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사람

 

[공간과 사람·3]의왕시 청계동 '시티하우스 6050'

'단독주택=회장님 주택' 고정관념 깨다내부재 소박하게 처리해 건축 단가 낮춰넓지않은 대지 치밀하게 활용 공간 창출정씨 부부-이재진 건축사 '의기투합'시골의 향수 깊어 널따란 정원 요구하자'스킵플로어' 기법으로 만족할만한 성과현실이 된 '저 푸른 초원위 그림같은 집'노을빛 스며든 작업실서 미술 작품 영감숨겨진 공간 가꾸는 재미에 행복한 일상한국인이 공유하는 꿈이 있다. 가수 남진의 '님과 함께'에 열광하며 그렸던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는 내 집.높은 빌딩 으스대더라도 사계 변화를 볼 수 있는 곳에 작은 집을 짓고 내 가족과 알콩달콩 사는 꿈.그것은 강남의 높은 담장 너머 정승급 소나무들만 빠끔히 보이는 집과는 차원이 다른 소박하고 아름다운 집이다.의왕시 청계동에 위치한 시티하우스6050.대지 198㎡, 연면적 165.25㎡, 전체 공사비 7억원(땅값 포함)이 들어간 이 집은 '단독주택은 회장님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철저히 깨버린 공으로 2009년 경기도 건축문화상에 입선했다. 보통 단독주택은 대지 264㎡가 넘고 공사비도 이보다 훨씬 많이 들어간다.집주인 정해인(61)·임혜경(57·여) 씨 부부는 이전에 살던 안양의 아파트를 팔아 이 집을 지었다.안주인 임씨는 "단독주택은 보통 우리같은 서민들은 꿈도 못꾼다"며 "다른 아파트로 이사 갈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단독주택을 2억5천만원이면 짓는다는 얘기를 듣고 그 정도면 살던 아파트를 팔아 지을 수 있겠다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물론 실제 건축비는 그보다 더 들었지만 벽지 대신 친환경 페인트를 쓰는 등 내부재를 소박하게 처리해 단가를 낮췄다. 재빠른 결정이었지만 준비는 꼼꼼하게 했다.평범한 사람이 믿을만한 건축사를 알 리 없다. 정 씨는 온라인에서 '하우빌드(Howbuild)'란 회사를 만났다. 하우빌드는 건축주가 원하는 조건을 제시하면 건축사들이 각각의 설계도면을 내고 이를 바탕으로 경쟁하도록 하는 현상공모 사이트다. 정 씨는 이곳에서 8개의 설계도면를 받았고, 어디나 선택권은 여자에게 있는 것처럼 아내와 딸의 선택으로 이재진 건축사(44·(주)이진건축사사무소 대표)와 다시 만나게 됐다.정 씨와 시티하우스를 설계한 이재진 건축사는 얼굴을 한 번도 못봤지만 구면이다. 정 씨가 집터를 결정하고 소유권 등록을 위해 부동산에 토지이용도면을 부탁했는데 그 도면을 그려준 사람이 이재진 건축사인 것. 정 씨는 하우빌드에 현상공모를 붙여놓고 이 건축사에게 전화를 걸어 참여해 줄 것을 부탁했다.현상공모는 이 건축사에게 매우 생소했다. 떨어지면 설계도면과 3D작업 등이 모두 허사인데 정씨의 집터는 너무 작아 설계 자체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 건축사는 당시까지 3D를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선택이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일에 모든 공을 쏟게 되는 건 괜한 자존심때문이었을까? 현상공모는 저작자의 이름이 모두 가려진 채 건축주 정씨에게 갔다. 정씨 가족들은 왜 하필 이 건축사의 것을 선택했을까?임혜경 씨의 답은 간단했다. 정원이 가장 넓었다. 그는 "연천에서 유년시절을 보내 저녁이 되면 굴뚝에서 연기가 나고 사계가 변하는 시골에 대한 향수가 깊다"며 "아파트를 돌고돌다 이젠 나무에 꽃피는 거 보며 노을지는 하늘 보며, 사는 것처럼 살고싶어 꼭 정원을 내달라고 현상공모 당시 조건을 달았다"고 답했다.하지만 대지 198㎡에 정원을 낸다면 얼마나 낼 수 있겠는가.이재진 건축사의 기지는 여기서 발휘됐다. 이 건축사는 "평생 한번 짓는 내 집의 꿈, 그 핵심은 미래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정원"이라며 "그 마음을 뻔히 아는데 땅이 좁다고 핑계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고민 끝에 찾아 낸 것은 스킵플로어(Skip Floor) 건축 기법. 