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좋은 기가 흐르는 집 -풍수 인테리어 >1<

좋은 터에 집을 짓는다고 무조건 잘되는 것은 아니다. 집의 방위가 좋다고 해서 무조건 잘되는 것도 아니다.집안에 좋은 기운이 잘 흘러야 하고, 나쁜 기운은 없애거나 막아야 주인이 건강과 재복(財福)을 얻을 수 있다.풍수에서는 가구와 소품, 조명, 색 등을 이용해 좋은 기운이 흐르는 집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데, 이것이 '풍수인테리어'다.조금만 신경을 써도 우리집을 '명당'으로 만들 수 있는 풍수인테리어의 핵심을 몇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크고 화려한 집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흔히들 집이 크고 고급스러우면 기가 잘 통한다고 생각하는데, 집의 크고 작음은 기의 흐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너무 크고 호화로운 가구들이 즐비한 집보다는 작더라도 꼭 필요한 가구를 단정하게 정리해 놓은 집이 기가 훨씬 충만한 집이다.분수에 맞지 않게 큰 집은 주인의 기를 공간에 나눠주는 꼴이 되어 좋지 않다. 기는 모일수록 좋은 것이므로, 약간 작은 공간에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것이 좋다.▲ 집에는 기가 흐르는 포인트가 있다 :모든 집은 동북쪽과 남동쪽에 신성한 기운이 있다. 신성한 기운이 막힘없이 잘 흘러야 한다.집안에서 기가 흐르는 포인트는 현관에서 집안을 바라볼 때 왼쪽과 오른쪽 대각선 지점, 현관에서 볼때 오른쪽 모서리 지점, 그리고 현관 바로 맞은편 지점이다.이곳에는 기의 흐름을 막거나 나쁜 기운을 내는 물건을 놓아서는 안된다.▲ 집의 중심선을 살려라 :모든 집은 중심선이 있는데, 이 중심선이 좋은 기운이 흐르는 가장 큰 통로다. 따라서 기가 흐르는 지점에 불필요한 물건이나 덩치 큰 물건이 있다면 당장 치우는 것이 좋다.이것은 사람의 머리나 가슴에 돌덩이를 올려놓는 것과 같다. 정리정돈을 잘 하는 것도 기를 잘 통하게 하는 방법이다.집의 중심선과 복도 등에 기의 흐름을 막는 것들을 치우고, 모서리 같은 곳에도 잡다한 것들이 쌓여있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모서리에 지저분한 것들이 쌓여 있으면 가족을 화합하게 하는 기가 흩어진다. 가급적 실내 공간은 넓게 남겨두고, 자주 환기를 해 기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창은 항상 깨끗하게 하고, 가급적 빈 방이 없어야 좋다.불가피하게 빈방이 있다면 매일 청소를 해주고, 낮에는 문을 열어두어 흉한 기운이 방에 쌓이지 않도록 한다./※출처 : 다음 카페 조광의 자연풍수 (http://cafe.daum.net/mirpoongsu)

2013-08-05 경인일보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6]돌아보기: 음택(陰宅)-2

