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오은선 14좌 완등

 

[오은선 14좌완등 특파원리포트]"준비는 끝났다"

[경인일보=네팔 안나푸르나 캠프1/송수복객원기자]'14좌 완등 준비는 끝났다. 남은 것은 하늘만이 안다'.세계 여성 최초 히말라야 8천m급 14좌 완등에 도전하는 오은선(43·블랙야크) 대장이 내달 5일께 안나푸르나(8천91m) 1차 정복에 나선다.오은선 대장이 이끄는 안나푸르나 원정대는 28일(이하 한국시간) 캠프 1(5천400m)을 점령한 뒤 베이스캠프로 안전하게 복귀했으며 3일 간 휴식한 뒤 내달 2일께 캠프 2와 캠프 3을 거쳐 정상 공격에 도전할 계획이다.현재 오은선 대장은 1차 공격을 10월3~5일께 실시하고 날씨 문제로 실패하면 1주일 뒤 2차 공격을 시도할 예정이다. 현재 캠프 1~3 구간에는 잦은 눈사태로 일부 원정대가 사고를 당하는 등 기상 악화로 고전중이며 정상 공격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오은선 대장은 날씨를 파악한 뒤 속전속결로 정상을 밟겠다는 심산이다.오은선 대장은 "이제 준비는 끝났다. 남은 것은 하늘만이 안다"면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날씨가 좋은 틈을 타 정상 공격을 시도해 반드시 14좌 완등을 이루자"며 대원들을 독려했다.한편 블랙야크팀의 박용학 부장은 등정을 기정사실화하고 30일 카트만두로 내려가기로 했다. 14좌 완등 축하 파티를 카트만두에서 할 예정이고 네팔 정부인사들과 한국의 산악계 원로들을 초청하기 위해서다.

2009-09-28 송수복

[안나푸르나 여정-9월 27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까닭에 눈이 퉁퉁 부은채로 텐트에 누웠다가 어디선가 세락이 무너지는 소리가 크게 들려와도 어느정도 만성에 이르렀는지 신경도 안쓴채 고개만 돌린다. 아예 텐트문을 활짝 열어젖혀두고 고개만 내밀고 어디가 무너지나...하고 관찰하는 형국이다. 정화영 차장이 베이스캠프와 교신을 하며 오대장과 KBS 제작국과 몇몇이 함께 올라오는 중이라며 아침식사부터 하자고 한다.   쿡과 키친보이가 김치를 달달하게 볶아 미역국과 함께 내놓으니 히말라야에서 받아보는 진수성찬이 아닌가 싶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오자 셀파들이 모습을 보이고 등마다 짐이 한가득이다. 뒤이어 오대장과 KBS 제작국의 홍성준PD, 김형운차장 PD, 블랙야크팀의 백동민씨가 함께 올라온다. 마침 ABC에는 전날 캠프2까지 진출해서 하룻밤을 보낸 부산의 김창호씨와 일행이 도착해 있어서 등반루트에 대해 오대장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갑작스레 안나푸르나 켐프1 지역과 캠프2간의 등반로에 엄청난 규모의 눈사태가 일어나고 눈폭풍이 몰아닥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순간 모두들 말이 없는채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저기는 우리가 지나야할 코스죠? 그런데 저렇게 대규모로 눈사태가 일어나나요?" 라고 김창호씨에게 묻자 "너무 무서워서 가기 싫을 정도에요. 눈사태가 시도때도 없이 일어나고....정말 위험한 구간인데 어쩔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도 오늘 아침에 저 구간 지나올때 죽어라 뛰었어요."라며 아침나절에 지나온 구간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눈사태....어제의 회의결과를 깨끗하게 인정하는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욕심을 내서도 안되고 어쨌거나 금번의 원정등반은 오은선 대장의 14좌를 위해서 온 것이니까 개인의 욕심은 일찌감치 버리기로 한다.  오늘은 캠프1에서 1박을 하고 베이스캠프로 하산하기로 한 오대장의 스케줄에 맞춰 등반장비를 착용하고 ABC 전진캠프를 떠난다. 꿀루와르와 도처에 숨어 있는 히든크레바스를 사이사이로 지나는 설원을 건너자 가파른 설사면이 나오고 오른편의 가파른 암벽구간으로 올라선다. 해발 5,100m의 전진캠프보다 300여미터를 더 올려서 세워진 캠프1으로 가는 길은 체력이 관건이다. 밟은 눈이 미끄러져 발은 계속해서 헛돌고 기운만 빠진다. 가뜩이나 무거운 삼중화에 습설이라니...발이 천근만근이다. 게다가 눈까지 내리면서 앞선 발자욱 위를 덮어버리니 힘이 이중으로 든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오줌까지 지릴태세다. 숨이 가빠서 피켈을 부여잡고 멈춰서는 횟수 또한 늘어간다. 텐트가 보이기 시작할 즈음 눈과 우박이 동시에 내리기 시작하는데 순식간에 발자욱을 덮어 버린다.   흔적도 남기지 않을 태세다. 먼저 도착해서 캠프를 구축해놓은 다른 원정대의 텐트 옆으로 두동의 작은 텐트로 캠프1 구축을 마치고 오대장과 정화영차장, 백동민씨가 1박을 하기로 하여 필자는 부지런히 하산을 하기로한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을 가로질러 ABC에 등반장비를 데포시켜 두고 잰걸음으로 베이스캠프에 도착을 하니 몸살이 날 지경이다.   그나저나 오대장의 등반스타일대로 하산을 하여 3일을 쉬고 곧바로 캠프2와 3을 거쳐 정상등정을 노릴 것이고 그리한다고 말하였기에 날씨만 뒷받침이 되어준다면 쉽게 끝날 수도 있을거란 계산이 나온다. 내일중으로 캠프2를 건설해 놓으라고 셀파들에게 지시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일부 셀파들이 캠프2로 가길 꺼려하며 단 한차례만 시도하자고 한다. 그들에게도 눈사태는 쉽게 넘기 힘든 벽처럼 느껴지는가 보다.   어쨌든 오대장은 10월 3일경이면 1차 공격에 들어갈 것이다. 날씨가 도와준다면 5일 오전에 안나푸르나의 정상에 서게 될 것이다. 1차공격에 실패한다면 일주일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2차공격을 감행할 것이다. 블랙야크팀의 박용학부장은 등정을 기정사실화하고 내일모레 카트만두로 내려가기로 했다. 14좌 완등 축하 파티를 카트만두에서 할 예정이고 네팔 정부인사들과 한국의 산악계 원로들을 초청한다는 계획에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2009-09-28 송수복객원기자

[안나푸르나 여정-9월 26일]

