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역할분담이 필요한 한미동맹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입장과 이해 달라결국 비핵화 협상 추진동력 발굴 우리의 몫세부사항은 당사자간 창의적으로 접근 유리신뢰회복 차원 '비핵화 2~3단계 진행' 현명최근 통일부는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 신청을 승인하고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사업에 800만 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소신있게 추진해나가겠다는 정부의 의지이다. 이 조치가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남북 관계를 대화로 전환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하노이 회담의 옵션으로 거론된 바 있지만 미국 측의 완강한 반대로 철회했다가 하노이의 좌절로 절치부심하고 있는 평양을 향해 뒤늦게, 그것도 일부를, 마지못해 꺼내든 셈이기 때문이다. 바둑에서는 돌을 놓는 순서, 수순(手順)이 승부를 결정한다. 국면을 전환하는 묘수도 수순에서 나오고 다 이긴 판을 놓치는 패착도 수순에서 나온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겪고 있는 고통과 공단가동으로 얻었던 경제적 이익이나 남북간 신뢰회복 효과까지 두루 감안하면, 개성공단 방문승인은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개성공단 재가동은 언젠가는 풀어야 할 매듭이었다. 선택지가 거의 없는 '촉진자의 결단'을 북한이 적극적으로 평가하기를 기대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북미간의 압박이 임계치를 향하고 있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 이후 한동안 칩거하던 김정은 위원장은 연일 생산현장 방문을 통해 '인민'들의 실망감을 달래는 한편, 군부와 강경파들을 의식한 저강도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 예측하지 못한 하노이 결렬로 인해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까지 손상입은 것으로 알려져 협상 테이블로의 복귀가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도 하노이 노딜의 책임을 북한의 '준비부족' 탓으로 돌리는 한편 북한의 석탄운반선을 압류하는 등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발사체 발사로 도발의 강도를 조금씩 높여나간다면 교착상태가 긴장과 갈등관계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가장 비관적 시나리오는 북한의 압박과 미국의 군사적 옵션이 서로 충돌하면서 비핵화협상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비관적 시나리오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다. 트럼프가 외교적 실패로 인한 비난을 감수한다면 미국이 잃을 것은 사실상 없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내심 결렬을 원하고 있으며, 그 대변자들인 매파들은 협상의 문턱을 높여 성사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 미국의 야당은 북미협상을 트럼프가 하는 것 자체가 불만이어서 협상 성사에 관심이 없다. 북한의 경우 비핵화 협상이 제재완화로 이어져 경제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으나, 기득권층에게 평화체제와 개방은 일종의 도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에서 한미간의 이해가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이나 결과로 구축될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입장이나 이해는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북한이 다시 협상장에 설 수 있는 명분과 미국이 비핵화 협상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발굴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유엔의 제재 대상과 무관한 사업이라면 일일이 미국의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다. 유연한 상황 관리를 위해서도 미국과 전략적 방향은 공유하되 세부사항은 당사자가 '창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유리하다. 개성공단 재개 건도 우리 정부가 결자해지의 관점에서 책임성을 가지고 접근했더라면, 그리고 미국은 한국에 판단을 위임해 두었더라면 지금처럼 신뢰의 위기는 조성되지 않았을 터이다. 미국이 선호하는 일괄타결의 가능성은 차츰 줄어들고 있다. 하노이 노딜로 신뢰의 위기는 더 심각해졌다. 빅딜을 고집할 수 없다면 신뢰회복의 차원에서라도 비핵화를 2~3단계로 나누는 것이 현명한 태도이다. 합의사항 위반시 협정을 철회할 수 있는 역진방지규칙(snapback)을 제시해 미국의 우려를 불식하는 한편, 국제기구를 통한 북한과의 식량, 환경 생태분야, 과학기술분야의 지원을 강화하는 전략의 다변화가 '촉진자'에게 절실하다./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2019-05-21 김창수

[경인칼럼]저널리즘: 권력에게 질문하기

은폐·회피·거짓말 하는 권력에 '물음'은그들의 부당함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물러난 인천경제구역청장의 속내 편지글'사퇴이유' 궁금증 풀어주는 언론은 없었다두 편의 저널리즘 영화가 있다. 2015년 같은 해에 미국에서 제작됐다. 실제 사건들을 소재로 했다. 캐스팅과 작품성이 빼어나지만 둘 다 한국에서 흥행에 실패했다. 토마스 매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Spotlight)'는 성공한 취재의 서사시다. 지난 2002년 가톨릭 보스턴 교구의 사제들이 저지른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파헤친 미국 3대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취재와 보도 실화를 토대로 제작됐다. 지역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종교권력의 추악한 이면을 끈질긴 취재정신으로 파헤치고 들어가 마침내 진실에 가까이 다가간다.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는 이듬해 이 기사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영화 제목도 그 팀의 이름을 땄다.반면 제임스 벤더빌트 감독의 첫 작품 '트루스(Truth)'는 실패한 취재의 회고록이다. 에미상 수상에 빛나는 미국 CBS 저널리스트 메리 메이프스의 회고록 '진실과 의무: 언론, 대통령, 그리고 권력의 특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아들 부시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CBS 탐사보도프로그램 '60분'은 간판앵커 댄 래더를 앞세워 부시의 병역비리 의혹을 보도하지만 오보 논란에 휘말리게 된다. 그 여파로 월터 크롱카이트의 후임으로서 24년 동안 'CBS 이브닝뉴스'를 이끌어온 댄 래더가 앵커직에서 물러나고, 메리를 비롯한 팀 전원이 해고된다. '스포트라이트'에서 보스턴 글로브의 새 편집장 마티 배런(리브 슈라이버 분)은 현존하는 지역 최고권력인 추기경에게 말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수행하려면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악한 교회권력을 추적하는 현장기자 마이크 레젠데스(마크 러팔로 분)의 외침은 간명하다. "이걸 밝히지 않으면 그게 언론입니까?" 사과가 몇 개 썩었다고 사과 상자를 통째로 버릴 수는 없지 않느냐며 조직적 은폐를 시도하는 권력의 속성을 팀장 월터 로빈슨(마이클 키튼 분)은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시스템이야. 시스템에 집중해야 해!"비록 보이지 않는 권력시스템에 패하긴 했으나 '트루스'의 저널리스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질문'이다. 오보의 당사자로 낙인찍힌 메리(케이트 블란쳇 분)는 "처음부터 질문하지 말았어야 했어…"라며 자조하지만 진심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댄 래더(로버트 레드포드 분)는 후배 저널리스트에게 질문이야말로 저널리즘의 핵심임을 확인시켜준다. "질문을 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네. 어떤 이들은 쓸데없는 일이라 하고, 어떤 쪽에서는 편파적이라고 하겠지만, 우리가 질문을 멈추는 순간 미국인들은 패배하는 것이네." 영화의 끝부분, 메리는 저승사자 같은 조사단 앞에서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는 대통령이 자신의 의무를 다했냐고 물었을 뿐이에요." 두 편의 영화처럼 저널리즘은 권력에게 묻는다. 감추고, 회피하고, 거짓말하고, 교활한 술수를 부리는 권력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질문은 부당하고 과도한 권력을 무너뜨리는 저널리즘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평상시에도 가장 효과적인 견제의 수단으로 작동한다. 중앙권력이든 지방권력이든, 종교권력이든 세속권력이든, 시민사회권력이든 노동단체권력이든, 심지어 저널리즘이 갖는 스스로의 권력까지 우리의 공동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 권력이 다 질문의 대상이다. 이들 권력에게 제대로 질문하지 않거나 질문하지 못하는 저널리즘은 가짜 저널리즘이다. 며칠 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이 사퇴(辭退)했다. 퇴임식을 대신해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속마음을 헤아려봄직한 문장을 남겼다. "꽃이 진 자리는 열매가 맺혀야 생명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할 말이 많으나 꾹, 꾹, 누른 거겠지. 그가 왜 물러나는지 궁금해하는 시민들이 있다. 하지만 지역언론 어디고 속 시원히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데가 없다. 오히려 억측만 키웠을 뿐이다. 경질(更迭)의 칼을 휘두른 권력에게 제대로 질문하고, 그래서 돌아온 답변을 시민들에게 제대로 들려준 언론이 없다. 근래 이 지역사회에서 그이만큼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공직자가 또 있었는가. 없었음에도 '질문'하지 않았는가./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9-05-14 이충환