생전 직접 묏자리 고른 다산후손이 이전한 이춘원 묘역현대 풍수가도 감탄한 명당임진왜란 의병장 이덕남 묘주산의 맥을 못 받는 형국순국선열의 묘역 관심 필요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했으나, 인연이 닿아야 명당에 묻히는구나. 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이의 충절은 말할 수 없이 높아도, 묻히는 자리는 그에 못하니 안타깝기 그지 없네.남양주를 지나는 길에 조안면 능내리에 자리한 정약용 선생 묘역을 찾았다.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잘 알려진 대로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이자, 정치·경제·문학·철학·의학·자연과학 등에 두루 조예가 깊었던 시대가 낳은 인물이다.정조의 명에 따라 30세의 나이에 수원화성 축조라는 엄청난 대역사를 맡을만큼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75년을 살면서 17년을 유배지에서 보낼 만큼 많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오랜 유배 생활로 고향에 대한 향수가 남달라서 였을까? 정약용의 묘는 자신의 생가와 나란히 조성돼 있다.묘역과 생가 등이 잘 정비된 다산 유적지를 들어가 야트막한 언덕위에 조성된 정약용의 묘소를 둘러보았다.정약용은 세상을 떠나며 자식들에게 "지관한테 묻지 말고 집 뒷동산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고, 유언대로 집 뒷동산에 묻혔다.언뜻 보면 자신이 태어난 곳에 대한 향수로 평범한 뒷동산에 묻힌 것 같지만, 이곳은 풍수가들이 보기에 보통 명당자리가 아니다.취재팀이 묘소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풍수를 공부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 여럿이 묘를 둘러보고 감탄을 한다.각종 학문에 통달했던 정약용이 굳이 그렇게 유언한 이유가 그곳이 명당임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정약용의 묘역은 춘천 쪽에서 흘러오는 북한강과 충주에서 달려온 남한강이 합수돼 만나는 곳, 팔당호가 삼면을 둘러싸듯 흐르는 좋은 자리에 있다.뒤쪽으로는 멀리 예봉산과 갑산, 운길산이 버티고 서서 묘역까지 맥을 흘려보낸다. 좌우로 청룡과 백호가 감싸 안았는데, 위압적으로 높지 않고 눈높이에서 부드럽게 이어져 보기에도 편안함이 느껴진다."좋은 곳에서 태어났으니 좋은 인물이 되었고, 스스로 풍수를 볼 수 있으니,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명당을 찾은 것이겠지요. 명당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어요. 다만 인연이 닿지 않고,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어서 찾을 수 없을 뿐이지요. 반면 다산은 인연과 혜안을 다 가진 인물이었던 겁니다."다산 유적지를 나서면서 조광 선생은 아직도 우리나라에 좋은 산소 자리와 집자리가 많이 남아 있는데도, 풍수를 모르거나 무시해서 집안이 망하는 자리에 산소나 집터를 쓰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다산 유적지를 나와 북한강변을 끼고 청평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조광 선생이 잠시 차를 멈추게 한다.산소를 잘 쓴 사례를 하나 더 보여준다고 하며 찾아간 곳은 이춘원 선생 묘역(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남양주 향토유적 제6호)이다.큰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신도비가 서 있고, 그 뒤로 기념관이 자리해 있다. 묘는 기념관의 뒤쪽 언덕에 있다.이춘원(李春元·1571~1634)은 조선 선조때의 문신으로 병조참의와 우승지, 충청도관찰사 등을 지낸 인물이다.충청도관찰사 시절에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하려 하자 반대하다가 파직되었고, 굳은 지조와 문장으로 당시 많은 존경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인조반정을 다룬 사극 등에서 자주 등장할 만큼 중요한 인물로 꼽힌다.이춘원의 묘역은 맥이 마치 사람 손으로 쌓아 다져놓은 것처럼 뚜렷하게 흘러나왔다. 주변에는 후손들의 묘가 여럿 자리해 있는데, 가장 좋은 자리에는 역시 선생의 묘가 자리해 있다.국도변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자리이고, 앞쪽으로도 이런저런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데도 묘역은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평온하다.좌우로 청룡과 백호가 뚜렷하고, 앞으로는 북한강이 굽이굽이 흐른다. 강 뒤쪽으로는 뚜렷한 토채들이 여럿 솟아있어, 묘의 주인과 자손들이 중요한 자리에 올랐음을 짐작케 했다.자료를 찾아보니 이춘원의 묘는 하남시 감북동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자손들이 잘되면서 인연이 닿아 지금의 자리에 옮겨올 수 있었던 셈이다.묘 아래 기념관도 최근 몇년 사이에 지어진 것이어서, 자손들이 번성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집작할 수 있었다.묘역도 정비가 잘되어 보기에도 깔끔했는데, 지금도 이곳저곳 계속해서 정비를 하고 있어 후손들의 정성이 엿보였다.이처럼 정약용의 묘와 이춘원의 묘는 스스로, 또는 자손들에 의해 명당 자리에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취재팀이 둘러본 묘 중에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고도 좋은 자리에 안장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안성에서 찾아간 이덕남 장군 묘(안성시 미양면 구수리, 경기도기념물 제26호)에서 조광 선생은 '볼 것이 없다'며 이내 발길을 돌렸다.이덕남(李德男 ?~1592)은 임진왜란 당시 안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친 의병장이다.홍자수·홍계남 등과 함께 안성 일대에서 활약하며 왜적을 격퇴하던 중 죽주산성에서 왜적의 기습을 받아 전사했고, 현재의 자리에 묻혔다.그의 공을 높이 사 후에 조정으로부터 충신지문(忠臣之門)을 받고 병조참의에 추증됐지만, 전란의 와중이어서 그랬는지 풍수학에서 볼때 큰 점수를 줄 수 없는 곳에 묘역이 조성됐다.이덕남의 묘역은 '회룡입수(回龍入首)'형으로 주산(조종산)이 한바퀴 휘돌아 혈을 맺은 형태로 본다.본래 회룡입수해 혈을 결지하면 발복이 크고 오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덕남의 묘는 주산의 맥이 힘있게 이어지지 못해 기운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묘 앞에 서 보아도 다른 명당들처럼 안정되고 푸근한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은 한분한분 모두 소중하지요. 하지만 이분들이 모두 좋은 자리에 묻힌 것은 아니에요. 가장 좋은 예로 국립현충원을 보아도 그렇죠.전직 대통령이나 높은 직에 계셨던 분들은 그중 좋은 자리에 들지만, 그렇지 않은 이름모를 용사들은 골짜기나 맥의 옆구리에 쓴 경우가 수두룩 해요. 자손들이 있는줄 모르겠지만, 잘 될리 없는 곳에 산소를 써야 했으니 가슴이 아플 수밖에요."이덕남 장군의 묘역을 나서며 조광 선생은 "명당은 인연이 닿아야 만날 수 있다고 하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묘를 써주어야 후손들이 잘되어 또다시 나라를 위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아쉬움 가득한 한마디를 던졌다./박상일기자사진/김종택기자→ 전편에서 이어짐■ 혈지로 부적합한 땅혈 주변이 공사 등으로 굴착·토석 채취로 파인곳 피해야풍수학에서 '혈(穴)'이란 땅의 생기가 흐르는 '맥(脈)' 중에서도 가장 생기가 몰린 곳을 말한다. 좋은 땅의 기운이 모인 곳이므로 묘지터, 집터, 마을터 등으로 쓰면 길한 곳이다.반면에 땅의 기운이 좋지 않으면 좋은 혈도 나올 수가 없고, 이런 곳에서 억지로 혈이 될만한 곳을 찾아내 묘지터나 집터를 쓰면 불행을 맞게 된다. 다음은 땅의 기운이 나빠 혈지로 적합하지 않은 땅이다.▲파면한 땅- 혈 주변이 공사 등으로 인해 굴착됐거나, 토석의 채취로 인해 파이고 부서진 곳. 혈장이 파손되면 생기가 누설돼 흩어지기 때문에 화만 있고 복이 없는 매우 흉한 땅이 된다.▲흘두한 땅- 산 자갈이 흙과 섞여 있는 땅으로 사람의 얼굴에 부스럼이 난 것처럼 지저분한 땅. 생기가 흐르지 못하기 때문에 용렬하고 우둔한 자손이 나온다.▲산만한 땅- 용(龍·산의 줄기 또는 맥)과 주변 산수가 흩어진 땅. 용맥이 단단하게 뭉쳐 오는 것이 아니라 질서없이 퍼져서 오면 기가 모이지 않아 허약하다. 재물이 달아나 가난해진다.▲유랭한 땅- 골짜기가 깊어 음침하고 추운 땅. 용맥과 혈이 결지할 수 없어 생기가 없는 땅이다. 시신이 찬 곳에서 육탈되지 않으면 나쁜 기운만 발산해 자손들이 일찍 큰 화를 당한다.▲첨세한 땅- 현지가 뾰족하고 나들어 생기가 머무를 수 없는 땅. 자손들에게 재앙이 끊이지 않는다.▲탕연한 땅- 혈지가 너무 낮거나 넓어서 물이 들어올 염려가 있고 비만 오면 질퍽거리는 땅. 흙이 거무튀튀하게 죽은 생기없는 땅으로, 재산이 없어지고 자손이 끊긴다.▲완경한 땅- 혈의 입수(入首) 부근이 곧고 딱딱하며 무딘 땅. 보통 왕모래가 많이 있으며, 사람이 오를 때 죽죽 미끄러진다. 모래 사이로 물과 바람이 드나들어, 자손이 온갖 흉화를 당하고 망하게 된다.※출처 : 다음 카페 '조광의 자연풍수'(http://cafe.daum.net/mirpoongsu)

2013-07-08 박상일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5]돌아보기: 음택(陰宅)-1

