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만 따라 걷는 에코여행

 

[경기만 따라 걷는 에코여행·(5)근현대 모습 간직한 섬, 대부도]개발 파도 비켜간 작은 섬, 20세기 감성 물결치다

우체국·정미소 등 위치한 상동거리, 섬 가옥형태 눈길1934년 지어진 '면·사무소' 관광지·주민생활공간 부활대부도는 갑자기 바다의 맛이 생각나거나 그리울 때, 도시로부터 불현듯 떠나올 수 있는 그런 곳이다.바다와 갯벌을 한 몸에 품고 있으면서 도시민들이 부담없이 올 수 있어서다. 그래서 대부도 초입에는 도시민들의 입맛과 눈길을 사로잡는 '바지락 칼국수' '조개구이' 집들이 줄지어 서 있다.하지만 대부도를 바지락 칼국수와 조개구이로 가늠하기엔, 대부도가 간직한 자연과 역사의 유산이 눈에 밟힌다. 우리가 만났던 선감도의 선감학원처럼 대부도 역시 근현대사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했다. 주변 도시의 개발논리에 밀려 현대적 발전을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주목받지 못하고 방치됐다 여겼던 것들이 대부도의 매력이 돼버렸다. 대부도는 20세기 경기도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았다. 대부도의 주택들 상당수가 근대부터 이어져 오는 경기도 섬 가옥의 특징을 온전히 갖고 있고 지금까지도 주민들이 그 곳에서 살고 있다. 대부도 경제와 행정의 중심지였던 '상동거리'는 국내 1호 별정 우체국인 '대부우체국'이 있다. 별정우체국은 우체국이 없는 도서산간지역에 국가로부터 개인이 우체국 설립을 위임받아 도서지역의 우편업무를 대행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대부우체국은 1961년에 지어져 근 60년이 다 됐다.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그 곳은 현재도 대부도 주민들의 우편업무를 담당하는 든든한 소식통이다. 또 이 거리에는 정미소와 철공소 같이 이제 경기도의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옛 생활문화공간들이 여전히 주민들의 삶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이 거리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지 않는다면, 일반 관광객이 보기에 상동거리의 풍경은 그저 '낙후된 시골'의 모습쯤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안산시와 경기문화재단 등이 대부도 상동거리의 이야기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 첫 결실이 '면· 사무소'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부터 약 60년간 대부면사무소 였던 지금의 '면· 사무소'는 한옥을 기본 틀로 일본식 건축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건축물이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 한옥형태의 행정기관이라 그 의미가 더 크다. 2004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기까지 거친 역사와 자연의 바람 속에 꿋꿋이 살아남았다. 현재 이 곳은 대부도 역사 자료와 함께 주민들의 옛 생활상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돼 관광지이면서도, 섬의 역사를 소개하는 주민 해설사 양성교육과 주민들의 모임장소 등 주민생활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1934년부터 60여 년간 대부도 면사무소였던 '면· 사무소'는 주민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리모델링돼 경기만에코뮤지엄사업의 거점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2018-09-10 공지영