[경인칼럼]아모르파티

새시대 띄우는 일본정부 '또 한번 굴기' 갈구고단한 현대인, 삶 포기하는 사례 비일비재자본주의는 서민의 인간미 강퍅함으로 바꿔'자신의 운명 사랑하라' 니체의 당부 눈길일본정부가 새 시대를 맞이했다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부친인 아키히토(明仁)에게서 왕위를 계승함에 따라 일세일원(一世一元)의 연호도 5월 1일부로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일본인들은 신왕(新王) 즉위를 매우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일왕은 통치는 하지 않지만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인 탓이다. 일본 재무성은 1만엔, 5천엔, 1천엔권 지폐 속 인물들을 모두 바꾸기로 했다. 2024년에 새로 선보일 1만엔권에는 '일본자본주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시부자와 에이이치(澁鐸榮一, 1840~1931)를, 또 5천엔권에는 여성 교육 개척자인 쓰다 우메코(津田梅子, 1864~1929)를, 1천엔권에는 일본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 柴三郞, 1853~1931)를 각각 확정했다. 일본국민들은 또 한 번의 굴기( 起)를 갈구하고 있다. 주목되는 인물은 '논어와 주판'(1927)의 저자 시부자와 에이이치이다. 그는 한국 역사상 종이돈 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물이다. 그의 초상은 1902년부터 일본 제일은행이 한국에서 발행하기 시작한 1엔, 5엔, 10엔짜리 3종의 은행권에 처음 등장했었는데 1세기만에 일본 최고액권에 다시 부활했다. 당시 제일은행 총재였던 시부자와는 한국의 일본 식민지화를 촉진한 핵심인물이자 일본에서 미즈호은행, 도쿄가스, 도쿄화재해상보험, 데이코쿠호텔, 도쿄증권거래소, 기린맥주, 치치부철도 등 500여 기업의 설립 및 경영을 주도했다. 그러나 메이지(1868~1912) 중기부터 다이쇼(大正, 1912~1926)에 걸쳐서 빈민가의 존재가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됐다. 도쿄에는 이전부터 만넨초, 다니야, 시바 신모우초 등 빈민촌과 곳곳에 거지굴이 있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가난은 게으름 혹은 팔자로 치부된 때문이다. 그런데 공업화와 함께 도시빈민들의 숫자가 급속히 불어난 것이다. 자본주의는 서민들의 인간미 넘치는 삶을 강퍅함으로 바꾸었다.현대인들의 삶은 훨씬 고단해서 삶을 포기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캐나다 최북단 혹한의 땅인 누나부트 준주(準州)의 주도 이칼루트는 세계최고의 청소년 자살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수천 년 동안 붙박이로 살아온 이누이트인 위주의 자치도시이나 살벌한 자본주의 문화에 적응이 쉽지 않은 터에 자신의 미래마저 불투명한 때문이다. 한국의 청춘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18년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 당 25.8명으로 OECD 35국 중 최고인데 특히 청년층의 자살이 두드러진다. 10~39세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상당한 경비에 고단함도 불사하고 해외를 전전하며 일자리를 구걸(?)하는 한국의 젊은 취업 노마드(유랑민)들이 점증하니 말이다. 대다수의 청년들은 자신들이 부모세대보다 못할 것이라며 불안해한다. 외국기업의 국내 이주 감소와 국내기업들의 국외 엑소더스가 결정적이다. 최근 10년간 국내기업들의 해외직접 투자액이 255조원에 달한다. 지난 한해 생산공장 해외이전 금액만 55조원이다. 국내시장은 협소한 반면에 무한경쟁과 보호무역 강화가 한국기업들의 국외탈출을 부추기는 것이다. 향후 국내 일자리 전망도 밝지 못하다. 전 세계 대다수 엘리트들은 무한경쟁에 따른 물가안정, 교역확대, 기술혁명 등을 들며 세계주의의 탁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화야말로 인민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진실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격이 안정되면 뭐하나, 서민들 주머니에 돈이 말라가는데. 2016년 2월 세계경제포럼의 발표에 따르면 '세상이 더 살기 좋아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미국인 6%, 독일인 4%, 영국인 4%, 프랑스인 3%에 불과했다. 절대다수의 세계시민들은 세계화가 선택받은 극소수에만 좋다고 믿는다.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티브 베넌은 2016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계주의자들은 미국 노동자들의 배를 갈라서 아시아의 중산층을 키웠다"며 분노했다.양극화 확대와 L자형 내수경기, 기술혁신에 따른 일자리 대량감소 우려 등 세계화의 덫은 전 세계가 함께 고민할 과제이나 한국은 기댈 곳이 수출밖에 없어 더 걱정이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Amore Fati)'는 철인 니체의 당부에 눈길이 간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9-05-07 이한구

[경인칼럼]정치적 감수성과 반응성이 승패 가른다

촛불 집권세력, 수구야당 반정치 명분 제공 총선 1년 앞두고 기존 적대·증오정치 회귀진보유권자들의 '그자찍' 현실 될 수도 있어국민에 반응하지않는 정권 승리 장담 못해시민의 평등한 참여를 통한 정부의 대표성, 책임성, 반응성의 구현 여부는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르는 핵심 내용들이다. 적어도 민주주의에서 공적 영역의 국가기구는 시민, 즉 유권자를 대표해서 존재한다. 책임정치 개념은 공적기관들이 유권자의 지지, 요구에 반응하는 것과 정부가 시민들의 요구와 다른 행동을 보일 때 정부에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정치를 의미한다.민주주의는 선거권 확대를 위한 보통선거 쟁취의 역사이며 이는 대표성과 책임성의 원리를 정착시켜왔다. 이러한 대표성과 책임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반응성이다. 반응성은 집권을 위한 공적 약속, 즉 공약을 실천하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주장에 민감하게 조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시민들의 요구와 여론에 부응하는 책임정부가 대표성, 책임성, 반응성을 담보한다고 할 수 있다.청와대는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했다. 보수야당의 반발은 당연한 수순이고 정국이 가파르게 대치하는 것 또한 정해진 한국정치의 수순이다. 한국당은 장외투쟁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후보자를 임명한 것 외에 청와대 인사라인 교체,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전환 등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도 장외투쟁의 명분이다.정책 사안을 국회에서 논의하지 않고 반대를 위해 장외로 나가는 것은 명백히 반의회주의적 행위다. 장외투쟁은 국가권력이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여 반대나 비판이 원천적으로 봉쇄될 때 약자와 소수자가 주권자의 민의에 의지하여 벌이는 독재시대 때의 정치적 시위의 형태다. 그러나 한국당의 장외집회는 어떠한 여건도 충족되지 않은 반대를 위한 반대다.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집권세력은 수구야당에게 반정치의 명분을 제공한 것만으로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지 않은 후보 임명에 반발하는 수단으로서 장외투쟁이 적절한가의 여부를 떠나 여권은 보수야당에 공격의 단서와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총선 1년을 앞두고 정치는 양비론에 입각한 기존의 적대와 증오의 정치로 회귀했다. 거대양당제로 복귀한 정치 패러다임에서 유권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적대와 극단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편견을 증폭시킬 때 집토끼를 지킬 수 있다는 정치문법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은 '촛불'과 '적폐청산'의 저작권자로서의 위상도 상실해 가고 있을 뿐 아니라, 도덕적·정치적 명분의 우위의 실종에 직면하고 있다.청문과정에서 흠결이 제기되었던 후보자들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인식에 토대한 청와대의 입장은 여론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단순히 인사 문제뿐만이 아니라 촛불 민심에 의해 대안부재로 선택됐던 청와대와 집권세력은 이미 좌파기득권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현 정권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진보 유권자들이 '그래서 자유한국당을 찍을거야?(그자찍)'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 역시 민심에 반응하지 않는 둔감성을 의미한다. 이대로 집권세력의 정치적 감수성이 발동되지 않는다면 '그자찍'(그래서 자유한국당을 찍을거야?)은 실제 '그자찍'(응 그래서 자유한국당 찍을거야)이 될 수도 있다.집권 후 3년 만에 치러질 내년 총선의 프레임은 역시 정권심판론이다. 선거민주주의에서 민의를 거스르는 정권이 선거경쟁에서 이길 수 없음은 자명하다. 국민에 반응하지 않는 정권은 민주적 책임성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고, 이는 당위와 규범의 측면뿐만이 아니라 실제 선거경쟁에서의 승리도 담보하지 못한다.선거프레임이 회고적 투표냐 전망적 투표냐의 선택은 국민이 하지만 근거를 제공하는 측은 집권 측이다. 정권심판론을 거대야당 심판론의 프레임으로 바꾸는 국면 전환은 단순히 정치공학에 기인하지 않는다. 시민에게 얼마나 겸손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느냐의 반응성에 있다. 자유한국당의 퇴행적이며 반동적 색깔론은 민심과 동떨어진 집권 측의 인식의 틈새를 파고드는 법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9-04-30 최창렬

[경인칼럼]이해찬 대표의 '장기집권론'

李 정치적 함의는 文정부 지속가능성 실현'총선목표 260석' 진보진영의 연속성 절실現 국정기조 지속성 보수견해 배제로 '흔들'가능성 적은 '장기집권'으로 달성할 일 아냐집권이 목적인 정치결사체인 모든 정당은 장기집권을 꿈꾼다. 정당이 지향하는 이념과 가치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려는 열망은 정상적이다. 그러나 민심은 웬만하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특정 정치세력의 장기집권은 필연적으로 권력의 부패를 수반한다는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일본 자민당의 독주와 독일 메르켈 총리의 14년 집권이 오히려 특별해 보이는 이유다.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0년, 100년 장기집권론을 강조할 때 여론은 그저 정당의 상식적 희망사항으로 여겨 특별하게 주목하지 않았다. 내년 총선 목표를 260석으로 밝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야당 등에서 집권여당의 오만이라며 날을 세워도 여론은 무심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국정운영의 지향과 연관지어보면 이 대표의 장기집권론은 여권 내부의 절실한 목표가 된다.박근혜 탄핵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도덕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국정을 독주했다. 탄핵 공동운명체인 자유한국당의 견제는 미미했고 신경 쓸 정도도 아니었다. 오히려 지방권력 마저 송두리째 여당으로 넘어왔다. 정부여당의 정치 평원은 확대됐고 여론의 지지는 독주의 촉매가 됐다.경제 분야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기조를 안착시켰다. 외교분야는 남북 공존 중심으로 재편했다. 한차례 공론조사로 원자력발전을 폐지했고, 검경의 적폐청산은 과거의 의혹들을 소환하고 있다. 대한항공 사주 가족은 멸문의 과정을 거쳐 회사 경영권을 잃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법관사회의 특정 서클 멤버들로 채웠다. 법관의 양심을 의심해서는 안되지만, 특정 서클 소속 법관들은 수시로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적 지향을 공표해왔다.정부에 대한 언론환경도 전반적으로 우호적이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출입기자들에게 "여러분 뒤에 있는 보도 책임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수언론들이 만들어내는 논리에는 정면 반박하고 싶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한 번만 의문을 달아달라. 선배들은 머리가 굳어 있어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는 고별사를 남겼다. 김의겸의 지적이 보수언론에만 해당하는 것인지, 같은 언론 종사자로서 심경이 복잡해진다. 또한 여론은 이미선 헌법재판관을 향한 여론의 지지를 질문을 바꾸어 '나쁨'에서 '양호'로 변경한 여론조사업체의 수중에 있다.문제는 국정 독주를 통해 이루어낸 각 분야의 정책기조와 권력기관 장악, 우호적인 언론환경의 지속가능성 여부다. 보수세력의 비판과 견제와 대안이 배제된 정책, 권력기관 조직, 언론환경은 정권이 바뀌면 모조리 전복될 가능성이 100%다. 혹시라도 보수세력이 다음 정권을 차지한다면 지금 세상은 뒤집어진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족보 없는 경제이론이라며 폐기할테고, 북한 중심 외교는 한·미·일 동맹외교로 유턴할 것이다. 새 대통령이 대법원, 헌법재판소를 자기 사람으로 교체하는 건 당연하다. 공영·준공영 방송사 사장이 바뀔 테고, 김어준·주진우·김제동 만큼이나 입담 좋은 보수 진행자들이 황금시간대를 꿰찰 수도 있다. 현재의 친노동 반재벌 정서도 극적으로 역전될 수 있다.이 대표의 장기집권론에 담긴 정치적 함의는 문재인 정부 국정기조의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는데 있다. '장기집권론', '총선 목표 260석' 주장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여도, 진보진영 국정기조의 연속성이라는 목표 자체는 절실하다.그러나 국가목표와 국정운영의 기본적 지향은 정쟁과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생각하면 현 정부 국정기조의 지속가능성을 장기 재집권을 통해서만 실현하는 것이 옳은지는 의문이다. 경제, 외교 정책은 수단을 달리 해도 여야가 기본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 대법원, 헌법재판소는 정치와 독립돼야 하고, 공권력은 한결 같은 사정기준을 유지해야 한다. 현 정부 국정기조의 지속가능성은 보수의 견해를 배제해서 흔들리고 있다. 이는 대통령이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해 정권교체와 상관없는 국정기조를 만들어 해결할 일이지, 가능성이 희박한 장기집권을 통해 달성할 일이 아니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9-04-23 윤인수

