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스타플레이어 출신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 경인일보 방문

"경기도민의 뜨거운 축구 열기에 부응하기 위해 A매치를 열게 됐다."지난 8일 경인일보 본사를 방문한 대한축구협회 김주성 사무총장은 14일 국가대표팀의 호주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을 화성종합운동장에서 개최하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김 사무총장은 "선수와 팀 수의 광역 시·도협회 분포를 보게 되면 수도권이 60~7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서울을 제외한 경기권역의 비중은 상당히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축구가 발전하는 동반자적인 입장에서 경기도를 바라보고 있다. 세계축구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경기도가 중심이 되어 힘을 실어 줘야 한다"고 했다. 김 사무총장은 축구계에서는 선수출신 행정가 1호다.지난 1999년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 은퇴한 후 다음해인 2000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에 선임되며 행정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올해 초 그가 한국 축구를 이끄는 중심 기관인 대한축구협회의 사무총장에 선임됐을 때 국내 스포츠인 모두가 깜짝 놀랐다.경기도민 위해 호주팀과 오늘 평가전A매치 열기반영 내년에도 국제이벤트지금은 한국축구 발전 좌우 중요시점협회 임직원·전문가 합심 최선의 노력김 사무총장은 "해외에 진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이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축구 지도자와 행정가가 상반된 분야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을 꺼냈다.그는 "거창한 이유보다는 선수 출신이 꼭 지도자로만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접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다.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 선수와 지도자도 중요하지만 행정가들이 마음껏 정책을 펼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도전하게 됐다"고 전했다.이어 김 사무총장은 "행정가도 아마추어 협회에는 아마추어에 맞는 행정이 있고, 프로에는 거기에 맞는, 대한축구협회에는 협회에 맞는 행정이 있다.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려면 20년 이상 운동을 해야 한다. 행정가로서도 행정가에 맞는 지식과 소양을 쌓기 위해 일정 기간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며 스포츠 행정 관련 학위를 취득한 이유를 설명했다.김 사무총장은 "제가 현장에 대한 전문지식은 풍부할지 모르겠지만 행정적인 부분은 배워야 할 게 많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석·박사 학위 취득과 어학연수, FIFA국제스포츠관리자 과정 등도 밟게 됐다"고 귀띔했다.현역 축구 선수로서, 그리고 축구 행정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에게도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편견이다.김 사무총장은 "인식이다. 모든 사람들이 운동선수는 행정가로 성장할 수 없다는 편견이 있다. 특히 남들의 인식도 힘들었지만 내 자신의 인식에 대한 탈바꿈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이어 김 사무총장은 "가장 적성에 맞는 게 축구 선수였기 때문에 수십 년을 했고 거기에 맞게 습관화됐다. 그런데 정반대의 일에 도전하게 됐다. 운동선수는 경기장에서 활동적인 부분이 전부라면 행정가는 자리에 앉아서, 결국은 머리 싸움을 한다. 그런 부분에 대한 트레이닝이 어린 시절부터 익숙지 않았고 성인이 돼서 바꾸려고 하다 보니 힘들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하지만 김 사무총장은 "선수 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걸 배웠다. 선수 시절 겪었던 고난과 역경이 다른 분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힌 후 "여기에다 주위 분들이 많은 조언을 해주셔서 힘든 과정을 슬기롭게 이겨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1980~90년대 최고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김 사무총장은 국내외 리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김 사무총장은 2005년부터는 대한축구협회 이사로 선임되며 축구 행정가로서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 2012런던올림픽 동메달 획득 등 행정가로서도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성과물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축구 선수가 아닌 축구 행정가 김주성으로서 최근 한국 축구 부흥기를 바라보는 느낌에 대해서도 물어봤다."선수 때의 성취감은 자기만의 것이었지만 행정가 입장에서 성취감은 나만이 아닌 온 나라의 성취감이다. 한 사람이 누리는 기쁨이 아닌 전 국민이 함께 누리는 감격이나 스릴, 만족감은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이어 김 사무총장은 "오히려 기쁨과 희열을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 선수 때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때는 내가 현역 선수로 뛸 때보다 더 아픔이 온다"고 덧붙였다.그는 "사무총장의 역할에 대한 평가도 제 개인적인 평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직이 평가받는 부분이기 때문에 함께 대한축구협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분들의 의견도 경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제 역할에 대한 비중이 클지 모르지만 모든 의사결정은 대한축구협회 임직원, 전문가들의 능력과 생각을 모아서 결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김 사무총장은 "현재 선수들이 축구 선수로서 국민들로부터 사랑 받는 것은 과거 선배들께서 이뤄놓으신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부터는 선수들이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 축구계는 무한 성장할 수 있느냐 아니냐 기로에 서 있다. 축구계가 발전할 수 있는 뿌리를 다지는 중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도내 축구계에 논란이 일었던 수원시시설관리공단 여자축구단(수원FMC) 해체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수원FMC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닌 여자 축구 전반에 어려움이 표출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며 "대한축구협회에 여러 종목의 연맹이 있는데 유기적으로 대화를 통해 축구 전 분야가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 거 같다"고 말했다.이어 김 사무총장은 "수원FMC 문제와 관련해서는 염태영 수원시장을 찾아뵙고 사회적 약자층인 여성들의 입장을 설명하며 팀 운영 문제를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한 후 "수원지역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를 축구와 연계해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김 사무총장은 "이번 A매치의 열기를 반영해 더 많은 경기도민들이 축구를 즐길 수 있도록 내년에도 국제 이벤트를 통해 도를 찾고 싶다. 대표 팀이 활약할 수 있도록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글/김종화기자사진/김종택기자 '아시아의 삼손' 애칭 대표팀 공격수 활약김주성 축구협회 사무총장은김주성 사무총장은 강원도 양양군에서 태어났지만 서울 성수중과 중앙고를 거쳐 조선대에서 활약했다. 1987년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에 데뷔한 김 사무총장은 1992년까지 대우에서 100경기에 출장해 31골을 넣었다. 데뷔 첫해 소속팀 대우를 K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신인상을 수상했고 1990년에도 소속팀에 두 번째 K리그 정상을 안겨줬다.1992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VfL 보훔으로 이적해 활약했지만 1992~1993시즌 결과 팀은 16위를 기록해 2부리그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다. 1993~1994시즌 VfL 보훔의 2부리그 우승과 1부리그로의 승격을 이끌며 '2부 분데스리가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지만 국내로 복귀했다. 1994년 친정팀 대우로 복귀해 1997년 소속팀을 K리그 3번째 우승으로 이끌며 K리그 MVP로 선정됐다.1999년 11월 25일 속초시에서 은퇴 경기를 가졌는데 K리그에서 은퇴 경기가 열린 건 이때가 처음이다. 대우는 K리그 구단으로는 처음으로 김 사무총장의 선수시절 번호 16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K리그에서 뿐 아니라 국가대표로 한국 축구의 해외 활약을 이끌었다. 1988년 AFC아시안컵에서 2골을 넣으며 팀의 준우승을 이끌며 MVP를 차지했고 1986년과 1990년, 1994년 FIFA월드컵 대표팀으로 활약했다. A매치 77경기에 출전해 14골을 득점했다.현역 선수시절 소속팀 대우의 K리그 3회 우승, 2회 준우승을 이끌었고 컵대회는 4회 우승을 일궜다. 개인상도 K리그 신인상과 체육훈장을 비롯해 18회에 걸쳐 각종 상을 받았다.오른발잡이이면서도 왼발 슈팅을 많이 사용할 정도로 자유자재로 양발을 사용했다. 측면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수비수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한 그는 그라운드를 종횡무진하며 끈질기게 득점 기회를 노리는 모습으로 인해 팬들로부터 '야생마', '아시아의 삼손' 등의 애칭을 얻었었다.행정가로서의 도전은 2000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에 선임되면서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2003년 FIFA 국제스포츠관리자 과정을 이수했다.2005년에는 대한축구협회 이사에 선임됐고 같은 해 10월에는 대한축구협회 국제부장으로 선임됐다.지난 1월부터는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으로 선임돼 축구 행정을 이끌고 있다.

2012-11-13 김종화

[인터뷰… 그]'2013년 슬로푸드 국제대회 유치' 성공한 이석우 남양주 시장

남양주시가 최근 이탈리아에서 열린 '2012세계 슬로푸드 대회'에서 아시아·오세아니아지역 대회(아시오 구스토·Asio Gusto)를 유치했다. 남양주시는 지난달 25일 밤 10시(현지시간 오후 3시)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2012 이탈리아 세계슬로푸드대회에서 카를로 페트리니 국제슬로푸드본부 회장과 2013년 슬로푸드국제대회 개최를 위한 MOU를 체결했다.슬로푸드 의미·유치 성공 소감은?맛의 다양화 통한 로컬푸드 소비 장려건강·행복한 삶 추구로 인간가치 보전믿음과 신뢰 보내준 시민·봉사자 감사'아시오 구스토' 유치 비결·파급 효과는?전문팀 신설 잇단 대회 개최 역량 쌓아남양주·대한민국 브랜드·인지도 껑충지역경제 향상·국민건강 개선 등 '막대'향후 운영계획·당부하고 픈 말은?나쁜 먹거리·식습관 사회적 질병 만연유기농업 확대 지역공동체 발전 이끌터농업경쟁력 확보 친환경도시 건설 매진이에 따라 내년부터 격년제(홀수 연도)로 이탈리아 살로네 델구스토(Salone del Gusto), 프랑스 유로 구스토(Euro Gusto)와 함께 슬로푸드를 대표하는 세계적 행사가 남양주에서 열린다.세계 유기농대회를 치른 남양주시는 이번 대회 유치를 위해 국제슬로푸드본부와 회원국간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2013년 슬로푸드 국제대회 준비상황과 필요성, 발전 가능성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 참가국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시는 대회 유치에 앞서 지난 9월 기획재정부로부터 2013 슬로푸드 국제대회 개최를 위한 사전 타당성 조사 및 전문 리서치 연구용역을 추진, 승인을 받았으며, 내년 10월 중에 남양주 유기농 테마파크, 남양주체육문화센터 등지에서 이들 행사를 개최한다는 방침이다.주요 내용으로는 전시행사, 교육체험, 국제학술, 비즈니스, 이벤트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될 예정이며 아시아·오세아니아지역 62개 회원국 중 40여개국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처음 개최된 세계슬로푸드대회는 짝수연도에 본부가 있는 이탈리아에서만 열렸으나, 회원국의 대륙별 개최 요구에 따라 지난 2009년부터 유럽국가 대회인 '유로구스토'가 2년마다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으며, 이번 남양주 유치는 종주국인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다.특히 이번에 남양주시가 유치에 성공한 아시오 구스토대회는 슬로푸드 역사상 유기농에서 슬로푸드까지 이어지는 유기농 완성품으로 평가받으며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이에 "남양주시가 한국 슬로푸드 운동의 발상지로서 식품과 농업분야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아시아·오세아니아 슬로푸드의 구심점이 되는 동시에 세계인들의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미래의 음식문화를 선도하는 중심적 도시가 될 것을 확신한다"는 이석우 시장을 만나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오랫동안 준비를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이 뛰어들어 '과연 가능할까?'하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유치에 성공했다. 먼저 소감과 의미에 대해 설명해 달라."우선 남양주시가 슬로푸드 국제대회를 유치하게 되어 무척 기쁘며 열과 성의를 다해 유치를 지원한 유치단과 시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번 성공은 국제슬로푸드 조직위가 지난 2011년 개최된 세계유기농대회에 참가해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에 감동받는 등 시와 시민이 함께 대회를 치르는 것을 보고 신뢰와 믿음을 가진 데서 비롯됐다고 본다.다시 한번 시민들께 감사드린다. 특히 슬로푸드 국제대회가 유기농의 대명사인 남양주시에서 열리게 됨에 따라 국내 식품업과 농업관련 산업의 새로운 발전과 비전을 제시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며, 경제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국내에 슬로푸드, 유기농, 슬로시티와 같은 슬로라이프 가치 혁신을 선도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슬로푸드국제대회가 아직은 많은 시민들 사이에 생소하다. 슬로푸드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 그리고 '생산은 유기농, 식탁은 슬로푸드'라는 슬로건으로 향후 대회를 치르겠다고 했는데 유기농과 슬로푸드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슬로푸드는 좋고(good), 깨끗하고(clean), 공정한(fair) 음식을 말하는 것이다. 슬로푸드는 단순히 패스트푸드의 반대가 아니라 다양한 개념을 내포하고 있으며, 패스트푸드가 산업화된 먹거리를 통한 획일화된 맛과 규격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슬로푸드는 그것을 넘어 생산, 유통, 소비, 환경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문화운동으로 좋은 먹거리, 전통음식 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켜봐 달라.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아울러 슬로푸드는 맛의 다양화를 추구하고 있다. 맛의 다양화를 위해서는 각 지역마다 전통적인 농산물과 조리법이 계승되어야 한다. 이 말의 의미는 종의 다양성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과 로컬푸드 소비를 장려해야 한다는 의미다.이와함께 유기농산물이 친환경 농법 등을 이용한 생산과정 자체에 초점을 둔 말이라면, 슬로푸드는 유기농처럼 좋은 식재료의 생산·유통·소비·문화·환경 등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맛의 다양성과 환경보전까지 생각하는 것이 슬로푸드이며, 이것이 인간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이번 2013 슬로푸드 국제대회의 슬로건인 '생산은 유기농, 식탁은 슬로푸드' 슬로건은 현대인들의 건강과 행복한 삶, 그리고 공동체로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내포하고 있으며, 소비자가 슬로푸드를 소비함으로써 생산자에게 공정한 이익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비자가 슬로푸드를 소비하지 않으면 유기 농산물의 생산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아시오 구스토 유치에 따른 경제적, 국제사회 입지적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효과는 얼마나 있다고 보는가. 아울러 유치 성공의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경제적 효과로는 전문기관 용역결과 지역경제 유발효과가 총 371억원, 국가경제 파급효과가 1천66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기에 슬로푸드 문화 확산에 따라 국민건강 개선 및 식생활 습관병 감소 유발 효과가 약 2천500억원에 이른다고 보고 됐다. 이를 믿는다.또 살로네 델 구스토(Salone del Gusto), 유로 구스토(Euro Gusto)에 이어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을 대표하는 국제대회가 남양주시에서 열리게 됨에 따라 남양주시와 대한민국의 국제적 브랜드 및 인지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본다. 아울러 국산 식품과 농산물, 관련 생산품들의 국제 경쟁력도 함께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시가 이번 대회 유치에 성공하게 된 것은 지난 2009년부터 국내 지자체 최초로 슬로푸드팀을 신설하고, 국내 대회를 매년 개최하면서 역량을 쌓아 왔기 때문으로 보고 있으며, 유기농 체험농장을 개설하면서 위기에 처한 팔당 유기농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등 지역 유기농민 및 슬로푸드 문화원과 밀접한 업무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것이 이번 대회를 유치하는데 큰 힘이 됐다.농업은 모든 생활의 기반이며 안식처이다. 나는 시장으로서 세계유기농대회를 개최하기전부터 유기농과 슬로푸드는 하나로, 남양주시가 슬로푸드 분야에서 세계 중심도시로 탈바꿈 할 것으로 굳게 믿었으며, 그결과의 첫번째가 지금 이뤄졌다고 본다."-세계슬로푸드대회가 지역 농산물 생산과 소비를 넘어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국가 지원을 위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장 만들어 주기 후원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울러 현재 1천곳에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장을 만들어 줬다. 남양주시는 몇 곳을 후원할 예정인가."아프리카 1천개의 농장은 획일적인 식량 지원과는 달리, 개발도상국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하여 마련된 프로젝트로, 아프리카 주민들의 자생력을 회복시켜 주고자 기획되었으며, 1개의 채소 농장(900유로, 약 140만원)은 마을 하나가 자급자족할 수 있는 규모이다.아울러 현재까지 636개의 채소 농장이 건립되었으며, 시는 1천개의 농장 중 100개를 목표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와함께 시는 지금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에티오피아에 51개의 농장을 지원했으며, 차후 모금 활동을 강화해 농장 건립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농장 지원도 시가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하고, 기업이 참여하는 봉사활동 형태로 지원된다." -마지막으로 대회의 유치 당위성과 함께 슬로푸드국제대회의 향후 운영 계획과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는 고도 성장으로 인해 현재 숱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공동체의 해체와 각종 범죄 만연, 건강을 위협하는 먹거리와 잘못된 식습관 등으로 사회적 질병이 만연하고 있다. 하지만 소홀하기 쉬운 미각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후유증을 상당 부분 치료할 수 있다.특히 유기농을 활용해 어린이 식탁을 꾸민다면 어린 아이의 머리도 좋아지고, 건강도 챙길수 있다. 유기농 단지는 미생물에 의한 농사로, 농지의 지력을 높여 건강한 유기농 채소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음식의 고유한 맛은 각 지역 건강한 먹거리와 전통 그리고 지역 공동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대한민국이 한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가치의 혁신이 절대 필요하다고 본다.이에 슬로푸드 국제대회는 시대적인 요구를 반영한 것이자 슬로라이프라는 가치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매우 크며 남양주 유치는 필연적이다. 이번 대회 유치의 주인공은 시민들이다. 대대로 유기농업을 고수한 지역의 여러 농민들과 슬로푸드 문화 확산을 위해 애쓰신 슬로푸드 문화원 관계자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아울러 유기농산물 소비에 적극 협력해 주신 지역내 여러 음식점들과 학교 관계자 여러분들 그리고 그 밖에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응원해준 모든 시민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생산은 유기농, 식탁은 슬로푸드'로 한국 농업 경쟁력 확보와 식품산업의 융복합 브랜드 가치를 창출해 대국민 건강 제고와 함께 59만 남양주 시민들에게 여유로운 생활과 행복한 삶을 제공하는 특성화된 친환경도시 '남양주'건설에 매진하겠다."대담:지역사회부 박석희 부국장정리:남양주/이종우기자

