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삼성병원을 보면 삼성의 미래가 보인다?

메르스 2차진원지로 ‘부분 폐쇄’ 대형사고 터져철저했던 원칙주의 무너진 ‘동네병원’으로 전락불안한 지배구조 전세계 헤지펀드에 그대로 노출이상하다. 어떻게 이지경까지 됐을까. 그냥 지나치기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애플과 한 판 겨룰 수 있는 지구 상 유일한 기업, 삼성 얘기다. 삼성이 이상하다. 지난 5월 1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의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 회장이 초대 이사장을 지냈고, 부친 이건희 회장이 맡았던 자리를 물려받는다는 점에서 그룹 경영권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승계된 상징적인 조치이며, 마침내 ‘이재용의 삼성 시대’가 개막됐다고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그러면서 삼성이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지배구조를 갖추고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데서도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당부도 했다. 그로부터 한달 뒤, 1982년 설립된 이래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보육사업을 펼쳐왔던 삼성생명 공익재단이 1994년 건립해 운영 중이던 삼성 서울병원이 메르스 2차 진원지로 지목되면서 부분 폐쇄됐다. 이재용 부회장이 국내외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이사장으로 취임한 지 한달만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형사고가 터진 것이다.큰 사고 앞에는 늘 전조(前兆)가 있는 법이다. 지난 11일 메르스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특별위원회에서 “삼성병원이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국회의원의 지적에 삼성병원 감염내과 과장은 “국가가 뚫렸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삼성병원의 반박에 회의장은 술렁였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신속히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 약속으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했을 삼성이었다. 그런데 일개 과장이 사과 대신 국가에 책임을 전가하는 말을 서슴없이 뱉어냈다. 그로부터 3일 후에야 삼성병원은 고개를 숙였다. “모든 국민이 고통받는 엄중한 시점에 신중치 못한 발언이 나왔다”며 “대규모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으로서 집단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데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삼성병원의 개원은 종합병원의 새바람을 일으켰다. 환자를 잘 수술해 달라거나 봐달라며 환자가족이 고마움의 표시로 의사와 간호사에게 주었던 ‘촌지’라는 관행을 없앤 것도 큰 파격이었다. 촌지를 받은 의사와 간호사를 파면했다는 말도 나돌았다. 최고의 의료진 , 최고의 시설로 환자의 수술과 관리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다른 대형병원들의 서비스도 크게 향상됐다. 한국 의료수준이 한단계 상승한 것이다. 이렇게 삼성은 늘 ‘1등주의’를 표방했다.개원초 환자 가족 1인에 한해 병실출입이 가능했고, 시간을 정해 환자면회시간을 철저하게 지켰던 ‘원칙주의’ 삼성병원은, 그러나 이제 7세 어린이도 부모 손을 잡고 응급실을 무상 출입할 수 있는 ‘동네병원’으로 전락했다. 슈퍼전파자로 알려진 14번 환자가 병원 이곳 저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병을 옮겨도 그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는 병원이 됐다. 메르스 확진 환자의 절반 이상이 삼성병원내에서 감염됐다. 삼성병원 의사인 138번 환자는 발열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격리되지 않고 10여일간 회진을 다녔다. 언론들은 자만심이 부른 치욕이라고 했지만, 이 지경이 된 것은 삼성생명 공익재단이 순수한 설립이념을 스스로 망각했기 때문이다.공교롭게도 삼성그룹은 지금 미국 헤지펀드 엘리어트 매니지먼트의 공격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후계자 승계작업을 끝내려던 일정도 차질을 빚고 있다. KCC에 자사주를 매각하는 등 방어에 나섰지만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에 엘리어트를 몰아낸다 해도 이것이 끝이 아니라 어쩌면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설립이념이 완전히 무너진 삼성병원에 메르스가 침입해 삼성제일주의를 와르르 무너뜨렸듯, 삼성그룹의 허약하고 불안한 지배구조는 이제 전 세계 헤지펀드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그 틈을 노리고 내성을 가진 더 강력한 제2 제3의 엘리어트가 공격을 감행할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삼성병원을 보면 마치 삼성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섬뜩하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5-06-16 이영재

메르스, 소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정부

허둥대며 제대로 대처도 못하는 정부 ‘한심’국민안전 잘 지키면 국가이미지 상승 당연한데…효율적 대책으로 안심 시키는 모습 보고 싶을뿐캘리포니아 주립대 의대에서 생리학 교수로 재직하는 제라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쓴 총, 균, 쇠 라는 책이 있다. 명저로 꼽혀 퓰리처상을 받았고 베스트 셀러에도 올랐다. 이 책에서 제라드 교수는 세균의 진화와 전파경로에 대한 흥미 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세균(바이러스)은 단순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영리한 바이러스는 번식을 위해 숙주로 사용하는 매개체를 죽이기보다는 적당히 아프게 하면서 자가 증식을 통해 인간의 면역체계에 대응해 가는 방식으로 생존능력을 높인다는 것이다.제라드는 인류가 짐승들을 가축화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가축이 가진 질병들이 인간에게 옮겨지고 세균이 변이되면서 새로운 질병들이 나타나고 있고 확산속도도 빨라진다고 지적했다. 특정 지역의 풍토병이 세계화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현상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역사를 보면 세계화란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소한 병이 갑자기 퍼지면서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은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4세기에 유럽을 침략한 몽골군이 중국 운남성의 풍토병인 흑사병을 유럽에 퍼트려 당시 인구의 30% 이상이 사망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중앙아메리카의 아즈텍 제국이나 남미 잉카제국도 총과 말로 대표되는 군대의 침입에 더해 신대륙에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천연두를 스페인 인들이 퍼트려 수백만의 인디언을 숨지게 한 것이 멸망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특정 지역에서 발병해 그 지역주민들에게만 감염되는 풍토병이라고 무시해선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촌 전체가 하나로 묶이면서 풍토병이 특정 지역에 머물지 않고 순식간에 세계로 번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풍토병 중에서 글로벌화 되면서 악명을 떨친 에볼라와 에이즈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메르스도 따지고 보면 중동지역의 풍토병이다. 사막도 아니고 낙타도 기르지 않는 우리가 메르스에 떨게 된 건 풍토병에 무지한 데다 대처까지 서투른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메르스에 대응하는 정부의 대처는 무능하다 못해 한심하다. 허둥대기만 하면서 무엇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이게 첨단의료기술을 자랑하는 21세기 대한민국 정부의 모습인지 헷갈린다. 메르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몰라 SNS를 타고 번지는 소문들을 괴담이라며 단속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여론은 싸늘했다. 괴담을 단속하려 하지 말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여론은 백번 옳다. 단속에 쏟는 노력을 메르스 퇴치에 기울여 질병을 퇴치하면 괴담은 자연히 사라진다는 세간의 반응은 정부의 대처가 얼마나 분별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질병이 확산되고 있으니 위기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국회의 추궁에 국가 이미지 때문에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답변은 일의 선후조차 분간하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 중요한 건 국가의 이미지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고 그게 잘 지켜지면 국가 이미지는 자연스레 좋아진다는 당연한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메르스에 헤매는 정부를 보면 지난해의 세월호 참사에서 도대체 뭘 배웠는지 의심스럽다. 2002년에 유행했던 사스에선 또 무엇을 배웠는지 이해할 수 없다.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빗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뒤늦은 대처를 비꼬고 있긴 하지만 지금 우리 정부를 보면 지금이라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라고 권하고 싶다. 더 이상 똑같은 실수로 소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외양간은 철저하게 고쳐야 한다.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국민들을 안심하도록 다독이며 효율적인 대책을 갖고 믿음직하게 끌고 가는 그런 정부를 보고 싶다. 그게 이뤄질지는 의문이지만…./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2015-06-09 박현수

국회법 개정안의 경우

입법부, 지나친 정부압박 ‘다수 횡포’로 전락할 수도靑, 국회 정면충돌 시사… ‘갈등 최소화’와 어긋나행정마비·권력분립 침해 ‘헌법가치 훼손’ 근거 미약지난주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입법부와 청와대의 대립이 표면화되고 있다. 청와대는 개정안이 행정입법을 국회가 과도하게 제한함과 아울러 삼권분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모법의 취지나 내용을 위반한 시행령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국회의 권한은 정당한 입법권의 행사라는 입장이다.이 사안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충돌과 여권내 정치지형의 두 가지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각론은 더 복잡한 양상이다. 당청간의 갈등을 기본축으로 당내에서 친박과 비박의 대결구도가 노골화될 수 있다. 반면에 살아있는 권력을 의식하여 새누리당 지도부가 몸을 낮출 수도 있다. 여권내의 갈등이 증폭될 수도 있고 수면 아래로 잠복할 수도 있다. 여권내의 역학관계의 변화도 나타날 수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새누리당이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지거나 설령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청와대를 의식한 새누리당 지도부가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수정을 가하고자 한다면 여야 관계는 가파른 대치국면을 피할 수 없다.한국은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혼합된 제도를 가지고 있다. 대통령제의 작동 원리가 입법·행정·사법의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것이지만 우리의 권력구조는 입법부와 행정부 권력의 융합이란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현역의원이 국무위원을 겸할 수 있는 구조, 대통령의 법률안 제출권도 그 예다. 그러나 청와대가 대통령 특보와 현역의원의 겸임으로 권력분립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침묵하다가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 권력분립에 위배 된다는 주장을 펴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는다.대통령과 입법부는 모두 국민의 선출에 의한 헌법기관으로서 이원적 정통성을 갖는다. 따라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교착과 대립은 대통령제의 숙명이기도 하다. 집권당의 의석보다 야당의 의석이 많은 분점정부의 경우에 대통령이 야당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야당을 설득함으로써 소수 정권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론적으로 분점정부가 정국의 교착을 가져올 개연성이 있으나 여소야대 정국을 의미하는 분점정부 상태가 국정 운영을 마비시킨다는 논리는 그래서 타당하지 않다. 같은 논리의 연장에서 청와대가 국회의 시행령 수정을 강화한 법안을 권력분립의 위배라고 보는 건 논리의 비약이다. 입법부가 행정부의 시행령 자체를 일일이 간섭한다는 것이 아닌 바에야 모법의 취지에 합치하지 않는 조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물론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서 시행령에 관한 수정 변경요구가 강제성을 갖느냐의 문제는 별개로 조정이 가능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정치는 기본적으로 권력현상이다. 권력을 획득·쟁취하고자 하는 세력간의 다툼이 정치의 기본 요소다. 권력을 어떻게 통제하고 어떤 제한 조건하에 두느냐 하는 방식이 민주주의의 원활한 작동에 사활적이다. 다수가 모든 힘을 독점하게 될 때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된다. 입법부의 불안정, 관료들에 의한 자의적이고 빈번한 권력의 행사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선한 정부냐 악한 정부냐에 대한 기준은 정부가 다수의 지배하에 있느냐, 소수의 지배하에 있느냐의 기준에 있지 않고, 그 정부가 얼마나 많이 혹은 조금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느냐 라는 기준에 의해 평가된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인민에 의한 권력 통제의 확대과정이다. 보통선거권의 확대 과정이 민주주의 발달의 역사다. 구체적으로는 입법부 권능의 확대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입법부가 과도하게 행정부를 압박한다면 권력분립은 위협받고 민주주의가 ‘다수의 횡포’로 전락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분립의 침해라는 논리로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된 개정안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 자체가 해법을 더 꼬이게 할 수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구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온다는 헌법 정신을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국회와 정면충돌을 불사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청와대의 태도는 정치를 통한 갈등의 최소화와 거리가 멀다. 국회법 개정으로 행정부가 마비되거나 권력분립이 침해되어 헌법적 가치가 훼손된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여전히 미약하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5-06-02 최창렬

