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송도캠퍼스와 함께 '제3의 창학' 준비하는 정갑영 연세대 총장

선교사가 세운 대학… 교육과 의료 선교가 목적국제도시가 되려면 규제가 적어야송도를 유엔국제도시, 아시아의 제네바로…몇 년 안에 연세대가 인천의 자랑이 되도록 할 것延仁 프로젝트와 RC프로그램은?멘토링 통해 봉사체험 기회제공신입생들 일정기간 송도서 교육융합프로그램 확대도 병행 추진정총장이 말하는 자율과 책임은?국제학교처럼 학비규제 없애고소외계층 선발·장학금 제도 등사회적 책임으로 문제 해결해야연세대는 경제자유구역인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제3의 창학'을 준비하고 있다. 말뿐인 구호가 아니었다. 당장 2013학년도부터 연세대 신입생은 한 학기씩 송도 국제캠퍼스 기숙사에 거주하며 RC(레지덴셜 칼리지) 프로그램에 따라 교육받는다.내년부터는 약 4천명의 신입생 전원이 입학 후 1년간 송도 국제캠퍼스 RC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서울에 소재한 대학이, 그 중에서도 소위 '명문대'로 분류되는 학교가, 서울 바깥의 '제2캠퍼스'를 기반으로 한 대학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실행 계획을 마련해 추진한 사례는 없었다. 그 중심에 정갑영 총장이 서 있다. 그를 25일 오후 송도국제캠퍼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이날 인터뷰에 앞서 정 총장은 인천시 남동구 만수초등학교에서 인천시·인천시의회와 공동으로 '연인(延仁) 프로젝트 출범식'을 개최했다.연세대와 인천의 앞글자를 따 붙인 이름인 '연인 프로젝트'는 연세대 학생들이 매주 한 번씩 인천 초·중·고교생(43개 학교 2천25명)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공부하고, 공연을 보고, 체육활동을 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정 총장은 연인 프로젝트가 대학 위주의 일방적, 시혜적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강조했다."저희 대학은 선교사들이 세웠습니다. 교육과 의료 선교가 목적입니다. 학생들에게 기독교적인 섬김의 리더십을 가르치는 게 중요한 목표입니다. 강의실에서도 가르칠 수 있지만, 학생 개개인이 현장에서 체험하면서 남을 섬길 수 있고, 봉사할 수 있고,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학교가 만들어줘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연세대 신촌캠퍼스는 서대문구 지역 어려운 학생들과 함께 하는 '드림스타트'를 진행하고, 원주캠퍼스는 강원도 탄광 지역 아이들을 위해 방학 기간을 이용해 '머레이 캠프'를 열고 있습니다."정 총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3의 창학'을 얘기한다. 최초의 근대 의료기관인 제중원(1885년),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인 연희전문(1905년)이 설립됐을 때가 제1의 창학, 1957년 연희전문과 세브란스가 연세대로 통합된 이후를 제2의 창학으로 본다면, 송도 국제캠퍼스 개교와 함께 제3의 창학을 열겠다는 것이다."128년 전과 비교할 때 지역적 환경과 대학교육 환경이 변했습니다. 이제 세계 대학과 경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슬로건으로 내건 게 '아시아의 세계 대학'입니다. 이게 제3의 창학의 중요 목표입니다. 과거에는 수동적으로 국내에만 안주해도 됐지만 이제는 아닙니다.저희 언더우드 국제대학을 보면 외국 학생이 30%를 차지합니다. 60개국에서 학생들이 와 있습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송도 국제캠퍼스에 더 만들자는 겁니다. 그래서 글로벌 명문대학과 당당히 견줄 수 있게 하는 게 제3의 창학의 핵심적 내용입니다."제3의 창학을 이끄는 핵심으로 정 총장이 내세운 건 송도 국제캠퍼스 RC 프로그램이다. RC 프로그램은 오래 전부터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명문 대학이 운영하고 있는 교육 모델이다. 정 총장이 송도에서 RC와 함께 구상하는 건 융합 프로그램 확대다."미국 아이비리그 대학과 옥스포드, 캠브리지 등 선진국 주요 대학이 도입한 RC를 송도에서 기본적으로 합니다. 내년부터는 요즘 추세에 맞춰 여러 학문이 융합되는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입니다. 신촌에서 한 200명 학생이 송도로 완전히 이전합니다.그동안 우리 대학이 기존 학과간 벽이 많고, 서로 교류가 적고 그랬잖아요. 융합 프로그램 학부 개설은 연세대가 새로운 변화에 맞춰 글로벌 경쟁력을 만드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정 총장은 인터뷰 내내 대학의 '자율'과 '책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우선 그는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한국뉴욕주립대 또는 채드윅 국제학교만큼의 자율성만 줘도 연세대가 10년 내 글로벌 톱 50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자율은 예산의 자율성을 뜻하는 말이었다.정 총장에 따르면 정부가 학생 1명에 쓰는 연간 예산이 초등학교 600만원, 고등학교 1천만원이다. 사립 유치원 중에는 등록금이 1천만원을 넘는 곳도 있다. 그는 "연세대는 학부 교육만 보면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를 초빙하려 해도 10억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고도 했다."채드윅 등록금은 우리보다 4~5배 많습니다. 한국뉴욕주립대는 우리보다 2~3배 높지요. 국적이 한국대학이라는 이유로 규제가 많아요. 이것을 풀어달라는 겁니다.사립대 등록금을 올리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어떻게 하냐고 하죠. 그 대신 연세대가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엊그제 하버드대 총장이 한국에 왔는데, 자기네는 연수입 6만달러 이하 학생들 책임진다고 하더라고요.우리 대학은 작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학생들에게 4년 동안 장학금을 줍니다. 정말 좋은 학생 자유롭게 데려오고, 학교 교육 수준에 맞춰 등록금을 많이 받는 학생도 있어야 합니다. 자율과 책임 두 개가 함께 나가야 한다는 거죠."연세대는 내년도 입시부터 기초생활수급대상자 40명을 성적을 고려하지 않고 뽑을 계획이다. 연세대는 과거 기초생활수급대상자 100명 정원을 두고 학생을 선발한 적이 있었는데 '쿼터'를 100%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그만큼 대학 입시 장벽이 저소득층에 높다는 겁니다. 이게 참 불편한 진실입니다.한국 사정이고요. 이 계층의 아이들에게 명문대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거기서 돈 걱정하지 않고 다닐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계층간 사다리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40명은 성적뿐 아니라 여러 가지 재능을 봐서 뽑도록 할 겁니다.학력이 낮은 애들이 입학하면 별도 교육하는 역할을 해 줄 것입니다. 저는 지방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제 가정환경이나 사회적 배경때문에 이것을 추진하는 게 아닙니다. 명문대학으로서 사명입니다. 오바마, 클린턴 가정환경 보세요. 미국 교육제도가 그 사람들 아이비리그로 가게 만들었습니다.미국에는 윌리엄스칼리지라고, 교육 수준이 높아 입학 경쟁률이 꽤 치열한 학교가 있는데, 그곳 총장을 만났을 때 감동받았습니다. 그 대학에서는 집안에서 3대에 걸쳐 대학을 한 명도 못 보낸 학생을 찾아 입학시킵니다. 우리 사회가 그것을 열어줘야 합니다."연세대 송도 국제캠퍼스에는 유엔 지속가능개발센터(UNOSD)가 입주해 있다. 정 총장은 지난 12~17일 미국 뉴욕을 방문했다.유엔 사무국이 지원하고 예일대, 프린스턴대, 컬럼비아대, 뉴욕대, 펜실베이니아대 등 5개 대학이 주관하는 대학 총장 회의인 '글로벌 콜로키엄 2013'에 초청을 받아 방미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바바툰데 오소티메힌 유엔 인구기금(UNFPA) 총재 등을 만나 송도 국제캠퍼스와 유엔의 협력관계 구축 방안 등을 논의했다. 그가 본 유엔도시 인천의 가능성과 조건은 무엇일까."인천경제특구가 지금보다 훨씬 규제가 적은 도시로 가면 좋겠어요. 우리가 왜 스위스처럼 못 만듭니까. 그 나라 도시들 IOC(올림픽위원회), WTO(세계무역기구)로 먹고 살아요. 호텔도 엄청 비쌉니다. 유엔분들 만나 보면 스위스나 뉴욕이나 그런 지역 다 집값이 비싸다고 합니다.우리도 송도국제도시에 지금 (유엔기구) 올 수 있는 데 굉장히 많아요. 국제도시가 되려면 여러 가지 여건이 있어야 하는데, 규제가 적어야 합니다. 교육과 의료 부문에서 규제를 완화해야 합니다. 내국인 위화감을 주는 게 걱정이라면, 경제특구에서만이라도 차별적으로 해야 합니다. 연세대가 외국인 교수 유치할 때 그분들이 보는 건 의료, 그 다음이 교육입니다.송도에 그것만 만들면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송도 GCF 사무국, 장기적으로 국가 안보에도 기여합니다. 송도를 유엔 국제도시, 아시아의 제네바로 만들어야 합니다."정 총장은 "불과 몇 년 안에 연세대가 인천의 자랑이 될 수 있게 할 거다. 이 말은 꼭 써달라"고 했다."작년에 가끔 인천에 와보면 연세대와 인천이 약간의 묘한 갈등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인천에 와서 그랬습니다. 연세대와 인천은 서로 갈등 관계가 절대 아니라고. 같이 협력해서 국제도시 만들자고 했습니다. 앞으로 인천은 연세대 하나 때문에 서로 주고받는 게 엄청나게 많아질 겁니다."대담=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정리=김명래기자·사진=임순석차장

2013-03-27 경인일보

[인터뷰… 그]'재단법인' KBS교향악단 박인건 초대사장

악단 분위기와 비전은지난달 11개월만에 정기연주 재개갈등 원인이었던 지휘자 선임 신중단원들의 화합·협력 이끌어내고파1세대 공연기획자인데?바이올린 전공했지만 기획에 관심예술의전당·道문화의전당 두루거쳐연주 잘했으면 이렇게 안풀렸을지도재단법인에 대하여충무아트홀 등 재단화 수차례 경험출연금 지원약속만 잘 지켜준다면재원도 사업도 풍성… 장점 참 많아숨바꼭질하듯 봄이 아직 남아있는 겨울의 기운에 숨어들어 언제쯤 '짠'하고 등장하면 좋을 지 가늠하고 있는 것 같은 계절이다.더디 오는 봄에 약이 오를 수도 있지만, 이럴 때가 바로 '기다림의 즐거움'을 만끽할 좋은 때다. 한겨울 맹추위에 떨면서는 어디 감히 봄을 기다릴수조차 있었던가. 아직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봄은 우리에게 기대와 설렘 그리고 화창한 봄날을 즐기는 데 필요한 것들을 준비할 시간을 먼저 선물해두고 우리를 만나러 오고있다.아직은 두툼한 외투가 필요했던 지난 5일 서울 여의도에서 (재)KBS교향악단 박인건 사장을 만났다. 그의 눈빛은 '이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지난해 지휘자와 단원들간의 갈등으로 매서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단원들에 대한 연민과 믿음도 엿보였다. 그는 단원들 사이에 남은 갈등과 앙금을 씻어내고 재단법인으로 전환한 이후의 교향악단을 이끌어갈 책임을 안고 지난 9월 사장으로 취임했다."처음 출근하던 날 환영식을 아주 요란하게 치렀죠. 꽹과리치며 물러가라고 하더라고요(웃음)."반년 전의 일이라 무뎌진건지, 그만큼 상황이 잘 정리돼서 그런건지, 꽤 아팠을 기억을 박 사장은 웃으며 이야기했다. "새로 뽑은 담당 국장은 이 사태를 보고 그만뒀어요. 임명장 받기도 전에 자기가 죽어나가는 꿈을 꾸었다면서요. 그만큼 분위기가 안좋았죠."협동과 화합의 대명사인 오케스트라가 화합을 잃었으니 연주도 없었다. 지난해 3월부터 연말까지 KBS교향악단의 연주 일정표는 썰렁하다. 10월의 캘린더는 아예 텅 비어있다.지난해 3월 예정돼 있던 제 666회 정기연주회는 결국 열리지 못했고 11개월 만인 지난 2월 '667회' 정기연주회를 개최했다."재단으로 전환한 뒤 4차례 연주회를 했어요. 연주회 평가에 대해서는 연주자 스스로가 가장 잘 알죠. 공백도 길었고 주변의 우려도 많았지만 모두가 원했던 일이기도 하니 앞으로 더 좋은 연주를 들려드릴 겁니다."KBS교향악단 사장으로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3가지 미션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가 단원 화합이었어요.두번째는 지휘자를 선임하는 겁니다. 세번째는 관객 개발과 새로운 시스템 도입, 연주 확대 등 사장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여러가지 일들이에요." 갈등의 원인이었던 만큼 지휘자 선임은 민감한 문제였다. 그가 찾은 해답은 '궁합'이다."지난해의 사태를 잘 마무리하려면 단원들과 궁합이 잘 맞는 지휘자를 선임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누가 봐도 다른 말이 안나오도록 적임자들로 지휘자 추천위원회를 구성했어요. 물론 단원대표도 포함됐고 전원 합의를 봤어요. 지금은 10명의 후보군 중 3명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상반기 중에 선임지휘자를 선임할 계획이에요."그는 이어 마지막 미션이자 재단법인으로서 KBS교향악단의 비전을 설명했다. 한 때 연주자로서의 꿈을 담아, 우리나라 1세대 공연기획자로서의 연륜을 바탕으로, 여러 문화기관을 거치며 쌓은 노하우를 동원해 구상한 KBS교향악단의 미래를 그는 자신의 과거와 함께 하나씩 이야기해 나갔다.박 사장은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닌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공연기획자'라는 것이 직업인 목록에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연주를 잘 했으면 이 길로 안왔을지도 모르죠(웃음).바이올린 덕분에 대학생 시절에 차도 몰고 다녔고, 대학 교향악단에서 악장도 했었어요. 그러나 모두다 연주자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 시절에는 음악하는사람 중에 매니지먼트나 기획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죠.그래서 맞고 틀리고가 없었어요. 정답지가 작성되지 않은 분야였죠. 내가 하는게 답이니 얼마나 재밌었겠어요."그는 80년대 초부터 공연기획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제문화회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어요. 월급을 15만원 받는데 쓰는건 80만원이었죠. 배운다고 생각하고 1년반쯤 일하다 친구 셋이 모여 '아트피아'라는 회사를 설립했어요."그렇게 우리나라 공연기획분야 1세대의 대열에 합류한 그는 여러가지 다양한 공연을 시도했다. "첫 해 수상음악회를 기획했어요. 배 위에서 음악을 듣고 와인파티도 즐기는거죠. 표는 매진이 됐는데 결국 공연은 못했어요. 공연을 앞두고 공무원들이 배 위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다 불이 나는 사고가 난 거예요. 그 뒤로 배에서 가무가 금지됐죠. 허허."2년동안 아트피아를 운영한 그는 예술의전당으로 자리를 옮겨 13년동안 근무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도 일했다. 직함은 '공연기획부장'이었다. 다음 행선지는 충무아트홀이었고 그는 40대에 '사장'이 됐다."지금 되돌아보면 예술의전당은 친정같고, 세종문화회관은 시집같아요. 충무아트홀은 처음 사장으로 일했던 곳이라 그런지 눈치보지 않고 정말 열심히 일했던 곳이에요. 경인지역과도 인연이 깊다.2006년부터 4년동안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일했고, KBS교향악단 사장으로 선임되기 바로 전까지는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관장으로 일했다.그는 특히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으로 일했던 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이룬 시간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전당의 여러가지를 개선하려고 노력했죠. 제가 처음 취임했을때 도내 24개 산하기관 중 기관평가 결과가 꼴등이었어요. 그게 1등으로 바뀌기까지 모든 직원들이 다같이 일하던 그 때가 정말 좋았어요."그는 수도권의 여러 극장을 두루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직장은 바뀌었지만 저는 지금까지 죽 한가지 일을 하면서 살았다"고 말한다. 공연기획이다.공연기획 말고 또 한가지 그가 지속적으로 해온 일이 있다면 '재단만들기'다. 월급 만원을 더 받고 세종문화회관에 가서 재단화 작업을 도왔고, 충무아트홀에도 재단으로 전환하면서 합류했다. 경기도문화의전당도 그가 취임한 2006년 재단법인이 됐고,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도 재단화하는 조건으로 옮겨갔다.KBS교향악단도 재단화 이후 그가 초대 사장으로 선임됐다. 재단화 과정을 여러차례 지켜본 그는 어느때보다도 단호한 목소리로 '재단의 허와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약속만 잘 이행되면 재단은 좋은 점이 무척 많아요. 재원도 풍부해지고 사업도 잘 할 수 있고.세종문화재단도 과거 서울시에서 30억원씩 받다 재단으로 바꾸고 나서 연간 160억원씩 쓰고 있어요. 그러나 재단화를 핑계로 공무원들이 출연금 지원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죠. 예를 들어, 오는 도립극장의 일년 예산이 150억원이라고 치면 연말에 꼭 10억~15억원이 남아요.사업해서 번 돈도 10억원정도 되면 이 돈 25억원을 그대로 지자체에 반납해야 해요. 25억원이 있지만 돈없다며 공연도 못나가는 일이 생기기도 하죠. 그런데 재단이 되면 이 돈을 반납하지 않아도 돼요. 그러니 공연도 더 할 수 있고 이에 따른 수입도 생기겠죠. 수입이 늘면 단원들한테도 그만큼 더 돌아가고요.여기까지는 참 좋은데, 이렇게 되면 공무원들이 '연간 20억~30억씩이 더 있으니까 출연금을 조금 덜 주자'라고 결정해버려요.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되는거죠."이런 경험때문인지, 그는 보조받는 예산을 활용하는것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을 많이 고민한다고 한다. "말이 사장이지 우리같은 사람들은 사실 '고급거지'예요.기업콘서트 등을 통해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입니다. 그런데 또 이런걸 두고 너무 상업적으로 변하는거 아니냐고 걱정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KBS교향악단이 호텔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곳이 아니잖아요.오케스트라라는 단체 자체의 특성상 기본적으로 우리는 상업이랑은 관계가 멀어요." 그의 말처럼 KBS교향악단은 병원을 찾아가 의사와 환자, 보호자들을 위해 무료 공연을 여는 클로버(K-lover)음악회 등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지난해보다 조금 더 늘어난 연간 80회의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교향악단의 첫번째 목표이자 마지막 목표는 음악입니다. 좋은 음악을 많이 들려주는 것이 모든 것의 바탕이죠. 앞으로 한중교류 음악회나 작곡가 펜데레츠키 초청 공연, 올해 정전6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 바그너 200주년 기념 음악회 등을 준비하고 있어요."미뤄뒀던 연주에 대한 내실을 기하는 것만큼 그가 신경쓰고 있는 것은 시스템의 변화다. 특히 그는 서울뿐 아니라 수도권 전역에서 연주회를 열 계획이다. "그동안 KBS홀을 거점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해는 경기도 전역의 공연장을 방문하며 관객을 만날 예정입니다. 21~22일 열리는 668회 정기연주회도 오산문화예술회관에서 먼저 열립니다."아직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앞에는 이미 활짝 펼쳐진 KBS교향악단의 미래에 그는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어깨가 무겁다. "음악가 출신이 음악하는 단체의 사장이 된 건 처음이에요. 무척 영광이면서도 그만큼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과 경험을 통해 배운게 있으니 자신있습니다.주변사람들한테 자주하는 말인데요. 사람은 말하는대로 되는 법이에요. 저는 늘 '네 제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살았고 그래서 정말 그렇게 됐습니다. 우리 KBS교향악단, 앞으로 잘 될 겁니다."글·사진=민정주기자

