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민 인문학강좌

 

흥미로운 인문학 특강 '무료'

인천 연수도서관이 무료 인문학 특강을 시작한다.15일 오후 7시 대강의실에서 열리는 첫번째 특강은 '하이, 휴머니스트가 되자'라는 주제로 열린다. 유럽연합(EU) 집행이사회 안보분석관으로 있는 조명진 박사가 강사로 나온다. 조명진 박사는 자신의 저서 '유로피안 판도라-유럽 통합의 과거, 현재, 미래'(안티쿠스), '하이, 휴머니즘-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성찰과 대안'(안티쿠스)을 소재로 특강을 진행한다. 인도 철학에 관심이 있는 시민은 다음달 8일(금) 오후 7시 열리는 특강에 참석하면 된다. 인도 비스바 바라띠(Visva-Bharati)대학 인도·티벳학과 교수인 신상환 박사가 나와 '인도철학·불교철학의 이해와 오해'를 강의한다. 연수도서관은 오는 7월13일(금) 오후 7시에는 영화 '말하는 건축가'(감독·정재은)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특강을 준비했다. 말하는 건축가는 지난 3일 기준 관객 3만명을 돌파하며 '2012년 독립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특강은 건축평론가 전진삼(간향미디어랩연구소장)씨가 나와 진행한다. 정재은 감독과 대화하는 시간도 있다. 이번 인문학 특강은 강연자들이 도서관으로부터 강연료를 받지않고 '재능 기부' 방식으로 이뤄지는 게 특징이다. 문의:(032)899-7530, 7542 /홍현기기자

2012-05-15 홍현기

[2012 시민 인문학강좌·5]차인배 인하대교수/ 조선시대 죄와 벌

'물 고문'은 언제부터 행해졌을까.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속칭 '박종철 군 고문 치사사건'도 물고문이었다. 최근까지도 경찰 등 수사기관의 가혹행위에 물고문은 빠지지 않았다.조선시대에도 물 고문이 행해졌다는 사실이 그림에 확연히 드러난다. 무릎을 꿇린 채 양손은 뒤로 묶고 얼굴에 종이를 말아 감고 형 집행인이 입에 담은 물을 뿜는다. 그러면 종이에 물이 먹어 숨을 쉬기 곤란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 기둥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병에 담은 잿물을 코에 붓는다. 물 고문이다.지난 8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2년 상반기 다섯 번째 강좌에서는 '풍속화로 본 조선시대 죄(罪)와 벌(罰)'이란 주제가 다뤄졌다. 이날 강좌는 차인배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가 맡았다.차 교수는 이날 흥미로운 그림들을 연달아 소개했다. 모두 고문(拷問)에 대한 것이었다. 차 교수는 주로 김윤보와 김준근의 풍속화를 예로 들었다. 차 교수는 "물 고문의 경우엔 문헌기록에는 잘 보이지 않는데, 그림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조선시대에 가해진 고문은 자백을 쉽게 이끌어 내기 위함이었다. 범죄를 수사하는데 현장범을 제외하고 죄인의 범죄 단서를 찾아내기란 매우 어려움이 따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범죄의 증거는 현장의 물증과 목격자의 증언, 범죄자의 자백이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될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엔 이들 증거 가운데 자백(자복)을 가장 중요한 범죄구성의 단서로 여겼다. 이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각종 잔인한 방법에 의한 혹형이 가해진 것이다.차 교수는 "조선시대 후기로 갈수록 고문의 강도가 세지는 측면이 있다"면서 "하지만 영조 때는 혹형이 폐지된 적도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부활했다"고 설명했다. 고문 만큼 손쉽게 자백을 받아낼 방도가 없었다는 얘기다. 고문은 억울한 '죄인'도 많이 만들어 냈다고 한다. 고문이 무서워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허위자백을 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차 교수는 이런 현상을 일종의 '행정편의주의'라고 정의했다. 빨리 사건을 처리하려는 '공안 당국'의 입장만이 반영된 것이란 얘기다.고문의 종류도 다양했다. 때리는 신장이나 곤장도 있었고, 죄인의 무릎을 꿇려 그 위에 널빤지를 올려놓고 무릎을 짓밟는 압슬형, '주리를 트는' 주뢰형, 발바닥을 달군 인두로 지지는 낙형 등도 있었다.이렇게 해서 죄가 밝혀지면 형벌을 내리는데, 조선의 형벌체계는 '오형(五刑)'이 중심이었다. 일종의 신체형으로 회초리로 볼기를 치는 태형, 장독과 같은 후유증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많았던 장형, 노역을 시키는 도형, 유배형인 유형, 그리고 바로 목숨을 끊은 사형 등이다. 사형도 목을 매는 교형과 목을 자르는 참형, 독을 마시게 하는 사약형 등으로 나뉘었다.다음 여섯 번째 강의는 오는 22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양보경 성신여대 교수가 나와 '한국의 옛 지도'란 주제로 강연한다. /정진오기자인하대·인천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주최

2012-05-10 정진오

[2012 시민 인문학강좌·4]최종성 서울대 교수/ 한국종교와 동학

지난 24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2년 상반기 네 번째 강좌에서는 '한국종교와 동학(東學)'이란 주제가 다뤄졌다. 이날 강좌는 최종성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맡았다.최 교수는 '종교'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종교적 경험과 일상적 경험과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에서 출발했다. 최 교수는 종교는 궁극적인 실제와의 만남이고, 이 만남이 인생에 있어 강렬한 충격으로 나타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고 했다. 종교는 또 행동하게 만드는 경험이기도 하다고 했다.최 교수가 말하는 '한국종교의 특성'은 기복(祈福)과 구도(求道)적 측면을 병행하고 있는 데 있다. 생존적인 욕망을 분출하려는 기복성과 덜 먹고 덜 자더라도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구도적 모습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한국종교의 특성이란 얘기다.또 한 가지 특성은 동양종교와 서양종교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일본은 동양종교가 일방적으로 우세하고, 미국은 서양종교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한국은 서로 비슷한 형세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2005년 기준으로 국내 종교인구의 비율이 53%였는데, 이 중 불교가 43%, 개신교가 34.5%, 천주교가 20.6%였다고 한다.최 교수는 한국종교사의 패턴은 무속~불교~유교~서학(가톨릭)~동학(신종교)~기독교(개신교)~다종교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그러면서 그는 '동학'을 한국종교의 대표격으로 설명했다. 우리민족에게 불교가 전래되면서 첫 번째 한국문화의 자양분이 됐다면, 조선 중·후반기엔 가톨릭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문화적 충격을 이루었고, 그 서학의 충격에서 색다른 자생종교로 등장한 것이 동학이라는 것이다.동학은 한국 민족종교운동의 신기원을 이룩했고, 한국 신종교운동의 자양분이 됐다는 게 최 교수의 평가다. 특히 동학은 동학혁명이 일어난 1894년 이후 신비주의 종교나 신문화운동, 해외무장투쟁 등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최 교수는 미래 한국종교의 모습도 현재와 마찬가지로 다원화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존하는 질서와 조화가 종교사회에서도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다음 다섯 번째 강의는 5월 8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차인배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가 나와 '풍속화로 본 조선시대의 죄와 벌'이란 주제로 강연한다. /정진오기자인하대·인천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 주최

