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식의 야구란 무엇인가

 

[김은식의 야구란 무엇인가·10]멘도사 라인

규정타석 채우고 2할대 초반 타율'수비·작전 수행능력'으로 팀 기여메이저리그에 마리오 멘도사(Mario Mendoza)라는 선수가 있었다. 멕시코 출신으로 1974년부터 1982년까지 피츠버그, 시애틀, 텍사스를 오가며 활약한 유격수였다. 수비실력 만큼은 정상급이었기 때문에 늘 시즌 대부분의 기간을 메이저리그에서 보냈지만 타격능력은 꾸준히 바닥을 기었는데, 특별한 전성기와 슬럼프를 나누기도 어려웠던 그의 통산타율은 .215였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어지간한 선수들 못지 않게 유명하다.그가 그렇게 유명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조지 브렛(George Brett)의 인터뷰였다. 브렛은 캔자스시티 로열스 한 팀에서만 20년간 뛰면서 통산 300홈런-3천안타-200도루-3할 이상을 기록한 대스타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단어의 대명사 격인 인물이다.그런 기록을 세운 것은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스탠 뮤지얼과 더불어 단 두 명뿐일 정도다. 그런 그가 어느 해인가 시즌 초반 극심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는데, 그 때 찾아온 한 스포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 이름이 스포츠신문의 타격순위란에서 멘도사보다도 아래에 있는 걸 보니 올 시즌 출발이 좀 안 좋은 건 분명한 것 같다." 그는 또 얼마 후 그 슬럼프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할 무렵에는 "요즘 휴일 아침에 신문을 펴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멘도사의 이름 아래 어떤 이름들이 있느냐 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남기기도 했다. '확인 사살'을 한 셈인데, 그 말을 전해 듣는 멘도사의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졸지에 애먼 멘도사는 '최악의 타자'를 상징하는 이름이 된 동시에 '그래도 멘도사보다는 낫잖아'라는 식으로 슬럼프에 빠진 다른 선수들의 마인드 컨트롤에 활용되는 이름이 되어버린 셈이다.어쨌든 그 인터뷰가 회자된 뒤로 '규정타석을 채우고도 2할대 초반을 맴도는' 타율을 기록하는 타자들을 멘도사 라인(Mendoza Line)이라고 부르게 됐다. 하지만 멘도사라인에 이름을 올리는 선수들이라고 해서 '팬들 속을 뒤집어놓는 쓸모없는 선수'라거나 '최악의 선수'라고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멘도사 라인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타율만 낮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규정타석'을 충족시켜야만 대부분의 순위표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데, 규정타석이라는 것이(현재 KBO의 규칙에 의하면) 팀이 치른 경기수의 3.1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거의 붙박이 주전급의 위상을 가지지 못하면 멘도사라인마저도 넘볼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꾸어 말하자면, 그런 낮은 타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기용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가치와 매력을 가진 선수들에게만 주어지는 타이틀이라고도 생각해봐야 할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 어원이 된 마리오 멘도사 역시 서너 단계의 마이너리그에서 날고 기며 자리를 노리는 수많은 후보 선수들과의 잠재적 경쟁에서 8년 동안이나 밀리지 않고 버텨냈듯이 말이다.말하자면 멘도사 라인이란 극악한 타격 능력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라인업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수비실력, 혹은 희생타를 비롯해 기록으로 두드러지지 않는 작전 수행능력을 갖춘 선수들을 의미한다. 무엇이 됐건 숫자로 환산되기 어려운 측면에서 팀에 대한 기여가 출중한 '소금 같은' 선수들의 대명사인 셈이다.한국 프로야구에서는 프로 원년 우승팀 OB의 주전포수였던 김경문(통산타율 0.220)과 90년대 초반 태평양의 키스톤 콤비였던 김성갑(0.235)-염경엽(0.195)을 비롯해 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각 팀 내야진의 핵이었던 LG의 이종열(0.247), 기아의 김종국(0.247) 등이 대표적인 멘도사라인 플레이어로 꼽힌다. 수비와 작전에서 명성을 얻은 이름들 그리고 감독이나 코치로서 성공한 이름들이 자주 겹치는 것도 그래서 우연만은 아니다. /김은식 야구작가김은식 야구작가

