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지 마세요

 

숨쉬지 마세요<56>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바람이 불었다. 산을 가리고 있던 안개가 바람에 밀려났다. 산으로 오르는 입구에 나무 계단이 얼핏 드러난다. 무성한 나무숲 사이에 걸어놓은 사다리처럼 계단은 안개로 싸인 오솔길로 사라지고 있었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더이상 기다려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산을 오르려면 길을 건너야 했다.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지하통로가 있었지만 차량 통행이 뜸한 길이라 그냥 도로를 가로질러 갈 생각이었다. 꽤 넓은 도로였고, 시 외곽이라 전속력으로 차들이 달리기 일쑤였다. 멀리서 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버스가 지나가면 뛰어서 도로를 건너가려고 생각했다. 뿌연 안개처럼 흩날리는 비를 가르며 버스가 달려오더니 서서히 속력을 늦추었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섰다. 나는 한 발을 차도에 내디뎠다. 버스를 흘깃 바라보니 누군가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잽싸게 도로에 뛰어들어 달렸다. 등 뒤에서 나를 따라 달려오는 발짝 소리가 들렸다. 방금 버스에서 내린 사람도 무단횡단을 하는구나 생각하며 인도로 뛰어올랐다. 혹시 산을 오르는 사람이라면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뒤돌아보았다.전병헌이었다. 우산도 쓰지 않고 비옷도 입지 않은채 전병헌이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애처럼 와락 달려들어 껴안고 싶을 정도로 반가웠다. "오늘 산행 취소한다고 전화를 했더니 안 받더라고요.""집이 멀어서 일찍 나왔어요.""못 만나면 혼자서 한 바퀴 돌자. 그러고 나왔어요."나는 배낭에서 우산을 꺼내 전병헌에게 주었다, 전병헌은 우산을 받아 펴들고 앞장 서 걸었다. "용감하네요. 혼자서 오를 생각이었어요? 험한 산인데.""오래 전에 계곡에 앉아 놀다간 적이 있거든요. 아는 길까지만 갔다 오려고 했어요.""비 오는 날은 자칫하면 길 잃기 쉬워요. 산 속에 들어가면 안개가 껴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될 때도 있어요."무모한 아이에게 주의를 주는 말투였다. 나무 계단을 다 오르자 가파른 등산로가 시작되었다. 바위와 돌이 많은 산이라 비 오는 날은 오히려 흙 길보다 걷기가 편할 것 같았다.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졌다. 경사진 길로 들어서기 전에 전병헌은 우산을 접어 물을 털어냈다. 배낭에서 우의를 꺼내 입고 우산을 자신의 배낭에 집어넣었다. 우산만큼의 무게를 덜어주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산에는 자주 와요?""오늘이 처음이에요."내 말에 앞서 걷던 전병헌이 잠시 멈춰 설듯 주춤거리더니 그냥 걸어갔다. "다른 운동하는 거 있어요?""하루에 한 시간은 걸어요. 아파트 주변, 공원 근처 아파트 단지 뒤쪽에 야트막한 동산. 걷는 건 문제없어요." "그럼 정상을 올라 반대편 옛 절터로 넘어갑시다. 걷기도 편하고 최단 코스예요."전병헌이 설명을 해도 알 리가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주 등산로를 따라 무작정 걷다가 적당한 지점에서 돌아오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산행이나 산책이나 걷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게 틀린 생각이라는 것을 나는 금방 깨달았다. 잠시만 방심하면 전병헌과의 거리는 불안할 정도로 벌어졌다. 휘돌아가는 굽은 길에서 전병헌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나는 달리다시피 걸어야했다. 복잡한 거리에서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처럼 나는 허둥대다가 돌부리를 걷어차 비틀대거나, 바위를 밟고 주룩 미끄러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전병헌을 더듬어 찾았지만 내 눈길이 미치는 곳에 그가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007-07-08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55>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땅에 떨어진 밀알이 썩어야, 말하자면 밀알의 죽음을 통해 20~30배에 달하는 수확을 낼 수 있다. 죽지 않으면 재생은 없다. 모천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어버리는 연어도 마찬가지다. 연어의 죽음이 수많은 다른 연어를 낳는 것이다. 사람의 정신에는 자연현상이 어떻게 적용되는 것일까? 쉽게 알 수 있는 예를 들자면, 예수의 죽음으로 인류가 구원받는다는 대속이 그런 맥락인가? 기독교 신자가 아닌 내게 마음으로 이해되는 예는 아니었다. 인간은 한 번 죽으면 끝이니까, 신체적인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정신적인 죽음이란 무엇일까. 이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변하는 것, 변하기 전의 세계가 소멸되어야 새로운 생각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런 것이 죽음과 재생으로 표현되는 것일까. 이전 생각이 죽어 사라지고 다른 생각이 생성한다. 이렇게 간단한 일을 인류는 몇 천년동안이나 신화로, 책으로, 철학으로 계속 변주한단 말인가. 어쩌면 말만큼 변화가 간단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머리로만 생각하니까 쉬울 수도 있었다. 실제로 행동이 따르면 도저히 변하지 못할지도, 변하는 것이 죽는 것만큼 어려울지 모른다. 말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쉽다.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어떤가. 사람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죽음이나 재생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이 이해가 갈듯도 하다. 나는 선택받은 자도 아니고 영웅도, 여신도 아니었다. 내가 지하로 내려가기 싫은 것은 단순히 탁한 공기와 답답한 구조가 싫기 때문인지 모른다. 나의 행동에 이런 식의 의미를 붙이는 것은 어불성설. 역시 만화적 상상력일 뿐이다. 약속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차가 뒤얽힌 도로는 혼잡했다. 지하로 내려가기 싫어도 지하철을 타야했다고 후회했다. 게다가 빗줄기는 아까보다 더 굵었다. 마음 속으로 발을 동동 굴렀지만 버스에 얌전히 앉아있는 수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휴대전화가 없으니 누구에게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비가 오니까 얼마 정도는 기다려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약속 시간에서 이십 여분이나 지나 버스는 산 어귀의 종점에 도착했다. 길 건너편에 보이는 산봉우리가 비구름에 싸여있었다.나를 내려놓고 버스는 구부러진 길을 따라 달려갔다. 시 외곽의 한적한 도로였다. 꼬리를 감추는 버스 꽁무니를 바라보았다. 우산을 펴들었다. 초록색 페인트로 칠해 놓은 정류장 표지 아래 서 있었다. 포장된지 얼마 되지않은 아스팔트 길이 비에 씻겨 말끔했다. 아무도 없었다. 흘끔 손목시계를 보았다. 아직 누구도 와 있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 씌워진 조그만 지붕 아래로 들어가 벤치 위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비닐 우의를 꺼내 위에서부터 뒤집어썼다. 바람이 불어 우산은 별 소용이 없었다. 우산을 접어 배낭에 집어넣었다. 벤치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버스가 서지도 않고 지나쳤다. 산모롱이를 휘감고 돌아가는 길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산에 오르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비에 젖어 번들대는 길이 비어있었다. 배차 간격이 뜸한 버스가 간간이 세찬 비바람을 날리며 쏜살같이 달렸다. 삼 십 여분이 지날 때 비로소 정신이 든 사람처럼 머리 속이 명징해졌다. 장마 비를 헤치며 산행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이 정도의 비라면 자연스럽게 산행이 취소된다는 것이 상식이라는 것을. 미서나 김상우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통용되는 상식이 내게 와서 막힌 것을. 나는 정류장 벤치에 앉아 눈앞에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았다. 버스가 또 한 대 지나갔다. 전 속력으로 달려가는 버스에서 물보라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얼른 몸을 뒤로 틀었다. 비닐 우의를 입은 등 뒤로 물이 화살처럼 달려들었다. 산수화속에 그려진 사람처럼 나는 몸을 조그맣게 말고 앉아 비안개에 싸인 산을 바라보았다. 승객을 태우지 않은 텅 빈 버스가 머뭇거리지도 않고 정류장을 지나쳤다.

