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총선 불출마 선언' 정장선 민주당 사무총장

민주당 정장선(평택을) 의원의 19대 총선 출마 포기 선언은 충격이었다. 정 의원 본인도 "(출마 포기) 기사가 그렇게 크게 보도될 줄 몰랐다. 그냥 한 두 줄 나오려니 했는데 기사가 크게 나와 충격을 받았다"고 했을 정도로 정 의원의 출마 포기 선언은 지난 주 정치권의 최대 이슈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상식적'이고 대화와 협상을 중시한 의원인데다 정 의원같은 국회의원들이 몇명만 더 있다면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란 높은 평가를 받아왔기에 그의 불출마 선언은 허탈하기까지 하다.4선 국회의원 고지를 눈앞에 두고 출마를 포기한 정 의원을 16일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편안한 표정이었다. 심경을 물어보는 첫 질문에 "포기선언을 하기 전에는 고민이 많았는데 지금은 굉장히 편하다.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당초 40분으로 예정됐던 인터뷰는 그의 국회 진단과 가치관 피력이 열을 뿜으면서 1시간30분을 훌쩍 넘겼다.-왜 총선 불출마라는 선택을 했는가."정치가 이렇게 가면 안되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계속 (국회의원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도 들고, 또 내가 19대 국회에 들어간다 해도 전체가 변하지 않으면 폭력사태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3선 의원이라는 자리가 전체를 책임질 위치는 아니지만 누군가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말 예산안 처리를 할 때 국회가 타협하는 문화를 만들고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을 한 뒤에도 또 폭력사태가 벌어지면 나라도 출마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깊이 했다."-총선 불출마를 결심한 건 언제였는가."작년 연말 4대강 사업 예산으로 국회가 난장판이 된 직후다. 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출마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그때 정했다. 어떤 분들은 정치는 다 그런 것이라고 하면서 19대 국회에서 고치면 되지 않겠냐고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17대 국회보다도 정치 상황은 더 나빠졌다. 19대 국회도 18대 국회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나라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자는 생각에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이번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 사태를 정당정치의 위기로 보는가."여야가 함께 국회에서 해결하고 풀어야 하는데 갈등이 커지고, 국회는 해결을 못하니 국민들이 외부에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이른바 '안철수 바람'이 그렇지 않은가. 정당의 위기고 국회의 위기다. 위기를 푸는 건 모든 사람이 노력해야 한다. 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는 안된다. 모두가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여야의 갈등이 국회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매년 재연되고 있으니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제도적으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지연) 제도 도입이 핵심이다. 필리버스터 종료 기준은 재적의원 5분의3으로 하면 된다. 3분의2냐, 5분의3이냐로 의견이 갈리는데 3분의2의 동의가 필요한 건 국회의원 제명과 헌법개정 말고는 없다. 필리버스터 제도 도입은 내가 국회를 떠나기 전에 완결 지었으면 한다. 한나라당 남경필·정태근 의원과도 계속 의견을 나누었고, 두 의원도 이같은 생각에 동의했다."-19대 국회에서는 여야의 갈등이나 충돌이 줄어들 것으로 보는지."이런 상태로 가면 19대 국회는 더 악화될 수 있다. 갈등이 너무 확산되고 있어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정치'가 회복되기 쉽지 않다. 19대 국회에 들어오는 분들은 그런 각오를 해야 한다."-정당정치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지금 정당 정치에 대한 큰 수술이 없으면 안된다. 지금처럼 한나라당·민주당이 안주하고 있는 양당제 구도와 지역구도를 근본적으로 깨야 한다. 사무총장이 된 이후 불거져 나온 호남 물갈이에 반대했다. 사람 몇명을 바꾼다고 민주당이 호남정당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정책 개발에 대한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지난번 박원순 서울시장과 민주당 박영선 의원간 치른 서울시장 후보 경선 당시 크게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우리는 조직을 총동원했다. 여론조사에서 밀리니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기려고 그랬다. 반면 박 시장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만 했는데 표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금 정치권은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각 계층을 위해 정당의 문을 여는 등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정당정치는 무너질 것이다."-불출마 선언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한편에선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 새로운 정당에서 새 가치에 맞는 정치를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온다면 다시 국회에 복귀할 의사가 있는가."민주당의 당적은 계속 갖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시간을 갖고 내가 돌아온 길을 되돌아보고 싶다. 경기도의원을 시작으로 20년 가까이 앞만 보고 달려오는 바람에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했다. 휴가도 가지 못할 정도로 많이 지치기도 했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는 게 좋을 지 생각해 보겠다. 정치를 다시 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결론이 나면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길을 갈 것이다.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이 정치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19대 국회에서 어떤 인물이 평택을 지역구에서 당선됐으면 하는가."국회의원을 해보니까 이 자리가 정말 힘든 자리다. 지역구민의 요구는 크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한 면이 너무 많다. 새롭게 도전하는 분들에게 주문하고 싶은 건 수없이 자신에게 고민을 던지라는 것이다. 왜 정치를 하려 하는지, 어떻게 정치를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고민 속에서 해답을 찾으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목표가 분명해지고 처신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19대 총선을 전망한다면."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당 체제를 어떻게 정비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도권은 비슷할 것으로 본다. 다만 정부에 대한 불신이 다소 있어 야당이 앞설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평택지원특별법 등 평택 관련 현안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가."국회의원을 처음 시작할 때는 평택항 건설문제 때문에 너무 힘들었고, 이후에는 경제자유구역, 주한미군기지 이전 등 굵직한 현안이 계속됐다. 지금은 어느정도 정리가 돼 가고 있다고 본다. 경제자유구역도 그렇고, 삼성의 산업단지 건설도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큰 틀의 정리는 임기가 끝나기 전에 마무리짓겠다. 19대 국회의원 당선자와 평택시장이 잘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아쉬움이 남는 일이 있다면."경제자유구역이다. 2천ha 부지에 경제자유구역 건설이 논의되다 토지공사·주택공사가 무리하게 통합을 하면서 포기해 버렸다. 지역구민들에게 실망을 드려 안타깝다."-보람을 느꼈던 일은 무엇인가."국회의원 생활을 해 온 기간이 평택시의 전환기였다고 본다. 평택시의 큰 전환기에 국회의원으로서 봉사를 할 수 있어 보람이 느껴진다.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을 지내면서 중소기업인들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드리려 노력한 것도 보람이었다. 불출마를 선언한 날 중소기업중앙회장 등이 사무실로 6~7차례나 쳐들어왔다. 불출마를 번복하라면서.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가 지경위원장으로서 어느 정도 역할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보람이 느껴졌지만 그분들에게 죄송스런 마음도 컸다."-지역구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미리 상의하지 못한 게 죄송스럽다.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던 걸 이해해 달라. 국회의원이 되지 않는다 해도 제가 중앙정치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친분이 있는 의원들도 많이 있다. 시민들이 원한다면 평택시와 그분들 사이에서 역할을 하겠다."-그동안의 재산신고 내역을 보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앞으로 생활은 어떻게 할 것인가."고민되는 부분이다. 씀씀이를 대폭 줄일 생각이다. 차도 작은 차로 바꾸고 사무실도 폐쇄할 생각이다. 되도록이면 이동할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주말에도 혼자 기차를 이용했다. 고속버스, 기차, 비행기도 혼자 타고 다녀본 일이 많아 그 부분은 훈련이 잘 돼있다. (웃으며) 다른 사람에게 얹히는 것도 생각해 보겠다."-차기 경기지사 선거 출마 얘기도 나오는데."김문수 경기지사가 (대선을 위해) 지사직에서 사퇴한다고 해도 보궐선거에는 나가지 않겠다."-정치인 정장선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정치인 정장선'은 중요하지 않다. 국회의원만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국회의원을 하는 것만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다. 삶이 고되고 어렵지만 국가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사는 분들을 많이 봤다. 앞으로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정치인이라는 건 과정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뭘 했느냐 보다는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에 방점을 찍고 살 생각이다."/대담=최우영 정치부장/정리=이호승기자

2011-12-18 이호승

[인터뷰 "그"]10년째 '송도국제업무단지 개발' 美 게일인터내셔널사 스탠 게일 회장

그는 자신에 차 있었다. 송도는 2016년이면 한국의 자부심이 될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송도의 집약적(compact)인 개발 방식과 세계 어느 경쟁도시와 비교해도 우수한 입지를 그 근거로 들었다. 그는 겸손했다. 인터뷰 '그'의 취지를 설명하자 그는 '그 정도값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송도국제업무단지(송도IBD)를 개발하는 미국 게일인터내셔널사의 스탠 게일 회장을 지난달 26일 오전 그의 자택인 더샵퍼스트월드 펜트하우스에서 만났다. 국내 언론 중 스탠 게일 회장의 펜트하우스에서 인터뷰한 건 경인일보가 처음이다. 푸근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은 게일 회장은 부동산 경기 침체, 정부의 규제 등 송도 개발의 어려운 점을 말하면서도 철저한 계획과 송도의 뛰어난 입지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부동산 디벨로퍼로의 삶은 한 사람의 생각과 아이디어로 하나의 도시를 건설하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취재진에 다가왔다. 그와 송도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송도를 개발하겠다고 결정했던 게 2001년도였다. 올해로 꼭 10년째 된다. 지난 10년동안 송도가 바뀐 모습에 대한 소감을 들어보고 싶다.송도로 초대받은 지 10년이 지났다. 어떤 식으로 보면 길고, 다르게 보면 짧은 시간이다. 송도 완공 시점은 2016년으로 보고 있다. 송도 개발은 3단계로 진행되어 왔다. 처음 5년은 계획을 세우는 단계였다. 송도의 마스터플랜을 세우는 것이다. 투자유치 등에 대해 계획을 세웠다. 두 번째 5년은 삶의 질 증진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단계였다. 학교·센트럴파크·동북아트레이드타워·오피스·지하철 등이 이 시기에 구축됐다. 세 번째 5년은 실질적으로 송도를 완공하는 단계다. 이렇게 총 15년을 송도 개발에 필요한 단계로 보고 있다. 올해 2011년은 실질적인 송도 개발의 시작점이다. 최고의 사무실과 상가 등이 갖춰져가는 단계가 시작된 것이고, 앞으로 5년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를 이끌어 낼 것이다. 현재까지 송도는 40%정도 추진된 상황이다. 나는 송도가 세계적 수준의 높은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다들 첫 10년동안 개발이 빠르길 바라왔겠지만 우리는 높은 질을 유지해 왔다. 그러면서 35~40%정도의 개발을 해왔다. 나 역시도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왜 원치 않겠는가. 하지만 높은 품질을 유지한 세계 유명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속도보다는 질이 중요하다고 본다. 송도는 수십 년 동안 한국의 자부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도시로 태어날 것이다.―송도를 이 정도 수준까지 만들기까지, 우리나라의 복잡한 행정 절차와 규제 등이 걸림돌이 됐을 것 같다.나는 송도를 새로운 싱가포르·홍콩으로 만들고 싶다. 그런데 한국은 싱가포르나 홍콩이 가지고 있는 세금 인센티브조차 없어 해외기업 유치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송도에 사는 사람에게 더 좋은 삶의 질, 더 좋은 정주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입주 기업에 혜택을 줘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득실을 따질 수밖에 없다. 송도가 진정한 국제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여러 규제에서 벗어나 좀더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하지만 송도는 싱가포르나 홍콩이 가지지 못한 우수한 위치성을 갖고 있다. 송도에서 세계적 수준의 공항까지 18분이면 도착한다는 장점이 있다. 우수한 위치로 송도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더 좋은 정주환경을 구축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좋은 위치를 활용할 것이다. 또한 포스코와 게일이 합작해 만든 NSIC(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는 인천과 진정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천시와 50대50의 계약을 맺었다. 송도의 수익을 반씩 나눠간다는 것이다. 좋은 파트너십을 구축했다고 본다. 인천시나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노력한 결과 삼성·시스코 등 국내·외 유수 기업이 입주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기업들이 송도에 들어와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예전에는 미국에 있으면서 인천에 가끔씩 왔다. 요즘에는 거의 눌러앉아 계시는 것 같다(웃음). 생활 패턴은 어떻게 바뀌게 됐나.지적하신 부분이 맞다(웃음). 처음에는 계획을 세우는 단계여서 뉴욕에서도 진행할 수 있어 인천에는 가끔씩만 왔다. 사실 송도를 설계하는 것은 밖에서 하는 것이 더 좋았다. 밖에서 할 경우 좀더 혁신적인 디자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랍엔지니어링과 같은 회사를 통해 뉴욕이나 보스턴 등에서 디자인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 5년은 한국에 디자인을 가져오는 단계였다. 이 단계에서는 해외에서 송도에 왔다갔다 했다. 이제 3번째 단계이기 때문에 송도에 있어야 한다. 이제는 송도를 직접 만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뉴욕이나 중국으로 출장이나 여행을 가지 않는 경우에는 송도에 머물고 있다. 나의 모든 것은 송도에 쏠려 있다. 이것은 단순히 책임감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송도를 즐기고 있다.- 외국인으로 송도에 거주하고 있다. 송도의 콘셉트 가운데 하나는 '외국인이 살기좋은 환경 조성'이다. 실제로 송도에 살면서 외국인으로 불편한 점은 어떤 게 있나.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보나.송도에는 실제로 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예전에 송도를 처음 개발했을 때는 대부분 한국인들이었다. 한국인의 거주지 역할을 하다가 한국의 사업체가 송도로 들어왔다. 그러다가 여러 외국 회사들이 송도에 들어오고 있다. 나는 앞으로 더 많은 외국인이 올 것이라고 본다. 한국화된 송도의 환경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송도에 '국제기업'(Global Corporation)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SK·LG는 왜 없냐는 것이다. 이제는 롯데와 삼성 바이오가 송도에 들어온다. 큰 기업들이 송도를 보고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 다음 5년동안에도 송도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영어를 말하는 한국인이 많아질 것이며, 외국의 교포들도 송도를 찾고, 즐기게 될 것이다. 캘리포니아나 뉴욕의 생활 방식을 송도에서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이 고향인 교포들이 송도를 방문해 센트럴파크 등을 보면 송도가 매력적인 도시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들이 생활하는데 병원이 필요한데, 국제병원을 놓고 찬반 논란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나는 찬반 모두의 의견을 이해한다. 한국병원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병원을 반대하는 의견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의 의견을 물어본다면 나는 국제병원에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꼭 내가 개발하는 송도에 국제병원이 들어오기 때문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 영어가 통용되는 병원의 설립은 기본이라고 본다. 홍콩·싱가포르에는 영어가 통용되는 병원이 있다.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꼭 유치할 필요가 있다. 또 병원을 통해 중국 등에서 의료 관광객을 유치할 수도 있다. 그들은 병원에 왔다가 송도까지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반드시 국제병원이 들어와야 한다고 본다.―공항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를 뜻하는 에어로트로폴리스(aerotropolis)의 7대 도시로 송도가 선정됐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에어로트로폴리스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나. 송도는 다른 경쟁 도시와 비교해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나.과거에는 항구를 중심으로 주요 도시가 형성됐다. 뉴욕·런던이 대표적인 예다. 그 이후로는 열차·철로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다. 그 이후에는 고속도로에 대한 접근성이 중요했다. 이제는 공항 접근성이 매우 중요해졌다고 본다. 해외 출장객들을 위한 공항의 역할이 커진 것이다. 공항을 따라 도시들이 발달하고 있다. 송도의 경우 상하이·도쿄 등 인구 100만 이상인 대도시와 1일생활권을 형성하는 최적의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송도는 인천국제공항과 가깝다. 나의 경우에도 아침에 상하이에 있는 아들을 만나고 저녁에 송도로 돌아올 수 있다. 송도의 경우 인천대교 위치 등이 기본 계획(master plan)속에서 체계적으로 결정됐다. 공항이 있는 상태에서 도시가 개발된 다른 에어로트로폴리스와 달리, 교통 등 인프라가 전체 계획 아래 만들어졌다는 게 송도의 최고 장점이다. 송도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18분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전세계에서 기본계획 안에 에어로트로폴리스가 구축된 곳은 송도 한 곳 뿐이다.―송도는 3단계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2008년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한 부동산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다. 부산이나 대구 등에서 부동산 열기가 반짝하긴 했지만 서울·인천·송도에는 경기침체의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3단계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부동산 경기 회복이 관건이 아닌가. 어떻게 전망하는가.금융 위기로 전세계 경제가 큰 영향을 받았다. 안정화를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미국에서도 이런 부침이 있어 왔다. 내 할아버지는 대공황을 거쳤고,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나 역시 35년간 활동하는 중 4번의 부동산 요동을 겪었다. 매번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곤 했다. 하지만 시장은 금방 회복했다. 시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시장도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새 집, 새 학교를 원하기 때문에 주택 수요는 늘 있다. 올해는 느리게 회복되더라도 2012년에는 주거·산업용 부동산의 회복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특히 송도IBD는 인천의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차별화된 장점이 있어 부동산 침체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IBD에는 이동시간(Commute)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IBD에 살면 앞문이 센트럴파크고 옆문이 직장일 것이다. 일하는 곳, 사는 곳, 노는 곳이 한 곳에 있는 것이다. 더이상 장거리 출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IBD에서 제공되는 거주지 물량 자체는 제한돼 있는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장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IBD 분양은 크게 성공할 것이다. 집약적(Compact)인 시설 아래 모든 것을 걸어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IBD에 있다. 특히 이제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기업유치 단계로 접어든 만큼 향후 점진적으로 결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담=장철순 인천본사 경제부장 /정리=홍현기기자·사진=김범준기자