[경인칼럼]'촉진자'의 딜레마

한미정상회담 마친 文대통령 중재역 곤궁비핵화 협상 빅딜-스몰딜 美北간 큰 격차상호불신탓 합의내용 이행 논의 교착상태불이행땐 제재 복원 '스냅백' 장치 고민을문재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교착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카드는 보이지 않는다. 일괄타결의 빅딜을 선호하는 미국과 동시적 상응조치의 스몰딜을 내세우는 북한 간의 견해차를 좁히기 어려운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입장이 첨예할수록 중재자의 지위도 백척간두처럼 위태롭다. 비핵화 협상에 대한 야당 측의 회의적 주장도 '촉진자'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의 하나로 제시했다. 미국이 원하는 제재의 틀을 유지하면서 북한에게 비핵화 검증의 명분을 제공한다면 교착 타개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제안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이 와중에서 북한은 한국이 중재자를 자처하며 강대국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불만스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처럼 중재자는 머리 둘 곳 없이 늘 곤궁하다. 이해관계가 다른 갈등과 분쟁의 당사자들을 협상장으로 불러내 화해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양보 없는 타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양보를 요구할 뿐 먼저 양보하려 들지 않는다. 협상이 삐걱거리면 중재자가 편파적이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협상이 결렬되면 중재자는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된다.선택지가 좁아진다고 해서, 또 처지가 곤궁하다고 해서 중립적 지위로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미국과는 비핵화 목표를 같이하며 북한을 상대하는 플레이어이며, 무엇보다 비핵화 협상의 과정과 결과에 긴밀하게 연계되어 추진되고 있는 남북교류의 마당에서도 중재자나 촉진자가 아닌 주역이기 때문이다. 비핵화 협상의 진척과 평화체제의 확립은 민족의 생존 전략이며, 전쟁의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공동번영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물론 교착상태가 2017년과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비할 바 아니며, 미국과 북한이 협상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남북정상회담의 계기는 확보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3차 북미정상회담을 성과적으로 '촉진'할 수 있는 실효적 지렛대가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다.촉진자(facilitator)란 집단 간 의사소통 촉진 기술을 통해 이해 당사자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거나 공동의 과제를 도출해내는 역할을 수행하는 역할이다. 촉진자는 공감적 이해와 수용적 태도를 갖춰야 하며, 당사자들이 개방된 마음과 합리적 사고를 통해 창의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핵화협상의 어려움은 한국전쟁 이후 70년간 적대시해왔던 국가인 미국과 북한, 북한과 한국 간의 협상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문턱을 높이려는 매파들에게 둘러싸여 있듯이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미국식 비핵화 방안을 수용할 경우 핵 보유국의 '위업'과 지위만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다른 길' 카드를 내보이며 협상결렬에 대비한 출구전략을 시사하고 있는 상황이다.협상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상호불신이다. 비핵화 협상과 남북교류는 지난해 판문점선언, 싱가포르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의 합의를 차근차근 이행하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방법이다. 미국은 북한의 동시상응 원칙을 핵폐기를 미뤄둔 채 여러 단계로 나눈 스몰딜로 실리만 취하는 살라미 전법이 아닌가 의심한다. 북한도 미국의 '불가역적 비핵화'를 전제로 한 일괄타결 방식에 대해 비핵화 조치 후 상응조치를 강제할 수단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합의 이행에 대한 상대방의 대응을 신뢰하지 못해 논의는 답보 상태이다. 신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합의 내용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제재를 복원함으로써 이행을 보장하기 위한 스냅백(Snapback) 장치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신 일괄타결이 아니라 비핵화를 두세 단계로 나누어 성실한 이행과 상응하는 조치의 선순환을 이뤄 나가는 것이다./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2019-04-16 김창수

[경인칼럼]강화도미디어타운 촌장(村長)

실력·인품까지 갖춘 류미례 다큐멘터리 감독올해 시청자 제안사업 공모 주민들 대거 참여다양한 구성원들 소화할 수 있는 내용 구성어우러져 잘사는 마을 '미디어가 한몫' 기대일을 하면서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실력에 인품까지 갖췄다면 더욱 그렇다. 강화도에 사는 류미례 다큐멘터리 감독이 그런 분이다. 강화 양도면에 집을 짓고 살면서 현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영상미디어교육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생활형 '액티비스트(activist)'다. 실력은 '꽝'이면서 눈빛만 이글거리는 그런 활동가가 아니다. 온유함과 섬세함이, 세상을 기어코 뒤집어 놓고야 말겠다는 거친 결기를 단연 압도하는 그런 유(類)다. 처음부터 영상을 전공한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는 한국사학을, 대학원에선 국제문화연구를 공부했다. 영상제작을 접한 건 시청자미디어센터가 설립되기 전인 90년대 후반, 한 단체에서 시민영상제작교육을 받으면서부터다. 그 이후 다큐멘터리 제작과 교육이 본업이 됐다. 2004년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엄마…'라는 작품으로 '올해의 여성영화인' 상도 받은 실력파다. 류 감독은 2015년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와 인연을 맺었다. 센터가 의욕적으로 기획한 다큐멘터리제작 교육프로그램 '열 번 만에 다큐멘터리 만들기'의 주 강사를 맡았다. 이듬해에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두다Q'의 교육을 담당했다. 재작년에는 강화지역에서 두 개의 프로그램을 센터와 함께 진행했다. '함께 만드는 영상교실'은 강화지역에 사는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영상제작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었다. 강화의 청년영농인과 어르신들이 함께 영상미디어를 이해하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교육도 진행했다. 현지의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올해 류 감독이 뿌린 씨앗이 제대로 열매를 맺었다.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는 해마다 시민이 직접 미디어교육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채택되면 필요한 예산과 시설·장비를 센터가 지원하는 공모사업을 벌인다. '열린 센터'를 기치로 시행하는 '시청자제안사업'이다. 그런데 올해는 강화지역 주민들이 대거 공모에 참여했다. 외부전문가들과 함께한 심사에서 모두 6개의 제안사업이 채택됐는데 그중 4개가 강화지역 주민들이 제안한 것이었다. ▲모든 세대가 참여할 수 있는 '1인 미디어 콘텐츠 제작교실:크리에이터 탐구생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니어와 함께 하는 강화 영상제작교실' ▲발달장애인들이 사진과 영상촬영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카메라로 보는 세상:캠프 힐에서 영상 만들기' ▲미디어리터러시와 미디어교육이론을 강의하는 '강화마을 미디어교사 양성교실' 등이다. 하나같이 류 감독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주민들과 의논하고, 주민들을 독려한 끝에 나온 산물(産物)이다.채택된 시민제안 프로그램들은 강화지역의 어르신과 젊은 세대, 장애인과 비장애인, 미디어를 배우고자 하는 주민과 가르쳐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주민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돼있다. 센터는 이들 4개의 사업과 앞서 공모한 마을미디어교육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리 마을 라디오:라디오 빌리지'를 하나로 묶어 올해 강화지역에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강화도미디어타운' 사업이다. 강화도는 그 땅에 흐르는 우리 민족사의 강건한 기운만큼이나 원주민들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한 곳이다. 진도 다음 가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 큰 섬인데 수도권 고학력 은퇴세대들이 선호하는 거주지역이기도 하다. 조상 대대로 터 잡고 살아온 원주민과 그분들에게는 어쩌면 이방인으로 비칠 법한 새로운 이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잘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어가는데 '미디어'가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잘 살아가는 마을, 많이 배우고 높은 지위를 누렸던 이와 그렇지 않은 이들이 서로의 경험과 삶의 지혜를 기꺼이 나누며 잘 살아가는 마을, 나와 생각이 다른 이를 배척하지 않고 적으로 만들지 않고 어울려 함께 잘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어가는데 '미디어'와 '미디어교육'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기대와 믿음의 디딤돌을 놓은 이가 바로 류 감독이다. '강화도미디어타운'의 촌장(村長)이라 칭할 만하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9-04-09 이충환

