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프로야구 수원 kt wiz 임종택 신임 단장

착실히 강해지는 팀으로 육성… 탈꼴찌 통해 성장 가능성 입증할 것선수층 강화 과감하게 투자 '2군 훈련장' 수원 주변 이전 장기적 목표초·중·고 연속성 중요… 야구 좋아하는 청소년 늘리기에 마케팅 집중소외계층 함께하는 사회공헌 활동과 지역 토착화 방안 꾸준히 모색"열심히 뛰겠습니다."프로야구 수원 kt wiz 임종택 신임 단장의 일성이다. kt는 지난달 kt 소닉붐 프로농구단 단장으로 활동한 임종택 단장을 야구단 신임 단장으로 선임했다. 구단은 임 단장의 선임 배경에 대해 kt의 체질 개선과 도약을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임 단장은 kt 부산 마케팅단 지사장, 경영지원담당 등을 역임했고 kt 소닉붐 농구단과 e-sports, 사격팀, 하키팀을 총괄해왔다. 스포츠단을 이끈 경험과 리더십을 보유했다고 평가받는 임 단장은 내년 시즌 kt가 발전할 수 있도록 발 벗고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스포츠 철학을 들어봤다.지난 달 25일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만난 임 단장은 "야구단이 좋은 환경에 있을 때 부임한 것이 아니고 구원 투수와 비슷하게 오게 됐다"며 "상당한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낀다. kt를 어떻게 하면 잘 이끌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그러면서 임 단장은 내년 시즌 3가지를 약속했다. ▲kt의 성적을 끌어올리는 것 ▲선수단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 ▲팬들의 사랑을 받는 야구단이 되는 것이다. kt는 올 시즌 53승 2무 89패로 지난해보다 1승만을 추가한 성적으로 지난해에 이어 최하위에 머물렀다. 또 음주운전과 공연음란죄 등 각종 문제가 선수단을 따라다녔고 이는 곧 선수단 전체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신생팀으로서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여러 난제에 부딪히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있었다는 의미다. 임 단장은 이 부분을 지적하면서 "2017시즌에는 달라진 kt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우선 그는 kt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kt는 초대 감독이었던 조범현 감독의 후임자로 김진욱 감독을 선임했다. 임 단장은 "김진욱 감독이 '감동을 주는 야구'를 표방했고, 나 또한 팬들에게 kt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무엇보다 선수층이 가장 중요하다. 성적을 한꺼번에 끌어올리겠다는 생각보다는 착실히 강해지는 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탈꼴찌를 해 성장 가능성을 입증한 뒤 점진적으로 포스트시즌과 한국시리즈 진출도 생각하겠다"고 강조했다.외국인 선수 선발과 FA(자유계약선수) 영입, 트레이드 등으로 kt의 부족한 부분도 보완할 뜻도 내비쳤다. 실제로 kt는 7일 새 외국인 투수로 돈 로치를 계약금 포함 총액 85만 달러(9억7천여만원)에 영입했다고 밝혔다. 지난 2년간 kt가 외국인 투수와 계약한 금액 중 가장 큰 금액이다. 돈 로치를 영입하면서 '2선발로 적합한 선수'라고 소개한 만큼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kt의 투자가 적지 않을 것임을 보여줬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전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임 단장은 선수단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수 육성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전했다. 2015년까지 성균관대 야구장을 빌려 사용했던 kt는 익산 국가대표야구장을 2군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타 구단에 비해 2군 선수 육성을 위한 시설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이에 임 단장은 "2군 구장의 개선할 부분을 찾아보겠다"며 "현재 익산시와 시설 인프라구축에 대해 논의중이다. 여의치 않으면 장기적인 관점에선 수원 주변으로 2군 훈련장을 옮기는 것을 염두해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이어 "단장이 되고 나서 '성적보다는 신생구단으로서 패기와 근성있는 모습, 푸릇푸릇한 모습을 보여달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선수단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지역 마케팅에 대한 본인의 생각도 내비쳤다. kt는 최하위라는 성적 속에서도 올해 68만2천444명의 관중을 동원하면서 10개 구단 중 7번째로 많은 관중 동원을 기록했다. NC 다이노스(54만9천125명)와 한화 이글스(66만472명)보다 많은 숫자다. 지난해 64만5천465명보다 3만7천여명이 증가했다.이에 임 단장은 "올해 kt는 2년 간 지속해 온 워터 페스티벌,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시킨 야구장, 위즈맘 페스티벌과 같은 다양한 이벤트가 팬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지역 마케팅은 유소년부터 초·중·고까지 체계적으로 연속성 있도록 야구의 맥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수원에 야구를 좋아하는 청소년이 더 많아지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부분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답했다.아울러 "비 시즌 때 수원 지역의 소외 계층과 함께하는 등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야구단을 홍보하고 교육청과 시청, 도청과 접촉해 업무를 제유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살피겠다"며 "수원 지역의 야구관련 기관과 학교를 방문하는 등 각계각층의 얘기를 듣고 싶다. kt가 수원 지역에 토착화 할 수 있는 방안들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또 수원 케이티위즈파크는 내년 시즌을 앞두고 2천석을 증축하는 공사에 들어갔다. 새로워지는 수원케이티위즈파크와 kt만의 마케팅 및 기술력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될지 기대를 모으는 대목이다. 임 단장은 "수원 kt 팬들께 여러 가지로 감사하면서도 죄송한 부분이 있었다"며 "다음 시즌부터는 팬들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는 구단, 팬들에게 자랑이 되는 구단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대담·정리/신창윤 체육부장·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임종택 단장은?-학력▲ 수원 수성고 졸업▲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졸업-주요경력▲ kt 입사▲ kt 부산 마케팅단 지사장▲ kt 경영지원실 경영지원담당▲ kt 스포츠 농구단(농구, e-sports, 사격, 하키) 단장프로야구 수원 kt wiz 임종택 신임 단장이 kt의 체질 개선과 선수단 관리로 2017시즌에는 달라진 kt를 만들어 팬들에게 자랑스러운 구단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2016-11-08 이원근·신창윤

[인터뷰… 공감]여인홍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가격 변동폭 큰 배추·무 등 계약재배 시범사업… 양념류까지 점차 확대온라인 수급종합시스템 구축… 비축기지 통·폐합해 광역화·현대화 추진中 모바일 시장 진출 '물꼬' 단순 상품 넘어 식문화 수출로 저변 넓혀야맞춤형 전략으로 동아시아 공략… 칭다오 물류센터 건립 등 인프라 확충"농수산물 수급 안정과 유통구조 개선 기능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내년이면 창립 50주년을 맞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이하 aT)가 여인홍 사장 체제 출범과 때를 같이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여 사장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30여년의 공직생활 동안 유통정책과장-유통국장-식품산업정책실장 등을 거치면서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을 추진했던 인물이다.농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여 사장의 다양한 경력은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란 평가와 함께 기대감을 동시에 갖게 한다.이런 기대를 반영하듯 여 사장은 지난 4일 취임식에서 "농업·식품산업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aT가 공공기관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매진해 나가겠다"는 구상을 밝혔다.특히 취임과 동시에 ▲정부정책을 선도하는 기능 강화 ▲농업분야 청년인재 유입 등 농식품 일자리 창출 ▲탄력적인 조직·인력 운영 ▲성과 중심 조직문화 정착 등 신임 사장 답지 않은 구체적인 조직 운영 방향을 설정해 추진하는 열정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aT의 세계적인 농업 유통 전문기업화를 추진하고 있는 여 사장을 현장에서 만나 그의 경영 철학을 들어봤다.# 기본에 충실한 aT 만들기여 사장은 aT의 기능적 역할에 대해 "안전한 농식품을 국내외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라며 "공공성을 기반으로 기본에 가장 충실한 공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그는 "aT가 기본에 충실한 회사가 되려면 국내 농수산물의 수급안정과 유통구조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수급관리 종합시스템 고도화, 직거래 인증제도 도입, 사이버거래소 등 온라인 거래, 로컬푸드 확산 등 신유통사업의 내실화가 우선시 돼야 한다"고 밝혔다.여 사장이 농산물 수급불균형 해소를 우선 꼽은 이유는 바로 aT의 설립 이유이기도 하지만 크게는 국내 농업계 전체의 존립과 연결되는 중요사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여 사장은 "농산물 유통은 정확한 수급정보 확보와 효과적 분산 그리고 비축, 방출 등이 적기에 추진될 때 농산물 수급의 불안정성을 비로소 최소화 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농산물 수급안정 기능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올해부터 가격 변동폭이 큰 배추와 무에 대한 계약재배 시범사업을 진행중이며, 마늘과 양파 등 양념류로 점진적인 확대를 해나가겠다"며 "일부 물량은 상시 비축과 연계해 수급조절물량으로도 활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이외에 유관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온라인 수급종합시스템을 구축해 효과적으로 수급정보를 전파해 나갈 수 있도록 시스템 개선도 동시에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농산물의 수급조절 및 가격안정사업을 위한 필수요건으로 부대 시설인 비축기지의 현대화 사업을 꼽으며 향후 차질 없는 추진 의사를 밝혔다.여 사장은 "대부분의 비축기지가 지난 196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상당히 노후된 상황"이라며 "저온설비 등을 갖춘 현대시설로 개선하고, 전국에 산재한 12개 비축기지를 5개 권역으로 물류거점화 하는 등 광역화에 나설 것"이란 구상도 밝혔다.이어 "대한민국 인구의 반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수도권부터 개선하기 위해 지난 9월 수도권 농산물 정부비축기지를 김포로 이전했다"며 "8개 지역에 분산된 지방 비축기지도 충청권, 호남권, 대구·경북권, 부산·경남권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통폐합해 나갈 계획"이라며 보다 세세한 계획안도 밝혔다.# 농산물 수출을 통한 한국 식문화 수출농산물 수급관리와 유통 이외에도 aT의 중요한 사업은 바로 국산 농수산물의 수출이다.여 사장은 식품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국산 농산물의 수요 증대를 목표화 하고 있다. 농업과 식품산업의 연계성 강화에 목표를 두고 중소 식품·외식업체 경쟁력 강화 지원, 쌀 가공식품 산업 육성 등에 공사의 역량을 확대해 나가갈 계획이다.여 사장은 "한국 농식품의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서는 우선 식품 특성상 통관시 어려운 검역문제를 해소하고, 고품질의 제품생산은 물론 지속적 수출을 위한 안정적 물량확보가 필요하다"며 "위생적이고 안전한 식품에 대한 소비자 욕구에 부응할 수 있는 제품 생산이 기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농식품도 이젠 단순 상품수출에서 벗어나 한국의 식문화 수출을 통한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며 "최근 시장개방, 온라인 및 모바일 상거래 확산 등에 따른 환경변화에도 신속하게 대응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여 사장은 가장 관심 대상국으로 주저 없이 중국시장을 지목했다.덕분에 취임 후 첫 중국 출장에서 '일부 농식품의 중국 모바일 시장 진출'이란 의미 있는 성과물도 챙겨왔다. 시작은 미미하나 우리 농식품이 중국 전역에 판매될 수 있는 기반 확보는 물론 가능성을 타진한 계기를 만든 셈이다. 여 사장은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Wechat)에 한국 식품 전용 쇼핑몰인 '한식왕'을 개통했다"며 "파워블로거들을 활용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판매 생태계도 구축했다"고 밝혔다.이어 "위챗에는 중소기업을 막론한 18개의 우리 농식품업체가 생산하는 약 500개의 제품이 등록됐고 8만6천만명의 위챗 회원들에게 판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여 사장은 "위챗 등록 외에도 600만 명에 달하는 중국 유커에 대한 체험형 식문화 관광 활성화 등을 준비하고 있다"며 "중국 내에서 열리는 식품박람회에도 꾸준히 참여해 한국 농식품에 대한 홍보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그는 중국 외에도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동아시아 각국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설 채비를 갖추면서, 농식품 부문의 활발한 무역거래가 성사될 그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여 사장은 "중국 외에도 동남아, 중동 등 미래 핵심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권역별 특성에 부합하는 맞춤형 전략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수도권과 가장 가까운 중국 칭다오에 물류센터를 세우는 등 현지 수출 물류 인프라 구축을 강화해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대담=심재호 경제부장 sjh@kyeongin.com·정리·글=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여인홍 사장은?-학력▲ 서울대 졸업(1982)▲ 국방대학원 국방관리학 석사(2002)경력▲ 1983 제19회 기술고등고시▲ 2008~2009 농촌진흥청 기획조정관▲ 2010~2011 중앙공무원교육원 국장▲ 2011 국립식물검역원 원장▲ 2011~2012 농림수산식품부 유통정책관▲ 2012~2013 농림수산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 2013~2016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수상▲ 1997 국무총리표창▲ 2004 근정포장내년이면 창립 50주년을 맞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이하 aT)의 여인홍 신임 사장은 "농업계에서 30년의 공직생활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조직 운영방향을 설정해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016-11-01 김종화·심재호

[인터뷰… 공감]조동성 인천대학교 총장

총장 집무실 줄이고 교수 스마트오피스 도입… 구성원에 여유 공간 환원기업 연계학과 '산학협력형 매트릭스 학사제' 30여개 업체와 내년 시행팀으로 교수 뽑고 해외 브랜치 대학 설립 추진… 세계 100대 대학 목표송도 겨냥 바이오 연구개발 능력확보 등 인천을 위한 학교로 만들겠다기업 컨설턴트 등 새분야 개척자사회와 기업가치 동시 추구자본주의 5.0을 주창하고 책은 1년에 2권씩 70여권이나 집필그의 도전은 계속된다기업 컨설턴트라는 개념조차 희미했던 오일 쇼크(1973년) 무렵,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박사학위를 받은 27세의 청년 조동성은 현지 컨설팅 법인에 들어가 컨설턴터로 활동했다. 당시는 컨설턴트 법인 소속의 한국인 컨설턴터를 찾아 볼 수 없던 시절이었다. 낯선 분야인 만큼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는 도전했고 성과를 냈다. 이후 조동성의 행로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프론티어, 그 자체였다. 40여 년이 지나 국립 인천대 총장이 된 지금도 그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사회가치 중심의 '자본주의 4.0'을 넘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사회와 기업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자본주의 5.0'을 주창하고 있다. 최근엔 기업경영연구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중국 정부로부터 국유기업 가치평가 프로젝트를 맡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책을 내는 일은 어느새 생활이 됐다. 지금까지 집필한 책이 70여 권이나 된다. 1년에 2권씩 낸다.지난 24일 조동성(67) 인천대 총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했다. 조동성 총장은 "이전에 총장실이 너무 넓어서 규모를 줄여 옮겼다"며 "오늘이 총장실을 옮긴 뒤 근무하는 첫날"이라고 했다. 처장 등 보직교수들의 집무실은 통합해 '스마트오피스'로 꾸미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어 기업들은 이미 스마트오피스를 도입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여유 공간이 생겼다. 이는 공간 부족을 호소하는 대학구성원들에게 돌려줄 예정이다.서울대 교수직을 정년퇴직한 60대 후반에 접어드는 나이임에도 그의 가슴은 뜨거운 열정으로 들끓었다. 조동성 총장은 "두고 보라"고 했다. 학교가 얼마나 많이 바뀌는지 지켜보라는 말이었다. 자신감이 넘쳤다.■ 인천대 변화 DNA, 날개를 달다인천대는 사립에서 시립으로, 그리고 국립으로 지속해서 변화해왔다. 변화를 싫어하는 대학사회에서 인천대의 변화는 낯선 존재가 아니다. 조동성 총장도 인천대의 이런 점을 강점으로 평가했다. 그는 "내가 경험한 다른 대학들에 비해 인천대 구성원들의 개혁성향이 강한 건 분명한 것 같다"며 "변화로 인해 나빠지는 것보다 좋아지는 것이 많다는 점을 구성원들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조동성 총장은 이런 인천대에 다시 한 번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연구해 온 경영이론이 인천대 변화의 밑바탕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산학협력형 매트릭스 학사제도' 도입은 인천대 변화의 대표적 사례다. 기존 대학의 학문공급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업 주도의 연계학과 설치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게 매트릭스 학사제도의 골자다. 인천대는 포스코건설, CJ대한통운 등 30여 개 기업과 함께 내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조동성 총장은 "사회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과목을 대학 안에 만들어 학생들이 졸업 전에 이수하도록 하는 제도"라며 "기존 학과에 대한 구조조정을 억제하면서 대학교육을 사회 수요에 맞출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했다.인천대는 최근 대학 연구능력 강화를 위해 1명씩 채용하던 교수를 '팀제'로 뽑는 방식을 도입했고,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해외 브랜치 대학 설립도 추진 중이다. 다음 달엔 중국 옌타이 지역에 첫 브랜치 대학 설립을 위한 MOU를 맺는다. 그는 특히 해외 유명 기업들이 인천대 학생들을 직접 채용할 수 있는 기회도 확대해 나가겠다고 했다. 인천대를 4년 이내에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시키기 위한 비전도 확고하다. 조동성 총장은 "세계적인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의 교수들을 데리고 와 장기적으로 대학의 연구능력을 높이고, 싱가포르대학을 모델로 인천대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라며 "일본의 교토대가 도쿄대보다 먼저 노벨상을 받았던 것처럼, 서울대보다 인천대가 노벨상을 먼저 받을 기회가 훨씬 많다"고 했다. 이제 인천대는 국내 대학을 비교모델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세계 톱 클래스 대학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조동성 총장은 바이오 분야의 연구개발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도 확고했다. 조동성 총장은 "인천대 캠퍼스가 있는 송도국제도시는 바이오 산업을 주축으로 하고 있지만, 연구개발 분야는 아직 미진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바로 여기에 인천대의 역할이 있다"며 "연구와 원천기술 개발에 이어 생산이 이뤄지는 끊임없는 교류작용이 인천대를 중심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 인천, 흔들리지 않는 뿌리인천생활 3개월이 된 조동성 총장에게 인천에 대한 느낌을 묻자 "잃었던 고향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북한에 고향을 둔 그의 부모님은 해방 직후 월남해 서울에 터를 닦았다. 조동성 총장은 서울 출신이다. 그는 "명절엔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그런데 인천에 오니 유독 아버지 고향 분들을 많이 뵀다. 음식도 잘 맞고, 무언가 통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이어 "서울에선 서울이라는 공간에 실려서 산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여기는 뿌리를 내리는 느낌"이라며 "부임하자마자 인천으로 이사를 왔는데, 서울에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들 정도"라고 했다. 무엇보다 인천대는 '인천의 대학'이라는 걸 강하게 느낀다고 했다. 그는 "대학과 지역사회와 밀착되는 느낌은 처음"이라며 "개인적으로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인천대가 국립이긴 하지만 지역 사회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성장해온 만큼, 인천지역 구성원들이 인천대를 생각하는 정도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대학이 그 바람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다.조동성 총장은 "우리가 인천을 위한 대학으로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만큼 인천시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인천을 위한 대학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또 "인천대는 원칙에 따라 하나씩 계단을 오르면 이룰 수 있는 비전이 확실하다"며 "300만 도시의 격에 맞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글/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조동성 인천대 총장은? 학력▲ 서울대 졸업(1971)▲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박사(1977)경력▲ 1978~2014 서울대 교수(조교수·부교수·교수)▲ 1983~1984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초청부교수▲ 2001~2003 서울대 경영대학장▲ 2005~2006 한국경영학회장▲ 2006~2007 한국학술단체 총연합회장▲ 2008~2012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 2009~2012 코리아바이오경제포럼 공동회장▲ 2012~2013 월드뱅크 총재 자문▲ 2014~2016.7 중국 장강경영대학원(CKGSB) 교수 ▲ 2014~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2008~현재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장▲ 2011~ 현재 안중근 의사기념관장조동성 인천대 총장이 지난 24일 경인일보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인천을 위한 대학으로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만큼 인천시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인천대는 원칙에 따라 하나씩 계단을 오르면 이룰 수 있는 비전이 확실하다"며 "300만 도시의 격에 맞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016-10-25 이현준

