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 오영태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교육·단속·시설' 사고감소 방안에 자율 주행기능 더해 '4E 전략'강한 법제도·어린시절부터 안전 의식 체화할 수 있는 시스템 절실운행기록 제출 의무화 중요… 사업용자동차 첨단장비 장착 성과낼것도심 제한속도 60㎞로 낮추기 '미션'홍보보다는 현장위주의 대안… 사고 다발도시→안전도시'변화'이끌겠다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은 국민적 화두이자 국가적 어젠다가 됐다. 대중은 성장 만능주의의 폐해가 낳은 고도위험사회를 새롭게 인식했고, 정부는 국민안전처를 신설하는 등 '안전'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탱할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안전해지고 있다는 징후는 불투명하다.육상교통안전을 최일선에서 책임지고 있는 교통안전공단(이하 공단) 오영태 이사장(60)을 만나 국민이 체감못하는 안전의 진화가 진행중인지 탐문해봤다. 오 이사장은 공단 설립 이후 최초의 민간 교통전문가 출신 이사장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21일 서울 양재동 집무실에서 만났을 때는, 공교롭게도 영동고속도로 졸음운전 버스 참사 동영상 파문으로 어수선했을 즈음이었다.-공단 설립 이후 처음으로 민간 출신 이사장으로 공단 안팎의 기대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대였을까요."제가 처음 강조한게 전문성입니다. 교통안전업무를 전문성있게 하자는 뜻을 분명히했죠. 다만 학교(아주대학교)에 있을 때는 내 생각을 마음대로 얘기했는데 여기 오니 내 말에 책임이 따르는게 다르더군요.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해야 할 입장이 된겁니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소통을 많이 했는데, 여기서도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아이디어를 교통안전 현장에 접목하는 데 노력중입니다."-공단의 교통안전 사업에 전문성이 필요한 시점에 이사장께서 오셨다는겁니까."정확합니다. 일반적으로 교통사고 감소 방안으로 3E(Education교육, Enforcement단속, Engineering시설)를 거론합니다. 어려서부터 지속적인 교통안전교육을 하고, 교통안전시설이나 사고다발지점을 개선하고, 교통법규에 따른 단속과 처벌이 삼위일체가 돼야 교통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 교통안전을 지원하는 첨단장치가 속속 개발되는 추세잖아요. 그래서 전 E(Enhance the safety vehicle)를 하나 추가해 4E 전략을 세웠습니다. 자율주행자동차에 장착되는 안전장치를 염두에 둔거죠. 최근 전세버스가 대형사고를 내지 않았습니까. 사고 당시 105㎞라고 하니 틀림없이 그사람(운전자)은 사고 당시 졸거나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긴급제동장치나 차로이탈경고장치 같이 그런 걸 막을 수 있는 첨단장치들이 개발돼 있는데 말이죠. 2018년부터 사업용 신규등록차량은 장착을 의무화했는데, 운전자 과실을 최소화 할 수 있을겁니다. "-교통안전 확보가 공단만의 일은 아닐테고, 첨단안전장치 의무화도 법으로 뒷받침돼야 할텐데, 유관기관간의 유기적인 협력은 원활한가요."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업용자동차에는 운행기록계가 다 장착돼있어요. 공단은 올해 운행기록계의 50% 이상의 기록을 제출받아 분석을하자 이렇게 목표를 잡았습니다. 운행기록계만 보면 10가지 위험행동 즉 과속, 급차선변경, 급가속 이런게 다 나옵니다. 이걸 분석하면 위험행동을 하는 운전자를 가려낼 수 있고, 위험 운전자를 버스나 트럭회사에 통보해 특별히 관리를 하거나 상주와 화성에 있는 공단 교통안전체험센터에서 교육도 시킬 수 있어요. 체험센터 교육효과로 사고율이 58% 줄고, 사망사고는 70%까지 감소시킬 정도니 대단한겁니다. 운행기록계를 통해 이런 조치가 가능한겁니다. 유럽은 사업용 자동차에 운행기록계를 장착하고 운행기록 제출을 의무화 시켜 그걸 가지고 법적 제재를 하거든요. 유럽 대형자동차 운전자들이 80㎞ 이상 속도를 내지 않고 질서를 잘 지키는 이면에는 운행기록계의 의무장착과 기록의 의무제출이라는 제도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운행기록 제출이 의무화 안되는게 이상하네요."(수익때문에) 운전자의 (교통법규)위반이 많으니 기록제출을 안합니다. 장착은 의무화 돼있는데 기록미제출에 따른 법적제재는 없으니 장착의 의미가 사라진거죠. 이런게 제도적으로 개선해야할 부분이에요. 최근에 국토부와 함께 법인택시 카드단말기에 디지털운행계를 장착해 자동으로 운행자료를 공단이 받을 수 있도록 개선중입니다. 앞으로 사업용 차량 운행기록이 통신을 통해 자동적으로 올라와 빅데이타가 구축되고 이를 분석하면 교통사고 감소에 큰 효과를 볼수 있을 겁니다."-테슬라 무인자동차 운전자 사망사고 이후 미래첨단교통수단에 대한 안전관리가 큰 숙제일텐데요."(조감도를 가리키며)화성에 있는 공단의 주행센터 저게 한 65만평 됩니다. 저기에 K시티라는, 자율자동차를 시험적으로 운행시키고 연구개발하는 테스트베드를 만들겁니다. 미국 M시티의 3배인데 2018년에 개통하면 다양한 도로와 시가지 환경에서 자율자동차의 안전운행 기준을 시험하고 수립할 수 있을 걸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K시티를 통해 구현하려는 차세대 첨단교통수단의 안전 패러다임은 무엇입니까."무엇보다 현실과 똑같은 운행환경을 조성해 무인차량이 모든 환경에서 유효한 운행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은 무인자동차를 운용하려면 교통안전공단의 허가가 있어야하는데 운전자 탑승, 긴급상황시 수동모드 전환이 허가조건이에요. 앞으로 자율주행차량이 상용화돼도 이런 원칙은 유효할테고, 테스트베드를 통해 구체적인 안전기준을 계속 추가해나갈 생각입니다."-경기도도 판교에 자율주행자동차 테스트베드 건설계획을 발표했습니다."판교 테스트베드와 우리 테스트베드는 달라요. 공단 테스트베드는 주행환경을 변형할 수 있는데 반해 판교는 실제 도시입니다. 도시에 무인자동차를 적용하겠다는 것이지 테스트베드 성격은 아닙니다. 개념이 다른 거죠. 물론 경기도와 정보 공유 등 서로 필요한 협력을 안할 이유는 없습니다."-교통환경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교통안전 패러다임도 전환될 상황 아닙니까."공단은 2009년부터 자율자동차의 첨단 안전장치를 개발해왔습니다. 현대모비스와 서울대 등 10개 기관과 공동으로 7~8년 개발한 핵심기술들이 현재 자율자동차에 들어가는 핵심 안전장치들입니다. 자율자동차가 2020년 상용화되고 2035년에 자동차 판매량의 75%에 달할 것이라 예상하는데 이렇게 되면 안전패러다임은 '사고 제로(0)'로 변하겠죠. 작년에 4천621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어요. 5천명대의 사망자가 감소추세니 다행이라지만 지금이라도 첨단안전장치를 사업용 자동차에 장착하면 2020년에는 현재 사망자 수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첨단안전장치의 전면적 수렴이 굉장히 중요합니다."-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현장정책은 있나요."홍보 보다는 현장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홍보예산을 줄여 9억원을 투입해서 무단횡단 방지시설을 직접 설치하고 있어요. 차 대 보행자 사고가 OECD 평균의 4배나 되는데 지자체는 예산이 없다하니 우리가 그 효과를 보여주자고 나선거예요. 그리고 한국도로공사와 함께 급제동장치와 차선이탈경보장치를 화물차 100대에 시범장착하기로 했어요. 회사들은 비용이 든다고 망설이니 일단 시범사업으로 안전장치의 효용성과 수익성을 보여주겠다는 시위인 셈이에요."-운행기록계처럼 의무화하면 안되나요."2018년 부터 신규제작되는 (화물)차에는 장착이 의무화가 되는데 기존 차량은 제외되는게 문제에요. 그래서 대안으로 화물연합회와 협의해 화물공제회가 안전장치를 장착해주는 방안을 논의중입니다. 사망사고가 줄면 공제회의 보상예산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거든요."-세월호 사고 이후 민간인으로 교통안전공단에 취임했으니, 안전철학이 각별할 듯 싶은데요."철학이라고 까지 말씀 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첫번째는 국민의식이 중요해요. 무단횡단이나 난폭운전을 보세요. 선진국은 강력한 법제도와 시설로 국민의 교통안전의식을 유지합니다. 영국은 안전벨트 안매면 90만원인데 우리는 3만원이에요. 제도가 엄하니 의식이 유지되고 질서가 잡힌다고 봅니다. 또 선진국은 어려서부터 교통안전교육을 철저하게 시킵니다. 독일의 어린이 자동차 사각지대 현장체험교육은 혀를 내두를 정돕니다. 우리는 안전교육을 운전면허 취득때 딱 1시간만 하죠. 법제도가 개인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강화되고 어린시절 부터 안전의식을 체화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절실합니다."-공단의 자동차 검사에 대해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정확한 지적입니다. 저희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검사를 철저하게 진행합니다. 오히려 검사제도를 강화할 생각도 있구요. 예를 들어 차령에 따라 배출가스 기준을 낮추도록 한 현행 제도의 그런 어드밴티지를 없앨 생각이에요. 제대로 검사하자는겁니다. 그런데 배출기준을 넘을 것 같은 경유 차량들이 우리 공단 직영 검사를 회피하고 지정정비공장을 찾아가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독일처럼 민간에 위탁하되 정비와 검사를 완전히 분리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정비와 검사를 분리하면 수익을 내기 위한 검사가 없어질겁니다. 아무튼 안전을 지향하는 검사를 하는 공단에 비해 수익을 위해 검사를 하는 민간에 대한 지도감독에 한계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오 이사장은 1시간 남짓한 인터뷰 동안 질문에 대해 막힘없이 답변을 내놓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강조할 대목은 오랜세월 체계를 세워온 논리를 펼쳤다. 녹음기에는 단 한 순간의 여백도 없었다.그는 교통안전공단이 육상 뿐 아니라 항공안전에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보잉기종에서 경량비행기 까지 모든 조종사 자격증을 공단에서 발급한다거나, 최근 각광받고 있는 드론의 제작안전인증도 공단의 몫이라는 것. 드론 운행자격증 발급도 물론 공단 일이란다. 다만 내년부터는 신설되는 항공기술안전원으로 제작인증기능이 넘어가지만 모든 항공수단의 조정자격 인정은 공단의 업무로 남는다고 했다.-남은 임기중 교통안전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 있나요."사업용자동차에 첨단안전장치 장착을 최대한 높이는 일 만큼은 성과로 남기고 싶어요. 버스공제회와 화물공제회가 첨단장치를 제공하는 일은 모두에게 윈윈인 사업이에요. 작은 투자로 큰 손실을 줄일 수 있는데 안할 이유가 없잖아요. 사업차량 관련 협회 회장님들 반응도 좋고 조금 더 설득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 같습니다. 또 작년에 16개 시·도에서 벌인 교통안전 대토론회를 올해는 기초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확대할 생각입니다. 현장 토론이 주는 효용이 생각 보다 좋더군요. 후반기에는 교통사고 다발도시를 대상으로 교통안전 도시로 변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을 현장위주로 마련해 볼까 합니다. 또 도심 제한속도를 선진국 수준인 60㎞로 낮추는 것도 제겐 중요한 미션입니다. 도심 교통환경은 속도제한이나 대중교통위주로 바꾸고 사업용 차량의 첨단안전장치 장착 확대 쪽으로 교통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람이 우선, 자동차는 차선'이라는 제 신념을 도와줄 분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겠습니다."■ 오영태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1975 부산고-1981 한양대 토목공학과-1983 서울대 도시계획학 석사-1989 美 NYU공대 교통공학 석·박사-1989.3 ~ 1993.3 한국교통연구원 책임연구원/교통안전실장-2004.8 ~ 2006.3 아주대학교 교무처장-2009.3 ~ 2011.2 대한교통학회장-2011.3 ~ 2014.10 아주대학교 교통ITS대학원장-1993.3 ~ 2014.10 아주대학교 교수 (교통시스템공학과)-2014.10.29 ~ 교통안전공단 제15대 이사장 글/윤인수 문화부장(편집부국장)isyoon@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교통안전공단 오영태 이사장(60)은 "법제도가 개인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강화되고 어린시절 부터 안전의식을 체화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6-07-27 윤인수

[인터뷰… 공감] 정몽규 리우올림픽 선수단장

한국선수단 이끌고 올림픽 참가, 귀중한 기회이자 영광 '책임감 막중'금 10개 이상·Top 10 목표… 양궁·유도·펜싱등 선전 해준다면 가능브라질 치안·지카 바이러스등 '불안' 정부와 긴밀 협조 안전대책 마련개최 코앞인데 올림픽 열기 약해… 국민 관심·성원 가장 필요 응원을"선수단의 든든한 보호자가 돼 그간 노력해 온 것들을 후회없이 보여줄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2016 브라질 리우올림픽이 16일 앞으로 다가왔다. 브라질 현지의 불안한 치안 상황과 지카 바이러스 등 전염병의 위험 속에서도 선수단은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등 국위 선양을 위해 굵은 땀방울을 떨어뜨리며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한국은 리우올림픽에 28개 종목 중 23개 종목에 참가하며 선수 204명과 임원 112명 등 총 316명을 파견한다. 당초 복싱이 68년 만에 올림픽 출전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었지만 함상명(용인대)이 와일드카드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되는 희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이 출전하지 못하는 종목은 농구, 테니스, 럭비, 트라이애슬론 등 4개 종목이 됐다.이번 브라질 리우올림픽 선수단장으로 임명된 정몽규(전 대한축구협회 회장) 단장은 19일 인터뷰에서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선수단을 이끌고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은 귀중한 기회이자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올림픽의 성공적인 참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국민들께 약속했다.한국 선수단은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 10개 이상을 확보해 10위권 안에 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번 리우의 목표는 지난 2번의 올림픽보다 목표치가 다소 하향 조정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은 금 13, 은 8, 동 7개를 따내 종합 순위 5위에 올랐고, 베이징 올림픽에선 금 13, 은 10, 동 8개로 종합 순위 7위를 기록했었다.정 단장은 그 이유에 대해 "지난 런던 올림픽 대비 메달 목표치가 낮아진 것이 아니다"며 "런던에서는 펜싱, 체조 등 우리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번 올림픽은 12시간의 시차와 장시간의 비행 거리, 불안한 정국과 치안 상태, 지카 바이러스 우려 등 불리한 여건 속에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4회 대회 연속으로 금메달 10개, 종합 10위권 안에 든다면 대한민국 선수단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올림픽이라는 세계적 이벤트를 개최하기 위해 전 세계 각국으로부터 손님맞이를 준비하는 브라질은 아직까지도 치안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 13일 리우올림픽 대비 관계부처 회의에서 지카 바이러스와 인플루엔자 감염을 비롯해 리우 내 살인사건이 전년 동기간 대비 15.4% 증가했고, 노상강도는 23.7%, 차량 강도는 19.7% 증가한 점을 들어 역대 올림픽 개최지에 비해 치안상황이 열악하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브라질 당국이 군 병력을 추가 투입해 치안과 테러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안전에 대한 우려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이에 정 단장은 "현재 선수단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의무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정부의 협조 아래 다양한 안전 대책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며 "특히 선수단복에 방충 소재 옷감을 포함하고 방충제품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황열병 등 모기를 매개체로 하는 질병과 A형 간염, 장티푸스 등 수질 오염 관련 질병, 신종 플루 등에 대한 예방 접종을 실시한바 있으며 말라리아의 경우 필요시 약품 지급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정 단장은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단 전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올림픽의 효자 종목인 양궁, 태권도, 유도, 사격에서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는 동시에 레슬링, 펜싱, 배드민턴, 골프 등에서 선전해준다면 리우에서도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여자 구기 종목 3총사인 하키, 핸드볼, 배구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와 있다. 또 그동안 월드컵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유독 올림픽과 인연이 없었던 근대5종, 요트 등에서도 메달을 기대해 볼만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선수들 모두 올림픽을 목표로 열심히 훈련해 왔기 때문에 컨디션만 잘 따라준다면 어떤 선수라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대한축구협회 52대 회장을 역임한 뒤 53대 회장에도 단독 출마한 정 단장은 한국 축구계를 이끄는 최고 수장이기도 하다. 또 축구는 국내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 중 하나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도도 높다. 한국 축구는 지난 런던 올림픽에서 역대 처음으로 동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리우에서 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지난 18일 현지 적응 훈련을 위해 브라질 상파울루로 향했다. 정 단장은 "축구의 경우 예선 리그에 세계 축구 최강의 경기력을 보이고 있는 독일과 멕시코가 속해 있어 3개국 중 한 팀은 탈락하게 돼 있다. 그만큼 예선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면서도 "그렇지만 예선을 통과할 경우 선수단의 사기 등을 고려하면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선수들이 땀 흘려 준비해 온 만큼 좋은 경기를 펼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림픽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국내에선 올림픽의 열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 점도 아쉽다고 했다. 정 단장은 "이번 올림픽은 아무래도 브라질 현지의 불안한 정세와 치안, 질병 문제 등으로 인해 예년과 같은 붐 조성이 되고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며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한국은 리우 올림픽에 전력을 다해 성공적으로 치른후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된다. 정 단장은 "아무래도 여러 악조건 속에서 치러지는 올림픽인 만큼 위기관리 측면에서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선수단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정 단장은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리우올림픽 선수단 최종 엔트리가 확정됨에 따라 18일부터 직접 선수단을 이끌게 됐다. 그는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올림픽이 얼마나 큰 기회이자 영광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선수단장으로서 느끼는 책임감도 막중하다. 선수들이 그간 노력해 온 결과를 후회 없이 보여줄 수 있도록 선수들의 든든한 보호자가 돼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정 단장은 선수단에게 "여러분의 보호자로서 대한체육회, 대회 조직위원회 및 현지 공관, 정부 등 유관 기관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안전하게 대회에 참가하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 하겠다"며 "선수들이 그동안 흘려 온 땀과 눈물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이어 그는 "사실 우리 대표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들의 관심과 성원이다"며 "대회 개막 이전부터 폐막까지, 대한민국 선수단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으로 많은 응원을 보내주시길 바란다. 저 역시 선수단장으로서 우리 선수단이 국민 여러분의 관심에 부응하여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몽규 올림픽선수단장은?-1980년 용산고 졸업-1985년 고려대 경영학 석사-1988년 옥스퍼드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1994∼1996년 12월 프로축구 울산 현대 축구단 구단주-1996년 현대자동차 회장-1997∼1999년 3월 전북 현대 축구단 구단주-1999년 3월∼ 현대산업개발 회장-2000년 1월∼ 부산아이파크 프로축구단 구단주-2013년 1월 제52대 대한축구협회 회장-2014년 3월∼ 동아시아축구연맹 부회장-2015년 5월∼ 아시아축구연맹 집행위원회 위원글/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19일 오후 서울올림픽 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2016리우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결단식'에서 정몽규 선수단장이 단기를 흔들고 있다.정몽규 리우올림픽선수단장이 태릉선수촌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제공정몽규 리우올림픽선수단장이 태릉선수촌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제공

