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데뷔 40주년·12년 장수 DJ, 인천 가수 백영규

'백가마' 진정성 있게 다가가… 공연 음악다방 콘셉트도 방송하며 영감준비 없는 큰 성공 결국 다 잃더라… 그래도 꾸준히 작업 정규앨범 15장전주만 1분 '감춰진 고독' 가장 애착, 이런 곡 써봤기에 친숙한 곡 만들어감성 사라지면 어떻게 살지… 음악하며 얻은 감성 지키는 것이 삶의 목표1978년 혼성 듀오 물레방아로 데뷔해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가수 백영규(66)는 지난달 19일과 20일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백다방 콘서트'를 가졌다. 백영규는 이번 공연에서 1970~1980년대 대표적 청춘 문화의 상징인 음악다방을 콘셉트로 내세웠다. 이틀 연속 460여석의 공연장을 메운 관객들은 백영규의 음악 인생 40년을 축하하며 공연 내내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공연 당일 백영규의 노래 13곡과 백영규가 작곡해 다른 가수가 부른 13곡이 함께 실린 데뷔 40주년 기념 앨범(2CD)이 출시돼 의미를 더했다. '순이 생각'부터 '잊지는 말아야지', '슬픈 계절에 만나요'로 연이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백영규는 지난해 낸 '술 한 잔'까지 정규앨범 15장과 싱글앨범 5장을 냈다. 또한 박정수가 부른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 등을 작곡하는 등 한국저작권협회에 등재된 발표곡이 210곡에 이른다. 현재도 싱어송라이터이자 라디오 방송 DJ로 활동 중이다. 12년째 경인방송(FM 90.7MHz)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이하 백가마)을 진행하고 있는 백영규를 지난 11일 방송 진행에 앞서 만났다.지난달 열린 40주년 기념 공연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눴다."중장년층의 음악팬들이 공연을 선택해서 볼 게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준비한 게 적중한 거죠. 추억을 송환하는 무기 중에 여러가지가 있는데 음악과 함께 음악다방이 제대로 역할을 했습니다. 웃고 우는 관객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백영규는 음악다방 콘셉트를 방송 DJ로 활동하면서 얻었다고 했다. 백가마를 공연장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매주 수요일 백가마에선 음악다방 코너를 마련해 놓았어요. 팝송을 틀어주는 최장수 코너인데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과거 동인천역 인근에 있었던 음악다방으로서 상징성이 짙은 별다방을 공연 제목으로 정할까 하다가 청취자들이 정해준 제 이름이 들어간 '백다방 콘서트'로 정했죠."12년 동안의 방송 진행의 힘은 '청취자와 음악적 공감'에서 비롯됐다고 했다."방송을 통해 청취자들을 많이 만나죠. 단순한 청취자가 아닌 저와 공감하는 가족 같은 사람들이에요. 저를 백가마의 촌장으로 불러주시니 촌장처럼 행동해야 돼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 야누스가 되어선 청취자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고 봐요. 진정성 있게 다가서야 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방송은 저를 채찍질하는 스승처럼 느껴져요. 음악적으로도 과거 주변에서 '백영규는 너무 자기 음악만 한다'는 평을 들었는데, 방송이 저를 바꾸게 해줬어요. 방송을 통해 자신이 성숙해짐을 느끼면 큰 소득이죠. 나가라고 할 때까지 방송할 겁니다(웃음)."자연스레 음악으로 화제를 옮겼다. 백영규는 쉬지 않고 신곡을 발표 중이다. 최근 들어 올해 발표할 곡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 편곡자와 만남의 자리도 자주 갖고 있다."곡을 잘 쓰려고 하지는 않아요. 그때 그때 느끼는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려고 하죠. 제가 쓴 곡들을 통해 지난 40년의 음악 인생을 돌아보게 돼요. 곡을 쓸 때 고뇌하게 되는데 저는 그런 시간까지 즐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설레죠. 앞으로 또 어떤 곡을 쓸지."몇몇 가수들을 제외하고 1970~1980년대 왕성하게 활동했던 다수의 가수들이 잠시 동안 활동 중단 후 음반을 내고 후속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히트곡을 통해 얻은 유명세를 회복하지 못하면서 겪는 스트레스에 당시 상황(아날로그 시기) 만을 생각하다 보니 지속성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저는 준비 없이 큰 성공을 얻었어요. 다들 히트곡을 내기 전에 힘든 준비 과정을 겪는데, 저는 나오자마자 고생 없이 얻었죠. 그러다 보니 다 잃게 되더라고요. 음악적 부분에서 저를 가이드 해줄 사람이 부재하다 보니 내 기준이 앞서게 된 부분도 있었죠. 그래도 저는 곡을 만들고 음반을 내는 게 습관화 되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 소리창조라는 음반 제작사를 만든 적이 있는데, '나이 50~60세에 이르렀을 때 누가 내 음반을 내주겠냐'는 고민에서 비롯됐죠. 히트 시키진 않았지만 내 흔적으로 여기고 지속적으로 음반을 낸 게 제 힘이라고 생각해요."백영규가 가장 애착을 갖는 곡은 2007년 내놓은 13집 'As First'에 수록된 '감춰진 고독'이다. 백가마의 시그널 곡이기도 한 '감춰진 고독'은 가수 백영규를 잘 설명하는 곡이라고 한다. 도입부 1분 5초가 반주로 시작하는 4분 26초짜리 곡이다."전주만 1분이어서 방송에서 틀기 힘든 곡이죠(웃음). 프로그레시브에 록까지 가미된 이 곡이 발표됐을 때, '백영규가 현실을 너무 외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쨌든 이와 같은 곡도 쓰고 불러봤기 때문에 대중과 친숙한 곡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우 어렵겠지만, 음악성도 있고 대중적이기도 한 음악을 만드는 게 요즘 화두예요."내친김에 음악과 삶의 목표에 대해 질문했다."음악적 목표는 계속 창작하는 거죠. 지금도 막 쓰고 싶고요. 거기서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생각들을 짚어보고 감성을 지킨다는 것은 삶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감성이 사라지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죠. 결국 제게 음악과 삶의 목표는 연관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더욱 겸손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 부분도 지켜나갈 것입니다."인터뷰 말미, 질문은 안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그는 "백영규와 백가마의 팬이 나뉜다"면서 "'슬픈 계절에 만나요'가 발표된 1980년 오빠와 형으로 불러준 팬들이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응원해주시고 있다. 팬들을 위해서라도 더욱 좋은 노래를 만들고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오는 22일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와 삼익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의 릴레이 페스티벌 '명가의 품격-백영규' 공연이 서울 지하철 7호선 학동역 인근 엠팟(삼익악기 빌딩 3층)에서 개최될 예정이다.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가수 백영규는경기도 양평 태생인 그는 초교 5학년 때 인천으로 이주해 동산중·고교와 한국외대(이태리어학과)를 졸업했다.1978년 '순이 생각'으로 가요계에 데뷔했으며 1980년 MBC 10대 가수상 신인상을 받았다. 2016년 올해의 인천인상 문화예술 대상과 자랑스런 동산인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인방송에서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을 12년째 진행하고 있으며 대중문화예술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올해로 가수 데뷔 40주년을 맞았으며 12년째 방송 DJ로 활동 중인 백영규는 "곡을 만들고 부른 흔적들이 결국 40년 음악 인생이 됐다"며 "방송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당대 음악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부분도 가수로서나 인간으로서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줬다"고 돌아봤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6-12 김영준

[인터뷰… 공감]'시흥시장 3선 임기만료 앞둔' 김윤식 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 회장

"자치분권은 지역의 주민에게 권한을 돌려주는 것이다." 3선 시장으로 시장 임기 만료를 앞둔 김윤식 시흥시장(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 회장)의 자치분권 철학이다. 김 시장은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자치분권을 강력하게 추진해온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김 시장은 차기 지방정부에 "이제는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지방정부에서 주민에게로 자치권을 돌려줘야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민선4~6기까지 3선 시장을 지낸 그가 추구해온 '자치분권'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들어봤다.-자치분권을 정의한다면."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중앙정부에 과도한 권한과 역할이 집중돼 있다. 지방은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울 만큼 권한의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제는 지방으로의 권한을 이양하고 지방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반영하는 자치분권이 절실하다. 시민이 주인으로서 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때 진정한 자치분권을 실현할 수 있다. 주민 스스로 자신이 사는 지역의 문제를 찾아내 해결방안을 마련하고, 지방정부는 시민이 제대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하는 것 그것이 자치분권이라고 생각한다."-분권시장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소개하고 싶은 대표정책은."시흥시가 2011년부터 시작한 '시흥아카데미'다. 시흥 아카데미는 시정 철학인 '생명', '참여', '분권'을 기치로 시민사회와 공유·공감하고 학습하면서, 이를 통해 양성된 시민 리더들이 지역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성과를 내면서 지방자치와 분권의 플랫폼으로서 시민사회와의 협치를 보여주는 새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역동적인 시민사회 환경 속에서 공동체의 고민과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행정력과 시민사회의 협치는 반드시 필요했다. 시민과 전문가, 공무원이 학습을 통해 지역 현안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정책을 제안하여 토론과 합의를 거쳐 실행으로까지 연결시키는 진정한 협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마련된 것이 바로 시흥아카데미이다. 시흥아카데미는 공동체에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시흥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생명학교'를 운영했다. 시민들은 도심 속 녹색 공간을 조성하여 함께 땅을 일구는 등 습득한 지식을 시민사회에 다시 환원하며 공동체 회복을 위해 스스로 움직였다. 또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구성하여 지역자원의 장·단점을 활용한 자치경영을 구현했으며 이를 통해 시민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창조경제를 선도하는 비전도 보여 주었다. 시민의 시각으로 설계하고, 시민을 위한 도시를 만들어가는 '참여학교'도 운영되었다. 시민들은 이를 통해 우리 마을을 이루는 주체로서 학습한 재능을 기부하고, 도시문화 가치 창출을 위한 연구모임을 결성해 활동하는 등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시민을 상대로한 교육 쉽지 않았을텐데."그래서 '분권학교'를 만들었다. 시민과 공무원, 전문가가 함께 지역을 위한 정책을 연구하는 초석을 마련해 시 정부는 '시민의 집'이 되어 지방자치를 통한 지역의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위해 고민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통해 지역사회의 변화 리더로서 활동했다. 그 결과 시흥아카데미는 지난 4년 동안 36개 학교를 통해 1천여명이 넘는 시민 리더를 양성했다. 시민 리더들은 학습에 그치지 않고 자발적으로 9개의 시민연구모임과 동아리, 3개의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시정의 파트너로서 지역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다. 학습을 통해 축적된 다양한 지식을 아카데미 홈페이지에 재능기부 형식으로 지식 영상을 만들어 공유·개방한 결과 현재 19만명이 넘는 시청자 수를 기록하면서 대내외적으로 많이 알려졌다. 시민이 지역 현안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시정의 주체로서 지역의 고민을 함께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시 정부와 시민의 어우러짐은 자치역량을 높이고, 주민자치의 토대를 다지는데 밑거름이 됐다."-차기 지방정부 리더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함께 나누고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 '공유(共有)' 그 것을 이야기 하고 싶다. 물품에서부터 음식, 공간, 정보, 서비스까지 유형, 무형의 자산을 특정 개인이 소유하지 않고, 서로 빌려주고 빌려 함께 소비하는 현상이 일상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세계적인 지식 공유 콘퍼런스 '테드'(TED), 대학가를 중심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자동차 공유 서비스 '쏘카'(SOCAR),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Airbnb), 다수가 한집에서 살면서 거실, 화장실 등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Share House). 이들 모두는 공유경제라는 이름으로 우리 삶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이제 '공유'하지 않고서는 살아가기가 어려워진 것이다."-추천하고 싶은 정책이 있다면."시흥시 역시 다양한 사업에 공유 개념을 적용하며 공유문화를 확산해 왔다. 지난 2015년 카셰어링 업체인 그린카와 협약을 맺고 자동차 공유를 선도적으로 시작했다. 2016년 3월에는 시흥시 공유 촉진 조례 제정을 통해 제도적 기반까지 마련했다. 자동차와 더불어 자전거 공유 시스템도 구축했다. 오이도와 월곶역, 정왕역 등 8곳에 설치한 대여소에서는 시민들이 하루 평균 100여 대의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고 상반기에만 1만8천여 대의 공공자전거가 시 전역을 누볐다. 대야어린이도서관과 희망장난감도서관은 연령별 장난감을 공유하고, 또래 아이들이 모이면서 육아 정보도 나누고 있다. 관내 고등학교에서 우산을 공유하는 서비스는 주민이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해 직접 제안한 사업으로 공유에 대한 청소년들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자원이 공유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특히 공유 문화 확산에 가장 크게 기여 하는 것은 바로 '공간'이었다. 시흥시는 '공간바라지'라는 이름으로 공유공간 시스템을 개설하고 안 쓰는 자원과 그 자원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연결해주는 정책을 펼쳐왔다. 시청, 주민자치센터, 평생학습센터, 중앙도서관 등 공공시설을 강의실 및 모임터로 사용할 수 있었다. 마을의 카페와 작은 공방에서는 조리나 물품제작 등 창작 활동이 가능하다. 관내 경기장과 공원은 시민의 다양한 체육 활동을 위해 열려있고 학교, 교회 등 공공시설 주차장도 무료 개방됐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을 시민이 주체적으로 진행했다는 점이다. 한 예로 장곡중학교에서는 토론과 협의에 따른 공유공간 개설부터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까지 학생들이 직접 체험한 여정을 사회적 경제 단원의 교과과정에 담았다. 학생들은 사회적 경제를 비롯해 공유공간, 마을 공동체, 학교 민주주의, 협업의 가치들을 온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이처럼 공유는 공공의 이익이다. 무형의 정보든 유형의 공간이든 공유가 많아질수록 시민의 삶의 질은 높아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지방정부 간에도 '공유'를 위한 적극적인 연대와 협력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글·사진/심재호·김영래기자 yrk@kyeongin.com■김윤식 회장은1992.05~1995.05 제정구 국회의원 비서1995~1998 제4대 경기도의회 의원 2009~ 현재 시흥시장2016~ 현재 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 회장2016.7~현재 경기도시장군수협의회 회장김윤식 시흥시장이 "이제는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지방정부에서 주민들에게로 자치권을 돌려줘야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자치분권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시흥시가 주최한 '자치분권 순회강연'에 방송인 김제동씨가 시민의 눈높이에서 자치분권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시흥시 제공자치분권개헌을 위한 김윤식 시흥시장의 버스킹 장면. /시흥시 제공

2018-05-29 심재호·김영래

[인터뷰… 공감]윤종기 도로교통공단 이사장

전남 고흥에서 나고 자란 소년은 '제복'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경찰의 길에 들어섰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던 시절, 경찰 조직도 예외는 아니었다.'현실의 벽'을 마주한 20대 경찰 간부는 "내 주변부터 바꿔나가자"고 다짐했고, 그렇게 경찰서장이 됐다. 이때부터 '전 직원과 밥 한 끼 먹는다'는 계획을 실천했다. 경찰의 별인 경무관이 됐고, 경찰청장 다음으로 높은 계급인 치안정감까지 올랐다. 권위적이지 않고 소탈했다. "경찰은 동료들에게 존중받는 것을 느낄 때,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존중 문화 확산'이 조직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이라고 얘기했다. 2015년 12월 경찰 인사에서 그의 명단은 제외됐다. 33년간 입은 제복을 벗어야 했다. 그 누구 보다 일 욕심이 컸다. 여러 사람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야당에 입당하면서 견마지로(犬馬之勞)의 자세를 견지하겠다고 했다. 첫 도전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총선 결과 37%의 득표율을 얻었다. 2위로 낙선했다. 정치 신인이 '험지'에서 거둔 성과는 초라하지 않았다.'교통 전문가'였던 그는 지난 2월 도로교통 안전 종합 전문 공공기관의 수장이 됐다. 윤종기 도로교통공단 이사장을 지난 3일 강원도 원주혁신도시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도로교통공단 이사장이 되면서 '제1 목표'로 삼은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도로상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 교통사고 사망자는 감소세입니다. 작년 한 해 4천185명이 숨졌는데, 1980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입니다.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2022년까지 2017년 대비 절반으로 줄이는 게 목표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교통사고 빅데이터를 활용할 생각입니다. 전문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교통사고 자료를 분석해 특정 시간대와 지점의 사고 발생 확률을 뽑아내고, 교통방송 등을 통해 운전자들에게 수시로 안내하고 경각심을 줄 것입니다. 도로 상 운전 문화와 시민 의식 개선은 장기적 과제입니다. 얼마 전 전문가에게 들은 말인데, 자동차 문화는 '마차 문화'가 돼야 합니다. 자동차 힘을 마력으로 표시하는 것은, 마차가 자동차의 전신이기 때문입니다. 마차 문화는 사람이 오면 멈추는, 보행자 중심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가마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대감이 딱 올라타 있으면 종 4명이 가마를 듭니다. 가마 앞 사람들은 비켜줘야 할 대상입니다. 운전대를 잡으면 자기 중심이 되니 앞에 다른 차가 끼어들면 화가 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우선인 마차 문화를 확산하는 게 중요합니다."-2015년 12월 경찰을 떠날 때 아쉬움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경찰 33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당시 경찰을 그만두게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경찰 조직에 아쉬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충북경찰청 차장이던 2011년 제주 강정 마을 시위에 대응하는 태스크포스(TF) 단장으로 제주경찰청에 파견된 시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 때 강정마을은 큰 위기였습니다. 제가 그 위기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압박감도 컸습니다. 해군 등이 낸 '공사 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고, 그 결과에 따라 해군은 경찰에 '시위대를 공사장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경찰은 TF 단장으로 저를 차출했습니다. 그게 족쇄가 돼 (총선에 출마했을 때) 시민단체가 저를 비난했죠."-왜 강정마을 TF 단장으로 가게 된 것입니까."다른 사람들 가라는 데 안 가니까. (제일 말 잘 듣는) 제가 가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가서 보니까 해군 기지에 반대하는 주민들도 많이 다치고, 경찰관도 고립돼 다치고 상황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가라는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최소한의 희생으로 임무를 수행하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당시 일에 대해 후회가 없고, 정당하게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치안정감으로 승격된 초대 인천경찰청장을 맡으셨습니다. 어떠셨습니다."청장에 부임해 돌아다녀보니 부평, 동인천, 주안역 앞에 건널목이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곳은 노인 교통 사고가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40년 전부터 (횡단보도를) 그으려고 했는데 지하상가 분들이 반대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횡단보도가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국회의원들도 전화 와서 "긋지 마라"고 압박했습니다. 그 때마다 "의원님들 천표 얻으려다가 2만표 잃게 된다", "어린이와 노약자가 다치고 숨지는 데 나는 해야겠다"고 답했습니다. 민원을 걱정하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기 싫은데, 청장이 이상한 놈이 왔다.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어서 어쩔 수 없다"라고 답하라고."-경찰에서 떠나고 3개월 만에 민주당에 입당했습니다. 정치에 입문한 계기가 있습니까."정치할 생각 전혀 없었습니다. 그 때 여러 사람이 정계 입문을 권했는데, 그 분들의 일관된 주장이 제 승부욕을 이끌었습니다. "경찰에서 못할 일, 정치를 하면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도로교통공단 이사장으로 임기를 막 시작했습니다. 자율주행차 연구에 관심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 임기 중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자율주행차 TF가 아닌 조직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자율주행차에 대해 교통안전공단이 연구하고 있는데, 기계적인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과연 도로에서 돌발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있는지, 실제 도로에서 안전하게 주행이 가능한지 등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려고 합니다. 실제 현장에서 자율주행차를 탈 때 법적 운전 주체는 누구고, 운전자와 AI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등도 연구 대상입니다. 올해 말까지 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윤 이사장은 "나의 리더십은 밥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단 이사장에 부임한 뒤에도 모든 직원들과 식사하며 대화하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 존중 문화는 그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다. "모든 업무는 자발성이 필요합니다. 내 상사, 동료, 부하가 날 존중해 준다고 믿을 때 자기 주도적 업무 수행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인정받고 있다', '배려 받고 있다'고 느낄 때 긍정의 에너지가 나온다고 믿습니다."글/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윤종기 도로교통공단 이사장이 "모든 업무는 자발성이 필요합니다. 내 상사, 동료, 부하가 날 존중해 준다고 믿을 때 자기 주도적 업무 수행이 가능합니다. '인정받고 있다', '배려 받고 있다'고 느낄 때 긍정의 에너지가 나온다고 저는 믿습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5-22 김명래

