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17]이천-2

설봉산 자락 아래 펼쳐진 이천의 중심지는 풍수에서 볼 때 아쉬움이 많이 남는 도시다. 그래서일까? 이천은 내놓을 만한 인물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문 고장이다. 하지만 이천에서도 남쪽편에 자리한 장호원읍, 모가면, 율면, 설성면 일대는 예부터 무관과 관료 등 인물이 꾸준히 배출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이천은 도시나 마을의 주산으로 꼽힐 만한 산들이 설봉산과 원적산, 도드람산, 백족산, 마국산 정도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설봉산과 원적산, 도드람산은 풍수에서 볼 때 그리 좋은 산으로 보기 어렵고, 백족산과 마국산은 모양이 좋은 산에 속해요. 그러다 보니 백족산이 있는 장호원읍이나 마국산이 있는 모가면 일대에서 그나마 인물들이 배출되는 것이지요."조광 선생의 설명을 들으며 취재팀은 장호원읍으로 향한다. 충청북도 음성군과의 경계에 위치한 장호원읍은 예부터 충청도와 강원도 내륙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로 번성했던 곳이다. 지금도 장호원읍의 도심지역은 비슷한 규모의 다른 도시에 비해 오가는 이들이 많아 북적이는 편이다. 장호원읍 시내에서 음성군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너면 오갑산 자락을 타고 극동대학교와 강동대학교가 자리해 있다. 장호원과 음성에 젊은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셈이다.장호원의 주산 격인 백족산은 장호원 시내 남서쪽에서 시가지를 굽어보고 있다. 402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청미천이 휘감아 돌아간 안쪽에 장호원 시가지를 바라보며 오뚝하게 자리해 쉽게 눈에 들어온다. 백족산쪽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장호원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보세요. 주산인 백족산도 모양이 좋을 뿐 아니라, 주변으로 토체와 영상사와 일자문성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지요. 게다가 장호원읍은 청미천이 휘감아 돌아간 곳에 자리해 있으니, 산과 물이 모두 좋은 곳이라 할 수 있어요. 이렇게 풍수가 좋은 곳에서 인물이 나오는 법입니다."백족산 앞에서 조광 선생의 설명을 들으며 장호원 일대를 둘러싼 산들을 둘러보니, 인물을 배출한다는 토체가 여럿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서도 시내에서 동쪽편으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멋지게 생긴 토체가 듬직하게 자리해 있다. 조광 선생도 "아주 잘생긴 토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장호원 일대는 예부터 무관(武官)이 많이 배출됐다고 한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어재연 장군의 생가를 찾기로 했다. 어재연 장군 생가는 이천의 가장 남쪽 끝자락인 율면 산성리에 위치해 있는데, 19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옛 초가집이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초가집이지만 안채와 사랑채, 광채를 갖춘 제법 큰 집이다. 큰길에서 조금 들어가 팔성산 자락 아래에 자리한 생가를 둘러보며 조광 선생이 감탄을 쏟아낸다. "비록 초가집이지만 아주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어요. 팔성산이 위압감을 주지도 않으면서도 듬직하게 뒤를 받치고, 좌청룡 우백호가 집을 잘 에워싸고 있네요. 특히 좌청룡이 힘있게 집앞까지 뻗어나가 집 주인이 명예를 높이게 될 것을 알려주고, 집의 정면에 기가 막힌 토체가 솟아 있어 높은 사람을 상대하는 자리에 오를 것임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렇게 풍수가 좋은 곳에서 자란 사람은 자연의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이 되는 법이지요."집 안팎 곳곳에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서 있는 어재연 장군 생가를 둘러본 후 취재팀은 차를 북쪽으로 몰아 모가면으로 향했다. 모가면은 높이 445m의 마국산 자락 아래에 둥지를 틀었는데, 한적하고 평화로운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주산 격인 마국산 아래 산내리 일대는 안동 권씨 후손들이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고 살아왔는데, 그곳에서 만난 권균 묘역(산내리 산 31의 1, 이천시 향토유적 제16호)에서 안동 권씨 가문의 위세를 실감할 수 있었다. 충성공 권균(1464~1526)은 우의정을 지낸 조선시대 문신으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했으며, 1506년 중종반정 때 정국공신으로 영창군에 봉해지기도 했다. 형조판서, 예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두루 거쳐 1523년 우의정에 오른 인물이다. 마국산에서 뻗어내린 힘찬 맥을 타고 조성돼 있는 권균 및 안동 권씨 가문의 묘역은 명당의 조건을 그대로 갖췄다. "이곳 산내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달구지가 겨우 들어오는 시골마을이었어요. 그런 곳에서 이렇게 좋은 명당을 찾아낸 것이 놀랄 정도네요. 길고 힘차게 뻗은 맥도 뛰어나지만, 왼쪽으로 겹겹이 둘러친 청룡이나 오른쪽으로 시원하게 뻗어내린 백호가 모두 기가 막혀요. 안동 권씨 자손들의 부와 명예가 어떠할지 눈에 보이는 듯하네요."500년 가까이 된 잘생긴 소나무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권균의 묘역 맞은편으로는 정성들여 지은 별장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산내리 도로가 포장이 되면서 이곳에 큰 별장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는데, 부를 가져다 준다는 영상사의 형태가 뚜렷한 마국산을 바라보며 지어진 별장들은 자연이 주는 선물을 그대로 받아안은 듯하다. 시원하게 잘 닦인 산내리 길을 나와 모가면 소재지 외곽에 자리한 모가중학교를 찾았다. 모가중학교는 1949년 송곡 고등공민학교로 설립돼 65년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다. 학생수가 100명에 불과한 조그만 시골학교지만, 유승우 국회의원을 비롯해 이천지역에서 손꼽히는 인물들을 배출하고 있는 저력있는 학교이기도 하다. 2012년에는 이 학교 야구부가 창단 7개월 만에 전국대회에서 우승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규모는 작은 학교지만, 마국산에서 이어진 산줄기를 뒤로 두고 청룡과 백호가 좌우로 운동장 앞까지 에워싼 좋은 곳에 세워졌어요. 멀리 보이는 산들도 토체와 일자문성을 이루면서 학교를 감싸고 있으니, 이곳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푸근한 자연의 품에서 에너지를 받으며 크고 있는 것입니다."나지막한 산들이 에워싼 학교는 가을 볕 아래 조용하고 평화롭게 아이들을 품고 있다. 아쉬운 것은 본래 잘 이어져 있던 좌청룡이 식생활교육관을 지으면서 잘려나간 것이다. 청룡이 잘려나갔으니, 학교의 명예를 높일 인물을 배출하기가 어려워진 셈이다. 모가중학교를 나와 이천 시가지쪽으로 향하다가 다시한번 마국산을 돌아본다. 북쪽에서 바라본 마국산은 삿갓 모양의 전형적인 영상사를 이루고 있다. "산의 정상이 물결치듯 출렁이고 험한 돌들이 많은 산을 주산으로 하면 도시가 발전하지 못하고 인물을 내지 못하는 법이지요. 이천에는 여러 산들이 있지만, 그 중 풍수적으로 좋은 산의 주변에서 좋은 인물이 나오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이치가 아니겠습니까."이천 모가면 출신의 조광 선생은 오랜만에 찾은 고향과 모교의 모습에 감회가 새로운 듯,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고는 이날의 풍수 여행을 마무리했다. 글/박상일기자사진/김종택기자▲ 어재연 장군 생가-이천의 가장 남쪽 끝에 자리한 어재연 장군 생가는 청룡·백호·일자문성이 푸근하게 두른 명당에 자리하고 있다. 생가에서 전면을 바라보면 일자문성이 뚜렷하다.

2014-10-20 박상일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16]이천-1

과거 비옥한 땅, 번성했던 요충지… 큰 인물 안나와 설봉산 우백호 기운과 좌청룡 칼바위 '불균형' 자연은 잘못없지만 부족한 곳 시가지 선정 '아쉬워'이천시는 예부터 땅이 기름져 부유한 고장으로 꼽혔다. 조선 초기의 문장가인 권근이 지은 '이천향교기'에도 이천은 '땅은 넓고 기름지며 백성은 많고 부유하다'라고 기록돼 있을 정도다. 이천의 복판을 지나는 복하천을 따라 펼쳐진 비옥한 땅에서는 쌀알이 맑고 기름져 밥맛이 으뜸인 좋은 쌀이 생산되는데, 여주쌀과 함께 예부터 임금에게 진상된 진상미로 전국 최고쌀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천에서는 눈에 띌만한 큰 정치가나 학자 등의 인물이 많이 나지 못했다. 고려때 거란의 침입을 외교 담판으로 물리친 서희(942~998)와 조선후기 신미양요때 항전 끝에 전사한 어재연 장군(1823~1871) 정도가 이천의 인물로 꼽힌다. 오랜 옛날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삼국시대에 중요한 요충지로 꼽혔으며, 조선 세종때에는 비옥한 땅에 주민이 많이 살아 도호부로 승격될만큼 번성했던 것에 비해 큰 인물은 별로 나오지 못한 셈이다."이천은 풍수적으로 볼때 눈에 띌만한 좋은 산도 많지 않고, 산의 모양도 잘 생기지 못해서 큰 인물을 내기에 역부족인 형세입니다. 진산으로 꼽히는 설봉산이나 원적산, 도드람산 등을 보아도 모두 바위가 많고 기운이 부족해요. 인근 여주의 산들이 부드럽게 이어지며 곳곳에서 인물을 배출한다는 일자문성과 토채를 이루고 있는 것과 달리, 이천의 산들은 맥이 이어지지 못하는 모양새로 인물을 내기가 어려운 형세여서 아쉽기만 합니다."이천 출신이면서도 이천의 풍수에 대해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조광 선생과 함께 이천의 진산(眞山)중에서도 가장 중심으로 이천시가지를 굽어보며 우뚝 서 있는 설봉산(394m)을 찾았다. 설봉산이 산자락을 펼쳐 품은 곳에는 아담한 설봉호를 중심으로 설봉공원이 조성돼 있고, 설봉공원의 가장 안쪽인 설봉산 자락 끝에는 이천 도자문화의 메카인 도자기축제 행사장과 이천세라피아, 이천시립 월전미술관 등이 자리해 있다.마침 찾아간 때가 올해 이천도자기축제(8월 29일~9월 21일)가 한창일 때여서, 많은 관람객들이 축제장을 찾아 이천의 도자기와 문화예술을 즐기고 있었다. 이곳 도자기축제 행사장은 지난 2001년 경기도가 이천·여주·광주를 무대로 '세계도자기엑스포 2001 경기도'를 개최하면서 조성한 것으로, 인근에 자리한 이천도예촌과 함께 이천 도자기문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지가 되고 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설봉호(설봉저수지)의 제방쪽에서 바라보면 도자기축제 행사장과 설봉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설봉산은 가운데 부분에 조금 높게 솟아오른 희망봉을 중심으로 좌우로 품을 펼쳐 도자기축제 행사장과 설봉호를 감싸안고 있다. 도자기축제 행사장은 설봉산이 좌청룡 우백호를 이루고 앞쪽으로 설봉호를 내려다보니 풍수의 기본이 잘 이뤄진 곳에 자리한 셈이다."그냥 보기에는 도자기축제장과 설봉공원 일대가 명당의 요건을 잘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설봉호수가 자연이 만든 것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수여서 좋은 기운을 담기 역부족인데다가, 좌우를 감싼 설봉산 자락 중 명예를 담당하는 좌청룡의 맥이 이어지는 곳에 칼바위가 솟아 있어 또한 좋지 않은 형세입니다. 이천이 도자기엑스포의 주무대로 여주·광주보다 훨씬 많은 투자가 이뤄졌고, 규모가 큰 도예업체들이 많이 있음에도 도자산업이 눈에 띄게 발달하지 못하는 것이 이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과 함께 월전미술관 옆 산길을 올라 설봉산 정상 조금 못미쳐에 자리한 영월암으로 향했다. 영월암은 신라 문무왕때 의상이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유서깊은 사찰로, 대웅전 뒤쪽으로 온화하게 서 있는 영월암마애여래입상(보물 제882호)이 오랜 역사를 대변하는 듯하다. 영월암의 대웅전은 마애여래입상이 서있는 작은 언덕을 뒤로 두고 남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데, 바로 오른쪽 위로 설봉산의 주봉인 희망봉이 솟아 우백호의 기운이 압도하고 있는 반면, 왼쪽은 좌청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채 내리막이어서 풍수적으로 볼때 균형이 맞지 않는 형국이었다.설봉산의 정상인 희망봉은 영월암에서 등산로를 따라 약 1㎞의 언덕길을 오르면 만난다. 정상의 설봉산 표지석 앞에 서면 도자기축제장과 설봉호수는 물론 이천 시가지 대부분과 멀리 하이닉스반도체 주변까지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다. 멀리 시가지가 끝나는 부분에는 '구만리뜰'이라 불리는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설봉호수 조금 옆으로는 새롭게 조성돼 시청·시의회와 경찰서, 세무서, 아트홀 등이 들어선 행정타운이 한눈에 들어온다. 행정타운은 설봉산 자락이 끝나고 평지가 시작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여기서 보기에도 이천 시가지 주변으로 눈에 띄는 산들이 없어요. 지나치게 평야가 발달하면서 기운있는 맥이 발달하지 못한 것이죠. 본래 시가지 인근에는 영상사가 솟아 재물복을 나눠줘야 하는데 그런 산이 없는 것도 허전한 부분입니다. 새롭게 옮겨간 행정타운도 설봉산의 품에서 벗어나 풍수적으로 별로 볼게 없는 곳에 자리를 잡아 아쉽기만 합니다."설봉산 정상 희망봉에서 남쪽과 북쪽 중 좀더 둘러볼 것들이 많은 북쪽편 길을 택했다. 이곳에서 산봉우리들을 타고 1㎞ 조금 못되는 거리를 걸으면 능선의 내리막이 좀더 급해지는 지점에 유명한 '칼바위'와 사직단, 봉화대, 남장대지, 새천년의탑, 설봉산성 등이 몰려 자리하고 있다. 마치 부러진 칼이 땅에 박혀 있는 듯한 모양의 칼바위 주변은 설봉산성이 에워싸고 있고, 봉화대와 남장대 터가 남아있어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짐작케 한다. 칼바위 뒤편에는 삼국시대부터 제를 지내왔다는 팔각형의 제단인 '사직단'이 자리해 있는데, 지금도 이천시에서는 해마다 중요한 일이 있을때마다 이곳에서 제를 올린다고 한다. "옛날 이곳을 두고 삼국이 각축을 벌일때에는 칼바위가 중요한 의미가 있었겠지요. 그때는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할 때였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세상이 달라졌고, 풍수적으로 볼때 칼바위는 난폭하고 흉한 기운을 의미하는 좋지 않은 바위입니다. 이곳에서 이천의 미래를 기원하는 탑을 세우고, 매년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지낸다는 것이 어쩐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설봉산 산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도자기축제장 쪽으로 내려오니 허전함과 아쉬움이 밀려왔다. 조광 선생은 "이천은 애초부터 시가지 위치를 잡을때 부족함이 많은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라며 "원래부터 그 모양이었던 자연은 잘못한 것이 없고, 그곳에 사는 사람이 잘못한 것이니 사람을 탓할 수 밖에 없다"는 말로 고향에서 느낀 아쉬움을 털어냈다. 글/박상일기자 사진/김종택기자

