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미시네

 

[텔미시네]무한대를 본 남자

지나친 영특함은 독이되기도 한다.숫자의 세계보다 훨씬 복잡한 '차별의 세상'에서 기득권 밖에 있는 사람이 기득권층보다 더 능력을 가졌을때 기득권층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감독 : 맷 브라운■출연 : 데브 파텔, 제레미 아이언스■개봉일 : 11월 3일 ■드라마 / 108분 / 12세 이상 관람가'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지적인 빼어남이 이성적 매력으로까지 연결되는 시대다. '똑똑함'은 인류가 농경시대와 봉건시대를 벗어난 이래 개인의 지위를 결정지을 수 있는 수단이자,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무기 역할을 해 왔다. 능력을 가진 자가 존중받고 대접받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순리다.그러나 지나친 영특함은 독이 되기도 한다. 신분제라는 전혀 영특하지 못한 제도 아래에서, 특히 그 중 하층민으로 취급되는 사람에게 깃들수록 더욱 그렇다. 지적 능력은 자신을 구원할 열쇠가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땡볕 아래 돋보기 처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부조리함을 더욱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의 실제 주인공인 인도 출신 수학자 '라마누잔'의 삶도 그랬다. 그는 19세기 말 식민지배를 받는 나라에서 태어나 그 중에서도 최하층 계급으로 분류돼 빈민가를 전전하며 살았다.라마누잔은 천재였다. 그의 천재성을 발견한 것은 영국 왕립학회의 괴짜 수학자 하디 교수였다. 교수의 도움으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건너간 라마누잔은 비로소 그의 천재성을 발휘하며 '제2의 뉴턴'이라 칭송받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실화에 입각한 영화는 기득권 밖에 있는 사람이 기득권 층보다 더 큰 능력을 가졌을 때 기득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단지 식민지인에 불과한 인도인 라마누잔에게 쏟아진 것은 영국 학자들의 지독한 시기와 편견이었다. 숫자의 세계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힌 차별의 세상에서 라마누잔을 지탱해준 건 수학에 대한 열정을 공유한 멘토 하디 교수였다. 때문에 영화는 라마누잔의 놀라운 능력과 함께 둘 사이에 싹트는 우정에 주목하며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갈등구조를 잔잔하게 풀어간다.그러나 실제 모델인 라마누잔이 너무도 뛰어난 탓일까? 시종일관 튀어나오는 그의 천재성과 공식들은 설명 없이 간결하면서도 대단히 복잡해서 일반 관객들이 이해하긴 어렵다. 영화라는 매체의 한계일 순 있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관객의 논리적 추론이 영화를 따라가지 못하게 하는 거친 연출이 아쉽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사진/ 판시네마 제공

2016-11-02 권준우

[텔미시네]닥터 스트레인지

화려한 그래픽 압도… 첫 시리즈 성공적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시크함·유머 매력■감독 : 스콧 데릭슨■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레이첼 맥아담스, 틸다 스윈튼■개봉일 : 10월 26일■액션·판타지 / 115분 / 12세 이상 관람가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기다렸던 열성팬처럼, 히어로 무비 팬들에게 마블의 신작 '닥터 스트레인지'는 '당연히 봐야 할 영화'다. 이런 영화에 고정된 흥행이 뒤따르는 것은 예견된 일이지만, 닥터 스트레인지가 단독 시리즈로도 명성을 누리고 있는 히어로 선배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닥터 스트레인지'는 여러 의미로 기존 히어로 무비와 결이 약간 다르다. 기존 시리즈에선 볼 수 없었던 마법을 주 무기로 하고 있는데다, 원작을 놓고 봐도 여타 마블 히어로들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가진 영웅을 다뤘다. '셜록'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배우인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특유의 시크함과 유머코드로 매력을 발산한다.영화는 천재 신경외과 전문의인 닥터 스트레인지가 자동차 사고로 의사 생명을 잃고, 재활을 위해 찾아간 네팔 카트만두에 있는 카마르-타지에서 어둠의 세력에 맞서온 절대자인 에이션트 원을 만나 힘을 전수받으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불을 뿜고 번개를 날리는 1차원적 마법이 아니라 시공간을 뒤틀고 유체를 넘나드는 등 영화적 기술이 구현할 수 있는 대부분의 볼거리를 총망라하고 있어 눈과 귀가 즐겁다.영화에 드는 의구심은 2가지로 압축된다. '과연 시리즈물을 보지 않은 관객도 사로잡을 수 있을까'와 '새로운 히어로가 독립된 시리즈와 어벤저스에서 어느 정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가 그것이다.첫 번째 의구심에 대해 '닥터 스트레인지'는 꽤 만족스러운 성과를 보여준다. 새로운 히어로의 첫 시리즈인데다 영화 '인셉션'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그래픽에 뒤틀린 시공간을 적절히 활용하는 영화적 아이디어가 더해져 탄성을 자아내는 장면들이 넘쳐난다.그러나 두 번째 의구심인 독립된 시리즈로서의 성공과 어벤저스 안착에 대해선 물음표가 남는 게 사실이다. 영화는 비록 새로운 소재와 주인공을 다루고 있지만 '특이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 위기를 겪던 중 기연을 얻어 히어로의 힘을 얻고, 이를 활용해 적을 물리친다'는 마블의 전형적 서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아이언맨' 등 인기 시리즈물이 가진 흥행 포인트인 매력적 조연과 주인공의 고뇌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이미 수많은 히어로가 포진하고 있는 어벤저스에서도 특별한 힘을 가진 조력자 역할에 그치지 않을까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내후년에 개봉할 어벤저스의 뚜껑을 열어봐야 알 일이지만 현재로선 많은 분량을 차지하긴 어려울 듯하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2016-10-26 권준우

[텔미시네]걷기왕

선천적 멀미증후군 여고생 '만복' 경쟁사회 향한 유쾌한 반란'담임' 김새벽 코믹연기에 준비된 신예들 총출동 기대감 높여■감독 : 백승화■출연 : 심은경, 박주희, 김새벽, 허정도, 윤지원■개봉일 : 10월 20일 ■드라마/93분/12세 이상 관람가여고생 만복은 선천적 멀미증후군 때문에 세상의 어떤 교통수단도 탈 수 없다. 그래서 오직 두 다리로, 왕복 4시간 거리의 학교를 오간다. 만복의 사연을 들은 담임 선생님은 그녀에게 딱 맞는 운동을 추천한다. '경보'다. 공부는 싫고, 운동은 쉬울 것 같아 시작했는데,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것 같은 경보를 통해 좌충우돌하며 의지와 기쁨을 찾는다. 백승화 감독은 "'청춘이니까 더 열심히 뛰어!' 라는 충고가 아닌, 조금은 느리고 가끔은 미끄러지기도 하는 지금 너의 모습도 괜찮다고 응원과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했다.만복 역의 심은경은 특유의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며 무한 경쟁 사회를 향한 유쾌한 반란으로 웃음을 선사한다. 오랜만에 고등학생 연기를 선보인 그녀는 "학생 역을 다시 맡게 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을 수 있을 정도로 욕심나는 작품이었기에 선택했고, 10대 연기를 통해 오히려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도 영화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배우 김새벽은 '담임 선생님' 역을 맡아 거침없는 코믹연기를 선보인다. 자기계발서를 극단적으로 신봉하고 꿈과 열정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는 '담임' 캐릭터와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쿨하고 시크한 육상부 선배 '수지' 역은 박주희가 맡았다. 영화 '마녀', '거인' 등 2009년부터 크고 작은 영화에서 실력을 다져온 준비된 신예다. 여기에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 '판타스틱' 등 드라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인 윤지원, 6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연극 '렛미인'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알린 안승균, 인기 그룹 'FT아일랜드'의 멤버에서 첫 영화 연기에 도전한 이재진까지, 충무로의 가장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한다.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CGV아트하우스 제공

