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21] 한국무협의 역사

최초는 단순히 처음만을 뜻하지 않는다. 첫 눈, 첫 사랑, 첫 만남 등 최초와 처음은 정서적 울림도 클 뿐 아니라 상징적 무게도 만만치 않다. 문학사나 작가연구에서 유독 첫 작품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작가의 특징과 역량은 물론 해당 장르의 성격과 지향을 가늠해볼 원형이기 때문이다.한국 무협소설의 효시는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였던 박건병(1892~1932)의 번역-연재물 '강호기협전'(1931)이다. 그러나 완역되지도 못했고 문단 안팎의 호응이나 영향도 거의 없었으며, 금세 잊혀졌다. 이례적이었다.수원 신풍동 출신 작가 김광주(1910~1973)의 '정협지'(1961)는 사실상 한국 무협소설의 기원이다. 그는 상하이에서 백범 김구(1876~1949), 아나키스트 정화암(1896~1981) 등을 보좌하며 민족운동과 창작활동을 병행한 한국문학의 언성 히어로(Unsung Hero·추앙받지 못하는 영웅)였다. 백범의 서거 후, 문학적 · 이념적 좌표를 잃고 방황을 거듭하다 우연히 생계형 글쓰기의 일환으로 '경향신문'에 번역, 연재한 '정협지'로 대박이 났다. 초절정 고수들이 등장하는 황당한 서사물에 대중들이 열광한 이유는 정치깡패들이 판을 치고, 4월 혁명과 5·16 등 정치적 격변에 시달리던 대중들에게 무협이 정신적 쉼터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정협지'의 원작은 웨이츠윈(蔚遲文)의 '검해고홍(劍海孤鴻)'이다. 이어 그는 '동아일보'에 '비호'(1966)를, '중앙일보'에 '하늘도 놀라고 땅도 놀라고'(1969) 등을 연속해서 연재하였다. 대만 출신 워룽성, 이른바 와룡생과 쓰마링의 작품을 주축으로 1968년, 69년 2년 동안 번역된 무협소설만 해도 35종에 이르렀다. 당시 우리의 경제수준과 출판사정을 생각해보면 경이적인 현상이었다.단편소설 '잉여인간'과 자전소설 '신의 희작'으로 유명한 손창섭(1922~2010)도 창작무협 '봉술랑'(1978)을 발표했다. 그는 무협소설 '봉술랑'을 끝으로 절필하였다. 그리고 혹독한 정치적 암흑기가 거듭되던 한국의 역사적 현실에 절망, 1984년 문득 일본으로 건너가 귀화하여 우에노 마사루(上野昌涉)가 됐다.본격문학 작가들의 무협소설 쓰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는바, 우리시대의 대표 소설가로 꼽히는 김영하(1968~)가 하이텔에 연재한 '무협학생운동'(1992)을 비롯해서 장편 '시간 속의 도적'과 '웃음' 등을 남긴 소설가 채영주(1962~2002)가 장산부란 필명으로 '무위록'(1999)을 발표하기도 하였다.김영하의 '무협학생운동'은 세계를 지배하는 마왕 전두·노갈·보안 마귀 등과 그들의 수하인 삼청교대와 백건단의 무리들에 대해 변증창과 유물검을 들고 민민방의 류와 자민방의 초아가 맞서 싸운다는 풍자소설이었다. 무협에 정치풍자를 결합한 소설로 이정재의 '대권무림'(1997)이 있다. 한국 특유의 정치무협풍자소설은 이렇게 탄생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6-21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20] 무협소설의 역사

한국사와 대한민국의 역사가 다르듯 무협과 무협소설의 역사도 엄연히 다르다. 무협의 역사는 2천년, 무협소설의 역사는 100년 안팎이다. '열자'와 '사기'에 등장하는 협객(俠客)들의 이야기만 놓고 보면 무협사는 2천년을 훌쩍 넘기지만, 린수의 '부미사'(1915)를 기준으로 보느냐 평강불초생 샹카이란의 '강호기협전'으로 보느냐에 따라 무협소설의 역사는 100년 안팎을 넘나든다.무협소설의 역사는 구파무협(1930~1950)―신파무협(1950~1980)―신무협(1990~현재)―반무협(1980~현재) 등 대략 4기로 나뉜다. 구파무협과 신파무협은 1949년 중국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의 등장 전후로 갈리며, 주로 대륙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던 작가를 구파 그리고 혁명 이후 주로 홍콩과 대만에서 활동하던 작가들과 작품을 신파라 한다.신무협은 종래의 무협의 세계관과 문법에서 벗어나 反영웅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한국의 현대무협을 가리킨다. 反무협 또한 신파무협의 시기에서도 간간이 선보이다가 현대까지도 지속되는 등 카메오 같은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구파무협은 중국사회주의 정부 수립 이전 베이징(북파무협)과 난징(남파무협)에 거점을 두고 활약한 작가들의 작품을 말한다. 남파는 평강불초생과 '황강여협(荒江女俠)'으로 유명한 고명도 등의 작가들이, 북파는 '촉산검협전'의 환주루주와 '십이금전표'의 백우 그리고 '와호장룡'의 작가 왕도려 등이 주요 작가들이다.신파무협은 중국공산혁명 이후 홍콩과 대만에서 활동했던 '영웅문'의 김용, '백발마녀전'의 양우생, '초류향 시리즈'의 고룡, '군협지'의 와룡생 등이 대표적이다. 무협소설의 절정기이며, 주요 고전들이 이때 쏟아져 나왔다.신무협은 김광주 이후 번역과 가필작가 시대를 거쳐 작가가 된 열혈독자 출신의 한국 토종 무협을 가리킨다. '대도오'의 좌백, '대자객교'의 서효원, '태극문'의 용대운, '사천당문'으로 유명한 여류작가 진산 등이 대표작가로 꼽힌다.반무협은 무협의 세계관을 전복하고 희화화하는 작품들로 무지의(武之疑)의 '심구(尋仇, 1985)'와 김호의 '노자무어(怒者無禦, 1997)', 검궁인의 만화 '독보강호(2000)'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40년 적공 끝에 현천대법이란 절세무공을 익혔으나 주인공이 브라우닝 자동소총에 허망하게 죽고 마는 허무무협 '심구', '007 시리즈'의 배우 로저 무어를 연상케 하는 코믹한 제목을 지닌 컬트 무협 '노자무어', 절세의 무공을 지닌 무림의 여성 고수들을 꾀어 적과 맞서게 하는 제비족 노팔용이 등장하는 코믹만화 '독보강호' 등이 반무협의 사례들이다. 무협은 그 형식과 역사가 어떻든 고개 숙인 현대남성들의 정의감을 대리만족시켜주는 남성들에 의한, 남성을 위한, 남성의 로망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6-14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19] 무협소설의 탄생

