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광복절 기념 '전 미주 한인청소년 체육대제전' 마련한 한창연 뉴욕한인회장

"100여년의 미국 이민사 중 최초의 일로 미국 전역에 있는 한인청소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념비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오는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미국 뉴욕에서 '제67주년 광복절 기념 전 미주 한인청소년 체육대제전'이 열린다. '250만 미주한인동포들의 미래, 한인 청소년들의 축제한마당-다함께! 뉴욕에서, 한마음 한뜻으로'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체육대제전은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각 한인회에서 선발된 청소년 선수 1천500여명이 참가한다.뉴욕대한체육회가 주최하고 뉴욕한인회, 뉴욕총영사관, 뉴욕한국문화원, 민주평통 뉴욕협의회 등이 후원하고, (재)한민족한마음이 특별협찬을 한다.미국 이민사 중 최초라는 '역사'가 될 이번 체육대제전을 적극 홍보하고, 모국인 대한민국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한창연 뉴욕한인회장(60·공인회계사)이 지난주부터 2주간의 일정으로 국내에 머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관계자들과 새누리당 원유철 재외국민위원장, 남경필 전 최고위원을 비롯 정치권 관계자들도 두루두루 만나는 바쁜 일정속에서 국내 언론사 중 최초로 경인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한 회장은 "대한민국은 88서울올림픽과 2002한일월드컵이라는 스포츠대제전을 통해 세계시민으로, 선진 일류국가로 도약하는 거대한 전환점을 이뤘다"며 "전 미주 한인청소년 체육대제전 역시 한인 1세대와 2세대가 스포츠의 감동으로 하나가 되고 전 미주지역 한인회가 하나되는 한민족의 대역사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이 같은 역사적인 전 미주 한인청소년 체육대제전을 통해 둘로 쪼개져 분란이 끊이지 않는 미주체육회의 단합도 이뤄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1천500여명의 청소년 선수들의 출전 경비 등 모든 경비는 한인동포사회 등으로부터 기부를 받는 등 전 미주지역의 250만 동포사회를 '하나'로 이끌어내겠다는 복안이다.한 회장은 전 미주 한인청소년 체육대제전의 성공적 개최 못지않게 또 다른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국내에 체류하고 있다.유엔본부 앞을 흐르는 허드슨강 건너편에 대한민국을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팔각정 건립'이 바로 그것이다.한 회장은 "반기문 사무총장으로 상징되는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이목을 집중시키는 건물이 바로 유엔본부 건물"이라며 "그 유엔본부 앞을 흐르는 허드슨강 건너에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팔각정을 세우면 유엔본부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를 비롯 전 세계인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고, 그 관심은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특히 팔각정 건립에 들어가는 주 재료인 나무를 비롯 모든 것을 '토종 한국산'으로 부분 제작한 뒤 미국으로 공수해 가 조립·완성시킬 예정"이라며 "일부에선 건립비용에 대한 걱정 등으로 미국산이나 철제 구조물로 만들자는 말도 있으나 '짝퉁 팔각정'으로는 진정한 대한민국을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토지주로부터 사실상의 무상 사용승낙을 받았으며, 무형문화재인 대목장(大木匠)으로부터 사전 감수를 비롯 목재 선택 등 일부 제작 중에 있다"며 "매년 10월 첫째주 토요일 뉴욕 한복판 한인타운거리에서 '코리안 퍼레이드'가 열린다. 오는 10월 6일 준공식을 가질 계획이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미국 연방정부가 지정한 '한국의 날'인 내년 1월 13일 준공식을 할 예정이며, 가급적 10월에 준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다만 건립 비용에 대한 걱정도 드러냈다. "광주광역시의 후원으로 댈러스주에 팔각정이 건립돼 있는데 총비용이 100만달러라는 말을 들었다"며 "정부의 관심과 광역 또는 기초자치단체에서 후원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한 회장은 '정부의 관심'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정부의 동포사회를 끌어안는 방식에 대해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한식의 세계화를 비롯 재외국민을 향한 정부의 모든 노력 그 자체는 매우 긍정적"이라면서도 "그러나 본질이 잘못됐다"고 말했다.한 회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각종 행사를 할 때 동포사회가 얼마나 참여하는지, 또 그 참여가 진정성이 있는지가 문제"라며 "한국에서 건너온 행사 주최자 및 참석자들만의 행사로 전락하고 동포사회의 참석이 매우 저조해 전혀 감흥이 없는 '그들만의 행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재외국민투표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목청을 높였다. 지난 4·11 총선 때 처음 도입된 재외국민 선거의 투표율은 한자릿수에 머물러 당초 기대치에 한참 미흡했다. 교포·유학생 등 재외국민 투표 대상자는 223만여명으로 추산돼 올 대선의 주요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여야 정치권은 투표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여야가 인터넷을 통한 선거인 등록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 회장은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는 "뉴욕의 경우 영사관에 마련된 투표소에 뉴욕주를 비롯 뉴저지주에 거주하는 유권자들이 최장 1시간40분씩이나 차를 타고 간 뒤 엄청난 주차요금으로 악명높은 뉴욕에 40여분 주차한 뒤 선거인 등록을 하고, 투표 당일에 또다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그에 따른 대안으로 우편투표제 실시에 목소리를 높였다."여야 정치권이 선거 부정의 소지가 있다고 반대만을 외치고 있다"며 "세계 최고로 잘돼 있다는 미국 민주주의가 채택한 것이 우편투표제이고, 지금도 큰 사건없이 진행되고 있다. 한인회의 시민권자들 역시 수십년 우편투표제를 해 왔다. 그만큼 정치의식이 선진화돼 있는데 국내 정치권이 우물안 개구리식의 정치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한 회장은 이어 '해외동포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관련 법률 개정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현재 3년 이상 보유한 고가 주택이 아닌 1가구 1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이 주택을 양도할 경우 양도소득세가 비과세되고 있으나, 해외로 이주하기 전 1세대가 1주택만을 장기간 보유하며 '1가구 1주택 비과세' 요건을 충족하고 있으나 '양도 당시 비거주자'라는 이유로 비과세 혜택 또는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이에 한 회장을 비롯 LA 한인회장, 버지니아 한인회장, 뉴저지 한인회장, 시카고 한인회장, 뉴잉글랜드 한인회장, 타코마 한인회장 등이 지난해 11월 4일 연명으로 관련 법률 개정을 건의해 국회에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18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돼 버렸다.한 회장은 "재외국민투표와 결부시켜 정치적 해결을 원하지 않는다"며 "어려웠던 시절 해외에 진출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국위를 선양해 온 이민 1세대들에 대한 대한민국의 기본적인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재규기자사진/김종택 기자

2012-07-05 이재규

[인터뷰… 그]전국 최초 보증액 10조 돌파 이끈 경기신용보증재단 박해진 이사장

지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있는 경기신용보증재단이 지난 11일부로 창립 16년만에 전국 최초로 보증액 10조원을 돌파했다.이번 경사는 지난달 경기신보가 제24회 전국중소기업인대회에서 기업지원우수단체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데 이은 쾌거로, 그간 공격적인 서민 지원을 인정받은 성과였다. 영세 소상공인 지원과 사채일소 운동 등 지역서민경제를 위해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경기신보 박해진 이사장을 만났다.박 이사장은 이번 겹경사에 대해 "재단 임직원 모두가 도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해 흘린 땀과 노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는 기쁘지만 한편으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소회를 밝혔다.경기신보는 지난 1996년 첫 보증서를 발급한 이래 지금까지 31만6천870개 업체에 보증 규모 10조6천억원을 달성했으며, 박 이사장이 취임한 2005년부터는 경기침체 상황에도 매년 수천억원씩 보증 규모를 늘리고 있다.박 이사장은 "소상공인 지원은 리스크가 높아 제2금융기관에서조차도 대출을 꺼리지만 실제 이들이 망하는 이유는 조직 내부의 비리를 비롯한 도덕적해이 탓"이라며 "이사장 취임후 적극적인 소상공인 지원을 통해 보증업체를 3.5배나 늘렸지만 오히려 손실률은 3분의1 수준으로 줄였다"고 말했다.이처럼 경기신보는 영세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현장보증 지원 서비스'를 마련하고, 사업 특성상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전통시장 상인과 노점상 등을 방문해 현장에서 상담부터 신용조사까지 해결하는 One-Stop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 결과 경기신보가 지원하는 업체는 지난 2004년 8천544곳에서 현재 31만6천여 업체로 증가했다. 반면, 손실률은 2004년 9.26%이던 것이 2005년부터는 지속적으로 줄어 지난 7년간 연평균 손실률은 2.7%까지 떨어졌다. 담보없는 서민에게 공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도 손실률은 오히려 높여놓은 것.이와 함께 신보는 지난 2010년부터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지 못해 고금리 사채를 이용하는 영세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사채애로상담창구를 도내 전 영업점에 설치, '사채일소운동'을 벌이고 있다.박 이사장은 "한국은 고금리 사채로 돈을 벌어들이기 쉽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며 "이 말은 곧 우리의 금융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지난 2010년 2월 양주시를 시작으로 도내 31개 시·군과 전통시장 상인회 3자간 MOU를 체결해 사채 일소를 위해 노력해 온 신보는 고금리 사채로 인해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영세 소상공인 등에게 사채 전환 자금도 지원하고 있다.지난 3월 사채일소운동을 전개한지 2년여만에 7천50억원을 사채전환 자금으로 지원한 신보는 3만9천560개 업체를 사채로 부터 구제했다. 이는 연간 영세 소상공인이 부담해야 하는 약 6천345억원 규모의 금리 비용을 덜어준 것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해 지역경제에도 큰 활력을 가져온 성과를 냈다.박 이사장은 "상당수의 소상공인들은 금리가 6~7%인 금융기관을 두고 원금의 60~100%에 달하는 사채를 쓰고 있었다"며 "사채로 고통받는 영세 소상공인들을 위해 정부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출연금을 조성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소상공인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사채 전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면 불필요한 금융 비용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제언했다.이밖에도 경기신보는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도내 각 지점에 일자리센터를 개설하고, 일자리 전담 인력을 배치했으며, 일자리 상담창구 운영을 통해 자금 및 보증지원이라는 고유 업무 외에도 일자리 창출 상담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 2010년 1월에는 전국 최초로 '경기도 일자리창출 특별협약자금'을 만들어 일자리 창출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도내 일자리 창출과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앞장서고 있다.그동안 양적인 성장도 큰 폭으로 이뤄졌다. 2004년 2천여억원에 불과하던 재단 출연금은 5천300억원 규모로 크게 확충됐으며, 고객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2005년 6개에 불과했던 지점은 19개 지점, 9개 출장소로 확장됐다.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경기신보는 경기도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도내 공공기관 중 유일하게 6년 연속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중소기업인대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축사에서 경기신보를 따로 언급하며, "경기신보가 표창을 받는데 기업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박 이사장은 "도내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이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이고, 이들이 잘돼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경영철학 아래 올해 미래 기술가치와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창업기업, 일자리창출 기업 등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또 한미FTA 유망산업의 특화 발전을 위해 자금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취약산업에 대해서도 특별지원을 마련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박 이사장은 "보험판매원과 화장품 판매원 등 사업자등록도 없고, 담보도 없는 서민들을 위해 경기신보가 지원을 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도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금 지원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해민·김성주기자

2012-07-02 최해민·김성주

[인터뷰… 그]대한민국 넘어 세계인의 시선 사로잡고 있는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

그를 처음 본 순간 말 좀 해본 분이구나 싶었다. 강의든 인터뷰든 광고매체와의 협상이든, 그는 말을 참 많이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말은 몇 년째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에게 먹혀들고 있다. 파도 같은 크고 강한 울림은 아니지만 심장박동처럼 끊임없고 필사적인 진동을 남기며 대한민국이 여기 이렇게 살아있다고 말하는 그는 대한민국에 전무후무한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다.서경덕 교수는 이미 유명하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우익단체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조용한 외교'를 표방하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 문제에 신중히 대응하는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면에, 전광판에 '독도는 우리 것'이라고 천진하고도 진지하게 말하던 그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았던 탔이다. 마치 고담시 시민들이 베트맨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것처럼…. 각종 매체를 통해 그의 정체는 수도없이 노출됐음에도 그의 강의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몰려든다. '한국홍보전문가'가 되는 게 꿈인 중고등학생들도 생겨났다. 그의 연구실에는 하루에도 5~6명씩 무작정 그를 찾아오는 학생들이 진을 치고 있다. 타임스퀘어를 지나던 한국 관광객들은 전광판을 보며 서 교수를 떠올리고 트위터로 말을 걸기도 한다. 그는 한국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홍보하는 데도 소질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서 교수는 건축가가 되기를 꿈꾸며 조경학과에 진학했지만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홍보분야에 두각을 나타냈다."대학시절 문화창조 연합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하던 중 서울 600년 행사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서울시에서는 각 세대와 계층별로 상징이 될 만한 물건을 모아 타임캡슐에 담았는데 당시 대학생을 대표하는 물건 중에 최루탄이 있더군요.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어 몇몇 학생들과 의기투합해 94학번 대학생들의 상상력을 담아보자며 전국 대학을 돌면서 자료를 모았습니다. 이때 모은 물건과 자료들은 남산 서울천년 타임캡슐 광장에 보관돼 있죠. 당시 이 일이 언론에도 크게 보도됐는데, 이걸 본 기업들이 연락을 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프리랜서 형식으로 기업 홍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여행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400년 뒤 후손들에게 21세기 대학생에 대한 홍보를 마친 서 교수는 해외로 진출했다. 그런데 서 교수는 외국의 유명미술관 입구에서 심기가 불편해졌다. 한국어 리플릿이 없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1990년대, 해외여행 하는 국내인이 지금처럼 많지 않은 데다 사소한 것으로 치부돼 버리기 쉬운 리플릿에 한국어가 없다고 자존심까지 상할 게 뭐 있나 싶기도 하지만, 서 교수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문화는 바뀐다는 사실을 스위스 친구의 사례를 들며 열심히 설명했다. "스위스인 친구가 어릴 적 일본 초밥가게에 종종 가곤 했는데, 어린 나이에 날생선이 올라간 초밥을 먹는 것은 별로였다더군요. 그래도 그 초밥가게에 간 이유는 음식을 기다리면서 보던 만화책 때문이었습니다. 초밥가게 주인이 스위스에 가게를 내면서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일본 만화책을 가져다 놓으면서 문화를 바꾸거나 일본문화를 세계에 전하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소해 보이는 만화책 때문에 그 친구는 일본에 한 번 가본 적이 없으면서도 일본어까지 할 줄 알게 됐습니다. 문화는 가장 근거리에서, 생활 속에서 알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효과적이죠." 이런 사소한(?) 에피소드에 감동을 받아 일신을 한국 홍보에 바치고 있다니 천직인 모양이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쉽게만 풀렸을 리는 없는 법.혈혈단신 개인 신분으로 뉴욕타임스에 독도 광고를 내겠다고 나섰을 때 서 교수는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다. "광고매체에 신분을 확인시키는 데만도 여러 날이 걸렸습니다. 정부 관계자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고, 제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알려줬는데 당시 다음의 한메일을 썼어요. 뉴욕타임스에서 메일에 접속했는데 다음의 첫 화면부터 깨져서 나오니 그 쪽에서 저를 믿지 않았죠. 다음 측에 연락해서 사실을 알렸고, 지금은 전 세계 어딜 가나 다음의 첫 화면은 깨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명실상부 제대로 된 광고주 대접을 받고 있죠. 신문사를 설득하고 광고를 내면 다음에는 여기저기서 협박전화가 옵니다. 일본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어르신들도 전화를 많이 주시고 엄하게 꾸짖으시더라고요." 그래도 그는 서운하게 생각하는 법이 없다.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기 때문이다.5월 초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막걸리 광고를 올리고 온 서 교수는 7월에는 전광판 중에서도 티켓 박스 바로 앞의 가장 큰 전광판에 30초짜리 '아리랑' 광고를 올린다. 1시간에 2번꼴로 하루 50차례, 한 달 동안 1천500회 타임스퀘어 광장에 아리랑을 알리는 광고가 노출된다.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기에 큰 비용을 들여 아리랑을 광고하게 된 데는 다른 광고보다 조금 더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지난해 중국이 아리랑을 중국 무형문화재로 지정했고, 세계 유네스코 무형문화재에 '아리랑'을 중국의 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지금 경기도가 나서서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관련 법을 개정해 아리랑을 무형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고, 세계 유네스코에도 아리랑을 우리 문화재로 등재 신청을 해 놓은 상태고요. 올해 11월 유네스코 심사가 열리기 전에 아리랑이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임을 알리는 것이 시급합니다. 아리랑 지키기의 일환으로 6월 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아리랑 아라리요' 공연에서는 4만5천명이 모여 다함께 아리랑을 부르는데, 이를 모티브로 올해 2차 아리랑 광고를 올릴 계획입니다." 소리가 안 나가는 전광판에 소리를 광고하려니 꽤나 고민되는 모양이다. 그래도 다음 광고가 또 기대되는 것은 지금까지 그가 쌓아온 커리어의 힘일 것이다. 아직 30대인 서 교수가 지금까지 다닌 나라만 50여개국. 여러 차례 다닌 나라도 많으니 비행기 탄 숫자는 웬만한 항공사 승무원 못지않다. 결혼할 때도 결혼 공약(?)이 '1년에 반만 보자'였고 지금까지 충실히 지키고 있다고 한다. 홍보에는 열심히 매달려도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듯하다. "4년 전부터 강의하고 있는 성신여자대학교가 유일한 직장입니다. 더 큰일을 하려면 아무래도 조직화가 필요하니 장래에는 가칭 한국홍보재단을 만들 계획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죠. 현장에 가야 아이디어가 나오기 때문에 지금처럼 소속되지 않은 상태가 좋습니다."홍보전문가로서 스스로를 홍보할 만한 장점으로 그는 '실행'을 꼽았다. "아이디어가 좋다는 분들이 많지만 아이디어는 누구나 다 가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디어는 저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많이 봤고 저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도 많죠. 다만 이런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의 강점은 바로 실행하는 힘입니다."아직도 홍보할 것이 많다는 서 교수는 다음 번 한국 홍보 아이템으로 '한복'을 선택했다. 어떤 한복을 어느 매체를 통해 알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를 고민중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하고 있는 동안 서 교수의 심장이 조금 더 빠르게 뛰는 듯하다.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 / 사진=김종택 차장·정리=민정주 기자