2014-09-15 박상일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묘 주변 바위·도로

묘를 쓰다 보면 주변에 커다란 바위가 있어서 이를 캐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묘 주변에 있는 바위는 그 형태의 곱고 거침에 따라 길흉(吉凶)의 전개가 전혀 달라진다. 우리가 눈으로 보았을때 바위의 모양이 중요한데, 눈에 거슬리는 모양이면 흉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바위라면 길한 것으로 본다. 결국 묘 주변에 뾰족뾰족하게 모가 나거나 거칠고 울퉁불퉁한 모양의 바위가 있다면 좋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박정희 전 대통령 선친의 묘 앞에는 날카로운 모양의 바위가 박혀 있다. 풍수에서는 이런 것을 '주작이 들었다'라고 하며, 자손이 돌에 맞아 죽게 된다고 본다. 풍수에서는 돌과 총을 같은 것으로 보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의 운명은 조상의 묘에서 이미 엿볼 수 있었다고 하겠다. 묘의 좌청룡이나 우백호 부분에 바위가 박혀있을 경우 그 위치에 따라 자손 중 장남(장녀)이나 막내아들(막내딸)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좌청룡의 윗부분은 장남, 끝부분은 막내와 관련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백호의 윗부분은 장녀, 끝부분은 막내딸의 운명과 이어진다.요즘에는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 같은 커다란 도로들을 새롭게 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개발로 인해 산들이 무자비하게 파헤쳐지면 자연이 생기를 잃게 되는데, 생활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뒷전으로 하는 것이 안타깝다. 일제 강점기때 산에 손가락 굵기의 쇠말뚝만 박아도 그 산의 정기가 약해진다고 했거늘, 하물며 커다란 도로나 터널로 인한 자연의 폐해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다. 이처럼 커다란 도로가 나면서 기존에 있던 묘 주변에 커다란 변화를 주는 경우 후손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좋은 자리라고 해도 혈 가까운 곳(50m 이내)에 큰 변화가 생겼다면 지세 자체가 바뀌게 된다. 없던 길이 묘 옆을 지나면서 맥을 끊었다면 후손들에게는 큰 시련이 닥친다. 실제로 묘의 양편으로 도로가 난 집의 장손이 특별한 이유 없이 사람을 기피하고 불안해 협심증 증상까지 보인 경우가 있었다. 묘의 양편으로 큰 길이 나면 세찬 바람이 도로를 타고 양쪽에서 치고 들어오는 형세가 되는데, 후손 중에 자살할 사람이 나오게 된다. 이 집의 장손은 이장을 결심하고 묘를 옮기고 나자 대인기피증과 협심증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출처 : 네이버 카페 조광의 자연풍수 (http://cafe.naver.com/mirpoongsu), 책 '좌청룡 우백호'(조광 지음, 도서출판 아침 펴냄)

2014-09-15 경인일보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15]용인-2

20년간 도시개발·부동산 열풍기흥 중동·동백 남양홍씨 묘역 일자문성·청룡백호 다 끊어지고아파트숲 막혀 애초모습 사라져죽전 김세필家는 우측 백호만 살아가문 융성 이끌어주는 형세시청사 너무높아 나쁜기운 다 맞고도시 복판 가로지른 '용인 경전철'주변 상가·주택 황폐화 우려"눈앞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후손에 남겨줄 것은 남겨줘야""선조들은 풍수를 보고 명당을 찾았으나, 후손들은 욕심에 눈 멀어 풍수를 버리는구나."용인시는 이제 인구 100만명을 눈앞에 둔 거대한 도시가 됐다. 지난 3월말 현재 용인시 인구는 96만1천여명. 100만명까지 채 4만명도 남지 않았다. 지난 1993년까지 인구 20만명을 넘지 못했던 것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성장이다. 이런 엄청난 속도의 성장에는 그만큼의 엄청난 개발이 뒤따랐다. 특히 수지구와 기흥구 일대는 지난 20년 사이에 논과 밭, 숲 등이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와 상가가 빽빽하게 들어차면서, 우리나라 도시개발과 부동산 열풍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한때 '부동산 투자로 떼돈을 버는 동네'로 여겨지며 동경의 대상이 됐던 이곳. 그러나 최근 부동산 시장에 찬바람이 몰아치면서, 이곳의 분위기는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늘 사람의 욕심이 문제예요. 좋은 산과 좋은 물이 있던 곳을 갈아엎고 콘크리트 숲을 만들어 놓으니, 기의 흐름이 끊어져 어려워질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개발로 돈을 벌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집을 짓지 말아야 할 곳까지 마구잡이로 집을 지어놓았으니, 앞으로 어려움에 빠질 수많은 사람들이 걱정될 따름입니다."용인시 기흥구 중동, 동백지구에서도 좋은 아파트와 고급 단독주택들이 몰려있다는 곳에 남양홍씨(南陽洪氏) 판중추공파(判中樞公派) 시정공(寺正公)문중의 묘역이 자리해 있다. 남양홍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성씨중 하나로 꼽히는데, 조선중기 무렵에 남양홍씨 판중추공파 후손들이 용인지역에 자리를 잡으면서, 남양홍씨가 용인의 세거성씨로 떠오르게 됐다. 커다란 문중의 가문답게 용인의 주산중 하나인 성산(城山)에서 뻗어내린 맥을 타고 조성된 시정공 문중의 묘역에는 시조(始祖)인 홍제(1533~1635)의 묘를 시작으로 후손들의 묘가 단정하면서도 위엄있게 자리해 있다."풍수적으로 참 좋은 곳에 자리를 잘 잡았어요. 맥도 좋고 눈앞에는 일자문성이 길게 이어지네요. 아마도 처음 묘를 쓸때는 청룡과 백호도 잘 휘감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청룡과 백호도 모두 끊어지고, 일자문성도 깨어졌네요. 눈앞을 커다란 아파트들이 막아섰으니, 편안함이 사라지고 답답한 위압감마저 느껴집니다."조광 선생은 묘역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묘역에 서서 앞과 좌우를 둘러보니 그럴만도 했다. 묘역 정면에는 커다란 아파트 숲이 눈높이보다 훨씬 높은 곳까지 뻗어올라가 시야를 가렸다. 정면의 아파트들 사이로 멀리 토채가 자리해 있지만, 역시 콘크리트 벽에 시야가 가로막힌다. 풍수에서 토채는 묘의 주인과 후손들이 높은 사람을 상대하는 자리에 오르거나 이름을 떨치도록 하는 산이다. 토채와 묘역 사이, 앞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낮은 언덕이 가로로 죽 이어져 일자문성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역시 건물들이 중간을 뭉턱 잘라내 애초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웠다. 묘역 왼쪽으로 내려가면 묘역입구부터 산쪽으로 죽 올라가며 단독주택 단지가 들어서 있다. 동백에서도 손꼽히는 동네인데, 조광 선생은 "묘역의 청룡까지 잘라먹으면서 조성된 주택지가 골짜기를 타고 들어갔어요. 이렇게 좋은 집들을 왜 이런 곳에다가 썼는지 기가 막힐 뿐이에요"라며 혀를 찼다.잘못된 개발이 가져온 문제들을 가슴으로 느끼며 취재팀은 인근 죽전동의 문간공(文簡公) 김세필(金世弼·1473∼1533) 가문의 묘역을 찾았다. 경주김씨인 김세필과 그 자손들은 조선중기 청백리로 이름을 떨친 명문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 묘역은 가문의 번성을 증명하듯 돌계단과 석물들로 위엄있게 조성돼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 묘역 주변도 아파트와 학교, 상가 등이 주변으로 빽빽하게 들어서 본래의 기운을 느끼기가 어려웠다."묘역은 애초에 아주 좋은 명당자리를 골라 조성된 것으로 보이네요. 주산에서 뻗어내려온 맥도 좋고, 주작이 길어 권세가 오래 갈 자리예요. 하지만, 역시 개발로 인한 상처를 무시할 수가 없네요. 청룡은 잘려나갔고, 앞쪽의 일자문성도 아파트 단지가 싹둑 자르고 가려서 의미가 거의 없어졌어요. 그나마 오른쪽으로 감아돈 백호가 잘리지 않고 학교 앞까지 살아있어 가문의 융성을 이끌고 있네요. 묘역을 이정도로 손질해 놓았다는건, 그만큼 후손들에게 재물이 따르고 있다는 것이지요."용인의 묘역들을 한바퀴 둘러본 취재팀은 용인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용인시청을 찾아갔다. 용인시청은 당초 처인구 김량장동 구시가지에 자리해 있다가, 현재의 자리에 대규모 행정타운을 조성하면서 지난 2005년 옮겨왔다. 시청 본건물만 지하 2층, 지상 16층, 연면적 4만4천800여㎡ 규모에 달하는데다가 유리로 제작한 외벽 등으로 인해 지난 2008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호화 낭비성 관청건물'의 사례로 지적을 당하는 등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건물이기도 하다."사실 용인시청이 들어선 곳은 풍수적으로 아주 좋다고도 볼 수 없지만, 크게 문제가 될 만한 곳도 아니에요. 그런데도 용인시가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고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은 땅 보다는 건물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요."조광 선생은 용인시청 청사처럼 건물을 크고 높게 짓는 것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이렇게 주변과 어울리지 않고 나홀로 독불장군처럼 선 건물들은 대개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주변의 나쁜 기운을 혼자서 맞게되고, 좋은 기운이 건물안에 모여있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요즘 '랜드마크'를 만든다는 이유로 자치단체들의 청사나 대형 택지개발지구의 중심건물들을 이렇게 크고 높게 짓는 것이 유행인데요, 풍수에서는 이런 것을 좋지 않게 봅니다. 자연스럽게 주변과 어울려 서로 나쁜 기운을 막아주고 좋은 기운이 머물게 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법이지요."조광 선생은 시청 앞을 지나는 경전철에 대해서도 한마디 잊지 않았다."용인경전철이 용인시에 얼마나 재앙이 되고 있습니까. 단지 경전철의 운영적자만이 문제가 아니라, 경전철이 가져올 또다른 문제들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커다란 콘크리트 구조물이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를 경우 기의 흐름을 가로막아서 주변의 집이나 상가들까지 어려움에 빠뜨리게 돼요. 여러 도시에서 커다란 고가도로 아래나 주변이 자꾸만 황폐화 되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용인시 둘러보기를 마무리하면서 취재팀은 가슴이 답답해옴을 느꼈다. 조광 선생은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모양새만을 생각하지 말고, 조금 부족하거나 불편하더라도 우리 후손들을 위해 남겨줄 것을 남겨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충고로 취재를 마무리 했다. /글=박상일기자 사진/김종택기자▲ 용인 동백지구 개발로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남양홍씨 묘역. 멀리 앞쪽으로 산 정상이 평평한 '토채'가 자리해 있지만 아파트들에 가려 아쉬움을 준다.▲ 김세필 가문 묘역 - 용인 죽전동의 김세필 묘역은 가문의 번영을 보여주듯 단정하고 위엄있게 조성돼 있다.▲ 김세필 묘역과 아파트 - 김세필 가문의 묘역 역시 주변 개발로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있다.▲ 용인시청과 행정타운 - 주변의 자연 및 건물들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독불장군처럼 우뚝 선 용인시청.▲ 용인 경전철 - 커다란 교각과 선로가 도심을 가로질러 가는 용인경전철은 기의 흐름을 방해한다.