2016-07-20 이원근

[인터뷰… 공감] 박기동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공채 1기로 입사해 36년 한길… 공사 설립 40년만에 첫 내부수장 '성공 신화'기술경영 선언 '인력 전문화' 동반성장 평가 4년 연속 1위·KS 인증기관 지정선진형 가스안전체계 정착 중요한 전환기… 글로벌 Top 인프라 구축 '최선'박기동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은 학교 졸업 후 첫 직장인 한국가스안전공사에 인생을 걸었다. 공채 1기로 입사해 말단 사원에서 LP가스 안전대책 실장, 감사실장,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기술·안전 이사와 부사장 등 핵심 요직을 거치며 최고의 수장 자리까지 성장해 왔다. 통상적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 낙하산 인사가 요직을 꿰차고 내려오는 것이 관례였지만, 지난 2014년 12월 사장 공모에선 내부인사인 그를 CEO에 임명했다. 극히 이례적이고 보기 드문 인사여서 공사 직원들마저도 눈이 동그래졌다고 한다. 가스안전공사 설립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의 임명을 두고 관가에서는 파격적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고, 그의 '성공신화'에 대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대구공고와 경일대 기계학과를 졸업한 그는 36년간 가스안전공사에 몸을 담았고, 때론 가정보다 일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노력형이었다. 그의 성실함과 일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고, 직장에선 늘 소탈하고 걸걸한 '맏형'의 자세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2년 전 청와대 인사 검증에서도 빵빵한 스펙의 외부 경쟁자를 따돌릴 수 있었던 것도 박근혜 대통령이 그의 성실함과 전문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그런 인사 검증은 적중했다.최근 기획재정부 주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18개 준정부기관 중 최고 등급인 A등급을 받았고, 앞서 국민안전처의 2016 재난대응 안전 한국 훈련 평가에서도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지난주(7일)에는 국가기술표준원으로부터 'KS 인증' 기관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귀에 익숙하지 않은 기관이지만 가스분야 안전에서만큼은 일본과 선두 다툼을 벌일 정도로 최상위에 오른 기관이다. 경인일보는 12일 15대 사장으로 박진감 넘치는 경영을 하는 박 사장과 만나 가스안전공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켜온 뒷얘기를 들어봤다. -한국가스안전공사(이하 공사)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공사는 가스의 위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출범한 준정부기관이다. 지난 1974년 고압가스보안협회로 출범, 1979년 지금의 가스안전공사로 개편·발족했다. 모든 가정과 산업 현장 등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유통되는 가스의 사고예방을 위해 기술지원·검사·안전점검·교육·홍보·연구개발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현재 충북혁신도시에 본사를 두고 있고 전국 28개 지역본부·지사에서 1천300여 명의 직원들이 가스안전관리를 위해 종사하고 있다."-기술직 신입사원에서 최고경영자에 올라 '가스안전 장인'으로 불리고 있는데 안전에 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면."개인적으로 남들보다 1% 더 노력하고, 1% 더 배려하자는 소신이 있다. 다른 사람보다 10분 일찍 출근하고, 10분 늦게 퇴근하고, 입사 이래 36년간 한결같이 '안전 이상의 가치는 없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왔다. 과거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사고 수습대책본부 파견요원으로 현장을 직접 경험하면서 더 이상은 대형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가스안전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바 있고, 겉으로만 안전제일을 외칠 게 아니라 생활 속에 체화된 안전제일의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 경영평가 등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는데 내부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지난 2014년 12월 8일 공사 40년 역사상 최초로 내부 출신이 사장이 돼 직원들의 사기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가스안전을 통한 국민 행복 실현'이라는 명제만 생각하며 쉼 없이 달려왔다. 다행히 가스 사용량이 증가하는 것에 비해 사고 건수는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그간 외국에서 안전관리제도와 기술을 수입해야만 했던 우리나라는 이제 베트남·인도네시아·몽골 등 개발도상국에 선진 가스안전관리제도와 기술을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최근 5년간 정부와 함께 40만 서민 가구에 가스시설 무료 개선사업도 진행했고, 이 역시 사고 발생 건수를 줄이는 성과로 이어졌다."-가스안전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인정받고 있는데 특별한 비결이 있나. "4대 경영방침 중 하나로 '기술경영'을 선언하고 안전기술·안전진단·검사시험인증·미래 에너지분야 등 총 4개 분야 13개 기술을 유망기술로 선정해 인력 전문화를 도모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폴리에틸렌(PE) 배관 전기융착부 위상배열 초음파를 이용한 결함평가 기술'이라는 글로벌 Top 1호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 PE 배관에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기술로 불량 시공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으며 가스 사고 예방에도 이바지할 수 있게 됐고, 30년이 지난 도시가스 매몰 배관에 대한 안전성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대형 PE 배관 시설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적용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해 놓고 있다." -공공기관 동반성장 평가에서 4년 연속 1위를 달성했는데 어떤 사업이 있었나. "대표적인 동반성장 사업 중 하나는 중소기업 해외수출지원 사업이다. 지난해 6개국 6개 기관을 비롯해 지금까지 20개국 총 60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맺었으며, 약 4천억 원의 해외인증 수출액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유럽·북미지역과 상호인증 협정을 체결, 해외인증 비용을 절감하고 인증서 발행기간도 단축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국내 방폭 기기 제조업체의 유럽·북미시장 진출을 위한 생산성·경쟁력 향상과 최근 5년간 해외인증으로 취득한 수출액은 2011년 1억 600만 달러에서 2015년에는 3억 3천600만 달러로 무려 3배 증가하는 성과를 이뤘다. 올해에도 미국·영국·이스라엘 등지의 6개 기관과 신규 MOU를 추진할 계획이며, 기존에 업무협약을 체결한 러시아·중국·일본·호주 등 협력기관과의 관계 내실화를 통해 실질적인 기업 수출지원 역량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며칠 전 국가기술 표준원으로부터 KS 인증 기관으로 지정됐다는 데 각오가 있다면. "지난해 인증 기관 지정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가스 온수 보일러, 가스레인지, 볼밸브, 조정기 등 기계 분야 34개 가스 관련 제품을 인증하게 됐다. 축적된 전문성을 살려 가스 제품·제조업체의 경쟁력을 향상하고 안전한 가스 제품 생산에 최선을 다하겠다."-올해 역점을 두고 추진할 핵심사업과 앞으로 계획은."취임 2년 차인 올해는 선진형 가스 안전체계를 정착하는 중요한 전환기이자 핵심 기로 볼 수 있다. 지난 1년간 이뤄온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내년 임기를 마칠 때까지 가스안전 Global Top 조기 달성과 가스안전 국민 행복 실현이라는 목표를 향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계획이다. 가스안전 인명 피해율 감축을 위해 공사의 모든 역량을 결집해 나갈 것이며, 가스안전 확보를 위한 글로벌 인프라 구축에 만전을 기할 것이다. 현재 공사는 충북 진천에 산업 가스안전기술지원센터를, 강원도 영월에 에너지 안전실증연구센터 건립을 추진하는 등 본사가 위치한 충북혁신도시와 인근 지역을 국내 가스안전 메카, 세계적인 가스안전 허브로 발전시키기 위한 청사진을 그려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안전교육과 홍보의 패러다임을 바꿔 생활밀착형 안전의식을 국민들께 전달하고, 이를 통해 안전한 대한민국의 기틀을 마련해 나가겠다."■박기동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은?-1957년 2월 2일-출생지 : 경북 영천 -학력 :대구공고·경일대 기계학과·한국산업기술대 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경력사항 : 1980년 한국가스안전공사 입사(공채 1기)-1993~2012년 기획조정실장·대구경북지역본부장·기술지도처장·고객지원처장·감사실장·LP가스 안전대책실장-2012~2014년 기술이사·안전관리이사·부사장-2014년 사장 취임(현재)-2016년 한국 가스학회 회장(현재) -상훈 :국무총리표창(1998), 산업포장(2007), 국민훈장 목련장(2013) -저서 : '독성가스 이론과 실무'(2014, 유비온) 글/정의종 서울 정치팀장(부장) jej@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박기동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은 "가스안전 확보를 위한 글로벌 인프라 구축과 가스안전 국민 행복 실현이라는 목표를 향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2016-07-13 정의종

[인터뷰… 공감] 김화수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 내정자

'잡코리아' 창업자에서 경기 일자리 허브 이끄는 대표주자로사기업 채용 '빈익빈 부익부'현상… 공공영역 개선 여지 있어많은 구직자가 지원할 수 있도록 온라인 사이트 분위기 조성오프라인 취업상담 인력 역량강화해 구직자·기업 연결 노력김화수 전 잡코리아 대표이사 사장은 성공한 기업가다. 지난 1997년 자본금 5천만원을 갖고 창업한 잡코리아가 2005년 1억 달러(당시 환율로 1천50억원)에 외국계 회사에 매각되면서 갖고 있던 주식을 처분해 100억원 이상의 차익을 남겼다. 회사를 넘긴 이후에도 그는 잡코리아의 CEO직을 유지하며 동종업계 연 매출 1위를 유지했다. 그런 그가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최근에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에 내정됐다. 잡코리아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덕에 그가 도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작용한 듯하다. 아직은 내정자 신분이지만 새로 만들어지는 조직의 업무파악을 위해서 불철주야 공부하고 있는 그를 만나 봤다.-정확히 언제부터 일자리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하나."발기인 총회(5일)를 마친 뒤 고용노동부에 재단법인 설립 허가를 신청할 수 있고, 설립허가가 나오려면 오는 20~ 22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때가 돼야 공식적으로는 재단법인 설립이 되는 것이니까. 정식취임도 그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남경필 경기도지사와의 인연은."솔직히 말해서 그 전까지는 경기도지사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금방 대답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남 지사는 그저 TV에서 보는 정도. 일자리재단 건 때문에 처음 만나게 됐다. 지난 5월에 경기도경제실장과 일자리정책과장을 통해 처음으로 일자리재단 대표이사 제의를 받았고, 몇 번의 전화통화와 일주일 정도 고민한 후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남 지사를 사석에서 만나 차 한잔 나눈 게 전부다. 내가 어떻게, 누구로부터 추천을 받았는지에 대한 과정은 나중에 천천히 알아볼 생각이다."- 남 지사의 핵심공약이 일자리 70만 개를 만든다는 것이다. 부담되지는 않나."부담 없는 자리는 어디든 없다고 생각한다. 상업적 성과를 내야 하는 곳이면 어디든 있다. 물론 기업과 공공의 영역은 많이 다른 것 같다. 기업은 철저하게 조직적 역량을 통해 성과를 내는데 반해, 공공 쪽은 '예산'을 집행하고, 조직 바깥과의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관에서 일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분간은 단기간에 효과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우선 조직에 대한 공부를 선행하고,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일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잡코리아를 만든 과정은."1997년 여름쯤에 투자자를 만나서 창업했다. 자본금 5천만원 갖고 4명이 같이 한 것인데, 잡코리아의 전신은 '칼스텍'이라는 웹에이전시다. 원래 처음부터 잡코리아를 비즈니스 모델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IMF 때문에 실업자가 200만명을 돌파하고 취업사이트가 활황이 돼 웹에이전시를 접고 취업사이트에 전념했다. 그 당시 모든 취업사이트들이 전부 무료서비스였다. 인크루트, 잡링크 등이 선점기업이고 우리는 후발업체였다. 구직자와 기업 모두 무료 플랫폼을 잘 쓰고는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이트가 한 푼도 못 받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성공하게 된 것인가."고민 끝에 잡코리아에서는 부분 유료화를 결정한다. 하루에 2천개의 공고가 올라왔는데, 2만2천원 정도 내면 상단에 고정으로 기업공고를 배치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랬더니 100개 기업이 유료화에 동참하고 차근차근 유료기업들이 올라왔다. 구직자도 만족하고 기업도 어느정도 서비스를 만족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취업사이트들은 그 당시 부분유료화가 아니라 전면유료화를 시행하면서 기업들이 많이 떠났고, 취업공고가 줄어들자 구직자들도 사이트를 떠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잡코리아의 가치가 올라갔다. 최근의 취업포털 사이트 전체 매출이 1천300억원 정도 되는데 잡코리아는 이 중에서 절반인 56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편 잡코리아는 지난 2005년 우리나라로 치면 취업포털사이트인 몬스터 닷컴에 1억 달러에 완전 매각됐다. 그때 환율이 달러당 1천50원 정도였다. 나는 그때 지분을 모두 정리했고, CEO 직은 계속 유지했다. 그러다 잡코리아에 관심 있는 사모펀드가 2천억원에 회사를 다시 인수해 지금은 100% 순수 국내기업이 됐다." -첫 직장이 지금으로 말하자면 벤처 기업 같은 곳이었는데, 대기업은 지원할 생각은 안해 봤나."솔직히 말하면 대학 때 학점이 별로 안 좋았다. 대학 7학기 평균 학점이 3.0을 못 넘었다. 굳이 대기업과 같은 곳에 비교한다면 코트라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게 전부다. 원래 나는 이재보다는 거시 경제에 관심이 많았다. 가령 '하반기 경제동향' 세미나 같은 것이 서울에서 열리면 학생신분으로 혼자 참석해서 듣고 오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경제지에서 '넥서스 컨설팅'이라는 곳의 이사님이 인터뷰 한걸 봤는데 그 것에 딱 꽂혀서, 그 회사에 지원하게 됐다. 넥서스 컨설팅 전체 직원은 13명으로 해외시장에 대한 조사를 대행하는 곳이었다. 이를테면 국내 기업 중에서 미국에 있는 A기업이 관심이 있다면, 최근 10년간 그 회사와 관련된 신문기사, IR(투자자들에게 기업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문서), 소송, 특허 등의 자료를 모아 분석보고서를 만들어 납품하고 수수료를 받는 회사였다. 당시 국내에 그런 일을 하는 회사가 3개 밖에 없었는데, 교육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곳은 넥서스 컨설팅 밖에 없었다. 군에서 제대한 다음날 바로 그 회사에 교육을 신청해 8~9개월 과정을 마친 후 정식직원이 돼 1년 반 정도 근무하고 대학원 진학을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채용과정에서 2차례의 의회 청문회를 거쳤다. 당황스럽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은 없었는지."경기도 직원분들이 청문회에 대한 이야기를 사전에 했었는데 진지하게 귀담아 듣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다(웃음). 그런데 여러모로 보탬이 됐다고 생각한다. 단어 두 개를 주고 나에게 문장을 만들어보라는 의원분도 계셨는데, 결코 당황하거나 창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예를 들어 고용노동부가 지원하는 지역특화 사업 등에 대해 질의하신 분이 있는데 그때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그건 경기도의 예산을 받는 사업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판단했는데, 시·군에 적을 둔 의원분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사안일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게 아쉬움이 남는다." - CEO를 그만두고 경기도로 직장을 옮긴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일각에서는 정치에 관심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 청문회 때도 같은 대답을 여러 번 했다. 사기업인 잡코리아에 '잡(Job)'이 붙었다. 지금 일하는 일자리재단에는 '일자리'가 붙어있다. 사실 사기업은 결과적으로 미스매치든 고용창출이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낸다. 목적은 그게 아니었더라도 어쨌든 결과가 이뤄진다. 그런데 공공은 예산을 갖고 집행을 한다. 내가 잡코리아에서 근무할 때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많이 목격했다. 브랜드가 좋은 기업, 도심부에 있는 기업, 상권 좋은 기업은 직원 채용을 쉽게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돈을 쓰든 쓰지 않든 직원 채용이 안 된다. 그런 부분들이 참으로 안타까웠고, 공공에서는 그런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런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있나."잡코리아에서 여러 번 경험해 본 건데 기업이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못해서 구직자들이 아예 지원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최종적으로 채용되는 게 중요하지만 취업확정 이전에 구직자들의 취업 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1명을 최종 채용하는 것보다 10명이 기업에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플랫폼을 개선해 한 기업에 1명이 아니라 10명이 지원할 수 있는, 사이트에 20분 머무르면 한 회사가 아니라 적어도 5개 회사에 지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생각이다. 또 오프라인에서는 취업상담인력의 역량을 강화해 인터뷰까지 갈 수 있는 구직자들을 기업들에 연결시켜 줄 생각을 하고 있다." ■김화수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 내정자는?-1970년 부산 초읍동 출생-1995년 성균관대 무역학과 졸업-1998년 한국외국어대 경영정보대학원 경영정보시스템과 졸업 -1996년 (주)넥서스컨설팅 정보분석팀장-1997년 (주)칼스텍 기획개발실장-2002년 (주)휴먼피아 대표이사-2006년 (주)엔도어즈 대표이사-2000~2015년 (주)잡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글/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 ·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김화수(46)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 내정자는 온라인에서 기업을 최대한 어필하고 오프라인 상담인력의 역량을 강화해 도내 일자리를 늘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2016-07-05 김선회

[인터뷰… 공감] 박광은 경기도한의사회장

'현대의료기기 갈등'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치료가 아닌 '진단'부작용 우려땐 法 정비·교육 대책… 사용자체 막는것은 과잉규제"치료보다는 보양" 한의에 대한 대중 인식 '스쿨닥터' 활용해 개선군·교정시설·보건소 등 한의사 영역 확대… 공공의료 한발짝 더환자에 대해 의사가 지켜야 할 윤리를 담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의술의 빛을 보지 못한 백성들을 위해 집필된 동의보감에는 절대 언급되지 않을 법한 일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양의과 한의의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X레이와 초음파, 혈액검사기기 등 환자 상태를 진단하는 데 필요한 기기들을 한방 병·의원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 골자지만, 그 이면에는 양의와 한의의 세계관 차이로 인한 두 집단의 오랜 알력이 내포돼 있다. 다툼의 주축은 의사회와 한의사회다. 두 단체의 정관에는 하나같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이라거나 '국민과 하나 되는…'등 공공의 건강을 최우선 한다는 가치를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두 단체는 집단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기본원리 아래 너무나 상이한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은 의료기기 회사에 상대 기관과 거래를 하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하다 공정위에 과징금 처분을 받는가 하면, 사스나 메르스 같은 대규모 전염병을 앞에 놓고도 대응 방식의 차이에 갈등을 빚기도 한다. 싸워야 할 대상을 질병이 아닌 상대 단체로 삼은 셈이다.도저히 융합될 수 없을 것 같은 두 집단의 평균대 싸움에서 국민들은 한의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초 한국리서치가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전체의 65.7%가 한의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찬성의 의견을 표했다. X레이 검사를 한의원에서 직접할 수 없다 보니 통증 치료를 위해 한의원을 방문하더라도 다시 정형외과에 들러 X레이를 찍은 뒤 한의원을 다시 방문해야 하는 등 불편이 환자에게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의계는 전공분야가 다른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기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오진으로 되레 국민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절대 불가론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한의계는 X선을 발명한 뢴트겐이 의사가 아닌 물리학자이듯 기술 사용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한의학 전공 과정에서도 진단기기와 관련된 교육을 충분히 받고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으로 반박하고 있다.과연 한의사들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충분한 준비가 되었으며 우려되는 부작용은 없을까. 박광은(52) 경기도한의사회장을 만나 현재 한의계의 문제점과 이슈에 대해 물었다.-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갈등이 수년째 장기화되고 있다. 논쟁이 고착되니 일각에선 의사와 한의사 간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냐는 시각도 커지고 있다. 한의사회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규제 개혁의 일선에 있으면서 그런 국민들의 피로감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기본적인 원리를 이야기할 뿐이다. 목욕탕에도 혈압계가 비치되고 낚싯배도 초음파를 사용하는 시대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진료가 아닌 진단이다. 환자가 통증을 호소할 때 근육이 경직된 것이 문제인지, 혹은 미세한 골절이 일어난 것인지 정확히 알고 나서 조치하겠다는 것이다. 진단의 방법은 다양할수록 그 정확도가 올라간다. 한의원에 의료기기가 들어온다고 해서 한의사들이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의료기기에만 의지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진단기기는 맥진과 촉진으로 파악한 환자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수단인 동시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하는 환자의 불편을 줄여주는 매개일 뿐이다."-양의쪽에서는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에 부작용을 우려한다."부작용이 우려되면 관련법을 정비하면 되고 사용에 대한 교육을 더욱 철저히 하면 된다. 그러나 사용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엄연히 과잉 규제다. 같은 논리로 양의의 한의의 맥진을 이용해 환자를 진단한다고 해서 우리가 반대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확실하다. 한의원은 엄연한 1차 의료기관이다. 수십만원 짜리 약을 팔며 보양 쪽에만 치중하던 때는 옛말이다. 한의원도 건강보험공단이 지정한 수가에 따라 정해진 의료행위를 수행하는 의원이며 그 수는 전체 의료기관의 3분의 1에 달한다. 그런 기관이 간단한 진단장비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한의에 대한 대중의 의식도 문제가 될 듯하다. 특히 청년층은 한의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보인다."맞는 말이다. 한의학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은 다양한 원인이 있는데 지속하는 경제 위기로 의료시장 자체가 줄어든 점, 한의학 의료 수가가 지나치게 낮게 설정된 점, 정치적으로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관련 지원정책이 부재한 점이 대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것이 내부적인 문제다. 지금은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한의학의 주축이 보양에서 치료의학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다소 늦은 게 사실이다. 의료 환경 변화를 미리 예상하고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지금 맞은 위기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한의학도 양의처럼 제도권으로 편입해 급여 체계를 확실히 하고 의료행위의 다양화를 꾀했어야 했는데 이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다. 이에 젊은 세대는 아직 한의원에 가는 것이 치료가 아닌 보양이고, 비싼 돈이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대중의 인식 전환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한의사회도 다양한 자구책을 준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교의(校醫), 즉 스쿨닥터다. 한의사 한 명이 한 학교를 전담해 염좌와 타박상, 생리통 등 한의학이 강점을 보이는 분야와 금연침, 비만 관리 등 청소년 건강 관리에 필요한 한의학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의 학생들이 자라서 몸이 아파 병원을 찾을 때 한의원을 떠올리길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때문에 의료봉사와 함께 학생들에게 한의학에 대한 기억을 자연스레 심어주자는 것이다. 올 하반기에 경기도 노인복지기금공모사업을 통해 경로당에 한의사가 방문, 한의상식을 전해주는 사업이 벌이는데 같은 취지다. 그간 한의학계에서 부족했던 것은 환자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다. 때문에 다양한 사업을 통해 환자들을 직접 대하고, 이를 통해 치료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을 더욱 널리 알릴 생각이다."-3년 임기 중 2년 차에 접어들었다. 구상한 사업의 진행 상황과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남은 임기 중 가장 큰 목표는 한의학이 공공의료에 한발 더 다가가는 것이다. 우선 군의관이나 공공기관 상주 의사를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도청의 경우 직원들의 질환을 전담하는 한의사가 지정돼 있는데, 사무직 근무로 인한 통증 질환이 늘어나는 추세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 호응이 매우 좋다. 최근 의정부 도 북부청사에 전담 한의사가 새로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맥락으로 군이나 교정시설, 각 보건소 등에 한의사가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면 국민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고 한의학의 위상도 다소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의료분야에서 역점을 두는 사업이 있다면…."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이 한의학 난임치료사업이다.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한의학적 치료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수원과 성남 등 일부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한의학 난임치료는 양의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좀 더 많은 환자들이 복지정책의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수원에서 실시한 한의학 난임치료사업에서 28명의 환자 중 11명이 임신에 성공하는 등 효과도 입증됐다."-회원들인 한의사들의 요구도 많을텐데."지나치게 낮게 책정된 한의 의료 수가를 정상화하는데 회원들의 관심이 높다. 현재 성인 환자가 허리에 침을 맞고 뜸과 부항치료를 받을 경우 수가는 7천 원 남짓에 불과하다. 한의원을 자주 찾는 65세 이상의 고령 환자의 경우 수가는 1천500원 가량으로 더욱 낮다. 이런 상황에선 새로 개업하는 청년 한의사들이 희망을 갖고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물론 수가가 정상화 되는 만큼 한의원도 처방을 통일하고 제도권 의학으로 편입하는 노력이 좀 더 필요하다. 처방 통일 등은 다수의 한의사들이 이미 공감대를 형성한 상황이라 보건복지부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다."박 회장은 지난 달 아프리카 최빈국으로 꼽히는 시에라리온 공화국에 다녀왔다. 국제평화의료재단과 함께 현지에 병원시설을 세워주기 위해서다. 이뿐 아니라 한의사들로 구성된 해외 의료봉사 단체 '콤스타'는 라오스와 필리핀 등 각국을 다니며 한의학을 통한 의료의 손길을 널리 뻗치고 있다.박 회장은 의료기반이 약해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곳일수록 한의학의 강점이 더 크게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 환자들은 대부분 근골격계 질환이나 소화계통의 불편을 호소하는데 의료장비와 약물 등이 필요한 양의와 달리 침과 뜸, 부항 등 한의기구는 편의성이 뛰어나 더 많은 환자에게 수혜를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이다.그는 "양의의 강점이 두드러지는 분야가 있는 반면 한의가 빠른 효과를 낼 수 있는 영역도 있다. 이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되는 것이 바로 국민이 원하는 바 아니겠느냐"며 "앞으로도 공공건강을 위해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한의학의 달라진 면모를 보이기 위해 노력하겠다. 꾸준한 관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박광은 경기도한의사회장은?-1983년 대구 성광고등학교 졸업-1989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1998년 경희대학교 한의과박사 학위 취득-1999년 포천중문의대 한의학 주임교수-2015년 경기도한의사회 회장 취임-2016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글/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중요한 것은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느냐입니다. 진단 방식에 구분을 두는 것은 과잉규제에 불과합니다." 27일 오후 5시께 박광은 경기도한의사회장이 성남시 분당구 자신의 진료실에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있다.지난달 8일 의료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공화국을 방문한 박광은 경기도한의사회장이 국제평화의료재단과 함께 건립한 공공병원 준공식에 참석한 현지 어린이를 안고 웃고 있다. /경기도한의사회 제공

