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미시네

 

[텔미시네]신의 한수… 바둑판 물들인 핏빛 복수

얼떨결에 내기바둑 발들여형 잃고 누명쓰고 감옥까지안성기·이시영등 조연 제몫즐길거리 많은 오락영화2014/한국/ 118분감독 : 조범구 출연 : 정우성, 이범수, 안성기 개봉일 : 7월3일. 청소년 관람불가그동안 '바둑'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반상(盤上)의 복잡한 두뇌 싸움을 시각적으로 쉽게 풀어내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개봉을 앞둔 영화 '신의 한수'는 이런 바둑을 중심 소재로 삼아 핏빛 복수극에 깊이를 더하려는 욕망이 가득한 작품이다. 순진한 프로 바둑기사 태석(정우성 분)은 형의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내기바둑에 발을 들인다. 그런데 그들이 찾은 '동네 기원'은 실제로는 범의 아가리. '내기바둑계'의 절대악 '살수'(이범수 분)의 음모로 형을 잃은 태석은 누명까지 쓰고 감옥에 갇힌다. 하지만 감옥살이라는 극한 상황은 복수를 꿈꾸는 누군가에게는 변신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바둑 실력을 활용해 감옥내 거물을 사귀면서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단테스처럼 감옥에서 힘을 기른 태석은 출소뒤 팀을 구성해 복수에 나선다.'신의 한수'는 결론적으로 캐릭터와 시나리오, 소재가 제법 잘 섞인 즐길거리가 많은 오락 영화다. 약자가 힘을 길러 원한을 갚는 전통적인 복수극은 쾌감을 주고, 바둑 사활 문제풀이로 생사를 결정하는 등 바둑이라는 소재도 어색하지 않게 적재적소에 쓰였다. 생활형 내기바둑꾼 '꽁수'(김인권 분), 맹인바둑 고수 '주님'(안성기), 내기바둑 도구제작 기술자 '허목수'(안길강), 내기바둑의 꽃 '배꼽'(이시영) 등 여러 캐릭터도 낭비되지 않고 각자 매력을 발한다. 때로는 뜬금없는 선문답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바둑에 빗대 인생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인상깊다. 다만 영화는 후반부 관객과 두뇌싸움을 벌이기보다 피가 넘치는 액션의 향연으로 초대하는데, 이 때문에 대표적인 지략 대결 종목인 바둑을 소재로 택한 의미가 다소 퇴색하는 느낌이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는 '도둑들'이나 '감시자들'보다는 오히려 '아저씨'나 '신세계'에 가까워 보인다(비슷한 스타일의 액션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속도감 넘치는 복수극이나 재기 발랄한 속임수가 주는 쾌감을 기대한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다. /연합뉴스

2014-06-26 연합뉴스

[텔미시네]와즈다… 사우디를 바꾼, 10살 소녀의 '유쾌한 반란'

사우디 최초 여성감독 메가폰성차별·인권유린 담담하게 전달14개 국제영화제 상 휩쓸며 주목'자전거 금지령' 해제 이르러감독 : 하이파 알 만수르 출연 : 와드 모하메드, 림 압둘라, 압둘라만 알 고하니개봉일 : 6월19일. 전체 관람가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 평범한 가정의 10세 소녀 와즈다(와드 모하메드). 여자들만 다니는 마드라사(이슬람 학교)에 재학 중인 그는 매니큐어도 칠하지 못하고, 남자들이 지켜보는 곳에선 놀지도 못하는 현실에 불만이 많다.어느 날, 자신을 놀리고 달아나는 압둘라(압둘라만 알 고하니)의 자전거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엄마(림 압둘라)는 자전거를 타면 아이를 낳지 못한다며 사 주지 않는다. 보수적인 사우디에서 여자가 자전거를 타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싶은 와즈다는 편지 전달하기, 팔찌 만들기 등의 부업으로 자전거 살 돈을 모은다. 그러던 중 1천리얄의 상금이 걸린 코란 암송대회가 학교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와즈다는 출전을 결심한다.사우디 최초의 여성 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와즈다'는 사회적 금기에 도전한 어린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2012년 밴쿠버영화제에서 신인 외국어영화상을 받는 등 2012~2013년 14개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휩쓸 정도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자전거 타기'라는 단순한 소재를 바탕으로 사우디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의 현장을 담담한 필치로 전한다. "여성의 목소리는 벗은 몸과 같아서 큰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대사를 비롯해 백화점에 여성 전용 탈의실이 없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장면, 생리 중일 때는 코란에 손도 대지 못하는 장면 등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신기한 규제들이 자연스러운 이야기의 흐름 속에 그려진다. 이야기가 흡입력이 있는 데다가 와즈다를 연기한 와드 모하메드의 연기도 물처럼 극에 잘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사우디의 불합리한 남녀 차별을 관조할 수 있다. '와즈다'는 전 세계에 소개되며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그 덕택에 사우디 여성들은 공개적으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사우디 영화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출품되기도 했다. 이처럼 결과는 좋았지만, 애초 영화를 만들 때는 상당한 곤혹도 치렀다. 보수적인 지역에서 영화를 촬영할 당시 남성 스태프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없어 감독은 자동차 안에서 무전기로 지시를 내려야 했고, 현지 주민들의 방해에도 맞닥뜨렸다.만수르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현장에서 일부 사람들이 시비를 걸기도 했지만, 촬영에 지장을 많이 줄 정도는 아니었다"며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디기가 어려웠다. 대단한 모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의 의미에 대해 "영화를 통해 사우디의 여성들뿐 아니라 억압받는 수많은 여성이 자신들에게 중요한 문제를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이 존엄한 존재라는 걸 부정하는 뿌리깊은 사우디의 전통을 파괴하긴 어렵다"며 "다만 그러한 편견은 편협한 종교적 해석과 맞물려 있기에 개선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2014-06-19 연합뉴스

[텔미시네]경주… 일렁이는 욕망좇아 낯선도시 짧은여행

7년전 봤던 춘화찾아충동적 경주행 교수 최현찻집주인 윤희 만나는데…신민아·박해일 '호연'위선·미묘한 감정·편견…사회적 부조리들영화 풍경처럼 그려내지식인 노골적 조롱 '재미'2014/한국/145분감독 : 장률출연 : 박해일, 신민아, 윤진서개봉일 : 6월 12일.15세이상 관람가.친한 형의 부고를 듣고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베이징대 교수 최현(박해일). 문득 7년 전 죽은 형과 함께 봤던 춘화 한 장을 떠올리고는 충동적으로 경주로 향한다.이미 남의 여자가 된 옛 애인 여정(윤진서)에게 전화해 경주로 와 달라고 부탁한 그는 그녀를 기다리면서 춘화가 있던 찻집을 찾는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춘화는 사라진 지 오래. 춘화를 고집스럽게 수소문하던 최현의 태도에 주인 윤희(신민아)는 그를 변태 취급한다. 실망감을 가득 안은 채 여정을 만난 최현은 여정의 돌변한 태도에 또다시 실망한다. 여정을 서울로 돌려보내고 나서 다시 찾은 찻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윤희와의 서걱거리는 관계를 청산한 최현은 지인들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 동석해 달라는 윤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경주'는 한 지식인의 짧은 여행을 그린 영화다. 1박2일 간의 여행을 통해 지식인의 위선, 사랑의 미묘한 감정, 사회적 윤리와 편견 등을 다룬다. 언뜻 보면 홍상수 감독이 잘 다루는 주제의 영화같다.그러나 홍 감독의 영화와는 북극과 남극처럼 먼 영화들을 만들어온 재중 교포 장률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눈길이 가는 영화다. 장 감독은 그동안 사회적인 부조리에 내몰린 개인의 힘겨운 삶을 건조하게 포착한 이른바 '리얼리즘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그의 그런 태도는 두 번째 작품 '망종'(2005)부터 여덟 번째 영화 '풍경'(2013)까지 일관됐었다.그러나 '경주'는 사회적 부조리를 마치 영화의 풍경처럼 그린다는 점에서 전작들과는 다른 지점에 선 작품이다. 영화에서 한국 사회의 그늘을 포착하고자 하는 감독의 시선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마음에 일렁이는 욕망을 바라보는 데 영화는 주안점을 둔다. 그런 점에서 개인의 욕망과 마음을 집요하게 파헤쳤던 장 감독의 장편 데뷔작 '당시'(2004)와 어느 정도 닮았다(물론 '당시'보다 분위기는 훨씬 가볍고 재미도 있다). 영화는 최현의 일렁이는 욕망을 따라간다. 반쯤은 추억을 느끼고자, 반쯤은 육신의 즐거움을 위해 찾아온 경주. 그러나 삶과 죽음이 마치 능처럼 부드럽게 이어진 '경주'에서, 경주의 그 같은 속성을 닮은 윤희라는 여성을 통해 최현은 깨달음은 얻는다. 일탈을 통해 윤리와 도덕을 추구하는 일종의 성장담인 셈이다.지식인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은 영화에 커다란 재미 중 하나다. 동아시아 최고의 석학이라는 최현의 이율배반적인 행동과 경주 계모임 회원 중 한 명인 박 교수(백현진)의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태도는 학계의 민얼굴을 보여주는 듯하다.신민아는 '10억'(2009) 이후 5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는데, 담백한 연기로 눈길을 끈다. 그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이 영화에서의 연기로 호평을 받을 것같다. 박해일은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을 입은 듯 능숙하게 연기한다.가학적이고 차갑고 비뚤어진 욕망들이 팽배했던 장 감독의 영화에 불편한 시선을 느꼈던 관객들이라도 이번 영화는 편안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긴 상영시간은 부담스럽다. /연합뉴스

