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사람

 

[공간과 사람·21]의정부과학도서관

윤상국 건축사는 과학도서관 설계 공모전에 참여하기 위해 건축물이 들어설 터에 다섯번을 오갔다. 두 산자락이 만나 작은 계곡을 이루는 것도 난감한데 산이 남쪽을 막고 있어 건물 정면은 북쪽을 바라봐야 한다. 이런 지형의 건물은 지하가 인공조명없이는 깜깜할 것이 뻔하다. 자녀교육 인프라가 경기 남부보다 상대적으로 덜 구축돼 있다는 인상을 저버리기 위해서라도 의정부 과학도서관은 알찬 내용과 함께 힘있는 모습으로 위용을 당당히 하길 바랐다. 하지만 해도 들지 않는 북쪽이라니.윤 건축사는 도서관을 설명하는 내내 당시의 고민을 되새겼다. "모든 건축사의 첫번째 고민은 자연, 곧 터입니다"라며 운을 뗀 윤 건축사는 "도서관이 숲과 가까이 있다는 것은 장점이면서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큰 단점이죠. 하지만 건축사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효율적이고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낼 방법을 찾아와야 합니다."두 산자락 만난 작은터에 둥지 틀기건물 정면 북쪽 향해 고민 많았지만지하~3층 볕 잘드는 중정 조성 선택유리로 꾸민 외벽 내부에 자연 전달의정부과학도서관(의정부시 추동로 124번길) 설계를 뜯어보면 결국 자연이, 터가 도서관 설계를 결정지었음을 알 수 있다. 건물 지하부터 3층까지 중정을 둬 빛을 중앙에서 한번 더 끌어들이고, 지하를 사실상 1층으로 꾸민 것은 '북향' 건물의 약점을 메우기 위한 방편이다. 도서관을 찾는 이들의 정서에 도움이 될 산·나무·계곡·바람은 그대로 살리고, 건물 외벽을 미러글라스(mirror glass)로 꾸며 자연스레 반영되도록 했다. 내부에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도 숲에 둘러싸인 자신을 건물외관에서 마주할 수 있다. 게다가 북향이지만 위풍당당해야 한다. 산과 산이 만난 작은 터에서 비상하는 듯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건물은 대각선으로 중심을 잡고, 강한 선으로 세부 디자인을 했다. 건물 전체도 단순 사각형에서 벗어나 건물 왼편이 날갯짓하듯 상승하고 있다. 계속 보고 있자니 꼭 로봇같다. 윤 건축사는 "경기 북부에서 무료로 천체망원경을 통해 태양계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도서관인만큼 역동적이고 활기찬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소개했다.북부지역 무료 천체관측 유일한 도서관역동적 기운 담은 '날갯짓 디자인' 눈길인문과학실 독서바·어린이 전용열람실이용객 '맞춤 설계' 책읽기 집중력 높여경기 북부에는 양주와 의정부에 천체망원경이 있다. 그런데 모든 경기도인에게 무료로 열려 있는 천체망원경은 의정부 과학도서관 한 곳 뿐이다. 천체망원경은 낮에 태양을, 밤엔 별자리를 관찰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도서관에는 굴절망원경과 반사망원경 등이 갖춰져 있어 태양의 경우 붉은 홍염도 관찰할 수 있다. 말로 듣는 것보다 가서 직접 관찰해보면 어른도 그 흥분을 감출 수가 없다.이때문에 2007년 개관후 천체 관측을 해본 이용객 숫자만 1만여명에 이르고 지금도 예약신청이 줄을 잇는다. 천문우주체험실 관계자는 "지역 아이들에게 인기 최고"라며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해야 하는데 한번에 볼 수 있는 숫자가 많지 않고 날씨 따라 달라져 대기자가 항상 밀려 있다"고 웃었다.건물 2층에는 인문과학실이 있다. 열람실 구조야 다들 비슷하겠지만 이 도서관엔 이용자들을 만족시킬만한 특이한 요소가 있다. 책이 있는 곳에서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창가에 폭이 넓은 바(bar)로 된 독서대가 있는 것. 특히 이 독서대가 2층으로 돼 있어 소지품을 놓을 공간이 따로 있기 때문에 공부할 공간이 넉넉해 보였다. 또 각층에는 쉼터가 있는데 3층 쉼터의 경우 마룻바닥으로 돼 있다. 도서관에서 오래 앉아 있다보면 무릎을 펴고 엉덩이를 쉬게 하고 싶지만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그럴 기횐 많지 않다. 이 마루가 반가운 이유가 그것이다. 아이디어를 낸 윤 건축사는 "도서관을 여러번 설계하다보니 점점 이용자 눈높이에 맞춰져 가는 것 같다"며 "실질적이고 편안한 도서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층 어린이 전용 열람실에도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공간 설계가 눈에 띈다. 독서공간을 육각형으로 만들어 비밀스럽게 혼자 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나, 다락방을 만들어 자기들만의 공간을 누릴 수 있게 한 것이 그렇다. 물론 어느 공간이든 아이들의 공간에도 숲이 벽을 장식한다. 이 도서관의 하이라이트는 옥상이다. 지금은 보조관측실을 이용할 때만 열어주지만 일단 옥상에 들어서면 산보다 낮은 건축물의 겸허함과 그 덕에 얻은 숲과 맑은 하늘이 가슴으로 쏟아진다. 자작나무가 바람에 부딪히는 사각사각한 소리도 기분좋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계곡 물길을 살려 도서관 우측에 두었지만 가을이라 물이 말라 그 시원한 모습은 상상에 맡겨야 했다. 건축물을 구경하고 나서면서 윤 건축사가 했던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자연을 훼손하기보다 건축물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것, 그것이 건축의 미래라는 것. 글=권순정 기자 사진=조형기 프리랜서▲ 건물 중심을 가로지르는 빗살(대각선)과 건물 왼편이 상승하도록 각을 준 것이 역동성을 불어 넣고 있다. 마치 작은 터에서 솟아 올라가는 로봇같다.▲ 건물 전면에서 들어오는 빛이 내부까지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건물 지하부터 3층까지 중정을 둬 북향의 단점을 보완했다. 중정도 거울처럼 반사하는 유리를 썼고, 세로 선으로 마감해 보는 이의 눈이 즐겁다.▲ 도심지의 빛을 돔이 가리고, 원하는 하늘만 열기 때문에 천체망원경으로 도시에서도 별자리를 볼 수 있다. 경기도민은 모두 예약신청할 수 있고 무료다.

2014-10-06 권순정

[공간과 사람·20]광주 중대공원자연장 관리동

삭막하고 어두운 공동묘지 이미지 탈피목재패널 활용 주변자연과 어울림 표현징크패널로 건물전체에 화려한 멋 더해편안하게 망자와의 추억 떠올릴수 있어어린 시절 '공동묘지'와 관련된 괴담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자정이 되면 공동묘지에 누워있는 시체가 벌떡 일어난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 새빨간 거짓인 줄 알면서도 왠지 모를 오싹함에 '공동묘지는 절대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인식이 우리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자리잡은 듯하다.중대공원도 원래는 공동묘지였다.1957년 문을 연 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묘지가 가득 찼고, 이내 어린 시절 들었던 괴담과 같이 도시의 흉물로 전락했다.인구도 점점 늘어나면서 더 이상 매장 형태의 공동묘지를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시가 직접 나서 일일이 기존 공동묘지를 개장해 납골묘 형식의 자연장으로 조성하며 장묘문화를 바꾸기 시작했다.'공간과 사람'이 8월 소개할 곳이 바로 광주시 순암로 192에 위치한 중대공원자연장 관리동이다.2008년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기 시작하면서 시행된 '자연장'은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수목, 화초, 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것으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고인을 자연스럽게 모실 수 있어 자연친화적인 장사문화로 각광받고 있다.중대공원의 공동묘지가 자연장이라는 자연친화적인 공원으로 탈바꿈하면서, 김혜경 건축사는 관리동 건물의 설계를 맡게 됐다. 김 건축사는 처음에 자연장 관리동이라는 건물 용도를 듣고 고민에 빠졌다.규모도 241.3㎡ 정도의 단층 건물이라, 작은 사무실을 달랑 만들어 놓는 것보다는 오가는 유족들은 물론 시민들의 쉼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신중히 설계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97년도에 이탈리아 로마로 여행을 갔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당시 유학 중이던 친구의 안내로 로마 시내의 한 공원 잔디밭에 앉아 쉬고 있던 건축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공원인 줄 알았던 곳이 알고 보니 납골당이 있는 공원묘지였기 때문.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시내와 한참 떨어진 곳에 묘지가 있는 데다, 삭막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눌려 찾아가는 가족들도 표정이 좋지 않았기에 김 건축사는 그곳을 묘지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건축사는 사람들이 집 근처 공원을 찾은 듯 편하게 망자(亡者)를 만나러 와 행복했던 순간을 추억하는 장면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김 건축사는 "우리나라도 이제는 시내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납골당이나 연화장 등이 들어서는 추세"라며 "사랑하던 사람을 모셔놓은 곳에 찾아왔을 때 처음 대하는 건축물이 무표정의 회색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중대공원 관리동을 설계했다"고 말했다.그래서인지 관리동 곳곳에는 건축사의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단층짜리 건물을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눠 오른쪽은 징크패널을 사용해 경사진 지붕을 씌우고 왼쪽은 고밀도 목재패널로 평지붕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전혀 다른 성격의 두 건물이 나란히 붙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이 중 왼쪽에 사용된 고밀도 목재패널은 나무무늬를 하고 있어 관리동 뒤쪽에 지키고 있는 공원 언덕과 인근에 어우러진 녹음 등 자연과 어울린다. 특히 일반 나무 소재와 달리 비나 눈에도 견딜 수 있다.오른쪽 재료로 쓰인 징크패널은 서양에서도 100년 이상 오래가는 재료로 평가받을 만큼 하자가 쉽게 생기지 않는 소재다.단조롭고 작은 건물인 만큼 건물 앞면은 징크패널을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배치하는 등 디자인에 신경을 써서 건물 전체를 화려하게 표현했다.친환경 재료인 목재와 벽돌을 사용해 건축물의 표정을 만들었다면, 건물 정면에는 넓고 시원한 느낌의 창으로 전체를 뒤덮어 경관이 모두 보이도록 했다.내부에서 밖을 바라봤을 때 꼭 자연 속에서 쉬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한 것이다.역시나 이곳엔 그에 딱 맞게 '씨밀레'라는 이름의 아담한 카페가 들어섰다. 자칫 공원묘지 관리사무소라는 인식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닿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곳이, 김 건축사의 설계 덕분에 이제는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재창조된 것.'씨밀레'의 바리스타 성백순(67·여)씨는 "시내와 가깝고 주차하기도 편리해 자연장을 찾아온 가족들보다도 일반 시민들이 더 많이 이곳을 찾는다"며 "점심시간이 지나면 창으로 햇빛이 가득 들어차는 포근한 공간이라 근무하기에도 행복한 일터"라고 말했다. 왼쪽엔 씨밀레가, 오른쪽엔 관리사무실이 전부인 작은 건물임에도 건축사는 입구 처마를 길게 빼 자연 그늘을 만드는가 하면, 화장실로 향하는 복도쪽 벽면을 도자타일로 배치하는 등 건물 곳곳에 자연친화적 요소를 담았다. 특히 남한산성 전경을 도자에 그려 구워낸 타일 덕분에 친환경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내부가 완성될 수 있었다.김 건축사는 "도자타일 맞은편에는 경안천습지공원 등 광주8경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사진 형식으로 벽면에 디자인했다"며 "중대공원 관리동이 공원묘지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휴게소나 매점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의 행복했던 순간을 추억할 수 있는 편안한 카페 같은 공간으로 조성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인적이 닿지 않으면서 소외된 공간으로 버림받았던 공동묘지의 흔적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대신 김 건축사의 바람처럼, 자연 속에 있는 이들과 그들을 그리워하는 또 다른 이들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함께 추억하는 공간만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글 = 신선미기자 사진 = 조형기프리랜서▲ 중대공원자연장 관리동 전경. 무표정의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추억하는 건물로 만들고 싶다는 건축사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대공원자연장 전경.▲ 관리동 내부에 위치한 카페 '씨밀레'. 흔히 공원묘지에 가면 볼 수 있는 휴게소나 매점과는 달리,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복도 화장실로 향하는 벽면에 남한산성을 그려 구워낸 도자타일을 배치, 자연친화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내부로 디자인했다.

