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없는 아이들

 

[국적없는 아이들, 두번째 이야기·하·끝] 법·제도 마련 시급

실태조사조차 않고 ‘방치’한국 향한 증오 점점 커져사회가 나서서 보듬어야국적 없는 아이들 문제는 아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불법체류자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법과 제도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지난해 9월 경인일보에서 ‘국적 없는 아이들’이라는 기획기사를 연재한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는 같은 해 11월 ‘이주 아동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권리옹호부장은 무국적 아동 신분 증명의 필요성을 거론하며 “1세대 미등록 아동이 성장하는 20년간 한국사회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이대로 라면 무국적 2~3세대도 1세대와 비슷한 궤적을 밟게 될 것”이라고 질타했다. 불법체류자 문제의 뇌관이 될 수 있는 국적 없는 아이들에 관한 실태조사조차 없는 국내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그러면서 “아동에 대한 양육과 보호의 책임은 부모뿐 아니라 사회에도 있다. 사회가 아동보호를 위한 제도적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는다는 건 곧 사회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발의한 ‘이주아동권리보장법안’을 보면 ‘이주 아동에게도 출생등록이 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안은 발표된 이후 일부 조항을 놓고 찬성과 반대 여론이 들끓으며 논란이 일었지만, 무국적 아동 신분을 증명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는 상태다.학계에서는 지난 2008년 제정된 ‘다문화가족지원법’의 한계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 법에서 국적허용 대상을 ‘한국 국민과 결혼해 가족을 이루고 있는 외국인 또는 귀화자’로 한정하고 있어 고용허가제로 이주한 이주여성, 이주 노동자 부부 사이에서 출생한 아동, 외국인 유학생, 무국적 외국인 등을 인권 사각지대에 놓이게 했다는 것이다.불법체류자 문제를 방치하는 동안 국적없는 아이들은 한국을 향한 증오를 키워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취재 도중 부모의 나라 미얀마로 돌아간 까뜨린(8) 양은 떠나기 직전 “한국사람들은 모두 악마 같다. 나중에 반드시 혼내줄 거다”라는 말을 남겼다./이종우·최재훈·황성규기자 cjh@kyeongin.com국적없는 아이들 문제는 불법체류자 문제와 직결돼 법과 제도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경기도내 한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무국적 아이들. /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

2015-11-04 최재훈·이종우·황성규

[국적없는 아이들, 두번째 이야기·하·끝] 이정호 외국인복지센터장의 안타까움

죽음불사한 귀국, 환경 반증돌아간다해도 적응못해 착잡“어린아이들이 화물칸에 짐짝처럼 실려가는 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아이들이 무슨 죄라고….”이정호 남양주외국인복지센터장은 십 수년 간 외국인 근로자들의 복지를 위해 발 벗고 뛰었다. 이들이 처해 있는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해주기 위해 경제적 후원까지 자청하고 다닌다. 그의 본업은 신부다. 하지만 이들의 어려움을 알게 된 이후, 남양주 화도읍에 외국인복지센터를 만들어 이들을 돕고 있다. 물론 어떠한 대가도 없다. 다만 그들이 서투른 우리말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해 줄 때면 보람을 느끼고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된다. 하지만 이 센터장이 미소를 짓는 날은 많지가 않다.“불법체류자들은 그렇다 칩시다. 그 밑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난 아이들은 도대체 무슨 죄랍니까.”그는 국내 체류 중인 불법체류자와 그 2세들이 너무나 비참한 생활을 하는 모습을 많이 봐 왔다며 이들의 열악한 성장 환경을 지적했다. 이 센터장은 “이들이 얼마나 형편없이 살아가는지에 대해선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다 잘 알지만,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진 않는다”며 “이럴 바에야 차라리 부모의 나라로 돌아가서 떳떳하게 학교도 다니고 의료혜택도 받으면서 사는 편이 개인적으로 훨씬 낫다고 생각된다”고 했다.실제 그는 불법체류 중인 부모들과의 수많은 상담을 통해 그들의 2세를 몇 차례 고국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이 과정 또한 그에겐 아픔의 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아이들이 돌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비참한 줄 압니까.” 이 센터장에 따르면 국적없는 아이들은 고국에 제대로 돌아갈 수조차 없다. 여권이 없으니 브로커를 통해 아이들을 화물칸 같은 데 짐짝처럼 실어 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죽음의 위험까지 무릅쓰고서라도 이 길을 택한다는 건 그만큼 이곳에서의 생활이 비참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하지만 더 큰 문제는 부모의 나라에 돌아간다 해도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센터장은 “올해 초 방글라데시를 방문했을 때 한국에서 돌보던 아이를 만났는데, 그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한국에 가고 싶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곳은 아이들에게 부모의 나라일 뿐 이미 한국 문화에 젖은 아이들에겐 더더욱 낯선 환경이기 때문에 또 다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이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보며 너무나 마음이 착잡했다”고 밝혔다.이 센터장은 이 아이들에게서 반한(反韓)감정이 싹트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국적 없는 아이들의 마음 속에, 한국은 자신들을 멸시하고 억압하기만 한 증오의 대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 아이들이 성장하며 그 덩어리도 함께 커진다는 점이 문제”라며 “국내에서는 각종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잠재 세력으로, 국외에서는 반한 운동 형식으로 우리사회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한류를 주창하는 국가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이미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데도 언제까지 남의 문제로만 여길 것인가. 이건 현실적이고 심각한 우리의 문제”라는 게 그의 외침이다. /이종우·최재훈·황성규기자 cjh@kyeongin.com이정호 남양주외국인복지센터장