이른 아침부터 등반에 관련한 현안문제에 대해 회의가 있었다. 코오롱 김재수원정대의 사고로 인해 눈사태의 위험성이 생각보다 심각해서였기 때문인데 KBS 촬영팀은 셀파도 3명이나 구해 놓았고 여분의 산소도 준비한 까닭에 큰 문제 없이 정상에 함께 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대원들의 신변안전에 관한 문제로 토의를 진행한다. 결국은 오대장을 뺀 전대원이 정상에 갈 수 없는 것이 그것인데 다들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어차피 메인스폰서인 블랙야크쪽과 오은선대장의 14좌에 초점이 맞춰진 것인데 구태여 위험을 무릅쓰고 등반을 감행할 이유가 있겠냐는 것이다. 며칠전 사비를 털어 레떼를 지나 뚤루부긴 언덕을 넘어오신 신영철 소설가도 한말씀 하시며 신중하게 대처할 것을 주문한다. 캠프2로 가는 구간의 눈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눈사태와 후폭풍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선뜻 정상에 가겠노라고 나서기엔 무모한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하고 오은선대장에게 의사를 표현하니 너그러이 수용해준다.  다만 핌조씨를 통해 카트만두에서 들여오기로한 산소통과 레귤레이터 주문은 취소하기로 하고 등반상황을 지켜보기로 한다. 좋은 그림을 먼저잡기 위해 KBS 제작국의 정화영 차장PD와 전진캠프인 ABC로 먼저 떠나기로 한다. 오대장은 28일 아침 출발하여 ABC를 지나 캠프1에서 하루를 머물다 내려올 계획이란다. 베이스캠프보다 1천여미터 높은 ABC까지의 길은 히말라야의 다양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고나 할까....  메모리얼힐(안나푸르나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을 기리기 위해 쌓아 놓은 돌탑이 있는 언덕)을 지나 고도를 서서히 높이다가 오른편의 빙하지대로 줄을 잡고 30여미터를 내려서서 빙하지대를 가로질러가야한다. 빙하에 빠지지 않도록 셀파들이 깃발달린 대나무로 길을 표시해 놓아서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데 왼편의 산능선에서 쏟아져 내리는 낙석에 맞지 않으려면 신속하게 지나야한다.   빙하지대를 1시간여 걸으면 정면으로 시커먼 대암벽구간이 나타나고 이곳을 올라서야하는데 올려다 보기만해도 아찔한 높이로 곳곳에 로프를 깔아두어서 잡고 오르면 된다. 고도는 올라가고 줄을 잡은 손과 발이 후들거릴 지경에 이르면 머리에서 반응이 온다. 고산증세로 인해 머리가 아파오고 숨은 더욱 가빠지기 때문에 속도가 나질 않는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에 일부러 주변을 돌아보며 여유를 가져본다.   하지만 이런 길을 셀파나 포터들은 운동화나 슬리퍼를 신고도 30kg에 이르는 짐을 지고도 필자를 앞질러 가니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뒷모습만 바라보게 만든다. ABC 캠프에 필요한 짐을 올려다준 포터들이 하산을 서두르고 식사를 담당한 쿡과 키친보이가 함께 돌사면길을 오른다. 조금만 가면 보인다며 기운을 내라며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뒤돌아 본다. 베이스캠프를 떠난지 4시간여만에 도착한 ABC는 안나푸르나1봉을 온전히 모두 볼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어서 망원경으로 정상등정에 도전하는 모습까지 관찰이 가능하다고 한다.   텐트3동과 캐빈텐트 1동으로 오은선원정대의 자리는 확보해놨고 그 주변으로 부산 다이내믹원정대의 김창호(41)씨와 두손이 없는 가운데 8천미터 고봉등정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김홍빈(46)씨의 텐트도 주변으로 함께자리하고 있다.   정화영 차장과 간단하게 끓는 물에 차 한잔을 마시려는 찰나 "우르릉 쿵쿵"하며 지축을 흔드는 소리가 들려 고갤 돌리니 설산의 곳곳이 무너져 내리며 내는 소리였다. "저곳을 지나야한다니 저도 마음이 편치를 않네요." 정화영(44) 차장이 그간 산과 관련한 촬영으로 집을 여러달 비워야했던 이야기며 위험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이끌어내는 자신의 과거이야기에 시간가는줄 모르고 듣고 앉았다 각자의 텐트로 돌아가 내일 있을 스케쥴에 대비하기로 한다. 하지만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하는 무시무시한 굉음들로 몇 번을 깨어서 텐트밖으로 나왔는지 기억도 없을 정도로 긴장해서 잠시라도 잠이 들라치면 눈사태에 매몰되는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야 했으니 렌턴을 밝혀두고 멀건히 앉아 가슴 졸이며 밤을 지새야했다.

2009-09-28 송수복객원기자

안나푸르나 김재수 원정대 조난

 지난 25일 오전 7시15분 네팔 안나푸르나 1봉 등정을 위해 캠프 3로 이동하던 코오롱 챌린지 김재수 원정대가 무너지는 눈사태에 휩쓸리는 사고를 당했다. 5명이 눈사태에 휩쓸렸으나 다행히도 4명의 셀파들은 자력으로 움직일 정도의 부상이나 KBS 외주제작팀 (일명 다큐 '산' 카메라맨)원이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당하여 캠프1까지 이동중인 것으로 밝혀졌고 등반중이거나 준비중인 모든 원정대에 구조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현재까지 알려진바로는 오은선 원정대에서 4명의 셀파와 ABC 전진캠프에 대기중인 스태프 6명 등 10명 이상이 구조에 가담하고 있다. 오은선 원정대도 캠프1으로 이동하려는 계획을 취소하고 구조에 총력을 다하기로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네팔 당국에 헬기구조 요청까지 해놓았으나 현지의 기상사정으로 구조는 쉽지 않을 듯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 사고로 인해 코오롱 챌린지 김재수 원정대는 낭가파르바트(8126m) 하산 중 사망한 故 고미영씨의 유지를 받들어 정상에 오르겠다는 계획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되고 몬순이 지나는 계절에 들어서서 더욱 눈사태의 위험성이 커진 가운데 북면을 이용해 정상에 도전하는 원정대들에겐 눈사태의 위험성이 크나큰 문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2009-09-27 송수복객원기자

[안나푸르나 여정-9월 23일]