2014-06-12 연합뉴스

[텔미시네]에너미 (Enemy)… 도플갱어와 위험한 거래

2014/캐나다·스페인/90분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제이크 질렌할, 멜라니 로랑, 사라 가돈개봉일: 5월29일. 청소년관람불가. '나랑 똑같은 사람이 살고 있다면 어떨까?' 동·서양의 민속과 신화체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도플갱어'는 여러 영화의 자양분이 된 소재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도플갱어'(2003), 드류 베리모어 주연의 '도플갱어'(1993) 등 다양한 영화들이 이 매력적인 재료를 소재로 했다.'그을린 사랑'(2010)으로 주목받은 캐나다의 드니 빌뇌브 감독도 이 같은 소재를 이용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의 '도플갱어'를 토대로 한 '에너미'다.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아담(제이크 질렌할). 예부터 통치자들은 엔터테인먼트를 이용해 대중을 지배해왔다는 믿음을 가진 지식인이다. 대중에 대한 교육과 정보를 제한하면서 그들의 이익을 독식해왔다고 학생들에게 설파하는 그는 남부럽지 않은 직업, 여기에 미모의 여자친구 메리(멜라니 로랑)까지 차지한 행복한 30대 남성이다.그러나 행복할 것 같은 그의 일상은 외피에 불과하다. 도시인의 삶 속에 숨어 있는 권태라는 괴물을 그도 피해가진 못한다.그러던 어느 날, 아담은 친구의 추천을 받아 영화를 보던 중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조연 배우를 발견한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그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앤서니(제이크 질렌할)의 뒤를 따라다니고 심지어 그의 부인 헬렌(사라 가돈)에게 전화를 걸어 목소리까지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영화는 뿌연 도시 속을 비추며 시작한다. 음습하고 스모그가 자욱한 도시는 기분 나쁜 비밀로 가득 찬 기이한 묘지 같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이와 비슷하다. 상영시간 동안 축축하고 음습한 늪지대를 걸을 때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영화는 아담과 앤서니가 맺은 비밀스러운 거래와 파국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소설의 묘사처럼 개인의 내면을 다 보여줄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이 영화는 모호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내적 내러티브가 아담의 마음속에 벌어지는 전투와 투쟁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아담과 그의 도플갱어 앤서니를 동시에 선보인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가 이채롭다. 멜라니 로랑과 사라 가돈의 연기도 불안한 극의 이미지에 잘 스며들었다.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에 등장했던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짧은 등장만으로도 강한 임팩트를 준다.드니 빌뇌브 감독은 "'도플갱어'가 성적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잠재의식을 탐험해간다는 설정에 끌렸다"고 말했다. 감독이 가장 사적인 영화라고 한 만큼 공감하지 못할 부분도 여럿 있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는 헤겔의 명제를 '한 번은 비극, 한 번은 희극으로'로 한 발짝 더 나아가 해석한 마르크스의 말은 난해한 이 영화를 풀이하는 하나의 키워드일 수도 있겠다. /연합뉴스

2014-05-29 연합뉴스

[텔미시네]일대일… 김기덕이 묻는다. 인간의 가치, 존중되고 있는가?

고위층 '여고생 살인' 용의자 7명복수에 나선 테러단체 7명 이야기우리사회 부끄러운 민낯 고스란히민주주의 훼손 사건 모티브"故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고백"2014/한국/122분감독 : 김기덕출연 : 김영민, 마동석, 이이경, 조동인개봉일 : 2014년 5월 22일.청소년관람 불가김기덕 감독의 스무 번째 장편영화 '일대일'이 22일 개봉했다.영화 '일대일'은 테러하는 자와 테러당하는 자, 그 상하관계의 전복이 빚어내는 인간 군상의 모순을 그리며 이 시대에 진정 '일대일'로 인간의 가치가 존중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이다.여고생 오민주는 남자들에게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테러단체 그림자 7명이 복수를 위해 나섰다. 이들은 범죄를 저지른 장성 등 정부와 군 고위 관계자를 차례차례 잡아 와 죄를 따져 묻는다.오민주를 살해하거나 살해를 지시한 인물들은 "모두가 잘 살아보자는 이유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발뺌하거나 "시키는 대로 했다"고 주장한다. 영화 '일대일'은 우리 사회 고위 관계자들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 보이는 데 치중한다.김기덕 감독은 서문에서 "'일대일'은 민주주의를 훼손한 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여고생의 죽음을 비유해 만든 작품"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께 드리는 고백이자 자백인 영화"라고 설명했다. 김기덕 감독은 특히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 여고생의 죽음으로 보기보다는 상징적인 훼손, 죽음, 상실의 문제로 접근하면 영화를 조금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체한 상태'란 생각을 많이 했다. 어떤 특정 사건을 빌려올 필요도 없이, 충격적인 사건들이 쇼크를 주고 있다. 이 영화는 그 안에서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나는 과연 어떤 역할로서 사는가'에 대한 자문자답"이라고 덧붙였다.김기덕 감독은 '일대일'을 제작하면서 특별포스터, 예고편을 직접 제작하고 대중들의 생각을 가깝게 들어보기 위해 Q&A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관객과의 쌍방 소통에 힘을 기울였다. 김 감독은 '일대일'의 손익분기점인 약 10만 관객을 돌파하기 전까지 불법 복제파일의 유포를 막기 위해서라도 2차 판권을 출시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김기덕 감독의 작품 중 최고 스코어를 기록한 영화는 비공식 집계 전국 약 70만 관객을 동원한 '나쁜남자(2001)'이며 그 뒤를 이어 '피에타(2012)'가 전국 약 60만 관객과 만났다. 특히 영화 '피에타'는 첫 주 스크린 약 150개에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이후 뜨거운 열기에 힘입어 약 300개까지 스크린 수가 급증하는 신화를 달성, 그동안의 숱한 편견을 깨고 대중과의 소통에 성공했다. /김신태기자

