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남수단 문화·청년·체육부 피터 뱁티스트 차관 방한

한국 스포츠정책 벤치마킹IOC가입 협의위해 찾아와임흥세 남수단 축구총감독열정과 의리·성과에 '감동'韓 이미지 中·日보다 좋아독립한지 3년밖에 안된 나라전쟁 탓 인구 80%가 청소년배움에 대한 열정 많지만…정부지원은 사실상 어려워임감독 같은 지도자 필요해"한국 스포츠의 시스템을 배우고 싶다."아프리카 남수단은 얼마 전까지 정부군과 반군간의 교전으로 위기 상황을 맞았던 곳이다. 하지만 최근 정국이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그 곳에서도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이런 시기에 남수단 스포츠 재건을 위해 뛰는 사람이 있다. 그는 남수단 문화·청년·체육부의 피터 뱁티스트(62·Peter Baptist) 차관이다. 피터 차관은 남수단 축구대표팀 임흥세 총감독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지난달 30일 경인일보를 방문한 피터 차관. 1952년생, 62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피터 차관은 젊어 보였다. 그를 보자마자 '젊어 보인다'라고 말하자, 그는 함박웃음과 함께 손사래를 쳤다. 자신의 나이보다 젊다고 해서 싫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스포츠라는 단어에 걸맞은 패기와 열정이 엿보였다. 그를 통해 남수단의 체육정책을 들어봤다.한국이 첫 방문이라는 피터 차관은 한국 사람들에 대해 "모두가 겸손하고 친절했으며 부지런하다라는 것을 느꼈다"며 "모든 면에서 체계적으로 잘 갖춰진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말했다.피터 차관이 한국을 찾은 이유는 한국 체육정책 및 운영에 대해 벤치마킹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정식 가맹을 협의하기 위해서다. 이런 이유로 피터 차관은 지난달 25일 도착하자마자 바쁜 일정을 보냈다. 우선 전북 무주로 내려가 국제유스캠핑페스티벌을 참관했으며, 한국청소년연맹과 업무협약을 통해 양국 청소년들의 문화·스포츠 교류를 갖기로 했다. 또 문화체육관광부를 방문해 김종 제2차관과 체육 협력에 대해 논의했으며, 경기도의료원과 삼성전자 방문 등 한국 곳곳을 둘러봤다.한국 방문 이유에 대해 피터 차관은 "세계 랭킹 10위 안에 드는 스포츠 강국 한국과 스포츠 교류를 한다면 남수단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면서 "임 총감독의 도움으로 한국과 스포츠 유대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남수단 국민들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 국민에게는 매우 우호적이다. 임 총감독이 축구를 통해 남수단 정부와 국민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특히 피터 차관은 이에리사 국회의원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초 남수단 주바를 방문해 스포츠 외교를 펼쳤다. 남수단 정부로부터 국빈 초청을 받은 이 의원은 주바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수단 올림픽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했고, 남수단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 명의의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피터 차관은 "이 의원은 지난 3월부터 남수단의 IOC 가입 추진을 적극적으로 돕고 이에 관한 조언을 해주었다"며 "남수단은 아직 IOC 정식 회원국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의원의 도움을 받아 자국 5개 종목을 아프리카의 각 연맹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IOC 회원국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남수단은 IOC 회원 가입을 위해 종목별로 국제연맹 가입을 차례로 추진중이다. 축구와 태권도는 이미 가입된 상태며 농구, 배구, 육상, 복싱, 탁구와 장애인종목 등도 정식 가입을 앞두고 있다. 우선적으로 5개 종목 이상을 국제연맹에 가입시켜야 IOC 회원국 가입 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피터 차관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피터 차관의 얘기 대로라면 남수단은 오는 9~10월께 IOC에 정식 회원국 가입 신청을 하게 된다.남수단의 스포츠 정책에 대한 의견도 들어봤다. 피터 차관은 "스포츠는 국민의 기본 권리다. 국민들이라면 누구나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동하고 건강을 지킬 권리를 갖는다"면서 "하지만 남수단은 독립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데다 내전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이 많다. 현재는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급하기 때문에 스포츠 예산 지원은 어려운 형편"이라고 밝혔다.그도 그럴 것이 남수단은 내전으로 국민들의 삶이 어려운 상태다. 또 일부 어린이들은 식량이 부족해 먹는 것 마저도 여의치 않다. 그러나 피터 차관은 "스포츠가 국민들의 힘을 모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스포츠를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그는 임 총감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에 대해 "지난 1월 임흥세 총감독이 축구대표팀을 맡은 뒤 착실히 한국 축구 시스템을 도입해 기반을 다지고 있다"면서 "한국과 축구 교류를 정례화한다면 더 좋은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믿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모잠비크와 축구 경기를 가졌는데 1무1패를 기록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순위도 205위에서 185위로 올라가는 등 서서히 축구가 정착되어 가고 있다"며 "임 총감독은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축구 지도자 및 선수들이 그의 의리에 감동받고 있다"고 덧붙였다.다만 남수단은 내전으로 제대로 된 경기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 대회도 남수단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피터 차관은 "내전으로 경기장이 무너졌다. 이로 인해 제대로 된 축구 경기장이 없어 경기를 다른 국가에서 치르기도 했다. 조만간 다시 계획을 세워 경기장 건설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화제를 바꿔 만약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어느 종목에서 메달을 바라볼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남수단 국민들은 손과 발이 길다. 따라서 농구, 배구, 육상, 태권도 등에서 메달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피터 차관은 "남수단도 독립한 뒤 동아프리카 청소년대회에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농구, 배구, 핸드볼, 육상, 럭비 등에서 선수들을 내보내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대내외에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남수단의 청소년 정책에 대해 그는 "남수단 학생들은 초등학교 8학년, 고등학교 3학년 등 11년간 학업에 열중한다. 하지만 학생들에 비해 이들을 가르칠 전문 교사들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임흥세 총감독처럼 전문 지도자들이 남수단을 찾아 현지 지도자 양성 교육을 해준다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남수단 현지 상황에 대해 묻자 그는 "전체 10개 주 가운데 7개 주가 모두 안정을 되찾고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 곳에선 더이상 폭력 소요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3개주 가운데 일부에서 소동이 있긴 하지만 정국 안정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답했다.한국 음식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불고기, 갈비 등을 먹어 봤는데 맛이 훌륭했다"면서 "김치는 매웠지만, 모든 음식이 입에 잘 맞았다"고 칭찬했다.그렇다면 남수단은 월드컵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이에 대해 그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월드컵이 열렸다. 무척 부럽기도 했고 우리에게는 머나먼 나라의 얘기였다"고 답한 뒤 "물론 남수단도 월드컵을 개최하고 싶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실력을 키우는 것이다. 아프리카 예선을 통과해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게 최우선이다. 그 이후에 월드컵 유치에 대한 생각도 해보겠다"고 밝혔다.50여년 간 내전 끝에 2011년 7월 새 독립국가가 된 남수단은 이후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으로 18세 미만 청소년들이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한다. 그러나 자신도 농구 선수 출신으로 꿈을 펴지 못한 까닭에 피터 차관은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남수단의 스포츠 정책 임무를 맡았고, 곧바로 한국을 찾았다. 피터 차관은 "한국민들의 환대에 감사드린다. 머지않아 한국을 다시 방문할 것"이라면서 "세계 스포츠 강국인 한국이 남수단을 도와준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대들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뒤 웃으면서 떠났다.글 = 신창윤기자 사진 = 김종택기자▲ 아프리카 남수단 문화·청년·체육부의 피터 뱁티스트(62·Peter Baptist) 차관이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람들에 대해 "모두가 겸손하고 친절했으며 부지런하다라는 것을 느꼈다"며 "모든 면에서 체계적으로 잘 갖춰진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14-08-04 신창윤

[인터뷰… 그]김문수 경기도지사 8년의 道政 마무리

경기 600년史 최장수 지사수도권 '손톱 밑 가시' 뽑아판교·광교 성공시대 이끌어'무한돌봄' 복지사각 해소남한산성 세계문화유산 등재재임기간 다양한 분야 성과7·30 재보선에 출마 고민자리 정하고 움직이지 않아그냥 부천시민으로…후계 구도 잘 만든것 자랑남경필 당선자의 연정 기대'2할 지방자치' 보완 필요"의원님은 현실도 모르면서 그렇게 태평한 소리만 하십니까."일순간 조용해졌다. 날선 '돌직구'에 바라보는 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임기 마지막 경기도의회 도정질의에서 야당 도의원과 생활임금조례 도입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였을 때였다. '최선을 다하겠다' '검토해보겠다' 등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는 말도 많았을 텐데, 하긴 그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 앞에서건 유관단체 앞에서건 하고 싶은 말을 숨기지 않았다. '정치인'이라는 수식어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유력한 총리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던 그가 문창극 총리후보 낙마후 바로 다음날 출입기자들과 오찬에서 "청문회에서 걸릴게 없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도 정치인 특유의 기름기가 쏙 빠져있는 사람이라는 방증이 됐다. 퇴임을 코앞에 두고 만난 김 지사에게 이른바 '청문회 발언'에 대해 묻자 "의도는 그런게 아니었는데 조간신문을 보니 '건방진' 김문수가 돼 있더라"며 웃었다. 이날은 마침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이 결정된 날이기도 했다.최장수 경기도지사로, 대권 후보군으로, 때로는 이슈메이커로 시선이 뜸할 날 없던 그였던 만큼 8년 도정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도지사 이후의 행보를 궁금해하는 눈길도 늘었다. 누군가는 7·30 재보궐선거를 통해 국회 재입성을 노린다고 했고, 누군가는 잠시 숨을 고른후 당권에 도전한다고 했다. "백수예요. 그냥 부천시민." 김 지사의 답변은 짧았다. "손학규 전 지사는 재보선에 나선다는 얘기가 많고, 이인제 전 지사는 당 대표직에 도전한다. 퇴임하면 역대 도지사중 저만 백수인데 큰일"이라고 말했다. "자리를 정해놓고 뛴 적은 없다. 고민은 해봐야겠지만 어쨌든 집으로 가야하지 않나. 이게 바로 제 행보"라고 덧붙였다.#바람 잘 날 없던 8년, '세계속의 경기도'를 만들다지난해말 도 안팎의 최대 관심사는 김 지사의 3선 도전 여부였다. "경기도 600년 역사에서 가장 오래 일한 도지사다. 8년이면 충분하다"는 게 올해초 장고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김 지사의 말처럼 그는 무려 8년간 경기도를 이끈 최장수 도지사다. 도시와 농촌, 접경지역과 해안·산간지역이 어우러진 '작은 대한민국' 경기도를 두루 발전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민 4명중 1명꼴의 민생을 책임져야 하는 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그만큼 김 지사의 8년 도정 곳곳은 가시밭길이었다. 진보교육감 체제의 경기도교육청과 무상급식·학교용지분담금 문제 등으로 삐걱거렸고, 텅빈 도 곳간 사정으로 여소야대 경기도의회의 거센 공격을 받았다. 잊을 만하면 누리꾼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일들도 왕왕 벌어졌다. 소방서 관등성명 요구 논란으로 TV 개그 프로그램의 패러디 대상이 됐는가 하면 최근에는 세월호 사고 관련 SNS글이 도마에 올랐다.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이었다.그러는 동안 경기도는 '세계속의 경기도'로 거듭났다. 김 지사가 2006년 도에 입성할 때부터 관심을 기울여온 남한산성은 8년만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며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공장을 떠나게 만드는 고질적인 수도권 규제를 풀기 위해 앞장서며 '손톱밑 가시 뽑기'의 대표주자가 됐다. 판교테크노밸리·광교신도시는 도를 지탱하는 또다른 기둥이 됐고, 북부권은 김 지사의 구상을 발판삼아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평화통일의 상징지역이 됐다. 보트쇼·항공전 등으로 경기도를 부지런히 알리고, G마크 농축산물·GG콜택시·G버스 등 각 분야에서 더 편하고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택시기사 도지사로 이목을 끌더니 24시간 도움이 필요한 누구에게나 손을 내밀겠다는 '무한돌봄사업'으로 복지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건국 이래 최대 투자 규모라는 삼성 평택 고덕 산단 유치를 비롯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 굵직한 사업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6월 30일 그의 감회가 남다른 이유일 터다. "해야할 일이 참 많았다. 믿고 도와준 도민들과 공직자들께 감사할 따름"이라고 소회를 밝힌 김 지사에게 아쉬운 점을 묻자 주저없이 "지방자치를 2할 자치상태로 두고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년을 맞은 지방자치에 권한도, 돈도 없다. 새로운 여야 단체장들이 이 점만은 하나로 뭉쳐 개선해 줬으면 한다"는 바람도 숨기지 않았다.시종일관 뜨거웠던 8년을 매듭짓는 것 치고는 의아하리 만큼 조용하다. 마지막 주말, 아침부터 택시 운전대를 잡고 묵묵히 수원시내를 다녔던 그는 30일에는 급식 배식 봉사로 퇴임식을 갈음한다. 8년간 힘을 실어준 도민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 대접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는 마음에서다. '저는 그냥 부천시민'이라는 그의 답변과도 맞물린 담백한 마무리다.#재보선 전망 '쉽지않네'…남경필 당선자 경기도정 잘 이끌 것그의 '귀거래사'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관심은 김 지사가 언제 서울 동작구로 향하는지에 쏠려있다. 7월 재보선이 120일 앞으로 다가온 지난 3월 "임기를 채우겠다"는 그의 다짐에 경기지역 출마를 점쳤던 이들의 예상도 보기좋게 빗나갔다. 선거법상 120일전 단체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해당 지역에서의 출마가 불가능해, 경기지역외 유일한 수도권 재보선 대상지인 서울 동작을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다. "부천이 아니라 동작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 지사는 외려 "재보선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반문했다. 수원에서만 3곳에서 재보선이 치러지는 만큼 8년 수원 팔달구민으로서 관심이 간단다. 이날 그는 '평범한 도민' 김문수를 강조했을뿐 재보선 행보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었다. "전망조차 쉽지 않은 선거다. 그래도 제가 도지사로 있던 곳인데 모든 후보가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지 않겠나"라고 한달 앞으로 다가온 재보선을 평한게 전부였다.남경필 당선자에 대해서는 "후계구도를 잘 만든게 요새 제 최대 자랑거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출어람이다. 상생의 정치를 위해 연정을 제안하지 않았나. 기대가 크다.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인일보에 대해 "도지사를 배출한 언론사 아닌가. 어디서든 애독할 테니 경기도 대표 언론으로서 지방자치가 우뚝 설 수 있게 힘을 실어달라"고 당부하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29일 퇴임 하루 전 김 지사는 '서울 동작을 공천 유력'이라는 언론기사에 아침부터 또한번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그가 택시기사 도지사로서 마지막 운전대를 잡은후 동료기사와 뜨거운 국물로 허기를 달래고 있던 때였다.글 = 강기정기자사진 = 김종택기자▲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8년 도정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해야할 일이 참 많았고 믿고 도와준 도민들과 공직자들께 감사할 따름"이라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그는 30일에는 의정부에서 급식 배식 봉사로 퇴임식을 갈음한다. /김종택기자

2014-06-29 강기정

[인터뷰… 그]美뉴저지 정치1번지 저지시티 최초 '한국인 시의원' 윤여태

지역민 90% 백인·한인은 6명9년간 부시장 불구 선거 난항편지 6만장 직접 서명해 발송80세 노인·환자도 투표소로한국 선거운동 '고작 13일'민심 제대로 듣기에는 짧아적어도 1년간은 '민생탐방'시민이 원하는 일 준비해야2013년 6월 11일. 미주 한인 정치사에 한 획이 그어졌다. 미국 뉴저지주의 정치 1번지라고 불리는 저지시티에서 최초의 한국인 시의원이 탄생한 것. 아일랜드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저지시티내에 그가 출마한 하이츠 선거구에 거주하는 한국인 유권자는 당시 고작 6명, 이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인 윤여태(60·마이클 윤) 의원이 지난 26일 한국을 방문했다. 5년만의 고국 나들이다.두 달 전 미국 출장길에 오른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인연이 닿아 방한했다는 윤 의원은 "사람도 많고 혼잡해도, 한국에 오면 몸과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다"며 한국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사랑을 내비쳤다. 1979년 유신정권 말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에 무작정 낯선 땅 미국으로 향한 지 35년. 동도 트지 않은 시간에 일어나 온종일 잡화점과 제과점에서 물건을 나르고, 해가 지면 졸린 눈을 비비며 수업을 듣는 고된 나날이었다. 집값이 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발을 붙였던 저지시티는 10명 중 9명이 아일랜드계 혹은 이탈리아계 백인이었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도 심해, 돈이 있어도 집을 구하지 못하는 일마저 왕왕 있었다.고생 끝에 신문과 잡지 등을 파는 작은 가게를 열고 매일 아침마다 거리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거리를 쓸고 부서진 공원 의자를 고쳤다. '한국인은 원래 이웃을 생각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그러는 사이 주민들 사이에서 '따뜻한 미스터 윤'으로 입소문을 탔다. 오지랖 넓은 동네 책방 아저씨가 차기 시장 1순위로 거론되던 상대 후보를 가볍게 제친 원동력이었다."그냥 옆집 사는 유색인종, 한국인에 그친다면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윤 의원은 "미국 사회가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길 기다리기보다, 진짜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내자. 여기서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진정한 마음은 어디서나 통한다'따뜻한 미스터 윤'이 뉴저지주 정치 1번지에 입성한 데에는 인종차별과의 싸움이 주춧돌이 됐다. 1987년 9월 한낮에 인도계 의사가 인종차별주의자의 폭행으로 숨졌는데도 지역 경찰이 "이민자가 겪어야 할 과정"이라며 사건을 축소하려 했던 것. 윤 의원과 아버지가 먼저 나서 서명을 받고 시위를 벌여 결국 재조사를 이끌어냈다. '우리 일이 안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움직인 것이지만, 이 일은 6년 뒤 그를 저지시티 부시장으로 만드는 시작점이 됐다.1993년부터 9년간 부시장을 역임했지만 시의원 도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2001년 작고한 아버지의 말씀대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고 생각했다. 선거운동 기간에 주민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일일이 손으로 사인을 했다. 그렇게 서명한 편지 수만 6만여장. 공식일정 외에는 편지에 서명하는 데 온 시간을 보냈다. "보통 '나를 뽑아 달라'는 편지가 오면 사람들이 그냥 한번 쓱 읽고 버리는데, 친필서명이 있으니 쉽게 버리지 못하더라"고 회상한 윤 의원은 "아일랜드계나 이탈리아계 백인이 90%가 넘는 동네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온 한국인을 찍게 하려면 그만큼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진정한 마음은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도 통했다. '정치인들은 거기서 거기'라며 일평생 투표를 안 하던 80세 노인부터, 이제 막 병원에서 퇴원한 이들까지 '따뜻한 미스터 윤'을 위해 투표장으로 향했다. "지금 너무 아파 응급실에 있는데 부재자투표를 좀 하게 해 달라"는 유권자마저 있을 정도였다. 선거에서 이겨서가 아니라, 윤 의원의 진정성이 통했다는 생각에 아내가 먼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시의회 입성 1년, 주민을 위해 달렸다… 한국 선거는 민심 듣기에 역부족주민들의 마음이 모여 당선된 만큼 진심으로 저지시티를 위해 뛰고 싶었다. 우선 주민의 편에 서서 불합리한 세제를 개편했다. 저지시티는 부동산세 등 재산세 감면을 통해 투자 유치를 많이 이뤘던 게 발전의 동력이 됐지만, 대신 주민들이 추가로 세금을 내 감면에 대한 부담을 메웠다. 이에 30년이었던 부동산세 감면기간을 최대 5년으로 줄였다. 주민들의 부담도 큰 폭으로 줄었다.최초의 한인 시의원답게,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의 저변을 넓히는 데도 열심이었다. 젊은 한국인 여성 모니카 조(33)가 저지시티에서 검사로 활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가 하면, 뉴저지주에 한국전 참전비가 들어설 때도 주된 역할을 했다. 다른 참전비와 달리 한국의 현재 모습을 함께 담아 미국은 물론, 이곳을 방문하는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한국을 홍보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현재 윤 의원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다음달 3일 예정된 시의원 선거. 뉴저지의 관문으로 통하는 포트리에서 한국인 변호사 폴윤(40)이 시의원 후보로 나선 것이다. "자꾸 참여하고 정치적으로 세력화해야 미국 사회에서 한인들의 존재감이 커질 수 있다"는 윤 의원은 "성공사례가 많아질수록 우리 2세, 3세들도 미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스윙 보트 역할을 하는 등 더 넓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마침 한국에서도 미국 시의원 선거 다음날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다는 말에 윤 의원은 "한국 선거는 운동기간이 너무 짧은데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후보자들이 민심의 소리를 제대로 듣기에 13일이라는 선거운동 기간은 터무니없이 짧다는 얘기다. 1년 정도 지역 곳곳을 다니며 유권자들의 손을 맞잡았다는 윤 의원은 "적어도 1년 정도는 지역 유권자들과 직접 만나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에게 어떤 것을 해줄 수 있는지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거리 곳곳에 홍수를 이루고 있는 현수막들도 결국은 주민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주민에게 자신을 알릴 수 없기 때문에 비롯된 추한 코미디"라고 꼬집었다. 한국 유권자들은 후보자를 겨우 보름가량 보고 4년을 맡겨야 하는 '불쌍한 유권자'라는 얘기다.# 한국인 중심되는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 천천히 이룰 것이날 인터뷰에는 윤 의원과 40년이 넘은 '절친'인 이석찬 한민족한마음세계연합회장이 동석했다. 윤 의원은 이 회장에 대해 "아버지께서 인생을 함께 할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후회없는 삶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회장이 바로 제겐 그런 친구"라고 강조했다.이 회장은 "지금 저지시티에서 10명을 붙잡고 물어보면 전부 '마이클(윤 의원의 미국명)이 다음 시장'이라고 말한다"며 "윤 의원이 저지시티에 국한된 정치인으로 남는 게 아니라 세계 수도 뉴욕의 뉴저지를 대표하는 이민 1세대로서, 미주 한인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정치인으로서 계속 역할을 하려면 더 많은 한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나름의 활동을 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다음 저지시티 시장 출마는 이미 윤 의원의 의사와 상관없는 일이 돼버렸고, 한민족한마음연합회 활동과 재외 한인 체육회 활동 등에 경인일보도 적잖이 관여한 만큼 윤 의원 당선에 경인일보도 적극 기여해야 한다"는 농담도 건넸다.윤 의원은 "다음달 3일 시의원 선거가 우선 그 관문이 될 것"이라며 "뉴저지에서 시의원에 이어 최초의 한인 시장이 나오면 그 다음 선거에서는 분명히 한국인들이 연방하원에도 진출할 수 있게 된다"고 자신감을 표했다.그러나 결코 서두르지 않겠다는 게 윤 의원의 생각이다. 천천히, 한 발자국씩 더 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한국인들이 들어간다면 어느새 미국사회에서 한민족의 저변이 넓어질 것이라는 강한 믿음 때문이다.이 믿음의 출발점은 한 중국 인권운동가의 인터뷰였다. 윤 의원은 "미국에 왔을 때 뉴욕타임스에서 한 중국 인권운동가를 인터뷰한 것을 봤다.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을 때였는데, 왜 한국은 하는데 중국은 (민주화 운동을)못하냐는 질문에 그 인권운동가가 '중국의 긴 역사에 비해 지금은 굉장히 짧은 시간이다. 천천히 희생 없이 민주주의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답하더라"고 설명하며 "너무 빨리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하기보다, 지금 우리의 행동이 장래에 미치는 영향을 참고 기다리며 보는, 그런 지혜가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밝혔다.윤 의원은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먼저 할 수 있는 것을 하다 보면 무언가 의미있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조금씩, 서두르지 않고 저지시티 주민들과 한국인들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끊임없이 뛸 것"이라고 말했다.■ 윤여태는▲ 1954년생. 1979년 미국으로 이민▲ 서울 성남고, 미국 브루클린대 경영학과▲ 1993~2002 미국 뉴저지주 저지시티 부시장▲ 2013~ 저지시티 시의원글 =강기정기자 사진 =임열수기자▲ 미국 뉴저지주의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저지시티에서 최초의 한국인으로 시의원에 당선된 윤여태 의원이 "미국사회에서 한인들이 정치적으로 세력화 해 한국인의 존재감을 넓히는데 저지시티 주민들과 함께 앞장 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2014-05-28 강기정