2015-11-04 최재훈·이종우·황성규

[국적없는 아이들, 두번째 이야기·중] 청소년기부터 ‘탈선의 길’

비슷한 처지의 또래 만나 비행범행으로 이어지면 검거 어려워계속 방치땐 사회적 혼란 우려국적 없는 아이들은 성장과정에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소외감으로 상당수가 탈선의 길목으로 내몰린다.청소년기부터 시작되는 이들의 탈선은 성년기까지 이어질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무국적자들은 지문 등의 신상정보가 없어 신원파악이 사실상 불가능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검거가 어렵다. 최근 감사원의 법무부 감사결과 국내체류 외국인 중 지문정보를 등록하지 않은 채 체류기간을 연장한 외국인은 6만9천929명에 이른다. 국적 없는 아이들은 지문 등의 정보가 없어 여권위조나 각종 범죄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국내에서 14~18세 청소년기를 보내는 국적 없는 아이들은 대개 초·중학교 단계에서 학업을 포기한다. 집단 따돌림이나 인종차별 등으로 학교에 적응하기 쉽지 않아서다. 결국 비슷한 처지의 또래 외국인이나 학교에서 ‘문제아’로 분류되는 아이들과 어울려 각종 탈선행위에 빠지기 시작한다. 일부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유흥가로 흘러든다.문제는 이런 현상이 청소년기의 일탈이나 방황 수준을 넘어 무국적이라는 신분을 악용한 중대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국내 검·경 등 수사기관조차 이에 대한 뚜렷한 해법이 없다. 불법체류자의 자녀인 무국적 아동에 대한 근본적인 법적 보호가 전혀 해결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한 경찰관계자는 “간혹 범죄에 신원 정보가 없는 무국적자가 연관될 경우 단서조차 찾기 어려워 수사가 난항에 빠지기 일쑤”라며 “국적 없는 아이들을 지금처럼 계속 아무런 법적 보호조치 없이 방치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적으로 상당한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외국인 범죄 건수가 3만건을 돌파했고, 그 증가 속도는 5년 새 36% 이상 급속히 늘면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범죄의 유형도 살인·마약·매춘 등 날로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경기북부지역 한 외국인 근로자 인권단체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불법체류자라 하더라도 신원파악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는 얻을 수 있지만, 자녀들은 만약 가출이라도 하면 도저히 찾을 방도가 없다”며 “이러한 아이들을 법적으로 보호할 방법이 없다면, 우리 사회가 이들을 어둠의 세계로 내모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종우·최재훈·황성규기자 cjh@kyeongin.com국적 없는 아이들의 상당수가 집단 따돌림, 인종차별 등으로 소외되면서 탈선의 길목으로 내몰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3일 오후 도내 한 유흥가 거리에서 무국적 청소년들이 흡연을 하고 있다. /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2015-11-03 최재훈·이종우·황성규

[국적없는 아이들, 두번째 이야기·중] 무기력에 빠진 10대들

학교에선 이미 문제아 낙인“하고싶은 일 없고 다 싫어”여학생은 유흥업소 발 담가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카말(가명·19)은 외국인 근로자로 한국에 들어온 방글라데시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태어난 카말은 방글라데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저 부모의 나라라는 인식이 전부다.아버지는 5년 전 불법체류자로 적발돼 고국으로 강제 출국당했고 현재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33㎡ 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살고 있다. 이마저도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조립식 주택인 탓에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카말은 가족이 모두 잠든 늦은 밤에야 집에 들어오곤 한다. 공장 일을 하며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어머니에게는 “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늦었다”고 둘러댄다. 카말은 학교에서 이미 ‘문제아’ 취급을 받은 지 오래다. 카말의 어머니는 “아들 때문에 교회 목사님이 학교와 경찰서를 수도 없이 불려다녔다”고 털어놨다. 이들 가족을 돌보고 있는 목사는 “카말이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니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학교도 자주 빠져서, 수없이 타이르기도 했지만 쉽지 않다”고 걱정했다.카말은 “한때는 엔지니어가 꿈이었지만,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한 환경에서 꿈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이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모든 게 싫다”고 자신을 짓누르는 현실에 무력감을 드러냈다.방황하는 카말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필리핀인 어머니와 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니콜(가명·17·여)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미군클럽에서 1년 넘게 일했다. 무국적자인 그녀는 나이를 속이고 클럽에 들어갔다. 신원 정보가 없어 나이는 그저 말하기 나름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최근 자신이 일하는 클럽이 경찰 단속으로 문을 닫자, 현재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그녀는 “학교에도 다닐 수 없고 취업도 할 수 없는데, 우리가 일할 곳이 이런 곳밖에 더 있겠느냐”며 “돈이라도 벌려면 남자는 정말 고된 막노동판에서, 여자는 이런 곳에서 일하는 수밖에 없다. 이마저도 안되면 남의 돈을 빼앗는 일 밖에 없다”고 말했다.경기도내 미군기지 주변 유흥업소에는 니콜과 같은 무국적 여성 청소년들이 돈을 벌기 위해 숨어들고 있다.최근 5년간 법무부의 국내 불법체류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불법체류자는 올해 기준 21만3천565명으로 5년 전보다 27.2% 늘어난 반면, 불법체류자 단속률은 11.1%에서 5.5%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단속률이 떨어진 것은 신원정보를 파악할 수 없는 무국적자의 증가가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은 “무국적자가 범죄를 저지를 경우 지문이나 신원정보를 확보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지문 감식이나 DNA 조사 등의 과학수사가 사실상 무의미해 목격자 진술 또는 탐문수사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불법체류자와 무국적자에 처벌유예기간을 주고 자진신고를 유도하는 등 정부의 법률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종우·최재훈·황성규기자 cjh@kyeongin.com

