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라면의 기억

학창·군대·기자 시절 맛있게 먹었던 추억배고픔·결핍 채워주는 가장 원초적인 마법인천 어린형제에겐 치유하기 어려운 '악몽'어른들의 잘못 '일생의 트라우마' 어쩔건가해운대에서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다녔다. 자주 물난리가 났다. 도시의 배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였다. 만조와 집중호우가 겹치면 시장통과 주변 일대가 물에 잠겼다. 학교에선 수재의연금을 모았다. 우리 반도 성금으로 라면 세 박스를 샀다. 가장 피해가 컸던 아이가 그날 이후 등교하지 않았다. 남은 라면 한 박스를 우리 집 다락에 보관했다. 전기공사업 면허를 따내겠다며 어른들이 밤낮없이 출타 중인 까닭에 혼자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가 많았다. 아무도 급장의 비밀을 몰랐다. 아주 오랫동안, 다락의 그 수재의연금 라면까지 포함해 정말 지겹도록 라면만 먹었다. 맛있는 음식도 질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전학했다. 결혼한 큰누나 집에 얹혀산 지 삼년만이었다. 보광동 비탈진 동네에 어른들이 살고 계셨다. 서울 학생들은 까만 운동화나 구두를 신고 다녔다. 궁리하다 신고 있던 청색 운동화에 검정색 페인트를 칠했다. 덧칠하고 연탄아궁이에서 말리길 서너 달 했더니 끝내 '킹콩' 가죽신이 됐다. 깔깔 놀려대던 친구들과 함께 야채튀김을 얹은 라면을 사 먹었다. 지금의 서울지하철 4호선과 경의중앙선 이촌역 부근이었다. 배를 채운 우리는 삼각지를 지나고 남영동을 거쳐서 남산 소월로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라면으로 바꿔먹은 버스회수권의 대가가 너무 컸다. 라면은 우정이란 걸 그때 처음 알았다.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했다. 왕십리의 후배 자취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해를 넘겼다. 2·12 총선을 앞두고 DJ가 귀국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국내에선 YS가 신군부정권에 홀로 맞서고 있었다. 휴학 중인 대학생들이 1월에 대거 입영통보를 받았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은 기표한 용지를 일일이 중대장에게 보이고 투표함에 밀어 넣어야 했다. 그곳에서 증기로 익힌 라면을 처음 맛봤다. 밥 찌는 기계에 라면사리를 차곡차곡 세운 식판들을 켜켜이 쌓아 넣고 뜨거운 김으로 쪄냈다. 따로 끓인 스프국물을 찐 사리 위에 끼얹어주었다. 제대 후 몇 번 그 맛을 재현해보려 했으나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올챙이 기자 시절, 인하대 후문엔 오직 라면 하나로 승부하는 집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인천 토박이인 동기가 알려준 라면집은 가히 비교불가였다. 상호가 있긴 있었나. 가파른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탁자 3개가 전부인 식당. 부부가 화염이 사나운 프로판가스 버너에서 연신 라면국물이 끓어 넘치는 양은냄비를 들어냈다. 풀어헤친 계란이라고 해봐야 한 숟갈도 안 되고, 썰어 넣은 파조차도 있는 둥 없는 둥 한데 어떻게 그런 천상의 맛을 낼 수 있었을까. 오래전 안경 맞추러 들렀다가 라면집이 있던 골목을 찾아봤으나 반듯한 새 건물뿐이었다.라면은 가장 원초적이고 공격적인 욕구인 배고픔을 달래고, 결핍을 채워주는 구원의 기억이다. 아무리 어려웠던 날들이었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면 빙그레 미소 짓게 만드는 마법의 기억이다. 어디에서 태어났든, 어느 신병훈련소를 거쳤든, 어느 곳에서 직장생활을 했든, 똑같이 적용되는 공평의 기억이다. 라면은 그래서 한국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억이 된다. 그런데 얼마 전 참혹한 일을 겪은 인천의 열 살과 여덟 살 형제에게는 예외의 기억이 될 것 같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 치유하기 어려운 트라우마가 될 것 같다.형제는 돌봄이 필요한 위기의 아이들이었다. 한겨울 설거지하는 손이 너무 시려 고무장갑을 사러오고, 깊은 밤이 무서워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우는 형제를 보다 못한 이웃주민들이 여러 차례 신고를 했다. 지자체, 아동보호전문기관, 학교, 법원 모두가 아이들이 처해있는 위기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들 자기 앞에 그어져 있는 경계선 안에서만 움직였을 뿐이다. 그 편의적이고 형식적인 선을 뛰어넘어 형제를 보듬으려는 시도는 아예 없었다. 뒷북치는 정치권이나 총리나 대통령이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어른들의 잘못이 형제에게 추억으로 남아야 할 '라면의 기억'을 악몽으로 만들어버렸다. 일생의 트라우마는 또 어쩔 건가./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

2020-10-20 이충환

[경인칼럼]복비 손질 불가피한데…

복덕방은 주역의 '생기복덕'에서 유래했다풍수지리따라 주거 정해야 복·덕 믿음때문요즘 11억원 아파트 중개수수료만 1천만원집값연동 탓 폭등세… 요금체계 개편 절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다 보니 익숙하던 풍물과 풍습들이 사라져도 놓치기 십상이다. 동네 어귀 혹은 후미진 골목길을 지키던 복덕방이 그중 하나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봉놋방이었으나 외지에서 온 나그네들의 길잡이이자 어두운 밤길을 지키는 든든한 파수꾼이었다. 반투명의 얇은 양면괘지 사이에 먹지를 대고 작성한 부동산 거래계약서는 새털처럼 가벼웠지만 은은한 묵향(墨香)이 한층 가치를 더했다.우리 조상들은 집터와 묏자리를 정하는데 유난히 신경을 많이 썼다. 이사 날짜는 무조건 '손 없는 날'로 정하는데 이날은 사방에 잡귀들이 없어 아무 곳으로 가도 탈이 없기 때문이었다. 가옥을 소개해 주고 구전을 받는 복덕방(福德房)은 주역(周易)의 생기복덕(生氣福德)에서 유래했다. 풍수지리에 따라 주거를 정해야 복(福)과 덕(德)을 얻는다는 믿음의 소치이다.언제 복덕방이 출현했는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송종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은 조선일보의 종합잡지 '조광(朝光)' 1937년판을 근거로 구한말에 몰락한 3명의 노인들이 생계유지 목적으로 가옥중개업을 시작한 것이 효시라고 주장했다. 조선후기 서울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주택거래가 빈번해지고 이를 계기로 가옥매매를 알선하는 복덕방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던 것이다.최근 부동산 중개수수료가 너무 비싸다는 불만들이 잇따르고 있다. 손님들은 "등기확인에다 집 보여주고, 계약서 날인에 입회하는 것이 고작인데 수수료가 보통 몇 백만원"이라며 소태 씹은 표정이다. 서울에서 11억원짜리 아파트를 매매하면 중개수수료만 1천만원인 것이다. 이 아파트를 2017년에 구입했더라면 중개료는 200만원이었다. 당시 시세는 5억5천만원으로 수수료율이 0.4%였으나 지금은 시세가 급등해 0.9%(9억원 이상)로 높아진 때문이다. 복비가 3년 만에 무려 5배나 폭등한 사례이다. 수수료가 집값에 연동되는 구조인 탓이다.10억원이 넘는다고 큰 평수의 고급 아파트라 판단하면 오산이다. 지난 8월 서울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9억8천500만원으로 10평대 소형아파트의 호가가 5억~6억원인 지역이 대부분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문재인 정부 3년(2017년 5월~2020년 5월) 동안에 서울 전체 집값은 34% 올랐으며 특히 아파트값은 53%나 상승했다고 밝혔다.공인중개사들도 할 말이 많다. 거래 절벽에 규제까지 겹쳐 생존권이 위협받는 처지에 정부가 공인중개사 없이도 부동산을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전세의 월세 전환속도가 빨라지고 전·월세 전환율 하락으로 중개료가 최소 50% 이상 떨어져 채산성도 악화되었다며 선진국 수준으로 요율을 대폭 올리거나 미국, 유럽처럼 중개료 자율화까지 요구하고 나섰다.서울을 기준으로 한 최고 중개요율은 매매 0.9%, 임대차 0.8%로 경쟁국들에 한참 못 미친다. 집값 기준 미국 3.5~6%, 캐나다 3~7%, 영국 2~3.5% 등인데 중개료는 매도인 혼자 부담한다. 프랑스(3~10%)와 독일(3~6%)은 매도인과 매수인 합의로 결정하나 나라마다 중개서비스의 종류나 품질이 달라 단순비교는 곤란하다. 미국은 수수료는 비싸지만 법인 형태의 중개회사가 부동산컨설팅, 세무회계, 법률, 건축 등 원스톱 제공에다 중개물건 하자에 대한 책임에도 철저하다. 회사 직원인 각 분야 전문가들이 분담해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케이스별 소요비용은 한국보다 저렴하다.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중개사고 배상액은 중개업소당 1억원(법인 2억원)이어서 실제상황에서는 조족지혈(?)인데다 중개업체들은 중개물건 하자에 대한 책임도 거의 지지 않는다. 정부의 부동산 거래시스템 개편 방침에 10만6천여개 중개업의 공인중개사들이 강력히 반발하며 생존권투쟁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가성비 나쁜 요금체계는 중개업소는 물론 내수경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주택 매매와 임대 사이의 수수료 역전(逆轉) 문제까지 불거지는데 공인중개사제 도입 36년 동안에 수수료체계 개편은 2000년과 2015년 두 차례에 불과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20-10-13 이한구