2016-06-28 권준우

[인터뷰… 공감] 남창수 경기남부보훈지청장

신도시 건설등으로 보훈대상자 '증가세' 현 9만9천여명 인프라 확충 시급지자체 재정따라 지원 격차 형평성 논란… 정부 보조·참전수당 증액 나서야고엽제등 고통 국가유공자 서울·대전 원정치료 '불편' 도내 특화병원 필요남부지청 행정수요 '전국 두배' 과다 통합·승격등으로 맞춤서비스 제공을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쟁점은 국가유공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혜택 등이 어느 정도까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인가다.최근 경기도는 도내 국가유공자 가운데 차상위계층에게 월 10만원씩 생활보조수당을 지급한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수혜자 수와 소요액조차 파악하지 못해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또 도내 일부 지자체에서 자체 재원으로 국가유공자에 대한 지원금을 지급하거나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별다른 기준이 없어 지급액이 천차만별이라는 형평성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이와 함께 경기지역의 경우 수원, 시흥, 하남 등 도내 17개 지자체를 담당하는 경기남부보훈지청에만 전국 보훈대상자의 13%가 거주하고 있다. 또 신도시 개발 등으로 신규 유입되는 보훈대상자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경기남부지청은 상급기관인 지방청과 달리 자체 예산 집행이 불가하며 1인당 보훈대상자가 가장 많아 보다 효율적인 유공자 관리를 위해 지방청 승격이 절실한 실정이다. 특히 국가유공자들의 평균 나이는 87세로 고령화되고 있어 전문적 의료 서비스를 위한 도내 보훈병원 신설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남창수 경기남부보훈지청장을 만나 국가유공자 예우와 지원에 대한 현주소와 방향, 과제 등을 들어봤다.남 지청장은 "보훈대상자에 대한 복지 수준이 높아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지자체별 형평성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지청 관내에 보훈병원 신설 역시 시급하다고 역설했다.■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 보편적 지원 과제 어떻게 풀어야 하나.국가유공자들은 국가에서 지급하는 수당 외에 지자체로부터 참전수당(참전유공자 대상)이나 보훈수당(보훈대상자 대상)을 매달 일정 금액씩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수당 액수는 지자체의 재정 형편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경기도에서도 전국 최초로 도내 국가유공자 가운데 차상위계층(50% 이하)에게 월 10만 원씩 생활보조수당을 지급한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정확한 수혜자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남 지청장은 "재정이 상대적으로 넉넉하거나 관내 보훈 대상자 수가 적을수록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수당 액수가 큰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경기남부보훈지청을 비롯한 지방보훈청 등에서도 전체적인 지원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 때문에 국가보훈처 등 국가에서 지원이 적은 지자체에 일부 예산을 보조하거나, 국가에서 참전 유공자에게 지급하는 참전 수당 자체를 우선 증액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남 지청장은 "지자체에 수당 액수를 늘리거나 사망위로금·의료비·장례보조비 등 별도의 수당을 신설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나 지자체 형편이 달라 한계가 있다"며 "전체 복지 수준이 상향 평준화가 되도록 맞춰가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늘어나는 보훈 가족에 대한 최우선 과제는.지난 4월 기준 9만9천219명의 보훈대상자가 수원, 용인, 하남 등 경기 남부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특히 신도시 건설 등으로 경기지역에 유입되는 보훈 대상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보훈대상자에 대한 복지 인프라 확충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 지청장은 보훈병원 설립 등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고엽제 등으로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겪고 있는 국가유공자를 위한 전문 병원이 없어 서울과 대전 등 인근 보훈병원으로 장거리 치료를 가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남 지청장은 "보훈병원이 없어 도내 일반 병원을 위탁 병원으로 지정해 선 치료, 후 지원을 하고 있으나 접근성이나 전문성을 높이려면 국가 유공자들의 의료 수요에 특화된 병원이 필요하다"면서도 "병원 설립을 위한 예산 확보 등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이에 따라 경기남부보훈지청은 지역 사회에 보훈 병원 설립에 대한 필요성을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해 예비타당성 조사 등을 위한 재원 마련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남 지청장은 보훈병원이 들어설 경우 랜드마크 역할은 물론 지역 경제 발전에도 긍정적인 견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남 지청장은 "인천에서 건립 중인 보훈병원 설립 사례를 살펴보면 지역 주민, 시의회, 시, 보훈 관련 단체 등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병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갖고 꾸준히 필요성을 제기했기 때문에 추진할 수 있었다"며 "도내 보훈병원이 설립되면 국가유공자들이 보다 가까운 곳에서 전문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데다 병원을 이용하는 유동 인구가 늘어나면서 주변의 지역 경제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보훈 가족 수가 가장 많은 경기지역, 효율적 보훈서비스를 위한 해법은.남 지청장은 늘어나는 보훈대상자의 보훈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경기남부보훈지청의 몸집도 커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남 지청장은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보훈 대상자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하고 형평성을 맞추려면 서울과 경기인천지역을 분리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경기도 등 관련 단체와 긴밀하게 협조하기 위해서도 대외 위상에 걸맞은 조직 규모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실제 경기남부보훈지청 관내에 근무하는 보훈 공무원들은 1인당 행정 대상 수가 과다해지면서 업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보훈 공무원 1인당 행정 대상자는 전국 평균 2천887명이지만 경기 남부지역은 4천538명으로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남 지청장은 "경기남부보훈지청에서 관할하는 면적과 행정 대상 수를 고려하더라도 다른 지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며 "특히 경기지역에 보훈 대상자 수가 매년 늘고 있어 행정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이에 따라 남 지청장은 경기남부보훈지청을 인천보훈지청과 경기북부보훈지청을 통합해 중부(경기)지방보훈청으로 승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서울지방보훈청에서 분리 독립해 경기인천지역에 거주하는 보훈 대상자들에게 맞춤형 보훈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청사진이다.남 지청장은 "지방청으로 승격될 경우 추가 예산 확보나 집행도 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추진 중인 취업 지원, 현충시설 관리 등의 사업도 더욱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경기인천지역에 거주하는 보훈대상자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로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창수 경기남부보훈지청장은-1965년 6월 16일 출생-건국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석사 수료 -1990년 행정고시 제33회 -1991~1997년 국가보훈처 기획관리관실 법무담당관, 심사정책과-1997년 국가보훈처 보훈관리국 심사정책과(서기관 승진)-1998~1999년 광주지방보훈청 지도과장, 목포보훈지청장-2001~2003년 광주지방보훈청 익산보훈지청장-2003~2005년 국가보훈처 기획관리실 기획재정담당관-2005년 국가보훈처 공보담당관(부이사관 승진)-2005~2009년 국가보훈처 대변인, 운영지원과장, 기념사업과장-2009~2012년 국립대전현충원 관리과장, 현충과장-2012년~2015년 국가보훈처 기획조정관실 규제개혁법무담당관-2015~현재 경기남부보훈지청장글/김대현·조윤영기자 jyy@kyeongin.com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남창수 경기남부보훈지청장이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를 위한 보훈병원 설립과 복지 상향 평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2016-06-21 조윤영·김대현

[인터뷰… 공감] 조윤길 옹진군수

NLL 대응 어려운점 노려 中어선 불법조업치어 싹쓸이·어구 손실… 피해액 248억 넘어단속 강화·방지 시설·조업구역 확대 요구군사적 민감한 곳… 해군·해경 대처 중요서해주민 해상교통 인프라 정부지원도 절실'오죽했으면…' 이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지난 5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우리 어민들이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어선 2척을 나포한 사건을 두고 하는 얘기다. 황금어장을 눈 뜨고 빼앗긴 어민들이 얼마나 화가 치밀었으면 중국어선을 직접 붙잡았겠느냐 말이다.연평도 등 서해 5도를 비롯한 인천 섬 지역 행정수장인 조윤길 옹진군수를 14일 연평도에서 만났다. 연평도 중국어선 불법조업 근절 방안을 중앙정부와 국회에 건의하기 위해 어민들의 의견을 물으러 가는 길이다. 그는 이날 오전 8시 인천항에서 행정선을 타고 연평도로 가는 내내 중국어선들의 횡포에 대해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서해 최북단을 지키며 사는 주민들은 섬에 사는 것이 '애국'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국가가 우리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애국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조윤길 군수는 "정부가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을 막아주지 못하면 우리 어민들은 이제 살 수가 없다"며 "이제라도 우리 해군과 해경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중국어선의 불법조업으로 인한 피해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일단 우리 연평도 꽃게 생산량이 얼마나 줄었는지부터 설명하겠다. 연평도 꽃게는 2011년 2천255t이었다가 2013년 1천8t으로 절반가량 줄어들더니 올해는 5월 기준 겨우 52t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150t에서 3분의 1로 줄어버린 것이다.꽃게라는 것이 보통 한 해 많이 잡히면 다음 해 조금 잡히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경향이 있긴 한데, 지금은 잡아들이는 양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중국어선이 와서 조업하는 바람에 우리 어민들이 잡아들일 꽃게가 없는 것이다.중국어선에 의한 우리 어구 피해도 심각하다. 2014년 백령도와 대청도 어민들이 설치한 통발 어구 778틀이 중국어선에 의해 사라진 적이 있었다. 이때 우리 어민들이 손해 본 금액만 100억원이 넘는다. 중국어선이 통발이며 홍어 잡는 주낙이며 다 쓸어가는 바람에 어구도 잃고, 새로 어구를 사들여 다시 설치하는 동안 조업도 못 하고 이중고를 겪는 것이다. 현재 우리 옹진군이 추산한 피해액만 2008년부터 지금까지 248억3천만원에 달한다.우리 어민들은 수산자원 보호를 위해 정해진 어구로만 조업해야 하지만, 중국어선들은 저인망 쌍끌이로 마구잡이 어업을 한다. 배 두 척이 그물을 달고 나란히 달리면서 바다 밑바닥을 훑고 지나가는 것이다. 어린 꽃게, 치어, 조개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아무리 치어를 방류하면 뭐하나. 중국어선이 다 잡아들이는데. 단순히 우리 자원을 훔쳐가는 것뿐 아니라 해양생태계까지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구 파손과 조업 손실로 인한 피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대책이 필요하다."-연평 어민들이 중국어선을 나포하게 된 배경은."연평도 어민들은 정해진 구역 내에서만 조업할 수 있다. 연평도 남쪽 해역에 지정된 삼각형 모양의 어장 800㎢ 이내에서만 조업해야 하고 여기를 벗어나면 즉시 제재를 당한다. 특히 우리 어선이 서해북방한계선(NLL)을 넘어가면 군사적 마찰까지 빚어질 수 있는 매우 민감한 해역이다.중국어선은 이 점을 노렸다. 이들은 NLL 북쪽에 배를 정박하고 기회를 엿보다가 기상악화나 야간을 틈타 남쪽으로 내려와 마구잡이 조업을 벌였다. 이들이 불법조업을 하는 해역은 우리 어민은 갈 수 없는 곳이다. 중국어선은 한꺼번에 많게는 400~500척씩, 적게는 200~300척씩 대규모 선단을 이뤄서 나타난다. 접경지역이라 우리 군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가 없다. NLL북쪽으로 넘어가면 쫓아갈 수가 없다. 눈 뜨고 당한다는 얘기다.이번 중국어선 나포사건도 여기서 비롯됐다. 우리 어민들은 아무리 꽃게가 잡고 싶어도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중국어선들은 제집 드나들듯이 들어와 조업하니까 화가 안 나겠느냐. 꽃게 안 잡히는데 눈앞에 중국어선이 보이니까 참다참다 못한 어민들이 그만 '성질이 나서' 중국어선을 잡아온 것이다. 우리 어민이 중국어선 나포할 때 조업구역을 이탈했느니 뭐니 말이 많은데 우리 어민들한테는 그렇게 엄격하면서 왜 중국어선을 내버려 두었느냐부터 고민해야 한다."-중국어선 불법조업 방지를 위한 대책은 있나."우리 옹진군과 어민들이 가장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은 단속강화와 불법조업 방지시설 설치, 조업구역 확대다. 현재는 중국어선 조업 동향에 따라 해경 경비함정과 특공대가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연평어장에는 상·하반기 조업철에 해수부 어업지도선이 투입되고 있지만, 우리 어선에 대해 안전조업지도 업무를 수행할 뿐이다.불법조업 발생시 신속하게 대처하고 우리 어민의 안전을 지키려면 서해5도 NLL 해역을 전담하는 경비부서 신설이 필요하다. 또 군사적으로 민감한 해역에서 작전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해군의 적극적인 협조도 중요하다.서해5도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임에도 어업지도는 지방자치단체 사무라는 이유로 정부의 외면을 받고 있다.다음으로 중국어선이 아예 우리 어장에서 조업할 생각을 못하도록 어장 주변에 불법조업 방지시설을 설치하는 것이다. 쇠로 된 시설물인데, 그물이 닿으면 찢어져 조업을 하지 못한다. 백령·대청·연평어장 400㏊에 이 시설물을 설치하려면 200억원 정도 든다. 해수부에서 2013년, 2015년 대청·소청도 동측 해역에 시설물을 설치했지만, 면적이 작아 큰 효과는 없다. 정작 필요한 곳은 NLL 인근 해역이나, 대북 관계 때문에 국방부가 설치에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인공어초 기능을 겸한 방지시설물을 설치하면 불법조업 예방과 수산자원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조업구역 확장과 조업시간 확대도 검토해야 한다. 우리 어장을 늘리면 중국의 불법조업 구역이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고, 어민들의 심리적 박탈감도 해소할 수 있다. 안보문제로 어렵다면 꽃게와 까나리 조업시기에 한해 한시적으로 어장을 늘리거나 조업 시간이라도 늘려야 한다."-불법조업 문제 외에도 서해 최전방을 지키고 사는 주민들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가장 시급한 문제는 주민들의 이동권이다. 섬을 오가는 방법은 여객선밖에 없는데, 육상교통과 비교하면 상대적인 차별을 받고 있다. 고속철도와 도로를 건설하는 데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해상 교통 인프라에는 인색하다. 백령도 왕복 승선권이 13만원으로 제주도 가는 것보다 비쌀 때가 있다. 여객선도 정기 항로로 공공을 목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준공영제 도입 등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수산물 가공사업의 경우 다른 보조사업에 비해 자부담 비율이 높아 영세한 우리 어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어업인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수산물 가공·유통사업비 지원이 절실하다. 이번 중국어선 나포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서해5도의 각종 현안이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윤길 옹진군수는?- 1949년 7월 4일 옹진군 백령면 출생- 남포초등학교- 백령중학교- 경기수산고등학교- 인하대행정대학원(고위행정연구과정) 수료- 한국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 재학중- 1971년 옹진군 송림면 지방행정서기보- 1979년 경기도 기획담당관실- 1995년 옹진군 기획실장(옹진군 인천시로 편입)- 2004~2006년 인천광역시 공보관, 자치행정국장- 2006~현재 민선 4·5·6대 옹진군수 글/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 사진/옹진군 제공조윤길 옹진군수가 지난 14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을 막아주지 못하면 우리 어민들은 이제 살 수가 없다"며 "이제라도 우리 해군과 해경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6-06-15 김민재

[인터뷰… 공감] 김현미 20대 국회 신임 예결위원장

'400조 심의' 헌정사상 첫 여성의원 선출 화제… 일자리·중기·자영업자 지원 우선정부의 복지사업 예산 지자체에 떠넘기는 '지방재정 개편안' 바람직하지 않아누리과정 문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23%까지 올려놔야… 현실적 해결 노력제20대 국회에서 400조원에 달하는 나라살림을 심의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장에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의원이 선출돼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3선 중진으로 국회 짬밥이 많은 사람이어서 별 화제가 안될 것 같지만 남성 중심의 정치구도에서 여성의 섬세함까지 발휘할 수 있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어 관심도가 더 높다. 고양정 선거구에서 3선에 성공한 더불어민주당 김현미 의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정치권에선 그를 두고 섬세하면서도 담대한 정치인으로 꼽는다. 음해와 거짓·모략이 판치는 정치 야전에서 잔뼈가 굵었고, 그런 만큼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최초'라는 몇 개의 정치적 수사를 만들어 낸 인물이기도 하다. 이번에 최초 예결위원장을 맡은 그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대변인과 여성 최초 정무2비서관을 지낸 이력도 있다. 당내에서는 오랜 당직 경험과 청와대 등 정무적 판단능력이 뛰어나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고 평가를 하지만, 악바리(?)와 같은 근성을 통해 갖게 된 담력과 섬세함이 지금의 '김현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그의 성공은 실패에서 시작됐다. 17대 총선을 통해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그는 18대 총선에서 경기도로 내려왔지만 낙선했다.18대 총선에서 고양 일산서구에 나섰다가,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대표를 지낸 바 있는 4선의 김영선 전 의원에게 낙선해 4년간 와신상담(臥薪嘗膽)을 해야만 했다.당시 그는 "총선에서 낙선해 쉬는 동안 새누리당이 강세인 일산서구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4년간 아파트 주민들은 물론, 노인정·마을회관 등을 틈틈이 찾아 주민들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정책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진정성을 얻게 돼 오늘의 영광이 있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지난 19대 국회에선 4년 내내 기획재정위 위원으로 활약해 정부의 예산흐름을 꿰차게 됐고, 예결위 계수조정소위 위원으로도 참여해 경기도 국비예산확보에도 성과를 보여줬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연세대 동문인 그는, 야당이면서도 남 지사와 연대를 꾀하면서 예산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그런 그의 예결위원장 수락 일성은 서민과 일자리, 중소기업, 자영업자를 위한 활동에 매진하겠다는 것이었다.14일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646호실에서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서민들에게 온기가 전해질 수 있는 (정부) 예산안 마련을 실현하겠다"며 자신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 예산안은 서민들을 위한 정부의 정책의지가 돈으로써 표현된 것"이라며 "현재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해 서민과 청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힘든 삶을 올해 예결위 활동을 통해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서민경제가 어려운 만큼 서민을 위한 정책과 제도와 함께 따뜻한 예산을 꾸려 좀 더 나은 국민들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그러면서 김 예결위원장은 정부와 여당·야당 모두 합의할 수 있는 정부예산을 마련한다는 데에 방점을 두고 활동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특히 김 예결위원장은 "국회 선진화법상 12월2일까지 합의를 못하면 정부 원안이 자동상정되지만, 야당이 반대하면 부결된다. 그게 19대 국회와 이번 여소야대 국회의 근본적 차이"라며 "정부나 여야 어느 쪽도 일방적으로 뜻을 관철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 예결위 간사들이 합의하지 않으면 예산안 처리가 어렵다. 진짜 고차방정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여야 정부 간 합의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 내는 '중재력'이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본다"고 부연했다.이번 4·13 총선의 민심이 김 예결위원장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심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당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수도권 의석의 상당수를 더민주가 차지할)정도까지는 상상조차 못한 민심의 변화(정부·여당을 향한 불만)가 있었다"고 말했다.때문에 예결위원장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구 예산보다는 청년 일자리와 중소기업·자영업자 지원, 지방재정 확충을 위한 예산편성을 우선시 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김 위원장은 "많은 지역구 의원들이 예결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가와 지역 중 어느 것을 우선시 한 예산편성을 할지 딜레마에 빠진다"며 "예결위원장이라고 우리 동네만 챙기면 '형님 예산' 논란이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 동네 분들이 좋아할지 모르지만, 국가적으로 봤을 때는 옳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네(지역구)를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국가직을 맡은 만큼 서민경제를 살린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임할 것"이라며 "사업이라는 것도 순서가 있으니 순서에 맞게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여의도 정치권에서의 화두인 협치(協治)에 대한 입장도 개진했다. 그는 "20대 국회 예결위는 정부와 여야가 모두 합의해야만 하기 때문에 협치가 잘 되면 성공이지만, 반면 그게 안되면 파행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며 "협치가 가장 필요한 분야가 바로 예결위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전했다.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 추진작업에 대해선 일단 반대 의견이다. 김 예결위원장은 "19대 때 지방세법 개정안 등 지방재정 확충을 위한 법안을 제출한 바 있는데, 현 정부에서 복지사업을 많이 하면서 해당 예산을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다"며 "하지만 지자체는 돈이 없고 이 때문에 굉장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경기도내 6개 불교부단체(수원·성남·고양·용인·화성·과천)는 인구 대비 복지사업도 엄청나게 추진되고 있는데, 일부 도시 몫을 떼어 다른 지역에 나누겠다는 (정부의 방침)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의사를 표명했다. 아울러 "복지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인구가 많은 도시라고 해서 지자체의 의견도 청취하지 않고 (지방재정 개편 작업을)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예결위 차원에서도 기획재정위와 안전행정위 등과 원활히 협조해 잘 풀어나가겠다"고 공언했다.경기도의 또 다른 현안과제인 누리과정 문제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언급했다. 김 예결위원장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현행 20.26%를 23%정도 까지는 올려놔야 누리과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올 예결위 활동을 통해 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김현미 예결위원장은?- 1962년 11월 29일 전북 정읍 출생- 전주여고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 정무2비서관- 열린우리당 대변인·경기도당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정책수석부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비서실장- 국회 세월호 침몰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간사- 국회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구간 정상화 대책위원회 간사- 민주정책연구원 이사 겸 부설 시니어연구소 소장- 19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전반기)- 17·19·20대 국회의원 (고양정) 글/송수은기자 sueun2@kyeongin.com · 사진/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김현미 의원실 제공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예산결산특별위원장에 오른 더불어민주당 김현미(고양정) 의원은 14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따뜻한 예산'을 화두로 던졌다. 그는 팍팍한 살림의 서민들이 행복해지고, 위기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고, 흔들리는 지방자치의 근간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임기 중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전했다.

