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 김현미 20대 국회 신임 예결위원장

'400조 심의' 헌정사상 첫 여성의원 선출 화제… 일자리·중기·자영업자 지원 우선정부의 복지사업 예산 지자체에 떠넘기는 '지방재정 개편안' 바람직하지 않아누리과정 문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23%까지 올려놔야… 현실적 해결 노력제20대 국회에서 400조원에 달하는 나라살림을 심의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장에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의원이 선출돼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3선 중진으로 국회 짬밥이 많은 사람이어서 별 화제가 안될 것 같지만 남성 중심의 정치구도에서 여성의 섬세함까지 발휘할 수 있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어 관심도가 더 높다. 고양정 선거구에서 3선에 성공한 더불어민주당 김현미 의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정치권에선 그를 두고 섬세하면서도 담대한 정치인으로 꼽는다. 음해와 거짓·모략이 판치는 정치 야전에서 잔뼈가 굵었고, 그런 만큼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최초'라는 몇 개의 정치적 수사를 만들어 낸 인물이기도 하다. 이번에 최초 예결위원장을 맡은 그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대변인과 여성 최초 정무2비서관을 지낸 이력도 있다. 당내에서는 오랜 당직 경험과 청와대 등 정무적 판단능력이 뛰어나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고 평가를 하지만, 악바리(?)와 같은 근성을 통해 갖게 된 담력과 섬세함이 지금의 '김현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그의 성공은 실패에서 시작됐다. 17대 총선을 통해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그는 18대 총선에서 경기도로 내려왔지만 낙선했다.18대 총선에서 고양 일산서구에 나섰다가,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대표를 지낸 바 있는 4선의 김영선 전 의원에게 낙선해 4년간 와신상담(臥薪嘗膽)을 해야만 했다.당시 그는 "총선에서 낙선해 쉬는 동안 새누리당이 강세인 일산서구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4년간 아파트 주민들은 물론, 노인정·마을회관 등을 틈틈이 찾아 주민들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정책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진정성을 얻게 돼 오늘의 영광이 있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지난 19대 국회에선 4년 내내 기획재정위 위원으로 활약해 정부의 예산흐름을 꿰차게 됐고, 예결위 계수조정소위 위원으로도 참여해 경기도 국비예산확보에도 성과를 보여줬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연세대 동문인 그는, 야당이면서도 남 지사와 연대를 꾀하면서 예산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그런 그의 예결위원장 수락 일성은 서민과 일자리, 중소기업, 자영업자를 위한 활동에 매진하겠다는 것이었다.14일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646호실에서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서민들에게 온기가 전해질 수 있는 (정부) 예산안 마련을 실현하겠다"며 자신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 예산안은 서민들을 위한 정부의 정책의지가 돈으로써 표현된 것"이라며 "현재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해 서민과 청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힘든 삶을 올해 예결위 활동을 통해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서민경제가 어려운 만큼 서민을 위한 정책과 제도와 함께 따뜻한 예산을 꾸려 좀 더 나은 국민들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그러면서 김 예결위원장은 정부와 여당·야당 모두 합의할 수 있는 정부예산을 마련한다는 데에 방점을 두고 활동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특히 김 예결위원장은 "국회 선진화법상 12월2일까지 합의를 못하면 정부 원안이 자동상정되지만, 야당이 반대하면 부결된다. 그게 19대 국회와 이번 여소야대 국회의 근본적 차이"라며 "정부나 여야 어느 쪽도 일방적으로 뜻을 관철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 예결위 간사들이 합의하지 않으면 예산안 처리가 어렵다. 진짜 고차방정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여야 정부 간 합의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 내는 '중재력'이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본다"고 부연했다.이번 4·13 총선의 민심이 김 예결위원장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심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당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수도권 의석의 상당수를 더민주가 차지할)정도까지는 상상조차 못한 민심의 변화(정부·여당을 향한 불만)가 있었다"고 말했다.때문에 예결위원장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구 예산보다는 청년 일자리와 중소기업·자영업자 지원, 지방재정 확충을 위한 예산편성을 우선시 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김 위원장은 "많은 지역구 의원들이 예결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가와 지역 중 어느 것을 우선시 한 예산편성을 할지 딜레마에 빠진다"며 "예결위원장이라고 우리 동네만 챙기면 '형님 예산' 논란이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 동네 분들이 좋아할지 모르지만, 국가적으로 봤을 때는 옳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네(지역구)를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국가직을 맡은 만큼 서민경제를 살린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임할 것"이라며 "사업이라는 것도 순서가 있으니 순서에 맞게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여의도 정치권에서의 화두인 협치(協治)에 대한 입장도 개진했다. 그는 "20대 국회 예결위는 정부와 여야가 모두 합의해야만 하기 때문에 협치가 잘 되면 성공이지만, 반면 그게 안되면 파행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며 "협치가 가장 필요한 분야가 바로 예결위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전했다.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 추진작업에 대해선 일단 반대 의견이다. 김 예결위원장은 "19대 때 지방세법 개정안 등 지방재정 확충을 위한 법안을 제출한 바 있는데, 현 정부에서 복지사업을 많이 하면서 해당 예산을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다"며 "하지만 지자체는 돈이 없고 이 때문에 굉장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경기도내 6개 불교부단체(수원·성남·고양·용인·화성·과천)는 인구 대비 복지사업도 엄청나게 추진되고 있는데, 일부 도시 몫을 떼어 다른 지역에 나누겠다는 (정부의 방침)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의사를 표명했다. 아울러 "복지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인구가 많은 도시라고 해서 지자체의 의견도 청취하지 않고 (지방재정 개편 작업을)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예결위 차원에서도 기획재정위와 안전행정위 등과 원활히 협조해 잘 풀어나가겠다"고 공언했다.경기도의 또 다른 현안과제인 누리과정 문제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언급했다. 김 예결위원장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현행 20.26%를 23%정도 까지는 올려놔야 누리과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올 예결위 활동을 통해 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김현미 예결위원장은?- 1962년 11월 29일 전북 정읍 출생- 전주여고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 정무2비서관- 열린우리당 대변인·경기도당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정책수석부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비서실장- 국회 세월호 침몰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간사- 국회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구간 정상화 대책위원회 간사- 민주정책연구원 이사 겸 부설 시니어연구소 소장- 19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전반기)- 17·19·20대 국회의원 (고양정) 글/송수은기자 sueun2@kyeongin.com · 사진/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김현미 의원실 제공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예산결산특별위원장에 오른 더불어민주당 김현미(고양정) 의원은 14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따뜻한 예산'을 화두로 던졌다. 그는 팍팍한 살림의 서민들이 행복해지고, 위기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고, 흔들리는 지방자치의 근간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임기 중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전했다.

2016-06-14 송수은

[인터뷰… 공감]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반기문 총장 대선 염두 행보 아쉬워… 남경필 경기도지사 연정은 훌륭한 시도'통일·연대에 대한 관심' 김포는 통일한국의 정치행정수도 될수있는곳 '의미'이장·군수·도지사·장관·대선 경선까지… 지역주의 타파 '리틀 노무현' 별명"대통령은 하늘이 내리는 자리" 도와줄 사람·정책 준비된다면 결심할수도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노력해 성공한 사람에 대해 우리는 흔히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이라는 표현을 쓴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김포갑) 의원은 아마 이런 단어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장에서 출발해 남해군수, 경남도지사, 행정자치부장관을 역임하고 대선까지 도전했던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쳤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4번 낙선하고 5번 만에 당선돼 말 그대로 4전5기의 승리를 거뒀으니 말이다. 이제는 김포지역에서 통일과 그 이후의 그림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그를 만나 20대 국회의원으로서의 정치적 포부를 들어봤다.-민심은 총알보다 빠르다김두관 의원은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4·13총선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아마도 너무 힘겹게 국회의원에 당선됐기 때문일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가 이장과 군수를 거쳐 도지사, 행자부장관까지 거치는 동안 승승장구 해왔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의 선거 승률은 채 절반이 안됐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제가 실패한 게 별로 없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난 그동안 선거를 총 12번 치렀다. 남해군수 선거에서 2번 이겼고,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경남도지사, 그리고 20대 국회의원 당선까지 총 5번 승리했다. 반대로 도지사 선거 2번, 국회의원 4번, 대선 경선까지 총 7번 떨어졌으니 선거 승률은 40% 정도 된다. 특히 1988년 13대 총선 당시 남해·하동군 선거에서 민중의당 후보로 첫 국회의원에 도전한 뒤 17대, 18대, 2014년 7·30 김포 보궐선거까지 내리 실패하고 올해 4·13총선에서 승리해 국회 문을 두드린 지 28년 만에 당선된 것이다."패배의 아픔을 많이 겪은 탓인지 그는 나름대로의 선거 철학이 있다. "링컨은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고 했다. 이 말을 김두관식으로 살짝 바꾸면 '투표는 총알보다 빠르고, 투표보다 더 빠른 것은 민심'이라고 할 수 있다. 4·13 총선 한 달 전쯤 김포 유권자들은 누구를 찍을지 마음속으로 다 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등을 보고 선거에서 이겼다고 자만하는 순간 민심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후보자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도 선거 전날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김포를 지역구로 선택한 과정에 대해 김 의원은 "개인적으로 '통일'과 '연대'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김포가 굉장히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곳을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7·30 보궐선거 당시 처음 김포 지역구에 도전했었는데, 김포는 향후 통일 한국의 정치행정 수도가 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 제일 남쪽인 남해에서 왔고, 이제는 분단 지역에서 제일 북쪽인 김포에 와 있다. 평소 통일문제와 관련된 특강에 나가면 마지막에 꼭 이야기를 하는 게 있다. 저는 분단된 조국 가장 남쪽인 남해에서 태어났지만, 제 소원은 통일이 되면 함경북도 가장 북쪽인 온성에서 제 생을 마감하는 것이 꿈이라고.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김포는 매우 의미 있는 장소라고 생각한다."-이장과 군수, '리틀노무현'이 되기까지김의원은 자신이 '이장'을 역임한 것도 정치경험을 쌓기 위해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장이라는 자리가 마을에서는 꽤 중요한 자리이다. 이장은 주민과 행정기관의 연결고리다. 군정방침이나 도정방침은 최초로 마을 이장을 통해 주민들에게 전파되고, 이장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읍면동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공무원 출신은 아니지만 이장이 준공무원 성격을 갖고 있어서 행정 체계를 배우고 싶어 이장을 선택한 것이다. 결코 그냥 한 게 아니다." 남해군 이어리 이장을 거쳐 그는 1995년 민선1기 지방선거에 출마, 남해군수에 37세 최연소로 당선된다. 그리고 15년 뒤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 53.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경남도지사에 3번 도전해 겨우 당선된 것이다. "보통 도지사 선거에 한 번 떨어지면 다시 나오기 어렵다. 도지사 선거가 국회의원 선거의 10배 정도는 힘드니까.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호출해서 청와대에 갔더니 도지사 출마를 권유해 못하겠다고 했더니 '저랑 인연 끊을 거면 안 나오셔도 됩니다'해서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결과적으로 낙선했는데,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직 잘하고 있는 사람을 선거판에 밀어 넣은 대통령이 살짝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내게 노 대통령은 '단체장은 낙선을 해도 정치적 자산이 좀 남을 겁니다'라며 위로했다. 그리고 실제로 2010년에 도지사에 당선되고 나서 선거를 복기 해봤더니 노 대통령이 했던 말이 상당히 일리가 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그는 '리틀노무현'이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우리 둘 다 농민의 아들이고, 내가 지역주의를 극복하려고 도전하는 모습이 노 전 대통령의 그것과 닮았다고 생각한 거 같다. 그 별명이 고맙고 감사하면서도 노 대통령이 추구했던 가치나 철학을 제대로 승계하지 못한 것 같아서 부담도 된다." 한편 그는 자신의 좌우명을 소개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샘터'라는 잡지를 통해 송나라 유학자 육상산의 글을 읽게 됐다.'不患貧 患不均(불환빈 환불균), 백성은 가난한 것을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2017년 대선에 대해서 말하다내년 대선과 관련해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서 다소 비판적으로 이야기했다. "반기문 총장이 한국을 다녀가더니 대선을 염두에 두고 'TK(대구 경북) + 충청연합' 같은 표현이 언론에 등장하던데 이 얼마나 정치공학적이고 퇴행적인 사고인가.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불공평·불공정,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이런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집권자가 계속 바뀜에도 불구하고 해결은 안 되고 오히려 노인·청소년 자살률은 늘어만 간다. 반 총장이 정말 대선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런 문제가 왜 발생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먼저다. 그러지 않고 단순히 어디를 공략해서 어떤 표를 얻어야 하고, 정치 거물 누구를 만나는 식의 이런 사고는 완전 옛날 방식이지 않은가? 아무리 젊게 사고를 한다고 해도 원래 그분이 자라온 환경과 세대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 또 전문관료생활을 이어온 분이시고, 정치를 쭉 해오던 분이 아니셔서 (대선출마에는)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반면에 또 다른 대권 후보인 남경필 경기도지사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다. "경기도 연정의 성과는 세세하게 모르겠지만 남 지사가 하는 연정 방식은 여야간의 대연정으로 훌륭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독일이 통일과정에서 기민당과 사민당이 정당을 초월해 초당적 협력을 했듯이 지방자치에서는 꼭 필요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극우나 극좌적 시각으로는 국정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머리를 맞대 국가는 계속 발전해야 하고 개인은 행복해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1천300만 경기도에서 선도적으로 연정시도를 하는 남지사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의원은 본인의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상당히 말을 아꼈다. "2012년 독일에서 연수를 할 때 유럽사회를 한 바퀴 돌아보니까 시대정신, 역사적 과제, 이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과 정책이 준비 된다면 (대선출마)결심을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정치인 중에 대권과 당권에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조건이 안되고 상황이 안 돼서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지사나 국회의원까지는 자기노력으로 할 수 있는 자리지만 대통령은 '하늘이 내리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김포시민들을 위해 그동안 밀린 숙제를 하고 싶다. 김포시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겠다. 총선 출마 때 내세웠던 공약의 최소한 60~70, 많으면 80%까지 이행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래서 상임위도 국토위에 가는 거다.(웃음)"■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은-1958년 10월 23일(음력) 경남 남해 출생 -1977년 남해종합고졸-1987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졸 -1987년 남해농민회 사무국장-1988년 남해군 이어리 이장 선출 -1989~1995년 남해신문(주) 대표이사 사장 겸 발행인·편집인 -1995~2002년 경남 남해군수(민선 1·2기) -2003년 행정자치부 장관-2005~2006년 대통령 정무특보-2006년 열린우리당 최고위원-2010~2012년 경남도지사-2016년 제20대 국회의원(김포갑) 대담/김학석 정치부장·정리/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사진/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올해 4·13총선에서 승리해 국회 문을 두드린 지 28년 만에 당선된 김두관 국회의원이 "총선 출마 때 내세웠던 공약의 최소한 60~70%, 많으면 80%까지 이행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포부를 밝히고 있다.

2016-06-07 김선회·김학석

[인터뷰… 공감] 가수 김장훈

2년 전 남수단 축구대표팀과 인연 맺어리우올림픽 조직위임원으로 선수단 입장한국인의 '외국인 사랑' 꼭 전하고 싶어독도 지킴이·나눔 끊임없이 이어갈 것"얘들아 사진찍자, 나 초상권 없거든"가수 김장훈은 동네 아저씨다.동네꼬마들이 '김장훈이다'라고 외칠 때면 다가가서 사진을 함께 찍는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작은 하트를 만들며 윙크를 한다. 연예인이라면 팬들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조심스러운 행동을 보여야 하는데 그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의식을 즐기는 연예인 같다. 그런 김장훈이 오는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한다. 선수가 아닌 대표자격이란다. 그의 기막힌 올림픽 출전 사연을 들어보자.지난달 23일 김장훈을 만났다. 그는 단정한 외모로 기자를 만나자마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를 요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고 말이다.대부분의 연예인은 인터뷰를 요청하면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다. 하지만 김장훈은 바로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는 나를 전국에 알리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저는 인터뷰를 원하면 어디든지 달려갑니다." 동네 아저씨다운 말투다.김장훈은 2년 전 내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남수단을 돕기 위해 케냐에서 임흥세 남수단 축구대표팀 총감독을 만났다. 그는 그곳에서 새로운 나눔 프로그램을 계획했고, 지난 4월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그것은 바로 평화콘서트였다."2년 전 아프리카 돕기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케냐에 처음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임흥세 남수단 축구대표팀 총감독님을 우연히 만나게 됐고, 내전으로 희망을 잃은 남수단 시민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고자 임 감독님과 뜻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지난 4월 9일 남수단의 수도 주바의 농구경기장에서는 김장훈의 평화콘서트가 열렸다. 당시 3천여 명의 시민이 이곳에 모여들었고, 김장훈은 '난 남자다', '내 사랑 내 곁에'에 이어 현지 뮤지션 오루파프와 함께 '아리랑'을 열창했다. 당시 분위기는 말 그대로 뜨거웠다."기온이 45도를 오르내리는 등 무더운 날씨였지만, 눈시울이 날 정도로 한국과 남수단의 화합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정말 대단했지요. 하지만 저는 남수단 시민들에게 '이곳에 원조(Aid)하러 온 게 아니다'고 했습니다. 평화콘서트의 슬로건도 '전쟁을 멈춰라. 총을 내려놔라'로 정했습니다. 남수단에서 평화의 노래가 의미 있다고 생각했고, 콘서트 1주일 전부터 아프리카어(여러 부족에서 사용중인 언어를 합친 남수단어)로 노래를 배워 현지어로 불렀습니다. 저는 원조라는 말이 싫습니다. 지구촌은 한가족인데, 뭐가 필요하겠습니까."김장훈이 이번에 콘서트를 연 것은 남수단 사상 첫 올림픽 출전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오랜 내전 끝에 2011년 독립한 남수단은 2년 만에 다시 내전을 치르는 아픔을 겪었다. 이 신생국은 지난해 8월 '축구 선교사' 임흥세 축구대표팀 총감독의 도움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206번째 국가로 가입해 올림픽 참가 자격을 얻었다. 남수단올림픽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게 된 임 감독은 축구·농구·핸드볼·배구·탁구·육상·태권도·유도·권투 등 9개 종목 지역협회를 설립하고 서류를 꾸미는 등 남수단이 IOC 회원으로 가입하는 데 필요한 절차 대부분을 도맡았고, 마침내 성사시켰다.임 감독에 대해 김장훈은 말 대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임 감독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힘든 나라인 남수단에서 어느 날 갑자기 총에 맞을 수도 있는데, 축구를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사실만으로 놀랍고 존경스럽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분이 있다는 게 믿어지십니까."김장훈과 임 감독의 남수단 사랑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들은 서울시체육회의 도움과 자비를 들여 지난 5월 남수단올림픽위원회 소속 스포츠지도자 등 19명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이어 5월 6일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특별한 애국가를 불렀다. 애국가에는 김장훈과 남수단 올림픽 국가대표 코치진이 함께했다."한국에서 지도자들을 남수단으로 파견하는 것은 비용적인 문제가 있어 한국으로 남수단 코칭스태프를 데려왔습니다. 남수단은 올해 리우 올림픽에 처음으로 참가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야구장을 방문했습니다. 저는 원래 두산 베어스 팬인데, 이날은 kt 프런트 분들이 잘 해주셔서 수원에서 부르게 됐습니다."물론 남수단 지도자들도 애국가를 제창했다. "연습할 시간은 없었는데, 후렴구를 따라 부르도록 영어로 철자를 맞췄지요. 그런데 앞 열에 서 있던 4명이 '무궁화 삼천리'를 불러야 하는 순간에 '동해 물과 백두산'을 부르는 게 아닙니까. 얼마나 웃겼는지. 무사히 애국가를 불러 다행스러웠습니다. 지도자들도 난생처음 야구장을 봤다는 점에서 매우 재미있어 하더군요."임 감독과 김장훈은 2016년 리우올림픽의 개·폐막식에서 남수단 올림픽 조직위 임원으로 선수단과 함께 입장한다. "연예인 최초로 다른 나라 임원으로 올림픽 개막식에 나간다는 점에 저도 놀라웠습니다. 모두 임 감독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내서라도 꼭 올림픽에 참가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선수단 여러분께는 죄송스럽지만, 남수단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이번 올림픽에 꼭 참가해 한국인의 외국인 사랑을 전파하겠습니다."김장훈은 야구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야구 불모지인 아프리카에 야구장 건립과 장비후원, 지도자 파견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앞으로 아프리카 전체에 대한민국 스포츠를 전파할 계획도 세웠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축구 뿐 만 아니라 야구도 아프리카에 전파하고 싶습니다. 후원자를 모색해 야구 인프라 구축을 서둘러 볼 생각입니다."김장훈은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사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형님', '선배', '동생'이 아닌 모두를 '친구'로 부른다. "저는 사람들을 만날 때 나이를 따지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그 나라 말로 '친구'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늘 외국어를 배울 때 친구라는 말부터 배웁니다."물론 케냐에서도 그는 현지인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케냐에서도 꼬마 아이한테 '친구'라고 말했는데, 그 친구는 쓰레기장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 조금 친해졌는데 쓰레기 속에서 빵을 찾아서 건네 주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가장 큰 빵을 말이죠. 같이 간 사람들이 모두 말렸는데, 저는 그 친구의 성의를 봐서 먹었습니다. 질병이 있는 위험한 곳이었지만, 이래죽나 저래죽나 죽는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그냥 씹었지요."앞으로 김장훈은 새로운 앨범과 독도지킴이, 기부천사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소공연장에서 노래를 불러보고 싶습니다. 내년에 새 앨범을 들고 팬 여러분께도 찾아뵙겠습니다. 물론 독도지킴이와 나눔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당신들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리고 사진도 많이 찍어드릴 겁니다. 저는 초상권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문화와 스포츠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프리카 전 지역에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장훈. 뉴욕타임즈에 독도광고와 위안부 광고를 게재한 대한민국의 사나이. 그의 발걸음은 오늘도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달린다.■가수 김장훈-경력▲2015 바둑 홍보대사 ▲2014.06 코리아 승마 페스티벌 홍보대사 ▲2012.09 해양경찰 명예홍보대사 ▲2011.08 경희대 혜정박물관 홍보대사 ▲2011.06 나눔국민운동 홍보대사 ▲2011.04 경제총조사 홍보대사 ▲2009.09 세계소방관경기대회 홍보대사 ▲2008.05 반크 홍보대사 ▲2008.01 올림픽공원 홍보대사 ▲2007.12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 선정-수상▲2013 국민훈장 동백장·하이원 서울가요대상 공연문화상 ▲2012 세종문화상 국제협력봉사부문·미국 대통령 자원봉사상·밝은사회클럽 세계평화봉사대상 연예인봉사부문 ▲2010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나눔봉사부문·글로벌 피스 리더스 콘퍼런스 코리아 평화의 새 ▲2009 대한민국 나눔대상 통일부장관상·통일문화대상 화해협력부문·하이원 서울가요대상 공연문화상 ▲2008 잡지인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상·한국방송대상 가수상·촛불상 ▲2007 대한민국 국회대상 특별상·아산상 사회봉사상 ▲2002 기자들이 뽑은 2001년 최고의 선행 연예인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가수 김장훈이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문화와 스포츠로 우리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다"며 엄지를 치켜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06-01 신창윤