[경인칼럼]연고(緣故)자본주의 시대

정치인 자녀들 KT 특혜채용 의혹 일파만파신임교수·민간기업 선발도 부친 직업 강요기회균등·공정경쟁 흔들려 '상대적 박탈감''개천의 용' 사라진 한국사회 선진화 걸림돌중견 영화배우 김광규가 좋다. 비록 대머리이나 준수한 외모에다 맛깔스런 조연 역할이 뭔지를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천명에도 혼밥족 신세를 못(?) 면하는 서민적 풍모에도 연민이 느껴진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아부지 뭐 하시노?"는 압권이다. 2001년에 개봉된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친구'에서 담임 선생님이 제자인 동수와 준석의 뺨을 비틀며 걱정하는 장면이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지만 여전히 서민들의 뇌리에 명대사로 각인되어 있다.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 딸의 특혜채용 의혹으로 불거진 KT 채용비리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같은 당의 황교안 대표와 정갑윤 의원의 아들들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 터에 KT노조가 친박 핵심실세였던 홍문종 의원도 채용비리에 연루되어 있다고 폭로한 것이다. 19대 국회에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 위원장이던 홍 의원은 자신의 보좌관과 측근 등 4명에 대해 부정 취업청탁을 했단다. 당사자들은 사실무근이라며 반발하나 '강원랜드 채용비리'의 판박이란 느낌이다.공기업의 채용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취업빙하기에 견줄 만큼 갈수록 젊은이들의 취업이 어려워지는 판에 고임금에다 종신고용이 보장되는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인 탓이다. 공기업 내에 만연한 보신(保身) 문화는 점입가경이다. 주인 없는 조직이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풍지 확보가 필수적인 때문이다. 이번 검찰의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사례가 상징적이다. 부정청탁이 의심되는 직원 한명의 입사서류 성명 칸 옆에 괄호가 쳐지고 그 속에 부모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모 지방대학의 신임교수 채용서류는 더 노골적이다. 인터넷으로만 접수 받는 취업지원서에 지원자의 부친 이름과 직업을 적는 난이 있는데 부친의 관련사항을 제대로 기입하지 않으면 입력되지 않아 서류접수가 불가능하다. 30대 이상의 최고 지성인들한테도 부모 직업을 묻는다니 아연실색이다. 그 대학 교직원 중에 이름만 대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유력인사 자녀 및 친인척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도 기업들처럼 정치가, 고위공직자, 재력가, 언론인 등 가진 자들과의 커넥션 형성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정부가 공공기관 짬짜미 채용 엄단을 외쳤지만 별무효과이다.공기관이 이럴진대 민간 기업들은 오죽하겠는가. 수년 전에 모 대기업 임원 출신의 한 인사로부터 필자가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그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지원자의 업무능력이나 자질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친의 직업이란다.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공무원으로 검찰이나 경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 근무자일수록 좋은 점수를 받는 데다 아버지의 직책이 높을수록 합격 가능성도 크다고 귀띔하며 비밀 유지를 당부했다. 앞으로 연고채용은 더욱 만연할 개연성이 높다. 요즘 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신입사원 채용이 두렵단다. 사람 잘못 뽑았다 낭패보기 십상이란 것이다. 세계화 확대는 또 다른 변수이다. 사업장의 글로벌화는 불문가지여서 임직원들의 충성도 제고가 훨씬 강조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정부는 피면접자의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면접을 진행하는 블라인드전형을 주문하나 한계가 있다. 작금의 채용비리에 대한 모 취업준비생의 반응이다. "누구는 취업하려고 자격증을 따고 열심히 노력해도 역부족인데 누구는 부모의 힘으로 쉽게 입사한다.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를 느끼지만 계란으로 바위 깨는 격이니." 더 심각한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기회균등과 공정경쟁이 흔들리는 점이다.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정치철학자 존 롤스 교수는 "공정성의 핵심은 '운(運)의 중립화'이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부자인지 가난한지 등 우연하게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자연적 조건을 없애야 한다. 그래야만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역설했다.연고(緣故) 자본주의야말로 한국사회 선진화의 최대 걸림돌이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천에서 용 나오는 사회를 만들자"고 역설했지만 공자님 말씀처럼 들린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9-04-02 이한구

[경인칼럼]퇴행과 적대의 정치

경제·취업난·소득격차·반동 수구 정치…당정, 촛불집권 3년차 시민참여 유도 실패4·3보선 결과로 정당들 혁신 계기 될지 관건한국당 '의식 변화'·민주당 '재개혁' 시급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촛불민심의 건재가 확인됐다. 시민들의 현 정부에 거는 개혁과 혁신에 대한 기대가 표심으로 나타난 결과다. 그리고 10개월 만에 재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지리멸렬하던 제1야당의 지지자들이 집결하는 양상이다. 촛불민심의 지지를 확인한 이후 집권세력은 개혁동력을 모으지 못했다. 그리고 집권 3년 차를 맞이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취업난은 심화되고 소득격차는 더 벌어지는 추세다. 반사회적 범죄와 부패는 금도를 넘어섰다. 반동과 수구의 정치, 그게 지금의 한국정치다. 청와대와 민주당 등 집권연합은 촛불에 의해 집권했음에도 개혁 담론을 공론화하여 시민참여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하고 있다. 시민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고, 정치적 활성화는 사라졌다. 민주당은 손혜원·서영교 의원 등 소속 의원들의 의혹들에 대해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했고, 산하 공공기관 인사에서도 지난 정권들과 차별화된 행태를 보이지 못했다. 압도적으로 민주당에 향했던 도덕적 우위와 정치적 명분을 스스로 포기하고,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으로서의 자율성도 찾을 수 없다. 이는 한국당과의 지지율 격차 축소로 나타나고 있다. 범진보진영의 연대를 통한 개혁입법은 임기 초반의 높은 지지율에 도취되어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 자리에 20년 집권론, 100년 집권론 등 오만한 행태가 똬리를 틀었다.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의 부재를 입증하듯 장관 후보자들에게 제기되는 의혹 역시 지난 정권과 차이가 없다.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지도부는 이념적 편향을 통해 지지세를 결집하고 있다. 당 대표 스스로가 탄핵을 부정하고 태블릿PC 조작설을 제기하는 등 반헌법, 반민주, 반역사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태블릿PC가 조작됐다면 이에 기반해 헌법 절차와 국민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졌던 탄핵은 반헌법적인 폭거가 아닐 수 없다. 한국당은 5·18민주화 운동이 폭동이고, 유공자는 괴물집단이라는 망언에 대해 국회 제명을 할 생각이 없다. 지도부는 역사를 부정하고 극한 대립을 불러올 수 있는 '반민특위 국민 분열론' '좌파독재' '좌파 포로정권' 등의 정제되지 않은 용어를 구호처럼 반복하고 있다. 적대와 증오의 소환을 통해 지지세를 결집하려는 수구 퇴행 정치가 아닐 수없다. 이들은 '냉전의 후예'답게 역사 왜곡과 적(敵)의 창출(making enemy)을 통해 상대의 정당성을 박탈하는 기법을 당의 선거 전략으로 택한 것 같다. 이러한 정치적 맥락에서 다음 주 재보궐 선거결과는 일정 부분 정치적 함의를 지니게 될 것이다. 통영·고성에서 한국당이 승리를 놓친 적이 없으나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통영시장과 고성군수는 모두 민주당 후보가 차지했다. 통영·고성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놓치거나, 고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였던 창원·성산에서 한국당이 승리한다면 황교안 체제 후 수구적 행태를 보여왔던 한국당의 극우적 발언과 역사 왜곡 등은 극단으로 치달을 것이다. 만약 범진보 진영이 두 군데 모두 승리한다면 한국당의 수구적 행태에 대한 심판과 진보적 의제에 대한 기대가 동시에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어느 정당이 승리해도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당들의 지금까지의 행태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인지가 관건이다. 선거를 말하지 않고 대의제 민주주의를 논할 수 없지만 진영논리에 갇힌 유권자들 역시 공정과 정의에 대한 변별로 지지 정당을 결정하는 구조가 아님도 인정해야 한다. 한국당은 이성과 상식이 배제된 반역사적 의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민주당은 수구집단의 '망언'이 발붙일 수 없도록 다시 개혁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선거민주주의의 협애한 틀을 벗어날 때 진정한 선거경쟁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9-03-26 최창렬

[경인칼럼]내재적 관점으로 우리 내부부터 화해하자

보수·진보 대립 '재생불능 과정' 진입 중이념적 내분 친일·친북 굳어질까 두려워'역사적 정의' 수정- '의심' 내려놓길국민 갈라 놓으면 정권탈환이 무슨 소용김영삼 정부부터 계산하면 보수와 진보 진영의 교차집권 기간이 26년이다. 그동안 보수와 진보진영은 각각 3명의 대통령을 세웠다. 우리 현대사의 압축성을 고려하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진영이 이념적 소통과 현실적 공존을 모색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재생불능의 화석화 과정에 진입 중이다. 대립의 양상이 정치이익을 실현하려는 정당들의 정략적 기획 수준을 넘었다. 유튜브 등 새로운 매체로 개인무장한 대중들의 전면적 대치로 확산되고 있다. 진보와 보수 정당들은 '국민'을 강조하지만, 국민은 보수적 시민과 진보적 대중으로 분리 중이다.보수와 진보 진영이 서로를 인식하는 관점은 식민공간과 분단공간을 통해 고착됐다. 진보 진영이 보수 진영을 바라보는 시선엔 '친일(親日)' 세력에 대한 혐오가 있다. 친일 세력의 후예들이 해방공간의 혼란을 틈타 보수의 가면을 쓰고 역사적 정의를 훼손하고 왜곡한 것도 모자라 온갖 적폐를 누적해왔다고 본다.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인식하는 관점은 점잖게는 '친북', 거칠게는 '종북(從北)이다. 분단공간에서 진보 진영의 민주화 운동이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에 오염됐다고 강하게 의심한다.상대를 향한 두 진영의 혐오와 의심은 올해 들어 거대하게 폭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는 일제의 용어라고 규정하고 청산해야 할 친일잔재라고 밝혔다. 진보 진영을 친북, 종북으로 의심하는 보수 진영을 친일 잔재 세력으로 지칭한 셈이다. 이렇게 되면 친일잔재 청산의 대상은 현상이 아니라 세력이 된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기사 인용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을 언급했다. 인용이라지만 해당 기사에 동의하는 진의는 모두가 안다. 연설에서 현 정부를 '좌파정권'으로 지칭했을 때 '좌(左)'에 담긴 중의적 의미 또한 모두 안다. 이러다가 '보수는 친일', '진보는 친(종)북'으로 자동 확정되는 이념적 내분이 굳어질까 두렵다.지난 한세기 우리 민족은 식민공간, 해방공간, 전쟁공간, 분단공간을 차례로 겪으면서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그럼에도 경제적 번영과 민주적 민주화를 성취한 기적을 일구어냈다. 그 공간을 거치면서 현재의 보수와 진보 진영이 성립했다. 시련으로 압축된 역사 속에서도 기적처럼 번영을 꽃피운 현재를 생각하면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성취를 인정하는데 인색할 이유가 없다.보수와 진보 진영이 내재적 관점에서 상대를 이해하는 관용적 태도가 절실하다. 상대에 대한 태도와 인식의 전환은 대북정책, 친일청산, 한미관계, 경제정책, 사회정의 등 모든 분야에서 반목 중인 현안을 서로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대북정책을 예로 들면 진보진영은 보수진영의 엄격한 대북인식의 배경을 보수진영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보수진영은 진보진영이 확신하는 대북 접근방식을 진보진영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입장을 바꾸어 시선을 교차하면 대북정책의 합의와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역사문제도 마찬가지다. 진보진영은 보수진영의 현실적인 일본관을, 보수진영은 진보진영의 엄격한 친일청산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할 필요가 있다. 일본과의 현실적인 공존과 식민역사의 정의로운 청산의 타당성을 서로 인정하면 대일 외교의 전략적 역할을 서로 분담할 수 있다. 지금처럼 일본의 면전에서 한쪽만 죽어라 옳다며 싸우는 상황은 식민 역사 못지 않게 부끄러운 일이다.진보진영은 보수진영에 '친일' 낙인 찍기를 멈추어야 한다. 진보진영 인사들이 식민공간의 항일독립투사가 아니듯이, 보수진영 인사들이 2019년 오늘의 공간에서 식민 부역자의 친일 행위를 할 이유가 없다. 보수진영은 진보진영을 향한 '친(종)북' 낙인 찍기를 그쳐야 한다. 진보진영은 세 번의 정부를 세워 대한민국의 국체를 이어왔다. 불만은 있을지언정 부정하면 안된다. 진보진영은 자신만의 '역사적 정의'를 수정하고, 보수진영은 합리로 포장한 '의심'을 내려놓기를 바란다. 나라를 쪼개고 국민을 갈라 놓고서야 정권재창출이든 정권탈환이든 무슨 소용인가./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9-03-19 윤인수