2012-04-26 정진오

[한중수교 20주년 기념 中國 인문학강좌]장정아 인천대교수 '중국 전통은 부활하는가'>끝<

'중국 인문·사회 오디세이-중국을 움직이는 관행과 문화'라는 타이틀 아래 인천대학교, 인천시국제교류센터, 경인일보 등이 공동으로 마련하는 '인천시민강좌' 마지막 시간인 여덟 번째 강연이 25일 오후 7시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한국씨티은행빌딩에서 진행됐다.'오디세이'의 피날레는 장정아 인천대 교수(사진)가 '중국의 전통은 부활하고 있는가'란 주제를 갖고 장식했다.# 다음은 강연 요지최근 중국에서는 전례없이 전통문화가 부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화대혁명때 타도의 대상이 되었던 공자는 이제 세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로 추앙받고 있다.왜 전통은 '부활'하고 있는가? 중국에서는 사실 역사상 여러 차례 유사한 현상이 등장하였는데, 그 뿌리에는 사회적·문화적 위기와 혼란에 대한 출구를 전통문화속에서 찾으려는 모색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주지하듯 마오쩌둥 시기, 전통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최근 전통의 부활 현상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최근 중국의 모든 움직임을 마치 모두 정부가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일사불란한 움직임처럼 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으며 우리에게 별로 도움도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공정 등은 분명히 정부의 지원을 받았고 어느 정도 목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통의 부활'처럼 보이는 현상들을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매우 다양한 의도와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예를 들어 단오절 문제의 경우, 한국은 유네스코에 '단오 풍속' 자체는 중국에서 왔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고, '강릉단오제'는 명절로서가 아니라 지역 축제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선정된 것이다. 중국의 학자들도 이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즉 중국에서도 문화 전문가들은 한국이 중국의 명절을 '빼앗아간'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중국 언론은 이를 간과하고 선정적으로 보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중국에서 문화유산 열풍을 일으키면서 정부가 원하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또 중국에서 전통 명절을 공휴일로 지정하자고 오래 전부터 주장했던 어느 학자는 "유가 사상이 아니라 민간문화야말로 진정한 중화문화의 영혼"이라고 외치면서 주류 전통사상과 문화를 비판했던 사람이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 일사불란한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중국 내부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으며 비판과 성찰의 목소리도 많다. 예를 들어 중국내에는 '중국 전통문화가 그토록 위대하다면 왜 중국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는가. 중국 전통문화의 위대함을 외치기 전에 먼저 중국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만들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부분이 양국에 잘 알려지지 않고 왜곡되면서 양국의 관계가 자꾸 '문화전쟁'과 같이 대립적으로 가게 되는 경우가 많은 점이 안타깝다.물론 분명히 대응할 부분은 해야 한다. 그러나 피상적 이해에 기반한 감정적 대응은 피해야 한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냉철하게 대응해야 한다. 특히 모든 것을 마치 중국 정부가 치밀하게 주도하는 일사불란한 움직임인 양 오해하면 더욱 감정적이고 즉각적인 대응을 하게 된다. 중국 내부에 있는 다양한 목소리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전통문화속에서 정체성을 다시 모색하듯, 우리 한국 사회는 문화적 정체성을 무엇에 기반하여 어떻게 모색할지에 대한 우리의 고민도 있어야 하며, 그러한 고민속에서 중국과의 관계도 장기적으로 현명하게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정진오기자 인천국제교류센터·인천대·경인일보 공동개최

2012-04-26 정진오

[한중수교 20주년 기념 中國 인문학강좌]김수한 인발연 연구위원 '토지정책과…'

'중국 인문·사회 오디세이-중국을 움직이는 관행과 문화'라는 타이틀 아래 인천대학교, 인천시국제교류센터, 경인일보 등이 공동으로 마련하는 '인천시민강좌' 일곱 번째 시간이 18일 오후 7시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한국씨티은행빌딩에서 진행됐다.이날은 김수한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사진)이 '토지 정책과 부동산 열풍이 낳은 하우스 푸어'란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 강연은 지난 11일에 예정돼 있었으나 4·11 총선일인 관계로 1주일 뒤로 연기했다.# 다음은 강연요지시장화 개혁을 도입한 이래 눈부신 경제성장을 구가하는 중국이지만, 이런 성공의 이면에는 고도의 압축성장이 가져온 각종 사회 불안요인이 쌓여가고 있다. 특히, 대도시의 부동산은 이와 같은 성공과 불안의 이중적 요인이 교차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계획경제 시기 중국 정부는 도시 소재 국영기업, 학교, 연구기관 등을 지칭하는 단위를 통해 시민들에게 경제 자원은 물론 의료, 교육, 양로 등의 사회 복지를 제공함으로써 도시 통제를 실현했다. 특히, 직장을 통해 소속 직원들에게 거의 무상으로 지급되었던 주택제도를 통해 직장과 주거지의 일치라는 중국 도시 단위제의 성격이 완성되었다. 1980년대 중국 정부는 국영기업 등 단위의 재정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단위 주택 사유화와 시장을 통한 주택공급을 추진하였으나 그 효과는 미진했다. 주택 임대료가 대폭 상승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시장가격에 비해 낮은 상황에서 시민들은 무리해서 주택 구매에 나설 유인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1998년 아시아금융 위기라는 도발적 세계 환경 변화 속에서 중국 당국은 단위에 의한 주택공급 전면 금지라는 급진적 개혁 조치를 단행하였고, 이 조치를 이정표로 하여 중국 주택 영역은 본격적인 시장 형성기로 진입하였다.중앙정부는 중국판 반값 아파트 격인 '경제적용주택'을 위주로 한 새로운 공공주택 시스템을 구상하였으나 이 정책은 기대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택지 무상공급, 관련 세수 면제 등을 통해 여타 아파트의 반값에 중저소득계층에게 분양되는 경제적용주택 공급에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추상적 국가를 대신하여 도시 토지의 실질적 소유주이자 지역 부동산 시장의 관리자로서 강력한 권한을 가지게 된 지방정부의 입장에서 경제적용주택은 자신들의 토지 권익과 부동산 세수증대를 반감시키는 정책이었던 것이다.단위에 의한 '공짜 아파트'로부터 '반값 아파트'로의 정책전환은 중국 특유의 토지, 세수제도 및 특유의 중앙-지방관계 등의 제도요인과 맞물려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동산 시장의 운영을 둘러싼 중앙당국과 지방정부의 힘 겨루기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정진오기자인천국제교류센터·인천대·경인일보 공동개최

