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미시네

 

[텔미시네]수상한 그녀… 청춘, 빛나는 전성기로의 시간여행

2014년/한국/124분감독 : 황동혁출연 : 심은경·나문희·박인환개봉일 : 2014년 1월 22일.15세이상 관람가'수상한 그녀'는 시간여행을 통해 젊은 시절로 돌아가 가수의 꿈을 이루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이른바 '타임슬립' 영화다.실정법 도입까지 끌어낸 '도가니'(2011)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전작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한없이 가볍고 유쾌한 상업영화를 들고 나왔다.아들 자랑이 유일한 낙인 오말순(나문희) 여사는 며느리를 구박하고 손녀 대신 손자만 편애하는 70대 할머니.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좋아하는 박씨(박인환)와 알콩달콩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가족들이 자신을 요양원으로 보내려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듣고 충격에 휩싸인다. 상심한 마음에 발길 닿는대로 걸어가던 말순은 길가에 있는 청춘사진관에 들어가 영정 사진을 찍는다.사진관을 나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버스에 올라탄 말순은 젊은이들이 접근해 와 자신을 희롱하자 대로한다. 젊은이들의 뜨악한 반응에 이상함을 느낀 말순은 버스 차창 밖에 비친 자신의 얼굴(심은경)을 보고 깜짝 놀란다.영화는 청춘 영화와 타임슬립형 영화들이 가진 사랑과 꿈, 추억 등 다양한 소재를 버무렸다. 20대에 갓 접어든 심은경이 70대 노인의 정서까지 품어 안는다.그야말로 원맨쇼다. 구수한 사투리를 쓰며 젊은 청년들의 마음을 훔쳐보기도 하고, 노래도 다양한 창법을 섞어 마음껏 부른다.'써니'(2011)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심은경은 후줄근한 바지에서 최신 유행복까지 팔색조로 변하는 말순의 의상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제법 차지게 소화했다. 대가급 연기자인 나문희와 박인환은 중심을 탄탄히 잡으며 극에 안정감을 부여한다.평생 '주인 아가씨'를 짝사랑한 박씨의 사연은 애틋하고, 말순의 그악스러움도 눈길을 끈다. 취업 재수생 반한나(김슬기)와 음악에만 빠져있는 반지하(진영)의 모습에선 '88만원 세대'의 잔영도 언뜻 엿볼 수 있다.아울러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기시감도 떠오른다. 젊은 말순을 좋아하는 손자의 모습에선 '백투더퓨처'(1985)에서 과거로 돌아간 아들을 사랑하게 된 엄마의 이야기와 오버랩된다.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모든 사건을 끝내는 정형화된 결론과 내용에 비해 긴 상영시간, 큰 서사에서 오는 웃음보다 단발적인 웃음에 치중한 점은 다소 아쉽다./연합뉴스

2014-01-10 연합뉴스

[텔미시네]플랜맨… 초반-후반부 상반된 분위기

2014년/한국/115분감독 : 성시흡출연 : 정재영, 한지민개봉일 : 2013년 1월 9일. 15세 이상 관람가1분1초 계획하는 결벽남에게계획에 없던 재앙이 찾아오다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한정석(정재영 분)은 자고 일어나 침구를 다림질하고 샤워를 한 뒤에는 샤워 커튼의 물기마저 드라이어로 모두 말려야 성에 찬다.출근할 때 건널목 건너는 시간, 편의점에 들어서는 시간도 모두 손목시계의 분 단위 알람에 맞춰져 있다. 모든 일을 자신이 정해놓은 정석대로 처리 하지 못하고 1분, 1초라도 틀어지기라도 하면 그에겐 거의 재앙이다.매일 같은 시간 찾는 편의점에서 자신처럼 삼각김밥 줄을 맞추고 손이 벗겨지도록 손을 씻는 여자(차예련 분)에게 사랑 고백을 하지만 여자는 자신과 똑같은 남자는 싫다며 거절한다.짝사랑을 포기할 수 없어 처음으로 무계획적인 삶을 살기로 한 정석에게 인디밴드 보컬인 소정(한지민 분)은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밴드 오디션에 함께 나가자는 황당한 제안을 한다. 정재영은 플랜맨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 캐릭터밀착형 연기로 시선을 모으면서도 과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웃음을 자아낸다.더불어 온갖 트라우마, 공포증, 콤플렉스 등 플랜맨으로 대표되는 현대인들이 가진 상처를 보듬으며 감동까지 전한다.특별한 캐릭터로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움직인다.극단적으로 계획적인 플랜맨과 정반대로 계획이랑 담을 쌓은 여주인공 소정 역의 한지민 역시 자신이 가진 매력을 발산한다. 그러나 작위적인 설정으로 볼 수밖에 없는 플랜맨과 정반대의 캐릭터는 흥미를 반감시킨다. 평범하지 않은 남녀가 크고 작은 소동을 겪으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결국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의 과정은 때로는 소소하게, 때로는 폭소를 자아낼 정도로 웃음으로 채웠다.하지만 밝고 통통 튀던 분위기는 정석의 아픈 과거를 보여줄 때 과도한 무게에 덜커덕 걸려 버린다. 전반부는 캐릭터에서 나오는 재미들로 유쾌하게 흘러가지만, 후반부에는 한정석의 과거사를 성급하게 풀어내느라 영화가 가진 장점의 빛이 바랜다.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2006)에 조감독으로 참여하고 몇 편의 단편 영화로 상을 받은 성시흡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민정주기자

2014-01-03 민정주

[텔미시네]셜리에 관한 모든 것… 그림 속에 잠자던 드라마 '생명을 얻다'

에드워드 호퍼 13편 그림 토대美현대사 변곡점 女배우 삶에 녹여정밀한 미술·훌륭한 연기 불구힘 없는 이야기 아트영화 못벗어나감독 : 구스타브 도이치출연 : 스테파니 커밍, 크리스토프 배치개봉일 : 12월 26일. 15세이상 관람가그림을 보다 보면 어떤 그림들은 오랜 시간 마음에 남는 경우가 있다. 노동에 지친 여인이 먼 산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그린 로트렉의 '세탁부'나 유다의 배신을 암시하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같은 그림들이 그러하다. 미술평론가 곰브리치가 말한 것처럼 어떤 그림에는 '드라마와 흥분'이 존재한다.'셜리에 관한 모든 것'(원제 Shirley: vision of reality)은 그림 속에 잠자는 꿈틀대는 드라마를 영상으로 끄집어낸 독특한 작품이다. 현대 미국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가 그린 13편의 그림을 토대로 했다.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은 서로 다른 그림 속 주인공을 '셜리'라고 명명하고, 필름 속에서 노닐도록 생명을 불어넣었다. 감독은 가공의 인물 셜리를 통해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격변하는 미국의 사회상을 담아냈다.이야기는 단순하다. 셜리(스테파니 커밍)는 라디오를 즐겨 들으며 영화와 연극 보는 것을 좋아하는 배우다. 남편과의 사이도 나쁘지 않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매카시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영화계는 잦은 고발로 인한 혼란이 발생하고, 셜리는 정신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영화는 세월과 함께 늙어가는 배우 셜리를 보여주는데 치중한다. 주식시장의 붕괴,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매카시즘 광풍, 마틴 루터 킹의 죽음 등 미국 현대사의 변곡점들이 셜리라는 인물 속에 녹아있다.90여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30년의 세월을 담았으나 이야기의 진행은 상당히 더디다. 마치 낮잠에서 막 깬 판다처럼 느린 카메라는 천천히, 하지만 깊이 있게 셜리의 내면을 들여다본다.사랑하는 사람과 맞이한 찬란한 아침, 밀고가 횡행하는 시대의 배덕, 민감한 예술가들에게 종종 찾아오는 불면의 고통 등 사랑의 아름다움과 불안을 머금은 시대의 공기가 영화를 휘감는다. "다 녹기 전에 생의 아이스크림을 즐기라"는 에피쿠로스적인 세계관이나 플라톤의 '이데아론' 같은 사변적인 철학도 셜리의 내레이션을 통해 관객에게 다가간다. 다분히 이론적인 설명이 아니라 삶 속에 묻어 있는 철학이 영화 속에서 생동한다.영화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우아하고 미술은 정밀하다. 마치 현대 극사실주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원색의 향연이 돋보인다. 주인공 스테파니 커밍과 그녀의 남편 역을 맡은 크리스토프 배치의 연기는 연기인지 실생활인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다.그러나 이러한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아트영화를 지향한 듯 난해하다.특히 특정한 이야기가 없어서 감상에 따라 이 산으로도 저 산으로도 갈 수 있다. 그런 무정형의 여행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반길만하지만 정해진 목표를 가려는 관객은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겠다./연합뉴스