[인터뷰… 공감]임흥세 남수단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아프리카 복지증진 기여 공로로 수상한 '파라다이스상' 송구스러워남수단 IOC 가입은 성사 시켰지만 유니폼 조달·숙소예약 등 애먹어축구 유망주 3년간 한국유학 준비… 아프리카의 세계축구 정복 점쳐축구클럽 이어 케냐 축구학교 포부… 아이들에 꿈과 용기 심어줄 것"아직도 남수단은 전쟁 중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평화의 꽃을 피울 겁니다."'남수단 체육의 대부' 임흥세(60) 남수단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은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축구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아프리카 대륙을 무대로 활약했던 그가 2012년 남수단에 뿌리를 내리면서 스포츠 평화 외교에 더욱 열정을 쏟고 있다. 특히 남수단의 톤즈는 지난 2010년 선종한 고(故) 이태석 신부가 봉사활동을 한 지역이다.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는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이곳에서 임 부위원장은 전쟁으로 얼룩진 남수단에서 스포츠를 통한 평화 외교를 펼치며 한국과 남수단의 가교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의 공로를 인정한 파라다이스 그룹은 '2016 파라다이스상 사회복지부문' 수상자로 임 부위원장을 선정하기도 했다. 남수단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한 임 부위원장을 지난 17일 만나봤다.임 부위원장과 인사를 나눈 뒤 '2016 파라다이스상'에 관해 물어봤다. 그는 "파라다이스상은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한 공로자를 찾아 격려하는 상으로 알고 있다"면서 "나에게 이런 영광을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이번 파라다이스상에는 사회복지부문에 임 부위원장을 비롯 특별공로 부문에는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이, 문화예술 부문에는 조수영 JOH 대표가 각각 수상자로 뽑혔다. 파라다이스그룹은 문화예술, 사회복지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특별한 공헌을 한 사람에게 파라다이스상을 수여하고 있으며, 올해로 10회째를 맞고 있다.임 부위원장은 "축구 선교사로 남아프리카 아동·청소년 축구단을 결성하고 남수단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가입시키는 등 아프리카 복지 증진에 이바지한 공로로 이 상을 받게 된 것 같다"며 "부족한 나에게 이런 상이 주어진 것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전했다.사실 임 부위원장은 대한축구협회 중학교 상비군 감독, 광운전자공고 감독 등을 거친 뒤 2006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축구를 통해 선교활동을 펼쳤고, 지난 2012년부터는 '남아공보다 환경이 더 어려운 국가에서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신념으로 남수단으로 건너갔다.이후 남수단 축구대표팀 총감독을 맡아 청소년·성인 국가대표팀을 체계적으로 만든 임 부위원장은 야구·농구·핸드볼·배구·탁구·육상·태권도·유도·권투 등 9개 종목 지역협회를 설립하며 남수단을 IOC 회원으로 가입시켰다.그 결과 남수단은 지난 8월 사상 처음으로 2016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무대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남수단이 올림픽에 서기까지 쉽지 않았다. 임 부위원장은 "남수단을 IOC 회원에 가입시키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선수단 단복과 유니폼 등을 구해 공항에 도착했는데, 현지 내전으로 항공기가 뜨지 않아 고생했다. 다행히 대한축구협회의 협조를 통해 아시아나 항공에서 지원해줬고 선수단이 유니폼과 단복을 입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또 그는 "'이태석 재단'과 '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부터 현물을 지원받아 남수단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유니폼과 단복을 입고 나갈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리우 현지에서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임 부위원장은 "남수단 정부가 전쟁으로 인해 금융 관련 기능을 상실해 신용카드가 없어 호텔 및 음식 예약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내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어 위기를 넘겼다"고 전했다.임 부위원장은 남수단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국내 스포츠 용품업체인 스켈리도 사의 지원을 받아 축구 유망주들을 3년 동안 한국에 유학시키는 데도 앞장섰다.그는 "1년 전부터 스켈리도 사의 도움을 받아 현지에서 축구 유망주 2명을 한국에 유학시키려고 준비하고 있었다"면서 "현지 테스트를 거쳐 2명을 선발해 이번에 함께 왔다. 유망주는 임마누엘과 마틴이다"고 설명했다.남수단 청소년 대표팀 임마누엘과 마틴은 10월부터 대안학교인 쉐마국제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 3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대표팀 소집훈련에서 손흥민 등 한국 대표팀 선수들을 만나는 영광을 누렸다. 임마누엘과 마틴은 축구 변방 남수단에서 프로 선수의 꿈을 키운 유망주다.임 부위원장은 "두 선수는 3년간 한국에서 학업을 이어간 뒤 프로축구 K리그에 도전장을 낼 계획이다. 임마누엘은 수비형 미드필더, 마틴은 오른쪽 윙 포워드가 포지션으로 남수단에선 톱 클래스 급 선수로 꼽힌다"고 전했다.임 부위원장은 아프리카 축구가 장차 미래 세계 축구를 점령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그는 "아프리카는 카메룬, 남아공에 이어 남수단까지 축구 유망주들이 즐비하다. 운동 능력이 뛰어나고 탄력과 유연성이 좋아 장차 세계 축구계에 중심에 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래 대안도 내놓았다. 바로 재단을 설립해 아프리카에 축구 클럽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는 "현재 남수단 프로축구는 주바리그(1부리그) 10개 팀과 2부리그 10개 팀이 각각 운영되고 있다"면서 "스켈리도 스포츠 재단을 설립해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과 함께 남수단 2016년 주바리그(1부리그) 우승팀인 아드라바바 축구클럽을 인수했다. 내년에는 선수들 유니폼에 스켈리도 이름을 달고 뛴다"고 밝혔다. 또 임 부위원장은 "내년 3월 아프리카 동남부에 위치한 케냐에 축구학교를 세울 것"이라면서 "이 축구 학교에는 탄자니아, 소말리아 등 10여 개 국가 축구 유소년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게 된다"고 밝혔다.끝으로 임 부위원장은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지만, 자원이 풍부하다. 이미 중국은 아프리카 대륙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기업도 아프리카를 교두보로 미래 먹거리를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당부했다.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임흥세 부위원장은? 경력▲ 인천대학교 졸업▲ 광희중 축구팀 감독▲ 성수중 축구팀 감독▲ 남대문중 축구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한국중학교 상비군 감독▲ 광운전자공고 축구팀 코치 및 감독▲ 아시아청소년학생축구대회 청소년대표팀 코치▲ 미국 세크라멘토 입양인 축구팀 코치▲ 풋볼액트29 감독▲ 2010 경기도 홍보대사▲ 체육인재육성재단 글로벌 홍보대사▲ 희망고 유소년축구단 감독▲ 남아프리카공화국 축구대표팀 총감독▲ 남수단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남수단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수상▲ 1992 아시아학생축구선수권대회 우승지도자상▲ 2016 파라다이스상 사회복지부문 수상19일 서울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그랜드볼룸에서 '2016 파라다이스상(사회복지부문)을 수상하는 임흥세 남수단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이 "남수단은 내전이 이어지면서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을 위해 할 일이 많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2016-10-18 신창윤

[인터뷰… 공감]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부장 김경아 명창

'어린시절 꿈은 가수' 우리가락과 구성진 목소리에 끌려 판소리 입문'명창 등용문' 임방울 국악제 4차례 도전 끝 대상 수상 "이제야 졸업"故성우향 명창 덕분에 홀로서기 성공… 스승없이는 소릿길 알수없어아버지 손에 이끌려 동네 이곳저곳에서 '동백 아가씨'를 부르며 '동네 가수'로 노래 실력을 뽐내던 꼬마가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지난달 23~26일 광주 문예회관 대극장 등에서 열린 '제24회 임방울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김경아(42) 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부장 얘기다. 수상 이후 매일 인터뷰 등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김경아 명창을 지난 10일 인천 남구 주안동에 있는 보존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단아한 한복차림을 떠올렸던 기자의 예상을 깨고 그는 외출복 차림으로 사무실에 나타났다. 첫인상은 평범한 여성인데 어디에 소리꾼의 내공이 숨어있는 것일까. 그 의문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풀리고 있었다. 수상소감을 묻자 그는 "이제야 졸업했네요.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쁜 마음뿐"이라며 "4차례 도전 끝에 상을 받게 돼 그동안 도전했던 것만큼 4배로 기쁘다"고 말하며 웃었다.보수적인 우리나라 국악계에서 '명창'으로 인정받는 방식은 아직 고전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명창의 등용문이라 여겨지는 국내 주요 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받는 것이다. 그가 '졸업'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는 "너무 늦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큰 숙제를 끝낸 홀가분한 마음"이라고 했다. 대통령상 수상과 동시에 이제 더는 다른 국악제에 도전할 자격도 없어졌다. 막 사람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때부터 그의 꿈은 유행가를 부르는 '가수'였다고 한다."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이선희·김연자보다 제가 더 노래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선생님 손에 이끌려 다른 반에 공연하러 다니곤 했으니까요. 중학교 시절 선생님께서는 꼭 문희옥 같은 유명한 트로트 가수로 커야 한다고 말씀하셨죠."(웃음)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티브이에서 판소리 공연을 보게 됐다. 이거구나 싶었다. 우리 가락과 명창의 구성진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그 판소리는 내가 부르는 유행가보다 수백 배는 훨씬 더 어려운 노래였습니다. 노래를 할 거면 이처럼 어려운 노래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는 나중에 커서야 알게 됐다고 한다. 아버지 '전축'으로 집에서 늘 들어왔던 그 구닥다리 음악이 판소리였다는 것을…. 그는 "13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집에서 전축으로 듣던 그 판소리를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교 재학시절 소리꾼의 길을 가기로 진로를 결정한 그는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만 한 1~2개월의 짧은 판소리 개인지도를 거친 후에 서울국악예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세상 최고인 줄 알고 하늘을 찌를 듯한 사춘기 소녀의 자존심은 예고 입학과 동시에 밑바닥으로 끝도 없이 추락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소리가 이미 능숙한 어른의 소리 같았다. 아이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해 풋내나는 소리를 했던 나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학교 친구 중에는 5~6세에 이미 소리를 시작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고 기억했다. 어른 소리를 내려면 목이 쉬었다 풀리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빠진 집안 형편 때문에 마음 편히 교습도 받을 수 없었다. 학교 연습실은 주말이면 문을 닫아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공부했던 날도 있었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한 뒤로는 공부할 장소가 없어 고생하는 일은 없었다. 그를 지금의 명창으로 홀로 서게 한 이는 17살 때부터 인연을 맺은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인 인간문화재 고(故) 성우향 명창이다. "판소리는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절대로 혼자서 공부할 수 없어요. 아는 만큼 들리고, 들리는 만큼 소리가 나기 마련인데, 스승이 없이는 제대로 된 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어요."그는 이번 대통령상 수상 순간에 성우향 명창과 함께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3년 전 같은 대회 도전 첫해에 최우수상을 받았을 당시에는 성 명창이 "애썼다. 고생했다"고 격려했다.김 명창은 3명이 오른 결선 무대에서 다른 출전자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아 심사위원 7명 만장일치로 대상에 올랐다. 심사위원으로부터는 "정말 상 받을 사람이 받았다. 기분 좋게 심사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최고의 찬사를 듣기도 했다. 뿌듯한 마음이 드는 순간 스승인 성 명창의 얼굴이 떠올라 눈시울을 붉혔다.그는 이번 대통령상 수상이 '소리광대' 인생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동안 춘향가에만 전념했다면, 앞으로 다른 스승을 만나 다른 소리도 열심히 공부할 계획이다. 제자가 스승에게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의 말은 "내 소리 주고 싶다 받아가거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는 이번 대회가 끝나고 소리를 물려 주겠다고 나서는 스승도 새로 만나게 됐다.앞으로의 바람을 물었다. 그는 "'판소리의 세계화' 같은 거창한 바람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우선 내가 사는 도시 인천에서 판소리가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그리고 그는 덧붙였다."소리를 알면 인생이 지금보다 몇 배는 풍요로워질 거예요. 판소리를 공부하면 세상에 이런 음악이 있구나, 그것도 이 넓은 지구에, 이 작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요. 판소리 사설을 들으면 그림이 그려져요. 장면이 보이고 굉장히 멋있게 음악적으로 표현하죠. 수백 년을 지내오면서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남겨진, 간결하면서도 최고의 예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공부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공부랍니다."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김경아 명창은? -1974년 전라북도 임실 출생-서울 성수초-경수중-서울국악예고-단국대 음대 국악과-동 대학원 국악과 졸업-수상내역 ▲2016 제24회 임방울 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 ▲2013 제21회 임방울 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최우수상 ▲2013 제14회 전국 숲쟁이 국악경연대회 명인부 종합대상 ▲2004 제14회 KBS서울국악대경연 판소리 부문 차상 ▲2004 제31회 춘향국악대전 판소리 일반부 대상 ▲2003 제10회 서울 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일반부 최우수상 ▲1995 제 5회 서울 청소년 국악경연대회 창악부문 장원 ▲1992 난계 국악경연대회 은상-주요공연 ▲2016 대한민국판소리축제 ▲2015 완창판소리, 김경아 춘향가(김세종제) ▲2015 문학산 정상 개방 고유제 ▲2014 제44회 유파대제전(인천) ▲2013 강원도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 ▲2012 한·일월드컵개최 10주년 기념, 일본 가나가와 현립음악당 공연 ▲2011 전주 세계 소리축제 '풍류' 공연 ▲2010 인천국제무용제 초청 개막제 초청 공연 ▲2005 국악음반 박물관 김경아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 녹음 수록 ▲1994 한일협정 30주년 기념 일본 공연제24회 임방울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김경아 명창(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부장)이 지난 10일 지부 사무실에서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부 제공

2016-10-11 경인일보

[인터뷰… 공감] '리우 패럴림픽 수영 金' 이인국 선수

사람 만나기 꺼려해 초교 2학년 처음 시작한 운동… 선생님이 업고다니며 적응코칭 스태프와 단기간 계약하는 장애인팀… 선수 장단점 파악하는데 시간 걸려1분내 기록 유일·지적장애인으로 패럴림픽 첫금… 아버지 "아들 자랑스러워" '물을 싫어했던 이인국, 수영으로 패럴림픽 정상에 서다'.지난달 9일 브라질 리우올림픽파크 아쿠아틱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리우 패럴림픽 남자 배영 100m 경기에 출전한 이인국은 힘차게 물살을 갈랐다. 그는 경쟁자들을 크게 따돌리고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이인국은 59초82의 기록으로 올림픽 신기록(종전 1분00초97)을 수립했다. 이날 그와 함께 경합을 벌였던 에버스 마르크(1분00초63·네덜란드)와 츠가와 타쿠야(1분03초42·일본)는 나란히 2, 3위를 마크했다. 그러나 이날 1분 안쪽의 기록을 세운것은 이인국이 유일했다. 또 지적장애 선수 중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한국인 선수는 이인국이 최초였다.지난 3일 올림픽수영장에서 국가대표 수영 선수 이인국과 아버지 이경래(52)씨를 만났다. 올림픽이 끝난 지 한 달여도 채 안됐지만 이인국은 꾸준히 몸을 만들고 있었다.이인국은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처음 수영을 시작했다. 물론 올림픽 금메달은 꿈도 꾸지 않았다. 물을 무서워하고 사람 만나기를 꺼려 해 집에서만 있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인국을 위해 부모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수영이었다. 이씨는 "인국이가 물을 싫어해서 머리를 감는 것도 쉽지 않았다"며 "수영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교사가 인국이를 업고 수영장을 걸어 다니며 적응을 해야 했다"고 했다.그렇게 이인국은 물과 만난 뒤 조금씩 적응해 가면서 수영에 재능을 보였다. 그는 비장애인학생 대회인 소년체전에도 출전했고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등 국내 대회에서 다관왕을 놓치지 않았다. 2012년 안산시체육회 최우수 선수상, 2013년 경기체육대상 장애인체육부문 최우수선수상, 한국과학창의재단 대한민국 인재상 등 각종 상도 휩쓸며 성장해 갔다.이인국은 이제는 어엿하게 한국을 대표하는 수영 선수가 됐다. 이씨는 "인국이가 수영을 하면서 만나는 형, 친구, 동생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다 보니 과거보다는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덧붙였다.이인국을 지도하고 있는 조순영 감독은 "이인국은 본인이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기면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다"며 "체격이 좋고 근력이 좋다. 지금도 운동을 힘들어하기는 하지만 왜 훈련을 해야 하는지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본인 스스로가 납득을 하면 어느 누구보다도 웃으면서 열심히 한다. 앞으로도 기대가 되는 선수"라고 전했다.이인국은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서 아쉽게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예선에서 1위로 결선에 오른 이인국은 코칭스태프의 실수로 경기 시작 20분 전까지 경기장에 도착해야 하는 규정을 지키지 못했다. 결국 이인국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씨는 당시 심정에 대해 "사실 기대라기보다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주기만을 바랐다"며 "메달을 꼭 따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상실감도 컸겠지만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에서 내려준다'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코칭스태프도 여러 가지를 교육시키다 아차 하는 순간에 실수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인국은 대표팀에 있으면서 잦은 코칭스태프 교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씨는 "일반인 선수들은 다년 계약을 해 선수들을 관리하는 데 비해 장애인 팀은 대회를 앞두고 단기간 코칭스태프와 계약을 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코치진이 자주 바뀌는 경우도 발생했다. 장애 선수들을 관리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 그 선수를 지켜볼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 선수의 특징과 장·단점 파악을 위한 시간이 필요한 데다 어느 부분을 중점적으로 훈련 시킬지, 핸디캡은 무엇인지, 어떻게 선수를 설득해 훈련할지 등에 대해 살피기 위함이다. 이씨는 "대표팀에서 훈련하면서 기량이 좋아졌다. 훈련 시설이 잘 돼 있고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해 준다"면서도 "코칭스태프 어려움이 해결된다면 선수들이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또 국제 대회 등 각종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을 살필 코칭스태프 숫자가 부족하다 보니 대회에 따라간 선수 부모가 코칭스태프의 일을 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이인국의 어머니 배숙희씨도 자비로 대회를 따라다니며 선수들의 빨래를 비롯해 대회에 출전하지 않는 선수들을 숙소까지 통솔하는 등 스태프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런던에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4년 뒤 이인국은 다시 한번 브라질 리우 패럴림픽에 출전할 기회가 주어졌고, 그는 마침내 금메달이라는 값진 결실을 맺었다. 이씨는 이인국이 당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을 보면서 "본인이 싫어하는 것을 시키면서 고생했던 것에 대한 결실을 맺게 돼 감격스러웠다"며 "무엇보다 인국이가 '장애 선수로서 금메달 리스트라는 명예를 안고 살아갈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인국이에게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이씨는 장애인 선수를 뒤에서 뒷받침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지적장애 선수 가족들은 모든 것이 선수 위주로 돌아가야 하고 어려서부터 모든 과정을 가족들이 살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그렇지만 현재 위치에서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글/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이인국 선수는?-1995년 12월 22일-관산초-성포중-단원고-경력2016 제15회 리우데자네이루 장애인올림픽 남자 수영 국가대표2015 IPC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국가대표2014 제11회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수영 국가대표2013 IPC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국가대표2012 제14회 런던패럴림픽 수영 국가대표-수상내역 2016 제15회 리우데자네이루 장애인올림픽 수영 남자 100m 배영 S14 금메달2015 IPC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배영 S14 100m 은메달2014 제11회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200m 자유형 S14 은메달, 제34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수영 남자 자유형 50·100·계영400·혼계영400m 4관왕3일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수영장에서 만난 2016 리우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인국(왼쪽)과 아버지 이경래 씨가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인국과 조순영(왼쪽) 장애인 수영팀 감독./연합뉴스