2007-07-05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54>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간밤에는 번개가 번쩍거렸고 천둥이 쳤다. 유리창을 세차게 두드리며 폭우가 쏟아졌다. 새벽녘에야 빗발이 가늘어졌다. 지금은 가는 실처럼 비가 내린다. 산에 가는 약속은 유효한가? 간단히 도시락을 싸면서 밖을 내다보았다. 이 정도 비라면 산행을 하기에 그다지 무리일 것 같지는 않았다. 뜨거운 햇볕아래 무방비로 얼굴을 드러내고 하는 산행보다 더 좋을 수도 있었다. 비때문에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면 혼자서 걷는 것도 괜찮았다. 비옷을 챙겨 배낭에 넣고 우산을 집어 들었다. 집을 나섰다. 우산을 때리는 빗줄기가 제법 굵었다. 아파트 마당에는 군데군데 물이 고여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하수구로 흘러들어가는 물소리가 들렸다. 고층 아파트가 밀집된 대단지에는 물난리나 자연재해의 낌새는 없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벼락은 땅속으로 나있는 하수구를 통해 소멸된다. 자동차를 타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도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채 길을 갈 수 있었다. 버스에 앉은채 비에 젖은 거리를 내다보았다. 버스 유리창을 타고 빗물이 길게 흘러내렸다. 비 오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에 출연하고 있는 기분이다. 버스는 이따금 길가에 고여 있던 물을 치면서 달린다. 에어컨 바람때문에 버스 안은 서늘하다. 물기가 증발할 정도로 냉기가 강하다.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 팔짱을 끼고 손바닥으로 팔을 문질렀다.책은 잘 나가는지 궁금했다. 아동물은 그다지 경기를 타지 않는다. 특히 학습만화 같은 것은 웬만하면 롱런이다. 이번 시리즈물은 내용도 알차고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전병헌의 그림이 강점이었다. 그의 그림에는 독자에게 어필하는 요소가 있었다. 강민기에게 잠시 품었던 서운함은 이미 사라졌다. 어쨌든 선배는 나를 배려해 일을 주었다. 미서가 생각하는 계산법은 지금의 내게는 별 의미가 없다. 좋은 작품을 쓰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게 최선의 길이다. 내가 자격을 갖추면 무시당하거나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지금의 나는 아마추어나 다름없다. 좀더 실력을 갖추고, 많은 작품을 써야했다. 오늘 김상우를 만나면 좀더 풍부한 자료와 글이 실린 책을 구할 수 있는지 물어야겠다. 미서와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전병헌에게는 작품의 구조와 스토리를 어떤 식으로 구축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조언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적당한 시기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능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버스는 느릿느릿 달렸다. 비가 와서 길이 막히는 모양이었다. 비 오는 날은 지하철을 타기가 싫었다. 비 오는 날 뿐 아니라 요즘 들어서는 지하로 내려가는 일이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막히는 길인줄 뻔히 알면서도 버스를 탄다. 지하에 있는 찻집이나 음식점은 잘 가지 않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는 순간 숨이 막혔다. 한 번 내려가면 두 번 다시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단순히 땅 아래일 뿐이었다. 환기 시설이 완벽하고, 조명이 환해 지하시설물 같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몸이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알지 못할 두려움이 엄습했다. 어둡고 암울한 동굴이나 죽음의 세계가 떠올랐다. 죽음은 아직 먼 저편에 있다고 생각해 왔다. 실감이 나지 않으니까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지하가 싫은지 알 수 없었다. 요즘들어 자주 읽게 되는 신화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신화에서 지하세계로의 여행은 사회적으로 선택받은 자들만의 것이었다. 지하세계의 여행은 매우 힘들고 종종 돌아올 수 없는 운명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만일 이 여행에서 돌아오면 이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재생에 관한 지식과 새로운 인생관 혹은 세계관을 획득했다. 지하세계로 내려갈 때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했다. 신화에서 영웅이나 신들은 인생의 필연적인 종착점인 죽음을 통하여 삶을 관조하는 시각을 얻고 있었다.

2007-07-04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53>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지금부터 7천년 전, 북동 시리아 지역에서 발견된 비너스 상이 화면에 떠 있다. 높이 8㎝ 너비 5㎝ 크기의 진흙으로 만들어진 작은 비너스상은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팔등신에다 황금분할의 비율로 만들어진 균형 잡힌 비너스상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커다란 가슴과 전체 길이의 절반정도를 차지하는 풍만한 엉덩이를 가진 비너스 상을 찍은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많은 아이를 낳아 노동력을 충원하기를 원하던 농경 시대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던 여성의 모습이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비만에다 성인병을 우려할 몸매였다. 그 당시에도 이런 풍만한 몸매의 여자는 없었을지도 몰랐다. 다산과 풍요를 비는 주술적인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일거다. 사랑도 아름다움도 시대에 따라 변했을 것이다. 김상우는 신화를 분석해 그 시대에 통용되던 사랑을 정리한 것이고. 지금은 어떤 사랑이 통용되는 시대일까.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시대니까 사랑도 그럴지도 모른다. 뭉뚱그려 사랑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는 해도, 세밀하게 나누어 보면 수많은 감정의 갈래가 있을 것이고, 그런 것들에 우리는 죄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부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감정의 갈래를 잡아야 한단 말인가.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왜 뜬금없이 신화 속의 사랑과 여신이 떠올랐는지 알 수 없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마우스를 눌러 뚱뚱한 비너스를 지워버렸다. 좀 더 구체적인 주제와 소재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전 내내 고민하던 문제가 조금도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신화 속의 사랑과 여신은 내 능력이 미치지 않은 것뿐이지 매력이 있는 소재였다. 버리기는 아까웠다. 좀 더 시간을 두고 머릿속에서 굴려보자. 오늘은 그만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사람들로 꽉 들어찬 러시아워의 지하철처럼 생각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 컨디션 탓일 수도 있었다. 기침 때문에 밤중에 몇 번이나 깨서 잠을 설치는 통에 두뇌가 원활하게 돌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까다로운 소재가 주어져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소화하게 마련이었다. 나는 경험을 믿기로 했다. 이형수에게서 메일이 와 있었다. 스터디 멤버 전체에게 보내는 단체 메일이었다. 수요일에 산행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평일이니까 시간이 되는 사람은 참석하라고 권했다. 나는 미서에게 메일을 썼다. 김상우의 홈페이지를 오전 내내 들여다보았는데 건진 게 아무것도 없네.신화 속의 사랑과 여신. 어때 소재 죽이지 않냐? 사랑의 변천사를 바탕에 깔고 현대적인 사랑의 스토리를 만들고 싶어.결국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주제로 들어가겠지?그런데 실은 나도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미서, 너는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 들어보았으면 한다.수요일에 산에서 보자. 도시락 맛있게 싸와라.보내기를 클릭 하는 순간에 나는 깨달았다. 내가 만들려고 하는 이야기가 왜 오리무중인가를. 미서에게 보내는 메일 속에 답이 들어있었다. 사랑에 대한 내 생각, 내가 사랑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모호했던 것이다.말하자면 내게는 사랑이 부재했다. 내가 사랑을 쏟고 있는 것이 없었다. 내게 사랑을 주고 있는 대상도 없었다. 내 삶에는 사랑에 관한한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텅 비어있었다. 나는 권태나 공허함 때문에 닥치는 대로 손에 무엇이건 잡으려는 중이었다. 머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을 손가락이 알고 있었다.

2007-07-03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52>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플라토닉 러브, 그것이 5%의 영역에 있었다. 우정, 지혜에 대한 사랑, 에로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랑이었다, 에로스적인 사랑과 플라토닉 러브를 합쳐서 100%를 다 채웠다. 그렇다면 김상우가 신화에서 발견해 분석해 놓은 자기희생적인 사랑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자기 비움, 자기희생은 어디에 자리한단 말인가. 100%의 위에, 모든 사랑의 범위를 벗어난 곳에 아가페 혹은 헤세드라 이름이 붙은 영혼의 사랑이 있다는 것인가. 지상에 존재하는 세 가지 사랑. 이것들을 어떤 식으로 정리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신화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쓸 것인지, 아니면 재가공하여 현대적인 이야기로 만들 것인지에 대해 결정을 해야 했다. 현대적이거나 신화적인 발상이거나 모두 막막했다. 자료를 대충 훑어 본 것으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천지 창조 이전, 혼돈 속, 땅도 하늘도 나누어지지 않은 카오스의 상태였다. 스토리를 쓰기 전에 자료를 검토하다보면 대강의 윤곽이 잡히기 마련이었다. 주제와 스토리 라인이 자료 검토가 끝나갈 무렵쯤이면 그림이 그려졌다. 이번 일은 오리무중이었다. 실마리가 실 뭉치 속에 엉켜 들어가 찾을 수 없었다. 컴퓨터를 끄고 일어났다. 주방으로 가서 다 식은 커피를 커피 잔에 부었다. 구름이 걷혀 툭 터져있던 하늘에 다시 구름이 밀려왔다. 사방에 그림자가 드리우듯 어둑해졌다. 맨 발바닥에 밟히는 카펫이 눅눅했다. 장마 동안 내내 공기는 습기를 머금고 있을 게 뻔했다. 베란다 창 아래로 보이는 나뭇가지는 축 늘어져 있다. 물기를 머금고 있는 모든 게 무거워보였다. 밖을 내다보며 서서 식은 커피를 마셨다. 아무 맛도 향도 없었다. 이름만 커피뿐인 음료를 나는 습관적으로 삼켰다. 세상의 많은 일이 이런 식이 아닐까. 아무런 감동도 관심도 없으면서 타성으로 살아가는 일들. 똑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일상을 어제와 조금도 다름없이 되풀이 하는 날들. 아침에 남편이 만든 토스트와 계란 프라이의 감동이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도 않아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사는 것은 이런 것일까? 문득 아침에 이런 식의 생활도 괜찮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났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 것이 마치 전생인 것처럼 아득했다. 권태나 지루함이란 할일이 없을 때, 목표나 지향점이 없을 때 일어나는 게 아니던가?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도 강한 동기와 강렬한 욕망에 떠밀려서 생겼다. 어째서 그런 것들이 부질없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몸 어딘가에 숭숭 구멍이 난 것처럼 눅눅한 바람이 드나들었다. 너무 방대한 신화를 정리하자니 능력에 부치고, 그래서 의기소침 해진 것일까. 자신감이 사라진 자신에 대한 방어 작용 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그다지 큰일은 아니었다. 지식이란 파고들면 정리가 되게 마련이고 체계를 세우고 나름대로 의미를 만들다보면 손에 잡힌다. 잔 바닥에 고여 있는 커피를 싱크대에 부어버렸다. 다시 컴퓨터를 켰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빠른 시간 안에 스토리를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강의를 듣거나 관련 서적을 찾아서 좀 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김상우와는 한 달에 한 번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김상우는 여름 방학 동안 여행 계획이 잡혀 있었고,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스터디로는 부족했다. 신화, 사랑과 여신, 수메르, 이집트, 그리스, 창세기, 에로스, 플라토닉. 아가페, 혼돈, 생명의 근원, 죽음 재생. 이런 낱말들을 검색해보았다. 컴퓨터 화면에 가슴과 엉덩이가 기형적으로 풍만한 벌거벗은 비너스가 나타났다.

