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 경인일보 창간 70주년 기념 ‘로체원정대’ 이끄는 김홍빈 대장

손김홍빈두 손이 있을 땐나만을 위했습니다.두 손이 없고 나서야 다른 사람이 보였습니다.도움이 필요한 만큼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보이지 않은 새로운 손이그렇게 말합니다.■산과의 인연 그리고 시련 / 히말라야서 다시 꾸는 꿈1983년 대학 산악부 ‘첫발’ 스키 배워 전국대회 입상 등 기대주로 성장1991년 매킨리서 조난 두손 잃어… 절망딛고 ‘세계 7대륙 최고봉’ 정복장애인 산악인 최초 8천m급 14좌 완등 새도전 “희망 안겨드리고 싶어”위 글은 장애인 산악인 김홍빈 대장이 2009년 1월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4천897m) 등정에 도전하며 쓴 글이다.산악인 김홍빈에게는 항상 ‘희망’과 ‘도전’이라는 수식어가 함께 다닌다. 등반 중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지만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7대륙 최고봉을 오르는 데 성공했고 지금은 장애인 산악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천m급 14개 고봉의 완등을 목표로 도전하고 있다. 이런 그를 보며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은 희망을 보게 된다고 말한다. 아무리 힘든 역경 속에서도 끊이지 않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고 그런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잔잔한 감동과 희망을 느낄 수 있다.이런 이유로 산악인들은 그를 ‘도전’과 ‘희망’의 아이콘이라고 말한다.경인일보 창간 70주년과 2015광주유니버시아드 성공 개최를 기원하기 위해 ‘2015 한국로체원정대’를 이끌고 오는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네팔 카트만두로 떠나는 김홍빈 대장을 만나봤다. ┃편집자 주#산악계의 기대주에서 장애인으로김 대장이 산과 첫 인연을 맺은 건 지난 1983년 송원대에 입학해 산악부에 들어가면서부터다.그는 대학교 2학년때 광주전남암벽대회에 출전해 2위에 오를 정도로 기량이 빠르게 성장했고 1989년 말에는 동계 에베레스트 원정에 참여했으며 1990년에는 낭가파르밧 원정에 도전, 산악계의 기대주로 부상했다. 고산 등반을 위해서는 스키를 배워야 한다는 주변의 제안으로 스키를 배워 1989년 전국동계체전에 출전해 노르딕 개인전 2위에 오르는 성적을 냈다. 또 1991년 초에는 전국동계체전 바이애슬론 종목에 선수로 출전해 입상하며 만능 스포츠맨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이렇게 전도유망했던 김 대장은 1991년 5월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6천194m) 등정에 도전하던 중 조난을 당해 두 손을 잃었다.산악인에게 두 손을 잃는다는 건 더는 등반을 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김 대장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해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지만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장애인용 운전면허증을 따 부품제조업체 화물차 운전사로 근무하기도 하고 골프장에서 굴착기 등 특수장비를 다루기도 하는 등 삶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였다.김 대장은 “특수 장비는 잘 다뤘지만, 장애가 있어서 자격증을 따지 못했다. 장애가 생기기 전처럼 모든 것을 스스로 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 되어 정말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그래서 이렇게 지낼 바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해 보자고 생각했다. 물론 등반이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꼭 이뤄내겠다는 생각만 했다”고 덧붙였다.당시 김 대장이 목표로 세운 게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이었다.#장애는 불편할 뿐 나를 막지 못한다사실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은 비장애인들도 쉽게 이루지 못하는 대기록이다.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천848m·아시아)를 비롯해 아콩카구아(6천959m·남미), 매킨리(6천194m·북미), 킬리만자로(5천895m·아프리카), 엘브루스(5천642m·유럽), 칼스텐즈(4천884m·오세아니아), 빈슨매시프(4천897m·남극) 등이 세계 7대륙 최고봉이다.대륙이 다르다는 건 산의 지형과 그에 따른 생활환경도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김 대장은 이런 어려운 도전을 첫 번째 목표로 정했다.김 대장의 가능성은 1997년 봄 일본 다테야마(3천15m)를 오르며 보여졌다. 그리고 같은 해 여름 엘브루스를 시작으로 1998년 여름 자신에게 장애를 남겨준 매킨리까지 4대륙 최고봉을 보란 듯이 정복했다.김 대장은 “장애인이 비장애인도 이루기 힘든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을 해내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얼마나 터무니 없이 생각했는지. 하지만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디며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말했다.특히 김 대장은 “장애는 불편할 뿐 장애가 나를 막을 수 없다는 걸 보여줘서 뿌듯했고, 내 마음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 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전했다.#또 다른 좌절을 안겨줬던 히말라야, 도전은 끝나지 않는다히말라야는 그에게 넘을 수 없는 시련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산이다. 김 대장이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을 목표로 세우고 도전을 계속 이어가던 중 첫 번째 좌절을 안겨줬던 산이 바로 히말라야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였다.한왕용 대장과 김영식 대산연 청소년분과위원장의 도움으로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섰지만, 정상에 오르는 데 실패했다.김 대장은 “매킨리 사고 때 폐부종과 뇌부종을 함께 앓아서인지 고산 적응속도가 매우 떨어졌다. 대원 모두 저를 정상에 서게 해주려고 애를 많이 썼지만 제 욕심만 차릴 수 없어서 캠프3(7천200m)로 돌아갔다”고 말했다.이어 김 대장은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고소 경험을 쌓기 위해 레닌피크(7천134m·등정), 코스클락(7천28m·등정), 가셔브룸 2봉(8천47m·등정)과 시샤팡마(8천27m·등정)를 올랐다. 이런 준비 끝에 2007년 봄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고 전했다.7대륙 등정이라는 목표를 이룬 김 대장은 이제 두 번째 목표인 히말라야 8천m급 고봉 14좌 완등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김 대장은 “제 도전을 통해 모든 분께 희망을 안겨 드리고 싶다. 그리고 장애인이지만 비장애인과 같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장애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도 줄어들게 하고 싶다. 이번 등정은 저 하나만의 등정이 아닌 저를 응원하는 모든 분들의 등정이라고 생각하고 건강하게 완등하고 돌아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산악인 김홍빈 대장은?▲ 1964년 10월 17일 출생▲ 1989년 네팔 에베레스트(8,850m) 등반 ▲ 1990년 파키스탄 낭가파르밧(8,125m) 원정▲ 1991년 북미 맥킨리(6,194m) 등반 ▲ 1997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등정, 유럽 엘브루스(5,642m) 등정▲ 1998년 남미 아콩카구아(6,959m) 등정, 북미 맥킨리(6,194m) 등정 ▲ 2000년 네팔 마나슬루(8,163m) 등반 ▲ 2002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등정, 북미 맥킨리(6,194m) 등정 ▲ 2003년 키르기스탄 레닌피크(7,134m) 등정 ▲ 2006년 티베트 시샤팡마(8,027m) 등정, 가셔브룸 2봉(8,035m) 등정 ▲ 2007년 호주 코지어스코(2,228m) 등정, 네팔 에베레스트(8,850m) 등정▲ 2008년 네팔 마칼루(8,463m) 등정, 남극 빈슨매시프 (4,897m) 등정▲ 2009년 네팔 안나푸르나(8,091m)와 파키스탄 K2(8,611m) 등반, 네팔 다울라기리 (8,167m) 등정 ▲ 2010년 네팔 마나슬루(8,163m) 등반▲ 2011년 티베트 초오유(8,201m) 등정 ▲ 2012년 파키스탄 K2(8,611m) 등정 ▲ 2013년 네팔 캉첸중가(8,586m) 등정▲ 2014년 네팔 마나슬루(8,163m) 등정 ▲ 2014년 2월~ 트렉스타 홍보이사/글=김종화기자·사진=강승호기자▲ 경인일보 창간 70주년과 2015 광주유니버시아드 성공 개최를 기원하기 위한 ‘2015 한국 로체 원정대’ 김홍빈 대장이 로체로 떠나기 전 인터뷰에서 “꼭 이뤄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송광석 경인일보 대표이사 사장이 김홍빈 대장에게 광복 70주년, 창간 70주년 경인일보 사기를 전달하고 있다.

2015-03-24 김종화

[인터뷰… 그]최순자 인하대학교 사상 첫 여성 총장

■갈등 봉합과 지역사회 기여 방안은?재단·교수사회 중간다리 역할이 중요변화를 위해 구성원들 자신감 가져야10개 구·군청에 ‘경영컨설팅단’ 파견■각종 사업해법과 향후 운영방향은?송도캠 보류하고 구도심 살리기 앞장해외진출 보다 교육의 질 향상이 우선잘 가르치고 더 많이 연구하는 학교로최순자 인하대학교 신임 총장은 말 그대로 의욕이 넘쳐 보였다. 전임 총장의 사퇴 이후 ‘구원투수’로 나서게 된 최 총장은 인하대를 위기에서 구해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떠안았다. 지난 5일 인하대총장실에서 만난 최 총장은 ‘학교 구성원 모두가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총장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총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감과 모교 인하대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가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를 시도할 수 있는 것도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인하대 역사상 첫 여성 총장으로 취임했다. 소감은.인간승리라고 생각한다. 인하대에서 28년 재직하는 동안 ‘아웃사이더’였고, 학교 행정경험이 없는 것이 가장 부족한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소신껏 정직하게 임무를 충실히 해왔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하대 출신이 총장이 되다 보니 인천의 어른들께서 전화를 주셔서 ‘인천의 자존심을 찾은 것 같다’고 축하해 주셨다. ‘똑순이가 똑똑하게 해냈구나’라고 격려해 주신 분도 계셨다.- 전임 총장 사퇴 등으로 불거진 학교 구성원간 갈등 봉합 방안은.저는 일단 문제가 생기면 ‘내가 잘했나’라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관점에서 생각하는데, 대부분 일이 잘 안되면 타인의 잘못을 먼저 얘기한다. 그동안 왜 재단과 교수사회가 소통이 안될까 생각해 봤다. 이유는 서로 다른 조직문화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단은 ‘기업체’라는 백그라운드가 있고 수직적인 조직의 모습이 있는 반면, 교수들은 수평적인 조직이다. 그래서 총장이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남 탓만 하고 오해를 했던 것이 갈등의 원인이라고 본다. 양쪽의 갈등을 푸는 것이 내 ‘미션’이라고 생각한다.- 과감한 개혁을 강조하면서 뒤따라 오는 교수와 교직원들이 지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구성원 모두가 인하대가 위기라고 하면서 그 처방으로 진행하는 개혁을 우려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구성원이 찬성하고 동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교수와 직원 모두 총장의 개혁 드라이브에 동참하는 눈빛이다. 물론 구성원들이 변화에 대한 자신감이 상실된 것은 사실이다. 냉소주의와 패배의식에 젖어 학교를 싫어하고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리더는 어려울 때 결정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에는 의사결정이 상향식으로 잘 올라가지만, 어느 누구도 결정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럴 때 결단력을 발휘해야 한다. 구성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겠다. 이미 우리 구성원들은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 유정복시장 인수위원장을 지내면서 현 시정부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기여했다. 인천의 대표 대학으로서 인하대가 인천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은.총장에 지원하면서 진단한 인하대의 위기 중 하나가 지역사회 기여 부족이었다. 저는 ‘동질성 결여’라는 단어를 썼는데, 인천에 살고 있는 교수 비중도 적고, 인천에 집을 갖고 있으면서도 ‘서울에서 뭘 할까’만 생각했지 인천지역에서 무엇을 해야겠다는 고민이 부족했다. 예를 들면 교수들이 서울 중앙정부에서 각종 위원회에 참여해 달라고 하면 흔쾌히 수락하면서도 인천시나 구청에서 요청하면 수락을 잘 안 한다는 불평을 들었다.이를 회복하기 위해 구상한 방안은 인천지역 10개 군·구청에 ‘경영컨설팅단’을 파견하는 것이다. 교수들은 전문가 집단이기 때문에 각 구청 실정에 맞는 경영자문을 함으로써 지역과 밀착할 수 있다. 중구는 관광, 남동구는 어린이보육, 남구는 도시계획 등 인천지역 모든 구·군의 관심 있는 분야 가운데 공무원 역량으로 힘든 부분을 교수들이 지원해 주도록 할 것이다.- 송도캠퍼스 사업 방향에 대해 지역사회 관심이 크다.송도캠퍼스는 무산이 아니라 ‘딜레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5년간 땅값으로 650억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현재 인하대가 어렵고 재단과 모기업도 어려운 상황에서 땅값을 지불하기란 불가능하다. 게다가 학교 부지는 올해 매립이 끝나면 안정화 작업을 먼저 해야 하고, 인프라도 없다. 최소한 10년은 기다려야 학교가 들어갈 수 있다. 인천시와 교섭해 땅값 지불을 연기하고, 송도캠퍼스 플랜을 수정할 계획이다. 다른 현실적 대안이 있다. 인하대를 중심으로 인천 남구 구도심을 살리는 프로젝트다. 남구 SK스카이뷰 아파트와 인하대학교 사이에 수인선 인하대역이 생기면, 땅값 낼 돈으로 새로 건물을 지어서 정석학술정보관과 지하로 잇고 대학생, 젊은이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것이다. 인하대가 남구에 남아서 이 지역을 살리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10월 개교한 타슈켄트 인하대가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해결책이 있는지.교육 수출을 표방했지만, 솔직히 말해 타슈켄트 인하대는 경영의 미스라고 판단한다. 우즈베키스탄은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안정화되어 있지 않다. 앞서 총장이 타슈켄트에 빨리 진출해야 겠다는 의욕에 불타서 계약할 때 계약금을 받지 않고 캠퍼스 설립을 먼저 추진했다. 인력이 현지로 파견되고 한 학기가 지났는데,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로부터 1년에 40억원을 받아야 한다. 파견교수의 분석과 현지 총장과의 면담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글로벌 캠퍼스 사업은 무조건적인 해외 진출이 아닌 ‘소프트웨어’로 해결할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교육의 질 향상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학교평가 8위권 진입을 목표로 세웠다. 실천 방안은.꼭 평가를 잘 받기 위한 각종 지표 향상이 아니라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은 사회에서 원하는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통념이다. 그렇다면 수요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된다.우선 교육의 질을 바꿔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의 평가가 중요하다. 2013년도 학생들의 학교 평가를 봤는데,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장학금이 부족하다 싶으면 재단 외에 동문들의 도움을 받아 장학재단을 설립할 수도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동문 총장이 오더니 좋아졌다, 행복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학생이 많아지도록 하겠다.이를 위해 3가지 슬로건을 내세웠다. 공부를 잘 가르치는 인하대, 연구를 더 많이 하는 인하대, 지역사회로부터 사랑받는 인하대다.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교수들은 더 열심히 연구를 하고, 인천의 대표 대학으로서 지역 사회 기여도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마지막으로 인하인들에게 한 마디 하신다면.우리가 인하대를 나왔지만, 과연 인하대를 사랑하는가 되돌아 봤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 핑계 대지 말고 진정으로 사랑했는지 생각해 보고 반성해 보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맞아 내가 사랑하고 있지만, 더 사랑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면 인하대를 바꿀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끊임 없이 변화해야 한다. 나는 변화를 아주 즐겨 하는 사람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 함께 동행에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최순자 인하대 총장은?▲ 1952년 12월 24일 출생▲ 1971년 인일여고 졸업▲ 1975년 인하대 화학공학과 졸업▲ 1982·1985년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원 고분자물리 석·박사▲ 1987~ 2015년 2월 인하대 화학공학과 교수▲ 2003년 9월 ~ 현재 미래창조과학부 WISET 인천지역사업단 단장▲ 2004년 3월 ~ 2008년 2월 (사)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 1, 2대 회장▲ 2011년 1~ 12월 (사)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 2014년 유정복 시장 당선인 희망인천준비단장▲ 2015년 2월~ 인하대 총장/대담=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부장 · 정리=김민재기자 · 사진=임순석기자

2015-03-10 이영재 · 김민재

[인터뷰… 그]문화재 환수운동 앞장… 안민석 의원·김준혁 교수

■문화재찾기한민족네트워크란전세계 동포 힘모아 찾겠단 발상 출발민·관·해외 네트워크 구축 본격 활동美 대한인국민회 보관 유물 들여올 것■문화재로 남북교류 물꼬트자北자원 관리 지원·남한 전시·토론회상호 보존 협력땐 대화채널 재개가능통일·평화위해 기본적인일 관심절실김교수는 '나의 역사 선생님'오산 독산성복원 사업추진도 김교수 덕문화재찾기 계속하기 위해상임위 교문위로 바꿔'진짜 멋진 의원' 반했다안민석(새정치민주연합)국회의원과 김준혁(한신대 정조교양대학)교수를 만나게 한 것은 '문화재'다. 2013년 추석 연휴에 조선 문정왕후어보 반환 소식이 화제가 됐다. 문정왕후어보는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이 왕위를 계승하고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됐을 때 만들어진 우리 문화재다. 이 어보가 미국 LA박물관에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기념품으로 챙겨 고국으로 돌아간 이후 60여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그 어보를 잊고 있었다. 약탈 혹은 기증이라는 명분으로 외국에 빼앗긴 15만6천점의 다른 문화재들과 함께.문화재제자리찾기공동대표 혜문 스님은 미국 국가기록원에서 어보 관련 서류를 발견하고, 환수운동을 벌였다. 그때 구성된 공동대표단에서 두 사람은 만났다. 김준혁 교수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안민석 의원은 정치적 교섭력을 발휘해 반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민간의 힘으로 환수결정을 이끈 세계 최초의 성과다.그런 날들을 함께 보낸 두 사람은 이후 형님 아우가 돼서 정답게 지내고 있다. 안 의원은 김 교수를 '나의 역사 선생님'이라고 추켜세웠다. "지역구인 오산에서 독산성 복원 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이 김교수 덕분이에요. 10년 전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 때 독산성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때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김 교수에게 다시 듣게 됐고, 독산성이 바로 보이기 시작했죠." 김 교수는 안 의원을 '진짜 멋진 의원'이라며 '그날 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LA에서 협상을 마친 그날 저녁, 뒤풀이 자리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하더니 상임위를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로 바꾸는걸 보고 반했어요."기재위는 국회의원이라면 누구나 차지하고 싶어하는 자리다. 안 의원도 3선에 성공했을 때 기재위 입성을 목표로 삼았다. 그 뜻을 이루었지만 1년도 안돼 스스로 그 자리를 버리고 교문위로 옮겼다. "협상을 하면서 내가 상임위를 옮겨야 일이 잘 되겠구나, 앞으로 문화재 찾기를 계속하려면 교문위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보같은 결정이었죠." 그의 말과 달리, 우리나라 문화재 찾기 운동의 방향도 바뀌었으니 역사적인 결정이었다."안 의원은 나를 역사 선생이라고 하지만, 청출어람이에요." 김 교수는 '문화재찾기한민족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제안을 한 것이 안 의원이라며 그 덕분에 우리 문화재찾기 운동이 전방위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발족한 '문화재찾기한민족네트워크'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를 지구촌 곳곳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의 힘을 모아 찾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어느 국가든 정부가 직접 나서 문화재찾기 활동을 하기는 어려워요. 자칫 외교문제로 불거질 위험이 크기때문이죠. 민간이 하기도 쉽지 않아요. 문화재를 찾으려면 무조건 해외로 나가야 하니까 돈은 많이 드는데 문화재 하나 찾는데 수십년이 걸리기도 하니, 다음 세대, 어쩌면 그 다음 세대까지 이어져야 하는 일이죠. 해외 동포들이 나서준다면 큰 힘이 될 겁니다. 이 조직을 구심점으로 민·관·해외동포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본격적으로 문화재찾기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에요."문정왕후 어보는 이번 설 즈음 환수절차가 마무리 돼 국내로 들어올 예정이다. 안 의원과 김 교수는 기쁨을 누릴 여유도 없이 해방 70주년, 한일협정 50주년이 된 올해, 문화재찾기운동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이다.그간 두 사람은 고려시대 석탑 등 약탈 문화재를 상당수 가지고 있는 일본 오쿠라재단을 방문하고, 새로 구성된 일본 의회에서 문화재 환수문제를 협상할 파트너를 찾아다녔다. 안 의원은 최근 미국으로 가 '대한인국민회'가 보관하고 있는 독립운동관련 유물의 관리를 위해 한국으로 들여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대한인국민회는 재미 한인단체 통합운동의 시발점이 된 장인환·전명운의 친일 미국인 스티븐 저격 의거에 관한 재판지원문건 등의 독립운동 유산을 보관하고 있다. 이들 유산은 다락방에서 발견된 것으로, 훼손상태가 심각해 보존처리와 관리가 시급하다. "소중한 자료유산인데 곰팡이가 피어있어요. 이를 반드시 복원 보존하고, 이에 그치지 않고 자료를 연구해서 독립운동가들의 의행을 알리는 노력을 해야합니다."김 교수는 잃어버린 문화재를 되찾는 것과 더불어 우리 땅에 있는 문화재를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우리나라는 문화재기반 시설이 크게 부족해요. 국립박물관도 보존시설이 안돼 있는 경우가 있죠. 이는 민족 문화유산 파괴 행위라고도 할 수 있어요. 북한에 있는 문화재도 마찬가지죠. 남북문화재 보존에 협력하고, 문화재 교류를 통해서 대화의 물꼬를 틀 수도 있습니다."안 의원이 김 교수의 말을 거들었다. "평양미술관에 있는 김홍도의 작품을 포함해 국보급 작품들이 항온항습이 안되는 공간에 보관된 경우가 많아요. 2007년에 만난 북한 사람들이 한 번 도와달라고 얘기를 했었는데, 그때는 잘 몰랐죠.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남북교류가 끊겼지만, 광복 70주년인 올해 우리가 북한 문화재관리를 지원하고, 북한에 있는 문화재를 남한에서 전시도 하고, 남북한 전문가들이 토론회도 열 수 있도록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안 의원은 실제로 올해 북한의 문화재를 관람할 기회가 생길 것 같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겼다.그러나 그 스스로도 문화재찾기운동이 '표도 안되고 돈도 안되는' 일임을 알고 있다. 입증을 해야 환수협상이라도 하는데 자료는 없고, 충분한 자료로 입증을 하더라도 환수가 성사되는 경우는 드물다. 아주 많은 시간과 인내를 쏟아부어도 그 결과는 항상 달지만은 않다. 게다가 늘 묻히는 일이고 자주 잊힌다. "문화재를 지키는 일은 의지와 상관없이, 나에게 찾아온 일이에요. 저도 처음에는 안하려고 했죠.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잖아요. 천성적으로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굳이 하려는 성향이 있어요. 김 교수 같은 역사 전문가들과 함께 국회의원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선명한 야당 의원이라는 이미지때문에 처음에는 의아해 하던 분들도 지금은 많이 응원해 주십니다."김 교수는 보다 큰 그림을 가지고 문화재 찾기 운동을 대한다. "우리와 북한, 우리와 일본의 평화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의미합니다. 역사를 알고, 문화재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은 통일국가, 국가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 인지도 몰라요.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보다 발전된 사회를 이루려면 참여가 중요한데, 이건 평화를 가져오는 일이잖아요."말을 마친 두 사람은 뜨거워진 가슴을 식히려는지 눈 내린 오산 보적사의 앞마당으로 내려섰다. 김 교수가 웃는 얼굴로 농을 건넸다. "형님, 은퇴하셔도 우리 계속 할거잖아요. 죽을 때까지 할 일이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안 의원이 진지하게 대답한다. "아, 그럼. 그래야지." ◈안민석 의원은 ?■ 현직- 국회의원, (사)문화재찾기한민족네트워크 공동대표■ 경력- 중앙대학교 사회체육학부 교수, 대한태권도협회 이사 ■ 저서- '안민석의 물향기 편지'■ 특이사항- 3선 국회의원으로, 오산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중 하나가 변함없는 외모라는게 다수의 평이다. 예결위에 들어가 목에 힘 좀 주고 살게될 줄 알았으나, 스스로 문화재찾기 꿈나무가 되기를 택했다.◈김준혁 교수는 ?■ 현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사)문화재찾기한민족네트워크 사무총장■ 경력- 남한산성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위원■ 저서- '이산 정조, 꿈의도시 화성을 세우다'■ 특이사항- 역사 선생님인 아버지를 두었다. 어린시절부터 역사를 사랑했으며 역사책을 읽으며 성장했다. 역사를 가르치는 대학 교수가 되는 것과, 정조의 정신을 가지고 한반도 통일을 위해 일하는 것이 꿈이었고, 현재 이를 실천하며 살고 있다./글=민정주기자·사진=임열수기자▲ 조선 문정왕후어보 환수결정을 이끌어낸 안민석(새정치민주연합·오산) 국회의원과 김준혁(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가 오산 보적사에서 만나 우리 문화재 찾기 운동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5-01-28 임열수

