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지 마세요

 

숨쉬지 마세요<116>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양파를 다 썬 다음 나는 맞은 편 테이블로 가 기계에 반죽 덩어리를 밀어 넣었다. 스위치를 올리자 굵은 면발이 뽑혀 내려왔다. 이로써 모든 준비가 끝났다. 동선은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향하게끔 되어있었다. 주방에는 물이 끓고 있는 커다란 무쇠 솥과 야채를 춘장에 볶아 소스를 만들 수 있는 프라이팬이 준비 되어있었다. 나는 가스레인지 앞으로 가려다 멈춰 섰다주방 한 편에 완성된 자장 소스가 커다란 스튜 냄비 안에 들어있었다. 한 국자 퍼서 익은 면 위에 얹기만 하면 되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럼 지금까지 이렇게 하시오 저렇게 하시오라고 권한 것은 뭐란 말인가. 스튜 냄비가 놓여 있는 코너의 벽면에는 자세히 들여다봐야 판독이 가능할 정도로 작은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 자장 소스는 솜씨 좋은 전문가가 만든 것입니다. 만들 자신이 없는 분은 이 소스를 이용하셔도 무방합니다. 맛은 물론 훌륭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식사를 마련하고자 하는 분은 직접 조리 하십시오.'나는 전문가가 만들어 맛을 보증한다는 문구에 다소 마음이 흔들렸다. 야채를 지지고 볶고 하면 기름도 튀고 번거로울 뿐 아니라, 맛도 보증할 수 없었다. 집에서 자장면을 만들어 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른 음식에 비하면 그다지 까다롭거나 어렵지도 않은데 으레 중국집에서 시켜 먹는다고 생각했다. 벽에 걸린 앞치마를 두르고 가스 불을 켰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야채를 볶을 때는 센 불에 빨리 볶아 내는 게 비결이다. 춘장은 일인분씩 나누어져 있었다. 재료가 프라이팬에서 익어가는 동안 국수는 끓는 물에서 뒤척였다.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 사이 강민기와 정신희는 조리과정을 포기하고 국수 위에 만들어진 소스를 끼얹어 주방 밖으로 나갔다. 곁에서 방금 들어 온 전병헌이 프라이팬을 달구고 있었다. 뜨거운 물에서 면을 건져 재빨리 차가운 물에 헹구었다. 직접 만든 소스를 국수 위에 끼얹었다. 퍼펙트. 주먹을 쥐고 허공을 내지르고 싶은 기분을 참고 홀로 나갔다. 들어 온 곳과는 다른 방향으로 통로를 내 놓았다. 접시를 들고 복도를 지나 들어 간 방은 놀랄 만큼 넓고 아늑했다. 중국집은 대체 어디에 이렇게 많은 공간을 감추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문을 열면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연결되거나 이어지는 라비린스 같았다.접시를 들고 곧장 테이블로 갈 수 없었다. 테이블과 문 사이는 유리벽으로 막혀 있었다. 유리벽을 비껴 우측으로 몸을 틀었다. 우측 코너에 모양과 크기가 다른 수많은 병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들이 식초나 간장을 담은 소스 병인가 보다 생각했다. 샤넬 넘버.5, 아르마니, 에르메스, 겐조같은 상표가 붙은 것도 있었고, 모르는 상표나 혹은 아무런 표시가 되어있지 않은 유리병에 든 것들은 모두 향수였다.'취향에 맞는 것을 음식에 뿌려 드세요'내 눈을 의심했다. 설마, 음식에 향수를 뿌려 먹다니. 혹시 식초나 간장 종류의 소스인가 하고 탁자 한 편에 자장면이 담긴 그릇을 놓고 병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장미나 허브, 붓꽃 향 뿐 아니라, 오래된 이끼, 갓 구운 토스트, 엄마의 머리칼 냄새나 흘린 지 오랜 눈물 냄새까지 있었다. 책 사이에서 떨어져 내리는 먼지 냄새나, 여름 날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 냄새와 허벅지 사이로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정액냄새도 있었다. 나는 모든 병의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고 싶었다. 냄새를 맡은 후 내려놓은 향수병은 자가 증식을 하는 것 같았다. 향기는 끝이 없었다. 눈을 감고 코끝에 병을 대자 알지 못할 그리움이 치밀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얼른 뚜껑을 닫고 유리병을 내려놓았다.

2007-10-03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115>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자장면을 좋아하냐고? 물론이다. 친구들이 피자나 스파게티 집에 가자고 할 때 나는 늘 자장면이 더 좋은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오늘 점심은 자장면을 준비했습니다."강민기와 정신희, 그리고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게 웬 횡재, 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면은 알아주는 중국요리의 달인이야."강민기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 "오늘 점심은 일종의 리허설입니다. 여러분은 관객으로 참여하는 거지요."이면이 홀 중앙을 걸어가며 말했다. 리허설? 참여, 그제야 이면이라는 이름과 작품명이 떠올랐다. 향수, 이었던가?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그랬다. 향수와 자장면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우리는 이면의 요구대로 모두 중국집 밖으로 나갔다. 아치형의 출입문 앞에서 이면이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우리는 기다렸다. 잠시 후, 용 두 마리가 꿈틀거리며 기어오르는 문이 열렸다. 홀에는 양 쪽으로 기다란 탁자를 배치해두고, 탁자 위에 놓여있는 몇 개의 유리그릇에는 야채가 담겨 있었다. 첫 번째 유리그릇에는 껍질을 깐 감자, 두 번째 유리그릇에는 호박, 세 번째 유리그릇에는 작은 덩어리로 썬 돼지고기, 다섯 번째 유리그릇에는 껍질을 벗긴 양파가 있었고, 그러고도 재료를 담은 유리그릇은 몇 개나 더 놓여 있었다. 맞은 편 테이블에는 면을 뽑는 기계와 주먹 크기의 밀가루 반죽 덩어리가 랩에 싸여 있었다. 접시와 조리 도구들이 함께 놓여있는 탁자는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들어가도록 이어져 있었다. 중간에 통로를 두고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중앙 통로는 주방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테이블 머리에는 조리 순서와 행동 요령을 적은 지침서가 놓여 있었다. 리허설이라면, 이것이 작품인가? 자장면을 직접 만들어 먹는 행위. 한편 신선하고 기발한 감은 있었지만 이런 것까지 예술로 인정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스쳐갔다. 어쨌거나 지금은 점심을 준비하는 기분으로 임하자고 생각했다. 나는 조리법이 적힌 종이를 들었다. 강민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릇이 놓인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면우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형수는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을 찍기 시작했다. '자신이 먹을 만큼 재료를 적당히 덜어 그릇에 담으시오'.나는 빈 볼을 들고 먼저 테이블로 다가갔다. 감자는 껍질만 벗긴 통감자와 잘게 깍둑썰기를 해놓은 것 두 종류였다. 만약 미리 썰어 준비 해 둔 재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통 감자를 선택해 맞은 편 테이블 위에 놓아 둔 도마와 칼로 다시 썰면 되었다. 나는 모든 재료를 죄다 다시 썰었다. 일인분의 양이므로 감자 사분의 일 쪽, 호박 손가락 마디만큼, 밤톨 크기의 돼지고기 한 점, 이런 식으로 재료를 개인용 그릇에 담았다. 그런데 양파는 다른 재료들과 조금 거리가 멀었다. 몇 발짝 걸어가면서 조리법을 읽었다. '가능하면 양파는 썰기를 바랍니다'.물론 유리그릇에는 미리 다져놓은 양파도 있었다. 양파를 썰면 눈이 매울 게 뻔하다. 아린 눈에서 눈물이 찔끔찔끔 날 것이고, 눈 화장도 지워지고 눈도 빨개질 것이다. 나는 다져 놓은 양파 그릇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지침서대로 해보기로 했다. 양파 반쪽을 도마에 놓고 썰었다. 칼이 양파의 하얀 속살을 베자마자 매운 맛이 확 퍼졌다. 순식간에 눈앞이 흐려졌다. 눈이 몹시 아려왔다. 굵은 눈물이 손등으로 떨어졌다. 화장이 지워질까봐 눈물을 닦아낼 수도 없었다. 양파다지기를 빨리 끝내기 위해 나는 울면서 칼을 휘둘렀다.