2012-05-31 경인일보

[인터뷰… 그]'인천출신' 황우여 새누리당 신임 대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국민들로부터) 정권의 재신임을 받는 것이 제1의 과제"라고 밝혔다. 황 대표는 지난 21일 오전 여의도 당사 대표실에서 가진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때마침 의결한 주요 당직 개편 과정을 설명하면서 "어제 당의 대선주자들과 만나 많은 얘기를 들었고, 최소한의 공통 분모는 정권 재창출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인터뷰 9면 그는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에 대해서도 "대선주자들과 만나 오픈프라이머리의 당위론에 대해 80% 듣고, 20% 정도 얘기했다"며 "그 분들이 왜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하는지 관심있게 들었고, 해답은 그 안에 있다"며 경선룰의 개정과 관련해 여운을 남겼다.황 대표는 "무엇보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국민행복"이라며 "제대로 국민앞에 사랑받는 당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끊임없는 개혁과 쇄신을 통해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정책을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최근 인천의 선거 결과는 전국 정치판도의 좋은 모델로 등장했다. 뉴욕과 뉴햄프셔주가 미국의 정치판도를 읽는 바로미터가 되는 것처럼, 인천을 보면 한국의 정치기상을 예측할 수 있다"며 인천 민심이 전국 선거의 향배를 가르는 척도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인천시의 재정문제에 대해 정책 결정자들의 변화에 대한 인식 부족을 지적하면서 "걱정스러운건 자꾸 안된다 하면 더 안된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감을 보이면서 더 의연하게 대처해야 하고, 그래도 안풀리면 특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가 개원하면 바로 관심 갖겠다"고 약속했다./정의종기자

2012-05-23 정의종

[인터뷰… 그]인천출신 5선 정치인 황우여 새누리당 신임대표

황우여 의원이 새누리당 신임 대표로 지난 15일 당선됐다. 5선의 그는 연수구가 지역구이며 송림초등학교, 인천중학교,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한 인천인이다. 조봉암 진보당 위원장, 장면 제2공화국 국무총리(민주당 대표) 이후 인천출신 정치인이 중앙 정치무대에서 당 대표직을 맡은 것은 50년 만의 일이다. 중앙 정치권에서 상당기간 소외돼 왔던 인천의 정치지형을 넓혔다는 데서 인천정치권은 여야를 떠나 그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분위기다. 일주일여가 지난 21일 새누리당 당 대표실에서 황 대표를 만났다. 신임 사무총장으로 4선의 서병수 의원을 선정한 최고위원회의 직후라 약간은 어수선하기도 했지만, 그는 이내 당 대표로서의 소신을 풀어나갔다. 부드러웠지만, 의지가 묻어났다.- 새누리당 대표로서 시대적 소명은 뭔가."우선 7개월밖에 남지 않은 대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정권의 재신임을 받는 것이 당의 제1과제다. 대선관리를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대선관리를 잘하려면 끊임없는 개혁과 쇄신, 정책개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국민행복이다. 그동안은 대한민국 건설에 매진했는데, 대한민국을 이만큼 건설했으면 국민의 행복도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자살률, 이혼율이 높고 출생률은 낮은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국민의 아픔과 고통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새누리당부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당무의 제1순위다. 대선승리를 위해 정치공학적 측면만 강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민이 행복에 접근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실행능력이 얼마나 있느냐가 대선의 선택 기준이 될 것이다. 그것을 갖추고 실행하는 것이 대선관리의 핵심이라고 본다."- 죽산 조봉암, 운석 장면 총리 이후 인천출신 정치인으로서 50년 만의 여당대표다. 인천지역의 정치 후배들이 황 대표를 디딤돌로 삼아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우선, (그분들과는)격이 다르다. 부끄럽다. 선배는 후배가 기반으로 해서 더 크게 발전하라고 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고 방향이다. 인천이 정치권에서 소외됐던 게 사실이다. 갑자기 팽창된 도시인 데다 정체성 문제도 있었고, 정치적 콘센서스 구성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모든 선거에서 전국 정치판도의 좋은 모델로 등장해 왔다. 이번 총선에서도 우연일지 몰라도 우리는 6대 6이었다. 여야가 50대 50으로 나눠지듯 하지 않았나. 인천을 보면 정치기상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시민들의 정치 성숙도가 높은 곳이다. 후배들은 시민들의 정치적 수준과 의식을 잘 받아들이면, 부지불식간에 중앙정치무대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후배들이 나보다 더 큰일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본다."- 지난해 원내대표에 도전했을 때, 무모한 도전이라는 시각도 있었다."저로서는 절박했다. 국회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민들의 수준이 높아졌고, 국가의 위상도 당당해졌다. 그런데 우리 정치의 현실과 국회의 모습이 이래선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이 있었다. 어렵지만 회피할 수 없었다. 이대로 가면 당도 무너지고, 정권의 재신임도 무망하다고 봤다. 한번은 젊은 의원들이 배지를 떼 주면서 몸싸움 없는 국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 달라 했다. 내가 그런 자격이 있겠나 자문자답하면서 사양했는데, 이 분들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가 생각하면서 그 뜻에 동조했다. 그게 계기가 됐다. 적은 숫자였지만, 역사는 소수가 만들어간다고 서로 용기를 줬다. 그때 그것이 당의 나갈 진로와 맞은 것이다. 그래서 메시지로 승부가 났다. 세 싸움이 아닌 메시지 싸움이었다. 국민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정책쇄신을 진행했다. 세대 간의 아픔이 보였다. 그리고 여당답지 않은 이슈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대표께서 일하는 과정을 보면 늘 웃는 얼굴로 부드러운 면모를 보이는데 뚝심이 있다.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뚝심은 나한테 나오는 게 아니고, 그 일이 안 되면 안 되는 상황이 그렇게 만든다. 검도 등 무도의 기본이 자기 힘으로 하는 게 아닌 남의 힘으로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의 힘을 받아서 그 힘으로 일할 때 목표가 이뤄지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하는 일을 내가 같이 했을 때 결과가 잉태되는 것이다. 다수가 반대할 때는 어려워진다. 사심을 버리고 남의 얘기를 듣고, 또 생각하고 하면 무엇이 옳은가 보인다. 명확히 보인다. 그렇게 할 때 혹시 반대했던 사람도 동조한다."- 인천시 재정문제에 대해 언급한다면."해야 할 사업이 국가적으로 필요하다 하면 지방자치단체의 고유사업이라도 결국 국가사업이다. 시민들은 의연하게 대처하고, 시장이나 시 공무원들은 용기와 지혜를 갖고 대처해 나가면 된다고 본다. 자꾸 '안 된다 안 된다' 하면 더 안 된다. 특히 고위층은 의연하게 대처하고, 자신감을 보이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적정성 문제에 대해 고심해야 할 것이다. 능력 안에서 일해야 한다. (당 내의)급한 일이 정리되고 국회가 개원하면 관심을 보이겠다. 또 시장이 만나자면 만나 얘기를 들을 것이다." - 당 대표로 선출됐을 때, 사별한 부인 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다. "생각이 많이 났다. 훌륭한 사람이었다. 저로서는 복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같이 살아오면서 나눈 얘기들이 지금도 도움이 많이 된다.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정치를 하라는 거냐'라며 불평을 한 적이 있었나 보다. 그런데 집사람이 성경구절을 인용해 '당신은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이랑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다 나 잘되라고 하는 소리였다. 내가 크게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집사람이 해 준 이야기가 많은데 지금도 도움 많이 된다."- 이회창 전 대표가 처음 정치입문을 권유했을 때 평소 성격으로 봐 선뜻 응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판사출신인 황 대표는 1996년 이회창 신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 선거대책위원장의 비서실장을 맡으며 정치에 입문했다. 15대에 이 총재의 천거로 전국구 의원이 됐으며, 16대 총선부터 인천 연수구에서 내리 4선을 했다)."이 전 대표는 법관 선후배 관계로서 저를 아꼈고, 저도 존경했던 분이다. 정치를 하시겠다고 나에게 도와 달라 하니, 저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잠시 기도를 하고, 이게 나의 새로운 길인가 생각하고 결정한 다음에는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았다. 그러나 될 수 있으면 빨리 다시 법조계나 법학교수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빨리 이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고 난 간다'는 이런 생각을 했던 건데, 자꾸 지연되면서 정치를 계속 하게 됐다. 우연치 않게 그렇게 됐다."- 대표께서는 법조인 출신이다. 그런데 왜 교육위를 고집하시는지."지역구를 맡고 나서 인천에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육문제가 가장 아쉬웠다. 대학도시로 변모해야 하고, 초중고 교육이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교육위에 있으면서 교육의 변화에 인천이 발맞출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법사위를 꺼린 것에도 이유는 있다. 군법무관, 법원, 헌법재판소, 감사원 등을 다 거쳤기 때문이다. 너무 이들과 친밀해서 국정감사할 때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당시엔 다들 선배들이었다."- 대표께 인천은 무엇이고,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인천은 저의 어머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아버지다. 저하고는 뗄 수 없는, 나에게 생명을 주고 나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나의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어느 분들이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인천은 생명을 주셨고, 대한민국은 키웠다, 그런 의미인가. "거꾸로도 된다.(웃음) 인간으로서의 생체적인 생명은 아니더라도, 내 정신이나 이런 게 다 인천과 한국을 벗어날 수 없다."- 대표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고, 없는 것은 또 무엇인가. "장점이라고 한다면, 끈기있게 남들의 얘기를 잘 듣는 것이다. 반면 없다기보다 부족하다는 것은 동지라고 할까. 정치는 모이는 것인데, 세라고 하는데 날 잘 안 끼워 준다. 친박에서 중요한 모임에 가본 적이 없고.(웃음) 그런 등등의 얘기들을 많이 듣는다."- 오픈프라이머리와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절충점이 있다면. "오픈프라이머리는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 왜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하는지, 관심있게 듣고 있다. 해답은 그 안에 있다고 본다. 또 왜 반대하는지에 대해서도 귀기울여 듣고 있다. (해답은)그렇게 멀지 않을 것이다. 좋은 결과 있을 것이다."- 대표에게 정치적 목표가 있다면."정치를 시작하면서 난 늘 두 가지를 얘기해 왔다. 우선 어떤 자리나 신분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다음으론 사명이나 일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전자는 후자에 종속되는 것이라고 본다. 국회의원은 뜻을 세우면 법을 만들 수 있는 귀중한 자리다. 국민들이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것을 그냥 지나가지 말고, 기쁘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줄 순 없을까 고민하고 뜻을 세워 마무리하면,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가 원자탄보다 크다. 그런 작은 일이라도 기쁨을 맛본다. 이게 정치의 매력이다. 그런 소중한 자리가 국회의원이다. 어디까지 하겠냐고 하는데, 성당에서 신부나 수녀들은 인사발령이 날 때 아무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우정이나 존경심을 갖게 된 수녀님이 어느날 갑자기 얘기도 없이 떠난다. 그런 사명자들의 태도는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한다. 하는 데까지 하면서 떠날 때 떠나는 것이다." 대담=김왕표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의종 차장사진=임순석 차장정리=이현준 기자

