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61]'안나 카레니나'와 결혼

당신의 결혼은 안녕하신지요? 질풍노도의 신혼 시기를 지나 문득 삶을 돌아보게 될 때, 결혼 생활이 채워주지 못하는 가슴 속의 큰 공허가 발견될 때, 혹은 치명적인 사랑이 운명처럼 찾아왔을 때 돌연 결혼은 행복이 아닌 심각한 물음이자 인생의 장애물로 얼굴 표정을 바꾸게 됩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결혼이라는 완강한 제도와 우발적으로 찾아온 뜨거운 욕망 사이에서, 황홀한 사랑과 함께 여기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심리적 불안과 사회적 지탄 사이에서 갈등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안나 아르카디예브나 카레니나(러시아에서 결혼한 여성은 남편의 성 뒤에 -아', '-아야'를 붙여 이름을 짓는 관행이 있음)의 비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 소설은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러시아 농노제 · 계급해방 · 무신론 · 서술기법 등을 다룬 지식인소설이기도 합니다. '안나 카레니나'에 영향을 준 두 계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호를 긋고 선로에 뛰어든 어느 귀부인의 자살을 목격한 톨스토이의 개인적인 체험이고, 다른 하나는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입니다. '마담 보바리'는 매력 꽝인 시골 의사와 결혼한 낭만주의자 엠마 보바리가 사랑 없는 따분한 결혼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충족을 갈망하다가 두 번의 불륜 끝에 자살을 선택하고 마는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엠마 보바리든 안나 카레니나든 이들은 현실의 논리보다는 감정의 명령에 따라 사랑의 만족을 선택한 이들입니다. 일부일처제 이외의 욕망을 모두 불륜으로 간주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맞서 인간의 열정과 관능적 욕구를 선택했다 침몰한 여성들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나 플로베르는 모종의 교훈적 메시지를 던져주기 위함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의 모순과 욕망의 덧없음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주기 위해 이런 작품을 쓴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로 톨스토이는 최악의 결혼 생활을 한 작가였습니다. 편의상 결혼을 좋은 결혼 · 무난한 결혼 · 나쁜 결혼 · 아주 나쁜 결혼으로 나눌 수 있을 듯한데, 최선이 아닌 모두를 위한 차선에 불과한 결혼이라는 제도가 있는 한, 나아가 이를 극복하고 막을 별다른 묘방은 없기에 제2, 제3의 엠마와 안나가 나오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개개인들이 지혜로운 선택을 하고 정신의 체력을 기르며, 대화를 통해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는 것이 유일한 대안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안나 카레니나'와 '마담 보바리' 등 결혼을 다룬 고전적 명작들과 함께 잠시나마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브론스키와 안나, 로돌프와 엠마를 적절하게 위무해주는 말랑한 연애소설과 멜로드라마를 읽어 보는 것도 하나의 임시방편이 될 듯합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3-28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60]'안나 카레니나'와 장르문학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안나 카레니나'(1877)는 문학의 문학이다. 영미권 작가들이 꼽은 세계 최고의 소설일 뿐더러 예술 · 사랑 · 결혼 · 종교 · 윤리 · 계급 · 서술기법 등 소설의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하여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완성됐고, 어쩌면 세계소설사는 '안나 카레니나'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이거나 그 영향의 흔적들일지도 모른다. '안나 카레니나'의 문학성은 주제와 시학의 통일 곧 사상과 서술형식의 조화로운 융합에서 올연히 빛난다. '전쟁과 평화' 혹은 '부활'이 아니라 '안나 카레니나'가 톨스토이의 대표작으로 재조정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톨스토이의 수용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다. '애국가' 작사가로 언급되는 윤치호(1865~1945)가 1896년 특명전권공사 민영환을 수행하여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했다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영문판을 읽은 것이다. 이에 대한 기록이 '윤치호 일기' 1896년 7월 11일자에 등장한다. 톨스토이를 좌표로 삼아 그를 적극적으로 자기화한 작가는 춘원 이광수(1892~1950)다. 대중적 계몽소설 '흙'(1932)의 주인공 허숭은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레빈의 후계자이며, 또 세간을 등지고 시베리아로 떠나는 '유정'(1933)의 최석 이야기와 작품의 분위기에서 얼핏 톨스토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도 한다. 마츠모토 세이초(1909~1992)의 사회파 추리소설 '북의 시인'(1974)은 러시아문학이 한국근대문학의 저변을 이루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문학청년 시절의 임화(1908~1953)가 톨스토이와 다다이즘에 심취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높은 주장이라 하겠다. '부활'과 '인생론'같은 텍스트가 한국에 널리 유포된 것은 일본의 문학인들이 톨스토이의 무소유 · 참회 · 허무주의의 사회적 확산을 통해 일제의 군국주의와 전체주의를 견제하려한 문학적 기획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안나 카레니나'는 정계의 실세이나 매력 없는 외모에 무미건조한 남편(카레닌)과 결혼한 여성(안나)이 치명적인 사랑에 빠져 지내다 자살하는 비극적 이야기다. 또 자기완성을 향해 나가는 레빈의 종교에 대한 성찰은 물론 그의 민중체험을 통해 19세기 러시아가 처한 농민문제를 드러내고 있으며, 루소적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지닌 레빈의 고뇌를 그린 지식인소설이기도 하다. 한 소설 두 이야기인 셈이다. 연애소설은 플로베르(1821~1880)의 '보바리 부인'(1857)과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구현하고 도달한 사랑의 탈낭만화와 反낭만적 사랑이야기를 세속화한 장르다. 정비석(1911~1991)의 '자유부인'(1954)은 '안나 카레니나'의 통속화요, 톨스토이 문학의 또 다른 에피고넨이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3-21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59]장르문학과 마음

장르문학은 즐거움을 주며,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판타지(fantasy)의 본질은 펀타지(funtasy)이며, '대리경험'과 '감정이입'과 '작중인물과의 동일화'와 '허구의 약정' 같은 공모를 통해 우리는 불만족스럽거나 권태로 가득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A. H. 마슬로우(1908~1970)가 말한 인간 욕구의 5단계나 명리학이 말하는 재물욕 · 출세욕 · 명예욕 같은 인비식재관(印比食財官)도 결국 인간의 욕망, 곧 마음의 만족을 얻으려는 활동(혹은 성품)을 뜻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1961~)의 '뇌'(2001)도 궁극의 쾌락과 만족을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과 음모를 파헤친 미스터리다. 장르문학이든 명리학이든 종교적 수행이든 뭐든 뇌의 만족, 또는 마음의 만족을 얻으려는 행위이며 형식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로 수렴된다. 그러면 마음이란 무엇인가. 뇌과학 · 심리학 · 명상과학(contemplative science)이 말하듯 모든 정신적 활동과 과정이 "뇌의 기능 또는 속성에 지나지 않는"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인간의 정신 작용과 관련하여 뇌과학과 심리학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선서(禪書)들은 우리의 본래 마음은 그 자체로 이미 온전하며 두렷하다고 한다. 마음을 본다는 견성과 마음을 기른다는 솔성도 따지고 보면 본래의 마음을 알고 이를 회복하자는 뜻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은 어디에 있으며, 어떠한가. 우선 분별이 일어나는 순간을 놓치지 말고 바라보자. 그 마음과 생각은 어디에서 왔는가. 근거도 실체도 없고 알 수 없는, 또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곳에서 나온다. 상황과 습관에 따라 자꾸 튀어나와서 마치 있는 것처럼 주인 행세하고 우리를 괴롭히지만 그것은 실체 없는 허깨비요 관념들이기에 바라보거나 시간이 경과하면 즉시 사라져버린다. 요컨대 마음은 텅 빈 진공같은 비물질적인 공(空)이지만 무존재(無存在)인 것이 아니다. '그것'에서 사상과 스토리와 이념과 온갖 사고 작용들이 끝없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을 얻기 위한 여정이다. 행복한 삶을 살자니 이와 같은 생각의 실체와 마음의 원리를 잘 알아 그것을 때와 곳에 맞게 잘 사용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의 세계를 발견한 고타마 싯다르타(BC 563? ~ BC 483?)나 누구나 마음혁명을 통해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며 비천하고 낮은 자들에게도 새로운 희망과 해방의 길을 제시해보인 육조 혜능(638~713)이나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들로 우리들을 잠시나마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장르문학이나 모두 방향과 지향이 같다고 말하면 지나친 견강부회일까?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3-14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58]장르문학과 대중