[경기만 따라 걷는 에코여행·(4)선감도 & 선감학원]지옥의 섬에 갇힌 소년들… 스러져간 생명의 흔적들

일제강점기~1982년 '부랑아 교육' 미명아래 섬에 끌려와 중노동·학대 '비극의 현장' 역사박물관에 고스란히 남아 생존자들 직접 해설 '생생' 경기도 '다크투어리즘'의 상징경기만 해안가에는 섬이 많다. 지난 편에 등장했던 오이도를 비롯해 관광지로 이름난 제부도나 대부도도 있고 풍도, 국화도, 입파도 등 우리가 잘 몰랐던 섬이 도시 주변에 존재한다. 그 섬들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섬도 있다. 대부도 끝자락에 위치한 '선감도'다.선감도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손가락이다. 일제강점기부터 군사독재정권에 이르기까지, 이유도 모른 채 어린 소년들이 섬에 끌려왔다. 거리의 부랑아를 교육한다는 미명 하에 선감도에 '선감학원'을 세우고 가난하고 헐벗은 어린 소년들을 갇아뒀다. 선감도 여행은 선감나루터에서 시작된다. 바다 위에 비탈진 제방만 덩그러니 남았다. 제방에 발을 딛는 순간, 소년은 육지로 쉽사리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직감했을 지 모른다. 마침 바닷물이 모두 빠져 회색 갯벌이 드러난 썰물 즈음, 제방에 서보니 적막함을 넘어 스산하기까지 하다. 대부도와 연결돼 자유롭게 육지를 오가는 지금의 자유가 낯설게 다가온다.선감도에는 당시 원생들이 생활했던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원생들이 일했던 양계장이나 축산부, 양잠부 등이 그대로 있고 직원관사나 원생숙소도 일부 남았다. 다만 찾아가는 길이 녹록지 않다. 그 건물에 주민들이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이 곳이 선감학원이었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설치되지 못했고 가는 길도 수풀이 우거져 쉽지 않다. 직원관사와 양계장, 축산부 등을 지나 언덕 하나를 넘으면, 아주 깊숙한 곳에 '선감역사박물관'이 있다. 새로 지어진 박물관 곁에는 당시 원생들이 주로 숙식을 해결했던 숙소와 식당 건물이 여전히 자리했다. ㄱ자 모양의 2층 건물인 박물관 안에는 선감학원의 역사와 당시 생활상을 담은 물건들이 고스란히 전시됐다. 학생들이 입었던 원복, 신발, 일할 때 사용하던 기구 등이 진열됐다. 이 박물관이 특별한 이유는 선감학원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화요일과 목요일, 토요일마다 상주하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직접 해설해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난 생존자는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인천시립보호소에 있다 선감학원으로 이송됐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주황색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건물들이 보일 것이다. 주황색 슬레이트지붕은 모두 원생들이 거주하던 공간이었다"며 "삽, 농기구 같은 것들로 낮에는 죽도록 일하고 밤에는 매를 맞는 용도로 쓰였다. 매일 매를 맞았는데, 특히 자기 전에 어떤 이유를 대서든 매를 맞는 시간이 있었다. 그것이 정말 지옥같았다"고 이야기했다.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가는 그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그 지옥을 탈출하기 위해 깜깜한 밤 죽을 걸 알면서도 소년들은 저 바다에 뛰어들었고 참 많이도 죽었다고 전했다. 비극의 역사가 불과 36년 전 일이라는 것이 더한 비극이다. 그래서 선감학원은 비극의 한국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겪어낸 경기도 '다크투어리즘'의 상징이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선감역사박물관 전경.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선감역사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원복·신발.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2018-08-27 공지영

[경기만 따라 걷는 에코여행·(3)시흥 오이도]바닷바람 노니는 섬 아닌 섬

지하철 4호선 종착지, 제방 연결된 도시의 끝갑자기 '바다'가 그리울 때 마음 달래주는 곳 작은 섬들 구경 '재미' 소래·월곶포구 '식도락'지하철 4호선을 타고 끝까지 달리면 섬에 도착한다. 지금껏 우리는 도시의 연못에서 한가득 핀 연꽃을 봤고, 갯벌을 개간해 만든 간석지 위의 논밭을 보았다. 또 아직도 살아있는 염전도 구경했고, 바닷물이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육지를 오가는 장면도 목격했다. 모두 도시 안에서 벌어진 진귀한 풍경이었다.그리고 그 도시의 끝에 섬이 있다. 원래는 육지와 떨어진, 진짜 섬이었지만 지금은 그 지리적 특징을 잃었다.섬과 육지 사이에 제방이 연결돼서다. 그래도 '오이도'는 도시 사람이 갑자기 바다를 만나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는 유일한 섬이다. 익숙한 관광지답게 오이도는 관광객의 이목을 끌기 위한 장치들이 여럿 있다. 방파제 아래에 설치된 계단에 그림이 잔뜩 그려졌다. 이제 색이 바랠대로 바랜 갈매기와 파도만 봐도 이 곳이 얼마나 오래된 관광지인지 알 수 있다. 그 옆에는 비교적 최근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그래피티'가 함께 있는데, 이 기묘한 신구의 조화가 어딘지 우스꽝스럽다.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관광객이 이 계단에 앉아 '인증샷'을 찍는 것을 보면 이 또한 오이도가 사람들과 살아온 역사가 아닌가 싶다. 각종 횟집 간판을 등지고 방파제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면 오이도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지근거리에서 바다 위의 작은 섬들을 둘러보는 것. 물론 이들 섬도 제방이 연결돼 있어 완전무결한 섬의 형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망원경을 보지 않고 눈 앞에서 진짜 섬을 보는 것이 신이 난다. 가장 가까이 한 눈에 들어오는 섬은 '덕섬'이다. 새들이 배설을 많이 한다고 해 과거 '똥섬'으로도 불렸다는 덕섬은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가장 돌출된 섬이라 바다 풍경을 보기 가장 좋다. 오이도 인근에는 '옥구도'라는 섬도 있다. 이 곳은 옥구공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민들의 자연휴식처 역할을 할 수 있는 공원으로 조성됐는데, 나무들이 가득한 수목원과 습지의 연꽃과 야생화가 있는 산책로로 나뉜다. 섬의 꼭대기에는 팔각정도 설치됐다. 산책하듯 섬에 올라 팔각정 위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는 것도 도시 섬 여행의 묘미가 될 수 있겠다. 도시의 섬들을 구경하는 한편, 반달의 모습을 닮아 월곶이라 불리는 '월곶포구'와 그 건너 소래포구에서 바다의 맛도 즐길 수 있다.또 저 멀리 맞은 편에는 인천 송도가 보인다. 날이 좋은 때면 꽤 선명하게 볼 수 있는데, 이제는 서울보다 더 현대적이고 독특한 빌딩 숲의 풍광을 바다 건너에서 볼 수 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오이도의 명물 '빨간등대'가 우뚝 선 방파제 전경 . /미디어시흥 제공 /아이클릭아트오이도 인근의 덕섬과 옥구도. 옥구도 꼭대기에 팔각정이 세워져있다. /미디어시흥 제공