2014-08-25 신선미

[공간과 사람·19]제부도 서신초교 제부분교

폐교위기 학교 재건축 '제2의 배움터'배산임수 지형 살리려 높낮이 차별화어느층이든 산과 닿아 자연친화교육도시생활 부럽잖은 아이들 "학교는집"해맞이 명소 옥상 주민에도 열린공간화성시 서신면 제부리에 자리한 서신초등학교 제부분교장은 준공된 지 14년이 흘렀지만 처음과 다름없이 아이들에게 훌륭한 놀이터가 되고 있다. 대지면적 1만303㎡에 건축연면적 2천456㎡ 규모의 4층 건물은 유치원생 4명을 비롯 2·4·6학년 2명씩 총 6명, 5학년 3명 등 총 13명을 품고 있다. 1946년 태어나 68살 먹은 학교는, 경기도교육청이 폐교위기에 놓인 학교를 다시 살려보겠다며 재건축을 마음먹은 지점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현재 학교 운동장 남측 한편에 자리했던 단층짜리 초라한 건물을 부수고 학교 앞에 해안가를 따라 난 도로와 일직선으로 학교를 다시 짓기로 했다. 당시 설계는 (주)네오 건축사사무소 신계철 대표가 맡았다. 신 건축사는 "건축물은 도로와 방향을 같이 하고 있는게 좋은데 한편 그리되면 건물의 방향이 남향이 아니게 되기 때문에 층고별로 동을 다르게 해 살짝 변형을 줬다"고 설명했다. 실제 건물은 산 모양으로 유치원이 가장 낮았다가 양 옆의 건물이 중앙 건물의 어깨높이에 걸쳐 있다. 이렇게 높낮이가 다른 건물을 각각 틀어 중앙건물은 길과 일직선으로 놓고 어깨에 걸치는 건물은 남향으로 살짝 엉덩이를 틀었다. 또 오전 수업만 있는 유치원은 동쪽으로 배치해 아이들의 수업 패턴도 고려했다.이 건물이 이렇듯 복잡한 구조를 띠게 된 건 뒤에 산 때문이다. 신 건축사는 "앞엔 바다, 뒤에는 산으로 둘러쳐진 지형을 그대로 존중하고 싶었다"며 "산을 모두 깎지 않고 구릉 위에 짓기 위해서는 건물마다 높낮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건물을 도면대로 짓는 것은 어려웠다. 섬이라 자재를 들여오는 데도 힘들었지만 일자형 상자모양이 아니라 각각의 출입처가 층이 다르고 넓이가 달라 실제 시공사가 신경을 촘촘히 쓸 수밖에 없었다. 신 건축사는 "일반 학교와 비교도 안되는 작은 건물임에도 도면은 더 복잡하고 배정된 예산도 크지 않아 지금도 이 학교를 지어준 시공사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마음을 전했다. 신 건축사가 심혈을 기울인 지형과 어울리는 학교건축은 현재 사용자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됐다.학교를 안내하던 최운필 교사는 학교를 안내하면서 연신 어느 층에서든 산에 닿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랑했다. "유치원에서도 산이 보이고, 학교를 올라오면 3층에서 바로 산으로 통하는 문이 있죠. 이 학교의 최대 장점은 앞에 바다, 뒤에 산이라는 점입니다."교실에서 창문을 열면 바닷바람이 머리를 식히고, 복도를 따라 걷고 있으면 산의 푸르름이 한아름 안긴다. 산을 깎아 돌로 축대를 쌓아올리는 대신 학교를 아예 산구릉에 맞춰 지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그 속에서 노는 아이들은 그만큼 행복하고 푸르다. 신축하고 학교를 열었던 당시 50여명에 이르렀던 학생들이 지금은 도시로 빠져 13명에 그치고 있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2학년생들이 색소폰을 연습하던 4층 음악실에 들어섰을 때 각 교실에서 몰려든 전교생이 '로큰롤'을 연주해줬다. 6학년 신혜임(13)양이 드럼을 치고 동년생 노승찬(13)군이 다리를 다쳐 의자에서 색소폰을 잡고, 4·5학년 학생들 5명이 무대에 섰다. 색소폰 소리도 씩씩한데 자신감 있는 춤사위는 더 압도적이다. 도시의 학생들은 수줍고, 애써 돈들여 연습해도 가끔 배움 자체가 짜증이 나는데 이 아이들에게 그런 기운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신나고 재밌고 활기가 넘쳤다. 왜 학교가 좋은지, 제부도가 좋은지, 아주 원론적인 얘기를 물었다. 4학년 신채은(11)양이 답을 던졌다. "모두 다 공짜여서 좋아요!" 6학년 노승찬 군이 덧붙였다. "중학교를 가려면 섬을 나가서 기숙사비를 내야 하는데 비싸대요."이들에게 학교는 부모님의 어려움을 덜어드리고, 많은 것을 내어주는 가족같은 곳이다. 전교생이 외발자전거를 배우고, 색소폰과 국악기를 꼭 하나는 다루고, 컴퓨터를 익히는 등 도시 학원에서 배우는 것들이 한곳에서 이뤄진다. 아이들은 학교를 떠나고 싶지 않다. 특기적성 수업을 마치면 잔디구장이 있고, 그 옆엔 교사들이 일군 텃밭과 꽃밭이 있다. 아이들은 당번을 정해 물을 주고 풀도 맨다. 최 교사는 "이 밭을 만드는데 꼬박 5일이 걸렸어요. 바닷가 아이들이라 농사에 대해 모르길래 실습하려고 지난해에 만들었답니다."최 교사는 운동장 근처 아주 작은 콜로세움을 가리켰다. 아이들이 둘러앉아 얘기를 하면 딱 맞을 장소였다. 최 교사는 "우리는 피구를 여기서 해요. 둥글게 서서 서로 공을 주고 받는 거죠." 전혀 다른 사용법. 생뚱맞은 사용법도 이곳 아이들의 생기와 닮았다.학교는 타 학교 학생들에게도 열려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이 학교에 점점 사라져가는 갯벌을 교육하려 해양갯벌생태체험학습장을 만들었다. 지난해 학습장엔 3천200명의 도내 학생들이 다녀갔다. 이곳에서 갯벌생태를 설명듣고, 인근 갯벌에서 실제 체험을 한다. 이 학교의 또다른 자랑은 옥상이다. 바닷가를 내려다볼 수 있어 마을 주민들의 해맞이 장소로 쓰인다. 최 교사는 "바닷가를 바라본 채 왼편이 동편"이라고 안내하며 "교사들과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 올라와 동편을 바라보며 새해 첫날을 맞았다"며 당시 찍은 사진을 자랑했다. 해맞이 장소인만큼 학교는 제부도에서 가장 높은 장소여서 풍랑 대피소의 역할도 한다.옥상에서 본 제부도는 시원하고, 밝다. 소수정예 수업과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 학교. 서로가 서로의 이름과 부모님을 알고 있는 학생들. 신 건축사는 "작은 학교지만 도시 아이들이 받는 수업을 모두 고려해서 특성화 교실을 만들었고, 앞으로 학생수가 더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학교를 증축할 수 있는 여지를 뒀다"고 말했다. 학교 이외에 기댈 곳이 없기에 더더욱 아이들에게 마음을 쓴 건축 설계와 교육이 제부분교에 담겨 있다. 글=권순정기자 / 사진=조형기 프리랜서▲ 서신초교 제부분교장 전경. 제부도에서 가장 높은 제부분교는 뒤로는 산, 앞으로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옥상은 해맞이 장소로 활용되고 수업 중 창을 열어 놓으면 바닷바람이 들이친다.▲ 아이들의 발달 과정을 고려, 유치원을 학교 건물 가장 아래에 배치했다. 건물 내부도 둥글게 꾸몄다.▲ 경기도교육청은 제부분교에 해양갯벌생태체험학습장을 지어 도 학생들의 갯벌체험과 현장학습에도 활용하고 있다. 사진은 그 실내.▲ 학교 옥상에서 바라본 마을 모습.

2014-07-28 권순정

[공간과 사람·18]의왕 '어린이랜드'

도서관과 유기적 결합된 어린이집상상력 키우고 보듬는 구름형상화대비되는 외관·재료 '정체성' 구축산 자락 삼각형 모양 열악한 공간지형차 '계단' 활용 등산로와 연결야외스탠드·벤치 주민쉼터로 애용"가족내에서 아빠, 엄마, 큰아들, 작은딸 각각의 개성이 있지만 함께 모여있을 때는 또 가족 전체의 특징도 느껴지죠. 어린이랜드가 그런 곳입니다."의왕시 어린이랜드에서 만난 이종훈 건축사가 건넨 첫마디다. 이 건축사의 말을 들은 뒤 건물을 둘러보다보니, 가장 적합한 설명이었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공간과 사람'이 이번에 소개할 다중이용시설은 의왕시 오전동 보석골로 30의10에 위치한 의왕시 어린이랜드(글로벌 도서관)다. 설계는 (주)행림종합건축사무소 이용호 대표이사가, 이날 안내는 이종훈 설계총괄본부장이 맡았다.■ 따로, 또 같이어린이랜드는 1층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중앙 경사면에 계단(스탠드)이 배치돼 있어 오른편 어린이집과 왼편 글로벌도서관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계단을 중심으로 입구부터 양쪽으로 나뉘어 있는 구조다.오른편에 위치한 시립어린이집은 알루미늄 패널로 처리된 외관에 건물 밖으로 둥그렇게 돌출돼 있어 얼핏 보면 독립건물인 듯하다. 어린이집 지붕 위에 2층이 비어 있고, 바로 3층이 위치해 있는 형태라 더욱 별도 건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건물과 유기적으로 연결돼있다.네모난 하나의 건물에 1층엔 어린이집, 2층엔 열람실을 배치하면 짓기도 쉬울텐데, 너무 디자인에만 신경을 쓴 게 아닌가? 하지만 이종훈 건축사는 '건물을 누가 이용할 것인지'가 설계의 시작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전체적으로는 어린이랜드에 도서관, 북카페, 체험학습, 어린이집이 위치해 있지만 각각을 따로 봤을 때 어린이집은 어린이집만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건축사는 "여러 용도의 건물들이 밀집해 있다보니 자칫 각각의 특성이 가려질 수 있다"며 "하지만 아이들이 상상력을 키우고 보살핌을 받는 어린이집만큼은 고유한 특징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보듬는 구름을 형상화했다"고 말했다.재료면에서도 오른편과 왼편의 차이를 뒀다. 금속 알루미늄 패널로 매끈한 느낌을 살린 오른편과 달리, 왼편은 돌과 인도 사암을 통해 거친 느낌이 들도록 했다.메인 건물은 직선과 사선으로 이뤄진 반면, 어린이집은 자유곡선으로 이뤄졌다.건물을 밖에서 보고있자니 각각의 재료와 모양들이 따로, 또 같이 어우러지는 느낌이 극대화됐다.■ 열악한 공간을 최대한으로어린이랜드 뒤편에는 모락산이 자리잡고 있다. 나무가 빼곡하고, 새 지저귀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등산로가 있어 오고가는 등산객들이 자연스레 어린이랜드 뒤편을 지날 수밖에 없다. 설계 당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게다가 산기슭 언저리에 있는 부지는 기다랗고 삼각형 모양이라, 한마디로 건물을 배치하기 '벅찬' 곳이었다.부지 모양대로 건물을 지을 수도 있었지만, 건물을 사이에 둔 채 모락산과 아파트단지가 단절되는 부분도 고려해야 했다. 결국 건축사는 자연 그대로를 초점에 맞추기로 했다. 능선을 따라 건물의 높이를 정하고, 언덕은 깎는 대신 자연스럽게 계단을 배치해 휴식공간으로 바꿨다. 그 결과 등산로를 통해 산에서 내려온 등산객들은 어린이랜드에 시야가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언덕 아래로 미끄러지듯 펼쳐진 계단을 통해 동네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됐다.이 건축사는 "대지의 지형차에 맞춰 야외스탠드를 배치하고 보니 어린이집에서 야외수업을 하거나 주민들이 잠시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의 공간이 됐다"며 "좁은 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 반외부공간이면서도 반내부공간인 '필로티공간'을 많이 확보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이외에도 건물 내부에서 계단을 오를 때 벽면에 큰 창을 배치해 답답함을 해소시켰다.또 산쪽이 남향이라 건물의 뒤편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유리창으로 처리를 했다. 반면 북쪽인 정면에는 조각창을 냈는데, 마침 정면이 도로변이기 때문에 조각창이 적합했다. 산쪽으로 창문을 냈기 때문에 에너지 절약은 물론 조용하기까지 하다. 덕분에 성인들도 어린이랜드를 찾아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다.어린이랜드 글로벌도서관 관계자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어린이가 아니어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있다"며 "오히려 아이들보다도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이 더 오래 머물다 가곤 한다"고 말했다.이렇듯 밀집한 각각의 공간을 최대한으로 살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어린이랜드로 귀결되는, 자연 그대로의 지형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연과 어우러지도록 만든 점들이 고스란히 반영된 덕분일까. 어린이랜드는 지난 2010년 8월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건물로 준공돼 이듬해인 2011년 제16회 경기도건축문화상 동상을 수상했다.건축물을 하나의 가정으로 생각하는 건축사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 듯, 오늘도 어린이랜드에는 아이들을 보듬는 따사로운 여름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글/신선미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위에서 바라다 본 어린이랜드 전경. 측면에 돌출된 어린이집은 독립건물인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전체적인 건물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어린이집만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신경을 쓴 것이다.▲ 좁은 내부 계단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전면을 유리창으로 대신했다.▲ 모락산에서부터 내려오는 언덕에 자연스럽게 야외스탠드를 배치, 건물로 인해 시야가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건물 사이로 동네가 내려다보이게 됐다.▲ 모락산 자락에 위치한 어린이랜드 뒤편 어린이놀이터.▲ 어린이랜드 1층 로비.

2014-06-23 신선미

[공간과 사람·17]안양 '영각당'

보장사와 어울린 납골당옛건축과도 어긋남 없어불가 뜻따라 화려함 버려주변 산·물길과도 조화죽은이들의 '윤회' 기원원통모양으로 건물 지어불가(佛家)에 귀의한 사람은 머리를 깎고 잿빛의 옷을 갖춰 입는다. 속세에서 품고 온 욕심을 떨어내고 영(靈)을 맑게 하고자 함이다. 민낯을 드러내 소박한 자신을 내보이는 과정. 그러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마음과 정신을 편안하게 할테다.죽은 자를 종교에 내맡기는 건 그런 탓이다. 세속에서 이리저리 욕심에 치여 살았다면 모든 것을 떨어내고 당신의 정신이 편하게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때문에 신호근 건축사는 절에 세워지는 납골당이 화려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마땅히 승려의 민낯을, 승복의 잿빛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절과 똑같은 고건축물로 납골당을 지으면 통일성 있게 웅장하고 아름다울 테지만 3.3㎡당 1천만원에 이르는 건축비를 생각하면 외려 고건축을 고집하는 것이 불가의 뜻과 다르다고 느꼈다.차라리 두꺼운 돌을 깨 나온 거친 단면과 세월이 덫칠해도 그 색깔 그대로 잿빛이 유지되는 스플릿블록을 주 소재로 사용해 현대 건축물로 짓는 것이 소박하고 절제된 불가의 뜻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안양예술공원 초입에 자리한 보장사 영각당(靈覺堂)은 오롯이 현대 건축물임에도 고건축물 보장사에 어긋나지 않는다.소박한 소재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사로를 깎아 부처 발 밑으로 세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축물은 기존의 보장사까지 이어지는 계단 높이로, 대웅전 앞마당에서 보면 왼편에 돌로 다듬어진 마당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 또 다른 이유는 원통형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신 건축사는 "죽은 이들의 윤회를 빈다는 측면에서 납골당의 몸체에는 원통형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그는 "원통형 건축물은 각을 잡아 짓는 사각형 건축물보다 2.5배는 힘이 더 들것"이라면서도 "방위를 따지는 한국인들이 영각당에 와서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기 싫어 아예 방위를 없앤 채 둥그렇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좋은 방위를 찾는 심리가 잘 살고자 하는 욕심에 뿌리를 둔다면 불가의 납골당은 차라리 욕심을 지울 수 있는 원통형이 낫다는 판단이다.신 건축사는 "원통형은 산에서 내려오는 지하수 등 물길을 막지 않아 자연지형과 호흡을 같이한다는 측면에서도 타당성을 얻는다"고 덧붙였다.원통형 건축물은 빛을 이용하면서 종교적 색채를 더한다.전체 3층 규모, 연면적 1천646.76㎡의 건물은 뒷면 산에 가려 어둡지만 중앙 천창에서 떨어지는 빛이 사방으로 퍼진다.1층으로 떨어진 빛은 8개의 방으로 잔잔히 물결치고 중앙의 작은 홀은 향(香) 냄새가 그득하다.중앙홀에 서서 작은 불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곡소리를 그치고 부처께 조용히 의지하게 된다.그래서일까. 마음을 가다듬게 되는 분위기 탓에 납골단에는 십자가가 새겨진 영혼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이 건물의 또다른 백미는 경사로다.중앙홀에서 빗겨나와 경사로 앞에 서면 빛이 들지 않아 굉장히 어둑어둑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걸음씩 옮겨가다보면 어느새 안양예술공원의 모습과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진다.건물 외부를 감아 대웅전 앞까지 인도하는데 단순히 토사로부터 건축물을 보호하기 위한 옹벽이기도 하면서 종교적으로는 어둠에서 밝음으로 인도하는 부처의 길이다.신 건축사는 경사로를 설명하며 절의 계단을 설명했다. 그는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서야 부처를 만날 수 있게 한 것은 몸에 작은 고통을 줘 깨달음에 이르기 위함"이라면서도 "절에 다녀오는 부모님들께서 계단을 내려오며 관절에 무리가 갈 것이 우려돼 옹벽과 건축물 사이에 경사로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또 그는 "영각당의 관리자 중 한 분이 중풍으로 걷기 힘들지만 계단 대신 경사로로 이동하면서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며 "경사로 덕에 보장사와 영각당이 장애인에게도 열린공간이 됐다"고 말했다.종교적 경건함을 확보한 영각당도 물론 미흡한 점이 있다. 건물의 수납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영(靈)을 보좌하기 위한 돗자리, 제사상 등 장비들을 둘 곳이 마땅치 않은 것. 하지만 안양시내, 사람들 발길이 쉽게 닿는 곳에 가족을 회상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인지 납골단에는 손자·손녀들이 학교에서 그린 그림, 고사리손으로 만든 종이 카네이션, 결혼하기 전 돌아가신 시아버지를 찾은 며느리의 카드, 돌아가신 이의 생일상 등 자주 다녀간 흔적이 가득했다.'영혼을 깨우치는 집'이라는 의미의 영각당(靈覺堂). 건축으로 불가의 깨우침을 전하고 죽은 이에게 편안한 안식을 전하는 건물. 영각당이 생활 반경에 있어 지역주민들은 묘지를 찾는 먼 고행길 대신 제례(祭禮)를 더 편하게 누리고 있다.글/권순정기자 사진/조형기 프리랜서▲ 천창에서 떨어지는 빛이 8개의 방으로 밀려들어가 제례전 잠시 서서 경건함을 느껴보는 것도 마음을 편안히 하는데 도움이 된다.▲ 대웅전 앞에서 본 영각당. 대웅전을 가리지 않고 대신 영각당 옥상에 돌 의자를 만들어 신도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영각당 전경▲ 납골단. 안양예술공원 초입에 자리해 접근성이 좋아 가족들이 자주 찾는지 최근에 달아놓은 카네이션, 꽃, 카드 등이 한가득 붙어있다.

