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1 하반기 시민 인문학강좌·4] 김영진 인하대교수 '법구경 에피소드…'강연

우리가 살면서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고통과 슬픔 등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18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1년 하반기 네 번째 시간에는 고통과 슬픔의 치유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시간에는 김영진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가 강사로 나와 '법구경 에피소드-붓다와 제자의 이야기'란 주제로 강연했다.'법구경'은 부처의 언행과 제자들의 활동을 묘사한 것이다. 원전은 게송으로만 돼있는데,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나중에 주석서가 붙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주제대로 법구경에 나오는 몇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불교적 가치와 지향점을 설명했다. 자린고비 아버지와 아들의 죽음에 얽힌 슬픔 치유를 내용으로 하는 '맛타쿤달리'의 얘기가 대표적이다. 맛타쿤달리란 말은 '조잡한 귀걸이'란 뜻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10대의 어린 아들이 귀걸이를 하고 싶다고 하자, 돈을 아끼려고 본인이 직접 귀걸이를 만들어 줬다고 한다. 그 귀걸이가 어찌나 조잡한지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아들이 병에 걸려도 돈이 아까워 의사에게 보이지 않고, 자신이 책을 보고 치료를 했단다. 아들의 병이 더 깊어져 죽을 지경이 됐는데 오히려 집에서 아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집에서 죽을 경우 남들이 돈을 훔치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밖에서 죽어가던 그 아이를 부처가 찾아왔고, 그 아이는 부처에게 귀의한 뒤 죽어서 천상에 올랐다고 한다. 그 때서야 아버지는 아들이 죽은 것을 슬퍼했으나, 이미 지난 일이었다. 슬퍼하는 아버지를 달래기 위해 하늘에서 다른 사람으로 환생한 아들은 바퀴없는 수레를 끌고 아버지 앞에 나타났다. 아들에게 못해준 것을 후회하던 아버지는 바퀴를 달아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수레 주인(아들)은 해와 달을 따서 바퀴를 달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말했다. "해와 달은 (형체가) 있는데도 안 되는데, 어찌 (죽어서)없는 것을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그 순간, 깨달았다고 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슬픔을 치유하려고 환생한 것이었다.김 교수는 이 자리에서 어려운 불교의 교리나 수행 방법 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단지 알아듣기 쉬운 법구경의 에피소드만으로 설명했다. '있는 것'과 '없는 것' 그리고 '마음' 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다음 다섯 번째 강좌는 11월 1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이 날은 김호 경인교대 교수가 나와 '조선의 법과 도덕:흠흠신서 읽기'란 주제로 강연한다. /정진오기자※ 인하대·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개최

2011-10-18 정진오

[2011 하반기 시민 인문학강좌·3]임학성 인하대교수 '東亞 사서 처음 연 사마천의 史記'

삼성가(家)의 대를 이은 성공 신화에는 '史'가 키 포인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역사 공부를 중요시했고, 그게 자식들에게 이어져 성공적인 '3대 경영체계'가 수립됐다는 얘기다. '역사'를 알아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말은 여기에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역사서의 대명사, '사기(史記)'를 어떻게 볼 것인가. 4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1년 하반기 세 번째 시간에는 임학성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교수가 나와 '동아시아 사서의 처음을 연 사마천의 사기'란 주제로 강의했다.임 교수는 이날 "'사기'는 오늘날 우리들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조목조목 가르쳐 주는 역사서이자, 고사성어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사기'는 왕과 제후 외에 영웅·정치가·학자·군인·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인간사회 속의 대립과 갈등, 배반과 충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등을 냉엄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그는 또 "국가를 경영하려고 꿈을 꾸는 사람들은 그 통치철학과 이상적 본보기를 잘 드러내고 있는 '사기'를 꼭 읽어야 한다"고도 했다.'사기'는 기원전 90년경에 사마천이 저술한 130권의 역사서로, 중국 최초의 기전체(紀傳體) 사서다. 사마천의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서 통사(通史)를 기록하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그뒤 한(漢)나라의 천문·달력·역사 기록 등을 맡아 처리하는 부서의 장관인 태사령을 역임했다고 한다. 태사공이라고도 한다.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한 뒤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이름붙였는데, 나중에 '사기'로 널리 불렸다.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는 한 무제 통치기로, 황제 중심의 중앙집권체제였다. 이때 사마천은 흉노 토벌대로 나갔다가 투항한 장군 이릉을 변호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사 사형 위기에서 궁형(宮刑·거세)을 받고 목숨을 부지하게 됐다. 부친의 유언을 지켜 '사기'를 쓰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사기'는 중국 전설인 황제(黃帝)에서부터 전한의 무제에 이르기까지 약 3천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구성은 본기·표·서·세가·열전 등 5부분으로 돼있고 130권이다. 이중 70권이 각 분야의 사람들의 이야기인 열전이다.임 교수는 "'사기'는 직언을 하다가 형벌을 받은 사마천 자신의 심경을 담은 '위험한' 책이었기 때문에 당장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사기'는 쓴지 2천10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의 지표로 삼기에 최고의 역사서이다"고 했다.※ 인하대·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개최/정진오기자

2011-10-04 정진오

[2011 하반기 시민 인문학강좌·2] 김영 인하대교수 '연암 박지원과 열하일기'

