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1] 세계적 문화트렌드 거듭나다

링컨·루스벨트·처칠·빌 게이츠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이들은 모두 장르문학의 열혈독자들이었다.빌 게이츠는 '스타트랙 시리즈'의 광팬으로 자녀들에게 SF를 읽히는 것으로 유명하다.처칠은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고, 링컨과 루즈벨트는 한때 추리소설 작가가 되려 했다. 진융(金庸)은 무협소설로 신필(神筆)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캠브리지대· 베이징대 · 칭화대 등 세계 유수대학의 명예교수가 됐다. 중국에는 그의 무협소설을 연구하는 '김용 학회'가 있고, 이를 '김학'이라 한다. '셜록 홈즈 시리즈'로 유명한 코난 도일도 추리소설로 그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를 받았고, 만년의 피카소는 만화가가 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스페이스 오페라의 대표주자인 '스타워즈'는 시퀄 3편과 프리퀄 3편에 이어 영화적 오마주라 할 '깨어난 포스'가 개봉되어 한참 인기몰이 중에 있다.'스타워즈'는 세계적인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자문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철저하게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이란 영웅 신화 공식을 따르는 블록버스터다. 세계적인 기호학자이자 평론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을 쓰기 위해 수천 편의 중세 관련 논문을 모으고 읽었으며, 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에 대한 연구서를 펴내기도 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 촬영지였던 뉴질랜드는 엄청난 관광수입을 올려 '프로도 이펙트'라고 하는 신조어의 산실이 되었다.이혼 후 생활보호 대상자였던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로 단숨에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여러 출판사를 전전하다 1997년 블룸스베리에서 시험 삼아 찍어낸 '해리포터' 초판본 500부는 현재 희귀도서로 분류되어 경매시장에서 2만 5천 파운드(한화 4천 300만원)에 거래된다. 학계와 본격문학 진영의 푸대접과 상관없이 장르문학의 사회문화적 영향력은 이렇게 압도적이며 세계적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나 조명은 아직 일반적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한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본격문학이 담론의 중심에서 예술과 사회를 주도하던 영광의 시대는 지났으며, 이제는 문학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반성적으로 살펴볼 때가 왔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범죄성을 다루는 추리소설, 다른 세상과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판타지와 SF, 불의와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무협소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낭만적 사랑과 여성의 불만족스런 삶을 동력으로 삼는 로맨스는 출판자본의 상품이면서 동시에 문학담론들의 사회학적 충동을 자극하는 새로운 지적 탐구의 대상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

2016-01-26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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