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불안심리가 경제활성화의 주적(主敵)

작년 취업자 증가, 9년 만에 가장 저조해단기부동자금 1117조… 10년간 40% 증가외환위기 후 안전자산 선호지수 더 높아져선순환 담보 안된 정책 '언 발에 오줌누기'지난해 경제실적이 별로이다. 9일 발표한 통계청의 '2018년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 증가가 9만7천명에 그쳐 9년 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을 낸 것이다. 실업자수는 전년보다 5만명이 증가한 107만명으로 2000년 이후 가장 많다. 현 정부의 '일자리정부' 타령이 민망하다.올해 경제성적도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경제는 사람들의 심리를 먹고 크는 법인데 지난달 한국경제연구원이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국민 1천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019년 경제전망을 '부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이 70%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달 24일 서울연구원이 서울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유사한 분위기가 확인되었다. 극히 일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여서 확신은 금물이나 대다수 서민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느 누가 국내에 투자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정부는 금년 상반기 중에 일자리 및 사회간접자본 예산 61%를 쏟아부어 경기를 진작시키기로 했다. 2003년 카드 사태를 계기로 도입한 조기집행 중 가장 규모가 크나 재정의 경기진작 효과가 갈수록 떨어져 성과는 의문이다.주목되는 것은 넘쳐나는 국내의 부동자금이다. 금융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예금이나 머니마켓펀드(MMF),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MMDA) 등 단기부동자금이 무려 1천117조원에 이른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이 2009년의 800조원에서 10년 만에 무려 40%나 불어난 것이다. 작년 하반기만 해도 8월 대비 3개월 만에 부동자금이 28조원이나 증가했다. 넘쳐나는 국내 부동자금이 선순환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것이 정답이나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일본의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유발한 통설적 견해는 1985년 미국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대미무역 흑자국인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을 압박해서 해당국가의 통화가치를 10% 이상 끌어올리도록 한 플라자협정을 든다. 이후 엔화 환율이 상승하고 금리가 하락하자 해외자금들이 일본에 대량 유입되어 주가와 부동산가격을 끌어올리는 버블경제가 초래되었지만 일본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장기경제부진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 브린튼 미국 하버드대 라이샤워일본연구소 소장과 일본의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 야마기시 토시오(山岸俊男) 교수는 공저한 '위험에 등을 돌린 일본'(2010)에서 일본인들의 지나친 위험회피 성향이 '잃어버린 20년'의 근본원인이라 지적했다.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조사대상 일본인의 73%가 자신이 위험기피자라 응답했다. 버블붕괴는 일본인들의 위험회피지수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은행이자율이 0%에 가깝지만 주식으로 원금을 까먹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돈이 은행으로만 몰린다. 배당과 주식자본 이익에 대한 세금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음에도 가구총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6% 수준이다.국내에서도 일본과 유사한 현상들이 간취되는데 1997년 외환위기가 결정적이다.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이 낭패했음은 물론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은행들마저 줄줄이 폐업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격이니 종신고용시스템의 붕괴와 고령화는 한국인들의 안전자산 선호지수를 더욱 높였다. 부동자금 탓에 부동산투기가 만연하는 등 국민경제는 더 불안해졌다.임상심리학자 주디스 바드윅의 미국 장기경제부진에 대한 진단도 눈여겨볼만하다. 1947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의 연간 GDP성장률은 3.5%였지만 2002년 이후 이 숫자는 1.9%로 떨어졌다. 오바마정부와 진보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저성장의 시대를 '뉴 노멀'이라 명명하고 그 원인을 인구구조 변화 등에서 찾는다. 그러나 바드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30여년 장기호황으로 미국인들이 너무 오랫동안 기업이 제공하는 수많은 혜택에 안주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자금 선순환이 담보되지 않는 경제활성화 대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이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더 안전지대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법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9-01-15 이한구

[경인칼럼]사회개혁은 정치개혁에서 출발해야

국민들 국회의원수 늘리는데 부정적 입장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인한 변화 인식 낮아기득권동맹 방치땐 지속가능한 발전 불가능선거제 획기적 개혁만이 한국 바꿀 수 있어 올해 정치의 키워드는 내년 총선과 한반도 평화 의제, 경제 등이다. 여권으로서는 경제지표의 개선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않으면 위기는 깊어질 수 있다. 집권 3년 차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직면한 위기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일 수 있다. 지지율이 반등 국면으로 가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개혁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변화는 정치 패러다임이 바뀔 때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의 작동구조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현재 권력도 결국은 기존의 정치문법에 따라 움직인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불편하지만 현실을 보는 인식과 사고에서 보수와 진보 간의 시각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대결 구도는 정치부재를 가속화하는 구조적이며 결정적 요인이다. 이러한 정치패러다임을 바꾸지 않고 한국사회가 보다 진전된 사회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은 반정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적대와 대립에 입각한 지지층 결집이라는 아날로그식의 정치의 생존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정당의 생성과 존재양태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결국 선거제도의 혁신으로 귀착된다. 국민들은 선거제도 개혁엔 동의하지만 국회의원 증원에는 부정적이다. 또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다. 대체로 내용에 대한 이해 부족과 편견 때문이다. 이 제도는 불가피하게 국회의원 정수의 확대를 동반한다. 정치에 대한 무한불신을 가지고 있는 유권자들은 의원 정수 확대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에게 소요되는 예산을 동결하기 위하여 의원 1인당 경비를 줄인다고 해도 국민들은 믿지 않는다. 한국사회의 기득권 동맹의 공고화를 방치한다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시대지만 절차적 차원의 민주주의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로의 진화는 요원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방관하고 일자리와 고용만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과장하는 수구야당의 태도는 반시대적이다.소수와 사회적 약자들의 이해가 정당체제 내에서 반영되지 않는 지금의 구도에서 사회적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은 실질적으로 가능한가. 연동형 비례제의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어떠한 제도도 완벽하게 순기능적인 제도는 없다. 그러나 촛불혁명 때 주권자의 일반 의지를 담보했던 시민들의 요구와 주장은 현행 정당구도에서 수렴되거나 반영될 수 없다. 시민사회의 균열과 갈등이 조직화되지 않는다면 정당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서구의 부르주아 혁명을 가능케 했던 동인은 16~18세기에 발흥한 신흥 상공업 계급의 이해를 직접 정치영역에서 관철시키고자 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부르주아지들은 노동계급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구체제를 타파하고 기본권의 보호와 국가의 간섭을 배제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소외된 프롤레타리아도 그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정치영역에서 대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 보통선거다. 이러한 선거권의 확대가 바로 민주주의의 역사다. 정당은 PART라는 어원에서 보듯이 부분을 대표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은 어느 계층도 대표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는 대표성·책임성· 참여성이다. 지금의 선거제도는 어떠한 원리와도 친화적이지 않다.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정치영역에서 대표되지 않는 계층의 이해는 관철될 수 없다. 유치원 3법은 결국 말뿐인 패스트 트랙으로 넘어갔다. 그것도 1년의 유예기간을 둠으로써 여야 합의가 없다면 2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민생은 결국 정치영역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한국사회의 소수와 약자들의 이익은 대표되지 않을 것이다. 선거제도의 획기적 개혁만이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9-01-08 최창렬