무협소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가. 스토리와 작품배경 등만 보면 오랜 연륜을 가진 장르로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놀랍게도 무협소설은 풋풋한 현대소설(!)이다.중국에서 무협소설이란 말은 1915년 린수(林)의 단편소설 '부미사(傅史)'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대중적 영향력과 인지도 또 장르 문법의 모형을 제시한 첫 번째 작품은 평강불초생의 '강호기협전'(1923)이다. '강호기협전'은 '홍잡지'에 매주 1회씩 절찬리에 연재됐고, '불타는 홍련사'(1928)란 이름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평강불초생의 본명은 샹카이란(向愷然·1889∼1957), 평강성에 사는 불초소생이란 뜻이다. 원세개의 집권에 반대하는 혁명운동에 가담했다 실패하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유학 중 할아버지의 부음을 들었으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하여 평강불초생을 자신의 필명으로 삼았다. 그는 무술의 고수이기도 했으며, 후일 안휘대학 교수와 정부기관의 고위직을 역임했다.'강호기협전'은 일찌감치 국내에도 소개된다. 한글학자 주시경의 제자로 국어학자였던 박건병(1892~1932)이 맹천이란 필명으로 '동아일보'에 60회(1931. 9. 3~11. 19)에 걸쳐 번역, 연재한 것이다.그러나 '강호기협전'은 중국만큼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완역되지도 못했고, 박건병 선생 또한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동하다 1932년 1월 10일 암살을 피하지 못하고 순국했다. 김광주의 '정협지'(1961)가 출현할 때까지 한국문학사에서 무협은 아예 없는 장르였다.무협소설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박진감 넘치는 무공대결이 펼쳐지는 홍콩의 액션영화나 어두컴컴한 대본소에서 빌려 보던 무협지를 연상하는 것이겠으나 중국에서는 20세기 중국문학이 거둔 성과로 평가하는 연구서들이 적지 않고, 북경대 중문과 왕이추인 교수는 무협소설가 진융(金庸)을 루쉰(魯迅) · 바진(巴金) · 선충원(沈從文)과 함께 20세기 중국의 대표작가로 꼽는다.무협소설은 역사도 깊고, 콘텐츠도 무궁하다. '사기'의 '자객열전'과 '유협열전'을 비롯해서 사대기서인 '수호지'와 '중드'로 유명했던 '판관 포청천'의 원작 '삼협오의'(1879) 같은 협의소설들이 무협의 문학적 기원을 이룬다.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였던 김현(1942~1990) 교수는 평론 '무협소설은 왜 읽히는가―허무주의의 부정적 표출'(1969)을 통해서 무협소설을 급변하는 사회질서와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중산층의 불안과 초조 그리고 도피주의를 반영하는 장르로 진단한 바 있다. 그러면 지금 무협소설이 널리 읽히지 않는 것은 재미가 없어서인가, 우리사회가 '동네변호사 조들호'가 필요치 않을 만큼 맑고 정의로워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현실세계가 무협의 세계보다 더 황당하고 재미있어서인가. 많이 읽히는 것 못지않게 널리 읽히지 않는 것 또한 똑같이 문제적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6-07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18] 게임과 판타지

게임은 예술일까, 오락일까? 무용한 질문 같지만, 한때 이는 학계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믿기 어렵겠지만, 게임을 제10의 예술로 보는 연구자들은 최근 몇 년 전까지 게임을 서사학(narratology)에서 다뤄야할지 게임학(ludology)에서 다뤄야할지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예술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범주화한 것은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영화이론가였던 리치오토 카누도(1877~1923)가 연극·회화·무용·건축·문학·음악에 이어 영화를 제7의 예술로 선언하면서 부터다. 카누도가 만든 관례를 따라 제8의 예술에는 사진이, 제9의 예술에는 만화가, 그리고 게임이 열 번째 예술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은 원자폭탄 개발 기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전자회로 디자이너로 참여했던 윌리 히긴보덤이 1958년에 만든 '테니스 포 투'가 처음이며, 컴퓨터 게임의 상용화는 1961년 MIT에 재학 중이던 스티브 러셀이 개발한 '스페이스 워'가 효시다.장르판타지 게임은 하버드대 학생들이 톨킨의 '반지의 제왕'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역할놀이형 보드게임, 이른바 TRPG를 창안해내면서 본격화했다. 'MUD'와 'MUG'는 판타지와 컴퓨터를 활용한 대표적인 게임들로서 전자는 텍스트 형식으로 전개되는 게임이며, 후자는 IT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래픽이 가미된 게임들을 가리킨다. 1974년 TSR社에서 선보인 '던전 앤 드래곤'(D&D)은 테이블 탑 롤 플레이닝 게임의 규칙이면서 동시에 판타지를 바탕으로 한 게임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소드 월드', '월드 오브 다크니스', '드래곤 퀘스트', '울티마' 등이 초창기 판타지 기반 RPG들이다. 온라인 시대의 MMORPG(다중접속온라인역할놀이게임)로는 한국에서 출시한 '리니지 시리즈'를 비롯하여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디아블로' 등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이처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판타지는 소설·만화·영화·게임 등 다양한 장르로 몸을 바꿔가면서 장르간의 융합은 물론 다른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형태로 끝없이 변화, 발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최근 소설가 한강이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삼아 세계 속에 K-pop과 한류드라마는 물론 K-픽션과 K-판타지 시대를 열었으면 한다. 더 나아가 현실의 바깥을 상상하는 창의적 사고 실험을 통해 예술과 역사의 발전을 선도하는 진짜 판타지가 나와 주길 고대한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5-31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17] 판타지 '모방 패러다임의 위기' 한국경제와 닮았다

장르판타지와 한국경제는 마주보는 거울 같다. 기원과 발전 경로 등 많은 점에서 상동성(相同性)이 있다. 먼저 서구의 대표작이 번역, 도입된다. 장르문법과 스토리텔링 방법을 익힌 독자들이 모방 등 숙성과정을 거친 다음, 작가가 된다. 한국경제도 장르문학과 유사한 과정을 밟았다. 지금 한국기업이 겪고 있는 위기는 어쩌면 베끼기와 따라잡기 패러다임의 위기이다. 선진국의 앞선 기술과 제품을 열심히 배우고 너무 잘 따라하다 보니 세계적 기업들을 제치고 어느덧 1등이 된다. 여기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보다 만들어진 패러다임 속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세컨드 웨이브 전략이 체질화되다보니, 더 이상 모방할 게 없어지자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주입식 교육과 모방은 일정 단계까지만 유효할 뿐이다. 창의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문학은 물론 기업과 국가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끝나고 영화 '반지의 제왕 3부작'이 완결되자 갑자기 판타지 장르들이 적막에 빠진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간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산 판타지의 간판인 이영도의 '드래곤라자'(전12권, 1998)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실리고 만화 · 머드게임 ·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됐으며 일본과 대만으로 수출됐다. '드래곤라자'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구축한 세계관과 문법을 차용한 작품이었으나 토착화에 애쓴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 후치의 이름을 '후안무치'에서 따온 것이라든지 호위무사 샌슨 퍼시발과 헬턴트 영주의 이복동생인 칼 헬턴트의 모습이 이름만 서양인일 뿐 우직한 경상도 사나이처럼 그려지고 있는 점이 바로 그러하다. '퓨처 워커'와 '폴라리스 랩소디'를 거쳐 '눈물 마시는 새'(2003)에 이르러 서구 판타지의 세계에서 벗어나 도깨비 · 레콘 · 나가 같은 새로운 종족을 창조하는 한편, 윷놀이를 등장시키는 등 동양적 세계관을 선보여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눈물 마시는 새'를 '백성이 흘려야 할 눈물을 마시는 왕'으로 정의하는 등 정치철학도 담겨 있다. 그 외에도 퓨전 판타지를 통해서 묵직한 사회성과 주제의식 그리고 빼어난 구성력을 보여준 김민영의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후일 팔란티어로 개명)과 한국 판타지의 선구자인 이우혁의 '퇴마록'을 비롯하여 김진경의 아동문학 '고양이 학교 시리즈'와 본격문학에 판타지의 문법을 결합한 청소년문학인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는 한국 장르판타지의 가능성을 보여준 수작들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패러다임을 만들지 못한 에피고넨(亞流) 텍스트들의 한계는 분명하다. 친정집('반지의 제왕' 등)의 위세가 꺾이자 갑자기 동력을 잃고 만 것이다. 장르판타지는 한국 장르문학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 사회학적 장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5-24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16] 현실서 독립·분리·혼합 '판타지 유형'

