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이해찬의 장기집권론

당 대표 경선서 승리하고 '100년 비전' 선포한세기 통해 실현할 국가비전·정책 있어야최저임금 너무 올랐고 검찰개혁 의미 사라져지금부터라도 민심 대통령에 제대로 전달을이해찬 대표는 수시로 더불어민주당의 장기집권을 강조한다. 20년 집권론으로 지난해 8월 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하자 마자 "민주당이 대통령 열분은 더 당선시켜야 한다"며 집권의 목표를 50년으로 상향했다. 이도 성이 안찼는지 올해 초에는 21대 총선에서 압승과 차기 대선 재집권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오는 100년을 전개할 것"이라며 '100년 집권'의 비전을 선포했다.이 대표가 지난 9월 민주당 창당 기념식에서 밝힌 장기집권 이유는 명쾌하다. "정권을 빼앗기고 나니 우리가 만든 정책 노선이 아주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봤다"며 "재집권해 우리 정책이 완전히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 과제"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 대표의 장기집권론을 국민의 선거권을 무시하는 정치적 오만이라고 조롱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이 선택만 하면 민주당 100년 집권은 얼마든지 가능하다.이 대표의 100년 집권론의 문제는 따로 있다. 100년 집권을 말하려면 한 세기를 통해 실현할 국가비전과 이를 실현할 정밀한 정책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이, 민주당이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가 100년 집권을 호언할 정도로 장기적인 비전과 정책을 예비한 흔적은 없다. 오히려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 집권 전반기의 정책들을 살펴보면 마치 이번을 마지막 집권으로 여기는 듯한 조바심으로 가득하다.집권하자 학계와 산업계의 반대를 물리치고 권력의 의지만으로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원자력 산업 생태계는 무너지는 중이고, 전력 강국의 미래는 불투명해졌고, 전국의 야산은 태양광 사업자들에 의해 훼손되고 있고, 대통령은 자신이 불안해 포기한 원전을 해외에 수출하려 애쓰는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다.최저임금은 올려도 너무 올렸다. 모든 노동자의 주당 근로시간을 예외 없이 52시간으로 확정했다. 알바생은 일자리를 잃고, 알바를 내보낸 편의점주는 가족이 24시간 노동을 떠안았다. 52시간 노동자들은 가족과 저녁을 즐기는 대신 줄어 든 급여를 채우기 위해 투잡을 뛰고, 전국 상가의 저녁은 을씨년하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지지하기 위한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52시간 근로제가 소득주도성장을 직격하고 있다. 이를 가리려 쏟아부은 재정은 눈 먼 돈이 되어 효용 없이 시장에서 증발된다.검찰개혁안은 여당과 청와대가 조국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을 핍박하면서 의미는 사라지고 의도만 의심받고 있다. 윤석열에 대한 여당과 대통령의 표변으로, 여론은 공수처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많은 국민들이, 적어도 비판진영에선 지소미아 파기와 대입정시 확대를 조국 사태가 낳은 돌연변이로 여긴다.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선거법개정안은 우려한대로 지역구 의석 현행 유지를 놓고 자중지란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 난리를 치고 패스트트랙에 올린 이유가 무엇인지 모호해졌다.대통령은 김정은을 3번 만났고, 김정은과 트럼프의 2차례 회동을 주선했다. 하지만 북한은 영변핵시설 폐기와 제재해제를 교환하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 탄핵에 쫓기는 트럼프가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포기하고 스몰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말 연초면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혹시라도 완전한 북한 비핵화 로드맵 없는 완전한 대북제재 해제라면, 이는 정부가 국민에게 한 약속과 다르다.문재인 정부 전반기에 실행한 국정 각 분야의 정책들 대부분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후유증을 낳았다. 이대표가 말한대로 100년을 집권할 정당과 정권의 태도로 국민의 여론과 야당의 반대를 수렴해 신중하게 추진했다면 없었을 후유증이다. 대통령이 5년 임기에 갇혀 서두르고 조바심쳐도, 100년 집권을 추구하는 여당이 중심을 잡고 자중자애했으면 최소화 할 수 있는 후유증이다./윤인수 논설위원100년 집권의 꿈이 진정이라면, 이 대표는 지금 부터라도 5년 임기의 대통령을 향해 민심을 제대로 전해야 한다. 오늘 하루에 뜨고 지는 해 다보고 죽는 하루살이 정치가 아니라, 100년 집권 1기에 뜨는 해와 집권 20기에 지는 해를 볼 수 있는 유장한 정치를 해야 한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의 현실을 대변해야 우선 20년 집권이나마 희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윤인수 논설위원

2019-11-19 윤인수

[경인칼럼]악플방지법보다 차별금지법을

'댓글 준실명제' 익명 비방 근절 효과 기대건전한 비판·의사 표현 위축시킬 가능성도야만적 정치·선정적 보도 문화부터 바꿔야'차별·혐오 선동 표현' 처벌기준 강화 필요악성댓글 근절책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가수 겸 배우 설리의 사망을 계기로 악성댓글에 대처하기 위한 '악플방지법'(일명 설리법)이 속속 발의되고 있다. '악플'은 악성리플의 준말로 근거 없이 게시자나 특정인을 비난하거나 헐뜯는 내용을 의도적으로 게시하는 답글을 말한다. '악플 방지법'은 악성 댓글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한 노력으로 보이지만 그 타당성은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악플방지법은 댓글 준실명제라고 할 수 있다. 댓글 아이디 전체를 공개하고, IP를 드러내 온라인 댓글 작성자의 책임의식을 높이는 내용이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표시 의무를 부과해 포털별로 다르게 이뤄지던 아이디 공개 정책을 통일하도록 규정하자는 것이다. 정보통신법 개정안 중에는 혐오 표현도 불법정보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혐오표현을 삭제하도록 하는 법률안도 있다. 모두 익명의 배설공간으로 비난받고 있는 인터넷 공간을 정화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댓글 준실명제에 대한 여론은 찬성 쪽이다. 익명성에 숨어 누군가를 비방하고, 모욕하는 행위를 근절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명제로 운영되는 SNS에서도 악플은 기승을 부리고 있듯이 익명성이 악플의 뿌리는 아니다. 무엇보다 댓글 실명제가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이나 모욕행위를 막는 순기능 보다는 건전한 비판이나 일반의사 표현까지 위축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헌법재판소도 인터넷실명제를 위헌으로 판결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의사 표현 자체를 위축하여 자유로운 여론 형성을 방해한다는 이유를 들었다.악성댓글 문제는 악플방지법과 같은 대증요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 악성댓글을 재생산하는 사회구조를 둘러보면서 대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 정치 문화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가 악성 댓글의 '플랫폼' 아닐까. 정치는 권력투쟁의 '본능' 때문에 다른 정치세력이나 정치인을 비판하게 마련이지만 한국 정치에서는 합리적 논쟁이 아니라 막말이나 혐오스런 표현으로 정치 활동을 대신한다. 사안마다 진보와 보수, 좌우의 이념대립으로 대체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사회를 증오와 대결의 복마전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야만적 정치문화는 선거철이 되면 더욱 기승을 부린다.언론의 책임도 크다. '악플'로 피해가 발생하면 언론들은 남의 일인 것처럼 야단법석이지만, 정작 알권리를 빙자하여 사생활을 수집하고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언론에 보도된 연예인이나 개인의 사생활은 '악플러'들의 먹잇감이 된다. 포털 운영자의 책임을 높여야 한다. 현재 주요 포털사이트들은 악플 대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유튜브는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고 있다. 포털은 반복적인 악성댓글 게시자에게 페널티를 주고 고의성이 높을 경우 완전히 추방하는 방식으로 인터넷 게시판 관리 구조를 바꿔 나가야 한다. 혐오표현에 대한 처벌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비판은 생산적 결과를 낳을 수 있지만 비난은 관계를 파괴한다.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혐오 표현이야말로 반사회적 범죄행위 중의 하나이다.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혐오 표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위안부 동원과 같은 일제의 전범행위임을 부정하는 주장처럼 확립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혐오 발언에 대해서는 독일처럼 사회적 범죄로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렇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이야말로 혐오발언과 악플 재생산을 근절하는 대책 아닐까. 이 같은 노력과 함께 학교나 언론은 올바른 인터넷 문화의 정착을 위해 악플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공론의 장을 민주적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는 가치관을 심어주는 인권 교육과 선플 캠페인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야 한다./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2019-11-12 김창수

[경인칼럼]유령과 언론

법무부 느닷없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훈령기자협회는 언론통제 시도 즉각 중단 성명美 남북전쟁 검열의 유령 시공간 뛰어넘어 '조국전쟁'에 임장한 것이라면 달갑지 않다미국 남북전쟁은 개전 4년만인 1865년 4월, 남군의 항복으로 끝났다. 전쟁은 미국 역사의 전환점이 됐을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커다란 분기점이 된다. 승리한 북부의 자본을 중심으로 미국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윽고 맞는 1880년대는 일찍이 없었던 미국의 성장시대가 된다.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슈퍼파워'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런데 남북전쟁은 언론의 역사에서도 기억할만한 장면들을 제공한다. 특히 정부에 의한 언론검열이 체계적으로 시행된 최초의 전쟁이란 점에서 주목된다.언론검열은 주로 북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시행됐다. 첫 단계로 전쟁 초기인 1861년 북군 최고사령관 윈필드 스콧 장군은 군사적 성격을 띤 모든 전신을 금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사실 불법적인 조치였지만 연방의회가 이듬해 1월 대통령에게 공식적인 언론검열 권한을 허용할 때까지 효력이 지속됐다. 다음 단계는 검열 권한이 국무성으로부터 전쟁성으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에드윈 스탠턴 전쟁성장관은 특파원들에게 기사를 송고하기 전 헌병사령관에게 기사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군사적인 문제가 야기될 것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해당되는 부분을 삭제했다. 마지막 국면은 1864년부터 1965년 종전까지의 시기인데 기이하게도 언론 스스로 군 당국의 검열에 자발적으로 협조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군 당국이 신문 발행을 중단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1863년 6월 오하이오 지역을 담당하던 앰브로스 번사이드 장군은 시카고 타임즈에 대해 사흘간의 발행 중지 명령을 내렸다. 신문 발행인이 노예해방선언 이후 군 당국의 잇단 경고를 무시하고 링컨 대통령에 대해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며 비난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번사이드 포고' 사건이다. 이러한 신문 발행 중지 조치는 남군에 우호적인 신문들에 대해 간헐적으로 취해졌다. 언론에 대한 사령관들의 개인적인 불신과 혐오 또한 취재활동에 중대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다. 윌리엄 셔먼 장군은 빅스버그에서의 자신의 패배를 보도한 뉴욕 헤럴드의 특파원 토머스 녹스를 남군 스파이로 몰아 처형하려다 실패하자 기어코 진영에서 추방해버렸다. 우리의 근현대사 역시 언론통제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민주화 이후로는 상황이 나아져왔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올해 4월 발표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41위. 북유럽 국가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시아에선 대만과 함께 가장 높은 수준이다. 덕분에 기자회 들루아르 사무총장 일행이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 나라에서 때아닌 언론검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30일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라는 훈령을 느닷없이 발표했다. 총 35개 조항으로 돼 있는데 '검찰청의 장은 오보한 기자에 대해 검찰청 출입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조항이 언론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한국기자협회는 언론통제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전국언론노조도 언론 길들이기 내지는 언론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반대성명을 냈다. 언론학계도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수정헌법 1조를 연구하는 미국 헌법학자 빈센트 블라시(Vincent Blasi)는 정부의 언론통제는 공권력 남용을 초래하고 봉건주의 사회로의 회귀를 야기한다고 강조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과 같은 조직이 저지르는 사적인 권력 남용보다 더 심각한 악이 정부의 공권력 남용이라고 본다. 언론이야말로 이런 공권력의 남용을 감시하고 점검할 수 있는 사적 영역의 유일무이한 조직이라는 게 세계적 석학의 지론이다. 오히려 더욱더 확장된 보호가 요구되는 언론의 '점검 가치(checking value)'를 누르는 건 아시아의 언론자유 우등국가답지 않다. 국격을 깎아내리는 일이다. 더욱이 150년 전 미국 남북전쟁터를 떠돌던 검열의 유령이 시·공간의 강을 훌쩍 뛰어넘어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을 불사르고 있는 '조국 전쟁' 현장에 임장한 것이라면 영 달갑지 않다./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9-11-05 이충환