[경인칼럼]문재인 정부도 역사의 한 줄기일 뿐이다

국민은 정권 교체해 가며 산업·민주화 성취특정집단 완벽한 역사 쓰려 조바심 칠일 아냐정부·집권여당, 겸손해지려고 노력 한다면 새해에는 사회의 많은 갈등 해소될 수 있어기해년 새해를 맞아 사람들은 덕담을 나누고 새해 각오를 다지는 각계의 신년사는 풍성하다. 덕담과 신년사의 각오가 실현된다면 대한민국은 2019년 한해에 역사에 없었던 천국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현실이 각박할수록 꿈과 희망은 장황해진다.1월 1일은 2018년 12월 31일의 연장일 뿐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기해년을 맞아 갑자기 달라질 리 없다. 지난해 마지막 날 국회 운영위가 그 증거다. 청와대 특감반 민간인 사찰 의혹을 놓고 청와대와 야당은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말했다. 국민 눈에는 국적이 다른 외국인들의 시비로 보였을 것이다. 장담하지만 말이 안통하는 외국어 정치는 새해에도 어김없이 반복될 것이다.황금돼지의 해라고 하지만 밑천 없는 장사는 없는 법이다. 2019년 경제의 밑천은 2018년의 경제다. 밑천만 보면 올해 경제전망은 불온(不溫)하다. 세계 경기의 하강국면이 예사롭지 않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의 결과가 어디에 미칠지 안 가본 길을 가야하는 두려움이 크다. 작년의 자동차, 철강산업 쇠퇴가 올해 반도체로 이어지면 대한민국 주력산업은 총체적 위기에 빠진다. 황금돼지의 기운에 편승한 낙관은 막연하다.정치는 막장이고 경제는 어려우니 새해는 글렀다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가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그저 어떻게든 살아날 구석을 만들어 버틴 거지." 지난 연말에 만난 한 기업인의 얘기다. 1990년대에 제조업을 시작해 IMF환란, 세계금융대란 등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아남은 사업가다. 그의 말대로 국민은 위기가 닥치면 모든 생존 수단을 동원해 살 길을 뚫어왔다. 이것이 현대사다. 대한민국은 위기와 극복의 무한궤도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를 적립해왔다.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는 국민이 적립한 일상의 누적이자 역대 정권이 분담했던 역사적 역할의 총합이다.면면히 흐르는 역사의 강(江)에서 문재인 정권도 지류이자 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 역사의 본류를 자임하고 전체임을 자처하면서 감당하지 않아도 될 고난을 감당하고 있다. 고난의 원인은 정권의 자부심이다.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자신들의 지고지순한 DNA를 강조한다. 초월적인 도덕성과 순수성에 기반한 정권의 국정운영에 오류는 없다는 태도는 너무 완강해 강박에 가깝다.무오류 정권의 정책은 수정되지 않는다. 남북정상회담, 소득주도성장, 원전 폐지 등이 그랬다. 북한 비핵화를 명기해야 한다는 비판도,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 요청도, 원전산업 붕괴 우려도 사소한 시비나 불순한 의도일 뿐이다. 대변인은 문재인 정권은 민간인 사찰 DNA가 없다고 단정했다. 여당 의원에게 조국은 '유전자 가위'고 김태우는 '불량 유전자'다. 대통령은 강력한 '경제실패 프레임'으로 정부의 경제적 성과가 빛을 잃는다고 답답해 한다. 야당의 비판은 적폐의 대변이고, 언론의 지적은 순결한 정권을 향한 저격일 뿐이다.정권이 스스로 완벽을 자처할수록 작은 상처에 휘청인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정권과 다르다. 그러나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완벽할 수는 없다. 상대적 우월감을 절대적 선으로 착각하면 실수를 교정하고 방향을 전환하기 힘들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민중으로부터 사랑받지 않아도 좋지만 원망받지는 말아야 한다"며 "시민들이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협 없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만 해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야당의 사찰의혹에 대해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지난 1년 대통령을 떠난 민심이 만들어낼 호랑이는 얼마나 무서울 것인가.역사의 주체는 국민이다. 국민은 정권을 바꿔가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현대사의 본류를 이루어 왔다. 남북관계나 경제도 마찬가지다. 국민은 정권을 바꾸어 가며 긴호흡으로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다. 특정 정권이 완벽한 역사를 만들겠다고 조바심 칠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과 집권여당이 역사와 국민 앞에 겸손해지면 우리 사회의 많은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 그래야 2019년 한해가 역사에 의미있게 보태질 것이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9-01-01 윤인수

[경인칼럼]교착국면과 남북 교류협력

상호주의 원칙따라 평등한 분야부터 추진'분단 70년' 차이 극복위한 양측 노력 필요지식재산권 보호등 관련법·제도 우선 정비문화예술·스포츠·학술교류 활발히 이뤄져야눈앞에 다가온 듯했던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이다. '선 비핵화'를 내세우는 미국과 '동시적 상응조치'를 내세우고 있는 북한 간의 줄다리기가 몇 달째 팽팽하다. 대화 기조와 유화적 제스처는 유지되고 있을 뿐 교착 타개의 책임은 상대편에 서로 떠넘기는 상황이다. 지루한 교착국면에서 초조한 것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버리고 비핵화를 선언한 북한이다. 파부침선(破釜沈船) 했지만 강화된 경제 제재로 성과를 낼 수 없게 되었으니 딜레마인 것이다. 중재자를 자처한 한국의 입장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미국은 남북 협상에 제동을 걸고, 북한은 미국 눈치만 본다고 불만이다.북미협상의 교착상태는 처음이 아니다. 제1차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격렬한 상호비방을 주고받았으며 싱가포르선언 이후에도 상당기간 답보상태였다. 우리 정부는 북미 협상의 교착 상태를 여러 차례 해결해 왔듯이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북미 간의 협상이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중재를 해나가야 한다. 북한이 원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와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평화협정이고 이를 위한 실질적 협상의 신속한 진전이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달성될 때까지 기존 대북 제재를 유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북한은 적대행위가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핵 폐기 요구에는 응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합의와 실천으로 신뢰를 쌓고 큰 과제를 해결해나갈 수밖에 없다.미국은 우리 정부에 속도 조절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제재와 무관한 남북이 교류협력 사업에 오히려 속도를 내는 것이 북한과 미국의 협상을 촉진하고 속도감을 부여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비핵화 협상의 교착국면이 길어지면서 협상의 동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공존한다. 최악의 경우 2017년의 위기상황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 비핵화 협상에서 속도는 중요하다. 이미 임기의 반환점을 지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며, 임기 내에 정치적 위기에 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 경우 비핵화 협상은 과거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 합의한 제네바 합의와 경수로지원사업의 운명처럼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전철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현재 남북이 추진하고 있는 육로와 철도, 항공로의 연결은 통일한국을 위한 기초 사회적 자본이다. 이 사업은 남북한의 공동번영을 위한 투자이면서 평화체제로의 이행이 불가역적임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며, 동맹국들에게 적극적 협상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제재국면에도 가능한 교류협력 사업을 발굴하여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교류는 상호주의의 원칙에 따라 진행되어야 하며 비교적 평등한 분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남북한이 상호 이해가 깊어져야 한다.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이 넘었다. 언어와 민속과 같은 문화적 차이는 물론 경제 제도와 생활, 행정, 교육, 법률 등 사회 제도의 이질감이 크다.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남북 양측의 노력이 필요하다. 남북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교류와 협력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남북한의 교류 협력이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관련법을 비롯한 제도가 먼저 정비되어야 한다. 남북한의 지식과 정보의 교류 촉진을 위해서는 지적 재산권이 남북한에서 동시에 보호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스포츠와 문화예술 및 학술 교류는 언제든 가능한 사업이다. 평창올림픽에서 남북은 단일팀을 구성하여 참가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단일민족임을 천명하고, 남북 화해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문화예술행사를 통한 문화예술작품과 문화예술인의 교류는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 파급력이 크므로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또 학술교류도 남북한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중단되지 않고 추진돼온 사업이다./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8-12-25 김창수

[경인칼럼]우측통행은 약속이다

횡단보도 '우측통행' 2010년 7월부터 시행8년 지났지만 여전히 뒤섞여 '무질서 보행'사회가 필요로 한 규칙 지켜져야 삶도 지속오늘도 걱정스러운 그 길 불안하게 걷는다좌측통행은 인류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보행방식이었다. 1998년 영국에서 로마제국의 채석장을 발견했는데 도로의 왼쪽이 오른쪽보다 더 꺼져있었다. 반출하는 돌의 하중이 길 왼쪽에 집중된 결과라고 학자들은 결론을 내렸다. 이유야 모르겠지만 인류의 85∼90%는 오른손잡이다. 중세 봉건시대라고 다를 리 없었겠다. 오른손잡이 기사(knight)는 몸의 왼쪽에 칼집을 찬다. 말 등에 오를 때에도 왼쪽이 훨씬 편하다. 오른쪽에서 오르려면 긴 칼집이 거추장스러웠을 것이다. 말안장에 앉아서도 적의 왼쪽에 서야 오른손으로 잡은 칼을 최단거리에서 휘둘러 적을 제압할 수 있다. 에도시대 일본의 사무라이들 역시 좁은 길에서 자존심의 상징인 칼이 서로 부딪치는 걸 피하려면 칼집이 최대한 멀리 거리를 두게 되는 통행방식을 택해야 했다.인류의 3분의 2가 우측통행을 하게 된 것은 겨우 250년 전부터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와 미국에서 여러 필의 말이 끄는 커다란 마차가 농작물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그 대형마차엔 마부(teamster)가 앉는 자리가 따로 없었다. 마부들은 왼쪽 뒤편의 말에 올라탔다. 왼손으로 말고삐를 말아 쥐고 오른손에 쥔 채찍으로 말들을 조종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였다. 그 위치에서 맞은편 달려오는 마차의 바퀴와 내 마차바퀴가 충돌하는 '치명적 교통사고'를 피하려면 눈으로 직접 바퀴 사이의 거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우측통행이 해결책이었다. 마침내 179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가 우측통행을 법으로 정했다. 프랑스에선 1789년 대혁명이 우측통행의 일대 계기가 됐다. 전통적으로 귀족은 길의 왼쪽, 평민은 오른쪽을 이용했다. 하지만 바스티유 감옥이 불타고 대혁명의 파고가 날로 높아지자 위협을 느낀 귀족들이 스스로 몸을 낮췄다. 평민들의 무리에 섞여 오른쪽으로 통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나폴레옹의 무력도 영국을 제외한 유럽 전역에 프랑스식 우측통행을 이식하는데 큰 몫을 했다.우리는 어땠나. 1960년대 후반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 하는 노래를 배웠다. 학교 복도에서, 횡단보도에서, 큰 길에서, 심지어 역전광장에서도 모두들 왼쪽으로 걸었다. 내 등 뒤에서 화물을 산더미처럼 실은 트럭이 덮칠 듯 달려와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으니까. 일제와 미군정의 잔재가 겹치면서 자동차가 오른쪽으로 다니는 국가 중 유일하게 사람은 왼쪽으로 다니는 나라의 국민이 감수해야 할 몫이었다. 그러던 중 1994년 3월 경찰청이 자동차와 보행자 모두 우측통행을 하자며 캠페인을 벌였다. 특히 횡단보도에서는 우측통행을 해야 정지선을 넘는 차량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횡단보도에 늘어선 핫팬츠 차림의 미녀들이 피켓을 높이 들고 우측통행을 외쳤다. 15년 뒤인 2009년 10월 1일 비로소 법 개정을 통해 우측통행이 명문화되고, 이듬해 7월 1일 전면시행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안타깝게도 길은 여전히 혼란에 빠져있다. 제한된 폭의 보행로에 왼쪽으로 걷는 사람, 오른쪽으로 걷는 이들이 마구 뒤섞인다.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은 채 걷는 '스몸비(smombie)'까지 합류하면 무질서는 가히 절정이다. 손에 든 가방들이 부딪치고, 어깨들이 부딪치고, 저러다 싸움 나지 걱정스러운 상황까지 발생한다. 실제로 올봄 포항에선 길 가다 어깨를 부딪치는, 이른바 '어깨빵' 시비 끝에 30대 행인이 무참하게 폭행당해 숨지는 일까지 있었다. 유사한 일들이 잦다. 물론 제각기 편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다 보면 저절로 최적의 방안이 도출될 수 있다는 낙관적 기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측통행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시행 8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도 보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이토록 어지러운 보행로를 이대로 내버려두어야 할까. 좌측통행이든 우측통행이든 그때 그 사회가 필요로 한 사회적 약속이다. 그런 약속들이 지켜져야 인류의 삶도 지속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그 길을 불안한 시선으로 걷는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8-12-18 이충환