2007-10-03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114>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아침과 저녁 사이의 기온 차가 커졌다. 귀가 시간이 늦을 것 같아 소매가 긴 겉옷을 챙겨들었다. 태풍이 지나갔고, 단풍이 들기까지는 아직 몇 차례의 태풍이 더 올 것이다. 집을 나오기 전 미서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프로그램은 미서의 공연을 순서에 포함 해 인쇄를 했다. 초청장은 며칠 전에 발송했다. 미서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날짜를 최대한 뒤로 미루었다. 전병헌과 이형수는 미서가 공연에 참가할 것을 믿고 있었다. 그들의 태도는 미서와 이십년이 넘게 친구로 지내오는 내게 희미한 질투심을 불러 일으켰다. 미서는 늘 저만치 내 앞을 걸었고, 나는 한 번도 미서를 따라 잡았던 적이 없었다. 이형수의 작업실에는 강민기와 정신희가 와 있었다. "오랜 만이다."강민기는 내 손을 잡았다. 선배의 손은 부드러웠고, 오래 된 장갑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작품 전시한다면서, 궁금해. 어떤 건지.""별 것 아니에요. 요즘 바쁘지 않아요?"정신희가 곁에 서 있다가 말했다. "지난 번 만화, 반응이 좋아요. 특히 김 선생님이 쓰신 것들이 많이 나가요.""그래요."웃으며 대꾸했지만 내심 속마음은 야릇하게 엇갈렸다. 내 글에 대한 반응이 좋다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원고를 매절한 나로서는 한편 서운했다. 인세로 계약을 했더라면 이럴 때 순수하게 기뻐했을 텐데. 강민기를 슬쩍 바라보았다. 나를 보아 반갑다는 표정이 돌로 조각해 놓은 것처럼 확고했다. 원고를 청탁 받았을 때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만으로도 흡족했다. 내게 일을 준 선배가 그냥 고마울 따름이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미서가 원고를 매절한 선배에게 대놓고 비난 할 때도 미서가 뭘 모른다고만 생각했지, 부당한 처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의 감정이란, 얼마나 간사한지. 강민기와 악수를 하고 정신희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지만 마음이 두어 발짝 물러 서 버린 것 같았다. 미서가 선배에게 항의한 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이런 감정 때문이었구나. 강민기와 친숙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속으로 선배를 관찰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바라보았다. 나는 선배를 냉정하게 주시하고 있는 자신을 나무랐다. 선배로서는 최선을 다해 내게 호의를 베푼 것이었다. 정신희가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후배인 내게 일감을 맡겼던 것이다. 다섯 권 중에 두 권만 준 것을 봐도 알 수 있었다. 검증된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정신희로서는 모험을 하는 셈이었다. 사장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던 직원으로서의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반응이 좋아 성공한 셈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나는 냉정한 시선을 얼른 거두었다. 나의 오만. 책의 반응이 좋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절대 생기지 않았을 마음이었다. 단 몇 분 만에 마음이 오락가락 하는 내가 어이없었다. 유치한 상태에 머물고 있는 자신을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다행히 자학이 깊어지기 전에 전병헌이 아래층으로 우리를 불렀다. 아래층 중국집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그다지 크지 않은 키에 호리호리한 몸집이었다. 긴 머리를 뒤로 묶어 올렸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조리사가 아니라 의사라 해야 어울릴 성 싶은 남자가 건물 주인이었다. "자장면 좋아 합니까?"자신의 이름이 이면이라고 말한 남자는 대뜸 그렇게 물었다.

2007-10-01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111>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밥을 먹으며 나는 몇 번이나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에게 요즘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말 해 봐. 무슨 일인지. 낮은 목소리로 내가 물으면 약간 뜸을 들인 후, 남편은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무엇인지 털어놓을지 모른다. 그런데 남편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죄다 알고 있어. 그렇게 말한다면 무어라 변명할 것인가.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고 나서 스스로에게 가해지는 자괴감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자신 없음. 차라리 침묵. 나는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고 싶다. 남편을 사랑한다거나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남편과 공감하는 부분을 유지하고 싶다. 남편과 함께 걸어 온 시간을 다른 사람과 다시 반복할 의사는 없다. 겨우 이 만큼이나마 편해진 생활을 패대기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칠흑처럼 캄캄한 밤에 암호! 라고 소리치면 '찢어진 우산'이라든가 '별이 빛나는 밤에' 라고 소리쳐 이쪽이 아군이라는 믿음을 줄 기호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에 애매한 나이다. 게다가 남편과 생긴 간격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생에 다른 무엇이 있다고 확신하는 것, 금지된 영역을 기웃대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나였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방황을 끝낸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속임수나 기만이라 비난해도 어쩔 수 없었다. 비겁하지만 그것이 내게 맞는 방식이었다. "우리 여행갈까?"평소 양의 절반도 먹지 못하고 숟갈을 놓으며 남편이 말했다. "어디 가고 싶어?"의외였지만 태연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디든, 조용한 곳에서 머리도 식히고 좀 쉬다가 오면 싶어.""회사에 무슨 일 있어?"내 말에 남편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남편은 성실하고 유능한 증권 맨이었다. 하지만 몇 년째 이어지는 불경기에 증권시장 뿐 아니라 모든 경제 활동이 활력을 잃고 있었다. 경기란 부침이 있게 마련이었다. 내리막의 바닥에 다다르면 다시 상승할 차례다. 나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내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전시회 끝나면 휴가 내서 어디든 가."흔쾌히 대답했다. "전시는 언제야?"전시회 날짜는 정해져 있었다. 이미 초대장도 발송했고, 준비가 착착 진행 중이었다. 나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아직 확실히 결정되지는 않았어. 날짜가 정해지면 알려 줄게."남편은 식탁에서 일어나 곧 바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켜놓는 텔레비전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회사 일로 고민 중이라면 내 능력 범위 밖이었다. 이럴 땐 모르는 척 조용히 있어주는 게 그간의 경험으로 봐서 남편을 돕는 것이다. 뒷정리를 끝내고 책을 들고 소파에 앉았다. 남편은 아마도 머리 뒤로 팔을 베고 그냥 누워있을 것이다. 책을 펼쳐보았지만 내용이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실을 서성거렸다. 거실 벽에 걸어 놓은 그림을 쳐다보았다. 그림 속의 여자처럼 저런 식으로 목을 구부린 채 남자의 입술을 받을 수는 없으리라. 상상이란 얼마나 자유로운가. 비현실적으로 목이 꺾여 그림 속의 여자는 황홀한 표정이다. 금세공업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클림트의 그림은 화려하다. 화려함 뒤에 감춰진 심리는 강박관념이나 성문제라고 비평가들은 말한다.

2007-09-26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110>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슈퍼마켓에 들러 매운탕을 끓일 생선과 야채를 샀다. 집으로 가는 길에 쳐다 본 하늘에는 해가 기울고 있었다. 공사가 한창인 길 건너편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지는 해조차 마음 놓고 보지 못할 것 같았다. 지평선이 콘크리트 건물로 가리면 잘 닦아놓은 구리쟁반처럼 검붉은 빛을 내는 태양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희미하게 지워지는 것은 늘 애잔하다. 그러나 나 또한, 시내와 연결되는 넓은 길이 생긴다고 좋아하지 않았던가.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뻐하면서 안타까워하는 것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양면이었다. 우편함에는 미서가 보낸 엽서가 들어있었다. 손에 든 비닐봉지를 팔에다 걸고 나는 엽서를 꺼내 들었다. 무거운 봉지를 팔에 매달고 계단을 오르면서 힘들게 엽서를 읽기 싫었다. 미서와 마주 앉아 얘기하듯 편안한 상태에서 미서의 글을 읽고 싶었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의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재빨리 엽서를 가방에 밀어 넣었다. 이 시간에 남편이 집에 돌아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찬거리가 든 비닐봉지를 주방에 갖다 두고 안방 문을 열었다. 남편은 양 팔을 위로 올려 머리 밑으로 넣은 자세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이 든 것은 아니었다. "일찍 왔네."나는 남편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남편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몸이 안 좋아서 조퇴했어.""어디가 안 좋아."내 목소리가 약간 떨려나왔다. 나는 손을 내밀어 남편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시어머니를 간호하면서 몸에 붙은 습관이었다. 남편은 가벼운 감기조차 잘 걸리지 않는 건강한 체질이었다. 열은 없었고, 특별히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언제 왔어?"우편물은 점심시간 후에 배달되었다. 우편물이 그냥 있는 것은 남편이 그 전에 집에 온 것을 증명했다. 미서가 병원에 있다는 핑계를 대고 외출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남편이 엽서를 보았다면 단박 드러날 일이었다. 보고도 못 본 척 할 정도로 남편은 의뭉스럽거나 뒤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방을 나와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저녁식사를 할 때 남편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병원에 안 가 봐도 돼?""그냥 좀 쉬고 싶어서 일찍 온 것뿐이야. 그런데 종일 어디 갔다 온 거야?"더 이상 미서를 핑계대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사실은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을 만드는 중이야.""전시회? 당신이 무슨 작품을?" 나는 간략하게 전시의 성격을 설명했다. 새로운 상황과 사람들을 경험해보기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이런 경험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한 번 참여해보는 거야. 슈퍼마켓과 집, 동네 도서관이 내 세상의 전부잖아.""전시회는 언제야?""당신은 그런데 관심 없잖아." "당신이 밤늦게까지 열심히 하는데 가서 봐주는 게 예의지. " 남편의 말을 듣는 순간 복잡한 생각이 스쳐갔다. 벌거벗은 아내의 사진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할까? 어림없었다. 남편에게 전시회에 대해 알린 것은 명백히 실수였다. 없었던 일로 덮을 수 있을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밥을 먹었지만 지독한 후회가 몰려왔다.