[경인칼럼]출판자본주의 그늘

갈수록 출판환경 척박 연구물 간행 불가능대학가 서점 점점 줄고 복사집만 우후죽순정부, 대중교양서 변경 학술도서지원 축소지식 다양성 압살하는데 놀아나 실망이다1846년 7월 어느 날 아일랜드의 모든 감자들이 48시간 만에 죽었다.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아일랜드 국민에게 최악의 재난이 시작된 것이다. 감자 기근은 먼저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 갔으며 다음에는 노인들을, 그 다음에는 나머지 모두의 생명을 앗아갔다. 어떤 이는 사정이 나은 곳을 찾아가다 길에서 횡사했으며 마을 전체가 사라지기도 했다. 감자역병 때문이었다. 100만여 명이 굶어죽었으며 100만 명 이상은 재앙을 피해 해외로 이민을 떠났다. 아일랜드인 4명 중 1명이 단기간에 사라진 것이다.1843년 미국 뉴욕에서 처음 발견된 감자역병이 대서양을 넘어 1845년에는 유럽의 농촌을 휩쓸었다. 1845년 9월 6일자 아일랜드 신문들은 감자역병이 상륙했다고 대서특필했는데 불과 1년 만에 아일랜드 농촌이 초토화되었다. 1800년 초에 아메리카에서 수입된 럼퍼감자(lumper potato)는 완전식품으로서 좁은 땅에서도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행운의 선물이었다. 아일랜드는 기후가 춥고 습해서 감자 말고는 잘 자라는 작물도 별로 없었다. 전국의 농촌이 감자 단작(單作)지대로 변한 상황에서 급작스런 역병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아일랜드인이 스스로 식량 다양성을 포기한 대가였다.모 탐사전문 기자가 작년 초에 책을 출판했다며 필자에게 한 권을 보냈다. 한국전쟁 무렵 호남과 제주도의 양민학살 현장을 몇 년간 손수 발품을 팔며 어렵게 모은 자료들을 책으로 만든 것으로 사료(史料)적 가치가 충분했다. 당시 그는 경상도 지역 조사와 함께 제2권을 집필 중이었지만 끝내 작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출판사들이 돈벌이가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친 것이다. 서울 관악구 낙성대 부근의 G연구소는 근래 들어 연구비지원 사업을 중단했다. 명망이 있는 노(老) 교수님이 사재(私財)를 털어 설립한 곳으로 매년 기초학문 신진들을 선발해서 소정의 장려금을 지급하고 연구 성과를 책으로 출간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갈수록 출판환경이 척박해지면서 학술출판사들조차 매출이 불투명한 서적간행을 외면하는 바람에 연구물 출판이 거의 불가능해진 것이다. 대학교수들은 학기 초만 되면 교재선정에 불편을 겪는다. 한글로 저술된 전공서적이 갈수록 줄어든 때문인데 대학교재 출판사들이 부지기수로 문을 닫았다. 교수들을 논문기계(?)로 몰아가는 교육당국의 무지(無知)가 결정적이다. 웬만한 볼륨의 학술서적 한 권을 발간하는데 원고작성에만 최하 1년여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SCI(Science Citation Index)급 논문 한편보다 낮게 평가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불법복사도 한몫 거들어 출판사 영업사원들은 절망이다."대학가에 서점이 많이 줄었습니다. 구내서점이랑 학교 밖 K대 서점 말고는 없어요. 그런데 그 옆에 복사집만 70곳이 넘습니다. 복사집이 강의계획서를 보고 교재를 구입해서 스캔한 파일을 갖고 있는 거죠. 학생이 와서 교재를 달라고 하면 바로 파일을 복사해서 줍니다." 정부는 한술 더 뜬다. 학술출판사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았던 '우수학술도서 선정사업'이 2014년에 세속적 기준의 '세종도서' 선정사업으로 바뀐 것이다. '우수학술도서 선정사업'은 대중성이 없어 출판이 어려운 기초학문 서적들이 햇빛을 볼 수 있도록 문화체육관광부가 해마다 30여억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세종도서 선정사업의 경우 예산액은 이전과 동일하나 '국민 공감'을 기준으로 선정도서수를 대폭 확대하고 여기에 우수학술도서까지 끼워 넣었다. 대중교양서를 위한 정책으로 변질되면서 학술도서 지원 사업이 현격히 축소된 것이다. 지식축적 정도와 경제발전 간에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 미국, 독일, 일본 등이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의 4차 산업혁명에 올인하는 이유이다. 선진국 정부들은 돈벌이 안 되는 양서(良書) 종류를 늘리는데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지식재산 축적의 요체는 도서 가지 수를 늘리는 것이다. 지식의 다양성을 압살하는 출판자본주에 놀아나는 정부에 실망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9-10-29 이한구

[경인칼럼]사과와 반성이 없는 적대적 공존의 정치

검찰개혁보다 '조국수호' 방점 서초동집회국론분열 아니라는 대통령, 사태 더 악화시켜집권당·내각 사과후 인적쇄신 민심다가가야박근혜탄핵 인정않는 한국당 전철 밟지않길광장민주주의와 촛불민심은 헌법을 농단하고, 권력을 사유화한 정권의 응징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었다. 한국사회에 광범하고 깊숙이 내재한 사회적 부조리와 불평등, 부정의를 척결하고 양극화를 고착화하는 사회구조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요구가 촛불로 표출된 것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득표율은 41% 였으나 임기 초기 정권 지지율이 70%에서 80%를 넘나든 것은 보수·진보의 이념적 구분과 진영의 논리가 개입될 공간이 없을 정도로 정권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지지율은 반토막이 났다. 원인이 무엇일까. 촛불시민이 요구하는 사회개혁에 대한 기대의 포기, 불신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당·정·청의 집권연합은 검찰개혁에 올인하고 있다. 지난 4월의 패스트트랙 정국 때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검찰개혁안에는 여당의 주장으로 특수부 폐지 또는 축소가 빠졌다. 오히려 특수부 폐지·축소는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요구했다. 그러나 22일 단행된 특수부 폐지·축소는 여권이 검찰개혁의 핵심의제로 들고 나오며 이뤄졌다. 검찰개혁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은 없다. 검찰개혁은 정치·교육·경제·노동·복지 등을 포괄하는 사회개혁의 하부단위다. 정권이 개혁을 기치로 내세우고 이를 통해 선거승리와 정권재창출을 시도하는 건 자연스런 정치공학이다. 그러나 정치문법에 의거한 셈법을 넘어 시민의 의사와 괴리된 과도한 시도는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지난 패스트트랙 정국에 한국당은 참여하지 않았고, 검찰개혁 등 사법개혁안 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먼저 처리하기로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 여당 등 집권세력은 사법개혁안을 먼저 처리하겠다고 한다. 사정변경의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개혁은 조국 사퇴 전에는 그를 지키기 위한 명분과 대의로, 사퇴 이후에는 사태의 책임을 모면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는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검찰개혁은 시대정신이고 당위이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는 보다 깊은 논의를 통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담보하기 위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합의가 전제되는 법제화가 필요하다. 한국당이 이에 반대하는 것도 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조국 사태는 상식과 합리의 영역에서 과도한 프레임이 설정된 사례다. 검찰의 과잉수사의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과 석달 전인 윤석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때 듣기 민망할 정도의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여당 국회의원들의 입에서 '검란', '윤석열의 난' 등 저주에 가까운 검찰비난이 쏟아진 것은 정권의 이해에 부합하기 위한 논리 비약이다. 검찰은 개혁에 저항하는 수구기득권이 됐고, 재벌개혁과 노동개혁, 교육개혁 등의 의제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서초동 촛불집회는 검찰개혁보다 조국수호에 방점을 찍었었다. 조국 이후 검찰개혁의 무대가 여의도로 옮겨온 것이 이를 방증한다. 노무현과 문재인, 조국이 등치되는 정치문법에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다는 진영의 강한 트라우마가 작용하고 있다. 검찰개혁에 동의하지만 이를 조국만이 해 낼 수 있다는 비상식에 동의하지 못하는 시민들, 조국 퇴진에 공감하지만 박근혜 탄핵 무효나 석방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는 광장정치의 희생양이다.서초동과 광화문의 양극에서 대치하는 모습에도 국론분열이 아니라는 대통령의 인식은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문재인 정권이 레임덕을 겪지 않으려면 진영내의 폐쇄성과 경직성을 떨쳐내야 한다. 권력내부에 건강한 긴장과 견제가 작동하지 않을 때 정권의 위기가 오는 법이다. 집권당, 내각 모두 정식으로 국민에 사과하고 인적쇄신으로 민심에 다가가야 한다. '수능재주 역능복주(水能載周 亦能覆周·물은 배를 띄우지만 뒤집기도 한다)'란 말에서 보듯이 민의를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 박근혜 탄핵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한국당의 전철을 민주당이 밟지 않기 바란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9-10-22 최창렬

[경인칼럼]대통령의 꿈? 조국의 희생?