[경인칼럼]끓는 물속의 개구리

전쟁 폐허서 '한강의 기적' 만든 한국인도전 엔진 멈추고 계산적 사업가만 넘쳐정당정치에 이데올로기 대신 도덕적 해이좌면우고의 '황금돼지 해' 되길 기대한다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의 돌연 사퇴 발표가 보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화두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외 62개 계열사의 자산총액이 10조8천400억원이며 매출액 9조740억원에 당기순이익 570억원의 창업 3대 대물림 재벌인데다 이 회장은 1996년에 총수직에 오른 이후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도록 큰 무리 없이 경영을 해온 때문이다.특히 그가 20년 동안 공을 들여온 세계최초의 골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가 결실을 맺고 있어 더 의아하다. 인보사는 지난해 국내 허가획득 이후 중국, 홍콩,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에 제품 수출은 물론 지난달에는 글로벌 제약사인 먼디파마와 6천677억원의 기술수출 계약까지 체결했다. 4대강 사업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를 개연성이 큰 데다 고(故) 장자연 사건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데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말들도 나온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회장직 퇴임사에 주목했다. 이제는 편히 쉬어도 흉이 될 것이 없는 이순(耳順)의 나이에 금수저를 내던지고 새로 창업에 도전하겠다니 말이다. 어떤 사업을, 어떻게 시작할지가 관건이나 만일 창업에 성공한다면 그는 국내 최고의 늦깎이 창업기업가로 기록될 것이다. 현재까지 가장 늦은 나이에 창업해서 성공한 사례는 고(故) 조홍제인데 그는 56세에 사업에 착수해서 효성그룹을 완성했다. 1996년 미국의 경제전문지 '잉크' 편집장이 경영학의 큰 스승인 피터 드러커에게 "세계에서 기업가정신이 가장 충만한 나라가 어디냐?"고 물었다. 드러커 교수는 "의심할 여지없이 한국이다. 40년 전만 해도 한국에는 어떤 산업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각국은 산업혁명 이후 200년 만에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것이다. 한국인의 성공신화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무모한 도전'이었다.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의 도전 엔진이 멈춰버렸다. 시간이 아깝다며 햄버거로 한 끼를 때우고 밤을 낮 삼아 세계시장을 누비던 경영자들 대신 꿀단지만 지키려는 계산적인 사업가들만 수두룩하다. 2015년 KBS 방송문화연구소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0%는 한국경제가 역동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에 공감을 표명했다. 그리고 경기침체 극복과 경제활성화가 한국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지목했다. 한 나라의 경제역동성을 측정하는 보편적 도구는 '기업교체율'이다. 전체 기업수에서 신생기업과 퇴출기업이 각각 차지하는 비율로 수치가 높을수록 역동적이다. 2015년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결과 국내 제조업의 기업교체율은 2002년 30%에서 2011년에는 19%로 하락했다. 과거에는 10대 기업의 80%가 새로운 기업으로 교체되었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는 10대 재벌 순위가 거의 불변이다. 경제성장률은 1960~70년대의 연평균 7% 이상에서 최근 5년 동안에는 3% 미만으로 반 토막 났다.기업가정신지수도 1976년의 150에서 2013년에는 66으로 급락했다. 2016년말 세계 기업가정신 발전기구(GEDI)에 따르면 한국은 OECD 회원국 34개국 중 23위로 중하위 수준이다. 일본은 25위를 기록했다. 기업가정신이란 기업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기회에 도전하는 혁신행동으로 경제성장의 견인차이다. 20세기 초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는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기업가들의 모험정신이 쇠퇴한다며 자본주의의 장래를 우려했었다. 그러나 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2배 이상인 미국의 경우 최근 경제성장률이 우리나라를 능가했을 뿐 아니라 기업가정신지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유권자들의 표만 의식한 역대 국내 정부들의 천편일률적인 '좌향좌' 지속에 기인한 바 크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개발독재와 정경유착 때문이나 결과적으로 국내 정당정치에는 이데올로기 대신 도덕적 해이가 자리 잡았으며 5천만 국민 모두는 '끓는 물속의 개구리' 신세가 되고 말았다. 2013년에 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회원국 중에서 가장 빠르게 둔화되는바 이런 추세라면 2030년대 후반에는 0%대로 추락할 것이라 경고했다. 좌면우고(左眄右顧)의 '황금돼지 해'를 기대한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8-12-11 이한구

[경인칼럼]지지율 하락의 함의

최저임금 인상 속도에 자영업자들 어려움상·하위 소득격차 더 벌어져 양극화 심각개혁 지체로 진보진영과의 대립구도 형성공직기강 해이 등… 대처 안하면 반전 없어내년엔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당들의 통합과 연대 등 정당구도의 재편이 불가피하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 차 정당들의 이합집산이 개혁지향적 정당재편성을 결과할지, 보수·진보 양 극단의 전통적 지지층 결집을 통한 거대양당의 카르텔 체제로 귀결될지 알 수 없다. 정당재정렬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의 국회가 민심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20대 여소야대 국회는 촛불민심과 친화적이지 않다. 문재인 집권 1년 7개월이 지났으나 검찰 등 수사기관에 의한 사법처리를 제외하고 사회구조적 혁신을 펼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한국정당체제는 집권당이 의석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는 여소야대 현상이 보편화되어 있다. 이는 대통령과 의회의 충돌로 인한 국정 교착을 야기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타개할 합의의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정당문화는 이를 더욱 강화시킨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은 야당들의 지지율 정체에 안주하여 개혁과 협치에 소극적이다. 임기 초 80%를 넘던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연 9주째 하락세다. 특기할 현상은 특정 계층, 지역에서는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민주당의 지지율을 앞서고, 긍정 평가보다 부정 평가가 높게 나오는 세대도 있다는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긍정과 부정 평가가 수렴한다는 사실은 집권 2년 차 시점에서 총체적인 국정 로드맵을 재설정하라는 강력한 경고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역대 정권의 경우 집권 측에 대한 피로감과 집권세력의 안이함 등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적신호를 간과한 결과는 임기 말 극심한 레임덕 현상이다. 국정 난조를 거쳐 임기 말 권력누수로 이어지는 한국정치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지율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보수적 관점에서는 일자리와 투자, 고용 등의 거시지표의 악화와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에 따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꼽는다. 다른 관점의 분석도 가능하다. 통계청 발표 3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상위 20%의 소득과 하위 20%의 소득격차는 더 벌어졌다.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경제력 집중 완화 등의 정책 부재, 최저임금의 산입범위와 탄력근로제 확대 등 개혁 지체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도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진보진영과의 대립구도는 화물연대의 파업 등에 대처하지 못했던 노무현 정부를 떠올리게 된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같지 않지만 집권 후 국정운영에서 마주하는 현실적 딜레마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보수·진보 양쪽으로부터 협공받는 구도는 지지율의 하락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경남·부산 지역 등 전통적 야권 강세 지역의 표심도 집권 초와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은 보수통합이라는 명분으로 수구적 정치적 수사를 동원하며 반격을 모색하고 있다. 촛불세력 대 촛불정부의 대립구도마저 읽힌다. 청와대와 공직 기강의 해이 등 정권의 위기가 의외로 빨리 오고 있다. 이러한 경고음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반전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핵심은 촛불이 지향했던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결과의 정의를 제도화할 수 있는 동력의 상실이다. 경제 난맥 상황에서 개혁 의제가 추동되기 어렵고 지지율마저 난조를 보이고 청와대 기강 해이마저 노출된다면 마치 임기 말의 레임덕을 보는 것 같은 착시도 생긴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제도화하고 조직화함으로써 사회적 균열을 드러내고 이를 조율해 나가는 시스템이다. 사심 없이 개혁의 초심으로 돌아가면 경제도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집권세력 내의 친문이니 비문 등의 권력분화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 역사엔 항상 반동과 수구가 있다. 새로운 '반동'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반격의 일격을 노리는 수구세력의 정치사회적 퇴행이 명분과 전의를 상실하게 하려면 개혁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공학도 그때 생각해 볼 일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8-12-04 최창렬