2012-04-19 정진오

[2012 시민 인문학강좌·3]김종준 인하대 교수/ 한국사의 근대성과 민족성

'한국인의 정체성은 무엇을 말하는가?'지난 10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2년 상반기 세 번째 강좌에서는 '한국사의 근대성과 민족성'이란 주제가 다뤄졌다. 이날 강좌는 김종준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교수가 맡았다. 다음은 강연 요지다.한국사를 이야기하면서 먼저 살펴야 할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은 다른 정체성들을 압도한다.그러면 우리나라에서 국민 정체성은 언제 생겨난 것일까? 국민국가 또는 민족국가(영어로는 동일하게 nation state가 된다)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은 한말에 형성되기 시작했다.한말의 개화지식인들은 이러한 정체성들을 뛰어넘어 국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랜 기간 형성되어 온 정체성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사안이었다. 개화지식인들의 입장에서 자주독립된 근대국민국가를 만든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세계사적 과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일제의 식민지화로 물리적인 국가 건설이 점차 어려워지던 시절, 지식인들은 민족·국민 정체성 함양에 더욱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학파 간 차이점들은 있지만 크게 보면 한국사학은 근대국민국가를 창설하고 국민 정체성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목적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서구나 동아시아나 근대국가의 형성은 곧 가장 상위의 정체성인 국민의 창출을 필요로 했다. 우리의 경우 망국의 위기감과 극심한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국가가 개인 위에 신성시되는 방식으로 관계가 설정되었다는 점이 문제다. 한말의 위기 상황은 국민 대신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강력하게 불러들였다. 이 때 한국의 민족 담론은 유기체적, 배타적 성격을 띠었다. 근대역사학이 그러했던 것처럼 근대 민족 담론 역시 서구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독일, 일본 계통의 민족 담론이 유기체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다음으로 해방 이후 좌우 대립의 상황이 있다. 이제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그토록 바라던 국민국가를 건설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국민이라고 호명되었지만 국가의 구성원으로 권리와 의무를 다하기만 하면 되는 존재는 아니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살아남기 위해 내가 국민의 일원임을, 이적(利敵) 행위자가 아님을 국가에 증명해야만 하는 문제였다.근대와 민족이란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해도 그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한국사 내부와 외부에서 역시 여러 논쟁들이 진행중이다. 한국사가 근대민족주의역사학으로 성립되어 계승되어 왔다는 점과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역사적 배경 등을 인식해야만 왜 그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논쟁의 표피가 아니라 그 기저를 이해하려는 노력, 이는 역사의 생산자들인 역사학자들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인 학생과 일반인에게도 요구되는 바이다. 다음 네 번째 강의는 4월 24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최동성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나와 '한국 종교와 동학(東學)'이란 주제로 강연한다./정진오기자 인하대·인천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 주최

2012-04-12 정진오

[中國 인문학강좌]육정임 경희대 교수 '중국 여성의 성 정체성…'

'중국인문·사회 오디세이-중국을 움직이는 관행과 문화'라는 타이틀 아래 인천대학교, 인천시국제교류센터, 경인일보 등이 공동으로 마련하는 '인천시민강좌' 여섯 번째 시간이 4일 오후 7시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한국씨티은행빌딩에서 진행됐다. 이날은 육정임 경희대 교수가 '중국 여성의 성 정체성:전통적 특징과 근대 이후의 변화'란 주제로 강연했다.■ 다음은 강연요지중국의 '전통' 시대를 관통하며 여성에 관한 사상과 담론, 따라서 그녀들의 삶과 문화 모든 것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세 가지의 이론이 있었다. 부계주의, 내외구별, 음양론이 그것이다. 시대에 따라 각 이론의 중요도와 영향력이 달라지기도 하고 서로 모순되기도 했으나, 장기적으로는 상호 강화, 보충적으로 남성중심 문화를 구축하였다.10세기부터 시작된 중국 여성의 '전족' 풍습은 이 세 가지 이론이 요구한 여성성이 응집된 기호였다.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가하여 10㎝가 안되게 왜곡시킨 여성의 발을, 남성들은 '삼촌금련(三寸金蓮)'이라며 찬탄했다. 19세기 말까지 약 1천년 동안 중국 여성의 성정체성은 전족으로 모두 설명되었다.근대화와 여성해방운동은 전통적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여성들에게 학교, 직장, 개혁과 혁명 참여와 같은 외부의 장을 열어주었다. 남녀평등의식은 음양론을 상호 대등하며 상호보충적인 관계로 재해석하였다. 전족은 최대 악습으로, 청조 말기부터 모든 개혁, 계몽운동의 공통된 타깃이 되어 1930년대 이후 사라지게 되었다. "하늘의 절반[半邊天]을 여성이 떠받치고 있다"는 말로 남녀의 사회적 평등을 지지한 마오쩌둥의 정권은 반(反)가부장적인 혼인법을 선포하고, 인민공사제도 시행으로 전통적 가족의 기능을 부정하며 여성 노동력을 가정 밖으로 끌어냈다. 개혁개방 이후 1980년 개정 혼인법으로 강행된 '한 자녀 정책'은 부계에서 부모 양계로의 이행을 촉진하고 남자에 대한 집착을 약화시켰다.국가별 남녀 젠더 격차를 비교한 자료에 의하면 중국은 아시아에서는 격차가 적은 편이나, 남녀 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게 남아 있어서 극심한 성비불균형, 무호적자 문제, 여아 낙태와 살해까지도 있으며, 부유한 남성이 여러 여성들을 거느리는, 마치 과거 축첩과 같은 관행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세기 마치 폐기처분된 것으로 보였던 유교 정신을 되살리는 정책이 시작되었다. 오랜 전통의 관행, 급진적 사회주의 개혁의 경험, 세계적인 시장경제체제의 현실 등이 합해져, 중국의 성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하고 있는 중이다. /정진오기자