세상 떠난 이들이 머물러 '음택' 이라 불러중요성 간과한채 흉지 택할 경우 불행 초래명당에 잘 모시고 보존하는게 풍수의 기본정확한 혈지에 맥 잘 탄 소화묘원, 좋은 예지난 3월부터 남양주·양평·여주, 가평, 안성을 둘러봤다. 그동안 풍수 테마기행을 연재하면서 현재 사람이 살고 있거나 짓고 있는 건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썼다.하지만 취재팀은 돌아보는 경로에서 크고작은 산소와 그 주변을 주의깊게 살펴보는 일을 잊지 않았다. 풍수에서는 세상을 떠난 이가 머무는 곳인 산소와 그 주변을 '음택(陰宅)'이라 하여, 살아있는 이가 머무는 집인 '양택(陽宅)'과 함께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하지만 최근 들어 장묘문화가 화장(火葬) 중심으로 바뀌면서 음택에 대한 관심이 예전같지 않아서, 새로이 산소를 쓰거나 조상의 묘역을 이장하면서 풍수를 무시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조광 선생은 이 같은 세태를 두고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고, 나라가 자꾸만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이유"라고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우리 옛말에 '뼈대 있는 가문'이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바로 조상을 명당에 잘 모셔 몇 백년이 흘러도 유골이 잘 보전되고, 그 덕분에 번성한 가문이 됐다는 뜻이에요.성공한 가문, 오랫동안 위세를 떨치고 있는 가문의 토대가 바로 조상님을 잘 모신 데 있다는 뜻이지요. 반면에 '뼈도 못 추린다'는 얘기도 있어요. 큰 불행을 만난다는 뜻이죠.그 말도 근원을 따져보면 조상을 흉지에 묻어 땅을 파 봐도 유골 하나 건질 수 없으니 불행해진다는 뜻이에요. 결국 조상의 무덤을 잘 쓰느냐, 잘못 쓰느냐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잘되거나 못된다는 풍수의 기본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지난 3월 풍수테마기행의 첫 번째 현장 답사로 남양주를 향해 떠나는 길. 취재차에서 조광 선생은 '음택'의 중요함을 화두로 꺼냈다.풍수학자가 음택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세상 사람들이 이런 중요함에 너무도 무지하고, 그 때문에 빚어지는 많은 불행들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라고 하는 조광 선생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난다.팔당댐을 지나 강변의 구도로를 타고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들어섰다. 봉안대교 아래를 지나가며 왼쪽을 보니 봉안터널 뒤로 커다랗게 자리한 천주교 소화묘원이 눈에 들어온다.천주교 소화묘원은 눈앞으로 팔당호와 양수리 두물머리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어 사진가들에게 '출사 명당'으로 꼽히는 곳이다. 이렇게 산등성이에서 물을 바라보는 전망좋은 곳이 명당일까?"소화묘원은 기본적으로 맥을 잘 타고 조성됐고 눈앞에 강이 흐르니 자리를 잘 잡았다고 할 수 있지요.하지만 산소는 산이 좋다고 아무 데나 쓸 수 있는 게 아니고, 정확한 혈자리에 써야 됩니다. 저렇게 많은 묘 중에서 그런 자리가 몇 개나 될까요.오히려 저들 중에는 맥의 옆구리에 쓴 묘, 수맥 위에 쓴 묘, 골짜기에 쓴 묘들도 많겠지요. 혹시 공원묘지에 산소를 쓰게 되더라도 이런 자리에 쓰지 않도록 자리를 잘 살펴야 해요."천주교 소화묘원을 떠나 다산유적지를 향해 조금 더 가니 '한확 선생 신도비'라는 안내표지를 만난다. 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야트막한 언덕 중간에 잘 정비된 한확 선생의 묘소가 있고 그 아래 비각에는 커다란 신도비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높지도 않은 곳에 요란스럽지 않고 단정하게 자리잡은 이 묘역은 풍수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명당 중 하나로 꼽힌다.이 묘역으로 인해 일대가 '능안마을'로 불렸고, 행정구역도 능내리가 될 만큼 중요한 묘역이다. 묘의 주인인 한확(1403~56)은 누님이 명나라에 공녀(貢女)로 들어가 황제의 비가 되었고, 그의 딸은 조선 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덕종)의 빈으로 들어가 성종을 낳은 유명한 인수대비이니 말 그대로 '뼈대 있는 집안'이다."자, 묘의 혈자리에 서서 앞을 보세요. 주변의 산들이 평범한 듯 보이지만, 위압적이지 않고 좌우를 잘 감싸고 돌아 편안하고 따뜻함이 느껴지지요. 좋은 자리에 묘를 쓰면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들도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조광 선생의 설명처럼 묘역에 올라 앞을 보니 왼쪽으로 청룡이 부드럽게 앞쪽으로 돌아나오며 길게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백호가 감아돌며 길 앞에까지 내려선다. 산들이 거칠거나 위압감을 주지 않고 봉긋봉긋 부드러운 형태로 이어지며 감싸고 있어 보기에도 편안하다.멀리 앞쪽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팔당호의 큰 물줄기가 묘역 일대를 휘돌아가며 에워싸고 있고, 묘역의 뒤쪽은 예봉산, 갑산, 운길산이 든든하게 버티고 서서 주봉을 이루고 있으니 틀림없는 명당이다.한확 선생의 묘역을 떠나 양평과 여주로 이어지는 길에서 조광 선생은 중간중간 차를 멈추게 했다. 선생이 가리키는 곳에는 후손들이 묘역을 잘 가꿔 한눈에 보기에도 당당한 묘도 있고, 이미 오래 전에 버려진 듯 초라하게 무너져가는 묘도 있다.평범한 사람 눈에도 잘 가꾼 묘들은 산의 맥을 타고 앉았고, 허물어져 가는 묘들은 골짜기 안에 있거나 맥에서 벗어난 엉뚱한 산비탈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쉽게 생각해 보세요. 산소가 잘 가꿔져 있으면 자손들이 그만큼 출세해서 여유가 있다는 얘기지요. 좋은 자리에 산소를 썼으니, 잘되어 조상도 그 덕을 보는 것이지요.반면 산소가 찾아가기 쉬운 곳에 있는데도 버려져 있다면, 자손들이 산소를 돌볼 여유가 없거나 손이 끊어진 경우가 많겠지요. 산소를 잘못 써 산 사람은 물론 조상들도 욕을 보고 있는 겁니다."첫째날 여정을 마치며 양평에서 광주로 넘어가는 도중 강변길이 거의 끝나는 곳에서 조광 선생은 마지막으로 차를 멈추게 했다. 멀찍이 산중턱에 자리한 묘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묘는 뒤쪽으로 듬직하게 받치고 있는 주산에서 뻗어내린 맥을 타고 들어앉았다. 양쪽으로는 자연스럽게 흘러내려온 좌우의 맥이 살짝 안으로 감아들면서 청룡과 백호를 형성하고 있다. 역시 앞으로는 남한강이 흐른다."산소 주변을 잘 보세요. 주변의 산보다 나무들이 푸르죠. 자세히 보니 좋은 소나무들을 가져다 심은 것 같은데, 그래도 산소 주변의 나무들이 유독 푸르다는 것은 땅의 기운이 잘 모여든 곳이라는 뜻이에요.땅의 기운이 나쁘면 아무리 좋은 나무를 갖다 심어도 시들어 죽게 되죠. 좋은 자리에 산소를 썼고, 묘역이 잘 정비돼 있는 것을 보니, 후손들도 잘돼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수 있어요."조광 선생은 이날 답사를 마무리하며 "좋은 곳에 묘를 쓰고 식당을 내면 살아있는 사람들이 흥하고, 그렇지 않은 곳에 묘를 쓰고 식당을 내면 살아있는 사람들이 망하는 것을 이처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며 "그래서 좋은 풍수학자는 묘나 집자리만 보고 그 집안 내력과 현재의 상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마지막 정리를 했다.땅의 생기가 가장 몰린 '혈지'산세 험하고 가파른곳 피해야■ 혈지로 부적합한 땅풍수학에서 '혈(穴)'이란 땅의 생기가 흐르는 '맥(脈)' 중에서도 가장 생기가 몰린 곳을 말한다. 좋은 땅의 기운이 모인 곳이므로 묘지터, 집터, 마을터 등으로 쓰면 길한 곳이다.반면에 땅의 기운이 좋지 않으면 좋은 혈도 나올 수가 없고, 이런 곳에서 억지로 혈이 될만한 곳을 찾아내 묘지터나 집터를 쓰면 불행을 맞게 된다. 다음은 땅의 기운이 나빠 혈지로 적합하지 않은 땅이다.▲ 조악한 땅-산세가 거칠고, 흉한 암석이 많고, 산봉우리가 너무 커서 우악스러워 아름답지 못한 곳. 극악무도한 사람이 난다.▲ 준급한 땅-산이 높고 산세가 험하고 경사가 급해 사람이 오르기 어려운 땅. 인공으로 산을 깎거나 쌓아 터를 만들더라도 성급한 자손이 나와 패가망신한다.▲ 단한한 땅-주변에서 보호하는 산이 없이 외롭게 노출돼 있는 곳. 가난하고 고독하며, 단신과 과부가 많이 나고 자손이 끊긴다.▲ 옹종이 있는 땅-부스럼이나 종기 같이 더럽고 추잡하여 거칠게 보이는 산. 질병으로 고생하고 큰 재앙을 만나 집안이 망한다.▲ 허모한 땅-토질이 허약해 푸석푸석한 땅으로 생기가 없고 뱀·쥐·벌레 등이 드나드는 연약한 땅이다. 자손이 다치고 재물이 없어진다.▲ 요결한 땅-땅이 움푹하게 꺼지고 부서지고 이지러져 해로운 골바람이 들어오는 땅. 사람이 상하는 일이 생긴다.▲ 수삭한 땅-지세가 약해 혈처가 마르고 가늘게 야윈 곳. 땅이 굶주려 병색이 짙은 형상이다. 자손에게 병이 많고 화를 당하며, 자손이 희귀해진다.▲ 돌로한 땅-주변에서 감싸 보호해 주는 산이 없이 홀로 외롭게 돌출된 땅. 혈을 맺더라도 고독한 승려나 종교지도자가 나오고, 혈을 맺지 못한 땅에서는 과부나 고아가 나온다. → 다음편에 계속※ 출처 : 다음 카페 '조광의 자연풍수'(http://cafe.daum.net/mirpoongsu)/글=박상일기자사진=김종택기자

