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산행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김천 수도산(修道山·1천317m)

■ 산행지 : 경북 김천 수도산(修道山·1천317m)■ 산행일시 : 2012년 12월15일(토)■등산로심방마을 ~흰덤이산~양각산~시코봉~수도산~청암사~주차장 (6시간30분)청암사~수도암~수도산~구곡령~수도리~청암사 (6시간 30분)수도암~수도산~수도암 (1시간30분)■교통경부고속도로~김천TG~대덕면 또는 증산면 방향~평촌리~청암사#화려한 불꽃 같은 가야산에 가려진 진산(眞山)북쪽으론 덕유산이 남동쪽엔 가야산이 각각의 자태를 뽐내며 일찌감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때 그 가운데서 묵묵히 서 있는 산이 하나 있다. 매년 해인사에서 수학중인 학승들이 10시간이 넘는 포행(布行)으로 도착하는 곳이기도 한 수도산은 천년고찰 수도암과 청암사가 자리하고 있어서 산이 지니고 있는 매력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원래의 이름은 불령산(佛靈山), 선령산(仙靈山)으로 불렸을 만큼 신령한 기운이 감도는 곳으로 신라말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정치, 문화 속에 자리한 '풍수지리도참설'(風水地理圖讖說)을 주장한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신라 헌안왕 3년(859)에 수도산자락에 청암사터를 정한 뒤 수도산을 오르던 중 지금의 수도암 터를 발견하고 기쁨에 겨워 춤을 췄다고 한다.'풍수…' 주장한 신라 도선국사수도할 수 있는 최적지 꼽아매년 학승들 포행으로 찾아산행으로만 다가가긴 아쉬워장쾌한 길위 상념에 젖어보길33살의 도선국사의 눈에 비친 수도산은 자신이 기거하며 수도할 수 있는 곳으로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해발 1천244m에 위치한 설악산 봉정암과 880m에 위치한 지리산 칠불암과 더불어 이름난 수행처가 되었으니 수도암을 창건한 뒤 "무수한 수행자가 여기서 나올 것"이라고 했던 예언이 적중한 셈이다. 산행으로만 접근하기엔 놓치고 가는 것이 많으므로 여유를 갖고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청암사가 산행기점김천에서 대덕으로 가는 버스에서 내려 한참이나 걸어 들어왔던 기억속의 수도산, 인적조차 없던 산길을 한참이나 헤매다 도착한 수도암에서 저녁 공양으로 얻어온 누룽지를 뜯어가며 옥동천 계곡길을 따라 내려오던 기억이 새롭다.수도산을 오르기 위해 다가간 청암사는 비구니의 승가대학이 있는 곳으로 독경 소리가 청아한 산림을 가득 메우고 있다. 출입금지로 되어있는 몇 곳을 빼곤 기꺼이 시간을 내어 경내를 돌아본 후 얼음으로 가득찬 청암교를 건너 수도암으로 향하는 산길로 접어든다. 가파르지 않은 호젓한 산길이다.작은 개울을 몇 개 더 건너고 나면 지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계곡 방향의 일부구간은 상수도 보호를 위해 길이 막혀있다. 대략 50분 정도면 능선에 다다르는데 청암사 경계석이 서 있다. 오가는 이 없으니 쌓인 눈에 고스란히 발자국을 남기는 재미도 쏠쏠하여 힘든 표정 없이 올라온 길이다.얕은 언덕과도 같은 수도암 위편 능선에 서서 주변을 조망하자 멀리 가야산이 한 눈에 들어오며 수도지맥의 너른 등뼈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능선 아래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수도암에 들러 경내를 돌아본다.#눈귀 밝은 이들이 찾아드는 천년수행도량 수도암수도암은 동학농민운동 당시 암자의 일부가 소실된 것을 광부 3년(1899)에 포응이 재건했다. 그 뒤 6·25전쟁 당시 빨치산 소탕작전으로 일부건물을 제외하고 소실되어 1960년대까지 대적광전, 약사전, 정각암, 요사채 등 4동의 건물에서 3~4명의 스님이 수행하고 있었을 뿐이었다.1969년부터 15년여 동안 조계종 종정을 지낸 법전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크게 중수하여 지금의 가람으로 변모하게 된 곳이다. 대적광전에 들어서자 보물 제307호인 청암사수도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靑巖寺修道庵石造毘盧遮那佛坐像)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앞마당엔 보물 제297호인 청암사수도암 3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고 약사전엔 보물 제296호인 청암사수도암약광전석불좌상(靑巖寺修道庵藥光殿石佛坐像)이 있다.그러나 무엇보다 필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눈 쌓인 마당을 쓸러 나온 수좌들의 모습이다. 낡고 헌 승복에 털신을 신은 모습이 시대와 동떨어진 세계를 보는 것 같다. 자신만의 세계를 탐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능선으로 향한다. 수도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암릉에 서서 남동쪽에 우뚝 솟은 가야산의 화려한 불꽃의 향연을 감상한다.수도산에서 단지봉(1천327m)을 지나 가야산(1천430m)에 이르는 수도지맥은 지리산 만큼은 아니어도 장쾌한 길임에는 분명하다. 평균고도 1천200m의 고원지대에 펼쳐진 빼곡한 수림과 초원이 바윗길과 조화롭게 이어진 능선길로 많은 이들이 종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곳이다. 식수문제에서 애를 먹고 지리파악의 불편함에도 찾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수도산 정상에 서자 주위로 막힐 것 없이 펼쳐진 설국의 향연이다. 발아래 불령동천의 자태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한여름 원시림은 오간데 없이 펼쳐진 시원스런 풍경이 압권이다.#상념에 싸인 하산길하산을 준비하는데 청명하던 하늘로 구름이 드리우기에 서둘러 배낭과 카메라를 챙겨들자마자 그새를 못참고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단지봉 방향으로 내려서는데 어느 단체에선가 펑퍼짐한 능선길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낸 흔적이 보인다. 쌓인 눈 위로 새로운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뒷사람을 위해서도 신중해야할 일이다.무릎을 넘는 눈을 헤쳐가며 단지봉방향으로 향하다 구곡령에 이르자 사거리가 나타난다. 단지봉을 넘어 단숨에 가야산으로 향하고픈 간절함을 배낭에 넣어두고 봄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주민들이 오르내리던 길을 따라 수도리로 내려선다.하산은 옥동천을 따라 내려갈 수도 있으나 다시 산길로 접어들어 청암사로 향한다. 포행을 나온 젊은 스님으로부터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한 자유의 길을 찾아 나선 것"이란 출가의 변(辯)을 들으며 함께 걷는데 차디찬 바람을 안고 쏟아지는 눈 만큼이나 무수한 상념(想念)에 휩싸인다.텅비어 있는 주차장에 들어서서 합장으로 인연을 마무리하며 김천을 향해 나오는 길에 바라본 수도산은 어느새 맑게 갠 모습이다. 모두가 한순간이란 말을 떠올려 본다.

2012-12-28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강원 횡성 청태산(1천194m)

■ 산행지 : 강원 횡성 청태산(1천194m)■ 산행일시 : 2012년 11월 10~11일(1박2일)■ 등산로1코스~헬기장~정상~3코스~숲길~주차장 (4시간)2코스~헬기장~정상~3코스~숲길~주차장 (3시간 30분)■ 교통영동고속도로~둔내IC~둔내(장평)방면으로 약 1㎞~현대성우리조트 방면으로 7.7㎞ 이동~청태산 자연휴양림 입구 (둔내 IC에서 휴양림까지 10㎞, 약 15분소요)청태산 자연휴양림에는 낙엽송숲길 A·B, 활엽수숲길, 자작나무숲길, 참나무숲길 등 5개 숲길 등 숲 탐방로 5개 코스 22㎞와 데크로드 1㎞ 등 23㎞의 치유숲길, 생태연못과 야생화원, 숙박시설인 숲속의 집(11동 11실)과 산림문화휴양관(2동 29실), 운동시설인 숲속수련장 3동이 숲속에서 치유의 길을 열어놓고 있으며 30여개의 크고 작은 야영데크와 취사장, 화장실, 샤워실을 겸비한 캠핑장도 있다.솔향 취해 침엽수림 걷다보면푸른이끼 매력적인 계곡 도착태조 이성계 '청태산' 휘호 내린절경에 감탄 저절로 나오기도야영데크·샤워실 갖춘 캠핑장가족단위 여행객 머물기 좋아산림문화휴양관도 숙박 가능#수도권에서 가까운 가족 캠프장으로 유명한 청태산무작정 짐을 꾸려 떠난 것은 순전히 날씨 탓이었다. 흐렸다 개기를 반복하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비치자 아무런 생각없이 차를 몰고 달려온 곳. 거기에 청태산이 있었다. 평소 주말이면 예약 현황판을 가득 메웠을 캠핑족 중 날씨 영향에 해약한 자리 하나를 냉큼 꿰어차곤 십분이면 족한 텐트치기를 마치고 한숨을 돌렸다. 스산한 바람이 나무 사이를 스치고 가슴속으로 들어온다.배라도 불릴 요량으로 텐트 밖으로 나선다. 어느새 산속은 짙은 어둠속으로 한없이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하나 둘 존재를 밝히는 등불이 숲속 나무 사이사이로 비치고 잔잔한 말소리가 오가는 가운데 가느다란 빗방울이 텐트를 두들겨 대는 소리를 지나 취사장으로 향한다. 가족을 동반한 캠퍼들이 각종 장비와 요란한 취사도구를 들고 집합한 곳이다. 지난 여름에 태워먹고 바위에 찍혀 울퉁불퉁한데다 손잡이마저 부러진 내 코펠은 어디에도 맘 놓고 놓을 데가 없었다.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중얼거리며 씻어온 쌀을 버너에 올려놓고 한숨을 돌리자 코펠 때문이었는지 최치원의 칠언절구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이 떠오른다.狂噴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하니 : 층층 바위돌에 분출하고 겹겹 산에 포효하는 물이니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이라 : 가까운 곳 사람의 말소리조차 구별하기 어렵네.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하여 : 시비 가리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서故敎流水盡籠山(고교유수진농산)이로다 : 일부러 흐르는 물더러 온 산을 돌게 하네빗소리에 시비분별 모두 내려 놓는 순간이다.#푸른이끼 가득한 골짜기이른 아침 비개인 하늘이 휘황찬란한 금빛 고운가루를 뿌려댄다. 물기 머금은 숲속의 아침 공기를 마시며 숲길을 거닌다. 기억력이 약한 청설모의 실수인지 씨앗 가득한 잣송이가 '툭' 하고 발에 채인다. 황금빛 낙엽송 솔방울도 발에 채인다. 사각거리는 낙엽이 아니라 솔향기 가득한 침엽수림과 푸른이끼 가득한 계곡으로 길을 내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관동지방으로 가다가 들르게 된 청태산….푸른이끼가 가득한 큰바위에서 식사를 마치고 주변을 돌아보곤 아름다운 모습과 크게 푸르른 기상이 돋보여 '靑太山'이란 휘호를 내렸다고 한다. 그럴만 하단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곳이다. 산책로 구간을 벗어나 계곡을 따라 오르자 금세라도 쓰러질 모양으로 심장이 벌떡댄다.입고 온 옷을 몽땅 벗어도 시원찮을 열기에 헉헉 대며 오르자 능선 삼거리다. 두 살배기 아기를 등에 업은 새색시가 쉬었다 떠난 나무의자를 통째로 세내어 아예 드러누웠다. 하지만 정상으로의 길은 밋밋하리만큼 수월하다. 능선길 따라 곱게 수놓은 듯 형형색색의 가을 낙엽이 가득한 길이다.#힐링캠프로 최적의 환경을 조성중인 휴양림참으로 볼 것 없는 정상이건만 쏟아내며 올라온 땀이 아쉬워서 의자에 앉아 남녘의 백덕산 자락을 한없이 바라보다 가파른 계곡의 2코스를 피해 1코스로 내려가기로 하고 헬기장을 지나 본격적인 내리막 길로 접어들었다. 이번엔 끝없는 나무계단의 연속이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계단이다. 몇몇의 유산객(遊山客)들이 스쳐간다.하나같이 홍조를 띤 채 땀을 흘리고 있었다. 산책로로 내려서자 눈 오는 날이면 비닐포대 한 장으로 온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넓은 잔디밭이 햇살만큼 눈부시다. 캠프장에 가까워지면서 낯익은 코펠이 낯선 아이들 손에 들려져 계곡을 헤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텐트 밖에 내 놓은 걸 버리는 것으로 착각했나보다."얘들아 그거 버리는 거 아니다…"를 목구멍으로 삼키며 뺏어 들고 보니 누가 봐도 버릴 때가 된 모양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인가. 다시 아이들 손에 쥐어주곤 텐트를 걷어 차에 싣는다. 동강에서 밭둑을 태우던 할아버지가 낸 산불을 껐던 추억과 한겨울 황병산에서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눈을 퍼내던 코펠을 추억으로만 놔두고 간다.집착도 욕망도 나의 만족을 위한 것들은 아니었는지 돌아보며 오는 길에 등산장비점에 들러 반짝이는 코펠 하나를 장만하였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길까. 산에서 얻어가는 추억들 마다 기분 좋은 것들로만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2012-11-30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봉화 청량산(870m)

