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신공

 

[경인신공]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역사적 아픔 품은 문수산성

병자호란 거친후 방어체제 강화·축성병인양요때 프랑스 군과 전투로 훼손오늘은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쥐고 있던 1866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가보려 합니다. 그 해는 프랑스가 강화도를 침입해 소동을 일으킨 병인양요가 발생했던 때였지요. 김포시에서 염하(강화해협)를 건너 강화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강화대교를 건너야 합니다. 오늘은 강화대교를 건너기 직전 오른편에 위치한 문수산성을 돌아보려 합니다. 문수산성은 염하를 지나는 배들과 강화도를 드나드는 사람들, 그리고 서울로 이어진 물길을 감시하듯 내려다볼 수 있는 문수산 자락에 지어진 산성이지요. 문수산성은 염하 건너의 강화 갑곶진 소속의 돈대들과 함께 염하와 조강 일대를 지켜 온 산성으로써 조선 숙종 20년(1694)에 둘레 2.4㎞의 규모로 건축됐답니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 효종을 거쳐 숙종에 이르기까지 60여 년 동안 구축해 온 강화도 주변의 해안방어 체제를 한층 더 강화하는 축성이었지요. <숙종실록>을 들춰보면 숙종 재위 초기부터 2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문수산성 축성에 대한 신하들의 건의와 논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어요.『또 통진의 문수산은 강도(강화도)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데, 병자년에 적이 문수산에 쳐들어와서 장선을 끌고 내려왔는데도 우리 군사들은 이를 알지 못하였기에 전쟁에 졌습니다. 만약 조그마한 성을 문수산에 쌓아서 웅거하여 지킨다면 적이 오고 가는 것을 피리를 불고, 기를 휘둘러 통지할 수가 있습니다.』순조 12년(1812)에 고쳐 쌓은 문수산성은 약 6km에 이르렀는데 현재는 약 4km의 성곽만 남아있고 복원된 남문, 북문, 그리고 산 정상의 장대 등이 옛 모습을 갖추고 있답니다. 아직 복원되지 못한 서문은 파괴된 성곽에 이어져 있었을 것인데 전문가들은 북문과 남문의 중간 지점인 갑곶나루 근처의 염하에 접한 평지에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문수산성은 왜 파괴됐던 것일까요? 바로 병인양요 당시 이곳에서 일어났던 프랑스군과의 전투 때문이었답니다. 병인양요 발생 직전인 그 해 봄, 프랑스 선교사 9명과 수 천 명의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한 병인박해가 일어났답니다. 이를 이유로 그 해 8월, 프랑스 로즈 제독이 이끄는 함대가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까지 들어와 정찰을 하고서 되돌아갔지요. 그 후 조선 정부가 강화도의 해안 경계를 더 강화했지만 증강된 함대로 9월 8일에 다시 침입한 프랑스군은 강화성을 점령했답니다. 열흘이 지난 9월 18일에는 조선군이 방어하고 있던 염하 건너편의 문수산성을 공격해왔지요. 그 때 문수산성을 지키고 있던 초관 한성근의 부대가 프랑스군과 맞서 싸웠답니다. 병인양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지요. 그 전투에서 한성근의 부대는 프랑스군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했지만 무기와 병력에 밀려 결국 후퇴하고 말았답니다. 피해를 입은 프랑스군도 오래 성내에 머무르지 않고 남문의 문루와 그 주변의 가옥들을 불사른 후 강화도로 철수했답니다. 그렇게 전투를 치르는 동안 해안 쪽의 성곽과 서문이 파괴되었던 것이지요.문수산성 성곽을 따라 문수산을 오르다보면 강화대교 옆으로 갑곶나루 선착장이 멀리 눈에 들어옵니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을 피해 항전을 다짐하며 강화도로 피난했던 고종, 정묘호란 때 후금군의 침략에 몸을 피했던 인조, 병자호란 때 피난했다가 청군에게 잡혀 나오던 봉림대군이 건넜던 나루였지요. 또 정상이 가까워지면 임진강과 한강이 하나의 물줄기로 만나는 조강 뒤로 북한 개풍군 땅도 눈에 들어와 분단의 현실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병자년의 아픔, 즉 병자호란의 패배를 다시 겪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축성됐던 산성, 그 문수산성에서는 역사 속 여러 아픈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동시에 그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함께 문수산성을 처음 축성하고자 했던 선조들이 주는 교훈을 되새겨 봅니다. /김효중 부흥고 교사※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문수산성 북문. /부흥고 제공

2017-07-17 경인일보

[경인신공]놀면서 배우는 창의융합교실-창의성 키우는 관찰 탐구 활동

특정대상에 대해 오랜 시간 깊게 생각그림·글·음악·수집 등 다양하게 발현21세기에 접어들면서 미래 사회 핵심 역량을 키우기 위한 저마다의 여러 가지 교육적 방법론이 유행처럼 번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학교 현장과 학부모들은 빈번하게 바뀌는 교육과정에 혼란과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신장할 수 있는 변하지 않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기본으로 돌아가면 우리 학생들의 창의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탐구 활동, 바로 관찰 활동이다. 관찰 활동은 사물과 현상, 자연에 대해 주의 깊게 보고, 살피며, 생각하는 과학과의 기초 탐구 활동 방법이다. 이러한 관찰 활동은 시대에 따라 대두되는 그 어떤 화려한 교육적 방법론보다도 사고력의 폭과 깊이를 넓고 깊게 신장시켜줄 수 있다. 그런데 그냥 마냥 관찰하고 보는 것으로 창의성이 배양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의 한 구절에 이런 말이 있다.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천 번, 만 번을 봐도 유심히 보고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냥 보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지나친 가로수, 자동차, 스치는 사람들은 관심과 열정이 없으므로 관찰한 것이 아니다. 의미있는 관찰 활동은 목적을 갖고 오랜 시간 깊이 있게 열정적으로 행해질 때 진정한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그렇다면 학교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창의성 신장을 위한 의미 있는 관찰 활동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 몇 가지 있는데 간략히 소개해보기로 하겠다. 일찍이 피카소는 어릴적 비둘기 발만 반복해서 그렸는데 한 가지 대상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탐구해 자세히 그리는 과정만을 거쳐 열다섯이 됐을 때는 사람의 얼굴과 몸체까지도 완벽하게 그릴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사물과 현상에 대해 깊이 이해하며 나아가 추상화할 수 있는 직관력 및 창조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렇듯 오랫동안 살펴보고 자세히 그려보는 활동은 창의성 신장에 굉장히 유용하다. 두 번째로 학생들이 본 장면을 글로 자세히 표현해보는 방법이다. 존 러킨스라는 영국의 시인은 '네가 창의적이 되고 싶다면 말로 그림을 그려라'라고 했다고 한다. 사진이나 영상, 직접 체험한 장면들을 활용해 자세히 글로 적어보는 활동은 표현력과 논리적 사고력을 신장시켜 창의성을 키워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세 번째로는 음악 감상이다. 최대한 다양한 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들으며 사용된 악기 소리를 청력으로 관찰하는 감상 활동은 학생의 융합적 사고 능력 신장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집 활동이다. 흔한 우표, 동전, 화폐에서부터 낙엽, 병 뚜껑, 돌, 껌 종이와 소리, 공기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수집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학생들이 관심이 있는 것을 모으고 살펴보고 찾아보는 일련의 과정은 관찰력, 과제집착력과 창의성 및 나아가 측정과 분류 등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관찰 활동이다.아이의 창의성은 타고날 수도 있고 어느 순간 하루 아침에 발현될 수도 있다. 하지만 창의성은 관심과 열정이기도 하다. 세상의 사물과 현상, 자연을 꾸준히 살펴보는 관찰 활동이야말로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방법이며 모든 기술과 진보의 근본이 되는 인문학이다. 당장 오늘부터 한 가지 물건을 수집해보자. /이세기 삼죽초 교사※위 창의융합교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7-07-17 경인일보