2013-06-10 박상일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4]안성

인심 순박하고 문화예술 발달 '사람 살기 좋은 곳'10여년 전부터 재조명된 여성 꼭두쇠 '바우덕이 묘'국가서 인정해주는 인물 난다는 '토채' 정면에 위치명필 이해룡 옛집, 커다란 토채 줄이어 명예 상징문필봉 있는 청룡사, 스님·불자들 수양하기 좋아삼한국대부인 순흥안씨 묘, 풍수학적 빼어난 위치안성은 예로부터 평화로운 고장으로 손꼽혔다. 북동쪽으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남서쪽으로 너른 평야가 발달한 안성은 주민들의 인심이 순박하고, 특산물이 많고, 문화예술이 발달한 곳으로 유명해 '사람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조선시대 전국 최고로 꼽혔던 안성남사당이 지금도 명맥을 잇고 있고, 한국 문단의 거목이었던 조병화 시인의 생가와 박두진 시인의 시비가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조선시대 왕실사찰로 유명한 칠장사를 비롯해 청룡사와 석남사 등 천년고찰들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여전히 신자들을 맞고 있고, 미리내성지와 죽산성지 등 천주교 성지들도 자리해 이곳이 평화와 안녕의 상징임을증명하고 있다.전국 3대 장(場)으로 명성을 떨쳤던 안성장과'안성맞춤'의 상징인 안성 유기(鍮器·놋그릇)는 이곳이 오랫동안 풍요로운 고장이었음을 실감케 한다.따뜻한 봄바람을 맞으며 안성을 찾아가는 길은 마음마저 푸근했다. 평화로운 곳을 둘러본다는 여유로운 기분으로 출발했다.남안성IC를 빠져나와 일단 시청 방향으로 향했다. 시가지 주변을 둘러보고 난 후, 풍수학적으로 중요한 몇몇 곳들을 찾아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공단지역을 빠져나와 시청이 가까워지니, 조광 선생이 혀를 끌끌 찬다. 멀찍이 보이는 커다란 흉물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너른 들판 한가운데 불쑥 솟아있는 흉물의 정체는 골조만 세워진 채 공사가 중단된 안성종합버스터미널(가사동 터미널) 복합상가 건물이다. 가사동 터미널은 지난 2008년 도심의 구 터미널을 옮겨와 운영을 시작했지만, 주민들의 외면을 받으며 골칫거리로 전락했다.지금은 터미널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공사가 중단된 복합상가는 뼈대를 드러낸 채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농사를 지어야 할 땅에 이렇게 커다란 건물을 지으니 잘 될리가 없지요. 보세요. 땅이 앞뒤가 모두 터지고 논을 메워 건물 부지를 만들었잖아요. 본래 풍수에서 논은 물이 고이고 음기(陰氣)가 많은 곳이어서 건물을 짓기에 좋지않은 땅이에요. 그저 부지 확보하기 편하다고 논 한가운데를 메워 이렇게 건물을 지으면 안되는 거예요."생각과 달리 시작부터 잘못된 것을 보아서일까? 자꾸만 풍수에 어긋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청을 눈앞에 두고 삼거리에 짓고 있는 커다란 누각을 보고서도 조광 선생의 지적이 나온다."길이 갈라지는 삼거리는 보통 공터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고 지나는 사람들도 많아 자꾸 뭔가를 지으려고 하는데, 앞뒤 또는 양옆으로 길이 난 땅이 좋을 리가 없지요. 게다가 이 누각은 배산임수에도 맞지 않고 땅도 기울어 영 잘못됐어요.안내문을 보니 홍건적의 난을 물리친 안성 주민들의 공적을 기리는 중요하고 상징적인 누각인데, 이런 곳에 안성을 상징하는 건축물을 지으면 안성에 자꾸 시끄러운 일이 생기기 쉬워요. 어째서 이런 곳에 중요한 건축물을 짓고 있는지 모르겠어요."아쉬움을 남겨두고 이번에는 미양면을 거쳐 서운면 청룡리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청룡리는 바우덕이 묘와 이해룡 고가(古家), 청룡사가 모여있는 곳이다.미양면쪽은 일부 개발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전형적인 농촌 풍경을 갖고 있는 곳이다. 중간중간 작은 마을들이 나왔고, 가끔은 작지 않은 규모의 공장이나 물류창고들도 눈에 띄었다."저런... 저렇게 산 중턱을 깎아 커다란 공장이나 물류창고를 지으면 안돼요. 산의 맥을 훼손하는 것은 땅의 정기를 끊는 것이에요. 안성은 가뜩이나 기운 있는 산이 부족한데, 자꾸만 저렇게 산을 훼손하면 좋은 일이 생기지 않고 큰 인물도 낼 수 없게 돼요."산을 뭉턱뭉턱 깎아 커다란 건물들을 짓는 것은 안성만의 일이 아닌데, 조광 선생은 이곳에서 안타까운 표정이 더 진해졌다. 특히 선생은 오가는 길에 몇차례나 본 야산 중턱의 대규모 물류센터들이 영 마음에 걸리는 듯 했다.미양면을 지나 서운면에 들어서자 넓게 펼쳐진 서운산(538m) 자락으로 인해 지형이 바뀌었다. 주욱 이어지는 산자락을 보며 먼저 '바우덕이 묘'를 찾았다.