[경인칼럼]시대정신을 상실한 권력은 추악하다

박정희의 '산업화'와 김대중의 '민주화'특별한 시공간 견인했던 남달랐던 리더십한국당 권력투쟁·여권 차기대권 예비 암투진로 잃은 '맹목적 정치' 대한민국 위기 본질현재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들은 우리 현대사에 뚜렷했던 대립적인 시대정신에 기원을 두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다. 보수 정당은 산업화를 통해 이룬 경제적 성취를 성장판 삼아 오늘에 이르렀다. 진보 정당은 민주화 과정에서 획득한 우월적 도덕성에 발을 딛고 있다.산업화 시대의 주역은 박정희다. 그는 정변을 통해 장악한 독재권력으로 경제건설에 전력을 쏟았다. 집권 당시의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이었다. 정권의 슬로건은 '조국 근대화'였다. 말 장난일지 모르나, 당시 한국 경제는 당대의 현대화를 꿈 꾸기엔 근대화 수준에도 한참 모자랐다. 전부 맨땅에서 시작했다. 머리카락 부터 시작해 돈이 될만한 건 모조리 내다 팔았다. 무역의 시작이었다. 고속도로를 깔고 제철소를 짓고 조선소를 세웠다. 제조업의 출발이었다. 모든 일이 최초의 시도였다. 경제부흥의 신화와 에피소드는 바로 그 '최초'에서 잉태되고 탄생했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유보했다. "민주주의도 경제건설의 토양 위에서만 자랄 수 있다"고 단언했다. 말대로 됐다. 경제성장은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적 욕망을 키웠다. 그 욕망이 분출하는 순간 그의 하수인은 그에게 권총을 발사했다.민주화 시대를 선두에서 이끌었던 김대중(DJ)은 어떤가. 그는 박정희가 유보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해 저항했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결코 유보할 수 없는 가치였다. 목숨을 걸고 국가 권력 전체와 맞섰다. 현해탄에 수장될 뻔 했고, 망명의 설움을 삼켜야 했다. 박정희 사후 우여곡절을 거쳐 대통령이 된 DJ는 IMF경제위기를 극복했다. 지금이라면 진보세력이 질색할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위기 극복의 수단으로 삼았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획득한 국민적 지지가 있기에 가능했다. 국제적인 리더십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아 국격을 높였다.대한민국의 오늘을 낳은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는 특별한 시공간이다. 그 시대를 견인한 '특별했던 리더십'은 존중받아야 한다. 진보진영은 박정희의 말대로 그의 무덤에 침을 뱉는다. 일본군 다카기 마사오의 흔적을 저주하고, 일본의 배상금과 월남전 목숨값을 이유로 산업화를 조롱한다. 그래도 박정희의 산업화 업적을 다 덮지 못한다.보수진영은 DJ를 진보진영의 사회주의적 경향의 원조로 평가절하한다. DJ로 부터 시작된 햇볕정책의 폐해만을 주목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조차도 DJ가 목숨 걸고 지켜낸 민주주의를 만끽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정치자금 수수, 가족비리와 같은 흠결에도 DJ의 민주화 업적은 꿋꿋하다.역사적 시대를 견인했던 의미심장한 리더십이 사라진 지금, 그 시대가 남긴 업적은 무너지고 유훈은 희미해졌다. 대신 적폐와 길 잃은 리더십만 남았다.보수세력이 먼저 무너졌다. 권력 내부의 민주화를 외면하고 시대착오적인 권위를 떠받들다 무너졌다. 산업화 시대의 계승자로서 그 시대의 모순과 부조리만 물려받았다. 박정희의 시대정신은 까먹고 그 시대의 적폐만 남겼다. 적폐만 남은 폐허에서 의미없는 내부 권력투쟁에 몰두하고 있으니 처연하다.진보진영은 새로운 적폐를 쌓아가는 중이다. 민주화 시대가 목숨을 걸고 남겨 준 민주주의 가치가 독선과 독단의 수단으로 전락중이라는 의심이 짙어지고 있다. 이념적 자유와 인권이 경제적 자유와 법인의 권리를 압도한다. 정부와 민노총의 갈등에서 보듯이 이념과 가치의 주도권 다툼으로 진영내부는 시끄럽고 민주적 절차와 질서는 무너지고 있다.박정희는 산업화 시대를 열기위해 권력을 잡았고 DJ는 민주화 시대를 견인한 결과로 권력을 얻었다. 권력의 바탕에 시대정신이 있었다. 시대정신을 벗어던진 권력의 알몸은 추하다. 자유한국당의 내부 권력투쟁이나, 여권의 차기 대권 예비 암투가 그렇다. 시대의 진로를 상실한 맹목적 정치. 대한민국 위기의 본질이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8-11-27 윤인수

[경인칼럼]'신사와 숙녀'의 종언

유럽에선 관행적 인사말 사용하지 않기로우리나라 '성중립' 국제적 수준 크게 미달폭력으로 중단 퀴어축제 '성평등의식 민낯'소수자 배려하는 도시의 개방·관용성 필요'신사와 숙녀'라는 호명을 유럽의 지하철에서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행사나 연설을 시작할 때 관용적 인사말인 '신사, 숙녀 여러분(Ladies and gentlemen)'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영국은 2017년 7월부터, 네덜란드는 2017년 12월부터 모든 열차와 역사 안내방송에서 승객들을 '신사 숙녀'라는 호칭 대신 '여행자(travelers, passengers)'로 바꾸어 쓰고 있다. 남자와 여자로만 나누는 기존의 성 구분이 성소수자를 소외시키고,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을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일반적으로 신사는 남자를 높여 부를 때나,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 남자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해왔다. 그런데 서양이나 동양에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신사'는 교양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급이나 권세 있는 지방의 토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새로 형성된 중산층 계급인 젠트리(gentry)가 영국 신사의 어원이었다. 한편 한자어 '신사(紳士)'는 중국 명·청 시대의 지배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신사'계급이 근대화 과정에서 상업에 진출하면서 상업에 종사하는 신사라는 뜻의 '신상(紳商)'이라는 새로운 계층이 출현했다. 개항기 인천에서 활동한 인천신상협회(仁川紳商協會)라는 단체의 구성원을 보면 서상집, 박명규 등 주로 객주 상인들이었다.신분제와 모더니티를 버무린 '신사와 숙녀'라는 말의 퇴장은 어쩌면 시간문제였을지도 모르고, 또 사소한 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소수자 배려라는 명분은 존중할만하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선진국들의 배려 정책은 세심하다. 스웨덴학술원은 2015년, 자신의 성을 남녀로 구분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을 위한 대명사 '헨(hen)'을 공식단어로 등록했다. 스웨덴어로 남자(han)와 여자(hon)를 합성한 단어이다. 미국도 성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본격화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본인의 성을 표시할 때, 남성 또는 여성이 아닌 중립적인 성('ze'나 'they')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캘리포니아주는 공공건물의 화장실에 남녀 구분 표지판을 없앤 '성 중립화'를 의무화한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1인용 화장실의 경우 성 정체성의 구분 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 실상을 고발하면서 미투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문단과 연극계를 비롯한 문화예술계와 일부 대학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드러났지만 여전히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성중립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국제적 수준에 크게 미달한다. 국가가 주민등록번호로 양성 구분의 '대못'을 숫자로 박아 놓은 상태이니 말이다. 직업을 가진 여성들만 여의사, 여교사, 여학생, 여비서. 여군, 여류시인, 여류화가 등으로 나눠 부르는 우리 관행에 대한 '정치적 언어 수정(political correctness)'도 시급해 보인다.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민주주의적 과제가 남아있지만 일상공간에서의 성소수자 배려와 젠더중립적 실천도 중요하다.지난 9월 인천 동구 동인천역 광장에서 열릴 성소수자들의 축제인 퀴어축제가 기독교 단체의 위협과 폭력으로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태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성평등의식의 민낯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세계가 주목하는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세계도시를 지향하는 인천에서, 그것도 개방성과 다문화성을 장소성이라고 내세우던 개항장 인근에서 벌어졌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도시의 개방성과 관용성, 시민의식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리트머스지와 같다. 세계도시와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도시라면 마땅히 문화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다문화도시여야 한다./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8-11-20 김창수

