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천년

 

[경기천년]우리의 삶터&비전 '새 천년' 열어 갈 서른한개 목소리를 담다

시끌벅적 화려한 경기도 천번째 생일아닌31개 시군 도민 이야기로 직접 '상 차리기'풀뿌리 민주주의 '거대한 실험' 여정 끝내내가 사는 곳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몫'지역사회의 바람·대안 토론 '성찰의 장''마을'에 관심 생겨…더 많은 참여 필요후손에 물려줄 미래 위한 현재 과제 '고민'의견 공유·숙의·이해 통한 공통의제 도출'민주주의 향한 플랫폼' 정치참여 열정 커'경기천년+1000' 기획시리즈는 치열하게 경기도의 미래를, 그리고 우리의 삶을 고민한 흔적을 생생하게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3개월 여 간 여정은 녹록지 않았지만 , 동시대를 사는 도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과정은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다. 경기천년플랫폼 사업의 의도는 매우 간단했다. 경기도 천 번째 생일상은 경기도민이 직접 차리자는 것이다. 도민이 살아온 과거를 담고, 현재의 고민을 녹이면서 꿈꾸는 미래를 얹어, 도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천 번째 생일상을 차리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차라리 시끌벅적 하고, 휘황찬란한 생일상을 차리는 것이 쉬웠을 게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31개 시군만큼이나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도민의 일상을 파고드는 일은 참 어려웠다. 시간은 부족했고, 이것이 도민의 보편적 생각이라 자신 있게 말할 만큼 많은 수의 도민을 만나지 못했다. # 7 >에필로그<그럼에도 지방자치제의 기본 이념인 '풀뿌리 민주주의'의 원리를 원칙대로 행했다는 점에서 이 도전은 의미가 있다. 어느 지자체에서도 시도하지 못했던 '거대한 실험'이었다. 조각조각 나뉜 경기도 지역을 일일이 찾아가 '관(官)'은 조용히 입을 다문 채 '민(民)'의 이야기를 들었다. 현장에선 폭포수 마냥 도민들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쏟아진 이야기를 차근차근 정리해 공통의제로 만들어 가는 것도 도민의 몫이었다. 나뿐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도 듣고 대화를 통해 이해하고, 공감대를 찾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것은 '듣는다'는 행위의 힘을 증명하는 현장이었다. 워크숍 현장을 취재하며 많은 수의 도민이 그 과정을 즐겼다. 때로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처 기회가 없었을 뿐, 우리가 만난 도민들 대부분 새로운 경기 천년을 이끌 만반의 준비가 돼 있는 듯 보였다. 이제까지 수렴한 다양한 도민의 의견을 바탕으로 10여 가지 새천년의 비전을 마련하기 위해 '유쾌한 테이블' '도민창의대회' 등 열정 넘치는 대규모 워크숍이 남았다. 경기천년플랫폼 사업을 진행하는 경기문화재단 황순주 문화사업팀 차장은 "우리의 목표는 경기도의 새 천년을 열어갈 문화동력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번 과정을 통해 새 천년이 꿈꾸는 민주주의는 시민이 직접 도시를 가꾸고 문화를 창출하는 방식이며 그것은 문화, 숙의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며 "이 과정이 대단히 실험적이고 현장중심이라 당장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후의 정책 생산, 지원프로세스, 결과 환류 등의 체계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이제 기획을 마무리하며, 경기천년 플랫폼의 성과와 과제를 고민한다. 그 고민을 모든 과정을 이끌고, 뒷받침했던 주역의 목소리를 통해 공유한다. ■우리가 지키는 우리마을, 새로운 천년의 시작박현주 씨는 남양주에 사는 평범한 시민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찾아가는 워크숍에 참가했다. "올 한해 아이들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마을 역사책 만들기 편찬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동안 아이들 키우고, 직장 다니는 게 일상이었는데 처음으로 지역사회에서 활동했다. 그 인연으로 주민자치위원장님의 추천을 받아 이번 워크숍에도 참가했다."워크숍에 참가하기 전, 박 씨는 '경기천년'을 고민하며 정책제안서를 작성했다. 그는 "13년 째 살고 있는 남양주는 삶의 터전이면서, 우리 아이들에겐 고향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이 곳을 지키는 것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할 몫이라는 경험을 했다. 