2007-07-02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51>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인터넷을 연결해 김상우의 홈페이지 주소를 쳤다. '문명과 신화'라는 제목을 단 화면이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처럼 나타났다. 김상우는 대학뿐 아니라 각종 사회단체나 종교단체에서도 강의를 하는 중이었다. 수강생들이 질문을 하는 방이 있었고 김상우는 성실하게 답을 하고 있었다. 자료는 예상외로 많았다. 수메르신화에서 시작해, 이집트, 그리스는 물론 기독교에 관한 자료도 있었다. 나는 우선 신화에 나타나는 여신과 사랑에 관한 글들을 검색했다. 자료를 읽다가 한 시간도 안 되어 나는 마우스를 잡고 있는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흔한 게 사랑이라지만…….' 이라고 흥얼거리는 일상적인 사랑의 기록은 기원전 5000년 전부터였다. 그러니까 무려 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조명해야 하는 것이다.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사랑과는 뭔가 다르다는 예감이 들었다. 까마득한 옛날의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니, 불과 얼마 전의 일도 가물거리기 일쑤인데 말이다. 거대한 산이 앞을 가로막는 느낌이었다. 방대한 자료에 주눅이 들었다.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일단 한 번 훑어보기라도 해야 했다. 결정은 그 다음에 내리면 될 일이었다. 김상우는 신화를 중심으로 사랑을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 그리고 영혼의 사랑으로. 사랑의 대부분, 무려 95%를 차지하고 있는 육체적인 사랑은 소유에 근거를 둔다고 규정했다. 그것의 예로 수메르의 여신, 인안나를 들고 있었다. 인안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여신들 중 가장 중요하고 기능이 다양한 여신이었다. 인안나는 사랑의 여신, 인간과 동물을 생산하는 풍요의 여신뿐 아니라 전쟁의 여신이기도 했다. 인안나가 숭배되는 이유는 그녀가 풍요의 신이기 때문이었다. 남녀간의 성행위를 통해 자식을 낳고, 비옥한 땅에 씨를 뿌리고 수확물을 거두는 농경은 남녀간의 성행위와 다르지 않은 생산 과정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가까운 과거에 우리 농촌에서도 달 밝은 밤에 아녀자가 벌거벗고 밭고랑을 뛰어다니던 풍습이 있었다. 벌거벗은 여자의 몸에 쏟아져 내리는 달빛, 온몸 가득 정기를 받은 여성, 그 몸과 교감하는 땅, 풍성한 수확을 바라는 의례였다. 인안나는 창조의 여신이자 곡식창고의 신, 이후 수많은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여신으로 변하여 다른 문화권으로 수용되었다. 나는 수메르 신화에서 인안나에 대한 사랑의 기록을 발췌한 부분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행위는 모두 다산과 풍요에 연결되어 있었다. 사랑에 대하여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궤도수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흐릿한 안개에 싸여있었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야겠구나 싶었다. 화면이 바뀌었다. 나머지 5%를 차지하고 있는 또 다른 형태, 소위 정신적인 사랑이라 일컫는 것이었다.

2007-07-01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50>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간밤에는 비 오는 소리를 듣다가 잠이 들었다. 한 밤중에 두어 번 기침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 보니 해가 방안을 훤히 비추고 있었다. 후다닥 일어나 주방으로 나갔다. 아홉시가 넘었다. 남편은 벌써 출근 한 후였다. 식탁 위에 계란 프라이와 토스트 두 쪽이 접시 위에 놓여 있었다. 투명한 랩으로 접시 채 싸놓아 내용물이 훤히 보였다. 남편이 마신 오렌지 주스가 투명한 유리 잔 바닥에 조금 고여 있었다.랩을 벗겨내고 내 몫으로 남은 토스트를 집어 들었다. 버터 냄새가 났다. 가장자리는 조금 탔다. 계란 프라이는 양 쪽을 익히느라 뒤집은 것 같았다. 접시 바닥에 익지 않은 노른자가 굳은 흰자 껍질을 뚫고 흘렀다. 나는 주스를 마시는 대신 커피를 끓였다. 토스트를 씹고 커피를 마셨다. 기분이 이상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함, 남편이 나를 위해 토스트와 계란을 구웠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단순히 감동하기에는 뭐가 석연치 않았다.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감정의 정체가 무언지 생각했다. 사람이 갑자기 변했다. 이유가 뭘까? 어깨에 힘이 빠진 건가. 인생의 의미를 가정에서 찾기 시작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금방 수긍하기 어려웠다. 오랫동안 해온 역할 분담이 갑자기 깨진데서 오는 혼란이었다. 남편의 정성에 감동하지 못하고 그 이유를 찾아내려고 나는 미간을 좁혔다. 변화는 의외로 간단할지 모른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배우자가 측은해 진다고 하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내가 남편의 심정에 측은지심을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생활이 변한다면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접시를 말끔히 비우고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다. 장마가 소강상태에 들어섰는지 푸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어제 내린 비로 공기 중에 습도가 높아 다소 후텁지근한 게 흠이었다. 여름이다. 장마 끝나면 이런 더위는 게임도 안 될 거다. 책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다. 에어컨을 켜거나 선풍기를 틀어놓은 채 맥을 놓고 가만히 앉아 여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들어서 공모를 준비하면 이미 늦다.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초고라도 끝내야 한다. 왜 나는 늘 늦게 발동이 걸리는 지 알 수 없었다. 어제 출판 기념회에서, 그리고 미서가 강민기에게 따지고 들 때 생각했다. 라이선스를 따야겠다고. 운전을 하자는 게 아니라, 계약서에 내 사인을 멋지게 휘갈겨야겠다고 결심했다. 새삼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게 한 편 생각하면 겸연쩍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책에 내 이름을 박지 못하는 이유가 온전히 그것 때문이라면 자존심쯤은 무시할 수 있었다. 자존심은 원래 배고플 때 꺼내드는 숟갈 같은 거다.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 라는 말은 절묘한 비유다. 숟갈이 없어도 굶어죽을 지경이 되면 다 먹는다. 손으로, 입으로 온 몸으로. 먹을 것이 있는 한 아무도 굶어죽지 않는다. 무엇을 쓸까? 어떤 것을 써야하나? 공모전은 수백, 수천과 경쟁을 해야 하는 무대다. 한 규리처럼 싱싱하고 발랄한 아이들이 탱탱 튀는 글을 던질 게 분명했다. 같이 뛰는 수밖에 없다. 헤딩슛을 날리려면 공을 향해 모두 아우성치며 하늘로 뛰어올라야 한다. 갑자기 맥이 빠졌다. 요즘 애들의 감각과 체력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넘기는커녕 따라잡을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공모전은 학습만화나 상품이 되는 글을 쓰는 것과는 달랐다. 패기와 상상력, 신선한 감각과 환상, 만화적인 유머 감각과 시대를 가로지르는 예리한 통찰력,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젠장, 내게는 전부 부족하거나 없는 것뿐이다. 의기소침해졌다. 의욕과 의도만으로 당선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처럼 목적이 뚜렷한 사람도 없을 텐데. 퍼뜩 김상우가 떠올랐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메르 신화 속에서 보았던 사랑의 여신들이 지나갔다.

2007-06-28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49>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남편은 거실 소파 위에서 잠이 들어있었다. 내가 쓴 만화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는지 손에 반쯤 펼쳐진 책이 들려있었다. 내 앞에서는 까짓 초등학생용 만화, 나 같으면 발로도 쓰겠다고 빈정댔지만 역시 궁금했던 모양이다. 남편의 손에서 가만히 만화책을 빼냈다. 고개를 옆으로 꺾어 무방비로 잠든 모습이 안쓰러웠다. 나는 남편의 여윈 손가락을 잡았다. 잠결에 남편이 움찔 팔을 떨었다. 남편의 손을 잡고 조금 흔들었다. 남편은 흠칫 놀라며 눈을 떴다. "방에 들어가서 자. 시간 많이 됐어."남편은 입가에 흘린 침을 닦으며 고개를 세웠다. "몇 시야? 언제 왔어?"남편은 아홉시 뉴스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잠들곤 했다. 열한시가 넘은 지 이미 오래다. 나를 기다리다소파에서 잠이 든 모양이었다. "들어가."남편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일어나 비틀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남편도 이제 삶의 사다리를 내려오는 시기에 접어든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십대가 되면 정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증권 회사가 남편의 직장이었다. 남편의 인생은 경기에 따라 오르내렸다. 남편이 아직 삼 십대였을 때, 비록 마흔을 코앞에 둔 삼십대이기는 했지만 그때가 어쩌면 인생의 절정기였는지도 모른다. 증시는 활황이었고, 남편의 실적은 매일 상종가였다. 그때는 누구나 그랬다. 도심지에는 새로운 건물이 치솟았고, 변두리에는 새 도시가 조성되었다. 주위 사람들이 자동차를 신형으로 바꾸었고, 낡아서 덜덜거리는 차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남편은 새로운 금융기법을 연구하기 위해 해외 파견을 자청했다. 회사에서 열심히 경력을 쌓아갈 시기에 그것은 모험일 수도 있었다. 빠르게 변하는 금융 시장에서 이년간의 단절은 무모했다. 미래를 위한 포석인지, 어머니를 잃은 충격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무렵 우리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유학을 떠난 것은 시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지 채 일 년이 넘지 않았을 때였다. 남편은 여러 가지로 지쳤을지도 몰랐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내 손에 닿는 모든 사물이 모래처럼 바스라지거나 폐허처럼 황량해졌다. 결과적으로 남편의 유학은 우리 둘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잘 모르겠다. 내게는 상처였지만 남편에게는 아닐 수도 있었다. 안방으로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다. 지금은 괜찮은 것 같지만 눕자마자 기침이 터질 게 분명했다. 잠이 든 남편을 깨울 게 뻔했다. 물을 한 컵 들고 거실과 주방의 전등을 내렸다.작은 방 유리창에 빗방울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보았다. 손바닥에 작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창턱에 기대 턱을 괴고 서서 가로등이 서있는 아파트 마당을 내다보았다. 둥근 모자처럼 전등을 머리에 인 키 낮은 가로등의 불빛 속으로 비가 뛰어들었다. 가로등 주변에만 자욱이 비안개가 서린다.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은 어둡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같다. 일본에서 만난 그 여자는 귀국해서 이곳에 자리를 잡았을까. 남편이 대학에 들어갔을 때 석사과정을 마쳤으니 아직 공부 중일지 모른다. 일본대학은 유학생에게 석사학위는 쉽게 주지만 박사학위는 매우 까다롭게 심사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한때 남편의 여자였을까? 그때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래서 힘들었다. 생각해보니 아닐 수도 있었다. 가로등 빛이 닿지 않는 부분이 보이지 않듯 내 짐작은 거기까지다.