[인터뷰… 그]'황해·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구상 매진 원유철 의원

■황해·실크로드 익스프레스란?레일 깔린 대형선박에 화물열차 싣는 방식해로 - 철도연결 러·유럽등 교역 '열차페리'남북관계 경색 시베리아횡단철보다 현실적■앞으로 계획 및 예상 파급력은?내달 국회서 첫 토론회 인프라 구축안등 논의한중 FTA 체결 힘입어 경제효과 116조 기대한반도 대륙 국가 도약·동북아 중심지 '우뚝'평택 출신의 원유철(새누리당·4선) 의원은 요즘 '황해·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구상에 흠뻑 빠져 있다. 지난해 연말 국회에서 평택과 중국 사이 바다 위에 기찻길(열차페리)을 여는 '황해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구상을 위한 연구·용역예산 3억5천만원을 확보한 데 이어 이젠 실질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공고히 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열차페리는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해로와 철도를 연결하는 복합운송방식으로 레일이 깔린 대형선박에 화물열차를 그대로 실어 운송이 가능하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바다에 새로운 물류 운송 통로를 만들면 중국과 러시아, 유럽과의 교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물류비도 대폭 줄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원 의원이 '새비단길'이라고 명명한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원 의원은 "평택과 중국 산둥성 옌타이 사이 바다 위에 열차페리가 운행하면 돈과 화물, 사람이 몰리게 되고, 평택은 물류중심지로 지역경제는 물론 동북아 경제 중심지로 우뚝 설 것"이라고 강조한다. 삼성과 LG, 현대·기아차와 쌍용자동차 등 평택의 초일류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들이 중국과 유럽대륙으로 팔려 나가는 걸 생각하면 벌써 가슴이 벅차오르는 모양이다. 지난 15일 황해실크로드의 진척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때마침 2월초 개최하는 토론회 준비차 자문교수단과 실무모임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대략 3개월 후면 구상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며 한껏 고무된 표정이었다.#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새로운 황해 비단길 그는 평택을 생각하면 아직도 배가 고픈 모양이다. '평택이 어떤 도시로 발전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대뜸 "항구도시로 치면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경제도시로 치면 중국의 상하이 정도라 할까" "17대에 걸쳐 500년간 터전을 일궈온 고향이 평택"이라는 원 의원은 미래의 평택을 이렇게 설명했다. 삼성과 LG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들어와 철도가 깔린 평택항을 거쳐 서해바다로 중국과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바닷길이 열리면 평택은 세계 유수의 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할 수 있는 국제도시로 발돋움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그동안 국회 국방위원회와 외교통상위원회에서 줄곧 활동해 온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꿈을 예감해 왔을까. 지난해 한·중 FTA 체결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이 가시화될 때부터 그는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연결하는 것보다 평택항에서 중국 내륙을 관통해 유럽으로 뻗어가는 TCR(중국횡단철도)과 연결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북한에 대한 불확실성과 압박용으로 TCR 구상을 먼저 하든지,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로 지난해 연말 국회에서 3억5천만원의 '황해 실크로드' 예산을 확보하게 됐다. 야당도 찬성했고, 특히 전 국무총리인 이해찬 의원이 "총리시절 평택 항까지 철도연장을 추진하면서 검토한 구상"이라며 힘을 보태 주었다는 게 원 의원의 후일담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꼭 이런 마음 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약간은 들뜬 마음도 엿볼 수 있었다. # 2월 황해 실크로드 첫 토론회 개최원 의원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오는 2월4일 황해실크로드 구상의 실현을 위해 국회에서 첫 토론회를 가질 예정"이라며 "이번 구상은 단순히 물류뿐만 아니라 한·중 인문사회과학과 한류전파에도 크게 활용될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출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마치 '맨 땅에 헤딩이라도 하듯 치열함속에 살아가는 기자들의 그 것처럼' 강한 실현 의지를 보였다.자문교수단으로는 한 때 한중 해저터널에 대해 연구한 노춘희 한국도시재생연구원 이사장과 박양호 전국토연구원장, 원제무 한양대 교수 등이 조언을 하고 있고, 첫 토론회에서도 이들이 좌장을 맡거나 황해실크로드의 필요성과 평택항 인프라 구축방안에 대해 발제할 계획이라고 한다.원 의원이 열차페리 구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략 2007년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경선 공약으로 채택했을 때부터. 당시 박 대통령이 열차페리를 구상하면서 평택 항을 방문했을 때 그는 경기도 정무부지사로 활약했었다. 당시 인천항을 거점으로 하는 열차페리 구상이 언론에 보도되곤 했는데 그는 박 대통령을 수행하면서 평택으로 유도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당시 열차페리 사업에 대해 "중국과 한국 사이 바다 위에 기찻길을 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열차페리가 연결되면 한국에 사람과 돈이 몰리고, 화물이 몰려서 지역경제가 크게 발전하고 동북아의 경제중심, 물류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될 것"이라며 필요성을 강조한바 있다. 물론 이 구상은 지난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한·중철도 교류협력을 약정하면서 시작됐지만 더 이상의 구체적인 협의는 중단됐었다. 그 후 수년간 시간이 지나고 지난 2013년 10월 박 대통령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하고, 이를 위해 부산~북한~중국~중앙아시아~러시아~유럽을 관통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를 실현하며, 전력ㆍ가스ㆍ송유관 등 에너지 네트워크 구축 필요성을 밝히면서 논의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남북한의 경색된 분위기에서 원 의원은 TKR(한반도종단철도)과 TSR(시베리아횡단철도) 연계보다는 평택항이 시발역이 돼, TCR(중국횡단철도)과 연계하는 황해실크로드를 별도 구상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쳐왔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평택 항에서 열차페리를 이용해 중국 산둥성을 거쳐 중국 서부지역을 가로질러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유럽으로 진출하는 TCR노선에 무게를 두었다. 물론 평택 항을 시작으로 TKR 노선인 안성~여주~원주~강릉~속초 등 한반도를 거쳐 TSR과 연결해 유럽대륙으로 넘어가는 유라시아 구상도 병행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북한의 녹록지 않은 사정을 고려하면 TSR 구상보다 TCR 구상이 현실성이 있다. "우리가 개성공단 사태 때 보았다시피 북한의 일방적인 출입 제한조치가 있을 때 우리 기업인들이 얼마나 고생 했느냐"고 반문한 원 의원은 "남북관계가 가변적이고 유동적이기 때문에 한반도종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 구상만으로 남북관계를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 사업은 FTA 체결 이후 13억명의 중국시장을 선점해 물류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데다, 북한에 대한 압박으로도 작용해 TSR사업에 대한 협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강조했다. # 유라시아 25억명 인구 지구 절반의 시장… '섬' 아닌 한반도 대륙의 국가로 도약할 기회 원 의원은 "한중 FTA 체결과 열차페리 구상이 현실화되면 단순하게 중국에 대한 경제 효과만도 한국은 116조원, 중국은 150조원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한중 FTA 체결이후 '황해 실크로드' 루트가 지리적으로 최단거리여서 가장 강력한 수혜를 볼 수 있으며, 유럽으로 뻗어나갈 경우 총 25억명의 유라시아 시장도 개척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그는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게 되면 지정학적으로 경제, 문화교류에 한국의 역할이 증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라면서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에 우리 제품을 팔고, 또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철도를 통해 대륙으로 뻗어가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유럽 남미 중국 등 TCR을 경유하는 젊은이들이 귀에 이어폰을 나눠 끼고 배를 타고 평택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있는 듯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 비단길, 북한도 협력의 길로 불러낼 수 있어 황해 실크로드 예산은 사실 금년 박 대통령의 유라시아 구상 예산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경색된 남북 관계로 사업이 요원한 실정에서 중국의 TCR과 한국의 TKR을 연결하자는 박 대통령의 구상에 대해 중국 시진핑이 받아들이고, 한중 FTA 체결이후 황해 실크로드 구상을 바로 착수해야 한다는 원 의원의 주장이 먹히면서 금년 예산에 반영됐다. 원 의원은 "한중간 철도교류협력이 시작되면 북한이 더이상 배짱을 부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도 오는 2월 원 의원이 주최하는 토론회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전반과 TCR 연계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새비단길 구상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원 의원도 힘을 받는 모습이다. 경기지역 4선 중진인 그는 긍정적인 도전정신으로 꿈을 이뤄온 정치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만28세의 최연소 나이로 경기도의원을 거쳐 30대 초반에 초선 국회의원에 입문해 50대 초반에 4선 거물급까지 올랐다. 어릴 때부터 서해 바다 넘어 광활한 중국과 유럽 대륙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 어느 한 노정객은 그의 코를 가리키며 "원 의원 코를 봐라, 큰 일 낼 사람"이라며 대중앞에서 목청을 높인 일화는 유명하다. 그 역시 올해는 지역정치에 안주하지 않고 집권여당의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할 의중을 내비치고 있어 경기지역 정치권에도 새 비단길이 열릴지 주목된다. ■ 원유철 의원은▲1962년 경기 평택출생 ▲수성고, 고려대 철학과 졸업 ▲통일민주당 중앙청년위 송탄시지부장(1987년) ▲(주)LG화학 근무(1988~1991년) ▲최연소 경기도의원(만 28세) ▲국회 행정자치위 간사 ▲한나라당 제1정책조정위원장 ▲한나라당 경기도당 위원장 ▲경기도 정무부지사 ▲국회 국방위원장 ▲새누리당 재외국민위원장 ▲한·호주 친선의원협회장 ▲국회지방자치발전특위 위원장 ▲통일을여는국회의원모임 대표 ▲15·16·18·19대 국회의원(4선)/글=정의종기자·사진=김종택기자▲ 새누리당 원유철 국회의원은 "평택과 중국 산둥성 옌타이 사이 바다 위에 열차페리가 운행하면 돈과 화물, 사람이 몰리게 되고, 평택은 물류중심지로 지역경제는 물론 동북아 경제 중심지로 우뚝 설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2015-01-20 정의종

[인터뷰… 그]김태년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당위원장

'현실 불가능·들러리'등 부정적 여론속특유 강한 설득력으로 '연합정치' 문열어한국정치사 '첫 도전' 성사 보람·자부심여야협치기구 통한 상생협력틀 자리매김지방분권 강화 법·제도 이끌어야도당위원장·교문위 야당간사 맹활약추진력 갖춘 '차세대 중심인물' 떠올라정의로운 세상위해 '차별없는 교육' 주력성남형교육지원사업 혁신모델 이끌어험한길 마다않고 좌절않는 것이 '나의 힘'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던 '경기연정'을 당선 직후인 지난 6월 9일 공식적으로 꺼내들었을 때 '연정 파트너'인 새정치민주연합측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회의적이었다. '우리나라 정치구조상 불가능하다'는 현실론에서부터 '몸값높이기 쇼'라는 정치적 해석에 이르기까지 부정적 의견이 분분했다.하지만 경기도 새정치연합을 대표하는 김태년(성남수정) 도당위원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다음날 국회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기도 연정을 실천하는 출발점은 정책을 합의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역제안'했고 남 지사는 주저함없이 이를 수용했다. 우리나라 정치 역사상 유례없는 경기연정의 첫 단추가 꿰어진 순간이었다. 이후 경기연정은 경기도의회 반대라는 한차례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여야동수의 정책협상단 구성, 합의문 발표, 야측 사회통합부지사 선출 등을 거쳐 정상궤도에 올라섰다.다음달에 도당위원장을 후임에게 물려주는 김 위원장은 임기 중 가장 보람있고 기억에 남는 일로 단연 '경기도연합정치 성사'를 꼽았다. 그는 "경기연정은 끝없는 대립의 정치, 승자독식의 구조를 깨고 상생협력의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추진한 것"이었다며 "한국 정치사에서 첫 시도이지만 도전하는 자세로 새정치의 지평을 여는 일익을 담당한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연정 추진 과정은 결코 순탄하진 않았다. 도의원, 국회의원 상당수가 '남 지사의 들러리 밖에 안될 것'이라며 사회통합부지사 추천 등의 경기연정을 막아섰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남 지사와 손 잡고 경기연정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현재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반대하는 도의원, 국회의원들을 설득하느라 진땀깨나 흘려야했다.김 위원장은 "시작할 때부터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어떤 분은 산을 넘지 말라고도 했고 어떤 분은 산을 넘고 싶어도 길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의지를 가지고 했다"며 "산을 넘지 말라는 분에게는 산을 넘어야만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길이 없다고 하는 분에게는 처음부터 길은 없고 만들어서라도 가야한다고 설득했다"고 되돌아봤다. 그는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결국은 연정의 문을 열게 됐다"며 "열정적으로 뛰어 주신 분, 격려하고 함께 해주신 분, 특히 큰 결단을 내려주신 도의원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경우에 따라 여당에게 유리함만 안겨주며 정치 인생의 커다란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는 경기연정에 몸을 담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대립과 분열의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상생과 협력의 새로운 정치로 나아가겠다는 진정성'이었다. 자신이 그런 정치를 하고자 했고, 남 지사에게서 그걸 읽었고, 경기연정을 통해 실현해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김 위원장의 시선은 이제 '경기연정의 성공적 안착'쪽으로 향해 있다. 그는 우선 '최대 난제'로 상생과 협력을 어렵게 만들고 지방분권을 제약하는 제도적 문제를 꼽았다. 중앙집권적이며 승자독식의 구조가 지방에서 권력과 역할을 나누며 책임을 공유하는 연정을 안정적으로 추진하는데 큰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는 좋은 대안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며 "지금의 구조에만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당장 여야협치기구를 만들어 안정적인 상생협력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더 나아가 지방분권을 강화하기 위해 여야가 공동으로 협력하고 노력해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도 할 수 있다"며 "비록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여기서 소기의 성과를 낸다면 경기연정은 단순히 경기도의 실험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는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힘을 줬다.김 위원장은 올 한해 도당위원장으로 경기연정을 추진한 것 외에 지방선거도 치렀다. 또 국회에서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간사로 그 누구보다 바쁘면서도 알찬 한해를 보냈다. 이를 토대로 '추진력을 갖춘 뚝심있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게됐고, 당을 이끌어갈 차세대 중심 인재로 자리매김했다. 당안팎에서 차기 당지도부를 선출하는 '2·8 전당대회'에 최고위원으로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온 것도 이때문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막판에 최고위원 출마를 접었다. 그는 주저없이 "도당 위원장 일을 잘 마무리 짓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엇이 되는 것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 자리를 탐하면 오래가지 못하더라"며 "이 단계에서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그 역할에 충실하다보면 또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이고, 그러면서 욕심내지 않고 한단계씩 나아가고 싶다"고 덧붙였다.그러면서도 "우리 당이 수권정당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라면 무슨 역할이든지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힘을 실었다. '수권정당'과 관련해서는 "우리 당에게 부족한 것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실력있고 유능한 정당으로서 국민의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물론 우리가 집권했던 민주정부 10년이 이명박·박근혜·새누리당 정권보다 훨씬 더 유능했다"면서도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정책역량을 강화하고 민생밀착형 정치를 펼치는 것, 이를 위해 당의 체제를 정비하고 체질을 개선해 유능한 수권정당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에 힘을 쏟아야한다"고 말했다.김 위원장이 정치인으로 품는 세상의 모습은 무엇일까. '정의로운 세상'이다. 김 위원장은 지역에서부터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김 위원장은 "국회에서의 활동도 그렇지만 지역에서도 최우선 순위를 교육에 두고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왜 '교육'인가. 부모의 재력·권력에 따라 출발선에서부터 교육 차별·불평등이 발생하며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 세상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교육때문에 이사오고 싶은 성남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이를 위해 '성남을 혁신교육도시로 만들겠다'는 선거공약을 내걸었다"며 "이름은 바뀌었지만 '성남형 교육지원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결과적으로 지역주민과의 약속을 지키게 됐다"고 밝혔다.공교육 정상화·창의 인재 육성 등을 목표로 하는 '성남형교육지원사업'은 성남지역 초중고 151개교를 대상으로 개별학교 프로그램 지원 및 전체 교육인프라 구축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171억원, 내년 204억원이 투입된다. 이 사업은 교육청이 개별 학교를 지정하는 방식에서 한단계 발전해 지자체가 교육청과 손잡고 지역 전체 학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혁신학교 확산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0년 5월 국회의원 당선 후 당시 김상곤 교육감과 이재명 성남시장을 수차례 만나 설득한 끝에 이같은 혁신학교 확산 모델을 관철시켰다. 이후 시의회에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의 반대 등으로 2년여 논란을 빚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학부모와 교육계의 전폭적 지원속에 지난해 본격 도입됐다. 김 위원장은 "성남시와 교육청의 협력으로 성남 지역 초중고 모든 학교가 혁신학교가 되는 교육환경을 만들게 됐고, 이는 전국적으로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며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성남을 창의교육도시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대부분 정의로운 세상을 희망하지만 그걸 만들어내는 일은 현실적으로 결코 쉽지않다. 현실의 벽에 굴하지 않고 뚜벅뚜벅 헤쳐나갈 수 있도록 그를 지탱해주는 힘은 '故 김대중·노무현 정신'이다. 김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동초'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야생화'는 끈기와 도전을 상징한다. 결코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좌절하지도 않는다"며 "감히 따를 수 없는 삶이지만 어려울 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어주는 삶"이라고 말했다. ■ 김태년 의원은▲ 1964년 전남 순천생 ▲ 경희대 학사 및 행정대학원 석사 ▲ 경희대총학생회장 ▲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 ▲ 민주통합당 서민생활특위 위원 ▲ 민주당·민주통합당 비대위원 ▲ 국회정치쇄신특위 야당간사 ▲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야당 간사(현)▲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당위원장(현) ▲ 17·19대 국회의원(현) 글 = 김순기기자사진 = 임열수기자▲ 경기도 연정의 토대를 마련한 김태년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당위원장은 "대립과 분열의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상생과 협력의 새로운 정치발전은 경기연정을 통해 실현해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2014-12-29 김순기