2014-05-19 권순정

[공간과 사람·16]용인 '예수나라교회'

꼭대기에 있던 십자가교회 안으로 들어와…방문객 모두 감싸안아총 1271㎡ 4층 규모 아담한 모습양옆으로 네모난 노출 콘크리트'천장 창문' 통해 예배당 빛 밝혀경건하고 신성한 분위기 만들어종교가 있든 없든 일부러 찾으려 하지 않아도 동네마다 꼭 몇 군데씩은 있는 교회.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교회의 이미지는 아마도 '성스러움'과 '웅장함'일 것이다. 중세시대 유럽 고딕 양식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우리나라에 위치한 교회들도 대부분 뾰족하고 높이 솟은 웅장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높기만 한가. 여기에 대형 십자가까지 위에 배치하는 바람에 밤에 높은 곳에 올라 시내를 내려다보면 온통 빨간 불이 들어온 십자가들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대부분의 교회가 이 같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것은, 아마도 성스러워야 할 교회의 모습을 당시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하지만 시간이 흐르듯 교회 건축물에도 변화가 찾아왔다.외관에 높이 솟은 대형 십자가로 교회를 표현하던 것에서 벗어나, 요즘 지어지는 교회들은 대형 십자가를 통해 '나 교회요~'라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오히려 네모지고 낮은 모습 때문에 박물관이나 미술관, 심지어 잘 만들어진 모델하우스를 빼닮기도 했다. 혹자는 교회가 상업성만을 추구하면서 본래의 의미를 잃었다고도 비난한다. 하지만 십자가로 굳이 교회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건물 자체만으로 교회답다면, 그것이 시대 흐름을 반영한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공간과 사람'은 부활절이 있는 4월을 맞아 교회 건축물을 소개하기로 했다. 흔히 생각하는 교회의 모습은 아니지만, 또 지극히 교회다운 모습을 뽐내는 교회. 2003년 제8회 경기도건축문화상 사용승인 비주거부문 금상을 수상한 예수나라교회(구 세계비전교회)다.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위치한 예수나라교회는 죽전의 랜드마크 교회라고 하기엔 머쓱할 정도로 아담하다.총 규모 1천271.39㎡, 4층짜리 건물에 불과하다. 게다가 위아래로 긴 형식의 건물이 아니라 양 옆으로 넓은 네모난 모습을 하고 있어 더 아담하게 느껴진다.원래 이곳은 김석철 목사가 건축주로서 '세계비전교회'라는 이름으로 지어졌지만, 지난해 8월 이상용 목사가 이곳을 매입하면서 이름도 '예수나라교회'로 바뀌게 됐다.이 목사는 매입할 교회를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를 알아보던 중 이곳을 찾았고, 건물의 첫인상을 한 마디로 '네모상자'라고 표현했다.건축에 대해 전문적인 시각이 없기 때문에 처음엔 그저 교인들에게 필요한 면적만 맞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목사는, 그간 접해왔던 교회의 외관과는 사뭇 다른 '네모진' 교회에 살짝 당황했다. 교회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가 꼭대기 위가 아닌 네모난 틀 안에 배치된 것도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여러 차례 교회를 방문하면서 지금은 이 네모상자를 입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팔불출이 돼버렸다. 어찌 보면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이 교회의 모습이, 가장 검소하고 낮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교회의 신념과 딱 들어맞기 때문.이 목사는 "처음 외관을 봤을 때는 교회답지 않다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몇 차례 방문하면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모두가 꿈꾸고 바라던 교회였던 것 같다"며 "자연채광이 좋고 방음도 잘 되고, 야외예배를 드릴 수 있는 옥상의 공간까지 활용할 수 있는 등 내부의 모습 역시 교회로 쓰일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지어져 교인들 모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임채돈 건축가와 이은석 경희대 교수는 교회의 공동설계자다. 2002년에 세워졌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낡았거나 촌스럽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는 교회가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데, 노출 콘크리트는 거친 느낌이 있기도 하지만 오염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교회에 적절했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은 현재 건축물을 지을 때 유행하는 공법인데, 무려 10년 이상 앞서나갔다.임 건축가는 "당시 건축물들에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하는 것이 흔치는 않았다"며 "처음엔 교회 건물에 어울릴지 의문도 들었지만, 오히려 페인트칠 등을 하지 않은 자연스러움 자체가 교회 이미지와도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노출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내부를 돌아보며 맨 윗층으로 오르니 눈높이에 십자가가 위치해 있다. 십자가는 교회의 정체성인데, 꼭대기 위에 배치돼 있는 여느 교회들과 달리 내부에서 그것도 눈높이에서 십자가를 볼 수 있다니? 십자가를 높게 배치하지 않고 틀 안에 가둬놨다는 생각에 의문을 표하자 건축가는 이를 '십자가 문'이라고 표현했다. 이웃들을 교회 안으로 환대해 들이는 상징적인 문의 기능을 한다는 것. 교회를 방문해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시민 모두를 십자가 문이 감싸안는 형상을 띤다. 실제로 십자가 아래는 1층부터 4층까지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위치해 있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보자. 건축가가 교회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도 예배당 안에 있다. 바로 빛을 쏟아내는 꼭대기 창. 전통적인 첨탑의 형태를 변형해 한쪽 유리면을 삼각형으로 만들었고, 삼각형의 유리면을 통해 쏟아지는 빛은 경건함 그 자체였다. 아래에 위치한 테이블에는 펼쳐진 성경책이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놓여 있다. 예배당 양 옆은 흡음제를 써 방음효과를 높였고, 강단 벽면은 뿜칠을 통해 예배를 보며 스크린 빔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사용하고 앞자리와의 틈이 좁아 예배를 보는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을 수 없다. 쓸데없이 삐걱거릴 일도 없도록 무게에도 신경을 쓰는 등 경건하고 신성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한 건축가들의 배려가 돋보인다. 임 건축가는 "교회이긴 하지만 상징적인 부분에만 치중하지 않고, 개별 난방 방식을 사용하는 등 실용적인 부분도 신경을 썼다"고 전했다.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없는 지금 시간에도 예배당 안으로는 삼각형 창을 통해 변함없이 빛이 쏟아지고 있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예배당으로 내리쬐는 빛이 마치 누구든 똑같이, 변함없이 사랑하려 한 예수의 가르침과도 닮은 것 같다. 글/신선미기자 사진/조형기 프리랜서▲ 예배당 안으로 쏟아져내리는 빛, 시간대별로 빛이 움직이면 십자가에 지는 그림자도 덩달아 움직인다. 빛을 받는 대형 성경책은 경건한 예배당의 분위기를 전해준다.▲ 예수나라교회 전경. 왼쪽에 뾰족 나온 창문을 통해 예배당 안으로 빛이 쏟아져내린다. 십자가가 꼭대기 위에 위치해 있는 여느 교회들과 달리 오른편 틀 안에 배치돼 있다.▲ 성가대 전용석. 빨간 벽면과 간접조명이 찬송을 부르는 성가대원들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예배당 내부.

2014-04-21 신선미

[공간과 사람·15]수원 '중앙기독초교'

햇빛으로 밝힌 교실·둥근 책상세모·네모 알록달록 창문 인기안디옥·베다니·갈보리 채플 강당주말이면 하나로 합쳐 공간활용'학교의 교육이념으로 지어진 건축물'.상식 속 학교는 네모진 건물에 칸칸이 나뉜 교실과 긴 복도로 돼 있고, 그 안에는 네모진 개별 책상이 칠판을 향해 정렬한다. 아이들은 본래 자유롭지만 학생이 되면 보이지 않는 틀에 자신을 맞춘다.교복을 입히지 않는 초등학교도 구조는 별반 다를 바 없다. 교복 자율화가 마치 학생들의 자율과 직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교육환경이 '네모'로 경직돼 있어 교복을 벗는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반대인 경우는 어떨까. 교복을 입었지만 학교는 네모지지 않다. 똑같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지만 교실은 밝고 책상은 둥글다.수업은 강당과 도서관, 음악실, 미술실, 컴퓨터실을 이용해 진행되므로 교실안 책상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이 길지 않다. 20분이나 되는 중간놀이시간에 만난 학생들은 복도에 엎드려 그림책을 따라 그리기도 한다.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에서는 경직된 학생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거기엔 학교 건물도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연면적 2만4천여㎡를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1,2학년생 456명이 쓰고 있다. 공간을 넓게 쓰되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짜였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8년전 준공된 건물이지만 아직도 어떤 학교보다 더 최신식이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강당이었다. 4층의 안디옥, 베다니, 갈보리 채플 등 3개 강당은 평일에는 독립된 공간이었다가 주말이 되면 하나로 합쳐진다. 중간 벽체를 들어올려 큰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사진2 참조). 이 학교를 지은 중앙원천침례교회가 교회시설로 쓰기 위함인데, 중간의 벽체가 두꺼워 평상시에 3개 강당에 각각의 수업이 있어도 소리가 섞이지 않는다. 취재팀이 방문한 20일 안디옥에 유치원생이, 갈보리에 초등학교 2년생이 각각 체육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중간에 낀 베다니 채플은 너무나 조용했다. 하지만 벽체를 들어올리니 재잘대는 아이들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시설을 안내한 최운용 기획국장은 "학교이면서 교회임은 물론 종종 지역주민들과 호흡하는 콘서트 등을 열기도 한다"며 "애초부터 공간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무대장치를 할 수 있는 음향·조명장치 등도 모두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중앙기독초등학교가 개교한 것은 20여년 전이다. 김장환 목사 내외가 '가정과 학교, 교회가 하나가 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아이들을 기르겠다'는 신념으로 세웠다. 그런 학교 건물은 조금 특별한 것이 필요했다. 당시 일반적인 학교와는 다른 자유로운 공간, 자유로운 분위기가 그것이다. 국내에 예시가 없자 아예 미국 설계사에게 부탁해 미국식 학교 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나 학교를 확장하면서 당시 도움을 줬던 황정복 건축사가 바통을 이어받아 두번째 건물을 설계했다. 황 건축사는 "자연 경관을 건물내로 끌어들이고 자연지형에 순응하며 고정관념을 탈피해 아이들의 순수함을 그대로 안은 창의적인 건물을 만들고 싶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그는 학교가 남쪽을 바라보지 않고 서북쪽을 향하고 있는 것을 가리켰다. "지금은 광교지구에 편입돼 아파트로 둘러싸여졌지만, 당시만 해도 낮은 구릉들로 둘러싸여 있었다"며 "낮은 구릉이라면 대부분 부숴 뭉개고 남향으로 건물을 지을테지만, 자연 그대로 두고자하니 건물을 서북으로밖에 낼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대신 뒷동산이 된 구릉들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됐다. 운동장이 매우 좁은 학교지만, 아이들은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쉬는 시간이면 학교입구에서 줄넘기를 하거나 동산으로 달리기 시합을 하기도 한다. 교실에서 건물밖으로 나가는 길도 즐겁다. 노출콘크리트로 만든 원통형 계단실에는 노랑, 파랑, 빨강으로 색칠된 삼각형, 네모, 동그라미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춤추는 무대를 비추는 일명 사이키조명 역할을 해 아이들은 계단실을 '춤추는 계단(Dancing Stairs)'으로 부른다(사진3 참조).이 학교의 장점은 도서관이다. 중학교가 지난 2007년 개교하면서 도서관이 3개가 됐다. 각 도서관은 수준별로 맞춰져 있다. 유치원생~초교 2년생까지, 초교3~중학생, 성인 도서관이 각각 따로 있는 것. 게다가 도서관은 각 층을 오가는 입구 바로 앞에 두거나 가장 중앙에 둬 접근성을 높였다. 최 기획국장은 "학교가 미니스쿨 체제로 돼 있다"며 "연배가 비슷한 아이들끼리 묶어 활동하기 때문에 연령에 따른 도서관 활용을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문한 지난 20일, 때마침 영어 교사가 아이들을 이끌고 각각 책을 고르게 했는데 그때 몸이 불편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최 국장은 "학교 정책상 한반에 두명씩 지원실 친구들(장애아동)이 섞여 있고, 국가가 지원해줘 보조교사가 함께 다닌다"며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섞여 살면서 장애아는 살아나가는 법을 배우고, 비장애아는 타인을 아끼는 법을 배운다"고 말했다. 학교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훌륭한 장소가 되는 것. 애당초 이러한 '통합교육'을 중점에 뒀기 때문에 건물에도 그러한 배려가 곳곳에 스며있다. 4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문턱이 없다. 문도 스스륵 가볍게 열린다. 아이들 안전을 위해 환기시설을 따로 설치해 환기를 위해 창문을 반드시 열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었다. 황 건축사는 "종종 이 학교가 귀족학교·부자학교로 불린다. 하지만 아이들이 배워야 할 가치를 기준으로 본다면 외려 최고의 학교라고 칭찬을 들어야 맞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러한 교육이념에 맞는 학교를 짓기 위해 최선의 공간 구성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학교의 교육이념과 일치되는 건축설계. 꽃피는 3월이 되면 걱정반 설렘반으로 학교를 보내는 부모들에게, '학교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고 있다.글/권순정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중앙기독초등학교Ⅱ의 전경. 지난 2006년 준공된 두번째 건물은 유치원, 초등학교 1~2학년 등 총 456명이 사용하고 있다.▲ /아이클릭아트▲ 1 교실 분위기가 기존 교실과 판이하게 다르다. 더 밝고, 둥근 책상에 둘러앉아 함께 공부하고 있어 딱딱한 느낌이 덜하다.▲ 2 4층 강당. 중앙 벽체를 들어올리는 장면. 벽체를 들어올리자 갈보리 채플에서 수업받는 2학년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베다니 채플로 넘어왔다. 중앙벽체는 개별공간의 독립성을 완전하게 보장해 줘 공간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3 계단실. 중앙기독초등학교의 가정, 학교, 교회의 3가지 모양(세모, 네모, 동그라미)이 3가지 색(빨강, 파랑, 노랑)으로 박혀있어 계단실 자연 조명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 계단실을 '춤추는 계단(Dancing Stairs)'이라고 부른다. 4 유치원생부터 초교 2년생까지가 사용하는 도서관으로,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책과 책장이 아이들에게 책을 친숙하게 만든다. 5 학교 전경.