양해각서 공화국

정치인, 전시효과만 노린 뻥튀기 실적 불구 집착준비 부족과 정권 바뀌면 ‘나몰라라’ 더 큰 문제국부 유출·국위 손상 ‘MOU 남발’ 책임 물어야지난주 국민들의 관심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총리의 방한 관련 선물 보따리였다. 세계 2위의 인구 대국이 중국과 함께 이머징마켓 리더로 부상하는 탓이다. 양국 정상은 한인도 이중과세방지협정, 에너지신산업 협력, 해운물류협력 등 7개 분야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도의 ‘메이크 인 인디아’정책과 한국의 창조경제가 접목될 경우 양국 모두의 제조업이 신성장동력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기대치를 높였으나 국민들의 반응은 별로인 듯하다. MB정부에 눈길이 간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대통령’ 운운하며 당선과 동시에 자원외교를 서둘렀다. 2008년 2월 당선인 신분으로 니제르반 바르자니 쿠르드자치정부 총리와 MOU를 맺어 우리나라 2년치 소비량에 해당하는 19억 배럴의 크루드유전 개발권 확보란 대어를 낚았다. 선거 열기가 체 식지도 않은 터여서 국민들은 상당히 고무되었다. 그러나 후일 대부분의 광구에서 기대매장량에 크게 못 미쳐 한국석유공사는 계약체결과 함께 쿠르드정부에 건넨 ‘서명보너스’ 2억1천140만 달러와 탐사비 1억8천868만 달러 등 총 4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MB정부는 2008년 이후 71건의 해외 자원개발MOU를 체결했으나 본 계약이 성립된 경우는 단 1건에 불과했다. 이 전 대통령 형제가 직접 체결한 MOU건수는 45건에 총 1조4천461억 원이 투입되었으나 회수액은 ‘0원’이었다. 발등 데고 수모까지 당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2009년 2월 23일에는 방한한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과 35억 달러 상당의 이라크북부 바스라유전 개발MOU를 맺었다. 당시 정부는 ‘가뭄의 단비’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석유공사는 이라크정부에 의해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등 한국의 이미지만 흐렸던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껏 움츠렸던 국민들은 ‘닭 쫓던 개’꼴이 되고 말았다. 지방자치단체라고 예외는 아니다. 2007년 10월 김문수 당시 경기도지사와 프랭스 스타넷 USK 사장간에 체결한 ‘유니버설스튜디오 코리아리조트 양해각서’가 상징적이다. 경기도와 USK컨소시엄은 화성시 송산그린시티 내에 5년간 2조9천억원을 투자해서 테마파크, 테마호텔, 스파센터 등 세계최대의 관광단지를 조성해 2012년에 오픈 한다는 마스터플랜을 제시했다. 5조5천억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1천900억 원의 조세수입, 15만 명의 신규고용 등을 장담했으나 8년여 동안 경기도와 화성시, 수자원공사와 롯데그룹 등 이해당사자 간에 힘겨루기하는 사이에 유니버설스튜디오 프로젝트는 슬그머니 중국 베이징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경기도는 관련법 개정을 통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버금가는 국제테마파크 건설을 호언하고 있으나 화성시민들의 상심(傷心)은 쉽게 치유되기 힘들 전망이다.경기도민들의 실망은 이뿐 아니다. 경기도는 김문수 전 도지사 시절 22개국에 33회나 투자유치 해외출장에 나서 총 185억7천만 달러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국내 합작기업들의 대응투자액(매칭펀드)을 제외할 경우 순투자액은 63억8천만 달러인데 그나마도 실제 집행된 외국인 직접투자 실적은 2014년 7월 기준 26억 달러이다. 경기도가 발표한 185억7천만 달러의 14%에 불과한 것이다.양해각서란 내용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구속력이 없음에도 국내 정치인들은 외국과의 MOU에 목을 매고 있다. 오죽하면 해외에서 한국을 ‘MOU공화국’이라 조롱할까. 그렇다고 MOU가 비난받아서는 안된다. 먹거리 대부분을 해외에서 찾아야 하는 국내 실정을 고려할 때 해외 자원은 물론이고 자본의 국내유입은 다다익선이다. 전시효과만 노린 뻥튀기 실적들이 화근이다. 사전준비 부족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 몰라’라 하는 관행은 더 큰 문제이다. 박근혜정부에서도 부실MOU 소문이 들린다. 인천시민들은 인천시와 두바이투자청간의 36억 달러짜리 검단 퓨처시티사업이 불발될까 노심초사이다. 국부(國富) 유출과 국위(國威) 손상은 물론 민심까지 멍들게 하는 양해각서 남발에는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5-26 이한구

인천은 중국관광객 다 놓치고 말 것인가

인상적 공간없어 입국 하자마자 곧바로 서울행명동거리 같은 볼거리·먹거리 타운조성 시급‘중국 효과’ 완전히 흡수할 기회 잡아야최근 인천항에 펼쳐지는 신(新)풍경이 흥미롭다. 그것은 바로 대형 크루즈 여객선에서 800여명의 중국관광객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풍경이다. 우리는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중국 관광객의 숫자에는 관심이 크지만, 크루즈를 통해 들어오는 ‘요우커’의 숫자에는 무심했던 편이다. 그러나 그 규모는 이미 무시할 수준이 아니며 향후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올해만 해도 중국 관광객을 위한 크루즈가 150편을 넘을 것으로 예상하며, 그 숫자도 30만명을 상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런데 그들은 도착 후 인천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에게 인천은 그저 도착하는 곳일 뿐이다. 대부분의 중국 관광객은 바로 서울로 간다. 아마도 쇼핑과 음식이 풍성한 명동 거리로 휩쓸려 들어갈 것이다. 일부는 제주도로 간다. 그곳에서 투자 대상을 물색하는 대열에 합류한다. 중국관광객들이 인천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볼거리와 먹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인천에는 인사동 혹은 명동거리와 같은 인상적인 공간이 없다. 오래된 고민이지만 인천이 왜 이렇게 속수무책인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루속히 바로잡아야 할 것인데 시간만 흘러가고 있어 더욱 아쉬움이 크다. 서울에서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부평지하상가에 들러 1시간 정도 쇼핑할 기회를 준다는 소식에라도 위로를 얻는 지경에 처한 정도니 말이다.중국 관광객이 마냥 한국으로 몰려들지만은 않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한국을 찾는 동력이 종료되는 시점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중국인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한마디로 가까운 외국이기 때문이다. 보통 해외관광의 시작은 인근 국가로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랬고 일본도 그랬다. 중국 관광객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과 하와이 등으로 관광지를 옮길 것이다. 얼마 전 중국의 한 기업이 프랑스 남부 휴양지 ‘칸’에 6천여명의 종업원을 보낸 뉴스가 있었다. 이미 중국기업의 관심이 프랑스의 최고 휴양지로 향했다는 뉴스인 것이다. 인천으로서는 프랑스 칸 지역이 갑자기 256억원의 수입을 올렸다는 소식보다 그들이 그 돈을 써가면서 프랑스를 갔다는 것에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천은 아직 중국 관광객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은 벌써 유럽으로 눈을 돌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당장 서울 및 제주도와의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것도 무리다. 중국 관광객들이 서울과 제주도로 가더라도 좋다. 다만 전체 일정 중 이틀 정도만 인천에 머물게 하면 된다. 바로 그 며칠을 머물게 할 유인과 매력만 준비하면 된다. 이런 최소한의 조건조차 여태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 아니던가. 이제부터라도 명동거리와 같은 쇼핑 및 먹거리 타운을 조성해야 한다. 그 거리에서 중국관광객들이 편안히 걷고 떠들고, 쇼핑하고, 먹고 마시고, 그러면서 특별한 추억을 얻고 가도록 해야 한다. 인천의 특산물 음식이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며, 역사적 흔적을 느끼도록 하면 더욱 좋다. 예를 들자면, 인천의 대표 수산물인 꽃게 음식이 될 수도 있겠다. 인천 관광정책이 수산정책을 껴안아야 한다. 한때 꽃게를 명품음식으로 만들자는 작은 시민모임이 있었으나, 인천시 수산정책은 그것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관광자원에 스토리텔링을 넣어야 성공한다는 조언도 무시되기 일쑤였다. 이제라도 관광을 하나의 산업으로서 제대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천은 지리적으로 중국 효과를 얻는 데 최적지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라는 변수가 인천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정작 그 효과를 완전히 흡수하는 역량이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현재 중국 관광객이 주는 엄청난 기회를 완전히 소화할 수 없다는 비애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더욱 그 회의는 깊어질 것이다. 기회가 항상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심기일전, 즉 새로운 마음으로 기회를 통해 성장하려는 의지를 다져야 한다. 먼 훗날 그 엄청난 기회를 왜 놓쳤느냐는 후세대의 질책을 감당하려면, 오늘 뜨거운 열정으로 정성을 다하는 알리바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5-05-19 손동원