2012-11-04 이종우

[인터뷰… 그]김상협 기획관은?

GCF 사무국 송도 유치 성공을 떠올리면 앞으로도 오래도록 나의 뇌리에 남아있을 장면이 있다. 지난달 20일 오후 유치가 확정된 후 송도 컨벤시아를 방문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박재완 장관, 송영길 시장 등과 함께 기쁨에 겨워 'GCF!, 파이팅!'을 외친후 차에 올라 출발하자마자 벌어진 일이다. 갑자기 '와~'하는 함성과 함께 불끈 쥔 두 주먹을 몇차례 머리위로 흔들더니 '녹색트라이앵글 완성!'이라고 소리치며 넥타이를 풀어헤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청와대 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이다. 그 상황을 질문했더니 본인은 기억에 없었는데 이 대통령 일행이 탄 차에까지 그 함성이 들려 모두 크게 웃었다는 말을 후에 들었다고 답했다. 절실히 꿈꾸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짜릿한 성취감을 맛봤을때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순간적으로 보인 것이다.정부안에서조차 "대한민국이 유엔산하 기구를 유치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어림없는 일이다. 서울도 아니고 인천이 어떻게 GCF사무국을 유치하겠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상당히 넓게 깔려있었다. 이런 상황을 뚫고 불가능이라 말하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시킬 전략을 짜고, 열정을 갖고 그 전략을 실행시켜, 꿈을 현실로 만든 'GCF사무국 송도 유치'. 이를 이뤄낸 중심에 김상협 기획관이 있었다. 더욱 대단하게 생각되는 일은 GCF사무국 유치에만 그치지 않고 GGGI, GTC를 이미 준비해놔, 정책입안(GGGI)-자금(GCF)-기술(GTC)이라는 녹색트라이앵글을 구축한 점이다.여기에 기후변화와 관련된 인재를 양성하는 녹색성장대학원까지 밑그림을 그려 내년도 예산을 확보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현안인 기후변화 논의과정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게 했다. 그래서 그를 정부안에서는 녹색성장그룹 총수라고 부른다.미래 어젠다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는 물음에 그는 "미래는 더 커질 도전과 기회를 갖고 있는 이미 와 있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으로 세계와 우리를 들여다본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1963년 서울 출생(고향:경북 경산) △보성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 박사 수료 △매일경제신문 기자, 세계지식포럼 창설멤버, 비전코리아 기획팀장, 워싱턴 특파원 △SBS 보도국 미래부장, 워싱턴특파원 △청와대 미래비전 비서관, 녹색성장환경 비서관 △현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

2012-11-02 경인일보

[인터뷰… 그]'GCF 유치' 이끈 김상협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

늦가을 청와대 앞 도로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단풍으로 장관을 이뤘다. 벌써 올해가 훌쩍 지나간 느낌이다. 연말이면 신문과 방송 등 각 언론에서 10대 뉴스를 선정해 공개한다. 올해에도 10대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겠지만 그중에서도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는 올해 있었던 빅 뉴스 중 빅뉴스다.사무국 유치 확정 당시 심정은?전날 반대이사국 '설득 성공' 정보 파악최고 경쟁 상대 독일 막판 비상령 '긴장'결정때 너무나 기뻐 소리지른지도 몰라인천 송도의 매력·예상 파급효과는우리 스스로 역량 쌓아 이룬 '제2 개항'다른국가가 우리를 쫓아오게 만들어야룰메이커·소프트파워 강국 발전 디딤돌사무국 유치 아이디어·구상은 언제?2009년 기후변화당사국총회 처음접해지난해 총회때 사무국 유치 관련 문구환경부장관 연설문에 실으면서 본격화이런 GCF 사무국 유치를 기획단계에서부터 끝까지 책임졌던 이가 있다. 바로 김상협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달 31일 청와대에 있는 녹색성장기획관실을 찾았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녹색성장'이라고 쓴 이명박 대통령의 휘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휘호 아래에는 널찍하게 만든 하얀색 칠판이 있었는데 GCF와 관련한 내용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 회의와 토론을 이곳에서 벌였을까. 그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칠판에 담겨있는 듯했다.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은 "이번 GCF 사무국 유치로 인천은 제2의 개항기를 맞았다"며 "인천시민들의 뜨거운 열정과 응원이 있었기에 사무국을 유치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김 기획관은 "이제 인천이 세계 유수의 도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인천을 주목하게 만드는, 인천 자체가 글로벌 시티가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천시민들이 인천의 보석과도 같은 가치를 오히려 덜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의 입을 통해 GCF 사무국 유치 성과와 녹생성장에 담긴 의미 등을 들어봤다. -GCF 사무국 유치가 확정됐을때 회의장인 송도 컨벤시아에서 환호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어떤 심정이었나. "그날 사무국 유치가 확정된 후 탈진상태였다. 내가 좋아서 환호했다는데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소리를 지른 일조차 몰랐다. 인천시민들도 절박했겠지만 청와대도 GCF 사무국 유치에 절박했다. 이게 안되면 일신상의 문제를 떠나 국민들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우리의 가장 큰 경쟁상대였던 독일은 사무국 유치 막판에 비상령까지 걸었다더라. 사무국 유치가 확정되는 당일까지 정말 조마조마한 하루하루를 보냈다."-언제쯤 우리가 사무국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나."20일 사무국 유치 도시를 정하기 위한 투표가 진행됐는데 전날 오전까지도 확신을 갖지 못했다. 계속해서 이사국 동향을 파악해 대통령께 보고했는데 확실히 우리편인 쪽은 동그라미 2개, 우호적인 나라는 동그라미 1개, 이도저도 아닌 나라는 세모, 우리에게 등을 돌린 이사국은 X표시를 했다. 19일 밤에 우리가 X표라 생각했던 몇개 이사국이 우리쪽에 표를 던지겠다는 정보를 파악했다. 이 소식을 듣고 청와대에서 너무 좋아 혼자 몸을 흔들어댔다. 아마 19일 밤부터 어쩌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확신을 했던 것 같다."-녹색기후기금(GCF),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녹색기술센터(GTC-K)를 합쳐 '그린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성장 기조 핵심에는 바로 그린트라이앵글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를 언제부터 구상했고, 어떻게 실현해 왔나."2008년 8월 이 대통령이 국가발전 패러다임을 밝히면서 녹색성장이란 기조를 발표했다. 그때가 건국 60주년되는 해였는데 일부에서는 광복절 축사에 생뚱맞게 녹색성장이 뭐냐는 반응도 있었다. 환경이라고 하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환경보전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기후변화나 녹색성장 패러다임 같은 것은 여야 정치권은 물론 중앙과 지방을 뛰어넘는 통합적 어젠다라고 생각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린트라이앵글이란 개념을 구상해냈다. 환경자금에 해당되는 GCF, 환경지식에 포함되는 GGGI, 그리고 이것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인 GTC-K가 만들어진 것이다. 환경지식, 자금, 기술 3요소가 이번 GCF 사무국 유치로 모두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GCF 사무국 유치 아이디어는 언제 만들어졌나."GCF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였다. 그때는 GCF 사무국 유치 같은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2010년 칸쿤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 16)에서 한번 해보자(GCF 사무국 유치)는 힘을 얻은 것 같고, 지난해 더반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 17)에서 환경부 장관 연설문에 GCF 사무국 유치와 관련한 대목을 넣을 수 있었다. 사실 연설문에 GCF 사무국 유치 관련 문구를 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도 당일 결정됐다. 정말 힘든 과정이었는데 현장에 있던 손성환 기후변화대사도 한번 해보자는 말을 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청와대에서 추진하고 있는 녹색성장대학원은 아직 소개되지 않은 것 같다. 밑그림이 나왔나."녹색성장대학원은 대통령이 언급한 것이다. 올해 6월쯤 구상이 나왔다. 서울 홍릉에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KAIST(한국과학기술원) 서울캠퍼스를 비롯해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싱크탱크가 모두 밀집돼 있다. 이런 기구들이 세종시로 이전됨에 따라 남는 공간을 활용해 녹색성장대학원을 만들고 이것을 녹색성장을 일으키는 전진기구처럼 활용하자는 구상이 나왔다. 향후 중국 칭화대나 런던 정경대학과 같은 세계 유수학교와 협력해 글로벌 녹색기술 단지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는 것이다. 녹색성장대학원은 그린트라이앵글을 구현해 내고, 기후변화 전문가들을 양성해내는 전문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시킬 것이다. 현재는 홍릉에 학교가 들어설 것으로 보이지만, 인재풀을 만든다는 관점에서 대학원 캠퍼스 개념으로 인천 송도 등 여러 도시로 퍼져 나가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인천 송도가 독일 본을 누르고 GCF사무국을 유치했다. 송도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이번 GCF 사무국 유치로 인천은 제2의 개항을 맞았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1883년 개항이 외세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GCF사무국 유치로 인한 제2의 개항은 우리 스스로 역량을 쌓아 이룬 소중한 자산이다. 세계화란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제는 내재적 세계화, 즉 우리가 세계화된 나라를 쫓아갈 필요없이 우리 스스로가 세계화돼 다른 국가에서 우리를 쫓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인천은 이번 GCF 유치로 인천 자체가 글로벌화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GCF 사무국 유치로 인한 파급 효과가 우리가 현재 상상하는 이상일 것으로 판단된다."이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연간 3천800억원의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감안하면 이 숫자는 상향 조정될 수 있다. 이제는 수출 많이 한다고 강대국이 아니다. 우리가 GCF사무국을 가져오고 룰메이커가 된다는 것, 의제설정을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한다는 것 자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파급 효과다. GCF 사무국 유치로 우리나라도 이런 소프트파워를 키워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본다. 인천시민들도 눈에 보이는 파급효과만 생각하지 말고, 더 넓은 시각으로 GCF를 바라봤으면 한다."-GCF 기금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일부 언론에서는 현실성 측면 등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우리가 사무국 유치를 기획하면서부터 모든걸 한번에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굉장히 냉정하게 판단했고 대통령께도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 그런 측면에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본다."-GCF 사무국이 인천 송도에 왔으니, GGGI와 GTC-K도 인천에 와야 한다는 지역 여론이 있다."내가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인천시민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더 큰 그림을 봤으면 한다. GCF사무국 유치때와 같이 인천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뛴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다음 대통령이 누가 당선되든 녹색성장 기조는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녹색성장과 관련된 모든 것은 법제화됐고 유엔기구까지 들어왔으니 다음 정권에서는 이를 구체화하고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이 서야 할 것이다."대담/김왕표 인천본사 정치부장정리/김명호기자 사진/임순석기자