2014-03-24 권순정

[공간과 사람·14]안산 '행복예절관'

대청마루·격자무늬 창…보기만해도 마음 편해지고몸가짐은 단정하게돼한복을 입으면 몸가짐이 달라진다. 사뿐사뿐한 걸음걸이에 어깨와 손동작은 다소곳해지고, 수줍은 듯 온화한 미소가 몸 전체에 절로 번진다.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오래된 말이 역시 틀린 말은 아니리라.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몸에 직접 닿은 옷이 그 사람의 기운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 아닐 수 없다.굳이 한복을 걸치지 않아도 이내 공손하고 바른 몸가짐을 갖게 되는 곳, 들어서면서부터 자연스레 예를 갖추게 되는 곳이 있다. '공간과 사람'이 2014년 두번째로 찾은 안산시행복예절관이다.행복예절관은 자체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내뿜는다.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시골 마을 구석진 곳에 위치한 서당이 이런 모습이었을까.원래 이곳엔 관사가 있어 역대 안산시장들이 머물렀다. 지난 2006년 박주원 전 시장이 이곳을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내주겠노라 약속했고, 이듬해 약속은 현실이 됐다.윤덕찬 건축가는 관사가 허물어진 뒤 설계 단계에서 고민에 빠졌다. 으리으리하게? 아름답게? 실용적으로? 많은 모습이 스쳐지나갔지만, 건축가는 '행복예절관'이라는 이름에 다시 주목했다.어린아이들은 물론 한국을 찾는 외국인과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이 한국의 예절과 전통을 배울 곳이었다. 건물의 첫인상이 한국의 이미지를 좌우할 게 뻔했다.외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건물의 쓰임새에 가장 집중한 것이다.선조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다 못해 자연과 동화되는 '물아일체'의 정신을 높이 샀다.건축가도 북동쪽에 높이 솟은 광덕산 자락에 예절관이 쏙 파묻혀 이곳을 찾는 이방인들이 그 정신을 간접적으로 느끼길 바랐다. 또 예절관 터를 수십년간 지켜온 나무들도 해칠 수 없었다. 그렇게 예절관은 조용히, 자연도 눈치채지 못하게 세워지기 시작했다.건물은 한옥으로 지어졌고, 공간배치도 전통 방식에 의해 '평면구성'으로 이뤄졌다. 자연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건축가의 세심함이 한 곳 한 곳에 미쳤다.우선 지붕에 올린 기와는 좋은 흙으로 구워 만든 전통 기와를 썼다. 2층 베란다에 올라서면 눈높이에 기와지붕이 있는데, 아무 기와나 쓰면 안 된다는 건축가의 고집 때문이었다.남동쪽에는 최대한 창문을 많이 내 빛을 끌어들이려 했고, 북쪽은 최소한의 환기만을 위해 창을 냈다. ㄷ자 모양으로 된 한옥의 가운데 황토마당에는 박석을 깔았다.울퉁불퉁한 박석은 조심해서 걸으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돌인데, 날이 좋으면 이 마당에서 외국인 부부가 전통혼례를 치르기도 한다.벽지는 전부 한지로 발랐고 계단 난간은 완자무늬를 차용했다. 창문은 시골집 창호지 문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려고 격자무늬를 샌딩처리해 넣었다.그래서 햇빛이 내리쬐면 마루바닥에 격자무늬가 펼쳐진다. 조혜옥 관장이 행복예절관을 찾는 이들에게 꼭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조 관장은 "전통무늬가 창문에 새겨져 있어 창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특히 빛에 의해 바닥에 같은 무늬가 쫙 깔리면 나도 모르게 걸음걸이가 조심스럽게 된다"며 "많은 방문객들이 격자무늬 바닥을 보고 신기해한다"고 말했다.이렇듯 예절관 곳곳에 전통 방식이 묻어 있으면서도 내부는 현대 생활에 맞게 재구성됐다.옛집이라면 으레 미닫이 문이 어울리겠지만, 실용성이 현저히 떨어져 투명한 유리문을 달아 편리성을 높였다.그런데 유리문을 달아놓고 보니 교실 안에서 이뤄지는 예절교육 등을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어 오히려 미닫이 문이었다면 아쉬웠을 지도 모르겠다고 예절관 직원들은 입을 모았다. 구불구불한 구조를 최소화해 수강생들의 동선을 편리하게 했다.한옥하면 또 빠질 수 없는 게 대청마루. 앞뒤가 같이 트여 맞바람이 치도록 해야 했지만, 건물 뒤편이 공터라 영 미관이 별로였다. 결국 뒷부분은 위에만 작은 창문을 내는 것으로 결론지었다.윤덕찬 건축가는 "나무와 산과 바람, 햇빛 등 자연을 그대로 끌어와 예절관과 어우러지게 만들고 싶었다"며 "안에 있지만 최대한 밖과 교감할 수 있는 공간, 밖에 있지만 안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공간을 기획했는데 잘 반영돼 뿌듯하다"고 말했다.건축가는 예절관 전체에 격자무늬 창문을 배치한 대신, 안팎의 교감을 위해 깨끗한 유리창을 하나 더 냈다. 공교롭게도 예절관 식구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바로 그 유리창이 있는 곳이다. 2층 계단을 따라 나란히 서있는 창문은 네모난 액자 모양인데, 가만히 보고있자면 마치 풍경사진을 걸어놓은 것 같다. 액자를 바꿔 끼우듯 사계절 경관이 창문을 통해 바뀐다.오상록 행복예절관 전문강사는 "창문틀이 액자의 역할을 하면서 광덕산의 사계절 풍경을 사진처럼 느끼게 해준다"며 "밖에 있는 새들도 같은 느낌을 받는건지, 창문으로 그대로 날아와 부딪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예절교육을 위해 방문하는 이들 외에도, 예절관으로 출퇴근하는 직원들 외에도 안산시민들은 모두 예절관을 안산의 자랑거리로 생각한다.광덕산에 자주 오르는 김정택(49)씨는 "산 위에서 예절관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저절로 숙연해지는 느낌을 받는다"며 "특히 봄에 꽃이 피면 광덕산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지는데, 다들 시내 한가운데 있는 한옥 예절관을 보며 심신을 정화하곤 한다"고 전했다.행복예절관은 지난 2009년 제14회 경기도건축문화상 사용승인부문 동상을 수상했다. 한해 2만명이 다녀가며 안산을 대표하는 것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예절관으로 자리잡다보니, 다른 지역에서도 이곳을 벤치마킹하러 온다.곧 봄이 오면 행복예절관은 좀 따가울 게다. 광덕산에 올라 꽃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예절관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글/신선미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2014-02-25 신선미

[공간과 사람·13]의왕 중앙도서관 '책마루'

김동훈 건축가 '자연과의 조화' 방점두고 설계오봉산 능선같은 외관 '자연채광' 최대한 활용산책로 책장 '숲마루' 책과 좀더 친해질수 있어어린이·가족 배려한 꿈나무 이야기방도 마련2014년 의 테마는 '다중이용건축물'이다. 지난해를 이끌었던 개인주택과는 확연히 차별된다.개인주택은 대체로 가족들과 함께 자연을 느끼고 싶은 욕구에 따라 지어지지만, 다중이용건축물은 특정목적을 가지고 지어져 불특정다수가 이용하게 된다.잘 지어진 다중이용건축물은 그 건물을 이용하는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 연화장은 우리의 장례문화를 바꾼 상징이 됐고, 수원의 독특한 화장실은 수원을 화장실문화의 선도도시로 올려놓았다.는 첫회를 공공도서관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대한민국 부모의 학구열이 높은 만큼 좋은 공공도서관에 대한 갈망도 높다. 블로그에는 우리동네 도서관에서 공부한 기록, 놀러간 기록이 끝도 없다.이번에 취재 대상이 된 의왕 중앙도서관 '책마루'도 입소문 난 도서관 중 하나다. 그 이유를 찾아 22일과 26일 책마루를 방문했다. 책마루가 들어서기 전, 그곳엔 오봉산과 청풍김씨의 묘가 있었다. 그린벨트로 묶여있던 곳이라 풍광이 아름다웠다.겨울,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꽃나무에 색을 입히면 짙은 녹음이 그늘을 만들고 가을되면 떨어지는 낙엽마저 시 한수 읊을, 계절의 아름다움이 거기 있었다.김동훈 건축가는 도서관 설계의뢰를 받고 그 부분이 가장 두려웠다고 했다. '큰 건물로 소박한 아름다움을 망치지 않기를…', '오가는 사람이 건물이 들어선 다음에도 여전히 뒷산을 바라볼 수 있기를…'.건축가의 고민은 설계에 그대로 반영됐다. 도서관 지붕이 산의 능선처럼 경사져 시선은 도서관 지붕 경사도를 따라 자연스레 뒷산으로 이끌린다. 앞에서 보고 있으면 마치 도서관이 산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자연과 어우러진 설계는 이 도서관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26일 밤, 긴 공부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은 경치'를 이 도서관을 찾는 이유라고 설명했다.임용고사 준비 중인 전모(25·여)씨는 "숲이 많아서" 도서관을 찾는다고 말했고, 승진준비 중인 강모(46)씨는 "주말 점심시간에는 꼭 산책을 한다"고 말했다. 숲이, 새소리가, 바람소리가 왜 도서관을 찾는 이유가 될까. 목사인 이상규(50)씨는 "지금은 춥지만, 봄이 되면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족 소풍 오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고 운을 뗐다. "야외에서 밥을 나누고, '숲마루' 책장에서 책과 놀고, 때론 어린이 장서실에서 부모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가족이 돈독해지더라"는 것.책이 자연과 함께 있어서, 도서관은 단순히 정보의 바다를 넘어 다음세대에 책 읽는 문화를 넘겨주는 곳이 되고 있었다.의왕 중앙도서관에는 특이한 책장이 하나 있는데, 바로 숲마루다. 도서관 옆 산책로에 커다란 새장같은 것을 만들어놓고, 그 속에 책 60권을 넣어놓았다. 산책하다가, 소풍와서도,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3군데에 흩어져 있는 숲마루 책장에서 문득문득 집어 볼 수 있다.어느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책장이라면 책을 도둑맞기 십상이지 않을까. 조지현 의왕시 중앙도서관장은 "1년 동안 전체 180권 중 약 18권 정도를 잃어버리지만, 이정도 손실을 감수하고 지켜낼 만큼 주민들 호응이 좋다"고 말했다.숲마루를 설계한 김도훈 건축가는 도서관을 "단순히 책만 보는 곳이 아닌 사색하는 습관을 들이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그 정의는 이용자들에게 자연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선사하려 했던 설계에서 구현됐다. 또 자연채광을 들이는 측면에도 도서관에 대한 김 건축가의 관점이 반영돼 있다.열람실과 문헌정보실은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다. 남향 집이 가치가 높은 것을 떠올리면 막상 북향 공부방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김 건축사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공부방으로 빛이 직접 들어오면 공부방에 앉은 사람은 상대건물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다"며 "반대로 공부방을 북향으로 두면 상대방 건물의 밝은 면을 보게 돼 긍정적인 사고발달에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북향 공부방(열람실과 문헌정보실)은 이 때문에 청풍김씨의 13기 묘들이 반사하는 남쪽 빛을 바라보고 있다. 의왕시는 애초 시공때부터 묘지를 가려달라는 부탁도 했었다.하지만 김 건축사는 '그것도 자연의 일부'라며 시의 요청을 단호히 거부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껄끄럽게 느끼지 않을까.재수 준비 중인 김모(21)씨는 "묘지는 전혀 관계 없다"며 "외려 이용자들끼리 이 묘지 주인인 청풍김씨에서 정승이 셋이나 나왔다고 해 묘지 마주보는 자리를 선점하려든다"고 귀띔했다.김씨처럼 공부에 올인하는 사람들은 경사진 지붕의 3·4층 데크를 특히 아낀다. 승진준비를 하는 강씨는 "공부하다 갑갑하면 열람실 바로 바깥 데크에 마련된 흡연공간으로 간다"며 "거기서 지붕을 따라 걸어내려가면 산책로로 연결돼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가까워 마음이 가볍다"고 말했다.데크에서 바라보면 산 중턱에 올라온 만큼 시야가 확보된다. 막힌 것이 전혀 없어 바로 하늘과 호흡한다.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최모(33·여)씨는 "지붕 계단을 자주 이용한다"며 "내부 계단은 수직으로 올라가야 해서 힘들지만, 경사로 계단은 오르내리기 편해 접근성이 좋다"고 웃었다. 아이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띈다. 1층에 마련된 어린이책마루는 아기자기한 벽지로 장식됐고, 아이들 키높이를 배려한 굽어진 책장과 별도 어린이 화장실로 눈높이를 낮췄다.또 부모가 책을 읽어줄 수 있는 '꿈나무이야기방'이나 '새싹이야기방', 영화관람을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영화방' 등이 따로 마련돼 있다.현재 붓글씨가 전시돼 있는 1층의 높은 복도도 특이한 공간이다. 도서관 관리자는 "복도 벽면에 전시를 해 두면 로비가 꽉 차고 아늑하지만, 전시물이 없으면 아주 휑하다"며 "매일 도서관에 있어본 사람만 안다"고 말했다. 이는 건축가의 의도이기도 했다. 김 건축사는 "도서관에 문화적 요소를 두고자 일부러 만든 공간"이라고 설명했다.좋은 공간을 가꾸는 사람들도 도서관을 으뜸으로 만드는 데 한몫한다. 최씨는 "시험기간 때 사람들이 몰려 북적여도 화장실이 깨끗하게 유지되는 게 진짜 신기하다"며 "외진 곳에 있어 밤길이 불안한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깨끗하게 운영이 잘 돼서 이곳만 찾는다"고 말했다.책에 자연을 입혀 사색의 공간이 된 의왕시 책마루 도서관은 지난 2008년 13회 경기도건축문화상 대상을 수상했고, 친환경건물로도 인증받아 2007년 개관 이후 약 350만명의 이용객이 다녀갔다.글/권순정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2014-01-28 권순정

[공간과 사람·12]용인 처인구 '연웅당'