‘이야기하는 인간’과 이야기의 본질

죽음의 공포도 이겨낼 수 있는 ‘이야기의 힘’스토리텔링이 왜 대세인지 생각해 봐야양방향 소통 환경속에 ‘본질’을 지녔기 때문인간에 대해 새로운 정의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야기하는 인간’(Homo Narrans)이 그것이다. 이야기 하기와 이야기 듣기, 이야기를 통한 소통이 인간의 본능 중의 하나라는 주장이다. 이 정의는 1999년 미국의 영문학자인 존 닐(John Niels)이 처음 제기한 신조어이다. 존 닐은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고 본 것이다.이야기의 전승을 주목하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는데 바로 죽음을 무릅쓴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이다. 아랍의 민담을 집대성한 ‘천일야화(千一夜話)’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 대표적인 예이다. 아랍 민담을 집대성한 ‘천일야화’의 원제목은 ‘샤리아에게 들려주는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이다. 샤리아는 왕비에게 배신당한 뒤 그 원한 때문에 매일 한 명의 여자와 동침하고 이튿날에는 교수형에 처하는 잔혹한 군주이다. 셰에라자드는 스스로 이 잔인한 군주와 결혼하여 천 하루 동안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어간다.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에 빠진 술탄은 교수형을 하루하루 늦추다가 천 하룻밤을 보낸 날 마침내 지혜로운 이야기꾼을 왕비로 맞아들이고 동침한 여인들을 죽이는 악습도 폐지한다.보카치오 ‘데카메론’은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가족을 잃은 7명의 부인과 3명의 청년이 교외의 한 별장에 피신하여 지내는 열흘 동안 주고받은 이야기이다. 이들에게 이야기는 흑사병으로 죽어가는 가족과 이웃에 대한 슬픔과 죽음의 공포를 이기기 위한 위안물이라 할 수 있다. ‘천일야화’의 이야기꾼 셰에라자드에게 이야기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해야 할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거였고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남녀들에게 이야기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이야기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기록 서술자의 장치로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경문왕과 복두(幞頭)장이 이야기’는 이와 흡사하다. 이 설화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제목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복두장이는 경문왕의 귀가 나귀처럼 길어졌다는 비밀을 알고 있지만 평생 발설하지 못하고 죽을 무렵에 대나무 밭에 들어가 왕의 귀가 나귀처럼 생겼다고 소리치고 죽는다. 그 뒤부터 바람이 불면 대밭에서 “임금님 귀는 나귀처럼 생겼다”는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 왕과 이발사’ 이야기도 거의 흡사하며, 유사한 이야기는 유럽과 아시아 전체에 분포한다. 미다스왕의 이발사나 경문왕의 이발사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할 수 없어 고통스럽게 지내다가 갈대나 대나무밭에다 말하고 죽는다. 이 유형의 설화는 외견상 비밀은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지만, 스토리의 관점에서 보면 비밀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를 누구에겐가 털어놓지 못하면 고통스럽다는 사실, 역으로 이야기하는 행위는 쾌감이 수반된다는 사실도 담겨 있다.이야기의 시대로 접어든 징조가 뚜렷해 지면서 이야기는 만병통치약처럼 쓰이고 있다. 교육과 출판 분야는 스토리텔링이 기본이다. 기업의 홍보 마케팅 분야도 이야기의 기법이 대세이다. 심지어 선거에서도 스토리텔링이 되지 않는 후보는 당선 확률이 낮다고 한다. 대학에서도 문예창작학과를 스토리텔링 학과로 바꾸고 있다. 국내외 도시들도 스토리텔링을 통한 관광 마케팅을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가 소설을 압도하게 된 배경, 왜 TV나 라디오 매체가 아닌 디지털 시대에 이야기의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인터넷 매체나 SNS가 ‘대나무밭’이라도 되는 걸까? TV, 라디오, 책이 일 방향성이라면 인터넷과 SNS는 양방향성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이야기는 양방향 소통 환경에서 서식하는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 이야기의 시대가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05-12 김창수

3승 26패, 선수 탓만 하는 kt위즈

1승위한 기존선수 보직파괴 ‘변칙야구’ 안돼‘당장 트레이드’하기보다 미래위해 그들을 지켜야프랜차이저 마저 버린 ‘감독 능력’ 팬들 의심 시작1993년 시즌 후 LA다저스 프레어 클레어 단장, 토미 라소다 감독, 프랭크 조브 주치의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178㎝ 78㎏의 체구, 역동적인 투구 폼, 강속구 등 부상을 일으킬 ‘위험의 3박자’를 고루 갖춘 작은 체구의 투수 트레이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그는 17세에 다저스에 입단한 도미니카 출신의 프랜차이즈 투수였다. 이들은 그가 체형과 투구 조건으로는 오래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데 의견일치를 보고, 몬트리올 엑스포스 2루수 델라이노 드실즈와 맞바꿨다. 하지만 이 트레이드가 메이저 리그 역사상 ‘가장 바보같은 짓’이었음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가 미국 메이저리그의 4대 슈퍼에이스 중 한명이었던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즈다. 미국 메이저리그 부자구단들은 자체적으로 팜(farm)시스템을 운영해 선수를 키운다. 재정이 넉넉지 않은 구단은 마이너리그 팀과 계약을 맺어 일정 기간 선수를 위탁 관리하다 실력이 인정되면 메이저리그에 데뷔시킨다. 다저스의 페드로도 이런 경우다. 이들을 프랜차이저(franchiser)라고 한다. 이들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끔찍하다. 뛰어난 프랜차이저를 보유하기 위해 구단이 지출해야 할 돈도 엄청나다. 유망주를 발굴해 계약하고, 다른 팀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그만큼 많은 돈을 선수에게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프랜차이저만을 보기 위해 구장에는 홈 팬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그것이 무시할 수 없는 프랜차이저의 힘이다.지난 토요일 저녁, 연패에 시달리던 kt위즈가 프랜차이즈 선수인 투수 박세웅을 비롯한 이성민, 조현우, 안중열 등 젊은 선수 4명을 롯데로 보내고 대신 5명을 받는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는 소식은 큰 충격이다. 3승 26패(승률 0.103)로 사실상 전력분석이 무의미할 정도가 돼버린 kt위즈가 얼마나 1승이 다급했으면 신인 1차지명한 프랜차이저 선발투수 박세웅을 보내야 했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연패 책임으로 감독이 옷을 벗는 것은 수없이 봤어도, 전도양양한 프랜차이저를 데뷔 첫해 그것도 한달만에 트레이드 하는 것을 그동안 본 적이 없다. 조범현 감독도 이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박세웅을 보낸 것이 득이었는지 실이었는지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그 책임은 반드시 누군가 져야 한다. 확실한 것은 이제 박세웅은 다시는 kt위즈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드로가 다저스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듯이 말이다.kt 위즈가 이 지경까지 된건 야구단 창단을 주도했던 이석채 전 kt 회장이 퇴진하면서 예견됐었다. 지금 모든 매체마다 추가 지원을 통한 자구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걸 모기업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한화이글스의 돌풍은 모기업의 지원 탓도 있지만, 야신 김성근 감독의 뛰어난 리더십에 힘입은 바가 더 크다. 야구는 투수놀음이지만 감독놀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kt위즈 팬들은 비록 전패를 한다해도 열심히 뛰는 신생팀의 패기를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1승을 위해 기존 선수의 보직 파괴를 통한 변칙야구를 해서 젊은 선수들을 혹사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kt 위즈의 투수 운용은 이미 변칙적이다. kt위즈의 미래는 팀내 젊은 선수들이 얼마나 빨리 성장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 당장 전력감이 필요하다고 그들을 트레이드하기보다 미래를 보고 그들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감독의 몫이다. 감독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선수는 오래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kt위즈는 주전으로 뛰고 있는 고참선수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kt위즈가 없었다면 그들은 아마도 어느팀에서도 1군 주전 선수로 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kt위즈는 그들에게 마지막 무대다. 뼈가 부서지도록 뛰어야 하는 이유다. KBO도 놀랐다는 지금의 처참한 기록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누가 뭐래도 감독에게 있다. 26패중 적어도 3~4승은 감독의 능력으로 건질 수도 있었다. 급하다고 해서 프랜차이저 마저 버리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제 팬들이 슬슬 감독의 능력에 심각한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을 조 감독은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5-05-05 이영재

블랙홀의 정치, 망각의 정치

여야, 재보선 의식 성완종수사 물타기 의도 감지박대통령 입장 정국향배 가늠할 분수령될 것청와대,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면돌파가 해법현실의 정치공간에서 국면전환은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적 쟁점도 태풍처럼 특정 지점에서 발생하고 소멸하는 경우도 있고, 서서히 에너지를 규합하면서 확대 재생산되어 다른 이슈들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기도 한다. 한 이슈가 정치사회적 쟁점을 형성하고 모든 사회적 현안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은 다른 이슈로 빠른 속도로 대체된다. 그리고 블랙홀은 이내 소멸하고 만다. 그래서 한국 정치는 블랙홀의 정치요, 망각의 정치다. 아무리 메가톤급 이슈라 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멸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국면전환을 위한 정치공학이 동원되기도 하고, 권모술수와 책략이 난무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는 생물이다.그레고리 헨더슨은 그의 저서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일제시대와 해방 공간,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분석하고 한국 정치의 본질을 정치권력을 향해 몰려드는 소용돌이로 파악했다. 블랙홀의 정치와 망각의 정치가 다이내믹스라는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면서 한국 정치는 소용돌이 정치로 귀착된다. 이는 한국 정치를 불가측의 정치로 귀결시킨다. 헨더슨은 해방 공간의 혼란을 분석했지만 지금의 정치공간 역시 당시의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점차 성완종 전 회장의 노무현 정부 말 특별사면 국면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여권의 ‘국면전환’이 어느 정도 약발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성완종 전 회장의 특별사면이 이루어진 기간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에는 기억하는 인물도 없고 아무 자료도 남아있지 않다. 이 사안이 지루한 소모적 정치적 쟁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사안인 이유이다.‘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검찰의 특별수사팀이 꾸려진 지 2주가 넘었지만 성완종 전 회장의 측근들을 구속한 것 이외에 리스트에 거론된 인사들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정황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인사에 대해서도 수사의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쯤 되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하던 ‘성완종 파동’은 ‘진압’ 국면에 접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블랙홀의 정치가 망각의 정치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한국 정치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다이내믹스 그 자체다.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다른 사안으로 물타기 하려는 의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새누리당이 성완종 특별사면에 대한 검찰수사 촉구와 국정조사 검토 주장까지 나오는 마당이라면 이러한 추론은 더 구체화한다. 여야가 재보선을 의식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의 관점에서 의제 설정을 주도하고, 국면 전환을 꾀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권력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본래 정치는 그런 것이라고 치부하면 된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 국면을 여야, 정치권 전반에 대한 정치개혁과 수사의 단초로 삼겠다고 한다면 그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치개혁과 수사확대의 당위성을 부인할 순 없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한 측과 아무런 단서가 나오지 않은 측을 같은 비중과 무게로 다루고 있는 오류 때문에 당위성은 현저히 권위와 신뢰를 잃는다.새삼 한국 대통령제의 숙명인 집권 3년차 징크스를 거론하지 않아도 임기의 반환점을 앞둔 시점은 국정 동력 회복이냐 리더십 상실이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시기다. 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을 구체적 해법과 입장의 수위가 재보선 결과와 함께 향후 정국의 향배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성완종 정국이 ‘블랙홀’에서 ‘망각’으로 매번 진화하는 한국 정치의 패턴을 또 한 번 일반화하는 전철을 밟을지, 사회적 에너지를 결집하는 진정한 국면전환의 단초가 될지는 이제 청와대에 달려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면돌파가 해법이다. 한국 정치도 망각의 정치 늪에서 빠져나올 때가 됐기 때문이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5-04-28 최창렬