2013-03-20 민정주

[인터뷰… 그]국회 통과 '군공항 이전 특별법' 대표 발의한 김진표 의원

피해 어느정도인가2만6천가구 수십년 재산권행사 못해4km거리 권선구청 훈련땐 통화 불가수화기 너머 상대 "전쟁났냐" 묻기도국회 통과하기까지수원만으론 역부족 광주·대구와 맞손매각금 신공항 개발 활용 아이디어로에산문제 난감해하는 국방부 설득남아있는 과제는?이전 최적지 화성 시화호 간척지 일원주민 동의·기존부지 활용 고민해야새 비상활주로 건설 강행은 '낭비'땅! 땅! 땅!' 지난 5일 국회 본회의장. 도심 주변 군 비행장 이전을 골자로 한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통과됐다. 표결에 참여한 여·야 의원 237명 중 찬성의원은 232표. 기권 5표를 제외하면 사실상 만장일치였다.법안을 대표발의한 국회 국방위원회 김진표(민·수원정) 국회의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먹을 불끈 쥔 채 "됐다"고 짧게 되뇌었다. 수원 시민의 숙원사업이던 군 공항 특별법은 그렇게 통과됐다.지난 6일 경인일보 본사 편집국장 집무실에서 김 의원을 만나 특별법 의미와 그동안의 소회 등을 들어봤다.'슈웅~쿠쿠쿠쿠'.수원 제10전투 비행단 입구와 4㎞ 가량 떨어진 권선구청. 공군 수원 비행장을 이륙해 훈련 중인 전투기 소음으로 전화통화가 불가능하다. 바로 옆 사람에게 말이라도 하려면 고막을 찢겠다는 기세로 목청을 높여야 한다. 75웨클의 소음에 오죽하면 수화기 너머 상대방이 "전쟁이 났냐"고 물을 정도.반복되는 소음 탓에 수원 비행장 주변과 작전 반경 안 시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지만 '안보논리' 앞에 참고 살아야 했다. 그나마 수십년 소음피해에 대한 턱없이 모자란 보상금이 찔끔찔끔 지급되기 시작했다.소음 피해 뿐만이 아니다. 수원 비행장 주 활주로가 피폭됐을 경우를 대비한 2.7㎞ 짜리 비상활주로 덕분에 수원 권선동과 세류동, 장지동 등 수원지역 3.97㎢와 화성시 태안읍 3.91㎢가 비행고도제한구역에 묶였었다. 1983년 지정된 이후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비상 활주로 덕에 2만6천여가구가 재산권 행사를 못하고 살았던 것.이런 사정에서 특별법 통과는 수원 비행장 이전의 근거를 마련한 마중물이다.김진표 의원은 "수원 비행장 이전의 근거인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은 반세기 수원시민의 숙원이 해결된 것"이라며 "그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17대 국회에서는 예산 당국의 반대로 이전비용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법안 마련이 난관에 부딪혔었다.그래서 18대 국회 들어와 '수원만 해서는 (법안발의가) 안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대구 공군 비행장이 속해 있는 유승민 의원과 광주의 김동철 의원 등과 함께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하지만 18대 국회때 국회 국방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까지 통과했으나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일부 국방위원들의 문제제기로 결국 회기가 만료돼 자동폐기됐었다.이어 "이후 국방부를 설득해나갔는데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예산이었다. 비행장 한 곳을 옮기는데 최소 3조~4조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행장 이전 비용을 순수하게 예산에서 따오려면 결코 안된다. 무기구입 예산이 30조원 가량인데 부족한 국방비에서 비행장 이전에 필요한 재원까지 마련하려면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고 설명했다.이에 김 의원이 꺼내든 카드가 '기부 대 양여' 방식이다. 새로운 공항을 개발하는 비용을 기존 공항의 매각 대금으로 충당하는 것이다.그는 수원 비행장 부지의 개발금으로 12조3천억원 가량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새로운 부지로의 이전비용에 최대 5조원 가량을 사용해도 나머지 8조원의 개발이익금을 국방력 강화에 쓸 수 있다는 계산이다.이런 그의 아이디어에 국방부 역시 신이 났다는 후문이다.김 의원은 "기부 대 양여방식의 카드가 나오니 (최신 무기·시설로의) 국방개혁도 가능하게 되더라"며 "하지만 법안이 지난해 11월 국회 국방위원회를 통과했을 때만 해도 '포퓰리즘 입법'이란 지적도 받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군 공항 주변의 주민 고통을 생각하면 이는 지역 이기주의가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그러나 현실적으로 이전 후보지 확보의 어려움과 후보지 주민들의 반발 등이 예상돼 실제 이전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법안이 통과되고 일부 언론사들은 이런 난제를 집중 부각시키기도 했다. 실제 지난 2008년 전남 무안으로 옮기려 했던 광주전투비행장은 무안지역 주민의 반발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김 의원이 현 상황에서 꼽는 최적의 이전 부지는 '화성 시화호 간척지' 일원이다.유사시 적기의 공습에 대비해 경비작전을 펼치는 초계(哨戒)역할을 하는 수원 비행장의 군사적 역할상 화성 시화호 간척지가 수원 비행장과 위도가 비슷해 북한 평양 순안공항에서 이륙, 우리나라 영공을 침범하는 북 전투기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김 의원은 "화성 시화호 간척지는 부지가 국유지고 주변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비행 훈련에 따른 민원발생 소지도 적다"며 "특히 시화호 간척지는 이미 지난달 김문수 지사가 수원 비행장을 방문해 설명한 대로 6.5㎢ 수준인 비행장을 198.3㎢로 대폭 확장하는게 가능하다. (국회 국방위로 온 후) 공군에서도 내부 가능성을 타진해본 결과,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그의 설명대로라면 부지가 워낙 넓다 보니 현재 제기되는 인천 국제공항, 김포공항과 화성 시화호 간척지 신 군공항간 공역(空域) 충돌문제도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앞서 장경식 10전투비행단장은 "비행장 이전 문제는 단순히 부지면적으로 따질 수 없다"며 "지역발전을 위해 이전해야 하지만 사전 검토가 필요한 것 같다. 경기도와 국방부·공군본부가 정말 긴밀히 연구할 사항"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그러나 실제 이전이 이뤄지기까지 주민 동의를 얻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당장 화성 시화호 간척지로의 이전이 공론화되면 화성 송산면과 안산시 단원구 지역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할 수 있다. 이전을 희망하는 현 수원 비행장 주변 시민과 자칫 민민(民民)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김 의원은 "군공항 이전 예정지의 주민 반대가 심하면 영종도 인천 국제공항처럼 인공섬을 만든 후 비행장을 이전하는 방안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전투기는 상당한 양의 미사일을 실은 채 이착륙을 하기 때문에 인공섬이 더욱 안전할 수 있고, 비행장이 들어설 주민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수원 비행장이 이전하게 되면 현재의 부지는 어떻게 될까.그는 "정치에 꿈을 꾼 이유가, 경제관료 생활을 하다보니 대한민국의 경제력 향상의 길을 만드는 것이었다"며 "국력은 경제력이다. G7국가에 진입하려면 세계 최첨단의 1~2등 하는 기업이 얼마나 많이 투자하냐가 성패다.최첨단 기업을 결정하는 기준은 석·박사급의 유수한 기술인력, 엔지니어들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냐다. 이런 인재들은 회사를 골라가는 능력을 갖춘 자들이다. 고액 연봉의 이들은 절대 가족과 떨어져 안 산다. 가족과 같이 살 수 있는 지역에서 근무하기를 선호하는데 수도권밖에 없다"고 운을 뗐다.이어 "수도권에 경제 지도를 그리면 파주에 LG디스플레이가 입주해 있다. 고양 일산신도시에서 파주까지는 15분 거리다. 남방 한계선은 어딘가 하면 현재 삼성전자가 들어서 있는 수원 비행장 벨트다. 수원 비행장 이전시 주변 공용지를 묶어 대규모의 최첨단 클러스터 조성이 가능하다.광교테크노밸리와 삼성전자, 화성 향남제약단지 및 경기대, 아주대 등을 묶어 반도체와 IT, 제약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게 가능하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 버금가는 클러스터 조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다음달 착공하는 수원 비상활주로 건설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도 제기했다.김 의원은 "특별법 통과로 이르면 수년새 이전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진 수원비행장에 비상활주로를 새로 건설하는 것은 심각한 예산낭비"라며 "특히 주 활주로 옆으로 비상활주로가 이전될 경우 본래의 기능과는 달리 사실상 '보조활주로' 역할을 하게 되는데다 주변 소음도 한층 심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또 "이미 타지역 군 비행장에서 비상활주로를 폐쇄하는 대신 주활주로 옆에 새로운 비상활주로를 건설했는데 주변 소음피해가 더욱 심해졌다"며 "기존 비상활주로 폐쇄는 계획대로 진행하되 수원비행장으로의 이전은 보류해야 한다"고 말했다.김 의원은 다음 지방선거에 경기도지사로 출마할 것이냔 질문에는 답변을 피했다. 우선 수원 비행장 이전에물꼬를 튼 현실에 고무된 표정이다. 하지만 다음 그의 행보는 여전히 궁금하다.대담=배상록 정치부장, 정리=김민욱기자 사진= 임열수기자

2013-03-13 김민욱

[인터뷰… 그] 장애인스포츠 활성화 앞장서는 석호현 (사)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 경기도위원장

이번 스페셜올림픽의 성과는장애·비장애인 어우러진 축제스포츠 대회 성공 모델 제시해소외된 '지적장애인 조명' 의미국민들 관심 높이는 방안은자원봉사자·홍보부족 큰문제국내대회 수원 개최 성공시켜고조된 평창 분위기 오래유지지난달 29일과 30일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세계대회가 열린 강원도 평창에서 만난 석호현 (사)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 경기도위원장은 "관람객과 선수가 함께 어우러진 축제다. 우리가 생각했던 행사가 열려 기쁘다"며 희열에 찬 모습이었다.강원도 평창이 동계스포츠의 메카로 발돋움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정부와 강원도에서 가장 크게 생각한 대회는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이 아니었다.강원도민들의 마음은 3번의 도전끝에 유치에 성공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만이 자리하고 있었다.하지만 역대 스페셜올림픽 중 가장 성대하게, 그리고 스포츠와 축제가 어우러진 행사로 준비한 이번 스페셜올림픽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안겨 주고 끝났다. 평창에서 만난 석호현 위원장을 통해 스페셜올림픽의 뒷 이야기와 지적장애인 스포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봤다."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진 축제의 현장이었다."석호현 위원장에게 이번 스페셜올림픽에 대해 묻자 "장애라는 큰 벽을 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진 축제의 현장이었다"고 말했다.그는 "프로스포츠를 제외한다면 국내 스포츠대회는 그들만의 잔치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가 준비할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라는 콘셉트로 준비했다. 대회를 마치고 스페셜올림픽 개최에 함께 했던 분들 모두가 콘셉트로 정했던 것들을 이뤄내서 기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특히 석 위원장은 "장애인 스포츠대회에 국한시키지 않고 비장애인 스포츠대회를 봐도 이렇게 모두 함께 어우러지는 대회는 없었다. 함께 어우러져 모두가 행사를 즐겼다는 것에 있어서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 스포츠대회의 성공 모델을 제시해 준 것 아닌가 생각한다.스포츠대회를 감동의 드라마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번 스페셜올림픽은 하얀 눈처럼 순결한 마음이 담겨 있는 감동의 드라마였다"고 설명했다.석 위원장은 대회의 외형적인 성공보다는 장애인 사회에서도 소외되어 있는 지적장애인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다.그는 "지적장애인들은 그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비장애인들과 차이가 없다. 그래서 사회 속에 감춰져 있는 장애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지적장애인들의 밝은 모습과 순수함이 많은 분들께 알려졌다.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회의 한 구성원이고, 그런 그들이 밖으로 나와 함께 어우러졌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말했다.2013 평창스페셜올림픽이 준비될 당시 스페셜올림픽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지도가 낮아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 어려웠던 순간에 대해서도 물어 봤다.석 위원장은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가 2008년 설립됐지만 첫 번째 시·도 지부는 2011년 12월 경기도스페셜올림픽위원회가 시·도 지부로 인증받으면서부터다. 시·도 지부의 조직이 늦어졌다는 건, 중앙단체가 있어도 지역까지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대회를 준비해 나간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이어 석 위원장은 "조직이 탄탄하지 않은데 예산 확보가 쉬웠을 리 없지 않은가. 나경원 위원장이 국회의원을 지냈기 때문에 국회 차원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이번 대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좋은 취지로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후원단체와 기업, 개인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에 대한 이야기를 접고 전국에서 첫 번째로 시·도 지부로 인증받은 경기도스페셜올림픽위원회의 설립과 활동에 대해서도 소개를 부탁했다.석 위원장은 "주변 분들께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홍보를 할 당시 첫 번째 받았던 질문이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으세요?'였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단체를 맡아 인지도가 낮은 행사를 홍보하고 다니자, 제 개인적인 신상과도 관련이 있지 않냐는 인식들이 많았다. 스페셜올림픽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 취지가 너무 좋아서였다. 좋은 취지의 단체, 좋은 취지의 행사가 묻혀 있는 게 싫어서 참여하게 됐다"고 소개했다.그는 "지난 2011년 11월 도스페셜올림픽위원회 발기인 총회에 참여한 분이 9분이신데, 모두 개인적인 인연이 아닌 단체의 취지에 뜻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분들이 이사가 돼서 '사단법인 경기도스페셜올림픽위원회'를 설립했고 또 그분들과 함께 열심히 홍보에 나서 15개 시·군 지부를 두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도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가장 어려운 점으로 '홍보'를 꼽은 석 위원장은 "지부가 설립됐지만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스페셜올림픽위원회의 활동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함께 활동하실 분들과 행사를 진행할 때 도움을 주실 자원봉사자들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보통 단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예산을 탓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석 위원장은 "좋은 취지의 단체고, 좋은 의미를 담은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예산은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이런 의지를 앞세워 어려운 여건에서도 석 위원장은 평창대회에 도 대표로 50여명을 참가시켰다.그리고 이제는 스페셜올림픽과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제10회 한국스페셜올림픽 전국하계대회 유치전에 뛰어들었다.석 위원장은 "평창대회로 인해 스페셜올림픽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커졌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수도권에서 한국스페셜올림픽 전국하계대회를 개최한다면 성공적으로 마친 평창대회의 분위기를 국민들과 수도권 시민들에게 더 오래 심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유치전에 뛰어들었다"며 유치에 나선 이유를 전했다.그는 "사실 지난해 제9회 대회가 경산에서 열렸기 때문에 제10회 대회는 2014년에 개최되어야 하지만 인천에서 아시안게임이 개최되는 등 국내외 여건이 어려워 올해 개최하게 됐다. 또 평창 대회의 분위기를 이어가자는 측면에서도 올해 제10회 대회 개최에 힘을 실어줬다. 성공한 평창대회의 분위기를 이어 국내 대회도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는 지역은 경기도, 그리고 수원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이어 석 위원장은 "수원시 일원에서 대회를 개최하게 되면 역대 대회 중 가장 많은 950여명의 선수를 비롯해 2천여명이 참가하는 대회로 개최할 계획"이라며 "도내 장애인 스포츠와 도스페셜올림픽위원회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유치에 성공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석 위원장은 "스페셜올림픽은 경쟁보다는 대회에 참가하는 데 의미를 둔다. 늦게 들어오더라도 웃으면서 완주하는 모습에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비장애인 대회처럼 박진감이 넘치지는 않지만 평창대회에서 국민들에게 전해 줬던 감동을 전해 주는 대회가 '한국스페셜올림픽 전국하계대회'다. 그 감동을 전해 주는 중심이 경기도가 될 수 있도록 수원 유치를 이뤄내겠다"고 말했다.석호현 위원장은…(사)경기도스페셜올림픽위원장과 (사)한국유치원총연합회장을 맡고 있으며 아주대학교대학원에서 '방과 후 아동지도에 대한 인식 및 욕구에 관한 실증연구'라는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은 교육인이다.두 단체 외에도 아주대학교 한마음장학회 회장,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겸임 부교수, 학교안전공제보상재심사위원회 부위원장, 국회 보좌진 연구모임 '국회노동연구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글=김종화기자 사진= 하태황기자