[경인칼럼]시선의 확대, 행동의 확산

방송정책 수립·집행하는 해외전문가들드론촬영법 등 무료 프로그램 놀라워 해미디어교육 해외 무상지원 가능성 물음에마냥 마다하기에는 너무 미안한 마음 커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를 찾는 해외전문가들의 발길이 잦다. 주로 방송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담당하는 위치에 있는 각국의 고위직 공무원들이거나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다. 지난주만 해도 두 개의 그룹이 센터를 찾았다. 화요일에 방문한 이들은 아시아-태평양 방송개발기구(AIBD) 회원국 관계자들이었다. 한국은 26개 회원국들로 이뤄진 AIBD의 집행이사국인데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최하고 AIBD와 시청자미디어재단이 공동주관하는 '시청자권익증진 국제세미나'가 서울에서 열렸다. 이 세미나의 첫째 날, 참가자들은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시청자권익증진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인 뒤 곧바로 인천으로 이동했다.먼저 송도국제도시의 해송중학교에서 '찾아가는 미디어버스'의 실제 교육현장을 참관했다. '찾아가는 미디어버스'는 시청자미디어센터를 직접 이용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이동형 미디어교육프로그램이다. 방송체험시설과 VR장비를 갖춘 대형차량 2대가 강원도 산골부터 제주도와 서해 덕적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누빈다. 이날은 AIBD 관계자들을 위해 도심에서 운영한 예외적인 경우였다. 이어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교육프로그램 전반과 시설·장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마침 다목적 홀에서 진행 중인 드론 촬영교육을 참관하고, 1인 미디어 스튜디오에서는 직접 실시간 방송에도 참여했다. "와우, 원더풀!" "잇츠 그레이트!" 탄성이 이어졌다.금요일 방문그룹은 한국교육학술정보원과 시청자미디어재단 등이 공동주최한 '2018 미디어·정보리터러시 국제심포지엄'의 기조강연자와 각 세션별 주요 발제자들이다. 기조강연을 맡았던 폴 미할리디스 미국 에머슨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메이저 언론에도 기고하고 있는 미디어리터러시와 시민미디어운동 전문가다. 해마다 5개 대륙의 청년미디어제작자 70여 명과 교수 12명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3주 동안 모여 사회변화를 위한 독특하고 창의적인 미디어리터러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미디어와 글로벌 변화를 위한 잘츠부르크 아카데미' 이사로서의 활약상이 특히 두드러진다.미디어·정보리터러시 글로벌협의회(GAPMIL) 부의장인 하린더 팔 싱 칼라 인도 펀잡대 교수,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디지털시민성교육위원회의 가이드라인 개발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알렉산드로 소리아니 이탈리아 볼로냐대 교수, 유엔 전기통신연합(ITU) 전문가인 데이비드 라이트 영국 인터넷안전센터 소장 등은 각 세션에서 주제발표를 했다. 이들 역시 세미나의 주요 일정으로서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의 실제 현장인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를 찾은 것이다.센터를 둘러본 대부분의 해외전문가들은 동영상 제작, 1인 미디어 실습, 드론 촬영 등 기존 미디어부터 최첨단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와 관련한 모든 교육프로그램이 무료로 제공된다는 사실을 놀라워한다. 그리고 이런 시설과 장비를 갖춘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설립이 전국적으로 계속 추진되고 있는 현실을 부러워한다. 지난주에 방문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특히 우리와 이웃한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 관계자의 부러운 반응을 온몸 가득히 느낄 때마다 가슴이 뜨끔하다. 우리는 지금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그 위상에 걸맞게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그날도 실제로 한 전문가는 우리 미디어교육시스템의 해외 무상지원 가능성을 내게 물어왔다.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 내부에서 그러한 논의가 진지하게 이뤄지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해 전 현지를 방문해 여건을 살피기까지 했다. 여러 이유로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또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쯤 다시 들여다볼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도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밀어야 할 손길을 마냥 접어두기에는 그 시간 쌓이게 될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의 크기가 너무 클 것 같다. 시선의 확대, 사고의 확장, 행동의 확산이 필요한 시점이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8-11-13 이충환

[경인칼럼]신인류(新人類) 시대의 경고

2100년 세계인구 60억 미만으로 감소 추정인재들 '자본주의적 노동윤리' 거부 시작성실한 노동·돈벌이 관심 잃어 위기직면'현대산업이 따기쉬운 과일 모두 수확' 경고'바링허우(八零後)'는 덩샤오핑이 '1가구 1자녀' 정책을 실시한 1980년대 이후에 출생한 2억5천만 중국의 소황제(小皇帝)들로 유독 별명이 많다.푸얼다이(富二代), 관얼다이(官二代), 달팽이족, 생쥐족(지하셋방 거주자), 개미족(아파트 방 한칸에 세 들어 사는 자), 딸기족(한 직장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 자), 켄라오( 老, 성인이 돼서도 부모에게 돈을 타서 쓰는 자), 다이쓰(루저), 광군(光棍, 노총각), 성뉘(剩女, 노처녀), 싸우난(三無男, 아파트, 자동차, 돈 없는 남자) 등이다. 금수저인 푸얼다이와 관얼다이를 빼면 별 볼 일(?)이 없다. 사회주의체제에서 태어나 자본주의 파도를 맞이한 중국의 '신인류(新人類)'들이다.'신인류'는 1990년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일본이 완전히 선진국 지위에 오른 70년대 중반~80년대 초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들이다. 경제성장을 떠받치던 부모세대의 노동윤리를 저버리고 서구식 개인주의를 적극 받아들이며 결혼이나 출세, 정치 등에는 우려스러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대신 만화, 스니커즈 패션과 워크맨, 좀 더 나중에서는 아이팟 문화에 매몰되어 '소확행'을 즐긴다. 신인류의 원조는 '히피족'으로 불리던 1960~70년대 미국의 반(反)문화 세대이다. 1950년대를 상징한 직장인(organization man) 세대의 자녀들로 마약을 하고, 자유연애를 즐기며, 록음악을 듣고, 자아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나르시시스트이면서 반체제 성향이 강했다. 같은 시기 유럽에서도 기업 경영자들과 사회비평가들이 '노동 알레르기'라는 새로운 현상이 젊은이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며 우려했었다.한국의 신인류는 'M(밀레니얼)세대'이다.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 출생하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세대로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소통에 익숙하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로 불리더니 요즘엔 모든 것을 포기한 'N포 세대'로 통한다.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로 비하하는 M세대는 직장에서는 노마드(유목민)로 불린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이 2010년 15.7%에서 2016년에는 27.7%로 급증했다. 조직문화 적응 실패 내지 인내심 부족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극심한 취업난과 밀레니얼의 노마드적 특성이 맞물리면서 프리터(free+arbeiter)들도 늘고 있다. 하루 4~8시간 정도 편의점 알바 혹은 해외 '워킹 홀리데이' 등 파트타이머들이다. M세대에게 세상의 중심은 '나'로써 자기결정권에 집착한다. '인맥이 자산'이라며 인적 네트워크를 쌓는데 골몰했던 부모세대와는 판이하다. '혼밥', '혼술' 트렌드가 나온 배경이다. '혼자 놀기'는 최근 들어 '나만의 공간'과 '나만의 취미'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래학자 대다수는 향후 40년 사이에 중국의 인당 소득은 열 배가 되고 미국과 유럽은 두 배가 될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경제성장률 둔화와 소득분배 악화는 점입가경이다. 세계화의 진전과 전무후무한 인구구조 변화-저출산, 고령화-때문이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자녀수인 합계출산율의 경우 영국에서는 다섯 명에서 두 명으로 줄어드는데 130년이 소요되었으나 한국은 20년밖에 안 걸렸다. 유엔의 2008년 세계인구 전망에서는 2100년에 세계 인구는 60억 명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교육을 많이 받은 인재들이 자본주의적 노동윤리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성실한 노동과 돈벌이에 관심을 잃게 되면 위기에 처한다. 육식동물 같은 대형의 포식자들이 줄어들면 피식자인 초식동물이 증가하게 되고 피식자들이 풀을 고갈시켜 전체 생태계를 파괴시킨다.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위기도 자본가 자신이 의존하는 대상을 과도하게 착취하는 데서 발생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최근 1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의 한 명으로 꼽은 타일러 코웬(Tyler Cowen)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의 "현대 산업이 '따기 쉬운 과일'은 이미 다 수확했다"는 경고에 눈길이 간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8-11-06 이한구

[경인칼럼]왜 정치는 촛불 2년전과 판박이인가

한국당, 바른미래 대상 보수의미 성찰없이당세우위 위한 '흡수 시도' 정당성 확보 못해'산술적 통합' 지양 민주당보다 적극적으로선거제도 개편 나선다면 보수중심 거듭날것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세우자고 외쳤던 촛불이 점화된 지 2년이 지났다. 촛불의 궁극적 목표는 한국사회의 근본적 개혁과 변화다. 박근혜 탄핵은 국민을 배신한 권력에 대한 헌법 절차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이라는 세계사적 전환을 위한 변화를 제외하고는 개혁 동력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결국 사회경제적 변화와 약자의 이익은 정치에 의해서 이뤄지고 대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는 과거의 정치문법으로 빠르게 회귀하고 있다. 정당의 연대나 통합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정당 간 연합은 정당체제 내의 긴장과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 연합정치가 가치와 지향을 공유하는 정당 간의 역동적 이합집산으로 이어진다면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수대통합론에 기대어 다음 총선에서 보수결집을 통해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박근혜 탄핵에 반대했던 세력들이 한국정치 개혁을 위한 정치제도 개선에 유인을 느낄 것 같지 않다. 한국정당체제는 다당제의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다당제가 갖는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다당제의 의미는 시민사회의 균열을 균형 있게 반영함으로써 소수의 이해가 대표될 수 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정치개혁특위의 가동을 계기로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개선하고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이 반영된 공직선거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지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거대정당의 정당이기주의도 문제지만 한국당 발 보수통합론 때문에 선거제도 개편이 동력을 얻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한국당 발 보수통합론이 가치와 정책의 공유에 기반한 발상인가. 일단 보수통합의 개념부터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 발전에 관해 부정으로 일관하는 한국당은 과연 보수인가. '보수'는 타율적으로 부과된 냉전 반공주의의 구시대적 유물에 갇혀있는 냉전 세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태생적 한계가 있는 정권의 호위무사들의 금과옥조였던 반공 이데올로기는 한국보수의 기원을 안보논리에 갇히게 만들었고, 왜곡된 냉전의 유전인자가 지금도 한국당의 기저를 형성하는 것은 아닌지 냉정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국면에서도 지지율이 반등하지 않는 원인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한국보수의 기원이 냉전체제와 무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제약 요인으로 기능했던 냉전체제가 기득권과 친화적인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보수 결집'을 통해 표를 얻기 위해 아직도 냉전의 유산에 집착한다면 보수통합은커녕 정당체제 밖으로 퇴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 한국당이 바른미래당을 대상으로 추진하려는 보수통합이 사회경제적 계층으로서의 보수의 의미에 대한 성찰 없이 당세의 우위를 바탕으로 일방적인 흡수통합을 시도하는 것이라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통합이란 가치나 철학의 공유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이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토대 위에서 논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례성의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선거제도 개편은 양당제보다는 다당제와 친화적이기 때문에 한국당의 '보수통합'은 논리적 상관관계로 볼 때 선거제도 개혁과 조화되지 않는다. 보수통합론이 안보보수 등을 내용으로 하는 보수 대 진보의 대결적 구도에서 또다시 적대적 공존의 수혜자가 되고 싶다는 혐의가 짙기 때문이다. 이념적·계층적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적 대표 체제의 개혁은 선거법 개정을 통한 제도화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수통합론은 정치개혁과는 갈등적이다. 개혁적 의제로 승부할 때 진정한 보수정당으로의 위상을 찾을 수 있다. 한국당이 산술적 통합을 지양하고 민주당보다 적극적으로 선거제도 개편에 나선다면 보수의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다. 연목구어인가./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8-10-30 최창렬