그 나물에 그 밥

세계 장수기업들 CEO 검증작업 무척 엄격오너들도 회사를 개인사유물로 인식하지 않아물려받은 기업 건강하게 키워 후세대로 물려줘야지난달 말에 일본 N경제신문의 K기자가 오랜만에 나에게 전화를 했다. 조현아 파문으로 물의를 빚었던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 참관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장을 목격했다며 나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다는 것이다. 수화기 너머로 K기자의 야릇한 미소까지 감지되었다.조현아부사장 건으로 기업가치 훼손이 심각해 주주들의 경영진에 대한 질타가 당연함에도 정작 주총에선 이 문제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소액주주 한명이 따지고 들다 주최 측의 제지로 흐지부지 된 것이 고작이다. 조양호 회장의 퇴직금은 50%나 인상되었으며 구설수로 언론의 주목을 받던 장남 조원태 부사장은 3년 임기의 사내이사에 재선임되었다. 경영진 문책은커녕 오히려 상(?)을 주어 격려하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K기자의 질문에 잠시 주저했다.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는 자칫 양국 간의 국익(國益)문제가 대두될 수 있어 조심스러운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한일관계가 미묘한 상황에서 일본의 ‘대표’ 신문에 한국 ‘대표’ 기업의 경영행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야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니 말이다. 낮 뜨거운 질문이란 판단에 K기자가 얄밉기까지 했다. 많은 이들은 땅콩회항사건을 한국재벌 특유의 족벌세습경영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관리자본주의도 정답은 아니다. 1932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시장을 지배했던 전문경영인체제는 과거의 오너경영시대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업이 성장하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아돌프 벌리(Adolf Berle)의 라이프사이클이론에 의문이 드는 것이다. 반면에 앤더슨(Ronald Anderson)과 리브(David Reeb)는 가족기업의 성과가 비가족기업보다 더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가족기업이 더 발전할 확률이 높다는 주장이다. 세계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호시료칸(法師旅館)을 비롯한 세계 대다수 장수기업의 세습경영이 상징적인 사례이다. 이씨왕조의 조선은 1392년에 건국해서 1910년 멸망할 때까지 518년 동안 존속했다. 1천년 역사의 로마제국과 1299년부터 1922년까지 623년 동안 유지했던 터키의 오스만제국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이다. 조선의 스파르타식 세자교육 프로그램인 서연(書筵)이 주목된다. 세자들은 일년 내내 하루 종일 강도 높은 제왕학 교육을 받았다. 아침수업인 조강(朝講)부터 주강(晝講, 오전수업), 석강(夕講, 오후수업)은 물론이고 요즘 고등학교 ‘야자’에 해당하는 야대(夜對)수업까지 받느라 예비권력자들은 늘 잠이 부족했다. 수시로 시험을 봤는데 성적이 못미치면 비록 장자라 하더라도 왕이 되지 못하고 궁궐에서 쫓겨났다. 역대 27명의 왕 중에서 장자가 왕이 된 경우는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경종 등 총 7명에 불과하다. 군주들은 왕자의 인성교육에 각별히 공을 들인 것이다.세계 장수기업들의 CEO 검증작업은 무척 까다롭다. 경영자로서의 기본소양은 물론 국민으로서의 의무 이행 유무가 주요 체크포인트이다. 금융재벌 로사차일드의 최고경영자가 되려면 반드시 군복무를 마쳐야 한다. 또한 장수기업 오너들은 기업을 개인사유물로 인식하지 않는다. 주주가치보다 기업의 영속성과 화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건강하고 가치 있는 기업으로 발전시켜 다음 세대에 성공적으로 물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의식이 ‘알파와 오메가’인 것이다. 스튜어드쉽(청지기정신)이 각별히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국내적으로 환갑을 넘긴 기업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경영권이 창업 3, 4세대로 넘어가고 있어 더욱 주목된다. ‘부자는 3대를 넘기기 어렵다’는 속설이 동서고금의 진리인 탓이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부(富)가 3대까지 유지되는 비율은 10%에도 못미친다. 창업 3세(世)까지 생존하는 기업의 비율은 14%정도이다. 10대 경제대국 타령이 민망하다. 해외언론들이 조소(嘲笑)하는 해프닝은 더 이상 없어야할 텐데./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4-21 이한구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

진정한 차별화는 ‘품(品)과 혼(魂)’을 담아야자신만의 분야에 집념어린 ‘장인 정신’ 필요자부심과 목표 이루려는 ‘강한 의지’도 필수필자는 졸저 ‘기업 생로병사의 비밀’의 출판 이후, 한 기업의 미래 비결이 무엇일지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런데 사실 그 답이 쉽지 않다. 기업 판세가 워낙 변화무쌍할 뿐 아니라, 밀림에서의 경쟁과 같아서 우발적인 생존비결이 난무하기 때문에 미래의 생존 요인을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믿는 가장 강력한 비결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 독보(獨步)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독보적 존재란 많은 사람의 무리에서 벗어나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것, 즉 다른 곳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존재를 말한다. 영어권에서는 ‘온리 원(only one)’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표현의 의미도 좋다. 결국 ‘너만이 할 수 있어’라는 경지에 올라야 ‘독보’가 된다. 미묘한 흥분을 주는 말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경지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쉼 없는 훈련으로 내공을 쌓아야 겨우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높은 경지라고 해서 이 비결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글로벌 기업에만 해당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해다. 작은 골목 안의 자영업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세상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유일한 된장찌개, 최고의 건강을 주는 김밥, 뭐 이런 것들이 미래를 지배하는 비결이 된다는 것이다.미국 페이팔 기업의 창업자인 ‘피터 틸’은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다. 그의 책 ‘제로 투 원(Zero to One)’의 선풍적인 인기 때문인데, 그 인기는 그가 금융과 IT기술의 융합분야인 ‘핀테크(FinTech)’의 원조기업인 ‘페이팔(PayPal)’을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신생 창업자들에게 간결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세상에 없는 것을 개척하여 독점적 가치를 누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1 to n’의 생각에서 벗어나, ‘제로 투 원’으로 전환하라고 권장한다. 이 권장은 언젠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블루오션’ 개념과도 맥이 통하는 말이다. 독보적인 존재가 성공한다는 메시지는 실제로 많은 석학과 영웅들의 삶에 담겨있다. 세계적인 생물학자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윌슨 박사가 젊은 과학자들에 권장하는 글에 의하면, 그는 한마디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도전하라고 말한다. “총소리와 떨어져서 행진하라. 군대에서는 총소리에 맞춰서 행진해야 하지만 과학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즉, 무리를 따르지 말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길로 걷는 과학자의 성공을 권장하는 것이다. 조선의 성군 세종(世宗) 임금도 그의 생각 속에 ‘이(異)’와 ‘별(別)’을 깊이 박아두고 ‘다름’을 존중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이런 철학적 입장이 세종실록에 수도 없이 많이 담겨있으며, 그의 많은 업적의 내면에 스며들어 있다. 1429년(세종11년)에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說)’의 서문에서 “오방(五方)의 풍토가 같지 아니하여 곡식을 심고 가꾸는 법이 각기 적성이 있어 옛글과 다 같을 수는 없다”고 말하며 농법의 차이를 직시하고 있다. 그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한글(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에도 역시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라는 차별성 철학이 깊이 작동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의 시선으로 보면 당연한 말로 들리겠지만, 중화사상에 물든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고였음을 간파해야 한다.실제로 마케팅 교과서의 제 1계명이 바로 차별화라는 것을 기억해 보자. 그것은 남과 달라야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차별화한다고 해서 겉모습의 치장만을 떠올린다면 그건 잘 못 이해한 것이다. 진정한 차별화는 민낯에 분칠하는 선으로는 절대 도달하지 못한다. 자칫하다간 손님의 관심을 잃는 ‘분칠한 퇴기(退妓)’가 될 수 있다. 진정으로 남과 다르기 위해서는 ‘품(品)’과 ‘혼(魂)’이 담겨야 한다. 여기서 ‘품’이란 장인으로서의 집념이자 책임감이다. 자신만이 한 분야의 가장 깊은 속살을 보고야말겠다는 집념 어린 장인정신을 말한다. 이는 제조업에도 적용되며 국숫집 같은 작은 식당에도 적용된다. ‘혼’이란 자신만의 정신과 열정이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저 높은 목표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 등을 이르는 말이다. 독보적 경지에 오르려는 기업들의 묵묵한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5-04-14 손동원