'열하일기'는 18세기 동아시아의 문명비평서였다!20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1년 하반기 두 번째 시간에는 '인터넷 세대'에 한문(漢文)을 가르치는 것으로 잘 알려진 김영 인하대 교수가 나와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1737~1805)과 그의 대표작 '열하일기'에 대해 강의했다.김 교수는 이날 "연암은 백성을 이롭게 하고 만물을 윤택케 하려는 지향을 가진 실학사상과 그것을 탁월한 문필로 형상화한 '열하일기'로 해서 한 획을 긋는 큰 족적을 남겼다"고 박지원을 소개했다.김 교수는 연암이 우리 문학사에 가장 뛰어난 한문 단편소설을 남겨놓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양반전'을 포함한 초기 소설을 모아놓은 '방경각외전'은 당시 양반들의 타락상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종래의 고루한 양반 윤리의 비현실성과 권위주의적 모습을 희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연암은 또 이 초기 소설들에서 이전 작품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소설적 형상화 방법과 풍자적 수법, 해학적 표현과 토속적인 방언 및 속담의 자유분방한 구사같은 획기적인 표현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평가다.연암은 40대 중반에 이룬 중국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느꼈는데, 그때 체험하고 구상한 것을 그의 모든 문학역량을 총동원하여 집필한 것이 걸작 '열하일기'이다. 여기에서 연암은 그의 실학적인 구상을 다양한 문학 양식과 기법으로 마음껏 펼쳐 보인다.김 교수는 "'열하일기'는 단순히 중국방문 기행문이 아니라 그의 개혁 사상과 문학적 포부를 탁월하게 펼쳐 보인 18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문명비평서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연암의 문학은 당시 문단에서도 '연암체'로 불릴 만큼 많은 작가의 한문소설 창작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물론 보수적 인물들과 집권층은 새로운 문체와 사상을 담고 있는 연암의 문학에 대해 거부반응을 나타냈으며, 급기야 순정한 고문체로 돌아가라는 소위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연암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창작을 하겠다는 문학 자세를 의연히 지켜나가, 급기야 조선 후기 문학사와 사상가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됐다.김영 교수는 "우리가 우리나라 문학의 민족적 전통을 살피거나 사실주의적인 맥락을 짚을 때에 반드시 연암의 문학과 만나게 되는 것은 오늘날에도 그의 문학정신과 주옥같은 작품들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로 강의를 맺었다.다음 세 번째 강좌는 10월 4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이 날은 임학성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교수가 나와 '동아시아 史書의 처음을 연, 사마천의 사기'란 주제로 강연한다. ※ 인하대·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개최/정진오기자

2011-09-20 정진오

[2011 하반기 시민 인문학강좌·1]서영대 인하대교수 '삼국유사'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아십니까?'6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1년 하반기 첫 번째 시간에 우리나라 고전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삼국유사'가 다뤄졌다.서영대 인하대 교수가 진행한 이날 강좌에서는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 삼국유사의 구성과 내용, 삼국유사의 가치와 문제점 등에 대해 폭넓게 얘기됐다.서 교수는 "삼국유사는 단군 신화를 통해 우리 역사의 시간적 폭을 넓혔고, 또한 발해를 말함으로써 그 공간적 폭까지 확장시켰다는데 의미가 있다"면서 "삼국유사는 우리 고대의 문화적 다양한 모습을 전한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 서 교수는 "일반적으로 '삼국유사'의 '사'를 '삼국사기'의 것처럼 역사 사(史)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삼국사기에서 '빠뜨린 것'을 적었다는 의미에서 일 사(事)를 쓴 것이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삼국유사를 지은 저자 일연은 민족적인 인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데, 일연에 대해 공부하다보면 일연이 반드시 반몽고적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꼭 민족적인 것만은 아니었다"고 서 교수는 소개했다.서 교수는 특히 일연이 고려가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에 수도를 옮긴 뒤 4년여를 강화에서 머물렀다는 점도 강조했다. 일연이 강화도에 머물 때에 당시 임금이던 원종이 참성단에서 제사를 지내고는 했는데, 여기서 본 참성단을 모티브로 삼국유사의 단군 신화가 그려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일연이 70대 후반에 완성한 것으로 보이는 삼국유사는 몽고의 침입에 따른 절망적인 상황에서 신(神)과 불(佛)에 의존하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불국토 사상'과 고구려를 계승했느냐, 신라를 계승했느냐는 것으로 일어난 국론분열을 극복하고자 집필됐을 것이라는 게 서 교수의 얘기다.삼국유사는 조선시대까지는 부정적 평가를 많이 받았지만, 1920년대 최남선에 의해 그 가치가 재조명됐다고 한다. 특히 불교와 민속에 신화·전설, 그리고 향가까지 더해져 우리 한국 문화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는 점도 서 교수는 빼놓지 않고 설명했다.서 교수는 "삼국유사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가 관심있게 봐야 할 문화적 콘텐츠가 많다"면서 "지금 얘기로 스토리텔링의 요소가 많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고전"이라고 강조했다.※ 인하대·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개최/정진오기자