2012-04-05 정진오

[2012 인천시민 인문학강좌·2]조강석 인하대 교수/ 1930년대 시로 읽는 조선의 근대

한국 현대시의 최전성기는 언제로 봐야 하나.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조강석 HK교수는 1930년대라고 말한다. '근대'가 막 시작될 시점이 우리 현대시의 최절정기였다는 것이다.지난 27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2년 상반기 두 번째 강좌에서는 '1930년대 시로 읽는 조선의 근대'란 주제가 다뤄졌다. 이날 강좌는 조강석 인하대 HK교수가 맡았다.조 교수는 1930년대가 얼마나 역동적이었고 급박하게 변화가 이뤄졌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얼마나 화려한 시(詩)의 세계가 펼쳐졌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 등을 거치면서 일본이 제국주의적 면모를 본격화하게 되고 대동아공영권의 논리로 세계사적 보편을 참칭하자 식민지로서의 조선의 현실은 더욱 엄중해졌다. 이런 가운데, KAPE 해산(1935), 조선 사상범 보호관찰령(1936), 국어(일어) 사용의 의무화(1937), 각급 학교에서의 조선어 과목 폐지 조치(1938) 등이 내려졌다. 잇단 전쟁 준비 속에서 민족·문화 말살정책이 강제됐다. 또한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기도 했다. 이런 1930년대 시단이 크게 일어난 것은 식민 치하의 도시 성립이라는 형용모순적 상황 속에서 시인들에게는 삶의 조건에 대한 엄중한 반성적 사유가 요청됐다는 것이 조 교수의 평가다.조강석 교수는 1930년대 시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3가지 전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식민지 체제하라는 당대의 사회·역사적 정황을 고려해야 하며 둘째, 비록 식민지 상황에서 왜곡된 형태로 성립된 것일망정 일정하게 근대적 도시 문화가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고, 또한 더욱 중요하게는 이러한 사회·역사적 조건에 의해 제약을 받으면서도 그 현실과 일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자율성을 띠고 있는 미적 영역 내부의 전개 원리 역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조 교수는 이날 강의에서 1930년대 대표적 시인으로 정지용·이상·김기림·백석·오장환 등을 꼽고, 이들의 시세계에 대해서도 각각의 대표시를 놓고 설명했다.조 교수는 "삶의 조건이 변화하는 속에서 자기 탐색의 기회가 많아지고, 그것을 미학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문인들의 시세계도 풍성해졌다고 본다"고 했다.다음 세 번째 강의는 4월 10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김종준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교수가 나와 '한국사의 근대성과 민족성'이란 주제로 강연한다./정진오기자인하대·인천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 주최

2012-03-29 정진오

[한중수교 20주년 기념 中國 인문학강좌]안치영 교수 '중국지도자 어떻게 만들어지나'

'중국인문·사회 오디세이-중국을 움직이는 관행과 문화'라는 타이틀 아래 인천대학교, 인천시국제교류센터, 경인일보 등이 공동으로 마련하는 '인천시민강좌' 다섯번째 시간이 28일 오후 7시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한국씨티은행빌딩에서 진행됐다. 이날은 안치영 인천대 교수(사진)가 '중국의 지도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란 주제로 강연했다.■ 다음은 강연요지중국의 지도자는 공식적으로는 5년마다 중국공산당의 중앙위원회에서 선출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존의 최고지도자와 당의 원로들이 협의를 통하여 새로운 지도부를 지명한다. 간부양성 과정은 발탁-평가-임용이라는 절차를 반복해 이뤄진다. 이러한 과정의 최종적인 생존자만이 새로운 지도자의 후보군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지도부는 선출될 뿐만 아니라 양성되기 때문에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마오쩌둥(毛澤東) 시기에는 후계자 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의 결정에 마오쩌둥이 절대적 권한을 행사했다. 이에 반하여 덩샤오핑(鄧小平) 시기에는 권력의 제도화와 규범화를 시도하여 종신제의 폐지와 집단지도체제가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실권은 당의 원로들이 행사했다. 후야오방(胡耀邦)-자오쯔양(趙紫陽)-장쩌민(江澤民)으로 이어지는 최고지도자의 교체는 원로들의 결정이었다. 그것이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 의하여 이루어진 점이 마오쩌둥 시기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장쩌민 시기 이후에는 제도적 권위를 넘어설 수 있는 개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권위의 중심이 인적 요소에서 제도적 요소로 점진적으로 이전되고 있다. 그에 따라 덩샤오핑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제도와 관례가 승계과정을 규정하는 규범으로 작동하고 있다.장쩌민 이후에는 중임제와 최고지도자의 연령제한이 지도부교체의 주요한 기제로 작동한다. 중국에서는 중임제라는 연임제한 규정이 있을 뿐만 아니라 최고지도자의 연령제한 규정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후계자를 현직의 지도자와 원로들이 협의하여 결정하지만 기본적으로 여러 차례의 검정을 통과한 일정한 직급의 정해진 인력풀 내에서 선발하기 때문에 낙하산 인사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이러한 규정과 원리에 따라 중국에서는 1992년 이후 10년마다 대대적인 인사교체가 이루어지며 그 중간에 부분적인 인사교체가 이루어진다. 10년 주기의 대변동과 그 사이 10년 주기의 소변동의 두 개의 10년 변동 주기가 생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중국은 공산당 독재라는 한계 내에서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활력을 갖는 세대교체를 통한 권력교체를 이루어 왔다./정진오기자인천국제교류센터·인천대·경인일보 공동개최

2012-03-29 정진오

[한중수교 20주년 기념 中國 인문학강좌]김호 인천대교수 '인치와 법치사이… 중국 사법관행'