2016-10-19 민정주

[텔미시네]럭키

킬러-무명배우 뒤바뀐 삶 전형적 전개두개의 이야기축 나눠 편안한 웃음 선사■감독 : 이계벽■출연 : 유해진, 이준, 조윤희, 임지연■개봉일 : 10월 13일■코미디/113분/15세 이상 관람가신 스틸러(scene stealer)는 독특한 개성과 출중한 연기력으로 주연에게 향하는 시선을 말 그대로 '훔쳐가는' 조연을 뜻한다. 연기력이 자부심인 배우들에게 이는 최고의 찬사다. 관객들은 스크린에서 이들의 활약을 눈으로 쫓기 바빴고, 자연스레 신 스틸러들의 활약 정도는 영화의 흥행성적과 곧바로 이어졌다.'신 스틸러=흥행'의 구도가 공식화되자 영화계는 마치 열풍처럼 이들을 주연으로 내세운 영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깨가 무거웠던 탓일까. 포커스 변두리에선 미칠듯한 존재감을 뽐내던 이들이 자신에게 집중된 카메라 앞에서는 영 맥을 못 췄다. '천만요정' 오달수 주연의 '대배우'가 그랬고, 영화 해운대를 천만 반열에 입성시킨 김인권이 주연으로 나선 '약장수'도 마찬가지였다. 반복된 흥행실패는 어느새 관객들 뇌리에 '신 스틸러 주연의 영화는 재미없다'는 공식을 심어놓기에 이르렀다.여기에 이계벽 감독은 하나의 카드를 던진다. 영화계의 대표적 신 스틸러인 유해진을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단독이 아닌 배우 이준과의 공동주연이라는 묘수를 꺼내 든 것이다.결론부터 말하면 대성공이다. 두 명의 주연을 중심으로 두개의 축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영화가 유해진 한 명에 의존한다는 느낌을 자연스레 지워준다. 그러면서도 주연에 걸맞은 분량을 확보한 신 스틸러 유해진은 아예 하나의 신이 아니라 필름 전체를 '싸그리' 훔쳐버렸다.영화의 내용은 꽤 단순하다. 성공률 100%의 명성으로 부와 실력을 갖춘 킬러와 자살을 결심했던 무명배우가 우연한 기회로 삶이 뒤바뀐다. 기억을 잃은 킬러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해 고분분투하고, 목을 매려던 옥탑방에서 킬러의 펜트하우스로 거처를 옮긴 무명배우는 어쩌다 킬러의 과업까지 떠맡으며 혼란을 겪는다. 코미디라는 장르를 떠나서도 영화의 전개는 대단히 전형적이다. 풀려야 할 갈등은 저절로 풀리고 끝나야 할 싸움은 시간이 지나며 끝난다. 뒤통수가 얼얼한 반전의 묘미는 사실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그러나 냉혹한 킬러가 기억을 잃고 자신을 무명배우라 착각하며 살아가는 그 반전의 삶은 배우 유해진에게 최고의 놀이터를 제공했다. 극 중 인물의 달라진 인격과 변해가는 성격에 따라 유해진은 매번 새로운 사람처럼 새로운 신을 연거푸 훔쳐내며 관객의 눈을 계속 사로잡는다. 그러다 보니 심심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해지고, 소소한 상황에도 웃음이 터진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대도' 유해진의 다재다능함이 역시나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공동주연 이준의 존재감마저 훔쳐갔다는 점이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쇼박스 제공

2016-10-12 권준우

[텔미시네]그물

김기덕 감독 22번째 작품 '착한 연출'남북경계선 넘은 북한 어부의 이야기■감독 : 김기덕 ■출연 : 류승범, 이원근, 김영민■개봉일 : 10월 6일 ■드라마 / 114분 / 15세 이상 관람가올 한해,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 신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영화는 '곡성'이다. 무언가를 잘못했기에, 말 못할 금기를 범했기에 선택된 것이 아니라 별 이유 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드리운 낚싯바늘에 하필 내가 걸렸기에 불행이 찾아든다는 서사는 큰 힘 앞에 속수무책으로 던져진 인간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김기덕 감독의 22번째 신작 '그물'도 비슷한 서사를 다루고 있다. 곡성의 불가항력이 한 인간과 그를 넘어선 영적 존재 간의 차이로 빚어진 현상이라면, 그물에선 불가항력을 선사하는 주체가 국가적 폭력으로 대체됐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러나 관객이 느낄 소스라침의 농도로 봤을 때 영화 '그물'에서 한 인간을 찢어발기고 내팽개치는 국가폭력의 잔혹함은 초자연적 악령으로 표현된 곡성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영화가 내포한 잔혹함이 특유의 '김기덕스러움'에서 기인한 것은 결코 아니다. 감독은 섹스와 폭력으로 대표되는 과한 묘사를 최대한 절제했고, 김기덕 영화로선 이례적으로 청소년도 관람할 수 있는 착한 연출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는 '그물'을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잔혹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고 자평했다.영화는 배가 고장나 의도치 않게 남북 경계선을 넘게 된 북한 어부 남철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강물을 따라 쓸려 내려왔을 뿐이지만 남측 조사관은 철우를 '간첩'이라는 틀에 맞춰놓고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한다. 철우의 괴로움은 아랑곳 없다. 조사관에게 이는 아무런 감정 없이 진행하는 하나의 절차일 뿐이다. 철우는 결국 입을 닫는다. 결국 철우는 간첩 혐의를 벗지만 국가가 가하는 폭력은 멈춰지지 않는다. 이어지는 건 회유의 탈을 쓴 사상의 강제주입이다. 철우는 "북으로 돌려보내 주시라요"라는 말을 반복하지만 회유의 수위는 점점 정신적 폭력에 가까워진다. 마치 '멍청아. 자본주의가 이렇게 위대한데 너흰 아무것도 모르니 그러고 있는거지'라고 말하는 듯하다.물론 북한의 억압적 삶에 비해 남한의 자유는 관객들에게 훨씬 설득력 있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철우가 남측 정부기관의 귀화 작전으로 명동 한복판에 강제로 놓인 상황에서 끝내 감은 눈을 뜨지 않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철우는 눈을 뜨지 않은 것에 대해 "보지 않아야 북측으로 돌아가 말할 것도 없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이는 그가 진정으로 두려워한 것이 남측의 강압적 태도가 아니라 돌아갈 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국가적 폭력이라는 것을 시사한다.스크린에 다 담기지 않은, 앞으로 그 앞에 펼쳐질 또 다른 고행을 상상하면 이 영화는 김기덕 필모그라피 중 손꼽히게 잔혹한 작품이 맞다. 자본주의의 씁쓸한 뒷맛과 공권력이 부리는 초월적 폭력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데올로기 대립의 무서움을 다시금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사진/NEW 제공