2011-09-06 정진오

[2011 시민 인문학강좌·8] 서영대교수 '단군과 민주주의' 주제강연

[경인일보=정진오기자]다소 생경하게 들릴 수 있는 '단군'이 인천시민 인문학강좌의 주제로 등장했다.'단일민족'을 얘기할 때면 그 상징처럼 따라다니는 '단군'이 현대사회의 다문화적인 패러다임에도 더욱 들어맞을 수 있는 새로운 철학적 기반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28일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에서 나왔다.이날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열린 상반기 마지막 강좌에 강사로 나온 서영대 인하대 교수(사진)는 '단군과 민족주의'란 주제의 강연에서 '단군'을 폐쇄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단군'에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측면을 다문화 사회에 맞는 것으로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서 교수는 전통시대의 단군 인식과 근대의 단군 인식, 현대의 단군 인식 등으로 나누어 설명했다.서 교수에 따르면, 전통시대의 단군 인식은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개국 시조'로 봤다. 13세기 이전과 이후의 단군 인식이 다르게 보이는데, 이는 몽고 침입 등 국난 타개를 위한 내부 결속 필요성에 따른 인식의 통일 차원에서 단군을 국조로 다뤘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단군이 국가의 시조라는 인식이 확고해져 '동국통감' 등에서는 한국사의 시작을 단군에서부터 찾았다고 한다.근대시기 역시 단군민족주의는 성행했다. 현대에 와서는 1960년대를 기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가 확연하게 차이난다. 해방시기에서 1960년대 사이에는 개천절이 성대하게 치러졌고 단기가 공식 연호로 채택됐는데, 1961년 말부터 단기가 폐지되고 서기가 공식 연호로 쓰이면서 점차 '신화'냐 '역사'냐의 논쟁 속으로 빠졌다고 한다.서 교수는 '단군'이 현재적 의미가 크다고 본다. 환웅과 '곰'이 혼인을 하고,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등의 이야기는 현대사회의 특질을 이루는 다문화 사회에 정확히 적용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 인하대·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 개최

2011-06-28 정진오

[2011 시민 인문학강좌·7]김동식 교수 '한국문학사 저작으로 본 문학개념 변천'

[경인일보=정진오기자]14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에서는 한국 문학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규정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겪어왔는가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이날 강사로 나온 김동식 인하대 교수는 '한국 문학사 저작으로 본 문학 개념의 변천'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191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한국문학 전반을 훑었다.김 교수는 이날 "한국문학의 개념은 무엇이고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를 괄호속에 넣어두고 있다고 보는 편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의 실상에 가까울 것"이라며 "여기서는 한국문학의 개념과 범위를 감싸고 있는 괄호의 안과 밖을 살피는데 있어 최소한의 역사적 맥락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강연을 시작했다.김 교수는 결론 부분에서 "한국문학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논의들이 역사적으로 전개되어온 과정은, 한국문학이 객관적인 사회적 범주가 아니라 문화적 역사적 담론적 구성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면서 "1910년대 중반의 안확의 논의에서부터 2000년대의 이중언어 공간에 관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이 확고한 실체였던 적은 없었다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한국문학은 자기동일성과 자기모순을 동시적으로 재생산해 온 상징적 기제였으며, 한국문학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규정은 그와 같은 이중의 움직임들이 침전과 탈침전을 거듭하며 형성된 잠정적 결과들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또한 "한국문학의 개념과 범위에 관하여 스스로 어떠한 규정을 내려왔는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21세기를 맞이한 한국문학의 새로운 정체성과 관련될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한국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저변에는 한국문학을 둘러싼 역사적 무의식을 점검하고 재조정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라면서 "안확, 이광수, 조윤제, 김태준, 임화, 정병욱, 이병기, 백철, 김윤식, 김현, 조동일 등 주요한 문학연구자들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한국문학의 역사적 무의식에 대한 성찰과 한국문학의 미래에 배려(담론적 기획과 실천)를 동시적으로 요청한다"고 강조했다.김 교수는 "한국문학의 자기규정 방식들이 한국문학의 역사적 무의식들을 드러내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에 대한 자기배려의 의지를 생성하는 계기였다"고 하면서 강연을 맺었다.상반기 마지막 강좌가 될 여덟번째 강의는 6월 28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이 날은 서영대 인하대 교수가 나와 '역사학과 한국학:단군과 민족주의'란 주제로 강연한다. 이 자리에서는 수료식도 마련된다.※ 인하대·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개최

2011-06-14 정진오

[2011 시민 인문학강좌·6]정영태 교수 '한국인 갈등 관리와 해결방식'

[경인일보=정진오기자]"지금부터라도 갈등을 생산적으로 관리하고 해결하기 위한 제도와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다시 한 번 나라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31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의 강사로 나온 정영태 인하대 교수는 '한국인의 갈등 관리와 해결방식'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정 교수는 이날 "갈등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어느 조직, 어느 집단에나 어디서든 있다"고 운을 뗀 뒤 "그 갈등의 당사자는 개인, 집단, 국가, 어느 것이든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갈등을 강점으로 전환시키면 개인이나 집단, 조직의 성장과 성공으로 이어지고, 그렇지 않고 갈등을 선동하거나 조장할 경우엔 분열, 후퇴, 멸망 등 엄청난 대가와 손실을 입게 된다고 설명했다. '갈등'에는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 두 가지가 동시에 내재돼 있다는 얘기다.그러면서 정 교수는 스포츠나 공장내의 생산성 등을 예로 들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합의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선의의 경쟁을 할 경우 긍정적인 갈등 양상을 보인다고 했다. 부정적 측면으로는 한국에 유난히 높은 사회갈등지수로 인해 국민 총생산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역사적으로도 조선말기 조정 내부의 친청, 친일, 친러, 친미 갈등과 국권상실, 해방정국에서의 좌우갈등, 그리고 분단으로 이어진 점 등이 갈등의 부정적 측면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정 교수는 "갈등을 관리하고 해결하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면서 "지금 우리 사회는 서구가 300년 동안 겪은 변화를 30년만에 겪으면서 다양한 종류의 갈등을 동시에 겪고 있는데, 그만큼 관리와 해결도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반드시 생산적으로 관리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게 정 교수의 강의 포인트였다.다음 일곱 번째 강의는 6월 14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이 날은 김동식 인하대 교수가 나와 '한국문학사 저작으로 본 문학 개념의 변천'이란 주제로 강연한다.※ 인하대·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개최