2011-10-09 홍현기

[인터뷰 "그"]'토종 애니의 흥행신화' 경기도 투자가 큰힘 됐다

"경기도가 있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이 새 역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한국 토종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100만 돌파의 상징적 의미를 지나 지난 19일 손익분기점인 150만 관객마저 가뿐하게 넘어서며 더욱 실질적인 의미를 갖게 됐다. 게다가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기록을 연일 다시 쓰고 있는 '마당을 나온 암탉'은 개봉 첫 주 좌석점유율 48.94%에 이어 2주차 좌석점유율 52.99%, 3주차에 접어든 지난 주말에는 전국 428개의 상영관에서 56.31%의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등 점점 더 탄력을 받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무난하게 200만 돌파는 물론 300만도 넘볼 기세다.이런 신화 창조의 배경에는 경기도가 있었다. 경기도 산하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GDCA)이 지난 2008년 '신화창조 프로젝트'로 선정하는 모험을 감행했던 것. 도는 '마당을 나온 암탉'에 총 제작비 30억원 중 5억6천만원을 투자했고, 이어 2009년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도 '글로벌 애니메이션 장편 부문' 지원작으로 '마당을 나온 암탉'을 선정하며 탄력을 받게 됐다.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100만 이상 관객을 넘어선 적이 없었기에 과감한 투자였다. 그리고 '마당을 나온 암탉'은 이런 지원에 힘입어 다른 파이낸싱도 풀리면서 새 역사를 쓰는 주춧돌이 됐다. 명필름과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사 오돌또기는 동명의 베스트셀러 동화를 무려 6년간의 기획·준비 과정을 거쳐 스크린에 옮겼다. 최근 서울시 종로구 필운동 명필름 사무실에서 무에서 유를 일궈낸 '신화창조의 두 주역' 명필름 심재명 대표와 오성윤 감독을 만나 그 가슴 뛰는 순간을 들어봤다.-드디어 고대하던 손익분기점(150만 관객)을 넘어섰는데.▲심재명 대표(이하 심)="100만 관객 돌파는 한국 애니메이션사에 첫 발자국이라는 기록의 의미가 컸어요. 물론 기뻤지만 제작자는 투자금액 회수라는 덕목이 중요한 입장이라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더 중요했죠(웃음). 상징적인 의미에 실질 수치가 더해져 다행이에요. 애니 종사자로서 실질적인 의미가 크죠."▲오성윤 감독(이하 오)="극장용 장편 애니가 근래 실패 사례가 많았어요. 그래서 이 영화에 쏠린 시선을 개봉 전부터 느껴 어깨가 무거웠죠. 마치 돋보기로 빛을 모으듯 몸으로 전해져 왔는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물론 축구감독이 골에 배고파하듯 더 많은 관객에 대한 욕심도 나네요(웃음)."-개봉 전 이런 결과를 예상했었나.▲심="GDCA에 투자받을 때 200만을 목표로 잡았지만 사실 완전히 모험이었죠(웃음). 그렇지만 목표를 높게 잡았기에 더욱 올인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듯 싶어요."▲오="순수미술을 해 오다 이 영화가 제 첫 연출 데뷔작이에요. 그래서 전 모험이 아닌 도전으로 제 인생을 걸었죠."-이번 흥행안타의 원동력은.▲심="무엇보다 명필름과 오돌또기 결합의 힘이죠. 질 높은 애니메이션에 공격적인 배급이 시너지를 낸 거죠. 바람직한 협업사례가 없었다면 이런 수치를 못이뤘을 거예요. 앞으로 실사영화제작사와 애니 종사자간 영업 네트워킹이 활발히 진행돼야 해요."▲오="동감이에요. 동시대 가족영화를 고민하던 중 쉽게 의기투합됐어요. 사실 국내 애니의 산업적 가치는 유아용에 편중돼 있어요. 그러므로 앞으로 실사 영화사와의 협업사례를 계속 만들어 가야 된다고 봐요."-개봉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던데.▲심="사실 공적자금 지원이 없었으면 못 만들었어요. 2008년 GDCA에서 투자받은 5억6천만원이 발판이었죠. 국내 애니 시장이 열악하다 보니 그 당시 경기도 투자 받고 만세를 부를 정도로 기뻤어요. 그 뒤로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7억원을 지원받는 등 파이낸싱에 주춧돌이 돼줬어요."▲오="저는 처음에 베스트셀러 원작에 명필름까지 붙으면 당연히 투자가 쉽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애니가 1970년대 잠시 반짝하다 80년대 이후 흥행사례가 전무하다 보니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해외 진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심="중국 개봉일자가 당초보다 조금 연기돼 9월 말쯤 될 것 같아요. 중국 전역 2천개 이상 규모로 중급 개봉은 된다더라구요. 사실 우리 상업 애니가 해외에서 개봉한 것은 처음이에요. 중국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아시아 시장으로 넓혀나갈 계획이에요."▲오="매년 여름이면 국내 스크린은 미국·일본 애니가 점령했었는데 개봉 전부터 전 올 여름 미국·일본 애니 이길 자신있다고 호언장담했죠. 사실 공약을 남발한 건데 이뤄져 다행이에요. 우리만의 개성이 담긴 차별화된 애니를 무기로 세계 무대에 나가야죠."-애니메이션이라 밤시간대엔 스크린이 줄었다던데.▲심="물론 상영횟수가 줄어든 것은 아쉬워요. 사실 해외 애니들은 자막·더빙 등 버전이 여러 가지라 밤 시간대에도 상영해 왔어요. 우리 애니도 아이들뿐 아니라 밤시간대 어른들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오="애니는 어린이만 본다는 편견은 버려야해요. 만약 밤에까지 상영했으면 충분히 더 빨리 흥행했을 거예요."-국내 애니메이션 발전을 위해 제안한다면.▲심="25년간 충무로에 있다 보니 엄청난 산업적인 변화를 겪고 함께 성장해 왔어요. 우리나라처럼 1년 영화 100편 이상 제작하는 나라가 몇 개국 안 돼요. 아쉬움은 수치적으로는 커졌는데 다양성 측면에서는 안 좋아졌어요. 지나치게 상업주의를 지향하는 영화도 많아졌구요. 한국영화 다양화를 위해 창의적인 영화를 살릴 수 있는 인프라가 튼튼해졌으면 해요."▲오="청소년도 같이 열광하며 볼 수 있는 애니가 나와야죠. 대중문화 접하면서 연예인 선호도는 높지만 우리가 그동안 보여줄 만한 애니가 없던 면도 있죠. 중고교생들이 열광한다는 것은 아래나 위의 계층도 볼 수 있어 중요한 시장이라고 봐요."-이번 애니가 30번째 제작영화인 명필름은 부부가 공동으로 쭉 이끌고 있는데.▲심="남편 이은 대표랑 각자 제작자와 프로듀서 역할을 하면서 모든 영화에 함께 참여해요. 그동안 영화에 대한 가치관이 비슷해서 반대되는 상황도 거의 안 생기구요. 보완도 되고 힘이 많이 되죠."▲오="그런 거 보면 부럽죠. 저랑 셋이 이야기 나눌 때 공동대표 부부의 생각이 한결같아 마치 한 분과 얘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웃음)."-관객이나 주변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오="제가 보기에 미국·일본과 다른 애니메이션이 나왔어요. 저희만의 멋과 진실이 숨어있죠. 아이들이 봐야 되는 것도 있지만 아이들이 떠들고 그런 거 거부감 느끼시기도 하는데. 어른들이 그런 것도 영화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함께 즐겨 보시는 것도 좋은 감상포인트라고 봐요."▲심="애니메이션이 처음이라 새로운 경험으로 어려웠지만 배운 점도 있어 보람됐어요. 좋은 영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관객들이 이렇게 많이 사랑해주실 줄 몰랐어요. 한국 애니의 새로운 도전에 많은 관심과 응원주시고 있죠. 겨우 150만명이지만 몸으로 느끼는 건 1천만명 든 것 같은 관심이라 쑥스럽지만 각오를 다시 다져보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MYUNG FILMS■ 명필름 = 영화 기획자 심재명이 광고 기획사 및 매니지먼트사에서 일하던 동생 심보경, 독립 영화 단체 '장산곶매'에서 '파업전야' 등을 제작했던 남편 이은과 의기투합해 1995년 설립한 영화제작사다. 1996년 첫 작품 '코르셋'에 이어 서울에서만 7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접속'(1997), '조용한 가족'(1998),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 '해피엔드'(1999), '섬'(2000), '공동경비구역JSA'(2000), 'YMCA야구단'(2002), '바람난 가족'(2003), '그때 그 사람들'(2005),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2006), '극락도 살인사건'(2007),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시라노:연애조작단'(2010) 등 웰메이드 상업영화들을 만들어 왔다./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정리=이준배차장·사진=김종택차장