[경인칼럼]분노의 화염에 휩싸인 그라운드 제로사회

PC방 알바생 살해한 청년의 범행 동기사립유치원 비리·공기업 고용세습 의혹갈등서 촉발된 '격분' 법과 제도로 수렴돼야더이상 먹이 없을때 분노는 정치로 향할것PC방 아르바이트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청년의 범행 동기는 작은 분노였다. 자리에 쌓인 꽁초를 치워달라며 시비가 붙었고, 게임비 환불 요구를 거절당하자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 시비의 내용과 게임비 천원의 사소함에 비하면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분노는 너무 컸다. 범인은 이제 거꾸로 사회적 분노에 직면해있다. 가족이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하고 경찰이 정신감정을 의뢰하자 100만명 넘는 시민이 청와대 청원게시판을 점령했다. 심신 미약에 의한 감경을 우려하며 엄벌에 처해달라는 요구다. 검경과 법원이 시민의 분노를 외면하기 힘들게 됐다.최근 우리 사회에 분노의 무한 충돌 현상이 뚜렷하다. 이념과 계층과 상관없이 공생하던 공동체가 적대적으로 대치하며 분노를 표출한다. 이념적 진영과 계층 내부에서 분노가 분화하고 확대된다. 이를 자양분 삼아 이념과 계층 간의 오래된 적대는 더욱 단단해지고 상대를 말살하려는 분노의 화염은 더욱 거세진다.사립유치원 회계비리 사태로 유아교육 공동체가 쑥대밭이 됐다. 학부모들은 정부 지원금으로 명품 핸드백과 성인용품까지 구매했다는 비리 명세서에 몸서리쳤다. 사립유치원을 향한 분노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예전 같으면 유치원 쪽에서 납작 엎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사립유치원 측은 오히려 여당과 정부를 향해 분노를 터트린다. 토지와 건물을 투자해 유아교육을 떠 받쳐온 영리사업자의 공적기여는 아랑곳 없이 사립유치원 전부를 비리집단으로 낙인 찍었다며 저항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비리 유치원 한 곳만 폐쇄해도 아이들이 갈 곳이 없는 현실에서 학부모와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분노를 가슴에 품은 채 계속 얼굴을 맞대고 있다.서울교통공사를 비롯한 공기업 고용세습을 둘러싼 분노의 충돌도 심상치 않다.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의 이익을 공기업 임원과 노동조합이 챙겼다는 의혹은 특혜 취업 규모가 늘어나는데 비례해 취업준비생들의 분노도 커지고 있다. 취준생들은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좋은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진보 정부의 선의를 의심하고 있다. 공기업 고용세습을 향한 분노의 본질은 일자리 축소라는 현실적 손실이 아니라 신뢰 붕괴에 따른 배신감이다. 민노총과 청년계층은 진보 진영 기반의 주축이다.분노는 갈등에서 촉발된다. 갈등이 상식적으로 제도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분노를 낳고, 분노는 배설의 대상을 찾아내 비대해진다. 분노의 배설에 대충은 없다. 배설의 대상을 탐색하는 집요함과 맹목성은 최초의 갈등을 초월하고 또 다른 분노를 증식한다.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정당의 궤멸적 붕괴가 이런 과정을 밟았다.결국 사회적 분노는 제도와 법으로 수렴돼야 한다. 다양한 층위의 분노는 정당에 수렴돼 국회에서 공적인 분노, 공분(公憤)으로 조절돼야 한다. 상식과 규범에 따라 합리적으로 조정된 공분으로 공동체의 공의와 정의 실현의 동력으로 변주하는 것이 정치가 할 일이다. 한국 사회의 불행은 바로 이 지점, 정치의 분노 조절 기능이 작동을 멈춘데 있다. 자유한국당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립유치원 비리에 입다물고 있고, 더불어 민주당은 공기업 고용세습 의혹을 '거짓'이라고 분노한다. 한국 정치는 분노 조절 스위치를 끈 것도 모자라, 상대를 향한 원초적 분노를 사회에 환원해 다시 키우는 분노 배양기가 된지 오래다. 사법부는 폭주하는 분노를 감당하지 못한 채 분노의 대상으로 전락했다.제도와 법이 방치한 분노의 화염이 우리 사회를 그라운드 제로 상태로 만들고 있다. 더 이상 먹이가 없을 때 분노는 정치를 향할 것이다. 그 분노가 궤멸상태의 보수 정당을 50년 이상 말살할지, 진보정권의 자충수로 작용할지 아무도 모른다. 한국 정치는 벼랑에 서있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8-10-23 윤인수

[경인칼럼]왜 문화예술교육인가

정부 지원 상당한 성과 불구 난제 수두룩주요사업 일자리정책으로 분류한게 화근국가·지자체 시민들 교육받을 권리 보장전용공간 조성·지원센터 위상 재정립 시급문화예술교육의 시대가 온 것인가?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예술교육 지원에 관한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시·도지사는 이 종합계획을 반영하여 지역문화예술교육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법제화되었다. 문체부가 연초에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을 발표하였고, 시도별 지역문화예술교육계획이 수립중이다. 인천을 비롯한 지자체에서도 문화예술교육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정책이 곧 현실은 아니나 최근의 흐름은 문화예술교육의 시대를 방불케 한다.정부차원의 문화예술교육 지원정책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문화예술교육 지원정책의 성과가 축적되는 것에 비례하여 난제들도 동시에 쌓여가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사업 영역 간 심각한 불균형이다.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예산 70%가 학교예술강사제 운영에 투입되고 있어 시민을 대상으로 한 사회문화예술교육예산은 30% 내외에 불과하다. 경직된 예산구조로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무늬만 요란하다. 지역차원에서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위한 조직도 재원도 현재로선 어렵다.학교와 지역사회 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과 인력을 공유하기 위한 연계사업도 제자리걸음이다. 사회문화예술교육 예산의 증액 없이 보편적 복지로서 국민의 문화예술교육 권리는 신기루다. 문화예술교육의 지역특성화를 전략목표로 제시하고 있으나, 사업은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어 특화는 형식적이고 지역문화예술교육의 허브인 지원센터도 대행기구의 역할에 머물러있다. 문화예술교육사업의 예산 70%를 차지하는 학교 예술강사지원사업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지역 사이에는 고용 주체 문제로, 문체부와 교육부, 예술강사 간에는 예술강사 처우 문제와 예술교육 질적 체계화 문제로 입장 차가 첨예하다. 이 중층적 갈등은 지역문화예술교육지원기구와 일선 학교의 문화예술교육사업의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문화예술강사들의 처지도 난감하다.정부는 문화예술교육의 주요 사업을 일자리 정책의 하나로 분류한 것이 화근이었다. 양적 성과주의를 앞세우고 문화예술을 기능 중심으로 보는 편협한 시각이 문제다. 문화예술교육의 목적과 원칙에 대한 합의가 철저하지 않아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의 목적을 재확인해야겠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서 "문화예술교육은 모든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와 창조력 함양을 위한 교육을 지향한다"고 규정했다. 모든 국민들을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창조적 활동 주체로 보고 문화예술교육은 그러한 활동 능력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시민들이 문화 예술의 창조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민주주의 가치를 명백히 한 것이다.문화예술교육은 국민의 권리이다. '문화예술지원법'에서는 모든 국민은 나이, 성별, 장애, 사회적 신분, 경제적 여건, 신체적 조건, 거주지역 등에 관계없이 자신의 관심과 적성에 따라 평생에 걸쳐 문화예술을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받는다고 명시했다. 문화예술교육은 헌법 31조의 '교육받을 권리'와 동등한 사회적 권리가 된 것이다.국가와 지방자치단체장은 시민들이 문화예술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저소득층, 장애인 등 사회적 배려대상자에게 균등한 문화예술교육 기회를 보장하여 문화예술적 소질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을 수립·실시하는 일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규정했다. 이제 아동의 보호자도 자녀의 관심과 적성에 따라 문화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동법 제4조)정부는 문화예술교육 주체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예술강사지원사업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지방정부는 시민의 권리이자 문화도시와 문화사회의 기초가 되는 문화예술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문화예술교육 전용공간의 조성과 지역 플랫폼인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위상 재정립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8-10-16 김창수