2016-10-04 이원근

[인터뷰… 공감] 장기표 (사)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

한반도 비핵화·주한미군주둔 유지 약속… 남·북·美·中 4자회의 추진 필요대한민국 집권세력에 국민 외면…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정당 나와야부정부패 척결·국민 기본생활 보장·공직사회 개혁 등 차기 대통령 과제로장기표(71) 사단법인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의 삶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굴곡진 인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무려 50년 가까이 학생운동, 노동운동, 재야민주화운동의 한가운데에서 온몸으로 투쟁해왔다. 10여 년의 수배와 10여 년의 구속으로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도 민주화운동 한 길만 달려왔다. 그는 특히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가 돼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질적 발전에 크게 기여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의 이름 뒤에는 항상 '영원한 재야인사'라는 호칭이 따라다닌다. 늘 현실정치를 꿈꾸지만 한 번도 제도권에 몸담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총 6번의 총선·재보궐선거에 나왔지만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다. 그러나 일흔이 넘은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정치 발전을 위한 각종 아이디어와 개선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 26일 장 대표를 만나 국내외 정치에 대한 견해와 한반도 통일에 대한 비전 등을 들어봤다. - 여러 번 신당을 창당하면서까지 선거에 나섰지만 당선되지 못했다. 특히 같은 민중당 출신인 이재오, 김문수 전 의원 등은 여당으로 당적을 바꿔 국회에 입성했는데, 아쉽지는 않나."물론 현실정치에 꼭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판이하게 달라 현재의 메이저 정당에 들어가기는 어렵다고 본다. 김문수 전 의원하고도 개인적으로 무척 친하다. 당선만 목적이었다면 당시 여당에 입당했겠지만, 내 신념 상 그럴 수는 없었다. 언제까지 영호남 패권정치에 묶여 있을 것인가.특히 우리나라는 남북분단으로 인해 '진보'가 사회주의 내지 친북(종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보정당으로서 내용을 갖추지 못한 '사이비 진보정당'들이 진보정당 행세를 해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정치를 주도해온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 버림을 받은 지 오래다. 다만 대안세력이 없어 그 자리를 유지해왔을 뿐이다. 나는 늘 이를 극복 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나와야한다고 생각한다."-재야에서는 장 대표가 한국의 '버니 샌더스'로 불리곤 한다. 그런데 정작 미국 대선후보로는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들었다. 참 의외다."민주적 사회주의자인 샌더스는 평소 내 정치철학과 유사해 좋아한다. 그러나 같은 당의 힐러리는 내 철학과는 상당히 다르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와 힐러리 가운데 누가 이기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미국의 현상유지냐, 아니면 미국의 혁명적 변화를 통해서 세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온갖 이유로 트럼프 후보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심지어 트럼프 후보를 정신병자로 취급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나는 달리 생각한다. 트럼프 후보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정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 내지 반감을 갖고 있으나 이 정책이야말로 굉장히 혁명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그동안 미국이 과도하게 세계문제에 관여해온 것을 반성하고 관여를 중단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미국을 위해서나 세계를 위해서 옳은 일로 보인다. FTA 반대도 아주 옳은 정책이라고 본다. FTA는 협정 당사국 모두 수출대기업이나 경쟁력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유리하지만 서민 대중에게는 아주 불리하다. 일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힐러리 후보는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이 현상유지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그야말로 '1 대 99의 사회'로 치닫고 있는 미국에서 트럼프 후보가 99%를 대변하고 있다면 힐러리 후보는 1%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국정 운영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나라 안팎이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한마디로 총체적 불안이다. 북한 핵무기가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대내적으로도 온갖 형태의 불안과 갈등이 누적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러한 때 정치권 내지 정부가 불안과 갈등을 해소할 방안을 내놓으면서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켜야 할 텐데,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불안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소상공업과 자영업의 몰락, 청년실업, 비정규직, 노사갈등, 노인빈곤, 교육붕괴, 성범죄, 학교폭력, 청소년탈선, 아동학대 등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망할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문제는 집권세력의 무능과 무책임이다. 흔히 국회나 야당 탓을 하기도 하고 사회의 다른 부문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국정을 잘 이끌어간다면 국회나 야당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아무튼 박근혜 정부 3년 반이 지났건만 갈등만 증폭시키면서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앞으로 1년 반 남았는데 남은 1년 반을 잘 버틸지도 걱정이다."-내년 대선 전망에 대해서는."이런 상황에서 2017년 대통령선거를 맞는데 그 전망이 어둡기만 하다. 대통령후보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많지만 국민이 보기에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국정운영을 잘 할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중소상공업의 침체와 영세자영업의 몰락, 청년실업, 성범죄 등도 심각하지만 북한 핵문제로 인해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르는 엄중한 상황인데 이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듯 선거운동을 의식해 상투적인 민생행보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그렇다면 차기 대통령이 이루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첫째,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 경제나 복지, 교육, 국가안보, 통일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부정부패 척결의 강력한 의지를 밝히고, 부정부패에 연루되면 공직에 머무를 수 없음을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국민의 기본생활인 의식주와 의료, 교육은 어떤 경우라도 국가가 보장할 것을 밝히면서, 이와 관련해 '국민복지제도 재편 종합계획'을 제시해 국민과 함께 이를 정착시켜야 한다. 셋째, 국가적 현안인 소득양극화, 비정규직, 청년실업, 공교육정상화, 노사갈등 등을 해결할 종합계획을 밝히고, 시간을 두고 이들 문제를 해결할 것을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 넷째, 공직사회의 개혁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공무원의 수를 반으로 줄이고, 공무원연금을 개혁해서 국민연금 수령액을 상향 조정하면서 국민연금과 통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민족통일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민족통일을 이룰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기도 하지만 국민이 가장 어려워하고 있는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민족통일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일부에서 통일비용을 걱정하나 분단비용이 통일비용보다 더 크며, 통일편익은 통일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북핵 문제도 해결하고 통일을 이룩할 방안이 있는가."북한의 핵무기 보유로 인해 미국도, 중국도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는 지금이야말로 민족통일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과연 언제까지 유엔을 통한 북한 제재에 머물면서 6자회담의 재개 주장이나 하고 있겠는가? 미국의 경우 북한 핵시설을 폭격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한국과 미국이 합의해서 작성한 '작전계획 5015'에 의하면,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징후만 보이면 북한의 지도부를 타격할 수 있도록 돼 있으며, 심지어 북한 최고 지도부의 목을 베는 참수작전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키 리졸브 훈련이나 북한의 중대한 도발이 있을 때면 미국은 항공모함, 핵잠수함, 스텔스기, B-52전략폭격기, B-1B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으로 보아 미국은 언제라도 북한 핵시설을 폭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북폭을 하면 북한의 핵시설은 없어지겠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남한과 북한이 입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의 북폭은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미국과 중국에 대통령특사를 보내 남한 중심의 한반도 통일이 불가피함을 설득해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통일을 위한 4자회의' 곧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회의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김정은 정권이 이 회의에 참여하면 함께 비핵화와 통일의 방안을 마련해서 실천하면 되고, 만약 참여하지 않는다면 남한 중심의 통일을 추진하면서 북한 정권이 존립할 수 없게 해야한다. 그리고 미국·중국이 이 방안에 동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해야 할 것이다. 우선 미국에는 통일이 되더라도 주한 미군의 한강 이남 주둔은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 중국에는 통일된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갖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더불어 미국 주도의 중국포위전략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을 선언해야 한다." 대담·정리/김학석 정치부장·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는 -1945년 12월 27일 경남 김해 출생 -1964년 마산공고졸 -1995년 서울대 법학과졸-1973년 김대중납치사건 규탄·유신독재철폐투쟁사건으로 복역-1989년 민중당 창당선언 -1995년 개혁신당 부대표 -1996년 민주당 동작甲 지구당 위원장 -2000년 새시대개혁당 대표 -2000~2001년 민주국민당 최고위원 -2001~2002년 푸른정치연합 창당·대표 -2002~2003년 새천년민주당 서울영등포乙 지구당 위원장 -2003년 한국사회민주당 대표 -2004년 녹색사민당 대표최고위원 -2006년 새정치연대 대표-2009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는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남·북한, 미국·중국이 참여하는 4자 회의를 추진하고 주한미군 주둔 유지와 통일된 한반도에서의 비핵화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6-09-27 김선회·김학석

[인터뷰… 공감] 설원기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화가·교수로 수십년… 공직은 시대적 역할 고민 결과엘리트적 관점 강한 문화탓 공연에 집중된 정책 '문제'음식·건축등 생활과 연결된 다양한 콘텐츠 제공 중요재단내부·道 기관 막혀있는 소통의 실마리 풀기 노력젊다는 건 머리카락 색깔로만 판단할 수 없다. 검은 머리카락이라도 그 안에 들어있는 사고가 늙고 낡았다면 젊음은 표출되지 않는다. 지난 12일 경기문화재단의 새로운 수장이 된 설원기(65) 대표이사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머리가 희끗하고 주름이 파인 온화한 얼굴이었지만 분명 그는 젊음을 가지고 있었다.경기도민에게 설 대표는 이방인이다. 재단을 맡기 전까지 그는 그림을 그리는 서양화가로 살아왔다. 또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기도 했다. 덕성여대와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로 수 십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림 말고 그를 대중과 연결시켜줄 특별한 매개가 없었다. 그래서 낯설고 생소하다.안정된 삶을 살아오던 그가 갑작스레 공직에 나선 이유는 뭘까. 게다가 경기문화재단은 얼마 전까지 전(前)대표이사와 직원들 간 불화로 내홍을 겪기도 했다. 부침이 있었던 기관의 수장이 되겠다는 결심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대해 설 대표는 "재단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권유가 있었다. 그렇게 고민을 시작했는데, 그간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니 재단의 역할과 내가 추구했던 것들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대답했다.재단과 그가 맞닿아 있는 것, 그것은 젊음이다. 그는 예술가이자 선생으로 수많은 젊음과 살을 부대끼며 살아왔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시대적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그림의 시대적 역할을 고민해야 했고, 교육자로서 그림을 전공하는 수많은 후배들에게 그 역할을 규명해줘야 했다. 그러려면 그들이 예술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업에서, 술자리에서, 여행지에서 학생들과 끊임없이 소통한 것은 그 때문이다. "예술대학 학생들은 한밤 중에 교수에게 술 한잔 하시게 나오라고 전화를 한다. 방학이 되면 학생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그 곳에서 작품을 가르치고 함께 느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오랜 시간 운영했던 대안공간에서도 드러난다.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은 1997년부터 그가 예술가 동료 5명과 함께 운영했던 전시공간이다. 오로지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대안공간이다. 1년에 5번씩 가능성은 있지만 전시할 여력이 없는 작가를 선정해 그의 작품을 전시한다. 작가를 선정할 땐 이름도 이력서도 보지 않고 온전히 작품으로만 평가한다. 선정된 작가가 예술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사비를 털어 500만원의 전시지원금도 지원했다. "지금은 그래도 미술관마다 젊은 작가를 양성하기 위해 전시기회를 제공하지만, 당시만 해도 젊은 작가들의 전시기회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전국대전에 나가지 않는다면 대부분 자기 사비를 털거나 빚을 져서 전시를 해야 했다." 젊음에 대한 관심과 안타까움, 연민은 그를 움직이고 실천하게 했다.경기문화재단의 역할도 젊음을 지키는 것이다. 재단의 본래 설립목적은 창작자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고민하고 창조해내는 이들을 지키자고 만들어진 곳이다. 이 곳의 수장으로 설 대표가 그리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젊은 예술가를 지원하는 당연한(?) 일 외에도 설 대표가 경기도 문화를 지키는 수문장으로 할 일은 많다. 설 대표는 "아직까지 문화, 예술이라 하면 엘리트적인 관점이 강해서 작품이나 공연을 보는 데만 문화정책이 집중돼 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다녀야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생활문화'를 강조했다. "TV를 보면 음식, 건축 인테리어, 생활용품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사람들의 미적 관심을 끌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나를 둘러싼 주변환경이, 더 나아가 내 삶이 아름답길 바란다. 그러려면 단순히 작품과 공연을 보여주는 식의 이벤트성 문화정책이 아니라 생활을 포함하는 통합적인 콘텐츠를 제공해 지속성을 높여야 한다." 이는 경기도 내 북쪽과 남쪽의 문화적 격차 현상과도 연결된다. "공기관에서 격차를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소득에 상관없이 질 좋은 문화를 모두 체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많이 만드는 일이다. 이를테면 뉴욕시에는 건물이 밀집돼 있어 사람을 위한 공간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 용적률이나 고층제한을 완화하는 대신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건물 1층에 마련하도록 하는 'POPS'제도가 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도 도시 내 다양한 생활공간을 활용해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창조해 나가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실 이런 노력들은 재단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경기도에는 도민을 위해 일하는 다양한 기관들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각자 맡은 일에만 충실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그는 소통이 부족했던 건 기관만이 아니라고 했다. "재단 내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는 것 같다. 팀끼리, 본부끼리 자기 역할에만 집중하고 분야를 넘나드는 협력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보고서 위주의 일처리도 이런 분위기에 한 몫 한다. 직원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서를 써야 하는, 혹은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생기면 부서별로 미루기 바쁘다."그래서 그는 재단 안에 막혀있는 소통의 실마리를 푸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경영진이나 본부에 치이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경영진에서 혹은 본부에서 하달하는 지시사항이나 일방적으로 결정해 아래로 내려오는 식의 의사결정 방식이 소통을 어렵게 하고 있다. 다함께 문제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방식을 도입할 생각이다. 본래 재단에는 부처장 위주로 구성돼 의사결정을 진행했던 운영위원회가 있었는데 본부체제로 바뀌면서 본부장, 기관장 위주로 결정방식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체계를 개선해 모두가 함께 결정하고 협력하는 방식으로 변화시키겠다."사실 재단 대표의 임기는 2년이다. 하고자 하면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다 여기면 변화 없이 시간은 그대로 흘러가버린다. 그의 2년은 어떤 모습이길 바랄까. "생각하는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재단이, 경기도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해주고 떠나고 싶다. 적어도 그 기반을 탄탄히 만들어 놓으면 다음 분이 그것을 토대로 더 발전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경기문화재단이 하면 뭔가 다르다'라는 평가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글/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설원기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는?학력1974년 미국 벨로이트대 미술과졸1981년 미국 프랫대 대학원 회화과졸 경력1993~1998년 덕성여대 서양학과 교수2009년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 원장1998년~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교수(현)활동사항 개인전 10회(뉴욕, 인도, 서울), 그룹전 국내외 20여회지난 19일 수원시 인계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설원기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가 대화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2016-09-20 공지영

[인터뷰… 공감] 유승민 IOC 선수위원

'경인일보 체육꿈나무 대상 출신' 중학교 3학년때 최연소 국가대표 발탁세계평화 영감… 선수위원 출마후 '발에 물집 잡힐때까지' 대화하려 노력IOC-대한체육회 연결해 한국역할 확립·은퇴선수들에 새분야 제시하고파유승민은 어릴 적부터 천부적인 탁구 소질을 보이며 국내는 물론 세계를 주름잡았고, 은퇴 후에도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다. 이런 그가 이제는 전 세계 스포츠인을 대표하는 IOC 선수위원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경기도 출신인 그가 어엿한 한 나라의 스포츠 행정가로 성장한 것이다.6일 오전 용인시 삼성휴먼센터 내 탁구체육관. 이곳에서 유승민 위원을 만났다. 그는 요즘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날도 기자들의 인터뷰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반갑게 맞아주었다.IOC 선수위원 당선 소감을 묻자 웃으며 얘기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마냥 좋았는데, 이번에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몰려옵니다. 어떻게 인정받고 평가를 받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끝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가 중요합니다."유 위원의 말대로 그는 앞으로 8년 동안 선수위원으로 활동한다. 게다가 IOC 선수위원은 동·하계올림픽 개최지 투표 등 IOC 위원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지니기 때문에 책임감이 막중하다. 그래서 당시 선수위원에 뽑힌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 위원은 자신감이 넘쳤다고 한다. "저는 당선될 가능성에 대해 자신 있었습니다. 안과 밖의 느낌은 달랐습니다. 당선될 자신감은 있었습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선수들이 격려의 말을 전했고, 친근감 있게 다가와 주었습니다. 운동하는 것을 봤을 때 '뽑아주고 싶다' 등 격려를 들었을 때 자신감이 생겼고 동기부여도 됐습니다."선수위원에 뽑히기 위해 유 위원이 내세운 전략은 무엇일까. 유 위원은 우선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이 과정에서 발에 물집이 잡히기까지 했다. "무조건 오랫동안 선수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전략보다는 시간 제한이 없는 만큼 나를 알리기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움직였습니다."유 위원이 선수위원에 출마하게 된 계기는 무얼까. 그는 문대성 위원을 모델로 삼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당시 문대성 선수위원과 방을 같이 쓰면서 선수위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꿈을 꾸게 됐습니다. 또 저는 피스엔 스포츠컵(분쟁국가들끼리 참가하는 대회)에서 복식 조를 꾸려 친선경기를 했는데 당시 저랑 북한 선수가 1등을 했습니다. 스포츠라는 것이 세계 평화를 위해 영감을 주는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선수위원은 모두 4명이 뽑혔다. 유 위원은 펜싱 브리타 하이데만(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호명됐고 수영 다니엘 지우르타(헝가리), 육상 장대높이뛰기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가 나란히 당선됐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신설된 IOC 선수위원은 올림픽 참가 선수들이 뽑는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IOC 위원으로 삼성 이건희 회장만 남아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건강 악화로 IOC 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다. 또 문대성 위원은 리우 올림픽을 끝으로 임기가 끝났다. 따라서 유 위원이 사실상 한국의 유일한 IOC 위원 역할을 한다. "아직 배우는 단계라 앞으로의 계획을 세부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IOC에서 11월 첫 미팅이 있는데, 그때 방향이 잡힐 것 같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도 앞두고 있어 책임감이 크지만 많은 분의 조언을 통해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한국은 그동안 김운용 대한체육회 고문이 IOC에서 물러난 뒤 스포츠 외교력이 많이 약화됐다. 게다가 체육 단체 통합으로 안팎으로 시끄러운 상태다. 하지만 유 위원은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제 주변에는 많은 선수위원이 있습니다. 그들과 많이 가까워졌고 채팅방도 개설할 정도로 친해졌습니다. 외교적인 부분에선 소통이 가장 중요합니다.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IOC와 대한체육회를 연결하는 것입니다."유 위원의 지난 선수 시절은 어땠을까. 부천 내동중 3학년 때인 1997년 탁구 최연소(15세) 나이로 국가대표가 되면서 '탁구 신동'으로 불린 유 위원은 제25회 전국소년체전에서 맹위를 떨치며 경인일보사가 제정한 '제4회 체육 꿈나무 대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중학교 때 우승한 것은 생각이 납니다. 특히 경인일보사에서 마련해준 체육 꿈나무 대상은 많은 꿈나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현재까지 이 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습니다."선수시절 일화에 대해 유 위원은 독일에서의 생활을 기억했다. "은퇴 2년 전 한국과 유럽을 오가면서 유럽리그에서 활동하고 독일에서 생활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런던 올림픽 끝나고 독일에서의 시스템을 많이 배웠습니다. 선진국 시스템과 관중문화, 생활문화를 많이 느꼈습니다." 유 위원이 독일을 부러워한 것은 탁구가 체계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독일은 생활체육도 클럽리그가 있는데, 1~3부까지 프로라면 4~6부는 동호인들이 수준별로 등록돼 있다. 아마추어들도 주말에 리그하고 경기가 없으면 프로 경기를 관람하는데 단일 대회로 무수히 많은 경기를 치르는 우리나라와 비교된다.은퇴 선수들에 대해서도 유 위원은 자신의 철학을 강조했다. "선거를 하면서 '왜 너를 뽑아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고 그들은 올림피언입니다. 선수로서 20년 넘게 생활했고 지도자 경험도 있습니다. 은퇴했을 때의 어려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선수들에게 새로운 분야를 제시하고 싶었습니다."그는 통합체육회 출범에 대해서도 소신있게 설명했다. "솔직히 체육회 이사 선임도 1주일 전이고 선수위원장도 1주일 전입니다. 통합 과정에서 진통은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장점이 더 많습니다. 생활체육 있기에 엘리트가 있고, 엘리트가 있기에 생활체육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과 독일의 스포츠 정책을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제도를 개선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통합체육회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화제를 바꿔 그는 평소 어떻게 지낼까. 유 위원은 가족이 먼저라고 한다. "아이들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 어려운 일도 생각나지 않고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또 저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새롭게 만난 분들도 계속 교류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분들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운동하는 선수뿐만 아니라 사회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습니다."유 위원은 후배 선수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후배들을 리우 올림픽 현장에서 봤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승자를 인정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모습은 더욱 멋졌습니다. 일각에선 금메달이 부족해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저는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IOC 폐막 총회 때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우리나라 체조 선수 셀카 한 장이 스포츠의 힘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올림픽 정신에 다가가려는 우리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러웠습니다."유 위원은 IOC 선수위원이 끝나는 8년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선수 유승민'에서 '행정가 유승민'으로 다시 태어난 그는 분명 따뜻한 사람이고 세상을 포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통할 듯싶다. 대담·정리/신창윤 체육부장·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사진/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유승민 IOC 선수위원은? -1982년 8월 5일 출생-오정초-내동중-동남종고-경기대-경기대 사회체육학과 대학원 졸업-주요 경력▲2016.08~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2014.07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탁구 국가대표팀 코치, 삼성생명 탁구단 코치, 삼성생명 탁구단 ▲2012 제30회 런던 올림픽 남자 탁구 국가대표 ▲2008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남자 탁구 국가대표 ▲2007 제18회 아시아 탁구선수권대회 남자 국가대표 ▲2006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남자 탁구 국가대표 ▲2004 제28회 아테네 올림픽 남자 탁구 국가대표 ▲2002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 탁구 국가대표 ▲2000 제27회 시드니 올림픽 남자 탁구 국가대표-수상내역▲2012 제30회 런던 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 은메달 ▲2011 카타르 피스 앤 스포츠 탁구 컵 남자 복식 우승 ▲2008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 동메달, 국제탁구연맹 칠레 오픈 남자 단식 우승 ▲2007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식 동메달, 쿠웨이트 오픈 탁구대회 남자 복식 우승 ▲2006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탁구 남자 단식 동메달,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탁구 남자 단체전 은메달 ▲2005 도요타컵 국제탁구대회 남자 단식 우승 ▲2004 제28회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 폭스바겐 코리아오픈 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식 3위 ▲2002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 탁구 남자 복식 금메달