가난한 유년기 보낸 성기웅씨, 기와집 부러움에 '한옥 고집''궁궐 건축 양식'으로 집지어… 창덕궁서 영감 얻어 마당에 큰 연못도현대 양식 접목 웅장한 외관과 기품에 실용성까지 더해어릴 적, 소년은 낡은 초가집에 살았다. 가난한 살림에 힘겹게 쌓아올린 볏짚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소년은 매일 노심초사였다.한겨울, 밤 사이 약한 지붕 위로 눈이 한폭 한폭 쌓일때마다 집이 스러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소년을 엄습했다. 그런 밤을 지새고 나면, 다음날 아침 눈을 쓸면서 다짐했다.'돈 많이 벌어 저 옆동네 한옥같이 예쁘고 튼튼한 집을 지어 살겠노라'. 소년은 가슴 속에 이 날의 다짐을 아로새겼다.공간과 사람이 찾은 열두번째 집은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위치한 '연웅당(演雄堂)'이다. 어린 시절 초가집에 살았던 그 소년, 성기웅(62)씨가 은퇴후 부인 차연봉(58)씨와 행복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지은 집이다.연웅당은 멀리서도 주변을 압도하는 고풍스러움이 눈에 띈다. 연웅당 전면에 이미 현대적인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단독주택들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오롯이 연웅당에만 사로잡혔다.눈이 소복이 쌓인 좁은 골목길을 지나 조심스레 대문에 당도했는데, 본채로 들어가기도 전에 하늘 높이 치솟은 검은 기와가 인상적인 큰 문이 대장군마냥 우뚝 서 있었다.위풍당당한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하자, 성씨는 "우리 연웅당은 양반들이 살던 한옥과는 다르다"며 "궁궐에서 쓰던 한옥 양식을 연웅당에 도입했다"고 말했다.그러고 보니, 문 옆으로 세워진 담벼락의 문양도 예사롭지 않다. 육각형의 틀 안에 꽃잎을 표현한 문양들이 있고, 그 중간마다 귀할 귀(貴)와 같은 고귀한 의미를 담은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성씨는 "양반들은 함부로 쓸수 없었던 궁궐담을 세웠다"며 "궁궐에서도 왕비나 후궁들이 생활하는 후원같은 공간에만 있던 담"이라고 설명했다. 본채로 들어서자, 본채 주위를 둘러싸고 길고 깊게 파인 소로가 이어진다. 집 뒷산에서 흐르는 계곡물을 끌어다 소로와 연결시켰는데 맑고 깨끗한 물이 소로를 통해 흐르다, 작은 연못에 고인다.그렇게 작은 연못을 지나 또다시 이어진 소로를 흘러 누마루 밑 큰 연못에 종착한다.날이 좋은 봄·가을에는 큰 연못 중앙에 심어놓은 매화꽃이 피는데, 누마루에 앉아 하나둘 수면 위로 떨어지는 꽃잎들이 떠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선시대 자연을 벗삼아 시 한수 읊으며 풍류를 즐기던 양반들이 부럽지 않단다.큰 연못에 대한 아이디어는 창덕궁 후원에 조성된 부용정에서 얻었다. 성씨는 "어느날 창덕궁 부용정을 다녀왔는데, 정자 밑에 크게 조성된 연못과 그 중간에 동그랗게 만들어진 섬을 인상깊게 봤다"며 "우리 선조들은 이를 '천원지방'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의미를 담아 연못의 구조를 조성했는데, 연웅당 연못도 거기서 비롯된 셈"이라고 덧붙였다.연웅당 본채를 꼼꼼히 살펴보니, 기둥에서부터 문틀 하나까지 정갈하게 다듬어진 나무들이 눈길을 끌었다. 한옥마을이나 민속촌에서 보던 한옥에서는 둥근 기둥을 본적이 없는데, 연웅당은 전부 둥근 기둥으로 잘 깎여 있었다.이것 또한 궁의 양식이다. 예전에는 궁이나 향교, 절외에는 함부로 둥근 기둥을 쓸 수 없었단다.기둥옆에 덧붙인 나무에 새겨진 '낙양'이란 구름무늬도 궁궐에서 주로 쓰던 문양이고, 이중으로 설치된 지붕 밑 서까래도 일반 양반집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양식이다.이렇게 정성을 다해 연웅당을 완성하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 산세와 대지의 형상이 마음에 들어 땅을 샀고, 아내와 아들의 반대에도 한옥집을 고집했다. 한옥을 짓기 위해 1년을 나무만 다듬었다.성씨는 "원래 토목설계쪽 일을 하기 때문에 건축양식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우리 전통한옥, 그중에서도 궁궐 양식에 항상 매료됐다"며 "처음엔 한옥집을 싫어하던 아내와 아들들도 이제는 누구보다 이 집을 좋아한다"고 말했다.단열과 같은 실용성을 이유로 극구 반대하던 큰아들은 이 곳 연웅당 마당에서 전통혼례를 치르기도 했다. 손주들은 연웅당에만 오면 집에 갈줄을 모른다.연웅당이 가족 모두의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건 궁궐에 가까운 외관의 화려함도 있지만, 전통과 현대가 적절히 소통한 내부설계 덕분이기도 하다.연웅당을 설계한 (주)예도 건축사사무소 대표 박용수 건축사는 "실평수가 43평밖에 나오지 않는 작은 공간이지만 연웅당이 웅장해 보이는 것은 집 구조가 개방적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라며 대청마루와 같은 마루를 중심으로 길게 연결된 우리 전통가옥만의 개방적 공간배치를 응용했다고 설명했다.공간을 가로로 길게 배치하고 남쪽방향으로 복도와 창을 설치해 자연과 가장 맞닿아 생활할 수 있게 설계했다는 것.그러면서도 현대식 건축양식을 도입, 천장을 낮추고 바닥난방을 설치해 단열에 최선을 다했다. 또 내부와 외부에 설치된 창호 사이로 유리를 넣어 3중 단열창까지 만들었다.박 건축사는 "단순히 보여주기식의 집이 아니라 직접 살 집을 짓기 때문에 외관도 중요하지만, 내부의 아름다움과 실용성도 놓치면 안된다"고 설명했다.연웅당을 찬찬히 둘러보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궁궐 양식을 고집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물음에 성씨는 "어릴 적 눈이 오는 날 밤에 잠도 잘 들지 못했지"라며 "어린 마음에 우리집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답했다.그러고보니 취재 전날에도 하루종일 눈이 내렸다. 성씨의 연웅당도 눈을 맞았다. 까만 기와가 겹겹이 쌓인 지붕 위로 하얀 눈이 꽤 두텁게 쌓여 있었다."아직도 가끔 눈이 오는 날이면 옛날에 살았던 그 초가집이 나오는 꿈을 꿔, 나는 여전히 그 눈을 바라보면서 혹시 우리집이 무너질까 걱정하다, 꿈에서 깨더라고."글/공지영기자

2013-12-24 공지영

[공간과 사람·11]고양관광문화단지 '세쌍둥이 집'

정중섭·신경숙 부부길건너에 두딸 살아저녁식사 함께 하고족욕공간까지 마련함께하는 시간 많아부부 건축 취향달라고전적인 한옥의 멋유럽식의 감각 조화세집 모두 단열 강화섬세한 배려 돋보여"시집가도 끼고 살거라고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씨가 됐지, 허허."한류월드 테마파크 부지가 지척에 보이는 고양관광문화단지 이주자택지지구에 세 쌍둥이 집이 생겼다.주택가 부지내 왕복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왼편에 파란색 '아빠집'이, 오른편에 두 '딸네 집'이 이어붙어 있다.딸네 집 두 채 중 진분홍색이 큰 딸네, 갈색이 작은 딸네다. 작년, 작은 딸마저 결혼하며 두 딸을 모두 시집보냈지만 딸들은 여전히 아빠 곁에 있다.아직은 남성위주 사회에서 결혼한 딸들이 친정아버지와 옹기종기 모여사는 가족.최근 여성들의 지위가 달라졌다 해도 아예 시집간 딸들과 대놓고 함께 사는 가족은 찾기 쉽지 않다. 게다가 시댁이 군산인 큰 딸은 딸 둘만 있는 부모가 안쓰러워 일년에 두번있는 명절 중 한번은 처가에서 보낸다.딸만 있는 집들이 꿈꾸는 명절쇠는 법이지만, 전통을 따지는 한국에서 사위들의 선택은 쉽지 않았을 터. 도대체 아버지 정중섭(64)씨가 딸들을 얼마나 아꼈기에 사위들이 처가살이에 동의했을까.어머니 신경숙(59)씨의 증언은 이렇다. "딸들은 최근에도 아빠랑 같이 장보러가서 길거리에서 뽀뽀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아빠가 몸을 씻겨줬더니, 커서도 옷 갈아입을 때 아빠 앞이라고 특별히 가리지 않을 정도예요."지금도 딸네 식구들은 아빠집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살림은 고스란히 엄마 신씨의 몫이다.그래도 신이 난 신씨는 냉장고 숫자로 살림 크기를 자랑하며 "겉에 드러난 냉장고 2개, 다용도실 안쪽으로 한 개가 더 있고, 식탁은 접었다 펴면 12인이 앉을 수 있다"며 설명에 열심이다.가족의 행복은 족욕에서 정점을 찍는다. 전체적으로 높지 않게 설계된 아빠집 2층엔 작은 거실이 있는데 거기엔 마주보는 의자 2개만 놓였다. 탁자도 없이 왜 의자만 있을까.부부는 "그건 족욕용이니까요"라며 깔깔 웃는다. 그러면서 "엄마 아빠와 지내는 시간보다 외할머니네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은 큰 손녀 단아(4)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족욕을 하면 고사리같은 작은 손으로 전용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와서는 함께 족욕을 한다"고 자랑했다.노후가 행복한 부부도 건축 취향만큼은 달랐다. 건축사의 중재가 필수적이었다. 세 집을 설계한 (주)건정의 유윤옥 건축사는 "신씨는 유럽식 아기자기한 느낌을, 정씨는 고전적 한옥 느낌을 원했다"고 설명하며 "건물의 용도와 시대성 등을 감안하면 현대적 건축에 요소요소를 섞어 담는 것이 좋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제주성읍민속마을 설계에 참여하며 고건축으로 건축에 입문한 유 건축사는 시대성이란 측면에서 한옥을 그대로 재현하는 최근의 풍토를 비판적으로 바라봤다.그는 "우리 것을 살린다는 의미가 그대로 재현하는 수준에서 머무르면 안 된다"며 "한옥의 강점인 마당과 통풍, 준외부공간으로서의 처마 등이 현대 건축에 적절히 소화되는 것이 발전이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큰 틀을 유 건축사 의견대로 잡았다면 부부는 세세한 조건들을 제시했다. 아빠집의 안방은 신씨의 건강상태를 고려, 최대한 낮게 둘 것과 세 집 모두 단열에 신경쓸 것을 주문했다.그 때문에 아빠집은 자녀들 집과는 다르게 반층 올라가 안방과 부부화장실이 나타나고, 다시 반층 올라가 족욕하는 가족실이 나오는 스킵 플로어(Skip Floor)구조로 되어 있다.또 벽체 바깥과 안쪽으로 단열재를 붙이다보니 집이 도면보다 좁아졌다.정씨는 손님방의 장롱을 가리키며 "아끼는 물건이라 이 장롱 폭에 맞춰 방 크기를 잡아달라고 요청했고, 설계도면에 반영됐는데, 공사하며 단열재를 추가해 결국 장롱 한 폭을 절단해야 했다"고 단열로 인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방문한 당일 준공한 지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이어서 마당이라곤 볼 것이 별로 없었다.아직은 휑한 마당을 채우고 있는 것은 나이 좀 들어보이는 진돗개 한마리다. 처음엔 그냥 짖더니 대문으로 가는 계단으로 손님들이 올라서자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대는 충성을 보인다.거실에 앉아 창문을 보니 그 개와 눈이 마주친다. 거실 남서쪽으로 난 긴 창은 개와 대화하는 창이다. 정씨는 '진풍이'라고 소개하며 "벌써 14살, 다리 관절에 무리가 와서 제대로 서질 못한다"고 운을 뗐다.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키우는 개가 5마리로 늘어나자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아파트를 나왔단다. 진풍이도 이미 저 세상으로 간 태풍이의 딸이고, 작은 딸네 있는 골든 리트리버도 이전에 키우던 개의 아들이다.태풍이는 위암선고를 받고 유명한 동물병원을 찾아 파주에서 분당까지 와 항암치료를 받았더랬다. 2대에 걸친 반려견 가족과 살아온 부부는 아침을 깨우며 진풍이와 눈을 마주친다. 서로의 상태를 유리창으로 확인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세 가구의 집 주변은 사실 겨울이라 황량했다. 개척되길 기다리는 얼어붙은 땅. 하지만 세 집을 감싸는 공기는 너무나 따뜻했다. 부부에게 물었다.자녀들을 옆에 두고 사셔서 가장 좋은게 무엇인가요. 신씨는 말했다."하루가 심심하지 않아요. 자녀들 다 보내고 나면 할일 없어 일거리를 만들잖아요? 나는 불어난 식구들 챙기는 재미에 하루가 참 소소하고 재미있게 흘러간답니다." 웃음이, 행복이, 노후보장이 다른 것이 아니었다. 가족이 옆에 있는 것이었다.글/권순정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2013-12-10 권순정

[공간과 사람·10] 화성 봉담 '이레의 뜰'