2012-11-02 김명호

[인터뷰… 그]김상협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 "GCF 유치, 인천 제2의 개항"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를 기획 단계에서부터 진두지휘한 김상협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은 "사무국 유치로 인천은 제2의 개항을 맞게 됐다"며 "1883년 첫 개항이 외세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GCF사무국 유치로 인한 제2의 개항은 우리 스스로 역량을 쌓아 이룬 소중한 자산이다"고 밝혔다.┃관련 인터뷰 9면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은 지난달 31일 청와대에서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인천시가 GCF사무국 유치로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조기 착공, 컨벤시아 2단계 사업 등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녹색성장 6개 관련 법이 여야 합의로 이미 입법화됐고, 유엔기구인 GCF도 유치된만큼 차기 정권에서도 인천시의 요구 사항을 비롯해 녹색성장과 관련한 모든 것을 차질없이 이행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이와 함께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 서울총회가 열리고 있는데 WBCSD측에서 아시아 사무소를 한국에 두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해 왔다"며 "이 논의가 진전되면 인천 송도를 포함한 여러 도시가 아시아 사무소 후보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1992년 창설된 WBCSD는 지속가능 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연례 재계회의로, 60여개국 200여개 글로벌 기업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회원사 대부분은 포춘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에 포함돼 있으며 매출 합계가 7조달러에 이른다.김 기획관은 "인천시민들이 인천의 보석과도 같은 가치를 오히려 덜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며 "GCF 사무국 유치때처럼 시민들이 열정을 보여준다면 더 큰 성과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명호기자

2012-11-02 김명호

[인터뷰… 그]'김치는 내 운명' 대한민국 김치명인 1호 김순자 (주)한성식품 대표이사

대한민국 김치명인 1호 김순자 (주)한성식품 대표이사는 올해 김치테마파크의 문을 열었고, 백화점에서 직접 김치 강의를 하고, 명인에 이어 '명장'의 자리에 오르는 등 유난히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국내에서는 폭염과 태풍으로 김장철 가격폭등이 예상되고, 가장 큰 해외 시장인 일본에서는 외교문제로 진행중이던 프로모션이 취소되고 있다. 힘든 상황이지만 지난주 한성식품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김치 이야기를 할 때 만큼은 시름을 잊는 듯했다.김치에 관심 갖게된 때는 / 어떤 김치를 만들고 있나어릴적 허약했던 몸 김치 먹고 낫기 시작그때부터 내겐 사람 살리는 생명의 음식많이 먹어도 몸에 무리가지 않도록 담가안짜고 마지막 한 점까지 아삭한 맛 내야김 대표보다 먼저 취재진을 맞이한 것은 정갈하게 담긴 한성식품의 특허김치였다. 김치를 먹어야 살 수 있는 특이체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김 대표는 많이 먹어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짜지 않고 마지막 한 점까지 아삭한 맛이 유지되는 김치를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미역말이김치는 김치를 먹을 수 없는 임산부를 위해 고춧가루를 빼고 미역을 넣어 만들었고, 깻잎양배추말이김치는 위에 좋은 양배추를 이용해 많이 먹어도 부담이 없다. 김 대표는 "어릴 적 워낙 몸이 안좋았는데, 김치를 먹고나서 낫기 시작했다"며 "그때부터 김치는 나에게 사람 살리는 음식이고 생명의 음식이었다"며 평생을 이어온 김치와의 인연을 풀어놓았다.6~7살배기 꼬마시절부터 김 대표는 김치에 관심이 많았다. 먹을 수 있는게 밥과 김치, 물밖에 없던 시절이라 김치가 맛이 없을까봐 노심초사하며 엄마와 할머니에게 시어머니 노릇을 했다. "김장철은 나에게 축제기간이었다"는 김 대표는 "새벽에 일어나 배추절이는 엄마를 따라다니며 배추는 왜 절이느냐, 고춧가루를 덜 넣으라며 주문을 하고 김치를 같이 담그겠다고 성가시게도 했다"며 "맛있는 김치 담그는 법을 어릴 적부터 배우고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다"고 말했다. 어머니께 매일 '더 맛있는' 김치를 요구하자 어머니는 김치 잘한다는 집을 찾아가 비법을 전수받기도 하셨단다. 이런 성장과정을 거쳐 김치맛보는데 일가견이 생긴 김 대표는 "제품을 시식하다보면 숙성도 등 여러가지 조건이 딱 맞아떨어져 가장 맛있을 때가 있는데 그런 김치를 먹게 될 때 가장 행복하다"며 "나니까 이런 김치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김치사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위기도 있었다는데… /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사업 17년째 큰 어려움 느껴 공부에 매진중국 물량공세 맞서 국가가 직접 나서야日 천왕·영국여왕에 김치맛 보이고 싶어김치국제전문대학원 세워 세계화 힘쓸터워낙 어렸을 때부터 김치만 먹고 산 김 대표는 한 번도 다른 길은 생각해 본 적 없이 당연한 일인듯 32살에 김치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번창했고 소비자들은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맛있는 김치"로 한성식품 김치를 기억했다. 그러나 사업을 이끈 지 17년쯤 지난 어느날, 별안간 어깨가 무거워지더니 김치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단다. 김 대표는 "내 분신으로 알고 살았던 김치가 갑자기 어려워져 공부를 시작했는데, 더 어려워지더라"며 "김치는 흔하지만 쉬운 음식은 아니다"며 김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염려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기는 비싸도 사먹는데 김치는 비싸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당연히 있는거라고 여겨 홀대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고급식당일수록 싸구려 김치를 제공하는 세태도 꼬집었다. "메인요리에 집중하는 고급식당일수록 김치는 싼걸 쓰고 버린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며 "우리 김치가 좋은 건 알지만 소중히 여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이와함께 김 대표는 중국의 무지막지한 물량공세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중국은 도의와 상식 없는 막무가내식 물량공세를 앞세워 저렴한 가격뿐 아니라 저렴한 위생시스템으로 한국 김치시장은 물론 세계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며 "우리가 세계시장을 확장하면 중국이 자꾸 따라붙어 이대로라면 10~20년 후면 잠식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내며 우리 스스로 내나라 김치를 귀하게 여기고 국가가 나서서 우리 김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김 대표는 직접 담근 김치를 맛보이고 싶은 사람이 2명있다. 일본 천왕과 영국여왕이다. 그는 "일본 천왕은 우리나라를 식민지 삼았었다고 무시하는 일본인들을 대표해 천왕에게 우리의 매콤한 맛을 보여줘 정신을 차려주고 싶어서", 그리고 영국여왕은 "이렇게 세계적인 여성이 우리 김치를 먹었다는 게 알려지면 더 빨리 김치를 세계에 알릴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김 대표는 그동안 김치의 세계화에 앞장서왔다. 세계 어디서나 우리 김치를 맛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꿈이라는 김 대표는 앞으로 '김치국제전문대학원'을 세울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는 "외국 유명 조리사들이 한국으로 김치를 배우러 오도록 하겠다"며 "러시아, 두바이, 이란 등 신시장을 겨냥한 김치개발에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김순자 김치명인은특허받은 다수 김치 20개국에 수출숙련기술 인정받은 '대한민국 명장'(주)한성식품 대표이사이며 (사)세계김치협회 회장이다. 1986년 종업원 1명을 두고 가내수공업으로 시작한 한성식품을 종업원 300명에 매출액 500억원의 강소기업으로 키워냈다. 미니롤보쌈김치, 100년김치, 미역김치, 황제김치 등 다수의 특허김치를 개발했으며 20개국에 김치를 수출하고 있다. 2007년 5월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전통명인 29호(김치명인 1호)로 지정됐고, 지난달에는 산업현장에서 15년이상 종사한 대한민국 최고의 숙련기술인으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다.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사진=김종택 차장정리=민정주 기자

2012-09-12 민정주

[인터뷰… 그]광복절 기념 '전 미주 한인청소년 체육대제전' 마련한 한창연 뉴욕한인회장

"100여년의 미국 이민사 중 최초의 일로 미국 전역에 있는 한인청소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념비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오는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미국 뉴욕에서 '제67주년 광복절 기념 전 미주 한인청소년 체육대제전'이 열린다. '250만 미주한인동포들의 미래, 한인 청소년들의 축제한마당-다함께! 뉴욕에서, 한마음 한뜻으로'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체육대제전은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각 한인회에서 선발된 청소년 선수 1천500여명이 참가한다.뉴욕대한체육회가 주최하고 뉴욕한인회, 뉴욕총영사관, 뉴욕한국문화원, 민주평통 뉴욕협의회 등이 후원하고, (재)한민족한마음이 특별협찬을 한다.미국 이민사 중 최초라는 '역사'가 될 이번 체육대제전을 적극 홍보하고, 모국인 대한민국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한창연 뉴욕한인회장(60·공인회계사)이 지난주부터 2주간의 일정으로 국내에 머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관계자들과 새누리당 원유철 재외국민위원장, 남경필 전 최고위원을 비롯 정치권 관계자들도 두루두루 만나는 바쁜 일정속에서 국내 언론사 중 최초로 경인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한 회장은 "대한민국은 88서울올림픽과 2002한일월드컵이라는 스포츠대제전을 통해 세계시민으로, 선진 일류국가로 도약하는 거대한 전환점을 이뤘다"며 "전 미주 한인청소년 체육대제전 역시 한인 1세대와 2세대가 스포츠의 감동으로 하나가 되고 전 미주지역 한인회가 하나되는 한민족의 대역사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이 같은 역사적인 전 미주 한인청소년 체육대제전을 통해 둘로 쪼개져 분란이 끊이지 않는 미주체육회의 단합도 이뤄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1천500여명의 청소년 선수들의 출전 경비 등 모든 경비는 한인동포사회 등으로부터 기부를 받는 등 전 미주지역의 250만 동포사회를 '하나'로 이끌어내겠다는 복안이다.한 회장은 전 미주 한인청소년 체육대제전의 성공적 개최 못지않게 또 다른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국내에 체류하고 있다.유엔본부 앞을 흐르는 허드슨강 건너편에 대한민국을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팔각정 건립'이 바로 그것이다.한 회장은 "반기문 사무총장으로 상징되는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이목을 집중시키는 건물이 바로 유엔본부 건물"이라며 "그 유엔본부 앞을 흐르는 허드슨강 건너에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팔각정을 세우면 유엔본부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를 비롯 전 세계인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고, 그 관심은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특히 팔각정 건립에 들어가는 주 재료인 나무를 비롯 모든 것을 '토종 한국산'으로 부분 제작한 뒤 미국으로 공수해 가 조립·완성시킬 예정"이라며 "일부에선 건립비용에 대한 걱정 등으로 미국산이나 철제 구조물로 만들자는 말도 있으나 '짝퉁 팔각정'으로는 진정한 대한민국을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토지주로부터 사실상의 무상 사용승낙을 받았으며, 무형문화재인 대목장(大木匠)으로부터 사전 감수를 비롯 목재 선택 등 일부 제작 중에 있다"며 "매년 10월 첫째주 토요일 뉴욕 한복판 한인타운거리에서 '코리안 퍼레이드'가 열린다. 오는 10월 6일 준공식을 가질 계획이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미국 연방정부가 지정한 '한국의 날'인 내년 1월 13일 준공식을 할 예정이며, 가급적 10월에 준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다만 건립 비용에 대한 걱정도 드러냈다. "광주광역시의 후원으로 댈러스주에 팔각정이 건립돼 있는데 총비용이 100만달러라는 말을 들었다"며 "정부의 관심과 광역 또는 기초자치단체에서 후원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한 회장은 '정부의 관심'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정부의 동포사회를 끌어안는 방식에 대해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한식의 세계화를 비롯 재외국민을 향한 정부의 모든 노력 그 자체는 매우 긍정적"이라면서도 "그러나 본질이 잘못됐다"고 말했다.한 회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각종 행사를 할 때 동포사회가 얼마나 참여하는지, 또 그 참여가 진정성이 있는지가 문제"라며 "한국에서 건너온 행사 주최자 및 참석자들만의 행사로 전락하고 동포사회의 참석이 매우 저조해 전혀 감흥이 없는 '그들만의 행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재외국민투표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목청을 높였다. 지난 4·11 총선 때 처음 도입된 재외국민 선거의 투표율은 한자릿수에 머물러 당초 기대치에 한참 미흡했다. 교포·유학생 등 재외국민 투표 대상자는 223만여명으로 추산돼 올 대선의 주요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여야 정치권은 투표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여야가 인터넷을 통한 선거인 등록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 회장은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는 "뉴욕의 경우 영사관에 마련된 투표소에 뉴욕주를 비롯 뉴저지주에 거주하는 유권자들이 최장 1시간40분씩이나 차를 타고 간 뒤 엄청난 주차요금으로 악명높은 뉴욕에 40여분 주차한 뒤 선거인 등록을 하고, 투표 당일에 또다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그에 따른 대안으로 우편투표제 실시에 목소리를 높였다."여야 정치권이 선거 부정의 소지가 있다고 반대만을 외치고 있다"며 "세계 최고로 잘돼 있다는 미국 민주주의가 채택한 것이 우편투표제이고, 지금도 큰 사건없이 진행되고 있다. 한인회의 시민권자들 역시 수십년 우편투표제를 해 왔다. 그만큼 정치의식이 선진화돼 있는데 국내 정치권이 우물안 개구리식의 정치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한 회장은 이어 '해외동포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관련 법률 개정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현재 3년 이상 보유한 고가 주택이 아닌 1가구 1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이 주택을 양도할 경우 양도소득세가 비과세되고 있으나, 해외로 이주하기 전 1세대가 1주택만을 장기간 보유하며 '1가구 1주택 비과세' 요건을 충족하고 있으나 '양도 당시 비거주자'라는 이유로 비과세 혜택 또는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이에 한 회장을 비롯 LA 한인회장, 버지니아 한인회장, 뉴저지 한인회장, 시카고 한인회장, 뉴잉글랜드 한인회장, 타코마 한인회장 등이 지난해 11월 4일 연명으로 관련 법률 개정을 건의해 국회에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18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돼 버렸다.한 회장은 "재외국민투표와 결부시켜 정치적 해결을 원하지 않는다"며 "어려웠던 시절 해외에 진출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국위를 선양해 온 이민 1세대들에 대한 대한민국의 기본적인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재규기자사진/김종택 기자

