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미시네

 

[텔미시네]역린… 청년 정조의 숨막히는 24시간

노론 음모에 위태로운 왕권하루동안 왕 시해기도 사건2시간에 압축 깊이는 부족현빈 3년만의 스크린 복귀'다모'·'베토벤바이러스'이재규감독 첫 영화 데뷔작2014/한국/135분감독: 이재규 출연: 현빈, 정재영, 조정석개봉일: 4월30일. 15세관람가왕으로 즉위하면서 '짐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밝힌 정조(현빈). 외척인 홍인한 등 노론 대신 일부를 죽였지만, 여전히 조정에서는 노론이 득세하고, 왕권은 약한 상황.정순왕후(한지민)의 견제와 병권을 틀어쥔 아버지의 원수 훈련대장 구선복(송영창)의 은근한 항명 속에 웅크린 정조. 심지어 어린 시절부터 그를 따르던 내관 상책(정재영)마저 노론의 끄나풀인 것으로 밝혀져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다.정순왕후를 독살하려 한 혐의로 어머니 혜경궁 홍씨(김성령)마저 체포된 상황. 노론의 끈질긴 공격 속에 수세에 몰린 정조는 금위영 대장 홍국영(박성웅)과 함께 반전을 노리지만 되레 노론이 꾸미는 음모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조선 후기 르네상스시대로 평가받는 영·정조시대. 경제가 발전하고 문화가 꽃을 피운 시기이기도 하지만, 정국의 주도권을 놓고 왕과 노련한 정치가들의 수싸움이 복잡했던 시절이기도 했다.영화 '역린'은 이 시기, 왕 시해 기도 사건이 발생했던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엮었다. 2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시대의 주름과 복잡함을 캐릭터 안에 응축해내기란 쉽지 않았을 터. 여기에 24시간 동안 숨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긴박감을 구겨 넣어야 했기에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다.영화를 만들면서 마주했을 것 같은 그 같은 어려움이 '역린'에는 그대로 투영돼 있다.열살배기 아이에게 암살을 사주하는 혜경궁 홍씨나 왕 앞에서 대놓고 반역을 꾀하는 구선복, 월혜(정은채)의 석연찮은 배신과 살수(조정석)의 어울리지 않는 코미디, 살수 집단의 우두머리 광백(조재현)의 단선적인 욕망만으로는 그 시대의 폭과 깊이를 담기에 부족한 것 같다.현빈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2011) 이후 3년 만에 이 영화로 컴백했다. 조각 같은 그의 등 근육과 배 근육은 여심을 흔들 것 같다. '다모'(2003), '베토벤 바이러스'(2008) 등의 드라마를 연출했던 이재규 감독의 첫 영화 데뷔작이다. '역린'은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로, 왕의 노여움을 뜻한다. /연합뉴스▲ 왼쪽부터 정재영, 조재현, 한지민, 조정석, 박성웅.

2014-04-24 연합뉴스

[텔미시네]페이스 오브 러브… 죽은 남편 닮은 그남자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소중한 이 잃은 공허·외로움아네트 베닝 '관록' 연기좋으면서도 지긋지긋한…사랑의 양면성 담담한 처리가슴 적시는 중년의 멜로2014 / 미국 / 92분감독 : 아리 포신출연 : 아네트 베닝, 애드 해리스, 로빈 윌리엄스개봉일 : 2014년 4월16일.15세 관람가사고로 남편을 잃은 니키(아네트 베닝). 5년이 흘렀지만 니키의 마음을 꽉 채우는 건 남편에 대한 추억뿐이다. 그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이웃집 남자 로저(로빈 윌리엄스)가 밤낮없이 서성대지만 니키는 관심조차 없다.남편이 죽은 후 처음으로 미술관에 간 니키. 그곳에서 남편과 똑같이 생긴 남자(에드 해리스)를 보고 충격에 휩싸인다. 미행과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그의 뒤를 캐던 니키는 그 남자가 톰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친다는 정보를 얻는다.어찌할까 고민하던 니키는 톰의 학교를 찾아가 레슨을 청하고, 뜻밖에도 톰의 동의를 쉽게 구한다. 니키는 톰이 10년 전, 아내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둘은 곧 불타는 사랑에 빠진다.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수많은 영화와 로맨스 소설에서 질문했던 소재이기에 이야기 자체는 익숙하다. 결론까지 알 길은 없지만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대충 짐작은 가능하다.이야기보다는 공간을 채우는 쓸쓸한 정서에 더욱 끌리는 영화다. 미술작품을 공허하게 바라보거나, 그와 앉았던 벤치에 말없이 혼자 앉아 있을 때의 외로운 정서, 그리고 그런 정서를 품어내는 아네트 베닝의 관록 있는 연기가 몇몇 장면에 깊이 배어 나온다. 쉰다섯 살을 넘겼지만, 중년의 로맨스 영화에 그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페이스 오브 러브'는 증명하듯 보여준다.'설국열차'(2013)에 출연해 친숙한 에드 해리스가 연기한 톰이라는 캐릭터야말로 이 영화에서 가장 연약하고 불쌍한 존재다. 사랑했던 여자에게 버림받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여자에게도 결국 사랑을 받지 못한다.그를 기다리는 건 예술의 가장 큰 자양분이라 할 수 있는 병마뿐. 니키가 마음을 열기 바라며 5년의 세월을 허비한 로저는 또 어떤가.영화는 이렇게 니키·톰·로저라는 세 인물을 통해 숨 가쁘게 좋으면서도 지긋지긋한 사랑의 양면성을 비교적 담담하게 펼쳐보인다.'춤스크러버'(2005) 등을 연출한 아리 포신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포신 감독은 죽은 남편과 똑같이 생긴 남자를 길에서 본 어머니의 실제 경험을 실마리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배우 김미숙이 예고편 내레이션에 도전했다. /연합뉴스

2014-04-17 연합뉴스

[텔미시네]가시… 사랑이란 이름의 광기어린 집착

2014 / 한국 / 117분감독 : 김태균출연 : 장혁, 조보아개봉일 : 2014년 4월 10일.청소년관람불가여고생들 사이에 인기 만점인 체육교사 준기(장혁). 아내 서연(선우선)과의 관계가 권태로울 때쯤 자신에게 다가오는 학생 영은(조보아)이 눈에 들어온다.어느 날, 비 오는 교정. 우산 없이 비에 젖은 영은의 모습을 보고 준기는 순간의 유혹을 참지 못해 영은과 키스하고, 더 깊은 관계로까지 갈 뻔하나 때마침 나타난 경비 아저씨 덕택에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날 이후 준기와 영은의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하지만 비밀로 하기로 한, 둘 사이의 이야기를 인터넷에 공개한 영은의 철없는 행동 탓에 준기의 사랑은 차갑게 식고, 영은은 점점 더 준기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사랑을 가볍게 여기는 남자와 사랑에 목숨을 건 여자의 이야기는 그동안 많았고, '가시'도 잠시 지겨워 바람을 핀 준기와 준기의 사랑에 목매는 영은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가시'는 플롯의 예상진로가 뻔히 보이는 예측 가능한 영화다. 그러나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예상 가능한 진로에 맞춰 내용을 전개해가는 김태균 감독의 정확한 연출 덕택에 영화는 후반부까지 뒷심을 발휘한다. 요컨대 이 영화는 깜짝 놀랄만한 변주보다는 예상 가능한 정격연주에 가까운 작품이다. 사랑받고 자라지 못해 사랑을 갈구하는 영은의 캐릭터는 악역이지만 동정심을 자아낸다. 이 영화로 데뷔한 조보아는 신인임에도 수준급의 연기를 보여준다. 준기 역의 장혁도 제 몫을 했다. 다만,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는 서연의 모습은 조금 억지스럽다. '맨발의 꿈'(2010), '화산고'(2001) 등을 연출한 김태균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연합뉴스