통계자료, 행정자료에 연연하지 말고 주민들이 직접 마을의 모습을 기록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료로 구축하는 일이 그래서 꼭 필요하다"며 편찬위원회를 통해 발간한 마을 역사책에서 구상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참여를 넘어 정책까지 구상한 이유를 묻자 "시민들이 지역사회의 바람을 말하고, 대안을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된 데 기쁜 마음이 들었다. 워크숍에 참석하는 데만 그치지 말고, 경험을 녹여 현실적 대안을 제안하고 같이 고민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워크숍에 참여하며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동반했는데, 이를 두고 매우 잘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워크숍을 통해 경기천년에 관심을 갖고 주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 애정을 갖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었는데,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모로서, 마을 어른으로서, 책임감을 느낀 자리이기도 했다"며 "이 자리에서 경기천년의 정책이 어떻게 수렴되고 계획되며 수립되는지, 미래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꼭 경험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밝혔다.무엇보다 그는 이 소중한 경험이 지속되길 원했다. 그는 "작게나마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내 몫을 하고 싶다"며 "이런 활동을 하고 보니, 시민들이 직접 의견을 내는 자리들이 꽤 있더라. 하지만 대다수 시민들이 나처럼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이번 워크숍도 홍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됐다면, 더 많은 시민들이 참가했을텐데, 광범위하고 폭넓게 시민들이 이런 자리에 나와 의견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대화·숙의·공유, 민주주의 첫걸음주현희 링크컨설팅 대표는 경기천년 플랫폼 중 찾아가는 워크숍 프로그램을 설계한 퍼실리테이터다. 일반에겐 생소한 개념인 퍼실리테이터는 회의, 워크숍 등을 통해 조직의 문제를 해결할 때 구성원들이 합리적인 방향으로 의견을 토론하고 수렴해 해결책을 찾아가도록 중재하는 역할이다. 이번 워크숍도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 컸다. 일면식도 없는 시민들이 정해진 시간에 경기천년 미래를 구상하고 결론을 도출했다. 그는 "현재 삶의 만족도,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배제하고 후손에게 어떤 미래를 남겨주고 싶은지를 구상하는 건 누구나 자신의 이익에 상관없이 고민할 수 있는 공감대 높은 질문이다. 꿈꾸는 미래의 상이 결정되면, 이를 위해 필요한 현재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순서로 진행했다"고 프로그램의 과정을 설명했다. 이런 방식 덕분에 개인의 이익보다 모두의 행복이 우선되는 비전들이 많이 도출됐다.주 대표는 이 과정에서 산발적으로 제시된 의견을 수렴하고 단계마다 그 결과를 공유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워크숍에서 각 팀별 1차 의견을 모아 대표 의견을 정리하고, 대표의견을 모아 의견을 공유하고 공통 의제를 합의했다. 가장 중요한 과정인데, 모여서 이야기한 내용을 모두가 공유하고 숙지하며 이해하는 과정은 시민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또 "정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워크숍에서도 확연히 드러났지만 시민들은 이미 나의 삶을 좌우하는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상당히 높아졌다. 반면 고전적 방식의 다수결이 과연 시민에게 만족을 줄 것이냐는 고민이 필요한 문제"라며 "다수결로 최종 결론이 나더라도 그전까지 치열하고 합리적인 숙의 과정이 필요하고 이 과정은 시민들이 직접 운영해야 한다. 이것이 시대가 바라는 민주주의다. 경기문화재단이 시도한 경기천년 플랫폼은 아주 기초적이지만, 시대가 바라는 민주주의를 향해 발전적으로 나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러면서 그는 '일회성 쇼'로 끝나는 것을 경계했다. "31개 시군을 돌아보니,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각 시군의 제안과제가 일정한 방향으로 수렴된다. 평범하지만 직접적인 도민의 언어이기 때문에 충분히 정책적 가치가 있다. 일회성에 그치지 말고, 꾸준한 활동을 통해 데이터를 쌓아가는 것이 새로운 경기천년을 짓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지난 3개월 여 간 경기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도민들과 경기도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고민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성남서 열렸던 권역별 워크숍 '유쾌한테이블'에 참가한 도민들 모습. /경기문화재단 제공박현주씨주현희 대표