[경인신공]박혜연의 함께 자라는 부모-아이 사춘기 양육 태도

부모세대보다 신체적발달 더빨라뇌 성장과 균형 무너져 혼란 심화갑작스런 변화 '수용적 자세' 중요'중2병'. 중학교 2학년 나이 또래의 사춘기 청소년들이 흔히 보여주는 심리·정서적 상태와 그로 인한 행동을 빗댄 표현으로 지난 1999년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져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이후 한국에서는 북한이 남침을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중2가 무서워서'라는 우스개가 유행할 만큼 중2병이 사회적 관심사로 주목받고 있다. 그만큼 어른들은 현재 사춘기 아이들의 모습을 '이상하고 낯설다'고 여긴다. 부모들은 요즘 아이들의 사춘기 증상이 자신들이 겪은 사춘기와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점에 당황해한다. 왜 아이들의 사춘기는 부모인 우리와 같지 않은 것일까? 지금 아이들의 성장속도는 부모 세대보다 최소 2~3년은 빠르다. 신체발달이 빨라졌다는 것은 부모와 아이들의 사춘기를 비교할 수 있는 결정적 조건이다. 부모세대는 뇌의 발달과 신체의 발달이 조화를 이루었으나, 우리 아이들은 신체발달이 뇌의 발달에 비해 앞선다는 것이다. 식습관, 환경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한 빠른 신체발달과 성호르몬 분비는 아이들의 2차 성징을 앞당기며 생식기능을 완성해 성적 기능을 시작하는 시기 또한 부모세대보다는 훨씬 빠르다. 이때 아이들의 체내에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 등의 호르몬은 아이 신경계에도 작용해 우울과 불안, 무기력, 적대감, 우월감 등 감정을 유발시킨다. 부모나 어른에 대한 간섭과 구속을 싫어하고 자아의식이 높아지며 감정기복이 심해지는 이유다. 특히 아직 미완성중인 청소년의 뇌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대대적인 전두엽의 '리모델링'에 들어간다. 이 시기는 뇌세포 연결망이 과잉 생산되고 뉴런과 시냅스의 빠른 연결이 일어나는 등 성인이 되기 위해 뇌가 확장을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도 머릿속이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우며 다면적 사고를 어려워한다. 공사 중인 뇌는 이전보다 더 많은 수면이 필요해 청소년기 밤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수면 특징을 갖게 된다. 또한 이 시기 아이들은 또래친구와의 관계와 소속감에 대한 욕구가 커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들만의 문화를 행한다. 어른들 눈에는 사춘기 아이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것이 부정적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또래관계가 매우 중요한 삶의 부분이며 그 속에서 소속감과 유대감을 갖고 사회성을 배운다. 이처럼 사고체계가 형성되는 속도에 비해 신체발달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우리 아이들의 사춘기는 부모세대보다 더 힘들다.부모가 자신의 사춘기 경험을 기준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판단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이유이다. 사춘기 아이들의 행동이 부모입장에서는 종잡을 수 없고 부족해보이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 시기 부모의 양육태도는 사춘기에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 성향을 긍정적으로 바꿔내며 조화로운 어른으로 성장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는 이 시기를 '피하고 싶은 시기' '힘든 시기'라는 인식보다는 건강한 어른이 되기 위한 발달단계이며 성장을 위한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으로 좀 더 수용적인 양육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나타날 감정의 변화, 특성 등을 인정하고 하나씩 나누면서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지나친 간섭과 방해를 조심해야 한다. 이런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는 자신을 존중할 줄 알고 상대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사춘기를 맞아 혼란스러운 아이에게 부모가 언제나 네 편이 되어줄 것이며, 도움이 필요할 때 기꺼이 손 내밀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한다. 이것이 사춘기 아이의 행동을 평가하는 일보다 더 소중하고 필요한 일이다. 아이의 사춘기를 맞이하는 부모는 이 시기가 자신의 양육태도를 재점검하고 시험하는 때임을 기억해야한다. /인천시교육청 학부모교육지원전문가※위 함께 자라는 부모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7-07-17 경인일보

[경인신공]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군사용 통신제도 '봉홧불'

고려·조선시대 산봉우리나 높은 곳 굴뚝 설치적 출몰때 '두 개'등 봉홧불 개수로 상황 전해날씨 따라 관측 안돼 중앙까지 도달 못하기도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있었던 군사용 통신 제도를 소개합니다. 지금은 전화나 인터넷으로 소식을 전하지만 전근대 시대에는 사람이 직접 소식을 전하든가, 비둘기 같은 훈련된 동물을 이용해서 소식을 전했습니다. 특히 사람이 직접 말을 타고 달려가 소식이나 문서를 전하는 제도를 '파발(擺撥)'이라고 하고, 파발 일을 하는 사람은 파발꾼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파발은 아무래도 사람이 직접 움직이다보니 며칠씩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이후에나 생깁니다.한편 더 오래전부터 더 빠른 군사용 통신 수단이 있었는데 그 방법은 연기와 불꽃을 통해 빠르게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봉수제(烽燧制)라고 부르는 이 제도는 '봉(烽)'은 불꽃을 말하고 '수(燧)'는 연기를 뜻합니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꽃으로 소식을 전하던 제도입니다. 미리 약속을 정해서 봉홧불의 개수로 변방의 군사적인 위급을 중앙 정부에 전달했습니다. 조선시대 봉수대는 다섯 개의 커다란 굴뚝을 중심으로 운영됐습니다. 평상시에는 한 개, 적이 국경 밖에 출몰하면 두 개, 방어선 가까이 오면 세 개, 국경을 넘어오면 네 개, 마지막으로 전투가 벌어지면 다섯 개의 봉수를 올려 신속하게 근처의 군영과 중앙에 현장의 상황을 알렸습니다. 봉수대는 높은 곳에 설치합니다. 그리고 봉수대 사이가 서로 육안으로 관측 가능한 거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 도착점은 서울 목멱산, 지금의 남산입니다. 지금도 남산 꼭대기에는 봉수대에 5개의 봉화대가 복원되어 있습니다.전국에는 5개의 봉수 노선이 있었는데, 제1로는 함경도 경흥에서 출발해 강원과 경기도를 거쳐 오고, 제2로는 경상도 동래에서 경북, 충북, 경기도를 거쳐 오고, 제3로는 평안도 압록강가에서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를 거치는 노선입니다. 제4로는 평안도 의주에서 서해안을 따라 내려오는 노선이고, 제5로는 전남 순천을 출발해 전라도 해안을 거쳐 충남, 경기도 및 강화도를 거쳐 중앙으로 연결되는 노선입니다. 봉화대는 전국에 약 610개 정도 있었습니다. 제주도에도 해안을 따라 63개의 봉화를 피울 수 있는 시설이 있었는데 이것을 연대(煙臺)라고 하지요. 제주도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는 이 봉화대 흔적이 꽤 남아 있어요.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봉수제도가 당시에는 그렇게 효용적이지 못했다고 하네요. 실제 변방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봉홧불이 서울 남산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날씨에 따라 관측이 안 되어 중간에 봉화가 끊어지거나 하루 24시간 관측하는 봉군(烽軍)이 근무를 게을리할 경우 변방의 위급한 소식은 중앙까지 도달하지 못합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큰 전쟁 때 대부분이 남산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말았답니다. 물론 나중에 관련자들은 무거운 처벌을 받았겠지요. 그래서 봉군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은 '신량역천(身良役賤)'이라고 신분은 양인인데 역할은 천민이라고 기피해서 자식에게까지 봉군의 일을 세습시키지 않으려고 했답니다. 특히 겨울에 높은 산봉우리에서 근무해야하는 봉수꾼들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수원 화성에도 봉홧불을 올리던 봉돈이 있어요. 안산 흥천대의 봉수대와 용인 석성산의 봉수대를 연결하던 화성 봉돈은 지금도 시설이 완벽하게 복원돼서, 다른 지역의 산꼭대기에 있는 봉화대와는 다르게 봉홧불을 올리던 흔적을 가까이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답니다. /김찬수 동원고 교사※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수원화성봉돈. /동원고 제공