베이스캠프에 입성한지 이틀이 되는날이다. 오늘은 신께 입산을 허락해 달라는 제사를 지낸다는 '라마제'를 시작으로 전 대원이 전진캠프인 ABC까지 다녀올 계획인데 이곳 베이스캠프보다 높은 5100여미터에 위치해 있고 가는 길에 위험 구간이 있어서 등반장비도 점검을 해야만 했다. 이곳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엔 현재 한국원정대만 4개팀이 있는데 故 고미영씨와 줄곧 등반을 같이해온 김재수씨와 부산의 원정대, 그리고 히말라야 촐라체에서 두 손을 잃은 김홍빈씨의 원정대가 각각 자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까지의 상황은 김재수씨 원정대에서 캠프3(C3, 7,200m)까지 루트를 공략해 놓았는데 잦은 눈사태로 캠프2(C2, 6,400m) 아래의 고정로프가 600여미터나 유실되어 다시 설치해야 한다며 눈사태를 조심하라고 한다. 어제는 한 원정대의 셰르파가 배가 아프다며 오대장팀의 팀닥터인 안재용 박사에게 진료를 받으러 왔는데 배 한가운데에 굉장히 심한 고름이 잡혀 있고 상당히 부어올라있어서 즉시 응급치료를 해주었는데 안박사의 말에 의하면 수술을 요하는 중증환자라고 한다. 이곳 네팔 현지인들은 일반적인 항생제나 의료시술을 받을 기회가 적어 갖고 있던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며 한참을 치료하는데 몰두하였었다. 오전 8시부터 시작된 라마제에는 안나푸르나 등반을 위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하였고 서로에게 축복의 응원을 전하는 자리였다. 이윽고 오은선 대장은 전진캠프인 ABC로 향하며 제단에 인사를 올리고 떠났다. 원정대는 전진캠프가 구축 되는대로 캠프1, 캠프2를 잇달아 구축할 예정이다. 원정대가 떠난 안나푸르나 북면 베이스캠프엔 오색의 깃발이 가득한 가운데 따가운 햇살만이 내리쬐고 있다.

2009-09-23 송수복객원기자

안나푸르나 원정대 여정

9월 17일(목) 레떼 - 식량준비일9월 18일(금) 레떼 (Lete, 2,530m) ~ 카카 (Karka, 3,260m)아침부터 분주한 레떼 마을은 다울라기리를 배경으로 멋진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동쪽 해가 떠오는 방향으로부턴 안나푸르나의 연봉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어서 이른 새벽부터 해맞이를 위해 롯지의 옥상으로 올라가 본다. 앞으로 지나야 할 언덕과 산들이 보이고 얼마나 가야하는지 알 수 없는 여정이 그렇게 시작되려 한다. 오대장은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며 원정대원들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체조를 하도록 한다. 포터들이 먼저 떠나고 그 뒤를 이어 오대장과 대원들이 따라 가는데 중간에서 KBS 보도국, 취재국의 카메라가 그 모습을 열심히 잡아낸다. 금일은 고도로는 700여미터를 올리고 시간으론 6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한다. 작은 산간마을의 주민들과 소들이 풍요롭게 산자락을 노니는 사이 계곡물을 건너기를 여러번 하더니 한순간 가파른 오르막을 맞이하고 그 앞에서 숨을 고르며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오은선 대장의 바로 뒤를 따라 오르막을 30여분정도 오르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거친 숨만 몰아쉬는데 오대장의 입은 꾹 다문채 올라오는 대원들을 응시하고 있다. 코와 입도 모자라 온갖 구멍으로 공기를 빨아들여도 모자랄판인데 입은 다물고 코로만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녀의 심폐력이 어느정도인지 일반인의 상상을 넘는 듯 하다.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을 듯한 가파른 숲길을 얼마나 올랐을까 준비해둔 행동식으로 간단한 점심을 하고 능선으로 오르자 널따란 초지를 다듬어 텐트칠 자리를 준비하여 둔 일행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아직은 따가운 햇살을 피해 작은 그늘로 숨어든다. 아직은 고소증세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간혹 포터들이 염증과 두통으로 인해 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안재용(53) 제일병원 정형외과 과장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곤 한다. "상처들이 깊고 치료시기를 놓쳐서 한번에 치료하기 힘들어서 응급치료만 해주는데 안타깝네요." 안재용 박사의 손길을 거쳐간 포터들이 상처가 덧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9월 19일(토) 카카 (Karka, 3,260m) ~ 훔콜라(Hum Khola, 4,286m) 일명 닐기리봉 베이스캠프(Nilgiri Base camp)"툴루부긴 고개 (Thoulobugin Pass 4,300~4,500m)가 힘들고 위험하다고 하니 대원 여러분들도 긴장을 늦추지 마시고 잘 올라오세요" 오대장이 앞서가며 대원들을 독려하는 사이 먼저 올라간 취재진들의 카메라도 경치 좋은 곳에서 촬영중이다. 능선으로 올랐다가 왼편으로 트레버스 하는 길은 깎아지른 절벽구간이다. 한순간의 방심이 수백미터는 족히 아래의 계곡으로 떨어지게끔 만들것으로 보인다. 그 길을 지나고 4천여미의 고도에 이르는 고갯마루에 이르자 양과 염소를 기르는 목동들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한다. 가파른 길을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주변의 풍경에 빠져든다. 어쩌면 인간이 겪는 지극히 단편적인 과정이 아닐까. 닐기리봉의 정상부의 하얀 만년설과 그 아래의 수많은 계곡을 가로질러야 하는 금번 안나루프나 북면 베이스캠프로의 여정은 1950년대 프랑스 측량가로부터 시작했다하니 그 옛날 이길을 어찌 지났는지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특히 눈이 많은 계절이 이곳을 지나려면 상당한 담력과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히말라야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조금은 상이한 풍경이 원정대의 눈길을 사로잡고 7시간 가까이 걸은 끝에 폭포 옆 자리로 캠프를 정한다. 한 눈으로 보기엔 가까워 보여도 실제로는 엄청난 거리라는 것을 맑은 공기 덕분에 충분히 느끼며 하루를 마감한다. 9월 20일(일) 훔콜라(Hum Kola, 4,286m) ~ 닐기리 콜라(Nilgiri Khola, 3,850m)밤새 두통에 시달렸던 탓에 잠을 설쳤다. 고소증세가 온것이다. 아침의 일과는 안재용 박사의 산소포화도 측정으로부터 시작하는데 대다수의 일반대원들의 결과가 썩 좋지 않다. 이미 고소에 완벽히 적응 되어 있는 오대장의 몸은 산소가 낮은 지역에서도 평지와 같은 산소가 체내에 유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계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한걸음 한걸음이 무겁고 숨을 몰아쉬는 일이 잦아진다. 머릿속은 마치 송곳으로 마구 쑤셔대는 장난꾸러기가 있는 듯해서 행동 하나하나에 제약을 받는다. 안박사로부터 타이레놀을 처방받고 계곡으로 내려서니 전날 내린 비에 물이 불어 신발을 벗고 건너야할 상황이다. 빙하가 녹은 물이라 그런지 계곡 아래의 물빛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하지만 몰속에 발을 넣는 순간 좀전의 감정은 사치였다는 것을 여지없이 느끼에 해준다. 뼈속까지 시린 발을 물밖으로 꺼내놓고 발을 닦는데 그 시려운 느낌이이 쉽사리 없어지질 않는다. 계곡을 넘어서자 4천여미가 넘는 고산지대에 작은 움막 하나를 쳐놓고 부부가 양떼를 부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마을까지 며칠은 족히 걸리는 험난한 길임에도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의 다양성을 느끼게 해주는 모습이다. 언제 갈아 입었는지 모를 옷에 땟국이 줄줄 흘러도 반가이 손을 흔들어 주는 그들의 미소에서 정겨움을 느낀다. 갑자기 머리가 더욱 어지러워지고 숨도 가빠지는데다 구토증세까지 나기에 고도계를 보니 4,500여미터가 넘어가고 있다. "숨을 고르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시고 이제 내리막이니까 나아질거에요." 오대장이 기다리다 기자의 행동을 보고 조언을 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가파른 내리막이 연이어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고도를 3,500미터까지 내린다.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이라 주변이 어떨까 궁금해서 둘러보아도 안개에 가려져 분간이 안된다. 고도를 1,000여미터 정도 내리자 머릿속이 개운해지고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3,000미터가 넘는 곳에선 절대 행동을 빠르게 하지 말라는 오대장의 지시에 따라 천천히 계곡가를 따라 캠프지로 이동을 하는데 향나무와 비슷한 가시나무가 바지를 뚫고 다리를 쑤셔대는 통에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 계곡의 물은 뿌연 석회가루가 섞인 듯한 색을 띄고 있어서 절대 먹어선 안된다고 하니 눈으로만 감상을 한다. 생각보다 많은 거리를 걸어온 길로 8시간 가까이 소요가 되었다. 9월 21일(월) 닐기리 콜라(Nilgiri Khola, 3,850m) ~ 안나푸르나 북면 베이스캠프(North Annapurna Base camp, 4,190m)"다들 모이시고 체조대형으로 벌리세요." 베이스캠프로 이동하는 날이라 그런지 오대장의 목소리에 유난히 힘이 들어가 있다. 포터들과 쿠커들이 남아 있는 짐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하나둘 대원들이 출발준비를 서두르는데 가이드인 핌조(39. 네팔인)씨의 설명에 의하면 4시간 안에 도착하게 된다며 점식식사를 베이스 캠프에서 할 수 있을 거라 한다. 이른 아침이면 여지없이 맑은 날씨를 보여주는 히말라야의 아침햇살에 눈덮힌 고봉들이 하얗게 빛나고 있다. 무전기를 통해 촬영지에 대해 설명하는 KBS 카메라 감독들은 준족과 넘치는 기운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며 호숫가에 먼저 도착해서 촬영중이다. 에메랄드빛의 호수를 건너 베이스 캠프로 향하는 길은 이제껏 걸어온 길보다 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햇살이 피부를 검게 그을리게 하고 간혹 불어오는 바람에 간혹 빗방울을 담고 오는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팀들이 반가이 손을 내밀어 준다. 안개에 가려진 안나푸르나의 모습을 언제쯤이면 볼 수 있을지 모를 베이스캠프엔 안개만 가득하고 일주일간의 긴 여정 끝에 온 이곳에는 한국의 원정대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틀 뒤 라마제를 시작으로 등반은 시작된다.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송수복객원기자