'중국 인문·사회 오디세이-중국을 움직이는 관행과 문화'라는 타이틀 아래 인천대학교, 인천시국제교류센터, 경인일보 등이 공동으로 마련하는 '인천시민강좌' 네 번째 시간이 21일 오후 7시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한국씨티은행 빌딩에서 진행됐다. 이날은 김호 인천대 교수(사진)가 '인치(人治)와 법치(法治) 사이:중국의 사법 관행'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다음은 강연 요지수천년간 중국은 인치를 중시하고 법치를 경시하는 국가로 인식돼 왔다. 이는 역사적으로 중국이 오랜 기간 황권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졌고, 봉건국가로 오래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인치란 통치자의 개인적인 의사에 따라 국가정책을 결정하고 국정을 운영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특징으로는 통치자의 개인의지가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반면, 법치란 다양한 법률, 법규 등 공식적 제도를 준거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을 의미하며, 법의 적용에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는 특징이 있다.중국의 경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계기로 인치에서 법치로의 전환을 모색하려 하였으나, 1966년에 시작된 문화대혁명으로 인하여 법치에서 인치로 회귀되었다. 그 결과 공안국, 인민검찰 및 인민법원이 존재하면서도,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였으며, 행정부가 사법부의 고유 역할을 상당 부분 담당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인치로의 회기에 대한 비판'과 '외국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중국을 부강시켜야 한다'는 논리에 의해 다시 법치로의 전환이 모색되기 시작하였다. 현재에 와서는 입법부나 사법부의 고유 역할을 회복하여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또한 2002년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관련 법제도를 정비해 세계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제도를 구축하였다고 평가된다.그러나 한편으로, 중국의 국정운영 과정을 살펴볼 때, 입법부나 사법부의 권한에 해당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분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가 적지않아, 대부분의 국정 운영이 인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예컨대, 산아제한문제, 파산사건에서 행정부의 과도한 관여, 적절한 보상없이 토지가 수용되는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시작된 법치로의 전환이 성공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중국내에서도 법치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법률을 준수하려는 의식이 강해지고 있는 점을 볼때, 앞에서 얘기한 여러 문제점은 점진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보이며, 중국의 경제발전 속도와 더불어 인치에서 법치로의 전환은 더욱 빨라질 것이라 기대된다. /정진오기자인천국제교류센터·인천대·경인일보 공동개최

2012-03-22 정진오

[2012 인천시민 인문학강좌·1]임학성 인하대 교수/소통과 상생의 한국사

한반도에 국가 체제가 성립된 뒤 외국인의 귀화는 언제부터 이루어졌을까. 정책적으로 귀화인을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때부터라고 한다. 그런데 고려의 귀화정책은 주로 한족(漢族)을 우대하는 방향으로 추진됐고, 또한 국경지역 국방인력 확충 차원에서 추진됐다고 한다. 이론적 틀 아래서 본격적인 귀화정책은 조선왕조에서 이뤄졌다고 한다.지난 13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시작된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2년 상반기 첫 번째 강좌에서는 '조선시대의 귀화 정책'이 다뤄졌다. 이날 강좌는 임학성(사진)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교수가 맡아 '소통과 상생의 한국사:조선으로 귀화한 왜인(倭人)과 여진족'이란 주제로 강연했다.임 교수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펼쳐진 귀화정책의 이론적 근거는 '성리학적 중화론(中華論)'이었다고 한다. 조선왕조는 이 중화질서에 입각한 '화이관(華夷觀)'을 적극 수용해 명(明)과 함께 스스로를 화(華) 즉 선진·문명으로 설정한 반면, 여진족과 일본 동남아 등지는 이(夷) 즉 후진·야만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귀화시키는 것을 바로 야만을 문명되게 교화시키는 과정으로 생각했다. 조선정부는 건국 초기부터 이들 여진족과 왜인 등을 귀화시키는 데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조선의 귀화인에 대한 시각은 '동아시아 인적 교류와 소통·상생'의 실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왕조실록 기록에 따르면 '귀화'를 표현하면서 주로 '향화(向化)'란 말을 썼다고 한다. 이 향화는 곧 교화를 염두에 둔 개념이어서, 귀화하는 사람을 낮게 인식했다.조선 정부는 또 귀화인을 정착·동화시키기 위해 조선 여인과의 혼인을 장려했다. 임학성 교수는 1609년도 울산호적을 근거로 여진족 등 야인과 일본 등 왜인 등 귀화인과 조선 여인 사이의 혼인 사례로 33건이 확인된다고 했다.조선 정부는 귀화인 중 공로가 있거나 무예가 뛰어난 사람에게는 무관직을 줬고, 귀화 당사자나 그 자손들을 군역에 포함시켰다. 조선 백성과 동일하게 대우하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다음 두 번째 강의는 오는 27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조강석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교수가 나와 '1930년대 시(詩)로 읽는 조선의 근대'란 주제로 강연한다. /정진오기자 인하대·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개최

2012-03-15 정진오

[中國 인문학강좌]장호준 인천대교수 '짝퉁 천국 재조명'

'중국 인문·사회 오디세이-중국을 움직이는 관행과 문화'라는 타이틀 아래 인천대학교·인천시국제교류센터·경인일보 등이 공동으로 마련하는 '인천시민강좌' 세 번째 시간이 14일 오후 7시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한국씨티은행빌딩에서 진행됐다. 이날은 장호준 인천대 HK연구교수(사진)가 '모방의 문화와 경제:짝퉁 천국의 재조명'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다음은 강연 요지우리나라에서 중국은 흔히 '짝퉁 천국'으로 불린다.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는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모조품 생산의 중심지라는 의미에서 '해적 국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짝퉁 천국'이나 '해적 국가'라는 별명으로 손쉽게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중국의 모방·복제 현상과 세계 지적재산권 구도의 복잡한 정치 현실을 일면적인 윤리적 잣대로 재단하여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위험이 뒤따른다. 중국의 모방복제 관행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은 무엇일까.1990년대 중국의 모방복제 현상은 다오반(盜版) 행위로 대표된다. 다오반은 영화 및 음악 VCD와 DVD, 그리고 윈도우 시리즈와 같은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판을 일컫는 말이자 동시에 저작권·상표권·특허권 등으로 보호되는 지적재산권 제품을 무단으로 복제하는 행위 일반을 일컫는 말로도 사용된다. 중국 전역에 만연한 다오반 현상은 1980년대 후반부터 10여년간 지속된 중·미 무역분쟁의 핵심적인 사안이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세계무역기구(WTO)의 관련 요건을 상회하는 지적재산권 법률 체계를 구축했다.2000년대 중후반, 중국에서의 모방복제 대상의 중심이 휴대폰으로 옮겨갔다. 이러한 휴대폰이 산자이(山寨) 휴대폰으로 불리면서, 산자이는 모방과 복제를 지칭하는 또다른 유행어이자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었다.다오반과 산자이 현상은 모방·복제 행위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는 상당히 다르다. 전자가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불법 행위인 반면, 후자는 법률의 경계에 걸쳐 있어 합법·불법을 가리기가 모호한 행위영역에 속한다. 또한, 다오반 현상은 기존 브랜드를 몰래 모방하고 가능한한 있는 그대로 복제하는 경향을 띠는 반면, 산자이 현상은 드러내놓고 모방하고 약간의 변형을 가하여 복제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이로 인해, 일부 산자이 제품들에는 혁신적인 요소가 드러나기도 하며, 다오반과는 달리 산자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더 일반적이다.모방·복제 관행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후진국들과 후발기업들은 모방과 복제를 통해 선진국 및 선진기업들의 기술을 짧은 시간안에 저비용으로 습득할 수 있지만, 동시에 기술적·문화적 종속관계에 처해질 수도 있다. 지적재산권 제도와 그 활용의 문제 역시 관점과 입장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 19세기 후반 영국인들이 대표적인 '해적국가'로 지목했던 미국이 100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인 지식재산권의 옹호자가 되었다. 30~4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일본 기업의 제품을 모방했던 우리 역시 이제는 중국을 짝퉁국가라고 손가락질한다. 중국의 모방복제 현상은 확실히 윤리적인 잣대로 재단할 문제가 아니다. 세계경제질서의 변화, 중국 법률체계의 변화, 한·중간의 정치적 역학관계, 중국 사회와 문화의 특성 등을 고려하여 이해함으로써 이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진오기자인천국제교류센터·인천대·경인일보 공동개최