바우덕이는 우리나라 남사당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여성 꼭두쇠로, 탁월한 기예로 안성 남사당패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고는 23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파란많은 인물이다. 바우덕이가 사망하자 유언에 따라 그녀를 돌보던 이들이 그녀를 청룡골 입구 개울가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고 전해진다.쉽게 찾아낸 바우덕이 묘는 전해지는 이야기 그대로 개울가 양지바른 곳에 자리해 있다. 돌보는 이 없어 초라했던 무덤은 10여년 전부터 바우덕이가 재조명되면서 축대까지 쌓고 말끔하게 정비돼 있다.바우덕이 묘를 둘러본 조광 선생은 "생각보다 전체적으로 맥을 잘 타서 묘를 썼지만, 자세히 보면 묘가 약간 왼쪽으로 빗겨났고 봉분 앞쪽 주작(朱雀)이 짧은 것으로 보아 바우덕이는 출신도 좋지 않고 재물도 없는 집에서 태어난 듯 싶다"고 말했다.바우덕이 묘는 명예나 부를 상징하는 청룡이나 백호도 없어서 풍수를 보고 쓴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묘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토체(정상이 평평한 사다리꼴 모양의 산)가 자리해 있다.조광 선생은 "토채가 있으면 국가에서 인정을 해주는 인물이 난다"며 "젊은 나이에 사라진 남사당패의 꼭두라는 존재는 역사적으로 쉽게 잊혀질텐테, 바우덕이가 뒤늦게 재조명을 받으며 안성의 인물로 부각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바우덕이 묘에서 청룡사를 가는 길에 한적한 마을에 자리한 이해룡 고가(古家)에 들렀다. 상량문에 정조21년(1797)에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조선후기 목조주택이다. 이해룡은 조선 중기의 이름난 서예가로 당시 '한석봉에 필적하는 명필'이라는 격찬을 받은 인물이다.2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이 고가에서 내무부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이해구 현 두원공대 총장이 배출됐다고 한다. 목조주택인 이해룡 고가는 규모가 아담하고 측면과 후면에 얕은 돌담을 둘렀는데, 왼쪽으로 얕은 언덕이 돌담을 끼고 흘러내린다. 풍수로 치면 청룡이 감아돌아 '명예'가 좋은 땅이다.주변을 둘러본 조광 선생은 "전체적으로 주변 산들이 아주 좋아요. 앞에 정원사가 깎아놓은 듯 아주 예쁜 산은 장관이 나온다는 영상사(領相砂)를 이루고 있고, 뒤쪽으로도 봉우리들의 모양이 좋아요.그리고 멀리 커다란 토채들이 줄지어 이어지니, 명예로운 인물이 나올 땅이에요. 집을 지을 때도 산이 뒤를 받쳐주는 곳에 자연스럽게 지었어요"라고 칭찬했다.이해룡 고가를 나와 서운산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니 유명한 사찰 청룡사가 나왔다. 고려 원종 6년(1265) 창건되고, 공민왕 13년(1364)에 나옹에 의해 중창된 유서깊은 사찰이다. 청룡사를 둘러보니 의외로 청룡이나 백호가 거의 없다.하지만 사찰의 왼쪽 뒤와 오른쪽 앞으로 토채들이 줄지어 서있다. 멀리 앞쪽에는 뾰족한 모양의 문필봉(文筆峰)이 서있어 스님이나 불자들이 수양하기 좋은 곳임을 알려주었다.조광 선생은 특히 "청룡사 주변의 산들은 겹쳐지거나 출렁이지 않고 각각의 봉우리들이 하나씩 딱딱 떨어지는 형태여서 풍수적으로 좋다"고 덧붙였다.청룡사를 나와 이번 여행의 마지막으로 금광면의 삼한국대부인 순흥안씨 묘를 찾았다. 금광호수를 바라보며 단정하게 조성된 묘의 주인은 조선 세종의 비(妃)인 소헌왕후의 모친이자, 영의정을 지낸 안효공 심온 선생의 부인이다. 역시 주인에 걸맞게 묘는 풍수학적으로 많이 신경을 쓴 곳에 자리해 있다.멀리 뒷산부터 힘있게 내려온 맥을 타고 자리한 묘는 청룡과 백호가 잘 감아돌고 앞쪽으로는 토채를 바라보고 있다. 뒤쪽의 주봉은 장관이 영상사를 이루고 있다.조광 선생은 "주봉도 좋고 청룡도 무난하지만, 특히 오른쪽 백호에 자리한 영상사가 기가막혀 딸들이 잘 되는 자리"라고 했다. 설명 그대로 순흥안씨께서는 6명의 딸과 아들 3형제를 두었고, 그중 장녀가 소헌왕후다.조광 선생은 "다만 앞쪽의 토채가 단정하지 못하고 치맛자락처럼 흐르고 갈라지는 모양인 것과, 맥이 매끈하지 못하고 울퉁불퉁한 모양인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안성에는 아직 돌아볼 곳이 여럿 남아 다음 일정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조광 선생이 오늘의 여행을 정리한다."풍수는 미신이 아니라 정확한 근거를 가진 자연과학이에요.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늘 풍수를 보고 집이나 묘를 썼어요.그런데 현대에 들어서면서 풍수에 대한 무지에 경제적인 논리와 조급함이 더해져 엉뚱한 곳에 건물을 짓고 묘를 쓰고 있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일반 서민들도 조금만 공부를 하면 풍수의 기본은 알 수 있어요. 이런 잘못이 빨리 고쳐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겠어요."글/박상일기자사진/김종택기자