2012-05-23 이현준

[인터뷰… 그]발렌타인 챔피언십 한국인 첫 우승 노리는 양용은 프로골퍼

"발렌타인 한번 먹고 싶습니다. 애처가요? 해준 게 없습니다."지난 2009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대회 PGA챔피언십에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제압하고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대회를 석권한 양용은(40·KB금융그룹). 그는 한국남자골프의 간판 최경주 등 숱한 선수들이 이루지 못했던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며 '아시아계는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기 힘들다'는 인식을 깨뜨리고 한국골프의 위상을 드높인 선수였다.이런 양용은이 지난 21~22일 여주 신륵사에서 골프 꿈나무들의 템플스테이 멘토로 나서 아이들과 함께했다. 소박한 모습으로 나타난 양용은은 골프 꿈나무들에게 자신의 골프 철학과 노하우를 들려주며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다. 26일부터 나흘간 이천에서 열리는 '발렌타인 챔피언십'에서 한국인 첫 우승에 도전하는 양용은을 만나봤다.-얼마만의 귀국인지."지난해 10월에 온 뒤 6개월만에 귀국한 것 같다. 고국 땅이 좋긴 좋다."-발렌타인 챔피언십이 얼마남지 않았는데."26일부터 나흘 간 이천 블랙스톤골프클럽에서 열린다. 이 대회는 한국에서 열리는 유일한 유럽골프투어 대회지만 지금까지 한국 선수가 우승하지 못했다. 한국인 선수 최초로 발렌타인을 마시고 싶다."-발렌타인 챔피언십 출전 소감은."그동안 항상 출전했는데, 올해는 꼭 사고 한번 칠 생각이다. 쟁쟁한 선수들이 출전한 만큼 좋은 경기가 될 것이다."-그럼 꼭 우승하고 싶은 대회가 있는가."우승 가릴게 있나? 어떤 대회든 우승해 보고 싶다. 그동안 일부 사람들이 농담으로 '메이저 대회서만 잘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나라고 우승 싫어하겠는가."-'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도 1라운드에서 자신이 원한 샷이 1~2회 밖에 없다고 한다. 양 프로는 어떤가."나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대회를 치렀지만 완벽한 샷은 한번도 없었다. 그저 내가 생각한대로 볼의 방향이 갔을 때가 몇차례 있었을 뿐, 지금까지도 만족스럽지 못하다."-PGA투어 선수 중 '몸짱'이라고 하는데, 사실인가."팔 근육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하하). 몸 관리를 잘해서 40대 후반까지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가 되는게 꿈이다."-템플스테이에 대해 얘기해보자. 어떻게 골프 꿈나무들의 멘토 역할을 하게 됐는지."지난해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그래서 올해부터 한국 방문기간에 템플스테이에 참가해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꿈나무들에게 나의 골프 철학과 노하우를 알려주면 좋지 않겠는가."-그럼, 꿈나무들에게 어떤 골프 철학과 노하우를 알려줄 것인가. 조금 오픈해보자."어른들이 꿈나무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아이들은 잘하는 것보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본인 스스로 길러야 한다. 골프는 인내와 끈기, 그리고 좋은 생각이 필요하다. 지금 아이들에게는 이런 습관을 길러줘야한다."-외국 선수들에게 템플스테이를 제안했다고 들었다."외국 선수들에게 템플스테이 얘기를 자주했다. 물론 일부 선수들은 나의 제안을 좋게 받아들였다. 골프는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는 운동이다. 템플스테이는 1박2일 동안 사찰에서 기본적인 수행을 한다. 이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골프 선수들이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수련법으로 적합하다."-양 프로는 골프 전에 명상을 하는가."평소에는 마음의 평정심을 찾기 위해 명상을 하고 있지만 대회 기간에는 생각도 못해봤다. 이제라도 대회를 앞두고 수련해보려 한다."-세계가 바라보는 한국 남자 골프의 수준은 어떤가."한국 골프가 급성장하고 있다고 전해들었다. 이 말은 사실이며 실제로 피부로 느끼고 있다. 다만 우리 선수들이 경험 부족과 세계적인 선수들 앞에서 주눅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부분만 보완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한다면 더 많은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 오를 것이다."-지난 2009년 8월 아시아 남자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골프대회 PGA챔피언십을 제패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가."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당시 타이거 우즈를 제쳤다는 것만 해도 큰 성과였는데, 우승컵까지 들어올렸다. 그때 기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런 기분을 또 느끼고 싶다."-메이저 대회를 우승하면 대우가 달라진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초청대회 1등석 항공권과 지정 주차장, 특급 호텔 등은 기본으로 받는다. 또 상금 수입 이외에도 초청료도 있다. 선수들에게 있어서 메이저 대회 우승은 그 만큼 값진 것이라고 본다."-후배 선수들 가운데 유망주를 꼽으라면."김경태와 노승열, 배상문이 앞으로 성장 가능한 선수로 본다. 급하지 않고 충분히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또 큰 대회에 나갈 기회가 많은 선수가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골프를 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나."아무 생각없다(하하). 그저 내가 생각한 곳으로 공이 굴러가길 바랄 뿐이다."-집안 얘기좀 해보자. 애처가라는 소문이 자자하다."집에 신경쓸 시간이 있나. 항상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보면 가족과 떨어져있게 된다. 가족에게 늘 미안하다. 하지만 집에서 쉴 때는 가족과 함께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얘기가 그렇게 흘렀나 보다."-평소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시키는가."아이들한테는 자신의 소질을 길러주는게 가장 중요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믿어주는게 부모의 마음 아닌가. 화초처럼 꾸준한 관심이 필요한 시기다."-아이들 중에 골프를 하겠다면 시킬 것인가."당연하다. 골프를 하겠다면 적극 밀어줄 생각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골프를 치고 싶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아버지의 힘든 모습을 보고 그런거 아닌가."(하하). 그럴 수도 있다."-평소 즐겨먹는 음식은 무엇인가."보양식은 없다. 그저 한국 음식만 먹으려고 한다. 전통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 뭐든 좋다. 한국 음식이 보약이다."-체력관리는 어떻게 하나."웨이트 트레이닝을 자주한다. 골프는 장시간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경기 때를 제외하곤 기초 체력을 통해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다."-지난해 한·일 국가대항전인 '밀리언야드컵' 출전비를 모두 일본 쓰나미지역에 기부했다고 들었다."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내놓은 것이다. 하루아침에 천재지변으로 집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끝으로 국민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한국 남녀 골프 선수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국위선양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밤을 지새우며 지구 반대쪽에서 치러지는 경기를 시청해주고 응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 정리=신창윤 차장사진=김종화 기자

2012-04-26 신창윤

[인터뷰... 그]'전국 최고 관절전문' 이춘택병원 이끄는 이춘택 원장

"제 무한도전은 쭈욱 계속됩니다."관절 전문병원으로 전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이춘택병원 이춘택(66) 원장을 지난 26일 오후 늦게 만났다. 이춘택병원은 지난해 보건복지부 지정 정형외과 관절전문병원으로 지정받았고 이 원장은 지난해 '2011 대한민국 메디컬 리더 32인'으로 선정됐다. 올해에도 2012년 한국을 빛낸 창조경영인 연구개발 부문 및 제5회 대한민국 글로벌 의료대상 전문병원 관절 부문 수상 등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이 원장. 그러나 화려한 수식어구를 자랑하는 이 원장의 사무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담하고 검소했다. 게다가 옥탑방이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웃으며 사람들의 평가를 세 번의 놀람으로 설명했다."사실 요즘 호텔같이 만든 병원도 많죠. 우리 병원 오면 사람들이 세 번 놀라요. 자자한 명성을 듣고 처음 와서 밖에서 보면 자그마하고 허름한데 한번 놀라죠. 그런데 일단 들어오면 그렇지 않거든요. 내부 시설은 전세계에서 좋은 정형외과 기자재는 다 있고 의외로 넓다고 다시 한번 놀라죠. 그리고 마지막으론 잘 낫는다고 해서 세 번 놀란답니다."■ 매일 매일 세계신기록 경신인데 / 타지역거주 환자가 70%나?로봇수술 끊임없는 시행 착오끝 수백번 보완 거듭수십년 믿음으로 성장… '정형외과 맨파워' 자부심이렇듯 이 원장은 화려한 외부 치장보다는 실력과 내실을 기하는데만 지난 30년을 끊임없이 투자해왔다."호텔처럼 짓고 그러면 좋겠죠. 하지만 실력과 내부가 먼저입니다. 내부는 하나하나 다 고치며 공사를 쭈욱 해왔죠. 외부공사도 금년 4월부터는 시작합니다. 내실을 다져왔으니 이제 외부에도 신경쓸 때까 된 셈이죠."역시 실력으로 통하는 이춘택병원의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수술로보닥이다. 로보닥의 가장 큰 장점은 정확성과 정밀성으로 실패율을 최소화해 환자의 수술 만족도가 매우 높다. 지난해 이춘택병원의 로봇인공관절 수술은 7천회를 돌파했다. 독일·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로봇관절 수술에 성공했으나 이제 횟수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매일매일이 세계 기록 경신의 연속이다."사실 처음 시도 당시만 해도 모험 이상이었죠. 하지만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해냈고 지금도 계속 기술개발을 쉴 수 없습니다. 기술계통은 똑같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사장되죠. 계속 보완에 보완을 수백번 거듭해왔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도태되거든요."이춘택병원이 수원에 완전히 자리를 잡다보니 수원 사람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그의 고향은 사실 전라도 광주다. 그는 수원과의 인연에 대해 설명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처음 대학때 가톨릭대 빈센트병원으로 발령받았죠. 그 인연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전공은 외과 소속이었는데 정형외과가 좋아서 선택했어요. 당시 한창 산업발전과 동시에 인기가 있는 과였죠. 그런데 세월이 많이 달라졌어요. 당시엔 인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힘들어서 기피하는 과가 됐죠. 당초 보수적인 동네라 자리잡을 땐 힘든 일도 많았죠. 하지만 나쁜 것은 다 잊어버리려고 노력합니다. 이제는 수원에 정이 많이 가서 고향이나 다름없죠. 제 성격이 환경에 잘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타입입니다. 개원 당시만 해도 수원에 저를 포함해 정형외과가 5군데도 안돼 그때는 병원간 경쟁이 지금보다 덜했죠."그렇게 힘들게 자리잡은 병원이 지금 전국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이춘택병원은 타지역 거주 환자가 70%이상이다. 최근에는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외국에서도 관절 및 척추 수술을 받으러 병원을 찾는 사례가 더욱 많아졌다. 그 원동력이 무언지 궁금했다. 그러자 대뜸 이 원장은 대담자의 나이를 물었다."부국장님 나이가 어떻게 되죠? 개원 당시 중고등생 나이에 저한테 온 사람들이 지금 50세 가까이 됐어요. 그 사람들이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고 다시 또 오죠. 그렇게 계속 이어진거예요. 그런 것이 쌓여 환자가 오니 믿음을 주고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해왔을 뿐입니다. 환자 없는 의사는 필요가 없죠. 환자에 대한 애착을 많이 갖고, 끊임없이 나름대로 변화의 과정이 있었죠. 물론 정형외과 조그만 병원에서 시작해 실수를 줄이기 위해 전문병원 인정을 받았고 8개 과로 나눠 환자를 위해 그만큼 질적인 성장을 해왔죠. 어느 대학병원보다 정형외과 맨파워가 높다고 자부합니다."그럼 그동안 명성에 걸맞게 돈도 많이 버시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여쭤봤다. 그런데 대답은 단호하게 손사래를 쳤다."아뇨! 그렇진 못했죠. 예전 주변 사람 충고 듣고 병원을 잘 옮겼어도 땅값이 올라서 많이 벌었을 거예요. 그런데 관심이 없었고 지금도 변함없구요."■ 정치쪽 러브콜 있을텐데 / 앞으로의 바람은?선배의사들 거의 실패… 현재도 앞으로도 생각없어"환자를 위한게 나의 삶" 새로운 기술 개발 힘쓸 것그렇다면 한 지역에서 오래 하다보니 정치쪽에서도 콜이 있었을 듯한데요. 정치라면 민감할 만도 한데 거침없는 대답이 돌아왔다."물론 많이 있었죠. 그런데 고사했어요. 선배 의사중 정치쪽 간 사람이 많이 있었는데 다 실패했어요. 제 기억엔 전부다 그랬죠. 이제 그만 은퇴하고 나오라고 수없이 들었습니다. 30년 동안 아는 사람이 좀 많아요. 하지만 앞으로도 전혀 정치쪽엔 생각없습니다. 정치가 최선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어 정치로 많이 쏠리는데 제겐 하나 필요없는 짓거리예요."뿐만 아니라 그는 10년 가까이 경기도생활체육회장 활동을 한 바 있고 7년째 무료 인공관절 수술을 300회나 실시하는 등 사회공헌에도 꾸준히 남다른 역할을 해오고 있다."제가 운동을 좋아해요. 그래서 생활체육 초창기 활동을 했었죠. 그리고 삼성전기하고 인공관절 무료 수술 300명에 450쪽정도 했죠. 치료해주고 나중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할때 기분이 가장 좋아요. 돈하고 관계되지 않아 더 좋죠. 같은 고마움을 표시하더라도 거기에는 사가 없으니까요. 잘했다기보다는 인연이 돼서 같이 했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얼마 전부턴 병원내 '치료 기능과 기술 강화에 도움을 주는 위원회'(일명 기도회)를 결성했고 '1대1 동행안내 서비스'를 하는 등 그의 노력은 쉴 줄 모른다."병원에 처음 오는 분은 그날 하루는 들어오는 순간부터 가는 순간까지 에스코트를 받는데 2년 전부터 해오고 있다. 직원들이 처음에는 쑥스럽고 소름돋는다며 회의파가 많았죠. 에스코트해주면 고객들이 감동을 받거든요. 그때 제가 그랬죠. 우리가 백번을 해봤냐, 천번은 해본 다음에 안한다면 생각해보겠다고. 새로운 것이 나올때까지는 해보자. 매사에 그런 것 같아요."그래서 그의 좌우명은 될때까지 하자, 즉 '무한도전'이다."제 좌우명이라면 안될때 포기하지 않고 단념하지 않고 무한도전하는거죠. 스티브 잡스 책을 봤는데 천재적인 발상도 무한으로 도전하는 거더군요. 절대 가만있으면 세상은 주질 않죠.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무한도전을 해야합니다."이런 좌우명은 그의 생활습관까지 이어졌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자기관리에 철저했다."다행인지 아직까지 아프진 않아요. 틈틈이 운동하는데 결과에 있어 참 중요하죠. 공부고 운동이고 그렇죠. 작심삼일이면 안됩니다. 한 가지 계획을 세우면 조금조금씩 연속으로 해보려고 무척 노력을 합니다. 시간을 쪼개 조금씩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죠."선배로서 후배 의사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의사는 중요하고 좋은 잡(job)이에요. 어느 분야에서건 경쟁은 있을 수밖에 없죠. 어떻게 자기것으로 만드느냐가 관건입니다. 현재 위치가 안좋다 하더라도 무한도전을 하다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바람을 묻자 그는 여전히 진행중인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아직 못다한 일이 많아요. 의사로서 바람이라면 환자를 봤을 때 빠르게 치유해주는 거죠. 전엔 손가락으로 하다보니 정밀성이 떨어졌죠. 새로운 기계가 접목이 됐을 때 뜻대로 안될때 안타까움이 있지만, 더욱더 기술 개발에 힘써야 합니다. 그런 사회가 와야 환자에게 좋은 거죠. 물론 그것까진 안해도 얼마든지 먹고 살지만, 환자들을 위한 게 제 삶이니까요."# 이춘택병원1981년 수원에서 개원한 장산의료재단 이춘택병원은 개원 30주년을 맞은 정형외과 전문병원으로 지난해 가을 보건복지부 관절전문병원으로 지정됐다. 관절 부문 전문병원은 전국에 10곳인데 그중 경기지역은 단 2곳에 불과하다. 이춘택병원은 이에 앞서 지난 2005년 7월부터 3차례에 걸쳐 실시한 전문병원 시범사업에 1, 2, 3차 모두 선정돼 전문병원이 되기 위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왔다. 2002년 국내 최초, 세계에서는 일본, 독일에 이어 3번째로 인공관절 수술용 로봇(로보닥)을 도입했고 2005년 로봇관절연구소를 설립해 더 정밀한 수술과 환자의 더 빠른 회복을 위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7천회 이상 로봇수술로 횟수면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 사진=하태황기자정리=이준배기자