2016-06-14 송수은

[인터뷰… 공감]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반기문 총장 대선 염두 행보 아쉬워… 남경필 경기도지사 연정은 훌륭한 시도'통일·연대에 대한 관심' 김포는 통일한국의 정치행정수도 될수있는곳 '의미'이장·군수·도지사·장관·대선 경선까지… 지역주의 타파 '리틀 노무현' 별명"대통령은 하늘이 내리는 자리" 도와줄 사람·정책 준비된다면 결심할수도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노력해 성공한 사람에 대해 우리는 흔히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이라는 표현을 쓴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김포갑) 의원은 아마 이런 단어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장에서 출발해 남해군수, 경남도지사, 행정자치부장관을 역임하고 대선까지 도전했던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쳤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4번 낙선하고 5번 만에 당선돼 말 그대로 4전5기의 승리를 거뒀으니 말이다. 이제는 김포지역에서 통일과 그 이후의 그림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그를 만나 20대 국회의원으로서의 정치적 포부를 들어봤다.-민심은 총알보다 빠르다김두관 의원은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4·13총선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아마도 너무 힘겹게 국회의원에 당선됐기 때문일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가 이장과 군수를 거쳐 도지사, 행자부장관까지 거치는 동안 승승장구 해왔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의 선거 승률은 채 절반이 안됐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제가 실패한 게 별로 없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난 그동안 선거를 총 12번 치렀다. 남해군수 선거에서 2번 이겼고,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경남도지사, 그리고 20대 국회의원 당선까지 총 5번 승리했다. 반대로 도지사 선거 2번, 국회의원 4번, 대선 경선까지 총 7번 떨어졌으니 선거 승률은 40% 정도 된다. 특히 1988년 13대 총선 당시 남해·하동군 선거에서 민중의당 후보로 첫 국회의원에 도전한 뒤 17대, 18대, 2014년 7·30 김포 보궐선거까지 내리 실패하고 올해 4·13총선에서 승리해 국회 문을 두드린 지 28년 만에 당선된 것이다."패배의 아픔을 많이 겪은 탓인지 그는 나름대로의 선거 철학이 있다. "링컨은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고 했다. 이 말을 김두관식으로 살짝 바꾸면 '투표는 총알보다 빠르고, 투표보다 더 빠른 것은 민심'이라고 할 수 있다. 4·13 총선 한 달 전쯤 김포 유권자들은 누구를 찍을지 마음속으로 다 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등을 보고 선거에서 이겼다고 자만하는 순간 민심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후보자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도 선거 전날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김포를 지역구로 선택한 과정에 대해 김 의원은 "개인적으로 '통일'과 '연대'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김포가 굉장히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곳을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7·30 보궐선거 당시 처음 김포 지역구에 도전했었는데, 김포는 향후 통일 한국의 정치행정 수도가 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 제일 남쪽인 남해에서 왔고, 이제는 분단 지역에서 제일 북쪽인 김포에 와 있다. 평소 통일문제와 관련된 특강에 나가면 마지막에 꼭 이야기를 하는 게 있다. 저는 분단된 조국 가장 남쪽인 남해에서 태어났지만, 제 소원은 통일이 되면 함경북도 가장 북쪽인 온성에서 제 생을 마감하는 것이 꿈이라고.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김포는 매우 의미 있는 장소라고 생각한다."-이장과 군수, '리틀노무현'이 되기까지김의원은 자신이 '이장'을 역임한 것도 정치경험을 쌓기 위해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장이라는 자리가 마을에서는 꽤 중요한 자리이다. 이장은 주민과 행정기관의 연결고리다. 군정방침이나 도정방침은 최초로 마을 이장을 통해 주민들에게 전파되고, 이장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읍면동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공무원 출신은 아니지만 이장이 준공무원 성격을 갖고 있어서 행정 체계를 배우고 싶어 이장을 선택한 것이다. 결코 그냥 한 게 아니다." 남해군 이어리 이장을 거쳐 그는 1995년 민선1기 지방선거에 출마, 남해군수에 37세 최연소로 당선된다. 그리고 15년 뒤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 53.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경남도지사에 3번 도전해 겨우 당선된 것이다. "보통 도지사 선거에 한 번 떨어지면 다시 나오기 어렵다. 도지사 선거가 국회의원 선거의 10배 정도는 힘드니까.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호출해서 청와대에 갔더니 도지사 출마를 권유해 못하겠다고 했더니 '저랑 인연 끊을 거면 안 나오셔도 됩니다'해서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결과적으로 낙선했는데,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직 잘하고 있는 사람을 선거판에 밀어 넣은 대통령이 살짝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내게 노 대통령은 '단체장은 낙선을 해도 정치적 자산이 좀 남을 겁니다'라며 위로했다. 그리고 실제로 2010년에 도지사에 당선되고 나서 선거를 복기 해봤더니 노 대통령이 했던 말이 상당히 일리가 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그는 '리틀노무현'이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우리 둘 다 농민의 아들이고, 내가 지역주의를 극복하려고 도전하는 모습이 노 전 대통령의 그것과 닮았다고 생각한 거 같다. 그 별명이 고맙고 감사하면서도 노 대통령이 추구했던 가치나 철학을 제대로 승계하지 못한 것 같아서 부담도 된다." 한편 그는 자신의 좌우명을 소개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샘터'라는 잡지를 통해 송나라 유학자 육상산의 글을 읽게 됐다.'不患貧 患不均(불환빈 환불균), 백성은 가난한 것을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2017년 대선에 대해서 말하다내년 대선과 관련해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서 다소 비판적으로 이야기했다. "반기문 총장이 한국을 다녀가더니 대선을 염두에 두고 'TK(대구 경북) + 충청연합' 같은 표현이 언론에 등장하던데 이 얼마나 정치공학적이고 퇴행적인 사고인가.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불공평·불공정,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이런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집권자가 계속 바뀜에도 불구하고 해결은 안 되고 오히려 노인·청소년 자살률은 늘어만 간다. 반 총장이 정말 대선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런 문제가 왜 발생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먼저다. 그러지 않고 단순히 어디를 공략해서 어떤 표를 얻어야 하고, 정치 거물 누구를 만나는 식의 이런 사고는 완전 옛날 방식이지 않은가? 아무리 젊게 사고를 한다고 해도 원래 그분이 자라온 환경과 세대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 또 전문관료생활을 이어온 분이시고, 정치를 쭉 해오던 분이 아니셔서 (대선출마에는)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반면에 또 다른 대권 후보인 남경필 경기도지사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다. "경기도 연정의 성과는 세세하게 모르겠지만 남 지사가 하는 연정 방식은 여야간의 대연정으로 훌륭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독일이 통일과정에서 기민당과 사민당이 정당을 초월해 초당적 협력을 했듯이 지방자치에서는 꼭 필요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극우나 극좌적 시각으로는 국정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머리를 맞대 국가는 계속 발전해야 하고 개인은 행복해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1천300만 경기도에서 선도적으로 연정시도를 하는 남지사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의원은 본인의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상당히 말을 아꼈다. "2012년 독일에서 연수를 할 때 유럽사회를 한 바퀴 돌아보니까 시대정신, 역사적 과제, 이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과 정책이 준비 된다면 (대선출마)결심을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정치인 중에 대권과 당권에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조건이 안되고 상황이 안 돼서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지사나 국회의원까지는 자기노력으로 할 수 있는 자리지만 대통령은 '하늘이 내리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김포시민들을 위해 그동안 밀린 숙제를 하고 싶다. 김포시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겠다. 총선 출마 때 내세웠던 공약의 최소한 60~70, 많으면 80%까지 이행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래서 상임위도 국토위에 가는 거다.(웃음)"■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은-1958년 10월 23일(음력) 경남 남해 출생 -1977년 남해종합고졸-1987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졸 -1987년 남해농민회 사무국장-1988년 남해군 이어리 이장 선출 -1989~1995년 남해신문(주) 대표이사 사장 겸 발행인·편집인 -1995~2002년 경남 남해군수(민선 1·2기) -2003년 행정자치부 장관-2005~2006년 대통령 정무특보-2006년 열린우리당 최고위원-2010~2012년 경남도지사-2016년 제20대 국회의원(김포갑) 대담/김학석 정치부장·정리/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사진/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올해 4·13총선에서 승리해 국회 문을 두드린 지 28년 만에 당선된 김두관 국회의원이 "총선 출마 때 내세웠던 공약의 최소한 60~70%, 많으면 80%까지 이행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포부를 밝히고 있다.

2016-06-07 김선회·김학석

[인터뷰… 공감] 가수 김장훈

2년 전 남수단 축구대표팀과 인연 맺어리우올림픽 조직위임원으로 선수단 입장한국인의 '외국인 사랑' 꼭 전하고 싶어독도 지킴이·나눔 끊임없이 이어갈 것"얘들아 사진찍자, 나 초상권 없거든"가수 김장훈은 동네 아저씨다.동네꼬마들이 '김장훈이다'라고 외칠 때면 다가가서 사진을 함께 찍는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작은 하트를 만들며 윙크를 한다. 연예인이라면 팬들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조심스러운 행동을 보여야 하는데 그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의식을 즐기는 연예인 같다. 그런 김장훈이 오는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한다. 선수가 아닌 대표자격이란다. 그의 기막힌 올림픽 출전 사연을 들어보자.지난달 23일 김장훈을 만났다. 그는 단정한 외모로 기자를 만나자마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를 요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고 말이다.대부분의 연예인은 인터뷰를 요청하면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다. 하지만 김장훈은 바로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는 나를 전국에 알리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저는 인터뷰를 원하면 어디든지 달려갑니다." 동네 아저씨다운 말투다.김장훈은 2년 전 내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남수단을 돕기 위해 케냐에서 임흥세 남수단 축구대표팀 총감독을 만났다. 그는 그곳에서 새로운 나눔 프로그램을 계획했고, 지난 4월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그것은 바로 평화콘서트였다."2년 전 아프리카 돕기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케냐에 처음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임흥세 남수단 축구대표팀 총감독님을 우연히 만나게 됐고, 내전으로 희망을 잃은 남수단 시민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고자 임 감독님과 뜻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지난 4월 9일 남수단의 수도 주바의 농구경기장에서는 김장훈의 평화콘서트가 열렸다. 당시 3천여 명의 시민이 이곳에 모여들었고, 김장훈은 '난 남자다', '내 사랑 내 곁에'에 이어 현지 뮤지션 오루파프와 함께 '아리랑'을 열창했다. 당시 분위기는 말 그대로 뜨거웠다."기온이 45도를 오르내리는 등 무더운 날씨였지만, 눈시울이 날 정도로 한국과 남수단의 화합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정말 대단했지요. 하지만 저는 남수단 시민들에게 '이곳에 원조(Aid)하러 온 게 아니다'고 했습니다. 평화콘서트의 슬로건도 '전쟁을 멈춰라. 총을 내려놔라'로 정했습니다. 남수단에서 평화의 노래가 의미 있다고 생각했고, 콘서트 1주일 전부터 아프리카어(여러 부족에서 사용중인 언어를 합친 남수단어)로 노래를 배워 현지어로 불렀습니다. 저는 원조라는 말이 싫습니다. 지구촌은 한가족인데, 뭐가 필요하겠습니까."김장훈이 이번에 콘서트를 연 것은 남수단 사상 첫 올림픽 출전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오랜 내전 끝에 2011년 독립한 남수단은 2년 만에 다시 내전을 치르는 아픔을 겪었다. 이 신생국은 지난해 8월 '축구 선교사' 임흥세 축구대표팀 총감독의 도움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206번째 국가로 가입해 올림픽 참가 자격을 얻었다. 남수단올림픽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게 된 임 감독은 축구·농구·핸드볼·배구·탁구·육상·태권도·유도·권투 등 9개 종목 지역협회를 설립하고 서류를 꾸미는 등 남수단이 IOC 회원으로 가입하는 데 필요한 절차 대부분을 도맡았고, 마침내 성사시켰다.임 감독에 대해 김장훈은 말 대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임 감독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힘든 나라인 남수단에서 어느 날 갑자기 총에 맞을 수도 있는데, 축구를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사실만으로 놀랍고 존경스럽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분이 있다는 게 믿어지십니까."김장훈과 임 감독의 남수단 사랑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들은 서울시체육회의 도움과 자비를 들여 지난 5월 남수단올림픽위원회 소속 스포츠지도자 등 19명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이어 5월 6일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특별한 애국가를 불렀다. 애국가에는 김장훈과 남수단 올림픽 국가대표 코치진이 함께했다."한국에서 지도자들을 남수단으로 파견하는 것은 비용적인 문제가 있어 한국으로 남수단 코칭스태프를 데려왔습니다. 남수단은 올해 리우 올림픽에 처음으로 참가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야구장을 방문했습니다. 저는 원래 두산 베어스 팬인데, 이날은 kt 프런트 분들이 잘 해주셔서 수원에서 부르게 됐습니다."물론 남수단 지도자들도 애국가를 제창했다. "연습할 시간은 없었는데, 후렴구를 따라 부르도록 영어로 철자를 맞췄지요. 그런데 앞 열에 서 있던 4명이 '무궁화 삼천리'를 불러야 하는 순간에 '동해 물과 백두산'을 부르는 게 아닙니까. 얼마나 웃겼는지. 무사히 애국가를 불러 다행스러웠습니다. 지도자들도 난생처음 야구장을 봤다는 점에서 매우 재미있어 하더군요."임 감독과 김장훈은 2016년 리우올림픽의 개·폐막식에서 남수단 올림픽 조직위 임원으로 선수단과 함께 입장한다. "연예인 최초로 다른 나라 임원으로 올림픽 개막식에 나간다는 점에 저도 놀라웠습니다. 모두 임 감독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내서라도 꼭 올림픽에 참가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선수단 여러분께는 죄송스럽지만, 남수단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이번 올림픽에 꼭 참가해 한국인의 외국인 사랑을 전파하겠습니다."김장훈은 야구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야구 불모지인 아프리카에 야구장 건립과 장비후원, 지도자 파견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앞으로 아프리카 전체에 대한민국 스포츠를 전파할 계획도 세웠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축구 뿐 만 아니라 야구도 아프리카에 전파하고 싶습니다. 후원자를 모색해 야구 인프라 구축을 서둘러 볼 생각입니다."김장훈은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사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형님', '선배', '동생'이 아닌 모두를 '친구'로 부른다. "저는 사람들을 만날 때 나이를 따지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그 나라 말로 '친구'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늘 외국어를 배울 때 친구라는 말부터 배웁니다."물론 케냐에서도 그는 현지인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케냐에서도 꼬마 아이한테 '친구'라고 말했는데, 그 친구는 쓰레기장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 조금 친해졌는데 쓰레기 속에서 빵을 찾아서 건네 주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가장 큰 빵을 말이죠. 같이 간 사람들이 모두 말렸는데, 저는 그 친구의 성의를 봐서 먹었습니다. 질병이 있는 위험한 곳이었지만, 이래죽나 저래죽나 죽는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그냥 씹었지요."앞으로 김장훈은 새로운 앨범과 독도지킴이, 기부천사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소공연장에서 노래를 불러보고 싶습니다. 내년에 새 앨범을 들고 팬 여러분께도 찾아뵙겠습니다. 물론 독도지킴이와 나눔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당신들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리고 사진도 많이 찍어드릴 겁니다. 저는 초상권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문화와 스포츠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프리카 전 지역에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장훈. 뉴욕타임즈에 독도광고와 위안부 광고를 게재한 대한민국의 사나이. 그의 발걸음은 오늘도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달린다.■가수 김장훈-경력▲2015 바둑 홍보대사 ▲2014.06 코리아 승마 페스티벌 홍보대사 ▲2012.09 해양경찰 명예홍보대사 ▲2011.08 경희대 혜정박물관 홍보대사 ▲2011.06 나눔국민운동 홍보대사 ▲2011.04 경제총조사 홍보대사 ▲2009.09 세계소방관경기대회 홍보대사 ▲2008.05 반크 홍보대사 ▲2008.01 올림픽공원 홍보대사 ▲2007.12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 선정-수상▲2013 국민훈장 동백장·하이원 서울가요대상 공연문화상 ▲2012 세종문화상 국제협력봉사부문·미국 대통령 자원봉사상·밝은사회클럽 세계평화봉사대상 연예인봉사부문 ▲2010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나눔봉사부문·글로벌 피스 리더스 콘퍼런스 코리아 평화의 새 ▲2009 대한민국 나눔대상 통일부장관상·통일문화대상 화해협력부문·하이원 서울가요대상 공연문화상 ▲2008 잡지인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상·한국방송대상 가수상·촛불상 ▲2007 대한민국 국회대상 특별상·아산상 사회봉사상 ▲2002 기자들이 뽑은 2001년 최고의 선행 연예인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가수 김장훈이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문화와 스포츠로 우리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다"며 엄지를 치켜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06-01 신창윤