2012-03-15 정진오

[中國 인문학강좌]'당과 정부 지침' 인민에 계도 사회주의 건설 '효과적 유통'

한중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인천국제교류센터, 인천대 HK중국관행연구사업단, 경인일보 등이 공동으로 마련한 '인천시민강좌' 두 번째 시간이 7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마련됐다. '중국 인문·사회 오디세이-중국을 움직이는 관행과 문화'란 큰 제목 아래 이날 2시간동안 인천시 남동구 씨티은행빌딩 2층 인천국제교류센터 회의실에서 열린 강좌는 박승준 인천대 교수가 맡았다. 조선일보 홍콩·베이징 특파원을 10여년이나 지낸 박 교수는 이날 '중국 뉴스 제대로 보기-공산당이 쥐고 있는 중국 언론의 속성'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세 번째 강좌는 오는 14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강연 요지중국의 뉴스는 한국이나 미국·유럽·일본의 뉴스와는 전혀 다른 목적에 따라 제작된다. 중국의 뉴스는 중국의 미디어들이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지도에 따라 사회주의 건설을 효과적으로 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된다. 한국과 미국·유럽·일본의 언론사들은 기본적으로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서로 경쟁하며, 궁극적으로는 입법부와 사법부·행정부를 견제하는 제4부의 위상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중국의 언론은 특히 1920~40년대 중국공산당의 제1세대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이 말한 "혁명의 성공을 위해서는 '총(槍杆子)'과 '붓(筆杆子)'을 모두 쥐고 있어야 하며, 둘 중 어느 하나를 잃어도 혁명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지침에 따라 당과 정부의 지침이 잘 실현되도록 인민들을 계도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따라서 중국 미디어들이 생산한 뉴스에는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판은 없으며, 중국 미디어들의 뉴스 제작은 중국공산당 중앙이나 지방 당위원회, 또는 행정부인 국무원이 직접 간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중국공산당이 운영하는 대표적인 미디어는 인민일보(人民日報)이며, 행정부인 국무원이 운영하는 대표적인 미디어에는 신화(新華)통신이 있고, 영상미디어 뉴스를 생산하는 중국중앙TV(CCTV) 역시 국무원의 한 부서가 운영과 관리를 담당한다. 인민일보는 주로 논평과 해설을 담당하는 미디어이며, 신화통신은 속보를 주로 담당한다. CCTV가 생산하는 영상 미디어 뉴스는 1년 365일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매일 저녁 7시에 중국 전역에 동시 방영되는 '신원 리엔보(新聞聯播)'가 영상 뉴스의 기본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 21개 채널을 장악하고 있는 CCTV가 제작하는 신원리엔보는 위성을 통해 모든 채널에서 동시 방영된다. 논평과 해설 기능을 담당하는 인민일보의 사설은 게재 하루 전에 신화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어 대체로 인민일보와 같은 날짜에 인쇄되어 인민들에게 전달된다. 또한 신화통신의 속보는 당과 행정부가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제작되므로 오보가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입법 행정 사법부와 분리되어 있는 제4부를 추구하는 한국·미국·유럽·일본의 자유언론들은 오보를 낼 가능성을 안고 있는 반면, 중국공산당과 정부 당국의 지침을 따르는 중국의 미디어들은 오보를 잘 내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정진오기자 인천국제교류센터·인천대·경인일보 공동 개최

2012-03-08 정진오

[한중수교 20주년 기념 中國 인문학강좌]전인갑 인천대교수 '키워드로 보는 중국 관행과 문화'