2012-03-28 이준배

[인터뷰 "그"]'총선 불출마 선언' 정장선 민주당 사무총장

민주당 정장선(평택을) 의원의 19대 총선 출마 포기 선언은 충격이었다. 정 의원 본인도 "(출마 포기) 기사가 그렇게 크게 보도될 줄 몰랐다. 그냥 한 두 줄 나오려니 했는데 기사가 크게 나와 충격을 받았다"고 했을 정도로 정 의원의 출마 포기 선언은 지난 주 정치권의 최대 이슈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상식적'이고 대화와 협상을 중시한 의원인데다 정 의원같은 국회의원들이 몇명만 더 있다면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란 높은 평가를 받아왔기에 그의 불출마 선언은 허탈하기까지 하다.4선 국회의원 고지를 눈앞에 두고 출마를 포기한 정 의원을 16일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편안한 표정이었다. 심경을 물어보는 첫 질문에 "포기선언을 하기 전에는 고민이 많았는데 지금은 굉장히 편하다.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당초 40분으로 예정됐던 인터뷰는 그의 국회 진단과 가치관 피력이 열을 뿜으면서 1시간30분을 훌쩍 넘겼다.-왜 총선 불출마라는 선택을 했는가."정치가 이렇게 가면 안되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계속 (국회의원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도 들고, 또 내가 19대 국회에 들어간다 해도 전체가 변하지 않으면 폭력사태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3선 의원이라는 자리가 전체를 책임질 위치는 아니지만 누군가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말 예산안 처리를 할 때 국회가 타협하는 문화를 만들고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을 한 뒤에도 또 폭력사태가 벌어지면 나라도 출마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깊이 했다."-총선 불출마를 결심한 건 언제였는가."작년 연말 4대강 사업 예산으로 국회가 난장판이 된 직후다. 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출마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그때 정했다. 어떤 분들은 정치는 다 그런 것이라고 하면서 19대 국회에서 고치면 되지 않겠냐고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17대 국회보다도 정치 상황은 더 나빠졌다. 19대 국회도 18대 국회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나라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자는 생각에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이번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 사태를 정당정치의 위기로 보는가."여야가 함께 국회에서 해결하고 풀어야 하는데 갈등이 커지고, 국회는 해결을 못하니 국민들이 외부에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이른바 '안철수 바람'이 그렇지 않은가. 정당의 위기고 국회의 위기다. 위기를 푸는 건 모든 사람이 노력해야 한다. 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는 안된다. 모두가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여야의 갈등이 국회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매년 재연되고 있으니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제도적으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지연) 제도 도입이 핵심이다. 필리버스터 종료 기준은 재적의원 5분의3으로 하면 된다. 3분의2냐, 5분의3이냐로 의견이 갈리는데 3분의2의 동의가 필요한 건 국회의원 제명과 헌법개정 말고는 없다. 필리버스터 제도 도입은 내가 국회를 떠나기 전에 완결 지었으면 한다. 한나라당 남경필·정태근 의원과도 계속 의견을 나누었고, 두 의원도 이같은 생각에 동의했다."-19대 국회에서는 여야의 갈등이나 충돌이 줄어들 것으로 보는지."이런 상태로 가면 19대 국회는 더 악화될 수 있다. 갈등이 너무 확산되고 있어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정치'가 회복되기 쉽지 않다. 19대 국회에 들어오는 분들은 그런 각오를 해야 한다."-정당정치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지금 정당 정치에 대한 큰 수술이 없으면 안된다. 지금처럼 한나라당·민주당이 안주하고 있는 양당제 구도와 지역구도를 근본적으로 깨야 한다. 사무총장이 된 이후 불거져 나온 호남 물갈이에 반대했다. 사람 몇명을 바꾼다고 민주당이 호남정당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정책 개발에 대한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지난번 박원순 서울시장과 민주당 박영선 의원간 치른 서울시장 후보 경선 당시 크게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우리는 조직을 총동원했다. 여론조사에서 밀리니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기려고 그랬다. 반면 박 시장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만 했는데 표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금 정치권은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각 계층을 위해 정당의 문을 여는 등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정당정치는 무너질 것이다."-불출마 선언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한편에선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 새로운 정당에서 새 가치에 맞는 정치를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온다면 다시 국회에 복귀할 의사가 있는가."민주당의 당적은 계속 갖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시간을 갖고 내가 돌아온 길을 되돌아보고 싶다. 경기도의원을 시작으로 20년 가까이 앞만 보고 달려오는 바람에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했다. 휴가도 가지 못할 정도로 많이 지치기도 했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는 게 좋을 지 생각해 보겠다. 정치를 다시 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결론이 나면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길을 갈 것이다.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이 정치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19대 국회에서 어떤 인물이 평택을 지역구에서 당선됐으면 하는가."국회의원을 해보니까 이 자리가 정말 힘든 자리다. 지역구민의 요구는 크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한 면이 너무 많다. 새롭게 도전하는 분들에게 주문하고 싶은 건 수없이 자신에게 고민을 던지라는 것이다. 왜 정치를 하려 하는지, 어떻게 정치를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고민 속에서 해답을 찾으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목표가 분명해지고 처신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19대 총선을 전망한다면."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당 체제를 어떻게 정비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도권은 비슷할 것으로 본다. 다만 정부에 대한 불신이 다소 있어 야당이 앞설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평택지원특별법 등 평택 관련 현안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가."국회의원을 처음 시작할 때는 평택항 건설문제 때문에 너무 힘들었고, 이후에는 경제자유구역, 주한미군기지 이전 등 굵직한 현안이 계속됐다. 지금은 어느정도 정리가 돼 가고 있다고 본다. 경제자유구역도 그렇고, 삼성의 산업단지 건설도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큰 틀의 정리는 임기가 끝나기 전에 마무리짓겠다. 19대 국회의원 당선자와 평택시장이 잘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아쉬움이 남는 일이 있다면."경제자유구역이다. 2천ha 부지에 경제자유구역 건설이 논의되다 토지공사·주택공사가 무리하게 통합을 하면서 포기해 버렸다. 지역구민들에게 실망을 드려 안타깝다."-보람을 느꼈던 일은 무엇인가."국회의원 생활을 해 온 기간이 평택시의 전환기였다고 본다. 평택시의 큰 전환기에 국회의원으로서 봉사를 할 수 있어 보람이 느껴진다.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을 지내면서 중소기업인들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드리려 노력한 것도 보람이었다. 불출마를 선언한 날 중소기업중앙회장 등이 사무실로 6~7차례나 쳐들어왔다. 불출마를 번복하라면서.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가 지경위원장으로서 어느 정도 역할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보람이 느껴졌지만 그분들에게 죄송스런 마음도 컸다."-지역구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미리 상의하지 못한 게 죄송스럽다.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던 걸 이해해 달라. 국회의원이 되지 않는다 해도 제가 중앙정치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친분이 있는 의원들도 많이 있다. 시민들이 원한다면 평택시와 그분들 사이에서 역할을 하겠다."-그동안의 재산신고 내역을 보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앞으로 생활은 어떻게 할 것인가."고민되는 부분이다. 씀씀이를 대폭 줄일 생각이다. 차도 작은 차로 바꾸고 사무실도 폐쇄할 생각이다. 되도록이면 이동할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주말에도 혼자 기차를 이용했다. 고속버스, 기차, 비행기도 혼자 타고 다녀본 일이 많아 그 부분은 훈련이 잘 돼있다. (웃으며) 다른 사람에게 얹히는 것도 생각해 보겠다."-차기 경기지사 선거 출마 얘기도 나오는데."김문수 경기지사가 (대선을 위해) 지사직에서 사퇴한다고 해도 보궐선거에는 나가지 않겠다."-정치인 정장선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정치인 정장선'은 중요하지 않다. 국회의원만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국회의원을 하는 것만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다. 삶이 고되고 어렵지만 국가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사는 분들을 많이 봤다. 앞으로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정치인이라는 건 과정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뭘 했느냐 보다는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에 방점을 찍고 살 생각이다."/대담=최우영 정치부장/정리=이호승기자

2011-12-18 이호승

[인터뷰 "그"]10년째 '송도국제업무단지 개발' 美 게일인터내셔널사 스탠 게일 회장

그는 자신에 차 있었다. 송도는 2016년이면 한국의 자부심이 될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송도의 집약적(compact)인 개발 방식과 세계 어느 경쟁도시와 비교해도 우수한 입지를 그 근거로 들었다. 그는 겸손했다. 인터뷰 '그'의 취지를 설명하자 그는 '그 정도값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송도국제업무단지(송도IBD)를 개발하는 미국 게일인터내셔널사의 스탠 게일 회장을 지난달 26일 오전 그의 자택인 더샵퍼스트월드 펜트하우스에서 만났다. 국내 언론 중 스탠 게일 회장의 펜트하우스에서 인터뷰한 건 경인일보가 처음이다. 푸근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은 게일 회장은 부동산 경기 침체, 정부의 규제 등 송도 개발의 어려운 점을 말하면서도 철저한 계획과 송도의 뛰어난 입지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부동산 디벨로퍼로의 삶은 한 사람의 생각과 아이디어로 하나의 도시를 건설하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취재진에 다가왔다. 그와 송도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송도를 개발하겠다고 결정했던 게 2001년도였다. 올해로 꼭 10년째 된다. 지난 10년동안 송도가 바뀐 모습에 대한 소감을 들어보고 싶다.송도로 초대받은 지 10년이 지났다. 어떤 식으로 보면 길고, 다르게 보면 짧은 시간이다. 송도 완공 시점은 2016년으로 보고 있다. 송도 개발은 3단계로 진행되어 왔다. 처음 5년은 계획을 세우는 단계였다. 송도의 마스터플랜을 세우는 것이다. 투자유치 등에 대해 계획을 세웠다. 두 번째 5년은 삶의 질 증진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단계였다. 학교·센트럴파크·동북아트레이드타워·오피스·지하철 등이 이 시기에 구축됐다. 세 번째 5년은 실질적으로 송도를 완공하는 단계다. 이렇게 총 15년을 송도 개발에 필요한 단계로 보고 있다. 올해 2011년은 실질적인 송도 개발의 시작점이다. 최고의 사무실과 상가 등이 갖춰져가는 단계가 시작된 것이고, 앞으로 5년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를 이끌어 낼 것이다. 현재까지 송도는 40%정도 추진된 상황이다. 나는 송도가 세계적 수준의 높은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다들 첫 10년동안 개발이 빠르길 바라왔겠지만 우리는 높은 질을 유지해 왔다. 그러면서 35~40%정도의 개발을 해왔다. 나 역시도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왜 원치 않겠는가. 하지만 높은 품질을 유지한 세계 유명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속도보다는 질이 중요하다고 본다. 송도는 수십 년 동안 한국의 자부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도시로 태어날 것이다.―송도를 이 정도 수준까지 만들기까지, 우리나라의 복잡한 행정 절차와 규제 등이 걸림돌이 됐을 것 같다.나는 송도를 새로운 싱가포르·홍콩으로 만들고 싶다. 그런데 한국은 싱가포르나 홍콩이 가지고 있는 세금 인센티브조차 없어 해외기업 유치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송도에 사는 사람에게 더 좋은 삶의 질, 더 좋은 정주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입주 기업에 혜택을 줘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득실을 따질 수밖에 없다. 송도가 진정한 국제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여러 규제에서 벗어나 좀더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하지만 송도는 싱가포르나 홍콩이 가지지 못한 우수한 위치성을 갖고 있다. 송도에서 세계적 수준의 공항까지 18분이면 도착한다는 장점이 있다. 우수한 위치로 송도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더 좋은 정주환경을 구축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좋은 위치를 활용할 것이다. 또한 포스코와 게일이 합작해 만든 NSIC(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는 인천과 진정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천시와 50대50의 계약을 맺었다. 송도의 수익을 반씩 나눠간다는 것이다. 좋은 파트너십을 구축했다고 본다. 인천시나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노력한 결과 삼성·시스코 등 국내·외 유수 기업이 입주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기업들이 송도에 들어와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예전에는 미국에 있으면서 인천에 가끔씩 왔다. 요즘에는 거의 눌러앉아 계시는 것 같다(웃음). 생활 패턴은 어떻게 바뀌게 됐나.지적하신 부분이 맞다(웃음). 처음에는 계획을 세우는 단계여서 뉴욕에서도 진행할 수 있어 인천에는 가끔씩만 왔다. 사실 송도를 설계하는 것은 밖에서 하는 것이 더 좋았다. 밖에서 할 경우 좀더 혁신적인 디자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랍엔지니어링과 같은 회사를 통해 뉴욕이나 보스턴 등에서 디자인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 5년은 한국에 디자인을 가져오는 단계였다. 이 단계에서는 해외에서 송도에 왔다갔다 했다. 이제 3번째 단계이기 때문에 송도에 있어야 한다. 이제는 송도를 직접 만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뉴욕이나 중국으로 출장이나 여행을 가지 않는 경우에는 송도에 머물고 있다. 나의 모든 것은 송도에 쏠려 있다. 이것은 단순히 책임감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송도를 즐기고 있다.- 외국인으로 송도에 거주하고 있다. 송도의 콘셉트 가운데 하나는 '외국인이 살기좋은 환경 조성'이다. 실제로 송도에 살면서 외국인으로 불편한 점은 어떤 게 있나.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보나.송도에는 실제로 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예전에 송도를 처음 개발했을 때는 대부분 한국인들이었다. 한국인의 거주지 역할을 하다가 한국의 사업체가 송도로 들어왔다. 그러다가 여러 외국 회사들이 송도에 들어오고 있다. 나는 앞으로 더 많은 외국인이 올 것이라고 본다. 한국화된 송도의 환경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송도에 '국제기업'(Global Corporation)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SK·LG는 왜 없냐는 것이다. 이제는 롯데와 삼성 바이오가 송도에 들어온다. 큰 기업들이 송도를 보고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 다음 5년동안에도 송도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영어를 말하는 한국인이 많아질 것이며, 외국의 교포들도 송도를 찾고, 즐기게 될 것이다. 캘리포니아나 뉴욕의 생활 방식을 송도에서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이 고향인 교포들이 송도를 방문해 센트럴파크 등을 보면 송도가 매력적인 도시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들이 생활하는데 병원이 필요한데, 국제병원을 놓고 찬반 논란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나는 찬반 모두의 의견을 이해한다. 한국병원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병원을 반대하는 의견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의 의견을 물어본다면 나는 국제병원에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꼭 내가 개발하는 송도에 국제병원이 들어오기 때문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 영어가 통용되는 병원의 설립은 기본이라고 본다. 홍콩·싱가포르에는 영어가 통용되는 병원이 있다.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꼭 유치할 필요가 있다. 또 병원을 통해 중국 등에서 의료 관광객을 유치할 수도 있다. 그들은 병원에 왔다가 송도까지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반드시 국제병원이 들어와야 한다고 본다.―공항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를 뜻하는 에어로트로폴리스(aerotropolis)의 7대 도시로 송도가 선정됐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에어로트로폴리스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나. 송도는 다른 경쟁 도시와 비교해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나.과거에는 항구를 중심으로 주요 도시가 형성됐다. 뉴욕·런던이 대표적인 예다. 그 이후로는 열차·철로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다. 그 이후에는 고속도로에 대한 접근성이 중요했다. 이제는 공항 접근성이 매우 중요해졌다고 본다. 해외 출장객들을 위한 공항의 역할이 커진 것이다. 공항을 따라 도시들이 발달하고 있다. 송도의 경우 상하이·도쿄 등 인구 100만 이상인 대도시와 1일생활권을 형성하는 최적의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송도는 인천국제공항과 가깝다. 나의 경우에도 아침에 상하이에 있는 아들을 만나고 저녁에 송도로 돌아올 수 있다. 송도의 경우 인천대교 위치 등이 기본 계획(master plan)속에서 체계적으로 결정됐다. 공항이 있는 상태에서 도시가 개발된 다른 에어로트로폴리스와 달리, 교통 등 인프라가 전체 계획 아래 만들어졌다는 게 송도의 최고 장점이다. 송도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18분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전세계에서 기본계획 안에 에어로트로폴리스가 구축된 곳은 송도 한 곳 뿐이다.―송도는 3단계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2008년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한 부동산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다. 부산이나 대구 등에서 부동산 열기가 반짝하긴 했지만 서울·인천·송도에는 경기침체의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3단계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부동산 경기 회복이 관건이 아닌가. 어떻게 전망하는가.금융 위기로 전세계 경제가 큰 영향을 받았다. 안정화를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미국에서도 이런 부침이 있어 왔다. 내 할아버지는 대공황을 거쳤고,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나 역시 35년간 활동하는 중 4번의 부동산 요동을 겪었다. 매번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곤 했다. 하지만 시장은 금방 회복했다. 시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시장도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새 집, 새 학교를 원하기 때문에 주택 수요는 늘 있다. 올해는 느리게 회복되더라도 2012년에는 주거·산업용 부동산의 회복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특히 송도IBD는 인천의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차별화된 장점이 있어 부동산 침체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IBD에는 이동시간(Commute)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IBD에 살면 앞문이 센트럴파크고 옆문이 직장일 것이다. 일하는 곳, 사는 곳, 노는 곳이 한 곳에 있는 것이다. 더이상 장거리 출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IBD에서 제공되는 거주지 물량 자체는 제한돼 있는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장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IBD 분양은 크게 성공할 것이다. 집약적(Compact)인 시설 아래 모든 것을 걸어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IBD에 있다. 특히 이제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기업유치 단계로 접어든 만큼 향후 점진적으로 결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담=장철순 인천본사 경제부장 /정리=홍현기기자·사진=김범준기자