■ 산행지: 경북 봉화 청량산(870m)■ 산행일시: 2012년 11월 10일(토)24살 배낭여행때 묵었던 청량사텐트에 맺히던 서리·햇살 아련암봉 잇는 철제다리 보며 씁쓸#청량산… 그 아련한 추억1993년 겨울 어느날, 24살의 한 청년이 봉화에서 마지막 버스를 타고 청량산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을 훌쩍 넘긴 밤이었다. 비포장도로를 한참이나 달린 후 종점에 이르러서야 가로등 불빛조차 희미한 길가에 내려섰다. 머리와 어깨로 쏟아지는 눈을 맞아가며 외로이 길을 찾아간다. 낙동강을 건너는 다리를 따르자 이내 흙길이 나온다. 이미 눈에 덮인 뒤인지라 혼자만의 발자국을 남기며 길을 걷는다. 길 옆으로 담배농사를 지었던 잔해가 보이고 아주 가끔 나타나는 연노랑 빛 백열등 하나가 길을 비추고 있다. 여전히 하염없이 내리는 눈송이와 마주할 뿐 어느 누구 하나 만나지 못한 길이다. 한참을 걸어 올랐을 즈음 익숙한 산행 안내판 하나가 눈길을 잡아끈다.청량사 방향으로 향하는 가파른 비탈길을 헤드랜턴으로 비추어 보곤 다시 큰길을 따라 걸었다. 이번엔 선학정이라는 정자가 나타난다. 이 또한 관심의 대상이 아니어서 다시 길을 따르자 변변치 않은 집터 하나가 나타났다. 녹이 슨 양철지붕 아래로 덧댄 나무판자도 낡아버린 집이 덩그러니 길가는 산객(山客)을 맞이하는 듯하여 처마 밑에 앉아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였다. 주변을 둘러보자 산비탈로 안내하는 작은 팻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더니 신경조직과 세포조직이 일제히 반사적으로 산길로 이끈다. 약간의 쉼을 뒤로 하고 산속으로 들어가자 오르막이 이어지더니 완만한 경사길이 산비탈을 끼고 돈다. 어렵지 않게 절집 앞마당에 이르자 분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탑 하나가 마당 끝에 서 있고 이어 알량한 요사채 하나와 사람 하나 겨우 들어설만한 법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고즈넉했던 산사(山寺)불꺼진지 오래인 법당이나 요사채에선 이렇다할 인기척도 없다. 소복이 쌓여가는 눈을 밟아가며 절집 앞마당을 제 집 돌아다니듯 다니다 졸졸 거리는 물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유일한 소음이다. 무슨 배짱에서였을까. 배낭을 대웅전 앞마당에 내려놓고 텐트를 쳤다. 샘에서 길어온 물로 밥을 지어먹곤 침낭에 들어가선 꼼짝도 하지 않은채 아래윗니를 부딪혀 가며 새벽을 맞았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도 이보다 크진 않았으리라. 잠은 선잠이었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묘한 환상속에서 헤매다가도 고통스런 추위가 다시금 현실로 이끌었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했을까. 텐트를 누군가가 두들기며 묻는다. "계세요? 안에 누구 계세요?" 간신히 몸을 일으켜 텐트지퍼를 내리자 젊은 스님 한 분이 서있다. "여기서 주무시면 큰일 납니다. 저 방에서 주무시죠…." "아닙니다. 이짓거리가 좋아서 떠도는 거라 괜찮습니다.스님께선 염려마시고 들어가 주무세요. 아침이면 흔적도 없이 치우고 떠나겠습니다." "........" 말없이 물끄러미 한참을 바라보고 섰던 스님도 이내 발걸음을 돌린다. 설득이 필요없다고 판단했으리라. 어둠은 그렇게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만만치 않은 추위에 거센 바람까지 동반하여 밤새 괴롭혀댔다. 그러나 버텨내면 그만이었다. 괴롭거나 힘이 들어도 버텨내면 그만일뿐 이라고 자위하며 참아낸다. 어김없이 밝아오는 아침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몽롱한 정신상태로 부은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올리고 신발을 찾는다. 눈 쌓인 바깥 구경을 나설 요량으로 등산화를 신어보지만 꽝꽝 언 등산화는 나의 의지를 꺾어 놓고야 말았다. 하는 수 없이 텐트지퍼만 내린채 눈 쌓인 탑만 바라보고 앉았다. 맑게 갠 하늘 아래로 반짝이는 은비늘이 가득한 탑이 눈을 부시게 한다. 그러자 갑자기 분주해졌다. 햇살이 머리위로 들어오기 전에 떠나기 위함이었다. 단단히 언 등산화에 억지로 밀어넣은 발이 아파오는 것보다 절집 앞마당에서 너무나도 오래 머물렀다는 미안함이 앞서 밀려오기에 서둘러 배낭을 꾸리다 보니 텐트 안쪽으로 맺힌 서리도 그대로 배낭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인사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산길을 따라 오르는 것으로 청량사와의 첫 만남을 정리하고 청량산 산행을 시작하였다.#낙동강 굽어보는 천하절경 청량산청량산(淸凉山)은 경북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안동시 도산면과 예안면에 위치하고 있다. 예로부터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하여 소금강(小金剛)으로도 불리던 곳이다.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을 세울 때 현재의 위치와 이곳 중에서 정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시간을 망설이게 하였다 하니 청량산의 아름다움에 얼마나 매료되어 있었는지 짐작해 볼 만하다.또한 청량산가(淸凉山歌)에서 "청량산 육육봉(淸凉山 六六峰)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百鷗), 백구(百鷗)야 훤사(喧辭)하랴 못믿을손 도화(桃花)로다. 도화(桃花)야 뜨지마라 어주자(魚舟子) 알까 하노라"하였다. 하지만 정작 그는 청량산에 거할 수가 없었다. 바라보기엔 좋은 산이지만 나이들어 살기엔 산세가 가파르고 물이 부족한 까닭을 들었다. 절벽과 가파른 길은 쉽지 않은 산임을 말해주고 계곡이 있으나 수량이 얼마 안되니 그리 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와 최치원이 수도했다는 '풍혈대(風穴臺)'가 있으니 산으로서의 매력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가 아니었나 싶다. 또한 청량산은 12개 암봉(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탁립봉, 금탑봉, 축융봉)과 청량산 12대(어풍대, 밀성대, 풍혈대, 학소대, 금강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 청량산 8굴(김생굴,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반야굴, 방장굴, 고운굴, 한생굴) 및 4우물(총명수, 청량약수, 감로수, 김생폭)이 있다. 그러나 2008년 5월 10일 총공사비 21억원을 투입하여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해발 800m, 길이 90m, 폭 1.2m의 하늘다리가 명물로 변해버린 현실은 어쩔 수가 없는 듯하다. 자연은 이미 사람들에게서 관심밖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누가 더 크고 멋진 구조물을 산에 짓는가만 남았다. 20년 만에 찾은 청량산엔 산세와 어울리지 않게 커져버린 청량사와 흉물에 가까운 하늘다리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가슴을 저리게 하였다. 어느 산에 큰 구조물이 얼마나 많이 들어서는가는 시간문제로 남았기 때문이다.

2012-11-15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문경 황장산(黃腸山, 1077.3m)

■ 산행지: 경북 문경 황장산(黃腸山, 1077.3m)■ 산행일시: 2012년 10월 15일(월)곳곳 암릉·암봉암벽가의 로망 수리봉난공불락 요새 같은 자태정상가는 길산천 뒤덮은 솔향기벌재 샘물 산행피로 날려# 백두대간 푸른 등줄기에 위치한 황장산경북 문경시 동로면에 위치한 황장산의 이름은 예로부터 왕실에서 대궐이나 임금의 관, 배 등을 만드는데 사용하던 황장목에서 유래한 것이다. 목질이 단단하기가 으뜸이고 결이 고운 것으로도 최고의 가치를 지닌 소나무가 많이 생산되어 조선 숙종때(1680년) 이러한 나무의 관리를 위해 벌목을 금지하였다. 또한 이 산을 봉산(封山)으로 정하고 관리 감독케 할 관리까지 파견하여 감시하였던 곳이다. 지금은 당시에 세워졌던 봉산 표석(지방문화재 227호)만이 남아 있고 황장목은 사라져 버린 상태다. 과도한 벌목의 폐해인 것이다. 한편 황장산에 대해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 산경표에는 작성산(鵲城山)이란 이름으로 표기 되어 있는데 까치집을 닮은 산세에서 유래한 것으로 산기슭에 자리한 문안골에는 고려시대에 축조된 작성(鵲城)산성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이러한 명칭의 변경은 황장목의 벌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작성산 대신 황장봉산으로 불리다가 황장산이란 현재의 이름만 남게 된 것이리라. 한편 삼국시대에는 치열한 영토 싸움에서도 전략적 요충지의 역할을 하였다 한다. 신라가 이 산을 넘게 되면 남한강을 따라 침투할 수 있고 고구려 또한 남진을 위해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하는 지역이었기에 양보 없는 전투가 맹렬하게 이뤄진 것이다. 근대에는 빨치산들이 황장산의 험한 산세를 이용하기 위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 토벌대와 잦은 교전을 벌였으며 인민군이 낙동강 전투에서 패한 후 퇴각하면서 수 많은 전사자를 발생케 한 작성전투가 이뤄진 곳이다.옛 영화와 아픔을 상기하며 등반을 위해 다가서며 바라본 황장산은 곳곳에 암릉과 암봉을 거느린 채 이국적인 정취마저 느끼게 하며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서 있었다.# 산악의 고장 문경 동로면901번 국도는 문경읍에서 주흘산을 바라보다 하늘재와 포암산, 대미산을 잇는 백두대간을 따라 면소재지로 가다가 갈평과 중평을 지나 생달리로 접어들어서야 황장산으로 오르는 산길을 만나게 된다. 한여름의 뙤약볕 때문에 꺼려하던 산행지가 가을을 만나면서 즐거운 산행이 될 수 있도록 치장을 하고 있기에 능선 너머로 맑게 갠 하늘이 더욱 푸르고 청아하게 느껴진다.어느샌가 차량 한 대가 다가오더니 중무장한 산꾼들을 내려 놓는다. 수리봉을 등반하기 위한 암벽팀으로 어지간한 해외원정팀 장비만큼이나 챙겨왔다. 황장산이 일반 등산객들 뿐만 아니라 암벽등반가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이유는 수리봉의 자태 때문으로 수직으로 올라선 바위를 타고 오르는 멋진 사진이 한 몫을 했다. 필자는 대간꾼들이 오르는 길을 따라가기 위해 작은 차갓재 방향을 들머리로 잡았다.# 팔다리 고생에 마음까지 졸이는 묏등바위는 동절기 최난구간안산다리 마을을 지나 계곡으로 접어들자 길은 완만하게 이어지며 활성광산 복구지의 카페를 지난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지나 30여분을 오르니 작은 차갓재다. 우망골과 봉산표석이 있는 차갓마을로 내려설 수 있는 교통로와도 같은 곳이다. 황장산 정상을 가기 위해서는 오른편 능선을 따라야한다.얼마 가지 않아 나타나는 울창한 침엽수림은 하늘을 덮고 있기에 약간은 어두운 길이나 등산로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푹신한데다 솔향기가 숲을 뒤덮고 있어서 거친 숨소리 대신 가슴으로 싱그러운 공기를 담아갈 수 있는 곳이다. 이후 작은 바위지대에 올라서면 대미산과 운달산, 주흘산이 연이어 시선을 끌고 북으로는 도락산의 바위들과 능선이, 동북방향으론 수리봉, 신선봉, 황장산이 물결처럼 흐르고 그 뒤로 소백산이 보인다. 거칠게 오르지 않아 좋은 능선에서 풍경까지 좋으니 절로 흥이 나는 구간이다. 하지만 정상직전의 묏동바위를 만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겨울철에 지나게 될 경우 위험부담을 안고 가야할 정도로 가파른 비탈이 연이어 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곳으로 정상에서 내려오던 등산객과 누가 먼저 오르고 내릴 것인가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던 곳이다. 정상은 예상 밖으로 싱겁다. 헬기가 앉을 너른 장소가 전부이다 보니 조망도 시원치 않다. 전형적인 육산의 형태를 띤 정상에서 다소의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등산객들의 푸념섞인 투정이 점심식사로 때워지는 곳이니 파리만 무성하다. # 치마바위 치마폭에 가려진 등산로안내판에 표기된 바로는 벌재까지 2시간 40분이다. 필자처럼 사진 찍으며 여유부리면 3시간은 족히 걸린다는 얘기다. 일행으로 간 박영로(47·안양)씨가 "뭔 하산이 이리도 길어요…"라며 탄식한다. 그래서 필자의 옛 추억 하나를 꺼내어 들었다. "93년도 8월에 이곳은 태풍 로빈의 영향으로 인해 비바람이 거세기가 장난이 아니었지요. 그 때문에 종주시간이 많이 걸려서 식량지원을 받기 위해 죽령까지 죽을 힘을 다해 밤잠 안자고 산행했던 곳이었어요. 무려 29시간을…." 실제로 그랬다.억수로 쏟아지는 비와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지났던 곳이다. 그 끔찍했던 기억 덕분에 한동안 오기 꺼려했던 곳이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치마바위는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인 구간이다. 앞만 보고 가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꺾이는 길을 보지 못하고 갔다가 되돌아 오는 수고스러움 때문에 동행자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곳이다. 잦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다 내려서는 벌재에선 샘물이 피로를 푸는 최고의 명약이다. 갈증과 피로가 한순간에 사라질 만큼 강렬한 물 맛이 일품인 벌재에 잔잔한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2012-10-18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충북 영동 마니산(640m)

■ 산행지 : 충북 영동 마니산(640m)■ 산행일시 : 2012년 9월 23일 (일)# 암벽이 병풍을 두른듯 위용을 자랑하는 마니산금강(錦江)을 바라보고 선 마니산은 찾는 이가 지극히 적은 까닭에 청정함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인근에는 어류산, 시루봉, 봉화산 등이 둘러싸고 있으며 암벽이 천연요새 역할을 하고 있는 까닭에 삼국시대에 동쪽으로 100여m, 남쪽으로 약 1㎞에 이르는 방대한 성벽을 쌓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성벽과도 같은 암벽의 중심에 수려한 자태를 뽐내는 향로봉이 서있다. 능선과 맞닿아 있지만 등산로조차 희미해진 것으로 보아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음을 말해준다. 마니산의 동쪽엔 성터와 고려의 31대 임금인 공민왕의 거처로 알려진 절터가 남아 있다. 홍건적의 난을 피해 들어왔을 당시에 축조된 것이라고 한다. 금강으로 문어발처럼 뻗어 내린 능선과 암벽의 위용이 하늘을 찌를듯 솟은 마니산의 산행은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청순한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는 속살을 찾아 가는 길이다. 한겨울 산행에선 덕유산, 황악산, 민주지산, 백화산 등이 조망되는 곳이기도 하다.한국산 바나나 으름 한입에 오름길 거뜬한 원점회귀 산행이 될 터인지라 내려올 방향도 한눈에 들어온다. 한우를 키우는 농가와 주차장 사잇길로 난 산비탈에 들어서자 빽빽한 수풀이 우거진 것이 등산객들의 발길이 그다지 흔한 곳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가파르게 올라서야만 하는 길이기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오르자 하늘을 뒤덮은 넝쿨에 무언가가 달린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으름'이다. 얼마 만에 보는 것인지 반갑기 그지없는 산속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손에 닿을 듯한 높이에서 만개한 꽃처럼 한껏 벌어진 으름을 양손 가득 들고 하나씩 먹으며 산길을 오르는 재미만큼이나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달달한 맛에 흠뻑 빠져 턱이 빠져라고 숨을 끌어올려도 모자랄 길을 쉽게 올라왔다. 손에 닿을듯 하던 능선에 올라서는 개심저수지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오르막을 따라간다. 잠깐의 숨고르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밧줄이 매인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그러나 위험할 정도까지는 아니므로 아예 밧줄을 외면하고 바위를 움켜쥐며 오르는 이들이 더 많은 구간이다. 이윽고 멋대로 뻗어나간 나뭇가지가 인상적인 소나무 뒤로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맞은 편으로 어류산의 서편이 고스란히 보인다. 이곳부터 발아래 단애가 조심스런 곳이다.# 뒤바뀐 이름 마니산과 마리산짧지만 밧줄을 이용해야 하는 구간이 여럿 나타나는 바람에 시간이 다소 지체되면서 해가 중천을 지나가 버렸다. 속도를 내려야 낼 수 없는 구간이다 보니 안전에 중점을 두고 천천히 오르기로 한다. 본능선에 서서 오른편 고스락으로 향하는 길로 가다 보니 서서히 완만해지면서 약간의 공간이 확보되어 쉬어가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동편쪽으로 몇 발자국만 움직여도 가슴이 탁 트이는 멋진 장관이 연출되기 때문에 다시금 쉬어가길 반복한다. 동편의 단애방향을 빼놓고 전반적으로 능선길은 숲속 산책로처럼 온통 나무에 가리워진채 길만 이어져 있어서 그런지 막상 정상에 서도 이렇다할 조망은 없다. 충북 지방 특유의 정상석이 마니산임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예전에는 공민왕을 뜻하는 우두머리를 일컫는 '마리'를 붙여 마리산이라고 불렸다는데 그것이 한자어와 접속하다 보니 지금의 마니산(摩尼山)이 된거라네요. 불교에서는 여의주를 뜻하는 용어랍니다." 함께 산행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산7000 산악회의 김정중(55)씨가 정상석의 마니산 표기를 가리키며 마니산의 유래에 대해 설명해준다. 강화의 마니산도 그렇고 '갓걸이산'이란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괘관산(掛冠山)으로 부르는 것이나 고리산을 환산(環山)으로 부르는 등 한자화하면서 변화되어 고유의 이름을 잃어버린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보니 애석한 마음만 갖고 돌아서야 하는 발걸음이다.# 성곽안길 따라 성문을 열고 하산하는 길마니산 고스락으로 오면서 서쪽 방향으로 보이는 돌무덤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어김없는 성곽임을 알 수 있다. 등산로는 이러한 성곽을 따라 정상과 능선을 잇는다. 북쪽 능선길을 따라 참새배기 고갯길로 향하다 보니 암릉과 성곽이 함께 이어져 간다. 성문의 흔적으로 보이는 돌쩌귀에선 아예 발걸음을 멈추고 문을 여는 시늉을 하며 옛모습을 상상해 본다. 산길에서 오른편으로 어느 산객의 부지런한 발자취인지 향로봉으로 향한 흔적이 희미하다. 등산로로 잘못 찾아 들었다간 고생하기 딱 좋은 길이므로 주의를 하도록 해야한다. 향로봉 갈림길만 조심하면 전반적으로 등산로는 어느 한 구석 피해갈 곳 없는 외길이므로 길 찾는데 무리가 없으나 참새배기 고개에 이르러서는 하산과 나머지 산행을 마쳐야 할지 갈등하게 만든다. 손쉽게 내려서기는 마찬가지지만 능선을 더 탈 경우 20분 정도의 시간이 더 소요된다. 어느 쪽이든 엘로힘연수원 방향으로 하산을 하여야 하는데 30분 정도가 소요되며 기도원 가까이에 있는 군내버스 주차장으로 하산하면 된다. 하산한 후에야 보이는 향로봉이 더욱 멋진 자태로 다가오는 길이기도 하다.