'조-윤 드림커플'로 희망했던 검찰 개혁정치·경제·안보·외교 등 국정전반 '수난''헌사' 마음에 묻고 국민통합 강조했어야한쪽진영 탈피 현실봐야 새길 찾을수 있어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조국 법무부 장관을 집에 보내면서 정중한 '송별사'를 밝혔다. 국민에겐 "송구스럽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조 장관에겐 "온갖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는 자세로 검찰개혁의 큰 동력이 됐다"고 했다. 언론을 향해선 "신뢰받는 언론을 위한 자기 개혁"을 당부했다. 조국사태로 인한 국민 갈등과 사회적 진통에 대한 사과와, 조 전 장관에 대한 극진한 예우, 언론에 대한 뜬금 없는 당부가 맥락없이 나열되는 바람에 강조하고 싶었던 '검찰개혁'은 모호해졌다.그러나 개인적으로 여러번 곱씹었던 대통령의 발언은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 개혁을 희망했지만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다"는 대목이었다. 대통령은 조-윤 드림커플로 역대 어느 정권도 해내지 못한 검찰개혁을 이룰 희망에 부풀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희망이 꿈으로 끝났다니 처연하다. 문제는 희망이 꿈으로 끝난 사람이 다름 아닌 대통령인데 있다. 대통령의 희망이 꿈으로 끝나면 그 결과가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 미친다. 만에 하나라도 대통령의 희망들이 속속 무너져, '나의 모든 희망은 꿈으로 끝났다'고 토로하는 지경에 이르면, 그야말로 국가와 국민에겐 악몽이다.지금 국정 전반은 대통령의 희망과 달리 전개되고 있다. 경제분야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심각한 후유증을 양산하고 있다. 서민의 가계소득을 올려 경제성장을 지탱하겠다며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고 현금복지를 대대적으로 시행했지만, 청년 일자리는 사라지고 자영업자는 문을 닫고 경제는 활력을 잃었다. 남북문제는 대통령이 희망했던 한반도비핵화와 남북평화공존을 북한이 걷어차는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한미동맹은 모호해지고 한일관계는 역대 최악이며, 중국은 노골적으로 상전 행세를 하면서 외교적 고립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정치, 경제, 안보, 외교 분야에서 대통령의 희망이 수난을 겪고 있다.대통령이 희망을 꿈으로 끝내지 않으려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통령의 '조국 송별사'는 그런 면에서 아쉽다. 대통령은 조 전 장관이 검찰개혁의 동력이 됐다고 극찬했지만 과연 그런가.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검찰수사를 향해 여당과 진보진영이 장내외에서 보여 준 일사불란한 압력과 저항을 지켜보면서 상식적인 국민들은 여권의 검찰개혁 의도를 의심하게 됐다.여권은 검찰개혁의 제도적 완결을 위해 공수처 설치법 처리를 서두르고 있지만, 공수처가 윤석열의 검찰 처럼 여당의 압력과 수백만 지지진영의 함성에 갇힐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이는 검찰개혁의 본질이 조직의 해체와 신설이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칼을 뽑을 수 있는 검찰의 독립임을 역으로 증명한다. 대통령과 여당이 선출한 공수처장이 대통령과 여당 사람을 향해 칼을 뽑았을 때, 여당의 압력과 광장의 함성이 소용없는 수사기관의 독립 말이다. 패스트트랙에 실린 여당의 공수처법이 이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검찰개혁은 그저 헛꿈에 그칠 것이다.조국은 검찰개혁의 불쏘시개로 희생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여당이 희망했던 검찰개혁에 담긴 정치적 함의를 상식적인 대중들에게 누설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대중들은 이제 대통령과 여당이 희망했던 개혁될 검찰과 신설될 공수처가 내 편에게는 관대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지 않나 의심한다. 조국일가를 열렬히 옹호했던 여당 의원들은 이제 총선에서 조국을 변호한 자신을 변명해야 할 처지에 몰릴 수 있다. 대통령은 조국에 대한 헌사는 마음에 묻어두고 국민을 향한 사과와 국민통합을 위한 의지만 강조했어야 했다.국민은 대통령의 희망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대통령이 희망을 이루기 위해 길을 돌아가고, 수단을 달리하고, 공약을 뒤엎을지라도 이해하고 지지할 것이다. 대통령의 희망이 국민을 국가를 위한 것이라는 기본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국민의 기본적 신뢰를 믿어야 한다. 진영으로 갈린 찬반 세력의 한쪽에 서서 탄식하고 아쉬워할 때가 아니다. 진영을 벗어나야 현실이 보인다. 현실을 봐야 희망을 이뤄줄 새로운 길과 수단과 사람을 찾을 수 있다. 조국사태가 대통령에게 보약이 되길 바란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9-10-15 윤인수

[경인칼럼]다양성의 사회 혁신 가치

검찰 '개혁대상 전락'은 다양성 결핍 때문검사동일체 원칙, 독립성 가로막는 장애물단일성 피라미드 해체·내부 견제와 균형을자율·민주적 '사람의 조직'으로 거듭나야판단과 인식의 영역에서는 단순함이 미덕이다. 학문의 원리, 인식의 원리는 단순하고 명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전제는 최소화되어야 하고, 가설은 명쾌해야 한다. 윌리엄 오컴(W. Occam)은 대상을 가장 단순하면서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이 진리에 가깝다고 보았다. 만약 동일현상을 설명하는 데, 두 개 이상의 이론이 모두 타당하다면, 우리는 단순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물, 사건, 현상을 설명하는 논리가 복잡하다면 진리에 접근하지 못했거나 최소한 인식이 아직 철저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식의 대상인 세계는 오히려 다양할수록 아름답게 보인다. 다양함은 심미적 가치를 넘어 생태계의 원리이다. 생태계(ecosystem)는 상호작용하는 생명체들과 또 그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주변의 무생물 환경까지 아울러 지칭하는 말이다. 자연생태계의 이상은 다양한 생물이 함께 번성하는 종 다양성이다. 이 다양성의 공존 속에서 종들이 진화하고 때로는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 건강한 자연 생태계의 지표는 얼마나 '다른' 생물들이 공존하고 있느냐이다. 이 다양성은 개체 수준에서도 적용된다. 동물이나 식물은 영양소를 다양하고 균형있게 섭취해야 하며 필수성분이 부족하거나 일부에 편중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신체의 기관들도 마찬가지이다.한편 다양성은 인간의 창조적 사회활동의 결과이자 조건이기도 하다. 유네스코가 2001년 '문화다양성 선언'과 2005년 '문화다양성 협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각국이 문화 다양성이 교류와 혁신, 창의성의 원천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공동의 유산이라는 규정에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인식의 영역에서 단순화는 미덕이지만, 생태계나 사회 조직과 같은 현실에서의 단순화는 퇴행의 조짐이며 위기의 징표이다. 다채로움을 아름다움으로 여기는 미적 심의경향은 다양성이 삶에 유익하다는 경험의 반영일 가능성이 높다.검찰개혁이 온 나라의 화두가 됐다. 적폐청산의 '포청천'이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원인 중의 하나는 검찰조직의 비민주성인 바, 문화적으로는 다양성의 결핍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천500명의 검사가 사건을 처리하는 기준이 검찰 수뇌부와 같아야 한다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의연히 작동하고 있다. 검사가 곧 검찰이며, 또한 사회와 국가로 자신의 동일성을 확장한다. 실제로 지검, 고검, 대검, 그리고 위계질서의 정점을 형성하는 검찰총장에 대한 상명하복으로 귀결되지만 말이다. 일선 수사 검사의 입장에서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검찰권의 독립성과 공정한 행사를 막는 장애물이다. 그 점에서 검찰조직은 일종의 군집체(colony)와 닮았다. 군집체는 수천수만의 생물들이 자신의 촉수를 얽어 하나의 생명체와 형태로 생존해가는 집단생명체를 말한다. 대표적 군집체인 볼복스(volvox)는 구성요소들인 개별 세포는 단세포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수만의 단세포로 이뤄진 하나의 개체이다. 군집체에 속한 개체들은 고유의 신호전달체계를 공유함으로써 단일한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검찰개혁은 기소권 독점을 통제할 수 있는 공수처 설치로 시작되겠지만,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동일체인 '단일성'의 피라미드를 해체하고, 내부에 견제와 균형을 담보하는 '다양성'이 도입할 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법과 원칙에 의거하되 검사들의 양심에 따른 단위조직이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의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다양성이란 단순히 양적으로 많은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것'과 '차이'가 공존하는 상태를 말한다. 사회나 조직은 그 다름과 차이를 창조와 혁신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다름과 차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나 조직은 필연적으로 경직성과 배타성으로 퇴행하고 '괴물'이 되어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다./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2019-10-08 김창수

[경인칼럼]인천(仁川)이 모르는 부산(釜山)