2016-10-05 권준우

[텔미시네] 아이 엠 어 히어로

탄탄한 만화 원작 현실감있게 스크린에 담아내선혈낭자 잔인한 액션… 루저의 영웅탄생 통쾌■ 감독 : 사토 신스케■ 출연 : 오오이즈미 요, 나가사와 마사미, 아리무라 카스미, 요시자와 히사시■ 개봉일 : 9월 22일■ 액션, 스릴러/127분/19세 이상 관람가국산 좀비(부산행)가 가자마자 일본산 좀비가 왔다. 해피엔딩을 향한 신파적 전개도, 인간애에 대한 깨달음도 없다. 반면 누가 봐도 청소년 관람 불가가 확실한, 선혈이 낭자한 액션만이 스크린에 가득하다.영화 '아이 엠 어 히어로'는 전세계 600만 부의 판매고를 올린 하나자와 켄고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강력한 전염성을 지닌 좀비들이 무차별적으로 들이닥쳤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를 꽤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좀비로 변한 애인과의 만남, 롱테이크 거리신 등 인상적인 장면도 상당하다.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원맨 액션도 압권의 박진감을 보인다.35세의 만화가 어시스턴트 히데오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밤낮 만화를 그리며 등단을 꿈꾸지만 사실상 실업자나 다름없는 이른바 루저다. 애인 집에 얹혀 살면서 쏘지도 못하는 샷건을 벽장에 모셔두고 애지중지하다 결국 쫓겨난다. 그러나 집 밖은 ZQN이란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로 온통 아수라장. 사람들을 물어뜯는 감염자들은 삽시간에 일본 전역을 장악하고, 히데오는 감염된 아기에 물려 반만 좀비가 된 여고생 히로미와 함께 안전지대로 알려진 후지산을 찾아간다. 영화에는 맨손으로 좀비를 때려잡는 마동석 같은 히어로는 없다. 되레 영웅이라는 이름(주인공 히데오의 이름은 일어로 영웅이라는 뜻이다)이 무색하게 보통 이하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좀비와 싸우는 사람들의 무기도 어수룩하기 짝이 없고 배경도 일상적인 동네와 다를 바 없다.그러나 이 부족함이 묘한 공감과 쾌감으로 이어지는 열쇠로 작용한다. 집과 작업실, 거리와 야산 등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좀비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른바 '감성좀비'로 묘사된 영화 속 감염체들은 살아서 하던 일을 죽어서도 반복하며 눈길을 끈다.영화의 주요 배경인 아울렛 쇼핑몰이 한국 파주에서 촬영됐다는 사실도 주목할 부분이다. 100여 명의 좀비 출연자 역시 한국인 배우로 채워졌다. 좀비의 리더격으로 가장 인상적인 등장을 하는 '높이뛰기 좀비' 역시 프리랜서 무용수인 배우 이용훈이 연기했다.'아이 엠 어 히어로'는 영화 '부산행'의 신파가 불편했던 관객들에게 좋은 대안이 된다. 부산행을 보고 좀비물을 얕본 관객이라면 유혈이 낭자하는 좀비 퇴치 과정이 다소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부산행을 보는 내내 느끼는 감정이 암을 유발할 듯한 답답함과 악역에 대한 혐오였다면 이 영화는 루저가 영웅이 되어가는 통쾌함이 가슴 속에 자리잡을 것이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영화사 빅 사진 제공

2016-09-21 권준우

[텔미시네] 밀정

한국 근대사 소재 스파이영화 '아슬아슬한 매력'극 긴장감 다소 밋밋… 송강호-공유 케미 좋아■ 감독 : 김지운 ■ 출연 :송강호, 공유, 한지민, 츠루미 신고■ 개봉일 : 9월 7일 ■ 드라마/15세 이상 관람가/140분김지운 감독은 스파이 영화에 대한 끌림에서 이 영화가 시작됐다고 했다. 적의 한가운데서 암약하는 이중첩자 혹은 이중 스파이가 가지는 분열적 정체성과, 혼돈의 시대에 국경의 경계선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그 아슬아슬함에 매력을 느꼈다.서구는 냉전시대를 배경으로한 수많은 스파이물의 걸작들을 만들어왔다. 서구의 냉전시대 못지않은 질곡의 근대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근대사를 소재로 한 스파이 영화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 감독은 생각했다. 감독의 바람은 아슬아슬하게 영화에 담겼다.'밀정'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토대로 당시 의열단에 일어났던 중요한 몇 가지 사실들을 엮어 극화했다. 총독부 등의 주요시설을 타격할 폭탄을 상해에서 경성으로 들여오려는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과 의열단의 조직과 계획을 방해하고 파괴하려고 들어온 조선인 일본 경찰 간의 암투와 회유와 교란 작전이 전개된다. 그러나 긴장감 있게 그려져야 할 이러한 대목들이 다소 밋밋하게 전개되면서 전반적으로 극의 긴장감은 높지 않다. '이정출'과 '김우진'의 초반 탐색전과 기 싸움도 다소 늘어져 극이 탄력을 받지 못한다.그러나 '이정출'의 심리적 변화에 초점을 맞춰 관람하면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송강호는 특유의 인간적 매력과 연기력으로 영화 속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인 '이정출'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공유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숨겨진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는 냉철한 캐릭터 '김우진'을 연기하며 송강호와 좋은 케미를 선보였다.지난 3일 밤(현지시간) 열린 제73회 베니스영화제 상영행사에서 외신들은 "일제의 주요시설을 겨냥한 폭탄 사건을 다루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발이 묶이지 않은, 단 1온스의 군더더기도 없는 작품"(버라이어티)이라고 평했다.추석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밀정'은 개봉 첫날인 7일 66%에 달하는 압도적인 예매율을 기록하며 한국영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2016-09-07 민정주

[텔미시네] 고산자 대동여지도

착한 스토리·강우석표 유머… 자극적 연출없어 가족 관람 '강추'한국 사극 특유의 스테레오 타입 답습 '영화 몰입도' 다소 반감■ 감독 : 강우석 ■ 출연 : 차승원, 유준상, 김인권, 남지현)■ 개봉일 : 9월 7일 ■ 드라마/전체 관람가/129분'고산자 대동여지도'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계기는 거장 강우석 감독의 이름값도, 삼시세끼 차승원의 티켓 파워도 아니라 사전에 배포된 4장의 포스터였다. 사계절을 상징하는 듯한 각각의 포스터는 설악산과 북한산, 강원도 양양 등을 떠도는 김정호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저 인물이 배우 차승원이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오롯이 초점을 자연 그대로에 맞추고 있다. 주연배우의 원샷 대신 주인공 자리를 꿰찬 천혜 절경의 생생함은 관객들에게 김정호의 삶을 배경으로 한 조선판 로드무비의 탄생을 기대하게 하기 충분했다.이런 기대감을 반영한 영화의 오프닝은 '만약 이 영화의 개봉이 한 달만 빨랐더라도 여름 휴가철의 국내 관광객이 배는 늘어나지 않았을까'하는 궁금증을 절로 갖게 한다. 그만큼 훌륭하다. 어가행렬을 쫓아다니며 지도의 오차를 줄이고자 하는 김정호의 열정과 더불어, 그의 어린 시절을 통해 현재는 너무나 당연시하고 있는 지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장면은 관객의 몰입도를 단숨에 끌어당긴다. 이후 김정호가 지도제작을 위해 팔도를 떠도는 신은 속도감 있는 짧은 컷 구성이 아쉬울 정도로 영상미가 넘친다. 그러나 아쉽게도 수려한 풍광이 주는 상쾌함은 딱 거기까지다. 영화의 포커스가 자연이 아닌 인간으로 점차 옮겨갈수록 영화는 익숙하지만 불편한 한국 사극 특유의 스테레오 타입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을 보인다. 포스터가 주는 참신함을 보고 뭔가 '다름'을 기대한 관객들이라면 약간의 실망감이 들 법 하다. 영화는 지도의 우수성을 직접 조명하는 대신 지도를 놓고 벌이는 흥선대원군과 권문세족의 권력다툼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김정호의 지도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능력 있는 재인이 권력의 희생양이 되고 열정으로 이를 극복한다는 판에 박힌 흐름으로도 읽혀 영화의 몰입도를 다소 반감시킨다.하지만 현지 로케이션으로만 10만㎞가 넘는 대장정을 통해 담아낸 영상미는 영화의 단점을 충분히 상쇄시키며 오랜 인상을 남긴다. 중간중간 터지는 강우석 감독 특유의 유머코드도 배우 차승원과 김인권의 케미에 적절히 잘 녹아든다. 무엇보다 자극적 연출 없이 시대적 아픔과 백성의 삶을 다룬 전체 관람가의 착한 스토리는 추석을 앞둔 온 가족이 함께 관람하기에 부담 없는 요소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CJ엔터테인먼트 제공/CJ엔터테인먼트 제공