2011-10-09 홍현기

[인터뷰 "그"]'토종 애니의 흥행신화' 경기도 투자가 큰힘 됐다

"경기도가 있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이 새 역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한국 토종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100만 돌파의 상징적 의미를 지나 지난 19일 손익분기점인 150만 관객마저 가뿐하게 넘어서며 더욱 실질적인 의미를 갖게 됐다. 게다가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기록을 연일 다시 쓰고 있는 '마당을 나온 암탉'은 개봉 첫 주 좌석점유율 48.94%에 이어 2주차 좌석점유율 52.99%, 3주차에 접어든 지난 주말에는 전국 428개의 상영관에서 56.31%의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등 점점 더 탄력을 받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무난하게 200만 돌파는 물론 300만도 넘볼 기세다.이런 신화 창조의 배경에는 경기도가 있었다. 경기도 산하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GDCA)이 지난 2008년 '신화창조 프로젝트'로 선정하는 모험을 감행했던 것. 도는 '마당을 나온 암탉'에 총 제작비 30억원 중 5억6천만원을 투자했고, 이어 2009년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도 '글로벌 애니메이션 장편 부문' 지원작으로 '마당을 나온 암탉'을 선정하며 탄력을 받게 됐다.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100만 이상 관객을 넘어선 적이 없었기에 과감한 투자였다. 그리고 '마당을 나온 암탉'은 이런 지원에 힘입어 다른 파이낸싱도 풀리면서 새 역사를 쓰는 주춧돌이 됐다. 명필름과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사 오돌또기는 동명의 베스트셀러 동화를 무려 6년간의 기획·준비 과정을 거쳐 스크린에 옮겼다. 최근 서울시 종로구 필운동 명필름 사무실에서 무에서 유를 일궈낸 '신화창조의 두 주역' 명필름 심재명 대표와 오성윤 감독을 만나 그 가슴 뛰는 순간을 들어봤다.-드디어 고대하던 손익분기점(150만 관객)을 넘어섰는데.▲심재명 대표(이하 심)="100만 관객 돌파는 한국 애니메이션사에 첫 발자국이라는 기록의 의미가 컸어요. 물론 기뻤지만 제작자는 투자금액 회수라는 덕목이 중요한 입장이라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더 중요했죠(웃음). 상징적인 의미에 실질 수치가 더해져 다행이에요. 애니 종사자로서 실질적인 의미가 크죠."▲오성윤 감독(이하 오)="극장용 장편 애니가 근래 실패 사례가 많았어요. 그래서 이 영화에 쏠린 시선을 개봉 전부터 느껴 어깨가 무거웠죠. 마치 돋보기로 빛을 모으듯 몸으로 전해져 왔는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물론 축구감독이 골에 배고파하듯 더 많은 관객에 대한 욕심도 나네요(웃음)."-개봉 전 이런 결과를 예상했었나.▲심="GDCA에 투자받을 때 200만을 목표로 잡았지만 사실 완전히 모험이었죠(웃음). 그렇지만 목표를 높게 잡았기에 더욱 올인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듯 싶어요."▲오="순수미술을 해 오다 이 영화가 제 첫 연출 데뷔작이에요. 그래서 전 모험이 아닌 도전으로 제 인생을 걸었죠."-이번 흥행안타의 원동력은.▲심="무엇보다 명필름과 오돌또기 결합의 힘이죠. 질 높은 애니메이션에 공격적인 배급이 시너지를 낸 거죠. 바람직한 협업사례가 없었다면 이런 수치를 못이뤘을 거예요. 앞으로 실사영화제작사와 애니 종사자간 영업 네트워킹이 활발히 진행돼야 해요."▲오="동감이에요. 동시대 가족영화를 고민하던 중 쉽게 의기투합됐어요. 사실 국내 애니의 산업적 가치는 유아용에 편중돼 있어요. 그러므로 앞으로 실사 영화사와의 협업사례를 계속 만들어 가야 된다고 봐요."-개봉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던데.▲심="사실 공적자금 지원이 없었으면 못 만들었어요. 2008년 GDCA에서 투자받은 5억6천만원이 발판이었죠. 국내 애니 시장이 열악하다 보니 그 당시 경기도 투자 받고 만세를 부를 정도로 기뻤어요. 그 뒤로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7억원을 지원받는 등 파이낸싱에 주춧돌이 돼줬어요."▲오="저는 처음에 베스트셀러 원작에 명필름까지 붙으면 당연히 투자가 쉽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애니가 1970년대 잠시 반짝하다 80년대 이후 흥행사례가 전무하다 보니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해외 진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심="중국 개봉일자가 당초보다 조금 연기돼 9월 말쯤 될 것 같아요. 중국 전역 2천개 이상 규모로 중급 개봉은 된다더라구요. 사실 우리 상업 애니가 해외에서 개봉한 것은 처음이에요. 중국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아시아 시장으로 넓혀나갈 계획이에요."▲오="매년 여름이면 국내 스크린은 미국·일본 애니가 점령했었는데 개봉 전부터 전 올 여름 미국·일본 애니 이길 자신있다고 호언장담했죠. 사실 공약을 남발한 건데 이뤄져 다행이에요. 우리만의 개성이 담긴 차별화된 애니를 무기로 세계 무대에 나가야죠."-애니메이션이라 밤시간대엔 스크린이 줄었다던데.▲심="물론 상영횟수가 줄어든 것은 아쉬워요. 사실 해외 애니들은 자막·더빙 등 버전이 여러 가지라 밤 시간대에도 상영해 왔어요. 우리 애니도 아이들뿐 아니라 밤시간대 어른들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오="애니는 어린이만 본다는 편견은 버려야해요. 만약 밤에까지 상영했으면 충분히 더 빨리 흥행했을 거예요."-국내 애니메이션 발전을 위해 제안한다면.▲심="25년간 충무로에 있다 보니 엄청난 산업적인 변화를 겪고 함께 성장해 왔어요. 우리나라처럼 1년 영화 100편 이상 제작하는 나라가 몇 개국 안 돼요. 아쉬움은 수치적으로는 커졌는데 다양성 측면에서는 안 좋아졌어요. 지나치게 상업주의를 지향하는 영화도 많아졌구요. 한국영화 다양화를 위해 창의적인 영화를 살릴 수 있는 인프라가 튼튼해졌으면 해요."▲오="청소년도 같이 열광하며 볼 수 있는 애니가 나와야죠. 대중문화 접하면서 연예인 선호도는 높지만 우리가 그동안 보여줄 만한 애니가 없던 면도 있죠. 중고교생들이 열광한다는 것은 아래나 위의 계층도 볼 수 있어 중요한 시장이라고 봐요."-이번 애니가 30번째 제작영화인 명필름은 부부가 공동으로 쭉 이끌고 있는데.▲심="남편 이은 대표랑 각자 제작자와 프로듀서 역할을 하면서 모든 영화에 함께 참여해요. 그동안 영화에 대한 가치관이 비슷해서 반대되는 상황도 거의 안 생기구요. 보완도 되고 힘이 많이 되죠."▲오="그런 거 보면 부럽죠. 저랑 셋이 이야기 나눌 때 공동대표 부부의 생각이 한결같아 마치 한 분과 얘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웃음)."-관객이나 주변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오="제가 보기에 미국·일본과 다른 애니메이션이 나왔어요. 저희만의 멋과 진실이 숨어있죠. 아이들이 봐야 되는 것도 있지만 아이들이 떠들고 그런 거 거부감 느끼시기도 하는데. 어른들이 그런 것도 영화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함께 즐겨 보시는 것도 좋은 감상포인트라고 봐요."▲심="애니메이션이 처음이라 새로운 경험으로 어려웠지만 배운 점도 있어 보람됐어요. 좋은 영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관객들이 이렇게 많이 사랑해주실 줄 몰랐어요. 한국 애니의 새로운 도전에 많은 관심과 응원주시고 있죠. 겨우 150만명이지만 몸으로 느끼는 건 1천만명 든 것 같은 관심이라 쑥스럽지만 각오를 다시 다져보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MYUNG FILMS■ 명필름 = 영화 기획자 심재명이 광고 기획사 및 매니지먼트사에서 일하던 동생 심보경, 독립 영화 단체 '장산곶매'에서 '파업전야' 등을 제작했던 남편 이은과 의기투합해 1995년 설립한 영화제작사다. 1996년 첫 작품 '코르셋'에 이어 서울에서만 7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접속'(1997), '조용한 가족'(1998),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 '해피엔드'(1999), '섬'(2000), '공동경비구역JSA'(2000), 'YMCA야구단'(2002), '바람난 가족'(2003), '그때 그 사람들'(2005),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2006), '극락도 살인사건'(2007),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시라노:연애조작단'(2010) 등 웰메이드 상업영화들을 만들어 왔다./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정리=이준배차장·사진=김종택차장

2011-08-21 경인일보

[인터뷰 "그"]국내 장수연구 권위자 박상철 교수

서울대 정년 퇴임을 3년 앞둔 그가 30년 이상 몸담았던 정든 학교를 떠나기로 했다. 좀처럼 하기 힘든 결정이다. 국내 최고의 명문대학에서 학자의 길을 걷다 정년 퇴임을 하는 것만큼 명예로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지인들도 그를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인생에 정년이 따로 있단 말인가." 평소 그를 잘 알기에 지인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국내 장수(長壽)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박상철(62) 교수의 얘기다. 박 교수는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를 떠나 다음달 초 가천의대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건강한 장수를 하려면 암과 당뇨부터 극복해야 한다"며 "대규모 동물 실험이 가능한 국내 최고의 시설과 연구진을 갖춘 이 곳에서 그동안 못다한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최고 명문대학인 서울대에서, 그것도 국내 장수학 연구의 권위자로 활동하다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으로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이유는 간단하다. 그동안 '노화'와 '장수' 연구에 집중해 왔다. 특히 노화에 관한 사회의 잘못된 인식부터 바로잡자는 얘기를 많이 했다. 물론 난 사회학자가 아니다. 의사이며, 생물학자다. 어떻게 하면 건강한 장수를 할 수가 있는지 입증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장수하려면 첫째 암과 당뇨에 안 걸려야 한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장수사회가 되려면 암과 당뇨를 극복하는 세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이길여 암·당뇨 연구원'은 연구자 입장에서 아주 환상적인 곳이다. 생쥐 등 동물실험이 가능한 최고의 시설이 여기에 있다. 그동안 겸임교수로 활동하면서 연구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게 됐다.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키워드가 필요하다. 노화암, 노화당뇨가 바로 그 키워드다."-그래도 오랫동안 몸담았던 학교라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서울대에서 33년을 근무했다. 이제 후배들에게 물려줄 때가 왔다. 오래 전부터 퇴임 1년 전 다른 곳으로 가 남은 꿈을 펼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다. 정년이나 바라보고 눌러앉아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텃세나 부리는 영감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웃음)-노화암이나 노화당뇨 연구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 싶다. 실질적인 연구 성과물은 언제쯤 나오게 되나."왜 늙으면 암과 당뇨에 걸릴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일까. 그 원인을 찾아내자는 것이다. 늙었다고 모든 사람이 암과 당뇨에 걸리는 것이 아니지 않나. 연구는 이미 시작됐다. 암과 당뇨가 발생할 경우, 세포의 핵 구조가 달라지는 것, 외부 신호체계에서 이상이 생기는 것 등에 대한 연구다. 새로운 뉴스가 될 것이다. 올해 말이면 연구 성과물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이제 인천에 둥지를 틀게 됐다. 소감이 어떤가."아직 인천에 대해 잘 모른다. 5년 전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을 처음 지었을 때 첫 번째 세미나를 내가 맡게 됐었다. 그 인연이 이렇게 이어졌다. 개인적으론 새 도시가 건설중인 송도에서 연구 성과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다."-오늘날 고령화 사회에서 '장수문화'란 새로운 화두를 제시했는데."장수의 개념부터 다시 정립해야 한다. 장수는 수명 연장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연령이나 시간의 개념이 아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영위하는 새로운 계층의 출현으로 봐야 한다. 장수문화도 같은 맥락이다. 나이가 많은 노인 중심의 문화가 아니다. 연령을 초월해 남녀노소 사회구성원 모두가 어우러지는 사회, 건강하게 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장수문화다. 나이가 들면 퇴물 취급을 하는 게 문제다. 정년도 그런 개념 아닌가. 정년을 새로운 조직에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로 받아들이려는 변화도 필요하다."-우리 사회 장수문화의 현주소를 진단해 달라."노인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잘못됐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 그냥 쉬어야 하는 사람들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다. 70세가 되고, 80세가 돼도 건강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스스로 나이 먹었다고 물러서지 말고, 노인이라고 밀어내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든 하자', '주는 사람이 되자', '배우자'. 이것이 장수문화의 시작이다."-전 세계적으로도 저출산·고령화는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다. 우리나라도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상태다.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고령화 사회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 고령 인구가 증가하면 사회가 부양해야 할 몫이 커지고 의료비 부담이 급증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생활습관이 개선되면서 고령인들의 건강상태가 과거에 비해 크게 호전돼 왔다. 나이를 먹어도 충분히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과학기술 발달이 고령으로 인한 생체 기능과 건강의 문제점을 보완해 줄 것이다."-노화 세포가 젊은 세포보다 더 강한 저항능력을 보였다는 박 교수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기억난다."쇼크였다. 나 역시 늙는다는 것은 그저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쯤으로 생각했다. 처음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연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세포에 자외선을 쏘거나 강한 화학물질을 투여했더니 노화 세포가 더 강한 저항능력을 보인 것이다. 노화는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외적 자극에 대해 반응하고 적응하는 자기 보호적 변화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된 계기가 됐다. 노화를 폄하하지 말아야 한다."-인문·사회학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진화론도 그렇게 나온 것 아닌가. 과학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학도 변화하지 않았나. 젊은 세포를 늙은 세포로 만들었다가, 다시 젊은 세포로 만드는,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100세 현역의사'로 유명한 일본의 '히노하라 시게아키' 박사가 지난해 인천을 찾았다. 히노하라 박사와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근황이 궁금하다."지진 피해가 걱정돼 연락을 드렸더니 '별일 없다'고 하셨다. 고령의 나이에도 전 세계 각지를 돌며 강연활동을 펴는 등 건강하고 열정적으로 사시는 분이다. 히노하라 박사가 말하는 신노인은 오랜 세월을 통해 축적한 다양한 경험과 능력을 사회에 환원하는 노인들을 뜻한다. 신노인 운동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과거 전국을 다니며 수많은 장수 노인들을 만나지 않았나. 그들의 삶이 궁금하다."강원도 인제군에 사시는 104세 어르신이 기억난다. 손자도 5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에도 자식들에게 재산을 안 넘기고 손수 관리하고 계셨다. 혹시라도 자식이나 손자가 자신 몰래 땅을 팔아 없애지 않을까 싶어 일주일에 한 번씩 동사무소를 가서 지적도를 확인하셨다. 처음에는 참 심하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나이에도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밑에 사람을 통솔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102세의 어느 할머니는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었다. 큰방은 본인이 쓰고, 작은방은 아들 내외가 썼다. 꼬장꼬장한 분이셨다. 그런데 인터뷰를 마치고 귓전에 대고 하시는 말씀이 '며느리를 칭찬했다는 얘기를 꼭 전해 달라'고 하시는 것이다. 며느리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어 흐뭇했다. 전라남도 구례군의 104세 할아버지도 대단한 분이셨다. 조금 꾀죄죄한 옷차림에 지게를 메고 계셨는데, 표정과 목소리에서 당당함이 느껴졌다. '어이, 서울에서 온 양반, 온고지신이란 말이 무슨 뜻인 줄 아나!' 하시며 인생의 가르침을 주시던 어르신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노년의 모습인가.(웃음)"-박 교수는 어떠한 노년을 꿈꾸고 있나."일하는 노년이다. 끝까지 움직이자는 것이다. 서울대에 사표를 낸다고 하니 만류하는 동료들도 많았다. 내가 장수사회를 얘기하면서 서울대에서 정년 퇴직을 하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꿈을 펼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곳을 움직이는 사람만 약 200명이다. 책임자급 교수도 17명이나 된다. 당분간은 연구 활동에만 전념할 것이다. 대학에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사회환원 운동은 결국 논문을 내고, 그 연구 성과물이 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향후 여력이 생기면 지역사회에서 장수문화 운동을 펼치는 계획도 갖고 있다."-개인적으로 특별한 건강관리법이 있나. 국내 장수 연구 최고 권위자의 건강 비결을 듣고 싶다."열심히 사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부지런히 움직이려고 한다. 특별히 챙겨 먹는 음식은 없다. 가끔 음주도 한다. 막걸리는 한 병, 소주는 반 병이 주량이다.(웃음)"/대담=임성훈 인천본사 사회부장/정리=임승재기자·사진=김범준기자

