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신학용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여론 다양성·알권리 침해 우려각종 조세감면·지원등이 골자국민합의 이끌어 연내 처리 의지AG지원법 교문위 상정 불구최대 걸림돌은 '기재부 반대'박대통령·새누리당 역할 중요노 전 대통령 NLL 발언 논란돌아가신분 말꼬리잡기 그만조선시대 예송논쟁과 비유할 일수많은 국비·사업들 따와서지역 발전에 이바지 '자부심'약속지키는 정치인으로 남고파정부 조직개편 이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는 소속 의원도 가장 많고 관련 영역도 교육·문화·체육·관광·언론 등으로 광범위해졌다.타 상임위 의원들이 교문위로 이동하기 위해 치열한 로비전과 신경전을 벌였을 정도로 노른자위 상임위로 급부상한 상태다.하지만 교문위 위원장인 민주당 신학용(인천계양갑) 의원의 마음은 결코 기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정치인생중 그 어느때보다도 무거운 책임감에 사로잡혀있다.문화관광부를 산하 기관으로 두게 되면서 2014인천아시안게임과 관련된 법안, 예산을 직·간접적으로 관리하는 위치에 섰기 때문이다.또 신문업계의 최대관심사인 신문진흥 및 보호·육성에 관한 문제도 신학용 위원장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현안이다.#2014 인천아시안게임재정이 어려운 인천시는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정부의 추가 지원에 목말라있다.그런 만큼 인천아시안게임에 대한 정부의 지원 폭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3 충주세계조정선수권대회,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 2014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및 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지원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이 법안이 현실화되면 인천시는 경기장 신·개·증축 사업비의 최대 75%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지원 개정안'은 국회에 제출된 지 9개월여동안 진척이 없었다.마침내 지난 17일 교문위에 상정돼 지원 확대의 신호탄이 터졌을때 인천시는 환호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신 위원장은 "지난 2월 정부조직법 개편으로 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로 바뀌면서 법률 개정안을 직접 챙길 수 있게 됐는데, 소관 상임위원장으로서 권한을 십분 발휘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작년부터 인천지역 여·야 의원들이 초당적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인천아시안게임 지원 확대의 첫 단추를 꿴 신 위원장은 내친김에 법안심사 소위, 국회 본회의까지 밀어붙여 결실을 맺겠다는 각오다.'인천아시아경기대회 지원 개정안'은 교문위 수장이기에 앞서 인천 계양 국회의원인 신 위원장이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작품이다. 신 위원장은 지난해 5월 민주당 인천시당 위원장으로 선출될 당시 아시안게임 성공을 위한 초당적 협력기구인 '인천여야정협의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이에 새누리당 의원들도 '지역현안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나서면서 같은 해 8월에 협의회가 구성됐다. 이후 인천여야정은 논의끝에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지원개정안'을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이 대표발의하는 것으로 결실을 맺었다.신 위원장은 "인천아시안게임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 예산 확보가 필요한데, 조만간 진행될 정부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인천아시안게임 지원 예산 증액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할 것"이라고 힘을 줬다.또 "이미 문화체육관광부 장·차관에게도 인천아시안게임과 관련해 내년도 본예산 반영에 유의하도록 주문해 두었고 수시로 진행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고 귀띔했다.신 위원장은 인천아시안게임 예산 확보의 최대 관건은 기획재정부의 반대라고 설명했다. 신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인 새누리당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여야정협의체의 다짐이 헛되지 않도록 새누리당이 제몫을 해주기 바라고, 박 대통령도 대선 당시의 약속을 지켜주시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신문산업진흥에 관한 특별법신문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신문산업진흥에 관한 특별법'(이하 신문진흥법) 역시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지난해 10월 발의했지만 빛을 보지 못해왔다. 정부조직법 개편으로 방송을 제외한 언론전반을 다루게 된 신 위원장은 '신문진흥법'을 중대한 법안이라고 판단, 지난 17일 교문위에 상정시켰다.이후 이틀만인 지난 19일에는 '신문산업진흥 공청회'까지 개최하며 신문진흥 및 보호·육성에 대한 의욕을 드러냈다.'신문진흥법'은 신문산업의 위기는 언론과 여론의 다양성 위축, 국민의 알권리 침해를 발생시켜 궁극적으로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아래 발의됐다.'프랑스식 신문지원제도'를 모델로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신문지원과 각종 조세 감면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신 위원장은 "지난 공청회에서 여·야 교문위 의원들과 관련 전문가들이 신문진흥법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했다"며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신문산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했다"고 밝혔다.신 위원장은 특히 해외사례를 들어가며 신문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신 위원장은 "종이신문의 위기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면서 "소관 상임위 위원장으로서 해외 각국의 종이신문 위기 현상을 다각도로 접하고 있으며 대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신 위원장은 신문진흥법에 대한 향후 입법 일정과 관련, "공청회에서 수렴한 의견을 바탕으로 향후 법안심사 소위를 열어 신문진흥법을 심도있게 논의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며 올해내에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이와함께 신 위원장은 지역신문에 대한 애정도 한껏 드러냈다.신 위원장은 "지역언론의 위상이 높아져야 한다. 전국적으로 건강한 지역 신문들이 안정적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신문진흥법'과는 별도로 지역신문 보호·육성에 대한 정책추진을 시사했다.#손학규와 신학용신 위원장은 소위 '손학규계'의 수장격으로 정치권에서는 신 위원장과 손학규 전 대표를 한 몸처럼 여기고 있다.특히 대선 이후 손 전 대표가 독일로 건너가면서 신 위원장은 손 전 대표의 근황과 정치현안에 대한 입장 등을 대신 밝혀주는 대변인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신 위원장이 손 전 대표와 인연을 맺은 시기는 지난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 위원장은 동료의원 7명과 함께 손 전대표를 설득한 끝에 민주당으로 영입했다.이후 신 위원장은 기쁠때나 슬플때나 손 전대표를 최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정치적 의리를 지켜오고 있다.최근 손 전 대표와 무소속 안철수 의원간 연대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 신 위원장은 "그야말로 소설에 가깝다. 논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그러면서 "손 전 대표는 민주당의 대표였으며 민주통합당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강조했다.손 전 대표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내년 지방선거, 차기 총선 등에서 범 진보·중도진영이 승리하는데 기여하기 위해 백의종군의 자세로라도 국민의 뜻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정치인 신학용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 시절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신 위원장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대선캠프 법률특보 등을 거쳐 지난 2004년 금배지를 달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의 길을 걸어왔다.신 위원장은 "정치를 시작하면서 결심한 것이 있는데, '국회의원들은 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약(空約)만 한다. 놀면서 돈만 받는다'는 통념을 깨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신 위원장은 지난 2008년 월 900만~1천만원에 이르는 세비 전액을 인천 초중고생들의 장학금으로 기부하겠다고 선언했고, 6년째 그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실현하고 있다.신 위원장은 "어떻게든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주민들의 세세한 민원도 마치 구의원이나 구청장처럼 해결해주고자 최선을 다해왔고, 수많은 국비와 사업들을 따와서 지역을 발전시켰다"며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신 위원장은 나로호 발사 지원, 계양구와 서구의 교육국제화 특구 지정, 인천여야정협의체 구성,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지원 개정안' 공동발의 및 상임위 상정 등을 정치인생중 보람있는 일로 꼽았다.신 위원장은 "나로호 발사때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카운트다운때 숨죽이다 발사에 성공하자 너나 할 것 없이 끌어안고 기뻐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가장 안타까웠던 일로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꼽았다. 신 위원장은 "지금 우리나라가 안팎으로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데, 정권을 잡은 여당이 아직도 돌아가신 분의 말꼬투리나 잡고 있다니 말이 되냐"며 "후세 사람들이 우리 정치를 평가하면, 우리가 조선시대 예송논쟁을 한심한 당쟁으로 보는 것처럼 우리를 비웃지 않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신 위원장은 "지역적으로는 누구보다 인천시와 계양구를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 국가적으로는 쓸데없는 이념대립과 말꼬투리 잡기보다는 국익을 위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했던 사람이 되고자한다"고 거듭 강조했다.글=김순기 서울정치부장

2013-06-25 김순기

[인터뷰… 그]뮤지컬 '메모리즈-뉴롤리폴리2013' 제작자 박해미

■'뉴롤리폴리' 왜 다시 무대에?비록 조기 하차했지만 출연 인연작품에 바친 노력이 너무 아까워서대폭 수정해 만든게 이 작품이죠■구리아트홀 상주단체 '해미뮤지컬컴퍼니'제작비 없어도 무대는 보장해 줘꿈이 이곳에 저를 머물게 했죠덩치 큰 뮤지컬단 상주하는 극장아마 전국에 구리밖에 없을걸요?■앞으로의 꿈은…우선 창작 뮤지컬 잘됐으면 좋겠고수년후엔 토크쇼를 진행하고 싶어요삶의 생생한 이야기 나누고 싶거든요뮤지컬 '맘마미아'의 '도나'였던가? 배우 박해미는 그야말로 대중들 사이에 '불쑥'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오페라의 유령'을 도화선 삼아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 뮤지컬이 크게 성장하면서 이미 몇몇 뮤지컬 스타들이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였다. 그 가운데서도 박해미는 유독 돋보였고, 튀었다.그래서 강렬하게 반짝하다 이내 사라지는 불꽃이지 싶었다. 그러나 이후로도 박해미의 이름은 계속해서 눈에 띄었다.밝고 우렁차게 노래하던 '도나'역의 잔상이 가시지 않았을 때, 뮤지컬 '스위니토드' 무대에서 스산한 분위기의 '러빗부인'을 연기하는 그녀를 만났다.스릴러와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시트콤에서 또 한번 반전을 보였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술에 취해 개다리 춤을 추던 그의 모습은 충격적으로 웃겼다.드라마에 출연하고, 예능에도 등장하고, 책도 내고, 가요계에도 발을 들였고, 학생들도 가르친다. 최근 만난 박해미는 뮤지컬 제작자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최근에 시작한 게 아니란다.10년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이야기, 두 아들을 키우며 배운 것들을 시나리오로 풀어냈고, 30년동안 몸담고 있는 뮤지컬계에서 알게 된 것들을 쏟아내는 것이다.이쯤 되면 불꽃이 아니라 속부터 은근히, 화르르, 오래오래 타는 모닥불이다. 지난달 28일, 뮤지컬 '메모리즈-뉴롤리폴리2013'의 개막을 앞두고 있는 배우 박해미를 만났다.# 거침없이 창작뮤지컬박해미는 지난해 초연한 뮤지컬 '뉴롤리폴리'에 이어 올해 '메모리즈-뉴롤리폴리2013'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지난해에는 옛날얘기 하게 만드는 강형철 감독의 영화 '써니'의 기억이 남아있었고, 그룹 '티아라'가 부른 같은 이름의 노래가 유행했으니 복고가 먹혔(?)다지만, 왜 굳이 다시 롤리폴리를 무대에 올렸을까.그의 대답은 '올가미를 기회로 바꾸려고'다. '해미뮤지컬컴퍼니'를 운영하는 박해미는 출연자로 롤리폴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 작품이 실망스러웠고, 결국 조기하차했다.뮤지컬 한 편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지 아는 그는 작품과 사람을 버릴 수 없어 롤리폴리를 떠안았다. 크게 손을 봐서 다시 무대에 올렸고, 가능성을 확인했다."이번 작품은 지난해의 뉴 롤리폴리와는 180도 달라요. 여러 세대에 걸친 음악을 썼다는 점이 같고, 관객들이 그 이름에 익숙해서 같이 쓰는 거죠. 복고풍이라고 여기실 수도 있지만 작품은 결코 복고가 아닙니다."4일 구리아트홀에서 '메모리즈-뉴롤리폴리2013'을 개막하고 나면 26일부터는 소월극장무대에 하이틴 뮤지컬 '하이파이브'를 올린다.다문화가정의 청소년, 장애가 있는 아이, 학교 일진, 부잣집 아들, 모범생이 등장하는 청소년 뮤지컬이다. 청소년기 아들을 둔 박해미는 아들의 행동을 보며 배우는게 많다고 한다."아이들도 서로 욕을 하거나 싸우는 게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더라고요. 제어해 주는 힘이 필요한 거죠. 문화활동이 가진 심리적, 교육적 치료 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은 이미 경험을 했어요.라이선스 뮤지컬 중에 청소년을 위한 것들도 있지만, 우리 정서와 환경에 맞는 청소년뮤지컬을 만들어야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죠."10월에는 뮤지컬 '샤먼킹'을 시작한다. 대학과 협약을 맺고 뮤지컬 학과 학생들에게 먼저 기회를 줬다. "샤머니즘에 관한 이야기예요.샤머니즘은 종교 이전에 온 인류에 공통으로 존재하던 것이라 전 세계의 공통분모라 할 수 있죠. 기본적인 스토리를 제공했고, 나머지는 학생들이 다 만드는 거예요. 아이돌 없이 콘텐츠로 승부하기 위한 노력이고, 이미 외국 뮤지컬계의 관심을 받고 있죠."이쯤되면 질릴 만하지 않은가. 한꺼번에 뮤지컬 세 작품을 준비하다니. 그런데 그는 현재, 뮤지컬 '브로드웨이42번가'에 출연중이다.본인 스스로도 '미친 짓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힘들죠. 그런데 예전부터 준비하던 것들이 올해 모두 터진 거예요. 때가 왔다는 생각에 다 하고 있어요."# 구리아트홀 상주예술단체지난달 24일, 그가 사는 구리에 새 아트홀이 문을 열었다. 아직 '구리아트홀'을 모르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상주예술단체는 공연예술에 관심있는 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만큼 유명하다.'극공작소 마방진'과 '해미뮤지컬컴퍼니'다. "뮤지컬단이 상주단체로 있는 극장은 아마 전국에 구리아트홀이 유일할 거예요. 뮤지컬은 덩치도 크고 제작 비용도 비싸니까요. 상주단체로서 1년에 4차례 공연을 해야돼요.뮤지컬 한 편을 올리는데 10억원이 들어가는데, 금전적인 지원은 없고 장소만 제공받는 것이니 비용을 생각하면 답이 안나오죠." 그러나 '꿈이 나를 이곳에 머물게 했다'고 그는 말했다.'한국판 맘마미아'를 만드는 것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뮤지컬 롤리폴리를 굳이 끌어안아 억대 빚을 지게 된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상주단체가 되면 무대가 보장이 됐다.박해미는 '운명처럼' 구리아트홀을 알게 됐다고 했다. 구리시민이지만 집에서는 잠 잘 시간도 없던 그는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자막광고를 보게 됐다.'구리아트홀 상주단체 모집'이라는 작은 글씨들이 그를 텔레비전앞에 붙들었다. 흘러간 자막이 다시 나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신청마감일이 단 하루 남아있는 걸 확인한 순간부터 그는 아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마지막 날 접수를 하고 직접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했다. 구리아트홀은 박해미에게 구리 시민으로서, 영향력있는 아티스트로서 다양하고 깊이있고, 안정감 있는 작품을 선보여주길 바라며 '해미뮤지컬컴퍼니'를 상주단체로 받아들였다."구리아트홀을 알리는 일까지가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라디오 방송할 때도 계속 홍보를 해요. 많은 분들이 구리가 아주 멀다고 생각하는데, 예상 외로 가까워요. 구리시민들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관객들이 많이 찾아오도록 좋은 공연을 계속 만들어 갈 거예요."# 박해미의 꿈박해미는 자신의 꿈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딱 부러지게 말했다. 뮤지컬이 잘 되는 것, 그리고 그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진행하는 것이다."해외에서 들여올 수 있는 라이선스 뮤지컬은 이제 다 들어왔어요. 10억주고 들여오면 반 이상이 로열티죠. 계속 똑같은 것만 하면서 관객이 여러번 찾아주길 바랄 수는 없잖아요.그래서 이제 창작뮤지컬을 해야하는 거예요." 꼭 그래서만이 아니라, 박해미는 만들고 싶은 뮤지컬이 아주 많다고 한다. "1995년에 해외투어공연 중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공연을 본 것이 큰 계기가 됐어요.'우리 것은 좋은 것이야'라는 문구가 유행했던 때죠. 우리 것으로 해외에서 그런 호응을 얻는 것을 보고 크게 고무됐어요. 이후 97년에 해미뮤지컬컴퍼니를 시작했죠."남편 황민씨, 아들 황성재군과 함께 경기도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해미는 발도 참 넓다. 문화, 방송계뿐 아니라 정치계 인사와도 친하다. 정치와 잘 어울린다는 말도 적잖이 들었다.그러나 그녀는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 쪽에 관심이 많았다. "2년쯤 후에 토크쇼를 하고 싶어요. 연예인들 이야기말고, 일반인부터 정치인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될 거예요."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배우 박해미는 드라마 촬영에 앞서 메이크업 하랴, 녹음실 다녀오랴 분주했다. 점심시간이었지만 끼니를 위해 식당으로 갈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대본을 집어들었다.그나마 가장 한가한 날이라고 한다. 83년 데뷔해 20년만에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10년이 넘도록 이렇게 바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직 남아있는 꿈을 보니, 박해미는 오래오래 한참을 더 뜨겁게 피어오르려는 모양이다./민정주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2013-06-04 민정주