2016-09-06 이원근·신창윤

[인터뷰… 공감] 임형신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

영화 제작과정에 자문위원 참여… 임무특성상 기밀이었던 첩보부대 재조명 의미'엑스레이 작전' 맥아더 지시아닌 우리 해군 단독 수행… 극중 설정과 실제 '차이'일회성 반짝 흥행 아닌 전사자 명예회복 위한 정치권·정부·국민들의 관심 절실한국전쟁 초반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주역이지만, 역사가 되지 못하고 기억 속에 묻혔던 대한민국 해군 첩보부대(UDU·Underwater Demolition Unit)가 영화 '인천상륙작전'으로 되살아났다. 유엔 연합군이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기 22일 전인 8월 24일 새벽, 해군 첩보부대원 17명은 인천 영흥도 십리포 해안으로 잠입했다. 이들은 상륙작전 직전까지 인천 월미도 등에 있는 해안포대 위치와 부대 규모 등을 파악해 일본 도쿄 연합군 사령부에 보고했다. 우리 해군의 첩보활동은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일명 '엑스레이(X-RAY) 작전'이라 불린 당시 해군 첩보작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7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자, 인천상륙작전의 주역이 연합군인 줄로만 알았던 대다수 국민은 반세기 넘게 베일에 싸여있던 해군 첩보부대의 활약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엑스레이 작전'을 비롯한 해군 첩보작전사를 발굴하고 있는 임형신(47)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 회장은 "정부와 국민이 무관심했던 한국전쟁 당시 해군 첩보부대의 공로와 희생이 영화를 계기로 널리 알려져 반갑다"며 "영화가 극장에서 내리면 또다시 잊히는 '일회성 관심'이 아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해군 첩보부대 36기 출신인 임형신 회장은 영화 '인천상륙작전' 제작 과정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그가 '엑스레이 작전'을 수행했던 당사자들과 군으로부터 수집한 각종 자료가 영화의 뼈대가 됐다. 1946년 3월 대한민국 해군에 '정보과'가 생기면서 창설된 해군 첩보부대는 '북파(北派) 첩보활동'이 주 임무인 특성상 2000년대 초반까지도 부대 존재 자체가 기밀이었다. '엑스레이 작전'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26일 인천 중구 신포동에 있는 해군 첩보부대 동지회 사무실에서 임형신 회장을 만나 영화 '인천상륙작전'과 해군 첩보부대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정부와 인천시 등이 해마다 인천상륙작전 기념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면서도, 정작 '엑스레이 작전' 전사자들에 대해선 외면하고 있는 섭섭함도 토로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엔딩 크레딧에 '첩보사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영화를 본 소감은."재미있게 잘 봤고, 당시 해군 첩보부대의 활약이 재조명됐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컸다. 좋은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해줬기 때문에 일반 관객에게는 감동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본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제공한 입장에서는 영화가 실제 '엑스레이 작전' 역사와 완전히 부합하지 않아 아쉽긴 했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내가 주장했던 바가 정확히 반영되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엑스레이 작전'이 널리 알려지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장학수(이정재) 대위와 첩보부대원 남기성(박철민) 단둘이서 월미도 해안포대를 기습하는 후반부 클라이맥스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엑스레이 작전'에서 전사한 고(故)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를 모델로 삼은 장면이다.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가 실제로 전사한 곳은 월미도(영화상 설정)가 아닌 영흥도에 있던 엑스레이팀 본부다. 엑스레이 작전에 투입된 해군 첩보부대원 17명은 9월 13일 철수 명령을 받았는데, 이들 가운데 6명은 남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영흥도에 남았다. 그런데 엑스레이팀이 영흥도에 주둔해 있는 것을 알아챈 북한군이 9월 14일 본부를 기습했고,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가 적들을 유인해 나머지 부대원 4명을 탈출시켰다. 임 중위와 홍 하사는 적에게 포위되자 기밀 유지를 위해 자결한 것으로 전해진다."-영화 속 설정과 실제 '엑스레이 작전'은 어떻게 다른지 좀 더 설명해달라."영화상에서는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연합군 총사령관이 '엑스레이 작전'을 직접 지시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해군이 단독으로 수행한 작전이었다. 해군 정보국장을 맡은 함명수 전 해군 참모총장(엑스레이 작전 당시 소령)이 1950년 8월 12일 당시 손원일 제독에게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인천상륙작전에서 한국군의 유일한 단독작전이었다. 상륙작전에 참전한 우리 해군 함정과 해병대 등은 연합군에 편제돼 있었기 때문이다. 영흥도를 통해 인천에 잠입한 엑스레이팀은 인부로 위장해 북한군의 지하포대 진지 구축 공사나 도로 포장공사 등에서 막노동하면서 해안포대 위치 등을 파악했다. 영화에서는 해군 첩보부대가 '지뢰 부설해도'를 입수하는 것이 주요 임무지만, 실제로는 어디서 나와 쏠지 모르는 해안포대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했다. 엑스레이팀의 첩보활동은 부산에 있는 해군본부를 거쳐 도쿄 연합군 사령부로 보고됐다. 9월 1일 미군 첩보부대 유진 클라크(Eugene F. Clarke) 대위가 이끄는 연합군 공식 첩보팀이 영흥도에 합류하고 나서부터는 클라크 대위를 통해 도쿄 사령부로 직접 보고했지만, 작전은 별개로 수행했다. 영화에서는 인천상륙작전 개시 직전 북한군과 전투 끝에 팔미도 등대를 탈환했는데, 당시 팔미도 등대에 북한군 병력은 없었다."-영화 흥행으로 해군 첩보부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해군 첩보부대원 시절은 어땠으며, 첩보부대 역사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고등학교 때부터 중국 무술인 '우슈' 선수로 활동했다. 21살 때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출전 준비를 하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군 입대를 해야 했다. 특수부대를 지원했는데, 연락을 받고 병무청에 가보니 군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부대 이름을 알려줄 수 없는 데 지원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 고민하다가 승낙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북파 첩보부대원을 뽑는 '물색관'이었다. 해군 첩보부대 입대 후 여러 섬을 다니며 육·해·공 특수전과 첩보전술 훈련, 전문화 과정 등을 거쳤다. 북한 김일성 장군가(歌)와 북한 인민으로서 갖춰야 할 언어 등을 배우는 '생활화 훈련'도 받았다. 3년 동안 첩보부대원으로 활동하다가 제대한 이후 해군 첩보부대 동지회 활동 등을 통해 선배들은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제대 후에는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를 배우며 무술 도장 사범으로 아르바이트하다가 꿈을 접고 귀국했고, 이후 건설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틈틈이 공부한 끝에 2003년 고려대학교 북한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해군 첩보부대 역사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엑스레이 작전' 당시 첩보부대장이자 동지회 원로인 함명수 전 해군 참모총장이 제공한 자료와 증언이 많은 도움이 됐다. 군으로부터 받은 자료도 고증에 많은 참고가 됐다."-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으로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인천 월미도 월미공원 내 '해군 첩보부대 충혼탑'을 2009년 건립했는데, 정부 지원을 이끌어 내느라 많이 고생했다. 2006년 충혼탑 건립위원회를 꾸린 뒤부터 국방부, 해군본부, 국가보훈처, 인천시, 옹진군 등 관련 기관은 전부 찾아다니며 충혼탑 건립 취지를 설명했다. '엑스레이 작전' 등 해군 첩보부대의 공로를 이야기하자 '거짓말하지 말라'며 야단친 공무원도 있었다. 2년 동안 부지런히 설득해 국방부, 국가보훈처, 인천시 등의 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동지회원들이 모금해 총 6억 원을 들여 충혼탑을 세웠다. 이때부터 매년 9월 14일(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가 전사한 날) 충혼탑에서 해군 첩보부대 전사자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그러나 국가를 위해 헌신한 첩보부대원들을 기리는 행사에 해군, 인천시장과 국회의원 등 지역 정치권에서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지난해 인천상륙작전 개시일인 9월 15일에 추모제를 개최했을 때 처음으로 해군 참모총장이 참석했을 뿐이다. 인근에서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인천상륙작전 재현 등 전승행사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등 축제 분위기가 고조될수록 우리는 서글프기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8일 박근혜 대통령이 유정복 인천시장과 함께 해군 첩보부대 충혼탑을 찾은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정작 충혼탑의 주인공인 해군 첩보부대 동지회 측에는 연락이 없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중에만 정치권이나 국민들이 '반짝 관심'을 갖는 게 아닌가 우려하는 이유다. 앞으로 해군 첩보부대의 명예회복에 정부나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두길 바란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임형신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은?-1969년 강원도 횡성군 출생 -인천정석항공과학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북한학과·법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국가정책) 수료 -해군 첩보부대 36기(1990~1993년 복무) -대한민국 특수임무국가유공자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군사안보 연구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 -해군 첩보부대 중앙동지회 수석 부회장 -영화 '인천상륙작전' 첩보사 자문위원영화 '인천상륙작전' 제작 과정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임형신 해군 첩보부대 기념사업회장이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밑거름이 된 '엑스레이 작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6-08-30 박경호

[인터뷰… 공감] 문경안 (주)볼빅 대표이사 회장

야간 라운딩 위해 만든 컬러공 폭발적 반응에 이모티콘·선수 캐리커쳐공까지 확대국내산=저가 이미지 깨기위해 기술력·공격적 마케팅 집중 시장점유율 5배 성장시켜IMF때 직장 잃었지만 좋아하는 골프로 재기… 국내 1위 탈환·세계 톱3 브랜드 목표"박인비 선수가 최근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온 국민이 환호 했잖아요. 하지만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박 선수를 후원했던 외국 골프 업체입니다. 만약 박 선수가 우리나라 골프 장비를 사용해 우승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마 우리나라 골프 산업에 대한 이미지도 훨씬 좋아졌을 겁니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나라 골프 선수가 국산 골프채와 골프공을 사용해 우승하는 장면을 전 세계인이 지켜봤다면 우리나라 골프업계의 이미지가 한 단계 상승했을 것이다. 문경안 (주)볼빅 대표이사 회장은 늘 이런 꿈을 꾸며 현재 국내외 골프선수 수 십 명을 후원하고 있다. '볼빅(volvik)'은 우리나라 대표 골프공 생산업체다. 철강 유통사업으로 성공한 문회장은 지난 2009년 다 쓰러져가던 볼빅을 인수해 연 매출 300억 원, 업계 2위의 골프공 생산업체로 탈바꿈 시켰다. 업계 1위는 외국산 브랜드이기 때문에 골프공 하나만 따진다면 국산 골프공 생산 기업으로는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컬러공 하나로 골프업계를 평정하다 "아마 시기적으로 이 맘때 쯤이었을거예요. 한 여름에 동료들과 야간 라운딩에 나갔는데, 볼이 잘 보이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아 이거 야광볼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사무실로 돌아와 회사 연구원들한테 당장 야광공을 만들어보라고 지시했어요. 그런데 야광공은 빛 반사가 심해 만들어도 활용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형광공'으로 아이템을 바꿨죠." 문 회장의 이런 아이디어 덕에 연두색의 형광공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골프장에 형광공을 갖다주고 공짜로 쳐보라고 했어요.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이후 다양한 색깔의 컬러공이 만들어지게 된 겁니다."기존에 컬러공에 대한 이미지는 한 겨울에 치는 '빨간 공' 그것 뿐이었다. 눈 위에 흰색 공이 떨어질 경우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기존에 흰색 공에 페인트로 빨갛게 칠한 공이 유일하게 유통됐던 것이다. 그런데 페인트로 칠한 빨간 공은 골프장에서 몇 홀 돌다 보면 금세 칠이 벗겨지는 단점이 있었다. 볼빅에서 만드는 골프 공은 아예 처음부터 플라스틱 수지에 염료를 넣어 칠이 벗겨지지 않게 고안됐다. "그동안 골프 치는 사람들에게 컬러공은 편견이 있었어요. 흰색 공에 비해 비거리가 안 나간다는 것이지요. 수차례의 실험을 반복한 결과 컬러공도 흰색 볼과 똑같은 비거리, 아니 오히려 더 많이 나갈 수 있게 만들었어요. 우리가 만든 컬러공을 일선 골프장에 써보라고 무상으로 줬습니다. 그랬더니 차츰 편견이 깨지기 시작했어요. 골퍼 4명이 모두 흰색공으로 치다가 자신들의 공을 헷갈려 남의 것을 치기도 하고, 실제 프로경기에서도 이런 실수 때문에 벌타를 받는 일이 생기거든요. 그리고 깜빡하면 햇빛에 반사돼 공이 어디로 갔는지 찾기도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는데, 우리 제품을 쓰면 이런 문제가 다 해결돼요. 특히 요즘엔 여성 골퍼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여성분들은 소위 '깔맞춤'을 좋아하거든요. 그날 골프 복장에 따라 공의 색깔까지 맞출 수 있는 거예요."문 회장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들어 맞았다. 컬러공의 엄청난 매출 신장에 힘입어 볼빅은 연두색은 물론 빨강, 파랑, 노랑, 초록색 볼, 심지어 만화 캐릭터, 이모티콘, 유명 골프선수들의 캐리커처가 들어간 골프공까지 생산하고 있다. 컬러공의 성공 덕에 기존의 흰색 공에 대한 매출도 훨씬 늘었다. 더구나 볼빅은 '국내산=저가'라는 이미지를 깨기 위해 기존의 저가제품 수출을 중단하고 기술력에 집중, 단가를 오히려 올린 후에 수출을 재개하는 역발상 마케팅에도 성공했다. 그 결과 문회장은 회사 인수 1년 만에 시장점유율을 5배나 성장시켰다."기술력에 투자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 것도 시장에서 한 몫 했다고 봅니다. 국산 골프공은 그 품질에 비해 인지도가 매우 낮았거든요. KLPGA 투어에서 선수들에게 볼빅 골프공으로 우승하면 1억원의 보너스를 주겠다고 했더니 인지도 상승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품질에 대해 그만큼 자신이 있었거든요." #IMF 때문에 실업자 되고 골프가 좋아서 시작한 사업사실 문 회장은 원래 잘나가던 상사맨이었다. 20여 년 간 유통업계에서 크고 작은 업무를 맡아 불철주야 일했지만, IMF를 비껴가기는 힘들었다. 결국 40대 초반에 회사를 그만두니 남는 것은 퇴직금 5천만원밖에 없었다. 흔한 커피숍 하나 차리기 힘든 금액이었다. 결국 비슷한 시기에 퇴사한 동료 한 명과 퇴직금을 모아 1억원의 자본금으로 'BM스틸'이라는 철강 유통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곧 기회가 찾아왔다. 굵직한 철강회사들의 연쇄부도로 현찰을 주면 철근 자재를 싸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기회를 잘 살려 기존의 인맥을 활용, 적극적으로 세일즈에 나섰고 사업 규모는 금세 커졌다. 그리고 그 성공을 바탕으로 다른 사업에 투자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볼빅 인수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제가 골프를 워낙 좋아합니다. 업무 때문에 30대에 배우기 시작했는데, 처음 골프 배울 때 3명의 코치에게 하루 5시간씩 배우고 그렇게 8개월을 연습했어요. 필드에 나간 지 채 20번이 안됐는데 싱글 핸디캡을 하기에 이르렀죠. 덕분에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도 하고(68타), 골프 사업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된 거죠. " 그는 경영 초기 볼빅에서 나름 잘 만든 '비스무스 (BISMUTH)'라는 볼이 골퍼들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골프공에 들어가는 원료와 설계를 모두 바꿨다. 그리고는 만족스러운 골프공이 탄생하자 가격을 대폭 올렸다. "처음 회사를 인수할 때 주변 사람들이 전부 연구·개발만 한국에서 하고 생산공장은 중국에 차려야 한다고 조언했어요. 그런데 저는 반대했어요. 그렇게 하면 기존의 직원들이 다 해고되기 때문이죠. 우리가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제값 받고 팔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현재 우리 제품은 충북 음성에서 전부 생산되는데, 나름대로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노력한 결과 이제는 국내외 골퍼들이 볼빅 제품의 퀄리티를 인정하고 있어요. 국내 점유율 2위, 세계적으로는 7위 정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국내 1위 탈환을 위해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골프공 생산을 넘어 토털 스포츠브랜드로 도전 '볼빅(Volvik)'은 날치자리를 의미하는 볼랜스(Volans), 승리를 뜻하는 빅토리(Victory), 그리고 코리아(Korea)의 합성어다. 골프공이 바다에 사는 날치처럼 힘 있고 정확하게 날아가 승리하는 게임, 대한민국 최고의 게임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볼빅은 세계 최고의 성능을 갖춘 골프공을 목표로 1989년 연구소를 설립하고 1997년부터 볼빅이라는 브랜드로 영업을 시작했다. "볼빅 골프공은 '외유내강'(겉이 부드럽고 안이 딱딱함)형의 독보적 특허기술을 가지고 있어, '외강내유'형이 대다수인 타 브랜드와는 타구감과 비거리에서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저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꾸준한 기술개발로 세계 톱3 브랜드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토털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시킬 계획입니다. 골프공으로 시작해 모자, 장갑, 골프백, 클럽(골프채)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주니어 클럽은 이제 막 론칭을 했고, 내년에 성인 클럽과 골프웨어도 본격적으로 출시됩니다. 한국이 세계적인 스포츠강국인데 한국을 대표할 만한 자국 스포츠 브랜드가 하나 없는 현실입니다. 글로벌 브랜드인 아디다스와 나이키가 한 종목으로 시작했다가 토털 브랜드로 성장했듯이 볼빅도 골프를 통한 토털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하는 게 최종목표입니다." 문 회장의 이런 야심 찬 계획은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것 같아 보인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무엇보다 골프 자체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문경안 (주)볼빅 대표이사 회장- 1958년 5월 9일 경북 김천출생 - 건양대 세무학과 졸업 - 홍익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졸업(석사) - 1977년(주)선경 입사 - 1987년 건영통상 - 1998년 BM스틸 설립 - 2009년 볼빅 회장 - 2010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공로상 - 2011년 스포츠산업대상 대통령상 수상 글/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지난 2009년 위기에 놓인 국내 골프공 생산업체 '볼빅(Volvik)'을 인수해 업계 2위로 성장시킨 문경안 회장은 앞으로 골프공 생산뿐만 아니라 골프 의류와 용품, 골프채 등까지 생산해 볼빅을 나이키와 아디다스 같은 스포츠 토털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2016-08-23 김선회

