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의정부·차하얼 공공외교 포럼' 한팡밍 차하얼학회 주석

대학시절 '장학금' 계기 다양한 한·중 문화사업 앞장동상 설립추진으로 의정부와 본격적인 교류 시작중국 국제관계 형성 '싱크탱크' 차하얼학회 수장경기도내 지자체와 중국 민간단체간 공공외교 방향 제시양국 민중이 함께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항거한 사실은 좋은 본보기의정부의 '동북아 평화 거점 역할' 협조… 관광객 유치 아낌없이 지원생태·환경도시 수원과 협약… 베이징·장자커우 등과 교류 역량 발휘최근 북핵 문제와 '사드(THAAD)' 배치 등을 놓고 한·중 관계가 급격히 냉각된 분위기에서도 의정부시를 비롯해 경기도 지자체들은 민간차원 외교 활성화로 정부의 대 중국 외교 악조건을 극복하고 있다. 이들은 학술, 문화, 예술 등 비정치 분야에서 민간외교 이른바 '공공외교'를 통해 대 중국 교류의 끈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지자체의 공공외교는 최근 한·중 관계와 같이 국가 간 복잡한 정치적 갈등 상황 속에서 새로운 외교채널 역할을 한다. 의정부시는 지난 13일 신한대학교와 공동으로 '제2회 의정부·차하얼 공공외교 평화포럼'을 열어 중국 내 민간외교 관계자들을 초청했다.경인일보는 이날 포럼 참석차 방한한 한팡밍(韓方明·Han Fangmig·50)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협의회 외사위원회 부주임(차관급)을 만나 경기도 지자체와 중국 민간단체 간 공공외교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한 부주임은 차하얼학회 주석(회장) 자격으로 포럼에서 안중근 의사의 평화 정신을 강조하면서 국내 역사학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안중근 의사가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평화 정신은 후대로 이어질수록 더욱 큰 의미를 시사하고 있습니다."중국 내 민간외교 노선을 주도하고 있는 차하얼학회(察哈爾學會·The Charhar Institute)의 한팡밍 주석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안중근 의사의 평화 정신 계승을 강조했다.차하얼학회와 의정부시의 관계는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리 정부는 중국 정부의 협력을 얻어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을 추진하던 중 기념비 설치 사업을 민간조직인 차하얼학회가 맡게 됐다. 의정부시는 이듬해 안중근 의사 동상을 유치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했고 차하얼학회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면서 본격적인 교류가 진행됐다. 지난해 처음 열린 평화포럼은 이러한 교류의 일환으로 추진됐다.지난 2009년 설립된 차하얼학회는 민간주도 공공외교와 대외정책 연구, 홍보 및 컨설팅 등을 담당하면서 중국의 민간외교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특히 중국의 비공식 외교 및 국제관계 형성을 위한 '싱크 탱크(Think Tank)' 역할을 하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의 서면보고 기관으로 알려질 만큼 중국 외교정책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차하얼학회를 이런 중요 위치로 끌어올린 한 주석이 한국의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에 관심을 쏟게 된 것은 우연한 동기에서 비롯됐다.한 주석은 "베이징대학교 재학시절 한국의 중소기업이 마련한 '안중근 장학금'을 받게 된 것을 계기로 안중근 의사의 평화 정신을 실천하기로 마음 먹었다"며 "이후 양국을 오가며 안중근 의사 동상설립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문화교류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한 주석의 활동 역시 평화를 바탕으로 한 민간외교 최일선에 서 있다. 한 주석은 "최근 북핵 문제와 사드 배치 등으로 양국관계가 수교 이후 가장 싸늘하게 식어버린 것 같다"며 "차하얼학회는 이와 달리 경기도와 의정부시, 수원시 등 한국 지방정부와 활발하게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상황일수록 차하얼학회가 한국과의 공공외교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실제 차하얼학회는 이번에 열린 평화포럼에 앞서 지난 10월 수원시와 교류협약을 맺는 등 공공외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번에 열린 '의정부·차하얼 공공외교 평화포럼'은 한 주석의 안중근 의사 평화 정신 계승 노력을 잘 드러낸 자리였다.한 주석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과 한국의 민중이 서로 지원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항거한 사실은 공공외교의 훌륭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며 "안중근 의사가 보여준 평화 사상은 현재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현실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또 한 주석은 안중근 의사 평화 정신 계승의 일환으로 안중근 의사 동상설립 사업을 중국 내·외적으로 활발히 하고 있다. 그는 "차하얼학회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건립해 의정부역 앞 광장에 기증하는 방안은 물론 '공공외교 평화포럼'을 정례화해 매년 의정부시에서 열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아울러 포럼을 주관할 사무국 역시 의정부에 두고 의정부시가 동북아시아 평화구축의 거점도시가 되도록 협조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차하얼학회는 의정부시의 '800만 관광객 유치'에도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이는 의정부시와 차하얼학회의 공공외교가 실질적인 협력으로 진일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한 주석은 "차하얼학회가 중국의 지방도시와 좋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물론 지방도시들이 중국 정부의 관광 관련 부서와 업무를 처리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의정부시가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벌이는 홍보활동에도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을 방문하고자 하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의정부시의 지명도를 높이는 방안도 찾겠다"고 덧붙였다.차하얼학회가 의정부시와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 손잡고 있다면 경기 남부의 중심인 수원시와는 환경과 생태 중심의 공공외교를 펴고 있다.한 주석은 "지난 10월 수원시와 맺은 협약을 바탕으로 내년 1월에는 수원시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한다"며 "이 자리에서 환경보호와 생태문제를 놓고 수원시와 중국의 여러 지방도시가 교류할 수 있도록 역량을 발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차하얼학회는 수원시와 ▲한중 청년교류 활성화 ▲중국 내 수원시 관광자원 홍보 ▲생태환경 업무교류 ▲뉴미디어 분야 콘텐츠와 기술교류 등 다양한 분야의 공공외교에 협력하기로 했다.한 주석은 "한국의 생태도시, 환경도시를 선도하고 있는 수원시는 오는 2022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베이징, 장자커우와 환경과 생태를 주제로 한 큰 폭의 교류를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또 "수원시와 맺은 협약을 통해 중국과의 관광교류 확대 및 문화·관광자원 홍보의 폭넓은 협력과 동시에 양국 청년교류, 생태환경 업무교류를 추진할 것"이라며 "양국 공공외교의 외연을 확대하고 실질적인 우호 증진과 동시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차하얼학회가 의정부·수원 양 도시와 이처럼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된 데에는 경기도의 노력도 큰 몫을 하고 있다. 한 주석은 "남경필 지사와는 그가 국회의원 시절부터 친구 관계를 이어왔다"며 남 지사와의 친분을 과시했다.특히 경기도는 한 주석에게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경기도 수석외사고문직을 맡기는 등 한 주석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차하얼학회는 의정부와 수원 등 경기 남·북부 중심 도시의 역량을 바탕으로 평화와 생태환경 등 공공외교의 영역을 넓히며 한·중 민간외교를 선도하고 있다. 한 주석은 "중국 정부의 대 한국 외교정책 속에서도 차하얼학회가 지닌 비공식 공공외교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의정부시와 수원시 등 민간외교 분야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어가겠다"며 내년에 더욱 활발한 외교사업 의지를 밝혔다.한 주석의 이번 의정부시 방문은 의정부시 공공외교의 성과와 발전적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한 주석은 의정부시를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도시, 한국전쟁의 중심에서 큰 피해를 봤지만,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선 평화의 도시'로 인식하고 있어 앞으로 의정부시와 공공외교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안병용 의정부시장은 차하얼학회를 통한 중국과의 공공외교를 선택하기로 했을 때 이 점을 가장 크게 염두에 뒀다. 의정부시가 가진 전쟁과 평화, 번영의 상징성을 민간외교 채널을 통해 중국 국민에게 파고들어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서 중국과 미래 지향적인 동반자 관계를 설정하고자 한 것. 안 시장은 이번 한 주석과의 만남에서도 이 점을 특히 강조했고 한 주석도 이에 적극적인 공감을 드러냈다. 한 주석은 "차하얼학회는 동북아 평화를 위해 의정부시와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겠다"며 "의정부시와 공공외교를 발판으로 양국 외교의 발전을 위해 더 큰 공헌을 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글/최재훈(의정부)·정재훈기자 jjh2@kyeongin.com· 사진/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한팡밍 주석은?1966년 중국 하북성 상의현 출생베이징대학교 졸업(학사·석사·박사)미국 하버드대학교 방문교수주요 경력현)전국인민정치협상협의회 외사위원회 부주임현)전국인민정치협상협의회 10·11·12기 최연소 위원현)중국국제무역중재위원회 중재원현)중국경제사회이사회 상무이사현)중국-아프리카 경제기술합작위원회 공동 주석2015~현재 중국 LeTV그룹 부회장2013~2014년 중국 광샤그룹 부회장2008~2013년 TCL그룹 부회장2011~2013년 중국선박 이사2010~2013년 중국국제항공공사 이사2009~2013년 중국전력그룹 이사2006~2008년 TCL그룹 이사출판'공공외교론'(2011년)'차하얼학회 외교관계 총서'(2011년)'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2010년)'서서 말하라'(2007년)'중국인과 말레이시아 현대화 발전과정'(2002년)중국 차하얼학회 한팡밍 주석이 공공외교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출처/안중근의사기념관(www.ahnjunggeun.or.kr)안병용 시장과 중국 차하얼학회 한팡밍 주석이 의정부역 앞 광장에서 안중근 동상 설립을 위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의정부시 제공

2016-12-15 최재훈·정재훈

[인터뷰… 공감]첫 오프라인 매장 문 연 '경기도주식회사 김은아 대표'

마케팅·브랜드 개발 어려움 겪는 '1차 고객' 기업들 요구 파악이 우선제품 디자인·홍보 지원… 안테나숍·숍인숍 등 '유통채널' 확대 방침소비자 요구 유연하게 대처 가능 '소규모 사업' 운영 한계를 장점으로물류·수출망 등 인프라 절실… 지역사회와 플랫폼 운영 뒷받침돼야"코리아 경기도주식회사는, 중소기업들에게 환영받는 파트너가 될 것입니다."경기도주식회사. 말 그대로 경기도민들이 주요 주주로 참여한 주식회사다. 하는 일은 도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일이다. 조금 막연하긴 하지만, 분명 이 회사가 하는 일이다. 우수한 제품과 기술력을 갖췄으나 대기업에 밀려 시장에서 제대로 된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중소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취임 직후부터 경기도주식회사의 설립을 공언해 왔다. '경기도'라는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가 중소기업들에게 든든한 '빽'이 돼준다는 게 그 밑그림이었다. 경기도주식회사는 남경필 표 '공유적 시장경제'의 상징이기도 하다. 좋은 제품만 만들면 판로는 도가 열어주겠다는 게 이 사업의 핵심이다. 중소기업을 살리는 일은 결국 '판로개척'이라는 생각도 반영됐다.이 파격적인 사업을 이끌어갈 핵심 멤버 또한 파격적으로 발탁됐다. 김은아(43) 경기도주식회사 초대 대표이사는 관료 출신도, 더군다나 흔한 CEO 출신도 아니다. 잡지발행과 전시 기획 등으로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도내 중소기업들의 브랜드 전략을 수립할 적임자로 무대 위에 섰다. 김 대표는 CJ푸드빌에서는 브랜드 리뉴얼과 론칭을 담당하며 '빕스', '뚜레주르', '투섬플레이스', '계절밥상' 등을 성공시킨 바 있다. 이런 점이 그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게 한 요소다.경기도주식회사의 첫 오프라인 매장이 있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만난 김 대표는 고객인 중소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1차 고객은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인들이 필요로 하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며 "좋은 클라이언트가 되기 위해서는 소비자(중소기업)의 요구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중소기업들이 경기도주식회사의 오픈 플랫폼(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건물·판매망 등)을 이용, 이익 창출 등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고 궁극적으로 고객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경기도주식회사는 이같은 니즈(needs) 파악을 위해 시장 트렌드 분석에 주력하고 있다. 동대문에 문을 연 '안테나숍'은 시장 현황 파악은 물론, 마케팅 활동에 거점 역할을 하게 된다. 경기도주식회사에는 현재 19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1호 매장에는 참여 기업 200여 개의 제품이 전시돼 있다.김 대표는 "도내에는 76만 개의 중소기업들이 있으며, 이 기업들은 대한민국의 일자리와 지역경제 발전의 주축"이라며 "하지만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고도 인력·자본 등 내부자원 부족으로 마케팅과 브랜드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기도주식회사의 목표는 중소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며 "중소기업들도 소비자들의 니즈에 발맞춰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주식회사는 이 같은 목표를 위해 새로운 유통 판로를 개척하고 유통 채널에 맞는 콘셉트 기획을 통해 중소기업 브랜드를 모집하고 제품 디자인 지원 및 홍보·마케팅 지원과 함께 유통 채널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경기도주식회사는 이마트 등 대형마트에도 45개의 숍인숍(매장 안에 있는 또 다른 매장)을 운영하고, 2025년까지 핫플레이스를 중심으로 5개 안테나숍을 내기로 했다. 도내 중소기업의 국내 판로를 위해 G마켓, 옥션 등 인터넷 오픈마켓과 연간 90만 명이 방문하는 온라인 경기사이버장터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네이버·카카오 등 기존 유통채널과의 결합으로 맞춤형 유통채널을 구축해 중소기업 브랜드를 계속 개척해나갈 방침이다. 해외 판로는 미국 뉴욕·중국 상하이 등에 개설된 경기도통상사무소(GBS) 8곳과 연계해 추진할 예정이다.김 대표는 중소기업이 가지고 있는 한계나 단점을 되레 장점으로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그는 "소규모의 사업 운영으로 겪는 한계가 유연함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가치 소비 중심의 트렌드 변화에 맞춰 세분화 된 소비자의 니즈에 중소기업의 구조적 유연함으로 대처하는 것이 중소기업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또 "고급패션 명품 브랜드보다 가성비를 고려한 선호도가 증가하고 있고, 소유가 아닌 사용 또는 활용 개념으로 공유적 시장경제가 활성화 되고 있는 것이 중소기업들에게 장점이 될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브랜드가 약한 중소기업들도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상품을 출시할 경우, 충분히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경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김대표는 또 "기업 소유 유휴 자원을 타기업과 공유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이 이미 등장하고 있는 시대다. 경기도주식회사는 이러한 형태의 사업 모델을 기반으로 경기도청과의 협력적 관계를 통해 공공성과 효율성의 균형을 맞춰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경기도주식회사의 성공을 위해서는 남 지사와 도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협력적 거버넌스로 물류, 결제, 수출망 등의 인프라 구축 지원이 필요하다. 지역사회와의 대타협을 통한 룰을 세팅해 협력적 생산과 소비 활동을 위한 플랫폼이 운영될 수 있도록 도가 뒷받침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아울러 "해결사의 역할보다는 좋은 리소스들을 연결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경기도주식회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며 "중소기업들은 경기도주식회사가 어떻게 꾸려나갈지 지켜보는 것 보다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글/이경진기자 lkj@kyeongin.com· 사진/김은아 대표 제공중소기업 판로 개척 전략수립 책임자 관료 출신도 CEO 출신도 아니다잡지발행·전시기획 등 잔뼈 굵은 그녀CJ푸드빌 브랜드 마케팅 경력빕스·뚜레주르·투섬플레이스 등 발자취■김은아 대표는?▲ 2010~2015CJ푸드빌 브랜드마케팅 ▲ 1997~2010디자인하우스 전시기획 및 브랜드마케팅컨설팅김은아 경기도주식회사 대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마련된 전시장에서 "경기도주식회사는 중소기업들이 경기도라는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통해 경쟁력을 갖추고 경제활성화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매개체"라고 강조했다.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마련된 경기도주식회사 1호점은 66㎡ 규모로, 도내 유망 중소기업들의 아이디어 상품들로 채워졌다.