[인터뷰… 공감]'중기·소상공인 대변인' 박주봉 중소기업 옴부즈만

30년 경험 경영자 출신, 취임후 손 놓아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지원… 활동 전념문제 해결 시간 오래 걸릴 때 안타까워명함 '차관급' 넣어 부처에 무게감 전해공무원-기업인, 더 효율적 소통방법 고민질의응답 방식 아닌 '토론식' 현안 간담회최저임금 상승·근로단축에 어려움 호소권고권 적극 활용, 현장도 관심 가졌으면최근 서울 서초구 지방공기업평가원에서 열린 '중소기업 옴부즈만' 주최 기업 현안 간담회 현장. 이날 간담회엔 기업이 애로사항을 제기하면 옴부즈만이 답변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분임 토론 형식이 처음 도입됐다. 중소기업 관련 협회·단체 관계자, 기업인 등 간담회 참여자들은 조마다 공무원 등이 2~3명씩 참여한 분임별 토론에서 단순 질의응답을 넘어선 심도 있는 정책 토론을 할 수 있었다. 올해 2월 박주봉(61) 4대 중소기업 옴부즈만의 취임 후 나타난 변화다. 기업과의 소통을 더욱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다.박주봉 옴부즈만은 '현장'을 강조한다. 중소기업이 많은 수도권은 물론 대전과 광주·전남, 제주까지 직접 발로 뛰면서 기업 현장의 어려움을 귀로 듣고 있다. 현장에선 기업정책의 문제를 직접 확인하고 개선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30년 가까이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인 출신이기 때문에 현장의 중요성을 더욱 잘 알고 있다. 올해 간담회를 비롯한 현장방문을 100차례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불합리한 규제와 애로를 상시적·체계적으로 정비하는 '중소기업 옴부즈만'이 그의 취임을 계기로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중소기업 옴부즈만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박주봉 옴부즈만을 지난 4일 인천 중구에 위치한 대주·KC 사옥에서 만났다. 대주·KC는 박주봉 옴부즈만이 설립해 약 30년 동안 운영해 온 회사로 철강, 화학, 물류, 자동차·항공, 건설·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박주봉 옴부즈만은 "오랜만에 이곳(대주·KC 사옥)을 찾았다"고 했다. 옴부즈만 취임 후 회사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중소기업 옴부즈만에 지원했다"며 "정부하고도 그렇게 약속했고, 옴부즈만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규제 개선을 요구하는 기업들을 직접 찾아 문제점을 확인하고 개선 방안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표정에선 옴부즈만으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읽을 수 있었다.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중소기업의 고충을 처리하고 중소기업 관련 규제와 애로사항 개선을 정부에 건의하는 역할을 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추천과 규제개혁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무총리가 위촉하는 차관급 직책이다. 임기는 3년이고 1회 연임할 수 있다.박주봉 옴부즈만은 "중소기업 옴부즈만이 생긴 지 10년 정도 됐지만, 아직 옴부즈만이 어떤 건지 잘 모르는 기업들이 많다"며 "중소기업의 애로사항과 불합리한 규제를 들어주고 개선 방안을 찾는 '중소기업 대변인'을 우리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관련 제도가 도입된 2009년 7월 이후 기업 규제와 애로사항 1만8천120여건을 처리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현장에선 아직 옴부즈만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합리적이고 파급효과가 큰 규제 개선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옴부즈만 권고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라며 "기업인들도 옴부즈만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기업을 직접 설립하고 경영해 온 기업인 출신이 중소기업 옴부즈만을 맡은 건 그가 처음이다. 그동안은 학계 출신 인사들이 맡았다. 박주봉 옴부즈만은 "이론보다는 현장 경험을 가진 사람이 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더 많이, 더 빨리 처리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며 "현장 중심의 규제 개선을 이뤄야 한다는 정부 방침도 뒷받침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책임감도 크다. 그는 "중소기업과 정부를 연결하는 가교가 돼 정부의 불합리한 규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인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정부가 미처 생각지 못한 정책 사각지대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옴부즈만 취임 후 2개월여 동안 현장에서 만난 중소기업인들은 구인난과 판로 확보의 어려움은 물론,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방의 한 업체는 단순노무를 하는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최저임금이 적용되면서 인건비 증가로 공장 운영에 어려움이 커졌다며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다른 업체는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면, 해외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근로자와 외국인 근로자 간 근로시간 격차가 발생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청와대와 국무총리실 라인을 통해 중소기업의 애로·건의사항을 보고하고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 장·차관들을 만날 때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당장 해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박주봉 옴부즈만은 "문재인 대통령께서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국가를 만들겠다고 공약했고 정부가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부로 격상시키면서 정부에 대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기대가 커졌지만, 정부가 그 기대를 쫓아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이어 "내가 들어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항이 현장에 많지만, 개선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때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며 "관계 부처 당국자들이 개선에 속도를 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그가 '차관급'이라는 직급을 명함에 넣은 것도 중소기업 옴부즈만의 요구를 부처 관계자들이 무게감을 느끼며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기업체 수의 99%를 차지하고, 고용의 88%를 책임지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이 세계적인 일류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은 중소기업들의 기술력에 있다. 튼튼하고 건강한 중소기업이 국가 경제 발전의 초석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중소기업의 목소리에 정부가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박주봉 옴부즈만은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소금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며 "임기가 끝난 뒤에 '중소기업의 생존과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글/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박주봉 중소기업 옴부즈만은?▲1957년 전남 장흥 출생 ▲용문고, 한세대 졸업▲1989년 대주개발(주) 설립▲1999~ 2002년 대주중공업(주) 대표이사▲2001년~ 現 케이씨(주) 회장▲2004년~ 現 한국철강구조물협동조합 이사장▲2011년~ 現 인천상공회의소 부회장▲2017년~ 現 동북아평화경제협회 회장▲2018년~ 現 한국무역협회 부회장▲2010년 금탑산업훈장▲2013·2014년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 표창▲2014·2015년 행복한 중기경영대상 대상박주봉 중소기업 옴부즈만이 "임기가 끝난 뒤에 '중소기업의 생존과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5-15 이현준

[인터뷰… 공감]함진규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의장 '6·13선거 필승 공약'

"지방선거는 정권의 중간 평가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집권 경험이 많은 우리가 현 정부에서 생각하지 못한 분야의 공약을 많이 내놓으면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유한국당 지방선거 공약을 담당하는 함진규 정책위의장은 8일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6·13 지방선거의 경기도 판세를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인기에 연연해 장기 계획을 못 세우고 있는 현 정권의 실정을 잘 파고들면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전망했다. 사상 유례없는 탄핵 정국을 초래해 정권을 내준 아픔 속에 남북 정상회담으로 평화무드까지 조성되면서 정부·여당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분위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반도체' 이후 먹거리를 만들 경제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동력을 찾고 있고, 그런 공약을 앞세워 민심을 돌리겠다는 게 그의 최대 선거 전략이다. 일자리 만드는 데 옹색하게 국민 세금 투입하지 않을 것이며, 규제를 완화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집권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이다. 주로 블록체인과 드론, 첨단 의료 산업 등 현 정부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4차산업을 선제적으로 내놓겠다고 강조했다. 한국당의 '험지'인 경기도 시흥(갑)에서 내리 2차례 당선돼 요직을 맡아왔고, 이번에는 6·13 전국 지방선거공약개발단장을 맡았다. 그를 통해 한국당의 선거 전략을 들어봤다.-경기지역 선거 승리를 위해 어떤 어젠다를 제시할 계획인가."이번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 집중하고 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 진정성을 갖고 지역 발전과 주민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참 일꾼'과 중앙정치의 과장된 여론과 높은 대통령 여론조사 지지율에 기대어 정치적 포퓰리즘만 일삼는 '정치꾼'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낼 계획이다. 특히 경기도지사 선거는 지방행정의 계속성과 연속성을 가지고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보고 지역 주민들께 한 번 더 일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할 예정이다."-경기도 주요 정책 공약은."수도권은 만성적인 교통난에 시달리면서, 출퇴근에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다. 시간을 단축시키고 시민들에게 빠르고 편리하면서도 안전한 교통서비스를 제공하는 '교통복지' 공약을 많이 낼 계획이다. 특히 재선 경기도지사 출신의 관록을 지닌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와 경기 김포 지역구 의원을 지낸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 등 모두 경기도와 인연이 깊고, 세 후보 모두 수도권 교통난 해결에 집중하고 있다. 이 세 분이 모두 당선된다면 가히 '수도권 교통혁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최상의 복지 정책으로 보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이에 대응하는 산업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신성장 거점을 만들고, 청년들이 마음껏 꿈꾸고 일을 통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도록 성남 판교, 고양 일산 등 15곳에 '혁신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 일자리 30만 개를 창출할 수 있는 공약이다."-전국 동시 지방선거의 승리를 견인할 정책 공약은."요즘 최악의 청년실업률에서 보듯이 '일자리'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서민에게 고통만 안겨주는 현 정부에 맞서 서민과 중산층, 노동자를 살리는 정책 공약을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고, 지진·화재 등 각종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정책도 마련하고 있고, 지역경제를 살리고 지방재정을 강화하기 위한 지방자치 공약도 다수 포함될 것이다."-남북정상회담의 평가와 앞으로의 과제는."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한 간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북핵 폐기'는 공동선언문 맨 마지막 세 문장으로 반영되었을 뿐, '북핵 폐기'의 본질은 흐지부지돼 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한 이후에나 추진되어야 할 보상 수단을 북한이 원한다고 해서 선뜻 내주는 것은 지금까지 견지해온 국제사회의 비핵화 노력을 무력화시키는 일이다. 정부는 '완전한 북핵 폐기'를 달성할 때까지 대북제재를 절대 완화해서는 안 된다. 굳건한 한미동맹에 근거해 긴밀한 대북공조가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나가야 할 것이다."-경기북부 접경지역 발전을 위한 대책과 계획은."한국당은 낙후된 접경지역에 대해 남북정상회담 전부터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왔다. 경기 북부와 인천 서해 5도는 지정학적 특성상 그동안 수많은 제약을 받아왔는데 달리 생각하면 통일 이후에는 가장 경쟁력 있는 지역이 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접경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기본적으로 교통망 확충이 시급하다. 경기 북부권(양주~동두천~연천)을 잇는 고속도로와 수도권 제2 순환고속도로, 경기 북부의 5대 핵심도로 건설을 통해 사통팔달의 여건을 만들 필요가 있다. 또한 접경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DMZ 안보·관광특구를 조성하고 임진각·평화누리를 통합 개발하는 등 경기 북부지역을 '평화 공간'으로 조성해나갈 계획이다."-도 출신 정책위의장으로서 가장 공을 들여온 정책이 있다면."경기 지역의 제일 큰 현안을 꼽으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수도권 규제 완화'일 것이다. 수도권에 가장 많은 자원을 과도한 규제로 옭아매면서 지방을 발전시키고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은 형식적 균형을 위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소탐대실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수도권 규제만 개선해도 11조원 이상의 경제 유발 효과와 16만 명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 이제 제정된 지 30년을 넘는 '수도권 정비계획' 같은 구시대적 발상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고, 그래서 수도권 과밀화 억제로 대표되는 정책 방향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할 때이다."-끝으로 정책선거를 이끌어 갈 복안은."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앙 정치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어떻고 개헌이 어떻고 말이 굉장히 많지만, 지방선거는 결국 먹고 사는 문제로 귀결될 것으로 본다. 정부·여당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다고 하나, 실제 민생현장의 분위기나 느낌은 많이 다르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우리 동네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할 '일꾼'을 뽑는 선거로 이끌어 나가면서 시도공약개발단을 풀가동해 지역별 맞춤형 공약을 많이 개발해 내면서 적극적인 선거를 주도해 나갈 계획이다." 글/정의종기자 jej@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함진규 의장은▲ 1959년 경기도 시흥 출생▲ 1989년 고려대 법학과졸▲ 2002ㆍ2006~2008년 경기도의회 의원(한나라당)▲ 2012~현재 제19대, 20대 국회의원(시흥시甲 자유한국당)▲ 2012·2013ㆍ2014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2014년 새누리당 대변인▲ 2014~2015년 자유한국당 경기도당 위원장▲ 2014~2015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2014~2015년 국회 남북관계 및 교류협력발전특별위원회 위원▲ 2015~2016년 새누리당 원내부대표▲ 2017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홍보본부장▲ 2017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현)▲ 2017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2017년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의장(현)▲ 2018년 6·13전국지방선거공약개발단장(현)함진규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요즘 "청년실업률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며 서민에게 고통만 안겨주는 현 정부에 맞서 "서민과 중산층, 노동자를 살리는 정책 공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2018-05-08 정의종

[인터뷰… 공감]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6·13선거 필승 공약'

"문재인 정부가 '심장'이라면, 지방정부는 '혈관'입니다. 혈관 하나하나 막힘없이 피를 전달할 수 있어야 성공적인 국정운영도 가능합니다."김태년(성남수정)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6월 지방선거 승리의 당위성을 이같이 피력했다. 민주정부 3기의 성공을 뒷받침하려면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지방정부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1년 전 그가 정책위의장을 맡을 당시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기도 하다. 그는 당시 "문재인 정부는 민주당 정부다. 민주당이 책임을 지고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이를 지키기 위한 그의 지난 1년 행보는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불철주야(不撤晝夜)'란 표현이 딱 맞다. 그는 당·정·청의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는데 주력했고, 국민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김 정책위의장의 올 상반기 목표는 더없이 뚜렷하다. 집권여당의 정책 사령관으로서 '한반도의 평화'를 불러온 남북정상회담의 후속 대책을 추진함과 동시에 6·13 지방선거의 필승 전략을 세워 당과 정부의 성공을 견인하겠다는 각오다. 이를 위해 경기도는 물론 전국 '필승 공약'을 만드는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를 만나 구체적인 전략을 들어봤다.-경기도지사 탈환을 위한 정책 공약은."현실적으로 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교통문제, 도시재생 활성화, 4차산업혁명 클러스터 조성, 상수원 보호 문제 등 모두 중요한 과제다. 서울의 높은 집값으로 서울 인구는 급속히 줄어들고 노령화되는 반면, 경기도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다 보니 주거문제와 교통문제가 도민에게 가장 민감한 정책일 수밖에 없다. 특히 교통의 경우,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중에 굵직한 수도권 교통정책만 5개에 달한다. 구체적으로는 GTX부터 광역버스 신설, 지하철, 광역교통청 설치까지 다양하다. 교통 SOC 확충은 주민의 접근성과 이동할 권리를 증진 시키는 사회 인프라다. 교통을 토목의 관점이 아닌 복지의 관점에서 살펴보며 교통 공약을 준비하겠다. 더구나 서울과 경기도는 모든 정책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교통만 해도 서울만의 교통정책, 경기도나 인천만의 교통정책으로 완전히 분절시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어렵다.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 역할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그런 시각에서 큰 그림의 공약을 내놓고 당에서 견인해 나갈 계획이다."-전국 동시지방선거의 승리를 견인할 정책 공약은."전국 17개 광역단체장을 뽑는 지방선거의 민주당 목표에 대해 많은 분들이 '9+a'를 얘기한다. 당은 그 이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 1인당 GDP는 3만 달러 시대를 맞고 있지만, 자살률과 삶의 질 순위는 OECD 국가 중 꼴찌 또는 최하위에 속한다. 경제 규모에 걸맞게 행복지수를 끌어올릴 수 있는 과감한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정책이다. 일자리는 비용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봐야 한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 공약도 '사람에 대한 투자', '일자리 확충을 위한 지방정부 건설'을 목표로 세울 것이다. 단순히 지방정부에서 공무원 수를 늘리는 게 아니라, 국민 안전이나 건강, 환경, 복지에 긴요한 공공부문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또 규제를 혁신하고 중소기업 체질을 강화해 민간부문의 일자리 창출도 유도할 것이다. 아울러 '지방분권강화'라는 큰 틀에서 중앙정부가 내놓는 사업만 대리해 수행하는 지방정부가 아니라, 예산과 인력의 자율성을 가지고 주민복리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내놓을 것이다."-남북정상회담의 평가와 앞으로의 과제는."지난 27일 하루의 전체를 국민들, 전 세계인이 함께 봤다. 이미 국민들은 마음 속에 평가를 하셨다고 본다. 지난 11년간 멈췄던 남북관계,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이 오히려 50년 전까지 되돌려놨던 평화의 시계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고 본다.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까지 미국, 중국과 해왔던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5월은 한반도의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길을 여는 한 달이 될 것이다. 매우 흥분되고 설렌다. 그러나 침착하게 필요한 일들을 잘해 나갈 것이다. 특히 경제협력 분야에 있어서 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기금부터 시작해 법률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경제뿐 아니라 문화 예술 등 다방면에서 교류협력이 활발하게 진행되려면 범정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남북이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맺었을 때, 법률적인 장치들도 국회에서 만들어 가야 한다. 이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통일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통일이라는 첩첩산중에서 이제 산 하나 넘었을 뿐이다. 회담 이후 북한이 즉각적으로 표준시를 우리와 일치시켰듯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속도를 조절하면서도 미·중·일·러와도 긴밀히 대화하고 협력을 얻어내는 섬세한 외교가 필요하다. 5월로 예정된 북미대화도 북미만의 만남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그 사이에 중요한 내용을 조율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협상자가 될 것이다."-평화시대 경기북부 접경지역 발전을 위한 대책과 계획은."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할 경제협력 청사진은 이미 제시했다. 이른바 'H'구상으로 서해안 벨트·동해안 벨트·DMZ벨트로 나뉜다. 서해안 벨트는 수도권에서 시작해 개성공단, 평양, 신의주까지 잇는 구상이다. 남한의 첨단기술과 북한의 노동력을 합치면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은 커질 것이고, 철도노선이 이어진다면 물류 경쟁력도 큰 도약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판문점 선언에도 철도 연결이 담겼다. 예상보다 빠르게 진척되고 가시화될 것이다. 기대해도 좋다. 그 서해안 벨트 중심에 경기북부가 있다. 북한과 경제협력을 하려면 배후지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 물류 흐름이 활발해 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대규모 물류센터나 부품공장들이 접경지역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남북접경지역을 통일경제특구로 지정해서 기업의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국회도 남북경제협력을 진전시킬 수 있는 특위를 설치하고 적극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글/김연태기자 kyt@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jongtaek@kyeongin.com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한반도의 평화'를 불러온 남북정상회담의 후속 대책을 추진함과 동시에 6·13 지방선거의 필승 전략을 세워 당과 정부의 성공을 견인하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사진/김종택기자jongtaek@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jongtaek@kyeongin.com