부산 정치인등 극지연구소 이전 끈질긴 도전쇄빙연구선 취항 10주 기념행사 용역 입찰5일만에 '일정변경·규모축소'이유 돌연 취소 도대체 무슨일이… 인천은 부산속내 몰라2013년 6월 16일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대선 패배 이후 첫 행사로 선거 당시의 출입기자단과 북한산 산행을 했다. 문 의원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부산으로 이전하는데 그 가운데 극지연구소가 있다. 이 연구소를 떼놓고 부산으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부산시민들이 많이 화가 나 있다"면서 "극지연구소는 해양생태, 자원, 북극항로와 연관된다. 지리적인 위치를 봐서도 부산이 극지연구의 센터가 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해 11월 21일 해운대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 열린 한 국제심포지엄에 참석, 북극항로 개척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극지연구소의 부산 이전을 재차 강조했다.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극지연구소 부산 이전이 부산지역의 최대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다. 새누리당 서병수 시장후보가 사무총장 때 극지활동진흥법안 발의에 서명한 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무소속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장관(현 부산시장)은 "공공기관 이전 정책에 의해 당연히 부산으로 오기로 돼있던 극지연구소를 인천에 잔류시키는 법안에 서명한 것은 명백히 부산의 정책에 반하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시장이 되면 "지역NGO와 시민운동을 통해서라도 극지연구소를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오 후보는 "극지연구소 부산 이전과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부산이 동북아 해양경제수도로 가기 위한 2대 필수 과제"라며 여야후보 공동공약으로 채택하자고 제의했다.2017년 5월 대선을 앞두고 부산 지역사회가 다시 극지연구소 이전 관철을 위해 하나로 뭉쳤다. 3월 15일 서병수 시장은 '부산, 대통령 자격을 제시하다!'라는 꽤나 도발적인 타이틀이 붙은 부산시 대선공약 브리핑을 직접 했다. 40개 채택요구 공약 중 대표공약 10개를 추려 발표했는데 '제2 극지연구소 및 극지체험·박물관 건립(부산극지타운)'이 포함됐다. 부산 출신 문재인 후보 당선으로 선거가 끝난 직후인 5월 25일 부산시는 해양수산부를 방문해 극지연구소의 부산 이전을 정식 요구했다. 이어 30일에는 부산항을 사랑하는 시민모임, 부산항발전협의회 등 시민운동단체들이 극지연구소의 부산 이전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2019년 6월 17일 '극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취항 10주년 기념 부산시민 승선 체험행사'가 오거돈 시장, 김영춘 의원(전 해수부장관) 등 지역인사들과 부산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국제크루즈터미널에서 열렸다. 아라온호는 부산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건조돼 2009년 11일 인도명명식을 가진 바 있다. 행사를 후원한 한 언론사는 2분40초 분량의 동영상에서 '부산에서 건조된 쇄빙선 아라온호' '취항 10주년 맞아 고향에 돌아왔다' '극지타운 조성, 제2 쇄빙선 모항 지정 등을 교두보 삼아 동북아 극지 관문도시로 도약 목표' 등의 자막을 내보냈다. 2019년 8월 26일 국회에서 '공공기관 이전 시즌2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가 부산의 최인호 의원을 비롯한 여당의원 주최로 열렸다. 발제에 나선 이민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정부가 추가 이전해야 할 공공기관 대상 210개에 인천의 극지연구소를 포함시켰다. 국토교통부는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위한 '혁신도시 성과 평가 및 정책지원 용역'을 연내 완료할 예정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공공기관 이전 관련 용역에 극지연구소가 포함된 것으로 파악했다"고 확인했다.아라온호의 모항은 인천항이다. 인천에 아라온호를 운영·관리하는 극지연구소가 있기 때문이다. 아라온호는 지난 7월 12일 다시 인천항을 출발해 84일간의 북극항해에 나섰다. 그런데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랫말이 곧 아라온호의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지난달 20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남극과학기지 월동연구대 발대식 및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취항 10주년 기념식 행사용역 입찰공고가 떴다. 극지연구소가 오는 10월 23일 인천항 1부두 11선석에서 조촐하게 여는 행사다. 하지만 닷새 뒤 돌연 행사용역 취소공고가 게시됐다. '행사계획의 변경(일정변경 및 규모축소)'이 이유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인천은 부산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9-10-01 이충환

[경인칼럼]어설픈 정년연장 거론

출산율 바닥… 202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日, 고령자고용법 개정 '계속고용제' 시행정부, 65세연장땐 세대갈등 부추길 가능성명확한 설명없이 요란만… '간보기'로 폄훼핫이슈인 정년연장 논의가 김빠진 맥주 꼴이다. 지난 18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정부 경제활력 대책회의에서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안'을 제시하며 근로자들이 65세까지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고령자 고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노인 빈곤문제와 청년들의 취업절벽과 맞물려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홍 부총리는 "학계를 중심으로 정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미이지 정부 차원에서 과제화할 단계는 아니"라며 한발 빼는 인상이다. 문재인정부 집권 말년인 2022년부터 논의해 보겠단다. 인구정책TF가 5개월 만에 내놓은 대책치고는 너무 부실하다.정부는 지난 4월에 10개 작업반으로 꾸린 범(汎)부처 '인구정책TF'를 발족하고 작업에 돌입했다. 6월에는 홍 부총리가 한 방송에서 "인구정책TF에서 정년연장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는데 논의가 마무리되면 정부의 입장을 내놓겠다"고 발언해 기대치를 높였다. 2016년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법정 정년연령을 만 60세로 연장한지 3년 만이다. 우리사회의 정년연장은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복지지출의 기하급수적 증가 등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신생아수)은 0.98명으로 OECD 36개 회원국 중 유일하게 1명 밑으로 떨어졌다. 고령화 속도는 더 빨라져서 2025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20.3%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기초연금 등 복지재정 지출은 금년의 106조원에서 3년 후에는 150조원으로 불어나며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작년부터 감소세로 전환해 내년부터 노동의 성장기여도는 마이너스를 기록할 예정이다. 경제활동이 가능한 15-64세 인구의 축소는 노동공급 감소 → 국가생산성 하락 → 잠재성장률 약화를 초래한다.일본의 계속고용제가 벤치마킹 대상이다. 한때 일본의 고도성장은 세계인들의 주목 대상이었다. 나카가와 게이이치로(中川敬一郞) 도쿄대학 교수는 일본경제의 신화를 '일본식 경영'으로 명명하고 비결로는 '삼종(三種)의 신기(神器)'인 종신고용과 연공서열, 기업 내 노동조합을 적시했는데 핵심인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은 노사(勞使) 모두에 유리했다. 사측에서는 종신고용으로 유능한 직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으며 노동자들은 해고 걱정 없이 평생 한 직장에서 일할 수 있음은 물론 연공서열로 직급이 높아지면서 월급까지 올라 금상첨화인 것이다.그러나 1990년대 초부터 저성장이 구조화하면서 '일본식 경영'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일본경제가 '잃어버린 20년' 수렁에 빠진 것이다. 성장이 멈춰진 일본 기업들은 능률급, 연봉제, 임금피크제, 비정규직 확대, 감원 등으로 대처했다. 또한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인구구조 변화의 충격을 겪었다. 일본은 2007년에 65세 이상 고령인구수가 전체인구의 28.4%를 기록해서 세계 1위의 노인대국이 되었다. 저출산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는 설상가상이었다. 노인빈곤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2004년에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하고 몇 차례 손질을 거쳐 2013년 4월부터 계속고용제를 시행했다. 기업에게 재고용(퇴직 뒤 재계약), 정년연장(정년을 65세로 연장), 정년폐지(정년 없이 계속고용) 중 택일을 의무화한 것이다. 불이행시 50만 엔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데 60~64세의 취업률은 2013년 58.9%에서 2018년에는 68.8%로 5년 만에 10%가 증가했다. 우리 정부가 계속고용제에 집착할 만하다. 그러나 65세 근로연장은 세대갈등을 부추길 수 있어 고민이다. 2016년 60세 정년 연장 이후 청년일자리 감소가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또한 일본은 30여 년 동안 스텝 바이 스텝으로 계속근로제의 완성도를 높여왔음에도 창의성 및 생산성 둔화, 애사심 약화 등 일본 특유의 공동체자본주의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다. 정년연장문제 3년 후 논의에 대해 명확한 설명도 없다. 이럴 거면 건드리지나 말지 괜히 요란만 떨었으니. 설익은 대책을 발표했다가 내년 총선에서 불리하다고 판단해서 철회한 것인지 항간에서는 정부의 '간보기'로 폄훼한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9-09-24 이한구

[경인칼럼]조국 장관과 진영논리

장관 임명 후에도 정파 입장따라 갈등 계속찬반 구도 형성… 여야 지지층도 결집 양상한국사회의 분열 일으켰던 '편가르기' 우려중도층 정치 의사 반영될 곳은 점점 좁아져'포스트 조국 장관 임명' 정국의 대치는 이미 예견됐다. 자유한국당은 조국 사퇴를 압박하면서 문재인 정권 퇴진 투쟁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바른미래당 역시 조국 사퇴 이슈에서 한국당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조국 변수는 장관 임명 후에도 각 정파의 입장에 따라 복잡다단한 고차방정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정치지형의 새로운 축이 형성됐다. 보수 대 진보의 구도에 더해 조국 찬성 대 반대가 진영논리로 전환되면서 여당지지 성향은 임명 찬성, 야당 지지성향은 반대의 구도가 형성됐다. 적대적 공생의 극단적 구도가 강화되면서 양 진영의 지지층도 결집하는 양상이다.조국 후보자에 대한 찬반을 보수 대 진보의 진영 프레임에 가두는 설정은 조국 후보자에게 제기된 흠결을 덮는 효과가 있었다. 전형적 프레임 정치다. 조국 후보자와 가족, 주변에 제기된 의혹들은 정의와 공정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으며 이는 이념의 잣대로 봐서는 안된다는 논리는 보편적인 상식의 영역이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에서 조국 장관 임명에 반대하지만 진보적 의제에 동의하는 세력의 입지는 모호해졌다. 이미 진영싸움으로 번진 상황에서 조국 반대는 진보·여권 진영에서의 이탈을 의미하고, 이는 정치권과 관련 '업계' 종사자로서는 회복하기 힘든 치명상이다. 게다가 내년 총선을 의식하는 여당의원들로서는 비록 경선으로 공천을 결정한다해도 진영과 결이 다른 소신 발언은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는 자기검열이 작동할 것이다. 이는 조국 정국에서 입증된 바다. 공정과 정의, 평등 등 민주주의의 가치에 공감하지만 조국 임명을 반대한다면 이는 한국당과 동일시되며 매도되는 진영 논리는 또 다른 파시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당내 비판 세력의 부재와 맥락을 같이 하는 구태의 전형이다. 한국사회의 분열은 해방 공간의 극단적 편가르기였고, '빨갱이론'은 낙인효과로 상대를 매장시키는 살인 병기였다. 이승만과 박정희 등 독재세력의 전가의 보도였음은 말 할 나위가 없다. 진영논리는 편가르기의 다른 표현이다. 양 극단의 정치집단과 이념 사이에 분포하는 중도층의 정치적 의사가 표현되고 반영될 공간은 점점 협소해 지고 있다. 이른바 실검색어 전쟁이라고 불린 포털의 검색어도 과다대표와 과소대표의 문제를 그대로 노출시킨다. 거대 양당제의 기득 카르텔의 폐해는 조국 후보자를 둘러 싼 갈등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범여권을 지지했으나 조국 임명에 실망한 유권자가 한국당 지지로 정치 행태를 바꿀 가능성 역시 희박하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논리로 진영을 가르려는 태도는 위험할뿐더러 정치를 더욱 강대강의 적대적 구도로 몰고 갈 수밖에 없다. 식민사관이 아니더라도 조선정치는 분명 무리를 지어 당파를 형성하는 붕당정치의 폐해가 있었다.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사림정치가 남인·북인, 노론·소론으로 나뉘면서 극한적인 권력투쟁으로 이어지고 결국 목숨을 앗아가는 살육의 정치로 귀결되곤 했다. 그럼에도 조선의 사대부 정치에서는 삼사라는 언관들이 목숨을 걸고 진언과 충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른바 공론정치가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하는 강력한 시스템으로 작동한 것이다. 탄핵 받은 선비나 관료는 실체적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벼슬에서 물러났다. 탄핵을 받은 자체를 목민관으로서의 자격상실로 받아들인 추상같은 도덕성과 윤리가 작동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각 비서실에 선물했다는 춘풍추상의 글귀의 함의일 것이다. 내부견제가 작동하지 않는 권력은 진화할 수 없고, 강해지기 어렵다. 조국 사태는 한국정치에 많은 함의를 던지고 있다. 기승전 검찰개혁이 조국 장관 임명의 명분이었으나, 국민은 검찰개혁의 당위가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개혁 주체의 도덕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까. 검찰수사 결과가 조국 장관에 불리하게 나와도 정치검찰로 몰아붙이면서 검찰개혁만을 부르짖을지 지켜볼 일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9-09-17 최창렬