2017-06-05 경인일보

[김은식의 야구란 무엇인가·9]몰수게임

KBO 2번 모두 판정 불복 '보이콧'5회 이후 승자의 스코어는 그대로몰수게임은 '포피티드 게임(Forfeited Game)'을 우리말로 옮긴 표현이다. 경기 중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주심의 선언에 의해 책임이 있는 구단의 패배를 기록하게 되는 규칙이다. 대개 주심의 지시에 불복하고 경기 속행을 거부하는 팀에게 주어지지만, 무자격선수를 출전시키는 경우나 경기 시간에 지각함으로써 정상적인 경기를 치를 수 없게 만든 경우에도 몰수게임 패배가 주어진다. 현대야구, 특히 프로야구에서는 몰수게임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수만 명의 관중들에게 야구경기를 볼 수 있는 권리를 돈을 받고 판매한 이상 어떤 이유에서든 경기를 인위적으로 중단시켜버린다는 것은 경기를 하는 편이나 경기를 관리하는 편 모두에게 엄청난 부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1902년 7월 17일 뉴욕 자이언츠가 경기 개시 시간까지 경기 진행에 충분한 선수를 경기장에 입장시키지 못해 몰수패를 당한 것이 마지막 사례였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상대적으로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두 번의 몰수게임 선언이 내려진 바 있다. 그 첫 번째는 프로 원년인 1982년 8월 26일, MBC와 삼성의 대구 경기였다. 삼성이 5-2로 앞서있던 4회말 1사 1, 2루 상황에서 삼성의 정현발이 유격수 쪽 병살타성 타구를 쳤을 때 더블플레이를 막기 위해 무리한 슬라이딩을 하던 1루 주자 배대웅과 2루수 김인식이 2루 베이스 위에서 충돌했고, 순간 흥분한 김인식이 배대웅의 따귀를 때리면서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와 뒤엉키는 벤치 클리어링이 연출됐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김동앙 주심이 김인식에게만 퇴장을 선언하자 MBC의 감독 겸 선수 백인천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불복해 선수들을 모두 더그아웃으로 불러들인 채 무려 25분 동안이나 버텼던 것이다. 결국 김동앙 주심은 MBC의 몰수게임패를 선언했고, 삼성의 9-0 승리로 기록됐다. 두 번째 몰수게임은 1985년 7월 16일 OB와 MBC가 맞붙은 잠실 경기였다. 5-5의 균형을 유지하던 6회말 공격 때 MBC는 1사 1, 3루 상황에서 1루 주자 박흥식이 도루를 시도하다가 협살에 걸리는 사이 3루 주자 유고웅이 홈으로 쇄도해 6점째를 만들어냈다. 그 때 OB의 김성근 감독은 유고웅이 홈인하기 전 1루 주자 박흥식 선수가 쓰리푸트라인(주자가 주루시에 야수의 태그를 피하기 위해 벗어나지 말아야 할 폭 3피트의 가상의 선. 흔히 '쓰리피트라인'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한 영어표기는 'Three Foot Line'이며 공식 규정집에 나온 한글 표기 역시 '쓰리푸트라인'이다)을 벗어났기 때문에 이미 아웃이 되었으며, 따라서 유고웅의 홈인으로 만들어진 득점도 무효가 돼야 한다고 항의했다. 하지만 2루심 김양경이 그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득점 역시 철회하지 않자 김성근 감독은 그라운드의 선수들을 더그아웃으로 불러들였고, 주심 이근우 역시 5분 후 감독을 퇴장시킨 데 이어 그래도 선수들이 경기에 응하지 않자 다시 5분 후에는 몰수게임을 선언하고 말았다.여전히 고교나 대학팀들 간의 경기에서는 간혹 몰수게임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완전히 프로라는 문화와 논리가 정착한 90년대 이후로는 최소한 프로야구 무대에서는 몰수게임이라는 극단까지 가기 전에 봉합이 이루어지는 추세다. 예컨대 프로야구단의 감독들이 선수들을 철수시킬 때도 야수 한 명은 남겨두는 편법을 쓰기도 하는데, '선수단 완전 철수'가 곧 '경기 의사가 없음'으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한 명의 야수라도 남겨두면 '완전철수는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몰수게임이 선언된 시점이 정식경기 성립 기준인 5회 이전인 경우에는 무조건 9-0의 스코어가 기록된다. 하지만 5회 이후의 경우에는 '뒤지고 있던 팀이 이기게 되었을 경우'에만 9-0의 스코어를 적용하고, '앞서고 있던 팀이 이기게 된 경우'에는 몰수게임 선언 당시의 스코어가 그대로 기록된다. 그리고 전자의 경우 승패를 제외한 개인기록과 팀기록 전체가 무효화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선수들의 개인기록들 역시 모두 그대로 인정받게 된다. 다만 승리투수와 패전투수는 기록되지 않는다. /김은식 야구작가김은식 야구작가