계단을 중앙에 두고 반층씩 올라가면서 공간이 나타나는 거다. 즉 현관을 들어가 반층 올라가면 주방과 거실이고, 다시 반층 올라가면 안방과 욕실이고, 또 반층 올라가면 딸의 방과 작업실이 나오는 식이다.덕분에 대지면적 중 반만 집이 차지하고 나머지는 잔디를 심어 정원으로 꾸밀 수 있었다. 또 공간을 대지에서 떼어놔 방 하나하나의 공간이 넓다. 반층씩 분리돼 있어 공간의 독립성도 얻고 반층만 올라가 가족간 이동거리도 최대한 줄였다.시티하우스는 창에 신경썼다. 각 벽면에 흩어져 있는 창을 직각으로 맞대 시야각을 넓게 하니 웬만한 통유리 집 못지않게 전망이 좋다.현관도, 거실도, 각 방들도 모두 창문은 면에서 만나도록 해 밖의 풍경이 자연스레 공간 안으로 스며든다.특히 부부가 좋아하는 곳은 정원과 작업실.작업실에서 남편이 유화를, 부인이 문인화를 그리는데 한참 작업하다 고개를 돌리면 창을 통해 스며든 노을 빛이 가슴을 적셔와 그림이 더 잘 된다는 것이다.부부의 작품은 현관에도, 거실에도, 방과 방 사이 벽면에도 훌륭한 작품으로 걸려 있다. 부부는 집에서 살고, 영감을 얻고, 그 감수성을 그림에 실어내고 있었다.자랑은 거실에서도 이어졌다. 건축에서 정원을 최대한 배려했다지만 워낙 면적이 작아 좁아 보일 수 밖에 없는데, 거실 통유리의 면을 맞대 90도로 내자 앞집 정원까지 집 안으로 들어온다. 정 씨는 기자가 너무 일찍 찾아왔다며 "좀더 늦게 꽃피는 시기에 왔다면 이 집에 사는 맛을 제대로 느꼈을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시티하우스도 벌써 6살이나 먹었다.2층 딸 방 벽을 두른 나무가 2008년에 입주했을 땐 갈색이더니 지금은 빛에 바래 회색옷을 입었다.집도 나이가 들어간다고 운을 떼자 정 씨는 "그동안 집에 해볼 것은 다 해본 것 같다"고 말했다. 무슨 말일까?정씨는 "아파트와 달리 방 말고도 공간이 많다"며 "정원·테라스·다락방·옥상… 그 공간들을 우리 입맛에 맞게 가꿔가다보니 집에 오면 할 일이 항상 많다"고 웃었다.콘크리트 박스로 된 안방 위에 있는 옥상은 더운 여름엔 아주 좋은 피서지. 텐트를 치고 여름밤을 보내는 것이 재미난데 주위 시선이 의식돼 아늑함을 더하도록 나무난간을 쳤다.주방 앞에 놓인 중문도 살면서 바꾼 것이다. 겨울에 애써 난방으로 데운 공기를 거실에 묶어두기 위해 중문을 달자 태양광으로 줄인 연료비를 더 줄여 한달이면 2만~3만원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됐다.정성을 가장 많이 쏟는 부분은 역시 정원이다.집 뒤 한 벽면에는 농촌에서만 볼 수 있는 갈퀴가 보인다. 정원 잔디를 깎고 쓸어내거나 쑥갓과 상추를 키우는 텃밭을 일굴 때도 쓴다고 했다.정원 한 켠에 팔뚝만한 길이에서 허리만큼 자란 나무들도 부부가 집에 함께 사는 것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짐작케 한다.집 밖으로 나와 시티하우스를 보는데 들고양이가 안주인의 발에 납작엎드려 비벼댄다. 정 씨는 "우리 집 앞마당의 똥은 저 고양이가 싸고, 우리 집 개는 딴 집 정원에 싼다"고 해 좌중이 한참을 웃었다.'저 푸른 초원위의 집'은 성실히 살아온 사람들이면 포기할 꿈이 아님을 시티하우스6050이 말해 주고 있었다.글=권순정기자 / 사진=프리랜서 조형기기자

2013-03-25 권순정

[공간과 사람·2]판교 '조성철의 집'

'평생 살 집' 마련한 조씨 부부아들이 결혼 후에도 함께 하기위해아파트 대신 단독주택 짓기로 결심베테랑 정승이 건축사에 설계 의뢰건축사, 조씨와 인생을 공유하다오래 만난 벗처럼 집 관련해 대화꽃조씨부부 철학 이해 후 설계에 반영좁은 공간 활용해 맞춤형 주택 지어가족이 어우러진 '러브 하우스'지하에 창고 아닌 이벤트 공간 조성곳곳의 창문으로 일상 살필 수 있어하늘정원 텃밭 가꾸며 행복도 '쑥쑥'공간만 존재하는 집이 있다. 여러 개의 방과 주방 그리고 거실. 의례적인 공간의 나열만 존재하는 곳.모든 공간이 연결돼 있지만 완전히 단절됐고, 단절돼 있지만 사적인 생활은 보장받을 수 없는 곳.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형태는 대개 그런 곳이다.우리가 사는 집이 ○○아파트 ○동 ○○호로밖에 불리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래서일지 모른다.공간과 사람이 찾은 두번째 집은 '조성철의 집'이다. 