[경인칼럼]대통령의 선택, 의문에 빠진 민심

조국 법무장관 임명 강행 국민 미궁속으로가족 비리의혹 검찰 압수수색 무수한 해석개혁성 위선 전복 분노 진보진영 내상 심각향후 정치적 사단·결과 文대통령 책임 부담권력은 나눌 수 없다. 나눌 수 있다면 권력이 아니고, 나누는 순간 권력은 무력해진다. 부자지간에도 권력은 나누지 않는다는 정치 격언은 수 많은 역사적 선례와 현재진행형 사례로 검증된 경험칙이다. 최고 통치자의 권력은 더욱 그렇다. 조선의 많은 왕들이 자신의 보위를 이을 세자들을 쥐 잡듯이 잡았다.헌법으로 삼권분립을 천명한 민주주의 국가 통치자의 권력도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은 표면상 삼권의 말석인 행정의 수반이지만, 행사할 수 있는 실제 권력의 크기는 입법과 사법을 압도한다. 장관의 권력이 아무리 커 봐야 위성권력일 뿐이다. 그것도 인공위성이다. 수명이 다하면 폐기하고 교체되는 위임 권력일 뿐이다. 장관이든 측근이든 비선 실세든 명칭을 달리해봐야 대통령에게는 권력행사의 도구일 뿐이다. 권력의 본질은 대통령의 인격과 무관하다. 이 권력을 나눈다면 대통령은 국정을 주도할 수 없다. 대통령 권력의 누수는 국가 안보를 해치고 국가 경제를 흔들고 사회 혼란으로 이어진다.많은 국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한 것을 두고 의문을 제기한다. "한미 동맹을 살리려다 남북 관계가 망가졌다"는 문정인 대통령 특보의 발언을 차용하면 이렇다. '조국을 살리고 대통령이 망가지는 선택'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도대체 대통령에게 조국은 어떤 존재인가? 권력 작동의 상식에 어긋난 대통령의 선택에 국민은 미궁에 갇혔다.대통령은 조 장관 임명 이유를 권력기관인 검찰 개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 개혁의 주체는 대통령이다. 검찰 개혁이 정권의 과제라면, 개혁의 업적은 설계자인 조국이 아니라 대통령이 누려야 한다. 대통령의 의지만 결연하고 단호하다면, 그 의지를 받들어 실행할 장관감이 한둘이겠는가. 대통령은 또 "개혁성이 강한 인사일수록 인사청문 과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조 장관에 대한 야당의 검증 공세를 에둘러 비판했다. 하지만 '조국 사태'는 조 장관의 개혁성이 강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일가를 둘러싼 전례없는 특별한 의혹들로 인해 조 장관의 개혁성이 위선으로 전복되자 저절로 형성된 대중의 분노였다.검찰이 조 장관 가족 비리의혹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단행했을 때, 배경을 놓고 무수한 해석이 쏟아졌다. 여당은 당황했고 야당은 면죄부 수사를 의심했다. 그 틈바구니에 문재인 정부들어 승승장구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통령을 위해 조 장관 읍참마속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었다. 윤 총장에게 조 장관은 대통령 만큼이나 신세 진 사람이다. 조국 민정수석-윤석열 중앙지검장은 전 정권의 국정농단과 적폐청산의 환상적인 콤비였다. 그런 조 장관에게 칼을 겨누자니 인간적인 고통이 컸겠지만, 그래도 문 대통령을 위해 악역을 감당하고 나섰다는 해석이었다. 그의 전력과 성정을 감안할 때 대통령을 향한 '윤석열식 보은'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조 장관을 임명했고, 윤 총장의 진의는 확인할 길이 없어졌으며, 조국-윤석열은 양립 불가의 관계가 됐다. 대통령은 둘 중 하나, 최악의 경우 둘 다 잃고 그 책임을 져야 할 형국이 됐다.조 장관으로 인해 진보진영은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대중은 진보의 위선을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조 장관을 엄호하는 진영의 결속은 맹목성을 의심받는다. 무엇보다 조국 임명으로 인한 모든 정치적 사단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이 져야 하는 부담이 걱정이다. 향후 정국은 조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와 이를 둘러싼 공방으로 점철될 것이다. 대통령이 탄탄한 권력을 바탕으로 수행해야 할 국방, 경제, 외교 현안에 오롯이 집중하기 힘들게 됐다.결코 나눌 수 없는 권력도 민심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민심은 곤(鯤)과 붕(鵬) 같다. 거대한 실체를 감추던 북해의 곤이 붕이 되어 한번 날개를 떨치면 구만리 창공으로 치달아 오르듯, 일단 민심이 일어나면 권력은 가소로워진다. 대통령은 왜 자신의 권력을 덜어 조 장관을 살렸을까. 추석 연휴, 민심은 계속 고민할 것이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9-09-10 윤인수

[경인칼럼]근대문화유산과 식민잔재의 딜레마

인천 중구청 앞 조형물 일본풍 비판에 철거개항장 근대문화유산 '모순' 논란거리 첨예 동서양 문화공존 가치·일제 식민수탈 아픔 당국, 개항의 의미 진지하게 재성찰 급선무인천 중구청 앞 일본풍 조형물이 철거됐다. 인천 중구청 앞 인도에 세워진 일본 복고양이(마네키네코) 조형물 한 쌍과 인력거 동상에 대한 적절성 논란이 커지자 구청이 철거한 것이다. 이 조형물들은 중구청이 개항장 거리를 장식하는 소품으로 설치할 때부터 개항장 일대를 지나치게 일본풍으로 치장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또 조선 청년의 인력거 노역을 관광기념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높았으며 최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민원으로 올랐다. 제국주의 침략을 당한 한국의 근대문화유산은 그 자체로 논란거리이다. 문화유산이란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현저하게 기여한 유산이며, 중요한 시기의 역사적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유산을 말한다. 문화유산 가운데 일제강점기나 냉전시대와 관련되는 근대문화유산은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 된다. 일제강점기의 유산이나 유물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관점도 있다.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졌다 해도 일제의 식민통치와 직접 관계되지 않은 유산이나 유물까지 수탈의 잔재나 치욕스런 과거로 치부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거나 패배주의적 역사의식의 소산이다. 이런 논리라면 식민지 근대를 경과하면서 형성된 일체의 문화, 그 시대를 겪으며 형성된 주체인 우리의 정신까지 모두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 같은 주장이 근대문화유산의 문화재 지정으로 재산권을 침해받을 것을 우려하는 주민들에 문화재 지정 해제나 철거 요구의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한편 "아픈 과거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보존론도 일면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유태인 학살의 아우슈비츠나 히로시마 원폭 현장과 같은 부정적인 유산도 보존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은 강제 징용, 일본군 위안부 등의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나 배상을 하고 있지 않으며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한일간의 갈등도 깊다. 일제강점기의 역사유산의 경우 역사적 맥락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 오직 막연한 향수나 과거지향적 동경으로 역사 문화 자원을 활용하다가는 식민지배와 침탈의 역사를 합리화하거나 미화하는 식민사관으로 기울기 십상이다. 인천시는 문화지구로 지정되어 있는 개항장의 문화유산을 보존 활용하는 기본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개항은 모순적이다. 개항으로부터 근대가 시작되었지만 개항 이후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개항장에서 보존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보존된 유산에서 되새겨야 할 역사적 교훈이 무엇인지를 따지지 않는다면, 개항장은 싸구려 세트장처럼 훼손되거나 식민지를 미화하는 공간으로 전락하여, 관광 활성화는 고사하고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곳이 되고 말 것이다. 중구청이 예산을 들여 복원해놓은 일본인 거리도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일본인 거리는 기존의 콘크리트나 벽돌조 건축물에다 일본 상가건물의 목조기둥과 지붕 모양만 붙여놓은 모조 일본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영화 세트장과 같은 외형 복원이 한때의 눈요깃거리는 될지 모르나 지속가능한 관광상품이 되기는 어렵다.개항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중구청의 급선무는 개항의 의미를 진지하게 재성찰하는 일이다. 개항장 제물포에 일본인과 중국인을 비롯한 서양인들이 조계지를 형성하여 거주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미국과 서양의 여러 나라 문화가 공존했던 장소로서 가치가 있다. 그러나 개항장은 서구열강을 비롯한 제국주의의 패권 쟁탈장이었으며, 1905년 이후의 인천은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교두보이자 수탈의 관문이 되었으며, 당시 인천이 일본인이 지배하는 도시로 바뀐 것을 두고 조선 안의 작은 일본, '해외의 소일본(小日本)'으로까지 불렀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2019-09-03 김창수