2007-06-27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48>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이형수는 잡은 내 손을 놓지 않고 걸었다. 나는 몇 번 이형수의 손에서 내 손을 빼내려고 꼼지락거리다 포기했다. 미서와 헤어진 후, 몹시 우울해졌다. 사는 게 뭔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걸음이 왜 그렇게 빨라요? 찾느라고 한참 헤맸어요."이형수는 나를 끌고 기운차게 걸었다. 이형수는 사람을 활달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 줄게요. 집에 가기 싫으면 모텔에 가도 되고요."마치 극장에라도 가자는 투로 이형수는 말했다. 순간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모텔에 가자는 말이 유쾌하게 들렸다. 강민기나 전병헌이 만약 그렇게 말했더라면 나는 분명히 얼굴이 달아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심각하게 생각했을 게다. 모텔에 가자는 말을 대뜸 사랑으로 대치시켜서 말이다. 마치 결혼을 신청하는 왕자에게 생각할 말미가 필요하다고 망설이는 처녀처럼. 같은 말이라도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니. 손아래 동생 같아서였을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사람은 각기 지니고 있는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았다. 이형수에게 손을 잡혀 몇 발짝 걸어가는데 뒤쪽에서 누군가 불렀다. 돌아보니 정신희가 종종 걸음으로 뛰다시피 왔다. 나는 놀라서 이형수의 손을 뿌리쳤다. 그래봐야 소용없을 게 뻔했다. 저렇게 뒤에서 달려오면서 손잡고 있는 것을 못 볼 리 없었다. 정신희는 다짜고짜 길 한복판에서 이형수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형수도 정신희의 몸을 부드럽게 양 팔로 감싸 안았다. 나는 바로 곁에서 엉거주춤 서서 둘이 포옹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인사말을 끝낸 정신희는 이형수의 목을 감고 있던 팔을 풀고 오던 길을 되돌아 가버렸다. 일분도 걸리지 않았을 인사를 위해 달려왔단 말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혼잡한 길거리에 서서 목에 팔을 걸고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라니. 정신희는 이형수를 불러 세우고, 소중하게 목을 끌어안고 또 돌아서는 시간 동안 내게는 눈길 하나 돌리지 않았다. 나는 투명인간처럼 그들의 밤 인사를, 참 예쁘구나 생각하며 한 발짝 곁에서 지켜보았다. 무시당했다거나, 당돌한 여자다, 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를 보지 못하는 정신희가 아름다워 보였고, 부러웠다. 정신희가 떠난 다음 이형수는 태연하게 다시 내 손을 끌어당겨 잡았다. 지하도를 건너 교외로 가는 버스정류장 앞까지 와서야 비로소 내 손을 놓았다. 이형수가 정류장에 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음 주 중에 산에 갑시다."이형수는 천천히 크게 입 모양을 만들어 말했다. 산? 내가 버스 안에서 손가락으로 글자를 그리면서 되물었다. 이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출발하는 버스를 향해 두어 번 손을 흔들었다.버스를 타고 가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노란 나트륨 가로등이 규칙적으로 지나갔다. 버스 안으로 노란색 물결과 어둠이 파도처럼 교대로 밀려왔다가 물러갔다. 버스가 달리는 길 너머 어둠 속에 강물이 고여 있었다. 흐름은 보이지 않고 색깔만 보였다. 강변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불빛에 비치는 강 표면은 수많은 비늘로 뒤덮인 물고기 등 같았다. 어두운 무대에 등장하는 무용수의 옷에 매달린 반짝이처럼 강 표면은 무수히 많은 작은 빛을 반사하며 뒤척였다. 매 순간 저렇게 빛나며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정신희나 이형수처럼 보는 사람이 참 예쁘구나 생각이 들 수 있게 살면 좋을 텐데. 무엇이 나를 옥죄는지도 모르는 내가 답답했다. 기침이 시작되려고 했다. 제발 좀 봐줘라 하는 심정으로 나는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2007-06-26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47>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전화로 미서에게 책에 이름도 넣지 않는, 선배의 처사에 대해 서운함을 털어놓은 내가 바보였다. 그러나 미서가 이런 식으로 강민기에게 항의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원래 재능을 갖고 태어나 늘 인정을 받아온 사람은 모를 것이다. 하찮은 일에도 주눅 들고 자신감이 없어지는 심정을, 할 말도 제대로 못한 채 오직 입 속으로만 중얼거리는 것을. 이런 식으로 쓸데없이 일을 벌이는 게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지를. 나는 미서가 내 편인 것을 고마워해야 마땅했다. 용기가 없어 입을 다물고 있는 나 대신 할 말을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곤혹스러웠다. 미서를 앞세우고 그 뒤에 숨어 불평을 해대는 옹졸한 인간으로 비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이율배반적인 감정이라니. 불만을 토로하고는 싶지만, 그것 때문에 남에게 졸렬하게 보이고 싶지는 않다. 통쾌하지만 한 편으로는 최소한 내게 호의를 보여준 강민기나 정신희의 기분을 거스를까 염려되었다. 이런 비참한 처지라니, 나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벅저벅 걸어가 미서의 팔을 잡았다. "나 데려다 줘. 몸이 아파서 더 이상 못 앉아있겠어."내게 팔목이 잡힌 채 미서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넌 항상 그게 문제야. 왜 할 말을 당당하게 못하니? 이건 네가 늘 말하는 실력의 문제가 아니야. 다른 문제라고,""앉아 있기 힘들어서 그래. 버스 타는 곳까지라도 배웅해 줘."나는 미서의 팔을 놓지 않았다. 미서는 내 얼굴을 한참 쳐다보더니 슬며시 일어섰다. 다른 때 같으면 한 두 사람이 일어나면 모두 함께 일어나 파장이 될 분위기였다. 그러나 누구도 선뜻 일어나지 않았다. 미서와 나는 호프집을 나왔다. 가로수의 가지가 바람에 흔들려 서로 부딪쳐 소리를 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 눅눅한 습기가 섞여있었다. 다음 주부터 장마가 시작된다. 늦은 시각이지만 거리에는 사람이 넘쳤다. 팔차선 도로에는 달려가는 차들이 신호등에 따라 일제히 가다 서다를 반복하곤 했다. 내게 팔을 잡힌 미서는 말없이 끌려왔다. "화났니?"내가 물었다. "꼭 너 때문만은 아니야. 선배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서 그래."미서는 한 풀 꺾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네가 늘 그랬잖아. 한 곳에 머무는 것은 없다고.""알아. 어제의 나나 과거의 선배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도 화가 나. 머물지 않고 달라지고 바뀌는 게 참을 수 없이 속상해. 나는 세상을 몸으로 살지 않고 머리로 사는 지도 모르겠어."미서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미서의 어깨가 작아보였다. 미서에게서 고통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갑자기 불쑥 뒤통수가 뜨거워졌다. 가만히 미서를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미서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쩌면 나보다 미서가 더 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드는 순간이었다. "넌 여기서 버스 타."내 말에 미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서가 버스를 타고 떠나는 것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나는 다시 걸었다. 교외로 나가는 버스가 서는 곳까지는 두 블록 정도 더 걸어야 했다. 비가 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내 손을 잡아챘다. 가쁜 숨을 고르는 이형수의 얼굴이 내 등 뒤에 있었다.