2017-07-10 경인일보

[경인신공]놀면서 배우는 창의융합교실-고부가가치 산업 '캐릭터' 시장

게임·장난감 '무한 활용' 시장규모 10조 넘어'나만의 작품' 창작… 공모전 응모 좋은 경험최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교육 관련 전람회장은 온통 캐릭터로 가득했다. 안내하는 사람도 캐릭터 복장을 하고 모든 상품에는 어김없이 캐릭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캐릭터 산업은 게임이나 영화 뿐만 아니라 의상, 장난감, 동화, 교구, 식품, 자동차 등 모든 산업에 걸쳐 부가가치를 넓히고 있다. 세계 최초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검은고양이 펠릭스(1919년)다. 이후 뽀빠이(1919)를 비롯해 미키마우스(1928), 백설공주(1934), 슈퍼맨(1938), 피노키오(1940) 등 1930~1940년대 탄생한 캐릭터들이 아직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장악하고 있던 캐릭터 시장은 1980년대 컴퓨터 게임과 만화 산업이 폭발적으로 확장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수퍼마리오(1981), 손오공(1984), 심슨(1987), 세일러문(1991), 에반게리온(1995) 등 게임과 만화 캐릭터들이 인기를 끌면서 미국 중심의 캐릭터 시장에 일본이 새롭게 강자로 떠올랐다. 이때부터 캐릭터 시장은 청소년층을 넘어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추억이 되며 어른 대상 피규어 시장도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우리나라 캐릭터 상품의 대표 주자는 아기공룡 둘리(1983)와 '뽀통령' 뽀로로(2003)일 것이다. 이후 코코몽(2008), 꼬마버스 타요(2009), 변신자동차 또봇(2010), 로보카 폴리(2011), 라바(2013), 카봇, 콩순이, 터닝메카드(이상 2014년), 소피루비(2016) 등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계보를 이어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의 '2016년 캐릭터 산업백서'에 따르면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로 2012년 카카오톡의 이모티콘 캐릭터로 등장한 '카카오프렌즈'가 뽀로로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21세기 들어서면서 캐릭터 산업의 흐름은 아예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영화, 공공정책 등의 기획 단계부터 캐릭터의 상품화를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또 스마트폰과 SNS가 상용화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모바일 이모티콘이 캐릭터 상품화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IoT(사물인터넷) 상품에 자체 캐릭터나 유명 캐릭터를 접목시킨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공공기관, 지자체, 테마 공원의 마스코트도 모두 캐릭터 상품화하는 전략으로 추진되고 있다.콘진원에 따르면 국내 캐릭터 시장 규모는 2015년 기준 10조800억원을 훨씬 넘어선다. 이렇게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떠오른 캐릭터 관련 교육은 이제 학교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창의융합교육이 되고 있다. 이에 요즘 교사들 사이에서 비주얼싱킹(visual thinking, 시각적 생각) 수업이 널리 확산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기회가 된다면 나만의 캐릭터를 작품화해 관련 공모전에 응모해보는 것도 매우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청소년 대상 캐릭터 관련 대회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최, 주관하는 '한국청소년디자인전람회'의 시각디자인 분야가 있다. 올해 제24회 한국청소년디자인전의 초·중학생 분야는 작품 접수와 심사가 8~9월에 진행되니 여름방학 동안 캐릭터 세상에 푹 빠져보는 피서법도 권해 본다. /이철규 수원 신풍초 교감※위 창의융합교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7-07-10 경인일보

[경인신공]이미숙의 독서정담-부모가 죽어야 아이가 산다

김혜정 '잘 먹고 있나요?' 홀로설 때 진짜 행복TV 프로그램에 먹방이 넘쳐난다. SNS에도 음식 사진이 넘친다. 우리 시대의 욕망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된 것으로 보인다. 부모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일하고, 아이들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공부하는 시대. 이미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잘 먹고 살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부모들이 넘쳐난다.부모가 자기 자식이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걱정을 넘어 아이들의 삶을 억압하는 상황에서 김혜정의 '잘 먹고 있나요?'를 읽어 볼만하다.이 책의 주인공인 열여덟 살 재규와 누나 재연 남매의 고민도 물론 진로이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부모의 존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데 비하여, 두 남매는 철저하게 자신의 선택을 따른다. 그 이유는 부모님이 모두 안 계시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병으로 돌아가셨고, 식당을 하면서 남매를 돌보던 엄마마저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두 남매의 삶은 달라진다. 엄마가 살아 있었을 때에는 엄마의 욕망에 맞춰 살던 아이들이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고시원에서 재수, 삼수를 하던 누나 재연은 대학을 포기하고 행복식당의 주인으로 삶을 시작한다. 유명한 음식점들을 탐방하기도 하고, 새로운 레시피도 만들어 낸다. 행복식당 홍보 방법으로 TV광고를 하려다 사기꾼을 만나 거금을 날린 뒤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눕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난다. 겨우 스무 살을 넘겼을 뿐인데 여느 가장 못지않다.초등학교 때 미술대회에 나가 상을 받아 오던 날, 엄마 얼굴이 환했던 것 때문에 그림을 계속 그렸던 착한 아들 재규도 변한다. "내가 미술을 그만두지 못하는 건, 엄마 때문이 아니다.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계속 학원에 다닌 거다. 엄마의 영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그림이 좋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재규는 고아가 된 후 이런 탐색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꿈을 찾는다. 미술을 계속하는 결론은 같지만, 재규가 훨씬 더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것은 전과 다르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영웅은 부모로부터 버려진 고아들이다. 부모의 부재가 한 아이의 건강한 탄생이 된다는 시사점이 들어 있다. 이것은 옛이야기뿐만 아니라 오늘날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아이들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문제는 비틀어진 부모의 욕망에서 시작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의 기대와 관심은 아이의 성장에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면서 부모의 그 기대가 성장의 족쇄가 되는 것을 많이 본다. 그러기에 훌륭한 자녀 교육은 자녀에 대한 교육이 아니다. 본능과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부모 교육이 우선이다. 우리가 부모로 처음부터 태어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아이에게 아이의 삶을 돌려 주기 위해서는 부모가 꾸준히 배워하는 것이 우선이다. 제 4차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한 시대이다. 자녀의 학교는 물론 지역사회 곳곳에서 좋은 강좌를 찾아 부모가 공부했으면 한다. 부모도 행복하고 아이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멀리 있지 않아 다행이다. 우리의 소중한 아이의 인생에 부모가 최대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인천 선학중학교 교장※위 독서정담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7-07-10 경인일보