[경인칼럼]법비(法匪)의 나라

'법 갖고 헌법 파괴한 수구 법비' 기고글조국 등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발맞춰한홍구 교수가 당위성 주장하며 쓴 표현지금은 보수측이 사용 희한한 일 벌어져요즈음 정쟁의 현장에서, 공론의 장에서,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법비(法匪)'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은 '법을 악용하여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무리'로 정의한다. 일본어사전에도 같은 단어가 있다. 뉘앙스는 좀 다르다. '법률을 절대시하여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는 관리나 법률가', '법률을 궤변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멸칭'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런 표현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건 1930년대 일제 치하 만주국에서였다고 한다. 이 흔치 않은 단어를 이 땅에서 대중적으로 쓰기 시작한 이는 아마 진보역사학자인 한홍구 교수이지 않을까 싶다. 한 교수는 10년 전인 2009년 2월 한겨레신문의 칼럼에 '법비의 난'이라는 글을 게재한다. 보름 전 발생한 '용산참사'를 다뤘다. "만주에는 마적, 공비, 병비, 토비, 산림비, 녹비, 정치비 등 온갖 비적떼가 난무했다. 만주국이 건국된 1932년 3월, 한 달 동안 비적들이 철도를 공격한 것만 해도 무려 2천여 회에 달할 정도였다. 제국주의 침략권력은 괴뢰 만주국을 세우고 법치를 내세우며 비적을 소탕했다. 일제는 경찰에게 비적으로 의심되는 자를 즉결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등 '법치'를 강화했으며, 이 밖에도 만주 현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온갖 법을 제정하여 만주를 지배했다. 법의 지배는 새로운 비적을 낳았다. 만주의 민중들, 심지어는 일제에 협력하는 만주인들조차도 법만 내세우는 일본 관리들을 법비라고 불렀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법률조문을 내세우고 법률기술을 마치 금고털이 기술처럼 써먹는 자들이 바로 법비이다."한 교수의 '법비'는 2015년 7월 같은 신문의 특별기고를 통해 다시 등장한다. '법 갖고 헌법 파괴한 그대, 수구 법비라 불러주마' 제목의 글은 당시 조국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 김상봉, 김두식, 박노자 등 40∼50대 지식인들이 제안한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의 당위성을 주창했다. "대한민국의 총리 잔혹사는 총리후보자들의 연이은 낙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총리가 된 법비들이 더 문제였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민주국가를 이끌어 갈 의지도 능력도 없는 수구정권이 공안세력에 의존하게 되면서 한결같이 법을 갖고 장난치는 법비들만 총리가 된 것이다" 정홍원, 이완구, 황교안, 김기춘, 황우여 등 내로라하는 역대 보수세력의 엘리트들을 한 교수는 '반헌법행위자'로 규정하고 이들을 통칭해 '수구 법비'라 했다. 이후 이 단어는 진보세력의 전유물이 됐다.그런데 진보세력이 살뜰하게 써왔던 이 단어를 근자에 보수세력이 쓰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지난 7월 31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변호사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공동으로 친일파 유족들의 상속세 취소소송을 대리한 사건을 언급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저서 '운명이다'에서 나는 그 당시 세속적 기준으로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면서 돈도 꽤 잘 벌었다. 법조계의 나쁜 관행과도 적당하게 타협하고 있었다 라고 했습니다. 상속세를 감면받기 위해 유언증서를 유족들이 임의로 작성하고, 위증이 다반사였던 법조계 관행을 적당하게 타협하고 있었던 것이라면 '법비'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단어는 이제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의 공통어다.공론의 장에서도 이 단어가 낯설지 않은 건 순전히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조국 서울대 교수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의 우병우 민정수석을 '법꾸라지'라고 조롱했던 민심이 이젠 그를 '법비'라고 손가락질한다. '공정'을 국정의 제1 기치로 내걸었던 현 정권의 최고실세 자녀와 관련한 수혜의혹과 특혜논란에 청년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있다. 아버지들은 아들과 딸에게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를 보장해주지 못한 자신을 못난 아비라며 자책하고 있다. 이미 장관이 되고 안되고를 넘어섰다. '법비'를 준엄하게 질타했던 글이 한껏 치켜세웠던 응원의 대상이 한순간에 '법비'로 전락해 질타당하는 기막힌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이쯤 되면 가히 '법비의 나라'라 할 만하다./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9-08-27 이충환

[경인칼럼]조물주 위에 건물주

압축성장 반세기 '부동산 폭등' 상상 초월역대 정부 규제 풀어 투기조장 '경기 부양'부동자금 시세차익만 노려 국민경제 '엉망'경제적 진보·빈곤 동반성장 토지사유제 탓지난 12일 국토교통부가 주택시장 규제의 극약처방으로 불리는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를 발표했다. 분양가 상한제란 분양가격을 평형대 별로 일정가격 이상을 받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이다. 10월부터 서울을 비롯한 전국 31곳의 투기과열지역에 적용하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14번째 부동산 대책이다. 부동산 중개업체들이 죽을 맛이다. 전국의 개업 공인중개사가 10만여 명이나 거래절벽에 과당경쟁으로 폐업이 속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들은 갈수록 인산인해이다. 공인중개사 1차 시험 접수자 수가 2013년 9만6천279명에서 2018년에는 19만6천939명으로 불과 5년 만에 무려 2배 이상 격증한 것이다. 한 응시생의 "부동산 업계가 개미지옥이나 일단 자격증을 취득하면 평생직장으로 노후대비에도 적격"이란 언급이 눈길을 끈다. "한 건만 대박 나면 된다"는 심리는 점입가경이다.한국 특유의 부동산 불패신화가 화근이다. 압축성장 반세기 동안에 상상을 초월한 땅값의 폭등이 결정적 증거이다. 1970년대 서울 강남개발이 시발점이다. 1960년대 초부터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들면서 주택문제가 점차 커지자 정부는 한촌(閑村)인 강남지역 개발에 주목했다. 1968년에 착수한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설상가상이었다. 당시 정부의 최대 고민거리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 조달이었는데 서울 영동(永東)을 개발해서 해당 지역의 땅값을 끌어올려 부족한 자금을 벌충하기로 한 것이다. 실천방안은 영동지구 구획정리사업이었다. 난개발로 방치된 일정면적의 토지를 묶어 합리적으로 구획하고 도로, 학교, 공원 등의 기반시설을 배치해서 토지의 가치를 올리는 것이다.이 무렵 서울시 도시계획분야 핵심요직에 근무했던 서울시립대 손정목 교수는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서 주목되는 발언을 했다. 박정희 정부는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강남에서 땅 투기 행각을 벌였으며 더 많은 비자금을 긁어모으기 위해 구획정리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모 도시계획국장은 청와대 자금으로 1970년 초에 강남의 땅 24만8천368평을 평당 평균 5천100원에 사들인 후, 1971년 5월까지 약 18만평을 평당 평균 1만6천원에 팔아 20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단다. 당시 20억원은 현재가치로 대략 1천억원으로 1970년 내국세 수입액의 0.7%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까지 10년 동안은 한강변 공유수면 매립 전성기였다. 이 사업으로 동부이촌동, 반포, 흑석동, 서빙고동, 압구정동, 구의동, 잠실 등이 도시화되었다. 공유지인 한강변을 택지로 조성해서 아파트를 분양하는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여서 지하경제도 덩달아 커졌다. 상당수 건설업체들이 정치권에 몇십억, 몇백억 원의 뇌물 제공을 대가로 한국을 건설공화국으로 만들었다. 이상의 개발방식은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확대재생산 되었다. 역대 정부는 불황 때마다 각종 부동산 규제를 풀어 투기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부양하곤 했다. '부동산주기 10년'설이 상징적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의 '수원 광교신도시는 로또 신도시'라는 리포트가 주목된다. 2019년 7월 현재 광교 아파트 평균 시세는 3.3㎡당 2천480만원으로 분양가 대비 1.7배로 상승해 피분양자들은 10년 만에 세대당 평균 3억8천만원을 벌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에서 생활한 것밖에 없는데 매달 300만원의 불로소득을 얻었으니 이보다 좋은 돈벌이가 있을까?우리나라 중학생들의 장래 희망 1순위가 건물주이다. 오죽했으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 했던가. 정부가 한정된 자원을 소수의 엘리트들에 몰아주어 파이를 키워나가는 후진국 공업화는 당위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부동산투기를 근절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 패착이다. 천문학적인 단기부동자금이 생산이 아닌 시세차익만 노리고 있다. 국민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토지 공개념 이론의 선구자 헨리 조지는 경제적 진보와 빈곤이 함께 커지는 이유에 대해 지대(地代)의 개인소유를 보장하는 토지사유제 탓으로 돌렸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9-08-20 이한구

[경인칼럼]광복절과 극일(克日)

日, 안보 빌미로 수출규제 계획된 프로세스극우적 사고 '아베에게 사죄' 혐오발언까지 미·중·러·일·북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기식민지배 반역사관·냉전주의 장막부터 제거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와 백색국가 제외 조치는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의 성격이 짙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북미 관계의 변화 등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안보환경의 변화는 일본으로서는 당혹스러운 것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와 아베 정권 등 자민당 정권들에게 북한이라는 외부 적의 존재는 우익의 결집에 주요 동력으로 기능했고, 이를 평화헌법 개정의 도구적 수단으로 활용해왔다.일본의 극우세력 결집을 통한 평화헌법 개정은 일본 시민의 개인적 호불호를 넘어 일본의 일관된 흐름이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전략의 근본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분위기를 부인할 수 없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기존의 안보 질서가 바뀌고 북미도 과거의 극한적 적대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남북협력의 답보와 북미 비핵화 협상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 흐름은 되돌리기 어려운 변화다. 이를 추동하는 남한 정권의 존재 역시 일본 우익 정권의 입장에서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다. 한일 간 격차 감소도 일본으로선 방치할 수 없다.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은 근인(近因)에 불과하다. 일본은 어떠한 구실로라도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고, 이는 일본의 기본 국가전략이기도 하다.물론 미시적 차원의 갈등은 조정국면을 거치면서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배와 과거사 문제는 한일관계에서 넘기 어려운 벽이다. 게다가 일본은 남한에 냉전적 수구세력이 집권하여 남북관계가 긴장상태로 회귀하고, 북미가 적대적으로 돌아서는 것이, 개헌을 통하여 '전범국가'에서 '전쟁 가능 국가'가 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경제보복은 현 집권세력의 경제성적표를 나쁘게 만들어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하게 하려는 전략적 판단도 깔려있을 수 있다. 이렇듯 일본의 안보를 빌미로 한 무리한 수출규제는 다목적이며 계획된 프로세스에서 진행되고 있다.한국현대사를 규정하는 결정적 변수는 분단이다. 분단은 일제가 패망한 해방공간이 독립으로 연결되지 못했고, 독립이 통일로 이어지지 못해서 겪는 현실이다. 1945년 맥아더 사령관이 발령한 작전명령 4호에 의하면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반도를 일본 본토와 구별하지 않고, "천황 및 일본 제국의 각종 통치 수단을 통해 통치권을 행사하라"고 요구했다. 남한에 진주한 미군 제24군단 하지 중장이 조선총독부 주요관리를 유임시키고 총독부 행정기구를 통치기구로 사용한 이유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해방 이후 전전긍긍하던 일제 협력자와 친일세력은 미군정에 편승함으로써 '친일'에서 '친미'로의 신분세탁에 성공했고, 일제 잔재 청산의 기회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승만 정권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키고 친일세력이 특위 해체를 주장하면서, 특위가 조사해서 기소하고 최종 실형을 받은 자가 고작 10여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일제 청산이 미약했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과의 이해관계의 일치로 친일세력이 국가의 요직에 다시 등용되면서 일제 잔재 청산은 사실상 무산됐다. 이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체결, 쿠데타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된 경제성장지상주의와 반공국가는 청산되지 않은 일제 잔재와 결합하면서 냉전세력을 형성했다. 친일 세력과 수구반공 세력이 동일한 역사적 기원을 갖는 이유이다. 극우적 사고의 반역사적·비민주적 행태는 '한국이 아베 총리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혐오 발언으로까지 연결되는 현실이다. 미·중·러·일과 북한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반역사적 사관의 극복과 냉전주의 장막의 제거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 없는 극일(克日) 정책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내일이 광복절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9-08-13 최창렬