2011-05-31 정진오

[2011 시민 인문학강좌·5]윤대석교수 '21세기 문화연구와 한국학'

[경인일보=정진오기자]"지금의 사회는 다문화 사회입니다. 국적이나 세대간의 차이가 서로 공존하는 그런 사회란 것이죠. 그 다문화 사회가 갖는 다양한 형태의 여러 문화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그것들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근대시기 단일문화를 강요했던 점과 분명히 다른 점입니다."17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의 강사로 나온 윤대석 명지대 국문과 교수는 '21세기 문화연구와 한국학'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윤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현대의 문화는 단일한 게 아니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면서 어떤게 좋고, 어떤게 나쁘고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교수는 현대와 근대의 가장 큰 문화적 차이점은 근대에는 단일 문화를 강요한 것이라면, 현대는 문화의 다양성과 개별 문화의 고유한 영역을 인정하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는데 있다고 부연했다.특히 윤 교수는 지금도 여전히 '포스트모던'의 시기로 봐야 한다면서 이 포스트모던은 근대적 문화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다고 했다. 윤 교수는 근대적 문화의 특징을 국민국가(정치), 자본주의(경제), 합리적 이성(철학) 등 3가지로 구분했다. 이 3가지 문화적 특성이 무너지고 있는데, 이를 포착하는 것이 바로 포스트모던이라고 했다. 근대적 문제점이 곳곳에서 드러난 '근대 이후'를 향한 징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국민국가 문화의 경우 제국주의 방식에 따른 불평등이 발생해 문제가 터졌고, 자본주의 문화는 인간을 도구화해 인간소외 현상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또 합리성의 문화 역시 너무 계산적이고 도구적 합리성이 지배하다보니 목적의식을 상실하는데 이르렀다고 했다.윤 교수는 또 '소비 연구'와 '죽음 연구', '가족 연구', '독서 연구' 등을 문화 연구의 사례로 소개했다.다음 여섯 번째 강의는 6월 31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이 때는 정영태 인하대 교수가 나와 '사회과학과 한국학'이란 주제로 강연한다.

2011-05-17 정진오

[2011 시민 인문학강좌·4]차태근교수 '1793년 東亞 세계가 주목'

[경인일보=정진오기자]'동아시아와 유럽이 처음 만날때는 대등했는데, 만남이후 1세기가 흘렀을땐 왜 유럽이 우위에 있었을까?'26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에서는 유럽이 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와의 교류를 원했으며,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는지 등에 대한 흥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졌다.차태근 인하대 중문과 교수는 이날 '1793년 9월:동아시아가 세계의 주목을 받다'란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풀어갔다. 차 교수는 영국이 왕의 특사를 중국에 파견한 '메카트니 사절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1793년 중국에 도착한 이 특사 파견을 '세기적 사건'으로 평가했다. 또한 이 때는 인구와 주민 생활수준 등에서 중국이 영국에 비해 오히려 우위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조선과 일본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 역시 유럽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과 동아시아가 만났는데,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아 동아시아는 서구제국에 강제로 문호를 열게 되는 신세가 됐다는 것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온갖 선물을 갖고 중국을 찾은 메카트니 사절단은 요구한 영사관 개설 등의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광저우에서의 영국인 처우 개선이라는 효과를 얻어냈다. 특히 메카트니 사절단 파견을 계기로 영국 중심의 '중국관'을 유럽에 전파하게 됐다는 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때 영국은 사절단에 각 분야별 전문가들을 포함시켰는데, 이는 해당 분야 중국과 동아시아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사절단은 영국에 돌아가 중국과 관련한 14종의 서적을 펴냈을 정도란다. 이는 20년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다만 이 사절단은 조선과 일본 등지도 방문하기로 예정돼 있었는데, 갑자기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벌이는 바람에 급히 귀국하면서 조선과 일본과의 접촉은 이뤄지지 못했다.차 교수는 메카트니 사절단 중국 방문때와 요즘이 비슷한 양상을 띤다고 말했다. 서구 국가와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동등하게 부상하고 있었는데 중국, 일본, 한국, 인도 등의 부상이 눈부신 최근 국제정세가 바로 그 때와 마찬가지란 것이다. 차 교수는 18세기에서 20세기로 이어지는 국제 정세와 앞으로의 상황을 깊이 공부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차 교수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생각하고, 한국과 동아시아를 세계지도속에서 살피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다음 다섯 번째 강의는 5월 17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이 때는 윤대석 명지대 교수가 나와 '21세기 문화연구와 한국학'이란 주제로 강연한다.