바야흐로 대중의 시대가 왔다. 장르문학 · 대중문화 · 선거 · 촛불집회 등 현대사회의 중심에 대중이 우뚝하다.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1883~1955)의 '대중의 반역'(1929)은 현대사회의 정치와 문화의 주역으로 떠오른 대중에 대해 분석한 명저다. 전체주의 체제에 동원된 대중들과 창의적 고급문화예술을 위기에 빠뜨리고 소비대중문화에 탐닉하는 대중들의 출현에 착잡함과 공포를 느낀 가세트는 이를 '대중의 반역'으로 명명한다. 영국의 문화연구자이자 문학평론가인 레이몬드 윌리엄스(1921~1988)는 '문화와 사회'(1958)를 통해서 '대중은 존재하지 않으며 특정한 사람들을 대중으로 바라보는 경멸적인 관점만 있을 뿐'이라는 견해를 선보이며 대중에 대한 기존의 귀족주의적 정의들과 결별한다. 대중은 'mass'나 'mob'으로 치환될 수 없는 열린 개념, 곧 'popular'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popular'는 '인기 있는', '대중적인', '통속적인'이란 뜻을 지닌 형용사로서 일종의 사회현상을 가리키는 것이지 고정불변의 실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참고로 mass의 번역어로 쓰인 대중이란 말은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니 등 출가자와 재가신자를 의미하는 불교의 사부대중(四部大衆)에서 나왔다. 그러나 대중은 부정적으로 정의할 것도 아니며, 실체가 아닌 것도 아니고, 또 관점의 문제로 치환될 문제도 아니다. 대중은 현대인들에게 내재된 속성이며 '존재론적 양상'에 가깝다. 현실 속의 우리는 대중교통 이용자로, 관객으로, 관람자로, 고객으로, 독자로, 또는 집회 참가자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르문학을 대중문학이라고도 하는데, 주류 문학담론에서 장르문학 독자는 당연히 낮은 취향을 지닌 '우중(愚衆)'일 것으로 전제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장르문학을 읽는 독자들이 어리석은 대중도 아니고, 장르문학을 읽는다고 해서 주류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는 것도 아니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보다가 돌연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읽기도 하고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독파하는 다양한 취향과 자율성을 지닌 존재가 바로 독자(=대중)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현대인들이 살아가면서 보여주는 다양한 삶의 국면이며, 양상이다. 또 광장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다. 프랑스의 좌파 철학자 가타리가 제시한 'multitude' 곧 다중(多衆)이라는 개념이 오히려 작금의 현실에 더 타당해 보인다. 저마다 독자적인 정체성과 개성을 가지고 다양한 층위의 문화를 즐기다가 문득 특정한 사안이 발생할 때 선택적으로 공동 행동에 나서기도 하는 대중이 바로 다중이기 때문이다. 장르문학은 대중의 문학이자 다중의 문학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3-07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57]북한의 SF

북한에도 SF가 있을까. 당연히 있다. 주체사상이 전면화한 1972년 이후에는 혁명적 수령관 · 종자론 · 전형성 이론 같은 주체문예이론에 따라서, 이전에는 인민성 · 계급성 · 당파성 · 혁명적 낭만주의 같은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에 입각하여 창작되거나 발표되었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인민경제와 인민복리 발전에 기여하고 어린이들에게 과학정신과 탐구심을 심어줘야 한다는 대원칙에 충실해야 하고, 그런 작품들만 심의를 통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말은 북한의 SF가 국제정세와 국가 정책의 영향을 심하게 받고 있다는 뜻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본격화한 동서냉전은 갈수록 확장되어 우주탐사와 과학소설 분야로까지 불똥이 튀었다. 1957년 구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자 이에 자극받은 미국이 절치부심 1969년 유인 우주선의 달 착륙에 성공한다. 이 같은 미소 간의 우주탐사 경쟁 및 냉전 상황을 반영한 북한SF가 바로 '혹성 간 비행선 달 1호'(1954)이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의 SF에 대한 관심은 매우 지대했다. 소련은 일찍부터 쥘 베른의 소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며, 그 결과 '안드로메다의 시대'(1957)와 '인간의 세계'(1963) 등으로 널리 알려진 이반 A. 예프레모프(1905~1972) 같은 걸출한 작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과학소설을 '과학환상소설'이라 하는데, 이는 중국의 과환소설(科幻小說)이란 용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북한의 SF는 일반문학들이 그렇듯 체제와 이념의 선전 수단으로 할용되며, 교시의 장르문학적 해설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북한의 창작 SF는 1950년대 말부터 집중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별나라로 가자', '저축되는 태양열', '미래의 려행', '동해에 원유가 있다' 등이 50년대의 주요 작품이다. 북한을 대표하는 SF작가로 황정상이 있다. 청년 과학자들의 연구와 사랑을 그린 그의 '푸른 이삭'(1988)은 1995년 국내에서도 출판된 적이 있다. 또 그의 '과학환상문학강좌'(1993)는 북한판 SF평론집로 주요 고전들에 대한 비평과 작품해설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줄 베른과 웰스 등의 서구의 대표적 고전들을 "생활적 타당성이 없는 흥미본위"의 작품이라 비판한다. 줄 베른의 '해저 2만리'는 미지의 인물인 주인공 네모 선장처럼 작품의 주제사상이 모호하고, 웰스의 '우주전쟁' 등은 인류의 위기 앞에 무기력하기만한 영국사회의 위선과 한계를 잘 보여주며 계급모순을 해결할 명쾌한 관점을 제시하지 못한 채 비관적 세계관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일반문학들에 비해 북한의 SF들이 상상력과 발상이 기발하고 유연하다는 점은 퍽 인상적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2-28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56]웹소설과 장르문학