[경인신공]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아픈 역사라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남한 최대 '군자염전' 있던 시흥 옥구공원민족말살정책 추진 시설 세우고 참배시켜청산돼야 할 잔재지만 '우리 이야기' 품어시흥시 옥구공원 한적한 곳에는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신사터가 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휴식을 위해 찾는 이 공원에 아직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다니 무슨 일일까요?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군자염전이 있던 곳입니다. 이 염전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조성돼 남한 최대의 염전이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소금 생산은 주로 바닷물을 끓여서 생산했는데, 일본에 의해 염전 기술이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천일염이 생산된 것입니다. 일제는 우리나라 서, 남해안 일대 갯벌에 염전을 개발해 본격적으로 천일염을 생산하는데, 가장 큰 염전이 바로 이 군자염전이었습니다. 바로 근처에 인천항이 있다는 것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이렇게 조성된 염전에는 일본에서 온 염전 기술자들이 머물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옥구도에 일본인 염전 기술자들이 머무는 숙소를 지었습니다. 이곳을 얼마 전까지 '관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일본인 기술자들의 자녀들이 이곳에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교육문제가 발생하자 1930년 이곳에 학교를 세웠는데, 그 학교가 바로 '군자심상소학교'였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일본인 학생들을 위해 세웠던 것이죠. 그런데 당시 이곳 염전에서 일하던 대부분의 염부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자녀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 학생들이 다닐 학교가 없자 지역의 유지들이 나서서 학교를 세우게 되는데, 당시 신문 기사를 살펴볼까요?『시흥군 군자면 옥구도에는 조선인이 125호, 일본인이 21호가 거주한다. 그런데 일본인은 학생이 불과 10명인데 번듯한 심상소학교를 설립하고 있어도, 조선인은 다수의 학생이 있으나 통학할 학교가 없다. 이에 분발한 유지 정춘근, 박상운 외에 여러 사람들이 우선 사숙을 설치하고, 김준식씨를 교사로 가르치게 하여 다수 학생의 성적이 양호하였다. 여기에 더욱 힘을 얻어 작년(1932년) 10월에는 사숙제를 고쳐 오이도학술강습소라하고 당국에 신청하기로 하는 동시에 강습소 10칸까지 신축하던 중 날씨가 추워 준공을 못하였는데, 24일에 정춘근, 박상운 외 여러 사람이 협의하여 강습소 집도 속히 준공할뿐더러 강습소 내부도 충실하게 할 계획을 세웠다하여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한다. 동아일보 1931년 3월 3일』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어렵게 학교를 세워서 많은 우리나라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게 됐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전국 곳곳에 많은 신사가 세워지는데 옥구도의 작은 이 염전 마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일제는 신사를 세워 일제에 충실한 황국 신민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곳 염전에서 일하셨던 한 할아버지는 "신사 참배 하는 것 봤지, 손을 붙잡고 그냥 묵념하는 거지 뭐, 무슨 기념일 같은 때 그날 대개 했구. 일본 본토 기념일 날에 여기두 같이 했지. 신사라구 이렇게 막대기로 맨들어 놨어, 조그맣게 생긴 집이 있었지, 나무로 만든 일본식 집"이라고 생생하게 당시의 모습을 증언해 주셨습니다. 당시 염전에서 일하던 염부들과 우리나라 학생들도 이곳에 와서 참배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나서 청산돼야 할 일제의 잔재가 아직까지 이렇게 남아 있다니 참 놀랍죠?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남아있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라도 남아있으니 당시의 실상을 알 수가 있으니 말입니다. 자랑스러운 것만이 우리 역사가 아니고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역사도 역사입니다. /신대광 원일중 수석교사※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옥구 신사터 /원일중 제공

2017-07-03 경인일보

[경인신공]놀면서 배우는 창의융합교실-새로운 과학적 탐구 시도 데이터마이닝

온라인 가상화폐 비트코인 채굴 작업 등가설 없이 정보수집… 예상밖 결과 기대의사결정 과정서 결실 활용안 고민 필요비트코인은 2009년 가상 인물 나카모토 사토시(2016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암호학자 크레이그 라이트라고 밝혀짐)가 만든 세계 최초의 암호 화폐이며 세계최초의 비중앙집권적인 금융시스템이다. 기존의 지폐나 동전과는 달리 형태가 없는 온라인 가상화폐로,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지갑' 프로그램을 통해 인터넷뱅킹으로 계좌이체를 하듯 비트코인을 주고받을 수 있다. 또한 인터넷 환전사이트를 이용해 비트코인을 구매하거나 현금화 할 수 있다.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으나 이번에는 '채굴(mining)'에 대해 알아본다.비트코인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현금을 주고 사는 방법이다. 그리고 채굴을 하는 것이다. 채굴, 채광, 광업이라는 뜻의 마이닝(mining)은 본래 광산에서 광석을 캐내는 일이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의 채굴이란 어떤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얻어내는 것을 이야기한다. 비트코인의 경우 처음 설계가 될 때부터 2천100만개 정도로 양이 정해져 있었으며 복잡한 연산활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을 때 비트코인을 획득하게 된다. 최초 채굴은 비교적 간단한 연산으로 비트코인을 얻을 수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있는 비트코인의 양이 적고 이것을 얻으려는 경쟁자들이 크게 늘어 상당한 성능의 컴퓨터를 이용, 한 달 이상 연산문제를 풀어야 하나를 겨우 얻을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해 졌다.인터넷상에서 마이닝의 가장 큰 개념으로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을 이야기 할 수 있다. 데이터마이닝은 현재 존재하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 속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는 과정이나 기술이라 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정보도 찾을 수 있다. 마치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는 과정이 지하에 묻혀있는 보석을 찾아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데이터마이닝의 창시자인 라케시 아그라왈(Rakesh Agrawal) 박사가 데이터마이닝과 관련해 주목하는 분야는 교육이다. 차량 운전자와 승객을 연결해 주는 서비스 '우버'처럼 여러 방면의 강사들을 모아 인터넷을 통해 교육수요자들을 연결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자기에게 꼭 필요한 지식을 선별해 공부하는 등 데이터마이닝은 교육과 관련해 다양한 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과학에서는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데이터마이닝은 가설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가설이 가능할까를 고민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해 정보를 수집한다. 이러한 방법은 과학적 방법에 새로운 시도를 가져올 수 있다. 데이터 마이닝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찾아내는 과정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통해 얻은 정보를 자신의 의사결정에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훌륭한 보석이라도 가공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그 보석은 암석에 불과하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채굴을 위해 힘을 기울이지만 채굴한 보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는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채굴도 중요하지만 채굴 후 어떤 보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안달 효덕초 교사※위 창의융합교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7-07-03 경인일보

[경인신공]이상훈의 독서정담-각자도생이 아닌 공존공생의 책읽기

타인과의 소통·공유로 다양한 관점 접해극단적 해석 경계하고 자기생각은 명료화경쟁 대신 상생 익히는 최선의 교육 활동바야흐로 독서가 스펙이 되는 시대다. 독서활동이 대학입시를 위해 학생부에 기록되어야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며 사교육시장에서는 독서포트폴리오를 만들어주고 학원선생님이 강의하고 학생들은 받아 적는 희한한 독서토론 광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직급별로 필독도서를 선정하여 이를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기업도 생겨났다. 한때 기득권에 균열을 내는 전복의 무기로도 기능했던 책이 오늘 한국 사회에선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되어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는 도구로 추락한 처지다. "책을 읽은 뒤 최악의 독자가 되지 않도록 하라. 최악의 독자라는 것은 약탈을 일삼는 도적과 같다. 결국 그들은 무엇인가 값나가는 것은 없는지 혈안이 되어 책의 이곳저곳을 적당히 훑다가 이윽고 책 속에서 자기 상황에 맞는 것, 지금 자신이 써먹을 수 있는 것, 도움이 될 법한 도구를 끄집어내 훔친다."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는 독서, 지혜를 체득하지 못하고 지식과 정보만을 약탈하는 독서는 죽은 독서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소유의 시대에서 공유의 시대로 가고 있다. 혼자만의 성공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공존을 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지식을 축적하거나 입신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소통의 도구이자 세상을 보는 창의 역할을 하는 책읽기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독서'라는 지극히 내밀한 행위를 과연 타인과 공유할 수 있을까?사실, 혼자 읽어도 좋지만 함께 읽으면 더 좋은 것이 책이다. 함께 읽기는 '나'를 위한 독서를 넘어 '우리', '공동체'로 사고를 확장하는 좋은 독서방법이다. 책은 안으로 접혀 생각을 만들고, 밖으로 펼쳐져 대화를 만든다. 함께 읽고, 책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골방의 독서에서 벗어나 광장의 독서로 우리를 이끌어 주며 두렵고 황량한 시대를 함께 손잡고 건너는 방법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해준다.'함께 읽기', '같이 읽기'는 개인적인 지식 습득이나 지혜의 체화에서 나아가 공동체적 삶을 함께 고민하고 모색하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독서방법이다.우리는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속에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다섯 명과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 다섯 갈래의 삶과 만나고 그 갈래들 모두가 내가 가지 않은 길로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이러한 독서모임은 극단적인 주관적 해석에의 심취를 제어하기도 하고 다양한 관점의 확인을 통해 자신을 더 풍부하게 만들기도 하며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말함으로써 명료성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혼자 읽는 고단함과 나태함을 격려라는 품앗이를 통해 단단한 독서동기를 만들어 준다.심훈의 '상록수'가 증언하듯, 사회운동의 모든 뿌리는 '독서회'가 아니었던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만들어보자. 그런 모임들이 학습공동체이고 독서동아리이고 독서공동체이다.학교에서 교육활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함께 읽기'는 아이들에게 경쟁 대신 공존을 배우게 하고 교육공동체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훌륭한 활동이 된다. 독서가 익숙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책을 읽어 보려고 한다면 주변으로 눈을 돌려 독서모임을 찾아보자. 모임을 통해서 높다란 문턱을 뛰어넘고 읽기를 통해서 침체된 내면을 일으키며, 이야기를 통해 서로의 벽을 무너뜨리려는 많은 책읽기 공동체들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함께 읽기는 책으로 자신을 바꾸고 가족을 바꾸고, 지역을 바꾸는 아름다운 혁명이다. / 인천시남부교육지원청 장학사※위 독서정담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7-07-03 경인일보