2011-08-21 경인일보

[인터뷰 "그"]국내 장수연구 권위자 박상철 교수

서울대 정년 퇴임을 3년 앞둔 그가 30년 이상 몸담았던 정든 학교를 떠나기로 했다. 좀처럼 하기 힘든 결정이다. 국내 최고의 명문대학에서 학자의 길을 걷다 정년 퇴임을 하는 것만큼 명예로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지인들도 그를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인생에 정년이 따로 있단 말인가." 평소 그를 잘 알기에 지인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국내 장수(長壽)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박상철(62) 교수의 얘기다. 박 교수는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를 떠나 다음달 초 가천의대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건강한 장수를 하려면 암과 당뇨부터 극복해야 한다"며 "대규모 동물 실험이 가능한 국내 최고의 시설과 연구진을 갖춘 이 곳에서 그동안 못다한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최고 명문대학인 서울대에서, 그것도 국내 장수학 연구의 권위자로 활동하다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으로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이유는 간단하다. 그동안 '노화'와 '장수' 연구에 집중해 왔다. 특히 노화에 관한 사회의 잘못된 인식부터 바로잡자는 얘기를 많이 했다. 물론 난 사회학자가 아니다. 의사이며, 생물학자다. 어떻게 하면 건강한 장수를 할 수가 있는지 입증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장수하려면 첫째 암과 당뇨에 안 걸려야 한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장수사회가 되려면 암과 당뇨를 극복하는 세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이길여 암·당뇨 연구원'은 연구자 입장에서 아주 환상적인 곳이다. 생쥐 등 동물실험이 가능한 최고의 시설이 여기에 있다. 그동안 겸임교수로 활동하면서 연구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게 됐다.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키워드가 필요하다. 노화암, 노화당뇨가 바로 그 키워드다."-그래도 오랫동안 몸담았던 학교라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서울대에서 33년을 근무했다. 이제 후배들에게 물려줄 때가 왔다. 오래 전부터 퇴임 1년 전 다른 곳으로 가 남은 꿈을 펼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다. 정년이나 바라보고 눌러앉아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텃세나 부리는 영감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웃음)-노화암이나 노화당뇨 연구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 싶다. 실질적인 연구 성과물은 언제쯤 나오게 되나."왜 늙으면 암과 당뇨에 걸릴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일까. 그 원인을 찾아내자는 것이다. 늙었다고 모든 사람이 암과 당뇨에 걸리는 것이 아니지 않나. 연구는 이미 시작됐다. 암과 당뇨가 발생할 경우, 세포의 핵 구조가 달라지는 것, 외부 신호체계에서 이상이 생기는 것 등에 대한 연구다. 새로운 뉴스가 될 것이다. 올해 말이면 연구 성과물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이제 인천에 둥지를 틀게 됐다. 소감이 어떤가."아직 인천에 대해 잘 모른다. 5년 전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을 처음 지었을 때 첫 번째 세미나를 내가 맡게 됐었다. 그 인연이 이렇게 이어졌다. 개인적으론 새 도시가 건설중인 송도에서 연구 성과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다."-오늘날 고령화 사회에서 '장수문화'란 새로운 화두를 제시했는데."장수의 개념부터 다시 정립해야 한다. 장수는 수명 연장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연령이나 시간의 개념이 아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영위하는 새로운 계층의 출현으로 봐야 한다. 장수문화도 같은 맥락이다. 나이가 많은 노인 중심의 문화가 아니다. 연령을 초월해 남녀노소 사회구성원 모두가 어우러지는 사회, 건강하게 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장수문화다. 나이가 들면 퇴물 취급을 하는 게 문제다. 정년도 그런 개념 아닌가. 정년을 새로운 조직에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로 받아들이려는 변화도 필요하다."-우리 사회 장수문화의 현주소를 진단해 달라."노인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잘못됐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 그냥 쉬어야 하는 사람들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다. 70세가 되고, 80세가 돼도 건강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스스로 나이 먹었다고 물러서지 말고, 노인이라고 밀어내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든 하자', '주는 사람이 되자', '배우자'. 이것이 장수문화의 시작이다."-전 세계적으로도 저출산·고령화는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다. 우리나라도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상태다.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고령화 사회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 고령 인구가 증가하면 사회가 부양해야 할 몫이 커지고 의료비 부담이 급증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생활습관이 개선되면서 고령인들의 건강상태가 과거에 비해 크게 호전돼 왔다. 나이를 먹어도 충분히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과학기술 발달이 고령으로 인한 생체 기능과 건강의 문제점을 보완해 줄 것이다."-노화 세포가 젊은 세포보다 더 강한 저항능력을 보였다는 박 교수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기억난다."쇼크였다. 나 역시 늙는다는 것은 그저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쯤으로 생각했다. 처음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연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세포에 자외선을 쏘거나 강한 화학물질을 투여했더니 노화 세포가 더 강한 저항능력을 보인 것이다. 노화는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외적 자극에 대해 반응하고 적응하는 자기 보호적 변화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된 계기가 됐다. 노화를 폄하하지 말아야 한다."-인문·사회학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진화론도 그렇게 나온 것 아닌가. 과학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학도 변화하지 않았나. 젊은 세포를 늙은 세포로 만들었다가, 다시 젊은 세포로 만드는,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100세 현역의사'로 유명한 일본의 '히노하라 시게아키' 박사가 지난해 인천을 찾았다. 히노하라 박사와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근황이 궁금하다."지진 피해가 걱정돼 연락을 드렸더니 '별일 없다'고 하셨다. 고령의 나이에도 전 세계 각지를 돌며 강연활동을 펴는 등 건강하고 열정적으로 사시는 분이다. 히노하라 박사가 말하는 신노인은 오랜 세월을 통해 축적한 다양한 경험과 능력을 사회에 환원하는 노인들을 뜻한다. 신노인 운동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과거 전국을 다니며 수많은 장수 노인들을 만나지 않았나. 그들의 삶이 궁금하다."강원도 인제군에 사시는 104세 어르신이 기억난다. 손자도 5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에도 자식들에게 재산을 안 넘기고 손수 관리하고 계셨다. 혹시라도 자식이나 손자가 자신 몰래 땅을 팔아 없애지 않을까 싶어 일주일에 한 번씩 동사무소를 가서 지적도를 확인하셨다. 처음에는 참 심하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나이에도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밑에 사람을 통솔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102세의 어느 할머니는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었다. 큰방은 본인이 쓰고, 작은방은 아들 내외가 썼다. 꼬장꼬장한 분이셨다. 그런데 인터뷰를 마치고 귓전에 대고 하시는 말씀이 '며느리를 칭찬했다는 얘기를 꼭 전해 달라'고 하시는 것이다. 며느리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어 흐뭇했다. 전라남도 구례군의 104세 할아버지도 대단한 분이셨다. 조금 꾀죄죄한 옷차림에 지게를 메고 계셨는데, 표정과 목소리에서 당당함이 느껴졌다. '어이, 서울에서 온 양반, 온고지신이란 말이 무슨 뜻인 줄 아나!' 하시며 인생의 가르침을 주시던 어르신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노년의 모습인가.(웃음)"-박 교수는 어떠한 노년을 꿈꾸고 있나."일하는 노년이다. 끝까지 움직이자는 것이다. 서울대에 사표를 낸다고 하니 만류하는 동료들도 많았다. 내가 장수사회를 얘기하면서 서울대에서 정년 퇴직을 하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꿈을 펼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곳을 움직이는 사람만 약 200명이다. 책임자급 교수도 17명이나 된다. 당분간은 연구 활동에만 전념할 것이다. 대학에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사회환원 운동은 결국 논문을 내고, 그 연구 성과물이 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향후 여력이 생기면 지역사회에서 장수문화 운동을 펼치는 계획도 갖고 있다."-개인적으로 특별한 건강관리법이 있나. 국내 장수 연구 최고 권위자의 건강 비결을 듣고 싶다."열심히 사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부지런히 움직이려고 한다. 특별히 챙겨 먹는 음식은 없다. 가끔 음주도 한다. 막걸리는 한 병, 소주는 반 병이 주량이다.(웃음)"/대담=임성훈 인천본사 사회부장/정리=임승재기자·사진=김범준기자

2011-08-07 경인일보

[인터뷰 "그"]FITA 선정 '20세기의 선수' 김수녕

"20세기 최고의 선수답게 전국체전도 훌륭히 치러야겠지요."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은 효자종목이다. 한국 양궁은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거친 뒤 거기서 뽑힌 대표선수들이 세계 무대에 출전한다. 국제양궁연맹(FITA)은 한국의 독주를 막으려고 경기 방식을 자주 변경했지만, 그럴 때마다 한국 선수들은 연맹을 무시하듯 금메달을 꽂았다.한국 양궁은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 대표주자는 '신궁' 김수녕(40·대한양궁협회 이사·(재)한민족한마음 전국체전범도민추진위원회 이사장)이다. 그는 1988 서울 올림픽 개인·단체전 석권을 시작으로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개인 은메달과 단체 금메달을 따낸 한국 양궁의 슈퍼스타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은퇴를 선언하고 결혼해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가 됐던 그였지만 1999년 다시 사대로 돌아와 2000년 시드니 대회 때 개인전 동메달과 단체전 금메달을 수확하는 등 올림픽에서만 전무후무한 금메달 4개를 목에 걸었다.이를 입증하듯 김수녕은 '신궁'이란 칭호를 얻었고, 최근에는 국제양궁연맹이 선정한 '20세기의 선수(Athletes of the Century)' 수상자에 뽑히기도 했다. 현재 전국체전범도민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수녕을 지난 4일 만나봤다.-우선 축하한다. 소감은."현역으로 뛴 지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좋은 선수로 기억해주고 큰 상까지 받게 돼 영광이다. 지금도 나를 기억해준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얼굴이 그대로다. 비결은 있나."비결은 없다(웃음). 그저 아이들 키우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최근 전국체전범도민추진위원회 이사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는데."지난해 경희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행정 공부를 해왔고 지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때 해설위원도 맡았다. 이런 가운데 제의가 들어왔다. 오는 10월 경기도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홍보를 위해 함께 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면 하겠다'고 수락했다."-그럼 전국체전범도민추진위원회는 무엇을 하는가."전국체전범도민추진위원회는 말 그대로 전국체전 성공적 개최와 스포츠를 통한 국민 대화합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즉, 전국체전을 통해 민족적 대화합을 이끌고 해외 및 북한 동포의 참여를 유도하는 일을 한다."-얼마전 미국을 방문했는데, 성과는 있었나."전국체전 성공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 위해 LA와 뉴욕 등을 방문했다. 재미대한체육회 본국전국체전준비위원회 등과 업무협약을 했고, 뉴욕, LA, 샌디에이고 체육단체 및 한인회를 방문해 전국체전을 홍보하면서 고국을 방문해 줄 것을 요구했다."-방문 기간 에피소드는 있었는지."한국계 미국프로풋볼(NFL) 스타인 하인즈 워드를 만났다. 하인즈 워드 같은 선수는 미주 재외동포에게 엄청난 홍보 효과를 줄 수 있다. 아울러 하인즈 워드 측과 전국체전 축하 영상메시지를 제작하기로 협의했다."-앞으로 위원회는 어떠한 일을 하게 되는가."지난해까지 전국체전에는 15~18개 국가에서 해외동포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20개 국가에서 해외동포 체육인들을 전국체전에 참가시킬 계획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 유럽 국가, 아시아 국가 등에서 해외 동포 체육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중이다."-국제양궁연맹 스포츠 행정가의 꿈도 있다고 들었는데."스위스 로잔의 국제양궁연맹에서 인턴 사원으로 일할 계획은 있다. 주위에서 국제기구 경험을 권했고, 연맹에서도 오라고 제안을 받았다. 현재 여유롭지는 않겠지만 상황에 따라 움직일 생각이다."-왜 행정가를 택했는지."이제는 한국을 떠나 국제 양궁 발전을 위해 일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은 양궁 만큼은 세계 최강이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국제적 위상도 높아야 하지 않겠는가. 국내 선수들에게 해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도록 먼저 일해 보고 싶다."-한국 양궁 왜 이렇게 잘하나."양궁 선수들은 올림픽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가 양궁을 잘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협회는 양궁 국가대표를 충분한 검증을 거쳐 선수들을 선발하고, 선수들은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만 평가받는다."-앞으로 한국 양궁은 어떨까."앞으로도 한국 양궁은 강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선수들 기량이 좋고, 무엇보다 공정한 선발전을 치르면서 선수들이 갖는 자부심이 대단하다."-'신궁'이란 별명을 얻었는데, 만족하는지."'신궁'은 모든 선수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그 시기에 내가 잘했을 뿐이다. 지금의 후배들도 '신궁'소리를 들을 만하다."-지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때 해설을 맡았는데, 힘들지 않았나."내 목소리가 조금은 졸립지 않았나(웃음). 항상 음성이 높고 낮음이 없어 시청자들이 조금 지루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름대로 객관성있게 해설했다. 잘 봐달라."-강연 요청도 들어왔다는데."2000년 시드니올림픽 후 가끔 강연 요청이 왔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있겠구나'하고 거절하지 않았다. 근데 베이징 올림픽 해설 이후 빈도가 늘었다."-강연시 주로 무엇을 강조하는가."주로 기업체, 학교, 병원에서 강의가 들어왔다. 주제는 조금씩 다르지만 '마인드 컨트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아무래도 기업체 등에서 원하는 것은 멘털 게임 측면이 강한 양궁의 특성상 위기관리, 집중력에 대한 한마디를 듣고 싶을 것이다."-올림픽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시드니 올림픽 때다. 7년간 은퇴 후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당시 김남순, 윤미진과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한 기억이 난다. 특히 개인전 예선에서 이탈리아의 나탈리아에 발레바에게 밀렸는데, 마지막 남은 10발에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냈다."-양궁 선수와 해설자, 어떤 위치가 더 긴장되는지."차라리 선수 때가 더 낫다. 막상 양궁 해설자로 선수들을 볼 때 더 긴장되고 떨리더라(웃음)."-아이를 양궁선수로 키울 생각은 없나."본인이 원한다면 시키겠다. 그러나 운동 신경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을 자율적으로 키울 생각이다. 스스로가 혼자 학습할 수 있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다."-본인이 생각하는 양궁은 어떤 것인지."양궁은 어릴 때부터 배우면 집중력에 큰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다양한 곳에서 양궁을 할 수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양궁을 통해 자신을 수련하는 것도 좋다."-양궁 꿈나무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나는 항상 꿈나무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시위를 떠난 화살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일생을 살면서 어려운 시기는 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거기에 집착하는 것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게 낫지 않을까."/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 /정리=신창윤차장·사진=김종택차장

2011-07-10 경인일보

[인터뷰 "그"]亞유소년친선축구대회 마련한 '영원한 캡틴' 박지성 선수

"아시아 축구 발전에 기여하는 재단이 되겠습니다."'한국인 프리미어리거' 박지성(30·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자신의 이름을 딴 박지성재단(JS Foundation)을 설립한 뒤 지난 6월 베트남 아시안드림컵에 이어 1일에는 JS CUP 동아시아유소년친선축구대회를 통해 자신의 축구 색깔을 보여줬다. 축구 선수에서 은퇴한다면 '지도자보다 축구 행정가로 남고 싶다'는 박지성은 자신의 재단 취지에 맞는 다양한 축구 사업을 펼쳐 아시아 축구 발전과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특히 박지성은 "박지성재단에서 진행하는 모든 사업은 국내는 물론 아시아 축구 발전을 위한 것"이라며 "아시안드림컵과 유소년친선축구대회도 박지성재단의 취지에 맞게 창설된 것"이라고 말했다. '영원한 캡틴' 박지성과 서면 인터뷰를 한 뒤 1일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만나봤다.-박지성재단에 대해 설명한다면."박지성재단은 다양한 사업을 통해 발생된 수익을 열악한 축구 환경에 놓인 동남아시아와 세계 여러 나라의 단체, 그리고 시설 투자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었다. 또 세계인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남과 북, 아시아,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고자 한다."-그럼 재단의 사업은 뭐가 있는가."재단의 사업은 한마디로 공익사업을 통한 수익 창출이다. 우선 지난 6월에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안드림컵이 좋은 예다. 아시안드림컵은 한·일 전 현직 선수들과 중국, 그리고 유럽 선수들이 팀을 이뤄 축구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친선 경기를 통해 붐을 조성한다. 또 거기서 얻은 수익금을 기부해 축구 발전에 사용토록 하고 있다. 또 이번에 경인일보와 함께 한 동아시아 유소년친선축구대회도 마찬가지다."-아시안드림컵은 어떠했는지."아시안드림컵은 아시아 축구 환경을 개선하고 유소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기획된 행사다. 이번 행사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더 많은 국가의 축구 꿈나무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다."-아시안드림컵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베트남 어린이들이 경기장을 찾아와 사인을 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많은 어린이들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 올해가 처음으로 열리는 것이라서 시행착오도 있었다. 차기 대회에는 더욱 알차게 준비할 것이다."-아시안드림컵이 내년에는 태국에서 열린다고 하는데."내년 일정은 현재까지 확정된 것이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아시아의 어느 한 국가에서 열린다는 점이다. 태국은 베트남 발표 당시 언론에서 언급됐지만, 그 나라와는 아직 접촉한 바 없다."-JS CUP 동아시아유소년친선축구대회를 개최했는데."올해는 아시안드림컵으로 인해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많은 유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 이 대회를 통해 아시아 어린이들이 국가간의 교류를 갖고 서로 우정을 나누고, 더불어 축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됐으면 한다."-내년에는 JS CUP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올해에는 일본 지진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쿠시마 유나이티드FC 유소년팀이 참가해 주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올해에는 3개국에서만 참가했는데, 내년에는 더 많은 국가가 참가했으면 한다. 특히 북한 어린이들도 이 대회에 참가해 남북 꿈나무들이 우정의 시간을 갖는다면 더욱 뜻깊은 대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축구 클리닉을 할 때 어떤 기분인가."어린이들과 몸을 부딪히며 또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나는 클리닉을 할 때마다 힘들어도 항상 웃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들에게 더욱 친밀감을 주기 위해서다. 또 어린이들에게 좋은 귀감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부모님과 만날 기회가 적은데."당연하다. 하지만 부모님과의 사이는 좋다.(웃음)"-결혼은 언제 할 건가."(웃음). 더 이상 묻지 말라."-박지성의 은사님 중 가장 생각나는 스승은."내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스승의 가르침이 있어서일 것이다. 모두 생각난다."-최근 명지대에서 세미나를 개최했는데."명지대 대학원에서 세미나 주제를 발표했다. 그날 '유소년 축구 부상 관리 현황'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는데, 축구 선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자료는 국내와 유럽 유소년 축구 선수의 부상 실태를 파악하고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 즉, 어린 선수들에게는 적당한 휴식시간을 주면서 훈련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유소년 시기는 자질 계발과 기술 습득의 중요한 시기다."-구단 얘기 좀 하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계약 문제는."현재 구단과 협상을 하고 있다. 협상 과정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팀에 남을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구단도 내가 팀에 남는 것을 원치 않겠는가."-최근 많은 이적설이 나오는데."나도 언론을 통해 듣고 있다. 많은 이적설이 해외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만 사실 무근이다. 직접 제의가 왔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보도는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올해 시즌 목표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개인적으로 지난 시즌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물론 팀도 정규리그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등 모든 대회의 우승컵을 따내는 것이다."-최근 선덜랜드에서 뛰게 된 지동원은 어떤가."지동원도 이청용처럼 열심히 노력하면 분명히 기회를 잡을 것이다. 어떤 포지션에서 뛰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영리하고 능력이 있는 선수여서 잘해 낼 것이다."-끝으로 국민들에게 한마디 해 준다면."경기도민, 수원시민, 국민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린다. 그 성원에 보답하고자 돌아오는 시즌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항상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다."■ 박지성 프로필- 신체 : 178㎝, 체중 73㎏- 혈액형 : O형- 학교 : 산남초-세류초-안용중-수원공고-명지대학교-명지대학원 석사과정- 프로 데뷔 : 2000년 교토상가 FC- 현 소속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미드필더), 박지성 재단 이사장- 월드컵 출전 : 2002년 한일월드컵, 2006년 독일월드컵, 2010년 남아공월드컵 등 3회 연속 월드컵 국가대표- 취미 : 음악 감상, 비디오게임- 특기 : 지구력, 패싱력 - 별명 : 산소탱크, 바른생활맨- 좌우명 :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정리=신창윤차장·사진=김종택차장