웹은 우리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빈튼 서프와 밥 칸의 컴퓨터 통신규약 프로토콜(1973), 팀 버너스 리의 월드와이드웹(1989), 마크 앤드리슨의 웹 브라우저 모자이크(1993) 등을 거치며 구축된 이 거대한 온라인 시스템이 없는 현대적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PC통신문학 · 게시판문학 · 인터넷소설 · 사이버문학 · 블로그문학 등이 서로 겹치고 혼용되더니 지금은 웹소설이라는 단일한 용어로 수렴돼 가고 있다. 웹소설은 웹을 기반으로 생산 · 유통 · 소비되는 소설을 가리킨다. 좁혀 말하면 네이버 · 북팔 · 조아라 · 문피아 등 온라인 전문 사이트들에서 생산, 소비되는 장르문학들이다. 웹소설은 작품의 창작과 수용의 방식이 책에서 웹 공간으로 옮겨갔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선 문학의 중심축이 예술과 이념에서 소비와 오락으로 이동했다. 또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해체되면서 작독자(wreader)가 출현했고, 종이책에서 시도될 수 없는 새로운 표현이 등장했으며, 모든 것이 조회수로 환원되는 극단적 대중추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웹소설과 일반문학과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독자의 거부감을 줄여주기 위해 아날로그 시대의 익숙한 형식들을 채택하는 이른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에 기존 미디어의 표상방식을 차용하는 재매개화(remediation) 현상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웹소설들이 자주 사용하는 이른바 절단신공(切斷神功)은 결정적 대목(장면)에서 이야기를 중단하는 신문연재소설의 단절기법의 변용이며,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구어체와 대화를 많이 활용하는 것 또한 무협소설 · 판타지 · 만화(그래픽 노블) 등의 종이책에서 익히 보아왔던 문학관습들이다. 웹소설은 별로 새롭지 않다. 그것은 장르문학마저 잘 읽히고 잘 안 팔리는 시대 스마트폰 과 웹 포탈을 활용하여 읽히려는(팔아먹으려는) 문학 비즈니스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 열망, 가벼운 기분전환용 읽을거리에 대한 대중적 욕망, 이를 사업으로 활용하는 전문 사이트의 이해가 서로 공모하여 만들어낸 웹 2.0시대의 장르문학이 바로 웹소설인 것이다. 웹소설은 새롭되 새롭지 않으며, 획기적이되 여전히 관습적이다. 웹소설이 매체상의 변화를 넘어서는 새로운 미래문학이 될지 그냥 장르문학으로 남게 될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마이클 조이스의 하이퍼텍스트문학 '오후, 이야기'(1987), 마크 아메리카의 하이퍼픽션 '그래머트론'(2000) 등 종이책의 품에서 벗어난 디지털 미디어문학들도 실험문학으로 끝났을 뿐 현실의 문학으로 견실하게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2-21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55]'우주전쟁'과 장르문학의 정치학

'우주전쟁'(1898)은 영국을 혼꾸멍내주기 위한 소설이었다. 화성인의 침공이라는 전대미문의 상상력으로 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은 단순한 우주 전쟁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우주전쟁'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분명하다. 외계인과 지구인의 전쟁을 다룬 최초의 소설이요, 박테리아 등 질병의 은유를 통해 유럽인들의 내면에 도사린 전염병(흑사병)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화재의 공포문학이었기 때문이다.H. G. 웰스(1866~1946)는 '투명인간', '타임머신', '닥터 모로의 섬' 등 걸출한 화제작을 남긴 작가이자 점진적 사회개혁을 지향하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자였다. 또 '세계문명소사'(1920) 같은 역사서를 집필한 저술가였다. 국내에서는 월북시인 오장환(1918~1951)이 가장 먼저 이를 '세계문화발달사'(1947)란 이름으로 번역, 출판한바 있다. 웰스의 베스트셀러 '우주전쟁'을 대중문화의 신화로 만든 인물은 기념비적 영화 '시민 케인'(1941)의 감독 오손 웰즈(1915~1985)였다. 1938년 라디오 방송국의 연출자였던 웰즈는 '우주전쟁'을 실제 상황 같은 방송드라마로 만들어 뉴저지주(州)를 집단적 공포에 빠뜨린 적이 있었다. 1944년 11월 14일 칠레 산티아고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웰즈를 벤치마킹, '우주전쟁'을 실감나는 방송극으로 만들어 내보내자 칠레 당국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실제로 군대를 동원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시 5년이 지난 1949년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의 한 방송국에서도 '우주전쟁'을 실감나는 라디오 속보 형식의 드라마로 만들었다. 국방부장관 역할을 맡은 배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담화문을 발표하더니 이어 사제 역을 맡은 배우는 신의 자비를 요청하는 간절한 기도를 올렸으며, 아나운서는 남성들의 자원입대와 주민대피를 호소하였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덕택(?)에 이를 실제 상황으로 착각한 시민들이 공포에 질려 산으로 대피했다. 심지어 군대가 출동하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당황한 방송국에서 이것이 드라마임을 밝히자 격분한 피난민들이 폭도로 변해 그만 방송국이 불타고 직원들이 추락사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웰스는 '우주전쟁'을 통해서 세계 전역에서 약소국을 짓밟고 침략전쟁을 벌이던 제국주의 영국을 골탕 먹이기 위해 화성인들을 동원하여 런던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또 영국독자들에게는 전쟁의 공포와 함께 침략 받는 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도록 하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우주전쟁'(2005)도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이런 '우주전쟁'의 전통을 계승한 작품이었다. '우주전쟁' 개봉 당시 역사적 맥락을 보면 스필버그의 제작 의도가 무엇인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우주전쟁'은 반전(反戰)을 위한 반전(反轉)의 문학이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2-14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54]김탁환의 역사추리소설

역사는 모두 사실인가. 포스트모던 역사학은 역사도 문학과 동등한 서사 장르로 본다. 역사 역시 사료와 사관과 역사적 상상력으로 직조된 글쓰기라는 것. 보수 유학과 실학이 맞서고 붕당정치와 탕평이 충돌하는 백가쟁명의 정조시대(1776~1800)를 가장 먼저 역사추리소설로 영토화한 이는 '영원한 제국'(1993)의 이인화였다. 김탁환(1968~)은 이인화를 넘어, 그리고 이해조에서 발아하여 김내성이 꽃을 피우고 추리소설 전문작가 시대를 연 김성종을 이어 한국역사추리소설의 모범을 만들어냄으로써 한국추리소설계의 세 번째 3김(金)으로 합류한다. 이른바 '방각본 살인사건'(2003)에서 '열녀문의 비밀'(2007) · '열하광인'(2007) · '목격자들'(2015)로 이어지는 '백탑파 시리즈'가 바로 그것. 김탁환은 다양한 장르의 소설로 조선왕조실록을 써가는 작가인데, 그의 추리소설은 모두 정조시대가 배경이다. '백탑파'는 탑골공원의 원각사10층 석탑 아래에서 모임을 가졌던 박지원 · 홍대용 · 박제가 · 유득공 · 이서구 등 북학파 지식인 서클을 말하며, 그 이름은 조지훈 · 박두진 · 박목월이 공동시집 '청록집'을 묶어내서 '청록파'라 불리는 것처럼 이들 역시 공동 문집 '백탑청연록'을 펴낸 바 있다. '백탑청연록'은 기록상 제명만 확인될 뿐 실전된 상태다. '방각본 살인사건'은 의금부 도사 이명방이 탑전(榻前)의 명을 받아 화광(花狂)이란 별호를 지닌 천재 김진과 함께 도성(한양)을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살인 수사를 맡는다. 이명방은 사건의 현장에 놓여 있는 소설책을 단서로 당대 최고의 매설가(賣說家·소설가를 가리키는 경멸적 표현) 청운몽을 체포, 범행을 자백 받고 곧바로 공개 처형을 집행한다.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싱거운 후더닛으로 끝나는가 했는데, 살인사건의 배후에 거대한 정치적 음모가 있음이 밝혀지면서 작품은 범행의 이유와 동기를 캐내기 위한 와이더닛(whydunit)으로 전환된다. 추리소설의 전가보도가 반전과 의외성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후의 결말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방각본 살인사건'에서 명백히 세월호 참사의 은유이기도 한 '목격자들'로 이어지는 백탑파 시리즈는 한국고전소설로 박사학위를 받고 카이스트 교수를 역임한 작가의 이력이 말하듯 매우 지적인 오락물―곧 중간소설들이라 할 수 있다. 18세기 지식인 사회에서 통용될 법한 전문적인 용어와 함께 담배를 지칭하는 남령초(南靈草) · 수면 중의 가위눌림을 뜻하는 몽염(夢 ) 등 고어를 활용하는 지적 화용론을 보여주며, 조선후기 한양의 풍속을 재현해내는 솜씨가 특히 일품이다. '백탑파 시리즈'는 한국역사추리소설의 성과이자 소설로 쓴 18세기 문화사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2-07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53]김성종과 한국추리소설의 3金