한·중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인천국제교류센터, 인천대 HK중국관행연구사업단, 경인일보 등이 공동으로 마련한 '중국 인문학 강좌'가 29일부터 시작됐다. 이날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인천시 남동구 씨티은행빌딩 2층 인천국제교류센터 회의실에서 열린 첫 날 강좌에는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예상보다 많은 시민들이 몰려 높은 관심을 보였다. 첫날 강좌는 전인갑 인천대 교수가 맡아 '키워드로 보는 중국의 관행과 문화'란 주제로 강연했다. 오는 4월 18일까지 매주 수요일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다음은 강연 요지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이 중국이 갖고 있는 '문화적 다양성'이다. 중국을 며칠 갖다 온 사람들이 '중국은 이렇더라'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 중국은 몇 년 동안 살아 본 사람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지역마다 너무 다르고, 사람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나의 성(城) 내에서도 시(市)가 다를 경우 대화가 안 통할 정도로 언어가 다른 경우가 많다. 이 점이 바로 중국을 이해하는 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한 가지 특기할 것은 중국은 경제적 차이나 권력의 차이에 따른 계층의 다름을 서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계층 불균형'이 심하지만, 특별한 무리 없이 공존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간다. 중국은 사회주의 이후 평등적 사회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돈이나 권력의 유무에 따른 차이가 컸다.이런 차이가 익숙해져 주민들은 계층간 의복이나 주택규모, 정원규모 등의 차이가 크지만 그 차이를 서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문화적 다양성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중국에는 소수민족이나 지역적 갈등이 심하기는 하지만, 이 점이 나라의 분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중국과 관련해 우리에게 관심이 큰 것중 하나가 북한의 정치적 변동에 따른 중국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만일의 경우 북한에 급변사태라도 발생한다면 중국은 어떤 입장을 취할까.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경계지역을 완충지대로 삼으려는 태도를 취해왔다. 지금의 한반도가 일본이나 미국 등과의 사이에서 '울타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도 중국은 일본이나 미국 등과 직접 맞닥뜨리는 것은 꺼릴 것이다.이런 점을 이해하기 위해선 '중국'에 대한 여러 가지 기본 사항을 이해해야 한다.중국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민족 구성을 고려해야 한다. 중국에는 한족을 비롯하여 56개 민족이 살고 있다. 다민족 국가인 것이다. 중국은 이를 총칭하여 중화민족이라 부르고 있으며, 다원일체의 다민족 국가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다. 한족을 제외한 소수민족들은 자치구역을 설정하여 생활하고 있는 바, 자치구역의 총 면적은 전체 중국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며 변경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따라서 소수민족 문제는 문화, 종교의 문제일 뿐 아니라 영토문제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문제이다. 여하튼 현재의 중국은 중화의 중국과 비중화의 세계(비중국의 중국)로 구성된 역사적 산물로 보아야 한다.중국 문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끊임없는 분열과 통일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분열은 중국 사회의 강한 통합 관성에 의해 곧 통일 제국으로 회복될 만큼 통일지향성이 강했다. 현재도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며, 하나의 표준 시간(베이징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인식의 유산이라 할 것이다. 또한 중국은 황제라는 유일 지배자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중국, 하나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뿌리 깊은 인식을 갖고 있다. 이 점 역시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라 할 것이다./정진오기자인천국제교류센터·인천대·경인일보 공동개최

2012-03-01 정진오

인천국제교류센터 '러시아강좌' 호평

'인천, 러시아를 품에 안다!'인천 시민에게 2011년은 '러시아'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해였다. 인천국제교류센터가 올해부터 시민들을 상대로 한 '러시아 강좌'를 개설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진행된 각종 인문학 강좌 중에 '러시아'가 포함된 것이다. 인천국제교류센터는 지난 4월부터 12월까지 7차례에 걸쳐 총 36회로 나눠 러시아 관련 강좌를 진행했다. 한 차례에 보통 200~300명씩 수강해 생경한 러시아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인천국제교류센터 자체 집계결과, 수강생은 연인원으로 쳐 1천473명이었다고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강좌에선 러시아의 문화, 예술, 영화, 인물 등에 대해 전문가의 강의가 있었고, 세 번째에선 폭을 좁혀 러시아의 영화만을 주제로 했다. 이후엔 문학과 문화 전반으로 영역을 넓혔다.미추홀도서관과 공동으로 미추홀도서관 강의실에서 진행하기도 했고, 인천국제교류센터 세미나실이나 인천시평생학습관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특히 인천 최대 조찬 행사로 꼽히는 새얼아침대화에서 러시아를 주제로 삼기도 했다.인천국제교류센터의 '러시아 강좌'에 대해선 주한러시아대사관에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인 협조에 나서기도 했다고 한다.인천국제교류센터는 내년도에도 러시아 강좌를 계속할 방침이다. 내년에는 러시아 이외에 중앙아시아나 유럽 문화 강좌도 진행할 계획이다./정진오기자

2011-12-22 정진오

[2011 하반기 시민 인문학강좌·8]임경화 인하대교수 '일본 전통詩歌… 하이쿠'

일본의 전통 시가(詩歌) 중에 '하이쿠(俳句)'라는 게 있다. 근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심지어 영어 등으로 만들어져, '하이쿠의 세계화'란 말까지 낳고 있다.13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에서는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1년 하반기 마지막 시간으로, 임경화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가 나와 이 '하이쿠'에 대해 이야기했다. 임 교수는 '한 줄도 너무 긴 하이쿠, 예술과 혁명을 만나다'란 주제의 강의에서 '박물관에 갇힌 전통'이 아니라 현 시대, 나의 문제를 투영할 수 있는 전통예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줬다.임 교수는 일본의 전통 단형 시가인 하이쿠가 일본인들에게 어떻게 향유돼 오늘날과 같이 '일본적인 것'의 상징으로 여겨져 세계적으로 알려진 일본의 '고전'이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를 통해 '하이쿠=일본 고전'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됐다는 것이다.이날 강의는 하이쿠가 일본정신의 진수로서 예술적인 가치가 일본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퍼지고, 식민지 조선에서까지 향수층이 생겨난 현상과 위로부터 형성된 하이쿠의 가치를 역으로 재해석해 무산계급의 비판적 혁명정신을 담은 시도를 확인하는 자리였다.하이쿠는 일본 근세에 발전한 문예인 하이카이(俳諧)에서 파생됐다. 근대 문예로서 개인의 창작성을 중시해 하이쿠를 성립시킨 것은 메이지 시대의 마사오카 시키(1867~1902)였다. 시키는 하이쿠 근대화를 위한 문학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때 첫구가 하이쿠로 자립하게 되었다.임경화 교수는 "하이쿠가 현대에서도 널리 퍼질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은 위로부터의 강제적 억압에 의한 기획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시도에 의한 '평민 예술'에서 출발했기 때문으로 본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전통장르인 '시조'가 현대에 와서 일반인들에게서 생명력을 잃은 것과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한편, 이날 강좌가 끝난 뒤에는 지난 9월 6일부터 시작한 하반기 인문학강좌 수료식이 열렸다. /정진오기자

2011-12-13 정진오

[2011 하반기 시민 인문학강좌·7]차태근 인하대교수 '캉유웨이의 대동서'