2011-07-03 신창윤

[인터뷰 "그"]천주교 수원교구 보좌주교에 선임 된 이성효 신부

[경인일보=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정리=이준배차장·사진=김종택차장]보통 성직자라고 하면 으레 범접하기 힘들다는 선입견을 갖게 마련이다. 엄숙하고 근엄한 모습부터 떠오른다. 천주교 수원교구 이성효(54) 리노 보좌주교를 직접 대면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범인과는 다른 저 높은 곳에 사시는 분은 아닐까. 사실 이번 인터뷰 일정을 잡는 것도 쉽진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지난 2월 로마교황청으로부터 이성효 리노 보좌주교 선임이 결정되고 서품식을 거행하기 전까지 바로 40일간 대침묵 피정(避靜·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묵상)에 들어간 그는 연락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3월25일 정식 서품식 이후에도 빡빡한 일정으로 인터뷰는 한 달여를 더 기다려야했다. 그래서 더더욱 속세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해진 듯하다. 그러나 그를 직접 대면하는 순간 머릿속을 떠돌던 고정관념은 조금씩 허물어졌다. 그의 첫 말 한마디부터가 파격이었다. 취미가 '외국 신부들 개고기 먹이기'라고 밝히며 개고기 전도사를 자칭하는 그의 소탈한 말솜씨와 아이같이 해맑은 미소에 고정관념은 이내 조금씩 무장해제되기 시작했다. 그는 인터뷰 중간중간 격의없는 농담을 여러 차례 던졌다. 그의 유머러스한 모습에 순간순간 웃음꽃이 터져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 첫 소감은."처음 소식들었을 때 어안이 벙벙해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어려운 직무라 답을 얻으려고 40일간 대침묵 피정을 하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렸죠. 사실 이번 인터뷰도 혹시 제 사생활이 다 노출되는 것 아닌가 해 처음엔 안하고 싶었어요(웃음). 그렇지만 궁금하신게 있다면 가차없이 물어주세요."- 학창시절은."인기가 좋진 않았어요. 그랬으면 제가 어떻게 여기 있겠어요."- 좋아하는 음식은."사제가 되면서 좋아하는 음식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어요. 어떤 신부님이 도시 본당에 처음 가셨다가 된장찌개를 좋아한다고 얘기했더니 방문하는 곳마다 매일 된장찌개를 줘서 나중에는 질려버렸대요. 결국 '저 고기 먹을 줄 알아요'라고 하셨대요. - 싫어하는 음식은."제가 못먹는 게 3가지가 있어요. 첫째 없어서 못먹고, 둘째 안줘서 못먹고, 셋째 배불러서 못먹죠.(웃음)"- 그럼 보양식은."개고기를 잘 먹습니다. 제 취미가 외국인 신부들 개고기 먹이기죠. 특히 프랑스 신부들요. 불어에 신앙(foi)이라는 단어가 간이란 뜻의 푸아(fois)와 발음이 비슷해요. 음식 잘 먹느냐 물어보면 내 신앙이 가톨릭 아니냐? 푸아(간) 옆에 있는 위도 마찬가지로 가톨릭이어야지라고 조크를 던지죠. 하하 좀 썰렁하네요. 프랑스에선 통했는데(웃음)." - 특별한 계기라도."1987년 독일 유학 당시, 독일방송국에서 올림픽 개최국 소개 프로그램에 개고기 먹는 걸 방송에 내보냈어요. 당시 함께 유학갔던 김찬수 오산본당 신부님 경험에 따르면 백화점에서 어떤 독일 아줌마가 '당신 어디서 왔냐'고 물어 '한국에서 왔다' 그랬대요. 대뜸 '개고기 왜 먹냐'고 따지더래요. 신학생이 개는 왜 못먹느냐 되묻자 개는 영리하지 않느냐 그러더래요. 그래서 유태인이 영리하지 않아 학살당했느냐 하니 아무말도 못하더래요. 그래서 사실 개고기도 음식문화일뿐이다. 문화는 열등하고 우등한게 없이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대요. 그 이후 개고기 먹는 것에 대해 당당하게 얘기해요. 특히 반대가 심한 프랑스신부들에게는 꼭 권하죠. 사제라 다른 나라 문화를 알려고 열린 마음을 가져 다들 잘 먹어요(웃음)."- 사제가 된 계기는."사실 고교 3학년때 사제의 길로 가야겠다는 매력을 느끼기 시작해 졸업하면 신학교에 들어가려고 했어요. 그때 아버님이 신자가 아니셔서 반대해 못들어갔죠. 그래서 아주대 공대 졸업한 뒤 대학원까지 공부를 했죠. 그러다 1984년도 교황님이 방문하셨을 때 새벽 2시에 여의도 미사에 참례했어요. 그날 오후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너무 잔가지를 많이 치고 있구나. 이제 잔가지를 좀 쳐내야겠다'라고 결심하고 신학교 들어갔죠."- 유학생활은."독일 유학시절 식사가 어려웠어요. 한겨울에 큰 축제를 한다고 찬맥주와 차가운 빵, 소시지 주면 먹기 힘들었죠. 그러면 저는 올라가서 라면 끓여먹었어요. 거기서 김치도 직접 담가먹고 그랬어요. 김치 담그는 것은 이제 아주 수준급입니다.- 유학비용은."가톨릭은 그게 장점이에요. 독일교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아서 충당했어요. 신부가 되고 난 뒤 파리로 갔을 때는 신부라 수원교구에서 생활비까지 다 대줬죠. 가톨릭 같은 경우는 그런 부분이 수월해요."- 수원교구로 오게 된건."신학교 갈때부터 고정돼 있어요. 다른 데로 못가요. 근본뿌리가 박혀 있죠. 태어난 곳은 진주지만 아버님이 법무부 공무원이시라 대구 거쳐 초등학교 1학년때 수원 지동초로 전학와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다니며 쭈욱 살았어요. 아주 어릴적부터 지내서 수원은 익숙한 저의 고향이죠."- 금욕생활은."신학생때는 7년 동안 단련기간이어서 잠을 많이 못자지만 사제가 되면 자유롭죠. 사제 중에도 교구사제와 수도자 사제가 있어요. 수도자들은 엄격하게 살아야 하지만 교구사제들은 세상사람들과 만나고 그래야 되니 자기가 알아서 대체로 잘 자요. 물론 금욕생활이 갑갑한 것만은 아녜요. 일례로 독일에 신부·수녀님 휴양소가 있어요. 거기 수녀님 중 두 분은 봉쇄수녀원에 계셨어요. 원래 밖에 못나오는데 특별히 휴양나오신거죠. 마침 본명축일 파티를 준비하는데 사회진출 수녀님들은 당황하고 쭈뼛쭈뼛하는데 봉쇄수녀원 수녀님들은 춤을 춰야지 하며 굉장히 자유롭고 막힘이 없었어요.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았죠. 오직 하느님만 찾는 영혼이 더 자유롭고 맑아요."- 사제 후 달라진 점."첫째 여자한테 접근 못한다는 점.(웃음) 대학때는 가톨릭학생회 활동하며 수원교구 대학생연합회 회장을 했었죠. 당시 주변에 여학생들이 많아 축제때 파트너 걱정은 안했어요. 그렇지만 그때도 여자보단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 더 컸었던 것 같아요. 나의 정원에는 두 그루 나무가 있다. 결혼 혹은 사제가 되는 쪽.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면 결혼을 못하게 돼있더라구요. 여자를 만나서 그런 얘기를 하면 누가 좋아하겠어요(웃음)."- 뒤늦게 쉽진 않으셨을텐데."처음 2년 동안 신학 공부하는게 정말 힘들었죠. 그전 10년 동안 공부한 공학은 돈과 경제성을 중요시했었어요. 완전히 공돌이였죠.(웃음) 신학교에서 형이상학 수업을 받는데 신존재 증명에 대한 답을 썼는데 공학적인 사고가 박혀선지 제가 쓴게 다 거짓말인 거예요. 내가 여기 왜 왔나 회의가 들었죠. 그때 3번 정도 짐싸서 나오려고도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당시 견디기 힘들었을 때 6시 기상인데 규칙을 어기고 5시에 일어났어요. 한 시간 동안 미적분 문제 하나를 다 풀고 나면 머리가 편해졌어요. 다행히 안 들키고 잘 넘어가서 사제가 됐죠."- 올바른 신앙은."광신은 경계해야 하죠. 이성과 신앙의 두 날개가 골고루 펼쳐져야 돼요. 한쪽만 강하면 제대로 날지 못하고 제자리만 빙글빙글 돌게 돼요. 저도 동료 사제들한테 야단을 칠때가 있어요.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게을리할때죠. 그게 없어지면 권위만 남아요. 남을 이해하지 않고 맹신적으로 되면 안타깝죠."- 타종교에 대해선."타종교 다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가톨릭교회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5년) 이후 교회일치운동으로 타종교와의 대화창구가 열렸어요. 불교, 이슬람은 악마의 종교가 아니라 거기에 있는 사람을 먼저 봅니다. 어떤 신학자가 신학은 궁극적으로 인간학이라고 표현했어요. 옳다고 생각해요. 하느님에 대해서 깊이 연구할수록 이 사람이 타종교라고 해서 무시하면 하느님을 무시하게 되는 거예요. 종교간의 대화는 협상이 아니에요. 그 사람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요. 그 종교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진리를 인정해주고 우리의 진리를 당당하게 보여주는 거죠. 우위를 가르는 게 아니에요. 종교도 문화예요. 타종교와의 대화로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면 하느님의 은총이죠."- 마지막 한 말씀."가치관적으로 보면 물질만능이 너무 우리를 사로잡고 있어요. 그래서 물질이 결핍되면 사람이 쉽게 생명을 포기하거나 사람을 경시하게 된대요. 사실 물질은 아무것도 아닌데. 사람 자체의 가치를 좀 더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신학적으로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이에요.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그 안에는 찌그러진 하느님의 모상이 있죠. 생명과 사람을 중시했으면 해요."한국 천주교회는 16개 교구에 34명의 주교(추기경 1명, 대주교 5명, 주교 28명)가 있다. 현직 주교는 23명(추기경 1명, 대주교 2명, 주교 20명)이며, 은퇴주교는 11명이다. 그중 수원교구는 1963년에 설립, 이용훈 주교가 제4대 교구장을 맡고 있고 이성효 보좌주교는 그를 보좌한다. 관할 지역은 서울과 인천을 제외한 한강 이남 경기도 지역으로 75만여 명의 신자가 있다.

2011-05-15 경인일보

[인터뷰 "그"]자격논란 우려 깨고 재평가 받는 이종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