2014-04-28 박상일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돈 버는 사무실·가게

산소 자리나 집 자리를 찾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것이 사무실이나 가게를 차리기 좋은 곳을 찾는 일이다. 흔히 이런 돈 버는 자리로 꼽히는 곳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역·터미널·관공서·학교 등에서 가까운 '목이 좋은 곳'이라 불리는 곳이다. 하지만 풍수에서는 목이 좋은 곳을 이야기하기 전에 풍(風, 바람·공기)과 수(水, 물)를 중요하게 따진다. 기가 잘 흘러 나쁜 기운이 모이지 않고, 돈을 부르는 기운은 불러들여야 좋은 터다. ▲ 주변과 높이가 비슷한 곳 : 주변보다 지나치게 높은 곳은 나쁜 기운을 맞고 좋은 기운이 흘러나간다. 반대로 주변보다 지나치게 낮으면 음기가 흘러들어 빠져나가지 못한다. 따라서 주변과 비슷한 높이의 땅에 건물이 놓여 편안하게 바라보이는 곳이 좋다.▲ 경사지지 않은 곳 : 경사진 도로변의 건물은 건물 안에 생기(生氣)가 머물기 어렵고 재물운도 약하다. 풍수에서는 재물이 물을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는데, 건물 옆으로 경사가 급한 물길(도로)이 놓여 있으면 재물이 모이지 않고 속절없이 흘러간다. 건물의 구조도 비정상적이거나 축대 등을 높이 쌓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좋지 않다. ▲ 정면 방향으로 도로가 놓이지 않은 곳 : 부를 상징하는 물의 기운이 도로를 타고 건물쪽으로 들어와 휘감고 나가는 모양이 가장 좋다. 반면 'T자길'의 가운데처럼 정면 방향으로 도로가 놓인 곳이나 외길 끝의 막다른 곳은 재물이 도로를 타고 빠져나가 모이지 않는다.▲ 큰길이나 철로에 붙어있지 않은 곳 : 건물과 가까운 도로에 차가 고속으로 달리는 큰길이나 기찻길이 있으면 좋지 않다.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이나 기차가 기의 흐름을 끊거나 흩어놓기 때문이다. ▲ 주변에 너무 큰 건물이 없는 곳 : 주변이나 특히 맞은편에 유난히 큰 건물이 있으면 그 건물의 기운에 눌려 좋지 않다. 또한 요즘에는 똑같이 생긴 쌍둥이 건물을 지은 곳이 많은데, 쌍둥이 건물은 하나의 기운을 둘로 흩어지게 하기 때문에 역시 좋지 않다. 내가 속한 건물이 주변과 잘 어울리되, 위치나 모양새가 다른 건물을 거느리듯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이 좋다. ※출처 : 네이버 카페 조광의 자연풍수 (http://cafe.naver.com/mirpoongsu)

2014-04-28 경인일보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14]용인-1

모현면에 조성된 정몽주·이석형의 묘지흉한 기운없고 토체 두곳 '명당중의 명당'조선시대부터 많은 명문세가 터전 일궈뛰어난 인물의 좋은 묏자리 곳곳에 위치뛰어난 인물과 훌륭한 가문이 좋은 명당을 찾아 묘를 쓰니, 그 명성과 부귀영화가 대대손손 이어지는구나.경기도 일대의 여러 시·군 중에서 근래의 용인(龍仁)만큼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세간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 곳이 또 있을까? 한적하고 조용한 지역에서 부동산 열풍의 중심으로, 가장 거주하고 싶은 지역에서 난개발과 잘못된 행정의 표본으로 오르락 내리락하는 동안, 어느새 용인은 인구 100만명을 바라보는 거대도시가 됐다. 단 20~30년 사이에 이뤄진 이런 급격한 개발은 용인의 모습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고, 이때문에 용인을 '뿌리없는 신도시'라고 여기는 이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용인은 오래전 조선시대부터 막강한 권세를 누리던 용인이씨, 영일정씨, 연안이씨, 해주오씨, 우봉이씨 등 명문세가들이 터를 잡고 가문을 발전시켜온 유서깊은 고장이다. 이때문에 용인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인물과 가문의 묘소들이 곳곳에 남아있어, 지금도 풍수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흔히 사람들이 용인을 이야기할때 꼭 한번씩 떠올리는 말이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去龍仁)'이라는 말이지요. 살아서는 진천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이 좋다는 뜻으로 알고 있고, 그때문에 용인이 풍수적으로 뛰어난 곳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이 말의 유래를 찾아보면 대부분 풍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풍수와 관련된 오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재미있게도, 용인에는 뛰어난 인물의 묘와 좋은 가문의 묘역이 많아서 마치 명당이 많은 곳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것 또한 용인이 가진 복(福)이 아닐까 싶어요."'생거진천 사거용인'의 유래 중 하나를 소개하면서 조광 선생은 "사실 용인은 풍수적으로 눈에 띄게 뛰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데도 용인에 이름난 묘가 많은 것에 대해 "풍수를 제대로 보아가며 조상의 묘를 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좋은 묏자리를 찾아 쓸 만큼 권세가 있는 가문이 많았다는 뜻이다. 취재팀이 용인에서 첫번째로 찾아간 곳은 명당중의 명당으로 꼽히는 정몽주의 묘와 이석형의 묘였다. 포은 정몽주(鄭夢周 ·1337~1392)는 '단심가'를 남긴 고려말의 유명한 충신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동방 이학(理學)의 시조'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묘는 모현면 능원리에 조성돼 있는데, 풍수가들뿐 아니라 수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져 그의 명성만큼 묘역도 이름을 얻고 있다. 그의 묘역을 향해 오르다 보면 묘역 오른쪽으로 나란히 또다른 묘가 조성돼 있는데 연안이씨의 거두 중 한사람인 저헌 이석형(李石亨·1415 ~ 1477)의 묘다. 영일(迎日·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정씨인 정몽주의 묘와 연안(延安·지금의 황해도 연백)이씨인 이석형의 묘가 나란히 놓이게 된 것은 정몽주의 증손녀를 정경부인으로 맞은 이석형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묘역 입구에 놓인 '포은 정몽주 선생 묘소로 가는 길'이라는 커다란 표지석과 연안이씨 가문의 비석들을 지나면 정갈하게 가꿔진 묘역이 펼쳐진다. 묘역 아래에는 재실과 인공연못이 조성돼 있고, 묘역으로 오르는 길에는 점점이 답석이 놓여 운치를 더한다. 묘역을 올라 주변을 둘러보자 '명당중의 명당'이라는 칭찬이 빈말이 아님을 실감케 한다."이렇게 나란히 명당자리가 나오기도 어려워요. 두 분의 묘가 모두 맥을 잘 타고 자리를 잡은데다가, 사방을 두른 산들의 모양이 부드럽고 예뻐서 흉(凶)한 기운이 없어요. 게다가 앞쪽으로 높은 사람을 상대하게 된다는 토체(土體·사다리꼴 모양의 산)가 두개나 자리해 있고, 좌청룡·우백호가 모두 뚜렷하고 기운차게 이어져서 돈과 명예를 모두 얻는 자리입니다."묘역을 내려와 보니 묘역 입구에는 유명한 등잔박물관과 분위기 있는 카페가 자리를 잡고 관람객들에게 '좀 쉬었다 가라'며 손짓을 한다. 갈 곳이 많아 아쉬움을 남겨둔 채 두번째 장소인 모현면 오산리 해주오씨 추탄공파(海州吳氏 湫灘公派) 묘역으로 향했다. 용인의 대표적인 세거성씨 중 하나인 해주오씨는 이곳에 오래전부터 종중의 묘역을 조성해 놓았다. 은행나무를 줄지어 심어놓은 묘역 입구를 지나면, 20여기의 묘가 자리를 잡고 있는 잘 정돈된 넓은 묘역이 푸근하게 반긴다. 묘역 앞에는 육중한 비석을 세워놓았고, 널찍한 연못을 파 '재물'을 의미하는 물이 골짜기로 빠져 나가지 않도록 했다. "이곳에서 눈여겨 볼 것은 이 많은 묘들이 하나같이 맥을 타고 자리를 잡았다는 겁니다. 풍수에서는 이렇게 맥을 타고 흘러온 땅의 기운이 모이는 곳에 묘를 쓰는데, 이를 혈(穴)이라고 합니다. 요즘 산소들 중에는 풍수를 무시하고 맥이 아닌 골에 조성한 것들이 많은데, 물이 흐르고 음습한 기운이 나기 때문에 묘의 주인에게도, 후손에게도 모두 좋지 않게 됩니다. 이곳 해주오씨 가문은 맥을 타고 산소를 썼다는 점에서 풍수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조광 선생은 한 곳에 수십기의 묘를 모아 놓으면서도 풍수에 어긋나게 쓰지 않은 해주오씨 가문을 칭찬하면서 "명당을 찾아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힘이 닿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풍수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번째로 취재팀은 기흥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개혁가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묘를 찾았다. 조광조는 유교적 이상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개혁을 시도하다가 기묘사화로 인해 좌절한 비운의 인물이다. 선조때 억울함이 풀어져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에 배향됐으며, 율곡 이이는 그를 김굉필·정여창·이언적 등과 함께 동방사현(東方四賢)으로 꼽기도 했다.조광조의 묘를 오르는 등산로 입구에는 그를 소개하는 소박한 안내판이 서 있다. 하지만 낮은 언덕 중턱에 자리한 조광조의 묘는 사림의 거두였던 그의 명성에 비해 평범하기 그지 없다. 눈앞을 43번국도가 가르며 지나고, 그 너머로는 높은 고층아파트들이 줄지어 서서 시선을 가린다."정몽주의 묘나 해주오씨 오윤겸 묘와 달리, 조광조의 묘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사약을 받은 상황에서 경황이 없다보니 좋은 자리를 찾지 못한 듯합니다. 게다가 주변이 대부분 개발로 인해 원형이 훼손돼 풍수적으로 큰 의미를 두기가 어렵게 됐습니다."조광조의 묘역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뜻하지 않게 인근에서 용인의 토착 가문인 용인이씨의 묘역을 만났다. 좌청룡과 우백호가 뚜렷하게 감싸안은 용인이씨 묘역은 여전히 옛 영광을 잃지 않은 가문의 힘을 보여주듯 잘 정돈돼 있다. 조광 선생은 "뛰어난 가문은 그 권력과 재력으로 좋은 곳에 묘를 써 후손들이 더욱 번창하고, 어려운 이들은 풍수를 이해조차 못한채 쓰지 말아야 할 곳에 묘를 써 더욱 어렵게 되는 법"이라며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이 풍수를 알고 실천해야 한다"는 조언으로 용인 둘러보기 첫편을 정리했다. 글/박상일기자 사진/김종택기자▲ 포은 정몽주 선생 묘역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 왼쪽으로 재실인 영모재와 모현당 등이 보이고 뒤편 중앙에 정몽주의 묘가 자리해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묘가 저헌 이석형의 묘.▲ 1 명당 중의 명당인 정몽주 묘역 : 정몽주 묘에서 바라본 묘역 앞 전경. 멀리 앞쪽으로 일자문성이 듬직하게 자리해 있고, 좌청룡·우백호가 묘역 앞쪽까지 이어지며 푸근하게 감싸안아 명당의 교과서와 같은 형세를 이루고 있다. 2 정몽주 선생을 모시는 영모재 : 정몽주 선생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재실인 영모재 전경. 3 연안이씨 가문 비석군 : 정몽주·이석형 선생 묘역 입구의 연안이씨 가문 비석군. 연안이씨 후손들은 선조들의 신도비문과 묘갈문, 행장 등을 모아 이곳에 여러개의 행적비를 세웠다.

2014-03-31 박상일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산(山)의 모양과 풍수

풍수지리학에서는 주변에 자리해 있는 산의 모양을 중요하게 여긴다. 산의 모양은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다섯가지 형(形)으로 나누는데, 이를 오성산(五星山)이라고 한다. 금성산(金星山), 목성산(木星山), 수성산(水星山), 화성산(火星山), 토성산(土星山)은 각각 기운이 다르고 배출되는 인물도 다르다.▲ 금성(金星)산 : 산의 모양이 마치 가마솥이나 종을 엎어놓은 것처럼 둥그스름한 모양을 말한다. 재물이나 곡식을 쌓아놓은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부봉사(富峰砂)라고도 한다. 이런 산이 우백호에 붙어 있으면 큰 부자를 만들기도 한다.▲ 목성(木星)산 : 산의 형태가 피라미드처럼 삼각형으로 솟아있는 것을 말한다. 혹은 사람 또는 나무가 서 있는 모양으로도 보는데, 사람의 이마가 단정해야 하듯 산봉우리의 모양이 삼각형에 가깝게 단정해야 좋다. 산봉우리의 끝이 붓끝처럼 단정하고 뾰족하면 문필봉(文筆峯)이라고도 하며 이 산이 있는 곳에서는 주로 명필가나 문장가 또는 귀인(貴人)이 탄생한다. ▲ 수성(水星)산 : 산의 모양이 마치 파도가 출렁이듯이 유연하게 굴곡지며 이어지는 모양의 산. 풍수에서는 두개 이상의 산이 모여 있으면 기운이 분산된다 하여 좋지 않게 생각하지만, 좋은 수성산이 있으면 예능이나 글재주가 뛰어난 인물이 배출된다. ▲ 화성(火星)산 : 산봉우리의 끝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날카롭고 뾰족하게 솟아있는 산. 보기에는 뛰어난 듯 하지만 기운이 강해 길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서울의 관악산이 대표적인 화성산이며, 불의 기운이 강해 화재를 일으킨다고 해서 광화문 앞에 불을 먹는다는 해태상을 세우고 연못을 만들기도 했다.▲ 토성(土星)산 : 산의 모양이 평평하게 깎아놓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토체(土體)라고도 한다. 또는 마치 한자의 일(一)자와 같은 모양이라 하여 일자문성(一字文星)이라고도 한다. 토성산이 있으면 스스로 높은 관직에 오르거나, 높은 사람을 상대하는 인물이 배출된다.※출처 : 네이버 카페 조광의 자연풍수 (http://cafe.naver.com/mirpoongsu)·조광 선생 신간 '좌청룡 우백호'(도서출판 아침 펴냄).