2016-08-31 권준우

[텔미시네] 머니 몬스터

금융시장 최고의 경제쇼중 괴한 난입영화안 시청자들 복잡한 내면도 묘사전편 불법유출로 긴장감 다소 떨어져■감독 : 조디 포스터■출연 : 조지 클루니, 줄리아 로버츠, 잭 오코넬■개봉일 : 8월 31일■스릴러·범죄/98분/15세 이상 관람가영화 '머니몬스터'는 최근 영화 전편이 불법 경로를 통해 인터넷에 유출되면서 홍역을 치렀다. 몇몇 불법 업로더의 소행에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다운로드 행진을 이어갔고, 제작진이 강경대응 입장을 발표하며 다소 누그러졌지만 불법 스포일러의 활약(?) 탓에 스토리의 긴장감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이 일련의 해프닝은 신기하게도 영화의 제목이 뜻하는 바와 상당부분 유사하다. 자본주의의 절대 상징인 '돈(머니)'을 얻기 위해서 너무나도 쉽게 몬스터가 되어가는, 그리고 자신이 몬스터가 되어간다는 사실도 잊을 정도로 불법과 비행에 관습적으로 물들어가는 세태에 대한 비판이라서다.영화의 주 무대는 세계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최고의 경제 쇼 '머니 몬스터'의 생방송 스튜디오 현장이다. 온 에어(On Air) 불이 켜진 순간 총성과 함께 괴한이 난입해 진행자 리를 인질로 잡는다. 괴한 카일의 요구는 하룻밤 사이 8억 달러를 날린 IBIS 주가 폭락의 진실을 밝혀내라는 것이다.카일은 리에게 폭탄이 장착된 조끼를 입힌 뒤 프로그램 PD인 패티에게 계속 생방송을 이어갈 것을 요구한다. 이어 자신에게 닥친 불행한 사건의 원인을 밝혀 달라며 사건의 원흉인 한 기업 CEO의 해명을 요구한다.영화가 저격한 것은 월가의 주가조작 가능성이다. 주가조작은 국내에도 소위 '작전'이라는 형태로 여러 차례 알려진 만큼 주가 시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 그러나 그에 비해 주가 조작의 진실이 규명되고 관련자가 처벌됐다는 소식은 극히 적다. 그러다 보니 절대다수의 개미투자자들은 '작전'을 하나의 주가변동 환경으로 인식해 그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고, 작전에 대한 정보는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인식돼 그 정보를 거래하는 세태에까지 이르렀다. 희생양들이 또 다른 희생양을 찾기 위해 불법에 가담하는 악순환의 구조인 셈이다. 실제로 영화가 진행되면서 테러가 생중계 되는 TV 화면을 보고 있는 영화 속 시청자들의 눈빛은 상당히 복잡한 내면을 보여준다. 테러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도 속으론 지금의 사건이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 그것이 나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에 대한 계산이 빠르게 돌아간다.생방송 스튜디오라는 배경은 관객에게 마치 영화가 아닌 TV 화면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주며 영화 상황이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더욱 부각시켜 준다. 테러범과 폭탄 등 영화 '더 테러 라이브'를 연상시키는 긴박감 넘치는 구성은 금융시장의 숫자놀음이 실은 사람 목숨이 걸린 생존게임이라는 점을 다시 상기시킨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LPI코리아 제공/LPI코리아 제공

2016-08-25 권준우

[텔미시네] 플로렌스

조력자 도움받아 카네기홀 공연'성공 서사'가 아닌 도전에 가치■ 감독 : 티븐 프리어즈 ■ 출연 : 메릴 스트립, 휴 그랜트, 사이몬 헬버그■ 개봉일 : 8월 24일 ■ 드라마/110분/15세 이상 관람가열정의 서사는 근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보편정서였다. 숭배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열정을 가진 이가 끊임없는 노력으로 가진 능력을 극복해 '개천에서 용 나는' 성공신화를 써 내면 대중들은 그것을 인생의 진리이자 귀감으로 삼는 식이다. 그러나 지금 열정을 숭배하는 세대는 없다. 서사의 방점이 열정이 아닌 성공신화에 찍혀있는 까닭이다. 메릴 스트립, 휴 그랜트 주연의 영화 '플로렌스' 역시 익숙한 열정 서사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태생적 음치인 주인공이 든든한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최고의 무대인 카네기 홀에 오른다는 이야기는 '국가대표'나 '우리들의 행복한 순간' 등 국내 영화에서도 자주 쓰는 플롯과 같다는 오해를 받기 딱 좋다. 하지만 플로렌스는 뭔가 다르다. 우선 웃음을 자아내는 재기발랄한 연습과정 속에서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과 달리, 플로렌스의 노래 실력은 영화의 처음과 끝을 비교해봐도 아주 미세하게 나아지는 데 그친다. 조력자들의 도움 역시 진실을 감추고, 호의적인 관객을 동원해 거짓 호응을 유도하는, 일종의 사기에 가깝다.영화는 동명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 '플로렌스 포스터 젱킨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활동에 매진하지만 극악의 목소리를 가진 탓에 입만 뗐다 하면 주변인들의 폭소를 자아내는 인물이다.그녀의 목소리가 힘겨운 건 스크린 속 객석 뿐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객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영화가 이어질수록 관객들은 마치 베이필드에게 웃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듯 그녀의 도전과 열정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그녀를 향한 관객의 응원은 약자에 대한 동정심의 발로에서가 아니다. 자신의 형편없는 노래 실력을 알아챈 플로렌스는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못한다고 할 수는 있어도 내가 노래를 안 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베이필드의 우려와 달리 그녀는 성공과 실패를 떠나 도전 그 자체를 원했다. 그런 그녀에게 조롱을 날릴 만큼 열정 그 자체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주)이수C&E 제공/(주)이수C&E 제공/(주)이수C&E 제공