2015-11-03 최재훈·이종우·황성규

[국적없는 아이들, 두번째 이야기·상] 떠나지 못하는 2세들

“고국도 부모님의 나라일뿐”한국서 가정까지 꾸려 정착“아이들은 나아지길” 기도만경기도 내 한 외국인복지센터에서 다니아(가명·6)양을 만났다. 파키스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생김새는 사뭇 달랐지만, 태어나서 자란 곳이 한국이다 보니 뽀로로를 좋아하는 여느 6세 소녀들과 다를 바 없었다. 가족을 소개시켜 주겠다는 다니아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인적이 드문 황량한 곳을 지나 마치 폐공장 터를 방불케 하는 장소에 이르렀다. 거기서도 좁은 골목과 계단을 몇 차례 오르내리기를 반복한 끝에 몇 채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 앞에 도착했다. 이곳 중 한 곳이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이웃집 모두 다니아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그녀의 집에는 엄마(30)와 9개월 된 동생이 있었다. 동생이 태어나고 엄마가 일손을 놓게 된 탓에 다니아가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어졌다. 유치원에 갈 수 없어 대신 외국인복지센터에 다니고 있는 다니아는 그녀에게 주어진 앞으로의 험난한 삶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듯 시종일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반면 이를 바라보는 다니아의 어머니 카탈루(가명)씨의 눈에는 근심이 가득했다.10대의 나이에 부모를 따라 한국에 건너와 ‘국적 없는 아이들’ 신분으로 숨죽이며 살아 온 그녀였기에, 누구보다 그 고통을 잘 알기 때문. 그녀는 “한국에서 10년 넘게 살며 겪었던 온갖 핍박과 고통을, 내 아이들이 그대로 이어받게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진다”며 “우리 아이들 세대에는 좀 더 나아지길 바란다”고 하소연했다.지난 2002년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하와(가명·23)씨는 커피숍에서 3년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무역을 전공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그녀는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봤지만 결국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하와는 고등학교 때까지 성실하게 학업에 몰두한 소위 모범생 스타일의 학생이었다. 하지만 캠퍼스 생활을 하며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취업에 대비하는 또래의 대학생들과 달리,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르바이트가 전부다.하와는 “정식으로 취업을 해서 일을 할 수가 없다 보니, 아르바이트 같은 시급제 일 밖에 할 수가 없다”며 “더 비참한 건 아무리 열심히 살아보려 발버둥쳐봐도 나아지는 게 없고 바뀌는 게 없다는 것이다”고 토로했다.그녀는 한국이 싫다고 말한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없다. 그녀는 “꿈을 펼치기는 커녕, 불법체류자로 신고하겠다며 쥐꼬리 만한 급여조차 못 받는 게 현실이라”며 “그럴 때마다 부모님의 나라인 방글라데시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모님의 나라일 뿐 한국 문화에 익숙한 내가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한다는 건 그 자체로 두려운 일이다”이라고 털어놨다.성인이 된 국적 없는 아이들 1세대는 ‘떠나느냐 남느냐’의 문제로 갈등하면서도, 결국 자신이 뿌리를 내린 대한민국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간절함과 달리 현실은 이들에게 ‘불법체류자’라는 낙인만 더욱 짙게 새기고 있다. /최재훈·황성규기자 cjh@kyeongin.com대잇는 고통 파키스탄 출신 불법체류자 카탈루(가명 30·여)씨가 딸 다니아(가명 6)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 이 동네는 폐공장 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열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최재훈기자cjh@kyeongin.com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락아트

2015-11-02 최재훈·황성규

[국적없는 아이들, 두번째 이야기·상] 여전히 방황하는 인생

운좋아야만 고교 진학… 대부분 생활고·차별탓 학업 중도포기오랜 한국생활에 길들여져 떠나지도 못해 ‘불행한 삶 대물림’얼마 전 탈출 도중 싸늘한 주검이 된 시리아 어린이 난민의 사진이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국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국민은 이처럼 참담한 결과를 맞을 수 있다. 경인일보는 앞서 ‘국적 없는 아이들’시리즈를 통해 무국적 아이들의 비참한 삶을 조명한 바 있다. 이들은 시간이 흘러 성인이 돼도 여전히 국적 없이 난민처럼 이곳저곳을 떠도는 신세로 살아가고 있다. 이 중 일부는 사회문제를 양산하는 범죄의 온상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신상 정보조차 관리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이들을 계속해서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는 것만이 과연 능사일까. 국적 없이 성장한 이들의 삶을 통해 이 문제를 다시금 고민해 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편집자 주국적 없이 성장한 아이들, 즉 불법체류자 2세 신분의 ‘국적 없는 성인들’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이들은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건너와 조국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교육을 한국에서 받아 정서·문화적으로 한국인의 생활상과 흡사하다. 그러나 부모의 불법체류자 신분 때문에 국적이 없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고, 의료·교육 등의 사회보장을 받지 못한 채 난민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대부분은 부모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한국에 남기를 희망한다.한국에서 성장한 불법체류자 2세들은 보통 중학교까지 교육을 받는 편이며, 운이 좋은 경우 학교장의 재량으로 고교에 진학할 수 있다. 대학 진학은 사실상 차단돼 있다.상급학교로 진학한다 하더라도 부모의 불안한 생활과 차별 등으로 인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단속을 피해 사는 곳을 자주 옮겨 다녀야 하며, 부모가 일하는 공장 숙소나 인근의 값싼 월세집 등에서 생활하고 있는 실정이다.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들은 한국생활을 버리지 못한다. 한국에 익숙해 질대로 익숙해진 이들에게 부모의 나라는 또 다른 세상이다. 결국 이들에게 돌아갈 나라는 없는 셈이다.경기도 내 한 외국인 관련 인권단체는 불법체류자 자녀들을 대상으로, 각자의 나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고 있지만, 허사에 그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국적 없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한국에 남아 불법체류자 신분을 고스란히 대물림하며 숨죽이고 살아가고 있다.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 자라고 있는 국적 없는 아이들은 3천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성인이 된다 하더라도 불법체류자 신분을 벗어날 수 없다. 사회 일각에서는 다문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난민과 이민정책에 있어 지금과 같이 보수적인 성향으로 일관한다면 나중에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재훈·황성규기자 cjh@kyeongin.com