2014-03-31 경인일보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13]안성-2

성곽길 이어진 '죽주산성' 죽산면 일대 시원스런 풍광 펼쳐져일자문성 위치 1천년 역사 '매산리석불입상' 눈길봉업사터엔 '안성죽산리오층석탑·당간지주' 남아비봉산 아래 '죽산향교'도 좋은 곳에 자리유서깊은 고찰 '칠장사' 좌청룡·우백호 '명당중에 명당'가는 곳마다 복(福)이 가득하고 성공과 승리의 기운이 넘치니, 풍수를 아는 이곳이 살기 좋은 땅이로다.지난 안성편(4회·2013년 5월 9일자 9면 보도)에서 안성의 동부지역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 못내 서운해 다시 안성으로 발길을 돌렸다.안성 동부지역, 그 중에서도 죽산면 일대는 많은 역사의 흔적과 문화재들이 자리해 있어서 꼭 한 번 둘러봐야 할 곳이었다.시원하게 뻗은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와 일죽IC를 나오자 벌써 곳곳에 문화재를 안내하는 갈색 안내판들이 보인다. 빨리 보고 싶은 곳들이 많았지만, 일단 죽산면과 일죽면 일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죽주산성을 올랐다. 죽주산성은 시원스러운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오르는 길도 쉽고 편해서 근처 주민들이 자주 찾는 명소 중 하나다.안내판이 세워진 산성입구에 다다르니 잘 정비된 성곽과 산책로가 눈앞에 펼쳐진다. 해발 370m의 비봉산 자락에 돌로 쌓아 튼튼하게 만들어진 죽주산성은 고려 고종 19년(1232)에 죽주 방호별감 송문주 장군이 몽고군을 물리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이후 임진왜란 때도 변이중 장군이 왜군을 물리치는 등 여러 차례 외적의 침입을 격퇴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죽주산성을 둘러보는 길은 성곽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두꺼운 성곽의 돌을 밟으며 걷는 느낌이 좋다. 동북쪽으로 난 성곽길을 잠시 오르니 눈앞에 본래 장대(將臺)를 세웠던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돌들이 기다린다.동쪽과 북쪽편이 훤히 트여 일죽면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다. 서남쪽으로는 비봉산 정상이 산성을 굽어보고 있다.굽이굽이 난 산성길을 따라 죽주산성의 남쪽편에 다다르면 이번에는 죽산면 일대가 시원스럽게 눈앞에 펼쳐진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미세먼지가 눈앞을 뿌옇게 가리고 있는 것이 아쉬웠다."주변을 둘러보세요. 산들이 거칠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지고 있죠. 면사무소와 향교가 있는 죽산면을 내려다보면 비봉산 자락이 북쪽편을 푸근하게 감싸고 남쪽이 훤히 트여 따뜻하고 안정돼 보입니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풍수적으로 좋은 곳에 마을 터를 잡아서 살았어요." 죽주산성을 나와 유명한 봉업사터를 찾아가는 길에 잠시 '매산리 석불입상'(경기도유형문화재 37호)을 찾았다. 높이가 5m를 넘는 커다란 돌 미륵불이다.미륵의 머리위에 커다란 보개(寶蓋)까지 얹어져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안내판에는 고려 초기에 조성된 미륵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무려 1천년 전에 만들어져 그동안 마을의 안녕을 지켜왔다는 의미다."옛날 조상들은 이런 미륵을 모실 때에도 풍수를 따졌어요. 이곳도 뒤쪽으로 비록 크지는 않지만 일자문성이 자리해 있고, 산자락을 뒤로 하고 앞이 트인 아늑한 자리에 미륵을 모셨어요. 요즘 사람들이 커다랗고 중요한 건물을 지으면서도 풍수를 따지지 않아 결국 어려움을 겪는 것과 좋은 비교가 됩니다." 미륵불을 뒤로 하고 산모퉁이를 돌아 마을쪽으로 가자 곧바로 오른쪽에 봉업사터가 나타난다. 봉업사(奉業寺)는 절 이름 그대로 고려가 나라를 세운 것을 기념해 세운 국가사찰이다.고려 태조 왕건의 영정이 봉안돼 매년 고려 왕실에서 선왕에 대한 예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옛 고려시대에 이곳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조선시대에 폐사되어 폐허로 남아 있다가 1966년 공사 도중에 여러 유물이 발견되면서 실체가 확인됐다.큰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봉업사터는 낮은 철제 난간으로 둘러친 곳에 석탑과 당간지주만 남아 있다.당초 사찰의 규모는 훨씬 넓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문화재 보호용 철책은 석탑과 당간지주 부근 일부에만 쳐져 있어 더 아쉬움을 주었다. 봉업사터 내에 당당하게 서 있는 안성죽산리오층석탑은 보물 제435호로 지정된 귀중한 문화재다."조선시대 이전에는 산중이 아닌 평지에 커다란 절들을 많이 지었지요. 하지만 평지에 있다고 풍수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에요. 이곳 절터도 비봉산과 죽주산성 자락이 든든하게 주산 역할을 하고, 멀리 앞쪽으로 산자락이 부드럽게 이어지면서 감싸안고 있죠. 특히 절터쪽에서 보면 죽주산성이 영상사를 이루면서 좋은 기운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봉업사터를 떠나 북쪽으로 마을을 지나자 비봉산 산자락 아래 죽산향교가 자리해 있다. 죽산향교 역시 뒤쪽의 비봉산을 주산으로 놓고, 왼쪽으로 청룡이 휘감고 오른쪽으로 백호가 길게 눈앞까지 이어진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조광 선생은 "이렇게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안녕을 기원하니 예부터 좋은 일이 많았을 것"이라며 "안성 일죽·이죽(지금의 죽산)·삼죽 일대가 예부터 이름이 났던 것은 이런 이유"라고 말했다.죽산향교를 떠난 취재팀은 이번 안성 둘러보기의 하이라이트 격인 칠장사(七長寺)로 향했다. 칠장사는 636년(선덕여왕 5)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고찰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안성지역의 명소이기도 하다.칠장사에 보존된 국보 제296호 칠장사오불회괘불탱(七長寺五佛會掛佛幀)과 보물 제488호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는 이 사찰의 역사와 위상을 짐작케 한다.칠장사 바로 아래 주차장에 내리니 석축 위에 고풍스러운 누각이 방문객을 반긴다. 경내에 들어서니 묵직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예사 사찰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한다.취재팀을 보고 나이 지긋한 문화재해설사가 얼른 따라붙어 칠장사의 역사를 술술 이야기해 준다. 칠장사와 칠현산의 이름 유래가 담긴 혜소국사 이야기, 임꺽정의 스승 병해대사가 이곳에서 임꺽정에게 무술과 글을 가르친 이야기, 어사 박문수가 이곳에서 기도를 한 후 장원급제를 했고 그 때문에 지금도 많은 수험생과 부모들이 이곳을 찾는 이야기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문화재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둘러본 칠장사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풍수적으로 명당 중 명당이다. 주산인 칠현산 자락이 팔을 뻗어 좌청룡·우백호를 이루고 있는데, 일부러 깎아 놓은 듯 적당한 높이로 사찰을 품어 안으며 곳곳에서 영상사와 토채와 일자문성을 이루고 있다.멀리 앞쪽으로 마치 그림을 그린 듯 솟아있는 영상사도 일품이다. 언덕을 조금 올라 서 있는 혜소국사비에서 본당쪽을 내려다보니, 꼭 맞는 터에 오밀조밀 들어앉은 대웅전과 법당들이 더할 나위 없이 안정감을 준다."여러 사찰을 다녀봤지만, 칠장사는 올 때마다 참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감탄을 하게 한다"고 각별한 애정을 표현한 조광 선생은 "자연 속에서 풍수의 이치를 알고 잘 활용한 이곳 사람들의 지혜를 칭찬하고 배워야 할 것"이라는 말로 안성 둘러보기를 마무리 했다.글/박상일기자사진/김종택기자

2014-03-04 박상일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좋은 기가 흐르는 집 -좋은 건물, 나쁜 건물 (3)

▲앞과 뒷면이 분명해야: 자연의 모든 만물은 앞쪽과 뒤쪽, 즉 면(面)과 배(背)가 있다. 건물 역시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면 면과 배가 분명해야 한다. 만약 면배(面背)가 불분명하면 기의 유입이 분산돼 발전하기 어려워진다.▲정원(앞마당)과 후원(뒷마당)이 같은 넓이이면 좋지 않다: 정원(庭園)은 건물 앞에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만약 정원과 후원(後園)이 모두 있고, 크기도 나란히 비슷하다면 집 주인이 두 살림한다고 하는 형상이다.더욱이 후원이 정원보다 더 크고 넓으면 후실(後室)이 안방 마님을 누르고 주인 행세를 하게되는 형국이어서 좋지 않다.▲두 채의 집을 합치는 것은 흉하다: 이웃의 두 채의 집을 연결해 하나로 합쳐 집을 짓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본래 모든 것이 두 개였기 때문에 집의 통일성이 없고 기운이 분산되어 나쁘다. 따라서 두채의 집을 합치는 것 보다는 전부를 헐어내고 다시 짓는 것이 좋다.▲부분적인 개조나 증축은 좋지 않다: 건물의 일부분은 낡은 대로 남겨두고 일부만 고치는 것은 좋지 못하다. 한쪽은 낡고 한쪽은 새것이면 힘의 균형이 이뤄지지 않아 불안정한 구조가 되기 쉽다.이럴 경우 기의 흐름도 불안정하게 되어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이같은 부분적인 개조는 건물의 수명도 짧아지고 미관도 아름답지 못해 건축구조적으로도 나쁘다.단층이었던 건물을 2층으로 증축하는 것 역시 전체적인 균형이 맞지 않아 좋지 않다. 건축적으로도 처음 지을때 단층에 맞게 설계하고 그에 맞는 자재를 썼을 것인데, 2층으로 개축하면 하중이 증가하여 건물의 수명도 짧아진다.※출처 : 네이버 카페 조광의 자연풍수 (http://cafe.naver.com/mirpoongsu)

2014-03-04 경인일보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좋은 기가 흐르는 집 -좋은 건물, 나쁜 건물 (2)

▲건물의 무게 중심이 중앙에: 건물은 무게 중심이 중앙에 집중돼 있어야 기의 집중력도 커지고 안정감이 있다. 만약 무게 중심이 바깥을 향하고 있으면 기가 좌우로 분산돼 불안정하고 빈약한 형태가 된다.같은 크기의 건물을 나란히 세우고 그 사이에 연결 통로를 내는 건물도 좋지 못하다. H자 형태의 건물은 가주나 건물주가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병약해진다.▲높은 곳은 낮은 건물, 낮은 곳은 높은 건물: 지대가 높은 곳에 높은 건물을 지으면 대기 중에 흐르는 강한 기류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런 강한 기류는 인체에 매우 나쁜 영향을 준다.비록 건물 외벽이 두껍고 튼튼하다 할지라도 강한 기압의 영향으로 건물 내부의 실내 기압도 영향을 받는다.지대가 높은 곳은 택지로 좋은 곳은 못되나, 불가피하게 건물을 지을 때는 낮게 하는 것이 좋다. 반면에 고층 건물을 지을 때는 상대적으로 낮은 곳을 택하는 것이 주변 산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건물의 주종관계를 분명히: 한 대지에 여러 동의 건물을 지을 때는 주종 관계를 분명히 하여야 기가 분산되지 않는다. 만약 한 공간에 똑같은 크기의 건물이 같이 있으면 확실한 주인이 없어 기의 분산은 물론, 중심이 양분되어 혼란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건물은 마주보며 다정하게: 다정한 연인이 마주보며 정을 나누듯, 건물도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태가 되어야 기가 부드럽고 다정하게 작용한다.반면에 등을 돌리는 형태의 건물은 서로 배반하는 격이므로 흉하다. 이러한 곳에서는 사람들간에도 서로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반목하여 사업적인 성공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출처 : 네이버 카페 조광의 자연풍수 (http://cafe.naver.com/mirpoongsu)