판타지는 신화적 장르이다. 이야기의 뿌리는 물론 엄청난 팬덤과 문화적 영향력도 가히 신화적이다. 판타지는 청소년 전용 스낵 리터러처(snack literature, 잠깐 즐겁게 소비하고 마는 문학)이며, 오컬트문학에 불과하다는 대중적 통념 또한 신화다. 어째서 그런가. 환상은 미메시스와 함께 모든 문학과 예술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며,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환상성과 환상적인 것을 배제한 예술과 문학이 어디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판타지의 정체성에 대한 최초의 이론적 탐구자인 T. 토도로프(1931~)는 초자연적인 것과 자연적(상식적, 합리적)인 것의 조합에 따라 작품을 '괴기문학―환상적 괴기문학―환상적 경이문학―경이문학' 등 네 범주로 분류한 바 있다. 초자연적인 내용이 자연적인 방식으로 해결되면 괴기문학이요, 초자연적인 내용이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해결되면 경이문학이고, 환상문학은 뚜렷한 경계 없이 괴기문학과 경이문학의 교집합 같은 형태로 존재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가령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초자연적인 사건이 인간에 의해 조작된 것이거나 자연적인 현상으로 판명되면 괴기문학이 되지만, 초자연적인 사건이 물리학의 법칙을 위반한 채 초자연적인 존재의 소행으로 밝혀진다면 이는 경악할만한 놀람의 문학, 곧 경이문학이 된다는 것이다. 환상문학은 이 둘 사이를 오가는 존재다.반면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먼 미래 혹은 아득한 과거의 이야기이거나 외계의 행성 또는 외계의 행성에 온 존재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라면 이 작품은 SF가 된다. 이 같은 특성으로 인해 판타지는 자연법칙과 합리적 상식에 길들여진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심리적 갈등을 일으키는 장르 곧 망설임의 문학의 성격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와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판타지는 크게 3개의 유형으로 분화되기에 이른다. 첫째, '반지의 제왕'처럼 현실세계와는 상관없이 아예 다른 세계(secondary world) 속에서 펼쳐지는 독립형이 있다. 둘째는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현실세계와 환상의 세계를 나누고 이원화하는 분리형이고, 셋째는 '퇴마록'처럼 일상 현실 공간을 무대로 하여 초자연적인 사건을 다루는 혼합형이 있다. 분리형의 경우에는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토끼굴, 그리고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9와 4분의 3 승강장 등처럼 현실세계와 환상의 세계를 이어주고 차원 이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통로를 설정해 두는 특징을 보여준다. 현실의 경계에서 벗어나 아무런 제약이 없이 꿈과 이야기가 펼쳐지는 판타지는 얼마나 판타스틱한가. 인생을 살면서 이런 상상의 자유라도 한번 실컷 누려봐야 하지 않겠는가.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5-17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15] 할리우드 장르판타지 공식 '영웅의 여정'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태어나 이야기 속에서 살다가 이야기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가족 간의 정담, 연인들 사이의 밀어, '태양의 후예' 같은 드라마, 뉴스, 다큐, 게임, 강의, 소설 등 모두 다 이야기다. 우리는 이야기하는 인간 곧 호모 나라토아르(Homo Narratoire)다. 그런데 냉수도 차례가 있듯 이야기에도 순서와 공식(플롯과 유형)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와 장르판타지에도 이 같은 이야기 공식이 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1904~1987)은 모험과 영웅 이야기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서사구조를 밝혀내고 이를 명쾌하게 정리한 바 있다. 모두 12단계로 이루어진 '영웅의 여정' 또는 모노미스(monomyth)라고 부르는 이야기 공식이 그것이다.① 평범한 일상의 세계가 그려진다. ② 모험에 대한 소명: 갑자기 일상의 균형이 깨지고 모험이 불가피해진다. ③ 주인공(영웅)이 소명을 부인하고 거부한다(소명에 대한 거절). ④ 선각자를 만난다. 선각자는 영웅이 소명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하거나 일깨워준다. ⑤ 영웅이 모험과 운명을 수용하고 새로운 세계에 진입한다. ⑥ 모험의 세계에 진입하고 적이 누구인지 친구(동맹자)가 누구인지 분명해지며 영웅의 자질에 대한 검증이 일어난다. 어머니의 상을 지닌 여신을 만나거나 주인공을 시험하고 판단하는 아버지의 형상(역할)을 지닌 캐릭터를 만난다. ⑦ 영웅이 특별한 경험과 능력을 쌓고 수단(무기, 수단)을 얻는 '동굴로의 접근(모험의 세계로 진입)'을 한다. ⑧ 모험의 완수를 위한 시련(장애)을 만나 맞서 싸운다. ⑨ 시련(모험)을 이겨내고 보상을 얻는다. ⑩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귀환하는 단계다. ⑪ 귀향하는 길에 부활한 적 또는 장애와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⑫ 모험을 통해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숙해져 집으로 돌아오는, 불로불사의 귀환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세상의 균형이 회복되고, 주인공은 진짜 영웅이 된다.모든 영웅담과 장르판타지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가 이 같은 이야기 공식이 동일하게 전개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이를 따른다. 집단으로 파티를 이루어 퀘스트와 미션을 수행하는 모험형 장르판타지와 게임 그리고 마블이나 DC코믹스, 대형 블록버스터들에 '영웅의 여정'이란 공식을 대입해보면, 대개 이 공식의 반복과 변주임을 확인할 수 있다.무한 경쟁이 일상화하고 스토리와 스토리텔링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야기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잘 활용하며, 잘 즐길 수 있어야 한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5-10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14] 세계문학 중심된 '고립성'