2012-07-05 이재규

[인터뷰… 그]전국 최초 보증액 10조 돌파 이끈 경기신용보증재단 박해진 이사장

지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있는 경기신용보증재단이 지난 11일부로 창립 16년만에 전국 최초로 보증액 10조원을 돌파했다.이번 경사는 지난달 경기신보가 제24회 전국중소기업인대회에서 기업지원우수단체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데 이은 쾌거로, 그간 공격적인 서민 지원을 인정받은 성과였다. 영세 소상공인 지원과 사채일소 운동 등 지역서민경제를 위해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경기신보 박해진 이사장을 만났다.박 이사장은 이번 겹경사에 대해 "재단 임직원 모두가 도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해 흘린 땀과 노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는 기쁘지만 한편으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소회를 밝혔다.경기신보는 지난 1996년 첫 보증서를 발급한 이래 지금까지 31만6천870개 업체에 보증 규모 10조6천억원을 달성했으며, 박 이사장이 취임한 2005년부터는 경기침체 상황에도 매년 수천억원씩 보증 규모를 늘리고 있다.박 이사장은 "소상공인 지원은 리스크가 높아 제2금융기관에서조차도 대출을 꺼리지만 실제 이들이 망하는 이유는 조직 내부의 비리를 비롯한 도덕적해이 탓"이라며 "이사장 취임후 적극적인 소상공인 지원을 통해 보증업체를 3.5배나 늘렸지만 오히려 손실률은 3분의1 수준으로 줄였다"고 말했다.이처럼 경기신보는 영세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현장보증 지원 서비스'를 마련하고, 사업 특성상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전통시장 상인과 노점상 등을 방문해 현장에서 상담부터 신용조사까지 해결하는 One-Stop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 결과 경기신보가 지원하는 업체는 지난 2004년 8천544곳에서 현재 31만6천여 업체로 증가했다. 반면, 손실률은 2004년 9.26%이던 것이 2005년부터는 지속적으로 줄어 지난 7년간 연평균 손실률은 2.7%까지 떨어졌다. 담보없는 서민에게 공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도 손실률은 오히려 높여놓은 것.이와 함께 신보는 지난 2010년부터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지 못해 고금리 사채를 이용하는 영세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사채애로상담창구를 도내 전 영업점에 설치, '사채일소운동'을 벌이고 있다.박 이사장은 "한국은 고금리 사채로 돈을 벌어들이기 쉽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며 "이 말은 곧 우리의 금융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지난 2010년 2월 양주시를 시작으로 도내 31개 시·군과 전통시장 상인회 3자간 MOU를 체결해 사채 일소를 위해 노력해 온 신보는 고금리 사채로 인해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영세 소상공인 등에게 사채 전환 자금도 지원하고 있다.지난 3월 사채일소운동을 전개한지 2년여만에 7천50억원을 사채전환 자금으로 지원한 신보는 3만9천560개 업체를 사채로 부터 구제했다. 이는 연간 영세 소상공인이 부담해야 하는 약 6천345억원 규모의 금리 비용을 덜어준 것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해 지역경제에도 큰 활력을 가져온 성과를 냈다.박 이사장은 "상당수의 소상공인들은 금리가 6~7%인 금융기관을 두고 원금의 60~100%에 달하는 사채를 쓰고 있었다"며 "사채로 고통받는 영세 소상공인들을 위해 정부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출연금을 조성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소상공인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사채 전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면 불필요한 금융 비용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제언했다.이밖에도 경기신보는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도내 각 지점에 일자리센터를 개설하고, 일자리 전담 인력을 배치했으며, 일자리 상담창구 운영을 통해 자금 및 보증지원이라는 고유 업무 외에도 일자리 창출 상담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 2010년 1월에는 전국 최초로 '경기도 일자리창출 특별협약자금'을 만들어 일자리 창출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도내 일자리 창출과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앞장서고 있다.그동안 양적인 성장도 큰 폭으로 이뤄졌다. 2004년 2천여억원에 불과하던 재단 출연금은 5천300억원 규모로 크게 확충됐으며, 고객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2005년 6개에 불과했던 지점은 19개 지점, 9개 출장소로 확장됐다.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경기신보는 경기도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도내 공공기관 중 유일하게 6년 연속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중소기업인대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축사에서 경기신보를 따로 언급하며, "경기신보가 표창을 받는데 기업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박 이사장은 "도내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이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이고, 이들이 잘돼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경영철학 아래 올해 미래 기술가치와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창업기업, 일자리창출 기업 등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또 한미FTA 유망산업의 특화 발전을 위해 자금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취약산업에 대해서도 특별지원을 마련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박 이사장은 "보험판매원과 화장품 판매원 등 사업자등록도 없고, 담보도 없는 서민들을 위해 경기신보가 지원을 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도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금 지원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해민·김성주기자

2012-07-02 최해민·김성주

[인터뷰… 그]대한민국 넘어 세계인의 시선 사로잡고 있는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

그를 처음 본 순간 말 좀 해본 분이구나 싶었다. 강의든 인터뷰든 광고매체와의 협상이든, 그는 말을 참 많이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말은 몇 년째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에게 먹혀들고 있다. 파도 같은 크고 강한 울림은 아니지만 심장박동처럼 끊임없고 필사적인 진동을 남기며 대한민국이 여기 이렇게 살아있다고 말하는 그는 대한민국에 전무후무한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다.서경덕 교수는 이미 유명하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우익단체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조용한 외교'를 표방하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 문제에 신중히 대응하는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면에, 전광판에 '독도는 우리 것'이라고 천진하고도 진지하게 말하던 그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았던 탔이다. 마치 고담시 시민들이 베트맨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것처럼…. 각종 매체를 통해 그의 정체는 수도없이 노출됐음에도 그의 강의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몰려든다. '한국홍보전문가'가 되는 게 꿈인 중고등학생들도 생겨났다. 그의 연구실에는 하루에도 5~6명씩 무작정 그를 찾아오는 학생들이 진을 치고 있다. 타임스퀘어를 지나던 한국 관광객들은 전광판을 보며 서 교수를 떠올리고 트위터로 말을 걸기도 한다. 그는 한국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홍보하는 데도 소질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서 교수는 건축가가 되기를 꿈꾸며 조경학과에 진학했지만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홍보분야에 두각을 나타냈다."대학시절 문화창조 연합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하던 중 서울 600년 행사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서울시에서는 각 세대와 계층별로 상징이 될 만한 물건을 모아 타임캡슐에 담았는데 당시 대학생을 대표하는 물건 중에 최루탄이 있더군요.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어 몇몇 학생들과 의기투합해 94학번 대학생들의 상상력을 담아보자며 전국 대학을 돌면서 자료를 모았습니다. 이때 모은 물건과 자료들은 남산 서울천년 타임캡슐 광장에 보관돼 있죠. 당시 이 일이 언론에도 크게 보도됐는데, 이걸 본 기업들이 연락을 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프리랜서 형식으로 기업 홍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여행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400년 뒤 후손들에게 21세기 대학생에 대한 홍보를 마친 서 교수는 해외로 진출했다. 그런데 서 교수는 외국의 유명미술관 입구에서 심기가 불편해졌다. 한국어 리플릿이 없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1990년대, 해외여행 하는 국내인이 지금처럼 많지 않은 데다 사소한 것으로 치부돼 버리기 쉬운 리플릿에 한국어가 없다고 자존심까지 상할 게 뭐 있나 싶기도 하지만, 서 교수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문화는 바뀐다는 사실을 스위스 친구의 사례를 들며 열심히 설명했다. "스위스인 친구가 어릴 적 일본 초밥가게에 종종 가곤 했는데, 어린 나이에 날생선이 올라간 초밥을 먹는 것은 별로였다더군요. 그래도 그 초밥가게에 간 이유는 음식을 기다리면서 보던 만화책 때문이었습니다. 초밥가게 주인이 스위스에 가게를 내면서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일본 만화책을 가져다 놓으면서 문화를 바꾸거나 일본문화를 세계에 전하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소해 보이는 만화책 때문에 그 친구는 일본에 한 번 가본 적이 없으면서도 일본어까지 할 줄 알게 됐습니다. 문화는 가장 근거리에서, 생활 속에서 알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효과적이죠." 이런 사소한(?) 에피소드에 감동을 받아 일신을 한국 홍보에 바치고 있다니 천직인 모양이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쉽게만 풀렸을 리는 없는 법.혈혈단신 개인 신분으로 뉴욕타임스에 독도 광고를 내겠다고 나섰을 때 서 교수는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다. "광고매체에 신분을 확인시키는 데만도 여러 날이 걸렸습니다. 정부 관계자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고, 제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알려줬는데 당시 다음의 한메일을 썼어요. 뉴욕타임스에서 메일에 접속했는데 다음의 첫 화면부터 깨져서 나오니 그 쪽에서 저를 믿지 않았죠. 다음 측에 연락해서 사실을 알렸고, 지금은 전 세계 어딜 가나 다음의 첫 화면은 깨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명실상부 제대로 된 광고주 대접을 받고 있죠. 신문사를 설득하고 광고를 내면 다음에는 여기저기서 협박전화가 옵니다. 일본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어르신들도 전화를 많이 주시고 엄하게 꾸짖으시더라고요." 그래도 그는 서운하게 생각하는 법이 없다.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기 때문이다.5월 초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막걸리 광고를 올리고 온 서 교수는 7월에는 전광판 중에서도 티켓 박스 바로 앞의 가장 큰 전광판에 30초짜리 '아리랑' 광고를 올린다. 1시간에 2번꼴로 하루 50차례, 한 달 동안 1천500회 타임스퀘어 광장에 아리랑을 알리는 광고가 노출된다.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기에 큰 비용을 들여 아리랑을 광고하게 된 데는 다른 광고보다 조금 더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지난해 중국이 아리랑을 중국 무형문화재로 지정했고, 세계 유네스코 무형문화재에 '아리랑'을 중국의 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지금 경기도가 나서서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관련 법을 개정해 아리랑을 무형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고, 세계 유네스코에도 아리랑을 우리 문화재로 등재 신청을 해 놓은 상태고요. 올해 11월 유네스코 심사가 열리기 전에 아리랑이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임을 알리는 것이 시급합니다. 아리랑 지키기의 일환으로 6월 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아리랑 아라리요' 공연에서는 4만5천명이 모여 다함께 아리랑을 부르는데, 이를 모티브로 올해 2차 아리랑 광고를 올릴 계획입니다." 소리가 안 나가는 전광판에 소리를 광고하려니 꽤나 고민되는 모양이다. 그래도 다음 광고가 또 기대되는 것은 지금까지 그가 쌓아온 커리어의 힘일 것이다. 아직 30대인 서 교수가 지금까지 다닌 나라만 50여개국. 여러 차례 다닌 나라도 많으니 비행기 탄 숫자는 웬만한 항공사 승무원 못지않다. 결혼할 때도 결혼 공약(?)이 '1년에 반만 보자'였고 지금까지 충실히 지키고 있다고 한다. 홍보에는 열심히 매달려도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듯하다. "4년 전부터 강의하고 있는 성신여자대학교가 유일한 직장입니다. 더 큰일을 하려면 아무래도 조직화가 필요하니 장래에는 가칭 한국홍보재단을 만들 계획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죠. 현장에 가야 아이디어가 나오기 때문에 지금처럼 소속되지 않은 상태가 좋습니다."홍보전문가로서 스스로를 홍보할 만한 장점으로 그는 '실행'을 꼽았다. "아이디어가 좋다는 분들이 많지만 아이디어는 누구나 다 가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디어는 저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많이 봤고 저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도 많죠. 다만 이런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의 강점은 바로 실행하는 힘입니다."아직도 홍보할 것이 많다는 서 교수는 다음 번 한국 홍보 아이템으로 '한복'을 선택했다. 어떤 한복을 어느 매체를 통해 알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를 고민중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하고 있는 동안 서 교수의 심장이 조금 더 빠르게 뛰는 듯하다.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 / 사진=김종택 차장·정리=민정주 기자

2012-05-31 경인일보

[인터뷰… 그]'인천출신' 황우여 새누리당 신임 대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국민들로부터) 정권의 재신임을 받는 것이 제1의 과제"라고 밝혔다. 황 대표는 지난 21일 오전 여의도 당사 대표실에서 가진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때마침 의결한 주요 당직 개편 과정을 설명하면서 "어제 당의 대선주자들과 만나 많은 얘기를 들었고, 최소한의 공통 분모는 정권 재창출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인터뷰 9면 그는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에 대해서도 "대선주자들과 만나 오픈프라이머리의 당위론에 대해 80% 듣고, 20% 정도 얘기했다"며 "그 분들이 왜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하는지 관심있게 들었고, 해답은 그 안에 있다"며 경선룰의 개정과 관련해 여운을 남겼다.황 대표는 "무엇보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국민행복"이라며 "제대로 국민앞에 사랑받는 당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끊임없는 개혁과 쇄신을 통해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정책을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최근 인천의 선거 결과는 전국 정치판도의 좋은 모델로 등장했다. 뉴욕과 뉴햄프셔주가 미국의 정치판도를 읽는 바로미터가 되는 것처럼, 인천을 보면 한국의 정치기상을 예측할 수 있다"며 인천 민심이 전국 선거의 향배를 가르는 척도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인천시의 재정문제에 대해 정책 결정자들의 변화에 대한 인식 부족을 지적하면서 "걱정스러운건 자꾸 안된다 하면 더 안된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감을 보이면서 더 의연하게 대처해야 하고, 그래도 안풀리면 특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가 개원하면 바로 관심 갖겠다"고 약속했다./정의종기자