2016-12-13 이경진

[인터뷰… 공감]봉필규 경기도상인연합회장

냉난방 취약 단점 볼거리 제공 등으로 경쟁력 높이는 방법 찾아야장사 경험없어 공산품 판매한지 18년… 아이들 못챙겨 마음 아파다른 상인도 다를바 없어 복지 담당할 '대하 협동조합' 출범 팔걷어병원·요양비 등 노년기 부담 줄이는 게 목표… 복지재단 확대 꿈꿔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아케이드와 주차장을 설치해주고 대형마트를 강제로 쉬게 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은 '전통시장에 돈만 퍼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인들을 두고 '떼만 쓰는 집단'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늘었다. 전통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 흐름에 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지난 5일 봉필규 경기도상인연합회장을 만나자마자 가시돋친 말을 쏟아냈지만 그는 반박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전통시장이 소비자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도 했다."전통시장에 주차장이 생기고 비가림막이 만들어지면 궁극적으로는 시장 상인들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시장을 찾아주는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대형마트나 백화점의 시설을 따라갈 수 없는데도 이 같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만 바란다면 당연히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시장이 냉난방에 취약한 대신, 대형 유통매장들이 하기 어려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식으로 차별화를 하는 거예요. 정례화된 공연이든 정비된 산책로든 볼거리를 위해 시장에 온김에 콩나물 한 봉지라도 사서 돌아간다면 그만한 경쟁력이 없지요. 회장 취임 이후 4년 만에 45개였던 시장 수가 97개로 2배 이상 늘었어요. 아직도 시설이 심하게 노후화한 곳의 경우 시설현대화 작업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전통시장 스스로 차별화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의 마음을 결코 돌릴 수 없을 겁니다."봉 회장은 사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 영업사원이었다. 현대자동차에 몸담았던 그는 직장 동료들과 동아리 활동으로 운동을 하다 다치는 바람에 3개월 가량을 휴직해야 했고, 영업사원 특성상 3개월의 업무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이 섰다. 결국 IMF 시기와도 맞물렸던 지난 1998년 2월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의 안양남부시장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좌절하지 않고 야심차게 재기를 꿈꾼 점은 높이 살 만하지만, 보통의 30대 초반 청년이라면 인생의 2막을 열 직장으로 전통시장을 택하지는 않을 터였다."원래 지금 가게는 장인어른이 닭과 달걀을 판매하던 자리였어요. 당시에는 월급쟁이로 사는 것보다도 내 장사를 해보자는 마음에 장인어른 가게를 물려받아 아내와 장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장사를 해본 적이 없으니 뭐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닭이나 생선은 생물이어서 자신이 없었고, 공산품은 유통기한이 지날 때까지 팔지 못하면 새 상품으로 교환해 준다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이곳에서 공산품 판매를 해온거예요. 물론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새 상품으로 바꿔주는 경우는 없더라고요."(웃음)그리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기업 다니는 동기들은 부장도 되고 상무직도 달았다. 회사를 박차고 나와 시장상인으로 산 18년이 후회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특히 아이들한테 미안해서 후회했던 적이 많아요. 큰아들이 해병대에서 군 복무 중인데 첫 면회를 가서 아버지한테 하고 싶었던 말 있으면 하라고 했더니 '어릴 적에 많이 외로웠다'고 하더군요. 생각해보면 18년간 매일 새벽 4시에 가게 문을 열고 밤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아이들을 제대로 돌봤을 리가 있겠습니까. 막내아들이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인데 아내가 새벽 4시에 나왔다가 7시에 잠깐 집에 가서 애를 깨우고 밥먹여 학교 보낸 뒤에 다시 일하러 오는 모습을 보면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커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다면 더 살뜰히 챙겨주며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그의 아쉬움과 후회는 경기도 내 전체 시장 상인들의 그것과도 일맥상통했다. 시장의 근무여건이나 생활패턴은 어디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임기 내 책임지고 추진한 것도 바로 전통시장 상인들의 복지를 담당할 '대하 협동조합' 출범이었다."아이들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넘어 실제로 자녀들이 어렵게 살아가 부모가 생활을 책임져야 하거나 자녀의 이혼으로 손주를 맡게 되는 조손가정 상인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게다가 시장 상인들은 전부 고령화해 당장 병원비나 향후 요양병원비에 대한 부담도 떠안고 있는 상황이에요. 정부에서 전통시장에 대한 지원을 많이 해주고는 있지만, 조직의 외형만 잘 되는 것이 전부는 아니죠. 경기도 내 전체 시장 상인이 대략 7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매달 1만원씩 모으면 7억원입니다. 개별 상인들을 체계적으로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이 바로 대하 협동조합입니다."현재 협동조합 출범을 위한 모금이 진행 중이고, 조합 이사진도 모집하고 있다. 조합이 요양병원과 연계하면 상인들의 노년기 부담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결국에는 보다 체계적인 지원이 가능해질 수 있는 상인복지재단으로까지 조합이 확대되는 것이 봉 회장의 목표이자 계획이다."조직원이 건강해야 조직에 대한 충성도도 높아지겠지요. 아무리 전통시장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라고 해도 과거 없는 현재는 없듯이 더욱 튼튼하고 건강한 경기도상인연합회를 만들어 전통시장을 지켜내고 싶습니다. 또 30대 초반부터 청춘을 바쳐 이 자리까지 왔으니 기회가 된다면 전국상인연합회장직에도 도전해 경기도를 넘어 전국 시장 상인들을 위한 복지재단을 세우고 싶습니다."글/신선미기자 ssunmi@kyeongin.com·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봉필규 회장은?동아리 활동 부상으로 휴직IMF 맞물려 대기업 영업직 그만 둬안양남부시장서 열린 제2의 인생이후 그는 7만 상인들의 대표가 됐다▲ 1966년 7월 5일생▲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안양시 물가 안정 위원회▲ 경기도 SSM 사전조정협의회 위원▲ 산업통상자원부 유통산업연합회 상생분과 위원▲ 안양남부시장상인연합회 회장▲ 전국시장상인연합회 부회장봉필규 경기도상인연합회장이 안양 남부시장에서 협동조합 등을 만들어 더욱 건강하고 활기찬 전통시장을 지켜 내겠다며 환하게 웃고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2016-12-06 신선미

[인터뷰… 공감]박태현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원장

도 인프라·예산지원 서울대 출연 '국내 최초·최대' 융합기술연구기관8년간 기술축적 완전체 '판교제로시티' 4차 산업혁명 중추적 역할 기대농업용비료 효과개선·조류독감 진단등 다양한 기술들 '제때활용' 중요무분별 예산절감 기관 퇴보시킬뿐… 마음놓고 연구 '운영 안정화' 시급"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한 명언이 있어요.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 (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 정치인들이나 공직에 계신 분들께 꼭 들려주고 싶은 말입니다. 그분들이 생각하는 '과학기술'의 정의와 저희가 생각하는 '과학기술'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어요. 전자가 현재 산업의 발전을 일으키고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는 것이 그 목적이라면, 후자는 앞으로 우리의 먹거리를 책임져 줄 수 있는 연구분야를 말합니다."수원시 영통구 이의동에 위치한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하 융기원). 박태현 융기원 원장은 기자들을 만나자마자 열변을 토했다. 과학과 기술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보기에 행정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답답하게 보였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행정가들은 예산을 투입하면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야 하는데 이쪽 분야라는 것이 시간을 정해놓고 예산을 들인다고 꼭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 원장은 일본이 계속해서 노벨상을 타는 반면 우리나라는 순수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타는 것이 참 힘든 일이라고 했다. 과학자들에게 돈을 대주면서 꾹 참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매년 경기도에서 예산을 지원받는 융기원으로서는 상당히 답답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도지사들이 바뀔 때마다 무언가 터뜨려야 한다는 중압감이 교수들과 엔지니어들을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 원장은 "그래도 요즘은 많이 좋아졌다"며 "도청 직원이나 도의원들이 우리의 업무에 대해 많이 이해를 해주고 있어 업무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했다. 박 원장에게 융기원의 탄생부터 현재 융기원이 집중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융기원은 어떤 곳인가?"융기원은 융합과학기술의 혁신역량 강화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의 과학기술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경기도가 인프라와 예산을 지원하고, 서울대학교가 출연해 설립, 운영하고 있는 국내 최초·최대 규모의 융합기술 전문 연구기관이다. 지난 2005년 융기원 설치 및 운영조례가 제정되고, 2007년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법인설립 허가를 받은 뒤 2008년 비로소 개원됐다. 그리고 2009년에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이 만들어졌다. 실제 학위가 주어지는 커리큘럼이 생긴 것이다. 현재 융기원에는 나노융합, 바이오융합, 스마트시스템, 범학문 통합 등 총 4개의 연구소를 중심으로 경쟁력 있는 여러 개의 센터들이 조직돼 있으며, 바이오헬스분야, 에너지반도체, 미래자동차, IT융합, 로봇융합, 게임융합, 공공데이터 분야 등 국내 최고의 연구소를 목표로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다."-올해 융기원 최고의 성과를 꼽는다면?"남경필 도지사의 역점사업인 '판교제로시티' 내에 자율주행 차를 시험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Test Bed)를 구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8년간 축적된 융합기술의 완전체로 경기도 4차 산업혁명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 융기원 설립 이후 인공지능, 무인자동차, 가상현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축적해온 융합기술이 드디어 판교제로시티를 통해 빛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원래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혁신과 이에 수반하여 일어난 사회·경제 구조의 변혁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혁명은 인류 역사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를 이용한 기계화, 2차 산업혁명은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 3차 산업혁명은 '반도체(전자·IT)' 이용한 자동화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주목되는 4차 산업혁명은 기술의 융합을 통한 사물 지능화를 말한다. 즉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융합기술'에 달렸다고 하겠다. 대표적인 예로는 자율주행차, 인공지능로봇, 사물인터넷, 스마트시티, 3D프린팅 등을 들 수 있다. 지금 융기원의 자율주행차도 5G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 중인데, 4차 산업혁명시대는 5G의 ICT(정보통신기술)를 기반하고 있다. 참고로 5G는 차세대이동통신기술로 기존의 인터넷 속도보다 100배 이상 빠르고, 용량은 1천 배 이상 많은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이다."-경기도에는 해결해야할 다양한 정책과제들이 산재해 있는데, 도가 융기원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은가."판교제로시티 구축같은 역할을 수행할 연구기관은 경기도에서 융기원이 유일하다고 본다. 그만큼 융기원에는 융합기술의 역량이 축적돼 있다. 또 서울대가 보유하고 있는 광범위한 지식·기술 또한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융기원 연구진들은 그동안 수많은 국가과제를 수행해 오면서 경기도 사회문제해결형 융합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자율주행차 기술뿐만 아니라 인공지능로봇, 가상현실 구현, 음식물쓰레기 처리, 바이오에너지 생산, 에너지관리기, 자동차 배출 유해가스 저감, 농업용 비료효과 개선, 기능성식물 신품종개발, 농업농촌 6차산업 공동연구, 조류독감 및 구제역 진단기술 등 매우 다양한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도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앞으로 융기원이 가진 계획이나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면?"우선 기관의 운영 안정화가 시급하다. 단기성과의 조급함과 무분별한 예산절감은 기관을 퇴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융기원은 경기도가 지원하고 서울대가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부터 도 지원예산이 축소된 데다 2017년 이후부터는 서울대의 운영이 종료되는 시점이라 향후를 대비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연구기관은 매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 분명히 다르다.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경우 80% 가까이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고 일본의 RCAST의 경우도 40% 가까이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하고 있다. 융기원처럼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연구기관은 사실 운영비 지원 없이 기관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장기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다. 과연 월급 걱정하는 기관에서 어떤 사업을 마음 놓고 펼칠 수 있겠는가? 우수한 연구인력에 대한 사기진작이나 인력확보에 상당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연구기관이 원천기술을 연구하고 보유기술을 연마할 수 있도록 운영비를 지원하고, 판교제로시티처럼 융기원이 보유한 기술을 도에서 제때 활용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대담·정리/김학석 정치부장·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박태현 융기원 원장은?-1957년 서울 출생-1981년 서울대 화학공학과졸-198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공학과졸(석사)-1990년 화학공학박사(미국 퍼듀대)-주요 경력▲1983~1986년 럭키중앙연구소 유전자공학연구부 연구원▲1990~199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박사 후 연구원▲1992~1997년 성균관대 유전공학과 교수▲1997년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현)▲2001~2002·2006~2007년 미국 코넬대 방문교수▲2007~2008년 서울대 바이오최고경영자과정 주임교수▲2013년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현)▲2016년 한국생물공학회 회장박태현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원장은 "융기원에는 융합기술의 역량이 축적돼 있으며 서울대가 보유하고 있는 광범위한 지식·기술 또한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6-11-29 김학석·김선회

[인터뷰… 공감]취임 앞둔 최진용 인천문화재단 차기 대표이사

고등학교까지 인천에서 졸업… 서울로 떠난 후에도 집처럼 드나들어지역 이해도 우려보다 다양한 예술장르 폭넓은 인맥 등 장점 봐달라5만권 넘는 장서 보유 매년 100권이상 읽어… 대학강단 경력도 '밑천'문화는 우리사회 '성장 동력' 상처입은 나라의 품격 빨리 회복했으면최근 인천문화재단을 이끌어갈 차기 대표이사 공모에 12명의 지원자가 대거 몰리자 인천지역 문화계 안팎의 관심이 쏠렸다.과연 어느 인사가 여느 때 보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인천의 문화예술을 풍요롭게 가꿔가야 할 책임을 지닌 재단의 대표이사로 선정될 것인가? 역시 자연스레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공모 결과 인천문화재단 외부 인사 7인으로 구성된 '대표이사추천위원회'의 서류와 면접 심사를 거쳐 최종 2인의 후보가 추천됐고 최진용(69) 전 의정부예술의 전당 사장이 인천시장의 최종 선택을 받았다. 김윤식 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의 뒤를 이을 후임으로서 취임을 2주가량 앞둔 최진용 전 의정부예술의 전당 사장을 인천 중구 신포동의 한 카페에서 지난 21일 만났다.그는 "40년 문화행정 경험을 고향 인천의 문화현장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서 가슴 벅차고 기쁘다"며 "인구 300만 도시 규모와 비교하면 여러모로 미흡한 고향 인천의 문화 발전을 위한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고 헌신하겠다"고 재단 대표이사 선정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차기 대표이사에 그가 선정됐다는 결과가 발표되자 지역에서는 대부분 '도대체 누구냐?'라는 반응이 많았던 것이 사실. 그래서인지 최 전 의정부예술의 전당 사장은 인터뷰 상당 부분을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인천 남구 도화동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사실상 지역 외 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대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았던 인사들이 대부분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한 경력을 바탕으로 대표 이사직을 맡아왔기 때문이다.실제로 그는 이번 공모 과정에서 평가관들로부터 그에게 인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재단 대표이사직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문화공보부 공무원 9급으로 공직에 입문해 34살이 될 때까지 인천에 살며 출퇴근을 인천에서 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집을 바로 마련할 수 없었죠. 서울로 이사해서도 어머니와 형님, 누나, 동생들 친지들 모두 인천에 있어 인천을 집처럼 드나들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인천을 떠나 있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지역을 폭넓게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우려보다는 앞선 대표이사와 달리 풍부한 문화행정을 가진 장점을 봐 달라고 그는 당부했다. 그는 출판, 미술, 영화, 전통예술,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극장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행정과 현장에서 섭렵했다.그는 "앞서 대표이사직을 맡아 주셨던 훌륭하신 지역 인사들이 지역에 대한 이해가 높았던 것이 강점이었다"면 "40년간 현장에서 쌓아온 문화행정 경험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온 폭넓은 인맥도 나의 강점"이라고 말했다.그는 많은 이들이 문제라고 보는 것들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확신하며, 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계 인사와 직접적인 친분이 지금 당장은 부족하지만, 지역 구분 없이 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폭넓게 친분을 쌓아 왔다"며 "예술계를 들여다보면 지역이라는 범주 이외에도 다양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그는 엄청난 장서를 보유한 장서가로도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책 좀 그만 사고 노후대비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느냐"며 만류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보유한 장서의 규모는 평범한 사람이 생각하는 숫자를 훨씬 뛰어넘는데, 자그마치 5만 권이 넘는다고 한다. 1만권은 자택 1층에 나머지 4만여권은 파주 출판단지의 한 창고를 빌려 보관하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 매일 죽는 날까지 매일 책을 한 권씩 사더라도 3만6천500권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최근에는 한 대형서점의 개점 35주년 기념식에서 우수고객으로 인사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2곳의 독서모임을 이끌며 매년 100권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그는 풍부한 문화 행정경력과 다양한 경험으로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다. 이화여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등에서 '문화정책', '미술관 경영전략', '서양미술사' 등 강의를 맡아 6년가량 학생들을 가르쳤다.그는 요즘 혼란을 겪고 있는 현 시국 상황에 대해 언급하며 그 어느 때보다 문화·예술의 역할이 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그는 "온 국민이 모두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 시기인 만큼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역할을 문화의 영역에서 맡아줘야 한다"며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공연을 보고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야 하는데, 문화 예술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문화라는 것이 당장 효과가 없을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문화는 우리 사회를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자 엔진 역할을 했다"며 "문화의 치유력으로 우리 사회가 빨리 회복하고 땅에 떨어진 품격도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최진용 차기 대표이사는?-1947년 인천 남구 도화동 출생 -김포 대곶초-인천 동산중-동산고-건국대 행정학과-연세대 행정대학원(언론 홍보전공)-주요경력▲의정부예술의전당 사장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 ▲대한민국예술원 사무국장 ▲국립현대미술관 사무국장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 조직위원회 기획조정국장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과장 ▲문화부 예술진흥국 전통예술과장 ▲문화부 예술진흥국 영화진흥과장인천문화재단 차기 대표이사로 선정된 최진용 전 의정부예술의전당 사장은 "고향 인천의 문화 발전을 위한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고 헌신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6-11-22 김성호

[인터뷰… 공감]법무보호복지공단 김명달 경기북부지부 보호위원연합회 회장

함께 잘못 돌아보고 반성의 시간 갖게 돼… 남들과 똑같이 보고 격려출소예정자 취업박람회 기반 큰 성과 부당 대우 등 사후관리 아쉬워재범율 낮추기 '우리의 몫' 국가기관만으로 역부족 민간 후원 절실보호관찰 청소년에도 관심… 장학기금 조성 멘토링 통해 복학도와"앞으로 평생 그들(출소자들)과 함께 잘못을 돌아보고 매일 새로 일어서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겨울이 성큼 다가오면서 소외된 이웃에 온정을 베푸는 손길도 바빠졌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인심에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의 정은 아직 온기가 남아 있다. 복지의 그늘에 가려 사는 소외 이웃 중에는 출소자도 있다. 법이 내린 죗값을 치르긴 했지만, 교도소 담장 밖 세상은 냉정하기 만하다. 죄지은 자에게 복지가 '웬 말인가?' 하겠지만, 그들 중에는 도움의 손길이 절박한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출소자의 재범률을 낮추는 것은 제도적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출소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선입견이 바뀌지 않는 한 범죄의 악순환은 끊기 힘들어 보인다.법무보호복지공단은 출소자의 사회복귀를 돕는 기관이다. 공단은 여러 민간 조직의 도움으로 움직인다. 그중 하나가 '보호위원연합회'로 출소자 사회복귀 지원에 뜻을 같이하는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현재 공단 경기북부지부 보호위원연합회를 이끄는 사람은 김명달(55) 회장이다. 연말을 앞두고 출소자를 위한 각종 후원행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보내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출소자들을 도우면서 크게 달라진 점은 매일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진정 반성하게 하는 길은 우리가 그들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김 회장이 출소자들의 인생 길잡이를 시작한 게 올해로 24년째다.그의 손을 거쳐 간 출소자들에게 그는 '대부' 같은 존재다. 그들 중에는 이제 어엿한 기업 대표가 된 이도 있고 돈을 벌어 남을 돕는 이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그와의 만남을 행운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보듬지 않으면 그들은 영원히 과거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잘못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들과 똑같이 보고 격려했던 게 전부입니다."김 회장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출소자의 자립에 관심을 쏟게 됐다. 직업을 알선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교도소와 힘을 모아 출소 예정자를 대상으로 취업박람회를 여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전부터 교정기관에서 논의는 있었지만, 선뜻 나서는 곳이 드물었다. 당시 의정부교도소 교정위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이를 강력하게 밀어 전국의 모범사례로 만들었다. "출소자에게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입니다. 사회복귀 절반의 성공이라고 봐도 될 만큼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교도소 취업박람회를 보편화하고 기반을 다졌다면 앞으로 질적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체계를 갖춰야 하고 출소자의 특기와 적성도 고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김 회장이 열정을 쏟은 교도소 취업박람회는 해가 갈수록 기업의 반응도 나아지고 있다. 초창기의 출소자 채용 기업이 주로 인력난이 심한 3D업종에 몰렸다면 최근에는 유통과 서비스업 등 업종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는 출소자 채용이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처음에는 참여 기업을 찾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며 "인맥을 총동원할 정도였다"고 했다. 김 회장은 출소자의 취업지원에 아쉬운 점으로 사후관리를 들었다. 취업 후 이들이 직장생활에 적응하는 기간이 매우 중요하지만, 아직 체계가 잡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간혹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어디에도 하소연하지 못하고 참다 결국 그만두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취업도 중요하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취업한 출소자들을 관리하는 일입니다. 가끔 찾아와 어려운 점을 하소연하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혼자 견디다 속된 말로 '사고를 치는 일'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이들을 상담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기관과 단체의 힘이 필요한 부분입니다."김 회장은 우리 사회가 왜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24년간 자신의 경험을 담아 우리 사회에 던지는 뼈있는 지적이었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멀리하면 할수록 범죄사회에 다가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출소자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강할수록 그들이 다시 범죄를 저지를 확률도 높아진다고 봅니다. 한 사회의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사회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데 그중의 하나가 관심입니다. 그들을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몫이기 때문입니다.""법무보호복지공단 등 국가기관에서 일부를 맡고 있긴 하지만 역부족이며 민간조직의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후원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출소자를 오랫동안 상대하다 보니 문득 '이들의 범법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범죄예방에도 관심을 두게 됐고 특히 청소년의 범죄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습니다. 요즈음 청소년 범죄가 성인 범죄 못지 않게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청소년 범죄가 더욱 걱정스러운 것이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 범죄 의식이 부족해 재범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복귀도 어렵다는 것입니다."김 회장은 법무부 의정부보호관찰소 특별법사랑위원협의회 회장을 맡기도 했었다. 현재는 고문으로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있지만, 보호관찰 청소년에 대한 관심은 변함이 없다. 그는 보호관찰 청소년들을 위해 장학기금을 조성해 정기적으로 지급하고 있고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에게는 멘토링을 통해 복학을 돕고 있다. 그는 "어린 나이 탈선은 흔한 일이라며 가벼이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며 "청소년 범죄는 성인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회복이 힘들어 두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법무부는 그동안 김 회장의 이 같은 열정과 노력에 대해 수많은 표창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난 2013년에 받은 '교정대상'은 김 회장이 기억에 남는 상으로 꼽았다. 그가 활동하는 의정부에서는 13년 만에 나온 수상자였다. "표창도 개인적으로 보람을 느끼게 하는 보상이라고 생각하지만, 꾸준히 돌봐온 출소자에게서 뜻밖의 좋은 소식이 날아왔을 때 그만큼 기쁨과 보람을 느낄 때도 없습니다. 늘 마음 한구석에 안타까움이 남던 출소자가 어느 날 제과점 사장이 되고 곰탕집 사장이 돼서 찾아와 줄 때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김 회장은 자신이 경영하는 웨딩홀 예다움에서 올 연말에도 돌보는 출소자들과 함께 조촐한 송년회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봄에는 사비를 들여 이곳에서 출소자들을 위한 합동결혼식과 연회도 열어줬다. 그는 "벌써 내년 일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며 "내년에는 몇 년 전부터 구상해온 출소자 지원사업을 꼭 시도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귀띔했다.글·사진/최재훈(의정부)기자 cjh@kyeongin.com■김명달 회장은? -학력▲ 경기대학교 대학원 범죄예방전문화과정 수료▲ 연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수료▲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학 전공 석사 졸업-주요 경력▲ 법무보호복지공단 경기북부지부 보호위원연합회 회장▲ 법무부 법사랑위원 의정부연합보호관찰협의회 고문▲ 의정부교도소 교정위원 취업지원협의회 고문▲ 국민대학교 글로벌 스포츠학 경호보안학과 자문교수▲ 주식회사 에이스시큐리티 회장'출소자의 길잡이'로 산 지 올해 24년을 맞은 김명달 법무보호복지공단 경기북부지부 보호위원연합회 회장은 출소자가 사회 일원으로 복귀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몫이라고 강조한다. 김 회장은 올해도 출소자 복지사업으로 누구보다 열정적인 한 해를 보내고 있다.