임창열 고양 킨텍스 신임 대표이사

경제발전 '제조업 → 서비스업 이동' 직감으로 추진한 게 킨텍스 태동전시산업 살려면 마이스산업 함께 발전해야 … 주변 호텔등 인프라 부족접근 편리위해 GTX 조기개통 '대중교통망 확충' 주력중국보다 작은 규모론 성장안돼 현재 2배 20만㎡이상 신축 서둘러야3개월간 대표 선임 진통 '불합리한 정관' 변경·다수결원칙이 타당"킨텍스를 만든 장본인으로서 현상만 유지한다면 대표이사로 올 필요가 없었다. 다시 돌아온 이상 킨텍스 전시장 활성화에 올인하겠다."국내 최대 전시컨벤션센터인 고양 킨텍스 대표이사로 부임한 임창열(70) 신임 대표는 최근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마이스(MICE)산업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킨텍스를 아시아 대표 전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지금도 국민들 뇌리속에 잊히지 않는 외환위기(IMF) 사태 당시 재정경제원 부총리를 맡아 국가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그가 경기도지사 재임 시 유치한 고양 킨텍스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실제 임 대표의 얼굴에서는 강한 자신감과 함께 뿌듯함이 넘쳐 흘렀다. 그는 "도지사 시절 경기도민이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까 고민 끝에 '경제 발전은 제조업에서 서비스산업이 대세'란 직감을 가지고 추진한 것이 오늘날 킨텍스의 태동"이라고 말했다.미래 한국경제를 이끌 원동력으로 마이스산업에 치중한 그가 국내 최대 규모의 킨텍스는 물론 약 99만1천735㎡에 달하는 한류월드(관광숙박단지) 기반 조성 등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위해 일찌감치 큰 그림을 그린 것이다.그동안의 경험과 열정을 바탕으로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겠다는 그는 "현재 50%에 불과한 킨텍스 가동률을 최대 70%까지 올리기 위해 국가산업인 광역급행철도(GTX) 조기개통과 제3전시장 건립이 시급하다"고 언급했다. 이를 위해 그는 임기 3년 동안 자랑스러운 킨텍스를 질적인 면에서 성장시켜 세계 전시장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는 아시아 대표 전시장으로 반석위에 올리는 데 전력투구하겠다고 강조했다.임 대표는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재정경제원 부총리, 통상산업부 장관, 재정경제원 차관, 조달청장, 경기도지사와 알앤바이오 회장 등 정부기관과 민간기업을 두루 거친 국내 경제통 리더다.다음은 임 대표이사로부터 킨텍스의 현재와 미래 발전 구상을 들어봤다.-킨텍스 대표이사에 비코트라 출신으로는 처음이다. 소감은."킨텍스 대표이사 선임을 놓고 3개월간 진통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 3개 기관(코트라·경기도·고양시) 지분투자에도 코트라 의결권이 51%를 차지하면서 지금까지 코트라 출신이 대표를 맡았다. 대표이사 공모제가 바뀐 지금도 69%의 주주 동의가 있어야 사장으로 결정될 만큼 구조적 문제가 많다. 정관 변경과 함께 다수결(51%) 원칙에 따른 대표 결정이 타당하다. 다수결 결정 시 정부기관은 물론 민간 또는 능력을 갖춘 외국인 대표도 올 수 있으며 임기 동안 변화와 함께 마지막으로 봉사할 자리여서 기쁘게 생각한다."-전시컨벤션 분야 비전문가란 기대반 우려반 목소리가 있다. 킨텍스와 인연은."경기도지사 당시 킨텍스를 유치하면서 향후 경제발전은 제조업에서 서비스산업으로 옮겨질 것으로 예측하고 마이스산업(회의·관광·컨벤션·전시회 등을 융합한 산업)을 추진했고 예상은 적중했다. 국내 자동차산업 활성화에도 모터쇼 하나 개최할 공간이 없다가 킨텍스가 개장하면서 세계적인 서울모터쇼 전시회 등 다양한 국제전시회를 잇따라 열고 있다. 킨텍스가 살려면 마이스산업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앞으로 킨텍스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계획인가."킨텍스가 국민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세계 최고의 전시장을 만들 예정이다. 킨텍스를 만들 당시 갖고 있던 계획 추진과 함께 국가전략산업으로서 지역경제 발전은 물론 무역거래 활성화 등 수익성과 공공성의 균형을 맞추는 안정적인 경영을 펼치겠다."-킨텍스 발전을 위해 앞으로 보강할 사항은."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접근성이 용이한 대중교통망을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GTX 조기개통이다. 과거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산업화 초석을 이뤘다면 GTX는 마이스산업을 통해 국가경제 발전을 일으킬 대동맥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GTX 조기개통을 위해 정부에 적극 건의할 생각이다. 또 내국인을 위해 대화역, 킨텍스 한류월드를 잇는 순환버스 추진과 함께 킨텍스 경쟁력 확보에 필요한 비즈니스급 호텔 유치에도 속도를 내겠다."-킨텍스 전시장 추가 건설 계획도 있나."국내 최고라는 킨텍스보다 중국은 더 큰 전시장을 7개, 독일은 4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 앞으로 킨텍스가 세계 20대 전시장으로 진입하려면 현재 두 배에 달하는 20만㎡ 이상의 전시장 건립을 서둘러야 한다. 킨텍스 인근 부지에 제3 전시장 계획이 추진될 수 있도록 고양시와 협의, 도시계획에 반영되도록 적극 추진하겠다."-킨텍스의 누적 적자가 매년 상승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은."선진국은 물론 전시장을 운영하는 중국, 싱가포르, 태국 등과 비교해 킨텍스 임대료가 너무 싼 것도 적자 원인 중 하나다. 태국의 경우 전시장 임대료가 ㎡당 4천원이지만 킨텍스는 1천650원을 받고 있다. 10년 전과 비교 시 인상분은 150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킨텍스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 킨텍스는 지난해 고양시에 4천500억원의 경제적 이익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앞으로 원가개념을 도입, 낭비요인 제거 등 적자를 줄이는 데 주력하겠다."-킨텍스를 만든 장본인이지만 내부에서 본 킨텍스는 어떤가."국민 세금으로 건립된 킨텍스지만 국제경쟁력을 갖기엔 주변 인프라 시설이 아직도 부족하다. 마이스산업의 중요성 강조에도 킨텍스 부근에 비즈니스호텔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앞으로 1년내 킨텍스의 경쟁력을 높이는 비즈니스호텔 건립 추진에 적극 매달릴 예정이다. 또 킨텍스 주변에 쇼핑, 엔터테인먼트, 먹거리, 문화 조성과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면 정부, 지자체와도 긴밀한 협조를 갖겠다. 특히 감사 등 외부 시선이 많아 직원들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실적이 있는 직원에 대해서는 격려와 보상을 아끼지 않겠다."-끝으로 3년 임기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아시아에서 킨텍스를 가장 경쟁력 있는 전시장으로 만들 것이다. 킨텍스와 고양시가 한류월드 중심지로서 대한민국 마이스산업의 꽃을 활짝 피우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며 마이스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있다면 소통과 대화로써 풀어가겠다." 고양/김재영기자

2014-10-27 김재영

[인터뷰… 그]최일신 (사)미래사회발전연구원 초대 원장

정년퇴임 연구원·외국 학자 등 다방면의 인재풀 활용수도권 중·장기 융합정책부터 고령사회·지식생태 체계에 대한 연구 등분야 막론한 프로젝트 진행으로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미래사회발전연구원'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니까요. 한계도 경계도 없이 한국사회의 미래상을 제시해 보일 것입니다."지난 16일 만난 (사)미래사회발전연구원 최일신 원장과의 대화를 정리하면 '신념'과 '확신'이 남는다. 그는 청년시절 산업화를 온 몸으로 겪으면서도 농업에 대한 확신을 갖고 한 길을 걸었다. 국가가 있는한 농업이 있다는 신념이 그의 길을 밝혔다. 그가 지난 8월 20일 발족한 신생 연구원의 초대 원장자리에 앉았다.경인일보가 설립한 미래사회연구원은 사회 전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연구활동을 통해 지역단위의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과 각종 국제개발 협력사업의 역량을 강화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전지구적, 초분야적 변혁은 한세대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변혁은 쉼없이 계속되는데다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고, 이를 예측하는 일은 더욱 중요해졌다.최 원장이 미래사회발전연구원에 어떤 확신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미래사회발전연구원은 어떤 기관인가."미래사회발전연구원은 기존의 (사)경인발전연구원을 모체로 한다. 주로 지역의 도시개발이나 지역경제에 관한 조사연구를 하던 기관인데, 새로 발족하면서 연구범위나 규모를 넓혔다. 정확히 말하자면, 넓혔다기 보다는 제한을 없앴다. 연구원 의장인 송광석 경인일보 대표이사 사장과 만나 앞으로 국제협력분야가 더 중요해 질 것이라는 의견을 전한 적이 있는데, 이에 동의해서인지 나를 원장으로 불러주었다. 그러나 연구분야를 국제협력에만 제한하지는 않을 것이다. 경기도에 산재한 여러 안건들부터 국제관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다양한 미래를 제시해 보이겠다."-국제협력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2000년에 코이카와 함께 페루에 다녀왔다. 낙농업 분야에 대해 자문을 하러 갔는데, 안데스 산맥을 넘으면서 고산병도 겪고 고생을 했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도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1993년부터 한경대학교 낙농과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 학생들과 연관 짓는 버릇이 생겼다. 그 때의 바람 덕분인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한경대가 코이카와 협약을 맺고 학생 10명이 포함된 봉사단을 결성해 인도네시아로 보냈다. 4인1조씩 팀을 짜 정해진 지역으로 가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우유를 짜는 낙농마을에 가서 저장시설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많은 것을 배웠고 자부심도 느꼈다. 대부분 학생들이 자신감을 얻어서 취업도 잘 했다. 국제협력의 장점을 다 경험한 것이다."-연구원이 내년 경인일보 창간 70주년을 앞두고 새로 출범했는데 연구원의 주요 과제라면."앞서 말했듯이 연구 프로젝트의 분야별 제한은 없다. 미래사회를 예측하고 지역발전의 미래를 도모하는 분야라면 모두 다룰 예정이다. 예를 들어 수도권지역의 중·장기 융합정책에 대한 조사 연구 및 발전계획 수립에서부터 고령사회를 예측한 정책개발, 지식산업 및 지식생태 체계에 관한 연구 등 다루어야 할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연구주제를 언론사인 경인일보와 연구원의 인재풀을 기반으로 심도있게 연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한국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지식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연구원 운영을 위한 기본적인 방침은 무엇인가."한경대에서 '한경햄'이라는 벤처회사를 창립해 지금까지 건실하게 운영하고 있고, 총장으로서 학교 경영도 해봤다. 경영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다방면에서 충분한 인력풀을 갖출 수 있다. 우리나라가 장수국가다보니 대부분 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정년을 하고 나와도 젊다.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노하우를 우리는 적극 활용해야 한다. 외국에 있는 학자들 중에서도 도움 받을 수 있고, 프로젝트가 기획되면 전문가를 초청해서 진행하는 방법도 있다.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중국과 연계된 첫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코이카 프로젝트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공적개발원조 자금들이 불어나고 있다. 이 자금을 사용하는데는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성이 있는 언론사에서 함께 연구를 한다고 하면 그 쪽에서도 믿고 오더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언론사는 많은 정보를 갖고있고, 가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연구원이 언론사와 연계된다는 것은 큰 강점이다. 이런 배경을 가진 우리 연구원은 사실상 모든 분야에 대한 미래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농업 전문가로서 국내 농업의 미래를 진단한다면."요즘으로 치면 초등학생 나이일 때 일생의 목표를 농업으로 정해 지금까지 한우물을 파며 살았다. 젊은 시절 일본으로 유학을 갔는데, 당시에도 일본은 낙농업분야에서 아시아 최고수준을 이루었다. 일본의 대학에는 학생들을 위한 훌륭한 실습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농업에 대한 철저한 직업관과 철학이 바탕에 깔려있었다. 귀국해서 한경대에 임용됐을때, 국내의 농과 대학들은 이름을 바꾸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학과 이름에서 '농'이라는 글자를 떼어냈다. 농업 기피현상 때문이었다. 농업은 촌스러운 일이 돼서 학생들이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선배교수님들한테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이를 지켜야 한다고 강하게 어필했다. 나라가 있는한 농업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었다. 먹는 문제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 농업이고, 안심하고 식품을 먹을 수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또한 믿었다. 일이십년 내로 나의 신념이 증명될 것이라며 설득했다. 실제로 5년쯤 지났을 때부터 IT바람이 잦아들면서 먹거리 문제가 중시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 농업은 외국에서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요즘은 내적으로도 귀농하는 사람이 늘고 있으니 긍정적으로 보고있다."-초대 원장으로서 미래사회발전연구원과 자신의 미래를 그려본다면."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던 세대의 사람이다. 폐허 위에 강대국을 세운 사람들을 통해 배웠다. 그래서 내가 할 줄 아는 것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연구원의 핵심이다. 현재 연구원은 빈공간이나 다름없다. 대부분 연구원들은 폐쇄적이게 마련인데, 나는 연구원을 계속해서 열어 둘 것이다. 열린 상태로 여러 분야에서 의욕적으로 재밌게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농업 이외에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 중에 밖에서 굉장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들이 많다. 더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우리 젊었을 때만 해도 일본 화장품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우리것이 더 많이 팔린다. 이런 미래를 연구원을 통해 제시하고 만들어 갈 것이다. 목표를 너무 크게 두는 타입은 아니다. 분명하게 할 수 있는 것에서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려 그것을 성취하면서 인생을 살아왔다. 아마도 같은 방식으로 연구원을 꾸려갈 것이다. 방향성은 뚜렷하다. 누구와 어떤 주제로 일을 하든 우리나라가 발전하고 민족이 번영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글=민정주기자▲ 최일신 (사)미래사회발전연구원 원장이 "미래사회를 예측하고 지역발전의 미래를 도모하는 분야라면 어떤 분야든 연구 프로젝트로 다루겠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김종택기자

2014-09-22 민정주

[인터뷰… 그]사이토프 올렉 러시아 유즈노 사할린주 체육부장관

사할린인구 1/4 생활체육 즐겨경기도·K리그 등과 교류추진한국 동계 스포츠종목 선수에러 기술전수 적극적으로 협조지자체 조성 시설물민간위탁 운영시민 개방시스템러시아도 배워야…"한국의 스포츠 관련 시설을 점검하고 경영에 대한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찾게 됐다." 오는 2018년은 러시아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축구대회가 열린다. 러시아는 동·하계 스포츠 강국이다. 지난 2월 자국에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9개를 기록하며 메달 순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다. 또 하계올림픽에서도 세계 5위권에 들 정도로 파워를 보여왔다. 이 같은 이유는 러시아 정부의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4년 뒤 월드컵 개최국으로서의 면모를 또한번 과시할 전망이다. 소치 동계올림픽 후 일찌감치 월드컵을 준비하는 러시아는 축구 인프라 구축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21일 수원을 방문해 25일 출국하는 러시아 유즈노 사할린주 사이토프 올렉(39·Saitov Olec) 체육부 장관이 24일 경인일보를 찾았다.올렉 체육부 장관은 사할린주의 체육정책을 총괄한다. 우리의 경기도 문화체육관광국 국장과 비슷한 위치다. 올렉 장관은 이번 한국 방문에 사할린주 로틴 예브게니 하원의원, 사할린주 배 루슬란 스포츠편집국장 등과 함께 했다.한국 방문 소감을 묻자 올렉 장관은 "이번이 2번째 방문"이라며 운을 뗀 뒤 "한국의 스포츠 관련 시설을 점검하고 경영에 대한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찾게 됐다"면서 "3일간 살펴본 결과, 한국은 스포츠 인프라 구축(특히 축구장)과 운영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특히 올렉 장관은 스포츠센터와 지역 체육·문화 시설, 월드컵경기장 등 체계적으로 잘 갖춰진 스포츠 시스템을 칭찬했다. 그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을 둘러본 결과 뛰어난 경관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2002년 한·일월드컵때 지어진 경기장이 1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잘 관리되고 운영된다는 것에 대해 감명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러시아는 4년 뒤 치러질 월드컵경기장 건설에 막대한 공사비를 투입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사후 활용에 대해선 아직도 준비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올렉 장관은 23일 수원월드컵경기장 풋살구장을 방문해 직접 동호인들과 풋살 경기를 체험했다. 축구화 사이즈가 맞는게 없어 맨발로 대결을 벌인 러시아 사할린주팀과 한국 동호인팀은 풋살을 통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풋살의 묘미를 만끽했다. 올렉 장관은 "월드컵경기장 주변에 인조잔디 구장으로 조성된 풋살구장과 보조구장이 무척 마음에 든다"면서 "특히 지방자치단체에서 조성해 놓은 시설물을 민간에게 위탁 운영하고, 여기에서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에 대해 무척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스포츠 시설물을 시민들이 마음놓고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울만 하다"며 "사할린주도 이런 노하우를 접목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올렉 장관 일행은 앞서 경기도의회와 수원시, 수원시의회를 차례로 방문해 한국과의 교류를 협의했다. 그는 "우리 일행중에 로틴 하원의원이 동행했다. 경기도의회와 수원시의회를 찾아 의원들과 양국 교류에 대해 협의했다. 시간이 부족했지만 향후 사할린주와 경기도, 수원시 등과 스포츠·문화 교류를 추진하고 싶다"고 전했다.그는 "러시아는 동계스포츠에서 만큼은 기술력과 인프라 구축에서 한국에 비해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며 "동계스포츠 종목인 알파인스키,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아이스하키 등 한국 선수들이 러시아를 찾는다면 기술 전수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러시아도 한국의 태권도, 양궁 등 배울 수 있는 종목이 많다. 한국에서 합동 훈련을 해준다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특히 그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국에서 열리는 것에 대해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그는 "사할린주는 한국 인천국제공항에서 3시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한국의 동계종목 선수들이 훈련 여건이 뛰어난 이 곳에서 최상의 훈련과 노하우를 배운다면 4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동계 종목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사할린 주는 동계올림픽 종목 훈련 캠프 유치를 위해 국제 시설의 크로스컨트리 경기장, 바이애슬론 경기장, 알파인 스키장을 조성하고 있다"며 "경기도와 스포츠 교류를 추진한다면 향후 문화, 경제까지 폭넓은 교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4년 뒤 러시아 월드컵에 대해 그는 "러시아는 국토가 넓다. 따라서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볼고그라드, 카잔,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치, 사란스크 등 러시아 북서부에 위치한 11개 도시 12개 경기장에서 개최된다"면서 "극동에 위치한 하바로스크와 사할린주는 월드컵을 치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월드컵은 개최하지 않지만 지역 스포츠 인프라 구축을 위해 인조잔디 조성과 스포츠센터 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늘어나고 있다"며 "사할린주도 월드컵을 대비한 축구 붐 조성을 위해 스포츠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24일 오후 7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경기를 관전한 올렉 장관은 "수원을 방문해서 얻은 것이 많았다"며 "프로축구 문화와 경기장 관람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열기를 실감했다. 앞으로 프로축구도 정기적으로 교류를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화제를 바꿔 한국 음식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김치는 맛있는데 아직도 맵다. 하지만 비빔밥, 김밥, 불고기 등은 정말 맛있다. 고기와 함께 먹는 막걸리 맛도 최고였다"고 전했다.올렉 장관은 올림픽 복싱 챔피언으로 러시아를 들썩였던 인물이다. 그는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복싱 67㎏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4년 뒤인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같은 체급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이어 그는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3회 연속 메달을 따내는 등 올림픽 영웅이었다. 러시아는 그를 인정해 2005년 6월 사마라 문화스포츠 부서 장관 대리로 임명했고, 2009년 5월에는 사마라 스포츠 차관으로 지역 스포츠 담당을 맡겼다. 또 2013년 2월부터 그를 사할린주 정부 체육부 장관에 임명해 사할린주의 체육 정책을 맡겼다.이에 대해 올렉 장관은 "당시 나는 복싱 우상이었다"면서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순간 모든 것이 행복했다. 내 인생에 최고의 해였다"고 전했다. 현재도 복싱을 즐겨하느냐에 대해 올렉 장관은 "34세 이상부터 복싱 경기에 출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수 생활을 그만뒀다. 대신 헬스와 하키, 스키 등을 통해 건강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사할린주 체육 정책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사할린주는 지난해까지 5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면서 "이 가운데 25%인 12만5천여명이 건강을 위해 생활체육을 즐긴다. 종목은 겨울이 길기 때문에 하키와 크로스컨트리, 조깅 등을 즐겨한다"고 전했다. 이어 올렉 장관은 "스포츠가 활성화되면 국민들이 건강해지고, 나아가 사회와 국가가 튼튼해진다"면서 "러시아 정부도 국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많은 나라들과 교류하고 스포츠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국민이 없으면 국가가 없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건강해야 하는 권리를 갖는다"고 답했다.끝으로 올렉 장관은 "스포츠는 직업, 연령, 국가, 신분 등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고 공평하다. 오로지 둘 만의 경쟁을 통해 승부를 낸다"면서 "스포츠 경기를 통해 모든 나라가 건강해지고, 평화로운 세상을 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전했다.글 = 신창윤기자 사진 = 임열수기자