[경인신공]이성희의 독서정담-우리 모두의 김지영을 위하여

조남주作 '82년생 김지영' 양성평등 함께 공유를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꿈을 묻는다. 보통 꿈을 물으면 직업으로 답이 온다. 30명이 한 반이면 대개 꿈은 10개 안팎으로 나온다. 여학생들은 주로 교사, 간호사, 스튜어디스, 은행원, 공무원 등을 꿈이라고 얘기한다. 가끔 현모양처를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 스튜어디스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묻는다. 비행기에서 근무하는 거라면 이왕이면 스튜어디스 말고 비행기 기장을 할 생각은 없느냐고. 아이들의 눈빛이 잠시 흔들린다. 아이들에게 다시 되묻는다. 이 세상에서 남자만 할 수 있는 직업, 여자만 할 수 있는 직업이 있을까? 만약 그런 직업이 있다면 얘기해 달라 한다. 아이들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딱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의 눈빛은 더욱 흔들린다.아이들과 얘기하다 보면 성별에 따른 고정 관념이 있음을 알게 된다. 최근 나타난 것이 아닌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사회적 고정 관념으로, 우리의 일상 생활에 깊숙이 자리한 것들이다. 최근 고정 관념이란 단단한 벽이 조금씩 깨지고 있지만 아직 그 길이 멀기만 한 것도 사실이다. 남녀 간의 생물학적 차이에 의한 성 역할이 세월이 지나면서 고정 관념이 되고, 또 그 고정 관념이 남녀 간의 차이가 아닌 차별로 이어지기도 한다.김지영,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이다. 누구나 주위에 지영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가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실제로 1982년에 태어난 여성들 이름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바로 김지영이라고 한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제목에서부터 많은 것을 얘기해주고 있다. 소설 속 김지영은 현재 우리 나이로 36세의 여성이다. 소설 속 김지영의 삶은, 현실 속 수 많은 김지영의 보편적인 삶이기도 하다.김지영의 유년 시절부터 학창 시절, 회사 생활, 결혼 생활에 이르기까지의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겪었을 익숙한 경험들이다. 그 경험은 여성으로서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차별과 아픔의 기록이다. 김지영이 느껴야 했던 차별과 아픔의 장면과 장면 속에 남성으로서의 나는 가해자이자 방조자의 모습이었다. 너무 아팠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극적 반전을 기대해 본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반전은 없었다. 너무 사실적이다. 그래서 더 아프다.신영복 선생님은 생전에 진정한 독서의 방법으로 서삼독(書三讀)을 강조하셨다. 책은 반드시 세 번 읽어야 하는데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한다 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그 속에서 나를 읽었다. 때론 생각과 실천이 따로 놀았다. 부끄러운 기억이다. 아픔이기도 하다. 다가오는 7월 1일부터 7일까지는 양성평등주간이다. 양성평등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이 성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고 동등한 기회와 권리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변화는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때부터 시작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더 많이 보인다 한다. 사람은 본 만큼 안 만큼, 자신과 주변을 변화시킨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읽었으면 한다. 학생들도 좋고, 직장동료, 부부가 함께 읽어도 좋다. 함께 읽을 수 있어서,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한 책. 82년생 김지영이다.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장학관※위 독서정담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이성희 인천시교육청 장학관

2017-06-26 경인일보

[경인신공]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봉업사지(奉業寺址), 그 안에 담긴 역사

안성 죽산면 '교통의 요지'에 사찰 창건'업적을 받든다' 뜻 태조 초상화 안치도고려쇠락에 폐허로… 5층탑 등만 남아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죽주산성 주변에는 불교 관련 유적과 유물이 많이 분포돼 있다. 이곳은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교통의 요지로 주목받던 곳이었다. 특히 고려시대에 지방 통제의 거점으로 중시된 곳이었다. 원주의 세달사에서 수행하던 궁예가 세상에 대한 뜻을 품고 처음으로 찾은 곳이 죽주(竹州)였다. 죽주(竹州)는 지금의 안성시 죽산면, 일죽면 일대와 용인시 백암면의 일부로 추정되고 있다. 891년 궁예는 초적 출신으로 죽주에 웅거하고 있었던 기훤의 휘하로 들어갔다. 기훤이 죽주에 자리잡은 것이나, 원주에서 출발한 궁예가 죽주로 온 것은 이곳이 갖는 지리적 요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죽주는 동으로는 충주 방면, 서쪽으로는 평택, 남으로는 청주, 북으로는 서울 방향으로 연결되는 등 동서와 남북 교통의 요지에 해당된다. 이 때문에 백제나 고구려가 남쪽으로 진출할 때나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할 때 죽산은 전략적 요충지가 됐다.기훤이 죽주에 자리 잡기 전에 경주에서 지방관으로 파견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박적오(朴赤烏)의 후손들은 죽주 박씨가 돼 이 지역의 세력가 집안으로 성장했다. 944년의 한 기록에 죽주의 박기오(朴奇悟)가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훤 세력은 900년 궁예에 의해 평정됐던 데 반해 죽주 박씨는 계속 세력을 유지해 죽주의 대표적인 집안이 됐던 것이다. 죽산의 대표적 호족인 죽산 박씨가 왕건의 지방 통치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결과, 통일신라 때 개산군(介山郡)이었던 지명도 고려 초에 죽주로 바뀌었다. 고려 초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었던 청주 지역의 호족에 대한 통제나 후백제와의 전투를 지원하기 위한 거점으로 죽주가 중시됐다. 죽주는 남한강과 금강 상류를 연결하는 관문이 됐기 때문이다. 이렇듯 죽주가 고려 정부의 이익을 대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미 신라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화차사'라는 절이 있었던 자리에 새롭게 '봉업사(奉業寺)'가 창건됐다. '업적[業]을 받든다[奉]'는 의미를 담고 있어 창건부터 왕실과 관계가 밀접했을 것으로 생각된다.봉업사는 광종 14년(963)에 대대적으로 중창됐다. 사찰의 규모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태조의 진영(초상화)을 모시는 진전사원의 위상을 갖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 있는 망이산성이 대대적으로 수축됐다. 망이산성은 진천, 음성, 죽산, 이천 등의 주변 지역뿐만 아니라 충주, 청주 지역까지도 통제할 수 있는 곳이다. 광종은 개국공신과 호족 세력을 숙청하면서 봉업사를 확대하는 동시에 망이산성을 수축해 중앙 집권 및 왕권의 강화를 꾀했다. 즉 죽주를 거점으로 삼아 충청 내륙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는 조치였던 것이다. 봉업사지 주변에는 매산리사지, 장명사지, 죽산리사지가 있다. 매산리사지탑지석이 성종 12년(993), 장명사지탑지석이 경종 2년(977)에 제작됐고, 죽산리사지는 건립 연대를 추정할 만한 근거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앞의 두 곳과 비슷한 시기에 들어섰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사찰들은 봉업사와 일정한 관계 속에서 창건됐을 것이며, 고려 왕실이 계속해 죽주 지역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안동까지 피난 갔던 공민왕이 개경으로 돌아가면서 봉업사에서 태조의 진영을 알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려 말기까지 봉업사가 진전사원으로서의 위상이 유지됐음을 알 수 있다.현재 봉업사지에는 6m 높이의 5층탑과 당간지주만이 덩그러니 서 있다. 중요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창건된 봉업사는 고려의 쇠퇴와 더불어 그 의미를 상실했을 것이다. 조선 초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미 폐허가 됐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 그 폐허 위는 농경지로 바뀌어서 사람들의 기억조차 덮어가고 있다. /장연환 효명고 교사※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봉업사지 5층탑과 당간지주. /효명고 제공