조성철은 이 집을 지은 건축주다. 거창한 제목 대신, 이름을 붙인 건 조성철(62)·장문옥(57) 부부가 '평생 살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줄곧 아파트에서 살아온 조성철씨가 단독주택을 짓기로 마음먹은 건 아들과 함께 살고 싶어서다.조씨는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아들이 머지않아 결혼을 하게 될텐데, 그 아이들과 함께 울타리를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난 뒤, 살고 있던 아파트를 돌아보니 섣불리 꺼낼 수 없는 생각임을 깨달았다. 함께 하려면 아들부부만의 공간이 있어야 했고 그러면서도 가족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했다. 어린 시절, 대가족을 경험하며 살아온 그가 주택으로 돌아온 이유다.조성철의 집은 판교택지개발지구에 위치해 있어 231㎡에 불과하다. 아파트로 치면 꽤나 넓은 공간이지만,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을 만들려는 이에겐 턱없이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하지만 조성철의 집에는 그가 추구했던 모든 공간이 녹아있다. 이는 전적으로 철학과 열정의 합이 잘 맞는 정승이 건축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정 건축사는 유한건축설계사무소(U-HAUS)를 이끌며 주로 단독주택을 설계하는데 경기도 건축문화상을 비롯해 유수의 건축상을 수상한 베테랑 건축가다.그는 "건축주 스스로, 내가 살 집이란 생각을 갖는 순간 건축은 시작된다"며 운을 뗐다.투기가 아닌 주거의 개념으로 집이 가진 가치를 이해하는 건축주를 만났을때, 건축사의 설계는 비로소 빛을 발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조성철의 집도 마찬가지다. 설계의뢰를 받은 직후부터 정 건축사는 조씨부부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집을 매개로 그들은 오래 만난 벗처럼 인생을 공유했다. 정 건축사는 "건축주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집을 설계하다보면 그동안 건축주가 살아오면서 느낀 결핍을 공간으로 메워 줄 수 있다"고 말했다.우선 땅을 밟고 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작은 정원과 정원에서 현관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 그리고 거실을 둘러싼 넓은 창이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조씨부부와 땅을 맞닿게 했다.정 건축사는 "협소한 공간 탓에 1층에 주방과 거실만을 두는 대신 1층 전체를 큰 창으로 둘러싸 땅이 보이는 바깥 풍경과의 연결성을 강조했다"며 "집 내부와 외부가 하나의 풍경이 되는 구조"라고 소개했다.아들과 함께 살고 싶은 중년 부부에게 아들과 부부가 분리되는 사적인 공간은 필수다. 2층을 전부 아들과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공간으로 내준 대신, 부부는 1.5층이란 신공간을 만들었다. 1층과 2층 사이, 방 하나 들어가는 자투리 공간이지만, 햇살이 들어오는 미니 창이 길게 이어져 공간은 어느새 풍성해진다.지하 1층은 가족이 중첩되는 곳이다. 조씨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남편의 서재와 아내의 공방, 온가족이 영화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오디오 룸이 한데 어우러져 함께 하면서도 각자의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 건축사는 이 공간을 '이벤트'라고 표현했다.그는 "집의 재미를 더해 줄 수 있는 이벤트 공간은 집 밖만 맴도는 가족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며 "특히 좁은 면적일 때 이렇게 지하를 창고가 아닌,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하면 효과적"이라고 귀띔했다.