2007-09-20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109>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내가 두려워하는게 무엇인지 생각했다. 사랑을 잃는 것, 소외되지나 않을까, 우습게 취급되지 않을까하는 염려. 그런 마음 깊은 곳에는 내가 정해둔 이상적인 모델이 있었다. 폐를 끼치는 인간은 되지 않는다거나, 남을 불쾌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은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열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좋고 나쁜 것은 하늘에 붙어있는 게 아니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기는 감정이었다. 그런데 좋은 것은 이것, 나쁜 것은 저것이라고 정해 놓고 나는 거기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다. 성인이나 훌륭한 사람들이 기준을 정했다. 나는 경계를 정할 능력이 없으므로 다른 사람이 만든 기준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안전한 방법이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덤불 숲을 헤치고 길을 만드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고달프겠는가. 나는 무성한 잡목림 앞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손에 든 낫이나 도끼가 무거워 끙끙대면서, 어딘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길이 없는가를 살피는 중이었다. 전병헌이 내 의식을 확장시킨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영혼과 영혼이 만나 다른 세계로 들어간 것처럼 느낀 것 또한 내 욕망을 미화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자랑스럽게 여겨지던 자신이 초라하고 왜소해 보였다.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인가. 부질없었다. 한 순간의 감상으로 작품을 시작한 것이 잘못이었다. 전병헌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기대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전병헌은 없었다. 이 건물 어디에도 그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힘이 빠졌다. 고무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자신감이 줄자 지금까지의 나의 행적이 치기가 아니었을까 의심스러웠다. 사는 것은 남루한 조각을 덧대어 꿰매면서 다른 사람처럼 길을 걷는 것, 멀리서 찾아 헤맨 파랑새가 집 안에 있더라는 말이 진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의자를 밀고 벌떡 일어났다. 자신에게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뛰어 넘지도 못할 울타리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는 꼬락서니였다. 이형수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이형수의 눈길을 피한 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여전히 투명한 햇살로 눈이 부셨다. 출입문을 지나 비스듬히 경사진 길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내려갔다. 잡초 무성한 공터를 지나 키가 낮은 우윳빛 등이 있는 카페를 지나쳤다. 마을버스를 올라타고 산 중턱의 한적한 동네를 빠져나왔다. 마을버스는 서둘지 않고 느리게 달렸다. 나는 운전기사를 발로 차버리고 대신 운전석에 앉아 가속 페달을 밟고 싶었다. 중국집에 두고 온 비겁한 자신에게서 가능한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전병헌은 내게 새로운 우상이 되어 있었다. 피하려고 뛰어든 동굴에서 맹수와 맞닥뜨린 심정이었다. 시어머니의 병간호를 할때 남편이나 시누이가 알아줄거라는 희망과 기대가 있었다. 때로 그것은 힘이 될 때도 있었다. 시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내게 남은 것은 지치고, 무기력해진 일상 뿐이었다. 최근에는 전병헌이 나를 이해할거라는 기대를 했다. 그것이 힘이 되어 작품을 만들고,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의 부재는 내게 불안감을 주었다. 그를 사랑하는 대신 나는 그를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일까.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의식이 확장되고 영혼이 고양된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던 것일까. 버스 차창 밖으로 가로수가 지나갔고,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밀려났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어떤 인간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지하철 역이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결코 알 수 없었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아는 게 먼저라는 것을 깨달았다.

2007-09-19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108>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마지막에 배치할 사진을 선택하는 데는 서로 이견이 없었다. 이형수가 등의 느낌이 살아있다고 말한 사진이었다. 등뼈를 따라 내려가는 곡선과 무심하게 내버려진 것 같은 둥근 엉덩이가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줄 것 같았다. 이형수의 눈을 통해 포착된 몸이었다. 내 뒷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사진이란 정면을 찍는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이형수가 말했을 때 나는 다소 의외라는 느낌이 들었다."까마득한 계곡 위에 걸린, 흔들리는 다리를 다 건너와 안도하면서 한 편으로는 발아래 아찔하게 펼쳐지던 황홀한 골짜기를 떠나왔다는 기분이 느껴지지 않나요?"이형수는 싱긋 웃었다. 그가 자신의 사진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 여 장 가까운 사진 중에 겨우 건진 몇 장의 사진에 행복해 하고 있는 이형수가 존경스러웠다. 이형수는 꼼꼼히 다시 한 번 사진을 살폈다. 찍을 때보다 더 어려운 것이 선별하는 것이었다. 나는 지하철 노선표의 출발역과 종착역에만 사진을 붙일 계획이었다. 어색해하는 표정과 부끄러워 찡그리는 얼굴, 원하는 자세가 나오지 않아 난처해하고, 칭찬을 들었을 때의 안도감까지, 다양한 표정과, 얼른 보아서는 별 특징이 없어 보이는 사진까지 주르르 지나갔다. 온갖 감정이 섞여든 사진 속의 인물이 나였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현실 속의 나는 얼마나 단순한가.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생활은 정해져있었고 행동 또한 거의 변함이 없었다. 권태롭거나 무감각하거나, 무기력한 얼굴이었다. 마음으로부터 웃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형수가 빠르게 넘기던 사진 한 장을 잡아 화면에 띄웠다. 정면과 측면, 사선방향과 위, 아래 다양한 각도에서 잡은 사진이었다. 내가 언제 저런 자세를 취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이형수의 카메라에 어떻게 잡힐 것 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모델이나 사진에 대한 지식도 없는 터라 당연했다. 나는 컴퓨터 화면을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한 번도 아이를 낳아보지 못한 내가 아이를 낳을 때와 같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전병헌이 내 몸 위로 올라가 창으로 쏟아지는 빛을 등지고 마치 물고기가 수정란을 쏟아 부을 때처럼 안간힘을 쓰는 것을 바라볼 때의 자세와 같았다. 검은 배경에 조명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져 다소 어두워 보이는 피부를 가진 몸은 조금도 외설스럽지 않았다. 그것은 먼 옛날 다산과 풍요를 빌면서 흙으로 가슴과 성기를 강조해 빚은 비너스처럼 주술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내 생각과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형수는 왜 이 사진을 보여주는가? 내가 쓸 사진은 이미 다 정해진 터였다. 이형수는 같은 자세를 다른 각도에서 찍은 수 십 장의 사진을 몇 번이고 거듭 보았다.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버리기 아까운 사진입니다."나는 아무 말도 않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감상이란 주관적인 것이다. 주어진 작품을 어떤 식으로 평을 하면 관객의 마음이다. 나는 직업적인 모델도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적나라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는 없었다. 내가 온갖 핑계를 대가며 사진을 작은 사이즈로 축소하려는 것은 실은 겁이 났기 때문이다. 사진 속의 인물이 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일 것이다. 밀실과 광장은 판이하게 달랐다. 밀실에서는 용기를 낼 수도 있었다. 가면을 쓴 것과 같으므로 최소한 다른 사람을 기만할 수는 있었다. 나는 인생을 바꾸는데 요구되는 대가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비겁한 태도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성은 판단하고 많은 것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실제로 행동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2007-09-18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107>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나는 벌떡 일어나 이형수가 있는 방으로 갔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그리움의 실체가 인간인 것이. 