2011-04-26 정진오

[2011 시민 인문학강좌·3] 임경화교수 '진보적 한일연대의 두가지 길'

[경인일보=정진오기자]사상 최악의 지진과 원전사고를 동시에 겪은 일본에 한국의 지원 손길이 줄을 잇는 가운데, 일본이 난데없는 '독도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모처럼 형성되던 '따뜻한 한일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이런 문제가 12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에서 다뤄졌다. 임경화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가 이날 '진보적 한일 연대의 두 가지 길-일본 좌파운동이 발견한 조선들'이란 주제로 강연한 것이다.임 교수는 일본에서 초기 사회주의자를 대표했던 고토쿠 슈스이의 조선관과 전후 공산당 계열 지식인을 대표했던 이시모다 쇼의 조선인식을 비교하면서 앞으로 '한일 연대'의 가능성과 그 한계를 얘기했다.임 교수는 이 자리에서 일본의 대재앙 이후, 한국인들 사이에서 일본과의 정서적 연대 움직임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터진 점에 주목했다. 느닷없이 찾아온 '연대'가 '적대'로 돌아서는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는 것이다.임 교수는 이런 점을 전제로 해 "(한일 관계에서) 영토와 민족을 우선할 것인가, 그보다 더 넓은 세계적인 모순의 해결을 중시할 것인가는, 식민지기 전후부터 이어지는 한일 진보적 지식인들의 연대운동의 두 가지 흐름을 대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임 교수는 "한국인은 지금 독도수호운동에 동참해야 하는가, 반핵운동에 동참해야 하는가, 혹은 일본의 진보주의자들은 자국의 제국주의적 영토 야욕을 비판하며 독도수호운동에 공감해야 하는가, 한국의 반핵운동과 연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고토쿠 슈스이를 비롯한 일본의 초기사회주의자들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일관해서 비판했다고 한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인 이시모다 쇼와 같은 초기 일본 공산주의자들의 경우 한·중·일 등 아시아 민족의 연대를 강조했다.이처럼 일본의 좌파운동이 조선에 주목했던 두 가지 흐름을 대표하는 고토쿠의 계급적 연대의 길과 이시모다의 민족적 연대의 길을 살피면서, 원전 문제로 일본 정부를 향한 내부 불만과 불신을 독도문제를 통해 외부로 배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지는 않은지, 또한 대한민국 정권은 독도문제를 같은 방식으로 '악용'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문제라는 게 임 교수의 지적이었다.※ 인하대·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개최

2011-04-12 정진오

[2011 시민 인문학강좌·2]러시아에 한국학 첫 전파한 '계봉우'

[경인일보=정진오기자]러시아 지역에 처음으로 한국학의 씨앗을 뿌린 것으로 평가되는 계봉우(1880~1959·사진)의 생애가 인천시민들에게 소개됐다.29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에 강사로 나온 이현주 국가보훈처 연구관은 '해외에서의 한국학-원동(遠東)·중앙아시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와 계봉우의 한국학'이란 주제로 강연했다.이 연구관은 이 자리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한인회의 정체성이 많이 상실돼 있던 1920~50년대 사이에 러시아에서 우리의 국어와 국문학, 역사를 갖고 한국학을 일구고, 각종 기록을 남긴 계봉우의 드라마틱한 삶을 소개했다.1880년 9월 15일 함경남도 영흥군에서 태어난 계봉우는 어려서 한학을 배웠으며, 1906년에는 홍명학교에서 조선역사와 조선지리, 한문 등을 가르쳤다. 이런 과정 속에서 평생의 동지로 지낸 이동휘를 만났다. 1919년엔 북간도 국민회 대표로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선임됐으며, 40세가 되어선 한인사회당에 입당, 사회주의운동에 투신했다. 한인사회당(고려공산당)은 1918년 연해주 하바롭스크에서 김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 여사의 주도로 결성된 한인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이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등지에서 교단에 서 '고려어'를 주로 가르쳤다. 1937년 고려인 강제 이주 때 생명을 보전한 계봉우는 소장한 도서와 원고들을 모두 가지고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다.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저술에 전념했다. 계봉우는 국어, 국문학, 국사학, 민속학, 음악사에 이르기까지 경이로운 연구 성과를 남겼다는 것이 이 연구관의 설명이다. '조선역사' '신한독립사' '안중근전' '조선의 농업구조' 등의 역사서에서부터 '붉은 아이' '고려문전과 나의 연구' '고려어 교과서' 등의 국어학 서적, '과거 고려의 평민문학' '조선문학사' 등의 국문학 서적, '고려인의 구력과 명절의 미신' '한국 노래 및 일반 음악사' '조선 이야기' 등의 민속·음악·종교 분야 서적까지 다양한 장르에 걸쳐 저술했다.계봉우는 특히 근대 한인의 국외 이주와 정착, 이를 기반으로 전개된 독립운동에 큰 관심을 기울여 스스로도 여기에 참여했음은 물론, 중요한 글도 여러 편 발표했다.이 연구관은 "고려어라고 부르던 한국어와 한국문학, 한국역사에 대한 계봉우의 50년에 걸친 각고 끝에, 고난으로 점철된 이주지에서 나온 여러 연구들은 제국주의에 의한 민족 수난기에 기구한 역사를 일군 원동(遠東)·중앙아시아 지역 한인사회를 상징하는 '한국학'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1995년 대한민국 정부는 계봉우의 독립운동 공적을 기려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다음 세 번째 강의는 4월 12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임경화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가 나와 '일본학과 한국학의 교섭;일본의 진보지식인이 발견한 조선들'이란 주제로 강연한다.