[인터뷰… 공감]리우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정보경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20년만에 첫 유도여자 대표팀 메달 획득 '의미''153㎝ 작은 체구' 오히려 외국선수들에 뒤지지 않는 힘·스피드 얻을수 있어좋아하는 음식은 밥과 국·취미는 낚시·꿈은 건물주… 솔직 발랄 입담 '매력''작은 거인, 한국 대표팀에 첫 메달을 선사하다'.2016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긴 정보경(25·안산시청)은 한국 여자 유도의 희망이다. 여자 유도는 지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66㎏급 조민선(금메달), 현숙희(52㎏급), 정선영(56㎏급·이상 은메달) 이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지 못했었다. 그러나 정보경은 이번 올림픽에서 20년 만에 여자 메달을 따내며 한국 여자 유도에 희망을 안겼다. 그는 이번 올림픽 유도에서 안바울(남자 66㎏급·남양주시청), 곽동한(남자 90㎏급·하이원)과 함께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비록 유도 대표팀이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정보경의 선전은 국민들에게 충분한 감동을 선사했다.지난 7일(이하 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카리오카 아레나2에서 열린 여자 48㎏급 8강전에서 정보경은 세계 랭킹 1위 문크바트(몽골)를 반칙승으로 이긴 뒤 준결승에서 메스트레 알바레즈(쿠바)를 절반 2개로 물리치며 결승에 올랐다. 그러나 결승에서 만난 파레토(아르헨티나)에 안뒤축후리기 절반패로 은메달에 머물렀다. 정보경은 이날 경기를 마친 뒤 많은 눈물을 쏟아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그러나 9일 브라질 리우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3에서 만난 정보경은 그날 이후 한결 편해진 모습이었다. 정보경은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와 바쁘기도 하고 정신이 없기도 하지만 기분은 좋다"며 웃으며 말했다.이번 리우올림픽에서 그는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였다. 유도의 관심이 남자 대표팀에 쏠려 있었던데다 올림픽 직전 세계 랭킹 8위를 기록해 금메달 후보로 꼽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경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특별한 각오를 다졌다. 금메달을 위해 머리카락도 금색으로 염색했을 만큼 그의 각오는 대단했다. 정보경은 "경기가 끝나면 모든 카메라가 나를 향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번 올림픽을 착실히 준비했다"며 "다른 여자 선수들에게도 '내가 먼저 나가서 꼭 금메달을 따겠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정보경은 중학교 1학년 말부터 유도를 시작했다. 학교 유도부가 창단될 당시 학교 체육교사의 권유가 있었다. 정보경은 "처음 유도를 시작했을 때 정말 재미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늦은 나이에 유도를 시작한 정보경은 중학교 3학년 때 소년체전에도 출전했다.그가 국가대표의 꿈을 꾼 것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다. 정보경은 "당시에는 국가 대표팀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꿈이었다"며 "고교 3학년 시절 학교로 대표팀이 훈련을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국가대표에 대한 생각을 갖게됐다"고 회상했다.그는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정정연(포항시청)의 파트너로 함께 하면서 본격적으로 올림픽의 꿈을 키웠고 4년 뒤 당당하게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해 은메달까지 따게 됐다. 정보경은 이번 한국 대표팀에서 최단신 선수다. 153㎝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힘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정보경은 "체구가 작다 보니 스피드가 좋고 힘도 있는 편이다"면서 "외국 선수에도 뒤지지 않는 힘이 나의 강점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정보경이 좋아하는 음식은 '밥과 국'이며 취미는 의외로 '낚시'다. 혈기왕성한 20대 또래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대답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보경의 매력이다. 그는 대표팀에 합류한 뒤 김성연(광주도시철도공사·70㎏급)과 함께 낚시를 시작했다고 했다. 정보경은 "대표팀에 들어온 뒤 주말에 무엇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운동선수로서 술을 할 수도 없고 주말을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건전한 취미를 찾다 보니 낚시를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또 그는 "중학생 때 친구들이 비슷한 장래 희망을 갖고 있어 나는 특별한 꿈을 갖고 싶어 누가 꿈에 대해 물으면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다"며 "실업팀에 온 뒤에는 열심히 돈을 벌어 건물주가 되는 것으로 꿈이 바뀌었다"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그는 후배 유도 꿈나무들을 향해 응원의 메시지도 전했다. 정보경은 "유도가 건강에도 좋은 운동이지만 찰나에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며 "항상 부상을 조심하고 한번 시작한 운동이니만큼 열심히 해서 다음 올림픽, 또 그다음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도가 올림픽에서 효자 종목이라는 것을 알려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대표 선수가 되려면 얼마나 훈련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정보경은 "훈련은 본인이 느끼기에 '이렇게 하다가는 죽겠다' 싶을 정도로 해야한다"고 답하기도 했다.이어 정보경은 "안산시청 유도부를 위해 힘써주시는 시장님을 비롯한 관계자분과 12시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저를 끝까지 응원해 주신 안산 시민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면서 "앞으로도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유도 선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마지막으로 그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국민 여러분께서도 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꾸중하지 마시고,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에게 지속적인 박수와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리우데자네이루/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정보경 선수는?-1991년 4월 17일 경남 양산 출생-경남 양산 웅상여중∼경남체고∼경기대 졸업-2014년 안산시청 입단-주요 경력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유도 여일반부 48㎏급 개인전 동메달, 단체전 금메달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유도 여자 48㎏급 금메달, 단체전 은메달2015년 아시아오픈 타이페이국제유도대회 48㎏급 1위2015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 48㎏급 3위2015년 우즈베키스탄 그랑프리 48㎏급 2위2015년 제95회 전국체육대회 유도 여일반부 48㎏급 금메달2015년 제주 그랑프리 국제유도대회 여자 48㎏급 3위2016년 유러피안오픈국제유도대회 48㎏급 1위2016년 뒤셀도르프 그랑프리 여자 유도 48㎏급 1위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48㎏급 은메달6일 오후 (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카리오카 경기장 2에서 열린 여자 유도 48kg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국의 정보경이 경기 직후 열린 시상식에 메달을 받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여자 유도의 희망' 정보경은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이번 2016 리우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긴 주인공이 됐다. 사진은 정보경의 어린 시절 모습과 취미로 낚시를 하는 모습,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기까지의 모습이다. /연합뉴스지난 9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3에서 만난 정보경은 동료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간편한 복장으로 경기장을 찾았다. 리우데자네이루/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2016-08-16 이원근

[인터뷰… 공감]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교수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된 성역도서 채색 화성그림 처음 봤을때 '충격'조선시대 군사정책 연구 부족한 역사학계… 동장대시열도의 발견 중요프랑스와 자료공유 노력·의궤 내용 기반으로 新문화콘텐츠 추진하고파정조(正祖)가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 '수원'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학도가 있다. 86세대 운동권 학생들이 으레 그러하듯 대학원에서 사학을 전공한다 하면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독립운동사'를 전공하는 것이 당연시 되던 시절, 혼자서 '정조'를 연구해보겠다고 했다가 이단아 취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조선 정조대 장용영(壯勇營·정조의 호위 부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정조와 관련된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전문가 반열에 올랐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김준혁(48) 교수의 이야기다. 그가 지난 6월 27일 프랑스 동양어학교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정조대에 만든 정리의궤(整理儀軌)의 실체를 발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100여 년 동안 머나먼 이국에서 잠자고 있던 조선왕실의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6년 '수원화성 축성 220주년'과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맞아 정조가 보내준 선물은 아닐는지.-정리의궤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지난 7월 27일 수원시가 개최한 '프랑스 소재 한글본 정리의궤 토크 콘서트'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그만큼 수원시와 수원시민들이 문화적 소양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귀한 자료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문화재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정리의궤는 비록 타국에 있지만, 언론에서 정리의궤에 대한 보도가 수차례 이뤄진 이후 학자들의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정리의궤 제39권 성역도(城役圖)는 전 세계 유일본으로 화성과 행궁 건물, 정조대의 군사·문화행사들을 한글과 함께 채색으로 그려 놓은 그림이 79점이나 들어있어, 많은 부분의 역사를 뒤바꿔 놓을 만큼 충격적인 자료다. 의궤를 가지고 토크콘서트를 열었는데, 행사장이 꽉 차서 추가 좌석을 놓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던 것은 학자들 뿐만 아니라 수원 화성을 사랑하고 연구하는 시민들이 그 정도로 많다는 방증이다."- 언론에서 많이 다뤄지기는 했지만, 정리의궤의 내용에 대해 다시 한 번 소개해달라. "정리의궤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정조대의 의궤편찬기구인 정리의궤청(整理儀軌廳)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전체가 48권으로 제작됐으며, 현존하는 것은 13권으로 프랑스 국립동양어학교에 12권이, 나머지 1권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있다. 동양어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은 텍스트(한글)로만 이뤄져 있으며,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것은 화성과 행궁, 주요 시설물을 그린 도설(圖說)로 그림과 한글로 이뤄져 있다. 이 책은 크게 보면 '정조의 수원행차'와 '화성 성역'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수원행차의 기록이 1797년(정조 21)에 마감된다. 따라서 이 책은 1796~1797년까지의 화성행차 내용과 1796년 9월에 완공된 화성의 축성 과정을 정리해 1798년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 혹은 왕비인 효의왕후에게 보여주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역도에 나타나는 채색본 그림들은 화성이 완공된 이후인 1797년에 그려지고, 이와 함께 화성행차 기록을 한글로 정리해 1798년에 최종 완성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글과 도화서 화원이 그린 그림이 들어있다는 것으로 볼 때 왕실에 진상하기 위한 어람용(御覽用)으로 제작된 것이며, 현존하는 최고(最古) 한글본 의궤로서 국보급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와는 이미 외규장각 의궤 반환문제 때문에 수 십 년 간 시끄러웠었는데, 왜 이제서야 정리의궤가 발견된 것인가."1970년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사서로 근무하던 고(故) 박병선 박사께서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한 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던 강화도 외규장각 의궤 297권의 목록을 찾아내 정리한 바 있고, 끈질긴 협상 끝에 조선왕조 의궤 297권이 지난 2011년 영구임대 형식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됐다. 그런데 정리의궤는 병인양요와 관계없이 초대 한국 주재 대리공사로 임명됐던 빅토르 꼴랭 드 쁠랑시(Victor Collin de Plancy·1853~1922)라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수집해 이를 자신의 모교인 프랑스 국립동양어학교(12권)에 보냈고, 나머지 한 권(39권 성역도)은 경매상을 통해 판매했다가 그 경매상이 죽기 직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해 도서관 측이 이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까 그동안 우리나라 학자들이 약탈 된 외규장각 의궤에 몰두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리의궤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것이고, 특히 정조대의 역사를 전공한 이가 많지 않아 그 가치를 알아본 사람도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정리의궤가 있다는 사실은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1865~1935)이 1901년에 발행한 '조선서지(朝鮮書誌)'에 이미 드러나 있는데도, 100여 년 동안 프랑스를 직접 방문해 실물을 확인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우리 학계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 -그럼 본인은 어떻게 하다가 더불어민주당 안민석(오산) 의원 등과 함께 정리의궤를 찾으러 프랑스까지 가게 됐나."지난 2010년 수원화성박물관 학예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한국학중앙연구원 옥영정 교수로부터 한글본 정리의궤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당시 옥 교수는 복제된 마이크로필름 등을 통해 프랑스 국립동양어학교에 소장된 정리의궤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도 직접 실물을 확인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이후 언젠가는 정리의궤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2013년 문정왕후 어보 환수 활동을 함께 추진했던 안 의원에게 정리의궤 이야기를 꺼냈더니 흔쾌히 동행하자고 했고, 올해에 그것이 현실화 됐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당초에는 동양어학교에 소장된 12권짜리 정리의궤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려고 했던 것인데, 동양어학교 도서관 측에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정리의궤 1권이 더 있는데, 그 책에는 그림도 들어있다'고 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곧바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달려가 정리의궤를 보여달라고 수 차례 요청했고, 그 자리에서 정리의궤 '성역도'를 보고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한글본 의궤도 놀라운데 더구나 채색된, 난생 처음 보는 화성 관련 그림들이 연속해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수 십 년 간 정조와 화성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여태껏 경험 중에서 가장 큰 충격이었다."-그렇다면 정리의궤 중에서 본인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전반적으로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 많아 모두 중요하지만, 정조 연구자로서 중요한 것을 딱 한 개 꼽으라면 '동장대시열도(東將臺試閱圖)'를 들 수 있다. 동장대시열도는 1796년(정조 20) 1월 22일에 동장대에서 있었던 군사들의 시열(사열)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공개된 것이 없었다. 사실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조선시대 군사정책 부분이다. 군대 체제와 훈련 방식 등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가 매우 부족하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면서 군대가 해산당했고, 그와 관련된 기록 상당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세종실록에 함께 편집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국왕의 군례에 대한 내용이 일부 나와 있으나 너무 적은 편이다. 그런데 정리의궤에 정조가 직접 군사훈련을 주관하고 군인들을 시열하는 그림이 나오게 되면서 조선시대 군사훈련에 대한 체계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고려대 박물관에 소장된 화성부성조도(華城府城操圖)와 8폭병풍의 서장대성조도(西將臺城操圖), 화성성역의궤의 연거도(煙炬圖)와 함께 동장대시열도를 연구하면 당시 화성에서의 군사훈련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고 본다."- 낙성연도(落成宴圖)도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단 낙성연도는 화성성역의궤에도 존재하는 것인데, 그동안 흑백으로 인쇄된 그림만 전해지다 정리의궤를 통해 채색 그림이 처음 공개됐다. 이 그림을 통해 상하동락(上下同樂)을 중시한 정조의 정신을 볼 수 있다. 낙성연도는 화성 축성이 마무리 된 후인 1796년 10월 16일 화성행궁 낙남헌 앞마당에서 개최된 낙성연 행사의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한 그림이다.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나와있는 낙성연도의 틀은 기본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 낙성연도에 나오는 채붕(彩棚·누각형태의 무대)과 사자놀이 역시 동일하다. 화성성역의궤에도 당시 채붕 안에서 광대들이 들어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표현돼 있다. 그런데 정리의궤에는 채붕 등의 모습이 매우 정밀하게 묘사돼 있고, 연희를 벌이는 무용수들이나 악사, 광대 들의 의상이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나 당시 조선사회의 복식사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될 예정이다. 한편 동장대시열도, 낙성연도 말고도 '연거도(演炬圖·정조시대 야간 군사훈련 그림) '가 매우 의미 있는데, 낙성연도처럼 그동안 단색 목판본만 전해지다가 이 역시 채색 그림이 나타나면서 당시 군사들이 야간에 얼마나 불을 밝히며 훈련에 임했는지 모습을 상세히 알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정리의궤의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의궤를 발견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그간의 연구성과와 혹시 새롭게 찾아낸 부분이 있는가?"성역도에 들어있는 화성행궁의 주요 시설물 즉 봉수당, 장락당, 유여택, 복내당, 낙남헌, 노래당, 미로한정 등은 모두 처음 발견된 그림들이다. 이 건물들은 다른 어떠한 기록에도 단독으로 그려진 적이 없는 것들이다. 지금까지는 화성성역의궤에 작게 실려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 건물들은 모두 국왕이 친히 머물렀던 공간으로, 정치를 주재하거나 휴식을 취했던 공간이다. 화성행궁 전체가 587칸으로 건축됐는데, 정리의궤에는 관리들의 집무 공간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철저하게 국왕 혹은 국왕과 버금가는 왕실 인물들의 친림(親臨) 건물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정리의궤의 제작 의도가 혜경궁 혹은 효의왕후에게 화성행궁의 주요 건물의 모습을 알려주기 위했던 것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앞으로 정리의궤와 관련된 행사나 계획이 있는가."현재 정부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국립중앙도서관과 협의해 프랑스 동양어학교와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 수원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정리의궤를 영인·복제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적극 도울 생각이다. 또 정리의궤에 대한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수원시와 협력해 올해는 국내 연구자들 간의 학술대회를 진행하고 내년에는 프랑스 측 학자들과 함께 국제학술대회를 진행하려고 한다. 또 정리의궤 내용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화콘텐츠 개발을 적극 추진할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연구하다보면 무궁무진한 콘텐츠가 나올 것이다. 선조들이 물려준 세계적인 문화유산의 가치를 깨닫고 이를 의미 있게 개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문화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이다."■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교수는?-1968년 2월 9일 출생-수원 파장초·수성중·수성고 졸업-1986년 중앙대 사학과 입학·1993년 졸업 -1999년 중앙대 대학원 사학과 석사 졸업·2007년 동 대학원 박사 졸업 -2003년 수원시 학예연구사-2009~2011년 수원화성박물관 학예팀장 -2011 ~2013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2014~현재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저서 : '수원화성' '정조 이산, 새로운 조선을 디자인하다'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전투' 등 글/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교수는 수십년 간 정조와 수원화성에 대해 연구해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는데, 지난 6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정리의궤 '성역도'를 국내 최초로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수원 화성과 관련된 그림들이 여러 장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그중에서도 장용영(壯勇營·정조의 호위부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 답게 정조가 군대를 시열하는 모습을 담은 '동장대시열도(경인일보 7월 5일자 1면 보도)'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다.