미서가 못 견디게 보고 싶어 안심이었다. 만약 내가 영원이나 행복, 혹은 불멸 같은 것을 그리워한다면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미서라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 여행이 끝나면 미서는 열쇠고리나 립스틱 같은 것을 사들고 내게 전화를 걸 것이다. 적당히 그리울 즈음,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밥 사줄게, 라고 문을 두드릴 것이다. 타인이지만 분신과도 같은 미서가 있어 다행이다라는 생각 때문에 나는 약간 당황했다. 미서를 지금처럼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숨을 쉴 때는 공기의 중요성을 알 수 없다는 뻔한 진리가 내게 구체적으로 구현된 것 같았다. 어쩌면 내 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미서 같은 사람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갑자기 주변의 모든 것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마치 무심한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느낌과 흡사했다. 사랑해야한다는 어설픈 의무감이 없을 때 상대편이 훨씬 사랑스러워 보일 때처럼.이형수는 컴퓨터에 다양한 내 모습을 띄웠다. 몇 장의 사진을 사용하기 위해서 백 컷도 넘는 사진을 살폈다. 어느 사이에 이렇게 다양하고 풍부한 상황을 포착했을까 싶어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이형수와 나란히 컴퓨터 앞에 앉아 온 신경을 화면에 집중시켰다. 화면이 넘어가던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컴퓨터 마우스를 잡고 있는 이형수의 손등을 겹쳐 잡았다. "이 사진!"모로 누워 허벅지를 가슴으로 끌어올린 자세였다. 아기처럼 양팔을 모으고 눈을 감은 사진이 양수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을 주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 다음 시간은 알 바 없다는 듯 잠들어있는 인간. 자세히 살펴보면 다가 올 시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불안해하는 인간의 모습이기도 했다. "이 사진을 최대한 작게 만들 수 있죠?"이형수는 사진을 축소했다. 점점 줄어드는 몸뚱이가 마침내 엄지손톱만큼 줄었다. "가로 세로 몇 센티까지 줄일 수 있어요?""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요. 아주 작은 증명사진 크기에서 인화지가 허용하는 가장 큰 사이즈까지.""가장 작은 크기로 하겠어요. 확대경을 대야 누군지 얼굴이 확인될 정도로."이형수가 힐끗 나를 보았다. 나는 강하게 부인하는 포즈로 손을 내저었다. "부끄러워서가 아니에요. 정자와 난자가 만날 때의 상황을 재현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래 봤자 가당치도 않지만 어쨌든 생각만으로도 수정이 될 때 인간은 아주 작고,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거라구요.""감각이, 이거 예술적 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 해보는 작업 맞아요? 몇 십 년 작업한 전문가보다 감이 빠르니, 위기감이 어깨를 팍팍 짓누르네."이형수는 평소의 그로 돌아갔다. 그의 농담에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고 보니 누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감출 수 있는 효과도 있었다. 전병헌과 이형수의 말에 의하면 참석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작업에 평소 호감을 갖고 있는 마니아들만 참석하는 전시라 관객이 많지는 않다고 했다. 사진을 찍을 때의 용기는 사진을 사람들 앞에 내놓을 때와는 달랐다. 실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공개는 또 다른 면에서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 모든 일을 없었던 것으로 되돌릴 마음은 없었다. 허공으로 몸을 날렸고, 중력의 법칙에 따라 떨어져 내리는 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했다.

2007-09-17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106>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 "수고했습니다." 이형수의 말소리와 동시에 주변의 사물이 눈에 들어왔다. 꿈에서 깨어난듯 약간 어리둥절했다. 이형수는 엄지와 검지로 동그랗게 사인을 만든 손을 치켜들었다. "옷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오세요." 이형수는 칸막이 뒤쪽으로 몸을 감추었다. 아래층 어느 방에 또 다른 작업 공간이 있는 것 같았다. 중국집은 미노타오루스의 궁전처럼 감추어진 수많은 길과 방으로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몸을 일으켜 세워 칸막이로 구분된 작은 공간의 한 쪽 벽에 비스듬히 기대 체중을 실었다. 절정을 느낀 섹스가 끝난 다음의 충만감이 몸 전체에 퍼졌다. 목덜미와 가슴과 팔뚝에 촉촉이 땀이 배었다. 나는 맨발로 걸어 다니며 닫혀있던 창을 활짝 열어 젖혔다. 가을 햇살이 폭포수처럼 순식간에 실내로 쏟아져 들었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에 내려앉은 황금빛 햇살이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거렸다. 나는 창턱에 양 손을 짚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멀리 삐죽한 산봉우리가 푸른색 하늘을 이고 서 있었다. 몸과 마음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맑았다. 남자의 정자를 자궁에 받아들여 생명을 잉태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아의 순간, 필요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시간. 사진 몇 컷을 찍은 것 같았는데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쾌적한 피로감을 느끼는 내 몸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처음으로 삶에는 희열을 느끼는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육체적인 결합이 아니더라도 오르가슴은 도처에 산재해 있었다. 손을 내밀면 닿는 곳에 삶의 절정은 준비되어 있었다. 다양하고 수줍은 모습을 하고 우리가 손 내밀기를 기다렸다. 옷을 벗은 이대로 몇 시간만 더 보냈으면 싶었다. 그러나 이형수의 작업이 끝남과 동시에 마법의 시간도 효력이 다했다. 시작이 끝을 품고, 사랑이 이별을 안고 있듯이 절정은 바닥을 갖고 있었다. 나는 햇살을 비켜나 어둑한 공간으로 걸어 들어갔다. 작은 부스의 뒤쪽에 벗어둔 옷을 주워 몸에 걸쳤다. 그제야 아래층으로 등을 보이며 걸어 내려간 전병헌이 생각났다. 전병헌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넓고 깊은 강 저편에 두고온 사람처럼 전병헌의 그림자가 가슴 속에서 강가의 나무처럼 드리워졌다. 순식간에 지나간 사진을 찍은 시간이 또한 이렇게 긴 시간으로 느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허둥지둥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창이란 창은 죄다 열려있었다. 용이 아치형으로 그려져 있는 출입구도 활짝 열려있어 길 건너편 미술관의 돌 벽이 보였다. 풀벌레처럼 연둣빛 마을버스가 언덕을 오르느라 느리게 지나갔다. 옆모습을 보이는 운전사와 두 서너 명의 승객이 차에 앉아 앞을 보고 있었다. 전병헌은 어디에도 없었다.오붓한 가족 모임이나 조용한 공간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공되었던 방들의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나는 방문을 열어 일일이 확인해보는 대신 누군가 방에서 나와 나를 찾을 때까지 홀에 놓여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한때는 사람들과 불에 달구어진 기름 연기와 음식 냄새로 들썩거렸을 중국집은 고즈넉했다. 거리에는 환한 햇빛이 가득했다. 마술관의 돌 벽은 군데군데 금가루를 발라놓은듯 반짝였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 주변 공기가 오래된 시간의 냄새를 풍겼다. 불현듯 무언가 그리워 눈시울이 축축해졌다. 초가을 오후의 햇살을 보다가 감상에 빠진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전병헌인가 생각해보면 이형수인 것도 같았고 남편인 것도 같았지만 누구도 아니었다. 몇 번인가 크게 눈을 끔벅여 눈가의 습기를 걷어냈다.그때 구석방의 문이 열리고, 이형수가 얼굴만 내밀어 나를 불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2007-09-16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105>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나는 모든 판단을 중지했다. 내 마음에 불쑥 솟아오르는 감정을 즉시 말로 표현했다. 가치 판단을 하는 순간 불안해졌고, 모든 행동은 뒤로 밀리고 끝내 포기하게 마련이었다. 어제, 오늘, 두려울 정도로 불안한 것은 끝없이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떠오르는 생각을 일단 말로 내뱉은 후, 상황에 따라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주저하고 재다보면 도로 제자리로 돌아갈 게 분명했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집으로 돌아 가, 나는 먼지와 함께 세월을 뒤집어쓸게 뻔했다. 결과를 미리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그런 가치 판단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존재가 죄를 범한다 한들 누가 그 머리를 돌로 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저 높은 곳에 누군가가 있다면 개미처럼 꼬물거리는 인간이 보이기나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절벽 끝에서 성큼 한 발을 허공으로 내민 기분이었다. 떨어져 내리는 일만 남았다. 