2014-05-22 김신태

[텔미시네]트랜센던스(transcendence)… 인간의 뇌를 가진 컴퓨터, 지구 구원할까

슈퍼컴 개발자인 주인공 윌반과학단체 공격받고 사망인터넷에 업로드된 그의 지능신적 능력까지 넘보며 혼돈사변적 내용 많아 어렵지만주제 전달하는 이미지 탁월2014/미국/119분.감독: 월리 피스터 출연: 조니 뎁, 레베카 홀개봉일: 5월14일. 12세이상관람가.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슈퍼 컴퓨터 개발에 매진하던 윌(조니 뎁)과 에블린(레베카 홀).연구에 커다란 성과를 내기 일보 직전, 반과학단체 회원들의 습격으로 윌은 방사능에 노출돼 길어야 5주 안에 죽는다는 사망선고를 받는다. 윌을 너무도 사랑했던 에블린은 윌의 뇌를 인터넷에 업로드시켜 그의 정신만이라도 살리려고 무던히 애를 쓰나 절친한 동료 맥스(폴 베타니)가 이를 반대하고 나서면서 혼란에 빠진다.인간을 닮은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영화에서 다뤄진, 이제는 보편적인 주제라 할 만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2001)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블레이드 러너'와 'A.I'의 공통점은 창조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오히려 더 인간적인 감정과 생각을 지니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이들 영화는 '휴머니티'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아니라 인터넷상에서 활동하는 인공지능이라는 보다 현실적인 모습으로 캐릭터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영화 '트랜센던스'는 앞의 영화들과 차별성을 두지만, '휴머니티'란 무엇인가에 천착했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은 비슷하다.영화는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시각장애인을 눈뜨게 하며, 폐허가 된 자연을 회복시키는 '신'적인 능력을 통해 멸망의 길로 접어든 지구를 회복시키려 하는 인공지능의 노력을 조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공지능의 모습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닮아간다.반면, 인간이 세운 문명을 멸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탓에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화한 트랜센던스를 공격하는 정부와 과학자들의 공격적인 태도는 인간의 이기심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성을 점차 드러낸다. 사변적인 내용이 많아 영화가 다소 어렵지만, 이미지의 구현은 탁월하다. 재가 하늘로 올라가는 상승의 이미지, 물방울이 아래로 떨어지는 하강의 이미지는 주제의식을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신예 작가 잭 파글렌이 각본을 썼다. 파글렌은 '트랜센던스'로 주목받아 '프로메테우스 2'와 '배틀스트 갤럭티카'의 극장판 각본도 맡게 됐다. 촬영감독으로 '인셉션'(2010), '다크나이트'(2008)에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월리 피스터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놀런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 /연합뉴스

2014-05-15 연합뉴스

[텔미시네]디태치먼트(Detachment)… 욕·폭력에 땅에 떨어진 교권…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한다?

2014/미국/97분감독 : 토니 케이 출연 : 애드리안 브로디, 마샤 게이 하든개봉일 : 5월 8일. 청소년관람불가'디태치먼트'(Detachment)는 교육을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 중 한 편이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영화들이 아이들을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는 당위에 대해서 말하거나 아이들을 위해 애쓰는 교사의 모습을 영웅적으로 그린 반면, '디태치먼트'는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외로운 사람들의 영혼에 보다 초점을 맞췄다.문제아들로 가득 찬 학교에 부임한 기간제 교사 헨리(애드리언 브로디). 교사에게 욕지거리하는 건 기본이고 폭력마저 휘두르는 교권이 무너진 학교에 온 게 불운이라면 불운.그러나 여러 학교를 떠돌아다니며 아이들의 반항에 익숙한 헨리는 첫날부터 카리스마 넘치는 행동으로 아이들을 장악해 간다. 뚱뚱한 '왕따' 학생 메레디스(베티 케이)는 그런 헨리의 모습에 반해 남몰래 사랑을 키운다.그렇게 학교생활에 적응해 가던 헨리는 한밤중 걸려온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이상 행동을 보인 것. 노인을 잘 보살피지 못한 간호사에게 화풀이하고서 집으로 돌아가던 헨리는 버스에서 매춘하는 에리카(사미 게일)를 목격한다. 영화에서 학교는 더 이상 배움의 전당이 아니다. 오히려 모욕과 힐난, 얼룩과 상처로 채워진 공간이다. 영웅도, 악당도, 승리자도, 패배자도 없는 회색지대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런 회색지대를 어슬렁거린다. 저마다 외로움의 섬을 하나쯤 안고 살아가는 그들은 상처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당연히 타인을 위한 마음의 공간도 비좁을 수밖에 없다. 무심함(Detachment)이란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으니까. 주인공 헨리는 그런 무심함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친다. 그러나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가 늘 발목을 잡는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때론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의 기복 탓에 그는 늘 떠돌이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영화는 헨리를 포함해 결핍된 인간들의 모습을 조명하면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무관심보다는 애착(Attachment)을 가지고 서로에게 다가갈 때 비로소 더 나은 삶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영화를 관통한다.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서 완성해 가는 토니 케이 감독의 밀도 있는 연출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방랑할지도 모르는 헨리 역을 맡은 애드리언 브로디는 공허한 눈빛을 통해 많은 감정을 전달한다. 다채롭게 변화하는 그의 연기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한몫한다. 영화는 도빌아메리칸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도쿄국제영화제 예술공로상, 상파울루국제영화제 관객상 등을 수상했다. /연합뉴스

2014-05-09 연합뉴스

[텔미시네]표적… 롤러코스터 액션… 98분, 추격은 계속된다

佛 '포인트 블랭크' 리메이크간결함·속도감 완성도 높아쫓기는자 류승룡 '마초' 매력아내 구출나선 이진욱 '호연'사건쫓는 경찰 김성령·유준상각기 다른 캐릭터의 힘 돋보여감독 : 창감독출연 : 류승룡, 이진욱, 김성령, 유준상개봉일 : 2014년 4월30일 개봉. 15세이상 관람가'표적'은 한 번 타면 끝날 때까지는 멈춰 서지 않는 롤러코스터 같은 영화다. 시작과 함께 추격전이 이어지고, 주인공들은 사선(死線)으로 내몰린다. 다소 투박하지만 아슬아슬한 액션과 거의 곡예 수준의 심리 드라마가 출렁인다.'표적'은 지난해 개봉한 '감시자들'과 함께 원작을 국내 실정에 맞게 리메이크한 훌륭한 사례가 될 것 같다. 프랑스 영화 '포인트 블랭크'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의 만듦새는 원작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순제작비 44억 원에 불과한 '표적'이 기대 이상의 만듦새를 보여주면서 연휴가 낀 5월 극장가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100억 원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현빈 주연의 '역린', 류승룡 주연의 '표적'이 삼파전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의문의 살인 사건에 휘말려 누명을 쓰고 총을 든 사람들에게 쫓기던 여훈(류승룡). 붙잡히기 일보 직전, 차에 치여 정신을 잃은 채 응급실로 옮겨진다. 응급실 당직인 의사 태준(이진욱)은 누군가에 의해 여훈의 산소호흡기가 잘려 있는 걸 목격한다.인공호흡으로 여훈을 간신히 살리는 데 성공한 태준은 보람찬 마음으로 귀가했으나 예상치 못한 공격에 정신을 잃는다. 곧이어 울리는 전화벨 소리. "여훈을 병원에서 빼내지 못하면 아내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낯선 남자의 협박에 태준은 병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영주(김성령)와 그의 수하가 여훈을 지키는 상황. 태준은 전문지식을 이용해 여훈을 빼돌리는 데 성공하지만, 정신이 돌아온 여훈에게 제압당한다. '표적'의 장점은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멈추지 않는 속도감 있는 드라마에 있다. 전개가 빠르면서도 이야기의 이음매가 부드럽다. 전후 맥락을 위해 플래시백을 사용했지만 최소화했다. 아울러 98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상영시간 동안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보여줄 액션은 다 보여주며 인상적인 장면까지 곁들였다. 상영시간은 2시간을 훌쩍 넘으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좌고우면하는 한국영화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할 말 다하면서 100분 안에 끝내는 '표적'의 간결함은 칭찬받을 만하다. 인물의 매력지수도 높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사건을 추격하는 중부서 경감 영주와 부하 수진(조은지)은 마치 캐릭터 영화의 두 주인공 같은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스크린에 돋을새김한다. 특히 둘이 경찰서 창가에서 맞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독특한 장면이어서 눈길을 끈다. 광역수사대 경감 송반장(유준상)의 악마적인 매력도 만만치 않다. 김성령과 조은지, 유준상의 매력 앞에 주인공 캐릭터인 여훈과 태준이 묻히면서 영화의 균형감이 다소 무너진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 마초 느낌을 물씬 풍기며 생애 첫 액션연기에 도전한 류승룡과 아내 구출에 나선 의사역의 이진욱도 연기를 잘했지만, 캐릭터의 매력 지수만은 앞의 세 명에 비해 떨어진다. 틱 장애를 지닌 성훈 역을 맡은 진구의 연기도 주목해서 볼 만하다. 공포영화 '고사: 피의 중간고사'(2008)로 연출 데뷔한 창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6년 만에 일취월장한 감독의 연출력이 눈에 띈다. '표적'은 올해 칸영화제 공식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연합뉴스