2013-05-07 박상일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3]가평

'화'를 부르는 무분별한 난개발강변·계곡 끼고 모텔·음식점 즐비산 뭉텅뭉텅 깎아 맥까지 훼손시켜자연에 순응해야 안정을 얻는다산 훼손없이 안기듯 자리 잡은 집푸근한 명당에서 가평군수 배출가족 테마로 한 제대로 된 개발 필요비탈진 곳 그대로 앉은 쁘띠프랑스방문객 줄잇는 가평의 명소 본보기'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안타까움만 가득하구나!'풍수지리학자 조광 선생과 함께 두번째 여행지로 가평을 찾았다. 가평은 경기도내에서 산 좋고 물 좋기로 으뜸으로 꼽히는 곳. 산이 높고 가파르니 계곡이 많고, 북한강마저 굽이쳐 흘러가니 천혜의 관광지로 손색없는 곳이다.팔당에서 남양주 다산유적지를 지나 양수리를 거쳐 청평으로 향했다. 호명산을 끼고 돌자 북한강을 곁에 두고 아름다운 강변길이 이어진다. 한적한 강변길은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다. 팔당 주변과는 또다른 한적한 맛이 일품이지만, 얼마 가지 않아 한숨이 쏟아져 나온다."저기를 봐요. 강변의 깎아지른 산을 뭉텅뭉텅 깎아내 전원주택단지를 만들겠다고 저렇게 해놓았어요. 저런 곳은 풍수학적으로 집이 들어설 곳이 아닌데, 무턱대고 저렇게 산을 깎아 놓으니 잘 될리도 없죠. 결국 좋은 자연만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있어요."차를 멈춘 곳에 펼쳐진 광경은 살벌하다. 산비탈을 깎아 커다란 계단처럼 축대를 층층이 쌓아놓고 콘크리트를 발랐다. 전원주택 단지를 만들기 위해 잔뜩 공사를 벌이다가 중지된 듯했다. 강가의 아름다운 산이 흉물로 변했다.이런 광경은 산모롱이를 돌때마다 재현됐다. 적게는 4~5채에서 수십채의 원주택 단지를 조성하는 공사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집을 짓겠다고 공사를 벌여놓은 곳들을 잘 보세요. 대부분이 산을 뭉텅 깎아 맥(脈)을 훼손했거나, 골짜기를 높여 축대를 쌓아서 대지를 만들고 있어요. 산줄기가 흘러가는 맥은 묘를 써야할 곳이고, 골짜기는 집이든 묘든 써서는 안되는 곳이에요. 그런 것을 알지 못하고 저렇게 엄청난 공사를 벌이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죠."조광 선생은 잘못된 개발에 대해서도 쓴 충고를 했다. "가평이 얼마나 좋은 곳이에요. 이런 곳에 강변과 계곡을 끼고 온통 모텔과 음식점들이 즐비해요. 이러니 가족들을 데리고 올 수 없는 곳이 되고 있죠. 가평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테마로 한 제대로 된 개발이 필요해요. 그게 가평이 살 길이에요."북한강을 벗어나 호명산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자 눈앞에 예쁜 광경이 펼쳐진다. 산 중턱 전망 좋은 곳에 뾰족뾰족 알록달록 아름다운 집들이 무리지어 서 있다.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프랑스 문화마을 '쁘띠 프랑스'다. 쁘띠 프랑스 입구에는 차들이 쉴새없이 선다. 젊은이들과 가족들이 활짝 웃고 연신 사진을 찍으며 안으로 들어간다. 조금전 조광 선생이 말한 '가족을 테마로 한 개발'이 어떤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좀더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 보니 쁘띠 프랑스는 골짜기가 아닌 양지 바르고 완만한 산비탈 부분에 자리를 잡았다. 산의 맥을 훼손하지도 않았고, 완만하게 비탈진 지형을 최대한 이용해 건물을 지었다. 웬만한 대형 전원주택단지보다 큰 규모였지만, 축대가 많지 않아 보기에도 안정감이 느껴졌다.언덕을 넘어 남이섬 방향으로 가는 길에 또다시 대규모 전원주택단지를 조성하고 있는 곳을 만났다. 골짜기 옆으로 산을 깎아내고 축대를 엄청나게 쌓아놓은 모습이 쁘띠 프랑스의 모습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조금 더 가자 이번에는 길가에 건물을 짓다가 분양에 실패한 듯 콘크리트를 흉물스럽게 드러낸 채 방치된 건물이 등장한다. 주변은 쓰레기까지 마구 버려져 그야말로 폐허나 다름 없다. 조광 선생이 또한번 잘못된 개발에 대한 지적을 쏟아낸다."저건 무지와 욕심이 낳은 재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이 안정감을 느끼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집들은 저런 곳에 있는 집들이 아니에요. 풍수에서는 오랜 경험과 과학적 해석을 통해 좋은 집이 자리해야 하는 곳을 일러주고 있죠."남이섬 쪽으로 조금 더 달리다가 조광 선생이 차를 세우게 했다. 조광 선생이 가리키는 곳에 보기에도 푸근한 집이 자리해 있다.가평군수를 배출한 집이라고 했다."잘 보세요. 저 집은 산을 깎거나 돋우지 않고 그대로 들어 앉았어요. 산의 맥이 양쪽으로 완만하게 내려오는 가운데에 살짝 안기듯이 자리를 잡았죠. 양쪽으로 청룡과 백호를 갖고 있는 것이죠.그리고 뒤로는 골짜기가 아니라 완만한 산비탈이 베개를 놓아준 듯 편안하게 받쳐주고 있어요. 한눈에 보기에도 얼마나 푸근하고 좋아요. 좋은 인물이 나올 수 있는 집이 어떤 집인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집이라고 할 수 있어요."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남이섬 입구에 있는 매운탕집을 하나 추천받았다. 찾아가 보니 규모가 작은 아담한 식당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주변을 둘러본 조광 선생이 환하게 웃는다."처음 와보는 식당이지만, 딱 보기에도 잘 될 수밖에 없는 집이네요. 풍수적으로 좋은 자리를 잡았어요."조광 선생이 가리키는 식당 뒤쪽에는 아담하지만 전형적인 모양의 '부봉(富峰)'이 자리를 잡고 있다. 식당 앞쪽에는 개천이 부드럽게 휘감아 돌아간다. 주변 집들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오른쪽으로 야트막한 산언덕이 감싸고 내려와 '백호'를 만들고 있다. 예전에 보았던 잘되는 식당들의 전형이다."가평에는 정말 잘됐던 고깃집이 한 곳 있어요. 그곳도 풍수학적으로 좋은 터에 자리를 잡았죠. 그런데 집 뒤쪽으로 도로가 나면서 백호가 허물어졌어요. 그 뒤로 갑자기 장사가 안되기 시작했죠. 주인이 바뀐 것도, 재료가 바뀐 것도 아닌데 말이죠."가평 일대를 살펴보고 돌아오는 길에 조광 선생은 "결국 자연의 이치를 잘 알고 여기에 따르면 복을 받는 것이고, 자만에 빠져 자연을 훼손하고 순리에 역행하면 화를 얻는 것"이라는 교훈으로 이번 답사를 마무리지었다.■ 좋은 집터를 선택하는 방법땅기운이 좋고 안정된 곳을 찾아 건물을 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땅기운이 좋은 터- 산맥기의 여기(남은 기운)가 있는 터- 경사가 5~20도 정도의 완만하고 평탄한 터- 산자락이 감아도는 안쪽의 터- 주변의 산들이 수려할 것- 뒤쪽이 높고 앞쪽이 낮은 터- 주변의 집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터- 대문 입구의 진입로가 약간 낮거나 평탄한 터- 물이 집 뒤쪽으로 흐르지 않는 터- 좌우 또는 앞쪽으로 물이 터를 치고 흐르거나 개울이나 강둑이 접하지 않은 터- 큰 차가 다니는 대로가 멀리 있는 터▲ 땅기운이 나쁜 터- 골짜기를 메우거나 고른 터- 늪, 웅덩이, 쓰레기 등의 매립지나 모래땅- 산이 흘러가는 등성이를 고른 터- 경사가 급한 산을 절개하여 축대를 높게 쌓은 터- 좌나 우로 경사진 땅을 고른 터- 산자락이 배역하는 산 옆구리의 터- 주변의 산이 흉한 모습인 곳- 절벽 위나 절벽 아래 터- 뒤쪽이 낮고 앞쪽이 높은 터- 대문 입구의 진입로가 높은 터- 집 뒤가 허물허물하여 무너질 위험이 있는 터※ 출처 : 다음 카페 '조광의 자연풍수'(http ://cafe.daum.net/mirpoongsu)/글=박상일기자/사진=김종택기자