2018-05-01 김연태

[인터뷰… 공감]연극 '사랑해요, 당신' 재공연 나서는 62년차 배우 이순재

고령화사회 문제 치매 주제, 어려운 병일수록 배우자 역할 중요 메시지희로애락 담아낼 수 있는 노인테마 소외카드 아냐, 시트콤 만들라 말해이길여 총장 신뢰해 가천대서 연기 지도, 학생들에 발성연습 가장 강조연기력으로 정평 난 배우들이 전국의 관객을 눈물짓게 만든 연극 '사랑해요, 당신'이 재공연에 돌입한다. 지난해 이맘때 서울 동숭동 예그린씨어터 무대에서 첫 선을 보인 '사랑해요, 당신'은 이어서 대구와 안성에서 공연됐으며, 연말 인천 부평아트센터 공연까지 전체 60여회 공연 중 40여회에서 전석 매진되는 등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큰 호응을 얻은 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오는 27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펼쳐진다. 아내이자 엄마로 40년 넘게 살아온 한 여성에게 치매 증상이 찾아오며 변화를 겪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이야기에 대다수 관객은 눈물을 흘리며 공감했다. 이순재와 정영숙, 장용과 오미연의 자연스러우면서도 호소력 짙은 연기와 함께 평범한 가정에 불어닥친 당혹스런 상황이 만들어낸 안타까움에 관객은 공연과 어우러졌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711만명 가운데 10%가 넘는 72만명이 치매 환자다. 누구나 치매로 고통받는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연극을 제작한 극단 사조(대표·유승봉)는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천대 길병원 의료진의 자문을 얻어 극적 완성도를 높이기도 했다. 다시 70대 중반의 남편 '한상우'로 분해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 무대에 오를 배우 이순재와 최근 서울 강남구의 SG연기아카데미에서 인터뷰했다.이달 초 개봉한 영화 '덕구'가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영화의 주연 배우로서 연일 매스컴의 취재 요청을 받고 있는 이순재는 연극 '사랑해요, 당신'과 함께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의 전국 순회공연도 준비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그는 "노인 역할은 아무래도 인생의 끝자락이다. 젊은 시절 화려한 인생을 살았을 노인 중 현재 유복한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인생을 정리하는 과정에 놓인 노인들은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생활 조건을 가져야 하지만, 홀몸노인 등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되지 못하면서 문제를 안고 있는 부분들이 많다"면서 "영화 '덕구'도 그렇고 이번 연극 '사랑해요, 당신'은 우리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생기는 노인 문제와 함께 노인의 고독감 등 매우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와 같은 작품에 출연하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자연스레 화제는 연극 '사랑해요, 당신'으로 옮겨갔다."공연을 하다보면 관객의 반응을 읽을 수 있어요. 지난해 공연 후 '관객들이 동의하고 있고 호감과 충족감을 안고 공연장을 나서는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품에서 강조하는 게 '나이 들면 부부뿐'이라는 건데, 공연장을 찾은 한 부부의 영감님이 공연장을 나서면서 부인에게 '앞으로 나 잘할게'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실적 주제에 관객이 공감하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재공연에 대한 기대와 함께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느꼈습니다."치매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병적 조건이다. 사회적으로 치매에 대한 관심이 높고 당국에서도 많은 연구를 한다. 작품에선 일상화된 병적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요건은 가장 가까운 부부임을 강조한다. "작품은 후반부로 갈수록 절절한 사연들이 나타납니다. 비록 친족이지만 아들이라는 제3자가 나오는데, 아들은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자고 주장하죠. 하지만 아버지는 '내 아내를 내가 아니면 누가 책임지나'라고 말하며 아들과 논쟁을 벌입니다.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다는 아버지의 반대는 어려운 병일수록 같이 희생할 수 있는 사람만이 챙길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가천대 길병원과 함께하는 연극'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작품에서 병원 측은 자문과 함께 제작 후원을 했다.또한 노령의 부부 역을 제외한 젊은이들 역할은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학생들이 맡았다. 작품의 연출은 이재성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교수가 했다. 이순재는 2012년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설립 때 석좌교수로 부임했으며 현재 매년 4학년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2008년과 2009년 가천대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길여 가천대 총장님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죠. 2012년 연기예술학과 설립 전에 자문을 구하셨고, 교수직 요청도 있었습니다. 사실 총장님의 경우 이전부터 여·야를 떠나 정치권에서도 욕심을 냈던 분이셨죠. 하지만 선을 확실히 긋고 학교와 병원에 전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분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요청에 응했습니다. 교육은 뒷전이고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여타 학교 재단의 오너들을 본 적이 있는데, 오너의 열정 여부에 따라 학교가 확 달라지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습니다."배우 이순재가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화술'이다."제게 주어진 수업시수가 1주일에 4시간인데,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학생들과 만나서 공연 준비를 하고 학기 말에 작품을 무대에 올리죠. 기성 극단원들도 2~3개월은 연습해서 무대에 올리는 형태고 우리 학생들도 그 정도 기간은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화술'입니다. 최근 연기 현장에선 언어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연출자가 언어에 대한 정확한 발성을 지적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죠. 소통만 하면 된다는 건데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정확한 발성이 이뤄지지 않으면 특히 고전 등 문학성과 철학성이 함유된 원작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할 수 없습니다. 배우는 가장 정확한 언어로 표현해야 하고 자기 나라 표준어를 구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을 중심으로 정체 모를 언어들이 떠도는데 이런 말들은 조만간 소멸할 것이고 표준어는 도도하게 남을 것입니다. 배우는 어떤 지역이나 계층이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발성해야 합니다. 이런 부분을 학생 때 다져놓으면 어느 무대에 서더라도 자신감 있게 연기할 수 있는 재산으로 남을 것이고요."대학 시절 연기가 좋아서 연기를 시작한 이순재의 연기 인생은 어느덧 62년 차로 접어들었다. 한 포털의 기준으로 이순재는 영화 129편, TV 프로그램 106편, 공연 59편에 출연했다."오래 연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른 수단(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죠(웃음). 딴따라로 멸시받는 때였지만, 대학생 때의 맑고 순수한 눈에 연기는 확실한 예술 창작으로 여겨졌습니다. 내부보다는 주로 외국 명인들의 활동과 성과를 봤을 때 확실한 예술이었습니다. 배고프고 멸시를 당해도 해볼 만한 작업이었죠. 예술 창조 작업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좋아서 했고, 당대 인정 못 받아도 후대에 평가를 받는 경우가 있듯이 연기를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던 건 예술적 완성으로 관객에게 평가받고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세웠기 때문일 것입니다."방송 관계자들에게 "늙은이들 갖고 시트콤을 만들어봐라"고 제안한다는 이순재는 "젊은이는 다소 단편적이지만, 노인의 경우 극적이고 복합적"이라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얼마든지 담아낼 수 있는 노인 테마는 흥행에 소외된 카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고, 돌아봤을 때 반응도 괜찮았다"고 말했다./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배우 이순재는?1935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그는 ▲1954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으며 ▲1956년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가'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했다. ▲1971년 제1대 연기자협회 회장에 취임했으며 ▲1977년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남자최우수연기상 수상을 시작으로 10여차례에 걸쳐 문화·예술상을 받았다. 현재 ▲가천대학교 예술대학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SG연기아카데미 원장 ▲제3기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촉위원으로 있으면서 연기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연기 인생 62년의 대배우 이순재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연기를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던 건 예술적 완성으로 관객에게 평가받고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세웠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연극 '사랑해요, 당신' 공연 모습. /경인일보DB

2018-04-24 김영준

[인터뷰… 공감]4·16 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 장동원 팀장

세월호 참사 당시 선원 구한 해경, 승객은 구조 안해… 생존자 스스로 탈출3개월동안 배몰며 침몰 해역 찾아, 갈때마다 '접근금지' 경고방송 운항 막아직무유기 모자라 국정원·검·경 동원 유족사찰… 책임있는 사람들 죄 물어야친구들 잃은 딸 애진, 구급대원 길 선택… 아내는 가족연극단 참여 순회공연세월호 참사 이후 2년간 가족협의회 회의 석상에서 발언하지 않은 남자가 있다. 어둠의 바다에서 생환한 아이를 뒀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스스로 입에 재갈을 물었다. 하지만 살아 돌아온 자식을 둔 아버지여서 미안하다는 그에게 먼저 곁을 내준 건, 다름 아닌 자식을 보낸 부모들이었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열린 정부 합동 영결·추도식 준비로 한창이던 지난 13일, 안산 화랑유원지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장동원(48) 4·16 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 팀장을 만났다. 장씨는 단원고 생존자 장애진(여·21·당시 2학년 1반)씨의 아버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애진 아빠' 대신, 가족협의회 진상규명팀장으로 소개했다."딸, 구명조끼 꼭 챙겨입고 비상구가 어딨는지 잘 확인해야 해." 장씨의 딸과 친구들이 세월호에 오르기 전날, 장씨는 딸에게 평소 하지 않던 잔소리를 했다. 이 한마디가 부녀의 생이별을 막았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장씨는 출근을 했다. 일과시간이 1시간 남짓 지났을까. 울부짖는 딸의 전화를 받은 장씨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아빠, 컨테이너가 떠내려가. 우리가 뉴스에 나와. 진도에서 배가 침몰하고 있대. 배에 물이 들어온대. 방송에선 계속 가만히 있으라고만 해."장씨는 인근 공장에 다니는 아내에게 달려가 아내를 차에 태우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진도 팽목항으로 달렸다. 아내는 장씨에게 언론에 전원 구조됐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말했다. 장씨는 믿지 않았다. 곧장 자가용을 몰아 진도 팽목항으로 내달렸다. 안산과 진도를 잇는 고속도로에는 비상등을 켜고 갓길을 내달리는 단원고 학부모들의 승용차 행렬이 이어졌다.애진씨는 SP-1(세월호 다인실 격실)에서 같은 반 친구 7명과 함께 구명조끼를 입고 해경 구조를 기다리다가 격실 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차면서 배가 기울어 천장으로 올라간 출입문으로 솟구쳐 나왔다. 난간을 잡고 서 있다가 스스로 바다에 뛰어내린 뒤 건져졌다. 참사 당시 단원고 생존 학생들은 세월호에서 구조된 게 아니라 자력으로 탈출했다고 입을 모은다. 장씨의 딸 애진씨도 마찬가지였다.대통령이 관저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고, 국가안보실(NSC)이 무기력하게 세월호 침몰을 지켜보던 그 시간. 장씨는 무너진 정부 행정 시스템의 민낯을 직시했다. 팽목항에 도착한 장씨 부부는 딸의 이름이 사망자 명단에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간이 책상을 펴고 컴퓨터 집기를 설치하는 공무원에게 세월호 탑승객 생사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장씨 부부 앞에 섰던 공무원은 되레 '당신 누구냐'고 되물었다. 화가 난 장씨는 간이 책상을 들어 엎었다.당시 애진씨는 단원고 학생 30여명과 함께 서거차도에 있었다. 장씨는 딸과 동거차도 마을회관 전화로 연락이 닿자마자 함께 있는 친구들 이름을 적어서 불러달라고 했다. 깨진 톱니바퀴 같은 정부 시스템 위에서 세월호 가족들은 서로를 도왔다."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사람이 다치면 119가 출동합니다. 하지만 그날 대한민국 해경은 승객을 구하지 않았어요. 다 내팽개치고 배의 심장인 기관실 선원을 최우선으로 구조한 게 해경이에요. 직무를 유기한 것에도 모자라 국정원과 검·경은 세월호 가족을 사찰하기까지 했습니다."2014년 4월 16일은 다른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장씨 가족의 삶도 송두리째 바꿨다. 안산 반월공단의 한 공장에 다니던 장씨는 작업복을 벗었다. 그날 '해상 교통사고'의 진상규명이 그의 새 일이다. 과거 민주노총 금속노조원 활동을 했다는 것 때문에 일부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밀양 송전탑 할머니들을 찾아간 '전력'은 해경 정보보고에 실렸고, 장씨의 휴대전화 사용 내역은 국정원과 서울종로경찰서, 검찰에 조회됐다. 장씨는 '진실호'를 타고 바다가 삼킨 세월호 주변을 맴돌았다. 희생자 가족과 미수습자 가족 대신 진실규명을 위한 키를 잡은 것. 장씨에게 어장길(뱃길)을 알려준 은인은 동거차도에서 미역 양식을 하는 '옥경이형'이었다."3개월 동안 진실호를 몰았어요. 세월호 침몰 해역 바지선으로 가족들을 모시고 간 거죠. 바지선 위에선 416TV 지성(단원고 2학년 1반 희생자) 아빠와 함께 해경이 건져 올리는 모든 것을 영상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갈 때마다 뭘 숨기는지 해경 고무단정은 '접근금지' 경고방송을 하며 운항을 막았습니다."감춰진 세월호의 진실을 찾기 위해 장씨는 연고 없는 진도 해역 뱃길을 익혀 키를 잡았고, 다른 가족들도 해상관제센터(VTS) 항해 기록 독해법을 익혔으며, 해외 해상사고 연구소를 찾아가 세월호 사고 시뮬레이션을 참관해 분석했다.세월호 참사 이후 4년이 지났다. 진실규명은 전 정부의 훼방과 방해로 더뎠다. 사고 당일 청와대는 대통령 보고 및 지시 시각을 조작했고,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수정해 책임을 회피했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 참사 당시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 123정 정장에 대한 처벌은 신속했다. 미수습자 수색이 한창이던 2015년 11월 대법원은 침몰하는 배를 뒤로하고 구조된 세월호 이준석 선장에게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확정했고, 김경일 당시 해경 123 정장에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검찰 수사 결과에서 드러난 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 시간에 죽어간 아이들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최순실의 조언을 듣고 그제야 대통령이 중대본(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찾아간 것만 봐도 나라가 제 모양이 아니었던 거예요. 대통령부터 해경청장, 일선까지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를 물어야 합니다."세월호 가족들에겐 여전히 과제가 남아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1기 특조위)에서 밝혀내지 못한 침몰 원인 등을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회적참사 특조위)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아울러 형사재판에서 드러나지 않은 세월호의 진실을 민사재판을 통해 밝혀내고 '목숨값'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장씨와 세월호 가족들의 과제다."항간에선 외력설까지 나오고 있어요. 이런 험한 꼴을 당할 줄 알았다면 안산에 오지 않았겠죠. 살아 돌아온 자식을 둔 것이 미안해 가족협의회 회의 자리에서 2년간 한마디도 못했어요. 그 과정을 버텼더니 다른 가족들이 곁을 내주더라고요."누군가는 쉽게 장씨에게 불행 중 다행으로 세월호에서 자식이 살아 돌아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월호는 장씨에게 평생 지우지 못할 깊이 파인 눈물샘으로 남았다.막일하는 아버지와 재봉공장 다니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 미아역 인근에서 형제자매 없이 홀로 자랐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자식 둘 중 하나를 영원히 잃어버려 남은 자식을 자신처럼 홀로 둘 뻔 했다. 큰딸은 자신이 다니던 단원고의 교복이 예쁘다며 동생 애진씨에게 입학을 권유한 것 때문에 자책하다가 지금은 동생 잃은 친구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장씨 아내는 허리 통증에 보호대를 차고, 진통제를 먹으며 세월호 가족 '엄마의노란연극단'에서 전국 순회 공연을 한다.하늘이 무너지는 아찔한 기억을 딛고 장씨는 살아남은 두 딸과 아내, 먼저 아들딸을 보낸 세월호 가족들을 위해 하루를 살아낸다. "가족들이 전보다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어졌어요. 애진이는 119구급대원 실습 마치고 다시 학교에서 공부하고, 주말엔 세월호를 잊지 않으려는 대학생들과 간담회에도 자주 참석하고 있고요. 세월호 진상규명은 우리 가족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멍에입니다."글/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장동원(48) 4·16 가족협의회 진상규명 팀장이 안산 정부 합동 분향소에서 4년전 세월호 참사 당시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2018-04-17 손성배