[인터뷰… 공감]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한중FTA·크루즈관광객 증가 '인천항 세계적 물류·해양관광 거점' 발전 전망섬관광 활성화 해수부서 적극지원… 동력 부족 덕적도 마리나 사업은 '아쉬움''내항 1·8부두 재개발' 워터프론트 접근보다 인천 아우르는 도시디자인 세워야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인천항이 세계적인 물류·해양관광 거점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중국과 인접해 있고 수도권을 배후에 두고 있어 그 위상과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983년 공직에 입문한 뒤 30여 년을 해운항만청 시절부터 해양수산부까지 부처의 주요 요직을 모두 거친 자타가 공인하는 '해양 전문가'인 김 장관을 24일 오전 세종시 집무실에서 만났다. 5월 31일 바다의 날을 1주일 앞두고 인터뷰에 응한 김 장관은 "수도권의 해양도시인 인천에 해양을 주제로 한 박물관의 건립이 필요하다"며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바다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인천항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인천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1988년도 서울올림픽이 개최될 때 인천항 영접본부장을 맡았다. 그때 당시 소련 선박인 '미하엘 솔로호프'호가 인천항에 입항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인천항은 내항 중심이었으나 이후 남항, 북항, 최근에 개장한 인천 신항까지 많은 발전을 이뤘다. 인천항은 중국과 인접해 있고 서울 등 수도권의 거대 경제권을 배후에 두고 있어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항만이다. 특히 한-중 FTA 체결, 전자상거래시장 확대, 중국 크루즈 관광객의 폭발적 증가 등에 따라 인천항의 위상과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에는 베트남 등 동남아와의 항로도 확대되고 있는 등 아시아역내 물류 허브로의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인천항은 이러한 여건에 맞추어 항로 증심준설, 크루즈부두 확충 등을 통해 세계적인 물류·해양관광 거점 항만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최근 '섬 프로젝트' 등 인천시의 섬관광 활성화 노력은 해양수산부의 해양관광과도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인천의 해양관광과 관련해 부족한 점과 필요한 것이 있다면."수도권의 섬관광을 활성화하는 것은 해양수산부가 지향하는 해양레저관광 활성화와 직결되는 것이다. 수도권에 위치한 인천은 168개의 수려한 도서를 보유하고 있어, 크루즈·마리나 등과 연계한 고부가가치 관광상품을 제공한다면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해양관광 활성화는 해양영토 차원에서도 중요하며, 해수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덕적도를 거점 마리나항만으로 추진하다가 동력이 떨어진 상태다. 다른 지역에서 활발하게 마리나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인천시나 옹진군에서 더욱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마리나와 크루즈는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가 되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인천 내항 1·8부두 재개발사업에 대한 의견은."인천 내항 1·8부두 재개발사업은 인천시·인천항만공사와 함께 사업성 제고방안을 마련하고 현재 사업대상자를 재공고 중인 상태다. 이 사업은 워터프론트 개념으로 접근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박물관이나 기념관 등을 건립해 (해양과 관련한)'의미'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 수도권에 해양박물관이 건립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울진에 국립해양과학교육관이 생기고 있고, 청주에도 해양과학관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도권인 인천에도 반드시 해양박물관이 건립돼야 한다. 아까운 부두에 주차장이나 (일반 상업) 건물을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50년 100년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인천시와 인천항만공사·인천지방해양수산청이 주인의식을 갖고 (내항 재개발뿐 아니라) 인천 전체를 아우르는 도시 디자인을 세워야 한다. 알프스의 주택이 아름다운 이유는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다."-해운업 위기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는지."전 세계적으로 해운산업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선사 간 인수·합병, 해운동맹(얼라이언스) 재편 등 해운시장 재편이 급속하게 진행 중이다. 특히 최근 Ocean 얼라이언스와 THE 얼라이언스가 결성되는 등 기존 4대 얼라이언스 체제가 3대 얼라이언스 체제(기존 2M 포함)로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적선사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모두 경영정상화를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진해운은 'THE 얼라이언스'에 편입되었으나, 현대상선은 이번 얼라이언스 재편에서 배제된 상황이다. 다만 현대상선도 금년 9월까지 재편입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여, 현대상선의 구조조정을 신속히 마무리하고 신규 얼라이언스에 편입될 수 있도록 정부와 채권단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해운위기로 인해 부산항은 환적화물의 비중이 많기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인천항에 대한 영향은 적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범 중화권'인 오션 얼라이언스로 인해 (중국과 가까운)인천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인천에서 해양부문이 발전하기 위한 인천시와 인천항만공사의 역할은."청소년이 우리의 미래이듯 바다가 우리 삶의 미래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인천시와 인천항만공사·인천지방해양수산청이 함께 해양관련 장기적인 비전과 철학을 세워야 한다. 각 기관이 함께하면 분쟁과 갈등이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바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토대로 인천시의 모든 정책이 해양과의 연계 속에서 이뤄지고, 승화돼야 인천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인천의 송도가 아름답게 발전하고 있는데, 인천시가 완전히 탈바꿈하려면 해양 친화적인 도시정책이 어우러질 때 다시 태어날 수 있다."-바다의 날을 기념해 열리는 '바다그리기 대회'가 올해 19회를 맞는다. 6만여 명의 참여 학생과 학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이번 바다그리기 대회를 통해 청소년들이 그려낼 바다의 모습이 어떤 모습일지 참으로 기대된다. 미래세대의 주역인 청소년이 바다의 중요성과 해양사상을 상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올해 바다의 날은 '바다를 품다, 미래를 담다!'를 주제로 전남 순천만 국가정원에서 행사가 개최될 예정이다. 전국 주요 해안도시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직접 바다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해양문화 행사가 열릴 계획이니 많은 참여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경인일보에도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국가의 해양수산 정책을 지역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큰 틀에서 바라봤으면 한다. 인천이나 부산의 언론이 해양수산 관련 기업·단체에 영향을 미친다. 조화와 균형을 바탕으로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정부의 정책을) 이끌어 주기를 부탁드린다."■김영석 해수부 장관은1982년 경북대 행정학과 졸업1984년 행정고시 합격(27회)1988년 동해지방해운항만청 해무과장2001년 해양수산부 해양정책국 해양개발과장2008년 해양수산부 해양정책국장2013년 대통령실 해양수산비서관2014년 해양수산부 차관2015년 제17대 해양수산부 장관 취임 대담/장철순 인천본사 편집국장 · 정리/정운기자 jw33@kyeongin.com ·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이 24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수도권의 해양도시인 인천에 해양을 주제로 한 박물관의 건립이 필요하다"며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바다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6-05-24 정운·장철순

[인터뷰… 공감]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곽선근 경기지역 총감독

'원행을묘정리의궤'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220년 만에 능행차 '완벽 재현'서울 등 지자체와 공조… 경기지역서 25.4㎞ 맡아 1830여명 인력·240필 말 동원'18C 조선최고 생활문화 부활' 한국 대표축제·세계무형문화재 등재 가능성 활짝수원화성 축조 220주년을 맞는 올해 수원시의 숙원사업이던 '정조대왕 능행차'가 원형대로 복원된다. 조선 22대 왕 정조(1776-1800)는 재위 24년간 모두 13차례에 걸쳐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참배하기 위해 수원 화성행궁을 찾았는데, 수원시 등은 이중 가장 큰 규모로 이뤄진 세계문화유산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묘사된 1795년(정조 19년) 능행차를 오는 10월 8일과 9일 이틀에 걸쳐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반쪽짜리에 그치며 아쉬웠던 정조대왕 능행차가 220년 만에 원형대로 복원된다는 소식에 기대감도 여느 때보다 크다. 특히 원형 복원으로 정조대왕 능행차는 수원 등 지역의 국한된 지역 행사를 넘어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첫 줄을 장식할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경기지역 총감독을 맡은 곽선근 감독을 지난 16일 만났다.-최초로 진행되는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 재현에서 경기지역 총감독을 맡았다. 사명감과 책임감이 클 것 같은데 기분은 어떤가."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누구보다 기뻤다. 1996년부터 2011년까지 수원에서 진행된 정조대왕 능행차를 감독하고 이끌어 오면서 서울 창덕궁부터 수원 화성행궁까지 46㎞에 이르는 능행차의 원형이 복원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사실 그간 열린 정조대왕 능행차 연시 행사는 여건상 지역 안에서 이루어지면서 지역 문화 축제로서는 높은 성과를 이뤘으나, 원형이 그대로 복원되지 않아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학계에서도 정조의 화성행차 결과 보고서인 '원행을묘정리의궤'가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됨에 따라 이를 활용한 원형복원 필요성의 목소리가 컸다. 이에 기회가 주어진 만큼 완벽하고 성공적인 재현을 이룰 것이다. 사명감과 책임감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잠도 잘 오지 않을 정도지만 정조대왕 능행차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나 한 몸 희생할 각오는 돼 있다."-정조대왕 능행차 재현까지 5개월 남았는데, 진행 상황은 어떠한가."추진 일정에 따라 행사 기본 계획안이 확정됐고, 연출 및 운영인력계획 정도 등이 수립된 상태다. 아직 시간이 남았고 다음 달 지자체 간 MOU 체결 후 본격적으로 행사 준비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경기지역에서는 안양행궁-사근참행궁-지지대고개-만석거-화성행궁-연무대로 이어지는 25.4㎞를 맡아 진행하고 1천830여명의 인력과 240필의 말을 동원할 예정이다. 다음 달에는 출연진 선정 및 1차 접선을 완료할 계획이다. 운영 매뉴얼 및 시나리오 작성, 홍보물 제작도 다음 달 이후 진행된다. 이에 함께할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으니 많은 참여를 부탁한다." -처음으로 서울시와 공동재현하는 만큼 우려도 큰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수원에서는 지난해까지 총 20회의 정조대왕 능행차를 재현해 왔다. 물론 수원에 국한돼 진행됐지만 수십년간 쌓아온 노하우는 그 누구보다도 많다고 자부한다. 때문에 서울 등 지자체와의 협조만 원활히 이뤄진다면 정조대왕 능행차를 원형으로 재현하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수원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것들이 있나."능행차는 서울에서 시작되고 수원에서 종료된다. 때문에 염태영 수원시장 등 시가 강조하는 것이 수원에서 펼쳐질 피날레 행사를 타 지자체보다 더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할 계획이다. 220년 전 정조도 수원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및 진찬연 등 잔치와 특별 과거시험을 진행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말할 수 없지만 올해 원형을 그대로 복원하는 만큼 수원만의 행사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이 갖는 역사적·문화적으로 가치가 클 것 같은데, 어느 정도인가."1795년 정조대왕 능행차는 단순한 전통문화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세계문화유산(유네스코)으로 등재된 창덕궁과 수원 화성을 연결할 수 있는 무형문화라는 점에서 소중한 가치를 가진다. 특히 정조의 화성행차 결과보고서인 '원행을묘정리의궤'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됨에 따라 이를 활용한 원형복원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사실 '원행을묘정리의궤'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배경은 그 속에 실린 내용의 중요성 때문만이 아니라 오늘날 다시 복원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를 토대로 원형 복원을 추진한다면, 18세기 후반 조선 최고의 생활문화를 생생하게 복원하는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정조의 화성행차와 8일간 추진했던 각종 행사들 역시 그 자체가 역사체험의 장인 동시에 격조 있는 전통문화를 선보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외에도 조선 후기 최고의 애민군주인 정조가 백성과 함께 한 능행차는 오늘날까지도 귀감이 될 수 있는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사료에 따르면 정조는 능행을 통해 상공업발달로 사회변동이 활발한 수원을 직접 방문해 사대부와 백성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실제 능행 시 백성들의 말을 직접 듣는 상언(上言)과 격쟁(擊錚)을 제도화했다. 정조의 능행 중에만 상언과 격쟁이 3천355건이 진행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최근 전통문화를 활용해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축제문화의 발굴 필요성이 높아진 시점에서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점들에서 정조대왕의 능행차는 한국의 대표축제가 될 가능성이 높은 한편, 동시에 세계무형문화재로 등재될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조대왕 능행차를 세계적인 축제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인가."처음 공동으로 재현하는 만큼 올해는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올해를 시작으로 점차 자리를 잡으면 세계무형문화재 등재 및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어떤 나라도 46㎞에 달하는 왕의 능행차를 원형 그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동원되는 인원과 말만 해도 각각 5천여명, 480필에 달한다. 대규모 행사로 손색없기에 몇 년 후에는 충분히 세계문화로 알려져 수원을 세계문화유산의 도시·글로벌 관광도시로 한 단계 성장시키는 데 한몫을 할 것이다." -능행차 재현에 따른 효과,특히 수원에 어떤 효과를 줄 수 있는가."앞서 언급했듯이 큰 틀에서 ▲화성행차의 원형 복원을 통한 무형문화재 창출 ▲18세기 왕실행차의 복원을 통해 살아있는 역사체험과 교육장 제공 ▲전통문화에 의한 거리축제를 통해 지역 소통과 국민 통합에 기여 ▲세계문화유산 창덕궁과 화성에 대한 국내외적 관광 활성화 ▲애민정신 재인식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대표축제 정착으로 인한 국가 이미지 제고 등의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더구나 올해는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이 축성된 지 2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이와 함께 수원화성이 국내에서 31번째로 '수원화성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기존 관광특구와 다르게 이름을 붙인 것은 수원관광의 중심이 되는 수원화성을 부각 시키자는 시민 의견을 반영했다. 올해가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인 만큼 수원화성에 더 많은 관광객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수원이 관광 선진도시로 격상될 수 있는 도약의 계기를 만들려고 한다. 지난 20여년 동안 수원시는 수원화성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복원사업을 추진해왔는데 이런 노력 덕분에 최근에는 연간 450만~500만명의 관광객이 수원 화성을 다녀가고 있다. 더 많은 관광객이 수원을 찾는다면 관광자원 확충과 외래 관광객 확대에 따른 일자리 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 역시 기대된다. 때문에 정조대왕 능행차 등으로 많은 관광객이 수원화성을 방문하도록 해 수원의 진면목을 부각시킬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관광산업의 진흥은 관광객의 방문과 소비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외에도 지역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 삶의 모습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원화성 관광특구와 방문의 해인 올해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사업 등을 통해 수원시가 글로벌 관광도시로 도약해 다시 찾는 도시로 거듭나고, 궁극적으로는 지역민의 삶의 질도 향상되길 바란다. 이에 지역민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많은 참여를 부탁한다."◈곽선근 능행차 공동재현 경기지역 총감독은?■약력1962년 7월 25일생 경기대학원 범죄학 수료1997년 ~ 현재 정훈커뮤니케이션 운영2016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경기지역 총감독 ■주요활동1996~2011년 수원화성문화제 정조대왕 능행차연시 총연출 (수원문화원)2002~2011년 수원화성문화제 시민퍼레이드 총연출 (수원문화원)1996~2010년 정조대왕 선발대회 총연출 (수원문화원)1999~2003년 수원화성 수문장 교대의식 연출 (수원문화재단)2004~2013년 정조대왕 능행차길 체험순례 총연출 (수원문화원) 2007~2011년 화성행궁상설한마당 (5년간 상설 정조대왕 능행차) 연출 (수원문화재단)2002년 한·일 월드컵 32개국 만찬장 행사 연출 (월드컵조직위원회)2009년 일본 아사이가와시 자매결연20주년 정조대왕 능행차연시 총연출(수원시)글/황준성기자 yayajoon@kyeongin.com · 사진/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최초로 진행되는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 재현 경기지역 총감독을 맡은 곽선근 감독이 수원화성에서 "정조대왕 능행차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나 한 몸 희생할 각오는 돼 있다"며 포부를 밝히고 있다.