[경인칼럼]현실과 예술적 비전

신동엽 시인이 꿈꾼 '한반도 전역 비무장화' 이종구 화백이 예측한 '남북정상 백두산 산행'하노이회담 '결렬'로 평화기반 실현안됐지만역사는 비관론자보다 낙관주의자 편일 수도지난해 6월 1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시범적으로 비무장화하는 방안이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논의되었다. 이 회담에서 또 비무장지대 내 지뢰제거, DMZ 내 최전방 감시초소 및 중화기 철수,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 평화수역화 방안 등도 논의되었다. 남북의 군인들이 비무장 지대를 확대하자는 제안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등으로 남북관계가 급진전되면서 취해지는 조치들에서 언젠가 어디선가 본듯한 기시감이 역력하다. 신동엽 시인이 50여 년 전 쓴 시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제 밤은'도 그 기시감의 실체 중의 하나이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무장화를 꿈꾼 시인의 노래에는 비무장지대의 총부리와 탱크가 뒤로 돌아 완충지대가 팽창되다가 마침내 한반도 전역이 평화로운 비무장지대로 바뀌는 장면이 담겨 있다. 목하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인 '군사합의서' 이행 중이다. 11월 1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군사연습 중단, 판문점 공동경비구역과 강원도 철원 일대의 지뢰제거작업 개시, 서해 일대의 해상완충구역 설정과 해안포사격 중지와 해안포 포문 폐쇄조치 등이 실행되었다. 시인의 상상, 취기 어린 몽상의 실현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신동엽 시인이 '술을 많이…'을 쓴 1968년은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때이다. 그해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정찰국 소속 무장공작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 사태'가 발생했다. 일주일 뒤인 1월 23일에는 미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Pueblo號)가 북한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북한으로 나포되고 83명의 미해군이 북한에 억류되는 사건까지 벌어져, 남북 간 그리고 미북 간의 갈등 때문에 한반도는 또 다른 열전으로 비화될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조성되었을 때였다. 비무장지대 확대로 이 땅이 평화지대로 바뀌는 상상도는 전쟁 발발까지 상황에서 쓴 것이다. 이 당시로서는 7·4 남북공동선언과 같은 통일 관련 남북협의를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때였다. 이 같은 상상은 신동엽의 일관된 소신이었던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시적 비전(vision)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가장 엄혹한 시기에 대결의 종식과 평화 시대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불러낸 비전일 수 있다.지난해 가을 이종구 화백의 전시회 '광장-봄이 오다'에서도 작가의 '예측'이 화제를 모았다. 그의 '봄이 왔다' 연작 중에는 남북한의 두 정상이 나란히 백두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모습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한 작품 두 점도 함께 전시되었다. 그런데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일행이 함께 백두산을 등반함으로써 '봄이왔다' 연작은 마치 예언처럼 현실에서 실현되었다. 이종구 화백이 예언가 일리는 없다. 그림의 구도는 지난해 4월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경계선을 넘어 북측 지역으로 갔다가 남측으로 되넘어온 장면이다. 작가는 이 장면을 두 정상이 공동경비구역의 경계선 대신, 백두산과 한라산으로 표상되는 국토의 남북을 자유롭게 오고 갔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가까운 미래에 온 민족이 남북을 자유로이 왕래하게 될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도 함축된 것이다.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하노이에서의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었다. 교착국면을 타개하고 평화체제의 기반을 다질 것이라는 다수의 예측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자 비관론자들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낙관주의자의 편인지도 모른다. 우연처럼 보이는 역사의 전개에는 시작과 끝으로 연결된 필연의 법칙과 '간지(奸智)'가 함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50년 전 한반도의 평화지대를 꿈꾼 신동엽 시인의 무구한 꿈이 지금 비무장지대에서 실현되고 있듯이 말이다./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2019-03-12 김창수

[경인칼럼]실리콘밸리의 캠핑 트레일러

마운틴뷰, 부자도시 반열 집값·임차료 껑충高연봉 신입사원들 '잠자리 해결' 짠하기만젊은층 판교밸리서 송도·청라로 이전 대비인천시 일자리委 '청년친화도시 청사진' 기대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프리웨이를 따라 남쪽으로 30분쯤 내려오면 마운틴뷰(Mountain View)라는 작은 도시에 이르게 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제법 높고 부드러운 산 능선이 눈에 들어오는데 도시 이름이 거기서 연유했음직하다. 옆에는 샌프란시스코 만(灣)이다. 태평양 바닷물이 금문교를 지나 격랑을 일으키며 내륙으로 들어온 뒤 흉악범들을 가둬놓았던 앨커트래즈 섬을 끼고 남으로 방향을 틀어 깊숙이 내려온 해역이다. 이 만의 남측지대를 따라 쭉 펼쳐지는 지역이 전 세계 기술혁신의 상징, 실리콘밸리다. 마운틴뷰는 이 실리콘밸리의 중심에 해당된다. 101번 프리웨이의 마운틴뷰 인터체인지 위쪽엔 '구글'이 자리 잡고 있고 아래쪽 쿠퍼티노는 '애플'의 본거지다. 세계 최대의 유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자인 '넷플릭스'와 전기차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테슬라' 등 우리가 알만한 세계적인 IT기업과 혁신기술기업들이 차로 30분 거리 안에 다 몰려있다. 실리콘밸리의 심장이자 두뇌인 스탠퍼드 대학이 위치한 곳도 차로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 일대에 본사를 둔 기업들은 미국에서 연봉을 가장 많이 주는 회사들이다. 고연봉자들의 동네인 만큼 도로 가장자리에는 '카라반'이라고도 하는, 컨테이너 크기의 캠핑트레일러들이 줄지어 서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들 갖고 있으면 저렇게 길거리에까지 즐비할까 싶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게 참 딱한 얘기다. 마운틴뷰를 비롯한 실리콘밸리 마을들이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반열에 오르면서 집값과 주택임차료가 껑충 뛰었다. 우리 돈으로 20억원 미만이던 타운하우스가 불과 몇 년 만에 30억원 이상으로 치솟았다. 좀 깨끗하고 조용한 곳의 방 1개짜리 아파트 평균월세는 350만원에 육박한다. 우리 돈으로 방 한 칸에 매월 350만원의 월세를 낸다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지난해 9월 USA투데이 기사에 따르면 평균연봉이 10만달러가 넘는 고액연봉 기업들일지라도 신입사원들의 초임은 평균 4만달러를 넘지 않는다고 했으니 연봉을 모조리 방값으로 내놓아야 할 판이다. 근처에 있는 스탠퍼드대학 졸업생들의 평균초봉이 7만6천500달러(www.payscale.com) 정도인데 그들의 수입으로도 숨이 턱에 차는 수준이다. 도로가에 주차해있는 캠핑트레일러는 그런 형편의 청년들이 택한 마지막 대안이다. 아침밥은 대부분 회사에서 제공되니까 임대한 캠핑트레일러로 잠자리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당장의 의식주 고민은 덜게 된다. 듣고 보니 짠하다. 우리 청년들의 사정은 이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나마 그곳은 사실상 완전고용상태라도 되지만 여기 이 땅에선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네들처럼 내 연봉을 방 한 칸 월세에 다 털어 넣어도 좋으니 제대로 된 일자리 하나 갖는 게 일생의 소원이라고 청년들이 절규하고 있다. 그런데 일자리를 갖게 되면 정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실리콘밸리의 경우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일자리만도 해결하기 벅찬 판에 무슨 사치스러운 소리냐고 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일자리만 만들어준다고 해서 우리의 할 일이 끝나는 건 아니다. 현재 보이는 지점만 응시하면 내일 나아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없다. 어렵사리 일자리를 마련해주더라도 그곳에 온전하게 머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그건 반쪽짜리 일자리 만들기에 불과하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얻고, 머물며,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늙어서도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세대의 삶을 지원하고 미래를 후원하는 우리의 수준을 한 차원 높여야 된다. 분당 판교밸리의 볶음우동 한 그릇 값이 1만4천원이라고 한다. 이래선 청년들을 언제까지고 붙들어 둘 수 없다. 판교밸리를 등진 청년들이 '송도밸리'나 '청라밸리'로 옮겨올 때 인천은 그들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 숙고와 고심 끝에 인천시장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출범했다. 5개의 분과위원회도 둔다고 한다. 청년친화도시의 종합청사진을 함께 그려주길 기대한다. 도로변에 캠핑트레일러가 보이지 않는 그런./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9-03-05 이충환