산자와 죽은자, 진실과 사실 사이에서

현정부 실세들 거론된 56자 메모 ‘성완종 리스트’당사자 부인할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실 밝혀야‘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故事 교훈 새겨야성완종 리스트로 온통 시끄러운 아침 신문을 뒤적이다가 문득 이런 얘기가 생각났다. 중국의 왕조사를 기록한 십팔사략의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天知地知子知我知)’는 고사(故事) 말이다. 환관의 횡포와 탐욕으로 뇌물이 성행했던 후한 시대에 청신(淸臣)으로 꼽히던 양신이란 관리가 있었다. 그가 제법 넓은 영토를 다스리는 군수(郡守)가 됐을 때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양지를 지향하는 사람은 많고 권력에 줄 대기 좋아하는 세태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군의 하급관청인 현의 현령이 승진청탁을 위해 한밤중에 몰래 많은 금품을 가지고 와서 양진에게 건네며 ‘지금은 밤이 깊으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받으라는 의미였겠지. 그러자 양진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알고 있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하고 꾸짖으며 금품을 물리쳤고 말문이 막힌 현령은 부끄러워 사죄하고 그대로 물러갔다는 것이다. 세상 아무도 모를 것 같지만 비밀은 없다는 교훈이다. 서양에도 이와 비슷한 ‘벽에도 귀가 있다(Walls have ears)’라는 경구가 있다.자원외교 비리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생을 마감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현 정부 실세들의 이름이 기록된 56자의 메모와 죽기 직전에 모 신문과 진행한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세간의 여론은 죽음을 결심하고 남긴 메모와 인터뷰에 설마 거짓이 있을까 라며 신빙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동정론도 한몫 거들고 있다. 거론된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며 ‘터무니없는 얘기, 황당무계한 소설 같은 시나리오로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뛰고 있다. 단돈 1원이라도 받았다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배수의 진까지 치면서 말이다.사실이 어떻든 간에 파문은 커지고 있고 후유증도 깊어질 조짐이다. 오죽하면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을까. 검찰 역시 특별수사팀을 가동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모든 의혹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응당 그래야 하겠지만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사건을 폭로한 당사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남은 건 56자의 메모와 언론사와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녹취록뿐이다. 사건을 뒷받침할 다른 증거들을 어느 구석에 보관해 놨는지, 있다면 그걸 확보할 수 있을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런 막막한 상황에서 검찰은 칼을 빼 들었다.국민들은 망자가 남긴 이야기들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검찰이 밝혀내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명쾌하진 않을지 몰라도 최선을 다해 진실에 접근할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우려스러운 건 이런 정치적인 사건의 경우 항상 뒷말이 남았다는 점이다. 후유증이 꼭 있었다는 얘기다. 어떻게 정리되든 미진한 구석은 있게 마련이다. 최선을 다한 수사라도 정치라는 색안경으로 바라보면 부족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래도 지금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 부딪치는 것이다.당사자들도 부인만 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밝혀야 한다. 언론 역시 진상규명에 필요한 일이 있다면 협조해야 한다. 국민들도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나무라지만 말고 기다려줘야 한다. 역사를 되새김질해보면 어떤 나라든지 돈과 관련된 추문들은 항상 있어 왔다. 그럼에도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었던 건 끊임없는 자정기능 덕분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고 태양을 피한다고 빛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진실은 지금은 가려질지 몰라도 언젠가는 모습을 나타내고 그림자를 길게 드리워 후세를 경계할 것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고사의 교훈은 현재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2015-04-13 박현수

스토리 노믹스 시대와 도시의 준비

장이모우감독 ‘西湖의 전설’ 재구성 뮤지컬 대성공지자체 차원의 스토리콘텐츠 성과 이끌어 내스토리텔링센터 설치·축제프로그램 개발 급선무20년 이후의 세계 산업구조는 1, 2차 산업혁명보다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향후 15~20년 사이에 전개될 3, 4차 산업혁명은 3D 프린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각각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미래사회가 기술혁신에 의한 신산업으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물부족 현상의 심화와 바다의 자원가치 증대로 인해 물 산업과 해양산업은 더욱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콘텐츠 산업의 기초인 스토리산업도 가장 유력한 미래산업의 하나로 거론된다.스토리가 부를 창조하는 스토리 노믹스 시대의 도래는 이미 여러 영역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콘텐츠 회사 월트디즈니사의 2011년도 영업 이익은 75억 달러였는데, 도요타 자동차 회사의 영업이익 66억달러보다 많다. 영국의 동화작가 조앤 롤링은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의 성공으로 1조원 대의 부호가 되었으며 10년 후 재산 총액은 64조원에 도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해리포터 시리즈라는 판타지 스토리가 애니메이션, 영화, 캐릭터, 출판 등의 문화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생 효과가 무려 300조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던 영국인들이 스토리텔러 조앤 롤링의 몸값은 어느 나라와 비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스토리로 성공한 도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차대전으로 폐허가 된 영국의 코벤트리(Coventry)시는 도시의 전설을 이용하여 재생에 성공한 사례이다. 코벤트리시의 상징은 레이디 고다이버(Lady Godiva)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11세기경의 실존인물로 무거운 세금으로 신음하던 농민들을 위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시위를 벌여 결국 영주의 감세를 약속받은 숭고한 여성이었다. 고다이버 이야기는 문학과 미술, 음악, 캐릭터 등으로 다양하게 재현되고 있다. 중국의 항저우가 관광도시로 성공한 것도 도시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항저우의 역사와 문화, 전설과 민담을 흥미롭게 구성한 가무극 ‘송성천고정(宋城千古情)’은 매일 공연하지만 늘 만석이다. 항저우의 대표적 관광지인 서호(西湖)도 밤이 되면 실경 뮤지컬 ‘인상서호’(印象西湖)의 무대로 바뀐다. 장이모우 감독이 서호의 전설을 재구성한 이 뮤지컬은 2007년 초연 이후 매년 10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으며, 공연 수익금만 연간 120억원이 넘는다니 대단한 성공이다. 우리나라도 이야기 산업의 중요성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 3월 ‘이야기 산업 진흥법’이 국회에 발의되어 국가 차원의 지원이 조만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경북 안동시의 경우 역사 인물을 스토리텔링한 창작공연에 집중 투자, 뮤지컬 ‘왕의 나라’와 ‘원이 엄마’, ‘퇴계연가’, ‘부용지애’ 등을 제작 공연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중 뮤지컬 ‘왕의 나라’는 고려 공민왕이 안동으로 몽진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2011년 제작되었는데, 2013년부터 유료공연으로 전환된 이래 매회 입장권이 매진되었으며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의 초청 공연도 매회 매진을 기록하며 지자체 차원의 스토리 콘텐츠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성공사례만 보면 스토리텔링과 콘텐츠 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이지만 시행착오가 더 많다. 우리나라 각 지자체의 스토리텔링은 관광지 안내에 활용하는 초보적 수준이다. 스토리텔링이 콘텐츠 산업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원천소재(One Source)를 발굴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도시의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성공적인 이야기는 감동과 흥미를 줄 수 있는 동시에 시대를 넘는 숭고한 가치를 지닌 이야기들이다. 지방정부의 역할은 지역 문화자산 중 감동적 서사의 ‘씨앗’을 발굴하여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되는(Multi Use) 스토리텔링 산업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다. 그중 스토리텔링센터와 같은 기구의 설치와 스토리텔링 축제와 같은 프로그램의 개발이 급선무로 보인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04-07 김창수

연정이 준 선물 경기도 생활임금

시급 6천810원… 정부 최저임금 보다 1천230원 많아남지사, 새누리당 소속 단체장으로는 최초 도입앞으로 정치판에 어떤 영향 미칠지 지켜 볼 일이다경기도 생활임금이 시작됐다. 지난 25일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도 생활임금위원회가 제시한 생활임금 시급 6천810원을 받아들인 덕분이다. 광역단체로는 서울에 이어 두번째다. 위원회가 제시한 액수가 서울시 생활시급 6천687원보다 많아 어느정도 감액을 예상했지만 남 지사가 선뜻 사인을 해 오히려 담당자들이 적지않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생활임금 지급 대상은 경기도 소속 직접 고용근로자 401명이다. 이들은 기존 임금보다 월 최대 24만5천원에서 최소 11만1천원의 임금상승 효과를 얻게 된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최대 293만9천원, 최소 133만2천원이 상승하는 효과다.생활임금은 ‘근로자가 가족을 부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말한다.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주거비와 식비 등 최소 생계비용 외에 의료비와 문화비 등도 포함한 임금이란 뜻이다. 지자체가 직접 고용하거나 위탁·용역을 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니 많을수록 좋다. 재정이 든든하다면 1만원을 넘겨 준들 아무 문제 될 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온갖 무상시리즈로 지자체들은 돈이 없다고 난리다. 곳간이 비었다고 중앙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생활임금도 모두 도민, 시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도가 올해 생활임금 지급에 필요한 예산은 총 12억 원이다.경기도 생활임금은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 시급(5천580원)보다 1천230원이 많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월 142만3천원(6천810×월 근로시간 209시간)으로 최저 임금제로 받는 월급보다 25만6천780원 많다. 생활임금은 수원시(6천600원), 부천시(6천50원)도 이미 시행 중이다. 모두 새정치민주엽합 소속 단체장들이다. 경기도는 생활임금이 민간사업장으로도 자연스레 확대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민간기업 근로자에게 ‘생활임금제’를 적용하면, 사실상 이들의 급여를 올려주는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면 좋겠지만 형편상 그렇지 못할 경우 여전히 최저임금제를 적용받은 대부분의 민간기업 근로자들의 소외감과 반발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기도는 알아야 한다. 경기도 생활임금이 자칫 노사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게 그런 이유다. 연정이 없었다면 경기도 생활임금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생활임금은 8대 도의회때 새정치민주연합 주도로 전국 광역단체 중 최초로 조례가 제정됐지만, 도가 재의를 요구하며 파행을 겪었었다. 당시 도는 “생활임금은 최저임금 등을 고려해 산정되는 것으로 근로조건에 관한 국가사무이고, 도 소속 근로자의 임금·인사와 관련된 결정은 도지사의 고유한 권한인데 조례는 이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문수 지사 역시 “최저임금도 못받는 근로자가 169만명이고 도내 임금체불액이 3천600억원이다. 현실을 안 보고 이상만 보고 조례를 만들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반대했다. 그러나 남 지사가 취임해 연정을 추진하면서 정책과제로 합의됐고 마침내 시행에 이르게 됐다. 경기도의 생활임금제가 연정이 준 선물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새정치연합은 생활임금을 법제화 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김경협 (새정치) 의원은 지자체 조례로 생활임금을 결정해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야당이 ‘적정임금’ 개념에 생활임금이 포함된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그만큼 생활임금은 민감한 사안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감안해 적정임금 개념을 법으로 구체화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도가 생활임금을 전격 실시한 것이다. 이로써 남 지사는 새누리당 소속 단체장으로는 처음으로 생활임금을 도입한 지자체장이 됐다. 지난 10일 경기도를 방문해 남 지사를 만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경기도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이 바로 생활임금 조례”라며 남 지사를 치켜 올리고 “공공부문의 생활임금이 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중앙정부까지 전면적으로 실시돼야 한다”고 밝혔다는 점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기도 생활임금이 앞으로 정치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 볼 일이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5-03-31 이영재