2014-04-10 연합뉴스

[텔미시네]방황하는 칼날… 딸 성폭행범 죽인 아버지 부성애인가 범죄인가

주검으로 발견된 상현의 외동딸죄의식 없는 미성년 가해자무능한 공권력앞에 분노하고…사적복수에 대한 묵직한 물음표뒤쫓는 형사 연민·고뇌 '눈길'2014/한국/122분감독 : 이정호출연 : 정재영 이성민개봉일 : 2014년 4월 10일 청소년관람 불가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관객에게 무겁고도 어려운 숙제를 던진다.청소년 범죄는 갈수록 잔혹해져만 가는데 정작 가해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식이 남에게 어떤 해를 끼쳤고 그들이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는 아랑곳하지 않는 철면피의 악귀가 된다.현행법은 아무리 끔찍한 성폭행이나 살인을 저질렀어도 미성년자에게는 면죄부를 준다.이런 현실에서 신문에 실린 한 줄의 범죄기사를 보고 혀나 한 번 차고 말면 그뿐인 대부분의 사람에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공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 상현(정재영 분)은 아내를 먼저 보내고 중학생 딸 수진이만 바라보고 산다. 어느 날 집에 들어오지 않은 딸은 버려진 목욕탕에서 잔인하게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다.익명의 제보자가 알려 준 집으로 찾아가니 고등학생 철용이 딸을 성폭행하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다. 이성을 잃고 우발적으로 철용을 죽인 상현은 공범인 두식을 무작정 찾아나선다.상현은 딸을 잃은 피해자인가, 또 다른 살인자인가. 상현의 사적 복수는 정당한가. 사적 복수를 금지하고 발동하는 공권력은 마땅한가.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에 대한 처벌을 경감해 주는 것은 옳은가. 죄의식조차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포용해야 하는가….영화는 고등학생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와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조차 없는 어린 가해자, 어린 아이들을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만드는 철면피의 어른들, 무능력한 공권력, 모든 것을 잃은 상현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분노를 자아낸다.다른 한 쪽에 무게가 실리는 건 상현을 쫓는 형사 억관(이성민)의 고뇌다.억관은 자신에게 조사를 받은 남학생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며 '강압 수사'가 아니었느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농구를 하던 남학생은 자신을 바라보던 억관에게 다가와 '죗값 다 치렀으니 그만 오라'고 말하고, 억관은 "게임팩 때문에 친구를 죽이고도 저렇게 웃으면서 농구를 하고 있다"고 되새긴다. 철용의 살해 현장을 본 순간 상현이 범인임을 직감하고 "이제부터 피해자가 아닌 살인 용의자"라고 단호하게 외쳤던 억관이 상현 대신 수진의 유품을 정리하기까지의 깊은 고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성민의 묵직하고 탁월한 연기 덕이다. 다루는 소재와 주제만큼이나 영화의 리듬도 시종 무겁기만 해서 두 시간이 버거울 수도 있겠다.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베스트셀러'로 데뷔한 이정호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연합뉴스

2014-04-03 연합뉴스

[텔미시네]캡틴 아메리카:윈터솔져… 세월 비켜간 히어로, 그 화려한 귀환

美 애국주의 색채빼고 격투등 볼거리 치중'블랙위도우'역 스칼릿요한슨 액션 기대이상아내·친구죽고 홀로남은 영웅의 상실감 '눈길'2014/미국/136분 감독 : 조 루소, 안소니 루소 출연 : 크리스 에번스, 스칼릿 요한슨, 사무엘 L. 잭슨개봉일 : 2013년 3월 26일. 15세 관람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을 무찌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번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사라진 그는 비밀리에 지구방위군 '쉴드'를 위해 일한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아흔다섯 살. 아내는 이미 그의 곁을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젊음을 유지한다. 캡틴 아메리카가 되는 '슈퍼 솔저 프로그램'에 참여한 덕택에 늙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어느 날, 조직의 수뇌부 중 한 명인 닉 퓨리(사무엘 L. 잭슨) 국장이 습격을 받은 채 캡틴의 집에 와서 숨지자, 조직을 이끄는 알렉산더 피어스(로버트 레드포드) 사무총장은 캡틴을 암살자로 지목한다. 쫓기게 된 그는 동료 블랙 위도우(스칼릿 요한슨)의 도움을 받으며 퓨리 국장의 사인을 추적하게 되고, 쉴드 내에 자라고 있던 나치 조직 히드라의 정체를 알게 된다. '캡틴 아메리카:윈터솔져'는 마블 코믹스의 만화 '캡틴 아메리카'를 토대로 한 두 번째 시리즈다. 51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친 전작 '퍼스트 어벤져'(2011)가 미국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었다면 후속편은 전작을 물들였던 애국주의의 색채를 대폭 빼고, 볼거리에 치중하는 한편, 캐릭터의 존재론적 고뇌를 입혔다. 그런 점에서 3년 전 나온 전작에 비해 국내 관객들에게 호감을 살 만한 요소가 다분하다. 특히 격투 장면이 돋보인다. 주짓수·가라테·복싱 등을 이용한 주먹과 발의 향연이 관객들의 시선을 끌 만하다. 이미 '어벤져스'(2012)에서 선보인 블랙 위도우 역의 스칼릿 요한슨의 빠르고 부드러운 액션도 기대 이상이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처럼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캡틴을 도와주는 팔콘(앤서니 마키)의 활약도 흥미롭고, 캡틴 아메리카의 상대역으로 앞으로도 계속 등장하게 될 '윈터 솔져'의 파괴력도 무시무시해 후속편을 기대하게 한다. 그렇다고 영화가 빠르고 경쾌하기만 한 건 아니다. 인간은 모두 죽지만, 세월을 비켜가는 한 남자 캡틴의 상실감도 극을 휘감는다. 아내가 떠나고, 친구들도 사라지는 가운데 느끼는 캡틴의 인생무상이 어떤 쓸쓸한 정서를 건드린다.다만,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다소 부담스럽다. 후반부로 가면서 이야기가 동력을 잃어가지만, 상대적으로 호흡은 느리기 때문이다. 후반부 액션장면도 새로울 것이 별로 없는데 과한 편이다. '웰 컴 투 콜린우드'(2003) 등을 연출한 조 루소·앤서니 루소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연합뉴스

2014-03-27 연합뉴스

[텔미시네]프라이버시… 24시간 감시사회 '민주국가의 허상'