2007-06-25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46>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미서의 모난 목소리다. 화를 좀체 내지 않는 대신 미서는 화가 나면 수습하기 어렵다. 나는 간간이 터져 나오는 기침을 억누르는 중이었다. 가슴이 답답했고 목구멍 근처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정신희는 순식간에 얼굴색이 달라졌다. 미서는 눈 꼬리를 약간 늘어뜨리고 선배를 빤히 쳐다보았다. "강민기씨, 선영이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나는 퍼뜩 미서를 바라보았다. 미서가 선배에게 강민기라고 이름을 부르는 것은 거의 없는 일이었다. 뭔가 대단히 화가 났을 때, 선배의 처사가 심히 부당하다고 생각이 들 때 이었다. 선배는 매사에 신중하고 공평했으므로 불평을 들을만한 일은 거의 없었다. 미서의 입에서 내 이름이 튀어나왔고, 목소리가 다소 컸기 때문에 모두들 동작을 멈추고 미서와 강민기를 바라보았다. 격렬한 기침이 목구멍을 뚫고 터져 나오려는 조짐이 느껴졌다. 내 앞에 놓여있던 맥주잔을 들고 얼른 마셨다. 기침이 나오기 직전 목에 수분을 공급해주면 가라앉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미서가 강민기에게 할 말은 뻔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이 악화되지 않게 수습할 필요가 있었다. 미서가 하려는 말은 나와 강민기 선배와의 일이었다. 맥주가 목구멍을 적시는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한 입 가득 들이 부었던 맥주가 발작적으로 터지는 기침과 함께 초속 30킬로미터의 강풍처럼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나의 정면에 전병헌이 앉아있었기 때문에 내 입에서 나온 침과 맥주와 세균과 그밖에 눈에 보이지 않게 들어있던 온갖 불순물들이 전병헌의 얼굴로 날아갔다. 전병헌은 얼굴 가득 맥주의 파편을 뒤집어쓰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맙소사, 전병헌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땀을 흘리는 석상처럼 가만히 있었다. 기침이나 멎으면 손수건을 꺼내 닦아주든지 어떻게 해볼 텐데, 기침이 연속적으로 터졌다. 나는 비상용으로 테이블 한 쪽 귀퉁이에 올려두었던 내 손수건을 잽싸게 들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 와중에서도 난감하고 미안한 마음이 두서없이 엄습했다. 본격적으로 기침이 시작되는 시각이 된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기침이란 놈이 나를 많이 봐 준 셈이었다. 아프다고 핑계대고 미리 집으로 갔더라면 이런 창피는 안 당했을 텐데, 나는 늘 적절하게 행동 할 시간을 놓쳤다. 내 입을 막았던 손수건을 건네 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기침 때문에 들썩거리는 몸을 가누기에도 힘들었다. 테이블 아래로 몸을 구부려 가능한 기침 소리가 울리지 않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마에서 진땀이 송송 솟았다. 겨우 몸을 가누고 눈을 들어보니 전병헌은 테이블위에 놓여있던 냅킨으로 얼굴을 닦은 후 이었다. 미서의 화난 목소리에 그쪽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옮겨 가 있던 탓에 나와 전병헌의 소동을 본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무안해 할까봐 그냥 못 본 척했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사람들의 시선은 미서와 강민기에게 향해 있었다. "전병헌 선생님과는 인세로 계약을 하셨다면서요. 너무 하지 않나요?"계약 조건을 따지고 있었다. 전병헌과는 인세로 계약했구나. 순간 마음속으로 씁쓸함이 지나갔다. 나도 모르는 사실을 미서는 어디서 알았을까. 도대체 글을 쓴 사람은 난데 왜 분위기는 하나도 그렇지 않은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책을 팔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따르기 마련이다. 만약 전병헌이 그럴만한 실력이 없다면 죽었다 깨도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달고 그림을 그리지 못할 것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대개 척 보면 안다. 상품이 되는지, 작품이 되는지. 무명작가로 일하게 되면 또한 그런 생리에 대해 거의 본능적으로 감각을 터득하게 된다. 속으로 칼을 갈 뿐인 것이다. 단칼에 자존심을 만회할 기회를 말이다.

2007-06-24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45>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한규리가 옆에 놓여있던 포도주 병을 집어 들었다. 내 잔을 채워주고 전병헌의 잔을 채웠다. 미서가 불쑥 한규리 앞으로 잔을 내밀었다. "선생님 소설 참 좋아해요. 요즘도 가끔 잠 안 오면 펴보곤 해요.""하하 수면제용?""아이구 선생님도 참, 당연히 아니죠. 그런데 요즘은 왜 소설 안 쓰세요?""충전 중이야. 샘이 다 말라버렸거든, 물이 고일 때까지 기다리는 중."한규리는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가 내 팔을 가볍게 잡고 끌었다. 전병헌에게 의례적인 인사말을 하려던 참 이었다. 선배에게 팔이 잡혀 걸어가면서 다행이다 싶었다. 선배는 사람들 틈을 돌아다니며 나를 소개했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사람도 있었고, 만화가, 시인, 영화판에서 일하는 사람, 작사를 주로 하는 음악가, 화가, 평범한 회사원에 국회의원 보좌관이라고 찍힌 명함을 건네준 사람도 있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보게 되어 누가 누군지 기억하기 어려웠다. 공기가 머리 위에서 술렁거렸고, 발은 한 인치 쯤 바닥에서 떠 있는 것 같았다. 선배는 나를 스토리 작가로 소개했다. 소개 받은 사람 중에 스토리 작가에게 관심 있는 사람은 만화가 정도였다. 의외로 스토리작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만화를 그리기 전에 영화의 시나리오처럼 콘티가 있어야 하는 것을 설명했다. 김상우와 이형수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내게 다가왔다. 이형수는 대뜸 내 손을 잡더니 마구 흔들었다. 이제야 겨우 파티에 참석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급히 마신 와인의 취기가 머리로 올랐다. 선배는 나를 이 파티의 한쪽을 차지하는 주인공으로 대우했다. 처음 이곳에 들어섰을 때 나를 어디에 두어야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손님인지, 주인인지, 혹은 그냥 선배의 초대에 응한 무명작가로서 처신해야 할지 애매했다. 숨은 작가의 애환. 내연의 여자 같은 심정이었다. 나서기도 그렇다고 무작정 졸아들기도 어색했다. 그러나 더 이상 어정쩡하게 처신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형수가 나타남으로 자의식은 간단히 누그러졌다. 이형수의 넘치는 에너지와 자유분방한 태도가 순식간에 내게 전해졌다. 단순히 분위기를 즐기면 되는 일이었다. 이리도 쉬운 일이었다니 어이가 없다. 초여름 해는 좀처럼 넘어가지 않으려 했다. 강변에서 바라보는 서쪽하늘에는 빛을 잃은 커다란 태양이 마치 둥근 구리 쟁반처럼 빌딩사이에 걸려 있었다. 넘어가는 태양의 마지막이 저리도 커다랗다니. 처음 보는 자연현상처럼 마음이 장엄해지려고 했다. 파티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은 스터디 그룹이었다. 배 위의 파티 장에서 생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열시가 넘었고, 가끔 기침이 나왔다. 내 몸이 밤이 된 것을 뒤늦게 감지한 것 같았다. 전병헌과는 끝내 변변히 인사다운 인사, 대화다운 대화 한마디 나누지 못한 채였다. 전병헌은 상당히 취해 있었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누구라도 작업이 끝나면 진탕 술을 마시고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날리고 싶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속에 있던 무언가를 다 털어낸 후에 오는 공허함도 있었다. 애지중지하던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심정이랄까. 어쨌든 무어라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술을 마시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나를 취하게 만들지 않았다. 전철이 끊기기 전에 집에 가야한다는 생각과 기침이 심해서 어쨌든 조심을 하는 중이었다. 500㏄ 생맥주 잔을 받아 놓고 조금씩 홀짝거렸다. 미서가 많이 취한 목소리로 선배에게 무언가 말했다. 대각선으로 건너편에 앉아있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느낌으로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미서를 쳐다보았다. 선배대신에 정신희가 미서에게 대답했는데 내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당신한테 물은 거 아니야. 사장에게 물었어."미서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뭔가 못마땅할 때의 표정이었다.

2007-06-21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44>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출판 기념식장은 한강변의 선상 레스토랑이었다. 고래 사냥이라는 레스토랑의 상호가 저물어가는 수면 위에 떠서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수면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 선상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파티가 시작된 지 한 시간이나 지난 터라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었다. 뷔페식으로 벽을 따라 놓여있는 기다란 테이블 위에 몇 가지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술과 음료는 강이 내다보이는 유리창 아래를 따라 놓여있었다. 예상외로 참석한 사람들이 많았다. 포도주 잔을 든 사람들이 서너 명씩 모여서 있었다. 선배는 양복을 입고 출구 가까운 곳에 있었다. 평소에 주로 청바지를 입고 다니던 정신희도 치마를 입은 정장 차림이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그들 둘밖에 없었다. 전병헌은 물론이고 미서와 나머지 스터디 멤버들이 와 있을 터였다. 레스토랑은 앞쪽에 작은 무대가 있었다. 이따금 주말 저녁 같은 시간에 가수가 나와 라이브로 노래를 하는 모양이었다. 장소는 그다지 넓지 않았다.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금방 누구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미끄러지듯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럴 때 미서가 공중에서 떨어지듯 나타나면 좋으련만. 음식이 놓여있는 테이블을 지나 주류가 놓여있는 창가 테이블 까지 가는 동안 누구도 눈에 띄지 않았다. 선배의 사무실에서 한 번 본적이 있는 여직원이 아는 척하며 내게 포도주를 따라 주었다. 음료를 서비스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를 발견한 선배가 다가왔다. "늦었구나. 저녁은 좀 먹었어?""미안해요. 나오는데 갑자기 집에 일이 좀 생겨서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숨은 작가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지 걱정이 돼서 일부러 미적거렸다. 선배는 나를 데리고 대학생처럼 보이는 여자 앞으로 갔다. "이번에 나머지 세권의 콘티를 쓴 한규리 작가. 이쪽은 인체와 우주콘티를 맡은 김선영."선배가 나를 소개하는 말을 듣자 비로소 파티의 일원이 된 기분이었다. 책에 찍은 이름과는 상관없이 선배는 나를 작가로 소개하고 있었다. 내 앞에 선 여자를 살펴 볼 여유가 생겼다. 요즘 애라고 해도 좋을 만치 발랄해보였다. "글 쓰느라 고생 많으셨죠?"한규리는 귀엽게 웃었다. "이쪽은 대학 졸업하기도 전에 만화 시나리오 공모에서 대상을 탔어. 엄청 화려하게 데뷔했지."이미 술이 꽤 오른 선배가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실력은 별로였는데 십년 대운이 시작되는 해였어요. 초짜인 제게 선생님께서 일을 맡기신 것만 봐도 알 수 있죠."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공모전에서 대상을 탔다면 분명히 재능이 있을 터였다. 얼굴은 작고 체형은 기다란 서양 인형처럼 생긴 외모와 달리 성격은 툭 터져보였다. 미서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은 일정한 특징이 있는 걸까. 한규리를 보고 있으니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한규리 역시 이미 포도주를 상당히 마신 것 같았다. 작가니까 오늘의 주인공이다. 이곳저곳에서 술잔을 받았을 것이다. "어제 책을 받아 읽었는데 글이 참 좋았어요."한규리가 내 글에 대해 의견을 말하려는데 사람들을 헤치고 미서와 전병헌이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오기 전부터 전병헌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스러웠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응을 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작 당사자가 나타나자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 나는 얼른 포도주를 쭉 들이켰다. 몹시 목마른 여행객처럼 숨도 쉬지 않고 반 너머 들어있던 술을 물처럼 마셔버렸다.