절벽 아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죽음이 기다린다면 결코 뛰어내릴 수 없다. 그곳이 막다른 곳이 아닌 줄 알고 있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높이다. 용기를 낸다면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다 그렇다. 전병헌은 칸막이 뒤로 돌아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이형수는 다시 물었다. "사진, 찍겠다고요?" 나는 머릿속에 아무것도 담기지 않도록 애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철 노선표 맨 앞에 붙일 사진." "당장 시작할까요?"이형수가 물었다. 모든 감정이 배제된 것 같은 목소리가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이형수는 카메라를 가져왔고, 창을 닫고 조명을 조절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우선 저 칸막이 안에서부터 시작해볼까요?"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설치할 작은 공간의 휘장을 걷었다. 팔을 뻗으면 사방 벽에 닿을 정도의 크기였다. 먼저 옷을 벗어야 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가 있어 쳐다볼 리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전병헌이 칸막이 뒤에서 얼굴을 내밀 것 같았다. 그에게 먼저 의논이라도 해 볼 것을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판단중지, 판단중지, 라고 속으로 외쳤다. 전병헌이 밖을 내다볼 때 사용했던 의자를 작은 방처럼 만들어 놓은 공간 뒤로 끌고 갔다. 머릿속이 수많은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윗옷을 머리 위로 끌어 올렸다. 벗은 옷을 의자에 걸쳤다. 전병헌의 앞에서 옷을 벗던 때를 생각했다. 여기서 망설이면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몸에서 모든 것을 다 벗겨냈을 때 나는 눈을 감고 숨을 멈췄다. 물속에 잠긴 것처럼 머리가 고통으로 새까매질 때까지 숨을 쉬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어둠이 물러갔다. 지평선에서 해가 떠오르듯 감은 눈 속으로 멀리 여명이 드러났다. "준비 끝났으면 나오세요."이형수가 소리쳤다. 나는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내 몸을 내밀었다. 이형수의 투명하고 정직한 두 눈이 내 몸을 잠시 동안 살폈다. 이형수는 카메라 속으로 내 몸을 끌어당겼다. 바로 서 보세요, 뒤로 돌아요, 무릎을 꿇고 엎드려 보세요. 자, 바닥에 누워 아기처럼 포즈를 취해 봐요. 좀 더 구부려요. 뒤쪽 등의 느낌이 아주 좋아요. 양팔을 벌리고 가슴을 좀 펴보세요. 좋습니다. 다리를 좀 벌려보실래요? 좀 더 왼쪽으로, 아니, 조금만 더요. 얼굴은 숙이고요. 너무 숙이지는 말고, 됐어요, 이번에는 시선을 좀 멀리 던져보세요, 더 먼 곳에 두세요. 조금 만 더 멀리….

2007-09-13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104>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이형수의 작업실은 내부 공사가 마무리되어 있었다. 전병헌은 이형수의 작업실에서 함께 밤을 새운 것 같았다. "미서가 그리스에서 엽서를 보냈어요.""김상우랑 함께 있대요?"이형수가 물었다. "그런 말은 안했어요. 김 선생과 함께 갔어요?""김 선생이 여름 방학 때 동료 교수들과 그리스 본토를 돈다고 그랬거든요."이형수는 공사 때문에 지저분해진 바닥을 청소하기 위해 출입구를 열어젖혔다. 앞 쪽에 덧문이 달린 창을 열자 투명한 정오의 햇살이 사선으로 비춰들었다. 진공청소기를 작동시키자 모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언제 온다는 말은 없었어요?"전병헌은 이상할 만큼 침묵을 지켰고, 이형수는 질문을 했다. "엽서에 찍힌 소인을 살펴보았는데 너무 흐려서 안보였어요. 아마도 써 뒀다가 나중에야 부친 것 같았어요.""가끔 해외에서 보낸 엽서가 여행이 끝나고 돌아 와서 한참 지난 후에 도착할 때도 있더라고요." 이형수는 청소기 소음보다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청소기는 공사 중에 생긴 먼지와 나무 부스러기를 말끔히 먹어치웠다. 출입구 반대편 어두운 코너에 조그마한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속에서 관람객들은 원하는 포즈로 사진을 찍고, 즉석에서 뽑은 사진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 사진을 붙일 지하철 노선표를 배치하기 위해 옆 공간을 텅 비워 놓은 상태였다. 오늘은 지하철 노선표를 확대 복사할 예정이었다. 원래는 전병헌의 도움을 받아 물감으로 노선표를 그릴까도 생각했다. 전병헌은 노선표를 확대 복사하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이형수도 레디메이드가 개념 미술의 본질을 더 잘 살릴 수도 있다고 의견을 냈다. 그러나 무한정 크게 복사를 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었다. 어쨌든 나로서는 그리는 것보다는 복사를 하는 편이 한결 수월했다. 물론 쉽게 하겠다는 생각이 앞 선 것은 아니었다. 먼저 벽면의 크기를 재야했다. 부분적으로 복사를 해서 이어 붙여 볼 생각이었다. 나는 줄자를 들고 벽으로 다가갔다. 전병헌은 청소를 하느라 열어 둔 창가에 붙어 서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줄자를 빼면서 전병헌의 옆모습을 보았다. 이곳에 처음 왔던 날 밤, 이형수를 기다리며 카페에 앉아 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전병헌에게서 얼핏 느껴지던 감정이었다. 쓸쓸해보였던가? 아니 오히려 고뇌하는 느낌이었다. 섬광같이 불안감이 한 순간 내 몸을 가로질렀다. 무언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제, 오늘 나는 계속 이상한 기운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금지된 곳에 발을 들여 놓은 데 대한 벌일까? 내 속에 제도와 관습을 두려워하는 존재가 고개 숙이고 있는 탓일까?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남편과 전병헌의 태도는 전혀 이상이 없는데 내가 흔들리고 있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남편의 비난을 받으면 어쩌나 두려운 걸까? 지금까지 내가 전병헌에게 보여준 이미지를 깨고 싶지 않은 것인가? 스스로도 감정을 정리할 수 없었다. 나는 건성으로 줄자가 가리키는 숫자를 수첩에 기록했다. 벽면 어디쯤 내가 서 있을 장소가 붙여질 것이다. 만약 내가 지금보다 좀 더 강해진다면 나는 좀 더 멀리 있는 역에 사진을 갖다 붙일 수가 있을 텐데 생각했다.이형수가 청소기의 스위치를 껐다. 실내에 울려 퍼지던 기계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전병헌은 시선은 바깥에 둔 채로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는 줄자를 벽에 대고 이형수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사진, 자궁 속의 아기처럼 찍겠어요."전병헌과 이형수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2007-09-12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103>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텔레비전을 껐다.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서 검게 변한 모니터 화면을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니 남편과 따로 방을 쓴 지가 오래 되었다. 기침 때문에 남편이 잠을 설칠까봐 작은 방에서 혼자 잔 것이 벌써 두 달도 넘었다. 기침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쉽게 피곤해지는 것 외에는 문제가 없었다. 남편은 방을 따로 쓰는 내게 불만을 드러낸 것일까? 가끔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어쩌면 내 행동을 죄다 알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불안이 스쳐갔다. 십년을 함께 산 부부니까 변화를 감지할 수도 있었다. 만약 남편이 전병헌과의 관계를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할까? 갑자기 가슴속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솔직히 말할 수 있을까? 뭐라고 말한단 말인가? 그가 내게 영감을 불어넣는 사람이라고. 내 의식을 확장시키는 인간이라고? 사랑하는 것과 함께 생활을 하는 것은 다른 거라고? 그러면 남편이 이해해줄까? 어림없었다. 남편은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이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좋은 시민이고, 선량한 교양인이다. 남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창문을 열어놓은 탓에 아파트 마당의 불빛이 방으로 새어들었다. 윤곽이 어슴푸레 떠있는 방은 마치 먹을 풀어 놓은 것 같다. 나는 침대위로 올라가 남편의 곁에 누웠다. 팔을 내밀어 남편의 가슴 위로 얹고 싶었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한 가닥 남은 양심의 작용인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이 먼저 긴 팔을 내밀어 나를 안아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남편은 잠이 들었는지 미동도 없었다. 나는 반듯이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몸을 뒤척이며 잠이 든 척 남편의 몸에 먼저 손을 대볼까 망설였다. 얼마나 그렇게 누워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벽시계의 바늘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크게 들려오는 것을 보아 밤이 깊어가는 모양이었다. 미라처럼 움직이지 않고 누워있으려니 온 몸이 저려왔다. 나는 조심스레 몸을 침대 가장자리로 움직였다. 남편이 깰까봐 열 번 셀 동안 팔 한 짝을 움직이고 또 열 번을 세는 동안 다리 한 쪽을 움직이는 기분으로 꼼지락거렸다. 침대 중앙에서 가장 자리로 그림자처럼 몸을 옮겼다. 그러고는 또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희끄무레한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남편도 잠을 자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 역시 자벌레처럼 조금씩 침대 가장 자리로 몸을 옮겨 놓고 있었다. 