2016-08-18 권준우

[텔미시네] 서울역

영화 '부산행' 객실서 비추는 TV화면 등장 선행사건 다룬 속편'폭도매도' 진압하는 공권력 사태 키워… 비틀린 주인공 '소름'감독 : 연상호출연 : 류승룡, 심은경, 이준개봉일 : 8월 18일 애니메이션 / 15세 관람가 / 93분'서울역'은 올해 첫 천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부산행'의 프리퀄(prequel)을 표방한 영화다. 프리퀄은 오리지널 영화에 선행하는 사건을 담은 속편을 뜻한다. 주인공의 과거 이야기 또는 오리지널 에피소드에 선행하는 사건을 조명하면서 본편의 스토리에 당위성과 개연성을 제공해 관객에게 재미를 주는 것이 목적이다.그러나 '서울역'을 통해, '부산행' 속의 대한민국에 왜 좀비가 창궐했고 어떤 경로를 통해 퍼졌으며 어째서 부산행 열차가 지옥이자 최후의 희망으로 변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기대하는 건 오산이다. 이런 오해가 생기는 이유는 관객이 프리퀄을 통해 알고 싶은 부분과, 감독이 새 애니메이션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감독은 지옥으로 변해가는 KTX 객실 상황보다는, 고립된 승객들에게 외부 소식을 알리는 영화적 장치로 잠깐 활용된 각 객실의 TV 화면에 집중했다. 사람들을 좀비로 바꾸는 바이러스에 대한 진실은 슬그머니 사라진 채 감염된 이들을 단지 폭도로만 매도하며 공권력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바로 그 장면이다.영화는 좀비에게 물린 한 노인의 힘겨운 발걸음으로 시작한다. 피를 흘리며 쓰러질 듯 서울역 앞을 걷는 노인에게 행인들은 도움의 손길을 건네려다 이내 멈춘다. 그의 신분이 노숙자인 까닭이다. 동료 노숙인의 노력으로 감염된 노인은 수차례 구제될 기회를 갖지만, 수많은 '사회안전망'은 한낱 노숙인의 외침을 끝내 외면한다.좀비를 보는 감독의 시각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감독은 여타 좀비영화와는 달리 바이러스의 생성과 인류의 몰락을 특정 집단의 광기나 과학자의 폭주로 설명하지 않았다. 감독의 시선에서 좀비를 만들고 키운 건 이 사회다. 소위 하층민을 배척하는 풍조와 개인주의적 이기심,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부의 대응이 좀비를 만들고 키웠다는 것이다.아버지와 딸, 딸의 남자친구라는 흔한 설정으로 보이지만 극이 진행되며 점점 기괴하게 변해가는 주인공들 역시 감독의 의도가 철저히 반영된 결과다. 첫 실사 연출에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첫 술에 배를 불린 연 감독이지만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연출한 애니메이션 장인답게 특유의 사회비판의식이 애니메이션 영화의 틀에서 더 잘 드러난다.부산행을 보며 좀비를 능가하는 인간의 광기에 소름을 느낀 관객이라면 서울역을 보며 그 생각에 정점을 찍을 수 있을 듯하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고 위협하는 건 비단 좀비에게 쫓기는 상황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역시 좀비보다 무서운 건 인간이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사진제공/NEW

2016-08-11 권준우

[텔미시네] 스타트렉 비욘드

올해 50돌 맞은 시리즈 3번째 리부트 작품 '뉴 스타일' 선봬무대 '엔터프라이즈 폭발' 틀 깨… 직관적 액션 신세대 취향감독 : 저스틴 린출연 : 크리스 파인(커크 역), 재커리 퀸토(스팍 역)개봉일 : 8월 18일 모험·SF / 12세 관람가 / 122분영화계에서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온 시리즈에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특별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올해로 50돌을 맞은 스타트렉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방대한 양의 콘텐츠가 모두 사랑을 받았다고 할 순 없지만, 스타트렉 시리즈는 스타워즈와 함께 동시대인에게 '외계는 이렇지 않을까'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준 수작임엔 틀림 없다.'스타트렉 비욘드'는 시리즈의 13번째 편이자 지난 2009년 '스타트렉 더 비기닝'으로 시작된 리부트 시리즈의 3번째 편이다. 메가폰이 스타트렉을 명작 반열로 이끈 J.J.에이브럼스 감독에서 '분노의 질주' 시리즈로 유명한 저스틴 린 감독으로 옮겨간 만큼 영화의 색도 판이하게 달라졌다. 새 감독은 기존 시리즈의 무대와 틀을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것으로 자기만의 연출을 선언한다. 바로 스타트렉 시리즈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함선 엔터프라이즈호의 파괴다.구조 요청을 받고 외계 행성으로 향하던 엔터프라이즈호와 대원들은 대규모 함대의 공격을 받고 함선을 파괴당한 채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인에게 납치된다. 커크 함장과 스팍 등 함선 지휘관들도 뿔뿔이 흩어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영화는 기존 시리즈가 고수하던 함선 간 전쟁의 웅장함 대신 행성 내부에서 펼쳐지는 빠른 속도의 액션을 주 무기로 내세웠다. 대원들이 미지의 적에 붙잡힌 동료 대원을 구출하는 장면 역시 SF보다는 액션물의 향이 농밀하다.그러나 바뀐 색이 마냥 달갑지 않다는 시선도 있다. 국내에 앞서 지난달 22일 미국에서 개봉하자, 현지 팬들은 '이것은 스타트렉이 아니다'라는 혹평을 하기도 했다. 50년간 스타트렉의 상징 역할을 해 온 엔터프라이즈호가 하루아침에 파괴되며 기존 플롯과 다른 액션이 펼쳐지니 골수팬들에겐 이질감이 상당했던 듯 하다.반면 복잡한 서사보다 직관적인 액션을 강조한 새 스타일이 예전의 스타트렉을 접하지 못한 신세대 관객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는 측면도 있다. 달라진 스타트렉이 전체 시리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영화의 흥행성적을 지켜봐야 할 듯하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사진제공/롯데 엔터테인먼트

2016-08-04 권준우

[텔미시네] 국가대표2

루저들 모여 좌절 않는 노력 갈채아이스하키 스피드한 촬영 '생생'진부한 포멧·후반 신파는 아쉬움감독 : 김종현출연 : 수애, 오달수, 오연서, 김슬기개봉일 : 8월 10일 드라마 / 12세 관람가 / 126분속편의 경쟁작은 언제나 전작이다.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를 소재로 한 '국가대표2'의 흥행 역시 '부산행'이나 '덕혜옹주' 등 다른 영화와의 경쟁이 아니라, 전작의 장단점을 놓고 어떻게 장점을 재구성했는지에 달려 있다.속편은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급조된 한국 최초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도전을 소재로 했다. 탈북 아이스하키 선수 지원, '국민요정'에 등극한 선수에게 부상을 입혀 '국민밉상'으로 전락한 쇼트트랙 선수 채경, 필드하키 출신 아줌마 영자, 만년 후보 출신 감독 대웅 등 각양각색의 캐릭터들이 만나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그린다.영화는 전작의 장점으로 꼽힌 루저들이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내려는 노력을 충실히 구현해낸다. 초등학생들과의 첫 시합에서 무참히 깨진 뒤 변변한 장비도, 연습장도 없이 훈련에 매진한다. 깨진 블록처럼 어지러이 흩어지기만 하던 팀원들도 전지훈련을 통해 고락을 함께 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하나의 팀으로 합쳐져 간다.전작을 성공으로 이끈 또 하나의 장점인 '박진감' 부분에서도 감독은 세세한 신경을 썼다. 스포츠 영화답게 얼음 위를 달리는 선수들과 시속 200㎞의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드는 퍽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구현됐다. 그러나 영화는 전작의 장점 뿐 아니라 단점도 함께 흡수한 데다 속편이 으레 가지는 딜레마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전개를 보이며 아쉬움을 준다. 우선 전작의 포멧을 지나치게 답습했다. 사연을 가진 오합지졸이 모여 우여곡절 끝에 성과를 거둔다는 내용은 전작에 의해 이미 충분히 소비된 데다, 여자 핸드볼 팀 이야기를 담은 '우리들의 행복한 순간'과도 겹쳐 보이는 익숙한 포맷이다. 전작과 확연히 다른 점은 성별이 바뀌었다는 것 정도다.활기찬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농도가 지나치게 짙어지는 비장미와, 탈북자인 지원을 통해 늘어놓는 신파도 아쉬운 대목이다. 설정이 억지스럽다고 하긴 어렵지만 나올법한 대목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눈물코드가 달갑지 않다.그럼에도 영화는 올림픽 기간에 맞춰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듯한 구성을 통해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확실히 제공한다. 전 연령층이 공감할 법한 보편적 웃음코드와 열정을 소재로 한 박진감은 여름철 시원함을 찾는 가족 관람객을 만족 시켜줄 요소로 작용하기 충분하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사진/플러스앰 제공