추리소설에도 3김(金)이 있다. 정치에만 3김이 있는 게 아니다. 김내성(1909~1957), 김성종(1941~), 김탁환(1968~)이 바로 한국추리소설의 3김이다. 김내성은 한국추리소설의 개척자요, 김성종은 한국현대추리소설사의 '증인'이며, 김탁환은 한국형 역사추리소설의 전범을 보여준 최고의 스토리텔러다.김성종은 치열한 통과의례를 자처한 작가다. 통상 단 한 번의 당선으로 끝나는 등단절차를 무려 세 번이나 거친 것이다. '경찰관'(1969)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했으면서도 '현대문학'에 '17년'(1971)이란 작품으로 다시 추천의 과정을 밟았으며, 그리고 '최후의 증인'(1974)으로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도전하여 당선되는 긴 입사식을 치른 것이다.'경찰관'은 김성종 문학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김성종 표 추리소설의 상징인 오병호 형사가 등장한다. 오병호는 대실 해밋(1894~1961)이 창조한 비정한 탐정 샘 스페이드와 달리 시대와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는 인간적인 캐릭터다. '최후의 증인'에서 오병호는 양조장 사장 양달수와 변호사 김중혁 피살사건을 수사하던 중 한국전쟁과 빨치산 투쟁 같은 역사적 사건들과 대면한다. 양달수는 빨치산 대장의 딸이었던 손지혜의 재산을 가로채고 첩으로 삼은 파렴치한 인물이며 김중혁은 양달수와 공모, 검사라는 직위를 이용하여 손지혜의 정인인 황바우에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내는 등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인물이다. 반공주의의 도덕적 타락과 반공이란 서슬 퍼런 국가이념 앞에서 피해자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오병호는 자살을 선택한다. 무기력한 양심과 완강한 현실 사이의 갈등을 그린 '최후의 증인'은 2001년 배창호 감독에 의해 '흑수선'이란 영화로 제작됐으나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김성종의 추리소설은 인간적인(?) 하드보일드 계열의 소설이다. 뜨거운 복수와 순수한 증오가 있으며, 아찔한 금기의 소재와 함께 등장인물들을 아낌없이 희생시키고 로봇처럼 다루는 전제적(專制的) 인형조정술을 보여준다. 근친상간을 다룬 '어느 창녀의 죽음', 남편의 복수를 그린 '일곱 개의 장미송이', 4 · 3항쟁을 등장시킨 '여명의 눈동자' 등이 그러하다.그의 시도가 물론 다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들을 희생자로 그리거나 남성의 보호를 받는 수동적인 인물 또는 관음증의 대상으로 전유하는 남근주의가 있으며, 정교한 추리서사보다는 애정과 복수 같은 뜨거운 스토리들로 넘친다. 그럼에도 대중적인 형식으로 시대의 아픔과 진실을 녹여내고자 그의 노력과 우리의 정서에 맞는 한국형 추리소설을 창안해내기 위해 평생을 바친 도저한 작가주의는 존중받아야 마땅하고, 또 정당하게 평가돼야 한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1-31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52]한국추리소설의 별, 김내성

아인 김내성(1909~1957). 그는 한국추리소설계의 큰 별이었다. 평남 대동군 월내리에서 중소지주 아들로 태어나 평양고보를 거쳐 와세다 대학 독법학과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변호사 공부는 뒷전이었고, 문학과 추리소설에 빠져 지내다 일본에서 덜컥 추리소설가로 데뷔했다. '마인'(1939)·'청춘극장'(1952)·'쌍무지개 뜨는 언덕'(1956)·'실낙원의 별'(1957) 등 탁월한 대중성을 이룩했다.그의 스타성은 탐정소설 전문잡지 '프로필'에 '타원형의 거울'(1935)을 발표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타원형의 거울'은 기발한 트릭과 절묘한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추리소설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일본에서 일본어로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많은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타원형의 거울'은 후일 '살인 예술가'란 이름으로 잡지 '조광'(1938.3~5)에 한국어로 번역, 발표된다. 김내성의 추리소설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탄압과 유혈로 점철된 암흑기 식민지 조선의 독자들을 위한 작은 탈출구였고, 위안의 문학이었다. 장편 '마인'을 포함, 일본어 소설 '탐정소설가의 살인'(1935)을 개작한 '가상범인'(1937)·'백가면'(1938)·'태풍'(1944) 등이 이 시기에 발표된 주요 작품들이다.'마인'은 비서구 지역 탐정소설의 특징과 한계를 대변한다. 유불란이 총독부 경무국의 의뢰(허락)를 받아 조사에 착수하는 것이라든지 1930년대 식민지 경성에서 생일 파티를 겸한 가장무도회가 열리며 자동차 추격 같은 비현실적 장면들이 그러하다. 살인사건과 수사는 대도시 경성에서 진행되나 정작 사건의 해결은 '전설의 고향'의 로케이션 장소로 어울릴법한 오지의 촌락에서 이루어지는 부조화가 작품의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리는 것이 또한 그러하다. 나아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품에 작가가 개입하여 상황을 설명하는 '주석적 시점'이나 과도한 영탄법의 남발은 비서구 탐정소설의 미성숙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마인'의 정교한 스토리라인과 1인 2역, 3역의 트릭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서사구성은 식민지 조선 문학의 외연을 넓히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성과로 평가할 수 있겠다.김내성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와세다 대학 동문 선배이자 일본 추리소설의 대부인 에도가와 란포(1894~1965)이다. 이들의 교류는 1957년 김내성이 타계할 때까지 계속됐다. 고가 사부로(1893~1945)는 정신병리학이나 변태심리에 기초한 변격탐정소설을 배격하고 퍼즐 풀이와 미스터리 해결에 치중하는 본격탐정소설을 고수했는데, 김내성은 에도가와 란포처럼 본격과 변격을 오가며 작품을 썼다. 탐정예술론을 주창했던 기기 다카타로(1897~1969)와 불건전파·변격파로 평가받는 고사카이 후보쿠(1890~1929)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김내성은 한국추리소설의 개척자이며, 걸출한 스토리텔러였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1-24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51]간추려 본 한국추리소설 백년