우리는 둘 다 상대방이 깨어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모르는 척 낮은 숨소리를 내며 조금씩 침대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침대 중앙에는 어린아이 하나는 누워도 될 만한 공간을 비어 놓은 채 각자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었다. 타인과 누워 있는 느낌이었다. 손을 내밀어 상대를 안기만 하면 단박 풀릴 낯섦을 우리는 누구도 깨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서 조용히 등을 돌렸다. 오래 잠이 오지 않았다. 이렇게 날이 밝을 것 같았다. 온 몸이 포승줄로 결박당한 듯 뻣뻣해졌다. 침대 아래로 소리 없이 발을 내리고, 나머지 한 발을 마저 내려 바닥을 밟았다. 발끝으로 걸어 방을 나왔다. 등 뒤에서 잠들지 않은 남편의 자는 척하는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가슴 속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혼잡한 거리에서 어머니의 손을 놓친 아이처럼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마음 속에 깃들인 전병헌과 남편에 대한 감정이 함께 공존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제만 해도 달콤하다고 느껴지던 비밀이 갑자기 햇살 아래 벌거벗은 몸을 드러낸 것 같았다. 불안을 동반한 두려움이 한 줄기 빛 속에서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2007-09-11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102>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냉장고 문을 열자 냉기가 얼굴을 감쌌다. 눈을 감고 그대로 몸을 냉장고 속으로 드밀고 싶었다. 장마가 끝난 지 오래건만 하루걸러 한 번꼴로 비가 내렸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후텁지근했고, 시간을 뒤로 돌리듯 더위는 천연스레 머물렀다. 냉장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슈퍼에서 장을 본지 여러 날이 되었다. 묵은 김치와 봉지에 든 김을 꺼냈다. 전시회 준비를 위해 시내를 오가느라 냉장고 속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냉장고 밑바닥의 서랍을 빼보았다. 시들어 꼬부라진 오이와 양파 한개, 그리고 껍질이 말라버린 가지가 전부였다. 냉동실에는 꽁꽁 얼어붙은 생선이 몇 토막 있었지만 당장 녹여 조리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화장실에 들어 간 남편은 십 분도 채 안 되어 나올 것이다. 식탁에 앉으면 바로 숟갈을 들었다. 배고픈 상태를 오 분도 기다리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바삐 손을 움직여 오이채를 썰고 간장과 참기름과 깨를 넣고 버무린 다음 냉수와 얼음을 띄웠다. 계란을 깨트려 양파를 잘게 다져 넣고 계란말이를 만들었다.밥과 수저를 놓고 반찬을 늘어놓자마자 남편이 식탁에 앉았다. 반찬이 부실하다거나, 집 안이 어질러져 있다고 한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다고 각오했다. 남편은 오이냉국에 밥을 말더니 마시듯 후루룩 넘겨버렸다. 나는 그릇을 들고 입으로 밥을 밀어 넣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먹어."나는 남편에게 핀잔을 주듯 말했다. "우리 미국으로 갈까?"남편은 내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왜? 회사에서 가래?"남편은 숟갈을 놓더니 내 말에 대꾸도 없이 일어섰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 등을 보이며 일어서는 남편을 보았다. 남편은 소파에 파묻혀 앉더니 텔레비전 스위치를 켰다. 뜬금없이 미국이라니. 만약 남편이 미국으로 발령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까? 이 년간 남편을 따라 가 살았던 일본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모국어를 쓰지 않으면 생각하는 것도 멈춰버렸다. 말이 통하지 않아 남편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어디에도 갈 수 없었다.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글을 막 쓰기 시작한 내게는 생각해 봐야할 문제였다. 게다가 전병헌을 오래 동안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주변 공기가 암울해 지고 말았다.식탁을 치우고 남편의 곁에 앉아 함께 텔레비전을 보았다. 뉴스가 시작되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편은 말없이 뉴스를 지켜보았다. "미국으로 발령이 날 것 같아? 얼마 동안?"듣지 못했는지 남편은 대꾸가 없었다. 조심스레 깊은 한 숨을 내쉬었는데 바로 곁에 있는 내 귀에 들리지 않을 리 없었다. 궁금했지만 두 번 세 번 재우쳐 물을 수 없었다. 변화가 생기면 말을 하겠지. 그때 다시 생각해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아홉시 뉴스가 끝나기도 전에 늘 꾸벅꾸벅 졸던 남편은 뉴스가 끝날 때까지 꼿꼿이 앉아있었다. 평소와는 다소 달랐다. 기상예보를 전하는 캐스터가 통통 튀는 목소리로 더위는 얼마간 더 계속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잘게."남편은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밖에서 일어난 일을 집에서는 좀처럼 말하지 않았다. 남편의 얼굴에서는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잠이 오는 얼굴은 아니었다.

2007-09-10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101>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엽서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촘촘히 박혀있었다. 손바닥 크기의 엽서에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애쓴 흔적이 보였다. 나는 엽서를 눈앞으로 바싹 끌어당겼다. '여기는 로마공항.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10시간을 날아왔다. 우리나라에서 아테네까지 직항이 없어서 로마에서 아테네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야. 4시간을 기다려야 한단다. 할 일이 없어 면세점과 공항 안을 기웃거리던 중 엽서를 몇 장 샀어. 여름 휴가철이라 공항은 무척 붐빈다. 내가 앉아 있는 카페도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야. 소매가 없는 끈 달린 옷을 걸친, 입은 게 아니라 그냥 걸쳤다는 표현 외에는 적당한 말이 없다, 서양 여자 둘이 자리를 뜨는 것을 보고 잽싸게 앉았단다. 배낭을 메고 일어서는 여자의 가슴이 풍만하다. 그런 가슴이 절반은 드러나 있어. 간신히 젖꼭지만 감추었을 뿐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들은 대부분 어깨를 드러낸 옷차림이야. 자유롭다고나 할까. 방금 깨달았는데 의복이 사람의 의식구조를 드러내는 것 같다. 바닷가에 가면 거의 반라가 되는데 이럴 경우 대부분 생각도 자유로워지잖아. 격식 맞춰 옷을 차려 입으면 생각도 옷을 걸치게 되잖아. 겉치레, 격식, 예의, 그 속에 들어있는 내숭과 위선. 옷을 벗어 던질 때 아마도 스스로도 해방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아까운 지면에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네게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술에 대해서야. 뭘 마실까 둘러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 미토스(Mythos)야. 녹색의 유리병에 붙은 상표에 신화라는 영어가 쓰여 있더구나. 신화라니, 그리스다운 발상이지? 망설이지도 않고 맥주를 달라고 했단다. 수은주가 사십도 가까이에 머무는 날씨에는 차가운 맥주가 제격이야. 유리잔을 달라고 했더니 예술적으로 생긴 커다란 잔을 가져왔어. 딱 한 잔이 나오네. 캔 맥주 한 병과 같은 양. 맛? 환상이야. 알코올 함량이 7%니까 평소에 마시는 맥주보다 다소 높은 편이지. 온 몸이 짜릿해지는 차가운 맥주를 마시자니 네 생각이 난다.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마셔버렸어. 또 한 병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아테네 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 이제 한 시간 남짓 남았어. 여행의 첫 관문에서 신화라는 이름이 붙은 맥주라니, 뭔가 그럴 듯 하지 않니? 한 병에 4유로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6천원 꼴이야. 화폐를 유로화로 바꾼 이후, 그리스의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해. 치즈나 샌드위치를 시켜 먹을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비행기를 타면 간식을 준다고 해서 말이야. 딱 한 병만 더 마시고 일어서야겠다. 게이트로 들어 갈 시간이 다 되었어. 기내에는 오십 시시이상의 액체나 젤 타입의 모든 음료수나 물품은 반입이 금지된다고 하네. 테러에 대한 공포 때문인가 봐. 여행에 대한 기대나 설렘 대신 알코올 예찬이라니. 이 엽서는 유리창이 깨끗한 우체국이나 빨간 우체통을 발견하면 보낼게. 쓰고 있는 글은 잘 돼가니? 그리스는 신화속의 여신이야기를 쓰고 있는 네가 와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두 장의 엽서를 빼곡히 채운 글자는 그곳에서 끝이 나 있었다. 미서는 이 부분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왔을 것이다. 어깨에 가방을 둘러메고 선글라스를 쓴 미서가 여행객들 사이를 걸어가는 뒷모습이 떠올랐다. 체격이 좋은, 검게 그을린 피부가 건강해 보이는 외국인들 사이에 작고 가녀린 미서의 모습이 어쩐지 쓸쓸하게 그려졌다. 엽서를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했을 때 현관 벨이 울렸다. 나는 재빨리 엽서를 책 사이에 끼워 넣었다. 문을 열기 위해 현관으로 나가려다 말고 엽서를 끼운 책을 책상 서랍을 열고 깊숙이 밀어 넣었다.