런던 폭탄테러 용의자 변호맡은 마틴배후 국가정보기관 개입 알게되는데…사생활 문제 협박속 진실폭로 고군분투추격전·스릴러더한 할리우드판 '변호인'2014/영국, 미국/96분감독 : 존 크로울리 출연 : 에릭 바나, 레베카 홀, 짐 브로드벤트개봉일 : 2014년 3월 20일. 15세 관람가폐쇄회로 화면들이 스크린을 채운다. 화면 분할로 점점 늘어나는 폐쇄회로 화면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적인 대화와 행동들이 적나라하게 잡힌다. 그리고 한순간 회색 연기로 가득 찬다.전 세계에서 CCTV가 가장 많이 설치됐다는 도시, 런던의 최대 전통시장인 버로우 마켓에서 폭탄이 터진 것. 무고한 시민 120명이 죽었고 한 터키인이 용의자로 지목된다. 사건은 비공개 재판으로 진행되고 변호인이 갑작스럽게 죽자 마틴(에릭 바나)이 새로 변호를 맡게 된다.전 변호인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마틴은 정보기관인 MI5가 개입한 사실을 알게 되고, 법무부가 지정하는 특별변호인인 클로디아(레베카 홀)와 함께 사건을 파헤치지만 진실에 다가갈수록 두 사람은 위험에 처한다.정부는 24시간 CCTV 감시를 통해 이들의 사생활을 모두 알고 있고, 이를 빌미로 협박한다. 믿은 친구마저 정보기관의 감시원이었고, 사적인 모임 자리에도 평범한 공무원으로 위장한 정보기관의 책임자가 자리하고 있다.달아날 곳 없이 옥죄어 오는 정부기관의 감시와 위협 속에서도 두 사람은 진실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지만, '정의'나 '진실'이 승리하는 해피엔딩은 아니다. 영화는 민주국가의 비루한 허상을 적나라하게 비춘다."청문회다 뭐다 시끄럽겠지만 몇 년 질질 끌다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법무부 장관의 말은 국경이나 동서를 막론한 현실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럼에도 청문회에 선 장관이 법과 정의, 원칙을 외치는 것도 마찬가지다.관객이 가장 궁금해할 사건의 내막을 일찌감치 알려주고도 진실을 알리려는 주인공의 고군분투와 그들을 막으려는 기관 요원들의 추격은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는다.영화를 보기 전 영국의 사법제도에 대해 간단히 알아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원제 '클로즈드 서킷'(closed circuit)은 폐쇄회로라는 의미와 함께 비공개 재판을 뜻하기도 한다. 영국에서 테러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재판은 비공개로 진행되고 피고인 측에서는 법무부가 지정하는 특별변호인만이 참여할 수 있다.특별변호인은 비공개 재판에서 알게 된 증거에 대해서는 변호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고, 기밀 유지를 위해 정부의 엄격한 감시를 받게 된다. '레미제라블'과 '어바웃 타임' 제작사인 워킹타이틀이 제작하고 '보이A'로 영국아카데미 감독상과 베를린영화제 특별 심사위원상을 받은 존 크로울리 감독이 연출했다. /연합뉴스

2014-03-20 연합뉴스

[텔미시네]노아… 악에 맞서… 대홍수 맞서… 세상을 구원하라

2014/미국/139분.감독 : 대런 아로노프스키출연 : 러셀 크로우, 제니퍼 코넬리, 엠마 왓슨개봉일 : 2014년 3월 20일.15세 관람가.창조주가 세상과 인간을 만들었지만 세상에는 악이 널리 퍼지고 인간은 타락한다. 아담과 이브의 세 아들 중 셋째 아들 셋의 후손인 노아만이 악에 휩쓸리지 않고 신의 뜻을 따르며 산다. 노아는 신의 계시를 받아 대홍수로부터 세상을 구할 방주를 만들고, 세상 모든 존재의 암수 한 쌍과 가족을 태운다.영화 '노아'는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옮겨놓은 영화다.성경 속에서 대사 한 마디 없이 역사와 종교와 신화가 함축된 수천 년 전의 이야기는 어떻게 그려질 수 있을까.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더 레슬러'와 내털리 포트먼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블랙 스완'을 만든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기에 궁금증은 더 커졌다.대홍수가 끝나고 살아남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을 만큼 취하고 아들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성경의 마지막 구절이 그로 하여금 '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했고, 영화에서는 세상의 악에 맞서 방주를 짓고 그 안에서 공포와 희망, 갈등을 겪는 노아의 가족에 현실감을 줬다.여기에 고지식할 정도로 굳건한 믿음을 가진 노아를 정작 가족은 지키지 못할 딜레마에 빠뜨려 선과 악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대놓고 하는 훈계가 감흥을 주는 일은 별로 없다.스크린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인간의 상상력이 펼쳐질 때 경이롭다.방주는 컴퓨터 그래픽(CG) 대신 성경에 기록된 크기대로 배가 아닌 직사각형 형태로 만들었고,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동물들 역시 복제품을 만들고서 CG로 움직임을 넣어 최대한의 현실감을 살려 냈다.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끝이 없고, 상상력을 구현해 내는 스크린과 기술은 한계가 있기에 때로는 인식과 기대에 균열을 만들기도 한다. 성경 속 거인족을 형상화한 존재로, 빛이 인간을 돕다 돌로 변한 창조물인 '감시자들'이 트랜스포머처럼 움직이는 게 그렇다.감독은 노아 역의 러셀 크로우를 두고 "'노아'의 대서사를 끌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배우"라고 말했다. 노아의 아내 나메 역의 제니퍼 코넬리는 성경 속에서 이름도 설명도 없는 인물을 '그 가치가 산호보다 더 높다'는 성경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훌륭한 아내로 그려냈다. 노아의 할아버지로 969년을 산 므두셀라 역의 앤서니 홉킨스와 쌍둥이를 낳고 어머니가 되는 노아의 며느리 일라 역의 엠마 왓슨이 눈에 띈다. /연합뉴스

2014-03-14 연합뉴스

[텔미시네]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 탁월한 미장센 그림 보는듯… 피살둘러싼 모험

유럽에 대한 찬사…다양 볼거리틸다 스윈턴 대부호 마담-D 역할리우드도 놀란 초호화 캐스팅독일 외/100분감독 : 웨스 앤더슨출연 : 랄프 파인즈틸다 스윈턴, 토니 레볼로리개봉일 : 2014년 3월 20일. 청소년 불가웨스 앤더슨 감독을 현존하는 미국 영화감독 가운데 가장 '스타일리시'하게 원색을 사용하는, 미술에 능통한 감독 중 한 명이라고 말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바틀 로켓'(1996)을 시작으로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1998), '로얄 테넌바움'(2001), '다즐링 주식회사'(2007), '문라이즈 킹덤'(2012)까지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화려한 색감과 탁월한 미장센(화면구성)에 압도되곤 한다. 심지어 '판타스틱 Mr. 폭스'(2009) 같은 애니메이션에서조차 그의 장기는 빛을 발한다.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앤더슨 감독의 이 같은 장점이 응축된 수작이라 할 만하다.감독은 마치 100호짜리 그림을 스크린으로 보여주겠다고 작심한 듯하다. 영화는 2.35대 1이 아니라 거의 1대 1의 스크린 비율로 화면을 조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한다. 관객들은 그저 바로크부터 아르누보까지 이어지는 미술 작품의 나열을 감상하기만 하면 된다.1927년 대부호 마담 D(틸다 스윈턴)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다녀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마담 D의 아들 드미트리(애드리언 브로디)는 어머니의 연인이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지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를 살인자로 지목하고, 경찰은 구스타브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다.마담 D로부터 명화(名畵) '사과를 든 소년'을 받기로 했던 구스타브는 졸지에 살인자로 몰리자 자신의 제자 제로(토니 레볼로리)와 함께 그림을 훔쳐 달아나기로 결심한다.영화는 유럽에 대한 찬사로 가득하다.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3)의 작품을 읽고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힌 앤더슨 감독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사용했던 전작들에 비해 바로크풍의 음악만을 고집하고, 클림트 등 유럽 작가들의 그림을 곳곳에 배치한다.'마담 D' 같은 캐릭터는 아예 멜로드라마의 거장 막스 오퓔스(1902~57·독일) 감독의 동명 영화에서 따온 듯하다(오퓔스는 츠바이크의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를 연출하기도 했다).유럽에 대한 헌사로 채워진 이 영화는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보기 어려운 탁월한 이미지로 눈길을 사로잡는다.산 위에 세워진 그랜드 부다페스트의 화려한 외경과 실내 장식, 압도적인 흰 설원의 풍광, 까마득한 낭떠러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돼 있다.그렇다고 영화가 예쁘기만 한 건 아니다. 드미트리와 그의 수하 조플링(월렘 대포)이 벌이는 잔인한 살인 행각은 미스터리한 누아르 느낌을 자아내고, 헨켈스(에드워드 노튼)가 이끄는 독일의 검열은 파시즘이 창궐한 유럽의 암울한 미래를 암시하기도 한다.캐스팅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빌 머레이·오웬 윌슨·제이슨 슈왈츠먼·에드워드 노튼·애드리언 브로디 등 이른바 웨스 앤더슨 사단뿐 아니라 레아 세이두·마티유 아말릭·하비 카이틀이 단역도 마다하지 않고 출연했다. 가뜩이나 화려한 영화에 이들 출연진이 화려함을 더한다.다만, 영화의 분위기는 다소 차가운 편이다. 카메라는 등장인물의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세밀하고 정교하고 예쁘고 화려하지만, 그런 화려함 속에 공허한 공기가 감지되는 이유다. 어쩌면 그 무심함과 차가움이 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할지도 모르겠다./연합뉴스