2013-02-20 김종화

[인터뷰… 그]바벨 내려놓고 제2의 삶 꿈꾸는 '로즈란' 장미란

현역 은퇴 결심 이유는?체중 부담탓 허리·무릎 관절 쇠약더이상 선수생활 이어갈 자신 없어6년간의 고양시청 선수생활 접기로향후 계획은?박사과정 마치고 재단활동 활발히체육인들에 도움주는 일 하고파IOC위원 자격 요건 준비도 철저히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나를 아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다른 많은 선수들에 관심 나눠주길그간 부모님 희생에 보은하고 싶어"별명이요. 로즈란이 가장 좋은데요. 이제는 푹 쉬면서 사회활동을 펼치고 싶네요."지난달 29일 현역에서 정들었던 고양시청 유니폼을 벗고 공식 은퇴한 '한국 여자 역도의 간판' 장미란(30). 그는 이날 고양시 덕양어울림누리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정들었던 무대를 떠나며 감사의 인사와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그도 그럴 것이 장미란은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 여자 역도를 단번에 세계의 중심으로 올려놓은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장미란은 '여자헤라클레스', '철의 여인', '로즈란' 등 각종 수식어가 따라붙을 정도로 세계 역도계의 뇌리에 깊이 남은 선수였다. 은퇴식 후 장미란과 함께 고양 장미란체육관을 찾아 인터뷰를 했다.아직 은퇴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그는 체육관으로 오면서 시종일관 굳은 표정을 지었다. 평소 해맑은 미소도 이날 따라 무척 우울해 보였고, 간간이 흘러나오는 말도 쓸쓸해 보였다. 그래도 인터뷰에 잘 응해주었다.장미란은 은퇴 소감을 묻자 "역도를 하면서 최고의 시간을 보내 늘 행복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응원해준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장미란재단을 통해 꿈나무들이 큰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그는 지난 2007년부터 6년간 고양시청 소속으로 뛰며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특히 2007년 경기도 대표로 전국체전에서 대회신기록을 세우며 3관왕에 올라 당시 경인일보사가 제정한 '제19회 전국체전 MVP 대상(개인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이에 대해 "고양시청에서 선수생활을 한 지 6년이 넘었는데, 경기도에서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며 "이 기간동안 경기도 홍보대사와 전국체전 MVP 대상까지 많은 은혜를 입은 것 같다"고 전했다.그간 장미란은 은퇴 이유에 대해 '신체적으로 선수생활을 더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정말 사실인지 다시 물어봤다. 그는 "2012 런던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국민의 뜨거운 격려와 응원을 받았다. 그런 응원에 대한 보답으로 더 좋은 기록을 내고 멋있게 은퇴하고 싶었는데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고 말했다.사실 장미란은 무거운 바벨을 들어올리면서 체중 부담이 심했고, 무릎과 허리 등 모든 관절이 쇠약해져 계속 잔병에 시달려왔다.그러나 부상을 뒤로한 채 꾸준히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왔다. "선수가 부상당하면 속상하고 이겨내기 위해 재활에 집중한다. 나는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서도 몸관리를 했다. 그러다 보니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몸도 좋아졌다"고 설명했다.이를 입증하듯 장미란은 무제한급에서도 체중 조절을 잘 한 선수로 꼽혀왔다. "무리하게 체중을 올리지 않으려고 평소 음식을 잘 먹고 영양을 보충했다. 때문에 중도에 부상에 시달리더라도 잘 참고 이겨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화제를 바꿔 애칭에 대해 물어봤다.그러자 "수 많은 별명중에 '로즈란'이 가장 좋다"며 "'여자 헤라클레스'도 정들었지만 국민들이 재치있게 '로즈란'으로 별명을 지어줘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또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청국장, 된장찌개, 나물류 등 전통 음식을 좋아한다. 외국에서 국제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면 항상 어머니가 이런 음식을 해주신다"면서 "나는 음식을 만들지는 못한다. 앞으로 배워 나갈 것"이라며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만약 역도 선수로 성공하지 않았다면 어떤 인물이 됐을까. 장미란은 "학교에 잘 다니고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짧게 언급했다.선수시절 굵직굵직한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수차례 해온 장미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어느 것일까. "2007년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치앙마이 세계선수권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중국 선수에게 패한 뒤 슬럼프에 잠시 빠졌지만 더 좋은 기록을 위해 착실히 준비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그럼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일까. 의외로 간단한 대답이었다. "은퇴 기자회견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나를 사랑해 주셨다. 은퇴를 선언한 선수에게 이렇게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너무 행복했다. 국민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설명했다.장미란은 평소 부모님에 대해서도 "역도를 시켜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선수시절 묵묵히 나를 응원해준 가족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내가 있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부모님의 은덕에 대해 내가 갚을 차례"라고 말했다.앞으로 장미란은 '장미란재단' 활동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을 준비중이다. 또 밀렸던 용인대 박사과정도 시작해야 한다."재단은 혼자만의 활동이 아니라 다른 종목의 대표선수들이 유망주들과 함께 멘토와 멘티로 서로의 인연을 맺어줄 것이다. 또 어린이들에게 스포츠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것이 재단의 목표"라고 강조했다.이어 "단기적으로는 용인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는 것이고, 나아가 스포츠 관련쪽에서 체육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 IOC 선수위원의 자격 요건을 갖출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는 것도 나의 또다른 목표"라고 밝혔다.끝으로 장미란은 자신을 아껴준 국민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난 행복한 사람이었다. 역도 선수로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다. 선수생활을 이렇게 잘 마무리해서 기쁘다"며 "그동안 나에게 베풀어준 사랑을 대한민국 모든 선수들에게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장미란은…장미란은 1983년 10월9일 새벽 강원도 원주에서 장호철씨와 이현자씨의 2녀 1남 중 맏딸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체중이 5.9㎏였던 장미란은 상지여중 3학년 초까지 평범한 소녀로 자라났다. 학교 성적은 반에서 상위권을 유지했고, 피아노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역도를 시작한 때는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98년 겨울방학 무렵으로, 역도선수 출신인 아버지의 권유로 역도계에 입문했다.장미란은 2005년, 2006년, 2007년,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하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우승하면서 무려 5년 동안 세계 여자역도 최중량급을 지배했다. 여자역도의 체급이 현재처럼 굳어진 1998년 이후 세계선수권대회 4연패와 올림픽 우승, 준우승 등의 대업을 이룬 여자 선수는 장미란 밖에 없다. 장미란은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 등 출전할 수있는 모든 국제대회를 제패해 '그랜드슬램'을 이루기도 했다.특히 전성기인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여자 최중량급의 인상·용상·합계 세계기록을 모두 보유해 적수가 없는 강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이후 부상에 시달리면서 2010년부터는 신예들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마지막 무대였던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메달을 따지 못했다.글/신창윤·김성주기자 사진/하태황기자

2013-02-12 신창윤·김성주

[인터뷰… 그]'문화' 매개로 민간외교 나선 장명주 브리징 그룹 회장

"중국의 전문성과 한국의 창의성이 만나면 동양 문화예술의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5일 경인일보를 방문한 장명주(Zhang Ming zhou) 브리징(Bridging)그룹 회장은 한국에 와서 자신의 어릴 적 꿈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그의 어릴 적 꿈은 외교관이 되는 것이었다. 상하이 외국어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외교부에 들어갔을 때는 그 꿈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았다.그러나 외교부의 월급은 너무 적었고 그의 집안 형편은 부유하지 못했다. 2년 남짓 아시아 부서에서 근무하다 그만뒀다. 그리고 1998년 '브리징그룹'을 설립하고 문화, 교육에 관한 홍보를 업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문화를 매개로 한 민간외교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외교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된 2003년부터다."2003년 국제아동도서협회(IBBY)의 중국지부 회장직에 있을 때 한국지부 회장이었던 강우현씨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2006년 중국에서 열리는 세계대회에 초청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때 강우현씨는 따뜻한 내용으로 답장을 보내줬습니다. 무척 감동적이었죠. 그때부터 한국과의 교류가 시작됐습니다."다양한 외교활동과 향후 계획은?나미나라공화국 주중대사로 관광객 유치14세 이하 학생 '소통의 장' 경연대회 동참K-팝 즐기는 아이들 단기코스 유학 추진그는 한국 중에서도 가평 남이섬에서 가장 신나게 활약하고 있다. 인연이 깊은 강우현씨가 남이섬 대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 남이섬이 아니라 '나미나라공화국'이기 때문에 그는 남이섬을 좋아했다."남이섬은 동화 같은 곳입니다. 2006년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했죠. 저는 2008년 그 곳의 주중대사로 임명됐습니다. 중국에 거주하는 나미나라공화국 대사라는 의미죠. 외교관의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당시 외교부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은 제가 가장 먼저 외교관의 꿈을 이뤘다고 부러워해요." 농담처럼 건넨 말 속에 진심어린 고마움이 담겨있었다.그는 한국에서의 활동에 큰 열정을 갖고 있었고, 지난 5년동안 그는 대사로서 열정만큼의 성과를 이뤘다. 2008년 2만명이 넘지 않던 남이섬 중국인 관광객이 지난해에는 15만명을 넘겼다.남이섬을 접수(?)한 장 회장은 올해 활동 영역을 조금 더 넓힐 계획이다.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에 임용되는 한편, 오는 4월에 열리는 '청소년글로벌 리더십 스쿨'과 8월에 예정된 '한·중 청소년 리더십 페스티벌'에 동참한다.한국청소년연맹, 중국CCTV가 공동 주최하고, 경인일보 주관으로 경기도 전역에서 열리는 두 차례 행사에서는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과 재능을 가진 14살 이하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경연대회를 진행한다. 장 회장은 행사를 통해 참가 학생들을 알리고,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며, 더 나아가 한류의 지속과 발전, 그리고 한·중 교류의 장을 넓히는 역할을 하게 된다.한·중 문화 결합시 시너지 효과는?韓 "전통문화 관리·재창조 능력 뛰어나"中 "숨은유산·전문성 갖춘 예술가 많아"두나라 서로 강점 배우고 왕래 활발해야"중국에는 K-pop에 열광하고,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이 아주 많습니다. 저는 이런 아이들을 위해 5년 전부터 남이섬에 데리고 와 공연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있어요. 이번 행사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는 정식으로 한국에서의 단기코스 유학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페스티벌은 중국CCTV에 두 차례 방송될 거예요. 중국의 K-pop 팬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기쁜 시간이 되겠죠."중국 청소년들의 한국사랑을 운운하지만 정작 장 회장이야말로 한국을 무척 좋아하는 듯하다. 1년에 한국을 10여차례 방문한다는 그는 한국이 너무 좋아서 조카에게 한국 유학을 권유했고, 한국의 문화를 직접 피부로 느끼고 싶다며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그는 '중국이 한국에서 배워야 할 것'으로 '한류는 물론이고, 그 밖의 다양한 문화, 패션, 국제마케팅 그리고 창의성'을 꼽았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리와 재창조하는 능력이 특히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창의성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반면 중국에서 배울 만한 점도 있어요. 중국에는 아직도 숨어있는 훌륭한 문화유산이 많습니다.798예술구(베이징 차오양구 다ㅤㅆㅑㄴ즈지역에 위치한 예술 거리로 400개가 넘는 전문 화랑과 갤러리, 독특한 인테리어의 수많은 카페와 아트숍들이 몇몇 가동중인 공장들과 함께 공존하며 중국의 현대미술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에는 뛰어난 예술가들이 많아요. 한국의 창의성과 중국의 전문성이 아주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그가 본 가능성은 꿈꾸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그리고 언젠가는 꼭 그렇게 될 것만 같아서 가슴을 뜨겁게 달구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는 문화의 중심이 유럽이었지만 서서히 동양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은 몇천년의 우정을 이어온 이웃 국가로, 두 나라의 강점이 결합하면 우리가 문화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이는 중국과 한국에 좋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좋은 일이죠. 이를 위해 청소년의 문화교류, 여행을 통한 교류 등을 통한 직접 교류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온도를 느끼며 마음으로 교류하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글=민정주기자 사진= 임열수기자

2013-02-06 민정주

[인터뷰… 그]인천아시안게임 성공 개최 앞장선 김영수 조직위원장

1942년 5월 10일 인천시 중구 전동에서 태어난 '그'는 축현초등학교 재학시절 한국전쟁의 발발로 부산으로 피란을 떠난다.휴전 후 가족과 함께 서울에 정착한 '그'는 서울중, 서울고, 서울대를 졸업했다. 제5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국회의원과 장관을 지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생활한 지 60년의 세월이 흐른 2011년 12월, 고향의 부름을 받아 2014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의 수장으로 부임했다.코흘리개 소년이 길고 긴 시간을 보내고 초로의 신사가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이야기의 주인공인 김영수 2014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 위원장은 1987년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장 재임시절, 국가안전기획부 특별 보좌관으로 활동하던 중 안기부 차장 자리를 제안받는다. 검찰총장을 꿈꾸던 검사로서 고민 끝에 제안을 수락한 그는 이 결정이 훗날 자신에게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터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제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김 위원장은 이후 문화체육부 장관, 한국프로농구연맹(KBL) 총재를 역임했다. 이어서 인천으로 돌아와 조직위원장으로 새 출발을 한 것이다.취임하던 날 식장에서 김 위원장은 "난 참 운이 좋다"고 운을 뗀 뒤 "언젠가는 고향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좋은 기회가 찾아와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대운(大運)을 언급하며 조직위원장으로서의 임무를 잘 수행하겠다고 강조한 김 위원장은 당시 각오처럼 부임 이후 현재까지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동분서주했다.예산 절감을 위해 경기장 배치계획을 변경하고 종목을 재배치해 개·보수가 불필요한 경기장을 확보해 당초 사업비보다 약 27억5천만원을 절감했으며, 대회 마케팅을 위해 스위스의 대표적인 시계 브랜드 티쏘(TISSOT)를 시작으로 대한항공, SK, 삼성전자와 최고 등급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앞으로 후원 계약을 체결할 국내외 업체들도 상당수 예정돼 있다. 또한 인천 아시안게임의 대회정보시스템(AGIS)은 쌍용정보통신(주)와 스위스 타이밍이 공동으로 구축해 운영하게 되며, 런던올림픽에 사용된 시스템에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해 운영할 계획이다.이처럼 김 위원장과 조직위는 대회 마케팅에 주력하는 한편 불필요한 예산을 축소하고, 첨단 IT 기술을 접목하는 등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인 대회로 만들기 위해 달려왔다.취임 후 지금까지 활동을 뒤로 하고 대회까지 남은 600일 동안의 활동을 기획하고 있는 김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2013년은 인천아시안게임의 준비를 마무리하는 단계이다. 대회 준비 상황은."대회 후원 계약과 주관 방송사 계약을 체결했고,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개·폐회식의 대행사 선정도 공모를 통해 결정했습니다. 본부호텔 문제는 올해 안으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와 협의해 숙박 수요를 확정하고 호텔 등급, 방의 규모, 가격, 위치 등을 감안해 선정할 계획입니다. 주경기장의 공정률도 현재 45%로 2014년 4월 완공할 계획입니다. 기타 경기장도 2011년 5~11월 착공해 58%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으며, 오는 5~8월께 모두 완공될 것으로 봅니다."■ 대회 개·폐회식 대행사 선정과 관련해 인천지역 업체 배제 논란이 있었는데."조직위는 인천이 이번 대회를 계기로 품격있는 도시로 한 단계 도약하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개·폐회식 기본 방향에 '인천의 역사, 아름다움 등 개최도시의 특징을 품격 높은 예술성으로 표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저를 포함한 다수의 인천지역 인사가 자문위원회에 참여해 개·폐회식 프로그램에 인천의 역사와 문화가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조직 확대를 꾀했다. 주안점을 둔 부분은."현재 조직위의 가장 큰 현안은 오는 6월 열리는 2013 실내&무도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입니다. 실내&무도 대회의 완벽한 대회 운영을 위해 기존 조직을 전체적으로 확대·재편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또한 2014 아시안게임의 경기종목인 38개 종목의 차질 없는 준비를 위해 경기 분야에 대한 조직과 인력을 대폭 확충했고, 점차 비중이 커지는 OCA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위해 국제본부를 신설한 것이 핵심입니다."대회 준비 마무리 단계인데 잘 진행되고 있나?개·폐회식 대행사, 공모 통해 선정 마쳐주경기장, 국비지원 받아 내년 4월 완공6월 실내&무도대회서 운영노하우 점검■ 실내&무도 대회의 준비 상황은."2014 아시안게임의 테스트이벤트 형식인 실내&무도 대회의 성공 개최는 아시안게임 운영의 노하우를 익히고 조직원 스스로의 자신감도 배양시킬 것으로 기대됩니다. 우선 대회 성패를 좌우하는 기준이 되면서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방법의 하나인 자원봉사자의 경우 2천560명 모집에 7천60여명이 지원해 현재 면접 심사 중에 있습니다.330여종의 물자는 후원, 임차(유·무료), 구매 순으로 소요예산을 최소화해 확보하는 등 수송, 숙박, 선수촌, IT 및 방송, 안전 등 지원 분야별 업무를 착실히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임권택(총감독)·장진(총연출) 감독의 지휘 아래 아시아의 화합과 감동, 인천의 경쟁력과 IT·영상 기술을 부각시켜줄 첫 번째 작품인 실내&무도 대회 개·폐회식 세부 프로그램을 2월 중 확정하고, 프리이벤트로 4월 20~21일 삼산월드체육관에서 댄스스포츠 대회를 개최해 전반적으로 점검할 계획입니다."■ 실내&무도 대회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적다. 이에 대한 대책은."시민 홍보를 위한 다양한 시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시내 관공서, 아파트, 다중집합장소 게시판 등에 실내&무도 대회 홍보 포스터를 부착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엔 버스, 택시, 지하철 등 교통시설과 프로스포츠 경기장 및 인천국제공항 등을 대상으로 집중 홍보할 계획입니다.특히 대회 개최 한 달여 전부터 공중파 TV, 라디오, 신문, 온라인광고 등 전방위적인 홍보를 실시할 계획입니다. 뿐만 아니라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social network service) 채널을 통한 온라인 홍보를 강화하고 있으며, 블로그기자단과 SNS서포터스 운영을 통해 시민들과의 쌍방향 소통으로 네티즌들이 대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홍보하도록 유도할 방침입니다.北 참가여부와 시민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경색된 남북문제 잘 풀려 北 참가 가능할것무질서·불결한 상태서 손님 맞이할수 없어모두가 힘모아 친절·질서·청결운동 벌여야■ 아시안게임의 흥행과 남북 화합을 위해 북한의 참가를 바라는 이들이 많은데, 이에 대한 전망은."OCA 회원국인 북한이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조직위는 지난해 11월 마카오 OCA 총회에서도 북한의 실내&무도 대회 참가를 권유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시일의 촉박함 등으로 아직 답변이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내년에 열릴 아시안게임에는 북한의 참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경색된 남북 문제가 새 정부 들어 잘 풀릴 것으로 보고 있으며, 북한 참가도 이와 궤를 같이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하고싶은 말은."인천시의 재정상 어려움으로 인해 과연 아시안게임을 치를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분들이 아직도 상당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장 난제였던 주경기장 건립에 대한 국고지원이 이뤄졌고, 이를 계기로 이제는 인천을 위해 기왕 유치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아시안게임은 글로벌 국제도시를 바라는 인천시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큰 기회입니다. 이제는 인천의 이미지를 선진도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시민들이 나서서 친절·질서·청결을 위한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불친절하고 무질서하며 불결한 상태에서 손님을 맞을 거라면 차라리 대회를 개최하지 않느니만 못합니다. 마침 인천경찰청도 2013년을 '교통질서를 확립하는 원년'으로 선포하고 이를 위해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교통정책을 펼칠 예정이라고 합니다.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회를 치르고 난 뒤 남는 유·무형의 대회 유산은 바로 인천의 것입니다. 인천시민 스스로 아시안게임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지금부터 말입니다."■ 김영수 위원장은▲ 학력 : 서울고, 서울대 법과대학, 서울대 사법대학원 수료, 국방대학원 수료▲ 경력 : 제5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지방검찰청 검사(1971), 국가안전기획부 1차장(1990~1992), 제 14대 국회의원(민자당), 대통령 민정수석 비서관(1993. 3~1995. 12), 한국프로농구연맹 총재(2004. 5~2008. 8)▲ 상훈 : 황조 근정훈장(1995년), 청조 근정훈장(1997년)▲ 저서 : '발상을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글= 김영준기자 사진= 선보규기자