현대 장르판타지는 '반지의 제왕'의 조카들이다. 문학사는 직선이나 단선이 아니라 불연속적이고 비약적으로 이어진다는 에리히 아우어바흐(1892~1957)의 말대로 문학작품들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가지 않고 아버지에서 조카나 작은 아버지에서 육촌들에게 계승된다. 과연 현대의 장르판타지들은 톨킨(1892~1973)이 구축한 판타지 세계관과 문법에 바탕을 두고 있긴 하되, 후대의 작품들은 혈연이나 지연과 관계없이 저마다 독자적으로 백가쟁명의 양상을 보여준다. 영국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한국에서 톨킨 유의 장르판타지 열풍이 거센 것이 그 증거다. 한국 판타지의 의숙부(義叔父) 톨킨은 누구인가. 톨킨은 아버지가 은행가였던 관계로 남아공에서 태어났다. 세살 때 아버지를 풍토병으로 여의고, 열세 살 때 어머니 메이벨마저 잃는다. 프랜시스 신부의 후원으로 재수 끝에 옥스퍼드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하숙집 주인 딸인 에디스와 결혼한 직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1920년 리즈대학 영문과 강사를 거쳐 1925년 옥스퍼드 대학 교수로 임용됐다. 톨킨은 별다른 인간관계 없이 오직 연구와 글쓰기로 일관한 삶을 살았는데, 그의 거의 유일한 사교활동은 '인클링스'라는 소규모 옥스퍼드 대학교수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판타지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C. S. 루이스(1898~1963)가 그 인클링스 멤버였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톨킨이 평생 동안 쓴 판타지는 모두 3종인데, 1937년 '반지의 제왕'의 전편(prequel)에 해당하는 '호빗'을 시작으로 '반지 원정대' '두 개의 탑' '왕의 귀환' 등 3부로 구성된 '반지의 제왕'을 1955년 모두 완성했다. 중간계의 역사를 그린 '실마릴리온'은 그의 사후 장남 톨킨이 펴낸 유고작이다. '반지의 제왕'은 가족 부재의 문학이다. 주인공 프로도는 빌보 배긴스의 양자로 그려지며, 정상적인(?) 가족관계는 별로 없고 결손가정의 후예들이 많이 등장한다. 또 백인남성중심의 판타지인데다가 북유럽 신화와 중세 기사문학을 방불케 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외부세계와 철저하게 단절된 갈라파고스 섬처럼 그의 문학은 북유럽 신화와 자신의 학위논문인 '거윈卿과 녹색의 기사' 같은 중세기사문학의 세계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 장르판타지가 사회나 기성문학과 담을 쌓고 있는 충성도 높은 은둔형 '덕후'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한 현상은 아닌 듯하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처럼 자폐적 갈라파고스 문학이 세계문학의 중심이 되는 옴파로스 신드롬을 만들어낸 것이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5-03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13] 판타지, 미토스(신화), 데이드림(몽상)

판타지는 현대문화의 우점종이다. 도서관 대출순위나 지난 이십년간의 베스트셀러 목록은 판타지 장르의 분포도와 영향력을 보여주는 척도다. 실례로 한 지상파 방송은 20대 총선 개표방송에서 '스타워즈'의 오프닝 시퀀스와 '반지의 제왕'의 모티프를 활용하여 눈길을 끌었다.인공지능과 IT 그리고 생명공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현대사회에서 마법사와 드래곤과 엘프 같이 허무맹랑하고 초자연적인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공위성이 높이 뜰수록 문화의 수준은 떨어지고, 과학기술이 고도화하면 할수록 신화적이고 신비적인 것들이 더 번성한다는 말대로 이 퇴행과 역설은 현대 하이테크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판타지가 꾸준히 읽히고 소비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현대물질문명에 대한 염증과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불만과 기성문학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국민들의 불안지수가 높으면 보수 집권당이, 불만지수가 높으면 진보 정당이 유리하다는 통설을 판타지 분석에도 고스란히 적용해볼 수 있을 듯하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을 구현하는 테크놀로지의 마술성에 더해 극심한 청년실업 등 답답한 현실이 우리 청소년들을 모험과 판타지라는 인공의 낙원 속으로 밀어 넣은 셈이다. 게임 개발사와 영화사 등 문화자본의 마케팅 전략과 시험문제처럼 감동 없는 기성문학을 탓하는 것은 너무 촌스럽다. 그러면 판타지는 무엇인가. 사전과 정신분석학과 문학의 의미가 서로 다르다. 우선 공상 · 환상이라는 사전적 의미와 무의식적 환상(phantasy)과 의식적 환상(fantasy)으로 나누는 정신분석학의 정의가 있다. 즉 의식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상상과 공상이 자유로이 활동하도록 놓아두는 명(몽)상의 상태가 정신분석학이 말하는 판타지이다. 문학은, 이보다 좀 더 복잡하다. 판타지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초자연적인 내용을 다룬 이야기(서사체)를 가리킨다. 근대의 핵심을 종교나 신화의 지배에서 벗어난 사회 곧 탈주술화로 보는 막스 베버(1864~1920)의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판타지는 탈주술화 시대의 재주술화에 다름 아니다. J. R. R. 톨킨(1892~1973)의 '반지의 제왕'의 세계관과 문법을 바탕으로 하고 미즈노 료(1963~)의 '로도스도 전기'에서 스토리텔링 방법을 터득한 독자들과 머드(MUD) 게임을 즐기며 잔뼈가 굵은 유저들이 만든 청년문화가 바로 한국에서 유행하는 장르판타지의 기원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4-26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12] 다매체시대의 새로운 문학

한국SF의 모태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이었다. 동도서기론은 동양의 도덕과 정신을 바탕으로 서양의 앞선 기술과 문명을 수용하겠다는 절충적 계몽주의다. 이 계몽주의가 SF를 받아들였고, 사회의 미래인 어린이들에게 초점을 두는 아동SF로 발전해나갔다. 한국SF의 8할은 번역이고, 2할이 순수창작이다. 팔번이창(八飜二創)인 셈이다. 한국문학에서 SF가 번역과 아동문학의 틀을 벗고 '문단문학'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복거일(1946~)의 '비명을 찾아서: 경성, 쇼우와 62년'(1987)부터다. '비명을 찾아서'는 '경성, 쇼우와(昭和) 62년'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장군에게 암살당하지 않았고 그 결과 한국이 여전히 일본의 연호를 쓰면서 식민지배 상태에 놓여있다는 가정 하에 작품이 전개되는 이른바 '대체역사소설'이다. '기노시다 히데요'란 인물이 숨겨진 역사의 진실을 찾아 나서면서 한국인 '박영세'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대체역사소설은 '지난 역사가 지금의 사실과는 다른 방식으로 결론이 나고 전개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가정하는 SF의 한 장르이다. 리드리 스콧의 걸작영화 '블래이드 러너'의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로 유명한 필립 K. 딕(1928~1982)의 '높은 성의 사내'(1963)가 바로 대표적인 대체역사소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자가 연합국이 아닌 추축국이었다는 가정 하에서 대중들의 삶과 일상을 다루고 있다. 복거일 이후에는 '듀나'가 단연 우뚝하다. '듀나'는 본명 · 성별 · 연령 등이 아직도 베일에 가려진 미지의 작가다. 추측도 무성하고 유력한 제보도 있지만 이런 과잉정보화시대에 익명을 유지하려는 작가의 의사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나비전쟁'(1997) · '태평양횡단특급'(2002) 등을 비롯, '아직은 신이 아니냐'(2013) 등 듀나의 작품에서 비로소 세계로 향하는 한국SF의 국제우편번호를 목격하게 된다. 현재 듀나급(級)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있는데, SF에 정치풍자를 결합한 배명훈의 '총통각하'(2012)라든지 '타워'(2009), '안녕, 인공존재'(2010) 그리고 김보영의 '7인의 집행관'(2013) 등에서 독보적 작품성을 확인할 수 있다. 소설가 박민규의 '지구영웅전설'(2003)은 슬립스트림―곧 비(非)SF작가의 작품이다. 슬립스트림은 리보펑크 · 사이버펑크 · 스팀펑크와 함께 현대SF의 메인스트림을 형성하고 있는바, 이는 SF가 장르문학의 차원을 넘어 본격문학으로 나아가 다매체시대 문학의 새로운 대안으로 발돋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4-19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11] 한국 초창기 SF문학은 '애국계몽운동'