2011-08-07 경인일보

[인터뷰 "그"]FITA 선정 '20세기의 선수' 김수녕

"20세기 최고의 선수답게 전국체전도 훌륭히 치러야겠지요."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은 효자종목이다. 한국 양궁은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거친 뒤 거기서 뽑힌 대표선수들이 세계 무대에 출전한다. 국제양궁연맹(FITA)은 한국의 독주를 막으려고 경기 방식을 자주 변경했지만, 그럴 때마다 한국 선수들은 연맹을 무시하듯 금메달을 꽂았다.한국 양궁은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 대표주자는 '신궁' 김수녕(40·대한양궁협회 이사·(재)한민족한마음 전국체전범도민추진위원회 이사장)이다. 그는 1988 서울 올림픽 개인·단체전 석권을 시작으로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개인 은메달과 단체 금메달을 따낸 한국 양궁의 슈퍼스타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은퇴를 선언하고 결혼해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가 됐던 그였지만 1999년 다시 사대로 돌아와 2000년 시드니 대회 때 개인전 동메달과 단체전 금메달을 수확하는 등 올림픽에서만 전무후무한 금메달 4개를 목에 걸었다.이를 입증하듯 김수녕은 '신궁'이란 칭호를 얻었고, 최근에는 국제양궁연맹이 선정한 '20세기의 선수(Athletes of the Century)' 수상자에 뽑히기도 했다. 현재 전국체전범도민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수녕을 지난 4일 만나봤다.-우선 축하한다. 소감은."현역으로 뛴 지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좋은 선수로 기억해주고 큰 상까지 받게 돼 영광이다. 지금도 나를 기억해준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얼굴이 그대로다. 비결은 있나."비결은 없다(웃음). 그저 아이들 키우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최근 전국체전범도민추진위원회 이사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는데."지난해 경희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행정 공부를 해왔고 지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때 해설위원도 맡았다. 이런 가운데 제의가 들어왔다. 오는 10월 경기도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홍보를 위해 함께 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면 하겠다'고 수락했다."-그럼 전국체전범도민추진위원회는 무엇을 하는가."전국체전범도민추진위원회는 말 그대로 전국체전 성공적 개최와 스포츠를 통한 국민 대화합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즉, 전국체전을 통해 민족적 대화합을 이끌고 해외 및 북한 동포의 참여를 유도하는 일을 한다."-얼마전 미국을 방문했는데, 성과는 있었나."전국체전 성공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 위해 LA와 뉴욕 등을 방문했다. 재미대한체육회 본국전국체전준비위원회 등과 업무협약을 했고, 뉴욕, LA, 샌디에이고 체육단체 및 한인회를 방문해 전국체전을 홍보하면서 고국을 방문해 줄 것을 요구했다."-방문 기간 에피소드는 있었는지."한국계 미국프로풋볼(NFL) 스타인 하인즈 워드를 만났다. 하인즈 워드 같은 선수는 미주 재외동포에게 엄청난 홍보 효과를 줄 수 있다. 아울러 하인즈 워드 측과 전국체전 축하 영상메시지를 제작하기로 협의했다."-앞으로 위원회는 어떠한 일을 하게 되는가."지난해까지 전국체전에는 15~18개 국가에서 해외동포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20개 국가에서 해외동포 체육인들을 전국체전에 참가시킬 계획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 유럽 국가, 아시아 국가 등에서 해외 동포 체육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중이다."-국제양궁연맹 스포츠 행정가의 꿈도 있다고 들었는데."스위스 로잔의 국제양궁연맹에서 인턴 사원으로 일할 계획은 있다. 주위에서 국제기구 경험을 권했고, 연맹에서도 오라고 제안을 받았다. 현재 여유롭지는 않겠지만 상황에 따라 움직일 생각이다."-왜 행정가를 택했는지."이제는 한국을 떠나 국제 양궁 발전을 위해 일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은 양궁 만큼은 세계 최강이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국제적 위상도 높아야 하지 않겠는가. 국내 선수들에게 해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도록 먼저 일해 보고 싶다."-한국 양궁 왜 이렇게 잘하나."양궁 선수들은 올림픽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가 양궁을 잘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협회는 양궁 국가대표를 충분한 검증을 거쳐 선수들을 선발하고, 선수들은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만 평가받는다."-앞으로 한국 양궁은 어떨까."앞으로도 한국 양궁은 강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선수들 기량이 좋고, 무엇보다 공정한 선발전을 치르면서 선수들이 갖는 자부심이 대단하다."-'신궁'이란 별명을 얻었는데, 만족하는지."'신궁'은 모든 선수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그 시기에 내가 잘했을 뿐이다. 지금의 후배들도 '신궁'소리를 들을 만하다."-지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때 해설을 맡았는데, 힘들지 않았나."내 목소리가 조금은 졸립지 않았나(웃음). 항상 음성이 높고 낮음이 없어 시청자들이 조금 지루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름대로 객관성있게 해설했다. 잘 봐달라."-강연 요청도 들어왔다는데."2000년 시드니올림픽 후 가끔 강연 요청이 왔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있겠구나'하고 거절하지 않았다. 근데 베이징 올림픽 해설 이후 빈도가 늘었다."-강연시 주로 무엇을 강조하는가."주로 기업체, 학교, 병원에서 강의가 들어왔다. 주제는 조금씩 다르지만 '마인드 컨트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아무래도 기업체 등에서 원하는 것은 멘털 게임 측면이 강한 양궁의 특성상 위기관리, 집중력에 대한 한마디를 듣고 싶을 것이다."-올림픽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시드니 올림픽 때다. 7년간 은퇴 후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당시 김남순, 윤미진과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한 기억이 난다. 특히 개인전 예선에서 이탈리아의 나탈리아에 발레바에게 밀렸는데, 마지막 남은 10발에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냈다."-양궁 선수와 해설자, 어떤 위치가 더 긴장되는지."차라리 선수 때가 더 낫다. 막상 양궁 해설자로 선수들을 볼 때 더 긴장되고 떨리더라(웃음)."-아이를 양궁선수로 키울 생각은 없나."본인이 원한다면 시키겠다. 그러나 운동 신경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을 자율적으로 키울 생각이다. 스스로가 혼자 학습할 수 있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다."-본인이 생각하는 양궁은 어떤 것인지."양궁은 어릴 때부터 배우면 집중력에 큰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다양한 곳에서 양궁을 할 수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양궁을 통해 자신을 수련하는 것도 좋다."-양궁 꿈나무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나는 항상 꿈나무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시위를 떠난 화살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일생을 살면서 어려운 시기는 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거기에 집착하는 것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게 낫지 않을까."/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 /정리=신창윤차장·사진=김종택차장

2011-07-10 경인일보

[인터뷰 "그"]亞유소년친선축구대회 마련한 '영원한 캡틴' 박지성 선수

"아시아 축구 발전에 기여하는 재단이 되겠습니다."'한국인 프리미어리거' 박지성(30·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자신의 이름을 딴 박지성재단(JS Foundation)을 설립한 뒤 지난 6월 베트남 아시안드림컵에 이어 1일에는 JS CUP 동아시아유소년친선축구대회를 통해 자신의 축구 색깔을 보여줬다. 축구 선수에서 은퇴한다면 '지도자보다 축구 행정가로 남고 싶다'는 박지성은 자신의 재단 취지에 맞는 다양한 축구 사업을 펼쳐 아시아 축구 발전과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특히 박지성은 "박지성재단에서 진행하는 모든 사업은 국내는 물론 아시아 축구 발전을 위한 것"이라며 "아시안드림컵과 유소년친선축구대회도 박지성재단의 취지에 맞게 창설된 것"이라고 말했다. '영원한 캡틴' 박지성과 서면 인터뷰를 한 뒤 1일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만나봤다.-박지성재단에 대해 설명한다면."박지성재단은 다양한 사업을 통해 발생된 수익을 열악한 축구 환경에 놓인 동남아시아와 세계 여러 나라의 단체, 그리고 시설 투자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었다. 또 세계인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남과 북, 아시아,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고자 한다."-그럼 재단의 사업은 뭐가 있는가."재단의 사업은 한마디로 공익사업을 통한 수익 창출이다. 우선 지난 6월에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안드림컵이 좋은 예다. 아시안드림컵은 한·일 전 현직 선수들과 중국, 그리고 유럽 선수들이 팀을 이뤄 축구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친선 경기를 통해 붐을 조성한다. 또 거기서 얻은 수익금을 기부해 축구 발전에 사용토록 하고 있다. 또 이번에 경인일보와 함께 한 동아시아 유소년친선축구대회도 마찬가지다."-아시안드림컵은 어떠했는지."아시안드림컵은 아시아 축구 환경을 개선하고 유소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기획된 행사다. 이번 행사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더 많은 국가의 축구 꿈나무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다."-아시안드림컵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베트남 어린이들이 경기장을 찾아와 사인을 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많은 어린이들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 올해가 처음으로 열리는 것이라서 시행착오도 있었다. 차기 대회에는 더욱 알차게 준비할 것이다."-아시안드림컵이 내년에는 태국에서 열린다고 하는데."내년 일정은 현재까지 확정된 것이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아시아의 어느 한 국가에서 열린다는 점이다. 태국은 베트남 발표 당시 언론에서 언급됐지만, 그 나라와는 아직 접촉한 바 없다."-JS CUP 동아시아유소년친선축구대회를 개최했는데."올해는 아시안드림컵으로 인해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많은 유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 이 대회를 통해 아시아 어린이들이 국가간의 교류를 갖고 서로 우정을 나누고, 더불어 축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됐으면 한다."-내년에는 JS CUP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올해에는 일본 지진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쿠시마 유나이티드FC 유소년팀이 참가해 주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올해에는 3개국에서만 참가했는데, 내년에는 더 많은 국가가 참가했으면 한다. 특히 북한 어린이들도 이 대회에 참가해 남북 꿈나무들이 우정의 시간을 갖는다면 더욱 뜻깊은 대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축구 클리닉을 할 때 어떤 기분인가."어린이들과 몸을 부딪히며 또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나는 클리닉을 할 때마다 힘들어도 항상 웃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들에게 더욱 친밀감을 주기 위해서다. 또 어린이들에게 좋은 귀감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부모님과 만날 기회가 적은데."당연하다. 하지만 부모님과의 사이는 좋다.(웃음)"-결혼은 언제 할 건가."(웃음). 더 이상 묻지 말라."-박지성의 은사님 중 가장 생각나는 스승은."내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스승의 가르침이 있어서일 것이다. 모두 생각난다."-최근 명지대에서 세미나를 개최했는데."명지대 대학원에서 세미나 주제를 발표했다. 그날 '유소년 축구 부상 관리 현황'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는데, 축구 선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자료는 국내와 유럽 유소년 축구 선수의 부상 실태를 파악하고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 즉, 어린 선수들에게는 적당한 휴식시간을 주면서 훈련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유소년 시기는 자질 계발과 기술 습득의 중요한 시기다."-구단 얘기 좀 하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계약 문제는."현재 구단과 협상을 하고 있다. 협상 과정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팀에 남을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구단도 내가 팀에 남는 것을 원치 않겠는가."-최근 많은 이적설이 나오는데."나도 언론을 통해 듣고 있다. 많은 이적설이 해외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만 사실 무근이다. 직접 제의가 왔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보도는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올해 시즌 목표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개인적으로 지난 시즌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물론 팀도 정규리그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등 모든 대회의 우승컵을 따내는 것이다."-최근 선덜랜드에서 뛰게 된 지동원은 어떤가."지동원도 이청용처럼 열심히 노력하면 분명히 기회를 잡을 것이다. 어떤 포지션에서 뛰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영리하고 능력이 있는 선수여서 잘해 낼 것이다."-끝으로 국민들에게 한마디 해 준다면."경기도민, 수원시민, 국민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린다. 그 성원에 보답하고자 돌아오는 시즌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항상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다."■ 박지성 프로필- 신체 : 178㎝, 체중 73㎏- 혈액형 : O형- 학교 : 산남초-세류초-안용중-수원공고-명지대학교-명지대학원 석사과정- 프로 데뷔 : 2000년 교토상가 FC- 현 소속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미드필더), 박지성 재단 이사장- 월드컵 출전 : 2002년 한일월드컵, 2006년 독일월드컵, 2010년 남아공월드컵 등 3회 연속 월드컵 국가대표- 취미 : 음악 감상, 비디오게임- 특기 : 지구력, 패싱력 - 별명 : 산소탱크, 바른생활맨- 좌우명 :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정리=신창윤차장·사진=김종택차장