[인터뷰… 공감]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한중FTA·크루즈관광객 증가 '인천항 세계적 물류·해양관광 거점' 발전 전망섬관광 활성화 해수부서 적극지원… 동력 부족 덕적도 마리나 사업은 '아쉬움''내항 1·8부두 재개발' 워터프론트 접근보다 인천 아우르는 도시디자인 세워야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인천항이 세계적인 물류·해양관광 거점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중국과 인접해 있고 수도권을 배후에 두고 있어 그 위상과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983년 공직에 입문한 뒤 30여 년을 해운항만청 시절부터 해양수산부까지 부처의 주요 요직을 모두 거친 자타가 공인하는 '해양 전문가'인 김 장관을 24일 오전 세종시 집무실에서 만났다. 5월 31일 바다의 날을 1주일 앞두고 인터뷰에 응한 김 장관은 "수도권의 해양도시인 인천에 해양을 주제로 한 박물관의 건립이 필요하다"며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바다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인천항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인천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1988년도 서울올림픽이 개최될 때 인천항 영접본부장을 맡았다. 그때 당시 소련 선박인 '미하엘 솔로호프'호가 인천항에 입항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인천항은 내항 중심이었으나 이후 남항, 북항, 최근에 개장한 인천 신항까지 많은 발전을 이뤘다. 인천항은 중국과 인접해 있고 서울 등 수도권의 거대 경제권을 배후에 두고 있어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항만이다. 특히 한-중 FTA 체결, 전자상거래시장 확대, 중국 크루즈 관광객의 폭발적 증가 등에 따라 인천항의 위상과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에는 베트남 등 동남아와의 항로도 확대되고 있는 등 아시아역내 물류 허브로의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인천항은 이러한 여건에 맞추어 항로 증심준설, 크루즈부두 확충 등을 통해 세계적인 물류·해양관광 거점 항만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최근 '섬 프로젝트' 등 인천시의 섬관광 활성화 노력은 해양수산부의 해양관광과도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인천의 해양관광과 관련해 부족한 점과 필요한 것이 있다면."수도권의 섬관광을 활성화하는 것은 해양수산부가 지향하는 해양레저관광 활성화와 직결되는 것이다. 수도권에 위치한 인천은 168개의 수려한 도서를 보유하고 있어, 크루즈·마리나 등과 연계한 고부가가치 관광상품을 제공한다면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해양관광 활성화는 해양영토 차원에서도 중요하며, 해수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덕적도를 거점 마리나항만으로 추진하다가 동력이 떨어진 상태다. 다른 지역에서 활발하게 마리나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인천시나 옹진군에서 더욱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마리나와 크루즈는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가 되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인천 내항 1·8부두 재개발사업에 대한 의견은."인천 내항 1·8부두 재개발사업은 인천시·인천항만공사와 함께 사업성 제고방안을 마련하고 현재 사업대상자를 재공고 중인 상태다. 이 사업은 워터프론트 개념으로 접근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박물관이나 기념관 등을 건립해 (해양과 관련한)'의미'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 수도권에 해양박물관이 건립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울진에 국립해양과학교육관이 생기고 있고, 청주에도 해양과학관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도권인 인천에도 반드시 해양박물관이 건립돼야 한다. 아까운 부두에 주차장이나 (일반 상업) 건물을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50년 100년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인천시와 인천항만공사·인천지방해양수산청이 주인의식을 갖고 (내항 재개발뿐 아니라) 인천 전체를 아우르는 도시 디자인을 세워야 한다. 알프스의 주택이 아름다운 이유는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다."-해운업 위기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는지."전 세계적으로 해운산업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선사 간 인수·합병, 해운동맹(얼라이언스) 재편 등 해운시장 재편이 급속하게 진행 중이다. 특히 최근 Ocean 얼라이언스와 THE 얼라이언스가 결성되는 등 기존 4대 얼라이언스 체제가 3대 얼라이언스 체제(기존 2M 포함)로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적선사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모두 경영정상화를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진해운은 'THE 얼라이언스'에 편입되었으나, 현대상선은 이번 얼라이언스 재편에서 배제된 상황이다. 다만 현대상선도 금년 9월까지 재편입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여, 현대상선의 구조조정을 신속히 마무리하고 신규 얼라이언스에 편입될 수 있도록 정부와 채권단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해운위기로 인해 부산항은 환적화물의 비중이 많기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인천항에 대한 영향은 적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범 중화권'인 오션 얼라이언스로 인해 (중국과 가까운)인천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인천에서 해양부문이 발전하기 위한 인천시와 인천항만공사의 역할은."청소년이 우리의 미래이듯 바다가 우리 삶의 미래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인천시와 인천항만공사·인천지방해양수산청이 함께 해양관련 장기적인 비전과 철학을 세워야 한다. 각 기관이 함께하면 분쟁과 갈등이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바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토대로 인천시의 모든 정책이 해양과의 연계 속에서 이뤄지고, 승화돼야 인천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인천의 송도가 아름답게 발전하고 있는데, 인천시가 완전히 탈바꿈하려면 해양 친화적인 도시정책이 어우러질 때 다시 태어날 수 있다."-바다의 날을 기념해 열리는 '바다그리기 대회'가 올해 19회를 맞는다. 6만여 명의 참여 학생과 학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이번 바다그리기 대회를 통해 청소년들이 그려낼 바다의 모습이 어떤 모습일지 참으로 기대된다. 미래세대의 주역인 청소년이 바다의 중요성과 해양사상을 상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올해 바다의 날은 '바다를 품다, 미래를 담다!'를 주제로 전남 순천만 국가정원에서 행사가 개최될 예정이다. 전국 주요 해안도시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직접 바다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해양문화 행사가 열릴 계획이니 많은 참여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경인일보에도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국가의 해양수산 정책을 지역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큰 틀에서 바라봤으면 한다. 인천이나 부산의 언론이 해양수산 관련 기업·단체에 영향을 미친다. 조화와 균형을 바탕으로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정부의 정책을) 이끌어 주기를 부탁드린다."■김영석 해수부 장관은1982년 경북대 행정학과 졸업1984년 행정고시 합격(27회)1988년 동해지방해운항만청 해무과장2001년 해양수산부 해양정책국 해양개발과장2008년 해양수산부 해양정책국장2013년 대통령실 해양수산비서관2014년 해양수산부 차관2015년 제17대 해양수산부 장관 취임 대담/장철순 인천본사 편집국장 · 정리/정운기자 jw33@kyeongin.com ·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이 24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수도권의 해양도시인 인천에 해양을 주제로 한 박물관의 건립이 필요하다"며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바다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6-05-24 정운·장철순

[인터뷰… 공감]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곽선근 경기지역 총감독

'원행을묘정리의궤'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220년 만에 능행차 '완벽 재현'서울 등 지자체와 공조… 경기지역서 25.4㎞ 맡아 1830여명 인력·240필 말 동원'18C 조선최고 생활문화 부활' 한국 대표축제·세계무형문화재 등재 가능성 활짝수원화성 축조 220주년을 맞는 올해 수원시의 숙원사업이던 '정조대왕 능행차'가 원형대로 복원된다. 조선 22대 왕 정조(1776-1800)는 재위 24년간 모두 13차례에 걸쳐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참배하기 위해 수원 화성행궁을 찾았는데, 수원시 등은 이중 가장 큰 규모로 이뤄진 세계문화유산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묘사된 1795년(정조 19년) 능행차를 오는 10월 8일과 9일 이틀에 걸쳐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반쪽짜리에 그치며 아쉬웠던 정조대왕 능행차가 220년 만에 원형대로 복원된다는 소식에 기대감도 여느 때보다 크다. 특히 원형 복원으로 정조대왕 능행차는 수원 등 지역의 국한된 지역 행사를 넘어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첫 줄을 장식할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경기지역 총감독을 맡은 곽선근 감독을 지난 16일 만났다.-최초로 진행되는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 재현에서 경기지역 총감독을 맡았다. 사명감과 책임감이 클 것 같은데 기분은 어떤가."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누구보다 기뻤다. 1996년부터 2011년까지 수원에서 진행된 정조대왕 능행차를 감독하고 이끌어 오면서 서울 창덕궁부터 수원 화성행궁까지 46㎞에 이르는 능행차의 원형이 복원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사실 그간 열린 정조대왕 능행차 연시 행사는 여건상 지역 안에서 이루어지면서 지역 문화 축제로서는 높은 성과를 이뤘으나, 원형이 그대로 복원되지 않아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학계에서도 정조의 화성행차 결과 보고서인 '원행을묘정리의궤'가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됨에 따라 이를 활용한 원형복원 필요성의 목소리가 컸다. 이에 기회가 주어진 만큼 완벽하고 성공적인 재현을 이룰 것이다. 사명감과 책임감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잠도 잘 오지 않을 정도지만 정조대왕 능행차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나 한 몸 희생할 각오는 돼 있다."-정조대왕 능행차 재현까지 5개월 남았는데, 진행 상황은 어떠한가."추진 일정에 따라 행사 기본 계획안이 확정됐고, 연출 및 운영인력계획 정도 등이 수립된 상태다. 아직 시간이 남았고 다음 달 지자체 간 MOU 체결 후 본격적으로 행사 준비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경기지역에서는 안양행궁-사근참행궁-지지대고개-만석거-화성행궁-연무대로 이어지는 25.4㎞를 맡아 진행하고 1천830여명의 인력과 240필의 말을 동원할 예정이다. 다음 달에는 출연진 선정 및 1차 접선을 완료할 계획이다. 운영 매뉴얼 및 시나리오 작성, 홍보물 제작도 다음 달 이후 진행된다. 이에 함께할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으니 많은 참여를 부탁한다." -처음으로 서울시와 공동재현하는 만큼 우려도 큰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수원에서는 지난해까지 총 20회의 정조대왕 능행차를 재현해 왔다. 물론 수원에 국한돼 진행됐지만 수십년간 쌓아온 노하우는 그 누구보다도 많다고 자부한다. 때문에 서울 등 지자체와의 협조만 원활히 이뤄진다면 정조대왕 능행차를 원형으로 재현하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수원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것들이 있나."능행차는 서울에서 시작되고 수원에서 종료된다. 때문에 염태영 수원시장 등 시가 강조하는 것이 수원에서 펼쳐질 피날레 행사를 타 지자체보다 더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할 계획이다. 220년 전 정조도 수원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및 진찬연 등 잔치와 특별 과거시험을 진행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말할 수 없지만 올해 원형을 그대로 복원하는 만큼 수원만의 행사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이 갖는 역사적·문화적으로 가치가 클 것 같은데, 어느 정도인가."1795년 정조대왕 능행차는 단순한 전통문화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세계문화유산(유네스코)으로 등재된 창덕궁과 수원 화성을 연결할 수 있는 무형문화라는 점에서 소중한 가치를 가진다. 특히 정조의 화성행차 결과보고서인 '원행을묘정리의궤'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됨에 따라 이를 활용한 원형복원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사실 '원행을묘정리의궤'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배경은 그 속에 실린 내용의 중요성 때문만이 아니라 오늘날 다시 복원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를 토대로 원형 복원을 추진한다면, 18세기 후반 조선 최고의 생활문화를 생생하게 복원하는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정조의 화성행차와 8일간 추진했던 각종 행사들 역시 그 자체가 역사체험의 장인 동시에 격조 있는 전통문화를 선보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외에도 조선 후기 최고의 애민군주인 정조가 백성과 함께 한 능행차는 오늘날까지도 귀감이 될 수 있는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사료에 따르면 정조는 능행을 통해 상공업발달로 사회변동이 활발한 수원을 직접 방문해 사대부와 백성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실제 능행 시 백성들의 말을 직접 듣는 상언(上言)과 격쟁(擊錚)을 제도화했다. 정조의 능행 중에만 상언과 격쟁이 3천355건이 진행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최근 전통문화를 활용해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축제문화의 발굴 필요성이 높아진 시점에서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점들에서 정조대왕의 능행차는 한국의 대표축제가 될 가능성이 높은 한편, 동시에 세계무형문화재로 등재될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조대왕 능행차를 세계적인 축제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인가."처음 공동으로 재현하는 만큼 올해는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올해를 시작으로 점차 자리를 잡으면 세계무형문화재 등재 및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어떤 나라도 46㎞에 달하는 왕의 능행차를 원형 그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동원되는 인원과 말만 해도 각각 5천여명, 480필에 달한다. 대규모 행사로 손색없기에 몇 년 후에는 충분히 세계문화로 알려져 수원을 세계문화유산의 도시·글로벌 관광도시로 한 단계 성장시키는 데 한몫을 할 것이다." -능행차 재현에 따른 효과,특히 수원에 어떤 효과를 줄 수 있는가."앞서 언급했듯이 큰 틀에서 ▲화성행차의 원형 복원을 통한 무형문화재 창출 ▲18세기 왕실행차의 복원을 통해 살아있는 역사체험과 교육장 제공 ▲전통문화에 의한 거리축제를 통해 지역 소통과 국민 통합에 기여 ▲세계문화유산 창덕궁과 화성에 대한 국내외적 관광 활성화 ▲애민정신 재인식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대표축제 정착으로 인한 국가 이미지 제고 등의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더구나 올해는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이 축성된 지 2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이와 함께 수원화성이 국내에서 31번째로 '수원화성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기존 관광특구와 다르게 이름을 붙인 것은 수원관광의 중심이 되는 수원화성을 부각 시키자는 시민 의견을 반영했다. 올해가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인 만큼 수원화성에 더 많은 관광객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수원이 관광 선진도시로 격상될 수 있는 도약의 계기를 만들려고 한다. 지난 20여년 동안 수원시는 수원화성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복원사업을 추진해왔는데 이런 노력 덕분에 최근에는 연간 450만~500만명의 관광객이 수원 화성을 다녀가고 있다. 더 많은 관광객이 수원을 찾는다면 관광자원 확충과 외래 관광객 확대에 따른 일자리 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 역시 기대된다. 때문에 정조대왕 능행차 등으로 많은 관광객이 수원화성을 방문하도록 해 수원의 진면목을 부각시킬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관광산업의 진흥은 관광객의 방문과 소비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외에도 지역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 삶의 모습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원화성 관광특구와 방문의 해인 올해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사업 등을 통해 수원시가 글로벌 관광도시로 도약해 다시 찾는 도시로 거듭나고, 궁극적으로는 지역민의 삶의 질도 향상되길 바란다. 이에 지역민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많은 참여를 부탁한다."◈곽선근 능행차 공동재현 경기지역 총감독은?■약력1962년 7월 25일생 경기대학원 범죄학 수료1997년 ~ 현재 정훈커뮤니케이션 운영2016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경기지역 총감독 ■주요활동1996~2011년 수원화성문화제 정조대왕 능행차연시 총연출 (수원문화원)2002~2011년 수원화성문화제 시민퍼레이드 총연출 (수원문화원)1996~2010년 정조대왕 선발대회 총연출 (수원문화원)1999~2003년 수원화성 수문장 교대의식 연출 (수원문화재단)2004~2013년 정조대왕 능행차길 체험순례 총연출 (수원문화원) 2007~2011년 화성행궁상설한마당 (5년간 상설 정조대왕 능행차) 연출 (수원문화재단)2002년 한·일 월드컵 32개국 만찬장 행사 연출 (월드컵조직위원회)2009년 일본 아사이가와시 자매결연20주년 정조대왕 능행차연시 총연출(수원시)글/황준성기자 yayajoon@kyeongin.com · 사진/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최초로 진행되는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 재현 경기지역 총감독을 맡은 곽선근 감독이 수원화성에서 "정조대왕 능행차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나 한 몸 희생할 각오는 돼 있다"며 포부를 밝히고 있다.

2016-05-17 황준성

[인터뷰… 공감] 더케이 서울호텔 신현태 사장

다양한 콘텐츠 통해 다시 찾고싶도록 하는것 중요면세시스템 갖춘 일본처럼 '관광산업 활성화' 노력수원화성 등 경기도 자원 홍보… 해외관광객 맞아야더케이(The-K) 서울호텔 신현태 사장. 경기도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지난 16대 국회의원으로 여의도 정치권에 입성한 수원 사람이다. 풀뿌리 지방의회를 거쳐 국회의원 시절, 하도 부지런해 '일 복 많은 선량'으로 평가받곤 했다. 소탈한 성격에 이웃집 아저씨 같아 주위에 사람이 많이 모였고, 4년 임기 동안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개척 활동 지원에 매진해 왔다. 수원 권선구 고색동 산업단지를 유치한 장본인이며, 항시 도내에서 제조된 제품을 들고 다니며 홍보할 정도로 국산 예찬론자이기도 했다. 이후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여러 번 부침을 겪었지만, 자신이 꾸려온 국회 재외동포 경제정책연구회와 세계 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상임고문, 국제통상전략연구원 이사장 활동의 연장선에서 쉼 없이 성실한 인생을 살아왔다. 교직원의 기금으로 운영되는 더케이 서울호텔 감사에서 사장에 오르기까지 여정도 장인정신을 높이 사는 기업가적 철학과 청년 같은 열정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올해 일흔인 그는 기업인에서 정치인, 그리고 다시 호텔 경영인으로 변신했음에도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자신감과 패기가 넘쳐났다. 지난 2일 오후 인터뷰를 하기 위해 서울 양재동 더케이 호텔 사장실을 찾았을 때도 수원 장로 합창단과 다음날 독일 순회공연을 떠나는 일정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는 호텔 경영에 대해 "잠자는 공간에서 문화를 파는 호텔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 문화에 배팅할 때"라고 일갈하며 한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했다.-국회를 떠난 지 오래됐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 발전을 위해 열심히 뛰었고 나름의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당시 수원 고색동에 산업단지를 유치한 덕분에 현재 일자리가 많이 창출됐을 뿐 아니라 지역경제 발전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또 중소기업지원센터 활성화를 추진해 지금의 광교신도시 조성으로 이어져 뿌듯함을 넘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이후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재임하면서 고양에 한류우드단지를 조성하는 등 경기도 관광 발전을 위해 다양한 일을 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더케이호텔 상임감사로 부임해 활동하게 되었고, 뭔가 호텔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보고자 하는 욕심이 생겨 지난 2월 사장직 공모를 통해 취임했다."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다시 기업인으로 돌아왔는데 어떤게 본인에게 더 잘 맞나."개인적으로 기업 경영 쪽이 더 잘 맞지 않았나 싶다. 정치 쪽은 상대적으로 뭔가 일을 하는 데 있어 제약도 있고 성취감 면에서도 조금 덜 한 측면이 있다. 뭐 하나 하려면 이런저런 반대에 부딪히고, 내가 어느 정도 이상의 궤도에 올라가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제한돼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기업 경영의 경우 책임이 뒤따르긴 하지만 우선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바로바로 실행시킬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더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정치인으로 다시 기회가 온다면. "사람은 누구나 꿈이 있는 법이니까 의향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웃음) 우선은 지금 주어진 일에 열중하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경기관광공사 사장과 지금은 호텔을 경영하고 있는데 경기도 등 지역 관광 산업의 전망은 어떤가. "지난 달 일본 출장을 다녀왔는데, 일본은 관광객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추세다. 2020년까지 관광 유입인구를 2천만 명으로 계획했지만, 이를 5천만 명으로 대폭 늘려서 대비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도 관광객 수요를 늘리려면 그에 걸맞게 숙박시설도 갖춰야 하고, 일본처럼 저렴하게 잠만 자고 갈 수 있는 저가여행 상품도 개발해 다양한 수요에 맞게 대비해야 한다. 관광은 기본적으로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 등 3가지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유커의 비중이 커졌는데 이들이 한국을 많이 찾고는 있지만 실제 제주도를 관광지로 많이 찾고 서울에는 쇼핑을 하러 가는 정도다. 경기도는 서울에 인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발길이 많이 닿지 않고 있다.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인 정책을 개발해서 유커를 비롯한 해외 관광객들을 경기도로 끌어당겨야 한다. 경기도에도 수원화성, 민속촌, 임진각 등 훌륭한 관광자원이 많기 때문에 이를 효과적으로 홍보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지역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어떤 뒷받침을 해야 하나. "앞서 언급한 일본 출장에서 또 느낀 것 중 하나가 면세점이다. 일본은 면세점이 5천 개에 달한다고 하는데, 지역마다 최소 8% 이상 면세를 해주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굵직한 면세점만 몇 군데 둘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면세점을 많이 확보해주는 것도 지역 관광을 살리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면세점은 규제가 많은데 어떻게 해소해 나가야 하나. "일본은 일반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도 여권을 제시하면 할인해주고 있다. 우리도 면세점 확충을 통해 관광산업을 활성화 해야 한다. 경기도만 해도 이천 여주 도자기 판매점이나 판문점 등 훌륭한 장소가 많지 않은가. 비단 명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개발한 질 좋은 제품들을 판매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는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면세점 내 일정 부분 우리나라 물건을 팔도록 의무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정 장소에만 가야 면세를 해주고 명품만 쌓아놓고 파는 시스템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호텔을 경영하면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관광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고유의 문화를 알리고 훌륭한 먹을거리를 소개해서 다시 찾고 싶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전략적으로 구사해야 관광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호텔도 마찬가지다.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스스로 다짐한 부분이 바로 '문화를 파는 호텔'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지금의 시대에서는 문화에 대한 강력한 배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 분야를 전공한 재능있는 청년들이 창작 기회를 발표할 공간조차 없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호텔 관광 분야에서도 문화를 접목해 이를 시스템화하고 고객과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본다.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을 넘어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그런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호텔을 만들고 싶다." -화제를 바꿔 지금 정치권이 많이 혼란스럽다. 정치 선배로서 조언한다면. "이번 선거를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났듯이 이제는 '통치'가 아닌 '협치'가 필요한 때다. 국민들은 대화와 소통을 중시한다.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여야 의원들은 대화와 합의를 통해 발전적인 방향을 찾아야 한다. 과거 내가 의원 활동할 때도 여야는 항상 싸웠다. 하지만 그때는 싸울 땐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나중에 밤을 새워서라도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았다. 그게 정치다. 자주 만나고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역지사지의 마음이 생기고 소통의 물꼬가 트인다. 이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국민들도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준다. 지금 정치인의 신뢰가 많이 떨어진 상태인데 이런 때라면 중진급 의원들이 앞장서서 소통을 실천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직원들과의 소통은 잘 하고 있는가. "경영자와 직원 간 소통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300명에 이르는 전체 직원들과 소통에 나서야겠다고 마음먹고 한 명 한 명 만나기 시작했다. 매일 오전 1:1 면담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 자리에서 회사에 바라는 점, 부서 건의사항, 회사의 발전 방향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처음엔 사장과 단 둘이 대면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차츰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제는 직원들이 밖에 나가서 자랑도 한다고 들었다. 면담할 때 직원들한테 꼭 해주는 말이 있는데, '하기 싫은 일은 변명이 생각나고,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인다'는 말이다. 잔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열정을 갖고 해보겠다고 덤벼들면 방법이 생긴다고 믿는다. 직원들도 이 말을 새기고 자신의 주어진 일에 열심히 임한다면 분명 발전할 것이다. 직원들과의 소통은 사장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계속 해나갈 것이다." -어떤 사장으로 기억되고 싶나. "그때 그 사람. 있을 때 잘해. 언뜻 노래 제목 같지만 난 이 말을 참 좋아한다. 나중에 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 분은 참 존경할 만한 분이야'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어딨겠는가. 떠난 뒤에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있을 때 잘 하자'라는 마인드를 항상 마음 속에 되새긴다. 이제 석 달 됐는데,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한 51점 정도. 하지만 이제부터 열심히 노력한다면 점수를 더 많이 딸 수 있지 않겠나(웃음)."■신현태 사장은?-1946년생 (71세)-공영물산 대표이사-수원YMCA 부이사장-수원시 새마을지도자협의회 회장-바르게살기운동 수원시협의회 회장-제45대 경기도의회 의원(한나라당)-제29대 수원로타리클럽 회장-제16대 국회의원(수원 권선, 한나라당)-前 경기관광공사 사장-現 더케이(The-K)호텔앤리조트 사장 (2016. 2~) 대담·정리/정의종 부장·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사진/더케이호텔 제공지난 2월 더케이(The-K)호텔앤리조트 대표로 취임한 신현태(70) 사장이 '문화'를 중시하는 자신의 경영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6-05-10 황성규·정의종