2015-11-02 최재훈·황성규

'국적없는 아이들 돕기' 민간단체 결성

'국적 없는 아이들'을 돕기 위한 민간단체가 결성됐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지만 국적이 없어 기본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갖게 되는 '작지만 큰 출발'인 셈이다. 국적 없는 아이들을 돕기 위한 '참사랑 나누리회(가칭)'가 지난 6일 의정부시 의정부동 예다움웨딩홀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이 자리에는 처음 모임 결성을 제안한 김명달 법무부 법사랑위원의정부연합회 회장을 비롯, 손상철 국민대 교수와 오만석 변호사, 홍준식 의정부시 비서관, 조정희 치과의사, 김은미 신흥대 교수 등 지역 각계 인사 50여명이 참석했다.김 회장은 "경인일보가 기획시리즈로 게재한 '국적 없는 아이들' 보도를 통해 아이들의 실상을 접하고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며 "지금이라도 뜻을 모아 이들을 돕고 국민적 관심을 갖게 하는 도화점이 되기 위해 모임을 제안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이어 "이미 지역의 많은 기업인과 의료기관들이 인도적 차원의 협조의사를 잇따라 전해왔고, 앞으로 더 많은 시민과 기관들이 우리 모임에 동참할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참석자들은 이날 경인일보의 '국적 없는 아이들' 기획기사(9월 14일~10월 16일까지 5차례 보도)를 토대로 자유토론을 갖고, 이들에게 사회복지 등 기본적인 혜택이 시급하다는 데 공감했다.참사랑 나누리회는 자유토론을 마친 뒤 "우선, 단속을 피해 숨어 사는 아이들에 대한 실태를 좀 더 정확히 파악한 뒤 이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또 다음달 중 2차 모임을 갖고, 회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경기북부지역 무국적 아동에 대한 실태 파악에 들어갈 계획이다. /윤재준·최재훈·공지영기자

2014-11-09 윤재준·최재훈·공지영

[국적없는 아이들·5·끝]학계·시민단체 제언

정부, 의무교육 시킨다지만학교장이 허가해야만 입학현행 국적법은 유지하면서별개의 '특별법' 마련해야국내 학계와 시민단체들에서는 '국적없는 아이들'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해 '특별법'제정 등이 적극 논의되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침묵하고 있다.시민단체와 학계는 아동인권 보호 차원에서 무국적 아이들에 대해 법과 제도 개선 등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특별법 제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법무부는 특별법의 핵심인 '출생등록제도'를 도입할 경우 불법체류자 자녀에게도 출생과 동시에 국적을 부여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일부 법조계에서는 대안으로 현행 국적법을 유지하면서 국적법과 별개의 특별법을 마련하는 방안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대진대학교 법학과 김도협 교수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기존 국적법 개정과 별개로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무국적 아동들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법이 있고 향후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더이상의 '무국적 아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반면 정부가 불법체류자 자녀들에게 허용하고 있는 의무교육을 놓고도 이율배반적인 정책이란 지적이다. 정부는 현재 인도주의 차원에서 불법체류자 자녀들도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출생의 흔적조차 없는 이들에게 의무교육은 국가 이미지만을 위한 형식적 정책에 불과하다는 평가다.불법체류자 자녀가 희망할 경우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입학 허가 권한을 학교장에 위임하면서 상당수 학교는 학부모들의 눈치를 보며 무국적 아이들에게 입학을 허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이와관련 시민단체 '두레방'의 김태정 복지사는 "정부가 무국적 아동들에게 의무교육은 받게 해준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학교장 재량에 맡겨져 사실상 제도라고 볼 수 없다"며 "법과 제도로 이들을 인정하고 신분을 보장할 때 아이들이 현실 속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시민단체와 학계, 법조계에서는 무국적 아동에 대한 의무교육 제도화로 교육을 마친 무국적자에 한해 신분을 보장해 주는 제도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현행법상 국적이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의무교육까지 허용했으면 사실상 한국인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들이 한국에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영주권 등의 신분보장 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코시안의 집' 김영임 원장은 "정부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무국적 아동들에게 의무교육을 허용해 한국을 모국으로 알고 자랐는데 교육을 마친 이후에는 불법체류자로 '없어져야 할 존재'처럼 취급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의무교육을 마친 무국적 아동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영주권을 주는 등 신분을 보장해주는 제도를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재준·최재훈·공지영기자