2016-07-28 권준우

[텔미시네] 인천상륙작전

이정재·박성웅·이범수 '불꽃연기''15분 출연' 리암니슨 존재감 과시꼼꼼한 세트에 특수효과도 '리얼'감독 : 이재한출연 : 이정재, 이범수, 리암 니슨개봉일 : 7월 27일 전쟁·드라마 / 12세 관람가 / 111분영화 '인천상륙작전'의 개봉일은 정전협정 기념일인 7월27일이다. 개봉일에 의미를 부여한 만큼 영화가 꾀하는 목적은 확실하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UN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인천상륙작전의 재가공을 통해 국제시장과 명량이 누렸던 '애국심' 특수를 노리겠다는 속내다.영화는 인천상륙작전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작전의 성공을 위해 적진에 투입된 한국 첩보원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조명한다. 맥아더의 지시로 대북 첩보작전 'X-RAY'에 투입된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는 북한군으로 위장 잠입해 인천 내 동태를 살피며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하고, 북한군 인천 방어사령관 림계진은 장학수에 대한 의심을 키워가며 갈등이 고조된다.영화를 채운 알맹이는 훌륭하다. 초반부 대북 첩보작전을 위해 북한군에 위장 잠입한 이정재와 박성웅의 연기는 관객들에 몰입감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이범수 역시 믿고 보는 배우답게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인상 깊은 장면들을 선보이며 악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실화를 기반으로 한 만큼 구성도 나쁘지 않다. 성공확률이 5000:1 밖에 안되는 어려운 작전의 성공을 위해 배후에서 암약한 켈로(KLO)부대와 맥아더 장군의 지시 하에 펼친 'X-RAY' 작전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영화의 몰입감을 해치지 않는 꼼꼼한 세트와 대규모 군사작전을 무리 없이 재현한 특수효과도 주목할 만하다.그러나 전쟁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코드인 애국심과 감동을 고취 시키는 부분에선 아쉬운 부분이 더러 보인다.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 다양한 조연들을 배치하다 보니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다. 특수부대원을 연기한 고윤이 왜 '도련님'이라 불리는지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이를 통한 감동코드가 설득력을 가지긴 어렵다.요즘 관객들은 감동을 강요하는 듯한 장면에선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요소가 충분히 있는데도 인물들의 죽음 뒷이야기를 필요이상으로 늘어놓아 오히려 감동을 방해한다.그럼에도 영화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가진다. 할리우드의 명배우 리암니슨은 단 15분의 출연 분량으로도 충분한 인상을 과시하며 연기력과 존재감을 입증했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사진제공/퍼스트룩

2016-07-22 권준우

[텔미시네] 부산행

사고·재난등 기존장르 공식 충실'과격시위대 폄하'등 한국형 해석인물 극명한 대비 인간 본성 질문서울·천안역 등익숙한 장소 향수감독 : 연상호출연 : 공유, 김수안, 정유미, 마동석개봉일 : 7월 20일 액션·스릴러 / 15세 관람가 / 118분부산행은 한국형 좀비 스릴러 영화다. 사실 타이틀 앞에 붙는 '한국형'이란 단어는 관객들에게 그리 인상이 좋은 단어가 아니다. SF와 블록버스터 등 이제껏 무수히 많은 플롯이 한국형이라는 이름을 달고 거창하게 개봉했지만 대부분 제대로 된 재해석 없이 장르영화의 포맷을 답습한 수준에 그쳤던 기억 때문이다.부산행 역시 시작은 기존 좀비 장르와 드라마 장르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한 지방 도시에서 의문의 가스누출 사고가 발생하고, 그 일대에서 차에 치인 고라니가 다시 살아나 움직이는 등 기현상이 일어난다. 이와 동시에 일에 치여 가정을 소홀히 하던 석우는 딸 수안의 간곡한 부탁으로 별거 중인 아내를 만나기 위해 부산행 KTX에 오른다.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 서울역은 좀비로 변한 사람들의 습격을 받고, 좀비에 물린 한 여성이 기차에 올라타면서 그의 부산행은 지옥으로 변한다.좀비물의 흔한 플롯이다. 하지만 감독은 '한국형'이란 색을 입히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첫 번째가 좀비를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다. 정부는 좀비를 과격 시위대로 폄하, 국민들에게 안심하고 가정에 대피하라는 의미 없는 발표를 한다. 반대로 온라인 상에는 정부 발표를 비웃듯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 글이 넘쳐난다. 대형 재난을 대하는 '한국형' 대처에 대한 일침인 셈이다.두 번째는 배우 정유미가 연기한 성경과 김의성이 분한 용석 역의 극명한 대비다. 대기업 상무인 용석은 그야말로 생존의 화신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제거하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다. 반면 임산부인 성경은 보호가 필요한 약한 존재다. 그러나 그녀는 위기 상황 속에서 누구보다 다정하고 윤리적이며, 심지어 용감하기까지 하다. 감독은 양극단의 두 인물을 대비시켜 관객들에게 '당신은 둘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느냐'고 묻는 듯하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투영된 캐릭터가 바로 주인공 석우다.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딸에게 "이럴 때는 자신만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 이르기도 하는 그는 극의 초반 분명 용석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영화가 끝날 때도 그의 본성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단지 용석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서라도 살아나 열차 밖에 가치(돈)를 지키고 싶어 했다면, 석우가 지키려 한 가치(딸)는 열차 안에 있었다는 것의 차이다. 이처럼 영화는 다양한 윤리적 잣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해석 여지를 남긴다.감독의 노골적인 질문에 거부감이 들지 모르나, 관람에는 큰 지장이 없다. 감독이 의도한 '한국형' 좀비드라마의 정수는 배경에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부산행 KTX와 기차역으로 배경을 한정했다. 서울역 플랫폼, 열차 안, 천안역, 대전역 등 한국인에게 친숙하면서 향수를 자극하는 장소를 지옥으로 바꿔놨다. 물론 영화 설정상 기차역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탈출구인 셈이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아수라도는 관객에게 한순간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사진제공/NEW