2017-12-03 공지영

[경기천년]문화&교통, 3500명의 '키워드'

3개월간 곳곳 축제·행사장 찾아 의견수렴23% '문화 시설·프로 확충' 감성충족 원해'발전 걸림돌' 대중교통 부실·주차난 꼽아서울행 외에 도내 작은마을간 이동 '불편' 삶 위협하는 미세먼지·교육 문제도 '관심''찾아가는 워크숍' 군소도시 목소리 담아내청년들 거주통한 도시활력 가장 큰 '바람'경기천년을 달리는 버스가 주말마다 경기도 도시 곳곳에 멈춰섰다. 여름이 지나 가을로 들어오는 문턱에서 시작한 일이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겨울이 돼서야 끝이 났다. 경기도민이 많이 모이는 장소라면 거리에 상관없이 버스는 달렸고, 도민의 많은 목소리를 청취했다. 오늘은 그 숨가빴던 현장에서 만난,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전한다.#6■문화, 교통, 환경, 교육. 경기도민이 바라는 것경기천년 버스가 달려가 무작정(?) 도민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을 두고 우리는 '팝업투어'라 명명했다. 정해진 장소나, 인터뷰 대상을 정해두지 않았다. 의견을 건의하는 데 어떤 규칙도, 제한도 없다. 경기도의 오늘과 미래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의견을 이야기하면 그만이다. 9월 초부터 11월 중순까지 팝업투어가 진행된 기간은 경기도 곳곳에서 가을 축제가 한창인 때. 가족, 연인과 손잡고 가을 나들이에 나선 시민 중 3천500여 명이 경기천년 버스 앞에 설치된 테이블에서 함께 경기도의 미래를 고민했다.경기도민이 새로운 천년의 첫 키워드로 꼽은 것은 '문화'였다. 전체 응답자 중 23%가 문화시설 확충과 프로그램, 마을 축제 등을 이야기했다. 특히 도민들 상당수가 '놀이터' '도서관'과 같은 기본적인 문화시설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 1천400만이 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경기도의 위상을 비추어 볼 때 사실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화성처럼 신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지역에서는 '놀이터의 불균형'이 문제로 거론됐다. 한 시민은 "놀이터가 모든 마을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또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과 같은 대형 문화시설에 대한 욕구도 상당했다. 로봇이나 공룡, 과학, 역사 등 뮤지엄의 구체적인 주제를 이야기하는 시민들도 있었고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문화시설이 한 곳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절박한 의견들도 있었다. 도민들은 경기도 문화에 대한 관심도 컸는데, "경기도의 숨은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발전시켜 관광이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경기문화를 알기 쉽게 해설하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경기도 역사와 문화를 알수 있는 역사체험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식의 의견들도 건의됐다.문화 다음으로 도민이 이야기한 주제는 '교통'이었다. 교통은 경기도 발전을 가로막는 아킬레스건이다. 도민들은 대중교통 확충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는데 "자동차 없는 사람도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경기도" "차가 있어야만 아이들과 이동이 가능하다"는 응답들이 쏟아졌다. 서울을 오가는 대중교통도 부족하지만 경기도 내부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대중교통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도민들의 불만이다. 남양주에서는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가 아예 없다"는 극단적(?) 상황을 토로하기도 했고 평택에서는 "다른 중소도시로 이어지는 직통 교통수단이 없다. 반드시 다른 도시를 경유해야 평택 밖을 나갈 수 있다"는 고충을 이야기했다.교통문제는 또 다른 불편으로 이어진다. 대중교통 부족으로 자동차 이용이 많아, 지역마다 '주차장 확충'에 대한 건의가 끊이질 않았고, 대체 수단으로 자전거 이용도 늘어나면서 '자전거 도로 건설'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교통은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다. 도민들은 교통문제를 거론할 때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대책을 요구했다. 경기도 행정가들의 관심과 노력이 시급해 보이는 지점이다.교통에 이어 도민들은 경기도의 환경과 보육·교육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미래의 과제로 꼬집었다. 특히 중국과 맞닿아 있고 산업공단이 많은 경기도의 특성상 '미세먼지'는 도민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많은 수의 도민들이 '미세먼지 대책'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또 '국공립 어린이집'과 '육아 복지 정책', '일관성있는 교육정책' 등 보편적인 대책을 이야기하면서 "학업성적보다 인성이 우선시 되는 경기도 교육" "공부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많은 학교" 등 사람 냄새가 풍기는 교육 대안들도 눈에 띄었다. 이 외에도 경제, 금융, 치안, 먹거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기발한 대안을 제시하는 도민들이 많았다. ■찾아가는 워크숍, 아직 못 다한 이야기지난 3회에 걸쳐서 '찾아가는 워크숍'을 통해 만난 경기 남부와 동·서부, 북부 도시의 이야기를 종합했다. 권역마다 도시를 규정하는 성격이 제각각이고, 흘러온 세월의 결이 달라 우리가 몰랐던 도시의 이면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군소도시들은 권역의 중심이 되는 대도시에 밀려 그 색깔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 미처 다 하지 못한 군소도시들의 작은 목소리를 이야기한다.군소 도시의 시민들이 가장 많이 거론한 키워드는 '청년'이었다. 시민들은 작은 도시를 이탈하지 않고, 심지어 외부에서 유입된 청년들이 이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며 도시의 희망이 돼주길 원했다. 그래서 청년을 위한 정책적 제안이 많았다. 오산에서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청년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거나, 주거·취업 지원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청년복합단지'를 설립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또 청년과 지역주민들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오산 어울림센터'를 건립하거나 청년들이 주도하는 오산 청년문화축제를 상상하기도 했다. 의왕에서는 청년과 노인이 공존하는 도시를 꿈꾸고 있었다. 청년들이 공연, 축제 등 도시의 문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맡아 '청년협동조합'을 조직하자는 의견과 개발되지 않은 자연환경을 배경 삼아 노인을 위한 '실버타운'을 조성하자는 의견이 동시에 나와 눈길을 끌었다. '청년 시의원 진입장벽 낮추기' '시청에 청년담당부서 신설' 등도 건의됐다.또 이들 도시는 규모가 작은 만큼 시민들의 정치 참여 의지도 활발했다. '마을주민 주도 행정' '시민호민관제도' 등 시민들이 지역 행정의 방향을 이끌고 모두가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자고 입을 모았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이들 도시에서 만난 시민들은 인상적이었다. 한 시민은 경험담을 통해 작은 도시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그는 "대도시에 살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도망치듯 의왕에 정착했다"며 "이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다시 행복하게 살게 됐다. 작지만 끈끈하게 이어진 도시의 공동체로 인해 아이들도 함께 키우고 새로운 직업도 찾았다. 이 도시로 이사온 덕에 삶이 완전히 회복됐다"고 웃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경기도민들의 바람으로 채워가는 '경기천년 소망나무'.경기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경기천년플랫폼 '팝업투어'가 지난 3개월여간 경기도 전역을 달리며 도민의 의견을 모았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2017-11-26 공지영