2012-05-23 정의종

[인터뷰… 그]인천출신 5선 정치인 황우여 새누리당 신임대표

황우여 의원이 새누리당 신임 대표로 지난 15일 당선됐다. 5선의 그는 연수구가 지역구이며 송림초등학교, 인천중학교,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한 인천인이다. 조봉암 진보당 위원장, 장면 제2공화국 국무총리(민주당 대표) 이후 인천출신 정치인이 중앙 정치무대에서 당 대표직을 맡은 것은 50년 만의 일이다. 중앙 정치권에서 상당기간 소외돼 왔던 인천의 정치지형을 넓혔다는 데서 인천정치권은 여야를 떠나 그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분위기다. 일주일여가 지난 21일 새누리당 당 대표실에서 황 대표를 만났다. 신임 사무총장으로 4선의 서병수 의원을 선정한 최고위원회의 직후라 약간은 어수선하기도 했지만, 그는 이내 당 대표로서의 소신을 풀어나갔다. 부드러웠지만, 의지가 묻어났다.- 새누리당 대표로서 시대적 소명은 뭔가."우선 7개월밖에 남지 않은 대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정권의 재신임을 받는 것이 당의 제1과제다. 대선관리를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대선관리를 잘하려면 끊임없는 개혁과 쇄신, 정책개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국민행복이다. 그동안은 대한민국 건설에 매진했는데, 대한민국을 이만큼 건설했으면 국민의 행복도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자살률, 이혼율이 높고 출생률은 낮은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국민의 아픔과 고통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새누리당부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당무의 제1순위다. 대선승리를 위해 정치공학적 측면만 강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민이 행복에 접근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실행능력이 얼마나 있느냐가 대선의 선택 기준이 될 것이다. 그것을 갖추고 실행하는 것이 대선관리의 핵심이라고 본다."- 죽산 조봉암, 운석 장면 총리 이후 인천출신 정치인으로서 50년 만의 여당대표다. 인천지역의 정치 후배들이 황 대표를 디딤돌로 삼아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우선, (그분들과는)격이 다르다. 부끄럽다. 선배는 후배가 기반으로 해서 더 크게 발전하라고 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고 방향이다. 인천이 정치권에서 소외됐던 게 사실이다. 갑자기 팽창된 도시인 데다 정체성 문제도 있었고, 정치적 콘센서스 구성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모든 선거에서 전국 정치판도의 좋은 모델로 등장해 왔다. 이번 총선에서도 우연일지 몰라도 우리는 6대 6이었다. 여야가 50대 50으로 나눠지듯 하지 않았나. 인천을 보면 정치기상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시민들의 정치 성숙도가 높은 곳이다. 후배들은 시민들의 정치적 수준과 의식을 잘 받아들이면, 부지불식간에 중앙정치무대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후배들이 나보다 더 큰일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본다."- 지난해 원내대표에 도전했을 때, 무모한 도전이라는 시각도 있었다."저로서는 절박했다. 국회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민들의 수준이 높아졌고, 국가의 위상도 당당해졌다. 그런데 우리 정치의 현실과 국회의 모습이 이래선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이 있었다. 어렵지만 회피할 수 없었다. 이대로 가면 당도 무너지고, 정권의 재신임도 무망하다고 봤다. 한번은 젊은 의원들이 배지를 떼 주면서 몸싸움 없는 국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 달라 했다. 내가 그런 자격이 있겠나 자문자답하면서 사양했는데, 이 분들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가 생각하면서 그 뜻에 동조했다. 그게 계기가 됐다. 적은 숫자였지만, 역사는 소수가 만들어간다고 서로 용기를 줬다. 그때 그것이 당의 나갈 진로와 맞은 것이다. 그래서 메시지로 승부가 났다. 세 싸움이 아닌 메시지 싸움이었다. 국민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정책쇄신을 진행했다. 세대 간의 아픔이 보였다. 그리고 여당답지 않은 이슈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대표께서 일하는 과정을 보면 늘 웃는 얼굴로 부드러운 면모를 보이는데 뚝심이 있다.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뚝심은 나한테 나오는 게 아니고, 그 일이 안 되면 안 되는 상황이 그렇게 만든다. 검도 등 무도의 기본이 자기 힘으로 하는 게 아닌 남의 힘으로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의 힘을 받아서 그 힘으로 일할 때 목표가 이뤄지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하는 일을 내가 같이 했을 때 결과가 잉태되는 것이다. 다수가 반대할 때는 어려워진다. 사심을 버리고 남의 얘기를 듣고, 또 생각하고 하면 무엇이 옳은가 보인다. 명확히 보인다. 그렇게 할 때 혹시 반대했던 사람도 동조한다."- 인천시 재정문제에 대해 언급한다면."해야 할 사업이 국가적으로 필요하다 하면 지방자치단체의 고유사업이라도 결국 국가사업이다. 시민들은 의연하게 대처하고, 시장이나 시 공무원들은 용기와 지혜를 갖고 대처해 나가면 된다고 본다. 자꾸 '안 된다 안 된다' 하면 더 안 된다. 특히 고위층은 의연하게 대처하고, 자신감을 보이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적정성 문제에 대해 고심해야 할 것이다. 능력 안에서 일해야 한다. (당 내의)급한 일이 정리되고 국회가 개원하면 관심을 보이겠다. 또 시장이 만나자면 만나 얘기를 들을 것이다." - 당 대표로 선출됐을 때, 사별한 부인 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다. "생각이 많이 났다. 훌륭한 사람이었다. 저로서는 복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같이 살아오면서 나눈 얘기들이 지금도 도움이 많이 된다.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정치를 하라는 거냐'라며 불평을 한 적이 있었나 보다. 그런데 집사람이 성경구절을 인용해 '당신은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이랑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다 나 잘되라고 하는 소리였다. 내가 크게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집사람이 해 준 이야기가 많은데 지금도 도움 많이 된다."- 이회창 전 대표가 처음 정치입문을 권유했을 때 평소 성격으로 봐 선뜻 응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판사출신인 황 대표는 1996년 이회창 신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 선거대책위원장의 비서실장을 맡으며 정치에 입문했다. 15대에 이 총재의 천거로 전국구 의원이 됐으며, 16대 총선부터 인천 연수구에서 내리 4선을 했다)."이 전 대표는 법관 선후배 관계로서 저를 아꼈고, 저도 존경했던 분이다. 정치를 하시겠다고 나에게 도와 달라 하니, 저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잠시 기도를 하고, 이게 나의 새로운 길인가 생각하고 결정한 다음에는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았다. 그러나 될 수 있으면 빨리 다시 법조계나 법학교수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빨리 이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고 난 간다'는 이런 생각을 했던 건데, 자꾸 지연되면서 정치를 계속 하게 됐다. 우연치 않게 그렇게 됐다."- 대표께서는 법조인 출신이다. 그런데 왜 교육위를 고집하시는지."지역구를 맡고 나서 인천에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육문제가 가장 아쉬웠다. 대학도시로 변모해야 하고, 초중고 교육이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교육위에 있으면서 교육의 변화에 인천이 발맞출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법사위를 꺼린 것에도 이유는 있다. 군법무관, 법원, 헌법재판소, 감사원 등을 다 거쳤기 때문이다. 너무 이들과 친밀해서 국정감사할 때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당시엔 다들 선배들이었다."- 대표께 인천은 무엇이고,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인천은 저의 어머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아버지다. 저하고는 뗄 수 없는, 나에게 생명을 주고 나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나의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어느 분들이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인천은 생명을 주셨고, 대한민국은 키웠다, 그런 의미인가. "거꾸로도 된다.(웃음) 인간으로서의 생체적인 생명은 아니더라도, 내 정신이나 이런 게 다 인천과 한국을 벗어날 수 없다."- 대표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고, 없는 것은 또 무엇인가. "장점이라고 한다면, 끈기있게 남들의 얘기를 잘 듣는 것이다. 반면 없다기보다 부족하다는 것은 동지라고 할까. 정치는 모이는 것인데, 세라고 하는데 날 잘 안 끼워 준다. 친박에서 중요한 모임에 가본 적이 없고.(웃음) 그런 등등의 얘기들을 많이 듣는다."- 오픈프라이머리와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절충점이 있다면. "오픈프라이머리는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 왜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하는지, 관심있게 듣고 있다. 해답은 그 안에 있다고 본다. 또 왜 반대하는지에 대해서도 귀기울여 듣고 있다. (해답은)그렇게 멀지 않을 것이다. 좋은 결과 있을 것이다."- 대표에게 정치적 목표가 있다면."정치를 시작하면서 난 늘 두 가지를 얘기해 왔다. 우선 어떤 자리나 신분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다음으론 사명이나 일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전자는 후자에 종속되는 것이라고 본다. 국회의원은 뜻을 세우면 법을 만들 수 있는 귀중한 자리다. 국민들이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것을 그냥 지나가지 말고, 기쁘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줄 순 없을까 고민하고 뜻을 세워 마무리하면,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가 원자탄보다 크다. 그런 작은 일이라도 기쁨을 맛본다. 이게 정치의 매력이다. 그런 소중한 자리가 국회의원이다. 어디까지 하겠냐고 하는데, 성당에서 신부나 수녀들은 인사발령이 날 때 아무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우정이나 존경심을 갖게 된 수녀님이 어느날 갑자기 얘기도 없이 떠난다. 그런 사명자들의 태도는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한다. 하는 데까지 하면서 떠날 때 떠나는 것이다." 대담=김왕표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의종 차장사진=임순석 차장정리=이현준 기자

2012-05-23 이현준

[인터뷰… 그]발렌타인 챔피언십 한국인 첫 우승 노리는 양용은 프로골퍼

"발렌타인 한번 먹고 싶습니다. 애처가요? 해준 게 없습니다."지난 2009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대회 PGA챔피언십에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제압하고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대회를 석권한 양용은(40·KB금융그룹). 그는 한국남자골프의 간판 최경주 등 숱한 선수들이 이루지 못했던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며 '아시아계는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기 힘들다'는 인식을 깨뜨리고 한국골프의 위상을 드높인 선수였다.이런 양용은이 지난 21~22일 여주 신륵사에서 골프 꿈나무들의 템플스테이 멘토로 나서 아이들과 함께했다. 소박한 모습으로 나타난 양용은은 골프 꿈나무들에게 자신의 골프 철학과 노하우를 들려주며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다. 26일부터 나흘간 이천에서 열리는 '발렌타인 챔피언십'에서 한국인 첫 우승에 도전하는 양용은을 만나봤다.-얼마만의 귀국인지."지난해 10월에 온 뒤 6개월만에 귀국한 것 같다. 고국 땅이 좋긴 좋다."-발렌타인 챔피언십이 얼마남지 않았는데."26일부터 나흘 간 이천 블랙스톤골프클럽에서 열린다. 이 대회는 한국에서 열리는 유일한 유럽골프투어 대회지만 지금까지 한국 선수가 우승하지 못했다. 한국인 선수 최초로 발렌타인을 마시고 싶다."-발렌타인 챔피언십 출전 소감은."그동안 항상 출전했는데, 올해는 꼭 사고 한번 칠 생각이다. 쟁쟁한 선수들이 출전한 만큼 좋은 경기가 될 것이다."-그럼 꼭 우승하고 싶은 대회가 있는가."우승 가릴게 있나? 어떤 대회든 우승해 보고 싶다. 그동안 일부 사람들이 농담으로 '메이저 대회서만 잘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나라고 우승 싫어하겠는가."-'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도 1라운드에서 자신이 원한 샷이 1~2회 밖에 없다고 한다. 양 프로는 어떤가."나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대회를 치렀지만 완벽한 샷은 한번도 없었다. 그저 내가 생각한대로 볼의 방향이 갔을 때가 몇차례 있었을 뿐, 지금까지도 만족스럽지 못하다."-PGA투어 선수 중 '몸짱'이라고 하는데, 사실인가."팔 근육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하하). 몸 관리를 잘해서 40대 후반까지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가 되는게 꿈이다."-템플스테이에 대해 얘기해보자. 어떻게 골프 꿈나무들의 멘토 역할을 하게 됐는지."지난해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그래서 올해부터 한국 방문기간에 템플스테이에 참가해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꿈나무들에게 나의 골프 철학과 노하우를 알려주면 좋지 않겠는가."-그럼, 꿈나무들에게 어떤 골프 철학과 노하우를 알려줄 것인가. 조금 오픈해보자."어른들이 꿈나무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아이들은 잘하는 것보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본인 스스로 길러야 한다. 골프는 인내와 끈기, 그리고 좋은 생각이 필요하다. 지금 아이들에게는 이런 습관을 길러줘야한다."-외국 선수들에게 템플스테이를 제안했다고 들었다."외국 선수들에게 템플스테이 얘기를 자주했다. 물론 일부 선수들은 나의 제안을 좋게 받아들였다. 골프는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는 운동이다. 템플스테이는 1박2일 동안 사찰에서 기본적인 수행을 한다. 이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골프 선수들이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수련법으로 적합하다."-양 프로는 골프 전에 명상을 하는가."평소에는 마음의 평정심을 찾기 위해 명상을 하고 있지만 대회 기간에는 생각도 못해봤다. 이제라도 대회를 앞두고 수련해보려 한다."-세계가 바라보는 한국 남자 골프의 수준은 어떤가."한국 골프가 급성장하고 있다고 전해들었다. 이 말은 사실이며 실제로 피부로 느끼고 있다. 다만 우리 선수들이 경험 부족과 세계적인 선수들 앞에서 주눅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부분만 보완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한다면 더 많은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 오를 것이다."-지난 2009년 8월 아시아 남자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골프대회 PGA챔피언십을 제패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가."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당시 타이거 우즈를 제쳤다는 것만 해도 큰 성과였는데, 우승컵까지 들어올렸다. 그때 기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런 기분을 또 느끼고 싶다."-메이저 대회를 우승하면 대우가 달라진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초청대회 1등석 항공권과 지정 주차장, 특급 호텔 등은 기본으로 받는다. 또 상금 수입 이외에도 초청료도 있다. 선수들에게 있어서 메이저 대회 우승은 그 만큼 값진 것이라고 본다."-후배 선수들 가운데 유망주를 꼽으라면."김경태와 노승열, 배상문이 앞으로 성장 가능한 선수로 본다. 급하지 않고 충분히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또 큰 대회에 나갈 기회가 많은 선수가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골프를 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나."아무 생각없다(하하). 그저 내가 생각한 곳으로 공이 굴러가길 바랄 뿐이다."-집안 얘기좀 해보자. 애처가라는 소문이 자자하다."집에 신경쓸 시간이 있나. 항상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보면 가족과 떨어져있게 된다. 가족에게 늘 미안하다. 하지만 집에서 쉴 때는 가족과 함께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얘기가 그렇게 흘렀나 보다."-평소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시키는가."아이들한테는 자신의 소질을 길러주는게 가장 중요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믿어주는게 부모의 마음 아닌가. 화초처럼 꾸준한 관심이 필요한 시기다."-아이들 중에 골프를 하겠다면 시킬 것인가."당연하다. 골프를 하겠다면 적극 밀어줄 생각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골프를 치고 싶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아버지의 힘든 모습을 보고 그런거 아닌가."(하하). 그럴 수도 있다."-평소 즐겨먹는 음식은 무엇인가."보양식은 없다. 그저 한국 음식만 먹으려고 한다. 전통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 뭐든 좋다. 한국 음식이 보약이다."-체력관리는 어떻게 하나."웨이트 트레이닝을 자주한다. 골프는 장시간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경기 때를 제외하곤 기초 체력을 통해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다."-지난해 한·일 국가대항전인 '밀리언야드컵' 출전비를 모두 일본 쓰나미지역에 기부했다고 들었다."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내놓은 것이다. 하루아침에 천재지변으로 집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끝으로 국민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한국 남녀 골프 선수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국위선양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밤을 지새우며 지구 반대쪽에서 치러지는 경기를 시청해주고 응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 정리=신창윤 차장사진=김종화 기자