옥상에 펼쳐진 하늘 정원도 조성철의 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다. 하늘정원은 나만의 정원을 갖고 싶었던 장문옥씨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협소한 공간에 갖가지 채소와 꽃을 심을 수 있는 정원은 욕심내기 쉽지 않았다.그래서 생각한 것이 '하늘'이라는 정원이다. 비록 딛고 있는 땅은 한정됐지만, 누릴 수 있는 하늘은 무한대다. ㄷ자 형태의 옥상난간을 따라 화단을 조성했다. 시골집에서나 봄직한 넓은 평상을 정원 한가운데에 놓았다. 장씨는 "하늘 정원을 만들어 준건 정 건축사지만 그 안의 공간을 꾸미는 건 우리의 몫"이라며 "하나부터 열까지 손때 탄 내 집을 생각하면 하루에도 몇개씩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미소를 지었다.한바퀴 쭉 집을 구경해보니 조성철의 집은 흡사 미술관을 관람하는 것 같았다. 거실 벽면 3분의 2를 털어 만든 거실의 큰 창과 계단을 따라 배치된 기다란 창, 방마다 벽위로 높게 낸 창들이 외부와 집안의 풍경을 한 폭의 명화로 만들었다. 공간마다 배치돼 있는 창문이 그림액자인 셈이다.특히 거실의 양쪽을 감싸고 있는 큰 창은 하루 해의 흐름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씨는 "거실 한쪽 창에서 뜨는 해를 지켜보다 반대편 거실 창에서 석양을 바라보면 하루하루에 감사하게 된다"면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자연의 풍만함을 만끽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덧붙여 정 건축사는 "공간마다 있는 창문은 꼭짓점"이라며 "꼭짓점을 따라 선을 이으면 하나의 도형이 되듯, 창문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면 각각의 공간에 있던 가족은 하나가 된다"고 설명했다. 거실에 앉아 아들방에 켜져 있는 환한 불을 바라보고, 퇴근하는 남편의 모습을 주방에서 지켜보는 가족을 연상하니 하나의 도형은 어느새 완성됐다.좋은 집은 '3년쯤 지난 어느날 가만히 집 안 어딘가에 앉아 우리집이 이렇게 좋은 곳이었구나'를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정 건축사는 강조했다.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퇴색되는 ○동 ○○호와는 어딘가 거리가 멀다. 조성철의 집은 예술적 배경이 돼 줄 그럴듯한 자연환경이 없는 택지개발지구에 오로지 집이 가진 가치로만 승부하는 건축사와 열정을 가진 건축주가 빚어낸 또다른 작품이다.글=공지영기자사진=하태황 기자

2013-02-25 공지영

[공간과 사람·1]프롤로그·광주 오포읍 '오르는 집'

지난해 봄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 개봉 이후 건축이 재조명되고 있다. 제주도의 허름했던 주택이 사람의 추억과 자연이 어우러져 멋진 집으로 변신하는 과정이 영화의 전개와 맞물려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달했다.경인일보는 이에 따라 연중기획 '공간과 사람'을 통해 건축이란 무엇일까?, 건축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공간이란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가? 등에 대한 질문에서 하나씩 궁금증을 풀어내려고 한다.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집에 대한 로망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집에서 일어날 삶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이미 경기도 외곽이나 소도시에도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멋진 집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공간과 사람'은 경기도건축문화상 수상작과 수상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경기도내에 멋진 집, 정(情)이 묻어나는 집을 소개할 예정이다. 