2016-05-17 황준성

[인터뷰… 공감] 더케이 서울호텔 신현태 사장

다양한 콘텐츠 통해 다시 찾고싶도록 하는것 중요면세시스템 갖춘 일본처럼 '관광산업 활성화' 노력수원화성 등 경기도 자원 홍보… 해외관광객 맞아야더케이(The-K) 서울호텔 신현태 사장. 경기도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지난 16대 국회의원으로 여의도 정치권에 입성한 수원 사람이다. 풀뿌리 지방의회를 거쳐 국회의원 시절, 하도 부지런해 '일 복 많은 선량'으로 평가받곤 했다. 소탈한 성격에 이웃집 아저씨 같아 주위에 사람이 많이 모였고, 4년 임기 동안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개척 활동 지원에 매진해 왔다. 수원 권선구 고색동 산업단지를 유치한 장본인이며, 항시 도내에서 제조된 제품을 들고 다니며 홍보할 정도로 국산 예찬론자이기도 했다. 이후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여러 번 부침을 겪었지만, 자신이 꾸려온 국회 재외동포 경제정책연구회와 세계 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상임고문, 국제통상전략연구원 이사장 활동의 연장선에서 쉼 없이 성실한 인생을 살아왔다. 교직원의 기금으로 운영되는 더케이 서울호텔 감사에서 사장에 오르기까지 여정도 장인정신을 높이 사는 기업가적 철학과 청년 같은 열정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올해 일흔인 그는 기업인에서 정치인, 그리고 다시 호텔 경영인으로 변신했음에도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자신감과 패기가 넘쳐났다. 지난 2일 오후 인터뷰를 하기 위해 서울 양재동 더케이 호텔 사장실을 찾았을 때도 수원 장로 합창단과 다음날 독일 순회공연을 떠나는 일정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는 호텔 경영에 대해 "잠자는 공간에서 문화를 파는 호텔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 문화에 배팅할 때"라고 일갈하며 한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했다.-국회를 떠난 지 오래됐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 발전을 위해 열심히 뛰었고 나름의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당시 수원 고색동에 산업단지를 유치한 덕분에 현재 일자리가 많이 창출됐을 뿐 아니라 지역경제 발전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또 중소기업지원센터 활성화를 추진해 지금의 광교신도시 조성으로 이어져 뿌듯함을 넘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이후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재임하면서 고양에 한류우드단지를 조성하는 등 경기도 관광 발전을 위해 다양한 일을 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더케이호텔 상임감사로 부임해 활동하게 되었고, 뭔가 호텔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보고자 하는 욕심이 생겨 지난 2월 사장직 공모를 통해 취임했다."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다시 기업인으로 돌아왔는데 어떤게 본인에게 더 잘 맞나."개인적으로 기업 경영 쪽이 더 잘 맞지 않았나 싶다. 정치 쪽은 상대적으로 뭔가 일을 하는 데 있어 제약도 있고 성취감 면에서도 조금 덜 한 측면이 있다. 뭐 하나 하려면 이런저런 반대에 부딪히고, 내가 어느 정도 이상의 궤도에 올라가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제한돼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기업 경영의 경우 책임이 뒤따르긴 하지만 우선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바로바로 실행시킬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더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정치인으로 다시 기회가 온다면. "사람은 누구나 꿈이 있는 법이니까 의향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웃음) 우선은 지금 주어진 일에 열중하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경기관광공사 사장과 지금은 호텔을 경영하고 있는데 경기도 등 지역 관광 산업의 전망은 어떤가. "지난 달 일본 출장을 다녀왔는데, 일본은 관광객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추세다. 2020년까지 관광 유입인구를 2천만 명으로 계획했지만, 이를 5천만 명으로 대폭 늘려서 대비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도 관광객 수요를 늘리려면 그에 걸맞게 숙박시설도 갖춰야 하고, 일본처럼 저렴하게 잠만 자고 갈 수 있는 저가여행 상품도 개발해 다양한 수요에 맞게 대비해야 한다. 관광은 기본적으로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 등 3가지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유커의 비중이 커졌는데 이들이 한국을 많이 찾고는 있지만 실제 제주도를 관광지로 많이 찾고 서울에는 쇼핑을 하러 가는 정도다. 경기도는 서울에 인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발길이 많이 닿지 않고 있다.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인 정책을 개발해서 유커를 비롯한 해외 관광객들을 경기도로 끌어당겨야 한다. 경기도에도 수원화성, 민속촌, 임진각 등 훌륭한 관광자원이 많기 때문에 이를 효과적으로 홍보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지역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어떤 뒷받침을 해야 하나. "앞서 언급한 일본 출장에서 또 느낀 것 중 하나가 면세점이다. 일본은 면세점이 5천 개에 달한다고 하는데, 지역마다 최소 8% 이상 면세를 해주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굵직한 면세점만 몇 군데 둘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면세점을 많이 확보해주는 것도 지역 관광을 살리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면세점은 규제가 많은데 어떻게 해소해 나가야 하나. "일본은 일반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도 여권을 제시하면 할인해주고 있다. 우리도 면세점 확충을 통해 관광산업을 활성화 해야 한다. 경기도만 해도 이천 여주 도자기 판매점이나 판문점 등 훌륭한 장소가 많지 않은가. 비단 명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개발한 질 좋은 제품들을 판매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는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면세점 내 일정 부분 우리나라 물건을 팔도록 의무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정 장소에만 가야 면세를 해주고 명품만 쌓아놓고 파는 시스템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호텔을 경영하면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관광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고유의 문화를 알리고 훌륭한 먹을거리를 소개해서 다시 찾고 싶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전략적으로 구사해야 관광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호텔도 마찬가지다.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스스로 다짐한 부분이 바로 '문화를 파는 호텔'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지금의 시대에서는 문화에 대한 강력한 배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 분야를 전공한 재능있는 청년들이 창작 기회를 발표할 공간조차 없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호텔 관광 분야에서도 문화를 접목해 이를 시스템화하고 고객과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본다.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을 넘어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그런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호텔을 만들고 싶다." -화제를 바꿔 지금 정치권이 많이 혼란스럽다. 정치 선배로서 조언한다면. "이번 선거를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났듯이 이제는 '통치'가 아닌 '협치'가 필요한 때다. 국민들은 대화와 소통을 중시한다.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여야 의원들은 대화와 합의를 통해 발전적인 방향을 찾아야 한다. 과거 내가 의원 활동할 때도 여야는 항상 싸웠다. 하지만 그때는 싸울 땐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나중에 밤을 새워서라도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았다. 그게 정치다. 자주 만나고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역지사지의 마음이 생기고 소통의 물꼬가 트인다. 이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국민들도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준다. 지금 정치인의 신뢰가 많이 떨어진 상태인데 이런 때라면 중진급 의원들이 앞장서서 소통을 실천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직원들과의 소통은 잘 하고 있는가. "경영자와 직원 간 소통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300명에 이르는 전체 직원들과 소통에 나서야겠다고 마음먹고 한 명 한 명 만나기 시작했다. 매일 오전 1:1 면담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 자리에서 회사에 바라는 점, 부서 건의사항, 회사의 발전 방향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처음엔 사장과 단 둘이 대면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차츰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제는 직원들이 밖에 나가서 자랑도 한다고 들었다. 면담할 때 직원들한테 꼭 해주는 말이 있는데, '하기 싫은 일은 변명이 생각나고,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인다'는 말이다. 잔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열정을 갖고 해보겠다고 덤벼들면 방법이 생긴다고 믿는다. 직원들도 이 말을 새기고 자신의 주어진 일에 열심히 임한다면 분명 발전할 것이다. 직원들과의 소통은 사장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계속 해나갈 것이다." -어떤 사장으로 기억되고 싶나. "그때 그 사람. 있을 때 잘해. 언뜻 노래 제목 같지만 난 이 말을 참 좋아한다. 나중에 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 분은 참 존경할 만한 분이야'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어딨겠는가. 떠난 뒤에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있을 때 잘 하자'라는 마인드를 항상 마음 속에 되새긴다. 이제 석 달 됐는데,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한 51점 정도. 하지만 이제부터 열심히 노력한다면 점수를 더 많이 딸 수 있지 않겠나(웃음)."■신현태 사장은?-1946년생 (71세)-공영물산 대표이사-수원YMCA 부이사장-수원시 새마을지도자협의회 회장-바르게살기운동 수원시협의회 회장-제45대 경기도의회 의원(한나라당)-제29대 수원로타리클럽 회장-제16대 국회의원(수원 권선, 한나라당)-前 경기관광공사 사장-現 더케이(The-K)호텔앤리조트 사장 (2016. 2~) 대담·정리/정의종 부장·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사진/더케이호텔 제공지난 2월 더케이(The-K)호텔앤리조트 대표로 취임한 신현태(70) 사장이 '문화'를 중시하는 자신의 경영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6-05-10 황성규·정의종

[인터뷰… 공감] 최창섭 서강대 명예교수

엄마가 아이에게 젖먹이듯 조건·대가를 기대하지 않는것공동체 살리는 '인성+품앗이 운동' 나눔의 씨앗 통해 열매선조들의 지혜, 경기도 풀뿌리 정신문화로 자리매김 했으면지금 우리 사회엔 철학이 없어요. 사회가 이기심으로 가득하고 혼탁해. 세월호 선장 봐요. 승객을 두고 혼자 살려고 몰래 빠져나온 건 이기주의의 극단이죠. 우리 모두 목격했으니 이제는 이를 극복해낼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거지. 난 그 답이 품앗이에 있다고 봐요.최창섭 서강대 명예교수. 미디어 분야 대표적인 학자이자 논객으로 얼굴이 알려진 언론학계의 석학이다. 그런데 최근 그의 관심은 온통 '품앗이'에 쏠려있다. 국회품앗이포럼 공동대표라는 낯선 직함을 달고 3년째 '품앗이 운동'을 벌이고 있다. 20년 전 고(故) 이동원 내무부 장관이 품앗이를 전파하기 위해 만든 '(사)H10O품앗이운동본부'의 부탁으로 특강을 하면서부터다. 최 교수는 우리 전통인 품앗이에 대한 개념을 정립해 달라는 본부의 요구에 자료를 찾았지만 책 한권 없고 논문 몇편이 전부라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품앗이의 길'을 저술하면서 그 스스로 품앗이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최 교수가 생각하는 '품앗이'의 시대적 의미와 현대적 변주 가능성을 탐문해 봤다.품앗이는 일손이 부족할 때 이웃농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일로 갚는 노동형식이다. 농경시대를 살던 조상들의 삶의 지혜라고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이 난다. 그런데 품앗이가 산업화·도시화된 현대에 적합할까. 좋은 걸 몰라서 안 한 게 아니라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는 '유물'아닐까. 아니라면 너무 이상적이거나···. 반신반의, 의문을 하나가득 품고 최 교수의 얘기를 먼저 들어봤다."품은 일·노동·수고를 뜻하고, 앗은 받아들임을 뜻합니다. 즉 상대방이 제공하는 '수고'를 고맙게 '받아들인다'는 의미죠. 이건 기본적으로 '한쪽이 일방적으로 줌'을 뜻합니다. 주는 사람이 후에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고, 주고, 또 주는 것이 품앗이인 겁니다. 따라서 이는 영어권의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와는 전혀 다르죠. 줄 때부터 돌려받을 것을 기대한다면 품앗이가 아닙니다."한쪽의 일방적인 희생? 그렇다면 품앗이는 '이상'에 가까운 것 같다. 최 교수는 부정 대신 이솝우화 같은 얘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대신했다."어느 날 손이 입에게 말합니다. 난 얻는 것도 없이 매일 너한테 먹을 것을 넣어주고 있어. 넌 좋겠다, 매일 맛있는 걸 먹어서. 입이 어처구니 없다고 답하죠. 나도 먹는 것 하나 없어. 모두 잘게 부숴서 위에다 내려줬을 뿐이야. 위야, 넌 좋겠구나. 거저 얻어먹어서. 비아냥대는 말을 들은 위가 기분이 언짢아져 대꾸합니다. 나도 얻는 건 없어! 혈관 이곳저곳에 공급했을 뿐 도대체 나도 내가 뭘 얻었는지 모르겠네. 서로 상대를 위해 대신 일해 줬다며 생색내던 손과 입과 위는 결국 서로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기로 합니다. 손은 입에 먹을 것을 안 넣어주고, 입은 안 씹고, 위 역시 혈관으로 공급하는 일을 중단한 거예요. 그러자 손이 기력이 빠져서 더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제야 손은 아무것도 얻고 있지 않았지만 사실 모든 것을 얻고 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품앗이도 이와 같은 이치인 거죠."품앗이로 움직이는 사회는 인체와 같다는 비유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줌'으로써 주는 쪽이 손해인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도 모르는 새 받게 된다는 것. 인체가 신비롭게 아귀가 맞아 돌아가는 것처럼 품앗이 사회는 모두가 일방적으로 줌으로써 아귀가 맞아지는 것이다. 최 교수는 모자관계도 품앗이라고 설명했다.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줄 때 뭘 기대하고 주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엄마한테 젖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죠. 세대가 세대를 이어서 품을 나눠줌으로써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그렇다면 품앗이는 기부(donation)의 일종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최 교수는 손사래를 친다. "기부와도 다르죠. 기부는 대상을 모른채 주는 것이지만 품앗이는 분명한 대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키부츠와도 다르죠. 키부츠는 공동노동을 통해 똑같은 양의 결과물을 가져 가지만 품앗이는 획일적이지 않습니다. 2013년 유네스코가 세계무형문화재에 등재한 김장문화를 보세요. 같은 아낙네들이 김장을 하지만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죠. 공동으로 하지만 획일문화가 아닙니다. 개성을 존중하죠. 그래서 품앗이는 세계 다른 용어로 번역을 할 수가 없어요. 품앗이는 Pummasi(품앗이 발음을 영문으로 옮긴 것)인 겁니다."누군가에게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주는 품앗이가 각자의 삶을 살기 바쁜 시대에 실현 가능할까. (사)H10O품앗이운동본부는 품앗이 운동을 'Thank you from Korea'라는 행사를 통해 하고 있다. 해외의 한국전 참전용사를 찾아가 66년전 한국전쟁에 품을 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며 그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 행사는 감동 그 자체라고 최 교수는 전한다. "한국전에 참여한 공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우리가 그들에게 정성 들여 감사를 표하는 자립니다. 그 자리에 우리는 '품앗시드(seed)'를 데리고 갑니다. 본부에 회원으로 있는 어린이들과 동행해 참전용사의 품앗이가 세족식이라는 품앗이로 바뀌어 전달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감동을 아이들이 같이 느끼게 하는 것이죠. 이것을 품앗시딩(seeding)이라 부릅니다."최 교수가 말하는 품앗이운동의 핵심은 품앗시딩에 있다. 그의 저서 '품앗이의 길' 초반에 '노인과 손주를 위한 과일나무'라는 글이 나온다. 등이 굽은 노인이 과일나무 묘목을 심자 지나가던 나그네가 언제쯤 그 열매가 열리겠느냐 묻는다. 노인이 한 10년쯤 걸릴 것이라 답하자, 나그네는 웃으며 오래 사셔야겠다고 농을 건넨다. 노인은 어렸을 적 과수나무에 과일이 많이 열렸다며 "그 나무들은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심은 나무들일세. 나의 아버지는 생전에 저 나무들의 열매를 맛보신 적이 없었지. 이제 내가 심은 이 나무의 열매는 내 손주들이 맛볼 수 있지 않겠나('품앗이의 길' 21쪽)"라고 말한다. 조건없이 남에게 주는 품앗이 운동은 사실 주는 당사자가 직접 되받지 못할 테지만 그 행위가 씨앗을 뿌려 우리 후손들이 열매를 따먹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한편 그것은 지금 우리가 품앗이 씨앗을 뿌리지 않는다면 우리 후손들은 거둘 것이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인성을 머리에, 품앗이를 육체에 비유한다. 사람의 마음인 인성은 보이지 않지만 품앗이라는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품앗이는 '인성이 드러나는 행동'이기 때문에 책으로 학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품앗이는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할 때 의미가 생성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식이 부모의 품앗이 행동을 보고 느껴 배우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품앗이 운동을 '인품운동'이라 부릅니다. 인성과 품앗이의 줄임이기도 하지만 인품을 살리는 운동이기도 한 것이지요." 최 교수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갈 것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만드는 현장에서 함께 호흡했으면 좋겠다"고 부모의 역할을 강조했다. 품앗이는 돌아보면 요즘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현존한다. 강원도 양양의 한 마을이 품앗이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얹는 데 가장 연로한 집의 이엉부터 엮어 얹어주는 것이나, 서울시 동작구에서 지역화폐와 품앗이 통장을 매개로 마을공동체 사업을 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꼭 품앗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더라도 엄마들이 '맘카페'를 통해 공동육아 당사자를 찾아 품을 나누는 것이나, 농협이 농번기에 조합원을 위해 일손돕기를 나가는 것도 언제 돌려받을 것을 약속하지 않은, 품앗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품앗이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이 모든 행위는 필요에 따라 어디선가 이뤄지고 있는 것인데, 굳이 품앗이란 이름을 붙여야 하는 걸까. 최 교수의 답변은 명쾌하다. "가는 길을 제시하자는 거죠. 우리는 우리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 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름을 붙이면 방향성이 생기고 그러면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도 더 그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는 "품앗이 운동이 경기도에서 먼저 확대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품앗이는 우리 조상들이 수천년 간 다듬어온 지혜이며 독자적인 것입니다. 우리 철학으로 세우고 전 세계인에게 '따를 만한 것'으로 제시해 세계인의 역사로 삼을 만하죠. 경기도는 이기심들이 부딪히는 무대이면서 각 지역의 품앗이가 살아있는 현대적 고장이기 때문입니다. 각 지역의 문화원들이 나서 품앗이정신을 계승하는 지역을 발굴하고 격려한다면 품앗이가 풀뿌리 운동으로 퍼져나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최창섭 서강대명예교수는?(현)서강대 명예교수(언론학 박사)국회품앗이포럼/아카데미 공동대표미디어·콘텐츠학술연합 공동의장(학위)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 언론학교육 박사호주 라트로브대 언론학 박사(학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서강대 언론대학원장, 사회과학대학장, 대외협력실장, 부총장, 총장 대행 역임(언론계)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지역신문발전위원장(사회활동) 맑은물되찾기운동연합회 총재, 클린피아 총재, 클린콘텐츠운동연합 회장, 미디어·콘텐츠학술연합 공동대표. 글/권순정기자 sj@kyeongin.com ·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3년째 품앗이 운동을 벌이고 있는 최창섭 서강대 명예교수는 "품앗이는 우리 조상들이 수천년 간 다듬어온 지혜이며 독자적인 것"이라며 "우리 철학으로 세우고 전 세계인에게 '따를 만한 것'으로 제시해 세계인의 역사로 삼을 만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6-05-03 권순정