[인터뷰… 공감]22년째 월요일마다 한센병환자 찾는 박향준 길병원 피부과 교수

외과 기술 배우려다 인연한번 시작하면 뿌리뽑는 성격원대한 뜻 아닌 삶의 한부분일곱 살에 시작한 바이올린이 몸에 꼭 맞았다. 1960년대 '한창 날리던' 정경화처럼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다. 중학교 1학년인 1969년 경향신문 주최 '제18회 전국 남녀 음악 콩쿠르'에 출전해 중학부 1등을 차지했다. "한 번 시작하면 뿌리를 뽑는" 성격이었다. 사춘기에 들어설 무렵 찾아온 무대 공포증을 떨쳐내지 못했다. '누구나 다 경험하는 것'이었지만 무대에 오를 때마다 극도의 떨림이 계속됐다. 부모님 권유를 받아들여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학업에 집중했다. 서울대 의과대학에 입학, 2등으로 졸업했다. 서울대 최초의 여성 피부과 전공의가 됐다. 우리 나이로 마흔 살이 되던 해 피부외과에 도전했다. 수술 테크닉을 배워야 했다. 당시 고려병원(강북삼성병원 전신)에 있던 안성열 과장을 무작정 찾아가 도움을 구했다. 피부과, 성형외과 전문의 면허를 취득한 의사로 흉터 부분의 전문가였다. 그 때 안성열 과장의 권유로 경기도 의왕에 있는 한국한센복지협회 부설의원에서 무보수 촉탁의를 1997년 시작했다. 그 때부터 매주 월요일 오전 스케줄은 한센병 진료·수술이었다. 올해로 22년째다. 박향준(62) 가천대 길병원 교수(피부과) 이야기다.- 한센병 진료 봉사를 20년 이상 꾸준히 이어 오고 계십니다.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지속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솔직히 사명감으로 시작한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안성열 원장님 도와드리고, 개인적인 필요로 시작했어요. 안 원장님과 저 두 사람이 나눠서 외래 환자를 보고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좀 더 기여하는 바가 확고해지고, 이 곳에서 제 몫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만두지 않는 겁니다. 이제는 매주 월요일 오전 한센복지협회 부설의원에 나가는 것이 제 생활의 일부, 스케줄의 일부가 됐습니다." (안성열 원장은 1989년부터 대구 파티마 병원에서 한센인 재활 성형을 도왔고, 1992년부터 매주 월요일 한국한센인협회 부설의원으로 출근한다. 현재 서울에서 안성열 성형외과·피부과 원장을 맡고 있다)- 한센인 재활 성형, 왜 중요한가요."한센병은 영구적 신경 파괴 질환입니다. 신경은 복구가 안 돼요. 감각이 없어지면, 근육도 마비됩니다. 안면근이 마비되면 눈을 감을 수가 없는데, 눈을 못 감으니까 염증이 생깁니다. 그게 실명(失明)으로 이어지기도 하구요. 입이 안 다물어진다고 생각해보세요. 남 보기에 안 좋을 뿐 아니라 밥도 잘 못 먹습니다. 치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렇게 2차, 3차 수많은 후유증을 유발해서 정상 생활을 못하게 합니다. 삶의 질이 말이 아니게 되는 거죠. 신경 손상된 것은 복구하지 못하겠지만, 겉모양이 좋아지면 환자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센균의 특징 중 하나가 연골을 침범해 흡수합니다. 코뼈가 없어져요. 누가 봐도 납작코면 한센병이라고 해요. 그것을 스티그마라고 해요. 그렇게 되니까 환자들의 일반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요. 재활 성형이 반드시 필요하죠. 신경이 없어지면 근육 장애가 오고, 근육을 쓸 수 없으면 위축돼 없어져요. 손등에 푹푹 파인 골이 생겨요. 그것을 사람들이 한센병의 한 사인으로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복부에서 지방을 빼서 채우는 거예요." - 한센병 진료 22년. 힘든 건 무엇인가요."직장 여러 번 옮겼는데, 알력이 많았어요. 의사는 오프 시간대에도 병원에 있어야 하는 게 원칙이에요. 그래도 양해해달라고 하면 수용해주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반면 그것을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셨어요. 제 일이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거잖아요. 얼마든지 이해를 해주고도 남을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병원장 말을 거부하고 월요일 오전 진료를 이어나갔어요. 그런 저를 두고 '문제가 많은 의사다', '반골이다'라는 평가가 들려왔을 때가 마음 아팠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건데…"- 서울대 의대 여성 1호 피부과 전문의로 기록돼 있습니다. 왜 피부과를 선택하셨나요."여성(의 의료계 진출)이 지금 같지 않았을 때죠. 당시 피부과 인기도 없었고, 여자는 잘 뽑지도 않았어요. 다른 과도 마찬가지였어요. 대학교 5~6년 선배 중 한명은 1등으로 졸업했고 소아과를 지원했는데 거절당해 내과로 갔어요. '임신하고 그러면 전력에 손실이 온다...' 뭐 이런 이유였죠. 예전에 실습할 때 이비인후과에 가니 '여학생 안 뽑으니까 어플라이하지 마!'라고 말하던 분도 계셨고, 뽑아도 큰 인심 쓴 것처럼 생색내는 분도 많았죠. 외과에는 여자가 없었어요.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었죠. 마흔살쯤 피부외과를 시작했어요. 피부외과는 표피, 진피, 피하지방, 근막까지 담당해요. 뼈와 골격은 정형외과 분야고요. 피부외과 전문 인력이 없어요. 어렵기만 하고. 수술도 해야 하고. 수가도 안 받쳐줘요. 수술하면 할 수록 손해니까 병원도 꺼리죠. 많은 선생님들이 수술을 해서 테크닉을 갖추면 미용 쪽으로 전환해요. 그게 수입도 많고. 그래도 피부과 입장에서는 피부외과 전문 인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소녀가 피부과 의사가 됐습니다. 전환점은 무엇이었나요."중학교 2학년 때 무대 공포증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사춘기 때문이었는지 극복하기 귀찮았습니다. 제가 경쟁심이 강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국어선생님이 '공부에 재주가 있는 것 같다'고 하신 말씀이 힘이 됐습니다. 제가 음악한다고 정말 돈 많이 들었는데, 그게 미안해서 부모님 희망인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기도 해요." (박향준 교수는 경기여고 63회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김영란 전 대법관, 조배숙 전 의원이 동창이다. 박 교수는 남편, 아들, 딸, 며느리 모두 의사다)박향준 교수는 길병원에 부임하면서 바이올린을 다시 잡았다. 개인 레슨도 받는다. 서울대 의대 메디컬 오케스트라 이후 30여 년 만의 일이다. '아마추어도 꾸준히 연습하면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교수는 "사실 (매주 월요일 의료 봉사는) 내 생활의 일부, 스케줄의 일부가 됐을 뿐이지 무슨 원대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번 시작하면 뿌리를 뽑아야 하고, 무엇을 하다가 중단하면 자책하는 성격의 박 교수. 그렇게 그는 '한센인 환자 월요 봉사'에 나서고 있다.글/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박향준 교수는?▲1956년 서울 출생▲매동초, 금란여중, 경기여고, 서울대 의과대학 졸업▲1981년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피부과 레지던트 수료▲1985년 고려대학교병원 전임의▲1995년 일본 토라노몬 병원 피부외과 연수▲1996년 단국대학교병원 조교수, 부교수▲1997년 한국 한센복지협회 부설 의원성형·재건 담당 위촉의사 시작▲2002년 미국 오레곤보건과학대학교피부외과 연수▲2007년 제일병원 피부과▲2009년 중앙보훈병원 피부과▲2015년 장기려의도상 수상▲2018년 보령의료봉사상 수상가천대 길병원 본관 앞에서 만난 박향준 교수는 '체력이 허락하는 한' 한센인 의료 봉사를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의료 봉사를 망설이는 의료인들에게 "타인에도 도움을 주는 것보다 자기 자신이 얻는 점이 훨씬 많다. 시간이 흘러야 이를 깨닫게 되는 점은 있지만 기회가 있을 때 주저하지 말고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박향준 교수는 매주 월요일 경기도 의왕의 한국한센복지협회 부설의원에서 외래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을 한다.한국한센복지협회 부설의원 전경. 피부과는 매주 월요일 오전 9시에 시작, 오후 1시까지 진료와 수술이 이어진다. /박향준 교수 제공

2018-04-10 김명래

[인터뷰… 공감]경기도 융합기술원 정밀의학 연구센터장 김성진 박사

# 암 연구와 암 정복에 대한 철학은=그간 암 죽이는데 집중, 세포성장 단백질 조절하면 치료 가능할 것# 美 임상실험 앞둔 신약개발 성과 비결은=장기관점 투자·연구와 경영 이원화, 기술·자본·매니저 있어야 성공# 4차 산업 육성에 꼭 필요한 제언은=넓은 네트워크 가진 인물 중요, 과학자 겸업 막으면 산업화 걸림돌"두 개의 꿈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소를 만드는 꿈, 세계적인 약을 만들어 한국 신약개발에 비전을 제시하는 꿈." 30여년간 암 유전체와 암 전이, 암 예방 등을 연구한 김성진 경기도 차세대 융합기술원 정밀의학 연구센터장은 최근 난치성 암인 '삼중음성 유방암'의 주요 원인 물질을 세계 최초로 규명해 세계 의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에게 세계 최초의 수식어는 처음이 아니다. 1994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종신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암 세포에서 'TGF-beta' 수용체 유전자의 결손과 돌연변이를 규정한 것도 김 박사가 최초다. 가천대 의대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지난 2009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자신의 유전체 전체를 해독해 화제가 됐다. 미국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유전체 해독에 성공한 지 5년만이자 세계에서 5번째였다.지난 2일 융합기술원에서 만난 김 박사는 그간의 연구와 암 정복에 대한 철학을 설명했다. 김 박사는 "지난 수십년 간 세계에 많은 과학자들이 암 정복에 나섰지만 아직 완전한 정복은 이뤄지지 못했다"며 "그간 연구들이 암 세포를 죽이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암 세포가 성장하는 환경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암 연구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암 세포가 성장하는 환경을 조절하는 것은 김 박사가 30여 년간 연구한 'TGF-beta'에 답을 찾을 수 있다. 그가 암 정복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유다. 암 세포가 만들어내는 'TGF-beta'는 일종의 방패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세포가 성장하고 분열하도록 신호를 보내는 단백질로, 이 신호를 조절하면 세포를 증식, 분열, 사멸하게 만들 수 있는 데 암 세포는 이를 이용해 면역이 공격을 할 수 없게 만들고 혈관을 확장시켜 성장에 최적화된 환경을 만든다.김 박사는 TGF-beta를 처음 발견한 마이클 스폰 박사와 아니타 로버츠 박사의 제자로, 1980년대 TGF-beta 연구 초창기부터 그 가능성에 주목해왔다. 그는 "앞서 암 세포를 죽이는 치료제는 많이 나왔기 때문에 TGF-beta를 조절할 수 있다면 암 정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김 박사는 자신이 가진 독보적인 기술을 활용해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한 제약회사에 부회장이자 기술 자문으로 참여, 신약 개발에 대한 토양이 척박한 대한민국 BT산업을 이끌고 있다.10년 가까이 적자를 보더라도 50억 원씩은 신약 개발에 재투자한다는 원칙을 고수한 결과, 개발한 신약이 미국에서 임상 실험을 앞둔 단계까지 왔다."지난 2007년 이길여 암당뇨연구원 원장을 제안받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세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소를 만들고, 또 세계적인 신약을 만들어 대한민국 신약개발에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점차 꿈에 근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는 이같은 성공의 비결로 끊임없는 투자와 과학자-CEO의 이원화를 꼽았다. 당장의 적자 때문에 투자를 줄이지 않았고 눈 앞에 성과를 쫓지 않았기에 독보적인 기술을 가질 수 있었고 신약 개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아울러 제약회사의 최대주주로 있으면서도 경영은 전문 CEO에게 맡기고 자신은 과학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은 장기적인 투자를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구의 테마가 바뀌면서 한 분야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고 그 결과로 기초과학, 원천기술이 발전을 하지 못하게 됐다"며 "경제성장단계에서는 복제약 개발로 빠르게 따라가면 성공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투자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투자 성과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BT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진다고 제언했다.또 과학자-CEO가 분리돼야 벤처기업이 자리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와 식당을 경영하는 경영자는 다르다는 것이다."바이오 벤처기업이 성공을 거두려면 기술이 있어야 하고, 자본이 있어야 하고, 매니저가 있어야 한다"며 "기초과학을 한 사람이 갖지 못한 네트워크, 자본을 끌어올 네트워크나 협력할 회사들의 네트워크 등을 잘 아는 사람이 경영을 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그는 미국의 사례를 들어, 의류 산업 벤처기업으로 성공을 한 CEO가 의약 부문 벤처기업 CEO를 맡아 제약회사를 크게 키우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매니저는 산업 부문을 뛰어넘어 기업을 성공시키는 노하우를 가진 전문 CEO가 맡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 의약 벤처 기업을 위해서도 넓은 네트워크를 가진 인물을 양성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4차 산업 육성에 대한 제언도 빼놓지 않았다. 김 박사는 '사람에 대한 투자'가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의 경제환경, 다가올 4차 산업혁명에서 앞서 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그는 "중국은 해외에서 활약하는 1천명의 전문가를 다시 국내로 부르는 프로젝트를 통해 개개인이 가진 수십 년의 노하우를 모아 단숨에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어냈고 일본도 이와 유사한 스타프로젝트로 과학기술을 선도해가고 있다"며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다.아울러 "한국에서도 기초과학연구원을 설립해 투자를 하고 있지만 원칙적으로 과학자들의 겸업을 막아 우수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산업으로 만드는 데 제약이 된다"며 과학자들이 더욱 활발한 연구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으로 돌아올 때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박차를 가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자신이 센터장으로 있는 융기원 정밀의학 연구센터를 통해 의약 벤처들의 길을 열겠다는 것. 펀드를 운영해 연구를 지원하고 연구 성과의 일부를 회수하는 조건으로 자본력을 키우고 과학자에게 다양한 유인을 제공해 기술개발에 불을 붙이겠다는 계획이다. 경기도의 먹거리를 찾는 투자를 여러 연구와 매칭시키겠다고 자신의 청사진을 설명했다.김성진 박사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국내에서는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세워놓은 원칙을 포기하지 않은 결과, 세계적 신약을 만들겠다는 꿈이 가시화되는 시점에 왔다"면서 "성공사례를 만들어 한국 바이오의 꿈을 키워주고 싶다"고 했다.글/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경기도 융합기술원 정밀의학연구센터장 김성진 박사는 "자신이 30여년간 연구한 TGF-beta를 조절할 수 있다면 암 정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2018-04-03 김성주

[인터뷰… 공감]인천 출신 컴퓨터 공학자 안재우 모비언스 대표

스마트폰 보조기기 '리보2'일본 교육업체와 정식 계약 눈앞코이카 파트너사로 선정돼콜럼비아 '점자사전' 개발 진행도인천 출신 컴퓨터공학자 안재우(50) (주)모비언스 대표의 꿈은 '세상의 모든 시각 장애인을 위한 IT 기기 개발'이다. 이 목표를 달성해보겠다고 오랜 시간 제품 개발에 매진해왔다. 어떻게 하면 시각 장애인이 지금보다 더 스마트폰을 편리하게 쓸 수 있을까. 점자를 아예 모르는 시각 장애인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점자를 익힐 수 있는 사전을 개발하면 어떨까.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이 창시된 도시, 인천에 기반을 둔 공학자는 지난 7년을 이 일에 매달려왔고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안 대표의 점자 사전 아이디어를 채택했다. 이 사업을 위해 안 대표가 설립한 (주)브레일리스트는 개발도상국의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CTS(Creative Technology Solution) 프로그램 파트너사로 선정됐다. 3억원을 지원받아 콜럼비아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사전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스마트폰 보조 기기로 기존 제품보다 기능이 보강돼 지난해 나온 리보(RIVO)2의 경우 일본의 한 보조 공학 기기 교육 업체가 100대를 선주문, 정식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안 대표를 27일과 지난 13일 두 차례 송도국제도시 글로벌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만났다. 인터뷰에는 시각 장애인으로 지난해 모비언스, 브레일리스트에 합류한 정유라(39) 이사가 함께 했다. 정 이사는 "대부분 사람은 시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데, 저희는 시각의 정보를 못 받아들이니까 좀더 나은 기기가 있어야 더 많은 정보를 소화할 수 있다"며 "IT 기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삶이 윤택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안 대표는 "검증을 안 하면, 엔지니어는 오류에 빠진다. 정말 사용자들이 어떻게 쓰는지, 개발자는 그것을 모른다. 그런 노하우를 제게 알려주는 일을 정 이사님이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Q : 현재 콜럼비아 시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코이카 지원을 받아 개발 중인 점자 사전은 어떻게 시작됐고 왜 필요한 일인가요.A : 시각 장애인의 90% 이상이 점자를 모릅니다. 점맹률이 미국 93%, 한국 95%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장애인 문맹률이 10%면 난리 났겠죠.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점자 사전 기기란 개념조차 없었습니다. 점자 학습 익힘 교과서나 규정집이 있지만 누군가가 옆에서 알려줘야 합니다. 점자를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은 혼자서 점자를 익힐 수조차 없는 상황입니다. 다른 교육자나 기타 도움 없이 혼자 기기만 있으면 집안에서 점자 학습이 가능해야 합니다. 코이카에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사전 개발' 과제를 제안했고, 지난해 11월 선정됐습니다. 콜럼비아 시각 장애인은 120만명 이상으로 우리나라의 5배가량입니다. 우선 프로토타입(prototype·시제품) 100대를 만들어 콜럼비아 시각 장애인 교사·학생 등을 상대로 적용해보고, 올해 9~10월쯤 제품을 출시할 계획입니다. 스페인어권은 시작입니다. '세상의 모든 점자를 다 넣는다'는 것이 브레일리스트의 목표입니다.* 브레일리스트(Braillist)는 점자 번역자를 뜻한다. 기계적 직역이 아닌 의역이 가능한 숙련가를 브레일리스트로 부른다.Q : 시각 장애인을 위한 스마트폰 보조 기기 리보(RIVO), 왜 특별합니까.A : 2011년 미국 보조공학 전시회인 CSUN(California State University at Northridge)에 다른 제품을 전시하러 간 적이 있어요. 지체 장애인을 위한 키보드를 내놓았는데 정작 그분들은 관심이 없고, 시각 장애인분들만 방문하시더라구요. 배낭에서 키보드를 꺼내 애플 스마트폰 쓰는 방법을 보여주시면서 '불편하다', '편리한 제품을 개발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때부터 시각 장애인 보조 기기 개발을 시작했어요. * 리보는 시각 장애인이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스마트폰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보조 기기다. 보이스 오버 탐색 명령이 가능할 뿐 아니라 텔레뱅킹, 문자 입력·편집 등이 가능하다.안 대표는 인천에서 초·중·고교를 나와 카이스트 학부 과정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부전공이 컴퓨터공학이었는데 '재미난 수학'으로 생각하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박사 2년차 때 우연히 알게 된 시스템공학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일하면서 개발자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외환위기 때 친구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지만 '돈 버는 일'에 치여 개발자로서 역량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2003년 모비언스를 창업하면서 공학자로서 도전을 본격화했다. 창업 초기 그의 관심은 '세상의 모든 키보드 표준'을 만드는 데 있었다. 이른바 '모비언스 쿼티(querty·컴퓨터 자판 배열)'라는 원대한 꿈을 꾸며 5~6년간 정보 통신 국제 표준화 기구를 쫓아다녔지만 실패했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자신의 지식과 기술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제품 개발을 지속했다.안 대표는 정 이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품 개발에 실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예로 리보2에서 음성 기능을 추가한 것도 정 이사의 조언 때문이었다."소리나는 키보드가 세상에 없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시각 장애인에겐 소리가 필요하겠더라구요. 어떤 기능을 하나 넣고 뺄 때 저는 '개발 비용'을 생각했는데, 시각 장애인 입장에서 무조건 소리가 나야 했어요. 엘이디 깜박이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되구요."모비언스는 지난 21~23일 미국에서 열린 CSUN에 리보를 전시했다. 시각 장애인 등 방문객들의 호응이 컸다. 시각 장애인 가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도 모비언스 부스에 들러 리보를 시연하기도 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필요한 IT 기술을 소개하는 팟캐스트 '나폰수'(나도 폰고수다)는 최근 리보를 다뤘다. 이 방송을 들은 한 맹인 교사는 안 대표에게 문자를 보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기능과 완성도 높은 리보가 개발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했다.정 이사는 "시각 장애인이 원하는 어려움을 모두 간파해 제품에 녹여내고 있다"며 "모든 것을 터치로 해결하는 시대, 시각 장애인을 위한 보조 기기는 장애인뿐 아니라 고령자들에게도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유용한 기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안 대표는 "시각 장애인 점맹률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면서 '온 세상을 위한 점자 기기'를 개발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글/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안재우 대표는?▲1967년 경북 영주 출생▲인천 서화초, 선인중, 선인고 졸업▲카이스트 수학과 졸업, 컴퓨터공학과 석·박사▲1993~1999년 시스템공학연구소(SERI·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2003년 (주)모비언스 대표▲2012년 리보(RIVO)1 개발▲2017년 리보(RIVO)2 개발▲2017년 (주)브레일리스트 설립, 점자 사전 개발 착수▲2018년 리보(RIVO)2,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보조공학기기 등록시각 장애인에게 유용한 스마트폰 보조 기기 리보(RIVO)를 만들었고, 점자 사전을 개발 중인 안재우 대표. 27일 만난 그는 시각 장애인이 쓸만한 IT 기기 개발 사업 분야를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이라고 말했다. 기술 향상 수준에 비해 시각 장애인 수요를 충족할 만한 제품이 아직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스마트폰 보조 기기로 기존 제품보다 기능이 보강돼 지난해 나온 리보(RIVO)2.최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CSUN2018(3월 21~23일) 마지막날 가수 스티비 원더가 모비언스의 '리보2'를 시연하고 있다. /안재우 대표 제공