2016-11-15 최재훈

[인터뷰… 공감]프로야구 수원 kt wiz 임종택 신임 단장

착실히 강해지는 팀으로 육성… 탈꼴찌 통해 성장 가능성 입증할 것선수층 강화 과감하게 투자 '2군 훈련장' 수원 주변 이전 장기적 목표초·중·고 연속성 중요… 야구 좋아하는 청소년 늘리기에 마케팅 집중소외계층 함께하는 사회공헌 활동과 지역 토착화 방안 꾸준히 모색"열심히 뛰겠습니다."프로야구 수원 kt wiz 임종택 신임 단장의 일성이다. kt는 지난달 kt 소닉붐 프로농구단 단장으로 활동한 임종택 단장을 야구단 신임 단장으로 선임했다. 구단은 임 단장의 선임 배경에 대해 kt의 체질 개선과 도약을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임 단장은 kt 부산 마케팅단 지사장, 경영지원담당 등을 역임했고 kt 소닉붐 농구단과 e-sports, 사격팀, 하키팀을 총괄해왔다. 스포츠단을 이끈 경험과 리더십을 보유했다고 평가받는 임 단장은 내년 시즌 kt가 발전할 수 있도록 발 벗고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스포츠 철학을 들어봤다.지난 달 25일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만난 임 단장은 "야구단이 좋은 환경에 있을 때 부임한 것이 아니고 구원 투수와 비슷하게 오게 됐다"며 "상당한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낀다. kt를 어떻게 하면 잘 이끌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그러면서 임 단장은 내년 시즌 3가지를 약속했다. ▲kt의 성적을 끌어올리는 것 ▲선수단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 ▲팬들의 사랑을 받는 야구단이 되는 것이다. kt는 올 시즌 53승 2무 89패로 지난해보다 1승만을 추가한 성적으로 지난해에 이어 최하위에 머물렀다. 또 음주운전과 공연음란죄 등 각종 문제가 선수단을 따라다녔고 이는 곧 선수단 전체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신생팀으로서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여러 난제에 부딪히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있었다는 의미다. 임 단장은 이 부분을 지적하면서 "2017시즌에는 달라진 kt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우선 그는 kt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kt는 초대 감독이었던 조범현 감독의 후임자로 김진욱 감독을 선임했다. 임 단장은 "김진욱 감독이 '감동을 주는 야구'를 표방했고, 나 또한 팬들에게 kt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무엇보다 선수층이 가장 중요하다. 성적을 한꺼번에 끌어올리겠다는 생각보다는 착실히 강해지는 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탈꼴찌를 해 성장 가능성을 입증한 뒤 점진적으로 포스트시즌과 한국시리즈 진출도 생각하겠다"고 강조했다.외국인 선수 선발과 FA(자유계약선수) 영입, 트레이드 등으로 kt의 부족한 부분도 보완할 뜻도 내비쳤다. 실제로 kt는 7일 새 외국인 투수로 돈 로치를 계약금 포함 총액 85만 달러(9억7천여만원)에 영입했다고 밝혔다. 지난 2년간 kt가 외국인 투수와 계약한 금액 중 가장 큰 금액이다. 돈 로치를 영입하면서 '2선발로 적합한 선수'라고 소개한 만큼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kt의 투자가 적지 않을 것임을 보여줬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전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임 단장은 선수단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수 육성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전했다. 2015년까지 성균관대 야구장을 빌려 사용했던 kt는 익산 국가대표야구장을 2군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타 구단에 비해 2군 선수 육성을 위한 시설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이에 임 단장은 "2군 구장의 개선할 부분을 찾아보겠다"며 "현재 익산시와 시설 인프라구축에 대해 논의중이다. 여의치 않으면 장기적인 관점에선 수원 주변으로 2군 훈련장을 옮기는 것을 염두해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이어 "단장이 되고 나서 '성적보다는 신생구단으로서 패기와 근성있는 모습, 푸릇푸릇한 모습을 보여달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선수단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지역 마케팅에 대한 본인의 생각도 내비쳤다. kt는 최하위라는 성적 속에서도 올해 68만2천444명의 관중을 동원하면서 10개 구단 중 7번째로 많은 관중 동원을 기록했다. NC 다이노스(54만9천125명)와 한화 이글스(66만472명)보다 많은 숫자다. 지난해 64만5천465명보다 3만7천여명이 증가했다.이에 임 단장은 "올해 kt는 2년 간 지속해 온 워터 페스티벌,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시킨 야구장, 위즈맘 페스티벌과 같은 다양한 이벤트가 팬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지역 마케팅은 유소년부터 초·중·고까지 체계적으로 연속성 있도록 야구의 맥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수원에 야구를 좋아하는 청소년이 더 많아지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부분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답했다.아울러 "비 시즌 때 수원 지역의 소외 계층과 함께하는 등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야구단을 홍보하고 교육청과 시청, 도청과 접촉해 업무를 제유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살피겠다"며 "수원 지역의 야구관련 기관과 학교를 방문하는 등 각계각층의 얘기를 듣고 싶다. kt가 수원 지역에 토착화 할 수 있는 방안들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또 수원 케이티위즈파크는 내년 시즌을 앞두고 2천석을 증축하는 공사에 들어갔다. 새로워지는 수원케이티위즈파크와 kt만의 마케팅 및 기술력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될지 기대를 모으는 대목이다. 임 단장은 "수원 kt 팬들께 여러 가지로 감사하면서도 죄송한 부분이 있었다"며 "다음 시즌부터는 팬들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는 구단, 팬들에게 자랑이 되는 구단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대담·정리/신창윤 체육부장·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임종택 단장은?-학력▲ 수원 수성고 졸업▲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졸업-주요경력▲ kt 입사▲ kt 부산 마케팅단 지사장▲ kt 경영지원실 경영지원담당▲ kt 스포츠 농구단(농구, e-sports, 사격, 하키) 단장프로야구 수원 kt wiz 임종택 신임 단장이 kt의 체질 개선과 선수단 관리로 2017시즌에는 달라진 kt를 만들어 팬들에게 자랑스러운 구단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2016-11-08 이원근·신창윤

[인터뷰… 공감]여인홍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가격 변동폭 큰 배추·무 등 계약재배 시범사업… 양념류까지 점차 확대온라인 수급종합시스템 구축… 비축기지 통·폐합해 광역화·현대화 추진中 모바일 시장 진출 '물꼬' 단순 상품 넘어 식문화 수출로 저변 넓혀야맞춤형 전략으로 동아시아 공략… 칭다오 물류센터 건립 등 인프라 확충"농수산물 수급 안정과 유통구조 개선 기능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내년이면 창립 50주년을 맞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이하 aT)가 여인홍 사장 체제 출범과 때를 같이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여 사장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30여년의 공직생활 동안 유통정책과장-유통국장-식품산업정책실장 등을 거치면서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을 추진했던 인물이다.농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여 사장의 다양한 경력은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란 평가와 함께 기대감을 동시에 갖게 한다.이런 기대를 반영하듯 여 사장은 지난 4일 취임식에서 "농업·식품산업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aT가 공공기관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매진해 나가겠다"는 구상을 밝혔다.특히 취임과 동시에 ▲정부정책을 선도하는 기능 강화 ▲농업분야 청년인재 유입 등 농식품 일자리 창출 ▲탄력적인 조직·인력 운영 ▲성과 중심 조직문화 정착 등 신임 사장 답지 않은 구체적인 조직 운영 방향을 설정해 추진하는 열정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aT의 세계적인 농업 유통 전문기업화를 추진하고 있는 여 사장을 현장에서 만나 그의 경영 철학을 들어봤다.# 기본에 충실한 aT 만들기여 사장은 aT의 기능적 역할에 대해 "안전한 농식품을 국내외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라며 "공공성을 기반으로 기본에 가장 충실한 공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그는 "aT가 기본에 충실한 회사가 되려면 국내 농수산물의 수급안정과 유통구조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수급관리 종합시스템 고도화, 직거래 인증제도 도입, 사이버거래소 등 온라인 거래, 로컬푸드 확산 등 신유통사업의 내실화가 우선시 돼야 한다"고 밝혔다.여 사장이 농산물 수급불균형 해소를 우선 꼽은 이유는 바로 aT의 설립 이유이기도 하지만 크게는 국내 농업계 전체의 존립과 연결되는 중요사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여 사장은 "농산물 유통은 정확한 수급정보 확보와 효과적 분산 그리고 비축, 방출 등이 적기에 추진될 때 농산물 수급의 불안정성을 비로소 최소화 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농산물 수급안정 기능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올해부터 가격 변동폭이 큰 배추와 무에 대한 계약재배 시범사업을 진행중이며, 마늘과 양파 등 양념류로 점진적인 확대를 해나가겠다"며 "일부 물량은 상시 비축과 연계해 수급조절물량으로도 활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이외에 유관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온라인 수급종합시스템을 구축해 효과적으로 수급정보를 전파해 나갈 수 있도록 시스템 개선도 동시에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농산물의 수급조절 및 가격안정사업을 위한 필수요건으로 부대 시설인 비축기지의 현대화 사업을 꼽으며 향후 차질 없는 추진 의사를 밝혔다.여 사장은 "대부분의 비축기지가 지난 196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상당히 노후된 상황"이라며 "저온설비 등을 갖춘 현대시설로 개선하고, 전국에 산재한 12개 비축기지를 5개 권역으로 물류거점화 하는 등 광역화에 나설 것"이란 구상도 밝혔다.이어 "대한민국 인구의 반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수도권부터 개선하기 위해 지난 9월 수도권 농산물 정부비축기지를 김포로 이전했다"며 "8개 지역에 분산된 지방 비축기지도 충청권, 호남권, 대구·경북권, 부산·경남권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통폐합해 나갈 계획"이라며 보다 세세한 계획안도 밝혔다.# 농산물 수출을 통한 한국 식문화 수출농산물 수급관리와 유통 이외에도 aT의 중요한 사업은 바로 국산 농수산물의 수출이다.여 사장은 식품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국산 농산물의 수요 증대를 목표화 하고 있다. 농업과 식품산업의 연계성 강화에 목표를 두고 중소 식품·외식업체 경쟁력 강화 지원, 쌀 가공식품 산업 육성 등에 공사의 역량을 확대해 나가갈 계획이다.여 사장은 "한국 농식품의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서는 우선 식품 특성상 통관시 어려운 검역문제를 해소하고, 고품질의 제품생산은 물론 지속적 수출을 위한 안정적 물량확보가 필요하다"며 "위생적이고 안전한 식품에 대한 소비자 욕구에 부응할 수 있는 제품 생산이 기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농식품도 이젠 단순 상품수출에서 벗어나 한국의 식문화 수출을 통한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며 "최근 시장개방, 온라인 및 모바일 상거래 확산 등에 따른 환경변화에도 신속하게 대응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여 사장은 가장 관심 대상국으로 주저 없이 중국시장을 지목했다.덕분에 취임 후 첫 중국 출장에서 '일부 농식품의 중국 모바일 시장 진출'이란 의미 있는 성과물도 챙겨왔다. 시작은 미미하나 우리 농식품이 중국 전역에 판매될 수 있는 기반 확보는 물론 가능성을 타진한 계기를 만든 셈이다. 여 사장은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Wechat)에 한국 식품 전용 쇼핑몰인 '한식왕'을 개통했다"며 "파워블로거들을 활용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판매 생태계도 구축했다"고 밝혔다.이어 "위챗에는 중소기업을 막론한 18개의 우리 농식품업체가 생산하는 약 500개의 제품이 등록됐고 8만6천만명의 위챗 회원들에게 판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여 사장은 "위챗 등록 외에도 600만 명에 달하는 중국 유커에 대한 체험형 식문화 관광 활성화 등을 준비하고 있다"며 "중국 내에서 열리는 식품박람회에도 꾸준히 참여해 한국 농식품에 대한 홍보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그는 중국 외에도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동아시아 각국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설 채비를 갖추면서, 농식품 부문의 활발한 무역거래가 성사될 그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여 사장은 "중국 외에도 동남아, 중동 등 미래 핵심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권역별 특성에 부합하는 맞춤형 전략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수도권과 가장 가까운 중국 칭다오에 물류센터를 세우는 등 현지 수출 물류 인프라 구축을 강화해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대담=심재호 경제부장 sjh@kyeongin.com·정리·글=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여인홍 사장은?-학력▲ 서울대 졸업(1982)▲ 국방대학원 국방관리학 석사(2002)경력▲ 1983 제19회 기술고등고시▲ 2008~2009 농촌진흥청 기획조정관▲ 2010~2011 중앙공무원교육원 국장▲ 2011 국립식물검역원 원장▲ 2011~2012 농림수산식품부 유통정책관▲ 2012~2013 농림수산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 2013~2016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수상▲ 1997 국무총리표창▲ 2004 근정포장내년이면 창립 50주년을 맞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이하 aT)의 여인홍 신임 사장은 "농업계에서 30년의 공직생활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조직 운영방향을 설정해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016-11-01 김종화·심재호