2013-12-27 연합뉴스

[텔미시네]변호인… 세속적 송변의 예상못한 출구 '인권'

1981년 용공조작 '부림사건' 소재휘발성 강한 '노무현' 이상적 대사인생의 변곡 능숙연기 '역시 송강호'013/한국/127분/드라마 감독 : 양우석출연 : 송강호, 김영애, 오달수 개봉일 : 12월19일. 15세 이상 관람가대전지법 판사를 그만 두고 부산으로 내려와 변호사를 개업한 송우석(송강호). 부동산 등기와 세금 전문변호사로 명성을 날리며 큰 돈을 만진다.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송 변호사에게 어느 날 몰골이 추레해진 단골 국밥집 주인 순애(김영애)가 찾아와 아들 진우(임시완)의 변호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정 때문에 교도소를 찾아간 송 변호사는 혹독한 고문에 이성마저 잃은 진우의 상태를 보고 분개한다.진우가 읽었다는 이적물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밤새워 읽은 송 변호사는 인권변호사인 선배를 찾아가 진우가 연루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변호를 맡겠다고 자청한다.'변호인'은 1981년 군사정권이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고자 조작한 용공사건인 '부림사건'이 소재다. 고졸 출신 판사에서 부림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로 탈바꿈한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영화는 시대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이 돈만 밝히던 변호사가 학습과 변호를 통해 세상을 알게 된다는 내용을 성장영화의 공식에 맞춰 포장했다.학생운동을 "공부하기 싫어서 데모하는 거지"라고 깎아내렸던 송 변호사는 고문받은 진우를 보고 "이런 게 어디 있어요?"라고 분개하며, 시국사건 변호를 맡으면서는 "내 자식들은 이런 세상에 살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성장한다.이런 인생의 변곡점을 능숙하게 타 넘는 송강호의 연기가 훌륭하다.세속적인 변호사를 보여주면서는 유머를 적절하게 섞어가며 극에 재미를 부여하고, 법정에선 인권변호사로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파트너인 사무장 동호 역을 맡은 오달수를 비롯해 용공사건을 주도하는 차 경감 역의 곽도원, 판사 역을 맡은 송영창의 연기도 눈길을 끈다.이 영화의 최대 강점은 휘발성 강한 '노무현'이라는 소재를 '정의, 민주, 공화'라는 이상적인 대사들로 포장하며 살려냈다는 점이다. 눈물과 웃음을 적절하게 구사하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둬온 투자·배급사 NEW의 색깔도 드러난다.그러나 인권변호사로 변신하는 송우석에 대한 다층적인 캐릭터 분석이 아쉽고,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점은 영화의 아킬레스건이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동시에 일어났던 밀도 높은 시대인 1980년대에 상식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고 밝혔던 신예 양우석 감독이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았다./연합뉴스

2013-12-20 연합뉴스

[텔미시네]호빗 : 스마우그의 폐… 난쟁이, 판타지의 판을 키우다

감독 : 피터 잭슨출연 : 마틴 프리먼, 이안 맥켈런, 리처드 아미티지개봉일 : 2013년 12월 12일.12세 관람가.상영시간 : 161분전편 비해 이야기 전개 속도↑짜임새도 더해 긴장감 절정감탄 자아내는 선명한 화질일부 관객 거부감 느낄수도'호빗:스마우그의 폐허'는 지난해 선보인 '호빗:뜻밖의 여정'(2012)의 속편이다. 느릿느릿 진행되던 전편에 비해 속편의 속도는 무척 빨라졌다.요정의 숲을 지나 인간의 마을을 거쳐 에레보르 왕국까지 빠르게 질주한다.에레보르 왕국을 되찾고자 원정을 떠났던 빌보 배긴스(마틴 프리먼)와 난쟁이족의 후예 소린(리처드 아미티지) 등은 왕국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어둠의 숲에서 엘프족의 왕자 레골라스(올랜드 블룸)의 급습을 받는다.속절없이 엘프족에게 감금당한 원정대는 절대반지로 투명인간처럼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는 배긴스의 기지 덕택에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그들의 뒤를 쫓던 오크족의 공격에 또다시 위기에 몰린다.몇몇 인상적인 장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특히 커트를 거의 분할하지 않고 길게 찍은 계곡 전투 장면은 이 영화의 기술적·예술적 성취를 드러낸다.드럼통에 의지해 물길을 따라 도주하는 호빗과 그들을 죽이려는 오크족, 또 호빗을 잡고 동시에 오크족을 물리치려는 요정족이 뒤섞이면서 발생하는 혼란을 탄탄한 리듬감으로 살려냈다.거미의 공격을 피하는 호빗족의 모습은 의자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스릴감을 안겨준다.세트는 정교하고, 영화를 꾸미는 미술도 섬세하다. 이야기의 구조도 꽤 짜임새가 있다. 절정을 향해가는 긴장감이 극을 휘감는다.다만, 화면은 다소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화질은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지만, 영화보다는 디지털 TV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인상주의 그림에 익숙한 관람객이 극사실주의 그림을 감상할 때의 당혹감이 든다.J.K 톨킨의 원작 소설을 토대로 했다. 3편으로 기획된 '호빗시리즈'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시대적 배경보다 앞선 프리퀄(앞 이야기)이다.'호빗 3편'은 내년 12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피터 잭슨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한편, '외화 부율'(극장과 배급사 사이의 입장권 수익 분배 비율) 문제를 둘러싸고 배급사와 극장간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어 일단 서울지역에서는 이 영화를 개봉 당일 못 볼 가능성이 커졌다.CGV는 기존 60대 40으로 나눴던 흥행수입을 지난 9월부터 50대 50로 변경했고, 외화를 직수입하는 배급사들이 이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연합뉴스