[인터뷰… 공감] 김형기 셀트리온 대표이사 사장

가이드라인 없이 세계 첫 항체 바이오시밀러 도전장 '유럽·미국 첫 승인' 결실국내 자금조달 쉽지않은 부분… 국내 벤처산업에 '능력갖춘' 앵커기업 나와야전체 매출중 국내 비중 3% 불과한데 '대기업집단' 지정돼 60가지 규제 '부담'지난 2000년 인천 연수구청 조그만 사무실에 한 벤처기업이 문을 열었다. 자본금은 5천만원. 대우그룹에서 근무하던 6명은 회사를 떠나 함께 회사를 설립했지만, 뚜렷한 사업 계획은 없었다. 사무실에 앉아 '우리는 어떤 사업을 해야 할까?'라는 주제를 놓고 토의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회사가 16년 만에 국내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시가총액만 12조원을 넘어섰다. 국내 기업 생태계에서 보기 힘든 성공 신화를 쓴 셀트리온의 김형기 대표이사 사장은 "미래를 보는 통찰,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눈이 성공의 원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바이오의약품 위탁 생산(CMO),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 개발 판매 등 미래 먹거리를 먼저 보고, 이를 선점한 것이 현재의 셀트리온을 만들었다는 것이 김 사장의 이야기다. 셀트리온 설립 초기부터 서정진 회장과 함께 기업의 성장을 이끌었지만 김 사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글로벌 제약사 기준으로 보면 아직 셀트리온은 '스타트 업' 규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신약을 개발해 매출액 10조·20조원 수준까지 기업을 성장시켜 세계 바이오 제약 산업을 끌고 가겠다고 했다.-법인 설립 후 16년 만에 자산 규모가 5조원을 넘어서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소회를 말해달라."우리가 선택한 업종이 힘든 업종이었다. 투자금을 회수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극복했고, 투자자나 금융기관에서 우리를 믿고 신뢰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셀트리온의 성장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더 많다. 자산 규모가 5조원을 넘어섰다고 하지만 글로벌 제약사 기준으로 보면 조그만 업체다. '스타트 업'과 비슷한 정도다. 매출액 10조·20조원 이익을 낼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해야 한다. 바이오 제약 산업에서 세계시장 경쟁력까지 끌고 가야 한다."-셀트리온의 성장 원동력은 무엇인가."셀트리온은 처음에 바이오의약품을 위탁 생산하는 CMO라는 사업을 했고,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 부문에 도전했다. 궁극적으로는 신약을 개발할 것이다. 우리가 도전했던 분야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없던 것이다. 우리는 CMO 분야에 2002년부터 2007년 첫 매출이 발생할 때까지 3천500억원을 투자했다. 국내 최대 제약사의 연간 매출이 7천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투자 규모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처음에 우리의 투자를 믿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삼성에서도 우리를 따라오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분야도 처음에 사람들이 '사기'라고 이야기했다. 항체 구조가 굉장히 복잡해 이를 카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바이오시밀러 승인과 관련한 가이드라인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도전했고, 2009년부터는 주요 다국적 제약사가 우리를 따라왔다. 결과적으로 셀트리온은 유럽 최초로 항체 바이오시밀러 승인을 받았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항체 바이오시밀러로 처음으로 승인을 받았다. 이제 우리에 대한 의혹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16년 동안 힘들었던 부분이 보상을 받은 건데, 우리는 안주할 수는 없다."-확신을 가지고 목표대로 기업을 운영하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확신을 줬나."결국에는 미래를 보는 통찰, 나무 아닌 숲을 보는 눈이었다. 전문기관의 지원도 큰 도움이 됐다. 2001~2002년에 전문기관 리포트를 보면 2005~2006년이 되면 바이오의약품 개발관련 설비가 부족해 개발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있었고, 셀트리온은 위탁생산을 준비했다. 바이오시밀러의 경우도 오리지널 약의 특허가 언제 끝나는 지가 다 나와 있다. 전 세계적으로 판매량이 많은 '블록버스터' 약의 경우 2010~2011년이 되면 특허가 끝난다고 돼 있어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했다. 바이오시밀러와 관련해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이 '건강보험 재정'의 문제다. 점차 사람 수명이 늘어나고 각국 건강보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이 금융위기로 인한 재정적자로 고생하는데 오리지널 약에 비해 30%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같은 바이오시밀러가 나오면 각국 재정절감 효과가 크다. 안 쓰는 것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남들은 이걸 믿지 않았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온다는 것을 미리 읽었고, 미리 준비해서 성공했다. 셀트리온 그룹 서정진 회장의 미래를 보는 눈이 탁월했다고 생각한다."-누구나 가는 길을 따라가기는 쉽지만 길을 열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셀트리온의 신화창조를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벤처기업으로 여전히 국내에서 성장하기 어렵다. 제도적으로 개선돼야 할 점은 무엇인가."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파이낸싱(자금 조달)' 부분이다. 국내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렵다. 셀트리온 회사설립 이후 지난해 말까지 쓴 비용을 합치니까 4조원 규모다. 이 중 은행차입금이 5천억원 규모다. 1조5천억원은 해외에서 조달했고, 나머지는 CMO를 통해 번 것과 판권을 팔아서 들어온 것 등이다. 국내 자금조달 노력도 해봤지만, 가지 않는 길을 가다보니 여러 소문이 있고, 국내 금융기관은 산업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다 보니 믿고 투자하지 못했다. 국내에 벤처캐피털이 있지만, 해당 산업의 리스크 분석 능력이 없는 경우 투자를 하지 않는다."-지금 국내 벤처기업 환경은 어떻다고 보나."우리가 경험했던 어려움을 토대로 보면 빨리 국내 벤처산업에서도 앵커 기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국내 모 제약사가 6조원짜리 '로열티' 계약을 했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됐는데 기사를 보면서 오히려 슬펐다. 그 회사가 직접 5천억~6천억원을 조달해 약을 판매할 수 있었다면 6조원 로열티가 아니라 60조원·100조원이 넘어가는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 사업비 조달능력이 없고, 임상 실패할 경우 리스크를 고려해 로열티를 판 건데 한국에도 이를 완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업이 나와야 한다."-셀트리온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했다. 어떤 길로 가려고 하는가. 화장품 사업도 하는데 사업 다각화 방향은."올해 연말까지 2개 제품 승인을 앞두고 있고, 추가 파이프라인 바이오시밀러 개발 계획도 있다. 신약 파이프라인도 개발하고 있다. 제약사의 궁극적 목표는 신약 개발이다. 화장품 사업을 하는 것은 약 개발과 플랫폼이 같아 좋은 물질을 쓸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현재 화장품 마케팅·판매를 담당할 관계사로 셀트리온스킨큐어를 설립하고 마케팅을 본격 시작했다. 브랜드로는 '한스킨'이라고 있다. 올해 하반기쯤에는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할 계획이다. 셀트리온이 4년 동안 개발한 신물질을 넣은 화장품이다. 주름 개선, 미백 등 효과가 있는 고급 '하이앤드' 화장품이다."-셀트리온의 자산이 5조원을 넘어서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대기업집단'에 들어가 각종 규제 적용을 받게 됐다. 기업 입장에서 체감하는 규제수준이 어떤가."대기업집단 지정에 따라 27가지 법령에서 규정하는 60가지 규제가 따라 붙는다. 상호출자 금지, 신규 순환출자 금지, 신용공여 금지, 지급보증 금지, 세액 공제 축소 등이다. 우리 공정거래법 근본 취지는 예전 제조업 기반의 재벌들이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것을 막고, 공정 경쟁으로 가자는 것이다. 하지만 셀트리온의 경우 지난해 전체 매출 대비 국내 비중이 3%에 불과하다. 나머지를 해외시장에서 한 것인데, 모든 산업을 자산만을 기준으로 대기업집단에 넣어 규제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김형기 (주)셀트리온 대표이사 사장은?-1965년 충청남도 당진 출생-1982년 수원고등학교 졸업-1986년 서강대학교 졸업(정치외교학 학사)-1996년 미국 미시간대학교 MBA(University of Michigan, Business Administration)-1986~2000년 대우자동차 근무 (1996년 과장 진급, 전략기획팀장(차장))-2000~2005년 (주)넥솔(현 셀트리온 홀딩스) 이사-2005년 (주)셀트리온 신규사업부문 -2005년~2010년 (주)셀트리온 전략기획실 -2010년~2014년 (주)셀트리온 기획조정실 -2014년~2015년 3월 (주)셀트리온 사장-2015년 3월~ (주)셀트리온 대표이사 사장 대담/장철순 인천본사 편집국장 · 정리/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 ·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국내 기업 생태계에서 보기 힘든 성공 신화를 쓴 셀트리온의 김형기 대표이사 사장은 "미래를 보는 통찰,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눈이 성공의 원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바이오의약품 위탁 생산(CMO),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 개발 판매 등 미래 먹거리를 먼저 보고, 이를 선점한 것이 현재의 셀트리온을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바이오시밀러 '렘시마'

2016-04-26 홍현기·장철순

[인터뷰… 공감] 박수현 묘향산한의원 원장

탈북 한의사·한의학 박사학위 취득… 끊임없이 '국내1호' 타이틀"모르면 모른다, 양약이 낫겠다" 환자 마음 읽어주는 진솔한 진단'한의사 의료기기 문제'… 시장 확대되면 환자 판단할 기회 "찬성"지난 2002년, 36살의 청년 박수현을 경인일보가 만났다(경인일보 2002년 2월18일자 9면). 그는 탈북자였다. 통역을 부탁한 친구를 따라나섰다가 고향을 등졌고, 중국의 자전거 물결과 고층빌딩에 충격을 받아 남한행을 결심했다. 두만강을 건넌지 딱 열흘만이었다.낯선 한국 땅에서 처음 그를 맞은 것은 같은 동포의 따뜻한 환대가 아니라 의심의 시선과 차가운 멸시였다.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엄격했던 당시의 반공 정서 속에 내던져진 그는 여타 탈북자들이 그러하듯 쌀 속의 겨처럼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다 분리되어 버릴 듯했다. 그러나 그는 남한이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을 고치지 않았다. 청진의대 한의학부에 재학한 경험을 살려 자신을 감시하던 정보과 형사의 지병을 고쳐 준 것이 계기였다. 단번에 그의 팬이 되어버린 형사는 박씨를 경희대 한의학과에 추천했고, 94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생면부지의 영어, 낯선 한자(북한은 전공서적에도 한자를 잘 쓰지 않는다)를 기어이 극복해 2001년 3월 '국내 1호 탈북 한의사'가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이북에서 복무한 부대 이름을 따 성남 모란시장 한구석에 '묘향산한의원'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터전을 세웠다.그 후 14년이 지났다. 28살에 탈북해 만 22년간의 남한 생활, 인생의 양을 재는 저울추가 있다면 남과 북에서 살아온 삶의 무게가 어느 정도 균형점을 이룬 셈이다. 이제는 중년이 된 박수현(50) 원장의 삶도 많이 달라졌다. 1998년부터 3차례에 걸쳐 북에 있던 가족들을 탈북시킨 그는 두 동생에게 한의사의 길을 권유해 이젠 '탈북자 출신 3형제 한의사'라는 명성을 쌓았다. 지난 2010년에는 탈북자 최초로 한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국내 1호' 명함을 한장 더 보탰다.탈북 출신에 화려한 이력을 보고 혹자는 그를 '코리안드림'에 성공한 유명인사쯤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박 원장에겐 여론의 주목을 받는 스타의 향기보단 동네 복덕방 아저씨 같은 구수함이 더욱 짙게 묻어났다. 천천히 걷는 법 없이 늘 종종걸음으로 다니는 그는 인터뷰 사진을 촬영하는 내내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과 인사하기 바빴고,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환자를 살핀다며 불현듯 벌떡벌떡 일어나 등을 보이기 일쑤였다.진료 과정도 희한하다. 진맥하고 침을 놓는 것은 여느 한의원과 똑같아 보이는데 환자도 반말, 의사도 반말이다. 일하다 넘어졌다는 환자의 말에 박 원장이 "그러게 작작 좀 쏘다니지"라고 퉁을 놓자 침구실 가득 박장대소가 터지는 식이다."개원을 한 게 2001년 4월 15일이니 만 15년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오래되니 단골도 많죠. 고령으로 돌아가신 단골들도 많습니다. 병원 운영을 거창하게 하지 않으려고 해요. 환자들은 마음이 편한 게 최우선이거든요. 웬만한 병은 심리적 요인이 크다 보니 가족같이 구는 의사가 좋고 저도 그렇게 하는 게 더 재미납니다." 유년시절을 함경도에서 보낸 박 원장의 입담은 거침이 없다.지난해 대다수 병원을 울상짓게 한 메르스 사태도 묘향산한의원은 비켜갔다. 남한으로 건너온 뒤 그의 인생 지론은 '하고 싶은 대로'다. 한의사로서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이건 차라리 양약을 먹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환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것이 그의 의료 비법이다. 낯빛만 보고도 환자 상태를 가늠하는 베테랑 한의사의 진솔한 진단이 환자들에게 오히려 신뢰를 주는 듯 했다.박 원장에게 지난 14년 동안 달라진 세계관을 듣고 싶다고 물으니 "바뀔 것이 뭐가 있겠냐"며 소탈하게 웃었다. 그러나 파란만장한 인생유전 덕분일까. 남한에 완벽하게 적응한 지금도 그는 여전히 비범하게 움직이고 있다.예를 들면 지난달 23일 게임문화재단 주최 포럼에서 연사로 나선 일이 그렇다. '탈북자'와 '한의사' 그리고 '게임'이라는, 상관관계가 애매한 조합은 한 어린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공부에 통 흥미가 없고 게임에만 매진하고 있어 총명탕이라도 지어 먹이겠다는 엄마를 따라온 어린 환자에게 박 원장은 "니네 엄마가 너 잘되게 하려고 70만 원짜리 약을 지으러 왔어. 근데 그 돈 너한테 주면 너는 약을 지어 먹을래? 게임기를 살래?"라고 대뜸 물었다. 억지로 끌려온 자리에 시종일관 툭툭 대던 아이는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게임기가 갖고 싶다고 말을 했고, 박 원장은 "그럼 얼른 엄마를 안아주고 뽀뽀를 해 줘라. 널 위해서 쓰기로 한 70만 원으로 게임기를 사고 나머지는 엄마에게 맛있는 것을 사 줘라. 그리고 게임기를 놓는 동안엔 공부를 열심히 해라"고 조언했다. 아이는 한의원 문을 나서는 동안 연신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고 아이 엄마도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섰다.그런데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이가 진료를 위해 방문했던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이었다. 박 원장의 말에 감탄한 그는 포럼에서 연설을 해 줄 것을 권유했고, 강단에 선 박 원장은 '게임은 스트레스를 푸는 하나의 좋은 수단일 뿐 좋고 나쁨이 없다. 단지 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과몰입하면 중독이 되는 것이다. 순기능을 확대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청중에게 큰 호응을 샀다. 여담이지만 박 원장 역시 일하는 틈틈이 게임을 즐겨 하고 있다. 모의전투게임 '서든어택'에서 '묘향산'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는 그는 이미 게임 속에서 대령 계급에 오른 고수다. 박 원장은 "누구나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직장을 잡길 바라지만 스트레스에 치인 아이를 더욱 세게 내몬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며 그것을 좀 더 옳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진정한 소통"이라고 말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그의 지론은 자녀교육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갓 20살이 된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던 시절, 박 원장은 아들을 데리고 중학교와 검정고시 학원, 대안학교 등을 돌며 스스로 진로를 선택하게 했다. 보름간 장고한 아들이 검정고시를 선택하자 그는 두말 않고 학원을 끊어줬다."다른 부모들이라면 미친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들도 충분한 고민을 했고, 그런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검정고시 동안 아들이 게임에 빠지기도 했고 공부에 소홀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아들이 원하는 바를 하게 한다는 원칙을 바꾸지 않았고 게임을 하는 아들에게 밥을 떠먹여 가며 자유롭게 키웠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성숙한 아이가 되더군요. 저와도 친구처럼 소통하는 것은 물론이고요."이런 박 원장에게 '헬조선'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사정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는 "대한민국은 지옥이 아니라 기회의 땅"이라며 "살아가는 이들이 지옥으로 느끼는 이유는 부모들이 자식의 삶을 지나치게 한정 짓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그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와는 또 다른 타이트함이 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회적 분위기와 통념 등으로 인해 애당초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과도하게 구분해 놓았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삶도 마찬가지라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즐거움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직업이 있지만 청소년기의 교육부터 '하고 싶은 일'과 '하면 안 되는 일'로 구분하고 있으니 경쟁 속에 내 몰린 삶이 오죽 하겠냐는 설명이다.한의학계의 이슈인 '한의사 의료기기 허용' 문제에 대해선 성남시한의사회 홍보이사라는 직함을 잠시 내려놓고 진솔한 의견을 냈다. 한의사에게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면 오히려 양의사들을 찾는 환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게 요지다. 박 원장이 만 22년의 남한생활 동안 체득한 시장경제의 원리로 봤을 때 의료기기 시장이 확대되면 환자들이 스스로 판단해 전문가를 찾아갈 것이라는 얘기다. 또 박 원장은 같은 이유로 한의학의 영역을 개방하는 데도 찬성했다.애초에 한 번의 모험으로 인생을 바꾼 박 원장이다. 작은 일에 애면글면 사는 인생은 두만강을 넘을 때 끝장낸듯, 인생을 자기 뜻대로 질주하듯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게 미래에 대한 고민은 보이되 걱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행복하시냐'는 질문에도 그는 대답이 필요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더할 나위 없다"고 짧게 답했다. 박 원장이라고 어려운 일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갖고 뒤를 후회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부러운 것이었다. 14년 만에 다시 만나본 그는 남한사람도 북한사람도 아닌 온전한 '박수현'그 자신이었다. ■박수현 묘향산한의원 원장은?1989년 2월 청진의대 한의학과 입학1993년 10월 두만강을 건너 탈북해 중국을 경유, 한국 정부에 귀순1995년 2월 경희대학교 한의학과에 2학년으로 편입1996년 12월 강선덕씨와 결혼1999년 2월 부모와 형, 두 동생까지 탈북 후 귀순2001년 3월 탈북자 출신 국내 1호 한의사 자격증 취득2001년 4월 성남 모란시장에서 '묘향산한의원' 개원2010년 2월 탈북자 최초로 한의학 박사학위 취득 글/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지난 2001년 3월 '국내 1호 탈북 한의사'가 된 탈북 한의사 박수현(50)씨가 18일 오후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 묘향산한의원에서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소개하며 웃음짓고 있다

2016-04-19 권준우

[인터뷰… 공감] 최동호 시인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서정시는 가장 강렬하고 아름답고 깊숙한 소통의 수단'인공지능의 세상' 인간이 인간적인 면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시인협회장 임기 2년간 시쓰기 운동… 내년 남북시인대회 문인교류도 추진아직 이세돌 九단과 알파고가 대국을 시작하기 전인 3월 초, 최동호 시인은 '인간들이 알파고에게 인간을 도둑맞았다'고 썼다. 많은 이들이 인간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때, 최 시인은 승패와 상관없이 인공지능이 깊숙이 스며든 세상을 통렬하게 감각하고 있었다. 일평생 인간을,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데 바친 그는 앞으로 다가올 세상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진짜와 가짜가 더욱 교묘하게 뒤섞일 세상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남을 수 있을까. 너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까. 그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시(詩)라고 말했다. 40여 년을 시인으로 살아온 그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일지도 모른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시는 너무 멀고,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을 듣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얼마 전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는 사람을 식당에서 봤어요. 집사람이 알아보고 일러주길래 그 쪽을 봤는데 그 때의 내 느낌은, 티비에서 본 그가 진짜인가 여기서 밥먹고 있는 그가 진짜인가 순간적으로 헷갈리더라고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보내는 인상이 그만큼 강한거예요. 알파고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가상과 현실 사이의 벽은 이미 흔들리고 있어요.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죠."최 시인은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면 웬만한 시인보다는 잘 쓸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러나 그가 걱정하는 것은 인간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의 능력이 아니다. "기계가 깊숙이 들어올수록 인간의 삶은 더 각박해집니다. 그동안은 인간이 유일절대한 존재라는 전제에서 인류의 문화는 발전해왔어요. 인공지능과 함께 사는 세상이 본격적으로 도래하며 인간의 존엄성이 많이 상쇄되고 신도 부정될 거예요. 그런 세계에서 인간의 인간적인 면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그는 인공지능이 더 잘 쓰더라도, 시를 쓸 때 인간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은 천 년 전에도 서정시를 썼고 지금도 쓰고 있어요. 그때 쓰인 서정시는 지금의 인간이 읽어도 슬프고 아름답습니다. 시는 가장 강력하고 깊숙한 소통의 수단이에요.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것이 시이고, 난해한 시도 있지만, 말로써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시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사는 곳에는, 섬이나 오지라도 언제나 시가 있었어요. 시가 사라졌을 때, 시가 사라진 곳이 기계의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최 시인의 시가 시작된 것은 수원에 살던 초등학생 때부터다. 그는 겨울날 수원 남문을 청소하느라 곱은 손 안으로 들어오던 햇볕을 기억하고, 방과 후 혼자 오른 팔달산에서 느낀 외로움을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 중학교 교복 모자를 동네 아이가 채어 달아났을 때, 모자가 나에게서 분리된 또 하나의 자아라고 느꼈고, 4·19혁명이 일어났을 때 수원 종로거리에서 본 버스를 타고 달리던 데모대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역사 속 인간 개인의 모습을 엿보았다. "시라는 것은 결국 자신과의 대화예요. 나는 시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일 때, 외롭고 고독하고 슬플 때 시작돼요.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지만 미처 알아듣지 못한 자신의 말들을, 자신의 낮은 목소리를 끊임없이 찾아내며 그것을 통해 자기완성을 해나가는 것이 시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직업이 될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소설'가'는 직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시'인'이라는 직업은 없습니다. 시인은 그저 시를 쓰는 사람이에요. 백석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높고 쓸쓸하고 외롭고 가난한 것, 그러나 자기를 지키는 것이에요. 늘 시를 쓰려고 노력했지만 공식적으로 시인이 되지 못한 친구가 있어요. 저는 그 사람이 진짜 시인이라고 했습니다. 시인이 직업이 되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겁니다. 시와 관련된 문화산업은 성장할 수 있겠지요.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시적인 것에 대한 욕구나 수요가 커질 거라고 봐요. 정서적 결핍감을 채워줄 것을 원하겠죠.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어요. 시를 쓸 수 없는 것은 너무 좋은 시를 쓰려하거나, 자신의 상처를 보지 못하거나, 자기를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해서입니다."지난 달 한국시인협회 제41대 회장에 선출된 그는 임기 2년 동안 시 쓰기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5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는 자녀와 부모가 서로에게 시를 쓰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싶어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부모님께 시를 쓰라고 했었어요. 수업시간에 발표하고 부모에게도 보여주는 과제였죠. 어떤 학생은 아버지가 시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며,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어요. 요즘은 부모 자식간에도 대화가 없잖아요. 시가 촉매제가 될 수 있습니다."내년에는 한국시인협회 탄생 60주년을 맞아 세계시인대회 및 남북시인대회 개최를 추진한다. "남북 갈등이 너무 심하니까 시협 창립 60주년을 구실 삼아서라도 남북시인대회를 열자는 거예요. 오히려 이런 분위기이니 새로운 돌파구나 실마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분위기로는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가장 힘없는 분야에서 시인의 상상력을 발휘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원래 남북이 가까워질 때는 문인 교류가 먼저였어요. 가장 부담이 없기도 하니까요. 문인 교류를 시작으로 소통의 장을 여는 것이죠. 언제까지 극한 대립으로 가겠어요. 이 정부도 마무리 할 때쯤에는 화해 무드로 끝내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지금 모두 불안해하고 있잖아요. 그런 사회 분위기를 부드럽게 푸는 것은 문화예술이고 시도 그 중 하나니까 시인협회 대표로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요." #도둑맞은 신의 분노최동호에덴의 동산에서 신은 요염한 이브에게사과를 도둑맞았다분노한 신은 인간을 용서할 수 없었다올림퍼스 신들은 프로메테우스에게불을 도둑맞았다 인간들은 신의 배신자 프로메테우스를 영웅이라 숭배했다인간들은 바로 오늘 알파 고에게인간을 도둑맞았다컴퓨터가 영웅을 도둑질했다신의 분노는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창조했다#남문 시장의 봄 최동호봄 싹은 누구도 자를 수 없다수원 남문 시장 길거리 파란 미나리 뿌리들봄 싹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처녀애들 앳된 얼굴처럼 하얀 냉이 뿌리들■최동호(崔東鎬) 시인·문학평론가는?現 고려대 명예교수/경남대 석좌교수/한국시인협회 회장연구경력 고려대학교 문학박사(1981)/ IOW 대학(1992)/ 와세다대학(1995)/ UCLA(1999) 등에서 동서시 비교 연구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시집 '황사바람'(1976), '아침책상'(1988), '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1995), '공놀이하는 달마'(2002), '불꽃 비단벌레'(2009), '얼음 얼굴'(2011), '수원 남문 언덕'(2014) 등시론집 '현대시 정신사'(1985), '디지털 문화와 생태 시학'(2000), '진흙 천국의 시적 주술'(2006), '디지털 코드와 극서정시'(2011), '정지용 시와 비평의 고고학'(2013), '황순원 문학과 인간 탐구'(2015) 등 글/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한국시인협회 41대 회장으로 취임한 최동호 시인이 협회 사무실 인근 운현궁을 걷고 있다. 임기 2년 동안 범국민 시쓰기 운동을 전개할 뜻을 밝혔다.