2011-07-03 신창윤

[인터뷰 "그"]천주교 수원교구 보좌주교에 선임 된 이성효 신부

[경인일보=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정리=이준배차장·사진=김종택차장]보통 성직자라고 하면 으레 범접하기 힘들다는 선입견을 갖게 마련이다. 엄숙하고 근엄한 모습부터 떠오른다. 천주교 수원교구 이성효(54) 리노 보좌주교를 직접 대면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범인과는 다른 저 높은 곳에 사시는 분은 아닐까. 사실 이번 인터뷰 일정을 잡는 것도 쉽진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지난 2월 로마교황청으로부터 이성효 리노 보좌주교 선임이 결정되고 서품식을 거행하기 전까지 바로 40일간 대침묵 피정(避靜·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묵상)에 들어간 그는 연락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3월25일 정식 서품식 이후에도 빡빡한 일정으로 인터뷰는 한 달여를 더 기다려야했다. 그래서 더더욱 속세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해진 듯하다. 그러나 그를 직접 대면하는 순간 머릿속을 떠돌던 고정관념은 조금씩 허물어졌다. 그의 첫 말 한마디부터가 파격이었다. 취미가 '외국 신부들 개고기 먹이기'라고 밝히며 개고기 전도사를 자칭하는 그의 소탈한 말솜씨와 아이같이 해맑은 미소에 고정관념은 이내 조금씩 무장해제되기 시작했다. 그는 인터뷰 중간중간 격의없는 농담을 여러 차례 던졌다. 그의 유머러스한 모습에 순간순간 웃음꽃이 터져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 첫 소감은."처음 소식들었을 때 어안이 벙벙해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어려운 직무라 답을 얻으려고 40일간 대침묵 피정을 하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렸죠. 사실 이번 인터뷰도 혹시 제 사생활이 다 노출되는 것 아닌가 해 처음엔 안하고 싶었어요(웃음). 그렇지만 궁금하신게 있다면 가차없이 물어주세요."- 학창시절은."인기가 좋진 않았어요. 그랬으면 제가 어떻게 여기 있겠어요."- 좋아하는 음식은."사제가 되면서 좋아하는 음식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어요. 어떤 신부님이 도시 본당에 처음 가셨다가 된장찌개를 좋아한다고 얘기했더니 방문하는 곳마다 매일 된장찌개를 줘서 나중에는 질려버렸대요. 결국 '저 고기 먹을 줄 알아요'라고 하셨대요. - 싫어하는 음식은."제가 못먹는 게 3가지가 있어요. 첫째 없어서 못먹고, 둘째 안줘서 못먹고, 셋째 배불러서 못먹죠.(웃음)"- 그럼 보양식은."개고기를 잘 먹습니다. 제 취미가 외국인 신부들 개고기 먹이기죠. 특히 프랑스 신부들요. 불어에 신앙(foi)이라는 단어가 간이란 뜻의 푸아(fois)와 발음이 비슷해요. 음식 잘 먹느냐 물어보면 내 신앙이 가톨릭 아니냐? 푸아(간) 옆에 있는 위도 마찬가지로 가톨릭이어야지라고 조크를 던지죠. 하하 좀 썰렁하네요. 프랑스에선 통했는데(웃음)." - 특별한 계기라도."1987년 독일 유학 당시, 독일방송국에서 올림픽 개최국 소개 프로그램에 개고기 먹는 걸 방송에 내보냈어요. 당시 함께 유학갔던 김찬수 오산본당 신부님 경험에 따르면 백화점에서 어떤 독일 아줌마가 '당신 어디서 왔냐'고 물어 '한국에서 왔다' 그랬대요. 대뜸 '개고기 왜 먹냐'고 따지더래요. 신학생이 개는 왜 못먹느냐 되묻자 개는 영리하지 않느냐 그러더래요. 그래서 유태인이 영리하지 않아 학살당했느냐 하니 아무말도 못하더래요. 그래서 사실 개고기도 음식문화일뿐이다. 문화는 열등하고 우등한게 없이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대요. 그 이후 개고기 먹는 것에 대해 당당하게 얘기해요. 특히 반대가 심한 프랑스신부들에게는 꼭 권하죠. 사제라 다른 나라 문화를 알려고 열린 마음을 가져 다들 잘 먹어요(웃음)."- 사제가 된 계기는."사실 고교 3학년때 사제의 길로 가야겠다는 매력을 느끼기 시작해 졸업하면 신학교에 들어가려고 했어요. 그때 아버님이 신자가 아니셔서 반대해 못들어갔죠. 그래서 아주대 공대 졸업한 뒤 대학원까지 공부를 했죠. 그러다 1984년도 교황님이 방문하셨을 때 새벽 2시에 여의도 미사에 참례했어요. 그날 오후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너무 잔가지를 많이 치고 있구나. 이제 잔가지를 좀 쳐내야겠다'라고 결심하고 신학교 들어갔죠."- 유학생활은."독일 유학시절 식사가 어려웠어요. 한겨울에 큰 축제를 한다고 찬맥주와 차가운 빵, 소시지 주면 먹기 힘들었죠. 그러면 저는 올라가서 라면 끓여먹었어요. 거기서 김치도 직접 담가먹고 그랬어요. 김치 담그는 것은 이제 아주 수준급입니다.- 유학비용은."가톨릭은 그게 장점이에요. 독일교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아서 충당했어요. 신부가 되고 난 뒤 파리로 갔을 때는 신부라 수원교구에서 생활비까지 다 대줬죠. 가톨릭 같은 경우는 그런 부분이 수월해요."- 수원교구로 오게 된건."신학교 갈때부터 고정돼 있어요. 다른 데로 못가요. 근본뿌리가 박혀 있죠. 태어난 곳은 진주지만 아버님이 법무부 공무원이시라 대구 거쳐 초등학교 1학년때 수원 지동초로 전학와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다니며 쭈욱 살았어요. 아주 어릴적부터 지내서 수원은 익숙한 저의 고향이죠."- 금욕생활은."신학생때는 7년 동안 단련기간이어서 잠을 많이 못자지만 사제가 되면 자유롭죠. 사제 중에도 교구사제와 수도자 사제가 있어요. 수도자들은 엄격하게 살아야 하지만 교구사제들은 세상사람들과 만나고 그래야 되니 자기가 알아서 대체로 잘 자요. 물론 금욕생활이 갑갑한 것만은 아녜요. 일례로 독일에 신부·수녀님 휴양소가 있어요. 거기 수녀님 중 두 분은 봉쇄수녀원에 계셨어요. 원래 밖에 못나오는데 특별히 휴양나오신거죠. 마침 본명축일 파티를 준비하는데 사회진출 수녀님들은 당황하고 쭈뼛쭈뼛하는데 봉쇄수녀원 수녀님들은 춤을 춰야지 하며 굉장히 자유롭고 막힘이 없었어요.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았죠. 오직 하느님만 찾는 영혼이 더 자유롭고 맑아요."- 사제 후 달라진 점."첫째 여자한테 접근 못한다는 점.(웃음) 대학때는 가톨릭학생회 활동하며 수원교구 대학생연합회 회장을 했었죠. 당시 주변에 여학생들이 많아 축제때 파트너 걱정은 안했어요. 그렇지만 그때도 여자보단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 더 컸었던 것 같아요. 나의 정원에는 두 그루 나무가 있다. 결혼 혹은 사제가 되는 쪽.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면 결혼을 못하게 돼있더라구요. 여자를 만나서 그런 얘기를 하면 누가 좋아하겠어요(웃음)."- 뒤늦게 쉽진 않으셨을텐데."처음 2년 동안 신학 공부하는게 정말 힘들었죠. 그전 10년 동안 공부한 공학은 돈과 경제성을 중요시했었어요. 완전히 공돌이였죠.(웃음) 신학교에서 형이상학 수업을 받는데 신존재 증명에 대한 답을 썼는데 공학적인 사고가 박혀선지 제가 쓴게 다 거짓말인 거예요. 내가 여기 왜 왔나 회의가 들었죠. 그때 3번 정도 짐싸서 나오려고도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당시 견디기 힘들었을 때 6시 기상인데 규칙을 어기고 5시에 일어났어요. 한 시간 동안 미적분 문제 하나를 다 풀고 나면 머리가 편해졌어요. 다행히 안 들키고 잘 넘어가서 사제가 됐죠."- 올바른 신앙은."광신은 경계해야 하죠. 이성과 신앙의 두 날개가 골고루 펼쳐져야 돼요. 한쪽만 강하면 제대로 날지 못하고 제자리만 빙글빙글 돌게 돼요. 저도 동료 사제들한테 야단을 칠때가 있어요.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게을리할때죠. 그게 없어지면 권위만 남아요. 남을 이해하지 않고 맹신적으로 되면 안타깝죠."- 타종교에 대해선."타종교 다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가톨릭교회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5년) 이후 교회일치운동으로 타종교와의 대화창구가 열렸어요. 불교, 이슬람은 악마의 종교가 아니라 거기에 있는 사람을 먼저 봅니다. 어떤 신학자가 신학은 궁극적으로 인간학이라고 표현했어요. 옳다고 생각해요. 하느님에 대해서 깊이 연구할수록 이 사람이 타종교라고 해서 무시하면 하느님을 무시하게 되는 거예요. 종교간의 대화는 협상이 아니에요. 그 사람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요. 그 종교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진리를 인정해주고 우리의 진리를 당당하게 보여주는 거죠. 우위를 가르는 게 아니에요. 종교도 문화예요. 타종교와의 대화로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면 하느님의 은총이죠."- 마지막 한 말씀."가치관적으로 보면 물질만능이 너무 우리를 사로잡고 있어요. 그래서 물질이 결핍되면 사람이 쉽게 생명을 포기하거나 사람을 경시하게 된대요. 사실 물질은 아무것도 아닌데. 사람 자체의 가치를 좀 더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신학적으로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이에요.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그 안에는 찌그러진 하느님의 모상이 있죠. 생명과 사람을 중시했으면 해요."한국 천주교회는 16개 교구에 34명의 주교(추기경 1명, 대주교 5명, 주교 28명)가 있다. 현직 주교는 23명(추기경 1명, 대주교 2명, 주교 20명)이며, 은퇴주교는 11명이다. 그중 수원교구는 1963년에 설립, 이용훈 주교가 제4대 교구장을 맡고 있고 이성효 보좌주교는 그를 보좌한다. 관할 지역은 서울과 인천을 제외한 한강 이남 경기도 지역으로 75만여 명의 신자가 있다.

2011-05-15 경인일보

[인터뷰 "그"]자격논란 우려 깨고 재평가 받는 이종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