[경인일보=대담/장철순 인천본사 경제부장·사진/김범준기자·정리/김명래기자]1차 공모에서 탈락한 후 2차 공모에서 단독추천으로 제3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으로 임명된 이종철(51) 청장. 감사원 출신이 투자 유치, 국제비즈니스, 도시 개발 등의 업무를 과연 제대로 해낼 수 있겠느냐는 우려섞인 자질시비에 이어 2차 공모 당시 임용 부적정이라는 행정안전부의 감사결과로 적격시비까지 일었던 인물. 그러나 최근 송도국제도시에 삼성 바이오메디파크 유치에 이어 세계대학평가 90위의 벨기에 겐트대학교와 송도분교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는가 하면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대형프로젝트들이 하나하나씩 풀리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젊은 패기와 열정을 갖고 꼬여있는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산적한 현안과 씨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경제자유구역 활성화의 걸림돌, 해법 등을 들어봤다.- 이 청장은 감사원 출신으로 외부에서 경제자유구역문제를 들여다본 경험이 있다. 인천경제청장이 돼서 보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나."감사원에 있을 때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입장이 아니었다. 추진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것을 따지는 입장이었다. 이제는 비즈니스 모델을 직접 풀어가야하는 입장이다. 와서 보니까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많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고생한다는 생각도 한다. 무엇보다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당하지 않게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규정만 바라보면 문제가 안 풀리겠다는 생각도 있다. 어찌됐건 과감해야 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정부의 통상적인 업무가 아니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개척하는 업무다."- 경제자유구역 개발과정에서 기관간 업무협조가 안되는 게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감사원 출신의 청장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청라지구 첨단산업단지(IHP) 예정 부지 매각 문제가 대표적으로 업무 협조가 안 되는 부분이다. IHP 예정지의 절반가량(57만㎡)은 땅주인이 농어촌공사다. 2006~2007년까지만 해도 농어촌공사가 이 땅을 '취득원가로 LH에 넘기는 합의가 있었다. 그때 LH가 매입하지 않고 질질 끌다가 2008년부터 인수하려니까 농어촌공사가 감정평가 얘기를 하고 있다. 이로인해 기반시설도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이 땅은 과거 쓰레기매립장이었다. 두 기관의 명분싸움 때문에 사업만 골병드는 양상이다. 제 3연륙교 문제도 그렇다. 2009년 감사원에 있을 당시, 국토부는 무조건 안 된다고 했고, 인천시는 무조건 하자고 했다. 감사원이 협의를 부쳐 타당성용역 조사를 한 뒤 결정하자고 조정했다. 하지만 MRG(최소운영수입보장)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이 사업을 착수할 수 없다. 해결구조가 복잡하고 쉽지 않다. 솔직히 영종도가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하는 데 민자사업을 적용한 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공항고속도로는 재정사업으로 추진되다가 민자유치법이 제정되면서 1호 사업으로 적용됐다. 그때 교통량이 부풀려졌고, 민자협약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국내 1위의 글로벌 기업 삼성이 신수종사업 적합지로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를 선택했다. 유치과정을 설명해 달라."경제청장 임명 직전인 지난해 6월 말 국회가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퍼뜩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됐으니, 대기업들이 세종시로 안 가도 되겠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김태한 삼성 미래전략실 부사장을 만나 점심식사를 했다.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됐는데, (신수종사업 부지는)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물었더니 김 부사장은 '갈 데 많이 있다'고 답했다. 5대 신수종 사업 중 바이오 사업 입지에 대해 물었더니, '기흥에 땅이 확보됐고 설계까지 해 송도는 어려울 것 같다'고 김 부사장이 말했다. 삼성이 처음부터 송도를 염두에 둔 건 아니다. 삼성과 접촉한 뒤 송영길 인천시장께 '확률은 높지 않은데, 계속 대화해보자'고 했다. 이후 송 시장이 직접 삼성쪽에 연락해 송도 입주 의사를 타진하면서 물꼬가 트였다. 9월이 되자 삼성이 '송도를 대안 중 하나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9월 말께 삼성측에서 인천경제청에 처음 찾아왔다. 삼성은 보안 유지를 강조했다. 그래서 모든 회의는 경제청 직원들이 삼성 본사에 찾아가서 했다. 삼성이 어마어마한 자료를 요구했다. 트럭 한 대분에 채울 정도의 자료가 작성됐다. 수도권 규제법 때문에 삼성 단독입주보다는 외국기업과의 합작을 유도했다. 고심끝에 삼성은 12월 말에 사실상 송도행을 결정했다."- 삼성 유치 이후 송도국제도시에 활기가 도는 것 같다. 다른 대기업의 러브콜은 있나."지금도 굉장히 중요한 딜이 진행되고 있다. 이게 되면 송도는 바이오 메카로 자리잡을 것이다. 또 삼성 이외의 다른 대기업을 유치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서비스 분야의 대기업이 들어오면, 단순히 기업 사무실만 제공하는 게 아니고 기업 타운을 조성하려고 한다. 오피스 빌딩이 대규모로 들어오고, 필요한 만큼 땅을 주고, 직원들이 여기와서 살 수 있도록 특별분양과 직원용 임대주택을 허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규제를 풀어야 한다. 작년에 인천으로 서울본사를 옮긴 포스코건설도 이 문제로 애 먹었다."- 최근 경제청장 채용 과정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행정안전부 감사 결과가 있었는데."당락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오류였다면, 이건 문제를 삼고 해당 직원을 징계해야 한다. 그런데 고의성이 없고, 순위가 안 바뀌었다. 일부 행정 실수가 있었으니 기관주의 정도 하면 될 사안이었다. 실체적 내용 변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청라경제자유구역은 아파트만 들어서 베드타운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은데."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우선 사업시행자인 LH는 하우징과 도시개발업무를 주로 하지 투자유치는 전문이 아니다. 큰일이다.(긴 한숨) LH는 택지개발하고 도시개발해서 투입한 비용 이상만 갖고 나가면 끝인 기업이다. 경제자유구역 활성화에 열정을 바치고 헌신할 기업 구조가 안 돼 있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청라 개발 콘셉트가 비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너무 앞서나가 있다. 국제금융단지 조성은 지금 현실로는 어렵다. 사업시행자는 LH고, 지구 활성화 책임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있다. 서로 다른 동기를 가진 두 개 기관이 이중적으로 중첩돼 있다. 이게 청라지구를 답답하게 하는 구조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인천경제청장에 오자마자 LH에 '청라지구 땅을 무상으로 주든지 싸게 내달라'고 요구했다. 청라지구에서 LH는 이미 조성비 이상의 돈을 확보했다. 수천억원의 추가 이익이 발생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LH측은 '청라지구와 영종지구 계정이 통합돼 있다'고 했다. 청라에서 남은 돈을 영종에 쓰면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땅에 대한 소유권은 못 받더라도 투자유치는 인천경제청이 전담하는 구조를 짜보려고 한다. LH는 기반시설 조성과 택지분양까지만 하고, 나머지 개발계획, 실시계획, 투자유치 등은 인천경제청이 주도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LH의 경제자유구역 투자유치 조직이 어디에 있나 보라. 인천이 아닌 분당에 있다. 될 수가 없는 구조다."- 경제자유구역인 영종지구도 정체돼 있다. 대표적으로 용유무의복합도시 조성사업은 10년이 지나도 해법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용유무의사업은 일단 지금 청사진대로 끌고나갈 생각이다. 이 사업을 위한 SPC(특수목적회사) 조성이 목표다. 인천도시개발공사가 SPC에 출자를 승인받은 날로부터 2개월 안에 구성하겠다고 주민들에게도 말했다. 절차가 빨리 진행돼야 하는데 너무 더디다. 그래서 외국 투자자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다. 투자유치 행정을 하는 사람은 '시민 신뢰'와 '투자자 반응'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번복되면 안 된다. 투자의 맨 밑마닥은 신뢰다."- 밀라노 디자인 시티 사업은 이탈리아 대통령까지 행사에 참석할 정도로 국제적 관심이 모아진 프로젝트였는데, 무산됐다. 어디서부터 망가진 건가."외자유치에 실패한 게 가장 큰 요인이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피에라인천전시복합단지주식회사(FIEX)가 제시한 조건으로 거대한 사업을 추진하기가 어렵다고 시장에서 판단했다. 이탈리아측에서는 '상당히 실망스럽다'는 의사를 우리쪽에 여러차례 전달했다. 하지만 주식회사가 처한 문제에 인천시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일을 풀어가기 어려운 구조란 것이다."- 이 청장은 인천경제자유구역을 '국가 프로젝트'로 끌고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무슨 뜻인가."청장에 응모했을 때부터 '인천경제자유구역은 내셔널 프로젝트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모든 돈과 리스크를 인천시가 책임지는 구조로 돼 있다. 하지만 인천시는 용빼는 재주가 없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이 내셔널 프로젝트가 되면 청라·영종지구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부지를 매입한다든지 LH와 딜을 할 수 있다. 투자유치용지를 싸게 공급해야 한다. 지금은 토지가격이 비싸고, 땅이 LH소유다보니 인천시는 중간 거간꾼 비슷하게 돼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실무형 업무스타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전과 다르게 도입한 건 무엇이 있나."현안조정회의를 만들었다. 주요 결정을 여기서 다 한다. 간부들 사이 정보 공유가 이뤄지고, 의사결정이 빨라졌다. 8개월정도 했는데, 잘 정착이 돼 많은 안건이 올라온다. 무엇인가를 요구했을 때 리스판스(대응)를 빨리 해주는 것을 원한다. 제 성격 자체가 리버럴하고 액티브하다. 권위의식같은 게 없다. 아무리 폼을 잡으려해도 폼이 안 난다.(웃음)"

2011-04-20 김명래

[인터뷰 "그"]송도 잠깨우는 이종철 인천경제청장

[경인일보=김명래기자]"인천 송도국제도시는 분명 바이오 메카가 될 것입니다. 최근 삼성의 신수종 사업 중 바이오 분야가 송도에 유치된데 이어 또다른 기업과 얘기가 오고가고 있어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관련기사 9면한동안 침체된 송도국제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이종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은 "대기업 유치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며 "중앙정부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청장은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 '그'에서 "현재 인천경제자유구역은 개발 과정에서 얽히고 설켜있는 각종 문제점과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하는 일이 급하다"면서 "특히 기관간 갈등으로 사업이 표류하는 사례도 상당수에 달한다"고 밝혔다.청라지구 베드타운 전락 우려와 관련 그는 "도시개발의 콘셉트가 잘못돼 있고, 사업시행자인 LH가 투자 유치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안돼 있다"며 "LH는 기반시설과 택지 분양까지만 하고, 나머지 개발계획 및 실시계획, 투자유치 등은 인천경제청이 주도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그는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재정이 취약한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할 것이 아니라 내셔널 프로젝트가 돼야 기관간 갈등, 재원 조달, 투자 유치 등이 수월해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011-04-20 김명래

[인터뷰 "그"]'성악도 새삶' 찾은 수원의 야식배달부 김승일씨

[경인일보=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정리:김선회기자·사진:김종택차장]또 한 명의 남자 신데렐라가 탄생했다. 야식배달부 김승일(34).지난해말 SBS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자신을 야식배달부라고 소개한 그는 오페라 투란도트의 주제곡인 '네순도르마(Nessun dorma)'를 열창했다. 그의 노래가 흐르자 방송국 세트에 나와 있던 MC와 출연자는 물론 시청자들 대다수가 감동에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성악과 교수는 "평생 이런 음색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앞으로 100일간의 레슨을 통해 이 청년을 새롭게 탄생시켜주겠노라"고 공언했다. 그후 그는 어떻게 됐을까.4월 2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된 김승일씨의 모습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터틀넥 티셔츠와 점퍼 대신 단정한 턱시도를 입고, 곱게 분장한 모습은 영락없는 성악가의 모습이었다. 40인조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오 솔레 미오(O Sole Mio)', '그라나다(Granada)', '사랑의 찬가'를 여유롭게 부르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다시 한 번 놀랐다. 다소 불안했던 표정 대신 한층 여유로운 모습이었고, 노래할 때 아무 동작도 없었던 초기 모습과는 달리 음악의 리듬을 타며, 손짓과 몸짓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그에게 청중들은 열렬한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 김승일씨의 변화된 모습이 방송을 타기 직전 경인일보 취재팀은 용인의 한 연습실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수원에서 열릴 단독공연 준비를 하며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만나서 반갑습니다. 어떤 공연을 준비하고 계시나요."오는 4월 24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열릴 '내 생애 첫 번째 공연'을 위해 연습중입니다. '내 생애 첫 번째 공연'은 제목처럼 여러가지 여건 때문에 공연은 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무대인데요. 방송에서 선보였던 '네순도르마'를 비롯해 가곡과 팝송 등 총 5곡 정도 부를 예정입니다. 그리고 제가 중심이 되긴 하지만 저를 도와 몇몇 분들이 무대에 함께 서서 공연을 해주실 거구요. 공연 수익금은 전액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일 예정입니다."-어떻게 공연이 성사된 건가요."배우 조재현씨가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을 맡고 계신데요. 우연히 TV에 출연한 저를 보시고,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셨나봐요. 그래서 방송국을 찾아가 담당 PD를 만나셨고, 결국 저와 연결돼서 공연이 성사됐죠. 사실 제가 수원에서만 30년 넘게 살고 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야식 배달하면서 경기도문화의전당을 많이 쳐다보곤 했거든요. '언젠가는 저 무대에 한 번 꼭 서보겠다'고 다짐했는데, 그게 현실로 이뤄져서 꿈만 같습니다."-유년 시절과 학창시절이 궁금한데요, 어땠습니까."원래 고향은 전북 익산이구요. 목수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4살때 수원으로 이사와서 그때부터 죽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중동 건설붐이 한창일 때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면서 저희 4남매(3남1녀)들을 키우셨구요. 어머니도 틈틈이 일을 하셨어요. 집안이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아주 어렵지는 않았어요. 저는 중학교때부터 노래에 조금 소질이 있어서 가요를 많이 불렀어요. 웬만한 노래 경연대회에서는 학급 대표로 나갈 정도였죠. 그런데 고등학교(삼일고)에 입학해 우연히 축제 오디션에 참가했는데, 거기서 어이없게도 예선 탈락을 한거예요. 태어나 처음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죠. 하지만 그 이후에 선후배들과 함께 '모비딕'이라는 밴드를 결성해서 라디오 방송도 출연하고 그랬으니까 아무튼 그때 경험이 저에게는 약이 된 셈이죠."-그럼 원래 꿈이 성악가가 되는 것은 아니었군요."기타를 치게 되고 여러 가요를 섭렵하면서 김종서씨를 알게 됐구요. 그 분 노래를 많이 따라 불렀어요. 그런데 저희 고등학교 합창반 선생님이 제가 노래하는 것을 지켜보시더니 성악을 한번 배워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셨어요. 전 원래 졸업후 바로 취업하려고 실업고에 진학한 것인데, 그때 제 운명이 바뀐게 된거죠. 대학 입시를 앞둔 5~6개월 전쯤부터 성악과 교수님께 레슨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성악이 참 재미없더라구요. 그러다보니 레슨도 자주 빠지게 되고 성악을 포기할까도 여러 번 생각을 했죠. 하지만 주위에서 '잘한다 잘한다' 자꾸 하니까 조금씩 흥미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이 길을 가야겠구나하고 생각했어요." -방송에서 밝혔듯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대학생활은 고등학교랑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동기들은 대부분 예중·예고를 거쳤기 때문에 기본 발성, 호흡, 음정 등 기본기가 잘돼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레슨 기간이 짧다보니 처음부터 좀 차이가 있었죠. 게다가 음악하는 친구들은 거의 다 유복한 편이었어요. 그런 문화적 차이때문에 수업 끝나면 바로 사라지곤 했죠. 그러다보니 1학년때 성적은 별로 안좋았어요. 그러던 중 1학년 말에 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셨어요. 그때 저는 학업을 중단하는 것이 낫겠다싶어 자원입대를 하게 됐습니다. 다행히도 군악대에 들어가 성악은 계속할 수 있게 됐죠. 제대 후에는 자진유급해서 2학년이 아닌 다시 1학년으로 복학해 정말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어요. 필기는 물론 실기 모두 1등 할 정도로. 그런데 호전되셨던 어머니께서 다시 쓰러지셨죠. 그땐 가정형편이 썩 좋지 않아서 학업을 아예 그만 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학을 그만 두고 어떤 일을 했습니까."학교를 그만 두고 어떤 일을 할까 하다가 당시에 환율 차이가 10배 이상 나니까 무작정 일본에 가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는 사람도 없었는데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로 일어를 한 것만 믿었죠. 막상 관광비자로 일본 도쿄에 가서 일자리 찾아봤는데, 취직이 결코 쉽지 않겠더라구요. 그래서 무작정 열흘간 돌아다니다 결국 일자리를 못찾고 귀국했죠. 그런 후에 서울 강북에 있는 한 주점에 웨이터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그 곳에서 큰 충격을 받았죠. 사람들이 몇 십만원은 쉽게 쓰는 것을 본거예요. 그때 속으로 '아 돈이 이런 쪽으로 이렇게 도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일한 첫날 수입이 25만원이었으니까 말 다한 셈이죠. 그 이후에 수원에 있는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 보조를 했어요. 그리고 택배, 퀵서비스, 부동산 중개보조원, 통닭 배달 등 돈만 많이 준다면 닥치는대로 일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야식 배달과 인연을 맺었는데, 열심히 일하면 성과급도 있고, 일을 하다보니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맘도 편하고 해서 7년이나 일하게 됐습니다."-TV 출연으로 유명인이 됐는데, 아직도 야식 배달을 하십니까."방송으로 얼굴이 많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배달 주문을 할때 '김승일을 보내라'고 자꾸 전화하셔서 사장님이 일을 좀 줄여 주셨어요. 요즘엔 새벽 5시에 나가서 배달이 좀 줄어드는 오후에 퇴근해요. 그리고 사실 방송 출연을 했다고 해서 생계가 나아지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방송 나가기 전에 야식집 말고 다른 부업하려고 준비도 하고 있었거든요. 노점에서 옷도 팔까하고 생각했었구요. 그런데 얼굴이 알려지면서 그런 부업들을 포기해야 했어요. 지금은 음악공부에 좀더 치중하고 있는 중입니다."-방송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야식집 사장님 때문이라고 하던데요."제가 어느 날 휴대전화기에 제 노래를 녹음해서 사장님께 들려줬어요. "아 이 분 참 잘하지 않아요? "라면서요. 그때 사장님이 "어 ! 굉장히 잘하네"하고 반응을 보이셨죠. 그래서 그 주인공이 저라고 하니까 장난삼아 '스타킹'에 연락하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얼마후에 방송 작가들한테 실제로 연락이 왔어요. 그 계기로 TV에 나가게 됐구요. 방송 출연후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야식 배달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주위에서 그러더라구요. 네 상태(인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너만 모른다구요. 그제서야 '아! 방송의 파장이 크긴 크구나' 하고 느꼈죠."-방송에서 레슨하기로 해 준 교수가 불명예스럽게 하차했는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된 겁니까. "그 교수님께 레슨을 3번 정도 받았는데, 갑자기 그 분이 중도하차하게 되셨죠. 인터넷 게시판에는 '안되는 놈은 뭘 해도 안되는구나'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 글에 상처도 받았지만 제작진들은 물론 저를 응원해주시는 많은 팬들이 걱정해 주셔서 제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얼마후 저의 사정을 알게 되신 성악가 배재철 선생님께서 새로운 멘토로 참여해 저를 도와주시게 됐어요. 사실 그 분도 갑상선 암에 걸려 노래를 못하실 만큼 어려움을 겪으셨는데, 그것을 극복하시고 현재 세계적인 테너로 꾸준한 활동을 하고 계시거든요. 그 분께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배울 예정입니다."-결국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우연히 시작한 성악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음악은 저에게 있어 꿈을 이뤄준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어서 아직은 두려움도 많습니다. 기회만 된다면 다른 아르바이트를 정리하고 음악으로만 승부를 걸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이 있었기에 제가 TV에 출연할 수도 있었고, 과분하게 큰 무대에 설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음악인으로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04-03 경인일보