2014-03-07 연합뉴스

[텔미시네]만신… 이 여인 삶이 곧, 질곡의 현대사

한국/ 104분 감독 : 박찬경출연 : 김새론, 류현경, 문소리개봉일 : 2014년 3월 6일.15세 관람가일제강점기 시절 황해도에 사는 14세 김금화(김새론)는 위안부 소집을 피해 시집을 가지만 환영에 시달린다. 이상한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신기한 것들이 눈앞을 지나간다.결국, 17세에 운명을 피하지 않고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된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금화(류현경)는 피란살이를 하며 남과 북을 오가지만 한때 간첩으로 내몰리며 죽을 고비를 넘긴다.어느덧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중년에 이른 금화(문소리)는 황해도 굿을 전파하며 만신(무녀를 높여 부르는 말)으로 명성을 날리지만 '미신타파'가 횡행했던 새마을운동 시기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다.'만신'은 큰 무당 김금화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철물이굿, 만수대탁굿, 배연신굿 등 모든 굿에 뛰어난 재능을 보유한 종합예술가로 인정받으며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인물이다.세계적인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 도올 김용옥, 황석영 작가 등 국내외 지식인, 예술인들이 그녀의 굿과 삶에 매료됐다.김금화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압축성장 등을 거치며 숨 쉴 틈 없이 이어진 우리 현대사의 수난기와 도약을 응축해서 보여준다.이산의 아픔과 미신타파의 물결 속에 주변부로 내몰렸다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조명받았던 '만신'들의 삶은 질곡의 현대사 그 자체다.영화는 거대한 역사의 물결 속에서 이리저리 흘러가는 김금화의 삶을 통해 우리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기도 한다. 굿이나 점을 미신이라고 치부하면서도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 그것에 의존하는 우리 안의 이중성을 꼬집는다.다큐멘터리와 실사 영화를 뒤섞은 이 작품의 형식은 꽤 독특하다. 설치미술·사진·미디어 아트를 넘나드는 미술작가 박찬경 감독은 다큐멘터리와 실사 드라마가 이어지는 중간 중간 미디어 아트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의 영상과 소리를 삽입했다. 이 때문에 영화는 여타 영화보다 명상적이고, 이미지의 굴곡 등 일반 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스타일적인 요소도 풍부하다.울다가 웃기는 김금화의 실제 굿거리를 볼 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양한 춤과 기예로 채워진 김금화의 굿은 주변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신이 들 때마다 이 사람 저 사람으로 변해야 하는 무당은 어쩌면 천의 얼굴을 지닌 '연기'의 달인인지도 모른다.실제로 민속학자 이능화(1869~1943)는 한민족의 무속을 정리한 책 '조선무속고'에서 "춤과 노래가 무격의 기원"이라고 무당을 정리하기도 했다. 그만큼 무속인들에게 춤과 노래는 중요했다는 얘기다.분량이 많지 않지만 문소리의 연기가 섬뜩하다. 류현경과 김새론도 제 몫을 했다.영화는 스타일과 내용의 전개에서 독특한 느낌을 전하지만 무속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는 담지 못했다.영화의 방점은 어디까지나 무속 그 자체보다 한 무속인을 통해 본 역사와 삶에 찍혀 있다./연합뉴스

2014-02-28 연합뉴스

[텔미시네]노예 12년… 자유란, 모든 것

두 인생을 산 한남자의 역경스토리실화 기록한 소설 바탕 감동 두배삶보다 생존에 무게 '진짜 삶' 꿈꿔아카데미영화상 9개부문 후보 올라미국·영국/134분감독 : 스티브 맥퀸출연 : 치웨텔 에지오포, 마이클 파스벤더, 베네딕트 컴버배치개봉일 : 2014년 2월 27일.15세 이상 관람가.스티브 맥퀸 감독의 '노예 12년'은 올해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아메리칸 허슬'과 함께 주목받는 세 작품중 하나다.미국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우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함께 노예 해방의 도화선이 된 작품으로 평가받는 솔로몬 노섭의 자전적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마치 사실주의 영화처럼 담담하게 시작하는 '노예 12년'은 별다른 꾸밈없이 정직한 화법으로 인간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다.'아메리칸 허슬'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의 쓰나미속에 등장인물들이 인간성의 '회색지대'를 기웃거리는 이야기라면, '노예 12년'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길을 떠나는 인물의 이야기를 담았다.아내와 두 자녀. 뉴욕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음악가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 지인에게 소개받은 백인들과 함께 워싱턴으로 연주 여행을 떠났다가 과음후 정신을 잃는다.정신을 차려보니 족쇄에 묶인채 외딴 방에 갇혀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 노섭. 자신을 가둔 낯선 백인에게 자유인이라고 주장하지만 돌아오는 건 세찬 채찍질 뿐이다.남부 루이지애나까지 흘러들어 간 노섭은 농장주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농장과 에드윈 엡스(마이클 파스벤더)의 농장에서 12년간 비참하게 노예로서 일한다. 카메라는 자유인이었다가 인신매매를 통해 노예로 팔려간 노섭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다닌다. '생존이 아니라 진짜 삶을 살고자 했던' 노섭이 포악한 횡포에 '삶보다는 생존'에 무게 중심을 두다가 결국 '진짜 삶'을 꿈꾸는 변화 과정을 정갈한 화면에 담았다.맥퀸 감독은 아주 슬픈 장면조차 꾹꾹 눌러서 연출했다. 그렇다고 슬픔이 묻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오히려 그 반대다. 힘든 노예생활에서 나오는 흑인들의 슬픔은 터져 나오는 울음이나 차오르는 감정에 의존하기보다는 답답하고 힘든 노예들의 상황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그런데 맥퀸 감독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 살랑이는 바람, 그림같은 석양, 수양버들을 한껏 늘어뜨린 나무 등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노섭의 비극적인 상황을 잇대어 보여준다. 그리고 그때의 고통은 '찬란한 슬픔의 봄'처럼 역설의 깊이를 더한다. 134분에 이르는 긴시간을 한 호흡에 달린 관객들은 영화 말미에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하게 될 것 같다. 끝부분에 나오는 떠돌이 베스(브래드 피트)의 '자유란 모든 것'이라는 대사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담겼다.노섭을 연기한 에지오포의 탁월한 연기와 남들을 괴롭히면서 쾌감을 얻는 악덕 지주 엡스를 연기한 마이클 파스벤더의 극악스러운 모습이 눈길을 끈다.영화는 골든글로브 작품상, 미국 제작자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했으며 다음 달 2일 열리는 아카데미영화상에서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2014-02-21 경인일보