2013-02-05 김영준

[인터뷰… 그]지방출신 최초로 대한변협 첫 직선 회장에 당선된 위철환 변호사

큰무대에서 뜻을 펼쳐 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안고 시골에서 상경한 한 소년이 있었다. 맨손으로 올라온 이 소년은 중학교 시절 어쩔 수 없이 주경야독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당시 숙식을 제공해준 신문보급소 덕분에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었던 그는 매일 새벽 4~5시에는 찬바람을 맞아가며 신문을 돌리고, 저녁엔 공부를 하며 야간고등학교에 진학, 이후 서울교대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수년간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끝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더 큰 뜻을 품고 변호사가 됐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어엿한 중년이 된 그는 전국의 변호사를 대표하는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 당선되기에 이른다. 언뜻 보면 위인전이나 아침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수원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위철환 변호사다. 대한변협 선거가 끝난 직후인 지난 23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그의 선거캠프를 찾아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가난한 신문배달소년 변호사 되기까지…맨손 상경 주경야독끝 교사의 꿈 이뤘지만변호사비 없어 패소한 제자 딱한사정 접하고어려운 사람 돕기 위해 법조인 되기로 결심-선거가 끝난 지 얼마 안 돼 아직은 정신이 없으신 것 같네요. 우선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 당선된 소감이 어떠신지요?"저야 무척 기분 좋고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제가 당선됐다고 하니까 저보다도 저를 지지해준 지방의 변호사들이 너무 통쾌하다고 하시더군요. 저와 경쟁했던 분들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대검 비서실장, 로펌대표, 전·현직 서울변호사협회장이셨어요. 회장에 입후보한 네 사람 중 누가 봐도 제가 가장 열세였죠.자타가 공인하는 KS(경기고-서울대) 출신도 아니고, 법조인으로서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도 않은 제가 말하자면 일종의 반란을 일으킨 셈인 거예요. 대한변협 역사상 지방변호사 출신이 회장직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전국에 14개 지방변호사회가 있는데, 서울변호사회는 나머지 13개 조직을 합친 것보다 회원수가 많아요.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서울변호사회 회장이 자동으로 대한변호사협회장에 당선되는게 당연하죠."-대한변협 역사상 직선제로 선거가 치러졌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맞아요. 제가 4년전 경기중앙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됐을 때부터 대한변협 회장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자고 추진했어요. 물론 그 전에도 그런 필요성이 가끔씩 제기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직접 나서서 추진을 하지 않았죠. 그동안 대한변협선거는 너무나 비민주적인 관선제방식이어서 지방은 선거권이 박탈된 상황이나 마찬가지였어요.이런 상황에서 선거를 간선이 아닌 직선제로 바꾸려면 기존의 기득권을 가진 서울변협 회장이 우선 직선제에 동의를 해야하고, 이사회 의결을 거쳐 국회법까지 통과해야하는 등 많은 난관이 있었죠. 생각해보세요. 가만히 있으면 서울변협 회장이 대한변협 회장을 승계하게 되는데 어느 누가 나서서 직선제를 추진할 수 있겠어요.그러나 다행히도 제가 경기중앙변호사회 회장과 대한변협부협회장을 겸임하면서 직선제를 추진하자 당시 대한변협회장님이 제 뜻을 이해하시고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치러진 직선제 선거에서 모든 이들의 예측을 깨고 제가 대한변협회장에 당선된 겁니다."협회장으로서의 각오가 있다면민사사건도 금전 없이 변호혜택 받도록'변호사 강제주의 시스템' 도입하고파-이번 선거에서 '보통변호사'를 굉장히 강조하셨는데,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보통변호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대한변협회장은 말하자면 으레 '명품변호사'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제가 생각하는 보통변호사로서의 회장직은 꼭 서울 출신이 아니더라도 서울뿐 아니라 지방 변호사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서민들 곁에서 호흡하는 개인변호사들의 애환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직분을 말하는 것입니다.요새 대형 로펌들이 들어서고 많은 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말 생계를 걱정해야 할 만큼 어려운 변호사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제가 선거 홍보물에 보통변호사와 함께 '변화의 새물결'을 강조했는데, 이제는 변호사 조직도 권위의식을 버리고 새롭게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않은 보통 변호사들이 소신껏 성실하게 활동하고 정당한 보수를 받으며 생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살아온 이력이 좀 특이하세요. 역경과 고난도 많았고, 왜 하필이면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다 뒤늦게 법대에 진학하시게 됐죠?"어느 추운 겨울 날 새벽 한창 신문배달을 하고 있는데, 한 가정집에 불이 켜져있고, 창문너머로 내 또래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는 게 보였어요. 그때 난 지금 뭐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죠.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보자' 결심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공부에 매진, 꿈에 그리던 교대에 진학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됐어요. 그리고 6년정도 교편을 잡았죠.그런데 어느날 우리반 여학생이 며칠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원인을 알아봤지요. 그랬더니 그 학생의 아버지가 사업을 벌이다 큰 송사에 휘말리셨는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결국 재판에서 패소, 사업은 완전히 망하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 거예요. 그 여학생의 딱한 사정을 들으면서 저는 앞으로 법공부를 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죠.이후 교직을 포기하고 법대 편입시험에 매진, 수백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게 된 겁니다. 사실 그때 편입시험이 사법시험보다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웃음). 2명 뽑았는데, 수백명이 왔으니까요. 그때 저랑 같이 합격했던 동기 편입생도 지금 인천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답니다."수원에 경기고등법원 설치 전망은1200만 도민 항소심때 매번 서울 찾는 불편지역 국회의원·시민 연대 숙원 성취 최선-수원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시면서 경기고등법원 설립을 위해 다방면으로 애쓰셨습니다. 고등법원 설립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사실 경기고법 설치문제도 제가 처음으로 주창한 겁니다.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장 시절 '경기고등법원 유치 범도민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국회의원, 경기도지사, 지자체 단체장들을 만나며 경기고법 설치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서명운동과 헌법소원, 공청회 개최, 도민 여론조성까지 참 많은 일들을 해왔죠.하지만 그때마다 도민들의 결집력 부족으로 번번이 고법 설치가 무위로 그치고 말았어요. 고법이 설치되려면 우선 국회법사위를 통과해야 하는데, 경기도에 지역구를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구 1천200만명이 거주하는 대한민국의 중심지역인 경기도에 고등법원 하나 없는게 말이 됩니까? 경기도보다 인구가 적은 광역단체들에도 고법이 거의 설치돼 있습니다.경기도 사법기관의 중심인 수원만 해도 사건수가 전국 2위를 점하고 있고 인구와 산업의 유입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변한 고등법원 하나 없어 항소심을 하기 위해 매번 서울을 찾아야 하는 도민들의 경제적, 정신적 피해가 심각합니다. 앞으로 경기지역 국회의원은 물론 시민들과 연대해 도민들의 숙원을 풀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적극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마지막으로 대한변협 회장으로서 임기내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변호사 강제주의 시스템을 도입해보고 싶어요. 이는 형사사건 때 돈 없는 사람을 위해 국선변호사가 도와주는 것과 비슷한데, 민사합의사건 이상에는 금전에 상관없이 변호인이 도와줄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이렇게 된다면, 서민들이 돈 때문에 변호사를 못구해 억울하게 재판에 지는 일은 줄어들겠죠.그리고 청년변호사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 국가경제적으로 봤을 때도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이런 제도가 도입되려면 많은 시일이 걸리겠지만, 이것 만은 제 임기 중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보고 싶습니다. 제 뜻에 동참하는 전국의 많은 변호사들께서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위철환 변협 회장은…■ 1958년 전남 장흥 출생■ 1977년 중동고졸■ 1979년 서울교대졸■ 1984년 성균관대 법학과졸■ 1986년 사법시험 합격(28회)■ 1989년 사법연수원 수료, 동수원종합법무법인 변호사■ 2009~2010년 수원지방변호사회 회장■ 2009∼2013년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 2010∼2013년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 2013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현)글=/김선회·신선미기자 사진= 하태황기자

2013-01-30 김선회·신선미

[인터뷰… 그]하일성 야구 해설위원, 프로야구 10구단의 나아갈 길

"돔구장은 야구장이 아닙니다. 문화체육의 복합적 공간입니다."지난 21일 서울시 송파구 (주)스카이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난 하일성(63·(주)스카이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겸 야구 해설위원은 돔야구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최근 한국 프로야구는 10구단 유치를 놓고 두 도시와 기업들이 한국 야구의 중·장기 계획을 제시하는 등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높은 야구 열기를 대변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공정성을 위해 사상 처음으로 22명의 평가위원회를 열었고, 이사회와 총회를 거쳐 지난 17일 수원시와 KT를 제10구단으로 확정했다.이 과정에서 수원시와 KT는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서수원 일대에 돔구장 건립을 계획했고, 이에 야구인은 물론 야구팬들은 돔구장 건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프로야구 10구단의 나아갈 방향과 창립 32년을 맞은 한국 야구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되어야 하는 지 하 대표를 만나봤다.10구단 운영 어떻게 해야하는가?수원시 인프라 구축에 초점 맞춰야KT, 이미지 개선과 선수 운영 중요구장 수익창출 위한 계획 세워야 해야구 발전 위해 변해야 하는 것은?경기 재미위한 양대리그 도입 필요천만 관중시대 팬과 유대관계 맺기구단들 다양한 상품개발·보급해야하 대표는 그동안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힘써온 장본인이다. 80년대 프로야구 초창기때부터 야구 해설가를 도맡아 한국 야구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했고, 구수한 입담으로 야구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하 대표는 돔구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돔구장을 야구장으로 인식하는데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며 "1년에 야구 경기는 많이 잡아도 80일을 넘지 못한다. 그럼 나머지 285일은 그냥 놔둘 것인가. 문화적 공간을 만들어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일본 돔구장은 야구 시즌이 없는 겨울철이 더욱 바쁘다. 대형 콘서트와 문화행사, 그리고 지역축제 행사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추진되고 있다"며 "돔구장에서 치러지는 야구는 그저 일부분일 뿐 대부분 문화행사로 손익분기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이어 "만약 국내에도 돔구장이 추진된다면 인구 수요가 높은 수도권에서 건립되는게 낫다"며 "수원과 KT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밝힌 돔구장 계획도 잘 따져보고 사전 조사를 철저히 거쳐 건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프로야구 10구단의 수원시 유치에 대해서도 하 대표는 '야구팬과의 약속이 먼저'라고 따끔하게 충고했다.그는 "프로야구 10구단 탄생은 한국 야구 역사 32년만에 이뤄진 쾌거"라며 "프로야구 10구단을 운영하는 KT는 KBO와의 약속을 지키는 의지가 필요하고, 수원시는 야구판이 지역에서 잘 열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원시는 주로 인프라 구축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KT는 기존 구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선수 운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하 대표는 KT가 5년 만에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만큼 프로야구의 이미지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놓았다."당시 프로야구가 어려운 시기에 KBO 사무총장을 맡았다"는 하 대표는 "KT는 지난 2007년 겨울 해체를 선언한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기 위해 작업에 들어갔고, 야구단 창단에 적극적이었다"면서 "그러나 KT가 자체적으로 이사회의 승인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일을 벌이면서 사태는 꼬였고 이사회의 반대로 프로야구 인수를 접게 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하 대표는 "당시 현대 유니콘스는 서울 입성이라는 프리미엄 혜택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인수 기업이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프로야구 기반이 열악했다"면서 "이번 10구단 유치 경쟁이 가열되는 것을 보면서 깊은 감회를 느꼈다"고 전했다.이번 '프로야구 10구단을 수원·KT로 결정 내린 KBO의 판단이 옳았느냐'는 질문에 하 대표는 즉답을 회피했다.하지만 그는 "KBO의 판단이 옳고 그른 것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수원시와 KT가 지금의 야구 의지를 앞으로 어떻게 펼칠 수 있는가'가 먼저"라며 "훗날 KT가 프로야구에 많은 기여를 했다면 결과론적으로 잘 했다는 증거일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어 그는 10구단 유치 경쟁에서 밀린 전북·부영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하 대표는 "전북·부영도 수원·KT 못지 않게 많은 것을 준비하고 노력했다"며 "앞으로 전북에도 야구 붐 바람은 계속될 것이다. KBO에서 판단하겠지만 다양한 야구 행사 및 대회를 유치하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또 "10구단 창단을 계기로 앞으로 한국 프로야구는 더 많은 기업이 프로야구 회원에 가입할 것으로 보인다"며 "머지않아 11·12구단도 창단될 것이다. 만약 부영그룹이 야구단을 운영하고 싶다면 우선순위를 주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잠시 화제를 바꿨다. KT가 2015년부터 프로야구 정규리그에 참여하게 된다면 '한국 야구는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 물어봤다.이에 대해 하 대표는 포스트 시즌 강화와 양대 리그 도입을 내세웠다.2015년 프로야구 리그 운영에 대해 하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양대 리그로 가지 않겠냐"며 잘라 말했다.그는 "아직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지만 현재의 포스트시즌 제도는 정규리그 1위팀에게 유리한 형국이다. 그만큼 흥미가 떨어진다는 얘기다"라며 "포스트 시즌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양대 리그 도입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현재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은 정규리그 1~4위팀이 진출한다. 3-4위가 준플레이오프를 치른 뒤 여기서 이긴 팀이 2위와 플레이오프를 거친다. 모두 5전 3선승제다. 이어 플레이오프 승리팀은 1위팀과 한국시리즈(7전4선승제)를 갖는데, 충분한 휴식을 취한 1위팀이 플레이오프에서 올라온 승리팀보다 유리하다.2006년부터 맡은 KBO 사무총장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해봤다.하 대표는 "당시 국내 프로야구는 300만 관중수를 유지할 정도로 현저히 낮았고 야구 인프라도 열악했다"고 전했다.하지만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한국 야구 대표팀의 잇단 승전보를 꼽았다. 그는 "2006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 야구가 4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야구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면서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야구가 첫 금메달을 따내면서 정점을 찍었고,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자 국내 프로야구도 붐이 일기 시작했다"고 밝혔다.이어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는 700만 관중을 넘어섰다"며 "앞으로 프로야구 10구단이 가세하면 1천만 관중시대도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앞으로 한국 야구 발전에 대해 하 대표는 선수들이 장외에서 팬들과 좀더 많은 스킨십을 할 것을 요구했다.그는 "몇년전만 해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메이저리그 소속의 유니폼과 야구모자 등을 구입해 쓰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국내 야구단 모자와 유니폼을 구입하는 팬들이 많아졌다"면서 "각 구단도 이제는 야구에 관한 상품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보급해 팬들과 다양한 경로로 유대관계를 맺는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끝으로 하 대표는 "수원시와 KT의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를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한국 야구 발전에 밑거름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하일성 해설위원은…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 체육학과 및 대학원 사회체육학과를 졸업한 하 대표는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자 야구 해설위원으로 유명하다. 김포 양곡고 체육교사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그는 1979년 KBS 배구 해설위원이던 오관영 씨의 권유로 동양방송(TBC) 야구해설위원으로 방송계에 입문했고, 1982년 KBS 스포츠국 야구해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이장호 감독의 공포의 외인구단(1986년),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년), 역전에 산다(2003년), 아이스 에이지 2(2006년) 등 다수의 영화에도 특별출연 및 성우활동을 했다. 2002년 1월 심근경색으로 투병 후 3차례 수술을 했다.2006년 5월부터 2008년 3월까지 제11대 KBO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2010년부터 스포츠 케이블방송인 KBS N 스포츠의 야구해설위원을 다시 맡고 있다. 또 2009년부터 (주)스카이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를 맡아 기업·대학 등에서 강연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글=신창윤기자 사진= 하태황기자

2013-01-23 신창윤

[인터뷰… 그]세계지적발달장애인 스포츠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이끄는 나경원 조직위원장