[인터뷰… 그]취임 1년 '2기 체제' 닻 올린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화합과 대선 승리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황우여 대표가 취임 1주년을 맞아 2기 당직 인선을 마무리하고 순항의 닻을 올렸다. 지난 5년간 새누리당에 5명의 당 대표가 배출됐으나 임기를 1년이상 넘긴 대표는 박희태 전 대표에 이어 두 번째다.대통령 후보 경선과 대선을 앞두고 절체절명의 비상체제에서 '지휘봉'을 잡은 그는 지난 1년간 당 화합과 정권 재창출이라는 성과를 올렸고, 이제 남은 임기 1년동안 박근혜정부의 성공과 국격 높은 국회와 정당 분위기를 일신, 정치 선진화를 이루고 싶은게 그의 남은 소명이자 역할이라고 했다.경인일보는 21일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인터뷰 그…'를 통해 최근 단행한 당직개편과 향후 당 운영 방안, 대야관계 및 당·정·청 협력체제에 대한 구상을 1시간 동안 들었다.황 대표는 가장 먼저 전날 '황우여체제 2기'를 맞아 단행한 당직개편 얘기를 '화두'로 꺼냈다.인선 기준을 묻는 질문에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추진할 적임자를 인선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성공과 국민행복 실현을 위해서는 충실하게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 사람이 골고루 포진해야 한다는데 방점을 두었다는 것이다.그는 이번 인사가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것이라는 속내도 비쳤다. 인천 출신인 그는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 선거의 중요성이 있기 때문에 경기도 출신인 홍문종(의정부을) 의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후일담도 들려주었다.그러면서 '2기 황우여호'의 당 운영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며 국격높은 선진국형 정당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일갈했다.당직인선 대선공약 추진력 중점홍문종 사무총장 선임 배경엔내년 수도권선거 중요성 작용돼판사 출신으로 의회주의자로 남고 싶다는 그는 "중앙당을 국격에 맞는 정당으로 탈바꿈해 나갈 것"이라며 "미국의 공화·민주당, 독일의 사민·기민당처럼 국제적인 수준에 걸맞고, 외국처럼 존경과 사랑을 받는 정당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정당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황 대표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새누리당 연구기관인 여의도연구소를 '여의도연구원'으로 격상시켜 미국의 헤리티지, 브루킹스 재단, 독일의 아데나워, 한스자이델 재단과 같은 정당연구소를 만들어 정책을 연구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새누리당은 금명간 여의도연구원장을 임명할 예정이다.그는 더 나아가 현재 사무총장 직제 밑에 있는 제1, 2 부총장외에 여성의 인재 발굴과 정책 개발을 위한 여성부총장제의 신설도 추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성대통령시대에 여성 인재 발굴과 향후 여성외교까지 선을 이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1년간 당무를 직접 운영하면서 체험을 통해 터득한 노하우로 선진국형 정당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수도권 규제완화 필요성에 공감경인지역 공약사업도 적극협조차기인천시장에는재개발문제 해결할 사람이 됐으면국회 선진화법을 만든 장본인인 그로서는 선진국형 국회의 면모를 갖추는 것도 자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그는 "보통 법안 하나를 국회에서 처리하는데 258일이 걸린다. 그러나 국회 선진화법이 적용되면 여야 정당과 청와대, 정부 등 4자가 항상 머리를 맞댈 수밖에 없고, 현재 가동중인 여야 6인 협의체를 가동하면 50여일만에 법안을 처리할 수 있어 '초스피드 법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와 정부를 포함한 지도자급 회의를 하고, 항상 대통령이 함께 하는 식으로 틀을 잡아나가면 여야 상생의 '협상정치'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자신의 정치이념이기도 한 당 쇄신·정치쇄신·국회선진화 등 3대 과제를 당·정·청의 3각 조화속에 이루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그는 당·정·청 관계 설정에 대해 "이제 대통령과 대표간의 월례회동을 공식화하고 국민의 의견, 국민의 걱정을 가감없이 전달하면서 긴밀한 소통을 지속할 생각"이라며 "가급적 비공식 회동은 자제하고 대화 내용도 공개하면서 정치인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국회선진화법은 협상 정치 밑거름존경받는 '선진국형 정당' 거듭나야황 대표는 새정부의 대선 공약이행에 상당부분 시간을 할애했다.그는 "정부 출범 100일이 참으로 중요하다. 이 시기 안에 국민과의 약속 실천은 물론 모든 국정 구상들을 마쳐야 한다"며 "원내지도부가 선출된 만큼 대선 공약 입법 추진에 보다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구체적으로 경기 인천 등 각 지역별로 약속한 7~8개 공약에 대해서는 예산과 정책이 반영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그는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무분별한 공약 제시를 자제하고, 지킬 수 있는 내용만 엄선해 국민께 약속 드렸다"며 "지역 공약이 예산과 정책으로 구체화 될 수 있도록 적극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내년 지방선거와 관련해서는 오는 6월 시도당 위원장 인선을 마무리하는 한편 박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기초단체장 및 지방의원 후보자 무공천 약속이행도 지키겠다고 공언했다.그는 "지난 4월 재보선에서 당이 대선공약을 지키려고 무공천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가 나타났다"면서 "지난 대선에서 기득권 내려놓기와 정치쇄신 차원에서 약속한 만큼, 여야 협상을 통해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수도권규제완화 정책에 대해서는 아직 정부의 발표가 미뤄지고 있어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당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방향성을 제시했다.황 대표는 "수도권 지역 중 접경지역과 도시가 아닌 농촌형 수도권, 이런 곳을 서울과 같다고 하면 모순"이라며 " (인천)경제자유구역도 수도권정비법 때문에 뛸 수 없다는 얘기가 있어서 이런 부분에 대한 조정은 꾸준히 노력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인천지역에서 나돌고 있는 인천시장 출마설에 대해선 " 3선 정도 할때나 나올법한 얘기…"라며 "지금은 더 좋은 인재를 발굴해 그 분에게 지원하는게 내 사명"이라고 일축했다.그러면서 "인천시의 발전을 위해서는 인천의 어려운 3가지를 풀어낼 인재가 필요하다"며 "하나는 서해안시대에 맞는 인천의 미래상을 그릴 수 있는게 기본이고, 둘째는 인천의 역량 증진, 인재발굴, 교육을 정비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신·구도심의 도시정비 문제를 말끔히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시장이 됐으면 한다"고 언급했다.8년째 사별한 부인 전화번호 사용알려져 쓴다지만 '왠지모를 숙연함'유학간 아들·손녀 그리움도 전해그는 마지막으로 8년전 사별한 부인의 얘기를 꺼내자 손사래를 치면서 '왜 부인 전화번호를 그대로 쓰느냐'는 질문엔 "그사람의 전화번호가 동창회나 당직자들에게 공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해 숙연함이 느껴지기도 했다.대신 황 대표는 "나는 검도를 했기 때문에 집중력이 강하고, 이로 인해 사회에서 일을 하면서 성과가 바로 나타나는 편"이라며 "그렇지만 바깥일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가족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그러면서 "미국에서 공부중인 아들 부부가 2년전에 손녀를 낳고, 그 손녀가 말을 떼기 시작했는데 얼굴도 아직 못봤다"며 "얼마전엔 아들이 귀국하겠다고 인사해 왔지만 내가 가면 비행기값도 절약되니 기다려라 했지만 아직 못갔다. 할아버지로서 손녀와 사진 한장 찍지 못해 마음속으로 늘 걸렸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대담=정의종 정치부 차장/정리=송수은 기자/사진=하태황 기자황우여 대표는?■ 생년월일 : 1947년 08월 03일■ 아호:회천(檜泉)■ 출생지:인천■ 종교:기독교■ 좌우명:신의와 정의와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 학력 :-1965년 제물포고졸-1969년 서울대 법대졸■ 경력사항 :-1969년 사법시험 합격(10회)-해군 법무관, 서울형사지법ㆍ서울민사지법ㆍ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춘천지법 제주지법 수석부장판사, 인천지법 부장판사,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1993년 감사원 감사위원-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전국구, 신한국당ㆍ한나라당)-2000년 국회인권포럼 대표(현)-2006년 한나라당 인천시당 위원장-2008년 한국청소년연맹 총재(현)-2010년 국회조찬기도회 회장(현)-2011∼2012년 새누리당 원내대표-2012년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현)-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인천 연수, 새누리당)(현)■ 상훈 : 황조근정훈장(1996), 한국교회연합과일치상(2008), 존경받는 한국인대상(2010), 백봉신사상 올해의 신사의원 베스트11(2013), 대한민국 법률대상 입법부문(2013) ■ 저서 :'국가와 교회' '지혜의 일곱기둥'(2005) '아픔의 정치 기쁨의 정치'(2012)

2013-05-21 정의종

[인터뷰… 그]'농수산식품 수출 선봉장' 김재수 한국농수산물식품유통공사(aT) 사장

생산보다 생산 이후가 더 중요단순먹거리 탈피 기능성식품 개발새정부 창조경제와 같은 맥락유통비용이 농산물값의 41%중간단계만 줄인다고 개선 안돼3년새 급성장한 사이버거래소획기적 비용 절감 대안 각광한류로 인해 한국음식 세계 관심시장개방 가속화로 aT 역할 커져가공·수출산업 전방위 노력할 것글로벌 시대를 맞아 자유무역협정(FTA)이 전방위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만큼 세계 시장과의 치열한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한국 농업이 나아갈 방향과 향후 과제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시장 개방과 함께 국내 시장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대책으로 농정 목표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함께 농축수산 종사자들의 소득 증대와 복지정책 확대, 농축수산물의 유통구조 개선, 미래 전문인력 양성 등이 강조되기도 한다.더욱이 올해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크다. 농산물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6%에 불과하지만 서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지난해 우리 농식품은 수출 82억달러의 성과를 거뒀으며 올해엔 '농식품 수출 100억달러'의 쾌거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농수산식품계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세계 시장을 공략할 선봉장으로 나선 이가 바로 한국농수산물식품유통공사(이하 aT) 김재수(사진) 사장이다.농어민의 소득증진과 함께 농수산식품 수출역군을 자임한 aT의 역사는 그 자체로 우리나라 농어업 발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aT는 46년 시간동안 도매시장육성, 유통교육 및 정보 등 유통조성사업을 강화하는 한편 수출진흥을 통한 농어민 소득증진과 국민경제 균형발전에 기여했다.김재수 aT 사장은 회사명에 '식품'이란 특정 단어를 넣어 명칭을 변경한 이유에 대해 "식품산업은 농어업과의 동반성장 및 부가가치를 창출해 농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끌 동력원"이라며 "식품산업이 농업정책 대상에 이미 포함됐고, 식품산업 육성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사업을 실행하는 aT의 역할을 더욱 명확히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경인일보는 지난 19일 오전 aT센터에서 그를 만나 새 정부의 농정 방향에 대한 진솔한 의견을 들어보고 농수산식품 유통 구조에 대한 개선책 등 농수산 현안에 대해 짚어봤다. ┃편집자 주# 새 정부의 창조경제, 농업이 바로 그 모델aT에 몸 담은 지 1년6개월 가량 된 김재수 사장은 농업 분야 유통 전문가로 이미 정평이 나있다. 그런 그가 새정부의 창조경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한치 머뭇거림없이 '농업이 바로 창조경제다'고 말했다.김 사장은 "개인적으로 창조경제라는 것은 IT와 BT, NT 등 각종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경제적 효과로 증명해 내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 분야의 대표적인 것인 바로 농업이다"며 "나는 과거부터 농업의 융복합을 주장해왔다.단지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활용과 응용을 통해 상당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그가 말하는 농업의 융복합이란 수확된 농산물을 갖고 각종 기능성 식품과 화장품·의약품을 만들어냄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것, 가공·처리과정에서 새로운 과학기술이 개발되는 것. 바로 농업이 단순 먹거리 산업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그는 "농수산 그리고 축산업 등이 과거 전통산업으로 특히 1차산업 분야로 사회적 인식이 남아있지만 여기에 2차(가공)·3차(유통)와 접목함으로써 새로운 가치와 수익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창조경제 그리고 융복합산업의 핵심이다"고 강조했다.세계 경제의 판이 뒤바뀌고 있는 시대에 그만큼 농업분야의 가치도 변하고 있다는 점을 사회에 널리 알리고 싶어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이라고 느껴진다.김 사장은 무엇보다 농업의 융복합을 실현하는데 있어 자연과학자들에 대한 지식과 문화·교양의 접목을 강조하고 있다.그는 "융복합을 이끌어가는 동력 주체는 농수산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모든 연구원들이 역사와 철학, 사회학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지식을 갖추는 것"이라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래 농업이라는 것이 바로 새 정부의 창조경제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그는 앞으로 생산보다는 생산 이후에 관심이 더 중요하다면서 유통·가공·저장·수출·식품안전 등에 aT가 맡은 책임을 다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 관건과 대안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국내·외 농산물 가격급등으로 서민들의 물가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생산 농산물 가격의 41.8%가 유통비용이다. 과거부터 수요가 많은 배추나 무 등은 유통비 비중이 80%에 육박하는 등 근본적인 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하지만 도매유통업자 간 잦은 물량이동과 계약파기, 결제불이행 등 후진적인 유통구조와 영세 소농중심의 생산구조 등 농산물 유통구조의 근본적 개선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김 사장은 "유통개선 문제는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모두가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이유를 먼저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유통구조 개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기 전에 현실적 어려움이 너무 크다는 점을 먼저 언급했다.그는 "유통비용 중 직·간접비에 해당하는 물류비나 임대료, 인건비 등은 매년 상승할 뿐만 아니라 중간유통이 한 단계 축소되더라도 표면상의 축소일 뿐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이익으로 돌아가기란 매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이어 "일각에서는 7단계 유통 단계를 3단계로 줄이라면서 단계수만 줄이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3단계 유통의 대표적인 사례가 대형마트인데 그만큼 소비자가 싸게 사고 생산지는 제값을 받고 있냐.아닐 것"이라며 "유통단계를 줄이는 것이 무조건 바람직한 게 아니고 단계별 불필요하거나 불합리한 것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이와함께 그는 과거부터 농수산물 유통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시장에만 맡겨왔다는데 원인을 지적하고 있다.김 사장은 "그동안 정부의 농업 유통 정책은 고작 시설 짓는데만 집중했던 것으로 웬만한 도시에 도매시장이나 공판장이 다 들어서있지 않느냐, 그런데 정작 시장이 활성화됐는지는 따져봐야 한다"며 "이제는 시장의 기능을 바꿔야 할 때다.과거의 상품이 거래되고 그 과정에서 가격 형성의 장으로 시장이 만들어졌지만 단순히 가격 결정 기능에 머무는 시장의 기능은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동안 시장(도매)은 유통개선을 가로막는 주범이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농산물 유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경매를 통한 기준가격 결정과 거래 투명성 제고에 기여해 왔다는 설명이다.현행 유통단계에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산지와 최종 소비자간 직접적인 경로가 생겨나는 등 변화도 조금씩 일고 있다.따라서 온라인을 이용한 농수산물 사이버거래는 산지 유통조직과 소비지 유통업체를 직접 잇는다는 점에서 문제해결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aT는 지난 2009년 우리 농어업인이 생산한 농수산물의 안정적인 판로확보와 유통비용 절감을 위해 농수산물사이버거래소를 개장, 3년만에 거래실적 1조1천146억원을 달성했다.전국 공영도매시장 거래액의 10%,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 거래액의 28%에 해당하는 규모다.농수산물사이버거래는 농산물 유통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어 생산 농민과 도시소비자 모두에게 많은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식의 세계화, 농산물의 수출 확대김 사장은 한식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고민이 많다고 했다. 아직까진 우리 1차 농산물로 세계 시장에 승부를 걸 수 있는 이른바 '스타상품'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는 우리 농산물을 다양한 아이디어로 가공해 만들어내는 음식은 '한류음식, 스타음식'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한류 열풍으로 한국 식품의 수출도 크게 늘어났다. 지난 2000년 30억 달러였던 농식품 수출액이 지난해에는 80억 달러를 넘어섰다. 지난 20년동안 30억달러에 머물러 있던 농식품 수출의 재탄생이다. 김, 음료, 라면이 지난해 각각 2억 달러를 능가하는 수출 실적을 보였다. 농식품 수출이 100억 달러를 넘어 1천억 달러를 달성하는 시대가 다가온다.K-POP 등 한류 열풍에 맞춰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뉴욕 시민을 상대로 한식에 대한 인지도를 조사한 결과 2009년에 9%에서 2011년에는 41%로 높아졌다고 한다.김 사장은 한식이 인기를 얻고 있고 농식품 수출이 늘고 있는 이유에 대해 한국의 문화가 바탕에 있다고 강조한다.그는 "2005년 미국 대사관에서 농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세계 각국 외교관을 초청해 한국 음식 시식회를 열었다. 많은 참석자들이 한국 음식에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면서 조리법을 문의했다"며 "한국 음식의 다양성과 건강성·기능성 등을 자랑한 적이 있는데 외국인들의 관심이 대단했다"고 회상했다.그는 한류 열풍의 기본은 한국 문화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국격이 높아지면서 우리의 문화가 세계 어느나라와도 견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고 우리 고유의 정서와 문화가 담긴 한식이 그만큼 외국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김 사장은 "농수축산업의 신성장 동력화, 미래산업화, 소득 증대 등 새정부의 농업정책에 발맞춰 aT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며 "세계 시장개방이 가속화되는 시기에 안정적 농업생산 기반 확충을 통해 농산물 가공 및 수출에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대담=김성규부장/정리=이성철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2013-04-24 이성철

[인터뷰… 그]'취임 100일'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

자중지란 위기에 '사이후이' 각오정부조직법 협상 교착 위기속에도인사청문회 도덕성 검증 등 최선黨계파갈등 우려엔 "사심 버려야"30대 정치입문 남양주에서만 3선여전히 수첩에는 지역현안 빼곡열악한 지역교통 개선 위해 노력지하철 4호선 확정의 감동 잊지못해과도한 규제로 인한 역차별 등경기지역 현안에도 관심일각선 차기 도지사 후보로 점쳐원내대표 연임 목소리 '행보' 고민지난해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내리 패한 민주통합당의 모습은 그야말로 자중지란이었다. 한치앞도 보이지 않았다.지지자들은 등을 돌렸고 패배 원인을 둘러싼 계파 대립이 격화되면서 금방이라도 와해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당장 당을 추스르고 끌고 나갈 지도부가 문제였다. 곳곳이 부서지고 구멍난 '민주호'를 이끌고 암흑속을 헤쳐 나간다는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누구 하나 쉽사리 전면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누구는 이런 이유로 안되고 막상 할만한 인사는 저런 이유로 머뭇거렸다.원혜영·유인태·박지원 의원 등 당 중진들이 움직였다. 원내수석부대표를 역임하면서 보여준 대여 협상능력과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고루 지지받는 통합능력을 가진 박기춘(남양주을) 의원을 주목했다.박기춘 원내대표는 그렇게 등장했다. 취임 100일을 갓 넘긴 박 원내대표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만났다.┃편집자 주'사이후이'(死而後已·죽은 뒤에야 일을 그만둔다).박 원내대표는 '100일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28일 원내대표로 선출될 당시에는 대선 패배에 대한 국민의 비판속에 머리숙여 사죄하는 마음뿐"이었다며 "그동안 변화의 한복판에서 폭풍을 헤쳐왔다.'사이후이'의 각오로 일했다"고 되돌아봤다.'민주당 구원투수'로 나선 박 원내대표 앞에 놓인 과제는 크게 3가지였다. 민주당의 혁신과 박근혜 정부에 대한 협조 및 견제 등의 관계 설정, 그리고 비록 대선에서 패했지만 선거기간 내놓은 공약에 대한 대국민 약속 실천 등이 그것이다.박 원내대표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을 만장일치로 합의 추대해 혁신의 교두보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당초 민주당은 박 원내대표에게 비상대책위원장과 원내대표를 겸임하는 안을 내놓았다. 강력한 단일 리더십으로 '민주호'를 수리해 정상화시킬 것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는 욕심 부리지 않고 비대위원장을 별도로 둘 것을 설득한 끝에 문 비대위원장을 추대하며 변화와 책임의 깃발을 들었다.박근혜 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매일 인내하고 양보하고 결단하며 정부조직법을 타결, 대화와 합의의 정치 이정표를 세웠다고 자평했다. 박 원내대표는 "인사청문회에서는 국민의 눈높이를 기준으로 철저히 검증했다"며 "부도덕한 인사의 임명 시도에 대해 국민의 명예를 걸고 막아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대선공약과 관련해서는 경제민주화, 복지확대, 한반도 평화 등의 국민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여야 대선공통공약 실천특위' 구성을 제안해 관철시켰다. 박 원내대표는 "100일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내디뎠다"고 말했다.박 원내대표에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 당시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3대 요구안을 제시했지만, 새누리당은 물론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선이 되돌아왔다.박 원내대표는 "꽉 막힌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고육지책을 낸 것이었다"며 "공정방송을 지켜내고 조속히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잠못 이루는 나날"이었다고 회상했다.하지만 '위기'는 박 원내대표의 원칙과 뚝심앞에 허물어지며 전화위복으로 되돌아왔다. 새누리당과의 협상 마지막 날, 박 원내대표는 문을 걸어 잠그고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를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형님', '삼촌'으로 모시겠다는 읍소 작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 원내대표는 "정부조직법 협상 막바지에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여당 원내대표부를 압박했다"며 "되돌아보면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고 웃어보였다.우여곡절끝에 도출된 정부조직법 협상안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별다른 이견을 표시하지 않았다.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이고 실행 가능한 안을 도출한 뒤 이를 일관되고 꾸준하게 실천하는 박 원내대표에 대한 신뢰의 표출이다.박 원내대표는 취임 당시 주 1회 이상의 의원총회 개최를 약속했다. 독단적으로 또는 몇 명이 결정하기보다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전체 의원들의 총의를 이끌어낸다는 취지다. 박 원내대표는 현재까지 의원총회 약속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박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박 원내대표는 "권위주의적이지 않았다. 소통하고 경청하려는 진정성을 보여줬다.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도 할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호평했다.인사문제에 대한 사과에 대해서는 "대통령도 이제 바꾸겠다,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뜻을 야당과 국민에게 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 인사라인의 엄중 문책 등을 통해 인사참사의 늪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시길 바란다"는 요구도 빼놓지 않았다.박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향해 "대화와 합의의 정치를 하자"며 "청와대가 조금만 바뀌면 대화와 합의의 정치를 뿌리내리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민생과 변화를 위해 여야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정치를 하자"고 촉구했다.민주당에 대해서는 "의원들 개개인의 사심이 없어야 한다. 욕심 때문에 세를 불리고, 계파를 만들어 이용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며 최근 계파갈등을 우려했다. 이어 "지난 대선배패로 민주당이 더욱 밉고 부족하게 느껴질 것"이라며 "민주당 쇄신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믿고 기다려달라"고 호소했다.박 원내대표는 30대 초반에 남양주지역 국회의원실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군 제대후 농협에 근무하면서 공무원들의 각종 부조리와 약자가 권력층에 의해 피해를 받는 현장을 목격했다. '정의'를 곧추세워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아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청년의 혈기'는 경기도의원을 거쳐 3선으로 이어졌다. 그 사이 당 사무총장,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원내수석부대표 등을 두루 경험했다. 국회 지방3정(재정·행정·의정) 발전연구회, 국회 한·몽골 의원친선협회, 국회 한·중 정치경제포럼, 국회 지하철4호선 조기착공 국회의원 모임 등의 대표도 맡고 있다. 정치 신인들에게는 하나의 '텍스트 또는 롤 모델'이 되기에 충분한 이력서다.박 원내대표는 "지난 17·18대 국회에서 여야간 몸싸움이 많았다"며 "당시 정치인으로서 참담함을 느끼며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반대로 "국민이 진정 원하는 정책과 입법을 여야 합의로 처리할 때와 지역구의 현안들을 하나둘 해결할 때에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특히 박 원내대표는 지역구에 대한 진한 애정과 현안 해결에 대한 무한책임을 숨기지 않았다. 박 원내대표는 "17대,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 때만 해도 지역구의 교통환경이 매우 열악했다"며 "국도 47호선 확장사업과 지하철4호선 등을 확정지었을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박 원내대표의 수첩에는 여전히 지역현안이 빼곡히 적혀있다.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이 종점인 지하철 4호선을 남양주까지 연장', '인구 및 도시 발전 속도에 비해 미흡한 교통 등의 인프라 구축을 통한 남양주의 균형발전' 등이 그것이다. 청년실업, 주택·교통문제, 개발제한구역 등의 과도한 규제로 인한 역차별 등 경기도 현안에 대한 관심도 크다.박 원내대표는 군복무기간을 제외하고 현재 살고 있는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를 떠나본 적이 없다. 국회의원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술, 담배도 끊었다. 아침 6시에 국회에 나와 1시간 운동을 한 뒤 신문, 방송을 통해 지역현안과 정치현안을 꼼꼼히 챙긴다.대여문제에 있어서는 '독일 병정형'에 가깝지만 일상생활은 '모범생' 그 자체인 셈이다.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 깨끗한 정치인·지역민들의 신뢰를 듬뿍받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배경이다.박 원내대표는 정치인으로서의 좌우명을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고 소개했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하자는 다짐을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봄바람'은 박 원내대표를 차기 경기도지사 민주당 후보쪽으로 실어나르고 있다. 당내에서는 전임 원내대표의 잔여임기 4개월을 넘어 연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박 원내대표는 "당·국회 쇄신과 정치 혁신 등에서는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다. 솔직히 시간이 더 있었으면 하고 아쉽게 생각한다"면서 "이것저것 고민중이다"고 향후 행보에 대한 말을 아꼈다.글=김순기 서울정치부장 /사진=조형기 프리랜서■박기춘 원내대표는?■ 1956년 3월21일(음력) 남양주 출생 ■ 경희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 제4·5대 경기도의원 ■ 경기도의회 민주당 대표의원 ■ 제17·18·19대 국회의원 ■ 열린우리당 사무총장 ■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 민주당 원내대표 ■ 한국리틀야구연맹 명예회장 ■ 국회 한·중 정치경제포럼 대표 ■ 국회 한·몽골 의원친선협회 회장