[인터뷰… 공감]조동성 인천대학교 총장

총장 집무실 줄이고 교수 스마트오피스 도입… 구성원에 여유 공간 환원기업 연계학과 '산학협력형 매트릭스 학사제' 30여개 업체와 내년 시행팀으로 교수 뽑고 해외 브랜치 대학 설립 추진… 세계 100대 대학 목표송도 겨냥 바이오 연구개발 능력확보 등 인천을 위한 학교로 만들겠다기업 컨설턴트 등 새분야 개척자사회와 기업가치 동시 추구자본주의 5.0을 주창하고 책은 1년에 2권씩 70여권이나 집필그의 도전은 계속된다기업 컨설턴트라는 개념조차 희미했던 오일 쇼크(1973년) 무렵,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박사학위를 받은 27세의 청년 조동성은 현지 컨설팅 법인에 들어가 컨설턴터로 활동했다. 당시는 컨설턴트 법인 소속의 한국인 컨설턴터를 찾아 볼 수 없던 시절이었다. 낯선 분야인 만큼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는 도전했고 성과를 냈다. 이후 조동성의 행로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프론티어, 그 자체였다. 40여 년이 지나 국립 인천대 총장이 된 지금도 그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사회가치 중심의 '자본주의 4.0'을 넘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사회와 기업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자본주의 5.0'을 주창하고 있다. 최근엔 기업경영연구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중국 정부로부터 국유기업 가치평가 프로젝트를 맡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책을 내는 일은 어느새 생활이 됐다. 지금까지 집필한 책이 70여 권이나 된다. 1년에 2권씩 낸다.지난 24일 조동성(67) 인천대 총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했다. 조동성 총장은 "이전에 총장실이 너무 넓어서 규모를 줄여 옮겼다"며 "오늘이 총장실을 옮긴 뒤 근무하는 첫날"이라고 했다. 처장 등 보직교수들의 집무실은 통합해 '스마트오피스'로 꾸미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어 기업들은 이미 스마트오피스를 도입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여유 공간이 생겼다. 이는 공간 부족을 호소하는 대학구성원들에게 돌려줄 예정이다.서울대 교수직을 정년퇴직한 60대 후반에 접어드는 나이임에도 그의 가슴은 뜨거운 열정으로 들끓었다. 조동성 총장은 "두고 보라"고 했다. 학교가 얼마나 많이 바뀌는지 지켜보라는 말이었다. 자신감이 넘쳤다.■ 인천대 변화 DNA, 날개를 달다인천대는 사립에서 시립으로, 그리고 국립으로 지속해서 변화해왔다. 변화를 싫어하는 대학사회에서 인천대의 변화는 낯선 존재가 아니다. 조동성 총장도 인천대의 이런 점을 강점으로 평가했다. 그는 "내가 경험한 다른 대학들에 비해 인천대 구성원들의 개혁성향이 강한 건 분명한 것 같다"며 "변화로 인해 나빠지는 것보다 좋아지는 것이 많다는 점을 구성원들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조동성 총장은 이런 인천대에 다시 한 번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연구해 온 경영이론이 인천대 변화의 밑바탕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산학협력형 매트릭스 학사제도' 도입은 인천대 변화의 대표적 사례다. 기존 대학의 학문공급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업 주도의 연계학과 설치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게 매트릭스 학사제도의 골자다. 인천대는 포스코건설, CJ대한통운 등 30여 개 기업과 함께 내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조동성 총장은 "사회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과목을 대학 안에 만들어 학생들이 졸업 전에 이수하도록 하는 제도"라며 "기존 학과에 대한 구조조정을 억제하면서 대학교육을 사회 수요에 맞출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했다.인천대는 최근 대학 연구능력 강화를 위해 1명씩 채용하던 교수를 '팀제'로 뽑는 방식을 도입했고,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해외 브랜치 대학 설립도 추진 중이다. 다음 달엔 중국 옌타이 지역에 첫 브랜치 대학 설립을 위한 MOU를 맺는다. 그는 특히 해외 유명 기업들이 인천대 학생들을 직접 채용할 수 있는 기회도 확대해 나가겠다고 했다. 인천대를 4년 이내에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시키기 위한 비전도 확고하다. 조동성 총장은 "세계적인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의 교수들을 데리고 와 장기적으로 대학의 연구능력을 높이고, 싱가포르대학을 모델로 인천대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라며 "일본의 교토대가 도쿄대보다 먼저 노벨상을 받았던 것처럼, 서울대보다 인천대가 노벨상을 먼저 받을 기회가 훨씬 많다"고 했다. 이제 인천대는 국내 대학을 비교모델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세계 톱 클래스 대학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조동성 총장은 바이오 분야의 연구개발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도 확고했다. 조동성 총장은 "인천대 캠퍼스가 있는 송도국제도시는 바이오 산업을 주축으로 하고 있지만, 연구개발 분야는 아직 미진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바로 여기에 인천대의 역할이 있다"며 "연구와 원천기술 개발에 이어 생산이 이뤄지는 끊임없는 교류작용이 인천대를 중심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 인천, 흔들리지 않는 뿌리인천생활 3개월이 된 조동성 총장에게 인천에 대한 느낌을 묻자 "잃었던 고향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북한에 고향을 둔 그의 부모님은 해방 직후 월남해 서울에 터를 닦았다. 조동성 총장은 서울 출신이다. 그는 "명절엔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그런데 인천에 오니 유독 아버지 고향 분들을 많이 뵀다. 음식도 잘 맞고, 무언가 통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이어 "서울에선 서울이라는 공간에 실려서 산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여기는 뿌리를 내리는 느낌"이라며 "부임하자마자 인천으로 이사를 왔는데, 서울에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들 정도"라고 했다. 무엇보다 인천대는 '인천의 대학'이라는 걸 강하게 느낀다고 했다. 그는 "대학과 지역사회와 밀착되는 느낌은 처음"이라며 "개인적으로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인천대가 국립이긴 하지만 지역 사회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성장해온 만큼, 인천지역 구성원들이 인천대를 생각하는 정도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대학이 그 바람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다.조동성 총장은 "우리가 인천을 위한 대학으로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만큼 인천시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인천을 위한 대학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또 "인천대는 원칙에 따라 하나씩 계단을 오르면 이룰 수 있는 비전이 확실하다"며 "300만 도시의 격에 맞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글/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조동성 인천대 총장은? 학력▲ 서울대 졸업(1971)▲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박사(1977)경력▲ 1978~2014 서울대 교수(조교수·부교수·교수)▲ 1983~1984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초청부교수▲ 2001~2003 서울대 경영대학장▲ 2005~2006 한국경영학회장▲ 2006~2007 한국학술단체 총연합회장▲ 2008~2012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 2009~2012 코리아바이오경제포럼 공동회장▲ 2012~2013 월드뱅크 총재 자문▲ 2014~2016.7 중국 장강경영대학원(CKGSB) 교수 ▲ 2014~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2008~현재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장▲ 2011~ 현재 안중근 의사기념관장조동성 인천대 총장이 지난 24일 경인일보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인천을 위한 대학으로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만큼 인천시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인천대는 원칙에 따라 하나씩 계단을 오르면 이룰 수 있는 비전이 확실하다"며 "300만 도시의 격에 맞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016-10-25 이현준

[인터뷰… 공감]임흥세 남수단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아프리카 복지증진 기여 공로로 수상한 '파라다이스상' 송구스러워남수단 IOC 가입은 성사 시켰지만 유니폼 조달·숙소예약 등 애먹어축구 유망주 3년간 한국유학 준비… 아프리카의 세계축구 정복 점쳐축구클럽 이어 케냐 축구학교 포부… 아이들에 꿈과 용기 심어줄 것"아직도 남수단은 전쟁 중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평화의 꽃을 피울 겁니다."'남수단 체육의 대부' 임흥세(60) 남수단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은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축구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아프리카 대륙을 무대로 활약했던 그가 2012년 남수단에 뿌리를 내리면서 스포츠 평화 외교에 더욱 열정을 쏟고 있다. 특히 남수단의 톤즈는 지난 2010년 선종한 고(故) 이태석 신부가 봉사활동을 한 지역이다.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는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이곳에서 임 부위원장은 전쟁으로 얼룩진 남수단에서 스포츠를 통한 평화 외교를 펼치며 한국과 남수단의 가교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의 공로를 인정한 파라다이스 그룹은 '2016 파라다이스상 사회복지부문' 수상자로 임 부위원장을 선정하기도 했다. 남수단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한 임 부위원장을 지난 17일 만나봤다.임 부위원장과 인사를 나눈 뒤 '2016 파라다이스상'에 관해 물어봤다. 그는 "파라다이스상은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한 공로자를 찾아 격려하는 상으로 알고 있다"면서 "나에게 이런 영광을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이번 파라다이스상에는 사회복지부문에 임 부위원장을 비롯 특별공로 부문에는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이, 문화예술 부문에는 조수영 JOH 대표가 각각 수상자로 뽑혔다. 파라다이스그룹은 문화예술, 사회복지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특별한 공헌을 한 사람에게 파라다이스상을 수여하고 있으며, 올해로 10회째를 맞고 있다.임 부위원장은 "축구 선교사로 남아프리카 아동·청소년 축구단을 결성하고 남수단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가입시키는 등 아프리카 복지 증진에 이바지한 공로로 이 상을 받게 된 것 같다"며 "부족한 나에게 이런 상이 주어진 것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전했다.사실 임 부위원장은 대한축구협회 중학교 상비군 감독, 광운전자공고 감독 등을 거친 뒤 2006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축구를 통해 선교활동을 펼쳤고, 지난 2012년부터는 '남아공보다 환경이 더 어려운 국가에서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신념으로 남수단으로 건너갔다.이후 남수단 축구대표팀 총감독을 맡아 청소년·성인 국가대표팀을 체계적으로 만든 임 부위원장은 야구·농구·핸드볼·배구·탁구·육상·태권도·유도·권투 등 9개 종목 지역협회를 설립하며 남수단을 IOC 회원으로 가입시켰다.그 결과 남수단은 지난 8월 사상 처음으로 2016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무대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남수단이 올림픽에 서기까지 쉽지 않았다. 임 부위원장은 "남수단을 IOC 회원에 가입시키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선수단 단복과 유니폼 등을 구해 공항에 도착했는데, 현지 내전으로 항공기가 뜨지 않아 고생했다. 다행히 대한축구협회의 협조를 통해 아시아나 항공에서 지원해줬고 선수단이 유니폼과 단복을 입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또 그는 "'이태석 재단'과 '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부터 현물을 지원받아 남수단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유니폼과 단복을 입고 나갈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리우 현지에서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임 부위원장은 "남수단 정부가 전쟁으로 인해 금융 관련 기능을 상실해 신용카드가 없어 호텔 및 음식 예약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내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어 위기를 넘겼다"고 전했다.임 부위원장은 남수단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국내 스포츠 용품업체인 스켈리도 사의 지원을 받아 축구 유망주들을 3년 동안 한국에 유학시키는 데도 앞장섰다.그는 "1년 전부터 스켈리도 사의 도움을 받아 현지에서 축구 유망주 2명을 한국에 유학시키려고 준비하고 있었다"면서 "현지 테스트를 거쳐 2명을 선발해 이번에 함께 왔다. 유망주는 임마누엘과 마틴이다"고 설명했다.남수단 청소년 대표팀 임마누엘과 마틴은 10월부터 대안학교인 쉐마국제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 3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대표팀 소집훈련에서 손흥민 등 한국 대표팀 선수들을 만나는 영광을 누렸다. 임마누엘과 마틴은 축구 변방 남수단에서 프로 선수의 꿈을 키운 유망주다.임 부위원장은 "두 선수는 3년간 한국에서 학업을 이어간 뒤 프로축구 K리그에 도전장을 낼 계획이다. 임마누엘은 수비형 미드필더, 마틴은 오른쪽 윙 포워드가 포지션으로 남수단에선 톱 클래스 급 선수로 꼽힌다"고 전했다.임 부위원장은 아프리카 축구가 장차 미래 세계 축구를 점령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그는 "아프리카는 카메룬, 남아공에 이어 남수단까지 축구 유망주들이 즐비하다. 운동 능력이 뛰어나고 탄력과 유연성이 좋아 장차 세계 축구계에 중심에 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래 대안도 내놓았다. 바로 재단을 설립해 아프리카에 축구 클럽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는 "현재 남수단 프로축구는 주바리그(1부리그) 10개 팀과 2부리그 10개 팀이 각각 운영되고 있다"면서 "스켈리도 스포츠 재단을 설립해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과 함께 남수단 2016년 주바리그(1부리그) 우승팀인 아드라바바 축구클럽을 인수했다. 내년에는 선수들 유니폼에 스켈리도 이름을 달고 뛴다"고 밝혔다. 또 임 부위원장은 "내년 3월 아프리카 동남부에 위치한 케냐에 축구학교를 세울 것"이라면서 "이 축구 학교에는 탄자니아, 소말리아 등 10여 개 국가 축구 유소년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게 된다"고 밝혔다.끝으로 임 부위원장은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지만, 자원이 풍부하다. 이미 중국은 아프리카 대륙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기업도 아프리카를 교두보로 미래 먹거리를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당부했다.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임흥세 부위원장은? 경력▲ 인천대학교 졸업▲ 광희중 축구팀 감독▲ 성수중 축구팀 감독▲ 남대문중 축구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한국중학교 상비군 감독▲ 광운전자공고 축구팀 코치 및 감독▲ 아시아청소년학생축구대회 청소년대표팀 코치▲ 미국 세크라멘토 입양인 축구팀 코치▲ 풋볼액트29 감독▲ 2010 경기도 홍보대사▲ 체육인재육성재단 글로벌 홍보대사▲ 희망고 유소년축구단 감독▲ 남아프리카공화국 축구대표팀 총감독▲ 남수단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남수단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수상▲ 1992 아시아학생축구선수권대회 우승지도자상▲ 2016 파라다이스상 사회복지부문 수상19일 서울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그랜드볼룸에서 '2016 파라다이스상(사회복지부문)을 수상하는 임흥세 남수단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이 "남수단은 내전이 이어지면서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을 위해 할 일이 많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2016-10-18 신창윤

[인터뷰… 공감]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부장 김경아 명창

'어린시절 꿈은 가수' 우리가락과 구성진 목소리에 끌려 판소리 입문'명창 등용문' 임방울 국악제 4차례 도전 끝 대상 수상 "이제야 졸업"故성우향 명창 덕분에 홀로서기 성공… 스승없이는 소릿길 알수없어아버지 손에 이끌려 동네 이곳저곳에서 '동백 아가씨'를 부르며 '동네 가수'로 노래 실력을 뽐내던 꼬마가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지난달 23~26일 광주 문예회관 대극장 등에서 열린 '제24회 임방울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김경아(42) 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부장 얘기다. 수상 이후 매일 인터뷰 등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김경아 명창을 지난 10일 인천 남구 주안동에 있는 보존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단아한 한복차림을 떠올렸던 기자의 예상을 깨고 그는 외출복 차림으로 사무실에 나타났다. 첫인상은 평범한 여성인데 어디에 소리꾼의 내공이 숨어있는 것일까. 그 의문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풀리고 있었다. 수상소감을 묻자 그는 "이제야 졸업했네요.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쁜 마음뿐"이라며 "4차례 도전 끝에 상을 받게 돼 그동안 도전했던 것만큼 4배로 기쁘다"고 말하며 웃었다.보수적인 우리나라 국악계에서 '명창'으로 인정받는 방식은 아직 고전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명창의 등용문이라 여겨지는 국내 주요 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받는 것이다. 그가 '졸업'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는 "너무 늦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큰 숙제를 끝낸 홀가분한 마음"이라고 했다. 대통령상 수상과 동시에 이제 더는 다른 국악제에 도전할 자격도 없어졌다. 막 사람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때부터 그의 꿈은 유행가를 부르는 '가수'였다고 한다."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이선희·김연자보다 제가 더 노래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선생님 손에 이끌려 다른 반에 공연하러 다니곤 했으니까요. 중학교 시절 선생님께서는 꼭 문희옥 같은 유명한 트로트 가수로 커야 한다고 말씀하셨죠."(웃음)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티브이에서 판소리 공연을 보게 됐다. 이거구나 싶었다. 우리 가락과 명창의 구성진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그 판소리는 내가 부르는 유행가보다 수백 배는 훨씬 더 어려운 노래였습니다. 노래를 할 거면 이처럼 어려운 노래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는 나중에 커서야 알게 됐다고 한다. 아버지 '전축'으로 집에서 늘 들어왔던 그 구닥다리 음악이 판소리였다는 것을…. 그는 "13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집에서 전축으로 듣던 그 판소리를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교 재학시절 소리꾼의 길을 가기로 진로를 결정한 그는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만 한 1~2개월의 짧은 판소리 개인지도를 거친 후에 서울국악예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세상 최고인 줄 알고 하늘을 찌를 듯한 사춘기 소녀의 자존심은 예고 입학과 동시에 밑바닥으로 끝도 없이 추락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소리가 이미 능숙한 어른의 소리 같았다. 아이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해 풋내나는 소리를 했던 나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학교 친구 중에는 5~6세에 이미 소리를 시작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고 기억했다. 어른 소리를 내려면 목이 쉬었다 풀리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빠진 집안 형편 때문에 마음 편히 교습도 받을 수 없었다. 학교 연습실은 주말이면 문을 닫아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공부했던 날도 있었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한 뒤로는 공부할 장소가 없어 고생하는 일은 없었다. 그를 지금의 명창으로 홀로 서게 한 이는 17살 때부터 인연을 맺은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인 인간문화재 고(故) 성우향 명창이다. "판소리는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절대로 혼자서 공부할 수 없어요. 아는 만큼 들리고, 들리는 만큼 소리가 나기 마련인데, 스승이 없이는 제대로 된 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어요."그는 이번 대통령상 수상 순간에 성우향 명창과 함께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3년 전 같은 대회 도전 첫해에 최우수상을 받았을 당시에는 성 명창이 "애썼다. 고생했다"고 격려했다.김 명창은 3명이 오른 결선 무대에서 다른 출전자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아 심사위원 7명 만장일치로 대상에 올랐다. 심사위원으로부터는 "정말 상 받을 사람이 받았다. 기분 좋게 심사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최고의 찬사를 듣기도 했다. 뿌듯한 마음이 드는 순간 스승인 성 명창의 얼굴이 떠올라 눈시울을 붉혔다.그는 이번 대통령상 수상이 '소리광대' 인생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동안 춘향가에만 전념했다면, 앞으로 다른 스승을 만나 다른 소리도 열심히 공부할 계획이다. 제자가 스승에게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의 말은 "내 소리 주고 싶다 받아가거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는 이번 대회가 끝나고 소리를 물려 주겠다고 나서는 스승도 새로 만나게 됐다.앞으로의 바람을 물었다. 그는 "'판소리의 세계화' 같은 거창한 바람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우선 내가 사는 도시 인천에서 판소리가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그리고 그는 덧붙였다."소리를 알면 인생이 지금보다 몇 배는 풍요로워질 거예요. 판소리를 공부하면 세상에 이런 음악이 있구나, 그것도 이 넓은 지구에, 이 작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요. 판소리 사설을 들으면 그림이 그려져요. 장면이 보이고 굉장히 멋있게 음악적으로 표현하죠. 수백 년을 지내오면서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남겨진, 간결하면서도 최고의 예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공부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공부랍니다."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김경아 명창은? -1974년 전라북도 임실 출생-서울 성수초-경수중-서울국악예고-단국대 음대 국악과-동 대학원 국악과 졸업-수상내역 ▲2016 제24회 임방울 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 ▲2013 제21회 임방울 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최우수상 ▲2013 제14회 전국 숲쟁이 국악경연대회 명인부 종합대상 ▲2004 제14회 KBS서울국악대경연 판소리 부문 차상 ▲2004 제31회 춘향국악대전 판소리 일반부 대상 ▲2003 제10회 서울 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일반부 최우수상 ▲1995 제 5회 서울 청소년 국악경연대회 창악부문 장원 ▲1992 난계 국악경연대회 은상-주요공연 ▲2016 대한민국판소리축제 ▲2015 완창판소리, 김경아 춘향가(김세종제) ▲2015 문학산 정상 개방 고유제 ▲2014 제44회 유파대제전(인천) ▲2013 강원도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 ▲2012 한·일월드컵개최 10주년 기념, 일본 가나가와 현립음악당 공연 ▲2011 전주 세계 소리축제 '풍류' 공연 ▲2010 인천국제무용제 초청 개막제 초청 공연 ▲2005 국악음반 박물관 김경아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 녹음 수록 ▲1994 한일협정 30주년 기념 일본 공연제24회 임방울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김경아 명창(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부장)이 지난 10일 지부 사무실에서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부 제공