2012-10-04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전북 진안 천반산(657m)

■ 산행지: 전북 진안 천반산(657m)■ 산행일시: 2012년 8월 26일 (일)○… 산행 안내■ 등산로가막교 ~ 할미굴 ~ 한림대터 ~ 천반산성터 ~ 송판서굴 ~ 깃대봉 ~ 먹개골 ~ 가막교 (4시간)■ 교통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익산장수고속도로-진안IC-진안로터리-가막교 # 가벼운 걸음으로도 족한 무난한 산길비 갠 하늘과 엄청난 바람을 몰고 오는 태풍이 상륙한다는 소식에 긴장을 하며 찾은 산이 천반산이다. 비교적 맑은 날씨를 유지하는 가운데 진안 땅에 접어들어 산행 들머리로 삼은 가막교를 건넜다. 금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진작에 내렸던 비의 영향인지 제법 물살이 거칠다. 장수명륜학당 표지석을 따라 좌측의 농로로 가자 호익물산 건물이 눈에 띈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이정표를 지나 능선길로 향하는 길을 타고 15분 정도 진행하자 삼거리가 나온다. 할미굴로 가는 길이다. 할미굴은 20m 절벽 아래에 깊이 5m 정도 파인 자연석굴로 쌍굴 형태로 파여 있다. 할미굴은 조선 세종 때 예조판서를 지낸 송보산 선생이 단종이 폐위되고 세조가 즉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후학을 가르치는 데 몰두하다가 이곳에서 북쪽으로 100여m 거리에 있는 굴속에서 은거하면서 부인과 동침을 금하기 위해 부인을 따로 이곳에 기거하도록 하였기에 불리게 된 굴이다. 전설에 따르면 송 판서가 수도하면서 쌀 한 되를 부인과 나누어 갖고 부인에게 한 끼에 쌀 세 알, 생솔잎 세 개, 굴속 석간수 세 모금만 먹도록 했는데, 부인이 그 약속을 어기고 많이 먹어 부인의 쌀이 먼저 바닥이 나자 자신의 남은 쌀을 다시 반으로 갈라 부인에게 주어 함께 수도를 마쳤다고 한다. 소소한 읽을거리가 간판으로 서 있는 굴 입구를 되돌아 나와 한림대터로 향한다. 굴참나무, 참나무가 가득한 산길로 그다지 어려운 길이 아니다. 옛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던 장소라고 전해지는 한림대터에 서자 멋진 조망이 이어진다. 금강의 힘찬 물줄기와 멀리 마이산의 독특한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니 쉬어가기 안성맞춤인 것이다. 한편 북쪽으로는 운장산과 구봉산이 펼쳐져 있어서 함께 온 이들과 천반산 이야기를 풀어본다.# 정여립의 한(恨)이 서린 땅 천반산은 선조 22년(1589년) 전라도를 반역향(叛逆鄕)이라 하여 호남 차별의 분수령을 이룬 기축옥사(己丑獄事)의 주인공인 조선중기 사상가 정여립(1546~89)의 한(恨)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정여립은 전주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15세에 익산군수인 아버지를 대신하여 일을 처리할 정도로 영민하였고, 선조 3년 25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이라는 벼슬에 올랐으나 그의 스승인 성호 이이가 죽자 서인(西人)에서 동인(東人)으로 옮겨가면서 서인을 비판하게 되었고, 이것이 선조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된 까닭이었기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게 된다. 정여립의 이러한 변신은 성리학적 대의명분을 중시하던 조선사회에서 반역자적인 의미를 지니게 됨에 따라 부정적인 시각이 대세를 이뤘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정여립은 모악산 앞 제비산에 머물면서 죽도(竹島)에 서실을 짓고 강론을 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며 인근의 사람들을 규합하여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였다. 신분의 제약이 없는 이러한 조직은 급속도로 호남을 중심으로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갔고 이러한 영향은 1587년 손죽도를 침범한 왜구를 물리치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선비들 학문 논하던 '한림대터'최고 조망 금강·마이산 한눈에한 서린땅에 선 천반낙도의 산구량천·죽도·기암괴석 매력적그러던 중 1589년 10월, 황해도 관찰사 한준, 안악 군수 이축, 재령군수 박충간 등이 그가 대동계 사병을 이끌고 도성으로 와서 선조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하려 한다고 고변(告變)하였다. 선조는 이들의 세력이 막강함을 우려하여 정여립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다. 관련자 80명이 압송되었으며 점차 범위가 확대되어 2년간 국문장이 열렸다. 옥사는 1천명의 희생자를 냈다. 당시 형문을 담당하던 위관은 송강 정철이었다 한다. 그런데 정여립의 죽음과 관련해 의견이 분분하게 나뉜다. 천반산에서 자살을 했던 것인지 단순히 죽도를 방문했다가 관군에게 잡혀 죽었던 것인지에 대해선 기록이 제각각이다. '동서만록'에 따르면 정여립은 평소에 천반산 아래 죽도를 자주 찾았기에 그를 죽도선생이라 불렀다고 하며, 더욱이 역적도 아니었기 때문에 죽도로 피난 간 것이 아니라 평소처럼 죽도의 비경을 즐기려고 나왔다가 관군에게 잡혀 억울하게 죽었을 뿐 자살로 조작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만을 남긴다고 했던 과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 정감록이 정한 십승지를 품은 천반낙도(天盤落桃)의 산 천반산 최고의 전망대인 한림대터를 지나 성터로 가니 천반산 안내판과 표지석,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죽도방향으로 가야만 단종 때 왕위찬탈에 항거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송 판서가 수도하였다는 송판서굴을 볼 수 있기에 그리로 향한다. 가파른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송판서굴에 도착하자 금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아찔한 절벽이 버티고 있다. 할미굴과 연계해서 한번쯤은 지나가야 할 곳이다. 왔던 길을 거슬러 깃대봉으로 향하자 정여립이 친지들과 바둑을 즐겼다는 말바위를 지나고 분재와 같은 노송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전망바위를 지나니 정상석과 벤치가 놓여 있는 천반산 정상이다. 시원스럽지 못한 조망에 다소 실망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기면서 만나는 덕유산 향적봉에서 발원한 구량천의 어지러운 물줄기와 죽순처럼 솟아 오른 죽도와 그 주변의 기암괴석은 가던 이들을 잡아끄는 매력이 넘쳐난다. 누구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는지 귀를 쫑긋 세운 마이봉의 자태도 보석처럼 빛나는 하늘금에 한 부분으로 솟아 있으니 가히 절경이 따로 없다. 이후 먹개골을 통해 원점회귀 산행을 마치기까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팥죽땀 뚝뚝 흘려야 하는 더운 여름날씨만 아니라면 누구나 다녀갈 수 있는 산행지로 제격이다. 그러나 동양 최초의 공화정치를 꿈꾸었던 진보적 사상가 정여립을 다시금 떠올려 주길 바란다. 지역적 정서와 정치적 배경을 달리하며 칼날을 거두지 않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너무나도 가슴 아픈 과거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조선 왕조를 창건한 태조 이성계 조상들의 고향 전주, 그런 이유로 풍패지향(風沛之鄕)이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받았던 전주를 비롯한 호남이 하루 아침에 반역의 땅으로 매도되어 버린 역사적 배경이 이곳 천반산이기에….

2012-09-07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충북 금산 성치산(670.4m)

■ 산행지: 충북 금산 성치산(670.4m)■ 산행일시: 2012년 8월 13일(월)가철 차량들과 맞물려 길에서 보낸 시간이 아까워 월요일 아침에 산행기점으로 삼은 용덕고개로 향하였다. 주말 아침이면 어김없이 길가로 늘어섰던 관광버스의 행렬도 자취를 감추고 간혹 보이는 피서객들의 차량만이 한적한 고갯마루를 지날뿐 비개인 하늘위로 떠가는 구름처럼 한가로운 산길로 접어든다. 한 4년 전쯤엔가 걸었던 길이다. 물론 변한 것도 없고 변할 것도 없는 길이지만 그때 보지 못했던 노란 원추리꽃이 하늘을 향해 꽃잎을 벌리며 피었다. 노란 꽃잎이 파아란 하늘과 묘한 대조를 보이는 가운데 어느새 발걸음은 묘지앞을 지나면서 명덕봉을 바라보고 섰다. 하늘금이 아름답게 이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한여름의 산길에서 이미 젖어버린 모자를 벗어 놓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한모금의 물로 목을 축이며 하늘의 푸르름을 즐겨본다. 비단처럼 아름다운 산들이 어우러진 고장이라서 금산이라 불린다더니 틀린 말이 아닌가보다. ■오기된 이정표솔향기 가득한 길이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적당히 젖어 있는 등산로를 걷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행복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여름 한낮의 더위가 가득한 햇살을 가려줄 그늘이 있고 시원한 물줄기가 있는 곳이라면 더할나위 없기에 부지런히 걷는다. 그러다가 가끔씩 드러나는 바윗길이 나타나는 바람에 그늘을 벗어나야 할 때면 살이 타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온다.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국도를 타고 용덕고개로 향하면서 지나쳐온 국토대장정 순례길을 걷던 젊은 친구들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산속엔 한여름이어도 지열이나 복사열이 없기에 그늘만 드리워도 비교적 시원한 편이니 상대적으로 행복한 것일까.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고 했던가. 지금의 위치에서 만족스러운 부분을 즐기지 않으면 끝없이 고통스럽기에 불평 없이 숲길을 걷는다. 용덕고개를 벗어난지 1시간 여 만에 발견한 이정표상엔 고갯마루까지 8㎞로 되어 있다. 등산로에서 또는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안내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의 표본이다. 더운 여름날 놀며쉬며 1시간을 걸었는데 벌써 이만큼 와있다고 위안을 삼으라는건지 알 수가 없다. 또한 성치봉 정상은 엄밀히 구분짓자면 전북 진안쪽으로 넘어가 있다. 그래서인지 금산군에서 세운 이정표엔 성치산은 없다. 그저 성치산 성봉으로의 이정표만 있는 것이다. 그로인해 지리에 익숙지 않은 등산객들은 성치산을 왔으나 정상을 불과 몇 미터 옆에 두고 스쳐가기 일쑤다. 조그만한 땅뙈기마저도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해서 살아야 직성이 풀리나보다. 하긴 전국적으로 길에 대한 열풍이 불때 지자체간의 경계점으로 안내판 하나 세우는데도 부처간, 지역간 협의가 가장 힘들다고 하니 오죽했겠는가. 눈밝은 산악대장을 앞세운 산악회만이 다녀가는 성치산 정상을 다녀오고 나서 성봉으로 향하다 보니 고무골 위로 멀리 마이산이 보이고 그 뒤로 금산의 진산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진악산이 가시거리에 있다. 대단한 조망이 아닐 수 없다.■한여름의 더위 잡는 십이폭포정상석도 표지석도 없는 성치산 정상엔 헬기장만 있기에 서둘러 그늘을 찾아 내려온다.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찾는데 나뭇가지 하나도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은 어느 등산객의 작품인지 짓궂은 장난으로 요상한 모양의 조각을 해 놓았다. 미친사람처럼 혼자 웃다가 차라리 물가에서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서둘러 바위구간을 따라 성봉으로 향한다. 비교적 조망할 만한 전망터가 많은 탓에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댈 수 있는 구간으로 구석리부터 능선까지 이어진 고무골도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다. 성봉(648m)은 구석리에서 출발하여 무자치골을 따라 원점회귀 산행을 하러온 등산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성치산 정상에 비하면 정상석다운 표석이 서 있고 금산군에서 세운 이정표는 여전히 잘못된 거리를 적시해 놓고 있다. 필자가 어림짐작으로 따져봐도 7㎞ 남짓의 거리인데 13㎞로 적어 놓고 있으니 없느니만 못한 이정표인 셈이다. 등산객들이 쏟아지듯 내려가는 무자치골을 옆에 두고 신동봉 방향으로 행하는데 간벌을 해 놓은 탓에 그늘이 없는 구간이다.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며 능선길을 따르다 무명봉을 지나 능선 삼거리에서 좌측의 무자치골로 내려서기로 한다. 부질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계곡길을 따랐더라면 하는 후회를 안고 십이폭포로 내려서니 피서객들과 등산객들로 북새통이다. 그래도 좋은 계곡길을 따라 구석리로 향하는 마음엔 벌써 더위가 사라졌다. 숲길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만 들어도 더위를 잊을 수 있는 성치산 무자치골에 십이폭포의 물소리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산행 안내■ 등산로용덕고개(광대정) ~ 성치산 정상 ~ 성봉 ~ 무자치골 ~ 십이폭포 ~ 모치마을 (5시간)용덕고개 ~ 성치산 ~ 성봉 ~ 신동봉 ~ 무자치골 ~ 십이폭포 ~ 모치마을 (5시간30분)모치마을 ~ 십이폭포 ~ 신동봉 ~ 성봉 ~ 무자치계곡 ~ 십이폭포 (3시간30분)■ 교통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간고속도로~금산IC~창평교차로~황풍교~구석리(약2시간30분)■산행 Tip 여름철 산행지로 제격인 산으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는 등산로가 대부분이기에 한 낮의 더위를 피할 수 있으며 용덕재에서 출발할 경우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기에 그다지 힘들지 않으나 무자치골에서 성봉으로 오를 경우 긴 오르막이 이어지며 신동봉으로 오른 뒤 성봉으로 향하여도 별반 다르지 않으므로 다소 노약자에겐 힘든 길이 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중고생의 학생 정도라면 용덕재에서 출발하여도 문제될 만한 구간은 없으나 성봉에서 무자치골로 내려서는 구간에선 주의를 주도록 한다. 이정표상으론 19.5㎞로 되어 있으나 실제론 11㎞ 남짓의 거리다.

2012-08-16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문경 주흘산(主屹山. 1,076m)

#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학을 닮은 주흘산문경 사람들이 '학이 날개를 펼치듯 문경시를 감싸고 있는듯한 형세'라며 입을 모으던 산으로 특히 동남면의 절벽은 위용이 대단하여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듯 솟아있다.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빗겨 서 있으면서도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는 산이 바로 주흘산이다. 산행의 시작은 새들도 쉬어간다는 새재로 가는 길과 닿아있다.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에서 가장 높고 험한 고개였으며 문화와 경제의 뚜렷한 구분과 국방상으로 긴요한 위치이기도 했던 이곳은 임진왜란을 겪고난 후에 주흘관·조곡관·조령관의 3개 관문을 두어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이렇듯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중요했던 길이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산책로가 됐다. # 공민왕의 피란과 보은의 혜국사 봄이면 꽃으로 치장을 하고 야생화가 만발한 산길에서 우보(牛步)의 낙(樂)을 누릴 수 있으련만 더운 가슴을 식히기 위해서 사뭇 다른 느낌의 더딘 걸음을 걷는다. 오랫동안 가물어서였을까. 계곡을 따라 오르는 동안 경쾌하게 흐르는 물줄기가 반갑기만 하다. 그렇게 800여m를 오르면 시원스레 물줄기가 떨어지는 '여궁폭포'를 만나게 된다. 수량이 늘어서인지 여느 때보다 더 힘찬 기운을 뽐내고 있다. 산길을 조금 더 오르면 혜국사를 만나게 된다. 혜국사는 신라 문성왕때(846년) 보조국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당시의 이름은 '법흥사'였다고 한다. 고려말에 홍건적이 두 번의 난을 일으켰는데 두 번째 침입때 개경이 함락을 당하는 국란을 겪게 된다. 당시 공민왕은 난을 피해 남쪽으로 피신하다가 영남으로 가는 길목인 험난한 문경새재를 넘어 법흥사에 잠시 몸을 의탁하며 임시로 대궐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후 개성으로 돌아간 공민왕은 법흥사에 그간의 보답으로 재물을 하사했다. 법흥사는 이러한 재물로 가람을 중수하고 국왕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의미인 혜국사(惠國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 산중 삶의 근거지가 되었던 대궐터혜국사에서 10여분 거리의 안적암을 지나면 샘터가 있는 대궐터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엔 고려 태조 왕건이 고사갈이성주(高思葛伊城主) 흥달(興達)의 귀순을 받고 성을 어류(御留)라 하고 보제암(普濟庵)이란 절을 지었다고 '문경현지'와 '증보문헌비고'에 전하고 있으며 고려말 공민왕 때도 행재소(幸在所)인 대궐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인 1970년대 까지만 해도 대궐터엔 정감록을 신봉하던 20여가구의 사람들이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지역이다. 그 자리에 가끔 바람을 따라 흩어지는 샘물이 작은 소란을 일으키고 있을뿐 고요함만이 자리하고 있다. 850여m의 높이에 위치한 대궐터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의 입을 빌려 뜻을 전한다해도 역사의 참모습을 헤아리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 홍건적의 난과 공민왕이 지나간 자리에 화전민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연결고리가 대궐터를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첩첩산중 외진 곳 산꼭대기까지 찾아든 그들 삶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 주봉과 영봉을 잇는 매혹적인 능선 대궐터 능선에 서면 문경읍 지곡리로 통하는 전좌문까지 잘 꾸며진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공민왕이 파발의 반가운 소식을 기다리던 곳으로도 알려져있는 전좌문을 지나면 주봉으로 오르는 길이 곧바로 이어진다. 주봉은 문경읍내 뿐만 아니라 사방으로도 조망이 훌륭하다. 덕분에 영봉보다도 낮으면서 주봉으로 불리고 있다 한다. 주봉에 서면 남쪽으로 문경읍과 관봉, 백화산이 보이고 멀리로는 대야산과 둔덕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북쪽으로 백두대간을 이루는 부봉과 포암산, 대미산 능선이 줄을 잇고 먼 뒤로 소백산 능선이 하늘금을 이루고 있다. 천천히 하늘 위를 걷듯 30여분이 지나자 어느새 영봉이 눈앞에 와있다. 영봉은 주변 조망을 위해 인위적인 간벌을 통해 조망을 확보하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지금처럼 나무들이 빼곡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주봉 못지않은 조망이었으리라. 하산길은 곧바로 조곡골로 내려서면 된다. 조곡골로 내려서면 꽃들이 만발한 '꽃밭'과 바위언덕을 가리키는 '서들'이 합쳐져 꽃밭서들로 불리는 조곡골의 돌무더기가 시선을 끈다. 가녀린 돌 하나를 다른 돌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곤 조용히 합장을 하곤 돌아서다 문득 일제강점기에 놓여졌다는 철로의 흔적이 있는 '조곡(鳥谷)골은 조곡(弔哭)골이 아니었을까'하는 의문 하나를 가슴에 품어본다. ■ 산행지: 경북 문경 주흘산(主屹山. 1,076m) ■ 산행일시: 2012년 7월 16일(월)○ 산행 안내■ 등산로1관문~여궁폭포~혜국사~안적암~1075봉~정상~2관문계곡~자연석탑~용추폭포~3관문(5시간)1관문~혜국사~능선~정상~조령2관문~조령1관문(4시간)■ 교통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IC~충주(3번국도)~수안보~이화령터널~문경새재 진입로~주차장

