201억원, 국가사업 구간 8천628억원을 합해 총 2조3천829억원에 이른다. 해상구간은 민자사업자인 인천대교(주)가 맡았고, 육상 연결도로는 한국도로공사가 시행했다.인천대교는 처음에는 해저터널로 계획됐지만, 막대한 비용과 오랜 공사 기간, 유지 관리 어려움이 걸림돌이 됐다. 1995년 11월 경인일보는 제2연륙교 해저터널의 타당성을 짚어보는 기획기사를 연재했는데 당시 기사를 보면 이런 이유 때문에 해저터널보다는 해상교량 방식이 더 낫다는 여론이 우세했다.초기 인천공항 접근 교통망은 서울 편의 위주로 짜였기 때문에 정작 인천시민들은 개항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맞이한 인천대교의 개통은 인천 도심에서 공항으로의 이동을 더 수월하게 했다. 그저 '제2연륙교'로만 불리던 무명의 이 다리는 송도국제대교, 황해대교 등의 명칭이 거론됐으나 여러 공론화 과정을 거쳐 '인천대교'라는 이름을 얻어 인천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자리하게 됐다.영종대교와 인천대교의 건설은 그야말로 바다에 길을 내는 험난한 토목 사업이었다. 한강에 다리를 놓는 사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도의 기술력과 장비, 인력, 예산이 필요했다. 두 다리는 당시 토목기술의 '끝판왕'격이었다.아주 오래 전, 다리는 냇가에 큰 돌덩이 등을 놓은 징검다리나 통나무 다리 등 원시적인 형태로 시작했고 아치 형태의 교량부터 기술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축조된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리로 꼽히는데 이는 석조 아치교다.다리는 하중을 어떻게 분산시키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건너는 구간이 짧다면 널빤지 형태의 구조물만 얹으면 되지만 거리가 길면 휘어질 우려가 있어 중간중간 교각을 놓아야 한다. 교각 사이 폭은 가까울수록 안정적이나 이 경우 선박이 다닐 수 없고 물의 흐름을 방해하게 된다. 그래서 나온 기술이 바로 주탑과 케이블을 이용해 교각 사이를 크게 벌리는 현수교와 사장교 방식이다.영종도 북단에 위치한 영종대교는 대형 선박이 많이 운항하지는 않아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인천대교는 사정이 달랐다. 인천항의 무역선과 여객선의 항로를 가로지르는 노선이어서 인천대교 하부를 선박이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숙제가 있었다. 하늘길을 열자고 바닷길을 막아서는 안 될 일이었다.인천대교는 일반적으로 30~50m인 교각 사이 폭을 800m까지 벌리기 위해 '사장교' 방식을 도입했다. 주탑에서 대각선으로 뻗어 나온 케이블의 수평력이 다리의 상판을 지탱해 휘어짐을 막는 방식이다. 인천대교의 가운데 뾰족하게 솟은 높이 225m '역 Y자' 형태의 두 개의 탑과 케이블은 장식용이 아니라 다리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구조물이다.주탑 간격 300m의 영종대교는 '현수교' 방식으로 지어졌다. 현수교는 사장교처럼 주탑과 케이블로 구성됐지만, 케이블이 대각선인 사장교와 달리 수직으로 설치된 게 다른 점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골든 게이트(금문교)'가 대표적인 현수교다.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인천 앞바다의 특성상 두 대교의 건설은 바다와의 싸움이었다. 영종대교는 일부 해상구간에 차수막을 설치하고 물을 완전히 뺀 다음에 육상 구간처럼 공사했다. 그러나 인천대교는 물막이 작업 없이 해상에서 파일을 박고 육상에서 미리 만든 구조물을 얹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3천t의 장비를 들어 올릴 수 있는 크레인이 달린 바지를 띄워 공사를 했는데 이는 당시 세계에서 처음 선보이는 방식이었다.인천대교 사업에 참여한 (주)유신 구조부 이경훈 부사장(토목구조기술사)은 "바지 같은 해상장비를 바다에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해 놓고 그 위에 육상에서 사용하는 장비를 실어 기초공사를 해야 했는데 조수 간만의 차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인천대교는 당시에는 국내에 없던 설계방식이 도입됐고, 빠른 진행을 위한 최적화 공법이 적용됐다"고 말했다. (주)유신은 영종대교의 기본 설계를 맡았고, 인천대교의 설계·시공 감리를 했다.이 부사장은 또 "인천대교의 해저터널이 무산된 이유는 경제성과 공사 기간 문제도 있었지만, 깊이 40m 이하로 들어가기 위한 경사도가 잘 나오지 않아 물리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영종도에는 영종대교와 인천대교에 이은 제3연륙교 건설이 추진 중이다. 제3연륙교 사업은 영종과 청라를 연결하는 길이 4.6㎞의 교량 건설 사업이다. 