2017-06-26 경인일보

[경인신공]놀면서 배우는 창의융합교실-운동 경기 속 과학원리 탐구

포지션별 스터드 개수 달라… 야구공등 첨단기술 담겨숨겨진 융합과학 탐구, 아이들 흥미·사고력에 '효과적'하루에도 몇번씩 교실을 뛰다가 주의를 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달리는 행위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 얼마나 강력한지 느끼곤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달리거나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을 매우 즐거워한다. 이때 운동을 하면서 그 속에 숨겨진 과학적 원리를 탐구해보는 것은 융합적 사고력를 키워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평소 학생 과학 동아리나 교사 융합연구회 운영 등을 통해 운동 경기 속 과학 원리 탐구 방안에 대해 연구, 적용해본 결과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올해는 미국의 육상 선수 짐 하인스(Jim Hines)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100m 남자 육상 경기에서 마의 10초 벽을 깬 지 40년이 되는 해다. 인간의 운동 능력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던 10초의 벽을 깬 짐 하인스 이후 그의 기록(9초 95)은 칼 루이스, 모리스 그린 등에 의해 순서대로 최고 기록이 단축돼왔다. 최근에는 우사인 볼트에 의해 9초 6의 벽이 깨졌는데 육상 경기에서 이렇게 기록이 단축되는 이유는 선수 개인의 능력도 있겠지만 사용하는 육상화 및 육상 경기 용품에 과학 기술이 접목되는 것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선수들의 육상화는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첨단 연구 결과와 기술이 적용되는데 달리기에 적합한 가벼운 재질과 성분, 관절의 움직임과 선수 개개인의 운동 특성에 맞는 맞춤형 육상화를 제작하는 등 스포츠와 공학, 과학기술, 디자인 등이 융합돼 제작된다.이러한 운동 경기 속 융합 과학의 원리는 거의 모든 운동에 숨겨져 있다.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즐기며 과학 원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축구화에 달린 스터드(신발 밑창에 징 모양으로 돌출된 부위)의 크기와 방향, 개수에 따라 포지션별 착용하는 종류가 달라진다. 축구 선수의 회전과 속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축구화 봉제선의 모양과 방향, 무늬에 따라 축구공을 찰 때 반발력과 회전력에 변화를 주며 끈을 매립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디자인된 축구화도 있다. 또한 축구공의 모양과 구조를 살펴보고 모형을 만들어보면서 여러 가지 도형의 구조에 대해 학습하며 수학적 힘을 길러줄 수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축구화, 축구공 속에 담겨있는 원리를 하나씩 탐구해보는 활동은 과학, 수학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을 키워줄 것이다. 축구 종목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수영 경기의 수영복과 오리발, 배드민턴의 라켓과 셔틀콕, 야구의 배트와 야구공, 펜싱복과 보호용구의 재질, 골프공의 딤플 구조, 피겨의 기술 등을 통해 물속 저항과 마찰력, 회전과 탄성, 속력의 변화 및 공기 저항, 디자인, 회전, 관성력, 각운동량 보존 법칙 등 수많은 융합과학의 원리에 대한 탐구 활동이 가능하다.학교와 가정에서 아이들이 평소 즐겨 하는 운동을 통해 과학을 포함한 수학, 예술, 공학, 기술 등의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사고력을 신장시켜줄 수 있는 탐구의 기회를 제공하자. 이를 통해 아이 스스로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습관을 길러준다면 창의성의 핵심 역량인 생각하는 힘은 매우 강해질 것이며 아이들의 삶과 배움이 연결되는 진정한 학습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이세기 안성 삼죽초 교사※위 창의융합교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7-06-26 경인일보

[경인신공]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좌우합작운동 '여운형' 생가

日강점기 한중 오가며 독립운동 앞장해방후 단일정부 추진하다 총탄 맞아정치 논쟁 탓 60여년 지나서야 재평가북한강과 남한강 두 물줄기가 비로소 만나는 곳, 양평군 두물머리를 목전에 둔 남한강변에 우리나라 현대사를 생각해 볼 수 있는 한 시골 마을이 있습니다. 경의중앙선 신원역 철길 근처의 묘골이라는 곳이지요. 그곳에는 독립운동가 여운형이 태어나서 자란 생가 터와 몽양기념관이 있습니다. 기념관은 특이하게도 복원된 여운형의 생가 지하에 지어져 있고 관람 순서는 기념관을 먼저 돌아본 후 생가로 올라가도록 안내돼 있습니다. 기념관 안은 그리 넓은 전시 공간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1886년 출생 이후의 성장 과정, 민족을 위한 여러 활동, 안타까운 죽음을 소개한 전시물은 62년의 삶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입니다.전시장에 소개된 여운형의 일생을 돌아볼까요? 서울 배재학당에서 근대 학문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기 전인 1907년에 생가에 광동학교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쳤고 전국적으로 확산된 국채보상운동을 고향 마을에서도 추진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노비문서를 불태워 집안의 모든 노비들을 해방시킴으로써 평등한 세상에 대한 바람을 실천으로 보여주기도 했었지요.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은 1914년 중국으로 건너가면서부터 본격화됐습니다.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상하이에 있던 그는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던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일제 치하의 우리 민족의 실상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에는 신한청년당의 대표로서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였으며 3·1운동 직후에는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답니다. 국내에서 조선중앙일보 사장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의도적으로 삭제한 사진을 신문에 게재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결국 폐간되고 여운형은 사장직에서 물러나야 했었지요.전시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피묻은 남자의 겉옷 상의가 전시돼있어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1947년 7월 19일에 한 청년이 쏜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날 때 입고 있었던 옷입니다. 총탄이 관통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날의 처참함을 느끼도록 해준답니다. 1945년 광복을 맞을 당시 외국에 머물렀던 김구, 이승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여운형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광복 4개월 후인 1945년 12월, 미군과 소련군이 각각 38선 남쪽과 북쪽에 주둔한 상황에서 미국, 소련, 영국의 외무 장관들은 모스크바에서 우리나라 정부 수립 문제를 두고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회의 결과가 우리나라에 전해지자 사람들은 격렬한 반응을 보였답니다. 소식에 포함된 '신탁통치'라는 말 때문이었지요.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모스크바 회의에서 결정된 절차를 거쳐 임시정부를 수립하도록 해야 한다며 지지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우익 계열은 신탁통치 반대를, 좌익 계열은 모스크바 회의 결정에 대한 지지를 주장했습니다. 이후 회의의 결정대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으나 결렬됐고 이승만이 정읍에서 남한만이라도 정부를 수립하자고 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지요. 여운형은 통일정부 수립에 위기가 닥쳤다고 판단하고 김규식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추진했답니다. 남한에서 좌우합작을 성사시킨 후에 북한과의 연합을 통해 통일 정부를 세우려 한 것이지요. 하지만 좌우합작을 반대하던 정적들로부터 수차례 테러를 당했고 결국 서울 혜화동 로타리에서 두 발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기념관에는 피 묻은 겉옷 상의와 함께 장례식 때 사용한 만장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여운형이 그렇게 바라던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거행될 장례식에 사용될 것이라는 해설사의 설명에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낄 수 있답니다.그가 독립 운동가로서의 활동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된 것은 2008년, 몽양기념관이 문을 연 것은 2011년입니다. 여운형이 서거한 지 올해로 70년이나 됐지만 그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평가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랍니다. 입장이 서로 다른 정치적 논쟁 속에서, 제대로 평가돼야 할 인물과 역사들을 의도적으로 감춰둘 수밖에 없었던 우리 현대사의 안타까운 단면이지요.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변의 몽양기념관에서 70년 전 여운형의 마음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효중 부흥고 교사※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복원된 몽양 여운형의 생가. /부흥고 제공