2013-04-17 김순기

[인터뷰… 그]송도캠퍼스와 함께 '제3의 창학' 준비하는 정갑영 연세대 총장

선교사가 세운 대학… 교육과 의료 선교가 목적국제도시가 되려면 규제가 적어야송도를 유엔국제도시, 아시아의 제네바로…몇 년 안에 연세대가 인천의 자랑이 되도록 할 것延仁 프로젝트와 RC프로그램은?멘토링 통해 봉사체험 기회제공신입생들 일정기간 송도서 교육융합프로그램 확대도 병행 추진정총장이 말하는 자율과 책임은?국제학교처럼 학비규제 없애고소외계층 선발·장학금 제도 등사회적 책임으로 문제 해결해야연세대는 경제자유구역인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제3의 창학'을 준비하고 있다. 말뿐인 구호가 아니었다. 당장 2013학년도부터 연세대 신입생은 한 학기씩 송도 국제캠퍼스 기숙사에 거주하며 RC(레지덴셜 칼리지) 프로그램에 따라 교육받는다.내년부터는 약 4천명의 신입생 전원이 입학 후 1년간 송도 국제캠퍼스 RC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서울에 소재한 대학이, 그 중에서도 소위 '명문대'로 분류되는 학교가, 서울 바깥의 '제2캠퍼스'를 기반으로 한 대학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실행 계획을 마련해 추진한 사례는 없었다. 그 중심에 정갑영 총장이 서 있다. 그를 25일 오후 송도국제캠퍼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이날 인터뷰에 앞서 정 총장은 인천시 남동구 만수초등학교에서 인천시·인천시의회와 공동으로 '연인(延仁) 프로젝트 출범식'을 개최했다.연세대와 인천의 앞글자를 따 붙인 이름인 '연인 프로젝트'는 연세대 학생들이 매주 한 번씩 인천 초·중·고교생(43개 학교 2천25명)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공부하고, 공연을 보고, 체육활동을 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정 총장은 연인 프로젝트가 대학 위주의 일방적, 시혜적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강조했다."저희 대학은 선교사들이 세웠습니다. 교육과 의료 선교가 목적입니다. 학생들에게 기독교적인 섬김의 리더십을 가르치는 게 중요한 목표입니다. 강의실에서도 가르칠 수 있지만, 학생 개개인이 현장에서 체험하면서 남을 섬길 수 있고, 봉사할 수 있고,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학교가 만들어줘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연세대 신촌캠퍼스는 서대문구 지역 어려운 학생들과 함께 하는 '드림스타트'를 진행하고, 원주캠퍼스는 강원도 탄광 지역 아이들을 위해 방학 기간을 이용해 '머레이 캠프'를 열고 있습니다."정 총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3의 창학'을 얘기한다. 최초의 근대 의료기관인 제중원(1885년),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인 연희전문(1905년)이 설립됐을 때가 제1의 창학, 1957년 연희전문과 세브란스가 연세대로 통합된 이후를 제2의 창학으로 본다면, 송도 국제캠퍼스 개교와 함께 제3의 창학을 열겠다는 것이다."128년 전과 비교할 때 지역적 환경과 대학교육 환경이 변했습니다. 이제 세계 대학과 경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슬로건으로 내건 게 '아시아의 세계 대학'입니다. 이게 제3의 창학의 중요 목표입니다. 과거에는 수동적으로 국내에만 안주해도 됐지만 이제는 아닙니다.저희 언더우드 국제대학을 보면 외국 학생이 30%를 차지합니다. 60개국에서 학생들이 와 있습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송도 국제캠퍼스에 더 만들자는 겁니다. 그래서 글로벌 명문대학과 당당히 견줄 수 있게 하는 게 제3의 창학의 핵심적 내용입니다."제3의 창학을 이끄는 핵심으로 정 총장이 내세운 건 송도 국제캠퍼스 RC 프로그램이다. RC 프로그램은 오래 전부터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명문 대학이 운영하고 있는 교육 모델이다. 정 총장이 송도에서 RC와 함께 구상하는 건 융합 프로그램 확대다."미국 아이비리그 대학과 옥스포드, 캠브리지 등 선진국 주요 대학이 도입한 RC를 송도에서 기본적으로 합니다. 내년부터는 요즘 추세에 맞춰 여러 학문이 융합되는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입니다. 신촌에서 한 200명 학생이 송도로 완전히 이전합니다.그동안 우리 대학이 기존 학과간 벽이 많고, 서로 교류가 적고 그랬잖아요. 융합 프로그램 학부 개설은 연세대가 새로운 변화에 맞춰 글로벌 경쟁력을 만드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정 총장은 인터뷰 내내 대학의 '자율'과 '책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우선 그는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한국뉴욕주립대 또는 채드윅 국제학교만큼의 자율성만 줘도 연세대가 10년 내 글로벌 톱 50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자율은 예산의 자율성을 뜻하는 말이었다.정 총장에 따르면 정부가 학생 1명에 쓰는 연간 예산이 초등학교 600만원, 고등학교 1천만원이다. 사립 유치원 중에는 등록금이 1천만원을 넘는 곳도 있다. 그는 "연세대는 학부 교육만 보면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를 초빙하려 해도 10억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고도 했다."채드윅 등록금은 우리보다 4~5배 많습니다. 한국뉴욕주립대는 우리보다 2~3배 높지요. 국적이 한국대학이라는 이유로 규제가 많아요. 이것을 풀어달라는 겁니다.사립대 등록금을 올리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어떻게 하냐고 하죠. 그 대신 연세대가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엊그제 하버드대 총장이 한국에 왔는데, 자기네는 연수입 6만달러 이하 학생들 책임진다고 하더라고요.우리 대학은 작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학생들에게 4년 동안 장학금을 줍니다. 정말 좋은 학생 자유롭게 데려오고, 학교 교육 수준에 맞춰 등록금을 많이 받는 학생도 있어야 합니다. 자율과 책임 두 개가 함께 나가야 한다는 거죠."연세대는 내년도 입시부터 기초생활수급대상자 40명을 성적을 고려하지 않고 뽑을 계획이다. 연세대는 과거 기초생활수급대상자 100명 정원을 두고 학생을 선발한 적이 있었는데 '쿼터'를 100%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그만큼 대학 입시 장벽이 저소득층에 높다는 겁니다. 이게 참 불편한 진실입니다.한국 사정이고요. 이 계층의 아이들에게 명문대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거기서 돈 걱정하지 않고 다닐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계층간 사다리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40명은 성적뿐 아니라 여러 가지 재능을 봐서 뽑도록 할 겁니다.학력이 낮은 애들이 입학하면 별도 교육하는 역할을 해 줄 것입니다. 저는 지방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제 가정환경이나 사회적 배경때문에 이것을 추진하는 게 아닙니다. 명문대학으로서 사명입니다. 오바마, 클린턴 가정환경 보세요. 미국 교육제도가 그 사람들 아이비리그로 가게 만들었습니다.미국에는 윌리엄스칼리지라고, 교육 수준이 높아 입학 경쟁률이 꽤 치열한 학교가 있는데, 그곳 총장을 만났을 때 감동받았습니다. 그 대학에서는 집안에서 3대에 걸쳐 대학을 한 명도 못 보낸 학생을 찾아 입학시킵니다. 우리 사회가 그것을 열어줘야 합니다."연세대 송도 국제캠퍼스에는 유엔 지속가능개발센터(UNOSD)가 입주해 있다. 정 총장은 지난 12~17일 미국 뉴욕을 방문했다.유엔 사무국이 지원하고 예일대, 프린스턴대, 컬럼비아대, 뉴욕대, 펜실베이니아대 등 5개 대학이 주관하는 대학 총장 회의인 '글로벌 콜로키엄 2013'에 초청을 받아 방미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바바툰데 오소티메힌 유엔 인구기금(UNFPA) 총재 등을 만나 송도 국제캠퍼스와 유엔의 협력관계 구축 방안 등을 논의했다. 그가 본 유엔도시 인천의 가능성과 조건은 무엇일까."인천경제특구가 지금보다 훨씬 규제가 적은 도시로 가면 좋겠어요. 우리가 왜 스위스처럼 못 만듭니까. 그 나라 도시들 IOC(올림픽위원회), WTO(세계무역기구)로 먹고 살아요. 호텔도 엄청 비쌉니다. 유엔분들 만나 보면 스위스나 뉴욕이나 그런 지역 다 집값이 비싸다고 합니다.우리도 송도국제도시에 지금 (유엔기구) 올 수 있는 데 굉장히 많아요. 국제도시가 되려면 여러 가지 여건이 있어야 하는데, 규제가 적어야 합니다. 교육과 의료 부문에서 규제를 완화해야 합니다. 내국인 위화감을 주는 게 걱정이라면, 경제특구에서만이라도 차별적으로 해야 합니다. 연세대가 외국인 교수 유치할 때 그분들이 보는 건 의료, 그 다음이 교육입니다.송도에 그것만 만들면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송도 GCF 사무국, 장기적으로 국가 안보에도 기여합니다. 송도를 유엔 국제도시, 아시아의 제네바로 만들어야 합니다."정 총장은 "불과 몇 년 안에 연세대가 인천의 자랑이 될 수 있게 할 거다. 이 말은 꼭 써달라"고 했다."작년에 가끔 인천에 와보면 연세대와 인천이 약간의 묘한 갈등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인천에 와서 그랬습니다. 연세대와 인천은 서로 갈등 관계가 절대 아니라고. 같이 협력해서 국제도시 만들자고 했습니다. 앞으로 인천은 연세대 하나 때문에 서로 주고받는 게 엄청나게 많아질 겁니다."대담=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정리=김명래기자·사진=임순석차장

2013-03-27 경인일보

[인터뷰… 그]'재단법인' KBS교향악단 박인건 초대사장

악단 분위기와 비전은지난달 11개월만에 정기연주 재개갈등 원인이었던 지휘자 선임 신중단원들의 화합·협력 이끌어내고파1세대 공연기획자인데?바이올린 전공했지만 기획에 관심예술의전당·道문화의전당 두루거쳐연주 잘했으면 이렇게 안풀렸을지도재단법인에 대하여충무아트홀 등 재단화 수차례 경험출연금 지원약속만 잘 지켜준다면재원도 사업도 풍성… 장점 참 많아숨바꼭질하듯 봄이 아직 남아있는 겨울의 기운에 숨어들어 언제쯤 '짠'하고 등장하면 좋을 지 가늠하고 있는 것 같은 계절이다.더디 오는 봄에 약이 오를 수도 있지만, 이럴 때가 바로 '기다림의 즐거움'을 만끽할 좋은 때다. 한겨울 맹추위에 떨면서는 어디 감히 봄을 기다릴수조차 있었던가. 아직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봄은 우리에게 기대와 설렘 그리고 화창한 봄날을 즐기는 데 필요한 것들을 준비할 시간을 먼저 선물해두고 우리를 만나러 오고있다.아직은 두툼한 외투가 필요했던 지난 5일 서울 여의도에서 (재)KBS교향악단 박인건 사장을 만났다. 그의 눈빛은 '이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지난해 지휘자와 단원들간의 갈등으로 매서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단원들에 대한 연민과 믿음도 엿보였다. 그는 단원들 사이에 남은 갈등과 앙금을 씻어내고 재단법인으로 전환한 이후의 교향악단을 이끌어갈 책임을 안고 지난 9월 사장으로 취임했다."처음 출근하던 날 환영식을 아주 요란하게 치렀죠. 꽹과리치며 물러가라고 하더라고요(웃음)."반년 전의 일이라 무뎌진건지, 그만큼 상황이 잘 정리돼서 그런건지, 꽤 아팠을 기억을 박 사장은 웃으며 이야기했다. "새로 뽑은 담당 국장은 이 사태를 보고 그만뒀어요. 임명장 받기도 전에 자기가 죽어나가는 꿈을 꾸었다면서요. 그만큼 분위기가 안좋았죠."협동과 화합의 대명사인 오케스트라가 화합을 잃었으니 연주도 없었다. 지난해 3월부터 연말까지 KBS교향악단의 연주 일정표는 썰렁하다. 10월의 캘린더는 아예 텅 비어있다.지난해 3월 예정돼 있던 제 666회 정기연주회는 결국 열리지 못했고 11개월 만인 지난 2월 '667회' 정기연주회를 개최했다."재단으로 전환한 뒤 4차례 연주회를 했어요. 연주회 평가에 대해서는 연주자 스스로가 가장 잘 알죠. 공백도 길었고 주변의 우려도 많았지만 모두가 원했던 일이기도 하니 앞으로 더 좋은 연주를 들려드릴 겁니다."KBS교향악단 사장으로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3가지 미션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가 단원 화합이었어요.두번째는 지휘자를 선임하는 겁니다. 세번째는 관객 개발과 새로운 시스템 도입, 연주 확대 등 사장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여러가지 일들이에요." 갈등의 원인이었던 만큼 지휘자 선임은 민감한 문제였다. 그가 찾은 해답은 '궁합'이다."지난해의 사태를 잘 마무리하려면 단원들과 궁합이 잘 맞는 지휘자를 선임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누가 봐도 다른 말이 안나오도록 적임자들로 지휘자 추천위원회를 구성했어요. 물론 단원대표도 포함됐고 전원 합의를 봤어요. 지금은 10명의 후보군 중 3명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상반기 중에 선임지휘자를 선임할 계획이에요."그는 이어 마지막 미션이자 재단법인으로서 KBS교향악단의 비전을 설명했다. 한 때 연주자로서의 꿈을 담아, 우리나라 1세대 공연기획자로서의 연륜을 바탕으로, 여러 문화기관을 거치며 쌓은 노하우를 동원해 구상한 KBS교향악단의 미래를 그는 자신의 과거와 함께 하나씩 이야기해 나갔다.박 사장은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닌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공연기획자'라는 것이 직업인 목록에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연주를 잘 했으면 이 길로 안왔을지도 모르죠(웃음).바이올린 덕분에 대학생 시절에 차도 몰고 다녔고, 대학 교향악단에서 악장도 했었어요. 그러나 모두다 연주자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 시절에는 음악하는사람 중에 매니지먼트나 기획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죠.그래서 맞고 틀리고가 없었어요. 정답지가 작성되지 않은 분야였죠. 내가 하는게 답이니 얼마나 재밌었겠어요."그는 80년대 초부터 공연기획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제문화회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어요. 월급을 15만원 받는데 쓰는건 80만원이었죠. 배운다고 생각하고 1년반쯤 일하다 친구 셋이 모여 '아트피아'라는 회사를 설립했어요."그렇게 우리나라 공연기획분야 1세대의 대열에 합류한 그는 여러가지 다양한 공연을 시도했다. "첫 해 수상음악회를 기획했어요. 배 위에서 음악을 듣고 와인파티도 즐기는거죠. 표는 매진이 됐는데 결국 공연은 못했어요. 공연을 앞두고 공무원들이 배 위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다 불이 나는 사고가 난 거예요. 그 뒤로 배에서 가무가 금지됐죠. 허허."2년동안 아트피아를 운영한 그는 예술의전당으로 자리를 옮겨 13년동안 근무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도 일했다. 직함은 '공연기획부장'이었다. 다음 행선지는 충무아트홀이었고 그는 40대에 '사장'이 됐다."지금 되돌아보면 예술의전당은 친정같고, 세종문화회관은 시집같아요. 충무아트홀은 처음 사장으로 일했던 곳이라 그런지 눈치보지 않고 정말 열심히 일했던 곳이에요. 경인지역과도 인연이 깊다.2006년부터 4년동안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일했고, KBS교향악단 사장으로 선임되기 바로 전까지는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관장으로 일했다.그는 특히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으로 일했던 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이룬 시간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전당의 여러가지를 개선하려고 노력했죠. 제가 처음 취임했을때 도내 24개 산하기관 중 기관평가 결과가 꼴등이었어요. 그게 1등으로 바뀌기까지 모든 직원들이 다같이 일하던 그 때가 정말 좋았어요."그는 수도권의 여러 극장을 두루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직장은 바뀌었지만 저는 지금까지 죽 한가지 일을 하면서 살았다"고 말한다. 공연기획이다.공연기획 말고 또 한가지 그가 지속적으로 해온 일이 있다면 '재단만들기'다. 월급 만원을 더 받고 세종문화회관에 가서 재단화 작업을 도왔고, 충무아트홀에도 재단으로 전환하면서 합류했다. 경기도문화의전당도 그가 취임한 2006년 재단법인이 됐고,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도 재단화하는 조건으로 옮겨갔다.KBS교향악단도 재단화 이후 그가 초대 사장으로 선임됐다. 재단화 과정을 여러차례 지켜본 그는 어느때보다도 단호한 목소리로 '재단의 허와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약속만 잘 이행되면 재단은 좋은 점이 무척 많아요. 재원도 풍부해지고 사업도 잘 할 수 있고.세종문화재단도 과거 서울시에서 30억원씩 받다 재단으로 바꾸고 나서 연간 160억원씩 쓰고 있어요. 그러나 재단화를 핑계로 공무원들이 출연금 지원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죠. 예를 들어, 오는 도립극장의 일년 예산이 150억원이라고 치면 연말에 꼭 10억~15억원이 남아요.사업해서 번 돈도 10억원정도 되면 이 돈 25억원을 그대로 지자체에 반납해야 해요. 25억원이 있지만 돈없다며 공연도 못나가는 일이 생기기도 하죠. 그런데 재단이 되면 이 돈을 반납하지 않아도 돼요. 그러니 공연도 더 할 수 있고 이에 따른 수입도 생기겠죠. 수입이 늘면 단원들한테도 그만큼 더 돌아가고요.여기까지는 참 좋은데, 이렇게 되면 공무원들이 '연간 20억~30억씩이 더 있으니까 출연금을 조금 덜 주자'라고 결정해버려요.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되는거죠."이런 경험때문인지, 그는 보조받는 예산을 활용하는것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을 많이 고민한다고 한다. "말이 사장이지 우리같은 사람들은 사실 '고급거지'예요.기업콘서트 등을 통해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입니다. 그런데 또 이런걸 두고 너무 상업적으로 변하는거 아니냐고 걱정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KBS교향악단이 호텔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곳이 아니잖아요.오케스트라라는 단체 자체의 특성상 기본적으로 우리는 상업이랑은 관계가 멀어요." 그의 말처럼 KBS교향악단은 병원을 찾아가 의사와 환자, 보호자들을 위해 무료 공연을 여는 클로버(K-lover)음악회 등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지난해보다 조금 더 늘어난 연간 80회의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교향악단의 첫번째 목표이자 마지막 목표는 음악입니다. 좋은 음악을 많이 들려주는 것이 모든 것의 바탕이죠. 앞으로 한중교류 음악회나 작곡가 펜데레츠키 초청 공연, 올해 정전6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 바그너 200주년 기념 음악회 등을 준비하고 있어요."미뤄뒀던 연주에 대한 내실을 기하는 것만큼 그가 신경쓰고 있는 것은 시스템의 변화다. 특히 그는 서울뿐 아니라 수도권 전역에서 연주회를 열 계획이다. "그동안 KBS홀을 거점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해는 경기도 전역의 공연장을 방문하며 관객을 만날 예정입니다. 21~22일 열리는 668회 정기연주회도 오산문화예술회관에서 먼저 열립니다."아직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앞에는 이미 활짝 펼쳐진 KBS교향악단의 미래에 그는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어깨가 무겁다. "음악가 출신이 음악하는 단체의 사장이 된 건 처음이에요. 무척 영광이면서도 그만큼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과 경험을 통해 배운게 있으니 자신있습니다.주변사람들한테 자주하는 말인데요. 사람은 말하는대로 되는 법이에요. 저는 늘 '네 제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살았고 그래서 정말 그렇게 됐습니다. 우리 KBS교향악단, 앞으로 잘 될 겁니다."글·사진=민정주기자