2016-08-09 김선회

[인터뷰… 공감] 오영태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교육·단속·시설' 사고감소 방안에 자율 주행기능 더해 '4E 전략'강한 법제도·어린시절부터 안전 의식 체화할 수 있는 시스템 절실운행기록 제출 의무화 중요… 사업용자동차 첨단장비 장착 성과낼것도심 제한속도 60㎞로 낮추기 '미션'홍보보다는 현장위주의 대안… 사고 다발도시→안전도시'변화'이끌겠다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은 국민적 화두이자 국가적 어젠다가 됐다. 대중은 성장 만능주의의 폐해가 낳은 고도위험사회를 새롭게 인식했고, 정부는 국민안전처를 신설하는 등 '안전'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탱할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안전해지고 있다는 징후는 불투명하다.육상교통안전을 최일선에서 책임지고 있는 교통안전공단(이하 공단) 오영태 이사장(60)을 만나 국민이 체감못하는 안전의 진화가 진행중인지 탐문해봤다. 오 이사장은 공단 설립 이후 최초의 민간 교통전문가 출신 이사장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21일 서울 양재동 집무실에서 만났을 때는, 공교롭게도 영동고속도로 졸음운전 버스 참사 동영상 파문으로 어수선했을 즈음이었다.-공단 설립 이후 처음으로 민간 출신 이사장으로 공단 안팎의 기대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대였을까요."제가 처음 강조한게 전문성입니다. 교통안전업무를 전문성있게 하자는 뜻을 분명히했죠. 다만 학교(아주대학교)에 있을 때는 내 생각을 마음대로 얘기했는데 여기 오니 내 말에 책임이 따르는게 다르더군요.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해야 할 입장이 된겁니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소통을 많이 했는데, 여기서도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아이디어를 교통안전 현장에 접목하는 데 노력중입니다."-공단의 교통안전 사업에 전문성이 필요한 시점에 이사장께서 오셨다는겁니까."정확합니다. 일반적으로 교통사고 감소 방안으로 3E(Education교육, Enforcement단속, Engineering시설)를 거론합니다. 어려서부터 지속적인 교통안전교육을 하고, 교통안전시설이나 사고다발지점을 개선하고, 교통법규에 따른 단속과 처벌이 삼위일체가 돼야 교통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 교통안전을 지원하는 첨단장치가 속속 개발되는 추세잖아요. 그래서 전 E(Enhance the safety vehicle)를 하나 추가해 4E 전략을 세웠습니다. 자율주행자동차에 장착되는 안전장치를 염두에 둔거죠. 최근 전세버스가 대형사고를 내지 않았습니까. 사고 당시 105㎞라고 하니 틀림없이 그사람(운전자)은 사고 당시 졸거나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긴급제동장치나 차로이탈경고장치 같이 그런 걸 막을 수 있는 첨단장치들이 개발돼 있는데 말이죠. 2018년부터 사업용 신규등록차량은 장착을 의무화했는데, 운전자 과실을 최소화 할 수 있을겁니다. "-교통안전 확보가 공단만의 일은 아닐테고, 첨단안전장치 의무화도 법으로 뒷받침돼야 할텐데, 유관기관간의 유기적인 협력은 원활한가요."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업용자동차에는 운행기록계가 다 장착돼있어요. 공단은 올해 운행기록계의 50% 이상의 기록을 제출받아 분석을하자 이렇게 목표를 잡았습니다. 운행기록계만 보면 10가지 위험행동 즉 과속, 급차선변경, 급가속 이런게 다 나옵니다. 이걸 분석하면 위험행동을 하는 운전자를 가려낼 수 있고, 위험 운전자를 버스나 트럭회사에 통보해 특별히 관리를 하거나 상주와 화성에 있는 공단 교통안전체험센터에서 교육도 시킬 수 있어요. 체험센터 교육효과로 사고율이 58% 줄고, 사망사고는 70%까지 감소시킬 정도니 대단한겁니다. 운행기록계를 통해 이런 조치가 가능한겁니다. 유럽은 사업용 자동차에 운행기록계를 장착하고 운행기록 제출을 의무화 시켜 그걸 가지고 법적 제재를 하거든요. 유럽 대형자동차 운전자들이 80㎞ 이상 속도를 내지 않고 질서를 잘 지키는 이면에는 운행기록계의 의무장착과 기록의 의무제출이라는 제도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운행기록 제출이 의무화 안되는게 이상하네요."(수익때문에) 운전자의 (교통법규)위반이 많으니 기록제출을 안합니다. 장착은 의무화 돼있는데 기록미제출에 따른 법적제재는 없으니 장착의 의미가 사라진거죠. 이런게 제도적으로 개선해야할 부분이에요. 최근에 국토부와 함께 법인택시 카드단말기에 디지털운행계를 장착해 자동으로 운행자료를 공단이 받을 수 있도록 개선중입니다. 앞으로 사업용 차량 운행기록이 통신을 통해 자동적으로 올라와 빅데이타가 구축되고 이를 분석하면 교통사고 감소에 큰 효과를 볼수 있을 겁니다."-테슬라 무인자동차 운전자 사망사고 이후 미래첨단교통수단에 대한 안전관리가 큰 숙제일텐데요."(조감도를 가리키며)화성에 있는 공단의 주행센터 저게 한 65만평 됩니다. 저기에 K시티라는, 자율자동차를 시험적으로 운행시키고 연구개발하는 테스트베드를 만들겁니다. 미국 M시티의 3배인데 2018년에 개통하면 다양한 도로와 시가지 환경에서 자율자동차의 안전운행 기준을 시험하고 수립할 수 있을 걸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K시티를 통해 구현하려는 차세대 첨단교통수단의 안전 패러다임은 무엇입니까."무엇보다 현실과 똑같은 운행환경을 조성해 무인차량이 모든 환경에서 유효한 운행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은 무인자동차를 운용하려면 교통안전공단의 허가가 있어야하는데 운전자 탑승, 긴급상황시 수동모드 전환이 허가조건이에요. 앞으로 자율주행차량이 상용화돼도 이런 원칙은 유효할테고, 테스트베드를 통해 구체적인 안전기준을 계속 추가해나갈 생각입니다."-경기도도 판교에 자율주행자동차 테스트베드 건설계획을 발표했습니다."판교 테스트베드와 우리 테스트베드는 달라요. 공단 테스트베드는 주행환경을 변형할 수 있는데 반해 판교는 실제 도시입니다. 도시에 무인자동차를 적용하겠다는 것이지 테스트베드 성격은 아닙니다. 개념이 다른 거죠. 물론 경기도와 정보 공유 등 서로 필요한 협력을 안할 이유는 없습니다."-교통환경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교통안전 패러다임도 전환될 상황 아닙니까."공단은 2009년부터 자율자동차의 첨단 안전장치를 개발해왔습니다. 현대모비스와 서울대 등 10개 기관과 공동으로 7~8년 개발한 핵심기술들이 현재 자율자동차에 들어가는 핵심 안전장치들입니다. 자율자동차가 2020년 상용화되고 2035년에 자동차 판매량의 75%에 달할 것이라 예상하는데 이렇게 되면 안전패러다임은 '사고 제로(0)'로 변하겠죠. 작년에 4천621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어요. 5천명대의 사망자가 감소추세니 다행이라지만 지금이라도 첨단안전장치를 사업용 자동차에 장착하면 2020년에는 현재 사망자 수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첨단안전장치의 전면적 수렴이 굉장히 중요합니다."-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현장정책은 있나요."홍보 보다는 현장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홍보예산을 줄여 9억원을 투입해서 무단횡단 방지시설을 직접 설치하고 있어요. 차 대 보행자 사고가 OECD 평균의 4배나 되는데 지자체는 예산이 없다하니 우리가 그 효과를 보여주자고 나선거예요. 그리고 한국도로공사와 함께 급제동장치와 차선이탈경보장치를 화물차 100대에 시범장착하기로 했어요. 회사들은 비용이 든다고 망설이니 일단 시범사업으로 안전장치의 효용성과 수익성을 보여주겠다는 시위인 셈이에요."-운행기록계처럼 의무화하면 안되나요."2018년 부터 신규제작되는 (화물)차에는 장착이 의무화가 되는데 기존 차량은 제외되는게 문제에요. 그래서 대안으로 화물연합회와 협의해 화물공제회가 안전장치를 장착해주는 방안을 논의중입니다. 사망사고가 줄면 공제회의 보상예산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거든요."-세월호 사고 이후 민간인으로 교통안전공단에 취임했으니, 안전철학이 각별할 듯 싶은데요."철학이라고 까지 말씀 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첫번째는 국민의식이 중요해요. 무단횡단이나 난폭운전을 보세요. 선진국은 강력한 법제도와 시설로 국민의 교통안전의식을 유지합니다. 영국은 안전벨트 안매면 90만원인데 우리는 3만원이에요. 제도가 엄하니 의식이 유지되고 질서가 잡힌다고 봅니다. 또 선진국은 어려서부터 교통안전교육을 철저하게 시킵니다. 독일의 어린이 자동차 사각지대 현장체험교육은 혀를 내두를 정돕니다. 우리는 안전교육을 운전면허 취득때 딱 1시간만 하죠. 법제도가 개인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강화되고 어린시절 부터 안전의식을 체화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절실합니다."-공단의 자동차 검사에 대해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정확한 지적입니다. 저희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검사를 철저하게 진행합니다. 오히려 검사제도를 강화할 생각도 있구요. 예를 들어 차령에 따라 배출가스 기준을 낮추도록 한 현행 제도의 그런 어드밴티지를 없앨 생각이에요. 제대로 검사하자는겁니다. 그런데 배출기준을 넘을 것 같은 경유 차량들이 우리 공단 직영 검사를 회피하고 지정정비공장을 찾아가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독일처럼 민간에 위탁하되 정비와 검사를 완전히 분리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정비와 검사를 분리하면 수익을 내기 위한 검사가 없어질겁니다. 아무튼 안전을 지향하는 검사를 하는 공단에 비해 수익을 위해 검사를 하는 민간에 대한 지도감독에 한계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오 이사장은 1시간 남짓한 인터뷰 동안 질문에 대해 막힘없이 답변을 내놓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강조할 대목은 오랜세월 체계를 세워온 논리를 펼쳤다. 녹음기에는 단 한 순간의 여백도 없었다.그는 교통안전공단이 육상 뿐 아니라 항공안전에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보잉기종에서 경량비행기 까지 모든 조종사 자격증을 공단에서 발급한다거나, 최근 각광받고 있는 드론의 제작안전인증도 공단의 몫이라는 것. 드론 운행자격증 발급도 물론 공단 일이란다. 다만 내년부터는 신설되는 항공기술안전원으로 제작인증기능이 넘어가지만 모든 항공수단의 조정자격 인정은 공단의 업무로 남는다고 했다.-남은 임기중 교통안전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 있나요."사업용자동차에 첨단안전장치 장착을 최대한 높이는 일 만큼은 성과로 남기고 싶어요. 버스공제회와 화물공제회가 첨단장치를 제공하는 일은 모두에게 윈윈인 사업이에요. 작은 투자로 큰 손실을 줄일 수 있는데 안할 이유가 없잖아요. 사업차량 관련 협회 회장님들 반응도 좋고 조금 더 설득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 같습니다. 또 작년에 16개 시·도에서 벌인 교통안전 대토론회를 올해는 기초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확대할 생각입니다. 현장 토론이 주는 효용이 생각 보다 좋더군요. 후반기에는 교통사고 다발도시를 대상으로 교통안전 도시로 변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을 현장위주로 마련해 볼까 합니다. 또 도심 제한속도를 선진국 수준인 60㎞로 낮추는 것도 제겐 중요한 미션입니다. 도심 교통환경은 속도제한이나 대중교통위주로 바꾸고 사업용 차량의 첨단안전장치 장착 확대 쪽으로 교통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람이 우선, 자동차는 차선'이라는 제 신념을 도와줄 분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겠습니다."■ 오영태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1975 부산고-1981 한양대 토목공학과-1983 서울대 도시계획학 석사-1989 美 NYU공대 교통공학 석·박사-1989.3 ~ 1993.3 한국교통연구원 책임연구원/교통안전실장-2004.8 ~ 2006.3 아주대학교 교무처장-2009.3 ~ 2011.2 대한교통학회장-2011.3 ~ 2014.10 아주대학교 교통ITS대학원장-1993.3 ~ 2014.10 아주대학교 교수 (교통시스템공학과)-2014.10.29 ~ 교통안전공단 제15대 이사장 글/윤인수 문화부장(편집부국장)isyoon@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교통안전공단 오영태 이사장(60)은 "법제도가 개인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강화되고 어린시절 부터 안전의식을 체화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6-07-27 윤인수

[인터뷰… 공감] 정몽규 리우올림픽 선수단장

한국선수단 이끌고 올림픽 참가, 귀중한 기회이자 영광 '책임감 막중'금 10개 이상·Top 10 목표… 양궁·유도·펜싱등 선전 해준다면 가능브라질 치안·지카 바이러스등 '불안' 정부와 긴밀 협조 안전대책 마련개최 코앞인데 올림픽 열기 약해… 국민 관심·성원 가장 필요 응원을"선수단의 든든한 보호자가 돼 그간 노력해 온 것들을 후회없이 보여줄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2016 브라질 리우올림픽이 16일 앞으로 다가왔다. 브라질 현지의 불안한 치안 상황과 지카 바이러스 등 전염병의 위험 속에서도 선수단은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등 국위 선양을 위해 굵은 땀방울을 떨어뜨리며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한국은 리우올림픽에 28개 종목 중 23개 종목에 참가하며 선수 204명과 임원 112명 등 총 316명을 파견한다. 당초 복싱이 68년 만에 올림픽 출전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었지만 함상명(용인대)이 와일드카드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되는 희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이 출전하지 못하는 종목은 농구, 테니스, 럭비, 트라이애슬론 등 4개 종목이 됐다.이번 브라질 리우올림픽 선수단장으로 임명된 정몽규(전 대한축구협회 회장) 단장은 19일 인터뷰에서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선수단을 이끌고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은 귀중한 기회이자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올림픽의 성공적인 참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국민들께 약속했다.한국 선수단은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 10개 이상을 확보해 10위권 안에 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번 리우의 목표는 지난 2번의 올림픽보다 목표치가 다소 하향 조정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은 금 13, 은 8, 동 7개를 따내 종합 순위 5위에 올랐고, 베이징 올림픽에선 금 13, 은 10, 동 8개로 종합 순위 7위를 기록했었다.정 단장은 그 이유에 대해 "지난 런던 올림픽 대비 메달 목표치가 낮아진 것이 아니다"며 "런던에서는 펜싱, 체조 등 우리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번 올림픽은 12시간의 시차와 장시간의 비행 거리, 불안한 정국과 치안 상태, 지카 바이러스 우려 등 불리한 여건 속에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4회 대회 연속으로 금메달 10개, 종합 10위권 안에 든다면 대한민국 선수단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올림픽이라는 세계적 이벤트를 개최하기 위해 전 세계 각국으로부터 손님맞이를 준비하는 브라질은 아직까지도 치안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 13일 리우올림픽 대비 관계부처 회의에서 지카 바이러스와 인플루엔자 감염을 비롯해 리우 내 살인사건이 전년 동기간 대비 15.4% 증가했고, 노상강도는 23.7%, 차량 강도는 19.7% 증가한 점을 들어 역대 올림픽 개최지에 비해 치안상황이 열악하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브라질 당국이 군 병력을 추가 투입해 치안과 테러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안전에 대한 우려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이에 정 단장은 "현재 선수단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의무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정부의 협조 아래 다양한 안전 대책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며 "특히 선수단복에 방충 소재 옷감을 포함하고 방충제품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황열병 등 모기를 매개체로 하는 질병과 A형 간염, 장티푸스 등 수질 오염 관련 질병, 신종 플루 등에 대한 예방 접종을 실시한바 있으며 말라리아의 경우 필요시 약품 지급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정 단장은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단 전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올림픽의 효자 종목인 양궁, 태권도, 유도, 사격에서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는 동시에 레슬링, 펜싱, 배드민턴, 골프 등에서 선전해준다면 리우에서도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여자 구기 종목 3총사인 하키, 핸드볼, 배구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와 있다. 또 그동안 월드컵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유독 올림픽과 인연이 없었던 근대5종, 요트 등에서도 메달을 기대해 볼만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선수들 모두 올림픽을 목표로 열심히 훈련해 왔기 때문에 컨디션만 잘 따라준다면 어떤 선수라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대한축구협회 52대 회장을 역임한 뒤 53대 회장에도 단독 출마한 정 단장은 한국 축구계를 이끄는 최고 수장이기도 하다. 또 축구는 국내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 중 하나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도도 높다. 한국 축구는 지난 런던 올림픽에서 역대 처음으로 동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리우에서 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지난 18일 현지 적응 훈련을 위해 브라질 상파울루로 향했다. 정 단장은 "축구의 경우 예선 리그에 세계 축구 최강의 경기력을 보이고 있는 독일과 멕시코가 속해 있어 3개국 중 한 팀은 탈락하게 돼 있다. 그만큼 예선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면서도 "그렇지만 예선을 통과할 경우 선수단의 사기 등을 고려하면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선수들이 땀 흘려 준비해 온 만큼 좋은 경기를 펼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림픽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국내에선 올림픽의 열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 점도 아쉽다고 했다. 정 단장은 "이번 올림픽은 아무래도 브라질 현지의 불안한 정세와 치안, 질병 문제 등으로 인해 예년과 같은 붐 조성이 되고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며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한국은 리우 올림픽에 전력을 다해 성공적으로 치른후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된다. 정 단장은 "아무래도 여러 악조건 속에서 치러지는 올림픽인 만큼 위기관리 측면에서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선수단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정 단장은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리우올림픽 선수단 최종 엔트리가 확정됨에 따라 18일부터 직접 선수단을 이끌게 됐다. 그는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올림픽이 얼마나 큰 기회이자 영광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선수단장으로서 느끼는 책임감도 막중하다. 선수들이 그간 노력해 온 결과를 후회 없이 보여줄 수 있도록 선수들의 든든한 보호자가 돼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정 단장은 선수단에게 "여러분의 보호자로서 대한체육회, 대회 조직위원회 및 현지 공관, 정부 등 유관 기관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안전하게 대회에 참가하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 하겠다"며 "선수들이 그동안 흘려 온 땀과 눈물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이어 그는 "사실 우리 대표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들의 관심과 성원이다"며 "대회 개막 이전부터 폐막까지, 대한민국 선수단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으로 많은 응원을 보내주시길 바란다. 저 역시 선수단장으로서 우리 선수단이 국민 여러분의 관심에 부응하여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몽규 올림픽선수단장은?-1980년 용산고 졸업-1985년 고려대 경영학 석사-1988년 옥스퍼드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1994∼1996년 12월 프로축구 울산 현대 축구단 구단주-1996년 현대자동차 회장-1997∼1999년 3월 전북 현대 축구단 구단주-1999년 3월∼ 현대산업개발 회장-2000년 1월∼ 부산아이파크 프로축구단 구단주-2013년 1월 제52대 대한축구협회 회장-2014년 3월∼ 동아시아축구연맹 부회장-2015년 5월∼ 아시아축구연맹 집행위원회 위원글/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19일 오후 서울올림픽 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2016리우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결단식'에서 정몽규 선수단장이 단기를 흔들고 있다.정몽규 리우올림픽선수단장이 태릉선수촌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제공정몽규 리우올림픽선수단장이 태릉선수촌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제공