[경기천년]아픔의 땅 한반도 중원, '평화'를 노래하다

최전방 군사접경지 70년 '개발 규제' 희생 속의도되지 않게 지켜낸 '자연' 보존 목소리 커DMZ 도로·휴전선 플리마켓·랜드마크 설립…'통일 한국 중심도시 변신' 즐거운 상상 쏟아져기지촌등 '기억해야할 아픈유산' 가치개발 고민대중교통·문화·교육인프라 확충 '현안' 호소#5경기도 북부지역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손가락이다. 한국전쟁 후 한반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휴전선이 그어졌다. 국토의 '중원'이었던 경기 북부는 한반도에서 가장 예민한 땅, 최전방 군사접경지역이 됐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줄기차게 억압받았고 차별받았다.경기문화재단이 진행 중인 경기천년플랫폼 '찾아가는 워크숍'에서 만난 동두천, 연천, 포천, 양주의 시민들은 옛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이 힘겨웠다. 동두천은 미군 부대가 주둔했다. 지금은 평택으로 미군기지가 대부분 이전했지만, 지난 세월 주한미군의 본거지 역할을 해왔다. 미군 부대 주변에 형성된 기지촌은 현대사의 가슴 아픈 비극이다. 연천 주민들은 밤낮으로 울려대는 포격 소리에 이골이 났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불과 2년 전 만해도 북한군의 포격과 이에 대응하는 우리 군의 포격이 있었다. '군사 도발' '강력대응' '전쟁 임박' 등 미디어가 위기설이 쏟아낼 때마다 연천 주민들의 마음 속엔 서늘한 공포가 떠오른다. 포천에서는 '탕탕탕' 울리는 총소리를 들으면서 생활한다. 포천시에 위치한 미군사격훈련장인 '로드리게스 사격훈련장(영평사격장)'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격훈련을 하기 때문이다. 심심찮게 사격장 인근 지역으로 튀어나오는 탄환들도 주민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 덮어두기엔 7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들만 너무 무거운 짐을 이고 있었다. 분명한 건 그 희생을 바탕으로 전쟁 폐허였던 한반도에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고, 선진국의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새삼 마음이 무겁고 머리가 숙여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워크숍에서 만난 경기북부 시민들 모두 내가 사는 도시에 열정과 사랑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찾은 어떤 도시보다 강렬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가장 설레고 다양한 '꿈'을 꾸고 있다. ■꿈 꿀 것이 많아 행복한 북부북부 도시들의 과거와 현재를 미루어 볼 때 흔히 말하는 '도시 개발이 쉽지 않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이 북한과 살을 맞대며 대치하는 접경지역이기 때문이다. 북부 시민들은 도시 개발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요즘에 들어서는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개발되지 않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천혜의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았다. 한탄강 권역 주민들이 참여한 포천의 워크숍에서는 "중3리 벌판에 편백나무 숲을 조성하자" "한탄강 주변의 자연 경관을 보존해야 한다" "지장산을 보존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더불어 '한탄강 둘레길 조성' '자연 친화적 펜션 건립' '포천 생태공원' 등 자연과 공존하며 살 길을 찾는 방안들도 함께 모색했다. 특히 축산업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아예 축산단지를 반대하고 시민 공원을 조성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도 있었고 무분별한 축사 건립을 막기 위해 축산단지를 건립해 규제를 두고 환경을 지키자는 온건한 입장도 공존했다. 양주 워크숍에서는 '자연을 해치지 않고 위로 뻗은 도로' '물질적 가치보다 삶의 풍요로움을 중시하는 도시' '전통이 보존되는 정책 수립' 등 현재 양주가 가지고 있는 자연과 전통문화를 보존하면서 도시의 발전을 꿈꾸는 의견들이 다수였다.동두천은 아프지만, 그 역사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시민들은 '기지촌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관광특구 조성' '미군부대 주변 원시림에 가까운 자연환경을 활용한 둘레길 조성' '미군 부대 주변 유흥시설인 몽키하우스, 동방극장 등 미군부대 역사문화관광지 조성' 등을 요구했다. 워크숍을 찾은 동두천 시민은 "그럴듯한 신도시나, 공장이 들어오는 것도 좋지만, 10만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두천의 지금 모습도 귀한 풍경이다. 자연 뿐 아니라 옛 건물도, 근현대의 아픈 기억을 가진 장소도 그대로 보존하자"고 말했다. 소외됐던 그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주민들은 평화적인 발전을 원했다. 개발의 광풍에 휩쓸리지 않고 도시의 자연이 지켜졌다는 것에 감사했고, 미래에도 훼손되지 않기를 소원했다. 또 다른 꿈은 '통일 도시'였다. 북부의 희망은 아무래도 '통일'이다. 통일이 되면 최전방 군사지역은 다시 중원으로 돌아갈 테니. 시민들은 통일된 한국의 중심 도시가 되는 상상을 매우 즐거워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솟구쳤다.워크숍을 통해 방문한 북부 도시 모두가 '통일수도'를 꿈꾸었는데, 연천에서는 "통일 이후 군부대가 사라진 연천에서 살고싶다"는 소박한 희망에서부터 'DMZ 도로 연결 ' '통일 대한민국 수도에 걸맞은 행정시설 건립'과 "휴전선에서 플리마켓을 열어 김정은이 율무를 사갔으면 좋겠다"는 재밌는 이야기들이 오갔다.양주에서도 '통일 이후 경기도청과 대학 등 주요 시설들이 양주로 이전' '북한으로 통하는 최첨단 통일도시' 등의 의견이 나왔다. 동두천 시민들은 '통일 후 금강산 수학여행지의 출발지' '동두천에 통일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설립' 등을 꿈꿨다. 모든 분야에서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당장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많았다. 공통적으로 교통과 문화, 교육 인프라 부족을 호소했다. 대부분 지역에서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확대개선을 요구했고 종합병원과 같은 의료시설 부족과 학교, 도서관 등 기본적인 교육 인프라 확충을 강력하게 이야기했다. 특히 문화공간에 대한 불만이 빗발쳤다. 도서관, 미술관, 공연장 같은 문화시설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동체 문화시설도 거의 없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또 '무능력한 공무원' '행사때만 찾아오는 관료주의 정치인' '편중된 도시 개발' 등을 비난하기도 했다.지역마다 안고 있는 문제들도 산적해있다. 포천은 사격장과 소각장, 축사 등을 철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연천은 문화 인프라에 대한 갈망이 컸는데 영화관이 없어 영화를 볼 수 없는 지역 주민을 위해 '작은 영화관 설립'이나 '청소년 문화센터' '거리마다 피아노 설치' 등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로의 변화를 건의했다.동두천 시민들은 미군이 주둔했던 구 시가지에 대한 피해의식을 버리고 근현대사의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개발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화두였다. 과거 '천두동(동두천을 거꾸로 부르는 말)'이라 바꿔 말할 만큼 동두천 신 시가지는 구 시가지를 터부시했다. 이번 워크숍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두 공간의 이야기가 오랜 시간 오갔다. 많이 고개를 끄덕였고, 놀라기도 했다. 그 날 시민들은 경기천년과 상관없이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두 달에 한번 정기모임' '빠진 달은 번개 모임'. 2가지 규칙을 가진 동두천 시민 모임이 결성됐다. 더 많은 공감과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다. 새로운 경기 천년의 꿈도 아마 이런 것일 게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경기문화재단 경기천년플랫폼 '찾아가는 워크숍'을 통해 연천, 양주, 동두천, 포천 등 경기 북부 도시의 시민들을 만났다. 어떤 도시보다 열정적으로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2017-11-19 공지영