2011-03-29 정진오

[2011 시민 인문학강좌·1] 우경섭 인하대교수 '국학·한국학·조선학'

[경인일보=정진오기자]'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1년도 상반기 과정이 15일 시작됐다.이날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열린 첫 강의는 우경섭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가 맡았으며, 강의 주제는 '국학, 한국학, 조선학'이었다.우 교수는 이 자리에서 20세기 한국 근대 역사학의 출발이 독립운동을 위한 데 필요한 것이었다면 21세기에 와 있는 이제는 새로운 변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우 교수는 '식민사학' '한국 근대역사학의 대응' '한국 근대역사학의 문제점' '21세기 새로운 한국학' 등으로 나눠 식민시기 이후 지금까지 흐르는 우리 역사학의 변화 과정을 설명하고, 각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특히 한국 근대 역사학은 과도한 민족주의와 편향된 서구 중심주의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면서 민족주의 등은 독립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평가할 수 있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근대 역사학은 지금의 현실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동력을 일정 정도 상실했다는 게 우 교수의 설명이다. 근대 역사학의 변용이 필요한 시점이란 것이다.우 교수는 또 "넓은 개념의 '동아시아의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일민족주의에 집착해서도, 서구 편향주의적 시각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면서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동아시아까지를 포용할 수 있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했다.다음 두 번째 강의는 29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이현주 인하대 사학과 강사가 나와 '해외에서의 한국;계몽주의 한국학'이란 주제로 강의한다.

2011-03-15 정진오

[2010 시민 인문학강좌] 인하대·인천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주최 '인문학 강좌' 정리

[경인일보=정진오기자]류준필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는 28일 인천시립박물관에서 개최된 '인천시민 인문학강좌'에서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강조했다.'동아시아담론, 동아시아라는 사유공간'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류 교수는 "세계적으로 주목되는 동아시아에서의 한국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할 때다"라면서 "한국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게 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해 내는 균형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류 교수가 말하는 '동북아 균형자론'의 핵심은 한국만을 따로 떼어 놓고 바라보면서 '한국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중국·미국 등 대국과의 사이에 있는 한국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대국에 비친 한국의 모습이 중요하게 인식되느냐가 포인트라는 얘기다.또한 한국 스스로도 한국 주변의 소수민족 문제 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점도 피력했다. 강대국의 틈에 끼인 우리가 '약자'의 처지를 피력하고, 그 점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한국보다 작은 존재에 대한 이해도 가져야 한다고 부연했다.류 교수는 또 '중국 다시 보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아시아론'의 핵심은 '중국'을 어떻게 정립하느냐와 중국과의 관계설정 등에 있는데, 지금 한국은 중국을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게 류 교수의 지적이다. 조선 때에는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만 외교문제를 생각하다가, 그 뒤로는 일본에만 종속되고, 또 해방 후엔 미국의 틀에서만 대외 관계가 흘렀고, 정작 지난 100년 동안에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접근이 부족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류 교수는 "장기적으로 중국의 문제가 한국의 문제가 될 수 있도록, 또한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이 매력적인 나라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중국이 가야 할 길을 미리 한국이 갈 수 있을 때 중국이 한국을 중요하게 여길 것이란 얘기다.또한 남북 통일이란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도 동아시아 인식을 잘 해야 한다는 게 류 교수의 생각이다.류 교수는 대북 정보 등이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하는 경향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2010-09-28 정진오

인천시민 함께한 인문학 강좌

[경인일보=김영준기자]지역 문화의 인프라 확충을 위해 2009년 하반기에 개설된 '인천시민 인문학 강좌'가 책으로 엮였다.인하대 한국학연구소와 인천시립박물관이 공동 주최했으며, 경인일보가 주관언론사로 참여한 가운데 진행중인 이 강좌의 첫 결과물 '인문학, 소통과 공생의 지혜(글로벌콘텐츠) '가 최근 출판된 것이다.책에는 취미나 교양 위주의 주제에 한정된 몇몇 기관의 일부 인문학 강좌 수준을 뛰어넘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 7개 강좌가 수록됐다.문·사·철과 사회과학 등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학자들이 참여한 강좌들엔 '동아시아와 한국의 상생을 향하여'라는 대주제 아래 조선의 국제개항장으로 세상에 알려진 인천의 역사적 정체성을 생각하고, 때론 협력하고 갈등하면서 역사의 궤적을 함께 했던 동아시아 지역 내의 여러 민족과 국가에 대한 속 깊은 이해가 담겨 있다.윤승준·김영진·윤영실·육상효·우경섭·김영·이봉규 교수의 강연 내용과 함께 각 강좌마다 짧은 설명이 담긴 참고 서적을 소개해 강연의 이해를 도왔다.이영호 인하대 한국학연구소장은 "앞으로도 강좌는 인문학 일반, 동아시아학, 한국학, 인천학 등 네 분야에서 세부 주제를 선정해 진행될 것이다"며 "강좌의 결과는 '인문학시민강좌' 시리즈로 지속적으로 출판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2010-09-14 김영준