2014-10-16 윤재준·최재훈·공지영

[국적없는 아이들·4]합법적 삶이 힘든 한국

韓 국적 얻기위해 버려지고가짜 입양·호적매매 불법도아동권리 법제정은 '게걸음'스리랑카인 A(여)씨의 사례는 이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장에서 일하던 A씨는 같은 스리랑카 출신 직장동료를 만나 아이를 가졌다. 하지만 아이 아버지는 불법체류자라 아이를 책임질 형편이 못됐다. A씨는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하던 공장에서 해고됐고, 다른 공장에도 취직하지 못했다. 불법체류자까지 된 A씨는 국내 한 미혼모쉼터에 들어가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자신의 신분 때문에 국적도 없이 성장하게 될 아이의 미래가 걱정됐다. 고아가 되면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생후 6개월된 아이를 경기도의 한 아동일시보호소에 맡겼다. 자신이 다시 직장을 잡고 돈을 벌 동안만 아이를 맡기겠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뒤 그는 출입국 단속에 걸려 본국으로 추방당했고 아이를 그대로 둔 채 한국을 떠나야 했다. 한국에 돌아오려고 노력했지만, 불법체류 이력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았다. 그 사이 아이는 일시보호소에서 보육원으로 옮겨져 엄마도 없이 홀로 두해를 넘겼다.실제로 외국인 아이들이 버려지는 사례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서울의 주사랑공동체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는 지난 6월 기준으로 10여명의 외국인 아기가 버려졌다. 지난해 1월, 경상남도 통영에서는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아기 시신이 비닐봉지에 싸여 발견돼 충격을 주었다.코시안의 집 김영임 원장은 "불법체류자들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들어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경제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국적과 같은 복잡한 법적문제도 그 원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지구촌사랑나눔이라는 시민단체는 아예 이주여성들을 위한 베이비박스를 포함해 이주여성 위기지원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 버려진 무국적 아동들이 또다시 버림받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이를 구상한 김해성 목사는 "버려진 외국인 아이들은 보호소를 통해 일반 보육원에 입소해도 입양조차 쉽지 않다. 한국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또다시 버림받고 있다"고 말했다.고아가 됐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결국 평생 고아라는 딱지와 외국인 아이라는 꼬리표로 인해 또다시 고통을 받아야 하는 셈이다.사실상 합법적으로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길이 막힌 이들의 현실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한국 호적을 사고파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는 것.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브로커를 통해 본국으로 아이를 보내다 적발된 베트남인 불법체류자들은 한국인 호적에 아이를 올려주는 대가로 1천여만원이 넘는 돈을 줬다.베트남인 이주여성과 결혼한 한국인 가정들이 자신의 호적에 의뢰받은 아이를 올려주면 아이는 자동으로 한국국적을 취득하게 되는데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다.무국적 아동이 합법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영아유기, 가짜 입양과 같은 불법 밖에 없는데도 정부는 끊임없이 무국적 아동을 부정하는 완고한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이 땅에 수십년동안 무국적·미등록 아이들이 살아가는 동안, 단 한차례도 이들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법을 만들지 않았다.이때문에 이주민을 돕는 시민사회는 이제라도 무국적·미등록 아동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와 우리 사회 안에서 이들이 합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실제로 올해 4월 국회에서는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 제정안'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미등록 아동들의 기본권을 위해 한걸음 나아갔지만, 여전히 국회 주변부만 맴돌며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스리랑카 미혼모를 도왔던 이주민단체 관계자는 "불법체류자의 자녀라도 이 땅에서 태어난 아동에게 부모와 함께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했다면, 부모가 천륜을 저버리는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우리나라가 1991년 비준한 UN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이름과 국적을 가져야 하고, 가능한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받아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무국적 아동들은 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윤재준·최재훈·공지영기자▲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도내 한 도시에서 만난 무국적 아이들. 한국의 국적법상 아이들은 고아가 돼야만 합법적으로 한국에서 살 수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최재훈기자

2014-09-25 윤재준·최재훈·공지영

[국적없는 아이들·4]머나먼 대한민국法

부모 없어야 '국적 취득' 가능떠돌이 신세 대물림 막으려…시설등에 맡겨지는 아기 늘어일부 수천만원 들여 불법 입양버려진 영아 사체 발견되기도국내에서 태어난 불법 체류자의 자녀들은 국내법상 까다로운 제약들 때문에 최소한의 법적인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속인주의'를 따르는 우리나라 국적법은 부모 중 한 사람이 대한민국 국민일 경우에만 국적 취득이 가능하다. 다만 국적법에는 외국인이라도 '고아'일 경우 대한민국에서 출생했다면 자동으로 국적 취득을 인정하고 있다. 국내에 버려진 아이는 대한민국 출생으로 추정한다는 원칙 때문이다.이 때문에 불법 체류 부모들은 아이가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아'로 만드는 방법을 택하고 있고, 아이는 불법 체류자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국적과 부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스리랑카 출신 A(여)씨는 생후 6개월 된 아이를 보호소에 맡겨야 했다. 불법체류자인 A씨는 남편과 연락이 끊긴 상태에서 한 영세 공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아이만이라도 한국 국적을 취득, 합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가짜 입양을 보내는 경우도 속속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수천만원의 비용을 주고 브로커를 통해 한국인 호적에 아이를 올려 가짜 입양을 보내다 호적 위조 등의 혐의로 붙잡힌 불법체류자들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도내 출입국관리 당국은 "최근 카자흐스탄 출신 불법체류자도 자신의 아이를 비슷한 수법으로 한국호적에 올려 적발되는 등 전국적으로 이같은 불법현상들이 만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렇게 어쩔수 없이 버려지는 무국적 아동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서울의 한 종교단체에는 지금까지 10여명의 외국인 영아들이 버려졌고, 지난해에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외국인 영아가 봉지에 싸여 사체로 발견되기도 했다. 안타까운 상황을 보다 못한 한 사회단체가 이주여성을 위한 베이비박스를 만들어 버려진 아이들을 양육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시민단체 관계자는 "엄연히 한국에 살고 있는 이 아이들을 정부가 언제까지 모른 척할 수 있겠느냐. 무국적 아동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만큼 부작용은 곳곳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재준·최재훈·공지영기자