2012-07-19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기 안성 서운산(瑞雲山,547.4m)

■ 산행지: 경기 안성 서운산(瑞雲山,547.4m)■ 산행일시: 2012년 6월 26일 (화)○ 산행 안내■ 등산로석남사~서운산 정상~서운산성~은적암~청룡사 (3시간)중앙CC~서운산 정상~서운산성~은적암~청룡사 (3시간30분)청룡사~좌성사~서운산 정상~은적암~청룡사 (2시간30분)청룡사~은적암~헬기장~서운산 정상~좌성사 (2시간)■ 교통자가용:1. 경부고속도로 안성IC~안성 57번 지방도~서운면 산평교 삼거리~34번 국도~청룡저수지~청룡사2. 서해안 고속도로~서평택 IC~안성시외버스터미널 안성시청 앞 원형로터리~진천방면~옥천교~원오교~개산초등학교~마둔저수지~석남사3. 중부고속도로 진천IC~진천·성환 방면 34번 국도~청룡사4. 중부고속도로 진천IC~진천·성환 방면 34번 국도~백곡초등교 직전 313번 지방도~배티고개~석남사대중교통: ▲안성~청룡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06:25, 07:35, 08:55, 11:05, 12:25, 13:45, 15:55, 17:15, 18:35, 20:35, 21:55 출발하는 백성운수 시내버스 이용. 소요시간 30분, 1천300원. 백성운수(031-673-3456) ▲석남사 입구~안성: 장죽리에서 1일 14회 운행(06:30~21:50) 100번 시내버스 이용. 소요시간 30분, 요금 1천200원. 여름 한 낮의 날씨다. 너무나도 메마른 대지는 양동이로 들이붓는 물이라도 벌컥대며 마실 기세다. 저수지 물도 바닥을 드러내어 애달픈 농부 마음이 타들어간다. 필자가 찾은 당일에도 안성의 저수지들은 바짝 말라 쩍쩍 갈라져 있거나 바닥에 한껏 초지를 형성하고 있다.전주와 대구 그리고 안성을 일컬어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이는 곳이라 하였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던 장터가 열리던 곳이었다. 올망졸망 야트막한 산들이 구릉지대를 형성하고 많은 물을 가두어 농사 짓기에도 안성맞춤이었던 이 곳도 가뭄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산세에 비해 유난히도 많은 절터와 보물 청룡사(靑龍寺) 앞마당에 들어서니 6월의 초록빛이 그대로 내려와 법당에 머물고 있다. 맑은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 반짝이듯 영롱한 기운의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서기 1265년) '대장암'이란 이름으로 창건됐다. 공민왕 13년(서기 1364년) 나옹화상이 중창하며 청룡이 상서로운 기운(瑞氣)어린 구름(雲)을 타고 내려오는 광경을 보고는 이름을 '청룡사'로 바꾸고 산 이름 또한 '서운산(瑞雲山)'이라 지었다고 전해진다. 생각보다 한적한 절집 한구석 나무그늘에 앉아 한가로이 법당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무껍질을 벗긴채 그대로 세워둔 배불뚝이 원목 기둥들이 살아 움직이듯 꿈틀대고 있는 것 같았다.똑같은 모양이 없는 열 네 개의 기둥과 추녀를 들어올린 끝에 새겨 넣은 사천왕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무렵 꼬마 아이가 무심결에 범종을 두들기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보물 11-4호로 지정된 범종이 내는 소리다. 서기 1674년에 조성된 것으로 아직까지도 예불시간이면 이를 사용한다고 한다. 여운을 길게 남기는 소리를 마음에 두고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상회상괘불탱화(보물 1257호)와 조상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그려진 감로왕탱화(보물 1302호) 등의 귀중한 문화재를 둘러본다.■ 남사당패 바우덕이와 청룡사청룡사는 예인패 남사당의 본거지이기도 하였다. 그 남사당패를 이끌던 사람이 여장부 바우덕이이다. 청룡사 사적비 오른쪽 길로 따르면 부도탑을 지나 바우덕이 사당이 있고, 그 안쪽에 바우덕이가 살던 불당골이 있다. 청룡사로 하산해 간단한 걸음으로 다녀갈 수 있기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하산하며 뒤돌아 보니 개망초가 군락을 이루어 서운산 자락을 감싸며 바람에 하늘거린다. 산 위로 어느덧 흰구름 하나가 크게 일어나더니 잿빛 구름으로 변해 하늘 가득 들썩이는 형세다. 하늘을 향해 비를 청하고 섰기를 십수분, 허망하게도 어느새 맑게 개었다.■ 빼곡한 나무그늘은 한여름의 축복비교적 근대 건물인 좌성사로 가는 길은 한적하다. 절의 규모도 작고 오가는 이도 별로 없는 산길이어서 걷기엔 그만이다. 더군다나 나무그늘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서 햇빛에 씩씩거릴 이유도 없으니 더할 나위없이 좋다.여유롭게 올라도 한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의 좌성사는 침묵하듯 고요한 사찰이다. 그 흔한 독경 소리도 없다. 아쉬운 점은 이곳도 가물어 샘이 모두 말랐다는 점이다. 좌성사 대웅전 옆 길을 따라 3분만 오르면 미륵불상과 '서운정'이라는 팔각정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도 원시림처럼 우거진 나무들 덕을 톡톡히 누린다.미륵불과 팔각정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면 평택과 안성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가장 좋은 전망대 역할을 하는 탕흉대를 만나게 된다. 탕흉대야말로 서운산 전구간 중에서 가장 훌륭한 조망처로, 멀리는 천안까지 내려다 보이기에 꼭 거쳐가야할 구간이다.북산리 성지로 불리는 서운산성은 신라시대에 조성된 테뫼식 토축산성이다. 해발 535m에서 460m 지점에 6~8m 높이로 만들어진 서운산성은 길이가 1천70m에 달하며 탕흉대 일대에 걸쳐 있다. 여기서 7분 남짓이면 큰 바위가 있는 서운산 정상에 닿는다.도중에 여러 갈랫길이 나타나지만 안내 표지판만 잘보고 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안해도 된다. 이후 정상에서 석남사(石南寺)로 내려가는 방법은 주릉(동쪽)을 따르거나, 북쪽 지릉으로 내려가는 두 가지다. 주릉을 따라가다 왼편 골짜기로 내려서서 맑은 개울을 따라 내려가면 마애불을 거쳐 석남사에 이르게 된다. 이 길이 가장 대표적인 코스이긴 하나 자가용으로 원점회귀하는 산행이라면 능선에서 은적암으로 내려선 후 청룡사로 회귀하는 산행을 하도록 한다.석남사는 신라 문무왕 때 창건되어 임진왜란을 겪으며 소실된 뒤 조선 후기에 다시 세워진 사찰이다./송수복 객원기자 절집 거닐다 듣는 범종의 울림 운치 더해/산자락 가득 피어난 개망초 하늘거림 장관/천안까지 내다보이는 탕흉대 최고 조망처

2012-07-06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기 포천 왕방산(737m)

■ 산행지: 경기 포천 왕방산(737m)■ 산행일시: 2012년 6월9일(토)#임금이 머물던 자리가 산이름왕방산은 광주산맥으로부터 서쪽으로 뻗어나간 천보산맥의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포천시와 동두천, 양주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신라 헌강왕 3년(872)께 도선국사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을 때 절의 창건과 함께 왕이 친히 방문해 격려해주었다. 이때 산 이름을 '왕방산(王訪山)'이라 하고 절 이름은 '왕산사(王山寺)'라 했다고 봉선사 본말약지는 전하고 있다. 또 포천군읍지(抱川郡邑誌), 견성지(堅城誌) 기록에 의하면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이 산에서 무예를 익히고 사냥을 했으며, 왕위에 오른 후에도 단오와 추석에 강무(講武·임금이 참관하는 무예시범)를 했다하여 왕방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함흥에 살다가 한양으로 돌아오던 중 왕자의 난 소식을 듣고 비통한 마음을 달래고자 이 산을 찾았다는 다른 유래도 전해지지만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이와 관련 함흥에서 두문불출하던 이성계를 아들 이방원의 명령으로 모시러 갔던 대신들이 돌아오지 않는 일이 잦아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이 생겼다고 전해진다.하지만 이는 함경도 안변지역 동북면에서 안변부사인 조사의가 1만 여진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태종이 지역토호세력의 규합을 막기위해 상호군 박순을 파견, 수령들을 회유하였지만 실패해 죽음을 당한 게 후세에 잘못 알려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이성계의 묵시적 동의 내지 가담에 따른 결과라는 주장도 있음).#태조 이성계와 왕방산왕방산 서북방향에 위치한 소요산은 태조가 머물던 행궁이 있던 곳으로 함경도 안변지역으로 떠난 후 한양으로 돌아오지 않고 머물다가 성석린의 환도요청을 받고 한양으로 오던 중 추운겨울임에도 고집스럽게 찾아들어가 한양을 지척에 두고 태종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억누르고 삭이던 곳이기도 하다.이때 태종은 아버지 태조가 상왕(上王)으로서 정무에 소외된 것을 위로하기 위해 일부 정승을 소요산으로 보내 상왕의 결재를 받도록 조치하였고, 자신이 장기간 소요산에 머물며 상왕을 설득할때에도 신하들이 결재를 받으러 장기간 그곳에 파견되어 마치 정부가 그곳으로 옮긴 것과 같다하여, 그곳의 지명이 오늘날 '의정부(議政府)'라고 불리게 된 것으로, 왕방산과 소요산 일대는 태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지역이 아닐 수 없다.호병골 역시 호위병사들이 머물던 곳이 지명으로 굳어진 것으로 왕숙천, 팔야리(이성계가 한양에 들어가기 전에 여덟 밤을 지낸 마을) 등도 같은 경우라 하겠다. 참고로 이러한 유래를 갖고 있는 왕방산의 표기를 일제시대에는 왕(王)자에 날 일(日)자를 붙여 旺자로 바꿔 표기했으나 최근에는 원래의 '王'자로 바꿔 놓았다. 서울의 인왕산(仁王山)도 같은 경우로 볼 수 있다.#자동차와 자전거 그리고 등산객포천시내에서 왕산사까지의 도로를 따라 30분쯤 오르다 보니 아스팔트에서 더운 열기가 올라와 짜증이 밀려온다. 다시는 이 길로 안올거라고 다짐하며 산길로 접어드니 나무그늘 덕분에 살 것 같다. 왕산사에서 서쪽 길을 따라 30분을 올라 주능선 삼거리에 서자 안내판이 정성스레 정상으로의 길을 안내해준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능선에선 동두천시와 소요산이 지척인데다 발아래 포천읍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정상도 민둥머리처럼 밋밋하지만 북쪽으로 종현산, 금주산, 문악산, 주금산, 죽엽산 등이 보이고 한북정맥인 운악산, 국사봉, 백운산이 줄지어 나타난다. 산을 잇는 형태를 보노라면 마치 왕방산이 그 가운데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산중턱에 난 임도는 산악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잘 조성돼 있기에 취재 당일에도 많은 동호인들이 바람을 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양한 모습으로 마음껏 즐기는 사람들에게 산은 너른 품을 내준 것이다. 산 아래로 자동차 길을 내주었고 산중턱엔 자전거 길을, 그리고 산 능선에 산길을 인간에게 내준 것이다. 산행은 포천읍에서 호병골~보덕사를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있고, 포천읍에서 서북쪽 창수면을 넘어가는 고갯길인 무럭고개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진 주능선을 타고 정상에 이르는 방법 등 다양한 코스가 있으며 노약자나 어린이를 동반하여도 무난한 산행을 할 수 있을 만큼 위험구간이나 난코스는 없는 편이다.#피서지로 각광받던 깊이울계곡의 갈증왕방산 산행 코스는 국사봉 연계코스가 많이 이용되는데 왕방산 북쪽은 깊이울계곡, 무럭고개~왕방산 북동릉을 경유하는 코스가 대표적이며 산 동쪽 포천시내 방면은 한국아파트~북동릉, 신읍동 4통~왕산사~북동릉, 어룡동~밤나무단지~성광사~왕산사 갈림길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많이 이용되고 있다. 남쪽에서는 대진대학교와 선단초교에서 오르는 코스가 인기 있으며 산 서쪽 동두천시 방면에서는 탑동 왕방이 마을 오지재고개에서 시계(市界) 능선인 남서릉으로 오르는 코스가 자주 이용되고 있다.비교적 쉬운 내리막을 택하려다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 받고 있는 깊이울 계곡을 찾아 내려가기로 하고 해룡산과 천보산맥, 도봉산을 뒤로 한채 국사봉 방향의 깊이울고개에서 오른편의 계곡방향으로 내려선다. 녹음이 우거진 6월의 산길에서 만나는 싱그러움과 물소리 가득한 계곡을 상상하며 부푼 가슴으로 내려왔건만 가뭄은 생각보다 심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짝 말라버린 계곡에 그나마 몇군데 웅덩이처럼 고인 물도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 않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더군다나 손 담그기도 민망한 물에 발 담그고 머리 감는 풍경에 실소를 금치 못하고 뒤돌아서 서둘러 내려오고야 말았다. '배려' 라는 단어가 새삼 큰 무게로 다가온다. ○ 산행 안내■ 등산로포천시청~호병골~왕산사~삼거리~왕방산 정상~삼거리~한국아파트 갈림길~무럭고개(4시간50분) 포천시청~호병골~왕산사~삼거리~왕방산 정상~깊이울고개~깊이울계곡~깊이울저수지~심곡2리(4시간30분)무럭고개~한국아파트 갈림길~525봉~왕산사 갈림길~왕방산 정상~왕방이고개~깊이울고개~깊이울저수지~심곡2리(4시간)오지재고개~570봉~장기바위~674봉~왕방산 정상~깊이울고개~깊이울계곡~심곡2리(4시간)■ 교통수도권외곽순환도로~별내IC~포천 송우리~차의과대학 방향 좌회전~오지재고개