2013-03-20 민정주

[인터뷰… 그]국회 통과 '군공항 이전 특별법' 대표 발의한 김진표 의원

피해 어느정도인가2만6천가구 수십년 재산권행사 못해4km거리 권선구청 훈련땐 통화 불가수화기 너머 상대 "전쟁났냐" 묻기도국회 통과하기까지수원만으론 역부족 광주·대구와 맞손매각금 신공항 개발 활용 아이디어로에산문제 난감해하는 국방부 설득남아있는 과제는?이전 최적지 화성 시화호 간척지 일원주민 동의·기존부지 활용 고민해야새 비상활주로 건설 강행은 '낭비'땅! 땅! 땅!' 지난 5일 국회 본회의장. 도심 주변 군 비행장 이전을 골자로 한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통과됐다. 표결에 참여한 여·야 의원 237명 중 찬성의원은 232표. 기권 5표를 제외하면 사실상 만장일치였다.법안을 대표발의한 국회 국방위원회 김진표(민·수원정) 국회의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먹을 불끈 쥔 채 "됐다"고 짧게 되뇌었다. 수원 시민의 숙원사업이던 군 공항 특별법은 그렇게 통과됐다.지난 6일 경인일보 본사 편집국장 집무실에서 김 의원을 만나 특별법 의미와 그동안의 소회 등을 들어봤다.'슈웅~쿠쿠쿠쿠'.수원 제10전투 비행단 입구와 4㎞ 가량 떨어진 권선구청. 공군 수원 비행장을 이륙해 훈련 중인 전투기 소음으로 전화통화가 불가능하다. 바로 옆 사람에게 말이라도 하려면 고막을 찢겠다는 기세로 목청을 높여야 한다. 75웨클의 소음에 오죽하면 수화기 너머 상대방이 "전쟁이 났냐"고 물을 정도.반복되는 소음 탓에 수원 비행장 주변과 작전 반경 안 시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지만 '안보논리' 앞에 참고 살아야 했다. 그나마 수십년 소음피해에 대한 턱없이 모자란 보상금이 찔끔찔끔 지급되기 시작했다.소음 피해 뿐만이 아니다. 수원 비행장 주 활주로가 피폭됐을 경우를 대비한 2.7㎞ 짜리 비상활주로 덕분에 수원 권선동과 세류동, 장지동 등 수원지역 3.97㎢와 화성시 태안읍 3.91㎢가 비행고도제한구역에 묶였었다. 1983년 지정된 이후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비상 활주로 덕에 2만6천여가구가 재산권 행사를 못하고 살았던 것.이런 사정에서 특별법 통과는 수원 비행장 이전의 근거를 마련한 마중물이다.김진표 의원은 "수원 비행장 이전의 근거인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은 반세기 수원시민의 숙원이 해결된 것"이라며 "그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17대 국회에서는 예산 당국의 반대로 이전비용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법안 마련이 난관에 부딪혔었다.그래서 18대 국회 들어와 '수원만 해서는 (법안발의가) 안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대구 공군 비행장이 속해 있는 유승민 의원과 광주의 김동철 의원 등과 함께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하지만 18대 국회때 국회 국방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까지 통과했으나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일부 국방위원들의 문제제기로 결국 회기가 만료돼 자동폐기됐었다.이어 "이후 국방부를 설득해나갔는데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예산이었다. 비행장 한 곳을 옮기는데 최소 3조~4조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행장 이전 비용을 순수하게 예산에서 따오려면 결코 안된다. 무기구입 예산이 30조원 가량인데 부족한 국방비에서 비행장 이전에 필요한 재원까지 마련하려면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고 설명했다.이에 김 의원이 꺼내든 카드가 '기부 대 양여' 방식이다. 새로운 공항을 개발하는 비용을 기존 공항의 매각 대금으로 충당하는 것이다.그는 수원 비행장 부지의 개발금으로 12조3천억원 가량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새로운 부지로의 이전비용에 최대 5조원 가량을 사용해도 나머지 8조원의 개발이익금을 국방력 강화에 쓸 수 있다는 계산이다.이런 그의 아이디어에 국방부 역시 신이 났다는 후문이다.김 의원은 "기부 대 양여방식의 카드가 나오니 (최신 무기·시설로의) 국방개혁도 가능하게 되더라"며 "하지만 법안이 지난해 11월 국회 국방위원회를 통과했을 때만 해도 '포퓰리즘 입법'이란 지적도 받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군 공항 주변의 주민 고통을 생각하면 이는 지역 이기주의가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그러나 현실적으로 이전 후보지 확보의 어려움과 후보지 주민들의 반발 등이 예상돼 실제 이전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법안이 통과되고 일부 언론사들은 이런 난제를 집중 부각시키기도 했다. 실제 지난 2008년 전남 무안으로 옮기려 했던 광주전투비행장은 무안지역 주민의 반발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김 의원이 현 상황에서 꼽는 최적의 이전 부지는 '화성 시화호 간척지' 일원이다.유사시 적기의 공습에 대비해 경비작전을 펼치는 초계(哨戒)역할을 하는 수원 비행장의 군사적 역할상 화성 시화호 간척지가 수원 비행장과 위도가 비슷해 북한 평양 순안공항에서 이륙, 우리나라 영공을 침범하는 북 전투기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김 의원은 "화성 시화호 간척지는 부지가 국유지고 주변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비행 훈련에 따른 민원발생 소지도 적다"며 "특히 시화호 간척지는 이미 지난달 김문수 지사가 수원 비행장을 방문해 설명한 대로 6.5㎢ 수준인 비행장을 198.3㎢로 대폭 확장하는게 가능하다. (국회 국방위로 온 후) 공군에서도 내부 가능성을 타진해본 결과,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그의 설명대로라면 부지가 워낙 넓다 보니 현재 제기되는 인천 국제공항, 김포공항과 화성 시화호 간척지 신 군공항간 공역(空域) 충돌문제도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앞서 장경식 10전투비행단장은 "비행장 이전 문제는 단순히 부지면적으로 따질 수 없다"며 "지역발전을 위해 이전해야 하지만 사전 검토가 필요한 것 같다. 경기도와 국방부·공군본부가 정말 긴밀히 연구할 사항"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그러나 실제 이전이 이뤄지기까지 주민 동의를 얻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당장 화성 시화호 간척지로의 이전이 공론화되면 화성 송산면과 안산시 단원구 지역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할 수 있다. 이전을 희망하는 현 수원 비행장 주변 시민과 자칫 민민(民民)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김 의원은 "군공항 이전 예정지의 주민 반대가 심하면 영종도 인천 국제공항처럼 인공섬을 만든 후 비행장을 이전하는 방안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전투기는 상당한 양의 미사일을 실은 채 이착륙을 하기 때문에 인공섬이 더욱 안전할 수 있고, 비행장이 들어설 주민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수원 비행장이 이전하게 되면 현재의 부지는 어떻게 될까.그는 "정치에 꿈을 꾼 이유가, 경제관료 생활을 하다보니 대한민국의 경제력 향상의 길을 만드는 것이었다"며 "국력은 경제력이다. G7국가에 진입하려면 세계 최첨단의 1~2등 하는 기업이 얼마나 많이 투자하냐가 성패다.최첨단 기업을 결정하는 기준은 석·박사급의 유수한 기술인력, 엔지니어들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냐다. 이런 인재들은 회사를 골라가는 능력을 갖춘 자들이다. 고액 연봉의 이들은 절대 가족과 떨어져 안 산다. 가족과 같이 살 수 있는 지역에서 근무하기를 선호하는데 수도권밖에 없다"고 운을 뗐다.이어 "수도권에 경제 지도를 그리면 파주에 LG디스플레이가 입주해 있다. 고양 일산신도시에서 파주까지는 15분 거리다. 남방 한계선은 어딘가 하면 현재 삼성전자가 들어서 있는 수원 비행장 벨트다. 수원 비행장 이전시 주변 공용지를 묶어 대규모의 최첨단 클러스터 조성이 가능하다.광교테크노밸리와 삼성전자, 화성 향남제약단지 및 경기대, 아주대 등을 묶어 반도체와 IT, 제약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게 가능하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 버금가는 클러스터 조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다음달 착공하는 수원 비상활주로 건설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도 제기했다.김 의원은 "특별법 통과로 이르면 수년새 이전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진 수원비행장에 비상활주로를 새로 건설하는 것은 심각한 예산낭비"라며 "특히 주 활주로 옆으로 비상활주로가 이전될 경우 본래의 기능과는 달리 사실상 '보조활주로' 역할을 하게 되는데다 주변 소음도 한층 심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또 "이미 타지역 군 비행장에서 비상활주로를 폐쇄하는 대신 주활주로 옆에 새로운 비상활주로를 건설했는데 주변 소음피해가 더욱 심해졌다"며 "기존 비상활주로 폐쇄는 계획대로 진행하되 수원비행장으로의 이전은 보류해야 한다"고 말했다.김 의원은 다음 지방선거에 경기도지사로 출마할 것이냔 질문에는 답변을 피했다. 우선 수원 비행장 이전에물꼬를 튼 현실에 고무된 표정이다. 하지만 다음 그의 행보는 여전히 궁금하다.대담=배상록 정치부장, 정리=김민욱기자 사진= 임열수기자

2013-03-13 김민욱

[인터뷰… 그] 장애인스포츠 활성화 앞장서는 석호현 (사)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 경기도위원장

이번 스페셜올림픽의 성과는장애·비장애인 어우러진 축제스포츠 대회 성공 모델 제시해소외된 '지적장애인 조명' 의미국민들 관심 높이는 방안은자원봉사자·홍보부족 큰문제국내대회 수원 개최 성공시켜고조된 평창 분위기 오래유지지난달 29일과 30일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세계대회가 열린 강원도 평창에서 만난 석호현 (사)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 경기도위원장은 "관람객과 선수가 함께 어우러진 축제다. 우리가 생각했던 행사가 열려 기쁘다"며 희열에 찬 모습이었다.강원도 평창이 동계스포츠의 메카로 발돋움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정부와 강원도에서 가장 크게 생각한 대회는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이 아니었다.강원도민들의 마음은 3번의 도전끝에 유치에 성공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만이 자리하고 있었다.하지만 역대 스페셜올림픽 중 가장 성대하게, 그리고 스포츠와 축제가 어우러진 행사로 준비한 이번 스페셜올림픽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안겨 주고 끝났다. 평창에서 만난 석호현 위원장을 통해 스페셜올림픽의 뒷 이야기와 지적장애인 스포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봤다."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진 축제의 현장이었다."석호현 위원장에게 이번 스페셜올림픽에 대해 묻자 "장애라는 큰 벽을 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진 축제의 현장이었다"고 말했다.그는 "프로스포츠를 제외한다면 국내 스포츠대회는 그들만의 잔치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가 준비할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라는 콘셉트로 준비했다. 대회를 마치고 스페셜올림픽 개최에 함께 했던 분들 모두가 콘셉트로 정했던 것들을 이뤄내서 기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특히 석 위원장은 "장애인 스포츠대회에 국한시키지 않고 비장애인 스포츠대회를 봐도 이렇게 모두 함께 어우러지는 대회는 없었다. 함께 어우러져 모두가 행사를 즐겼다는 것에 있어서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 스포츠대회의 성공 모델을 제시해 준 것 아닌가 생각한다.스포츠대회를 감동의 드라마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번 스페셜올림픽은 하얀 눈처럼 순결한 마음이 담겨 있는 감동의 드라마였다"고 설명했다.석 위원장은 대회의 외형적인 성공보다는 장애인 사회에서도 소외되어 있는 지적장애인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다.그는 "지적장애인들은 그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비장애인들과 차이가 없다. 그래서 사회 속에 감춰져 있는 장애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지적장애인들의 밝은 모습과 순수함이 많은 분들께 알려졌다.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회의 한 구성원이고, 그런 그들이 밖으로 나와 함께 어우러졌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말했다.2013 평창스페셜올림픽이 준비될 당시 스페셜올림픽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지도가 낮아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 어려웠던 순간에 대해서도 물어 봤다.석 위원장은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가 2008년 설립됐지만 첫 번째 시·도 지부는 2011년 12월 경기도스페셜올림픽위원회가 시·도 지부로 인증받으면서부터다. 시·도 지부의 조직이 늦어졌다는 건, 중앙단체가 있어도 지역까지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대회를 준비해 나간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이어 석 위원장은 "조직이 탄탄하지 않은데 예산 확보가 쉬웠을 리 없지 않은가. 나경원 위원장이 국회의원을 지냈기 때문에 국회 차원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이번 대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좋은 취지로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후원단체와 기업, 개인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에 대한 이야기를 접고 전국에서 첫 번째로 시·도 지부로 인증받은 경기도스페셜올림픽위원회의 설립과 활동에 대해서도 소개를 부탁했다.석 위원장은 "주변 분들께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홍보를 할 당시 첫 번째 받았던 질문이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으세요?'였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단체를 맡아 인지도가 낮은 행사를 홍보하고 다니자, 제 개인적인 신상과도 관련이 있지 않냐는 인식들이 많았다. 스페셜올림픽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 취지가 너무 좋아서였다. 좋은 취지의 단체, 좋은 취지의 행사가 묻혀 있는 게 싫어서 참여하게 됐다"고 소개했다.그는 "지난 2011년 11월 도스페셜올림픽위원회 발기인 총회에 참여한 분이 9분이신데, 모두 개인적인 인연이 아닌 단체의 취지에 뜻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분들이 이사가 돼서 '사단법인 경기도스페셜올림픽위원회'를 설립했고 또 그분들과 함께 열심히 홍보에 나서 15개 시·군 지부를 두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도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가장 어려운 점으로 '홍보'를 꼽은 석 위원장은 "지부가 설립됐지만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스페셜올림픽위원회의 활동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함께 활동하실 분들과 행사를 진행할 때 도움을 주실 자원봉사자들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보통 단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예산을 탓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석 위원장은 "좋은 취지의 단체고, 좋은 의미를 담은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예산은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이런 의지를 앞세워 어려운 여건에서도 석 위원장은 평창대회에 도 대표로 50여명을 참가시켰다.그리고 이제는 스페셜올림픽과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제10회 한국스페셜올림픽 전국하계대회 유치전에 뛰어들었다.석 위원장은 "평창대회로 인해 스페셜올림픽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커졌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수도권에서 한국스페셜올림픽 전국하계대회를 개최한다면 성공적으로 마친 평창대회의 분위기를 국민들과 수도권 시민들에게 더 오래 심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유치전에 뛰어들었다"며 유치에 나선 이유를 전했다.그는 "사실 지난해 제9회 대회가 경산에서 열렸기 때문에 제10회 대회는 2014년에 개최되어야 하지만 인천에서 아시안게임이 개최되는 등 국내외 여건이 어려워 올해 개최하게 됐다. 또 평창 대회의 분위기를 이어가자는 측면에서도 올해 제10회 대회 개최에 힘을 실어줬다. 성공한 평창대회의 분위기를 이어 국내 대회도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는 지역은 경기도, 그리고 수원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이어 석 위원장은 "수원시 일원에서 대회를 개최하게 되면 역대 대회 중 가장 많은 950여명의 선수를 비롯해 2천여명이 참가하는 대회로 개최할 계획"이라며 "도내 장애인 스포츠와 도스페셜올림픽위원회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유치에 성공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석 위원장은 "스페셜올림픽은 경쟁보다는 대회에 참가하는 데 의미를 둔다. 늦게 들어오더라도 웃으면서 완주하는 모습에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비장애인 대회처럼 박진감이 넘치지는 않지만 평창대회에서 국민들에게 전해 줬던 감동을 전해 주는 대회가 '한국스페셜올림픽 전국하계대회'다. 그 감동을 전해 주는 중심이 경기도가 될 수 있도록 수원 유치를 이뤄내겠다"고 말했다.석호현 위원장은…(사)경기도스페셜올림픽위원장과 (사)한국유치원총연합회장을 맡고 있으며 아주대학교대학원에서 '방과 후 아동지도에 대한 인식 및 욕구에 관한 실증연구'라는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은 교육인이다.두 단체 외에도 아주대학교 한마음장학회 회장,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겸임 부교수, 학교안전공제보상재심사위원회 부위원장, 국회 보좌진 연구모임 '국회노동연구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글=김종화기자 사진= 하태황기자