한국에도 추리소설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 세계시장의 문을 두드릴만한 작품도 있을 뿐 아니라 백년의 역사를 넘긴지 이미 오래다. 한국추리소설사의 맨 앞자리에 놓이는 작품은 이해조(1869~1927)의 '쌍옥적'(1908)이다. 근대적 경찰의 효시인 '순검'이 등장하고, 사건이 발생한 공간이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1899년 개통)이라는 점에서 '쌍옥적'은 매우 근대적인 소설이다.앵글로 색슨 계열의 '탐정소설'과 프랑스의 '경찰소설' 등에 익숙해진 현대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보면, '쌍옥적'은 다소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쌍옥적'은 근대적 매체인 '제국신문'에 49회간 연재(1908.12.4~1909.2.12)된 신문연재소설이고, 사건이 초자연적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끝나며, 정탐소설(偵探小說)이라는 분명한 장르의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손색없는 탐정소설이다. 번역 탐정소설로는 '태서문예신보'에 소개된 코난 도일의 '충복'(1918)이 가장 빠르다.'쌍옥적' 이후, 방정환의 '칠칠단의 비밀'·박병호의 '혈가사'를 비롯해서 최독견의 '사형수'·채만식(서동산이란 가명으로 발표)의 '염마', 김동인의 '수평선 너머로' 등 주정적(主情的) 아마추어 탐정들이 등장하는 토종 추리소설들이 있다. 또 동경제대 출신 언론인이었던 김삼규(1908~1989)도 '조선지방행정'이란 잡지에 '말뚝에 선 메스(杭に立つたメス, 1929. 11~1930. 1)'라는 일본어 탐정소설을 발표한 적도 있다.그러나 한국추리소설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작품은 김내성(1909~1957)이 일본의 탐정소설 전문잡지 '프로필'에 발표한 '타원형의 거울'(1935.3)이다. 이 작품은 후일 '조광'에 '살인예술가'(1938.3~5)란 이름으로 번역, 발표된다. '타원형의 거울' 이후 '백가면'(1937), '마인'(1939), '가상범인'(1940) 등 그의 작품이 연이어 발표되고 문단 안팎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토종추리소설의 시대가 화려한 개막을 알린다. 김내성 이후에는 방인근과 허문녕 등이 명맥을 이었으나 서구 번역추리소설에 밀려 토종 작가의 작품은 한동안 적막강산이었다.김성종(1940~)의 '최후의 증인'(1974)은 한국추리소설의 새로운 분기를 이룬 문제작이다. 이 장편은 근대화와 반공주의 같은 국가이데올로기가 착종된 작품이라는 한계와 '113 수사본부' 같은 반공 방첩의 서사를 넘어서 한국전쟁이 만든 비극적 상황을 그려낸 작품이라는 중층적 의미를 갖는다. 최근에는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1993)과 김탁환의 '백탑파 시리즈'―곧 '방각본 살인사건'(2003)·'열녀문의 비밀'(2005)·'열하광인'(2007)을 위시하여 이정명 · 김상현 등의 역사추리소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2017-01-17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50]범죄문학의 걸작 '대부'

우리는 왜 어두운 이야기에 열광하는가? 여성들은 어째서 나쁜 남자에게 더 큰 매력을 느끼는가? 범죄심리학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동화되는 이 불합리한 역설을 '스톡홀름 증후군'이라 명명한다. 범죄문학의 정전으로 꼽히는 마리오 푸조(1920~1999)의 '대부'(1969)는 범죄의 낭만화를 넘어 현대사회의 범죄성을 낱낱이 보여주는 사실이 아닌, 사실 같은 사실적 스토리다. 생활고를 탓하는 아내의 바가지에 못 이겨 홧김에 쓴 소설 '대부'로 마리오 푸조는 단숨에 부와 명성을 얻었으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1939~)는 영화 '대부 시리즈'로 연거푸 아카데미상을 거머쥐며 명장의 반열에 올라선다. 범죄소설 '대부'가 대박을 터트린 것은 전적으로 현대 사회의 현실 때문이었다. 친근한 서민의 이미지로 29대 대통령이 된 워런 하딩(1865~1923)은 재임 당시 미국에서 발생한 범죄의 몸통이었다. 또 70년대 초 교황청·바티칸 은행·마피아 등이 이탈리아 금융업자 미카엘 산도나(1920~1986)가 이끌던 산도나 그룹의 검은 스캔들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적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 출신의 신입 이민자들과 이른 시기에 건너온 다른 유럽 정착자들 사이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던 미국 사회의 현실과 기업범죄 및 정경유착 같은 미국의 어두운 뒷모습을, 돈 콜레오네 패밀리의 가족사를 통해 재현한 '대부'가 신드롬을 일으킨 것은 별반 놀라운 일이 아니다.'대부'의 주인공 비토 콜레오네는 혈혈단신으로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 최대의 범죄조직을 일궈낸 인물이다. 막내아들 마이클은 마약 같은 반사회적 사업을 배격하고 합법적인 사업을 통해 피로 얼룩진 가족사와 절연하고자 몸부림치나 그의 간절한 소망은 출구를 찾지 못한 희망으로 끝난다. 비록 콜레오네 부자가 범죄자이긴 했어도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범적 가장이요 이탈리아 동포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던 의인의 면모를 가지고 있기도 해서 이들은 독자(관객)의 지지와 공감을 얻어낸다.'대부'가 지닌 최대의 미덕은 정치와 사업의 은폐된 이면(본질)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인간은 안중에 없고 오직 경제성과 이윤만을 중시하는 현대자본주의의 범죄성과 물신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정치와 범죄의 본질은 같다", '금융과 총은 동일하며 다만 정치는 언제 방아쇠를 당길지 결정하는 것일 뿐'이라는 '대부'의 명대사들은 강렬한 현실성과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의 이 어둠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범죄는 반복될 것이며 또 범죄를 문학으로 전유하는 범죄서사는 계속해서 읽히고 또 쓰일 것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1-10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49]탐정소설에서 추리소설로