2017-05-29 경인일보

[김은식의 야구란 무엇인가·8]드래프트

최고계약금 4년뒤 1승만 '먹튀'도서용빈 꼴찌 지명, 타격 성공신화드래프트는 프로구단들이 신인선수들을 나누어 뽑는 방식이다. 구단들끼리 순서를 정해 그 해 졸업하거나 군에서 제대하는 신인들을 지명하고 지명을 받은 선수는 그 구단과 입단협상을 벌이는데, 선수들로서는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입단하지 않을 자유는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구단과 새로이 협상을 시작할 수는 없다. 선수들의 자유선택권을 무시하는 위헌적 요소마저 감수해가면서까지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팀들 사이의 전력을 평준화하고 몸값이 지나치게 부풀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데, 엄밀히 말하면 프로야구 출범 당시부터 정부의 적극적인 방조 하에 구단들 간의 담합행위라고 할 수도 있다.전통적으로 드래프트(Draft)는 각 팀이 연고지 내의 선수들을 대상으로 독점적으로 선택하는 1차 지명과 1차 지명에서 연고팀의 선택을 받지 못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모든 팀이 뛰어들어 지난해 성적의 역순으로 지명하는 2차 지명으로 나뉘어 진행돼왔다. 1985년까지는 연고지 내의 선수들에 대해 무제한으로 지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2차지명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같은 지역 출신의 유망주들은 모두 같은 팀으로 모여야 했기 때문에 프로야구가 지역대항전의 성격을 가지고 각 지역의 팬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함으로써 야구장으로 모이고 하고 프로야구가 조기에 안착하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1986년에는 10명, 1987년부터는 3명, 다시 1990년부터는 2명 혹은 1명으로 1차 지명권의 수를 제한함으로써 2차 지명을 통해 다른 지역의 팀으로 입단하는 선수들의 수가 점차 늘게 되었다(2009년에는 1차 지명 자체가 폐지됐다가 2014년에 부활하기도 했다). 야구 명문으로 불리는 학교들은 한정되어 있고 연고지 안에 그런 학교들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프로팀들의 전력차가 너무 심해졌기 때문이다. 신인지명 과정에서 구단들의 관심은 당연히 '누구를 먼저 찍어야 하는가'에 집중된다. 그리고 그렇게 '찍히는' 순번에 따라 전체 프로 지망생들에게는 순위가 매겨지게 되고, 그 순위는 그대로 계약금과 연봉, 그리고 출전기회의 차이로 직결된다. 하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면 애초의 예상과는 달리 낮은 순번으로 지명된 선수가 상위 순번 지명자들을 앞지르고 먼저 스타플레이어로 성장하기도 하고, 반대로 특급 유망주로 꼽혔던 선수가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이야깃거리를 만들곤 한다. 1996년 LG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고 당시로서는 신인 사상 최고액인 4억 원의 계약금을 받았던 이정길이라는 투수는 입단 4년째인 1999년에야 겨우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해 단 1승, 평균자책점 12.66이라는 성적을 남긴 채 사라지면서 '먹고 튄다'는 뜻의 '먹튀'라는 별명의 시조가 됐다. 반면 1994년에 전체 42명 중에서 41번째로 LG트윈스에 지명되어 1천800만 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서용빈은 바로 그 해부터 3할이 넘는 정교한 타격에 신인으로서는 최초로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는 대활약 속에 곧바로 주전 1루수로 자리를 굳히며 '꼴찌성공신화'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성공 사례들을 빼더라도 드래프트에서 낮은 순위로 지명되었다고 해서 결코 불우한, 혹은 불운한 출발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해마다 900여명에 이르는 지원자들 중 그렇게 지명을 받는 선수는 많아야 100여 명에 불과하며 그 나머지의 '학생시절 내내 수업에도 거의 들어가지 않고 야구만 하느라, 야구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 대책 없는 젊은이 800여 명은 그대로 황량한 거리로 내쳐진다는 사실을 살핀다면 말이다. /김은식 야구작가김은식 야구작가

2017-05-22 경인일보

[김은식의 야구란 무엇인가·7]도루

이종범 82.2% 역대 최고 성공률 70%이상 선수 10여명 밖에 없어도루는 투수가 던진 공이 포수에게 도달한 다음 다시 2루나 3루로 달려든 야수의 글러브까지 송구되는 시간의 빈 틈, 혹은 내야진의 수비망에 생겨난 순간적인 빈틈을 노려 한 베이스를 진루하는 주자의 모험이며 그야말로 비명횡사할 위험을 무릅쓰고 감행하는 독한 승부수다. 따라서 타자에게 도루는 안타 못지않게 주목과 찬양을 받는 기록이며, 팀 도루 역시 팀의 전력을 평가하기 위해 검토해야 하는 중요한 항목 중 한 가지다. 하지만 도루의 효용성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으며, 그들의 논거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통산 200개 이상의 도루를 성공시킨 선수들 중에서 한국 프로야구의 역대 최고 도루성공률은 이종범이 기록한 82.2%이다. 그리고 70% 이상의 성공률을 가진 선수 역시 10여 명에 불과하다. 타율이나 장타율 같은 수치는 타석에 들어서기만 하면 높든 낮든 기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들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자신 있는 선수들만 시도하는' 것이 도루의 특성임을 감안하면 전체 평균 성공률이 60%를 넘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높지 않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성공하면 얻는 것은 한 개의 베이스인 반면, 실패했을 경우 한 명의 주자와 한 개의 아웃카운트를 잃을 뿐 아니라 전체적인 집중력과 팀워크까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점까지, 손실이 너무 크다는 회의론자들의 주장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루의 효용을 '온갖 위험을 무릅쓴 모험 끝에 단순히 한 베이스를 더 가는' 것 정도로 평가하는 것이 좀 박한 이유는 이런 것이다. 언제든 도루를 할 수 있는 주자를 1루에 둔다면 투수는 좀 더 빠른 투구 동작으로 공을 던져야 하고, 훨씬 집중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공을 던지게 되며, 내야수들은 조금 더 베이스 쪽으로 붙어서 수비를 하느라 타자에게 조금 더 높은 안타의 가능성을 허용하게 될 뿐만 아니라 도루에 대비한 움직임을 계산하고 소통하느라 역시 조금 더 집중하기 어려운 가운데 수비에 임하게 된다. 물론 그 주자가 '언제라도 도루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는 없다. 투수와 야수진에 조금이라도 빈 틈이 보일 때마다 뛰어서 무시할 수 없는 확률로 성공시키는 것.각 팀의 에이스급, 혹은 백전노장 베테랑급 몇 명을 제외한다면 프로야구 1군의 수준에서도 주자가 없을 때와 있을 때 구위와 컨트롤에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투수는 흔히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그 편차는 프로 경력이 짧을수록, 그리고 아직 지도자와 팬들로부터 완전한 신임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교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남아 있는 투수일수록 더욱 크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강한 면만 강하고 약한 면은 약한' 덜 익은 투수들을 무너뜨린 것이 대개는 이만수, 이승엽, 이대호 같은 거포들보다는 전준호, 이종범, 정수근 같은 날다람쥐 같은 주자들이었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도루가 무조건 유용한 것이며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만이 옹호되는 것은 아니다. 도루 성공을 통해 높아지는 승리의 가능성과 도루 실패로 인해 높아지는 패배의 가능성을 엄밀하게 비교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만큼 야구라는 경기는 복합적이며 미묘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고려를 통해 확인되는 것은, 도루란 시도하는 쪽이나 막아서는 쪽이나 흔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걸고 맞서는 꽤 중요한 승부처라는 점이다. /김은식 야구작가김은식 야구작가