2018-08-13 공지영

[경기만 따라 걷는 에코여행·(2)시흥 호조벌과 갯골생태공원]도시 지평선 아래, 저어새의 짠내나는 생의 터전

1721년 500만㎡ 농경지 간척, 백성 구휼3백년 세월 개발속 사라지지 않고 보존1970년대까지 소금생산, 창고 일부 남아멸종위기종 저어새 서식 '귀한 감상 기회'갯골생태공원 흔들전망대 넓은 벌 조망연꽃길을 빠져나오면 초록빛을 뽐내는 논과 밭이 이어진다. 도시 안에서 지평선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한 대지를 보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몰랐다. 그 땅은 '호조벌'이라 불린다. 호조벌은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인 1721년 조선 경종 때 조성된 간척지다.150만평, 약 500만㎡에 이르는 땅이다. 배고픈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 바닷물을 메워 농경지로 만들었다. 조선시대 행정기간인 '호조'에서 조성해서 호조벌이라 이름졌다.그저 시흥 외곽 어디 쯤 있는 농촌으로 알았던 이라면, 땅이 가진 역사에 적잖이 놀랐으리라. 더 놀라운 건 그 땅이 '도시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자취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이다. 바다를 땅으로 만들고, 그 땅을 다져 먹을 것이 생산되는 비옥한 땅으로 만들기까지 수많은 이의 땀과 눈물이 녹아있다. 과거의 호조벌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그 곳은 삶의 터전이다. 아직도 농부들이 이 땅에 농사를 짓고, 땅에서 나고 자란 것이 인근 도시민들의 '식(食)'을 해결한다. 이 뿐 아니다. '저어새'가 서식하는 생명의 땅이기도 하다. 부리가 주걱같이 생겨서 저어새라는 이름을 가졌고 황해안에서 주로 번식한다. 저어새의 먹이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시흥시가 논 2필지를 매입해 보호하는 등 시흥의 생태환경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라 그 수가 극히 적어 저어새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만약에 운이 좋아 마주친다면 저어새가 놀라지 않게 조용히 감상하길 권한다.드넓은 호조벌 안에 '갯골생태공원'이 있다. 갯골은 간척지 사이에 발달해 있는 유로를 말한다. 그 유로를 통해 바닷물이 들어왔다 빠져나가길 반복한다. 이 땅에만 흐르는 자연의 섭리 때문일까. 이 곳에는 숨겨진 역사가 하나 더 있다. 과거 국내에서 가장 '소금'을 많이 생산하던 곳 중의 하나였다는 점이다. 불과 70년대까지도 이 곳에서는 소금이 생산됐다고 한다. 다행히 갯골생태공원 안에 아직도 소금창고가 남아있다. 근대문화재 등록을 앞두고 40여 동 넘게 있었던 소금창고에 불이 나 지금은 2동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검은 빛이 감돌아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은 창고 안에 들어가 둘러보니, 이 땅에 살아남은 그 역사의 흔적이 고맙고 대견하다. 창고 옆으로, 아직 생존해 있는 이전의 염부들이 작게나마 염전을 되살려 소금을 생산하고 있는 풍경도 눈에 남는다.갯골생태공원을 찾는 백미는 '흔들전망대'를 올라가는 일이다. 동그랗게 이어진 전망대 계단을 따라 꼭대기에 올라가면 공원의 전망은 물론, 호조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가슴이 뚫리는 대지의 풍경과 구불구불 이어진 물길을 바라보는데,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끈적한 땀으로 뒤범벅 된 몸을 식힌다. 도대체 현실적이지 않아 몽롱한 기분마저 든다. 땅에 묻힌 역사를 알고 여행하니 머리보다 가슴이 반응한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시흥갯골생태공원의 흔들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갯골생태 풍경.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경기창작센터 작가들이 만든 호조벌 안내판.인천항까지 소금을 운반했던 화물기차의 복원 모형.시흥갯골생태공원에 남아있는 옛 소금창고.