그 과정을 통해 집에 대한 꿈을 가진 사람, 각자의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45도 가파른 경사부지, 건축에 불리산 깎는 공사 대신 지형에 맞춰 건설지붕 위 흙으로 덮은 마당 '단열효과'집안 곳곳 창 밖으로 그림같은 풍경"그 땅이 그런 집을 만들게 한 것이지. 내가 그 땅을 어떻게 만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광주시 오포읍 신현리의 한 산자락. 그 곁에 '오르는 집'이 있었다.지난 24일, 오전에 비가 한 차례 흩뿌린 뒤라 하늘은 잔뜩 잿빛이었다. 오르는 집은 처음 보자마자 절로 탄성이 나오는, 그런 집은 아니었다. 단지 비를 뿌린 하늘을 닮은 무표정한 노출콘크리트와 그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자작나무, 그리고 산이 보였다.오르는 집은 겉보다는 속내가, 속내보다는 그 집에서 사는 사람과 그 집에서 일어나는 일상이 멋진 집이었다.오르는 집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김인철(아르키움 대표·전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씨. 그는 경사를 비스듬히 타고 오르는 집을 통해 땅과 건축을 만나게 하고 무대인 집을 통해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공간을 창출해냈다.김 교수는 강남 교보빌딩 사거리에 어반 하이브를 설계하고, 김옥길 기념관, 웅진씽크빅 사옥 등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 하지만 건축주인 김동남·양영심 부부는 그의 명성을 알고 설계를 맡긴 것이 아니었다. 30년 가까이 공직생활을 하다 정년퇴임한 김동남씨와 평생 남편, 자식 뒷바라지를 해온 양영심씨는 줄곧 강남아파트에만 살다가 지난 2006년 전원주택으로 옮길 결단을 내렸다.양씨는 "전망이 좋아 신현리에 땅을 샀는데, 산자락 경사지에 있어 처음엔 토목공사를 통해 산을 깎을 생각이었다"며 "다른 전원주택을 구경하러 파주 헤이리를 찾았다가 우리 땅처럼 경사진 곳에 집을 짓는 것을 보고 '이렇게도 집을 지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깜짝 놀랐다"고 설명했다.부부를 놀라게 한 집은 김인철 교수가 설계한 또 다른 집, 파주시 헤이리의 '마당 안 숲'이었다. 마당 안 숲 역시 양씨 부부가 산 땅처럼 경사진 곳에 있었지만, 땅에 건축을 맞춘 형태를 하고 있다. 그 길로 부부는 산을 깎을 생각을 접고 김 교수에게 설계를 맡겼다.김 교수도 처음엔 '헤이리집처럼 풀어나가면 되겠구나' 생각을 했지만, 헤이리에 집을 지은 땅과 신현리 땅과는 차이가 있었다. 헤이리의 땅은 30도의 경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신현리의 땅은 그보다 더 급한 45도였다.그는 "보통 처음 땅을 보면 설계 모티브가 떠오르는데 자꾸 헤이리에 있는 그 집이 그려지고, 30도와 45도는 굉장히 다른 조건인데 '내가 나를 베끼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존에 완성된 것이 효과가 있으니까 그것만 반복하는 것은 매너리즘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김 교수는 이후 여러 번 신현리를 찾았다. 산에 올라 땅을 바라보기도 하고 건너다보기도 하면서 집의 형태를 구상했다. 그러던 중 마추픽추를 오르던 버스가 떠올랐다. 경사가 급해 바로 오르지 못하고 갈지(之)자 모양으로 산을 오르던 마추픽추의 버스처럼 오르는 집 역시 비스듬히 경사를 따라 돌아 오르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김 교수는 "땅이 가지고 있는 기억을 무시하면 안 된다"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그 땅이기에 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중장비로 땅을 확 자르고 집이 들어가는 것은 자연에 대한 폭력"이라고 강조했다.