[경기천년]모두가 '이주민'… 갈등속에서도 '장밋빛 도시'를 그리다

하나둘 떠나가고 흘러드는 사람들의 공간정착시간 짧지만 '삶터' 관련 논쟁 뜨거워'낙후' 시흥 '회색빛' 안산 이미지 낙인 거부외국인 거주많은 곳 차별·편견 철폐 의견양평·여주 주민 곳곳 벌어지는 '불법' 경계무분별 건축개발 공무원 더딘 일처리 '불만'결국 '살기좋은 우리 지역' 향한 한목소리#4사람들이 떠났다. 더 나은 삶을 찾겠다고 하나둘 마을을 떠났다. 밭을 일구고 논을 매던 노쇠한 부모만 마을에 남았다. 그렇게 젊은 자식들이 떠나 활기를 잃은 마을이 경기도 안에 여럿 있었다.사람들이 다시 돌아왔다. 떠난 이들이 돌아오기도 했고, 새로운 터전을 찾는 사람들이 들어오기도 했다. 어느 마을은 그 모습이 완전히 변했다. 맹꽁이, 저어새가 살던 자연을 버리고,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검은 연기 나는 산업공단을 껴안았다. 시흥, 안산, 화성 같이 경기만을 끼고 있는 연안도시는 한국제조산업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야 했다. 고향은 물론 국적이 다른 사람들까지, '먹고 사는' 단 한가지 목적을 위해 이 도시로 몰려들었다.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최근의 현상이긴 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그 옛날의 마을이 그리워 젊은이들이 속속 마을로 모여들어 살림을 차렸다. 양평, 여주 등 눈에 보이는 들판마다 계절의 색을 만끽할 수 있는 도농복합지역은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덕에, '마음의 여유'를 찾는 이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누구나 '이주민'시흥과 안산, 양평과 여주 등 경기문화재단 경기천년플랫폼 '찾아가는 워크숍'에서 만난 시민들 모두 '이주민'이다. 이들 도시에서 나고 자라 그 옛날의 추억을 간직한 이들은 없다. 저만의 흐름을 따라 이들 도시로 흘러들어왔다. 아주 쉽게는, 국적이 달라서 아예 행정 분류상 이주민으로 불리는 이들이 있다. 조선족 동포 김순옥씨는 "한국으로 이주해 온 이후 7년째 시흥에서 살고 있다. 처음에 한국생활도, 시흥이라는 도시도 낯설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주부이면서 리더십 교육을 받고 있다는 한 시민은 "2004년에 시흥에서 5년간 살았다. 남편 직장을 따라 왔지만, 너무 환경이 열악해 아이교육을 위해 서울로 이사갔다, 4년 전에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돈이 필요해서 2012년에 시흥으로 이사왔다. 그때는 돈에 쫓기기만 해서일까, 당시를 떠올리면 머리가 복잡하다"고 회상했다. 양평워크숍은 문호리 리버마켓 상인들이 함께 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양평, 남양주, 여주 등에 거주하는 이들이다. 홈메이드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수제 공예작품을 만들어 파는 이들도 있다. 천연 염색으로 옷을 만드는 이도 있고, 미술작업을 하기 위해 서울을 버리고 양평을 택한 예술가도 있다. 복잡한 도시 속에서 살다가 모두 저마다의 예술을 위해 이주한 지역의 예술가들인데, 농촌 생활이 익숙하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자의 반, 타의 반 이들은 아직 도시에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듯 보였다. ■이곳에 살어리랏다그럼에도 이들 대부분은 각자의 도시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짧은 정착 시간 때문일까. 현재 그들이 겪고 있는 갈등과 삶의 불편은 어느 도시의 워크숍보다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언제든지 도시를 떠날 수 있지만, 떠나게 될까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살기좋은 미래의 도시를 누구보다 열심히 꿈꿨다. 산업도시로 이미지가 각인된 도시의 시민들은 낙인찍기를 거부했다. 시흥의 우현진씨는 "잠시 머무르다 가는 도시, 낙후된 도시로 시흥을 낙인 찍는 것이 싫다"고 단호히 말했다. 또 자녀의 교육을 위해 인근 서울로 떠나는 부모들이 많은데, 꿈을 이루기 위해 아이들이 다시 돌아오는 도시로 바뀌길 소망했다. 안산의 시민들은 회색빛의 탁한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 자전거, 도보 활용 보편화를 통해 차 없는 친환경 도시를 만들자는 의견과 공동체 문화가 형성될 수 있는 '마실'용 카페나 친환경 협동조합 식당을 늘리자는 의견이 워크숍에 참여한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내부의 갈등도 만만치 않았다. 