2013-02-20 김종화

[인터뷰… 그]바벨 내려놓고 제2의 삶 꿈꾸는 '로즈란' 장미란

현역 은퇴 결심 이유는?체중 부담탓 허리·무릎 관절 쇠약더이상 선수생활 이어갈 자신 없어6년간의 고양시청 선수생활 접기로향후 계획은?박사과정 마치고 재단활동 활발히체육인들에 도움주는 일 하고파IOC위원 자격 요건 준비도 철저히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나를 아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다른 많은 선수들에 관심 나눠주길그간 부모님 희생에 보은하고 싶어"별명이요. 로즈란이 가장 좋은데요. 이제는 푹 쉬면서 사회활동을 펼치고 싶네요."지난달 29일 현역에서 정들었던 고양시청 유니폼을 벗고 공식 은퇴한 '한국 여자 역도의 간판' 장미란(30). 그는 이날 고양시 덕양어울림누리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정들었던 무대를 떠나며 감사의 인사와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그도 그럴 것이 장미란은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 여자 역도를 단번에 세계의 중심으로 올려놓은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장미란은 '여자헤라클레스', '철의 여인', '로즈란' 등 각종 수식어가 따라붙을 정도로 세계 역도계의 뇌리에 깊이 남은 선수였다. 은퇴식 후 장미란과 함께 고양 장미란체육관을 찾아 인터뷰를 했다.아직 은퇴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그는 체육관으로 오면서 시종일관 굳은 표정을 지었다. 평소 해맑은 미소도 이날 따라 무척 우울해 보였고, 간간이 흘러나오는 말도 쓸쓸해 보였다. 그래도 인터뷰에 잘 응해주었다.장미란은 은퇴 소감을 묻자 "역도를 하면서 최고의 시간을 보내 늘 행복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응원해준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장미란재단을 통해 꿈나무들이 큰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그는 지난 2007년부터 6년간 고양시청 소속으로 뛰며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특히 2007년 경기도 대표로 전국체전에서 대회신기록을 세우며 3관왕에 올라 당시 경인일보사가 제정한 '제19회 전국체전 MVP 대상(개인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이에 대해 "고양시청에서 선수생활을 한 지 6년이 넘었는데, 경기도에서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며 "이 기간동안 경기도 홍보대사와 전국체전 MVP 대상까지 많은 은혜를 입은 것 같다"고 전했다.그간 장미란은 은퇴 이유에 대해 '신체적으로 선수생활을 더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정말 사실인지 다시 물어봤다. 그는 "2012 런던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국민의 뜨거운 격려와 응원을 받았다. 그런 응원에 대한 보답으로 더 좋은 기록을 내고 멋있게 은퇴하고 싶었는데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고 말했다.사실 장미란은 무거운 바벨을 들어올리면서 체중 부담이 심했고, 무릎과 허리 등 모든 관절이 쇠약해져 계속 잔병에 시달려왔다.그러나 부상을 뒤로한 채 꾸준히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왔다. "선수가 부상당하면 속상하고 이겨내기 위해 재활에 집중한다. 나는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서도 몸관리를 했다. 그러다 보니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몸도 좋아졌다"고 설명했다.이를 입증하듯 장미란은 무제한급에서도 체중 조절을 잘 한 선수로 꼽혀왔다. "무리하게 체중을 올리지 않으려고 평소 음식을 잘 먹고 영양을 보충했다. 때문에 중도에 부상에 시달리더라도 잘 참고 이겨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화제를 바꿔 애칭에 대해 물어봤다.그러자 "수 많은 별명중에 '로즈란'이 가장 좋다"며 "'여자 헤라클레스'도 정들었지만 국민들이 재치있게 '로즈란'으로 별명을 지어줘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또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청국장, 된장찌개, 나물류 등 전통 음식을 좋아한다. 외국에서 국제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면 항상 어머니가 이런 음식을 해주신다"면서 "나는 음식을 만들지는 못한다. 앞으로 배워 나갈 것"이라며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만약 역도 선수로 성공하지 않았다면 어떤 인물이 됐을까. 장미란은 "학교에 잘 다니고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짧게 언급했다.선수시절 굵직굵직한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수차례 해온 장미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어느 것일까. "2007년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치앙마이 세계선수권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중국 선수에게 패한 뒤 슬럼프에 잠시 빠졌지만 더 좋은 기록을 위해 착실히 준비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그럼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일까. 의외로 간단한 대답이었다. "은퇴 기자회견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나를 사랑해 주셨다. 은퇴를 선언한 선수에게 이렇게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너무 행복했다. 국민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설명했다.장미란은 평소 부모님에 대해서도 "역도를 시켜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선수시절 묵묵히 나를 응원해준 가족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내가 있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부모님의 은덕에 대해 내가 갚을 차례"라고 말했다.앞으로 장미란은 '장미란재단' 활동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을 준비중이다. 또 밀렸던 용인대 박사과정도 시작해야 한다."재단은 혼자만의 활동이 아니라 다른 종목의 대표선수들이 유망주들과 함께 멘토와 멘티로 서로의 인연을 맺어줄 것이다. 또 어린이들에게 스포츠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것이 재단의 목표"라고 강조했다.이어 "단기적으로는 용인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는 것이고, 나아가 스포츠 관련쪽에서 체육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 IOC 선수위원의 자격 요건을 갖출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는 것도 나의 또다른 목표"라고 밝혔다.끝으로 장미란은 자신을 아껴준 국민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난 행복한 사람이었다. 역도 선수로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다. 선수생활을 이렇게 잘 마무리해서 기쁘다"며 "그동안 나에게 베풀어준 사랑을 대한민국 모든 선수들에게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장미란은…장미란은 1983년 10월9일 새벽 강원도 원주에서 장호철씨와 이현자씨의 2녀 1남 중 맏딸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체중이 5.9㎏였던 장미란은 상지여중 3학년 초까지 평범한 소녀로 자라났다. 학교 성적은 반에서 상위권을 유지했고, 피아노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역도를 시작한 때는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98년 겨울방학 무렵으로, 역도선수 출신인 아버지의 권유로 역도계에 입문했다.장미란은 2005년, 2006년, 2007년,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하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우승하면서 무려 5년 동안 세계 여자역도 최중량급을 지배했다. 여자역도의 체급이 현재처럼 굳어진 1998년 이후 세계선수권대회 4연패와 올림픽 우승, 준우승 등의 대업을 이룬 여자 선수는 장미란 밖에 없다. 장미란은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 등 출전할 수있는 모든 국제대회를 제패해 '그랜드슬램'을 이루기도 했다.특히 전성기인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여자 최중량급의 인상·용상·합계 세계기록을 모두 보유해 적수가 없는 강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이후 부상에 시달리면서 2010년부터는 신예들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마지막 무대였던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메달을 따지 못했다.글/신창윤·김성주기자 사진/하태황기자

2013-02-12 신창윤·김성주

[인터뷰… 그]'문화' 매개로 민간외교 나선 장명주 브리징 그룹 회장

"중국의 전문성과 한국의 창의성이 만나면 동양 문화예술의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5일 경인일보를 방문한 장명주(Zhang Ming zhou) 브리징(Bridging)그룹 회장은 한국에 와서 자신의 어릴 적 꿈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그의 어릴 적 꿈은 외교관이 되는 것이었다. 상하이 외국어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외교부에 들어갔을 때는 그 꿈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았다.그러나 외교부의 월급은 너무 적었고 그의 집안 형편은 부유하지 못했다. 2년 남짓 아시아 부서에서 근무하다 그만뒀다. 그리고 1998년 '브리징그룹'을 설립하고 문화, 교육에 관한 홍보를 업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문화를 매개로 한 민간외교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외교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된 2003년부터다."2003년 국제아동도서협회(IBBY)의 중국지부 회장직에 있을 때 한국지부 회장이었던 강우현씨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2006년 중국에서 열리는 세계대회에 초청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때 강우현씨는 따뜻한 내용으로 답장을 보내줬습니다. 무척 감동적이었죠. 그때부터 한국과의 교류가 시작됐습니다."다양한 외교활동과 향후 계획은?나미나라공화국 주중대사로 관광객 유치14세 이하 학생 '소통의 장' 경연대회 동참K-팝 즐기는 아이들 단기코스 유학 추진그는 한국 중에서도 가평 남이섬에서 가장 신나게 활약하고 있다. 인연이 깊은 강우현씨가 남이섬 대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 남이섬이 아니라 '나미나라공화국'이기 때문에 그는 남이섬을 좋아했다."남이섬은 동화 같은 곳입니다. 2006년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했죠. 저는 2008년 그 곳의 주중대사로 임명됐습니다. 중국에 거주하는 나미나라공화국 대사라는 의미죠. 외교관의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당시 외교부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은 제가 가장 먼저 외교관의 꿈을 이뤘다고 부러워해요." 농담처럼 건넨 말 속에 진심어린 고마움이 담겨있었다.그는 한국에서의 활동에 큰 열정을 갖고 있었고, 지난 5년동안 그는 대사로서 열정만큼의 성과를 이뤘다. 2008년 2만명이 넘지 않던 남이섬 중국인 관광객이 지난해에는 15만명을 넘겼다.남이섬을 접수(?)한 장 회장은 올해 활동 영역을 조금 더 넓힐 계획이다.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에 임용되는 한편, 오는 4월에 열리는 '청소년글로벌 리더십 스쿨'과 8월에 예정된 '한·중 청소년 리더십 페스티벌'에 동참한다.한국청소년연맹, 중국CCTV가 공동 주최하고, 경인일보 주관으로 경기도 전역에서 열리는 두 차례 행사에서는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과 재능을 가진 14살 이하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경연대회를 진행한다. 장 회장은 행사를 통해 참가 학생들을 알리고,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며, 더 나아가 한류의 지속과 발전, 그리고 한·중 교류의 장을 넓히는 역할을 하게 된다.한·중 문화 결합시 시너지 효과는?韓 "전통문화 관리·재창조 능력 뛰어나"中 "숨은유산·전문성 갖춘 예술가 많아"두나라 서로 강점 배우고 왕래 활발해야"중국에는 K-pop에 열광하고,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이 아주 많습니다. 저는 이런 아이들을 위해 5년 전부터 남이섬에 데리고 와 공연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있어요. 이번 행사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는 정식으로 한국에서의 단기코스 유학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페스티벌은 중국CCTV에 두 차례 방송될 거예요. 중국의 K-pop 팬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기쁜 시간이 되겠죠."중국 청소년들의 한국사랑을 운운하지만 정작 장 회장이야말로 한국을 무척 좋아하는 듯하다. 1년에 한국을 10여차례 방문한다는 그는 한국이 너무 좋아서 조카에게 한국 유학을 권유했고, 한국의 문화를 직접 피부로 느끼고 싶다며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그는 '중국이 한국에서 배워야 할 것'으로 '한류는 물론이고, 그 밖의 다양한 문화, 패션, 국제마케팅 그리고 창의성'을 꼽았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리와 재창조하는 능력이 특히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창의성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반면 중국에서 배울 만한 점도 있어요. 중국에는 아직도 숨어있는 훌륭한 문화유산이 많습니다.798예술구(베이징 차오양구 다ㅤㅆㅑㄴ즈지역에 위치한 예술 거리로 400개가 넘는 전문 화랑과 갤러리, 독특한 인테리어의 수많은 카페와 아트숍들이 몇몇 가동중인 공장들과 함께 공존하며 중국의 현대미술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에는 뛰어난 예술가들이 많아요. 한국의 창의성과 중국의 전문성이 아주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그가 본 가능성은 꿈꾸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그리고 언젠가는 꼭 그렇게 될 것만 같아서 가슴을 뜨겁게 달구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는 문화의 중심이 유럽이었지만 서서히 동양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은 몇천년의 우정을 이어온 이웃 국가로, 두 나라의 강점이 결합하면 우리가 문화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이는 중국과 한국에 좋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좋은 일이죠. 이를 위해 청소년의 문화교류, 여행을 통한 교류 등을 통한 직접 교류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온도를 느끼며 마음으로 교류하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글=민정주기자 사진= 임열수기자

2013-02-06 민정주

[인터뷰… 그]인천아시안게임 성공 개최 앞장선 김영수 조직위원장

1942년 5월 10일 인천시 중구 전동에서 태어난 '그'는 축현초등학교 재학시절 한국전쟁의 발발로 부산으로 피란을 떠난다.휴전 후 가족과 함께 서울에 정착한 '그'는 서울중, 서울고, 서울대를 졸업했다. 제5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국회의원과 장관을 지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생활한 지 60년의 세월이 흐른 2011년 12월, 고향의 부름을 받아 2014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의 수장으로 부임했다.코흘리개 소년이 길고 긴 시간을 보내고 초로의 신사가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이야기의 주인공인 김영수 2014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 위원장은 1987년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장 재임시절, 국가안전기획부 특별 보좌관으로 활동하던 중 안기부 차장 자리를 제안받는다. 검찰총장을 꿈꾸던 검사로서 고민 끝에 제안을 수락한 그는 이 결정이 훗날 자신에게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터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제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김 위원장은 이후 문화체육부 장관, 한국프로농구연맹(KBL) 총재를 역임했다. 이어서 인천으로 돌아와 조직위원장으로 새 출발을 한 것이다.취임하던 날 식장에서 김 위원장은 "난 참 운이 좋다"고 운을 뗀 뒤 "언젠가는 고향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좋은 기회가 찾아와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대운(大運)을 언급하며 조직위원장으로서의 임무를 잘 수행하겠다고 강조한 김 위원장은 당시 각오처럼 부임 이후 현재까지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동분서주했다.예산 절감을 위해 경기장 배치계획을 변경하고 종목을 재배치해 개·보수가 불필요한 경기장을 확보해 당초 사업비보다 약 27억5천만원을 절감했으며, 대회 마케팅을 위해 스위스의 대표적인 시계 브랜드 티쏘(TISSOT)를 시작으로 대한항공, SK, 삼성전자와 최고 등급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앞으로 후원 계약을 체결할 국내외 업체들도 상당수 예정돼 있다. 또한 인천 아시안게임의 대회정보시스템(AGIS)은 쌍용정보통신(주)와 스위스 타이밍이 공동으로 구축해 운영하게 되며, 런던올림픽에 사용된 시스템에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해 운영할 계획이다.이처럼 김 위원장과 조직위는 대회 마케팅에 주력하는 한편 불필요한 예산을 축소하고, 첨단 IT 기술을 접목하는 등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인 대회로 만들기 위해 달려왔다.취임 후 지금까지 활동을 뒤로 하고 대회까지 남은 600일 동안의 활동을 기획하고 있는 김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2013년은 인천아시안게임의 준비를 마무리하는 단계이다. 대회 준비 상황은."대회 후원 계약과 주관 방송사 계약을 체결했고,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개·폐회식의 대행사 선정도 공모를 통해 결정했습니다. 본부호텔 문제는 올해 안으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와 협의해 숙박 수요를 확정하고 호텔 등급, 방의 규모, 가격, 위치 등을 감안해 선정할 계획입니다. 주경기장의 공정률도 현재 45%로 2014년 4월 완공할 계획입니다. 기타 경기장도 2011년 5~11월 착공해 58%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으며, 오는 5~8월께 모두 완공될 것으로 봅니다."■ 대회 개·폐회식 대행사 선정과 관련해 인천지역 업체 배제 논란이 있었는데."조직위는 인천이 이번 대회를 계기로 품격있는 도시로 한 단계 도약하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개·폐회식 기본 방향에 '인천의 역사, 아름다움 등 개최도시의 특징을 품격 높은 예술성으로 표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저를 포함한 다수의 인천지역 인사가 자문위원회에 참여해 개·폐회식 프로그램에 인천의 역사와 문화가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조직 확대를 꾀했다. 주안점을 둔 부분은."현재 조직위의 가장 큰 현안은 오는 6월 열리는 2013 실내&무도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입니다. 실내&무도 대회의 완벽한 대회 운영을 위해 기존 조직을 전체적으로 확대·재편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또한 2014 아시안게임의 경기종목인 38개 종목의 차질 없는 준비를 위해 경기 분야에 대한 조직과 인력을 대폭 확충했고, 점차 비중이 커지는 OCA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위해 국제본부를 신설한 것이 핵심입니다."대회 준비 마무리 단계인데 잘 진행되고 있나?개·폐회식 대행사, 공모 통해 선정 마쳐주경기장, 국비지원 받아 내년 4월 완공6월 실내&무도대회서 운영노하우 점검■ 실내&무도 대회의 준비 상황은."2014 아시안게임의 테스트이벤트 형식인 실내&무도 대회의 성공 개최는 아시안게임 운영의 노하우를 익히고 조직원 스스로의 자신감도 배양시킬 것으로 기대됩니다. 우선 대회 성패를 좌우하는 기준이 되면서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방법의 하나인 자원봉사자의 경우 2천560명 모집에 7천60여명이 지원해 현재 면접 심사 중에 있습니다.330여종의 물자는 후원, 임차(유·무료), 구매 순으로 소요예산을 최소화해 확보하는 등 수송, 숙박, 선수촌, IT 및 방송, 안전 등 지원 분야별 업무를 착실히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임권택(총감독)·장진(총연출) 감독의 지휘 아래 아시아의 화합과 감동, 인천의 경쟁력과 IT·영상 기술을 부각시켜줄 첫 번째 작품인 실내&무도 대회 개·폐회식 세부 프로그램을 2월 중 확정하고, 프리이벤트로 4월 20~21일 삼산월드체육관에서 댄스스포츠 대회를 개최해 전반적으로 점검할 계획입니다."■ 실내&무도 대회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적다. 이에 대한 대책은."시민 홍보를 위한 다양한 시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시내 관공서, 아파트, 다중집합장소 게시판 등에 실내&무도 대회 홍보 포스터를 부착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엔 버스, 택시, 지하철 등 교통시설과 프로스포츠 경기장 및 인천국제공항 등을 대상으로 집중 홍보할 계획입니다.특히 대회 개최 한 달여 전부터 공중파 TV, 라디오, 신문, 온라인광고 등 전방위적인 홍보를 실시할 계획입니다. 뿐만 아니라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social network service) 채널을 통한 온라인 홍보를 강화하고 있으며, 블로그기자단과 SNS서포터스 운영을 통해 시민들과의 쌍방향 소통으로 네티즌들이 대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홍보하도록 유도할 방침입니다.北 참가여부와 시민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경색된 남북문제 잘 풀려 北 참가 가능할것무질서·불결한 상태서 손님 맞이할수 없어모두가 힘모아 친절·질서·청결운동 벌여야■ 아시안게임의 흥행과 남북 화합을 위해 북한의 참가를 바라는 이들이 많은데, 이에 대한 전망은."OCA 회원국인 북한이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조직위는 지난해 11월 마카오 OCA 총회에서도 북한의 실내&무도 대회 참가를 권유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시일의 촉박함 등으로 아직 답변이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내년에 열릴 아시안게임에는 북한의 참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경색된 남북 문제가 새 정부 들어 잘 풀릴 것으로 보고 있으며, 북한 참가도 이와 궤를 같이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하고싶은 말은."인천시의 재정상 어려움으로 인해 과연 아시안게임을 치를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분들이 아직도 상당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장 난제였던 주경기장 건립에 대한 국고지원이 이뤄졌고, 이를 계기로 이제는 인천을 위해 기왕 유치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아시안게임은 글로벌 국제도시를 바라는 인천시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큰 기회입니다. 이제는 인천의 이미지를 선진도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시민들이 나서서 친절·질서·청결을 위한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불친절하고 무질서하며 불결한 상태에서 손님을 맞을 거라면 차라리 대회를 개최하지 않느니만 못합니다. 마침 인천경찰청도 2013년을 '교통질서를 확립하는 원년'으로 선포하고 이를 위해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교통정책을 펼칠 예정이라고 합니다.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회를 치르고 난 뒤 남는 유·무형의 대회 유산은 바로 인천의 것입니다. 인천시민 스스로 아시안게임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지금부터 말입니다."■ 김영수 위원장은▲ 학력 : 서울고, 서울대 법과대학, 서울대 사법대학원 수료, 국방대학원 수료▲ 경력 : 제5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지방검찰청 검사(1971), 국가안전기획부 1차장(1990~1992), 제 14대 국회의원(민자당), 대통령 민정수석 비서관(1993. 3~1995. 12), 한국프로농구연맹 총재(2004. 5~2008. 8)▲ 상훈 : 황조 근정훈장(1995년), 청조 근정훈장(1997년)▲ 저서 : '발상을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글= 김영준기자 사진= 선보규기자