2014-02-04 경인일보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12]포천-2

기운 넘치는 복 받은 땅에 좋은 명당이 곳곳에 있으니、주인이나 자손이나 어찌 행복하지 않으리오。군내면 명산리 '이한동 전 총리 생가'아담한 기와집 'ㄷ'자 형태 안정적풍수기반 지혜 돋보이는 전통가옥신북면 만세교리 '조경 선생 묘'깊은 산 숨은 듯 자리 '음택의 정석'꾸밈없는 주변 청백리 청렴함 대변가산면 금현리 '이항복 선생 묘'명성에 비해 평범한 길가 자리잡아맥 기운 약해도 푸근하고 평화로워풍수지리학자들이 '좋은 기운이 넘치는 땅'으로 손꼽는 포천에는 이름난 명소들도 많다.그중 대표적인 곳이 '포천' 하면 떠오르는 관광 명소, '산정호수'다. 경기북부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온 산정호수는 지금도 인근 명성산과 함께 수도권 주민들이 가장 즐겨찾는 명소중에 명소로 꼽힌다.산정호수는 포천에서도 거의 북쪽 끝인 영북면에 자리잡고 있다. 포천시청에서 출발하면 30㎞ 가까운 먼 길을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하지만 산정호수가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산세가 수려해지면서 먼길을 달린 피로를 날려준다."풍수에서는 물을 재물로 봅니다. 산정호수가 비록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호수라고 하지만, 명성산과 어우러진 좋은 곳에 호수를 만들면서 포천에는 복이 들어온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자연이 준 선물을 잘 활용해 복을 더 불러들인 것이죠."오랜만에 산정호수를 찾았다는 조광 선생이 호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푸근하다. 산정호수는 시원스러운 풍광으로 찾아오는 이를 반긴다.제방 옆에는 억새가 우거져 겨울 바람에 살랑인다. 넓은 수면(水面)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호수 북쪽편으로는 명성산의 힘찬 산자락이 병풍처럼 둘러 찬바람을 막아주면서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명성산이 감싸 안은 산정호수는 호수의 부드러움과 산의 힘찬 기운이 어우러진 수려한 모습이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 같다. 포천의 자연이 전해주는 행복이다. "전에도 이야기 했듯이 포천에서는 이렇게 좋은 자연의 기운을 받아 뛰어난 인물이 많이 배출됐어요. 우리 현대사에서 포천 출신의 인물을 꼽자면 6선 국회의원에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이한동씨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이 총리의 생가를 한번 찾아가 보기로 하죠."이한동 전 총리의 생가는 포천 시가지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온 군내면 명산리에 자리해 있다. 생가와 함께 선친들의 묘역도 인근에 자리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명문가로 손꼽히는 고성 이씨(固城 李氏) 도촌공파(桃村公派) 가문답게 묘역 앞에 커다란 신도비들이 위엄을 자랑하며 서 있다."묘역도 묘역이지만, 이 전 총리의 생가는 풍수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포천을 지날때 꼭 찾아올 만큼 명당으로 꼽힙니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은 집이지만, 좋은 집터가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는 곳이지요."조광 선생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이 전 총리의 생가는 당초 기대했던 규모보다 훨씬 작은 아담한 기와집이다. 야트막한 산자락이 뒤를 두르고 있는데, 청룡과 백호가 에워싸고 있는 한가운데에 맞춘듯이 집터를 잡았다.생가 남쪽으로는 널찍한 평지가 시야를 틔워주고, 그 너머로는 낮은 언덕이 '일자문성'을 이루고 있다. 멀리 왼쪽으로도 토채가 우뚝 서 있어 큰 인물이 나올 집터임을 확인하게 했다.하지만 당초 집터 정면으로 길게 이어졌을 듯한 일자문성은 최근 묘지가 들어서고 개간이 이뤄지면서 중간이 잘려 아쉬움을 남겼다.생가는 높지 않은 담장 안쪽으로 소담스러운 건물이 'ㄷ'자 형태로 자리해 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푸근하고 안정적이다."생가 건물이 동쪽이 터지고 서쪽이 막힌 'ㄷ'자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은 오전에 생기가 넘치는 볕을 받아들이고, 오후에 사그라드는 볕은 차단해 집안에 좋은 기운을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풍수에 기반한 전형적인 전통 가옥의 형태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집의 형태라고 할 수 있어요." 이한동 전 총리의 생가에서 양택의 기본을 확인한 취재팀은 이번에는 음택의 기본을 잘 갖춘 묘역을 보기위해 신북면 만세교리에 자리한 '조경 선생 묘'를 찾았다.용주(龍洲) 조경(趙絅, 1586~1669) 선생은 대사헌과 형조판서, 이조 판서 등을 지낸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포천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다시 포천땅에 묻힌 포천의 인물 중 한사람이다.묘역은 신도비가 서 있는 마을 입구에서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들어간 곳에 자리해 있다. 보통은 이름난 묘역이 큰길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곳에 자리해 있는 것과 달리, 조경선생의 묘역은 산길을 오르면서 '이런 곳에 무슨 좋은 묘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만큼 그리 산세도 뛰어나지 않은 곳에 깊숙히 들어가 있다.하지만 묘역을 만나기 전까지 들었던 의구심은 산 모퉁이를 돌아 묘역을 만나는 순간 한꺼번에 허물어진다. 숨은 듯 자리해 있는 묘역은 그야말로 풍수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하다."이런 곳에 이렇게 숨어있는 좋은 음택 자리를 참 용하게도 찾아냈어요. 보세요. 풍수의 핵심인 입수(入首)가 기가막히게 기운이 넘치는데다가, 오른쪽으로 백호가 감아들고, 왼쪽으로 청룡이 더 힘차게 뻗어 휘감았어요. 그야말로 음택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네요. 게다가 묘역 주변으로 석물이나 돌계단 같은 인공적인 꾸밈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묘를 조성하고 관리해 놓은 것도 묘의 주인이나 후손들의 마음가짐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묘역을 둘러보는 조광 선생에게서 칭찬이 이어진다. 명문가 한양(漢陽) 조씨(趙氏) 가문의 한사람인 묘의 주인은 생전에 청백리로 이름을 떨쳤는데, 묘역에서도 역시 이런 기개와 청렴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조경 선생 묘역에서 느낀 감탄을 뒤로 하고 취재팀은 '오성과 한음' 중 한사람인 오성부원군 이항복(李恒福, 1556~1618) 선생의 묘를 찾았다.가산면 금현리에 있는 이항복 선생의 묘는 마을 가장자리 한적한 길가에 자리해 있다. 임진왜란때 선조를 모시고 의주까지 피란길에 올랐고, 병조판서, 대사헌,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오른 이항복 선생의 묘이기에 기대가 컸지만, 정작 묘역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아마도 마지막에 인목대비 폐위 사건으로 함경도 땅까지 유배까지 가서 생을 마감하신 영향이 있겠지요. 그리고, 문신의 묘는 맥의 기운이 넘치는 곳보다는 평온하고 화목한 곳에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항복 선생의 묘가 그런 셈입니다. 맥이 기운차지는 않지만, 푸근하고 평화로운 곳이에요."둘러볼 곳이 너무도 많은 포천이어서, 취재팀은 아쉬움을 남기고 포천 둘러보기를 끝냈다. 포천을 떠나며 조광 선생은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곳"이라는 말로 포천에 대한 애정과 포천편을 끝내는 아쉬움을 전했다.글/박상일기자사진/김종택기자

2014-02-04 박상일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좋은 기가 흐르는 집 -좋은 건물, 나쁜 건물 (1)

땅 위에 지어져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이 되는 건물(建物)은 풍수학적으로 볼때 땅으로부터 전달되는 음(陰)의 기운인 지기(地氣)와 지상으로부터 유입되는 양(陽)의 기운인 천기(天氣)가 서로 섞이면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따라서 건물은 지기와 천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두 기운이 내부에서 잘 흘러 조화를 이루기 쉽도록 하는 모양과 구조를 갖고 있어야 한다. 특히, 땅속의 지기나 지상의 천기가 사람이 생활하는 건물 내부로 들어올 때는 제일 처음으로 건물 외부 모양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건물의 형태는 길흉화복을 따짐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두부처럼 네모난 건물이 좋다 : 천기(天氣)인 공기는 산이나 구조물에 접하면 그 형세를 따라 흐른다. 따라서 기가 원만하고 안정되게 흐르려면 건물의 형태도 원만하고 방정해야 한다.반대로 날카롭게 각이 지거나 복잡한 형태의 건물은 바람 역시 날카롭고 복잡하게 변하여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풍수학적으로 부상(富相)의 건물은 외형적으로 매끈해야 하며 외부에서 볼때 튀어나오거나 들어간 곳이 없어야 한다.가장 보편적인 좋은 건물 형태는 '반듯하게 잘라낸 두부같은 모양'이다. 이런 건물이라면 건물주는 물론 건축업자나 세를 든 업체들 또한 부(富)가 따르게 된다. 반면 아랫부분은 잘 지어졌는데 위로 올라가면서 갑자기 좁아지는 구조는 빈상(貧相)의 전형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이처럼 건물의 형태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면 자금난으로 고통받게 된다. 아울러 건물의 본체가 원형이거나, 층층이 모서리가 지는 형태, 위로 모나게 솟은 형태 등은 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흉한 상으로 분류한다.▲건물 바닥이 지면과 접해야 한다 : 땅의 기운인 지기는 위로 상승하려는 성질을 가진 기운이다. 건물 전체가 이같은 지기를 골고루 받기 위해서는 바닥 평면 전체가 지면과 접하고 있어야 한다.최근에는 건물 바로 밑 부분에 지하 주차장을 만들거나, 1층은 기둥을 세우고 2층부터 본 건물을 올려놓은 형태의 건물이 많이 지어지는데, 이같은 건물은 지기가 외부로 흩어지기 때문에 좋지 않다.이처럼 지면과 접하지 못한 건물은 음(陰)인 지기(地氣)의 영향을 받지 못하고 양(陽)인 천기(天氣)만 가득하다.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양기(陽氣)만 있으니 안정감과 실속이 없다.※출처 : 다음 카페 조광의 자연풍수 (http://cafe.daum.net/mirpoongsu)

2013-12-03 경인일보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11]포천-1

힘있는 산맥 둘러 감싸고 포천천 흘러 명당이항복·양사언·최익현 등 인물 많이 배출인평대균 묘역 풍수 고려했지만 맥이 부족현대사 중요인물 오치성 묘 후대 번성할 터수려한 산은 기운이 넘치고 맑은 물이 땅을 적시며 흐르니, 복을 받은 땅에서 훌륭한 인물이 어찌 태어나지 않으랴.포천은 풍수지리학자들이 '좋은 기운이 넘치는 땅'으로 손꼽는 곳이다. 한북정맥의 천보산에서 갈라져 나온 왕방산 줄기가 포천 시가지를 서쪽에서 감싸고, 동쪽으로는 천주산과 수원산의 맥이 이어지며 시가지를 에워싼다.그 사이로는 포천천이 유유히 대지를 적시며 한탄강으로 흘러든다.북쪽으로는 명성산과 광덕산 줄기가 굳건하게 서서 힘있게 맥을 뻗어 내리고, 남쪽으로는 죽엽산 자락이 안산을 이루며 아늑하게 감싸니, 포천은 전체적으로 명당의 조건을 갖춘 좋은 땅으로 손색이 없다.이런 이유에서인지 포천에서는 예로부터 유난히 인물이 많이 배출됐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李恒福, 1556~1618)과 이덕형(李德馨, 1561~1613), '태산이 높다 하되…'라는 시조로 유명한 당대의 대학자 양사언(楊士彦, 1517~1584), 화서학파의 거두이자 실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평묵(金平默, 1819~1891), 조선초 대학자이자 정국공신으로 유명한 유순(柳洵, 1441~1517), 위정척사의 의병장 최익현(崔益鉉, 1833~1906), 임금으로부터 효우의 정려를 받은 이름난 효자 유인선(柳仁善, 1542~?) 등 수많은 학자와 정치가, 충신은 물론 독립운동가와 효자들이 포천에서 배출됐다. '좋은 땅에서 훌륭한 인물이 태어난다'는 풍수의 기본을 증명하는 땅인 셈이다.포천 둘러보기는 포천의 주산(主山)으로 꼽히는 왕방산에서 시작됐다. 높이 737m의 왕방산은 북동쪽 깊이울 계곡에서 남서쪽으로 양주 회암사지까지 맥을 길게 이으며 포천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다.왕방산의 왕방사는 872년(신라 헌강왕 3)에 도선국사가 정업을 닦을때 왕이 친히 행차해 격려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조선 태조가 이 산에 있는 사찰(현 보덕사 터)에 들러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 조선 태종이 어머니 신의왕후 한씨를 모시고 재백골(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에서 살 때 늘 이곳에서 무술을 연마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어, 오래전부터 국왕들과 인연을 맺은 명산이다."왕방산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맥이 크게 출렁이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져 묵직하면서도 온화한 기운이 넘치는 좋은 산이에요. 그래서인지 옛부터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지금도 절과 기도원 등이 여럿 자리를 잡고 있지요. 산 위에 올라 포천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왕방산의 좋은 기운을 더 잘 느낄 수 있어요."조광 선생의 설명처럼 왕방산을 오르는 길에는 곳곳에 절과 기도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주중임에도 많은 등산객들이 등산로를 따라 왕방산을 오르며 산이 전해주는 좋은 기운을 마음껏 즐기는 모습이었다. 등산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자 동쪽으로 시야가 넓게 트인 곳이 나와 포천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포천은 시가지가 넓지는 않지만 좋은 산들이 사방을 두르고 있는데다가, 시가지 가운데에 반월산이 영상사(領相砂)를 이루며 기운을 모아주고 있어요. 풍수적으로 참 좋은 곳이지요. 그래서 앞으로 많은 발전이 기대되는 곳이라 할 수 있어요."왕방산을 내려오다 보니, 왕방산의 남쪽으로 맥이 좌청룡 우백호를 이루며 감싸안은 곳에 대진대학교가 자리해 있다. 왕방산의 좋은 기운을 받아서일까? 대진대학교는 지난 1992년 첫 입학생을 받은 이후로 20년만에 경기북부의 대표적 대학 중 하나로 발돋움했다.왕방산을 나선 취재팀은 북쪽으로 발길을 돌려 신북면 신평리에 자리한 인평대군 묘를 찾았다. 인평대군(麟坪大君)은 인조의 셋째아들이자 효종의 동생으로 병자호란 뒤 국난 극복에 헌신하다가 3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제자백가(諸子百家)에 정통해 당대의 대학자들과 교류했으며 그림과 글씨에도 뛰어났던 인물이다.인평대군의 묘는 신평리 마을 변두리의 높지 않은 산을 뒤로 하고 신평리 마을을 바라보며 조용히 자리해 있다.여느 왕족의 묘와 크게 다르지 않게 적당한 규모로 조성돼 있으며, 뒤로 주산을 두고 청룡과 백호가 감싸 안은 풍수의 기본을 잘 지킨 곳에 묘를 썼다. 하지만 너무 젊어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까? 주산의 맥도 부족한 듯 하고 앞쪽으로 좋은 안산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훌륭한 인물의 묘가 꼭 훌륭한 곳에 자리하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묘를 잘 쓰면 후손들이 복을 받을 뿐 아니라, 묘의 주인도 후세에 명성을 얻게 돼요. 이번에는 이곳과 좀 다른 묘를 찾아가 보는게 좋겠네요."취재팀은 조광 선생의 안내로 인근 신북면 삼성당리로 향했다. 이곳에는 6~8대와 10대까지 국회의원을 네차례나 지내고, 1970년대에 내무부장관까지 지냈던 오치성의 묘가 있다. 오치성은 황해도 출신으로 5·16군사정변에 핵심으로 참여했으며, 박정희 정부의 요직을 맡아온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자. 이곳의 묘는 지금까지 봐왔던 묘들과 좀 분위기가 다를 겁니다. 음택이 자손에게도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곳이지요."조광 선생의 설명처럼 오치성의 묘역은 넓고 깨끗하게 단장돼 후손들이 번성해 있음을 실감케 했다. 묘역 입구에는 송덕비와 불망비가 줄지어 서있고, 묘역을 오르는 길을 비롯한 묘역 주변에는 일부러 옮겨 심은 좋은 나무들이 빼곡하다.묘 주변에는 문인석과 석등 뿐 아니라, 묘를 찾아온 가족들을 위해 돌로 만든 벤치까지 곳곳에 마련돼 있다. 후손들이 잘 되어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묘역을 정성껏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이곳 묘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른쪽으로 감아돈 백호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맥도 잘 탔고, 청룡도 왼쪽으로 잘 뻗어 있지만, 백호가 두텁게 뻗으며 혈은 안듯이 감아 돌아왔어요. 게다가 백호의 끝이 미약해지지 않고 작은 봉우리를 맺으며 감싸들어 왔으니, 자손들에게 부귀가 들어올 수밖에 없겠지요."묘역 아래를 살펴보니 사각형의 연못이 자리해 있다. 논밭이 있어 물이 있는 곳에 일부러 공을 들여 사각형의 연못을 만든 것으로 보였다.혈 앞에 놓인 이같은 연못을 지당수(地塘水)라고 하는데, 지당수가 깨끗하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면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한다. 바로 옆 백호에 해당하는 낮은 언덕의 끝에는 약수터가 정갈하게 만들어져 있어, 이곳이 맑은 물이 솟는 명당임을 알 수 있게 했다."포천은 기운이 좋은 땅입니다. 하지만 기운이 좋다고 아무데나 음택·양택을 해서는 안되고, 풍수의 가르침에 따라 좋은 자리를 골라 묘와 집터를 써야 후손에게 좋은 기운이 전해지게 되는 것이지요. 후손이 잘 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묘역을 보면 알 수 있고, 또 그로부터 풍수의 중요함을 확인할 수 있으니, 오늘은 좋은 공부를 한 셈입니다."/박상일기자