오르는 집은 '옆으로 누운 U자형' 건물이 자연스럽게 산을 품에 안은 형상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단층이지만 측면 도면을 보면 3층 집이 된다. 오르는 집의 가장 큰 장점은 집 안 곳곳의 문을 열면 바로 땅과 맞닿을 수 있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집안 곳곳의 문을 열면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지고, 산이 밖이 아닌 안이 되며 집과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 된다. 창을 통해 보이는 모든 빈 공간이 전부 자신의 공간이 된다.집을 소개하면서 부부는 계단을 오를 때마다, 방이 바뀔 때마다 창밖으로 바뀌는 풍경을 설명하느라 분주했다. 오르는 집은 거실과 방에 서로 향해 열린 창문이 있어 올려 보거나 내려보며 가족의 일상을 연결하고 있었다. 이웃집과 맞닿은 곳은 발상을 뒤집어 창을 바닥에 놓아 낮은 꽃들이 보이게 했다. 이 곳은 건축주인 김동남씨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 돼 버렸다.김씨는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이 예뻐서 그대로 그림이 되기 때문에 액자가 따로 필요없다"며 "예전 아파트에서는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리면 가족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도 모를 정도로 단절돼 있었는데, 오르는 집은 서로를 향한 창문이 있어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소개했다.양씨도 "창이 많음에도 냉·난방비가 아파트에 살 때보다 적게 든다"며 "지난 여름, 폭서기에도 거실 양쪽의 창문을 열고 있으면 더운 줄 몰라 에어컨을 켠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지붕에 흙이 덮여 있어서 그런지 겨울에도 따뜻하다"고 귀띔했다.집이 산의 경사를 살렸기 때문에, 지붕만큼은 평평하게 만들어 흙을 덮고 마당으로 만들었다. 그 흙은 오르는 집의 훌륭한 단열재가 됐다.김 교수는 "아무리 오르는 집이라고 해도 평평한 공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지붕을 평평하게 만들고 흙을 덮어 하늘에 떠 있는 정원을 만들었다"며 "흙처럼 좋은 단열재가 없을뿐더러 건강에도 좋다. 하늘 마당에 텃밭을 일궈도 좋고 골프 연습을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실제로 김동남·양영심 부부는 지난해 지붕에 텃밭을 일궈 상추, 고추, 가지 등을 심었다. 잘 자란 수확물을 지인들과 나눠 먹는 것도 이 집의 또 하나의 기쁨이 됐다.오르는 집을 짓기 전까지 아파트에서 하루하루 일상을 각박하게 살던 부부는 점차 새로운 공간을 통해 소박한 행복을 찾아가고 있었다.양씨는 "아치형 창문에 벽난로, 화려한 대리석과 욕실 타일이 이전에 남편과 내가 꿈꾸던 전원주택의 모습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지렁이가 나타나고 창 밖 나무에 딱따구리가 찾아오는 것에 감사하며 산다"고 밝혔다.건축주 내외는 어느덧 건축가와 닮아 있었다.김 교수는 "단독주택은 건축가만의 생각으로 완성된다기보다 건축주와 합작"이라며 "대부분 집을 지을 때 어떻게 하면 비싸 보일지, 고상해 보일지, 집을 만드는 '재료'에만 관심을 두는데, 그런 집은 삶의 모습이 안보이고 집만 보이게 된다. 서로를 이해하는 건축주와 건축가가 만나 오르는 집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건축가, 건축주와 함께 집을 둘러보는 불과 몇시간 사이, 거실의 창은 종전과는 또 다른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글=윤수경기자 / 사진=임열수기자

2013-01-29 윤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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