[텔미시네]아메리칸 허슬… 스크린 휘젓는 캐릭터들 신랄하고 짜릿한 웃음

영화전문가 열광·영미권 상 휩쓸어현란한 사기기술 몇분내 관객 홀딱주·조연 4명 아카데미 후보에 올라탄탄한 이야기 '훅 지나가는 138분'미국/138분 감독 : 데이비드 O. 러셀출연 : 크리스천 베일, 에이미 애덤스, 브래들리 쿠퍼, 제니퍼 로런스개봉일 : 2014년 2월 20일. 청소년 관람 불가데이비드 O. 러셀의 '아메리칸 허슬'은 올해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와 함께 최다 후보에 올라 다관왕이 예상되는 작품이다.지난해 연말 평단과 관객들에게 공개되면서 "올해 가장 신랄하고 짜릿한 코미디"(타임) 등의 찬사를 받았다.영화는 골든글로브 3관왕, 뉴욕비평가협회상 3관왕을 포함해 각종 영미권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었다.'파이터'(2010) 이후 일취월장한 실력을 보여주는 작가주의 계열의 러셀 감독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보다도 한층 더 세련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고 찾아왔다. 영화를 보다 보면 왜 이 영화에 많은 영화 전문가들이 그처럼 열광하는지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질 법하다.닥치는 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며 꽤 재산을 모은 천재적인 사기꾼 어빙(크리스천 베일). 사람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훔치는 시드니(에이미 애덤스)마저 얻자 사업은 번창한다.그러나 잘 될 때일수록 조심해야 하는 법. 사건의 냄새를 맡는데 '개코'급인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사관 리치(브래들리 쿠퍼)가 파놓은 함정에 어빙과 시드니가 걸려들면서 이들은 쇠고랑을 찰 위기를 맞는다.리치는 장기 복역의 위기에 놓인 시드니 등에게 시장인 카마인(제레미 레너) 등 월척 4명만 잡게 해준다면 죄를 없애 주겠다는 일종의 유죄협상(플리바게닝)을 제안한다. 어빙과 시드니는 리치의 이 같은 제안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운명을 건 사기극에 뛰어든다.영화가 시작하면 어빙 역의 크리스천 베일의 거대한 뱃살이 눈에 들어온다. '파이터'와 '배트맨' 시리즈에서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던 그가 20㎏ 이상을 찌웠다. 언뜻 보아 호감가는 모습은 아니다.그러나 이 마법사 같은 배우는 머리카락도 거의 없는 가발을 쓴 사기꾼임에도 '베트콩처럼 치고 빠지는' 현란한 사기 기술로 몇 분 안에 관객들의 마음을 훔친다.에이미 애덤스, 브래들리 쿠퍼, 제레미 레너, 그리고 스물네 살에 세 번이나 아카데미 여우 주·조연상 후보에 오른 '대세녀' 제니퍼 로런스의 어마어마한 연기는 이 영화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잠깐 출연하는 로버트 드니로의 명연은 덤이다). 레너를 제외한 4명은 아카데미 남녀 주·조연상 후보에 올랐다.'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 한다'는 사기의 대원칙 아래 성격이 전혀 다른 캐릭터들은 스크린을 마음껏 휘젓고 다닌다.어빙은 천재적인 사기꾼이지만 우격다짐의 여왕 로잘린(제니퍼 로런스) 앞에서만은 기를 펴지 못하고, 리치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향해 폭주한다. "(재즈뮤지션) 듀크 엘링턴 덕택에 여러 번 목숨을 구했다"는 시드니는 사랑에 목숨을 건다."진실은 흑백이 아니라 회색 지대 어디쯤 있는 것"이라는 대사처럼, 등장인물들은 회색지대에서 살아간다. 그들의 착하기도, 나쁘기도 한 어떤 면들이 영화 속에 뒤섞여 있고, 이런 점 때문에 주요 등장인물들은 그럴싸한 매력을 하나 둘쯤 가지고 있다. 영화는 할리우드 최상급 프로덕션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배우들의 연기, 잘 짜인 플롯, 적재적소에 배치된 음악, 조명과 화면의 질감은 할리우드 A급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놀라운 질이 느껴진다.특히 1970년대에 들을 수 있는 음악과 장면들을 이리저리 배합한 장면은 관객들의 마음을 이리저리 뒤흔들 것 같다. 상영시간이 2시간 20분에 가까울 정도로 길지만 탄탄한 이야기 덕택에 훅 지나간다.과거 명작들의 향취도 느낄 수 있다. 끈끈한 인간관계 속에 숨겨진 날선 배신의 칼날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좋은 친구들'(1990) 같은 서늘한 씁쓸함을 전해주고, 머리 건드리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어빙과 리치의 모습에선 코엔 형제의 '밀러스 크로싱'(1990)에서 모자에 극도로 집착하는 가브리엘 번 같은 인물의 자취도 느껴진다.영화는 아랍의 사업가 등으로 위장한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사관이 연방의회 의원과 공직자의 비리를 적발한 '앱스캠 스캔들'을 토대로 했다./연합뉴스

2014-02-14 연합뉴스

[텔미시네]굿모닝 맨하탄

허황된 학원광고·로맨스 공감충분괄시받던 엄마의 변모 '카타르시스'2014/ 인도/ 133분감독 : 가우리 신드 출연 : 스리데비, 아딜 후세인개봉일 : 2013년 2월 6일. 전체 관람가뛰어난 요리 실력으로 남편과 자녀의 입맛을 완벽하게 책임지는 만점 주부 샤시(스리데비). 남편과 아이들이 구사하는 영어때문에 가끔 스트레스를 받긴하지만 전반적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그러나 조카 결혼 준비 때문에 뉴욕에서 한 달간 살게되면서 샤시는 곤경에 처한다. 커피전문점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다가 망신을 당하고, 지하철에서는 어디로가야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른다.온종일 영어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샤시. 그런 그녀의 눈에 '4주 완성 영어정복'이라고 새겨진 버스 광고가 눈에 들어오자, 샤시는 전화 다이얼을 누르기 시작한다. '굿모닝 맨하탄'은 영어 스트레스를 소재로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인도 영화다. 여성으로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한 여성의 성장영화라 봐도 무방하다.새해와 방학만 되면 문전성시를 이루는 영어학원이 산재한 '영어공화국'에 사는 우리의 현실과도 어느 정도 맞닿아있어 영화를 보다 보면 공감할만한 장면들이 꽤 있다.특히 학원에서 벌어지는 로맨스, 한 달 안에 영어를 완전히 숙달시켜주겠다는 허황한 광고 등은 우리 학원가에서도 익숙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음식점에서 영어를 못해 당황했거나 외국 여행가서 영어때문에 창피했던 기억이 있는 관객들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영어를 소재로 한 에피소드가 영화의 주동력이긴 하지만 남존여비가 횡행하는 인도의 차디찬 현실도 곁들인다. 무시당하는 아내, 괄시받는 엄마에서, 영어 잘하는 멋진 아내와 엄마로 변모하는 장면이 낯간지럽지만 약간의 카타르시스도 준다.인도의 국민배우라는 스리데비의 열연과 맥락과는 상관없이 꼭 등장하는 인도 영화 특유의 춤과 노래도 흥을 돋운다. 가우리 신드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았다./연합뉴스