2016-04-12 민정주

[인터뷰… 공감] 태범석 전국 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 회장

2018년부터 고교 졸업생보다 대입정원 많아… 고등교육 구조조정 시급41개 국·공립대 모여 기성회계 폐지·시간강사제 개선등 현안 머리맞대사립대 비해 매우 낮은 교육공무원 보수 '인재 영입 걸림돌' 합리화해야바빠도 '경기도 대표 국립대' 한경대 총장으로서 지역사회 역할도 '충실'"고등교육(대학 등)의 구조개혁은 시급한 명제입니다. 그만큼 책임이 무겁고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하지만 고등교육의 구조개혁은 강제가 아닌 대학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지난해 12월 전국 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이하 협의회) 제23대 회장으로 선출된 태범석(58) 국립한경대학교 총장. 벌써 1년 임기 중 1/4분기가 지났다. 협의회는 올 들어 3차례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협의회에서는 국·공립대학이 직면해 있는 각종 현안에 대해 논의했고 그 결과는 정부에 건의됐다. 현안은 지금도 계속 논의되고 있다.현재 전국 국·공립총장협의회에는 전국 41개 국·공립대학이 참여하고 있다. 국립대학 28개교, 공립대학 1개교, 교육대학 10개교, 국립대법인 2개교다. 협의회의 설립 목적은 ▲국·공립대학 간 상호협력을 통한 대학교육발전방안 모색 ▲국·공립대학 발전과 학술연구에 관한 공동협의 ▲대학교육의 제도개선에 관한 공동협의 ▲대학재정의 합리적인 확충방안 모색을 위한 공동 협의 등이다.태 회장은 "국·공립대학은 현대 대학 구조조정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생 수 감소, 총장 선출 문제 등 중차대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성회계 폐지와 대학 회계 도입에 따른 재정적인 문제, 각종 대학 평가 사업 등을 중요한 현안으로 손꼽았다.태 회장은 "현재 교육부에서는 국립대 발전방안에 관한 연구가 진행 중인데 그 결과가 국립대의 구조조정이나 정원 줄이기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태 회장은 지난해 말 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시간 강사법 폐지'와 '교육공무원의 보수 체계 합리화', '대학 구조조정' 등 국·공립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중 시간강사의 신분보장과 처우개선을 위한 '시간 강사법'은 현재 2년 유예된 상태다.태 회장은 "2016년도 약 1천90억원에 달하는 개선 사업 예산을 마련하고 시간 강사 연구 지원사업에 대해서도 180억원 예산 규모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며 10개년 기본계획을 통해 시간강사 처우 개선관련 내용이 포함되도록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우선 '대학 특성에 맞는 자율성'을 강조했다.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대학의 정원을 선제적으로 조정하는 취지에서 '대학 구조개혁법'을 고안, 이를 추진하고 있다.현재는 고등학교 졸업생이 대학 입학정원보다 많지만 저출산 등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2018년이면 고교 졸업생이 대입 정원보다 적어지는 역전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2023년에는 대학 정원 미달이 16만여명까지 불어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악의 경우 일부 대학은 신입생을 한명도 뽑지 못할 수도 있게 된다.태 회장은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무엇보다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이와 함께 재정 운영 자율화, 총장의 대학 운영 자율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대학 구조개혁법이 하루 빨리 국회에서 통과 돼 출구가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기성회계 폐지와 관련해서 협의회는 끊임없이 정부에 개선방향을 건의하고 있다. 태 회장은 "기성회계는 수십년전 고등교육의 비용을 학부모에게 전가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라며 "이제는 정부가 재정을 적극 지원해야 하며 법 테두리 안에서 재정교부금 등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협의회는 이를 위해 각종 사업을 위한 국·공립대 재정 확보를 위해 정부에 예산을 늘려달라고 건의한 상태다.태 회장은 "지난 3월 24일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서 2016년 제2차 협의회가 열렸고 회의에서는 정부의 각종 사업 및 평가가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며 "혁신지원 사업 추진 시 대학 간 서열화를 지양하고 국·공립대학의 자율성 보장 및 정체성 확립을 위한 예산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태 회장은 국·공립대 교육공무원 보수체계 합리화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보수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현재 국·공립대 신임 교원의 연령층은 30대 후반인데 보수는 평균 임금에 비해 굉장히 낮은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우수한 인재가 들어오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는 학생들의 역량 향상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보수 체계 개편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회장으로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계속 논의해 나갈 계획입니다."태 회장은 국·공립대 신임 교원의 경우 오랜시간 시간 강사 등을 거쳐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임용되고 있지만 나이와 경력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저평가 된 호봉체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태 회장은 협의회가 앞으로 나아가 방향에 대해 이렇게 제시했다."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급변하는 교육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교육 여건 및 대학 경쟁력 향상이 필요합니다. 이는 특정 대학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국 대학이 공동으로 협력해 각 대학의 의견 수렴 및 정책연구를 실시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의회 내에 '고등교육발전기획단(가칭)'을 신설하는 방안을 지난 회의에서 제시한 바 있습니다."태 회장이 설립을 건의한 '고등교육발전기획단'은 각 대학 실무진들인 기획처장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기획단은 국·공립대 발전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실무적인 정책 연구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국·공립대 정체성과 위상을 확립할 계획이다.태 회장은 "전국 국·공립대학총장협의회는 설립 목적처럼 대한민국의 대학교육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출범했다"며 "앞으로도 국·공립대학 발전과 대학 교육제도 개선, 대학 재정 확충방안 모색 등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태 회장은 협의회 회장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면서도 지역사회에 대한 한경대 총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소홀함이 없다.경인지역대학총장협의회 부회장, 경기도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상임대표, 경기도 고등교육 발전협의회 대표, 경기도 거점국립 종합대학교 추진단 부단장, 칠장사 어사 박문수 전국 백일장 공동위원장, 경기도그린캠퍼스협의회 부회장 등 전·현직 직함이 이를 말해준다.태 회장은 지난 1998년 화학공학과 교수로 한경대와 인연을 맺었고 중소기업지원센터소장, 산학실습처장, 교무처장, 교수협의회 회장 등을 거쳐 지난 2013년 한경대 총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한경대가 경기도를 대표하는 국립대학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태범석 전국 국·공립대학총장협의회장은?1958년 서울 출생고려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고려대학교 유기공업화학 석·박사현 국립한경대학교 총장현 전국 국·공립대학교 혁신위원회 위원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회장현 경인지역대학총장협의회 부회장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입학전형위원회 및 윤리위원회 위원현 사단법인 생명문화 공동대표현 범시민사회단체연합 공동대표현 경기도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상임대표현 칠장사 어사 박문수 전국 백일장 공동위원장대담·정리/이명종(안성) 부장·김신태 지역사회부장 sintae@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태범석(58) 국립한경대학교 총장은 "전국 국·공립대학총장협의회는 설립 목적처럼 대한민국의 대학교육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출범했다"며 "앞으로도 국·공립대학 발전과 대학 교육제도 개선, 대학 재정 확충방안 모색 등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6-04-05 김신태

[인터뷰… 공감] 소진광 새마을운동중앙회 신임회장

시대의 문제 해결… 공동체 회복 우선대한민국 발전 50년 원동력 세계화 노력선배 업적 기억하고 젊은 지도자 육성중앙서 정책개발 지방조직 기능살릴것"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정신은 세계 평화의 씨앗이 되고 지구촌의 어두운 구석을 밝히는 평화의 횃불이 될 것입니다."29일 취임식을 가진 소진광(61) 제23대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은 "새마을운동의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안으로는 나라발전의 새로운 토대를 구축하고 밖으로는 지구촌 세계시민들의 복지향상을 이루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역대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을 보면 국무총리나 장관 등 공직자가 주로 맡아왔지만 23대 회장은 이례적으로 학자(현 가천대 행정학과 교수)가 선출됐다. 전국 대의원들로부터 선출된 중앙회장직은 무보수 명예 봉사자리로 겸직이 가능하다. 소 신임회장은 새마을운동의 우수성을 확신하고 세계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온 만큼 새마을운동에 대한 그의 새로운 역할의 기대치가 높다. -"이 시대에 유용한 새마을운동의 교훈과 실천논리를 펼치겠다."소 회장은 지난 15년간 새마을운동을 꾸준히 연구해 왔다. 그는 새마을운동 경험이 다른 어떤 지역사회발전이론이나 사례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해온 학자다.그는 "행정학을 전공한 학자로 주민자치와 지역발전, 거버넌스(協治),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공부하면서 새마을운동에 관심 갖게 됐다"며 "새마을운동이 단순한 과거의 경험이 아니라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고 나라발전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강조했다.그러나 처음 그가 새마을운동을 연구하자 학계에서는 특정 시대의 정치상황에 빠져있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소 회장은 "새마을운동을 정치적인 색깔로만 보려는 시각이 잘못됐다"고 반박하며 "새마을운동을 연구하다 보니 어떤 지역사회발전 이론과 사례보다 우수한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그는 "새마을운동의 우수한 실천 사례를 우리나라에 한정하지 않고 건강한 세계시민사회 구축에 활용해야 한다는 각오"라며 "새마을운동을 바로 세워 이 시대의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야겠다는 소명 의식을 갖고 있다"고 피력했다.-"새마을운동은 개인의 발전과 지역사회 발전, 나라의 발전을 연결하는 DNA다"새마을운동은 1970년대 경제공동체 형성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요구에 따라 변화해왔다는 것이 소 회장의 지론이다. 소 회장은 "1970년대에는 경제공동체 형성을 통해 우리나라 근대화를 이끌었고 1980년대 이후에는 사회공동체의 성격을 추가해 나라발전에 기여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21세기에는 문화공동체와 환경공동체를 가꿔 우리나라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며 "앞으로는 평화공동체의 토대를 만들어 정치와 이념으로 닫힌 세계를 여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우선 새마을운동의 성격이 가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를 막아 건강한 지역사회를 가꿀 수 있으며 나아가 인류 평화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중요한 정신을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그는 우리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가 공동체 인식이 부족하고 나눔·봉사·배려의 실천덕목이 약화된 것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새마을운동은 없는 사람끼리 근면·자조·협동정신을 발휘하는 실천논리이자 약한 사람끼리 나눔·봉사·배려를 통해 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민주주의 덕목"이라며 "새마을운동을 통해 공동체를 회복한다면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각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그런 의미에서 '가정새마을운동'을 강조했다. "새마을운동은 개인과 공동체의 존재가 어떠한 이유로도 거부당하지 않는 경제·사회·문화·환경적 기반을 구축한다"며 "가정새마을운동을 통해 건강한 지역사회를 가꾸고 지역사회 새마을운동을 통해 지역발전과 나라의 지속 가능한 번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아울러 "이미 국제사회에서 새마을운동은 더불어 잘 사는 인류 평화공동체 건설의 실천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며 "세계시민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지구촌 건설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새마을운동이 지난 50년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면 앞으로 500년의 새마을운동은 인류 공동번영의 동력이 될 것이다."소 회장은 새마을운동의 세계화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새마을운동의 성공을 답습하기 위해 각국의 문의와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이 같은 해외의 관심은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원조를 하는 ODA(공적개발원조)사업과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각국의 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소 회장의 설명이다.ODA는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한 나라가 발전하는데 효과가 적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발전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발전과정에 대한 논리를 갖고 있다"며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새마을운동을 소개하는 것으로 다른 국가를 도울 수 있다"고 했다.소 회장은 "지구촌 새마을운동은 현지 주민들에 의해, 그들 스스로를 위해, 그들의 의사결정과 참여를 통해 접근되고 실천돼야 한다"며 "이 같은 새마을운동 접근방식이 세계평화의 씨앗이 되고 지구촌의 어두운 구석을 환하게 밝혀줄 수 있는 평화의 횃불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 같은 역할을 잘 수행한다면 우리나라가 중심세력을 이루며 UN을 대체할 수 있는 세계기구로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새마을운동이 직면한 문제점은 새마을운동이 가진 역량으로 돌파할 수 있다."그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멀어진 것은 사실이다. 또 정치적이라는 편견을 깨고 재정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이 같은 어려운 상황에 대해 소 회장은 "왜 이 시대에 새마을운동이 필요한가를 생각하면 새마을운동의 활성화와 재정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공공부문의 역할을 정부가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실행하는 것보다 210만 새마을회원과 지도자가 기존의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고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며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직접 담당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 효과적인 관리가 어려운 일을 찾아내 새마을운동이 챙기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재정 건전화와 활성화에 대한 방안을 제시했다.이와 함께 "나눔·봉사·배려라는 덕목을 갖춘 새마을지도자와 회원들이 근면·자조·협동이라는 새마을운동 정신을 실천하고 공익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사회·문화·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를 위해 젊고 유능한 국내외 새마을지도자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새마을운동에 헌신한 선배 새마을지도자의 봉사를 헛되게 하지 않고 세계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지켜가기 위해 나눔의 새마을운동을 실천하겠다"며 "다음 세대를 배려하는 새마을운동을 생활화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더불어 새마을운동 명예의 전당을 건립해 지역사회와 나라발전에 기여한 선배 회원, 지도자, 전문가의 업적이 기억되도록 해 새마을운동이 지속적인 추진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새마을운동은 가장 기초적인 생활터전인 마을 단위로 추진돼야 한다."소 회장은 "새마을운동중앙회는 가장 말초적인 지방조직을 가지고 있다"며 "모세혈관이 건강하지 않으면 중앙회는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중앙조직은 새마을운동 본질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정책을 개발하고 지방조직이 활발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정비돼야 한다"며 "상향식 접근 논리를 갖고 주민들이 역량을 강화하고 다시 강화된 주민역량으로 스스로 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비전을 밝혔다.그는 새마을회원들에게 "회원 모두가 새마을운동 방식대로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증거이고 증인이며 실천가들인 만큼 새마을운동의 상징이고 미래사회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우리가 선배 세대에 감사하는 것처럼 다음 세대가 감사할 미래를 함께 만들자"고 당부했다.■소진광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은?-1955년 충남 부여 출생-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및 대학원 졸업(행정학 박사)-현 가천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전 대외부총장-한국행정학회 부회장· 한국지방자치학회 11대 회장-한국지역개발학회 14대 회장-새마을운동중앙회 이사· 지구촌 새마을운동 성과관리위원-행안부 지방자치단체 정부시책 합동평가단장, 행자부 중앙투자심사위원· 지방채발행심사위원, 건교부 신도시자문위원, 환경부 중앙환경정책위원-대통령 지방분권전문위원, 대통령 직속 중앙권한 지방이양추진위 실무위원-국무총리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 청소년보호위원회 정책자문위원-홍조근정훈장·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표창 수상-한국지방자치학회· 한국지역개발학회 학술상 수상-학술논문 130여 편· 저술 20여 권 등 연구실적 대담/김규식 동북부권취재본부장(부국장), 정리/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소진광 제23대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이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정신을 계승 발전 시켜 지구촌 곳곳 까지 평화의 씨앗을 뿌려 세계시민들의 복지향상을 이루겠다고 밝히고 있다.