2017-05-15 경인일보

[김은식의 야구란 무엇인가·6]노히트노런

'압도적 구위' 필수 역대15번 달성구속 130㎞대 방수원 등 이색 기록선발투수가 경기 내내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으며 한 경기를 마무리해 승리를 만들어내는 것을 완봉승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단 하나의 안타도 내주지 않은 경우에는 '노히트노런(No hit - No run)'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붙여서 따로 분류하게 된다. 물론 거기에 더해 4사구나 실책으로라도 주자를 단 한 명도 내보내지 않는다면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인 '퍼펙트게임'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상대 타자들을 봉쇄한 퍼펙트게임과 달리 약간의 여유는 주어지는 것이 노히트노런의 요건인 셈이다. 그래서 한국프로야구사에서 아직 퍼펙트게임은 기록된 적이 없지만 노히트노런은 가끔 구경해볼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노히트노런이란 대개 9회까지 4사구나 야수들의 실책으로 한두 명을 누상에 내보내는 것만으로 상대타선을 봉쇄하는 경우에 완성된다. 하지만 갑작스레 굵어진 빗방울 때문에 강우콜드게임으로 경기가 끝나버리는 경우 5회만 던지고도 노히트노런 기록을 수립하는가 하면(1993년 5월 13일 쌍방울 상대, 박동희) 팀 타선이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해 단 한 점도 뽑아내지 못하는 통에 10이닝을 무안타무실점으로 틀어막고도 경기를 끝내지 못해 아무 기록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2004년 한국시리즈 4차전, 배영수)도 있다. 대개 상대 타선을 세 차례 이상 상대하면서 단 한 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으려면 대개는 상대 타자들을 압도하는 구위를 가져야만 한다. 머리싸움만으로 최소한 27번의 승부를 번번이 승리로 이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상대 타자가 '알고도 못 치는' 압도적인 직구는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 위해 투수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무기라 할 수 있다. 지난 2001년 샌디에이고와의 경기에서 무려 10개의 4사구를 내주고도 노히트노런에 성공한 A. J. 버넷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강하고 빠른 공'을 가진 투수들이 대개 가지는 약점인 '제구력 불안' 때문에 허용하곤 하는 4사구는 몇 개가 나오더라도 무방한 것이 노히트노런 기록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실제로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을 통틀어, 그리고 5회 만에 달성한 박동희의 기록까지 포함해 2016년 시즌까지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단 열 다섯 차례 밖에 나오지 않은 노히트노런 중에는 그런 '압도적인 구위'와는 거리가 먼 투수들도 꽤 된다. 예컨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방수원(해태 타이거즈)이나 3호 기록의 주인공인 장호연(OB 베어스)의 경우에는 직구 구속이 좀처럼 시속 130㎞대 초반을 벗어나지 못하던, 각자 당대에 공 느리기로 첫 손가락에 꼽히던 투수들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특히 방수원은 성적이 괜찮을 때는 계투요원, 나쁠 때는 패전처리 투수였다.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1984년 5월 5일에도 그의 등판은 갑자기 선발진에 구멍이 생겨 '땜질'로 출전해서 얻은 것이었다. 그 날 김응용 감독은 2~3이닝 정도만이라도 버텨주길 바랐을 뿐이지만 어렵게 얻은 기회에 조금이라도 더 마운드에 머물고 싶었던 그는 언제 교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맞춰 잡는' 피칭으로 한 이닝 한 이닝을 힘겹게 막아냈고 마침내 대기록을 달성했다. 방수원이 그해 기록한 유일한 승리는 바로 그 노히트노런이었다. 어쩌면 '이 정도 공에 노히트노런을 당할 수는 없다'는 조바심이 타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허둥거리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노히트노런을 달성한다고 해서 투수에게 2승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당한다고 해서 상대 팀이 2패를 감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늘 나오는 기록이 아니다 보니 삼십여 년 전에 작성된 기록도 늘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언급되며 되새겨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 영광도 보통의 1승보다는 생명력이 길고 그 치욕도 보통의 1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질기게 이어지곤 한다. 그런 점에서도 역시 야구의 생명은 '기억'이고, '이야기'다./김은식 야구작가김은식 야구작가