2014-05-01 연합뉴스

[텔미시네]역린… 청년 정조의 숨막히는 24시간

노론 음모에 위태로운 왕권하루동안 왕 시해기도 사건2시간에 압축 깊이는 부족현빈 3년만의 스크린 복귀'다모'·'베토벤바이러스'이재규감독 첫 영화 데뷔작2014/한국/135분감독: 이재규 출연: 현빈, 정재영, 조정석개봉일: 4월30일. 15세관람가왕으로 즉위하면서 '짐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밝힌 정조(현빈). 외척인 홍인한 등 노론 대신 일부를 죽였지만, 여전히 조정에서는 노론이 득세하고, 왕권은 약한 상황.정순왕후(한지민)의 견제와 병권을 틀어쥔 아버지의 원수 훈련대장 구선복(송영창)의 은근한 항명 속에 웅크린 정조. 심지어 어린 시절부터 그를 따르던 내관 상책(정재영)마저 노론의 끄나풀인 것으로 밝혀져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다.정순왕후를 독살하려 한 혐의로 어머니 혜경궁 홍씨(김성령)마저 체포된 상황. 노론의 끈질긴 공격 속에 수세에 몰린 정조는 금위영 대장 홍국영(박성웅)과 함께 반전을 노리지만 되레 노론이 꾸미는 음모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조선 후기 르네상스시대로 평가받는 영·정조시대. 경제가 발전하고 문화가 꽃을 피운 시기이기도 하지만, 정국의 주도권을 놓고 왕과 노련한 정치가들의 수싸움이 복잡했던 시절이기도 했다.영화 '역린'은 이 시기, 왕 시해 기도 사건이 발생했던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엮었다. 2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시대의 주름과 복잡함을 캐릭터 안에 응축해내기란 쉽지 않았을 터. 여기에 24시간 동안 숨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긴박감을 구겨 넣어야 했기에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다.영화를 만들면서 마주했을 것 같은 그 같은 어려움이 '역린'에는 그대로 투영돼 있다.열살배기 아이에게 암살을 사주하는 혜경궁 홍씨나 왕 앞에서 대놓고 반역을 꾀하는 구선복, 월혜(정은채)의 석연찮은 배신과 살수(조정석)의 어울리지 않는 코미디, 살수 집단의 우두머리 광백(조재현)의 단선적인 욕망만으로는 그 시대의 폭과 깊이를 담기에 부족한 것 같다.현빈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2011) 이후 3년 만에 이 영화로 컴백했다. 조각 같은 그의 등 근육과 배 근육은 여심을 흔들 것 같다. '다모'(2003), '베토벤 바이러스'(2008) 등의 드라마를 연출했던 이재규 감독의 첫 영화 데뷔작이다. '역린'은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로, 왕의 노여움을 뜻한다. /연합뉴스▲ 왼쪽부터 정재영, 조재현, 한지민, 조정석, 박성웅.

2014-04-24 연합뉴스

[텔미시네]페이스 오브 러브… 죽은 남편 닮은 그남자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소중한 이 잃은 공허·외로움아네트 베닝 '관록' 연기좋으면서도 지긋지긋한…사랑의 양면성 담담한 처리가슴 적시는 중년의 멜로2014 / 미국 / 92분감독 : 아리 포신출연 : 아네트 베닝, 애드 해리스, 로빈 윌리엄스개봉일 : 2014년 4월16일.15세 관람가사고로 남편을 잃은 니키(아네트 베닝). 5년이 흘렀지만 니키의 마음을 꽉 채우는 건 남편에 대한 추억뿐이다. 그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이웃집 남자 로저(로빈 윌리엄스)가 밤낮없이 서성대지만 니키는 관심조차 없다.남편이 죽은 후 처음으로 미술관에 간 니키. 그곳에서 남편과 똑같이 생긴 남자(에드 해리스)를 보고 충격에 휩싸인다. 미행과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그의 뒤를 캐던 니키는 그 남자가 톰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친다는 정보를 얻는다.어찌할까 고민하던 니키는 톰의 학교를 찾아가 레슨을 청하고, 뜻밖에도 톰의 동의를 쉽게 구한다. 니키는 톰이 10년 전, 아내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둘은 곧 불타는 사랑에 빠진다.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수많은 영화와 로맨스 소설에서 질문했던 소재이기에 이야기 자체는 익숙하다. 결론까지 알 길은 없지만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대충 짐작은 가능하다.이야기보다는 공간을 채우는 쓸쓸한 정서에 더욱 끌리는 영화다. 미술작품을 공허하게 바라보거나, 그와 앉았던 벤치에 말없이 혼자 앉아 있을 때의 외로운 정서, 그리고 그런 정서를 품어내는 아네트 베닝의 관록 있는 연기가 몇몇 장면에 깊이 배어 나온다. 쉰다섯 살을 넘겼지만, 중년의 로맨스 영화에 그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페이스 오브 러브'는 증명하듯 보여준다.'설국열차'(2013)에 출연해 친숙한 에드 해리스가 연기한 톰이라는 캐릭터야말로 이 영화에서 가장 연약하고 불쌍한 존재다. 사랑했던 여자에게 버림받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여자에게도 결국 사랑을 받지 못한다.그를 기다리는 건 예술의 가장 큰 자양분이라 할 수 있는 병마뿐. 니키가 마음을 열기 바라며 5년의 세월을 허비한 로저는 또 어떤가.영화는 이렇게 니키·톰·로저라는 세 인물을 통해 숨 가쁘게 좋으면서도 지긋지긋한 사랑의 양면성을 비교적 담담하게 펼쳐보인다.'춤스크러버'(2005) 등을 연출한 아리 포신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포신 감독은 죽은 남편과 똑같이 생긴 남자를 길에서 본 어머니의 실제 경험을 실마리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배우 김미숙이 예고편 내레이션에 도전했다. /연합뉴스