[인터뷰… 그]학자에서 CEO로 변신한 최계운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오랜 시간 연구해온 토목학 실무에 접목 '과학적 관리' 실현하고파취임후 내능력 60% 발휘… 공급 소외지역 줄이는 '물 복지' 확대4대강 등 국책사업으로 큰 짐… 부채 감축 등 경영정상화도 큰 목표경인아라뱃길 상생협의회 올초 구성 함께 발전 방향 고민해갔으면물관리 전문가에서 전문 경영인이 된 최계운 한국수자원공사(이하 K-Water) 사장. 지난달 25일 과천시에 있는 K-Water 수도권광역통합운영센터에서 만난 그는 몇달새 살이 빠진 것 같다는 농담에 오히려 "일을 많이 했다는 칭찬 같아서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지난 4개월동안 대전, 과천, 인천을 오가면서 진짜 바쁘게 산 것 같다"고 말했다.최계운 사장은 한 번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불도저처럼 추진력있게 끌고가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11월 취임 이후 아직 자신의 60%밖에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보여주고 싶은게 더 많지만, 당장 눈 앞의 성과를 내기보다는 안정적인 물관리를 위한 기반을 닦아놓는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K-Water의 경영정상화와 '건강하고 스마트한 물'을 만드는게 목표라는 최 사장. 앞으로 남은 40%를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된다.-학자에서 CEO로 변신했다. 올해 K-Water운영기조와 부채문제 해결방안은."토목학도로서 오랜시간 연구해 온 학문을 실무에 접목해 '과학적 물관리'를 실현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이제는 K-Water CEO로서 물관리 선도기관으로 역할을 다하고 세계적인 물 전문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올해 초 발표한 '스마트 신경영'에 따라 깨끗한 물에서 더 나아가 '인체에 건강한 물공급'으로 물 관리 패러다임을 혁신해 나가는게 목표다.K-Water는 다른 공기업과 달리 비교적 건실하게 자라왔다. 하지만, 아주 짧은 시간에 4대강 살리기사업 등 국책사업을 하면서 너무 큰 짐을 지게 됐다. 지난해 말 부채는 14조원, 부채비율은 120.6%였다. 일단 사업 구조조정, 자산매각, 원가절감 등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2017년까지 2조원의 부채를 감축할 계획이다.우리 스스로도 노력하고 있지만, 4대강 투자비에 대해선 정부와 협의해 올해 내로 회수방안을 구체화하고, 근원적인 해결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조정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경인지역에선 경인아라뱃길이 최대 관심사다. 아라뱃길을 둘러싸고 지자체와 갈등이 많은데 해결방안은."경인아라뱃길에 대해선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K-Water와 인천시, 주변에 있는 도시와 상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계획단계부터 이러한 고민들이 부족했던 것 같다. K-Water는 아라뱃길을 만드는 쪽이었는데, 주변도시와 어떻게 잘 연결하느냐에 따라 활용가치가 배가될 수도 있었다.올초 인천시, 서구, 계양구, 우리 K-Water를 비롯해 물 전문가, 시민·환경단체, 갈등관리 전문가를 주축으로 하는 상생발전협의회를 구성했다. 이제부터는 '아라뱃길이 누구 것이다'하지 말고 함께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해나갔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인천 발전의 축이 경인아라뱃길이 됐으면 좋겠다.아직 미진한 문제는 있다. K-Water가 만든 시설 중 도로와 관련된 지자체 이관문제, 도로이용 불편문제 등 일정부분 해결된 것도 있지만, 주민들과 잘 협의해 나가도록 하겠다.시민들이 경인아라뱃길 수질에 대한 걱정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경인아라뱃길 수질도 나아지는 방법을 지역사회와 함께 고민하겠다. 지금 경인아라뱃길 수질개선방안이 100인 100색이다. 그래서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고, 이를 두고 수질이 좋다, 나쁘다 논란이 많다. 이제부터는 어떤 지역에서 어떤 물을 검사할 것인지 서로 합의를 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객관적인 자료가 나오면 시민에게도 알리고 개선방안을 도출할 것이다. 또 아라뱃길 쪽으로 흘러들어오는 한강의 오염물질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지자체와 협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경인아라뱃길 활성화를 위한 방안은."일단 경인아라뱃길 물류기능과 관광기능을 활성화시키는게 중요하다. 경인아라뱃길 경인항과 기존 인천항의 역할을 어떻게 분담할지 고민하는게 필요하다. 특히 아라뱃길 인천터미널은 정서진이라는 관광지가 있기 때문에 주변과 함께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 연구해야한다. 주변의 수도권매립지도 상당한 발전계획이 있기 때문에 경인항과 연계한 수익창출 모델을 구상한다면 관광의 메카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특히 올해는 마포대교 중간 400~500m 구간이 준설되기 때문에 아라뱃길에서 여의도까지 뱃길이 이어진다. 여의도에서 한강을 거쳐 서해바다 섬지역으로 배가 오갈 수 있게 되면 관광과 물류 모두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한다.경인아라뱃길 주변지역에 대한 규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다. 5~6월쯤 주변 개발방안에 대한 기본용역을 하겠지만, 그린벨트를 풀고, 하천구역으로 지정된 아라뱃길 수변을 항만구역으로 지정한다면 좀 더 개발이 수월해질 것이다. 이 부분은 해수부와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앞서 강조했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주민과의 소통이다. 인천시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서 의견을 충분히 듣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겠다."-K-Water가 이끌어 갈 미래산업은."K-Water 미래산업은 크게 3가지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 첫번째는 '통합 물관리'라는 것인데, 상류부터 하류까지 한꺼번에 K-Water가 관리하는 것이다. 국가가 한국수자원공사법을 통해 원수에서부터 하류까지 K-Water에서 관리하도록 맡겼다. 이때문에 통합물관리 주체로서 역할을 잘 하는 것, 이를 위해 충분한 소프트웨어와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두번째로는 국민에게 건강한 물을 공급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깨끗한 물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지만, 지금은 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사가 크다. 그렇다보니 물 속에 있는 나쁜 물질을 없애는 것은 기본이고, 더 나아가 미네랄 등 건강요소를 물에 어떻게 포함시키느냐가 더 중요하게 됐다.세번째는 ICT를 활용해 원수에서 수도꼭지까지 수량과 수질을 과학적으로 관리하고, 그 결과를 국민이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워터그리드'라는 선진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여기에 '물복지'라는 부분을 추가하고 싶다. 우리나라 국민의 98%가 물을 공급받고 있지만, 여전히 100만명에 달하는 섬지역, 산악지역에 사는 국민들은 물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K-water는 이같은 소외지역을 없애는 '물복지'를 확대할 것이다."-마지막으로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블루골드'시대라고 해서 물 문제가 석유문제보다 심각하다고 한다. 물관리를 잘 하는 것은 나라발전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 안에 선진국 반열에 오른 이유 중 하나가 먹는 물, 산업용 물에 대한 관리를 비교적 문제없이 해왔기 때문이다. 그 노력을 해왔던 것은 우리 K-Water가 주역이었다. 지금까지는 하드웨어 발전 위주였다면 물을 미래지향적으로 관리하는데 앞장설 계획이다. 국민들도 우리 사업에 따뜻한 격려와 칭찬을 부탁드린다. 부족할때는 따끔하게 질책도 해줬으면 한다. K-Water는 우리 국토의 물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마음가짐으로 홍수·가뭄 등 각종 물재해로부터 국민의 삶을 보호하고 국민들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깨끗하고 건강한 물을 공급하겠다."■K-Water 최계운 사장은1954년 경기도 화성 출생콜로라도주립대학교대학원 박사 학위(전) 인천지역환경기술개발센터 센터장(전) 인천광역시 하천살리기추진단 단장(전) 세계도시물포럼 사무총장(전) 인천대학교 도시과학대학 학장(전) 중앙하천관리위원회 위원(전) 국토해양부 스마트워터그리드연구단 단장/대담= 장철순 인천본사 편집국장 /정리=김민재기자 /사진 =조재현기자▲ 최계운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은 "지금까지는 하드웨어 발전 위주였다면 물을 앞으로는 미래지향적으로 관리하는데 앞장설 계획이다. 우리 국토의 물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마음가짐으로 홍수·가뭄 등 각종 물재해로부터 국민의 삶을 보호하고 국민들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깨끗하고 건강한 물을 공급하겠다"라고 밝히고 있다.

2014-04-01 김민재

[인터뷰… 그]경기도 무형문화재 한도(韓陶) 서광수 도자 명장

도암 지순택선생 전통제작기법 전수 받아20대 정권 실세 도평요 요장 맡아 유명세1986년 이천에 한도요 설립… 日개인전도자존심 건 싸움 기대이하 작품 깨부수기국내수요 적은탓 젊은층 관심 부족 씁쓸1990년대 끊긴 중요무형문화재 지정바라- 경기도 무형문화재 한도(韓陶) 서광수 도자 명장이천시 신둔면, 명장의 가마는 남정리 호젓한 숲속에 저 홀로 있었다. 3번 국도에서 가까운 때문인지 전원주택들이 단단히 호위를 하는 통에 길을 잘못들었나 의심이 들 무렵 서광수 명장의 한도요(韓陶窯)가 화사한 표정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도공 서광수가 남정리에 가마를 짓고 불을 넣기 시작한 때가 1986년이니,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한도요는 제뜻과 상관없이 점점 속세와 가까워진 모양이다. 하나 그 세월에도 전통 예술도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여전히 미미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인가. 3월 초에 찾아간 전통도예의 요람 한도요의 자태는 고고한 듯 외로워 보였다.경기도무형문화재 제41호이자 대한민국명장(도자기공예) 14호 한도 서광수는 전통방식으로 도자예술을 이어가고 있는 국내 몇 안남은 명실상부한 도공이다. 1948년 이천에서 태어나 신둔초등학교를 졸업한 1961년, 열네살 부터 흙 다지고 물레 돌리며 가마에 불 넣으며 살아 온 세월이 반세기를 훌쩍 넘겼다."너나 없이 어려웠던 시절 아닙니까. 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생업을 찾아야 했고 그렇게 도공이 됐지요."5형제 중 둘째였던 한도를 따라 남은 형제들도 줄줄이 도공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엔 그릇공장에서 기술을 배우던 한도는 1965년 도암 지순택(1912~1993)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도자기술자로 끝날 뻔했던 자신의 운명을 도자예술가로 전복시키는 행운을 얻는다. 백자의 대가로 경기도 지정문화재 4호였던 도암으로부터 제자 한도는 도자기의 전통적인 제작기법을 전수받으면서 도자 예술세계에 젖어들었다. "11년이에요. 도암 선생으로부터 수비질에서 태토, 성형, 조각, 유약, 소성을 전부 배웠어요. 도암 선생은 다른 선생들과는 달리 청자, 백자, 분청을 비롯해 전분야에서 탁월했던 분이었지. 그게 도자기마다 흙과 유약은 물론이고 불까지 다 다르거든. 그 분 밑에서 도자기에 눈을 뜰 수 있었지. 도암 선생은 도자기를 보는 눈이 남 달랐어요. 골동품을 가져다 놓고 그대로 재현하느라 애쓰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한도 서광수의 자질은 뛰어났던 모양이다. 24살 되던 해인 1971년 지순택요(窯)의 성형실장을 거쳐 3년 뒤에는 불을 주관하는 소성을 담당하기에 이른다. 도암이 가르칠 건 다 가르쳤다 인정한 셈이다. 그러다 1976년 3공화국의 실세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직접 운영했던 도평요로 자리를 옮겨 요장(窯長)을 맡아 10년을 보낸다. "당시 잘 나가던 기업의 월급쟁이들이 월 7만~8만원을 받을 때 나는 20만원 넘게 받았어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권 실세에게 파격적인 대우로 스카우트될 만큼 30이 되기도 전에 그는 도암 지순택, 해강 유근형 등 이천도자 1세대의 맥을 이을 후기지수로 손꼽힌 것이다. 그러다 서광수는 1986년 지금 자리에 한도요를 세우고 독립한다.-처음 요를 세우셨을 때 독립했다는 감회가 상당했겠습니다."물론이에요. 전통 도자제작 수련을 받을 만큼 받았다 생각했고 내 이름으로 된 작품을 할 자신이 있었으니 독립한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어려웠어요. 전통을 계승한다는 자부심만으로는 요를 운영하기 힘들더라 이거죠. 그 시절 이미 전통가마는 사라지고 가스가마가 번지기 시작했어요. 또 예술 도자기보다는 생활자기가 각광을 받았고…. 한마디로 가마에 구워 몇 점 건져낸 내 작품을 팔 데가 없었던거지."한도요는 설립 이래 지금까지 1년에 평균 4번 정도 가마에 불을 댕긴다.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서광수 명장이 흙을 고르고 반죽을 만들어 물레 성형을 마친뒤 조각하거나 그림을 입힌 뒤 유약을 발라 초벌과 재벌의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 3개월 가량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6칸 가마에 쟁이는 작품이 150여점. 그나마 그의 자존심에 미달하는 작품을 깨부수고 나면 50점 건지기가 빠듯하다. 이러니 성형틀로 찍어내 가스가마로 대량 생산되는 생활자기와는 처음부터 경쟁이 어려웠던 건 당연했다.-어떻게 그 고비를 넘기셨나요."얄궂죠. 일본 사람들이 제 작품을 주목했어요. 전통 예술 도자기의 가치를 알아 본 일본 도자 애호가들이 내 작품에 반했던 모양인지 한점 두점 사가더라구요. 그래서 안타까운 건 나뿐 아니라 우리나라 유명 도예가들의 좋은 작품 대부분이 일본에 있다는거지. 하지만 난 그 덕분에 버틸 수 있었으니 다행인지 아닌지 착잡하지요."실제로 한도 서광수는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더 유명하다. 1998년 이후 도쿄, 후쿠오카 등 일본에서만 수십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일본의 '한도 마니아' 70여명은 아예 후원회를 결성해 그의 일본 활동을 적극 지원한다.-선생님은 특히 달항아리가 유명하십니다."무지백자(달항아리)는 도공에게 가장 큰 도전이에요. 사람 눈을 유혹하는 문양이나 조각이 일절 없이 오직 불이 빚어낸 색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니까요."그의 달항아리는 유백색을 띠지만 작품마다 전혀 다른 감흥을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불에 따라 유백색 달항아리는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다. 유약 말고는 인간의 간섭을 일절 배제한 달항아리는 보는 이에게 각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단순한 유백색 형태에 담긴 일체유심조의 미학인 셈이다. 달항아리의 유백색은 그가 따로 개발한 유약으로만 가능해 그 누구도 흉내가 불가능하다.인터뷰를 진행한 한도요 전시장은 그가 팔기를 주저해 남겨놓은 작품 수백점으로 가득하다. 백자, 청자, 분청이 그가 입혀준 색과 조각과 그림으로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화려하게 피어있다. "장래에 박물관을 마련할 요량으로 모았다"면서도 "글쎄 그 만한 돈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을 흐린다. 달항아리 한점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그의 명성을 들은 터라 뜻밖의 탄식에 당황했다.-실제로 예술도자에 대한 국내 수요는 어떤가요."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전통을 고집하며 가마를 운영하기에는 버거운게 사실이에요. 사실 제 작품을 개인이 구입하기에는 힘에 부친게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전통도자 보급이랍시고 헐 값에 팔 수도 없고, 또 그랬다가는 한도요 당장 망할겁니다. 그래서 돈 많은 기업들이 전통도자예술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시장을 형성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그나마 한 15년 전부터 차문화가 확산되면서 다완이 많이 나가면서 점점 관상용 자기 판매도 늘고 있지만 전통적인 제작방식을 유지하는 비용을 감당하기는 여전히 힘들어요.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전통 도예를 감당하려 들지 않지요."한도요가 가마에 한번 불을 지피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화목으로 화력이 센 강원도 소나무만 쓰는데 나무값만 1천만원이 든다. 하동 백토, 서산 물토, 양구 백토와 전국에서 장석, 대리석, 석회석을 모아 태토를 만들고 유약을 만드는데는 정성은 물론 비용이 들어가니 한번 작업에 수천만원이 소요된다. 그러고도 달항아리 한 점 구하면 다행이니 처음부터 수지타산이 설리 없다. 그나마 서광수 명장은 국내 후원회의 도움을 받아 큰 짐을 던다. 박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회장으로 있는 서광수 후원회는 한도의 물질적, 정신적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한도 서광수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41호이자, 노동부가 인증한 대한민국 명장이다. 즉 예술과 기술의 경계 양쪽의 인증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도는 자신을 한번도 기술자로 생각한 적이 없다. 그는 도공을 "불로써 흙에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가"로 자부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하나의 희망이 있다."2009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신청했어요. 전통도예의 맥이 끊어질 위기에 있는 만큼 정부가 전통도예의 명맥을 이어주기 바람이 큽니다." 문경 김정옥 사기장이 90년대 중반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도예계에서는 소위 인간문화재 지정이 전무했다. 한도는 "한국 전통문화의 백미인 도자예술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절실하다"며 "번번이 미뤄져 온 심사가 올해는 꼭 이루어지기 바란다"고 말했다.한도가 취재진을 가마터로 이끈다. 일체의 기계장치를 볼 수 없는 한도요에서 6칸 가마는 그 위세가 압도적이다. "지난 1월 불을 넣고 나서 한칸을 허물지 않고 그냥 뒀지. 한번 허물어 볼까…." 가마 한칸 옆구리를 헐어내자 그 안에 20여점의 백자들이 처녀처럼 수줍게 앉아있다. 하지만 다 들어낸 작품에서 타작들을 골라낸 한도 서광수. 언제 들었는지 모를 망치로 냅다 옆구리를 내려친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그의 자존심이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한도 서광수는■ 출생-1948년, 이천 ■ 작품활동-제1회 한국전승도예협회 회원전(1981), 세계 미술협회 회원전(1992), 한국전통 공예가협회전(1996), 한국도예 5인전/일본 초청전(1997), 한·미 문화제전 주최 미주순회전(1998), 프랑스 한국문화원 초청전/캐나다 한국도자전(2002), 중국 경덕진 천년제 초청전(2004), 도공 50년 기념전(2011) ■ 상훈-경기도지사 표창,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대한민국 명장 14호, 경기도무형문화재 41호/대담·글 =윤인수 문화부장 /사진 =김종택 사진부장▲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1호이자 대한민국명장(도자기공예) 14호 한도 서광수. 그는 "도공은 불로써 흙에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가"라며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전통도예의 맥이 끊어질 위기에 있는 만큼 "정부가 전통도예의 명맥을 이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14-03-25 윤인수