2018-03-27 김명래

[인터뷰… 공감]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대표주자 이성근 화백

재능 있는 줄 몰랐던 괴짜같은 아이매형이 알아 본 덕에 문하생으로…물감 쏟아 엉망이 된 작품서 깨달아헝클어짐 속에서 초월적인 美 발견규칙 없이 본능에 충실… 본질 탐구제목·설명 붙으면 그림에 한계 생겨동서양 조화로운 작품 해외서 더 유명추상은 일종의 '나'에 대한 진실찾기"어렸을 때, 나는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매일 핀잔을 들었어요. 학교에서 그림을 그리면 선생님이 혼을 내더라고. 오죽하면 짝이 대신 그림을 그려줬어요."어린 시절 '재능'을 묻기 위해 던진 질문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이성근 화백은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대표주자로 평가받는다. 중학생 때부터 한국 근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당 김은호 선생에게 사사 받았고 프랑스, 미국, 영국 등 선진국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이인데, 미술 낙제생이라니.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나는 좀 이상하게 보였을 거예요. 벽을 그리라 했는데, 하얀 벽이지만 검게 칠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 파란 하늘인데, 빨갛게 그려버리고. 그저 느낀 그대로 표현한 건데, 선생님의 기준에서는 낙제지. 못 그린 그림." 지금 와서 보면 그는 '추상'적 감각을 타고 났을지 모른다. 이 화백은 사실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재능이 있는 줄도 몰랐단다. 그의 매형이 그림을 보고 재능을 알아채기 전까지는 조금 독특한, 괴짜 아이였다. "우리 매형이 내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마침 매형이 우리 선생님(김은호)을 알고 있었는데, 나를 그곳에 보내 공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지금도 대단하시지만, 예전에 선생님 문하생으로 들어가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요. 시험도 보고 들어가야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시험을 통과했더라고. 그때가 중학교 3학년 즈음이었는데, 그렇게 매일 방학만 되면 선생님 집에서 공부를 시작했어요."어린 나이였지만, 대단한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선생님은 손이 붓도록 그림을 그리셨다고 해요. 정말 엄청난 양의 노력을 하신 거지. 그 말을 듣고 너무 감명받아서, 나도 그렇게 해봐야겠다 싶어 정말로 열심히 그렸거든요. 그런데 나는 손이 붓질 않는거야. 진짜 많이 그림을 그렸는데도." 그래서일까. 스승은 어린 제자에 칭찬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잘하고 있다, 고생했다' 한마디 하지 않았고, 큰 관심도 없어 보였다. "선생님이 나에게 아무런 관심을 표하지 않으니까, 내가 재능이 있는 건 맞는지, 계속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어린 마음에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 집에 친구 분이 오셔서 내가 차 심부름을 하게 됐거든. 차를 가지고 방에 들어가려는데, 문 너머로 대화가 들리는 거야. '어린 놈이 그림을 잘 그린다. 내가 두고 보고 있는데, 아마 관심을 안 가지는 것 같이 보여 그 놈이 힘들 것이다'. 선생님의 그 말이 그때 참 용기가 되더라고." 그건 이당 김은호의 교육방식이었다. '틀에 얽매이지 마라' "스승이지만, 그 틀에 묶이지 말라는 거예요. 선생님 말씀, 그 칭찬에 내가 묶이면 안되는 거지. 선생님은 손이 부었지만 나는 손이 붓지 않는 것도 그건 선생과 내가 다르기 때문이지. 스승의 틀에 묶인 나에서 벗어나라. 나는 나다. 이게 배움이에요. 그 시절 깨달음이고."그때 얻은 깨달음은 지금의 이성근을 만든 지지대였다. 그는 그림보다 그림을 그린 이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미술가가 되길 원해요. '미(美)'를 이야기하는 사람. 궁극적인 미란 무엇인가를 많이 고민하는데, 우리는 보이는 것들의 미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강해요. 우리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한계가 있어요. 하지만 그 틀을 깨고 나오면 한계가 사라지죠. 형식이고, 틀이고, 기준이고, 사실은 다 내가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것들에서 벗어나는 것도 나의 몫이구요." 예전에는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예술가로서의 고집도 있었고, 자존심도 강했다. 화백은 그런 것들에 사로잡혀 괴로운 나날을 보낸 적도 있다고 술회했다. "한번은 그림을 그리다 잘못해서 물감을 작품에 쏟은 적이 있었어요. 내가 구상한 것들이 쏟아진 물감으로 다 망가졌다고 생각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그림을 버리려고 했어요. 그때 가만히 앉아 엉망이 된 그림을 보니, 헝클어진 그 속에서 초월적인 아름다움이 보였어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냥 그 자체도 작품이었어요." 그는 그 순간 든 생각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림은 내 존재를 표현하는 소산인데, 내 생각과 철학, 인생이 아름답다면 그림은 자연히 아름다워지겠구나 라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무엇이든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했어요."그의 작업은 정해진 규칙이 없다. 그의 붓이 캔버스 위를 자유롭게 휘몰아친다. 누군가는 그것을 '쇼'처럼 여기기도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의 본능에 충실한 것 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순수하고, 허물이 없고, 자유분방하다. 마음이 가는 대로 표현했지만 여느 현대미술 작품들 같지 않게 보는 이들에게 그 진심이 잘 전달된다."화가는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목을 붙이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림에 제목을 붙이고 화가가 그림을 설명해 버리면, 제목과 설명에 묶여서 관객의 느낌이 제한돼 버려요. 그림도 한계를 가지고요. 사람마다 얼굴이 다 다르듯이 느낌도 다르고 생각도 다릅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이나, 그림이나, 보는 이들 모두 자유를 가져야 돼요. 자기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게."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그이지만, 그래도 그를 대표하는 것은 '추상'이다. 그는 대중과 호흡하는 것이 좋아 작품 속에 추상만 고집하진 않는다. 구상적 요소도 함께 넣어 모두가 예술을 즐기도록 노력한다. 특히 그의 작품은 먹이나 동양물감을 활용해 동서양이 조화된 오묘한 인상이 강하고, 강력하게 뻗어 나가는 강렬한 붓 터치가 특징이다. 이 매력 덕에 현대미술의 근거지인 서구에서 열렬한 러브콜을 받는다. 그의 작품은 이미 미국 뉴욕 UN본부와 영국 왕실에 걸렸고,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의 취임선물로 그의 작품 '군마'가 보내진 것은 유명한 일화다. 또한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선진 10개국에서 50여 회에 달하는 개인전 및 초대전을 열어 국제적 명성을 얻기도 했다.이 정도 명성이라면, 조금 나태해지거나 쉴 법도 한데, 그는 붓을 놓지 않는다. 어디서든 그가 추구하는 '느낌'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표현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보는 이들 입장에선, 추상이 많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예술가들이 궁극적으로 추상작품을 추구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일종의 '진실찾기'이기 때문이에요. 나의 생각과 느낌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르가 추상인데, 그것이 참 어렵고 힘든 과정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궁극적으로 순수해지지 않거든요. 생각해보세요. 피카소, 칸딘스키와 같이 추상의 세계적 거장들 모두가 그림을 그려도, 5살 아이를 못 따라갑니다. 아이들은 정말로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거든요. 제 어린 시절의 모습처럼. 그래서 항상 제 작품이 만족스럽지 않아요." 맑게 웃는 화백의 미소 안에 예술가의 진심이 묻어난다. 예술은 무엇인가. 글/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이성근 화백은?▲서울 출생▲제 6회 이당 미술상 수상▲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역임▲건국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오스트리아 빈 로이쉬 갤러리, 프랑스 파리 베가 마테 갤러리 및 파리 문화센터 등 유수 해외 갤러리 초대 개인전▲대한민국 청와대, 미국 뉴욕 UN본부, 영국 왕실, 미국 국방부(펜타곤), 필리핀 말라까냥 대통령 궁, 파리 에리메스, 공동경비구역 귀빈실 등 국내외 16여 곳에서 그의 작품 소장 중.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대표주자 이성근 화백은 예술가들이 추상작품을 추구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일종의 '진실찾기'이며 나의 생각과 느낌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할수 있는 장르가 추상이지만 그것이 어렵고 힘든 과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이성근의 작품 가족(사진 위)과 군마.지난 19일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진행 중인 '이성근 화백 개인전'에서 이 화백이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2018-03-20 공지영

[인터뷰… 공감]문승 한국지엠 부품협력업체 비상대책위원장

인천경제를 지탱하는 한 축인 한국지엠이 휘청거리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가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한 이후 한국지엠 본사가 있는 인천 부평공장 등 경인지역 사업장에도 구조조정 여파가 미치고 있다.한국지엠 부평공장이 인천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인천시가 집계한 2016년 말 기준 인천지역 전체 GRDP(지역 내 총생산)는 80조9천억원으로 이 중에서 약 15%를 부평공장이 담당한다. 또 수출액으로 보면 인천 전체(2016년 말 39조2천억원)의 22%를 차지하기도 한다. 한국지엠에 생계가 달린 지역 고용인력도 수만명에 달한다. 인천상공회의소는 최근 한국지엠 종사자가 인천에만 1만1천500명에 이르며, 인천 1차 협력업체만 해도 50여개사에 2만7천명이 일하는 것으로 파악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2차 협력업체는 170여개에 8천명, 3차 협력업체는 300여개에 4천500명이 종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당장 한국지엠에 부품을 대는 협력업체들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시중은행까지 '돈줄'을 죄기 시작하면서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일부 협력업체는 이미 인력 감원에 나섰다고 한다.한국지엠 1차 협력업체 모임인 '협신회'는 급기야 '한국지엠 부품협력업체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인천 남동구에 있는 (주)다성의 대표이사인 문승(58) 비대위원장은 지난 12일 경인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지엠 사태 해법을 신속히 찾지 못하면 협력업체들이 다 죽는다"며 "한국지엠 철수는 협력업체들에는 사형선고와 다름없다"고 강조했다.GM이 지난 2013년 쉐보레 브랜드를 유럽시장에서 철수하면서 한국지엠과 협력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유럽에 수출을 많이 하던 한국지엠의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덩달아 협력업체들도 기업의 존폐를 걱정할 만큼 납품량이 큰 폭으로 줄었다고 문 위원장은 토로했다.한국자동차협동조합에 따르면 한국지엠의 1차 협력업체가 한국지엠에 납품한 금액(1개사 평균)은 2012년 244억원에서 2016년 164억원으로 떨어졌다. 올 들어 협력업체들의 사정은 더욱 악화했다. 1차 협력업체의 2월 기준 공장가동률은 50~70% 떨어졌고, 1~2월 매출액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30%가량 급감했다고 자동차협동조합은 밝혔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은행권마저 협력업체들의 '돈줄'을 죄기 시작했다. 문 위원장은 "시중은행들이 어음(외상매출채권) 할인을 거부하고 각종 신규 대출도 사실상 중단했다"며 "어음 할인과 신규 대출이 막히면서 협력업체들이 운영자금 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문 위원장은 한국지엠이 1차 협력업체 300여곳에 납품 대금으로 현금 대신 60일 만기 전자어음을 줬다고 했다. 이들 업체는 이 어음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형식(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으로 3%가량 할인한 돈을 받아 운영 자금으로 써 왔다.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 발표가 나오자 은행들은 협력업체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문 위원장은 전했다. 그는 "예전에는 신용만으로 은행과의 거래가 이뤄졌는데 최근에는 담보를 설정해야 돈을 줄 수 있다는 은행이 늘고 있다"며 "아직 구체적인 조사는 진행하지 않았지만, 자금 압박을 받는 업체들이 많을 것"이라고 우려했다.1차 협력업체들의 자금난이 2·3차 협력업체들에까지 번지는 건 시간문제. 문 위원장은 "조만간 1차 협력업체가 2·3차 업체들에 끊어준 60일짜리 어음도 할인이 거부될 가능성이 높다"며 "1차 협력업체보다 영세한 2·3차 협력업체들은 더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어 그는 "이 같은 상황이 장기간 이어진다면 한국지엠 경영이 정상궤도에 오르기 전에 협력업체들이 먼저 쓰러지게 된다"고 했다.문 위원장은 한국지엠 철수나 공장 축소 등으로 납품이 중단되면 GM의 전 세계 사업장에 수출하던 물량도 급감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가 운영하는 (주)다성은 자동차 스탬핑(차체 만들기) 부품을 주로 제작하고 있다. 현재 GM 공장이 있는 브라질과 미국 등 7개국에 부품을 수출하고 있다. 문 위원장은 "우리 회사의 경우 전체 생산량 중 절반이 수출 물량인데 한국지엠에 납품하지 못하면 (수출 물량이) 60% 가까이 줄어들게 된다"고 했다."한국지엠에 납품하지 않았다면 GM의 해외공장에도 물건을 납품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문 위원장은 "한국지엠에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라는 것만으로 품질에 대한 보증을 받게 됐다. 이를 통해 다른 나라로 수출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처음 구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조그마한 협력업체가 세계 굴지의 자동차 부품 업체들 틈에서 이 정도의 수출 실적을 유지하는 것도 그 덕분"이라고 덧붙였다.비대위는 정부가 실사 기간을 최대한 줄여 한국지엠에 대한 지원 결정을 조속히 내려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3개월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는 실사기간은 경영난을 겪는 협력업체가 버텨내기 어려우며, GM의 신차 배정이 끝난 이후의 지원은 의미가 없다는 게 문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것이 수년간 이어진 한국지엠 철수설에도 숨죽여 지내오던 그들이 단체를 만들어 전면에 나서게 된 가장 큰 이유다.문 위원장은 "신차가 배정되지 않으면 구형 차종의 판매량이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생산량은 감소한다"며 "자전거는 페달을 밟아야 속도를 내며 계속 나갈 수 있듯이 생산량이 줄어든 공장은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신차를 계속 가져와서 개발해야 협력업체가 살 수 있다"며 "어떻게든 살려내지 않으면 협력업체들이 줄 도산에 빠질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문 위원장은 "군산공장 폐쇄 이후 한국지엠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지엠이 현재 지탱하고 있는 일자리를 생각한다면 정부의 지원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한국지엠은 국내 공장과 협력업체 등을 포함해 15만6천명의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공장 인근의 소상공인까지 합친다면 한국지엠 철수로 20만명에 가까운 일자리가 사라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문 위원장은 비대위 활동에서 한국지엠과 협력업체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 잡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그는 "GM을 마치 '먹튀'나 '고리대금 업체' 등으로 묘사하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지만, GM이 인천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준 부분도 많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지엠과 협력업체가 함께 살아남는 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GM은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발표하며 정부의 재정지원이 없으면 한국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정부는 GM 측이 실사에 성실히 임하고, 신차 배정 등 구체적이고 중장기적인 신규 투자 계획 등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문승 비상대책위원장은?▲1959년 전남 보성 출생▲한양대 금속공학과졸업、 인하대학교 대학원 무역학과 졸업(박사)▲1995년 (주)다아 대표이사▲1998년~현재 (주)다성 대표이사▲1998년 대우자동차 자주개선 경진대회 최우수상▲2016년 산업포장 수상▲2018년 한국GM 협신회 부회장、 한국GM 부품협력업체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한국지엠 부품협력업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주)다성의 문승 대표이사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지엠이 현재 지탱하고 있는 일자리를 생각한다면 정부의 지원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3-13 김주엽