[경인칼럼]한국정치와 나훈아

추미애 장관 아들사건 편들기·공세적 태도文정부 '기회 평등·공정·정의' 공허한 구호분명한 소명의식·신념… 정치에 대한 갈구'나훈아 평범한 말'에 시민들 주목하는 이유가수 나훈아씨가 추석 특집 공연에서 남긴 메시지는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 그저 한껏 멋을 부리려고 한 말이라고 하기에는 짙은 여운을 남겼다. 그가 공연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는 점과 KBS에 출연하면서도 그 방송에 하는 쓴소리라고 해석될 수 있는 말, "삶의 모가지를 잡고 끌고 가지 않으면 끌려간다" 등의 메시지는 가슴을 울리는 말들이다. 그의 "내가 살아오는 동안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는 말에도 한국정치의 구태와 퇴행을 성찰하게 하는 감동과 영감이 묻어 나왔다. 일부 정치인들은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僞政者)가 생길 수 없다"는 말에도 아전인수격 해석과 함께 그에 대한 예찬으로 숟가락을 얹기도 했다. 그의 말에 대한 과도한 유추나 해석이 오히려 그의 진의를 왜곡할 수 있겠지만 추미애 장관 아들 휴가 특혜의혹사건과 북한에 의한 공무원 피살 사건 등에서 여권 정치인들이 보여 준 발언과 강퍅한 행태는 나훈아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검찰이 추 장관과 아들 서모씨, 최모 전 보좌관에게 '혐의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지만 사건을 둘러싼 파장은 가라앉지 않는다. 추미애 장관 아들 관련 사건은 지난해 조국 사태와 맞물리면서 사회정치적으로 정의와 공정의 문제를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추 장관 측이 받아든 법률적 면죄부와는 별개로 여야의 논란은 국정감사에서 쟁점이 될 게 뻔하다. 추 장관은 인사청문회와 국회에서 아들 휴가와 관련하여 '어떠한 지시나 관여를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번에 걸쳐 했고, 검찰 수사 결과 보좌관에게 지역대 지원장교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아들에게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본인도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전화번호를 알려준 게 지시가 아니라는 추 장관의 말은 상식 영역에서 판단하면 될 문제다. 이번 사건에서 추 장관이 애초에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한 자세로 임했다면 사안이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지배적이었다.추 장관은 자신의 거짓에 대해서 사과와 해명을 하지 않고,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측에 공세적이다. 야당이 국정감사에서 다시 이 문제를 쟁점화하고 특검 도입을 주장한들 경로 의존성에 비추어 볼 때 결국 이 사안은 정치적 공방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여야는 이 사건을 정치공학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은 이 사건의 승패를 정권의 레임덕 여부까지 연결시키고, 야권은 반대 논리로 여권을 밀어붙이려 한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정의, 공정은 한낱 이들의 입장을 수호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그러나 이 사건을 대하는 추 장관의 태도(attitude)마저 묻히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사건이나 현상을 보는 태도나 자세에서 출발한다. 태도는 인식에 결정적 영향을 주고 민의에 접근할 수 있는 중대한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에서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과도한 편들기나 무리한 비유 등과 추 장관의 공세적 태도는 시민 일반의 인식과는 괴리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웠던 정의와 공정,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공허한 구호가 되었다.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사이 어디엔가 위치하는 것이 정치지만 결국 정치를 움직이는 현실동력은 마키아벨리의 권력정치이다. 그러나 1인1표의 민주주의 원리는 최종적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서 움직이게 하는 행위에 기반한다. 가슴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정치는 직업정치인의 탐욕만을 충족시키는 매표행위와 중우정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정치인은 왜 정치를 하는지 분명한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라스웰의 저서 '정치학: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획득하는가'에 언급된 정치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은 있어야 한다. 소명의식과 신념이 부재한 정치가 어떠한 결과로 귀결되는지는 한국정치가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의와 당당함에서 멋도 나오고 낭만도 나온다. 이러한 정치에 대한 갈구가 가수 나훈아씨의 평범한 말에 시민들이 주목하는 이유이다. 당리당략을 위해서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 몰염치는 나훈아씨의 메시지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또 다시 도졌다. 언제 한국정치는 품격을 찾을 수 있을까./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2020-10-06 최창렬

[경인칼럼]'관(官)업(業)이 한통속'

수도권 재개발·재건축은 메이저사 각축장그러나 요즘은 '중견건설사 편법'에 딴세상비결은 수십개 자회사 동원 '벌떼 입찰' 탓정부 알면서 허점대책… '3기'에 재연 조짐수원·성남 등 수도권 재개발·재건축 현장은 삼성·현대 등 메이저 건설사들의 각축장이다. 대기업 브랜드는 정비조합과 조합원들이 선호한다. 반면 화성 동탄2지구와 고양 향동지구 등 택지개발지구는 딴 세상이다. 대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흥·호반·반도 등 중견 건설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동탄2신도시에는 B건설사의 아파트 단지가 유난히 많다. B단지가 10개나 된다. 고양시 향동지구는 5개 민영아파트 단지 가운데 3곳(60%)이 H사의 아파트다. 주택 건설사가 수천 개나 되는데, 이상하지 않은가.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택지개발지구의 공동주택용지를 공급하는 방식은 대략 3가지다. 첫째는 최고가 입찰이다. 해당 필지에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다. 토지가격이 높으니 분양가가 높게 책정되는 것은 필연이다. 정부는 서민들에게 주택을 싸게 공급하겠다는 취지에서 벗어난다며 부정적 시각이다. 다음은 설계 공모다. 땅 크기와 주변 환경, 지역 특성을 반영한 설계 작품을 심사해 선정한다. 시비가 잦고, 특혜 의혹이 제기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마지막은 추첨이다. 일정 자격을 갖춘 업체들이 제한 없이 응모하게 한 뒤 제비뽑기로 임자를 정한다. 어떤 결과라도 시비를 피할 수 있다. LH가 선택한 방법이다.최고가 입찰제는 아파트 분양가 상승을 주도한다. 특정 기업이 많은 사업지를 가져가면 국민 선택권이 제한된다. LH는 공정성과 다양성을 고려하면 추첨제가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특정 업체들의 독식은 더 심화한다. 쏠림을 방지하자는데 몇몇 업체만 잔칫상을 받는다. 비결은 수십 개 자회사를 동원하는 '벌떼 입찰'에 있다.예를 들어 경쟁률 100대 1인 동탄의 공동주택부지가 있다. 특정 건설사가 자회사 40개를 입찰에 참가시켰다면 실제 경쟁률은 2.5대 1로 낮아진다. 타사보다 당첨 확률이 40배나 높아지는 셈이다. 그러니 수백 대 1의 경쟁률도 이들 회사에는 그저 한자릿수 이하의 낮은 수준에 그치고 만다.경실련은 지난해 흥미로운 자료를 공개했다. 2008~2019년 LH가 분양한 아파트 용지의 낙찰 현황이다. 이 기간 중흥건설(자회사 47개), 호반건설(44개), 우미건설(22개), 반도건설(18개), 제일풍경채(11개) 등 5개 건설사에 돌아간 필지가 142개다. 전체(473개)의 30.0%를 차지한다. 대한주택건설협회에 등록된 건설사 수는 7천827개다. 전체 건설사의 0.6%가 신도시·공공택지지구 아파트 용지 3분의 1을 독식한 거다.동탄에서 래미안을, 향동지구에서 힐스테이트 단지를 볼 수 없는 건 정상이 아니다. 주민들의 브랜드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대기업은 '소비자 이미지'를 우려해 벌떼 입찰을 꺼린다. 중소 업체는 자회사를 거느릴 처지가 못 된다. 공공택지를 분양받으려는 건설법인은 자본금 3억~5억원과 토목·건축 기술자 3명 이상을 고용해야 한다. 제도적 허점과 업계의 심리를 파고든 상술이 비정상 궤도를 정상인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비판여론이 거세자 정부가 대책을 내놓았다. 택지 전매 허용범위와 요건을 축소하고 특별설계 공모 방식을 확대한다는 게 요지다. 하지만 입찰 자격을 3년간 실적 300호에서 700호로 강화한다는 조항은 슬그머니 없앴다. 입찰 건설사에 대한 신용평가등급 요구도 하지 않는다. 자회사를 통한 편법 수주를 묵인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업계의 반응이 싸늘한 이유다.정부는 수도권 3기 신도시 건설에 조바심을 낸다. 세금 폭탄과 투기 때려잡기에서 공급확대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남양주·하남·과천·부천에 들어서는 신도시 보상금만 30조원에 달한다. 건설업계가 흥분할 초대형 토건 장이 서게 됐다.지금 상황이라면 '그들만의 리그'가 재현할 개연성이 높다. 국토부와 LH가 모를 리 없다. 지역 업체들은 벌써 '부아가 치밀게 생겼다'고 푸념한다. 사후약방문은 미련한 방책이다. 그런데도 모른 체 한다면 '관·업이 한통속'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홍정표 논설위원홍정표 논설위원

2020-09-22 홍정표

[경인칼럼]BTS가 전하는 위안과 교훈

다이너마이트 '빌보드 차트' 1위는 대이변美 대학들 '성공신화 분석' 연구·강의 봇물이들의 노래에는 주제·가사 보편적 호소력진정성으로 무장 '세대 고민' 희망 메시지방탄소년단(BTS)의 신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마침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이 뉴스는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뉴스만큼이나 극적이지만, 이번에도 코로나19 때문에, 또 어수선한 국내 정치 때문에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가수가 팝의 본고장인 미국의 빌보드 '핫100차트'에서 1위에 오른 것은 음악사는 물론 문화사적으로도 대이변이다. 그동안 보아와 싸이, 소녀시대와 엑소, 2NE1과 같은 케이팝 그룹이 세계 팝시장을 향한 루트를 꾸준히 개척해 왔다지만, 무명의 케이팝 그룹이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영미권을 평정하고 세계 팝의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 공개 24시간만에 조회수 1억 뷰를 기록할 정도로 BTS 팬덤은 확고한 세계적 문화현상이다. BTS 성공신화를 분석하는 BTS 연구도 봇물이다. 미국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과 펜실베이니아대학 사회학과에서는 BTS를 연구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으며, UC버클리에는 방탄소년단 강의가 개설되었다. 한국에서도 문화콘텐츠 분석 차원의 연구가 주로 이어지고 있으나 '보유국'에서의 반응치고는 의외로 침착하다.BTS는 케이팝을 완성하며 케이팝을 넘어서는 임계점에 서 있다. 칼군무라 불리는 고난이도 안무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춤솜씨는 케이팝의 무기이자 BTS의 강점이다. BTS는 이 칼군무에 이야기를 결합시켰다. 노래의 메시지를 몸의 언어로 전달하되 서사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퍼포먼스를 유기적으로 일체화한 것이다. 퍼포먼스 외에도 팬들과의 소통방식도 주목할만하다. 방탄소년단의 일곱 멤버들은 연예기획사가 길러낸 '팩토리 아이돌(factory idol)'이 아니다. 예술적 기량과 자율성을 지닌 멤버들이 자신의 다양성으로 그룹의 정체성(identity)에 참여하는 방식은 기존의 케이팝보다 진화한 것이다.BTS의 노래가 보편적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는 주제와 가사의 사회성이다. 개인의 사랑이나 이별 자체에 머물지 않고 그룹의 이름대로 세대가 처한 고민과 고통과 정면으로 맞선다. '얌마 니꿈이 뭐니'로 시작되는 그들의 데뷔곡 'No More Dream'은 우리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이다. 정작 꿈 없이 살면서 틀에 박힌 꿈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기성세대, 그리고 꿈꾸는 법도 잊어버리고 솔직하지도 못한 '소년들', 그들의 위축된 자아를 고무한다. 제2집의 노래 '리플렉션(Reflection)'도 절망에 처한 동시대의 수많은 청춘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다.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는 진정한 사랑도, 자유와 행복도 자신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노래이다.BTS의 진짜 무기는 진정성(authenticity)이다. 방탄소년단의 노래는 멤버들이 대부분 직접 만든 것이다. 자신들의 생활에서 겪은 감정을 자신들의 언어로 표현한 노래가 가진 진솔함이 주는 공감력은 크다. '잘 구워진 항아리' 보다 생생한 삶의 노래가 주는 감응력, 기획사가 길러낸 공연기계가 아닌 자율적 아티스트, 신비주의로 과장된 스타가 아니라 친근한 벗이다. 멤버들은 일상과 연습 영상 혹은 자신의 생각을 영상으로 만들어 팬들에게 수시로 제공한다. '아미(ARMY)'와 이들을 잇는 절대적 유대감은 진정성에 기초한 것이다. '노 모어 드림(No More Dream)'으로 입시지옥 경쟁에 내몰려 위축된 청소년을 위무하던 무명의 '일곱 소년'이 이제 새노래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코로나로 위축된 세계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희망을 잃지 말자'는 것이라면, 유례없는 불신과 갈등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가 그들의 성공신화에서 발견해야 할 가치는 '진정성'이다./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 논설위원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 논설위원