추리소설은 본래 탐정소설이었다. E.A.포의 '모르그가의 살인사건' 이후 코난 도일(1859~1930)과 아가사 크리스티(1890~1976)까지 탐정소설은 아무런 흔들림 없이 탐정소설로서 의연했다. 물론 앵글로 색슨 계열에서는 탐정소설(detective story), 프랑스에서는 경찰소설(roman policier), 미국에서는 추리소설(mystery)이란 용어를 더 선호하는 관습적 차이가 있긴 했다.탐정소설이나 경찰소설은 사건 해결 주체가 누구인가를 기준으로 한 신원론적(身元論的) 정의다. 반면 추리소설은 인물보다는 사건의 해결 과정에 주안점을 두거나 탐정소설 장르의 다변화에 따라 유개념(類槪念)처럼 사용되던 총칭이었다.한국에서는 1910년대까지 송사소설, 공안소설 또는 정탐소설이란 말이 널리 쓰였다. 송사소설은 '까치전', '황새결송'처럼 관부에서 백성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이야기들을 가리키며, 공안소설(公案小說)은 '관청의 책상 위에 쌓인 서류더미(公府之案牘)'를 뜻하는 말에서 나왔다. 이들 사건 관련 서류 가운데서 흉악한 범죄와 극적이고 흥미로운 사건들을 따로 가려 뽑아 작품화한 것이 공안소설의 기원이다.1918년 10월 19일 코난 도일의 '충복'이 '태서문예신보'에 번역, 소개된 이후부터는 정탐소설 대신 탐정소설이란 말이 널리 사용됐다. 그러다가 어느새 추리소설이라는 말이 대세를 이루게 됐다. 법적으로 탐정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서 계속 '탐정소설'이란 말을 고집하기 어려웠고, 후더니트(whodunit)나 정통파 탐정소설(armchair)이 사라지고 다양한 하위장르의 출현과 실험적 작품들이 시도되는 상황이 함께 고려된 것이었다.이보다 직접적인 이유가 또 있었다. 바로 일본의 한자 정책의 변화다. 일본도 우리처럼 탐정을 제도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다. 현실과 장르의 불일치라는 뻘쭘한 상황 속에서도 에도가와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1902~1981) 같은 걸출한 작가들로 인해 탐정소설이란 말이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상황을 뒤집는 반전이 일어났다. 연합군 최고사령부(GHQ) 치하에 있었던 1945년 일본 문부성에서는 한자교육의 합리화를 추진하면서 2천500자에 이르던 당용한자(當用漢字)를 1천850자로 축소하였다. 이때 정(偵) 자가 빠지면서 탐정소설을 한자와 히라가나를 합성하여 '探てい小說'(단테쇼세츠)라 표기하게 됐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추리소설(推理小說, 스리쇼세츠)란 용어였다. 세계 각국에서 탐정소설 대신 추리소설 또는 미스터리란 말이 대세가 됐고, 지금은 추리소설이 유개념이자 장르명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1-03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48]세계 최고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장미의 이름'(1980)은 유례를 찾기 힘든 명작이다.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학자가 쓴 추리소설이라는 화제성도 그렇고, 주변부장르인 추리소설로 문학장(champ)에 내재한 특권적 위계를 돌파하려는 그의 아방가르적 실험 또한 압권이다. '장미의 이름'은 14세기 신성로마제국을 시대적 배경으로 이탈리아 북부의 한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다룬다. 바스커빌의 윌리엄 신부가 홈즈의 역할을, 순진한 귀족 출신의 청년 수사 아드소가 왓슨의 역할을 맡았다. 사건 수사 책임을 맡은 윌리엄은 프란체스코 수도회 출신의 신부로 초자연적인 것에 의지하기보다는 너그러운 합리주의자이며, 이성적인 인물이다. 사건의 전모는 아드소가 남긴 수기를 토대로 재구성된다. 3중, 4중의 복잡한 액자형 이야기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작품 전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작품은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후더닛(whodunit)이나 실제로는 시대의 진실을 추적, 탐색하는 인문학적 도정이라 할 수 있다. 에코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교부철학을 비롯해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는 물론 방대한 중세연구와 고전을 작품에 인용, 활용하는 화려한 지적 글쓰기를 선보인다. 에코는 기호학자 · 미학이론가 · 평론가 · 역사학자 · 철학자를 겸한 저명한 학자인데, 여기서는 능청스럽고 노련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1968년 에코는 우연히 아드소의 수기를 소개한 책을 발견하고 번역까지 해뒀으나 분실한다. 끝내 원본은 찾지 못했으나 발레 수사의 필사본을 입수한다. 그러니까 '장미의 이름'은 아드소의 회상기를 소개한 발레 수사의 판본과 자신의 번역본을 토대로 에코가 쓴 작품인 셈이다. 물론 이는 다 '뻥'이다. 기실 문학작품을 볼 때 작가와 독자 사이에는 언제나 모종의 공모가 일어난다. 진실 여부에 이의를 달지 않고 서로 믿어주기로 하는 계약―이른바 '허구의 약정(patto finzinonale)'이라는 신사협정이 그것이다. 알려진 대로 범인은 호르헤 신부. 웃음이 가진 전복성과 폭발력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노회한 종교권력이 희극(웃음)을 다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제2부를 읽지 못하도록 극약을 묻혀 사람들을 살해한 것이었다. 범인을 호르헤 다 부르고스(Jorge da Burgos) 신부로 설정해둔 것은 20세기 최고의 작가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에 대한 에코에 대한 오마주요, 질투의 표현이다.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이란 작품 제목은 "태초의 장미는 이름으로 존재하나 우리는 빈 이름만을 가지고 있다"는 베르나르의 시 '속세의 능멸에 대하여'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리소설에 무상(無常)과 공(空) 철학이라니! 비단에 꽃을 얹은 격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6-12-27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47]추리소설의 모더니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근대서구철학은 데카르트(1596~1650)의 이 선언으로부터 시작됐다. 그의 명제에서 생각과 사고 작용의 문제는 칸트(1724~1804)에게, 존재성의 문제는 하이데거(1889~1976)에게, 그리고 이를 구조화하는 언어 논리는 비트겐슈타인(1889~1951)에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은 데카르트의 명제에 가장 충실한 장르다. 추리소설 작법과 인물과 스토리가 그 증거다. 초자연적이거나 불가사의한 작용은 배제돼야 한다(녹스의 추리소설 10계), 범인은 논리적인 연역법에 의해 추론돼야 한다, 살인의 방법과 그것을 추리하는 방식은 이성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반 다인의 추리소설 작법 20칙) 등의 규칙은 추리클럽(The Detection club) 소속 작가들이 꼭 지켜야 할 창작의 대원칙이었다. 추리클럽은 G. K. 체스터튼 · 아가사 크리스티 · 로날드 녹스 · 도로시 세이어즈 등의 작가와 편집자들이 1931년에 결성한 작가들의 모임이다. 추리소설의 모더니티는 등장인물의 면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탐정이나 범인들은 G. 들뢰즈(1925~1995)와 F. 가타리(1930~1992)의 표현을 빌리면 모두 '생각하는 기계들'이었다. 또 완전범죄를 위해 트릭을 상상하고 알리바이를 구성하는 범죄자나 정교한 사고와 추론(ratiocination)으로 난해한 미스터리를 실증적인 논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탐정은 생각하는 인간―즉 코기토(cogito) 그 자체였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주인공 에르큘 포와로는 이성의 알레고리라 할 수 있다. 팔자수염에 땅딸보인 그에게 '에르큘'이란 이름을 붙여준 것이 단적인 예다. '에르큘'은 헤라클레스(Heracules 또는 Hercules)의 불어식 발음이다. 프랑스에서 에이취(H) 곧 아쉬는 묵음이다. 추리소설 독자들이 에르큘이 바로 헤라클레스의 불어식 발음이라는 점을 의식하지 않았기에 아가사 크리스티의 이 은유와 유머를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다. 기실 옛날에는 파워 넘치는 근육질의 남성이 '헤라클레스'였지만,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사회에서는 근육의 힘이 아니라 '이성'과 '사고' 그리고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프랑코 모레티(1950~)는 추리소설을 근대적 이성과 대도시의 산물로 본다. 그의 말대로 '셜록 홈즈 시리즈'의 대다수가 대도시 런던, 특히 웨스트엔드처럼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도심에서 발생한다. 근대소설이 부르주아의 서사시라고 한다면, 합리적 사고와 과학적 설명을 중시하는 추리소설은 이성의 서사시인 동시에 계몽이성의 통속화이다. 이 점에서 추리소설은 이성의 힘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근대적 신념의 반영이면서 온갖 범죄와 부작용을 양산하는 근대의 거짓말을 날카롭게 재현하는 사회학적 장르라 할 수 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12-20 민정주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46]추리소설의 사회학 또는 정치경제학