한국에도 SF가 있을까? 있다. 또 흥미로운 일화도 많다. 한국에서 SF가 출현한 시기는 1907년, 최초의 작품은 '태극학보'에 게재된 '해저여행기담'으로 줄 베른(1828~1905)의 '해저2만리'를 번역한 것이다. 번역자는 박용희 · 자락당 · 모험생 등의 동경유학생들이며, 다이헤이 산지의 '해저여행'(1884)을 일역을 바탕으로 공역했다. 계몽사상과 과학사상을 고취할 목적으로 유학생들이 SF번역에 나선 것이었다. 신소설 '자유종'으로 유명한 이해조(1869∼1927)도 쥘 베른의 '인도 황녀의 5억 프랑'을 '철세계'(1908)란 이름으로 번역했다. 초창기 한국의 SF는 장르문학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진행한 것이라기보다는 애국계몽 운동의 일환이었다. 최초로 창작SF를 남긴 작가는 김동인(1900~1951)이다. 동경 유학시절 선진 대중문화를 두루 섭렵했던 경험을 살려 실험적 단편소설 'K박사의 연구'(1929)를 썼다.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똥'을 식량으로 바꾸려 노력하는 K박사의 위선적 태도와 실험을 그렸다. 일제의 산미증식계획 같은 수탈적 식량정책에 대한 조롱의 뜻이 내포돼 있다. 토종 창작 SF는 해방 후 1950년대 후반기에 본격화했다. 아동문학가 한낙원(1924∼2007)의 '잃어버린 소년'(1959)과 '금성 탐험대'(1962)가 그것이다. 김종안(문윤성으로 개명, 1916~2000)의 '완전사회'(1966)는 '주간한국'이 주최한 제1회 추리소설 공모전 당선작으로 남성이 모두 전멸된 여성천하의 미래사회에 깨어난 남성 주인공 우선구의 이야기를 그렸다. 만화도 있다. 한국 최초의 SF만화 최상권의 '헨델박사'(1952)를 비롯하여 전후 최고의 베스트셀러 만화였던 김산호의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1959)가 대표적이다. '라이파이'는 최초의 국내산 슈퍼 히어로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영광의 시간은 길지 못했다. '라이파이' 캐릭터에 들어간 별이 인공기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김산호는 돌연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일주일간 심한 고초를 겪는다. 당연히 작품은 중단됐고 작가는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김산호, 한낙원 이후에는 과학전문기자였던 서광운(1928~1998)의 '4차원의 전쟁'과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1958)을 번역한 서울대 국문과 출신의 소설가 안동민(1931~1997)의 번역이 주목할만하다. 안동민은 1951년 '성화'로 등단한 다음, 다수의 SF 번역과 평론을 발표하였다. 40세 무렵 유체이탈과 임사체험을 거친 뒤 자신의 전생이 힌두교 구루(guru) '라히리 마하사야'였음을 밝히고 평생 영적 수행자이자 심령과학자로 살았다. 초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고쳐줬다고 전해진다. 그야말로 SF적인 삶이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4-12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10] 'SF 고전' 권장하는 사회되길

고전은 읽는 것도 고전이지만, 읽지 않아도 평생 고전한다. 고전은 내용이 어렵고 진지하여 진입장벽이 높기도 하지만, 내용이 잘 알려져 있어 읽지 않고서 읽었다고 착각―사실은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SF를 읽지 않기로 유명한데, 도서판매량을 확인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SF는 물론 장르문학조차 너무 안 읽는 통에 2014년에는 한 출판사의 주도로 장르문학부흥회가 개최됐을 정도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도 한국에서 엄청 안 읽히는 작품의 하나다. 특히 아동문학으로 널리 오해되고 있기에 아동기에 읽지 않았다면 평생 읽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프랑켄슈타인'은 어떤 작품인가. 피부 한 조각을 배양해 만든 괴물의 복수를 그린 공포문학이요, 또 자연의 섭리를 위반하고 생명을 창조한 과학기술에 대한 낭만주의의 경고이기도 하다.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의 발전과 이성의 합리적 사용을 제창한 계몽주의와 달리 과연 과학의 발전이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 즉 계몽주의에 대한 낭만주의 반격이며 19세기 유럽사회를 지배하던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라는 두 세계관의 충돌을 반영하는 작품인 것이다. 흉측한 괴물의 소름끼치는 복수라는 공포의 코드로 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은 '프랑켄슈타인'은 H. G. 웰스의 '닥터 모로의 섬'(1896)의 원조이자 현대SF의 3대 장르로 꼽히는 리보펑크(Ribo-punk, 유전공학 및 생명윤리를 둘러싼 갈등과 문제점을 다루는 작품들)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부제(현대의 프로메테우스)처럼 SF의 프로메테우스라 할 수 있다.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고 또 불을 가져다주어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되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처럼 '프랑켄슈타인'은 줄기세포 연구는 물론 후대 SF작가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촉매가 됐고, 또 리보펑크의 효시가 됐다. 그런데 그 효시의 효시가 또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물론 괴테의 걸작 '파우스트'의 원본이 된 저작물이 있는 것이다. 복제인간의 제조에 관심이 많아 '물성론(物性論)' 등을 통해 '호문쿨루스(Homonculous)'라는 복제인간 제조를 제창한 스위스 출신의 의사 파라셀수스(P. A. Paracelsus, 1493~1541)가 바로 그렇다. 우리가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등 첨단연구 분야를 선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창의성의 문제와 함께 사회적인 투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창의력과 생각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주입식 교육'과 '술' 대신 SF를 권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고전을 읽어야 살면서 고전하지 않는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4-05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9] 로봇의 시대 '윤리헌장' 도입 시급