2013-12-03 박상일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좋은 기가 흐르는 집 -풍수 인테리어 >4<

■ 건강한 욕실·화장실집안의 욕실 또는 화장실은 '물'의 기운을 갖고 있어 가족들의 건강과 부부간의 애정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욕실과 화장실을 지저분하게 방치하면 가족들의 건강을 해치고 부부간의 잦은 다툼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물이 고여 있거나 습기가 차지 않게: 늘 물이 흐르는 욕실·화장실은 습기가 차기 쉬운 장소다. 하지만 풍수인테리어에서는 습기가 복을 낮추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욕조에 물을 받아두거나, 샤워 등으로 여기저기 물이 고여 있지 않도록 한다. 또 자주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해 습기를 제거하고 좋은 기운을 불러들이는 것이 좋다.▲소품으로 나쁜 기운을 차단: 욕실의 문 옆에 작은 화분을 놓거나, 욕실 문에 밝은 색채의 소품을 걸어두면 나쁜 기운을 차단할 수 있다. 욕실에는 기본적으로 창이 있는 것이 좋지만, 만약 창이 없는 욕실일 경우에는 좋은 기운을 불러들이기 위해 붉은 계열의 꽃 화분이나 욕실용품을 놓아둔다.욕실 앞에 깔아 두는 매트는 남편의 운과 관계있는 소품으로, 지나치게 낡을 때까지 사용하면 남편의 기운이 떨어진다. 반면 지나치게 화려한 매트를 사용하면 남편이 집에 잘 안 들어올 수도 있다.▲ 밝게 하고 정리하라: 욕실·화장실에 고여 있는 탁한 기를 풀어주기 위해 전체적으로 욕실·화장실은 밝게 꾸며주는 것이 좋다. 욕실에 좋은 타일 색은 깨끗한 흰색이나 연겨자색이다. 세면대 주변에는 이런저런 여분의 물건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지 않도록 정리한다.휴지나 욕실 비품은 욕실 바깥 수납공간에 보관하거나 꼭 필요한 만큼만 수납장 안에 보관한다. 갈아입고 난 옷이나 사용하고 난 수건을 욕실에 그대로 던져 놓는 것도 나쁜 기운을 불러들이고 좋은 인연이 생기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곧바로 치운다.▲ 욕실문, 변기 뚜껑은 닫아둔다: 욕실·화장실 문이 열려 있어 바로 변기가 보인다면 나쁜 기운에 노출되기 쉽다. 환기나 습기 제거를 위해 일부러 욕실 문을 열어 놓은 경우가 아니라면 욕실 문은 닫아둔다. 나쁜 기운이 나오는 변기 뚜껑은 귀찮더라도 항상 잘 닫아두도록 한다.▲기의 흐름을 막지 않는다: 좁고 막혀 있는 공간인 욕실에 샤워커튼을 다는 것은 기의 흐름을 차단시키는 일이다. 욕실 비품들을 수납하기 위해 욕실에 여러 개의 선반을 붙이는 경우도 있는데, 역시 기의 흐름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좋지 않다./※출처 : 다음 카페 조광의 자연풍수 (http://cafe.daum.net/mirpoongsu)

2013-11-04 경인일보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10]오산

산 높지 않고 구릉 많은 곳난립 건물 맥 끊어 안타까워시청 터 산수 고려하지 않아금암리 지석묘군 명당 자리도시의 상징 독산성 福 불러주봉 멋지고 양 봉우리 장관산이 높지 않아 기운이 부족한 곳을 독산(禿山)이 품어주니 주민들에게는 복이로다.하지만 우후죽순 아파트와 공장이 들어서 가뜩이나 부족한 땅의 기운을 끊으니, 이곳 역시 안타까움 가득하네.오산시는 지난 1989년 1월 1일 오산읍에서 승격해 오산시가 되면서 비로소 독립된 자치단체가 됐기 때문에, 24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면적도 42.7㎢에 불과해 이웃 화성시(688.4㎢)는 물론 수원시(121.01㎢)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인구는 20만을 조금 넘는 규모여서, 수도권에서는 비교적 작은 도시로 꼽힌다.하지만 오산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는 유서깊은 지역이고, 최근 들어서는 철도와 고속도로가 사방팔방으로 이어진 교통의 요지로 꼽히면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고 곳곳에 공장들이 들어서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오산은 전체적으로 산이 높지 않고 낮은 구릉이 많아요. 그만큼 산의 기운이 부족하니 걸출한 인물이 나오기 어려운 곳이지요."오산 둘러보기는 그리 큰 기대감 없이 시작됐다. 워낙 면적이 작은데다가, 눈에 띄는 건물이나 묘가 몇곳 없어서 풍수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소재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오산 풍수여행은 오산시청이 출발지가 됐다. 시청 인근은 택지개발지구로 개발돼 아파트와 상가가 빼곡하게 들어선 곳이다. 오산시청은 인근 중앙동 구도심에 자리해 있다가 지난 200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워낙 넓은 평지에 택지개발이 진행됐고, 그 한가운데에 시청이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간 셈이에요. 주변에 이렇다 할 산이나 물줄기도 없는 택지개발지구이다 보니 풍수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겠네요."시청을 출발해 구도심을 둘러보고는 금암동에 자리한 '금암리 지석묘군'(경기도기념물 제112호)을 찾았다.인근 외삼미동 지석묘군과 함께 오산시에 자리한 대표적인 지석묘군으로 꼽히는 이곳에는 모두 11기의 지석묘(2기는 추정)가 밀집해 있다.지석묘가 자리한 산자락 일대는 고인돌 보존을 위해 '고인돌 공원'이 만들어져 지금은 인근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다른 지석묘들 처럼 이곳 지석묘들도 맥을 타고 올라서지 않고 평지에 가까운 산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어요. 지금은 주변에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 원래의 지형이 많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산자락 아래 앞이 트이고 주변을 언덕들이 둘러싼 아늑한 곳을 택했으니 고대인들도 본능적으로 풍수적으로 좋은 자리를 찾은 셈이에요."조광 선생의 설명처럼 여러 기의 지석묘들이 자리한 곳은 여계산 자락이 품을 펼쳐 푸근하고 안정된 곳이다. 지금은 세교신도시 아파트 단지들이 사방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지만, 조금씩 남아있는 낮은 구릉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여전히 따뜻하고 안정감이 느껴진다.지석묘군을 나오니 큰길가에 '세교2택지개발지구' 사업이 곧 진행될 것이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붙어있다.인근의 가장2산업단지와 세교2택지개발지구 사업이 끝나면 이곳 일대는 오산의 새로운 중심지가 될 예정이다.풍수적으로 볼때 개발이 진행될수록 많은 땅들이 파헤쳐지고 맥이 끊길 수밖에 없어서, 한편으로 안타까움이 밀려든다.다음으로 오산시 궐동의 궐리사(闕里祠, 경기도기념물 제147호)를 찾아갔다. 1792년(정조 16년)에 건립된 이곳은 공자를 모신 사당이다.10년전만 해도 오산의 변두리 한적한 곳이었던 이곳은 이제 상가와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번화가가 됐다.때문에 궐리사의 분위기도 예전처럼 조용하고 경건한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그나마 궐리사 앞마당의 500년 가까이 된 커다란 은행나무는 예전 모습을 지키며 여전히 당당하게 서 있어 위안이 됐다."이곳 궐리사는 특이하게도 사당인데도 산의 맥을 타고 자리를 잡았네요. 풍수에서는 사당을 음택이 아니라 양택으로 여기기 때문에 산소처럼 맥을 타는 자리가 아니라, 주택처럼 평지에 자리를 잡게 하지요. 중국쪽의 영향을 받아 그리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쉬움이 남아요."궐리사가 자리를 잡은 완만한 언덕은 궐리사 뒤쪽으로 맥이 이어져 언덕 너머 물향기수목원에 닿는다. 세교신도시 횡단도로가 가르지 않았다면, 고인돌공원이 있는 여계산 자락으로 이어질 맥이다. 하지만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그 맥이 끊어져 버렸다."다른 도시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우리나라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면서 이렇게 맥을 뚝뚝 끊어 놓는게 큰 문제예요. 오산처럼 기운있는 산이 별로 없는 곳은 그나마 남아있는 맥마저 끊어 놓으면 좋은 인물 나오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요."궐리사를 나와 취재팀은 오산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독산성으로 향했다.독산성과 세마대는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흰쌀을 말에 끼얹어 산성 내에 물이 많은 것처럼 속임으로써 왜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독산성에 오르자 북쪽으로 수원, 동쪽으로 화성 병점과 동탄신도시 일대, 서쪽으로 서오산 지역과 화성 봉담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과 왜군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일만큼 군사적인 요충지로 꼽힌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남쪽편으로 오산이 자리해 있지만 낮은 구릉이 감싸고 있어 시가지는 일부만 보인다.독산성 아래에서 산성 성곽이 있는 곳까지는 콘크리트 포장이 돼 있어 관광객들이나 나들이 나온 주민들이 쉽게 오를 수 있다. 산성 안에는 삼국시대에 창건됐다는 전통사찰 보적사가 자리해 오는 이들을 반긴다."독산은 참 잘생긴 산이에요. 주봉의 생김도 부드럽고 좋은데다가, 옆쪽으로 거느린 작은 봉우리가 장관을 배출한다는 영상사(領相砂)를 이루고 있어요. 이렇게 좋은 산이 자리해 있는 것은 오산은 물론이고 주변 지역에도 복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산의 기운이 좋아 산을 올라오면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주변 주민들이 즐겨찾는 명소가 되는 것이에요."독산성 서쪽에서 내려다보니 서오산을 사방으로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들이 한눈에 보인다.고속도로 옆으로 황구지천이 느릿느릿 흐르고, 주변에는 크고작은 공장들이 서 있다. 독산 자락과 황구지천이 품어주는 풍경은 고속도로와 공장들이 내는 딱딱함마저 여유롭게 풀어준다.자연의 조화를 깨뜨리는 사람들과,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을 품어주는 자연이 대비되며 묘한 감정을 자아내는 모습이었다.글·사진/박상일기자