난개발로 엉망된 땅 이경호·한상녀 부부 3층집 건축통유리창엔 호젓한 저수지·소나무 군락 '한폭 그림'1층 게스트동 마련… 올해 경기도 건축문화상 수상'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시인이 부른 '꽃'의 구절이다. 읽는 사람마다 수많은 해석이 있겠지만, 문맥 그대로 보자면 김춘수의 꽃은 그의 가치를 알아본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기껏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는, 누군가에게 가치있는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다.공간과 사람이 찾은 열 번째 집은 이경호(60), 한상녀(54) 부부가 이름을 불러 '꽃'이 된 화성시 봉담읍에 위치한 '이레의 뜰'이다.이레의 뜰을 찾아가는 길은 참 오묘했다. 비온 뒤라, 더욱 맑고 푸르게 빛나는 하늘을 뒤로 고속도로를 지나 평범한 주택과 농가가 자리한 시골길로 들어섰다.시골길이 끝날 즈음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나왔는데, 그 옆으로 한눈에 그 끝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저수지가 드넓게 펼쳐졌다.도시 속에서 만난 낯선 풍경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도 된 것처럼 묘한 기분을 느끼며 오솔길을 달리자, 대저택에나 있을 법한 검은 대문 옆 '이레의 뜰'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환하게 취재진을 맞는 이씨 부부에게 방금 느낀 묘한 기분을 설명하자, 이씨는 대뜸 "이 땅을 보자마자 마음에 담아두게 된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며 손뼉을 쳤다.사실 이레의 뜰을 짓기 전의 땅은 말도 못하게 형편없었다. 이레의 뜰을 설계한 신영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신수영 건축사는 "길도 잘 나지 않은 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데다, 땅도 경사가 져서 여러 사람이 두 손 들고 나갔다"며 결국 난개발로 엉망이 됐던 땅의 예전 모습을 설명했다.그런 모습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신 건축사는 처음 이씨 부부의 의뢰가 있었을 때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신 건축사는 땅이 품고 있는 자연을 그대로 살려서 집을 짓고 싶다는 부부의 생각을 듣고는 건축가로서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실제로 이레의 뜰은 3층집이지만, 일부러 3층의 구조를 만든 건 아니다. 계단식으로 생긴 땅의 지형대로 집을 짓다 보니, 자연스레 3층의 집구조가 완성됐다.집 주변과 정원에 높이 솟아 있는 소나무들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나무다. 한 그루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이레의 뜰을 빛내고 있다. 땅의 가치를 알아봐 준 이씨 부부에게 자연이 준 진귀한 선물인 셈이다.집안에 들어와서 이씨와 아들의 서재가 있는 3층부터 올라섰다.서재 앞 데크에 선 채로 풍경을 한번 둘러보라는 이씨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자, 찾아오는 길에 왜 묘한 기분을 느꼈는지, 이씨가 땅을 보자마자 왜 마음에 담아둬야 했는지,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이씨는 "빌딩이 즐비한 도시 속에서 한걸음만 떼서 들어온 이곳은 속세하고 완전히 단절된 원시림이다"며 "대한민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땅"이라고 미소를 지었다.집을 둘러싸고 흐르는 넓은 저수지와 그 건너편에 봉긋하게 솟은 산 하나가 도시의 빌딩을 감추고 있고, 집 뒤에는 오랜 세월 함께 한 소나무와 산만이 존재한다.이레의 뜰에 접근하는 길은 오로지 구불구불한 오솔길 하나. 이씨의 말대로 이레의 뜰은 완벽하게 도시와 단절돼 있다.2층으로 내려와 거실과 주방에 서니, 이번엔 집 주변 언덕에 멋스럽게 자란 소나무들과 잔잔히 흐르고 있는 저수지의 풍광이 더 가깝게 두 눈을 사로잡았다.거실과 주방은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 열린 공간으로 설계됐다. 길고 큰 조리대와 식탁만이 있는 주방의 앞면은 전부 창으로 설치돼 언제든 창을 열고 나가면 넓은 나무 데크에 서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거실은 앞뒤 벽면을 전부 창으로 설치했는데, 정원 쪽으로 난 창과 저수지를 향해 난 창의 풍경이 각각 달라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신 건축사는 "거실, 주방이 있는 2층의 경우 커다란 창으로 호수와 산을 관통시키는 구조를 시도해 봤다"며 "완벽하게 열린 공간으로 인해 자연 속에 가족들이 안락함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난개발로 쓸모없는 땅이 제대로 주인을 만나 이렇게 화려한 모양새를 뽐낼 수 있게 되자,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이씨는 "이 좋은 풍경을 우리 가족만 누리는 게 아까워 1층에 게스트동을 따로 지었다"며 1층을 가리켰다.이곳에는 이씨를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들이 머물다 갈 수 있는 방이 마련돼 있고 한편에는 찜질방과 요리를 할 수 있는 가마솥도 설계돼 있어 이 집의 재미를 더해준다.게스트동 위로 꾸며진 2층 정원도 다른 전원주택과 이레의 뜰을 차별짓는다. 이씨 부부가 어렵게 구했다는 150년 된 탱자나무와 200년 된 철쭉나무가 고풍스럽게 자리했다. 또 겨울을 대비해 부부의 정원을 보호해 줄 비닐하우스도 설치돼 있다.정원에 마련된 돌식탁에 앉아 반려견들과 한가롭게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아내 한씨는 "집 뒤편에 축대를 쌓는 것까지도 직접 했을 만큼 애정을 가득 담은 집"이라며 "남편과 내가 워낙 동물이든 식물이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해서 이 집을 지을 때도 나무 하나 허투루 베지 않고 그대로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이 땅도 처음 봤을 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풀만 무성한 게, 꼭 호랑이가 새끼를 낳아 놔도 모를 정도라고 웃었다"며 "이렇게 예쁜 땅이지만, 아직도 우리가 돌봐 줘야 할 곳이 많다"고 덧붙였다.사실 이레의 뜰은 올해 경기도 건축문화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심사 당시 심사위원들이 집을 둘러보고는 "한 사람이 누리기엔 이 아름다운 자연풍경은 특혜 수준"이라 말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단다.하지만 땅이 가진 놀라운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 땅에 이름을 붙여 주고 생명을 불어 넣어 준 이씨 부부가 오히려 자연에게 특별한 기회를 준 것은 아닐까.'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는 김춘수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버려진 땅도 무엇이 되고 싶었을 테니.글/공지영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2013-10-21 공지영

[공간과 사람·9]주인을 닮은집 이용근 씨의 집

수년간 해외근무후 은퇴경제적 부족함 없었지만인테리어 최소화 기본틀주택 중앙에 위치한 식당지하실 접견공간 마련 등사람들과의 만남에 방점각자의 공간을 꾸밀 수 있다는 건 항상 미(美)를 추구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집이란 개인의 철학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공간일 것이다. '나만의 공간'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나오는 말 아닐까.우리는 단독주택을 호화롭고 고급스러운 자재로 꾸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뽐내는 도구로 생각하지만 단독주택은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대개의 경우 전자라 할지라도 후자가 있을 여지는 여전히 열려 있어 세상의 편견에 자신을 맡겨두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파주시 동패동의 이용근(64)·변인선(여·63) 부부의 집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의 단독주택이 호화로울 것이라는 편견을 여지없이 깨버린다.약간 구릉진 언덕 위에서 서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집은 부챗살처럼 퍼져 있다.1층은 서쪽을 향하되 2층만큼은 정남향으로 틀어올려 빗겨간 자리에 베란다가 생기면서 집 전체 모양이 부채를 펴 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이 집을 설계한 이오건축사사무소 오주현 대표는 "언덕에다 서향인 단독주택 부지는 흔치 않다"며 "지리적 약점을 극복하느라 설계도면이 좀 복잡해졌다"고 설명했다.대지면적 374.5㎡, 연면적 247㎡의 건물을 노출콘크리트와 검은 벽돌로 멋을 내 건축사의 미적 감각에 감탄하고 있을 때 생각지도 않은 반전이 나타났다.현관을 열고 들어서자 장식은 고사하고 거울 하나 없이 신발장만 놓인 입구가 손님들을 맞이했다.입구와 바로 이어지는 2층 계단도 목재로 돼 깔끔한 인상만 풍길 뿐이고, 왼편의 방도 베이지 톤의 벽면에 자리한 TV만이 이곳이 거실임을 웅변할 뿐이다.필요한 것들만 놓여있는 인테리어는 2층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침실엔 침대와 TV, 서재엔 책장과 책상, 팩스가 전부다. 서재 한쪽 벽면에 그가 받은 상패를 놓은 장식장만이 방문객의 눈길을 끌었을 뿐.재미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단순한 인테리어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꿈에 그리던 집을 지었을텐데 왜 인테리어에는 신경을 덜 썼을까.조심스러운 질문에 이씨는 "건물을 올리고 나니 남은 돈이 없었다"며 농담을 던졌다.이어 그는 "애초에 인테리어는 최하로 할 것을 주문했다"며 "조명기구, 벽지 등 화려한 치장을 위한 것이나 월풀욕조처럼 내가 사용하지 않는 것에 돈을 쓸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이씨는 제일모직 지사장으로 근무하며 이탈리아에서 7년 반을 살았다. 패션과는 떼려야 뗄 수 없을뿐더러 대기업 임원으로 근무했던 그가 자기가 지은 집에 쓸 돈이 모자랐다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그가 이해를 도우려는지 담소를 나누고 있던 식탁 옆의 목재 장식장을 가리키며 가격을 짐작해 볼 것을 요구했다. 곡선으로 구부리고 면마다 섬세하게 양각으로 조각한 장식장은 가치가 꽤 나가보였다.그는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우리나라 웬만한 장식장 가격의 절반 정도 밖에 나가지 않는다"며 "이탈리아에서 화려하다고 해서 비싼 것은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물건의 가치와 다르게 가격이 부풀려진 한국 시장구조에 대한 비판이다. 휩쓸리지 않고 쓸데 없는데 돈을 쓰지 않겠다는 기조다. 그제야 그가 왜 인테리어를 최하로 할 것을 주문했는지 짐작이 갔다.그렇다고 이 집이 모두 밋밋한 것은 아니다. 식당과 지하실은 이 집 주인의 삶의 방식을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장식은 줄이되 만남의 공간에 힘을 줬다.거실 대신 식당이 이 집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거실로 설계된 방에 부부는 소파 대신 한 가운데 식탁을 뒀다.외국 생활의 영향인 듯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부엌은 작지만 식당이 커요. 먹으면서 내내 얘기가 끊이지 않으니까…."식당 한쪽면을 차지한 넓은 장식장 위엔 다양한 액자가 놓여 있다.액자들은 부부의 은혼식 사진부터 지인들과 등산갔던 사진, 외국에서 찍은 사진 등 20여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데 그 속에 든 사람들 숫자는 세어보기가 두려울 정도다.이씨는 "아내가 기억하고 싶은 추억은 모두 꺼내 놓아야 한다며 사진을 사진첩에만 두지 않는다"며 "그 사진들을 종종 바꾸기도 한다"고 자랑했다.부부는 손님을 맞는 방법도 독특하다. 손님들이 오면 그들이 나온 사진을 전면에 배치하는 것.이씨는 "손님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대화의 분위기를 띄우는 방법이기도 한데 덕분에 어떤 지인들은 자신이 잘 나온 사진을 들고와 앞쪽으로 놓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며 껄껄 웃었다.집은 부부만의 공간은 아니다. 이미 은퇴한 부부가 사회와 접선하는 오피스이기도 하다. 마치 강당처럼 꾸며진 지하실에는 마이크와 앰프가 있고 30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긴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다.지하실에 딸린 작은 공간엔 와인이 가득하다."이틀 전에도 여기서 뷔페가 열렸어요. 교하가 내 고향이니까 여기 친구들과 술과 음식, 음악을 나누며 여러 가지 얘기를 하는 거죠. 그냥 회의만 하고 가기는 아깝잖아요?"이씨는 역시 아무런 장식도 없이 필요한 것만 들어있는 지하실에 대한 자랑도 놓치지 않았다."시멘트가 아닌 벽돌로 마감돼 있고, 자세히 보면 벽돌 사이 구멍이 있어서 여러 사람이 모여 얘기해도 소리가 울리지 않아 회의하기에 정말 안성맞춤이에요."이씨의 집은 주인을 닮았다. 화려한 치장을 거부하고 사람들과 호흡하기 위한 공간들을 배려한 것이 그것이다.건축사가 건축주의 요구를 소화해내는 것을 시작으로 공간은 이름표를 달기 시작한다. 실용주의로 가득찬 이 집이 새삼 건축의 맛을 일깨우고 있다.글/권순정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2013-09-23 권순정

[공간과 사람·8]용인시 기흥구 리치니스빌

개인 존중·공동 생활 장점만 모은 타운하우스13가구 한 단지 집마다 다른 설계 절묘한 조화바닥 콩자갈 깔아 난방… 목재로 지어 여름 서늘주차장에서 집 계단으로 연결 편의·안전성 높여김기한·박옥주 부부 "이웃 정 느껴 100점짜리 집"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이상을 꿈꾸지만 그때마다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그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이상을 택했다 후회하기도 하고, 현실을 마주하고 절망하기도 한다.그럴 때 절묘한 타협점을 고민한다. 이상과 현실, 둘 다 양껏 만족할 순 없겠지만, 스스로의 선택이 뿌듯할 수 있는 대안을 이상과 현실의 중간쯤에서 고민하고 찾아 헤맨다.공간과 사람이 여덟 번째로 찾은 집은 이상과 현실, 그 중간쯤에 자리한 절묘한 타협점쯤 되겠다.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에 위치한 리치니스빌은 요즘 주택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타운하우스'다.일반적으로 서구에서 타운하우스는 단독주택을 2채 이상 붙여 나란히 지은집으로 벽을 공유하는 주택 형식으로 알려져 있다.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도 벽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아파트와 같은 공동생활을 가능케 하는 것이 특징.하지만 우리에게 타운하우스는 단독주택을 지어 전원생활을 누리고는 싶지만, 아파트의 안전성과 편의성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절묘한 타협점으로 각광받고 있다.리치니스빌도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전원주택의 정취에, 아파트가 가진 공동생활의 특성을 결합해 만든 타운하우스다.13가구가 하나의 단지를 이루며 공동체 생활을 하지만 13채의 집 모두 제 입맛에 맞는 단독주택들로 구성된 독특한 형태다."전원주택을 지었던 사람들이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3년 안에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는 걸 수도 없이 봤다."리치니스빌을 함께 찾아가는 길, 조성건 건축사는 약간은 무심한 듯 투박하게 말했다. 건우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인 조 건축사는 리치니스빌을 설계한 사람이다.그는 "아파트에만 살다가 단독주택에 살기로 결정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을 집에다 넣고 싶겠냐"며 "여기에 건축사의 욕심까지 더해지면 집은 불편하게 설계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그럼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난방'과 '방수'가 가장 중요하다고 손꼽았다.딱 떨어지는 그의 답에 그동안 건축주의 삶이 녹아들어야 하고, 생활동선을 파악해야 한다는 등의 대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황당한 마음마저 들었다.조 건축사는 "건축사 생활을 하며 가장 무서운 게 살아보고 난 후 건축주들이 평가하는 부분인데 대부분 생활하는 데 불편한 걸 냉정하게 평가한다"며 "화려한 외관이나 독특한 구조와 같이 작품성에 몰입하다 보면 난방과 방수와 같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들을 놓치기 일쑤"라고 덧붙였다.리치니스빌은 그런 관점에서 아주 잘 지은 집이다. 집 아래 콩자갈을 40㎝가량 깔아두고 자갈을 달궈 난방을 한다.전통적인 온돌방식을 차용한 것이다. 그래서 리치니스빌은 단독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일러도 없고 벽난로도 없다.또 리치니스빌을 방문한 날은 처서가 지났음에도 햇빛이 쨍쨍 내리쬐 무더웠지만 집 안은 에어컨을 켠 것처럼 서늘했다. 이 또한 목재로 설계된 집이라 습기와 열기를 잡아주기 때문이다.여기에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들어오듯, 주차장과 집을 연결하는 계단이 내부에 존재해 편의성을 높였다.이 덕분일까. 김기한(62)·박옥주(60·여)씨 부부는 3년 넘게 리치니스빌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있지만 아파트로 돌아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다.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아왔던 박씨는 "아이들 출가시키고 이제는 조용한 곳에서 전원주택을 지어 편안하게 살고 싶어 고민해 봤지만 막상 선택하려니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했다.일일이 직접 관리해야 하는 불편함도 마음에 걸렸지만, 무엇보다 단독주택이 안전할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다.여기에 직접 땅을 사고 건축사를 통해 설계하고 집 지을 업체를 선정하는 복잡한 과정도 자신이 없었다.박씨는 "포기할까 고민도 했지만 타운하우스란 걸 접하고 걱정하는 부분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특히 리치니스빌은 똑같이 지어진 집이 아니라 설계에 내 의견도 반영해 주는 점이 좋았다"고 설명했다.그의 집은 두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모두 김씨 부부가 필요로 한 것들이 반영된 것인데, 좌식형태로 된 주방공간과 생활공간으로 쓰이는 2층이다.싱크대와 조리시설 등이 설치된 주방 전면에 설계된 큰 창 앞에 좌식 테이블을 놓았는데, 바깥의 푸른 산과 김씨 부부가 잘 가꿔놓은 개인정원을 감상하기에 적격이다.또 안방과 서재 등이 있는 2층 생활공간에는 안방 옆에 위치한 화장실로 통하는 별도의 문을 설치, 안방을 통하지 않아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 편리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무엇보다 김씨 부부는 타운하우스를 선택하고 이웃을 알게 됐다고 행복해했다.아파트는 몇십 명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의 공간이지만 특유의 고독도 존재하는데, 타운하우스는 마음껏 공동체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게 부부의 설명이다.박씨는 "몇십 년을 아파트에서 살아도 내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며 "나이가 들어 주택을 지어 살려는 것은 어찌 보면 어린 시절 이웃들이 함께 어울려 살며 느꼈던 그때의 정이 그리워서인데, 타운하우스는 그런 점에서 100점짜리"라고 치켜세웠다.문득 어느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집에 살던 건축주가 채 3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 집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스쳐 지나갔다.전원주택이란 이상과 아파트라는 현실을 잘 버무려 행복하게 살고 있는 김씨 부부를 보고 있자니, 건축을 배우던 시절, 불필요한 것들을 잔뜩 설계에 집어넣어 혼만 났던 기억이 많아 필요한 것만 넣는 게 습관이 됐다는 조 건축사가 '난방'과 '방수'를 답했을 때 느꼈던 황망함이 어느 정도 해소됨을 느꼈다.글/공지영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2013-08-26 공지영