[경인칼럼]수도권 족쇄 손볼 때 됐다

경기남부, 세계최대 반도체 제조거점 부상공장신설·교통·환경영향평가 모두 거쳐야작금의 장기 불황 '수도권경제 옥죈 탓' 커'100년 산업정책' 정치논리에 휘둘려선 안돼호박이 넝쿨 째 경기도 품에 안겼다. 지난 21일 세계 2위 SK하이닉스가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인 (주)용인일반산업단지를 통해 경기도 용인시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했다고 밝힌 것이다. SPC는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 약 448만㎡(135만평)의 부지사용 허가를 요청했다. SK하이닉스는 공장부지 조성이 완료되는 2022년 이후 10년 동안 총 120조원을 투자해서 반도체라인 4개를 건설할 계획이다. 단지에는 SK하이닉스의 국내외 50개 이상 장비·소재·부품 협력업체들도 입주한다. 직접고용 1만7천명에 연관업체까지 감안하면 예상 고용효과는 10만명 이상이다.경기도 남부지역이 세계최대의 반도체 제조거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용인시 원삼면 바로 옆에는 삼성전자의 17개 메모리공장(기흥, 화성라인)이 있다. 지근거리의 이천시에 위치한 SK하이닉스의 기존 반도체단지까지 합치면 '반도체 트라이앵글'지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삼각벨트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500여 곳 내외의 국내외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업체들이 몰려 있다. 장차 이곳에서만 연간 70조~100조원의 반도체가 생산되어 중국 반도체 굴기에도 강력한 대항마가 된다.그러나 마지막까지 안심하긴 이르다. 수도권은 공장신설이 제한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국토교통부 장관이 주재하는 수도권정비위원회에서 공장용지로 승인을 받아야 하는 데다 교통, 환경영향평가도 모두 통과해야 된다. 정부는 민간의 투자의욕을 돕기 위해 각종 절차를 서두르는 분위기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2일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위원회에 산업단지 공급물량 추가 공급(특별물량)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3차 수도권정비계획에 따른 국가적 필요성 검토를 거쳐 수도권정비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는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심의는 오는 3월 중 개시된다.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 통과 및 산업단지 지정계획 반영·고시 등 행정절차가 마무리되는 2022년 첫 번째 제조공장(Fab) 착공에 나설 전망이다.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의 반발이 관건이다. 이번에 용인시와 함께 경쟁에 나섰던 천안, 청주, 구미시는 일제히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신규 반도체 단지의 용인시 입주는 국가 균형발전과 자치분권이라는 현 정부의 기조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지속가능한 발전도 저해하는 행위"라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정치적인 지역안배와 같은 돌발변수가 나올 경우 예상일정보다 더 늦게 정부승인이 날 수 있다"며 우려했다. 벌써부터 지역의 표심을 의식해 최종결정을 내년 총선 이후로 미룰 수 있다는 말들도 나온다. 더구나 내년이면 문재인정부 임기가 1년여밖에 남지 않아 레임덕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미국 뉴욕주의 '멘붕'이 떠올려진다. 세계최대의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지난 8일 신규고용 2만5천여 명의 '뉴욕 제2본사' 계획을 철회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아마존은 작년 11월에 뉴욕 롱아일랜드시티에 제2본사 부지 선정을 발표한 바 있다. 뉴욕시는 아마존에 30억 달러의 인센티브를 제시해서 지자체들과의 유치경쟁에서 승리했지만 물거품이 되고만 것이다. 아마존 유치에 올인 했던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민주당이 장악한 뉴욕의 정치권에 비난을 퍼부었다. 진보진영에서는 아마존 제2본사가 들어서면 인근의 집값이 올라 수많은 사람들이 외곽지역으로 쫓겨날 것이라며 반대논리를 펴온 것이다. '한물 간' 수도권규제가 화근이다. 영국은 1982년에 수도권공장 허가제를 완전히 폐지했으며 독일은 한술 더 떠 아예 수도권의 선택과 집중으로 방향을 틀었다. 글로벌 경쟁이 심해지자 일본정부는 2000년에 '수도권정비법'을 대폭 개정해서 수도권지역을 반경 300㎞로 확대하고 수도권 공장설립 제한도 철폐했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는 수도권경제가 위축될수록 수도권-지방경제 사이의 양극화는 더 심화될 뿐이다. 작금의 한국경제 장기부진도 수도권경제를 옥죈 탓이 크다. 100년 대계의 산업정책이 미국 뉴욕처럼 정치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9-02-26 이한구

[경인칼럼]사법농단과 민주주의의 위기

대립 정당 구도서 파생되는 '정치 사법화'개혁 않고 한국 민주주의 나아갈 수 없어재판거래·개입으로 국민들의 믿음 깨져정치권력과 유착 막는 제도적 보완 시급민주주의 운영의 핵심원리 중 하나는 견제와 균형이다. 견제와 균형 이론은 몽테스키외가 18세기 영국을 모델로 착안한 원리이며, 국왕, 귀족원, 평민의 의회로 구성된 영국의 체제는 그에겐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요소를 균형적으로 대변하는 이상적인 체제로 비쳤다. 삼권분립은 이러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미국적으로 변용한 원리이다. 한국정치의 대립적 정당 구도에서 파생되는 문제 중 하나가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다. 정치적 갈등이 정치적으로 해소되지 못함으로써 법률의 판단에 내던져지는 현상은 그 자체로 정치의 실종을 의미한다.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실정법 위반 여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정당 간 이해가 충돌할 때 타협이 배제된 채 고소·고발의 남발로 이어지는 현상은 정치의 왜소화를 촉진시킨다.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이 재판으로 넘겨졌다. 재판거래와 재판개입으로 사법정의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은 깨졌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만 100명이 넘는다. 이미 법원은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다. 아무도 법원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기지 않으며, 정의의 수호자로서의 사법은 설 땅을 잃었다.사법부는 국회와 행정부와 달리 선출 권력이 아니지만 국민들은 사법부를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로 인식했다. 그러나 정치부재의 귀결인 한국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사법의 정치화라는 또 다른 모순을 낳았다.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는 동전의 양면이며, 이를 개혁하지 않고 한국 민주주의는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다. 인민에 의한 지배를 골자로 하는 민주주의와 헌법 및 법률로 제도화된 헌정주의는 모순과 보완의 양면성을 지닌다. 따라서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사법부의 지위와 권한은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함으로써 대표성과 국민에 대한 책임성을 갖는다. 그러나 사법부의 지위는 애매하다. 그들은 누구에 의해 대표되고 누구에게 책임을 지는가? 물론 대법원장은 선출권력인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민의 정치적 결단인 헌법과 법률에 의해 신분과 독립성이 보장되지만 민에 대한 사법부의 책임성은 헌법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매하다.민주주의의 대표성과 책임성에서 근본적 취약성을 안고 있는 사법부가 정치권력과 야합하여 기득권을 온존·강화시키려 한 사법농단은 정치권력과 사법권력의 이해일치에서 비롯된 민주주의의 위기다. 또한 사법농단 과정에서 나타난 전·현직 국회의원의 연루 의혹은 선출 권력이라 할지라도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관행이 일상화되었음을 보여줬다. 삼권분립이란 입법·행정·사법부 중 한 권력이 다른 두 권력으로부터 견제 받는 동시에, 다른 두 부서를 견제할 수 있을 때 의미를 갖는다. 사법권력은 군사독재 정권 때 정권의 하수인으로 기능했던 적이 있다. 엄혹한 독재시절에 정의의 수호자로서 온몸으로 부당한 권력에 맞서기는 커녕 권력에 기생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강화하고자 했던 한국 사법의 역사에서 양승태 사법부는 민주화 이후에도 교훈을 찾지 못했다. 정치가 사법을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사법이 정치에 기대어 권력과 기득권을 강화하려 한 사실은 정치와 사법이 모두 과거 권위주의 때의 관행과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사법을 사유화한 대법원장과 그를 추종했던 판사들의 정치권력과의 거래는 공정한 판결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김경수 도지사 재판결과를 두고 '적폐판사의 저항'을 운운하는 집권 여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연루 판사들의 기소를 계기로 사법에 대한 민의 통제를 강화하고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근원적으로 막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9-02-19 최창렬

[경인칼럼]보수의 실존을 위협하는 보수정당

한국당 지지율 지난 연말부터 완만히 상승건강한 새출발 바라는 세력의 희망 때문재건 집중돼야 할 여론 '5·18 망언'에 이탈시간 걸리더라도 혁신 보수정당 창당이 답박근혜 탄핵과 대선,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폐족을 면치 못할 것 같던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지난 연말부터 완만하게 상승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오류와 집권여당 구성원의 오만 덕이었다. 물론 김병준 비대위 체제를 마감하기 위한 27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황교안, 오세훈 등 헤비급 대표 주자들이 나서면서 컨벤션 효과가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지율 상승의 결정적인 배경은 합리적인 보수의 가치를 대변할 건강한 보수정당의 새 출발을 바라는 보수세력의 희망이다.한국에서 보수세력은 엄연히 존재하는 정치적 실체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실체를 대변하는 건 정당이다. 정당의 대의 기능이 통제됐던 이승만 정부와 군사정권 시절은 제외해도, 김영삼의 문민정부를 비롯해 보수세력을 대변했던 보수정당은 세 번 집권했다. 진보세력의 3기 집권과 같다. 대한민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진영의 뚜렷한 양립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대립적인 세력의 양립은 대의의 균형을 가져왔다. 특정 세력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산업화와 민주화가 균형발전을 이루었고, 성장과 분배를 병행할 수 있었고, 대북정책의 강온전략이 효과를 발휘했다.박근혜 탄핵 이후 세력간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 자유한국당은 시쳇말로 멘붕에 빠졌다. 박근혜를 중심으로 갈라진 계파 충돌로 총선에서 실패한 뒤 탄핵사태가 불거지자 탄핵파와 반대파로 분열해 분당사태로 치닫고 당을 수습하지 못했다. 정신없이 정권을 넘겨주었다. 정권교체는 탄핵정국의 당연한 귀결로 인정하더라도, 보수정당이 박근혜를 중심으로 양분된 것은 합리적인 보수세력에게 절망적이었다.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공당의 국회의원들이 박근혜를 중심에 세워놓고 사적 이익을 견주는 사당적 행태에 진저리를 친 것이다.보수정당의 지리멸렬은 보수-진보 양립의 정치 바탕을 무너트렸다. 후유증은 심각하다. 보수세력의 질문이 봉쇄됐다.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을 묻지 못했다. 경쟁력 약화와 침체를 걱정하는 산업현장의 목소리가 묻혔다. 진행 중인 남·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것이 확실한지 확인하지 못한다. 보수세력을 대변할 스피커가 고장난 탓이다.정치 균형의 상실은 보수진영에겐 절망이지만 진보진영에겐 위기이다. 국민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목포 투기와 부친 서훈특권이 의심되는 손혜원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대동하고 탈당기자회견을 갖는다. 더불어민주당은 김경수를 법정구속하고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를 저주한다. 법관 독립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 법치의 부정이나 마찬가지다. 법과 상식을 초월하는 '내로남불' 행태가 '독선'으로 고착되면서 적폐청산 주체의 적폐가 누적되고 있다. 보수라는 일각이 무너지자 진보라는 일각이 비대해져 위태로운 깽깽이걸음을 걷는 형국이다.자유한국당의 27일 전당대회는 보수정당의 재건은 물론 한국 정치의 정상화라는 차원에서 의미있는 이벤트로 주목받아야 한다. 하지만 보수정당의 재건이라는 제한적 목표 마저 불투명해졌다. 북미정상회담 일정과 겹친다는 이유로 당 대표 후보들이 전당대회 연기 여부를 둘러싸고 갈등하는 바람에 엉망이 됐다. 박근혜의 옥중정치로 보수정당의 신생을 가로막고 나섰다. 결정적으로 '5·18 망언'이 보수정당 재건에 집중돼야 할 여론을 이탈시켰다. 법으로 확정된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한 지만원의 개인의견이 보수정당, 보수세력의 입장으로 둔갑했다.10% 대에 머물던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30%에 근접했다. 흩어진 보수세력의 실체는 이보다 크다. 법과 상식을 존중하는 합리적 보수세력이 고장난 정당을 의지해야 하는 현실은 비극적이다. 자유한국당의 개보수는 답이 아닌듯 싶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혁신 보수정당의 창당이 정답이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9-02-12 윤인수