[2010 시민 인문학강좌] 인하대·인천시립박물관·경인일보 공동주최 '인문학 강좌' 정리

[경인일보=정리/정진오기자]14일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의 첫 번째 강의 주제는 '근대 동아시아, 대립과 반목의 역사'였다. 강사로 나선 이희환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 연구교수는 근대 동아시아에서 있었던 전쟁과 그에 얽힌 열강들의 부침을 2시간에 걸쳐 설명했다.※ 다음은 강의 요약.근대 이전 동아시아 지역은 중원을 차지한 제국을 중심으로 국제적 질서가 자리하면서 중원이 요동할 때마다 동아시아 전쟁이 발발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서구 국가들이 자본주의 물질문명을 구축하면서 대항해시대를 맞아 식민지를 개척, 아시아에 상륙하면서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크게 요동한다. 이후 동아시아에는 전통적인 중화체제를 대신하는 새로운 근대체제가 크고 작은 전쟁과 조약을 통해 강제되었다.대원군 집권하의 조선은 서양의 거센 통상요구를 거부하다가 결국 함포외교에 직면했다. 이에 가장 적극적인 구미국가는 선교금지 조처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벌이다 처형된 프랑스였다. 이미 1856년에 한 차례 서해의 수로를 탐사한 바 있던 프랑스는 박해를 피해 탈출한 리델(Ridel) 주교에 의해 신부 9명이 처형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리델 주교는 황제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한편 프랑스 함대 사령관 로즈(P. G. Roze) 제독에게 조선 정벌을 촉구했다. 강화도가 외세에 본격적인 수난을 당하기 시작한 것이다.거듭되는 이양선의 출몰과 강화와 인천 앞바다를 피로 물들인 병인, 신미년의 전쟁을 무릅쓰고도 쇄국의 문을 열지 않던 조선은 드디어 1876년 2월 3일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일명 병자수호조약, 강화도조약) 체결을 계기로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자발적이 아닌 일본의 도발에 의한 것이었다. 미국 페리 함대에 의해 굴욕적인 불평등조약을 맺고 문호를 열지 않을 수 없었던 일본은, 허약한 봉건 막부체제가 무너지는 동시에 명치유신 정권을 수립함으로써 급속한 근대화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명치유신 정권은 대내적으로는 국가권력을 통합하고 대외적으로 국위를 드러내며 열강의 각축 속에서 이권을 도모하고자 운요오호(雲揚號) 사건을 일으켜 마침내 조선 개국을 강제하였다.조선의 각 개항장에서는 러·일간의 각축이 이뤄졌고, 그 중심에는 '보급기지' 역할을 한 월미도가 있었다. 결국 인천 앞바다에서 러·일전쟁(1904)이 발생했고, 일본이 승리했다.※ 인터뷰 / 이희환 박사"동아시아 갈등상황, 변함없이 보여주는 인천""19세기 서세동점(西勢東漸) 시대에서 전통적 중화체제가 붕괴되면서 새로운 근대체제가 들어서고, 한·중·일 등 동아시아를 둘러싼 각국의 대립과 반목이 치열하게 이어집니다."인천시민 인문학강좌의 첫 번째 강사로 나선 이희환 박사는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동아시아 정세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의 동아시아 흐름이 예전과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이 박사는 '인천'에 주목했다."예나 지금이나 동아시아의 여러 가지 갈등 상황을 가장 잘 이야기하고 있는 곳이 인천입니다. 개항기에는 인천에만 청·일 등 각 나라의 조계지가 있었거든요. 인천은 서울의 목구멍에 해당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이 박사는 100년 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그러했듯이, 오늘날에도 한반도를 무대로 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다시 강대국간의 힘의 논리에 의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사태로 휩쓸려 들어가는 데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의 이해다툼 속에 한반도의 운명을 또 다시 내맡겨야 하겠습니까."

2010-09-14 정진오

미추홀 가득 '인문학 향기'

[경인일보=이현준기자]인천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한 인문학 강좌가 지역사회에 점차 뿌리내리고 있다. 점점 치열해져만 가는 경쟁사회 속에서 인문학을 통해 삶의 방향성을 찾으려는 주민들의 욕구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인천지부는 최근 '장애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 장애인들의 자아발견' 상반기 과정을 마무리하는 졸업식을 가졌다. 이 강좌의 수강생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총 40여명. 이들은 지난 6월말 강좌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총 8차례에 걸쳐 문학과 미술, 음악, 성 정체성 등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올해 처음 진행됐던 이번 인문학 강좌의 반응은 예상보다 좋았다. 남구 숭의종합사회복지관 강당에서 진행되는 이 강좌를 듣기 위해 서구 검단 등지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은 '일부러' 장애인 콜택시를 예약하기도 했다.이 강좌를 통해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만들고,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데 도움이 됐다는 점 등이 좋은 반응을 얻은 이유라고 인천지부 관계자는 평가했다. 이 강좌의 하반기 과정은 동양철학 등의 내용을 보강해 오는 8일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11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인천시립박물관과 인하대 한국학연구소가 함께 진행하는 '인천시민 인문학강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우리 시대와 人文學의 대화'를 주제로 한 상반기 과정에선 100여명의 주민들이 총 8차례로 진행된 강의에 참여했다. 시립박물관은 '동아시아와 한국, 상생을 향하여'를 주제로 한 하반기 강좌도 벌써부터 주민들의 관심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각 기초단체들도 인문학과 관련한 내용의 무료 주민강좌를 개설하고 있는 상황. 이희환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는 "물질적으론 풍요롭지만, 경쟁 위주의 사회로 변하면서 삶의 방향성을 찾기 위한 수요가 인문학 강좌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주민 대상 인문학 강좌가 많아지면서 그 내용이 형식적으로 치우치게 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2010-08-31 이현준

[2010 시민 인문학강좌·8] 육상효교수의 '영화는 인문학을…'