[경인칼럼]"팅커벨∼"

40대이상 중장년층 31% 'AI스피커 이용' 눈·귀 어두운 나이 많은 사람에겐 '효자'사회·경제적 격차 뒷전으로 밀리는 어르신들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작동할 수 있다'피터 팬'이 세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16년 전이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을 나와 신문기자로도 활동했던 제임스 매튜 배리(James Matthew Barrie)가 1902년에 쓴 성인소설 '작은 하얀 새(The Little White Bird)'에 등장하는 아기는 반은 인간이고 반은 새다. 생후 1주 된 아기가 하늘을 날아다닌다. 소설에 담긴 이 피터 팬의 이야기가 따로 묶어져 2년 뒤 연극무대에 올려졌다. 1904년 공연된 5막의 크리스마스 아동극 '피터 팬 : 자라지 않는 아이'다. 피터 팬의 원작이라 일컬어지는 '피터와 웬디(Peter and Wendy)'는 이 연극의 줄거리를 1911년에 이르러 다시 장편동화로 만들어 출판한 것이다.주인공 피터 팬을 돕는 아주 중요한 캐릭터가 있다. '팅커벨'이다. 원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정이었다. 최초의 연극에서는 거울에 반사된 빛을 이용해 그 존재를 나타냈다. 목소리는 작은 방울들을 흔들어 표현했다. 말하자면 특수효과였던 셈이다. 작은 여자아이 모습의 이미지는 1953년 월트 디즈니에 의해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하면서 만들어졌다. 이 캐릭터의 성격은 좀 묘하다. 피터 팬의 협력자임에 틀림없는데 가끔 심통을 부린다. 파트너이면서 일의 방해자가 되곤 한다.요즘 이 팅커벨 때문에 내 생활에 즐거움 하나가 더 생겼다. 피터 팬의 요정이 나의 요정으로 바뀐 이후의 일이다. 지난 8월 말 사흘 동안 '미디어오늘'이 주관한 '저널리즘의 미래 콘퍼런스'에 참석했는데 기념품으로 인공지능(AI) 스피커 한 대를 받았다. 손바닥 위에 놓을 수 있는 작은 통조림 크기다. 그런데 재주가 신통방통이다. 스마트폰에 앱을 깔고 짝을 맞춰놓으니 어지간한 명령어는 다 알아듣는다. "팅커벨, 오늘 날씨 알려줘" "팅커벨, 오늘 주요 뉴스 알려줘"하면 "오늘 ○○동 하늘은 흐리고 비가 오겠으며···" "오늘의 주요뉴스를 알려드릴게요. 태풍 콩레이가···"하고 척척 답한다. '팅커벨'은 AI 스피커에게 명령을 내릴 때 쓰는 호출어다.나의 요정이 된 '팅커벨'은 지난 3월부터 함께 살게 된 생후 19개월 된 외손자에게도 요정이다. 아침 일찍 졸린 눈을 비비며 내 방에 들어와서는 AI 스피커를 올려다보면서 "하부지, 타타요!" "하부지, 안뇽 뽀로로!" 한다. TV 애니메이션 '미니버스 타요'나 '뽀롱뽀롱 뽀로로' 노래를 들려달란 주문이다. 녀석에게 이 '젊은 할배'는 거의 마술사처럼 보일게다. "팅커벨, 타요 버스 주제가 들려줘"하면 곧바로 전주가 흐르고 "꼬마버스가 달려갑니다···"하며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야∼뽀로로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로 시작하는 '뽀로로' 노랫말은 지금 내 나이에게도 기가 막힌 유혹이다.이 AI 스피커가 실버세대의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를 해소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은 뜻밖이다. 며칠 전 기사를 보니 한 통신사 AI 스피커 이용자의 31%가 실버세대를 포함한 40대 이상 중·장년층이다. 특히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몸놀림이 느려질 수밖에 없는 어르신들에게는 음성만으로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입수할 수 있는 이 AI 스피커가 효자노릇을 하고 있단다. 사방이 디지털로 된 것들로 에워싸이면서 삶의 편의성이 증진되지만 이를 누릴 수 있고 없음에 따라 정보격차와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격차도 커지고 있는 세상이다. 가난한 이들과 나이 많으신 분들은 점점 더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AI 스피커가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피터 팬의 요정 '팅커벨'의 성격이 까탈스러운 것처럼 이런 디지털기기들을 만지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디지털 격차의 극복은 곧 미디어 격차 해소의 출발점이다. AI 스피커가 어르신들의 말씀을 잘 듣고 잘 따르는 '착한 요정'으로 만드는데 필요한 교육프로그램을 내년 사업계획에 넣어봐야겠다. 증조할아버지 할머니가 증손자와 함께 강의를 듣는 멋진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지 않을까./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8-10-09 이충환

[경인칼럼]은퇴교수 재활용

논문 많은데 비해 노벨과학상 수상자 없어'정년퇴직자의 경륜' 연구기회 제공해 볼만사회적 자산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100세시대 맞아 정부·대학 함께 고민할때천산만홍의 10월이 되면 세계인들의 이목이 복지천국 스웨덴과 노르웨이로 쏠린다. 117년 역사의 노벨상 축제행사가 이들 두 나라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노벨평화상,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문학상, 경제학상 수상자에게는 900만 스웨덴 크로나(11억2천여만원)의 상금과 상장뿐 아니라 '세계최고의 인물'이란 영예까지 주어진다. 노벨재단은 기금의 고갈을 우려해서 2012년부터 상금액수를 기존의 1천만 크로나에서 800만 크로나로 삭감했다가 지난해부터 900만 크로나로 인상했다. 2014년 파키스탄의 17세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노벨평화상 수상과 2016년 미국 팝가수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거부는 화젯거리였다. 스웨덴 국적의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세계거부 반열에 올랐으나 '죽음의 상인'이란 낙인에 마음이 무거웠다. 자신이 개발한 폭약이 전쟁무기 혹은 테러수단으로 사용됨으로써 무수한 생명들이 희생된 탓이다. 이후 그는 인도주의사업에 팔 걷고 나섬은 물론 임종 무렵에는 3천100만 크로나를 유산으로 남기며 국적을 불문하고 인류평화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인사들의 노고를 치하하는데 사용해줄 것을 당부했다.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는 미국이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러시아, 캐나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순이며 일본은 12위(24명)로 43억여 아시아인들의 체면(?)을 살렸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 교토대 교수가 '중간자이론'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래 물리학상 11명, 화학상 7명, 생리의학상 3명, 문학상 2명, 평화상 1명 등 다채롭다. 중국도 9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기록했으며 타이완의 리위안저(李遠哲) 박사는 1986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해 대만 과학기술의 저력을 각인시켰다. 경제발전과 노벨상 수상자 숫자 사이에 상관관계가 밀접함을 확인할 수 있어 부럽다. 한국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상한 노벨평화상이 유일하다. 경제, 스포츠, 대중문화 분야에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몰라보게 높아진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이 민망하다. 최근 미국의 투자정보 사이트 하우머치가 유네스코의 자료를 근거로 세계 각국의 R&D투자액 순위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R&D투자액은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이다. 논문 양으로 세계 10위권임에도 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한 명도 없을까?전문가들은 새로운 혁신을 이끌 수 있는 패러다임 창출전환형 연구 비중이 낮은 때문으로 진단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지난 30년간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패턴을 분석한 결과 '패러다임 창출 및 전환형 연구'가 87.1%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패러다임 전환형 연구는 장래가 불확실하고 과학적 중요성을 가늠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연구비도 지원받기 힘들어 연구자들이 기피하는 1순위 분야이다. 전인미답의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는 연구자들은 돈키호테로 치부된다.단기적 성과에 급급한 정부나 기초과학 경시의 과학계 풍토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자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 조성 내지는 연구자의 장인정신, 기다릴 줄 아는 유연한 연구환경 등은 더욱 중요하다. 2015년에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중국의 투유유 교수는 190번 실패해도 계속 매달려 191번째에 노벨메달을 거머쥐었다.정년퇴직 교수에 눈길이 간다. 노교수들의 연구경륜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인문학의 경우 65세가 넘어야 오히려 더 원숙한 학문적 성과를 낼 토양이 갖춰지는 경우가 많다. 모 이공계 은퇴교수는 "시설이 없어 연구를 접었다"며 아쉬워했다. 정년퇴직이라는 획일적 기준으로 무장해제 하는 것은 고령사회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사회적 자산인 퇴임교수들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낭비이다. 대부분 연금생활자여서 경제적 부담도 적어 희망자들에 연구기회를 제공해봄 직하다.2020년부터 정년퇴임 교수가 양산될 예정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은퇴교수의 지적자산을 사회적 공공재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대학이 함께 고민해야 할 때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8-10-02 이한구