2012-04-26 신창윤

[인터뷰... 그]'전국 최고 관절전문' 이춘택병원 이끄는 이춘택 원장

"제 무한도전은 쭈욱 계속됩니다."관절 전문병원으로 전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이춘택병원 이춘택(66) 원장을 지난 26일 오후 늦게 만났다. 이춘택병원은 지난해 보건복지부 지정 정형외과 관절전문병원으로 지정받았고 이 원장은 지난해 '2011 대한민국 메디컬 리더 32인'으로 선정됐다. 올해에도 2012년 한국을 빛낸 창조경영인 연구개발 부문 및 제5회 대한민국 글로벌 의료대상 전문병원 관절 부문 수상 등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이 원장. 그러나 화려한 수식어구를 자랑하는 이 원장의 사무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담하고 검소했다. 게다가 옥탑방이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웃으며 사람들의 평가를 세 번의 놀람으로 설명했다."사실 요즘 호텔같이 만든 병원도 많죠. 우리 병원 오면 사람들이 세 번 놀라요. 자자한 명성을 듣고 처음 와서 밖에서 보면 자그마하고 허름한데 한번 놀라죠. 그런데 일단 들어오면 그렇지 않거든요. 내부 시설은 전세계에서 좋은 정형외과 기자재는 다 있고 의외로 넓다고 다시 한번 놀라죠. 그리고 마지막으론 잘 낫는다고 해서 세 번 놀란답니다."■ 매일 매일 세계신기록 경신인데 / 타지역거주 환자가 70%나?로봇수술 끊임없는 시행 착오끝 수백번 보완 거듭수십년 믿음으로 성장… '정형외과 맨파워' 자부심이렇듯 이 원장은 화려한 외부 치장보다는 실력과 내실을 기하는데만 지난 30년을 끊임없이 투자해왔다."호텔처럼 짓고 그러면 좋겠죠. 하지만 실력과 내부가 먼저입니다. 내부는 하나하나 다 고치며 공사를 쭈욱 해왔죠. 외부공사도 금년 4월부터는 시작합니다. 내실을 다져왔으니 이제 외부에도 신경쓸 때까 된 셈이죠."역시 실력으로 통하는 이춘택병원의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수술로보닥이다. 로보닥의 가장 큰 장점은 정확성과 정밀성으로 실패율을 최소화해 환자의 수술 만족도가 매우 높다. 지난해 이춘택병원의 로봇인공관절 수술은 7천회를 돌파했다. 독일·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로봇관절 수술에 성공했으나 이제 횟수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매일매일이 세계 기록 경신의 연속이다."사실 처음 시도 당시만 해도 모험 이상이었죠. 하지만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해냈고 지금도 계속 기술개발을 쉴 수 없습니다. 기술계통은 똑같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사장되죠. 계속 보완에 보완을 수백번 거듭해왔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도태되거든요."이춘택병원이 수원에 완전히 자리를 잡다보니 수원 사람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그의 고향은 사실 전라도 광주다. 그는 수원과의 인연에 대해 설명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처음 대학때 가톨릭대 빈센트병원으로 발령받았죠. 그 인연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전공은 외과 소속이었는데 정형외과가 좋아서 선택했어요. 당시 한창 산업발전과 동시에 인기가 있는 과였죠. 그런데 세월이 많이 달라졌어요. 당시엔 인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힘들어서 기피하는 과가 됐죠. 당초 보수적인 동네라 자리잡을 땐 힘든 일도 많았죠. 하지만 나쁜 것은 다 잊어버리려고 노력합니다. 이제는 수원에 정이 많이 가서 고향이나 다름없죠. 제 성격이 환경에 잘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타입입니다. 개원 당시만 해도 수원에 저를 포함해 정형외과가 5군데도 안돼 그때는 병원간 경쟁이 지금보다 덜했죠."그렇게 힘들게 자리잡은 병원이 지금 전국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이춘택병원은 타지역 거주 환자가 70%이상이다. 최근에는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외국에서도 관절 및 척추 수술을 받으러 병원을 찾는 사례가 더욱 많아졌다. 그 원동력이 무언지 궁금했다. 그러자 대뜸 이 원장은 대담자의 나이를 물었다."부국장님 나이가 어떻게 되죠? 개원 당시 중고등생 나이에 저한테 온 사람들이 지금 50세 가까이 됐어요. 그 사람들이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고 다시 또 오죠. 그렇게 계속 이어진거예요. 그런 것이 쌓여 환자가 오니 믿음을 주고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해왔을 뿐입니다. 환자 없는 의사는 필요가 없죠. 환자에 대한 애착을 많이 갖고, 끊임없이 나름대로 변화의 과정이 있었죠. 물론 정형외과 조그만 병원에서 시작해 실수를 줄이기 위해 전문병원 인정을 받았고 8개 과로 나눠 환자를 위해 그만큼 질적인 성장을 해왔죠. 어느 대학병원보다 정형외과 맨파워가 높다고 자부합니다."그럼 그동안 명성에 걸맞게 돈도 많이 버시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여쭤봤다. 그런데 대답은 단호하게 손사래를 쳤다."아뇨! 그렇진 못했죠. 예전 주변 사람 충고 듣고 병원을 잘 옮겼어도 땅값이 올라서 많이 벌었을 거예요. 그런데 관심이 없었고 지금도 변함없구요."■ 정치쪽 러브콜 있을텐데 / 앞으로의 바람은?선배의사들 거의 실패… 현재도 앞으로도 생각없어"환자를 위한게 나의 삶" 새로운 기술 개발 힘쓸 것그렇다면 한 지역에서 오래 하다보니 정치쪽에서도 콜이 있었을 듯한데요. 정치라면 민감할 만도 한데 거침없는 대답이 돌아왔다."물론 많이 있었죠. 그런데 고사했어요. 선배 의사중 정치쪽 간 사람이 많이 있었는데 다 실패했어요. 제 기억엔 전부다 그랬죠. 이제 그만 은퇴하고 나오라고 수없이 들었습니다. 30년 동안 아는 사람이 좀 많아요. 하지만 앞으로도 전혀 정치쪽엔 생각없습니다. 정치가 최선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어 정치로 많이 쏠리는데 제겐 하나 필요없는 짓거리예요."뿐만 아니라 그는 10년 가까이 경기도생활체육회장 활동을 한 바 있고 7년째 무료 인공관절 수술을 300회나 실시하는 등 사회공헌에도 꾸준히 남다른 역할을 해오고 있다."제가 운동을 좋아해요. 그래서 생활체육 초창기 활동을 했었죠. 그리고 삼성전기하고 인공관절 무료 수술 300명에 450쪽정도 했죠. 치료해주고 나중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할때 기분이 가장 좋아요. 돈하고 관계되지 않아 더 좋죠. 같은 고마움을 표시하더라도 거기에는 사가 없으니까요. 잘했다기보다는 인연이 돼서 같이 했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얼마 전부턴 병원내 '치료 기능과 기술 강화에 도움을 주는 위원회'(일명 기도회)를 결성했고 '1대1 동행안내 서비스'를 하는 등 그의 노력은 쉴 줄 모른다."병원에 처음 오는 분은 그날 하루는 들어오는 순간부터 가는 순간까지 에스코트를 받는데 2년 전부터 해오고 있다. 직원들이 처음에는 쑥스럽고 소름돋는다며 회의파가 많았죠. 에스코트해주면 고객들이 감동을 받거든요. 그때 제가 그랬죠. 우리가 백번을 해봤냐, 천번은 해본 다음에 안한다면 생각해보겠다고. 새로운 것이 나올때까지는 해보자. 매사에 그런 것 같아요."그래서 그의 좌우명은 될때까지 하자, 즉 '무한도전'이다."제 좌우명이라면 안될때 포기하지 않고 단념하지 않고 무한도전하는거죠. 스티브 잡스 책을 봤는데 천재적인 발상도 무한으로 도전하는 거더군요. 절대 가만있으면 세상은 주질 않죠.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무한도전을 해야합니다."이런 좌우명은 그의 생활습관까지 이어졌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자기관리에 철저했다."다행인지 아직까지 아프진 않아요. 틈틈이 운동하는데 결과에 있어 참 중요하죠. 공부고 운동이고 그렇죠. 작심삼일이면 안됩니다. 한 가지 계획을 세우면 조금조금씩 연속으로 해보려고 무척 노력을 합니다. 시간을 쪼개 조금씩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죠."선배로서 후배 의사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의사는 중요하고 좋은 잡(job)이에요. 어느 분야에서건 경쟁은 있을 수밖에 없죠. 어떻게 자기것으로 만드느냐가 관건입니다. 현재 위치가 안좋다 하더라도 무한도전을 하다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바람을 묻자 그는 여전히 진행중인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아직 못다한 일이 많아요. 의사로서 바람이라면 환자를 봤을 때 빠르게 치유해주는 거죠. 전엔 손가락으로 하다보니 정밀성이 떨어졌죠. 새로운 기계가 접목이 됐을 때 뜻대로 안될때 안타까움이 있지만, 더욱더 기술 개발에 힘써야 합니다. 그런 사회가 와야 환자에게 좋은 거죠. 물론 그것까진 안해도 얼마든지 먹고 살지만, 환자들을 위한 게 제 삶이니까요."# 이춘택병원1981년 수원에서 개원한 장산의료재단 이춘택병원은 개원 30주년을 맞은 정형외과 전문병원으로 지난해 가을 보건복지부 관절전문병원으로 지정됐다. 관절 부문 전문병원은 전국에 10곳인데 그중 경기지역은 단 2곳에 불과하다. 이춘택병원은 이에 앞서 지난 2005년 7월부터 3차례에 걸쳐 실시한 전문병원 시범사업에 1, 2, 3차 모두 선정돼 전문병원이 되기 위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왔다. 2002년 국내 최초, 세계에서는 일본, 독일에 이어 3번째로 인공관절 수술용 로봇(로보닥)을 도입했고 2005년 로봇관절연구소를 설립해 더 정밀한 수술과 환자의 더 빠른 회복을 위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7천회 이상 로봇수술로 횟수면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 사진=하태황기자정리=이준배기자

2012-03-28 이준배

[인터뷰 "그"]'총선 불출마 선언' 정장선 민주당 사무총장

민주당 정장선(평택을) 의원의 19대 총선 출마 포기 선언은 충격이었다. 정 의원 본인도 "(출마 포기) 기사가 그렇게 크게 보도될 줄 몰랐다. 그냥 한 두 줄 나오려니 했는데 기사가 크게 나와 충격을 받았다"고 했을 정도로 정 의원의 출마 포기 선언은 지난 주 정치권의 최대 이슈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상식적'이고 대화와 협상을 중시한 의원인데다 정 의원같은 국회의원들이 몇명만 더 있다면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란 높은 평가를 받아왔기에 그의 불출마 선언은 허탈하기까지 하다.4선 국회의원 고지를 눈앞에 두고 출마를 포기한 정 의원을 16일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편안한 표정이었다. 심경을 물어보는 첫 질문에 "포기선언을 하기 전에는 고민이 많았는데 지금은 굉장히 편하다.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당초 40분으로 예정됐던 인터뷰는 그의 국회 진단과 가치관 피력이 열을 뿜으면서 1시간30분을 훌쩍 넘겼다.-왜 총선 불출마라는 선택을 했는가."정치가 이렇게 가면 안되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계속 (국회의원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도 들고, 또 내가 19대 국회에 들어간다 해도 전체가 변하지 않으면 폭력사태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3선 의원이라는 자리가 전체를 책임질 위치는 아니지만 누군가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말 예산안 처리를 할 때 국회가 타협하는 문화를 만들고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을 한 뒤에도 또 폭력사태가 벌어지면 나라도 출마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깊이 했다."-총선 불출마를 결심한 건 언제였는가."작년 연말 4대강 사업 예산으로 국회가 난장판이 된 직후다. 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출마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그때 정했다. 어떤 분들은 정치는 다 그런 것이라고 하면서 19대 국회에서 고치면 되지 않겠냐고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17대 국회보다도 정치 상황은 더 나빠졌다. 19대 국회도 18대 국회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나라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자는 생각에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이번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 사태를 정당정치의 위기로 보는가."여야가 함께 국회에서 해결하고 풀어야 하는데 갈등이 커지고, 국회는 해결을 못하니 국민들이 외부에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이른바 '안철수 바람'이 그렇지 않은가. 정당의 위기고 국회의 위기다. 위기를 푸는 건 모든 사람이 노력해야 한다. 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는 안된다. 모두가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여야의 갈등이 국회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매년 재연되고 있으니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제도적으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지연) 제도 도입이 핵심이다. 필리버스터 종료 기준은 재적의원 5분의3으로 하면 된다. 3분의2냐, 5분의3이냐로 의견이 갈리는데 3분의2의 동의가 필요한 건 국회의원 제명과 헌법개정 말고는 없다. 필리버스터 제도 도입은 내가 국회를 떠나기 전에 완결 지었으면 한다. 한나라당 남경필·정태근 의원과도 계속 의견을 나누었고, 두 의원도 이같은 생각에 동의했다."-19대 국회에서는 여야의 갈등이나 충돌이 줄어들 것으로 보는지."이런 상태로 가면 19대 국회는 더 악화될 수 있다. 갈등이 너무 확산되고 있어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정치'가 회복되기 쉽지 않다. 19대 국회에 들어오는 분들은 그런 각오를 해야 한다."-정당정치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지금 정당 정치에 대한 큰 수술이 없으면 안된다. 지금처럼 한나라당·민주당이 안주하고 있는 양당제 구도와 지역구도를 근본적으로 깨야 한다. 사무총장이 된 이후 불거져 나온 호남 물갈이에 반대했다. 사람 몇명을 바꾼다고 민주당이 호남정당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정책 개발에 대한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지난번 박원순 서울시장과 민주당 박영선 의원간 치른 서울시장 후보 경선 당시 크게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우리는 조직을 총동원했다. 여론조사에서 밀리니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기려고 그랬다. 반면 박 시장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만 했는데 표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금 정치권은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각 계층을 위해 정당의 문을 여는 등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정당정치는 무너질 것이다."-불출마 선언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한편에선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 새로운 정당에서 새 가치에 맞는 정치를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온다면 다시 국회에 복귀할 의사가 있는가."민주당의 당적은 계속 갖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시간을 갖고 내가 돌아온 길을 되돌아보고 싶다. 경기도의원을 시작으로 20년 가까이 앞만 보고 달려오는 바람에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했다. 휴가도 가지 못할 정도로 많이 지치기도 했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는 게 좋을 지 생각해 보겠다. 정치를 다시 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결론이 나면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길을 갈 것이다.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이 정치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19대 국회에서 어떤 인물이 평택을 지역구에서 당선됐으면 하는가."국회의원을 해보니까 이 자리가 정말 힘든 자리다. 지역구민의 요구는 크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한 면이 너무 많다. 새롭게 도전하는 분들에게 주문하고 싶은 건 수없이 자신에게 고민을 던지라는 것이다. 왜 정치를 하려 하는지, 어떻게 정치를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고민 속에서 해답을 찾으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목표가 분명해지고 처신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19대 총선을 전망한다면."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당 체제를 어떻게 정비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도권은 비슷할 것으로 본다. 다만 정부에 대한 불신이 다소 있어 야당이 앞설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평택지원특별법 등 평택 관련 현안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가."국회의원을 처음 시작할 때는 평택항 건설문제 때문에 너무 힘들었고, 이후에는 경제자유구역, 주한미군기지 이전 등 굵직한 현안이 계속됐다. 지금은 어느정도 정리가 돼 가고 있다고 본다. 경제자유구역도 그렇고, 삼성의 산업단지 건설도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큰 틀의 정리는 임기가 끝나기 전에 마무리짓겠다. 19대 국회의원 당선자와 평택시장이 잘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아쉬움이 남는 일이 있다면."경제자유구역이다. 2천ha 부지에 경제자유구역 건설이 논의되다 토지공사·주택공사가 무리하게 통합을 하면서 포기해 버렸다. 지역구민들에게 실망을 드려 안타깝다."-보람을 느꼈던 일은 무엇인가."국회의원 생활을 해 온 기간이 평택시의 전환기였다고 본다. 평택시의 큰 전환기에 국회의원으로서 봉사를 할 수 있어 보람이 느껴진다.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을 지내면서 중소기업인들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드리려 노력한 것도 보람이었다. 불출마를 선언한 날 중소기업중앙회장 등이 사무실로 6~7차례나 쳐들어왔다. 불출마를 번복하라면서.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가 지경위원장으로서 어느 정도 역할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보람이 느껴졌지만 그분들에게 죄송스런 마음도 컸다."-지역구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미리 상의하지 못한 게 죄송스럽다.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던 걸 이해해 달라. 국회의원이 되지 않는다 해도 제가 중앙정치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친분이 있는 의원들도 많이 있다. 시민들이 원한다면 평택시와 그분들 사이에서 역할을 하겠다."-그동안의 재산신고 내역을 보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앞으로 생활은 어떻게 할 것인가."고민되는 부분이다. 씀씀이를 대폭 줄일 생각이다. 차도 작은 차로 바꾸고 사무실도 폐쇄할 생각이다. 되도록이면 이동할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주말에도 혼자 기차를 이용했다. 고속버스, 기차, 비행기도 혼자 타고 다녀본 일이 많아 그 부분은 훈련이 잘 돼있다. (웃으며) 다른 사람에게 얹히는 것도 생각해 보겠다."-차기 경기지사 선거 출마 얘기도 나오는데."김문수 경기지사가 (대선을 위해) 지사직에서 사퇴한다고 해도 보궐선거에는 나가지 않겠다."-정치인 정장선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정치인 정장선'은 중요하지 않다. 국회의원만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국회의원을 하는 것만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다. 삶이 고되고 어렵지만 국가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사는 분들을 많이 봤다. 앞으로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정치인이라는 건 과정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뭘 했느냐 보다는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에 방점을 찍고 살 생각이다."/대담=최우영 정치부장/정리=이호승기자