[인터뷰… 그]한만청 (사)국민경제과학만화운동본부 이사장

지난 13일 동대문과 혜화로타리를 지나 '국민경제과학만화운동본부'가 있는 성북동 비탈로 접어드니 옛 서울 분위기가 완연하다. 한만청 이사장이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성북동 옛 정취와 닮은 미소로 맞아준다. 한 이사장은 의학계의 원로이다. 영상의학 분야에 남긴 그의 족적은 걸출하다. 서울대학교병원장을 지냈고 세계방사선의학회 종신명예회원이다. 그가 걸어 온 의업(醫業)의 자취만으로도 인터뷰 주제는 무궁무진하다.그런데 만화라니. 한 이사장은 2001년부터 '국민경제과학만화운동본부'를 이끌어 왔다. 1934년 생이니 치열하게 정진해온 의료 현업에서 물러난 뒤에 묵묵하게 정진해 온 운동이다. "이공계를 살려야 한다는 분들의 뜻을 모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과학진흥운동을 벌여보자는 의도였지." 공부 좀 하는 청소년들이 법과 경영에 몰려 과학이 소홀히 여겨지는 양상이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청소년들이 대상이니 자연스럽게 선택한 매체가 만화. 이후 운동본부는 '국민은 신바람 이공계 짱' 등 과학만화 20여 권을 발간해 전국 초·중·고에 무료 배포해왔다.운동본부는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만화 주제를 과학에서 역사로 전환한다. 대한민국 청소년 역사교육이 비판의 도마에 오른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정말 이래서야 되겠냐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청소년들의 역사관 국가관 결핍은 미래의 재앙이니까요." 한 이사장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시비와 역사왜곡이 심각해지는 상황을 반영해 올해 발간 역사만화 제목을 '3·1절 대한독립만세'로 결정했다"고 밝혔다.-특별히 3·1절을 발간 주제로 삼은 이유가 있을텐데요."올해로 3·1독립운동 95주년이 됐어요. 그런데 청소년들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3·1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잘 모르고 있다니 큰 일이다 싶었지. 일본은 아베 총리가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역사적 반성은커녕 대대적 역사왜곡을 자행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200만명이 참가한 3·1독립운동이 왜 일어났으며, 평화적인 시위를 총칼로 진압한 일제의 잔학상을 역사적 사실로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자는데 발간위원들의 뜻이 일치했습니다."운동본부는 해마다 발간위원회를 구성해 만화의 주제를 결정한다. '3·1절 대한독립만세' 발간위원회에는 김종필, 이홍구, 이한동,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김종인 전 청와대경제수석이 명예위원장으로 참여했다. 역대 총리들이 보수와 진보 구분 없이 동참한데서 일본 역사왜곡에 대한 원로들의 우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3·1독립운동은 대한민국 역사의 시원입니다.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민족정신의 기초인데요."맞아요. 우리나라는 1910년의 한일합병조약으로 1945년까지 일제강점시대를 겪지요. 특히 1910년부터 약 10년동안 이뤄진 일본의 통치를 '무단통치'라고 부릅니다. 데라우치가 조선 사람은 복종 아니면 죽음, 둘 중 하나라고 공언할 정도였지요. 식민통치의 초반에 일제는 한민족의 자유를 잔인하게 압살하고 경제수탈을 악랄하게 자행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 국민의 저항의지는 높아졌지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를 피해 간도와 연해주 등으로 탈출해 독립운동을 계획합니다. 이러한 의지가 모여 1919년 3월 1일, 일본에 항거하는 거족적인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난거지요."조국의 암담한 어둠에 갇혀있던 그 시절. 한 이사장의 부친 월봉 한기악 선생도 만주로 망명을 감행한다. 1898년 구한말에 태어난 월봉은 3·1운동 이후 이동녕, 이시영, 조소앙 등과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한 뒤 임시의정원 의원과 법무부 위원에 선임된 독립운동가. 귀국해서는 동아일보, 시대일보,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민족계몽운동과 항일투쟁의 필봉을 휘둘렀다. 신간회 발기인 중 1인인 월봉은 끝내 조국 독립을 못보고 1941년 독립투사의 삶을 마감했다. 한 이사장이 8살 때의 일이다. 한 이사장이 역사를 소홀히 할 수 없는데는 이런 가문의 배경이 버티고 있다. -3·1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한번 새겨주시지요."3·1독립운동은 수많은 희생자들을 남겼지만 독립에 이르지는 못했어요. 하나 독립을 향한 자주정신, 민족정신을 보여주고 민주주의를 향한 시발점이라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전세계에 일제의 잔인함을 고발하고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보여준 것 또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후 거의 모든 독립운동 세력은 3·1독립운동을 자신들의 모태로 여겼고, 독립운동의 역사적 당위와 논거로 3·1독립운동을 앞세웠으니 역사적 이정표라 규정하는게 당연하지요. 대한민국의 출발점으로 말이에요."-청소년들의 역사인식 결핍은 결국 어른들의 잘못 아닙니까."맞아요. 역사교육이 허술해지면서 청소년들이 주변국과 우리가 맺고 있는 현실적 관계에 무지한 상황이 일반화되고 있으니 걱정이지요. 6·25전쟁이 언제 일어난 일인지 모르는 청소년들이 절반이 넘는다네요. 몇 년째 논란이 되는 야스쿠니 신사가 무엇인지 묻는 설문에 대다수 국민들이 '모른다'라는 답변을 내놓습니다. 뭔지 알아야 대응할텐데 말이지요. 야스쿠니 신사의 '신사(神社)'를 젠틀맨이라고 답하는 사람들도 있다니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안타깝지요. 국민들의 역사의식이 낮은데다 일본의 끊임없는 역사 왜곡과 도발이 맞물리면서 역사교육의 필요성이 자연스러워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에요. 이런 기운을 빌려 역사교육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확실하게 만들어내야 해요. 역사 없는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하잖아요. 역사 교육을 통해 순결한 민족적 정체성을 갖춘 국민들을 양성하는 일이 대한민국 미래를 만드는 일이라는 걸 깨달을 때가 됐어요."-그래서 올해 만화제목이 '3·1절 대한독립만세'가 됐군요. 그런데 역사계몽운동이라면 만화가 좀 가볍지 않을까요."청소년들이 3·1독립운동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감수했습니다. 영상세대인 요즘 젊은이에게는 만화라는 매체의 전달력이 강력해요.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하는데 최적이에요. 많은 청소년들이 저희 만화책을 통해 우리 역사를 조금이라도 가슴 속에 남겨둘 수 있으면 대만족입니다. 그것이 기본이 되어 시간이 흐르면 더 큰 지식으로 발전할거라 믿습니다."-국민경제과학만화운동본부가 하는 일을 알려주시지요."크게 과학기술 관련 만화와 역사교육 만화를 발간해 무료 배포하는 일이 주된 사업이에요. 초·중·고 학생들에게 설문을 돌리면 장래 희망란에 '과학자'라고 쓴 학생들은 10%정도라고 해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과학이 재미없어지면서 장래 희망 목록에서 과학자가 사라지는 겁니다. 국가 장래에 도움이 안되는 풍토입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과학에 관심을 갖게하는 동기를 주자는 생각에 과학만화를 발간하기 시작한게 벌써 10년 훌쩍 넘었네요. 그러나 최근 들어 역사 분야를 주목해 '8·15 광복절', '6·25전쟁' 등 잊혀져 가는 역사를 만화로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비용이 많이 드는 일인데요…."그래 돈이 가장 문제야.(웃음) 아무리 좋은 교재라도 전달돼야 의미가 있으니 그렇지요. 순수한 민간운동인데다 최근에는 역사문제에 천착하다보니 아무 돈이나 받기 힘든 점이 있어요. 그러니 뜻 있는 단체나 독지가의 도움이 절실해요. 많은 분들이 도움을 약속했지만 그래도 부족한 건 사실이지."한 이사장과 인터뷰는 '행동하는 원로'를 목격하는 보람이 컸다. 원로의 조언과 충고에 조롱으로 화답(?)하는 세태에서, 동시대의 후배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묵묵히 수행하는 원로를 만나는 일이 어디 그리 흔한가. 한 이사장은 최근 재판을 찍은 자신의 저서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기자에게 건넸다. 1998년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도 거뜬히 회복한 투병기다. 한 이사장이 조크로 인터뷰를 끝냈다. "책을 주긴 주는데 읽을 일은 없는게 좋지. 하하하."국민경제과학만화운동본부는 해마다 만화 발간 계획을 세운뒤 발간위원회를 구성한다. 대부분 각 분야 원로들로 구성된다. 이들의 인적 네트워크가 발간의 주요 원동력이다. 그러나 한번에 20만권을 발간해 학교와 도서관에 무료배포하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면 동참을 권해본다. 운동본부 : (02)741-9200▼한만청 이사장은■ 출생 1934년■ 학력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의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의학박사) ■ 경력 (전)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 (전)미국 하버드대학교 연수 (전)방사선의학회 회장 (전)방사선방어학회 회장 (전)아·태심혈관및중재적방사선학회 회장(전)서울대학교병원 원장 (전)산학연협동연구소 이사장 세계방사선의학회 종신명예회원 북미방사선의학회 명예회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원로회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산학연장학재단 이사장■ 상훈 보사부장관표창 대한방사선의학회학술상 분쉬의학상 (대한의학회·한국베링거인겔하임) 함춘대상(서울의대 동창회) 학술연구 부문 /대담·글= 윤인수 문화부장 /사진 =김종택 사진부장▲ 올해 발간한 역사만화 '3·1절 대한독립만세'

2014-03-18 윤인수

[인터뷰… 그]임기 절반 넘어선 한국소비자원 정대표 원장

상류층보다 평범한 시민 권익 위한 조직검사로 활동했을 때와 추구하는 바 같아법과 현실 사이 균형 맞추며 활동해 갈 것상식선 벗어난 블랙컨슈머까지 품기는 힘들어전화상담사 폭언 등 피해 예방 위해 룰 마련국민에 정보 친숙히 전달하려 노력상품·서비스 비교… 민간단체와 협력 '과제'10일,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한국소비자원에서 이제 막 임기 절반을 넘어선 정대표 한국소비자원 원장을 만났다.정대표 원장은 2012년 9월 검사에서 한국소비자원 원장으로 변신했다. 강력부 검사로서 조직폭력배와 마약범죄 분야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폈던 '그'와 한국소비자원은 선뜻 연결고리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첫 인사를 나눔과 동시에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었다. 매서운 눈빛을 거둬내고 푸근한 미소로 기자를 반기는 정 원장에게서는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배려가 느껴졌다.마라토너의 뜀박질로 보자면 풀코스의 반환점을 돈 시기인데 숨가빠하기는커녕 오히려 여유가 묻어났다. 자신 역시 여러 소비자 중 한 명이라 생각하며 소비자 문제에 접근한 정 원장의 방식이 옳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퇴직후 어떤 일을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당시에 주변 분들과 만나 제 고민을 놓고 이야기도 자주 나눴는데 몇몇 분이 한국소비자원 원장 공모에 응해보지 않겠냐고 물으셨습니다. 공모 내용 확인차 홈페이지를 살펴봤는데 지금까지 제가 해 온 일과 영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한국소비자원은 소비자 정책 연구, 거래 개선, 피해 구제, 소비자 안전, 시험 검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또 이들 활동의 공통점은 '소비자 기본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법을 다루던 사람이 한국소비자원과 연을 맺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기본적으로 법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전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걱정보다는 법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효율적인 조직 운영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기대하는 바가 있었습니다."더불어 정 원장은 사회적 약자 혹은 배려가 필요한 대상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한국소비자원 일을 하며 더욱 절감하는 것은 상류층을 위한다기보다는 평범한 시민을 위한 조직이라는 점입니다. 보다 힘이 약한 사람을 위한 '법'에 기본하기에 그런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검사로 활동할 때나 지금이나 추구하는 바는 같습니다."정 원장이 소비자 문제를 대할 때 가장 앞세우는 기준은 '상식'이다. 같은 소비자 관련 문제라 해도 상식선을 벗어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소비자에게까지 시간과 열정을 쏟을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저희 조직내에서는 '불평불만이 과도한 소비자'라고 하고 흔히는 '블랙컨슈머'라 부르는 층이 있는데 심한 경우는 같은 소비자 입장에서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소비자 권익을 높여야 한다는 인식과 목소리가 나오면서 불평불만이 과도한 소비자도 생겨났는데, 소비자를 위한 조직이라 하더라도 이 분들까지 품어드리긴 어렵지않을까 합니다. 그보다는 소비자 권익, 소비자 보호, 소비자 활동에 대한 옳은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한국소비자원의 할 일이라고 봅니다."그는 갈수록 심해지는 전화 상담사 피해 문제도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얼굴이 보이지않는다는 이유로 성적 희롱을 하거나 욕설·폭언을 하는 소비자를 무조건 감쌀 수는 없다는 것. 때문에 정 원장은 전화상담 룰을 마련했다."상담원을 아랫사람으로 보고 마구 대하는 경우가 있는데, 직원들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것을 막기위해 상담룰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소비자를 위한, 소비자에 의한 한국소비자원이기는 하지만 불평불만이 과도한 소비자 문제처럼 균형이 깨진 상황이라 판단돼 해결책 차원에서 선택한 일입니다."지인들과 직원들이 꼽는 정 원장의 장점은 순발력과 적응력이다. 한국소비자원에서 보낸 1년6개월의 시간동안 그의 장점은 빛을 발했다. 덕분에 한국소비자원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성과를 거뒀다.한국소비자원에 대한 긍정이미지, 편안한 이미지를 키운 것도 정 원장이 이룬 일 중 하나다. 그는 한국소비자원이 국민을 위한 서비스 기관인 만큼 누구나 친근하게 느끼고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비용이 비싼 연예인 홍보 모델을 택하는 대신 직원을 홍보 모델로 삼았습니다. 또 기관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홍보 활동에 적극 사용했습니다. 전문 지식을 갖춘 직원들이 기관 모델이 되며 신뢰도 상승 효과를 거뒀고, 캐릭터 활용으로 소비자 정보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됐습니다."올해 1월 본격적인 서비스에 들어간 '온라인 전자상거래 피해 상담 일원화 시스템'도 눈에 띈다. 소비 환경 변화로 생겨난 전자상거래, 이로 인해 늘어나는 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갖춘 이 시스템은 한국소비자원·정보통신산업진흥원·한국콘텐츠진흥원·대한법률구조공단이 협업해 중복 상담, 조사를 막고 소비자 이용 편의를 높였다는 평을 얻고 있다.정 원장은 더불어 해외여행 수요가 증가하며 항공소비자 보호 필요성이 높아짐을 포착해 발 빠르게 국토교통부·한국교통연구원과 업무 협약을 맺어 저비용 항공사 피해 다발 사업자 공개, 항공교통서비스 평가 제도 대상에 외국 항공사 포함, 불합리한 항공 관행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꾀했다.이들 성과는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 환경에 순발력있게 대처하고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지원책을 늘 고민한 결과다."옛말에 틀린 것이 없다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주변 환경, 변화에 관심을 두고 살아온 것이 한국소비자원 일을 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때론 작은 호기심이 변화의 시작점이 되기도 했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술을 즐기는데 한국소비자원 원장직을 맡은지 얼마 안됐을 때 호프집 500㏄ 잔은 정말 딱 500㏄일까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한 조사로 정량 위반 사실을 알아냈고, 이후 호프집이 정확히 맥주 양을 지켜 파는 변화가 있었습니다(웃음).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그의 임기는 내년 9월8일까지다. 허락된 시간 내 더 많은 일을 이루고 싶은 것이 정 원장이 가진 유일한 욕심이다. 올해 주요 사업도 고심 끝에 설정했다. 그 중에는 '지역밀착형 사업 확대'가 1번이다."지자체나 민간 소비자단체와 한국소비자원의 관계가 매우 좋지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굳이 갈등을 키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종 소비자 문제가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 피해 구제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급하고 지역 소비자를 위한 행정 모델을 정립하려면 민간 소비자단체와 협력은 꼭 필요합니다. 저희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돕고 도움받을 일을 정중히 부탁드리며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고자 합니다."정 원장은 지난해 큰 호응을 얻었던 국민생활 밀착 상품, 서비스 분야에 대한 비교 정보 제공 서비스는 올해 확대되는 사업에 포함시켰다."이 역시 고민이 많았던 부분인데 무엇보다 소비자 알 권리가 우선돼야 한다고 의견을 모아 소비자 중심 비교 정보 생산에 힘을 기울이기로 했습니다. 올해는 스팀다리미 등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가전제품과 라면같은 국민 먹거리 등으로 비교 정보 대상을 넓힐 계획입니다. 살피고 챙기면 좋은 정보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시종일관 사람 좋아보이는 호탕한 웃음을 보여 준 그에게는 사람내음이 났다. 있는 척이나 아는 척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정 원장에게 인생의 가장 큰 가치를 물으니 역시나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검사시절부터 '권위의식을 내세우지 않는 편한 사람', '털털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라는 평을 얻었던 것도 사람을 아낄 줄 알았던 심성 덕이구나 싶었다.한국소비자원에서 그는 '사람'이라는 최대 가치에 '신뢰'의 중요성을 더했다. 사람 사이 관계에서 신뢰를 얻어야 발맞춰 나아가는 일이 가능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함께해야 할 대상도 한정 짓지 않는다. 그는 소비자 누구나 파트너이고, 조직원 누구나 친구라고 말했다."하는 일, 자리가 바뀌어도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상대는 동등합니다. 한국소비자원 구성원과 도움을 요청하는 소비자도 똑같고 원장과 조직원도 평등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다행스럽게 직원들도 제 마음을 헤아려줘 그 흔한 노사분쟁도 없습니다. 지내보니 '원장이기 때문에'라는 말은 필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서로 존중하고 믿으며 힘을 모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한국소비자원 정대표 원장은?■ 1956년생 ■ 경북고등학교 졸, 성균관대 법학과 졸, 성균관대 대학원 졸■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인천지검 강력부장검사, 대검찰청 마약과장, 성남지청 차장검사, 울산지검 차장검사, 부산동부지청 지청장 /대담=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글= 박석진기자 /사진=조재현기자▲정대표 한국소비자원 원장이 10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 한국소비자원에서 인터뷰를 통해 "소비자 문제를 대할 때 가장 앞세우는 기준은 '상식'이다"며 "소비자 권익, 소비자 보호, 소비자 활동에 대한 옳은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한국소비자원의 할 일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2014-03-12 박석진

[인터뷰… 그]수원고등법원 설치 숨은 공로자 장성근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장