2009-09-22 송수복객원기자

18일 ~ 21일 안나푸르나 여정

2009-09-21 경인일보

[안나푸르나 여정-9월15일]포카라~비니~따또빠니

포카라에서의 하루가 밝았다. 이른아침에 오대장을 태운 비행기가 도착할 예정이어서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다시 버스에 싣고 이동을 하는데 주변 공항주변의 분위가 심상치 않다. 심지어 공항으로 진입하려는 차량을 군인들이 막아서고 제지를 한다. 공항주변 골목에 버스를 대기시키고 기다리라는데 라조가 포카라 공항에 네팔대통령이 도착할 예정이어서 그렇다고 설명을 해준다. 시간상으로 보면 이미 합류를 해서 이동을 해야하는데 속을 태우는 우리의 사정을 알 바 없는 현지인들은 그저 느긋하기만 하다. 두어시간을 그렇게 허비하고 나서야 가까스레 오대장과 합류를 하고 이동을 한다. 차내에서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고 시종일관 즐거운 모습의 오대장을 보면 천성이 그런가보다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정도면 별 무리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거라 생각해요."라는 말에서 그녀의 낙천적 성격이 묻어난다. 버스는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듯하다 이내 산길로 들어선다. 도로사정은 교행이 어려운 좁은 도로인데다 잦은 비로 인해 길가쪽으로 많은 부분이 유실되어 비포장 상태로 남아있기에 차량을 마주하게 되면 한쪽으로 비켜섰다가 출발해야 하기에 속도를 내기에 무리가 따른다. 이런 도로사정에도 곳곳에서 바리케이트를 치고 통행료를 징수하는 곳이 있어서 물어보니 마을마다 도로관리를 하는 곳에서 돈을 받고 도로를 고쳐주고 있다는데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통행료를 생각하면 되겠지만 이곳은 그저 물에 떠내려간 부분을 흙으로 메워주는 수준이다. 해발 천여미터가 넘는 산길을 굽이 돌고 또 돌아 오르내리는 통에 단잠이라도 청해보려했던 기대는 사치에 불과했다. 보조석에 앉은 조수와 끊임없이 떠들어 대는 운전기사는 차치하고라도 클락션을 수도 없이 울려대는 그네들 운전습관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하지만 좁고 불편한 도로사정을 감안하면 맞은 편 차량에 신호를 주는 것이니 그럴만도 할 것으로 알고 참는다. 비니까지는 무사히 왔단 생각이 든다. 시골마을의 장터쯤으로 여겨지는 동네에서 통행료를 내고 지나갈 것으로 믿었지만 비니에선 그리 녹록하게 넘어가주질 않는다. 버스를 바꿔타라는 것이다. 동네에서 운영하는 버스로 갈아타야만 통과할 수 있다며 강요를 하기에 라조가 흥정을 하러간 사이 잠시 기다리며 주변을 돌아볼 기회를 갖는다. 수동펌프로 기름을 파는 주유소, 하교시간이어서 만날 수 있었던 유치원생들....따스한 물과 식료품을 파는 가게...카메라를 들이대면 수줍은 듯 도망가는 아낙들과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웃어주는 아이들이 스스럼 없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이윽고 작은 버스 두 대가 일행을 태우기 위해 다가오고 타고온 버스에서 짐을 옮겨 싣는 작업을 한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험난하기에 큰버스로는 못들어 간다는 말과 현지 사정을 잘아는 사람들이 가는게 낫지 않겠냐는 말에 설득력이 있는 듯 하다. 따또파니로 가는 길은 네팔의 군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라고 핌조(34)씨가 설명해준다. 아스팔트 포장과는 거리가 먼 흙과 돌이 혼재하는 가운데 산으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물이 섞여 더욱 어려운 길을 카트만두로 팔러가기 위해 지나는 염소떼와 맞추치는 일은 길에서 흔히 겪는 일이다. 이쯤 되니 처음의 시간계획대로 될리 만무해진다. 얼마나 많은 염소들이 카투만두로 향하고 있는지 그 수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좌우로 흔들리는 버스가 아슬아슬한 벼랑끝 곡예를 하며 지나고 시커먼 매연을 뿜어가며 힘겹게 언덕을 오를때 "인도 타타버스의 힘이에요. 네팔에서 산골마을을 다니는 버스치고 타타버스가 아닌게 없죠."라는 핌조의 말에 20년 이상 굴러먹었을 법한 깡통조각 같은 버스가 새삼 위대해 보인다. 따또빠니로 오는 길에서 타게된 타타버스들은 한결 같이 버스차장을 두고 있는데 이들의 역할이란게 버스가 빠지거나 바퀴사이에 돌이 끼었거나 할 경우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벼랑을 아슬아슬하게 지나는데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날 수 있는 것도 다 이들의 도움 덕택이다. 기자가 탄 버스를 운전하는 30대 중반의 운전수는 버스차장으로 어린 아들을 고용했다. 그 몸놀림이 한두해 해본 솜씨가 아니고 손발이 척척 맞는 조수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아버진 언덕을 오르기 위해 힘차게 악셀레이터를 밟고 아들은 오르막에 걸릴 법한 큰돌을 치우곤 잽싸게 차에 달린 지붕으로 오르는 사다리에 올라탄다. 아버진 힐끗 백밀러를 보곤 그것으로 아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 전부다. 그들은 그렇게 삶을 4년째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힘들고 어렵게 지나온 길에 노천 온천탕이 있는 따또빠니란 작은 마을이 있고 그곳에서 또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 푼힐전망대와 안나푸르나 남면 베이스 캠프로 가기 위해 들르는 곳 따또빠니의 롯지(숙박시설)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대장과 함께 등반을 하게될 셀파들이 인사를 한다. 오대장의 신임이 각별한 셀파(등산로 안내자)들이어서 그런지 그들의 모습에 믿음이 간다.