제조산업이 많은 도시의 특성상 외국인 노동자들의 거주가 많다. 모두 다 이주민인데, 그 중에서도 외국인노동자들은 더욱 이주민이란 편견에 가로막혀 내부에서도 배제되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워크숍에 참가한 시민들 상당수가 이 문제를 거론했다. 안산에서는 '외국인뿐 아니라 남성, 여성 혐오 등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을 없애고 다양성을 무시하는 문화정책도 없애자'는 의견이 전체의 지지를 받아 실천방안에 올려졌다. 시흥의 워크숍에선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을 버리자'는 의견이 나오자, 워크숍에 참여했던 외국인 참가자들이 그동안 마음 속에 품어왔던 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시민이 "일부 지역, 이를테면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번동에 음식물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외국인 시민이 "우리는 외국인이고 거주자들이 수시로 바뀐다. 한국의 사회시스템이 익숙하지 않아, 음식물 쓰레기 처리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분명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서로의 상황을 주고받으면서 워크숍에 모인 시민들은 외국인을 위한 생활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통일된 의견을 도출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을 맞대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아주 작은 소통으로 그동안 해결되지 못해 어려웠던 문제의 방법을 단숨에 찾자 모두 손뼉을 치며 웃었다. 도농복합지역인 양평과 여주 등에서는 지역 발전을 위한 세밀한 방안들이 곳곳에서 이야기됐다. 이들은 지역 곳곳에서 틈만 나면 자행되는 '불법'적 현장을 경계하고 있다.양평 워크숍에서는 음식점이나 펜션과 같은 상업시설의 오폐수 관리를 강화하고 산림훼손, 남발하는 건축허가를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특히 여주 워크숍은 세종고등학교 재학생들과 함께 했는데, '건물 건설할 때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은 주차공간 계획'을 지적하거나 '보완 차원이 아닌 자연파괴가 심한 개발'을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무분별한 욕심이 빚어낸 도시의 이면이 드러나 한순간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기도 했다.'매년 비슷한 짜임새의 축제' '활성화되지 않은 시민 참여 지역회의' '리버마켓 품목 자율화' '준비되지 않은 마을 주민에 무조건 주어지는 지역 사업' 등의 의견을 통해서 공무원들의 게으른 행정을 비판하기도 했다. 양평 워크숍에서 만난 한 시민은 "일 처리가 너무 더디다. 아직 지역 행정을 잘 몰라 문의를 해도 답변을 받으려면 수일을 기다려야 한다. 민원을 제기해도 처리기간이 수주가 걸리고 지연되기가 일쑤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시민은 "공무원들이 이곳에 살고자 하는 주민들의 이야기에 조금만 귀를 기울여 발 빠르게 움직이면 해결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들인데, 심각하게 게으른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비단 양평과 여주에서만 나온 지적은 아니다. 시흥 워크숍에서도 말미에 이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반 시민끼리 머리를 맞대고 좋은 도시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는 이런 자리에 왜 시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은 오지 않느냐. 정작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시정에 반영해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속상하다"고 비판했다.산업도시라서, 농촌이라서, 참 뻔할 것 같지만 단 한마디도 뻔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경기도는 본디 그런 땅이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경기문화재단의 경기천년 플랫폼 '찾아가는 워크숍'을 통해 시흥, 안산, 양평, 여주 등 시민들을 직접 만나 도시 발전을 위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2017-11-12 공지영