[경인일보=대담/장철순 인천본사 경제부장·사진/김범준기자·정리/김명래기자]1차 공모에서 탈락한 후 2차 공모에서 단독추천으로 제3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으로 임명된 이종철(51) 청장. 감사원 출신이 투자 유치, 국제비즈니스, 도시 개발 등의 업무를 과연 제대로 해낼 수 있겠느냐는 우려섞인 자질시비에 이어 2차 공모 당시 임용 부적정이라는 행정안전부의 감사결과로 적격시비까지 일었던 인물. 그러나 최근 송도국제도시에 삼성 바이오메디파크 유치에 이어 세계대학평가 90위의 벨기에 겐트대학교와 송도분교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는가 하면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대형프로젝트들이 하나하나씩 풀리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젊은 패기와 열정을 갖고 꼬여있는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산적한 현안과 씨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경제자유구역 활성화의 걸림돌, 해법 등을 들어봤다.- 이 청장은 감사원 출신으로 외부에서 경제자유구역문제를 들여다본 경험이 있다. 인천경제청장이 돼서 보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나."감사원에 있을 때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입장이 아니었다. 추진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것을 따지는 입장이었다. 이제는 비즈니스 모델을 직접 풀어가야하는 입장이다. 와서 보니까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많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고생한다는 생각도 한다. 무엇보다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당하지 않게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규정만 바라보면 문제가 안 풀리겠다는 생각도 있다. 어찌됐건 과감해야 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정부의 통상적인 업무가 아니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개척하는 업무다."- 경제자유구역 개발과정에서 기관간 업무협조가 안되는 게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감사원 출신의 청장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청라지구 첨단산업단지(IHP) 예정 부지 매각 문제가 대표적으로 업무 협조가 안 되는 부분이다. IHP 예정지의 절반가량(57만㎡)은 땅주인이 농어촌공사다. 2006~2007년까지만 해도 농어촌공사가 이 땅을 '취득원가로 LH에 넘기는 합의가 있었다. 그때 LH가 매입하지 않고 질질 끌다가 2008년부터 인수하려니까 농어촌공사가 감정평가 얘기를 하고 있다. 이로인해 기반시설도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이 땅은 과거 쓰레기매립장이었다. 두 기관의 명분싸움 때문에 사업만 골병드는 양상이다. 제 3연륙교 문제도 그렇다. 2009년 감사원에 있을 당시, 국토부는 무조건 안 된다고 했고, 인천시는 무조건 하자고 했다. 감사원이 협의를 부쳐 타당성용역 조사를 한 뒤 결정하자고 조정했다. 하지만 MRG(최소운영수입보장)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이 사업을 착수할 수 없다. 해결구조가 복잡하고 쉽지 않다. 솔직히 영종도가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하는 데 민자사업을 적용한 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공항고속도로는 재정사업으로 추진되다가 민자유치법이 제정되면서 1호 사업으로 적용됐다. 그때 교통량이 부풀려졌고, 민자협약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국내 1위의 글로벌 기업 삼성이 신수종사업 적합지로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를 선택했다. 유치과정을 설명해 달라."경제청장 임명 직전인 지난해 6월 말 국회가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퍼뜩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됐으니, 대기업들이 세종시로 안 가도 되겠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김태한 삼성 미래전략실 부사장을 만나 점심식사를 했다.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됐는데, (신수종사업 부지는)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물었더니 김 부사장은 '갈 데 많이 있다'고 답했다. 5대 신수종 사업 중 바이오 사업 입지에 대해 물었더니, '기흥에 땅이 확보됐고 설계까지 해 송도는 어려울 것 같다'고 김 부사장이 말했다. 삼성이 처음부터 송도를 염두에 둔 건 아니다. 삼성과 접촉한 뒤 송영길 인천시장께 '확률은 높지 않은데, 계속 대화해보자'고 했다. 이후 송 시장이 직접 삼성쪽에 연락해 송도 입주 의사를 타진하면서 물꼬가 트였다. 9월이 되자 삼성이 '송도를 대안 중 하나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9월 말께 삼성측에서 인천경제청에 처음 찾아왔다. 삼성은 보안 유지를 강조했다. 그래서 모든 회의는 경제청 직원들이 삼성 본사에 찾아가서 했다. 삼성이 어마어마한 자료를 요구했다. 트럭 한 대분에 채울 정도의 자료가 작성됐다. 수도권 규제법 때문에 삼성 단독입주보다는 외국기업과의 합작을 유도했다. 고심끝에 삼성은 12월 말에 사실상 송도행을 결정했다."- 삼성 유치 이후 송도국제도시에 활기가 도는 것 같다. 다른 대기업의 러브콜은 있나."지금도 굉장히 중요한 딜이 진행되고 있다. 이게 되면 송도는 바이오 메카로 자리잡을 것이다. 또 삼성 이외의 다른 대기업을 유치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서비스 분야의 대기업이 들어오면, 단순히 기업 사무실만 제공하는 게 아니고 기업 타운을 조성하려고 한다. 오피스 빌딩이 대규모로 들어오고, 필요한 만큼 땅을 주고, 직원들이 여기와서 살 수 있도록 특별분양과 직원용 임대주택을 허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규제를 풀어야 한다. 작년에 인천으로 서울본사를 옮긴 포스코건설도 이 문제로 애 먹었다."- 최근 경제청장 채용 과정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행정안전부 감사 결과가 있었는데."당락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오류였다면, 이건 문제를 삼고 해당 직원을 징계해야 한다. 그런데 고의성이 없고, 순위가 안 바뀌었다. 일부 행정 실수가 있었으니 기관주의 정도 하면 될 사안이었다. 실체적 내용 변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청라경제자유구역은 아파트만 들어서 베드타운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은데."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우선 사업시행자인 LH는 하우징과 도시개발업무를 주로 하지 투자유치는 전문이 아니다. 큰일이다.(긴 한숨) LH는 택지개발하고 도시개발해서 투입한 비용 이상만 갖고 나가면 끝인 기업이다. 경제자유구역 활성화에 열정을 바치고 헌신할 기업 구조가 안 돼 있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청라 개발 콘셉트가 비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너무 앞서나가 있다. 국제금융단지 조성은 지금 현실로는 어렵다. 사업시행자는 LH고, 지구 활성화 책임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있다. 서로 다른 동기를 가진 두 개 기관이 이중적으로 중첩돼 있다. 이게 청라지구를 답답하게 하는 구조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인천경제청장에 오자마자 LH에 '청라지구 땅을 무상으로 주든지 싸게 내달라'고 요구했다. 청라지구에서 LH는 이미 조성비 이상의 돈을 확보했다. 수천억원의 추가 이익이 발생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LH측은 '청라지구와 영종지구 계정이 통합돼 있다'고 했다. 청라에서 남은 돈을 영종에 쓰면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땅에 대한 소유권은 못 받더라도 투자유치는 인천경제청이 전담하는 구조를 짜보려고 한다. LH는 기반시설 조성과 택지분양까지만 하고, 나머지 개발계획, 실시계획, 투자유치 등은 인천경제청이 주도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LH의 경제자유구역 투자유치 조직이 어디에 있나 보라. 인천이 아닌 분당에 있다. 될 수가 없는 구조다."- 경제자유구역인 영종지구도 정체돼 있다. 대표적으로 용유무의복합도시 조성사업은 10년이 지나도 해법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용유무의사업은 일단 지금 청사진대로 끌고나갈 생각이다. 이 사업을 위한 SPC(특수목적회사) 조성이 목표다. 인천도시개발공사가 SPC에 출자를 승인받은 날로부터 2개월 안에 구성하겠다고 주민들에게도 말했다. 절차가 빨리 진행돼야 하는데 너무 더디다. 그래서 외국 투자자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다. 투자유치 행정을 하는 사람은 '시민 신뢰'와 '투자자 반응'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번복되면 안 된다. 투자의 맨 밑마닥은 신뢰다."- 밀라노 디자인 시티 사업은 이탈리아 대통령까지 행사에 참석할 정도로 국제적 관심이 모아진 프로젝트였는데, 무산됐다. 어디서부터 망가진 건가."외자유치에 실패한 게 가장 큰 요인이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피에라인천전시복합단지주식회사(FIEX)가 제시한 조건으로 거대한 사업을 추진하기가 어렵다고 시장에서 판단했다. 이탈리아측에서는 '상당히 실망스럽다'는 의사를 우리쪽에 여러차례 전달했다. 하지만 주식회사가 처한 문제에 인천시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일을 풀어가기 어려운 구조란 것이다."- 이 청장은 인천경제자유구역을 '국가 프로젝트'로 끌고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무슨 뜻인가."청장에 응모했을 때부터 '인천경제자유구역은 내셔널 프로젝트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모든 돈과 리스크를 인천시가 책임지는 구조로 돼 있다. 하지만 인천시는 용빼는 재주가 없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이 내셔널 프로젝트가 되면 청라·영종지구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부지를 매입한다든지 LH와 딜을 할 수 있다. 투자유치용지를 싸게 공급해야 한다. 지금은 토지가격이 비싸고, 땅이 LH소유다보니 인천시는 중간 거간꾼 비슷하게 돼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실무형 업무스타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전과 다르게 도입한 건 무엇이 있나."현안조정회의를 만들었다. 주요 결정을 여기서 다 한다. 간부들 사이 정보 공유가 이뤄지고, 의사결정이 빨라졌다. 8개월정도 했는데, 잘 정착이 돼 많은 안건이 올라온다. 무엇인가를 요구했을 때 리스판스(대응)를 빨리 해주는 것을 원한다. 제 성격 자체가 리버럴하고 액티브하다. 권위의식같은 게 없다. 아무리 폼을 잡으려해도 폼이 안 난다.(웃음)"

2011-04-20 김명래

[인터뷰 "그"]송도 잠깨우는 이종철 인천경제청장

[경인일보=김명래기자]"인천 송도국제도시는 분명 바이오 메카가 될 것입니다. 최근 삼성의 신수종 사업 중 바이오 분야가 송도에 유치된데 이어 또다른 기업과 얘기가 오고가고 있어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관련기사 9면한동안 침체된 송도국제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이종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은 "대기업 유치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며 "중앙정부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청장은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 '그'에서 "현재 인천경제자유구역은 개발 과정에서 얽히고 설켜있는 각종 문제점과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하는 일이 급하다"면서 "특히 기관간 갈등으로 사업이 표류하는 사례도 상당수에 달한다"고 밝혔다.청라지구 베드타운 전락 우려와 관련 그는 "도시개발의 콘셉트가 잘못돼 있고, 사업시행자인 LH가 투자 유치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안돼 있다"며 "LH는 기반시설과 택지 분양까지만 하고, 나머지 개발계획 및 실시계획, 투자유치 등은 인천경제청이 주도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그는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재정이 취약한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할 것이 아니라 내셔널 프로젝트가 돼야 기관간 갈등, 재원 조달, 투자 유치 등이 수월해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011-04-20 김명래

[인터뷰 "그"]'성악도 새삶' 찾은 수원의 야식배달부 김승일씨

[경인일보=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정리:김선회기자·사진:김종택차장]또 한 명의 남자 신데렐라가 탄생했다. 야식배달부 김승일(34).지난해말 SBS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자신을 야식배달부라고 소개한 그는 오페라 투란도트의 주제곡인 '네순도르마(Nessun dorma)'를 열창했다. 그의 노래가 흐르자 방송국 세트에 나와 있던 MC와 출연자는 물론 시청자들 대다수가 감동에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성악과 교수는 "평생 이런 음색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앞으로 100일간의 레슨을 통해 이 청년을 새롭게 탄생시켜주겠노라"고 공언했다. 그후 그는 어떻게 됐을까.4월 2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된 김승일씨의 모습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터틀넥 티셔츠와 점퍼 대신 단정한 턱시도를 입고, 곱게 분장한 모습은 영락없는 성악가의 모습이었다. 40인조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오 솔레 미오(O Sole Mio)', '그라나다(Granada)', '사랑의 찬가'를 여유롭게 부르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다시 한 번 놀랐다. 다소 불안했던 표정 대신 한층 여유로운 모습이었고, 노래할 때 아무 동작도 없었던 초기 모습과는 달리 음악의 리듬을 타며, 손짓과 몸짓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그에게 청중들은 열렬한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 김승일씨의 변화된 모습이 방송을 타기 직전 경인일보 취재팀은 용인의 한 연습실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수원에서 열릴 단독공연 준비를 하며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만나서 반갑습니다. 어떤 공연을 준비하고 계시나요."오는 4월 24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열릴 '내 생애 첫 번째 공연'을 위해 연습중입니다. '내 생애 첫 번째 공연'은 제목처럼 여러가지 여건 때문에 공연은 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무대인데요. 방송에서 선보였던 '네순도르마'를 비롯해 가곡과 팝송 등 총 5곡 정도 부를 예정입니다. 그리고 제가 중심이 되긴 하지만 저를 도와 몇몇 분들이 무대에 함께 서서 공연을 해주실 거구요. 공연 수익금은 전액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일 예정입니다."-어떻게 공연이 성사된 건가요."배우 조재현씨가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을 맡고 계신데요. 우연히 TV에 출연한 저를 보시고,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셨나봐요. 그래서 방송국을 찾아가 담당 PD를 만나셨고, 결국 저와 연결돼서 공연이 성사됐죠. 사실 제가 수원에서만 30년 넘게 살고 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야식 배달하면서 경기도문화의전당을 많이 쳐다보곤 했거든요. '언젠가는 저 무대에 한 번 꼭 서보겠다'고 다짐했는데, 그게 현실로 이뤄져서 꿈만 같습니다."-유년 시절과 학창시절이 궁금한데요, 어땠습니까."원래 고향은 전북 익산이구요. 목수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4살때 수원으로 이사와서 그때부터 죽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중동 건설붐이 한창일 때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면서 저희 4남매(3남1녀)들을 키우셨구요. 어머니도 틈틈이 일을 하셨어요. 집안이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아주 어렵지는 않았어요. 저는 중학교때부터 노래에 조금 소질이 있어서 가요를 많이 불렀어요. 웬만한 노래 경연대회에서는 학급 대표로 나갈 정도였죠. 그런데 고등학교(삼일고)에 입학해 우연히 축제 오디션에 참가했는데, 거기서 어이없게도 예선 탈락을 한거예요. 태어나 처음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죠. 하지만 그 이후에 선후배들과 함께 '모비딕'이라는 밴드를 결성해서 라디오 방송도 출연하고 그랬으니까 아무튼 그때 경험이 저에게는 약이 된 셈이죠."-그럼 원래 꿈이 성악가가 되는 것은 아니었군요."기타를 치게 되고 여러 가요를 섭렵하면서 김종서씨를 알게 됐구요. 그 분 노래를 많이 따라 불렀어요. 그런데 저희 고등학교 합창반 선생님이 제가 노래하는 것을 지켜보시더니 성악을 한번 배워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셨어요. 전 원래 졸업후 바로 취업하려고 실업고에 진학한 것인데, 그때 제 운명이 바뀐게 된거죠. 대학 입시를 앞둔 5~6개월 전쯤부터 성악과 교수님께 레슨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성악이 참 재미없더라구요. 그러다보니 레슨도 자주 빠지게 되고 성악을 포기할까도 여러 번 생각을 했죠. 하지만 주위에서 '잘한다 잘한다' 자꾸 하니까 조금씩 흥미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이 길을 가야겠구나하고 생각했어요." -방송에서 밝혔듯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대학생활은 고등학교랑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동기들은 대부분 예중·예고를 거쳤기 때문에 기본 발성, 호흡, 음정 등 기본기가 잘돼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레슨 기간이 짧다보니 처음부터 좀 차이가 있었죠. 게다가 음악하는 친구들은 거의 다 유복한 편이었어요. 그런 문화적 차이때문에 수업 끝나면 바로 사라지곤 했죠. 그러다보니 1학년때 성적은 별로 안좋았어요. 그러던 중 1학년 말에 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셨어요. 그때 저는 학업을 중단하는 것이 낫겠다싶어 자원입대를 하게 됐습니다. 다행히도 군악대에 들어가 성악은 계속할 수 있게 됐죠. 제대 후에는 자진유급해서 2학년이 아닌 다시 1학년으로 복학해 정말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어요. 필기는 물론 실기 모두 1등 할 정도로. 그런데 호전되셨던 어머니께서 다시 쓰러지셨죠. 그땐 가정형편이 썩 좋지 않아서 학업을 아예 그만 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학을 그만 두고 어떤 일을 했습니까."학교를 그만 두고 어떤 일을 할까 하다가 당시에 환율 차이가 10배 이상 나니까 무작정 일본에 가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는 사람도 없었는데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로 일어를 한 것만 믿었죠. 막상 관광비자로 일본 도쿄에 가서 일자리 찾아봤는데, 취직이 결코 쉽지 않겠더라구요. 그래서 무작정 열흘간 돌아다니다 결국 일자리를 못찾고 귀국했죠. 그런 후에 서울 강북에 있는 한 주점에 웨이터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그 곳에서 큰 충격을 받았죠. 사람들이 몇 십만원은 쉽게 쓰는 것을 본거예요. 그때 속으로 '아 돈이 이런 쪽으로 이렇게 도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일한 첫날 수입이 25만원이었으니까 말 다한 셈이죠. 그 이후에 수원에 있는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 보조를 했어요. 그리고 택배, 퀵서비스, 부동산 중개보조원, 통닭 배달 등 돈만 많이 준다면 닥치는대로 일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야식 배달과 인연을 맺었는데, 열심히 일하면 성과급도 있고, 일을 하다보니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맘도 편하고 해서 7년이나 일하게 됐습니다."-TV 출연으로 유명인이 됐는데, 아직도 야식 배달을 하십니까."방송으로 얼굴이 많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배달 주문을 할때 '김승일을 보내라'고 자꾸 전화하셔서 사장님이 일을 좀 줄여 주셨어요. 요즘엔 새벽 5시에 나가서 배달이 좀 줄어드는 오후에 퇴근해요. 그리고 사실 방송 출연을 했다고 해서 생계가 나아지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방송 나가기 전에 야식집 말고 다른 부업하려고 준비도 하고 있었거든요. 노점에서 옷도 팔까하고 생각했었구요. 그런데 얼굴이 알려지면서 그런 부업들을 포기해야 했어요. 지금은 음악공부에 좀더 치중하고 있는 중입니다."-방송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야식집 사장님 때문이라고 하던데요."제가 어느 날 휴대전화기에 제 노래를 녹음해서 사장님께 들려줬어요. "아 이 분 참 잘하지 않아요? "라면서요. 그때 사장님이 "어 ! 굉장히 잘하네"하고 반응을 보이셨죠. 그래서 그 주인공이 저라고 하니까 장난삼아 '스타킹'에 연락하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얼마후에 방송 작가들한테 실제로 연락이 왔어요. 그 계기로 TV에 나가게 됐구요. 방송 출연후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야식 배달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주위에서 그러더라구요. 네 상태(인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너만 모른다구요. 그제서야 '아! 방송의 파장이 크긴 크구나' 하고 느꼈죠."-방송에서 레슨하기로 해 준 교수가 불명예스럽게 하차했는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된 겁니까. "그 교수님께 레슨을 3번 정도 받았는데, 갑자기 그 분이 중도하차하게 되셨죠. 인터넷 게시판에는 '안되는 놈은 뭘 해도 안되는구나'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 글에 상처도 받았지만 제작진들은 물론 저를 응원해주시는 많은 팬들이 걱정해 주셔서 제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얼마후 저의 사정을 알게 되신 성악가 배재철 선생님께서 새로운 멘토로 참여해 저를 도와주시게 됐어요. 사실 그 분도 갑상선 암에 걸려 노래를 못하실 만큼 어려움을 겪으셨는데, 그것을 극복하시고 현재 세계적인 테너로 꾸준한 활동을 하고 계시거든요. 그 분께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배울 예정입니다."-결국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우연히 시작한 성악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음악은 저에게 있어 꿈을 이뤄준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어서 아직은 두려움도 많습니다. 기회만 된다면 다른 아르바이트를 정리하고 음악으로만 승부를 걸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이 있었기에 제가 TV에 출연할 수도 있었고, 과분하게 큰 무대에 설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음악인으로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04-03 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