2020-09-15 김창수

[경인칼럼]이재명의 언어

여론조사서 1~2위 오르내리는 대선주자시원하고 통쾌한 발언 '사이다' 칭송에도품거나 아우르는 데에는 도무지 쓸모없어국민지지 얻기 위해 통합·치유의 말 써야이즈음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언어에 주목한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대권 주자 순위 1∼2위를 오르내리는 까닭에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언어는 청량한 느낌이 있다. 톡, 쏘는 맛이다. 지지자들이 "사이다"라고 칭송하는 이유가 된다. 대중이 가려워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집어내서 시원하게 긁어준다. 그 어느 정치인보다도 대중과의 공감 능력이 뛰어난 언어선택이고 탁월한 말솜씨다.내가 기억하는 그의 첫 언어는 '모라토리움'이다. 파산을 의미하는 이 말을 기가 막히게 생생한 행정현장의 언어로 만들어버린 장본인이다. "판교특별회계에서 LH와 국토해양부 등에 5천200억원을 내야 하지만 현재 성남시 재정으로는 이를 단기간에 갚을 능력이 안 돼 지급유예를 선언한다." 2010년 7월12일 성남시장에 취임한 지 불과 보름도 안 된 시점에 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모라토리움을 선언했다. 3년6개월 만에 모라토리움의 성공적 종식을 선언한 이후 "대한민국은 못해도 성남은 합니다!"가 그의 캐치프레이즈가 됐다.그의 두 번째 언어는 '구속'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혼란이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던 2016년 11월2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젠 국정 난맥에 따른 자진사퇴 요구가 아니라 탄핵을 해야 할 때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구속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21일에는 "박근혜 퇴로 보장 안된다. 퇴진 후 반드시 구속 처벌해야"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계속해서 박 대통령의 구속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를 계기로 '박근혜 구속'이 촛불광장의 구호가 됐다. 그 누구도 쉽게 입에 올리지 못했던 '구속'이라는 위험한 단어가 그를 대권주자 반열에 뛰어오르게 한 구름판이 된 것이다.세 번째 언어는 '전쟁'이다. 내가 알기로 그는 이 위기의 단어를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쓰는 정치인이다. "오늘은 첫 번째 전투에서 졌지만 거대한 전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건 그냥 하나의 지나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좋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우리가 뭘 준비해야 하는지를 작은 전투를 통해 배웠습니다. 더 큰 제대로 된 전쟁을 준비합시다." 2017년 4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패배연설을 통해 지지자들에게 한 말이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전쟁이 끝났다. 병사들은 돌아가 농사 잘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8일 도지사직을 건 첫 재판을 앞두곤 SNS에 '토건비리와의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대한민국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는 부동산 불로소득"이라고 짚었다. 신천지 교인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던 지난 2월25일엔 도청직원들을 이끌고 과천시의 신천지 총회본부로 돌격했다. 그리곤 "지금은 전쟁상황"이라며 신천지 측에 신도 명단을 요구해 기어코 넘겨받았다.이재명의 언어는 현장의 언어이고, 광장의 언어이며, 전장의 언어이다. 선언의 언어고, 촉구의 언어이며, 결행의 언어이다. 그의 언어는 언제나 직선이다. 에두르지 않는다. 시원하고 통쾌하고 거침이 없다. 하지만 직선은 가르고, 나누고, 구획하는 데에는 그 쓰임새가 유효하지만 품고, 아우르고, 합병하는 일에는 도무지 쓸모가 없다. 그의 언어가 때때로 낯설고, 거칠고, 사납고, 심지어 무서운, 그래서 불편하고 불안하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이재명의 언어가 바뀌길 기대한다. 직선의 언어에 곡선의 언어가 보태지길 희망한다. 흥행하고 있는 '사이다 맛' 언어만으로는 죽어도 그 짜릿한 탄산의 쾌감을 포기할 수 없는 충성스런 고객들만 붙잡고 있게 될 뿐이다. 2002년 16대 대선을 포함한 네 차례 대선에서 진보성향의 대통령은 최고 49%의 득표율에 그쳤다. 과반을 이루지 못했다. 당내 경선까지는 몰라도 본선에서 국민 과반의 지지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언어가 바뀌어야 한다. 통합과 포용과 위무와 치유의 언어를 써야 한다. 지금처럼 갈라지고 나눠져 진영놀음에 골똘하고 있는 암담한 현실을 고민한다면 더욱 그렇다. 대권주자 이재명 스스로 언어의 전환을 고민하기 시작해야 할 때다./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

2020-09-08 이충환

[경인칼럼]빚투 열풍

정부 부동산 대책에 2040세대 '대출 러시'주가 폭락하자 개인투자자는 묻지마 매수주식 열기 신용융자 잔고 '역대 최고 16조'400년전 '네덜란드 튤립광풍' 떠올라 공포네덜란드의 상징인 튤립 원산지는 남동유럽과 중앙아시아로 16세기 후반 페르시아와 터키를 거쳐 유럽 전역에 퍼졌다. 이색적이고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귀족과 부자들을 매혹시켰던 것이다. 네덜란드 노르트홀란트주의 하를럼과 자위트홀란트주의 레이던 근처에서 대량으로 재배되었다. 오늘날 매년 봄이 되면 전 세계 관광객들이 '유럽의 정원'인 암스테르담의 큐켄호프에서 천국의 꽃밭 같은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정신줄을 놓곤 한다.튤립이 네덜란드의 국화(國花)로 자리매김한 배경에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한몫 거들었다. 수요가 증가하면서 꽃값이 상승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부나방처럼 화훼시장에 몰려들었다. 전 재산을 팔아 텃밭 한 조각을 사서 구근(球根)을 키우는 사람들이 생기는 등 꽃값이 계속 오르는 동안에는 모든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 투기자본이 가세하면서 튤립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 1637년에 유명한 셈페르 아우구스투스종 구근 1개 값이 1만 길더를 기록했다. 당시 웬만한 주택 한 채 가격이었다.천정부지의 튤립 값에 실망한 사람들이 한 둘씩 시장에서 발을 빼기 시작하면서 1637년 2월 이후 구근 값이 점차 떨어졌다. 투매가 시작되었지만 구매자는 없었다. 막차를 탔던 사람들부터 파산하기 시작하면서 단기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홈리스로 전락했다. 투기는 인생역전을 노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꿈을 먹고 자랐다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유럽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튤립광기(tulipmania)'라 부른다.'빚투족', '동학개미', '병정개미' 등 생경한 용어들이 자주 눈에 띈다. '빚투'는 '미투(me too)'에 빗댄 '나도 빚을 냈다'는 의미이다.정부의 잇따른 부동산대책이 화근이다. 고강도 주택담보 대출억제가 효력을 발하기 전에 서둘러 마이홈을 마련하려는 2040세대 중심의 대출러시가 빚투의 물꼬를 텄다. 신종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설상가상이었다. 지난 3월 기관과 외국인 투매로 국내 주식가격이 폭락하자 개인투자자들이 매수해 '바이 코리아' 재연 우려를 불식하면서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비유해 '동학개미'란 신조어가 등장했다.올 들어 개인은 국내 증시에서 47조2천182억원을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이 26조3천29억원, 기관이 20조9천425억원을 팔아치운 것을 감안하면 국내증시는 개인투자자들이 견인한 셈이다.소셜미디어에서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례들이 빈발하면서 요즘 청년들은 은행통장보다 주식계좌를 먼저 만든다. "돈을 벌 데는 주식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군대에서도 주식열풍이 불어 '병정개미'들도 양산되고 있다. 내무반 곳곳에서 병사들이 스마트폰의 주가흐름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작금의 기술진보가 고용흡수력을 떨어뜨리는데다 그나마 나쁜 일자리가 대부분이어서 밀레니얼들의 미래가 가늠되지 않는 것이다. 지난달 8·15 광화문시위를 계기로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취업은커녕 알바 자리마저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빚으로 주식을 단기매매해서 용돈이라도 벌자는 심리도 작용했다.덕분에 돈을 빌려서 주식을 사는 신용거래 융자가 급격하게 늘었다. 신용융자 잔고가 금년 3월 6조4천억원에서 8월18일에는 역대최고인 16조원을 돌파했다. 최근 들어 빚투 증가속도는 5G급으로 빨라져 묻지마 주식 '빚투' 차입금이 1주일에 1조원씩 불어나고 있다. 증권사들은 코스피 예상 밴드 최상단을 2500선까지 올려 잡고 있어 향후 개미들의 주식투자 증가는 불문가지이다.국내증시는 실물경기가 바닥인 상황에서 유동성의 힘만으로 버티는 실정인데 급등락이 심한 주식을 빚으로 매매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올해 6월말 기준 가계신용잔액은 3월말보다 25조9천억원이 불어나 가계부채 총액이 1천637조3천억원으로 사상최대이며 1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98.5%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위험 수위(80%)를 큰 폭으로 초과했다.그러나 정부 또한 국가부채 확대에 열중하는 등 대한민국 전체가 빚잔치 중이라 별로 주목되지 않는 인상이다. 400년 전의 튤립광풍을 떠올리면 오금이 저린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20-09-01 이한구