2009-09-17 경인일보

[안나푸르나 여정-9월16일]따또빠니~레떼

"차량 수배가 보통 어려운게 아니에요. 오늘은 차량으로 두시간 거리인데 시간을 확인할 수 가 없어요. 도로 사정에 따라 변수가 많으니까요..." 한국에서 4년간 근로자로 일했었다는 핌조는 유창하게 말을 잘한다. 한국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사람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농담도 속어도 잘이해하고 있어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특히 핌조는 한국의 원정대와 여러번 일처리를 하였었기에 한국인들의 습성도 잘 이해하고 있다. "빨리 빨리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어요. 느긋하게 사는게 몸에 밴 네팔 사람들이 이해 못할 것이지만 분명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느정도의 희생없이 이루어지는건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핌조가 한국인들의 장점중에 가장 으뜸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며 말한다. 작은 버스 두 대에 나눠탄 일행들이 다시 레떼로 가는 골짜기 벼랑길을 따라 이동한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길이다. 무거운 짐을 등에지고 지나가는 사람과 속도에서 별반 차이가 느껴 지지 않는 힘든 길에선 버스에서 내렸다 올라타기를 수십번 반복을 하게 된다. 계곡길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도무지 버스에만 있을 수가 없어 길을 따라 걷는다. 하늘 높이 솟은 산에서 수십미터 가량을 떨어져 내리는 폭포의 멋진 모습이 이젠 지겨울 정도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하지만 기자의 짐을 어께에 짊어지고 가던 포터(짐꾼)는 올해로 18세라고 한다. 슬리퍼에 청바지 차림으로 잘도 올라간다. 또한 길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네팔인들은 멋진 옷차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들은 가파르고 척박한 산기슭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것에 만족을 하는 듯 하다. 주위사람을 무척이나 신경쓰고 살았던 우리네 삶이 잠시 오버랩 되어 비춰지고 아름답던 주변의 풍경이 무척이나 힘들게 보이는 순간이다. "레떼가 2500여미터에 위치한 마을이에요. 고도를 순차적으로 높여야 고소증세를 덜 느낄 수 있으니 천천히 걸으면서 오르는게 좋겠어요."라고 오대장이 말하는데 대해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원정경험이 한 두번이 아니어서 고소순응에도 문제가 없을 오대장이 앞서 길을 걷고 그 뒤를 취재진과 대원들이 따른다. 차량을 이용해 오르는 것 보다 걷는 것이 더 빠른 길임을 그다지 오래지 않아 느끼게 되는데 곳곳의 길이 깊이 패여서 버스에서 내린 사람이 밀고 당기며 차량을 빼내고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 고도는 2천여미터를 넘기고 있고 여전히 카트만두로 향하는 염소떼와 길을 두고 신경전을 벌인다. 길을 오가던 차량의 모습들이 자취를 감추고 너무도 조용해서 의아한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그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충분한 모습을 보게 된다. 산기슭으로부터 흘려 내리는 물줄기에 소형버스가 갇혀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물줄기 위로 염소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나무다리를 놓았는데 염소들이 다리를 서로 건너려 앞다투다 물에 빠져 떠내려가고 소형버스는 여전히 물에 빠진채 공회전만 계속하니 앞뒤로 늘어선 버스들이 언제 오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차디찬 계곡물 속에 몸을 담그고 버스를 밀어대는 조수들이 문제 해결을 하고 차량소통이 가능해질 무렵 원정대원들이 숙소가 있는 레떼로 모여든다. 원정대원들을 숙소 앞에서 반갑게 맞아 주던 이가 있었는데 포터들의 리더인 걸빌(37)이다. 오대장은 걸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원정등반을 다니면서 이토록 믿음을 주는 포터가 없었어요. 비록 글도 못 읽고 쓰진 못하는 문맹이지만 그가 하는 행동에 일관성과 따스한 마음의 진정성이 묻어나기에 가장 신뢰하고 있죠." 오대장이 말하는 사이에도 걸빌이 원정대원들이 올때마다 밀크티 한잔씩을 건네고 있다. 한참이 지나서야 짐이 도착을 하고 다울라기리 베이스 캠프까지 이틀이면 되고 안나푸르나 북면 베이스 캠프까지 사흘이 걸리는 레떼의 허름한 산장에서 다시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 한편 원정등반대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이들중에 정부연락관이란 직책이 있는데 이들의 역할이란게 원정대가 입산허가를 받고 등반을 하는지 등정을 하였는지에 대해 확인을 해주는 것이다. 네팔의 관광성에서 파견하는 관리인데 금번 원정대의 경우엔 네팔 관광성의 장관 아래 직급의 관리가 직접 자원하여 따라왔다. 그 이유에 대해 오은선대장의 14좌 완등을 자신이 직접 확인해주고 싶어서라는데 오대장의 열렬한 팬임을 말하며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오대장의 완등 기록을 해주고 싶다고 다시금 강조를 한다. 오후나절이면 어김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피해 롯지의 식당으로 들어가자 전기 공급이 원활치 않은 까닭에 희미한 전등빛에 의지하여 밀크티, 블랙티를 번갈아가며 마신다. 고소증세가 오기전 따스한 물을 자주 마셔주어 체온을 높이고 혈액중에 산소공급을 돕기 위함이니 자주 마셔주라고 당부하는 오은선 대장으로부터 밀크티 한잔을 받아든다. 어느새 개인 하늘 아래로 나오니 별빛이 찻잔으로 한가득이다. 따스한 찻잔의 온기와 오대장의 섬세한 손길이 마음으로 전해지며 온몸 가득 온기가 가득해진다. 래떼를 떠나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은 고도를 더욱 높여야하고 텐트를 치며 숙식을 해야하는 길이라한다. 일정을 함께하고 있는 이들 모두 마음의 부담 없이 기꺼이 그녀를 따르며 갈 것이다. 히말라야 14좌의 마지막 안나푸르나의 정상에 설 것임을 오롯이 믿기에....