2016-10-11 경인일보

[인터뷰… 공감] '리우 패럴림픽 수영 金' 이인국 선수

사람 만나기 꺼려해 초교 2학년 처음 시작한 운동… 선생님이 업고다니며 적응코칭 스태프와 단기간 계약하는 장애인팀… 선수 장단점 파악하는데 시간 걸려1분내 기록 유일·지적장애인으로 패럴림픽 첫금… 아버지 "아들 자랑스러워" '물을 싫어했던 이인국, 수영으로 패럴림픽 정상에 서다'.지난달 9일 브라질 리우올림픽파크 아쿠아틱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리우 패럴림픽 남자 배영 100m 경기에 출전한 이인국은 힘차게 물살을 갈랐다. 그는 경쟁자들을 크게 따돌리고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이인국은 59초82의 기록으로 올림픽 신기록(종전 1분00초97)을 수립했다. 이날 그와 함께 경합을 벌였던 에버스 마르크(1분00초63·네덜란드)와 츠가와 타쿠야(1분03초42·일본)는 나란히 2, 3위를 마크했다. 그러나 이날 1분 안쪽의 기록을 세운것은 이인국이 유일했다. 또 지적장애 선수 중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한국인 선수는 이인국이 최초였다.지난 3일 올림픽수영장에서 국가대표 수영 선수 이인국과 아버지 이경래(52)씨를 만났다. 올림픽이 끝난 지 한 달여도 채 안됐지만 이인국은 꾸준히 몸을 만들고 있었다.이인국은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처음 수영을 시작했다. 물론 올림픽 금메달은 꿈도 꾸지 않았다. 물을 무서워하고 사람 만나기를 꺼려 해 집에서만 있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인국을 위해 부모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수영이었다. 이씨는 "인국이가 물을 싫어해서 머리를 감는 것도 쉽지 않았다"며 "수영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교사가 인국이를 업고 수영장을 걸어 다니며 적응을 해야 했다"고 했다.그렇게 이인국은 물과 만난 뒤 조금씩 적응해 가면서 수영에 재능을 보였다. 그는 비장애인학생 대회인 소년체전에도 출전했고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등 국내 대회에서 다관왕을 놓치지 않았다. 2012년 안산시체육회 최우수 선수상, 2013년 경기체육대상 장애인체육부문 최우수선수상, 한국과학창의재단 대한민국 인재상 등 각종 상도 휩쓸며 성장해 갔다.이인국은 이제는 어엿하게 한국을 대표하는 수영 선수가 됐다. 이씨는 "인국이가 수영을 하면서 만나는 형, 친구, 동생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다 보니 과거보다는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덧붙였다.이인국을 지도하고 있는 조순영 감독은 "이인국은 본인이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기면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다"며 "체격이 좋고 근력이 좋다. 지금도 운동을 힘들어하기는 하지만 왜 훈련을 해야 하는지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본인 스스로가 납득을 하면 어느 누구보다도 웃으면서 열심히 한다. 앞으로도 기대가 되는 선수"라고 전했다.이인국은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서 아쉽게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예선에서 1위로 결선에 오른 이인국은 코칭스태프의 실수로 경기 시작 20분 전까지 경기장에 도착해야 하는 규정을 지키지 못했다. 결국 이인국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씨는 당시 심정에 대해 "사실 기대라기보다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주기만을 바랐다"며 "메달을 꼭 따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상실감도 컸겠지만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에서 내려준다'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코칭스태프도 여러 가지를 교육시키다 아차 하는 순간에 실수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인국은 대표팀에 있으면서 잦은 코칭스태프 교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씨는 "일반인 선수들은 다년 계약을 해 선수들을 관리하는 데 비해 장애인 팀은 대회를 앞두고 단기간 코칭스태프와 계약을 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코치진이 자주 바뀌는 경우도 발생했다. 장애 선수들을 관리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 그 선수를 지켜볼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 선수의 특징과 장·단점 파악을 위한 시간이 필요한 데다 어느 부분을 중점적으로 훈련 시킬지, 핸디캡은 무엇인지, 어떻게 선수를 설득해 훈련할지 등에 대해 살피기 위함이다. 이씨는 "대표팀에서 훈련하면서 기량이 좋아졌다. 훈련 시설이 잘 돼 있고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해 준다"면서도 "코칭스태프 어려움이 해결된다면 선수들이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또 국제 대회 등 각종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을 살필 코칭스태프 숫자가 부족하다 보니 대회에 따라간 선수 부모가 코칭스태프의 일을 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이인국의 어머니 배숙희씨도 자비로 대회를 따라다니며 선수들의 빨래를 비롯해 대회에 출전하지 않는 선수들을 숙소까지 통솔하는 등 스태프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런던에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4년 뒤 이인국은 다시 한번 브라질 리우 패럴림픽에 출전할 기회가 주어졌고, 그는 마침내 금메달이라는 값진 결실을 맺었다. 이씨는 이인국이 당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을 보면서 "본인이 싫어하는 것을 시키면서 고생했던 것에 대한 결실을 맺게 돼 감격스러웠다"며 "무엇보다 인국이가 '장애 선수로서 금메달 리스트라는 명예를 안고 살아갈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인국이에게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이씨는 장애인 선수를 뒤에서 뒷받침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지적장애 선수 가족들은 모든 것이 선수 위주로 돌아가야 하고 어려서부터 모든 과정을 가족들이 살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그렇지만 현재 위치에서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글/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이인국 선수는?-1995년 12월 22일-관산초-성포중-단원고-경력2016 제15회 리우데자네이루 장애인올림픽 남자 수영 국가대표2015 IPC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국가대표2014 제11회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수영 국가대표2013 IPC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국가대표2012 제14회 런던패럴림픽 수영 국가대표-수상내역 2016 제15회 리우데자네이루 장애인올림픽 수영 남자 100m 배영 S14 금메달2015 IPC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배영 S14 100m 은메달2014 제11회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200m 자유형 S14 은메달, 제34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수영 남자 자유형 50·100·계영400·혼계영400m 4관왕3일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수영장에서 만난 2016 리우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인국(왼쪽)과 아버지 이경래 씨가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인국과 조순영(왼쪽) 장애인 수영팀 감독./연합뉴스

2016-10-04 이원근

[인터뷰… 공감] 장기표 (사)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

한반도 비핵화·주한미군주둔 유지 약속… 남·북·美·中 4자회의 추진 필요대한민국 집권세력에 국민 외면…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정당 나와야부정부패 척결·국민 기본생활 보장·공직사회 개혁 등 차기 대통령 과제로장기표(71) 사단법인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의 삶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굴곡진 인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무려 50년 가까이 학생운동, 노동운동, 재야민주화운동의 한가운데에서 온몸으로 투쟁해왔다. 10여 년의 수배와 10여 년의 구속으로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도 민주화운동 한 길만 달려왔다. 그는 특히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가 돼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질적 발전에 크게 기여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의 이름 뒤에는 항상 '영원한 재야인사'라는 호칭이 따라다닌다. 늘 현실정치를 꿈꾸지만 한 번도 제도권에 몸담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총 6번의 총선·재보궐선거에 나왔지만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다. 그러나 일흔이 넘은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정치 발전을 위한 각종 아이디어와 개선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 26일 장 대표를 만나 국내외 정치에 대한 견해와 한반도 통일에 대한 비전 등을 들어봤다. - 여러 번 신당을 창당하면서까지 선거에 나섰지만 당선되지 못했다. 특히 같은 민중당 출신인 이재오, 김문수 전 의원 등은 여당으로 당적을 바꿔 국회에 입성했는데, 아쉽지는 않나."물론 현실정치에 꼭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판이하게 달라 현재의 메이저 정당에 들어가기는 어렵다고 본다. 김문수 전 의원하고도 개인적으로 무척 친하다. 당선만 목적이었다면 당시 여당에 입당했겠지만, 내 신념 상 그럴 수는 없었다. 언제까지 영호남 패권정치에 묶여 있을 것인가.특히 우리나라는 남북분단으로 인해 '진보'가 사회주의 내지 친북(종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보정당으로서 내용을 갖추지 못한 '사이비 진보정당'들이 진보정당 행세를 해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정치를 주도해온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 버림을 받은 지 오래다. 다만 대안세력이 없어 그 자리를 유지해왔을 뿐이다. 나는 늘 이를 극복 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나와야한다고 생각한다."-재야에서는 장 대표가 한국의 '버니 샌더스'로 불리곤 한다. 그런데 정작 미국 대선후보로는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들었다. 참 의외다."민주적 사회주의자인 샌더스는 평소 내 정치철학과 유사해 좋아한다. 그러나 같은 당의 힐러리는 내 철학과는 상당히 다르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와 힐러리 가운데 누가 이기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미국의 현상유지냐, 아니면 미국의 혁명적 변화를 통해서 세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온갖 이유로 트럼프 후보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심지어 트럼프 후보를 정신병자로 취급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나는 달리 생각한다. 트럼프 후보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정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 내지 반감을 갖고 있으나 이 정책이야말로 굉장히 혁명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그동안 미국이 과도하게 세계문제에 관여해온 것을 반성하고 관여를 중단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미국을 위해서나 세계를 위해서 옳은 일로 보인다. FTA 반대도 아주 옳은 정책이라고 본다. FTA는 협정 당사국 모두 수출대기업이나 경쟁력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유리하지만 서민 대중에게는 아주 불리하다. 일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힐러리 후보는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이 현상유지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그야말로 '1 대 99의 사회'로 치닫고 있는 미국에서 트럼프 후보가 99%를 대변하고 있다면 힐러리 후보는 1%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국정 운영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나라 안팎이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한마디로 총체적 불안이다. 북한 핵무기가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대내적으로도 온갖 형태의 불안과 갈등이 누적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러한 때 정치권 내지 정부가 불안과 갈등을 해소할 방안을 내놓으면서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켜야 할 텐데,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불안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소상공업과 자영업의 몰락, 청년실업, 비정규직, 노사갈등, 노인빈곤, 교육붕괴, 성범죄, 학교폭력, 청소년탈선, 아동학대 등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망할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문제는 집권세력의 무능과 무책임이다. 흔히 국회나 야당 탓을 하기도 하고 사회의 다른 부문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국정을 잘 이끌어간다면 국회나 야당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아무튼 박근혜 정부 3년 반이 지났건만 갈등만 증폭시키면서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앞으로 1년 반 남았는데 남은 1년 반을 잘 버틸지도 걱정이다."-내년 대선 전망에 대해서는."이런 상황에서 2017년 대통령선거를 맞는데 그 전망이 어둡기만 하다. 대통령후보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많지만 국민이 보기에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국정운영을 잘 할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중소상공업의 침체와 영세자영업의 몰락, 청년실업, 성범죄 등도 심각하지만 북한 핵문제로 인해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르는 엄중한 상황인데 이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듯 선거운동을 의식해 상투적인 민생행보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그렇다면 차기 대통령이 이루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첫째,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 경제나 복지, 교육, 국가안보, 통일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부정부패 척결의 강력한 의지를 밝히고, 부정부패에 연루되면 공직에 머무를 수 없음을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국민의 기본생활인 의식주와 의료, 교육은 어떤 경우라도 국가가 보장할 것을 밝히면서, 이와 관련해 '국민복지제도 재편 종합계획'을 제시해 국민과 함께 이를 정착시켜야 한다. 셋째, 국가적 현안인 소득양극화, 비정규직, 청년실업, 공교육정상화, 노사갈등 등을 해결할 종합계획을 밝히고, 시간을 두고 이들 문제를 해결할 것을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 넷째, 공직사회의 개혁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공무원의 수를 반으로 줄이고, 공무원연금을 개혁해서 국민연금 수령액을 상향 조정하면서 국민연금과 통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민족통일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민족통일을 이룰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기도 하지만 국민이 가장 어려워하고 있는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민족통일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일부에서 통일비용을 걱정하나 분단비용이 통일비용보다 더 크며, 통일편익은 통일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북핵 문제도 해결하고 통일을 이룩할 방안이 있는가."북한의 핵무기 보유로 인해 미국도, 중국도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는 지금이야말로 민족통일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과연 언제까지 유엔을 통한 북한 제재에 머물면서 6자회담의 재개 주장이나 하고 있겠는가? 미국의 경우 북한 핵시설을 폭격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한국과 미국이 합의해서 작성한 '작전계획 5015'에 의하면,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징후만 보이면 북한의 지도부를 타격할 수 있도록 돼 있으며, 심지어 북한 최고 지도부의 목을 베는 참수작전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키 리졸브 훈련이나 북한의 중대한 도발이 있을 때면 미국은 항공모함, 핵잠수함, 스텔스기, B-52전략폭격기, B-1B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으로 보아 미국은 언제라도 북한 핵시설을 폭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북폭을 하면 북한의 핵시설은 없어지겠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남한과 북한이 입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의 북폭은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미국과 중국에 대통령특사를 보내 남한 중심의 한반도 통일이 불가피함을 설득해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통일을 위한 4자회의' 곧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회의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김정은 정권이 이 회의에 참여하면 함께 비핵화와 통일의 방안을 마련해서 실천하면 되고, 만약 참여하지 않는다면 남한 중심의 통일을 추진하면서 북한 정권이 존립할 수 없게 해야한다. 그리고 미국·중국이 이 방안에 동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해야 할 것이다. 우선 미국에는 통일이 되더라도 주한 미군의 한강 이남 주둔은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 중국에는 통일된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갖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더불어 미국 주도의 중국포위전략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을 선언해야 한다." 대담·정리/김학석 정치부장·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는 -1945년 12월 27일 경남 김해 출생 -1964년 마산공고졸 -1995년 서울대 법학과졸-1973년 김대중납치사건 규탄·유신독재철폐투쟁사건으로 복역-1989년 민중당 창당선언 -1995년 개혁신당 부대표 -1996년 민주당 동작甲 지구당 위원장 -2000년 새시대개혁당 대표 -2000~2001년 민주국민당 최고위원 -2001~2002년 푸른정치연합 창당·대표 -2002~2003년 새천년민주당 서울영등포乙 지구당 위원장 -2003년 한국사회민주당 대표 -2004년 녹색사민당 대표최고위원 -2006년 새정치연대 대표-2009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는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남·북한, 미국·중국이 참여하는 4자 회의를 추진하고 주한미군 주둔 유지와 통일된 한반도에서의 비핵화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6-09-27 김선회·김학석

[인터뷰… 공감] 설원기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화가·교수로 수십년… 공직은 시대적 역할 고민 결과엘리트적 관점 강한 문화탓 공연에 집중된 정책 '문제'음식·건축등 생활과 연결된 다양한 콘텐츠 제공 중요재단내부·道 기관 막혀있는 소통의 실마리 풀기 노력젊다는 건 머리카락 색깔로만 판단할 수 없다. 검은 머리카락이라도 그 안에 들어있는 사고가 늙고 낡았다면 젊음은 표출되지 않는다. 지난 12일 경기문화재단의 새로운 수장이 된 설원기(65) 대표이사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머리가 희끗하고 주름이 파인 온화한 얼굴이었지만 분명 그는 젊음을 가지고 있었다.경기도민에게 설 대표는 이방인이다. 재단을 맡기 전까지 그는 그림을 그리는 서양화가로 살아왔다. 또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기도 했다. 덕성여대와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로 수 십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림 말고 그를 대중과 연결시켜줄 특별한 매개가 없었다. 그래서 낯설고 생소하다.안정된 삶을 살아오던 그가 갑작스레 공직에 나선 이유는 뭘까. 게다가 경기문화재단은 얼마 전까지 전(前)대표이사와 직원들 간 불화로 내홍을 겪기도 했다. 부침이 있었던 기관의 수장이 되겠다는 결심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대해 설 대표는 "재단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권유가 있었다. 그렇게 고민을 시작했는데, 그간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니 재단의 역할과 내가 추구했던 것들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대답했다.재단과 그가 맞닿아 있는 것, 그것은 젊음이다. 그는 예술가이자 선생으로 수많은 젊음과 살을 부대끼며 살아왔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시대적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그림의 시대적 역할을 고민해야 했고, 교육자로서 그림을 전공하는 수많은 후배들에게 그 역할을 규명해줘야 했다. 그러려면 그들이 예술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업에서, 술자리에서, 여행지에서 학생들과 끊임없이 소통한 것은 그 때문이다. "예술대학 학생들은 한밤 중에 교수에게 술 한잔 하시게 나오라고 전화를 한다. 방학이 되면 학생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그 곳에서 작품을 가르치고 함께 느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오랜 시간 운영했던 대안공간에서도 드러난다.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은 1997년부터 그가 예술가 동료 5명과 함께 운영했던 전시공간이다. 오로지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대안공간이다. 1년에 5번씩 가능성은 있지만 전시할 여력이 없는 작가를 선정해 그의 작품을 전시한다. 작가를 선정할 땐 이름도 이력서도 보지 않고 온전히 작품으로만 평가한다. 선정된 작가가 예술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사비를 털어 500만원의 전시지원금도 지원했다. "지금은 그래도 미술관마다 젊은 작가를 양성하기 위해 전시기회를 제공하지만, 당시만 해도 젊은 작가들의 전시기회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전국대전에 나가지 않는다면 대부분 자기 사비를 털거나 빚을 져서 전시를 해야 했다." 젊음에 대한 관심과 안타까움, 연민은 그를 움직이고 실천하게 했다.경기문화재단의 역할도 젊음을 지키는 것이다. 재단의 본래 설립목적은 창작자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고민하고 창조해내는 이들을 지키자고 만들어진 곳이다. 이 곳의 수장으로 설 대표가 그리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젊은 예술가를 지원하는 당연한(?) 일 외에도 설 대표가 경기도 문화를 지키는 수문장으로 할 일은 많다. 설 대표는 "아직까지 문화, 예술이라 하면 엘리트적인 관점이 강해서 작품이나 공연을 보는 데만 문화정책이 집중돼 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다녀야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생활문화'를 강조했다. "TV를 보면 음식, 건축 인테리어, 생활용품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사람들의 미적 관심을 끌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나를 둘러싼 주변환경이, 더 나아가 내 삶이 아름답길 바란다. 그러려면 단순히 작품과 공연을 보여주는 식의 이벤트성 문화정책이 아니라 생활을 포함하는 통합적인 콘텐츠를 제공해 지속성을 높여야 한다." 이는 경기도 내 북쪽과 남쪽의 문화적 격차 현상과도 연결된다. "공기관에서 격차를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소득에 상관없이 질 좋은 문화를 모두 체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많이 만드는 일이다. 이를테면 뉴욕시에는 건물이 밀집돼 있어 사람을 위한 공간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 용적률이나 고층제한을 완화하는 대신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건물 1층에 마련하도록 하는 'POPS'제도가 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도 도시 내 다양한 생활공간을 활용해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창조해 나가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실 이런 노력들은 재단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경기도에는 도민을 위해 일하는 다양한 기관들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각자 맡은 일에만 충실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그는 소통이 부족했던 건 기관만이 아니라고 했다. "재단 내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는 것 같다. 팀끼리, 본부끼리 자기 역할에만 집중하고 분야를 넘나드는 협력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보고서 위주의 일처리도 이런 분위기에 한 몫 한다. 직원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서를 써야 하는, 혹은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생기면 부서별로 미루기 바쁘다."그래서 그는 재단 안에 막혀있는 소통의 실마리를 푸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경영진이나 본부에 치이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경영진에서 혹은 본부에서 하달하는 지시사항이나 일방적으로 결정해 아래로 내려오는 식의 의사결정 방식이 소통을 어렵게 하고 있다. 다함께 문제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방식을 도입할 생각이다. 본래 재단에는 부처장 위주로 구성돼 의사결정을 진행했던 운영위원회가 있었는데 본부체제로 바뀌면서 본부장, 기관장 위주로 결정방식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체계를 개선해 모두가 함께 결정하고 협력하는 방식으로 변화시키겠다."사실 재단 대표의 임기는 2년이다. 하고자 하면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다 여기면 변화 없이 시간은 그대로 흘러가버린다. 그의 2년은 어떤 모습이길 바랄까. "생각하는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재단이, 경기도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해주고 떠나고 싶다. 적어도 그 기반을 탄탄히 만들어 놓으면 다음 분이 그것을 토대로 더 발전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경기문화재단이 하면 뭔가 다르다'라는 평가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글/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설원기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는?학력1974년 미국 벨로이트대 미술과졸1981년 미국 프랫대 대학원 회화과졸 경력1993~1998년 덕성여대 서양학과 교수2009년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 원장1998년~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교수(현)활동사항 개인전 10회(뉴욕, 인도, 서울), 그룹전 국내외 20여회지난 19일 수원시 인계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설원기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가 대화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2016-09-20 공지영