2014-08-24 신창윤

[인터뷰… 그]남수단 문화·청년·체육부 피터 뱁티스트 차관 방한

한국 스포츠정책 벤치마킹IOC가입 협의위해 찾아와임흥세 남수단 축구총감독열정과 의리·성과에 '감동'韓 이미지 中·日보다 좋아독립한지 3년밖에 안된 나라전쟁 탓 인구 80%가 청소년배움에 대한 열정 많지만…정부지원은 사실상 어려워임감독 같은 지도자 필요해"한국 스포츠의 시스템을 배우고 싶다."아프리카 남수단은 얼마 전까지 정부군과 반군간의 교전으로 위기 상황을 맞았던 곳이다. 하지만 최근 정국이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그 곳에서도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이런 시기에 남수단 스포츠 재건을 위해 뛰는 사람이 있다. 그는 남수단 문화·청년·체육부의 피터 뱁티스트(62·Peter Baptist) 차관이다. 피터 차관은 남수단 축구대표팀 임흥세 총감독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지난달 30일 경인일보를 방문한 피터 차관. 1952년생, 62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피터 차관은 젊어 보였다. 그를 보자마자 '젊어 보인다'라고 말하자, 그는 함박웃음과 함께 손사래를 쳤다. 자신의 나이보다 젊다고 해서 싫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스포츠라는 단어에 걸맞은 패기와 열정이 엿보였다. 그를 통해 남수단의 체육정책을 들어봤다.한국이 첫 방문이라는 피터 차관은 한국 사람들에 대해 "모두가 겸손하고 친절했으며 부지런하다라는 것을 느꼈다"며 "모든 면에서 체계적으로 잘 갖춰진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말했다.피터 차관이 한국을 찾은 이유는 한국 체육정책 및 운영에 대해 벤치마킹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정식 가맹을 협의하기 위해서다. 이런 이유로 피터 차관은 지난달 25일 도착하자마자 바쁜 일정을 보냈다. 우선 전북 무주로 내려가 국제유스캠핑페스티벌을 참관했으며, 한국청소년연맹과 업무협약을 통해 양국 청소년들의 문화·스포츠 교류를 갖기로 했다. 또 문화체육관광부를 방문해 김종 제2차관과 체육 협력에 대해 논의했으며, 경기도의료원과 삼성전자 방문 등 한국 곳곳을 둘러봤다.한국 방문 이유에 대해 피터 차관은 "세계 랭킹 10위 안에 드는 스포츠 강국 한국과 스포츠 교류를 한다면 남수단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면서 "임 총감독의 도움으로 한국과 스포츠 유대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남수단 국민들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 국민에게는 매우 우호적이다. 임 총감독이 축구를 통해 남수단 정부와 국민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특히 피터 차관은 이에리사 국회의원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초 남수단 주바를 방문해 스포츠 외교를 펼쳤다. 남수단 정부로부터 국빈 초청을 받은 이 의원은 주바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수단 올림픽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했고, 남수단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 명의의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피터 차관은 "이 의원은 지난 3월부터 남수단의 IOC 가입 추진을 적극적으로 돕고 이에 관한 조언을 해주었다"며 "남수단은 아직 IOC 정식 회원국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의원의 도움을 받아 자국 5개 종목을 아프리카의 각 연맹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IOC 회원국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남수단은 IOC 회원 가입을 위해 종목별로 국제연맹 가입을 차례로 추진중이다. 축구와 태권도는 이미 가입된 상태며 농구, 배구, 육상, 복싱, 탁구와 장애인종목 등도 정식 가입을 앞두고 있다. 우선적으로 5개 종목 이상을 국제연맹에 가입시켜야 IOC 회원국 가입 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피터 차관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피터 차관의 얘기 대로라면 남수단은 오는 9~10월께 IOC에 정식 회원국 가입 신청을 하게 된다.남수단의 스포츠 정책에 대한 의견도 들어봤다. 피터 차관은 "스포츠는 국민의 기본 권리다. 국민들이라면 누구나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동하고 건강을 지킬 권리를 갖는다"면서 "하지만 남수단은 독립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데다 내전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이 많다. 현재는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급하기 때문에 스포츠 예산 지원은 어려운 형편"이라고 밝혔다.그도 그럴 것이 남수단은 내전으로 국민들의 삶이 어려운 상태다. 또 일부 어린이들은 식량이 부족해 먹는 것 마저도 여의치 않다. 그러나 피터 차관은 "스포츠가 국민들의 힘을 모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스포츠를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그는 임 총감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에 대해 "지난 1월 임흥세 총감독이 축구대표팀을 맡은 뒤 착실히 한국 축구 시스템을 도입해 기반을 다지고 있다"면서 "한국과 축구 교류를 정례화한다면 더 좋은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믿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모잠비크와 축구 경기를 가졌는데 1무1패를 기록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순위도 205위에서 185위로 올라가는 등 서서히 축구가 정착되어 가고 있다"며 "임 총감독은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축구 지도자 및 선수들이 그의 의리에 감동받고 있다"고 덧붙였다.다만 남수단은 내전으로 제대로 된 경기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 대회도 남수단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피터 차관은 "내전으로 경기장이 무너졌다. 이로 인해 제대로 된 축구 경기장이 없어 경기를 다른 국가에서 치르기도 했다. 조만간 다시 계획을 세워 경기장 건설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화제를 바꿔 만약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어느 종목에서 메달을 바라볼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남수단 국민들은 손과 발이 길다. 따라서 농구, 배구, 육상, 태권도 등에서 메달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피터 차관은 "남수단도 독립한 뒤 동아프리카 청소년대회에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농구, 배구, 핸드볼, 육상, 럭비 등에서 선수들을 내보내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대내외에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남수단의 청소년 정책에 대해 그는 "남수단 학생들은 초등학교 8학년, 고등학교 3학년 등 11년간 학업에 열중한다. 하지만 학생들에 비해 이들을 가르칠 전문 교사들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임흥세 총감독처럼 전문 지도자들이 남수단을 찾아 현지 지도자 양성 교육을 해준다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남수단 현지 상황에 대해 묻자 그는 "전체 10개 주 가운데 7개 주가 모두 안정을 되찾고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 곳에선 더이상 폭력 소요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3개주 가운데 일부에서 소동이 있긴 하지만 정국 안정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답했다.한국 음식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불고기, 갈비 등을 먹어 봤는데 맛이 훌륭했다"면서 "김치는 매웠지만, 모든 음식이 입에 잘 맞았다"고 칭찬했다.그렇다면 남수단은 월드컵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이에 대해 그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월드컵이 열렸다. 무척 부럽기도 했고 우리에게는 머나먼 나라의 얘기였다"고 답한 뒤 "물론 남수단도 월드컵을 개최하고 싶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실력을 키우는 것이다. 아프리카 예선을 통과해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게 최우선이다. 그 이후에 월드컵 유치에 대한 생각도 해보겠다"고 밝혔다.50여년 간 내전 끝에 2011년 7월 새 독립국가가 된 남수단은 이후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으로 18세 미만 청소년들이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한다. 그러나 자신도 농구 선수 출신으로 꿈을 펴지 못한 까닭에 피터 차관은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남수단의 스포츠 정책 임무를 맡았고, 곧바로 한국을 찾았다. 피터 차관은 "한국민들의 환대에 감사드린다. 머지않아 한국을 다시 방문할 것"이라면서 "세계 스포츠 강국인 한국이 남수단을 도와준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대들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뒤 웃으면서 떠났다.글 = 신창윤기자 사진 = 김종택기자▲ 아프리카 남수단 문화·청년·체육부의 피터 뱁티스트(62·Peter Baptist) 차관이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람들에 대해 "모두가 겸손하고 친절했으며 부지런하다라는 것을 느꼈다"며 "모든 면에서 체계적으로 잘 갖춰진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14-08-04 신창윤

[인터뷰… 그]김문수 경기도지사 8년의 道政 마무리

경기 600년史 최장수 지사수도권 '손톱 밑 가시' 뽑아판교·광교 성공시대 이끌어'무한돌봄' 복지사각 해소남한산성 세계문화유산 등재재임기간 다양한 분야 성과7·30 재보선에 출마 고민자리 정하고 움직이지 않아그냥 부천시민으로…후계 구도 잘 만든것 자랑남경필 당선자의 연정 기대'2할 지방자치' 보완 필요"의원님은 현실도 모르면서 그렇게 태평한 소리만 하십니까."일순간 조용해졌다. 날선 '돌직구'에 바라보는 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임기 마지막 경기도의회 도정질의에서 야당 도의원과 생활임금조례 도입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였을 때였다. '최선을 다하겠다' '검토해보겠다' 등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는 말도 많았을 텐데, 하긴 그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 앞에서건 유관단체 앞에서건 하고 싶은 말을 숨기지 않았다. '정치인'이라는 수식어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유력한 총리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던 그가 문창극 총리후보 낙마후 바로 다음날 출입기자들과 오찬에서 "청문회에서 걸릴게 없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도 정치인 특유의 기름기가 쏙 빠져있는 사람이라는 방증이 됐다. 퇴임을 코앞에 두고 만난 김 지사에게 이른바 '청문회 발언'에 대해 묻자 "의도는 그런게 아니었는데 조간신문을 보니 '건방진' 김문수가 돼 있더라"며 웃었다. 이날은 마침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이 결정된 날이기도 했다.최장수 경기도지사로, 대권 후보군으로, 때로는 이슈메이커로 시선이 뜸할 날 없던 그였던 만큼 8년 도정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도지사 이후의 행보를 궁금해하는 눈길도 늘었다. 누군가는 7·30 재보궐선거를 통해 국회 재입성을 노린다고 했고, 누군가는 잠시 숨을 고른후 당권에 도전한다고 했다. "백수예요. 그냥 부천시민." 김 지사의 답변은 짧았다. "손학규 전 지사는 재보선에 나선다는 얘기가 많고, 이인제 전 지사는 당 대표직에 도전한다. 퇴임하면 역대 도지사중 저만 백수인데 큰일"이라고 말했다. "자리를 정해놓고 뛴 적은 없다. 고민은 해봐야겠지만 어쨌든 집으로 가야하지 않나. 이게 바로 제 행보"라고 덧붙였다.#바람 잘 날 없던 8년, '세계속의 경기도'를 만들다지난해말 도 안팎의 최대 관심사는 김 지사의 3선 도전 여부였다. "경기도 600년 역사에서 가장 오래 일한 도지사다. 8년이면 충분하다"는 게 올해초 장고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김 지사의 말처럼 그는 무려 8년간 경기도를 이끈 최장수 도지사다. 도시와 농촌, 접경지역과 해안·산간지역이 어우러진 '작은 대한민국' 경기도를 두루 발전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민 4명중 1명꼴의 민생을 책임져야 하는 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그만큼 김 지사의 8년 도정 곳곳은 가시밭길이었다. 진보교육감 체제의 경기도교육청과 무상급식·학교용지분담금 문제 등으로 삐걱거렸고, 텅빈 도 곳간 사정으로 여소야대 경기도의회의 거센 공격을 받았다. 잊을 만하면 누리꾼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일들도 왕왕 벌어졌다. 소방서 관등성명 요구 논란으로 TV 개그 프로그램의 패러디 대상이 됐는가 하면 최근에는 세월호 사고 관련 SNS글이 도마에 올랐다.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이었다.그러는 동안 경기도는 '세계속의 경기도'로 거듭났다. 김 지사가 2006년 도에 입성할 때부터 관심을 기울여온 남한산성은 8년만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며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공장을 떠나게 만드는 고질적인 수도권 규제를 풀기 위해 앞장서며 '손톱밑 가시 뽑기'의 대표주자가 됐다. 판교테크노밸리·광교신도시는 도를 지탱하는 또다른 기둥이 됐고, 북부권은 김 지사의 구상을 발판삼아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평화통일의 상징지역이 됐다. 보트쇼·항공전 등으로 경기도를 부지런히 알리고, G마크 농축산물·GG콜택시·G버스 등 각 분야에서 더 편하고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택시기사 도지사로 이목을 끌더니 24시간 도움이 필요한 누구에게나 손을 내밀겠다는 '무한돌봄사업'으로 복지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건국 이래 최대 투자 규모라는 삼성 평택 고덕 산단 유치를 비롯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 굵직한 사업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6월 30일 그의 감회가 남다른 이유일 터다. "해야할 일이 참 많았다. 믿고 도와준 도민들과 공직자들께 감사할 따름"이라고 소회를 밝힌 김 지사에게 아쉬운 점을 묻자 주저없이 "지방자치를 2할 자치상태로 두고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년을 맞은 지방자치에 권한도, 돈도 없다. 새로운 여야 단체장들이 이 점만은 하나로 뭉쳐 개선해 줬으면 한다"는 바람도 숨기지 않았다.시종일관 뜨거웠던 8년을 매듭짓는 것 치고는 의아하리 만큼 조용하다. 마지막 주말, 아침부터 택시 운전대를 잡고 묵묵히 수원시내를 다녔던 그는 30일에는 급식 배식 봉사로 퇴임식을 갈음한다. 8년간 힘을 실어준 도민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 대접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는 마음에서다. '저는 그냥 부천시민'이라는 그의 답변과도 맞물린 담백한 마무리다.#재보선 전망 '쉽지않네'…남경필 당선자 경기도정 잘 이끌 것그의 '귀거래사'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관심은 김 지사가 언제 서울 동작구로 향하는지에 쏠려있다. 7월 재보선이 120일 앞으로 다가온 지난 3월 "임기를 채우겠다"는 그의 다짐에 경기지역 출마를 점쳤던 이들의 예상도 보기좋게 빗나갔다. 선거법상 120일전 단체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해당 지역에서의 출마가 불가능해, 경기지역외 유일한 수도권 재보선 대상지인 서울 동작을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다. "부천이 아니라 동작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 지사는 외려 "재보선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반문했다. 수원에서만 3곳에서 재보선이 치러지는 만큼 8년 수원 팔달구민으로서 관심이 간단다. 이날 그는 '평범한 도민' 김문수를 강조했을뿐 재보선 행보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었다. "전망조차 쉽지 않은 선거다. 그래도 제가 도지사로 있던 곳인데 모든 후보가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지 않겠나"라고 한달 앞으로 다가온 재보선을 평한게 전부였다.남경필 당선자에 대해서는 "후계구도를 잘 만든게 요새 제 최대 자랑거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출어람이다. 상생의 정치를 위해 연정을 제안하지 않았나. 기대가 크다.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인일보에 대해 "도지사를 배출한 언론사 아닌가. 어디서든 애독할 테니 경기도 대표 언론으로서 지방자치가 우뚝 설 수 있게 힘을 실어달라"고 당부하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29일 퇴임 하루 전 김 지사는 '서울 동작을 공천 유력'이라는 언론기사에 아침부터 또한번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그가 택시기사 도지사로서 마지막 운전대를 잡은후 동료기사와 뜨거운 국물로 허기를 달래고 있던 때였다.글 = 강기정기자사진 = 김종택기자▲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8년 도정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해야할 일이 참 많았고 믿고 도와준 도민들과 공직자들께 감사할 따름"이라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그는 30일에는 의정부에서 급식 배식 봉사로 퇴임식을 갈음한다. /김종택기자