[경인칼럼]위험한 '친일 정권 수립론'

국민을 '친일-반일' 구분하는 전체주의 발상일본 우익 언론인들 '망언' 무시하면 그만與, 사무라이들 주장 '공론화' 과하고 위험日과 경제전쟁 '총력전' 승리 지혜 모아야 일본이 자국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강제로 중단시켰다. 소녀상이 출품된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는 일본 정부의 외압으로 전시되지 못한 현대미술 작품을 한데 모은 기획전이다. 일 정부는 기획전을 통째로 막으면서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는 가짜 민주주의 국가의 실체를 드러냈다. 정부의 역사인식과 어긋나면 민주주의의 요체인 표현의 자유마저 유보할 수 있다니 그렇다. 자민당 정부는 민주주의로 선출된 정권의 한시성을 거부하고 군국주의 회귀를 통해 영구집권을 획책하는 반민주 집단임을 선포한 것이다. 일본의 민주적 대중이 항의하고 저항한다. 하지만 제국 시절을 몽유(夢遊)하는 자민당과 우익의 기세가 워낙 압도적이다.아베는 제국의 광기에 오염된 군국주의자들의 후예다. 미친자와 싸울 땐 같이 미쳐서 싸우면 안된다. 특히 미친자가 힘이 셀 땐 더 그렇다.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인 형세판단으로 미친자를 진정시킨 뒤 격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일 정부가 제국의 감성으로 우리를 압박한다고, 우리 마저 식민의 울분을 소환해 대처할 필요가 없다. 일 정부의 퇴행적 역사관에 같이 춤추면 미친자의 도발에 이성을 상실하고 같이 뻘밭을 뒹구는 형국이다. 그래봐야 미친자와 같이 뒹군 탓으로 미친자 취급 받을 뿐이다.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최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땅에 친일 정권을 세우겠다는 (일 정부의) 정치 야욕에서 정치 주권을 지키겠다는 것이 국민의 각오"라고 말했다. 장외에서 사견을 전제로 나돌던 일본의 '한국내 친일정권 수립론'이 집권여당의 공식회의에서 최고위원의 발언으로 현실 정치에 진입했다.'친일정권 수립론'은 전체주의적 논리구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일본이 세우고 싶은 친일 정권이 있다면 현재의 문재인 정권은 반일 정권이라는 얘기다. 이는 반일 정권인 문재인 정권을 향한 비판·비난·조롱 등 모든 표현은 친일 행위이고, 대한민국에 일본의 괴뢰정부를 세우려는 매국'행위가 되는 논리로 귀결된다. 친일정권 수립론에 담긴 '친일 대 반일' 프레임은 이 땅의 국민을 친일과 반일로 구분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그 기준이 현 정부에 대한 지지 여부라면 민주주의 상식에 어긋난다.일본이 한국에 친일정권 수립을 획책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일본 우익 조무래기 언론인들의 망언이다. 무시하면 그만인 헛소리다. 무엇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 대한민국 국민과 정당이 친일 정부를 세울 이유가 없다. 반일 프레임은 여당 뿐 아니라 야당에게도 달콤한 꿀단지다. 이명박은 독도 정상에 올라 독도영유권을 상징적으로 선포했다. 외교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떨어진 지지도는 올랐다. 박근혜는 집권 초기 아베의 구애에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 일본과의 적당한 긴장은 어느 정권에게나 효과적인 당의정이다.집권여당이 일본의 몇몇 언론 사무라이들의 주장을 근거로 '친일정권 수립론'을 공론화하는 것은 과하고 위험하다. 이미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과 언론, 학계를 친일 프레임으로 압박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여당 대표가 일식집에서 정종을 반주로 밥만 먹어도 시비에 걸리는 상황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은 총력전이다. 일본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수단을 모두 모아야 한다. 비판과 제안이 자유로워야 한다. 비판과 제안을 친일로 몰아버리면 문재인 정권 사람들이 이룩한 민주화는 의미를 상실한다.조국 전 민정수석이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반일 종족주의'를 보고 "이런 구역질 나는 책을 낼 자유가 있다면, 시민은 이들을 '친일파'라고 부를 자유가 있다"고 했다. 조 전 수석의 주장을 존중한다. 마찬가지로 정부를 비판할 자유를 친일과 매국이라는 용납할 수 없는 단어로 제한해서도 안된다. 일본은 평화의 소녀상 철거로 민주주의를 압살했다. 대한민국은 일본이 되면 안된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9-08-06 윤인수

[경인칼럼]한일무역전쟁과 아베 정권의 책략

위안부합의 무력화·강제징용배상 등 불만韓 국론분열 유도 정권교체 바라는 모양새우리가 소재 국산화 성공땐 일본도 큰 타격日 경제예속 벗어날 근본적 대책 '몰입'할때한일간 무역전쟁이 악화일로이다.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소재의 수출규제에 이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법령 개정을 즉각 강행할 전망이다.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품목의 수출 절차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전략물자를 가지고 경제보복을 확대할 경우 한국은 군사정보공유협정인 지소미아를 파기하는 것으로 결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자국의 제품 판매를 막아 우리 경제의 숨통을 죄겠다는 일본의 수출규제는 '자해 공갈'의 수법과 흡사하다. 일본 무사들의 할복이나 악명높은 가미가제 특공대의 자살공격처럼 자신을 파괴하면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는 일본 스타일이다. 일본의 책략이 단기적으로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표 집결을 노린 카드라고 보는 것은 사태의 일면만 본 것이다. 한국을 경쟁국가로 규정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헌법개정을 통한 군대의 부활이라는 일본 우익의 정치적 목표 때문이다.아베 책략의 목표 중의 하나는 한국의 정권교체이다. 한국의 국론분열을 유도하고 눈엣가시 같은 문재인 정권에 타격을 가함으로써, 향후 정권교체까지 내심 기대하는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가 합의해준 '위안부 합의'를 무력화하고 한국의 대법원이 강제징용배상 판결을 내렸는데도 '적극적' 대응을 취하지 않고 있다고 간주하고 있다. 비핵화협상과 남북정상회담으로 북미, 남북간의 관계가 급진전 과정에서 일본이 느끼는 소외감도 작용하고 있다. 북일관계는 첫 단추도 꿰지 못한 아베 총리로서는 이래저래 불만이다. 한국경제가 장기불황의 일본경제를 추격하고 있다는 불안의식도 한 원인이다. 불황의 원인을 외부에 전가하고, 실패한 아베노믹스의 면죄부까지 만들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아베 총리는 한국 대법원이 내린 일본 전범기업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한국정부가 적극적 대응 방안을 가져오면 협상하겠다고 공언했다. 한국이 대법원의 판결을 수정하거나 철회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알고 있다. 일본은 타협 없는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대화와 협상이 아니라 보복과 역보복, 추가보복의 악순환을 거듭하다가 최악의 상황에서 협상의 문은 열릴 것이다. 현단계에서 한국이 굴복 외에 일본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 낼 카드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의 배경이 단순하지 않으며 일본 우익과 아베 내각의 집권 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입체적인 대응전략을 가져야 한다.다만 일본의 경제보복이 한국과 세계 경제, 마침내 불황에 시달리는 일본 경제도 위태롭게 하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유효하다. 한국 반도체 생산의 차질은 세계 각국의 경제로 확산되고 일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만약 한국이 반도체 소재의 구매를 다변화하거나 국산화까지 성공한다면 일본의 소재 산업은 최대 판로를 잃고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된다. 미국도 결국 개입해야 한다. 아베정부가 벌이는 무역전쟁으로 중국이 최대수혜자가 되는 것은 미국에게는 또 다른 재앙이기 때문이다.한일 무역전쟁에서 시간은 한국의 편일까? 국력을 총동원하여 한일무역 역조의 주범인 부품산업의 자립화 계획을 추진하는 것이 전제된다면 전화위복이다. 우리 경제는 수출이 늘면 일본산 부품수입을 늘려야 하는 구조이다. 최근 10년간 누적된 대일적자만 307조가 넘는다. 한국이 수출로 번 돈을 고스란히 일본에 바치는 과잉의존 구조 때문에 우리 경제의 숨통을 일본이 쥐고 흔드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한일간의 무역역조를 바로잡기 위한 장기 계획을 세우고 경제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수립에 '몰입'할 때다./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2019-07-30 김창수