[인터뷰… 공감]프로복싱 신인 발굴 나선 버팔로프로모션 유명우 대표

"국민에게 사랑받는 복싱 선수 육성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1980년대 복싱은 한국의 3대 스포츠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대중적인 스포츠였다. 축구 못지 않게 복싱 경기가 있는 날이면 TV 앞에 가족이 모여 응원했고, 우리나라 선수가 챔피언에 오르면 모두가 즐거워했다.당시 '소나기 펀치'로 상대를 쓰러트리며 챔피언에 오른 '한국 복싱계의 살아있는 전설' 유명우(54)도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다. 이런 유명우가 YMW버팔로프로모션 대표로 신인 선수 발굴에 앞장선다. 그는 오는 11일 수원 호텔 캐슬 그랜드볼룸 특설링에서 프로복싱 신인 발굴 프로젝트 '제1회 휴먼크루즈 배틀서바이벌'을 개최한다. 유 대표를 6일 만나봤다.유 대표는 "오는 11일 수원에서 프로신인 선수를 발굴하는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며 "아직 부족하지만 한국 선수가 세계적인 챔피언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이번 대회는 10체급에서 단일 규모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40명의 신인 복서가 참가한다. 올해 초 베트남 호찌민에 복싱체육관을 개관한 버팔로프로모션은 이번 대회에 베트남 선수 3명과 러시아 선수 1명을 출전시킨다. 최고 기량을 펼친 최우수선수(MVP)에게는 1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지고, 우수선수상에는 50만원, 감투상에는 30만원(5명)이 주어진다. 또 가장 감동적인 경기를 펼친 선수에게는 베스트파이트상과 함께 상금 50만원이 전달되고 KO로 승리하면 20만원도 준다.특히 이번 대회 메인 이벤트로는 국내 중량급 강타자 서인덕과 러시아 출신 드미트리 바실로프의 웰터급 국제전도 열린다.유 대표는 지난 2013년부터 버팔로프로모션을 운영하며 신인 선수 발굴에 앞장서왔다. 그가 프로모션을 차린 이유는 그동안 국민들에게 받아온 사랑을 이제는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어서다. 무엇보다 국내 남자 프로복싱계에 세계 챔피언이 없다는 슬픈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직접 나섰다. 그는 "후배들을 위해 복싱의 활로를 열어주고 싶어 대회를 열게 됐다. 내가 가진 장점을 이제는 국가에 환원하고 나아가 한국 복싱을 다시 전성기로 만들고 싶어 프로모션을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유 대표는 현재까지 신인 선수 10여명을 육성했다. 특히 동양챔피언 김민욱을 비롯해 김예준, 김동혁 등 걸출한 스타 선수를 키워냈고, 3년 내 세계 챔피언 등극도 노리고 있다.유 대표는 "지난 5년간 신인 선수들을 꾸준히 육성해왔지만, 복싱이 비인기 종목이어서 선수들이 훈련하는데 힘들어했다"면서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선수들이 경기에 대한 흥미를 갖고 나아가 팬들에게 사랑받는 복싱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이어 "국내 복싱이 침체기를 겪고 있는 것은 대회 자체가 많지 않고 TV 중계나 협찬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현재 한국 남자 복싱은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한 명도 보유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강조했다.유 대표의 말대로라면 한국 남자 복싱은 팬들의 외면과 협찬사의 부재 등으로 대회 자체를 열기가 쉽지 않다. 그는 "실제 이번 대회도 이완모 대회위원장과 최창수 버팔로프로모션 회장 등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치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수원에서 이 대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유 대표는 이번 대회를 시작으로 올해 3차례 대회를 더 치를 예정이다. 또 내년 5월께 사상 처음으로 크루즈 유람선에서 복싱 대회를 개최할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선수들과 국내 팬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선상에서 즐기는 복싱 대회를 열 것"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이벤트와 복싱이 어우러지는 축제를 기획해 복싱 붐 조성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유 대표는 선수 시절 163㎝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본인만의 복싱 스타일로 세계 타이틀 17차 방어의 신화를 썼다. 한국 프로권투 사상 최다 연승(36연승), 가장 오랜 기간 타이틀 보유(6년 9일), 최단 시간 KO승(1라운드 2분46초), 최다 방어 기록(17차). 이 모든 게 유 대표가 세운 기록이다. 프로통산 전적은 39전38승(14KO) 1패다.이를 입증하듯 그는 지난 2013년 미국 뉴욕주 캐너스토타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IBHOF)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명예의 전당에는 초대 헌액자인 무하마드 알리를 비롯해 슈거 레이 레너드, 마이크 타이슨, 로베르토 두란 등 기라성 같은 복싱 챔피언은 물론 영화배우 실베스타 스탤론, 트레이너 안젤로 던디 등 세계 복싱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만이 입성할 수 있다. 특히 아시아에선 일본의 초대 세계챔피언인 하라다 마사히코와 태국의 전설 카오사이 갤럭시 그리고 2009년 한국의 장정구가 등극했고, 유 대표가 반열에 올랐다.유 대표는 "지난 2013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한 뒤 수원에서 후배 양성을 위해 온 힘을 쏟겠다고 한 것이 엊그제 같다"면서 "앞으로도 나의 목표는 한 가지다. 후배 양성과 세계 챔피언을 배출해 내는 것"이라고 당당히 말했다.유 대표는 올 초 김상범(커키 버팔로프로모션) 대표, 필리핀 복싱영웅 파퀴아오와 장기 계획도 세웠다. 그는 "파퀴아오의 MP프로모션과 협력해 3년 후 한국 프로복싱을 이끌어 갈 신인 유망주를 발굴할 계획"이라며 "이렇게 되면 한국과 중국, 베트남 등에서 국제 대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열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끝으로 그는 "꿈나무들이 어려움이 있더라고 좌절하지 말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며 "신인 선수들이 더 큰 뜻을 품고 한국 복싱을 다시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 여러분께서도 한국 복싱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언론에서도 복싱에 대한 보도를 많이 해달라"고 당부했다.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유명우 대표는?▲1964년 1월10일 서울 출생▲삼성초등학교-한강중학교-인천체육고등학교▲1982년 프로 입문▲1985년 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1991년 세계권투협회 선정 올해의 복서상▲2009년 한국권투위원회 사무총장▲2013년 국제복싱명예의전당 헌액▲2013년 YMW버팔로프로모션 대표'한국 복싱계의 살아있는 전설' 유명우 YMW버팔로프로모션 대표가 "프로신인 선수 발굴을 통해 세계 챔피언을 배출해 한국 복싱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2018-03-06 신창윤

[인터뷰… 공감]이율기 인천시컬링경기연맹·장애인컬링협회 회장

돈 없는 市 대신 후원기업 직접 발굴최초 민·관 장애인체육 실업팀 창단선인중 동계체전 金 획득 밑거름 역할선수 경력 아들 덕에 빙상종목과 인연장애인 컬링 베이징선 인천도 노려볼만인천엔 고교팀 없어 제도 뒷받침 절실#인천시장애인체육회 휠체어컬링팀이 2016년 11월 25일 인천교통공사 대회의실에서 창단식을 갖고 출범을 알렸다. 전국 최초로 민·관이 함께 만든 장애인체육 실업팀이었다. 2015년 대한장애인체육회는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 맞춰 관련 종목 실업팀 창단 지원안을 발표했다. 지자체와 향후 3년 동안 실업팀 운영 예산을 1대1로 매칭 지원한다는 제안이었다.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지어진 선학국제빙상경기장으로 인해 동계 종목 발전의 주춧돌이 놓인 상황이었지만,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인천시 입장에서는 이 제안을 수용하지 못했다.이때 인천시장애인컬링협회가 나서서 후원 기업 4곳을 찾았고, 이를 통해 전국 최초로 민간이 지원한 장애인체육 실업팀을 창단할 수 있었다.#인천 선인중 컬링팀은 2017년 1월 25일 이천훈련원 컬링경기장에서 열린 제98회 전국 동계체육대회 컬링 남중부 결승에서 서울 신구중을 11-3으로 완파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인천 컬링 사상 처음으로 동계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는 순간이었다. 특히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선인중 컬링이 당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며 의미를 더했다. 정규 수업을 마치고 방과 후를 활용한 훈련을 통해 동계체전 금메달을 획득한 데에는 인천시컬링경기연맹의 지원과 지도자들의 헌신적 지도가 크게 작용했다고 지역 체육계는 분석했다.인천 컬링사(史)를 새로 쓴 사건들이 몇 년 사이에 벌어졌다. 그 중심에는 이율기(58) 인천시컬링경기연맹 회장 겸 인천시장애인컬링협회 회장이 있었다.컬링 여자 국가대표팀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어느 때보다 국내에서 컬링에 대한 인기가 치솟고 있는 가운데, 이율기 회장을 만나기 위해 지난 26일 오후 선학국제빙상경기장 지하에 위치한 컬링경기장을 찾았다.코멕스전자(주) 대표이기도 한 이 회장은 이날 오후 6시께 컬링장을 찾아 훈련 중인 지역 선수들을 챙기고, 경기장을 꼼꼼히 살폈다.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컬링 지원단장도 맡고 있는 터라 다음 달 9일 개막하는 평창 동계패럴림픽을 앞두고 방한해 선학컬링장에서 훈련할 캐나다와 영국 등 해외 선수들을 위해 시장애인컬링협회 임원들과 경기장을 살핀 것이다. 문제가 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관계자들과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야 인터뷰를 위해 이 회장과 마주할 수 있었다.이 회장은 "동계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캐나다 컬링 대표 선수들이 3월 3일 이 곳을 찾을 예정인데, 올 겨울 추위에 수도관이 동파하면서 거기서 샌 물 일부가 경기장으로 흘러든 것 같다"면서 "일반 빙상장 보다 컬링장은 빙판의 수평도가 중요하다. 머리카락 하나도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물이 샌 부분에 대해 조치가 필요한 상태"라고 설명했다.이내 전날 막을 내린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화제를 옮겼다."지난 14일에 열린 우리 여자 선수들과 중국의 예선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봤습니다. 당시 경기에서 우리가 대승을 거뒀죠. 그리고 우리 승리에 환호하는 관중의 모습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이 회장은 우리 컬링 선수단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온 국민이 컬링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단다."2003년부터 한국초등학교 빙상경기연맹 회장을 맡았어요. 제가 연맹 회장으로 있을 당시 국내 초교 빙상 무대에 김연아, 이상화, 모태범을 비롯해 쇼트트랙의 곽윤기 등이 있었어요. 이 선수들이 성장해서 출전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빙상 그랜드슬램(피겨,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등 빙상 전 종목에서 금메달 획득)을 달성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당시 박용성 대한체육회장과 김연아를 전담했던 브라이언 오서 코치 등과 기분 좋게 축하주를 나눴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인천시컬링경기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가운데, 컬링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전 국민의 스포츠로 부상하는 기쁨을 누리면서 제가 맡으면 잘 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웃음)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으며, 기업가인 이 회장이 스포츠와 인연을 맺은 배경이 궁금했다.이 회장은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빙상 종목 선수로 활동했다"면서 "동계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지만, 중학교 진학하면서 운동은 그만뒀고 그 인연으로 1997년에 인천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을 맡았다"고 설명했다.이어서 한국초등학교 빙상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했으며, 2011년 인천시컬링경기연맹에 이어 2015년부터 인천시장애인컬링협회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컬링 지원단장도 맡고 있는 이 회장은 최근 대표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이천 훈련원을 찾아 개당 50만원에 달하는 욕창 방지 방석 5개를 선수들에게 전달하며 격려했다. 동계패럴림픽까지 끝나면 지역 선수들에 지원을 집중할 예정이다. 그는 "국내 컬링 역사가 짧기 때문에 컬링을 경험한 사람들이 드물고, 그만큼 좋은 지도자가 많지 않다"면서 "현재 좋은 지도자들은 거의 모두가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투입된 상황이기 때문에 대회 후 좋은 지도자를 찾아서 선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이 회장은 인천의 비장애인 선수가 태극마크 달기까진 시간이 필요하며, 장애인 컬링은 2022년 베이징 패릴림픽을 노려볼 만 하다고 분석했다."컬링은 네 선수의 고른 실력과 호흡이 중요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우리 선수들은 의성여중 재학 때부터 고교, 실업팀까지 12년 넘게 호흡을 맞춘 선수들입니다. 현재 선인중(남)과 석정중(여) 선수들이 훈련 중인데, 지역 고교에 컬링팀이 없기 때문에 이 선수들이 고교 진학하면서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선수단 지원은 연맹에서 할 수 있는데, 교육 관계 기관의 제도적 뒷받침이 없기 때문에 '의성 마늘 소녀'가 나오긴 힘든 상황입니다. 장애인 팀의 경우는 좋은 지도자를 영입해 지역 실업팀 위주로 훈련을 한다면 다가올 올림픽에 나설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이 회장이 보는 컬링의 매력은 근력과 지구력 등 힘을 앞세운 여타 운동과 달리 전략 종목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서양에선 컬링을 '빙판 위 체스'로 칭하기도 한다."바둑, 당구, 볼링 등이 합쳐진 컬링은 한국 사람들에게 딱 맞는 종목이라고 생각됩니다. 힘을 쓰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노인과 장애인 등 온 가족이 모두 함께 소통하며 즐길 수 있는 종목도 컬링 뿐이지요.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는 눈으로 보는 컬링을 했지 몸으로 하는 컬링을 한 것은 아닙니다. 북유럽 현지에서 보면 선수들처럼 딜리버리 하지 않고 편하게 공 굴리듯이 딜리버리 합니다. 쉽게 접근하면 매우 쉬운 경기입니다. 앞으로 지역의 컬링 동호인 수를 늘려서 컬링의 저변을 넓히는데 더욱 힘을 쏟을 것입니다." 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이율기 회장은?경북 청도 태생인 그는 대구 달성고와 건국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코리아 메카트로닉스를 설립했으며 2007년 코멕스전자(주)로 법인 전환 후 대표로 재임 중이다. 스포츠계에는 1997년 인천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에 부임하면서 첫 발을 디뎠다. 2003년에는 대한빙상경기연맹 산하 한국초등학교 빙상경기연맹 회장으로 부임했다. 12년 동안 연맹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2011년 인천시컬링경기연맹 회장과 2015년에 인천시장애인컬링협회 회장으로 취임해 인천지역 양대 컬링 단체를 이끌고 있다.인천 컬링사(史)를 새로 쓰는데 중심에 섰던 이율기 인천시컬링경기연맹 회장 겸 시장애인컬링협회장은 지난 26일 인천 선학컬링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컬링경기에 대한 소회와 함께 "지역 컬링의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이율기 인천시컬링경기연맹 회장 겸 시장애인컬링협회장은 지난 26일 오후 인천 선학컬링장에서 훈련 중인 석정중학교 선수들에게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우리나라 대표팀 선수들처럼 열심히 연습한다면 우리도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다"고 말하며 응원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2-27 김영준

[인터뷰… 공감]8번째 지방선거 앞둔 우근학 경기도선관위 상임위원

1987 개헌 투표 시작으로 30여년 외길관리만 하던 예전엔 불법 심했지만…선관위 권한 강화·사전투표로 진일보무탈했던 '조기 대선' 등 기억에 남아안정적 시스템 입증 자부심 가질만해경기도 투표율 높지않아 어깨 무거워'처음'이란 누구에게나 설레고 잊지 못할 순간이다. 상인에겐 첫 손님, 배우에겐 첫 무대, 기자에겐 첫 기사의 기억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직원들에게는 처음으로 관리한 '첫 선거(투표)'가 그렇다. 일평생 선관위에서 일한 우근학(58) 경기도선관위 상임위원에게도 첫 선거는 잊을 수 없는 인생의 귀중한 조각이다.1986년 입사한 그의 첫 선거(투표)는 대통령 직선제를 결정한 1987년 10월 27일 9차 개헌 국민투표였다(투표는 찬성·반대 의사 표시를 묻는 것, 선거는 투표를 통해 공직자를 결정하는 절차로 사전적 의미가 다르다). 두달 뒤인 12월 16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대통령을 뽑은 13대 대통령 선거는 그가 관리한 두 번째 선거였다. 7번의 대통령 선거와 8번의 국회의원 총선거, 7번의 지방선거, 40여차례의 재보궐선거. 선관위 막내 직원이었던 그가 1급 상임위원이 될 때까지 30년 넘게 치러온 수많은 선거는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과정이기도 했다.2018년 6월 13일 우 상임위원은 경기도선관위에서 8번째 지방선거를 치르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가 이뤄지면 31년 만에 2번째 국민투표를 지켜보게 된다. 특히 올해는 대한민국에서 선거가 실시된지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지방선거를 4개월여 앞둔 지난 8일 경기도선관위에서 우 상임위원을 만난 이유다.# '1987'에서 '2018'까지"격세지감이죠." 대한민국 선거의 산 증인으로 꼽히는 우 상임위원에게 30년 전과 지금의 선거를 비교해보면 어떻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우 상임위원의 첫 선거는 혼란스러웠다. 9차 개헌 국민투표에 이어 실시된 13대 대통령 선거는 16년 만에 부활된 대통령 직선제였다. 선거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만큼 과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에는 오프라인 선거 운동만 있었으니까 후보들 간 청중들을 동원하는 형태의 '세 대결'이 어마어마했다. 몸싸움도 벌어지고 버스가 전복되기까지 했다. 유권자들도 (불법 선거 등에 대해) 죄의식을 덜 느꼈다"고 첫 선거 분위기를 회상한 우 상임위원은 "그때는 지금처럼 선관위에 감시·단속 권한이 없었다. 정말 선거를 '단순 관리'하는 일만 했었다. 제재가 미약하다보니 후보자도, 유권자들의 긴장도도 덜했다"고 말했다.선거를 치르면 치를수록 선관위의 권한은 강화됐고 선거판에서도 금품과 청중 동원 등이 서서히 사라졌다. 1989년 선관위에서 선거범죄에 대한 단속 업무를 처음 실시하게 됐고, 1997년에서야 실질적인 단속 권한이 주어졌다. 지금은 전국 어디서든 사전에 투표를 해도 엄정하게 관리될 정도로 선거 분위기와 시스템이 진일보했다는 게 '선거 관리 외길'을 걸어온 우 상임위원의 자부심이다.수십 차례 관리했던 선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거를 질문하니 2014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조기대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우 상임위원은 "2014년 지방선거는 사전투표가 전국 단위로는 처음 실시됐던 선거다. 수원시민이 부산에 가서 수원시장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도 이런 시스템은 없다. 도입 전에는 제대로 관리가 될 지 의문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당연히 관리자 입장에선 긴장도, 걱정도 많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 때는 행여나 무슨 일이라도 날까 직원들과 확인하고, 또 수없이 점검하며 고생을 정말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고 털어놨다.역사상 처음 실시된 조기 대선은 선거 전문가인 그 역시 처음 경험해보는 선거였다. 탄핵 후 사회가 분열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던 와중에도 '장미 대선'은 많은 유권자의 관심을 받으며 무탈하게 치러졌다. 민주화의 봄이 오며 혼란스러운 첫 선거를 치렀던 만큼 촛불혁명 후 무리없이 이뤄진 조기 대선이 인상에 깊이 남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3권 분립 국가잖아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의결했고, 사법부의 한 축인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을 했습니다. 제일 마지막에 역시 헌법 기관인 선관위 관리 하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됐습니다. 이런 시스템을 갖고 있는 국가가 몇이나 될까요? 그야말로 시스템으로 빠르게 안정됐습니다. 상당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6월 13일'그는 이제 또 하나의 선거를 준비 중이다. 전국에서 가장 유권자도 많고, 후보자도 많은데다 지역 특색도 다양해 경기도는 가장 관리하기 까다로운 지역으로 꼽힌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며 예측하기 쉽지 않은, 위법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선거 범죄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럼에도 다른 지역에 비해 경기도의 투표율은 결코 높은 편이 아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둔 우 상임위원의 어깨는 가볍지 않다.우 상임위원은 "다른 건 몰라도 지연, 혈연, 학연에 얽매이는 선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방선거의 투표용지는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비례대표 광역의원, 비례대표 기초의원까지 모두 7장이다. 6·13 지방선거와 더불어 국민 개헌투표까지 동시에 실시하는 게 확정되면 투표용지만 무려 8장이 된다. 투표용지가 많을수록 후보와 공약을 꼼꼼히 살피지 않고 한 정당에만 몰아주는, 이른바 '줄투표'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게 그가 우려하는 점이다. 우 상임위원은 "지방선거는 도선관위 입장에서 가장 관리하기 어려운 선거지만 주민들 입장에선 우리 동네를 바꿀, 내 일상을 바꿀 풀뿌리 일꾼을 뽑는 가장 중요한 선거"라며 "주민이 주인이 되는 '동네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유권자들도 후보와 공약을 세세하게 살펴 한 표를 던져야 한다. 선관위도 유권자들의 선거 편의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6월 13일에는 그 역시 한 명의 유권자로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어떤 후보를 뽑겠냐는 물음에 "정책과 공약을 꼼꼼하게 본 다음 결정하겠다"며 빙긋 웃었다. "선거 당일에는 선관위가 아무래도 바쁘고 긴장돼서요. 저도 사전투표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바쁘고 시간 없으셔도 어디서든 사전투표, 아시죠?" 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우근학 상임위원은?▲1959년 용인시 출생▲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도시 및 지방행정학 석사▲1978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 생활 시작, 1986년 선거관리위원회 입사▲2013~2014년 중앙선관위 기획국장▲2015년 경기도선관위 사무처장▲2016~2017년 충청남도선관위 상임위원▲2018년 1월 ~ 경기도선관위 상임위원▲2010년 근정포장우근학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후보와 공약을 꼼꼼히 살펴 주민이 주인이 되는 '동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2018-02-20 강기정