[경인일보=정리/정진오기자]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와 인천시립박물관이 공동으로 마련한 '2010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상반기 마지막 강연이 지난 29일 오후 2시 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열렸다. 이날은 영화감독으로도 유명한 육상효(사진)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영화감독)가 '영화는 인문학을 어떻게 수용하는가?'란 주제로 강연했다. 강연이 끝난 뒤에는 그동안 빠짐없이 수강한 시민들에게 수료증을 전달하는 시간도 가졌다. 하반기에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상생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계속된다.<강연요지>영화는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에 걸쳐서 발명되었다. '발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처음에는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마술과 같이 아주 신기한 볼거리이자 신기한 기술에 불과하였다. 발명왕 에디슨까지 이 신기한 기술의 발명에 한 몫 했다. 사람들은 이 움직이는 사진들에 열광했다. 영화 속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보다가 놀라서 혼비백산 객석을 뛰쳐나가기도 했다.이 영화가 이야기의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30년 정도가 더 지난 다음이다. 신기한 볼거리로서의 신선감이 사라질 무렵 영화업자들이 영화 속에 이야기를 접목하는 것이 더 강력한 돈벌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후 영화는 인문학의 다양한 사유를 서사화하면서 오늘날 가장 각광받는 예술양식으로 부상하였다.미국의 이야기 학자 로버트 맥기는 "영화는 삶의 은유"라고 했다.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서 현실의 삶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혹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결국은 자기 인생의 정체를 알아간다는 의미에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모든 '좋은' 영화는 결국은 영화가 끝났을 때 '그래 인생이란 결국 이런 것이야'라고 하는 발언들이 있을 때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영화와 인문학의 접점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영화 역시 인간의 이야기로 인간을 돌아보게 하는 예술이니까 말이다. 영화가 산업으로서의 시장의 논리에 침윤되어 실용적 상품으로만 달릴 때 그것을 인간에 대한 예술이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려놓는 것도 언제나 인문학의 몫이었다.문학과 영화는 같은 이야기 매체이다. 그러니 인문학 중에서 문학은 영화와 가장 가까운 매체라고도 볼 수 있다. 수많은 소설, 희곡, 시들이 영화로 각색되었다. 이제는 영화의 대본인 시나리오도 문학의 한 분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화와 문학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메를로 퐁티라는 프랑스 현상학자는 "영화는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인지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문학이 글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반면 영화는 영상과 소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인지되는 것이라고 했다. 퐁티의 이 말 속에 영화의 한계와 또한 가능성이 함께 들어있다. 문학이 글로서 표현했던 모든 것은 영화 속에서 다시 영화의 방식에 의해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문학에서 이야기를 빌려왔지만, 그 이야기들은 영화적인 방식으로 다시 재편된다. 이 영화적인 각색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영화로서의 고전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문학적 고전에 대해 열등하지 않다. 오히려 워낙 강력해 영화의 방식이 문학의 기술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소설들의 표현 방식을 보면 예전 소설보다 훨씬 더 시각적이라는 것에서 영화가 문학에 미친 영향을 볼 수 있는 것이다.영화가 역사를 보는 입장은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영화는 당대 관객들의 입맛에 맞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언제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갈등이 없으면 갈등을 만들고, 악한 자가 이기는 역사를 선한 자가 이기는 역사로 만들고, 아름다운 여인이 필요하면 역사 속에 아름다운 여인을 만든다. 영화 '왕의 남자'를 보면 광대들이 임금 앞에서 여러 공연을 하면서 중국의 경극까지 공연하는 장면이 있다. 한국의 공연문화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조선시대에 중국의 경극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중국과 공연문화의 교류가 많지도 않았고, 조선 시대에 경극을 공연했다는 기록도 전혀 없으니까. 영화 제작진도 이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경극 장면을 넣기로 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광대들의 경극 공연이 시각적으로 화려한 것을 바랐던 감독의 의도에 맞았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땠는가? 영화는 초유의 성공을 거두었고 아무도 이 경극 장면을 문제 삼지 않았다.영화와 철학의 관계도 그 시작에 있어서는 영화와 문학의 관계만큼이나 불편했다. 많은 철학자들은 영화가 보여주는 실체 없는 그림자가 진리에 대한 접근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영화를 비난했다. 하이데거는 "영화는 진기하지만 이와 동시에 정말 상투적인 상상력의 영역으로 관객들을 실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전혀 관계없는 세계에 대한 환상을 제공해준다"고 영화를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철학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20세기의 주도적 예술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엄청난 대중적 파급력으로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철학자들도 이제 이 뚜렷하고 강고한 세계와 대면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2009년 말에서 2010년 초는 전세계적으로 '아바타'의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전세계적인 흥행 기록들을 갈아치웠고, 한국에서도 '괴물'을 제치고 역대 흥행 1위의 영화가 되었다. '아바타'가 성공한 이유로 3D 기술이나 디지털 테크놀로지 등 기술적인 것들이 거론된다. 하지만 '아바타'의 성공은 그 이야기의 새로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자, 이제 인문학이 영화와 맺는 관계는 자명해진다. 영화는 다른 예술과는 달리 수천억원에 이르는 거대한 제작비가 들어가는 예술이다. 그렇기에 전 세계에서 동시에 수억명의 관객을 모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는 언제나 강한 산업의 논리가 있다. 인문학은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은 그 산업의 논리로부터 영화를 인간을 위한 예술로 돌려놓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문학, Humanities는 영화에서 인본주의 Humanism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역사에서 보편성을 길어서, 문학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철학은 그 이야기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화는 곧 시장의 상품이나 신기술의 공산품 정도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2010-07-01 정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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