2007-06-20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43>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6시에 출판 기념회가 있었다. 전날 오전, 나는 내가 글을 쓴 만화책 두 권을 택배로 받았다. '인체의 비밀', '우주의 비밀' 이 만화의 제목이었다. 정신희는 내 통장으로 두 권 분량의 원고료를 보냈다. 매절, 인세를 지급하지 않고 원고를 통째로 사는 형식이었다. 책 표지에는 글, 그림, 전병헌 이라고 찍혀있었다. 나는 숨은 필자였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일을 했던 때와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작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원고료와 밤새워 글을 쓴 사실이 시간의 이빨에 물어 뜯겨 마지막에는 폐허로 변해버린 유적지처럼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만화책을 받기 전에 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고 있었다. 명상록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성품이나 업적에 대하여 하는 말 때문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며, 우선 이성으로 그 말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칭찬을 받으면 더 나아지는가? 에메랄드가 칭찬을 받지 못했다고 더 나빠진 다더냐? 금, 상아, 작은 꽃 한 송이는 어떤가?' 라고 묻는다. 칭찬받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고, 모욕당했다고 괴로워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파악하라고 권하고 있었다. 마음을 다스리던 참이었다. 허물어져 내린 자존심을 먼저 살았던 철학자의 사상으로 보수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것이 어리석은 짓거리로 되는 데는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내가 쓴 만화는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서점에서 돈을 주고 구입한 책처럼 그냥 타인의 책이었다. 정신희와 나는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원고료를 책정하거나 책에 이름을 넣거나 뺀다는 말 같은 건 일절 하지 않았다. 절반에 못 미치는 원고료쯤은 각오한 바였다. 그런데 글, 김선영이란 이름쯤은 당연히 들어갈 줄 알았다. 생각해보니 내 프로필 같은 걸 물어온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내 이름이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포장지를 풀어 표지를 확인하는 순간 가라앉고 있던 마음이 어지럽게 소용돌이 쳤다. 나는 책 두 권을 바닥에 놓고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의 칭찬을 무시하라는 것과 이것은 어떻게 다른가. 내 마음 속 한 구석에 사실은 이런 일을 예견하고 있지 않았을까? 내가 책 표지에 이름을 박을 만큼 내 자신이 작가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해지려고 애썼다. 선배의 출판사라는 것에 내가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었을까. 전혀 모르는 출판사와 일을 했더라면 이름을 넣을지 말지에 관해서 결정하고 시작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생각한다면 어느 출판사도 내가 써주는 싼 원고에 관심을 가지지 이름 같은 것에는 조금도 흥미가 없을게 뻔하다. 그런데 왜 화가 나는 것일까. 선배에게 너무 기대고 있었다. 내게 일을 준 것만으로 일단 고마워해야 한다고 마음을 추슬렀다. 그렇게 절반 쯤 마음을 가라앉히고 책을 펼쳐보았다.인체의 비밀은 내가 써준 콘티 그대로였다. 수정하거나 바꾼 곳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우주의 비밀은 순서가 조금 바뀌어 있었다. 수정 된 부분도 내가 염려한 만큼 크지는 않았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요즘 유행하는 재미있는 말들이 첨가되어 있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는 부분에서 몇 군데 간단한 상황, 즉 스토리를 끌고 가는 에피소드가 첨가된 곳이 있었다. 수정된 부분 때문에 전체의 내용이 탄탄해지고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자존심이 상해할 만큼의 대폭적인 수정은 없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을 한 것 같았다. 이름이 찍혔든 빠졌든 책을 살펴보는 동안은 뿌듯했다. 아쉬우면서도 기쁜 마음이 교차했다. 이 정도 책이라면 십년은 문제없이 롱런이었다. 어쩌면 더 오랫동안 읽힐지도 모른다. 인체와 우주는 환경이나 정보통신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가 아닌 것이다.

2007-06-19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42>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속옷 다 벗으세요."바리톤이다. 등 뒤에서 문을 닫고 도어 록을 눌렀다. 찰칵, 금속성의 소리가 공기 속에 스민다. 문을 잠그지 않아도 되는데 저절로 손가락이 작동한다. 밀폐된 공간이다. 치마를 벗으며 보니 눈앞에 두개의 옷걸이가 나란히 붙어있다. 하나는 윗옷, 또 하나는 바지나 치마를 거는 곳인가 보다. 치마를 벽에 걸고 블라우스의 첫 단추에 손을 갖다 댔다. 물속처럼 고요하다. 따뜻한 물에 잠겨 둥둥 떠다니면 좋겠다. 두 번째 단추를 풀며 생각했다. 어두운 동굴, 따뜻한 물, 어머니의 자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은 마음의 발로인가. 순간 온몸에서 화르르 열이 오른다. 질끈 눈을 감았다. 귓가에 끈질기게 따라붙는 전병헌의 목소리가 들린다. "작품의 순서를 좀 바꿔야 겠어요."나도 모르게 블라우스의 앞섶을 잡아당겼다. 떨어져나간 단추 하나가 쏜살같이 벽으로 날아갔다. 벽에 부딪친 단추는 팅,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리를 구부려 살폈지만 단추는 보이지 않는다. 넓지도 않은 작은 방이다. 손을 뻗으면 곧바로 벽에 닿을 정도다. 팬티 바람으로 엎드려 이리저리 살피는데 문을 두드린다. 빨리 나오라는 재촉의 신호다. "팔을 양쪽 허리에 얹으세요." 남자는 내 팔을 잡고 허리에 얹어준다. 친절도 하다. 가슴을 앞으로 쑥 내밀어 꼿꼿하게 섰다. 얇은 가운을 통해 가슴에 전해지는 감촉이 서늘하다. 가운 속은 알몸이다. 남자가 넓적한 손바닥으로 내 등을 꾹 누른다. 등에서 남자의 손이 서서히 멀어진다. 남자는 문을 열고 다른 방으로 들어간다. "숨 쉬지 마세요. 잠시만 참으면 됩니다."저음의 편안하게 느껴지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숨을 멈췄다. 저절로 눈이 감겼고, 머릿속에 검은 장막이 드리워졌다. 순간 구겨진 자존심과 그 때문에 파생된 수치심이 사라졌다. 판단중지의 상태가 된 것일까. 할 수만 있다면 이렇게 눈을 감고, 숨을 멈추고 오래 오래 있고 싶었다. 머릿속에 드리운 검은 휘장처럼 전병헌이 걸어온 전화를 깡그리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누굴 탓하겠는가. 한 숨이 터져 나왔다. 순간 마이크를 통해 남자가 말했다. "조금만 더 참으세요."나는 크게 숨을 들이 쉬다가 내 쉬기 직전에 호흡을 멈췄다. 가득 들어간 공기가 쪼그라든 가슴을 펴는 것일까? 풍선에 바람을 불듯 밀어 넣은 공기로 허파꽈리를 부풀게 만드는 건가. 공기를 가득 머금은 그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된 그때,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 잘못된 곳을 찾아내는 것일까. 어쩌면 내 허파는 정상일지도 모른다. 허리가 끊어지도록 콜록대는 기침은 정작 몸이 아니라 마음이 원인일지도 몰랐다. 생각해보니 전병헌과 통화를 끝낸 후부터 기침이 터지기 시작했다. 무참하다는 기분이 들었고, 온몸을 애벌레처럼 말고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그때 가슴이 짓눌린 게 아닐까. '지 맘대로 고칠 거면 뭐 하러 전화를 해? 책 나오면 어차피 다 알게 될 텐데…'.말도 안 되는 소리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끝내 블라우스에서 떨어져 나간 단추는 찾지 못했다. 담당의사가 이주 후에 결과를 보러 오라고 했다. 당장 오늘 저녁을 견디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이주 후라니.병원 매점에 들러 옷핀을 샀다. 단추가 떨어져 나간 윗옷의 세 번째 단추자리가 벌어져서 자칫 속옷이 보일 지경이었다. 요령껏 겉에서는 보이지 않게 속으로 핀을 꽂았다. 핀을 꽂은 자리는 정확히 가슴의 중간이었다. 기침이 터지기 시작하면 말 할 수없이 고통스러운 부분. 가슴과 가슴사이의 골짜기. 이제 더 이상 남편의 손길도 오지 않는 황량한 계곡이었다.