2006년부터 변호사회·지역의원·시민 노력'경기도 숙원' 설치 법안 지난달 국회 통과도민 항소장 들고 서울行 경제적부담 덜어변호사 선임료 인하·상권활성화 효과볼듯위치·예산규모 미정… 2019년 본격가동 예정지법과 떨어진 최초 고법 관계부처 협의 중요"도민 사법권리 위해 북부에 원외재판부 둬야""경기도의 사법 독립을 이뤄냈다."경기도민들의 숙원인 수원고등법원 설치 법안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 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으로 수원고등법원과 수원가정법원 신설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법안 통과에 따라 앞으로는 도민들이 1심에 불복, 항소할 경우 소장을 들고 상경하는 웃지 못할 풍경은 이제 없을 것으로 보인다.법조계는 물론 정·재계, 도민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법안 통과를 반기고 있는 가운데 그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바로 장성근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장.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는 지난 2006년, 제17대 국회 때부터 당시 가칭 '경기고법' 설치를 위해 뛰었지만 법안은 계속 표류했다.매번 법안은 자동폐기되기 일쑤였고, 주무부처인 법원행정처와 기획재정부는 3천여억원에 달하는 재원조달 문제에 이견을 보였다.그러나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무려 8년 만에 법안이 통과됐다. 그 결실을 보기까지의 과정을 장성근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장을 만나 들어봤다. |편집자 주-수원고법 설치에 관해 소감 한마디 해 달라.환영, 또 환영이다. 수원고법 설치 법안이 통과된 것은 경기도민의 꿈이 현실이 된 것과 같다. 인구 1천250만, 경기도는 서울보다도 인구가 많은 지자체다. 경기도에 고법이 없다는 것은 법이 추구하는 바와도 배치된다. 사법 절차적 기본권은 경기도민들도 타 지자체 주민들과 똑같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도민들은 지금껏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보호받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도민들은 항소장을 들고 서울을 오갔고, 변호사도 서울 변호사를 선임해야 했다. 도민들은 더 비싼 선임료를 내고도 푸대접을 받아가며 소송을 진행해야 했다.이에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에서는 지난 8년간 고등법원 설치를 위해 뛰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뜨거운 관심이 큰 힘이 됐고, 그 힘으로 8년간 고등법원 설치 입법 운동을 펼칠 수 있었다. 또 정치인을 비롯해 시민단체, 도와 수원시가 혼연일체로 노력해 소중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이 자리를 빌려서 수원고법 설치를 위해 함께 뛴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입법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입법을 위해 국회를 수십 번도 더 오가면서 느낀 점은 국회가 참 멀다는 것이었다. 사실 수원 사무실에서 국회까지는 가까운 거리다.수원역서 무궁화호 타고 영등포역까지 간 뒤 택시 한 대 잡아타면 기본요금만 내고도 도착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는 이렇게도 가까운 거리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수원고법 설치 노력은 지난 17대 국회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이기우 의원 등 국회의원 44명은 2007년 6월 '서울고법 관할구역에서 경기도를 빼고, 광교신도시에 경기고법을 설치한다'는 내용이 담긴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그러나 이 개정안은 법사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회기 종료와 함께 2008년 자동 폐기됐다.18대 국회에서도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 7월에는 정미경 의원이 가정법원을 설치한다는 내용을 추가해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 역시 2012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매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19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김진표·원유철 지역 국회의원들의 노력에도 개정안이 법사위에서 표류했기 때문이다.또 법원행정처 등 관계부서도 고민이 많았다. 우선 판례의 통일성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현재 고법은 서울,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 5곳이다.그런데 수원고법이 설치되면 재판부는 늘어나는 셈이 되고, 자연히 판사 숫자도 증가해 재판부 판단이 난립한다는 것이었다.그럼에도 단 한 번이라도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계속 뛰었다. 그러던 중 법원행정처에서 지난해 5월 영통구 기재부 소유의 땅을 수원고법 부지로 물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수원고법, 왜 꼭 필요한가.우리나라에서 고법이 마지막으로 설치된 해는 1992년이다. 대전고법 설치 이후 20년 넘도록 고법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결국 수원지법에서 항소한 사건은 수십년째 서울고법에서 관장, 서울고법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상태다.우선 인구를 보면, 서울고법이 관할하는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과 강원까지 2천600만명을 넘는다. 서울고법 관할 인구가 전체 인구의 50%를 초과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서울고법의 항소심 접수사건 수는 연간 4만건에 육박하는 실정이다. 수원고법의 부재로 서울고법의 업무가 과중되는 문제는 어쩌면 필연적이었다.특히 서울고법서 처리되는 사건 중 수원지법 사건이 2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내에는 원외재판부마저 없었다.원외재판부는 제주, 전주, 청주, 춘천, 창원 등 고법이 없는 광역지자체에 모두 있지만 경기도만 역차별 당해 온 것이다.잠재적 사법 수요까지 합치면 더 많은 도민이 불편을 겪었을 테다. 고법이 서울에 있어 항소를 염두에 두고 소송을 벌이는 경우 애시당초 서울에 소장을 제출한 도민들도 다수이기 때문이다.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서울고법의 업무 분담을 위해, 특히 도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수원고법 설치는 반드시 필요했다.-효과와 전망은?수원고법이 오는 2019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 서울고법 업무의 20% 이상이 수원고법으로 내려온다. 이렇게 되면 도내 변호사 수임료는 수백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현재 경기남부지역 변호사는 670여명인데, 사건 수요가 늘어나면 자연히 변호사 숫자도 더 증가하는 것은 물론 대형로펌의 진출에 따라 변호사 시장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신 도민들의 변호사 선임료는 낮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이뿐만 아니라 고법과 고검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변호사들로 인해 민원인들이 받는 서비스의 질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또 경기도 출신 변호사는 최근 증가추세로, 도민들은 해당 지역사정에 밝은 변호사들에게 사건을 믿고 맡길 수 있을 것이다.이 밖에 국내 변호사 1만5천여명 중 70% 이상이 서울에서 활동하는 기형적인 구조에서도 탈피할 수 있게 된다.가시적인 경제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원고법은 아직 법안만 통과된 상황이라 정확한 예측은 어렵지만, 서울고법과 비슷하거나 더 큰 규모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자연스레 고법과 고검 주변에 상권이 형성되고, 소비 규모도 커져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또 고법과 고검에는 판사, 검사, 일반직 직원까지 수백여명이 상주하게 된다. 수원지법과 지검만 있었을 때에는 순환근무체계로 매년 인사발령이 있어 이들에게 수원은 단순히 거쳐가는 곳으로 인식됐다.하지만 앞으로는 인사교류가 있다고 해도 지법과 고법, 지검과 고검을 오가게 돼 수원에 상주하는 직원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로스쿨생들도 혜택을 볼 수 있다. 현재 로스쿨 입학 정원은 2천명으로 고법 중심으로 인원이 배정되는데, 현재 도내에는 아주대에만 50명 정원의 로스쿨이 있다.향후에는 수원고법이 들어선 도의 위상에 걸맞게 로스쿨 정원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선전담 변호사의 경우에도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에서 20명을 신청했지만 단 한 명도 안 됐다. 마찬가지로 고법 설치 후에는 상황은 역전될 가능성이 높다. -남은 과제는?이제 막 법안이 통과됐다. 아직 수원고법의 위치와 규모, 예산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현재 설계가 진행 중인 수원지법, 수원지검의 광교 신청사에는 함께 입주할 수도 없게 될 터라 지법과 고법이 따로 떨어져 있는 최초의 고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에 우선 힘써야 한다.수천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교통요지를 물색해 민원인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넓은 부지 확보도 필수다.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는 물론 국회의원, 경기도, 수원시, 시민단체 모두 법안 통과에 안주하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 고법이 설치되는 날까지 혼연일체가 돼 뛰어야 한다는 점이다.수원고법 설치가 늦춰지지 않도록 계획을 꼼꼼히 짜 법원행정처, 법무부 등 관계기관과의 긴밀한 협조도 필요하다.또 경기북부지역에 대해 관심을 쏟아야 한다. 수원고법 설치 법안이 통과됐지만, 의정부지법은 수원고법 관할구역이 아니다. 도민들의 사법권리를 온전히 되찾기 위해서는 경기북부에 원외재판부를 둘 수 있도록 남은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장성근 회장은?▲건국대 법학과 졸업▲사법시험(24회) 합격▲사법연수원(14기) 수료▲해군 군법무관▲수원지검 검사▲변호사▲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부회장▲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경기도 고문변호사▲수원지방법원 조정위원▲수원경실련 공동대표/강영훈기자

2014-03-05 강영훈

[인터뷰… 그]임흥세 남수단 축구대표팀 총감독이 말하는 인생 철학

현 월드컵대표팀 홍명보 감독 은사2006년부터 아프리카 축구전도사 자처남아공 거쳐 내전 남수단 총감독 계약한국지도자 영입등 '스포츠 외교' 활동위암 수술·각종 병마와 싸움 불구말리등 열악한 곳서 마지막 봉사 꿈꿔"내게 배려란, 축구로 꿈 심어주는 것"경인일보는 올해 신년 화두를 '배려'로 정했다.배려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가지로 마음을 써서 보살피고 도와줌', 또는 '관심을 갖고 도와주거나 마음을 써서 보살펴주다'라는 뜻이다.하지만 하루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들은 과연 배려를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남을 위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얼마나 우리는 관심을 가졌을까.그러나 배려를 인생의 삶으로 여기고 타지에서 축구공 하나로 개척하는 한국인이 있다. 그는 아프리카 대륙 북동부에 위치한 남수단에서 축구로 아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가르치고 있는 임흥세(58) 감독이다.그는 지난달 14일 남수단 정부·축구협회로부터 국내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대표팀 총감독으로 선임됐다.25일 한국을 방문한 임 감독을 만나 그의 축구 인생 철학을 들어봤다.이날 경인일보를 방문한 임 감독은 기자를 보자마자 상기된 표정으로 대뜸 "죽다 살아났어"라고 말했다.그가 이 같이 표현한 것은 현재 남수단 사회가 정부군과 반군간의 교전으로 위기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임 감독은 "내가 떠나기 전까지도 1㎞ 밖에서 총소리와 대포소리가 자주 울려퍼졌다"며 "현재 시민단체(NGO)는 물론이고 외교관도 안전문제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남수단의 심각성을 전했다.이어 "내가 위치한 톤즈 지역은 하루에도 수 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총격전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하루속히 남수단이 정상화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밝혔다.아프리카 남수단 톤즈는 지난 2010년 선종한 고(故) 이태석 신부가 봉사활동을 한 지역이다.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는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50여년 간 내전 끝에 2011년 7월 새 독립국가가 된 남수단은 이후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으로 18세 미만 청소년들이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할 정도다.또 식량 비축량이 최근 5년동안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약 600만 명에 이르는 국민이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했다.그러나 생사를 넘나드는 곳에서 임 감독은 이들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가족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라고 하지만, 어린이들이 자꾸 생각나 돌아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사실 임 감독은 지난 2006년 1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에이즈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선교사로 활동, 재능 기부를 통해 축구를 전파했다. 그는 남아공에 머물면서 축구를 통해 어린이들의 삶을 바꿔 놓았고, 2010년 월드컵을 개최한 남아공 정부는 그에게 축구학교 설립을 허가해 주기도 했다.또 임 감독은 축구 교육용 DVD와 교재를 제작해 남아공을 비롯 아프리카 54개 국가에 배포하며 축구 전도사 역할을 했다.하지만 그는 남아공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임 감독은 "남아공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지도자를 배출하면서 또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면서 "이 곳보다 더 어렵고 힘든 곳에서 축구를 가르쳐야 겠다는 생각에 내전중인 남수단을 찾게 됐다"고 설명했다.임 감독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게 하기 위해 여권도 남수단축구협회에 맡겼다고 한다.그의 행동에 남수단 정부는 지난해 축구 대표팀 총감독을 제안했다. 그는 몸도 좋지 않고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거절했지만 이내 수락했다.임 감독은 "남수단 축구협회가 작년부터 감독 제안을 했는데 사정상 보류했다. 하지만 남수단에서 잇따라 폭탄이 터지고 난민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감독직 제안을 더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고 수락 배경을 설명했다.그는 "남수단 청소년들의 축구 열정은 대단하다. 총성과 포탄이 떨어지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어린이들은 마치 일상생활을 하듯 축구를 즐기고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이어 "남수단은 국제축구연맹에 209번째로 등록한 국가다. 현재 축구 시스템이 전무하다"면서 "남수단 정부와 축구협회는 2002년 4강 신화를 이루고 월드컵 8회 연속 본선에 진출한 한국의 축구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나를 택했다"고 전했다.임 감독은 남수단의 축구 실력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최하위지만, 한국 축구 시스템을 도입해 적용한다면 5년 뒤에는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그는 남수단과 2년 총감독, 1년 연장에 대한 계약을 맺었다. 그는 곧바로 남수단 수도 주바에 대표팀 본부를 차렸다. 현재 남수단은 정상적인 축구를 할 수 없다. 내전으로 곳곳이 폐허가 된 탓에 맨땅에서 축구를 한다. 하지만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그는 우선 남녀 12·15·17세 청소년대표팀, 국가대표 감독 등 남수단 축구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계획이다. 이어 현지·한국 지도자를 영입하기로 하고, 대한축구협회와 업무협약 및 코치 연수, 축구 교류 등을 놓고 협의중이다. 그 결과 최근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축구단 유니폼과 용품 등을 후원받는데 성공했다.그는 "대한축구협회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오는 8월께 남수단 15세팀이 한국대회에 출전할 때 남수단축구협회장이 직접 나와 대한축구협회와 업무협약에 대한 체결도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임 감독의 목표는 또 있다. 바로 남수단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정식 가맹국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5개 이상 국내 체육단체가 설립돼 있어야 한다.임 감독은 "가장 열악한 나라인 남수단에 한국 스포츠 전반을 도입하고 싶다"며 "나아가 한국 스포츠를 모델로 동아프리카 지역 체육이 발전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현재 남수단 정부는 임 감독의 스포츠 외교에 감탄하고 있다. 남수단에는 일본 및 중국 업체가 건설산업에 수 백억원을 쏟아붓고 있지만, 임 감독은 스포츠 재능 기부를 통해 한국을 알리고 있는 '남수단의 아이콘'이다.그러면서도 임 감독은 다른 세상을 또다시 꿈꾼다. 그는 "남아공보다 더 어려운 곳을 찾은 게 톤즈였다. 선교적 봉사자로 축구 감독 이미지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그들을 돕고 싶다. 남수단은 3년 정도면 축구시스템이 갖추게 된다"면서 "아프리카 서부의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등에서 마지막 봉사활동을 펼치고 싶다"고 전했다.임 감독은 홍명보 한국월드컵대표팀 감독과 김주성 동아시아축구연맹 사무총장, 하석주 전남드래곤즈 감독의 은사이기도 하다.그는 2014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준비중인 홍 감독에 대해 "자기 중심을 잃지 않는 지도자다. 위기에 처하더라도 곧바로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성격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하늘에서 내려준 덕장에 비유하고 싶다. 지도자, 선수 생활 모두 신뢰한다"고 단언했다.이어 그는 월드컵대표팀 준비 과정에 대해 "얼마전 브라질·미국 전지훈련에서 큰 성과를 거뒀을 것이다. 지도자들은 훈련 과정에서 이겼을 때보다 패했을 때 더 많은 것을 배운다. 큰 보약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브라질 월드컵 한국 대표팀 성적에 대해 "예측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16강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은 기간 철저히 준비를 잘 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임 감독은 배려에 대해 "나에게 있어서 배려란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임 감독은 몸상태가 좋지 않다. 지난해에는 위암 초기 판정을 받아 수술을 했고, 아프리카에서 장티푸스, 말라리아 등 각종 병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임 감독은 포기하지 않는다.그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지난 4일 입국해 몸을 추스른 뒤 3월초 다시 남수단으로 떠나 그라운드에서 아이들과 함께한다.▲임흥세 감독은■ 인천대학교 졸업■ 성수중 축구팀 감독■ 남대문중 축구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한국중학교 상비군 감독■ 광운전자공고 축구팀 코치·감독■ 아시아청소년학생축구대회 청소년대표팀 코치■ 미국 세크라멘토 입양인 축구팀 코치■ 풋볼액트29 감독■ 경기도 홍보대사■ 체육인재육성재단 글로벌 홍보대사■ 희망고 유소년 축구단 감독■ 남수단 축구 국가대표팀 총감독/글 =신창윤기자/사진 =임열수기자

2014-02-25 신창윤

[인터뷰… 그]'청마의 해' 고객중심 경영 선언한 현명관 한국마사회장

말생산·유통부터 농어촌복지 기여사회적기업 설립 힐링 프로도 진행경기도 말산업 조기정착 도움줄 것마사회 무사안일한 조직풍토 쇄신장외발매소 커뮤니티 시설 탈바꿈주민 친화·지역상권 활성화 도모올해는 말띠, '청마(靑馬)의 해'다. 갑오년의 갑(甲)은 천간으로 오행을 따질 경우 목(木)에 해당하고 색깔로 따지면 파란색 즉 청색에 해당돼 갑오년은 다른 해보다 더욱 활기찬 해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실제 말은 동물 가운데 지각이 뛰어나 영리한 동물에 속할 뿐 아니라 예로부터 한국인에게 말은 신성한 동물로 받아들여졌다. '박혁거세'가 말이 지키고 있던 알에서 태어났고, '부여 금와왕'은 말이 큰 돌 앞에서 눈물을 흘려서 발견됐다는 등 중요 인물의 탄생을 알리는 매개체가 돼 왔다.서양도 귀족스포츠인 승마와 함께 경마가 인기스포츠로 자리를 잡고 있지만 한국에서 경마는 도박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고, 그 중심에는 한국마사회(이하 마사회)가 자리를 잡고 있다.반면, 경기도가 추진하고 있는 말산업 육성 전초기지인 화성시 마도·서신면 일대 '에코팜랜드' 조성에 참여하는 등 말산업을 이끌어나갈 중추적인 공기업이다.이처럼 장·단점을 모두 갖고 있는 마사회는 지난해 12월초 현명관(72) 회장이 취임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준비 중이다.현 회장은 취임식부터 "한국마사회는 현재까지의 영광에 자족하며 머물러 있기에는 너무나 많은 위기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며 "말뿐이 아닌 몸에 체질화된 고객 중심 경영을 해야하고 단순히 경마만 하는 곳이 아니라 건전한 레저 스포츠의 명소, 테마파크의 명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개혁'의 의지를 피력했다.지난 14일 한국마사회 집무실에서 현 회장을 만나 한국마사회의 역할과 개혁에 대해 들어봤다. -청마의 해인 2014년, 마사회의 포부는."12년 만에 돌아온 말띠 해는 말과 말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마사회는 올 한해 말산업 전담기관이자 1등 사회공헌기업으로서 일류 공기업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확고히 심어주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먼저 하드웨어 측면에서 경마공원을 테마공원처럼 만들고, 장외발매소는 주민 친화적으로 만들어 지역이 유치를 희망하는 시설로의 이미지 개선은 물론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고객중심 경영을 할 것이다.고객이 존재하지 않으면 기업이 존재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직원들이 무사안일주의에 젖어서 고객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마사회는 백화점이나 호텔 수준의 고객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고, 이를 위해 기업문화와 조직풍토를 쇄신하고 건전한 경쟁체제를 유지할 것이다."-일류 공기업 이미지를 확고히 할 구체적인 방안이 있다면 무엇인가."사실 용산 화상경마장 이전 개장 등 자치단체가 장외발매소 입점을 거부하는 것을 볼 때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 오히려 자치단체장들이 들어와 달라고 로비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하드웨어 측면의 경우, 첫 번째 사행성 도박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 부정적인 이미지는 장외발매소 때문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장외발매소를 출입하는 고객들의 형태와 주위의 열악한 환경으로 선입관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는 마사회의 책임이다.장외발매소를 문화센터와 커뮤니티 시설로 활용하고 이를 통한 지역 상권 활성화까지 도모할 생각이다. 또 지정좌석제 등 장외발매소의 환경정화에도 나설 계획이다. 우선적으로 1~2군데의 장외발매소를 시범적으로 운영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꿔보겠다.과천경마공원도 금·토·일 등 경마일에만 사람들이 찾아온다. 평일에도 주민들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고 친근감이 있는 레저스포츠공원으로 만들겠다.소프트웨어 측면은 고객을 주인으로 섬기는 마사회가 돼야 한다. 경마서비스업 마인드와 기업마인드가 있어야 하고 고객 중심의 경영을 함으로써 최고의 공기업뿐 아니라 사기업과의 경쟁에서도 뒤지지 않도록 하겠다." -상당수 국민들은 한국마사회를 경마장으로만 알고 있는데 경마장 이외에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외국의 경마시행제와는 달리 한국마사회의 활동 범위는 매우 넓은 편이다. 마사회는 말산업 육성전담기관으로서 경마를 포함해 승마, 말 생산, 조련, 유통, 말 관련 전문인력 육성 등 우리나라 말산업 기반 조성을 위한 모든 산업을 총괄하고 있다.마사회는 하나의 기업이지만 말산업이라는 분야만 놓고 본다면 작은 정부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정책들을 많이 수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농림축산식품부와 긴밀한 협조가 이뤄지는 것은 물론이다.또한 이익잉여금의 70%를 특별적립금으로 납부해 축산발전과 농어촌 복지에 힘쓰고 있다."-마사회의 주요 사회공헌활동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또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회공헌활동이 있다면."마사회는 말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을 살린 사회공헌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먼저 마분을 재활용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 '에코 그린팜'을 설립한 것을 들 수 있고, 장애인에게 취업교육과 일자리 제공을 한꺼번에 진행하는 '꿈을 잡고(Job Go)' 바리스타 양성프로그램도 있다. 그리고 승마를 통해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치유하는 승마힐링센터도 운영중이다.특히 올해는 네트워크형 사회공헌이라는 새로운 사회공헌 모델을 도입할 계획이다. 네트워크형 사회공헌은 정부·기업체·NGO 등 뜻을 같이 하는 기관들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로 협력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마사회는 현재 운영중인 재활승마나 승마힐링을 중심으로 정부와 관심단체들이 참여하는 '드림 호스 프로젝트'를 진행해 볼 계획이다.물론 경기도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꿈을 잡고'사업은 일자리를 원하는 장애청소년들에게 큰 힘을 주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생각이다." -경기도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말산업 육성에 나섰는데 마사회의 역할과 협력방안은."이제 말산업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힘이 될 것이고 대한민국 말산업의 심장은 경기도다. 마사회는 말산업전담기관으로서 경기도의 말산업이 조기에 자리잡아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또한 경기도·중앙부처와 긴밀하게 협조해 승마장 운영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행정규제들을 정비하는 일도 중요하다. 아직 법적 기준에 미달되는 승마장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별적립금 사업 등을 통해 열악한 승마장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공급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오는 9월 인천에서 아시안게임이 개최되는데 마사회의 활약은."마사회는 국위선양과 기업 이미지 향상을 위해 1994년 유도단을 창단한 이래 탁구단·승마단을 운영하며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 동안 마사회 스포츠단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등 여러 국제대회에서 숱한 메달을 따내며 국위를 선양하고 온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고 있다.특히, 올해는 인천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만큼 메달 획득을 위해 승마단의 전지훈련을 예년보다 일찍 보냈다. 청마의 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마사회 스포츠단이 금메달 소식을 전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도 마사회 스포츠단은 체계적인 훈련과 우수한 신인 발굴 그리고 과학적인 지원을 통해 대한민국 체육 발전에 이바지하겠다."■현명관 회장은?△제주도(1941년생)출생 △서울고·서울대 법학과·일본 게이오대 대학원 경제학과졸 △행정고시(4회) 합격 △감사원 부감사관 △삼성그룹 비서실장 △삼성물산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사)창조와 혁신 상임대표대담=이석철 중부권 취재본부장/사진=임열수기자/정리=문성호기자