2013-11-04 박상일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좋은 기가 흐르는 집 -풍수 인테리어 >3<

▲침실 풍수: 침실은 일생의 3분의 1을 지내는 공간이다. 더불어 가정의 화목과 재물운까지도 관여하는 중요한 공간이기 때문에 침실의 컬러와 조명, 가구 위치 등에 모두 신경을 써야 한다.침실 내부 침구나 가구의 색상은 부부의 금실을 좋게 만들 수 있는 노란색 계열이 좋다. 노란색은 맑은 기운을 담고 있어 화합과 사랑을 이끌고 천운과 재운을 불러온다.잠을 자는 공간인 침실의 조명은 밝음과 어두움을 조화롭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아파트의 경우 획일화된 둥근 형태의 밝은 조명이 설치되어 있는데, 부드러운 노란색(백열등) 계열의 간접조명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좋다. 침실에 햇볕이 지나치게 많이 들 때는 이중 커튼을 사용해 빛을 차단한다.안방 침실에는 보통 침대를 사용하는데, 침대를 벽에 딱 붙여놓고 청소를 게을리하는 것은 좋지 않다. 침대 옆 벽과 바닥에 먼지와 이물질들이 쌓이게 되면 나쁜 기운들이 몰리게 되기 때문이다.따라서 침대를 벽에서 20~30㎝쯤 떨어지게 하고, 청소를 자주 해 준다. 수납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침실에 옷걸이나 헹거를 두는 것은 좋지 않다.밖에서 생활하는 옷에는 낮 동안 외부의 온갖 기운들이 달라붙게 되는데, 침실에 이런 옷을 그대로 노출시키면 나쁜 기운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투 등은 수납장 안에 보관하도록 한다. 침대의 방향은 침대에 누웠을 때 문 입구를 대각선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좋으며, 문과 침대가 직선으로 마주보는 것은 좋지 않다.▲아이 공부방 풍수: 아이 공부방의 책상은 출입문을 등지고 앉아서는 안 된다. 출입문을 등질 경우 아이의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렇게 배치된 자리에서 공부를 하면 아이가 마음이 허전한 것을 자주 느끼고 신경질적이 되며, 자주 말다툼, 싸움 등에 휘말리게 된다.책상은 문 쪽을 향하되, 문과 정면으로 마주보거나 방의 한가운데를 차지하지 않도록 비켜 놓도록 한다. 또한 아이의 공부방은 청결을 유지해 주는 것이 좋다. 환기도 자주 해 주어야 한다.아이방의 색깔은 어두운 느낌의 색보다는 알록달록한 색깔이나 밝고 화사한 느낌의 색깔을 선택한다. 아이의 침대와 잠옷은 이보다는 좀 연한 색깔이 좋다./※출처 : 다음 카페 조광의 자연풍수 (http://cafe.daum.net/mirpoongsu).

2013-10-07 경인일보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9] 여주

남한강따라 너른 평야·아늑한 산세종대왕 릉·신륵사 등 명당 많아명성황후 생가 좋은 집터 본보기야산 집 감싸고 맞은편 산세 훌륭맥 길게 뻗은 고려 서희장군 묘역위엄 있지만 앞산 형태 좋지 않아배산임수조차 못지킨 시청사보다지난해 이전 지검·지법 자리 좋아명품아웃렛 청룡백호 둘러싸 안정'남한강이 흐르는 풍요롭고 따뜻한 고장에 명당 또한 많으니, 자연에 거스르지 않으면 복이 들어오리라.'넉넉하게 흘러가는 남한강을 따라 너른 평야가 펼쳐지고, 적당히 기운이 넘치는 아름다운 산들이 푸근하게 에워싸고 있는 여주는 예부터 풍요와 평화의 고장이었다.남한강 수로를 따라 전국에서 필요한 물품이 공급되고, 쌀과 도자기 등 비옥한 땅에서 만들어진 농산물·공산품들이 전국으로 팔려나가니, 오랫동안 부족한 것 없이 평화로움을 누려왔다.최근 들어서는 상수원보호구역 등의 여러 규제에 묶여 발전에 발목이 잡혀 발전이 더뎌지긴 했지만, 지난달 군(郡)에서 시(市)로 승격되며 다시금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조화로운 자연 덕분에 풍수적으로도 명당자리가 많아, 명당중에서도 명당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의 릉(영릉·英陵)을 비롯해 천년사찰 신륵사(3월12일자 9면 풍수테마기행), 명성황후 생가 등이 자리해 있다."여주처럼 산수가 잘 조화된 곳에서는 인물이 많이 나오는 법이지요. 아직까지 다른 도시처럼 마구잡이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으니,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좋은 곳에 양택(陽宅·집)과 음택(陰宅·묘)을 쓴다면 앞으로도 많은 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려 여주 IC를 나오자 바로 인근에 명성황후 생가가 자리해 있다.조선 26대 고종황제의 황후로, 조선말 개화기에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해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다가 을미사변(1895년 음력 8월 20일)때 일본인들에게 시해당한 명성황후가 태어나 8세 무렵까지 살았던 곳이다.생가 일대는 지난 1995년부터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성역화사업이 진행돼 생가뿐 아니라 기념관과 문예관, 감고당 등이 세워지고 일대가 공원으로 잘 정비돼 있다."명성황후 생가의 안채는 1600년대에 지어졌다고 하네요. 오래전부터 민씨 가문이 이곳에 터를 잡고 번성해 왔다는 뜻이지요. 한눈에 보기에도 좋은 집자리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으니, 국모(國母)를 배출한 것이지요."조광 선생은 아담한 생가 이쪽저쪽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간다. 명성황후 생가는 땅을 더하거나 보탤 필요 없는 평탄한 땅에 따뜻한 남쪽을 보고 자리를 잡았다.뒤로는 아담한 야산이 양팔을 벌려 생가를 보듬어 안았다. 맥이 기운차지는 않지만 푸근하고 안정적이다.이곳에서 태어난 명성황후는 어렸을때부터 영리하고 재기가 넘쳐 인근의 칭찬이 높았다고 한다. 자연의 좋은 기운을 타고 태어난 셈이다."생가에서 앞쪽(남쪽)을 보세요. 높지 않은 산들이 부드럽게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안산이 되고 있지요. 명성황후가 역사적으로 조명을 받고, 이곳 생가가 역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이렇게 성역으로 잘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에요."청명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명성황후 생가를 둘러보고 있는 관람객들을 뒤로 하고 여주시청 방향으로 향했다.풍수적으로 배산임수(背山臨水)조차 지키지 못한 시청 청사를 지나면서 조광 선생은 "별로 볼게 없다"는 짤막한 한마디만 전했다.조광 선생은 오히려 강 건너편에 지난해 새롭게 이전해 자리를 잡은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과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이 배산임수를 충실히 따른 안정적인 곳에 자리를 잘 잡았다고 했다."여주를 둘러보다 보니, 넓은 강변에 터를 닦고 집이나 큰 건물을 짓고 있거나 이미 지은 곳들이 많네요. 여러차례 이야기 했지만, 논을 메우거나 강가의 낮은 땅을 높여 집을 짓는 것은 풍수적으로 좋지 않아요. 땅에 물이 많아 음기가 강하기 때문이지요. 자칫 이런 곳에 집을 잘못 지으면 건강이 나빠지고 가세도 기울어지게 됩니다."강가를 떠난 취재팀은 주말마다 수만명의 관광객들이 찾는다는 S아울렛으로 향했다. 마침 휴일에 떠난 취재여서, S아울렛 인근은 몰려든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진입이 쉽지 않았다."보통 이런 상업시설을 조성할때는 홍보효과를 내기 위해 큰길을 마주보고 터를 잡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곳은 오히려 고속도로를 옆으로 두고 산 안쪽으로 터를 잡았어요. 오히려 바로 인근에 자리한 또다른 아울렛이 고속도로를 마주보고 아주 눈에 잘 띄게 조성됐죠.쉽게 생각하기에는 잘 안보이는 곳에 자리해 불리할 것 같지만, 산을 등지고 앞이 터진데다가 좌우 언덕이 청룡백호를 이루며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풍수적으로 안정된 곳에 잘 자리를 잡은 것이에요. 명품매장이 주를 이루는 만큼, 푸근하고 안정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터를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조광 선생은 최근들어 조성된 대기업의 대형매장이나 중요한 건물들이 풍수학의 도움을 받아 터를 잡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북적이는 아울렛을 벗어나 이번에는 한가한 여주 북서쪽 끝 산북면으로 달려갔다. 이곳에는 고려 성종때 거란의 80만 대군을 전투 없이 담판만으로 물리친 장위공 서희(徐熙· 942∼998)의 묘가 있다.묘역의 이름은 '서희 장군 묘'로 되어있지만, 사실 서희는 무신인 '장군'이 아니라 뛰어난 문신이었다.묘역은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자락 아래서 100m쯤 올라간 곳에 자리해 있다.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답게 묘역은 작은 주차장까지 갖추고 위엄있게 모양을 갖췄다."묘역은 묵직하게 뻗은 맥을 잘 타고 조성이 됐어요. 묘 앞에까지 길게 뻗어나간 맥을 보면 보통 사람들이 '과연 서희장군의 묘답다'라고 할 것 같네요. 하지만, 풍수적으로 볼때 청룡백호가 모두 약해 자손들이 큰 은덕을 입기 어려운 형국이고, 앞쪽의 안산도 형태가 뛰어나지 않아요.아까 둘러봤던 명성황후 생가가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기념관이 서고 일대가 공원으로 꾸며진 것이 좋은 안산을 갖고 있어서라고 본다면, 서희장군 묘역은 안산이 뛰어나지 않아 이런 지원을 받기가 어려운 형국이에요. 맥은 잘 탔다고 할 수 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묘역이네요."조광 선생은 오가는 길에 만난 산 중턱을 깎아 조성한 전원주택들을 보면서도 혀를 찼다. "좋은 땅을 두고 저렇게 엉뚱하게 집터를 쓰면 주인도 힘들어지지만, 자연도 상처를 입어요."뉘엿뉘엿 해가 저물 무렵 여주를 떠나며 조광 선생은 "그래도 여주는 풍요롭고 행복한 땅"이라며 " 풍수에서 가르치는 대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곳에 집과 산소를 잘 써서 자손까지 복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덕담으로 취재를 마무리 했다.글/박상일기자사진/김종택기자