2018-07-30 공지영

[경기만 따라 걷는 에코여행·(1)시흥 관곡지 & 연꽃테마파크]옛 모습 간직한 초록빛 연못… 연꽃이 안내하는 황토 카펫

조선시대 중국서 들여와 현재 19만여㎡까지 이르러흙길 밟으면서 즐기는 고즈넉한 풍광 '도시 속 호사'달리는 창 밖 풍경이 생경하다. 인이 박일 만큼 같은 모양의 아파트가 보이는 익숙한 풍경이 초록빛으로 바뀌자 창 밖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얼마간 논과 밭이 이어지더니, 초록빛의 들판이 펼쳐졌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시야에 거칠 것이 하나 없는, 온통 초록빛으로 가득한 땅. 평일 낮, 도시 안에서 보는 낯선 풍광이 괜시리 반갑다. 시흥의 연꽃테마파크는 시에서 관광지로 조성했다. 이 땅에 고스란히 남겨진, 그렇지만 잊혀진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억지스러움이 없다. 연꽃테마파크의 출발은 '관곡지'다. 기왓장이 올려진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연못의 고즈넉함이 눈길을 끈다. 그 연못에서 시흥의 '연꽃'이 시작됐다. 관곡지는 조선 세조 때 만들어진 연못이다. 조선 전기 명신이자 농학자로 알려진 '강희맹' 선생이 세조의 명을 받아 명나라에 다녀왔다. 명나라 남경에서 연꽃을 보고 아름다운 자태에 반했으리라. 그는 명나라에서 연꽃씨를 가지고 조선에 돌아왔다. 그리고 이 곳에 연꽃을 심어 조선 땅에 연꽃을 대중화시켰다. 그래서 이 지역은 예부터 '연성(蓮城)'으로 불렸다. 시흥 내에 연성을 본 딴 수많은 이름들이 여기서 유래됐다. 작은 연못에서 피운 조선의 연꽃은 지금, 관곡지 주변 19만여㎡에 이르는 땅에 퍼졌다. 논이었던 땅에 연꽃을 심었다. 7월 중순, 꽃을 피우려고 연꽃 줄기들이 어깨 높이 만큼 자랐다. 연꽃 밭 사이의 짙은 황토 흙길을 걸었다. 날이 좋으면 맨발로도 걸을 수 있다. 이 날(10일)은 비가 온 뒤라 곳곳이 진흙 투성이였지만 오랜만에 흙을 밟으니 분위기에 취해 발이 빠지는 것도 몰랐다. 솥뚜껑 만큼 커다란 연잎 안에 물방울이 맺혀 있는 모습도 재밌다. 물방울이 옥구슬 굴러가듯 또르르 흐른다는 시적 표현을 눈으로 볼 수 있다. 평일임에도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하듯 연꽃을 감상하는 이들도 있고, 수학여행 온 소녀들처럼 연꽃 앞에 서 사진을 찍는 이들도 많다. 아예 커다란 카메라를 메고 나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찍으려 기다리는 이들도 꽤 있다. 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이 안에서 휴식을 얻어가고 있다.정신없이 연꽃을 감상하며 길을 걷다보면, '호조벌'로 이어진다. 도시 안에서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까 싶을 만큼 '푸름'이 한가득이다. '경기만'을 따라 걷는 여행의 시작부터 몹시 흥분된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시흥 관곡지에서 출발하는 연꽃테마파크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2018-07-16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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