청라와 영종 경제자유구역 사업을 맡은 LH가 제3연륙교 건설비 5천억원을 조성원가에 반영해 2005년부터 건설을 추진했으나 15년째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제3연륙교 건설이 영종대교와 인천대교를 운영하는 민자 사업자에 손실을 끼칠 수 있어 손실 보상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이유가 컸다. 현재 실시설계 용역이 진행 중으로 2025년 하반기 개통이 목표다. 영종대교와 인천대교처럼 기존의 고속도로망과 직접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영종도에서는 3개의 연륙교 외에도 남북 평화시대를 대비한 대형 프로젝트가 최근 그 첫발을 내디뎠다. 바로 서해평화도로 1단계 사업인 영종~신도 간(3.8㎞) 다리 건설 사업이다. 서해평화도로는 영종도와 신도(옹진군 북도면), 강화도를 다리로 연결하고, 더 나아가 해주와 개성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연결하는 사업이다. 인천시는 4월 1단계 구간 설계·시공을 위한 업체 선정에 착수해 올해 말에는 착공할 예정으로 2단계 구간인 신도~강화도 구간(11.1㎞)이 '제2차 국가 도로망 종합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국토교통부와 협의 중이다. 서해평화도로의 구상은 바로 인천공항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성공단과 같은 북녘의 공간이 남쪽의 인천항과 인천공항 등의 뛰어난 물류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다.배용환 인천시 도로과장은 "국가 계획에 서해평화도로가 반영되면 인천에서 김포를 거치지 않고 영종도를 통해 강화도, 더 나아가 북한으로 곧장 이어지는 길이 만들어진다"며 "1단계 사업인 영종~신도 구간부터 차질없이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글/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주탑 사이에 상판을 연결하기 전의 인천대교 공사 현장 모습. 총 길이 21.348㎞의 인천대교는 52개월 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09년 10월 16일 개통했다. /인천대교(주) 제공영종대교의 낮. /신공항하이웨이(주) 제공영종대교의 밤. /신공항하이웨이(주) 제공제2연륙교(인천대교)의 해저터널 방식에 대한 문제점과 대안을 분석한 경인일보 1995년 11월 23일자 지면.

2020-03-25 김민재

[줌인 ifez]IFEZ 산업육성 플랫폼 연구·조사 완료

자동차·기계등 앵커 입주 불구'연구개발' 자산은 상대적 부족맞춤인재양성등 5개 전략 수립'산업단지 동반성장안'도 마련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인천연구원이 지난해 1월부터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산업육성 플랫폼 운영을 위한 연구·조사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IFEZ 현 산업 구조를 진단·평가하고, '혁신성장 산업 생태계' 조성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IFEZ 발전 패러다임은 '인프라 개발사업'에서 '산업 생태계 활성화'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가용 토지가 감소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한 투자 유치와 산업 육성이 요구되고 있다. IFEZ와 인근 산업단지가 함께 발전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인천경제청과 인천연구원은 최근 연구·조사사업을 완료하면서 'IFEZ 혁신성장 산업 생태계 구현'을 정책 목표로 설정했다. 또 ▲산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투자 유치 및 공급망 구축 ▲개방형 혁신 체계 구현을 위한 연구개발 자산 확보 ▲산업 맞춤형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훈련 체계 구축 ▲혁신 생태계 활성화 지원을 위한 조례 개정 및 조직 개편 등 5개 추진 전략을 제시했다. IFEZ 산업 구조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부분을 개선·보완해야 하는지 이번 연구·조사사업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했다. → 그래픽 참조■ 앵커는 있지만…IFEZ 주력 산업은 물류, 자동차·기계, 바이오다. IFEZ는 인천공항과 인천항을 중심으로 물류산업이 집적되면서 높은 수준의 거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화가 지연되고 있으며, 고부가 가치형 물류가 부재하다. 