2007-09-09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100>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내 작품때문에 전시장 내부 구조를 약간 변경해야 했다. 구석진 귀퉁이를 막아 한 사람이 들어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만들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 셔터를 손쉽게 누를 수 있는 장치를 주문하기 위해 전병헌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작품 설치에 드는 비용은 각자가 부담하는 방식이었다. 프로그램을 다시 짜고 인쇄에 들어가기 전 참여하는 작가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일정과 출품 여부를 확인했다. 미서의 퍼포먼스는 마지막까지 결정을 못 내렸다. 전시 전날 미서가 불쑥 나타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모두 미서를 포기하지 않았다. 공연에 흠집을 낼지 모르는 일이었는데도 프로그램에 미서의 이름 석 자를 넣었다. 돈이나 세속적인 인정에 연연해하지 않는 아마추어 집단의 활동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서쪽으로 난 주방의 넓은 창으로 석양이 보였다. 전시일까지 매일 나와서 바쁘게 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형수는 전시실 공사에 일일이 따라다니며 지시를 하느라 바빴다. 전병헌은 설치와 장치 등에 필요한 섭외를 하느라 여러 곳으로 연락을 했다. 내일도 모레도 나와서 도우려면 일찍 들어가야 했다. 생각같아서는 그들과 밤을 새우며 함께 일을 하고 싶었다.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전병헌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게 좋았다. 저녁이라도 먹고 가라는 전병헌의 말에 잠시 망설였지만 단호히 작업실을 나섰다. 자칫 남편의 심기를 상하게 했다가는 더이상 일을 도우러 오지 못할지 모른다. 언덕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신나는 일을 뒤에 두고 집으로 가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집에서는 나를 기다리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오래된 먼지와 숨 막힐듯 지루한 권태가 빈 공간을 하릴없이 떠돌았다. 집은 왜 희망을 담을 수 없을까? 일상만 존재하는 정형화된 공간에 변화나 도약이 머물 곳은 없었다. 사람들은 용하게도 수 천 년 동안 집을 지키며 살아오고 있었다. 집에 깔려 죽고 집의 무게에 눌려 질식하고, 집때문에 절망에 빠지거나 파괴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집은 편히 쉴 곳이며, 발전의 원동력이었고, 삶의 터전이고, 희망의 상징이었다. 집은 나무가 뿌리를 내린 땅과 같은 곳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말한다. 뿌리가 파헤쳐진 나무는 죽음으로 갈 뿐이다. 사람도 집을 떠나면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절묘하게 나타내는 말은 없다. 협박과 회유와 어머니의 자궁을 빙자해서. 고층 아파트의 창마다 별처럼 전등이 켜져 있다. 집 근처에 오면 늘 공기가 무겁게 느껴진다. 좀 우울해지지만 마음이 안정되기도 했다. 어쩌면 집 부근에는 감각을 진정시키는 약을 공기 중에 풀어놓는지도 모를 일이다. 살아 꿈틀거리던 신경이 집으로 오는 순간 일시에 가라앉아 버린다.아파트에 들어서면서 우편함에 손을 넣어 보았다. 우편물이 손끝에 달려 나왔다. 남편은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우편물을 꺼내 살펴보면서 계단을 올랐다. 각종 고지서와 금융기관이나 부동산 홍보물, 개업한 미용실의 낱장 광고가 섞여 있었다. 마지막에 엽서가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 사진이 박혀있는 그림엽서였다. 동화에나 나올듯 한 산과 바위가 석양빛을 받으며 펼쳐져 있는 경관 위로 희미하게 그리스라는 영어가 찍혀 있었다. 또 한 장의 엽서는 사등분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각 칸마다 산, 바다, 해변, 그리고 암벽 위에 세운 비잔틴 양식의 수도원 사진이 박혀 있었다. 바다색과 하늘 색깔이 같다는 그리스의 자연풍광. 나는 엽서를 뒤집었다. 영어와 함께 인쇄된 그리스어는 알 길이 없었다. 미서가 보낸 엽서였다. 반가움보다는 '망할 계집애'라는 말이 먼저 입에서 튀어나왔다.