지천명을 넘긴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고왔다. 새까만 토끼 눈에 깨끗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이면서도 항상 자신감 넘치는 모습, 연예인 뺨치는 세련미가 분위기를 압도한다. 1963년생으로 서울법대를 나와 판사를 거쳐 정계에 입문, 엘리트 정치코스를 밟은 나경원(50) 전 의원이다.지난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낙마하고, 절치부심해온 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유명세를 날린 인기 만큼이나 아직도 선명한 이미지가 세인들의 뇌리에 남아있다.지난 4·11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잠시 정치권을 떠나 있지만 이름도 낯선 2013년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조직위원장을 맡아 더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스페셜올림픽은 전 세계 지적발달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스포츠 대회다.올해 10회째인 이 대회가 우리나라에 유치된 것은 딸이 다운증후군을 앓는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그가 국회의원 시절 추진했던 '장애 아이, We Can'활동이 계기가 됐다. 지적장애인의 부모와 전문가들이 의견을 나누는 연구모임으로 추진해오다 지난 2009년 미국 아이다호에서 열린 스페셜대회를 관람하면서 지적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야겠다는 강한 의지로 유치전에 뛰어들어 성공했다.오는 29일부터 8일간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보이고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8일 오후 서울 조직위가 차려져 있는 종로구 수송동 사무실을 찾았다. 빨간색 재킷과 바지 정장에 럭셔리한 색감의 긴 머풀러를 걸치고 나온 그는 세계대회 준비로 많이 야윈 모습이었지만 지적 장애인들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바꾸고, 세계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한 일이라면 몸을 던질 각오가 돼 있다는 자세였다.스페셜 올림픽이란?故 케네디 대통령 여동생이 시작신체능력 향상 목적… 동계만 10회째꼴찌에 가장 많은 박수 치는 올림픽조직위와 인연 맺기까지…장애딸 영향 'We Can' 활동 계기2009년 대회 본 후 유치전 뛰어들어대회 준비 상황예산 확보 문제로 진땀 뺐지만선수·임원등 1만1천명 참가 예상한국문화 체험 이벤트도 마련해당부의 말은송도 컨벤시아에 환영센터 운영'따뜻한 환영' 한국 첫인상 부탁- (예전에 비해) 많이 야윈 것 같은데."세계 대회 유치하고, 준비하면서 예산 문제로 애를 먹고 있다. '국제 앵벌이' 소리까지 들으며 여기저기 민폐를 끼치고 있다.(웃음) 얼마나 어려운지… 무보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번 대회가 성공리에 끝나야 지적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편견을 바꾸고, 한국사회와 국제사회에도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주말엔 입이 부르트기도 했다."- 평창스페셜 올림픽은 어떤 대회인가."전 세계 지적발달장애인들의 지구촌 스포츠 행사다. 우리나라에선 처음 열리는 또 하나의 올림픽으로 보면 된다. 고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누이 동생인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여사에 의해 시작해, 이번 대회가 10회 동계대회다. 지적발달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인식을 개선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이른바 모두가 행복한 사회 만들기라고 보면 될 것이다."- 언제부터 조직위와 인연을 맺게됐나."잘 아시다시피 국회의원 시절 'We Can'활동을 추진하면서 2004년 지적장애인 스페셜올림픽(국내대회)을 한다는 기사를 보고 무작정 태릉을 찾아갔다. 그 때부터 관심을 가져오다 2009년 미국 아이다호에서 열린 동계대회를 직접 관람하면서 '지적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정말 부족한 걸 깨닫고 유치전에 들어갔다. 1·2차 실사를 거쳐 2010년 2월에 평창이 개최지로 확정됐고, 11월 조직위를 만들었다. 그 때부터 위원장을 맡게 됐다."- 장애인단체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보도를 통해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제 아이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 아이가 사회로 나가면서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히기 시작했고, 아이를 받아주는 유치원을 찾기 어려웠고, 초등학교 때는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장애아동이 차별 없는 교육을 받는 것은 몽상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이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받은 아픔이 부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국회 의정활동에서부터 지금까지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해 이 일을 해왔다."- 이번 대회를 마치게 되면 우리에게 남겨질 유산은 무엇인가."지적 장애인들이 다양한 스포츠를 통해 그들의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의 인식과 태도의 변화가 생겨야 그들도 생산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사회속에 자연스럽게 당당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더 다양한 레거시(유산)를 남기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별 이벤트는."글로벌 개발 서밋의 평창선언과 스페셜 핸즈 프로그램을 통해 국제사회의 인권, 복지 향상에 우리나라가 기여하는 결과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국격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경기에 앞서 26일부터 29일까지 3박4일간 호스트타운 행사를 진행해 홈스테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우리나라 문화를 체험하게 돼 있다."- 참가 국가 및 참가 선수와 경기 종목은."111개국, 3천300명의 선수가 참가할 예정이다. 임원까지 합하면 총 1만1천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경기는 동계올림픽 7개 종목을 55개 세부종목으로 나눠 진행된다. 전통적으로 금·은·동메달 수여와 함께 4위부터 8위까지 참가한 모든 선수들에게 리본을 달아주고, 꼴찌가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 것도 이 대회의 특징이다."- 이번 대회에 초청되는 주요 인사는."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대모 아웅산 수치여사,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 중국 여배우 장쯔이, 전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야오밍 등이 방문 예정이다. 티모시 쉬라이버 SOI 회장과 조이스 밴다 말라위 대통령, 심슨 밀러 자메이카 총리의 내한도 확정적이다."- 경기·인천지역에서 도움 줄 수 있는 게 있다면."대회 개막에 앞서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 대표단 환영센터를 운영한다. 각국의 대표 선수들이 한국의 첫 인상을 인천공항과 송도 환영센터에서 느끼게 될텐데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환영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아울러 대회기간 경기장을 방문해 주셔서 뜨거운 응원을 펼치고, 특히 청소년들이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나경원은 누구인가…나경원 조직위원장은 서울 출생으로 책임감 강한 장녀로 태어나 계성초, 숭의여자중, 서울여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체 557명 중 1등을 차지할 정도로 3년 내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서울대 법과대학을 거쳐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 지난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같은 학교 동기인 김재호와 결혼하였고, 1남 1녀를 두었으며 딸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사법연수원 24기로 연수원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고 지난 1999년 인천지방법원에 잠시 근무하기도 했다.정치권엔 지난 2002년 제16대 대선 기간동안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요청에 따라 한나라당에 입당했으나, 본격적으로 정치인으로 활약한 것은 2004년 3월 비례대표 11번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부터다.야당시절 강재섭 전 원내대표의 공보 부대표를 거쳐 장수 당 대변인으로 활약하면서 '신붓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야권의 후보 단일화 바람에 고배를 마셔야 했다.이후 국회에서 활동했던 '장애아이 We Can' 회장을 맡은 것을 계기로 알게 된 2013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유치에 나서 성공한 뒤 조직위원장을 맡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글=정의종 차장 사진= 하태황 기자

2013-01-15 정의종

[인터뷰… 그]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청년특위 위원장 김상민 의원이 그리는 정치 인생

만 39세, 초선 2년차인 김상민 의원은 비례대표에서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청년특위 위원장까지 한달음에 오른 우파 사회운동가 출신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얕게 팬 여드름 자국이 아직 가시지 않아 앳된 모습 그대로지만 강렬한 눈빛에선 사회운동에 청춘을 던진 저력이 엿보인다.대학시절 거대 운동권 조직인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에 맞서 아주대학교 최초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으로 당찬 카리스마를 보였고, 사회에 나와서도 찜질방과 고시원을 전전하며 후배와 제자들의 선봉에서 '청년아이콘'을 이어왔다. 그러면서도 결혼안하기, 돈 안모으기, 정부와 재벌에 의존 안하기로 우파운동을 하며 처절한 삶을 살아왔다. 이런 삶은 새누리당의 '감동을 준 인물' 찾기에 선정되면서 제도정치권으로 변신, '박근혜키즈'로 대선 공신대열에까지 이름을 올렸다.수원이 고향인 그와 지난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1시간10분에 걸쳐 수원에서 성장한 배경과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그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들어봤다.#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에서 우파 운동가로 변신대통령직 인수위 전체회의 첫날인 이날 오후 의원회관에서 만난 김 의원은 청년대표로 비례대표에 입성한 이미지답게 당당했다. 결혼도 하지 않아 아직 청년티가 묻어 있었지만 자신의 정치적 가치와 철학을 얘기할 때는 독수리 눈매보다 매서운 사회운동가의 포스를 느끼게 할 정도.수원에서 태어나 초·중·고·대학을 모두 고향에서 다닌 그는 '수원이 자신의 모태'라고 할 정도로 애향심이 남달랐다. 거침도 없었다.그가 정치권에 들어오게 된 배경은 아주대에서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을 시작해 우파 사회운동을 이어온 게 결정적 원인이 됐다.비운동권 학생회장서 정계 입문 계기는?시대변화 맞춰 新학생운동 주도사회운동가 시절 박 당선인 만나비례대표후보 공천돼 국회 등원선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보통 사람과는 조금은 다른 통찰력과 예지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현장과 현실을 중시하면서도 좀 앞선 세계, 즉 미래를 개척해 나가려는 '돈키호테적' 기질도 엿보였고, 보통사람과는 다른 삶의 궤적을 느낄 수 있었다.92학번인 그는 김영삼 정부 출범 즈음에 세계화 바람을 타고 대학에 입학한다.그는 "시대와 문화가 변하기 시작하고, 글로벌 시대로 소용돌이 치고 있는데 1980년대 이데올로기 중심의 학생회를 주도하는 운동권에 대한 불만세력이 생겨났다"며 "지금도 그때도 나는 세상이 변했다고 외쳐왔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요청을 거부하지 않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그는 "이데올로기 중심의 한총련에 맞서 문화와 복지 중심의 학생회를 주창하며 새로운 학생운동을 주도했고, 시대와 문화의 변화처럼 독자적인 흐름이 생겨 자연스레 '아주니즘'이라는 새로운 학생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풀뿌리 가치운동… 박근혜 당선인과 만남이 정계로 이끌어학생운동을 계기로 그는 언제나 새로운 독립과 자립을 외쳐왔다. 사회운동가로 활약하면서 자신의 행보에 대한 자부심도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다.그는 "오랜기간 2030 젊은층 모임과 자원봉사단체, 문화운동을 전개하면서 광의적 의미의 정치를 해 왔다"며 "현실 정치에 들어가 현실 구조를 바꾸기보다는 풀뿌리운동과 세대운동 같은 풀뿌리 운동을 확대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고 전했다.그런 그가 정치권에 입문하게 된 것은 국내 최대의 NGO 대학생 자원봉사단 V원정대 대표로 활동하면서부터다.지난 2009년 창립한 이 단체는 전국 200개 대학과 2만5천명의 회원이 가입, 가수 김장훈과 독도에서 봉사 콘서트를 개최한 데 이어 현충일엔 연평도에서 '연평아리랑 콘서트'를 열어 자원봉사활동을 이어나갔다. 전국 33개 섬을 찾아다니며 환경청소도 했고, 헌혈증진 캠페인도 전국적으로 주도했다.때마침 위기에 빠진 새누리당이 4·11 총선을 앞두고 감동의 인물 찾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박근혜 당선인과 만남이 이뤄졌고, 이후 청년 몫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돼 19대 국회에 등원하게 됐다.당시 박 당선인은 김 의원이 주도한 NGO 단체에 깜짝 방문해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 기성그룹들이 젊은이들의 피로를 풀어주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했다. 소통하고 싶다. 이런 일을 오랜 시간 해 줘서 고맙다"고 말해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김 의원도 "이때부터 박 당선인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8개월 동안 초선 비례대표에서 인수위 청년 특위 위원장까지4·11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입문한 그는 대선을 거치면서 인수위 특위 위원장까지 오르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김 의원은 주로 대선의 화두였던 반값 등록금과 젊은층과 소통 강화에 매진했고, 전국을 돌며 빨간운동화 유세단을 가동하는 등 박근혜 만들기에 온 몸을 던졌다.박 당선인의 공약인 반값 등록금 실현과 K무브, 스펙초월시스템 구축 등 다양한 공약 아이디어를 조언하기도 했다.# 수원은 나의 모태이자 삶의 전부경기지역 정가에서는 수원 출신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지역사회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수원에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다닐 정도로 향토색이 짙은 인물로 보였다.그는 "수원은 나의 삶이자, 나의 모든 과정을 있게 한 근원처"라며 "나의 모태같은 곳"이라고 강조한다. 세류동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모두 수원에서 다녔고, 친인척 모두 수원과 화성 인근에 오래 거주하면서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더 커진다는 표현도 서슴없이 했다.평범한 성장보다 우파 사회운동을 하면서 다져진 그의 인생역경은 차세대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사회운동을 하면서 세 가지 약속으로 자신을 단련시키고 연마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앞에서 언급된 재벌과 정부에 의존 안하기, 결혼안하기, 돈 벌지 않기가 그 모태다. 그런 실천을 근 10여년간 지켜나가자, 우파 조직에서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가족개념의 공동운명체가 결성되더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주로 국내 최대 NGO 대학생 자원봉사단 V원정대와 포스트 386 청년유권자 운동 '커밍아웃 2035'(현 2030 정책실현 네트워크 대변인 1호)가 그가 결성한 조직이다.# 제2의 정치 행보 주목김 의원은 인수위 활동이 끝나면 본업인 정치권에 돌아와 다시 풀뿌리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한다.주요 활동 내용과 향후 계획은?반값 등록금 실현 등 공약 조언인수위 활동 후 본업 정치 매진기존의원들 의식전환 앞장설터의원들의 인식을 바꾸는 운동, 자신이 강조하는 풀뿌리 운동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더 많은 의원들과 건강한 미래를 위한 기반을 다져 나가면서 조직도 확대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사회운동가가 아닌 현실 정치인으로 변신했으니, 이제 가정도 꾸릴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최근 화성시에 동생과 부모님을 모실 집으로 주소를 이전했다.우파 사회운동가에서 제도 정치권에 들어온 그가 앞으로 현실 정치인으로 행보를 더 이어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 예단하기 이르다. 그러나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 당당하게 적응해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 예사롭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향후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김상민 의원은…■ 1973년 7월 14일 수원 출생■ 수원 세류초교, 이목중, 수성고, 아주대 사학과 졸업■ 아주대 18대 총학생회장■ 포스트 386 청년유권자운동 '커밍아웃 2035' 공동대표■ 국내 최대 NGO, 대학생 자원봉사단 V 원정대 대표■ 한국대학생 리더십센터 대표■ 2030 정책실현 네트워크 대변인 1호■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본부 청년본부장■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청년특위 위원장■ 보건복지부 장관상 - V원정대 수상/정의종·송수은기자=정의종·송수은 기자 사진= 김종택 기자

2013-01-09 정의종·송수은

[인터뷰… 그]윤종수 환경부 차관이 말하는 정책 성과와 향후 비전

올 한 해는 그 어느 때보다 자연 및 환경과 관련된 이슈가 많았다. 구미 불화수소 누출사건, 팔당호 등의 녹조현상, 4대강 물고기 폐사 등은 국민들의 애를 태우고 정부를 원망케 했다. 반면 환경분야의 세계은행인 '녹색기후기금(GCF)사무국 인천 유치' 등은 국가적 경사로 국민을 기쁘게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자연을 동경하는 이들의 자발적 생태계 보전 행보와 개발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의 충돌과 갈등도 여전했다. 특히 대선이 있던 올해는 환경 자체와 환경복지에 대한 문제도 화두가 됐다.대형 환경사고 재발 방지책은?유해화학물질 안전관리 개선책 확정위험요인등에 대한 주민 알권리 강화4대강 물관리 문제 부처 일원화 필요윤종수(55) 환경부 차관은 이같은 자연 및 환경과 연관된 모든 희로애락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다.녹색성장 정책을 환경과 경제가 상생하는 실질적 정책으로 발전시키며 올 상반기 열린 'OECD환경장관회의'와 'Rio+20 정상회의' 등 주요 국제회의에서 호평을 받게 했고, 이를 바탕으로 GCF 사무국 유치에도 견인차 역할을 했다.또한 환경 악재는 적극적인 대책방안 강구로 초기에 문제를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환경부가 과천정부종합청사 시대를 마감하고 세종시로의 이전 진행이 한창이다. 윤 차관을 만나, 지난 정부에서의 환경정책 성과와 앞으로의 환경부 비전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새 정부와 국민들에 바라는 것은?당선자 공약 '폐기물 선진화안' 기대쌍방향식 환경성 평가체제 개편돼야제5의 에너지는 수요관리 절약 당부# 최근에 환경부와 연관됐던 사고 내용을 묻고 싶다. 지난 9월 발생했던 구미 불화수소(불산) 누출사고의 피해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다. 피해 복구상황은 어떤가."불산 사고 수습 이후에도 구미 현지에 환경부 직원들이 상주하면서, 피해복구 및 보상을 적극 추진중이다. 정부가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주민건강에 대한 영향이다. 불화수소에 급성 노출될 경우 장기간에 걸친 건강상 피해가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전문가 견해다.하지만 주민 불안이 있는 만큼 건강영향조사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관리를 지원하고 있으며, 무료건강상담도 실시했다. 환경영향에 대한 모니터링도 지속적으로 진행중이다."# 국민은 불안하다. 이번 사고가 환경부의 전적인 책임은 아니겠지만,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유해화학물질 안전관리 개선대책'을 확정했다. 화학물질 사고 전담부서를 환경부로 일원화한 것이 주 내용이다. 주관부처 혼선 등 불산사고에서 드러난 매뉴얼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조치다.사고대비물질을 포함한 화학물질 관리를 강화하는 것도 주요 계획이다. 사고대비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에 안전관리인을 선임토록 하고, 기존 유독물 등 안전관리인 및 종업원의 안전교육·훈련도 강화한다는 목표다. 아울러 현행 자체방재계획을 관리계획으로 확대 개편하고, 유해물질 취급현황, 사고위험 등에 대한 지역주민의 알권리를 강화하도록 할 것이다."# 여름에는 녹조가 전국의 하천을 뒤덮어 큰 사회적 문제가 됐다. 팔당호에도 심각한 녹조문제가 발생해 수질에서 비롯된 문제가 지역주민 생계에도 영향을 끼쳤다."현장에서 녹조 현상을 확인했는데 생각보다 심각했다. 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향후 반복될 재해인 만큼 개선에 힘써야 한다. 4대강 관련해서도 물관리 문제가 더욱 중요해졌다. 현재 물관리 문제가 국토해양부 및 환경부 등으로 이원화돼 있는데 전반적인 정책의 일원화가 필요하다. 결국 물 문제의 메인스트림이 누가 되느냐의 문제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관심도 높다. 지난달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통과로, 우리나라도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게 되는데."배출권거래제란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총량 단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해당하는 배출권을 할당해 시장에서의 배출권 거래를 통해 온실가스를 감축하도록 하는 제도다. 제도가 도입되면 온실가스 감축비용이 현저히 절감되는 것으로 전문기관들은 분석하고 있다.개별 업체의 경우 자체 한계저감비용을 산정해 배출권의 시장가격과 비교함으로써, 가장 비용 효율적인 감축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배출권 거래 시행에 대비해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안'을 내년말까지 마련하고, 세부 절차와 방법을 규정할 배출권 할당 및 거래 등에 관한 지침도 제정할 계획이다. 또 범부처 통합시범사업을 내년부터 실시해 제도 운영 경험을 쌓겠다."# 배출권 거래제 도입과정에서 산업계의 우려와 반발이 많았다. 산업계를 충분히 달랠 수 있는 묘책은 있나."산업계는 배출권거래제 도입으로 인한 국내 산업의 경쟁력 저하, 규제의 불확실성 등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당초 우려했던 것의 상당부분이 불식된 상태다. 이제는 제도의 설계, 운영 등과 관련해 기업들의 구체적인 요구와 건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환경부는 기업과의 활발한 소통과 논의 과정을 통해 합리적으로 대처해 나갈 계획이다. 법정 계획 및 할당 지침 등 각종 고시의 제정 초기단계부터 산업계와 관련 전문가의 참여를 적극 보장하고, 지역별 순회 설명회 및 간담회 등도 갖게 된다."# 녹색성장은 현 정부 및 환경부의 주요 정책이기도 하다. 녹색성장 확산을 주도해 온 환경부의 올 한해 성과를 평가한다면."생활 속에서 체감하는 환경정책을 강화했다고 자부한다. 놀이터 등 어린이 활동공간에 대한 안전진단처럼 민감 계층에 대한 맞춤형 환경보건 서비스를 확대했고, 지난 4월 '석면안전관리법'을 시행하는 등 관련 제도를 강화했다.또한 깨끗한 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환경기초시설 확충뿐만 아니라, 비점오염원·가축분뇨 등 새로운 오염원에 대한 관리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강한 녹색 대한민국'을 만드는데도 많은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녹색기후기금(GCF)사무국 인천 유치'에도 콘텐츠 차원에서 환경부가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인천은 환경오염시설 밀집지역으로 향후 체계적 관리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주요 환경국제회의에서 우리의 녹색성장은 큰 호평을 받았다. 환경의 국제적 리더십을 인정받은 셈이다. 이러한 평가는 5억 달러 규모의 알제리 생태하천 복원사업과 같은 환경산업의 해외수출로도 이어지는 중이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가 지난 10월 환경분야 세계은행이라 불리는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인천 송도에 유치하는 쾌거를 낳았다.2014년 생물다양성 당사국 총회도 우리나라가 유치하는 기쁜 일도 함께 만들어 냈다. 인천의 경우 수도권매립지의 인식이 크게 나빠진 바 있으나, 환경개선요구는 더욱 강해지는 상황이어서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와 함께 악취·먼지·경관개선에 더욱 노력하고 있다.GCF를 계기로 방문하게 될 외국인들에게도 우리나라의 친환경적인 매립지관리사례를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수도권매립지가 단순한 매립지로서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폐자원관리의 정책·기술개발·인력양성·홍보의 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환경과 관련해 새 정부와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폐기물관리는 환경에서 아주 중요한 요인이다. 다행히도 박근혜 당선자의 공약에는 폐기물 선진화 방안 등이 담겨 있어 기대가 크다. 규제 일변의 환경성 평가는 사업자와 국민 모두가 지지할 수 있는 '쌍방향식 평가체제'로 개편해야 한다. '생태복지'와 '사회적 약자 배려'가 환경영향평가에 포함돼야 한다. 국민들께는 에너지 절약을 당부하고 싶다. 환경파괴 주범인 온실가스와 에너지 사용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제5의 에너지는 수요관리라는 말이 있다. 작은 실천이 환경을 살리는 일임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한다."윤종수 차관은…■ 1958년 충북 제천 출생■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 학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원 환경공학 박사■ 환경부 폐기물자원국 폐기물재활용과 과장■ 주(駐)유엔대표부 참사관■ 환경부 폐기물자원국 국장■ 환경부 자원순환국 국장·상하수도국 국장■ 환경부 환경정책실 기후대기정책관■ 환경부 환경정책실 실장대담=최우영 사회부장·정리=김태성기자 ·사진=임열수기자