2017-05-08 경인일보

[김은식의 야구란 무엇인가·5]너클볼

'24이닝 무실점' 피어밴드 주무기무회전 이용 포수도 잡기 어려워작년 시즌 중 넥센 히어로즈에서 승보다 패가 많은 신통치 않은 성적을 올리다가 쫓겨났던 '그저 그런 투수' 라이언 피어밴드가 올 시즌 24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까지 곁들여가며 새로 취직한 팀 kt의 초반 돌풍을 이끌고 있다. 비결은 올 시즌부터 선보인 신무기 '너클볼'. 나풀나풀 춤을 추며 날아드는 그 공에 상대 타자들의 방망이도 따라서 춤을 추었고, 신기한 공의 궤적을 담은 동영상들은 인터넷에서 연일 화제가 됐다.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로서 자신이 역사상 최고의 야구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 대한 무한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던 테드 윌리엄스가 저서 '타격의 과학'에서 너클볼(knuckle ball)에 대해 적어놓은 부분이 있다.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사람들이 흔히 최고의 선수였다고 기억하는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타자들에게 사실은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그리고 그에 비추어 자신은 얼마나 완벽한 선수였는지를 지겹도록 반복해서 강조하는 그 책에서, 너클볼에 관해 언급한 부분은 유일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한 대목이다. "너클볼에 관해서라면 나도 할 말이 없다. 나도 그걸 제대로 쳐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조언을 원한다면 이렇게 말해주겠다. 최대한 방망이를 짧게 쥐고, 오직 맞히는 데만 주력하라. 그 공을 당겨 쳐서 장타를 만들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너클볼은 포수도 잡기 어려운 공이라는 점을 위로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너클볼은 손가락을 구부린 채 쥐고 던짐으로써 공이 전혀 회전하지 않게끔 하는 구종이다. 손가락 관절(knuckle)을 구부린 채 공을 쥐기 때문에 '너클볼'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렇게 손가락을 구부리고 공을 쥔 채 던지면 손가락이 공을 훑어 내리는 동작이 억제되어 공이 회전하지 않으면서 날아가게 되고, 그러면 실밥 때문에 불규칙한 야구공의 표면이 공기의 저항과 부딪히며 불규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게 된다. 따라서 그 공은 타자 앞에서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춤을 추듯' 날아오게 되며, 타자가 정확히 때려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포수 역시 그 공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패스트볼이 될 위험이 높다. 어지간한 배짱이 아니면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던질 수 없는 이유다. 피어밴드도 넥센 시절 너클볼을 던질 수 없었던 것은 포수가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고, kt에서 던질 수 있게 된 것은 잡아줄 수 있는 포수(장성우)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도 이 구종이 가진 또 하나의 단점이 있다. 완벽한 너클볼을 던지기는 대단히 어려우며, 약간 잘못되어 두세 바퀴라도 회전을 하게 된다면 바로 밋밋한 직구가 되어 배팅훈련 때 타격코치가 토스해주는 공만큼이나 크게 얻어맞기 쉬운 공이 된다는 점이다. 리그마다 '너클볼러'라고 불리는 투수들이 있긴 하지만 그 수를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구의 구속과 구위로써 승부하는 데 한계를 느끼는 투수들에게 너클볼은 늘 매력 있는 도전 과제다. 완벽하게만 구사한다면 타고난 어깨의 강인함을 가지지 못했더라도 타자를 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어깨에 무리를 주지 않기 때문에 투수로서 장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현대야구의 특징은 스피드다. 투수들은 조금이라도 더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 그리고 타자들은 그 공을 때려내기 위해 인생을 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균형을 잃고 주저앉는 것은 흔한 강속구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맥 빠진 공 앞에서라는 점이 흥미롭다. 달리는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더 빨리 달리는 방법도 있지만 멈추어 서는 방법도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듯도 싶어서다. /김은식 야구작가김은식 야구작가