[인터뷰… 공감] 최창섭 서강대 명예교수

엄마가 아이에게 젖먹이듯 조건·대가를 기대하지 않는것공동체 살리는 '인성+품앗이 운동' 나눔의 씨앗 통해 열매선조들의 지혜, 경기도 풀뿌리 정신문화로 자리매김 했으면지금 우리 사회엔 철학이 없어요. 사회가 이기심으로 가득하고 혼탁해. 세월호 선장 봐요. 승객을 두고 혼자 살려고 몰래 빠져나온 건 이기주의의 극단이죠. 우리 모두 목격했으니 이제는 이를 극복해낼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거지. 난 그 답이 품앗이에 있다고 봐요.최창섭 서강대 명예교수. 미디어 분야 대표적인 학자이자 논객으로 얼굴이 알려진 언론학계의 석학이다. 그런데 최근 그의 관심은 온통 '품앗이'에 쏠려있다. 국회품앗이포럼 공동대표라는 낯선 직함을 달고 3년째 '품앗이 운동'을 벌이고 있다. 20년 전 고(故) 이동원 내무부 장관이 품앗이를 전파하기 위해 만든 '(사)H10O품앗이운동본부'의 부탁으로 특강을 하면서부터다. 최 교수는 우리 전통인 품앗이에 대한 개념을 정립해 달라는 본부의 요구에 자료를 찾았지만 책 한권 없고 논문 몇편이 전부라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품앗이의 길'을 저술하면서 그 스스로 품앗이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최 교수가 생각하는 '품앗이'의 시대적 의미와 현대적 변주 가능성을 탐문해 봤다.품앗이는 일손이 부족할 때 이웃농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일로 갚는 노동형식이다. 농경시대를 살던 조상들의 삶의 지혜라고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이 난다. 그런데 품앗이가 산업화·도시화된 현대에 적합할까. 좋은 걸 몰라서 안 한 게 아니라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는 '유물'아닐까. 아니라면 너무 이상적이거나···. 반신반의, 의문을 하나가득 품고 최 교수의 얘기를 먼저 들어봤다."품은 일·노동·수고를 뜻하고, 앗은 받아들임을 뜻합니다. 즉 상대방이 제공하는 '수고'를 고맙게 '받아들인다'는 의미죠. 이건 기본적으로 '한쪽이 일방적으로 줌'을 뜻합니다. 주는 사람이 후에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고, 주고, 또 주는 것이 품앗이인 겁니다. 따라서 이는 영어권의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와는 전혀 다르죠. 줄 때부터 돌려받을 것을 기대한다면 품앗이가 아닙니다."한쪽의 일방적인 희생? 그렇다면 품앗이는 '이상'에 가까운 것 같다. 최 교수는 부정 대신 이솝우화 같은 얘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대신했다."어느 날 손이 입에게 말합니다. 난 얻는 것도 없이 매일 너한테 먹을 것을 넣어주고 있어. 넌 좋겠다, 매일 맛있는 걸 먹어서. 입이 어처구니 없다고 답하죠. 나도 먹는 것 하나 없어. 모두 잘게 부숴서 위에다 내려줬을 뿐이야. 위야, 넌 좋겠구나. 거저 얻어먹어서. 비아냥대는 말을 들은 위가 기분이 언짢아져 대꾸합니다. 나도 얻는 건 없어! 혈관 이곳저곳에 공급했을 뿐 도대체 나도 내가 뭘 얻었는지 모르겠네. 서로 상대를 위해 대신 일해 줬다며 생색내던 손과 입과 위는 결국 서로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기로 합니다. 손은 입에 먹을 것을 안 넣어주고, 입은 안 씹고, 위 역시 혈관으로 공급하는 일을 중단한 거예요. 그러자 손이 기력이 빠져서 더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제야 손은 아무것도 얻고 있지 않았지만 사실 모든 것을 얻고 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품앗이도 이와 같은 이치인 거죠."품앗이로 움직이는 사회는 인체와 같다는 비유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줌'으로써 주는 쪽이 손해인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도 모르는 새 받게 된다는 것. 인체가 신비롭게 아귀가 맞아 돌아가는 것처럼 품앗이 사회는 모두가 일방적으로 줌으로써 아귀가 맞아지는 것이다. 최 교수는 모자관계도 품앗이라고 설명했다.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줄 때 뭘 기대하고 주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엄마한테 젖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죠. 세대가 세대를 이어서 품을 나눠줌으로써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그렇다면 품앗이는 기부(donation)의 일종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최 교수는 손사래를 친다. "기부와도 다르죠. 기부는 대상을 모른채 주는 것이지만 품앗이는 분명한 대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키부츠와도 다르죠. 키부츠는 공동노동을 통해 똑같은 양의 결과물을 가져 가지만 품앗이는 획일적이지 않습니다. 2013년 유네스코가 세계무형문화재에 등재한 김장문화를 보세요. 같은 아낙네들이 김장을 하지만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죠. 공동으로 하지만 획일문화가 아닙니다. 개성을 존중하죠. 그래서 품앗이는 세계 다른 용어로 번역을 할 수가 없어요. 품앗이는 Pummasi(품앗이 발음을 영문으로 옮긴 것)인 겁니다."누군가에게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주는 품앗이가 각자의 삶을 살기 바쁜 시대에 실현 가능할까. (사)H10O품앗이운동본부는 품앗이 운동을 'Thank you from Korea'라는 행사를 통해 하고 있다. 해외의 한국전 참전용사를 찾아가 66년전 한국전쟁에 품을 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며 그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 행사는 감동 그 자체라고 최 교수는 전한다. "한국전에 참여한 공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우리가 그들에게 정성 들여 감사를 표하는 자립니다. 그 자리에 우리는 '품앗시드(seed)'를 데리고 갑니다. 본부에 회원으로 있는 어린이들과 동행해 참전용사의 품앗이가 세족식이라는 품앗이로 바뀌어 전달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감동을 아이들이 같이 느끼게 하는 것이죠. 이것을 품앗시딩(seeding)이라 부릅니다."최 교수가 말하는 품앗이운동의 핵심은 품앗시딩에 있다. 그의 저서 '품앗이의 길' 초반에 '노인과 손주를 위한 과일나무'라는 글이 나온다. 등이 굽은 노인이 과일나무 묘목을 심자 지나가던 나그네가 언제쯤 그 열매가 열리겠느냐 묻는다. 노인이 한 10년쯤 걸릴 것이라 답하자, 나그네는 웃으며 오래 사셔야겠다고 농을 건넨다. 노인은 어렸을 적 과수나무에 과일이 많이 열렸다며 "그 나무들은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심은 나무들일세. 나의 아버지는 생전에 저 나무들의 열매를 맛보신 적이 없었지. 이제 내가 심은 이 나무의 열매는 내 손주들이 맛볼 수 있지 않겠나('품앗이의 길' 21쪽)"라고 말한다. 조건없이 남에게 주는 품앗이 운동은 사실 주는 당사자가 직접 되받지 못할 테지만 그 행위가 씨앗을 뿌려 우리 후손들이 열매를 따먹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한편 그것은 지금 우리가 품앗이 씨앗을 뿌리지 않는다면 우리 후손들은 거둘 것이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인성을 머리에, 품앗이를 육체에 비유한다. 사람의 마음인 인성은 보이지 않지만 품앗이라는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품앗이는 '인성이 드러나는 행동'이기 때문에 책으로 학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품앗이는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할 때 의미가 생성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식이 부모의 품앗이 행동을 보고 느껴 배우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품앗이 운동을 '인품운동'이라 부릅니다. 인성과 품앗이의 줄임이기도 하지만 인품을 살리는 운동이기도 한 것이지요." 최 교수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갈 것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만드는 현장에서 함께 호흡했으면 좋겠다"고 부모의 역할을 강조했다. 품앗이는 돌아보면 요즘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현존한다. 강원도 양양의 한 마을이 품앗이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얹는 데 가장 연로한 집의 이엉부터 엮어 얹어주는 것이나, 서울시 동작구에서 지역화폐와 품앗이 통장을 매개로 마을공동체 사업을 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꼭 품앗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더라도 엄마들이 '맘카페'를 통해 공동육아 당사자를 찾아 품을 나누는 것이나, 농협이 농번기에 조합원을 위해 일손돕기를 나가는 것도 언제 돌려받을 것을 약속하지 않은, 품앗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품앗이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이 모든 행위는 필요에 따라 어디선가 이뤄지고 있는 것인데, 굳이 품앗이란 이름을 붙여야 하는 걸까. 최 교수의 답변은 명쾌하다. "가는 길을 제시하자는 거죠. 우리는 우리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 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름을 붙이면 방향성이 생기고 그러면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도 더 그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는 "품앗이 운동이 경기도에서 먼저 확대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품앗이는 우리 조상들이 수천년 간 다듬어온 지혜이며 독자적인 것입니다. 우리 철학으로 세우고 전 세계인에게 '따를 만한 것'으로 제시해 세계인의 역사로 삼을 만하죠. 경기도는 이기심들이 부딪히는 무대이면서 각 지역의 품앗이가 살아있는 현대적 고장이기 때문입니다. 각 지역의 문화원들이 나서 품앗이정신을 계승하는 지역을 발굴하고 격려한다면 품앗이가 풀뿌리 운동으로 퍼져나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최창섭 서강대명예교수는?(현)서강대 명예교수(언론학 박사)국회품앗이포럼/아카데미 공동대표미디어·콘텐츠학술연합 공동의장(학위)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 언론학교육 박사호주 라트로브대 언론학 박사(학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서강대 언론대학원장, 사회과학대학장, 대외협력실장, 부총장, 총장 대행 역임(언론계)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지역신문발전위원장(사회활동) 맑은물되찾기운동연합회 총재, 클린피아 총재, 클린콘텐츠운동연합 회장, 미디어·콘텐츠학술연합 공동대표. 글/권순정기자 sj@kyeongin.com ·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3년째 품앗이 운동을 벌이고 있는 최창섭 서강대 명예교수는 "품앗이는 우리 조상들이 수천년 간 다듬어온 지혜이며 독자적인 것"이라며 "우리 철학으로 세우고 전 세계인에게 '따를 만한 것'으로 제시해 세계인의 역사로 삼을 만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6-05-03 권순정

[인터뷰… 공감] 김형기 셀트리온 대표이사 사장

가이드라인 없이 세계 첫 항체 바이오시밀러 도전장 '유럽·미국 첫 승인' 결실국내 자금조달 쉽지않은 부분… 국내 벤처산업에 '능력갖춘' 앵커기업 나와야전체 매출중 국내 비중 3% 불과한데 '대기업집단' 지정돼 60가지 규제 '부담'지난 2000년 인천 연수구청 조그만 사무실에 한 벤처기업이 문을 열었다. 자본금은 5천만원. 대우그룹에서 근무하던 6명은 회사를 떠나 함께 회사를 설립했지만, 뚜렷한 사업 계획은 없었다. 사무실에 앉아 '우리는 어떤 사업을 해야 할까?'라는 주제를 놓고 토의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회사가 16년 만에 국내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시가총액만 12조원을 넘어섰다. 국내 기업 생태계에서 보기 힘든 성공 신화를 쓴 셀트리온의 김형기 대표이사 사장은 "미래를 보는 통찰,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눈이 성공의 원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바이오의약품 위탁 생산(CMO),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 개발 판매 등 미래 먹거리를 먼저 보고, 이를 선점한 것이 현재의 셀트리온을 만들었다는 것이 김 사장의 이야기다. 셀트리온 설립 초기부터 서정진 회장과 함께 기업의 성장을 이끌었지만 김 사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글로벌 제약사 기준으로 보면 아직 셀트리온은 '스타트 업' 규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신약을 개발해 매출액 10조·20조원 수준까지 기업을 성장시켜 세계 바이오 제약 산업을 끌고 가겠다고 했다.-법인 설립 후 16년 만에 자산 규모가 5조원을 넘어서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소회를 말해달라."우리가 선택한 업종이 힘든 업종이었다. 투자금을 회수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극복했고, 투자자나 금융기관에서 우리를 믿고 신뢰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셀트리온의 성장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더 많다. 자산 규모가 5조원을 넘어섰다고 하지만 글로벌 제약사 기준으로 보면 조그만 업체다. '스타트 업'과 비슷한 정도다. 매출액 10조·20조원 이익을 낼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해야 한다. 바이오 제약 산업에서 세계시장 경쟁력까지 끌고 가야 한다."-셀트리온의 성장 원동력은 무엇인가."셀트리온은 처음에 바이오의약품을 위탁 생산하는 CMO라는 사업을 했고,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 부문에 도전했다. 궁극적으로는 신약을 개발할 것이다. 우리가 도전했던 분야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없던 것이다. 우리는 CMO 분야에 2002년부터 2007년 첫 매출이 발생할 때까지 3천500억원을 투자했다. 국내 최대 제약사의 연간 매출이 7천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투자 규모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처음에 우리의 투자를 믿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삼성에서도 우리를 따라오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분야도 처음에 사람들이 '사기'라고 이야기했다. 항체 구조가 굉장히 복잡해 이를 카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바이오시밀러 승인과 관련한 가이드라인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도전했고, 2009년부터는 주요 다국적 제약사가 우리를 따라왔다. 결과적으로 셀트리온은 유럽 최초로 항체 바이오시밀러 승인을 받았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항체 바이오시밀러로 처음으로 승인을 받았다. 이제 우리에 대한 의혹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16년 동안 힘들었던 부분이 보상을 받은 건데, 우리는 안주할 수는 없다."-확신을 가지고 목표대로 기업을 운영하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확신을 줬나."결국에는 미래를 보는 통찰, 나무 아닌 숲을 보는 눈이었다. 전문기관의 지원도 큰 도움이 됐다. 2001~2002년에 전문기관 리포트를 보면 2005~2006년이 되면 바이오의약품 개발관련 설비가 부족해 개발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있었고, 셀트리온은 위탁생산을 준비했다. 바이오시밀러의 경우도 오리지널 약의 특허가 언제 끝나는 지가 다 나와 있다. 전 세계적으로 판매량이 많은 '블록버스터' 약의 경우 2010~2011년이 되면 특허가 끝난다고 돼 있어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했다. 바이오시밀러와 관련해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이 '건강보험 재정'의 문제다. 점차 사람 수명이 늘어나고 각국 건강보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이 금융위기로 인한 재정적자로 고생하는데 오리지널 약에 비해 30%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같은 바이오시밀러가 나오면 각국 재정절감 효과가 크다. 안 쓰는 것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남들은 이걸 믿지 않았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온다는 것을 미리 읽었고, 미리 준비해서 성공했다. 셀트리온 그룹 서정진 회장의 미래를 보는 눈이 탁월했다고 생각한다."-누구나 가는 길을 따라가기는 쉽지만 길을 열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셀트리온의 신화창조를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벤처기업으로 여전히 국내에서 성장하기 어렵다. 제도적으로 개선돼야 할 점은 무엇인가."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파이낸싱(자금 조달)' 부분이다. 국내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렵다. 셀트리온 회사설립 이후 지난해 말까지 쓴 비용을 합치니까 4조원 규모다. 이 중 은행차입금이 5천억원 규모다. 1조5천억원은 해외에서 조달했고, 나머지는 CMO를 통해 번 것과 판권을 팔아서 들어온 것 등이다. 국내 자금조달 노력도 해봤지만, 가지 않는 길을 가다보니 여러 소문이 있고, 국내 금융기관은 산업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다 보니 믿고 투자하지 못했다. 국내에 벤처캐피털이 있지만, 해당 산업의 리스크 분석 능력이 없는 경우 투자를 하지 않는다."-지금 국내 벤처기업 환경은 어떻다고 보나."우리가 경험했던 어려움을 토대로 보면 빨리 국내 벤처산업에서도 앵커 기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국내 모 제약사가 6조원짜리 '로열티' 계약을 했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됐는데 기사를 보면서 오히려 슬펐다. 그 회사가 직접 5천억~6천억원을 조달해 약을 판매할 수 있었다면 6조원 로열티가 아니라 60조원·100조원이 넘어가는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 사업비 조달능력이 없고, 임상 실패할 경우 리스크를 고려해 로열티를 판 건데 한국에도 이를 완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업이 나와야 한다."-셀트리온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했다. 어떤 길로 가려고 하는가. 화장품 사업도 하는데 사업 다각화 방향은."올해 연말까지 2개 제품 승인을 앞두고 있고, 추가 파이프라인 바이오시밀러 개발 계획도 있다. 신약 파이프라인도 개발하고 있다. 제약사의 궁극적 목표는 신약 개발이다. 화장품 사업을 하는 것은 약 개발과 플랫폼이 같아 좋은 물질을 쓸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현재 화장품 마케팅·판매를 담당할 관계사로 셀트리온스킨큐어를 설립하고 마케팅을 본격 시작했다. 브랜드로는 '한스킨'이라고 있다. 올해 하반기쯤에는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할 계획이다. 셀트리온이 4년 동안 개발한 신물질을 넣은 화장품이다. 주름 개선, 미백 등 효과가 있는 고급 '하이앤드' 화장품이다."-셀트리온의 자산이 5조원을 넘어서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대기업집단'에 들어가 각종 규제 적용을 받게 됐다. 기업 입장에서 체감하는 규제수준이 어떤가."대기업집단 지정에 따라 27가지 법령에서 규정하는 60가지 규제가 따라 붙는다. 상호출자 금지, 신규 순환출자 금지, 신용공여 금지, 지급보증 금지, 세액 공제 축소 등이다. 우리 공정거래법 근본 취지는 예전 제조업 기반의 재벌들이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것을 막고, 공정 경쟁으로 가자는 것이다. 하지만 셀트리온의 경우 지난해 전체 매출 대비 국내 비중이 3%에 불과하다. 나머지를 해외시장에서 한 것인데, 모든 산업을 자산만을 기준으로 대기업집단에 넣어 규제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김형기 (주)셀트리온 대표이사 사장은?-1965년 충청남도 당진 출생-1982년 수원고등학교 졸업-1986년 서강대학교 졸업(정치외교학 학사)-1996년 미국 미시간대학교 MBA(University of Michigan, Business Administration)-1986~2000년 대우자동차 근무 (1996년 과장 진급, 전략기획팀장(차장))-2000~2005년 (주)넥솔(현 셀트리온 홀딩스) 이사-2005년 (주)셀트리온 신규사업부문 -2005년~2010년 (주)셀트리온 전략기획실 -2010년~2014년 (주)셀트리온 기획조정실 -2014년~2015년 3월 (주)셀트리온 사장-2015년 3월~ (주)셀트리온 대표이사 사장 대담/장철순 인천본사 편집국장 · 정리/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 ·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국내 기업 생태계에서 보기 힘든 성공 신화를 쓴 셀트리온의 김형기 대표이사 사장은 "미래를 보는 통찰,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눈이 성공의 원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바이오의약품 위탁 생산(CMO),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 개발 판매 등 미래 먹거리를 먼저 보고, 이를 선점한 것이 현재의 셀트리온을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바이오시밀러 '렘시마'