2012-12-27 김태성

[인터뷰… 그]시·도회장 출신 중앙회장에 첫 선출된 표재석 대한전문건설협 회장

대선을 하루 앞둔 지난 18일 저녁,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실이 있는 서울 신대방동 전문건설회관 빌딩 18층 아래로 일터에서 가족들에게로 향하는 자동차가 뿜어내는 빨간 불빛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점점이 스러지는 불빛들은 지난달 23일 고양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전문건설인 한마음 전진대회'에서 전문건설업체 대표 7천명과 함께 봤던 동영상을 떠올리게 했다.당면한 업계 현실과 고민뭔가국내 경제성장·일자리창출 기여 불구서울권보다 지방 건설 경기 매우 열악축적된 운영노하우로 의견 적극수렴'어느 젊은 건설인의 울음'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건설경기 침체와 종합건설사들의 부도로 연쇄부도 위기를 맞고 있는 한 젊은 전문건설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정책적 배려와 제도적 장치의 부족으로 가족들의 생존까지 위협당하는 최악의 현실을 감당해내고 있는 전국의 7만여 전문건설인들과 300만여 명에 달하는 전문건설인 가족의 심정을 읊고 있었다.지난 10월 30일 경기도회 회장에서 중앙회 회장에 당선된 표재석(60) 회장을 두고 누군가는 '혁명'이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물음표'를 던졌다. 지난 1985년 대한전문건설협회가 설립된 이래 지방 시·도 회장 출신이 중앙회 회장으로 선출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최근 건설경기 침체로 월평균 250개 업체가 부도·파산되는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중앙회 회장으로 선출된 지 50여 일이 지난 시점, 표 회장은 전문건설업계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과 고민을 풀어놓았다.그동안 전문건설협회 중앙회 회장직은 서울의 회원사가 줄곧 맡아왔다. 지방 시·도 회장으로는 처음으로 중앙회 회장에 당선된 표 회장은 이를 회원사의 협회에 대한 개혁과 변화의 요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표 회장은 "서울권보다는 경기도 등 지방의 건설경기가 매우 열악하다고 할 수 있다"며 "지방 회원사의 어려운 기업 환경과 고통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에 지방에서 건설업을 운영하면서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방소재 업체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고 말했다.그러면서도 그는 "회장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아 각양각색 회원사들의 하모니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16개 시·도회 및 18개 업종별 협의회가 구분 없이 지속해서 발전할 수 있도록 협회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표 회장이 건설업에 들어선 지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1980년대 말까지 건설업계는 정부주도의 양적 성장 패러다임에 충실했으며 안정적인 건설산업 성장에 맞춰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1990년대 건설시장은 정부 중심에서 민간 주도의 시장으로 전환하는 과도기를 맞이했고, 97년 터진 외환 위기는 표 회장을 비롯한 회원사 모두에게 암흑의 시대였다.그는 "외환위기 때 종합(일반)건설사들의 줄도산으로 별다른 대책도 없이 쓰러졌던 전문건설업계의 상황은 현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전문건설업계가 국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합당한 대우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표 회장이 회장으로 선출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전진대회를 개최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전진대회에는 전국의 전문건설업체 대표 7천여 명이 참여, 국민 생활 친화적 시설 인프라 투자 확대를 비롯해 원도급자 부도시 하도급자 보호대책 마련 요구 등을 담은 결의문과 정책자료집을 당시 대선후보 최측근 인사였던 새누리당 이인제 선거대책위원장,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 조용경 국민소통자문단장에게 전달했다.표 회장은 "그동안 우리 업계는 건설현장의 최일선에서 묵묵히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건설산업의 한 축으로 인정받고 더 좋은 환경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현실은 건설산업에서 하도급자의 지위만 강요당하고 정부의 정책에서 제외당해 왔다"며 "회원사에 회장으로서 현 상황을 함께 헤쳐나가자는 믿음을 보이고 건설업계가 서로 공생하는 방안을 각계각층에 전달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설명했다.전문건설업계가 당면하고 있는 제도적 문제인 실적공사비 제도와 불공정 하도급 관행 등을 정면 공격한 것이다. 실적공사비 제도는 공사에 투입되는 비용을 산정할 때 이전에 유사한 공사의 계약단가에다 각 공사의 특성을 감안해 조정한 뒤 산정하는 제도로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 실행하고 있다.하지만 전문건설업계는 국내 실적공사비제도가 선진국의 제도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상이한 입·낙찰 제도 탓으로 실적공사비제도도 정상적인 메커니즘으로 작동할 수 없으며 특히 국내 공공부문의 낙찰률은 최저가 경쟁심화로 인해 당분간 정상적인 수치로 회복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는 "품셈단가보다 20%이상 낮게 발표되는 실적공사비는 공사예정가격 하락을 초래하고 초저가 하도급, 저임금 등으로 이어져 건설 근로자에게까지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며 "또한 국토해양부는 실적단가가 표준품셈을 초과할 때도 인위적으로 품셈 이하로 하향조정하는 등 실적공사비 제도 확대를 위해 실적단가 결정방법을 편법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성토했다.새 대통령에게 바라는점은?거대공사가 아닌 지역 밀착 요청국민친화적 SOC 투자확대 필요건설산업의 경제 민주화도 중요또한 이미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지적됐던 추가 비용을 하도급자에게 전가하는 행위, 하도급자 선정시 동일공사를 2, 3회 재입찰에 부치는 행위 등 불공정 하도급 행위에 따른 전문건설업계의 고충도 털어놓았다.표 회장은 "지금까지 건설업계는 제로섬 게임에서 승리하는 데만 주력, 동반성장 의식이 없었을 뿐 아니라 불공정 하도급행위는 거래 특성상 은밀하게 이뤄져 적발이 어렵고 처벌이 경미해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불공정 하도급 행위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등 건설 하도급의 개선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창밖으로 줄잇던 빨간 불빛들이 잦아들고 그 자리를 어둠이 채우자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몇 시간 후로 다가온 19일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새로운 대통령에게 표 회장은 '건설투자 확대와 건설산업의 경제민주화'를 요청했다.그는 "새로운 대통령은 거대 공사가 아닌 지역의 군소 도로 확충 및 중·소하천 정비 등 지역밀착, 국민친화적 SOC에 대한 투자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건설투자 확대는 새로운 서민 일자리를 늘리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창밖의 어둠을 뒤로 한 채 마지막으로 새해 소망을 물었다.표 회장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난 50여일 동안 내년도 협회가 추진해야할 사업계획 수립과 예산 편성에 역점을 두는 한편 전문건설업계의 절박한 상황을 정부에 알리는 데 숨가쁜 일정을 소화했다"며 "새해에는 중산층, 서민들까지 체감할 수 있는 경제 성장을 이루고 더불어 주택·건설경기가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1952년 6월 2일 고양 출생■ 지방공무원 출신으로 고양청년회의소(JC) 제15대 회장 역임■ 거룡건설 주식회사 대표이사 역임■ 대한전문건설협회 경기도회 제8·9대 회장 역임■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 제8·9대 부회장 역임■ 전문건설공제조합 운영위원, 경기도정구연맹 회장, 경기도건설단체연합회 부회장 역임■ 황룡건설 주식회사 대표이사글=윤수경기자 사진=선보규 기자

2012-12-26 윤수경

[인터뷰… 그]최병덕 사법연수원장이 말하는 사법시험 폐지 앞둔 연수원의 미래

매년 수천명의 연수생을 배출하며 이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사법연수원이 빼어난 전경을 자랑하는 고양시 호수공원 인근에 터를 잡은 지 올해로 꼭 10년째가 됐다. 그동안 수천명의 연수생들은 이곳에서 법조인으로서 소양을 쌓으며 동기들과의 경쟁과 화합 속에 치열한 '2년'을 경험하며 연수원을 거쳐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연수원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사법시험 폐지가 예정되고 로스쿨에서도 속속 졸업자들이 배출되는 데다, 오는 2020년 사법연수생의 교육이 종료되면서 사법연수원의 역할도 변화하고 있는 것. 한편으로는 최근 잇따라 불거진 법조인들의 비리와 부도덕성으로 연수원에 윤리 교육의 중요성이 재차 부각되고 있다.이처럼 사법연수원의 또 다른 발전 방향을 연구하고, 결정해야 할 중요한 때에 연수원의 수장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최병덕(57·사법연수원 10기) 사법연수원장을 만나 '사법연수원의 변화와 미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글=김혜민기자·사진=김종택차장지난 32년 3개월간 법관 생활을 했던 최 원장은 지난 9월 사법연수원장으로 부임해 사법연수생 교육과 법관 재교육이라는 새로운 업무를 맡고부터는 교육자로서 또 다른 긍지와 보람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연수생 구직 대책 뭔지전담교수 지정 상시면담 체계변호사 대체실무 수습제 실시공공기관등 취업기관 다변화앞으로의 방향은?재판연구원등 새로운 대상 확대로스쿨 출강·법 실무 지원 병행법조계 윤리교육 프로그램 확충최 원장은 "수십년동안 직접 재판을 하거나 법원장으로서 재판이 잘 진행되도록 돕는 법관 생활만 해오다 이번에 처음 연수생과 법관 교육이라는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면서 많이 낯설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교육기관인 사법연수원의 원장으로서 교육 목표에 부합하는 최고의 교육 프로그램을 확보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전했다.현재 사법연수원은 연수생들로 하여금 법조인으로서의 전문지식과 실무능력뿐만 아니라 윤리의식과 인성, 전문성과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재교육을 받는 법관들에게는 올바른 법관상을 정립하고 국민과 소통하며, 재판에 필요한 구체적인 분야의 지식들도 갖출 수 있도록 최적의 교육 과정을 마련하고 있다.변화의 물결에 순응하지 않으면 결국은 물결에 휘말려 떠내려가고 말지만,순응하고 적응할 방법을 찾는다면 기존의 환경에 아직 젖어들지 않은연수원생들이 새로운 물길을 내는 선구자가 될 수도 있다최 원장은 "연수원이 아직 상당수의 새내기 법조인을 배출하는 기관인 만큼 연수생 교육이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잘 이뤄져야 하며,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사법시험 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40년 넘은 국내 유일한 최고의 법 실무 교육기관으로서 실무 교육 노하우를 전수하고 자료를 보존해 새로 맡게 된 기능들이 잘 정착되는 일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현재 연수생들의 취업난과 연수생 교육 종료라는 두 가지 고민을 함께 안고 있는 연수원의 현실에 대해서도 최 원장을 비롯한 연수원 관계자들은 다양한 노력과 연구를 통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올해부터 수천명의 로스쿨 졸업생이 배출되면서 연수생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취업난에 대처하기 위해 연수원은 현재 진로정보센터 홈페이지와 취업박람회를 통해 채용자와 연수생 간에 구인, 구직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또 취업지원 전담교수를 지정해 상시 면담 체계를 갖추고 채용기관과 연수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는 등 양쪽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을 발빠르게 파악해 제공하기도 한다.실무수습 부분에서는 변호사 사무실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기업체 등 다양한 기관에서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변호사 실무수습 기간에 연수생의 희망에 따라 변호사 대체실무수습이나 변호사 실무수습 인턴제를 실시하는 등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이로 인해 지난 1월에 수료한 사법연수원 41기의 경우 실질적인 취업대상 인원 대비 취업률이 96.2%로 지난해 수료한 40기(93.5%)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열악해진 환경을 고려할 때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숫자다.최 원장은 "연수원의 다양한 노력과 함께 로펌이나 법률사무소 등 전통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기업 등으로 취업 기관이 다양화됐으며, 연수생들도 처음부터 대우받으며 평생직장을 찾기보다는 일단 경력을 쌓으면서 전문성을 확보한 후 보다 나은 직장을 찾거나 스스로 독립하는 추세로 변화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또 사법연수생 교육이 종료된 후에도 연수원은 법관 연수를 확대하고 새로운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연구·검토하고 있다.최 원장은 "연수원은 본래 사법연수생 교육과 법관 연수 교육 등 크게 두 가지 기능으로 나뉜다"며 "사법연수생 교육 종료로 연수원의 기능도 함께 끝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그는 "최근 법조일원화가 실시되는 등 법원을 둘러싼 법조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는 데다, 국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법률분쟁이 날로 복잡하고 전문화됨에 따라 기존의 법관 연수도 그 규모와 대상이 크게 증가됐다"며 "그 대상이 연간 3천100여명에 이르고 있으며, 2020년 이후에는 법관 교육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현재 연수원은 앞으로 재판 연구원, 사법보좌관 및 사법보좌관 후보자 등 새로운 그룹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하는 한편, 로스쿨 법 실무 교육을 지원하기도 한다. 연수원 교수가 로스쿨에 출강해 민·형사 재판 실무 과목를 가르치거나 로스쿨 교수들과 모의기록 교재를 함께 개발하고, 법원 실무수습을 위한 행정 지원 등을 하고 있는 것.또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의 사법부 대표들에게 대한민국 사법제도를 소개하거나 중고등학생들에게 법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40년 이상 쌓아온 실무교육의 노하우를 외부에 적극적으로 전파하기도 한다.한편으로는 일부 법조계의 비리나 비윤리적인 모습들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연수원은 연수생과 법관들을 대상으로 윤리교육 프로그램도 확충하고 있다.현재 사법연수생들은 1학기와 2학기에 각 1학점씩 법조 윤리 과목을 수강하면서 존경받고 있는 선배 법조인들의 특강을 듣거나 법관, 검사, 변호사의 윤리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다양한 변호사 징계사례를 검토하는 등 법조인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 윤리에 대해 배우고 있다. 또 근로 봉사 연수와 법률 관련 봉사 연수의 의무적인 이행을 통해 연수생들이 현장에서 직접 봉사활동을 하면서 법조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체득하는 기회도 갖는다.최 원장은 "12월인 지금은 연수원이 평소에 비해 조용한 편인데, 올해 졸업을 앞둔 연수생들이 정규 수업과 시험을 모두 마치고, 외부에서 봉사 활동을 하거나 연수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그는 또 "연수생들 외에 법관 연수 프로그램에서도 재판의 본질은 어떤 것인지, 바람직한 법관상이란 무엇이며, 법정에서 어떤 언행으로 재판을 해야 국민의 눈높이에 부응할 것인지에 관해 실제 재판 모습을 촬영해 모니터링하면서 법관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전했다.이처럼 연수원에 불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최 원장은 평소에도 연수생들에게 '변화를 두려워 하지 말라'고 강조하곤 한다.그는 연수원생들에게 "현재 여러 가지 변화가 물밀듯이 밀려와 새로운 출발 지점에 서 있는 이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짐으로 느껴질 수 있다"며 "그러나 변화의 물결에 순응하지 않으면 결국은 물결에 휘말려 떠내려가고 말지만, 순응하고 적응할 방법을 찾는다면 기존의 환경에 아직 젖어들지 않은 연수원생들이 새로운 물길을 내는 선구자가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그는 또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과감하게 도전하는 진취적인 자세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꾸준한 자기 계발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훌륭한 인품과 사명감, 전문지식과 실력을 겸비한다면 훗날 이러한 변화가 연수생들이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법조인이 되는 데 큰 자양분이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최 원장은 또 연수원을 바라보는 국민들에 대해서도 "연수원생들도 대한민국 누군가의 자제들"이라며 "국민의 아들, 딸로 따뜻한 눈빛으로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김혜민기자