2016-03-29 김성주·김규식

[인터뷰… 공감] 이문열 작가

살던 집 작가지망생 문학수업 강의실로 첫 개방이념·정치논쟁 속 문원의미 퇴색… '외로운 싸움'공적장소 전환해 창작레지던시 유지·활용하고파작가 이문열이 요즘 고약한 상황에 처했다는 풍문을 접하고, 무슨 일인가 싶어 인터뷰를 청하고 이천 부악문원을 찾은 건 지난 11일이었다. 이문열은 1985년10월5일 이천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1998년 부악문원을 설립한 이후 31년 가까이 이천 시민으로 살고 있다. 부악문원은 그의 집필실이자 동시대 문청들의 학숙이자 창작공간이다. 그의 생애에서 '이천 시절'은 문학적 성취와 정치적 사변(?)이 버무려진 격랑의 시기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시인(1991)', '선택(1997)' 등 논쟁적 작품을 비롯해 그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진 '변경'(1998)등 주요작품들이 이천에서 탈고됐다. 그에게 부와 명예을 안겨준 초대박 스테디셀러인 '이문열의 삼국지'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문단의 보수우익 대표 논객으로 이념논쟁에 뛰어들었을 땐 선혈이 낭자했던 공간이기도 했다. 2001년 치러진 그의 책 장례식은 치열했던 정치사변의 피날레였다. 그 시절의 부악문원은 이문열에게 외로운 고지전을 감당했던 '참혹한 진지'이자 '최후의 보루'였다. 그 난리통에 낙향의 염원은 무뎌졌고 이제는 부악문원을 기반으로 이천에 정주할 생각이라 했다. 그런데 그 부악문원이 이제 이문열에게 다른 의미에서 "고약한 일"이 됐다.-이천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집을 짓고 주민등록을 옮긴게 85년 10월 5일이다. 그 해 봄 대구에서 꽤 좋은집을 팔아 서울로 이주를 했더니 연립주택 살 돈 밖에 안됐다. 그런데 어머니까지 해서 식구가 많았다. 할 수없이 집 근처에 10평 남짓한 집필실을 하나 얻으려니 전세로 1천만원이었다. 계약을 고민하던 차에 이천 사는 친구(조각가 강대철)가 그 돈이면 이천에서 땅 1천평을 살수 있다더라. 촌놈인지라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10평짜리 방보다 땅 1천 평이 훨씬 나아보이더라. 그 때 땅을 알아보고 친구의 빈 집에서 겨울을 났으니 이천에 머문게 32년째인 셈인가?"-당시 거주 여건이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았을텐데."맞다. 처음에 왔을 때는 전기도 없었고 전화기도 마을 이장집에 하나 있었다. 서울에서 전화가 오면 구판장 마이크로 '이문열씨 전화왔어요' 그러면 뛰어내려가서 전화를 받고 그랬지. 이 마을(이천시 마장면 장암리)이 재미있는 마을이다. 설봉산에서 보면 하늘 아래 첫 마을인 셈인데 6·25때 인민군이 여기에 마을이 있는 지도 몰랐다더라."친구 덕분에 지금은 상당한 이익을 본 셈이다.(웃음)"아무것도 하지 않고 땅만 샀으면 정말 엄청나게 남았겠지. 한 100배 쯤 될까.(부악문원 대지는 2천400평이다.) 그런데 살면서 집을 짓고 문원을 조성하는데 지금 땅값 만큼 들였으니 장사의 이문을 따질게 없겠다."-처음부터 부악문원 세울 생각이었나."처음엔 집을 짓고 혼자 있다가 전업작가나 문학지망생들에게 문학수업을 하는 공간으로 개방했던게 문원의 시초다. 그러다 95년에 공사를 시작해 98년에 정식으로 부악문원을 열었다. 그때 식구들도 모두 이곳으로 왔다. 부악은 설봉산의 옛 이름이다. 설봉이라는 이름이 듣긴 좋은데 꼭 기생 이름 같은 게 너무 낭창낭창한 느낌이라 옛이름을 쓴거다.(부악은 부아악의 줄임말로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업은 형상의 산이름. 전국 각지에 같은 이름의 산들이 많다.)"-이문열의 문학인생에서 이천, 부악문원은 어떤 의미인가."글쎄. 그런 의미를 따지기에는 이천 거주 자체가 우연의 소산이었다. 처음엔 고향(경북 영양)가는 길인 이천에 집을 구해놓고 15년 가량 있다가 고향으로 가자는 마음이었다. 우리 또래는 은퇴하고서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상식이었다. 95년부터 시작된 고약한 싸움, 그것이 아니었으면 아무리 늦어도 10년 전 쯤, 예순 쯤에는 귀향했을 것이다. 그런데 고약한 싸움이 시작되면서, 내가 문학으로 받았던 것들을 문인들에게 베풀 수 있는 문원이란 장소의 의미까지 퇴색되면서, 여기라도 지키고 있지 않으면 내가 완전히 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이 홀로 고군분투하는 진지가 됐고 패퇴해 물러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싸움이 한창 격화되고 있을 때 이미 50대 중반이었다."-90년대 중반 부터 시작된 이념논쟁, 정치논쟁의 계기는 무엇이었나."사실 원인은 오랜세월 축적되었던 것이고, 싸움의 출발은 문화 헤게모니 개념에서였다. 내가 보수 우파라고 커밍아웃했던 90년대 중반은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두 개의 가치, 산업화라는 물적기반의 근대화 가치와 정치적인 자유화와 민주화 가치의 충돌이 정점에 이른 시기였다. 그런데 유신시대와 권위주의적 폭압 정치가 지속되는 사이에 문화진지의 한 축인 보수계열이 진보 쪽으로 쏠려버렸다. 그래서 우파임을 자인하고 집중포화를 맞았다. 당시 보수를 자인하는 문학인이 흔치 않았고···."이문열은 84년 발표한 '영웅시대'로 보수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진보적 페미니스트들은 그의 97년 발표작 '선택'을 남성우월주의자의 독백이라 비난했다. 급기야 2001년 진보세력을 겨냥한 홍위병 발언으로 책 장례식을 당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치열한 진영 대결이 한창인 시절에도 많은 문인들이, 심지어 진보진영과 호남 출신 문인들까지 부악문원의 식객(?)으로 거주하며 작품을 썼고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부악문원을 통해 등단한 문학지망생도 십수명이다. 그는 이들의 이름을 거명하기를 꺼렸다. 그들이 원치 않을지도 모르고, 부악문원과 그들의 인연을 밝히는게 여전히 그들에게 부담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 시절의 상처는 여전히 그에게 간단없는 통증을 안겨주고 있었다. 진영대립은 인간을 통섭하는 문학에도 불통의 벽을 세운 것이다. 그는 "참혹한 현실"이라고 했다.-부악문원과 이천시절은 작가 개인은 물론 한국문단사 유의미한 시공간이다. 그런데 부악문원 때문에 고민이 깊다고 들었다. 왜인가."솔직히 말해 초창기에는 부악문원이 나의 것이지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 수록, 5년 전 무렵부터는 중압감이 생겼다. 예전만큼 강한 적은 없어진 것 같고, 이념적 적대감도 무뎌지면서 고향 갈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니 부악문원이 걸렸다. 고향으로 가려면 여기를 처분해 일부는 고향으로 일부는 서울로 옮겨야 했다. 그런데 부악문원 출신 젊은 친구들이 '선생님 이걸 꼭 없애야 합니까? 형편이 어려우면 모르겠지만 괜찮으면 그냥 두시지요'라고 하더라. 이 장소가 없어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거지. 그 말이 마음에 걸렸고, 당시 형편이 문원을 유지할 정도는 됐고 그렇게 지금까지 온거다. 그런데 지금은 이것이 정말 내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든다. 문단은 내가 여기서 30년을 지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 이것을 팔아 다방이 될지 술집이 될지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뀌어도 모른체 하는 게, 내가 완전히 망했다면 몰라도 그것이 할 짓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 자체도 시들해져버렸다. 고향에 가려면 더 전에 갔어야 했다. 지금 간다면 죽으러 가는 것뿐이 더 되겠는가."부악문원이 그에게 고약한 일이 된 것은 고향갈 생각을 접고 부악문원을 공적 공간으로 인식한데서 비롯됐다. 공적 공간으로 전환하면서도 공간 유지비용을 계속 부담한다면 힘에 부친다고 털어놨다. 부악문원을 창작레지던시로 유지하려면 1년에 1억원 가량 드는데 일부 정부지원을 받아도 본인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부악문원을 이천시의 문화콘텐츠로 유지한다면 이천시의 지원도 가능한 얘기 아닌가. 가령 문학관 형태로…."작가의 이름을 딴 기념관이나 문학관은 내가 싫어하는 형태 중 하나다. 그것은 죽은 뒤에나 하는 것이지 사람이 살아 있는데···. 다만 부악문원을 공적인 공간으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고민하다가 작년에 조병돈 이천시장과 남경필 도지사를 만나 의논도 했다. 조 시장은 부악문원 매각은 안된다며 시 혼자 힘으로는 어려우니 경기도와 방안을 찾자 했고, 남 지사는 법규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돕고 싶다고 하더라. 고민의 진행은 현재 여기까지다."-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예산을 들여 유명작가나 작품명을 딴 기념관이나 문학관을 지어 문화콘텐츠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그렇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그런 곳들의 사례로 부악문원도 거론되고 있으니 참 할 말이 없다. 물론 이천시에서도 부악문원을 공적인 문화콘텐츠로 활용할 방안을 달라고 하지만 내 입으로 뭘 해달라는게 영 그렇다."-사적 재산인 부악문원을 문화적 공공재로 전환하기 위해 예산을 투입하는게 문제로 보이는데 선례가 없나."그래서 부악문원 땅 일부를 제공하고 거기에 시가 집을 하나 지어 시의 소유로 하면 좋겠다고 가족들과 결론을 내렸는데 이야기 단계에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다."최근 이천지역 문화예술계에서는 부악문원을 이천시의 문화콘텐츠로 활용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이천시도 이에 호응해 부악문원 활용방안을 그에게 요청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정작 이문열 본인은 이런저런 요구를 하기 난감하단다. 셈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경북 산촌 양반의 체모, 혹은 문학과 돈을 분리하던 서생적 풍모의 손상을 꺼려하는 느낌이었다. 고약한 일이겠다 싶었다.-많은 예술가들이 경기도에 창작공간을 마련해 활동하지만 지역과의 소통이 부족해 보인다."맞다. 처음엔 여기 분들과 자주 모일 구실도 없고, 몰두해야 할 일들도 있었고, 삶의 환경차이도 무시할 수 없었으니 서먹서먹했던게 사실이다. 그래도 내 인생의 가장 오랜 기간을 이곳에서 살았고 이제는 마을 사람 모두와 알고 지낸다. 2001년 진보진영이 부악문원에 책 상여를 메고 장례식 퍼포먼스를 벌일 때,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마을 입구에서 막아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여기 사람이 됐구나."-얼마전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어느 매체에서 일종의 부채감 때문에 맡았다고 표현했던데."그 기자가 과장을 한거지. 특별히 시간을 많이 내지 않아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맡았다. 2011년 최고은 작가가 생활고로 숨진 사건을 계기로 설립된 재단인 만큼 설립 취지에 맞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처음엔 작가 1인당 지원금이 60만~7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지원 인원이 늘면서 지원금액도 형편없어진 모양이다. 예술활동증명서를 내는 것도 어색해 보이고…. 예술활동을 증명할 정도면 어려운 사람이 아닐 경우가 많다. 예술인 복지가 아니라 예술진흥으로 변질된 듯한 느낌인데 이런 걸 바로잡을 생각이다."-요즘 80년대를 정리하는 작품, 변경의 후속작을 집필중이라고 들었다."골치 아프다. 뜸을 너무 오래 들였고 나는 늙어버렸다. 그러는 동안 역사가 왜곡된 인식으로 굳어지고, 주장과 선동이 역사가 되어간다는 느낌이다. 글을 쓰면서도 자꾸 맥이 빠진다. 예를들어 작품 말미에 김영삼이 나오는데 그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그렇다. 내가 보기엔 그의 가치(업적)는 민주화가 아니라, 충돌과 피로 희석시키지 않으면 안될 과거를 공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데 있다. 김영삼이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다. 그를 민주투사로 과잉 투영해 해석하는 것이 내 인식과는 맞지 않다. 한 시대는 똑같은 가락의 반복이 아니라 화성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자꾸 단음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계속 걸리니까 글 쓰기가 어렵다."-전 시대를 정리해 현 시대의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은 늘 고민스럽지 않은가. 요즘처럼 책을 외면하는 세대에겐 더욱 지난한 일 아닌가."이야기하기 편한 대상은 예전의 독자들이 맞다. 그러나 전시대의 기록은 중요하다. 기억에는 개인적 기억과 그것이 공유되는 사회적 기억, 후세에 기록될 역사적 기억이 있다. 그런데 기억은 변경되고 조작된다. 새 작품을 준비하는 10년 동안 내 주변의 사회적 기억을 확인해왔는데 굉장한 왜곡과 조작이 있었다. 술에 취해 경찰과 치고받은 젊은 시절의 취객이 장년이 되어서는 전두환 욕을 했다가 경찰에게 맞은 민주화 투사로 변신하는 식이다. 기자 시절 내가 파출소에서 빼준 친구 이야기인데 이런 사례가 무수하다. 독자가 어떻게 읽느냐 보다는 내가 그 시대의 사회적 기억을 어떻게 복원하고 해석하느냐가 심각한 고민이다."-이제 조금은 너그러워질 연배다."맞다. 어떤 것들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이문열과의 대담은 4시간 가량 물 한잔 없이 진행됐다. 대화가 모두 끝난 뒤 그가 말했다. "이런 손님에게 물 한잔 안드렸네." 올해로 68세인 이문열은 여전히 집중하는 청년이었다. 이제 이천시민과 경기도민이 이문열을 변경의 구속에서 풀어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작가 이문열은?1948년 출생1970년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중퇴1978~1980년 대구매일신문 기자1979년 오늘의 작가상 1982년 동인문학상 1987년 이상문학상 1992년 현대문학상 1992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92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수훈장 1993~1996년 세종대 교수1998년~ 부악문원 대표 1998년 21세기문학상1999년 호암상 예술상 2009년~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2009년 대한민국예술원상 2012년 동리문학상2015년 은관문화훈장 주요작: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젊은날의 초상, 금시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웅시대, 변경 등대담/윤인수 부국장 (문화부장) isyoon@kyeongin.com · 정리/권준우기자junwoo@kyeongin.com ·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지난 11일 이천시 부악문원 자신의 집필실에서 작가 이문열이 고락이 넘친 문예인생을 회고하며 활짝 웃고 있다.부악문원 제공

2016-03-22 윤인수·권준우

[인터뷰… 공감] 홍헌표 '터닝메카드'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미래소년 코난' 좋아해 대기업 그만두고 日유학… 한국 얕보는 편견맞서 두배로 노력애니는 영화·게임등 영향주는 '상위문화'… 3D분야 발전, 2D '위기'돈보다 인력양성 인프라 지원이 중요"애니메이션을 만들고 표현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지난해 2월 초 첫 선을 보인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 전국의 아이들은 열광했고 자연스레 터닝메카드 장난감을 사려는 부모는 유통매장 앞에서 긴 줄을 서야 했다. 중고시장에서 새제품 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는데 인기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터닝메카드 장난감은 별도의 전기적인 동력장치가 없는 자동차에 카드를 가져다 대면 로봇으로 변신한다.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은 3세 유아도 반하는 이유다. TV안이나 밖이나 터닝메카드 열풍이다.터닝메카드는 한국의 제작회사와 감독이 만든 순수 국산 애니메이션이라는 데 그 의미가 있다. 홍헌표(48) 감독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과 애정 덕분에 가능했다. 처음부터 홍 감독이 애니메이션 제작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정치외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7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1년 3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이 후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홀홀단신으로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가족들의 반대도 극심했지만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싶다는 꿈 하나로,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순수 국산 애니메이션의 한 획을 긋게 됐다.터닝메카드로 국산 애니메이션 열풍을 일으킨 홍헌표 감독을 지난 3일 서울 구로 e스페이스에서 만났다.-첫 전공은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나. 어떻게 애니메이션 제작에 입문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 하야오 감독의 '미래소년 코난'을 꾸준히 챙겨볼 정도였다. (웃음)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어를 공부해 도쿄 커뮤니케이션 아트라는 애니메이션 전문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2000년에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타크'에 15대 1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는데 한국인은 처음이었더라. 저를 뽑아준 사람이 하야오 감독의 선배인 쓰기이 기사부로 감독이었는데, 나중에 여쭤보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너무나 좋았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렇게 제2의 인생이 열리게 됐다."-비디오 아티스트의 거장 백남준 선생 밑에서 일할 뻔한 사연도 있었다는데."일본 애니메이션 전문대학에서 저를 가르쳐 준 나카지마 코 선생이 있었다. 알고보니 나카지마 선생은 과거 스웨덴 유학 당시 만난 백남준 작가와 막역한 관계였었다. 저를 좋게 봐준 나카지마 선생이 제가 졸업할 무렵 취직과 함께 백남준 작가 밑에서의 미국 유학 등 두 가지의 기회를 줬어요. 백남준 작가 밑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당시 나이가 서른 살이 넘은 탓에 취직을 택했다."-일본에서 애니메이션 제작 일이 쉽지는 않았겠다. 문화적 차이도 있고."저를 아꼈던 일본인도 있었지만, 약간의 편견을 갖고 저를 대했던 일본인들도 더러 있었다. 일부 일본인은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문화 등 전체적으로 한국인을 한 수 아래로 본다고 해야 하나. 특히 타크 회사에서 연출을 맡았을 때 일본인 사이에서 반대가 극심했다. 편견을 극복하고자 일본인보다 두 배 이상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이후 한국 역시 일본 못지 않게 훌륭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2005년도에 귀국했다. 곧바로 홍익대 영상대학원에 진학해 애니메이션의 3D 요소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전국 아이들을 열광케 한 '터닝메카드', 감독님이 생각하는 차별성은 무엇인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동차, 변신 로봇, 카드 등 다양한 요소들을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융합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변신 로봇 애니메이션이나 카드 소재 만화는 기존에 있었지만, 이 소재들을 융합한 것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또 터닝메카드에 등장하는 인물들 성격을 옛날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하려고 노력했다. 과거 만화의 등장인물은 선과 악이 뚜렷한 전형적, 평면적인 인물이었지만 터닝메카드에 등장하는 인물은 다르다. 악역도 쿨하거나 귀여운 매력이 있다. 또 선역, 악역 모두 자신만의 신념과 소신을 갖고 있다. 다양한 캐릭터의 성격 또한 터닝메카드의 재미라고 생각한다.-애니메이션을 보면, 그래픽 효과 등 디테일이 훌륭하다. 어떻게 제작했나."터닝메카드는 2D그래픽을 기반으로 자동차와 특수효과를 3D그래픽으로 제작해 합성한 작품이다. 2D와 3D를 잘못 합성하면 위화감이 커지는 등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우선 수작업으로 종이에 2D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뒤, 3D 그래픽 효과 부분을 따로 제작해 덧씌우는 방법을 택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작품에서 극적인 효과를 살릴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을 보면 자동차가 로봇을 변신할 때 빛으로 된 길을 통과하는 부분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가까운 곳에서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되는 부분을 찾았다. 지금 일하는 서울 구로디지털 단지가 비행기가 많이 지나다닌다. 그 점을 착안해 터닝메카드 배경 역시 비행기가 많이 나온다. 작품에서 남구로초교 역시 인근 구로남초교에서 착안했다."-감독이 생각하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 주소를 말해달라."한국 애니메이션은 많이 발전했다. 하지만 3D 애니메이션 분야이지 2D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어렵다. 특히 애니메이션 제작을 꿈꾸는 젊은 학생들을 봐도 2D 애니메이션을 지망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유는 감독이 되기 전까지 생계가 어렵기 때문이다. 3D 애니메이션 전공은 광고나 게임회사 등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곳이 많다. 2D 애니메이션 전공자는 갈 곳이 없다. 현실은 애니메이션 강국이라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20년 동안 2D 애니메이션 제작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2D 애니메이션 작품 1화를 만드는데 받는 돈은 700만엔(약 7천만원)이지만,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최소 80명이 달라붙어야 한다. 사실상 남는 것이 없다. 일본도 위기인데 한국 역시 이대로 가다가는 2D 애니메이션의 계보가 아예 사라질 수 있다."-어떠한 방법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르네상스를 불러올 수 있나."애니메이션을 상위문화로 바라보는 시각이 제일 중요하다. 애니메이션은 제작된 이후 드라마나 영화, 게임, 상품 제작 등 다양한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상위문화다. 최근 인기인 웹툰 중 '미생'이나 '치즈 인 더 트랩'처럼 언제든 드라마 등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은 애니메이션 등 만화는 '마이너리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드라마와 영화 제작에는 열광하지만, 애니메이션 제작에는 다소 시큰둥한 게 현실이다. 또 정부의 지원이 단순한 금전적 지원보다는 훌륭한 인적 자원 양성 등 인프라 확충으로 달라졌으면 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젊고 의지 있는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를 이끌 수 있다."-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앞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고 또 만들고 싶다. 더 나아가 2D 애니메이션 업계가 발전하고 많은 제작자들이 꿈을 키워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여서 오는 5월 '터닝메카드 2기'가 선보일 예정이다. 환경파괴의 심각성 메시지를 담은 재밌는 작품이니 많은 기대를 해달라. 새로운 캐릭터와 다양한 성격을 지닌 메카니멀도 등장한다. 반전도 있으니, 다시 한번 기대해도 좋다."■홍헌표 감독은?1968년 경기도 광주시 출생1997년 코오롱 매트라이프 입사1999년 도쿄 커뮤니케이션 아트 입학2000년 애니 제작사 타크 입사2006년 홍익대 영상대학원 입학2015년 애니 터닝메카드 첫 방영2016년 애니 터닝메카드 2기 방송 예정글/김범수기자 faith@kyeongin.com ·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전국 아이들을 열광하게 한 순수 국산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의 홍헌표 감독이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만화의 인기 비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전국 아이들을 열광하게 한 순수 국산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의 홍헌표 감독이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작업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강승호기자전국 아이들을 열광하게 한 순수 국산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의 홍헌표 감독이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만화의 인기 비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승호기자전국 아이들을 열광하게 한 순수 국산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의 홍헌표 감독이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만화의 인기 비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승호기자