2017-06-19 경인일보

[경인신공]박혜연의 함께 자라는 부모-능력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물

경쟁에서 뒤처진 아이들 스스로 의심'왜 못하냐'보다 '소중한 사람' 격려를얼마 전 나에게 상담을 청한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은 자신의 심리적 불안을 호소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학교 친구들을 보면 공부를 매우 잘하는 애들이 있고, 어떤 애들은 미술이나 음악에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진로가 명확한 것 같고, 또 어떤 애는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아 대인관계가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잘하는 것이 없고, 특별한 능력도 없어요. 그래서 항상 다른 애들보다 뒤떨어지고 있단 생각이 저를 힘들게 해요".현 학교와 사회에서 '능력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능력 있는 학생이란 수학, 과학, 영어 등 주요 과목에서 매우 높은 성적을 보이거나 공부를 잘하면서 다른 분야에서도 매우 잘하는 학생을 말한다. 직장인에게 능력 있다는 것은, 업무를 능률적으로 잘하거나 성공적인 사업성과를 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또, 능력 있는 부모란 재력이 있어 자녀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하거나 여러 경로로 정보를 수집해 자녀에게 도움을 주는 부모를 일컫는다. 결국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능력이라는 말은 어떤 분야에서 '우수'하거나 '잘'하거나 '뛰어'나다는 뜻과 같다. 능력이 있어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은 욕구는 자기발전에 중요한 원동력이다. 문제는 경쟁사회에서 능력이 없으면 탈락이고 낙오라는 생각이 낮은 자신감을 만들어 자신을 스스로 의심한다는 데 있다.지금 부모세대 역시 성장과정에서 '적자생존' 즉, 능력 있는 자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으며 능력의 유무와 능력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그것은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 후에도 이와 같은 능력의 의미를 너무도 당연하게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요구한다. 그러니 아이들도 자신의 능력에 관한 불안감을 갖고 살아간다.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 능력이고 어떤 것은 능력이 아닌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사전적 의미로 능력(能力)이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이다. 능력을 키운다는 건 어느 분야나 일에서 좋은 결과나 성과만을 이뤄내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앞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쌓는 것이다. 즉, 배우는 것의 핵심과 맥락을 잘 잡아내 많은 정보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거나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해보지 않은 방법을 알아차려 다음에 기회가 왔을 때 그걸 적용해 새로운 배움을 얻는 것이다. 바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게 능력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능력을 발견할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냥 지나치듯 보았던 것을 기억해뒀다가 적절한 시기에 끄집어낸다든지,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해 새로운 아이디어로 만든다든지,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잘 공감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든지, 생각지 않았던 자신의 능력을 알아차릴 수 있다.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무엇이고 얼마나 되는지를 모두 아는 사람은 없다. 그 능력을 사용할 기회와 시간을 갖기 전에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능력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물이다.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능력은 '변화하는 방법'이다. 외부 변화에 대응해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 말이다. 무언가를 알고 싶다는 욕구로부터 시작해 관련 분야에서 노력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 무언가를 '하고 싶다'도 있지만, '해보니까 이건 아니다'로 자신에 맞는 것을 찾아 힘을 쌓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찾고 키우는 것이 될 수 있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경제력과 정보력의 유무를 재기 전에 성적표 등수보다 아이가 공부하려는 동기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지시나 명령보다는 아이가 선택할 수 있게 한 번 더 물어봐 주는 것, 문제해결보다 그 문제와 관련한 아이의 느낌이나 감정을 살펴보는 것, 아이가 자신은 잘하는 것이 없다고 할 때에도 앞으로 많은 기회가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먼저 말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능력 있는 부모가 아닐까. / 인천시교육청 학부모지원전문가※위 함께 자라는 부모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7-06-19 경인일보

[경인신공]놀면서 배우는 창의융합교실-영화로 배우는 지속가능발전

어려운 주제 이해하기 쉽게 접근 가능편한 분위기속 적절한 질문 제시해야지난 칼럼은 지속가능발전교육을 교실과 학교에서 먼저 실천해보자는 내용으로 다뤘다.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교육은 전문교육기관의 필연적 사명이고, 주된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의 흐름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피드백에서 다소 걸리는 게 있었다. '지속가능발전교육'이 일반 시민들에게는 생소하다는 것이다. 지속가능발전교육을 환경교육이라고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환경교육과 지속가능발전교육을 등가로 볼 수는 또 없다. 어찌 됐든 교육의 내재적 목적에 따라 가정에서 쉽게 지속가능발전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봤다.학교에서 따분한 주제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주로 신문기사, 뉴스, 영화 등 시청각적인 자료를 활용한다. 그 중 영화시청교육은 학생들이 관심 있게 볼 수 있고 이해하기도 쉬워 자주 사용하는 수업방법이다. 가정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절차와 형식은 간단하다.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이어가면 된다. 물론 강의, 독서교육 등의 방법도 가정의 성향에 따라서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장점을 고려해 보면 영화로 접근하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다.그런데 단순한 영화시청으로는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사전·사후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전과정으로는 부모의 문제제기나 언급 정도가 가능하다. 딱딱한 자리가 아니라 밥상머리나 쉬는 과정에서 이뤄져도 좋다. 일반적으로는 사전과정 보다 사후과정이 더 중요하다. 영화 속 가치가 자기 것으로 바뀌는 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관람 후 토론하기, 감상문 쓰기, 일기 쓰기, 그림 그리기 등이 있다. 이 때 부모는 자녀가 따분한 과정으로 여기지 않도록 세심하게 도와줘야 한다. 덧붙여 편안하고 자유로운 교육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캠핑을 좋아하는 가족이라면 캠핑 장소에서 실천해도 좋을 것이다. 단, 지속가능발전교육의 주제는 서로 동떨어진 개념은 아니며, 경제적·사회적·환경적 개념이 통합적으로 다뤄질 때 보다 효과적이다. 따라서 부모는 사회현상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질문거리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속가능발전의 가치가 학생들에게 내면화 돼야 한다.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이 바람직한 가치를 갖고 살아간다면 지구촌이 겪고 있는 난제는 분명 해결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학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지속가능발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하는 교육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가정에서도 학생들이 지구촌 공존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속가능발전의 가치는 끊임없는 실천과 재인식의 과정에서 성장한다. 별 것 아닌 몇 번의 영화시청 노력이 지구촌 공존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김언중 안산 원일초 교사■ 추천영화▲ 자연과학 - 인공지능: 바이센테니얼 맨, 아이 로봇, 트랜센던스 - 환경문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불편한 진실, 투모로우, 판도라, 어느날 그 길에서 - 유전공학: 쥬라기월드, 아일랜드, 가타카▲ 사회과학 - 성평등 및 인종갈등: 히든피겨스, 조이, 셀마 - 장애이해 및 아동인권: 내 이름은 칸, 아이 엠 샘, 미라클 벨리에, 우리들 - 다문화 및 난민문제: 마이 리틀 히어로, 완득이, 터미널, 언더 더 쎄임 문※위 창의융합교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7-06-19 경인일보