2009-09-17 경인일보

[안나푸르나 여정-9월14일]인천공항~네팔 카트만두~포카라

인천공항을 떠나기전 미리 도착한 많은 취재진들이 출국을 앞둔 오은선 원정대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와 인사를 나누느라 정신없어 하는 모습에 항공사 관계자들도 자사홍보에 열을 올리느라 더욱 어수선하기만 한 출국장에서 장도에 오르기전 원정대원들이 오은선 대장과 함께 잘다녀오자는 다짐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네팔 카트만두로 직항기에 몸을 싣는다.비행기로 옮겨타기전 약간의 시간속에 오대장은 여전히 자신의 지인과 은사들게 문자로 인사를 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그마저도 끝내고 나선 자신이 타고갈 비행기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다.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한참을 그렇게 응시하던 모습에 변함이 앉았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에 대한 생각일까....궁금하기도 하지만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자릴 비켜준다. 기자의 전화기도 안부문자로 한참을 바쁘다가 출국시각이 가까워지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진다. 정말로 떠나야 하는 시각이 다가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순간이다. 인천을 출발한지 6시간을 조금 넘기자 기장의 안내방송이 이어진다. "한국여성으로 세계최초 히말라야 8천미터 14좌 등반을 앞둔 오은선 등반대장의 무사등반을 기원합니다."라는 방송이 나가자 많은 승객들이 박수로 화답을 해주는 모습이 연출된다. 그리고 곧이어 오른편 창가로 보여지는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구름 위로 솟아 올라 장엄한 풍경을 보여주어 드디어 히말라야의 품으로 왔다는 기분을 갖게한다. 6시간40분만에 도착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처음으로 한 일은 우리가 갖고 온 짐을 찾는 일부터 시작이 되었다. 짐을 찾고 나선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하고 통관을 거쳐 다시 짐을 찾고나니 가뜩이나 더운날씨 덕분에 옷이 흠뻑 젖고 만다. 미리 받아놓은 비자 덕분에 수월하게 나왔나 싶었는데 짐을 일일이 다시 날라야하는 수고로움이 덧대어진 것이다. 공항밖으로 짐과 함께 빠져나오자 네팔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트레킹 가이드를 전문으로 하는 라조(32)씨가 미리 출국해서 행정이며 입산수속을 준비하던 백동민(29)씨도 함께 마중을 나와서 일행을 맞아준다. 오대장은 라조씨와 여러번 일정을 같이 했던 기억이 있다며 무척이나 반가워한다. 우선 일행은 카트만두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예약이 있는 오대장과 헤어져 다음날 포카라에서 만나기로 하고 국내선 항공기를 타기 위해 이동을 했다. 30인승 경비행기에 몸을 싣고 카트만두 하늘을 날아올라 포카라로 향하는 비행기에 좌석이 하필 프로펠러가 있는 날개 옆이라 그런지 기내에서 나눠준 솜뭉치를 귀에 쑤셔넣지 않을 수가 없었다. 30여분만에 도착한 포카라 비행장에 내리자 마찬가지의 후텁지근한 날씨로 인해 땀이 연신 흘러내리고 일행을 태우러 온 버스에 짐을 옮겨싣자 더 이상 젖을 곳이 없어져 버린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롯지로 이동을 해서 방을 배정 받은 후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포카라 시내를 구경하러 라조씨를 따라 나서는데 포카라에 있는 등산장비점에 가면 온갖 전문등반 용품을 구할 수가 있다던 어느선배의 말에 속아 아까운 시간을 증산장비점에서 허비를 했다. 가짜브랜드가 대부분인 등산장비점을 지나쳐 이런저런 지역 특산물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때우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향후일정과 취재방향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을 하고 낯선 잠자리에서 하루밤을 보낸다.

2009-09-17 경인일보

오! 안나푸르나여… '14좌완등' 허락을

[경인일보=신창윤기자]'안나푸르나여, 우리를 허락하소서'.세계 여성 산악인 사상 최초로 히말라야 8천m급 14좌 완등에 도전하는 산악인 오은선(43·블랙야크) 대장이 4일 오후 6시30분 서울 명동 로얄호텔 그랜드볼룸에서 '2009 오은선 안나푸르나 원정대 발대식'을 갖고 마지막 남은 안나푸르나에 몸을 싣는다.지난달 3일 가셔브룸 I(8천68m)을 정복하며 13좌 완등에 성공한 오 대장은 올해에만 히말라야 4개 봉우리를 잇따라 등정하는 등 세계 여성 최초 14좌 완등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오 대장은 이날 발대식을 마치고 컨디션을 점검한 뒤 오는 14일 인천공항을 통해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 카라반으로 이동해 안나푸르나 4천190m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30여일 동안 캠프 1~3 구축 및 정상 등반을 시도하게 된다. 귀국은 오는 11월 13일께 예정하고 있다.히말라야 8천m급 고봉 중 10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안나푸르나(8천91m)는 산스크리트어(인도의 옛 언어)로 '수확의 여신'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또한 서쪽으로 칼리간다키강과 동쪽으로 마르산디 계곡까지 수많은 연봉을 갖추고 있으며 최고봉을 비롯해 4개의 위성봉과 닐기리, 틸리쵸, 강가푸르나, 마차푸차레 등 아름다운 7천m급 산들을 거느리고 있다.한편, 경인일보는 여성 산악인 최초로 14좌 완등 기록에 도전하는 오 대장과 함께 하고자 여행·산악 전문가인 송수복 객원기자를 특파원으로 파견, 동행 취재할 예정이다.경인일보는 지난 2007년 7월 한국 여성 최초로 세계 제2고봉인 K2(8천611m) 정상을 밟은 오 대장과 함께 동행 취재에 나선 바 있다.