2007-06-18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41>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기침은 기관지나 폐 속에 낀 이물질을 밖으로 배출하기 위해 몸이 애쓰는 현상이었다. 이상하게도 낮에는 기침이 나오지 않았다. 어둠이 짙어지고, 몸과 마음이 다소 진정이 된다 싶으면 어김없이 기침이 튀어나왔다. 폐나 기관지에 자리 잡은 가래를 추방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오는 것은 소리뿐이었다. 마른기침은 때로 가슴을 쥐어짜듯 고통스러웠다. 기침이 한 번 터지면 일방통행으로 변해버린 기도로 숨을 들이 쉴 수 없었다. 가슴이 통째 입 밖으로 토해져 나올 듯 격렬한 기침이 지나가면 온 몸이 땀에 흥건히 젖었다. 어렴풋이 창으로 비쳐오는 새벽빛을 보면서 날 밝으면 병원부터 가야지 결심하다가 잠이 들곤 했다. 아침이 되면 말짱했다. 내 폐에는 어쩌면 곰팡이가 붙어있을지도 모른다. 햇빛 아래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 병원균, 그게 아니라면 드라큘라와 같은 것들이 숨어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만 밝으면 이리도 멀쩡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남편과 다른 방을 사용한 게 벌써 한 달이 다 되었다. 처음에는 남편이 등도 두드려주고 물도 갖다 주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침대에서 굴러 떨어질 때까지 몸을 뒤틀며 기침을 해댔다. 남편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새벽까지 함께 눈을 뜨고 있는 것 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아침이면 거짓말처럼 가슴 부위가 개운했다. 날이 밝으면 지난밤의 고통 같은 건 꿈처럼 희미했다. 적어도 밤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이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낮 동안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데 지장이 없었다. 밤마다 해대는 기침 때문에 나는 작은 방에서 혼자 잤다. 잠을 설친 남편이 벌겋게 충혈 된 눈을 반쯤 감고 출근을 했기 때문이었다. 동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어도, 몸을 따뜻하게 해도, 차게 해봐도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큰 병원에 가 봐."남편이 걱정 반 미안함 반이 섞인 표정으로 충고를 하고 출근을 했다. 숨이 넘어갈 듯 쿨룩 대는 소리를 들으며 안방에서 잠을 자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기침 때문에 체중이 약간 줄었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샤워를 해야 했다. 컹컹 기침을 해댈 때마다 오줌을 지렸기 때문이었다. 속옷을 갈아입다가 문득 고약한 생각이 떠올랐다. 한때 나는 결핵을 앓았다. 다행이 중증이 아니었고 좋은 약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치료가 되었다. 혹시 그 균들이 다시 가슴을 파먹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큰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 했다. 가슴을 앓을 때는 해가 지면 미열이 났다. 양 뺨이 발그레 달아올랐고 손도 발도 뜨거워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증상이 달랐다. 열도 오르지 않았고, 뺨도 달아오르지 않았다. 줄기차게 기침만 터졌다. 몸속에 들어있는 무엇인가를 밖으로 배출해내려는 듯 기도에 붙은 수많은 섬모들이 일제히 출구를 향해 아우성치는 느낌이었다. 증상이라는 것은 나이나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 터였다. 어쩌면 그 사이 병균들이 나머지 한쪽 가슴을 야금야금 갉아먹었을지도 몰랐다. 병원에 가려고 막 집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현관에서 신었던 신발을 벗어던지고 거실로 달려갔다. 등 뒤에서 신발 한 쪽이 현관문에 부딪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홈으로 도루하는 야구 선수처럼 나는 몸을 날려 수화기를 낚아챘다. "정신희예요."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듣자 맥이 풀렸다. "책이 나왔어요. 조촐하게 출판기념회를 하려해요. 시간 비워놓으세요."정신희의 목소리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가벼웠다. 도로 현관으로가 뒤집어진 신발을 쳐다보았다. 무엇이 나를 이리도 급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2007-06-17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40>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원고를 벽에다 집어던져버리고 싶었다. 양 팔로 머리를 감쌌다. 감기가 심했다고, 열이 40도 가까이 올랐고, 그래서 제대로 작업을 할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물었던 상처가 벌어져 피를 흘리는 것 같았다. 글을 쓰다보면 그럴 수도 있었다, 쓰는 것마다 감동과 재미가 버무려진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조금은 더 잘 쓸 수 있었다. 시누이가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감기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치열하게 작품에 매달렸더라면, 찜질방에서 밤을 새며 놀지 않았더라면…. 눈앞에서 수많은 후회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미서는 프로라고 하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남편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은 프로와 아마추어에 대한 차이였을 것이다. 십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아무런 노력도 않고 있다가 갑자기 글을 쓰겠다고 나선 아내가, 아니 한 인간이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엄격한 프로의 세계에 대한 모독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은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을 하는 존재이지 않는가. 남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생존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남보다 내가 낫다고 끊임없이 주술을 걸어야 가능할 것이다. 주술이 효과가 없을 경우, 다수가 인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에 수긍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갈등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신을 설득하는 것으로는 대중의 의견에 따르기도 한다. 감나무 밑에 입을 벌리고 드러누워 입 속으로 익은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을 보면 누구라도 조금쯤은 무시하고 싶을 것이다. 게다가 바로 그때 익은 감이 입 속으로 떨어진다면 부당하다는 생각과 함께 화가 나지 않겠는가. 강한 자만 살아남는 경쟁 속에서는 안일한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분노가 치솟을 수도 있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우연, 운명이라고 이름 붙은 삶 속에서 그나마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직업의 세계 정도가 아니겠는가. 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반발이 정의라는 개념을 강화시켰을지 모르겠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면서 페어플레이라는 말을 생각했을까. 설마 그렇게 거창하게 적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뿌린 대로 거두리라, 그 말은 지금 내게 딱 맞는 말이었다. 나는 행운을 바랐을까. 그건 아니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일이란 결과로 나타나는 법이다. 칭찬을 들을 때는 그토록 아름답게 보이던 내 삶이, 지금은 이게 뭔가. 지옥에 떨어진 것처럼 나를 절망 속에 내동댕이치는 타인의 평가라니. 이럴 때 미서라면 코방귀로 간단히 마무리 할 것이다. 타인의 평가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야. 행복이 남의 손에 달려 있잖아. 나는 왜 미서처럼 당당하지 못할까. 전병헌의 전화 한 통으로 금빛 햇살 가득한 여름 아침을 망치다니. 영혼의 두께가 얇은 나는 남의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일에 대한 능력의 여부 이전에 타인의 관심에 대한 예민한 반응이었다. 사람들은 약한 사람을 동정할 뿐 사랑을 주지는 않는다. 용기 있는 자에게 사랑을 쏟아 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 그다지 필요 없는 자는 점점 더 많은 양의 사랑을 받는다. 내 글은 사람으로 치자면 약한 자로 판명이 났다. 타인의 연민을 자아내거나 동정을 받을 수는 있지만 사랑을 받을 수는 없었다. 동정 따위는 결코 받고 싶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자긍심을 세울 수 있는 온전한 관심이었다. 나는 벽에 기대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왜 이렇게 허약한가. 남의 관심 쯤 무시할 수 있는 강한 영혼이 부러웠다. 부끄러운 영혼이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듯이 발작적으로 기침이 터져 나왔다.

2007-06-14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39>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쓰레기통에서 몸을 돌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남편이 전화를 받아 내게 건네주었다. "전병헌입니다."나도 모르게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은 뒷모습을 보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목에 가래떡이라도 걸린 듯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색한 시간이 전화선을 타고 흘렀다. 전병헌이 먼저 무슨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전화를 해 온 그 역시 침묵을 지켰다. 까짓 키스 한 번 했다고 단박 어색한 관계가 되다니. 둘 다 쿨하거나 드라이한 도회적인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지내셨어요?"엄청난 속도로 두뇌를 회전시켜 겨우 쥐어짜낸 인사말이었다. 안녕하세요는 너무 의례적이다. 그렇다고 오랜만이라거나 반갑다고 말하는 것은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목소리 톤은 솔정도의 높이다. 부동산 컨설팅 회사에서 텔레마케터들이 고객들에게 구매를 권유할 때 내는 음정. 너무 경쾌했나 하고 후회했다. 이미 나간 목소리다. 거둬들일 수 없었다. 계속 전진할 수밖에. 수화기를 든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데 기계를 통과해 전달되는 목소리는 발랄하기까지 하다. 그는 묵묵부답이다. 전화가 끊겼나 하고 수화기를 들여다보았다. 그의 모습이 보일 리가 없다. 또 다시 침묵으로 빠지려는 순간에 전병헌의 목소리가 들렸다."원고 잘 받았어요.""네에."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잘 들어간 원고를 전화까지 해서 잘 받았다고 말하는 의미. 필시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제야 나는 조금 심각해졌다. 부동산 회사의 텔레마케터에서 동사무소 직원의 목소리로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고의 순서를 조금 바꾸려 합니다."전병헌의 말은 내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잘 써진 원고도 아니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었다. "만나서 조율을 할까 했는데 시간이 빠듯해서 전화로 양해를 구합니다."이 정도면 조금이 아니라 원고와 상관없이 전병헌의 글과 그림으로 하겠다는 통고였다. "작업 끝나면 술 한 잔 합시다."그 말과 함께 전병헌은 사라졌다. 나는 이미 끊어진 전화기를 한참 동안 귀에 대고 있었다. 손가락 한 개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이 지나갔다. 한참 후, 나는 수화기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멍하게 앉아있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후다닥 작은방으로 뛰어들었다. 전병헌에게 보낸 우주에 관한 여벌 원고를 찾아 꺼냈다. 떨리는 손으로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살펴보았다. 구성과 흐름이 삐걱거렸고, 페이지가 넘어가는 장면에서도 전혀 포인트, 말하자면 긴장미나 기대감이 없었다. 보내기 전에도 몇 번이나 검토를 했다. 그때는 눈에 띄지 않던 허술한 부분이 지금에야 보이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속치마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바다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콘티를 가지고 만화를 그릴 경우 약간의 변경은 늘 있는 일이다. 글을 쓰는 작가와 화백의 취향이랄까 서로의 생각의 차이가 자연스럽게 수정과 조율을 낳게 했다. 그런 경우 피차 기분이 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졌고 양해를 하는 편이었다. 양쪽의 목적이 모두 좋은 책의 탄생에 있기 때문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결점을 수정하는 경우도 있어 상대의 안목에 감탄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이런 식으로 굳이 양해를 구하지는 않는다. 대개의 경우 그럴 정도의 큰 부분은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이 고쳐야 하는 글이라면 아마추어인 것이다.