2012-06-15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충북 괴산 청화산(970m)

■ 우복동천(牛腹洞天)을 품에 안은 백두대간 청화산택리지의 저자인 이중환이 조선 최고의 명승지로 꼽았던 곳이 청화산 자락에 있다. 그는 자신의 호 조차도 청화산인(靑華山人)이라 칭하고 청화산 자락으로 들어와 살았다. 일명 '우복동천'이라 칭하는 곳인데 우복은 소의 배 안을 닮아서 사람이 살기 편안하며 동천은 산과 내가 둘러있어 경치가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곳을 찾아 많은 이들이 전국 팔도를 유람하며 자신들의 힘겨운 삶의 위안을 찾고자 했다. 민초들의 삶은 여간 고달픈 것이 아니었다. 부귀영화를 쫓는 삶이 아니라 처절하게 삶을 영위하기 위한, 생존을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 몰락한 양반 가문의 자제들도 우복동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을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다산산문집' '우복동가(牛腹洞歌)'라는 시구절에서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속리산 동편에 항아리같은 산이 있어옛날부터 그 속에 우복동이 감추어져 있었다네산봉우리는 둘러싸고 골짝물이 천겹 백겹 굽이치고여민 옷섶 겹친 주름 터진 곳도 없네출입문은 대롱만큼 작은 구멍 하나라네송아지가 배를 땅에 붙여야 겨우 들어갈 정도라네…(중략)종이위에 누에 깔리듯 인구가 너무 많아 나무하고 밭 일구고 발 안닿은 곳 없으니남아 있는 빈 산지가 어디에 있을겐가아아 우복동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아마도 다산은 우복동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현실적인 측면에서 주변 문제들부터 돌아보고 해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또한 "근세에 고가(故家) 후예로서 먼 지방으로 영락(零落)되어 와서 사는 사람들은 영달(榮達)할 뜻은 없이 오직 먹고 살아가는 일에만 힘쓰고 있다. 심한 경우는 새처럼 높이 날아가고 짐승처럼 멀리 달아나려고 하여 우복동(牛腹洞)만 찾고 있는데, 한번 그 속으로 들어가면 자손들이 노루나 토끼가 되어버리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며 다산이 제생에게 주는 말에도 우복동이 기술되어 있다. 유토피아 우복동을 향한 백성들의 마음을 이미 헤아리고도 남았을 다산은 오히려 현실개혁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그러면서 세상을 이롭게 할 생각없이 오직 자신의 목숨 부지에만 연연하는 선비를 '멍청한 선비'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300여년이 지난 현재 우리 삶을 보더라도 다산은 같은 말을 하였을듯 싶다. ■ 초록의 바다를 떠도는 구름과 맞닿은 하늘금산행의 시작을 늘재에서 하기로 한다. 백두대간 마루금도 밟아볼 요량으로 거대한 석조물 앞에서 폼내고 힘을 주어본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도 1시간30분은 훌쩍 지나야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길이라 천천히 여유를 가지며 모처럼 시간을 즐겨본다. 30여분 정도 오른 후 '정국기원단(靖國祈願壇)'이란 비석과 향로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 도착해 맞은편의 속리산 구간을 두루 감상하며 쉬어간다. "일본 야스쿠니 신사도 같은 한자를 쓰는데 왜 저런 한자를 썼을까 의문이 드네요." 바닥에 쓴 한자가 '정국신사(靖國神社)'다. 휴일을 맞아 백두대간을 진행중이라던 박진용(49·서울시 영등포구)씨가 바닥에 써놓은 한자와 비석에 새겨진 한자를 가리키고 있다.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이는 까닭에 사진으로 기록해 두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그럭저럭 오를만 하던 길이 혀를 바닥까지 늘어뜨리도록 힘이 드는 길로 바뀌고 있다. 스틱에 의지하면서 호흡을 조절하며 힘겹게 정상에 서자 북쪽으로 조항산(951m)·대야산(931m)·둔덕산(970m)이 보이고 동편으로 시루봉(876m)과 연엽산(791m)이 지척이다. 마주보고 있는 속리산 암릉구간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모습으로 연상되며 멋진 풍경을 연출하는 청화산 정상은 일출 감상포인트로 손색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천년고찰 원적사 아래 우복동 시루봉으로의 산행은 백두대간 능선을 따르다 오른편의 길로 찾아들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잘 못들어 헤매는 곳으로 유명하다. 갈림길을 벗어나면 곧바로 전망바위에 도착하게 되는데 산행 중 가장 훌륭한 전망을 보여주는 곳이다. 웅장한 기운과 함께 드러나는 장쾌한 산줄기에 압도되어 숨이 멎을 지경이다. 게다가 옹골찬 힘을 모아 한 곳으로 모아놓은 듯한 모습의 시루봉에 서자 청화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바위마다 기운이 서리고 그 아래로 어미닭이 알을 품듯이 인간에게 안온한 품을 내주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쌍룡계곡을 두고 마주한 도장산(830m)에서 시루봉과 청화산을 바라보면 그 모습을 더욱 극명하게 볼 수 있는데 필자가 3년전 도장산을 답사하였을 때 청화산이 주던 느낌과 같다. 화산 방향으로 서둘러 하산을 마친 후 봉축일을 맞아 원적사로 향하는 차량에 합승해 다시 청화산 방향으로 올라간다. 능선과 맞닿을듯한 높이에 위치한 원적사는 신라 무열왕7년(660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근래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을 지내신 서암(西庵)스님(1914~2003)이 50여년 동안 기거하셨던 곳이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이상 산행중에 만날 수 없는 참선수행 도량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 산행지: 충북 괴산 청화산(970m) ■ 산행일시: 2012년 5월 28일(일)○ 산행안내■ 등산로늘재 ~ 청화산 ~ 대간갈림길 ~ 시루봉 ~ 비치재 ~ 장군봉 ~ 회란석(5시간)■ 교통경부고속도로 ~ 청원상주고속도로 청원JC ~ 화서IC ~ 수청거리삼거리 ~ 우복동

2012-06-01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강원 영월 마대산

■ 산행지: 강원 영월 마대산 (1,052m)■ 산행일시: 2012년 5월 6일(일)○ 산행 안내■ 등산로노루목 ~ 김삿갓생가 ~ 주능선안부 ~ 정상 ~ 처녀봉 ~ 선낙골 (4시간30분) 노루목 ~ 김삿갓생가 ~ 주능선안부 ~ 정상 ~ 안부 ~ 김삿갓 생가 (3시간)■ 교통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서제천IC ~ 5번 국도 ~ 제천 ~ 영월방향 38번 국도 ~ 와석리 ~ 민화박물관 ~ 김삿갓 묘#방랑시인 김삿갓의 자취를 찾아 가는 길박물관과 생가를 보존하고 있어 2009년까지 하동면으로 불리던 동네가 김삿갓면으로 개칭이 됐다. 김삿갓으로 알려진 김병연(金炳淵·1807~1863년)의 묘가 있기 때문인데 이제는 그럴싸한 관광지로 변모했다.사면으로 둘러싸인 산들로 인해 늦게 해가 들고 일찍 어두워지는 강원도 산골 오지마을, 첩첩산중에 자릴 잡은 김삿갓 묘는 전설 같은 그의 행적과 맞닿아 있다. 마대산은 이러한 김삿갓의 흔적들이 있는 곳으로, 백두대간 선달산의 고치령과 마항치 사이에 자리한 형제봉의 가지쯤에 해당하는 지맥으로 보면 된다. 이러한 산자락 동쪽에 위치한 김삿갓 유적지에는 시비(詩碑)공원을 비롯해 묘지, 생가, 박물관 등이 자리하고 있어 등산객 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찾고 있다. 더군다나 한여름이면 김삿갓 계곡을 찾아 더위를 피하려는 피서객들까지 가세해 산골오지 마을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한뼘 만한 하늘이 보이는 깊숙한 산골의 유적지 공원을 지나 산길을 따라 걷는 길은 산책코스에 가깝다.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걷기 적당한 길을 20여분간 걷다보면 작은 계곡이 합수되는 지점에 위치한 폭포 앞에서 한걸음 쉬어갈 수 있다. 5월의 햇살이 한여름 땡볕처럼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이 필자만이 아니라는듯 벌써부터 하나둘 자리를 잡는다. 시흥에서 온 박흥석(56)씨가 "삿갓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게 아닌가 싶네요. 얼굴을 가릴게 아니라 햇빛부터 피하고 봐야지…"라며 하늘을 올려다 본다.다시 발품을 20여분 팔아 도착한 곳은 외딴 농가가 있는 곳으로 합수점인데 이곳에서 200여 m를 더 올라야 김삿갓의 주거유적지에 도착하게 된다."홍경래의 난때 항복한 것 때문에 역적 집안으로 몰려 이곳 영월에 들어와 숨어 살았다고 하는데 김병연이 20세 되던 해에 영월에서 백일장에 응시한게 원인이라고 합니다. 조부를 대상으로 비판한 글로 장원까지 하였다가 곧 사실관계를 알고 난 뒤 자신의 조부를 그토록 신랄하게 비판한 자신에 대해 자책하며 지내다 22세에 집을 나서 줄곧 방랑생활을 하였다죠."박흥석씨의 말에 따라 생가를 둘러보며 전남 화순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기까지 조선 땅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풍자와 해학으로 한시대를 풍미했을 모습을 떠올려 본다. #숨가쁘게 올라야 만날 수 있는 마대산 정상생가 유적지를 지나 계곡길을 따라가다 보면 오래된 집터가 나타나며, 곧 계곡길은 끝이 나고 급경사 오르막을 만나게 된다.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점이라고 봐도 무방한 길이다. 봄이 시작됨과 함께 매서우리만치 내려쬐는 햇살로부터 벗어나 나무그늘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윽한 솔향을 맡으며 급경사 길을 30여분간 올라서면 주능선 안부에 도착하게 되는데 모처럼 가슴 뻐근한 호흡을 하였더니 전신이 개운해지는 느낌이다.마대산 정상은 주능선에서 서남방향으로 200여m를 더 가야한다. 왕복해야하는 단조로움 때문에 꺼리는 이들도 있지만 정상에 서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부지런히 올라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곳에서의 조망은 북동방향으로 뻗은 주능선과 서북 방향의 태화산이 지척으로 고씨동굴 관광지와 남한강의 시원한 물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 선 이후 온 길을 되돌아 내려갈 수도 있고 북동방향으로 이어진 능선길을 따라 처녀봉 방향으로 하산을 하여도 좋다. 마대산 산행중 가장 좋은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은 정상에서 처녀봉 방향으로 9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1천30m 전망대 바위를 꼽을 수 있다. 이곳에 서면 동쪽으로 백두대간의 능선길인 함백산, 태백산, 구룡산, 선달산을 지나 소백산으로 잇는 멋진 하늘금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장관이 펼쳐지고 그 아래 산속분지의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듯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된다. 전망대를 지나 처녀봉에 서면 다시 선낙골 방향으로 급경사 내리막 길을 따라 하산해야 한다. 외딴 농가가 나올 즈음이면 대강의 산행은 끝이난다. /송수복 객원기자

2012-05-11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충북 제천 저승봉(596m)

■ 산행지: 충북 제천 저승봉(596m)■ 산행일시: 2012년 3월 25일(일)# 금수산 자락에 숨은 영롱한 보석과도 같은 암릉작성산(鵲成山·848m)과 동산(東山·896m), 금수산(錦繡山·1천16m)을 이루는 산줄기가 단양군과 경계를 이루면서 갑오고개를 두고 서편으로 뻗어나간 능선에 신선봉(845m)과 저승봉(미인봉·596m), 조가리봉(562m)이란 이름이 붙은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다. 월악산 국립공원 내에 속한 산들의 유형이 그렇고 청풍호반을 끼고 도는 능선들의 형태 또한 크게 다르지 않듯 이 능선의 특징 또한 유사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한편으로는 충북 괴산의 악휘봉과 닮은 면도 보인다. 산 자체가 위험천만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는 암봉이란 뜻이다.특히 신선봉에서 저승봉에 이르는 구간은 각별한 주의가 요망되는 곳으로 한겨울의 적설기 등반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능선의 좌우에 위치한 능강계곡과 학현계곡은 피서지로도 각광을 받는 곳이기에 한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저승봉은 과거 멧돼지가 많아 돼지'저(猪)'자를 사용한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저승봉 북쪽 학현리로 난 계곡을 저승골이라고도 한다. 현지 사람들은 저승봉이라는 이름 대신 '미인봉'이라고 부르기를 원하며 미인봉이라 쓰인 정상석이 있다.# 산 아래 아지랑이 산 위에서 눈보라로…동네 길을 따라 굽이굽이 올라선 버스가 내리막에서 비틀댄다. 봄날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던 버스가 도착한 학현리 마을에 발을 디뎠다. 이틀전 내린 눈이 고스란히 쌓인 모습에 아차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젠을 차에 두고 온 것이다. 스패츠도 놓고 왔는데 다행히 장갑은 챙겨왔다. '괜찮겠지…'하며 벌써부터 산에 오르기 시작하는 일행을 따라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하나 몇 걸음 가지 않아 만만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낯익은 초록의 생명체가 참나무 가지 끝에 걸린 모습을 보다가 넘어지더니 이내 넘어지는 횟수가 늘어만 간다. 발의 디딤이 불안정하니 한걸음 전진할 때마다 힘이 들어가고 점차로 더딘 걸음을 걷는다. 인천에서 답사차 산을 찾았다는 이응배(59·인천 도화동)씨는 "우리팀도 아이젠을 갖고 온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날씨가 그리 좋았는데 산에 눈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지요"라고 말한 후 등산화에 묻은 눈을 툭툭 털어내려는 양 애꿎은 나무를 걷어차고 있다. 그러더니 밧줄 하나를 앞에 두고 엎어지고 자빠지기를 수차례 반복하던 그의 일행들은 그만 하산하기로 한다. 오를수록 많은 눈으로 인해 등산화로 파고드는 눈 때문에 발목이 시려오기에 양말이 젖지 않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데 잦은 넘어짐과 밧줄구간으로 인해 장갑도 젖어 온다. 게다가 따사로운 햇살이 구름사이로 숨더니 이내 바람과 함께 달갑지 않은 눈발이 날린다. 제천학생야영장이 있는 학현슈퍼에서 출발하면 통상 1시간가량 걸리는 거리를 20분이나 더 소비를 하면서 전망데크가 설치된 학봉에 서자 청풍호가 눈보라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학이 날아오르는 형상에서 유래된 학봉과 학현리….모두 학과의 인연을 두고 지어낸 이름들이다. 학봉은 774m로 그다지 높은 편에 속하지는 않지만 암봉의 특징상 너른 조망이 압권으로 갑오고개 방향으로의 동산이 손에 잡힐 듯한 거리고 능강계곡을 뒤덮은 운해 위로 솟은 금수산의 자태가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는 모습을 감상하기 좋은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금수산에서 이어지는 망덕봉(926m), 가마봉(635m), 작은산밭봉(485m)을 연결하는 능선이 구름 위에서 솟았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더니 어느새 구름이 사라지더니 사방으로 막힘 없는 조망을 나타낸다. 월악산의 영봉과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하늘금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청풍호 방향에 위치한 저승봉(미인봉)으로 가야 할 길을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하다. 눈쌓인 암봉을 아이젠 없이 헤쳐가야 한다는 게 어떤 일인지 너무도 잘알고 있기 때문에 발걸음이 무겁다. 밧줄도 단단히 얼어붙어 있어서 장갑을 젖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중이니 쉬운 게 없는 길이다. 학봉을 출발하자마자 능선 안부로 내려서는 계단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정작 위험한 구간은 계단으로 내려서는 순간이다. 손과 발의 감각을 총동원하여 밧줄을 잡고 발 디딜 곳을 찾아 발을 내려 놓지만 밧줄을 움켜쥔 손과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산은 준비된 자만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내내 떠들던 순간이 떠올라 부끄러워진다. 몇 년전에 작고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의 저서 중 '하얀거미'의 한부분을 연상했다고 한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바위를 덮은 눈과 얼음으로 인해 많은 등반가들의 희생을 가져왔던 아이거 북벽처럼 만만치 않게 위험천만한 동작을 이어가며 힘겹게 계단까지 내려서자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진다. 이후 계단을 한 번 더 오르는 것으로 다시 바윗길을 따라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구간이 나오는데 평소와 같은 날씨였다면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는 곳이다. 잡을 곳과 디딜 곳이 확실하므로 경험자와 동행하여 약간의 보조만 해준다면 초보자도 종주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나 노약자와 아이를 동반하면 안될 것이다.모양도 제각각인 바위들을 감상하며 길을 따르다 부드러운 흙길 구간에서 다시 학현리로 향하는 오른편의 길을 따라 내려선다. 그간에 지나왔던 길에 비하면 유순하기 이를 데 없는 길이다. 매년 산악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구간이라 그런지 곳곳에 산행 안내판과 안전보조 장치가 잘 구비되어 있으나 노후된 밧줄이 닳고 닳아서 이른 시일 내에 보수가 이뤄져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눈쌓인 암봉을 탈출하듯 빠져나와 오지마을이었던 학현리 마을로 내려서서 맑디 맑은 계곡물에 얼굴 씻으며 저승을 오간 듯한 아찔했던 순간을 기억에서 지워내본다. 항상 준비하고 또 준비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새기는 순간이다.○…산행 안내■ 등산로청소년수련장앞(70분/1.7㎞) ~ 안부삼거리(40분/1.6㎞) ~ 정상(30분/ 1.6㎞) -안부삼거리(40분/0.8㎞) ~ 손바닥바위갈림길(60분/1.2㎞) ~ 청소년수련장(7.2㎞, 4시간)■ 교통영동고속도로 ~ 만종JC 중앙고속도로 ~ 남제천IC ~ 학현리