2007-09-06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99>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관람객들에게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무엇을 표현하는가?' 라고 묻는 것만으로도 훌륭해요. 관람자 스스로 의식하게 만들어,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게 하는 것이 중요하죠."탄생과 죽음, 그 사이에 놓여있는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었다. 지금 내가 서있는 지점이기도 했다. 작품을 구상하게 된 것은 일정 부분 책을 통해 알게된 뒤샹의 영향이었다. 뒤샹은 6달러만 내면 누구나 작품을 출품할 수 있는 전시회의 개막일 직전에 철공소 전시실에서 소변기 하나를 샀다. 뒤샹은 소변기에 R. 머트라고 서명을 한 뒤 2천점이 넘는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시를 하려고 미술가협회로 가져가 제출했다. 즉시 위원회가 소집되어 논쟁이 붙었다. 위원들은 샘이라는 제목이 붙은 소변기는 미술 작품으로 정의될 수 없다고 논평했다. 누구도 R. 머트가 뒤샹인줄 몰랐다. 전시는 거부되었다. 위원회의 위원이기도 했던 뒤샹은 이 일로 기분이 상해 사표를 냈다. 뒤샹은 전시를 거부당한 소변기를 유명한 사진작가인 앨프레드 스티글리츠의 화랑으로 가져갔다. 소변기는 사진이 찍힌 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남은 것은 작품이 아니라 샘을 둘러싼 논쟁이었다.뒤샹은 샘을 통해 당시의 예술과 문화가 지니고 있는 권위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20세기초, 미술은 문화와 품위와 고상한 열망 따위를 주장했다. 소변기는 그 시대 미술의 관점에서 보면 천박하고 상스러웠다. 게다가 소변기는 아카데미의 예절에 벗어날 뿐 아니라, 미술의 정의를 의심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반권위적인 사물이었다. 뒤샹은 주변에 널린 일상품을 예술품으로 바꿔버렸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다림질 판으로 이용해 예술은 일용품이 되었다. 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그리고 '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졌다' 는 제목을 부침으로써 천재 미술가와 걸작에 대한 숭배를 경멸했으며 성에 대한 엄격한 구별도 비판했다. 1차대전 이후, 권위에 대한 회의가 고개를 들던 시기에 뒤샹은 과감히 깃발을 들었던 것이다. 날카로운 통찰력과 용기가 없으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사회에 신선한 기운은 항상 소수의 선각자들이 공급하고 있었다. 문화나 예술도 마찬가지였다. 비상은 늘 높은 곳에 머물렀다. 발을 붙인 땅에서 변화나 도약을 위한 비상은 어렵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처럼 정해져 있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내게 비상은 불가능했다. 날개가 돋는다면 모를까. 시대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보면 때로 사람에게도 날개가 돋는 게 틀림없었다. 옷으로 가려진 등에 누가 날개를 감추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바로 내 곁에 그런 존재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상에 뿌리 내린 작은 일에 기쁨을 느끼고, 매 순간의 삶이 생기에 차는 것만으로도 시도해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한편 나는 내가 사소한 삶을 가꾸는데 너무 많은 일을 벌이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는 이미 거센 물살이 출렁이는 강으로 뛰어들었다. 다다를 언덕이 나타날 때까지 휩쓸려 갈 수 밖에 없었다.나는 메모지에 작품에 참여하는 방법을 적은 다음 전병헌과 이형수 앞에 내밀었다.1.밀폐된 방문을 열고 들어가시오.2.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서시오. 3.찍고자 원하는 포즈를 취한 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시오.4.옷을 입고 카메라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꺼내 방을 나오시오.5.원하는 곳에 사진을 붙이시오."옷을 입고 사진을 찍기를 원하는 사람을 위해 2번 항에 '옷을 벗지 않아도 상관없음'를 함께 적어두는 것도 괜찮겠죠?"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2007-09-05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98>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이형수와 전병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서는 나를 눌러 앉혔다. 전병헌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이형수가 주방의 서랍을 열고 대형 봉투를 꺼내 왔다. 이형수는 봉투 안에서 공연과 전시를 알리는 초청장의 초안을 꺼냈다. 전시는 일주일간이었다. 개막일에 미서의 퍼포먼스가 있고, 참여하는 작품의 목록이 대강 기록되어 있었다.초청장은 며칠 내 발송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형수와 전병헌은 미서의 개막일 공연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열흘도 넘게 미서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었다.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고요?"설거지를 마친 전병헌이 손을 닦으며 말했다.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번개처럼 떠오른 영감을 표현하고 싶은 충동에서 이형수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 "미술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어요. 평생 작업해 온 사람들에게 부끄럽네요. 역시 그만 둘까 봐요."전병헌이 기획하고 참여하는 전시라 함께 하고 싶어서 용기를 냈다는 말을 나는 차마 하지 못했다. "개념 미술은 기존의 미술 작품처럼 독창성과 미술가의 손작업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그림을 못 그려도, 색을 못 써도 상관없어요. 뒤샹이 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미술관에 전시한 것을 생각해 보세요. 이 변기가 과연 미술 작품이 될 수 있을까? 미술이라고 상상해 보라! 라는 의문 또는 도전으로 제시된 거잖아요.""그래서 용기를 낸 거예요. 기존 미술에 사용된 형태나 색채, 다른 종류의 재료 대신에 의미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미술 활동이라서요."나는 얼른 덧붙였다. "형수씨의 작품 설명을 듣고 착상이 떠올랐어요. 그날 밤 내내 무언가에 짓눌린 듯 말할 수 없이 무겁고 답답했어요. 분명히 무언가 나를 깔고 앉은 무거운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통 알 수가 없었어요. 밤새도록 생각해도 머릿속이 비어버린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깜박 졸고 난 후, 새벽녘에 문득 구상이 떠올랐어요. 카오스에 잠겨있는 우리들의 삶, 아무것도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는 인생을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그런 의문과 기분을 작품으로 만든 거죠."내 앞에 앉은 전병헌에게 나는 열심히 설명했다. 그가 내 생각을 비웃지 않기를, 내 착상과 결과물을 유치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도록 바라면서. 하지만 생각을 드러낼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한 순간 떠오른 영감을 잡아챈 것이 얼마나 깊이가 있을 것인가. 충동적으로 내 뱉은 말을 주워 담지 못하고 나는 브레이크가 없는 굴렁쇠처럼 한 없이 굴러갔다. 사랑에 빠진 영혼이 자신이 무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무작정 내달리는 것처럼 보일까봐 두려웠다. 나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끊임없이 가슴을 눌렀다. 열정에 들뜬 사람처럼 보일까봐 한 문장을 말 한 다음에는 반드시 호흡을 고르며 틈을 두었고, 이형수와 전병헌의 표정을 살폈다. 어젯밤의 용기는 죄다 사라지고 없었다. "제목은 '나는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예요."전병헌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이 진지해 보여 다소 안심이 되었다."지하철 노선도를 확대해서 벽에 붙이고, 밀폐된 작은 방에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두는 거예요. 관람객은 자신의 모습을 찍어 원하는 역에 사진을 붙이는 거죠. 알몸뚱이로 태어난 우리가 출발한 곳과 알지 못하는, 생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관람자가 스스로 의미를 결정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게 작품의 의도예요."나는 꼭지가 터져버린 수다쟁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2007-09-04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97>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이형수의 작업실에 도착했을 때는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서 내부 구조를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인부들이 장비와 재료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고, 이형수와 전병헌은 작업을 지시하느라 분주했다. 기다란 나무판자로 벽 한 면을 완전히 막고있는 중이었다. 실내 앞 쪽은 무대처럼 만드느라 바닥을 조금 높이는 중이었다. 넓지 않은 공간이 작업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는 엉거주춤 서서 무대 공간을 꾸미고 있는 인부들을 지휘하는 전병헌을 바라보았다. 어디에 서 있어도 방해가 될 것 같았다. 나는 칸막이 뒤쪽으로 들어가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중국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영업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주방에서 의자를 끌어 당겨 앉았다. 주방은 의외로 넓었다. 커다란 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와 눈부시게 밝았다.음식이 나오는 주방의 배식구를 돌아 식당 홀로 나가 보았다. 상당히 넓었고, 단정하게 정리되어있는 테이블과 집기들이 꽤 고급스러웠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이런 규모의 식당이라면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집인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산 중턱의 작은 동네에 고급 음식점을 낼 리가 없을 터였다. 문을 닫은 것을 보면 주변 경치와 동네 분위기에 취해 문을 열었다가 적자를 면치 못한 모양이었다. 하릴없이 주방과 홀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일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니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칸막이 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전병헌이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조명에 대해 의논을 하는지 이형수와 천장을 올려다보며 서로 말을 주고 받았다. 전병헌과 이형수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를 향해 걸어왔다. 손에는 둘 다 목장갑을 끼고 있었고, 챙이 긴 모자를 쓰고 있었다. "점심 전이죠?" 전병헌이 물었다. 이형수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말했다. "우리도 아직 안 먹었어요. 뭐라도 먹어요. 어휴, 배 고프네.""저 사람들은 어떡해?"전병헌이 위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자 이형수가 대답했다. "알아서들 먹고 온다고 했어요. 우리만 해결하면 돼요."이형수는 조리대의 가스레인지를 켜 라면을 끓였다. 대형 냉장고에서 꺼내 온 것은 김치였다. 한 쪽 구석에 소형 전기밥솥이 있었고 뚜껑을 여니 뿌연 김이 오르는 하얀 밥이 소복했다. 나는 밀가루로 만든 음식은 죄다 좋아하는데 라면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차려준 정성을 생각해서도 '나는 라면을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라면 국물에 밥까지 말아서 훌훌 털어 넣는 남자들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늘 이렇게 먹는 건 아니죠?""오늘은 특식이에요. 이 근방에는 시켜먹을 마땅한 식당도, 음식 재료를 살만한 시장도 없어요. 일이 바빠서 뭔가를 만들 여유가 없었어요. 나중에 시간 나면 뭐든 만들어 줄게요. 주문만 해요."이형수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입에 밥을 물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이층에서 뚝딱거리는 소리가 멈추었다. 인부들이 점심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아침부터 공사했어요?"내가 전화를 했을 때 이형수는 전시회 설치를 위한 공사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무조건 작업실로 오라고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뭐라도 좀 갖고 왔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면은 생각보다 맛이 있었다. 누군가 만들어 준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이 기뻤다. 이렇게 즐거워해도 될까? 불안감이 얼핏 머리를 스쳤다.

2007-09-03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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