2013-12-13 연합뉴스

[텔미시네]글로리아…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 가르시아 눈부신 호연

2013/스페인/110분/드라마감독 : 세바스티안 렐리오출연 : 폴리나 가르시아, 세르지오 헤르난데즈, 디에고 폰테실라개봉일 : 2013년 12월 5일.청소년관람불가아이는 다 커서 제 품을 떠났다. 남편과는 오래 전 헤어졌다. 회사에선 유령처럼 지낸다.적적함을 벗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50대 여성 글로리아.녹내장을 걱정해야 하는 그녀에게 느닷없이 한 남자가 다가온다. 삶에 닳고 닳은 그녀는 다시 사랑 속으로 뛰어들 수 있을까.어쩌면 인생은 망가지고 추스르며 다시 걸어가는 과정의 연속일는지 모른다. 녹내장을 걱정해야 할 나이여도 그 과정을 반복하기는 마찬가지다.고통이 익숙해 어떻게 견디는 방법을 알 뿐, 인생에서 고통의 총량은 줄지 않는다. 때론 먹먹하고 답답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게 인생 아닌가.영화 '글로리아'는 삶이란, 이처럼 쓸쓸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한 줌 희망을 품고 견디다 보면 좋은 날이 있을 거라며 우리를 위로한다.칠레 수도 산티아고. 밤이 찾아오면 싱글 클럽에서 춤추던 이혼녀 글로리아(폴리나 가르시아)는 이혼남 루돌프(세르지오 헤르난데즈)와 하룻밤을 보낸다.한 번의 풋사랑인 줄 알았던 만남은 루돌프의 구애로 횟수를 늘려간다.여리고 착하며 부드러운 루돌프에게 글로리아의 마음은 조금씩 허물어진다. 글로리아는 아들의 생일날, 루돌프를 데리고 딸과 전 남편을 만난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루돌프가 갑작스레 사라지자 글로리아는 당황한다.영화는 여자에게 50대란 어떤 의미인지 질문한다.아마 가족사진을 보고 깔깔 웃는 나이, 딸이 받은 프러포즈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리는 나이, 군살이 몸의 이곳저곳을 휘두르지만 남자 친구에겐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나이, 처녀 시절 남자 주변의 여자들이 힘들게 했다면, 이제는 남자의 딸들이 힘들게 하는 나이, 마음을 여러 차례 수술해도 찾아오는 사랑의 봄바람은 막을 수 없는 나이….칠레의 세바스티안 렐리오 감독은 50대 여성이 느낄 수 있는 이러한 여러 감정의 결을 촘촘하게 엮어낸다. 아무 것도 아닌 듯 담담하게, 한 여인의 일상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영화는 결국에 큼지막한 파도를 일으킨다.글로리아를 연기한 폴리나 가르시아의 호연은 가히 눈부시다.세밀한 표정연기는 물론 노출연기까지도 과감하다.외로움 속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과거를 추억하고, 아직도 꿈의 조각은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산전수전 다 겪은 여인의 풍상을 사실적으로 그렸다.특히 모든 쓸쓸함과 고독, 고통이 지나가고 나서 노래 '글로리아'에 맞춰 막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은 마음에 깊이 각인될 만하다.가르시아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여우주연상을 받았다./연합뉴스

2013-12-06 연합뉴스

[텔미시네]'안녕?! 오케스트라'… 용재 오닐·다문화 아이들의 '뜨거운 화음'

2013/한국/85분/다큐멘터리감독: 이철하출연: 리처드 용재 오닐개봉일: 11월28일. 전체관람가."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안녕?! 오케스트라'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토닥토닥' '쓰담쓰담'(쓰다듬어준다는 뜻의 의태어) 같은 느낌의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 누군가 내 옆에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듯한 포근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따뜻한 느낌은 내 옆의 누군가를 똑같이 토닥이고 쓰다듬어주고 싶게 한다.'다문화'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지 오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 주제에 관해 무관심하다.저마다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겪는 아픔까지 조심스럽게 헤아릴 감수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로 꾸려진 오케스트라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그리 매력적인 영화가 아닐 수도 있다.하지만, 이 영화 '안녕?! 오케스트라'는 비단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소외나 차별, 외로움만을 담고 있지 않다.이 영화는 우리가 스스로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며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 앞에서 그저 주저앉아 버리지는 말자고 다독여준다.음악에 집중하고 사람들과 함께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움은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위로받는 사람은 이 오케스트라의 아이들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저마다 이유로 가슴에 품고 있는 응어리들을 어루만지며 서서히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이 다큐멘터리가 리처드 용재 오닐이란 사람에게서 출발하지 않았다면, 영화는 이만큼 힘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듣는 사람의 가슴을 파고드는 선율을 만들어내는 세계적인 비올라 연주자 리처드 용재 오닐의 존재는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주목하게 한다.여기에 용재 오닐의 가슴 아픈 개인사가 겹쳐지면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의 교감이 특별한 화학작용을 이뤄낸다.용재 오닐의 어머니는 장애를 가진 전쟁고아로 일찍이 미국에 입양됐다. 그곳에서 그는 어머니의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태어났고 미국인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에 길러졌으며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자라났다.백인들만 사는 동네에서 장애인 엄마를 둔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동네 아이들에게 멸시와 놀림을 받았다.이제는 세계적인 음악가로 우뚝 선 그는 안산지역의 다문화 아이들로 구성된 '안녕?! 오케스트라' 아이들을 만나 본인 역시 어린 시절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한다.아이들은 겉보기엔 그저 천진하고 밝아 보이지만, 어린 나이에 벌써 가슴 깊이 숨겨둔 아픔이 하나씩 있다.부모 중 한쪽이 집을 나가고 한쪽은 세상을 떠나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길러지거나, 아버지의 폭력으로 부모가 이혼한 경우 등 집안의 문제도 문제이거니와 피부색이 다르고 한국말 발음이 조금 어눌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놀림을 당해 마음을 닫아버렸다.이 아이들은 "괜찮아, 그건 너희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용재 오닐 선생님에게 금방 빠져든다. 그리고 아이들의 조건 없는 사랑은 용재 오닐의 얼굴에 함박웃음을 만들어낸다.이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화음은 아직 미숙하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 결국 '안녕?! 오케스트라'의 마지막 공연이 끝났을 때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 역시 함께 뜨거운 눈물을 쏟게 된다.리처드 용재 오닐과 아이들의 가슴 뭉클한 1년의 시간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는 MBC와 꿈꾸는오아시스, 센미디어가 함께 제작했으며, 지난해 9월 MBC에서 4부작으로 방영돼 호평받았다. 극장판은 이철하 감독이 연출을 맡아 85분 분량으로 다듬었으며, 올해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일드앵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초청됐다./연합뉴스

2013-11-29 연합뉴스

[텔미시네]헝거게임:캣칭파이어… 블록버스터급 '혁명의 불꽃' 피어오르다

2013/미국/146분/액션감독 : 프란시스 로렌스출연 : 제니퍼 로렌스, 조쉬 허처슨, 리암 헴스워스개봉일 : 11월 21일. 15세 관람가독재국가 판엠서 벌어지는 경기전편에 비해 이야기의 깊이 부족본격 서사 진행전 전개과정 밋밋엄청난 제작비… 전투신등 감탄'헝거게임'으로 독재를 유지하려는 '판엠'의 대통령 스노우(도널드 서덜랜드). 그러나 부가 편중된 판엠의 수도 캐피톨을 제외하고 빈민들로 이뤄진 13개 구역은 잇따라 소요사태가 발생한다.스노우는 74회 헝거게임 우승자이자 혁명의 아이콘이 된 캣니스(제니퍼 로렌스)와 피타(조쉬 허처슨)의 애절한 로맨스를 이용해 소요사태를 진정시키려 하지만 폭압과 민생고에 시달리는 민심의 불만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스노우는 이같은 불평을 잠재우고자 75회 헝거게임에서 각 회 우승자들을 모아 진행하는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캣니스와 피타는 울며 겨자먹기로 또다시 헝거게임에 참석한다.헝거게임은 독재국가 판엠에서 벌어지는 경기로, 빈민들이 사는 13개 구역에서 차출된 대표들이 참석해 생존자 한 명을 가리는 잔혹한 게임이다.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민중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우민화 정책 중 하나다.전체주의 독재와 이를 타도하려는 혁명은 영화에서 수없이 반복된 이야기지만 이같은 소재를 수풀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 사냥으로 포장했다는 점에서 '헝거게임'은 다소 신선한 맛이 있었다.그러나 후속편 '캣칭파이어'는 전편보다 소재적인 참신함도 이야기적인 깊이도 떨어진다.무엇보다 볼거리가 풍부한 헝거게임이 영화가 시작된 지 무려 1시간 반가량 지난 다음에야 등장한다는 점이 이 영화의 최대 약점이다.시리즈의 전체 서사를 고려한다해도 군불을 때는 시간이 길다.영화는 본격적인 서사가 진행되기 전까지 캣니스의 고뇌와 공포를 보여주는데 주력하지만 그 과정이 밋밋하다.수많은 사람이 왜 혁명에 이끌리는지, 어떤 억울한 사연이 있는지, 판엠 정부가 얼마나 부도덕한지에 대한 깊이있는 설명과 이에 대한 감독의 시각이 면밀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그러나 헝거게임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영화는 블록버스터의 위용을 보여준다.전편의 제작비(7천800만달러)보다 두 배 이상 썼다는 물량만큼이나 전투 장면은 화려하고 정교하다.'콘스탄틴'(2005)과 '나는 전설이다'(2007)를 연출한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캣칭파이어'의 후속편인'헝거게임 모킹제이 1'은 내년 11월, '헝거게임 모킹제이 2'는 2015년 11월에 선보일 예정이다./연합뉴스