2012-04-05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영주, 충북 단양 소백산

■ 산행지 : 경북 영주, 충북 단양 소백산(1,440m)■ 산행일시 : 2012년 3월 10일(토)# 겨울 찬바람과 눈보라가 절정을 이루는 소백산4월부터 피어나기 시작하는 야생화가 지천이며 5월말이면 철쭉꽃의 장관이 절정을 이루고 한여름이면 여기저기로 뻗어나간 물줄기를 찾아와 더위를 식히던 소백산은 차라리 겨울이 더욱더 매력적이다. 능선으로 다가가는 발걸음은 그다지 무겁지 않다. 어의곡이든 희방사 방향이든 일단 오름을 시작한 이상 그다지 힘들 것 없는 무던한 길이다. 산행이 순조롭지 않거든 운동 부족을 이유로 들어야지 산 자체가 힘들다고 탓할 것은 못된다는 이야기다.소백산은 20여㎞ 유순하게 이어진 능선과 긴계곡처럼 여운이 긴 산이다. 이것이 다녀오고 나서도 할 말이 많은 이유다.겨울 소백산행은 여지없이 북풍한설의 칼바람에 맞서게 된다. 세상천지에 어디서 그러한 바람을 맛볼 수 있을까?앞사람의 등짝이라도 도움이 될까 다가서 보지만 언감생심(焉敢生心) 속절없이 몰아치는 눈보라 앞에서 그저 입을 다물고 서둘러 추위를 피해 달아날 궁리만 할 뿐이다. 춥다 그리고 또 춥다. 한겨울의 소백산은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야만 겨울산의 멋진 풍광을 선사해 준다. 그리고 그 감동은 긴 여운을 남기기에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독살이 하던 옛모습처럼 고즈넉한 희방사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시간의 지명 논쟁은 쉽사리 끝나 보이지 않는다. 영주시 의회를 통과한 '소백산면'이란 지명때문에 불화가 생긴 것이다. 산 하나를 두고 오랜 세월 이웃으로 지내던 곳이 지명때문에 싸움질을 시작하게 된 것인데 가만히 속내를 들여다 보면 영월의 '김삿갓면'을 벤치마킹하려한 것으로 보인다. 유명세를 등에 업고 경제적인 이득을 보기 위한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그저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산골 동네면 족한 것을 그리도 성을 내며 싸워야 하는지…. 속리산면이 속리산이 아니듯 추풍령면도 추풍령이 아니다. 공연한 싸움일랑 말고 그저 예전의 모습처럼 지내길 바랄 뿐이다. 봄비가 겨우내 드리웠던 우중충함을 거두어 가려한다. 하지만 꿋꿋하게 겨울을 간직하고 있는 소백산 자락의 어느 외진 곳. 아랫마을의 어지러운 싸움판을 떠나 눈덮인 서까래 아래로 고드름 가득한 희방사를 찾았다. 독살이 하며 겨울을 나던 스님의 모습도 예전의 기억에서만 존재하는 곳이다. 한여름이면 시원한 물줄기에서 일어나는 물안개로 더위를 식히던 희방폭포에 다다르자 두께조차 가늠하기 힘든 얼음덩이가 하얀 기둥을 이루고 서있다. 이른 아침이어서였을까. 더욱더 찬기운이 느껴지는 까닭에 서둘러 가파른 오르막길로 다가선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외투를 벗어 배낭에 넣고 양손에 등산스틱을 고쳐쥐곤 거친 숨 한 번 몰아쉬며 올라본다. # 줄지어 오르던 신년산행 코스가파른 길이지만 줄지어 오를 수 밖에 없을만큼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코스가 희방사~연화봉~비로봉 구간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주말 등산객들이라면 한 두번씩 경험을 했으리라. 마찬가지로 필자가 찾은 주말 아침에도 10여개의 산악회 회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하며 올라야 했다. 등산로를 벗어나면서까지 오를 수도 없는 구간인지라 묵묵히 갈 길을 간다. 연화봉까지는 그나마 순탄한 산행이다. 문제는 능선에 다다르고 나서부터인데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어댄다. 아랫마을에선 춘삼월 냉이가 지천이고 달래도 캐러간다 하는데 소백산 능선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눈송이가 바람을 타고 유랑을 하다 모두 이곳에서 멈춘 것일까. 도무지 햇볕이 소용이 없다. # 장중한 산맥의 줄기와 곱디고운 계곡의 속살을 한 눈에…소백산 능선은 탁트인 가시권으로 장쾌한 볼거리가 으뜸인 곳이다. 반면에 그로 인해 마땅한 바람막이도 없으니 강렬한 바람과 뜨겁도록 내리쬐는 햇살로 인해 산행이 쉽지않은 곳이기도 하다. 운좋게 날씨 좋은 날 다녀간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이 전부인양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나 10차례 이상 겨울 소백산을 찾은 필자는 양볼과 손가락에 동상을 입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만반의 준비가 필요없으리만큼 급강하한 기온과 매서운 바람앞에 속수무책이었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기만 하다. 어의곡에서 올라온 등산객들과 합류가 되어 더욱 혼잡스러운 비로봉에 서서 앙칼진 바람소리를 듣는다. 흡사 산에 다녀오는 날 술취해 집에 갈때 아내에게 듣던 목소리다. 지독하게도 온몸을 파고드는 바람도 지쳤는지 점차 온순해지더니 푸른 하늘을 베고 누운 산자락을 마음껏 음미할 기회를 준다. 잠시나마 눈만 빼꼼 내놓던 갑갑함에서 벗어나 본다. 가슴이 트이고 눈호강을 이리도 격하게 할 수 있겠느냐며 다들 호들갑이다. 코넬대학교 인간행동연구소의 신시아 하잔 교수는 남녀간의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격정이 넘치는 사랑도 한계가 있다는 얘기인데 열정을 제외한 정(情)적인 부분으로 치자면 엄연히 사랑은 형태만 달리할 뿐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산에 대한 열정, 사랑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철마다 그리워지는 소백산에서 맞은 또 한해의 겨울을 이렇게나마 보내고 나니 어느덧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다. ○ 산행 안내■ 등산로죽령 ~ 연화봉 ~ 비로봉 ~ 비로사 ~ 풍기삼거리 (5시간)희방사 ~ 연화봉 ~ 비로봉 ~ 어의계곡 (5시간30분)천동매표소 ~ 비로봉 ~ 비로사 ~ 삼가매표소 (4시간30분)어의곡매표소 ~ 비로봉 ~ 어의곡매표소 (4시간30분)■ 교통영동고속도로 ~ 남원주IC ~ 중앙고속도로 ~ 풍기IC ~ 풍기

2012-03-15 김종화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강원 횡성 운무산(980m)

■ 산행지: 강원 횡성 운무산(980m)■ 산행일시: 2012년 2월 26일(일)# 구름과 안개에 숨은 운무산겨울가뭄 탓에 쌓인 눈의 색마저 검게 변색돼가고 있다. 얼마나 가물었을까. 봄철 농사에 지장이 있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이 앞선다. 이런 때일수록 산불을 조심해야 된다. 산을 찾는 사람들 모두 안전과 산불예방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산행 전 산불예방을 위해 산림청 홈페이지를 통해 입산금지 구역을 확인한 후 계획을 세우도록 하자.강원도 횡성군과 홍천군에 걸친 운무산은 한강기맥에 속해 있다. 백두대간 두로봉에서 서쪽으로 뻗어나온 이 산맥은 계방산을 지나 청량봉에 이르러 경기도 방향으로 줄기를 이어간다. 운무산은 그 가운데 위치한 산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잦은 안개로 인해 신비감이 가득하다. 능선 곳곳 어른 키를 넘는 철쭉나무로 인해 봄이면 아름다운 색으로 치장한다. 여름이면 숨겨놓은 비경의 계곡을 여럿 거느린 탓에 입소문으로만 찾아온 피서객들로도 성시를 이룬다. 능선 곳곳 거느린 기암과 절벽은 마치 설악의 어느 한 곳을 옮겨놓은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러나 등산로가 나있지 않은 까닭에 눈으로만 감상하는 데 만족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겨울설경의 절정을 이룬 능선길국도변에 위치한 속실리 마을회관에서 산아래 마을 안길로 들어선다. 폭이 좁은 도로를 타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시골마을의 아기자기함과 정겨움이 느껴지는 나무팻말이 눈에 띈다. 일기예보에서 한파를 동반한 폭설이 영동지방을 강타한다고 하더니 이른 아침부터 눈발이 날리며 도로에 쌓였다. 계곡 깊은 곳까지 차량이 들어갈 수 있는데 산행기점으로 삼은 운무산장마저 진입하기 어려운 지경이라 마을버스 종점 공터에 주차하고 산에 오르기로 한다. 능현사 방향 시멘트로 포장된 길가로 동네 아이들이 계곡에서 눈썰매를 지치고 어른들은 얼음을 깨고 천렵에 나섰다. 산골마을 몇 안 되는 놀이에 열중하는 모습을 뒤로 한 채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선다. 한숨을 돌리며 산아래를 굽어보니 제법 올라온 듯하다. 능현사 주방에서 물동냥을 하고 본격적인 산행에 접어들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팻말이 '한강기맥 0.82㎞'를 적시해 놓고 있다. "겨우 1㎞도 안 되는 거리잖아. 금방 가겠네"라며 산행에 동행한 박영민(56·수원)씨가 말한다. 그러자 일행 모두 수상한 날씨에 등산로가 묻히면 어쩌냐며 걱정을 앞세운 뒤 쉬운 산행이 되길 빌어본다.낙엽송이 가득한 산길을 따라 눈속으로 사라진 길을 찾아 발을 내딛는다. 머리와 어깨에 수북히 쌓여가는 눈 때문에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고도를 올릴수록 더욱 굵어지는 눈송이와 그 양에 다들 같은 느낌이었으리라. 산길은 전반적으로 유순한 편이었다. 막판 능선부근 약간 가파른 걸 빼곤 평이하였으니 별다른 특징을 느낄 수 없는 산길이다. 가끔 드러내는 커다란 바위가 주는 중압감 정도를 빼면 운무산이 무엇 때문에 아름다운지 도통 매력을 느낄 만한 부분이 없었다. 그러다 설화가 만발한 한강기맥 가운데 서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백설이 만연한 것은 둘째로 우선 안개 가득한 운무산 주변으로 상고대가 능선을 이루고 있으니 겨울에 그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루는 듯하다. 그러나 발목을 덮는 눈길을 헤치다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점입가경(漸入佳境)이 예서 나온 말이 아닌가 싶다.# 운무산의 숨은 속살 천연요새 암릉길눈보라 속에서 길을 찾아 가는 게 누군가에겐 쉬운 일이기도 하고 또 어느 누군가에겐 큰 공포로 다가오기도 한다. 산행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안전이다. 눈 앞을 분간키 힘든 눈이 내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하산을 서두르는 것이 가장 올바른 판단이다. 그렇기에 운무산 정상에 서자마자 쉴 틈도 없이 하산길로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여 무릎까지 눈이 쌓이기라도 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 운무산장까지 한달음에 내려온 후에야 일행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 한 잔을 할 수가 있었으니 그야말로 도망치듯 하산했다. 30여분이나 걸렸을까. 물론 눈이 쌓인 덕에 잘 미끄러져 내려온 탓도 있으리라. 어찌되었든 폭설을 피해 무사히 하산을 하였음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을로 돌아오는 찻길을 따라간다. 오후가 되어 날이 개면서 전반적인 산세를 볼 수 있었는데 올려다본 기암과 절벽이 또 다른 운무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설악 어디쯤에서나 볼 수 있는 풍에서 가슴이 쿵쾅거리며 두근거린다. 걸음을 멈추고 폐쇄된 등산로 팻말을 보고 있자니 속실리 4반장인 조인행(62)씨가 "예산부족으로 등산로를 개발하다 만 곳인데 일반인이 지나기엔 위험한 곳이에요. 그냥 눈으로만 보고 만족해야지 섣불리 오르려 들다간 큰일난다"고 한다. 한번쯤 올라보고 싶은 충동이 이는 암릉을 눈과 마음속에 새겨 두고 뒤돌아서는데 다시 눈발이 거세진다. 하늘이 준 기회였으리라. 암릉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에서 만났던 눈보라가 마을길을 덮치고 있기에 다시금 도망치듯 도로를 달려 나간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일행 모두가 상기된 표정들로 암릉과 눈보라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잊지 못할 추억 하나가 그렇게 산골마을 뒷마당에 겨울 눈송이처럼 쌓여 가고 있었다. ○…산행 안내■ 등산로운무산장 ~ 운무산 ~ 삼거리(한강기맥 방향) ~ 능현사 ~ 마을길(3시간 30분)■ 교통영동고속도로 ~ 둔내IC ~ 청일면사무소 방향 ~ 춘당리 ~ 속실리 마을회관(노인회) ~ 마을안길 ■ 운무산 산행 TIP단체 산행지로 적합하지 않은 곳으로 운무산자락으로 이어지는 길은 승용차만 통행이 가능한 작은 길이다. 단체 산행을 할 경우 속실리 마을회관 앞에 주차를 하고 도보로 이동하여야 하는데 만만치 않은 거리를 이동하여야 한다. 가급적 소규모 인원으로 산행하도록 하며 낭떠러지가 곳곳에 있으므로 등산로를 이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12-03-01 김종화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 충남 서산 팔봉산