2014-02-07 연합뉴스

[텔미시네]인사이드 르윈… 밤무대 가수의 넝마같은 삶 '한 푼의 유머' 로 견뎌내다

2013/미국/105분. 감독 : 조엘 코엔, 에단 코엔출연 : 오스카 아이삭, 캐리 멀리건개봉일 : 2014년 1월 29일. 15세이상 관람가영화가 시작하면 카메라는 한 가수의 모습을 비춘다. 애절한 포크음악을 부르는 이는 밤무대 가수 르윈 데이비스. 카메라는 음악의 진행에 따라 점점 클로즈업으로 르윈에게 다가간다. 이제부터 마치 르윈의 내면을 들춰보겠다는 듯이.영화 '인사이드 르윈'(원제: Inside Llewyn Davis)은 영화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해주는 수작, 아니 걸작이다.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심금을 울리는 음악, 무엇보다 조명과 화면 배치,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난 속에서 공전하는 르윈의 삶과 그 넝마 같은 삶의 조각 속에도 반짝이는 유머들.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는 형제 감독 중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미국의 코엔 형제는 1960년대를 살았던 한 뮤지션의 이야기를 통해 삶을 사색하고, 풍자하다가 결국엔 시(詩)로 마무리한다.뉴욕 밤무대에서 활동하는 포크가수 르윈(오스카 아이삭). 꿈 하나 믿고 음악을 계속 했지만, 성과는 창고 속에서 썩는 앨범 한 장뿐. 게다가 듀엣으로 함께 활동했던 파트너는 강에 투신자살해 지금은 홀로 연주한다. 집도 없다. 친구 짐(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여자친구 진(캐리 멀리건)의 집에 얹혀살다가 아는 교수의 집에 가서 자기도 하고, 녹음을 위해 처음 만난 뮤지션의 집에 하룻밤 신세를 지기도 한다.음악을 한다는 자부심 하나만으로 견뎌온 그이지만 삶은 그에게 늘 불친절하다. 일자리를 찾아 '500마일' 멀리 떨어진 시카고로 떠나지만, 돌아오는 건 앨범 제작자의 충고뿐. 시린 눈발만 날리는 시카고에서 이제 그는 어디로 가야할까. 르윈의 삶은 뒤죽박죽이다.친구의 여자친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그녀는 임신한다. 부주의한 행동 탓에 잠시 맡고 있던 지인의 고양이는 사라진다. '설상가상'의 일은 앞다투어 그의 삶을 빼곡히 채운다.기타를 매만지는 장면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장송곡)이 나왔던 것처럼, 음악을 하는 그의 삶에 죽음과 불행의 그림자는 늘 서성인다.스토리와 캐릭터의 상황만 봤을 때 영화는 비극 그 자체다. 그러나 현인의 반열에 오른 코엔 형제는 삶이란 그런 것이고, 그래서 그저 한 푼의 유머로 견뎌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시리어스맨'(2009·코엔형제)에서 불가해한 고통이 이유도 없이 삶을 폭격했다면, '인사이드 르윈'에선 주인공도 예상하는 고통이 그의 삶에 불청객처럼 자꾸 끼어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행에 지친 르윈이 영화 막판 짓는 관조하는 듯한 웃음에 우리가 한없이 처연해지는 건, 삶을 관통하는 비극이 그 웃음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몇 개의 코드로 진행되는 담담한 포크 음악 같은 담백한 연출 속에 보석 같은 장면들이 이어진다. '행 미, 오 행 미'(Hang me, Oh hang me), '500마일'(Five hundred Miles) 같은 부드럽고 애달픈 노래들이 귓가를 위로하고, 한 줌의 조명과 느린 카메라의 움직임은 눈을 채우고 가슴을 뛰게 한다. 단순함 속에 거장의 솜씨가 빛을 발한다.신인급 연기자 오스카 아이삭의 연기가 놀랍고, 캐리 멀리건은 여전히 아름답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변신도 새롭다. 코엔 형제는 이 영화로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연합뉴스

2014-01-23 연합뉴스

[텔미시네]남자가 사랑할 때… 황정민 그리고 지루함

2014년/한국/120분.감독 : 한동욱출연 : 황정민·한혜진개봉일 : 2014년 1월 22일.밑바닥 인생을 살던 남자. 그 남자의 맹목적인 사랑. 그 맹목적인 사랑에 감동하는 여자. 그 남자의 시한부 인생. 남자가 떠나고 홀로 남은 여자의 슬픔.여기에 그 여자를 지키기 위한 그 남자의 희생이 있고 그 희생은 비열함의 끝을 모르는 양아치 세상의 폭력을 홀로 감당해 내는 것이다. 난생 처음 사랑을 안 남자는 가족의 소중함도 깨닫는다.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는 모든 신파의 집적이다. 그 시작과 끝은 황정민이다. 황정민이 나오지 않는 장면이 거의 없을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이끌고 가는 그는 익숙한 말투와 표정으로 무식하고 잔인하다가 순박하고 따뜻하며 결국 눈물을 쏟는다.태일(황정민 분)은 채무자 앞에서 휘발유를 마셔가며 돈을 받아내는 사채업체 부장이다. 병원에 누워있는 중환자에게 돈을 받으러 갔다가 아버지를 간호하는 호정(한혜진 분)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무작정 찾아가 툭툭 말을 건네보지만 돌아오는 건 두려움과 경멸이 담긴 싸늘한 눈빛. 호정이 병원비도 카드 값도 못 내는 처지라는 것을 안 태일은 하루에 한 시간씩 만나주면 빚을 제해주겠다는 각서를 내밀고, 밥상에서 돌아앉아 있던 호정도 아버지를 목욕시키고 장례식의 상주를 자처하는 그를 보고 마음을 연다.호정을 위해 마지막으로 나섰던 도박판에서 친구이자 사채업체 사장인 두철(정만식)의 배신으로 호정과 함께 닭집을 차리려던 3천만원만 잃고 교도소로 들어가고, 2년 뒤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호정에게 돌아온다. 초반부에서 가볍게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마저 없어진 후반부는 다소 지루하게 이어진다./연합뉴스

2014-01-17 연합뉴스

[텔미시네]수상한 그녀… 청춘, 빛나는 전성기로의 시간여행

2014년/한국/124분감독 : 황동혁출연 : 심은경·나문희·박인환개봉일 : 2014년 1월 22일.15세이상 관람가'수상한 그녀'는 시간여행을 통해 젊은 시절로 돌아가 가수의 꿈을 이루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이른바 '타임슬립' 영화다.실정법 도입까지 끌어낸 '도가니'(2011)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전작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한없이 가볍고 유쾌한 상업영화를 들고 나왔다.아들 자랑이 유일한 낙인 오말순(나문희) 여사는 며느리를 구박하고 손녀 대신 손자만 편애하는 70대 할머니.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좋아하는 박씨(박인환)와 알콩달콩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가족들이 자신을 요양원으로 보내려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듣고 충격에 휩싸인다. 상심한 마음에 발길 닿는대로 걸어가던 말순은 길가에 있는 청춘사진관에 들어가 영정 사진을 찍는다.사진관을 나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버스에 올라탄 말순은 젊은이들이 접근해 와 자신을 희롱하자 대로한다. 젊은이들의 뜨악한 반응에 이상함을 느낀 말순은 버스 차창 밖에 비친 자신의 얼굴(심은경)을 보고 깜짝 놀란다.영화는 청춘 영화와 타임슬립형 영화들이 가진 사랑과 꿈, 추억 등 다양한 소재를 버무렸다. 20대에 갓 접어든 심은경이 70대 노인의 정서까지 품어 안는다.그야말로 원맨쇼다. 구수한 사투리를 쓰며 젊은 청년들의 마음을 훔쳐보기도 하고, 노래도 다양한 창법을 섞어 마음껏 부른다.'써니'(2011)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심은경은 후줄근한 바지에서 최신 유행복까지 팔색조로 변하는 말순의 의상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제법 차지게 소화했다. 대가급 연기자인 나문희와 박인환은 중심을 탄탄히 잡으며 극에 안정감을 부여한다.평생 '주인 아가씨'를 짝사랑한 박씨의 사연은 애틋하고, 말순의 그악스러움도 눈길을 끈다. 취업 재수생 반한나(김슬기)와 음악에만 빠져있는 반지하(진영)의 모습에선 '88만원 세대'의 잔영도 언뜻 엿볼 수 있다.아울러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기시감도 떠오른다. 젊은 말순을 좋아하는 손자의 모습에선 '백투더퓨처'(1985)에서 과거로 돌아간 아들을 사랑하게 된 엄마의 이야기와 오버랩된다.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모든 사건을 끝내는 정형화된 결론과 내용에 비해 긴 상영시간, 큰 서사에서 오는 웃음보다 단발적인 웃음에 치중한 점은 다소 아쉽다./연합뉴스