2013-11-22 경인일보

[텔미시네]잉투기… 잉여, 삶이란 격투장 속 '남겨진 청춘'

온라인 댓글서 시작된 다툼현실속 주먹다짐으로 번져길잃은 분노의 맹목적추적찌질해 더 슬픈 진짜이야기2013/한국/98분/드라마감독 : 엄태화출연 : 엄태구, 류혜영, 권율개봉일 : 2013년 11월 14일 15세 관람가5년 전 인디밴드였던 장기하와얼굴들은 '싸구려 커피'란 노래로 돈 없고 갈 곳 없는 청춘들의 무기력한 일상을 그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부모에게 물려받은 배경이나 돈이 없고 열심히 일해도 최저 시급을 받고 근근이 삶을 꾸려가며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20대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사회학적 용어로 '88만원 세대'가 고유명사가 된 지 오래.장밋빛 꿈은 커녕 현재의 노동 의욕조차 상실한 젊은이들은 반지하 방에 틀어박혀 흘러가는 시간을 부유한다.이들의 일상을 포착해 속 쓰린 싸구려 커피와 눅눅한 비닐장판의 슬픔을 노래로 담은 '싸구려 커피'는 젊은이들의 열렬한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그에 비하면 대중문화의 한 축인 영화는 그동안 이 세대를 제대로 조명해내지 못했다.그런 의미에서 새로 나온 독립영화 '잉투기'는 단연 눈에 띄는 영화다. 스스로 '잉여'로 자조하면서 '잉여 짓'에 목숨을 거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본 영화다.그동안 한국 영화가 채 담아내지 못한 시대의 이야기를 젊은 감독 엄태화는 재기발랄하면서도 가볍지 않게 그려냈다.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거액의 현금을 들여 거래하고, 사이버 게시판에서 댓글로 서로 공격하다 실제로 만나 주먹다짐을 하거나 칼부림을 하는 이들의 기사는 심심찮게 뉴스 사회면을 장식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성 세대들은 그저 혀를 차거나 고개를 흔들며 외면하고 만다.영화 '잉투기'는 이들의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지 탐구하고 이들이 세상 밖으로 에너지를 쏟아내는 이야기를 통해 조심스럽게 희망을 말한다.영화 제목 '잉투기'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격투기 대회 이름이다. '잉여'들의 격투기이면서 현재 진행형을 의미하는 'ING'에 '투기'를 결합해 '싸우고 있다'는 뜻을 나타낸다.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칡콩팥'이란 아이디로 활동하는 태식(엄태구 분)은 같은 커뮤니티에서 사사건건 부딪히며 대립하던 '젖존슨'에게 '현피'로 급습을 당한다. '현피'란 온라인에서 벌어진 싸움이 현실로 옮겨진 것을 말한다.젖존슨에게 무참히 맞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찍혀 인터넷상에서 웃음거리가 되자 태식은 이를 참을 수 없는 치욕으로 여긴다.복수를 다짐하고 젖존슨을 추적하다가 젖존슨이 과거에 종합격투기 대회인 '잉투기'에 나갔던 사실을 알게 되고 친한 형 희준(권율)과 함께 격투기 체육관을 찾아간다.체육관 격투기 사범의 조카인 여고생 영자(류혜영)는 태식이 칡콩팥이란 사실을 알고는 재미를 느껴 젖존슨과 싸움을 붙일 목적으로 젖존슨 추적에 함께 나선다.부모 없이 혼자 사는 영자는 격투기 챔피언 수준의 실력을 지녔지만, 학교에서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오로지 온라인상에서 개인 방송을 하며 익명의 상대들과 소통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사는 인물이다.태식과 영자는 점점 젖존슨의 실체에 접근하지만, 상황은 이들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영화는 처음에 '이해 불가'의 외계 존재로 보이는 태식과 영자란 인물을 점점 피와 살과 영혼을 지닌 사람으로 보게 한다.주먹을 날릴 대상조차 없어져 좌절하는 태식과 고작 해야 소심한 복수로 울분을 터뜨리는 영자의 초상은 결국 관객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연합뉴스

2013-11-15 연합뉴스

[텔미시네]더 파이브… 복수마저 유린당한 삶, 그놈을 쫓다

동명 웹툰 원작자 감독 맡아가족 잃고 장애 떠안은 여성사이코패스 살인마와 대결'절박함과 욕망' 다룬 스릴러2013/한국/123분/스릴러감독 : 정연식출연 : 김선아, 마동석, 신정근개봉일 : 11월 14일 청소년관람 불가."어디 여자가, 병신이, 그것도 혼자서…."(영화 '더 파이브'에서 잡범들이 주인공을 비하하는 대사)'더 파이브'는 스릴러 장르에서 이렇게 사회적으로 물리적으로 힘없는 약자인,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여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는 점부터 독특한 영화다.연쇄살인마와 그 희생자 가족의 복수 이야기라는 뼈대는 스릴러 영화의 닳고 닳은 설정이지만, 가장 약한 주인공을 중심에 놓고 네 명의 조력자와 보조 장치들을 설계함으로써 이전의 복수 스릴러와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특히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들 역시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 딱히 가진 게 없는 비루한 처지에 종종 이기심에 휘둘리는 '보통 사람들'이라는 점이 이야기의 흡인력을 높인다.살인마의 뒤틀린 욕망뿐 아니라 그와 싸우는 다섯 인물 각자의 절박함과 욕망이 부딪히며 화학 작용을 일으킨다.여기에 주연배우 김선아를 비롯해 각각의 캐릭터로 분한 배우의 열연이 더해지면서 촘촘하고 긴장감 있는 스릴러가 완성됐다. '더 파이브'라는 제목이 힘을 얻는 이유다.정연식 감독은 '더 파이브'를 웹툰으로 그려 인터넷에 연재한 뒤 이를 직접 영화로 만들었는데, 탄탄한 각본에 더해 꼼꼼한 연출이 돋보인다.다만, 사이코패스인 연쇄 살인마 설정과 피해자들에게 희생당하는 장면이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점이 대중성을 해친다.또 이야기와 드라마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스릴러 영화인 만큼, 원작인 웹툰을 이미 본 관객들에게는 재미가 덜할 수도 있다.이야기는 주인공 고은아(김선아 분)의 행복한 가정에서 출발한다. 사랑하는 남편과 열네 살 딸아이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은아는 어느날 동네 슈퍼에 갔다가 한 남자(온주완)와 마주친다.딸아이는 이 남자와 동행하는 십대 소녀가 같은 학원에 다닌 적이 있는 언니임을 알아본다. 그리고 며칠 뒤 은아와 딸아이는 다시 이 남자를 길에서 마주치고 아이는 이 남자에게 인사를 건넨다.그날 은아 모녀를 쫓아온 남자는 남편과 아이를 무참히 죽이고 은아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2년 뒤 다리를 못 쓰게 돼 휠체어 신세를 지는 은아는 하루하루 아무런 희망없이 살아가며 오직 복수만을 생각한다.무기를 구하려고 잡범들과 거래하러 나간 자리에서 "어디 여자가, 병신이, 그것도 혼자서…"라는 욕과 함께 돈만 뺏기고 돌아온 날, 복수를 하기에는 자신이 가진 게 없음을 절감하며 흐느낀다.그러다 문득 자신이 유일하게 가진 게 다리를 제외한 건강한 신체임을 깨닫고 이를 이용해 자신을 도울 조력자를 찾아나선다.은아의 장기를 받아 아픈 가족에게 이식수술을 해줄 욕심으로 은아를 돕게 된 네 사람 정하(이청하), 남철(신정근), 대호(마동석), 철민(정인기).하지만, 이들은 각자 다른 마음을 품고 은아의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게다가 살인마는 예상보다 훨씬 더 지능적이어서 은아 일당을 역습해 온다./연합뉴스