[경기천년]'위성도시' 경기 남부, 성남·안양·과천·용인… 그들이 진정 원하는 건 뭘까?

'찾아가는 워크숍' 군포·수원 등 발걸음'버릴 것' 물음에 통념깨고 '개발' 1순위'난개발 NO' 흙길·실개천·숲 복원 바라지역 친환경마켓·화폐·사랑방·축제…이웃 어울리는 '커뮤니티 공간' 소망도#3"허허벌판에 도로가 어딨어. 기차역도 없었는데..그때는 다 논이고, 밭이었어. 누런 들판이 가끔 그립네." 경기 군포시에서 나고 자라 결혼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한번도 군포 땅을 떠나 본 적 없다는 1946년생 김순영씨의 기억이다. 이경득씨는 군포의 아파트를 분양받으면서 25년째 군포에 거주하고 있다. "처음에 군포로 이주했을 때 불빛도 별로 없고, 공장들만 있어 '회색빛'같이 칙칙했어요."서른 살의 김도현 씨는 엄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제가 아주 어린 시절에 군포 산본은 양계장 천지였대요. 어렴풋이 기억나는 게 산본은 논과 밭이 펼쳐진 자연이었는데, 지금은 아파트로 다 바뀌었어요."특정 행성을 공전하면서 그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위성, 그 위성의 특징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위성도시'. 위성도시는 경기도 남부 지역의 도시를 설명하는 가장 쉬운 단어다. 군포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단 군포 만의 것은 아니다. 인근의 성남, 용인, 안양, 과천, 수원 등 대다수 경기 남부의 도시가 수도 '서울'로 집중되는 인구와 산업을 분산하기 위해 도시로 계획되고 개발돼왔다. 서울과 통근이 가능하다면, '신도시'라는 미명 하에 어디든 아파트가 지어졌고 도로가 건설됐다. 아파트 층층이 불이 밝혀지듯 빠르게 사람들이 그 곳을 채워나갔고 금세 도시는 화려한 네온사인에 휩싸였다. 논과 밭이 사라지고 산과 강이 훼손되는 것 쯤은 개발이 되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사람들이 몰려오면 상쇄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지금, 그곳에 사는 이들의 생각도 같을까. 경기천년플랫폼 '찾아가는 워크숍'을 통해 군포, 수원, 과천, 안양 등 경기 남부 도시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살릴 것과 버릴 것경기 남부 도시에서 만난 시민의 답변은 우리의 통념을 깨는 것 투성이였다. 미래를 위해 살릴 것과 버릴 것을 주문하자, 버려야 할 것에 '개발'이 우선 순위로 꼽혔다. 사람들은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난개발에 진저리가 난 듯 했다. 과천 워크숍에 참여한 한 시민은 "과천의 자랑은 도심에서 만끽하는 풍요로운 전원도시다. 그런데 최근 여기저기서 난개발이 횡행하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를 무조건 못하게 할 순 없지만, 원칙도 없이 자연이 훼손되고 그 곳에 아파트, 쇼핑몰 등 개발이 되는 것은 반대한다"고 꼬집었다. 군포에서 만난 시민도 "수리산이 마음에 들어 1997년부터 이 곳에 살기 시작했는데, 고속도로가 생기고 산과 들이 망가지고 아파트와 공장이 우후죽순 생기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고 이야기했다.시민들이 살려야 할 것으로 꼽은 1순위는 '자연'이었다. 군포 시민 임은정 씨는 "길과 길이 만나는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 도로가 아니라, 흙길을 아이들이 밟을 수 있는 도시를 꿈꾼다. 특히 군포에 '대야리' 라는 농촌마을이 있는데, 이 곳은 개발자들이 제발 손대지 말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다른 시민들도 '숲이 우거진 쉼터' '과천 야생화 단지' '군포 실개천 복원' 등을 살려야 할 것으로 꼽으며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진 모습을 원했다.자연과 함께 살려야 할 것으로 시민들은 '공동체'를 꼽았다. 안양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할머니들은 "안양 안에서 아이와 부모가 모두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3대가 함께 어울려 살며 삶을 이루는 도시가 되면 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했다. 비슷한 의견은 경기 남부의 다른 도시에서도 속속 발견됐다. 군포에서는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나왔다. "밥그릇 5개 캠페인을 벌이면 어떨까 한다. 최소한 한 상에 밥그릇이 5개 이상 되는, 동네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삶이 풍요로워질까 생각한다" "우리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친환경 마켓을 만들어 대야리 농장에서 난 각종 채소나 곡물을 마켓을 통해 구입하면 선순환 경제가 되지 않을까" "군포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중심상가 1층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수다도 떨고 차도 마시고 저녁에 맥주도 한 잔 할수 있는 '사랑방'이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등이다.수원에서는 공동체와 관련해 구체적인 계획들이 발표됐다. "마을교육위원회를 구성해 마을 아이들의 공동체 교육을 실현하자" "마을마다, 아파트마다 특성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의무화해 주민 스스로 운영케 하자" "마을마다 지역화폐 혹은 마을 상품권을 만들어 지역상권을 활성화하자" 등 당장 정책으로 구현해도 손색없는 아이디어들이 도출됐다.이 밖에도 마을 특색을 살려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는 문화 축제를 살리고,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또 청년들이 서울로 빠져나가지 않고 나고 자란 도시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룰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위성도시가 아닌, 사람이 사는 도시로20대 청년이나, 40대 주부나, 70대 할아버지 모두 결론은 '다 같이 행복하자'는 것이다. 비단 사람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도시 개발로 얻은 편리함만 누리고 살아온 청년들과 온통 논과 밭이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터를 지키며 살아온 노인들 모두 한 목소리로 쭉 뻗은 고속도로보다 돌아가더라도 흙을 만질 수 있는 오솔길을 원했다. 조금 덜 벌더라도 조금 더 빨리 퇴근해 가족, 이웃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문화공간을 소망했다. 처음 31개 시군을 찾아가 지역의 이야기를 듣기로 기획했을 때만 하더라도 '도로 개발' '지하철 개발' '신도시 개발' 과 같은 물리적 발전이 눈에 띄는 미래가 나오지 않을까 감히 예상했다. 하지만 경기 남부의 시민들은 그동안 철저하게 위성도시로서만 기능해 온 경기 남부 도시의 현재에 물려있었다. 예상은 빗나갔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군포 워크숍에서 만난 1936년생 김상헌 씨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나는 여기서 나고 자랐어. 쭉 군포에서만 살았지. 여기에 안양으로 나가는 실개천이 있었는데, 그 길을 따라 걸었던 기억이 나. 살리고 싶은 게 있다면, 그 실개천이 다시 살아났으면 해."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2017-10-29 공지영