2011-12-18 이호승

[인터뷰 "그"]10년째 '송도국제업무단지 개발' 美 게일인터내셔널사 스탠 게일 회장

그는 자신에 차 있었다. 송도는 2016년이면 한국의 자부심이 될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송도의 집약적(compact)인 개발 방식과 세계 어느 경쟁도시와 비교해도 우수한 입지를 그 근거로 들었다. 그는 겸손했다. 인터뷰 '그'의 취지를 설명하자 그는 '그 정도값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송도국제업무단지(송도IBD)를 개발하는 미국 게일인터내셔널사의 스탠 게일 회장을 지난달 26일 오전 그의 자택인 더샵퍼스트월드 펜트하우스에서 만났다. 국내 언론 중 스탠 게일 회장의 펜트하우스에서 인터뷰한 건 경인일보가 처음이다. 푸근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은 게일 회장은 부동산 경기 침체, 정부의 규제 등 송도 개발의 어려운 점을 말하면서도 철저한 계획과 송도의 뛰어난 입지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부동산 디벨로퍼로의 삶은 한 사람의 생각과 아이디어로 하나의 도시를 건설하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취재진에 다가왔다. 그와 송도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송도를 개발하겠다고 결정했던 게 2001년도였다. 올해로 꼭 10년째 된다. 지난 10년동안 송도가 바뀐 모습에 대한 소감을 들어보고 싶다.송도로 초대받은 지 10년이 지났다. 어떤 식으로 보면 길고, 다르게 보면 짧은 시간이다. 송도 완공 시점은 2016년으로 보고 있다. 송도 개발은 3단계로 진행되어 왔다. 처음 5년은 계획을 세우는 단계였다. 송도의 마스터플랜을 세우는 것이다. 투자유치 등에 대해 계획을 세웠다. 두 번째 5년은 삶의 질 증진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단계였다. 학교·센트럴파크·동북아트레이드타워·오피스·지하철 등이 이 시기에 구축됐다. 세 번째 5년은 실질적으로 송도를 완공하는 단계다. 이렇게 총 15년을 송도 개발에 필요한 단계로 보고 있다. 올해 2011년은 실질적인 송도 개발의 시작점이다. 최고의 사무실과 상가 등이 갖춰져가는 단계가 시작된 것이고, 앞으로 5년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를 이끌어 낼 것이다. 현재까지 송도는 40%정도 추진된 상황이다. 나는 송도가 세계적 수준의 높은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다들 첫 10년동안 개발이 빠르길 바라왔겠지만 우리는 높은 질을 유지해 왔다. 그러면서 35~40%정도의 개발을 해왔다. 나 역시도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왜 원치 않겠는가. 하지만 높은 품질을 유지한 세계 유명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속도보다는 질이 중요하다고 본다. 송도는 수십 년 동안 한국의 자부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도시로 태어날 것이다.―송도를 이 정도 수준까지 만들기까지, 우리나라의 복잡한 행정 절차와 규제 등이 걸림돌이 됐을 것 같다.나는 송도를 새로운 싱가포르·홍콩으로 만들고 싶다. 그런데 한국은 싱가포르나 홍콩이 가지고 있는 세금 인센티브조차 없어 해외기업 유치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송도에 사는 사람에게 더 좋은 삶의 질, 더 좋은 정주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입주 기업에 혜택을 줘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득실을 따질 수밖에 없다. 송도가 진정한 국제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여러 규제에서 벗어나 좀더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하지만 송도는 싱가포르나 홍콩이 가지지 못한 우수한 위치성을 갖고 있다. 송도에서 세계적 수준의 공항까지 18분이면 도착한다는 장점이 있다. 우수한 위치로 송도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더 좋은 정주환경을 구축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좋은 위치를 활용할 것이다. 또한 포스코와 게일이 합작해 만든 NSIC(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는 인천과 진정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천시와 50대50의 계약을 맺었다. 송도의 수익을 반씩 나눠간다는 것이다. 좋은 파트너십을 구축했다고 본다. 인천시나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노력한 결과 삼성·시스코 등 국내·외 유수 기업이 입주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기업들이 송도에 들어와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예전에는 미국에 있으면서 인천에 가끔씩 왔다. 요즘에는 거의 눌러앉아 계시는 것 같다(웃음). 생활 패턴은 어떻게 바뀌게 됐나.지적하신 부분이 맞다(웃음). 처음에는 계획을 세우는 단계여서 뉴욕에서도 진행할 수 있어 인천에는 가끔씩만 왔다. 사실 송도를 설계하는 것은 밖에서 하는 것이 더 좋았다. 밖에서 할 경우 좀더 혁신적인 디자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랍엔지니어링과 같은 회사를 통해 뉴욕이나 보스턴 등에서 디자인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 5년은 한국에 디자인을 가져오는 단계였다. 이 단계에서는 해외에서 송도에 왔다갔다 했다. 이제 3번째 단계이기 때문에 송도에 있어야 한다. 이제는 송도를 직접 만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뉴욕이나 중국으로 출장이나 여행을 가지 않는 경우에는 송도에 머물고 있다. 나의 모든 것은 송도에 쏠려 있다. 이것은 단순히 책임감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송도를 즐기고 있다.- 외국인으로 송도에 거주하고 있다. 송도의 콘셉트 가운데 하나는 '외국인이 살기좋은 환경 조성'이다. 실제로 송도에 살면서 외국인으로 불편한 점은 어떤 게 있나.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보나.송도에는 실제로 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예전에 송도를 처음 개발했을 때는 대부분 한국인들이었다. 한국인의 거주지 역할을 하다가 한국의 사업체가 송도로 들어왔다. 그러다가 여러 외국 회사들이 송도에 들어오고 있다. 나는 앞으로 더 많은 외국인이 올 것이라고 본다. 한국화된 송도의 환경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송도에 '국제기업'(Global Corporation)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SK·LG는 왜 없냐는 것이다. 이제는 롯데와 삼성 바이오가 송도에 들어온다. 큰 기업들이 송도를 보고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 다음 5년동안에도 송도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영어를 말하는 한국인이 많아질 것이며, 외국의 교포들도 송도를 찾고, 즐기게 될 것이다. 캘리포니아나 뉴욕의 생활 방식을 송도에서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이 고향인 교포들이 송도를 방문해 센트럴파크 등을 보면 송도가 매력적인 도시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들이 생활하는데 병원이 필요한데, 국제병원을 놓고 찬반 논란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나는 찬반 모두의 의견을 이해한다. 한국병원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병원을 반대하는 의견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의 의견을 물어본다면 나는 국제병원에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꼭 내가 개발하는 송도에 국제병원이 들어오기 때문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 영어가 통용되는 병원의 설립은 기본이라고 본다. 홍콩·싱가포르에는 영어가 통용되는 병원이 있다.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꼭 유치할 필요가 있다. 또 병원을 통해 중국 등에서 의료 관광객을 유치할 수도 있다. 그들은 병원에 왔다가 송도까지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반드시 국제병원이 들어와야 한다고 본다.―공항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를 뜻하는 에어로트로폴리스(aerotropolis)의 7대 도시로 송도가 선정됐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에어로트로폴리스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나. 송도는 다른 경쟁 도시와 비교해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나.과거에는 항구를 중심으로 주요 도시가 형성됐다. 뉴욕·런던이 대표적인 예다. 그 이후로는 열차·철로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다. 그 이후에는 고속도로에 대한 접근성이 중요했다. 이제는 공항 접근성이 매우 중요해졌다고 본다. 해외 출장객들을 위한 공항의 역할이 커진 것이다. 공항을 따라 도시들이 발달하고 있다. 송도의 경우 상하이·도쿄 등 인구 100만 이상인 대도시와 1일생활권을 형성하는 최적의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송도는 인천국제공항과 가깝다. 나의 경우에도 아침에 상하이에 있는 아들을 만나고 저녁에 송도로 돌아올 수 있다. 송도의 경우 인천대교 위치 등이 기본 계획(master plan)속에서 체계적으로 결정됐다. 공항이 있는 상태에서 도시가 개발된 다른 에어로트로폴리스와 달리, 교통 등 인프라가 전체 계획 아래 만들어졌다는 게 송도의 최고 장점이다. 송도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18분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전세계에서 기본계획 안에 에어로트로폴리스가 구축된 곳은 송도 한 곳 뿐이다.―송도는 3단계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2008년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한 부동산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다. 부산이나 대구 등에서 부동산 열기가 반짝하긴 했지만 서울·인천·송도에는 경기침체의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3단계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부동산 경기 회복이 관건이 아닌가. 어떻게 전망하는가.금융 위기로 전세계 경제가 큰 영향을 받았다. 안정화를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미국에서도 이런 부침이 있어 왔다. 내 할아버지는 대공황을 거쳤고,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나 역시 35년간 활동하는 중 4번의 부동산 요동을 겪었다. 매번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곤 했다. 하지만 시장은 금방 회복했다. 시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시장도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새 집, 새 학교를 원하기 때문에 주택 수요는 늘 있다. 올해는 느리게 회복되더라도 2012년에는 주거·산업용 부동산의 회복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특히 송도IBD는 인천의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차별화된 장점이 있어 부동산 침체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IBD에는 이동시간(Commute)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IBD에 살면 앞문이 센트럴파크고 옆문이 직장일 것이다. 일하는 곳, 사는 곳, 노는 곳이 한 곳에 있는 것이다. 더이상 장거리 출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IBD에서 제공되는 거주지 물량 자체는 제한돼 있는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장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IBD 분양은 크게 성공할 것이다. 집약적(Compact)인 시설 아래 모든 것을 걸어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IBD에 있다. 특히 이제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기업유치 단계로 접어든 만큼 향후 점진적으로 결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담=장철순 인천본사 경제부장 /정리=홍현기기자·사진=김범준기자