추리소설사는 문학사이자 사회사로 존재한다. 인간의 본성과 사회문제 등을 다루며 또 널리 읽힌다는 점에서 그렇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1921~1990)나 마츠모토 세이초(1909~1992)의 작품은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며, 에르네스트 만델(1923~1995)의 '즐거운 살인: 범죄소설의 사회사'(1984)는 추리소설(=범죄문학)과 근대시민사회와의 연관성을 분석한 탁월한 이론서다. '즐거운 살인'은 추리소설 속의 범죄와 추리소설 장르의 변화 과정이 '마치 거울처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부르주아 사회의 사회적 관계' 나아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그 자체의 변화 과정까지도 반영하고' 있다는 만델의 명제를 입증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추리소설에서는 살인 등의 범죄가 수수께끼로 주어지고, 여기서부터 지적 대결이 펼쳐진다. 이 대결은 두 개의 차원에서 일어난다. 하나는 탐정과 범죄자 사이에서, 다른 하나는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고전파 추리소설의 주인공인 탐정은 부르주아 사회의 질서를 깨뜨리는 범죄와 반(反)합리적 불안 요소들을 제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파수꾼이자 개인의 사생활을 지키는 수호자들이다. 뒤팽·셜록 홈즈·에르큘 포아로·파이로 번스·엘러리 퀸·네로 울프 등 주요 탐정들 모두 하나 같이 괴짜 귀족이거나 부유한 부르주아 출신이다.반면, 대실 해밋과 레이먼드 챈들러 등이 주축이 된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유럽 이민자들이 우글대는 미국 대도시 사회에서 발생한 조직범죄들에 대한 문학적 대응이었다. 기관총으로 무장한 조직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범죄가 기업화하는 현실에서 응접실의 안락의자에 앉아서 머리로만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소설이 설득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완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터프 가이 탐정들의 이야기-바로 하드보일드 장르다.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범죄는 마피아와 기업·국가 및 국가 간의 문제로 더욱 확장된다. 알 카포네 같은 범죄자들, 마피아 출신의 기업인들, 혹은 이들과 결탁한 경영자들이 그러하다. 마리오 푸조의 '대부'(1969)나 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는 기업의 범죄가 점증하고 국제적 냉전 시대가 낳은 작품들이다.이처럼 추리소설이 근·현대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와 복잡하게 얽혀있기에 만델은 추리소설 장르의 변천사가 "하나의 사회적 역사"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수많은 탐정들이 나와서 수많은 범죄를 해결해도 범죄가 멈춰지지 않는 것은 "부르주아 사회 자체가 범죄를 조성하고", 범죄를 양산하는 "범죄사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우나 일리 있는 분석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12-13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45]비독과 프랑스 경찰소설

프랑수와 외젠 비독(1775~1857)은 문제적 인물이었다. 그는 전설적 범죄자이자 전설적 경찰이었다. 도시화와 함께 점증하는 범죄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프랑스 정부는 희대의 범죄자 비독에게 함께 범죄를 소탕하자는 기상천외한 제안을 한다. 비독이 그 누구보다도 범죄의 세계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범죄자들의 심리와 습성을 꿰뚫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인 비독은 곧 사복경찰 제도를 도입하고 범죄로 얼룩진 파리의 암흑세계를 휩쓸었다. 수만 건의 범죄사건을 해결한 후 1827년 비독은 이때 경험담을 책으로 묶어내니, '회고록(Memoires de Vidocq)'이 바로 그것이다. 또 은퇴 후 비독은 1834년 '비밀경비대(Brigade de Sutete)'라는 사립탐정사무소를 열어 세계 최초의 탐정이 된다.비독의 회고록이 세계문학에 끼친 파장은 엄청났다. 미국작가 E.A.포는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세계추리소설사의 기념비적 작품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1841)을 발표했다. 비독에 대한 오마주의 표시로 작품의 배경도 미국의 도시가 아닌 파리로 설정했다. 프랑스 혁명기 공화파의 이념이 투영된 빅토르 위고(1802~1885)의 혁명소설 '레미제라블'(1862)은 비독의 '회고록'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심지어 작품의 주인공인 착한 범죄자 장발장과 자베르 경감은 범죄자이자 경찰이었던 비독의 양면이라 할 수 있다. 또 에밀 가보리오(1832~1873)의 '르루주 사건'(1866)을 비롯해서 20세기 최고의 경찰소설로 손꼽는 벨기에 출신의 프랑스 작가(?) 조르주 시므농(1903~1989)의 '메그레 경감 시리즈'도 비독의 범죄문학과 같은 맥락에 있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비독의 '회고록'을 계승한 프랑스 최고의 탐정소설이자 범죄문학은 단연 모리스 르블랑(Maurice M. E. Leblanc, 1864~1941)의 '뤼팽 시리즈'일 것이다. 아르센 뤼팽(Arsene Lupin)은 기존의 문학사에서 유례가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그는 권력의 반대편에 서서 민중을 위해 정의로운 범죄(?)를 저지르며, 품격 넘치는 귀족적 풍모와 매너로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자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이라는 두 영웅이 맞붙는다면 어떨까하는 엉뚱한 가정이 인구에 희자되기 시작했고, 이런 상상은 곧바로 현실화했다. 르블랑이 1910년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을 발표한 것이다. 홈즈와 뤼팽은 여러모로 대비된다. '홈즈'는 범죄를 밝히는 탐정의 이야기인 반면, '뤼팽'은 거꾸로 범죄를 성사시키는 이야기다. 전자는 영국산 소설이요 후자는 프랑스산 소설이며, 또 탐정소설과 경찰소설이라는 차이도 있다.19세기 없는 20세기가 존재할 수 없듯 비독 없는 프랑스의 경찰소설, 나아가 탐정소설은 상상하기 어렵다. 비독은 추리소설의 숨겨진 역사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12-06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44]추리소설의 플롯과 트릭

'미스터리'는 미스터리의 제시와 논리적 해결을 기본줄기로 삼는다. '미스터리' 곧 추리소설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하나는 범죄의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조사의 이야기다. 추리소설은 조사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범죄의 이야기는 작품 뒤로 은폐돼 있으며, 미스터리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조사의 이야기는 논리적 해결을 향해 가는 작품의 여정이면서 동시에 범죄의 이야기를 재구성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작품이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탐정의 활약상에 초점화돼 있으면 탐정소설이고, 캐릭터보다 플롯에 중점을 두고 있으면 미스터리요, 범죄소설은 범죄라는 작품의 제재와 그에 대한 사회학적 성찰에 서사의 무게가 실려 있다.추리소설의 플롯은 탐정의 소개(introduction), 범죄와 단서의 제시(crime & clue), 조사(investigation), 복잡화(complexity), 설명(explanation), 대단원(denouement) 등 대개 여섯 단계로 이뤄져 있다. 이를테면 독자들에게 탐정의 비범한 능력을 보여주고 범죄와 사건의 단서들에 대한 정보가 남김없이 제공된다. 그리고 탐정의 조사가 진행된다. 조사 과정 중에서 복잡한 트릭이나 난관에 부딪치게 되나 명쾌한 추리를 통해 트릭이 풀리고 이에 대한 탐정의 논리적 설명이 제시되는 방식이다.추리소설의 매력은 수수께끼에 있다. 추리소설을 퍼즐러(puzzler)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수수께끼 곧 범죄는 밀실트릭이나 알리바이의 조작 등으로 정교하게 위장돼 있다. 이것들이 책을 읽는 동기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요소며,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다.코난 도일의 '얼룩끈'(1892)은 밀실트릭의 전형이다. 어머니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쌍둥이 자매 헬렌 스토너와 줄리아 스토너를 살해하려는 사악한 범죄를 홈즈는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실내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범죄의 비밀은 무엇인가. 해답은 단순하다. 자매의 죽음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자를 찾으면 될 것이다. 또 독자와 탐정의 눈길을 속이는 범인의 마술, 곧 그릇된 방향(misdirection)을 지시하는 트릭에 속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범인은 양부인 그림스비 로일롯. 딸들의 결혼으로 인한 금전적 손실을 막으려 맹수들을 이용해 꾸민 범죄였다.밀실트릭은 추리소설만의 전가의 보도이다. 최초의 추리소설인 E. A.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사건'(1841)이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4)도 밀실트릭이다. 폭설로 갇힌 특급열차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는 승객들. 잘난 척하길 좋아하는 왕재수 탐정 에르큘 포와로는 과연 이 난국을 또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11-29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43]명탐정 셜록 홈즈 행장(行狀)