[인터뷰 "그"]다시 태어나 첫번째 생일맞은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

[경인일보=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사진:임열수차장·정리:김선회기자]일본 지진사태와 원전폭발, 리비아의 내전으로 나라 밖이 시끄러운 요즘. '아덴만의 여명작전'으로 영웅이 된 석해균(58) 선장은 우리의 관심에서 차츰 잊혀지고 있었다. 그런데 경인일보 취재팀은 그가 병원에서 생일을 맞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고, 부상에서 얼마나 회복이 됐는지, 향후의 계획은 어떤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22일 오전 취재팀은 케이크와 작은 선물을 준비해 석 선장이 입원해 있는 아주대 병원을 찾았다. -건강이 많이 회복된 것 같다. 현재 본인이 느끼는 몸상태는 어떠한가."용변도 불편없이 볼 정도로 내부 장기는 거의 회복됐다. 다만 총상을 입은 왼손 손목과 다른 부위들은 좀더 지켜봐야 한다. 왼손손목이 다쳤을 때는 거의 절단된 것처럼 보였다. 끔찍했다. 그나마 수술이 잘 돼서 다행인데, 현재 손가락 2개는 감각이 살아났고, 나머지 3개는 아직까지 감각이 없다."-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환갑이다. 병원에서 생일을 맞은 소감은."기자분들께서 찾아와 생일을 축하해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동안 의사와 간호사들은 물론 영양사까지 꼼꼼하게 건강을 체크해줘서 무척 황송하고, 몸둘 바를 모르겠다. 평생 이렇게 병원에 오래 입원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분들께 누를 많이 끼친것 같다. 감사드린다."-최근 검찰수사에서 구출 당시의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는데."실제로 그랬다. 2월말까지는 전에 있었던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도 대수술과 마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기억력을 거의 회복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구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 달라. "청해부대 최영함에서 경고 메시지를 보내자 해적들이 나를 끌고 배 밖으로 나갔다. 해적들은 나를 방패삼아 우리 군인들과 대치하기 시작했다. 총성이 들려 나는 순식간에 해적들이 잠자기 위해 깔아 놨던 매트리스를 뒤집어썼다. 그러던 중 배에 총을 맞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상황이 너무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배에 총을 맞은 뒤, 얼마 안 있어 다리 쪽에 통증을 느꼈다. 그때도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아 총에 또 맞았구나'라는 느낌 정도였다. 하지만 제대로 걸을 수가 없어 기어다녀야 했다. 그 상황에서도 정신만은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총을 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한 명이었는지, 여러 명이었는지. 그냥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총격이 오고가고 해적들은 서로 살겠다고 도망다니며 총을 난사했다. 그래서 추가로 총상을 입은 것 같다. 확실한 건 그때 당시 해적들의 주 타깃은 나였으니, 내가 총을 많이 맞은 게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사실 처음 맞은 총알은 무릎 윗부분이며, 우리 해군의 유탄으로 밝혀졌는데."그 당시는 칠흑 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게다가 상황은 무척 혼란했다. 설마 우리 군인이 일부러 나를 맞혔겠는가. 작전 상황상 불가피한 사격이었을 것이다.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다. 다들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나와 똑같은 판단을 하리라고 본다."-그럼 사건 당시 어느 과정까지 기억이 나나."부상을 입고 기어다니다 군인들에 의해 구출받고 현지 병원에 옮겨질 때까지는 의식이 있었다. 속으로 '무조건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된다고 계속 되뇌었다. 병원에 도착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안심이 됐는지 그 때부터 의식을 잃었다."-구출 전 해적들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하던데."심하지는 않았지만 구타를 당하긴 했다. 처음에는 거의 안때렸는데, 내가 배의 속도를 늦추고, 계기판의 몇몇 부품을 고장내고, 배를 지그재그로 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해적들이 화가 나 구타하기 시작했다. 어떤 해적은 나에게 총을 겨누며 영어로 "Kiil you!"하며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래도 내가 눈하나 깜짝 안하자 배에 실렸던 화학약품 통을 폭파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나는 한국어로 "쏠테면 쏴봐라. 너도 죽고 나도 죽는거지"라고 응수했다. 결국 그 해적은 아무 것도 못하더라."-정말 죽음이 두렵지 않았나. "내가 평소 누구에게 지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 당시는 더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다. 어차피 목숨은 하나니까 두렵지 않았다. 소말리아에 끌려가서 죽으나 배 위에서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완강하게 저항하자 나를 방에 감금해놓고 외부와의 소통을 일절 차단시켰다."-해적에게 납치됐을 당시 외부에 어떤 식으로 연락을 했나."납치당하자마자 회사와 청해부대에 납치사실을 이메일로 알렸다. 청해부대는 나에게 현장상황을 알려달라고 했고, 나는 해적들의 인원, 위치, 무기 등을 상세하게 알려줬다. 초기대응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때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다면 구출은 쉽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청해부대에 의해 구출될 것을 확신했나."이메일을 보낸 후 청해부대에서 답신이 오기를 배의 진행을 최대한 지연시켜 달라고 했다. 그래서 기지를 발휘해 최대한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얼마 안 있어 레이더로 확인해 봤더니 3~4마일 뒤에서 우리 군함이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하지만 1차 구출 작전이 실패로 끝나고, 조금만 더 있으면 소말리아 해적본부로 들어가는 위기를 맞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구출되던 당일(1월 21일) 새벽 3시가 되자 당직 교대하는 해적들이 이제 귀환한다며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후 굉음과 총성 등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구출될 수 있다는 확신을 했다."- 이번 일 말고 혹시 전에도 해적들에게 당한 경험이 있나."예전 해적은 좀도둑 수준이었다. 지난 1999년 인도네시아에서 해적을 만난 적이 있다. 새벽 4시쯤 잠을 자고 있었는데, 누군가 칼을 들고 돈을 달라고 위협을 하더라. 마침 내 옆에 금고가 있었다. 당시엔 배에 오를때 습관적으로 1달러짜리 50매 정도를 묶어 몇뭉치씩 금고에 넣어놨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했던 것인데, 그 도둑은 100달러를 주었더니 내 손을 묶어 놓고 달아나더라. 줄도 느슨하게 묶어 놔서 쉽게 풀 수 있었다. 그래서 좀도둑은 두려운 게 없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설마 내가 당하겠나 하는 생각이 여지없이 깨진 것이다."-해군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번 작전에 도움이 됐나."그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4년간 부사관 근무를 한 것인데, 실제로 이번 작전에 도움이 됐다고 보기는 어렵고 20년간 현장에서 배를 몬 게 실제 도움이 됐다고 보는 편이 맞다."-왜 선장이 됐고, 그동안 어떤 배를 몰았나."주위에 배를 탔던 사람도 있었고, 군대에 있을 때 배탔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대 후 나도 배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집안이 워낙 가난해 내가 집안을 한번 일으켜 봐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1977년에 선원이 돼 본격적으로 배를 타기 시작했으며, 1995년 선장으로 진급해 2만t 짜리 유조선을 몰게 됐다. 이후 다양한 화물선들을 몰았다."-본인은 남들이 꺼리는 특수 화물선을 주로 몰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이번에 피랍됐던 '삼호주얼리 호' 같은 경우 화학약품인 인(P), 솔벤트 등을 싣고 운반했었다. 이런 약품들이 들어 있는 화물선은 운항 심사 기준이 까다로운데, 일례로 탱크로리의 염분농도가 2PPM을 초과하면 안된다. 그래서 다른 선장들은 운항이 편한 일반 화물선이나 유조선 등을 선택한다. 사실 다른 화물선보다는 특수 화물선이 임금이 높아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일을 자주 하다보니 이제는 심사 조건도 무난하게 통과하게 됐고, 회사측에서도 내 경력을 높이 사 계속해서 이런 선박들을 운항하게 됐다."-대통령까지 방문했을 정도로 국민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부담은 없는가."아주대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한 후 한참 지나서야 내가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통령께서 방문해 '감사하다'는 말을 했을 때는 가슴이 찡하고 이상했다. 국민들의 관심이 사실 많이 부담된다. 내가 그 정도로 관심을 받을 만한 일을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배를 모는 선장이라면 누구나 배를 지키기 위해 나처럼 했을 거다. 죽기를 각오하고 해적들에게 덤볐으니까 살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퇴원후 다시 배를 탈 생각이 있나."물론 조건만 된다면 배를 다시 타고 싶다. 하지만 몸이 회복된다 해도 배를 탈 수 있는 신체조건이 되지 않을 것이다. 승선할 수 있는 신체조건은 무척 까다로운 편이다. 현재로선 다시 배를 탄다는 것은 100% 불가능하다고 본다. 앞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서 일하고 싶다.-해적들의 처벌은 원하나."재판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법적으로 죄에 대한 대가는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끝으로 회복을 기다려준 국민들에게 한 말씀 한다면."그동안 많은 분들이 성원해주시고 걱정해주셔서 생각보다 몸이 빨리 회복된 것 같다. 이국종 교수님을 비롯해 저를 치료해주신 아주대 의료진들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이 은혜는 앞으로도 잊지못할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취재팀에게 그는 군인식으로 거수경례를 했다. 인사를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자 "단체생활을 많이 해서 그게 몸에 밴 것 같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억양은 영락 없는 경상도 사투리였다. 영웅이 없는 시대에 국민들에게 희망의 의지를 던져준 그는 분명 '캡틴'이었다.