2016-07-14 권준우

[텔미시네] 아이 인 더 스카이

첨단드론 띄워 테러범 감시·폭격희생될 소녀의 목숨 놓고 저울질스위치 하나로 끝내는 비극 그려감독 : 개빈 후드출연 : 헬렌 미렌, 아론 폴, 앨런 릭먼개봉일 : 7월 14일 스릴러·전쟁 / 12세 관람가 / 102분'인간'과 '인간다움을 배제한 인공지능'의 대결,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보는 이에게 스산함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인간이 만들었다지만, 인간의 사고력과 기능을 초월한 기계가 인간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그걸 예측할 수 없다는 자괴감과 당혹감 때문이었다.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는 바로 이 부분에 생각할 지점을 제공한다.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는 마치 바둑 대국을 지켜보는 시청자 처럼 전장과 철저히 거리를 유지한다.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에는 말 못할 긴장감이 흐르지만, 그 전쟁을 결정하는 장소인 '회의실'에선 인간다움이 왜곡된 형태로 사라져 간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전쟁, 드론을 통해서다.영화는 전쟁용 드론이 가진 놀라운 기능과 편의성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은신 중인 테러조직의 생포를 위해 영국·미국·케냐 3국은 합동작전을 실시, 첨단 드론기술을 이용해 외부의 접근이 불가능한 테러조직 한가운데에 들어가 수괴들의 회의장면을 포착한다. 드론이 보낸 실시간 영상을 통해 그들은 테러조직의 자살폭탄 테러 계획을 알게 되고, 드론을 이용해 테러 이전에 수괴들을 사살하기로 작전을 변경한다. 하지만 그 순간 미사일 공격 범위를 비춘 스크린에 한 소녀가 들어온다. 이대로 발사를 강행하면 소녀의 목숨이 희생되는 상황. 이때부터 연합군은 소녀의 목숨과 테러로 희생될 사람들의 목숨을 놓고 저울질을 시작한다.논의의 과정은 대단히 복잡하다. 희생이 불 보듯 뻔한 1명의 목숨과 테러로 희생될 지 모르는 100명의 목숨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그러나 이들의 논의는 역설과 모순 그 자체다. 알람 소리에 깨 애완견을 돌보다 출근한 작전 사령관은 테러범을 잡기 위해 소녀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며 미사일 발사를 종용하고, 딸에게 줄 선물을 부하 직원에게 부탁하고 회의실로 들어선 장군은 발사를 허용해달라며 상부를 채근한다. 인권유린을 감시하기 위해 회의에 함께 참석한 야당 의원은 소녀를 구하기 위해 발사는 절대 안된다며 열변을 토하지만 안락한 의자에 앉은 그의 앞에는 정돈된 커피와 다과가 놓여있다.바로 눈 앞에 희생될 소녀가 있다면 과연 그들은 냉정하게 방아쇠를 당기자는 논의를, 커피를 마시며 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현실'은 논의를 하는 회의실과 논의가 끝나면 돌아갈 집이다. 자신이 어떤 운명에 처한 지도 모르는 소녀의 절박한 상황은 첨단기술이 보여준 스크린 속 장면에 불과하다.그들은 자신 스스로 인간다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1대 100의 딜레마를 놓고 논의를 이어가며 때론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하지만 상황이 끝난 뒤 그들은 불과 30여 분에 그친 정신적 고민을 두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자위한다. 스위치 하나로 모든 걸 끝낼 수 있는 기술이 만든 현실, 소시오패스적 비극이다. 영화는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스위치 하나로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는 기술적 편의성이 인간에게 얼마나 쉽게 인간다움을 버릴 수 있게 하는 가를 알려준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 사진제공/판시네마

2016-07-07 권준우

[텔미시네] 도리를 찾아서

부모찾는 비장한 결심 '깜박' 폭소기억상실증 '가족愛' 매개체 변모바닷물 점도·명암 완벽구현 '생생'감독 : 앤드류 스탠튼출연 : 렌 드제너러스, 헤이든 롤렌스개봉일 : 7월 7일 애니메이션·모험 / 전체 관람가 / 97분뜨거운 여름에 찾아온 쿨한 애니메이션 '도리를 찾아서'는 바다 깊은 곳과 해변을 주 무대로 한 물고기들의 모험 이야기. 시원한 화면만으로도 피서를 온 듯한 대리만족을 선사한다.그래서일까. 지난 17일 미국 시장에서 먼저 개봉한 '도리를 찾아서'의 흥행성적이 심상찮다. 전작 '니모를 찾아서'의 흥행 덕이라는 설명으론 부족하다. 영화는 1억3천600만달러라는 오프닝 성적으로 '니모를 찾아서'의 오프닝 성적인 7천만 달러의 2배에 가까운 수치를 기록하며 '슈렉3'가 갖고 있던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기록 1위를 갈아치웠다.전체 관람가답게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밝음과 바름, 활기참을 계속 유지한다. 단기 기억상실증을 갖고 있는 도리가 어린 시절 헤어진 부모를 찾아 떠나는 모험 이야기지만 영화에는 그 흔한 악역 하나 없다. 도리는 이른바 '3초 기억력'의 소유자로 눈알 한 번 굴리는 새 방금 한 이야기도 까먹는 모습을 보이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준다. 비장한 마음으로 부모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다가 금세 자신이 왜 떠났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도리의 모험이 진지할 리 없다. 그러나 부모를 찾아가는 과정이 이어질수록 웃음의 소재로만 느껴지던 단기 기억 상실은 추억의 편린에 따라 떠오르는 기억이 액자식으로 구성되며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매개체로 바뀌어간다.여기에 더해 실사인 듯 현실적으로 묘사한 바다와 개별 특징이 생생히 살아있는 바다 생물들은 극의 몰입도를 더욱 배가 시킨다. 제작진은 스튜디오에 수조를 들여놓고 실제 물고기의 움직임과 영화 속 캐릭터를 비교해가며 현실감을 높였다. 또 주 배경이 되는 바닷물의 점도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명암, 그에 맞춘 색을 구현하기 위해 촬영마다 다른 종류의 렌즈를 활용해가며 실제 바다를 생생히 구현했다.하지만 이런 기술적 구현보다 더욱 관객의 마음을 끄는 건 디즈니 특유의 가족적 연출력이다. 기억상실로 부모의 존재조차 잊은 채 수년을 살아간 도리에게 부모와의 만남은 심층심리 속에 내재된 그리움을 해소하는 계기임과 동시에 '부모가 혹시 나를 잊은 것 아닐까'라는 두려움의 영역이기도 하다. 감독은 이 두 가지 본성이 가진 딜레마를 최선의 연출력으로 융합시키며 관객에게 제대로 된 감동을 전달한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사진제공/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2016-06-30 권준우