[인터뷰… 공감] 유승민 IOC 선수위원

'경인일보 체육꿈나무 대상 출신' 중학교 3학년때 최연소 국가대표 발탁세계평화 영감… 선수위원 출마후 '발에 물집 잡힐때까지' 대화하려 노력IOC-대한체육회 연결해 한국역할 확립·은퇴선수들에 새분야 제시하고파유승민은 어릴 적부터 천부적인 탁구 소질을 보이며 국내는 물론 세계를 주름잡았고, 은퇴 후에도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다. 이런 그가 이제는 전 세계 스포츠인을 대표하는 IOC 선수위원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경기도 출신인 그가 어엿한 한 나라의 스포츠 행정가로 성장한 것이다.6일 오전 용인시 삼성휴먼센터 내 탁구체육관. 이곳에서 유승민 위원을 만났다. 그는 요즘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날도 기자들의 인터뷰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반갑게 맞아주었다.IOC 선수위원 당선 소감을 묻자 웃으며 얘기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마냥 좋았는데, 이번에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몰려옵니다. 어떻게 인정받고 평가를 받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끝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가 중요합니다."유 위원의 말대로 그는 앞으로 8년 동안 선수위원으로 활동한다. 게다가 IOC 선수위원은 동·하계올림픽 개최지 투표 등 IOC 위원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지니기 때문에 책임감이 막중하다. 그래서 당시 선수위원에 뽑힌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 위원은 자신감이 넘쳤다고 한다. "저는 당선될 가능성에 대해 자신 있었습니다. 안과 밖의 느낌은 달랐습니다. 당선될 자신감은 있었습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선수들이 격려의 말을 전했고, 친근감 있게 다가와 주었습니다. 운동하는 것을 봤을 때 '뽑아주고 싶다' 등 격려를 들었을 때 자신감이 생겼고 동기부여도 됐습니다."선수위원에 뽑히기 위해 유 위원이 내세운 전략은 무엇일까. 유 위원은 우선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이 과정에서 발에 물집이 잡히기까지 했다. "무조건 오랫동안 선수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전략보다는 시간 제한이 없는 만큼 나를 알리기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움직였습니다."유 위원이 선수위원에 출마하게 된 계기는 무얼까. 그는 문대성 위원을 모델로 삼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당시 문대성 선수위원과 방을 같이 쓰면서 선수위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꿈을 꾸게 됐습니다. 또 저는 피스엔 스포츠컵(분쟁국가들끼리 참가하는 대회)에서 복식 조를 꾸려 친선경기를 했는데 당시 저랑 북한 선수가 1등을 했습니다. 스포츠라는 것이 세계 평화를 위해 영감을 주는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선수위원은 모두 4명이 뽑혔다. 유 위원은 펜싱 브리타 하이데만(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호명됐고 수영 다니엘 지우르타(헝가리), 육상 장대높이뛰기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가 나란히 당선됐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신설된 IOC 선수위원은 올림픽 참가 선수들이 뽑는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IOC 위원으로 삼성 이건희 회장만 남아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건강 악화로 IOC 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다. 또 문대성 위원은 리우 올림픽을 끝으로 임기가 끝났다. 따라서 유 위원이 사실상 한국의 유일한 IOC 위원 역할을 한다. "아직 배우는 단계라 앞으로의 계획을 세부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IOC에서 11월 첫 미팅이 있는데, 그때 방향이 잡힐 것 같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도 앞두고 있어 책임감이 크지만 많은 분의 조언을 통해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한국은 그동안 김운용 대한체육회 고문이 IOC에서 물러난 뒤 스포츠 외교력이 많이 약화됐다. 게다가 체육 단체 통합으로 안팎으로 시끄러운 상태다. 하지만 유 위원은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제 주변에는 많은 선수위원이 있습니다. 그들과 많이 가까워졌고 채팅방도 개설할 정도로 친해졌습니다. 외교적인 부분에선 소통이 가장 중요합니다.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IOC와 대한체육회를 연결하는 것입니다."유 위원의 지난 선수 시절은 어땠을까. 부천 내동중 3학년 때인 1997년 탁구 최연소(15세) 나이로 국가대표가 되면서 '탁구 신동'으로 불린 유 위원은 제25회 전국소년체전에서 맹위를 떨치며 경인일보사가 제정한 '제4회 체육 꿈나무 대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중학교 때 우승한 것은 생각이 납니다. 특히 경인일보사에서 마련해준 체육 꿈나무 대상은 많은 꿈나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현재까지 이 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습니다."선수시절 일화에 대해 유 위원은 독일에서의 생활을 기억했다. "은퇴 2년 전 한국과 유럽을 오가면서 유럽리그에서 활동하고 독일에서 생활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런던 올림픽 끝나고 독일에서의 시스템을 많이 배웠습니다. 선진국 시스템과 관중문화, 생활문화를 많이 느꼈습니다." 유 위원이 독일을 부러워한 것은 탁구가 체계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독일은 생활체육도 클럽리그가 있는데, 1~3부까지 프로라면 4~6부는 동호인들이 수준별로 등록돼 있다. 아마추어들도 주말에 리그하고 경기가 없으면 프로 경기를 관람하는데 단일 대회로 무수히 많은 경기를 치르는 우리나라와 비교된다.은퇴 선수들에 대해서도 유 위원은 자신의 철학을 강조했다. "선거를 하면서 '왜 너를 뽑아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고 그들은 올림피언입니다. 선수로서 20년 넘게 생활했고 지도자 경험도 있습니다. 은퇴했을 때의 어려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선수들에게 새로운 분야를 제시하고 싶었습니다."그는 통합체육회 출범에 대해서도 소신있게 설명했다. "솔직히 체육회 이사 선임도 1주일 전이고 선수위원장도 1주일 전입니다. 통합 과정에서 진통은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장점이 더 많습니다. 생활체육 있기에 엘리트가 있고, 엘리트가 있기에 생활체육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과 독일의 스포츠 정책을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제도를 개선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통합체육회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화제를 바꿔 그는 평소 어떻게 지낼까. 유 위원은 가족이 먼저라고 한다. "아이들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 어려운 일도 생각나지 않고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또 저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새롭게 만난 분들도 계속 교류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분들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운동하는 선수뿐만 아니라 사회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습니다."유 위원은 후배 선수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후배들을 리우 올림픽 현장에서 봤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승자를 인정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모습은 더욱 멋졌습니다. 일각에선 금메달이 부족해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저는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IOC 폐막 총회 때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우리나라 체조 선수 셀카 한 장이 스포츠의 힘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올림픽 정신에 다가가려는 우리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러웠습니다."유 위원은 IOC 선수위원이 끝나는 8년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선수 유승민'에서 '행정가 유승민'으로 다시 태어난 그는 분명 따뜻한 사람이고 세상을 포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통할 듯싶다. 대담·정리/신창윤 체육부장·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사진/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유승민 IOC 선수위원은? -1982년 8월 5일 출생-오정초-내동중-동남종고-경기대-경기대 사회체육학과 대학원 졸업-주요 경력▲2016.08~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2014.07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탁구 국가대표팀 코치, 삼성생명 탁구단 코치, 삼성생명 탁구단 ▲2012 제30회 런던 올림픽 남자 탁구 국가대표 ▲2008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남자 탁구 국가대표 ▲2007 제18회 아시아 탁구선수권대회 남자 국가대표 ▲2006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남자 탁구 국가대표 ▲2004 제28회 아테네 올림픽 남자 탁구 국가대표 ▲2002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 탁구 국가대표 ▲2000 제27회 시드니 올림픽 남자 탁구 국가대표-수상내역▲2012 제30회 런던 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 은메달 ▲2011 카타르 피스 앤 스포츠 탁구 컵 남자 복식 우승 ▲2008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 동메달, 국제탁구연맹 칠레 오픈 남자 단식 우승 ▲2007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식 동메달, 쿠웨이트 오픈 탁구대회 남자 복식 우승 ▲2006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탁구 남자 단식 동메달,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탁구 남자 단체전 은메달 ▲2005 도요타컵 국제탁구대회 남자 단식 우승 ▲2004 제28회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 폭스바겐 코리아오픈 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식 3위 ▲2002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 탁구 남자 복식 금메달

2016-09-06 이원근·신창윤

[인터뷰… 공감] 임형신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

영화 제작과정에 자문위원 참여… 임무특성상 기밀이었던 첩보부대 재조명 의미'엑스레이 작전' 맥아더 지시아닌 우리 해군 단독 수행… 극중 설정과 실제 '차이'일회성 반짝 흥행 아닌 전사자 명예회복 위한 정치권·정부·국민들의 관심 절실한국전쟁 초반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주역이지만, 역사가 되지 못하고 기억 속에 묻혔던 대한민국 해군 첩보부대(UDU·Underwater Demolition Unit)가 영화 '인천상륙작전'으로 되살아났다. 유엔 연합군이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기 22일 전인 8월 24일 새벽, 해군 첩보부대원 17명은 인천 영흥도 십리포 해안으로 잠입했다. 이들은 상륙작전 직전까지 인천 월미도 등에 있는 해안포대 위치와 부대 규모 등을 파악해 일본 도쿄 연합군 사령부에 보고했다. 우리 해군의 첩보활동은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일명 '엑스레이(X-RAY) 작전'이라 불린 당시 해군 첩보작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7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자, 인천상륙작전의 주역이 연합군인 줄로만 알았던 대다수 국민은 반세기 넘게 베일에 싸여있던 해군 첩보부대의 활약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엑스레이 작전'을 비롯한 해군 첩보작전사를 발굴하고 있는 임형신(47)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 회장은 "정부와 국민이 무관심했던 한국전쟁 당시 해군 첩보부대의 공로와 희생이 영화를 계기로 널리 알려져 반갑다"며 "영화가 극장에서 내리면 또다시 잊히는 '일회성 관심'이 아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해군 첩보부대 36기 출신인 임형신 회장은 영화 '인천상륙작전' 제작 과정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그가 '엑스레이 작전'을 수행했던 당사자들과 군으로부터 수집한 각종 자료가 영화의 뼈대가 됐다. 1946년 3월 대한민국 해군에 '정보과'가 생기면서 창설된 해군 첩보부대는 '북파(北派) 첩보활동'이 주 임무인 특성상 2000년대 초반까지도 부대 존재 자체가 기밀이었다. '엑스레이 작전'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26일 인천 중구 신포동에 있는 해군 첩보부대 동지회 사무실에서 임형신 회장을 만나 영화 '인천상륙작전'과 해군 첩보부대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정부와 인천시 등이 해마다 인천상륙작전 기념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면서도, 정작 '엑스레이 작전' 전사자들에 대해선 외면하고 있는 섭섭함도 토로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엔딩 크레딧에 '첩보사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영화를 본 소감은."재미있게 잘 봤고, 당시 해군 첩보부대의 활약이 재조명됐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컸다. 좋은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해줬기 때문에 일반 관객에게는 감동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본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제공한 입장에서는 영화가 실제 '엑스레이 작전' 역사와 완전히 부합하지 않아 아쉽긴 했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내가 주장했던 바가 정확히 반영되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엑스레이 작전'이 널리 알려지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장학수(이정재) 대위와 첩보부대원 남기성(박철민) 단둘이서 월미도 해안포대를 기습하는 후반부 클라이맥스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엑스레이 작전'에서 전사한 고(故)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를 모델로 삼은 장면이다.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가 실제로 전사한 곳은 월미도(영화상 설정)가 아닌 영흥도에 있던 엑스레이팀 본부다. 엑스레이 작전에 투입된 해군 첩보부대원 17명은 9월 13일 철수 명령을 받았는데, 이들 가운데 6명은 남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영흥도에 남았다. 그런데 엑스레이팀이 영흥도에 주둔해 있는 것을 알아챈 북한군이 9월 14일 본부를 기습했고,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가 적들을 유인해 나머지 부대원 4명을 탈출시켰다. 임 중위와 홍 하사는 적에게 포위되자 기밀 유지를 위해 자결한 것으로 전해진다."-영화 속 설정과 실제 '엑스레이 작전'은 어떻게 다른지 좀 더 설명해달라."영화상에서는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연합군 총사령관이 '엑스레이 작전'을 직접 지시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해군이 단독으로 수행한 작전이었다. 해군 정보국장을 맡은 함명수 전 해군 참모총장(엑스레이 작전 당시 소령)이 1950년 8월 12일 당시 손원일 제독에게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인천상륙작전에서 한국군의 유일한 단독작전이었다. 상륙작전에 참전한 우리 해군 함정과 해병대 등은 연합군에 편제돼 있었기 때문이다. 영흥도를 통해 인천에 잠입한 엑스레이팀은 인부로 위장해 북한군의 지하포대 진지 구축 공사나 도로 포장공사 등에서 막노동하면서 해안포대 위치 등을 파악했다. 영화에서는 해군 첩보부대가 '지뢰 부설해도'를 입수하는 것이 주요 임무지만, 실제로는 어디서 나와 쏠지 모르는 해안포대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했다. 엑스레이팀의 첩보활동은 부산에 있는 해군본부를 거쳐 도쿄 연합군 사령부로 보고됐다. 9월 1일 미군 첩보부대 유진 클라크(Eugene F. Clarke) 대위가 이끄는 연합군 공식 첩보팀이 영흥도에 합류하고 나서부터는 클라크 대위를 통해 도쿄 사령부로 직접 보고했지만, 작전은 별개로 수행했다. 영화에서는 인천상륙작전 개시 직전 북한군과 전투 끝에 팔미도 등대를 탈환했는데, 당시 팔미도 등대에 북한군 병력은 없었다."-영화 흥행으로 해군 첩보부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해군 첩보부대원 시절은 어땠으며, 첩보부대 역사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고등학교 때부터 중국 무술인 '우슈' 선수로 활동했다. 21살 때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출전 준비를 하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군 입대를 해야 했다. 특수부대를 지원했는데, 연락을 받고 병무청에 가보니 군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부대 이름을 알려줄 수 없는 데 지원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 고민하다가 승낙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북파 첩보부대원을 뽑는 '물색관'이었다. 해군 첩보부대 입대 후 여러 섬을 다니며 육·해·공 특수전과 첩보전술 훈련, 전문화 과정 등을 거쳤다. 북한 김일성 장군가(歌)와 북한 인민으로서 갖춰야 할 언어 등을 배우는 '생활화 훈련'도 받았다. 3년 동안 첩보부대원으로 활동하다가 제대한 이후 해군 첩보부대 동지회 활동 등을 통해 선배들은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제대 후에는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를 배우며 무술 도장 사범으로 아르바이트하다가 꿈을 접고 귀국했고, 이후 건설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틈틈이 공부한 끝에 2003년 고려대학교 북한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해군 첩보부대 역사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엑스레이 작전' 당시 첩보부대장이자 동지회 원로인 함명수 전 해군 참모총장이 제공한 자료와 증언이 많은 도움이 됐다. 군으로부터 받은 자료도 고증에 많은 참고가 됐다."-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으로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인천 월미도 월미공원 내 '해군 첩보부대 충혼탑'을 2009년 건립했는데, 정부 지원을 이끌어 내느라 많이 고생했다. 2006년 충혼탑 건립위원회를 꾸린 뒤부터 국방부, 해군본부, 국가보훈처, 인천시, 옹진군 등 관련 기관은 전부 찾아다니며 충혼탑 건립 취지를 설명했다. '엑스레이 작전' 등 해군 첩보부대의 공로를 이야기하자 '거짓말하지 말라'며 야단친 공무원도 있었다. 2년 동안 부지런히 설득해 국방부, 국가보훈처, 인천시 등의 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동지회원들이 모금해 총 6억 원을 들여 충혼탑을 세웠다. 이때부터 매년 9월 14일(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가 전사한 날) 충혼탑에서 해군 첩보부대 전사자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그러나 국가를 위해 헌신한 첩보부대원들을 기리는 행사에 해군, 인천시장과 국회의원 등 지역 정치권에서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지난해 인천상륙작전 개시일인 9월 15일에 추모제를 개최했을 때 처음으로 해군 참모총장이 참석했을 뿐이다. 인근에서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인천상륙작전 재현 등 전승행사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등 축제 분위기가 고조될수록 우리는 서글프기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8일 박근혜 대통령이 유정복 인천시장과 함께 해군 첩보부대 충혼탑을 찾은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정작 충혼탑의 주인공인 해군 첩보부대 동지회 측에는 연락이 없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중에만 정치권이나 국민들이 '반짝 관심'을 갖는 게 아닌가 우려하는 이유다. 앞으로 해군 첩보부대의 명예회복에 정부나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두길 바란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임형신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은?-1969년 강원도 횡성군 출생 -인천정석항공과학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북한학과·법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국가정책) 수료 -해군 첩보부대 36기(1990~1993년 복무) -대한민국 특수임무국가유공자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군사안보 연구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 -해군 첩보부대 중앙동지회 수석 부회장 -영화 '인천상륙작전' 첩보사 자문위원영화 '인천상륙작전' 제작 과정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임형신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이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밑거름이 된 '엑스레이 작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6-08-30 박경호