[경인칼럼]미래통합당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

강령과 정강·정책 5·18민주화운동 등 적시보수당으로 상상어려운 변화… 지지율 상승약자·소수배려 일관성·朴 탄핵 반대 사과진전된 역사인식 정립만이 진정성 얻을것 지난 총선의 대참패 이후 미래통합당은 강령과 정강·정책에 기본소득을 명시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적시하는 등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한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5·18 민주 묘역에서 무릎 꿇고 울먹이며 사과했다. 통합당 계열의 보수정당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들이다. 통합당의 지지율 상승은 이러한 현상들을 반영한다. 문제는 이러한 조치들이 통합당의 근본적 인식 전환으로 뿌리내릴 수 있느냐에 있다.한국정치에서 친일과 반공 등에 기반한 이념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 균열 중 핵심적 부분은 역시 이러한 역사인식의 차이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한국현대사에서의 진영간의 근본적 인식의 간극을 좁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의 영역으로 보인다. 그러나 증오에 가까운 대척이 종식되지 않으면 공동체의 발전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따라서 역사 갈등 해소를 주도하는 정당에게 궁극적으로 시민들은 지지를 보낼 것이다. 지난 광복절에 김원웅 광복회장의 말에는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의 표현 방식은 현상과 실체로 존재하는 대척세력을 존중함이 없이 적대를 발산했기 때문에 역사인식의 진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갈등만을 증폭시켰다. 이를 겨냥해서 진영내의 정체성을 통한 입지강화를 의식했다면 이는 더욱 비판받을 일이다.정치영역에서의 역사에 관한 칼날같은 대립은 시민사회의 분열로 이어진다. 그러나 상대의 주장을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정치언어들이 중도에 위치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정치세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그들 스스로 포획된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이를 통합당이 주도한다면 중도층은 진화된 통합당에 주목할 것이다. 중도층은 더 이상 소극적 방관자가 아니라, 정치지형을 바꾸는 적극적 참여자로 변모하고 있다. 최근의 더불어민주당과 통합당의 지지율 변동은 이를 실감나게 한다.통합당이 친일과 반공에서 진전된 역사인식을 보이고, 제주 4·3항쟁과 여순 사건 등에서도 당시의 국가폭력에서 비롯된 양민학살 등을 직시하고 새로운 인식을 보일 때 통합당은 이념을 초월하는 진정한 합리적 세력으로 설 수 있다.통합당이 여권을 좌파와 독재세력, 사회주의 세력으로 치부할수록 정치적 입지는 쪼그라든다. 전통적 지지층을 의식해서 과감한 역사인식 변화를 추동하지 못한다면 이는 전략적 사고의 부재다. 전통적 지지층을 박근혜 정권을 떠받쳤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본다면 이 존재의 정치적 효능감 부재는 탄핵과 지난 대선에서 입증됐다. 관건은 역사와 현실에 부합하는 정치적 언설을 누가 적시에 발신하느냐에 달려있다.자유한국당의 좌파 타령과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세력과 손잡은 결과는 총선에서의 참패다. 총선 이후 이러한 것들을 불식하고 변화의 단초를 보이면서 지지율은 반등했다. 물론 민주당의 오만으로 비칠 수 있는 국회 입법과정과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 오는 반사이익의 면을 부인할 수 없지만 결국은 통합당에 대한 기대가 돌아오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간과해선 안된다.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들과 그렇지 않은 국민들이 존재한다. 통합당에는 유력한 대선후보가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 후보가 될 것이다. 한국대선의 특성상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단일후보가 출마한다면 인물보다는 정당이 압도적 영향을 발휘한다.통합당이 변해야 한국정치가 바뀐다. 무력한 야당은 권력의 오만을 부추기는 공범이다. 통합당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를 배려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발신하고 진전된 역사인식을 보일 때 최근의 움직임들이 진정성을 보일 수 있다. 5·18 특별법과 진상조사에 앞장서고 망언의 당사자들에 대해 추상같이 대해야 한다. 박근혜 탄핵에 대해 반성하고, 탄핵을 반대한 것에 대해서도 사과함으로써 진정으로 '탄핵의 강'을 건널 때 변혁은 진정성을 얻는다. 통합당은 이를 할 수 있을까. 긍정적 변화의 조짐에도 불구하고 통합당에는 수구의 망령들이 어른거린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2020-08-25 최창렬

[경인칼럼]수도 이전, 수도권 규제는?

천도론은 부동산정책 실패 출구 전략 깔려균형 발전 수도권 옥죄는 10중족쇄 수정법그래도 인구 전국 절반 넘어서 규제의 역설수도 옮겨도 집중 지속땐 새법 덧씌울건가수원(水原)은 정조의 도시다. 아버지 사도세자 묘를 양주에서 이장했다. 세계문화유산 화성(華城)은 이 무렵 축조됐다. 팔달산 아래 터를 잡아 궁을 지었다. 백성들의 이주를 권했다. 2년 뒤 63가구가 719가구로 늘었다. 생업 기반을 갖춘 조선 최초의 계획도시다. 한강 배다리를 건넌 정조는 수원행궁에 머물며 제례와 행사를 치렀다. 귀경길, 지지대(遲遲臺)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화성 천도(遷都)를 꾀한다는 괴이한 말이 돌았다. 노론 벽파는 신하의 도리를 저버렸고, 한양 궁궐은 그의 숨통을 조였다. 정조는 천도를 말하지 않았다. 역사의 짐작일 뿐이다. 행적으로 미뤄 의지는 강했던 듯하다. 재위 25년, 정조가 요절했다. 독살이라 했으나 사인은 풀리지 않았다. 천도는 잊혔다.여당 대표가 수도이전 카드를 꺼냈다. 대한민국 수부 도시를 세종으로 옮기자는 거다. 행정수도 건설과 공공기관 이전만으론 부족하다고 한다. 당 대표와 동료 의원이 그를 거든다. 서울은 '천박한 도시'가 됐다. 아파트값이나 들먹이는 속물들의 집합체다. 서둘러 명군(名君)의 땅으로 옮겨야 한다. 민주당은 수도 이전을 위한 특별 기구를 설치했다. 일사천리다.천도론은 정치적 득실이 바탕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반전할 출구 전략이다. 세금 폭탄이 불발했고, 공급 정책도 힘을 못 쓴다. 실기(失期)한 때문이다. '집값이 안정되고 있다'는 말은 기대치가 더 반영된 수사다. 23차례 땜빵 보수에 정책은 만신창이가 됐다. 국민은 정부 말을 믿지 않는다. 경질된 청와대 수석은 마지막 회의장에 없었다. 내부 균열에 담장 밖까지 시끄럽다. '권력은 짧고, 부동산은 길다'고 수군거린다.서울·경기·인천은 수도권 공동체다. 서울이 노른자라면, 경·인은 흰자위다. 보완과 완충의 관계다. 함께 국가 발전을 견인했고, 선진국 진입의 주역이 됐다. 맏형을 위해 동생은 힘을 보탰고,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힘들 때 밀어주고, 때론 가림막이 됐다. 1천만 시민의 식수는 광주 땅 팔당이고, 쓰레기는 인천이 받아낸다. 분당과 평촌, 일산 신도시는 80년대 후반 건설됐다. 폭증하는 강남의 주택 수요를 땜질하려는 고육책이다.역대 정부는 40년 넘게 중첩된 규제로 수도권을 옥죄었다. 1982년 말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이 핵심이다. '군사시설보호구역' '개발제한구역' '팔당특별대책지역' '농지법'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 '군사시설보호법' '조세특례제한법' '지방세법' 등 10여 개 규제법령이 적용된다. 그런데도 산업과 인력 집중은 더 심화했다. 수도권 인구가 전국 절반을 넘어섰다. 규제의 역설이다.정치권력은 16년 전 사법부의 수도이전 불가 결정을 부정하려 한다. 관습과 전통에 대한 거부다. 힘없는 자들의 대의와 명분은 무력 앞에 초라해진다. 서울이 수도여야 한다는 주장과 외침은 무기력하고 공허하다. 천도는 살아있는 권력의 의지에 달렸다. 정부 여당은 욕망을 제어하지 않는다.600년을 넘게 버틴 고도(古都)는 늙고 허약하다. 배산임수는 철 지난 풍수지리다. 물산의 이동수단이 다양한 지금, 콘크리트 제방 한강의 매력은 무엇인가. 성장 발전성에도 의문은 커진다. 매년 인구가 줄고 있다. 균형발전과 분산은 당위성이 충분하다. '균형발전과 수도권 집중 완화를 위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는 여당 대표 말은 틀린 게 없다.수도 이전의 동력은 힘의 크기다. 헌법 개정, 헌재 판결도 여권 의지대로 움직일 것이다. 이미 행정수도가 건설된 마당이다. 국회와 청와대를 옮기는 건 별 어려울 게 없다. 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못할 게 없다. 정작 걱정은 다른 데 있다. 수도를 이전하고도 '수도권 규제'는 남겨둘 것이란 예감에서다.수도를 옮기고, 수도권 집중 현상이 해소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계속 조이고, 여의치 않으면 새 규제를 덧씌울 건가. 그 결과 분산과 균형발전이 아니라 활기를 잃고, 국력이 쇠락한다면 어찌 되는가. 그건 공망(共亡)일 것이다./홍정표 논설위원홍정표 논설위원

2020-08-18 홍정표

[경인칼럼]위기의 시대에 읽는 영웅서사

얼마전 '이순신 관련 북콘서트' 는 성찰자리 이광수·이은상 책은 정견 투사·우상화 비평그의 참모습은 인품·지도력 갖춘 軍전략가공동체 운명과 동일… 비범하나 신은 아냐지난 7월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열린 북콘서트 '이순신을 찾아서'는 역사적 영웅의 서사화에 대한 소중한 성찰의 자리였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증유의 위기 속이라 영웅 서사에 대한 논의가 더 뜻깊었다. '이순신을 찾아서'는 문학평론가 최원식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이순신 서사학이다. 이 책은 단재 신채호 구보 박태원을 비롯한 춘원 이광수, 환산 이윤재, 노산 이은상, 김지하, 김탁환, 김훈 등의 국내 작가들이 남긴 다양한 이순신 서사 텍스트를 평가한 비평서이다. 최원식 교수는 춘원 이광수의 '이순신'은 조선의 백성과 관료는 물론 군주도 시기심과 야심 때문에 충무공을 오해하고 방해하는 우매함 혹은 악의 화신으로 과장하였으며, 이순신은 부패한 관료들 틈에서 홀로 고투하는 인물로 단순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광수의 '이순신'은 결국 조선 망국의 필연성과 춘원 자신이 '민족개조론'에서 친일로 나간 '외로운' 선택을 방증하는 아전인수형 전기소설로 떨어졌다. 저자는 또 노산 이은상의 경우 이순신을 거룩한 우상으로 조작하고 조작된 우상은 다시 박정희를 영웅화하는 서사물이 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영웅을 이상화하고 신격화하는 것은 사실을 단순화함으로써 오히려 역사적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안이한 글쓰기이다. 이순신의 참모습은 어떤 것일까? 유성룡의 천거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불리한 전세에서 조선수군으로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지상 육군의 배후를 위협함으로써 일본군의 수륙병진전략을 타격하여 전세를 반전시켰다. 조정의 반대와 온갖 난관에도 제해권장악 전략을 일관되게 밀고 나간 냉정한 군사전략가였다. 한편 이순신은 "군율을 분명히 하고 사졸을 사랑하니 사람들이 모두 기꺼이 따랐다"(明紀律 愛士卒 人皆樂附)는 실록의 기록처럼 병사와 백성을 아끼고 사랑했으며 그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한 인간적인 군사지도자였다. 궤멸된 수군의 전투력을 단시일에 복원하고 병사들이 목숨을 던져 전투에 임하게 된 것은 그의 따뜻한 인품과 지도력 때문이었다.그런데 실학자 성호 이익은 이순신의 다른 위기관리능력을 제시했다. 이순신은 군수물자를 스스로 해결하여 전투력을 높이는 한편 백성들의 부담을 줄여 주었다고 한다. 당시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통제사라는 지위만 부여하고 전쟁물자를 지원하지 못했다. 이순신은 소금을 구울 수 있도록 해변의 땅을 요구하여 조정의 허락을 얻었다. 큰솥을 걸어 구어낸 소금으로 수만섬의 군량미를 스스로 비축했다. 왜군의 노략질과 조선군의 군량미 징수에 지친 삼남지방 백성들의 고통을 줄이고 피폐한 경제에도 적잖이 기여한 것으로 평가했다.또 이순신은 전장에 있으면서도 복잡한 조정과 외교적 갈등을 고려하면서 현실을 타개하는 신중하고 세심한 정치가였다. 이순신은 전쟁 중에서도 공인(工人)을 모아 부채 등을 만들어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의아해 했지만, 사사로이 이익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방해를 두려워해서였다. 이익은 '두예와 이순신'이란 글에서 촉박한 전란의 와중에 부채를 만들어야 했던 안팎의 사정을 생각하면 천고에까지 지사들의 눈물을 떨어뜨리게 한다고 거듭 탄식했다.역사적 영웅들은 서사시의 주인공처럼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운명과 동일시되거나 강하게 연관된 존재이다. 그런데 역사적 영웅에다 작가의 정견을 투사해 넣은 이광수, 박정희 영웅화 도구로 이순신을 우상화한 이은상의 경우는 이순신과 서사의 픽션을 그저 빌려왔을 뿐이다. 이순신 서사는 아직도 미완인 셈이다. 위기의 시대는 영웅을 대망한다. 영웅은 비범하지만 그렇다고 초인이나 신이 아니다. 전쟁 영웅 이순신이 오히려 병사들과 백성을 아끼고 사랑한 따뜻한 소통형 지도자였으며 병사들의 지혜와 지지에 힘입어 위기를 반전시킨 영웅이라는 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시사점이겠다./김창수 인하대 겸임교수·객원 논설위원김창수 인하대 겸임교수·객원 논설위원