바야흐로 로봇의 시대가 왔다. 로봇이란, 스스로 '사람의 손발을 대신하는 자동 기계'를 말한다. 산업용 · 의료용 · 군사용 등 로봇은 이미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SF의 광범한 영향 때문인지 로봇하면 인간의 형상과 닮은 기계로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 통념이다. 로봇을 등장시킨 장르별 최초의 작품으로 카렐 차페크의 희곡 'R.U.R.'(1920), 프리츠 랑의 영화 '메트로폴리스'(1927),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소설 '아이, 로봇'(1940) 등을 꼽을 수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은 SF에서 로봇의 시대를 연 기점이 된 작품으로 1940년부터 시작하여 1950년까지 9편이 연속해서 발표됐다. '메트로폴리스'는 고도로 산업화된 미래 사회에서 벌어지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 그리고 화해를 그린 표현주의 영화이다. 영화사상 최초로 로봇을 등장시킨 '메트로폴리스'는 프리츠 랑이 아내 테아 폰 하우보우가 쓴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졌으며, 국내에도 개봉된 바 있다. 1929년 5월 2일자 '동아일보'에 '우파社作 메트로폴리스'란 R生의 글과 역대급 평론가 임화(林和)도 같은 해 '조선지광'에 짤막한 영화평을 남겼다. 또 로봇을 가장 처음 소설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의 발전으로 인한 위험과 문제점을 예상하고, 1942년에 발표한 단편 '런 어라운드'에서 로봇공학 3원칙(three law of Robotics)을 발표한다. 로봇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되며, 인간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고,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등의 3원칙이 그러하다. 나중에는 0원칙이 추가되어 로봇공학은 모두 4원칙으로 늘어나게 된다. '런 어라운드'에 등장하는 로봇 스피디는 수성(水星)의 광산에서 셀레늄을 채취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런데 셀레늄 광산에서 나오는 위험한 화학물질로 인해 스피디가 그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한다.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1원칙과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3원칙이 상충되어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다. 지난 2015년 영국의 공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로봇공학의 발전에 따라 로봇 연구 및 개발에 필요한 '로봇 공학자들을 위한 5가지 윤리'와 '로봇윤리헌장'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세계적 화제가 됐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빅매치에서 보듯 이제는 인공지능의 발전과 도입에 따른 '윤리헌장'과 보완장치도 시급하다. 플러그를 뽑고 두꺼비집을 내리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SF들의 이후 행보가 궁금해진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3-29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8] 로봇의 어원, 체코어 '노동하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은 지난 1월 18일 로봇공학과 인공지능 등의 발전으로 무려 500만개 넘는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고,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아포칼립스는 유구한 전통을 갖는 상상력이다. 인공지능형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과의 대결을 지켜보면서 무섭도록 발전하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류문명의 재앙이 될지 새로운 희망이 될지 속단하기 어려우나 이것은 지금 상상속의 일이 아닌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산업혁명 초기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빼앗는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벌인 바 있으며, SF사상 최초로 로봇을 등장시킨 실험극 '로섬 유니버설사의 로봇'(Rossum's Universal Robots, 1920)을 통해서 카렐 차페크(1890~1938)는 로봇의 반란과 인간의 멸망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선보인바 있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에게 재앙이 되고 마는 역설과 로봇의 반란을 다룬 실험극 'R. U. R.'은 즉각 전 세계 주요 도시들에서 공연되며 엄청난 화제를 몰고 다녔다. 참고로 로봇은 '노동하다'라는 뜻을 지닌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나왔다. 로봇은 한국문학사에도 일찌감치 소개됐다. '개벽'지 기자이자 한국 신경향파문학운동의 기수였던 박영희(1901~?)는 이 연극을 '인조노동자'로 개칭, 1925년 '개벽'에 4회에 걸쳐 연재하였다. 반란을 반역으로 번역한 것이다. '사의 찬미'의 가수 윤심덕과 함께 현해탄에서 목숨을 던져 더 유명해진 한국 근대극예술운동의 선구자 김우진(1897~1926)도 '축지 소극장에서 인조인간을 보고'(1926. 8)란 연극평을 남기기도 했다. 사실 로봇은 오래된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청동거인 탈로스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창조물로 크레타섬을 지키는 무시무시한 파수꾼이었다. 또 계몽주의 시대 프랑스의 발명가 자크 드 보캉송(1709~1782)은 기계오리와 플루트를 부는 자동인형을 만든 바 있다. 로봇을 SF의 소재로, 어린이문학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그리스 신화와 계몽주의 시대와 연결돼있고, 최근에는 로봇공학(robotics)이 새로운 첨단산업 분야로 각광받고 있다. 영원한 노벨상 후보자 레이 브래드버리(1920~2012)는 SF를 단순한 문학 장르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라고 했는데, 현재 로봇은 사회학을 넘어 신화와 철학과 문학과 산업으로까지 뻗어가고 있다. 또 오토마타라고 하여 로봇과 기계장치의 원리를 이용한 예술장르도 있다. 로봇의 시대가 왔다. 상상력이 중시되는 지식기반 시대 이제 장르문학의 상상력에 대해서 정색하고 주목해봐야 한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3-22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7] SF 출생의 비밀은 '모방과 오독'

한국사람 치고 119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119를 긴급전화로 채택했을까? 응급상황에서 번호를 헛갈리지 않고 빨리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119는 미국의 긴급번호 911을 거꾸로 읽는 오독에서 나왔다. 관습적으로 영미에서는 글과 문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통시대의 우리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왔다. 이게 911이 119가 된 사연이다. 긴급번호 119는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한 미국화(americanization)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다. SF를 지칭하는 '공상과학소설'이라는 근사해 보이는 말도 모방과 수용을 통한 선진국 되기를 추구했던 한국의 독특한 근대화, 이른바 모방의 근대성이 낳은 실수였다. SF 곧 과학소설은 'science fiction'의 줄임말이다. 사이언스 픽션이란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미국에서 SF를 장르문학으로 정착시키고 상업적으로도 성공시킨 휴고 건즈백(Hugo Gernsback)이다. 그가 1923년에 만들어낸 조어 '사이언티픽션'이 바로 사이언스 픽션, 곧 과학소설이란 용어의 기원이다. 세계 최초의 과학소설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으로 작품의 부제는 '근대의 프로메테우스'이다. 메리의 남편 셸리는 급진적인 낭만주의 시인이자 철학자였고, 메리는 출중한 여류작가였다. 프랑켄슈타인은, 일반적 오해와는 달리 3미터에 가까운 괴물을 만들어낸 물리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이지 괴물의 이름이 아니다. 이 작품이 최초의 SF이다.사이언스픽션은 말 그대로 과학소설이다. 어디에도 '공상'이란 말이 없다. 그런데 사이언스픽션은 과학소설이 아니라 어째서 '공상과학소설'이 되었는가. 이 역시 일본을 통해 서구의 과학소설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전후 일본의 과학소설은 1950년대의 '하야가와 문고', 1960년대 'SF 매거진'이 주도했다. 'SF 매거진'은 1960년 4월에 창간된 잡지로 지금까지도 격월간으로 발행된다. 'SF 매거진'이 '판타지 앤드 사이언스픽션'이란 말을 언어적 기지를 발휘하여 판타지는 공상소설로, 사이언스픽션은 과학소설로 번역했다. 그러면서 소설이란 말의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이 두 장르를 합하여 '공상과학소설'이라 했다. 일본어는 띄어쓰기가 없다. 이런 사실을 간과한 한국의 출판사와 번역가들이 SF를 '공상과학소설'로 번역하면서 '공상과학소설'이란 말이 장르명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문학판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이나 학자들도 SF는 아동문학으로 어린이들의 호기심과 모험심 그리고 상상력을 키워주는데 다소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허황된 작품이지 참다운 진짜 문학(?)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상'이란 접두어가 덧붙은 것에 대해 별다른 불만이 없었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공상과학소설'이란 프랑켄슈타인은 이렇게 태어났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3-15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6] 밋밋한 일상에 주는 위안