[인터뷰… 공감]'성인 대상 정규 중고교 과정 운영' 남인천중·고 윤국진 교장

배움에 한 맺힌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 인천에는 '만학도(晩學徒)'들을 위한 학교는 없었을 것이다. 신포동에서 '메리야스' 장사를 하던 청년은 그 옛날 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던 '공순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웠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늦깎이 학생들의 배움터를 지키고 있다.인천 유일의 학력인증 평생학습 기관 '남인천중·고등학교' 윤국진(73) 교장은 "단 1명의 만학도가 있더라도 학교는 계속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 최초 성인 대상 정규 중고교 과정을 개설해 배움에 목말랐던 만학도의 꿈을 이뤄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월 31일 대한민국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국민훈장에 준하는 국민포장은 각계각층에서 묵묵히 국민을 위해 헌신한 유공자에 수여하는 포상으로 대통령표창보다 한 단계 높다.윤 교장은 해방을 한 해 앞둔 1945년 충북 괴산의 농촌에서 10마지기의 논과 2천 평의 밭을 가진 부농의 늦둥이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남부러울 것 없던 그의 유년기는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면서 산산조각 났다. 제대하고 돌아온 형은 집과 땅을 몰래 팔아치웠고 윤 교장은 어머니, 누나와 함께 말 그대로 길바닥에 나앉게 됐다."학교는 다녔는데 점심을 싸가지 못하니까 물로 배를 채우고, 결국에는 수업료를 내지도 못해 국민학교 졸업장도 따지 못했어요. 누나와 산에 가서 땔감용 솔방울을 따다가 8㎞ 떨어진 증평에 팔면서 끼니를 때웠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도 충격으로 정신병에 걸리셔서 '왜 어린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나' 하늘을 원망했어요."공부를 너무 하고 싶었지만 먹고 사는 게 우선이었다. 보리쌀과 풀죽을 쑤어먹으며 살았던 그는 어머니를 시집간 누나의 집에 맡기고 13살의 나이에 무작정 고향을 떠났다. 인천에 먼저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는 동네 형이 고향에 내려와서는 "인천에 오면 취직도 시켜주고 먹고 살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함께 인천에 가자고 했던 형은 연락을 끊고 사라졌고, 먼 친척에게서 150환을 얻어 인천으로 떠났다."기차표를 사려니까 돈이 부족해 영등포행 표를 산 뒤 인천까지 무임승차로 가다가 역무원에게 걸렸어요. 이를 딱하게 여긴 동인천역 역무원이 하루를 재워주고 역전에서 신문보급소를 하는 지인을 소개해줘 그때부터 신문 배달을 시작했지요."그 뒤로 윤 교장은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과자공장, 구두닦이, 도넛가게 점원, 우유배달, 신문배달 등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돈 되는 일은 다 했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벌면 공부를 하겠다"는 핑계로 배움을 잊고 살던 그에게 지나던 대학생이 건넨 말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돈 벌어서 한다는 놈치고 공부하는 놈을 못 봤다"는 말이 비수처럼 마음에 꽂혔다. 윤 교장은 대학생 형이 소개해준 독학 교과서인 '서울강의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도넛가게에서 손님으로 만난 고학생을 따라 경동사거리의 한 교습소에서 공부했다. 고아가 된 학생, 섬에서 온 학생,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꿈을 키우는 소년들이었다. 구두를 닦으면서도 책을 펼쳐놓고 공부하는 윤 교장을 우연히 본 당시 영화중고등학교(현 대건고등학교) 교사가 야간학부로 오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학업을 이어가 송도고등학교를 졸업하니 23살이 됐고 군 입대를 하게 됐다.제대 후 아내를 만나 결혼한 그는 가난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불우청소년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겠다고 결심했다."직장을 다니기는 했는데 월급으로는 턱도 없으니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970년 당시 코오롱에서 나오던 '메리야스'인 '88나이롱'을 구로동에서 가져다 신포시장에서 팔았죠. 백화점 물건과 차이는 없는데 가격이 싸니 잘 팔렸었죠." 10년 뒤 그는 '현대의류백화점'이라는 번듯한 의류판매업소를 열어 제법 큰 돈을 벌었다.윤 교장은 1984년 7월 중구 선린동 인천역 앞에 있는 2층 규모 연립주택을 학교로 개조해 '남인천새마을여자실업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오랜 꿈을 이룬 순간이다. 새마을금고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인수해 '공순이'라고 불리던 근로 청소년에게 학업의 기회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4개의 교실과 기숙사를 만들고 10명의 교사를 채용했다. 사재를 털어 타자기와 실습기자재를 사들였고 은행 대출을 받아 학교를 운영했다.문제는 근로 청소년들의 졸업장이었다. 이들은 학교를 수료해도 학력 인정을 받지 못해 검정고시를 통과해야 중·고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당시 정권 실세였던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종로 사무실을 막무가내로 찾아갔어요. 비슷한 처지인 부산부경보건고교 권성태 교장과 함께 우리 같은 사회교육시설도 학력을 인정 해달라고 요청했죠. 결국, 대통령 공약사항에 포함됐고 1986년부터는 검정고시 없이도 학력인정을 받는 학교로 탈바꿈 할 수 있었어요."학생 수가 점차 늘어나 선린동 연립주택으로는 800여 명의 학생을 감당할 수 없었다. 용현동의 쇼핑센터를 빌려 학교로 사용하다가 1990년 남구 학익동 지금의 학교 부지(6천890㎡)로 이전하게 됐다.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한 뒤 국유지를 매입해 복지관과 학교 건물을 지었다. 복지법인 전 재산은 사회에 환원했다. 이어 문교부로부터 전 과목 학력인정을 받아 교명을 남인여자상업고등학교 개명했다. 학교가 점차 자리 잡자 그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장년층에게도 졸업장을 딸 기회를 주고자 했다. 여자라서 또는 막내라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무학(無學)의 한을 풀어주고자 했던 것이다. 만학도의 꿈을 이룰 성인 대상 정규 중·고교 과정은 1999년 개설됐다. 인천 최초의 성인 대상 학력인증 학교였다."1950~60년대 사람들은 가난 때문에 못 배운 사람이 많은데 부끄러워서 이를 밝히지도 못하고, 안타깝게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내 또래 어른들에게도 배움의 기회를 주자는 생각에 성인반을 개설하게 됐죠."1년 3학기제의 단기 코스로 교육청 인가를 받아 2년 과정의 중·고교반을 개설했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5천700명의 성인 학생을 배출해 이들이 제2의 인생을 살도록 도왔다. 특히, 올해부터는 인천대학교 평생교육원과의 업무협약 체결로 남인천중고등학교 졸업생이 인천대에서 전문학사 취득과 학사과정 편입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됐다.윤 교장은 건강을 유독 챙긴다. 자신이 없으면 학교가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다.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인 학교의 인가를 윤 교장 개인 명의로 받았고, 이는 승계가 되지 않기 때문에 윤 교장이 곧 학교를 의미한다. 마라톤 풀코스를 5번이나 완주할 정도로 운동광인 그는 관교동 집에서 학익동까지 매일 걸어서 출퇴근한다."인천에 중·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저는 학교를 운영해야 합니다. 이번에 받은 국민포장은 저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배움의 한을 풀어준 우리 학교, 학교 구성원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상록수' 정신으로 더 정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해야죠." 글/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윤국진 교장은?-약력▲1945년 충북 괴산 출생▲1957년 인천으로 이주▲1970년 신포시장에서 내의가게 운영▲1980~2010년 현대의류백화점 운영▲1984년 남인천새마을실업학교 설립(교장 취임)▲1988년 사회복지법인 백암한마음봉사회 설립(대표이사 취임)▲1991년 인천종합사회복지관 초대관장▲1991년 백암어린이집 초대원장▲2000년~ 남인천중고등학교 교장-상훈▲1988년 인천시민상(사회봉사부문) 수상▲1990년 인천교육대상 수상▲2018년 대한민국 국민포장 수상인천 유일의 학력인정 평생학습 기관인 '남인천중·고등학교' 윤국진 교장이 인천시 남구 학익동 학교 현관에서 "단 1명의 만학도가 있더라도 학교는 계속 존재해야 한다"며 학교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1984년 7월 20일 윤국진 교장이 부인 이혜숙 여사와 함께 인천 중구 선린동 남인천새마을실업고등학교 현판을 달고 있다. /윤국진 교장 제공인천 중구 선린동 연립주택을 개조해 설립한 학교 전경. /윤국진 교장 제공

2018-02-13 김민재

[인터뷰… 공감]야구 인프라 전략 발표 류준열 SK 와이번스 대표이사

프로야구 SK 와이번스는 2018년 새해 들어서 '야구 공유 인프라 전략'을 발표했다. '야구 공유 인프라 전략'은 SK 구단이 가진 자산 및 역량에 연고지인 인천 지역의 기업과 관공서, 각종 단체들의 참여를 결합해 지역 사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모든 활동을 일컫는다. 이를 통해 사회·경제적 가치 창출을 하려는 것이다.2007년 당시 막내 구단이었던 SK는 '스포테인먼트(Sportainment)'로 바람을 일으켰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인 '스포테인먼트'는 구단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당시 타 구단들이 무형의 홍보 효과에만 의존하던 상황에서 SK는 팬 중심(Fan first) 사고를 기반으로 혁신에 나섰다. SK의 스포테인먼트는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의 제공에서 출발했다. SK는 그해 창단 첫 우승도 달성했다. 이후 스포테인먼트는 관객들의 관람시설 개선, 경기장의 체험 및 스토리 기반의 복합 여가 공간 구축, 프로 구단의 사회적 책임 이행에 이르기까지 진화해왔다올해 구단 마케팅 중심에도 기업사회공헌(CSR) 활동을 두었다. 기존 CSR 활동에 연고 지역을 결합시켜 공익과 함께 보다 인천과 팬들에게 다가서겠다는 의지를 내세웠다.'야구 공유 인프라 전략'과 진화하는 구단 마케팅, 다가오는 시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류준열(54) SK 와이번스 대표이사를 최근 집무실에서 만났다. 류 대표이사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경제 전문가이기도 하다.류 대표이사는 새 구단 점퍼를 입고 취재진을 맞았다. 아직 공식 발표 전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새 점퍼가 첫 화제로 올랐다. 류 대표이사는 "선수들이 입고 싶은 옷이 아닌 팬이 입고 싶은 옷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디자이너를 위촉해 새롭게 디자인했다"며 "야구장에서만 입는 옷이 아닌 생활 속에서도 즐겨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기 위해 빨간색을 줄였다"고 설명했다.이내 화제를 바꿔서 '야구 공유 인프라 전략'에 대한 류 대표이사의 설명을 청했다."예로 들어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구단에서 진행한 20회에 달하는 CSR 활동들 중 인천 서구 지역 발달 장애 아동들 15~20명을 대상으로 20차례에 걸쳐 야구 교실을 진행한 바 있는데, 구단에선 코치를 파견했습니다. 지역에선 발달 장애 아동들을 추천해줬고, 서구 지역에 기반을 둔 SK 석유화학은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펀딩)을 보태면서 3자가 모일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소외계층 대상의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이처럼 구단이 가진 야구 인프라(선수와 지도자, 야구 경기장, 응원단 등)를 지역 사회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겠다는 것이 '야구 공유 인프라 전략'의 핵심입니다. 이전 CSR 활동이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추진된 프로젝트였다면 '야구 공유 인프라 전략'은 지역 기업과 행정기관, 사회복지 관련 기관 등에 항시 열어놓고 활용할 의향을 얘기해 달라는 것입니다."류 대표이사는 '야구 공유 인프라 전략'의 아이디어를 미국에서 얻었단다."지난해 미국 구단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워싱턴 내셔널스의 CSR 총괄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커뮤니티 플랫폼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죠. 워싱턴 DC는 미국 내에서 노숙인들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이 담당자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것으로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들을 플랫폼화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단편적으로 진행되는 CSR 활동 보다는 개방해서 플랫폼화 하면 많은 아이디어와 함께 여러 주체들의 참여도 이끌어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시너지 효과도 클 것이라는 확신도 있습니다."'야구 공유 인프라 전략'은 야구장을 찾는 팬과 인천시민에게 행복한 기억과 스토리를 만들어주자는 측면에서 스포테인먼트와도 맞닿아 있었다. 류 대표이사는 "지금까지 진행한 CSR 활동도 그렇고, 야구장을 찾은 고객에게 즐거운 추억과 스토리를 전해 주려는 지향점은 같다"면서 "하지만, 스포테인먼트가 우리가 기획해서 보여주고 팬들이나 시민은 그저 즐기는 이분법적 관계였다면 '야구 공유 인프라 전략'은 함께 체험하는 형태여서 스토리의 강도는 훨씬 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올해로 부임 3년 차를 맞는 류 대표이사가 꼽는 부임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도 구단의 CSR 활동 중 하나였던 '희망 더하기 이벤트'이다."2016년 처음 시작했을 때 실종(10년 이상)된 자식을 마음에 품은 부모 5분을 찾아 뵈었고, 그 분들의 마음을 영상으로 담아서 홈 경기 당일 빅보드를 통해 보여줬습니다. 당시 관중과 선수 모두 부모님들의 염원을 느끼면서 뭉클해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프로 야구단이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했던 때인데, '우리가 이런 일을 해야 하겠구나'하는 결심을 하게 만든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벤트를 하면 선수들이 귀찮아하진 않을까'하는 우려도 했었는데, 오히려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었죠. 2017년에는 실종아동에 머물지 않고 입양아동으로 확대했고, 몇몇 구단도 동참해줬습니다. 여타 종목의 스포츠 스타들도 뜻을 같이했고요. 대상은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올해도 '희망 더하기'는 이어집니다."프로구단으로서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구단의 성적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류 대표이사도 공감을 표시했다."성적이 좋으면 관중이 늘죠. 하지만 성적만 좋다고 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기는 통쾌함과 함께 4시간 정도 야구장에 있으면서 보고, 먹고, 상품을 사고, 체험하는 모든 것들이 누적되어서 스토리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적과 관중, 두 부분 모두 고민하고 있습니다. 트레이 힐만 감독과 염경엽 단장이 올해 두 번째 시즌을 맞게 되는데, 두 분 모두 지난해 보다는 나은 성적을 내기 위해 고민 많이 하실 겁니다. 지난해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는데, 올해에는 홈에서 포스트시즌을 치르자는 목표를 세워놓았습니다. 우승 목표는 앞으로 2~3년 내로 잡았습니다."우승을 하고, 좋은 성적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SK가 택한 부분은 '우수한 코치'이다. SK는 코치 육성 시스템을 두고 있다.류 대표이사는 "우수한 선수가 나오기 위해선 코치가 유능해야 한다"면서 "지난해부터 코치들은 미국 등 외부에서 진행되는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접하게 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염경엽 단장이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끝으로 류 대표이사는 시즌 개막을 기다리고 있는 야구팬들과 시민에게 자신감 넘치고 희망에 찬 메시지를 전했다. "올해도 홈런 군단의 이미지를 가져갈 것입니다. 여기에 김광현 등 좋은 투수들도 가세하기 때문에 지난해보다 더욱 강한 팀이 될 것이고, 그만큼 경기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또한 선수와 팬이 함께 만드는 이벤트들도 많이 만들고, 팬들이 주체가 되는 야구장을 만들어서 '해피 바이러스'를 퍼뜨릴 것입니다." 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류준열 대표이사는?전북 전주 태생인 그는 연세대학교 경제학 학사, 동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SK 텔레콤 입사 후 2010년 전략기획그룹장, 2011년 미국 플랫폼 사업본부장, 2012년 서비스탑 대표이사, 2015년 성장전략실 실장을 역임했으며 2016년 1월 SK 와이번스 대표이사로 부임했다.류준열 대표이사는 야구팬과 시민들에게 "야구장에 많이 오셔서 즐겨주시면 좋겠다"면서 "관중이 주체가 되는 야구장을 만들어서 경기장을 찾은 모든 분들에게 '해피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리겠다"고 다짐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류준열 SK 와이번스 대표이사가 올 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선보인 구단 점퍼를 입고 인터뷰를 했다. 류 대표이사는 "프로야구단은 연고 지역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구단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것이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생각했다. '야구 공유 인프라 전략'에 대한 각계각층의 참여를 통해 함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가는데 앞장서고 싶다"고 말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1-30 김영준