[텔미시네] 봉이 김선달

고전 재해석한 히어로형 '코믹 활극' 다양한 사기수법 '유쾌'유승호 연기 매력 부각… 사건 하나하나 깊이 부족은 아쉬움감독 : 박대민출연 : 유승호, 고창석, 조재현, 시우민개봉일 : 7월 6일 코미디·모험 / 12세 관람가 / 121분음악, 무대예술, 영화 등 현대예술 장르에서 재해석은 그 필요성과 부담감이 명확하게 대비되는 양날의 검이다. 기존의 플롯을 차용한 만큼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지만 자칫 원작의 그늘에 가려 정체성을 잃은 졸작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봉이 김선달'이란 원작은 리메이크가 상당히 까다로운 작품이라 볼 수 있다. 한국형 히어로로 분류되긴 하지만 홍길동처럼 권선징악의 요소가 명확한 것도 아니고, 전우치처럼 도술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전문 사기꾼'을 재해석하는 방법으로 감독이 선택한 것은 히어로물 시리즈의 인트로 형식을 띤 코믹 활극이다.김선달을 연기한 유승호는 임금, 스님, 사냥꾼, 심지어 절세미인을 가장한 여장까지 다양한 분장을 감행하며 풍문으로 전해지고 있는 김선달의 거의 모든 사기극을 관객에 전한다.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대동강 사기 과정도 기존 이야기와는 다른 소재를 활용해 보는 맛을 더해준다.그러나 '활극'이라는 틀에 너무 갇힌 탓일까. 사기행위가 발각돼 잡히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파안대소를 터뜨리며 도망가는 김선달의 모습에서 일말의 긴장감도 느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흘러나오는 유쾌한 배경음악과 함께 저잣거리를 웃으며 달리는 김선달의 모습을 보면 그가 관군에 잡힐 것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너무 많은 사기사건을 담다 보니 사건 하나하나의 깊이감이 떨어지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감독은 사건의 구성과 짜임새를 자세히 보여주는 것보단 유승호라는 배우의 매력을 통해 코믹요소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한 듯하다. 그러다 보니 김선달의 신묘한 재치보다는 유승호의 비주얼만 뇌리에 남게 되고, 각종 사기사건 소식을 자주 접하는 현대인에겐 희대의 사기꾼이 보이는 재간보다는 당대 사람들이 어리숙한 게 아니냐는 잔상만이 남는다. 심지어 당대 최고의 악덕 상인이자 숨은 권력자 역할의 성대련마저도 냉철한 면모가 다소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그럼에도 영화는 다양한 볼거리와 배우들의 재치로 속편에 대한 뉘앙스까지 남기며 2시간여의 러닝타임을 빠르게 질주한다. 희대의 사기꾼을 주제로 한 코믹액션활극이 정말 속편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는 영화의 유쾌함을 바라보는 관객의 손에 맡겨질 듯하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2016-06-23 권준우

[텔미시네] 크리미널

숨진 CIA요원 뇌·기억 사이코패스 범죄자에 이식'가족애' 느끼는 혼란 묘사… 추격전도 '스펙타클'감독 : 아리엘 브로멘출연 : 라이언 레이놀즈, 케빈 코스트너, 게리 올드만개봉일 : 6월 22일 액션·SF / 15세 관람가 / 113분IT기업의 총수이자 무정부주의자가 주축이 된 테러집단에 의해 핵을 포함한 미사일을 원격으로 발사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해킹당한다. 전 세계가 불바다가 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불행 중 다행으로 프로그램을 가진 해커가 CIA에 망명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를 담당한 최정예 요원 빌이 해커를 은신시키자마자 테러집단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해커와 프로그램의 위치는 죽은 빌만이 알고 있는 상황. 테러집단과 CIA는 해커를 찾기 위해 추격전을 벌이고 CIA는 빌의 기억을 제리코에 이식해 해커를 찾으려 한다.이렇게만 들으면 전형적인 SF 액션의 클리셰를 따라간 영화로 보인다. 물론 '런던 해즈 폴른'을 만든 제작진답게 영화는 미사일 발사와 추격전, 런던 브리지에서 펼쳐지는 총격신 등 다양한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 크레딧을 보며 남는 잔상은 화려한 액션이 아닌 '감성'이 만든 한 인간의 변화상이다.범죄자를 뜻하는 단어이자 영화의 제목인 크리미널이 상징하는 건 테러집단이 아닌 주인공 제리코다. CIA의 통제에서 탈출한 제리코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냉혈한의 모습으로 차를 훔치고 가게를 약탈하는 등 영화의 장르가 케이퍼 무비였나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범죄자적 기질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감정이 없는 그는 자신이 왜 그것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빌이 해커에게 넘기려던 돈 가방만을 찾으려 하고, 기억의 단편을 따라 빌의 집에까지 찾아든다. 그러나 빌의 아내 질리언을 포박하고 그녀를 범하려던 순간 제리코는 뇌 속에 이식받은 빌의 기억에서 비롯된, 이제껏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곤 혼란스러워 한다.이 순간 세계적 평화를 위해 테러집단을 막아야 한다는 대의는 부차적인 것이 된다.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은커녕 자기 자신의 감정조차 느껴보지 못한 사이코패스는 채 이해되지 못한 마음의 떨림을 따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게 된 제리코를 타깃으로 한 CIA와 테러집단의 매서운 추격도 볼거리지만, 부모에게마저 버림받으며 일평생 애정을 느끼지 못한 한 인간이 자신의 생소한 변화에 혼란을 느끼면서도 결국 마음의 소리에 반응해 자신을 변화시켜가는 과정이 관객에게 더 큰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 사진/영화사 빅 제공

2016-06-16 권준우

[텔미시네]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1994년 게임 첫 출시… 시리즈 통해 장대한 이야기 녹여내다른 세계서 넘어 온 오크 종족과 인간 명운 건 '생존 전쟁'감독 : 던칸 존스출연 : 트래비스 핌멜, 벤 포스터, 폴라 패튼개봉일 : 6월 9일 액션·판타지 / 12세 관람가 / 122분전 세계에서 한국인이 가장 잘하는 종목 중 하나가 바로 '게임'이다. 외국 게이머들 사이에서 한국 게이머는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다. 지난 2012년 블리자드사가 12년 만에 내 놓은 롤플레잉 기대작 '디아블로3'가 출시됐을 당시, 한국 직장인들로 구성된 한 클랜(똑같은 인터넷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모임)은 게임을 고작 5시간 30분 만에 클리어해버리며 전 세계를 경악케하기도 했다.한국인이 게임을 대하는 시각(?)은 남다르다. 세계에서 수위를 점하는 한국 게이머들은 특유의 분석력과 경쟁심리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찾아 이를 반복수행하며 게임을 공략한다. 이른바 '빠름의 미학'이다. 그러나 반대로 외국의 경우 게임 속 모험이 주는 간접체험의 재미와 몰입도를 높여주는 스토리 라인을 중요시한다. 단순한 임무 하나에도 그것을 왜 해야하는 지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식이다. 때문에 외산 게임은 제작 과정부터 게임 속 스토리와 캐릭터간의 갈등관계를 튼튼하게 구축하는 것에 주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특히 블리자드사가 지난 1994년 처음 출시한 '워크래프트'는 탄탄한 스토리와 확고한 세계관으로 게임계의 정점에 있던 작품이다. 단순 모의전투 방식으로 시작한 게임은 4개의 시리즈와 8번의 확장판을 거치면서 대서사시가 녹아든 작품으로 변했고, 2000년부터는 소설로도 제작돼 현재까지 20권이 넘는 시리즈가 발간되기도 했다.감독 던칸 존스에 의해 재창조된 영화는 장대한 스토리의 초입부를 다뤘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던 인간과 오크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오크의 행성이 황폐해지자 이들은 마법사 '굴단'의 인도 아래 살아있는 생명체를 제물로 한 어둠마법을 이용해 인간의 행성으로 넘어온다. 다양한 부족들의 연합으로 구성된 오크 무리 중 일부는 굴단의 독단과 잔학함에 반발하기도 하지만 양 종족 모두 서로의 생존을 위해 싸워 이겨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게임 속 배경을 최대한 묘사해 게이머들이 어색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겠다던 감독의 말과 달리 영화 속 영상미는 단순 게임의 모방 수준이 아니라 반지의 제왕을 연상케 하는 압도적 스케일을 자랑한다. 늑대를 타고 숲 속을 달리는 시점부터 협곡을 넘어 활강하는 그리폰의 시점까지 다양한 앵글의 영상이 주는 박진감이 대단하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 사진/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2016-06-09 권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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