[인터뷰… 공감] 문경안 (주)볼빅 대표이사 회장

야간 라운딩 위해 만든 컬러공 폭발적 반응에 이모티콘·선수 캐리커쳐공까지 확대국내산=저가 이미지 깨기위해 기술력·공격적 마케팅 집중 시장점유율 5배 성장시켜IMF때 직장 잃었지만 좋아하는 골프로 재기… 국내 1위 탈환·세계 톱3 브랜드 목표"박인비 선수가 최근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온 국민이 환호 했잖아요. 하지만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박 선수를 후원했던 외국 골프 업체입니다. 만약 박 선수가 우리나라 골프 장비를 사용해 우승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마 우리나라 골프 산업에 대한 이미지도 훨씬 좋아졌을 겁니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나라 골프 선수가 국산 골프채와 골프공을 사용해 우승하는 장면을 전 세계인이 지켜봤다면 우리나라 골프업계의 이미지가 한 단계 상승했을 것이다. 문경안 (주)볼빅 대표이사 회장은 늘 이런 꿈을 꾸며 현재 국내외 골프선수 수 십 명을 후원하고 있다. '볼빅(volvik)'은 우리나라 대표 골프공 생산업체다. 철강 유통사업으로 성공한 문회장은 지난 2009년 다 쓰러져가던 볼빅을 인수해 연 매출 300억 원, 업계 2위의 골프공 생산업체로 탈바꿈 시켰다. 업계 1위는 외국산 브랜드이기 때문에 골프공 하나만 따진다면 국산 골프공 생산 기업으로는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컬러공 하나로 골프업계를 평정하다 "아마 시기적으로 이 맘때 쯤이었을거예요. 한 여름에 동료들과 야간 라운딩에 나갔는데, 볼이 잘 보이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아 이거 야광볼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사무실로 돌아와 회사 연구원들한테 당장 야광공을 만들어보라고 지시했어요. 그런데 야광공은 빛 반사가 심해 만들어도 활용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형광공'으로 아이템을 바꿨죠." 문 회장의 이런 아이디어 덕에 연두색의 형광공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골프장에 형광공을 갖다주고 공짜로 쳐보라고 했어요.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이후 다양한 색깔의 컬러공이 만들어지게 된 겁니다."기존에 컬러공에 대한 이미지는 한 겨울에 치는 '빨간 공' 그것 뿐이었다. 눈 위에 흰색 공이 떨어질 경우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기존에 흰색 공에 페인트로 빨갛게 칠한 공이 유일하게 유통됐던 것이다. 그런데 페인트로 칠한 빨간 공은 골프장에서 몇 홀 돌다 보면 금세 칠이 벗겨지는 단점이 있었다. 볼빅에서 만드는 골프 공은 아예 처음부터 플라스틱 수지에 염료를 넣어 칠이 벗겨지지 않게 고안됐다. "그동안 골프 치는 사람들에게 컬러공은 편견이 있었어요. 흰색 공에 비해 비거리가 안 나간다는 것이지요. 수차례의 실험을 반복한 결과 컬러공도 흰색 볼과 똑같은 비거리, 아니 오히려 더 많이 나갈 수 있게 만들었어요. 우리가 만든 컬러공을 일선 골프장에 써보라고 무상으로 줬습니다. 그랬더니 차츰 편견이 깨지기 시작했어요. 골퍼 4명이 모두 흰색공으로 치다가 자신들의 공을 헷갈려 남의 것을 치기도 하고, 실제 프로경기에서도 이런 실수 때문에 벌타를 받는 일이 생기거든요. 그리고 깜빡하면 햇빛에 반사돼 공이 어디로 갔는지 찾기도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는데, 우리 제품을 쓰면 이런 문제가 다 해결돼요. 특히 요즘엔 여성 골퍼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여성분들은 소위 '깔맞춤'을 좋아하거든요. 그날 골프 복장에 따라 공의 색깔까지 맞출 수 있는 거예요."문 회장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들어 맞았다. 컬러공의 엄청난 매출 신장에 힘입어 볼빅은 연두색은 물론 빨강, 파랑, 노랑, 초록색 볼, 심지어 만화 캐릭터, 이모티콘, 유명 골프선수들의 캐리커처가 들어간 골프공까지 생산하고 있다. 컬러공의 성공 덕에 기존의 흰색 공에 대한 매출도 훨씬 늘었다. 더구나 볼빅은 '국내산=저가'라는 이미지를 깨기 위해 기존의 저가제품 수출을 중단하고 기술력에 집중, 단가를 오히려 올린 후에 수출을 재개하는 역발상 마케팅에도 성공했다. 그 결과 문회장은 회사 인수 1년 만에 시장점유율을 5배나 성장시켰다."기술력에 투자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 것도 시장에서 한 몫 했다고 봅니다. 국산 골프공은 그 품질에 비해 인지도가 매우 낮았거든요. KLPGA 투어에서 선수들에게 볼빅 골프공으로 우승하면 1억원의 보너스를 주겠다고 했더니 인지도 상승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품질에 대해 그만큼 자신이 있었거든요." #IMF 때문에 실업자 되고 골프가 좋아서 시작한 사업사실 문 회장은 원래 잘나가던 상사맨이었다. 20여 년 간 유통업계에서 크고 작은 업무를 맡아 불철주야 일했지만, IMF를 비껴가기는 힘들었다. 결국 40대 초반에 회사를 그만두니 남는 것은 퇴직금 5천만원밖에 없었다. 흔한 커피숍 하나 차리기 힘든 금액이었다. 결국 비슷한 시기에 퇴사한 동료 한 명과 퇴직금을 모아 1억원의 자본금으로 'BM스틸'이라는 철강 유통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곧 기회가 찾아왔다. 굵직한 철강회사들의 연쇄부도로 현찰을 주면 철근 자재를 싸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기회를 잘 살려 기존의 인맥을 활용, 적극적으로 세일즈에 나섰고 사업 규모는 금세 커졌다. 그리고 그 성공을 바탕으로 다른 사업에 투자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볼빅 인수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제가 골프를 워낙 좋아합니다. 업무 때문에 30대에 배우기 시작했는데, 처음 골프 배울 때 3명의 코치에게 하루 5시간씩 배우고 그렇게 8개월을 연습했어요. 필드에 나간 지 채 20번이 안됐는데 싱글 핸디캡을 하기에 이르렀죠. 덕분에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도 하고(68타), 골프 사업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된 거죠. " 그는 경영 초기 볼빅에서 나름 잘 만든 '비스무스 (BISMUTH)'라는 볼이 골퍼들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골프공에 들어가는 원료와 설계를 모두 바꿨다. 그리고는 만족스러운 골프공이 탄생하자 가격을 대폭 올렸다. "처음 회사를 인수할 때 주변 사람들이 전부 연구·개발만 한국에서 하고 생산공장은 중국에 차려야 한다고 조언했어요. 그런데 저는 반대했어요. 그렇게 하면 기존의 직원들이 다 해고되기 때문이죠. 우리가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제값 받고 팔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현재 우리 제품은 충북 음성에서 전부 생산되는데, 나름대로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노력한 결과 이제는 국내외 골퍼들이 볼빅 제품의 퀄리티를 인정하고 있어요. 국내 점유율 2위, 세계적으로는 7위 정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국내 1위 탈환을 위해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골프공 생산을 넘어 토털 스포츠브랜드로 도전 '볼빅(Volvik)'은 날치자리를 의미하는 볼랜스(Volans), 승리를 뜻하는 빅토리(Victory), 그리고 코리아(Korea)의 합성어다. 골프공이 바다에 사는 날치처럼 힘 있고 정확하게 날아가 승리하는 게임, 대한민국 최고의 게임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볼빅은 세계 최고의 성능을 갖춘 골프공을 목표로 1989년 연구소를 설립하고 1997년부터 볼빅이라는 브랜드로 영업을 시작했다. "볼빅 골프공은 '외유내강'(겉이 부드럽고 안이 딱딱함)형의 독보적 특허기술을 가지고 있어, '외강내유'형이 대다수인 타 브랜드와는 타구감과 비거리에서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저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꾸준한 기술개발로 세계 톱3 브랜드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토털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시킬 계획입니다. 골프공으로 시작해 모자, 장갑, 골프백, 클럽(골프채)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주니어 클럽은 이제 막 론칭을 했고, 내년에 성인 클럽과 골프웨어도 본격적으로 출시됩니다. 한국이 세계적인 스포츠강국인데 한국을 대표할 만한 자국 스포츠 브랜드가 하나 없는 현실입니다. 글로벌 브랜드인 아디다스와 나이키가 한 종목으로 시작했다가 토털 브랜드로 성장했듯이 볼빅도 골프를 통한 토털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하는 게 최종목표입니다." 문 회장의 이런 야심 찬 계획은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것 같아 보인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무엇보다 골프 자체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문경안 (주)볼빅 대표이사 회장- 1958년 5월 9일 경북 김천출생 - 건양대 세무학과 졸업 - 홍익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졸업(석사) - 1977년(주)선경 입사 - 1987년 건영통상 - 1998년 BM스틸 설립 - 2009년 볼빅 회장 - 2010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공로상 - 2011년 스포츠산업대상 대통령상 수상 글/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지난 2009년 위기에 놓인 국내 골프공 생산업체 '볼빅(Volvik)'을 인수해 업계 2위로 성장시킨 문경안 회장은 앞으로 골프공 생산뿐만 아니라 골프 의류와 용품, 골프채 등까지 생산해 볼빅을 나이키와 아디다스 같은 스포츠 토털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2016-08-23 김선회

[인터뷰… 공감]리우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정보경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20년만에 첫 유도여자 대표팀 메달 획득 '의미''153㎝ 작은 체구' 오히려 외국선수들에 뒤지지 않는 힘·스피드 얻을수 있어좋아하는 음식은 밥과 국·취미는 낚시·꿈은 건물주… 솔직 발랄 입담 '매력''작은 거인, 한국 대표팀에 첫 메달을 선사하다'.2016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긴 정보경(25·안산시청)은 한국 여자 유도의 희망이다. 여자 유도는 지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66㎏급 조민선(금메달), 현숙희(52㎏급), 정선영(56㎏급·이상 은메달) 이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지 못했었다. 그러나 정보경은 이번 올림픽에서 20년 만에 여자 메달을 따내며 한국 여자 유도에 희망을 안겼다. 그는 이번 올림픽 유도에서 안바울(남자 66㎏급·남양주시청), 곽동한(남자 90㎏급·하이원)과 함께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비록 유도 대표팀이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정보경의 선전은 국민들에게 충분한 감동을 선사했다.지난 7일(이하 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카리오카 아레나2에서 열린 여자 48㎏급 8강전에서 정보경은 세계 랭킹 1위 문크바트(몽골)를 반칙승으로 이긴 뒤 준결승에서 메스트레 알바레즈(쿠바)를 절반 2개로 물리치며 결승에 올랐다. 그러나 결승에서 만난 파레토(아르헨티나)에 안뒤축후리기 절반패로 은메달에 머물렀다. 정보경은 이날 경기를 마친 뒤 많은 눈물을 쏟아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그러나 9일 브라질 리우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3에서 만난 정보경은 그날 이후 한결 편해진 모습이었다. 정보경은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와 바쁘기도 하고 정신이 없기도 하지만 기분은 좋다"며 웃으며 말했다.이번 리우올림픽에서 그는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였다. 유도의 관심이 남자 대표팀에 쏠려 있었던데다 올림픽 직전 세계 랭킹 8위를 기록해 금메달 후보로 꼽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경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특별한 각오를 다졌다. 금메달을 위해 머리카락도 금색으로 염색했을 만큼 그의 각오는 대단했다. 정보경은 "경기가 끝나면 모든 카메라가 나를 향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번 올림픽을 착실히 준비했다"며 "다른 여자 선수들에게도 '내가 먼저 나가서 꼭 금메달을 따겠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정보경은 중학교 1학년 말부터 유도를 시작했다. 학교 유도부가 창단될 당시 학교 체육교사의 권유가 있었다. 정보경은 "처음 유도를 시작했을 때 정말 재미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늦은 나이에 유도를 시작한 정보경은 중학교 3학년 때 소년체전에도 출전했다.그가 국가대표의 꿈을 꾼 것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다. 정보경은 "당시에는 국가 대표팀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꿈이었다"며 "고교 3학년 시절 학교로 대표팀이 훈련을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국가대표에 대한 생각을 갖게됐다"고 회상했다.그는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정정연(포항시청)의 파트너로 함께 하면서 본격적으로 올림픽의 꿈을 키웠고 4년 뒤 당당하게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해 은메달까지 따게 됐다. 정보경은 이번 한국 대표팀에서 최단신 선수다. 153㎝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힘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정보경은 "체구가 작다 보니 스피드가 좋고 힘도 있는 편이다"면서 "외국 선수에도 뒤지지 않는 힘이 나의 강점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정보경이 좋아하는 음식은 '밥과 국'이며 취미는 의외로 '낚시'다. 혈기왕성한 20대 또래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대답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보경의 매력이다. 그는 대표팀에 합류한 뒤 김성연(광주도시철도공사·70㎏급)과 함께 낚시를 시작했다고 했다. 정보경은 "대표팀에 들어온 뒤 주말에 무엇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운동선수로서 술을 할 수도 없고 주말을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건전한 취미를 찾다 보니 낚시를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또 그는 "중학생 때 친구들이 비슷한 장래 희망을 갖고 있어 나는 특별한 꿈을 갖고 싶어 누가 꿈에 대해 물으면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다"며 "실업팀에 온 뒤에는 열심히 돈을 벌어 건물주가 되는 것으로 꿈이 바뀌었다"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그는 후배 유도 꿈나무들을 향해 응원의 메시지도 전했다. 정보경은 "유도가 건강에도 좋은 운동이지만 찰나에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며 "항상 부상을 조심하고 한번 시작한 운동이니만큼 열심히 해서 다음 올림픽, 또 그다음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도가 올림픽에서 효자 종목이라는 것을 알려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대표 선수가 되려면 얼마나 훈련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정보경은 "훈련은 본인이 느끼기에 '이렇게 하다가는 죽겠다' 싶을 정도로 해야한다"고 답하기도 했다.이어 정보경은 "안산시청 유도부를 위해 힘써주시는 시장님을 비롯한 관계자분과 12시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저를 끝까지 응원해 주신 안산 시민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면서 "앞으로도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유도 선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마지막으로 그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국민 여러분께서도 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꾸중하지 마시고,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에게 지속적인 박수와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리우데자네이루/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정보경 선수는?-1991년 4월 17일 경남 양산 출생-경남 양산 웅상여중∼경남체고∼경기대 졸업-2014년 안산시청 입단-주요 경력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유도 여일반부 48㎏급 개인전 동메달, 단체전 금메달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유도 여자 48㎏급 금메달, 단체전 은메달2015년 아시아오픈 타이페이국제유도대회 48㎏급 1위2015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 48㎏급 3위2015년 우즈베키스탄 그랑프리 48㎏급 2위2015년 제95회 전국체육대회 유도 여일반부 48㎏급 금메달2015년 제주 그랑프리 국제유도대회 여자 48㎏급 3위2016년 유러피안오픈국제유도대회 48㎏급 1위2016년 뒤셀도르프 그랑프리 여자 유도 48㎏급 1위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48㎏급 은메달6일 오후 (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카리오카 경기장 2에서 열린 여자 유도 48kg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국의 정보경이 경기 직후 열린 시상식에 메달을 받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여자 유도의 희망' 정보경은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이번 2016 리우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긴 주인공이 됐다. 사진은 정보경의 어린 시절 모습과 취미로 낚시를 하는 모습,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기까지의 모습이다. /연합뉴스지난 9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3에서 만난 정보경은 동료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간편한 복장으로 경기장을 찾았다. 리우데자네이루/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2016-08-16 이원근