19세기,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에 동양과 서양을 넘어서는 '전 인류가 공히 지켜야 할 가치'를 얘기한 중국의 사상가가 있다. 캉유웨이(康有爲·1858~1927)다. 29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1년 하반기 일곱 번째 시간에는 차태근 인하대 교수가 나와 '캉유웨이의 대동서(大同書) : 근대 유학과 신세계'란 주제로 강연했다.서구문명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중국인들이 지적 충격에 빠져 있을 때, '중국의 전통 가치관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무엇으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방안을 제시한 것이 캉유웨이라는 게 차 교수의 설명이다. 캉유웨이는 기존 동양적 가치체계와는 전혀 다르면서도 서양문명까지 포괄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나섰다. 이것이 그가 쓴 '대동서'의 요체다."캉유웨이는 당시에 이미 '국가', '가족', '인종' 등의 개념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회적 갈등요소를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본 거지요. 마오쩌둥도 캉유웨이의 '대동서'를 많이 읽었습니다."캉유웨이는 현대 중국에서 '신유학'의 창시자로까지 평가받는다고 한다. 다만 신해혁명(1911~1912) 직후 그의 '쫓겨난 왕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차원의 정치적 행보 때문에 양면적 평가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캉유웨이의 대동사상에 대한 구상은 1880년대 초반부터 시작돼 1902년 해외 망명 중 인도에서 기본적인 내용을 완성했으며, 그 후에도 끊임없는 수정 과정을 거쳐 최종 완전한 판본은 그의 사후인 1927년에 출판되었다.차 교수는 "지금 우리사회에도 캉유웨이가 고민한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그의 사상은 아직도 유효한 것"이라고 했다.다음 여덟 번째 강좌는 하반기 종강시간으로 12월 13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이날은 임경화 인하대 HK연구교수가 나와 '한 줄도 너무 긴 하이쿠, 예술과 혁명을 만나다'란 주제로 강연한다. /정진오기자

2011-11-29 정진오

[2011 하반기 시민 인문학강좌·6]김지영 서울대강사 '의궤, 조선왕실로의 초대'

2011년, 전 국민적 관심을 끈 일을 꼽으라면 병인양요때 프랑스 군에게 약탈당했던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이 '의궤'에 대해 전문가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 인천에서 마련됐다. 15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1년 하반기 여섯 번째 시간, 김지영 서울대 강사는 '의궤, 조선 왕실로의 초대'란 주제를 들고 나왔다.이날 강좌는 '왜 우리는 의궤를 기록문화의 중요한 유산으로 간직해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김 교수는 "의궤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귀중한 자료이다. 의궤를 둘러싼 언론의 관심과 조명으로 떠들썩한 한 해를 보냈지만 아직 의궤는 먼 사료"라고 하면서 강좌를 시작했다.김 교수는 우선 '의궤'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조선시대 국왕의 즉위식, 결혼식, 장례식 등과 관련된 모든 논의, 구체적인 의식의 절차, 의식을 거행하기 위한 준비 과정 등을 빠짐없이 기록해 책으로 만든 것이 바로 '의궤'다. 또 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관서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일 뿐 아니라 절차상의 변통을 논의하고 조정하기 위해서는 실제 조정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관원을 비롯해 그를 보좌할 여러 실무진들이 전적으로 일을 담당해야 했는데, 이게 요즘말로 하면 '○○조직위원'과 같은 '○○도감(都監)'이었다. 의식을 마친 후에 도감에서 관련 논의들을 정리해 의식의 의미를 밝히고, 구체적인 의식 절차를 기록하고, 일을 처리하면서 오간 서류들을 재분류해 정리하고, 의식의 의미를 잘 드러내주는 그림도 덧붙여서 만들어낸 책이 바로 의궤다.김 교수는 "의궤는 예제를 시행하는데 참고자료로 삼는다는 실용적 목적 외에도 한 왕대의 예제개혁의 주된 방향을 보여주는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했다.1866년 11월 11일 프랑스 군이 약탈한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고, 중국본으로 분류돼 도서번호가 부여되었다고 한다. 1975년 박병선 박사가 발견할 당시에도 외규장각 도서들은 중국책으로 분류되고 책 표지가 상한 것이 많은 상태로 파손도서 창고에 들어가 있었단다. 1978년 수리를 마친 외규장각도서는 일반 열람이 시작되었고, 도서 분류도 한국책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다음 일곱 번째 강좌는 29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이날은 차태근 인하대 교수가 나와 '캉유웨이(康有爲)의 大同書:근대 유학과 신세계'란 주제로 강연한다./정진오기자※ 인하대·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개최

2011-11-15 정진오

[2011 하반기 시민 인문학강좌·5]김호 경인교대 교수 '…조선후기 법과 도덕'

'법'과 '도덕'이 충돌할 때 어느 쪽에 설 것인가.조선 후기 사회는 도덕적 가치를 유난히 강조하는 정책을 폈다고 한다. 왕이 직접 나서서 그 도덕적 부분에 무게를 둘 정도였단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법'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한 목소리를 낸 사람이 있다. 바로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1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1년 하반기 다섯 번째 시간에는 다산이 살았던 시대의 '법'과 '도덕'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다. 이 시간에는 김호 경인교대 교수가 나와 '흠흠신서(欽欽新書)를 통해 본 조선 후기 법과 도덕'이란 주제로 강연했다.김 교수는 다산이 쓴 수백 권의 책 중에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흠흠신서'를 들고 나왔다. 이 책은 지금으로 치면 형사사건 실무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은 이를 통해 '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도덕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게 다산입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법'을 무시하고 도덕적 가치를 유난히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다산은 법에 충분히 '도덕'을 담고 있기 때문에 법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봤던 것입니다."김 교수는 다산이 그렇다고 '도덕'을 경시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산은 도덕적 가치에 대해 표창하는 것은 좋지만, 이게 너무 지나쳐 자칫 법을 경시하게 되면 사회 무질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란 얘기다.김 교수는 다산을 무조건적으로 '개혁가'로 인식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다산은 기득권층의 부도덕함 때문에 하층민들이 도덕으로 무장하게 되면 사회질서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점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다산은 유학자였기 때문에 기존 신분질서의 와해에 대해서 경계했다는 얘기다.김 교수는 "다산은 젊었을 때의 진보적 인식이 후반기로 가면서 약간 바뀌어 보수적으로 흘렀다"면서 "이는 '이상' 만으로는 '현실'을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했다.다산은 흠흠신서를 유배에서 풀려난 뒤 남양주 고향집에서 완성했지만, 끝내 묻히고 말았다.김 교수는 강좌가 끝난 뒤 "다산은 지금 우리 사회 정당으로 보면, 한나라당 내 개혁세력 정도로 인식하면 될 것 같다"는 재미있는 비유도 했다.다음 여섯 번째 강좌는 오는 15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이 날은 김지영 서울대 강사가 나와 '의궤, 조선 왕실로의 초대'란 주제로 강연한다. ※ 인하대·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개최/정진오기자

2011-11-01 정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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