[공간과 사람·7]중덕이네 집

평생 농사만 짓고산 최중덕씨 부부남편은 40년된 낡은집이 늘 미안해자연을 오롯이 담아낸 '새집 선물'장마철에도 상쾌… 부인 만족도 ↑60년지기 김동훈 교수가 직접나서최씨 가족의 삶과 행복 '맞춤 건축'아흔 넘은 노모위한 넓은 테라스등거주자가 살기 좋은 '좋은집' 탄생최중덕은 농부다. 봄이 되면 모내기하고, 여름이 되면 김을 매고 가을이면 수확하고 겨울이면 다음해 농사를 준비한다. 성실하게 땀흘린 해를 마흔번 정도 지나고 보니 어느새 그의 나이, 환갑에 이르렀다.문득 뒤를 돌아봤다. 많이 배우지 못한 자신을 대신해 두 아들은 고맙게도 많은 배움을 가져 아버지의 자랑이 돼줬고 좋은 짝도 만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까지 안겨줬다.한눈 한번 팔지 않고 성실하게 땅만 보며 살아온 지난 세월은 눈물나도록 보람됐다.그러다 고개를 들어 옆을 보니 긴 세월, 농사꾼의 아내로 묵묵히 곁을 지켜 준 아내가 보였다. 뭐 하나 변변하게 해준 것 없이 고생만 시킨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무엇을 해줘야 하나. 밤잠 설쳐가며 고민하던 그의 눈에 지은지 40년이 된 낡은 농사꾼의 집이 보였다. 아무리 쓸고 닦아도 빛이 나지 않는 낡은 집. 그가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정해지는 순간이었다.공간과 사람이 찾은 일곱번째 집은 화성시 보통리에 위치한 '중덕이네 집'이다. 중덕이네 집은 최중덕(60)씨가 아내 최민자(59)씨에게 바치는 헌정가(家)다.최씨는 "이 집을 짓기 전에 살았던 집은 1974년도인가, 전국적으로 농촌에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어 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꿀 때 지어졌지"라며 "당시만 해도 건축자재가 좋기를 하나, 그냥 동네주민들끼리 모여서 서로 손 빌려가며 지은 집이지"라고 그때를 회상했다.그는 "비라도 오면 눅눅한 게 영 찝찝해 새로 지어야지 하면서 세월이 이렇게 흘러버렸다"며 "그래도 나는 남자니까 큰 불편 모르고 살았지만, 아내는 그 세월동안 오죽했을까싶다"고 말했다.집을 짓기로 결정하고 최씨는 가장 먼저 '김동훈'을 떠올렸다. 두번 고민도 않고 김동훈(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교수를 떠올린 건 그와의 깊은 인연 때문이다.최씨는 "고민할게 뭐가 있나,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동네친구를 못 믿으면 누굴 믿겠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날로 집에서 먹으려고 유기농으로 기른 토마토 한 상자를 들고 김 교수의 사무실을 찾았다.최씨와 60년지기 동네친구인 김동훈 교수는 사실 설명이 필요없는 사람이다. 수원시청소년문화센터, 수원시 연화장, 벽제화장장 등 그의 대표작을 열거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다. 최씨 표현대로 '화성이 낳은 자랑스런 화성의 아들'인 셈이다.오랜 친구의 부탁에 김 교수도 평소와 달리 흔쾌히 승낙했다. 사실 김 교수에게 집짓기를 부탁하는 일은 인내가 필요하다. 까다로워서가 아니라, 좋은 집을 지으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게 그의 철학인 탓이다.김 교수는 "집을 짓겠다고 찾아오는 건축주들에게 얼마나 시간을 두고 지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6개월이라고 하면 못한다고 딱 자른다"며 "건축주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생활동선은 어떻게 되는지, 가족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는지, 오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최적화된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그런 그에게 중덕이네 집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김 교수와 최씨가 쌓아온 60년의 역사가 이미 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중덕이네 집은 간결하다. 외부에도, 내부에도 꾸밈이 없다. 간결하면서도 따뜻하고, 성실함이 가득 묻어나 농부가 사는 집답다.그 간결함은 재료에서부터 돋보인다. 나무 합판위에 원목을 덧붙였을 뿐 다른 소재를 더하지 않았다. 나뭇결과 나이테, 고유색까지 그대로 살려 나무집을 완성했다.1층과 2층을 오르내리는 계단과 방문, 창틀마저도 나무 본연의 질감이 살아있고 은은한 나무향이 집 안 가득 퍼져 나와 마치 휴양림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다.김 교수는 "나무는 스스로 공기를 정화시키고, 습기를 방지해주고, 태생적인 고급스러움도 가지고 있어 장점이 많은 소재"라며 "특히 습기조절이 제대로 되지않아 고생했던 예전 최 박사(김 교수가 최씨를 부르는 별칭)의 집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쾌적한 환경이 급선무였다"고 설명했다.실제로 중덕이네 집을 찾은 날은 하루종일 비가 내리던 눅눅한 날이었지만, 집 안은 전혀 눅눅하지 않았다. 아내 최민자씨는 "장마철인데도 집이 보송보송한게 정말 좋다"며 "물걸레질을 해도 금방 말라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고 주부다운 평가를 내렸다.최씨를 잘 아는 김 교수의 설계는 재료 선택 뿐 아니라 거실, 그리고 외부를 잇는 넓은 테라스에서도 엿볼수 있다.거실에 설치된 큰 창엔 오롯이 자연만이 존재한다. 살짝만 창을 비켜놨더라면 집 주변에 있는 공장이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방해했을 터.아내 최씨는 "거실에 앉아 있을 때 공장이 보이지 않아 속이 다 시원하다"며 "남편이 거실에 달력을 걸어두자고 했지만 집안 나무벽과 묘하게 연결되는 창 밖 풍경을 망칠까봐 걸지 않았다"고 말했다.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맞은 편에 보이는 길쭉한 통유리 창도 무척 인상적이다. 길쭉한 통유리 너머, 부부가 꾸며놓은 작은 동산이 눈에 들어왔다.계절따라 피는 꽃과 나무, 식구들 먹으려고 씨를 뿌려놓은 작은 텃밭, 갖은 양념을 재워둔 장독대가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가 따로없다.여기에 집 짓고 남은 재료로 최씨가 직접 만들었다는 투박한 나무 식탁이 정겨운 맛을 더했다.김 교수는 "굳이 명화를 걸어두지 않아도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이 얼마든지 명화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중덕이네 집 안 어디든, 창문은 명화를 담은 액자였다.베란다 역할을 하는 1·2층의 넓은 테라스는 최씨 부부도 생각못했던 김 교수의 깜짝 선물이다.김 교수는 "아흔이 넘은 최 박사 어머니를 생각하니, 본인이 직접 일군 밭을 보는 걸 참 좋아하시더라"며 "테라스를 넓게 만들고 처마를 테라스만큼 넓게 만든 것도 어머니가 편안하게 테라스로 나와 밭을 구경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2층 테라스의 높이와 밭의 위치가 절묘하게 일치하고 1층 테라스에 앉았을 때 밭이 보이는 눈높이가 적당하게 맞는 것도 아흔이 넘은 어머니의 시선에 맞춰 설계한 덕. 모두 김 교수가 최씨 가족을 제대로 알지 못했더라면 만들 수 없었던 공간의 미학이다.이 집의 무엇이 가장 좋으냐는 질문에 최씨부부는 "우리한테 좋은 것만 다 있어서 한가지만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좋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자네가 좋은 친구를 둬서 그래." 김 교수의 장난섞인 말에 최 씨도 "그럼, 누가 지은 집인데"라며 맞장구를 쳤다.문득 중덕이네 집을 취재가기 전, 어떤 집이 좋은 집이냐고 묻는 기자의 우문에 "사는 사람이 좋다면 그게 바로 좋은 집"이라고 했던 김 교수의 현답이 떠올랐다./공지영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2013-07-22 공지영

[공간과 사람·6]인천시 남동구 중정(中庭)이 있는 집

정원은 반드시 건물의 바깥이나 옥상에 위치해야 한다빛을 충분히 끌어들이기 위해 남향으로 창을 내야 한다도로 사이에 끼인 택지에는 아름다운 집을 지을수 없다성냥갑 아파트 즐비한 무미건조한 택지 환경 큰 고민남향으로 창 내자니 버스정거장 탓 프라이버시 문제거실로 정원 들이고 남쪽은 벽으로 막는 파격적 선택계절마다 변하는 중정의 낭만 '펜션 온것 같은 기분''초원위의 집'으로 그려지는 단독주택에서 '초원'이 빠진다면, 집을 지을 이유가 있을까? 공단과 지척이고, 경치라곤 아파트가 전부며, 도로 사이에 끼인 택지에 로망인 집을 지을 수 있을까?답은 '있다.' 다만 주택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용기가 필요할 뿐.인천시 남동구의 배봉준(53)·이미숙(53·여) 부부의 집은 1층에 이렇다 할 창이 없다. 남쪽은 벽으로 막혔고, 북쪽의 창문도 반사경으로 밖과 전혀 소통하지 않는다.1층에 있는 창이라곤 아파트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방의 창과 동쪽으로 난 베란다 유리문이 전부다.이미숙 씨의 집에 창이 없는 건 무미건조한 주거환경 때문이다. 남동산단과도 지척인데다, 남쪽으론 산 대신 성냥갑같은 아파트만 보인다.압권은 집 주변이 도로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 6차선 도로와 인도가 이 집과 붙어 있고, 코앞에 심지어 버스정거장도 있다. 하필 남향 경관이 이러하니 남으로 창을 내는 건 괜한 고집일 수밖에.부천의 예일건축사사무소 대표인 오정원(62) 건축사의 고민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건조하다 못해 열악해 보이기까지한 주거환경을 극복하는 것.어떻게 하면 건축주에게 좋은 경치를 안겨주면서도 버스정거장을 오가는 사람들로부터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남쪽의 빛을 충분히 집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2007년 제12회 경기도건축문화상 주거부문 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오 건축사는 중정(中庭)에서 답을 찾았다.건물 바깥이나 옥상에 두는 정원을 거실로 들여와 가족의 시선을 집 안으로 묶고 남쪽을 벽으로 막아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겠다는 것.대신 2층 남쪽 부분에 실(室)이 아닌 데크를 만들어 빛을 충분히 집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이었다.파격적이었다. 대지면적 309㎡에 연면적 246㎡의 집에 중정을 들이면 생활공간은 좁아지고 동선은 길어진다. 게다가 '창이 없는 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건축주가 별로 없다.오 건축사는 이런 어려운 제안을 받아들인 건축주의 안목과 신뢰에 연거푸 감사를 표했다."다른 분들 같으면 그냥 중정 천장 자리에 유리창이나 내서 빛을 끌어들여 달라고 했을텐데, 정원을 받아들여줬어요. 제 결단도 쉽지 않았지만 건축주의 도움 없이는 짓기 어려운 집이에요. 만남 자체가 행운이죠."거실과 부엌 중간에 놓인 중정에는 부레옥잠과 수련, 비단잉어가 사는 연못이 있고 그 주변을 단풍나무와 주목, 무화과, 하늘매발톱 등이 아기자기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벌써 두번이나 사계를 본 이미숙 씨는 이 집에서 중정의 가치를 이렇게 설명했다."겨울에 눈 내리면 그 옆에서 차를 마셔요. 비가 연못 물을 흐트러뜨리는 모양도 바로 옆에서 감상할 수 있죠.이보다 더 낭만적일 순 없어요." 건물 밖에 정원을 두는 것보다 안으로 들이니 집안 분위기가 매일 변한다.중정의 낭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달이 밝은 날은 거실에 불을 켤 필요가 없어요. 중정으로 빛이 새어 들어와 웬만한 건 모두 식별이 되죠. 낮에도 부엌이 거실만큼이나 밝아요. 빛이 집안 정 중앙에 떨어지니 색다른 맛이 있더라구요."창이 작아 마치 등대를 오르는 듯한 계단실을 따라 올라가자 1층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공간이 나타났다.전면을 창으로 트고, 베란다가 매우 넓다. 2층은 이미 길거리 시선과 동떨어진 데다 앞뒤로 거칠 것이 없다. 중정의 빛을 원활히 들일 겸, 거실 자리의 2층엔 아무런 벽도 방도 만들지 않고, 넓은 베란다를 뒀다.거기엔 볕을 쬐는 흔들의자가 있고, 탁자와 식구 수대로 의자가 있고, 바비큐 시설이 있다. 북쪽 아래로는 중정이 보이고, 사방은 트여 하늘과 직접 맞닿는다.볕이 가장 센 이곳의 테두리를 토마토와 블루베리가 차지했다. 마치 펜션에 놀러온 것 같은 기분이다.아니나 다를까, 이씨는 "아파트 살때는 한달에 한번은 펜션으로 나들이 갔었는데, 이 집에 이사온 2년 반동안 한번도 안갔다"고 말했다. 달리 집을 벗어날 이유가 없어 보였다.2층 전체적인 분위기가 펜션을 닮았다. 방 천장은 비스듬히 기운데다 중간중간 나무가 끼어 있고, 작은 거실과 부엌도 있어 딱 신혼놀이하기 좋다.이씨도 같은 생각인지 "딸이 둘인데 그중 하나는 결혼하고 나서도 2층에 살게 하겠다"며 슬쩍 욕심을 밝힌다.분명 길가에 있는 집인데도 집안이 조용하고 단독주택의 낭만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 외려 정원이 밖에 있는 집보다 훨씬 아기자기하고 따스하다.1층 거실 남쪽을 벽으로 막고 4개의 작은 창을 낸 것도 이씨의 표현에 따르면 '스타일리시하다'. 낮에 볕이 들면 어두운 거실 바닥에 4개의 사각형이 생겨 아늑해진다. 또 거실 동쪽 베란다와 대비돼 거실 그늘은 그 자체로도 시원해 보인다.이씨는 동쪽 베란다에 쌈채소를 기르고, 반려견의 공간을 마련해 줬다. 주방과 가까운 서쪽으로는 장독대를 마련해뒀다. 서쪽은 옆집 텃밭과 맞닿아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이씨는 옆집 채소를 보며 베란다 곳곳에 이런저런 풀을 기르는 이유를 설명했다."가족들이 먹거리를 직접 길러서 마련하는 게 평화로워 보여서 저도 베란다 곳곳에 먹거리용 화분을 마련해 뒀어요. 주말에 쌈채소 화분 앞에서 저녁을 먹을 때면 건강한 먹거리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택지는 분명 '초원의 집'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사는 사람은 단독주택의 낭만을 맘껏 누리고 있다.자연을 감상하고, 흙과 가까워지고, 건강한 먹거리를 마련했다. 가족은 더 자주 모이고, 개인은 더 자유로워졌으며, 감성은 더 충만해졌다.이씨는 더이상 펜션에 가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집에 볼거리가 많아서 재밌어요." 그의 짧은 답변에 독특한 이 집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글=권순정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2013-06-24 권순정