[경기천년]청년에게 京畿란… 현실의 목마름&애정의 공간

경기도 20개 대학교 찾아 3401개 의견 모아미래 고민보다 '현안' 교통·치안 등 관심 커헐거운 버스·지하철 체계 다양한 활동 제약뮤지컬등 사회·문화적 인프라 부족도 불만도내 미술·박물관이나 청년정책등 잘 몰라적극적인 SNS 홍보 흥미로운 콘텐츠 필요"20대초 청춘 보낸 곳, 더욱 살고픈 땅 되길"#2 경기도는 청년에게 어떤 땅일까. 경기정명 천년을 맞아 시작한 경기천년 프로젝트에서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다. 인구 면에서 볼 때 경기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젊은 땅이긴 하지만, 그것이 서울의 접근성 때문인지, 이 땅의 매력 때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이 답을 찾기 위해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지난달 4~27일까지, 약 한달 간 경기도 내 20개 대학교를 돌며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학생들은 그동안 바라왔던 경기도의 모습을 작은 메모지에 꾹꾹 눌러 담았고, 때로는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으며, 경기도의 미래를 토론하기도 했다. 그렇게 3천401개의 의견이 모아졌는데, 그 모습이 취업과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찰 줄 알았던 예상과 많이 빗겨 있었다. 경기도 청년들의 고민은 눈 앞의 현실과 맞닿아 있었고,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도 상당했다. 그래서 캠퍼스 투어를 도왔던 각 대학의 '대학생 서포터스'들과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눴다. 과연 오늘날의 경기도는 청년들에게 살고 싶은 땅일까. ■경기도 청년, 삶의 질은강남대와 한양대에서 만난 서포터스 학생들에게 '경기도에 바라는 것'을 묻자 가장 먼저 나온 답이 '교통'이었다. 실제로 캠퍼스 투어에서도 학생들은 '교통 편의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제일 큰 문제로 꼽았다. 이것은 경기도에 거주하든, 경기도 외 지역에 거주하든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문제였다. 도시 전체에 지하철과 버스가 촘촘하게 망을 이루고 있는 서울과 달리, 경기도 교통체계는 헐겁기만 하다. 경기도 관내라고 해도 시와 시를 잇는 교통편이 부족하고, 서울에서 오가는 교통편 역시 비싼 요금문제가 거론됐다. 용인에 소재한 강남대 서포터스 권다솔(23) 학생은 "우리 학교의 경우, 서울에서 통학을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광역버스가 다녀 다른 학교에 비해 통학은 수월하지만 한 달에 교통비만 10만원 가량 들어 부담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 경기도 버스 배차간격이 크고, 종료 시간도 빨라 대학생의 생활패턴과 맞지 않다고 토로했다. 한양대 서포터즈 권하윤(20)씨는 "안산 지하철역에서 학교로 오는 버스가 2, 3대 정도 밖에 안 되는데, 배차간격이 20, 30분이다"며 "안산에서 도내 다른 시로 이동하는 교통편을 찾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교통 문제는 단순히 통학이 불편하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에 나가기 전,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활동을 제약하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한양대 서포터스 이건희(20)씨는 "기업이나 시민단체 등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들이 많은데, 대부분 서울에 집중돼 있고, 도내에서 하더라도 교통이 불편해 이동시간이 많이 걸린다. 실제로 거리상의 문제로 활동을 그만둔 적도 있다"고 말했다.대학 간 교류도 쉽지 않다. 시간과 거리, 비용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다 보니 학외 활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교통은 사실 경기도의 고질적 문제로 꼽힌다. 무관심 속에 방치된 문제가 청년에게 '포기'를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학생들이 꼽은 또 다른 현실은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경기도 대학생들이 학교 앞을 나섰을 때 즐길 수 있는 문화(?) 시설은 노래방과 당구장 뿐 이다. 현장에서 만난 상당수 학생들은 문화적 갈증을 호소했다. 연극, 뮤지컬, 콘서트 등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없고, 심지어 먹는 것조차 한정됐다는 볼멘소리들도 나왔다. 강남대 서포터스 김성훈(24)씨는 "무조건 서울로 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오죽하면 경기도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공부는 경기도에서 하고, 노는 건 서울 가서 논다'는 게 진리처럼 여겨진다"고 말했다. 심지어 병원, 약국 같은 기본적인 의료시설이 부족해 학교 보건소가 문닫는 야간 시간이나 주말에 불편을 호소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학교 도서관이 아닌 지역의 다른 도서관을 찾으려 해도 대부분 쉽게 갈 수 없는 곳에 있고, 그 수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학생들이 모여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학내 커뮤니티에는 '치안이 불안하다'는 호소 글이 늘 올라온다. 실제로 캠퍼스 투어 조사 결과에서도 학생들은 대학가 치안 불안을 문제로 지적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과연 학생들이 체감하는 삶의 질은 어떤 수준일까 걱정됐다. 경기도에서 공부하면서 꿈을 키우라고 대학을 지었는데, 과연 경기도는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일까. ■무관심이 낳은 청년과의 거리학생들에게 '경기도 청년 정책 중 아는 것이 있냐'고 물었다.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청년 통장' 외에는 대부분 아는 것이 없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아마 청년과 관련된 정책이 없을 것이다. 있다면 벌써 찾아서 받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경기문화재단을 비롯해 각 지역에 세워진 문화재단과 미술관, 박물관, 주민센터, 도서관 등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들의 존재도 잘 모르고 있었다. 직접 만난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 주변엔 경기도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도박물관, 경기도문화의전당, 성남아트센터, 의정부 예술의전당, 안산예술의전당 등 큰 문화시설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가본 적이 없거나 과제 때문에 한 두번 가본 것이 전부였다. 학생들은 "서울의 문화시설들은 SNS를 통해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치고,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미 화제가 될 만큼의 내용물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기도에 있는 문화시설들은 그 존재조차 있는지 모를만큼 홍보가 전무하고, 청년들의 호기심을 끌만 한 콘텐츠도 부족하다"고 꼬집었다.플리마켓, 주제별 소규모 축제가 자주 열리며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서울과 달리, 경기도는 유적지를 활용한 전통축제가 다수라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확충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다채로운 이야기가 오간 끝에, 졸업 후에도 경기도에 계속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물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끝에 각 학교의 서포터스 학생들은 "그래도 20대 초반, 청춘을 보내고 있는 공간이라 분명히 애정이 있다. 무엇보다 이번 활동이 기뻤던 점은 우리의 목소리에 경기도가 귀를 기울여 주었고, 이것을 정책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라며 "경기도가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 청년들과 함께 노력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청년들이 살고 싶은 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지난 한 달여 간 도내 20 곳의 대학교를 다니며 경기도 청년들의 오늘과 미래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경기문화재단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지난 한 달여 간 도내 20 곳의 대학교를 다니며 경기도 청년들의 오늘과 미래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경기문화재단

2017-10-22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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