2013-11-07 연합뉴스

[텔미시네]디스커넥트 (Disconnect) 인간, 관계… 자판으로 이야기 하지말라

2013/미국/115분/드라마감독 : 헨리 알렉스 루빈출연 : 알렉산더 스카스카드,제이슨 베이트먼, 폴라 패튼개봉일 : 2013년 11월 7일청소년관람불가그 어느 때보다 연결된 사회. 하지만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개인. 영화 '디스커넥트'(Disconnect)는 온갖 망으로 엮인 인터넷 세상 속에서 외로움에 허덕이는 현대인의 표류하는 삶을 건드린다.영화는 세 편의 이야기를 토대로 외로움의 섬에 갇힌 인물들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나른한 절망과 곁들여 보여준다.음악에만 빠져 사는 오타쿠 벤(조나 보보)은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 그를 골려주려는 제이슨(콜린 포드)은 제시카라는 아이디로 벤에게 접근하고, 둘은 사이버상 절친으로 발전한다.그러던 어느 날 나체 사진을 보내달라는 제시카의 요구에 벤은 고심 끝에 이를 송고하고, 이 사진은 곧 트위터를 통해 일파만파 번진다. 치욕을 느낀 벤은 목을 매고, 제이슨은 극도의 불안에 휩싸인다.영화는 벤의 이야기를 포함해 불법성인사이트에서 화상채팅을 하는 가출청소년을 보도한 지방 방송국 니나(안드레아 라이즈보로)의 이야기, 채팅을 하다가 피싱에 걸려 전 재산을 탕진한 데릭(알렉산더 스카스카드)-신디(폴라 패튼) 부부의 이야기를 비슷한 분량으로 보여준다.다큐멘터리 '머더볼'(2006)로 주목받은 헨리 알렉스 루빈 감독은 세 편의 이야기를 통해 기술과 자본의 발전으로 되레 퇴색해버린 '인간관계'에 주목한다.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구성원은 바쁜 생활과 성공의 열망 탓에 조금씩 멀어지고, 가정에서 내쳐진 청소년들은 따뜻한 보금자리 대신 매춘의 사각지대로 내몰린다. 영화는 이런 관계의 역설을 촘촘하고 탄탄한 이야기로 엮어 올린다.아들에게 모욕을 준 이를 찾으려 노력하는 벤의 아버지, 친구를 농락하며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한(恨)을 풀려는 제이슨, 어린 아들을 강하게 키우려는 나머지 아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제이슨 아버지의 예를 통해 영화는 다가가려는 노력없이는 관계의 진전이 이뤄질 수 없고, 심지어 상대에게 상처까지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디스커넥트'는 이처럼 관계 증진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판으로 이야기하지 말고 육성으로 말하라고 주문한다. 이제는 접속을 끊고 내 가족, 내 이웃, 내 친구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라고 말이다./연합뉴스

2013-10-31 연합뉴스

[텔미시네]까미유 끌로델… 천재 여류 조각가의 '비극적 일기'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로댕의 배신젊은날의 재능잃고 정신병원 수용날개꺾인 그녀 뼛속까지 슬픔·고통주연 비노쉬의 '절제된 연기' 경지감독 : 브루노 뒤몽출연 : 줄리엣 비노쉬, 장 뤽 뱅상개봉일 : 2013년 10월 24일.15세 관람가.까미유 끌로델(1864~1943)은 오귀스트 로댕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여류 조각가다. 스승이자 유부남이었던 로댕과의 불꽃 튀는 사랑으로 유명하다.이자벨 아자니와 제랄드 드빠르디유가 출연한 1988년 작 '까미유 끌로델'은 이런 사랑과 절망으로 채색된 로댕과의 씁쓸한 연애담을 그렸다. 절망의 옷을 입고 사랑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방.끌로델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그런 부나방 같은 존재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 년 후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한 '까미유 끌로델'은 1988년 작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부나방의 에너지도, 희망의 조각도 볼 수 없다. 재능이 지나간 자리에는 폐허가 된 정신만 남았고, 젊은 시절 그녀를 스쳐간 인연은 모두 사멸했다.영화는 황폐하기 그지없는 끌로델의 마음속을 따라간다. 프랑스가 낳은 리얼리스트 브루노 뒤몽 감독의 손끝은 냉정한 외과의사의 그것처럼 매몰차지만 정밀하다.프랑스 남부의 한 정신병원에 수용된 까미유 끌로델(줄리엣 비노쉬). 누군가 음식물에 독약을 탄다는 의심과 병원 환자들의 절규 속에 숨 막히는 나날을 보내던 그녀는 견딜 수 없는 답답함에 몸부림친다.끌로델은 어머니와 함께 살게 해 달라며 애원하지만 그녀의 애절한 목소리는 병동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가닿지 않는다.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남동생 폴(장뤽 뱅상)이 정신병동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끌로델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뜬다.영화는 싸늘하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통과하는 북풍의 냉기는 뼛속까지 시리게 할 정도다. 메마른 정신병원(수도원)의 풍경과 정신병자들의 기이한 표정, 그 속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까미유 끌로델의 얼굴은 왠지 모를 슬픔을 자아낸다.영화를 관통하는 건 사랑도 이별도 아닌 예술이다. 재능이 사라졌을 때의 슬픔이다. 젊은 날의 열정이 식은 뒤 시를 짓지 못했던 윌리엄 워즈워스처럼, 시마(詩魔)를 떠나보낸 끌로델의 고통을 보여주는 데 영화는 주력한다.그런 끌로델의 비극을 전달하는 비노쉬의 연기가 탁월하다. 배우가 표정 안에 담아낼 수 있는 감정의 최대치가 어디까지인가를 마치 증명하듯 보여준다. 잘 조율된 극의 분위기 속에서 넘쳐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연기했다. 매우 드높은 경지다.'휴머니티'(1999)와 '플랑드르'(2006)로 각각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뒤몽 감독의 담담한 연출도 맛깔 난다. 영화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연합뉴스