2013-04-02 박상일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2]남양주~양평~여주

손님 북적이는 음식점들 백호가 감싸는 형세앞이나 뒤에 재산 의미하는 '부봉'까지 갖춰여주 신륵사, 좌청룡·우백호 감싸안은 명당강변따라 길게 이어진 카페들, 전망은 좋지만풍수의 기본 '배산임수' 역행해 운영 어렵기도흥하는 곳은 이유가 있다명예를 상징하는 좌청룡 재물을 부르는 우백호■흥망성쇠(興亡盛衰) / 한 집안이 번창하기도 하고 쇠락하기도 하는 것은 묏자리 하나, 집터 하나 잘쓰고 못쓰고에 달려있다풍수지리학에서는 "흥망성쇠(興亡盛衰)에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한 집안이 번창하기도 하고 쇠락하기도 하는 것이 묏자리 하나, 집터 하나 잘쓰고 못쓰고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잘쓰고 못쓰고를 결정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따랐느냐 그렇지 않았느냐다.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리되어온 자연의 이치를 제대로 알고 자연에 순응하면 흥할 것이요, 자연에 역행하면 쇠할 것이라는 게 풍수지리의 시각이다. 경인일보는 풍수지리학의 대가 조광 선생과 함께 이 같은 풍수지리의 이치를 검증하러 나섰다.앞으로 경기·인천지역은 물론, 전국 곳곳을 돌아보며 흥하고 쇠락하는 이치를 찾아본다. 좋은 묏자리, 좋은 집 터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실제 현장을 돌며 살펴본다. 그 첫 편으로 남양주에서 양평을 거쳐 여주 신륵사로 이어지는 경로를 따라가 보았다. ┃편집자 주한때는 손님들이 줄을 서던 곳이었다. 수도권에서 가장 사랑받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였다. 서울과 하남에서 양평으로 이어지는 강변길. 길게 이어진 강변 양쪽으로 수십년간 카페와 음식점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강변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음식을 먹는 재미에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 카페와 음식점을 차렸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썰렁한 바람이 불어닥쳤다.되는 듯하던 카페와 음식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거나 어려움에 빠져들었다. 시원하게 밖을 내다보던 커다란 유리창에는 '임대'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다른 많은 집들도 최근의 어려움을 증명하듯, 제대로 수리도 못한 채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광 선생은 이런 쇠락의 이유를 풍수의 이치로 설명했다."골짜기나 강변에 지은 집 치고 인재가 나오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요. 강변의 카페와 음식점들이 보기에는 좋아보이죠. 손님들도 강이 바라다보이니 잠깐 차 한잔 하기 좋은 곳이에요. 하지만 막상 그 주인에게는 그렇지 못해요. 잠깐 잘될 듯하다가도 금세 어려움에 빠져들죠. 수많은 카페와 음식점들이 수도 없이 주인이 바뀌고, 결국 문을 닫았어요. 자연의 이치를 모르고 역행했기 때문이죠."남양주 팔당에서 강변을 따라 차를 달리다가 다산 유적지 인근 음식점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에 멈췄다. 저 앞으로 한강이 흐르고 강변과 조금 거리를 두고 도로가 운치있게 이어진다. 카페와 음식점들은 강과 도로 사이에 가장 많이 자리해 있다. 길 건너편 산쪽에는 음식점과 전원주택, 모텔들이 자리를 잡았다."저 강변의 음식점을 보아요. 강쪽이 낮고 전망이 좋으니 강쪽으로 창을 냈고, 드나들기 좋도록 도로 쪽으로 입구를 냈죠. 앞으로는 산을 보고, 뒤로는 강을 지고 있는 모습인데, 이 강을 따라 수도 없이 들어선 카페와 식당들이 거의 이런 구조로 돼 있어요. 그러니 어려워지는 겁니다."조광 선생은 이들이 풍수에서 가장 기본으로 치는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역행하고 있다고 했다. 산을 등에 지고 물을 바라봐야 하는데, 거꾸로 물을 등에 지고 산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돈이 잘 벌릴 리가 없다."도로 건너편의 식당이나 집들도 별로 좋을 게 없어요. 배산임수는 지켰지만, 거의 대부분 산자락 끝(맥이 끝나는 곳)에 자리해 있거나 골짜기에 들어가 있어요. 풍수를 모르는 무지(無知)로 인한 것이죠."다시 차를 타고 양평 방향으로 잠시 달렸다. 강이 도로쪽으로 바짝 다가온 곳에 언덕길을 타고 양쪽으로 휴게소와 식당이 무더기로 몰려있다. 길에서 200~300m쯤 떨어진 야산에는 산을 뭉텅 깎아 전원주택단지를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휴게소와 식당들에는 세워진 차들이 많지 않다. 전원주택단지는 개발이 진행되다가 멈춘 듯 썰렁한 분위기가 풍겨나왔다."이 많은 식당과 집들을 봐요. 거의 다 배산임수 역행으로 지어졌거나, 평지에 놓여 있어도 집 뒤쪽이 깎아지른 듯 낮아요. 비탈진 도로 옆에 지어진 집들은 도로를 바라보느라 앞뒤가 아닌 양옆이 높고 낮은 지형이고요. 역시나 풍수상으로 돈이 모일 수 없는 집들이죠."비교를 위해 이번에는 잘되는 곳을 찾아 나섰다. 요즘 손님이 북적인다는 남양주의 한 순두부집. 점심시간이 안 된 시간이었지만, 주차장에는 차들이 그득했다. 이 집 역시 도로 옆에 자리해 있지만, 다른 집들과 달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집이 놓여 있는 방향이었다.도로쪽으로 문이 나 있는 게 아니라 도로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입구가 나 있다. 식당 뒤쪽으로 야트막한 언덕이 있고, 언덕 줄기가 식당 오른쪽을 살짝 감싸고 내려왔다. 길 건너편으로는 오목한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 같은 작은 봉우리가 놓여 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백호(白虎)가 감싸고, 부봉(富峰)을 마주하고 있는 형세다. 부봉은 금성산(金星山)이라 하여 재물을 부르는 산이다."좌청룡, 우백호(左靑龍, 右白虎)에서 백호는 여성과 돈을 의미해요. 식당이든 집이든 돈이 모이는 곳은 모두 백호가 오른쪽을 감싸 돌고 있죠. 그리고 앞이나 뒤에 재산을 의미하는 부봉을 갖고 있어요. 이 집은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집이죠."다시 차를 타고 여주로 넘어가, 여주에서 가장 잘되는 식당이라는 천서리막국수집을 찾았다. 역시 식당에서 앞을 바라보면 오른쪽으로 낮지만 뚜렷하게 '백호'가 둘러쳐 있다. 영락없이 오른팔을 살짝 안듯이 구부린 모양이다. 그리고 저 앞쪽으로 마치 정원사가 깎아놓은 것처럼 단정하게 솟아오른 부봉이 자리해 있다."백호가 여성과 부를 상징한다면, 청룡은 남성과 명예를 상징하죠. 여주에서 가장 유명한 신륵사를 한번 가봅시다. 백호도 잘 둘러쳐 있지만, 청룡이 더 잘 감싸고 있어요. 신도가 많기도 하지만, 나라에서 알아주는 사찰이 될 수 있었던 게 그런 이유죠."신륵사는 조광 선생의 설명 그대로였다. 대웅전에서 앞을 바라보니, 오른쪽으로 백호가 둘렀고, 왼쪽으로 청룡이 둘렀다. 백호도 잘 둘러있지만, 청룡이 좀 더 길고 안쪽으로 갈무리된 모습이다. 대웅전 앞으로는 남한강이 휘둘러 지나고, 멀리 앞쪽으로 명예와 권력을 불러들인다는 '일자문성(一字文星)'이 펼쳐져 있다. 명예를 부르는 명당이다."신륵사 경내에 서 보세요.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그만큼 좋은 터라는 뜻이지요. 반면에 풍수에 역행한 식당이나 집에 들어가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고 불안해집니다. 그런 곳에 오래 있으면 몸에 병이 들게 되지요."다시 차를 돌려 양평 읍내를 지나 강상면쪽으로 향했다. 역시 강상면 일대 강변에 자리한 수많은 카페와 음식점, 모텔들이 배산임수에 역행하거나, 골짜기나 산등성이를 타고 들어서 있었다. 조광 선생은 "수많은 집들이 열 번도 넘게 주인이 바뀌었거나 겨우 먹고살기에도 빠듯한 형편일 것"이라며 "이곳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이렇게 풍수에 역행하는 집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양평 바탕골미술관을 지나 퇴촌면으로 넘어가는 언덕길에서 또 다른 잘되는 식당 한 곳을 찾았다. 늦은 오후였지만, 역시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했다. 식당은 입구를 길쪽으로 내지 않았다. 집을 옆으로 돌려 산 아래쪽으로 문을 내 앞이 트이게 했다.자연스럽게 집 뒤는 산이다. 양쪽으로 능선이 둘러쳐 내려왔고, 눈앞으로 작은 개울이 식당을 감싸고 흘러내렸다. 역시 오른쪽으로 백호가 둘러쳐 감싸 안은 형국이었고, 집 뒤 언덕에는 볼록하게 솟아오른 커다란 부봉이 모양 좋게 자리해 있다.부봉이 의미하는 것처럼 마치 재물이나 곡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모양새다. "잘되는 집은 다 이유가 있다"는 조광 선생의 설명이 커다랗게 와 닿았다./박상일기자