[인터뷰… 공감]한국 아동문학의 거장 윤수천 작가

대부분 '영감' 버스에서 얻어매일 눈 뜨는 게 너무 신나시간 많은 노인에겐 최고의 놀잇감내가 글 쓰는 사람인 건 행운할아버지는 바람이 매섭게 부는 한겨울에도 버스 타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버스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 떠오르는 공상을 수집하는 일이, 아무리 해도 지겹지 않은 '창작여행'이라 즐겁기만 하단다. 그것이 평생 80여 권의 가슴 따뜻한 동화를 아이들에게 선물한 거장의 숨겨둔 비결이리라.한국 아동문학의 거장이자 어린이들의 친구인 윤수천 작가는 인터뷰가 약속된 날(지난 17일)도 버스를 탔다. 추운 날씨에 건강을 걱정했더니 "나는 버스 타는 일이 정말 즐거워요. 아무 일이 없어도 버스를 타고 세상 한바퀴를 돌기도 해요. 혼자 가만히 앉아 재미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이 버스만큼 좋은 게 없지요. 내 동화의 영감은 대부분 버스에서 나왔어요"라며 맑게 웃었다.윤수천 작가는 올해로 76세다. 흔히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윤 작가에게 나이는 정말 숫자일 뿐이다. 쉼없는 작품 활동이 이를 방증한다. 그는 지금도 매일 글을 쓴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게 너무 신이 납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는 일이 설레거든요. 나같이 시간 많은 노인은 놀잇감이 필요해요. 혼자서도 잘 놀수 있는 일 중에 글 만한 것이 없어요. 나는 내가 글쓰는 사람인 것이 몹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사실 윤 작가의 삶은 '글' 쓰는 것이 좋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님이 나를 너무 귀여워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어요. 심지어 물가가 위험하다며 가지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셔서 지금도 수영을 못합니다.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너무 귀하게만 키우셔서 오히려 모험에 대한 갈증이 강했던 것 같아요. 행동으로 옮기질 못하니,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그걸 글로 표현하는 게 즐거웠어요. 문학은 뭐든지 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윤 작가에게 글은 가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케 해주는 친구가 됐고, 나이가 들수록 재능으로 진가를 발휘했다. "중학교 작문시간에 내가 쓴 작품을 가지고 선생님이 한 시간 동안 수업을 한 적도 있어요. 고등학교 때는 전국문예대회에서 장원을 하기도 했구요. 그때부터 평생 글쓰는 일은 놓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것 같아요. 비록 밥벌이로 공무원 생활을 했지만, 글 쓰는 일을 놓아본 적은 없습니다."당시 체신국(지금의 우정청)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국방부 정훈국을 거쳐 국방일보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으로 일한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모두 글과 연결돼 있다. "다른 공무원은 승진이 중요한 가치였지만, 나는 승진을 바라지 않았어요. 글쓰는 데 시간을 할애하기에도 바빴으니까요. 국방부 정훈국에 간 것도 내가 흠모하던 소설가 선우휘씨가 정훈장교 출신이어서 막연히 정훈국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그렇게 10여 년 국방부 본부에서 근무를 했고, 승진하기 싫어서 국방일보로 자리를 옮겼어요. 그곳에선 마음껏 글을 쓸 수 있으니까요." 한평생 글을 써도 대표작 하나 내기 힘든데, 그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여섯 작품이 실렸을 만큼 대표작이 많다. 올해에도 그가 2011년에 쓴 '할아버지와 보청기'가 초등학교 4학년 국어활동 교과서에 실린다. 그의 작품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나는 삶이 소설 같지 않았어요. 사납게 살지를 못했어요. 젊었을 때야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워낙에 정을 많이 받고 자라 삶이 동화 같아요. 동화를 써야 하는 게 내 그릇이죠. 나는 아동문학의 궁극적 목표가 희망과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절망이 있어도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희망의 씨앗을 보여줍니다." 그의 동화는 어른이 보아도 가슴 한 구석에 '쿵'하는 울림이 전해진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를 주인공 삼아 우리가 미처 몰랐거나 잊고 있었던 '속사정'을 따뜻하게 이야기한다. 할아버지와 보청기만 해도 '소통불가'로 치부해버린 노인의 세계를 아이의 시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경로당 앞에서 보청기를 슬그머니 빼 주머니에 넣은 할아버지를 의아해 하던 손자에게 뻥튀기 할아버지가 넌지시 속사정을 말해준다. '할아버지들이 너희처럼 귀가 밝아서 남이 한 말을 제때제때 알아들으면 하루해가 얼마나 길겠니.'그가 애착을 갖는 작품도 그런 유다. 2008년 작 '나쁜 엄마'는 뺑소니로 아버지를 잃고 하루아침에 두 딸과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생선장수 엄마를 미워하던 딸 난희가 거친 엄마의 손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말하며 마음 속의 응어리를 푼다. "동화라는 것이 대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나는 가급적 소외된 아이들을 밖으로 꺼내 따뜻하게 감싸주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편부모 가정에서 어렵게 사는 난희도 그렇고, 뇌성마비 아이가 상상 속에서 고래를 그리는 희망을 노래한 '고래를 그리는 아이'나 몸집이 크고 행동이 굼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 고릴라와 세희의 우정을 그린 '내 짝꿍은 고릴라'도 사회의 그늘 속에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꺼내 그 아이들의 진짜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줬죠."그는 동화의 효용을 어린이에 국한하지 않았다. "어린이가 늘 어린 상태로 있지 않아요. 동화의 주 독자가 어린이지만, 이들이 성장해서 어른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 동화는 어른이 읽어도 유치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른의 마음 속에도 어린이가 있어요. 동화만이 갖는 전파력이 어른에게도 통해야 합니다. 그래서 현실을 반영하는데 주저하지 않아요." 살다보면 다 큰 어른도 위로받고 싶다. 작가는 '행복한 지게'를 통해 어리숙한 아들이 나이 든 아버지를 업고 서울 구경을 시켜주는 모습이 우습지만, 아버지가 즐겁고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이 시대 어른들을 다독인다. 오는 3월에 내놓을 신작에서도 마찬가지다. 로봇 가사 도우미가 의식 불명 상태로 누워있는 엄마를 깨우는 '로봇 은희'와 치매 걸린 노모를 등에 업고 어린 시절 어머니가 곧잘 해주던 기차놀이를 하는 아들(가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이 등장하는데 현실에 지친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처럼 그의 동화는 가슴 따뜻하게 독자를 안아준다."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동화의 궁극적 목표지만, 시대가 달라지면 꿈을 표현하는 동화의 방식도 달라져야 해요. 옛날의 효와 오늘날의 효가 전혀 다르고, 아이들이 겪는 문제와 그 세계도 이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이웃이라 말하더라도 이제는 전세계가 이웃인 세상이에요. 동화도 시대에 맞게 아이들이 꿈을 찾아갈 수 있는 방향타가 돼줘야 합니다. 아이들의 세계를 넓혀주고 다양한 시각을 많이 보여줘야 합니다. 나는 계속해서 공부하고 관찰해서 그에 맞게 동화를 쓸 생각이에요."동화를 쓰는 일 말고도 그는 글쓰기에 관련된 다양한 강의를 하고 있다. 수원 중앙도서관에서 13년째 하고 있는 '행복한 글쓰기'는 물론 기업, 병원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글쓰기 강의 요청이 있으면 나선다. "요즘 시대 사람들이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상당히 많은 것 같아요. 그만큼 마음 속에 쌓인 것들이 많은 거겠죠. 그 욕구를 표현하는 데 글 만한 것이 없어요. 그래서 나는 늘 강의에 나가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글을 곁에 두고 있어 행복함을 느낀다고. 글쓰기 위해 사색하고 생각을 다듬는 일이 즐겁다고요.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겠죠." 문득 윤수천 작가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우리 곁에 남아 더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도 기댈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한 법이다.■윤수천 작가는?-주요 약력- ▲1942년 7월 29일(음력) 충북 영동 출생 ▲1954년 11살 되던 해 경기도 안성으로 이주 ▲1960년 19세 한국문화단체총연합회 주최 전국 고교생 한글시 백일장에서 장원 ▲197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항아리'로 당선 ▲1981년 첫 동화집 '예뻐지는 병원' 출간 ▲1993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심사위원 -주요 작품- ▲별에서 온 은실이 ▲행복한 지게 ▲꺼벙이 억수 ▲엄마와 딸 ▲인사 잘하고 웃기 잘하는 집 ▲고래를 그리는 아이 등 동화와 동시 80여 편-수상 내역- ▲소년중앙문학상 '산마을아이' '아침' 우수작 ▲경기도문화상 ▲한국아동문학상 '꽃가게 손님' ▲방정환문학상 '돈키호테 소방관' 등 글/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찬 바람이 매섭게 불던 지난 17일, 한국 아동문학의 거장 윤수천 동화 작가를 경인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그는 "매일 아침 오늘 무얼 쓸까 고민하는 것이 즐겁고 설렌다"며 소년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2018-01-23 공지영

[인터뷰… 공감]제2여객터미널 개장 앞둔 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개장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제2터미널 개장으로 인천공항은 연간 7천200만명의 여객과 500만t의 화물 처리 능력을 갖추게 돼 명실상부한 동북아 지역 대표 공항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인천공항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제2터미널을 포함한 3단계 사업(사업비 4조9천300억 원)을 마치자마자 4단계 사업을 추진한다. 제2터미널을 확장하고, 제4활주로를 조성해 연간 여객 처리 능력을 1억명 수준까지 확대한다. 인천공항은 셀프·자동화 서비스 확대, 첨단 ICT(정보통신기술), AI(인공지능) 등을 공항 곳곳에 적용해 '스마트 리딩(leading) 공항'으로도 거듭나고 있다. 세계공항서비스평가 12연패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보유한 인천공항은 더 높이 비상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인천국제공항공사 정일영 사장은 막바지 제2터미널 개장 준비 상황 점검을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2터미널 현장으로 출근해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며 성공적인 개장을 위해 전력하고 있다. 15일 오후 제2터미널 점검회의를 마치고 나온 정일영 사장을 만나 개장 준비 상황에 대해 들었다. 제2터미널 개장 준비로 바쁜 정 사장을 고려해 미리 질문지를 보내놓고 서면으로도 답변을 들었다. 그는 화장실 다녀올 시간도 없었던지 인터뷰용 사진 촬영 중 양해를 구하고 잠시 자리를 뜨기도 했다. 정 사장은 "개항을 위한 준비를 다 마쳤고, 이제는 혹시나 모를 비상사태,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일어날 것이라고 가정하고 이에 대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제2터미널에 올 때도 일부러 공항철도를 이용했다. 공항 이용객의 입장에서 불편한 부분이 있는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인천공항공사는 지난 2015년 12월 제2터미널 오픈과 관련한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운영·오픈 준비와 관련한 통합관리를 시작했다. 25개 분야 3천 개 세부 추진과제를 도출해 이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실제 운영 상황을 가정한 시험운영도 벌여왔다. 그동안 투입된 가상여객만 2만2천 명에 달한다. 가상수하물 7만7천 개, 항공기 7대 등도 시험 운영에 동원됐다. 1만2천여 명에 달하는 운영인력이 새로운 시설과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 관숙화, 이전 준비 등의 작업도 했다. 정 사장은 "마지막까지 고객 혼선 예방 취약 분야, 미비 분야 중심으로 반복훈련과 개선을 지속해서 진행 중"이라며 "오픈 당일부터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제2터미널 개장을 준비하면서 정 사장은 여객 편의 향상을 강조해왔다. 제2터미널은 설계 단계부터 여객을 중심에 두고 시설을 배치했다는 평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가야 하는 교통센터와 여객터미널 간 거리는 59m로, 제1터미널(223m)보다 크게 단축됐다. 제2터미널은 입·출국장을 통합해 대기시간은 줄이고, 대기공간은 3배 가까이 확대했다. 출국 층 중앙에는 셀프체크인(여객이 스스로 탑승권 발급), 셀프백드롭(여객이 직접 수하물 위탁) 기기를 집중 배치한 '출국수속자동화구역'과 여객이 편리하게 민원 처리를 할 수 있도록 '정부기관 통합민원센터'를 조성하기도 했다. 환승 관련 시설을 인접 배치한 환승 집적화와 차별화된 환승 편의지역 조성으로 허브공항에 걸맞은 환승 인프라도 구축했다. 양방향 정보안내 시스템, 안내로봇 운영, 최신형 원형보안검색기 설치 등 스마트기술을 도입한 제2터미널은 스마트공항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 외에 상업시설 중앙 집중 배치, 상설문화공간 조성, 국내외 대표적 미술품 배치, 전망대·홍보관 운영 등으로 여객이 편리하고 즐겁게 공항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제2터미널 개장 준비에 전력해 온 정일영 사장은 세세한 부분까지 꿰고 있었다. 이날도 기자에게 제2터미널에 입점한 '쉑쉑버거'를 맛보고 가라고 했다. 제2터미널과 교통센터에는 미국 프리미엄 버거인 '쉑쉑버거(쉐이크쉑·SHAKE SHACK)'뿐만 아니라 한국 팔도의 맛집으로 구성된 푸드코트 '한식미담길' 등이 조성됐다. 그는 제2터미널 앞에 심어진 장송(長松) 등을 언급하며 "터미널 자체가 오고 싶은 곳이 될 것이다. 봄이 되면 터미널 앞길이 데이트코스로도 큰 인기가 있을 것 같다"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실제로 제2터미널이 정식 개장하기 전인 이날도 터미널을 구경하기 위해 온 시민이 많았다.제2터미널은 해외로 떠나거나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환승객 등이 잠시 거쳐 가는 장소를 넘어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천공항공사는 제2터미널을 차별화된 문화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 '아트포트(Art Port)'로 조성했다.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 프랑스), 율리어스 포프(Julius Popp, 독일), 김병주, 지니 서 등 국내외 유명 작가의 예술작품 16종 33개를 배치하기도 했다. 정 사장은 "연간 6천 회가 넘는 문화공연을 실시해 인천공항에 머무르는 모든 시간이 즐거움과 감동으로 가득하도록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특히 터미널 내 국내외 대표작가가 한국의 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을 배치해 국내외 여객에게 품격 있고 아름다운 한국의 이미지를 각인하고 우리 국민의 문화적 향유기회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천공항이지만,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복수(2개) 터미널 운영에 따라 여객이 혼선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은 걱정되는 부분이다. 정 사장도 터미널을 착각하는 '오도착' 승객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제2터미널로 이전하는 대한항공, 델타, 에어프랑스, KLM 등 4개 항공사와 함께 예방책 마련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항공사와 함께 문자메시지, 이티켓(e-ticket)을 통해 여객에게 이용 터미널을 알리는 사전 안내문을 발송한다. 고속도로와 공항 안내표지 체계 정비, 외국인 여객을 위한 해외 온라인 홍보, 대중교통 이용 안내 등도 진행하고 있다. 정 사장은 특히 탑승권 판매 항공사와 실제 항공기 운항 항공사가 다른 '공동운항(코드셰어)'의 경우 여객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정 사장은 "여객 오도착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체계적으로 홍보와 안내를 하는 등 다각적인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객들의 인식이다. 인천공항 이용객은 출발 전에 반드시 본인이 가야 할 터미널을 확인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인천공항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승객과 화물을 집결하고 분산시키는 '항공네트워크 중심 공항'으로서 허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도 하고 있다. 항공네트워크를 동북아시아 공항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고, 복합리조트와 골프장 등 새로운 여객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공항복합도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항공정비(MRO) 특화단지 유치, 해외공항 사업 확대 등 신성장 동력 발굴에도 매진하고 있다. 정 사장은 "중국, 일본 등 경쟁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인구나 경제 규모가 제한돼 직항수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허브 경쟁력 확보를 통해서 공항의 성장이 가능하다"며 "주변국의 공항 투자 확대 등 허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다양한 노선'과 '고품질 서비스 제공' 등 차별화 전략으로 동북아와 제3국 간 여객과 화물을 수송하는 허브공항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정 사장은 2023년까지 4단계 건설사업을 마무리해 '글로벌 메가 허브'의 토대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정 사장은 2020년까지 110개 이상 취항 항공사 유치, 1천만 명 이상 환승객 유치, 300만t 수준으로 물동량 확대,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인천공항을 동북아 항공·물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정 사장은 "앞으로 공항 그 이상의 가치를 국민들께 되돌려주겠다. 더욱 활기차게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이 실현되는 인천공항이 되도록 하겠다"면서 "우리의 꿈이 현실이 되고 설렘이 감동이 되도록 공항가족 모두가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글/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정일영 사장은?▲1957년 충남 보령 출생▲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 석사, 영국 옥스포드대 발전경제학 석사, 영국 리즈대 경제학 박사▲1979년 행정고시 23회▲2000년 6월∼2001년 11월 건설교통부 국제항공협력관▲2001년 11월~2004년 11월 UN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대한민국 대표부 참사관▲2007년 1월~2008년 3월 건설교통부 항공기획관▲2008년 3월~2009년 1월 국토해양부 항공·철도국장▲2009년 1~5월 국토해양부 항공안전본부장▲2009년 5월~2010년 9월 국토해양부 항공정책실장▲2010년 9월∼2011년 7월 국토해양부 교통정책실장▲2011년 8월∼2014년 10월 교통안전공단 이사장▲2014년 11월∼2016년 1월 한국항공대학교 항공경영대학원 초빙교수▲2016년 2월~현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2016년 3월∼현재 국제공항협의회 이사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지난 15일 오후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4층 중앙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 사장은 18일 제2터미널 성공적 개장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하면서도 혹시나 있을지 모를 비상상황에 대비해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지난 12일 열린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그랜드 오프닝' 행사에서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2여객터미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출국 층 중앙에 위치한 셀프체크인(여객이 스스로 탑승권 발급) 기기.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1-16 홍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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