2013-02-05 김영준

[인터뷰… 그]지방출신 최초로 대한변협 첫 직선 회장에 당선된 위철환 변호사

큰무대에서 뜻을 펼쳐 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안고 시골에서 상경한 한 소년이 있었다. 맨손으로 올라온 이 소년은 중학교 시절 어쩔 수 없이 주경야독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당시 숙식을 제공해준 신문보급소 덕분에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었던 그는 매일 새벽 4~5시에는 찬바람을 맞아가며 신문을 돌리고, 저녁엔 공부를 하며 야간고등학교에 진학, 이후 서울교대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수년간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끝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더 큰 뜻을 품고 변호사가 됐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어엿한 중년이 된 그는 전국의 변호사를 대표하는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 당선되기에 이른다. 언뜻 보면 위인전이나 아침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수원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위철환 변호사다. 대한변협 선거가 끝난 직후인 지난 23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그의 선거캠프를 찾아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가난한 신문배달소년 변호사 되기까지…맨손 상경 주경야독끝 교사의 꿈 이뤘지만변호사비 없어 패소한 제자 딱한사정 접하고어려운 사람 돕기 위해 법조인 되기로 결심-선거가 끝난 지 얼마 안 돼 아직은 정신이 없으신 것 같네요. 우선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 당선된 소감이 어떠신지요?"저야 무척 기분 좋고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제가 당선됐다고 하니까 저보다도 저를 지지해준 지방의 변호사들이 너무 통쾌하다고 하시더군요. 저와 경쟁했던 분들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대검 비서실장, 로펌대표, 전·현직 서울변호사협회장이셨어요. 회장에 입후보한 네 사람 중 누가 봐도 제가 가장 열세였죠.자타가 공인하는 KS(경기고-서울대) 출신도 아니고, 법조인으로서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도 않은 제가 말하자면 일종의 반란을 일으킨 셈인 거예요. 대한변협 역사상 지방변호사 출신이 회장직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전국에 14개 지방변호사회가 있는데, 서울변호사회는 나머지 13개 조직을 합친 것보다 회원수가 많아요.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서울변호사회 회장이 자동으로 대한변호사협회장에 당선되는게 당연하죠."-대한변협 역사상 직선제로 선거가 치러졌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맞아요. 제가 4년전 경기중앙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됐을 때부터 대한변협 회장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자고 추진했어요. 물론 그 전에도 그런 필요성이 가끔씩 제기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직접 나서서 추진을 하지 않았죠. 그동안 대한변협선거는 너무나 비민주적인 관선제방식이어서 지방은 선거권이 박탈된 상황이나 마찬가지였어요.이런 상황에서 선거를 간선이 아닌 직선제로 바꾸려면 기존의 기득권을 가진 서울변협 회장이 우선 직선제에 동의를 해야하고, 이사회 의결을 거쳐 국회법까지 통과해야하는 등 많은 난관이 있었죠. 생각해보세요. 가만히 있으면 서울변협 회장이 대한변협 회장을 승계하게 되는데 어느 누가 나서서 직선제를 추진할 수 있겠어요.그러나 다행히도 제가 경기중앙변호사회 회장과 대한변협부협회장을 겸임하면서 직선제를 추진하자 당시 대한변협회장님이 제 뜻을 이해하시고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치러진 직선제 선거에서 모든 이들의 예측을 깨고 제가 대한변협회장에 당선된 겁니다."협회장으로서의 각오가 있다면민사사건도 금전 없이 변호혜택 받도록'변호사 강제주의 시스템' 도입하고파-이번 선거에서 '보통변호사'를 굉장히 강조하셨는데,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보통변호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대한변협회장은 말하자면 으레 '명품변호사'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제가 생각하는 보통변호사로서의 회장직은 꼭 서울 출신이 아니더라도 서울뿐 아니라 지방 변호사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서민들 곁에서 호흡하는 개인변호사들의 애환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직분을 말하는 것입니다.요새 대형 로펌들이 들어서고 많은 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말 생계를 걱정해야 할 만큼 어려운 변호사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제가 선거 홍보물에 보통변호사와 함께 '변화의 새물결'을 강조했는데, 이제는 변호사 조직도 권위의식을 버리고 새롭게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않은 보통 변호사들이 소신껏 성실하게 활동하고 정당한 보수를 받으며 생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살아온 이력이 좀 특이하세요. 역경과 고난도 많았고, 왜 하필이면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다 뒤늦게 법대에 진학하시게 됐죠?"어느 추운 겨울 날 새벽 한창 신문배달을 하고 있는데, 한 가정집에 불이 켜져있고, 창문너머로 내 또래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는 게 보였어요. 그때 난 지금 뭐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죠.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보자' 결심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공부에 매진, 꿈에 그리던 교대에 진학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됐어요. 그리고 6년정도 교편을 잡았죠.그런데 어느날 우리반 여학생이 며칠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원인을 알아봤지요. 그랬더니 그 학생의 아버지가 사업을 벌이다 큰 송사에 휘말리셨는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결국 재판에서 패소, 사업은 완전히 망하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 거예요. 그 여학생의 딱한 사정을 들으면서 저는 앞으로 법공부를 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죠.이후 교직을 포기하고 법대 편입시험에 매진, 수백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게 된 겁니다. 사실 그때 편입시험이 사법시험보다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웃음). 2명 뽑았는데, 수백명이 왔으니까요. 그때 저랑 같이 합격했던 동기 편입생도 지금 인천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답니다."수원에 경기고등법원 설치 전망은1200만 도민 항소심때 매번 서울 찾는 불편지역 국회의원·시민 연대 숙원 성취 최선-수원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시면서 경기고등법원 설립을 위해 다방면으로 애쓰셨습니다. 고등법원 설립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사실 경기고법 설치문제도 제가 처음으로 주창한 겁니다.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장 시절 '경기고등법원 유치 범도민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국회의원, 경기도지사, 지자체 단체장들을 만나며 경기고법 설치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서명운동과 헌법소원, 공청회 개최, 도민 여론조성까지 참 많은 일들을 해왔죠.하지만 그때마다 도민들의 결집력 부족으로 번번이 고법 설치가 무위로 그치고 말았어요. 고법이 설치되려면 우선 국회법사위를 통과해야 하는데, 경기도에 지역구를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구 1천200만명이 거주하는 대한민국의 중심지역인 경기도에 고등법원 하나 없는게 말이 됩니까? 경기도보다 인구가 적은 광역단체들에도 고법이 거의 설치돼 있습니다.경기도 사법기관의 중심인 수원만 해도 사건수가 전국 2위를 점하고 있고 인구와 산업의 유입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변한 고등법원 하나 없어 항소심을 하기 위해 매번 서울을 찾아야 하는 도민들의 경제적, 정신적 피해가 심각합니다. 앞으로 경기지역 국회의원은 물론 시민들과 연대해 도민들의 숙원을 풀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적극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마지막으로 대한변협 회장으로서 임기내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변호사 강제주의 시스템을 도입해보고 싶어요. 이는 형사사건 때 돈 없는 사람을 위해 국선변호사가 도와주는 것과 비슷한데, 민사합의사건 이상에는 금전에 상관없이 변호인이 도와줄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이렇게 된다면, 서민들이 돈 때문에 변호사를 못구해 억울하게 재판에 지는 일은 줄어들겠죠.그리고 청년변호사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 국가경제적으로 봤을 때도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이런 제도가 도입되려면 많은 시일이 걸리겠지만, 이것 만은 제 임기 중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보고 싶습니다. 제 뜻에 동참하는 전국의 많은 변호사들께서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위철환 변협 회장은…■ 1958년 전남 장흥 출생■ 1977년 중동고졸■ 1979년 서울교대졸■ 1984년 성균관대 법학과졸■ 1986년 사법시험 합격(28회)■ 1989년 사법연수원 수료, 동수원종합법무법인 변호사■ 2009~2010년 수원지방변호사회 회장■ 2009∼2013년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 2010∼2013년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 2013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현)글=/김선회·신선미기자 사진= 하태황기자

2013-01-30 김선회·신선미

[인터뷰… 그]하일성 야구 해설위원, 프로야구 10구단의 나아갈 길

"돔구장은 야구장이 아닙니다. 문화체육의 복합적 공간입니다."지난 21일 서울시 송파구 (주)스카이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난 하일성(63·(주)스카이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겸 야구 해설위원은 돔야구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최근 한국 프로야구는 10구단 유치를 놓고 두 도시와 기업들이 한국 야구의 중·장기 계획을 제시하는 등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높은 야구 열기를 대변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공정성을 위해 사상 처음으로 22명의 평가위원회를 열었고, 이사회와 총회를 거쳐 지난 17일 수원시와 KT를 제10구단으로 확정했다.이 과정에서 수원시와 KT는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서수원 일대에 돔구장 건립을 계획했고, 이에 야구인은 물론 야구팬들은 돔구장 건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프로야구 10구단의 나아갈 방향과 창립 32년을 맞은 한국 야구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되어야 하는 지 하 대표를 만나봤다.10구단 운영 어떻게 해야하는가?수원시 인프라 구축에 초점 맞춰야KT, 이미지 개선과 선수 운영 중요구장 수익창출 위한 계획 세워야 해야구 발전 위해 변해야 하는 것은?경기 재미위한 양대리그 도입 필요천만 관중시대 팬과 유대관계 맺기구단들 다양한 상품개발·보급해야하 대표는 그동안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힘써온 장본인이다. 80년대 프로야구 초창기때부터 야구 해설가를 도맡아 한국 야구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했고, 구수한 입담으로 야구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하 대표는 돔구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돔구장을 야구장으로 인식하는데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며 "1년에 야구 경기는 많이 잡아도 80일을 넘지 못한다. 그럼 나머지 285일은 그냥 놔둘 것인가. 문화적 공간을 만들어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일본 돔구장은 야구 시즌이 없는 겨울철이 더욱 바쁘다. 대형 콘서트와 문화행사, 그리고 지역축제 행사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추진되고 있다"며 "돔구장에서 치러지는 야구는 그저 일부분일 뿐 대부분 문화행사로 손익분기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이어 "만약 국내에도 돔구장이 추진된다면 인구 수요가 높은 수도권에서 건립되는게 낫다"며 "수원과 KT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밝힌 돔구장 계획도 잘 따져보고 사전 조사를 철저히 거쳐 건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프로야구 10구단의 수원시 유치에 대해서도 하 대표는 '야구팬과의 약속이 먼저'라고 따끔하게 충고했다.그는 "프로야구 10구단 탄생은 한국 야구 역사 32년만에 이뤄진 쾌거"라며 "프로야구 10구단을 운영하는 KT는 KBO와의 약속을 지키는 의지가 필요하고, 수원시는 야구판이 지역에서 잘 열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원시는 주로 인프라 구축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KT는 기존 구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선수 운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하 대표는 KT가 5년 만에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만큼 프로야구의 이미지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놓았다."당시 프로야구가 어려운 시기에 KBO 사무총장을 맡았다"는 하 대표는 "KT는 지난 2007년 겨울 해체를 선언한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기 위해 작업에 들어갔고, 야구단 창단에 적극적이었다"면서 "그러나 KT가 자체적으로 이사회의 승인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일을 벌이면서 사태는 꼬였고 이사회의 반대로 프로야구 인수를 접게 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하 대표는 "당시 현대 유니콘스는 서울 입성이라는 프리미엄 혜택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인수 기업이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프로야구 기반이 열악했다"면서 "이번 10구단 유치 경쟁이 가열되는 것을 보면서 깊은 감회를 느꼈다"고 전했다.이번 '프로야구 10구단을 수원·KT로 결정 내린 KBO의 판단이 옳았느냐'는 질문에 하 대표는 즉답을 회피했다.하지만 그는 "KBO의 판단이 옳고 그른 것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수원시와 KT가 지금의 야구 의지를 앞으로 어떻게 펼칠 수 있는가'가 먼저"라며 "훗날 KT가 프로야구에 많은 기여를 했다면 결과론적으로 잘 했다는 증거일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어 그는 10구단 유치 경쟁에서 밀린 전북·부영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하 대표는 "전북·부영도 수원·KT 못지 않게 많은 것을 준비하고 노력했다"며 "앞으로 전북에도 야구 붐 바람은 계속될 것이다. KBO에서 판단하겠지만 다양한 야구 행사 및 대회를 유치하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또 "10구단 창단을 계기로 앞으로 한국 프로야구는 더 많은 기업이 프로야구 회원에 가입할 것으로 보인다"며 "머지않아 11·12구단도 창단될 것이다. 만약 부영그룹이 야구단을 운영하고 싶다면 우선순위를 주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잠시 화제를 바꿨다. KT가 2015년부터 프로야구 정규리그에 참여하게 된다면 '한국 야구는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 물어봤다.이에 대해 하 대표는 포스트 시즌 강화와 양대 리그 도입을 내세웠다.2015년 프로야구 리그 운영에 대해 하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양대 리그로 가지 않겠냐"며 잘라 말했다.그는 "아직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지만 현재의 포스트시즌 제도는 정규리그 1위팀에게 유리한 형국이다. 그만큼 흥미가 떨어진다는 얘기다"라며 "포스트 시즌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양대 리그 도입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현재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은 정규리그 1~4위팀이 진출한다. 3-4위가 준플레이오프를 치른 뒤 여기서 이긴 팀이 2위와 플레이오프를 거친다. 모두 5전 3선승제다. 이어 플레이오프 승리팀은 1위팀과 한국시리즈(7전4선승제)를 갖는데, 충분한 휴식을 취한 1위팀이 플레이오프에서 올라온 승리팀보다 유리하다.2006년부터 맡은 KBO 사무총장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해봤다.하 대표는 "당시 국내 프로야구는 300만 관중수를 유지할 정도로 현저히 낮았고 야구 인프라도 열악했다"고 전했다.하지만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한국 야구 대표팀의 잇단 승전보를 꼽았다. 그는 "2006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 야구가 4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야구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면서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야구가 첫 금메달을 따내면서 정점을 찍었고,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자 국내 프로야구도 붐이 일기 시작했다"고 밝혔다.이어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는 700만 관중을 넘어섰다"며 "앞으로 프로야구 10구단이 가세하면 1천만 관중시대도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앞으로 한국 야구 발전에 대해 하 대표는 선수들이 장외에서 팬들과 좀더 많은 스킨십을 할 것을 요구했다.그는 "몇년전만 해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메이저리그 소속의 유니폼과 야구모자 등을 구입해 쓰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국내 야구단 모자와 유니폼을 구입하는 팬들이 많아졌다"면서 "각 구단도 이제는 야구에 관한 상품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보급해 팬들과 다양한 경로로 유대관계를 맺는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끝으로 하 대표는 "수원시와 KT의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를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한국 야구 발전에 밑거름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하일성 해설위원은…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 체육학과 및 대학원 사회체육학과를 졸업한 하 대표는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자 야구 해설위원으로 유명하다. 김포 양곡고 체육교사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그는 1979년 KBS 배구 해설위원이던 오관영 씨의 권유로 동양방송(TBC) 야구해설위원으로 방송계에 입문했고, 1982년 KBS 스포츠국 야구해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이장호 감독의 공포의 외인구단(1986년),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년), 역전에 산다(2003년), 아이스 에이지 2(2006년) 등 다수의 영화에도 특별출연 및 성우활동을 했다. 2002년 1월 심근경색으로 투병 후 3차례 수술을 했다.2006년 5월부터 2008년 3월까지 제11대 KBO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2010년부터 스포츠 케이블방송인 KBS N 스포츠의 야구해설위원을 다시 맡고 있다. 또 2009년부터 (주)스카이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를 맡아 기업·대학 등에서 강연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글=신창윤기자 사진= 하태황기자

2013-01-23 신창윤

[인터뷰… 그]세계지적발달장애인 스포츠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이끄는 나경원 조직위원장

지천명을 넘긴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고왔다. 새까만 토끼 눈에 깨끗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이면서도 항상 자신감 넘치는 모습, 연예인 뺨치는 세련미가 분위기를 압도한다. 1963년생으로 서울법대를 나와 판사를 거쳐 정계에 입문, 엘리트 정치코스를 밟은 나경원(50) 전 의원이다.지난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낙마하고, 절치부심해온 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유명세를 날린 인기 만큼이나 아직도 선명한 이미지가 세인들의 뇌리에 남아있다.지난 4·11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잠시 정치권을 떠나 있지만 이름도 낯선 2013년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조직위원장을 맡아 더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스페셜올림픽은 전 세계 지적발달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스포츠 대회다.올해 10회째인 이 대회가 우리나라에 유치된 것은 딸이 다운증후군을 앓는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그가 국회의원 시절 추진했던 '장애 아이, We Can'활동이 계기가 됐다. 지적장애인의 부모와 전문가들이 의견을 나누는 연구모임으로 추진해오다 지난 2009년 미국 아이다호에서 열린 스페셜대회를 관람하면서 지적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야겠다는 강한 의지로 유치전에 뛰어들어 성공했다.오는 29일부터 8일간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보이고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8일 오후 서울 조직위가 차려져 있는 종로구 수송동 사무실을 찾았다. 빨간색 재킷과 바지 정장에 럭셔리한 색감의 긴 머풀러를 걸치고 나온 그는 세계대회 준비로 많이 야윈 모습이었지만 지적 장애인들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바꾸고, 세계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한 일이라면 몸을 던질 각오가 돼 있다는 자세였다.스페셜 올림픽이란?故 케네디 대통령 여동생이 시작신체능력 향상 목적… 동계만 10회째꼴찌에 가장 많은 박수 치는 올림픽조직위와 인연 맺기까지…장애딸 영향 'We Can' 활동 계기2009년 대회 본 후 유치전 뛰어들어대회 준비 상황예산 확보 문제로 진땀 뺐지만선수·임원등 1만1천명 참가 예상한국문화 체험 이벤트도 마련해당부의 말은송도 컨벤시아에 환영센터 운영'따뜻한 환영' 한국 첫인상 부탁- (예전에 비해) 많이 야윈 것 같은데."세계 대회 유치하고, 준비하면서 예산 문제로 애를 먹고 있다. '국제 앵벌이' 소리까지 들으며 여기저기 민폐를 끼치고 있다.(웃음) 얼마나 어려운지… 무보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번 대회가 성공리에 끝나야 지적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편견을 바꾸고, 한국사회와 국제사회에도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주말엔 입이 부르트기도 했다."- 평창스페셜 올림픽은 어떤 대회인가."전 세계 지적발달장애인들의 지구촌 스포츠 행사다. 우리나라에선 처음 열리는 또 하나의 올림픽으로 보면 된다. 고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누이 동생인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여사에 의해 시작해, 이번 대회가 10회 동계대회다. 지적발달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인식을 개선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이른바 모두가 행복한 사회 만들기라고 보면 될 것이다."- 언제부터 조직위와 인연을 맺게됐나."잘 아시다시피 국회의원 시절 'We Can'활동을 추진하면서 2004년 지적장애인 스페셜올림픽(국내대회)을 한다는 기사를 보고 무작정 태릉을 찾아갔다. 그 때부터 관심을 가져오다 2009년 미국 아이다호에서 열린 동계대회를 직접 관람하면서 '지적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정말 부족한 걸 깨닫고 유치전에 들어갔다. 1·2차 실사를 거쳐 2010년 2월에 평창이 개최지로 확정됐고, 11월 조직위를 만들었다. 그 때부터 위원장을 맡게 됐다."- 장애인단체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보도를 통해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제 아이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 아이가 사회로 나가면서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히기 시작했고, 아이를 받아주는 유치원을 찾기 어려웠고, 초등학교 때는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장애아동이 차별 없는 교육을 받는 것은 몽상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이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받은 아픔이 부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국회 의정활동에서부터 지금까지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해 이 일을 해왔다."- 이번 대회를 마치게 되면 우리에게 남겨질 유산은 무엇인가."지적 장애인들이 다양한 스포츠를 통해 그들의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의 인식과 태도의 변화가 생겨야 그들도 생산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사회속에 자연스럽게 당당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더 다양한 레거시(유산)를 남기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별 이벤트는."글로벌 개발 서밋의 평창선언과 스페셜 핸즈 프로그램을 통해 국제사회의 인권, 복지 향상에 우리나라가 기여하는 결과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국격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경기에 앞서 26일부터 29일까지 3박4일간 호스트타운 행사를 진행해 홈스테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우리나라 문화를 체험하게 돼 있다."- 참가 국가 및 참가 선수와 경기 종목은."111개국, 3천300명의 선수가 참가할 예정이다. 임원까지 합하면 총 1만1천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경기는 동계올림픽 7개 종목을 55개 세부종목으로 나눠 진행된다. 전통적으로 금·은·동메달 수여와 함께 4위부터 8위까지 참가한 모든 선수들에게 리본을 달아주고, 꼴찌가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 것도 이 대회의 특징이다."- 이번 대회에 초청되는 주요 인사는."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대모 아웅산 수치여사,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 중국 여배우 장쯔이, 전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야오밍 등이 방문 예정이다. 티모시 쉬라이버 SOI 회장과 조이스 밴다 말라위 대통령, 심슨 밀러 자메이카 총리의 내한도 확정적이다."- 경기·인천지역에서 도움 줄 수 있는 게 있다면."대회 개막에 앞서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 대표단 환영센터를 운영한다. 각국의 대표 선수들이 한국의 첫 인상을 인천공항과 송도 환영센터에서 느끼게 될텐데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환영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아울러 대회기간 경기장을 방문해 주셔서 뜨거운 응원을 펼치고, 특히 청소년들이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나경원은 누구인가…나경원 조직위원장은 서울 출생으로 책임감 강한 장녀로 태어나 계성초, 숭의여자중, 서울여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체 557명 중 1등을 차지할 정도로 3년 내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서울대 법과대학을 거쳐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 지난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같은 학교 동기인 김재호와 결혼하였고, 1남 1녀를 두었으며 딸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사법연수원 24기로 연수원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고 지난 1999년 인천지방법원에 잠시 근무하기도 했다.정치권엔 지난 2002년 제16대 대선 기간동안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요청에 따라 한나라당에 입당했으나, 본격적으로 정치인으로 활약한 것은 2004년 3월 비례대표 11번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부터다.야당시절 강재섭 전 원내대표의 공보 부대표를 거쳐 장수 당 대변인으로 활약하면서 '신붓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야권의 후보 단일화 바람에 고배를 마셔야 했다.이후 국회에서 활동했던 '장애아이 We Can' 회장을 맡은 것을 계기로 알게 된 2013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유치에 나서 성공한 뒤 조직위원장을 맡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글=정의종 차장 사진= 하태황 기자