2009-09-03 신창윤

안나 푸르나여… 그녀를 허락하라

[경인일보=신창윤기자]'히말라야 14좌(座) 완등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세계 여성 산악인 최초로 히말라야 8천m급 14좌 완등을 노리는 오은선(43·블랙야크)씨가 내달 10일께 마지막 봉우리인 안나푸르나 (8천91m) 도전에 나선다.지난 3일 가셔브룸 I(8천68m)을 정복하며 13좌 완등에 성공한 오씨는 이제 남은 안나푸르나 정상 등정을 향한 항해에 돌입했다. 특히 오씨는 올해에만 히말라야 4개 봉우리를 잇따라 등정하는 등 남자들도 하기 힘든 히말라야 8천m급을 잇따라 올라서며 세계 여성 최초의 14좌 완등 기록을 눈앞에 뒀다. ┃관련기사 11·12면오씨는 현재 체력 보강과 컨디션 조절을 위한 막바지 담금질에 들어갔다. 요가와 수영, 그리고 가벼운 산행으로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는 오씨는 이달 안으로 원정대를 꾸려 오는 9월10일께 안나푸르나가 있는 네팔로 떠날 예정으로, 10월 중순께 대망의 정상 등정을 노린다.한편 지난 2007년 7월 경인일보와 함께 한국 여성 최초로 세계 제2고봉인 K2(8천611m) 정상을 밟은 오씨는 20일 오전 경인일보사를 방문했다. 최성우 수원대학교 산악부 OB회장과 함께 온 오씨는 "지난 2007년 K2 등정 때 경인일보 기자와 함께 동행한 기억이 난다"며 "국민들의 성원과 관심에 힘입어 이번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해 14좌 완등을 꼭 이루겠다"고 다짐했다.송광석 경인일보 사장은 "그동안 어려운 길을 극복한 오은선씨야말로 대한민국의 자랑"이라며 "14좌 세계 최초 완등으로 국민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달라"고 당부했다.