셜록 홈즈 공은 세계 공인 명탐정이시다. 공은 영길리(英吉利)가 전성기를 누리던 빅토리아 시대 신사계급(gentry)의 후손이었다. 큰 형 '마이크로프트'가 출사(出仕)하여 미관말직으로나마 공직생활을 했다.공은 함풍 4년 곧 철종 5년(1854)에 태어나 퍼블릭 스쿨을 거쳐 18세가 되던 고종 7년(1872) 대학에서 2년간 수학, 온축하였다. 고종 24년(1887) 잡지 '비튼' 크리스마스호에 발표된 '주홍색 연구'로 세상에 나오셨다. 공은 화학실험·바이올린 연주·사격에 특출한 재능을 보이셨으며, 권투에도 일가견이 있으시었다.의과대 출신 작가 코난 도일(1859~1930)이 본업을 버리고 문리를 얻은 덕에 공의 활약상을 그린 장편 4권과 단편소설 56편이나마 발표될 수 있었다. 공은 파이프로 남령초(南靈草, 담배)를 즐겼고, 주로 사냥 모자를 쓰고 다녔다. 공의 진영은 시드니 파젯(1860~1908) 화백의 삽화를 통해 세상에 널리 퍼져 나갔다.공은 베스커빌가의 저주, 글로리아 스콧 호의 비밀, 보헤미아의 스캔들 등 숱한 미제 사건을 명석한 추리와 논리로 해결하시어 일약 근대 시민사회의 아이콘이 됐다. 급속한 도시화에 따라 점증하는 범죄를 낱낱이 밝혀내 근대 자본주의사회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독자들의 두터운 신망을 얻으신 것이다. 작가 코난 도일도 공의 눈부신 활약과 높은 인지도에 힘입어 고종 39년(1902) 에드워드 7세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 도일 경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로 유명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에게 자신의 에딘버러 의과대학 시절의 스승인 조셉 벨 교수를 모델로 공의 모습을 만들어냈노라 털어놓은 바 있다.공은 평생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고작 '보헤미아의 스캔들'의 주인공 아이린 애들러를 잠시 연모해본 정도였다. 또 공은 왓슨 박사로 하여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지는 것을 묵인했을 뿐 특별한 인간관계가 없어 후세에 전할 종유록(從遊錄)을 남기지 못했으니 이 점이 셜록키언(Sherlockian)들이 늘 통탄하는 바다.'마지막 사건'(1893)이란 작품에서 천재적 범죄자인 숙적 모리아티 교수와 대결하던 중 폭포에 떨어져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빈집의 모험'(1903)이란 작품으로 10년 만에 다시 세상으로 복귀하셨다. 오호라! 공께서는 '셜록 홈즈 사건집'에 수록된 13편의 작품에서 보듯, 뭇 사건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시다가 '베일 쓴 하숙인'(1927)이란 작품을 끝으로 종적을 감췄으니 향년 73세였다. 공은 "무관(無關)이 유관(有關)"이요, "알 수 없는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부주의하기 때문"이라는 숱한 명언과 함께 놀라운 일화들을 세상에 전하셨으니, 아아 공이야말로 추리소설사의 전설이며 장르문학의 귀감이시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11-22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42]에드거 앨런 포와 탐정소설의 탄생

강력 범죄는 대중들의 공분을 일으키며 우리의 법가적(法家的) 충동을 자극한다. 세상의 모든 범죄를 단숨에 일소할 묘방은 무엇인가. 영구 미제 사건을 통쾌하게 해결해 줄 백기사는 어디에 있는가.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으로 현존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단 말인가. 세계추리소설사를 빛낸 셜록 홈즈 · 에르큘 포와로 · 미스 마플 · 브라운 신부 · 파이로 번스 · 엘러리 퀸 · 손다이크 박사 · 메그레 경감 · 아르센 루팡 · 오귀스트 뒤팽 등의 명탐정들은 대도시화와 함께 온갖 범죄가 범람하던 19세기 이후 현대사회의 사회적 고민을 반영하는 현상이었다. 동시에 탐정소설(추리소설)은 이성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근대철학의 이념과 자신감을 반영하는 장르였다. 최초의 탐정소설은 1841년 에드거 앨런 포(1809~1849)의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이다. 불가해한 사건과 이성적 주체인 탐정 그리고 사건의 논리적 해결이라는 탐정소설의 구조와 서사명제를 갖추고 있고, 오귀스트 뒤팽이라는 탐정의 전형을 만들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은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데 서사의 초점이 맞춰진 후더니트(whodunit, 'who done it'의 약어) 장르다. 참고로 이 괴이한 살인사건의 중심에 서있는 오랑우탄은 '정글 속에 사는 사람'이란 뜻을 지닌 말레이시아어(語) 'oran hutan'에서 유래했다. 에드가 앨런 포는 탐정소설의 창시자일 뿐만 아니라 타고난 탁월한 천재성으로 숱한 문제작을 써냈다. 포의 대표적 명시 '까마귀'는 이태준(1904~?)이 동명의 단편소설(1936)을 쓰게 되는 동기가 됐고, 또 시의 음악성을 매우 중시한 프랑스 상징주의의 기원이 됐다. 나폴레옹의 즉위 등 거듭되는 앙시앙 레짐에 절망한 말라르메(1842~98) · 베를레느(1844~96) · 랭보(1854~91) 등의 젊은 시인들이 을씨년스럽고 건조한 포의 시 세계와 언어에서 큰 위안을 받고 또 깊은 시적 감화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포는 '어셔가의 몰락' 같은 기괴한 스토리 등을 통해서 아메리칸 드림이 어쩌면 인류의 악몽이며, 문학적 나이트메어가 될지도 모른다는 묵시록적 전망을 보여주기도 했다.포가 창안한 새로운 형태의 문학 장르인 탐정소설은 곧바로 대서양을 건너 코난 도일(1859~1930)의 셜록 홈즈 시리즈를 탄생시키는 등 탐정소설의 진원지가 됐다. 이 같은 포 신드롬은 태평양 건너 일본에까지 퍼져나갔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꼽히는 히라이 타로(1894~1965)는 자신의 필명을 에도가와 란포(江戶川亂步)로 삼았을 정도다. 명백히 이는 에드가 앨런 포에 대한 오마주였다. 다시 봐도 포는 위대한 작가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11-15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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