2017-05-01 경인일보

[김은식의 야구란 무엇인가·4]낫아웃

공보다 먼저 1루 타자기록도 삼진김광현 1이닝 4삼진·조규제 5삼진투 스트라이크 상태에서 타자가 헛스윙을 하면 당연히 스트라이크 아웃이 되지만, 그 마지막 공을 포수가 노바운드로 잡지 못하면 다시 잡아서 타자를 태그하거나 타자보다 먼저 1루로 송구해서 베이스 터치를 하기 전까지는 '아웃이 아닌(Not Out)' 상태가 된다. 물론 타자가 공보다 먼저 1루에 도착하면 살아 있는 주자로서 인정이 된다. 하지만 2사가 아닌 상황에서 이미 1루에 주자가 있는 상태라면 낫아웃은 성립하지 않는다. 수비 팀이 낫아웃을 빌미로 주자와 타자를 모두 잡는 병살 플레이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낫아웃의 재미있는 점은 타자가 누상에 살아 나감에도 불구하고 기록상 투수는 분명히 삼진을 하나 잡은 것이 되며 타자 역시 삼진을 하나 당한 것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론상으로는 한 이닝에 세 개가 아닌 수십 개의 삼진이라도 기록될 수 있다. SK의 에이스 김광현은 안산공고 2학년이던 2005년 6월 30일 제 59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16강전에서 1회초 포철공고의 1, 2번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은 뒤 3번 타자에게도 헛스윙 삼진을 잡았지만 포수가 공을 놓치는 바람에 낫아웃 상태로 살려 보냈다. 하지만 이어진 4번 타자 역시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이론상으로만 가능하다던 '1이닝 4삼진'을 선보였다. 프로무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2003년 5월 5일, 수원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 연장 10회 초에 현대의 마무리 조규제는 2사 3루 상태에서 연달아 두 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냈지만 포수가 공을 빠뜨리며 낫아웃으로 출루시켜 만루의 위기를 자초했다. 하지만 찬스에서 들어선 타자 김상훈이 또다시 삼진을 당하면서 투아웃 이후에 세 타자가 삼진을 당하는 진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한편, 낫아웃 때문에 승부가 뒤집히는 사태가 벌어진 적도 있었다. 1997년 8월 23일 대구구장에서 벌어진 삼성 라이온즈와 쌍방울 레이더스 간의 더블헤더 1차전. 1-4로 뒤진 채 9회 초까지 끌려가던 쌍방울의 대타 장재중이 2사 1, 2루, 투스트라이크 원볼 상황에서 헛스윙을 하자 주심은 스트라이크 아웃과 경기 종료를 선언해버렸고 타자 장재중은 머리를 푹 숙인 채 자기 팀의 더그아웃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삼성의 포수 김영진은 마지막 삼진을 잡은 볼을 팬 서비스로 3루 관중석에다 던져 버렸다. 하지만 장재중이 헛스윙 한 마지막 공은 한 번 바운드를 하고 들어온 공이었고, 따라서 그 상황은 '낫아웃'이었다. 김성근 쌍방울 감독이 이 점을 지적하며 항의하자 심판진은 실수를 인정하고 경기종료를 번복한 채 경기를 속행했다. 게다가 '경기 중 송구가 관중석에 들어간 경우'에 해당했기 때문에 타자 장재중을 비롯한 세 명의 주자에게 모두 2개의 진루가 허용됨으로써 2루 주자가 홈인했고, 뒤이어 들어선 타자들마저 맥이 풀린 투수 김태한을 연달아 두들겨 결국 경기는 6대 4로 역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애초에 낫아웃이라는 제도가 생긴 것은 스트라이크와 볼의 구분이 없던 초창기 야구에서 투수가 의도적으로 '칠 수 없는 공'을 던짐으로써 삼진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말하자면 '포수가 잡을 수 있는 공'이 스트라이크를 뜻하던 시절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스트라이크와 볼의 구분이 엄격해진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제도가 살아남아 힘을 발휘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포수 뒤쪽에 공을 흘려둔 채 엉거주춤 경기를 끝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야구팬들의 미학적이고 심리적인 욕구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은식 야구작가김은식 야구작가

2017-04-24 경인일보

[김은식의 야구란 무엇인가·3]끝내기안타

불길한 예감 날리는 극적인 순간한켠에선 가장 깊은 패배의 슬픔 마운드 무거운 자책감 소용돌이끝내기 안타는 야구장의 홈 관중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것은 9회 말 이후까지도 앞서지 못한 위기상황에서만 나올 수 있으며, 또한 후공(後攻)을 하는 홈팀에게만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게는 네다섯 시간 이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슴 졸이며 지켜봐온 홈구장의 팬들이 그 모든 불길한 예감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며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기쁨을 표현해도 되는 극적인 한 순간을 만드는 것이 바로 끝내기 안타다. 그래서 끝내기 안타가 터지면 모든 선수들은 한꺼번에 그라운드로 달려 나와 주인공에게 물세례를 퍼붓는 요란한 축하연을 벌이게 되고, 그때까지 경기장을 지키고 있던 팬들 역시 또 한 번 작은 역사의 현장을 지켰다는 자부심에 상기된 얼굴로 환호하며 그 향연을 함께 한다. 하지만 반대편 더그아웃과 응원석에서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승리에 대한 갈망이 결국 물거품이 되어버린 그곳에서는 그래도 장하게 싸웠다는, 평생 야구하다 보면 이런 일을 수도 없이 겪기 마련이라는 위로와 토닥거림이 이곳저곳에서 나누어지며, 그래도 못내 아쉬운 마음에 눈물이 배어나오는 붉은 낯을 가리려 이쪽저쪽 고개 돌릴 곳을 찾는 서먹함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순간 마운드에서 더그아웃까지, 입을 굳게 다문 채 차마 눈물을 흘릴 염치마저 없다는 듯한 황망한 얼굴로 삶의 모든 무게를 짊어진 듯 고행을 하는 투수가 있다. 대개 끝내기 안타를 맞는 것은 동료들로부터 가장 큰 믿음과 기대를 맡아 짊어지고 있던 마무리 투수이며, 바로 그 안타 한 개를 내주지 않기 위해 감독의 특별한 승부수로 낙점되어 내보내진 최후의 보루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순간의 아픔을 함께 느껴본 사람이라면, 승자들의 환호성을 애써 피하느라 빙빙 돌아온 야수들이, 다시 가장 무거운 자책의 멍에를 지고 비틀거리는 투수를 앞질러야 할지 뒤따라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 뒤엉키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바로 앞 순간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렀거나 앞선 공격에서 어이없는 병살타를 만들어 승부를 결정지을 기회를 날리며 바로 그 순간의 빌미를 만든 이가 있었다면, 그가 패전투수의 등 뒤에서 어떤 몸짓을 하고 어떤 눈짓을 하는지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끝내기 안타, 아니 때로는 끝내기 실책, 끝내기 폭투, 끝내기 밀어내기 따위가 연출되는 순간 야구장 곳곳에서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높은 승리의 환희와 가장 깊은 패배의 슬픔, 가장 뜨거운 축하의 열기 속에 가장 무거운 자책감과 미안함이 동시에 터져 나와 소용돌이치곤 한다. 작년에 김태균과 정근우에게 추월당하기 전까지 한국 프로야구 사상 가장 많은 끝내기 안타(10개)를 때려냈던 것은 삼성의 김한수 감독이다. 하지만 그 역시 선수인생을 돌아보며 잊지 못하는 순간은 그 수많은 끝내기 안타가 아니라 1999년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7차전 연장 11회 김민재가 안타를 쳤을 때 홈 중계 악송구로 한 점을 헌납하면서 팀의 그 해를 끝내버렸던 실책의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야구장에서도 자랑스럽고 뿌듯한 기억은 강하지만 금세 휘발해버리고 '나 때문에'라는 자책은 깊이 새겨져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야구는 누가 더 실수를 하지 않고 버티느냐를 겨루는 경기라고 말한다. 그래서 한 경기는 고작 대여섯 개의 극적인 홈런과 안타, 그리고 수십 수백 개의 당연히 잡아야 할 타구, 당연히 때려야 할 실투, 당연히 달렸어야 하는 기회들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지켜보는 야구팬들은, 함부로 그들의 삶을 비웃지 못한다. 진지하게 삶을 사는 이들이 또 다른 각자의 삶에 대해 그렇듯 말이다. /김은식 야구작가김은식 야구작가