2009-08-20 신창윤

뿌리칠수 없는 유혹 14좌완등… 결과는 오직 山만이 안다고…

[경인일보=신창윤기자]'세계 최초 등정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정상은 오직 산만이 안다'.'생(生)과 사(死)'를 수 없이 넘나들며 여성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座) 완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오은선(43·블랙야크·사진)씨. 오씨는 지난 3일 가셔브룸 I봉(8천68m)에 등정하면서 13좌 완등에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안나푸르나(8천91m)만 남았다. 귀국 후 휴식과 가벼운 운동으로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는 오씨가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 20일 오전 경인일보를 찾아 담소를 나눴다.#올해만 4좌 완등의 강철 체력오씨는 올해에만 벌써 8천m급 4좌의 정상을 밟았다. 지난 5월6일 칸첸중가(8천586m)를 필두로 오씨는 5월21일 다울라기리(8천167m), 7월11일 낭가파르밧(8천126m), 8월3일 가셔브룸 I 정상에 잇따라 올랐다. 무서운 속력에 더해 모두 무산소 등반이라는 점에 더더욱 놀랍다.남자 산악인이라도 1년에 2~3좌를 오르기 힘든데 오씨는 작은 체구의 가냘픈 몸에도 불구하고 올해 4좌에 잇따라 족적을 남기는 강철 체력을 보여줬다. 물론 오씨는 이런 무리한 산행으로 현재 몸이 많이 쇠약해진 상태다. 현재 링거주사를 맞으면서 몸을 추스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아직도 강렬한 산에 대한 열망으로 반짝인다. 남은 14번째 봉우리 안나푸르나 등반을 위해 한 순간의 긴장도 늦추지 않겠다는 각오다.요즘 오씨는 휴식과 가벼운 산행으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체력을 보강하고 비축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 하지만 세계 여성 최초로 14좌 완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오씨를 주변에서 가만히 놔둘리 없다. 많은 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 주말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있다.특히 오씨는 그동안 13좌를 등반하면서 제대로 된 스폰서 하나 받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기업은 물론 국민들의 큰 관심에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대자연이 가져다 주는 8천m 봉우리하늘과 맞닿을 정도로 우뚝 솟은 봉우리. 오씨는 8천m 고산지대에서 자연과 하나됨을 느낀다. 물론 정상에 오르고 나면 기뻐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1~2분 안에 사진을 찍는 등 모든 채비를 갖춰 바로 하산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지대에서 오래 머물다 보면 산소 부족으로 체력이 쉽게 고갈되고 이는 하산할 때 매우 힘든 상황까지 이어진다.오씨는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더욱 힘들어요. 일반 사람들은 등반하는게 내려오는 것보다 어려울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사고는 하산할 때 일어난다"며 "긴장감을 늦춘다거나 쉽게 생각하면 자칫 생명까지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그러면서 오씨는 지난 2004년 에베레스트 원정 때를 회상했다. 정상에서 내려오다 고소 증세로 정신을 잃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왔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오씨는 '산에 왜 오르냐'는 질문에 물음표를 던졌다. 산에 대해 더이상 묻지 말라는 뜻일까.그녀는 "8천m 이상의 산봉우리에서 대자연을 만끽해 보았느냐. 신이 내려주신 선물을 받아보았느냐"면서 "안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라"며 웃었다.# 14좌 완등은 산(山)만이 안다오는 9월10일께 안나푸르나 정복을 위해 출국할 계획인 오씨는 현재 체력 보강과 컨디션 조절에 힘쓰고 있다. 비록 현재 몸은 편안하지만 앞으로 있을 안나푸르나 정상 등정을 위해 잠시도 방심하지 않았다.특히 봄철 산행보다 10월 가을철 산행은 무척 위험하다. 가을철에는 눈이 많이 내려 눈사태가 자주 일어나고 곳곳의 크레바스(빙하 속의 깊은 균열)는 자칫 생명을 빼앗아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나푸르나는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지현옥(당시 41세)씨가 지난 1999년 하산 도중 실종되는 등 지금까지 14명의 한국 원정대원이 눈사태로 사망한 악명높은 산이다.또 여성 최초 14좌 완등을 놓고 경쟁하는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덴브루너와 스페인의 에드루네 파사반 등도 피할 수 없는 상대다.오씨는 "주위에선 14좌 완등을 서두르는 이유가 있느냐고 물어보지만 여성 최초라는 것은 쉽게 뿌리칠 수 없다"며 "14좌 완등은 나 자신도 아니고 결국 산만이 알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꿈은 '결혼'오씨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대뜸 "결혼"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수 많은 산을 다니면서 정작 주변 사람들과 많은 교감을 나누지 못한게 아쉬웠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씨는 "결혼은 목표가 아니라 꿈이다. 꿈은 깨질 수도 있는 것이지만 꼭 이루고 싶다"고 덧붙였다.오씨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14좌 완등을 마치고 자신의 인생 역정을 담은 에세이집을 출간하고 싶다"면서 "나의 모교인 수원대에서 강의도 하고 많은 후배들과 못다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대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진실하고 소박하게 살아온 오씨. 여성 최초로 14좌 완등을 앞두고 있는 오씨는 산과 함께 하는 동행자로서 국민들의 마음 한 곳에 자리매김할 것이다.※ 오은선의 8천m급 13좌 등정연대기■ 가셔브룸II(8천35m·파키스탄 카라코람산맥)=1997년 7월 17일 무산소 등정. 가셔브룸 산군의 가장 북쪽에 자리잡은 세계 13위 고봉으로 측량부호로 K4로 불리기도 한다. 가셔브룸은 발티어로 '빛나는 산'을 의미한다.■ 에베레스트(8천848m·네팔 쿰부 히말라야)=2004년 5월 20일 아시아 여성 최초 단독 등정. 대기권을 지나 성층권의 3분의 2지점까지 솟아 있기 때문에 산소부족과 강풍, 혹한으로 생명체의 존립이 어렵다. 네팔에서는 '세계 어머니의 여신'이란 뜻의 '사가르마카', 티베트에선 '대지의 여신'이란 뜻의 '초모랑마'로 부른다.■ 시샤팡마(8천27m·중국 티베트 남서부)=2006년 10월 13일 무산소 등정. 히말라야의 8천m급 14좌 중에서 가장 낮은 산으로 유일하게 중국 국경 안에 위치했다. 극심한 기상변동으로 인해 10월부터 시작되는 티베트고원의 폭풍은 바람을 피할 곳조차 없는 평야지대 위에 우뚝 선 시샤팡마로 불어와 등반을 어렵게 한다.■ 초오유(8천201m·네팔과 티베트 국경지역)=2007년 5월 8일 무산소 단독 등정. 세계 6위의 고봉 초오유는 산스크리트어로 '터키 보석의 여신'이란 뜻이다. 네팔쪽은 상당한 급경사에 장장 2㎞에 달하는 넓고 긴 벽을 이루며, 북면은 비교적 완사면으로 형성됐다.■ K2(8천611m·파키스탄 카라코람 발토로산군)=2007년 7월 20일 한국 여성 최초 등정. 경인일보 단독 동행취재 최초 보도. 세계 두 번째 고봉으로 K2는 카라코람 제2봉이란 뜻이다. 원주민들이 초고리(chogori)라고 부른다. 아시아에서 일본 여성에 이어 두 번째 정상을 밟았다.■ 마칼루(8천463m·네팔과 중국 국경 쿰부히말라야의 동부)=2008년 5월13일 무산소 등정. 세계 제5위의 고봉. 산스크리트어로 '검은 신'이란 뜻을 가진 마칼루는 밑에서 보면 흑갈색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산에 비해 검게 보인다.■ 로체(8천516m·네팔 히말라야 쿰부산군 중북부)=2008년 5월26일 무산소 단독 등정. 세계 4위의 고봉으로 산이름 로체의 '로(Lho)'는 남쪽을, '체(Tse)'는 봉우리란 뜻으로 '에베레스트의 남쪽 봉우리'를 의미한다.■ 브로드피크(8천47m·파키스탄 카라코람 발토로산군)=2008년 7월31일 무산소 단독 등정. 세계 12위의 고봉. K2와 남동쪽으로 이웃하고 있으며 북봉(7천537m), 중앙봉(8천6m)을 거느리고 있다. ■ 마나슬루(8천163m·네팔 히말라야산맥 중앙부)=2008년 10월12일 무산소 등정. 마나슬루 산군의 최고봉이자 세계 제 8위의 고봉. 주위에 북봉(7천154m), 서봉(7천571m)과 피크29(7천835m), 추렌히말(7천371m) 등을 거느리고 있다. ■ 칸첸중가(8천586m·네팔 히말라야 최동부)=2009년 5월 6일 무산소 등정. 세계 3위 고봉으로 티베트어로 '다섯 개의 위대한 눈의 보고'란 뜻이다. 이것은 칸첸중가가 주봉 외에도 서봉(일명 얄룽캉·8천505m), 중앙봉(8천473m), 남봉(8천491m) 등 연봉으로 이루어진 데서 연유했다.■ 다울라기리(8천167m·네팔 히말라야 중부)=2009년 5월 21일 무산소 등정. 세계 7위봉으로 산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다발라기리(Dhavalagiri)에서 비롯돼 '하얀 산'을 의미한다. ■ 낭가파르밧(8천126m·파키스탄 푼잡 히말라야)=2009년 7월 11일 무산소 등정. 세계 제9위의 고봉 낭가파르밧은 약 2천500㎞에 달하는 협의의 히말라야 산맥 서쪽 끝에 위치한 푼잡 히말라야의 최고봉.■ 가셔브룸I(8천68m·파키스탄 카라코람 발토로산군)=2009년 8월 3일 무산소 등정. 가셔브룸I봉은 아브루찌 빙하에 도착할 때까지 다른 산들에 의해 숨겨져 있어 '히든피크(Hidden Peak)'라 불렸다.■ 안나푸르나I(8천91m·네팔 히말라야 중부)=2009년 9월 중 안나푸르나로 출발, 10월 중순께 무산소 등정 도전. 세계 10위의 고봉 안나푸르나는 서쪽으로 칼리간다키강과 동쪽으로 마르산디 계곡까지 수많은 연봉을 거느리고 있는 안나푸르나 산군의 최고봉. 안나푸르나 2봉, 3봉, 4봉의 위성봉과 닐기리, 틸리쵸, 강가푸르나, 마차푸차레 등 아름다운 7천m급 산들을 거느리고 있다.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풍요의 여신'이란 의미이며, 인류 최초로 등정된 봉우리라 하여 'Premier 8000'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다. 특유의 눈사태로 수많은 산악인이 희생되었다.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지현옥(당시 41세)씨도 지난 1999년 하산 도중 실종되는 등 지금까지 14명의 한국 원정대원이 눈사태로 사망한 악명높은 산이다.

2009-08-20 신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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