[경인칼럼]'인천e음카드'에는 슬로건이 없다

전세계 다양한 화폐 고유한 문화적 특성지역 주민의 철학과 가치관 내재돼 있어어떻게 설계 했으며 무엇을 배려 했는지인천지역화폐엔 고민·성찰 찾을수 없다지역화폐의 원형은 영국의 선구적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웬이 고안한 '노동증서'다. 사회주의(socialism)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협동조합운동을 창시한 오웬은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과 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가치를 노동시간으로 환산해 노동증서를 발행해주면 이를 다른 구성원이 제공하는 물품이나 서비스와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화폐와는 별개였다. 이를 위해 1832년 런던에 전국등가노동교환소까지 설립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역화폐 '레츠(LETS :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도 이 노동증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로부터 150년 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코목스밸리의 작은 마을 커트니(Courteney)에서 발행된 지역화폐가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다. 출발점은 열악한 경제상황이었다. 지역에 있던 공군기지가 이전하고, 마을주민들의 생계수단이던 목재산업이 침체하면서 실업률이 18%까지 치솟았다. 빈곤과 궁핍이 마을을 휩쓸었다. 한 세기 반 전 영국의 노동자들이 처했던 상황과 똑같았다. 이 마을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마이클 린턴이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돈이 없으니까 노동을 해주고 물품을 받는 형태의 가치교환이었다. 곧 컴퓨터를 이용해 거래관리시스템을 개발했다. 회원으로 가입한 지역주민들이 이를 이용해 노동과 물품과 기타 서비스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1983년 '레츠'의 태동이다.현재 전 세계 지역화폐는 3천여 종에 이른다. 이름도 '레츠', '녹색달러', '페이퍼', '타임달러' 등 지역별로 다양하다. 당초 노동과 물품의 등가교환 개념이었던 지역화폐는 시간이 흐르면서 본래의 역할에 충실한 '공동체 통화(community currency)'와 현금적 성격이 강화된 '지역 통화(local currency)'로 나눠지게 된다. 일본만화 '아톰'의 탄생지인 도쿄 다카다노바바에서 2004년 탄생한 '아톰 통화'는 지역, 국제, 환경, 교육 등 4개의 주제와 관련된 사회공헌활동에 참가한 주민들에게 지급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에선 재해복구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도 성공한 사례로 손꼽히는 영국 최대의 지역화폐 '브리스톨 파운드(Bristol Pound)'는 영국의 법정화폐인 '파운드'와 등가교환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현금성 지역화폐다.특히 '브리스톨 파운드'는 올해 돌연 대한민국 지역화폐의 총아로 떠오른 '인천e음카드'와 비교해서 살펴볼 만하다. 브리스톨은 영국 남서부의 경제를 책임지는 중심도시로 2018년 기준 46만명인 인구는 주변부까지 합치면 100만명에 이른다. 이곳에도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금융위기의 짙은 먹구름이 몰려왔다. '브리스톨 파운드'는 불안정한 세계경제에 대한 각성과 대응의 차원에서 이듬해인 2009년 출범했다. "우리 도시의 경제시스템이 우리의 지역경제에 위해를 가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공동체들로부터 부를 짜내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환경을 손상시키고, 불평등을 영속시키며, 인식할 수 없는 복제품들로 시내 중심가를 동질화시키고 있다. 이에 우리는 2009년 초, 한 식당 테이블에 모여앉아 뭔가를 하기로 결정했다. 브리스톨 파운드는 우리가 사는 방식과 돈을 받고 일하는 방식을 재정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동체가 주도하는 운동으로서 설립됐다" 그들이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는 출범의 취지다.전 세계 여러 국가 여러 지역의 다종다양한 지역화폐에는 저마다 고유한 문화적·인구적 특성, 그리고 지역주민의 철학과 가치관이 내재돼 있다. '브리스톨 파운드'의 슬로건 '우리의 도시, 우리의 화폐(Our City Our Money)'에는 그들이 왜 지역화폐를 생각해냈고, 어떻게 설계했으며, 무엇을 배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녹아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천의 지역화폐에는 어떤 철학과 가치관이 내재돼 있는가? 어떤 고민과 성찰이 녹아들어가 있는가? 안타깝게도 인천의 지역화폐 'e음카드'에는 슬로건이 없다./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9-07-23 이충환

[경인칼럼]긱(Gig) 이코노미 시대

경제 주축 30·40대 고용감소 1년이상 지속제조업 해외투자 속도 국내보다 2.7배 높아기업들 정규직보다 계약직 고용경향 커져사회, 밀레니엄세대 안정된 삶 경제적 도움을소득불평등과 심혈관 질환 사망률 간에 상관관계가 높단다.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성지동 교수팀이 2002년부터 2013년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토대로 17만8천812명의 수입, 건강검진이력, 사인(死因) 등을 비교한 결과 상위 소득층은 수입 변동에도 심혈관 사망률에 큰 차이가 없는 반면에 하위 소득계층의 동일 질환 사망률은 13%로 가장 높았다. 심지어 수입이 감소하는 상위 소득층보다도 3배 이상 높았다. 소득양극화는 국민건강문제인 것이다. 서민생계의 요체는 일자리이다. 지난달 취업자수는 2천740만8천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8만1천명이 증가해 17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또한 상반기 취업자 증가는 월평균 20만7천명으로 지난해의 고용 부진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양새다. 그러나 상반기의 월평균 1~17시간 초단기 취업자는 26만9천명이 늘었다.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로만 따지면 전체 취업자 수가 월평균 0.8%씩 증가하는 동안 1~17시간 취업자는 18.5% 늘어난 것이다. 1주일에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통계에 잡히는 지경이니 말이다. 제조업 일자리 점감(漸減)은 점입가경이다. 통계청의 올해 4월 산업별 취업자수 증감 현황자료에 따르면 제조업 일자리 감소는 2018년 4월부터 13개월 연속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경제의 주축인 30, 40대의 고용감소는 1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내수가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노동절약적 기술진보가 화근이나 결정적인 것은 세계화에 따른 국내기업들의 해외탈출이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 동안 국내 설비투자액은 99조7천억원에서 156조6천억원으로 연 5.1% 증가한 반면에 제조업 해외직접투자(ODI)는 51억8천만달러에서 163억6천만달러로 연평균 13.6%나 증가했다. 제조업의 해외투자 증가속도가 국내투자보다 무려 2.7배나 높은 것이다. 덕분에 제조업 일자리수는 매년 4만2천여 개씩 해외로 빠져나갔다. 올해 14분기의 순투자비율[(FDI-ODI)/GDP]은 -16.1%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과 경제규모가 비슷한 호주(2.5%), 스페인(1.0%), 캐나다(0.6%) 등은 모두 증가했다.한국경제연구원은 국내총생산(GDP) 10억원 당 취업자수를 2000년 25.8명에서 2018년 16.8명으로 추정했다. 주요 선진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확인됐다.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명 이상인 6개국의 경우 1인당 소득이 2만달러에서 4만달러로 오르면서 GDP 100만달러 당 취업자수는 19.8명에서 11.5명으로 감소한 것이다. 향후에는 인공지능(AI)에 기반한 생산성 격증이 예고되어 일자리 감소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되지도 않는다. 국내에도 '긱 경제(Gig Economy)'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기업들이 정규직보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계약직 혹은 임시직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경향이 커지는 경제를 의미한다. 지난달 한국고용정보원은 국내 플랫폼 경제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을 47만~54만명으로 추산했다. 디지털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긱 이코노미'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긱 이코노미는 자기 위주로 행동하고 정보기술(IT)에도 능한 밀레니얼 세대와도 궁합이 맞아 보인다. 관건은 이들이 안정적으로 자기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사회가 경제적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알바가 주업인 프리터(freeter)들의 경제안정 없이는 저출산 해결은 물론 자영업 악순환문제도 해소되지 않는다.핀란드 정부는 2017년 1월부터 2년 동안 일자리가 없어 복지수당을 받는 국민 중 2천명에게 매달 560유로(74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이다. 지급 대상은 무작위로 선정됐으며 기본소득 수급자는 사용처를 보고하지 않아도 되고 2년 이내에 일자리를 얻어도 기본소득 전액을 받을 수 있다.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이 빈곤 감소와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토한 뒤 성과가 확인되면 적용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혁신의 시대'는 '긱 이코노미 시대'다. 자원배분 시스템의 검토를 고민할 때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9-07-16 이한구

[경인칼럼]총선이 개혁동력을 살릴 수 있을까

시민 정치적 의사 대표성 '연동형 비례대표제'후보 선정 객관·공정·투명성 확보 성패 달려양당, 정개·사개특위 양분땐 누더기 될 수도현실주의·권력정치 변화 정합성 제도화 필수정치에는 현실주의와 이상주의가 병존한다. 근대정치학의 시조라 불리는 마키아벨리는 권력정치의 불가피성을 갈파했지만, 정치에 현실주의만 존재한다면 정치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현실과 이상, 실리와 명분이 잘 조화된다면 갈등의 조정이라는 정치의 본령에 가까이 갈 수 있다. 물론 권력구조와 정당체제의 형태, 역사적 배경과 정치문화, 경제사회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정치사회의 작동원리가 정해진다. 한국정치는 현실정치적 요인이 압도적으로 작동하는 구조이며, 사회적 소수와 약자가 과소대표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를 혁파하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지정되고 정치개혁특위 기한이 8월 말까지 연장됐으나 내년 총선에 도입될 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시민 각 계층의 정치적 의사가 비례적으로 국회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이다. 지금의 국회의원 출신 배경을 보면 고위공직자나 청와대 참모, 법조계, 정당인 등이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소수자나 청년, 노동의 국회 진출 비율은 현저히 낮다. 국회란 시민의 대표가 자신들의 이해를 반영하고 제도권 내에서 상충하는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기능을 맡은 대의기구이다. 그러나 특정 계층이 과다대표되고, 약자가 과소대표 되는 구조에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가 주권자와 유리되고 자신의 특권적 지위에 안주하여 개인의 영달과 입지만을 탐하는 권력기구로 전락한 상황이 국민소환제 공론화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선거공학에 익숙지 않지만 시민의 보편적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인사, 사회적 소수와 약자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 정치권에 충원되는데 기여할 수 있을 때 비례대표 숫자의 증원이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비례숫자의 증원은 당 지도부나 중진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불쏘시개가 될 수밖에 없다.따라서 시민의 정치적 의사의 비례성과 대표성 강화가 목적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 후보 선정의 객관성과 공정성, 투명성 확보에 성패가 달려있다. 만약 늘어난 비례대표 자리가 당 대표나 다선 의원의 자리보전에 활용되거나 계파 수장 등 파워엘리트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차라리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지역구 숫자를 늘리되 전체 의원 숫자는 줄이는 한국당 안이 더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다수제 민주주의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로 가는 정치발전과 역행하므로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문제는 거대양당에 의한 폐해는 새삼 지적할 일도 아니지만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양분한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무늬만 연동형인 누더기 제도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민주평화당이나 정의당만큼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란 점을 간과할 수 없어서다. 내년 총선은 두 가지 점에서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선 지금의 정당의석 분포는 박근혜 탄핵 전의 민의가 반영돼 있다. 탄핵은 한국 헌정사에 중대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탄핵 이후의 민의의 명시적 변화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에서 정치구도의 변화를 통해 어떠한 정당들이 등장할 것이며, 의석분포에 따라 희미해진 개혁동력 부활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둘째 지금의 정당구도는 정당 내의 불화와 갈등, 파편화된 다당제 등, 정치개혁 대상이다. 내년 선거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와 비례대표 후보 선정에서의 투명한 절차 등이 담보되느냐에 따라 정치개혁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 현실주의와 권력정치에 함몰된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 정합성 있는 제도화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9-07-09 최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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