2020-08-11 김창수

[경인칼럼]아무도 다시 질문하지 않았다

복서 알리 복귀전 첫패배 기자 고약한 질문독설인터뷰 유명 팔라치·토머스 언론 전설얼마전 與 대표 욕설에 언론사 해명성기사'기자가 질문을 안하면 대통령도 왕이 된다'1971년 3월8일 미국 뉴욕 메디슨스퀘어 가든에서 세기의 복싱 대결이 펼쳐졌다. 챔피언 조 프레이저와 도전자 무하마드 알리의 헤비급 세계타이틀전. 4년 전 베트남전쟁 징집을 거부해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시민권까지 제한받았던 알리에게 이날 시합이 갖는 의미는 각별했다. 3년이 넘는 긴 재판에서 마침내 무죄선고를 받은 뒤 치르는 복귀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판정패. 생애 첫 패배이기도 했다. 영혼이 쏙 빠져나간 듯 탈진하고 상심한 상태로 라커룸으로 향하는 알리를 기자들이 뒤쫓았다. 그리곤 집요하게 묻는다. "이긴다 해놓고 실컷 두들겨 맞았군요.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고약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알리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오리아나 팔라치는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전 세계 주요 권력자들을 인터뷰한 이탈리아 언론인이다. 상대를 꼼짝달싹 못하게 묶어버리는 질문과 독설로 유명했다. 1972년 키신저 당시 미 대통령 안보보좌관으로부터 "베트남 전쟁은 실패한 전쟁"이라는 놀라운 '자백'을 받아냈다. 1979년 이란혁명을 이끈 종교지도자 호메이니와의 인터뷰는 극도의 긴장 속에서 진행됐다. 6시간에 걸쳐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벌였는데 팔라치는 '현존하는 이란의 신'에게 "당신은 독재자가 아닙니까?"라며 대놓고 물었다. 리비아 최고권력자 카다피와의 인터뷰에선 "대령님이 하는 걸 봐선 스스로를 신으로 착각하는 줄 알았네요"라고 비틀었다. "가난한 국민들의 참상을 볼 때 어떤 느낌입니까?"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에게 날린 직격탄이다.지난 2013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헬렌 토머스는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 또는 '고정자산'으로 불렸다. 50년 긴 세월 동안 케네디부터 오바마까지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10명의 미국 대통령이 그녀의 까칠하고 배려라곤 없는 질문을 받아내야만 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베트남 전쟁을 끝낼 비책이 뭡니까?" (닉슨), "미국이 그라나다를 침공할 수 있는 권리가 도대체 뭡니까?" (레이건), "당신이 말을 에둘러 한다는 평판이 있는데 결정을 잘 못 내리기 때문입니까?" (클린턴), "그동안 정부가 밝힌 이라크전쟁의 원인은 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가 뭡니까?" (아들 부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언제 철군할 겁니까? 왜 계속 죽이고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까?" (오바마).얼마 전 서울시장의 장례식장에서 어느 기자가 집권여당 대표에게 질문을 했다가 우리 정서상 가장 심한 욕설을 들었다. '기자는 쓰레기'라는 뜻의 단어가 이미 보통명사가 된 마당에 이보다 더한 치욕이 어디 있으랴마는 욕설을 내뱉은 당사자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공인 중의 한 명인 여당 대표인만큼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더 아연실색케 한 것은 기자가 소속돼 있는 언론사의 태도다. "의도를 갖고 고인을 모욕하거나 공격하기 위한 질문은 아닌데 어제부터 여러 상황에 비춰 유족 측이나 당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언론에 누적된 감정이 그 질문을 계기로 촉발된 거 같은데 추모일색으로 흘러가는 건 문제가 아니냐고 기사를 썼으니 참고하시라"(미디어오늘, 7월10일)고 했단다. 언론이 언제부터 이렇게 너그러웠던가. 언제부터 이렇게 친절했던가.이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는 언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또 정치적 지향이 어떠한가에 따라 다를 것이다. 기사에 달리는 댓글들이 입증한다. 언론과 정치가 놓여있는 오늘의 현실에서는 극단적 이분법도 유난스럽지 않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손가락질 해대도 언론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똑바로 쳐다보고 제대로 질문하기다. 질문하지 않는 언론이야말로 '기레기'고 사회악이다. 대통령에게 뼈아픈 질문을 주저치 않는 헬렌 토머스에게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도 왕이 된다." 그날 언론이 '후레자식'이 된 현장의 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정말 걱정스러웠던 것은 이후 아무도 다시 질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언론의 끝을 보는가 싶었다./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 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 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

2020-08-04 이충환

[경인칼럼]20년째 일자리타령만 되풀이하니

'청년실업 출구 안보인다' 2001년 신문 제목 강산이 2번, 정권이 5번이나 바뀌었는데도기업경기동향조사·고용 상황 여전히 최악산업 정책 재탕·3탕에 나쁜일자리 양산 탓'청년실업 출구가 안 보인다.'2001년 11월5일자 모 주요일간지의 청년실업 특집기사 제목이다. 20~29세 청년취업자수가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의 477만명에서 2001년의 412만명으로, 불과 4년 만에 65만명이 감소한 것이다. 20, 30대도 감원시킨다며 충격이라는 반응이다.강산이 두 번 변한 지금은 어떨까?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달 28일 매출액 600대 기업 대상의 기업경기실사지수(Business Survey Index) 조사에서 올해 2분기(4~6월) 고용실적 BSI는 평균 80.6으로 전년도 2분기(97.6) 대비 무려 17.0p나 감소했다. 기업경기동향조사를 시작한 1980년 이래로 역대 최저이다. 실업자 수는 2000년 이후 3월 기준으로는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고용상황도 최악이다.코로나19 쇼크가 가세한 탓이나 결정적인 것은 중진국 함정이다.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 초기에는 순조롭게 성장하다 중진국 수준에 도달하면 성장률이 장기간 정체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세계은행이 2006년 '아시아경제발전보고서'에서 처음 제기했다. 정부주도의 압축성장에 따른 고비용, 저효율문제를 시장메커니즘을 통한 해소에 주저하다간 어김없이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중진국 함정'에 빠져 경제가 퇴보하는 국가들이 대부분이다.한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 이후 경제성장률이 눈에 띄게 둔화되었지만 민주화열풍에 도취된 절대다수 경제주체들이 시장경제 전환이란 수술을 거부하다가 1998년에 국제금융자본의 융단폭격을 맞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리주의에 근거한 '시장의 법칙'을 거부하고 성공한 사례는 단 한건도 없다. 오늘날 EU(유럽연합)의 경쟁력 둔화는 시장경제와의 힘겨루기에서 판정패를 의미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도 미국에서 시장의 힘을 맹신하는 WASP(앵글로색슨계 백인 크리스천)의 승리인 것이다.한국의 경우 시장법칙을 거부하다 혹독한 대가를 치른 후부터 고용문제가 사회적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유권자들은 국내 민주주의 역사상 최초로 '경제대통령' 운운하는 대선 후보에 표를 몰아주었다. 공자의 적자(嫡子)인 중국인들도 부러워했던 소중화(小中華)의 나라에서 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위기 극복 방안으로 벤처기업을 적극 육성하는 정책을 펼쳤다. 과감한 규제 개혁과 조세 지원이 이어졌다. 스톡옵션 제도가 처음 등장했고, 기술거래소가 열려 벤처기업의 숨통을 틔워줬다. 게임업체도 병역특례 대상 기업에 포함됐다. 벤처투자자금을 쉽게 회수하도록 코스닥 시장 활성화도 뒤따랐다. 벤처 생태계가 모습을 갖추며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이 다크호스로 등장했다. 한국이 IT강국으로 부상하는 계기였다.그러나 그뿐이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산업경쟁력을 키우는 것인데 형평을 강조했던 노무현 정부는 글로벌리제이션과 몇 합을 겨루다 국가경쟁력만 떨어뜨렸으며 이명박정부는 '녹색성장' 어젠다로 혈세를 퍼부어댔지만 온실가스는 더 증가했다. 그 와중에서 정부는 효과가 더딘 산업정책 대신 임시직과 알바 등 나쁜 일자리만 양산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린다며 공공부문 채용을 점차 확대했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 간판을 내걸었지만 무슨 사업을 추진했는지 별로 기억에 없다.문재인 정부의 산업정책은 이전 정부의 재탕, 3탕이다. 벤처정책은 2000년 당시와 가장 닮았으며 신재생에너지정책은 이명박 정부 녹색성장의 '시즌2'인 것이다.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6일 발표한 '그린 뉴딜'대책에서 2025년까지 총 73조원을 투입해서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지난해 12.7 기가와트(GW)에서 42.7GW로 늘리고 전기차 113만대, 수소차 20만대를 생산해서 일자리 66만개를 창출하겠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친환경차 대비 고용흡수력이 월등한 내연기관 자동차산업의 연착륙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지속가능성은 더욱 의문이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부가 갈아놓은 밭을 갈아엎고 새 작물을 심는다고 법석이니 나라곳간만 거덜 낸채 앵무새처럼 일자리 타령만 되풀이하는 것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20-07-28 이한구