2014-01-10 연합뉴스

[텔미시네]플랜맨… 초반-후반부 상반된 분위기

2014년/한국/115분감독 : 성시흡출연 : 정재영, 한지민개봉일 : 2013년 1월 9일. 15세 이상 관람가1분1초 계획하는 결벽남에게계획에 없던 재앙이 찾아오다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한정석(정재영 분)은 자고 일어나 침구를 다림질하고 샤워를 한 뒤에는 샤워 커튼의 물기마저 드라이어로 모두 말려야 성에 찬다.출근할 때 건널목 건너는 시간, 편의점에 들어서는 시간도 모두 손목시계의 분 단위 알람에 맞춰져 있다. 모든 일을 자신이 정해놓은 정석대로 처리 하지 못하고 1분, 1초라도 틀어지기라도 하면 그에겐 거의 재앙이다.매일 같은 시간 찾는 편의점에서 자신처럼 삼각김밥 줄을 맞추고 손이 벗겨지도록 손을 씻는 여자(차예련 분)에게 사랑 고백을 하지만 여자는 자신과 똑같은 남자는 싫다며 거절한다.짝사랑을 포기할 수 없어 처음으로 무계획적인 삶을 살기로 한 정석에게 인디밴드 보컬인 소정(한지민 분)은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밴드 오디션에 함께 나가자는 황당한 제안을 한다. 정재영은 플랜맨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 캐릭터밀착형 연기로 시선을 모으면서도 과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웃음을 자아낸다.더불어 온갖 트라우마, 공포증, 콤플렉스 등 플랜맨으로 대표되는 현대인들이 가진 상처를 보듬으며 감동까지 전한다.특별한 캐릭터로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움직인다.극단적으로 계획적인 플랜맨과 정반대로 계획이랑 담을 쌓은 여주인공 소정 역의 한지민 역시 자신이 가진 매력을 발산한다. 그러나 작위적인 설정으로 볼 수밖에 없는 플랜맨과 정반대의 캐릭터는 흥미를 반감시킨다. 평범하지 않은 남녀가 크고 작은 소동을 겪으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결국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의 과정은 때로는 소소하게, 때로는 폭소를 자아낼 정도로 웃음으로 채웠다.하지만 밝고 통통 튀던 분위기는 정석의 아픈 과거를 보여줄 때 과도한 무게에 덜커덕 걸려 버린다. 전반부는 캐릭터에서 나오는 재미들로 유쾌하게 흘러가지만, 후반부에는 한정석의 과거사를 성급하게 풀어내느라 영화가 가진 장점의 빛이 바랜다.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2006)에 조감독으로 참여하고 몇 편의 단편 영화로 상을 받은 성시흡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민정주기자

2014-01-03 민정주

[텔미시네]셜리에 관한 모든 것… 그림 속에 잠자던 드라마 '생명을 얻다'

에드워드 호퍼 13편 그림 토대美현대사 변곡점 女배우 삶에 녹여정밀한 미술·훌륭한 연기 불구힘 없는 이야기 아트영화 못벗어나감독 : 구스타브 도이치출연 : 스테파니 커밍, 크리스토프 배치개봉일 : 12월 26일. 15세이상 관람가그림을 보다 보면 어떤 그림들은 오랜 시간 마음에 남는 경우가 있다. 노동에 지친 여인이 먼 산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그린 로트렉의 '세탁부'나 유다의 배신을 암시하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같은 그림들이 그러하다. 미술평론가 곰브리치가 말한 것처럼 어떤 그림에는 '드라마와 흥분'이 존재한다.'셜리에 관한 모든 것'(원제 Shirley: vision of reality)은 그림 속에 잠자는 꿈틀대는 드라마를 영상으로 끄집어낸 독특한 작품이다. 현대 미국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가 그린 13편의 그림을 토대로 했다.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은 서로 다른 그림 속 주인공을 '셜리'라고 명명하고, 필름 속에서 노닐도록 생명을 불어넣었다. 감독은 가공의 인물 셜리를 통해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격변하는 미국의 사회상을 담아냈다.이야기는 단순하다. 셜리(스테파니 커밍)는 라디오를 즐겨 들으며 영화와 연극 보는 것을 좋아하는 배우다. 남편과의 사이도 나쁘지 않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매카시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영화계는 잦은 고발로 인한 혼란이 발생하고, 셜리는 정신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영화는 세월과 함께 늙어가는 배우 셜리를 보여주는데 치중한다. 주식시장의 붕괴,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매카시즘 광풍, 마틴 루터 킹의 죽음 등 미국 현대사의 변곡점들이 셜리라는 인물 속에 녹아있다.90여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30년의 세월을 담았으나 이야기의 진행은 상당히 더디다. 마치 낮잠에서 막 깬 판다처럼 느린 카메라는 천천히, 하지만 깊이 있게 셜리의 내면을 들여다본다.사랑하는 사람과 맞이한 찬란한 아침, 밀고가 횡행하는 시대의 배덕, 민감한 예술가들에게 종종 찾아오는 불면의 고통 등 사랑의 아름다움과 불안을 머금은 시대의 공기가 영화를 휘감는다. "다 녹기 전에 생의 아이스크림을 즐기라"는 에피쿠로스적인 세계관이나 플라톤의 '이데아론' 같은 사변적인 철학도 셜리의 내레이션을 통해 관객에게 다가간다. 다분히 이론적인 설명이 아니라 삶 속에 묻어 있는 철학이 영화 속에서 생동한다.영화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우아하고 미술은 정밀하다. 마치 현대 극사실주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원색의 향연이 돋보인다. 주인공 스테파니 커밍과 그녀의 남편 역을 맡은 크리스토프 배치의 연기는 연기인지 실생활인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다.그러나 이러한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아트영화를 지향한 듯 난해하다.특히 특정한 이야기가 없어서 감상에 따라 이 산으로도 저 산으로도 갈 수 있다. 그런 무정형의 여행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반길만하지만 정해진 목표를 가려는 관객은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겠다./연합뉴스

2013-12-27 연합뉴스

[텔미시네]변호인… 세속적 송변의 예상못한 출구 '인권'