2007-06-13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38>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당신, 미서를 보면 역시 자기 일이 있어야 한다고 했잖아.""미서씨는 결혼 전에 이미 프로였고, 당신은 그게 아니잖아.""등단절차를 밟는 것도 중요해.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내 글을 원해. 돈을 주고 산다고. 그것으로 된 거 아냐."남편은 비웃는 표정으로 나를 힐끔 돌아보았다. 물론 비웃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비치는 것을 어떡하겠는가. 불과 몇 분전에 느꼈던 평온과 관조, 스스로 자랑스럽던 감정이 얼마나 허약하고 보잘 것 없는지를 깨달았다. 이렇게밖에 대응할 수 없는 내가 우스웠다. 마치 내가 원하는 게 돈, 형식, 등단절차와 프로, 이런 것들인 양 되어버렸다. 내가 바라는 것은 두 부분이 겹쳐지는 교집합 속에 있는데 겹쳐지지 않는 다른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미 궤도를 벗어나 버린 감정이 제자리로 돌아오기는 글렀다. 좀 더 함께 앉아 있으면 승산도 없는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았다. 남편도 거칠게 리모컨을 누르며 신경질적으로 채널을 바꾸었다. 남편은 내게 아내 이상의 자리는 인정하지 않았다. 아내로서 만족할 수 있으면 남편이나 나나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내 존재가 온통, 지속적으로 아내로 남아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양파처럼 수많은 층들로 되어있었다. 한 꺼풀이 벗겨지면 또 다음 층이 나오듯 나는 아내도 되었다가 글 쓰는 사람도 되었다가 욕망을 가진 짐승 같은 여자도 되었다가, 순정을 지닌 소녀로도 변신했다. 양파를 다 벗기면 아무것도 남지 않듯 어떤 한 역할에 고정될 수 없는 게 인간이었다. 남편은 나를 쇳덩어리로 뭉쳐진 구슬처럼 여겼다. 변신이 불가능한 광물성. 남편의 생각이 다른 것에도 그렇게 일관성 있게 적용된다면 아마도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을 것이다. 남편은 필요한 사람에게는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적용했다. 정말 화나는 것은 남편의 그 이중성이었다. 자신의 편리에 따라 자를 갖다 대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커피 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잔이 깨져버렸다. 깨진 잔처럼 마음이 산산이 흩어졌다. 두루마리 휴지를 손바닥에 둘둘 감고 물을 약간 묻힌 후, 깨진 조각을 닦아냈다. 커피가 스며든 휴지는 짙은 갈색으로 변했다. 방사선 형태로 분노가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분노의 표적이 남편만은 아니었다. 나를 향해 방향을 바꾼 분노도 있었다. 지난 세월을 아무런 생각 없이 보낸 대가야. 누구도 너에게 그렇게 살라하고 강요한 적은 없어. 누군가 나를 향해 말했다. 그러나 희생을 했든 봉사를 했든 시어머니를 간병한 것도 내 생활의 일부였다. 그것마저 부정한다면 내게 무엇이 남을 것인가. 따스한 가족애나 진심이 담긴 간병이 아니었어도 지금 그 시간을 후회한다는 것은 어리석었다. 막연히 병원을 오가며 보낸 오년, 피해의식을 갖지 말자. 나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나 때문에 한 사람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다소 편하게 지낼 수 있지 않았는가. 그것으로 된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두루마리 휴지를 풀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금파리에 발을 베이지 않으려면 꼼꼼하게 바닥을 닦아야 했다. 아끼던 커피 잔이라 아까웠다. 도로 붙일 수 없는 물건. 마음도 그와 같을까봐 두려웠다. 쓰레기통에 깨진 사기 조각과 젖은 휴지 뭉치를 밀어 넣었다. 남편은 다른 사람의 실수에 별로 너그럽지 않았다. 말을 않고 묵묵히 앉아있지만 아마도 속으로는 불쾌할 것이다. 병 끝이라 기운도 없고 안색도 창백한 나를 봐주는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에 봐 준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내가 바보 같았다.

2007-06-12 경인일보

숨쉬지 마세요<37>

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해결되게 마련이었다. 원고를 넘긴 후, 내리 사흘을 잠만 잤다. 잠에서 깨어보니 초여름, 햇살 싱싱한 늦은 아침이었다. 열도 내렸고, 압착기로 짓눌러대듯 쑤시던 고통은 사라졌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 듯 몸과 마음이 텅 비었고, 중력에서 비껴난 물체처럼 홀가분했다. 베란다를 통해 내다보이는 아파트 마당에 서 있는 나무들 때문이었을까. 두 팔을 하늘로 펼쳐들고 가슴 가득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기분이었다. 휴일이었고, 열기를 뿜기 직전의 햇살이 거실에 머물렀다. 남편은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 중이었다. 정신을 잃은 것처럼 잠을 자던 사흘 내내 남편은 아침밥을 거르고 출근을 했다. 아침형 인간인 남편이 아침식사를 거르는 일은 건강검진 받는 날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허기가 지면 헐크처럼 돌변하는 남편이 용케도 잘 참았다 싶었다.커피는 마치 백 년 만에 처음 마시는 것처럼 향기로웠다. 맛있는 케이크를 아껴가며 먹는 아이처럼 나는 조금씩 커피를 마셨다. 고열이 몸속의 불순물을 쓸어가버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머릿속에 들어있던 무거운 생각도 죄다 쓸려나간 듯, 고요한 호수의 수면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태풍 속에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다가 항구에 도달한 뱃사람처럼 고비를 넘긴 자의 안도와 자신감이 몸속을 흘렀다. 내 속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작고 낮아 보였다. 나는 관조하듯 햇살을 응시하며 조금씩 커피를 마셨다. 정지된 시간 속에 들어간 듯 차분해졌다. 일을 끝내서 다행이었다. 만약 원고를 마무리하지 못했다면 스스로를 혐오할 뻔했다. 지금은 내 속에 들어있는 자신이 사랑스러웠다. "원고료 나오면 어디 여행이라도 갈까?"내 말에 남편은 텔레비전에서 눈도 떼지 않고 대꾸했다. "그게 무슨 돈이나 돼? 그냥 취미로 해."남편의 말은 잔잔한 수면에 던져진 돌멩이였다. 초여름의 투명한 금빛 햇살이 구름에 가렸다. 얼굴에 핏기가 단번에 걷혀버렸다.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억눌렀다."글 쓰는 게 취미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 돈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고.""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 수두룩한데 집에서 빈둥대던 당신이 무슨 수로 따라잡아.""글은 나이가 들수록 잘 쓸 수도 있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게 재능이고."남편은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하찮은 글 쓰느라 사흘 동안 난 밥도 못 먹고 출근했어. 몇 년 만에 온 누나는 당신이 글 쓴다 뭐다 소란을 떨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말이야."남편의 가시 박힌 말투가 명치에 와 박혔다. 빈둥댄다는 말까지는 참았는데 하찮다는 낱말에는 평온하던 마음을 뒤집어 버렸다. "당신한테는 글 쓰는 일이 하찮을지 몰라도 내게는 중요해. 아침밥 같은 건 어쩌다 빵이나 과일이나 우유로 대신할 수도 있는 일이잖아."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더듬거렸다. 내게는 당신의 아침밥이 내 일보다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글을 쓴다고 아침을 못 차려 준 것은 아니지 않는가. 병이 생기는 것은 유기체인 이상 어쩔 수 없다. 글을 쓰지 않더라도 몸살이나 감기는 걸릴 수 있었다. 글을 쓴다고 밤을 새지 않았어도 남편은 그런 식으로 말했을까? 고열과 통증으로 눈도 뜨지 못하는 사람에게 아침밥을 왜 안 주니? 라고. 사람이란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 존재다. 그렇게 빡빡하게 구는 이유가 뭔가? 남편에게 묻고 싶었다. 그러나 거칠게 끓어오르는 분노가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2007-06-11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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