2012-12-19 김혜민

[인터뷰… 그]스타플레이어 출신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 경인일보 방문

"경기도민의 뜨거운 축구 열기에 부응하기 위해 A매치를 열게 됐다."지난 8일 경인일보 본사를 방문한 대한축구협회 김주성 사무총장은 14일 국가대표팀의 호주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을 화성종합운동장에서 개최하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김 사무총장은 "선수와 팀 수의 광역 시·도협회 분포를 보게 되면 수도권이 60~7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서울을 제외한 경기권역의 비중은 상당히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축구가 발전하는 동반자적인 입장에서 경기도를 바라보고 있다. 세계축구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경기도가 중심이 되어 힘을 실어 줘야 한다"고 했다. 김 사무총장은 축구계에서는 선수출신 행정가 1호다.지난 1999년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 은퇴한 후 다음해인 2000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에 선임되며 행정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올해 초 그가 한국 축구를 이끄는 중심 기관인 대한축구협회의 사무총장에 선임됐을 때 국내 스포츠인 모두가 깜짝 놀랐다.경기도민 위해 호주팀과 오늘 평가전A매치 열기반영 내년에도 국제이벤트지금은 한국축구 발전 좌우 중요시점협회 임직원·전문가 합심 최선의 노력김 사무총장은 "해외에 진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이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축구 지도자와 행정가가 상반된 분야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을 꺼냈다.그는 "거창한 이유보다는 선수 출신이 꼭 지도자로만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접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다.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 선수와 지도자도 중요하지만 행정가들이 마음껏 정책을 펼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도전하게 됐다"고 전했다.이어 김 사무총장은 "행정가도 아마추어 협회에는 아마추어에 맞는 행정이 있고, 프로에는 거기에 맞는, 대한축구협회에는 협회에 맞는 행정이 있다.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려면 20년 이상 운동을 해야 한다. 행정가로서도 행정가에 맞는 지식과 소양을 쌓기 위해 일정 기간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며 스포츠 행정 관련 학위를 취득한 이유를 설명했다.김 사무총장은 "제가 현장에 대한 전문지식은 풍부할지 모르겠지만 행정적인 부분은 배워야 할 게 많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석·박사 학위 취득과 어학연수, FIFA국제스포츠관리자 과정 등도 밟게 됐다"고 귀띔했다.현역 축구 선수로서, 그리고 축구 행정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에게도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편견이다.김 사무총장은 "인식이다. 모든 사람들이 운동선수는 행정가로 성장할 수 없다는 편견이 있다. 특히 남들의 인식도 힘들었지만 내 자신의 인식에 대한 탈바꿈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이어 김 사무총장은 "가장 적성에 맞는 게 축구 선수였기 때문에 수십 년을 했고 거기에 맞게 습관화됐다. 그런데 정반대의 일에 도전하게 됐다. 운동선수는 경기장에서 활동적인 부분이 전부라면 행정가는 자리에 앉아서, 결국은 머리 싸움을 한다. 그런 부분에 대한 트레이닝이 어린 시절부터 익숙지 않았고 성인이 돼서 바꾸려고 하다 보니 힘들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하지만 김 사무총장은 "선수 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걸 배웠다. 선수 시절 겪었던 고난과 역경이 다른 분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힌 후 "여기에다 주위 분들이 많은 조언을 해주셔서 힘든 과정을 슬기롭게 이겨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1980~90년대 최고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김 사무총장은 국내외 리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김 사무총장은 2005년부터는 대한축구협회 이사로 선임되며 축구 행정가로서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 2012런던올림픽 동메달 획득 등 행정가로서도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성과물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축구 선수가 아닌 축구 행정가 김주성으로서 최근 한국 축구 부흥기를 바라보는 느낌에 대해서도 물어봤다."선수 때의 성취감은 자기만의 것이었지만 행정가 입장에서 성취감은 나만이 아닌 온 나라의 성취감이다. 한 사람이 누리는 기쁨이 아닌 전 국민이 함께 누리는 감격이나 스릴, 만족감은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이어 김 사무총장은 "오히려 기쁨과 희열을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 선수 때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때는 내가 현역 선수로 뛸 때보다 더 아픔이 온다"고 덧붙였다.그는 "사무총장의 역할에 대한 평가도 제 개인적인 평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직이 평가받는 부분이기 때문에 함께 대한축구협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분들의 의견도 경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제 역할에 대한 비중이 클지 모르지만 모든 의사결정은 대한축구협회 임직원, 전문가들의 능력과 생각을 모아서 결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김 사무총장은 "현재 선수들이 축구 선수로서 국민들로부터 사랑 받는 것은 과거 선배들께서 이뤄놓으신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부터는 선수들이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 축구계는 무한 성장할 수 있느냐 아니냐 기로에 서 있다. 축구계가 발전할 수 있는 뿌리를 다지는 중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도내 축구계에 논란이 일었던 수원시시설관리공단 여자축구단(수원FMC) 해체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수원FMC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닌 여자 축구 전반에 어려움이 표출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며 "대한축구협회에 여러 종목의 연맹이 있는데 유기적으로 대화를 통해 축구 전 분야가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 거 같다"고 말했다.이어 김 사무총장은 "수원FMC 문제와 관련해서는 염태영 수원시장을 찾아뵙고 사회적 약자층인 여성들의 입장을 설명하며 팀 운영 문제를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한 후 "수원지역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를 축구와 연계해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김 사무총장은 "이번 A매치의 열기를 반영해 더 많은 경기도민들이 축구를 즐길 수 있도록 내년에도 국제 이벤트를 통해 도를 찾고 싶다. 대표 팀이 활약할 수 있도록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글/김종화기자사진/김종택기자 '아시아의 삼손' 애칭 대표팀 공격수 활약김주성 축구협회 사무총장은김주성 사무총장은 강원도 양양군에서 태어났지만 서울 성수중과 중앙고를 거쳐 조선대에서 활약했다. 1987년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에 데뷔한 김 사무총장은 1992년까지 대우에서 100경기에 출장해 31골을 넣었다. 데뷔 첫해 소속팀 대우를 K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신인상을 수상했고 1990년에도 소속팀에 두 번째 K리그 정상을 안겨줬다.1992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VfL 보훔으로 이적해 활약했지만 1992~1993시즌 결과 팀은 16위를 기록해 2부리그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다. 1993~1994시즌 VfL 보훔의 2부리그 우승과 1부리그로의 승격을 이끌며 '2부 분데스리가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지만 국내로 복귀했다. 1994년 친정팀 대우로 복귀해 1997년 소속팀을 K리그 3번째 우승으로 이끌며 K리그 MVP로 선정됐다.1999년 11월 25일 속초시에서 은퇴 경기를 가졌는데 K리그에서 은퇴 경기가 열린 건 이때가 처음이다. 대우는 K리그 구단으로는 처음으로 김 사무총장의 선수시절 번호 16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K리그에서 뿐 아니라 국가대표로 한국 축구의 해외 활약을 이끌었다. 1988년 AFC아시안컵에서 2골을 넣으며 팀의 준우승을 이끌며 MVP를 차지했고 1986년과 1990년, 1994년 FIFA월드컵 대표팀으로 활약했다. A매치 77경기에 출전해 14골을 득점했다.현역 선수시절 소속팀 대우의 K리그 3회 우승, 2회 준우승을 이끌었고 컵대회는 4회 우승을 일궜다. 개인상도 K리그 신인상과 체육훈장을 비롯해 18회에 걸쳐 각종 상을 받았다.오른발잡이이면서도 왼발 슈팅을 많이 사용할 정도로 자유자재로 양발을 사용했다. 측면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수비수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한 그는 그라운드를 종횡무진하며 끈질기게 득점 기회를 노리는 모습으로 인해 팬들로부터 '야생마', '아시아의 삼손' 등의 애칭을 얻었었다.행정가로서의 도전은 2000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에 선임되면서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2003년 FIFA 국제스포츠관리자 과정을 이수했다.2005년에는 대한축구협회 이사에 선임됐고 같은 해 10월에는 대한축구협회 국제부장으로 선임됐다.지난 1월부터는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으로 선임돼 축구 행정을 이끌고 있다.

2012-11-13 김종화

[인터뷰… 그]'2013년 슬로푸드 국제대회 유치' 성공한 이석우 남양주 시장

남양주시가 최근 이탈리아에서 열린 '2012세계 슬로푸드 대회'에서 아시아·오세아니아지역 대회(아시오 구스토·Asio Gusto)를 유치했다. 남양주시는 지난달 25일 밤 10시(현지시간 오후 3시)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2012 이탈리아 세계슬로푸드대회에서 카를로 페트리니 국제슬로푸드본부 회장과 2013년 슬로푸드국제대회 개최를 위한 MOU를 체결했다.슬로푸드 의미·유치 성공 소감은?맛의 다양화 통한 로컬푸드 소비 장려건강·행복한 삶 추구로 인간가치 보전믿음과 신뢰 보내준 시민·봉사자 감사'아시오 구스토' 유치 비결·파급 효과는?전문팀 신설 잇단 대회 개최 역량 쌓아남양주·대한민국 브랜드·인지도 껑충지역경제 향상·국민건강 개선 등 '막대'향후 운영계획·당부하고 픈 말은?나쁜 먹거리·식습관 사회적 질병 만연유기농업 확대 지역공동체 발전 이끌터농업경쟁력 확보 친환경도시 건설 매진이에 따라 내년부터 격년제(홀수 연도)로 이탈리아 살로네 델구스토(Salone del Gusto), 프랑스 유로 구스토(Euro Gusto)와 함께 슬로푸드를 대표하는 세계적 행사가 남양주에서 열린다.세계 유기농대회를 치른 남양주시는 이번 대회 유치를 위해 국제슬로푸드본부와 회원국간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2013년 슬로푸드 국제대회 준비상황과 필요성, 발전 가능성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 참가국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시는 대회 유치에 앞서 지난 9월 기획재정부로부터 2013 슬로푸드 국제대회 개최를 위한 사전 타당성 조사 및 전문 리서치 연구용역을 추진, 승인을 받았으며, 내년 10월 중에 남양주 유기농 테마파크, 남양주체육문화센터 등지에서 이들 행사를 개최한다는 방침이다.주요 내용으로는 전시행사, 교육체험, 국제학술, 비즈니스, 이벤트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될 예정이며 아시아·오세아니아지역 62개 회원국 중 40여개국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처음 개최된 세계슬로푸드대회는 짝수연도에 본부가 있는 이탈리아에서만 열렸으나, 회원국의 대륙별 개최 요구에 따라 지난 2009년부터 유럽국가 대회인 '유로구스토'가 2년마다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으며, 이번 남양주 유치는 종주국인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다.특히 이번에 남양주시가 유치에 성공한 아시오 구스토대회는 슬로푸드 역사상 유기농에서 슬로푸드까지 이어지는 유기농 완성품으로 평가받으며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이에 "남양주시가 한국 슬로푸드 운동의 발상지로서 식품과 농업분야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아시아·오세아니아 슬로푸드의 구심점이 되는 동시에 세계인들의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미래의 음식문화를 선도하는 중심적 도시가 될 것을 확신한다"는 이석우 시장을 만나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오랫동안 준비를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이 뛰어들어 '과연 가능할까?'하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유치에 성공했다. 먼저 소감과 의미에 대해 설명해 달라."우선 남양주시가 슬로푸드 국제대회를 유치하게 되어 무척 기쁘며 열과 성의를 다해 유치를 지원한 유치단과 시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번 성공은 국제슬로푸드 조직위가 지난 2011년 개최된 세계유기농대회에 참가해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에 감동받는 등 시와 시민이 함께 대회를 치르는 것을 보고 신뢰와 믿음을 가진 데서 비롯됐다고 본다.다시 한번 시민들께 감사드린다. 특히 슬로푸드 국제대회가 유기농의 대명사인 남양주시에서 열리게 됨에 따라 국내 식품업과 농업관련 산업의 새로운 발전과 비전을 제시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며, 경제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국내에 슬로푸드, 유기농, 슬로시티와 같은 슬로라이프 가치 혁신을 선도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슬로푸드국제대회가 아직은 많은 시민들 사이에 생소하다. 슬로푸드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 그리고 '생산은 유기농, 식탁은 슬로푸드'라는 슬로건으로 향후 대회를 치르겠다고 했는데 유기농과 슬로푸드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슬로푸드는 좋고(good), 깨끗하고(clean), 공정한(fair) 음식을 말하는 것이다. 슬로푸드는 단순히 패스트푸드의 반대가 아니라 다양한 개념을 내포하고 있으며, 패스트푸드가 산업화된 먹거리를 통한 획일화된 맛과 규격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슬로푸드는 그것을 넘어 생산, 유통, 소비, 환경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문화운동으로 좋은 먹거리, 전통음식 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켜봐 달라.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아울러 슬로푸드는 맛의 다양화를 추구하고 있다. 맛의 다양화를 위해서는 각 지역마다 전통적인 농산물과 조리법이 계승되어야 한다. 이 말의 의미는 종의 다양성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과 로컬푸드 소비를 장려해야 한다는 의미다.이와함께 유기농산물이 친환경 농법 등을 이용한 생산과정 자체에 초점을 둔 말이라면, 슬로푸드는 유기농처럼 좋은 식재료의 생산·유통·소비·문화·환경 등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맛의 다양성과 환경보전까지 생각하는 것이 슬로푸드이며, 이것이 인간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이번 2013 슬로푸드 국제대회의 슬로건인 '생산은 유기농, 식탁은 슬로푸드' 슬로건은 현대인들의 건강과 행복한 삶, 그리고 공동체로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내포하고 있으며, 소비자가 슬로푸드를 소비함으로써 생산자에게 공정한 이익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비자가 슬로푸드를 소비하지 않으면 유기 농산물의 생산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아시오 구스토 유치에 따른 경제적, 국제사회 입지적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효과는 얼마나 있다고 보는가. 아울러 유치 성공의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경제적 효과로는 전문기관 용역결과 지역경제 유발효과가 총 371억원, 국가경제 파급효과가 1천66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기에 슬로푸드 문화 확산에 따라 국민건강 개선 및 식생활 습관병 감소 유발 효과가 약 2천500억원에 이른다고 보고 됐다. 이를 믿는다.또 살로네 델 구스토(Salone del Gusto), 유로 구스토(Euro Gusto)에 이어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을 대표하는 국제대회가 남양주시에서 열리게 됨에 따라 남양주시와 대한민국의 국제적 브랜드 및 인지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본다. 아울러 국산 식품과 농산물, 관련 생산품들의 국제 경쟁력도 함께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시가 이번 대회 유치에 성공하게 된 것은 지난 2009년부터 국내 지자체 최초로 슬로푸드팀을 신설하고, 국내 대회를 매년 개최하면서 역량을 쌓아 왔기 때문으로 보고 있으며, 유기농 체험농장을 개설하면서 위기에 처한 팔당 유기농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등 지역 유기농민 및 슬로푸드 문화원과 밀접한 업무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것이 이번 대회를 유치하는데 큰 힘이 됐다.농업은 모든 생활의 기반이며 안식처이다. 나는 시장으로서 세계유기농대회를 개최하기전부터 유기농과 슬로푸드는 하나로, 남양주시가 슬로푸드 분야에서 세계 중심도시로 탈바꿈 할 것으로 굳게 믿었으며, 그결과의 첫번째가 지금 이뤄졌다고 본다."-세계슬로푸드대회가 지역 농산물 생산과 소비를 넘어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국가 지원을 위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장 만들어 주기 후원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울러 현재 1천곳에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장을 만들어 줬다. 남양주시는 몇 곳을 후원할 예정인가."아프리카 1천개의 농장은 획일적인 식량 지원과는 달리, 개발도상국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하여 마련된 프로젝트로, 아프리카 주민들의 자생력을 회복시켜 주고자 기획되었으며, 1개의 채소 농장(900유로, 약 140만원)은 마을 하나가 자급자족할 수 있는 규모이다.아울러 현재까지 636개의 채소 농장이 건립되었으며, 시는 1천개의 농장 중 100개를 목표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와함께 시는 지금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에티오피아에 51개의 농장을 지원했으며, 차후 모금 활동을 강화해 농장 건립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농장 지원도 시가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하고, 기업이 참여하는 봉사활동 형태로 지원된다." -마지막으로 대회의 유치 당위성과 함께 슬로푸드국제대회의 향후 운영 계획과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는 고도 성장으로 인해 현재 숱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공동체의 해체와 각종 범죄 만연, 건강을 위협하는 먹거리와 잘못된 식습관 등으로 사회적 질병이 만연하고 있다. 하지만 소홀하기 쉬운 미각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후유증을 상당 부분 치료할 수 있다.특히 유기농을 활용해 어린이 식탁을 꾸민다면 어린 아이의 머리도 좋아지고, 건강도 챙길수 있다. 유기농 단지는 미생물에 의한 농사로, 농지의 지력을 높여 건강한 유기농 채소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음식의 고유한 맛은 각 지역 건강한 먹거리와 전통 그리고 지역 공동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대한민국이 한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가치의 혁신이 절대 필요하다고 본다.이에 슬로푸드 국제대회는 시대적인 요구를 반영한 것이자 슬로라이프라는 가치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매우 크며 남양주 유치는 필연적이다. 이번 대회 유치의 주인공은 시민들이다. 대대로 유기농업을 고수한 지역의 여러 농민들과 슬로푸드 문화 확산을 위해 애쓰신 슬로푸드 문화원 관계자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아울러 유기농산물 소비에 적극 협력해 주신 지역내 여러 음식점들과 학교 관계자 여러분들 그리고 그 밖에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응원해준 모든 시민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생산은 유기농, 식탁은 슬로푸드'로 한국 농업 경쟁력 확보와 식품산업의 융복합 브랜드 가치를 창출해 대국민 건강 제고와 함께 59만 남양주 시민들에게 여유로운 생활과 행복한 삶을 제공하는 특성화된 친환경도시 '남양주'건설에 매진하겠다."대담:지역사회부 박석희 부국장정리:남양주/이종우기자

2012-11-04 이종우

[인터뷰… 그]김상협 기획관은?