2016-03-15 김범수

[인터뷰… 공감] 박형우 인천 계양구청장

그린벨트 해제 위해 '온힘'착한가격·풍부한자원 장점미분양 우려에도 성공 확신연 2만 고용창출 효과 '기대'낮은 재정자립도 극복 자신서운일반산업단지가 지난 8일 기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조성에 들어갔다. 인천 계양구 서운동 96의 19일대 52만4천910㎡ 부지에 조성되는 서운산단은 오는 2018년 6월 공사를 마치고 기업들이 입주해 계양구의 새로운 경제 동력이 될 전망이다. 서운산단은 금속가공·전자부품·전기장비 등 일반제조업체들과 식료품·종이제품 등 복합업종 기업들이 입주한다. 지난해 12월 산업시설용지 72필지(31만4천455㎡)에 대한 분양·입주 신청을 받아 평균 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서운산단은 서울외곽순환도로, 경인고속도로, 인천공항고속도로 등과 인접해 지리적 장점이 크고, 3.3㎡당 평균 378만원의 분양가로 인근의 주요 산단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높여 기업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지역경제계에서는 서운산단이 대박 신화를 쓰고 있다고 말한다. 계양구의 새로운 경제 동력이 될 서운산단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박형우 계양구청장을 지난 2일 만났다.-서운일반산업단지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인천 시의원을 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양구 서운동부터 효성동까지 준공업지역인데 공업지역의 기능을 못 했다. 이 지역에 아파트와 빌라 등이 계속 지어지면서 그에 따른 민원도 많이 발생했고,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거시설은 많아지는데 사람들이 일할 곳이 부족했다. 세수 확충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계양구 지역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구청장이 되자마자 산업단지 개발 계획을 세웠다. 산업단지 지역 대부분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어 어려움도 많았지만, 지금은 명실상부한 인천 서북부권 최대 산단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공장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풀어나갔나."인천에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산업단지로 만든 것은 서운산단이 첫 사례다. 구청장에 부임하자마자 산업단지에 적합한 땅을 찾아봤는데 계양구의 절반 이상이 그린벨트였다. 당시엔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반 용지를 산업단지로 만들 경우엔 분양가가 높아져 입주 업체를 모집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중앙 부처를 수십 번 오가며 그린벨트를 해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2013년 국토교통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에서 그린벨트를 해제하기 위해 위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계양구에 그린벨트가 60%에 달하고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으면 공장을 지을 수 없다는 부분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수차례 거쳤다. 결국, 나를 비롯해 관련된 모든 이들이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 산업단지를 만들어낸 셈이다."-계양구가 재정도 넉넉하지 않고, 산업단지 초기엔 성공 여부를 두고 우려가 컸는데."계양구의회에서 서운산단으로 인한 부채문제 등을 많이 우려했다.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데 필요한 자금,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보상비, 혹시 미분양이라도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 등 구의회에서 많은 지적을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내가 직접 구의회에 나가서 당당하게 답변을 했다. '미분양에 대한 대책은 없다. 투기를 조장할 수도 있지만, 미분양 대책이란 싸게 파는 것이 대책이다'라고 답했다. 분양은 100%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주변에 인접한 고속도로가 주는 지리적 여건, 풍부한 인적 인프라 등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강화산단이 지금 어렵다고 하는데 그건 산단에 입주할 기업들이 사람을 구하기 어렵고, 수도권 등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물류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서운산단은 저렴한 분양가, 풍부한 인적 자원, 편리한 교통망 등의 장점으로 인해 미분양 문제는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서운산단이 결과적으로는 대박 신화를 쓰고 있다. 서운산단으로 인한 경제적인 효과는 얼마나 되나."서운산단은 계양구의 성장 동력이다. 인천의 자치단체 중 우리 계양구는 재정 자립도가 18.5% 수준으로 매우 낮다. 구에서 재정적으로 확충할 수 있는 요인이 많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서운산단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서운산단의 지역경제파급 효과는 2조1천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어떤 기업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연간 2만여 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 외에도 서운산단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계양구로 이사를 오고, 인근에서 먹고 쓰는 것까지 포함하면 보이지 않는 경제적인 효과도 생길 것이다."-기존에 조성된 산업단지들이 주차장 부족 등의 이유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서운산단이 명품 산단이 되기 위한 차별점이 있나."서운산단의 전체 공사비가 800억원 정도 되는데 품질을 높여 문제점을 최소화할 것이다.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기반시설을 최대한 수요자 중심으로 개발할 것이다. 서운산단이 명품 산단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교통 체계 개선도 우선 돼야 할 것으로 본다. 산업단지가 인근의 교통망과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또 주차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게 개발하고, 녹지율도 18% 수준으로 타 산단에 비해 높은 편인 만큼 근로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일 할 수 있다."-끝으로 서운산단에 거는 기대는."서운산단은 계양구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다. 앞으로 계양구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제는 제2, 3의 산단을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자리와 세수 확대 없이는 도시의 확대가 어렵다고 본다. 제2, 3의 산단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지금의 서운산단에 최선을 다해 명품 산단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박형우 계양구청장은?1957년 인천 계양 출생1976년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졸업1978년 동양공업 전문대학 건축과 졸업1995년 인천광역시의회 제2대 시의원1998년 인천광역시의회 제3대 시의원2003년 인천광역시 지하철공사 비상임이사2010년 제5대 계양구청장2014년 제6대 계양구청장 대담/장철순 인천 편집제작국장·정리/신상윤기자 ssy@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jhc@kyeongin.com박형우 계양구청장이 지난 2일 구청장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서운일반산업단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서운산업단지는 인천 계양구의 세수확보와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서운일반산업단지 금속가공·전자부품등 일반 제조업체와 식료품· 종이제품등 복합업종 기업입주. 산업시설용지 72필지분양·입주 신청 마치고 이달 8일 본격 조성.2018년 6월 완공예정.박형우 계양구청장이 서운일반산업단지 평면도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

2016-03-08 장철순·신상윤

[인터뷰… 공감] 최광욱 칼빈대학교 총장

학교에 헌신할 기회 감사… 개혁신학의 역사적 전통 잘 살려 나갈것순수신학과 축구부 창단 의미… 올해 U리그 출전해 좋은 선수 발굴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신학 대학인 용인 칼빈대학교에 축구부가 탄생했다. 지난 1월 30일 창단된 칼빈대 축구부는 신학대 안에서도 순수 신학과 학생으로 구성되는 등 새로운 축구 문화를 예고하고 있다. 칼빈대가 축구부를 창단하게 된 배경에는 아프리카 축구 선교사인 임흥세 감독의 힘도 컸지만, 지난달 25일 새로 부임한 최광욱(72) 제5대 총장의 역할도 컸다.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는 최광욱 총장을 지난 29일 만나봤다.최 총장은 취임 소감을 묻자 "저같이 부족한 사람을 60년 역사가 넘는 개혁신학의 요람인 칼빈대 총장으로 임명해주신 이사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4년 임기 동안 전임 총장님들이 이뤄놓은 칼빈의 명성을 잘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전했다.이어 "내가 2년 동안 칼빈대 이사로 활동했지만, 아직 밖에서 학교를 보는 정도여서 학교의 현안과 발전 방향에 대해 파악하기 힘들다"면서 "하지만 평생 사업을 해온 사람으로서 학교를 위해 내가 할 일을 잘 살피고 답을 찾은 뒤 돌아보지 않고 전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최 총장은 "칼빈대는 여러 가지 발전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추고 있는 학교"라면서 "한국과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 학교 출신자와 목회자, 신학자, 평신도들이 각 지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의 역량을 잘 모으고 나아간다면 더 나은 학교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개혁 신학의 전통이 무너져 가는 이때 70년을 향해서 가는 칼빈주의를 이어가는 개혁신학의 역사적 전통을 잘 살려 나가겠다"고 밝혔다.칼빈대는 최근 신학대 최초로 축구부를 창단해 올해 U-리그에 출전할 계획이다. 특히 신학대 중에서도 순수 신학과 안에 창설된 축구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과거 순복음 총회신학교가 첫 신학 대학 축구부를 만든 바 있지만, 이번에 첫발을 내디딘 칼빈대 축구부는 신학대 안에서도 순수 신학과 학생으로 이뤄졌다는 점과 앞으로 선교사 전문 축구인을 양성한다는 뜻도 담겨 있어 기존 축구부와는 차별화됐다.이에 대해 최 총장은 "전임 김재연 총장께서 축구부를 창단하는 데 큰 역할을 해주셨다"면서 "다른 스포츠 종목과 달리 축구는 사람들을 결집하고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스포츠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대한민국을 하나로 모은 것도 바로 축구였다"고 말했다. 이어 최 총장은 "우리 학교가 축구부를 만든 것은 축구 유망주를 발굴해 한국 축구의 발전에 밑거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장차 이 선수들이 미래에 선교사로 활동해 축구를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파한다면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면서 "추후 해당 학과 이름을 '스포츠 선교학과'로 바꿀 계획도 갖고 있다"고 전했다.칼빈대 축구부는 이승도 단장을 비롯해 임흥세 총감독, 류봉기 감독, 유병식 코치가 18명의 선수를 지도한다. 최 총장은 "임흥세 감독은 남수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오랜 기간 맡아 '아프리카 축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이런 분이 칼빈대 축구부의 총감독을 맡아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임흥세 총감독과 성남 일화에서 수비수로 명성을 날린 류봉기 감독이 선수들을 잘 지도한다면 좋은 결과를 맺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러면서 최 총장은 "고교 선수들이 대학으로 진학하는 과정에서 많은 청춘이 운동장에 설 기회를 잃는다. 이들에게 더 많은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좋은 선수로 키우고자 한다"며 "앞으로 칼빈대에서도 국가대표를 배출할 수도 있다. 우리 학교가 운동부의 모범 사례로 남는다면 점점 더 많은 신학대에서 운동부를 창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임흥세 총감독의 말처럼 '전문적이면서 인성·영성을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해 해외로 보내 어려운 국가의 국민들에게 꿈과 용기를 전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최 총장은 다른 종목도 육성할 뜻을 내비쳤다. 그는 "축구부 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도 육성해 볼 계획도 갖고 있다"면서 "경기도체육회, 용인시체육회 등과 협조해 교내 운동부 창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축구에 대해 그는 "나는 축구뿐만 아니라 야구 등 스포츠를 관람하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특히 국가대표 경기 및 월드컵은 밤잠을 설쳐가면서도 시청한다"며 스포츠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이어 최 총장은 "이전까지 없던 형태의 축구부라는 점에서, 분명 한국 축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기대한다. 칼빈대 축구부가 잘 운영되면 한국 스포츠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최 총장은 서울의 동도교회 은퇴 장로다. 그는 "이사회에서 내가 단독 총장 후보로 거론됐다는 것에 대해 식은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다. 목사가 아닌 장로가 총장을 맡는 것이 합당한지, 걱정도 많이 했다"면서 "하지만 하나님과 이사님들이 헌신할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최 총장은 교직원들과 협의해 학교를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이에 그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목회자를 배출하고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대학을 만들며 ▲교회를 섬기고 사명을 다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그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총장의 자격은 부족하지만, 한평생을 로컬 교회에서 장로로서 교회를 섬겨왔다. 최고의 수장으로서의 자리에 있지만, 섬기는 마음으로 교직원과 함께 학교를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다짐했다.■칼빈대 최광욱 총장은? 1943년서울 출생1966년고려대 물리학과 졸업1966년ROTC 임관1968년화인양행 입사1969년세영상사 대표1986년중앙빌딩 대표1997년동도교회 장로2003년세일빌딩 대표2010년대한예수교 장로회 평양노회 부노회장2012년대한예수교 장로회 평양노회 교직자회 부회장2014년학교법인 칼빈대학교 이사2016년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대학교 명예신학박사2016년제5대 칼빈대학교 총장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용인 칼빈대학교 제5대 총장으로 취임한 최광욱 신임 총장이 한국 신학대 최초로 축구부를 창단시킨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칼빈대 제공칼빈대 제공

2016-03-01 신창윤

[인터뷰… 그] 김우식 인천도시공사 사장, 변화를 말하다

부동산 자산 데이터베이스화·직원 역량 강화 공감대 '부채우수기관 표창' 성과수요자에 맞춘 토지 공급·처분 가능 토지 매각계획… 시장상황에 따른 계획변화검단새빛도시 스마트시티사업 SPC와 협의해 실시·매매협약 체결 리스크 최소화"도시공사는 다른 어떤 처방보다 체중을 줄여야 합니다."인천도시공사 김우식 사장은 인터뷰 중 도시공사를 '비만'이라고 표현했다. 많은 빚을 안고 있는 도시공사는 사람으로 치면 과체중이라며 체중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난해 도시공사의 체중 조절에 주력했고, 성과를 거뒀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7천408억원의 부채를 감축했다. 행정자치부에서 부채감축 우수기관으로 표창도 받았다. 한때 과도한 부채로 '빚더미'라는 소리를 들었던 인천도시공사가 부채감축의 상징으로 변모한 것이다. 501억원 규모의 흑자도 달성하면서 도시공사는 경영지표 상으로 예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영 지표가 좋아지면서 직원들도 예전과 달리 의욕적이고, 자신감을 찾았다는 것이 외부의 평가다. 최근 도시공사 집무실에서 김우식 사장을 만나 공사의 변화에 대해 들었다. 대화의 주제는 도시공사 경영 지표에서 부동산 경기 전망, 검단새빛도시 등 공사의 주요사업, 이달 말 있을 복합리조트 발표, 도시공사가 지분을 갖고 있는 SPC(특수목적법인) 등으로 옮겨갔다. 김우식 사장은 각 사업과 관련된 세부 내용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빚더미'라는 소리를 듣던 인천도시공사가 부채 감축 우수기관으로 표창을 받았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었나."지난해 연초에 도시공사 경영정상화 원년으로 삼겠다는 약속을 했다. 회사 내부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자는 공감대가 있었다. 주변 여건도 좋았다. 저금리 기조로 갔고, 부동산 경기도 살아나는 모습이었다. 일하는 방법도 바뀌었다. 그동안에는 만들어진 토지를 봐달라는 것이 마케팅 방법이었다. 직원들이 인맥으로 매수의향자를 알아보고 입찰을 부치는 형태다. 이렇게 해서는 시장에서 잠재적 수요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이 때문에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부동산 자산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대규모 설명회도 여러 번 했다. 주기적으로 소그룹 간담회도 가졌다.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공식적인 정보 채널을 확대한 것이다. 직원들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교육이나 훈련을 많이 했다."-올해는 부동산 시장 전망이 좋지 않다. 지난해 도시공사가 좋은 성적을 냈지만, 올해는 경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실제로 걱정이 많다. 지난해의 경우 경기가 바닥에 있다가 좋으니까 마음이 쏠렸다. 하지만 갑자기 내려가면 바뀌는 것 이상으로 체감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은 심리가 많이 작용한다. 지난해 말부터 이런 심리가 나타났는데, 이런 현상이 1년을 갈지 연초에만 나타날지를 봐야 하겠다. 부동산대출규제가 적용되는데, 처음에 충격이 크다가 시간이 지나면 완화되기도 한다. 연초에 담배를 끊었다가도 다시 피우는 것과 유사하다고 본다. 정부도 부동산 경기가 급격하게 죽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 자산의 부동산 비율이 높은데 여기서 무너지면 우리나라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부동산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급격히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부동산 경기가 나쁘면 인천도시공사의 토지 매각에도 어려움이 따라 부채 상환이 쉽지 않을 것 같다."도시공사는 사람으로 치면 150~200㎏ 이상으로 과체중, 비만 상태다. 다른 어떤 처방보다도 비만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 몸무게를 줄이려고 계획에 없더라도 매각할 수 있는 여건이 된 자산은 매각하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올해 걱정이 있다. 지난해에 당겨서 매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도 처분 가능한 것은 처분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수요자에 맞춘 토지를 공급할 것이다. 과거에는 가능하면 있는 그대로 토지를 매각했는데, 지난해에는 토지 리폼을 많이 했다. 대형평수로 계획된 공동주택용지를 소형면적으로 낮춘다거나 세대 수를 늘리는 것이다. 시장 상황에 맞게 이용계획을 변경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올해 도시공사가 해야 할 사업이 많다. 그중 수도권 마지막 대규모 신도시라고 불리는 검단새빛도시에서는 택지개발사업과 두바이 스마트시티 사업이 함께 추진되고 있어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스마트시티는 하나의 도시 브랜드로 두바이와 인도 코치(Kochi), 지중해 몰타 등에 건설돼 있다. 코치나 몰타는 소규모고 두바이가 외부에서 스마트시티 사업을 대규모로 추진하는 것은 검단이 처음이다. 처음에 검단 전체 1천122만㎡에 대한 개발을 하겠다고 했지만 리스크가 있어 협의한 끝에 462만㎡ 규모로 검단신도시 일부 지역에 하게 됐다. 두바이는 직접 개발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마스터 디벨로퍼'로서 투자를 이끌어오는 역할이다. 도시를 여러 섹터로 나눠 설계를 하고, 도시 내에서 모든 생활이 이뤄질 수 있는 자립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 협의할 것들이 많았다. 대상지 규모뿐만 아니라 스마트시티 대상지에 진행되는 사업을 모두 중단해달라는 요구가 있어 조정하는 데 여러 달이 걸렸고, 앞으로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할 것이다. 앞으로 스마트시티 SPC(특수목적법인)와 협의를 하면서 구체적인 실시협약이나 매매협약을 체결해 가야 할 것이다. 앞서 체결한 MOA(합의각서)는 투자를 확정 짓는 것은 아니다. 여러 조건을 정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걱정과 기대가 반반이다. 아파트촌이 아닌 국제적으로 유명한 글로벌 신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나 열정을 가지고 이뤄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하지만 토지매매계약 체결이나 기존 택지개발 지구와의 조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이달 말 정부의 카지노복합리조트 사업자 선정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도시공사 지분이 있는 영종도 미단시티와 인천공항 국제업무단지 대상 사업자만 관련 요건을 충족했다. 어떻게 전망하나."복합리조트를 너무 좁게 생각하는 것이 답답하다. 외국인전용카지노는 무조건 이름이 알려져야 한다. 한국 복합리조트 하면 인천이 떠올라야지 온다. 인터넷 찾아가며 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외국인전용카지노는 한 군데 밀집해 모여 있어야 한다. 떨어져 있으면 누가 알겠나. 투자자도 안 들어온다. 영종도는 LOCZ코리아와 파라다이스세가사미의 복합리조트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정부가 요구한 조건을 충족한 2개 사업자 모두 영종도를 택했다. 4개 복합리조트가 영종도에 있으면 한국에 카지노 하면 인천 혹은 영종도가 나올 수 있다. 복합리조트는 앞으로 앵커시설이 돼서 영종도 개발의 단초가 될 것이다. 이번 정부 발표에서 꼭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김우식 사장은?▲1954년 출생(경상남도 창녕)▲충남대학교 대학원 전자공학 석사▲2005. 12 ~ 2009. 5 : (주)KT파워텔 대표이사▲2009. 6 ~ 2010. 2 : (주)KT 이동통신사업 총괄 부문장(사장)▲2010. 2 ~ 2012. 3 : (주)KT씨에스 대표이사▲2015. 1~ 인천도시공사 사장글/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 ·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인천도시공사 김우식 사장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7천408억 원의 부채를 감축으로 행자부에서 부채감축 우수기관으로 표창도 받았다. 한때 과도한 부채로 '빚더미'라는 소리를 들었던 인천도시공사가 부채감축의 상징으로 변모한 것이다. 올해는 부동산 시장 전망이 좋지 않다. 시장 상황에 맞게 이용계획을 변경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김우식 사장이 지난 1월 정부서울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제13회 지방공기업의 날' 행사에서 경영 혁신 우수사례를 발표했다.(왼쪽) 인천도시공사가 부채 감축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김우식 공사 사장이 행정자치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인천도시공사 제공

2016-02-16 홍현기

[인터뷰… 그] 최종삼 태릉선수촌장

◈국가대표를 위한 선수촌의 역할4회연속 종합 10위권 안에 들기 목표메달전망 관계없이 모든종목에 도움선수들과 함께 기상 아침체조 '소통'내년 진천선수촌으로 주요기능 이전'최첨단 훈련시설'로 육성시스템 마련"메달 전망과 관계없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모든 종목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2016년 스포츠계의 가장 큰 화두는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하계올림픽이다. 유도, 태권도, 사격, 양궁을 비롯한 국가대표 선수들은 리우올림픽에서의 선전을 다짐하며 매일 훈련장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선수들이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태릉선수촌이 있다. 태릉선수촌은 모든 체육인들의 목표이자 선수 육성의 요람이다.1일 오전 태릉선수촌 촌장실에서 최종삼(68) 태릉선수촌장을 만났다. 그는 반갑게 맞아주면서도 최근 올림픽에 대한 기업 후원 및 국민들의 무관심에 대해 무척 서운해 했다. 최 촌장은 "예년 올림픽에 비해 기업체의 관심과 지원이 크게 줄었다"면서 "국민들의 무관심까지 겹쳐 선수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그러면서도 최 촌장은 "각 종목의 선수들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한국의 위상을 세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촌장으로서 국민들께 좋은 선물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은 4회 연속 종합 순위 10위권 안에 드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이에 최 촌장은 "올림픽에서의 성적은 우리가 열심히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위 경쟁국들의 전력과 행운도 따라야 하기에 속단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지도자와 선수가 국민들의 기대에 보답하도록 잘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그는 "올림픽 효자 종목으로 알려져 있는 태권도, 양궁, 유도, 사격, 레슬링, 펜싱, 체조 종목은 이번 올림픽에서도 기대가 크다. 112년 만에 올림픽에 참여하는 골프도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면서 "다만 국가대표 훈련을 총괄하는 선수촌장으로서 메달 전망과 관계없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모든 종목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태릉선수촌에서는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춰 훈련의 부담감을 떨어내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들을 마련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지난해 연말에 추진했던 '특식 데이, 치킨·피자 데이, 영화 상영' 등의 이벤트였다.아울러 선수들이 선호하는 가수나 연예인들을 초청해 잠시나마 긴장을 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다. 최 촌장은 "규칙적인 계획에 따라 합숙 훈련을 하다 보니 선수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올림픽 등 주요 대회를 앞둔 상황이라 선수 모두가 긴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며 "선수촌장이자 운동 선배, 인생 선배로서 선수들이 편안한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전했다.최 촌장은 선수들과 함께 선수촌에서 생활한다. 일주일 중에 최 촌장이 선수촌을 나와 외출하는 시간은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토요일 뿐이다. 최 촌장은 "아침 6시에 기상해서 선수, 지도자와 함께 아침체조를 하고, 오전에는 사무처 간부들과 차를 마시며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를 한다. 오후에는 주로 종목별 지도자들과 경기력 지원 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고 설명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진천선수촌으로 이동해 훈련 상황과 선수촌 건립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그는 경기도와도 인연이 깊다. 오랜 시간 용인대 교수로 재직했고, 경기도체육회 이사로도 활동한 경험이 있다. 경기체육에 대해 묻자 최 촌장은 "경기체육은 한국 체육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선수 육성과 운동부 규모 그리고 전국동·하계체전에서의 종합 우승 행진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경기체육은 대한민국 체육을 이끌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인터뷰에서 최 촌장은 은퇴 선수들에 대한 의견도 개진했다. 그는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해서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수 생활 중에 교육에 힘쓰고 소양을 쌓는 일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그래서 선수촌 내 대학생 선수들에 대한 3개 강좌를 대학총장협의회를 통해 신설하고 국가대표 강화훈련비 예산을 늘려 선수 생애주기에 대한 교육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그는 "태릉선수촌장으로서 올해 열리는 리우데네자이루 올림픽과 함께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대비한 경기력 강화에 중점을 쏟겠다"며 "다른 한편으로는 2017년 진천선수촌 2단계 공사가 완료된 후 주요 훈련 기능이 태릉에서 진천으로 이전하게 된다. 최첨단 훈련 시설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국가대표 육성 시스템의 밑 그름을 그리겠다"고 말했다.그는 국가대표 선수와 국민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는 "선수들이 이번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를 앞두고 강도 높은 훈련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지쳐 있을 것이다. 선수들에게 조금만 더 참고 자신을 이겨내면 그만큼의 열매는 달다고 얘기를 해주고 싶다"며 "힘들더라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열심히 훈련에 참여해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국민 여러분께서도 조금이나마 올림픽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선수단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드린다. 최선을 다해 반드시 목표를 이뤄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종삼 태릉선수촌장은?약력▲1948년 전라남도 장성▲1981∼2012년 용인대 유도학과 교수▲1989∼2005년 국제유도연맹 심판▲2005∼2012년 대한유도회 부회장▲2005∼2008년 경기도체육회 이사▲2011년∼ 동아시아 유도연맹 회장▲2013년 5월∼ 제22대 태릉선수촌장수상▲1971년 유도 세계선수권대회 3위▲1971년 대한민국 체육상 최우수선수상▲1991년 체육훈장 백마장▲1992년 체육훈장 맹호장▲2006년 대한체육회 체육상 공로부문 최우수상/대담=신창윤 체육부장정리=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최종삼 태릉선수촌장이 지난 1일 오전 태릉선수촌 촌장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2016-02-02 이원근·신창윤