2014-04-17 연합뉴스

[텔미시네]가시… 사랑이란 이름의 광기어린 집착

2014 / 한국 / 117분감독 : 김태균출연 : 장혁, 조보아개봉일 : 2014년 4월 10일.청소년관람불가여고생들 사이에 인기 만점인 체육교사 준기(장혁). 아내 서연(선우선)과의 관계가 권태로울 때쯤 자신에게 다가오는 학생 영은(조보아)이 눈에 들어온다.어느 날, 비 오는 교정. 우산 없이 비에 젖은 영은의 모습을 보고 준기는 순간의 유혹을 참지 못해 영은과 키스하고, 더 깊은 관계로까지 갈 뻔하나 때마침 나타난 경비 아저씨 덕택에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날 이후 준기와 영은의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하지만 비밀로 하기로 한, 둘 사이의 이야기를 인터넷에 공개한 영은의 철없는 행동 탓에 준기의 사랑은 차갑게 식고, 영은은 점점 더 준기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사랑을 가볍게 여기는 남자와 사랑에 목숨을 건 여자의 이야기는 그동안 많았고, '가시'도 잠시 지겨워 바람을 핀 준기와 준기의 사랑에 목매는 영은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가시'는 플롯의 예상진로가 뻔히 보이는 예측 가능한 영화다. 그러나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예상 가능한 진로에 맞춰 내용을 전개해가는 김태균 감독의 정확한 연출 덕택에 영화는 후반부까지 뒷심을 발휘한다. 요컨대 이 영화는 깜짝 놀랄만한 변주보다는 예상 가능한 정격연주에 가까운 작품이다. 사랑받고 자라지 못해 사랑을 갈구하는 영은의 캐릭터는 악역이지만 동정심을 자아낸다. 이 영화로 데뷔한 조보아는 신인임에도 수준급의 연기를 보여준다. 준기 역의 장혁도 제 몫을 했다. 다만,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는 서연의 모습은 조금 억지스럽다. '맨발의 꿈'(2010), '화산고'(2001) 등을 연출한 김태균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연합뉴스

2014-04-10 연합뉴스

[텔미시네]방황하는 칼날… 딸 성폭행범 죽인 아버지 부성애인가 범죄인가

주검으로 발견된 상현의 외동딸죄의식 없는 미성년 가해자무능한 공권력앞에 분노하고…사적복수에 대한 묵직한 물음표뒤쫓는 형사 연민·고뇌 '눈길'2014/한국/122분감독 : 이정호출연 : 정재영 이성민개봉일 : 2014년 4월 10일 청소년관람 불가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관객에게 무겁고도 어려운 숙제를 던진다.청소년 범죄는 갈수록 잔혹해져만 가는데 정작 가해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식이 남에게 어떤 해를 끼쳤고 그들이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는 아랑곳하지 않는 철면피의 악귀가 된다.현행법은 아무리 끔찍한 성폭행이나 살인을 저질렀어도 미성년자에게는 면죄부를 준다.이런 현실에서 신문에 실린 한 줄의 범죄기사를 보고 혀나 한 번 차고 말면 그뿐인 대부분의 사람에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공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 상현(정재영 분)은 아내를 먼저 보내고 중학생 딸 수진이만 바라보고 산다. 어느 날 집에 들어오지 않은 딸은 버려진 목욕탕에서 잔인하게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다.익명의 제보자가 알려 준 집으로 찾아가니 고등학생 철용이 딸을 성폭행하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다. 이성을 잃고 우발적으로 철용을 죽인 상현은 공범인 두식을 무작정 찾아나선다.상현은 딸을 잃은 피해자인가, 또 다른 살인자인가. 상현의 사적 복수는 정당한가. 사적 복수를 금지하고 발동하는 공권력은 마땅한가.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에 대한 처벌을 경감해 주는 것은 옳은가. 죄의식조차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포용해야 하는가….영화는 고등학생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와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조차 없는 어린 가해자, 어린 아이들을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만드는 철면피의 어른들, 무능력한 공권력, 모든 것을 잃은 상현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분노를 자아낸다.다른 한 쪽에 무게가 실리는 건 상현을 쫓는 형사 억관(이성민)의 고뇌다.억관은 자신에게 조사를 받은 남학생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며 '강압 수사'가 아니었느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농구를 하던 남학생은 자신을 바라보던 억관에게 다가와 '죗값 다 치렀으니 그만 오라'고 말하고, 억관은 "게임팩 때문에 친구를 죽이고도 저렇게 웃으면서 농구를 하고 있다"고 되새긴다. 철용의 살해 현장을 본 순간 상현이 범인임을 직감하고 "이제부터 피해자가 아닌 살인 용의자"라고 단호하게 외쳤던 억관이 상현 대신 수진의 유품을 정리하기까지의 깊은 고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성민의 묵직하고 탁월한 연기 덕이다. 다루는 소재와 주제만큼이나 영화의 리듬도 시종 무겁기만 해서 두 시간이 버거울 수도 있겠다.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베스트셀러'로 데뷔한 이정호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연합뉴스

2014-04-03 연합뉴스

[텔미시네]캡틴 아메리카:윈터솔져… 세월 비켜간 히어로, 그 화려한 귀환

美 애국주의 색채빼고 격투등 볼거리 치중'블랙위도우'역 스칼릿요한슨 액션 기대이상아내·친구죽고 홀로남은 영웅의 상실감 '눈길'2014/미국/136분 감독 : 조 루소, 안소니 루소 출연 : 크리스 에번스, 스칼릿 요한슨, 사무엘 L. 잭슨개봉일 : 2013년 3월 26일. 15세 관람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을 무찌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번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사라진 그는 비밀리에 지구방위군 '쉴드'를 위해 일한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아흔다섯 살. 아내는 이미 그의 곁을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젊음을 유지한다. 캡틴 아메리카가 되는 '슈퍼 솔저 프로그램'에 참여한 덕택에 늙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어느 날, 조직의 수뇌부 중 한 명인 닉 퓨리(사무엘 L. 잭슨) 국장이 습격을 받은 채 캡틴의 집에 와서 숨지자, 조직을 이끄는 알렉산더 피어스(로버트 레드포드) 사무총장은 캡틴을 암살자로 지목한다. 쫓기게 된 그는 동료 블랙 위도우(스칼릿 요한슨)의 도움을 받으며 퓨리 국장의 사인을 추적하게 되고, 쉴드 내에 자라고 있던 나치 조직 히드라의 정체를 알게 된다. '캡틴 아메리카:윈터솔져'는 마블 코믹스의 만화 '캡틴 아메리카'를 토대로 한 두 번째 시리즈다. 51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친 전작 '퍼스트 어벤져'(2011)가 미국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었다면 후속편은 전작을 물들였던 애국주의의 색채를 대폭 빼고, 볼거리에 치중하는 한편, 캐릭터의 존재론적 고뇌를 입혔다. 그런 점에서 3년 전 나온 전작에 비해 국내 관객들에게 호감을 살 만한 요소가 다분하다. 특히 격투 장면이 돋보인다. 주짓수·가라테·복싱 등을 이용한 주먹과 발의 향연이 관객들의 시선을 끌 만하다. 이미 '어벤져스'(2012)에서 선보인 블랙 위도우 역의 스칼릿 요한슨의 빠르고 부드러운 액션도 기대 이상이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처럼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캡틴을 도와주는 팔콘(앤서니 마키)의 활약도 흥미롭고, 캡틴 아메리카의 상대역으로 앞으로도 계속 등장하게 될 '윈터 솔져'의 파괴력도 무시무시해 후속편을 기대하게 한다. 그렇다고 영화가 빠르고 경쾌하기만 한 건 아니다. 인간은 모두 죽지만, 세월을 비켜가는 한 남자 캡틴의 상실감도 극을 휘감는다. 아내가 떠나고, 친구들도 사라지는 가운데 느끼는 캡틴의 인생무상이 어떤 쓸쓸한 정서를 건드린다.다만,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다소 부담스럽다. 후반부로 가면서 이야기가 동력을 잃어가지만, 상대적으로 호흡은 느리기 때문이다. 후반부 액션장면도 새로울 것이 별로 없는데 과한 편이다. '웰 컴 투 콜린우드'(2003) 등을 연출한 조 루소·앤서니 루소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연합뉴스

2014-03-27 연합뉴스

[텔미시네]프라이버시… 24시간 감시사회 '민주국가의 허상'