2014-02-19 문성호

[인터뷰… 그]박보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취임 직후 지방 국립공원 순시출석률 높던 前의원 저력 과시멸종위기종 복원·명품마을 등소통에 무게둔 다양 사업추진"혜택 고스란히 국민에 돌릴것"공원, 규제대상→경제주체 변모강화갯벌 지정땐 年 6조원 가치저소득층에 자연치유 기회제공글로벌 공원 변화 해외 협력도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만난 박보환 이사장은 휠체어를 타고 집무실로 들어섰다. 무릎 연골 봉합수술로 20여일간 병원신세를 졌다고 한다.얼굴은 좀 수척해 보였지만 인터뷰에 들어가자 공단에서 추진하는 사업과 통계 하나까지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술술 풀어 나갔다. 지난해 9월 이사장에 취임한지 4개월 남짓 지났지만 모든 업무를 꿰차고 있는 듯했다.처음 2개월 보름간 지방의 모든 국립공원을 한 바퀴씩 돌았고, 자동차로 이동한 거리만도 2만㎞를 넘겼다니 무릎에 탈이 날 수밖에 없었을 터. 그는 18대 국회의원 시절에도 본회의장 출석률 '상위 5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성실파였다.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2만불 사회에 맞춰진 구조로 어떻게 밝은 미래를 열어 나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이제 국립공원도 국민과의 소통으로 정부 3.0정책에 걸맞은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역설했다. 인터뷰는 공단 이사장 집무실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산 기슭 풀가지도 스마트 폰으로 분석하는 시대며칠전 공공기관장 회의에서 정부 3.0 사례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는 박 이사장은 "어느 기관보다 국민과 소통하고 협력이 필요한 기관이 국립공원관리공단일 것"이라며 공단 운영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정부 3.0은 국민과 소통하고 협력해 그 혜택을 국민이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북한산의 풀가지 하나라도 스마트폰으로 분석해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예전 국립공원하면 단순한 등반코스로 인식하기 쉬웠지만 요즘은 산속의 풀잎 하나라도 스마트폰으로 찍어 공단 앱을 이용하면 그 내용을 피드백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그는 국민과 소통하는 주요 사업으로 ▲멸종위기종 복원사업 ▲생태나누리사업 ▲명품마을 만들기 ▲캠핑문화조성사업을 꼽았다.이들 사업 모두가 공단과 국민의 협력이 필요한 것으로, 국민의 협력없이 잘 관리될 수 없고, 잘 관리만 되면 그 혜택 또한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것이다. -국립공원 관리에 대한 평소 가치관은 무엇인가."건강한 생태계 보전과 탐방객 안정, 탐방서비스 제공이다. 보전과 이용이라는 상반된 논리를 잘 풀어내야 정부 3.0을 실현하는 모태가 되는 것이다."-역점 사업은 무엇인가."앞에서 얘기 했듯이 가장 큰 역할은 자연보전이고, 그 중 가장 큰 사업이 자연 생태복원사업이다.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은 현재 지리산에 29마리를 방사해 놓고 있다. '숲의 농부'라고 할 수 있는 반달곰이 서식하는 곳이라면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되는 곳이라는 말도 있다. 소백산 여우복원사업과 산양복원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종복원 사업은 대형 포유류뿐 아니라 광릉요강꽃 등 26종의 식물복원도 병행 추진하고 있다."-지금까지 방사된 개체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멸종위기종 복원사업은 지난 2004년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시작으로 산양, 여우 등이 있다. 반달가슴곰 복원은 현재 안정화 단계에 있으며 29마리가 자연에 서식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시작된 여우복원사업은 현재 6마리가 자연 적응훈련중이며 2020년까지 자체 생존 가능한 50마리까지 증식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올해는 남생이 장수하늘소의 복원 기반도 마련하려고 한다."-생태보전을 위해 추진하는 공원 스트레스 지수 사업은 잘 되고 있는가."생소할지 모르지만 사람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산림도 많은 사람들의 이용 빈도에 따라 훼손될 수 있듯이, 그 스트레스지수를 계량화한 것으로 보면 된다. 탐방객 수, 탐방로 훼손정도, 샛길, 쓰레기 발생량 등 총 8개 지표를 토대로 산출해 5개 등급으로 구분, 보전 대책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북한산 국립공원 원도봉~포대능선 등 20개 구간이 '매우심각' 등급을 받은바 있다.■ 규제의 땅에서 행복과 미래의 보고로…공원에 대한 지나친 규제로 국민인식이 좋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박 이사장은 손사래를 쳤다.그는 "지난해 3월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면서 총 21개의 공립공원(산악형 17개, 해상형 2개, 해안형 1개, 사적형 1개 )이 전국에 포진돼 있다"며 "최근 무등산 평촌마을의 경우 공단에서 추진하는 명품마을로 개발해 국립공원 밖의 마을에서도 이제 자기집도 좀 넣어달라는 민원이 폭주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지금도 전남 광양의 백운산과 대구 팔공산을 국립공원으로 승격 해달라는 지자체의 요구가 있다고 귀띔했다. 과거에는 국립공원 지정으로 인한 각종 규제로 지역사회와 마찰이 심했지만 2000년대 후반 국립공원 명품마을 조성사업이 가시화 되면서 외국에서도 벤치마킹하러 현장을 찾고 있다는게 박 이사장의 설명이다.그는 공단 자료를 인용하며 "2013년도 명품마을의 효과는 탐방객 2배(196%), 마을소득 5배(508%) 증가했고 지역경제 활성화 유발효과도 102억원 증가하는 등 고부가가치 마을로 변화되는 성과를 올렸다"고 주장했다.경기 인천지역 지자체에서 국립공원 승격을 요구하는 곳이 있느냐는 질문에 박 이사장은 강화 갯벌을 예로 들었다.그는 "한때 강화군수가 갯벌을 명품으로 만들기위해 국립공원 승격을 희망했던 적이 있었다"며 "강화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명품을 만들면 유럽의 북해연안, 브라질, 캐나다, 미국 등과 세계 5대 갯벌로 개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러면서 "갯벌의 가치는 농경지의 100배, 숲의 190배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경제성과 자연성을 가지고 있으며, 연간 6조원의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통계가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젠 공원복지시대…노인·어린이도 걸어서 정상까지, 휠체어 타고 산림욕국립공원은 험준한 산악지형이 많고 안전사고의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다는게 대명사처럼 인식돼 왔다. 정치인 출신의 박 이사장은 산에 대한 예전의 인식을 탈피해 누구나 쉽게 산을 이용하고, 자연속의 쉼터를 만들어 진정한 휴식 공간을 만들겠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예전에 산 하면 등산하는 곳으로만 인식할 때가 있었다"며 "이제는 국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저소득층이나 다문화 가정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생태나누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일종의 생태복지 사업인 셈이다. 숙식이나 교통에 드는 비용을 기업이 후원하는 식으로, 지난 2009년 2천300만원으로 시작해 올해 9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놓고 있다고 전했다.청소년들의 자연생태 체험을 위한 생태탐방연수원 운영도 같은 맥락이란다.박 이사장은 "청소년들이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자연생태를 체험하고 환경성 질환자들이 자연치유의 기회를 갖도록 하기위해 2011년 9월 북한산 도봉지구에 최초의 생태탐방연수원을 개원했다"며 "오는 9월 지리산 화엄지구, 2015년 설악산과 소백산, 한려해상, 거제·통영지구에 연수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최근 자유학기제가 실시되면서 산을 찾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오는 2016년부터 정상화되면 공원을 찾는 탐방객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다. ■ 글로벌 국립공원으로 변화 모색박 이사장은 인터뷰 시간 내내 강한 의욕과 뜨거운 열정을 보였다. 그는 "예전 우리의 산은 '땔감' 구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외국에서 우리 공단의 사업을 벤치마킹하러 오고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인도네시아 호주 뉴질랜드 코스타리카 등에서 국내에 들어와 사업을 전수받고 있고,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공원관리기법을 적용시켜 새로운 IUCN 지침서를 발간할 정도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그는 그러나 아직 더 큰 꿈이 있다. 국립공원 탐방객 5천만 시대를 앞두고 더 선진화된 명품 국립공원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다.그가 최근 캐나다 공원청(Parks Canada)과 글로벌 지침서 마련에 참여해 생태복원과 보호지역 인식 강화를 위한 글로벌 캠페인에 공동 참여하고 해양보호지역의 관리개선을 위해 호주 빅토리아주 공원청과도 협력을 다지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그는 인터뷰 말미에 "국회의원 시절 예산과 법안을 다루면서 체험한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공단의 살림(예산)을 늘리고, 미흡한 법적 근거를 만들고, 직원들의 후생복리를 늘려 공단직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고 싶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정당인으로 잔뼈가 굵은 그가 정치 생활을 잠시 뒤로하고 맡은 국립공원 관리의 '수장'으로서의 활약상이 기대된다.■박보환 이사장은?△경북청도(56년생) △경북고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연수원 교수 △한나라당 경기도당 사무처장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글= 정의종기자/사진= 김종택기자

2014-01-29 김종택

[인터뷰… 그]짜장면 25만 그릇 이웃에 나눈 조병국 J&J 사장

가난한 이들에 짜장면 기꺼이 내주던 어머니어렸을 때부터 다른 직업 생각해본 적 없어IMF때 인생 최악 위기 손님 도움으로 극복여유 생기자마자 '주 전공' 살려서 봉사나보다 나누는 걸 좋아하는 아내덕에 즐거워얼떨결에 받은 장관상… 더 많이 나눠야겠지요무려 82조8천410억원의 재산을 보유한 세계 최고의 갑부 빌 게이츠는 2012년 한해 동안 2조83억원을 기부했다.매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하는 '미국 50대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물론, 누적 기부액만 30조원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이인자' 워렌 버핏 회장 역시 평생동안 자신이 보유한 재산의 85%를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한 해 수백억원을 빌 게이츠 재단에 쾌척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로 꼽히고 있다. 젊은이들은 이들을 세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곤 한다.우리 주변에도 마땅히 존경받을 만큼 값진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한산성에서 20년 넘게 김밥 장사를 하며 모은 3억원을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위해 써달라며 어린이재단에 기부한 '김밥 할머니'는 각박한 세상에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또 김포의 한 주민센터에는 익명의 70대 노인이 쌀 10포대와 돼지 저금통을 놓고 홀연히 사라진 뒤 소외계층을 돕고 싶다는 뜻을 뒤늦게 전달해 추운 겨울 꽁꽁 언 국민들의 마음을 녹이기도 했다.우리에겐 지구 반대편 멀리에 있는 재벌이 수천억원을 기부하는 것보다도 이렇듯 자신의 일부를 주위 이웃에 나누는 '배려'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용인 흥덕지구에서 중화요리 전문점 'J&J'를 운영하는 조병국(50) 사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짜장면을 만들어 전국에 나눴다. 장애인, 노인, 어린이 할 것 없이 조 사장의 무료 짜장면을 맛본 사람만 해도 25만명이 넘는다. 조 사장에게 그가 베풀 수밖에 없었던 짜장면의 의미와 앞으로의 목표를 들어봤다.-짜장면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어렸을 적 어머니가 짜장면 가게를 운영했는데, 미처 돈이 없어 짜장면을 사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머니는 기꺼이 짜장면을 내주셨습니다. 중학교를 그만 두고 중국집에 취직해 배달원과 조리, 홀 웨이터 등 20년간 모든 분야를 섭렵했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짜장면 말고는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나 다름 없지요."-지금 운영하는 가게는 330㎡가 넘는 대형 레스토랑이다. 이렇게 일어서기까지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누구나 그렇듯 인생에서 한번쯤 위기가 찾아오게 마련이지요. IMF 때 보증을 잘못 섰다가 모은 돈도 잃고, 집도 경매로 넘어갔어요. 빚은 산더미같이 쌓여 우울증도 생기고 극단적인 생각도 했습니다. 한번 밑바닥을 치면 다시 오르기 힘들다는 게 어떤 말인지 실감이 나더라고요. 그때 우연히 주방이 아닌 홀로 나와 손님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는데, 식당을 찾은 손님이 어린 아이 때문에 식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이를 안아서 봐줬어요. 그게 고마웠던지, 단골손님이 돼 제가 가게를 옮기더라도 저를 찾아오시는 거예요. 수십명의 단체 예약까지 해주면서 제가 빚을 청산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저만 잘 살 수는 없잖아요. 여유가 생기자마자 바로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았지요."-구체적으로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2006년에 처음으로 봉사를 시작하려고 했어요. 제 주전공인 짜장면을 만들어 노인시설을 찾으려고 했지요. 그런데 하고싶다고 해서 무조건 봉사를 시작할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짜장면을 싣고 갈 탑차, 선반, 소형냉장고 등 계산해보니 봉사를 위한 초기자금만 4천만원 정도가 필요했습니다. 그것뿐인가요. 1주일 전에 가서 미리 배식 위치와 방법, 인원도 점검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짜장면 봉사는 수원, 용인, 성남 등 주변으로 확대됐지요. '무료로 짜장면 봉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복지시설에 삽시간에 퍼지더군요. 덕분에 부산, 대구, 삼척, 고성 등 전국을 돌았어요. 제일 먼 곳은 해남이었네요. 많으면 한달에 10번씩 봉사를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한번은 길이 너무 막혀 12시 점심 시간 배식 봉사가 계획된 곳이었는데,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시설에 도착했어요. 1급 지체 장애인 분들이 머무르는 곳이었는데, 항상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는 게 습관이 된 분들이라 안절부절못하시더라고요. 그 때 이후로 봉사 약속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키겠다고 다짐했지요. 남다른 노하우도 생겼어요. 미리 인원을 점검한 뒤 그에 맞게 짜장면을 준비하곤 했는데, 글쎄 두 그릇을 먹고 싶어하는 인원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겁니다. 무료로 나누는 것이라 할지라도, 제 짜장면이 맛있어서 몇 그릇 더 먹고 싶다는데 기분이 나쁠 리가 있나요. 요즘은 봉사를 갈 때 인원보다 넉넉히 준비해가는 노하우가 생겼지요."-주변에 다 퍼주면 부인께서 그리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데."천생연분인지는 몰라도, 저보다 아내가 더 나누는 걸 좋아해요. 손도 커서 주변에 다 퍼주고 본인 몫은 챙기지 못할 정도로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지요. 그래서인지 제가 더 신나고 즐겁게 봉사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장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은 아직도 아내에게 미안함으로 남아있어요. 장모님이 위독하시다는 걸 듣고도, 이미 약속된 시설로 봉사를 가야했기 때문에 마지막을 지켜드릴 수 없었지요. 하지만, 장모님께서도 생전에 항상 저를 믿고 응원해주셨던 분이기에 진심을 알아주실거라 믿고 있습니다."-남은 목표가 있나. 언제까지 봉사를 할 것인가."제가 처음 봉사를 시작할 때 목표를 10만 그릇으로 세웠습니다. 운영하는 가게는 내팽개치고 봉사를 더 열심히 다닐 정도로 신나게 봉사를 했지요. 5~6년이 흘러 돌이켜보니 10만 그릇은 벌써 훌쩍 넘었더라고요. 대략 25만 그릇 정도가 됐는데, 목표를 달성하고도 그만 둘 수가 없네요. 아직 제가 받은 도움과 배려를 다 나눴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지난해 말에는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어요. 봉사를 많이 했다며 상을 받으러 오라는데, 전 멋도 모르고 혼자만 덜렁 갔지요. 그런데 다른 수상자들은 가족, 친인척, 지인까지 모두 와서 축하해줄 정도로 대단한 상이더라고요. 얼떨결에 큰 상을 받았으니, 앞으로 더 많이 짜장면을 나눠야겠지요."/글= 신선미기자/ 사진= 김종택기자

2014-01-14 신선미

[인터뷰… 그]김성회 신임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민간기업과 경쟁하는 시장형 공기업정치·학계서 쌓은 경험·추진력 쏟아2022년까지 매출 6조6천억 이끌 것저가 열원개발 철저한 원가관리로방만경영 방지 '국민 신뢰' 얻겠다취약층 난방비지원 나눔활동 지속김성회 사장은?■ 1956년 경기 화성 출생■ 수원대학교 석좌교수 겸 아주대학교 초빙교수■ 한국BBS중앙연맹 고문■ 새누리당 경기도당 남부당협본부장·인권위원회 위원■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특보·원내부대표■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환경노동위원회 위원■ 18대 국회의원■ 육군대령 전역■ 경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서울고·육군사관학교(36기) 졸업 "경영 혁신을 통해 종합에너지 분야의 선두기업으로 도약시키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공기업이 되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정치인에서 공기업 CEO로 변신한 김성회(58) 신임 한국지역난방공사(이하 난방공사) 사장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다른 취임 각오를 내비쳤다.구릿빛 피부에다 부리부리한 눈의 강한 호상(虎像) 이미지로 취임후 첫 인터뷰에 임하는 김 사장은 이미 난방공사의 업무를 꿰뚫어 파악한 듯 보였다.최근 CEO 자리에 오른 김 사장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축적한 노하우와 강력한 추진력 등 내가 가진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입을 열었다.그는 "난방공사는 민간기업과 경쟁하는 시장형 공기업으로, 창사이래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우량 공기업이다. 효율적 에너지 활용과 국가 에너지 산업에 기여함은 물론 친환경 에너지기업으로 국민생활 편익 증진에 이바지하는 좋은 기업"이라며 공사에 대한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난방공사는 1985년 11월 집단 에너지사업의 효율적인 수행으로 기후변화 협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에너지 절약과 환경개선으로 국민생활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해 설립됐다.현재 전국적으로 125만세대와 2천여 건물에 지역냉·난방을 공급하고 있으며, 전력사업과 신·재생에너지 사업에도 참여해 지난 2012년말에는 2조6천억원에 달하는 사상최대의 실적을 달성했다. 오는 2022년까지 매출 6조6천억원, ROIC(투하자본이익률) 6%, 고객만족도·국민체감도 1위를 목표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김 사장을 만나 종합에너지사로서의 도약을 위한 전략과 비전, 미래성장동력, 경영혁신방안 등을 들어봤다.- 취임 소감은."군 생활과 18대 국회의원을 거쳐 수원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던 중 정부의 명을 받고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집단에너지 전문기관인 난방공사의 CEO로서 에너지 산업의 한 축을 이끈다니 막중한 사명감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축적한 노하우와 강력한 추진력 등 나만이 가진 강점들을 통해 임기동안 우리 공사가 에너지 분야의 선두기업으로 도약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최근 공공기관의 예산 낭비와 방만경영이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우리 공사는 강도 높은 부채관리 대책과 정부의 공기업 정상화 방침에 맞춰 신뢰와 존경을 받는 공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 난방공사가 초일류 종합에너지사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과 비전은."2022년까지 매출 6조6천억원, ROIC 6%, 고객만족도·국민체감도 1위라는 구체적인 경영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수도권 광역 열배관망 구축사업 등을 진행하고 기존 네트워크와 연계 가능한 저가 열원 개발을 통해 투자비와 생산비를 절감하는 한편 타 에너지원 대비 경쟁력있는 효율적인 사업을 구축하겠다. 우리 공사는 집단에너지 사업의 기반 구축기와 도약기를 거쳐 성장기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내부시스템의 선진화와 공적기능 수행, 경영효율화, 경제성 확보 등을 보다 강화하여 경영시스템의 질적 성장에 최선을 다하겠다. 1987년 4만호에 열공급을 했던 우리 공사가 지난 2012년말 2조6천억원의 매출과 영업이익 2천311억원, 당기순이익 1천530억원을 실현했다. 그동안 눈에 띄는 외형적 성장도 있었지만 초일류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조직·인사·노사관계·재무관리·기업문화 등과 같은 내부시스템의 선진화도 중요하다. 총괄원가를 절감하고 국가에너지 절약에도 기여할 수 있는 신·수종 사업을 발굴해 공적기능을 이행하고, 철저한 원가관리와 수익중심의 사업구조로 전환하는 경영효율화를 통해 초일류 기업이 되겠다." - 난방공사는 상장공기업이다. 미래성장동력에 대한 고민도 빼놓을 수 없는데."공기업 사장으로서 리더십을 성공적으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비전 제시와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직구성원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비전 달성을 위해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내 일이다. 지난 28년간 쌓은 전문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핵심사업에 주력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새로운 창조형 경제개발에 전력을 다하겠다. 특히 기존의 화석연료 이외에 소각열·태양광·RDF(고형연료)·LFG(매립가스)·우드칩·하수열 등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연료로 활용하는 친환경 에너지사업에 주력할 것이다. 더불어 제습냉방은 공동주택에 대한 시범사업을 거쳐 가격과 품질경쟁력을 확보해 상용화할 계획이며 하절기 남는 열병합 발전소 여열과 소각장 폐열을 냉방으로 이용하면 열병합 발전소 이용률이 올라갈뿐 아니라 저탄소 에너지 절감형 친환경사업으로 창조형 경제에도 부합하는 지속성장이 가능한 사업으로 보고 추진할 것이다."- 사회공헌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는데,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난방공사는 그동안 사회공헌자문위원회를 통해 외부 인사 의견을 반영하고 NGO단체와 사회복지협의체 등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연계해 수혜자가 원하는 사회공헌 사업을 펼쳐왔다. 에너지 복지사업으로 사회복지시설과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에 열요금을 감면해주고 지난 8년간 '겨울철 사랑의 난방비 지원사업'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또 '폐광촌 인재양성 지원사업'과 '결혼이주여성 한국어 교육지원사업', '국가대표 루지팀 지원', 불치병을 가지고 태어난 박은총(11)군과 함께하는 '은총이와 함께하는 철인3종경기대회', '1사3촌지원 사업' 등이 있다."- 공기업의 방만경영과 높은 부채 비율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한 경영혁신 방안은."공기업은 수익성 등 경제 원리보다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운영되고 정부 정책을 수행하면서 불가피하게 부채가 발생하기도 한다. 대신 과도한 복리후생은 국민정서에 부합하지 않고 공정사회 건설에도 역행한다. 특히 방만경영으로 지적되던 과다한 복리후생 규정을 개정하고 불합리한 단체협약을 개정하겠다. 공사 전반에 대한 경영진단과 조직개편으로 효율과 성과 중심으로 단위 부서를 운영하고 사업구조 조정, 출자회사 지분 매각 등을 통해 부채감소를 추진하겠다. 수익성을 끌어올리고 원가를 절감하는 경영시스템의 개혁으로 국민이 신뢰하는 공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대담=김규식 지역사회부(성남) 부장/정리=김성주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2014-01-08 김성주