2013-10-24 연합뉴스

[텔미시네]'그래비티'… 우주의 낭만? 우주의 공포! 온몸으로 무중력을 느껴라

2013/미국, 영국/91분/ SF 감독 : 알폰소 쿠아론출연 :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개봉일 : 10월 17일 12세 관람가영화 '그래비티'의 제목은 반어적이다. '중력'을 제목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무중력'의 끝없는 공포를 그린다. 발을 붙일 곳이 없는 공간, 중력이 없는 그곳에서 끝을 알 수 없는 망망한 공간을 떠돌다 죽게 된다는 사실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공포다.대부분의 인간이 평생을 가도 경험하지 못할 공포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초현실이나 SF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지금은 분명히 우주가 더 가까워진 시대인데다 이 영화가 스크린에 그려낸 우주는 현실 그 자체로 느껴질 만큼 생생하다.줄거리는 단순하다.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처음으로 우주 비행을 나선 의료공학박사 라이언 스톤(샌드라 블록 분).그녀의 옆에는 베테랑 우주 비행사인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가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임무 수행 중 비상 상황이 발생한다.러시아의 폭파된 인공위성 잔해가 폭풍처럼 몰아치면서 미국 나사의 익스플로러 우주왕복선이 파괴되고 라이언은 망망한 우주로 떨어져 나온다.다행히 맷이 라이언의 위치를 찾아 데리러 온다. 노련한 맷의 도움으로 다시 왕복선에 돌아오지만, 나사에서 출발한 모든 사람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나사 본부와 교신이 끊기고 라이언은 우주복의 산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두 사람은 우주 정거장 소유스로 이동하려 하지만, 또다른 재난이 닥친다.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이 우주를 헤매는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에도 엄청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할리우드의 뛰어난 기술력으로 빚어낸 시각 효과와 함께 재난과 모험의 순간을 아찔하게 그려낸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정교한 연출이 빛을 발한다.제작진은 '카메라를 우주로 들고 가서 찍은 것처럼' 만들자는 목표로 우주 공간을 그렸다고 하는데, 결과는 성공적이다.할리우드 영화에서 유례없는, 20분간의 롱테이크(길게 찍기) 오프닝 시퀀스는 3D 영상으로 펼쳐지며 관객을 우주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는다.지구가 보이는 우주공간으로 시작해 누군가가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리고 천천히 클로스업으로 인물들이 가까워지는 과정은 관객이 실제로 우주를 유영하며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제작진은 또 우주의 무중력 상태를 구현하기 위해 12개의 와이어로 이뤄진 특별 장치를 고안해 배우를 공중에 띄웠으며, 속이 빈 정육면체 세트인 '라이트 박스'에 수천 개의 작은 LED 조명을 설치하는 등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우주선 내부 장면을 찍었다.이런 현실 같은 영상 덕분에 주인공 라이언이 고난을 뚫고 생의 의지를 되살리며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하는 과정이 관객의 체험으로 오롯이 전이된다. 클라이맥스의 탈출 장면은 오금을 저리게 한다.멕시코 출신으로 할리우드에 넘어와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위대한 유산' 등을 만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아들 조나스와 함께 각본을 쓰고 직접 연출과 제작을 맡은 작품이다./연합뉴스

2013-10-17 연합뉴스

[텔미시네]롤러코스터

'대세남' 하정우 연출·각본 1인2역90분 육두문자 속사포 웃음 선사저예산 데뷔작 '자기만의 색깔'감독 : 하정우출연:정경호, 한성천개봉일 : 10월17일 개봉. 15세 관람가.배우 하정우의 감독 데뷔작 '롤러코스터'는 하정우가 스크린에 나오지 않아도 하정우를 느낄 수 있는 영화다.하정우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이 영화는 하정우가 평소에 보여주는 입담, 능청스러움이 그대로 녹아 있다. 우디 앨런 영화에 나오는 대사보다 두 배는 더 빠른 속사포 대사들이 90분 내내 쏟아진다.'하정우식 코미디'의 탄생이라고 할 만하다. 극중 주인공인 한류스타 '마준규'(정경호 분)의 히트작이 '육두문자맨'이라는 것만 봐도 이 영화의 느낌을 알 수 있다.'롤러코스터'는 괜히 젠체하거나 폼 잡지 않고 일상의 욕설과 비속어, 야한 농담까지 거침없이 쏟아내 웃음을 준다.이야기는 이렇다. 영화 '육두문자맨'으로 일약 한류스타가 된 마준규는 일본에 일정이 있어서 갔다가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 바비항공의 비행기에 오른다.오만하고 이기적인 데다 결벽증까지 지닌 마준규는 스캔들 기사가 터져 심기가 불편한데, 비행기에 타자마자 승객들의 사진, 사인 요구에 짜증이 치민다.게다가 마준규가 탄 비즈니스 클래스에는 틈만 나면 목탁을 치는 스님(김병옥), 마준규의 거동을 살피는 수상한 진상 승객(최규환), 마준규의 영화에 투자했다며 마준규를 깔아뭉개는 짜사이 항공사 회장(김기천)과 비서, 과도한 애정 행각을 벌이는 신혼부부 등 온통 마준규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이상한 사람들뿐이다.이상한 승객들 틈바구니에 시달리다 한 시간이 지나고 기장(한성천)은 김포공항 착륙을 알리는데, 이때부터 진짜 고난이 시작된다. 태풍의 강한 기류 때문에 착륙을 세 차례나 실패하고 비행기에는 연료마저 떨어진다. 롤러코스터처럼 춤추는 비행기 안에서 마준규는 완전히 패닉에 빠진다.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기발한 캐릭터들이다.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의 단조로움을 다양한 캐릭터들의 향연으로 극복했다. 또 각 캐릭터와 일체화한 듯한 배우들의 색깔 있는 연기는 하정우식 코미디를 제대로 살려냈다.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연극적인데, 간간이 삽입된 컴퓨터그래픽(CG) 이미지들이 영화의 시각적 풍성함을 더한다.영화의 단점이라면, 상당히 빠른 대사들이 일부 관객들이 따라가기에는 버거울 수도 있을 정도라는 것과 비슷한 패턴의 개그가 반복되면서 다소 느슨해진다는 점이다.그래도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 만든 데뷔작 치고는 크게 흠 잡을 데 없는 완성도를 보여주면서 감독 하정우의 역량을 앞으로 더 기대하게 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됐다./연합뉴스

2013-10-10 연합뉴스

[텔미시네]화이… '복수로 시작해 복수로 끝맺다'

기억잃은 소년, 5명의 원수손에 커암살교육 받으면서 과거사건 회상드라마 '해품달' 여진구 여심 흔들러닝타임 125분 다양한 주제 녹여2013/한국/125분/액션감독:장준환 출연:김윤석, 여진구, 조진웅개봉일:10월9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소년은 기억을 잃은 채 원수의 손에 키워진다. 5명의 원수는 소년의 양부이자 사부가 된다. 각각 총, 칼, 박투, 운전, 지략의 최고수인 그들로부터 소년은 최고의 기예를 배운 후 강호에 출두한다.무협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 구조다. '지구를 지켜라'(2003)로 한때 충무로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장준환 감독이 10년 만에 들고 온 장편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는 이러한 이야기를 뼈대로 한다.석태(김윤석)가 이끄는 범죄조직에 납치된 화이(여진구)는 기억을 잃은 채 석태 등을 아버지로 모시며 살아간다.유학을 준비하고 소녀와의 풋풋한 사랑을 키워가던 10대의 어느 날, 화이는 암살 지령에 따라 아버지들과 함께 처음으로 임무에 나선다.'화이'는 복수를 테마로 한 액션 스릴러다. 스크린에선 피가 튀기고 살이 너덜거린다.총과 칼을 넘나드는 액션장면, 역동적인 자동차 추격신은 시선을 사로잡을 만하다. 복수라는 하나의 테마를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영화의 추동력도 상당하다.특히 이런 장르적 속성과 미장센의 디테일은 신학과 철학적 화두를 만나면서 텍스트의 결을 한층 풍성하게 한다. 바로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인류에게 희망은 있는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이다.하지만 비슷한 질문을 던졌던 전작 '지구를 지켜라'보다 장 감독의 답변은 더 모호해진 듯 보인다. 전작에서 오만하고 위선적인 인류를 결국 절멸시켰지만, 이번에는 아버지 살해와 방랑이라는 희랍 비극적인 방식으로 답을 열어놓기 때문이다.여기에 DNA에 대한 인간의 집착, 인류의 진화와 회귀, 악하지만 근원적으로 연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연민 등 만만찮은 철학적 주제를 극 안에 집어넣었다.이런 복잡한 인식을 끌어안은 채 영화적 재미를 구현해 냈다는 점에서 한 때 천재로 불렸던 감독의 젊은 시절 모습이 영화에 엿보인다.다만, 이런 복잡한 담론을 담기에 125분은 조금 짧은 듯 보인다. 무엇보다 단편소설 같은 짧은 플롯은 풍성한 주제를 담기에 역부족이다.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의 또 다른 강점이다. 특히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주목받은 여진구의 존재는 히든카드라 할 만하다.개성 강한 중저음으로 무장한 그는 여린 감성과 박력있는 액션으로 여심을 마구 흔들 것 같다.연기 잘하는 조진웅, 김성균 같은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김윤석은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극의 방향을 제대로 이끌고 간다./연합뉴스