2016-04-26 홍현기·장철순

[인터뷰… 공감] 박수현 묘향산한의원 원장

탈북 한의사·한의학 박사학위 취득… 끊임없이 '국내1호' 타이틀"모르면 모른다, 양약이 낫겠다" 환자 마음 읽어주는 진솔한 진단'한의사 의료기기 문제'… 시장 확대되면 환자 판단할 기회 "찬성"지난 2002년, 36살의 청년 박수현을 경인일보가 만났다(경인일보 2002년 2월18일자 9면). 그는 탈북자였다. 통역을 부탁한 친구를 따라나섰다가 고향을 등졌고, 중국의 자전거 물결과 고층빌딩에 충격을 받아 남한행을 결심했다. 두만강을 건넌지 딱 열흘만이었다.낯선 한국 땅에서 처음 그를 맞은 것은 같은 동포의 따뜻한 환대가 아니라 의심의 시선과 차가운 멸시였다.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엄격했던 당시의 반공 정서 속에 내던져진 그는 여타 탈북자들이 그러하듯 쌀 속의 겨처럼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다 분리되어 버릴 듯했다. 그러나 그는 남한이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을 고치지 않았다. 청진의대 한의학부에 재학한 경험을 살려 자신을 감시하던 정보과 형사의 지병을 고쳐 준 것이 계기였다. 단번에 그의 팬이 되어버린 형사는 박씨를 경희대 한의학과에 추천했고, 94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생면부지의 영어, 낯선 한자(북한은 전공서적에도 한자를 잘 쓰지 않는다)를 기어이 극복해 2001년 3월 '국내 1호 탈북 한의사'가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이북에서 복무한 부대 이름을 따 성남 모란시장 한구석에 '묘향산한의원'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터전을 세웠다.그 후 14년이 지났다. 28살에 탈북해 만 22년간의 남한 생활, 인생의 양을 재는 저울추가 있다면 남과 북에서 살아온 삶의 무게가 어느 정도 균형점을 이룬 셈이다. 이제는 중년이 된 박수현(50) 원장의 삶도 많이 달라졌다. 1998년부터 3차례에 걸쳐 북에 있던 가족들을 탈북시킨 그는 두 동생에게 한의사의 길을 권유해 이젠 '탈북자 출신 3형제 한의사'라는 명성을 쌓았다. 지난 2010년에는 탈북자 최초로 한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국내 1호' 명함을 한장 더 보탰다.탈북 출신에 화려한 이력을 보고 혹자는 그를 '코리안드림'에 성공한 유명인사쯤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박 원장에겐 여론의 주목을 받는 스타의 향기보단 동네 복덕방 아저씨 같은 구수함이 더욱 짙게 묻어났다. 천천히 걷는 법 없이 늘 종종걸음으로 다니는 그는 인터뷰 사진을 촬영하는 내내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과 인사하기 바빴고,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환자를 살핀다며 불현듯 벌떡벌떡 일어나 등을 보이기 일쑤였다.진료 과정도 희한하다. 진맥하고 침을 놓는 것은 여느 한의원과 똑같아 보이는데 환자도 반말, 의사도 반말이다. 일하다 넘어졌다는 환자의 말에 박 원장이 "그러게 작작 좀 쏘다니지"라고 퉁을 놓자 침구실 가득 박장대소가 터지는 식이다."개원을 한 게 2001년 4월 15일이니 만 15년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오래되니 단골도 많죠. 고령으로 돌아가신 단골들도 많습니다. 병원 운영을 거창하게 하지 않으려고 해요. 환자들은 마음이 편한 게 최우선이거든요. 웬만한 병은 심리적 요인이 크다 보니 가족같이 구는 의사가 좋고 저도 그렇게 하는 게 더 재미납니다." 유년시절을 함경도에서 보낸 박 원장의 입담은 거침이 없다.지난해 대다수 병원을 울상짓게 한 메르스 사태도 묘향산한의원은 비켜갔다. 남한으로 건너온 뒤 그의 인생 지론은 '하고 싶은 대로'다. 한의사로서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이건 차라리 양약을 먹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환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것이 그의 의료 비법이다. 낯빛만 보고도 환자 상태를 가늠하는 베테랑 한의사의 진솔한 진단이 환자들에게 오히려 신뢰를 주는 듯 했다.박 원장에게 지난 14년 동안 달라진 세계관을 듣고 싶다고 물으니 "바뀔 것이 뭐가 있겠냐"며 소탈하게 웃었다. 그러나 파란만장한 인생유전 덕분일까. 남한에 완벽하게 적응한 지금도 그는 여전히 비범하게 움직이고 있다.예를 들면 지난달 23일 게임문화재단 주최 포럼에서 연사로 나선 일이 그렇다. '탈북자'와 '한의사' 그리고 '게임'이라는, 상관관계가 애매한 조합은 한 어린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공부에 통 흥미가 없고 게임에만 매진하고 있어 총명탕이라도 지어 먹이겠다는 엄마를 따라온 어린 환자에게 박 원장은 "니네 엄마가 너 잘되게 하려고 70만 원짜리 약을 지으러 왔어. 근데 그 돈 너한테 주면 너는 약을 지어 먹을래? 게임기를 살래?"라고 대뜸 물었다. 억지로 끌려온 자리에 시종일관 툭툭 대던 아이는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게임기가 갖고 싶다고 말을 했고, 박 원장은 "그럼 얼른 엄마를 안아주고 뽀뽀를 해 줘라. 널 위해서 쓰기로 한 70만 원으로 게임기를 사고 나머지는 엄마에게 맛있는 것을 사 줘라. 그리고 게임기를 놓는 동안엔 공부를 열심히 해라"고 조언했다. 아이는 한의원 문을 나서는 동안 연신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고 아이 엄마도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섰다.그런데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이가 진료를 위해 방문했던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이었다. 박 원장의 말에 감탄한 그는 포럼에서 연설을 해 줄 것을 권유했고, 강단에 선 박 원장은 '게임은 스트레스를 푸는 하나의 좋은 수단일 뿐 좋고 나쁨이 없다. 단지 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과몰입하면 중독이 되는 것이다. 순기능을 확대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청중에게 큰 호응을 샀다. 여담이지만 박 원장 역시 일하는 틈틈이 게임을 즐겨 하고 있다. 모의전투게임 '서든어택'에서 '묘향산'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는 그는 이미 게임 속에서 대령 계급에 오른 고수다. 박 원장은 "누구나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직장을 잡길 바라지만 스트레스에 치인 아이를 더욱 세게 내몬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며 그것을 좀 더 옳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진정한 소통"이라고 말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그의 지론은 자녀교육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갓 20살이 된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던 시절, 박 원장은 아들을 데리고 중학교와 검정고시 학원, 대안학교 등을 돌며 스스로 진로를 선택하게 했다. 보름간 장고한 아들이 검정고시를 선택하자 그는 두말 않고 학원을 끊어줬다."다른 부모들이라면 미친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들도 충분한 고민을 했고, 그런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검정고시 동안 아들이 게임에 빠지기도 했고 공부에 소홀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아들이 원하는 바를 하게 한다는 원칙을 바꾸지 않았고 게임을 하는 아들에게 밥을 떠먹여 가며 자유롭게 키웠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성숙한 아이가 되더군요. 저와도 친구처럼 소통하는 것은 물론이고요."이런 박 원장에게 '헬조선'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사정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는 "대한민국은 지옥이 아니라 기회의 땅"이라며 "살아가는 이들이 지옥으로 느끼는 이유는 부모들이 자식의 삶을 지나치게 한정 짓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그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와는 또 다른 타이트함이 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회적 분위기와 통념 등으로 인해 애당초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과도하게 구분해 놓았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삶도 마찬가지라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즐거움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직업이 있지만 청소년기의 교육부터 '하고 싶은 일'과 '하면 안 되는 일'로 구분하고 있으니 경쟁 속에 내 몰린 삶이 오죽 하겠냐는 설명이다.한의학계의 이슈인 '한의사 의료기기 허용' 문제에 대해선 성남시한의사회 홍보이사라는 직함을 잠시 내려놓고 진솔한 의견을 냈다. 한의사에게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면 오히려 양의사들을 찾는 환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게 요지다. 박 원장이 만 22년의 남한생활 동안 체득한 시장경제의 원리로 봤을 때 의료기기 시장이 확대되면 환자들이 스스로 판단해 전문가를 찾아갈 것이라는 얘기다. 또 박 원장은 같은 이유로 한의학의 영역을 개방하는 데도 찬성했다.애초에 한 번의 모험으로 인생을 바꾼 박 원장이다. 작은 일에 애면글면 사는 인생은 두만강을 넘을 때 끝장낸듯, 인생을 자기 뜻대로 질주하듯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게 미래에 대한 고민은 보이되 걱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행복하시냐'는 질문에도 그는 대답이 필요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더할 나위 없다"고 짧게 답했다. 박 원장이라고 어려운 일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갖고 뒤를 후회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부러운 것이었다. 14년 만에 다시 만나본 그는 남한사람도 북한사람도 아닌 온전한 '박수현'그 자신이었다. ■박수현 묘향산한의원 원장은?1989년 2월 청진의대 한의학과 입학1993년 10월 두만강을 건너 탈북해 중국을 경유, 한국 정부에 귀순1995년 2월 경희대학교 한의학과에 2학년으로 편입1996년 12월 강선덕씨와 결혼1999년 2월 부모와 형, 두 동생까지 탈북 후 귀순2001년 3월 탈북자 출신 국내 1호 한의사 자격증 취득2001년 4월 성남 모란시장에서 '묘향산한의원' 개원2010년 2월 탈북자 최초로 한의학 박사학위 취득 글/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지난 2001년 3월 '국내 1호 탈북 한의사'가 된 탈북 한의사 박수현(50)씨가 18일 오후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 묘향산한의원에서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소개하며 웃음짓고 있다

2016-04-19 권준우

[인터뷰… 공감] 최동호 시인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서정시는 가장 강렬하고 아름답고 깊숙한 소통의 수단'인공지능의 세상' 인간이 인간적인 면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시인협회장 임기 2년간 시쓰기 운동… 내년 남북시인대회 문인교류도 추진아직 이세돌 九단과 알파고가 대국을 시작하기 전인 3월 초, 최동호 시인은 '인간들이 알파고에게 인간을 도둑맞았다'고 썼다. 많은 이들이 인간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때, 최 시인은 승패와 상관없이 인공지능이 깊숙이 스며든 세상을 통렬하게 감각하고 있었다. 일평생 인간을,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데 바친 그는 앞으로 다가올 세상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진짜와 가짜가 더욱 교묘하게 뒤섞일 세상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남을 수 있을까. 너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까. 그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시(詩)라고 말했다. 40여 년을 시인으로 살아온 그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일지도 모른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시는 너무 멀고,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을 듣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얼마 전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는 사람을 식당에서 봤어요. 집사람이 알아보고 일러주길래 그 쪽을 봤는데 그 때의 내 느낌은, 티비에서 본 그가 진짜인가 여기서 밥먹고 있는 그가 진짜인가 순간적으로 헷갈리더라고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보내는 인상이 그만큼 강한거예요. 알파고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가상과 현실 사이의 벽은 이미 흔들리고 있어요.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죠."최 시인은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면 웬만한 시인보다는 잘 쓸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러나 그가 걱정하는 것은 인간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의 능력이 아니다. "기계가 깊숙이 들어올수록 인간의 삶은 더 각박해집니다. 그동안은 인간이 유일절대한 존재라는 전제에서 인류의 문화는 발전해왔어요. 인공지능과 함께 사는 세상이 본격적으로 도래하며 인간의 존엄성이 많이 상쇄되고 신도 부정될 거예요. 그런 세계에서 인간의 인간적인 면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그는 인공지능이 더 잘 쓰더라도, 시를 쓸 때 인간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은 천 년 전에도 서정시를 썼고 지금도 쓰고 있어요. 그때 쓰인 서정시는 지금의 인간이 읽어도 슬프고 아름답습니다. 시는 가장 강력하고 깊숙한 소통의 수단이에요.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것이 시이고, 난해한 시도 있지만, 말로써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시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사는 곳에는, 섬이나 오지라도 언제나 시가 있었어요. 시가 사라졌을 때, 시가 사라진 곳이 기계의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최 시인의 시가 시작된 것은 수원에 살던 초등학생 때부터다. 그는 겨울날 수원 남문을 청소하느라 곱은 손 안으로 들어오던 햇볕을 기억하고, 방과 후 혼자 오른 팔달산에서 느낀 외로움을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 중학교 교복 모자를 동네 아이가 채어 달아났을 때, 모자가 나에게서 분리된 또 하나의 자아라고 느꼈고, 4·19혁명이 일어났을 때 수원 종로거리에서 본 버스를 타고 달리던 데모대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역사 속 인간 개인의 모습을 엿보았다. "시라는 것은 결국 자신과의 대화예요. 나는 시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일 때, 외롭고 고독하고 슬플 때 시작돼요.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지만 미처 알아듣지 못한 자신의 말들을, 자신의 낮은 목소리를 끊임없이 찾아내며 그것을 통해 자기완성을 해나가는 것이 시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직업이 될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소설'가'는 직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시'인'이라는 직업은 없습니다. 시인은 그저 시를 쓰는 사람이에요. 백석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높고 쓸쓸하고 외롭고 가난한 것, 그러나 자기를 지키는 것이에요. 늘 시를 쓰려고 노력했지만 공식적으로 시인이 되지 못한 친구가 있어요. 저는 그 사람이 진짜 시인이라고 했습니다. 시인이 직업이 되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겁니다. 시와 관련된 문화산업은 성장할 수 있겠지요.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시적인 것에 대한 욕구나 수요가 커질 거라고 봐요. 정서적 결핍감을 채워줄 것을 원하겠죠.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어요. 시를 쓸 수 없는 것은 너무 좋은 시를 쓰려하거나, 자신의 상처를 보지 못하거나, 자기를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해서입니다."지난 달 한국시인협회 제41대 회장에 선출된 그는 임기 2년 동안 시 쓰기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5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는 자녀와 부모가 서로에게 시를 쓰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싶어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부모님께 시를 쓰라고 했었어요. 수업시간에 발표하고 부모에게도 보여주는 과제였죠. 어떤 학생은 아버지가 시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며,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어요. 요즘은 부모 자식간에도 대화가 없잖아요. 시가 촉매제가 될 수 있습니다."내년에는 한국시인협회 탄생 60주년을 맞아 세계시인대회 및 남북시인대회 개최를 추진한다. "남북 갈등이 너무 심하니까 시협 창립 60주년을 구실 삼아서라도 남북시인대회를 열자는 거예요. 오히려 이런 분위기이니 새로운 돌파구나 실마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분위기로는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가장 힘없는 분야에서 시인의 상상력을 발휘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원래 남북이 가까워질 때는 문인 교류가 먼저였어요. 가장 부담이 없기도 하니까요. 문인 교류를 시작으로 소통의 장을 여는 것이죠. 언제까지 극한 대립으로 가겠어요. 이 정부도 마무리 할 때쯤에는 화해 무드로 끝내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지금 모두 불안해하고 있잖아요. 그런 사회 분위기를 부드럽게 푸는 것은 문화예술이고 시도 그 중 하나니까 시인협회 대표로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요." #도둑맞은 신의 분노최동호에덴의 동산에서 신은 요염한 이브에게사과를 도둑맞았다분노한 신은 인간을 용서할 수 없었다올림퍼스 신들은 프로메테우스에게불을 도둑맞았다 인간들은 신의 배신자 프로메테우스를 영웅이라 숭배했다인간들은 바로 오늘 알파 고에게인간을 도둑맞았다컴퓨터가 영웅을 도둑질했다신의 분노는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창조했다#남문 시장의 봄 최동호봄 싹은 누구도 자를 수 없다수원 남문 시장 길거리 파란 미나리 뿌리들봄 싹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처녀애들 앳된 얼굴처럼 하얀 냉이 뿌리들■최동호(崔東鎬) 시인·문학평론가는?現 고려대 명예교수/경남대 석좌교수/한국시인협회 회장연구경력 고려대학교 문학박사(1981)/ IOW 대학(1992)/ 와세다대학(1995)/ UCLA(1999) 등에서 동서시 비교 연구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시집 '황사바람'(1976), '아침책상'(1988), '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1995), '공놀이하는 달마'(2002), '불꽃 비단벌레'(2009), '얼음 얼굴'(2011), '수원 남문 언덕'(2014) 등시론집 '현대시 정신사'(1985), '디지털 문화와 생태 시학'(2000), '진흙 천국의 시적 주술'(2006), '디지털 코드와 극서정시'(2011), '정지용 시와 비평의 고고학'(2013), '황순원 문학과 인간 탐구'(2015) 등 글/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한국시인협회 41대 회장으로 취임한 최동호 시인이 협회 사무실 인근 운현궁을 걷고 있다. 임기 2년 동안 범국민 시쓰기 운동을 전개할 뜻을 밝혔다.

2016-04-12 민정주

[인터뷰… 공감] 태범석 전국 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 회장

2018년부터 고교 졸업생보다 대입정원 많아… 고등교육 구조조정 시급41개 국·공립대 모여 기성회계 폐지·시간강사제 개선등 현안 머리맞대사립대 비해 매우 낮은 교육공무원 보수 '인재 영입 걸림돌' 합리화해야바빠도 '경기도 대표 국립대' 한경대 총장으로서 지역사회 역할도 '충실'"고등교육(대학 등)의 구조개혁은 시급한 명제입니다. 그만큼 책임이 무겁고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하지만 고등교육의 구조개혁은 강제가 아닌 대학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지난해 12월 전국 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이하 협의회) 제23대 회장으로 선출된 태범석(58) 국립한경대학교 총장. 벌써 1년 임기 중 1/4분기가 지났다. 협의회는 올 들어 3차례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협의회에서는 국·공립대학이 직면해 있는 각종 현안에 대해 논의했고 그 결과는 정부에 건의됐다. 현안은 지금도 계속 논의되고 있다.현재 전국 국·공립총장협의회에는 전국 41개 국·공립대학이 참여하고 있다. 국립대학 28개교, 공립대학 1개교, 교육대학 10개교, 국립대법인 2개교다. 협의회의 설립 목적은 ▲국·공립대학 간 상호협력을 통한 대학교육발전방안 모색 ▲국·공립대학 발전과 학술연구에 관한 공동협의 ▲대학교육의 제도개선에 관한 공동협의 ▲대학재정의 합리적인 확충방안 모색을 위한 공동 협의 등이다.태 회장은 "국·공립대학은 현대 대학 구조조정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생 수 감소, 총장 선출 문제 등 중차대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성회계 폐지와 대학 회계 도입에 따른 재정적인 문제, 각종 대학 평가 사업 등을 중요한 현안으로 손꼽았다.태 회장은 "현재 교육부에서는 국립대 발전방안에 관한 연구가 진행 중인데 그 결과가 국립대의 구조조정이나 정원 줄이기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태 회장은 지난해 말 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시간 강사법 폐지'와 '교육공무원의 보수 체계 합리화', '대학 구조조정' 등 국·공립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중 시간강사의 신분보장과 처우개선을 위한 '시간 강사법'은 현재 2년 유예된 상태다.태 회장은 "2016년도 약 1천90억원에 달하는 개선 사업 예산을 마련하고 시간 강사 연구 지원사업에 대해서도 180억원 예산 규모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며 10개년 기본계획을 통해 시간강사 처우 개선관련 내용이 포함되도록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우선 '대학 특성에 맞는 자율성'을 강조했다.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대학의 정원을 선제적으로 조정하는 취지에서 '대학 구조개혁법'을 고안, 이를 추진하고 있다.현재는 고등학교 졸업생이 대학 입학정원보다 많지만 저출산 등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2018년이면 고교 졸업생이 대입 정원보다 적어지는 역전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2023년에는 대학 정원 미달이 16만여명까지 불어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악의 경우 일부 대학은 신입생을 한명도 뽑지 못할 수도 있게 된다.태 회장은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무엇보다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이와 함께 재정 운영 자율화, 총장의 대학 운영 자율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대학 구조개혁법이 하루 빨리 국회에서 통과 돼 출구가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기성회계 폐지와 관련해서 협의회는 끊임없이 정부에 개선방향을 건의하고 있다. 태 회장은 "기성회계는 수십년전 고등교육의 비용을 학부모에게 전가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라며 "이제는 정부가 재정을 적극 지원해야 하며 법 테두리 안에서 재정교부금 등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협의회는 이를 위해 각종 사업을 위한 국·공립대 재정 확보를 위해 정부에 예산을 늘려달라고 건의한 상태다.태 회장은 "지난 3월 24일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서 2016년 제2차 협의회가 열렸고 회의에서는 정부의 각종 사업 및 평가가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며 "혁신지원 사업 추진 시 대학 간 서열화를 지양하고 국·공립대학의 자율성 보장 및 정체성 확립을 위한 예산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태 회장은 국·공립대 교육공무원 보수체계 합리화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보수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현재 국·공립대 신임 교원의 연령층은 30대 후반인데 보수는 평균 임금에 비해 굉장히 낮은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우수한 인재가 들어오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는 학생들의 역량 향상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보수 체계 개편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회장으로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계속 논의해 나갈 계획입니다."태 회장은 국·공립대 신임 교원의 경우 오랜시간 시간 강사 등을 거쳐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임용되고 있지만 나이와 경력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저평가 된 호봉체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태 회장은 협의회가 앞으로 나아가 방향에 대해 이렇게 제시했다."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급변하는 교육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교육 여건 및 대학 경쟁력 향상이 필요합니다. 이는 특정 대학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국 대학이 공동으로 협력해 각 대학의 의견 수렴 및 정책연구를 실시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의회 내에 '고등교육발전기획단(가칭)'을 신설하는 방안을 지난 회의에서 제시한 바 있습니다."태 회장이 설립을 건의한 '고등교육발전기획단'은 각 대학 실무진들인 기획처장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기획단은 국·공립대 발전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실무적인 정책 연구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국·공립대 정체성과 위상을 확립할 계획이다.태 회장은 "전국 국·공립대학총장협의회는 설립 목적처럼 대한민국의 대학교육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출범했다"며 "앞으로도 국·공립대학 발전과 대학 교육제도 개선, 대학 재정 확충방안 모색 등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태 회장은 협의회 회장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면서도 지역사회에 대한 한경대 총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소홀함이 없다.경인지역대학총장협의회 부회장, 경기도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상임대표, 경기도 고등교육 발전협의회 대표, 경기도 거점국립 종합대학교 추진단 부단장, 칠장사 어사 박문수 전국 백일장 공동위원장, 경기도그린캠퍼스협의회 부회장 등 전·현직 직함이 이를 말해준다.태 회장은 지난 1998년 화학공학과 교수로 한경대와 인연을 맺었고 중소기업지원센터소장, 산학실습처장, 교무처장, 교수협의회 회장 등을 거쳐 지난 2013년 한경대 총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한경대가 경기도를 대표하는 국립대학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태범석 전국 국·공립대학총장협의회장은?1958년 서울 출생고려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고려대학교 유기공업화학 석·박사현 국립한경대학교 총장현 전국 국·공립대학교 혁신위원회 위원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회장현 경인지역대학총장협의회 부회장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입학전형위원회 및 윤리위원회 위원현 사단법인 생명문화 공동대표현 범시민사회단체연합 공동대표현 경기도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상임대표현 칠장사 어사 박문수 전국 백일장 공동위원장대담·정리/이명종(안성) 부장·김신태 지역사회부장 sintae@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태범석(58) 국립한경대학교 총장은 "전국 국·공립대학총장협의회는 설립 목적처럼 대한민국의 대학교육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출범했다"며 "앞으로도 국·공립대학 발전과 대학 교육제도 개선, 대학 재정 확충방안 모색 등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6-04-05 김신태