[경인칼럼]진영(陣營)에서 연대(連帶)로

지구촌 좌우 이념은 정체성으로 대체 뚜렷한국사회 혼돈 천박 자본주의 질서 재생산박원순 죽음놓고도 대립 중첩된 갈등 반영포스트 코로나시대 진영 초월한 연대 절실정체성 개념은 1950년대에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에 의해 대중화되었고 정체성 정치는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문화정치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정체성은 내적 자아의 가치나 존엄을 외부로부터 구분짓기 위한 개념이다. 정체성 정치는 민주화나 사회적 변혁을 위한 투쟁 등의 정치투쟁들의 상당 부분과 연관되어 있다.20세기 서구 정치에서는 주로 경제 이슈를 중심으로 좌우의 스펙트럼이 형성됐다. 좌파는 더 확실한 평등을 요구하고, 우파는 더 많은 자유를 요구했다. 물론 재분배와 사회보장을 지향하는 좌파와 정부의 크기를 줄여 경제적 간섭을 최소화하고 민간 영역을 늘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우파의 구분은 여전히 유효하다.그러나 세계적으로 좌우의 이념적 차별성은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스펙트럼으로 대체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좌파는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 성소수자, 이민자, 여성, 히스패닉, 난민 등 다양한 소외집단을 보호하는 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우파는 인종, 민족, 종교 등에 연결된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쪽에 초점을 맞춘다.한국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도 복잡하게 분화하고 있다. 동성애, 젠더, 세대 등이 주요한 갈등으로 부각되면서 기존의 전통적 갈등축과 중첩되면서 사회는 지향과 목적을 상실하고 있다. 경제와 안보의 전통적 대립은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 등의 전통적 갈등과도 여전히 중첩되어 있다. 친일과 반공도 쟁점축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이슈는 무엇인가. 사회의 갈등축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가. 보수와 진보의 경쟁인가. 자유와 평등의 충돌인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질서는 계층에 관계없이 무한경쟁과 물질에 포획된 천박한 자본주의 질서를 재생산하고 있다.다원화된 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시민지성을 통해 공론이 형성되어 사회의 가치관으로 정립된다면 소수는 소수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집단과 위상에 따른 정체성이 사회적 갈등의 증폭을 결과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다.지난 21대 총선이 끝나고 국회는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7·10대책이라 불리는 고강도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으나 소기의 정책성과를 거둔다고 낙관할 수 없다. 법무부와 검찰의 대립이 일단락됐다고는 하지만 친여권 인사나 청와대 관련 수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과 관련하여 갈등 요인은 상존한다.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립도 진영논리와 한국사회의 중첩된 갈등을 반영하고 있다. 내년 4·7 보궐선거는 대선 전초전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고 대선의 보수·진보의 갈등이 1년 앞당겨진 정치현실에서 다시 정치공학이 난무할 것이다.포스트 코로나의 시대변화에 대한 대책은 내실이 외관을 따라가지 못한다. 진영간, 세대간, 경제 계급간 갈등이 내재화된 데다가 젠더와 정체성 정치가 또 다른 적대의 축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등이 내면화하고 일상화된 사회에서 구성원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기 어렵고 지속가능한 발전도 불가능하다.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전방위적 대립, 각 층위 마다 얽혀있는 갈등구조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가 정치의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선거민주주의를 가장한 정당의 집단이기주의는 어느 진영이 승리하든 시민들의 삶의 영역에서 제기되는 의제와 이슈들을 해결할 능력을 제시하지 못한다. 한국정치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일하는 국회법'이라는 허구가 아니라 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에 대한 인문학적이고 철학적 성찰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수준에 이를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다.대격변과 무질서는 아니지만 사회적 가치와 합의의 모색의 부재에서 한국사회는 지향을 상실하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라는 말이 얼마나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사회는 소외되고 배제된 자들을 보호해야 하지만 동시에 숙고와 합의를 통해 공동의 가치를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 진영과 정체성을 뛰어넘는 연대와 유대가 절실하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2020-07-14 최창렬

[경인칼럼]광명·시흥 '눈물의 10년'

MB정부때 지정한 매머드급 보금자리지구변죽만 울리다 지정 철회후 특별관리 번복주민만 골탕… 6·17 부동산 대책 낙제점속정부 추가대책엔 '새공공택지에 포함' 마땅'6·17 부동산 대책'은 낙제점을 받았다.서울과 수도권은 상승세가 여전하고, 전세는 매물을 감췄다. 국민들 마음은 탈탈 털렸다. '내 집 마련의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불만이 폭발했다. 30·40대도 등을 돌렸다. 여권의 든든한 지원군이 변심한 것이다. 민심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청와대는 사과했고, 여당 대표가 두 차례 고개를 숙였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21차례나 대책을 내놨는데 약발은 없었다고 비판한다. 국토부는 단편 빼면 종편은 4번뿐이라고 부득부득 우긴다. 효과 검증이 실없는 차수 논쟁으로 번졌다.역대 정부의 '부동산 때려잡기'는 두 갈래다. 중과세와 규제 강화가 한 묶음인 수요 억제책과 공급 확대 방안이다. 조세와 규제는 상황에 따라 조였다 풀었다 해도 뒤탈은 별 게 아니다. 반면 공급의 변환은 후유증이 심각하다. 보상이 따르는 공공 개발은 덤이 분명하나, 바뀐 정부가 변죽을 울리거나 늘어지면 재앙(災殃)이 된다. 광명·시흥이 그렇다.이명박 정부는 2010년 광명시와 시흥시 일원 17.4㎢를 묶어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정했다. 함께 지정된 4개 지구와는 비교 불가한 매머드 체급이다. 분당신도시(19.6㎢) 버금가는 면적에 사업비가 23조9천억원(2010년 기준)이다. 국토부 행동대장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시행자로 낙점됐다. 주민들은 들떴고, 지역은 요동쳤다. 장밋빛 전망이 나돌았고, 조용하던 마을이 북적였다.요란 법석은 오래가지 않았다. 스텝이 꼬였고, 나가야 할 진도는 제자리였다. 거래는 묶였고, 토지와 건물 보상은 기약이 없다. 정권이 바뀌면서 '보금자리가 애물단지 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꿈은 악몽이 됐다. 불안과 불만이 폭발 지경이었다. 보상을 염두에 두고 돈을 끌어다 쓴 주민은 피눈물을 흘렸다. 정부는 4년이 지난 2014년 지구 지정을 철회했다. 재원이 부족하고 사업성이 나빠졌다고 발뺌했다. 수도권에 새 정부 신상인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이 유행할 즈음이었다. 전(前) 정부 상품을 용도폐기한 거다.지구 해제 뒤 광명·시흥지구는 2015년 특별관리지역으로 다시 묶였다. 10년이 지나면 효력을 잃게 되나, 그 사이 환지방식으로 도시개발사업이 가능하다. 이번에도 LH는 딴청이었다.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개발'을 제시했다. '주민 스스로'는 역부족이다. 또 5년이 지났다. 주민들은 공동대책위를 만들었다. 14개 마을별로 각개 전투를 하거나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출발이 앞선 동네는 진척이 빠르다. 정비사업 계획안을 내놨다.광명시와 경기도, 국토부는 엇박자 행보다. 시는 개별 사업이 난개발을 초래한다며 난색이다. 주민들이 어깨동무해야 빨리 갈 수 있다고 설득한다. 도는 어정쩡하다. 결정권한이 없다며 선을 긋는다. 관리계획 변경 권한을 쥔 국토부 눈치를 본다. 중앙정부는 팔짱을 풀지 않는다. 지자체가 알아서 추진하라는 거다. 주민 주도로 개발사업이 가능하도록 약속했기에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한다. 주민들만 죽을 맛이다.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은 국정의 최대 현안'이라고 했다. 관련 부처에는 보완책을 주문했다. 징벌적 조세와 공급 확대에 방점을 찍었다.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부는 새 대책을 서두른다. 7월 중 국회 통과가 타임 라인이다. 다주택자·임대법인의 등록세와 보유세 양도세 중과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재건축·재개발 활성화와 함께 수도권 4기 신도시가 거론된다.광명·시흥지구는 후보지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사통팔달 교통 인프라에 서울 구로와 마주해 접근성이 뛰어나다. 길 하나 건너면 서울이고 강남이다. 강남 대체재에 목마른 무주택자들을 유인할 수 있다. 고양 하남은 경쟁이 되지 않는다. 지역을 쪼개도 분당 절반의 주거물량이 확보된다. 지친 주민과 지역이 막아설 이유가 없을 것이다.정부의 22차 부동산 대책안이 조만간 공개된다. 새 공공택지는 광명·시흥이어야 마땅하다. 이만한 입지와 조건이 없다. 주민들의 '10년 눈물'을 그치게 할 처방이다. 일석이조다./홍정표 논설위원홍정표 논설위원

2020-07-07 홍정표

[경인칼럼]특성화 논리를 돌아본다

지역 보유자원 활용높이기 집중·선택 전략국가·지방정부 의심 여지없이 상식적 사용그러나 정체성 고착 잠재·자족성 훼손 우려 코로나이후 '전일성시대' 삶의 질 강조 변화상식처럼 간주되는 논리도 때때로 점검해보아야 한다. 상식처럼 통용되는 담론이야말로 합리적 성찰이 비껴가는 인식론적 함정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특성화' 논리도 그 사례 중의 하나이다. 그중 '지역 특성화' 논리는 국가나 지방 정부가 의문의 여지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지역은 특성화되어야 한다'는 당위명제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따져 묻지 않는다. 왜 지역만 특성화하고 서울은 특성화하지 않는가, 혹은 특성화가 되면 과연 지역이 발전하는가 캐묻지 않는다. 이미 교리가 된 것이다.특성화의 논리는 경쟁을 최소화하고 지역이 보유한 자원의 활용도를 높이려는 집중과 선택 전략이다. 그런데 누구를 위한 특성화인지 질문해야 한다. 특성화는 지역의 특수한 조건이나 자원을 활용한 내생적 발전계획이 아니라 국가나 중앙정부의 국토관리 전략에 가깝다. 그래서 서울은 특성화하지 않는다. 지방이 특화된 기능으로 분화하면 할수록 특수기능만 갖는 불완전한 공간이 되고 만다. 대학 특성화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업은 대학이 지역사회 수요에 기반을 둔 강점 분야에 특성화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이었다. 그런데 재정지원의 핵심 기준이 대학별 정원 감축으로 귀착되면서 전국의 여러 대학에서 취업률이 낮은 인문·예술 계열의 학과를 통폐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특성화 때문에 대학 본연의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역설적 현상이었다.특성화 때문에 지방은 오히려 영원히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지방으로 남을 수도 있다. 특수성의 추구로 다양성과 자족성을 획득하지 못하게 되니 말이다. 수도권의 위성도시들은 특정한 기능을 가진 도시들이다. 베드 타운이거나 농업이나 공업, 혹은 물류 인프라를 담당한다. 경제적으로 특화되지만 정치와 교육 문화 소비는 서울에 의존하는 불균형 관계이다. 이 같은 의존관계로 주변부 도시 주민들의 정주성은 떨어지고 있다. 기능주의적 도시정책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이다. 쇠퇴일로를 걷는 러스트벨트(Rust Belt)의 대명사가 된 미국 디트로이트시를 보라. 한때 자동차 산업의 중심도시로 미국 제조업의 중심도시로 발전해왔지만 미국자동차 산업의 쇠퇴로 디트로이트시는 파산하고 말았다. 디트로이트는 지금 범죄율이 가장 높은 위험도시가 되었다.특성화 전략은 지역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고착시켜 역동적 잠재력이나 자족성을 훼손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도시의 기본 기능과 다양성의 기초 위에 추구해야 한다. 기본을 소홀히 하고 특성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문화에서 다양성은 지역과 도시에서도 중요한 창조자원이지만 특성화가 다양성을 잠식하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화 도시의 문화를 특정문화분야, 특정 예술 장르 중심으로 특화할 것을 요구하는 한국의 '문화도시' 사업은 국가차원에서 보면 다양성의 실현처럼 보이지만, 해당 지자체 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선택의 폭을 좁힌 단순화일 수 있다.국제분업 생산시스템도 국가주의나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설상가상으로 팬데믹의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무력함이 확인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일본의 불화수소 수출규제로 시작된 한일무역분쟁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적어도 전략물자는 자급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코로나 위기에서 집이 일터이자 학교이자 휴식처로 바뀌었듯이 마을과 도시와 국가도 자립과 자족성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은 특성화의 시대가 아니라 기본을 잘 갖춘 전일성(holism)이 절실한 시대이다. 특성화가 국제 분업과 국내 도시 역할 분담론에 기초한 고도성장기의 패러다임이라면 전일성은 삶의 질을 강조하는 논리이며, 사회적 격리로 국제간 도시간 이동과 접촉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을 견디면서 살아가야 하는 시대의 생존 논리이며 위기 대응 패러다임이다./김창수 인하대 겸임교수·객원 논설위원김창수 인하대 겸임교수·객원 논설위원