2016-07-20 이원근

[인터뷰… 공감] 박기동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공채 1기로 입사해 36년 한길… 공사 설립 40년만에 첫 내부수장 '성공 신화'기술경영 선언 '인력 전문화' 동반성장 평가 4년 연속 1위·KS 인증기관 지정선진형 가스안전체계 정착 중요한 전환기… 글로벌 Top 인프라 구축 '최선'박기동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은 학교 졸업 후 첫 직장인 한국가스안전공사에 인생을 걸었다. 공채 1기로 입사해 말단 사원에서 LP가스 안전대책 실장, 감사실장,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기술·안전 이사와 부사장 등 핵심 요직을 거치며 최고의 수장 자리까지 성장해 왔다. 통상적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 낙하산 인사가 요직을 꿰차고 내려오는 것이 관례였지만, 지난 2014년 12월 사장 공모에선 내부인사인 그를 CEO에 임명했다. 극히 이례적이고 보기 드문 인사여서 공사 직원들마저도 눈이 동그래졌다고 한다. 가스안전공사 설립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의 임명을 두고 관가에서는 파격적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고, 그의 '성공신화'에 대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대구공고와 경일대 기계학과를 졸업한 그는 36년간 가스안전공사에 몸을 담았고, 때론 가정보다 일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노력형이었다. 그의 성실함과 일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고, 직장에선 늘 소탈하고 걸걸한 '맏형'의 자세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2년 전 청와대 인사 검증에서도 빵빵한 스펙의 외부 경쟁자를 따돌릴 수 있었던 것도 박근혜 대통령이 그의 성실함과 전문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그런 인사 검증은 적중했다.최근 기획재정부 주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18개 준정부기관 중 최고 등급인 A등급을 받았고, 앞서 국민안전처의 2016 재난대응 안전 한국 훈련 평가에서도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지난주(7일)에는 국가기술표준원으로부터 'KS 인증' 기관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귀에 익숙하지 않은 기관이지만 가스분야 안전에서만큼은 일본과 선두 다툼을 벌일 정도로 최상위에 오른 기관이다. 경인일보는 12일 15대 사장으로 박진감 넘치는 경영을 하는 박 사장과 만나 가스안전공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켜온 뒷얘기를 들어봤다. -한국가스안전공사(이하 공사)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공사는 가스의 위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출범한 준정부기관이다. 지난 1974년 고압가스보안협회로 출범, 1979년 지금의 가스안전공사로 개편·발족했다. 모든 가정과 산업 현장 등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유통되는 가스의 사고예방을 위해 기술지원·검사·안전점검·교육·홍보·연구개발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현재 충북혁신도시에 본사를 두고 있고 전국 28개 지역본부·지사에서 1천300여 명의 직원들이 가스안전관리를 위해 종사하고 있다."-기술직 신입사원에서 최고경영자에 올라 '가스안전 장인'으로 불리고 있는데 안전에 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면."개인적으로 남들보다 1% 더 노력하고, 1% 더 배려하자는 소신이 있다. 다른 사람보다 10분 일찍 출근하고, 10분 늦게 퇴근하고, 입사 이래 36년간 한결같이 '안전 이상의 가치는 없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왔다. 과거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사고 수습대책본부 파견요원으로 현장을 직접 경험하면서 더 이상은 대형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가스안전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바 있고, 겉으로만 안전제일을 외칠 게 아니라 생활 속에 체화된 안전제일의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 경영평가 등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는데 내부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지난 2014년 12월 8일 공사 40년 역사상 최초로 내부 출신이 사장이 돼 직원들의 사기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가스안전을 통한 국민 행복 실현'이라는 명제만 생각하며 쉼 없이 달려왔다. 다행히 가스 사용량이 증가하는 것에 비해 사고 건수는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그간 외국에서 안전관리제도와 기술을 수입해야만 했던 우리나라는 이제 베트남·인도네시아·몽골 등 개발도상국에 선진 가스안전관리제도와 기술을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최근 5년간 정부와 함께 40만 서민 가구에 가스시설 무료 개선사업도 진행했고, 이 역시 사고 발생 건수를 줄이는 성과로 이어졌다."-가스안전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인정받고 있는데 특별한 비결이 있나. "4대 경영방침 중 하나로 '기술경영'을 선언하고 안전기술·안전진단·검사시험인증·미래 에너지분야 등 총 4개 분야 13개 기술을 유망기술로 선정해 인력 전문화를 도모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폴리에틸렌(PE) 배관 전기융착부 위상배열 초음파를 이용한 결함평가 기술'이라는 글로벌 Top 1호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 PE 배관에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기술로 불량 시공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으며 가스 사고 예방에도 이바지할 수 있게 됐고, 30년이 지난 도시가스 매몰 배관에 대한 안전성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대형 PE 배관 시설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적용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해 놓고 있다." -공공기관 동반성장 평가에서 4년 연속 1위를 달성했는데 어떤 사업이 있었나. "대표적인 동반성장 사업 중 하나는 중소기업 해외수출지원 사업이다. 지난해 6개국 6개 기관을 비롯해 지금까지 20개국 총 60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맺었으며, 약 4천억 원의 해외인증 수출액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유럽·북미지역과 상호인증 협정을 체결, 해외인증 비용을 절감하고 인증서 발행기간도 단축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국내 방폭 기기 제조업체의 유럽·북미시장 진출을 위한 생산성·경쟁력 향상과 최근 5년간 해외인증으로 취득한 수출액은 2011년 1억 600만 달러에서 2015년에는 3억 3천600만 달러로 무려 3배 증가하는 성과를 이뤘다. 올해에도 미국·영국·이스라엘 등지의 6개 기관과 신규 MOU를 추진할 계획이며, 기존에 업무협약을 체결한 러시아·중국·일본·호주 등 협력기관과의 관계 내실화를 통해 실질적인 기업 수출지원 역량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며칠 전 국가기술 표준원으로부터 KS 인증 기관으로 지정됐다는 데 각오가 있다면. "지난해 인증 기관 지정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가스 온수 보일러, 가스레인지, 볼밸브, 조정기 등 기계 분야 34개 가스 관련 제품을 인증하게 됐다. 축적된 전문성을 살려 가스 제품·제조업체의 경쟁력을 향상하고 안전한 가스 제품 생산에 최선을 다하겠다."-올해 역점을 두고 추진할 핵심사업과 앞으로 계획은."취임 2년 차인 올해는 선진형 가스 안전체계를 정착하는 중요한 전환기이자 핵심 기로 볼 수 있다. 지난 1년간 이뤄온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내년 임기를 마칠 때까지 가스안전 Global Top 조기 달성과 가스안전 국민 행복 실현이라는 목표를 향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계획이다. 가스안전 인명 피해율 감축을 위해 공사의 모든 역량을 결집해 나갈 것이며, 가스안전 확보를 위한 글로벌 인프라 구축에 만전을 기할 것이다. 현재 공사는 충북 진천에 산업 가스안전기술지원센터를, 강원도 영월에 에너지 안전실증연구센터 건립을 추진하는 등 본사가 위치한 충북혁신도시와 인근 지역을 국내 가스안전 메카, 세계적인 가스안전 허브로 발전시키기 위한 청사진을 그려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안전교육과 홍보의 패러다임을 바꿔 생활밀착형 안전의식을 국민들께 전달하고, 이를 통해 안전한 대한민국의 기틀을 마련해 나가겠다."■박기동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은?-1957년 2월 2일-출생지 : 경북 영천 -학력 :대구공고·경일대 기계학과·한국산업기술대 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경력사항 : 1980년 한국가스안전공사 입사(공채 1기)-1993~2012년 기획조정실장·대구경북지역본부장·기술지도처장·고객지원처장·감사실장·LP가스 안전대책실장-2012~2014년 기술이사·안전관리이사·부사장-2014년 사장 취임(현재)-2016년 한국 가스학회 회장(현재) -상훈 :국무총리표창(1998), 산업포장(2007), 국민훈장 목련장(2013) -저서 : '독성가스 이론과 실무'(2014, 유비온) 글/정의종 서울 정치팀장(부장) jej@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박기동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은 "가스안전 확보를 위한 글로벌 인프라 구축과 가스안전 국민 행복 실현이라는 목표를 향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2016-07-13 정의종

[인터뷰… 공감] 김화수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 내정자

'잡코리아' 창업자에서 경기 일자리 허브 이끄는 대표주자로사기업 채용 '빈익빈 부익부'현상… 공공영역 개선 여지 있어많은 구직자가 지원할 수 있도록 온라인 사이트 분위기 조성오프라인 취업상담 인력 역량강화해 구직자·기업 연결 노력김화수 전 잡코리아 대표이사 사장은 성공한 기업가다. 지난 1997년 자본금 5천만원을 갖고 창업한 잡코리아가 2005년 1억 달러(당시 환율로 1천50억원)에 외국계 회사에 매각되면서 갖고 있던 주식을 처분해 100억원 이상의 차익을 남겼다. 회사를 넘긴 이후에도 그는 잡코리아의 CEO직을 유지하며 동종업계 연 매출 1위를 유지했다. 그런 그가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최근에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에 내정됐다. 잡코리아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덕에 그가 도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작용한 듯하다. 아직은 내정자 신분이지만 새로 만들어지는 조직의 업무파악을 위해서 불철주야 공부하고 있는 그를 만나 봤다.-정확히 언제부터 일자리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하나."발기인 총회(5일)를 마친 뒤 고용노동부에 재단법인 설립 허가를 신청할 수 있고, 설립허가가 나오려면 오는 20~ 22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때가 돼야 공식적으로는 재단법인 설립이 되는 것이니까. 정식취임도 그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남경필 경기도지사와의 인연은."솔직히 말해서 그 전까지는 경기도지사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금방 대답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남 지사는 그저 TV에서 보는 정도. 일자리재단 건 때문에 처음 만나게 됐다. 지난 5월에 경기도경제실장과 일자리정책과장을 통해 처음으로 일자리재단 대표이사 제의를 받았고, 몇 번의 전화통화와 일주일 정도 고민한 후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남 지사를 사석에서 만나 차 한잔 나눈 게 전부다. 내가 어떻게, 누구로부터 추천을 받았는지에 대한 과정은 나중에 천천히 알아볼 생각이다."- 남 지사의 핵심공약이 일자리 70만 개를 만든다는 것이다. 부담되지는 않나."부담 없는 자리는 어디든 없다고 생각한다. 상업적 성과를 내야 하는 곳이면 어디든 있다. 물론 기업과 공공의 영역은 많이 다른 것 같다. 기업은 철저하게 조직적 역량을 통해 성과를 내는데 반해, 공공 쪽은 '예산'을 집행하고, 조직 바깥과의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관에서 일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분간은 단기간에 효과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우선 조직에 대한 공부를 선행하고,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일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잡코리아를 만든 과정은."1997년 여름쯤에 투자자를 만나서 창업했다. 자본금 5천만원 갖고 4명이 같이 한 것인데, 잡코리아의 전신은 '칼스텍'이라는 웹에이전시다. 원래 처음부터 잡코리아를 비즈니스 모델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IMF 때문에 실업자가 200만명을 돌파하고 취업사이트가 활황이 돼 웹에이전시를 접고 취업사이트에 전념했다. 그 당시 모든 취업사이트들이 전부 무료서비스였다. 인크루트, 잡링크 등이 선점기업이고 우리는 후발업체였다. 구직자와 기업 모두 무료 플랫폼을 잘 쓰고는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이트가 한 푼도 못 받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성공하게 된 것인가."고민 끝에 잡코리아에서는 부분 유료화를 결정한다. 하루에 2천개의 공고가 올라왔는데, 2만2천원 정도 내면 상단에 고정으로 기업공고를 배치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랬더니 100개 기업이 유료화에 동참하고 차근차근 유료기업들이 올라왔다. 구직자도 만족하고 기업도 어느정도 서비스를 만족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취업사이트들은 그 당시 부분유료화가 아니라 전면유료화를 시행하면서 기업들이 많이 떠났고, 취업공고가 줄어들자 구직자들도 사이트를 떠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잡코리아의 가치가 올라갔다. 최근의 취업포털 사이트 전체 매출이 1천300억원 정도 되는데 잡코리아는 이 중에서 절반인 56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편 잡코리아는 지난 2005년 우리나라로 치면 취업포털사이트인 몬스터 닷컴에 1억 달러에 완전 매각됐다. 그때 환율이 달러당 1천50원 정도였다. 나는 그때 지분을 모두 정리했고, CEO 직은 계속 유지했다. 그러다 잡코리아에 관심 있는 사모펀드가 2천억원에 회사를 다시 인수해 지금은 100% 순수 국내기업이 됐다." -첫 직장이 지금으로 말하자면 벤처 기업 같은 곳이었는데, 대기업은 지원할 생각은 안해 봤나."솔직히 말하면 대학 때 학점이 별로 안 좋았다. 대학 7학기 평균 학점이 3.0을 못 넘었다. 굳이 대기업과 같은 곳에 비교한다면 코트라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게 전부다. 원래 나는 이재보다는 거시 경제에 관심이 많았다. 가령 '하반기 경제동향' 세미나 같은 것이 서울에서 열리면 학생신분으로 혼자 참석해서 듣고 오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경제지에서 '넥서스 컨설팅'이라는 곳의 이사님이 인터뷰 한걸 봤는데 그 것에 딱 꽂혀서, 그 회사에 지원하게 됐다. 넥서스 컨설팅 전체 직원은 13명으로 해외시장에 대한 조사를 대행하는 곳이었다. 이를테면 국내 기업 중에서 미국에 있는 A기업이 관심이 있다면, 최근 10년간 그 회사와 관련된 신문기사, IR(투자자들에게 기업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문서), 소송, 특허 등의 자료를 모아 분석보고서를 만들어 납품하고 수수료를 받는 회사였다. 당시 국내에 그런 일을 하는 회사가 3개 밖에 없었는데, 교육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곳은 넥서스 컨설팅 밖에 없었다. 군에서 제대한 다음날 바로 그 회사에 교육을 신청해 8~9개월 과정을 마친 후 정식직원이 돼 1년 반 정도 근무하고 대학원 진학을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채용과정에서 2차례의 의회 청문회를 거쳤다. 당황스럽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은 없었는지."경기도 직원분들이 청문회에 대한 이야기를 사전에 했었는데 진지하게 귀담아 듣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다(웃음). 그런데 여러모로 보탬이 됐다고 생각한다. 단어 두 개를 주고 나에게 문장을 만들어보라는 의원분도 계셨는데, 결코 당황하거나 창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예를 들어 고용노동부가 지원하는 지역특화 사업 등에 대해 질의하신 분이 있는데 그때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그건 경기도의 예산을 받는 사업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판단했는데, 시·군에 적을 둔 의원분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사안일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게 아쉬움이 남는다." - CEO를 그만두고 경기도로 직장을 옮긴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일각에서는 정치에 관심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 청문회 때도 같은 대답을 여러 번 했다. 사기업인 잡코리아에 '잡(Job)'이 붙었다. 지금 일하는 일자리재단에는 '일자리'가 붙어있다. 사실 사기업은 결과적으로 미스매치든 고용창출이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낸다. 목적은 그게 아니었더라도 어쨌든 결과가 이뤄진다. 그런데 공공은 예산을 갖고 집행을 한다. 내가 잡코리아에서 근무할 때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많이 목격했다. 브랜드가 좋은 기업, 도심부에 있는 기업, 상권 좋은 기업은 직원 채용을 쉽게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돈을 쓰든 쓰지 않든 직원 채용이 안 된다. 그런 부분들이 참으로 안타까웠고, 공공에서는 그런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런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있나."잡코리아에서 여러 번 경험해 본 건데 기업이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못해서 구직자들이 아예 지원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최종적으로 채용되는 게 중요하지만 취업확정 이전에 구직자들의 취업 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1명을 최종 채용하는 것보다 10명이 기업에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플랫폼을 개선해 한 기업에 1명이 아니라 10명이 지원할 수 있는, 사이트에 20분 머무르면 한 회사가 아니라 적어도 5개 회사에 지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생각이다. 또 오프라인에서는 취업상담인력의 역량을 강화해 인터뷰까지 갈 수 있는 구직자들을 기업들에 연결시켜 줄 생각을 하고 있다." ■김화수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 내정자는?-1970년 부산 초읍동 출생-1995년 성균관대 무역학과 졸업-1998년 한국외국어대 경영정보대학원 경영정보시스템과 졸업 -1996년 (주)넥서스컨설팅 정보분석팀장-1997년 (주)칼스텍 기획개발실장-2002년 (주)휴먼피아 대표이사-2006년 (주)엔도어즈 대표이사-2000~2015년 (주)잡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글/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 ·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김화수(46)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 내정자는 온라인에서 기업을 최대한 어필하고 오프라인 상담인력의 역량을 강화해 도내 일자리를 늘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2016-07-05 김선회