2013-01-15 정의종

[인터뷰… 그]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청년특위 위원장 김상민 의원이 그리는 정치 인생

만 39세, 초선 2년차인 김상민 의원은 비례대표에서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청년특위 위원장까지 한달음에 오른 우파 사회운동가 출신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얕게 팬 여드름 자국이 아직 가시지 않아 앳된 모습 그대로지만 강렬한 눈빛에선 사회운동에 청춘을 던진 저력이 엿보인다.대학시절 거대 운동권 조직인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에 맞서 아주대학교 최초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으로 당찬 카리스마를 보였고, 사회에 나와서도 찜질방과 고시원을 전전하며 후배와 제자들의 선봉에서 '청년아이콘'을 이어왔다. 그러면서도 결혼안하기, 돈 안모으기, 정부와 재벌에 의존 안하기로 우파운동을 하며 처절한 삶을 살아왔다. 이런 삶은 새누리당의 '감동을 준 인물' 찾기에 선정되면서 제도정치권으로 변신, '박근혜키즈'로 대선 공신대열에까지 이름을 올렸다.수원이 고향인 그와 지난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1시간10분에 걸쳐 수원에서 성장한 배경과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그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들어봤다.#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에서 우파 운동가로 변신대통령직 인수위 전체회의 첫날인 이날 오후 의원회관에서 만난 김 의원은 청년대표로 비례대표에 입성한 이미지답게 당당했다. 결혼도 하지 않아 아직 청년티가 묻어 있었지만 자신의 정치적 가치와 철학을 얘기할 때는 독수리 눈매보다 매서운 사회운동가의 포스를 느끼게 할 정도.수원에서 태어나 초·중·고·대학을 모두 고향에서 다닌 그는 '수원이 자신의 모태'라고 할 정도로 애향심이 남달랐다. 거침도 없었다.그가 정치권에 들어오게 된 배경은 아주대에서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을 시작해 우파 사회운동을 이어온 게 결정적 원인이 됐다.비운동권 학생회장서 정계 입문 계기는?시대변화 맞춰 新학생운동 주도사회운동가 시절 박 당선인 만나비례대표후보 공천돼 국회 등원선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보통 사람과는 조금은 다른 통찰력과 예지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현장과 현실을 중시하면서도 좀 앞선 세계, 즉 미래를 개척해 나가려는 '돈키호테적' 기질도 엿보였고, 보통사람과는 다른 삶의 궤적을 느낄 수 있었다.92학번인 그는 김영삼 정부 출범 즈음에 세계화 바람을 타고 대학에 입학한다.그는 "시대와 문화가 변하기 시작하고, 글로벌 시대로 소용돌이 치고 있는데 1980년대 이데올로기 중심의 학생회를 주도하는 운동권에 대한 불만세력이 생겨났다"며 "지금도 그때도 나는 세상이 변했다고 외쳐왔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요청을 거부하지 않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그는 "이데올로기 중심의 한총련에 맞서 문화와 복지 중심의 학생회를 주창하며 새로운 학생운동을 주도했고, 시대와 문화의 변화처럼 독자적인 흐름이 생겨 자연스레 '아주니즘'이라는 새로운 학생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풀뿌리 가치운동… 박근혜 당선인과 만남이 정계로 이끌어학생운동을 계기로 그는 언제나 새로운 독립과 자립을 외쳐왔다. 사회운동가로 활약하면서 자신의 행보에 대한 자부심도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다.그는 "오랜기간 2030 젊은층 모임과 자원봉사단체, 문화운동을 전개하면서 광의적 의미의 정치를 해 왔다"며 "현실 정치에 들어가 현실 구조를 바꾸기보다는 풀뿌리운동과 세대운동 같은 풀뿌리 운동을 확대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고 전했다.그런 그가 정치권에 입문하게 된 것은 국내 최대의 NGO 대학생 자원봉사단 V원정대 대표로 활동하면서부터다.지난 2009년 창립한 이 단체는 전국 200개 대학과 2만5천명의 회원이 가입, 가수 김장훈과 독도에서 봉사 콘서트를 개최한 데 이어 현충일엔 연평도에서 '연평아리랑 콘서트'를 열어 자원봉사활동을 이어나갔다. 전국 33개 섬을 찾아다니며 환경청소도 했고, 헌혈증진 캠페인도 전국적으로 주도했다.때마침 위기에 빠진 새누리당이 4·11 총선을 앞두고 감동의 인물 찾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박근혜 당선인과 만남이 이뤄졌고, 이후 청년 몫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돼 19대 국회에 등원하게 됐다.당시 박 당선인은 김 의원이 주도한 NGO 단체에 깜짝 방문해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 기성그룹들이 젊은이들의 피로를 풀어주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했다. 소통하고 싶다. 이런 일을 오랜 시간 해 줘서 고맙다"고 말해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김 의원도 "이때부터 박 당선인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8개월 동안 초선 비례대표에서 인수위 청년 특위 위원장까지4·11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입문한 그는 대선을 거치면서 인수위 특위 위원장까지 오르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김 의원은 주로 대선의 화두였던 반값 등록금과 젊은층과 소통 강화에 매진했고, 전국을 돌며 빨간운동화 유세단을 가동하는 등 박근혜 만들기에 온 몸을 던졌다.박 당선인의 공약인 반값 등록금 실현과 K무브, 스펙초월시스템 구축 등 다양한 공약 아이디어를 조언하기도 했다.# 수원은 나의 모태이자 삶의 전부경기지역 정가에서는 수원 출신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지역사회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수원에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다닐 정도로 향토색이 짙은 인물로 보였다.그는 "수원은 나의 삶이자, 나의 모든 과정을 있게 한 근원처"라며 "나의 모태같은 곳"이라고 강조한다. 세류동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모두 수원에서 다녔고, 친인척 모두 수원과 화성 인근에 오래 거주하면서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더 커진다는 표현도 서슴없이 했다.평범한 성장보다 우파 사회운동을 하면서 다져진 그의 인생역경은 차세대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사회운동을 하면서 세 가지 약속으로 자신을 단련시키고 연마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앞에서 언급된 재벌과 정부에 의존 안하기, 결혼안하기, 돈 벌지 않기가 그 모태다. 그런 실천을 근 10여년간 지켜나가자, 우파 조직에서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가족개념의 공동운명체가 결성되더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주로 국내 최대 NGO 대학생 자원봉사단 V원정대와 포스트 386 청년유권자 운동 '커밍아웃 2035'(현 2030 정책실현 네트워크 대변인 1호)가 그가 결성한 조직이다.# 제2의 정치 행보 주목김 의원은 인수위 활동이 끝나면 본업인 정치권에 돌아와 다시 풀뿌리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한다.주요 활동 내용과 향후 계획은?반값 등록금 실현 등 공약 조언인수위 활동 후 본업 정치 매진기존의원들 의식전환 앞장설터의원들의 인식을 바꾸는 운동, 자신이 강조하는 풀뿌리 운동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더 많은 의원들과 건강한 미래를 위한 기반을 다져 나가면서 조직도 확대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사회운동가가 아닌 현실 정치인으로 변신했으니, 이제 가정도 꾸릴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최근 화성시에 동생과 부모님을 모실 집으로 주소를 이전했다.우파 사회운동가에서 제도 정치권에 들어온 그가 앞으로 현실 정치인으로 행보를 더 이어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 예단하기 이르다. 그러나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 당당하게 적응해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 예사롭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향후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김상민 의원은…■ 1973년 7월 14일 수원 출생■ 수원 세류초교, 이목중, 수성고, 아주대 사학과 졸업■ 아주대 18대 총학생회장■ 포스트 386 청년유권자운동 '커밍아웃 2035' 공동대표■ 국내 최대 NGO, 대학생 자원봉사단 V 원정대 대표■ 한국대학생 리더십센터 대표■ 2030 정책실현 네트워크 대변인 1호■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본부 청년본부장■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청년특위 위원장■ 보건복지부 장관상 - V원정대 수상/정의종·송수은기자=정의종·송수은 기자 사진= 김종택 기자

2013-01-09 정의종·송수은

[인터뷰… 그]윤종수 환경부 차관이 말하는 정책 성과와 향후 비전

올 한 해는 그 어느 때보다 자연 및 환경과 관련된 이슈가 많았다. 구미 불화수소 누출사건, 팔당호 등의 녹조현상, 4대강 물고기 폐사 등은 국민들의 애를 태우고 정부를 원망케 했다. 반면 환경분야의 세계은행인 '녹색기후기금(GCF)사무국 인천 유치' 등은 국가적 경사로 국민을 기쁘게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자연을 동경하는 이들의 자발적 생태계 보전 행보와 개발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의 충돌과 갈등도 여전했다. 특히 대선이 있던 올해는 환경 자체와 환경복지에 대한 문제도 화두가 됐다.대형 환경사고 재발 방지책은?유해화학물질 안전관리 개선책 확정위험요인등에 대한 주민 알권리 강화4대강 물관리 문제 부처 일원화 필요윤종수(55) 환경부 차관은 이같은 자연 및 환경과 연관된 모든 희로애락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다.녹색성장 정책을 환경과 경제가 상생하는 실질적 정책으로 발전시키며 올 상반기 열린 'OECD환경장관회의'와 'Rio+20 정상회의' 등 주요 국제회의에서 호평을 받게 했고, 이를 바탕으로 GCF 사무국 유치에도 견인차 역할을 했다.또한 환경 악재는 적극적인 대책방안 강구로 초기에 문제를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환경부가 과천정부종합청사 시대를 마감하고 세종시로의 이전 진행이 한창이다. 윤 차관을 만나, 지난 정부에서의 환경정책 성과와 앞으로의 환경부 비전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새 정부와 국민들에 바라는 것은?당선자 공약 '폐기물 선진화안' 기대쌍방향식 환경성 평가체제 개편돼야제5의 에너지는 수요관리 절약 당부# 최근에 환경부와 연관됐던 사고 내용을 묻고 싶다. 지난 9월 발생했던 구미 불화수소(불산) 누출사고의 피해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다. 피해 복구상황은 어떤가."불산 사고 수습 이후에도 구미 현지에 환경부 직원들이 상주하면서, 피해복구 및 보상을 적극 추진중이다. 정부가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주민건강에 대한 영향이다. 불화수소에 급성 노출될 경우 장기간에 걸친 건강상 피해가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전문가 견해다.하지만 주민 불안이 있는 만큼 건강영향조사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관리를 지원하고 있으며, 무료건강상담도 실시했다. 환경영향에 대한 모니터링도 지속적으로 진행중이다."# 국민은 불안하다. 이번 사고가 환경부의 전적인 책임은 아니겠지만,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유해화학물질 안전관리 개선대책'을 확정했다. 화학물질 사고 전담부서를 환경부로 일원화한 것이 주 내용이다. 주관부처 혼선 등 불산사고에서 드러난 매뉴얼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조치다.사고대비물질을 포함한 화학물질 관리를 강화하는 것도 주요 계획이다. 사고대비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에 안전관리인을 선임토록 하고, 기존 유독물 등 안전관리인 및 종업원의 안전교육·훈련도 강화한다는 목표다. 아울러 현행 자체방재계획을 관리계획으로 확대 개편하고, 유해물질 취급현황, 사고위험 등에 대한 지역주민의 알권리를 강화하도록 할 것이다."# 여름에는 녹조가 전국의 하천을 뒤덮어 큰 사회적 문제가 됐다. 팔당호에도 심각한 녹조문제가 발생해 수질에서 비롯된 문제가 지역주민 생계에도 영향을 끼쳤다."현장에서 녹조 현상을 확인했는데 생각보다 심각했다. 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향후 반복될 재해인 만큼 개선에 힘써야 한다. 4대강 관련해서도 물관리 문제가 더욱 중요해졌다. 현재 물관리 문제가 국토해양부 및 환경부 등으로 이원화돼 있는데 전반적인 정책의 일원화가 필요하다. 결국 물 문제의 메인스트림이 누가 되느냐의 문제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관심도 높다. 지난달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통과로, 우리나라도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게 되는데."배출권거래제란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총량 단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해당하는 배출권을 할당해 시장에서의 배출권 거래를 통해 온실가스를 감축하도록 하는 제도다. 제도가 도입되면 온실가스 감축비용이 현저히 절감되는 것으로 전문기관들은 분석하고 있다.개별 업체의 경우 자체 한계저감비용을 산정해 배출권의 시장가격과 비교함으로써, 가장 비용 효율적인 감축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배출권 거래 시행에 대비해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안'을 내년말까지 마련하고, 세부 절차와 방법을 규정할 배출권 할당 및 거래 등에 관한 지침도 제정할 계획이다. 또 범부처 통합시범사업을 내년부터 실시해 제도 운영 경험을 쌓겠다."# 배출권 거래제 도입과정에서 산업계의 우려와 반발이 많았다. 산업계를 충분히 달랠 수 있는 묘책은 있나."산업계는 배출권거래제 도입으로 인한 국내 산업의 경쟁력 저하, 규제의 불확실성 등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당초 우려했던 것의 상당부분이 불식된 상태다. 이제는 제도의 설계, 운영 등과 관련해 기업들의 구체적인 요구와 건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환경부는 기업과의 활발한 소통과 논의 과정을 통해 합리적으로 대처해 나갈 계획이다. 법정 계획 및 할당 지침 등 각종 고시의 제정 초기단계부터 산업계와 관련 전문가의 참여를 적극 보장하고, 지역별 순회 설명회 및 간담회 등도 갖게 된다."# 녹색성장은 현 정부 및 환경부의 주요 정책이기도 하다. 녹색성장 확산을 주도해 온 환경부의 올 한해 성과를 평가한다면."생활 속에서 체감하는 환경정책을 강화했다고 자부한다. 놀이터 등 어린이 활동공간에 대한 안전진단처럼 민감 계층에 대한 맞춤형 환경보건 서비스를 확대했고, 지난 4월 '석면안전관리법'을 시행하는 등 관련 제도를 강화했다.또한 깨끗한 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환경기초시설 확충뿐만 아니라, 비점오염원·가축분뇨 등 새로운 오염원에 대한 관리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강한 녹색 대한민국'을 만드는데도 많은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녹색기후기금(GCF)사무국 인천 유치'에도 콘텐츠 차원에서 환경부가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인천은 환경오염시설 밀집지역으로 향후 체계적 관리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주요 환경국제회의에서 우리의 녹색성장은 큰 호평을 받았다. 환경의 국제적 리더십을 인정받은 셈이다. 이러한 평가는 5억 달러 규모의 알제리 생태하천 복원사업과 같은 환경산업의 해외수출로도 이어지는 중이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가 지난 10월 환경분야 세계은행이라 불리는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인천 송도에 유치하는 쾌거를 낳았다.2014년 생물다양성 당사국 총회도 우리나라가 유치하는 기쁜 일도 함께 만들어 냈다. 인천의 경우 수도권매립지의 인식이 크게 나빠진 바 있으나, 환경개선요구는 더욱 강해지는 상황이어서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와 함께 악취·먼지·경관개선에 더욱 노력하고 있다.GCF를 계기로 방문하게 될 외국인들에게도 우리나라의 친환경적인 매립지관리사례를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수도권매립지가 단순한 매립지로서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폐자원관리의 정책·기술개발·인력양성·홍보의 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환경과 관련해 새 정부와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폐기물관리는 환경에서 아주 중요한 요인이다. 다행히도 박근혜 당선자의 공약에는 폐기물 선진화 방안 등이 담겨 있어 기대가 크다. 규제 일변의 환경성 평가는 사업자와 국민 모두가 지지할 수 있는 '쌍방향식 평가체제'로 개편해야 한다. '생태복지'와 '사회적 약자 배려'가 환경영향평가에 포함돼야 한다. 국민들께는 에너지 절약을 당부하고 싶다. 환경파괴 주범인 온실가스와 에너지 사용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제5의 에너지는 수요관리라는 말이 있다. 작은 실천이 환경을 살리는 일임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한다."윤종수 차관은…■ 1958년 충북 제천 출생■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 학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원 환경공학 박사■ 환경부 폐기물자원국 폐기물재활용과 과장■ 주(駐)유엔대표부 참사관■ 환경부 폐기물자원국 국장■ 환경부 자원순환국 국장·상하수도국 국장■ 환경부 환경정책실 기후대기정책관■ 환경부 환경정책실 실장대담=최우영 사회부장·정리=김태성기자 ·사진=임열수기자