2013-03-12 박상일

[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1]프롤로그

풍수테마기행은 풍수지리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돕기위해 경기도내 31개 각 시군을 여행하며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에 대한 얘기를 풍수로 풀어 낼 계획이다. 월별 풍수 테마지를 정해 왜 해당 지역을 찾았는지, 그곳에 가면 무엇이 있는지, 가까운 곳에 기를 받으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 명당은 어디인지를 풍수의 논리로 소개한다.사람은 누구나 생의 족적 남기기 마련살아온 모습대로 그에 맞는 땅에 묻혀풍수지리, 신비한 학문 아닌 자연과학연결고리 찾기위해 발로뛰며 연구조사막연한 암시 그친 기존 학문서 벗어나道 31개 시·군 다양한 풍수 명당 소개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어느 후보가 조상의 묘를 어디로 옮겼다(이장했다)는 뉴스를 적지 않게 듣곤 한다. 그들이 믿고 있는 종교가 기독교든 가톨릭이든 불교든 상관없이 조상의 묘에 신경을 쓴다.또 후보자들의 조상 묘로 다음 대통령 감을 점치곤 하는 신문기사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이를 보면 풍수가 단순하기만 하거나 오묘하기만 한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필자는 '실제로 분명 뭔가가 있어'에서 출발하는 풍수에 관한 관심에서 그 뭔가의 감을 잡게되는 동기의 장을 마련하고자 연재를 시작한다.풍수지리는 전래되어 오는 단순한 민속신앙이나 신비한 학문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분명한 것은 철저한 검증을 통한 자연과학이라는 점이다.우리는 땅의 형세와 지기를 읽음으로써 그 땅에 사는 사람이 살아온 과거를 맞추고 앞으로의 일을 예견하는 풍수가를 지관이라고 말한다.사람은 누구나 생의 족력을 남기게 마련이며 자신이 살아온 대로 그에 맞는 땅에 묻히게 되어있다. 땅에는 반드시 주인이 있으며 사람은 남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지만 자연은 절대 거짓을 행하지 않는다. 살아서 선한 업을 지었으면 좋은 자리에, 그렇지 않으면 나쁜 자리에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 풍수의 원리이며 이치다.한 가족이라도 서로 다른 운명을 타고 나는데, 풍수가에게는 그것을 정확히 알아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일시에 집안에 변고가 겹쳐서 일어날 경우는 산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 누가 죽어 새로운 묘를 써서 그 파장이 오는 것이다.시신 상태에서 변화가 오는 것은 묘가 허물어져 물이 들어가거나 구멍이 생긴다든가 하는 경우로, 그 변화가 몰아서 온다. 즉 교통사고가 난다거나 병이 생기고 사업이 망하는 망조가 드는 것이다.한의학이 소우주로서 인체를 이해하고 다스리는 일이라면 천문학과 지리는 천지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사람에게 기가 조화롭지 못하면 병이 되듯이 산천도 마찬가지다.좋은 산은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우며, 부드러움이 없이 강하기만 한 것은 사람으로 말하면 깡패고 산으로 말하면 악산이다. 스스로 강하면 적이 없다. 산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혈장이 제 위치에 잡혀 있으면 주변 산들도 자연히 따라온다. 산사람들은 '머리를 조아린다'고 표현한다.풍수는 모든 것을 믿으려 하지 말고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정확한 통계 분석에 의해서 산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수맥을 찾는 기계나 도구를 이용하여 마치 도사인 양 연출을 하고 풍수지리를 한다면 미흡함이 있을 것이다.다시 말하면 풍수지리는 자연과학이므로 자연속에서 인간의 지혜로 그 오묘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국내에 나와 있는 풍수지리에 대한 서적은 그저 일목요연하기만 할 뿐 핵심이 없다. 풍수의 논리대로 라면 인간의 운명은 반드시 땅에서 나온다. 그리고 땅을 관할하는 지관이라면 인간의 운명까지도 바꾸어 주어야 한다.그런데 그렇게 능력있는 지관이 과연 얼마나 될까.풍수가들 중에는 감언이설로 남을 속이고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자가 적지 않다. 그러나 지관은 과거를 알아맞히는 것보다 좋은자리를 잡아줌으로써 그 사람의 운명과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연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풍수가는 자신의 언행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풍수지리는 신비한 학문이 아니라 자연과학이다. 음택이나 양택을 보면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풍수지리는 자연을 볼 수 있는 눈과 한글만 읽을 수 있는 수준이면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학문이다.필자는 19살에 한 스님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인연으로 풍수지리를 공부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산을 특히 좋아했던 내게 이보다 더한 천직은 없을 터이다. 그후 지금까지 오로지 풍수가로서의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공동묘지가 개발된다고 하면 그곳에 찾아가 시신을 파내간 자리에서 몇날 며칠씩 잠을 잤다.그리고 장관이나 스님이 나오는 산소자리는 어떠한지, 곱추나 장님이 나오는 산소 자리는 어떠한지, 백혈병과 관절염 및 직장암은 시신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등을 연구·조사·통계·분석을 해서 그 원인을 밝혀내려 동분서주했다.나의 청춘을 온통 묘지와 시신들 속에서 그렇게 불태웠다. 물론 사람들에게는 미친놈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끈기와 인내를 무기로 두 발로 뛰며 일구어낸 나의 결과물을 이제 만인 앞에 내놓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미신 취급을 받고 있는 이 학문을 널리 알리고 최소한 풍수에 대한 기본 상식이라도 알게 하여 이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예전의 풍수가 막연한 암시와 제시를 하고 지형의 모양에만 매달렸다면 이제는 과학적인 사고와 통계 분석으로 풍수가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조광 풍수지리학자지리산 노스님과 인연 계기로 입문실생활 연계 대중화 앞장 외길인생풍수지리학자 조광선생은조광지사는 이천에서 태어났다. 전국 산행중 지리산 실상사에서 만난 노스님과의 인연을 계기로 풍수지리에 입문, 풍수가의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삶의 과학으로서 실생활 속의 풍수를 지향하며 풍수지리 이해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현재 미르지리연구소를 이끌어 가면서 대학과 문화센터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경력 : 남이섬 설계자문(2000년), 한양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 강사 역임(2001년), 경기도 공무원교육원 강의(2004~2006년), 롯데MBC문화센터 롯데백화점(잠실점) 강의(2008년 6월~현재), 부산롯데호텔 109층(부산 광복점) 건축설계자문(2008년6월), 분당서울대병원 설계자문(2009년10월), CJ 사옥이전, 공장, 아파트 부지 등 선정 자문(2009년11월), 롯데마트 본사 이전 설계 자문(2010년 9월), 다수 공기업, 문화센터 강의 및 대기업 사옥 이전, 사업장 부지, 양택, 음택 자문 외.■ 저서 : 땅의 아들(부연사), 토와 명(도서출판 조광), 산을 알면 운명이 보인다(도서출판 조광), 나는 신명나게 살 운명이다(도서출판 조광)

2013-01-15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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