2014-09-25 윤재준·최재훈·공지영

[국적없는 아이들·3]희망을 잃은 삶

불법 체류자 자녀처럼공장·야간업소 등 전전단속 피해 떠도는 신세"악몽의 현실 너무 슬퍼"울란하울(가명·18)군은 1세대 미등록(무국적) 아동이다. 몽골에서 태어나 13세때 엄마 기르엘룬(가명·40)과 함께 관광비자로 한국에 온 뒤 비자만료 이후 불법 체류자가 됐다.졸지에 미등록 아동이 된 하울군은 엄마와 함께 단속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불안한 성장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단속 때문에 학교 가기를 미뤘던 하울군은 중학교만 겨우 졸업했다. 이후 엄마와 같이 공장을 전전했고 단속에 들킬까 봐 새벽시간대에 나와 일을 해야 했다. 단속을 피해 이사다니길 수십 차례. 기약없는 떠돌이 생활에 한국 친구 하나 사귀지 못했고, 지금도 엄마와 함께 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다. 몽골인 밧토르(가명·25)씨는 초등학교 6학년때 엄마가 출입국관리소에 단속돼 강제출국을 당한 뒤 10여년 동안 공장을 전전하고 있다. 엄마의 강제 출국 이후 함께 살던 외삼촌마저 몽골로 돌아간 뒤 살아갈 길이 막막했던 밧토르씨는 수십 차례 공장을 옮겨다녔다. 얼마 전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아이 또한 무국적이다.무국적 3대를 이어가고 있는 밧토르씨는 "악몽 같은 현실이 너무 슬프다. 제발 내 아이는 한국사회에서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며 떳떳하게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이들의 삶은 부모와 똑같이 불법체류자로 공장, 야간업소 등을 전전하며 대를 이어 무국적자의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흔한 휴대전화나 신용카드는 꿈도 못 꾼다. 이처럼 사회적 무관심과 냉대속에 일부는 폭력 등 각종 범죄의 유혹에 빠지면서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현재 경기도내 거주하는 외국인은 49만2천여명으로 도내 전체인구(1천200만명)의 4%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 범죄도 매년 7천~8천건이 넘게 발생하고 있다.하지만 상당수는 범인의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찰 관계자는 "무국적자들의 경우 어디에서도 신원 파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사에 어려움이 많다"며 "사실 아무 대책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1세대 미등록 아동들이 성장하는 20여년 동안 한국사회는 변한 게 없다. 이 때문에 1세대 미등록자들의 삶은 현재 무국적 아동들의 미래라고 말한다.코시안의 집 김영임 원장은 "전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결국 무국적 아동들도 1세대 미등록 아동들과 같은 과정을 밟게 돼 있다. 더 이상 정부는 땜질식의 처방만으로 미등록 아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재준·최재훈·공지영기자 ▲ 경기도내 한 초등학교에서 외국인 이주아동들이 한글 수업을 받고 있다. 무국적 아동들 대부분 한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채 어렵게 학교에 진학하고 있다. /최재훈기자

2014-09-21 윤재준·최재훈·공지영

[국적없는 아이들·2]위험천만한 본국행

자녀 양육 힘든 외국인 여성적발땐 강제출국 도사린 위험고비용 드는 '아기무역' 택해"정부, 아동기본권 지켜줘야"최근 20년간 E-6 비자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여성은 3천126명으로 1990년도(86명)에 비해 36배나 증가했다. 이 중 절반가량이 경기도내 기지촌 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기지촌내 클럽과 유흥주점에서 성매매를 해야 하는 현실을 감당하지 못해 클럽을 도망쳐 나와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 클럽을 나온 이들은 생활을 위해 미군과 동거를 선택, 아이를 낳았지만 미군이 떠날 경우 무국적 아이로 자녀를 키워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재 도내 기지촌을 중심으로 무국적 아이들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한국에서 무국적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불법이지만 자녀를 가족들이 있는 본국으로 보내려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직접 아이를 본국에 데려다줄 수 없기 때문에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1천만원이 넘는 비용을 주고 브로커를 이용한다. 브로커들은 호적에 아이를 올린 뒤 자신의 아이인 것처럼 속여 출국심사를 통과하는 방식으로, 이른바 '아기무역'을 벌이고 있다. 특히 베트남은 본인 아이가 아닐 경우 입국 자체를 금지하는 등 자녀를 본국으로 보내는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에 브로커를 통해 보내고 있다. 실제로 취재진이 만난 한 베트남 출신 불법체류자는 브로커에게 800만원을 지불하고 첫째 아이를 본국으로 보냈다. 이 불법체류자는 현재 두 살된 둘째 아이를 본국으로 보내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브로커를 통해 보내려다 경찰에 적발된 사례도 발생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이와 관련된 수사를 벌여 60여명의 브로커를 적발했다. 이들 브로커는 베트남인 모집책(자녀를 본국으로 보낼 불법체류자 부모들을 모집하는 역할)과 국내 알선 브로커, 아이의 출생을 증명해 주는 인호보증 대행 브로커, 가짜호적을 빌려준 한국인 등이 포함된다. 특히 불법체류자 아이를 자신의 호적에 올려주는 한국인의 경우 대부분이 아내가 필리핀, 베트남인인 결혼이주가정인 경우가 많다. 아이를 맡기는 불법체류자 부모가 이들 브로커에게 지불하는 비용은 1천만~1천200만원. 비싼 비용까지 지불했지만 결국 적발돼 불법체류자 부모들은 강제출국 조치를 당했다. 필리핀은 본인의 자녀가 아니더라도 대사관에 아이의 보호자로 신청만 하면 입국이 가능하기 때문에 베트남보다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이들은 대개 합법적인 비자가 있는 주변 친구나 지인들을 통해 아이를 보내는데, 비행기 요금을 대신 지급하는 식의 수수료를 지급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인천공항에서 아이를 데리고 함께 출국하는 외국인을 상대로 아이의 친부모가 아닐 경우 친부모의 현 거주지를 확인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도 브로커를 이용해 아이를 본국에 보내거나 비교적 출국심사가 쉽다고 알려진 배편을 이용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아이를 보내는 과정 속에서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부모가 아닌, 타인의 손에 어린 자녀의 생사를 맡기기 때문에 아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데다, 출입국이나 경찰에 적발될 경우 신분이 노출돼 강제출국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 부모가 무국적 자녀를 본국에 보내려는 데는 아이의 신분을 증명할 길이 없는 한국의 환경에선 도저히 혼자 힘으로 양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지촌성매매여성 인권단체인 두레방 관계자는 "당장 일을 해야 아이 양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데 어린이집, 유치원 등 전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보니 베이비시터와 같은 부가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기껏 힘들게 키웠다고 해도 국적도 없고, 신분 증명도 안 되는 아이가 한국에서 맞닥뜨려야 할 현실이 워낙 암담해 불안하더라도 남의 손에 아이를 본국으로 보내려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설명했다.불법체류 외국인 자녀를 돕는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애초에 정부에서 무국적 아이들에 대해 불법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관심을 가져줬다면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는 불법을 감행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실태조사를 거쳐 무국적 아이들의 기본권을 지켜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재준·최재훈·공지영기자