런던 폭탄테러 용의자 변호맡은 마틴배후 국가정보기관 개입 알게되는데…사생활 문제 협박속 진실폭로 고군분투추격전·스릴러더한 할리우드판 '변호인'2014/영국, 미국/96분감독 : 존 크로울리 출연 : 에릭 바나, 레베카 홀, 짐 브로드벤트개봉일 : 2014년 3월 20일. 15세 관람가폐쇄회로 화면들이 스크린을 채운다. 화면 분할로 점점 늘어나는 폐쇄회로 화면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적인 대화와 행동들이 적나라하게 잡힌다. 그리고 한순간 회색 연기로 가득 찬다.전 세계에서 CCTV가 가장 많이 설치됐다는 도시, 런던의 최대 전통시장인 버로우 마켓에서 폭탄이 터진 것. 무고한 시민 120명이 죽었고 한 터키인이 용의자로 지목된다. 사건은 비공개 재판으로 진행되고 변호인이 갑작스럽게 죽자 마틴(에릭 바나)이 새로 변호를 맡게 된다.전 변호인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마틴은 정보기관인 MI5가 개입한 사실을 알게 되고, 법무부가 지정하는 특별변호인인 클로디아(레베카 홀)와 함께 사건을 파헤치지만 진실에 다가갈수록 두 사람은 위험에 처한다.정부는 24시간 CCTV 감시를 통해 이들의 사생활을 모두 알고 있고, 이를 빌미로 협박한다. 믿은 친구마저 정보기관의 감시원이었고, 사적인 모임 자리에도 평범한 공무원으로 위장한 정보기관의 책임자가 자리하고 있다.달아날 곳 없이 옥죄어 오는 정부기관의 감시와 위협 속에서도 두 사람은 진실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지만, '정의'나 '진실'이 승리하는 해피엔딩은 아니다. 영화는 민주국가의 비루한 허상을 적나라하게 비춘다."청문회다 뭐다 시끄럽겠지만 몇 년 질질 끌다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법무부 장관의 말은 국경이나 동서를 막론한 현실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럼에도 청문회에 선 장관이 법과 정의, 원칙을 외치는 것도 마찬가지다.관객이 가장 궁금해할 사건의 내막을 일찌감치 알려주고도 진실을 알리려는 주인공의 고군분투와 그들을 막으려는 기관 요원들의 추격은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는다.영화를 보기 전 영국의 사법제도에 대해 간단히 알아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원제 '클로즈드 서킷'(closed circuit)은 폐쇄회로라는 의미와 함께 비공개 재판을 뜻하기도 한다. 영국에서 테러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재판은 비공개로 진행되고 피고인 측에서는 법무부가 지정하는 특별변호인만이 참여할 수 있다.특별변호인은 비공개 재판에서 알게 된 증거에 대해서는 변호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고, 기밀 유지를 위해 정부의 엄격한 감시를 받게 된다. '레미제라블'과 '어바웃 타임' 제작사인 워킹타이틀이 제작하고 '보이A'로 영국아카데미 감독상과 베를린영화제 특별 심사위원상을 받은 존 크로울리 감독이 연출했다. /연합뉴스

2014-03-20 연합뉴스

[텔미시네]노아… 악에 맞서… 대홍수 맞서… 세상을 구원하라

2014/미국/139분.감독 : 대런 아로노프스키출연 : 러셀 크로우, 제니퍼 코넬리, 엠마 왓슨개봉일 : 2014년 3월 20일.15세 관람가.창조주가 세상과 인간을 만들었지만 세상에는 악이 널리 퍼지고 인간은 타락한다. 아담과 이브의 세 아들 중 셋째 아들 셋의 후손인 노아만이 악에 휩쓸리지 않고 신의 뜻을 따르며 산다. 노아는 신의 계시를 받아 대홍수로부터 세상을 구할 방주를 만들고, 세상 모든 존재의 암수 한 쌍과 가족을 태운다.영화 '노아'는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옮겨놓은 영화다.성경 속에서 대사 한 마디 없이 역사와 종교와 신화가 함축된 수천 년 전의 이야기는 어떻게 그려질 수 있을까.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더 레슬러'와 내털리 포트먼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블랙 스완'을 만든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기에 궁금증은 더 커졌다.대홍수가 끝나고 살아남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을 만큼 취하고 아들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성경의 마지막 구절이 그로 하여금 '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했고, 영화에서는 세상의 악에 맞서 방주를 짓고 그 안에서 공포와 희망, 갈등을 겪는 노아의 가족에 현실감을 줬다.여기에 고지식할 정도로 굳건한 믿음을 가진 노아를 정작 가족은 지키지 못할 딜레마에 빠뜨려 선과 악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대놓고 하는 훈계가 감흥을 주는 일은 별로 없다.스크린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인간의 상상력이 펼쳐질 때 경이롭다.방주는 컴퓨터 그래픽(CG) 대신 성경에 기록된 크기대로 배가 아닌 직사각형 형태로 만들었고,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동물들 역시 복제품을 만들고서 CG로 움직임을 넣어 최대한의 현실감을 살려 냈다.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끝이 없고, 상상력을 구현해 내는 스크린과 기술은 한계가 있기에 때로는 인식과 기대에 균열을 만들기도 한다. 성경 속 거인족을 형상화한 존재로, 빛이 인간을 돕다 돌로 변한 창조물인 '감시자들'이 트랜스포머처럼 움직이는 게 그렇다.감독은 노아 역의 러셀 크로우를 두고 "'노아'의 대서사를 끌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배우"라고 말했다. 노아의 아내 나메 역의 제니퍼 코넬리는 성경 속에서 이름도 설명도 없는 인물을 '그 가치가 산호보다 더 높다'는 성경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훌륭한 아내로 그려냈다. 노아의 할아버지로 969년을 산 므두셀라 역의 앤서니 홉킨스와 쌍둥이를 낳고 어머니가 되는 노아의 며느리 일라 역의 엠마 왓슨이 눈에 띈다. /연합뉴스

2014-03-14 연합뉴스

[텔미시네]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 탁월한 미장센 그림 보는듯… 피살둘러싼 모험

유럽에 대한 찬사…다양 볼거리틸다 스윈턴 대부호 마담-D 역할리우드도 놀란 초호화 캐스팅독일 외/100분감독 : 웨스 앤더슨출연 : 랄프 파인즈틸다 스윈턴, 토니 레볼로리개봉일 : 2014년 3월 20일. 청소년 불가웨스 앤더슨 감독을 현존하는 미국 영화감독 가운데 가장 '스타일리시'하게 원색을 사용하는, 미술에 능통한 감독 중 한 명이라고 말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바틀 로켓'(1996)을 시작으로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1998), '로얄 테넌바움'(2001), '다즐링 주식회사'(2007), '문라이즈 킹덤'(2012)까지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화려한 색감과 탁월한 미장센(화면구성)에 압도되곤 한다. 심지어 '판타스틱 Mr. 폭스'(2009) 같은 애니메이션에서조차 그의 장기는 빛을 발한다.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앤더슨 감독의 이 같은 장점이 응축된 수작이라 할 만하다.감독은 마치 100호짜리 그림을 스크린으로 보여주겠다고 작심한 듯하다. 영화는 2.35대 1이 아니라 거의 1대 1의 스크린 비율로 화면을 조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한다. 관객들은 그저 바로크부터 아르누보까지 이어지는 미술 작품의 나열을 감상하기만 하면 된다.1927년 대부호 마담 D(틸다 스윈턴)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다녀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마담 D의 아들 드미트리(애드리언 브로디)는 어머니의 연인이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지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를 살인자로 지목하고, 경찰은 구스타브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다.마담 D로부터 명화(名畵) '사과를 든 소년'을 받기로 했던 구스타브는 졸지에 살인자로 몰리자 자신의 제자 제로(토니 레볼로리)와 함께 그림을 훔쳐 달아나기로 결심한다.영화는 유럽에 대한 찬사로 가득하다.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3)의 작품을 읽고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힌 앤더슨 감독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사용했던 전작들에 비해 바로크풍의 음악만을 고집하고, 클림트 등 유럽 작가들의 그림을 곳곳에 배치한다.'마담 D' 같은 캐릭터는 아예 멜로드라마의 거장 막스 오퓔스(1902~57·독일) 감독의 동명 영화에서 따온 듯하다(오퓔스는 츠바이크의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를 연출하기도 했다).유럽에 대한 헌사로 채워진 이 영화는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보기 어려운 탁월한 이미지로 눈길을 사로잡는다.산 위에 세워진 그랜드 부다페스트의 화려한 외경과 실내 장식, 압도적인 흰 설원의 풍광, 까마득한 낭떠러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돼 있다.그렇다고 영화가 예쁘기만 한 건 아니다. 드미트리와 그의 수하 조플링(월렘 대포)이 벌이는 잔인한 살인 행각은 미스터리한 누아르 느낌을 자아내고, 헨켈스(에드워드 노튼)가 이끄는 독일의 검열은 파시즘이 창궐한 유럽의 암울한 미래를 암시하기도 한다.캐스팅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빌 머레이·오웬 윌슨·제이슨 슈왈츠먼·에드워드 노튼·애드리언 브로디 등 이른바 웨스 앤더슨 사단뿐 아니라 레아 세이두·마티유 아말릭·하비 카이틀이 단역도 마다하지 않고 출연했다. 가뜩이나 화려한 영화에 이들 출연진이 화려함을 더한다.다만, 영화의 분위기는 다소 차가운 편이다. 카메라는 등장인물의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세밀하고 정교하고 예쁘고 화려하지만, 그런 화려함 속에 공허한 공기가 감지되는 이유다. 어쩌면 그 무심함과 차가움이 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할지도 모르겠다./연합뉴스