[인터뷰… 공감] 소진광 새마을운동중앙회 신임회장

시대의 문제 해결… 공동체 회복 우선대한민국 발전 50년 원동력 세계화 노력선배 업적 기억하고 젊은 지도자 육성중앙서 정책개발 지방조직 기능살릴것"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정신은 세계 평화의 씨앗이 되고 지구촌의 어두운 구석을 밝히는 평화의 횃불이 될 것입니다."29일 취임식을 가진 소진광(61) 제23대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은 "새마을운동의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안으로는 나라발전의 새로운 토대를 구축하고 밖으로는 지구촌 세계시민들의 복지향상을 이루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역대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을 보면 국무총리나 장관 등 공직자가 주로 맡아왔지만 23대 회장은 이례적으로 학자(현 가천대 행정학과 교수)가 선출됐다. 전국 대의원들로부터 선출된 중앙회장직은 무보수 명예 봉사자리로 겸직이 가능하다. 소 신임회장은 새마을운동의 우수성을 확신하고 세계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온 만큼 새마을운동에 대한 그의 새로운 역할의 기대치가 높다. -"이 시대에 유용한 새마을운동의 교훈과 실천논리를 펼치겠다."소 회장은 지난 15년간 새마을운동을 꾸준히 연구해 왔다. 그는 새마을운동 경험이 다른 어떤 지역사회발전이론이나 사례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해온 학자다.그는 "행정학을 전공한 학자로 주민자치와 지역발전, 거버넌스(協治),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공부하면서 새마을운동에 관심 갖게 됐다"며 "새마을운동이 단순한 과거의 경험이 아니라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고 나라발전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강조했다.그러나 처음 그가 새마을운동을 연구하자 학계에서는 특정 시대의 정치상황에 빠져있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소 회장은 "새마을운동을 정치적인 색깔로만 보려는 시각이 잘못됐다"고 반박하며 "새마을운동을 연구하다 보니 어떤 지역사회발전 이론과 사례보다 우수한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그는 "새마을운동의 우수한 실천 사례를 우리나라에 한정하지 않고 건강한 세계시민사회 구축에 활용해야 한다는 각오"라며 "새마을운동을 바로 세워 이 시대의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야겠다는 소명 의식을 갖고 있다"고 피력했다.-"새마을운동은 개인의 발전과 지역사회 발전, 나라의 발전을 연결하는 DNA다"새마을운동은 1970년대 경제공동체 형성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요구에 따라 변화해왔다는 것이 소 회장의 지론이다. 소 회장은 "1970년대에는 경제공동체 형성을 통해 우리나라 근대화를 이끌었고 1980년대 이후에는 사회공동체의 성격을 추가해 나라발전에 기여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21세기에는 문화공동체와 환경공동체를 가꿔 우리나라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며 "앞으로는 평화공동체의 토대를 만들어 정치와 이념으로 닫힌 세계를 여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우선 새마을운동의 성격이 가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를 막아 건강한 지역사회를 가꿀 수 있으며 나아가 인류 평화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중요한 정신을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그는 우리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가 공동체 인식이 부족하고 나눔·봉사·배려의 실천덕목이 약화된 것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새마을운동은 없는 사람끼리 근면·자조·협동정신을 발휘하는 실천논리이자 약한 사람끼리 나눔·봉사·배려를 통해 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민주주의 덕목"이라며 "새마을운동을 통해 공동체를 회복한다면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각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그런 의미에서 '가정새마을운동'을 강조했다. "새마을운동은 개인과 공동체의 존재가 어떠한 이유로도 거부당하지 않는 경제·사회·문화·환경적 기반을 구축한다"며 "가정새마을운동을 통해 건강한 지역사회를 가꾸고 지역사회 새마을운동을 통해 지역발전과 나라의 지속 가능한 번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아울러 "이미 국제사회에서 새마을운동은 더불어 잘 사는 인류 평화공동체 건설의 실천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며 "세계시민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지구촌 건설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새마을운동이 지난 50년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면 앞으로 500년의 새마을운동은 인류 공동번영의 동력이 될 것이다."소 회장은 새마을운동의 세계화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새마을운동의 성공을 답습하기 위해 각국의 문의와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이 같은 해외의 관심은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원조를 하는 ODA(공적개발원조)사업과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각국의 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소 회장의 설명이다.ODA는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한 나라가 발전하는데 효과가 적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발전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발전과정에 대한 논리를 갖고 있다"며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새마을운동을 소개하는 것으로 다른 국가를 도울 수 있다"고 했다.소 회장은 "지구촌 새마을운동은 현지 주민들에 의해, 그들 스스로를 위해, 그들의 의사결정과 참여를 통해 접근되고 실천돼야 한다"며 "이 같은 새마을운동 접근방식이 세계평화의 씨앗이 되고 지구촌의 어두운 구석을 환하게 밝혀줄 수 있는 평화의 횃불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 같은 역할을 잘 수행한다면 우리나라가 중심세력을 이루며 UN을 대체할 수 있는 세계기구로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새마을운동이 직면한 문제점은 새마을운동이 가진 역량으로 돌파할 수 있다."그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멀어진 것은 사실이다. 또 정치적이라는 편견을 깨고 재정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이 같은 어려운 상황에 대해 소 회장은 "왜 이 시대에 새마을운동이 필요한가를 생각하면 새마을운동의 활성화와 재정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공공부문의 역할을 정부가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실행하는 것보다 210만 새마을회원과 지도자가 기존의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고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며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직접 담당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 효과적인 관리가 어려운 일을 찾아내 새마을운동이 챙기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재정 건전화와 활성화에 대한 방안을 제시했다.이와 함께 "나눔·봉사·배려라는 덕목을 갖춘 새마을지도자와 회원들이 근면·자조·협동이라는 새마을운동 정신을 실천하고 공익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사회·문화·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를 위해 젊고 유능한 국내외 새마을지도자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새마을운동에 헌신한 선배 새마을지도자의 봉사를 헛되게 하지 않고 세계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지켜가기 위해 나눔의 새마을운동을 실천하겠다"며 "다음 세대를 배려하는 새마을운동을 생활화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더불어 새마을운동 명예의 전당을 건립해 지역사회와 나라발전에 기여한 선배 회원, 지도자, 전문가의 업적이 기억되도록 해 새마을운동이 지속적인 추진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새마을운동은 가장 기초적인 생활터전인 마을 단위로 추진돼야 한다."소 회장은 "새마을운동중앙회는 가장 말초적인 지방조직을 가지고 있다"며 "모세혈관이 건강하지 않으면 중앙회는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중앙조직은 새마을운동 본질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정책을 개발하고 지방조직이 활발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정비돼야 한다"며 "상향식 접근 논리를 갖고 주민들이 역량을 강화하고 다시 강화된 주민역량으로 스스로 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비전을 밝혔다.그는 새마을회원들에게 "회원 모두가 새마을운동 방식대로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증거이고 증인이며 실천가들인 만큼 새마을운동의 상징이고 미래사회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우리가 선배 세대에 감사하는 것처럼 다음 세대가 감사할 미래를 함께 만들자"고 당부했다.■소진광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은?-1955년 충남 부여 출생-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및 대학원 졸업(행정학 박사)-현 가천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전 대외부총장-한국행정학회 부회장· 한국지방자치학회 11대 회장-한국지역개발학회 14대 회장-새마을운동중앙회 이사· 지구촌 새마을운동 성과관리위원-행안부 지방자치단체 정부시책 합동평가단장, 행자부 중앙투자심사위원· 지방채발행심사위원, 건교부 신도시자문위원, 환경부 중앙환경정책위원-대통령 지방분권전문위원, 대통령 직속 중앙권한 지방이양추진위 실무위원-국무총리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 청소년보호위원회 정책자문위원-홍조근정훈장·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표창 수상-한국지방자치학회· 한국지역개발학회 학술상 수상-학술논문 130여 편· 저술 20여 권 등 연구실적 대담/김규식 동북부권취재본부장(부국장), 정리/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소진광 제23대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이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정신을 계승 발전 시켜 지구촌 곳곳 까지 평화의 씨앗을 뿌려 세계시민들의 복지향상을 이루겠다고 밝히고 있다.

2016-03-29 김성주·김규식

[인터뷰… 공감] 이문열 작가

살던 집 작가지망생 문학수업 강의실로 첫 개방이념·정치논쟁 속 문원의미 퇴색… '외로운 싸움'공적장소 전환해 창작레지던시 유지·활용하고파작가 이문열이 요즘 고약한 상황에 처했다는 풍문을 접하고, 무슨 일인가 싶어 인터뷰를 청하고 이천 부악문원을 찾은 건 지난 11일이었다. 이문열은 1985년10월5일 이천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1998년 부악문원을 설립한 이후 31년 가까이 이천 시민으로 살고 있다. 부악문원은 그의 집필실이자 동시대 문청들의 학숙이자 창작공간이다. 그의 생애에서 '이천 시절'은 문학적 성취와 정치적 사변(?)이 버무려진 격랑의 시기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시인(1991)', '선택(1997)' 등 논쟁적 작품을 비롯해 그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진 '변경'(1998)등 주요작품들이 이천에서 탈고됐다. 그에게 부와 명예을 안겨준 초대박 스테디셀러인 '이문열의 삼국지'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문단의 보수우익 대표 논객으로 이념논쟁에 뛰어들었을 땐 선혈이 낭자했던 공간이기도 했다. 2001년 치러진 그의 책 장례식은 치열했던 정치사변의 피날레였다. 그 시절의 부악문원은 이문열에게 외로운 고지전을 감당했던 '참혹한 진지'이자 '최후의 보루'였다. 그 난리통에 낙향의 염원은 무뎌졌고 이제는 부악문원을 기반으로 이천에 정주할 생각이라 했다. 그런데 그 부악문원이 이제 이문열에게 다른 의미에서 "고약한 일"이 됐다.-이천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집을 짓고 주민등록을 옮긴게 85년 10월 5일이다. 그 해 봄 대구에서 꽤 좋은집을 팔아 서울로 이주를 했더니 연립주택 살 돈 밖에 안됐다. 그런데 어머니까지 해서 식구가 많았다. 할 수없이 집 근처에 10평 남짓한 집필실을 하나 얻으려니 전세로 1천만원이었다. 계약을 고민하던 차에 이천 사는 친구(조각가 강대철)가 그 돈이면 이천에서 땅 1천평을 살수 있다더라. 촌놈인지라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10평짜리 방보다 땅 1천 평이 훨씬 나아보이더라. 그 때 땅을 알아보고 친구의 빈 집에서 겨울을 났으니 이천에 머문게 32년째인 셈인가?"-당시 거주 여건이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았을텐데."맞다. 처음에 왔을 때는 전기도 없었고 전화기도 마을 이장집에 하나 있었다. 서울에서 전화가 오면 구판장 마이크로 '이문열씨 전화왔어요' 그러면 뛰어내려가서 전화를 받고 그랬지. 이 마을(이천시 마장면 장암리)이 재미있는 마을이다. 설봉산에서 보면 하늘 아래 첫 마을인 셈인데 6·25때 인민군이 여기에 마을이 있는 지도 몰랐다더라."친구 덕분에 지금은 상당한 이익을 본 셈이다.(웃음)"아무것도 하지 않고 땅만 샀으면 정말 엄청나게 남았겠지. 한 100배 쯤 될까.(부악문원 대지는 2천400평이다.) 그런데 살면서 집을 짓고 문원을 조성하는데 지금 땅값 만큼 들였으니 장사의 이문을 따질게 없겠다."-처음부터 부악문원 세울 생각이었나."처음엔 집을 짓고 혼자 있다가 전업작가나 문학지망생들에게 문학수업을 하는 공간으로 개방했던게 문원의 시초다. 그러다 95년에 공사를 시작해 98년에 정식으로 부악문원을 열었다. 그때 식구들도 모두 이곳으로 왔다. 부악은 설봉산의 옛 이름이다. 설봉이라는 이름이 듣긴 좋은데 꼭 기생 이름 같은 게 너무 낭창낭창한 느낌이라 옛이름을 쓴거다.(부악은 부아악의 줄임말로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업은 형상의 산이름. 전국 각지에 같은 이름의 산들이 많다.)"-이문열의 문학인생에서 이천, 부악문원은 어떤 의미인가."글쎄. 그런 의미를 따지기에는 이천 거주 자체가 우연의 소산이었다. 처음엔 고향(경북 영양)가는 길인 이천에 집을 구해놓고 15년 가량 있다가 고향으로 가자는 마음이었다. 우리 또래는 은퇴하고서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상식이었다. 95년부터 시작된 고약한 싸움, 그것이 아니었으면 아무리 늦어도 10년 전 쯤, 예순 쯤에는 귀향했을 것이다. 그런데 고약한 싸움이 시작되면서, 내가 문학으로 받았던 것들을 문인들에게 베풀 수 있는 문원이란 장소의 의미까지 퇴색되면서, 여기라도 지키고 있지 않으면 내가 완전히 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이 홀로 고군분투하는 진지가 됐고 패퇴해 물러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싸움이 한창 격화되고 있을 때 이미 50대 중반이었다."-90년대 중반 부터 시작된 이념논쟁, 정치논쟁의 계기는 무엇이었나."사실 원인은 오랜세월 축적되었던 것이고, 싸움의 출발은 문화 헤게모니 개념에서였다. 내가 보수 우파라고 커밍아웃했던 90년대 중반은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두 개의 가치, 산업화라는 물적기반의 근대화 가치와 정치적인 자유화와 민주화 가치의 충돌이 정점에 이른 시기였다. 그런데 유신시대와 권위주의적 폭압 정치가 지속되는 사이에 문화진지의 한 축인 보수계열이 진보 쪽으로 쏠려버렸다. 그래서 우파임을 자인하고 집중포화를 맞았다. 당시 보수를 자인하는 문학인이 흔치 않았고···."이문열은 84년 발표한 '영웅시대'로 보수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진보적 페미니스트들은 그의 97년 발표작 '선택'을 남성우월주의자의 독백이라 비난했다. 급기야 2001년 진보세력을 겨냥한 홍위병 발언으로 책 장례식을 당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치열한 진영 대결이 한창인 시절에도 많은 문인들이, 심지어 진보진영과 호남 출신 문인들까지 부악문원의 식객(?)으로 거주하며 작품을 썼고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부악문원을 통해 등단한 문학지망생도 십수명이다. 그는 이들의 이름을 거명하기를 꺼렸다. 그들이 원치 않을지도 모르고, 부악문원과 그들의 인연을 밝히는게 여전히 그들에게 부담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 시절의 상처는 여전히 그에게 간단없는 통증을 안겨주고 있었다. 진영대립은 인간을 통섭하는 문학에도 불통의 벽을 세운 것이다. 그는 "참혹한 현실"이라고 했다.-부악문원과 이천시절은 작가 개인은 물론 한국문단사 유의미한 시공간이다. 그런데 부악문원 때문에 고민이 깊다고 들었다. 왜인가."솔직히 말해 초창기에는 부악문원이 나의 것이지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 수록, 5년 전 무렵부터는 중압감이 생겼다. 예전만큼 강한 적은 없어진 것 같고, 이념적 적대감도 무뎌지면서 고향 갈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니 부악문원이 걸렸다. 고향으로 가려면 여기를 처분해 일부는 고향으로 일부는 서울로 옮겨야 했다. 그런데 부악문원 출신 젊은 친구들이 '선생님 이걸 꼭 없애야 합니까? 형편이 어려우면 모르겠지만 괜찮으면 그냥 두시지요'라고 하더라. 이 장소가 없어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거지. 그 말이 마음에 걸렸고, 당시 형편이 문원을 유지할 정도는 됐고 그렇게 지금까지 온거다. 그런데 지금은 이것이 정말 내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든다. 문단은 내가 여기서 30년을 지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 이것을 팔아 다방이 될지 술집이 될지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뀌어도 모른체 하는 게, 내가 완전히 망했다면 몰라도 그것이 할 짓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 자체도 시들해져버렸다. 고향에 가려면 더 전에 갔어야 했다. 지금 간다면 죽으러 가는 것뿐이 더 되겠는가."부악문원이 그에게 고약한 일이 된 것은 고향갈 생각을 접고 부악문원을 공적 공간으로 인식한데서 비롯됐다. 공적 공간으로 전환하면서도 공간 유지비용을 계속 부담한다면 힘에 부친다고 털어놨다. 부악문원을 창작레지던시로 유지하려면 1년에 1억원 가량 드는데 일부 정부지원을 받아도 본인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부악문원을 이천시의 문화콘텐츠로 유지한다면 이천시의 지원도 가능한 얘기 아닌가. 가령 문학관 형태로…."작가의 이름을 딴 기념관이나 문학관은 내가 싫어하는 형태 중 하나다. 그것은 죽은 뒤에나 하는 것이지 사람이 살아 있는데···. 다만 부악문원을 공적인 공간으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고민하다가 작년에 조병돈 이천시장과 남경필 도지사를 만나 의논도 했다. 조 시장은 부악문원 매각은 안된다며 시 혼자 힘으로는 어려우니 경기도와 방안을 찾자 했고, 남 지사는 법규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돕고 싶다고 하더라. 고민의 진행은 현재 여기까지다."-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예산을 들여 유명작가나 작품명을 딴 기념관이나 문학관을 지어 문화콘텐츠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그렇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그런 곳들의 사례로 부악문원도 거론되고 있으니 참 할 말이 없다. 물론 이천시에서도 부악문원을 공적인 문화콘텐츠로 활용할 방안을 달라고 하지만 내 입으로 뭘 해달라는게 영 그렇다."-사적 재산인 부악문원을 문화적 공공재로 전환하기 위해 예산을 투입하는게 문제로 보이는데 선례가 없나."그래서 부악문원 땅 일부를 제공하고 거기에 시가 집을 하나 지어 시의 소유로 하면 좋겠다고 가족들과 결론을 내렸는데 이야기 단계에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다."최근 이천지역 문화예술계에서는 부악문원을 이천시의 문화콘텐츠로 활용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이천시도 이에 호응해 부악문원 활용방안을 그에게 요청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정작 이문열 본인은 이런저런 요구를 하기 난감하단다. 셈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경북 산촌 양반의 체모, 혹은 문학과 돈을 분리하던 서생적 풍모의 손상을 꺼려하는 느낌이었다. 고약한 일이겠다 싶었다.-많은 예술가들이 경기도에 창작공간을 마련해 활동하지만 지역과의 소통이 부족해 보인다."맞다. 처음엔 여기 분들과 자주 모일 구실도 없고, 몰두해야 할 일들도 있었고, 삶의 환경차이도 무시할 수 없었으니 서먹서먹했던게 사실이다. 그래도 내 인생의 가장 오랜 기간을 이곳에서 살았고 이제는 마을 사람 모두와 알고 지낸다. 2001년 진보진영이 부악문원에 책 상여를 메고 장례식 퍼포먼스를 벌일 때,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마을 입구에서 막아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여기 사람이 됐구나."-얼마전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어느 매체에서 일종의 부채감 때문에 맡았다고 표현했던데."그 기자가 과장을 한거지. 특별히 시간을 많이 내지 않아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맡았다. 2011년 최고은 작가가 생활고로 숨진 사건을 계기로 설립된 재단인 만큼 설립 취지에 맞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처음엔 작가 1인당 지원금이 60만~7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지원 인원이 늘면서 지원금액도 형편없어진 모양이다. 예술활동증명서를 내는 것도 어색해 보이고…. 예술활동을 증명할 정도면 어려운 사람이 아닐 경우가 많다. 예술인 복지가 아니라 예술진흥으로 변질된 듯한 느낌인데 이런 걸 바로잡을 생각이다."-요즘 80년대를 정리하는 작품, 변경의 후속작을 집필중이라고 들었다."골치 아프다. 뜸을 너무 오래 들였고 나는 늙어버렸다. 그러는 동안 역사가 왜곡된 인식으로 굳어지고, 주장과 선동이 역사가 되어간다는 느낌이다. 글을 쓰면서도 자꾸 맥이 빠진다. 예를들어 작품 말미에 김영삼이 나오는데 그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그렇다. 내가 보기엔 그의 가치(업적)는 민주화가 아니라, 충돌과 피로 희석시키지 않으면 안될 과거를 공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데 있다. 김영삼이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다. 그를 민주투사로 과잉 투영해 해석하는 것이 내 인식과는 맞지 않다. 한 시대는 똑같은 가락의 반복이 아니라 화성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자꾸 단음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계속 걸리니까 글 쓰기가 어렵다."-전 시대를 정리해 현 시대의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은 늘 고민스럽지 않은가. 요즘처럼 책을 외면하는 세대에겐 더욱 지난한 일 아닌가."이야기하기 편한 대상은 예전의 독자들이 맞다. 그러나 전시대의 기록은 중요하다. 기억에는 개인적 기억과 그것이 공유되는 사회적 기억, 후세에 기록될 역사적 기억이 있다. 그런데 기억은 변경되고 조작된다. 새 작품을 준비하는 10년 동안 내 주변의 사회적 기억을 확인해왔는데 굉장한 왜곡과 조작이 있었다. 술에 취해 경찰과 치고받은 젊은 시절의 취객이 장년이 되어서는 전두환 욕을 했다가 경찰에게 맞은 민주화 투사로 변신하는 식이다. 기자 시절 내가 파출소에서 빼준 친구 이야기인데 이런 사례가 무수하다. 독자가 어떻게 읽느냐 보다는 내가 그 시대의 사회적 기억을 어떻게 복원하고 해석하느냐가 심각한 고민이다."-이제 조금은 너그러워질 연배다."맞다. 어떤 것들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이문열과의 대담은 4시간 가량 물 한잔 없이 진행됐다. 대화가 모두 끝난 뒤 그가 말했다. "이런 손님에게 물 한잔 안드렸네." 올해로 68세인 이문열은 여전히 집중하는 청년이었다. 이제 이천시민과 경기도민이 이문열을 변경의 구속에서 풀어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작가 이문열은?1948년 출생1970년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중퇴1978~1980년 대구매일신문 기자1979년 오늘의 작가상 1982년 동인문학상 1987년 이상문학상 1992년 현대문학상 1992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92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수훈장 1993~1996년 세종대 교수1998년~ 부악문원 대표 1998년 21세기문학상1999년 호암상 예술상 2009년~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2009년 대한민국예술원상 2012년 동리문학상2015년 은관문화훈장 주요작: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젊은날의 초상, 금시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웅시대, 변경 등대담/윤인수 부국장 (문화부장) isyoon@kyeongin.com · 정리/권준우기자junwoo@kyeongin.com ·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지난 11일 이천시 부악문원 자신의 집필실에서 작가 이문열이 고락이 넘친 문예인생을 회고하며 활짝 웃고 있다.부악문원 제공

2016-03-22 윤인수·권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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