2014-06-29 강기정

[인터뷰… 그]美뉴저지 정치1번지 저지시티 최초 '한국인 시의원' 윤여태

지역민 90% 백인·한인은 6명9년간 부시장 불구 선거 난항편지 6만장 직접 서명해 발송80세 노인·환자도 투표소로한국 선거운동 '고작 13일'민심 제대로 듣기에는 짧아적어도 1년간은 '민생탐방'시민이 원하는 일 준비해야2013년 6월 11일. 미주 한인 정치사에 한 획이 그어졌다. 미국 뉴저지주의 정치 1번지라고 불리는 저지시티에서 최초의 한국인 시의원이 탄생한 것. 아일랜드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저지시티내에 그가 출마한 하이츠 선거구에 거주하는 한국인 유권자는 당시 고작 6명, 이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인 윤여태(60·마이클 윤) 의원이 지난 26일 한국을 방문했다. 5년만의 고국 나들이다.두 달 전 미국 출장길에 오른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인연이 닿아 방한했다는 윤 의원은 "사람도 많고 혼잡해도, 한국에 오면 몸과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다"며 한국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사랑을 내비쳤다. 1979년 유신정권 말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에 무작정 낯선 땅 미국으로 향한 지 35년. 동도 트지 않은 시간에 일어나 온종일 잡화점과 제과점에서 물건을 나르고, 해가 지면 졸린 눈을 비비며 수업을 듣는 고된 나날이었다. 집값이 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발을 붙였던 저지시티는 10명 중 9명이 아일랜드계 혹은 이탈리아계 백인이었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도 심해, 돈이 있어도 집을 구하지 못하는 일마저 왕왕 있었다.고생 끝에 신문과 잡지 등을 파는 작은 가게를 열고 매일 아침마다 거리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거리를 쓸고 부서진 공원 의자를 고쳤다. '한국인은 원래 이웃을 생각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그러는 사이 주민들 사이에서 '따뜻한 미스터 윤'으로 입소문을 탔다. 오지랖 넓은 동네 책방 아저씨가 차기 시장 1순위로 거론되던 상대 후보를 가볍게 제친 원동력이었다."그냥 옆집 사는 유색인종, 한국인에 그친다면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윤 의원은 "미국 사회가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길 기다리기보다, 진짜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내자. 여기서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진정한 마음은 어디서나 통한다'따뜻한 미스터 윤'이 뉴저지주 정치 1번지에 입성한 데에는 인종차별과의 싸움이 주춧돌이 됐다. 1987년 9월 한낮에 인도계 의사가 인종차별주의자의 폭행으로 숨졌는데도 지역 경찰이 "이민자가 겪어야 할 과정"이라며 사건을 축소하려 했던 것. 윤 의원과 아버지가 먼저 나서 서명을 받고 시위를 벌여 결국 재조사를 이끌어냈다. '우리 일이 안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움직인 것이지만, 이 일은 6년 뒤 그를 저지시티 부시장으로 만드는 시작점이 됐다.1993년부터 9년간 부시장을 역임했지만 시의원 도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2001년 작고한 아버지의 말씀대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고 생각했다. 선거운동 기간에 주민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일일이 손으로 사인을 했다. 그렇게 서명한 편지 수만 6만여장. 공식일정 외에는 편지에 서명하는 데 온 시간을 보냈다. "보통 '나를 뽑아 달라'는 편지가 오면 사람들이 그냥 한번 쓱 읽고 버리는데, 친필서명이 있으니 쉽게 버리지 못하더라"고 회상한 윤 의원은 "아일랜드계나 이탈리아계 백인이 90%가 넘는 동네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온 한국인을 찍게 하려면 그만큼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진정한 마음은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도 통했다. '정치인들은 거기서 거기'라며 일평생 투표를 안 하던 80세 노인부터, 이제 막 병원에서 퇴원한 이들까지 '따뜻한 미스터 윤'을 위해 투표장으로 향했다. "지금 너무 아파 응급실에 있는데 부재자투표를 좀 하게 해 달라"는 유권자마저 있을 정도였다. 선거에서 이겨서가 아니라, 윤 의원의 진정성이 통했다는 생각에 아내가 먼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시의회 입성 1년, 주민을 위해 달렸다… 한국 선거는 민심 듣기에 역부족주민들의 마음이 모여 당선된 만큼 진심으로 저지시티를 위해 뛰고 싶었다. 우선 주민의 편에 서서 불합리한 세제를 개편했다. 저지시티는 부동산세 등 재산세 감면을 통해 투자 유치를 많이 이뤘던 게 발전의 동력이 됐지만, 대신 주민들이 추가로 세금을 내 감면에 대한 부담을 메웠다. 이에 30년이었던 부동산세 감면기간을 최대 5년으로 줄였다. 주민들의 부담도 큰 폭으로 줄었다.최초의 한인 시의원답게,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의 저변을 넓히는 데도 열심이었다. 젊은 한국인 여성 모니카 조(33)가 저지시티에서 검사로 활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가 하면, 뉴저지주에 한국전 참전비가 들어설 때도 주된 역할을 했다. 다른 참전비와 달리 한국의 현재 모습을 함께 담아 미국은 물론, 이곳을 방문하는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한국을 홍보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현재 윤 의원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다음달 3일 예정된 시의원 선거. 뉴저지의 관문으로 통하는 포트리에서 한국인 변호사 폴윤(40)이 시의원 후보로 나선 것이다. "자꾸 참여하고 정치적으로 세력화해야 미국 사회에서 한인들의 존재감이 커질 수 있다"는 윤 의원은 "성공사례가 많아질수록 우리 2세, 3세들도 미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스윙 보트 역할을 하는 등 더 넓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마침 한국에서도 미국 시의원 선거 다음날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다는 말에 윤 의원은 "한국 선거는 운동기간이 너무 짧은데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후보자들이 민심의 소리를 제대로 듣기에 13일이라는 선거운동 기간은 터무니없이 짧다는 얘기다. 1년 정도 지역 곳곳을 다니며 유권자들의 손을 맞잡았다는 윤 의원은 "적어도 1년 정도는 지역 유권자들과 직접 만나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에게 어떤 것을 해줄 수 있는지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거리 곳곳에 홍수를 이루고 있는 현수막들도 결국은 주민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주민에게 자신을 알릴 수 없기 때문에 비롯된 추한 코미디"라고 꼬집었다. 한국 유권자들은 후보자를 겨우 보름가량 보고 4년을 맡겨야 하는 '불쌍한 유권자'라는 얘기다.# 한국인 중심되는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 천천히 이룰 것이날 인터뷰에는 윤 의원과 40년이 넘은 '절친'인 이석찬 한민족한마음세계연합회장이 동석했다. 윤 의원은 이 회장에 대해 "아버지께서 인생을 함께 할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후회없는 삶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회장이 바로 제겐 그런 친구"라고 강조했다.이 회장은 "지금 저지시티에서 10명을 붙잡고 물어보면 전부 '마이클(윤 의원의 미국명)이 다음 시장'이라고 말한다"며 "윤 의원이 저지시티에 국한된 정치인으로 남는 게 아니라 세계 수도 뉴욕의 뉴저지를 대표하는 이민 1세대로서, 미주 한인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정치인으로서 계속 역할을 하려면 더 많은 한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나름의 활동을 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다음 저지시티 시장 출마는 이미 윤 의원의 의사와 상관없는 일이 돼버렸고, 한민족한마음연합회 활동과 재외 한인 체육회 활동 등에 경인일보도 적잖이 관여한 만큼 윤 의원 당선에 경인일보도 적극 기여해야 한다"는 농담도 건넸다.윤 의원은 "다음달 3일 시의원 선거가 우선 그 관문이 될 것"이라며 "뉴저지에서 시의원에 이어 최초의 한인 시장이 나오면 그 다음 선거에서는 분명히 한국인들이 연방하원에도 진출할 수 있게 된다"고 자신감을 표했다.그러나 결코 서두르지 않겠다는 게 윤 의원의 생각이다. 천천히, 한 발자국씩 더 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한국인들이 들어간다면 어느새 미국사회에서 한민족의 저변이 넓어질 것이라는 강한 믿음 때문이다.이 믿음의 출발점은 한 중국 인권운동가의 인터뷰였다. 윤 의원은 "미국에 왔을 때 뉴욕타임스에서 한 중국 인권운동가를 인터뷰한 것을 봤다.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을 때였는데, 왜 한국은 하는데 중국은 (민주화 운동을)못하냐는 질문에 그 인권운동가가 '중국의 긴 역사에 비해 지금은 굉장히 짧은 시간이다. 천천히 희생 없이 민주주의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답하더라"고 설명하며 "너무 빨리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하기보다, 지금 우리의 행동이 장래에 미치는 영향을 참고 기다리며 보는, 그런 지혜가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밝혔다.윤 의원은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먼저 할 수 있는 것을 하다 보면 무언가 의미있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조금씩, 서두르지 않고 저지시티 주민들과 한국인들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끊임없이 뛸 것"이라고 말했다.■ 윤여태는▲ 1954년생. 1979년 미국으로 이민▲ 서울 성남고, 미국 브루클린대 경영학과▲ 1993~2002 미국 뉴저지주 저지시티 부시장▲ 2013~ 저지시티 시의원글 =강기정기자 사진 =임열수기자▲ 미국 뉴저지주의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저지시티에서 최초의 한국인으로 시의원에 당선된 윤여태 의원이 "미국사회에서 한인들이 정치적으로 세력화 해 한국인의 존재감을 넓히는데 저지시티 주민들과 함께 앞장 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2014-05-28 강기정

[인터뷰… 그]학자에서 CEO로 변신한 최계운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오랜 시간 연구해온 토목학 실무에 접목 '과학적 관리' 실현하고파취임후 내능력 60% 발휘… 공급 소외지역 줄이는 '물 복지' 확대4대강 등 국책사업으로 큰 짐… 부채 감축 등 경영정상화도 큰 목표경인아라뱃길 상생협의회 올초 구성 함께 발전 방향 고민해갔으면물관리 전문가에서 전문 경영인이 된 최계운 한국수자원공사(이하 K-Water) 사장. 지난달 25일 과천시에 있는 K-Water 수도권광역통합운영센터에서 만난 그는 몇달새 살이 빠진 것 같다는 농담에 오히려 "일을 많이 했다는 칭찬 같아서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지난 4개월동안 대전, 과천, 인천을 오가면서 진짜 바쁘게 산 것 같다"고 말했다.최계운 사장은 한 번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불도저처럼 추진력있게 끌고가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11월 취임 이후 아직 자신의 60%밖에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보여주고 싶은게 더 많지만, 당장 눈 앞의 성과를 내기보다는 안정적인 물관리를 위한 기반을 닦아놓는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K-Water의 경영정상화와 '건강하고 스마트한 물'을 만드는게 목표라는 최 사장. 앞으로 남은 40%를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된다.-학자에서 CEO로 변신했다. 올해 K-Water운영기조와 부채문제 해결방안은."토목학도로서 오랜시간 연구해 온 학문을 실무에 접목해 '과학적 물관리'를 실현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이제는 K-Water CEO로서 물관리 선도기관으로 역할을 다하고 세계적인 물 전문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올해 초 발표한 '스마트 신경영'에 따라 깨끗한 물에서 더 나아가 '인체에 건강한 물공급'으로 물 관리 패러다임을 혁신해 나가는게 목표다.K-Water는 다른 공기업과 달리 비교적 건실하게 자라왔다. 하지만, 아주 짧은 시간에 4대강 살리기사업 등 국책사업을 하면서 너무 큰 짐을 지게 됐다. 지난해 말 부채는 14조원, 부채비율은 120.6%였다. 일단 사업 구조조정, 자산매각, 원가절감 등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2017년까지 2조원의 부채를 감축할 계획이다.우리 스스로도 노력하고 있지만, 4대강 투자비에 대해선 정부와 협의해 올해 내로 회수방안을 구체화하고, 근원적인 해결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조정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경인지역에선 경인아라뱃길이 최대 관심사다. 아라뱃길을 둘러싸고 지자체와 갈등이 많은데 해결방안은."경인아라뱃길에 대해선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K-Water와 인천시, 주변에 있는 도시와 상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계획단계부터 이러한 고민들이 부족했던 것 같다. K-Water는 아라뱃길을 만드는 쪽이었는데, 주변도시와 어떻게 잘 연결하느냐에 따라 활용가치가 배가될 수도 있었다.올초 인천시, 서구, 계양구, 우리 K-Water를 비롯해 물 전문가, 시민·환경단체, 갈등관리 전문가를 주축으로 하는 상생발전협의회를 구성했다. 이제부터는 '아라뱃길이 누구 것이다'하지 말고 함께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해나갔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인천 발전의 축이 경인아라뱃길이 됐으면 좋겠다.아직 미진한 문제는 있다. K-Water가 만든 시설 중 도로와 관련된 지자체 이관문제, 도로이용 불편문제 등 일정부분 해결된 것도 있지만, 주민들과 잘 협의해 나가도록 하겠다.시민들이 경인아라뱃길 수질에 대한 걱정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경인아라뱃길 수질도 나아지는 방법을 지역사회와 함께 고민하겠다. 지금 경인아라뱃길 수질개선방안이 100인 100색이다. 그래서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고, 이를 두고 수질이 좋다, 나쁘다 논란이 많다. 이제부터는 어떤 지역에서 어떤 물을 검사할 것인지 서로 합의를 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객관적인 자료가 나오면 시민에게도 알리고 개선방안을 도출할 것이다. 또 아라뱃길 쪽으로 흘러들어오는 한강의 오염물질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지자체와 협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경인아라뱃길 활성화를 위한 방안은."일단 경인아라뱃길 물류기능과 관광기능을 활성화시키는게 중요하다. 경인아라뱃길 경인항과 기존 인천항의 역할을 어떻게 분담할지 고민하는게 필요하다. 특히 아라뱃길 인천터미널은 정서진이라는 관광지가 있기 때문에 주변과 함께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 연구해야한다. 주변의 수도권매립지도 상당한 발전계획이 있기 때문에 경인항과 연계한 수익창출 모델을 구상한다면 관광의 메카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특히 올해는 마포대교 중간 400~500m 구간이 준설되기 때문에 아라뱃길에서 여의도까지 뱃길이 이어진다. 여의도에서 한강을 거쳐 서해바다 섬지역으로 배가 오갈 수 있게 되면 관광과 물류 모두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한다.경인아라뱃길 주변지역에 대한 규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다. 5~6월쯤 주변 개발방안에 대한 기본용역을 하겠지만, 그린벨트를 풀고, 하천구역으로 지정된 아라뱃길 수변을 항만구역으로 지정한다면 좀 더 개발이 수월해질 것이다. 이 부분은 해수부와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앞서 강조했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주민과의 소통이다. 인천시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서 의견을 충분히 듣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겠다."-K-Water가 이끌어 갈 미래산업은."K-Water 미래산업은 크게 3가지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 첫번째는 '통합 물관리'라는 것인데, 상류부터 하류까지 한꺼번에 K-Water가 관리하는 것이다. 국가가 한국수자원공사법을 통해 원수에서부터 하류까지 K-Water에서 관리하도록 맡겼다. 이때문에 통합물관리 주체로서 역할을 잘 하는 것, 이를 위해 충분한 소프트웨어와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두번째로는 국민에게 건강한 물을 공급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깨끗한 물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지만, 지금은 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사가 크다. 그렇다보니 물 속에 있는 나쁜 물질을 없애는 것은 기본이고, 더 나아가 미네랄 등 건강요소를 물에 어떻게 포함시키느냐가 더 중요하게 됐다.세번째는 ICT를 활용해 원수에서 수도꼭지까지 수량과 수질을 과학적으로 관리하고, 그 결과를 국민이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워터그리드'라는 선진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여기에 '물복지'라는 부분을 추가하고 싶다. 우리나라 국민의 98%가 물을 공급받고 있지만, 여전히 100만명에 달하는 섬지역, 산악지역에 사는 국민들은 물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K-water는 이같은 소외지역을 없애는 '물복지'를 확대할 것이다."-마지막으로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블루골드'시대라고 해서 물 문제가 석유문제보다 심각하다고 한다. 물관리를 잘 하는 것은 나라발전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 안에 선진국 반열에 오른 이유 중 하나가 먹는 물, 산업용 물에 대한 관리를 비교적 문제없이 해왔기 때문이다. 그 노력을 해왔던 것은 우리 K-Water가 주역이었다. 지금까지는 하드웨어 발전 위주였다면 물을 미래지향적으로 관리하는데 앞장설 계획이다. 국민들도 우리 사업에 따뜻한 격려와 칭찬을 부탁드린다. 부족할때는 따끔하게 질책도 해줬으면 한다. K-Water는 우리 국토의 물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마음가짐으로 홍수·가뭄 등 각종 물재해로부터 국민의 삶을 보호하고 국민들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깨끗하고 건강한 물을 공급하겠다."■K-Water 최계운 사장은1954년 경기도 화성 출생콜로라도주립대학교대학원 박사 학위(전) 인천지역환경기술개발센터 센터장(전) 인천광역시 하천살리기추진단 단장(전) 세계도시물포럼 사무총장(전) 인천대학교 도시과학대학 학장(전) 중앙하천관리위원회 위원(전) 국토해양부 스마트워터그리드연구단 단장/대담= 장철순 인천본사 편집국장 /정리=김민재기자 /사진 =조재현기자▲ 최계운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은 "지금까지는 하드웨어 발전 위주였다면 물을 앞으로는 미래지향적으로 관리하는데 앞장설 계획이다. 우리 국토의 물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마음가짐으로 홍수·가뭄 등 각종 물재해로부터 국민의 삶을 보호하고 국민들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깨끗하고 건강한 물을 공급하겠다"라고 밝히고 있다.

2014-04-01 김민재

[인터뷰… 그]경기도 무형문화재 한도(韓陶) 서광수 도자 명장

도암 지순택선생 전통제작기법 전수 받아20대 정권 실세 도평요 요장 맡아 유명세1986년 이천에 한도요 설립… 日개인전도자존심 건 싸움 기대이하 작품 깨부수기국내수요 적은탓 젊은층 관심 부족 씁쓸1990년대 끊긴 중요무형문화재 지정바라- 경기도 무형문화재 한도(韓陶) 서광수 도자 명장이천시 신둔면, 명장의 가마는 남정리 호젓한 숲속에 저 홀로 있었다. 3번 국도에서 가까운 때문인지 전원주택들이 단단히 호위를 하는 통에 길을 잘못들었나 의심이 들 무렵 서광수 명장의 한도요(韓陶窯)가 화사한 표정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도공 서광수가 남정리에 가마를 짓고 불을 넣기 시작한 때가 1986년이니,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한도요는 제뜻과 상관없이 점점 속세와 가까워진 모양이다. 하나 그 세월에도 전통 예술도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여전히 미미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인가. 3월 초에 찾아간 전통도예의 요람 한도요의 자태는 고고한 듯 외로워 보였다.경기도무형문화재 제41호이자 대한민국명장(도자기공예) 14호 한도 서광수는 전통방식으로 도자예술을 이어가고 있는 국내 몇 안남은 명실상부한 도공이다. 1948년 이천에서 태어나 신둔초등학교를 졸업한 1961년, 열네살 부터 흙 다지고 물레 돌리며 가마에 불 넣으며 살아 온 세월이 반세기를 훌쩍 넘겼다."너나 없이 어려웠던 시절 아닙니까. 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생업을 찾아야 했고 그렇게 도공이 됐지요."5형제 중 둘째였던 한도를 따라 남은 형제들도 줄줄이 도공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엔 그릇공장에서 기술을 배우던 한도는 1965년 도암 지순택(1912~1993)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도자기술자로 끝날 뻔했던 자신의 운명을 도자예술가로 전복시키는 행운을 얻는다. 백자의 대가로 경기도 지정문화재 4호였던 도암으로부터 제자 한도는 도자기의 전통적인 제작기법을 전수받으면서 도자 예술세계에 젖어들었다. "11년이에요. 도암 선생으로부터 수비질에서 태토, 성형, 조각, 유약, 소성을 전부 배웠어요. 도암 선생은 다른 선생들과는 달리 청자, 백자, 분청을 비롯해 전분야에서 탁월했던 분이었지. 그게 도자기마다 흙과 유약은 물론이고 불까지 다 다르거든. 그 분 밑에서 도자기에 눈을 뜰 수 있었지. 도암 선생은 도자기를 보는 눈이 남 달랐어요. 골동품을 가져다 놓고 그대로 재현하느라 애쓰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한도 서광수의 자질은 뛰어났던 모양이다. 24살 되던 해인 1971년 지순택요(窯)의 성형실장을 거쳐 3년 뒤에는 불을 주관하는 소성을 담당하기에 이른다. 도암이 가르칠 건 다 가르쳤다 인정한 셈이다. 그러다 1976년 3공화국의 실세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직접 운영했던 도평요로 자리를 옮겨 요장(窯長)을 맡아 10년을 보낸다. "당시 잘 나가던 기업의 월급쟁이들이 월 7만~8만원을 받을 때 나는 20만원 넘게 받았어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권 실세에게 파격적인 대우로 스카우트될 만큼 30이 되기도 전에 그는 도암 지순택, 해강 유근형 등 이천도자 1세대의 맥을 이을 후기지수로 손꼽힌 것이다. 그러다 서광수는 1986년 지금 자리에 한도요를 세우고 독립한다.-처음 요를 세우셨을 때 독립했다는 감회가 상당했겠습니다."물론이에요. 전통 도자제작 수련을 받을 만큼 받았다 생각했고 내 이름으로 된 작품을 할 자신이 있었으니 독립한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어려웠어요. 전통을 계승한다는 자부심만으로는 요를 운영하기 힘들더라 이거죠. 그 시절 이미 전통가마는 사라지고 가스가마가 번지기 시작했어요. 또 예술 도자기보다는 생활자기가 각광을 받았고…. 한마디로 가마에 구워 몇 점 건져낸 내 작품을 팔 데가 없었던거지."한도요는 설립 이래 지금까지 1년에 평균 4번 정도 가마에 불을 댕긴다.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서광수 명장이 흙을 고르고 반죽을 만들어 물레 성형을 마친뒤 조각하거나 그림을 입힌 뒤 유약을 발라 초벌과 재벌의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 3개월 가량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6칸 가마에 쟁이는 작품이 150여점. 그나마 그의 자존심에 미달하는 작품을 깨부수고 나면 50점 건지기가 빠듯하다. 이러니 성형틀로 찍어내 가스가마로 대량 생산되는 생활자기와는 처음부터 경쟁이 어려웠던 건 당연했다.-어떻게 그 고비를 넘기셨나요."얄궂죠. 일본 사람들이 제 작품을 주목했어요. 전통 예술 도자기의 가치를 알아 본 일본 도자 애호가들이 내 작품에 반했던 모양인지 한점 두점 사가더라구요. 그래서 안타까운 건 나뿐 아니라 우리나라 유명 도예가들의 좋은 작품 대부분이 일본에 있다는거지. 하지만 난 그 덕분에 버틸 수 있었으니 다행인지 아닌지 착잡하지요."실제로 한도 서광수는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더 유명하다. 1998년 이후 도쿄, 후쿠오카 등 일본에서만 수십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일본의 '한도 마니아' 70여명은 아예 후원회를 결성해 그의 일본 활동을 적극 지원한다.-선생님은 특히 달항아리가 유명하십니다."무지백자(달항아리)는 도공에게 가장 큰 도전이에요. 사람 눈을 유혹하는 문양이나 조각이 일절 없이 오직 불이 빚어낸 색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니까요."그의 달항아리는 유백색을 띠지만 작품마다 전혀 다른 감흥을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불에 따라 유백색 달항아리는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다. 유약 말고는 인간의 간섭을 일절 배제한 달항아리는 보는 이에게 각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단순한 유백색 형태에 담긴 일체유심조의 미학인 셈이다. 달항아리의 유백색은 그가 따로 개발한 유약으로만 가능해 그 누구도 흉내가 불가능하다.인터뷰를 진행한 한도요 전시장은 그가 팔기를 주저해 남겨놓은 작품 수백점으로 가득하다. 백자, 청자, 분청이 그가 입혀준 색과 조각과 그림으로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화려하게 피어있다. "장래에 박물관을 마련할 요량으로 모았다"면서도 "글쎄 그 만한 돈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을 흐린다. 달항아리 한점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그의 명성을 들은 터라 뜻밖의 탄식에 당황했다.-실제로 예술도자에 대한 국내 수요는 어떤가요."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전통을 고집하며 가마를 운영하기에는 버거운게 사실이에요. 사실 제 작품을 개인이 구입하기에는 힘에 부친게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전통도자 보급이랍시고 헐 값에 팔 수도 없고, 또 그랬다가는 한도요 당장 망할겁니다. 그래서 돈 많은 기업들이 전통도자예술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시장을 형성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그나마 한 15년 전부터 차문화가 확산되면서 다완이 많이 나가면서 점점 관상용 자기 판매도 늘고 있지만 전통적인 제작방식을 유지하는 비용을 감당하기는 여전히 힘들어요.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전통 도예를 감당하려 들지 않지요."한도요가 가마에 한번 불을 지피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화목으로 화력이 센 강원도 소나무만 쓰는데 나무값만 1천만원이 든다. 하동 백토, 서산 물토, 양구 백토와 전국에서 장석, 대리석, 석회석을 모아 태토를 만들고 유약을 만드는데는 정성은 물론 비용이 들어가니 한번 작업에 수천만원이 소요된다. 그러고도 달항아리 한 점 구하면 다행이니 처음부터 수지타산이 설리 없다. 그나마 서광수 명장은 국내 후원회의 도움을 받아 큰 짐을 던다. 박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회장으로 있는 서광수 후원회는 한도의 물질적, 정신적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한도 서광수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41호이자, 노동부가 인증한 대한민국 명장이다. 즉 예술과 기술의 경계 양쪽의 인증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도는 자신을 한번도 기술자로 생각한 적이 없다. 그는 도공을 "불로써 흙에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가"로 자부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하나의 희망이 있다."2009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신청했어요. 전통도예의 맥이 끊어질 위기에 있는 만큼 정부가 전통도예의 명맥을 이어주기 바람이 큽니다." 문경 김정옥 사기장이 90년대 중반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도예계에서는 소위 인간문화재 지정이 전무했다. 한도는 "한국 전통문화의 백미인 도자예술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절실하다"며 "번번이 미뤄져 온 심사가 올해는 꼭 이루어지기 바란다"고 말했다.한도가 취재진을 가마터로 이끈다. 일체의 기계장치를 볼 수 없는 한도요에서 6칸 가마는 그 위세가 압도적이다. "지난 1월 불을 넣고 나서 한칸을 허물지 않고 그냥 뒀지. 한번 허물어 볼까…." 가마 한칸 옆구리를 헐어내자 그 안에 20여점의 백자들이 처녀처럼 수줍게 앉아있다. 하지만 다 들어낸 작품에서 타작들을 골라낸 한도 서광수. 언제 들었는지 모를 망치로 냅다 옆구리를 내려친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그의 자존심이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한도 서광수는■ 출생-1948년, 이천 ■ 작품활동-제1회 한국전승도예협회 회원전(1981), 세계 미술협회 회원전(1992), 한국전통 공예가협회전(1996), 한국도예 5인전/일본 초청전(1997), 한·미 문화제전 주최 미주순회전(1998), 프랑스 한국문화원 초청전/캐나다 한국도자전(2002), 중국 경덕진 천년제 초청전(2004), 도공 50년 기념전(2011) ■ 상훈-경기도지사 표창,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대한민국 명장 14호, 경기도무형문화재 41호/대담·글 =윤인수 문화부장 /사진 =김종택 사진부장▲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1호이자 대한민국명장(도자기공예) 14호 한도 서광수. 그는 "도공은 불로써 흙에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가"라며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전통도예의 맥이 끊어질 위기에 있는 만큼 "정부가 전통도예의 명맥을 이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14-03-25 윤인수