[인터뷰...그]이기우 인천재능대학교 총장

4년제포함 수도권대학 취업률 으뜸현장성 강화 교육과정 경쟁력 좌우행정개혁 흑자… 등록금 동결 이끌어7성급 호텔서 인정한 '조리과' 특화요리경연대회 대상·해외취업 성과'한식 세계화' 송도의 가치 높일것▲이기우 총장은?■ 1948년생 ■ 부산고 졸업(1967년), 경성대 대학원졸(교육학박사, 2001년) ■ 교육부 총무과장, 공보관, 지방교육행정국장, 교육환경개선국장, 교육자치지원국장, 기획관리실장 ■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 국무총리 비서실장(차관급) ■교육인적자원부 차관 ■ 인천재능대학교 총장(2006년 9월~현재) ■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2010년 9월~현재)'말단 공무원에서 교육부 차관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공무원'. 이기우 인천재능대학교 총장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100년…'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교육부총리를 역임할 당시 이 총장의 성실함과 완벽한 일 처리를 보고 극찬한 표현이다. 이 총장은 196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공직에 입문했다.38년의 공직생활 동안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교육청, 교육부 등 교육과 관련한 모든 기관을 섭렵하고, 교육부 차관까지 올랐다. 2006년 7월 인천재능대학교 총장에 취임했고, 2010년부터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을 겸직하고 있다.올해로 8년째 인천재능대학교 총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 총장은 내년 6월말 임기가 만료되지만, 재단 이사회는 그에게 2018년 6월말까지 또한번 학교를 맡기기로 이미 결정했다. 그의 진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세계적 수준의 전문대학' 선정의 원동력은?인천재능대학교는 올해 교육부로부터 '2013년도 세계적 수준의 전문대학(World Class College)'에 선정돼 전국 139개 전문대학 중 상위 15% 안에 드는 대학으로 발돋움했다. 또 교육부가 발표한 2013년 취업률 통계조사에서 70.2%로 4년제를 포함한 수도권 전체 대학 가운데 취업률 1위를 달성했다.이 총장은 그 원동력을 대학 구성원의 헌신으로 돌렸다. "우리 대학이 수도권 취업률 1위 달성과 WCC대학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변화와 혁신만이 유일한 경쟁력이라는 기치 아래 모든 구성원이 헌신한 결과입니다. 제가 총장으로 부임할 때 구성원들에게 '쓸모있는 사람으로 잘 가르치자', '학생들에게 죄짓지 말자'라는 말을 수없이 강조했습니다. 학생들이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고 학생들을 위한 최고의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교원, 직원들의 몫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믿음을 가지고 잘 따라와 준 학생들도 우리 대학이 최고의 대학으로 성장해 가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직업교육기관이라는 전문대학의 특성에 맞게끔 현장성을 강화한 교육 과정도 큰 역할을 했다."산업현장에서 별다른 재교육의 과정 없이 바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곧 대학의 경쟁력으로 연결됩니다. 우리 대학의 경우 산업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문가를 교수님으로 모셔 철저히 현장중심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신속하게 받아들여 그에 필요한 기술과 능력을 대학 내에서 모두 흡수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험난했던 구조조정을 이겨냈던 리더십이 총장은 취임 이후 줄곧 대학의 행정조직 및 인원 감축, 학과 통·폐합 등 체질 변화에 주력했다. WCC대학 선정 등도 그 결과물의 하나다. 그 과정에서 대학 구성원들의 반발과 진통도 만만치 않았다."제가 총장으로 취임한 이후 불합리한 행정제도를 합리적·체계적으로 개편, 운영하기 위해 개혁을 꾸준히 단행해 왔습니다. 2006년 6처 7과였던 조직을 현재 4처 4과로 축소하는 등 행정조직 및 인원을 약 30% 감축했으며, 경쟁력을 상실한 학과를 통·폐합함으로써 한식명품조리과 등 지역연계형 학과로 재구조화했습니다. 만성적자였던 방만한 재정 운영을 취임 6개월 만에 흑자 전환시켜 2009년부터 전문대학 최초로 등록금을 동결하며 5년 연속 동결 및 인하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만들었습니다."이러한 변화와 개혁의 과정은 구성원들에게 일시적인 긴장을 가져왔지만 그는 끊임없는 대화와 설득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협력적 관계로 재정립했다.한 배를 탄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동상이몽(同床異夢)격으로 다른 생각을 안 하도록 강조했다. 또한 대학의 모든 구성원에게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맡은 일에 정성과 성심을 다해 달라고 요구했다."저는 지금도 휴일에 외부 일정이 없는 때는 학교에 출근해 일도 하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기도 합니다. 지난 여름방학은 물론 올해 단 하루도 휴가를 가지 않고 총장인 제가 먼저 솔선수범했습니다. 이러한 총장의 노력에 구성원들은 반발보다는 믿고 따라왔으며 그로 인해 좋은 결과를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총장은 대학이 갈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뿐 실질적으로 대학을 움직이는 것은 구성원이라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늘 구성원을 대학 발전의 주체, 즉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리분야 최고 대학으로 우뚝 서다인천재능대학교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조리 분야의 최고 대학'일 정도로 조리 관련 학과가 특화돼 있다.특히 호텔외식조리과 졸업생들의 경우 세계 최고 7성급 호텔인 두바이 버즈 알 아랍 호텔에 조리사로 취업해 남다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조리 관련 특성화학과를 신설, 운영하게 된 계기나 배경이 궁금했다."우리 대학이 위치한 인천은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지로서 항만과 공항이라는 훌륭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경제자유구역이 들어선 국제도시입니다. 또한 2014년 아시안게임 개최지로서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소가 될 것입니다. 이에 우리 대학은 인천 산업발전과 맥을 같이 하면서 전 세계 관광객에게 우리 한식의 맛을 알리는 동시에 세계 조리계를 선도할 전문 조리인을 양성하기 위해 2008년 호텔외식조리과를 신설했습니다. 당시 약 40억원을 투자하여 특급호텔 규모의 최신식 설비를 갖춘 조리 실습실을 마련하고 전국 최고 수준의 실력있는 교수님들을 초빙했습니다. 그리고 외식조리를 특성화하여 우리 대학을 대표할 수 있는 분야로 만들기 위해 2011년 한식명품조리과를 신설했습니다. 한식 세계화의 대표적인 진원지를 만들겠다는 목표인 것이지요."인천재능대는 2009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세계한식요리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시작으로 많은 대회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다.또한 세계 최고의 7성급 호텔인 두바이 버즈 알 아랍에 2010년 졸업생부터 2013년 졸업생까지 현재 총 6명이 취업했으며, 미국 등 해외 특급호텔 등에 39명이 취업하는 등 매년 해외 취업자가 증가하고 있다.특히 올해 교육부가 발표한 2013년 취업률 통계조사에서 86.7%로 전국 식품·조리 계열 97개 대학 중에서 1위를 차지했다.■ 송도 한식세계화센터, 세계인의 발길을 사로잡겠다인천재능대는 인천 송도에 조성중인 국제화캠퍼스에 한식세계화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송도 5·7공구에 들어서는 국제화캠퍼스는 3만7천866㎡의 면적에 6개 동이 들어서며 한식세계화센터를 중심으로 2015년 부분 개교할 예정이다.송도 국제화캠퍼스에는 한식세계화센터 이외에도 인천 경제·관광·미용 서비스 산업을 주도할 특성화학과로 호텔외식조리과, 미용예술과 등이 설치된다.한식세계화센터는 한식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세계 유일의 테마형 한식 복합공간(Complex)이며 글로벌 한식요리 및 문화센터 형식으로 개관될 예정이다. 인천공항과 인천항을 왕래하는 세계인들이 꼭 들러보고 싶은 한식문화체험의 명소로 만든다는 것이 이 총장의 계획이다."송도는 풍수지리학적으로 한반도의 배꼽에 해당됩니다. 송도가 인천의 경쟁력이고, 인천은 결국 대한민국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만큼 송도는 인천을 넘어 대한민국의 송도가 될 것입니다. 인천재능대는 송도의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화룡점정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전문대학 전도사, 이기우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이기우 총장은 정부의 '전문대학 육성방안' 발표를 계기로 '전문대학 전도사'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교육부 재직 당시에는 전문대학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전문대학을 경제적 가치로 판단했을 때 일반대학에 비해 많이 못 미친다고 여겼던 거지요. 하지만 현장에 있어 보니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전문대학이 국가의 허리를 담당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우리나라 산업인력의 공급처로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취업이 화두인 이 시대에 우리 전문대학만큼 취업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고등교육기관도 없을 것입니다."박근혜 정부는 출범하면서 전문대학을 고등직업교육 중심기관으로 집중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특성화 전문대학 100개교 육성정책이 핵심 과제이다."특성화 전문대학 100개교 육성정책은 전문대학의 대학단위 특성화와 학과별 강점분야에 대한 특성화를 유도해 산업분야별 우수 전문인력 양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업연한 때문에 지금처럼 일반대학 밑의 하급교육기관으로 인식되는 전문대학의 수업연한을 1년에서 4년까지 필요에 따라 교육할 수 있도록 만든 수업연한 다양화 정책, 산업기술 명장대학원 설치, 평생직업교육대학 육성 등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 실시하지 않은 정책들이 진정한 패러다임 시프트로 작용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종국에는 전문대학이 제도의 속박에서 벗어나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인력 양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이 총장은 예비 신입생과 재학생 그리고 교직원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말을 부탁하자 "주전자 정신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고 했다.주전자 정신은 주인 정신, 전문가 정신, 자긍심(자존감) 가지는 정신의 앞글자를 딴 말이다. 모든 일에 주인정신을 갖고,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와 지위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라고 그는 조언했다.그리고 자기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주전자 정신'이 몸에 밴 이가 바로 이기우 총장이었다./대담=이영재 사회문화체육부장/정리=김도현기자/사진=임순석기자

2013-12-17 김도현

[인터뷰… 그]차명진 새누리당 부천소사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총선 낙마… 돌아온 계기는3선 실패로 멘붕 상태 '미국행''내가 낫다' 자신감에 마음 잡아2등의 가치로 새 세상 열고파■김지사와 갈등설·향후행보는부모 자식간 섭섭함같은 감정김문수, 정치목적 고민할 시기정치재기 우선 '분가론' 내비쳐▽차명진은 누구인가■ 1959년 서울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85~1989년 민주화운동·노동운동■ 1989년 민중당 노동위원회 '노동자의 길' 편집장■ 1990~1991년 민중당 구로갑 지구당 사무국장■ 1996~2000년 김문수 국회의원 보좌관■ 2000~2002년 신한국당 입당 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대통령후보 보좌역■ 2003~2005년 경기도 공보관■ 2006년 한나라당 김문수 경기도지사 후보 선대위 총괄실장■ 17·18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부천소사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현)"이제 김문수식 '머슴정치'는 안해…."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차명진 전 국회의원의 입에서 이같은 말이 여러 차례 나왔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낙마한 충격과 서운함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듯, "그땐 '멘붕'(멘탈 붕괴·정신을 잃을 정도로 충격이 크다는 뜻의 신조어)이었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3선 도전에 실패한뒤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을 목도하며 미국행에 올랐다.그후 남미 아마존의 깊은 숲속을 헤매기도 했고, 멕시코 튤룸, 페루 마추픽추로 배낭여행을 떠나 더 넓은 세상을 느끼며 마음 다스리길 수개월. 잘할 것 같았던 그들(19대 국회의원)의 '구태', 아니 더 추락한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들보다는 내가 더 낫지'라는 생각에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다만 전제가 하나 있단다. '김문수 따라하기'(?)로는 한계가 있으니, 1등만 좇는 정치보다는 2등의 가치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겠다는 각오였다. 차 전 의원을 지난달 29일 오전 11시께 부천시 소사구에 있는 그의 당협사무실에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국회의원 시절 사용했던 사무실이라 공간은 꽤 넓었으나 난방이 되지 않아 실내 분위기는 썰렁했다. "돈이 없어 여직원을 쓰지 못한다"며 1회용 종이컵에 직접 커피를 타주던 모습도 그러했지만, "점심먹고 하자"며 인터뷰 도중 기자를 자신의 프라이드 경승용차에 태워 식당까지 함께 이동하며 나눈 대화에선 그의 소탈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게 했다.식사를 하면서도 틈틈이 어릴 때 아버지에게 매맞은 얘기에서부터 서울대 재학중 위장취업을 통해 노동운동을 했던 전력, 김문수 경기도지사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장시간 깊은 대화를 나눴다.■ 총선 낙선하고 마음 다스리기 어려워"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는데 총선에 떨어지고 보니 '멘붕' 그 자체였다"고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나라를 위해서는 의정단상에서 대(對)야 저격수로 소신껏 활동했고, 지역에선 아침 4시에 일어나 새벽 1시에 귀가할 정도로 주민 대면접촉도 많았다. 예산도 내 생각엔 전국에서 가장 많이 따왔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통상적으로 중앙정부나 광역단체에서 기초단체에 지원하는 비용 외에 도비지원금을 특히 쏠쏠하게 많이 끌어왔는데, 상당한 표차로 지고 나니 '멘붕'이 올 수밖에 없지…"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 건 자신의 멘토이기도 한 김문수 도지사가 자갈밭을 가꿔 '옥토'로 만들어놓은 지역구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었다.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론에 뉴타운 정책 실패라는 비판까지 더해진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에 한계를 느껴, 그만큼 자괴감이 더 컸다는 것이다. 그는 "김 지사만큼 개인기가 부족해졌다고 생각하니, 삶의 이유가 없는것 같았다"며 "커다란 암덩어리를 달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미국으로 떠난 배경을 설명했다.그런 그가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더 낫다'는 자신감 덕분이었다. "19대 국회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총선에서 당선된) 저 사람들이 나보다 잘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하는 것을 보니 똑같더라. 오히려 내가 저들보다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김문수 경기지사와 갈등설이 나오면서 미국행?낙선에 대한 자괴감도 그의 미국행에 한 몫을 했지만, 새누리당 내에서 이뤄진 18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 도전장을 내민 김 지사가 패배한 것에 대한 자책감도 작용했다. 특히 경선 과정에서 김 지사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자리잡았다는 소문도 사실인듯 했다. 상대 후보인 박근혜 후보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일방적인 게임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런 과정에서 선대위원장도 없이 캠프를 꾸리면서 잦은 혼선을 빚었던 게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경선 패배 후 (김 지사가 자신을 보는) 눈치가 좀 보였다는게 차 전 의원의 솔직한 고백이다. 차 전 의원은 그러나 "김 지사와 자신의 관계는 부모자식간의 섭섭함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며 "내가 김문수 신도지, 참모냐"고 웃어넘겼다. 차 전 의원은 "미국에서 귀국하자마자 김 지사가 소사구 아파트로 불쑥 찾아와 아내와 같이 장시간 대화를 나눴고, 그때도 큰형이 막내동생 다루듯 했다"며 김 지사의 태도를 에둘러 꼬집기도 했다.■ 전교조 재판 걸려 조기 귀국…명예훼손으로 집 팔아 손해배상당초 1년 계획으로 미국행에 올랐던 그였지만, 5개월 만에 귀국한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18대 국회의원 시절 새누리당 조전혁 전 의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명단을 공개했을 때 그는 동료의원 8명과 그 옆에 서있었다. 전교조에서 명예훼손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재판 기일이 잡혀 귀국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1심 재판에서 패소한 그는 1억1천만원을 물어줘야 했고, 결국 3억4천만원에 구입한 소사구 아파트를 팔았다. 이후 1억9천만원짜리 전세로 이사하고, 나머지 1억1천만원을 손해배상금으로 법원에 공탁한 상태라고 한다.그의 귀국소식이 알려지자 차기 경기도지사 후보군들은 차 전 의원을 영입하기 위해 저마다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가 과거 손학규 전 도지사 시절 공보관을 지낸데 이어, 김 지사의 후보시절에도 새누리당 선대위에서 이슈메이커로 활약하면서 캠프를 진두지휘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한번 더 하기 위해 '갈라치기'하는 정치, 이제 그만해야정치권에서 떨어져 있다보니 현 정국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날카로웠다.남미의 아마존, 마추픽추, 멕시코 튤룸 등을 여행하며 더 넓은 세상을 접했다는 차 전 의원은 저마다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잘할 수 있는 게 참 다양하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한다. 특히 정치의 경우, 가장 잘난 사람보다 공적 헌신에 특기를 가진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정치에 대한 그의 태도도 바꿀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 정치권은 너도나도 (국회의원을) 한번 더 하기 위해 지역과 이념을 갈라치기하고 있는데 정말 그러면 안된다"며 "안철수 신당이 나오는 이유도 다 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작금의 대치 정국에 대해선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FTA 체결한 것,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경색정국의 해법도 간결했다. "야당에서 대선이 부정한 결과였다고 주장해야만 다음에 설 자리가 생기는 것"이라며 "대치를 풀려면 국가정보원이 국내 정치에 개입 못하도록 여야가 합의하고, 거기서부터 접점을 찾아야한다"고 훈수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에 대해선 말을 아끼면서도 "기존 지지층에 얽매이지 말고, 중간층을 바라보고 나갔으면 좋겠다"면서 "거품이 낀 어젠다(agenda)보다 작은 주제, 먹고사는 주제를 많이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이미 끝장나가는 북한에게 나쁜놈(?)이라고 자꾸 하지 말고, 끝장나는 나라를 우리가 어떻게 통일할 수 있을지,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좀더 통큰 화합을 주문했다.■ 김문수, 임기후 6개월 정도 정치권 떨어져 쉬었으면 좋겠다그는 자신의 주군인 김 지사에 대해서도 도지사 3선 도전을 반대하는 등 거침없는 조언을 날렸다.그는 최근 자신의 집을 찾아온 김 지사에게 "국회의원 3번, 도지사 2번 했으면 이제 왜 정치를 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3선에 도전하면 '직업도지사'로 전락할 것"이라고 완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차 전 의원은 김 지사의 대중성이 약하다는 지적에 공감하며, "그렇기 때문에 임기를 마치고 (김 지사가) 6개월 정도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당시 김 지사는 "1년 365일, 단 1초도 허비하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임기 끝나면 백두산 근처에 가서 탈북자 실어나르는 일이라도 할 사람이지, 가만있을 사람 아니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김 지사가 퇴임후 내년 7월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지역에 출마할 것이라는 정가의 소문에 대해서도, 명분이 약하다고 주장했다. 차 전 의원은 그러나 "조용히 기다리면 4년후 대선은 김 지사의 히스토리와 맞아떨어질 것"이라며 "국민 대통합이 차기 대선의 화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문수식 정치 접고, 방송 인터뷰 하면서 공감정치 열어나갈 터김 지사와 동지적 관계인 차 전 의원은 자신의 육체를 혹사시키더라도, 오로지 1등을 목표로 뛰는 정치인이 아니라 서로 함께 어울려 목표를 달성하는 2등짜리 인생을 살고 싶다고 향후 포부를 밝혔다. 김문수 사단에서의 '분가론'을 내비친 것이다. 지난해 총선 패배 후 언론 접촉을 끊어왔던 그가 이날 경인일보와 첫 인터뷰를 하게 된 것도 향후 행보와 맥을 같이 한다고 말했다. 언론과 접촉해도 대다수가 가장 먼저 김문수의 거취를 물을 것이고, 박근혜 정부에 대해 비판해줄 것을 주문할 게 뻔하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자리를 피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평판에서든 자리에서든 세상을 내가 좌지우지해왔는데, 2등이 되고 보니, 너무 오만한 생각이라는 걸 느꼈다"며 "이제 김문수식 머슴정치를 접고, 소통과 공동의 가치로 공감정치를 펼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이 자신의 재고(실력·전문성)를 잘 갈고닦아 시장에 다시 내놓을 때가 왔다는 것이다. 차명진 정치의 재기가 첫째이고, 그 다음이 김문수 만들기(?)라는 말도 되풀이했다.최근 리얼 버라이어티 포맷의 SBS 시사타큐 '최후의 권력-7인의 빅맨'에 출연한 그가 원시환경과 유사한 조지아 스바네티와 코카서스 산맥의 험준한 산악지역에서 누구보다 빠른 걸음으로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성주산 다람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와우산(소사구를 뒤에서 바치고 있는 산) 능선을 하루에 4번씩 오르내렸기 때문"이라며 "그래도 정치하면서 체력 하나는 잘 단련돼 있다. 내년 지방선거 때부터 차명진식 공감정치를 보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보였다./정의종기자