2013-10-07 박상일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8] 수원-2

돈 받고서 가세 기울기도'선산 수호' 정신 지켜야■심온 선생 묘역'세종의 장인' 관리 양호도로 탓 끊긴 맥 아쉬워■경기도청풍수적으로 부족함 많아"대권 도전한 前도지사들고배 마신 원인일수도…"■경기도경찰청좋은자리에 터 잘 잡아지나치게 큰 정문은 禍'자연은 있는 그대로 땅의 좋은 기운을 주었으나, 사람의 손이 이를 외면하니 안타깝고 또 안타깝구나.'광교신도시를 둘러본 후 화성행궁을 보기 위해 창룡문 쪽으로 가는 길에 동수원IC 조금 못미쳐 자리한 심온(1375~1418) 선생 묘역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심온은 나이 열두살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른 후, 황해도 관찰사, 대사헌, 형조·호조·공조·이조판서 등을 지낸 조선초의 이름난 문신이다.그의 딸이 세종대왕의 왕비(소헌왕후)가 되었으니, 태종과 사돈지간이며 세종대왕의 장인이기도 하다.1973년에 경기도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된 심온 선생 묘역은 주인의 권세와 청송심씨 가문의 영광을 증명하듯 잘 정비돼 있다."심온 선생 묘는 광교산을 주산으로 크게 뻗어나온 맥을 잘 타고 좋은 자리에 조성됐네요. 주산인 광교산이 든든하게 뒤를 받치면서 산자락을 양쪽으로 펼쳤고, 광교산에서 흘러내려온 낮은 언덕이 묘의 오른편(서편) 경기대학교에서 월드컵경기장과 원천 저수지를 돌아 다시 묘의 왼쪽(동쪽) 광교산 자락으로 돌아오면서 묘 앞쪽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어요. 묘 앞에 연못과 개천이 흐르고, 그 너머로는 광교의 들판이 펼쳐져 편안하면서도 푸근한 느낌이 드는 명당이에요."조광 선생은 심온 선생 묘를 둘러보며 애초에 명당자리에 잘 자리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묘역 주변 사방을 관통하며 지나간 도로들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드러냈다."광교산에서 뻗어나온 맥을 잘 타고 묘를 썼지만, 그 맥의 허리를 영동고속도로가 관통해 버렸어요. 게다가 묘의 왼편으로 묵직하게 뻗은 청룡 역시 묘 앞을 지나는 넓은 도로(43번 국도)가 뭉턱 잘라버렸네요. 애초 도로가 이렇게 넓지 않았을텐데, 아마 용인 상현동과 광교신도시 개발 등으로 길이 점점 넓어지면서 청룡을 더 많이 훼손한 것 같아요. 안타까운 일이죠."조광 선생은 생각이 난 듯 가문들의 땅 관리에 대해 한마디를 더했다."보통 대규모 개발이나 도로 개설 등으로 조상들의 묘가 있는 선산이나 가문의 땅을 옮기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아무리 보상을 많이 받아도 그 뒤로 가문이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조상님들이 잠들어 계신 땅을 팔고 묘를 마음대로 옮기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증거라 할 수 있지요. 뼈대있는 가문들 중에는 선산을 지나는 도로계획을 무산시켜 조상의 묘를 지키는 경우도 많은데, 그 정신과 마음을 지켜야 해요."심온 선생 묘역을 떠나 화성행궁으로 가는 길에 경기도경찰청 앞을 지나자 조광 선생이 또 한번 아쉬움을 이야기한다."경기도경찰청도 애초에 자리는 괜찮게 잡았어요. 그런데 건물을 지으면서 무슨 욕심이 들었는지, 정문을 저렇게 크고 무겁게 지었어요. 본래 건물의 대문은 건물과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정문을 저렇게 기와까지 얹어 지나치게 크게 지었으니, 결국 정문이 건물을 누르는 형세가 됐지요. 저렇게 되면 커다란 정문으로 복이 빠져 나가고, 무거운 정문의 무게 때문에 일이 풀리지 않게 돼요. 욕심이 지나쳐 오히려 화가 된 것이지요."화성행궁을 둘러본 후, 내친김에 경기도의 중심이라는 경기도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현재의 경기도청은 지난 1967년 서울에서 옮겨온 후 46년 동안 경기도의 행정과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해 온 곳이다."1천만이 넘는 경기도민을 이끌어가고 있는 곳이기는 한데, 경기도청은 풍수적으로 부족한 게 많은 곳이에요. 우선 도청의 규모에 비해 도청을 안고 있는 팔달산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기운이 부족해요. 게다가 건물터를 산의 중턱 가까이 올려서 잡았고요.그나마 팔달산 자락이 왼쪽으로 청룡을 이루며 돌아나왔는데, 그마저도 순환도로가 이쪽저쪽으로 가르고 지나가 기운을 끊어 놓았어요. 앞쪽으로도 안산이 될만한 이렇다할 산이나 맥이 없어서, 그야말로 기운이 부족한 터라고 할 수 있어요."조광 선생은 이같은 설명과 함께 "그동안 경기도의 수장(首將)들이 대권을 꿈꾸다가도 번번이 고비를 넘지 못해온 것이, 근거지나 다름없는 경기도청의 기운이 미흡해서가 아니겠느냐"고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더했다.아쉬움은 도청을 떠나 수원시청 앞을 지나면서도 이어졌다. 수원시청의 터가 앞이 높고 뒤가 낮은 형태여서 풍수적으로 볼때 분란이 끊이지 않게 되는 터라고 조광 선생은 지적했다.보기에는 평지처럼 보여도 이렇게 높은 곳과 낮은 곳이 있고 땅의 기운이 흐르는 방향이 있는 만큼, 도시에서도 집이나 건물을 볼때는 땅의 방향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고 조광 선생은 덧붙였다."주욱 둘러본 바와 같이 수원은 진산인 광교산이 넓게 팔을 벌려 푸근하게 감싸안은 좋은 도시예요. 광교산이 높고 강한 산이 아니라 낮고 부드러운 산이니, 수원에 살면 편안하고 화목할 수 있어 살기에 좋은 땅이죠.하지만 워낙 개발이 많이 되어 약한 맥을 이리저리 끊어놓았기 때문에 기운이 부족하고, 그래서 활기가 부족하기도 해요. 수원처럼 활기가 부족하고 상업적으로 흥하기가 쉽지 않은 곳에서는 활기를 줄 수 있는 기업을 붙잡아 놓는 것이 중요한데요, 정책적으로 이런 점을 신경썼으면 좋겠어요."예전 삼성전자의 생산라인이 있을때 수원이 꽤 활기있는 도시였는데, 생산라인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이후로 그런 활기가 많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는 조광 선생은 "앞으로 수원이 부족한 점을 채워 더 좋은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수원 둘러보기를 마무리 했다.글/박상일기자사진/하태황기자

2013-09-09 박상일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좋은 기가 흐르는 집 -풍수 인테리어 >2<

▲ 조명과 화분을 활용하라: 조명은 좋은 기를 내뿜고, 화분은 나쁜 기를 빨아들인다. 조명등이 파손돼 못쓰게 되거나 끊어진 전구가 없는지 살펴보고, 집안에서 가장 어두운 곳을 찾아 나쁜 기운이 머물지 않도록 조명을 설치해야 한다.침실 외에는 조명을 밝게 해야하는데, 특히 기가 흐르는 현관을 밝게 하는 것이 좋다. 거울, 특히 크고 화려한 장식의 거울은 기를 분산시키거나 반사해 기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치우는 것이 좋다. 기의 흐름이 좋지 않아지면 가족의 화합을 해친다.거울을 치우기가 어렵다면 선인장이나 난 화분 등으로 거울을 약간 가려 주어야 한다. 집의 구조상 방문들이 가운데 복도에 몰려 있는 것도 기의 흐름에 좋지 않다. 이때는 각 출입문 들이 만나는 복도 벽면에 작은 화분을 놓아 충돌을 완화해준다.▲ 부엌을 깨끗하게: 부엌의 인테리어를 잘못하면 금전 운이 가스레인지에 타버리거나 싱크대로 흘러들어가 버리게 된다. 부엌은 깨끗하고 잘 정리돼 있어야 하며, 불의 기운과 물의 기운이 잘 조화를 이뤄야 한다.충동구매를 잘하고 큰돈을 자주 빌리는 사람은 부엌이 기름때로 끈적이거나 더러운 그릇을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사용하지 않는 낡은 그릇들은 쌓아 두지 말고 과감하게 처리하는 게 좋다. 드문 경우지만, 키 작은 냉장고 위에 전자레인지를 올려놓는 일은 금기다.물과 불의 반발로 인해 분쟁이 끊이지 않게 되고 헛돈을 쓰게 된다. 공간이 좁아서 불가피하다면 중간에 두꺼운 판을 놓아준다. 싱크대 매트는 초록색으로 깔면 재물운과 남편의 성공을 기약할 수 있다.▲ 집과 어울리지 않는 장식은 금물: 간혹 여행지나 출장지에서 인형이나 액자, 도자기 등을 사온 후 마땅히 둘 곳이 없어 거실이나 침실에 장식용으로 놓아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오히려 집안의 금전적 기운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이는 공간(집)이 지닌 기운과 여행지에서 구입한 장식품의 기운이 서로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선물을 사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다만 꼭 필요한 물건, 집과 잘 조화되는 물건을 고려해 구입하라는 것이다.특히, 주술적 의미가 있는 목각인형이나 맹수·맹금류의 박제품, 총이나 칼 같은 살상무기 모형, 고단한 모양의 사람 조각품, 괴기스러운 목재 가구나 괴기영화 홍보물 등은 금전운을 달아나게 한다./※출처 : 다음 카페 조광의 자연풍수 (http://cafe.daum.net/mirpoongsu).

2013-09-09 경인일보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7]수원-1

"진산인 '광교산' 시내 감싸안아사람들이 살기에 아주 좋은 형세정조가 제2의 수도로 점찍을 만해"좁은지역에 인구 100만명 밀집자연의 흐름 훼손한 경우 많아외관만 커진 '누더기 도시' 우려평안과 화목은 이룰 수 있으나, 큰 인물이 나기 어려우니 안타깝기 그지없구나.온통 파헤쳐 도시를 만들고 광교산 자락까지 훼손하니, 자연의 기가 흐르지 못해 기력이 쇠할 수밖에 없네.수원은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정조의 효심(孝心)이 깃든 도시다.25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정조는 비운에 간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사도세자의 묘소를 화산(花山)으로 이장하고, 현재의 수원에 화성행궁을 중심으로 계획된 신도시를 건설했다.정조는 매년 화성행궁에 행차해 머물며 묘소에 참배하고 많은 민원들을 처리하며 백성들을 돌봤다.지금의 수원이 된 정조의 화성신도시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담긴 도시이자, 서울 남쪽의 요지에 경제적으로 부강한 계획도시를 건설해 왕권의 배후 도시로 삼겠다는 정조의 정치적 개혁의지가 담긴 도시이기도 했다.이 같은 정조의 꿈은 정조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며 미완성으로 끝났다.하지만 수원은 이때부터 경기남부의 핵심 거점도시로 성장해, 이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가진 도시일 뿐 아니라 경기도의 수부도시이자 인구 115만의 대도시가 되었다."수원은 진산(鎭山)인 광교산이 편안하고 푸근하게 감싸안은 도시입니다. 광교산은 높지도 산세가 험하지도 않고, 품을 넓게 펼쳐 수원을 북쪽에서 감싸안고 있어요. 또 광교산에서 발원한 물이 수원천과 원천천을 이루며 수원으로 흘러내리니, 수원은 풍수적으로 사람이 살기에 아주 좋은 곳이지요."조광 선생은 수원 둘러보기를 시작하면서 '수원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칭찬으로 화두를 떼었다."이렇게 산이 높지 않고 주산의 맥이 완만하고 편안하게 이어지는 형국이면 풍수적으로 화목함이 좋아지는 곳입니다. 다방면으로 많은 지식을 쌓았고, 당대의 지식인들을 신하로 거느렸던 정조께서 이곳 수원에 행궁을 짓고 제2의 수도를 건설하려 했던 것이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정조의 입장에서 '화목함'이란 효를 뜻하기도 하고, 정치적으로 갈등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으니, 더없이 좋은 의미가 되었겠지요."영통구청 앞에서 출발한 취재팀은 수원의 진산인 광교산 쪽으로 길을 잡았다. 새로 난 길을 따라 광교신도시로 접어들어 한창 건설과 입주가 진행중인 신도시 한가운데를 둘러보았다."광교신도시는 푸근한 광교산을 배경으로 호수를 끼고 있어 풍수적으로 참 좋은 곳입니다. 수원에서도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꼽을 수 있지요. 하지만 이렇게 산이 낮고 완만하게 감싸안아 푸근한 곳은 사람이 살기는 좋지만, 상업적으로는 번성하기 어려운 곳이기도 해요. 그래서 광교신도시는 상업적으로는 크게 번성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조광 선생은 광교신도시뿐 아니라 수원시가 전체적으로 같은 형국이어서 한곳에서 오랫동안 상업적인 번영이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팔달문 일대나 인계동 일대, 영통지역 등이 모두 상업적으로 번성함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모두 이런 이유라는 설명이다."사실 상업적으로, 특히 음식점이나 술집과 같은 업종이 잘되기 위해서는 풍수적으로 훨씬 험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삶이 부침이 심하고, 욕심과 욕구가 높아질 때 이런 업종들에 사람이 몰리게 되지요. 반대로 수원은 요란스럽지 않고 '화목한' 곳이니 상업적으로 좀 어려워도 복 받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하지만 조광 선생은 수원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차츰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큰 도로들이 산의 맥을 끊고 지나간 곳, 중요한 맥을 끊어버리고 대규모로 아파트를 지어놓은 곳 등을 지날 때마다 혀를 찼다."수원이 다른 시군에 비해 지역이 좁은 데다가 100만이 넘는 인구가 몰리다 보니, 그나마 약한 맥들을 대부분 훼손해서 개발을 해버렸어요. 워낙에 진산인 광교산이 강하지 않은 산인 데다가 맥이란 맥을 모두 끊어놨으니, 이곳에서 큰 인물이 나오기가 어려워졌어요. 풍수를 모르면 이렇게 도시 전체의 기운을 끊어 놓아 인물이 나오기도 어렵고 도시가 발전하기도 어려워지게 만들지요.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창룡문을 지나 화성행궁 쪽으로 내려가면서 낡은 구도심의 집과 상가들을 바라보는 조광 선생의 눈에 안타까움이 가득했다.선생은 "개발에 눈이 멀어 자꾸만 외곽에 신도시를 만들면, 결국 구도심은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개발이 이어지면 결국 도시는 크기만 커지고 곳곳이 황폐해진 누더기 도시가 된다"고 지적했다.취재팀은 수원천을 건너 정조의 효심이 담긴 화성행궁에 다다랐다. 행궁을 묵묵히 바라본 조광 선생은 행궁 옆으로 난 팔달산을 오르는 길을 몇 발짝 올라 주변을 둘러본다."정조께서 화성행궁의 터를 잡기 위해 얼마나 고심을 했겠어요. 행궁의 방향이 동쪽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보통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행궁은 뒤로는 팔달산을 배경으로 놓았고, 앞으로는 광교산 자락이 왼쪽에서 앞쪽까지 이어지며 훌륭한 안산이 되고 있어요. 행궁의 위치를 팔달산의 동북쪽으로 치우치게 함으로써 맥이 약한 오른쪽을 팔달산 자락으로 보완했고, 행궁 앞으로 수원천 물이 흐르니 풍수적으로 자리를 잘 잡은 것이지요. 하지만 계속된 개발로 행궁에서 광교산을 바라보는 시야를 건물들이 가리고, 중간중간 맥을 끊어 놓아 이제는 광교산의 기운을 받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행궁을 나와 인계동 일대를 둘러보면서 조광 선생은 다시한번 사람의 '욕심'이 가져온 개발의 문제를 지적했다."인계동 일대가 옛날에는 대부분 논이었지요. 예전에도 몇 차례나 이야기를 했지만, 이렇게 논을 메워 개발을 한 곳은 자꾸 어려운 일이 생겨요. 넓은 평지이니 개발하기는 쉬웠겠지만, 풍수적으로는 물이 나고 음습한 곳이니 개발을 하지 말았어야 할 곳이에요."인계동 일대 상권이 예전같지 않다는 설명을 들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조광 선생은 마지막으로 "더 이상 광교산을 훼손하거나, 풍수에 역행하는 대규모 개발이 수원에서는 이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로 첫 번째 수원 둘러보기를 마무리했다.글/박상일기자

2013-08-05 박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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