GCF 사무국 송도 유치 성공을 떠올리면 앞으로도 오래도록 나의 뇌리에 남아있을 장면이 있다. 지난달 20일 오후 유치가 확정된 후 송도 컨벤시아를 방문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박재완 장관, 송영길 시장 등과 함께 기쁨에 겨워 'GCF!, 파이팅!'을 외친후 차에 올라 출발하자마자 벌어진 일이다. 갑자기 '와~'하는 함성과 함께 불끈 쥔 두 주먹을 몇차례 머리위로 흔들더니 '녹색트라이앵글 완성!'이라고 소리치며 넥타이를 풀어헤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청와대 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이다. 그 상황을 질문했더니 본인은 기억에 없었는데 이 대통령 일행이 탄 차에까지 그 함성이 들려 모두 크게 웃었다는 말을 후에 들었다고 답했다. 절실히 꿈꾸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짜릿한 성취감을 맛봤을때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순간적으로 보인 것이다.정부안에서조차 "대한민국이 유엔산하 기구를 유치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어림없는 일이다. 서울도 아니고 인천이 어떻게 GCF사무국을 유치하겠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상당히 넓게 깔려있었다. 이런 상황을 뚫고 불가능이라 말하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시킬 전략을 짜고, 열정을 갖고 그 전략을 실행시켜, 꿈을 현실로 만든 'GCF사무국 송도 유치'. 이를 이뤄낸 중심에 김상협 기획관이 있었다. 더욱 대단하게 생각되는 일은 GCF사무국 유치에만 그치지 않고 GGGI, GTC를 이미 준비해놔, 정책입안(GGGI)-자금(GCF)-기술(GTC)이라는 녹색트라이앵글을 구축한 점이다.여기에 기후변화와 관련된 인재를 양성하는 녹색성장대학원까지 밑그림을 그려 내년도 예산을 확보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현안인 기후변화 논의과정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게 했다. 그래서 그를 정부안에서는 녹색성장그룹 총수라고 부른다.미래 어젠다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는 물음에 그는 "미래는 더 커질 도전과 기회를 갖고 있는 이미 와 있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으로 세계와 우리를 들여다본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1963년 서울 출생(고향:경북 경산) △보성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 박사 수료 △매일경제신문 기자, 세계지식포럼 창설멤버, 비전코리아 기획팀장, 워싱턴 특파원 △SBS 보도국 미래부장, 워싱턴특파원 △청와대 미래비전 비서관, 녹색성장환경 비서관 △현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

2012-11-02 경인일보

[인터뷰… 그]'GCF 유치' 이끈 김상협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

늦가을 청와대 앞 도로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단풍으로 장관을 이뤘다. 벌써 올해가 훌쩍 지나간 느낌이다. 연말이면 신문과 방송 등 각 언론에서 10대 뉴스를 선정해 공개한다. 올해에도 10대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겠지만 그중에서도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는 올해 있었던 빅 뉴스 중 빅뉴스다.사무국 유치 확정 당시 심정은?전날 반대이사국 '설득 성공' 정보 파악최고 경쟁 상대 독일 막판 비상령 '긴장'결정때 너무나 기뻐 소리지른지도 몰라인천 송도의 매력·예상 파급효과는우리 스스로 역량 쌓아 이룬 '제2 개항'다른국가가 우리를 쫓아오게 만들어야룰메이커·소프트파워 강국 발전 디딤돌사무국 유치 아이디어·구상은 언제?2009년 기후변화당사국총회 처음접해지난해 총회때 사무국 유치 관련 문구환경부장관 연설문에 실으면서 본격화이런 GCF 사무국 유치를 기획단계에서부터 끝까지 책임졌던 이가 있다. 바로 김상협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달 31일 청와대에 있는 녹색성장기획관실을 찾았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녹색성장'이라고 쓴 이명박 대통령의 휘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휘호 아래에는 널찍하게 만든 하얀색 칠판이 있었는데 GCF와 관련한 내용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 회의와 토론을 이곳에서 벌였을까. 그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칠판에 담겨있는 듯했다.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은 "이번 GCF 사무국 유치로 인천은 제2의 개항기를 맞았다"며 "인천시민들의 뜨거운 열정과 응원이 있었기에 사무국을 유치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김 기획관은 "이제 인천이 세계 유수의 도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인천을 주목하게 만드는, 인천 자체가 글로벌 시티가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천시민들이 인천의 보석과도 같은 가치를 오히려 덜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의 입을 통해 GCF 사무국 유치 성과와 녹생성장에 담긴 의미 등을 들어봤다. -GCF 사무국 유치가 확정됐을때 회의장인 송도 컨벤시아에서 환호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어떤 심정이었나. "그날 사무국 유치가 확정된 후 탈진상태였다. 내가 좋아서 환호했다는데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소리를 지른 일조차 몰랐다. 인천시민들도 절박했겠지만 청와대도 GCF 사무국 유치에 절박했다. 이게 안되면 일신상의 문제를 떠나 국민들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우리의 가장 큰 경쟁상대였던 독일은 사무국 유치 막판에 비상령까지 걸었다더라. 사무국 유치가 확정되는 당일까지 정말 조마조마한 하루하루를 보냈다."-언제쯤 우리가 사무국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나."20일 사무국 유치 도시를 정하기 위한 투표가 진행됐는데 전날 오전까지도 확신을 갖지 못했다. 계속해서 이사국 동향을 파악해 대통령께 보고했는데 확실히 우리편인 쪽은 동그라미 2개, 우호적인 나라는 동그라미 1개, 이도저도 아닌 나라는 세모, 우리에게 등을 돌린 이사국은 X표시를 했다. 19일 밤에 우리가 X표라 생각했던 몇개 이사국이 우리쪽에 표를 던지겠다는 정보를 파악했다. 이 소식을 듣고 청와대에서 너무 좋아 혼자 몸을 흔들어댔다. 아마 19일 밤부터 어쩌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확신을 했던 것 같다."-녹색기후기금(GCF),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녹색기술센터(GTC-K)를 합쳐 '그린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성장 기조 핵심에는 바로 그린트라이앵글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를 언제부터 구상했고, 어떻게 실현해 왔나."2008년 8월 이 대통령이 국가발전 패러다임을 밝히면서 녹색성장이란 기조를 발표했다. 그때가 건국 60주년되는 해였는데 일부에서는 광복절 축사에 생뚱맞게 녹색성장이 뭐냐는 반응도 있었다. 환경이라고 하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환경보전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기후변화나 녹색성장 패러다임 같은 것은 여야 정치권은 물론 중앙과 지방을 뛰어넘는 통합적 어젠다라고 생각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린트라이앵글이란 개념을 구상해냈다. 환경자금에 해당되는 GCF, 환경지식에 포함되는 GGGI, 그리고 이것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인 GTC-K가 만들어진 것이다. 환경지식, 자금, 기술 3요소가 이번 GCF 사무국 유치로 모두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GCF 사무국 유치 아이디어는 언제 만들어졌나."GCF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였다. 그때는 GCF 사무국 유치 같은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2010년 칸쿤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 16)에서 한번 해보자(GCF 사무국 유치)는 힘을 얻은 것 같고, 지난해 더반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 17)에서 환경부 장관 연설문에 GCF 사무국 유치와 관련한 대목을 넣을 수 있었다. 사실 연설문에 GCF 사무국 유치 관련 문구를 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도 당일 결정됐다. 정말 힘든 과정이었는데 현장에 있던 손성환 기후변화대사도 한번 해보자는 말을 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청와대에서 추진하고 있는 녹색성장대학원은 아직 소개되지 않은 것 같다. 밑그림이 나왔나."녹색성장대학원은 대통령이 언급한 것이다. 올해 6월쯤 구상이 나왔다. 서울 홍릉에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KAIST(한국과학기술원) 서울캠퍼스를 비롯해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싱크탱크가 모두 밀집돼 있다. 이런 기구들이 세종시로 이전됨에 따라 남는 공간을 활용해 녹색성장대학원을 만들고 이것을 녹색성장을 일으키는 전진기구처럼 활용하자는 구상이 나왔다. 향후 중국 칭화대나 런던 정경대학과 같은 세계 유수학교와 협력해 글로벌 녹색기술 단지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는 것이다. 녹색성장대학원은 그린트라이앵글을 구현해 내고, 기후변화 전문가들을 양성해내는 전문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시킬 것이다. 현재는 홍릉에 학교가 들어설 것으로 보이지만, 인재풀을 만든다는 관점에서 대학원 캠퍼스 개념으로 인천 송도 등 여러 도시로 퍼져 나가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인천 송도가 독일 본을 누르고 GCF사무국을 유치했다. 송도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이번 GCF 사무국 유치로 인천은 제2의 개항을 맞았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1883년 개항이 외세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GCF사무국 유치로 인한 제2의 개항은 우리 스스로 역량을 쌓아 이룬 소중한 자산이다. 세계화란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제는 내재적 세계화, 즉 우리가 세계화된 나라를 쫓아갈 필요없이 우리 스스로가 세계화돼 다른 국가에서 우리를 쫓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인천은 이번 GCF 유치로 인천 자체가 글로벌화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GCF 사무국 유치로 인한 파급 효과가 우리가 현재 상상하는 이상일 것으로 판단된다."이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연간 3천800억원의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감안하면 이 숫자는 상향 조정될 수 있다. 이제는 수출 많이 한다고 강대국이 아니다. 우리가 GCF사무국을 가져오고 룰메이커가 된다는 것, 의제설정을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한다는 것 자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파급 효과다. GCF 사무국 유치로 우리나라도 이런 소프트파워를 키워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본다. 인천시민들도 눈에 보이는 파급효과만 생각하지 말고, 더 넓은 시각으로 GCF를 바라봤으면 한다."-GCF 기금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일부 언론에서는 현실성 측면 등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우리가 사무국 유치를 기획하면서부터 모든걸 한번에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굉장히 냉정하게 판단했고 대통령께도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 그런 측면에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본다."-GCF 사무국이 인천 송도에 왔으니, GGGI와 GTC-K도 인천에 와야 한다는 지역 여론이 있다."내가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인천시민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더 큰 그림을 봤으면 한다. GCF사무국 유치때와 같이 인천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뛴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다음 대통령이 누가 당선되든 녹색성장 기조는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녹색성장과 관련된 모든 것은 법제화됐고 유엔기구까지 들어왔으니 다음 정권에서는 이를 구체화하고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이 서야 할 것이다."대담/김왕표 인천본사 정치부장정리/김명호기자 사진/임순석기자

2012-11-02 김명호

[인터뷰… 그]김상협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 "GCF 유치, 인천 제2의 개항"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를 기획 단계에서부터 진두지휘한 김상협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은 "사무국 유치로 인천은 제2의 개항을 맞게 됐다"며 "1883년 첫 개항이 외세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GCF사무국 유치로 인한 제2의 개항은 우리 스스로 역량을 쌓아 이룬 소중한 자산이다"고 밝혔다.┃관련 인터뷰 9면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은 지난달 31일 청와대에서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인천시가 GCF사무국 유치로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조기 착공, 컨벤시아 2단계 사업 등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녹색성장 6개 관련 법이 여야 합의로 이미 입법화됐고, 유엔기구인 GCF도 유치된만큼 차기 정권에서도 인천시의 요구 사항을 비롯해 녹색성장과 관련한 모든 것을 차질없이 이행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이와 함께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 서울총회가 열리고 있는데 WBCSD측에서 아시아 사무소를 한국에 두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해 왔다"며 "이 논의가 진전되면 인천 송도를 포함한 여러 도시가 아시아 사무소 후보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1992년 창설된 WBCSD는 지속가능 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연례 재계회의로, 60여개국 200여개 글로벌 기업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회원사 대부분은 포춘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에 포함돼 있으며 매출 합계가 7조달러에 이른다.김 기획관은 "인천시민들이 인천의 보석과도 같은 가치를 오히려 덜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며 "GCF 사무국 유치때처럼 시민들이 열정을 보여준다면 더 큰 성과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명호기자

2012-11-02 김명호

[인터뷰… 그]'김치는 내 운명' 대한민국 김치명인 1호 김순자 (주)한성식품 대표이사

대한민국 김치명인 1호 김순자 (주)한성식품 대표이사는 올해 김치테마파크의 문을 열었고, 백화점에서 직접 김치 강의를 하고, 명인에 이어 '명장'의 자리에 오르는 등 유난히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국내에서는 폭염과 태풍으로 김장철 가격폭등이 예상되고, 가장 큰 해외 시장인 일본에서는 외교문제로 진행중이던 프로모션이 취소되고 있다. 힘든 상황이지만 지난주 한성식품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김치 이야기를 할 때 만큼은 시름을 잊는 듯했다.김치에 관심 갖게된 때는 / 어떤 김치를 만들고 있나어릴적 허약했던 몸 김치 먹고 낫기 시작그때부터 내겐 사람 살리는 생명의 음식많이 먹어도 몸에 무리가지 않도록 담가안짜고 마지막 한 점까지 아삭한 맛 내야김 대표보다 먼저 취재진을 맞이한 것은 정갈하게 담긴 한성식품의 특허김치였다. 김치를 먹어야 살 수 있는 특이체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김 대표는 많이 먹어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짜지 않고 마지막 한 점까지 아삭한 맛이 유지되는 김치를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미역말이김치는 김치를 먹을 수 없는 임산부를 위해 고춧가루를 빼고 미역을 넣어 만들었고, 깻잎양배추말이김치는 위에 좋은 양배추를 이용해 많이 먹어도 부담이 없다. 김 대표는 "어릴 적 워낙 몸이 안좋았는데, 김치를 먹고나서 낫기 시작했다"며 "그때부터 김치는 나에게 사람 살리는 음식이고 생명의 음식이었다"며 평생을 이어온 김치와의 인연을 풀어놓았다.6~7살배기 꼬마시절부터 김 대표는 김치에 관심이 많았다. 먹을 수 있는게 밥과 김치, 물밖에 없던 시절이라 김치가 맛이 없을까봐 노심초사하며 엄마와 할머니에게 시어머니 노릇을 했다. "김장철은 나에게 축제기간이었다"는 김 대표는 "새벽에 일어나 배추절이는 엄마를 따라다니며 배추는 왜 절이느냐, 고춧가루를 덜 넣으라며 주문을 하고 김치를 같이 담그겠다고 성가시게도 했다"며 "맛있는 김치 담그는 법을 어릴 적부터 배우고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다"고 말했다. 어머니께 매일 '더 맛있는' 김치를 요구하자 어머니는 김치 잘한다는 집을 찾아가 비법을 전수받기도 하셨단다. 이런 성장과정을 거쳐 김치맛보는데 일가견이 생긴 김 대표는 "제품을 시식하다보면 숙성도 등 여러가지 조건이 딱 맞아떨어져 가장 맛있을 때가 있는데 그런 김치를 먹게 될 때 가장 행복하다"며 "나니까 이런 김치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김치사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위기도 있었다는데… /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사업 17년째 큰 어려움 느껴 공부에 매진중국 물량공세 맞서 국가가 직접 나서야日 천왕·영국여왕에 김치맛 보이고 싶어김치국제전문대학원 세워 세계화 힘쓸터워낙 어렸을 때부터 김치만 먹고 산 김 대표는 한 번도 다른 길은 생각해 본 적 없이 당연한 일인듯 32살에 김치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번창했고 소비자들은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맛있는 김치"로 한성식품 김치를 기억했다. 그러나 사업을 이끈 지 17년쯤 지난 어느날, 별안간 어깨가 무거워지더니 김치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단다. 김 대표는 "내 분신으로 알고 살았던 김치가 갑자기 어려워져 공부를 시작했는데, 더 어려워지더라"며 "김치는 흔하지만 쉬운 음식은 아니다"며 김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염려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기는 비싸도 사먹는데 김치는 비싸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당연히 있는거라고 여겨 홀대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고급식당일수록 싸구려 김치를 제공하는 세태도 꼬집었다. "메인요리에 집중하는 고급식당일수록 김치는 싼걸 쓰고 버린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며 "우리 김치가 좋은 건 알지만 소중히 여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이와함께 김 대표는 중국의 무지막지한 물량공세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중국은 도의와 상식 없는 막무가내식 물량공세를 앞세워 저렴한 가격뿐 아니라 저렴한 위생시스템으로 한국 김치시장은 물론 세계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며 "우리가 세계시장을 확장하면 중국이 자꾸 따라붙어 이대로라면 10~20년 후면 잠식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내며 우리 스스로 내나라 김치를 귀하게 여기고 국가가 나서서 우리 김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김 대표는 직접 담근 김치를 맛보이고 싶은 사람이 2명있다. 일본 천왕과 영국여왕이다. 그는 "일본 천왕은 우리나라를 식민지 삼았었다고 무시하는 일본인들을 대표해 천왕에게 우리의 매콤한 맛을 보여줘 정신을 차려주고 싶어서", 그리고 영국여왕은 "이렇게 세계적인 여성이 우리 김치를 먹었다는 게 알려지면 더 빨리 김치를 세계에 알릴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김 대표는 그동안 김치의 세계화에 앞장서왔다. 세계 어디서나 우리 김치를 맛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꿈이라는 김 대표는 앞으로 '김치국제전문대학원'을 세울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는 "외국 유명 조리사들이 한국으로 김치를 배우러 오도록 하겠다"며 "러시아, 두바이, 이란 등 신시장을 겨냥한 김치개발에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김순자 김치명인은특허받은 다수 김치 20개국에 수출숙련기술 인정받은 '대한민국 명장'(주)한성식품 대표이사이며 (사)세계김치협회 회장이다. 1986년 종업원 1명을 두고 가내수공업으로 시작한 한성식품을 종업원 300명에 매출액 500억원의 강소기업으로 키워냈다. 미니롤보쌈김치, 100년김치, 미역김치, 황제김치 등 다수의 특허김치를 개발했으며 20개국에 김치를 수출하고 있다. 2007년 5월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전통명인 29호(김치명인 1호)로 지정됐고, 지난달에는 산업현장에서 15년이상 종사한 대한민국 최고의 숙련기술인으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다.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사진=김종택 차장정리=민정주 기자

2012-09-12 민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