#거친 숨 몰아쉬며 달려온 바다 끝 용틀임바다를 바라보며 선 자리에 불꽃과도 같이 타오르는 열정으로 빚어진 바위 덩어리가 한데 모였다. 꽃을 피우고 힘을 과시하듯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힘찬 바위들에게서 강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충남 서산에 위치한 팔봉산은 아기자기한 산행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으로 금북정맥 금강산(361m)에서 분기한 지능선에 속하여 있다. 갖가지 모양을 지닌 바위들이 능선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산자락 아래로는 임도를 따라 조성된 둘레길이 있고, 1봉부터 3봉까지의 암봉을 오른 후 기우제터와 운암사지를 거쳐 오는 원점회귀 산행을 하여도 팔봉산의 매력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 9개의 봉우리를 따라 모두 오른다 해도 3시간이 걸리지 않을 만큼 짧지만 여운만큼은 강렬하게 남는다. 보다 긴 산행을 원할 경우 8봉과 접한 금강산과 연계하면 5시간 정도의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비릿한 바다내음 가득한 바윗길 서해안 고속도로 서산IC를 벗어난 버스가 들어선 곳은 팔봉산자락에 위치한 양길리 주차장이다. 산행을 시작하기도 마치기도 하는 곳이니 어지간히 붐비는 곳이라 생각하였지만 비교적 잘 정비된 탓이라 많은 인파에도 여유롭다. 시산제를 준비하는 산악회들의 분주한 모습을 뒤로 하고 1봉으로 향하는 길과 1봉과 2봉 사이의 안부를 통해 오르는 갈림길에서 잠시 고민을 해본다. 하지만 1봉의 전망을 빼놓을 수 없다는 말에 1봉으로 바로 오르는 길을 택한다. 자연스럽게 바위와 밀접해지는 능선길로 향하는 길에서 진작부터 암반에 붙는 착화감이 좋다. 15분 정도를 걸어서 능선으로 붙는 첫 번째 관문에 도착을 하니 벌써부터 서해의 가로림만이 눈에 들어온다. 육지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 바다가 가로림만으로 간척사업에서 간신히 벗어난 바다를 팔봉산 능선에서 고스란히 눈에 담아 둘 수가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앞으로 지나갈 봉우리들이 보여줄 비경에 기대를 거는 것이 이상할 리 없다. 하지만 그저 밀려갔다 밀려오기를 반복하는 가로림만의 바다는 조력발전소 건립 문제를 두고 현지 주민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분쟁을 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가로림만 조력발전소는 최근에 가동을 시작한 시화조력발전용량(25만㎾)보다 두 배가량 많은 52만㎾의 생산이 가능한 규모로 사업 타당성 검토를 마친 상태다.어촌에서는 갯벌을 풍요의 상징으로 여길 만큼 풍부한 자연 생태계를 자랑하는데 이것이 조력발전소 건립으로 인해 황폐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사업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방조제 부근에 해양종합관광단지가 개발되면 관광객이 연간 5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만내 수면의 정온화로 투명도가 증대돼 양식업 소득도 500여억원이 늘어난다고 전망하고 있다. 어느 것이 옳은 판단일까. 갈 길을 알 리 없는 바다는 속내를 감추고 고요속에 잠들어 있고 그저 인간들만 떠들썩하다.#팔봉산의 짓궂은 장난, 해산굴과 용굴1봉에서 4봉까지는 줄기차게 암봉으로 이어져 있어서 조망권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특히 겨울철의 경우엔 눈과 얼음으로 인한 위험성이 증가하므로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1봉과 2봉 사이의 안부를 지나면 계속해서 철계단이 나타나는데 역방향으로 진행하는 등산객들과 조우(遭遇)시 기다림으로 인한 시간지체가 잦은 곳이니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기로 한다. 한데 그 기다림은 뜻밖의 곳에서 더욱 시간을 더해가야만 하는데 그곳은 바로 '용굴'로, 흡사 홍천 팔봉산의 해산굴과 닮았다. 배낭을 멘 채로는 절대로 빠져 나갈 수 없는 굴의 크기 때문에 몸을 비틀고 힘을 주어 빠져 나가야 한다. 물론 우회로가 있어서 몸에 흙 하나 안 묻히고 능선으로 가는 방법도 있으니 각자 알아서 할 요량이다. 팔봉산의 수호신으로 지내던 용이 살았던 비좁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니 가슴이 순간적으로 확 뚫리는 듯 시야는 밝아지고, 너른 벌판을 두루 굽어보는 기막힌 명당터에 도착을 하니 말문이 막힌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도끼자루 썩어나도록 산과의 유희를 즐기고픈 심정이다. 용굴을 통해 나온 세상에서 만난 3봉에서의 조망은 가히 압도적으로 사방 어느 곳 막힘이 없다. 그저 하늘아래 바다와 육지를 잇는 곳에 나 홀로 존재하는 듯한 착각에 빠질 만한 곳으로 경계가 허물어진다. 삶과 죽음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하늘과 육지와 바다가 모두 하나가 되어 돌아가는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의 독보적 존재감을 찾아서 가는 길이 팔봉산 3봉에 있다. 그렇게 하나 되어 돌아가는 것으로 물아일체(物我一體)적 감동이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장소다. #유순한 흙길 따라 꿈을 이어 가는 길힘차게 올라친 기상을 받아 한껏 고무된 기분이 강해서였을까. 4봉을 지나고 나니 흙길이 너무나도 단조롭게 다가온다. 오르내림의 의미조차 느끼지 못할 지경이니 산행의 재미를 잃고 의무적으로 하산길에 접어드는 기분이다. 원래의 9개 봉우리가 이름을 갖지 못하고 한 개를 빼놓아 팔봉이 되었다는 전설에서도 흥미를 갖지 못하다가 고려 말 무학대사가 창건하였다는 간월암(看月庵) 낙조에 정신을 놓아버린 이도 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이면서 천수만 일대를 온통 불바다로 만들며 떨어지는 거대한 태양을 두 눈 부릅뜨고 쳐다보리라 다짐도 해본다. 그러나 팔봉산 정상에서의 낙조를 기대하면서 뒤돌아 보고 올려다 보는 노릇을 멈추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산쟁이의 숙명인가 보다. /송수복 객원기자 ○…산행 안내■ 산행지: 충남 서산 팔봉산(八峰山, 362m)■ 산행일시: 2012년 1월 29일(일)■ 등산로양길주차장-1봉, 2봉, 3봉(정상)~8봉-서태사-어송주차장(2시간 30분)양길주차장-1봉, 2봉, 3봉(정상), 4봉-북쪽 천제단-대피소-호랑이굴-1·2봉 중간-양길주차장(2시간 30분)■ 교통 -대중교통서산버스터미널에서 팔봉면 양길리행 또는 어송리행 시내버스(30분 소요)어송행 06:25 08:20 10:05 10:50 14:35 15:30 17:05양길행 06:20 09:10 12:05 13:25 16:30-자가용서해안 고속도로 - 서산IC - 서산 - 팔봉면 어송리, 양길리-내비게이션 주소 (어송리 주차장 - 충남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347의 4)(양길리 주차장 - 충남 서산시 팔봉면 양길리 820)

2012-02-02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강원 횡성 덕고산

■ 산행지: 강원 횡성 덕고산(德高山·1,135m) ~ 봉복산(鳳腹山·1,022m)■ 산행일시: 2012년 1월 8일(일)# 때 묻지 않은 청정오지의 산한여름이라면 신대계곡의 시원한 물줄기에 더위라도 씻겨 보련만 온통 얼어붙은 탓에 찾아가는 길도 녹록지 않다. 스키 시즌을 맞은 강원도에서의 주말 산행은 참으로 각오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오지로의 산행은 그러한 걱정들을 벗어던질 만한 매력을 안겨주기에 달콤한 유혹에 빠져든다. 봉복산과 덕고산은 오염되지 않은 청정 산행지로 대중교통 접근성은 떨어진다. 덕분에 그다지 많이 찾지 않는 탓에 보존환경이 좋은 편이다. 한여름엔 신대계곡의 청량감에 더위를 씻을 수 있고 겨울엔 심설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지만 표고차가 큰 편에 속하므로 준비운동은 필수로 하여야 한다. 산줄기는 백두대간을 기점으로 하여 오대산에서 계방산을 지나 덕고산(德高山·1천135m)과 봉복산(鳳腹山·1천22m)을 만나게 되는데, 한강기맥에 속하며 영월지맥에 해당하는 태기산과는 성골을 사이에 두고 있다. 산행은 원점회귀하는 코스가 가장 무난하다. # 공허한 바람만 가득한 쓸쓸한 주차장얼음으로 뒤덮인 신대계곡을 따라 산의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니 이곳 또한 개발의 바람 앞에 노출되어 펜션들이 들어차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상류에 해당하는 곳까지는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로가에 설치된 등산 안내판을 따라 주차장으로 찾아갔으나 대형버스도 이용하기 좋도록 해 놓은 주차장이 승용차조차 들어설 수 없도록 조치를 해두었으니 드넓은 주차장엔 바람만이 가득하다. 다시 차를 몰아 펜션 갈림길인 삼거리 빈 공간에 주차를 하고 길의 오른편 표식기들을 따라 걷는다. 출발한 지 3분쯤, 거리에 위치한 안내판의 방향이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만큼 계곡방향으로 틀어져 있다. 좋은 길을 놔두고 왜 이러나 싶어 살펴보니 차가 다닐 만한 길은 개인 소유지이므로 출입이 불가한 것이다. 안내판 방향인 철조망을 따라 계곡방향으로 나아가니 작은 컨테이너 있는 곳에서 다시 길이 갈라진다. 계곡을 건너서 봉복산 능선으로 바로 붙는 길과 컨테이너를 지나는 길인데 계곡과 방향을 같이 한다. 한남대계곡이라 불리는 이곳은 덕고산으로 바로 오르기도 쉽고 등산로가 완만하기에 덕고산으로 오른 후 봉복산을 다녀오기에 좋은 코스로 안내되어 있는 길이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어느 산길보다 유순하다. 표현하기 좋게 딱 걷기 알맞은 길인 것이다. 하지만 깊은 계곡이다. 끝을 알 수 없는 길고 긴 계곡처럼 느껴지는 길이다. 게다가 양 옆으로 늘어선 능선들의 위용에 정상에 오를 수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마저 든다. 계곡 초입에서 만난 여러 개의 표식기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 자리에 짐승의 발자국만 난무하게 되니 갈수록 오리무중이요, 오를수록 정상은 보이질 않으니 당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저 앞서간 이가 남긴 발자국이 최선이자 진실로 통하니 참으로 깊고 깊은 계곡에서 허덕이는 꼴이다. # 실낱처럼 이어지는 능선길에서 만난 순백의 향연계곡 초입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심설산행에 대한 기대를 접었던 터였다. 그러나 오르면 오를수록 눈의 양이 비례하여 많아져간다. 어느덧 능선에 다다를 즈음, 마치 설악의 어느 골짜기에서 히말라야 원정을 위해 훈련을 받던 장면이 연상된다. 그러다 보니 한 걸음 전진에 두 걸음 후퇴하기 일쑤인지라 힘이 배로 들고 전진이 더디기만 하다. 골짜기가 끝나는 지점에서는 옹골차게 몰아붙이기까지 하여 땀이 등골을 타고 흐른다. 다 올랐나 싶으면 다시 이어지는 오름길에 어느새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겨우 암봉에 선다. 능선 오른편 덕고산까지 한걸음에 다녀올 수 있는 지점이라 지나는 이도 없고 하여 슬쩍 배낭을 감추어 두고 다녀온다. 어차피 고생보따리인지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겠지만….지나는 이도 오르는 이도 없는 덕고산에서 힘차게 돌고 있는 태기산의 풍차들을 바라보고 먼 발치에 놓인 오대산과 설악산을 눈에 담아두고 돌아선다. 그러자 바람이 얼굴과 온 몸의 빈 곳을 찾아 파고든다. 바람을 안고 능선을 타야 하는 방향으로 산행코스를 잡았으니 잠시의 판단 실수로 인한 고생은 순전히 자신의 몫일 수밖에 없다. 암봉에서 배낭을 찾아 봉복산으로 향하는데 홍천 방향으로의 지형이 가파른 절벽구간이어서인지 우회로가 많이 형성되어 있어서 능선의 정상을 밟지 못하니 조망 또한 시원스럽지 못하다. 그러나 오르내림의 편차가 적어서 체력의 소모는 여타 능선에 비해 덜한 편이다. 봉복산 정상에 다다르자 햇살 좋던 날씨에서 눈이라도 퍼부을 것 같은 분위기로 바뀌어 간다. 바람은 한층 더 거세져서 분설에 눈이 부시고 얼굴이 따갑기조차 하다. 허파에 바람들기 딱 좋은 상황이다. 그저 겨울 바람은 어서 넘어가고 봄 바람은 어서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먼 하늘을 바라보자 작은 눈송이들이 날리기 시작한다. 봄 꽃송이란 착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러나 그 눈송이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소나무들은 죽을 맛일 게다. 그러다 지치면 쓰러지기까지 하니 세월을 이겨온 것도 한순간의 꿈이 되고 만다. 가파른 하산길에서 만난 소나무들도 애처로운 상황에 처해 있기는 마찬가지 모습이어서 안타깝기만 하다. 일찌감치 산 너머로 해가 떨어질 것이기에 하산을 서둘렀음에도 산죽 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파른 하산길이 끝나고 원점으로 돌아오니 이미 해는 자취를 감췄다. 표고차가 800m에 이르는 산행인 데다 찬바람에 노출되어 있던 시간이 길었던 탓인지 돌아오는 내내 햇살 아래 녹아내리는 눈사람처럼 아무 생각없이 쓰러져버리고 말았다./송수복 객원기자 ※산행안내■ 등산로신대리주차장 ~ 계곡삼거리 ~ 덕고산 ~ 봉복산 ~ 계곡삼거리(7시간)신대리주차장 ~ 봉복사 ~ 덕고산 ~ 1094 암봉 ~ 한남대계곡 ~ 주차장 (5시간30분)■ 교통영동고속도로 둔내IC ~ 둔내(장평)방향 ~ 홍천서석방향 좌회전 ~ 신대방향 우회전 ~ 신대리

2012-01-12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강원도 양구 사명산

■ 산행지: 강원도 양구 사명산(四明山·1천198m)■ 산행일시: 2011년 12월 16일 (금)# 한층 가까워진 오지산행지춘천을 거쳐 양구로 가야하는 길이 고속도로 덕분에 한층 빨라졌다. 예전보다 더 빨리 다가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는 것은 바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사명산을 처음 만난 것은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마지막 구절인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를 입에 달고 살던 서른살의 나이였다. 10여년이 지난 즈음에 다시 찾는다는 설렘에 들뜬 마음으로 산행기점으로 정한 추곡약수터로 향한다. 양구 사명산은 금강산에서 시작되는 도솔지맥(兜率枝脈)의 여러 봉우리 중 하나다.도솔지맥은 백두대간이 금강산 아래로 남진하며 매자봉(1천144m)을 기점으로 나뉘는데 내륙방향으로 흐르는 산줄기로 민간인이 지날 수 있는 최북단에 위치한 도솔산(1천148m)~대암산(1천304m)~봉화산(875m)을 거쳐 사명산(1천198.6m)을 지난 후 죽엽산(859m)과 추곡령, 종류산(811.1m)~부용산(882m)~오봉산(779m)~수리봉(656m)을 지나면 북한강과 소양강 합수점이 있는 우두산(133m)에서 끝을 맺는 능선이다.# 명약이 따로 없는 효험 좋은 추곡약수터춘천을 지나고 배후령을 넘어설때 쯤 고갯마루 오른편의 오봉산으로 향하는 등산객들의 행렬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보다 쉽게 산을 오르기 위해서 택하는 코스로 가장 선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의 소견은 피해야할 코스이기도 하다. 오르막 없는 능선길에서 마냥 내려서기만 하는 산행코스는 관절의 손상을 가중시키고 위험도만 증가시키기 때문이다.심폐기능과 근력의 향상을 위해서는 반대로 산행을 하여야 한다. 겨울철엔 특히 위험도가 증가하므로 피해야 할 구간임에도 많은 이들이 능선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오그라들 지경이다.겨울철은 산행코스 선정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다치고 나서 하소연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추곡약수터는 춘천서 양구로 이어지는 46번 국도를 이용해 춘천시 북면 추곡리를 찾아가면 된다. 한때 주차장 이용요금으로도 막대한 수입을 올릴 정도로 그 유명세를 이어갔던 곳이다.특히 위장병과 당뇨에 특효가 있다는 입소문이 나 많은 이들이 요양과 치료를 목적으로 이 물을 마셨는데 이는 꿈에서 산신령의 계시를 받은 동네주민 강원보라는 사람이 1812년에 발견해 동네 주민들이 각종 병환에 효험을 보면서 입소문을 탄 것이라고 한다.현재는 신경통과 아토피, 고혈압에도 효험이 있다고 전해지며 중증의 환자들이 이 물을 마시고 병의 호전이 있었다 하나 그 실체에 대해 규명된 바 없이 구전으로 전해질 뿐이다.아찔한 구름다리를 지나 문바위봉으로 향한다. 산새소리 하나 없는 것이 적막강산(寂寞江山)이다. 게다가 바싹 말라버린 낙엽소리만 들을 줄 알았는데 벌써부터 쌓인 눈이 오를수록 점입가경(浙入佳境)이다. 형편이 이러다보니 한걸음 올랐다 두 걸음 미끄러지는 수고를 마다할 수 없다. 바짝 올라붙던 길이 잠시 느슨해진 틈을 타서 얼른 낙엽 위로 엉덩이를 붙이고 잠시 쉬어본다. 눈이 내리려는지 구름이 내려앉고 바람도 없이 적막 그 자체다. 하늘 아래 참나무 끝 까마득한 높이에 푸름을 간직한 겨우살이가 까치집 모양으로 달렸다. 겨울임에도 열매 맺고 푸르름을 간직할 수 있다는게 놀라울 따름이다. 참고로 겨우살이 채취를 목적으로 입산하는 경우 산주의 동의가 없으면 상당한 벌금을 내게 된다.고요속에서 혼자 걷던 가운데 단발마에 가까운 비명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웃음이 섞인 비명이다. 문바위봉으로 가기전 만나게 되는 무명탑으로 이어진 구름다리가 그 원인으로, 등산로와 비켜서있는 암봉에 조성된 무명탑으로 갈 수 있도록 놓여진 것인데 호기심에 건너가던 등산객들이 구름다리 중간에서 질러대는 소리였다. 재미삼아 건너다니는 모습을 보니 군대시절 유격훈련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안전상 문제가 있어 보이므로 함부로 건너다니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 사방팔방 경치 좋은 사명산 정상눈길에서 미끄러지며 엉덩이로 깔고 앉은 등산스틱이 엿가락 휘듯 휜 것에 대한 보답을 해주려는 것일까. 사명산 정상에 서니 춘성(춘천), 화천, 양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동쪽으로 소양호(昭陽湖)가, 서쪽으로는 파로호(破虜湖)가 한눈에 보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봄철이면 진달래와 철쭉으로,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으로, 가을엔 오색 단풍으로 사시사철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으로 겨울의 설경 또한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능선의 웃자란 나뭇가지에 핀 설화가 산새의 날갯짓과 바람에 낙화되어 산정무한(山情無限)의 정취를 더하는 곳으로 사방의 막힘 없는 조망은 설해(雪海)를 이루고 있다.현재 양구팔경으로 소개되기를 제1경 두타연, 제2경 펀치볼, 제3경 사명산, 제4경 광치계곡, 제5경 파서탕, 제6경 파로호, 제7경 후곡약수터, 제8경 생태식물원을 두고 있으니 사명산 정상에서의 조망에 대해 더 할 말이 있을까. 그러나 역사속에서의 사명산은 가뭄 끝에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민병대를 조직하여 전투를 하였고, 6·25 전쟁 당시에는 중공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아픈 과거가 담긴 곳이다.산이 지닌 아름다움 속에 숨은 인간의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이다. 파랗던 파로호 물빛이 노을에 물들며 붉게 다가올 즈음 선정사 방향으로 하산을 하니 산너머로 해가 넘어간 지 오래인지라 추위가 급속히 피부로 다가온다. 시린 발 걱정을 저만치 앞세우고 종종걸음으로 도로를 걷던 중 빙판에 미끄러지며 하나 남은 등산스틱마저 깔고 앉는 통에 어이없는 웃음만 나온다. 비웃기라도 하듯 구름 없는 어두운 하늘에 별 하나가 반짝인다. 이래저래 고개 숙인 하산길이다./송수복객원기자 ※ 산행 안내■ 등산로웅진상회 ~ 선정사 ~ 사명산 ~ 1162봉 ~ 문바위봉 ~ 7층석탑 ~ 추곡약수(6시간30분)웅진상회 ~ 선정사 ~ 사명산 ~ 1162봉 ~ 문바위봉 ~ 수인리(4시간40분)■ 교통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 서울춘천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배후령길 ~ 추곡약수터