2011-10-09 홍현기

[인터뷰 "그"]'토종 애니의 흥행신화' 경기도 투자가 큰힘 됐다

"경기도가 있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이 새 역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한국 토종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100만 돌파의 상징적 의미를 지나 지난 19일 손익분기점인 150만 관객마저 가뿐하게 넘어서며 더욱 실질적인 의미를 갖게 됐다. 게다가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기록을 연일 다시 쓰고 있는 '마당을 나온 암탉'은 개봉 첫 주 좌석점유율 48.94%에 이어 2주차 좌석점유율 52.99%, 3주차에 접어든 지난 주말에는 전국 428개의 상영관에서 56.31%의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등 점점 더 탄력을 받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무난하게 200만 돌파는 물론 300만도 넘볼 기세다.이런 신화 창조의 배경에는 경기도가 있었다. 경기도 산하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GDCA)이 지난 2008년 '신화창조 프로젝트'로 선정하는 모험을 감행했던 것. 도는 '마당을 나온 암탉'에 총 제작비 30억원 중 5억6천만원을 투자했고, 이어 2009년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도 '글로벌 애니메이션 장편 부문' 지원작으로 '마당을 나온 암탉'을 선정하며 탄력을 받게 됐다.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100만 이상 관객을 넘어선 적이 없었기에 과감한 투자였다. 그리고 '마당을 나온 암탉'은 이런 지원에 힘입어 다른 파이낸싱도 풀리면서 새 역사를 쓰는 주춧돌이 됐다. 명필름과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사 오돌또기는 동명의 베스트셀러 동화를 무려 6년간의 기획·준비 과정을 거쳐 스크린에 옮겼다. 최근 서울시 종로구 필운동 명필름 사무실에서 무에서 유를 일궈낸 '신화창조의 두 주역' 명필름 심재명 대표와 오성윤 감독을 만나 그 가슴 뛰는 순간을 들어봤다.-드디어 고대하던 손익분기점(150만 관객)을 넘어섰는데.▲심재명 대표(이하 심)="100만 관객 돌파는 한국 애니메이션사에 첫 발자국이라는 기록의 의미가 컸어요. 물론 기뻤지만 제작자는 투자금액 회수라는 덕목이 중요한 입장이라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더 중요했죠(웃음). 상징적인 의미에 실질 수치가 더해져 다행이에요. 애니 종사자로서 실질적인 의미가 크죠."▲오성윤 감독(이하 오)="극장용 장편 애니가 근래 실패 사례가 많았어요. 그래서 이 영화에 쏠린 시선을 개봉 전부터 느껴 어깨가 무거웠죠. 마치 돋보기로 빛을 모으듯 몸으로 전해져 왔는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물론 축구감독이 골에 배고파하듯 더 많은 관객에 대한 욕심도 나네요(웃음)."-개봉 전 이런 결과를 예상했었나.▲심="GDCA에 투자받을 때 200만을 목표로 잡았지만 사실 완전히 모험이었죠(웃음). 그렇지만 목표를 높게 잡았기에 더욱 올인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듯 싶어요."▲오="순수미술을 해 오다 이 영화가 제 첫 연출 데뷔작이에요. 그래서 전 모험이 아닌 도전으로 제 인생을 걸었죠."-이번 흥행안타의 원동력은.▲심="무엇보다 명필름과 오돌또기 결합의 힘이죠. 질 높은 애니메이션에 공격적인 배급이 시너지를 낸 거죠. 바람직한 협업사례가 없었다면 이런 수치를 못이뤘을 거예요. 앞으로 실사영화제작사와 애니 종사자간 영업 네트워킹이 활발히 진행돼야 해요."▲오="동감이에요. 동시대 가족영화를 고민하던 중 쉽게 의기투합됐어요. 사실 국내 애니의 산업적 가치는 유아용에 편중돼 있어요. 그러므로 앞으로 실사 영화사와의 협업사례를 계속 만들어 가야 된다고 봐요."-개봉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던데.▲심="사실 공적자금 지원이 없었으면 못 만들었어요. 2008년 GDCA에서 투자받은 5억6천만원이 발판이었죠. 국내 애니 시장이 열악하다 보니 그 당시 경기도 투자 받고 만세를 부를 정도로 기뻤어요. 그 뒤로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7억원을 지원받는 등 파이낸싱에 주춧돌이 돼줬어요."▲오="저는 처음에 베스트셀러 원작에 명필름까지 붙으면 당연히 투자가 쉽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애니가 1970년대 잠시 반짝하다 80년대 이후 흥행사례가 전무하다 보니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해외 진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심="중국 개봉일자가 당초보다 조금 연기돼 9월 말쯤 될 것 같아요. 중국 전역 2천개 이상 규모로 중급 개봉은 된다더라구요. 사실 우리 상업 애니가 해외에서 개봉한 것은 처음이에요. 중국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아시아 시장으로 넓혀나갈 계획이에요."▲오="매년 여름이면 국내 스크린은 미국·일본 애니가 점령했었는데 개봉 전부터 전 올 여름 미국·일본 애니 이길 자신있다고 호언장담했죠. 사실 공약을 남발한 건데 이뤄져 다행이에요. 우리만의 개성이 담긴 차별화된 애니를 무기로 세계 무대에 나가야죠."-애니메이션이라 밤시간대엔 스크린이 줄었다던데.▲심="물론 상영횟수가 줄어든 것은 아쉬워요. 사실 해외 애니들은 자막·더빙 등 버전이 여러 가지라 밤 시간대에도 상영해 왔어요. 우리 애니도 아이들뿐 아니라 밤시간대 어른들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오="애니는 어린이만 본다는 편견은 버려야해요. 만약 밤에까지 상영했으면 충분히 더 빨리 흥행했을 거예요."-국내 애니메이션 발전을 위해 제안한다면.▲심="25년간 충무로에 있다 보니 엄청난 산업적인 변화를 겪고 함께 성장해 왔어요. 우리나라처럼 1년 영화 100편 이상 제작하는 나라가 몇 개국 안 돼요. 아쉬움은 수치적으로는 커졌는데 다양성 측면에서는 안 좋아졌어요. 지나치게 상업주의를 지향하는 영화도 많아졌구요. 한국영화 다양화를 위해 창의적인 영화를 살릴 수 있는 인프라가 튼튼해졌으면 해요."▲오="청소년도 같이 열광하며 볼 수 있는 애니가 나와야죠. 대중문화 접하면서 연예인 선호도는 높지만 우리가 그동안 보여줄 만한 애니가 없던 면도 있죠. 중고교생들이 열광한다는 것은 아래나 위의 계층도 볼 수 있어 중요한 시장이라고 봐요."-이번 애니가 30번째 제작영화인 명필름은 부부가 공동으로 쭉 이끌고 있는데.▲심="남편 이은 대표랑 각자 제작자와 프로듀서 역할을 하면서 모든 영화에 함께 참여해요. 그동안 영화에 대한 가치관이 비슷해서 반대되는 상황도 거의 안 생기구요. 보완도 되고 힘이 많이 되죠."▲오="그런 거 보면 부럽죠. 저랑 셋이 이야기 나눌 때 공동대표 부부의 생각이 한결같아 마치 한 분과 얘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웃음)."-관객이나 주변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오="제가 보기에 미국·일본과 다른 애니메이션이 나왔어요. 저희만의 멋과 진실이 숨어있죠. 아이들이 봐야 되는 것도 있지만 아이들이 떠들고 그런 거 거부감 느끼시기도 하는데. 어른들이 그런 것도 영화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함께 즐겨 보시는 것도 좋은 감상포인트라고 봐요."▲심="애니메이션이 처음이라 새로운 경험으로 어려웠지만 배운 점도 있어 보람됐어요. 좋은 영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관객들이 이렇게 많이 사랑해주실 줄 몰랐어요. 한국 애니의 새로운 도전에 많은 관심과 응원주시고 있죠. 겨우 150만명이지만 몸으로 느끼는 건 1천만명 든 것 같은 관심이라 쑥스럽지만 각오를 다시 다져보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MYUNG FILMS■ 명필름 = 영화 기획자 심재명이 광고 기획사 및 매니지먼트사에서 일하던 동생 심보경, 독립 영화 단체 '장산곶매'에서 '파업전야' 등을 제작했던 남편 이은과 의기투합해 1995년 설립한 영화제작사다. 1996년 첫 작품 '코르셋'에 이어 서울에서만 7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접속'(1997), '조용한 가족'(1998),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 '해피엔드'(1999), '섬'(2000), '공동경비구역JSA'(2000), 'YMCA야구단'(2002), '바람난 가족'(2003), '그때 그 사람들'(2005),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2006), '극락도 살인사건'(2007),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시라노:연애조작단'(2010) 등 웰메이드 상업영화들을 만들어 왔다./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정리=이준배차장·사진=김종택차장

2011-08-21 경인일보

[인터뷰 "그"]국내 장수연구 권위자 박상철 교수

서울대 정년 퇴임을 3년 앞둔 그가 30년 이상 몸담았던 정든 학교를 떠나기로 했다. 좀처럼 하기 힘든 결정이다. 국내 최고의 명문대학에서 학자의 길을 걷다 정년 퇴임을 하는 것만큼 명예로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지인들도 그를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인생에 정년이 따로 있단 말인가." 평소 그를 잘 알기에 지인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국내 장수(長壽)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박상철(62) 교수의 얘기다. 박 교수는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를 떠나 다음달 초 가천의대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건강한 장수를 하려면 암과 당뇨부터 극복해야 한다"며 "대규모 동물 실험이 가능한 국내 최고의 시설과 연구진을 갖춘 이 곳에서 그동안 못다한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최고 명문대학인 서울대에서, 그것도 국내 장수학 연구의 권위자로 활동하다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으로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이유는 간단하다. 그동안 '노화'와 '장수' 연구에 집중해 왔다. 특히 노화에 관한 사회의 잘못된 인식부터 바로잡자는 얘기를 많이 했다. 물론 난 사회학자가 아니다. 의사이며, 생물학자다. 어떻게 하면 건강한 장수를 할 수가 있는지 입증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장수하려면 첫째 암과 당뇨에 안 걸려야 한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장수사회가 되려면 암과 당뇨를 극복하는 세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이길여 암·당뇨 연구원'은 연구자 입장에서 아주 환상적인 곳이다. 생쥐 등 동물실험이 가능한 최고의 시설이 여기에 있다. 그동안 겸임교수로 활동하면서 연구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게 됐다.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키워드가 필요하다. 노화암, 노화당뇨가 바로 그 키워드다."-그래도 오랫동안 몸담았던 학교라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서울대에서 33년을 근무했다. 이제 후배들에게 물려줄 때가 왔다. 오래 전부터 퇴임 1년 전 다른 곳으로 가 남은 꿈을 펼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다. 정년이나 바라보고 눌러앉아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텃세나 부리는 영감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웃음)-노화암이나 노화당뇨 연구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 싶다. 실질적인 연구 성과물은 언제쯤 나오게 되나."왜 늙으면 암과 당뇨에 걸릴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일까. 그 원인을 찾아내자는 것이다. 늙었다고 모든 사람이 암과 당뇨에 걸리는 것이 아니지 않나. 연구는 이미 시작됐다. 암과 당뇨가 발생할 경우, 세포의 핵 구조가 달라지는 것, 외부 신호체계에서 이상이 생기는 것 등에 대한 연구다. 새로운 뉴스가 될 것이다. 올해 말이면 연구 성과물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이제 인천에 둥지를 틀게 됐다. 소감이 어떤가."아직 인천에 대해 잘 모른다. 5년 전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을 처음 지었을 때 첫 번째 세미나를 내가 맡게 됐었다. 그 인연이 이렇게 이어졌다. 개인적으론 새 도시가 건설중인 송도에서 연구 성과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다."-오늘날 고령화 사회에서 '장수문화'란 새로운 화두를 제시했는데."장수의 개념부터 다시 정립해야 한다. 장수는 수명 연장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연령이나 시간의 개념이 아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영위하는 새로운 계층의 출현으로 봐야 한다. 장수문화도 같은 맥락이다. 나이가 많은 노인 중심의 문화가 아니다. 연령을 초월해 남녀노소 사회구성원 모두가 어우러지는 사회, 건강하게 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장수문화다. 나이가 들면 퇴물 취급을 하는 게 문제다. 정년도 그런 개념 아닌가. 정년을 새로운 조직에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로 받아들이려는 변화도 필요하다."-우리 사회 장수문화의 현주소를 진단해 달라."노인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잘못됐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 그냥 쉬어야 하는 사람들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다. 70세가 되고, 80세가 돼도 건강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스스로 나이 먹었다고 물러서지 말고, 노인이라고 밀어내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든 하자', '주는 사람이 되자', '배우자'. 이것이 장수문화의 시작이다."-전 세계적으로도 저출산·고령화는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다. 우리나라도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상태다.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고령화 사회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 고령 인구가 증가하면 사회가 부양해야 할 몫이 커지고 의료비 부담이 급증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생활습관이 개선되면서 고령인들의 건강상태가 과거에 비해 크게 호전돼 왔다. 나이를 먹어도 충분히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과학기술 발달이 고령으로 인한 생체 기능과 건강의 문제점을 보완해 줄 것이다."-노화 세포가 젊은 세포보다 더 강한 저항능력을 보였다는 박 교수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기억난다."쇼크였다. 나 역시 늙는다는 것은 그저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쯤으로 생각했다. 처음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연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세포에 자외선을 쏘거나 강한 화학물질을 투여했더니 노화 세포가 더 강한 저항능력을 보인 것이다. 노화는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외적 자극에 대해 반응하고 적응하는 자기 보호적 변화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된 계기가 됐다. 노화를 폄하하지 말아야 한다."-인문·사회학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진화론도 그렇게 나온 것 아닌가. 과학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학도 변화하지 않았나. 젊은 세포를 늙은 세포로 만들었다가, 다시 젊은 세포로 만드는,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100세 현역의사'로 유명한 일본의 '히노하라 시게아키' 박사가 지난해 인천을 찾았다. 히노하라 박사와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근황이 궁금하다."지진 피해가 걱정돼 연락을 드렸더니 '별일 없다'고 하셨다. 고령의 나이에도 전 세계 각지를 돌며 강연활동을 펴는 등 건강하고 열정적으로 사시는 분이다. 히노하라 박사가 말하는 신노인은 오랜 세월을 통해 축적한 다양한 경험과 능력을 사회에 환원하는 노인들을 뜻한다. 신노인 운동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과거 전국을 다니며 수많은 장수 노인들을 만나지 않았나. 그들의 삶이 궁금하다."강원도 인제군에 사시는 104세 어르신이 기억난다. 손자도 5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에도 자식들에게 재산을 안 넘기고 손수 관리하고 계셨다. 혹시라도 자식이나 손자가 자신 몰래 땅을 팔아 없애지 않을까 싶어 일주일에 한 번씩 동사무소를 가서 지적도를 확인하셨다. 처음에는 참 심하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나이에도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밑에 사람을 통솔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102세의 어느 할머니는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었다. 큰방은 본인이 쓰고, 작은방은 아들 내외가 썼다. 꼬장꼬장한 분이셨다. 그런데 인터뷰를 마치고 귓전에 대고 하시는 말씀이 '며느리를 칭찬했다는 얘기를 꼭 전해 달라'고 하시는 것이다. 며느리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어 흐뭇했다. 전라남도 구례군의 104세 할아버지도 대단한 분이셨다. 조금 꾀죄죄한 옷차림에 지게를 메고 계셨는데, 표정과 목소리에서 당당함이 느껴졌다. '어이, 서울에서 온 양반, 온고지신이란 말이 무슨 뜻인 줄 아나!' 하시며 인생의 가르침을 주시던 어르신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노년의 모습인가.(웃음)"-박 교수는 어떠한 노년을 꿈꾸고 있나."일하는 노년이다. 끝까지 움직이자는 것이다. 서울대에 사표를 낸다고 하니 만류하는 동료들도 많았다. 내가 장수사회를 얘기하면서 서울대에서 정년 퇴직을 하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꿈을 펼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곳을 움직이는 사람만 약 200명이다. 책임자급 교수도 17명이나 된다. 당분간은 연구 활동에만 전념할 것이다. 대학에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사회환원 운동은 결국 논문을 내고, 그 연구 성과물이 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향후 여력이 생기면 지역사회에서 장수문화 운동을 펼치는 계획도 갖고 있다."-개인적으로 특별한 건강관리법이 있나. 국내 장수 연구 최고 권위자의 건강 비결을 듣고 싶다."열심히 사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부지런히 움직이려고 한다. 특별히 챙겨 먹는 음식은 없다. 가끔 음주도 한다. 막걸리는 한 병, 소주는 반 병이 주량이다.(웃음)"/대담=임성훈 인천본사 사회부장/정리=임승재기자·사진=김범준기자

2011-08-07 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