2017-04-17 경인일보

[김은식의 야구란 무엇인가·2]고의사구

거포 최희섭 거르고 김상현 선택당시 金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과감한 도박이자 고도의 심리전야구에는 항복이라는 제도가 없다. 하지만 투수가 상대 타자가 전혀 칠 수 없는 멀찍한 곳으로 공 네 개를 던져 1루까지 내보내는 '고의사구'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상대 팀이 한 명의 타자를 상대로 흔들어대는 국지적인 백기라고는 할 만하다. 그런 항복선언을 받아내는 타자로서는 타격 기회를 잃는 것은 아쉽더라도 일단은 아주 불쾌한 일은 아니다. 자신이 최소한 2루 이상을 얻어낼 확률이 아주 높은 타자라는 점을 인정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앞 타자를 향해 고의사구가 던져지는 것을 지켜보는 후속 타자에게, 그것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물론 그의 앞에는 타점을 올릴 수 있는 '밥상'이 차려진다. 앞 타자가 내야안타나 상대방의 실책, 혹은 끈질기게 볼을 골라 출루한 경우와 상황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분은 완전히 다르다. 상대는 자신을 향해 '네 앞 타자는 무섭지만 너는 만만해'라고 시비를 걸어온 셈이고 끝내 범타로 물러난다면 눈앞에서 놓친 점수 한두 점을 떠나 상대의 노림수와 도발에 그대로 놀아나고 말았다는 불쾌함과 불길함이 남게 되기 때문이다. 2009년 봄, 김상현은 십여 년의 프로생활 동안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 없이 유니폼만 두 번 갈아입고 친정팀 기아 타이거즈로 돌아와 있었다. 워낙에 빈약한 타선 탓에 8개 구단 최강의 선발진을 갖추어놓고도 연패와 역전패를 거듭하던 팀이었기에 곧장 선발 라인업에 낄 수도 있었고, 힘 하나만큼은 인정받는 처지였기에 중심타선에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수년에 걸쳐 '2할 대 초반의 1.5군급 타자'로 각인되어 있던 그를 두려워하는 투수들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그의 앞 순번에는 메이저리그에서 알아줬던 거포 최희섭이 포진되어 있었고, 당연히 '최희섭만 피해가면 된다'는 필승 루트를 발견한 상대 투수들은 무수한 고의사구를 던져댔다.그 때 김상현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자기가 투수라도 최희섭 만큼은 피하고 싶었겠지만 감히 자신이 최희섭보다 못한 타자로 보이느냐고 항변할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밀리고 몰리다 보니 한도 끝도 없이 자신을 우습게만 보는 세상과 자신의 운명 전체를 향해 이를 갈게 되는 남자의, 인간의 원초적인 오기. 그리고 그렇게 언제까지나 자기들 계산대로 될 거라는 듯 여유를 부리는 거만한 상대 팀들의 발걸음에 어떻게든 어깃장을 놓고 싶은 승부욕.하지만 그가 그저 그런 분노와 흥분만 실어 방망이를 거칠게 휘둘러댔다면 그는 결단코 '공갈포'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변화구 대처능력이 부족해 '간혹 직구를 받아치면 끝도 없이 날아가는 타구를 날리지만 변화구만 던지면 만사형통'이라는 상대 투수들의 안일한 계산을 파고들어 오히려 변화구를 노리는 유연함. 그리고 홈런도 좋지만 단타나 희생타 하나만으로도 상대를 응징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스스로의 심장을 식혀내는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기에 그는 '만루홈런의 사나이'가 되어 '시즌 MVP'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의사구라는 것이 나오는 상황도 다양하다. 그저 감당하기 어려운 강타자를 피해가기 위한 것도 있고, 타자와는 상관없이 비어 있는 1루를 채워 넣음으로써 병살을 노리기 위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고의사구는 피 말리는 승부이고 과감한 도박이며 고도의 심리전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든 한 명의 주자를 더 내보내고 주자들을 한 베이스씩 더 전진시키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조금이라도 쉬운 타자를 고르는, 그리고 조금이라도 병살의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선택이며, 선택한 타자를 향해서는 '칠 테면 쳐봐라. 너 정도는 병살로 잡아낼 자신이 있다'는 노골적인 도발을 던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의사구가 지시된 바로 다음 순간, 종종 그 경기의 분수령이 될 만한 대단한 승부가 연출되곤 한다. 역설적이지만 프로들의 승부가 흥미로운 것은 그 결과가 실력에 의해서만 갈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맞이하는 타자와 지켜보는 타자, 그리고 그것을 지시하는 감독과 배터리의 피가 끓어오르고, 거꾸로 치솟고, 말라붙는 순간. 포수가 자리에서 일어서고 어떤 이들은 야유를 퍼붓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또 어느 곳보다도 날카로운 승부처가 열린다는 것이 야구가 가지는 역설적인 매력이기도 하다. /김은식 야구작가김은식 야구작가