[경인신공]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역사를 기록한 문화재 '비석'

세세한 내용 비문 쉽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삼국시대 영토 다툼 경기도 미발견 비석 많을듯또 다른 '진흥왕 순수비'를 찾습니다.역사는 '기록'과 '유물·유적'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 연구의 가장 중요한 자료가 기록과 유물·유적입니다. 문자가 없었던 선사시대 연구에는 유물·유적이 전부지만, 문자가 사용되는 청동기 시대 이후에는 가장 중요한 자료가 기록입니다. 기록은 대부분이 책(冊)의 모양으로 된 문서, 서적입니다. 그런데 종이로 돼있는 대부분의 책은 시간이 흐르면서 훼손돼 사라집니다. 다행히도 기록 중에는 다른 형태의 것이 있어요. 바로 돌이나 쇠붙이 등에 있는 기록인데 돌에 기록해 놓은 비석(碑石)이 가장 많습니다.비석에는 무덤에 세워서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능비(陵碑)나 묘비(墓碑), 영토를 개척하고 세운 척경비(拓境碑)나 순수비(巡狩碑), 국가 정책을 알리려 세운 척화비(斥和碑), 인물의 은혜를 기리는 송덕비(頌德碑), 국가간의 영토 경계를 기록한 정계비(定界碑)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이들 다양한 비석은 시대에 따라, 세운 목적에 따라, 세울 당시의 상황에 따라 크기나 모양을 달리하고, 적는 방법도 다양하기에 각 시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세세하게 연구하고 새로운 비석을 찾고 있답니다. 옛 비문을 연구하는 학문을 '금석학(金石學)'이라고 합니다.문자가 없었던 선사시대에는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기도 했어요. 바위그림이라고 하는 울산 반구대 바위그림(국보 제285호), 울산 천전리 바위그림(국보 제147호)이 대표적입니다. 뭔가를 하늘에 기원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기하학적인 문양이나 사냥의 대상이었던 육지와 바다 동물을 다양하게 새겼습니다.중국으로부터 한자를 받아들인 후에는 많은 내용을 세세하게 비문에 적을 수 있었지요. 그런데 삼국시대에는 돌을 완전하게 다듬지 않고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해 비석을 만들었습니다. 국가에서 왕이 직접 세운 비석이지만 삼국시대에는 완벽한 형태로 곱게 다듬지 않고 만들었습니다. 글씨도 크기나 서체가 명필가의 서체와도 거리가 멉니다. 얼핏 보면 아무렇게나 막 쓴 글씨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학자들은 이렇게 예스러운 글씨를 '고졸(古拙)하다'고 표현합니다. 비문 내용은 치열한 삼국간의 영토 다툼에서 이 땅은 언제 누가 점령했다는 내용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중에서 신라의 비가 가장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영토 확장을 가장 왕성하게 꾀하던 진흥왕 때 여러 비석이 발견되었습니다. 충북 단양에서 발견된 적성비(국보 제198호)와 현재까지 4개가 발견된 순수비가 대표적입니다. 북한산비(555년 건립 추정), 창녕비(561년), 황초령비(568년), 마운령비(568년)는 진흥왕이 직접 영토를 확장하고 두루 살피며 돌아다닌 후 세운 비입니다.그런데 서울과 경기도 지역이 당시 가장 치열하게 영토 경쟁을 하던 곳이므로 현재 발견된 비보다도 더 많이 세웠을 겁니다. 아직 발견이 안됐을 뿐입니다. 경기도 북부의 감악산 비석(마모가 심해 12~13자 정도 글자 흔적만 확인)이나 강원도 철원 고석정비(비석을 세워졌던 흔적만 확인)도 진흥왕 순수비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답니다. 주로 주위를 훤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산꼭대기(높이 500∼700m)나 교통의 중요 지점, 군사적인 요충지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옮겨지거나 훼손되고 파괴되기도 했을 겁니다. 그러나 돌에 새겨놓은 비석은 쉽게 마모되지 않고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기 때문에 지금도 어디엔가 있습니다. 오다가다 마을 입구나 덜 알려진 유적지 등에서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역사적인 발견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김찬수 동원고 교사※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북한산 비봉에 있었던 진흥왕 순수비(국보 제3호). /문화재청

2017-06-12 경인일보

[경인신공]놀면서 배우는 창의융합교실-수학 교구, 바르게 알고 활용하자

'비싼 것'보다 아이들에 맞는 교구가 효과적언제부턴가 미취학 아동이나 저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학 교육 프로그램에 교구를 이용한 사고력 교육이 많이 생겨났다. 일반적인 교구를 이용하기도 하고 아예 생소하거나 자체 개발된 교구들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교구란 무엇일까? 현행 수학교과서에는 예전처럼 단순히 수학 공식을 외우고 계산만 하기 보다는 실제 여러 상황 속에서 수학자가 생각했던 것과 같이 생각해 보고 수학의 공식이나 방법을 이해하는 내용이 많다. 이때 실생활 속 상황과 수학 지식을 연결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이 바로 교구다. 교구는 넓은 의미에서 수업시간에 사용되는 여러 교수학습 매체(교과서, 학습지, 조작기구, 작도기구 등)을 모두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교구란 말은 '조작교구(manipulative material)', 즉 손으로 만지고 탐구할 수 있는 구체물을 의미한다.현재 초등 교과서와 지도서에 수록된 조작 교구는 바둑돌, 모형(연결큐브), 도형판(기하판, 지오보드), 쌓기나무, 수모형(십진블록), 색막대(퀴즈네어 막대), 분수막대 등이다. 이들은 시중에 있는 여러 교구들과 비교해 아주 좋은 교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여러 단원이나 차시에서 사용될 수 있는 교구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런 조작 교구를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구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에게 수학 활동에 대한 흥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중 시간이 짧은 아이들에게 구체물은 집중도를 높이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또 교구는 실생활의 상황과 수학적 지식(기호나 공식)을 연결하는 중간 매개체 역할도 한다. 예를 들면 아이들에게 사과 3개와 2개를 더해 5개가 되는 상황을 제시했을 때 이 상황을 이해하는 학생이라도 '3+2=5'라는 덧셈식과 연결하기 어려워하지만 바둑돌이나 모형(연결큐브), 수모형(십진블록)을 통한 활동을 통해 쉽게 연결하게 된다. 여러 논문에서도 조작 교구를 활용한 수업이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학생이나 정신지체아들의 수학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으며 일반학생이나 부진학생에게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하지만 조작 교구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효과는 달라질 것이다. 단순히 흥미를 위해 만져보는 것으로 끝난다면 의미있는 교육 활동이 아니다. 교구를 물리적으로만 조작해 보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의 사고를 조작(operation)하는 활동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교구 활동이 끝나면, 자신이 교구를 통해 생각한 것을 다시 이야기해보게 해야 한다. 이런 활동은 자신이 생각한 것을 되짚어 보고 사고하게 한다. 값비싼 교구도, 집에서 쉽게 구하는 빨대나 바둑돌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좋은 교구가 될 수도, 쓸데없는 교구가 될 수도 있다. 무작정 좋고 비싼 교구만을 찾을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맞게 교구를 활용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봐야 하는 이유다. /김주창 한백초 교사※위 창의융합교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7-06-12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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