2013-12-04 정의종

[인터뷰… 그]프로야구 10구단 KT 초대 사령탑 조범현 감독

■남해 전지훈련을 평가한다면프로다운 선수단 분위기 형성 '목표'하루종일 고강도 특타·수비훈련 집중■NC 김경문 감독과의 관계는아마시절부터 프로에서까지 한팀숙명적 라이벌보다 발전적 친구다■신흥 명문구단으로의 향후 행보애리조나 캠프서 전술 시스템 구축잠재력 갖춘 선수들에게 기회줄 것"강도 높은 훈련은 프로선수다운 기술과 정신력을 만들어 줄 것이다."프로야구 제10구단 KT 초대 사령탑을 맡은 조범현 감독이 45일간의 경상남도 남해 전지훈련을 마쳤다. 남해 전지훈련은 110여일간 진행되는 KT의 첫 번째 전지훈련 프로그램이다.조 감독은 명문 구단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남해 전지훈련을 시작으로 미국 애리조나, 대만 등으로 이어지는 장기 전지훈련이 중요하다고 말한다.고교와 대학 졸업 선수들로 구성된 KT 선수단이 프로다운 모습을 갖출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훈련 지상주의를 표방하는 조 감독식 훈련 성과는 이미 SK와 KIA에서 입증됐다.하위권의 대명사였던 SK는 조 감독식 훈련을 통해 2003년 정규리그 2위에 올랐다.특히 김성근 감독이 SK를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3회 우승을 일구며 신흥 명문구단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도 앞서 사령탑을 맡았던 조 감독이 유망주들을 잘 조련했기 때문이라고 야구계에서는 말한다.조 감독은 2009년 KIA의 통산 10번째 우승을 이끌었고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명장 대열에 올라섰다.명장 조범현 감독에게 신흥 명문구단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KT선수단의 훈련과 향후 행보에 대해 들어봤다.#팀 분위기 형성을 위해 시작된 남해 전지훈련조 감독에게 45일간의 남해 전지훈련을 평가해 달라고 하자 '분위기 형성'을 꼽았다. 그가 말한 '분위기'는 '선수들이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 '프로팀에 걸맞은 선수단 분위기', '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넘치는 분위기' 등이다.조 감독은 "남해전지훈련의 1차 목표는 애리조나 캠프에서 진행될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을 만드는데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프로야구단다운 선수단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남해전지훈련을 진행한 이유를 전했다.그는 "우리 선수들 대부분은 고교와 대학 졸업 유망주들이다. 이들은 학교 학사일정과 운동을 병행했는데 이제는 운동에만 집중해야 한다. 아침부터 시작해 저녁까지 진행되는 훈련에 적응해야 하고, 그 훈련을 통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키워야 한다.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남해 전지훈련이었다"고 설명했다.조 감독은 "선수들이 프로선수다운 마인드를 가지지 못했던 것처럼 팀도 마찬가지였다. 전지훈련이 시작되던 10월 초에는 코칭스태프와 훈련을 도울 지원 프런트가 완벽히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지만 캠프를 하면서 코치들이 한명 한명 합류했고, 안정을 찾아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45일간의 남해 전지훈련 진행 상황을 들어보면 훈련은 제대로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일부 선수들은 제93회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했고, 또다른 일부는 청소년대표로 선발되어 태극마크를 달고 팀을 떠나 있었다. 그나마 팀에 남아 있었던 선수들도 아마추어 시절 무리하게 경기에 출장해 제대로 된 훈련을 소화하기에 힘든 상황이었다.조 감독은 "남해 전지훈련을 구상하며 선수들 명단을 봤을 때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알다시피 우리 팀의 유망주 중 하나인 심재민 같은 경우 팀에 합류하기 전에 수술을 했고 박세웅도 전국대회 뿐 아니라 청소년대표로 국제대회까지 잇따라 출전해 어깨에 무리가 가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그는 "이 두 명을 예로 들었지만 두 선수 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아마추어 팀에서 너무 많이 출장해 몸에 무리가 가 있는 상태여서 투수들은 아예 볼을 던지지 못하게 했다. 당장 볼을 던져 내년을 준비시키는 게 아닌 2015년 그리고 그 이후에 팀에서 역할을 맡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모든 선수들을 이런 방식으로 관리하는 것은 아니다.야수들의 경우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특타와 수비훈련을 강도 높게 소화하도록 했다.선수들은 9시에 야간 훈련을 마친 후 씻고 간식을 먹으면 바로 잠들 정도로 훈련이 힘들었다고 말한다.#희망의 땅 애리조나에 대한 고민조 감독은 "남해 1차 캠프가 체력과 팀 분위기를 만드는데 중점을 뒀다면 애리조나는 팀 전술적인 부분과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성장시키는 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포지션 윤곽이 나오면 우리 팀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전술적인 부분도 만들어야 한다.바로 이런 부분을 만드는 시기가 애리조나 캠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조 감독은 "프로선수로서의 자세, 마음가짐 같은 정신교육도 애리조나에서 시키게 된다. 자기 자신에게 야구에 대한 마음이 확실히 설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5개월여간 진행되는 전지훈련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운영 방침이 세워져 있지만 조 감독의 고민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선수들의 미래 때문이다.조 감독은 "앞서 창단한 NC를 보면 신생팀 선수지원 방안으로 진행되는 구단별 20인 보호선수 외에 1명씩을 지명할 수 있는 특별지명으로 영입한 선수들이 1군 엔트리에 많이 포함됐다. 이로 인해 창단 멤버들은 1군에 많이 데뷔하지 못했다. 지금 뽑은 선수 중에서도 1군에서 뛸 수 있는 선수가 나와야 하는데 고민이다"고 말했다.이어 조 감독은 "현재 주축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야수 1~2명 정도 보이고 투수도 몇 명 있는 거 같다. 애리조나 캠프에서 잘 조련해 팀을 이끌 수 있는 선수들이 많이 나오도록 하겠다"며 희망을 놓지 않았다.그는 "NC가 지난해 2군에서 선발투수로 고정으로 5명을 쓰면서 총 14명이 마운드에 섰다.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고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구단에 2군에서 던질 수 있는 용병도 요청했고 선수들을 넉넉히 준비해서 운영하자고 요청했다"고 전했다.#잠재력에 희망을 걸다야구팬들이 조범현 감독을 이야기할 때 2가지를 떠올린다. 하나는 전술 능력이 뛰어난 것을 빗대어 '조갈량', 선수들에게 훈련을 많이 시킨다고 해서 '훈련 지상주의'다. 남해 캠프에서 만난 조 감독은 여기에다 하나 더 추가 시켰다. 바로 '절박함'이다.조 감독은 "훈련만이 살길이다. 훈련도 시켜서 하는 게 아닌 스스로 해야 한다. 야구를 하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필요하다"며 "선수 선발에서도 '야구에 대한 절박함'이 보이느냐가 가장 중요한 선발 기준이다"고 전했다.그는 "프로라고 말할 수 있는 선수가 몇 되지 않는다. 훈련을 통해서 프로로서의 필요한 기량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야구에 대한 절박한 마음이 없다면 얼마나 성장하겠나. 이 길만이 내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야구에 대한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 선수들은 돌려보낸다"고 강조했다.이어 조 감독은 "열심히 하는 선수들에게는 기회를 주려고 한다. 선수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와 팀에 무엇이 필요하냐를 고려해 선수에게 역할을 준다. 필요하다면 포지션 변경도 과감하게 진행하고 있다.포지션 변경이라는 위험한(?) 결정을 할 때는 코칭스태프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선수의 의견을 들어 결정한다.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다"고 설명했다.#NC 김경문 감독은 라이벌?조 감독에게 김경문 감독과의 관계를 물으면 항상 돌아오는 답이 "배울 것이 많은 지도자"라는 답변이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조 감독에게 김 감독과의 관계에 대해 묻자 "또 묻냐. 매번 같은 대답을 하는 것 같은데…"라며 말을 시작했다.조 감독은 "주변에서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프로까지 같은 팀에서 있었고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도 했기 때문에 숙명의 라이벌이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밖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김 감독과는 라이벌 관계보다는 좋은 친구관계다"며 "사실 선수 때도 친했고 감독으로 선임되면 서로 전화해서 격려해 주기도 하는 그런 좋은 관계다"고 전했다.그는 "(김 감독은)팀을 잘 만드는 감독인 거 같다. 두산에서도 그렇고 NC에서도 입증하지 않았나. 야구의 흐름을 바꿔 놓은 감독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평가했다. 이어 조 감독은 "김 감독을 라이벌로 의식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동반자적인 관계로 생각한다.팀을 꾸리면서 먼저 신생팀의 감독직을 맡은 김 감독이 어떻게 팀을 만들어 왔는지 과정도 많이 참고했다.앞으로도 김 감독에게 스스럼없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만나서 물어 보려고 생각한다. 경쟁을 통해 서로 발전해야겠지만 숙명적인 라이벌보다는 발전적인 라이벌 관계로 보이고 싶다"고 덧붙였다.글·사진= 남해/김종화기자

2013-11-20 김종화

[인터뷰… 그]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신임 원장

■첫 여성 원장이 된 소감 / 연구원의 역할평생 전공했는데 본향 찾아온듯 기뻐대한민국의 역사적 전통·정체성 성찰국민 자긍심 키우고 전파하는데 앞장■한국학에 대한 기대와 수요·중요성은29개국서 100여명 학생들 '배움 열정'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적 관심도 커져뿌리가 없다는 것, 영혼이 없다는 말과거 문화와 정신, 계승·발전시켜야"문화를 통해 희망을 열고 세계 각국과 함께 손잡고 가는 따뜻한 동행의 길을 모색하겠습니다."제16대 한국학중앙연구원(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원장에 최근 취임한 신임 이배용(66) 원장은 "한국문화가 선진국에서부터 개발도상국까지 전세계 각국에 영감을 주고 공동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한국 문화를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교육을 통해 미래 한국의 좌표를 마련하기 위해 1978년 출범했다. 그동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편찬하는 등 한국학의 기초를 다지는 것은 물론, 한국학의 세계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올해 출범 35주년을 맞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그간의 유·무형의 성과를 발판 삼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 새로운 도약의 중심에 이배용 원장이 서 있다.이 원장을 만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도약을 위한 비전을 들어봤다.-한국학중앙연구원이 생긴이래 여성이 처음 원장에 취임했는데, 소감은.이배용 원장은 "평생을 전공한 한국학의 본향을 찾아 온 것 같아 무척 감개무량한 마음이다. 동시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차지하는 국가적 학문의 권위와 세계적 위상을 고려할때 막중한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특히 "한국학중앙연구원 설립 이후 최초로 여성 원장으로 부임하게 됐다"며 "그만큼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한국학의 발전과 중흥을 이끌어내고 싶다"고 강조했다.이 원장은 "이제는 우리나라가 경제선진국가라는 패러다임에서 한 단계 도약해 세계문화리더국가로 부상해야 할 때이다"며 "그간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바퀴가 현대 한국을 이끌고 왔다면 앞으로는 두 축의 장점에 문화를 더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문화로 전세계에 희망을 전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는 "전 세계 곳곳에서 한국 문화에 매료돼 한국어 공부 열풍이 불고 있다는 사실은 세계인들이 '세계문화리더 국가로서의 한국'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으로, '시대적 요구'로 해석하고 있다"면서 "대한민국이 세계 1위의 조선국가, 스마트폰, IT·BT 대표국가 등으로 설명되는 경제강국이 된 것과 K-POP 열풍을 비롯한 한류로 세계 문화시장의 대표주자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진 조상들로부터 전해진 높은 교육열과 창의성, 시대에 대한 책임감, 열정 등이 밑바탕이 된 결과다"고 역설했다.이런 점이 세계인들이 우리의 문화를 배워야하는 이유이며, 우리가 우리 문화를 전파해야하는 이유라고 이 원장은 주장한다.-한국학의 개념은.이 원장은 한국학이 과거에 머물러있는 학문이 아니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오래된 미래'라는 개념을 소개했다."한국학이 '오래된 미래'를 배우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한국학의 본질이 단순하게 과거를 공부하고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있는 가치를 통해 미래 한국의 방향을 설정하고 발전적 미래로 가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그는 "일반적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분리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한국학을 과거에만 머물도록 만들고 있다"며 "과거의 우리 문화를 통해서도 미래를 볼 수 있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매순간 교훈을 주고 있다"고 했다.더욱이 한국학의 지위와 위상이 높아지는 이유에 대해 "그간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강연을 위해 전국 곳곳과 세계 각국을 누볐다.특히 지난달 터키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경주 세계문화엑스포에서는 외국인들에게 한국문화에 대해 설명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강연때마다 우리 문화에 대한 갈망을 느꼈다. 특히 엑스포에 참가했을 때는 한국학에 보내는 외국인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봤다"며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청중들에게까지 이같은 문화적 욕구를 발견할 수 있는 지금, 한국문화는 더이상 우리나라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느겼다"고 말했다.-경제강국이라는 타이틀을 넘어 세계문화리더국가로 자리매김하는 데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역할과 비전은.이 원장은 "우선, 연구원이 연구와 교육기능을 조화시켜 대한민국의 역사적 전통과 정체성에 대해 성찰할 것"이라며 "한국학의 허브로서 연구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학제 간의 융합연구를 진행하고 한국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두번째는 전통과 현대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며 "연구원이 보유하고 있는 동의보감 등 각종 장서각을 비롯한 우리 전통의 보물을 통해 박애정신과 여민동락의 인문정신을 되새기겠다"고 했다.특히 "연구원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왕실문헌과 민간사대문헌 등은 민족문화의 보고일뿐 아니라 세계인의 자산인만큼 적극 활용해 세계문화리더국가 구현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세번째로는 '한국과 세계의 상호이해, 소통'을 꼽았다. 그는 "한국학의 시야를 세계로 넓혀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외국 인력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이 원장은 "다양한 출판사업을 통해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국내와 세계에 알리고 대한민국 성장의 역사를 외국 교과서에 싣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한국학 연구의 해외거점을 마련하는 사업을 통해 한국학의 세계화를 일궈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네번째는 전문성과 대중성의 조화. 한국학이 서재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정신문화의 자산을 나누고 공유하는 데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연구원이 진행했던 한국민족대백과사전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사업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사랑을 받았던 경험을 가진만큼 이제는 국민들의 자긍심을 키우고 전파해야한다"고 했다.마지막으로 연구원 설립 취지에 맞게 건전한 국가관과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시키고 현대 사회의 갈등, 상처, 분열을 화해, 상생으로 승화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그는 "물질문화가 풍요로워 질수록 정신문화는 공허해지기 쉽다"며 "정신문화의 근간을 바로잡기 위해 세워진 기관이 한국학중앙연구원"이라고 강조했다."그만큼 국가와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과 책임이 있다는 것"이라며 "인문정신을 우리의 역사문화 전통에서 찾아내는 작업을 통해 연구원의 가치를 확인하겠다"고 선언했다.-한국학에 대한 기대와 수요는."현재 연구원에는 미국·프랑스·러시아 등 29개국에서 온 112명의 외국인 학생들이 114명의 한국인 학생과 함께 한국학을 공부하고 있다. 거의 1대 1의 비율이라는 것은 그만큼 한국학이 더이상 우리사회에만 국한돼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한국학에 대한 기대와 수요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역사문화 전통에서 우리의 인문정신을 찾아내는 작업을 끊임없이 진행하겠다"고 했다.그는 "우리 속에 빛나는 보석이 수없이 있는 데 몰라서 지나쳤던 아쉬움이 많다. 이 보석을 발견하고 빛을 내는 일이 한국학 연구이며, 그 보석을 세계문화의 자산으로 만드는 일이 한국학의 보급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나아가 "한국학은 창의적이고 인간적이며 세계적"이라며 "그동안 무심했던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찾는 마음의 고향이 되도록 한국학중앙연구원을 이끌어가겠다"고 말했다.-한국학에 낯선 이들에게 한국학의 중요성을 설명한다면.이 원장은 "우리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뿌리가 없다는 것은 영혼이 없다는 말이고, 앞 날의 방향을 잡을 수 없다는 말과 같다"며 "우리의 존재를 찾고 자긍심을 가질때 각자의, 사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뿌리와 자긍심'을 강조했다.더불어 "각각의 문화에는 과거로부터 내려온 배경이 있다. 그 연속된 정신을 계승하고 영감을 받아 발전시켜야한다"고 주장했다.대담 = 김규식 지역사회부(성남) 부장정리 = 김성주기자사진 =조형기프리랜서■이배용 원장 약력-1947년 서울 출생-2013년7월~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성부의장-2011년4월~현재 문화재청 세계문화유산분과위원회 위원-2011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전국여성대회 '김활란 여성지도자상'-2010년10월~2012년10월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2009년7월~2013년6월 국립중앙박물관 운영자문위원회 위원장-2006년8월~2010년7월 이화여자대학교 13대 총장-서강대학교 대학원 한국학박사-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한국사 석사

2013-10-29 김규식

[인터뷰… 그]조재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제 처음 기획했을때 의도 / 출품작 어떻게 선정하나 / 권하고 싶은 작품은?DMZ 동·식물 생태 다큐 담으려다소재한계 포괄 다큐로 콘셉트 바꿔프로그래머·위원들 거쳐 작품 선정낙태 고발 '자, 이제 댄스타임' 추천■예고편을 직접 기획·감독해 화제인데… / 다큐영화제 대중화를 위한 방안은대한민국·경기도 관통하는 쟁점 암시내년 스태프 갖춰 장편영화감독 도전지적욕구 충족 원하는 관객 계속 늘어친숙해질때까지 영화제 계속 진행할 것배우 조재현,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많다.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 경기영상위원회 위원장, 성신여대 미디어영상연기과 교수 등… 그는 요즘 하루 24시간을 분단위로 쪼개서 움직여야 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그런 그가 17일부터 23일까지 고양시 일원에서 열리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DMZ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안 그래도 바쁜 몸을 더욱 혹사(?)하고 있다.지난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사옥에서 만난 그는 화제의 드라마 '스캔들'의 종영을 앞두고 막바지 촬영에 몰두하고 있었다.이런 상황 속에서 DMZ영화제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다큐멘터리에 관한 자신만의 철학,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스케줄을 보니 일반인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바쁠 것 같다. DMZ영화제에 할애하는 시간은 하루에 얼마나 되나."바쁘긴 하지만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모든 업무를 떠맡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역할이 세분화돼 있기 때문에 내가 하루에 몇 시간 정도를 영화제를 위해 사용한다고 말하기는 솔직히 어렵다. 아마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해당 업무를 소화하기 힘들었을 것이다.스마트폰으로 이메일과 서류, 사진, 동영상 등을 확인하고 업무관련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꼭 만나야 할 사람들과는 직접 만나고, 눈으로 확인해야만 하는 경우는 해당 장소에 직접 가본다. 학교 출강은 일주일에 1번 하는데, 강의를 한다기보다는 학생들이 연기연습할 때 지도를 해준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DMZ영화제가 올해로 5회째를 맞았다. 영화제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끌어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제를 처음 기획했을 때의 의도는 무엇이었고, 5년을 거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경기도의원 한 분이 영화제 관련 예산 5억원 확보를 추진하면서 경기영상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나에게 DMZ영화제 개최에 대한 제안을 했다. 사실 그동안 지자체에서 이벤트성으로 벌이는 문화예술행사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다큐영화제 개최가 탐탁지는 않았다. 몇 번의 토론을 거쳐 진정성을 담은 영화제를 한 번 만들어보자고 이야기가 됐고, 부산영화제를 이끈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과 이용관 집행위원장 등에게 자문을 구하고 도움도 많이 받으면서 영화제를 시작하게 됐다.처음에는 영화제 기획 의도가 DMZ 주변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생태를 담은 자연다큐에 관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는 영화제가 지속성을 가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생태 다큐라는 소재가 한계에 부딪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다큐영화제로 콘셉트를 바꿨다. 올해는 영화제 예산이 총 15억원으로 늘었고, 세계 38개국에서 출품한 119편의 다큐영화가 선을 보인다. 이제는 영화제가 어느 정도 자리잡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관심도 많아지면서 후원도 늘고 있다."-DMZ영화제의 출품작은 어떻게 선정하며,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추천할 만한 작품이 있다면."우선 출품작은 집행위원장인 내가 선정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영향력이 행사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웃음). 프로그래머를 비롯한 몇 명의 선정위원들이 춤품작을 고른다. 단, 올해 개막작인 박찬경 감독의 '만신'을 선정할 때는 나도 관여를 했다. 개막작 선정은 작품성과 전문성뿐만 아니라 대중성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올 개막작은 일반영화관에서 하지 않고, 미군부대 캠프인 그리브스에서 상영하는데, 영화인들만이 아니라 민통선 안의 주민들도 관객으로 참여한다. 1~4회까지는 개막작이 모두 외국영화였는데, 올해는 정전 60주년이기도 해서 개막작이 남북 문제와 관련된 한국 다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만난 작품이 '만신'이다. 국무(國巫)라 불리는 김금화씨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인데, 마침 그분이 황해도 출신인 데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신 분이기도 해서, 사회 변방에서 주민들의 질병을 치유해온 종합예술가라고 생각이 들었고, 우리 영화제 취지하고도 잘 맞을 것 같아 개막작으로 선정하게 됐다.이 밖에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영화로는 산부인과 의사단체가 낙태를 시술한 병원과 동료의사들을 고발한 에피소드를 다룬 '자, 이제 댄스타임', 브라질 노부부의 관점을 통해 사랑과 나이 듦에 대해 시적으로 묘사한 '엘레나' 등이 있다."-올해 DMZ영화제 트레일러(예고편)를 직접 기획, 감독해 화제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이와 더불어 앞으로 장편영화 감독에 대한 꿈도 있는지 궁금하다."사실 작년 영화제의 트레일러도 내 기획안이었고 직접 출연도 했다. 지난해 만든 트레일러에는 한 취객이 등장해 주변 사람들에게 '왜 내 말을 안 들어 주냐.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지' 등의 대사를 통해 MB정부 시절의 화두인 '소통'의 부재를 문제삼았었다. 올해는 남북간의 소통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 소통을 이렇게 강조하는 건 영화제 주제가 '평화, 생명, 소통'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의 트레일러는 경기도에 사는 한 폐지 줍는 할아버지가 손수레를 끌다 해질녘 철책 근처에서 남북 분단으로 실의에 빠진 할머니를 바라보며 슬프게 한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사실 할아버지가 끌고 다니는 수레 안에 있는 사물들이 많은 주제를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지금은 사라진 'Life'라는 잡지가 보이기도 하고, '나는 자유를 꿈꾼다. 규제감옥 경기도에서'라는 책이 카메라 곁을 쓱 지나간다. 전두환 일가의 세금문제, 박근혜 대통령이 DMZ평화공원을 조성하겠다는 신문기사도 얼핏 보인다. 또 남양유업이 만든 우유 껍데기, 깨진 시계와 목이 있는 운동화를 통해 대한민국과 경기도를 관통하는 쟁점, 민주화에 대한 문제 등을 암시한다.단 연출의 의도가 너무 드러나면 안 되겠기에 아주 자세히 훑어봐야 알 수 있게 했다. 그리고 트레일러 마지막, 수레에 종이 하나가 떨어지는데 그게 바로 DMZ영화제 초대장이다. 참, 장편영화감독은 언제가 꼭 해볼 생각이다. 예전에는 감독에 대한 중압감이 있었다.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예산과 관객 때문일 텐데, 예전에는 필름으로 찍다보니까 제작비도 많이 들고, 카메라와 조명장비도 많이 필요로 했다. 하지만 이제는 장비를 최소화할 수 있고, 연출에 대한 의도를 담는 일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돼 부담감은 좀 떨친 상태다. 내년쯤 한 10명의 스태프만 써서 영화를 찍어볼 생각이다. 내용도 다 생각해 놨다. 한 남자의 집착에 대한 것인데, 주제는 '여자는 냉정하고 위대하다. 남자는 바보 같고 쪼잔하다'이다(웃음)."-화려한 국제영화제와는 달리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게 다큐영화제는 아직은 좀 낯선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DMZ영화제의 대중화를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관객들을 다큐에 친숙해지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역시 영화제를 계속 지속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파주에서 개최하던 행사를 고양으로 옮긴 결정적인 이유 역시 관객 편의 차원이다. 그동안 파주시도 적극 지원을 했지만, 아무래도 파주보다는 고양이 교통편이 더 좋다. 그리고 관객이 계속해서 늘면 좋겠지만, 매년 수치가 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실제로 돌이켜 보면 관객이 전년보다 줄어든 해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다큐에 대한 전망은 밝다. 선진국일수록 다큐에 대한 수요가 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먹고 사는 욕구를 해결하다 보면 자연스레 지적 욕구를 충족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술로 비유하자면 다큐는 소주나 막걸리가 아니라 '와인'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술에 취하기 위해 막걸리와 소주를 먹었지만, 요즘 사람들은 몸을 생각하고 분위기,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와인을 찾는다.분명 우리나라 관객들도 그런 욕구가 점점 더 커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제작 편수도 늘어날 것이다. 심지어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본인이 다큐를 찍으려 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분위기가 조성될 때까지 영화제를 지속해야 하고, 그렇게 되다 보면 자연스레 영화제는 점점 큰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글 = 김선회기자사진 = 조형기프리랜서