2014-09-15 윤재준·최재훈·공지영

[국적없는 아이들·2]기지촌 유령신세

유흥업소 일하는 불법체류 여성미군과 동거… 아이만 떠안게돼가난 탓 대사관 출생등록도 못해불법 감수하고 자국으로 보내경기도에 남아있는 옛 기지촌에는 일명 '양공주'라는 이름으로 온갖 풍파를 겪었던 한국 여성들이 떠난 자리를 외국인 여성들이 대신하고 있다. 그들 또한 과거 기지촌 여성과 마찬가지로 돈을 벌기 위해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관련기사 3면추석 연휴기간 새벽, 경기도의 한 기지촌 클럽에서 일하는 외국인 여성들을 만났다.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3명의 외국인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신의 이름이 매니(가명·38)라고 밝힌 여성이 "혼자서 아들을 키우고 있다"고 털어놨다.매니는 지난 2000년 무렵 외국인전용 유흥업소와 호텔 등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E-6비자를 통해 처음 한국으로 건너와 외국인 클럽에서 생활을 하다 불법체류자가 되면서 미군기지촌까지 흘러들게 됐다. 그녀에게는 올해 14살 된 아들이 있다. 한국에서 만난 미군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다. 사실 이들은 계약부부였다.보통 기지촌 여성들과 사는 미군들은 주둔기간까지만 일정 생활비 등을 부담하며 동거한다는 계약을 맺고 있다. 매니의 남편도 그녀의 아들이 세돌을 맞던 해 본국으로 돌아간 뒤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매니는 "이 일대에서 나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국적없는 아이를 키우는 여자들이 100명은 족히 넘는다"고 설명했다.매니의 아들인 포바스(가명·14)는 현재 중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출생 신고조차 돼 있지 않은 '국적없는 아이'다. 불법체류자 신분에다 돈이 없어 자국 대사관을 통해 할 수 있는 출생등록 비용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혼자 아들을 키우느라 낮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밤에는 클럽 등에서 일하며 돈을 벌고 있지만 한달 생활비도 빠듯한 형편이다. 매니는 국적이 없는 포바스가 현재 정체성의 혼란으로 느끼는 불안한 미래에 대해 그저 한 숨만 쉴 뿐이다. 이런 현실 탓에 최근 국내에 불법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여성들은 자녀들의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면서 불법을 감수하고서라도 자녀를 모국으로 보내려 하고 있다. 이로인해 최근 '신(新)아기무역'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윤재준·최재훈·공지영기자▲ 경기도내 기지촌 인근의 한 초등학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동남아계 어린이가 홀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1990년대부터 도내 기지촌을 중심으로 불법체류 외국인 여성들이 유흥업소로 유입되면서 이들이 낳은 아이들이 국적도 가지지 못한 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최재훈기자