[공간과 사람·5]동창이 밝아오는 집, 판교동 '정'

어릴적 가꾸던 야생화 친정서 그대로 가져와옥상·옆뜰에 옮겨심고 '아이'라 부르며 돌봐2년간 판교·기흥·분당 돌며 주택 구조 공부실용성 높은 최인석 건축사가 지은 집 선택빛 각도 따라 색 변하는 메탈 재질 개성더해소 치는 아이는 동창이 밝아오는 게 싫었을테다.약천(藥泉:1629~1711)이 해뜨고 새 우는데 저 밭 언제갈려고 안 일어나느냐 다그치는 시조 분위기가 그런 아이 마음을 짐작케 한다.하지만 꽃들을 '아이'라고 부르는 꽃 어머니 강말숙(51·여)씨는 동창이 밝길 기다린다. 강씨는 판교동 '정'을 2010년 6월 완공해 옥상과 집 옆 뜰에 작은 정원을 마련해 놨다.해가 완전히 뜨기 전 화단의 풀을 뽑아주려면 농부만큼 부지런해야 한다. 정원에 화초를 키우는 강씨 마음은 농부와 다를 것이 조금도 없다."남천, 말채나무, 불두화, 병꽃나무, 화살나무, 수국, 부처꽃, 데이지, 우단동자, 그리고 라일락." 어떤 꽃 나무가 있는지 설명해 달랬더니 얘기가 끝이 없다."거의 야생화들이에요. 모두 친정에서 얻어온 것들인데, 제가 자라면서 봤던 아이들을 먼저 기르고 싶은 건 인지상정인가봐요. 라일락은 남편 어릴 적 꿈의 향기라고 해서 하나 심고…."경북 안동의 친정집은 사람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이었다. 아버지가 가꾼 꽃들이 흐드러져 색색이 어울리면 어느 누구 하나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꽃을 보고 자란 다섯 남매는 그 감성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첫째 언니는 색색이 천을 이어붙여 한복공예를 하고, 둘째 언니는 아버지처럼 집보다 넓은 앞마당에 야생화를 키우고, 셋째 언니는 문인화를, 다섯째 막내 남동생은 사진을 한다.넷째 강씨는 도자기를 빚어 자연을 들인다. 10년을 기웃대다 집을 지은 3년 전부터 도자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인테리어를 공부하는 딸이 '도자기들이 집 덕을 보겠네' 하더니, 별 볼일 없는 결과물들도 화초를 안고 큰 창 앞에 놓이면 작품이 된다.흰 화선지에 난을 쳐 선과 여백을 느끼는 것처럼 작은 도자기 화분 하나가 나머지 공간을 여백으로 만든다. 분당구 판교동은 욕심이 부딪는 도시인데, 집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시름이 사라진다."본래는 집을 이렇게 크게 짓고 싶지 않았어요. 둘째 언니네처럼 집보다 넓은 정원을 갖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판교는 집을 짓는 데도 행정적 제약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이웃 눈치도 봐야해서 집을 우리 욕심대로 작게 지을 수는 없더라구요."사실 판교동 '정'은 대지면적 231㎡, 연면적 297㎡로 4식구가 살기에 넓다. 지하엔 남편 서재와 창고, 1층엔 거실과 부엌, 게스트룸 , 2층엔 안방과 아이들 방 등이 있는데, 이 공간들이 모두 3~4개의 계단으로 구분돼 있다.강씨는 계단으로 구분된 공간에 대해 만족도가 높았다. 같은 평면에 있다면 용도가 섞였을 것들도 평면 사이 계단 몇개로 공간이 구분됐다. 특히 강씨는 자녀공간으로 이어지는 계단 앞에 놓인 문을 콕 집어 얘기했다."저게 제일 마음에 들어요. 밥도 안먹고 다니니 집이 하숙집보다도 못한데 문 닫아버리면 신경꺼버릴 수 있으니깐 속편해 좋네요." 품안의 자식이라고, 이미 훌쩍 커버린 자녀들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풀어내는 곳은 의외로 계단실과 부엌 옆에 남은 자투리 공간이었다.최인석(비추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가 이같이 고안했을 때 강씨는 자투리 공간을 어찌 쓰겠냐며 반대했지만, 지금은 제일 활용도 높은 공간이라며 웃었다. 거실보다 부엌이 무릎 높이 정도 높은데, 부엌에 걸터 앉으면 TV와 눈높이가 맞아 딸아이와 수다떨기에 좋다.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건 게스트룸에도 있었다. 집안 전체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한실이었다. 마치 다실처럼 중간에 놓인 나무 탁자며 탁자위에 조각보까지, 집주인의 안목은 보통 공부해 쌓인것 같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집을 지을까 구상을 2년이나 했다고 한다."동갑내기 사촌 따라 땅을 샀어요. 근데 내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1주일 중 3일을 판교·기흥·분당동 등을 돌아다니며 여러 집을 구경했어요." 그러기를 2년여. 집들이 사계를 나는 것을 보고는 집 구도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공간을 어떻게 꾸며야 실용성이 높을지 그림이 짜여갔다.그렇게 고심끝에 고른 것이 최인석 건축사가 지은 집. 인근의 두 집은 경기도건축문화상을 수상한 집들로, 독특한 건축 소재와 견고함, 실용성이 높은 실내 등이 장점이다.특히 빛의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메탈 재질의 건축 소재, '알집시스템패널'은 최 건축사가 직접 고안해 특허낸 제품이다.최 건축사는 "벽돌, 시멘트 등 기존 주택에 쓰인 소재들이 주는 느낌은 대체로 일정해, 다양하게 표현이 힘들고 다른 소재들은 실리콘으로 이어붙여 시간이 지나면 볼품 없어진다"고 제작동기를 설명했다.알집시스템 패널은 끼워맞추는 방식이어서 접착제를 쓰지 않고 곡선 구현이 가능하다. 최 건축사는 "도시를 꾸미는 것은 자연과 건축물인데, 건축물은 계속 손보고 가꿀 수 있어야 아름다움이 유지된다"며 패널이 청소에도 용이하다며 장점을 설명했다.집은 단순히 아름다운 건축물이 아니라 생활공간이라 경제성이 중요하다. 최 건축사는 태양열 집열판과 벽난로도 설치했다. 강씨는 "태양열 장치 덕에 지난달 전기료가 1만4천원 밖에 안나왔고, 겨울에도 벽난로 3시간만 때면 집안온도가 2~3도는 거뜬히 올라간다"며 자랑했다.공간을 살뜰히 이용하는 강씨는 태양열 집열판도 해가림막으로 변식시켰다. 태양열집열판 밑에 긴 테이블이 놓여있고, 그 옆엔 싱크대에 간단한 식기까지 있다.아예 아이스박스도 가져다 뒀다. 딱 보기에도 바비큐 장소다. "고기를 먹을 땐 옥상 태양열 집열판 밑으로 모여요. 닭튀김에 맥주를 마실 때도 여기가 제격이죠."집을 짓기전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이곳저곳에서 보이자 앞으로 집 지을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첫번째는 너무 고민하지 말고 전문가에게 맡기라는 거예요.창호가격이며 바닥자재며. 더 싸게 하려고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견적 받아와도 건축사가 가져오는 견적이 더 싸더라구요.두번째는 없어도 되는 곳에 너무 많이 창을 내면 겨울엔 썰렁해 보여요. 제가 집안 구석구석 빛이 들어와야 한다고 욕심냈지만, 욕심이 과했던거 같아요."그러면서 강씨는 "어떤 집을 지을지 고민이 되면 판교동 '정'으로 오세요. 적어도 '어느 집으로 가면 그런 예가 있어요'라고 조언해 줄 만큼 이 동네 집은 충분히 공부했으니까요"라고 웃어보였다.글=권순정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2013-05-27 권순정

[공간과 사람·4]광주시 목현동 '라도무스'

어릴적 집 안 마당 '라일락' 그윽한 향 잊지 못해김혜경 건축사, 추억을 벽돌 삼아 공동주택 설계직사각형 모양 다락방, 아이들 마음놓고 뛰놀고테라스 가장자리 따라 텃밭 가꾸며 '행복 수확'커다란 창 밖 운치있는 풍경, 전원생활 기쁨 두배소녀는 집 안 마당에 어슴푸레 빛나던 라일락 나무의 그윽한 향을 잊지 못했다. 1970, 80년대 흔히 볼 수 있는 아담한 양옥집에 라일락 나무 한 그루 서 있을 만한 자그마한 마당이었지만, 집은 언제나 소녀에게 노스탤지어였다. 그리고 집은 누구에게나 그런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공간과 사람이 만난 네 번째 집은 광주시 목현동에 위치한 '라도무스'다. 라일락 나무 향을 그리워한 소녀가 집을 짓는 건축사가 돼 설계한 타운하우스형 빌라다.라도무스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주변의 수많은 빌라와 주택들 중에서도 한 눈에 저 곳이란 걸 직감할 수 있을 만큼 감각이 돋보이는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공동주택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검은색 화강암으로 1층을 마무리했다. 건물 윗 부분에는 검은색 징크판을 덧대 소재는 위아래 검은색 포인트를 더하니 건물의 통일성을 높이면서도 모던한 분위기가 한층 돋보이는 감각적인 집이 탄생했다.사실, 검은색 화강암이나 검은 징크판은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을 표현하고픈 단독주택들이 주로 사용하는데,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 빌라와 같은 공동주택에는 쉽게 사용하지 않는 재료다.라도무스를 설계한 건축사사무소 마루 대표 김혜경 건축사는 "누구나 자연 속에 둘러싸인 전원주택에 대한 꿈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단독주택을 짓기에는 비용적인 부담이 커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집을 설계하는 건축사로서 늘 안타까웠다"고 설명했다.김 건축사는 "단독주택에 대한 소망이 강했던 만큼 설계를 하다 보면 애초의 계획과 다르게 설계상 늘어나는 항목들이 많아져 비용이 증가된다"며 "대부분의 단독주택이 짓는 비용만 억단위로 들어가다 보니, 선뜻 시작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단독주택을 설계하면서도 그는 어린 시절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추억 속의 집이 어느새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됐다는 회의감이 들었다.김 건축사는 "부유층들끼리만 향유했던 음악, 미술 같은 예술분야도 요즘은 우리 같은 일반 서민들뿐 아니라 저소득층도 향유할 수 있을 만큼 사회가 성장했다"며 "이제 우리 사회도 건축이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서민 주택도 단독주택만큼의 퀄리티로 지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고 털어놨다.때마침 빌라를 설계해 달라는 제안을 받은 김 건축사는 부지를 보고 고민에 빠졌다. 잔잔히 흐르는 개울과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 산을 배경삼은 부지에 빨간 벽돌로 쌓아 올린 흔해 빠진 빌라를 세운다는 게 마뜩지 않았던 것.이참에 그동안 가져왔던 철학을 밑거름 삼아 단독주택 못지않은 공동주택을 세워보자는 결심을 했다. 그런 과정을 바탕으로 지금의 라도무스가 탄생됐다.라도무스가 단독주택 못지않은 기능을 갖춘 건 외관뿐만이 아니다. 라도무스 4층의 독특한 구조에서도 그 매력은 빛을 발한다. 4층 주택은 이른바 다락방이 있는 집이다.집안에 다락과 넓은 테라스가 존재하는 복층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 방에 설치된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직삼각형 구조의 다락방이 나온다.각종 집기들을 수납해 두기에도 좋고 아이가 있는 집에는 놀이방을 해도 좋을 만큼 공간활용도가 높다. 다락방 전면에는 넓은 테라스가 설치돼 있어 집 위에 작은 마당이 존재하는 모양새다.지난해 10월에 입주한 김정숙(35·여)씨는 다락방과 테라스를 훌륭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5세, 7세 아이를 둔 김씨는 다락방을 아이들 놀이방으로 만들었다.한쪽 벽에는 동화책이 잔뜩 담긴 책장을 설치했고 다른 한쪽에는 아이들의 텐트와 장난감이 정리돼 있다.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나뭇잎 스티커는 아이들 손때가 탄 소중한 추억이기도 하다.더불어 다락방 전면에 위치한 김씨의 테라스는 여지껏 가봤던 단독주택들의 정원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테라스 전체를 원목으로 깔았고 그 위에 오두막과 유사한 넓은 평상을 설치했다. 테라스 가장자리를 따라 흙을 덮어 미니장미와 채소를 심었다.김씨는 "공동주택답지 않은 세련된 외관 디자인에 끌려 구경왔는데, 4층의 복층구조를 보고 반해서 계약했다"며 "단독주택에 살고 싶은 소망이 늘 가슴속에 있었는데 이 집을 보는 순간 그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이 곳에 이사온 뒤 무엇보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생겨 가장 뿌듯하다는 김씨는 "집에 오면 아이들이 다락방부터 올라온다"며 "따로 비용을 들여 나무데크를 설치했는데 볕이 좋은 날, 아이들과 돗자리 깔고 함께 누워있으면 뒷산이 그대로 품에 와 안기는 것 같다"고 행복해했다.김 건축사도 "일반적으로 공동주택 옥상은 뾰족한 지붕으로 처리해 아무도 이용하지 못하거나 공동으로 이용해 엉망이 돼 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옥상이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단독주택에서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색다른 공간을 연출해 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방의 창문을 거실 창만큼이나 크게 설치한 것은 전원형 단독주택을 지으려는 사람들 중 열이면 열, 시원한 창에 대한 꿈이 있다는 그동안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특히 라도무스가 자리한 곳이 뒷산의 경치가 전원생활의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해 줄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김 건축사는 "커다란 창을 통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떻게 변화해가고, 흘러가는지 감상하다 보면 나만의 특별한 정원이 눈앞에 나타나게 된다"고 귀띔했다.또 라도무스는 외단열 공법을 활용해 열 효율성도 높였다. 외단열 공법은 콘크리트벽재 겉면에 단열재를 둘러싸 외부 온도로부터 내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김 건축사는 "단열재가 밖에 있어야 온도조절에 유리하기 때문에 단독주택들은 대부분 외단열 공법으로 설계를 한다"며 "비용적인 부분에서 부담이 되겠지만, 내 집을 갖고 싶어 이 곳으로 온 입주민들에게 보다 나은 집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그의 설명을 듣고 실제로 살고 있는 입주민들을 만나 보니, 문득 진심을 짓는다던 한 건설업체의 TV광고가 떠올랐다. 누구나 좋은 집을 향유해야 한다는 건축사의 진심이 듬뿍 담겨 있는 라도무스는 몇십억원을 들여 멋지게 설계된 여느 단독주택 못지않게 훌륭한 보금자리였다."내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으면 마음이 편안한 것처럼, 집도 나한테 꼭 맞아야 편안함을 느낄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김 건축사의 건축 철학처럼, 흐린 날씨에도 라도무스는 그녀 특유의 섬세하고 자상한 진심이 가득 감싸고 있는 듯 평온해 보였다.글=공지영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2013-04-30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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