2014-03-07 연합뉴스

[텔미시네]만신… 이 여인 삶이 곧, 질곡의 현대사

한국/ 104분 감독 : 박찬경출연 : 김새론, 류현경, 문소리개봉일 : 2014년 3월 6일.15세 관람가일제강점기 시절 황해도에 사는 14세 김금화(김새론)는 위안부 소집을 피해 시집을 가지만 환영에 시달린다. 이상한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신기한 것들이 눈앞을 지나간다.결국, 17세에 운명을 피하지 않고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된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금화(류현경)는 피란살이를 하며 남과 북을 오가지만 한때 간첩으로 내몰리며 죽을 고비를 넘긴다.어느덧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중년에 이른 금화(문소리)는 황해도 굿을 전파하며 만신(무녀를 높여 부르는 말)으로 명성을 날리지만 '미신타파'가 횡행했던 새마을운동 시기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다.'만신'은 큰 무당 김금화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철물이굿, 만수대탁굿, 배연신굿 등 모든 굿에 뛰어난 재능을 보유한 종합예술가로 인정받으며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인물이다.세계적인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 도올 김용옥, 황석영 작가 등 국내외 지식인, 예술인들이 그녀의 굿과 삶에 매료됐다.김금화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압축성장 등을 거치며 숨 쉴 틈 없이 이어진 우리 현대사의 수난기와 도약을 응축해서 보여준다.이산의 아픔과 미신타파의 물결 속에 주변부로 내몰렸다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조명받았던 '만신'들의 삶은 질곡의 현대사 그 자체다.영화는 거대한 역사의 물결 속에서 이리저리 흘러가는 김금화의 삶을 통해 우리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기도 한다. 굿이나 점을 미신이라고 치부하면서도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 그것에 의존하는 우리 안의 이중성을 꼬집는다.다큐멘터리와 실사 영화를 뒤섞은 이 작품의 형식은 꽤 독특하다. 설치미술·사진·미디어 아트를 넘나드는 미술작가 박찬경 감독은 다큐멘터리와 실사 드라마가 이어지는 중간 중간 미디어 아트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의 영상과 소리를 삽입했다. 이 때문에 영화는 여타 영화보다 명상적이고, 이미지의 굴곡 등 일반 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스타일적인 요소도 풍부하다.울다가 웃기는 김금화의 실제 굿거리를 볼 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양한 춤과 기예로 채워진 김금화의 굿은 주변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신이 들 때마다 이 사람 저 사람으로 변해야 하는 무당은 어쩌면 천의 얼굴을 지닌 '연기'의 달인인지도 모른다.실제로 민속학자 이능화(1869~1943)는 한민족의 무속을 정리한 책 '조선무속고'에서 "춤과 노래가 무격의 기원"이라고 무당을 정리하기도 했다. 그만큼 무속인들에게 춤과 노래는 중요했다는 얘기다.분량이 많지 않지만 문소리의 연기가 섬뜩하다. 류현경과 김새론도 제 몫을 했다.영화는 스타일과 내용의 전개에서 독특한 느낌을 전하지만 무속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는 담지 못했다.영화의 방점은 어디까지나 무속 그 자체보다 한 무속인을 통해 본 역사와 삶에 찍혀 있다./연합뉴스

2014-02-28 연합뉴스

[텔미시네]노예 12년… 자유란, 모든 것

두 인생을 산 한남자의 역경스토리실화 기록한 소설 바탕 감동 두배삶보다 생존에 무게 '진짜 삶' 꿈꿔아카데미영화상 9개부문 후보 올라미국·영국/134분감독 : 스티브 맥퀸출연 : 치웨텔 에지오포, 마이클 파스벤더, 베네딕트 컴버배치개봉일 : 2014년 2월 27일.15세 이상 관람가.스티브 맥퀸 감독의 '노예 12년'은 올해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아메리칸 허슬'과 함께 주목받는 세 작품중 하나다.미국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우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함께 노예 해방의 도화선이 된 작품으로 평가받는 솔로몬 노섭의 자전적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마치 사실주의 영화처럼 담담하게 시작하는 '노예 12년'은 별다른 꾸밈없이 정직한 화법으로 인간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다.'아메리칸 허슬'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의 쓰나미속에 등장인물들이 인간성의 '회색지대'를 기웃거리는 이야기라면, '노예 12년'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길을 떠나는 인물의 이야기를 담았다.아내와 두 자녀. 뉴욕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음악가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 지인에게 소개받은 백인들과 함께 워싱턴으로 연주 여행을 떠났다가 과음후 정신을 잃는다.정신을 차려보니 족쇄에 묶인채 외딴 방에 갇혀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 노섭. 자신을 가둔 낯선 백인에게 자유인이라고 주장하지만 돌아오는 건 세찬 채찍질 뿐이다.남부 루이지애나까지 흘러들어 간 노섭은 농장주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농장과 에드윈 엡스(마이클 파스벤더)의 농장에서 12년간 비참하게 노예로서 일한다. 카메라는 자유인이었다가 인신매매를 통해 노예로 팔려간 노섭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다닌다. '생존이 아니라 진짜 삶을 살고자 했던' 노섭이 포악한 횡포에 '삶보다는 생존'에 무게 중심을 두다가 결국 '진짜 삶'을 꿈꾸는 변화 과정을 정갈한 화면에 담았다.맥퀸 감독은 아주 슬픈 장면조차 꾹꾹 눌러서 연출했다. 그렇다고 슬픔이 묻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오히려 그 반대다. 힘든 노예생활에서 나오는 흑인들의 슬픔은 터져 나오는 울음이나 차오르는 감정에 의존하기보다는 답답하고 힘든 노예들의 상황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그런데 맥퀸 감독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 살랑이는 바람, 그림같은 석양, 수양버들을 한껏 늘어뜨린 나무 등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노섭의 비극적인 상황을 잇대어 보여준다. 그리고 그때의 고통은 '찬란한 슬픔의 봄'처럼 역설의 깊이를 더한다. 134분에 이르는 긴시간을 한 호흡에 달린 관객들은 영화 말미에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하게 될 것 같다. 끝부분에 나오는 떠돌이 베스(브래드 피트)의 '자유란 모든 것'이라는 대사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담겼다.노섭을 연기한 에지오포의 탁월한 연기와 남들을 괴롭히면서 쾌감을 얻는 악덕 지주 엡스를 연기한 마이클 파스벤더의 극악스러운 모습이 눈길을 끈다.영화는 골든글로브 작품상, 미국 제작자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했으며 다음 달 2일 열리는 아카데미영화상에서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2014-02-21 경인일보