장르문학은 보바리즘(밋밋하고 불만스런 일상)에 맞서는 삶의 동반자다. 대부분 우리의 삶은 먹고 살기 위한 밥벌이 활동과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한 경쟁 등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다가 몸이 아프거나 나이가 들어서, 또 문병이나 문상을 다녀오면서 문득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인생 별 거 없다. 이렇게 살지 말자. 인생의 시간을 뜨겁게 불태우는 옥탄가 높은 삶을 살자, 다짐해본다. 그러나 현실이 어디 그리 녹록한가. 어김없이 찾아오는 청구서들과 대출금 상환일 그리고 승승장구하는 친구들을 보노라면, 이 같은 기개는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처럼 사라지고 만다. 이럴 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종교와 장르문학―곧 수행과 위안의 길이다. 장르문학의 본질은 대리경험(vicarious experience)을 통한 위안에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체험하기 어려운 열정적 사랑과 짜릿한 모험이 있으며,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통쾌한 심판이 있는 것이다. 루시앙 골드만(1913~1970)은 이를 두고 "타락한 사회의 타락한 대응방식"이라 일갈한바 있으나 우리는 여기서 주인공과의 동일화와 강력한 감정이입으로 시름을 잊고 찰나적 만족을 얻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장르문학은 아직 인정투쟁의 도정에 있다. 그것은 삶의 비의를 찾고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예술정신도 없고, 사회적 구원이나 인간해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도피주의 혹은 현실순응주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게다가 '작품'이 아닌 '상품'으로서의 운명을 타고 났기에 독자에게 선택되고 '팔리기' 위해 별별 노력을 다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장르문학은 늘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이중고를 겪는다. 또 엘리트들의 외면과 홀대를 받는다. 전 세계에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도 처음에는 평단과 독자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1961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007 위기일발'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밝히면서 대반전이 일어났다. 케네디의 인터뷰 직후 독서시장과 영화 등에서 죽을 쑤던 007은 대중문화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극도의 정치적 억압기 속에 놓여있던 한국독자(관객)들에게 007은 자유분방한 사랑과 짜릿한 모험으로 답답한 일상의 작은 출구가 되었다. 약품마다 용도와 효능이 다르듯 문학도 장르에 따라 효용과 기능이 다르다. 일반문학의 잣대와 엄격한 기준으로 힐난하고 폄훼하지 말자. 스누피에게 철학이 있고 터프가이한테도 순정이 있듯 장르문학에게도 작품성과 순기능이 있는 법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3-08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5] 영화 '동주'로 읽는 출판 공식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영원한 청년문학이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대중 문학'이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김소월의 「초혼」도 한때는 연애편지의 단골메뉴로 인기가 높았다. 영화 '동주'는 이런 유구한 대중성에서 나온 것이다. '동주'는 웰 메이드(well-made, 잘 만들어진) 영화다. 이준익 감독의 군더더기 없는 연출솜씨도 그렇거니와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작품을 작가의 삶 또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는 등가물로 보는, 이른바 의도의 오류(intentional fallacy)에도 불구하고 윤동주(1917~1945)의 삶과 시와 영화가 잘 배합됐다. 좋은 영화다. 다행히, 윤동주의 묘를 찾아낸 이가 한국문학연구자들이 아니라 재미교포 현봉학 선생과 오무라 마쓰오(一大村益夫, 당시 와세다대 교수)였다는 부끄러운 사실과 암흑기 저항문학의 상징이었던 윤동주가 히라누마 도주(平沼動柱)로 창씨개명을 했다는 불편한 진실도 흥행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저예산 영화인데다가 자칫 서사의 부재에 빠질 수 있는 소재상의 한계도 단편적인 전기적 사실들을, 시퀀스로 만들어 적절하게 배치하고 관객의 감성에 호소하는 시낭송을 통해서 이겨냈다. 또 안소영의 장편소설 '시인/동주'(창비, 2015. 3) 같은 최신 텍스트들이 영화구성에 적잖은 힘을 보태줬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것은 윤동주의 유구한 대중성과 이준익이라는 상표의 티켓파워이다. 여기에 국민정서의 심층을 이루고 있는 반일감정도 다소 도움이 됐고, 윤동주의 오랜 벗이었던 고(故) 늘봄 문익환 목사의 차남 배우 문성근 씨를 캐스팅하는 위트도 돋보였다. 그런데 명백한 작가주의 영화 '동주'에 왜 이런 장치들이 필요한가. 실패의 리스크를 줄이고, 제작비를 건지기 위해서다. 장르문학도 마찬가지다. 장르문학에서 공식들이 계속 반복되는 까닭은 작가가 그렇게 썼기 때문이 아니라 출판업자들의 두려움 때문이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출판사의 이해관계와 안간힘이야말로 장르문학 공식이 지속되는 이유다. 작품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으나 독자들의 특정 장르에 대한 소비의 욕망은 상존하기에 이미 독서시장에서 검증된 패턴과 공식을 반복해서 손님을 끄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르문학의 공식의 다른 이름은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이다. 1972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좌충우돌했을 뿐인데 여기에서 우연히 걸작이 나오고 예술성도 생겨났다는 찰리 채플린(1889~1977)의 고백은, 상품과 예술의 길항과 역설을 잘 보여준다. 역사적 사건이나 작품이 지닌 여러 겹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읽어내는 것을 두껍게 읽기(thick description)라고 하는데, 돼지고기 목살은 두꺼워야 제 맛이듯 장르문학은 이렇게 좀 두툼하게 읽어야 한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3-01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4] 장르문학계의 3대 오페라