2013-10-15 김선회

[인터뷰… 그]광교산 중턱… 30여년만에 삶터 옮긴 고은 시인

■이사 소회 / 결심하게 된 계기삶의 중요한 일 중 하나… 주민환대 감명여러 지자체서 거처 관련 권유 있었지만수원강연 당시 문우들의 덕담에 큰 영향■어떤 삶 기대하나 / 목표가 있다면화성·나혜석 거리의 밤 술집 등 찾아가지역문화 대한 공부·관심 더하고 싶어100여편의 성찰적 사색 담긴 작품 낼것위대한 인물의 여정은 그의 업적에 버금가는 관심의 대상이다. 위인을 연구하는 이에게 그의 발자취를 되짚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다.위인이 사는 집앞에 피어있는 꽃 한송이가 명화로 다시 피어나 화가와 함께 영생을 누리기도 하고, 우연히 정착한 곳에 스쳐간 여인의 향기가 위인의 작품마다에 스며있기도 하다.'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는가'의 문제가 그 자체로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일도 많다.그렇게 위인이 머문 자리는 마치 부부처럼, 위인과 함께 작품을 낳으며 친밀한 동맹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일까.얼마 전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다시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서는 '노벨상에 대한 내 소감은 12년도 넘게 한번도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지'라고 짤막하게 답한 고은 시인이 '이사'에 대해서는 '인간의 일생 가운데서 가장 큰 일'중 하나라며 장안구 구민이자 연무동 상광교의 동민이 된 소감을 밝혔다.경기도 안성에서 수원으로, 30여년만에 사는 자리를 옮긴 고은 시인의 '수원시대'를 들어보자.오랜 공사를 마친 광교산 중턱의 새 집에서 고은 시인은 어수선하고 분주한 소란을 맞이했다.국내외로 이동은 많이 해도 이사는 영 하지 않던 시인은 짐을 들이는 소란 가운데서 이사가 주는 마음의 소란을 풀어내보였다."이사를 한다는 것은 살 집을 새로 짓는 것과 어금버금이어서 인간의 일생 가운데서 가장 큰 일의 하나지요. 태어난다는 것 또는 죽는다는 것 그리고 한 인간으로 성장해서 누구와 만난다는 것을 아울러 생사대사(生死大事)라 하지요. 이사도 삶의 큰 일입니다.30여년전 내가 늦은 결혼과 함께 서울생활을 안성생활로 바꿀 때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는데 그 기념비적이기도 한 안성시대를 마감하고 수원시대를 열어서 내 생애의 결정적인 시대를 연 것은 나에게는 하나의 궁극을 실현한 의미가 생겨납니다.그간 국내의 여러 지자체에서 내 거처에 대해 권유가 있었는데 몇 해전 수원강연 당시 이 고장 문우들의 덕담이 씨가 되었고 시 당국의 진지한 인도(引道)로 발전해서 내 광교산의 일상이 구현되었어요. 무엇보다도 아내 이상화 교수의 실천적인 동의를 잊을 수 없습니다. 수원시민들의 더운 환영상황에도 감명을 받고 있습니다."고은 시인은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교과서에서 처음 만난 시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전쟁과 분단, 가난, 민주화와 동행한 그의 청춘은 절망에 가까웠다. 승려생활을 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폐결핵'이라는 시가 조지훈의 천거를 받아 1958년 등단했고, 이후 타계해 작가가 유년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만났던 특정 인물들을 다룬 연작시 '만인보'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그의 작품은 세계 25개 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10년 넘게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전 세계 독자들이 그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이사를 다 마치지도 못하고 러시아엘 다녀와야 했다. 유럽에서도 고은 시인을 부른다. 독일에서 초청의 의사를 전해왔다. 프랑스 파리도 내년 봄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올봄에 독일 베를린에서 내년에 1년 체류로 와서 작품 하나를 쓰라는 초청을 받았는데 모처럼 수원생활이 시작된 터라 이 귀중한 초청을 사절할까 아니면 체류 기간을 단축하는 조건으로 응낙할텐가 고민 중입니다. 또 프랑스 파리의 명망있는 학교에서도 한국 문학 강좌에 초청하는 요청이 와 있습니다. 아직 생각 중입니다."괴테와 헤르만 헤세 나라 독일, 낭만과 예술의 대명사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주저하다니, 수원에서 시인은 어떤 삶을 기대하고 있을까.'칠보산에도 가고 화성에도 가고 나혜석 거리의 밤 술집에도 가고 서장대에도 오르내리고 박물관도, 많은 도서관도 찾아갈 것'이라는 계획과 함께 문학사와 함께 펼쳐놓은 이야기에서 수원을 대하는 그의 마음이 엿보였다."이동은 우리나라 수천년의 농경사회 정착 정서로는 모험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유난히 본적지주의나 향토애가 짙어진 것이지요. 거기서 태어나면 거기서 묻히게 마련이었으니까. 그래서 우리나라 시인은 고향에의 지향이 두드러집니다.그런데요, 다른 나라 시의 세계는 반드시 그렇지 않기도 하지요. 예를 들면 단테는 피렌체의 시인이지만 그의 '신곡' 천국편은 망명지 베로나에서 살며 쓴 것이고 말년은 라벤나에서 살다가 그곳에 묻혔거든요. 그가 죽은 뒤 피렌체 실력자들이 단테 유해를 피렌체로 옮겨가려는 시도가 여러번 있었어요. 그래도 라벤나에서는 그 무덤을 비밀리에 옮기고 숨기고 하면서 아직껏 라벤나의 단테를 지켜냈습니다.지금도 피렌체에서 무덤 내놔라 내놔라하고 야단이지만 라벤나 단테 재단은 강고하게 지켜나가지요. 태어난 곳이 대수냐 묻힌 곳이야말로 진정한 단테의 장소다! 라고 항변하고 있지요. 또 미국의 유명한 뉴잉글랜드 시인 프로스트도 그의 탄생지는 서부지요.반대로 미국 서부의 시 황제라는 로빈슨 제퍼스도 본디 뉴욕 태생입니다. 그가 아내를 위해 지은 빅서의 돌집은 태평양 파도소리 속에서 의연히 남겨져 기념관이 되었지요. 고향의 미덕이란 고향에의 집착과는 좀 다른 차원이지요."'내 미래에는 수원귀신 하나가 있지'라는 시인의 말에서 특유의 아이같은 웃음이 배어나올 듯하다. 앞으로 종종 수원시민들은 광교산 등산로에서, 도서관 서고에서, 나혜석 거리에서 시인과 마주치는 행운을 만나게 될 것이다.그러나 2만여권의 책이 제 자리를 잡고, 주민의 얼굴과 동넷길을 익히고, 단골 술집을 정하기 전까지는 그에게 수원은 낯선 장소일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미 인문학적 깊이와 문학적 가능성을 꿰뚫고 있었다."문학은 특정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국 장강 하류 기슭에 루쉰이 있고 벵골에 타고르가 있듯이 어느 곳에는 어떤 시인이나 어떤 작가가 반드시 태어나거나 살거나 죽거나 하는 운명의 우연이 있게 마련이지요.수원은 200여년의 꿈이 묻힌 곳입니다. 조선 후기 18세기 영정(英正) 르네상스라 할 문예부흥의 남은 꿈 말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진취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 근대 실학의 실천성이 뿌리내린 곳이기도 하지요.다산의 설계가 화성 건설의 한 기본을 이루기도 했지요. 그동안 수원은 수도 서울의 복속으로 존재하기 십상이었다가 이제 경기도의 수도 면모를 세웠고 특히 지자체 자체의 능력과 의지 또는 물질적 조건들이 아울러 수원의 인문정신을 발현시키고 있습니다. 나는 이 고장의 탁월한 중견시인들을 내 친구로 삼고 있습니다.또한 수원 일대의 지식인들이 베푸는 열렬한 우애와 덕성을 아로새기고 있습니다. 미력하나마 수원문화 전반에 대한 내 공부와 관심도 나날이 더해질 것입니다.앞으로 내가 생각하는 광범위의 시민 인문화 운동을 구상하기도 합니다. 현재 집필중인 장시가 끝나면 '수원시편' 100여편의 성찰적인 사색이 담긴 작품이 나올 것입니다. 내 기대는 기대로 끝나지 않습니다."글 = 민정주 기자사진 = 임열수기자■고은 시인은1958년 등단한 이래 56년동안 시, 소설, 평론 등 150권 이상의 저서를 펴냈다. 1952년 일본 조동종의 군산 동국사에 출가해 중장혜초로 부터 일초(一超)라는 법명을 받고 불교 승려가 되었다. 이후 10년간 참선과 방랑을 거듭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58년 '현대문학'에 '폐결핵'으로 등단했다. 1960년 첫 시집 '피안감성'내고 1962년 환속하여 본격적인 시작활동에 나섰다. 1986년 집필을 시작한 '만인보'를 비롯한 수많은 시집과 '피안앵(1962)' '어린 나그네(1974)' '떠도는 사람(1978)' '어떤 소년(1984)' 등의 소설집을 발표했다. 지난 2010년 '만인보'를 완간했다.1974년 한국문학작가상, 1988년 만해문학상, 2002년 금관문화훈장, 2005년 노르웨이 국제문학제 비외른손 훈장 등을 수상했다.

2013-10-01 민정주

[인터뷰… 그]문정왕후 어보 반환 이끌어낸 혜문스님

■문정왕후 어보 어떻게 되찾았나2009년 처음 행방 알게된 후美 기록보존소서 자료 발견현지 박물관측과 지속 협상'정전 60주년' 승부수 결실■많은 사람이 뜻 모았다는데안민석 의원 합세 '천군만마'뉴욕 교민 응원·지지도 큰힘7천만 겨레 함께 노력한 결과모범적 반환운동 사례됐으면■그동안의 소회와 계획진짜 찾으려한 건 문화재 아냐진실 믿고 찾았을때의 깨달음중국 다롄 금강산 종 등 주목4대 환수 목표 차근차근 진행'포도밭의 보물'이라는 이솝우화가 있다.한 농부가 게으른 삼형제에게 "내가 죽거든 포도밭을 파보아라. 그 속에 귀한 보물이 묻혀있다"는 유언을 남겼다.농사에는 관심이 없던 세 아들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부지런히 포도밭을 팠다.그러나 온 밭을 파헤쳐도 보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들들은 실망했다. 그러나 잘 일구어진 밭에서는 포도가 주렁주렁 열렸고, 이를 팔아 큰 돈을 벌 수 있었다.우리나라에도 보물찾기에 열심인 한 승려가 있다. 그런데 이솝우화의 세 아들과는 한참 다르다. 승려는 감춰진 진짜 보물을 찾아냈다.그가 파헤친 것은 땅이 아니라 타성과 무관심에 젖은 인간의 마음이다. 그리고 찾은 보물이 지닌 진짜 가치가 세상에 주렁주렁 열릴 때를 기다리고 있다.귀성객 3천500만명이 고향을 찾아가 추석의 풍요와 긴 연휴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 혜문스님은 미국 LA카운티 박물관(LACMA·라크마)과의 협상테이블에 앉아 있었다.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훔쳐간 조선 중종의 왕비 문정왕후의 어보를 소장하고 있는 라크마가 이를 한국으로 돌려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자리였다.지난 3년동안 이를 되찾으려는 혜문스님의 노력에 대한 답을 듣는 자리이기도 했다.혜문스님과 그가 이끄는 문화재제자리찾기 회원들, 민주당 안민석 국회의원. 경희대 김준혁 교수 등 예닐곱명으로 꾸려진 협상단 주위로 기대와 긴장감이 소용돌이쳤다."라크마가 소장한 어보가 한국의 문화재라는 사실을 그동안 충분히 규명했으니, 반환 여부를 결정하고 만나자고 했어요. 추석 때가 벌써 5번째 미국 방문이었고, 이번에 승부수를 띄운거죠."라크마는 지난 19일 문정왕후 어보를 조건없이 한국 정부에 반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추석선물 같은 소식이었지만 혜문스님의 노림수는 따로 있었다."올해가 정전 60주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어보 반환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명확한 증거들과 함께 시기적 인연의 힘을 더한 거죠."그가 이런 전술(?)을 통해 약탈당한 문화재를 되찾아온 것은 처음이 아니다. 국립대였던 도쿄대가 법인화된 2006년에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경술국치 100년이 되던 2010년에는 조선왕조의궤 반환을 이뤄냈다.문화재를 찾아올 자료와 증거들이 완성되면 반환을 요구할 시기를 기다리고, 인연의 때가 되면 돌아온다는 것이다.그러나, 승복을 입고 단정히 앉아 인연을 말하기에 앞서 그가 들려준 환수의 과정은 빼앗긴 것을 되찾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 일깨웠다."2009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사보고서를 통해 어보의 행방을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자료를 찾았죠. 미군의 문화재 약탈 범죄를 총정리한 아델리아 홀이라는 미 국무부 관료가 있어요. 미국에 뺏긴 문화재를 찾으려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람인데, 그가 남긴 기록물을 본 한국인은 거의 없어요. 미국 메릴랜드 국가기록보존소에 보관된 '아델리아 홀 레코드'에서 '미국의 한국 문화재 약탈 현황'을 찾아냈어요. 라크마에 있는 문정왕후 어보가 미군의 약탈물임을 입증할 결정적인 기록이었죠."증거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을까 싶지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다. 뉴욕에서 차로 5시간을 더 가야 하는 메릴랜드에서 입수한 기록은 500페이지 분량에 달했다.마이크로필름에 담긴 선명하지도 않은 글자들을 수개월동안 읽어 내려갔다. 2011년 초에는 미국 볼티모어 선(The Baltimore Sun)지 1953년 11월 17일자에 실린 '종묘 어보 분실 사건' 기사도 찾아냈다.그러나 그해 6월 라크마에 처음 보낸 반환요청서에 대한 답은 들을 수 없었다. 이후 안민석 의원이 합세했고, 정전 60주년이 된 올해 1월 뉴욕 교민들과 어보반환운동을 시작했다.8월 6일부터 한 달 동안 100인 위원회를 구성해 백악관 사이트에 10만명 서명운동을 벌인 '응답하라 오바마'라는 작전도 진행했다.한 달 동안 10만명이 서명하면 오바마 대통령 혹은 백악관이 공식적인 답변을 하는 제도를 활용한 것이다. 10만명 서명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을 확인할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다.안민석 의원도 큰 힘이 돼주었다. 지난 6월 국회에 문정왕후 어보 반환촉구 결의안을 제출했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상임위도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로 바꿨다."7천만 겨레가 한마음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이번 일이 모범적인 문화재 반환운동의 사례가 돼 우리나라뿐 아니라 베트남 등 제3국의 문화재 환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를 바랍니다."혜문스님의 문화재 제자리 찾기 활동은 지난 2006년 일본 교토에서 시작됐다. 일본에서 여러 달 머물던 그는 교토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도쿄대 쓰에마쓰 교수가 쓴 '청구사초'를 발견했다.이 책을 통해 도쿄대에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으로 돌아와 그가 머물고 있는 봉선사 신도와 남양주, 구리 시민들을 중심으로 '문화재제자리찾기'라는 단체를 만들었다.200여명의 회원과 함께 해외에 있던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실의궤, 문정왕후 어보를 되찾아왔다. 국내에서는 환구단의 일본식 조경 철거, 도산서원의 가짜 금송 표지석 철거, 국보 146호 강원도 출토유물의 명칭 정정 등의 활동을 이어왔다."우리 단체는 4대 환수 목표를 세우고 수년째 단계를 밟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국 보스턴 미술관 소장 라마탑형 사리구,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의 조선제왕투구, 일본 오쿠라 호텔의 고려 석탑, 중국 다롄의 금강산 종 등 4개 문화재를 주목하고 있어요.이들 중 다롄의 금강산 종이 요새 가장 비중있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 달 전 안민석 의원과 다롄 여순박물관에 방문해 직접 실물을 열람하고 다롄시 관계자와 면담하기도 했습니다. 다음번 환수될 문화재는 아마도 다롄의 금강산 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러나 혜문스님은 정작 찾으려 했던 것은 문화재가 아니라고 한다.보물찾기의 진짜 묘미는 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물이 있다는 진실을 끝까지 믿고 노력해 마침내 찾아냈을 때 얻는 기쁨과 깨달음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구도의 길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제가 생각하고 있는 불교는 존재하지 않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분명히 가지고 있으면서 어느 순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이른바 중생이란 자기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사는 삶이라면, 구도자란 자기가 잃어버린 진실을 찾아 길을 떠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불교 경전인 금강경에는 이런 모습을 '환지본처(還至本處)'라고 말하는데 저는 이것을 '제자리찾기'라고 옮겨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취지에서 문화재제자리찾기는 단순히 한점 한점의 문화재를 찾는 것을 넘어서, 잃어버린 양심, 진실의 차원으로 이어지는 운동이 되기를 희망합니다."글=민정주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혜문스님은…1998년 봉선사에서 철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 해운정사 금모선원에서 수선 안거 후 현재 봉선사에서 수행 중이다.2005년에 봉선사 말사인 내원암과 관련된 '친일파 재산 위헌 법률 심판 청구'를 시작으로 리움 박물관을 상대로 '현등사 사리구 반환' 운동을 전개하는 등 부당하게 반출된 불교 문화재 반환 운동에 참여했다.현재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로 해외에 반출된 문화재 환수 운동을 실천하고 있으며, 잘못된 우리 문화재의 진실을 바로 잡기 위한 연구 및 실천에도 앞장서고 있다.저서로 '조선을 죽이다', '의궤, 되찾은 조선의 보물',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등이 있다.

2013-09-24 민정주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