[인터뷰… 그] 안재화 신성장창조경제협력연합회 회장

◈신경련 회장은 어떻게 맡게되었나?新 시장·기술선점에 '기업인 적합' 권유경제 만만찮은 상황이라 고심끝에 결정정부 발족… 선도기업·지역대학등 합류◈신성장 산업 전망·향후 계획은?원유→셰일가스등 정보바탕 변화 대응기반 조성·체계적 지원 모멘텀 만들것앞날 불확실할수록 '새아이템' 찾아야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신성장 창조경제 협력 연합회'(이하 신경련)는 지난해 6월 창립총회를 열고 '선도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신경련의 명칭은 신기술·신제품·신사업을 가지고 대도약을 하는 '신성장'과 기존산업의 모방이 아닌 미래 트렌드에 맞는 창의적 아이디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시장을 선도하는 '창조경제', 선도기업 간의 협력을 비롯해 선도기업과 일반기업, 지역 대학 간의 '협력'이 조합됐다.지금까지 우리 경제 성장 전략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선진국의 발전 경험을 좇는 '추격형'이었다. 하지만 개방·세계화된 현재 경제환경에선 변화를 예측하고 선도해야 기술 선점, 시장 창출을 이끌어낼 수 있다. 정부와 경제 관련 학계에선 선도형 성장 전략인 창조경제의 주역으로 중소기업에 주목했다. 중소기업 중에서도 독자적 선도 기술과 제품을 보유한, 강력한 도약 의지를 갖춘 '선도기업'이 신성장 전략 주체로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기업의 새로운 먹을거리 발굴과 일자리 창출을 통해 우리 경제 발전을 지원할 신경련의 회장으로 지난달 초 부임한 안재화 세일전자(주) 대표를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본사 집무실에서 만났다.안 회장은 신경련 창립 때 차석 부회장 겸 인천지역회장, 전국기업대표의장으로 선임됐다. 설립 이후 6개월 정도 지난 그해 12월 회장에 올랐다.그는 "창립 당시 신경련의 회장은 학계에 계신 분이 맡았다"면서 "신성장 아이템을 발굴하고 신시장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신경련에서 기업인이 회장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었고, 기업인들과 대학 교수님들의 권유로 회장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기업인으로서 경영을 잘하는 게 우선이고 단체장을 맡으면 해당 단체도 잘 이끌어야 하는데, 경제 상황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권유를 받아 고심했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안 회장은 2012년 8월 중소·중견기업들이 참여해 창립한 인천비전기업협회에 초대 회장으로 부임해 4년째 협회를 이끌고 있다. "신경련과 비전협회 모두 임의 단체가 아닙니다. 기업인이 발족한 게 아니라, 중앙 정부와 시에서 각각 발족한 단체지요. 협회 구성만 기업인에게 의뢰된 것이고요. 비전협회의 경우, 지역의 우수 기업들의 모임이다 보니 기업이 해야 할 사회적 역할을 협회 차원에서 주도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성장을 통한 고용창출, 복지증대, 사회 불균형 해소 등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웃을 돕는 등의 사회적 책임도 다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안에 대해 사무국에서 사업을 기획하고, 회장으로서 협회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신경련의 구성은 기업과 대학, 정부가 참여하는 형태로 꾸려질 예정이다. 신경련 인천광역시 지역협의회의 경우 100개 선도기업과 1천개 일반기업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이 같은 형태로 전국 17개 시·도 지회 산하에 선도기업 4천여 곳과 일반 기업 1만4천여 곳이 회원사로 합류했다. 각 지회 별로 해당 지역의 대학이 참여한다. 인천에선 인하대, 경기도는 단국대, 서울은 건국대 등으로 확정됐다. 하지만 정부의 참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신경련 명예회장) 등이 지난달 초에 발의한 '미래 신성장 기반 조성에 관한 특별법'(일명 블루오션법)은 국회 본회의 통과 전이다. 때문에 지원 예산이 없다 보니 사업에 제한을 받는 상황이다."국회의 상황도 그렇고, 분당이 이뤄진 야당도 입법 심의할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서 걱정스럽습니다. 이번 국회에 통과 안 되면 다음 국회에서 재발의해야 하며 6월 이후에나 통과할 수 있게 됩니다. 문의해 보니, 현재 소위나 상임위로 넘어오는 법안들은 보통 6개월 전, 길게는 3년 전에 발의된 것이라고 하네요. 서둘러야 하는데 현 경제 상황을 보면 간단치 않을 것 같습니다."'미래 신성장 산업'으로 화두를 옮겼다.안 회장은 "미래 신성장 산업은 기존에 있는 사업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성장했던 주력 산업분야를 면밀히 연구하고 분석한 정보를 바탕으로 다가올 미래시장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는 산업 모델"이라면서 "그 예로는 일반 자동차를 대체하는 전기 및 수소자동차, 원유를 대신하는 셰일가스가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그는 신성장 산업 발굴을 위한 필수 요소로 아이디어를 꼽았다."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선 기업이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미래 트렌드를 분석해 빠르게 변화하는 수요 상황의 흐름을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정보를 얻고 기업 수요에 맞게 정보를 재가공하기도 쉽지 않으며, 관련 인력도 충분치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정보기술 업체와 제조업은 기술변화가 무척이나 빠른 상황이지만, 그 변화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사업의 성패가 갈리는 것은 한순간입니다."또한, 안 회장은 선도기업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지속 성장을 들었다. 지속해서 성장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미래 신사업을 발굴하고 연구개발을 통해 사업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경련의 설립과 존재 이유도 이 부분에서 찾을 수 있었다."신경련의 선도기업들이 미래 신사업 발굴에 착수한다면 80% 이상이 사업화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이유는 대다수 선도기업이 그 분야에서 업력과 노하우를 지닌 전문가이며, 산전수전을 다 겪고 자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선도기업군이 신사업 발굴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선 신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고 체계적이며, 단계적인 지원 프로세스가 포함된 신성장 모멘텀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이 같은 이유로 신경련이 설립됐고 저 역시 참여했으며, 회장직도 맡게 됐습니다."현 경제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기업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기업 처지에서 볼 때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자신의 아이템이 1년에서 2년, 길게는 5년에서 10년 뒤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안 회장은 불확실하다면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미래 대응 전략이 없는 것은 '서서히 끓고 있는 가마솥 안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개구리'와 같은 것입니다. 기업의 신성장을 위해 남들이 좋다고 하는 영역이 아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선택할 필요가 있으며, 변화 방향에 대한 검증을 통해 시장을 창출하고 이끌어야 합니다."■안재화 회장은?▲1958년 경북 예천 출생. ▲1985년 세일전자(주) 창업/주요취급품목-인쇄회로기판 PCB (Printed Circuit Board)▲2003년 수출의 탑 500만달러 수상▲2004년 제41회 무역의날 신시장 개척 유공 대통령 표창▲2008년 해외법인설립 (천진 세일써키트유한공사)▲2010년 공장 본사, 제2공장 통합 이전▲2012년 인천시비전기업협회 설립 회장 취임 국제전자회로산업전 지식경제부 장관상 수상▲2013년 FPCB 사업장 준공 일하기 좋은 으뜸기업 선정(중소기업진흥공단)▲2014년 기준 세일전자(주) 매출액 1천642억원, 종업원수 700명■선도기업(Lead-Biz)의 정의중소기업 카테고리에서 가장 상층부에 위치한 선도기업은 기업 특유의 총체적 능력, 기술, 지식, 문화 등 신성장 선도역량을 보유하고 업력 및 매출액이 일정규모 이상인 기업을 말한다. 제조업의 경우 연매출 100억원 이상이며, 지식정보산업, 생명과학 및 서비스업은 연매출 50억원, 농림축산업은 연매출 30억원이 넘어서야 한다. 국내 선도기업은 2만6천664개사가 있으며, 고용인력은 500만명, 전체 매출액은 350조원으로 추정된다./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안재화 신성장 창조경제 협력 연합회장이

2016-01-26 김영준

[인터뷰… 그] 김 찬 '김찬병원' 대표 원장

◈국내 '통증명의' 원동력은?과거 마취분야 다른진료 보조취급 '답답''통증 = 병의 기본신호' 확신 일본 유학길한국에 클리닉 개설 목표 혹독한 수련거쳐◈앞으로 '도전정신'은 계속 되나?통증의학과 신설 후학 양성 '현실 벽' 실감수원에 첫 '전문병원' 센터 저변확대 노력은퇴후 기부문화 동참 유기견센터 만들것수원 '김찬병원' 김찬 대표원장은 의료인으로서 취할 수 있는 명예와 명성을 모두 가진 의료인이다. 대상포진과 다한증 신경치료술의 시조이자 3차신경통(안면통증) 알코올차단시술 5천례는 독보적이며 공영방송(EBS)이 통증명의라 인증했다. 그런데 의대에 통증의학과는 없다. 최근엔 웬만한 외과분야 병의원 대부분이 통증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지만 통증의학 전공의는 없다. 다만 김 원장이 통증의학 분야에서 시장을 개척하면서 통증클리닉이 범람했을 뿐. 그래서 그가 '통증의학'이라는 블루오션을 열어젖힌 과정이 궁금했다. 지난 14일 김찬병원에서 김 원장을 만나 그의 인생 역정을 탐문했다.김찬 원장. 그도 30여년전 과거에는 평범한 마취과 의사에 불과했다. 과거 마취과가 다른 진료과를 보조하는 정도로 취급받던 시기에 의료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당시만 해도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 곧 사라지는 정도의 개념으로만 여겨졌다. "지금이야 '통증클리닉'을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과거에는 통증에 대한 인식 자체가 굉장히 낮았어요. 잘 몰랐기에 중요성도 놓치고 있었던 거죠. 하지만 통증이라는 개념은 모든 병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동반되는 가장 기본적인 신호거든요. 이걸 간과하고 방치하면 통증은 신경 손상으로 이어져 만성화 단계로 넘어가게 되고, 장시간 큰 고통을 유발하게 돼요."-의료계에서 마취과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보조적이고 주변적인 전공으로 인식되었을텐데요."그랬지. 의사는 의사인데 환자를 진료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마취 시작합니다'하고 마취하고 집도의가 수술을 끝낼 때까지 대기하는 단순한 일의 반복이었죠. 내성적인 사람은 적응할 수 있는 일인지 몰라도 내 성격상 도저히 견딜 수 없었어요. 대우도 일반 진료과목 동료의사에 비해 형편 없었고···. 특히 환자하고 교감할 수 없는게 너무 힘들더라구요. 차라리 제주도 어느 마을에 보건소장이나 하는 게 낫다고, 아니 그렇게 하려고 마음을 먹을 정도였으니까···."-통증의학계의 대부가 제주도 보건소장이 될뻔했다니 큰일날 뻔 했네요. 그 위기를 어떻게 넘긴 겁니까."그때가 원주 세브란스병원에 있을땐데 마취과장이 최령 박사셨어요. 제가 하도 못견뎌 하니까 최 과장님이 서울에 있던 몇몇 대학병원 통증클리닉을 소개해주셨어요. 그런데 찾아가보니 형편없는 수준만 확인하고 더 큰 절망에 빠졌어요. 결국 최 과장님이 마지막으로 일본에 가보라는 제안을 하시더군요. 거기 가서도 희망이 안보이면 마음대로 하라면서···.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본에 가게 됐고 결국 그곳에서 신세계를 발견한거지." 이판사판 식으로 건너간 일본에서 그는 불과 며칠 만에 머리를 한대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여태 아무도 가지 못했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도대체 일본에서 뭘 본겁니까."당시 일본에서는 통증의 원인을 파헤쳐 싹을 잘라내는 식의 근본적인 치료가 이뤄지고 있었어요. 정말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죠. 우리나라에 이 같은 치료시스템이 정착된다면 실로 엄청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본말을 못했기 때문에 밤낮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려 노력했고, 1년간 정말 열심히 배우고 또 배웠어요.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고생했던 시간이었지만, 이때 굳게 결심한 게 있었어요. 반드시 우리나라에 번듯한 통증클리닉을 만들겠다고 말이죠." 물론 당시 일본에 간 마취과 의사가 김 원장 혼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 현장을 경험했다는 인증만 필요했던 다른 의사들과 달리 김 원장은 혹독한 수련의 과정을 다시 거친 점이 달랐다. 1991년 9월, 1년간의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곧바로 병원 내에 통증클리닉을 개설했다.-병원에서 흔쾌히 통증클리닉을 내준건가요."대뜸 통증클리닉을 만든다니 병원 측에서 공간을 내줄리 있나요. 결국 수술환자 회복실 한쪽 구석에 침대 하나랑 테이블 하나 놓고 시작했지. 공간의 특성상 제 환자들은 진료를 받으려면 매번 수술복을 갈아입고 들어와야 했어요. 다행히 환자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수술실을 벗어나 허름한 창고를 하나 얻게 됐어요. 한국에서 처음으로 외래를 볼 수 있는 통증클리닉 공간이 생긴거지."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고 했던가. 그때 김 원장에게 '기적의 1분'이 찾아온다. 김 원장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1분이. "KBS '6시 내고향' 원주편 방송을 앞두고 병원 쪽에 섭외 요청이 왔어요. 당시 내가 '다한증' 치료를 수술 없이 성공시켰고, 병원에서 이걸 방송에 내보내기로 한 거죠. 고작 1분 남짓 전파를 탔을 뿐인데, 방송 이후 전국에서 환자들의 문의가 쇄도하면서 병원이 난리가 난거야. 나중엔 대기 환자 수가 무려 9년 치가 밀렸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거기다 환자중에는 유력인사들도 많았고···."열악했던 근무환경은 한순간에 바뀌었다. 병원 한 층을 통째로 쓰게 됐고 고가의 기계도 지원받으며 병원 내에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통증 관련 학회에서 김 원장이 어떤 내용을 발표하기만 하면 곧바로 보급될 정도로 병원 밖에서의 위상도 높아졌다. 하지만 소위 잘 나가는 죄(?)로 주위의 견제를 받게 된 그는,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든 일터를 떠난다. 이후 당시의 유명세를 입증하듯 김 원장은 국내 유수의 병원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이길여 가천길재단 이사장은 아예 그를 직접 승용차에 태워 병원을 안내하며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겠다고 제의했을 정도였다.-그 좋은 조건을 마다하시고 결국 아주대병원을 택한거네요."그게 참. 먼저 후배한테 아주대병원으로 가겠다 했지 뭡니까. 그리고 이 이사장님을 만나 마음을 바꿔먹었지. 그런데 저녁에 집에 가보니 그 후배가 집 앞에서 씩씩대고 있는거야. 이럴 수 있냐고. 그래서 (아주대병원)간다고 했지. 이후에 이 이사장님은 죄송해서 연락도 못드리고 있지요." 이후 아주대병원에서의 그의 시간은 남들과 달랐다. 밤 10시가 넘도록 진료를 보는 일도 다반사고, 환자들이 6개월에서 1년씩 대기하는 상황이니 11년 동안 제대로 된 휴가 한 번 가지 못했다.-이력을 보니 대한통증학회와 대한통증연구학회 회장을 모두 맡으셨더라구요. 두 단체의 성격이 다소 다른 것 같던데 말이죠."2006년 대한통증학회장에 취임하면서 한 가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게 있어요. 통증의학과 신설이에요. 통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후학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려면 학과신설이 가장 빠른 길이니까요. 그런데 현실의 벽이 너무나 높더라구. 법도 바꾸어야 하고 타 진료과목의 동의도 필요하고···. 통증학회장만으로는 안되는겁니다. 그래서 치과·신경외과·정형외과 등 훨씬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통증연구학회의 회장으로 취임한겁니다. 다른 분야의 더 많은 의료인들에게 통증의학과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생각을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결국 현재는 포기상태에요."(김 원장은 개인적으로 성취한 명성 만큼이나 의료계의 부조리와 병원의 폐쇄성에 절망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는 다 마음 속에 묻었다고 했지만, 의료계의 발전을 고민하는 정책당국자라면 김 원장과 만나야 한다는 것이 솔직한 심경이었다.)통증의학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는 깊은 체념에 빠졌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하고 열어 둔 길에서 발을 뺄 수도 없었고, 발을 빼게 주변이 놔두지도 않았다.-결국 수원에 김찬병원을 열었는데, 원장님의 역정을 살펴보면 병원설립에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듯 한데요."현실의 벽을 실감하고 나니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히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맘 편히 살자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한 후배가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마취과 의사들은 여전히 독립적이지 못한 환경 속에 있는데, 그런 후배들의 처우를 생각해서라도 부디 나서달라고 말이죠. 비록 통증의학과를 개설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제대로 된 진료시스템을 갖춘 병원급 통증센터가 속속 생겨나면 이 역시 통증 분야의 저변을 넓히는 데 일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가지 않은 길을 다시 한 번 걸어보자고 마음먹고, 지금의 김찬병원을 만든거예요. 최초의 통증클리닉센터 말이지."2014년 수원에 개원한 국내 최초 통증센터 '김찬병원'은 통증의학이라는 블루오션을 찾아냈지만, 외로운 항해를 감내했던 김 원장의 인생역정이 만들어낸 결실인 셈이다. 그는 이 곳에서 나머지 항해를 계속 이어갈테고, 항해의 목적은 '통증의학의 안착'이다. 김찬병원에는 국내 의료계뿐 아니라 일본, 중국 등지의 의료 관계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국내의료계는 김찬병원의 성공여부를 주시하고 있다.김 원장은 올해로 만 67세다. 그는 이제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조금씩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선진국에 가장 부러운 점이 기부문화가 활발하다는 점이에요. 어떤 형태가 됐든 기부에 동참하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구요, 개인적으로 유기견센터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갖고 있어요." 유기견센터. 난데없지만 이 꿈까지 덧붙이기엔 이미 들은 그의 인생역정만으로 벅차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방사선 치료를 하느라 검게 그을린 김원장의 두 엄지 손톱이 유난히 크게 보였다.인터뷰에 동행한 황 기자는 기사를 정리하면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떠올랐다고 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김 원장이 스스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택한 덕분에 여기까지 왔지만, 외로운 길을 혼자 걸을 숙명까지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김찬 원장은?▲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前연세대 원주의과대학 신경통증클리닉 부교수▲前대한통증학회 회장▲前대한통증연구학회 회장▲前아주대학교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現김찬병원 대표원장/대담=윤인수 편집부국장 isyoon@kyeongin.com · 정리=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국내 통증 의학계의 일인자로 불리는 '통증 명의' 김찬(67) 김찬병원 대표원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2016-01-19 윤인수·황성규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