'오페라는 매춘부 같은 차림새로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하고, 허세로 가득한 기괴하고 사악한 공연에 지나지 않는다.'17세기 영국 신고전주의 문학의 대가로 꼽히는 알렉산더 포프는 장편 풍자시 '우인열전'을 통해서 오페라를 이렇게 조롱했다. 지금이라면 문화계가 발칵 뒤집혔을 폭언이다. 조화와 절제와 균형을 중시한 신고전주의자 포프에게 오페라는 저급한 B급 연희예술이었던 모양이다. 그야 어쨌든 오페라는 화제를 몰고 다니는 고급예술의 반열에 오른 지 이미 오래다.장르문학에도 오페라가 있다. 소프 오페라, 스페이스 오페라, 베이징 오페라가 그것이다.소프 오페라는 세제(soap)라는 접두사에서 짐작이 되듯 세제드라마 곧 멜로드라마이다. 주로 여성 독자나 시청자를 타깃으로 삼은 멜로드라마들로서 유독 비누와 주방용품 등 세제 광고가 많이 따라붙어 이런 우스꽝스런 별칭이 붙었다.스페이스 오페라는 작품의 무대를 우주로 옮겨다 놓고 펼쳐지는 서부극 이른바 우주 활극, 또는 우주 서부극으로 번역되는 SF 장르의 일종이다. '스타워즈', '스타 트랙' 같은 유형의 영화 또는 우주 삼국지라는 별명이 붙은 '은하영웅전설'이 주요 작품으로 꼽을 수 있겠다.베이징 오페라는 차이니즈 오페라라고도 하는데, 직접적으로 무협영화를 가리킨다. 무협영화의 개척자 후진취안(胡金銓) 감독이 경극을 토대로 무협영화의 문법을 완성하였고, 또 배우들의 과장된 액션 연기가 마치 경극을 보는 것 같다고 하여 이 같은 이름이 붙게 되었다.오페라는 이태리산(産) 예술로 16세기말 피렌체 바르디 백작의 궁정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투란도트', '나비부인', '오페라의 유령' 등 유명 오페라의 대다수는 사랑의 이야기며, 매우 통속적이다. '피가로의 결혼'처럼 신분제를 비판하고 프랑스혁명의 원인(遠因)이 된 경우도 있지만, 오페라는 이렇듯 예나 지금이나 대중친화적인 장르이다.오페라가 귀족용 여흥거리였고 지금도 값비싼 고급예술로 분류되나 찾아보면 오페라 속에도 민중적 발랄함과 비판정신으로 가득하다. SF · 멜로 · 무협 등의 하위장르에 오페라를 접미사로 붙인 것은 화려한 쇼처럼 볼거리가 차고 넘친다는 의미와 함께 약간의 조롱 섞인 장난기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알렉산더 포프가 입에 거품을 물고 비판해마지 않았던 오페라가 고급예술로 자리 잡았듯 장르문학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2-23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3] 작품성과 문단평의 속사정

장르문학은 괴상한 말이다. 문학 장르도 아니고 장르 문학이라니? 여기에는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조선의 국법에 따르면 홍길동은 홍 판서의 아들이 아니라 노비 춘섬의 아들이고, 춘향이는 성 참판의 딸이 아니라 관기 월매의 딸이다. 상놈은 모계의 성을 따르라는 종모법(從母法) 때문이다. 장르문학은 작품성을 보지 않고 무슨 장르냐에 따라 평가를 달리하는 문학의 종모법을 거부하기 위한 대안적 용어다. 가령 대중문학 · 통속소설 · 상업주의 문학을 비롯하여 값싼 종이소설(pulp fiction) · 쓰레기소설(junk fiction)은 너무 경멸적인 표현이기에 적절하지 않다. 또 대중문학과 통속소설이란 말은 모두 일본산이다. 통속소설이란 말은 1920년 사토미 돈의 소설 '동전(桐畑)'에서 처음 등장했고, 대중문학은 1924년 일본의 '강담잡지' 봄호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경우에는 소설가이자 평론가였던 팔봉 김기진이 통속소설(1928년)과 대중소설(1929년)을 문학용어로 차용해 썼다. 장르문학은 추리소설 · 무협소설 · SF · 판타지 · 호러 · 로맨스 등의 작품들을 가리키며, 고유한 장르규칙과 관습을 따른다는 특징이 있다.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작품의 내용과 성격을 알 수 있는 대중적 작품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 작품은 아주 같지도 않으면서 전혀 다르지도 않은 이야기에 권선징악 · 삼각관계 · 행복한 끝내기 · 반전 · 출생의 비밀 같은 공식을 반복한다. 그래서 장르문학을 공식문학(formula literature)으로 규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흔히 작품의 내용이나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사람을 스포일러라고 하는데, 장르문학에서 최고의 스포일러는 장르문학 자기 자신이다. 빤한 공식과 규칙 그리고 예측 가능한 결말 때문에 그렇다. 모든 장르문학이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하면서도 결국에는 같은 이야기 구조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속사정 때문이다. '헬 조선'이란 속어처럼 웃을 일이 별로 없는 팍팍한 인생살이에서 근사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한편으로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화려한 감수성과 문체로 유명한 김승옥이 김내성의 추리소설과 연애소설을 보면서 작가가 될 수 있었고, 중견소설가 은희경이 자신의 문학소녀 시절의 스승은 1960년대 베스트셀러 작가 박계형의 작품이었다는 고백은 장르문학의 존재이유를 증명한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고, 장르문학을 꼭 장르문학이라 부를 일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2-16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2] '삼세번 도전'=미션성공 공식

라면에 스프가 있듯 장르문학에는 공식이 있다. 수학만 공식이 있는 게 아니다. 운전면허코스 시험 연습과 골프와 당구에도 있다. 그야말로 인생도처유공식(人生到處有公式)인 것이다. 악인은 처벌을 받고, 간절한 사랑은 이뤄지며, 미스터리는 해결되고 모험과 미션은 완수된다. 현실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장르문학에서 '미션 임파서블' 같은 것은 절대 없다. 먼저 삼세번의 원칙이 있다. 첫 번째 시도에서 미션이 해결되면 너무 싱겁고 또 해결이 안 되면 영 재미가 없으니 세 번째 가까스로 성공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스타워즈'에서 데스 스타는 루크, 아나킨, 그리고 레이와 핀 등 주인공의 악전고투 끝에 가까스로 파괴된다. 그런가 하면 연애의 공식도 있다. 연인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커플의 지고한 사랑이 그냥 맨입으로 이뤄지면 얼마나 맨숭맨숭한가. 연애에서 장애물은 여러 가지다. 부모가 될 수도, '김중배' 같은 방해꾼일 수도, 또 신분적인 차이나 불치병이 될 수도 있다. 온갖 장애를 이겨내고 사랑을 이룰 때 독자는 감동받고 관객은 열광한다. 추격과 도망의 플롯에서 도망자와 추격자의 거리가 가까워도 멀어도 안 된다는 원칙도 있다. 추격자가 바로 도망자 곁에 있거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어떠한 극적 긴장감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추격과 도망과 사건이 발생하면 독자나 관객이 느끼는 긴장감과 서스펜스는 더욱 배가된다는 공식도 있다. 그밖에 삼각관계나 출생의 비밀, 극적 반전 그리고 주인공에게는 조력자(helper)가 있다는 것, 나아가 과도한 몰입에서 생겨난 독자와 관객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웃음을 유발하는 코드를 끼워 넣은 것도 장르문학과 블록버스터 영화가 자주 사용하는 공식들이다. 서사학자 T. 토로로프의 지적대로 장르문학은 장르의 규칙과 공식을 지킬 수밖에 없는 장르다. 공식에서 이탈하는 순간, 그는 다른 장르의 작품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르문학은 한 권만 제대로 읽어도 모든 것을 다 읽은 것과 다름없는 장르가 돼야 한다. 같은 상표의 상품을 다른 상품으로 대체할 수 있듯 한 작품만 읽어도 그 장르를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장르문학을 '쇼즈 드 장르(chose de genre·판박이 작품)'라 해도 무방하다. 붕어빵에 단팥이 어울리고, 설렁탕에 깍두기가 제 격이듯 장르문학에는 빤한 공식이 제 격이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별로 없는 세상이고, 차가운 현실에서는 해피엔딩을 보장받을 수 없기에 장르문학을 통해서라도 카타르시스를 제공받고 또 위안을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2-02 경인일보
1 2 3 4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