2014-09-15 윤재준·최재훈·공지영

[국적없는 아이들·1]불법체류자 2세 인생살이

사라와 안젤라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이 없다. 부모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이들 남매는 한국에서의 출생신고는 꿈도 꾸지 못한다. 국적법 때문이다. 자국인 라이베리아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하는 것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하려면 무엇보다 출생증명서와 같은 여러가지 서류들이 필요한데, 혹여 이 서류들로 인해 출입국사무소에 발각돼 강제출국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사라 남매의 몸에는 아픈 상처가 있다. 이들의 배에는 배꼽 대신 어른 손가락 두마디 만한 혹이 튀어나와 있다. 출생 당시 신분이 탄로날까 두려워 병원조차 가지 못하고 부모가 집에서 탯줄을 잘못 자른 탓이다. 이같은 상처는 비단 사라 남매만의 일이 아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무국적 아이들은 아무리 아파도 쉽게 병원에 가지 못한다. 국적도 없고 출생등록도 안돼, 감기에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게 이들의 현실이다. 의료보험 미적용에 따른 병원비도 문제지만, 병원 진료 접수과정에서 불법 체류 신분이 탄로날까하는 두려움이 더 크다. 사라 부모는 "아이가 안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안젤라는 몸에만 상처가 있는 게 아니다. 국적이 없기 때문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지 못한다. 하루종일 골목어귀를 돌아다니거나 엄마 미용실 주변을 혼자 어슬렁거린다. 행여나 단속이라도 나오면 하루종일 꼼짝없이 집 안에만 갇혀 있어야 한다.일반 어린이집에서는 불법체류자 자녀들을 기피한다. 어린이집에서 받아준다 할지라도 정부의 지원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한달에 40만~50만원이상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이 때문에 안젤라와 같이 교육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무국적 아이들은 유아기간동안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한국말을 못해 결국 정규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낙오되기 일쑤다.다른 지역 초등학교에서 만난 마이클(가명·10)은 그래도 운이 좋은 경우다. 마이클도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어렵게 초등학교에 입학 후 학교에서 진행하는 특별한글수업 때문에 지금은 한국말을 곧잘한다. 무국적 아이들은 자신들을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인이라고 믿고 있다. 어디에서 태어났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마이클이 연신 "한국에서 태어났어요"라고 강조한다. 자신은 분명 한국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선생님은 내가 3살 때 나이지리아에서 왔다고 했지만, 아빠는 분명히 한국에서 날 낳았다고 말했다"며 자신이 한국인임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불법체류자 신분인 마이클의 아버지는 마이클을 입학시키기 위해 학교에 "마이클이 3살 때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국적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마이클이 어렵사리 한국 초·중·고교에서 교육을 받더라도 20세가 넘으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학교는 다녔지만 출생신고조차 돼 있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인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 해도 대학진학도, 변변한 일자리도 잡을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자랐지만 성인이 되면 사라와 안젤라, 마이클은 자신들이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었음을 알게된다.2014년 7월 기준 정부가 추산하고 있는 불법체류 외국인 수는 18만7천여명. 이들 중 19세 이하 아동불법체류자 수는 2천~3천여명에 이른다. 이는 어디까지나 어림잡은 수치일뿐 실상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이주노동자를 돕는 시민사회는 "정부는 불법이라는 이유만으로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며 "불법체류자의 자녀라 할지라도 아동은 어떤 이유에서든 존중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 이영아 아시아의 창 소장도 "유엔에서는 아동에 대해 등록될 수 있는 것 자체가 권리라고 이야기한다. 즉 그들의 부모가 불법이든 아니든, 아동들은 이 땅에서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출생등록의 권리를 줘야한다"고 설명했다. /윤재준·최재훈·공지영기자

2014-09-14 윤재준·최재훈·공지영

[국적없는 아이들·1]불법체류자 2세로 태어나다

단속 피해 숨어살아야하는 부모출생신고도 못해 서류상 '유령'교육·복지 등 사각지대 내몰려'코리안 드림'에 부풀어 대한민국으로 건너온 해외 이주민, 이들은 꿈을 이뤄 금의환향하기도 하지만 불법 체류자로 전락해 기약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기도 한다.불법체류자들에게 코리안 드림은 그저 악몽일 뿐이다. 이들을 더욱 절망스럽게 하는 것은 자신의 2세들에게 자신과 같은 삶을 물려줘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2세들은 부모의 신분 때문에 국적 취득은 꿈도 꾸지 못한 채 국적도 없이 유령처럼 살아가고 있다. 엄연히 생존해 살아가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경인일보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무국적 아이들의 삶과 현실을 짚어보고 대안을 찾아본다. ┃편집자주경기도내 한 도시. 과거 기지촌으로 화려했던 이곳은 지금 슬럼가로 변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골목마다 검은 피부의 아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이곳에서 검은 피부에 유난히 초롱초롱한 큰 눈, 똘똘하게 생긴 사라(가명)를 만났다. 11개월 된 사라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해 한글과 영문 간판이 뒤죽박죽 내걸린 상가 틈새의 비좁고 지저분한 거리를 맨발로 아장아장 걸어다녔다. ┃관련기사 3면골목엔 사라 외에도 서너명의 아프리카와 동남아계 아이들이 더 눈에 띄었다.가까이 다가서려 하자 아이들은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더니 재빠르게 어둑한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사라는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다. 사라의 누나인 안젤라(가명·5) 역시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이들은 그 어떤 서류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분관계를 증명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유령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사라의 엄마는 '코리안 드림'을 안고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건너온 이주민이다. 현재 그녀는 이미 비자 기간이 만료돼 당국의 눈길을 피해다녀야 하는 불법 체류자 신세다. 나이지리아 출신인 남편도 같은 처지로 몇년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동네 미용실에서 보조일을 하며 받는 돈으로 이들 네 식구는 힘들게 살고 있다.또 다른 지역에서 만난 마이클(가명·10)은 취재진을 만나자 수차례 자신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자신이 한국인임을 강조하는 듯했다. 하지만 마이클 역시 한국에선 존재하지 않는 무국적자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부모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이다.이처럼 국적없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2천~3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마저도 정확한 수치가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 아이들에 대한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불법이라는 미명하에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이들은 20세를 넘어 성인으로 성장하고 있고 교육과 취업의 한계에 봉착하며 우리 사회의 잠재적인 불안요소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윤재준·최재훈·공지영기자▲ '캄캄한 삶'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내 한 옛 기지촌 골목. 슬럼가로 변한 이 동네에서 사라와 안젤라(가명)가 이웃 주민에 안긴 채 골목길을 걸어 나오고 있다. 이곳에서는 이들과 같은 흑인 어린이들과 동남아계 어린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아이들 대부분이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을 갖지 못한 채 유령처럼 살고 있다. /최재훈기자

2014-09-14 윤재준·최재훈·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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