2013-10-03 연합뉴스

[텔미시네] 소원

2013/한국/122분/드라마감독 : 이준익출연 : 설경구, 엄지원, 이레개봉일 : 10월2일. 12세 관람가이 영화, 촌스럽다. 배우의 연기도 극의 전개도 모두 예상 가능하다. 한마디로 뻔한 작품이다.그런데 보면서 눈가를 훔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1년 상업영화를 다시 찍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이준익 감독이 작심하고 만든 복귀작 '소원' 이야기다.공장에서 근무하는 동훈(설경구)은 야구 중계와 아내 미희(엄지원)의 잔소리, 똑 부러지는 딸 소원의 능청을 낙으로 삼아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이다.아이는 등교하고 아내는 가게를 보고 자신은 출근한, 특별할 것 없던 어느 비 오던 아침, 동훈은 경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그의 평범했던 인생은 송두리째 흔들린다.실화를 모티브로 한 '소원'은 아동 성폭행을 소재로 했다. 영화를 보면서 조두순 사건이 떠오를 수도 있고, 김수철 사건이 생각날 수도 있다.폭행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진 않지만 이미 비극의 주인공이 된 배우들의 얼굴과 상처를 들쑤시는 폭행에 대한 상세한 대화 내용은 관객들을 계속해서 불편함의 모서리로 몰아간다.그 힘겨운 시간을 살짝 넘기면, 영화는 기다렸다는 듯 신파로 흐른다. 관객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범인에 대한 단죄 열망, 노소를 가리지 않는 친구들 간의 우정, 모정(母情)과 부정(父情),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심장.이준익 감독은 뜻밖에 사고를 접한 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상처를 보듬고 극복해나가는가에 방점을 둔 채 영화의 중·후반부를 이끌어간다. 그리고 이 부분은 상업적으로 꽤 성공적이라 할 만하다.배우들의 농익은 감정연기가 신파에 잘 어울리고, 울렸다가 돌연 웃기는 대사의 힘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들은 너무나 많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소원의 같은 반 친구 영석(김도엽)이 동훈 앞에서 사고 당일 소원과 같이 등교하지 않은 걸 자책하며 엉엉 우는 장면이다.성폭행 당하고 나서 남자라면 아빠마저 피하는 소원을 위해 인형 복을 입고 아이를 달래주는 동훈의 노력이나 어린 소원이 나름대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과정도 눈가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영화는 이런 신파성 휴먼드라마에 약간의 사회드라마도 입혔다.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이 기삿거리만 된다면 벌떼처럼 달려드는 언론의 모습이나 피고인이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형량을 감경하는 재판부의 성의없는 판결 등도 스치듯 보여준다./연합뉴스

2013-09-27 연합뉴스

[텔미시네]몬스터대학교

2013/미국/110분/애니메이션감독 : 댄 스캔론출연 : 빌리 크리스털, 존 굿맨, 스티브 부세미, 롭 리글개봉일 : 9월12일. 전체 관람가픽사 애니메이션 익숙한 플롯 귀여운 캐릭터로 포장 '아이들 박수'빌리 크리스털·존 굿맨 목소리 출연… 첫 연출 스캔론감독 내달 내한왕따 학생이지만 학구열만은 불타는 마이크. 오랜 노력 끝에 꿈에 그리던 몬스터대학교에 들어간다.언젠가 뛰어난 몬스터가 되겠다는 포부로 공부에 매진하지만, 외눈박이에 작고 볼품없는 마이크는 동급생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그러나 각고의 노력 끝에 점점 도약하던 마이크는 '노는' 천재 설리반의 적수로까지 성장하고, 결국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겁주기 대회에 참가하며 동급생들의 주목을 끈다.'몬스터대학교'는 '몬스터 주식회사'(2001)의 프리퀄이다.아이들의 비명으로 에너지를 얻는다는 기발한 착상으로 시작된 '몬스터 주식회사'가 마이크와 설리반의 회사생활을 담았다면, '몬스터대학교'는 마이크와 설리반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 어떻게 우정을 맺게 됐는지를 역추적하는 일종의 전편이다.영화의 주인공은 마이크다. '살리에르' 마이크가 '모차르트' 설리반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싹트는 우정이 영화의 고갱이다.성인과 아이들을 아우르는 픽사의 애니메이션답게 성장담이라는 익숙한 플롯에 귀여운 캐릭터를 포장했다. 경연대회를 통해 마이크와 설리반이 진정한 자아를 만나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의 흐름은 아이들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하기 쉽다.눈이 다섯 개 달렸지만 포동포동한 몸매 때문에 귀여운 스퀴시,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함이 느껴지는 돈 칼튼, 티격태격 말다툼으로 가끔 큰 웃음을 주는 '테리&테리' 등 매력적인 캐릭터도 시선을 사로잡는다.다만, 이야기의 깊이는 조금 아쉽다.오밀조밀한 이야기로 감동의 그물을 짠 후 마지막 한방을 통해 관객을 낚는 픽사 특유의 기술이 제대로 발현되진 못했다.인생 초반기를 다뤘기 때문인지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추억도, 무던한 삶을 다독이는 쓸쓸한 손길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학 초년생이 지닐 법한 패기와 도전정신만이 영화 전체를 휘감는다.영화는 왕따 학생의 인생 역전기를 성장드라마의 공식대로 따라간다.그런 점에서 '업'이나 '토이스토리' 같은 성인 취향의 애니메이션보다는 좀 더 어린 아이들이 즐기면서 볼만한 작품이다. 목표와 성취, 희망, 노력 등 긍정적인 이미지로 영화는 가득하다.지난 6월21일 북미에서 개봉해 '월드워 Z'를 따돌리고 2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마이크와 설리반의 목소리는 '몬스터 주식회사'와 마찬가지로 각각 빌리 크리스털과 존 굿맨이 맡았다.댄 스캔론 감독의 첫 연출작으로, 픽사의 14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스캔론 감독은 영화 홍보차 다음 달 4일 3박4일 일정으로 내한한다./연합뉴스

2013-09-12 연합뉴스

[텔미시네]영화 '관상' 한국 영화계 얼굴들, 조선의 역사 흔들다

2013/한국/142분/드라마감독 : 한재림 출연 :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김혜수, 김태우, 조정석, 이종석개봉일 : 9월11일. 15세 이상 관람가영화 '관상'은 '연애의 목적'(2005), '우아한 세계'(2007)의 한재림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다.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김혜수, 김태우, 조정석,이종석 등 화려한 캐스팅만으로도 화제다.여기에 100억 원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답게 미술과 의상도 화려하다.영화 '관상'은 기존 사대부 중심의 서술보다는 몰락한 양반과 '관상'이라는 소재를 결합시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본 팩션(Faction)이다.허구의 인물을 등장시켜 권력 투쟁의 비정함과 바르게 살고 싶지만 시대적 한계 탓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무력감을 담았다.역적의 자식으로 깊숙한 시골에 은거한 조선 최고의 관상가 내경(송강호).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상가이자 기생 연홍(김혜수)의 매혹적인 제안을 받고 처남 팽헌(조정석)과 함께 한양으로 향한다.그러나 연홍의 사기극에 속아 울며 겨자먹기로 무보수 관상을 봐주던 그는 우연히 관상만으로 범인을 잡아내는 실력을 발휘하며 당대의 실력자 좌의정 김종서(백윤식)의 눈에 든다.백발백중의 실력에 놀란 김종서는 내경을 문종(김태우)에게 천거하고, 내경은 문종의 명으로 야심가 수양대군(이정재)의 관상을 보러 간다.'관상쟁이' 이야기로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란(癸酉靖難)을 새롭게 바라봤다.송강호와 조정석의 콤비플레이 코믹연기는 단연 돋보인다.'건축학개론'의 '납뜩이' 역할을 통해 시선을 끌었던 그는, 송강호라는 명배우와 호흡을 맞추는데 성공한다.