2012-12-27 김태성

[인터뷰… 그]시·도회장 출신 중앙회장에 첫 선출된 표재석 대한전문건설협 회장

대선을 하루 앞둔 지난 18일 저녁,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실이 있는 서울 신대방동 전문건설회관 빌딩 18층 아래로 일터에서 가족들에게로 향하는 자동차가 뿜어내는 빨간 불빛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점점이 스러지는 불빛들은 지난달 23일 고양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전문건설인 한마음 전진대회'에서 전문건설업체 대표 7천명과 함께 봤던 동영상을 떠올리게 했다.당면한 업계 현실과 고민뭔가국내 경제성장·일자리창출 기여 불구서울권보다 지방 건설 경기 매우 열악축적된 운영노하우로 의견 적극수렴'어느 젊은 건설인의 울음'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건설경기 침체와 종합건설사들의 부도로 연쇄부도 위기를 맞고 있는 한 젊은 전문건설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정책적 배려와 제도적 장치의 부족으로 가족들의 생존까지 위협당하는 최악의 현실을 감당해내고 있는 전국의 7만여 전문건설인들과 300만여 명에 달하는 전문건설인 가족의 심정을 읊고 있었다.지난 10월 30일 경기도회 회장에서 중앙회 회장에 당선된 표재석(60) 회장을 두고 누군가는 '혁명'이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물음표'를 던졌다. 지난 1985년 대한전문건설협회가 설립된 이래 지방 시·도 회장 출신이 중앙회 회장으로 선출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최근 건설경기 침체로 월평균 250개 업체가 부도·파산되는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중앙회 회장으로 선출된 지 50여 일이 지난 시점, 표 회장은 전문건설업계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과 고민을 풀어놓았다.그동안 전문건설협회 중앙회 회장직은 서울의 회원사가 줄곧 맡아왔다. 지방 시·도 회장으로는 처음으로 중앙회 회장에 당선된 표 회장은 이를 회원사의 협회에 대한 개혁과 변화의 요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표 회장은 "서울권보다는 경기도 등 지방의 건설경기가 매우 열악하다고 할 수 있다"며 "지방 회원사의 어려운 기업 환경과 고통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에 지방에서 건설업을 운영하면서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방소재 업체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고 말했다.그러면서도 그는 "회장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아 각양각색 회원사들의 하모니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16개 시·도회 및 18개 업종별 협의회가 구분 없이 지속해서 발전할 수 있도록 협회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표 회장이 건설업에 들어선 지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1980년대 말까지 건설업계는 정부주도의 양적 성장 패러다임에 충실했으며 안정적인 건설산업 성장에 맞춰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1990년대 건설시장은 정부 중심에서 민간 주도의 시장으로 전환하는 과도기를 맞이했고, 97년 터진 외환 위기는 표 회장을 비롯한 회원사 모두에게 암흑의 시대였다.그는 "외환위기 때 종합(일반)건설사들의 줄도산으로 별다른 대책도 없이 쓰러졌던 전문건설업계의 상황은 현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전문건설업계가 국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합당한 대우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표 회장이 회장으로 선출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전진대회를 개최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전진대회에는 전국의 전문건설업체 대표 7천여 명이 참여, 국민 생활 친화적 시설 인프라 투자 확대를 비롯해 원도급자 부도시 하도급자 보호대책 마련 요구 등을 담은 결의문과 정책자료집을 당시 대선후보 최측근 인사였던 새누리당 이인제 선거대책위원장,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 조용경 국민소통자문단장에게 전달했다.표 회장은 "그동안 우리 업계는 건설현장의 최일선에서 묵묵히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건설산업의 한 축으로 인정받고 더 좋은 환경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현실은 건설산업에서 하도급자의 지위만 강요당하고 정부의 정책에서 제외당해 왔다"며 "회원사에 회장으로서 현 상황을 함께 헤쳐나가자는 믿음을 보이고 건설업계가 서로 공생하는 방안을 각계각층에 전달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설명했다.전문건설업계가 당면하고 있는 제도적 문제인 실적공사비 제도와 불공정 하도급 관행 등을 정면 공격한 것이다. 실적공사비 제도는 공사에 투입되는 비용을 산정할 때 이전에 유사한 공사의 계약단가에다 각 공사의 특성을 감안해 조정한 뒤 산정하는 제도로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 실행하고 있다.하지만 전문건설업계는 국내 실적공사비제도가 선진국의 제도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상이한 입·낙찰 제도 탓으로 실적공사비제도도 정상적인 메커니즘으로 작동할 수 없으며 특히 국내 공공부문의 낙찰률은 최저가 경쟁심화로 인해 당분간 정상적인 수치로 회복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는 "품셈단가보다 20%이상 낮게 발표되는 실적공사비는 공사예정가격 하락을 초래하고 초저가 하도급, 저임금 등으로 이어져 건설 근로자에게까지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며 "또한 국토해양부는 실적단가가 표준품셈을 초과할 때도 인위적으로 품셈 이하로 하향조정하는 등 실적공사비 제도 확대를 위해 실적단가 결정방법을 편법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성토했다.새 대통령에게 바라는점은?거대공사가 아닌 지역 밀착 요청국민친화적 SOC 투자확대 필요건설산업의 경제 민주화도 중요또한 이미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지적됐던 추가 비용을 하도급자에게 전가하는 행위, 하도급자 선정시 동일공사를 2, 3회 재입찰에 부치는 행위 등 불공정 하도급 행위에 따른 전문건설업계의 고충도 털어놓았다.표 회장은 "지금까지 건설업계는 제로섬 게임에서 승리하는 데만 주력, 동반성장 의식이 없었을 뿐 아니라 불공정 하도급행위는 거래 특성상 은밀하게 이뤄져 적발이 어렵고 처벌이 경미해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불공정 하도급 행위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등 건설 하도급의 개선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창밖으로 줄잇던 빨간 불빛들이 잦아들고 그 자리를 어둠이 채우자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몇 시간 후로 다가온 19일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새로운 대통령에게 표 회장은 '건설투자 확대와 건설산업의 경제민주화'를 요청했다.그는 "새로운 대통령은 거대 공사가 아닌 지역의 군소 도로 확충 및 중·소하천 정비 등 지역밀착, 국민친화적 SOC에 대한 투자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건설투자 확대는 새로운 서민 일자리를 늘리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창밖의 어둠을 뒤로 한 채 마지막으로 새해 소망을 물었다.표 회장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난 50여일 동안 내년도 협회가 추진해야할 사업계획 수립과 예산 편성에 역점을 두는 한편 전문건설업계의 절박한 상황을 정부에 알리는 데 숨가쁜 일정을 소화했다"며 "새해에는 중산층, 서민들까지 체감할 수 있는 경제 성장을 이루고 더불어 주택·건설경기가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1952년 6월 2일 고양 출생■ 지방공무원 출신으로 고양청년회의소(JC) 제15대 회장 역임■ 거룡건설 주식회사 대표이사 역임■ 대한전문건설협회 경기도회 제8·9대 회장 역임■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 제8·9대 부회장 역임■ 전문건설공제조합 운영위원, 경기도정구연맹 회장, 경기도건설단체연합회 부회장 역임■ 황룡건설 주식회사 대표이사글=윤수경기자 사진=선보규 기자

2012-12-26 윤수경

[인터뷰… 그]최병덕 사법연수원장이 말하는 사법시험 폐지 앞둔 연수원의 미래

매년 수천명의 연수생을 배출하며 이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사법연수원이 빼어난 전경을 자랑하는 고양시 호수공원 인근에 터를 잡은 지 올해로 꼭 10년째가 됐다. 그동안 수천명의 연수생들은 이곳에서 법조인으로서 소양을 쌓으며 동기들과의 경쟁과 화합 속에 치열한 '2년'을 경험하며 연수원을 거쳐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연수원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사법시험 폐지가 예정되고 로스쿨에서도 속속 졸업자들이 배출되는 데다, 오는 2020년 사법연수생의 교육이 종료되면서 사법연수원의 역할도 변화하고 있는 것. 한편으로는 최근 잇따라 불거진 법조인들의 비리와 부도덕성으로 연수원에 윤리 교육의 중요성이 재차 부각되고 있다.이처럼 사법연수원의 또 다른 발전 방향을 연구하고, 결정해야 할 중요한 때에 연수원의 수장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최병덕(57·사법연수원 10기) 사법연수원장을 만나 '사법연수원의 변화와 미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글=김혜민기자·사진=김종택차장지난 32년 3개월간 법관 생활을 했던 최 원장은 지난 9월 사법연수원장으로 부임해 사법연수생 교육과 법관 재교육이라는 새로운 업무를 맡고부터는 교육자로서 또 다른 긍지와 보람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연수생 구직 대책 뭔지전담교수 지정 상시면담 체계변호사 대체실무 수습제 실시공공기관등 취업기관 다변화앞으로의 방향은?재판연구원등 새로운 대상 확대로스쿨 출강·법 실무 지원 병행법조계 윤리교육 프로그램 확충최 원장은 "수십년동안 직접 재판을 하거나 법원장으로서 재판이 잘 진행되도록 돕는 법관 생활만 해오다 이번에 처음 연수생과 법관 교육이라는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면서 많이 낯설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교육기관인 사법연수원의 원장으로서 교육 목표에 부합하는 최고의 교육 프로그램을 확보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전했다.현재 사법연수원은 연수생들로 하여금 법조인으로서의 전문지식과 실무능력뿐만 아니라 윤리의식과 인성, 전문성과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재교육을 받는 법관들에게는 올바른 법관상을 정립하고 국민과 소통하며, 재판에 필요한 구체적인 분야의 지식들도 갖출 수 있도록 최적의 교육 과정을 마련하고 있다.변화의 물결에 순응하지 않으면 결국은 물결에 휘말려 떠내려가고 말지만,순응하고 적응할 방법을 찾는다면 기존의 환경에 아직 젖어들지 않은연수원생들이 새로운 물길을 내는 선구자가 될 수도 있다최 원장은 "연수원이 아직 상당수의 새내기 법조인을 배출하는 기관인 만큼 연수생 교육이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잘 이뤄져야 하며,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사법시험 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40년 넘은 국내 유일한 최고의 법 실무 교육기관으로서 실무 교육 노하우를 전수하고 자료를 보존해 새로 맡게 된 기능들이 잘 정착되는 일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현재 연수생들의 취업난과 연수생 교육 종료라는 두 가지 고민을 함께 안고 있는 연수원의 현실에 대해서도 최 원장을 비롯한 연수원 관계자들은 다양한 노력과 연구를 통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올해부터 수천명의 로스쿨 졸업생이 배출되면서 연수생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취업난에 대처하기 위해 연수원은 현재 진로정보센터 홈페이지와 취업박람회를 통해 채용자와 연수생 간에 구인, 구직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또 취업지원 전담교수를 지정해 상시 면담 체계를 갖추고 채용기관과 연수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는 등 양쪽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을 발빠르게 파악해 제공하기도 한다.실무수습 부분에서는 변호사 사무실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기업체 등 다양한 기관에서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변호사 실무수습 기간에 연수생의 희망에 따라 변호사 대체실무수습이나 변호사 실무수습 인턴제를 실시하는 등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이로 인해 지난 1월에 수료한 사법연수원 41기의 경우 실질적인 취업대상 인원 대비 취업률이 96.2%로 지난해 수료한 40기(93.5%)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열악해진 환경을 고려할 때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숫자다.최 원장은 "연수원의 다양한 노력과 함께 로펌이나 법률사무소 등 전통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기업 등으로 취업 기관이 다양화됐으며, 연수생들도 처음부터 대우받으며 평생직장을 찾기보다는 일단 경력을 쌓으면서 전문성을 확보한 후 보다 나은 직장을 찾거나 스스로 독립하는 추세로 변화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또 사법연수생 교육이 종료된 후에도 연수원은 법관 연수를 확대하고 새로운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연구·검토하고 있다.최 원장은 "연수원은 본래 사법연수생 교육과 법관 연수 교육 등 크게 두 가지 기능으로 나뉜다"며 "사법연수생 교육 종료로 연수원의 기능도 함께 끝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그는 "최근 법조일원화가 실시되는 등 법원을 둘러싼 법조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는 데다, 국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법률분쟁이 날로 복잡하고 전문화됨에 따라 기존의 법관 연수도 그 규모와 대상이 크게 증가됐다"며 "그 대상이 연간 3천100여명에 이르고 있으며, 2020년 이후에는 법관 교육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현재 연수원은 앞으로 재판 연구원, 사법보좌관 및 사법보좌관 후보자 등 새로운 그룹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하는 한편, 로스쿨 법 실무 교육을 지원하기도 한다. 연수원 교수가 로스쿨에 출강해 민·형사 재판 실무 과목를 가르치거나 로스쿨 교수들과 모의기록 교재를 함께 개발하고, 법원 실무수습을 위한 행정 지원 등을 하고 있는 것.또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의 사법부 대표들에게 대한민국 사법제도를 소개하거나 중고등학생들에게 법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40년 이상 쌓아온 실무교육의 노하우를 외부에 적극적으로 전파하기도 한다.한편으로는 일부 법조계의 비리나 비윤리적인 모습들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연수원은 연수생과 법관들을 대상으로 윤리교육 프로그램도 확충하고 있다.현재 사법연수생들은 1학기와 2학기에 각 1학점씩 법조 윤리 과목을 수강하면서 존경받고 있는 선배 법조인들의 특강을 듣거나 법관, 검사, 변호사의 윤리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다양한 변호사 징계사례를 검토하는 등 법조인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 윤리에 대해 배우고 있다. 또 근로 봉사 연수와 법률 관련 봉사 연수의 의무적인 이행을 통해 연수생들이 현장에서 직접 봉사활동을 하면서 법조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체득하는 기회도 갖는다.최 원장은 "12월인 지금은 연수원이 평소에 비해 조용한 편인데, 올해 졸업을 앞둔 연수생들이 정규 수업과 시험을 모두 마치고, 외부에서 봉사 활동을 하거나 연수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그는 또 "연수생들 외에 법관 연수 프로그램에서도 재판의 본질은 어떤 것인지, 바람직한 법관상이란 무엇이며, 법정에서 어떤 언행으로 재판을 해야 국민의 눈높이에 부응할 것인지에 관해 실제 재판 모습을 촬영해 모니터링하면서 법관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전했다.이처럼 연수원에 불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최 원장은 평소에도 연수생들에게 '변화를 두려워 하지 말라'고 강조하곤 한다.그는 연수원생들에게 "현재 여러 가지 변화가 물밀듯이 밀려와 새로운 출발 지점에 서 있는 이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짐으로 느껴질 수 있다"며 "그러나 변화의 물결에 순응하지 않으면 결국은 물결에 휘말려 떠내려가고 말지만, 순응하고 적응할 방법을 찾는다면 기존의 환경에 아직 젖어들지 않은 연수원생들이 새로운 물길을 내는 선구자가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그는 또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과감하게 도전하는 진취적인 자세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꾸준한 자기 계발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훌륭한 인품과 사명감, 전문지식과 실력을 겸비한다면 훗날 이러한 변화가 연수생들이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법조인이 되는 데 큰 자양분이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최 원장은 또 연수원을 바라보는 국민들에 대해서도 "연수원생들도 대한민국 누군가의 자제들"이라며 "국민의 아들, 딸로 따뜻한 눈빛으로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김혜민기자

2012-12-19 김혜민

[인터뷰… 그]스타플레이어 출신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 경인일보 방문

"경기도민의 뜨거운 축구 열기에 부응하기 위해 A매치를 열게 됐다."지난 8일 경인일보 본사를 방문한 대한축구협회 김주성 사무총장은 14일 국가대표팀의 호주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을 화성종합운동장에서 개최하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김 사무총장은 "선수와 팀 수의 광역 시·도협회 분포를 보게 되면 수도권이 60~7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서울을 제외한 경기권역의 비중은 상당히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축구가 발전하는 동반자적인 입장에서 경기도를 바라보고 있다. 세계축구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경기도가 중심이 되어 힘을 실어 줘야 한다"고 했다. 김 사무총장은 축구계에서는 선수출신 행정가 1호다.지난 1999년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 은퇴한 후 다음해인 2000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에 선임되며 행정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올해 초 그가 한국 축구를 이끄는 중심 기관인 대한축구협회의 사무총장에 선임됐을 때 국내 스포츠인 모두가 깜짝 놀랐다.경기도민 위해 호주팀과 오늘 평가전A매치 열기반영 내년에도 국제이벤트지금은 한국축구 발전 좌우 중요시점협회 임직원·전문가 합심 최선의 노력김 사무총장은 "해외에 진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이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축구 지도자와 행정가가 상반된 분야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을 꺼냈다.그는 "거창한 이유보다는 선수 출신이 꼭 지도자로만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접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다.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 선수와 지도자도 중요하지만 행정가들이 마음껏 정책을 펼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도전하게 됐다"고 전했다.이어 김 사무총장은 "행정가도 아마추어 협회에는 아마추어에 맞는 행정이 있고, 프로에는 거기에 맞는, 대한축구협회에는 협회에 맞는 행정이 있다.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려면 20년 이상 운동을 해야 한다. 행정가로서도 행정가에 맞는 지식과 소양을 쌓기 위해 일정 기간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며 스포츠 행정 관련 학위를 취득한 이유를 설명했다.김 사무총장은 "제가 현장에 대한 전문지식은 풍부할지 모르겠지만 행정적인 부분은 배워야 할 게 많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석·박사 학위 취득과 어학연수, FIFA국제스포츠관리자 과정 등도 밟게 됐다"고 귀띔했다.현역 축구 선수로서, 그리고 축구 행정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에게도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편견이다.김 사무총장은 "인식이다. 모든 사람들이 운동선수는 행정가로 성장할 수 없다는 편견이 있다. 특히 남들의 인식도 힘들었지만 내 자신의 인식에 대한 탈바꿈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이어 김 사무총장은 "가장 적성에 맞는 게 축구 선수였기 때문에 수십 년을 했고 거기에 맞게 습관화됐다. 그런데 정반대의 일에 도전하게 됐다. 운동선수는 경기장에서 활동적인 부분이 전부라면 행정가는 자리에 앉아서, 결국은 머리 싸움을 한다. 그런 부분에 대한 트레이닝이 어린 시절부터 익숙지 않았고 성인이 돼서 바꾸려고 하다 보니 힘들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하지만 김 사무총장은 "선수 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걸 배웠다. 선수 시절 겪었던 고난과 역경이 다른 분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힌 후 "여기에다 주위 분들이 많은 조언을 해주셔서 힘든 과정을 슬기롭게 이겨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1980~90년대 최고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김 사무총장은 국내외 리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김 사무총장은 2005년부터는 대한축구협회 이사로 선임되며 축구 행정가로서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 2012런던올림픽 동메달 획득 등 행정가로서도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성과물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축구 선수가 아닌 축구 행정가 김주성으로서 최근 한국 축구 부흥기를 바라보는 느낌에 대해서도 물어봤다."선수 때의 성취감은 자기만의 것이었지만 행정가 입장에서 성취감은 나만이 아닌 온 나라의 성취감이다. 한 사람이 누리는 기쁨이 아닌 전 국민이 함께 누리는 감격이나 스릴, 만족감은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이어 김 사무총장은 "오히려 기쁨과 희열을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 선수 때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때는 내가 현역 선수로 뛸 때보다 더 아픔이 온다"고 덧붙였다.그는 "사무총장의 역할에 대한 평가도 제 개인적인 평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직이 평가받는 부분이기 때문에 함께 대한축구협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분들의 의견도 경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제 역할에 대한 비중이 클지 모르지만 모든 의사결정은 대한축구협회 임직원, 전문가들의 능력과 생각을 모아서 결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김 사무총장은 "현재 선수들이 축구 선수로서 국민들로부터 사랑 받는 것은 과거 선배들께서 이뤄놓으신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부터는 선수들이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 축구계는 무한 성장할 수 있느냐 아니냐 기로에 서 있다. 축구계가 발전할 수 있는 뿌리를 다지는 중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도내 축구계에 논란이 일었던 수원시시설관리공단 여자축구단(수원FMC) 해체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수원FMC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닌 여자 축구 전반에 어려움이 표출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며 "대한축구협회에 여러 종목의 연맹이 있는데 유기적으로 대화를 통해 축구 전 분야가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 거 같다"고 말했다.이어 김 사무총장은 "수원FMC 문제와 관련해서는 염태영 수원시장을 찾아뵙고 사회적 약자층인 여성들의 입장을 설명하며 팀 운영 문제를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한 후 "수원지역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를 축구와 연계해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김 사무총장은 "이번 A매치의 열기를 반영해 더 많은 경기도민들이 축구를 즐길 수 있도록 내년에도 국제 이벤트를 통해 도를 찾고 싶다. 대표 팀이 활약할 수 있도록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글/김종화기자사진/김종택기자 '아시아의 삼손' 애칭 대표팀 공격수 활약김주성 축구협회 사무총장은김주성 사무총장은 강원도 양양군에서 태어났지만 서울 성수중과 중앙고를 거쳐 조선대에서 활약했다. 1987년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에 데뷔한 김 사무총장은 1992년까지 대우에서 100경기에 출장해 31골을 넣었다. 데뷔 첫해 소속팀 대우를 K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신인상을 수상했고 1990년에도 소속팀에 두 번째 K리그 정상을 안겨줬다.1992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VfL 보훔으로 이적해 활약했지만 1992~1993시즌 결과 팀은 16위를 기록해 2부리그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다. 1993~1994시즌 VfL 보훔의 2부리그 우승과 1부리그로의 승격을 이끌며 '2부 분데스리가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지만 국내로 복귀했다. 1994년 친정팀 대우로 복귀해 1997년 소속팀을 K리그 3번째 우승으로 이끌며 K리그 MVP로 선정됐다.1999년 11월 25일 속초시에서 은퇴 경기를 가졌는데 K리그에서 은퇴 경기가 열린 건 이때가 처음이다. 대우는 K리그 구단으로는 처음으로 김 사무총장의 선수시절 번호 16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K리그에서 뿐 아니라 국가대표로 한국 축구의 해외 활약을 이끌었다. 1988년 AFC아시안컵에서 2골을 넣으며 팀의 준우승을 이끌며 MVP를 차지했고 1986년과 1990년, 1994년 FIFA월드컵 대표팀으로 활약했다. A매치 77경기에 출전해 14골을 득점했다.현역 선수시절 소속팀 대우의 K리그 3회 우승, 2회 준우승을 이끌었고 컵대회는 4회 우승을 일궜다. 개인상도 K리그 신인상과 체육훈장을 비롯해 18회에 걸쳐 각종 상을 받았다.오른발잡이이면서도 왼발 슈팅을 많이 사용할 정도로 자유자재로 양발을 사용했다. 측면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수비수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한 그는 그라운드를 종횡무진하며 끈질기게 득점 기회를 노리는 모습으로 인해 팬들로부터 '야생마', '아시아의 삼손' 등의 애칭을 얻었었다.행정가로서의 도전은 2000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에 선임되면서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2003년 FIFA 국제스포츠관리자 과정을 이수했다.2005년에는 대한축구협회 이사에 선임됐고 같은 해 10월에는 대한축구협회 국제부장으로 선임됐다.지난 1월부터는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으로 선임돼 축구 행정을 이끌고 있다.

2012-11-13 김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