2020-06-30 김창수

[경인칼럼]인천시장 지지도가 낮은 까닭

정치가에 유권자 지지도는 '숨맥'과도 같다등락따라 미국이든 한국이든 연명가늠 희비반면에 인천은 만년하위권 이슈화도 안돼역설적으로 작은틀 규정 안주하는건 아닌지정치하는 이들에게 유권자들의 지지도는 숨맥이나 다름없다.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높게 나오면 그보다 더 강한 활력을 느낄 수가 없단다. 사우나에서 땀 뻘뻘 흘린 뒤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하는 어떤 유산균 발효유 서너 병을 한꺼번에 목구멍 안으로 털어 넣는 기분일 거라고 짐작한다. 반대의 경우? 시장선거캠프 경험이 있는 국회의원 보좌관은 "낭패(狼狽)"라고 잘라 말했다. 낭(狼)이나 패(狽)나 늑대, 이리, 승냥이 쯤 되는 상상속의 동물이다. 낭은 앞발이 긴 대신 뒷발이 짧고, 패는 앞발은 짧은데 뒷발이 길다. 낭은 패 없이 서지 못하고 패는 낭 없이 가지 못한다. 그 둘이 틀어져버린 상황이다. 보좌관의 다음 말이 웃겼다. "그날은 무슨 핑계를 대든 일찍 캠프를 빠져나와야 합니다. 후보님이 보름달 늑대로 변하거든요."지난 1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미국민들의 지지도가 30%대로 떨어졌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이달 중순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와 공동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국정수행에 지지를 보낸 응답자는 38%. 지난해 11월 미국 하원에서 대통령 탄핵조사가 시작된 이후 가장 낮았다. 로이터는 "지지기반이 무너지고 있다고 볼만한 명백한 경고신호가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바이든과의 격차도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를 찍겠다는 유권자는 35%로 바이든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들보다 13%p나 적었다. 추측컨대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된 그날 야근하는 백악관 직원들의 수가 크게 줄지 않았을까.같은 날, 우리나라에선 경기도의 한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이순신 장군에 비유하며 구명을 호소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 지사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 등에 대한 상고심 심리를 종결한 날이다. 안병용 의정부시장은 "직무평가 지지도 67.6%의 놀라운 지지를 받고 대선주자 지지도 2∼3위를 오르내리고 있다"면서 "도정의 실패자라면 몰라도 지사직을 성공적으로 잘하는 이재명을 파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안 시장이 언급한 지지도는 리얼미터가 매달 실시하고 있는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의 4월 조사결과다. 안 시장이 '비문(非文)'의 울분을 토해내던 그날 이미 5월 조사결과가 나왔는데 놓친 게 틀림없다. 5월 이 지사의 지지도는 전달보다 2.7%p 오른 70.3%로 자신의 최고치를 경신했다.이렇듯 정치인의 연명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로, 때로는 구명의 수단으로도 활용되는 직무수행 지지도가 전혀 특별하게 취급되지 않은 지역이 있다. 바로 내가 사는 인천이다. 기이하게도 이곳에선 국내 여론조사기관이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시·도지사 지지도가 제대로 이슈화된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만년 하위권이기 때문이다. 민선 5기 송영길 시장 재임 때인 2012년 2분기 이후 당적을 가리지 않고 지지도 30%대의 하위권이 고착화됐다. 심지어 민선6기 유정복 시장은 꼴찌의 불명예를 반복해서 안았다. 그나마 민선 7기인 지금의 박남춘 시장 지지도가 앞선 시장들보다 높은 40%대로 올라섰지만 순위는 여전히 뒤에서 세는 게 빠르다.인천광역시장은 수도권 3대 시·도지사 중 하나다.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차기나 차차기 대선주자급으로 올라설 수 있는 자리다. 언감생심(焉敢生心)이라고? 수도권도 아닌 지방 도백(道伯) 안희정도 한때 대권을 꿈꿨고 도민들이 반응했다. 지금 대선주자 선두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이낙연은 가장 아랫녘 지방의 도지사였다. 순위로는 박 시장보다 겨우 몇 계단 위인 양승조 충남지사도 대권도전을 위해 "몸 풀고 있다"고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스스로 인천을 작은 틀로 규정하고, 그 작은 틀 안에 자기 자신을 가두어놓거나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닌 지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인천시장들의 지지도가 낮았던 것은 역설적으로 인천시민들에게 대선주자로의 도약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다음 달이면 민선 7기가 임기의 반환점을 돌게 된다. 시장이나 시민들이나 이래저래 생각이 많겠다./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

2020-06-23 이충환

[경인칼럼]번영의 역설

모든 국민 편안·풍족한 삶 의미 中 '샤오캉'시진핑 '목표 달성'·리커창 '멀었다' 갈등속한국은 코로나 수범 세계 곳곳 '선진국'호평中기준도 넘었는데… '자살률 1위국' 오명중국에서 '샤오캉(小康)'이란 단어가 주목되고 있다. 샤오캉이란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로 동양의 고전 '예기(禮記)'에는 난세(亂世)와 유토피아를 의미하는 다퉁(大同)의 중간단계 사회로 묘사되었다.덩샤오핑(鄧小平)이 1987년 중국에 시장경제 도입을 선언할 때 경제강국을 지향하는 청사진 '산바오조우(三步走)'의 제시가 단초를 제공했다. 제1보 '원바오(溫飽)'는 '인민들이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초보적인 단계'이고, 제2보 '샤오캉'은 인민들의 생활 수준을 중류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며, 최종 단계인 제3보는 태평성대인 '다퉁 사회의 실현'이었다. 덩샤오핑의 유언에 따라 중국정부는 지금까지 '산바오조우'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중국 당국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개혁·개방 3단계 발전전략 중 첫 단계인 '원바오'는 1980년대 말에 완료했으며 2002년에는 두 번째 단계인 '샤오캉' 사회에 진입했다.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8차 대회에서 총서기에 선출된 시진핑(習近平)은 9가지의 '중궈멍(中國夢)'을 거론하면서 중국공산당 창당 100년이 되는 2021년까지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 최종완성을 다짐했다. 시 주석은 중국공산당 기관지 치우스(求是)의 지난 1일자 기사에서 "우리는 이미 모든 국민이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샤오캉 사회' 건설목표를 달성했다"고 선언했다.그러나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총리의 견해는 다르다. 리 총리는 지난달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연례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만892위안으로 미화 기준 1만 달러를 돌파했지만 전체 인구 14억의 절반에 가까운 6억명은 한 달에 고작 1천위안(17만원) 정도만 벌어 집세를 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노점상의 전면허용을 주장하자 중국정부는 즉각 불법노점상 처벌로 응수했다. 최고통수권자의 샤오캉 사회 완성 선언과 동시에 권력서열 2인자가 고춧가루를 뿌린(?) 격이니 시 주석의 체면이 말이 아닌 것이다. 신종코로나로 인한 경제난이 중국 지도부 갈등설의 진원지로 짐작된다.요즘 대한민국만큼 세계인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 영국 BBC의 한국 코로나19 대응 방송에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BBC TV화면에 비친 한국의 모습은 삶에 찌든 달동네 풍경 일색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수준이 점차 해외언론에 주목되던 5월 말에 방영된 BBC의 한국 초등학교 개학장면은 미국 부자동네의 등교장면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세련된 느낌이었다.지난 5월12일 열린 코로나19 관련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는 온통 한국 얘기만 쏟아져 세계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청문회에서 한국만 30번이 거론되었는데 초점은 미국정부의 팬데믹(대유행) 대처가 개발도상국에서 갓 벗어난 한국보다 미흡한데 대한 불만으로 느껴졌다. 이달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금년 9월 G7정상회의에 한국을 초대하고 싶다는 언급은 설상가상이었다.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선진 7개국 정상회담(G7)에는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외에 캐나다, 이탈리아 등이 참가한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선진국 클럽에 가입하는 것이다. EU에서도 한국과의 경제협력 강화를 거론 중이며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는 한국을 동맹국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도 간취된다.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수많은 신생국들 중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선 유일한 국가여서 더욱 돋보인다. 중국의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샤오캉 단계를 넘어 이미 다퉁사회에 진입했다. 그러나 한국은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자살 사망률이 1위 국가이다. 자살자수는 선진국 평균보다 2배나 더 높다. 가난이 귀신보다 무서워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린 결과 이제 선진 국민 대접을 받게 생겼는데 자살대국이라니. 197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미국 모르몬교 선교사로 파견되었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사례를 '번영의 역설'로 규정했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20-06-16 이한구