2013-09-05 디지털뉴스부

[텔미시네]엘리시움(Elysium)

2154년 우주속 유토피아극소수 인류 안락한 생활지구의 하층민은 끔찍한 삶2013년/미국/109분/SF, 액션감독 : 닐 블롬캠프출연 : 맷 데이먼 , 조디 포스터 , 샬토 코플리개봉일 : 8월 29일. 청소년관람불가서기 2154년. 지구는 인류의 손에 의해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져 거의 버려진 땅으로 전락했다.가난과 크고작은 전쟁과 질병으로 신음하는 지구. 하지만 단 한 곳 하늘에는 이런 지구를 비웃는 거대한 유토피아가 떠있다. 초대형 우주정거장 '엘리시움'.그곳에는 문명의 힘을 빌려 호화롭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 선택받은 계급 '코디네이터스'가 거주한다.반면 지구에 남아있는 '하층민'들은 혼돈과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끔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지구의 인류에게 방사능 노출이라는 치명적인 위험이 찾아온다.'하층민'들은 살기 위해 남겨진 시간 5일동안 엘리시움을 개방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운명을 맞는다.하층 인류를 구원할 희망은 한때 뛰어난 전사였던 맥스(맷 데이먼). 맥스는 첨단 무기로 무장한 엘리시움의 전사들과 물러설 수 없는 전투에 나서는데….영화 '엘리시움'은 지난 2009년 '디스트릭트9'으로 화제를 모았던 닐 블롬캠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자신의 장점인 현실감 넘치는 장면을 창조해 냈다.SF 영화이지만 영화에 나오는 장면들은 관객들이 가능하다고 믿을만 하다.실제로 닐 블롬캠프 감독은 초호화 우주도시 엘리시움은 청정한 자연을 유지하고 있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황폐해진 지구는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촬영한 화면을 기반으로 제작했다.영화속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태양과 심지어 냄새까지도 실제로 사용하며 촬영해 기존 SF 영화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영화는 맷 데이먼과 조디 포스터, 샬토 코플리라는 걸출한 배우들의 힘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본' 시리즈로 수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맷 데이먼은 전사 '맥스'역을 맡아 스파이 '본'과 또다른 남성적 매력을 살려낸다.'양들의 침묵' '패닉 룸' 등으로 인상깊은 연기를 선보여 온 조디 포스터는 엘리시움의 리더 델라코트 장관으로 분해 여전한 포스를 분출한다.'디스트릭트9'에서 유전자 변이로 인해 외계인으로 변해 가는 주인공 비커스 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던 샬토 코플리는 엘리시움의 비밀 용병으로 지구의 무단 이민자들을 처단하는 악랄한 인물 크루거로 등장해 맥스 역의 맷 데이먼과 강렬한 대결을 펼친다. 세 사람 만으로도 영화는 관객들이 지루함을 느낄 수 없을 만큼의 추진력을 얻었다.영화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맷 데이먼과 샬토 코플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액션이다. 로봇경찰과 감시로봇·비행정 등의 미래 첨단무기들은 액션에 재미를 더한다.하지만 아무리 치료기술이 발달해 있다고 해도, 암과 같은 질병들을 단 한번의 스캐닝 만으로 완치시키는 설정 등은 좀 과장스러운 느낌을 들게 한다./박상일기자

2013-08-29 박상일

[텔미시네]일대종사 (The Grandmaster)

왕가위 감독 9년만의 복귀작격변의시대 무인 '엽문' 다뤄양조위·장쯔이 수년간 훈련대역없이 역동적 액션 보여줘2012년/중국/122분/무협,액션감독 : 왕가위출연 : 양조위, 장쯔이, 장첸, 송혜교개봉일 : 2013년 8월 22일. 12세 관람가."쿵푸는 두 단어로 말할 수 있다. 수평과 수직! 최후에 수직으로 서 있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때는 중국의 마지막 왕조가 몰락해 혼란과 분쟁이 판을 치던 공화정치 시대. 하지만, '혼란기에는 무술이 꽃을 피운다'는 말처럼 당시는 중국 무술이 활짝 꽃을 피운 황금시대이기도 했다.그 격정의 시대에 무술로 우뚝 서, 전설적인 무인(武人)으로 기록된 영춘권의 그랜드마스터 '엽문'(양조위)이 있었다.그리고, 엽문의 곁에는 궁가 64수의 유일한 후계자로 그와 무술로 교감했던 '궁이'(장쯔이)가 있었고, 어떤 고난에도 품위를 잃지 않았던 아내 '장영성'(송혜교)이 있었다.그들은 격변의 시대에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커다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데….독보적인 영상미로 '비주얼리스트 거장'이라 불리는 왕가위 감독이 9년만에 내놓은 영화 '일대종사'는 6년에 걸친 기획과 3년간에 걸친 촬영으로 완성한 역작이다.세계 최고의 무인이자 '일대종사'가 된 엽문을 중심으로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무림 고수들의 삶과 사랑, 인생의 철학과 이치, 그리고 예술로 승화된 무협의 세계를 그렸다.영화는 왕가위 감독의 명성에 걸맞게 역동적이면서도 정교한 액션을 우아함이 느껴지는 강렬한 비주얼로 담아냈다. 예고편을 통해 이미 화제가 되고 있는 빗속 액션은 영화의 백미 중에 백미라 할 만하다.쏟아지는 빗속에서 펼쳐지는 양조위와 장첸의 유려한 동작과 빗물 한 방울까지 포착한 절제되면서도 역동적인 정중동(靜中動)의 액션은 감탄을 자아낼 만하다.양조위와 장쯔이가 무술로서 교감하는 액션 장면 역시 마치 한 편의 예술작품처럼 정교하면서도 우아하다. 장첸의 수려하고 박력 넘치는 액션은 세련된 비장미까지 선사하며 강렬함을 더한다.왕가위 감독은 영화의 주연을 맡은 양조위와 장쯔이, 장첸 등의 배우들을 실제 무인으로 만들어 낼 만큼 이 영화에 엄청난 열정을 쏟았다.이들은 촬영 전부터 수년간 무술 훈련을 받아 무인으로 거듭났고, 촬영에서 대역 없이 열연을 펼쳤다.특히 하이라이트 장면인 빗속 결투 장면을 찍기 위해 양조위는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살인적인 추위 속에서 대역 없이 직접 30일간 매일 밤마다 비를 맞으며 촬영을 진행했다.매일 젖은 옷을 입고 밤새 찍는 강행군으로 양조위는 기관지염까지 얻었고, 촬영 중 두 번이나 팔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왕가위 감독과 배우들의 이같은 열정은 '일대종사'를 여태까지 보아온 무협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시켰다.왕가위 감독 스스로도 "단순한 액션의 연속이 아니라, 단순히 눈을 자극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손동작 하나, 발 동작 하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기원을 연구하여 만든 깊이 있는 영화"라고 밝힐 만큼 영화는 깊이가 있다./박상일기자

2013-08-22 박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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