복지는 ‘무상(無償)’이 아니다

복지지출 늘리고 무상확대 위해 재원조달 필수국가가 뭔가를 나눠줄 것이라는 인식 접근 안돼소득재분배 기능 실효성 발휘할때 복지국가 완성내년 총선과 19대 대선 승부를 가를 정치, 사회, 경제적 쟁점 중 무상복지 논쟁은 가장 핵심 이슈가 될 전망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이슈는 현재 야당의 승리 요인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지난 대선에서도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대선 승부를 결정지었던 사회경제적 어젠다였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공약은 경제 활성화 정책에 밀려 추동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시대 정신이란 점을 부인할 수 없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면 복지 논쟁은 여전히 여야 간, 보수와 진보 세력 간 민감한 사안이다. 무상복지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선택 문제로 모아진다. 즉 복지에 대한 철학과 인식의 차이에 기인하는 정책의 차이로 귀결된다. 복지지출을 늘리고 무상복지를 확대해 나가기 위해서는 복지재원의 조달이 필수다. 선별적 복지는 소득 수준에 연동한 복지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논리적 타당성을 부인할 수 없다. 재원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막연하게 보편적 복지에 집착하는 행태는 도그마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선별적 복지가 갖는 원천적인 한계도 무시할 수 없다. 기초적인 분야에서조차 예산 부족을 이유로 선별적 복지의 프레임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누진적 세금에 의한 복지 정책의 확대는 요원해진다. 유럽이 국민소득 1만5천달러 수준일 때 케인즈 주의에 입각한 복지이론을 발전시키고 보편적 복지를 확충해 나간 경험을 간과해선 안된다. 세계적 경기침체속에서 복지 규모를 축소해 나가려는 일부 유럽 국가의 경우를 선별적 복지의 모델로 삼는 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신에 기인한다. 어느 영역도 재원이 남아 복지를 시행하는 것은 아니다. 특수성에 입각한 선별적 복지 채택이 논리적 정합성을 갖는다 해도 사안마다 선별적 복지로 접근한다면 포괄적 복지의 길은 요원해진다. 유럽 국민들이라고 조세 저항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국가의 복지 프로그램에 대해 정부나 국민 모두가 의지와 애착을 가짐으로써 복지 국가는 부단히 발전되어 왔다. 또한 복지의 과부하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국가 역할의 축소 경향에도 불구하고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 지출은 지난 10년간 느린 속도이지만 꾸준히 증가했다. 복지국가란 사회 구성원 개인이 시장논리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탈 시장화’와 가족에게 의존하는 노후에서 해방되는 ‘탈 가족화’의 두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시장과 가족에 내재하는 원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고용보험, 연금 등의 사회보험과 교육과 보육 등의 사회 서비스의 제공이 복지국가의 핵심이다. 어떠한 수준의 복지를 지향할 것인가의 문제는 조세부담률을 여하히 조정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아직 한국사회의 궁극적인 복지수준에 대한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빈부격차는 일반적인 신자유주의 국가들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는 단순히 경제적 층위에서의 격차의 차원을 넘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대표되는 계층 간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길은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과 포괄적 복지로의 정책을 점진적으로 심화시켜 나가는 방법 외엔 대안이 없다. 선별적 복지가 단기적으로는 분야별 정책적 정당성을 지닐 수 있으나 사회에 구조적으로 내재하는 격차의 문제를 해소하기엔 원천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복지에 대한 사회학적 인식과 철학이다. 복지를 국가가 뭔가를 나눠주는 것이라는 시혜적 차원에서 접근해선 안 된다. 조세정책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충분한 실효성을 발휘하고 같은 수준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때 복지국가는 완성될 수 있다. 어설픈 선별적 복지의 논리는 부자와 빈자 모두의 지지를 잃을 수 있다. 복지는 국민이 응당 받아야 할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라는 인식이 보편화 될 때, 복지가 무상으로 제공되는 것이라는 공짜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는 무상논쟁이 표를 얻기 위한 선거공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상’이라는 용어의 수정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5-03-24 최창렬

품앗이 산업이 뜬다

카쉐어링 등 공유경제형 국내 기업들 속속 생겨리프킨 “3차 산업혁명 개도국서 빠르게 진행” 주장IT강국에 부합되게 육성 ‘창조경제’의 답육아품앗이, 과외품앗이, 하객품앗이, 재능품앗이, 관광품앗이…. 품앗이란 농촌에서 소수의 농민들 간에 상부상조하는 것으로 모내기와 추수, 지붕 올리기, 김장하기 등이 주요대상이다. ‘품(勞動)’과 ‘앗이(受)’를 결합한 한국 고유의 민속용어로 ‘두레’와 함께 농촌사회를 지탱해온 대표적인 공동체적 생산 관행이었으나 산업화로 사라지는 추세다. 그런데 최근 들어 농촌이 아닌 도시를 중심으로 품앗이 문화가 다시 부활한 것이다. 해외에서도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유사한 사례들이 간취되고 있다.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의 우버(Uber)엑스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일시적 운휴(運休) 상태의 자가용 승용차와 운전자의 품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운수업체다. 회원 상호 간에도 언제, 어디서나 이용 가능해 품앗이와 매우 흡사한 신종 비즈니스인 것이다. 2010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후 글로벌화·디지털화에 편승해서 급성장한 결과 전 세계 40개국 170여 도시에서 성업 중이다. 우버 택시의 잠재적 시장가치는 2천억 달러로 도요타자동차에 버금간다.회원제 렌터카 기업 짚카(Zipcar), 미국판 벼룩시장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 빈 숙소활용업체 에어비앤비(Airbnb), 도서교환 웹사이트 페이퍼백스왑(Paperbackswap.com), 레고세트 스왑사이트 플레이고(Pleygo)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카쉐어링과 장난감 빌려 쓰기 등 공유경제형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서울 노원구에서는 지자체가 관내 홀몸노인들의 빈 주거 공간을 대학생들과 함께 이용하도록 하는 새로운 상생모델을 시도하고 있다. 공유경제(sharing economy)란 ‘물건을 소유하는 개념이 아닌 서로 빌려 쓰는 경제활동’이라는 의미로 2008년 로렌스 레식 하버드대 교수가 처음 사용했다. 자원이용의 효율성을 높여 낭비를 최소화한다는 측면에서 친환경적일 뿐 아니라 물가안정효과도 커 경제적이다.‘노동의 종말’로 유명세를 탔던 제러미 리프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한계비용 제로사회’에서 자본주의는 조만간 사라지고 ‘협력적 공유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계비용이란 물건을 하나 더 생산할 때 발생하는 추가비용인데 기업들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이 비용을 줄이려 노력한다. 그러나 한계비용이 제로가 되면 상품가격도 제로에 근접해 시장교환이 불가능하다. 이윤이 지탱하는 자본주의가 시장의 탁월한 성공 때문에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리프킨은 한계비용 제로현상이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수백만 소비자들이 아무런 대가 지불없이 파일 공유서비스를 통해 음악·동영상·지식·뉴스·전자책 등을 자체적으로 확대 재생산해온 것이다. 덕분에 음악과 영화산업이 흔들리고 수많은 신문과 잡지가 폐간됐으며 출판시장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한계비용을 제로로 낮추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기술이 바로 ‘슈퍼 사물인터넷’(IoT)이다. 수십억 개에 달하는 센서가 모든 기기와 전기제품·도구·장치 등에 부착돼 촘촘한 신경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사물과 인간을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미국인의 약 40%가 소셜미디어 사이트나 온라인 동호회, 협동조합 등을 통해 생활필수품은 물론 편의품과 기호품까지 공동으로 이용하는 등 이미 협력적 공유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차를 나눠 타고, 여행할 때는 서로 집을 바꾸는 등 시장의 ‘교환가치’는 협력적 공유사회의 ‘공유가치’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2030년에는 100조 개가 넘는 센서가 전 세계로 분산된 지능형 네트워크로 인간과 자연환경을 연결할 것으로 추산한다.리프킨은 제3차 산업혁명(협력적 공유경제)으로 수십만 개의 사업체와 수억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날 예정인데 “이 혁명이 선진국보다 개도국에서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단정했다. 실의에 빠진 장그래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IT 강국에 부합하는 품앗이산업 육성에서 창조경제의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3-17 이한구