[경인칼럼]기본소득,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하길

국민 찬·반 가른 '2011년 무상급식'과 달리진보·보수정치권 일정부분 의제공유 환영도입시 재원조달·복지개편 치열토론 예상정쟁도구 아닌 약자 입장에서 논의 출발점2011년 학교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란이 전국을 뒤흔든 적이 있다. 새누리당 소속인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과 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 및 진보성향의 곽노현 교육감 사이에 벌어진 논쟁이 출발점이다. 당시 오 시장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선별적 무상급식을 시행한다는 방침이었고, 시의회와 곽 교육감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해야 한다는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양측의 갈등이 첨예화할수록 시민사회도 이른바 '무상급식파'와 '세금급식파'로 갈라져 대립각을 세웠다. 급기야 오 시장은 "주민투표에서 패배할 경우, 시장직에서 사퇴하겠다"며 비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그가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자 "밥 달라고 우는 경우는 봤어도 밥 안주겠다고 우는 경우는 처음 봤다"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오 시장은 비장의 카드가 먹혀들지 않아 결국 시장직에서 내려와야 했다.무상급식이 보편화한 지금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당시의 논란은 '굶는 것'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충돌한 사례다. 논란의 저변에는 '굶는 것'을 단지 '배고픔'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식과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문제'로 바라본 인식이 대립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인식에 괴리가 있다 보니 해결책 또한 '배고픔을 해소해 주는 것'과 '굶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으로 갈릴 수밖에 없었다.최근 '기본소득'이 정치권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무상급식보다 훨씬 강력한 확장성을 가진 담론임에도 불구, 무상급식 논란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기본소득 도입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찬성하는 것은 예상했던 바이지만, 대척점에 설 것으로 보였던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중도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진보·보수 간 대결구도가 형성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을 중심으로 민주당에서 먼저 나온 화두다. 하지만 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얼마 전 "'배고픈 사람이 빵을 먹을 수 있는 물질적 자유확대'가 정치의 목표"라며 기본소득 도입을 공론화하면서 흐름이 바뀌고 있다. 주요 보수 성향 정치인 가운데 홍준표 의원이 '기본소득제는 사회주의 배급제'라며 가장 선명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는 정도다. '잠룡'으로 거론되는 정치인들도 대부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소득 도입 취지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무상급식 논란 당시 상당한 흡인력을 발휘했던 '복지 포퓰리즘'이란 용어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전 국민까지 찬·반으로 갈라놓았던 무상급식 논란 때와 달리, 진보·보수가 일정 부분 분모를 공유하는 의제가 나왔다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 한국 정치사에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앞으로 기본소득 도입시의 재원조달 방식, 복지체제 개편 등을 놓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정치권이 기본소득에 대해 '선점해야 할 정쟁의 도구'가 아닌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본소득은 '배고픔'의 상위개념인 '가난'에서 출발한 소득분배제도다. 기본적으로 인권의식이 깔려 있다. 다소 극단적일지는 모르지만 '가난'의 원인을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 사회 구조가 약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찾는 학자도 있다. 인권을 바탕으로 논의를 확대하다 보면 우리 사회의 현주소에 대해 보다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려면 서로 귀와 마음을 여는 게 중요하다. 무상급식의 경우 충분히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한 주제인데도 진영논리에 입각한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많았다. 이 대목에서 '존 스튜어트 밀'이 쓴 '자유론'의 한 대목을 떠올려 본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이는 어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임성훈 논설위원임성훈 논설위원

2020-06-09 임성훈

[경인칼럼]당파성과 진영정치

민주화 이후 갈등축 추가 '이념 대결' 복잡 1997년 이후 '수평적 정권교체' 이뤄졌으나 반헌법적 세력과 단절 못한 보수는 '4연패''진영 타파' 정당이 2년 후 대선 승리할 것정당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파성을 띨 수밖에 없다. 좌파와 우파의 균형 위에서 정당정체성을 발전시켜 온 서구에서조차 당파성이 없을 수 없다. 조선정치에서 과도한 당파성은 학연과 혈연, 지연 등으로 얽힌 붕당정치로 이어지고 이는 상대를 증오하고 살육하는 극단정치를 불러왔다. 물론 붕당의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았지만 부정적 면이 극명하게 노출된 것을 부정할 수 없다.군부정권은 자신의 정당성을 보전하기 위해 안보이데올로기를 동원했고, 유신정권 때는 정치적 억압과 인권탄압은 물론 노동 배제를 통해 군부와 재벌, 관료의 삼각동맹을 형성했다. 이들이 한국보수의 기원이다. 이에 저항하는 지식인 그룹을 중심으로 민주진영이 또 한편의 극을 형성하면서 한국정치에서 진영정치는 이념 대결 프레임을 완성시켜 나갔다. 이러한 진영정치는 민주화 이전의 민주 대 반민주 정당구도를 지나, 민주화 이후에는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를 쟁점으로 하는 갈등축이 추가되면서 이념 대결이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민주화 이후에는 지역주의가 한국정치의 기본변인으로 등장하고 시민사회 내부의 동력을 바탕으로 한 운동의 정치가 제도권 정치와 맞물리면서 보수와 진보의 진영대결은 구조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념 갈등에 기반한 진영정치와 극단적 지지층에 기댄 팬덤정치는 절정에 다다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정치에서 진영대결은 박정희 군부 시대의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의 수위를 넘는 단계까지 와 있다. 당파성을 동원한 진영정치는 적대적 정치를 결과함으로써 갈등의 조정을 통한 사회적 합의의 지향이라는 정치의 본령을 뿌리째 흔들어놓기 일쑤다.민주화 이후 1990년의 3당합당은 보수세력의 통합을 가져왔고, 1997년 김대중 후보의 승리 이후 보수와 진보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주기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2016년의 20대 총선, 2018년의 지방선거, 박근혜 탄핵 이후 치러진 2017년 19대 대선에 이어 지난 21대 총선에서의 보수의 4연패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이는 수구적 보수에 대한 국민의 철퇴였다. 광화문 집회를 통해 박근혜 석방을 외치고 문재인 하야를 주장하는 반헌법적 세력과 단절하지 못한 보수에 대한 심판이었다.미래통합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를 통해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사회적 의제를 개발하고, 냉전과 반공주의의 퇴행적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2007년과 2012년 진보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졌던 운동장은 지금은 보수에게 불리한 지형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는 정치공학적 관점이다. 운동장을 기울게 만드는 것은 국민의 사고와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정치세력 자신들이다. 사회적 현안과 이슈에 대한 입장을 보는 유권자의 수준은 냉철하고 합리적이다. 중도영역의 이른바 스윙보터들은 언제라도 지지정당을 바꿀 준비가 되어있다. 보수의 재건을 위해 과감하게 수구적 당파성과 결별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이다.보수의 당파성 못지않게 진보진영의 당파성 또한 한국정치를 희화화하는 주요한 요인이다. 지난해 조국 사태에 나타난 양대 진영의 극단의 대결구도는 팬덤정치의 전형이지만 특히 집권진영의 핵심이 보여주었던 과도한 진영논리는 시민의 의식수준에 부응하지 않는다. 최근 불거진 윤미향 민주당 의원(지난 5월 30일부터 국회의원 신분)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해 집권핵심의 태도 역시 진영정치에 기대는 듯한 모습이다. 국민의 70% 이상이 의원 사퇴에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정의기억연대의 활동과 윤미향 의원을 등치시키는 듯한 논리는 정의롭지 않다.이러한 부분들이 누적되어 당파성을 공고화하고 이에 기생한 진영정치는 각 진영을 지지하는 극단세력에 편승하여 정치적 자본을 챙긴다. 2년 후 대선이다. 통합당이 냉전논리에 갇혔던 결과는 그들의 궤멸적 패배였다. 이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적용된다. 진영을 타파하는 정당이 2년후 승리할 것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2020-06-02 최창렬

[경인칼럼]'배달의 민족' VS '배달의 명수'

'명수' 군산시 공공앱 지자체 벤치마킹 러시민간영역에 지자체 끼어드는 모양새 '괴이'개발·운영비 시민 혈세로… 경쟁력도 의문배민 헛발질에 뭇매 토종플랫폼 죽이기일뿐'배달의 명수'는 군산시가 운용하는 배달서비스 앱이다. 70~80년대,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에 어울리는 작명(作名)이다. 1억3천만원을 주고 민간업체에 맡겨 올 3월 출시했다. '수수료 없는 공공 앱' 신분이다.남서쪽 중소도시 앱이 주목받은 건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이 헛발질을 해서다. 지난 4월, 수수료 체계를 바꾼다고 해 공분을 샀다. 과도한 수수료 인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대표는 사과했고, 며칠 뒤 철회했다.이재명 경기지사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횡포'라고 각을 세운다. '경기도 형' 공공배달 앱을 내놓겠다며 군산을 찾아 협약을 맺었다. 다른 광역·기초 지자체도 줄지어 가세했다. '명수'가 벤치마킹 대상으로 급부상한 것이다.배민은 정액을 정률로 변환하면서 수익 증대를 꾀했다. 꼼수 인상이다. 시기도 적절치 않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자영업자들은 죄다 문 닫기 직전이었다. 시장 독점 논란에 여론은 더 나빠졌다. 요기요·배달통 운영사인 외국자본과의 합병 이슈도 악재가 됐다.배민 형제가 우아하지 않다고, 시장·군수가 배달통을 둘러메는 건 괴이하다. 민간 영역에 공공이 끼어드는 모양새다. 기업이 잘못한다고 정부가 대신 나서야 하는 건 아니다. 소비자가 공짜라고 진짜 공짜가 아니다. 개발비가 들고, 운영비를 내야 한다. 명수도 유지비가 1억5천만원이다. 시민 혈세다.경쟁력도 의문이다. 공공 앱은 서비스 질에 태생적 한계가 있다. 소비자 니즈(Needs)를 따라잡는 속도 경쟁에 불리하다. 배민의 간편 결제 시스템과 리뷰 빅데이터, 배달기사 연동망, 이용 편의성은 함부로 넘볼 수 없다. 10년 업력(業力)의 충적물이다. 시스템 개선과 유지비용이 수백억원을 넘는다.공공 앱의 민낯을 보자. '제로페이(Zero Pay)'는 2018년 서울시가 '수수료 제로'라며 출시했다. 박원순 시장의 야심작이다. 2019년 결제액 목표치는 8조5천억원이다. 올 2월에야 누적 결제액 1천억원을 넘었다.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01%다. '점유율 제로 페이'라는 오명이 쓰였다.벤처 업계는 냉담하다. 국산 플랫폼을 죽이는 게 누구에게 도움이 되느냐는 거다. 소비자는 편리한 경험을 택한다. 배민이 쪼그라들면 중국의 '메이퇀와이마이'가 점령할지 모른다. 쿠팡이 사라지면 아마존이, 알리바바가 상륙한다. 네이버가 시들면 구글과 유튜브로, 카카오가 무너지면 인스타그램과 페북으로 갈아탈 것이다.'포노 사피엔스' 저자인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는 SNS에서 "토종 플랫폼을 공격하고 규제로 막으면 우리 경제가 탄탄해질까요?" 라고 묻는다. 구시대를 고집한다면 10년 후 모든 것을 글로벌 플랫폼에 빼앗길 뿐이라고 주장한다.118년 된 미국 백화점 체인 JC페니가 파산했다고 미 언론이 전했다. 센추리 클럽인 시어스, 니먼마커스, 메이시스도 도산했다. 온라인에 치여 쇠락하다 팬데믹에 휩쓸렸다. 100년 넘는 백화점들이 줄줄이 문 닫는 건 100년 된 인류의 소비 행동에 혁명적 변화가 왔음을 의미한다.팬데믹 쇼크에 경제의 축이 더 빠르게 모바일 디지털문명으로 이동하고 있다. 생산과 유통, 소비의 표준이 달라진다. 경제기상도는 코로나 전과 후로 갈릴 전망이다. 반도체와 철강, 자동차, 석유 화학이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 의료, 안전, 환경, 언택트(Untact), 로봇 산업이 신 성장축이다.전화 안 해도 스마트폰을 터치해 피자에 치킨 시켜먹으며 프로야구를 본다. 배민이 바꾼 풍속도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버려진 영수증을 모아 유니콘 신화를 일궈냈다.그런데, 헛발질했다고 사방에서 뭇매질이다. 회초리를 든 게 아니라 '죽이자'고 대든다. 스타트업(Start up)을 꿈꾸는 청년 세대의 '대한민국 롤 모델(role model)'이 초라해지고 있다. 대체 어쩌자는 건가./홍정표 논설위원홍정표 논설위원

2020-05-26 홍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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