자동차·기계 분야는 앵커 기업들의 입주로 제조·생산시설은 우수하지만, 연구개발 자산은 부족하다. 자동차부품의 시험·인증·엔지니어링을 담당하는 기관도 없다. 바이오·헬스케어 분야는 글로벌 바이오 기업·연구소들이 입주하면서 중핵 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인천 내에서 바이오 원·부자재를 공급하는 기업이 거의 없다.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로봇·드론 분야는 청라 로봇랜드를 중심으로 관련 기업이 증가하고 있지만, 인천에서 수요가 높은 물류로봇 분야 기업 유치·육성이 필요한 실정이다. ■ 인천경제청, 혁신적 산업 생태계 조성 지원인천경제청은 이번 연구·조사사업에서 지적된 사항을 개선·보완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5개 추진 전략을 이행하기 위한 세부 사업 20개를 선정했으며, 해당 부서·기관과 협의해 사업계획을 구체화할 방침이다.인천경제청은 영종도 복합리조트에서 지역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식품 공급망을 구축하기로 했다. 또 수요가 많은 물류로봇, 바이오 원·부자재, 스마트 물류 분야 기업을 유치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인천경제청은 지역혁신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민간 기업(대기업-중소기업-벤처·스타트업) 주도의 개방형 혁신 체계 구축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산학연(기업-대학-연구소) 공동 연구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을 도입하기로 했다. 인천경제청과 인천연구원이 IFEZ 입주 기업 25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8%는 IFEZ 내에서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수행할 의향이 있었다. 산업 생태계의 건전성을 확보하려면 벤처·스타트업 육성이 중요하다. 인천경제청은 벤처·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고자 앵커형 액셀러레이터와 글로벌 벤처캐피털을 유치하기로 했다.바이오·항공·관광 분야 전문 인력 양성에도 적극 나선다. 인천경제청은 인천테크노파크의 바이오공정센터 건립사업, 인천공항공사의 항공MRO 전문 인력 양성사업 등 관계 기관의 인력 양성 체계 구축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인천경제청은 IFEZ와 산업단지 동반 성장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송도-남동국가산업단지, 청라-서부산업단지와 북항 배후단지 등 IFEZ와 산업단지 간 시너지 창출 및 산업 융합이 일어날 수 있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입주기업 근로자 1240명 조사… IFEZ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문제 "대중 교통"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인천연구원은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산업육성 플랫폼 운영을 위한 연구·조사사업'을 진행하면서 IFEZ 입주 기업 근로자 1천240명을 대상으로 정주 여건 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조사(5점 척도) 결과는 IFEZ 거주자와 비거주자로 구분해 분석했다.IFEZ 거주자의 정주 여건 만족도는 청라 3.8점, 송도 3.6점, 영종 3.3점 순으로 조사됐다. 영종 거주자는 상업·문화·체육시설이 부족하고 응급의료시설 이용 환경이 열악하다고 평가했다. 영종뿐만 아니라 송도와 청라 거주자도 의료시설 이용 환경에 대해 매우 낮은 점수를 줬다.IFEZ 비거주자에게 향후 IFEZ에 거주할 의향을 물었더니, '없다'(46.3%)가 '있다'(21.6%)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거주 의향은 송도가 28.2%로 가장 높았고, 영종은 8.8%에 불과했다.IFEZ 입주 기업 근로자들은 '대중교통'을 가장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로 꼽았다. IFEZ 거주자를 대상으로 한 생활 여건 만족도 조사에서 '대중교통'은 가장 낮은 2.6점을 받았다. IFEZ 비거주자에게 '어떤 요인을 개선했을 때 IFEZ에 거주할 의향이 있느냐'고 질문한 결과, 64%가 대중교통 문제를 1순위로 선정했다. 2순위까지 합하면 81%나 된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20-03-22 목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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