비약적 성장은 특별한 만남에서 온다

류성룡과 이순신, 서로 믿었기에 위대한 효과 얻어저커버그, 숀 파커 만나 페이스북 전세계로 확대새로운 인물과 이색적 조합하면 더 큰효과 발휘최근 한 방송국의 드라마 덕분에 ‘류성룡’과 ‘징비록’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다. 징비록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류성룡이 그 처절한 교훈을 반드시 후세에 전해줘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집필한 기록서다. 류성룡은 퇴계 이황에게 수학하면서 동인(東人) 쪽 인물로 분류되지만 서인(西人)과의 당쟁에도 비교적 초연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당시 국가 위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본 몇 안 되는 경륜지사 중 한 명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류성룡을 이순신을 천거한 인물로 기억한다. 당시 무관도 아닌 문관 관리에 불과하던 이순신을 수군(水軍) 책임자로 천거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고 심지어 뇌물을 먹은 것이라고 모함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류성룡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이순신은 역사의 물꼬를 바꿀 정도로 위대한 결과를 낳았다. 류성룡과 이순신이라는 조합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임진년에 이미 일본군에 점령당했을 것이다. 이렇게 특별한 사람들의 만남은 위대한 일을 만든다.그러면 류성룡의 이순신에 대한 확신은 어디서 온 것일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어린 시절에 시작됐다. 류성룡과 이순신은 모두 서울 건천동 출신이다. 이순신의 둘째 형인 이요신이 본래 류성룡의 친구였지만, 점차 류성룡과 이순신 사이가 더욱 가까워지고 둘 사이는 관중과 포숙처럼 아끼는 사이로 발전했다. 두 사람은 오랜 관찰과 경험을 통해 서로의 능력을 정확히 알게 된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류성룡은 중요한 순간에 이순신을 주저 없이 추천했던 것이다. 즉, 숙성된 지식과 확신이 있었기에 위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즉흥적 통찰에서 얻은 만남으로 특별한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특별한 만남은 기업에도 중요하다. 우리가 아는 세계적 기업 중 특별한 만남에 의해 비약적으로 큰 기업들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페이스북(Facebook)이다. 페이스북은 본래 하버드 대학생들 사이의 교류, 좀 더 나아가 보스톤지역 대학들을 연결하는 교류망으로 시작했던 사업이었다.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와 친구들은 그 정도 수준의 SNS로 스케일을 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커버그가 숀 파커를 만난 이후에는 스케일이 완전히 달라져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확대되었다. 이렇게 스케일을 키운 장본인이 바로 숀 파커이다. 그는 1990년대 말 인터넷 버블 시절 냅스터 기업의 창업자로 유명한데 많은 창업 경험을 통해 어떤 사업이 성공하고 어떻게 해야 비즈니스가 확대되는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묘사된 숀 파커의 대사에서 그의 야심을 잘 읽을 수 있다. “마크, 너는 지금 대학 사이를 연결하고 있지만, 나는 대륙을 연결하고자 한다.” 숀 파커는 실제로 저커버그에게 많은 벤처캐피털을 소개하면서 비약적인 사업 성장을 주도하게 했다. 만약 저커버그와 숀 파커의 만남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페이스북은 없었을 것이다.구글 창업자들과 경영 천재인 에릭 슈미트의 만남도 특별한 결과를 낳았다. 1998년 스탠퍼드 대학원생이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새로운 방식의 검색 서비스를 출범시킨다. 이후 지속해서 성공 가도를 달려 왔지만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2001년 경영 천재인 에릭 슈미트를 공동 대표로 영입한다. 이때가 바로 프로그래머 중심의 운영을 넘어 비로소 경영 시스템을 갖추는 순간이었다. 창업자 두 사람과 슈미트 사이의 조합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이 경쟁력을 갖춘 구글은 없었을 것이라는 평이 많다. 이처럼 절체절명의 국가위기를 넘기는 장면, 한 기업의 비약적 성장에는 ‘특별한 만남’이 개입되어 있다. 작은 위기와 보통의 성장과는 달리 폭발적으로 비약하는 힘의 원천이 바로 그 특별한 만남인 것이다. 이는 큰 도약을 꿈꾸는 중소기업과 청년들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새로운 인물과 이색적인 조합을 취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기존 방식대로 움직이는 농사꾼의 방책보다 개인기를 갖춘 인물들의 결합을 지향하는 사냥꾼의 전략이 더 효과가 높다는 권장이다. 급속한 변화들이 가득할 미래 세상에서는 특별한 만남이 주는 성공 방정식은 더욱 효과가 높아질 것으로 예견된다.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5-03-10 손동원

‘미래’ 라는 현실

가족보다 스마트폰·사이버공간에 의존하는 현실윤리적 삶 실천 않을땐 도전의 희생물 될 가능성 커‘미래 시나리오 맞대응’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2월22일에 올해 첫 황사주의보가 발령되었고, 이튿날 서울과 경기도·인천시에 황사경보가 내려졌다. 하늘을 덮은 흙먼지로 야외활동이 거의 어려운 수준이었다. 일주일만인 3월2일, 중국 내륙에도 강력한 황사경보가 내려졌다. 연이은 황사경보는 과학영화 ‘인터스텔라’에 묘사된 지구상황을 보는 듯해서 더 우울하다. 영화 속의 지구는 먼지폭풍이 수시로 불어와 옥수수 재배만 가능한 상태로 묘사되었다. 실내의 그릇도 먼지 때문에 뒤집어 두어야 할 정도의 절망적 일상을 보내야 하는 지구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우주로의 탈출이다. 최근의 미래 보고서에 나타나는 상황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에 가깝다.미래예측 가운데 기후변화 시나리오는 가장 우려스럽다. 2009 코펜하겐 기후정상회의에서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지만 탄소배출량 제도는 계획대로 실천되지 않고 있다. 25년 이후인 2041년 께 지구 평균기온은 2℃ 상승 한계선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 건조지대가 확장되고 사막화된 토양이 늘어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처럼 미세먼지 폭풍은 도시를 주기적으로 강타한다. 극지방 빙하가 녹아내리고 해수면이 상승하면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해변 주거지는 사라지게 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밝힌 시나리오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2100년께 우리나라 국토의 4.1%(4천149.3㎢)가 바다에 잠길 수 있다고 한다. 광역지자체별로 보면 전남 34.6%, 충남 20.5%, 전북 14.8%, 인천 11.3%, 경기 7.3%에 해당한다. 지자체 면적 대비 범람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인천으로, 도시 전체 면적의 절반에 달하는 45.5%가 바다에 잠기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도 우리가 직면한 도전이다. 정보학자들은 지난해에 일어난 일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로 러시아에서 개발한 ‘유진’이라는 인공지능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사건’이 있었다. 튜링테스트는 영국 천재적 수학자였던 앨런 튜링이 컴퓨터의 능력을 감별하기 위해 고안한 프로그램이다. 튜링테스트가 고안된 지 65년만의 일이다. 정보학자들 사이에서는 ‘유진’이 실제로 우리가 기대하는 인공지능에는 미달한다는 지적도 있으나 인공지능의 능력은 급속하게 확장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2045년이면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컴퓨터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 이전에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되고 택시와 화물자동차, 대리운전 기사의 일자리를 없앨 것으로 예상된다. 옥스퍼드 대학이 2013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향후 20년 이내에 현재 직업 중 절반가량이 ‘로봇’ 또는 ‘컴퓨터’로 대체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의료기술과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2045년께 인간의 평균수명은 130세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된다. 유전자의 비밀이 해독되고 줄기세포를 비롯한 다양한 세포재생 기술로 육체의 ‘불로장생’이 실현되는 것이다. 죽음에서 멀어진 인간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초고령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사랑, 가족, 직업, 종교의 의미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이며 엄청난 변화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그런데 미래의 도전이 50년이나 100년 후의 문제가 아니라 당면하고 있는 절박한 현실이자 현안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황사바람 속에서, 이웃이나 가족보다 스마트폰과 사이버 공간의 네트워크에 더 의존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초고령사회도 이미 도래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국가나 도시, 개인들의 대처는 미온적이고 더디다. 인공지능보다 윤리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기획하고 실천하지 않을 때 우리는 미래라는 도전의 희생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눈앞에서 현현하고 있는 미래의 도전 ‘시나리오’들을 성찰하고 효과적 ‘프로젝트’로 응전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인 것이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03-03 김창수

집권 3년차, 박대통령의 ‘골든타임’

진보·보수 막론 모든 언론서 비난 화살전직 대통령들의 회고록은 일종의 자기항변지금 이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음을 명심해야세월이 참 빠르다. 어른들은 나이 들면 시간의 빠르기가 나이에 비례한다고 말하곤 했었다. 80대는 80㎞의 속도로 50대는 50㎞로 시간이 달린다는 것이다. 40대만 해도 ‘흥’하고 코웃음을 쳤었다. 그러나 50대로 접어드니 시간이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빠르다. 오늘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지 꼭 2년이 되는 날이다. 한걸음 더 내딛는 내일은 취임 3년차에 접어들게 된다. 벌써 3년차라니. 60대의 박 대통령은 60킬로의 속도로 달렸을 법도 하지만 ‘벌써?’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대통령 임기가 5년이라해도, 대선기간과 겹치는 마지막 5년째를 빼면, 실제로 권력의 절반이 지난 셈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소신껏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기간도 불과 2년 남은 셈이다. 마라톤으로 따지면 반환점을 돈 것이다.정치인도 따지고 보면 연예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듯하다. 눈물겨운 데뷔 시절이 있다가, 운이건 실력이건 천금같은 기회를 잡아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면 그의 이름 앞에 어느덧 ‘스타’라는 관형어가 붙는다. 그리고 몇년동안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다 여지없이 내리막길을 타게 된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몇 선을 하다가, 원내대표와 당대표를 거치는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다, 운이 좋으면 대권에 도전하게 되고, 선거에서 이기면 권력의 최정상에 오르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대권을 손에 쥔 박 대통령은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면서 정치인 박근혜 시절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국가 발전 지도’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다. 그런데, 보수 진보 막론하고 모든 언론이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박 대통령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집권 2년동안 황사속을 걷듯 모든게 애매모호했을 뿐 손에 잡히는 정책이 없었다는 것이다. 국정원 댓글사건, NLL 논란으로 1년이 지났고, 세월호 사건과 정윤회 파동으로 1년을 홀랑 까먹었던 박 대통령 입장에선 모든 걸 남의 탓으로 돌릴만큼 억울할 만도 할 것이다. ‘퉁퉁 불어터진 국수…우리 경제 불쌍’이라는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MB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둘러싼 논란이 지금도 진행중이다. 낯뜨거운 자화자찬과 지나친 자기방어. MB가 부리나케 회고록을 내놓았다는 것은 그만큼 할말이 많았다는 것을 뜻한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는 날 언론은 경쟁하듯, 맞으면 좋고 틀려도 그만인 소설같은 ‘정치 비사’를 쏟아낸다. 너무도 터무니 없다고 느낀 전직 대통령은 대변인을 통해 항변하고 싶지만 이미 권력은 남의 손으로 넘어간 후다. 우리의 정치는 떠난 대통령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떨어진 권력은 철저히 외면한다. 새로운 권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직 대통령은 얼마나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을까. 전직 대통령들이 퇴임하자 마자 앞다퉈 회고록을 출간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 항변으로 봐야 한다.인간은 늘 후회를 하며 살아가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문득, “아 그때 그랬더라면…” 하고 아쉬워 한다. 공자도 최후의 20년을 제자들과 광야를 배회하면서 끝없는 번뇌와 후회속에 살았다. 그게 인간이다. 바로 지금 이 시간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했던 것인지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당선에 가장 큰 힘을 보태준 것은 50대였다. 박 대통령이 그들로부터 지지받은 것은 천막당사에 나가 앉을지언정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원칙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50대들조차 등을 돌리고 있다. 왜 그들이 뒷모습을 보이는 지 박 대통령은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는 다음날, 언론들은 박근혜 정권 비사로 신문지면을 가득 채울 것이다. 출처도 불분명한 야사들이 춤을 출 것이다. 그때 항변 한들 아무 소용없다. 지금이 중요하다.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골든 타임’이 시대의 화두가 된 것처럼, 대통령에게도 ‘골든 타임’이라는 것이 있다. 이미 흘러간 2년은 어쩔 수 없더라도 집권 3년차를 맞는 지금이 ‘골든 타임’이며 이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음을 박 대통령은 명심해 주길 바란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5-02-24 이영재