[인터뷰… 공감]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교수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된 성역도서 채색 화성그림 처음 봤을때 '충격'조선시대 군사정책 연구 부족한 역사학계… 동장대시열도의 발견 중요프랑스와 자료공유 노력·의궤 내용 기반으로 新문화콘텐츠 추진하고파정조(正祖)가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 '수원'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학도가 있다. 86세대 운동권 학생들이 으레 그러하듯 대학원에서 사학을 전공한다 하면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독립운동사'를 전공하는 것이 당연시 되던 시절, 혼자서 '정조'를 연구해보겠다고 했다가 이단아 취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조선 정조대 장용영(壯勇營·정조의 호위 부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정조와 관련된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전문가 반열에 올랐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김준혁(48) 교수의 이야기다. 그가 지난 6월 27일 프랑스 동양어학교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정조대에 만든 정리의궤(整理儀軌)의 실체를 발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100여 년 동안 머나먼 이국에서 잠자고 있던 조선왕실의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6년 '수원화성 축성 220주년'과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맞아 정조가 보내준 선물은 아닐는지.-정리의궤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지난 7월 27일 수원시가 개최한 '프랑스 소재 한글본 정리의궤 토크 콘서트'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그만큼 수원시와 수원시민들이 문화적 소양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귀한 자료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문화재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정리의궤는 비록 타국에 있지만, 언론에서 정리의궤에 대한 보도가 수차례 이뤄진 이후 학자들의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정리의궤 제39권 성역도(城役圖)는 전 세계 유일본으로 화성과 행궁 건물, 정조대의 군사·문화행사들을 한글과 함께 채색으로 그려 놓은 그림이 79점이나 들어있어, 많은 부분의 역사를 뒤바꿔 놓을 만큼 충격적인 자료다. 의궤를 가지고 토크콘서트를 열었는데, 행사장이 꽉 차서 추가 좌석을 놓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던 것은 학자들 뿐만 아니라 수원 화성을 사랑하고 연구하는 시민들이 그 정도로 많다는 방증이다."- 언론에서 많이 다뤄지기는 했지만, 정리의궤의 내용에 대해 다시 한 번 소개해달라. "정리의궤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정조대의 의궤편찬기구인 정리의궤청(整理儀軌廳)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전체가 48권으로 제작됐으며, 현존하는 것은 13권으로 프랑스 국립동양어학교에 12권이, 나머지 1권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있다. 동양어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은 텍스트(한글)로만 이뤄져 있으며,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것은 화성과 행궁, 주요 시설물을 그린 도설(圖說)로 그림과 한글로 이뤄져 있다. 이 책은 크게 보면 '정조의 수원행차'와 '화성 성역'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수원행차의 기록이 1797년(정조 21)에 마감된다. 따라서 이 책은 1796~1797년까지의 화성행차 내용과 1796년 9월에 완공된 화성의 축성 과정을 정리해 1798년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 혹은 왕비인 효의왕후에게 보여주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역도에 나타나는 채색본 그림들은 화성이 완공된 이후인 1797년에 그려지고, 이와 함께 화성행차 기록을 한글로 정리해 1798년에 최종 완성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글과 도화서 화원이 그린 그림이 들어있다는 것으로 볼 때 왕실에 진상하기 위한 어람용(御覽用)으로 제작된 것이며, 현존하는 최고(最古) 한글본 의궤로서 국보급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와는 이미 외규장각 의궤 반환문제 때문에 수 십 년 간 시끄러웠었는데, 왜 이제서야 정리의궤가 발견된 것인가."1970년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사서로 근무하던 고(故) 박병선 박사께서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한 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던 강화도 외규장각 의궤 297권의 목록을 찾아내 정리한 바 있고, 끈질긴 협상 끝에 조선왕조 의궤 297권이 지난 2011년 영구임대 형식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됐다. 그런데 정리의궤는 병인양요와 관계없이 초대 한국 주재 대리공사로 임명됐던 빅토르 꼴랭 드 쁠랑시(Victor Collin de Plancy·1853~1922)라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수집해 이를 자신의 모교인 프랑스 국립동양어학교(12권)에 보냈고, 나머지 한 권(39권 성역도)은 경매상을 통해 판매했다가 그 경매상이 죽기 직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해 도서관 측이 이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까 그동안 우리나라 학자들이 약탈 된 외규장각 의궤에 몰두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리의궤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것이고, 특히 정조대의 역사를 전공한 이가 많지 않아 그 가치를 알아본 사람도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정리의궤가 있다는 사실은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1865~1935)이 1901년에 발행한 '조선서지(朝鮮書誌)'에 이미 드러나 있는데도, 100여 년 동안 프랑스를 직접 방문해 실물을 확인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우리 학계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 -그럼 본인은 어떻게 하다가 더불어민주당 안민석(오산) 의원 등과 함께 정리의궤를 찾으러 프랑스까지 가게 됐나."지난 2010년 수원화성박물관 학예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한국학중앙연구원 옥영정 교수로부터 한글본 정리의궤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당시 옥 교수는 복제된 마이크로필름 등을 통해 프랑스 국립동양어학교에 소장된 정리의궤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도 직접 실물을 확인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이후 언젠가는 정리의궤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2013년 문정왕후 어보 환수 활동을 함께 추진했던 안 의원에게 정리의궤 이야기를 꺼냈더니 흔쾌히 동행하자고 했고, 올해에 그것이 현실화 됐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당초에는 동양어학교에 소장된 12권짜리 정리의궤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려고 했던 것인데, 동양어학교 도서관 측에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정리의궤 1권이 더 있는데, 그 책에는 그림도 들어있다'고 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곧바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달려가 정리의궤를 보여달라고 수 차례 요청했고, 그 자리에서 정리의궤 '성역도'를 보고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한글본 의궤도 놀라운데 더구나 채색된, 난생 처음 보는 화성 관련 그림들이 연속해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수 십 년 간 정조와 화성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여태껏 경험 중에서 가장 큰 충격이었다."-그렇다면 정리의궤 중에서 본인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전반적으로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 많아 모두 중요하지만, 정조 연구자로서 중요한 것을 딱 한 개 꼽으라면 '동장대시열도(東將臺試閱圖)'를 들 수 있다. 동장대시열도는 1796년(정조 20) 1월 22일에 동장대에서 있었던 군사들의 시열(사열)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공개된 것이 없었다. 사실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조선시대 군사정책 부분이다. 군대 체제와 훈련 방식 등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가 매우 부족하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면서 군대가 해산당했고, 그와 관련된 기록 상당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세종실록에 함께 편집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국왕의 군례에 대한 내용이 일부 나와 있으나 너무 적은 편이다. 그런데 정리의궤에 정조가 직접 군사훈련을 주관하고 군인들을 시열하는 그림이 나오게 되면서 조선시대 군사훈련에 대한 체계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고려대 박물관에 소장된 화성부성조도(華城府城操圖)와 8폭병풍의 서장대성조도(西將臺城操圖), 화성성역의궤의 연거도(煙炬圖)와 함께 동장대시열도를 연구하면 당시 화성에서의 군사훈련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고 본다."- 낙성연도(落成宴圖)도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단 낙성연도는 화성성역의궤에도 존재하는 것인데, 그동안 흑백으로 인쇄된 그림만 전해지다 정리의궤를 통해 채색 그림이 처음 공개됐다. 이 그림을 통해 상하동락(上下同樂)을 중시한 정조의 정신을 볼 수 있다. 낙성연도는 화성 축성이 마무리 된 후인 1796년 10월 16일 화성행궁 낙남헌 앞마당에서 개최된 낙성연 행사의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한 그림이다.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나와있는 낙성연도의 틀은 기본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 낙성연도에 나오는 채붕(彩棚·누각형태의 무대)과 사자놀이 역시 동일하다. 화성성역의궤에도 당시 채붕 안에서 광대들이 들어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표현돼 있다. 그런데 정리의궤에는 채붕 등의 모습이 매우 정밀하게 묘사돼 있고, 연희를 벌이는 무용수들이나 악사, 광대 들의 의상이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나 당시 조선사회의 복식사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될 예정이다. 한편 동장대시열도, 낙성연도 말고도 '연거도(演炬圖·정조시대 야간 군사훈련 그림) '가 매우 의미 있는데, 낙성연도처럼 그동안 단색 목판본만 전해지다가 이 역시 채색 그림이 나타나면서 당시 군사들이 야간에 얼마나 불을 밝히며 훈련에 임했는지 모습을 상세히 알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정리의궤의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의궤를 발견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그간의 연구성과와 혹시 새롭게 찾아낸 부분이 있는가?"성역도에 들어있는 화성행궁의 주요 시설물 즉 봉수당, 장락당, 유여택, 복내당, 낙남헌, 노래당, 미로한정 등은 모두 처음 발견된 그림들이다. 이 건물들은 다른 어떠한 기록에도 단독으로 그려진 적이 없는 것들이다. 지금까지는 화성성역의궤에 작게 실려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 건물들은 모두 국왕이 친히 머물렀던 공간으로, 정치를 주재하거나 휴식을 취했던 공간이다. 화성행궁 전체가 587칸으로 건축됐는데, 정리의궤에는 관리들의 집무 공간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철저하게 국왕 혹은 국왕과 버금가는 왕실 인물들의 친림(親臨) 건물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정리의궤의 제작 의도가 혜경궁 혹은 효의왕후에게 화성행궁의 주요 건물의 모습을 알려주기 위했던 것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앞으로 정리의궤와 관련된 행사나 계획이 있는가."현재 정부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국립중앙도서관과 협의해 프랑스 동양어학교와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 수원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정리의궤를 영인·복제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적극 도울 생각이다. 또 정리의궤에 대한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수원시와 협력해 올해는 국내 연구자들 간의 학술대회를 진행하고 내년에는 프랑스 측 학자들과 함께 국제학술대회를 진행하려고 한다. 또 정리의궤 내용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화콘텐츠 개발을 적극 추진할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연구하다보면 무궁무진한 콘텐츠가 나올 것이다. 선조들이 물려준 세계적인 문화유산의 가치를 깨닫고 이를 의미 있게 개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문화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이다."■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교수는?-1968년 2월 9일 출생-수원 파장초·수성중·수성고 졸업-1986년 중앙대 사학과 입학·1993년 졸업 -1999년 중앙대 대학원 사학과 석사 졸업·2007년 동 대학원 박사 졸업 -2003년 수원시 학예연구사-2009~2011년 수원화성박물관 학예팀장 -2011 ~2013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2014~현재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저서 : '수원화성' '정조 이산, 새로운 조선을 디자인하다'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전투' 등 글/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교수는 수십년 간 정조와 수원화성에 대해 연구해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는데, 지난 6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정리의궤 '성역도'를 국내 최초로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수원 화성과 관련된 그림들이 여러 장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그중에서도 장용영(壯勇營·정조의 호위부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 답게 정조가 군대를 시열하는 모습을 담은 '동장대시열도(경인일보 7월 5일자 1면 보도)'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다.

2016-08-09 김선회

[인터뷰… 공감] 오영태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교육·단속·시설' 사고감소 방안에 자율 주행기능 더해 '4E 전략'강한 법제도·어린시절부터 안전 의식 체화할 수 있는 시스템 절실운행기록 제출 의무화 중요… 사업용자동차 첨단장비 장착 성과낼것도심 제한속도 60㎞로 낮추기 '미션'홍보보다는 현장위주의 대안… 사고 다발도시→안전도시'변화'이끌겠다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은 국민적 화두이자 국가적 어젠다가 됐다. 대중은 성장 만능주의의 폐해가 낳은 고도위험사회를 새롭게 인식했고, 정부는 국민안전처를 신설하는 등 '안전'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탱할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안전해지고 있다는 징후는 불투명하다.육상교통안전을 최일선에서 책임지고 있는 교통안전공단(이하 공단) 오영태 이사장(60)을 만나 국민이 체감못하는 안전의 진화가 진행중인지 탐문해봤다. 오 이사장은 공단 설립 이후 최초의 민간 교통전문가 출신 이사장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21일 서울 양재동 집무실에서 만났을 때는, 공교롭게도 영동고속도로 졸음운전 버스 참사 동영상 파문으로 어수선했을 즈음이었다.-공단 설립 이후 처음으로 민간 출신 이사장으로 공단 안팎의 기대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대였을까요."제가 처음 강조한게 전문성입니다. 교통안전업무를 전문성있게 하자는 뜻을 분명히했죠. 다만 학교(아주대학교)에 있을 때는 내 생각을 마음대로 얘기했는데 여기 오니 내 말에 책임이 따르는게 다르더군요.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해야 할 입장이 된겁니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소통을 많이 했는데, 여기서도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아이디어를 교통안전 현장에 접목하는 데 노력중입니다."-공단의 교통안전 사업에 전문성이 필요한 시점에 이사장께서 오셨다는겁니까."정확합니다. 일반적으로 교통사고 감소 방안으로 3E(Education교육, Enforcement단속, Engineering시설)를 거론합니다. 어려서부터 지속적인 교통안전교육을 하고, 교통안전시설이나 사고다발지점을 개선하고, 교통법규에 따른 단속과 처벌이 삼위일체가 돼야 교통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 교통안전을 지원하는 첨단장치가 속속 개발되는 추세잖아요. 그래서 전 E(Enhance the safety vehicle)를 하나 추가해 4E 전략을 세웠습니다. 자율주행자동차에 장착되는 안전장치를 염두에 둔거죠. 최근 전세버스가 대형사고를 내지 않았습니까. 사고 당시 105㎞라고 하니 틀림없이 그사람(운전자)은 사고 당시 졸거나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긴급제동장치나 차로이탈경고장치 같이 그런 걸 막을 수 있는 첨단장치들이 개발돼 있는데 말이죠. 2018년부터 사업용 신규등록차량은 장착을 의무화했는데, 운전자 과실을 최소화 할 수 있을겁니다. "-교통안전 확보가 공단만의 일은 아닐테고, 첨단안전장치 의무화도 법으로 뒷받침돼야 할텐데, 유관기관간의 유기적인 협력은 원활한가요."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업용자동차에는 운행기록계가 다 장착돼있어요. 공단은 올해 운행기록계의 50% 이상의 기록을 제출받아 분석을하자 이렇게 목표를 잡았습니다. 운행기록계만 보면 10가지 위험행동 즉 과속, 급차선변경, 급가속 이런게 다 나옵니다. 이걸 분석하면 위험행동을 하는 운전자를 가려낼 수 있고, 위험 운전자를 버스나 트럭회사에 통보해 특별히 관리를 하거나 상주와 화성에 있는 공단 교통안전체험센터에서 교육도 시킬 수 있어요. 체험센터 교육효과로 사고율이 58% 줄고, 사망사고는 70%까지 감소시킬 정도니 대단한겁니다. 운행기록계를 통해 이런 조치가 가능한겁니다. 유럽은 사업용 자동차에 운행기록계를 장착하고 운행기록 제출을 의무화 시켜 그걸 가지고 법적 제재를 하거든요. 유럽 대형자동차 운전자들이 80㎞ 이상 속도를 내지 않고 질서를 잘 지키는 이면에는 운행기록계의 의무장착과 기록의 의무제출이라는 제도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운행기록 제출이 의무화 안되는게 이상하네요."(수익때문에) 운전자의 (교통법규)위반이 많으니 기록제출을 안합니다. 장착은 의무화 돼있는데 기록미제출에 따른 법적제재는 없으니 장착의 의미가 사라진거죠. 이런게 제도적으로 개선해야할 부분이에요. 최근에 국토부와 함께 법인택시 카드단말기에 디지털운행계를 장착해 자동으로 운행자료를 공단이 받을 수 있도록 개선중입니다. 앞으로 사업용 차량 운행기록이 통신을 통해 자동적으로 올라와 빅데이타가 구축되고 이를 분석하면 교통사고 감소에 큰 효과를 볼수 있을 겁니다."-테슬라 무인자동차 운전자 사망사고 이후 미래첨단교통수단에 대한 안전관리가 큰 숙제일텐데요."(조감도를 가리키며)화성에 있는 공단의 주행센터 저게 한 65만평 됩니다. 저기에 K시티라는, 자율자동차를 시험적으로 운행시키고 연구개발하는 테스트베드를 만들겁니다. 미국 M시티의 3배인데 2018년에 개통하면 다양한 도로와 시가지 환경에서 자율자동차의 안전운행 기준을 시험하고 수립할 수 있을 걸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K시티를 통해 구현하려는 차세대 첨단교통수단의 안전 패러다임은 무엇입니까."무엇보다 현실과 똑같은 운행환경을 조성해 무인차량이 모든 환경에서 유효한 운행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은 무인자동차를 운용하려면 교통안전공단의 허가가 있어야하는데 운전자 탑승, 긴급상황시 수동모드 전환이 허가조건이에요. 앞으로 자율주행차량이 상용화돼도 이런 원칙은 유효할테고, 테스트베드를 통해 구체적인 안전기준을 계속 추가해나갈 생각입니다."-경기도도 판교에 자율주행자동차 테스트베드 건설계획을 발표했습니다."판교 테스트베드와 우리 테스트베드는 달라요. 공단 테스트베드는 주행환경을 변형할 수 있는데 반해 판교는 실제 도시입니다. 도시에 무인자동차를 적용하겠다는 것이지 테스트베드 성격은 아닙니다. 개념이 다른 거죠. 물론 경기도와 정보 공유 등 서로 필요한 협력을 안할 이유는 없습니다."-교통환경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교통안전 패러다임도 전환될 상황 아닙니까."공단은 2009년부터 자율자동차의 첨단 안전장치를 개발해왔습니다. 현대모비스와 서울대 등 10개 기관과 공동으로 7~8년 개발한 핵심기술들이 현재 자율자동차에 들어가는 핵심 안전장치들입니다. 자율자동차가 2020년 상용화되고 2035년에 자동차 판매량의 75%에 달할 것이라 예상하는데 이렇게 되면 안전패러다임은 '사고 제로(0)'로 변하겠죠. 작년에 4천621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어요. 5천명대의 사망자가 감소추세니 다행이라지만 지금이라도 첨단안전장치를 사업용 자동차에 장착하면 2020년에는 현재 사망자 수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첨단안전장치의 전면적 수렴이 굉장히 중요합니다."-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현장정책은 있나요."홍보 보다는 현장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홍보예산을 줄여 9억원을 투입해서 무단횡단 방지시설을 직접 설치하고 있어요. 차 대 보행자 사고가 OECD 평균의 4배나 되는데 지자체는 예산이 없다하니 우리가 그 효과를 보여주자고 나선거예요. 그리고 한국도로공사와 함께 급제동장치와 차선이탈경보장치를 화물차 100대에 시범장착하기로 했어요. 회사들은 비용이 든다고 망설이니 일단 시범사업으로 안전장치의 효용성과 수익성을 보여주겠다는 시위인 셈이에요."-운행기록계처럼 의무화하면 안되나요."2018년 부터 신규제작되는 (화물)차에는 장착이 의무화가 되는데 기존 차량은 제외되는게 문제에요. 그래서 대안으로 화물연합회와 협의해 화물공제회가 안전장치를 장착해주는 방안을 논의중입니다. 사망사고가 줄면 공제회의 보상예산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거든요."-세월호 사고 이후 민간인으로 교통안전공단에 취임했으니, 안전철학이 각별할 듯 싶은데요."철학이라고 까지 말씀 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첫번째는 국민의식이 중요해요. 무단횡단이나 난폭운전을 보세요. 선진국은 강력한 법제도와 시설로 국민의 교통안전의식을 유지합니다. 영국은 안전벨트 안매면 90만원인데 우리는 3만원이에요. 제도가 엄하니 의식이 유지되고 질서가 잡힌다고 봅니다. 또 선진국은 어려서부터 교통안전교육을 철저하게 시킵니다. 독일의 어린이 자동차 사각지대 현장체험교육은 혀를 내두를 정돕니다. 우리는 안전교육을 운전면허 취득때 딱 1시간만 하죠. 법제도가 개인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강화되고 어린시절 부터 안전의식을 체화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절실합니다."-공단의 자동차 검사에 대해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정확한 지적입니다. 저희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검사를 철저하게 진행합니다. 오히려 검사제도를 강화할 생각도 있구요. 예를 들어 차령에 따라 배출가스 기준을 낮추도록 한 현행 제도의 그런 어드밴티지를 없앨 생각이에요. 제대로 검사하자는겁니다. 그런데 배출기준을 넘을 것 같은 경유 차량들이 우리 공단 직영 검사를 회피하고 지정정비공장을 찾아가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독일처럼 민간에 위탁하되 정비와 검사를 완전히 분리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정비와 검사를 분리하면 수익을 내기 위한 검사가 없어질겁니다. 아무튼 안전을 지향하는 검사를 하는 공단에 비해 수익을 위해 검사를 하는 민간에 대한 지도감독에 한계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오 이사장은 1시간 남짓한 인터뷰 동안 질문에 대해 막힘없이 답변을 내놓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강조할 대목은 오랜세월 체계를 세워온 논리를 펼쳤다. 녹음기에는 단 한 순간의 여백도 없었다.그는 교통안전공단이 육상 뿐 아니라 항공안전에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보잉기종에서 경량비행기 까지 모든 조종사 자격증을 공단에서 발급한다거나, 최근 각광받고 있는 드론의 제작안전인증도 공단의 몫이라는 것. 드론 운행자격증 발급도 물론 공단 일이란다. 다만 내년부터는 신설되는 항공기술안전원으로 제작인증기능이 넘어가지만 모든 항공수단의 조정자격 인정은 공단의 업무로 남는다고 했다.-남은 임기중 교통안전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 있나요."사업용자동차에 첨단안전장치 장착을 최대한 높이는 일 만큼은 성과로 남기고 싶어요. 버스공제회와 화물공제회가 첨단장치를 제공하는 일은 모두에게 윈윈인 사업이에요. 작은 투자로 큰 손실을 줄일 수 있는데 안할 이유가 없잖아요. 사업차량 관련 협회 회장님들 반응도 좋고 조금 더 설득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 같습니다. 또 작년에 16개 시·도에서 벌인 교통안전 대토론회를 올해는 기초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확대할 생각입니다. 현장 토론이 주는 효용이 생각 보다 좋더군요. 후반기에는 교통사고 다발도시를 대상으로 교통안전 도시로 변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을 현장위주로 마련해 볼까 합니다. 또 도심 제한속도를 선진국 수준인 60㎞로 낮추는 것도 제겐 중요한 미션입니다. 도심 교통환경은 속도제한이나 대중교통위주로 바꾸고 사업용 차량의 첨단안전장치 장착 확대 쪽으로 교통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람이 우선, 자동차는 차선'이라는 제 신념을 도와줄 분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겠습니다."■ 오영태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1975 부산고-1981 한양대 토목공학과-1983 서울대 도시계획학 석사-1989 美 NYU공대 교통공학 석·박사-1989.3 ~ 1993.3 한국교통연구원 책임연구원/교통안전실장-2004.8 ~ 2006.3 아주대학교 교무처장-2009.3 ~ 2011.2 대한교통학회장-2011.3 ~ 2014.10 아주대학교 교통ITS대학원장-1993.3 ~ 2014.10 아주대학교 교수 (교통시스템공학과)-2014.10.29 ~ 교통안전공단 제15대 이사장 글/윤인수 문화부장(편집부국장)isyoon@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교통안전공단 오영태 이사장(60)은 "법제도가 개인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강화되고 어린시절 부터 안전의식을 체화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6-07-27 윤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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