2011-03-22 경인일보

[인터뷰 "그"]'젊은 명장' 신태용 성남일화 감독

[경인일보=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정리:김종화기자·사진:임열수차장]"축구는 창의적인 플레이가 필요한 단체 운동이다."프로축구 K리그 성남 일화의 신태용(41) 감독은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명실공히 40대 명장 반열에 이름을 올린 지도자다. 언론에선 이런 신 감독의 선수단 운영을 '신태용 매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특히 신 감독은 지난해 AFC 챔피언스리그컵을 들어 올리며 '스타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는 프로축구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보란 듯이 깼다. 또 신 감독은 지난해 구단의 재정난으로 인해 국가대표 수문장 정성룡과 공격수 최성국, 용병 몰리나와 재계약에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5일 포항에서 열린 K리그 2011 개막 원정경기에서 포항과 1-1 무승부를 거두는 등 '신태용 매직'을 다시한번 재현했다.'축구는 창의적인 스포츠다'라는 철학으로 두 시즌 만에 팬들을 사로잡은 신 감독. 40대 감독의 선봉에서 K리그 흥행을 이끌고 있는 신 감독을 만났다.-올해로 성남을 맡은 지 3번째 시즌이다. 어떤가."성남 선수로 프로에 데뷔해 지도자까지 맡았는데 벌써 3년째라니.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팀을 맡으면서 성남의 축구 철학을 선수들이나 코칭 스태프 모두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올 시즌도 가슴이 설렌다."-어제 K리그가 개막했다. 첫 경기 소감은."기량차이에도 불구하고 1-1 무승부를 기록했다는 것은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남궁웅 선수는 올해 키워 보려고 개막전 주전으로 기용했는데 부상으로 전반기 시즌 출장이 불투명하게 돼 아쉽다. 정성룡의 이적으로 인해 새롭게 영입한 하강진도 위기 상황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잘 막아줬다. 인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성남 구장에는 왜 관중이 없다고 생각하나. 구단이냐, 성남시민의 문제냐."양쪽 다 문제다. 구단은 공격적인 마케팅 부족이 아쉽다. 팬을 경기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는 수원 삼성과 FC서울을 보면 비교되지 않겠는가. 성남은 경쟁 구단의 마케팅 운영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 구단 성격에 맞는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성남 시민들의 문제보다는 한국 정서를 놓고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유럽과 남미도 가봤지만 오로지 축구로써 모든 모임이 형성된다. 하지만 한국은 정치도 알아야 하고 야구와 축구, 농구 등 모든 분야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렇다 보니 축구에 대한 국민들의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일화 구단 하면 박종환 감독 때 축구가 재미있었다고 하던데, 지금은 어떤가."경기장에 와보면 알지 않는가. 경기도 재미있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 선수 발굴이다. 팬들은 이름있는 스타 선수들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다. 실질적으로 여성 팬 10명이 오면 남성 팬들은 50명 이상이 온다. 이들을 경기장으로 이끌 수 있는 스타가 필요하다."-그렇다면 신 감독의 축구 철학은 무엇인가."축구는 창의적인 플레이가 필요한 단체 운동이다. 그라운드 내에서는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상황들을 선수 스스로 생각해 만들어가야 한다. 감독이 요구하는 작전도 그라운드 내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따라 맞춰서 변형해 운영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프로야구는 600만 관중을 넘어 1천만 관중 시대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축구는 그렇지 못하다."야구와 축구의 종목 특성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우선 두 종목의 관전 포인트가 다르다. 야구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경기장에서 음식과 음료를 즐기면서 대화를 나누며 볼 수 있는 스포츠다. 하지만 축구는 전후반 90분 내내 긴장 속에서 봐야 한다. 축구의 승부처는 한순간에 빠르게 지나간다. 그 순간을 놓치면 90분 동안 경기장에서 축구를 본 게 아쉬울 수밖에 없다. 가족 단위 또는 연인, 친구와 함께 경기장을 찾아 즐기는 한국의 프로스포츠 관람 문화를 놓고 보면 축구보다는 야구가 더 잘 맞는 게 사실이다."-그럼 프로축구는 관중을 끌어들일 방법은 없나."축구만의 매력이 있다. 이는 더 재미있는 축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수들에게 페어플레이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팬들이 경기 시간 내내 축구에 빠져들 수 있도록 빠른 축구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나는 선수들에게 "동업자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자주 말한다. 승리에 집착해 무리한 플레이로 상대 선수에게 부상을 가하거나 서로 몸싸움을 벌인다면 축구팬에게 외면당한다. 몸싸움을 고의로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선수들이 이를 지키지 않을 때는 바로 교체해 벤치로 불러들인다."-'스타 선수 출신은 명감독이 되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신 감독도 스타 출신 아닌가."아니다. 이제는 충분히 스타 선수가 명장이 될 수 있다. 예전에는 자기 명성만 믿고 안주하려는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언론 매체나 주위 상황을 비춰볼 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지금 선수와 감독들은 선수는 선수고, 감독은 감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은 인터넷이나 안티 팬들이 노력하지 않는 감독을 가만두지 않는다. 스타플레이어는 분명히 다른 선수보다 무언가 더 노력해서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스타플레이어는 명감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옛말이다."-구단의 재정 문제로 지난 시즌 뒤 주축 선수들이 빠져나갔다. 어떤 생각이 들었나."아시안컵을 나가기 전 구단에 꼭 정성룡, 최성국, 몰리나 등 주축 선수들을 잡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 정성룡, 최성국 등 주요 선수들이 떠난다는 소식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도 다른 데서 영입 제의가 들어오면 가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스트레스는 정말 무섭다. 지난해 12월 25일 홍명보 자선 축구 '셰어 더 드림 풋볼매치 2010'에서 사령탑을 맡기로 했는데 전날 숙소에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정말 속이 탔다. 아시아 챔피언인 팀이 이래서 되나 한숨도 많이 쉬었다. 그러나 나를 믿고 온 선수들이 있는데 다시한번 해 보자고 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생각을 바꿨다. 일본 전지훈련을 거치며 '어, 그래도 15~16명은 충분히 나오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젠 이전처럼 축구를 재미있게 즐기려고 한다. 어떡하겠나 웃으면서 살아야지(하하)."-어려운 질문이다. 구단의 모태가 통일교다. 외부 소문처럼 통일교에서 종교적인 색채를 강요하지 않나."그런 건 전혀 없다. 오히려 나는 불교다. 구단이나 재단 측에서 개종을 요구한 적도 없다. 구단에서도 신앙은 개인적인 부분으로 간주하고 있다. 몇 년 전에 문선명 총재와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종교에 대해선 한마디도 안했다. 오로지 축구만 열심히 하라고 했다. 외부에서 보는 건 오해다. 우리 선수 중에 기독교나 가톨릭을 믿는 선수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축구를 위해 성남에 온 것이지 종교 때문에 온 것은 아니다. 축구는 축구로만 봐 줬으면 좋겠다."-만약 구단에서 재정적인 문제를 떠나 선수 영입을 하라면 어떤 선수를 뽑고 싶은가."(웃으면서)하도 빈자리가 많아서 고민된다. 상무에 간 우리 팀 소속 (김)정우랑 운동하고 싶다. 정우가 잘 따르고 내가 원하는 축구를 잘한다. 그리고 용병 중에선 몰리나를 다시 데려오고 싶다.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오르게 만들어 준 선수 아닌가. 몰리나가 서울로 가면서 '이제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축구를 했지만 성남에서 가장 마음 편히 운동했다. 성남에 끝까지 남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마음을 가져준 선수가 너무 고맙다. 축구 실력도 한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인 선수 중에서 가장 낫다고 생각한다.- 감독으로 꼭 같이 운동을 해보고 싶은 선수가 있나."어느 지도자든지 다 마찬가지일 거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활약중인 리오넬 메시를 꼽고 싶다."-국내 축구 감독 중 명감독을 꼽는다면."초보 감독인 나한테는 모든 분이 배워야 할 점이다. (한참 고민한 끝에)꼭 한 사람 꼽으라면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을 꼽고 싶다. 항상 생각하면서 선수단을 잘 이끈다. 같이 있어 보지는 않았지만 선수 마음을 잘 읽고 상대에 따라서 전술도 잘 구상한다. 아직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지만 그 점은 꼭 배우고 싶다."-감독을 하면서 가장 화났던 때는."개인적으로 선수들에게 화내는 것을 싫어한다. 선수들에게 화내면 혼난 선수는 자신의 축구를 할 수 없다. 지난 2009년 후반기 경남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전반에만 3골 먹고 나오자 미칠 것 같았다. 선수들에게 화를 내자 갑자기 이런 모습을 접한 선수들이 당황했다. 결국 1-4로 패했다. 하지만 그 다음 경기에서 3-0으로 이기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했다. 1년에 1~2번은 분위기 반전을 위해 이 카드를 꺼내지만 잘 안하려고 한다."-스트레스 받았을 때 어떻게 하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골프와 여행도 가지만 시합 전에는 발마사지를 받으면서 긴장을 푼다. 중요한 경기 전에는 꼭 발마사지 받고 편안하게 자려고 한다. 감독 첫 해 혼자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건 몸이 많이 망가지는 것 같더라. 마사지는 가족들과 함께 받는다.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도움이 된다."-가족 이야기 좀 해 달라. 자녀들도 운동하는가."아들 둘을 두고 있다. 큰 아이 재원(중1년)이는 호주에서 운영하는 신태용축구학교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둘째도 지난 2일 성남 중앙초 축구부에 입단했다. 아이들이 하고 싶다고 해서 하라고 했다. 아이들 인생이니까. 아이들이 축구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것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원이는 방과 후 축구를 하니까 대학 가서 공부할 수도 있고 자질이 보이면 축구 선수로 키울 수 있지 않겠나. 아직까지는 직접 가르쳐 본 적이 없지만 자질이 보이면 붙잡고 시키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단계가 아니다."-신 감독은 축구 외에 뭘 잘하는가. 머리도 좋다고 들었다."경기대 대학원에서 스포츠 마케팅으로 박사 수료까지 받았다. 논문만 남은 상태다. 이런 질문 많이 받는데 솔직히 초교 3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축구 외에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마 껄렁껄렁하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축구는 인생이자 전부다."-팬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올해에는 힘든 시즌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젊고 패기가 넘친다. 그렇기에 이번 시즌이 더 기대되고 재미있을 것 같다. 한국 축구도 이번 시즌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시기인 것 같다. 선수들과 함께 경기장에서 재미있는 축구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겠다. 팬들도 아낌없는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

2011-03-06 경인일보

[인터뷰 "그"]취임 한달 맞은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경인일보=대담:최우영 정치부장/정리:이호승/사진:전두현기자]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3선에 걸쳐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국회 상임위(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를 한 차례도 바꾸지 않았다. '준비된 장관'이라는 수식어가 정 장관에게 붙는 이유다. 2018년 동계올림픽 후보도시인 강원도 평창을 방문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조사평가위원회가 현지실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정 장관의 치밀한 사전준비가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곳곳에서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취임 한 달을 맞은 정 장관을 지난 25일 문광부 장관실에서 만났다.-평창 IOC실사단의 현지실사를 어떻게 보는가. 기대를 해도 되겠는가."1차 시험을 본 셈이다. 틀리지는 않고 잘 봤다는 생각이다. 실사단이 실사결과를 110여명의 IOC위원들에게 전달하고, 7월 6일 더반에서 결과가 나오는 만큼 그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평창이 타 후보 도시에 비해 우월한 부분은 무엇인가."이미 대회 시설의 절반 이상이 완성됐다는 점을 실사단도 높게 평가했다. 또 정부의 강력한 지지가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도 현장에 내려갔고, 국무총리도 프레젠테이션에 직접 참여하고 저도 일주일 내내 평창에 있었다. 실사단도 우리 정부의 열의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점도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특히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활성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도 큰 차이점이다."-일주일간 실사단과 함께 한 주무부처 장관으로서의 '느낌'은 어떤가."구닐라 린드버그 위원장이 마지막 현장 실사할 때 수준 높은 프레젠테이션을 해 만족스럽다는 말을 했고, 실사단은 2천18명의 대합창단 합창을 보면서 감동받고 눈물을 글썽였을 정도였다. 140만명 국민들의 유치 서명에도 감동을 받았다. 실사를 잘 받는다고 유치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1차 관문을 잘 통과했다고 본다. 아직 수많은 프레젠테이션이 남아있고, 특히 5월 런던에서 IOC위원을 상대로 하는 테크니컬 프레젠테이션이 가장 중요하다. 갈 길이 멀다."-실사기간 중 정 장관이 크로스컨트리 시범을 보인 장면도 보도됐는데 평소에 동계 스포츠를 즐기는 편인가."스키는 타지만 크로스컨트리는 처음이었다. 굉장히 힘들었다. 운동이라면 모두 좋아한다. 요즘엔 테니스를 하지만 이전에는 인라인스케이트·자전거도 타는 등 운동이라면 닥치는 대로 한다."-실사를 끝내고 아쉬운 점은 없었는가."전혀 없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의 실무진과 대통령으로부터 장·차관, 지방정부, 지역 주민 등 국민 모두가 혼연일체됐다고 생각한다. 정말 준비를 잘했다."-정 장관은 이번에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지 못하면 국가적 수치라고까지 했다. 오히려 부담되지 않나."3~4년 전만 해도 누가 피겨스케이팅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딴다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걸 넘어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금메달이 나오고, 심지어 봅슬레이·루지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는 등 우리나라의 동계스포츠 경기력이 급상승했다. 이 자체가 국민들의 열망이 반영된 것이다. 경제력 역시 세계 수준급으로 올라섰다. 동계올림픽을 유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유치가 안 된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그런 생각 갖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평창은 세 번째 도전이다. 세 차례나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일각의 비판도 있다."일단은 한번 칼을 뺐으면 끝까지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한 번, 두 번 안 됐다고 해서 세 번째 도전할 가치가 없다는 건 언어도단이다. 가치가 있다.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65조원의 직·간접 효과가 있다고 하고, 상대적으로 낙후된 강원도에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두 번의 실패를 했지만 헛된 실패는 아니다. 그런 과정이 있었으니 국민들이 동계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런 관심이 지난 동계올림픽 메달 순위 5위라는 성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또 지금만 해도 동남아 관광객들이 스키 등을 즐기기 위해 한국을 많이 찾고 있다. 관광산업에 또 다른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다."-화제를 바꾸겠다. 청문회 당시 제기된 남한강 예술특구 사업과 관련, 장관의 취임으로 오히려 사업정비에 역차별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청문회에서도 나왔지만 무슨 문제가 있었나. 우리 지역구 사업이라 해서 안 된다면 할 수 있는 사업이 없다. 양평이 제 지역구가 아니라고 해도 했을 것이다. 그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국민들에게 좋은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 남한강 예술특구 일대는 다른 지역과 다르게 600~700명의 예술인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창작 스튜디오를 갖고 활동하고 있다. 인적 인프라가 마련돼 있는 지역을 특구로 지정, 발전시키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 이미 많은 화가, 작가들 수백명이 활동한다. 그런 지역에 인프라를 구축하는 건 당연하다."-정치적 시각에서 보면 장관의 지역구인 가평지역 주민들의 상대적 불만도 있을 것 같다."이미 가평은 2008년 세계 캠핑 캐러반을 유치했다. 내가 이탈리아 등을 2년간 다니면서 유치했고, 250억원을 투자해 자라섬·연인산 캠핑장을 조성하지 않았는가. 인프라를 구축해서 우리나라 레저문화의 트렌드를 바꿨고, 그 중심지가 가평이 됐다.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캠핑장이 가평에 몰려 있다. 더불어 재즈페스티벌과 어우러져 시너지효과를 만들어냈다. 또 관광공사에서 가까운 서울 근교에 당일코스가 가능한 관광코스를 개발 중인 곳 중 하나가 가평 와인밸리다. 지금까지는 양평군민들이 오히려 불만을 가졌다. 우리나라 미술의 발전을 위해 진행한 것이지만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정병국이가)그런 일도 했구나라는 게 알려진 셈이다."-장관 취임 이후 대국민 업무보고는 어떤 취지에서 시작했는가."같은 분야 상임위를 10년간 해 왔다. 하지만 내가 초선 때 지적했던 것이 고쳐지지 않고 있었다. 정부에서 좋은 정책을 내놓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선 문제를 제기하고 불만이 있다. 첫째는 공무원 인사시스템이 순환보직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2년이면 담당자가 바뀌고, 장관·의원이 바뀌니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진다. 현장의 소리와 늘 괴리가 있는 측면도 있어 그런 측면을 좁혀 보고자 한 것이다. 실질적으로 일을 하는 공무원들이 장관을 위해 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인 만큼 정책 고객인 국민의 의견을 들어보자는 취지다. 정책을 입안하면 국민이 생각하는 방향과 맞는지 직접 현장에 가서 보고하고 의견을 수렴하니 고민하고 만든 것인데도 보완할 게 있다. 큰 성과가 있다고 본다."-대국민 업무보고를 정례화할 생각인가."깊이 들어가야 하는 건 분야별로 더 깊이 들어가려 한다. 콘텐츠 분야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영화계의 불만이 많고, 최고은 작가의 사망으로 불거진 문화예술인에 대한 처우개선 문제도 현안이다.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오늘 저녁에는 영화 현장 스태프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얘기를 듣고자 한다. 의정활동을 10년 하면서 느낀 건 답은 현장에 있다는 거다."-문광부 장관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방향이 있다면."모두 다 중요하다. 크게 봤을 때 문화·예술이 지니고 있는 본연의 힘을 발휘하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문화예술의 힘은 강하다. 생각·이념·종교·언어는 달라도 예술을 감상하는 것은 모두 같다. 그게 예술의 힘이다. 문화예술은 사회를 통합하는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선 예술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문화 예술의 사회통합기능을 회복시킨다면 예술가들은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다. 그 환경을 조성하는 게 내 역할이다. 또 다른 현안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문화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려면 선택·집중을 통해 콘텐츠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 바탕하에 예술가들에게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실제 환경은 엄청난 규제가 상존하고 문화·예술가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모든 산업에 있어서 발목 잡는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 문광부 관련 규제 중 개선해야 할 것을 살펴보니 약 130건에 달한다. TF팀을 구성해 개선작업을 하고 있다. 그게 시급하다. 또 다른 하나는 문화적으로 소외된 사람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문화 소외감이라는 건 박탈감이 더 커질 수 있다. 문화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그쪽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문화 예술인의 처우 개선을 위한 방안이 있는가."문화예술인들의 80%가 월 100만원이 안 되는 수입으로 산다. 연극인들의 50%는 월 수입이 25만원에 불과하다. 문화예술로 인해 부를 얻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정부가 출연해서 기금 혹은 예술인 복지재단을 만들 생각이다. 우선 4대보험을 처리해야 하고, 여러 기준을 정비해 어느 정도 활동하다 은퇴한 사람들에게 생활보호대상자에 준하는 지원을 하는 방안 등을 생각하고 있다."-한류의 세계화를 위한 별도의 구상이 있는가."정부가 어떻게 해서 되는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전적으로 대중예술인들의 노력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여러가지 대중예술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노력을 현실성 없는 규제로 발목잡는 건 아니라고 본다. 이런 걸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 한류가 지속되려면 일방적으로 우리 것만 나가려고 하고, 들어오는 걸 막는 것도 안 된다. 상호교류의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최근 일본드라마 개방을 언급했다."개인적 입장에서 말한 것이지만 처음 대중문화를 개방할 때 얼마나 논란이 많았는가. 하지만 이제 우리는 당당할 수 있다.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처음에는 일방적으로 일본문화에 밀릴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지금 우리 대중문화는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누가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가. 요즘 할리우드 영화도 국내 관객수가 크게 줄었다. 우리도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일각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이유로 시한부 장관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장관이 임기가 있는가. 아니다. 그런데 왜 시한부라는 말이 나오는가. 3일짜리 장관도, 한 달짜리 장관도 있다. 지난 청문회 때 평균을 내 보니 장관의 임기가 1년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나왔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판단이 중요한 것이다. 지금은 장관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양평·가평지역에서 내리 3선을 하면서 맹주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기초자치단체장은 무소속이 많이 당선됐다."그 지역에서 한나라당이 강하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나라당 후보, 또는 보수성향의 후보들이 난립해 표를 갈라 먹는다. 반면 진보성향의 인사들은 아예 당 공천없이 무소속으로 입후보해 차별화한다. 한나라당 호감도가 강한 민심에 부응하기 위한 자성책 또는 대응책은 필요하다고 본다."-경기도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구제역으로 도민들이 상당히 많은 피해를 입었고, 이제는 침출수 등으로 환경오염을 걱정하는데 한 명의 국무위원으로서 도민여러분께 염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 하지만 정부에서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동원해 대비책을 추진 중이다.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국제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가면서 물가 특히 유가 폭등 등으로 도민들이 많이 고통받고 있다. 이 부분도 정부에선 최우선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만큼 저희들이 더 노력하겠다. 또 문광부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부분은 더 이상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2011-02-27 경인일보