[인터뷰… 그]한만청 (사)국민경제과학만화운동본부 이사장

지난 13일 동대문과 혜화로타리를 지나 '국민경제과학만화운동본부'가 있는 성북동 비탈로 접어드니 옛 서울 분위기가 완연하다. 한만청 이사장이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성북동 옛 정취와 닮은 미소로 맞아준다. 한 이사장은 의학계의 원로이다. 영상의학 분야에 남긴 그의 족적은 걸출하다. 서울대학교병원장을 지냈고 세계방사선의학회 종신명예회원이다. 그가 걸어 온 의업(醫業)의 자취만으로도 인터뷰 주제는 무궁무진하다.그런데 만화라니. 한 이사장은 2001년부터 '국민경제과학만화운동본부'를 이끌어 왔다. 1934년 생이니 치열하게 정진해온 의료 현업에서 물러난 뒤에 묵묵하게 정진해 온 운동이다. "이공계를 살려야 한다는 분들의 뜻을 모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과학진흥운동을 벌여보자는 의도였지." 공부 좀 하는 청소년들이 법과 경영에 몰려 과학이 소홀히 여겨지는 양상이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청소년들이 대상이니 자연스럽게 선택한 매체가 만화. 이후 운동본부는 '국민은 신바람 이공계 짱' 등 과학만화 20여 권을 발간해 전국 초·중·고에 무료 배포해왔다.운동본부는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만화 주제를 과학에서 역사로 전환한다. 대한민국 청소년 역사교육이 비판의 도마에 오른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정말 이래서야 되겠냐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청소년들의 역사관 국가관 결핍은 미래의 재앙이니까요." 한 이사장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시비와 역사왜곡이 심각해지는 상황을 반영해 올해 발간 역사만화 제목을 '3·1절 대한독립만세'로 결정했다"고 밝혔다.-특별히 3·1절을 발간 주제로 삼은 이유가 있을텐데요."올해로 3·1독립운동 95주년이 됐어요. 그런데 청소년들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3·1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잘 모르고 있다니 큰 일이다 싶었지. 일본은 아베 총리가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역사적 반성은커녕 대대적 역사왜곡을 자행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200만명이 참가한 3·1독립운동이 왜 일어났으며, 평화적인 시위를 총칼로 진압한 일제의 잔학상을 역사적 사실로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자는데 발간위원들의 뜻이 일치했습니다."운동본부는 해마다 발간위원회를 구성해 만화의 주제를 결정한다. '3·1절 대한독립만세' 발간위원회에는 김종필, 이홍구, 이한동,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김종인 전 청와대경제수석이 명예위원장으로 참여했다. 역대 총리들이 보수와 진보 구분 없이 동참한데서 일본 역사왜곡에 대한 원로들의 우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3·1독립운동은 대한민국 역사의 시원입니다.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민족정신의 기초인데요."맞아요. 우리나라는 1910년의 한일합병조약으로 1945년까지 일제강점시대를 겪지요. 특히 1910년부터 약 10년동안 이뤄진 일본의 통치를 '무단통치'라고 부릅니다. 데라우치가 조선 사람은 복종 아니면 죽음, 둘 중 하나라고 공언할 정도였지요. 식민통치의 초반에 일제는 한민족의 자유를 잔인하게 압살하고 경제수탈을 악랄하게 자행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 국민의 저항의지는 높아졌지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를 피해 간도와 연해주 등으로 탈출해 독립운동을 계획합니다. 이러한 의지가 모여 1919년 3월 1일, 일본에 항거하는 거족적인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난거지요."조국의 암담한 어둠에 갇혀있던 그 시절. 한 이사장의 부친 월봉 한기악 선생도 만주로 망명을 감행한다. 1898년 구한말에 태어난 월봉은 3·1운동 이후 이동녕, 이시영, 조소앙 등과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한 뒤 임시의정원 의원과 법무부 위원에 선임된 독립운동가. 귀국해서는 동아일보, 시대일보,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민족계몽운동과 항일투쟁의 필봉을 휘둘렀다. 신간회 발기인 중 1인인 월봉은 끝내 조국 독립을 못보고 1941년 독립투사의 삶을 마감했다. 한 이사장이 8살 때의 일이다. 한 이사장이 역사를 소홀히 할 수 없는데는 이런 가문의 배경이 버티고 있다. -3·1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한번 새겨주시지요."3·1독립운동은 수많은 희생자들을 남겼지만 독립에 이르지는 못했어요. 하나 독립을 향한 자주정신, 민족정신을 보여주고 민주주의를 향한 시발점이라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전세계에 일제의 잔인함을 고발하고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보여준 것 또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후 거의 모든 독립운동 세력은 3·1독립운동을 자신들의 모태로 여겼고, 독립운동의 역사적 당위와 논거로 3·1독립운동을 앞세웠으니 역사적 이정표라 규정하는게 당연하지요. 대한민국의 출발점으로 말이에요."-청소년들의 역사인식 결핍은 결국 어른들의 잘못 아닙니까."맞아요. 역사교육이 허술해지면서 청소년들이 주변국과 우리가 맺고 있는 현실적 관계에 무지한 상황이 일반화되고 있으니 걱정이지요. 6·25전쟁이 언제 일어난 일인지 모르는 청소년들이 절반이 넘는다네요. 몇 년째 논란이 되는 야스쿠니 신사가 무엇인지 묻는 설문에 대다수 국민들이 '모른다'라는 답변을 내놓습니다. 뭔지 알아야 대응할텐데 말이지요. 야스쿠니 신사의 '신사(神社)'를 젠틀맨이라고 답하는 사람들도 있다니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안타깝지요. 국민들의 역사의식이 낮은데다 일본의 끊임없는 역사 왜곡과 도발이 맞물리면서 역사교육의 필요성이 자연스러워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에요. 이런 기운을 빌려 역사교육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확실하게 만들어내야 해요. 역사 없는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하잖아요. 역사 교육을 통해 순결한 민족적 정체성을 갖춘 국민들을 양성하는 일이 대한민국 미래를 만드는 일이라는 걸 깨달을 때가 됐어요."-그래서 올해 만화제목이 '3·1절 대한독립만세'가 됐군요. 그런데 역사계몽운동이라면 만화가 좀 가볍지 않을까요."청소년들이 3·1독립운동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감수했습니다. 영상세대인 요즘 젊은이에게는 만화라는 매체의 전달력이 강력해요.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하는데 최적이에요. 많은 청소년들이 저희 만화책을 통해 우리 역사를 조금이라도 가슴 속에 남겨둘 수 있으면 대만족입니다. 그것이 기본이 되어 시간이 흐르면 더 큰 지식으로 발전할거라 믿습니다."-국민경제과학만화운동본부가 하는 일을 알려주시지요."크게 과학기술 관련 만화와 역사교육 만화를 발간해 무료 배포하는 일이 주된 사업이에요. 초·중·고 학생들에게 설문을 돌리면 장래 희망란에 '과학자'라고 쓴 학생들은 10%정도라고 해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과학이 재미없어지면서 장래 희망 목록에서 과학자가 사라지는 겁니다. 국가 장래에 도움이 안되는 풍토입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과학에 관심을 갖게하는 동기를 주자는 생각에 과학만화를 발간하기 시작한게 벌써 10년 훌쩍 넘었네요. 그러나 최근 들어 역사 분야를 주목해 '8·15 광복절', '6·25전쟁' 등 잊혀져 가는 역사를 만화로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비용이 많이 드는 일인데요…."그래 돈이 가장 문제야.(웃음) 아무리 좋은 교재라도 전달돼야 의미가 있으니 그렇지요. 순수한 민간운동인데다 최근에는 역사문제에 천착하다보니 아무 돈이나 받기 힘든 점이 있어요. 그러니 뜻 있는 단체나 독지가의 도움이 절실해요. 많은 분들이 도움을 약속했지만 그래도 부족한 건 사실이지."한 이사장과 인터뷰는 '행동하는 원로'를 목격하는 보람이 컸다. 원로의 조언과 충고에 조롱으로 화답(?)하는 세태에서, 동시대의 후배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묵묵히 수행하는 원로를 만나는 일이 어디 그리 흔한가. 한 이사장은 최근 재판을 찍은 자신의 저서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기자에게 건넸다. 1998년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도 거뜬히 회복한 투병기다. 한 이사장이 조크로 인터뷰를 끝냈다. "책을 주긴 주는데 읽을 일은 없는게 좋지. 하하하."국민경제과학만화운동본부는 해마다 만화 발간 계획을 세운뒤 발간위원회를 구성한다. 대부분 각 분야 원로들로 구성된다. 이들의 인적 네트워크가 발간의 주요 원동력이다. 그러나 한번에 20만권을 발간해 학교와 도서관에 무료배포하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면 동참을 권해본다. 운동본부 : (02)741-9200▼한만청 이사장은■ 출생 1934년■ 학력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의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의학박사) ■ 경력 (전)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 (전)미국 하버드대학교 연수 (전)방사선의학회 회장 (전)방사선방어학회 회장 (전)아·태심혈관및중재적방사선학회 회장(전)서울대학교병원 원장 (전)산학연협동연구소 이사장 세계방사선의학회 종신명예회원 북미방사선의학회 명예회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원로회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산학연장학재단 이사장■ 상훈 보사부장관표창 대한방사선의학회학술상 분쉬의학상 (대한의학회·한국베링거인겔하임) 함춘대상(서울의대 동창회) 학술연구 부문 /대담·글= 윤인수 문화부장 /사진 =김종택 사진부장▲ 올해 발간한 역사만화 '3·1절 대한독립만세'

2014-03-18 윤인수

[인터뷰… 그]임기 절반 넘어선 한국소비자원 정대표 원장

상류층보다 평범한 시민 권익 위한 조직검사로 활동했을 때와 추구하는 바 같아법과 현실 사이 균형 맞추며 활동해 갈 것상식선 벗어난 블랙컨슈머까지 품기는 힘들어전화상담사 폭언 등 피해 예방 위해 룰 마련국민에 정보 친숙히 전달하려 노력상품·서비스 비교… 민간단체와 협력 '과제'10일,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한국소비자원에서 이제 막 임기 절반을 넘어선 정대표 한국소비자원 원장을 만났다.정대표 원장은 2012년 9월 검사에서 한국소비자원 원장으로 변신했다. 강력부 검사로서 조직폭력배와 마약범죄 분야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폈던 '그'와 한국소비자원은 선뜻 연결고리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첫 인사를 나눔과 동시에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었다. 매서운 눈빛을 거둬내고 푸근한 미소로 기자를 반기는 정 원장에게서는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배려가 느껴졌다.마라토너의 뜀박질로 보자면 풀코스의 반환점을 돈 시기인데 숨가빠하기는커녕 오히려 여유가 묻어났다. 자신 역시 여러 소비자 중 한 명이라 생각하며 소비자 문제에 접근한 정 원장의 방식이 옳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퇴직후 어떤 일을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당시에 주변 분들과 만나 제 고민을 놓고 이야기도 자주 나눴는데 몇몇 분이 한국소비자원 원장 공모에 응해보지 않겠냐고 물으셨습니다. 공모 내용 확인차 홈페이지를 살펴봤는데 지금까지 제가 해 온 일과 영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한국소비자원은 소비자 정책 연구, 거래 개선, 피해 구제, 소비자 안전, 시험 검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또 이들 활동의 공통점은 '소비자 기본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법을 다루던 사람이 한국소비자원과 연을 맺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기본적으로 법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전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걱정보다는 법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효율적인 조직 운영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기대하는 바가 있었습니다."더불어 정 원장은 사회적 약자 혹은 배려가 필요한 대상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한국소비자원 일을 하며 더욱 절감하는 것은 상류층을 위한다기보다는 평범한 시민을 위한 조직이라는 점입니다. 보다 힘이 약한 사람을 위한 '법'에 기본하기에 그런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검사로 활동할 때나 지금이나 추구하는 바는 같습니다."정 원장이 소비자 문제를 대할 때 가장 앞세우는 기준은 '상식'이다. 같은 소비자 관련 문제라 해도 상식선을 벗어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소비자에게까지 시간과 열정을 쏟을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저희 조직내에서는 '불평불만이 과도한 소비자'라고 하고 흔히는 '블랙컨슈머'라 부르는 층이 있는데 심한 경우는 같은 소비자 입장에서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소비자 권익을 높여야 한다는 인식과 목소리가 나오면서 불평불만이 과도한 소비자도 생겨났는데, 소비자를 위한 조직이라 하더라도 이 분들까지 품어드리긴 어렵지않을까 합니다. 그보다는 소비자 권익, 소비자 보호, 소비자 활동에 대한 옳은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한국소비자원의 할 일이라고 봅니다."그는 갈수록 심해지는 전화 상담사 피해 문제도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얼굴이 보이지않는다는 이유로 성적 희롱을 하거나 욕설·폭언을 하는 소비자를 무조건 감쌀 수는 없다는 것. 때문에 정 원장은 전화상담 룰을 마련했다."상담원을 아랫사람으로 보고 마구 대하는 경우가 있는데, 직원들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것을 막기위해 상담룰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소비자를 위한, 소비자에 의한 한국소비자원이기는 하지만 불평불만이 과도한 소비자 문제처럼 균형이 깨진 상황이라 판단돼 해결책 차원에서 선택한 일입니다."지인들과 직원들이 꼽는 정 원장의 장점은 순발력과 적응력이다. 한국소비자원에서 보낸 1년6개월의 시간동안 그의 장점은 빛을 발했다. 덕분에 한국소비자원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성과를 거뒀다.한국소비자원에 대한 긍정이미지, 편안한 이미지를 키운 것도 정 원장이 이룬 일 중 하나다. 그는 한국소비자원이 국민을 위한 서비스 기관인 만큼 누구나 친근하게 느끼고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비용이 비싼 연예인 홍보 모델을 택하는 대신 직원을 홍보 모델로 삼았습니다. 또 기관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홍보 활동에 적극 사용했습니다. 전문 지식을 갖춘 직원들이 기관 모델이 되며 신뢰도 상승 효과를 거뒀고, 캐릭터 활용으로 소비자 정보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됐습니다."올해 1월 본격적인 서비스에 들어간 '온라인 전자상거래 피해 상담 일원화 시스템'도 눈에 띈다. 소비 환경 변화로 생겨난 전자상거래, 이로 인해 늘어나는 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갖춘 이 시스템은 한국소비자원·정보통신산업진흥원·한국콘텐츠진흥원·대한법률구조공단이 협업해 중복 상담, 조사를 막고 소비자 이용 편의를 높였다는 평을 얻고 있다.정 원장은 더불어 해외여행 수요가 증가하며 항공소비자 보호 필요성이 높아짐을 포착해 발 빠르게 국토교통부·한국교통연구원과 업무 협약을 맺어 저비용 항공사 피해 다발 사업자 공개, 항공교통서비스 평가 제도 대상에 외국 항공사 포함, 불합리한 항공 관행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꾀했다.이들 성과는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 환경에 순발력있게 대처하고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지원책을 늘 고민한 결과다."옛말에 틀린 것이 없다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주변 환경, 변화에 관심을 두고 살아온 것이 한국소비자원 일을 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때론 작은 호기심이 변화의 시작점이 되기도 했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술을 즐기는데 한국소비자원 원장직을 맡은지 얼마 안됐을 때 호프집 500㏄ 잔은 정말 딱 500㏄일까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한 조사로 정량 위반 사실을 알아냈고, 이후 호프집이 정확히 맥주 양을 지켜 파는 변화가 있었습니다(웃음).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그의 임기는 내년 9월8일까지다. 허락된 시간 내 더 많은 일을 이루고 싶은 것이 정 원장이 가진 유일한 욕심이다. 올해 주요 사업도 고심 끝에 설정했다. 그 중에는 '지역밀착형 사업 확대'가 1번이다."지자체나 민간 소비자단체와 한국소비자원의 관계가 매우 좋지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굳이 갈등을 키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종 소비자 문제가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 피해 구제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급하고 지역 소비자를 위한 행정 모델을 정립하려면 민간 소비자단체와 협력은 꼭 필요합니다. 저희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돕고 도움받을 일을 정중히 부탁드리며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고자 합니다."정 원장은 지난해 큰 호응을 얻었던 국민생활 밀착 상품, 서비스 분야에 대한 비교 정보 제공 서비스는 올해 확대되는 사업에 포함시켰다."이 역시 고민이 많았던 부분인데 무엇보다 소비자 알 권리가 우선돼야 한다고 의견을 모아 소비자 중심 비교 정보 생산에 힘을 기울이기로 했습니다. 올해는 스팀다리미 등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가전제품과 라면같은 국민 먹거리 등으로 비교 정보 대상을 넓힐 계획입니다. 살피고 챙기면 좋은 정보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시종일관 사람 좋아보이는 호탕한 웃음을 보여 준 그에게는 사람내음이 났다. 있는 척이나 아는 척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정 원장에게 인생의 가장 큰 가치를 물으니 역시나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검사시절부터 '권위의식을 내세우지 않는 편한 사람', '털털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라는 평을 얻었던 것도 사람을 아낄 줄 알았던 심성 덕이구나 싶었다.한국소비자원에서 그는 '사람'이라는 최대 가치에 '신뢰'의 중요성을 더했다. 사람 사이 관계에서 신뢰를 얻어야 발맞춰 나아가는 일이 가능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함께해야 할 대상도 한정 짓지 않는다. 그는 소비자 누구나 파트너이고, 조직원 누구나 친구라고 말했다."하는 일, 자리가 바뀌어도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상대는 동등합니다. 한국소비자원 구성원과 도움을 요청하는 소비자도 똑같고 원장과 조직원도 평등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다행스럽게 직원들도 제 마음을 헤아려줘 그 흔한 노사분쟁도 없습니다. 지내보니 '원장이기 때문에'라는 말은 필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서로 존중하고 믿으며 힘을 모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한국소비자원 정대표 원장은?■ 1956년생 ■ 경북고등학교 졸, 성균관대 법학과 졸, 성균관대 대학원 졸■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인천지검 강력부장검사, 대검찰청 마약과장, 성남지청 차장검사, 울산지검 차장검사, 부산동부지청 지청장 /대담=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글= 박석진기자 /사진=조재현기자▲정대표 한국소비자원 원장이 10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 한국소비자원에서 인터뷰를 통해 "소비자 문제를 대할 때 가장 앞세우는 기준은 '상식'이다"며 "소비자 권익, 소비자 보호, 소비자 활동에 대한 옳은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한국소비자원의 할 일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2014-03-12 박석진