2017-04-10 경인일보

[김은식의 야구란 무엇인가·1]감독겸 선수

노무라 동시에 우승·MVP '전설'노홈런 수모 연봉 80% 깎인 이도정교해진 야구에 두 역할 어려워지난해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관중 800만명 동원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명실공히 한국 국민스포츠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한 프로야구. 프로야구 2017시즌이 개막하며 많은 스포츠팬들의 시선이 야구장으로 향하고 있다. 야구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복잡한 야구 규칙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야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을 위해 이번주부터 야구작가 김은식씨가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주구단이 선수와 플레잉 코치(playing&coach) 계약을 하는 경우는 꽤 흔하며, 이유도 여러 가지다. 현역생활에 대한 미련이 남은 선수를 달래며 단계적으로 은퇴를 시키기 위한 경우, 그대로 내치기에는 팬들의 원성이 두려운 프랜차이즈 스타의 연봉을 깎아내리기 위한 경우, 그보다 나이 어린 코치들이 속출하게 되면서 대두된 '서열과 기강'의 문제를 고려한 경우 등이 있다.하지만 감독 겸 선수(playing&manager) 계약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야구 선수단의 정점에 있는 감독이 선수의 역할도 병행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나이와 관점의 격차가 꽤 크기 때문이다.물론 프로야구의 역사가 짧지 않다 보니 감독 겸 선수의 사례를 따져보자면 없지는 않다. 미국의 경우 1920년대까지 코니 맥(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타이 콥(디트로이트 타이거즈), 트리스 스피커(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이 저마다 선수로서의 경력을 마무리하던 시점에서 감독 겸 선수로 수직상승한 적이 있고, 일본에서도 1940년대 중반 츠루오카 카즈토(난카이 호크스)가 선수와 감독의 역할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해낸 적이 있다. 1970~80년대에도 미국의 조 토레(뉴욕 메츠), 프랭크 로빈슨(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피트 로즈(신시내티 레즈), 일본의 노무라 가쓰야(난카이 호크스), 한국의 백인천(MBC 청룡) 등이 있었고 최근에는 지난 2006년부터 2년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마스크를 쓴 채 지휘봉을 잡았던 후루타 아쓰야가 있다.세월이 흐를수록 감독 겸 선수는 찾아보기도 어렵게 됐지만, 성공한 사례를 찾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츠루오카나 노무라는 선수생활을 겸하면서도 역대 최고의 감독 반열에 오를 만큼의 능력을 과시했고, 특히 그 중에서도 노무라는 1973년 감독 겸 선수로서 팀을 우승시키면서 최우수선수로도 동시에 선정되는 전설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1982년 백인천은 선수로서는 4할대의 타율을 남기는 대활약을 한 반면 감독으로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2006년 후루타는 감독으로서는 무난한 평가를 받은 반면 선수로서는 단 36경기에만 나서 선수생활 최초로 0홈런을 기록하며 무려 80%의 연봉을 삭감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1988년 피트 로즈는 불과 40여 경기를 지휘한 시점에서 경기 도박사건에 연루되어 쫓겨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성공적인 감독 겸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감독을 할 만한 나이까지도 선수로서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며, '감독의 역할과 선수의 역할을 모두 정확히 이해하는 것' 역시 필수적이다. 최근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40대 중반까지도 왕성한 경기력을 뽐내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여건은 감독 겸 선수가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사례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반대로 '감독의 역할과 선수의 역할' 사이의 간격이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선수는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플레이와 승부에 집중해야 하지만 감독은 후보, 2군, 심지어 아직 입단하지 않은 예비신인까지 염두에 두고 매 경기 뿐 아니라 시즌과 2~3년 후의 구도를 그려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미일 3국을 통틀어 현재 시점까지 '최후의 감독 겸 선수'였던 후루타가 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물러나며 했던 이야기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한 사람이 감독과 선수, 둘 다 수행하기에는 야구가 너무 정교해져 버렸습니다." /김은식 야구 작가▶김은식 작가는 한국 프로야구 결정적 30장면, 야구의 추억, 야구상식사전, 동대문운동장, 고양 원더스 이야기, 해태타이거즈와 김대중, 한국프로야구단 시리즈 등 다수의 야구 관련 책을 집필했다.김은식 야구 작가

2017-04-03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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