행정한류의 그늘

세계적 ITC 강국답게 e정부는 세계최고 수준전자정부서비스의 지속적 업그레이드 불문가지납세자편의에 수많은 컴맹들 또 얼마나 시달릴지수도권 중견기업에 다니는 ‘컴맹’ K부장은 지난주에 또 한 번 곤욕스러운 연례행사를 치렀다. 수년째 봉급은 제자리이나 주거비와 자녀교육비 등은 갈수록 올라 한 푼이 거금이어서 절세 필요성이 더욱 커졌으나 연말정산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꼭지(?)가 돈다.‘13월의 세금폭탄’ 탓만 아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임금근로자들은 교육비, 의료비, 보험료영수증 등 1년 치 증빙자료들을 한꺼번에 경리부서에 넘기면 그만이었지만 근래에는 각자의 소득정산업무를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탓이다. 올해에는 정산방식이 종전과 달라 K부장은 더 곤혹스러웠다. 같은 처지의 동료들처럼 IT에 능숙한 젊은 부하 직원들의 도움이 절실하나 매번 신세를 지는 것도 너무 부담스러웠다. 자신이 컴맹이란 사실을 사내에 더는 노출시키기도 민망해 이번엔 자력으로 난제(?)를 처리했다.각종 소득공제 영수증은 반드시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에서 발급받은 것이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전자세정인 홈택스(hometax.go.kr)를 이용하려면 공인인증서가 필요한데 홈페이지 접속과 함께 스미싱이나 파밍 등 각종 사이버 금융사기 경고 팝업들이 K부장을 긴장시켰다. 마지막 통과의례는 각종 세무자료를 항목별로 PC에 입력하는 작업이다. 회사에서 입력관련 설명서를 첨부했으나 생경한 용어들이 많아 해득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또한 입력시 실수 염려는 물론이고 작업을 종료했어도 제대로 잘한 것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어 개운치 못하다. 더 낸 세금은 되돌려준다고는 하나 회사 일만 해도 오버로드인데 언제 신경을 쓰겠는가 말이다. ‘세금도둑’이란 오명은 더더욱 반갑지 않다.1천600만 명의 임금근로자 중 연말정산 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종합소득세 신고철인 매년 5월에는 세무서마다 인산인해의 컴맹 납세자들로 한바탕 소동을 치른다. 과도기적 현상이라고는 하나 전자정부의 대가치고는 너무 크다는 인상이다. 오로지 조세수입에만 공을 들일 뿐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소홀한 정부의 전체주의적 발상에 실망이다.전자정부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서 최소비용으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를 의미한다. 행정문서의 부처 간 전자교환 및 전자결재, 영상회의시스템, 데이터 구축에 따른 정보의 공동활용 등으로 조직 및 절차의 슬림화를 도모해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민원인들은 행정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정보통신망을 이용함으로써 실익이 크다. 그리고 국민과 정부 간의 의견교환이 한층 빈번해져 정책의 신뢰성을 높이는 등 행정의 창조적 파괴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대한민국은 세계적인 ITC 강국답게 e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말 유엔이 발표한 2014년 세계 전자정부 평가에서 우리의 ‘정부 3.0’은 2010년, 2012년에 이어 3회 연속 세계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 전자정부서비스는 기존의 민원신청 위주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융합한 최첨단의 서비스(‘O2O’)로의 진화가 임박한 지경이다. 한국의 행정시스템에 대한 세계의 관심과 열기가 뜨거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e정부 프로그램의 수출실적도 괄목하다. 2002년 처녀수출 이래 매년 수출액이 증가한 결과 작년에는 전년보다 13% 증가한 4억7천만 달러를 기록한 것이다. 지능형교통시스템(ITS), 관세시스템(UNI-PASS)이 대표적인 효자 수출상품이나 최근에는 국민신문고, 안전통계시스템까지 추가되었다. 올해부터는 대기업들에도 전자정부사업 참여의 길이 열려 수출전망은 한층 밝아졌다. 정부는 전 세계에 ‘행정 한류’ 바람을 일으킬 각오로 올해에는 관련 예산을 파격적으로 증액했다. 전자정부서비스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는 불문가지이다. 스마트시대에 부합하는 정부서비스의 효율화, 투명화는 세계적 추세인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또 얼마나 많은 K부장들이 ‘행정 한류’의 그늘에서 시달릴까. 이미 3세기 전에 조세행정의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납세자들의 편의를 강조했던 애덤 스미스가 돋보인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2-03 이한구

청년 창업자여, 해적이 되라

낭만창업자 절박한 순간 돌파할 수 있을지 의문기업가로서 성공위해 목숨 건 승부사정신 결핍불굴의지·위험돌파 용기 가슴깊이 담겨 있어야#1, 전자공학과 3학년생으로서 1년 전 창업 아이디어를 잉태했다. 동료 4명과 함께 창업 팀을 구성해서 창업 경진대회에 참여했고 과분한 상(賞)도 받았었다. 경진대회에서 우리를 주목한 전문가들로부터 조언과 멘토링도 받았다. 최근 정부로부터 사업자금을 지원받으니 더욱 비장해 진다. 그런데 언제 창업을 해야 할까? 막상 창업을 생각하면 두렵다. 다른 멤버들도 빨리 창업하자고 하지는 않으니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2,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최하는 이매진 컵에서 2등상을 받았다. 수상작은 '핑거 코드', 시각 및 청각 장애인들이 읽을 수 있는 장갑 모양의 장치와 그것을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였다. 당시 빌 게이츠를 놀라게 했던 아이디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창업하기에는 국내시장 규모가 작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런 정황 속에서 창업을 하진 못했다. 그런데 7년 후인 2014년 MIT 대학생들이 '핑거 리더'라는 이름으로 실시간으로 인쇄된 글자를 읽어주는 '웨어러블(wearable)' 기기를 개발했다. 이들은 곧 바로 창업했고 실리콘밸리의 투자 자금이 연일 몰려들고 있다.최근 청년창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 언론도 청년창업에 관한 기사를 연일 쏟아낸다. 실제로 청년창업은 크게 늘고 있다. 작년 신설법인 중 3천493곳이 30대 미만이 창업한 곳이다. 그런데 청년창업에는 겉으로 드러난 면과 다른, 감추어진 그들만의 속살이 숨겨져 있다. 다만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필자가 오랜 세월 청년창업을 지도한 경험에서 볼 때, 청년창업의 실상은 표면적 현상과는 다른 면이 많다. 이제부터라도 표면적인 화려함 에 도취되기 보다는, 그 속살을 들춰내고 실상과 허상을 같이 봐야만 진정으로 청년창업 강국으로 도약할 것으로 믿는다.청년창업의 열기가 집결하는 곳이 바로 창업 공모대회다. 수많은 창업 공모대회마다 청년들로 넘쳐난다. 이를 두고 우리 청년창업자 층이 탄탄하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니다. 정작 그들 중에는 창업기업가로서 일생을 걸겠다는 절박감을 가진 청년들은 많지 않다. 실상은 창업경험을 즐기는 낭만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현실의 치열한 경쟁과 좁은 관문이 주는 두려움에 맞서기 위한 방책으로 창업을 선택한 청년들이다. 그들에게 청년시절의 창업경험은 일종의 '스펙 쌓기'다. 마치 1980년대 대학생들이 대학가요제 참가를 희망하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그들에게 부족한 점은, 창업 기업가로서 성공하려는 즉 목숨건 승부사로서의 기업가정신이다. 이것이 청년창업 열기라는 표면뒤에 숨겨진 뒷면이다. 심지어 상금에 눈먼 상금사냥꾼들도 있다. 그들은 공모대회마다 참여해서 상금을 타내는 것을 주목적으로 삼는다. 이런 스펙창업자와 상금사냥꾼은 치열한 창업정신이 부족한 '낭만적 예비창업자'다. 실제 창업 자체는 그들에게 목표는 아니다. 대학시절의 추억만으로도 행복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의 행복 뒤에는 부조화가 있다. '낭만'과 '창업'이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부조화가 바로 그거다. 창업자의 길이 순탄할 수는 없다. 자신의 일생을 건 치열한 집념이 있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창업자는 언제 만날지 모르는 낭떠러지에서 추락하지 않으려는 오기와 절박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창업을 낭만으로 생각하는 창업자가 그런 절박한 순간을 돌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초기 창업은 했다고 하더라도, 소위 창업 3~4년에 발생한다는 '죽음의 계곡'의 위기 속에서는 버티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스티브 잡스가 남긴 교훈 중 '해군이 되려하지 말고 해적이 되라'는 말이 있다. 오늘의 우리 청년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우리 청년창업에는 기업가정신이라는 근본이 결핍돼 있다. 자신의 일생을 거는 불굴의 의지, 위험을 돌파하려는 집념과 용기가 가슴 깊숙한 곳에 담겨야 한다. 해적 정신을 갖자는 스티브 잡스의 표현이 오늘따라 절실하게 들린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5-01-27 손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