2011-12-22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상주 속리산 문장대

■ 산행지: 경북 상주 속리산 문장대(1,033m) ■ 산행일시: 2011년 12월 3일(토)# 추억의 편린(片鱗)1989년 겨울, 두 명의 대학생이 속리산 겨울산행을 위해 길을 나섰다. 문장대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을 무렵엔 벌써 내려앉은 땅거미에 어둑해진 뒤였다. 고된 행군처럼 줄기차게 오름짓을 이어가다보니 등에선 김이 모락모락 나고 이마에선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스무살의 청년들에게 이정도쯤은 식은 죽 먹기 인양 힘으로 밀어붙이는 산행이었다. 흠뻑 젖은 머리와 어깨 위로 함박눈이 내려도 그만이었고 등산화에 눈이 들어와도 개의치 않았다. 젊다는 것을 최고의 무기로 알았던 무모함 탓이었으리라.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며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동시에 느끼면서 점점 환영과 몽환적인 상상속에 빠져 가던 중 천황봉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멀어져 가던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몰아치는 눈 속에서 확인이 가능한 것이라곤 정상석 뿐이었다. 4개의 소형 건전지로 버텨오던 랜턴도 빛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어서 다급해진 마음에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정표도 없는데다 길마저 눈에 덮여 어디로 가야하는지 방향도 못잡고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희미한 랜턴 불빛에 보이는 발자국…. 얼마나 반가웠던지 앞서간 발자국의 주인공을 만나고자 있는 힘을 다해 내달렸다. 5분여도 안되어 발견한 사람은 하얀 농복에 지게를 진 노인이었다. 나를 향해 손짓으로 자신을 따라오지 말고 아래로 내려가라는 손동작을 한다. 정신을 차리고 그 노인이 일러준대로 굴러 떨어지듯 하산을 하고보니 허름한 농막의 불빛이 보였다. 기진맥진해 탈진한 상태로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하자 냉큼 들어오라 한뒤 아랫목을 내어준다. 공부하는 할아버지인데 인근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설명해 주신 후 그 분을 만났기에 살아온 거라며 기특해 하신다.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되질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따질만큼 체력이 남아있질 않았기에 따스한 아랫목을 차지한 채 잠이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을 맞아 기운을 차리고 그 집을 나와 도심으로 향했다.# 20여년 만에 오른 문장대속리산국립공원 화북분소를 지나 오송교 다리를 건넌다. 사뭇 새로운 느낌이다. 예전에는 어떤 느낌이랄 것도 없이 지나던 길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오송폭포의 마른 물줄기를 지나 산죽밭으로 들어가는 길 또한 정겹고 반갑기까지 하다. 문장대에 오르면 어떤 마음이 들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예전만큼의 발걸음처럼 점점 서둘러지고 있었다. 조금은 촉촉이 젖은듯한 날씨속에 걷는지라 문장대에서의 조망은 안개속일 것이란 막연한 생각이었다. 한시간여를 걸었을까 생각지도 않은 눈길을 지나고 있지 않은가. 조금 더 오르자 "어라 이거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만큼 눈의 양이 많아지고 있었다. 미처 아이젠을 준비하지 못한 다른 등산객들의 난감한 표정을 뒤로 하고 발에 힘을 주어 힘들게 문장대에 오르니 눈이 제법 쌓였다. 예전의 기억만큼은 아니지만 바람도 제법 불어대는 통에 문장대 정상에선 겨우 1분여를 서있지 못했다. 관음봉·북가치·묘봉을 잇는 암봉들을 바라볼 기회도 놓치고 백두대간의 힘찬 줄기 또한 바라보지 못한 채 바람을 피해 내려선다. 문장대는 원래 큰 암봉 하나가 하늘높이 치솟아 구름속에 숨어 있다해서 운장대(雲藏臺)라 불리우던 곳이다. 조선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 꿈속에서 어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전했다. 세조가 이 말을 듣고 운장대에 오르니 정상 부근에 삼강오륜을 명시한 책 한 권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하루를 지내며 글을 읽었다해서 지금의 문장대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문장대 아래의 휴게소는 국립공원 중에서도 소음이 심하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라는데 손님이 뜸해서인지 오늘만큼은 조용한 분위기다. 국립공원내에 있긴해도 사유지에 해당하다 보니 통제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 도(道)를 잃고 방황하다속리산의 명칭은 최치원의 한시(韓詩)에서 유래됐다는 설(說)이 있다. 도불원인 인원도(道不遠人 人遠道) /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하려 하고, 산비리속 속리산(山非離俗 俗離山) / 산은 속세를 여의치 않는데 속세는 산을 여의려 하는구나. 속리산을 송두리째 들여다 볼 기회를 놓치고 날씨에 속아 하산을 서두르면서 길가에서 마주치는 휴게소마다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노래가 섞이며 산이 들썩인다. 산을 삶속에서 위안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옳은 일이나 산 그 자체로의 순수한 자연 그대로를 받아들이려 하지않는 듯 보인다. 법주사 앞마당을 건너 상가촌으로 향하다 길가의 쓰레기를 양 손 가득 주워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띈다. 산이든 어디든 사람이 발을 붙이는 곳 어느 곳에서나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보듬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삶의 다양성에서 비추어보면 이면적인 행동도 있는 법이니 무엇을 탓하고 무엇을 꾸짖을까. 그저 인생이란 여정에서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 산행 안내■ 등산로:화북탐방지원센터~오송폭포~문장대~냉천골휴게소~용바위골휴게소~세심정휴게소~법주사■ 교통:경부고속도로 하행선~청원상주 고속도로 화서IC~화북면사무소~속리산 국립공원 화북분소/송수복 객원기자

2011-12-08 송수복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전남 장흥 천관산

■ 산행지: 전남 장흥 천관산(723m)■ 산행일시: 2011년 11월 20일(일)# 호남 5대 명산 천관산에서 느껴보는 가을의 끝자락천관산은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1시간 30여분이면 정상에 닿아 노약자와 어린이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가족공원과도 같은 느낌의 산으로, 북으로는 광주의 무등산을 비롯해 영암의 월출산과 인근의 제암산이 보이며 남쪽으로 남해의 다도해와 멀리 제주도의 한라산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조망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1998년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전망대와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천관산자연휴양림에서의 야영은 그 운치를 더해준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수많은 등산객들이 빼곡히 줄지어 오를 만큼 북적이는 탓에 산과 마을을 잇는 산길마다 울긋불긋 오색 향연의 축제가 벌어져 넓디 넓은 주차장도 몸살을 앓는다. 정상부엔 전국에서 손에 꼽힐 규모의 억새평원이 펼쳐지고 봉우리마다 기암이 자리하고 있어서 볼거리를 더해 준다. 매년 가을 열리는 억새축제를 피해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나름의 매력으로도 충분히 가 볼만한 산으로 서울 세종로 광화문 한복판에 설치된 도로원표(道路元標)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동(正東)은 정동진(正東津)이고, 정북(正北)이 가장 춥다는 중강진(中江鎭)이다. 그리고 정남진(正南津)인 장흥(長興) 땅에 솟은 천관산은 기암과 억새와 다도해의 푸른 바다를 품고 있어서 3박자를 갖춘 산이라 할 수 있겠다. 신산(神山)이라고도 불리던 천관산은 지제산(支提山) 또는 천풍산(天風山)이라고도 하였는데, 첩첩이 쌓인 기암괴석이 천자의 면류관 형상을 하고 있는 데다가 천관보살이 살았다 하여 천관산(天冠山)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호남정맥의 끝자락에 속하는 천관산에는 6개 동천(洞天)과 44개 영봉(靈峰) 그리고 36개 석대(石臺)가 있고, 옛날에는 89암자가 있어 28명의 대사를 배출했으며, 금강산 다음의 명산이었다고 천관산기(天冠山記)는 기록하고 있다.# 절경의 기암과 어우러진 억새평원축제는 끝이 났고 사람들은 떠났다. 휑한 주차장에 덩그러니 놓인 몇 대의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리지만 몇 주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이다. 허허롭게 서 있는 장승 옆 등산 안내판을 보기 전에 먼저 반기는 것은 호남제일 지제영산(湖南第一 支提靈山)이라 적힌 커다란 안내석이다. 간편하게 몸풀기를 하고 정상부인 연대봉으로 가기 위해 산길로 접어든다. 방송의 힘인가. 1박2일에 소개됐던 탓에 '이승기 길'과 '강호동, 이수근 길'이 기존의 안내판에 나란히 붙어서 길을 안내하고 있다. 재밌는 현상으로만 생각하고 복잡한 계산은 배낭에 집어넣고 다시 길을 간다. 일찍 오르려면 양근암 코스(2.3㎞)를 택할 것이고 조망과 구경거리를 찾는다면 환희대(3.6㎞) 방향을 따르면 된다. 선택은 각자의 몫으로 등산객들도 같은 버스를 타고 왔어도 갈 길은 제각각이다. 그렇게들 갈 길을 찾아가고 나도 길을 따라 오른다.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사각거리는 낙엽이 정겨운 길을 얼마나 올랐을까. 종봉, 천주봉, 관음봉, 선재봉, 대세봉, 석선봉, 돛대봉, 구룡봉, 갈대봉, 독성암, 아육탑 등을 비롯해 수십 개의 기암괴석과 기봉이 꼭대기 부분에 삐죽삐죽 솟은 모습을 보며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과 섞였다. 마땅한 바위 하나를 골라 앉아 눈앞에 펼쳐진 남해바다를 눈에 두고 있는데 추수가 끝난 관산읍 벌판이 공허한 하늘처럼 다가온다. 푸른 바다며 너른 벌판이며 하늘이 모두 비어있는 듯 허한 상태로 떠다니는 듯하다. 바다와 하늘의 구분 없이 떠다니다가 억새를 뒤흔들고 지나온 바람에 문득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느긋하게 올라 쓸쓸한 벌판을 지나 가을이 머문 바다를 바라보다 하루를 다 보낼 판이다. 제암산에서 삼비산을 거쳐 존재산으로 뻗은 호남정맥은 바다에 닿을 듯하면서도 기운차게 뻗어나간다. 고흥 소록도와 거금도는 돛단배처럼 느껴지고, 완도 청산도와 보길도는 고래 등을 닮았다. 그 외에도 거금도, 금당도, 금일도, 생일도, 신지도… 등 이름도 생소한 섬들이 즐비하다. 억새 명산 가운데 명성산은 전쟁 중 폭격으로 나무들이 없어져 억새평원이 생겼고, 천관산은 고려 때 일본공략에 나선 여몽연합군이 군선건조를 위해 산의 수림이 크게 남벌당해 만들어졌다. 임진왜란 때도 군선건조와 왜인들의 방화약탈로 다시 울창한 수목과 사찰들이 큰 수난을 겪었으며, 일제강점기부터는 일본 회사들의 건축재 반출사업으로 산이 크게 헐벗게 되어 억새군락을 이뤘다고 한다. 억새군락 하나에도 역사가 있고 아픔이 있어서인지 유독 을씨년스런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가 애처롭게 보인다. 가던 걸음을 얼마 못 가 다시 멈춘다. 암릉 9개가 하나의 암봉군(岩峰群)을 이룬 구정봉(九頂峰)을 비롯해 관세음보살이 불경을 실은 돌배의 돛대라는 석선봉(石船峰), 아홉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봉(九龍峰) 등 크고 작은 기암들 때문이다.# 하늘빛과 바다가 하나되는 연대봉천관산 정상인 연대봉(烟帶峰·723m)에 섰다. 옛날에는 옥정봉(玉井峰)이라고도 했으나, 연기가 피어오른다 하여 봉수봉(熢燧峰) 또는 연대봉으로 불렀다 한다. 1986년에 복원했다는 동서 7.9m, 남북 6.6m, 높이 2.3m의 봉화대가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며 설치되어 있다. 봉화대는 왜적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고려 의종 3년(1149년)에 처음 쌓은 후 낮에는 연기(熢)로, 밤에는 횃불(燧)로 나라의 위급을 연락하던 통신수단이었다. 지금은 기념물처럼 기념사진의 배경노릇이 유일하지만 이 길 저 길에서 오른 사람들로 다소 북적이는 연대봉을 지나 본격적인 억새 구경에 빠져든다. 이미 한풀 꺾인 억새가 더 부서져라 사각거린다. 평원을 달리던 말의 영혼이라도 지나는 것일까, 유난히도 거센 바람에 더욱 부서질 듯 온 몸을 부딛힌다. 바람을 피해 억새밭 가운데에 앉았다. 억새 사이로 다도해가 어른거린다. 흔들리는 억새처럼 바다도 흔들리고 하늘을 떠가는 구름 같은 섬들이 바다에서 방황하듯 보인다. 봄이었다면 능선을 가득 채운 진달래꽃 너머로 보았을 그림이다. ※ 산행안내■ 등산로장천재 ~ 양근암 ~ 정원석 ~ 연대봉 ~ 환희대 ~ (구룡봉) ~ 구정봉 ~ 금강굴 ~ 선인봉 ~ 장천재(4시간)장천재 ~ 금강굴 ~ 구정봉 ~ 억새능선 ~ 연대봉 ~ 정원석 ~ 양근암 ~ 장천재(5시간)■ 교통경부고속도로-천안 논산 고속도로 천안JC-호남고속도로 산월IC-방촌삼거리-천관산

2011-11-24 송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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