[인터뷰… 그]수원고등법원 설치 숨은 공로자 장성근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장

2006년부터 변호사회·지역의원·시민 노력'경기도 숙원' 설치 법안 지난달 국회 통과도민 항소장 들고 서울行 경제적부담 덜어변호사 선임료 인하·상권활성화 효과볼듯위치·예산규모 미정… 2019년 본격가동 예정지법과 떨어진 최초 고법 관계부처 협의 중요"도민 사법권리 위해 북부에 원외재판부 둬야""경기도의 사법 독립을 이뤄냈다."경기도민들의 숙원인 수원고등법원 설치 법안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 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으로 수원고등법원과 수원가정법원 신설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법안 통과에 따라 앞으로는 도민들이 1심에 불복, 항소할 경우 소장을 들고 상경하는 웃지 못할 풍경은 이제 없을 것으로 보인다.법조계는 물론 정·재계, 도민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법안 통과를 반기고 있는 가운데 그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바로 장성근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장.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는 지난 2006년, 제17대 국회 때부터 당시 가칭 '경기고법' 설치를 위해 뛰었지만 법안은 계속 표류했다.매번 법안은 자동폐기되기 일쑤였고, 주무부처인 법원행정처와 기획재정부는 3천여억원에 달하는 재원조달 문제에 이견을 보였다.그러나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무려 8년 만에 법안이 통과됐다. 그 결실을 보기까지의 과정을 장성근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장을 만나 들어봤다. |편집자 주-수원고법 설치에 관해 소감 한마디 해 달라.환영, 또 환영이다. 수원고법 설치 법안이 통과된 것은 경기도민의 꿈이 현실이 된 것과 같다. 인구 1천250만, 경기도는 서울보다도 인구가 많은 지자체다. 경기도에 고법이 없다는 것은 법이 추구하는 바와도 배치된다. 사법 절차적 기본권은 경기도민들도 타 지자체 주민들과 똑같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도민들은 지금껏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보호받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도민들은 항소장을 들고 서울을 오갔고, 변호사도 서울 변호사를 선임해야 했다. 도민들은 더 비싼 선임료를 내고도 푸대접을 받아가며 소송을 진행해야 했다.이에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에서는 지난 8년간 고등법원 설치를 위해 뛰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뜨거운 관심이 큰 힘이 됐고, 그 힘으로 8년간 고등법원 설치 입법 운동을 펼칠 수 있었다. 또 정치인을 비롯해 시민단체, 도와 수원시가 혼연일체로 노력해 소중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이 자리를 빌려서 수원고법 설치를 위해 함께 뛴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입법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입법을 위해 국회를 수십 번도 더 오가면서 느낀 점은 국회가 참 멀다는 것이었다. 사실 수원 사무실에서 국회까지는 가까운 거리다.수원역서 무궁화호 타고 영등포역까지 간 뒤 택시 한 대 잡아타면 기본요금만 내고도 도착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는 이렇게도 가까운 거리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수원고법 설치 노력은 지난 17대 국회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이기우 의원 등 국회의원 44명은 2007년 6월 '서울고법 관할구역에서 경기도를 빼고, 광교신도시에 경기고법을 설치한다'는 내용이 담긴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그러나 이 개정안은 법사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회기 종료와 함께 2008년 자동 폐기됐다.18대 국회에서도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 7월에는 정미경 의원이 가정법원을 설치한다는 내용을 추가해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 역시 2012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매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19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김진표·원유철 지역 국회의원들의 노력에도 개정안이 법사위에서 표류했기 때문이다.또 법원행정처 등 관계부서도 고민이 많았다. 우선 판례의 통일성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현재 고법은 서울,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 5곳이다.그런데 수원고법이 설치되면 재판부는 늘어나는 셈이 되고, 자연히 판사 숫자도 증가해 재판부 판단이 난립한다는 것이었다.그럼에도 단 한 번이라도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계속 뛰었다. 그러던 중 법원행정처에서 지난해 5월 영통구 기재부 소유의 땅을 수원고법 부지로 물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수원고법, 왜 꼭 필요한가.우리나라에서 고법이 마지막으로 설치된 해는 1992년이다. 대전고법 설치 이후 20년 넘도록 고법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결국 수원지법에서 항소한 사건은 수십년째 서울고법에서 관장, 서울고법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상태다.우선 인구를 보면, 서울고법이 관할하는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과 강원까지 2천600만명을 넘는다. 서울고법 관할 인구가 전체 인구의 50%를 초과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서울고법의 항소심 접수사건 수는 연간 4만건에 육박하는 실정이다. 수원고법의 부재로 서울고법의 업무가 과중되는 문제는 어쩌면 필연적이었다.특히 서울고법서 처리되는 사건 중 수원지법 사건이 2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내에는 원외재판부마저 없었다.원외재판부는 제주, 전주, 청주, 춘천, 창원 등 고법이 없는 광역지자체에 모두 있지만 경기도만 역차별 당해 온 것이다.잠재적 사법 수요까지 합치면 더 많은 도민이 불편을 겪었을 테다. 고법이 서울에 있어 항소를 염두에 두고 소송을 벌이는 경우 애시당초 서울에 소장을 제출한 도민들도 다수이기 때문이다.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서울고법의 업무 분담을 위해, 특히 도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수원고법 설치는 반드시 필요했다.-효과와 전망은?수원고법이 오는 2019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 서울고법 업무의 20% 이상이 수원고법으로 내려온다. 이렇게 되면 도내 변호사 수임료는 수백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현재 경기남부지역 변호사는 670여명인데, 사건 수요가 늘어나면 자연히 변호사 숫자도 더 증가하는 것은 물론 대형로펌의 진출에 따라 변호사 시장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신 도민들의 변호사 선임료는 낮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이뿐만 아니라 고법과 고검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변호사들로 인해 민원인들이 받는 서비스의 질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또 경기도 출신 변호사는 최근 증가추세로, 도민들은 해당 지역사정에 밝은 변호사들에게 사건을 믿고 맡길 수 있을 것이다.이 밖에 국내 변호사 1만5천여명 중 70% 이상이 서울에서 활동하는 기형적인 구조에서도 탈피할 수 있게 된다.가시적인 경제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원고법은 아직 법안만 통과된 상황이라 정확한 예측은 어렵지만, 서울고법과 비슷하거나 더 큰 규모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자연스레 고법과 고검 주변에 상권이 형성되고, 소비 규모도 커져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또 고법과 고검에는 판사, 검사, 일반직 직원까지 수백여명이 상주하게 된다. 수원지법과 지검만 있었을 때에는 순환근무체계로 매년 인사발령이 있어 이들에게 수원은 단순히 거쳐가는 곳으로 인식됐다.하지만 앞으로는 인사교류가 있다고 해도 지법과 고법, 지검과 고검을 오가게 돼 수원에 상주하는 직원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로스쿨생들도 혜택을 볼 수 있다. 현재 로스쿨 입학 정원은 2천명으로 고법 중심으로 인원이 배정되는데, 현재 도내에는 아주대에만 50명 정원의 로스쿨이 있다.향후에는 수원고법이 들어선 도의 위상에 걸맞게 로스쿨 정원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선전담 변호사의 경우에도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에서 20명을 신청했지만 단 한 명도 안 됐다. 마찬가지로 고법 설치 후에는 상황은 역전될 가능성이 높다. -남은 과제는?이제 막 법안이 통과됐다. 아직 수원고법의 위치와 규모, 예산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현재 설계가 진행 중인 수원지법, 수원지검의 광교 신청사에는 함께 입주할 수도 없게 될 터라 지법과 고법이 따로 떨어져 있는 최초의 고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에 우선 힘써야 한다.수천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교통요지를 물색해 민원인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넓은 부지 확보도 필수다.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는 물론 국회의원, 경기도, 수원시, 시민단체 모두 법안 통과에 안주하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 고법이 설치되는 날까지 혼연일체가 돼 뛰어야 한다는 점이다.수원고법 설치가 늦춰지지 않도록 계획을 꼼꼼히 짜 법원행정처, 법무부 등 관계기관과의 긴밀한 협조도 필요하다.또 경기북부지역에 대해 관심을 쏟아야 한다. 수원고법 설치 법안이 통과됐지만, 의정부지법은 수원고법 관할구역이 아니다. 도민들의 사법권리를 온전히 되찾기 위해서는 경기북부에 원외재판부를 둘 수 있도록 남은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장성근 회장은?▲건국대 법학과 졸업▲사법시험(24회) 합격▲사법연수원(14기) 수료▲해군 군법무관▲수원지검 검사▲변호사▲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부회장▲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경기도 고문변호사▲수원지방법원 조정위원▲수원경실련 공동대표/강영훈기자

2014-03-05 강영훈

[인터뷰… 그]임흥세 남수단 축구대표팀 총감독이 말하는 인생 철학

현 월드컵대표팀 홍명보 감독 은사2006년부터 아프리카 축구전도사 자처남아공 거쳐 내전 남수단 총감독 계약한국지도자 영입등 '스포츠 외교' 활동위암 수술·각종 병마와 싸움 불구말리등 열악한 곳서 마지막 봉사 꿈꿔"내게 배려란, 축구로 꿈 심어주는 것"경인일보는 올해 신년 화두를 '배려'로 정했다.배려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가지로 마음을 써서 보살피고 도와줌', 또는 '관심을 갖고 도와주거나 마음을 써서 보살펴주다'라는 뜻이다.하지만 하루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들은 과연 배려를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남을 위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얼마나 우리는 관심을 가졌을까.그러나 배려를 인생의 삶으로 여기고 타지에서 축구공 하나로 개척하는 한국인이 있다. 그는 아프리카 대륙 북동부에 위치한 남수단에서 축구로 아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가르치고 있는 임흥세(58) 감독이다.그는 지난달 14일 남수단 정부·축구협회로부터 국내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대표팀 총감독으로 선임됐다.25일 한국을 방문한 임 감독을 만나 그의 축구 인생 철학을 들어봤다.이날 경인일보를 방문한 임 감독은 기자를 보자마자 상기된 표정으로 대뜸 "죽다 살아났어"라고 말했다.그가 이 같이 표현한 것은 현재 남수단 사회가 정부군과 반군간의 교전으로 위기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임 감독은 "내가 떠나기 전까지도 1㎞ 밖에서 총소리와 대포소리가 자주 울려퍼졌다"며 "현재 시민단체(NGO)는 물론이고 외교관도 안전문제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남수단의 심각성을 전했다.이어 "내가 위치한 톤즈 지역은 하루에도 수 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총격전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하루속히 남수단이 정상화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밝혔다.아프리카 남수단 톤즈는 지난 2010년 선종한 고(故) 이태석 신부가 봉사활동을 한 지역이다.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는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50여년 간 내전 끝에 2011년 7월 새 독립국가가 된 남수단은 이후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으로 18세 미만 청소년들이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할 정도다.또 식량 비축량이 최근 5년동안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약 600만 명에 이르는 국민이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했다.그러나 생사를 넘나드는 곳에서 임 감독은 이들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가족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라고 하지만, 어린이들이 자꾸 생각나 돌아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사실 임 감독은 지난 2006년 1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에이즈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선교사로 활동, 재능 기부를 통해 축구를 전파했다. 그는 남아공에 머물면서 축구를 통해 어린이들의 삶을 바꿔 놓았고, 2010년 월드컵을 개최한 남아공 정부는 그에게 축구학교 설립을 허가해 주기도 했다.또 임 감독은 축구 교육용 DVD와 교재를 제작해 남아공을 비롯 아프리카 54개 국가에 배포하며 축구 전도사 역할을 했다.하지만 그는 남아공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임 감독은 "남아공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지도자를 배출하면서 또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면서 "이 곳보다 더 어렵고 힘든 곳에서 축구를 가르쳐야 겠다는 생각에 내전중인 남수단을 찾게 됐다"고 설명했다.임 감독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게 하기 위해 여권도 남수단축구협회에 맡겼다고 한다.그의 행동에 남수단 정부는 지난해 축구 대표팀 총감독을 제안했다. 그는 몸도 좋지 않고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거절했지만 이내 수락했다.임 감독은 "남수단 축구협회가 작년부터 감독 제안을 했는데 사정상 보류했다. 하지만 남수단에서 잇따라 폭탄이 터지고 난민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감독직 제안을 더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고 수락 배경을 설명했다.그는 "남수단 청소년들의 축구 열정은 대단하다. 총성과 포탄이 떨어지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어린이들은 마치 일상생활을 하듯 축구를 즐기고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이어 "남수단은 국제축구연맹에 209번째로 등록한 국가다. 현재 축구 시스템이 전무하다"면서 "남수단 정부와 축구협회는 2002년 4강 신화를 이루고 월드컵 8회 연속 본선에 진출한 한국의 축구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나를 택했다"고 전했다.임 감독은 남수단의 축구 실력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최하위지만, 한국 축구 시스템을 도입해 적용한다면 5년 뒤에는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그는 남수단과 2년 총감독, 1년 연장에 대한 계약을 맺었다. 그는 곧바로 남수단 수도 주바에 대표팀 본부를 차렸다. 현재 남수단은 정상적인 축구를 할 수 없다. 내전으로 곳곳이 폐허가 된 탓에 맨땅에서 축구를 한다. 하지만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그는 우선 남녀 12·15·17세 청소년대표팀, 국가대표 감독 등 남수단 축구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계획이다. 이어 현지·한국 지도자를 영입하기로 하고, 대한축구협회와 업무협약 및 코치 연수, 축구 교류 등을 놓고 협의중이다. 그 결과 최근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축구단 유니폼과 용품 등을 후원받는데 성공했다.그는 "대한축구협회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오는 8월께 남수단 15세팀이 한국대회에 출전할 때 남수단축구협회장이 직접 나와 대한축구협회와 업무협약에 대한 체결도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임 감독의 목표는 또 있다. 바로 남수단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정식 가맹국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5개 이상 국내 체육단체가 설립돼 있어야 한다.임 감독은 "가장 열악한 나라인 남수단에 한국 스포츠 전반을 도입하고 싶다"며 "나아가 한국 스포츠를 모델로 동아프리카 지역 체육이 발전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현재 남수단 정부는 임 감독의 스포츠 외교에 감탄하고 있다. 남수단에는 일본 및 중국 업체가 건설산업에 수 백억원을 쏟아붓고 있지만, 임 감독은 스포츠 재능 기부를 통해 한국을 알리고 있는 '남수단의 아이콘'이다.그러면서도 임 감독은 다른 세상을 또다시 꿈꾼다. 그는 "남아공보다 더 어려운 곳을 찾은 게 톤즈였다. 선교적 봉사자로 축구 감독 이미지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그들을 돕고 싶다. 남수단은 3년 정도면 축구시스템이 갖추게 된다"면서 "아프리카 서부의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등에서 마지막 봉사활동을 펼치고 싶다"고 전했다.임 감독은 홍명보 한국월드컵대표팀 감독과 김주성 동아시아축구연맹 사무총장, 하석주 전남드래곤즈 감독의 은사이기도 하다.그는 2014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준비중인 홍 감독에 대해 "자기 중심을 잃지 않는 지도자다. 위기에 처하더라도 곧바로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성격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하늘에서 내려준 덕장에 비유하고 싶다. 지도자, 선수 생활 모두 신뢰한다"고 단언했다.이어 그는 월드컵대표팀 준비 과정에 대해 "얼마전 브라질·미국 전지훈련에서 큰 성과를 거뒀을 것이다. 지도자들은 훈련 과정에서 이겼을 때보다 패했을 때 더 많은 것을 배운다. 큰 보약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브라질 월드컵 한국 대표팀 성적에 대해 "예측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16강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은 기간 철저히 준비를 잘 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임 감독은 배려에 대해 "나에게 있어서 배려란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임 감독은 몸상태가 좋지 않다. 지난해에는 위암 초기 판정을 받아 수술을 했고, 아프리카에서 장티푸스, 말라리아 등 각종 병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임 감독은 포기하지 않는다.그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지난 4일 입국해 몸을 추스른 뒤 3월초 다시 남수단으로 떠나 그라운드에서 아이들과 함께한다.▲임흥세 감독은■ 인천대학교 졸업■ 성수중 축구팀 감독■ 남대문중 축구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한국중학교 상비군 감독■ 광운전자공고 축구팀 코치·감독■ 아시아청소년학생축구대회 청소년대표팀 코치■ 미국 세크라멘토 입양인 축구팀 코치■ 풋볼액트29 감독■ 경기도 홍보대사■ 체육인재육성재단 글로벌 홍보대사■ 희망고 유소년 축구단 감독■ 남수단 축구 국가대표팀 총감독/글 =신창윤기자/사진 =임열수기자