[인터뷰… 공감] 박광은 경기도한의사회장

'현대의료기기 갈등'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치료가 아닌 '진단'부작용 우려땐 法 정비·교육 대책… 사용자체 막는것은 과잉규제"치료보다는 보양" 한의에 대한 대중 인식 '스쿨닥터' 활용해 개선군·교정시설·보건소 등 한의사 영역 확대… 공공의료 한발짝 더환자에 대해 의사가 지켜야 할 윤리를 담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의술의 빛을 보지 못한 백성들을 위해 집필된 동의보감에는 절대 언급되지 않을 법한 일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양의과 한의의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X레이와 초음파, 혈액검사기기 등 환자 상태를 진단하는 데 필요한 기기들을 한방 병·의원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 골자지만, 그 이면에는 양의와 한의의 세계관 차이로 인한 두 집단의 오랜 알력이 내포돼 있다. 다툼의 주축은 의사회와 한의사회다. 두 단체의 정관에는 하나같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이라거나 '국민과 하나 되는…'등 공공의 건강을 최우선 한다는 가치를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두 단체는 집단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기본원리 아래 너무나 상이한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은 의료기기 회사에 상대 기관과 거래를 하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하다 공정위에 과징금 처분을 받는가 하면, 사스나 메르스 같은 대규모 전염병을 앞에 놓고도 대응 방식의 차이에 갈등을 빚기도 한다. 싸워야 할 대상을 질병이 아닌 상대 단체로 삼은 셈이다.도저히 융합될 수 없을 것 같은 두 집단의 평균대 싸움에서 국민들은 한의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초 한국리서치가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전체의 65.7%가 한의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찬성의 의견을 표했다. X레이 검사를 한의원에서 직접할 수 없다 보니 통증 치료를 위해 한의원을 방문하더라도 다시 정형외과에 들러 X레이를 찍은 뒤 한의원을 다시 방문해야 하는 등 불편이 환자에게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의계는 전공분야가 다른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기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오진으로 되레 국민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절대 불가론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한의계는 X선을 발명한 뢴트겐이 의사가 아닌 물리학자이듯 기술 사용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한의학 전공 과정에서도 진단기기와 관련된 교육을 충분히 받고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으로 반박하고 있다.과연 한의사들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충분한 준비가 되었으며 우려되는 부작용은 없을까. 박광은(52) 경기도한의사회장을 만나 현재 한의계의 문제점과 이슈에 대해 물었다.-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갈등이 수년째 장기화되고 있다. 논쟁이 고착되니 일각에선 의사와 한의사 간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냐는 시각도 커지고 있다. 한의사회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규제 개혁의 일선에 있으면서 그런 국민들의 피로감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기본적인 원리를 이야기할 뿐이다. 목욕탕에도 혈압계가 비치되고 낚싯배도 초음파를 사용하는 시대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진료가 아닌 진단이다. 환자가 통증을 호소할 때 근육이 경직된 것이 문제인지, 혹은 미세한 골절이 일어난 것인지 정확히 알고 나서 조치하겠다는 것이다. 진단의 방법은 다양할수록 그 정확도가 올라간다. 한의원에 의료기기가 들어온다고 해서 한의사들이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의료기기에만 의지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진단기기는 맥진과 촉진으로 파악한 환자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수단인 동시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하는 환자의 불편을 줄여주는 매개일 뿐이다."-양의쪽에서는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에 부작용을 우려한다."부작용이 우려되면 관련법을 정비하면 되고 사용에 대한 교육을 더욱 철저히 하면 된다. 그러나 사용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엄연히 과잉 규제다. 같은 논리로 양의의 한의의 맥진을 이용해 환자를 진단한다고 해서 우리가 반대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확실하다. 한의원은 엄연한 1차 의료기관이다. 수십만원 짜리 약을 팔며 보양 쪽에만 치중하던 때는 옛말이다. 한의원도 건강보험공단이 지정한 수가에 따라 정해진 의료행위를 수행하는 의원이며 그 수는 전체 의료기관의 3분의 1에 달한다. 그런 기관이 간단한 진단장비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한의에 대한 대중의 의식도 문제가 될 듯하다. 특히 청년층은 한의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보인다."맞는 말이다. 한의학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은 다양한 원인이 있는데 지속하는 경제 위기로 의료시장 자체가 줄어든 점, 한의학 의료 수가가 지나치게 낮게 설정된 점, 정치적으로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관련 지원정책이 부재한 점이 대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것이 내부적인 문제다. 지금은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한의학의 주축이 보양에서 치료의학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다소 늦은 게 사실이다. 의료 환경 변화를 미리 예상하고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지금 맞은 위기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한의학도 양의처럼 제도권으로 편입해 급여 체계를 확실히 하고 의료행위의 다양화를 꾀했어야 했는데 이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다. 이에 젊은 세대는 아직 한의원에 가는 것이 치료가 아닌 보양이고, 비싼 돈이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대중의 인식 전환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한의사회도 다양한 자구책을 준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교의(校醫), 즉 스쿨닥터다. 한의사 한 명이 한 학교를 전담해 염좌와 타박상, 생리통 등 한의학이 강점을 보이는 분야와 금연침, 비만 관리 등 청소년 건강 관리에 필요한 한의학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의 학생들이 자라서 몸이 아파 병원을 찾을 때 한의원을 떠올리길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때문에 의료봉사와 함께 학생들에게 한의학에 대한 기억을 자연스레 심어주자는 것이다. 올 하반기에 경기도 노인복지기금공모사업을 통해 경로당에 한의사가 방문, 한의상식을 전해주는 사업이 벌이는데 같은 취지다. 그간 한의학계에서 부족했던 것은 환자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다. 때문에 다양한 사업을 통해 환자들을 직접 대하고, 이를 통해 치료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을 더욱 널리 알릴 생각이다."-3년 임기 중 2년 차에 접어들었다. 구상한 사업의 진행 상황과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남은 임기 중 가장 큰 목표는 한의학이 공공의료에 한발 더 다가가는 것이다. 우선 군의관이나 공공기관 상주 의사를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도청의 경우 직원들의 질환을 전담하는 한의사가 지정돼 있는데, 사무직 근무로 인한 통증 질환이 늘어나는 추세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 호응이 매우 좋다. 최근 의정부 도 북부청사에 전담 한의사가 새로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맥락으로 군이나 교정시설, 각 보건소 등에 한의사가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면 국민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고 한의학의 위상도 다소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의료분야에서 역점을 두는 사업이 있다면…."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이 한의학 난임치료사업이다.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한의학적 치료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수원과 성남 등 일부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한의학 난임치료는 양의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좀 더 많은 환자들이 복지정책의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수원에서 실시한 한의학 난임치료사업에서 28명의 환자 중 11명이 임신에 성공하는 등 효과도 입증됐다."-회원들인 한의사들의 요구도 많을텐데."지나치게 낮게 책정된 한의 의료 수가를 정상화하는데 회원들의 관심이 높다. 현재 성인 환자가 허리에 침을 맞고 뜸과 부항치료를 받을 경우 수가는 7천 원 남짓에 불과하다. 한의원을 자주 찾는 65세 이상의 고령 환자의 경우 수가는 1천500원 가량으로 더욱 낮다. 이런 상황에선 새로 개업하는 청년 한의사들이 희망을 갖고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물론 수가가 정상화 되는 만큼 한의원도 처방을 통일하고 제도권 의학으로 편입하는 노력이 좀 더 필요하다. 처방 통일 등은 다수의 한의사들이 이미 공감대를 형성한 상황이라 보건복지부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다."박 회장은 지난 달 아프리카 최빈국으로 꼽히는 시에라리온 공화국에 다녀왔다. 국제평화의료재단과 함께 현지에 병원시설을 세워주기 위해서다. 이뿐 아니라 한의사들로 구성된 해외 의료봉사 단체 '콤스타'는 라오스와 필리핀 등 각국을 다니며 한의학을 통한 의료의 손길을 널리 뻗치고 있다.박 회장은 의료기반이 약해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곳일수록 한의학의 강점이 더 크게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 환자들은 대부분 근골격계 질환이나 소화계통의 불편을 호소하는데 의료장비와 약물 등이 필요한 양의와 달리 침과 뜸, 부항 등 한의기구는 편의성이 뛰어나 더 많은 환자에게 수혜를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이다.그는 "양의의 강점이 두드러지는 분야가 있는 반면 한의가 빠른 효과를 낼 수 있는 영역도 있다. 이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되는 것이 바로 국민이 원하는 바 아니겠느냐"며 "앞으로도 공공건강을 위해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한의학의 달라진 면모를 보이기 위해 노력하겠다. 꾸준한 관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박광은 경기도한의사회장은?-1983년 대구 성광고등학교 졸업-1989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1998년 경희대학교 한의과박사 학위 취득-1999년 포천중문의대 한의학 주임교수-2015년 경기도한의사회 회장 취임-2016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글/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중요한 것은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느냐입니다. 진단 방식에 구분을 두는 것은 과잉규제에 불과합니다." 27일 오후 5시께 박광은 경기도한의사회장이 성남시 분당구 자신의 진료실에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있다.지난달 8일 의료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공화국을 방문한 박광은 경기도한의사회장이 국제평화의료재단과 함께 건립한 공공병원 준공식에 참석한 현지 어린이를 안고 웃고 있다. /경기도한의사회 제공

2016-06-28 권준우

[인터뷰… 공감] 남창수 경기남부보훈지청장

신도시 건설등으로 보훈대상자 '증가세' 현 9만9천여명 인프라 확충 시급지자체 재정따라 지원 격차 형평성 논란… 정부 보조·참전수당 증액 나서야고엽제등 고통 국가유공자 서울·대전 원정치료 '불편' 도내 특화병원 필요남부지청 행정수요 '전국 두배' 과다 통합·승격등으로 맞춤서비스 제공을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쟁점은 국가유공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혜택 등이 어느 정도까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인가다.최근 경기도는 도내 국가유공자 가운데 차상위계층에게 월 10만원씩 생활보조수당을 지급한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수혜자 수와 소요액조차 파악하지 못해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또 도내 일부 지자체에서 자체 재원으로 국가유공자에 대한 지원금을 지급하거나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별다른 기준이 없어 지급액이 천차만별이라는 형평성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이와 함께 경기지역의 경우 수원, 시흥, 하남 등 도내 17개 지자체를 담당하는 경기남부보훈지청에만 전국 보훈대상자의 13%가 거주하고 있다. 또 신도시 개발 등으로 신규 유입되는 보훈대상자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경기남부지청은 상급기관인 지방청과 달리 자체 예산 집행이 불가하며 1인당 보훈대상자가 가장 많아 보다 효율적인 유공자 관리를 위해 지방청 승격이 절실한 실정이다. 특히 국가유공자들의 평균 나이는 87세로 고령화되고 있어 전문적 의료 서비스를 위한 도내 보훈병원 신설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남창수 경기남부보훈지청장을 만나 국가유공자 예우와 지원에 대한 현주소와 방향, 과제 등을 들어봤다.남 지청장은 "보훈대상자에 대한 복지 수준이 높아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지자체별 형평성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지청 관내에 보훈병원 신설 역시 시급하다고 역설했다.■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 보편적 지원 과제 어떻게 풀어야 하나.국가유공자들은 국가에서 지급하는 수당 외에 지자체로부터 참전수당(참전유공자 대상)이나 보훈수당(보훈대상자 대상)을 매달 일정 금액씩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수당 액수는 지자체의 재정 형편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경기도에서도 전국 최초로 도내 국가유공자 가운데 차상위계층(50% 이하)에게 월 10만 원씩 생활보조수당을 지급한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정확한 수혜자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남 지청장은 "재정이 상대적으로 넉넉하거나 관내 보훈 대상자 수가 적을수록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수당 액수가 큰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경기남부보훈지청을 비롯한 지방보훈청 등에서도 전체적인 지원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 때문에 국가보훈처 등 국가에서 지원이 적은 지자체에 일부 예산을 보조하거나, 국가에서 참전 유공자에게 지급하는 참전 수당 자체를 우선 증액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남 지청장은 "지자체에 수당 액수를 늘리거나 사망위로금·의료비·장례보조비 등 별도의 수당을 신설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나 지자체 형편이 달라 한계가 있다"며 "전체 복지 수준이 상향 평준화가 되도록 맞춰가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늘어나는 보훈 가족에 대한 최우선 과제는.지난 4월 기준 9만9천219명의 보훈대상자가 수원, 용인, 하남 등 경기 남부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특히 신도시 건설 등으로 경기지역에 유입되는 보훈 대상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보훈대상자에 대한 복지 인프라 확충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 지청장은 보훈병원 설립 등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고엽제 등으로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겪고 있는 국가유공자를 위한 전문 병원이 없어 서울과 대전 등 인근 보훈병원으로 장거리 치료를 가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남 지청장은 "보훈병원이 없어 도내 일반 병원을 위탁 병원으로 지정해 선 치료, 후 지원을 하고 있으나 접근성이나 전문성을 높이려면 국가 유공자들의 의료 수요에 특화된 병원이 필요하다"면서도 "병원 설립을 위한 예산 확보 등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이에 따라 경기남부보훈지청은 지역 사회에 보훈 병원 설립에 대한 필요성을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해 예비타당성 조사 등을 위한 재원 마련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남 지청장은 보훈병원이 들어설 경우 랜드마크 역할은 물론 지역 경제 발전에도 긍정적인 견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남 지청장은 "인천에서 건립 중인 보훈병원 설립 사례를 살펴보면 지역 주민, 시의회, 시, 보훈 관련 단체 등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병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갖고 꾸준히 필요성을 제기했기 때문에 추진할 수 있었다"며 "도내 보훈병원이 설립되면 국가유공자들이 보다 가까운 곳에서 전문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데다 병원을 이용하는 유동 인구가 늘어나면서 주변의 지역 경제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보훈 가족 수가 가장 많은 경기지역, 효율적 보훈서비스를 위한 해법은.남 지청장은 늘어나는 보훈대상자의 보훈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경기남부보훈지청의 몸집도 커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남 지청장은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보훈 대상자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하고 형평성을 맞추려면 서울과 경기인천지역을 분리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경기도 등 관련 단체와 긴밀하게 협조하기 위해서도 대외 위상에 걸맞은 조직 규모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실제 경기남부보훈지청 관내에 근무하는 보훈 공무원들은 1인당 행정 대상 수가 과다해지면서 업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보훈 공무원 1인당 행정 대상자는 전국 평균 2천887명이지만 경기 남부지역은 4천538명으로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남 지청장은 "경기남부보훈지청에서 관할하는 면적과 행정 대상 수를 고려하더라도 다른 지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며 "특히 경기지역에 보훈 대상자 수가 매년 늘고 있어 행정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이에 따라 남 지청장은 경기남부보훈지청을 인천보훈지청과 경기북부보훈지청을 통합해 중부(경기)지방보훈청으로 승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서울지방보훈청에서 분리 독립해 경기인천지역에 거주하는 보훈 대상자들에게 맞춤형 보훈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청사진이다.남 지청장은 "지방청으로 승격될 경우 추가 예산 확보나 집행도 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추진 중인 취업 지원, 현충시설 관리 등의 사업도 더욱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경기인천지역에 거주하는 보훈대상자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로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창수 경기남부보훈지청장은-1965년 6월 16일 출생-건국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석사 수료 -1990년 행정고시 제33회 -1991~1997년 국가보훈처 기획관리관실 법무담당관, 심사정책과-1997년 국가보훈처 보훈관리국 심사정책과(서기관 승진)-1998~1999년 광주지방보훈청 지도과장, 목포보훈지청장-2001~2003년 광주지방보훈청 익산보훈지청장-2003~2005년 국가보훈처 기획관리실 기획재정담당관-2005년 국가보훈처 공보담당관(부이사관 승진)-2005~2009년 국가보훈처 대변인, 운영지원과장, 기념사업과장-2009~2012년 국립대전현충원 관리과장, 현충과장-2012년~2015년 국가보훈처 기획조정관실 규제개혁법무담당관-2015~현재 경기남부보훈지청장글/김대현·조윤영기자 jyy@kyeongin.com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남창수 경기남부보훈지청장이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를 위한 보훈병원 설립과 복지 상향 평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2016-06-21 조윤영·김대현

[인터뷰… 공감] 조윤길 옹진군수

NLL 대응 어려운점 노려 中어선 불법조업치어 싹쓸이·어구 손실… 피해액 248억 넘어단속 강화·방지 시설·조업구역 확대 요구군사적 민감한 곳… 해군·해경 대처 중요서해주민 해상교통 인프라 정부지원도 절실'오죽했으면…' 이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지난 5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우리 어민들이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어선 2척을 나포한 사건을 두고 하는 얘기다. 황금어장을 눈 뜨고 빼앗긴 어민들이 얼마나 화가 치밀었으면 중국어선을 직접 붙잡았겠느냐 말이다.연평도 등 서해 5도를 비롯한 인천 섬 지역 행정수장인 조윤길 옹진군수를 14일 연평도에서 만났다. 연평도 중국어선 불법조업 근절 방안을 중앙정부와 국회에 건의하기 위해 어민들의 의견을 물으러 가는 길이다. 그는 이날 오전 8시 인천항에서 행정선을 타고 연평도로 가는 내내 중국어선들의 횡포에 대해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서해 최북단을 지키며 사는 주민들은 섬에 사는 것이 '애국'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국가가 우리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애국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조윤길 군수는 "정부가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을 막아주지 못하면 우리 어민들은 이제 살 수가 없다"며 "이제라도 우리 해군과 해경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중국어선의 불법조업으로 인한 피해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일단 우리 연평도 꽃게 생산량이 얼마나 줄었는지부터 설명하겠다. 연평도 꽃게는 2011년 2천255t이었다가 2013년 1천8t으로 절반가량 줄어들더니 올해는 5월 기준 겨우 52t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150t에서 3분의 1로 줄어버린 것이다.꽃게라는 것이 보통 한 해 많이 잡히면 다음 해 조금 잡히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경향이 있긴 한데, 지금은 잡아들이는 양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중국어선이 와서 조업하는 바람에 우리 어민들이 잡아들일 꽃게가 없는 것이다.중국어선에 의한 우리 어구 피해도 심각하다. 2014년 백령도와 대청도 어민들이 설치한 통발 어구 778틀이 중국어선에 의해 사라진 적이 있었다. 이때 우리 어민들이 손해 본 금액만 100억원이 넘는다. 중국어선이 통발이며 홍어 잡는 주낙이며 다 쓸어가는 바람에 어구도 잃고, 새로 어구를 사들여 다시 설치하는 동안 조업도 못 하고 이중고를 겪는 것이다. 현재 우리 옹진군이 추산한 피해액만 2008년부터 지금까지 248억3천만원에 달한다.우리 어민들은 수산자원 보호를 위해 정해진 어구로만 조업해야 하지만, 중국어선들은 저인망 쌍끌이로 마구잡이 어업을 한다. 배 두 척이 그물을 달고 나란히 달리면서 바다 밑바닥을 훑고 지나가는 것이다. 어린 꽃게, 치어, 조개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아무리 치어를 방류하면 뭐하나. 중국어선이 다 잡아들이는데. 단순히 우리 자원을 훔쳐가는 것뿐 아니라 해양생태계까지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구 파손과 조업 손실로 인한 피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대책이 필요하다."-연평 어민들이 중국어선을 나포하게 된 배경은."연평도 어민들은 정해진 구역 내에서만 조업할 수 있다. 연평도 남쪽 해역에 지정된 삼각형 모양의 어장 800㎢ 이내에서만 조업해야 하고 여기를 벗어나면 즉시 제재를 당한다. 특히 우리 어선이 서해북방한계선(NLL)을 넘어가면 군사적 마찰까지 빚어질 수 있는 매우 민감한 해역이다.중국어선은 이 점을 노렸다. 이들은 NLL 북쪽에 배를 정박하고 기회를 엿보다가 기상악화나 야간을 틈타 남쪽으로 내려와 마구잡이 조업을 벌였다. 이들이 불법조업을 하는 해역은 우리 어민은 갈 수 없는 곳이다. 중국어선은 한꺼번에 많게는 400~500척씩, 적게는 200~300척씩 대규모 선단을 이뤄서 나타난다. 접경지역이라 우리 군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가 없다. NLL북쪽으로 넘어가면 쫓아갈 수가 없다. 눈 뜨고 당한다는 얘기다.이번 중국어선 나포사건도 여기서 비롯됐다. 우리 어민들은 아무리 꽃게가 잡고 싶어도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중국어선들은 제집 드나들듯이 들어와 조업하니까 화가 안 나겠느냐. 꽃게 안 잡히는데 눈앞에 중국어선이 보이니까 참다참다 못한 어민들이 그만 '성질이 나서' 중국어선을 잡아온 것이다. 우리 어민이 중국어선 나포할 때 조업구역을 이탈했느니 뭐니 말이 많은데 우리 어민들한테는 그렇게 엄격하면서 왜 중국어선을 내버려 두었느냐부터 고민해야 한다."-중국어선 불법조업 방지를 위한 대책은 있나."우리 옹진군과 어민들이 가장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은 단속강화와 불법조업 방지시설 설치, 조업구역 확대다. 현재는 중국어선 조업 동향에 따라 해경 경비함정과 특공대가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연평어장에는 상·하반기 조업철에 해수부 어업지도선이 투입되고 있지만, 우리 어선에 대해 안전조업지도 업무를 수행할 뿐이다.불법조업 발생시 신속하게 대처하고 우리 어민의 안전을 지키려면 서해5도 NLL 해역을 전담하는 경비부서 신설이 필요하다. 또 군사적으로 민감한 해역에서 작전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해군의 적극적인 협조도 중요하다.서해5도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임에도 어업지도는 지방자치단체 사무라는 이유로 정부의 외면을 받고 있다.다음으로 중국어선이 아예 우리 어장에서 조업할 생각을 못하도록 어장 주변에 불법조업 방지시설을 설치하는 것이다. 쇠로 된 시설물인데, 그물이 닿으면 찢어져 조업을 하지 못한다. 백령·대청·연평어장 400㏊에 이 시설물을 설치하려면 200억원 정도 든다. 해수부에서 2013년, 2015년 대청·소청도 동측 해역에 시설물을 설치했지만, 면적이 작아 큰 효과는 없다. 정작 필요한 곳은 NLL 인근 해역이나, 대북 관계 때문에 국방부가 설치에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인공어초 기능을 겸한 방지시설물을 설치하면 불법조업 예방과 수산자원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조업구역 확장과 조업시간 확대도 검토해야 한다. 우리 어장을 늘리면 중국의 불법조업 구역이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고, 어민들의 심리적 박탈감도 해소할 수 있다. 안보문제로 어렵다면 꽃게와 까나리 조업시기에 한해 한시적으로 어장을 늘리거나 조업 시간이라도 늘려야 한다."-불법조업 문제 외에도 서해 최전방을 지키고 사는 주민들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가장 시급한 문제는 주민들의 이동권이다. 섬을 오가는 방법은 여객선밖에 없는데, 육상교통과 비교하면 상대적인 차별을 받고 있다. 고속철도와 도로를 건설하는 데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해상 교통 인프라에는 인색하다. 백령도 왕복 승선권이 13만원으로 제주도 가는 것보다 비쌀 때가 있다. 여객선도 정기 항로로 공공을 목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준공영제 도입 등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수산물 가공사업의 경우 다른 보조사업에 비해 자부담 비율이 높아 영세한 우리 어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어업인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수산물 가공·유통사업비 지원이 절실하다. 이번 중국어선 나포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서해5도의 각종 현안이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윤길 옹진군수는?- 1949년 7월 4일 옹진군 백령면 출생- 남포초등학교- 백령중학교- 경기수산고등학교- 인하대행정대학원(고위행정연구과정) 수료- 한국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 재학중- 1971년 옹진군 송림면 지방행정서기보- 1979년 경기도 기획담당관실- 1995년 옹진군 기획실장(옹진군 인천시로 편입)- 2004~2006년 인천광역시 공보관, 자치행정국장- 2006~현재 민선 4·5·6대 옹진군수 글/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 사진/옹진군 제공조윤길 옹진군수가 지난 14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을 막아주지 못하면 우리 어민들은 이제 살 수가 없다"며 "이제라도 우리 해군과 해경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6-06-15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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