[인터뷰 "그"]'골리앗 서울과 맞선 다윗' 최성 고양시장

[경인일보=대담:윤인수 지역사회부장/정리:김재영·사진:김종택차장]잘 벼려진 칼날. 최성 고양시장의 인상이 그랬다. 그는 요즘 서울시와, 아니 더 정확하게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크게 한 판 벌이고 있다. 지난 1월 11일 고양시내에 있는 벽제승화원 등 서울시의 불법 시설물 60여곳에 직접 행정대집행 딱지를 붙였다. 54곳이 철거됐다. 지난 9일엔 난지물재생센터의 핵심 시설 등 13개소에 다시 딱지를 붙였다. 난지물재생센터는 서울시가 고양시에 불법으로 운영중인 혐오 기피시설들의 상징이다. 주민들이 오랜 세월 고통을 받았다. 서울시는 경기도와 고양시, 그리고 지역 국회의원들의 수업는 대책 촉구를 사안별로 수십년에서 10년 가까이 외면했다. 그러다 이번에 최 성 시장에게 걸렸다. 서울시의 '묵언'에 최 시장은 '철거'라는 강수를 들고 나왔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이런저런 화제가 산더미다. 지나 14일 고양시청에서 최 시장을 만났다.-요즘 서울시와의 공방으로 뉴스메이커가 됐다. 정치인으로서 좋은 일 아닌가."호사가들은 그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국회의원 시절에 9시뉴스, TV토론, 청문회 등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런 부분에서는 상당히 자유로워졌다. 서울시와 '기피시설 문제'로 언론에 부각된 건 사실이다. 관건은 수십년 묵은 문제인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들의 박수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에 연연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데 족쇄가 될 수 있다. 서울시는 기초단체장이 광역단체장에게 덤벼들고, 그걸 통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고 비난한다. 웃기는 소리다. 정치적 욕심이 있다면 임기를 마쳤을 때 시민들로 부터 '정말 잘했다'는 소리와 함께 박수를 받는 것이다. 지금은 순간순간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조심하고 하나하나의 행보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서울시 반응은 아닌 밤중의 홍두깨 아니냐는 식이다. 서울시 기피시설에 대해 행정집행에 나설수 밖에 없었던 급박한 사정이 있었나."아닌 밤중의 홍두깨? 서울시는 그동안 고양시의 요청을 철저히 무시하는 전략으로 일관해 왔다. 최근에 서울시의 윗분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사실이 아니다. 전임 시장(강현석 전 고양시장)이 문제 해결을 강력히 촉구했고, 경기도의회가 문제 해결을 위한 결의안을 채택했었다. 내가 국회의원일 때도, 또 현재 한나라당 김태원 의원 등도 수시로 문제 해결을 요구했던 사안이다. 내가 경찰에 고발한 불법 기피시설물이 80여건이다. 그런데 그중 몇십건은 전임 시장도 고발했던 사안이다. 서울시가 몰랐다는 건 말이 안된다. 서울시와 오세훈 시장은 철저히 무시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나. 감히 95만의 고양시가 천만의 서울시를 상대로 문제 제기를 해? 감히 기초단체장이 대권을 넘보는 서울시장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해? 어디 떠들어봐라 뾰족한 수가 있나. 뭐 이런 속마음이 아닐까 싶다."-얼마전에 조은희 서울부시장이 문제 해결차 시청을 방문했다는데."왔었다. 2차 행정집행까지 가니까 서울시에서 첫 반응이 온 것이다. 며칠 전(지난 10일)에, 조 정무부시장이 오세훈 시장의 메시지를 가져왔다면서 나를 만나겠다더라. 그래서 왜 나를 만나느냐. 정무부시장이면 우리 부시장을 만나라. 나는 오세훈 시장한테 답을 요청한다고 했다."-너무 냉대한 것 아닌가."취임한 이후 6개월동안 공문으로 현안 해결을 촉구하고 공문으로 면담 요청을 했다. 서울시청에서 면담 일정이 결정돼 간다고 했는데 G20 정상회의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그리고 무소식이다. 이런 과정이 수십차례 진행됐는데 서울시는 대변인을 통해 '아닌 밤중의 홍두깨다' 이런 논리로 나오니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최성이 정말 (대집행을) 할 것 같으냐 안할 것 같으냐'고 확인이나 하고…. 그런데 '최성은 정말 할거다'는 얘기를 들었나 보더라. 문제는 지금부터다. 우리는 여러 가지 감안해서 1차 행정대집행은 다 철거가 가능한 시설로 국한했지만 2차 행정대집행에 영장이 교부된 시설은 차원이 다르다. 3월 10일까지 확고부동한 오 시장의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만반의 대비를 하고 행정대집행을 강행할 것이다."-조 부시장이 전한 오 시장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문제 해결을 위한 TF 구성인데, 이제 TF 구성하자는 건 몇년을 끌어보자는 얘기다. 그런데 조 부시장이 오 시장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순간에도 서울시 대변인은 납득할 수 없는 발언을 하더라(고양시 14일자 보도자료는 이종현 서울시 대변인이 모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오세훈 시장을 씹어대면 다 뜨는 줄 알더라. 요즘은 X나 X나 걸고 넘어진다'는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이제는 오 시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리고 95만 고양시민한테 정말 죄송하다. 불법 시설물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졌는데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리고 합리적 대화를 통해서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싶다고 하면 안 만날 이유가 없다."-법적으로는 고양시 입장이 옳지만 난지물재생센터는 환경기반시설이라서 실제 행정대집행이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도 있다."이번 사태는 최소한의 상식만 있어도 해결할 수 있다. 그 오염과 악취와 불법성의 정도가 너무 끔찍하다. 지역주민들은 너무 오래 겪은 일이라 무덤덤하다. 오히려 현장을 방문한 내게 '최 시장이 뭘 믿고 싸우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자포자기한 거다. 오 시장이 딱 한 번만 음식물폐기시설, 쓰레기하치장, 분뇨처리시설을 찾아보면 안다. 본인이 철거에 앞장설 거다."-그래도 서울시민의 반발 등 엄청난 후폭풍이 일텐데."열쇠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있다. 서울시장 주변에서는 내가 오 시장을 걸고 넘어져서 자기도 크고자 하는거 아니냐, 이런 얘기들이 돌아다니는 모양인데, 정말 얄팍하다. 수십년동안 불법 시설을 편법적으로 이용하고 악취에, 오염에 주민 피해를 발생시켜 놓고 대책도 없이 그 심각한 불법 시설을 합법화시켜줘라, 용도변경 시키라니. 대한민국에 그런 법이 어디 있나. 이런 내용들이 서울시민들에게 공개되면 쓰레기 대란, 분뇨 대란이 발생해도 그 책임은 서울시로 돌아갈 걸로 확신한다. 내게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면 한나라당이 위원장인 시의회 특위에서 나보다 강경한 기피시설물 대책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겠는가. 고양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적극 지지를 하고 법 개정안을 내면 김문수 지사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설 것이다. 하지만 오 시장과의 관계 때문에 내가 일부러 안끌어들였다. 오 시장에게 부담을 줄까봐. 그리고 난 민주당의 '민'자도 꺼내지 않았다. 신사적인 배려는 하겠지만 이번에는 끝장을 볼 생각이다."-결과를 낙관하나."끊임없이 대화와 대책을 요구했고 물밑대화를 시도했고 절차와 단계를 밟아 추진해 왔다. 그리고 기피시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게 아니다. 이게 중요하다. 시의회에서는 서울시로 가져가라고 하고, 시민들은 보상문제를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 주장이 과도한 욕심으로 보이면 안되겠기에 내게 일임해 줄 것을 설득했다. 신중하고도 철저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만큼 좋은 결과로 나오지 않겠나."-지금 오 시장이 무엇을 해야 하나."이미 고양시장으로서 오세훈 시장에게 공개적으로 요청했고 조 부시장에게도 다시한번 전달하라고 부탁했다. 우선 고양시민에게 사과하고 불법 시설을 어떻게 철거할 것인지, 기존 기피시설을 어떻게 서울 수준으로 현대화할 것인지 밝혀야 한다. 또 기피시설 인근 지역의 SOC의 강화와 피해 주민에 대한 보상계획을 기본 입장으로 천명해야 한다. 그러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오 시장의 확고한 입장 표명이 없다면 3월 10일 예정된 2차 행정대집행을 강행한다. 모든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만약 한명숙 전 총리가 서울시장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갔겠나."한 전 총리나 누구든 다른 사람이 시장이라면 작년에 내가 강도 높게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전하고 부시장간의 접촉이 있었을 때, '최 시장 만나자, 우리가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사안이다' 이런 해법이 나오지 않았을까? 당이 같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김문수 지사와도 얼마든지 수평적인 대화를 나눈다. 조언을 해주면 메모하고 고맙다고 하더라. 환경과 법치와 사회정의와 차세대 지도자를 꿈꾸는 오세훈 시장이 아닌가. 7~8개월동안 무시하다가 나온 대변인 멘트가 인격모독적이라면 문제 아닌가. 오 시장에게는 무상급식 문제보다도 이 문제가 훨씬 더 큰 장애물이 될지 모른다."-고양시의 해법을 감수하기에 서울시의 부담이 너무 큰 것 아닌가."고양시 요구를 서울시장이 기분좋게 사인하고 오케이 하기에는 상당히 구조적으로 오랫동안 누적된 사안이고 재정적으로도 간단치 않은 문제인 건 맞다. 문제는 서울시의 혐오 기피시설들의 불법이나 환경파괴의 정도가 너무 심각하고 사회 정의에도 반하는데 있다."-광역자치단체간의 협의 의제로 올려볼 생각은 없었나."그런 시도가 수차례 있었지만 해결되지 않아 오늘에 이른 것 아닌가. 지금의 행보가 제일 적절한 수준이다. 서울시의 불법적인 핵심 기피시설에 대한 확실한 2차 행정대집행, 그로 인한 서울시의 환경대란, 쓰레기대란, 분뇨대란의 심각성, 이런 부분이 목에 차니 이제서야 제스처를 보인 것이다."-서울시 입장에서는 고양시 요구를 수용하면 타 지방자치단체와의 비슷한 문제에 선례가 될까 우려할 것 같다."서울시가 고양시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안을 내서 지혜롭게 해결한다면 비슷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이 된다. 좋은 일 아닌가. 나 같으면 이웃의 작은 시·군이 고양시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잠을 못 잘것 같다. 긴급대책위라도 꾸려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테니…."-화제를 바꾸자. 작년 선거때 전국 최초로 야5당 단일 후보가 돼 당선됐는데, 시장 업무에 제약은 없나."야5당이 후보 단일화를 합의한 건 독점하고 부패하고 무능하고 수구적인 리더십을 거부하는 선거 민심의 반영이었다. 이제 7~8개월 됐는데 최근에 돌아가는 상황들을 보면 대한민국의 새로운 분권형 협의제 자치전형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이 생겼다."-최 시장에게 고양시는 어떤 의미인가."무궁무진한 잠재력의 도시다. 출마할 때도 그렇게 생각을 했고 인터뷰를 했지만 시장이 돼서 8개월을 뛰어보니까 서울이나 경기도보다 더 중요한 지역이더라. 고양시의 시민 수준은 최고의 수준이다. 최고의 교육 수준과 교양과 지성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이다. 그리고 인천국제공항,김포공항,KTX, 제1·2자유로, 경의선처럼 최고의 인프라가 있다. 문화적 수준도 최고다. 안타까운 건 이것이 잠재적이라는 것이다. 도시 인프라를 선택하고 집중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이 없었다. 주인의식이 없어서다."-고양시에 뼈를 묻을건가. 유시민 전 의원, 한명숙 전 총리는 떠났다."17대 총선때 단 한 명의 연고도 없는 고양시 덕양을 선택했다. 치열한 경선을 통해 고양시 토박이였던 전직 차관 출신을 이겼다. 나는 뼈를 묻는 각오로 왔고 그 각오는 변함없다. 내가 조금이라도 편한 길을 원했다면, 김대중 대통령을 모신 인연을 봐도, 지연을 봐도 고향인 광주로 내려갔을거다. 고양시의 잠재력을 주목했고 내 꿈과 비전을 실현시킬 곳이라는 확신때문에 감히 주저앉았다."-이희호 여사는 자주 뵙는가."설 전에 두 번쯤 문안 드렸다. 특별하게 말씀을 많이 하시는 분이 아니다. 국회의원과 시장의 할 일이 다르니 시장 잘하라고 덕담을 주셨다."-활동이 왕성해서인지, 말은 안되지만 내년 총선 출마설이 있더라."단 0.00001% 가능성도 없다. 만약에 그런 뜻을 갖거나 그런 유혹에 빠질거라면 시장 후보로 나서지 않았다. 나뿐 아니다. 어느 단체장이든 그런 마음을 먹는다면 시민을 모독하는 것이다. 시장직이 국회의원 시절보다 열배 스무배 바쁘다. 그런데 보람은 크다. 총선 대선에 휩쓸리지 않고 고양시정에 전념하겠다."-확인하겠다. 오 시장의 공식 사과와 확고한 서울시 대책이 없으면 난지물재생센터에 행정대집행 들어가나."한다. 한달 정도면 충분히 결정할 수 있다. 3월 10일이다. 그 때를 넘기면 언제든 한다. 어떻게 하는지 두고 봐라. 오 시장의 고뇌에 찬 결단을 지켜 보겠다."

2011-02-15 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