[텔미시네]아메리칸 허슬… 스크린 휘젓는 캐릭터들 신랄하고 짜릿한 웃음

영화전문가 열광·영미권 상 휩쓸어현란한 사기기술 몇분내 관객 홀딱주·조연 4명 아카데미 후보에 올라탄탄한 이야기 '훅 지나가는 138분'미국/138분 감독 : 데이비드 O. 러셀출연 : 크리스천 베일, 에이미 애덤스, 브래들리 쿠퍼, 제니퍼 로런스개봉일 : 2014년 2월 20일. 청소년 관람 불가데이비드 O. 러셀의 '아메리칸 허슬'은 올해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와 함께 최다 후보에 올라 다관왕이 예상되는 작품이다.지난해 연말 평단과 관객들에게 공개되면서 "올해 가장 신랄하고 짜릿한 코미디"(타임) 등의 찬사를 받았다.영화는 골든글로브 3관왕, 뉴욕비평가협회상 3관왕을 포함해 각종 영미권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었다.'파이터'(2010) 이후 일취월장한 실력을 보여주는 작가주의 계열의 러셀 감독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보다도 한층 더 세련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고 찾아왔다. 영화를 보다 보면 왜 이 영화에 많은 영화 전문가들이 그처럼 열광하는지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질 법하다.닥치는 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며 꽤 재산을 모은 천재적인 사기꾼 어빙(크리스천 베일). 사람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훔치는 시드니(에이미 애덤스)마저 얻자 사업은 번창한다.그러나 잘 될 때일수록 조심해야 하는 법. 사건의 냄새를 맡는데 '개코'급인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사관 리치(브래들리 쿠퍼)가 파놓은 함정에 어빙과 시드니가 걸려들면서 이들은 쇠고랑을 찰 위기를 맞는다.리치는 장기 복역의 위기에 놓인 시드니 등에게 시장인 카마인(제레미 레너) 등 월척 4명만 잡게 해준다면 죄를 없애 주겠다는 일종의 유죄협상(플리바게닝)을 제안한다. 어빙과 시드니는 리치의 이 같은 제안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운명을 건 사기극에 뛰어든다.영화가 시작하면 어빙 역의 크리스천 베일의 거대한 뱃살이 눈에 들어온다. '파이터'와 '배트맨' 시리즈에서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던 그가 20㎏ 이상을 찌웠다. 언뜻 보아 호감가는 모습은 아니다.그러나 이 마법사 같은 배우는 머리카락도 거의 없는 가발을 쓴 사기꾼임에도 '베트콩처럼 치고 빠지는' 현란한 사기 기술로 몇 분 안에 관객들의 마음을 훔친다.에이미 애덤스, 브래들리 쿠퍼, 제레미 레너, 그리고 스물네 살에 세 번이나 아카데미 여우 주·조연상 후보에 오른 '대세녀' 제니퍼 로런스의 어마어마한 연기는 이 영화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잠깐 출연하는 로버트 드니로의 명연은 덤이다). 레너를 제외한 4명은 아카데미 남녀 주·조연상 후보에 올랐다.'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 한다'는 사기의 대원칙 아래 성격이 전혀 다른 캐릭터들은 스크린을 마음껏 휘젓고 다닌다.어빙은 천재적인 사기꾼이지만 우격다짐의 여왕 로잘린(제니퍼 로런스) 앞에서만은 기를 펴지 못하고, 리치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향해 폭주한다. "(재즈뮤지션) 듀크 엘링턴 덕택에 여러 번 목숨을 구했다"는 시드니는 사랑에 목숨을 건다."진실은 흑백이 아니라 회색 지대 어디쯤 있는 것"이라는 대사처럼, 등장인물들은 회색지대에서 살아간다. 그들의 착하기도, 나쁘기도 한 어떤 면들이 영화 속에 뒤섞여 있고, 이런 점 때문에 주요 등장인물들은 그럴싸한 매력을 하나 둘쯤 가지고 있다. 영화는 할리우드 최상급 프로덕션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배우들의 연기, 잘 짜인 플롯, 적재적소에 배치된 음악, 조명과 화면의 질감은 할리우드 A급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놀라운 질이 느껴진다.특히 1970년대에 들을 수 있는 음악과 장면들을 이리저리 배합한 장면은 관객들의 마음을 이리저리 뒤흔들 것 같다. 상영시간이 2시간 20분에 가까울 정도로 길지만 탄탄한 이야기 덕택에 훅 지나간다.과거 명작들의 향취도 느낄 수 있다. 끈끈한 인간관계 속에 숨겨진 날선 배신의 칼날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좋은 친구들'(1990) 같은 서늘한 씁쓸함을 전해주고, 머리 건드리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어빙과 리치의 모습에선 코엔 형제의 '밀러스 크로싱'(1990)에서 모자에 극도로 집착하는 가브리엘 번 같은 인물의 자취도 느껴진다.영화는 아랍의 사업가 등으로 위장한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사관이 연방의회 의원과 공직자의 비리를 적발한 '앱스캠 스캔들'을 토대로 했다./연합뉴스

2014-02-14 연합뉴스

[텔미시네]굿모닝 맨하탄

허황된 학원광고·로맨스 공감충분괄시받던 엄마의 변모 '카타르시스'2014/ 인도/ 133분감독 : 가우리 신드 출연 : 스리데비, 아딜 후세인개봉일 : 2013년 2월 6일. 전체 관람가뛰어난 요리 실력으로 남편과 자녀의 입맛을 완벽하게 책임지는 만점 주부 샤시(스리데비). 남편과 아이들이 구사하는 영어때문에 가끔 스트레스를 받긴하지만 전반적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그러나 조카 결혼 준비 때문에 뉴욕에서 한 달간 살게되면서 샤시는 곤경에 처한다. 커피전문점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다가 망신을 당하고, 지하철에서는 어디로가야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른다.온종일 영어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샤시. 그런 그녀의 눈에 '4주 완성 영어정복'이라고 새겨진 버스 광고가 눈에 들어오자, 샤시는 전화 다이얼을 누르기 시작한다. '굿모닝 맨하탄'은 영어 스트레스를 소재로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인도 영화다. 여성으로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한 여성의 성장영화라 봐도 무방하다.새해와 방학만 되면 문전성시를 이루는 영어학원이 산재한 '영어공화국'에 사는 우리의 현실과도 어느 정도 맞닿아있어 영화를 보다 보면 공감할만한 장면들이 꽤 있다.특히 학원에서 벌어지는 로맨스, 한 달 안에 영어를 완전히 숙달시켜주겠다는 허황한 광고 등은 우리 학원가에서도 익숙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음식점에서 영어를 못해 당황했거나 외국 여행가서 영어때문에 창피했던 기억이 있는 관객들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영어를 소재로 한 에피소드가 영화의 주동력이긴 하지만 남존여비가 횡행하는 인도의 차디찬 현실도 곁들인다. 무시당하는 아내, 괄시받는 엄마에서, 영어 잘하는 멋진 아내와 엄마로 변모하는 장면이 낯간지럽지만 약간의 카타르시스도 준다.인도의 국민배우라는 스리데비의 열연과 맥락과는 상관없이 꼭 등장하는 인도 영화 특유의 춤과 노래도 흥을 돋운다. 가우리 신드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았다./연합뉴스

2014-02-07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