[경인칼럼]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지방 혁신

다양한 활용 가능한 '4차산업혁명'의 뿌리중앙집중 서비스 문제 극복 신뢰보장 기술새로운 단계로 민주주의 발전시킬 수 있어인천시, 지역특성 고려 도시전략 수립해야블록체인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암호화폐의 기반 기술로 인식되어 왔지만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4차산업혁명의 '뿌리' 중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10년 내 블록체인 플랫폼이 세계 GDP의 1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될 정도로 폭발적 확장되는 테크놀로지이다. 이미 월마트는 블록체인 기술에 사물인터넷을 결합하여 중국 업체들이 납품하는 돼지고기의 사육과정과 육질, 유통경로와 위생상태를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다. 무역거래에서 수출입의 전 과정을 하나의 체인으로 연결하여 실시간 확인 가능한 선박물류시스템의 블록체인화도 추진되고 있다. 블록체인은 중앙 집중식 서비스가 가지는 문제점을 극복하고, 시스템으로 신뢰를 보장하는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분산데이터베이스 기술을 통해 데이터를 물리적으로 분산시켜 다수의 이용자가 대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P2P(peer-to-peer) 방식으로 서버나 클리이언트 없이 컴퓨터와 컴퓨터 사이를 연결하는 통신망이다. 연결된 각각의 컴퓨터가 서버이자 클리이언트 역할을 하며 정보를 공유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기존의 화폐 시스템, 금융시스템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으며 공공서비스와 연계할 수도 있다. 블록체인의 기록 분산 저장, 분산원장 기술은 비용은 적게 들고 장애에 강하기 때문에. 국가나 중앙은행과 같은 기관의 도움 없이도 강력한 신용 효과를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지방정부가 금융과 권력의 탈중앙화하는 혁명적 변화도 가능하다고 한다.현재 90종 이상의 지역화폐가 발행되고 있다. 아직 활발한 거래는 이뤄지지 않고 있으나 은행과 같은 중개자 없이 직접 결제가 가능하다. 서울시 노원구는 블록체인 기술 활용 지역화폐 '노원(NW)'을 발행하고 있다. '노원'은 어플과 카드의 QR코드를 통해 노원 가맹점 122개에서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으며, 사용자 간 선물과 거래도 가능하다. 또 개인이나 단체가 노원구 내에서 자원봉사, 기부, 자원순환 등의 활동을 할 경우 그 대가로 지역화폐 노원을 제공하여 적립할 수 있도록 했다. 직접민주주의를 네트워크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신뢰검증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블록체인 투표시스템은 암호화된 분산원장으로 조작이 불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어 해킹이나 조작 우려를 불식하고 신뢰성 높은 블록체인 기반의 전자투표가 가능해진다. 적은 비용으로 신속한 전자투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지방정부의 경우 지역혁신 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민자치의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민자치는 주민자치회에 권한을 이양하고 의사결정 체계를 혁신하여 주민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블록체인 기술을 전자투표를 통한 주민들의 의견수렴에 활용하면 주민 참여형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으며 자치구, 광역시 단위로 확대하여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를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는 블록체인 기반의 전자투표제도인 주민참여 블록체인 심사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하여 '따복공동체'에 적용하여 실험하고 있다. 중앙 정부는 축산물 이력관리 컨테이너 물류효율화, 부동산 정보 등의 블록체인화 시범사업에 투자하면서, 지방정부의 투자도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시는 '코리아 블록체인엑스포'를 개최하면서, 향후 5개년간 2천억원을 투자하여 서울을 블록체인도시로 조성하겠다고 선언하였으며, 강원도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스마트도시 조성, 지역화폐도입등을 통해 공공서비스를 혁신하고는 지역경제 성장전략에 집중하고 있다.이처럼 블록체인 기술은 테크놀로지로서 4차산업혁명의 요소인 동시에 사회의 투명성과 초신뢰(utra-trust)를 통한 사회 혁신을 촉진하는 시빅테크(Civic-tech) 라는 점에서 인천시와 시민사회도 한층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블록체인 도시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2019-01-29 김창수

[경인칼럼]굿바이! 아고라

최근 문 닫은 포털 '다음'의 온라인 토론장靑 국민청원 이후 '정치적 의제' 기능 상실전국 지자체들 속속 도입 '여론 독점' 우려원초적 이해들만 노골적… 극복할 수 있나포털 다음의 온라인 토론장 '아고라'가 지난 7일 문을 닫았다. 대한민국 제1의 공론장(公論場)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2004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이날 폐쇄되기까지 15년 동안 3천만 건의 글이 올라왔다. 20만 건의 청원에 대해선 4천500만 건의 서명이 이어졌다. 개인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데서부터 부조리의 고발, 구태의 혁파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됐다. 2008년 '광우병사태' 이후로는 정치적 경향성을 띤 글들과 청원이 주류를 이루면서 아고라 자체가 논쟁의 대상이 됐다. 이 역사적인 온라인 공론장의 폐쇄를 다루는 진보와 보수 양 진영 언론의 기조가 압축(壓縮)이다. 경향신문은 "제2의 명동성당이라는 별칭을 얻었다"고 평가한 반면 조선일보는 "일부 좌파세력들의 토론장으로 변질돼 버렸다"고 짚었다.아고라는 왜 문을 닫게 됐을까. 운영사인 카카오 측이 스스로 밝혔듯이 가장 큰 이유는 "온라인 환경과 인터넷 트렌드 변화로 인해 이용자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소통공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같은 새롭고, 강력하고, 매혹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다는 얘기다. 카카오 측이 명시하지 않은 또 하나 커다란 이유는 어쩌면 아고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었을 '정치적 의제설정' 기능의 상실이다. 청와대가 자체 홈페이지를 개설해 국민들로부터 직접 청원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아고라 '청원'의 이용자 규모나 호응도가 급속하게 줄었다. 시민사회 영역에 속해있던 사회적 공론장 기능이 국가로 '이관'되면서 빠르게 위축되고 급기야 막을 내리게 된,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케이스다.이렇듯 대한민국 최고·최대 온라인 공론장을 폐쇄로 이끌 정도로 청와대의 온라인 국민청원이 히트를 치자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도 앞다퉈 온라인 청원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인천광역시도 뒤질세라 지난 해 12월 3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맨 왼쪽 상단에 '소통광장' 항목이 있는데 이 항목에서도 가장 왼쪽 위에 '인천은 소통e가득'이라는 시민청원코너가 자리 잡고 있다. 인천시의 의욕을 짐작할 수 있겠다. 예상했거나 기대했던 대로였을까. 아니면 뜻밖이었을까. 인천시의 온라인 청원 또한 시작부터 흥행(興行)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민청원에 30일 동안 3천 명 이상이 '공감'했다. 청라국제도시 국제업무지구 개발 방향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약속대로 지난 18일 박남춘 시장이 10분20초 분량의 영상으로 답했다. "사안이 있을 때마다 사퇴와 같은 인사문제로 귀결된다면 소신 있는 공무를 수행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민청원제도의 취지에도 맞지않다"고 밝혔다. 답변 이튿날까지 조회 수가 4만1천600건을 넘어섰다. 결과야 상식적이라 해도 씁쓸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이게 바람직한 현상일까 하는 물음을 여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국민과의 소통과 여론수렴을 앞세워 온라인 청원제도를 독점해나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다. 공론장을 "사회의 공익사항에 대한 다측면적 정보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이 공익사항에 관해 발언을 통해 따지고 여론적 압력으로 정부의 정책결정을 통제하고 추적, 폭로, 칭찬과 비판, 책임추궁, 악평과 호평 등에 입각하여 개인들, 사회적 권력자, 국가관리들의 반 공익적 권력남용을 제재하는 쟁론적 논의의 장"(황태연, 하버마스의 공론장이론과 푸코비판)이라고 정의하는데 동의한다면 이런 공간을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온라인 청원제도를 지금 이 시대의 가장 유력한 공론장으로 인정한다면 더욱더 그러하다. 공론장을 통해 감시의 객체가 되어야 할 대상들이 그 장을 스스로 운영하는 현실은 모순이다.아고라는 토론과 숙의를 거쳐 공론(公論)으로 나아가는데 실패했다. 아고라를 대체한 공적 영역의 공론장에서도 이미 원초적 이해들만 노골적이다. 연말 연예대상 수상자를 바꿔야 한다는 국민청원도 올라오는 판이다. 극복할 수 있을까./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9-01-22 이충환

[경인칼럼]불안심리가 경제활성화의 주적(主敵)