2014-02-25 신창윤

[인터뷰… 그]'청마의 해' 고객중심 경영 선언한 현명관 한국마사회장

말생산·유통부터 농어촌복지 기여사회적기업 설립 힐링 프로도 진행경기도 말산업 조기정착 도움줄 것마사회 무사안일한 조직풍토 쇄신장외발매소 커뮤니티 시설 탈바꿈주민 친화·지역상권 활성화 도모올해는 말띠, '청마(靑馬)의 해'다. 갑오년의 갑(甲)은 천간으로 오행을 따질 경우 목(木)에 해당하고 색깔로 따지면 파란색 즉 청색에 해당돼 갑오년은 다른 해보다 더욱 활기찬 해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실제 말은 동물 가운데 지각이 뛰어나 영리한 동물에 속할 뿐 아니라 예로부터 한국인에게 말은 신성한 동물로 받아들여졌다. '박혁거세'가 말이 지키고 있던 알에서 태어났고, '부여 금와왕'은 말이 큰 돌 앞에서 눈물을 흘려서 발견됐다는 등 중요 인물의 탄생을 알리는 매개체가 돼 왔다.서양도 귀족스포츠인 승마와 함께 경마가 인기스포츠로 자리를 잡고 있지만 한국에서 경마는 도박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고, 그 중심에는 한국마사회(이하 마사회)가 자리를 잡고 있다.반면, 경기도가 추진하고 있는 말산업 육성 전초기지인 화성시 마도·서신면 일대 '에코팜랜드' 조성에 참여하는 등 말산업을 이끌어나갈 중추적인 공기업이다.이처럼 장·단점을 모두 갖고 있는 마사회는 지난해 12월초 현명관(72) 회장이 취임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준비 중이다.현 회장은 취임식부터 "한국마사회는 현재까지의 영광에 자족하며 머물러 있기에는 너무나 많은 위기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며 "말뿐이 아닌 몸에 체질화된 고객 중심 경영을 해야하고 단순히 경마만 하는 곳이 아니라 건전한 레저 스포츠의 명소, 테마파크의 명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개혁'의 의지를 피력했다.지난 14일 한국마사회 집무실에서 현 회장을 만나 한국마사회의 역할과 개혁에 대해 들어봤다. -청마의 해인 2014년, 마사회의 포부는."12년 만에 돌아온 말띠 해는 말과 말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마사회는 올 한해 말산업 전담기관이자 1등 사회공헌기업으로서 일류 공기업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확고히 심어주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먼저 하드웨어 측면에서 경마공원을 테마공원처럼 만들고, 장외발매소는 주민 친화적으로 만들어 지역이 유치를 희망하는 시설로의 이미지 개선은 물론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고객중심 경영을 할 것이다.고객이 존재하지 않으면 기업이 존재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직원들이 무사안일주의에 젖어서 고객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마사회는 백화점이나 호텔 수준의 고객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고, 이를 위해 기업문화와 조직풍토를 쇄신하고 건전한 경쟁체제를 유지할 것이다."-일류 공기업 이미지를 확고히 할 구체적인 방안이 있다면 무엇인가."사실 용산 화상경마장 이전 개장 등 자치단체가 장외발매소 입점을 거부하는 것을 볼 때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 오히려 자치단체장들이 들어와 달라고 로비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하드웨어 측면의 경우, 첫 번째 사행성 도박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 부정적인 이미지는 장외발매소 때문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장외발매소를 출입하는 고객들의 형태와 주위의 열악한 환경으로 선입관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는 마사회의 책임이다.장외발매소를 문화센터와 커뮤니티 시설로 활용하고 이를 통한 지역 상권 활성화까지 도모할 생각이다. 또 지정좌석제 등 장외발매소의 환경정화에도 나설 계획이다. 우선적으로 1~2군데의 장외발매소를 시범적으로 운영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꿔보겠다.과천경마공원도 금·토·일 등 경마일에만 사람들이 찾아온다. 평일에도 주민들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고 친근감이 있는 레저스포츠공원으로 만들겠다.소프트웨어 측면은 고객을 주인으로 섬기는 마사회가 돼야 한다. 경마서비스업 마인드와 기업마인드가 있어야 하고 고객 중심의 경영을 함으로써 최고의 공기업뿐 아니라 사기업과의 경쟁에서도 뒤지지 않도록 하겠다." -상당수 국민들은 한국마사회를 경마장으로만 알고 있는데 경마장 이외에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외국의 경마시행제와는 달리 한국마사회의 활동 범위는 매우 넓은 편이다. 마사회는 말산업 육성전담기관으로서 경마를 포함해 승마, 말 생산, 조련, 유통, 말 관련 전문인력 육성 등 우리나라 말산업 기반 조성을 위한 모든 산업을 총괄하고 있다.마사회는 하나의 기업이지만 말산업이라는 분야만 놓고 본다면 작은 정부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정책들을 많이 수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농림축산식품부와 긴밀한 협조가 이뤄지는 것은 물론이다.또한 이익잉여금의 70%를 특별적립금으로 납부해 축산발전과 농어촌 복지에 힘쓰고 있다."-마사회의 주요 사회공헌활동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또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회공헌활동이 있다면."마사회는 말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을 살린 사회공헌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먼저 마분을 재활용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 '에코 그린팜'을 설립한 것을 들 수 있고, 장애인에게 취업교육과 일자리 제공을 한꺼번에 진행하는 '꿈을 잡고(Job Go)' 바리스타 양성프로그램도 있다. 그리고 승마를 통해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치유하는 승마힐링센터도 운영중이다.특히 올해는 네트워크형 사회공헌이라는 새로운 사회공헌 모델을 도입할 계획이다. 네트워크형 사회공헌은 정부·기업체·NGO 등 뜻을 같이 하는 기관들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로 협력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마사회는 현재 운영중인 재활승마나 승마힐링을 중심으로 정부와 관심단체들이 참여하는 '드림 호스 프로젝트'를 진행해 볼 계획이다.물론 경기도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꿈을 잡고'사업은 일자리를 원하는 장애청소년들에게 큰 힘을 주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생각이다." -경기도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말산업 육성에 나섰는데 마사회의 역할과 협력방안은."이제 말산업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힘이 될 것이고 대한민국 말산업의 심장은 경기도다. 마사회는 말산업전담기관으로서 경기도의 말산업이 조기에 자리잡아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또한 경기도·중앙부처와 긴밀하게 협조해 승마장 운영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행정규제들을 정비하는 일도 중요하다. 아직 법적 기준에 미달되는 승마장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별적립금 사업 등을 통해 열악한 승마장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공급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오는 9월 인천에서 아시안게임이 개최되는데 마사회의 활약은."마사회는 국위선양과 기업 이미지 향상을 위해 1994년 유도단을 창단한 이래 탁구단·승마단을 운영하며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 동안 마사회 스포츠단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등 여러 국제대회에서 숱한 메달을 따내며 국위를 선양하고 온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고 있다.특히, 올해는 인천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만큼 메달 획득을 위해 승마단의 전지훈련을 예년보다 일찍 보냈다. 청마의 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마사회 스포츠단이 금메달 소식을 전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도 마사회 스포츠단은 체계적인 훈련과 우수한 신인 발굴 그리고 과학적인 지원을 통해 대한민국 체육 발전에 이바지하겠다."■현명관 회장은?△제주도(1941년생)출생 △서울고·서울대 법학과·일본 게이오대 대학원 경제학과졸 △행정고시(4회) 합격 △감사원 부감사관 △삼성그룹 비서실장 △삼성물산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사)창조와 혁신 상임대표대담=이석철 중부권 취재본부장/사진=임열수기자/정리=문성호기자

2014-02-19 문성호

[인터뷰… 그]박보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취임 직후 지방 국립공원 순시출석률 높던 前의원 저력 과시멸종위기종 복원·명품마을 등소통에 무게둔 다양 사업추진"혜택 고스란히 국민에 돌릴것"공원, 규제대상→경제주체 변모강화갯벌 지정땐 年 6조원 가치저소득층에 자연치유 기회제공글로벌 공원 변화 해외 협력도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만난 박보환 이사장은 휠체어를 타고 집무실로 들어섰다. 무릎 연골 봉합수술로 20여일간 병원신세를 졌다고 한다.얼굴은 좀 수척해 보였지만 인터뷰에 들어가자 공단에서 추진하는 사업과 통계 하나까지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술술 풀어 나갔다. 지난해 9월 이사장에 취임한지 4개월 남짓 지났지만 모든 업무를 꿰차고 있는 듯했다.처음 2개월 보름간 지방의 모든 국립공원을 한 바퀴씩 돌았고, 자동차로 이동한 거리만도 2만㎞를 넘겼다니 무릎에 탈이 날 수밖에 없었을 터. 그는 18대 국회의원 시절에도 본회의장 출석률 '상위 5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성실파였다.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2만불 사회에 맞춰진 구조로 어떻게 밝은 미래를 열어 나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이제 국립공원도 국민과의 소통으로 정부 3.0정책에 걸맞은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역설했다. 인터뷰는 공단 이사장 집무실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산 기슭 풀가지도 스마트 폰으로 분석하는 시대며칠전 공공기관장 회의에서 정부 3.0 사례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는 박 이사장은 "어느 기관보다 국민과 소통하고 협력이 필요한 기관이 국립공원관리공단일 것"이라며 공단 운영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정부 3.0은 국민과 소통하고 협력해 그 혜택을 국민이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북한산의 풀가지 하나라도 스마트폰으로 분석해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예전 국립공원하면 단순한 등반코스로 인식하기 쉬웠지만 요즘은 산속의 풀잎 하나라도 스마트폰으로 찍어 공단 앱을 이용하면 그 내용을 피드백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그는 국민과 소통하는 주요 사업으로 ▲멸종위기종 복원사업 ▲생태나누리사업 ▲명품마을 만들기 ▲캠핑문화조성사업을 꼽았다.이들 사업 모두가 공단과 국민의 협력이 필요한 것으로, 국민의 협력없이 잘 관리될 수 없고, 잘 관리만 되면 그 혜택 또한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것이다. -국립공원 관리에 대한 평소 가치관은 무엇인가."건강한 생태계 보전과 탐방객 안정, 탐방서비스 제공이다. 보전과 이용이라는 상반된 논리를 잘 풀어내야 정부 3.0을 실현하는 모태가 되는 것이다."-역점 사업은 무엇인가."앞에서 얘기 했듯이 가장 큰 역할은 자연보전이고, 그 중 가장 큰 사업이 자연 생태복원사업이다.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은 현재 지리산에 29마리를 방사해 놓고 있다. '숲의 농부'라고 할 수 있는 반달곰이 서식하는 곳이라면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되는 곳이라는 말도 있다. 소백산 여우복원사업과 산양복원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종복원 사업은 대형 포유류뿐 아니라 광릉요강꽃 등 26종의 식물복원도 병행 추진하고 있다."-지금까지 방사된 개체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멸종위기종 복원사업은 지난 2004년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시작으로 산양, 여우 등이 있다. 반달가슴곰 복원은 현재 안정화 단계에 있으며 29마리가 자연에 서식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시작된 여우복원사업은 현재 6마리가 자연 적응훈련중이며 2020년까지 자체 생존 가능한 50마리까지 증식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올해는 남생이 장수하늘소의 복원 기반도 마련하려고 한다."-생태보전을 위해 추진하는 공원 스트레스 지수 사업은 잘 되고 있는가."생소할지 모르지만 사람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산림도 많은 사람들의 이용 빈도에 따라 훼손될 수 있듯이, 그 스트레스지수를 계량화한 것으로 보면 된다. 탐방객 수, 탐방로 훼손정도, 샛길, 쓰레기 발생량 등 총 8개 지표를 토대로 산출해 5개 등급으로 구분, 보전 대책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북한산 국립공원 원도봉~포대능선 등 20개 구간이 '매우심각' 등급을 받은바 있다.■ 규제의 땅에서 행복과 미래의 보고로…공원에 대한 지나친 규제로 국민인식이 좋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박 이사장은 손사래를 쳤다.그는 "지난해 3월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면서 총 21개의 공립공원(산악형 17개, 해상형 2개, 해안형 1개, 사적형 1개 )이 전국에 포진돼 있다"며 "최근 무등산 평촌마을의 경우 공단에서 추진하는 명품마을로 개발해 국립공원 밖의 마을에서도 이제 자기집도 좀 넣어달라는 민원이 폭주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지금도 전남 광양의 백운산과 대구 팔공산을 국립공원으로 승격 해달라는 지자체의 요구가 있다고 귀띔했다. 과거에는 국립공원 지정으로 인한 각종 규제로 지역사회와 마찰이 심했지만 2000년대 후반 국립공원 명품마을 조성사업이 가시화 되면서 외국에서도 벤치마킹하러 현장을 찾고 있다는게 박 이사장의 설명이다.그는 공단 자료를 인용하며 "2013년도 명품마을의 효과는 탐방객 2배(196%), 마을소득 5배(508%) 증가했고 지역경제 활성화 유발효과도 102억원 증가하는 등 고부가가치 마을로 변화되는 성과를 올렸다"고 주장했다.경기 인천지역 지자체에서 국립공원 승격을 요구하는 곳이 있느냐는 질문에 박 이사장은 강화 갯벌을 예로 들었다.그는 "한때 강화군수가 갯벌을 명품으로 만들기위해 국립공원 승격을 희망했던 적이 있었다"며 "강화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명품을 만들면 유럽의 북해연안, 브라질, 캐나다, 미국 등과 세계 5대 갯벌로 개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러면서 "갯벌의 가치는 농경지의 100배, 숲의 190배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경제성과 자연성을 가지고 있으며, 연간 6조원의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통계가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젠 공원복지시대…노인·어린이도 걸어서 정상까지, 휠체어 타고 산림욕국립공원은 험준한 산악지형이 많고 안전사고의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다는게 대명사처럼 인식돼 왔다. 정치인 출신의 박 이사장은 산에 대한 예전의 인식을 탈피해 누구나 쉽게 산을 이용하고, 자연속의 쉼터를 만들어 진정한 휴식 공간을 만들겠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예전에 산 하면 등산하는 곳으로만 인식할 때가 있었다"며 "이제는 국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저소득층이나 다문화 가정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생태나누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일종의 생태복지 사업인 셈이다. 숙식이나 교통에 드는 비용을 기업이 후원하는 식으로, 지난 2009년 2천300만원으로 시작해 올해 9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놓고 있다고 전했다.청소년들의 자연생태 체험을 위한 생태탐방연수원 운영도 같은 맥락이란다.박 이사장은 "청소년들이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자연생태를 체험하고 환경성 질환자들이 자연치유의 기회를 갖도록 하기위해 2011년 9월 북한산 도봉지구에 최초의 생태탐방연수원을 개원했다"며 "오는 9월 지리산 화엄지구, 2015년 설악산과 소백산, 한려해상, 거제·통영지구에 연수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최근 자유학기제가 실시되면서 산을 찾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오는 2016년부터 정상화되면 공원을 찾는 탐방객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다. ■ 글로벌 국립공원으로 변화 모색박 이사장은 인터뷰 시간 내내 강한 의욕과 뜨거운 열정을 보였다. 그는 "예전 우리의 산은 '땔감' 구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외국에서 우리 공단의 사업을 벤치마킹하러 오고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인도네시아 호주 뉴질랜드 코스타리카 등에서 국내에 들어와 사업을 전수받고 있고,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공원관리기법을 적용시켜 새로운 IUCN 지침서를 발간할 정도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그는 그러나 아직 더 큰 꿈이 있다. 국립공원 탐방객 5천만 시대를 앞두고 더 선진화된 명품 국립공원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다.그가 최근 캐나다 공원청(Parks Canada)과 글로벌 지침서 마련에 참여해 생태복원과 보호지역 인식 강화를 위한 글로벌 캠페인에 공동 참여하고 해양보호지역의 관리개선을 위해 호주 빅토리아주 공원청과도 협력을 다지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그는 인터뷰 말미에 "국회의원 시절 예산과 법안을 다루면서 체험한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공단의 살림(예산)을 늘리고, 미흡한 법적 근거를 만들고, 직원들의 후생복리를 늘려 공단직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고 싶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정당인으로 잔뼈가 굵은 그가 정치 생활을 잠시 뒤로하고 맡은 국립공원 관리의 '수장'으로서의 활약상이 기대된다.■박보환 이사장은?△경북청도(56년생) △경북고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연수원 교수 △한나라당 경기도당 사무처장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글= 정의종기자/사진= 김종택기자

2014-01-29 김종택

[인터뷰… 그]짜장면 25만 그릇 이웃에 나눈 조병국 J&J 사장

가난한 이들에 짜장면 기꺼이 내주던 어머니어렸을 때부터 다른 직업 생각해본 적 없어IMF때 인생 최악 위기 손님 도움으로 극복여유 생기자마자 '주 전공' 살려서 봉사나보다 나누는 걸 좋아하는 아내덕에 즐거워얼떨결에 받은 장관상… 더 많이 나눠야겠지요무려 82조8천410억원의 재산을 보유한 세계 최고의 갑부 빌 게이츠는 2012년 한해 동안 2조83억원을 기부했다.매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하는 '미국 50대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물론, 누적 기부액만 30조원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이인자' 워렌 버핏 회장 역시 평생동안 자신이 보유한 재산의 85%를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한 해 수백억원을 빌 게이츠 재단에 쾌척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로 꼽히고 있다. 젊은이들은 이들을 세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곤 한다.우리 주변에도 마땅히 존경받을 만큼 값진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한산성에서 20년 넘게 김밥 장사를 하며 모은 3억원을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위해 써달라며 어린이재단에 기부한 '김밥 할머니'는 각박한 세상에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또 김포의 한 주민센터에는 익명의 70대 노인이 쌀 10포대와 돼지 저금통을 놓고 홀연히 사라진 뒤 소외계층을 돕고 싶다는 뜻을 뒤늦게 전달해 추운 겨울 꽁꽁 언 국민들의 마음을 녹이기도 했다.우리에겐 지구 반대편 멀리에 있는 재벌이 수천억원을 기부하는 것보다도 이렇듯 자신의 일부를 주위 이웃에 나누는 '배려'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용인 흥덕지구에서 중화요리 전문점 'J&J'를 운영하는 조병국(50) 사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짜장면을 만들어 전국에 나눴다. 장애인, 노인, 어린이 할 것 없이 조 사장의 무료 짜장면을 맛본 사람만 해도 25만명이 넘는다. 조 사장에게 그가 베풀 수밖에 없었던 짜장면의 의미와 앞으로의 목표를 들어봤다.-짜장면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어렸을 적 어머니가 짜장면 가게를 운영했는데, 미처 돈이 없어 짜장면을 사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머니는 기꺼이 짜장면을 내주셨습니다. 중학교를 그만 두고 중국집에 취직해 배달원과 조리, 홀 웨이터 등 20년간 모든 분야를 섭렵했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짜장면 말고는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나 다름 없지요."-지금 운영하는 가게는 330㎡가 넘는 대형 레스토랑이다. 이렇게 일어서기까지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누구나 그렇듯 인생에서 한번쯤 위기가 찾아오게 마련이지요. IMF 때 보증을 잘못 섰다가 모은 돈도 잃고, 집도 경매로 넘어갔어요. 빚은 산더미같이 쌓여 우울증도 생기고 극단적인 생각도 했습니다. 한번 밑바닥을 치면 다시 오르기 힘들다는 게 어떤 말인지 실감이 나더라고요. 그때 우연히 주방이 아닌 홀로 나와 손님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는데, 식당을 찾은 손님이 어린 아이 때문에 식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이를 안아서 봐줬어요. 그게 고마웠던지, 단골손님이 돼 제가 가게를 옮기더라도 저를 찾아오시는 거예요. 수십명의 단체 예약까지 해주면서 제가 빚을 청산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저만 잘 살 수는 없잖아요. 여유가 생기자마자 바로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았지요."-구체적으로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2006년에 처음으로 봉사를 시작하려고 했어요. 제 주전공인 짜장면을 만들어 노인시설을 찾으려고 했지요. 그런데 하고싶다고 해서 무조건 봉사를 시작할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짜장면을 싣고 갈 탑차, 선반, 소형냉장고 등 계산해보니 봉사를 위한 초기자금만 4천만원 정도가 필요했습니다. 그것뿐인가요. 1주일 전에 가서 미리 배식 위치와 방법, 인원도 점검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짜장면 봉사는 수원, 용인, 성남 등 주변으로 확대됐지요. '무료로 짜장면 봉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복지시설에 삽시간에 퍼지더군요. 덕분에 부산, 대구, 삼척, 고성 등 전국을 돌았어요. 제일 먼 곳은 해남이었네요. 많으면 한달에 10번씩 봉사를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한번은 길이 너무 막혀 12시 점심 시간 배식 봉사가 계획된 곳이었는데,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시설에 도착했어요. 1급 지체 장애인 분들이 머무르는 곳이었는데, 항상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는 게 습관이 된 분들이라 안절부절못하시더라고요. 그 때 이후로 봉사 약속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키겠다고 다짐했지요. 남다른 노하우도 생겼어요. 미리 인원을 점검한 뒤 그에 맞게 짜장면을 준비하곤 했는데, 글쎄 두 그릇을 먹고 싶어하는 인원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겁니다. 무료로 나누는 것이라 할지라도, 제 짜장면이 맛있어서 몇 그릇 더 먹고 싶다는데 기분이 나쁠 리가 있나요. 요즘은 봉사를 갈 때 인원보다 넉넉히 준비해가는 노하우가 생겼지요."-주변에 다 퍼주면 부인께서 그리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데."천생연분인지는 몰라도, 저보다 아내가 더 나누는 걸 좋아해요. 손도 커서 주변에 다 퍼주고 본인 몫은 챙기지 못할 정도로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지요. 그래서인지 제가 더 신나고 즐겁게 봉사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장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은 아직도 아내에게 미안함으로 남아있어요. 장모님이 위독하시다는 걸 듣고도, 이미 약속된 시설로 봉사를 가야했기 때문에 마지막을 지켜드릴 수 없었지요. 하지만, 장모님께서도 생전에 항상 저를 믿고 응원해주셨던 분이기에 진심을 알아주실거라 믿고 있습니다."-남은 목표가 있나. 언제까지 봉사를 할 것인가."제가 처음 봉사를 시작할 때 목표를 10만 그릇으로 세웠습니다. 운영하는 가게는 내팽개치고 봉사를 더 열심히 다닐 정도로 신나게 봉사를 했지요. 5~6년이 흘러 돌이켜보니 10만 그릇은 벌써 훌쩍 넘었더라고요. 대략 25만 그릇 정도가 됐는데, 목표를 달성하고도 그만 둘 수가 없네요. 아직 제가 받은 도움과 배려를 다 나눴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지난해 말에는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어요. 봉사를 많이 했다며 상을 받으러 오라는데, 전 멋도 모르고 혼자만 덜렁 갔지요. 그런데 다른 수상자들은 가족, 친인척, 지인까지 모두 와서 축하해줄 정도로 대단한 상이더라고요. 얼떨결에 큰 상을 받았으니, 앞으로 더 많이 짜장면을 나눠야겠지요."/글= 신선미기자/ 사진= 김종택기자

2014-01-14 신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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