1981년 용공조작 '부림사건' 소재휘발성 강한 '노무현' 이상적 대사인생의 변곡 능숙연기 '역시 송강호'013/한국/127분/드라마 감독 : 양우석출연 : 송강호, 김영애, 오달수 개봉일 : 12월19일. 15세 이상 관람가대전지법 판사를 그만 두고 부산으로 내려와 변호사를 개업한 송우석(송강호). 부동산 등기와 세금 전문변호사로 명성을 날리며 큰 돈을 만진다.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송 변호사에게 어느 날 몰골이 추레해진 단골 국밥집 주인 순애(김영애)가 찾아와 아들 진우(임시완)의 변호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정 때문에 교도소를 찾아간 송 변호사는 혹독한 고문에 이성마저 잃은 진우의 상태를 보고 분개한다.진우가 읽었다는 이적물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밤새워 읽은 송 변호사는 인권변호사인 선배를 찾아가 진우가 연루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변호를 맡겠다고 자청한다.'변호인'은 1981년 군사정권이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고자 조작한 용공사건인 '부림사건'이 소재다. 고졸 출신 판사에서 부림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로 탈바꿈한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영화는 시대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이 돈만 밝히던 변호사가 학습과 변호를 통해 세상을 알게 된다는 내용을 성장영화의 공식에 맞춰 포장했다.학생운동을 "공부하기 싫어서 데모하는 거지"라고 깎아내렸던 송 변호사는 고문받은 진우를 보고 "이런 게 어디 있어요?"라고 분개하며, 시국사건 변호를 맡으면서는 "내 자식들은 이런 세상에 살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성장한다.이런 인생의 변곡점을 능숙하게 타 넘는 송강호의 연기가 훌륭하다.세속적인 변호사를 보여주면서는 유머를 적절하게 섞어가며 극에 재미를 부여하고, 법정에선 인권변호사로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파트너인 사무장 동호 역을 맡은 오달수를 비롯해 용공사건을 주도하는 차 경감 역의 곽도원, 판사 역을 맡은 송영창의 연기도 눈길을 끈다.이 영화의 최대 강점은 휘발성 강한 '노무현'이라는 소재를 '정의, 민주, 공화'라는 이상적인 대사들로 포장하며 살려냈다는 점이다. 눈물과 웃음을 적절하게 구사하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둬온 투자·배급사 NEW의 색깔도 드러난다.그러나 인권변호사로 변신하는 송우석에 대한 다층적인 캐릭터 분석이 아쉽고,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점은 영화의 아킬레스건이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동시에 일어났던 밀도 높은 시대인 1980년대에 상식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고 밝혔던 신예 양우석 감독이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았다./연합뉴스

2013-12-20 연합뉴스

[텔미시네]호빗 : 스마우그의 폐… 난쟁이, 판타지의 판을 키우다

감독 : 피터 잭슨출연 : 마틴 프리먼, 이안 맥켈런, 리처드 아미티지개봉일 : 2013년 12월 12일.12세 관람가.상영시간 : 161분전편 비해 이야기 전개 속도↑짜임새도 더해 긴장감 절정감탄 자아내는 선명한 화질일부 관객 거부감 느낄수도'호빗:스마우그의 폐허'는 지난해 선보인 '호빗:뜻밖의 여정'(2012)의 속편이다. 느릿느릿 진행되던 전편에 비해 속편의 속도는 무척 빨라졌다.요정의 숲을 지나 인간의 마을을 거쳐 에레보르 왕국까지 빠르게 질주한다.에레보르 왕국을 되찾고자 원정을 떠났던 빌보 배긴스(마틴 프리먼)와 난쟁이족의 후예 소린(리처드 아미티지) 등은 왕국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어둠의 숲에서 엘프족의 왕자 레골라스(올랜드 블룸)의 급습을 받는다.속절없이 엘프족에게 감금당한 원정대는 절대반지로 투명인간처럼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는 배긴스의 기지 덕택에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그들의 뒤를 쫓던 오크족의 공격에 또다시 위기에 몰린다.몇몇 인상적인 장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특히 커트를 거의 분할하지 않고 길게 찍은 계곡 전투 장면은 이 영화의 기술적·예술적 성취를 드러낸다.드럼통에 의지해 물길을 따라 도주하는 호빗과 그들을 죽이려는 오크족, 또 호빗을 잡고 동시에 오크족을 물리치려는 요정족이 뒤섞이면서 발생하는 혼란을 탄탄한 리듬감으로 살려냈다.거미의 공격을 피하는 호빗족의 모습은 의자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스릴감을 안겨준다.세트는 정교하고, 영화를 꾸미는 미술도 섬세하다. 이야기의 구조도 꽤 짜임새가 있다. 절정을 향해가는 긴장감이 극을 휘감는다.다만, 화면은 다소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화질은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지만, 영화보다는 디지털 TV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인상주의 그림에 익숙한 관람객이 극사실주의 그림을 감상할 때의 당혹감이 든다.J.K 톨킨의 원작 소설을 토대로 했다. 3편으로 기획된 '호빗시리즈'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시대적 배경보다 앞선 프리퀄(앞 이야기)이다.'호빗 3편'은 내년 12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피터 잭슨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한편, '외화 부율'(극장과 배급사 사이의 입장권 수익 분배 비율) 문제를 둘러싸고 배급사와 극장간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어 일단 서울지역에서는 이 영화를 개봉 당일 못 볼 가능성이 커졌다.CGV는 기존 60대 40으로 나눴던 흥행수입을 지난 9월부터 50대 50로 변경했고, 외화를 직수입하는 배급사들이 이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연합뉴스

2013-12-13 연합뉴스

[텔미시네]글로리아…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 가르시아 눈부신 호연

2013/스페인/110분/드라마감독 : 세바스티안 렐리오출연 : 폴리나 가르시아, 세르지오 헤르난데즈, 디에고 폰테실라개봉일 : 2013년 12월 5일.청소년관람불가아이는 다 커서 제 품을 떠났다. 남편과는 오래 전 헤어졌다. 회사에선 유령처럼 지낸다.적적함을 벗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50대 여성 글로리아.녹내장을 걱정해야 하는 그녀에게 느닷없이 한 남자가 다가온다. 삶에 닳고 닳은 그녀는 다시 사랑 속으로 뛰어들 수 있을까.어쩌면 인생은 망가지고 추스르며 다시 걸어가는 과정의 연속일는지 모른다. 녹내장을 걱정해야 할 나이여도 그 과정을 반복하기는 마찬가지다.고통이 익숙해 어떻게 견디는 방법을 알 뿐, 인생에서 고통의 총량은 줄지 않는다. 때론 먹먹하고 답답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게 인생 아닌가.영화 '글로리아'는 삶이란, 이처럼 쓸쓸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한 줌 희망을 품고 견디다 보면 좋은 날이 있을 거라며 우리를 위로한다.칠레 수도 산티아고. 밤이 찾아오면 싱글 클럽에서 춤추던 이혼녀 글로리아(폴리나 가르시아)는 이혼남 루돌프(세르지오 헤르난데즈)와 하룻밤을 보낸다.한 번의 풋사랑인 줄 알았던 만남은 루돌프의 구애로 횟수를 늘려간다.여리고 착하며 부드러운 루돌프에게 글로리아의 마음은 조금씩 허물어진다. 글로리아는 아들의 생일날, 루돌프를 데리고 딸과 전 남편을 만난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루돌프가 갑작스레 사라지자 글로리아는 당황한다.영화는 여자에게 50대란 어떤 의미인지 질문한다.아마 가족사진을 보고 깔깔 웃는 나이, 딸이 받은 프러포즈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리는 나이, 군살이 몸의 이곳저곳을 휘두르지만 남자 친구에겐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나이, 처녀 시절 남자 주변의 여자들이 힘들게 했다면, 이제는 남자의 딸들이 힘들게 하는 나이, 마음을 여러 차례 수술해도 찾아오는 사랑의 봄바람은 막을 수 없는 나이….칠레의 세바스티안 렐리오 감독은 50대 여성이 느낄 수 있는 이러한 여러 감정의 결을 촘촘하게 엮어낸다. 아무 것도 아닌 듯 담담하게, 한 여인의 일상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영화는 결국에 큼지막한 파도를 일으킨다.글로리아를 연기한 폴리나 가르시아의 호연은 가히 눈부시다.세밀한 표정연기는 물론 노출연기까지도 과감하다.외로움 속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과거를 추억하고, 아직도 꿈의 조각은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산전수전 다 겪은 여인의 풍상을 사실적으로 그렸다.특히 모든 쓸쓸함과 고독, 고통이 지나가고 나서 노래 '글로리아'에 맞춰 막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은 마음에 깊이 각인될 만하다.가르시아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여우주연상을 받았다./연합뉴스

2013-12-06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