작년 취업자 증가, 9년 만에 가장 저조해단기부동자금 1117조… 10년간 40% 증가외환위기 후 안전자산 선호지수 더 높아져선순환 담보 안된 정책 '언 발에 오줌누기'지난해 경제실적이 별로이다. 9일 발표한 통계청의 '2018년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 증가가 9만7천명에 그쳐 9년 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을 낸 것이다. 실업자수는 전년보다 5만명이 증가한 107만명으로 2000년 이후 가장 많다. 현 정부의 '일자리정부' 타령이 민망하다.올해 경제성적도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경제는 사람들의 심리를 먹고 크는 법인데 지난달 한국경제연구원이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국민 1천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019년 경제전망을 '부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이 70%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달 24일 서울연구원이 서울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유사한 분위기가 확인되었다. 극히 일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여서 확신은 금물이나 대다수 서민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느 누가 국내에 투자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정부는 금년 상반기 중에 일자리 및 사회간접자본 예산 61%를 쏟아부어 경기를 진작시키기로 했다. 2003년 카드 사태를 계기로 도입한 조기집행 중 가장 규모가 크나 재정의 경기진작 효과가 갈수록 떨어져 성과는 의문이다.주목되는 것은 넘쳐나는 국내의 부동자금이다. 금융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예금이나 머니마켓펀드(MMF),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MMDA) 등 단기부동자금이 무려 1천117조원에 이른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이 2009년의 800조원에서 10년 만에 무려 40%나 불어난 것이다. 작년 하반기만 해도 8월 대비 3개월 만에 부동자금이 28조원이나 증가했다. 넘쳐나는 국내 부동자금이 선순환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것이 정답이나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일본의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유발한 통설적 견해는 1985년 미국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대미무역 흑자국인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을 압박해서 해당국가의 통화가치를 10% 이상 끌어올리도록 한 플라자협정을 든다. 이후 엔화 환율이 상승하고 금리가 하락하자 해외자금들이 일본에 대량 유입되어 주가와 부동산가격을 끌어올리는 버블경제가 초래되었지만 일본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장기경제부진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 브린튼 미국 하버드대 라이샤워일본연구소 소장과 일본의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 야마기시 토시오(山岸俊男) 교수는 공저한 '위험에 등을 돌린 일본'(2010)에서 일본인들의 지나친 위험회피 성향이 '잃어버린 20년'의 근본원인이라 지적했다.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조사대상 일본인의 73%가 자신이 위험기피자라 응답했다. 버블붕괴는 일본인들의 위험회피지수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은행이자율이 0%에 가깝지만 주식으로 원금을 까먹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돈이 은행으로만 몰린다. 배당과 주식자본 이익에 대한 세금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음에도 가구총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6% 수준이다.국내에서도 일본과 유사한 현상들이 간취되는데 1997년 외환위기가 결정적이다.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이 낭패했음은 물론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은행들마저 줄줄이 폐업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격이니 종신고용시스템의 붕괴와 고령화는 한국인들의 안전자산 선호지수를 더욱 높였다. 부동자금 탓에 부동산투기가 만연하는 등 국민경제는 더 불안해졌다.임상심리학자 주디스 바드윅의 미국 장기경제부진에 대한 진단도 눈여겨볼만하다. 1947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의 연간 GDP성장률은 3.5%였지만 2002년 이후 이 숫자는 1.9%로 떨어졌다. 오바마정부와 진보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저성장의 시대를 '뉴 노멀'이라 명명하고 그 원인을 인구구조 변화 등에서 찾는다. 그러나 바드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30여년 장기호황으로 미국인들이 너무 오랫동안 기업이 제공하는 수많은 혜택에 안주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자금 선순환이 담보되지 않는 경제활성화 대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이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더 안전지대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법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9-01-15 이한구

[경인칼럼]사회개혁은 정치개혁에서 출발해야

국민들 국회의원수 늘리는데 부정적 입장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인한 변화 인식 낮아기득권동맹 방치땐 지속가능한 발전 불가능선거제 획기적 개혁만이 한국 바꿀 수 있어 올해 정치의 키워드는 내년 총선과 한반도 평화 의제, 경제 등이다. 여권으로서는 경제지표의 개선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않으면 위기는 깊어질 수 있다. 집권 3년 차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직면한 위기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일 수 있다. 지지율이 반등 국면으로 가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개혁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변화는 정치 패러다임이 바뀔 때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의 작동구조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현재 권력도 결국은 기존의 정치문법에 따라 움직인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불편하지만 현실을 보는 인식과 사고에서 보수와 진보 간의 시각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대결 구도는 정치부재를 가속화하는 구조적이며 결정적 요인이다. 이러한 정치패러다임을 바꾸지 않고 한국사회가 보다 진전된 사회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은 반정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적대와 대립에 입각한 지지층 결집이라는 아날로그식의 정치의 생존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정당의 생성과 존재양태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결국 선거제도의 혁신으로 귀착된다. 국민들은 선거제도 개혁엔 동의하지만 국회의원 증원에는 부정적이다. 또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다. 대체로 내용에 대한 이해 부족과 편견 때문이다. 이 제도는 불가피하게 국회의원 정수의 확대를 동반한다. 정치에 대한 무한불신을 가지고 있는 유권자들은 의원 정수 확대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에게 소요되는 예산을 동결하기 위하여 의원 1인당 경비를 줄인다고 해도 국민들은 믿지 않는다. 한국사회의 기득권 동맹의 공고화를 방치한다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시대지만 절차적 차원의 민주주의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로의 진화는 요원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방관하고 일자리와 고용만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과장하는 수구야당의 태도는 반시대적이다.소수와 사회적 약자들의 이해가 정당체제 내에서 반영되지 않는 지금의 구도에서 사회적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은 실질적으로 가능한가. 연동형 비례제의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어떠한 제도도 완벽하게 순기능적인 제도는 없다. 그러나 촛불혁명 때 주권자의 일반 의지를 담보했던 시민들의 요구와 주장은 현행 정당구도에서 수렴되거나 반영될 수 없다. 시민사회의 균열과 갈등이 조직화되지 않는다면 정당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서구의 부르주아 혁명을 가능케 했던 동인은 16~18세기에 발흥한 신흥 상공업 계급의 이해를 직접 정치영역에서 관철시키고자 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부르주아지들은 노동계급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구체제를 타파하고 기본권의 보호와 국가의 간섭을 배제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소외된 프롤레타리아도 그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정치영역에서 대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 보통선거다. 이러한 선거권의 확대가 바로 민주주의의 역사다. 정당은 PART라는 어원에서 보듯이 부분을 대표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은 어느 계층도 대표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는 대표성·책임성· 참여성이다. 지금의 선거제도는 어떠한 원리와도 친화적이지 않다.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정치영역에서 대표되지 않는 계층의 이해는 관철될 수 없다. 유치원 3법은 결국 말뿐인 패스트 트랙으로 넘어갔다. 그것도 1년의 유예기간을 둠으로써 여야 합의가 없다면 2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민생은 결국 정치영역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한국사회의 소수와 약자들의 이익은 대표되지 않을 것이다. 선거제도의 획기적 개혁만이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9-01-08 최창렬

[경인칼럼]문재인 정부도 역사의 한 줄기일 뿐이다

국민은 정권 교체해 가며 산업·민주화 성취특정집단 완벽한 역사 쓰려 조바심 칠일 아냐정부·집권여당, 겸손해지려고 노력 한다면 새해에는 사회의 많은 갈등 해소될 수 있어기해년 새해를 맞아 사람들은 덕담을 나누고 새해 각오를 다지는 각계의 신년사는 풍성하다. 덕담과 신년사의 각오가 실현된다면 대한민국은 2019년 한해에 역사에 없었던 천국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현실이 각박할수록 꿈과 희망은 장황해진다.1월 1일은 2018년 12월 31일의 연장일 뿐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기해년을 맞아 갑자기 달라질 리 없다. 지난해 마지막 날 국회 운영위가 그 증거다. 청와대 특감반 민간인 사찰 의혹을 놓고 청와대와 야당은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말했다. 국민 눈에는 국적이 다른 외국인들의 시비로 보였을 것이다. 장담하지만 말이 안통하는 외국어 정치는 새해에도 어김없이 반복될 것이다.황금돼지의 해라고 하지만 밑천 없는 장사는 없는 법이다. 2019년 경제의 밑천은 2018년의 경제다. 밑천만 보면 올해 경제전망은 불온(不溫)하다. 세계 경기의 하강국면이 예사롭지 않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의 결과가 어디에 미칠지 안 가본 길을 가야하는 두려움이 크다. 작년의 자동차, 철강산업 쇠퇴가 올해 반도체로 이어지면 대한민국 주력산업은 총체적 위기에 빠진다. 황금돼지의 기운에 편승한 낙관은 막연하다.정치는 막장이고 경제는 어려우니 새해는 글렀다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가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그저 어떻게든 살아날 구석을 만들어 버틴 거지." 지난 연말에 만난 한 기업인의 얘기다. 1990년대에 제조업을 시작해 IMF환란, 세계금융대란 등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아남은 사업가다. 그의 말대로 국민은 위기가 닥치면 모든 생존 수단을 동원해 살 길을 뚫어왔다. 이것이 현대사다. 대한민국은 위기와 극복의 무한궤도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를 적립해왔다.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는 국민이 적립한 일상의 누적이자 역대 정권이 분담했던 역사적 역할의 총합이다.면면히 흐르는 역사의 강(江)에서 문재인 정권도 지류이자 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 역사의 본류를 자임하고 전체임을 자처하면서 감당하지 않아도 될 고난을 감당하고 있다. 고난의 원인은 정권의 자부심이다.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자신들의 지고지순한 DNA를 강조한다. 초월적인 도덕성과 순수성에 기반한 정권의 국정운영에 오류는 없다는 태도는 너무 완강해 강박에 가깝다.무오류 정권의 정책은 수정되지 않는다. 남북정상회담, 소득주도성장, 원전 폐지 등이 그랬다. 북한 비핵화를 명기해야 한다는 비판도,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 요청도, 원전산업 붕괴 우려도 사소한 시비나 불순한 의도일 뿐이다. 대변인은 문재인 정권은 민간인 사찰 DNA가 없다고 단정했다. 여당 의원에게 조국은 '유전자 가위'고 김태우는 '불량 유전자'다. 대통령은 강력한 '경제실패 프레임'으로 정부의 경제적 성과가 빛을 잃는다고 답답해 한다. 야당의 비판은 적폐의 대변이고, 언론의 지적은 순결한 정권을 향한 저격일 뿐이다.정권이 스스로 완벽을 자처할수록 작은 상처에 휘청인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정권과 다르다. 그러나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완벽할 수는 없다. 상대적 우월감을 절대적 선으로 착각하면 실수를 교정하고 방향을 전환하기 힘들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민중으로부터 사랑받지 않아도 좋지만 원망받지는 말아야 한다"며 "시민들이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협 없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만 해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야당의 사찰의혹에 대해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지난 1년 대통령을 떠난 민심이 만들어낼 호랑이는 얼마나 무서울 것인가.역사의 주체는 국민이다. 국민은 정권을 바꿔가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현대사의 본류를 이루어 왔다. 남북관계나 경제도 마찬가지다. 국민은 정권을 바꾸어 가며 긴호흡으로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다. 특정 정권이 완벽한 역사를 만들겠다고 조바심 칠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과 집권여당이 역사와 국민 앞에 겸손해지면 우리 사회의 많은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 그래야 2019년 한해가 역사에 의미있게 보태질 것이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9-01-01 윤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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