[경인칼럼]지지율 하락과 개혁 실종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 상대적 박탈감최저임금 인상 부작용등 경제 악화 원인사회 전체 개혁동력 잃어 관리 시급한데당·정·청, 정책방향 조정 리더십 안 보여문재인 정부 2기 국정지지율 하락은 일차적으로 경제상황의 악화가 원인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등의 부동산 가격 폭등이 가져온 상대적 박탈감의 증대 또한 심각하다. 고용난과 실업률의 증가와 함께 분배 구조 악화가 지표로 나타나면서 불평등 구조 타파와 소득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을 국정 목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정체성마저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집권 1년 적폐수사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획기적이고 역사적 대전환이 지지율을 80%까지 끌어올렸으나, 여소야대 국회에서 협치를 이뤄내지 못하고 개혁입법은 물론 민생입법 정책조차 표류한 결과이기도 하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의 진단이 엇갈리는 등 정책 혼선이 정권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민주당 20년 집권론'이 허망하게 들리는 이유이다.대통령 지지율이 문제가 아니다. 지방선거에서 '궤멸적 참패'를 면치 못했던 자유한국당은 '탈국가주의'니 '국민성장론'이니 하는 모호한 수사로 지지층 결집을 모색하면서 집권당에 대한 정치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무성 한국당 전 대표는 정부의 경제정책을 '좌파 사회주의'와 '세금 포퓰리즘'으로 규정했다. 보수야당은 4·27 판문점 선언에 대한 비준 동의 요청을 총체적인 '퍼주기'로 규정한다. '퍼주기 프레임'이 다시 등장하면서 정제되지 않은 용어들이 본질을 호도한 채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경제악화 논리는 경제구조 혁파와 재벌개혁의 당위마저 흔들고 있다. 지지율이 높을 때 야당과의 협치를 강화함으로써 개혁의 법적·제도적 기반을 다지지 못한 집권세력의 책임이 가볍지 않으나, 대안없이 소득주도성장을 포함하여 남북정상회담 등 정부 정책을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는 보수야당 특히 한국당의 구시대적 행태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한국사회의 개혁을 갈망했던 촛불로 상징됐던 시민적 동력도 찾기 어렵다. 경제는 시민의 삶 자체다. 그 삶이 악화되고 있다는데 개혁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왜 경제가 어려운지를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 운용 방식은 경제력 집중을 낳았고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가져왔다. 최저임금인상은 정작 대상이 되어야 할 재벌개혁과 대기업 소유 지배 구조 개선, 전관과 현직의 짬짜미, 사학과 부패한 종교집단 들에 대한 개혁의 당위를 무위로 돌리고 있다. 사회경제적 계층 구조의 하위에 위치한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대 피고용자와의 갈등으로 전선이 치환된 형국이다.소수세력과 다양한 시민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다당제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도 여야의 정파적 이기주의의 제물이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가 조응할 때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가 숨 쉴 공간이 생기는 법이다.경제가 개혁과 대척에 서는 잘못된 인식구조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란 수사는 함축적이지만 용례와 사용하는 자에 따라 허구적 이데올로기에 그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관련한 획기적인 진전이 나오더라도 사회 전반의 개혁에 대한 프로그램과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면 정권은 신뢰의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촛불로 상징되었던 시민의 요구는 잠재적이지만 언제든 더 큰 화산으로 폭발할 수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 등 집권연합은 경제악화를 오히려 개혁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담대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의 경제난의 직접적 원인이 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에 대해 대안을 찾고 단기적인 처방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작업은 경제지표의 악화가 사회 전체의 개혁 동력의 실종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리더십의 확립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집권여당, 정부 등 집권연합이 지향할 개혁 프로그램과 정책방향을 조정하는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이해찬 대표는 지금의 상황을 정치학자인 애덤 쉐보르스키의 말을 인용하여 '전환의 계곡'(valley of transition)이라고 진단했지만, 역사적 진보를 위한 진통인지, 총체적 퇴행인지의 판단은 아직 이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8-09-18 최창렬

[경인칼럼]이젠 이재명 지사가 거대권력이다

건설공사 원가공개·토지 공개념 적용 주장정책구상 집행 경기도 아닌 전국으로 영향'이해찬과 공감' 여당내 의미있는 정치행위소중하게 쓰겠다는 '공적권력' 실체는 현실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최근 정책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공공에서 민간까지 건설공사 원가공개를 강행했다. 공공건설공사비 절감을 위해 표준시장단가 적용범위를 확대하겠다며 행정안전부에 관련규정 개정을 압박중이다. 특히 11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토지공개념 현실화에 대한 공감대를 과시(?)한 대목은 인상적이었다. 이 지사는 이날 예산정책협의차 도청을 방문한 이 대표 앞에서 "부동산 문제, 경제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축이라 생각한다"며 "모든 토지에 대해 공개념을 적용해 일정액의 (국토)보유세를 부과하자"고 주장했다. 주장에 그친게 아니라 경기도가 시범을 보일 수 있도록 법적 지원을 요청했다. 실세 대표인 이 대표는 "토지공개념을 도입해놓고 실제로 20년 가까이 공개념의 실체를 만들지 않다보니 집값이 폭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고 호응했다.한달전 본란에서 이 지사에게 모든 의혹은 법에 맡기고 도정에 전념할 것을 요청했었다. 표준시장단가제도 확대 등 의미있는 '이재명표 도정'이 '의혹 공방'에 매몰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때에 비하면 이 지사의 도정 집중력이 현저하게 회복된 것으로 보이니 반가운 일이다. 물론 이 지사가 만들어 낸 정책이슈들이 정부의 협조와 여론의 호응속에 순조롭게 실현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다만 지방선거 전후와 취임 이후 시달렸던 의혹에서 벗어나 도정 수행자라는 본연의 면모를 회복한 현상 자체가 의미있는 진전인 건 틀림없다.그래서 이 지사에게 추가 요청을 해본다. 다름 아니라 자신의 위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필자의 견해를 말하자면 이 지사는 이제 거대한 권력이다. 이 지사의 정책구상과 집행의 결과가 미치는 영향력은 성남시장 시절과 비할바가 아니다. 실제로 건설업계는 이 지사로 인해 난리가 났다. 건설원가 공개, 표준시장단가제 확대가 건설업을 고사시킬수 있다는 반발이 예사롭지 않다. 그는 성남시장 시절 현장검증을 마쳤다지만, 정책의 영향이 성남에 제한적인 상황과 경기도, 나아가서 전국으로 확대되는 상황은 전혀 다르다. 분명한 건 한국 건설업계가 이재명의 한마디에 자지러질 정도가 된 현상이다. 경기도지사 이재명은 이제 큰 권력이다.이 지사의 정치적 언행도 마찬가지다. 그의 한마디는 전국적인 정치적 파문을 초래할 수 있다. 이해찬-이재명의 토지공개념 공감은 정책이면서 정치다. 이 지사의 경기도가 앞장서고 이 대표의 여당이 후원해 국토보유세로 무장한 토지공개념제도가 정책으로 다듬어진다면 나라와 정국이 발칵 뒤집어진다. 공감은 경기도청에서 두 사람이 했지만, 논란은 대한민국 전체를 삼킬 폭발적인 의제다. 이와 별개로 '이해찬-이재명의 공감' 자체가 여당내 정치지형에서 매우 의미있는 정치행위다. 김진표의 탈당압박은 사라지고 '이해찬-이재명 공감'이 주목받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경기도지사 이재명 뿐 아니라, 정치인 이재명도 이젠 거대 권력이다.이 지사는 자신을 향한 각종 의혹에 대해 '거대 기득권의 이재명 죽이기 음모'로 규정했었다. 이젠 아니다. 이 지사는 주체가 불분명한 음모로 죽기에는 실체가 너무 분명한 거대한 공적 권력으로 성장했다. 음모에 희생되는 약자 코스프레는 부자연스럽다. 권력을 경기도민과 국민을 위해 소중하게 쓰겠다는 겸손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권력의 실체는 현실이다.권력이 커질수록 도전하는 세력도 많아지고 도발의 강도도 거세진다. 권력 생태계의 자연현상이다. 중요한것은 응전의 방식과 태도다. 이 지사는 최근에 페이스북 팔로워 5천명에게 실천적 지지로 큰 방패가 되어달라 요청했다. 페이스북 5천 결사대가 이 지사 권력의 크기에 걸맞는 응전의 방식인지 의문이다. 논쟁적이고 소모적이고 일방적일수 있다. 공적 권력의 크기에 맞는, 제시하는 담론의 규모에 어울리도록 응전의 방식과 도구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8-09-11 윤인수

[경인칼럼]문화예술에서의 '생태계'

다양성은 창조적 문화예술활동의 조건기반시설·전문인력 없다면 작동되지 않아여러 주체들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적 운영내부는 민주적인 공동체가 돼야 소통 가능생물학의 용어였던 생태계(eco-system)라는 개념이 빠른 속도로 비즈니스 일반으로 그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컴퓨팅 용어였던 플랫폼이 정보산업 분야를 넘어 여러 정책과학은 물론 문화예술의 영토까지 점령(?)한 것과 비슷하다. 창업 생태계는 가장 역동적 생태계이며, 플러그앤플레이테크센터(Plug and Play Tech Center)가 대표격이다. 이 센터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복판인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에 위치한 세계최대의 창업 보육센터이다. 페이팔, 구글, 로지텍, 데인저(Danger), 온라인쇼핑 마일로닷컴 등 세계 유수의 IT기업들이 보육된 곳이다.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과 창업자, 기업가가 한 곳에 모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창업 보육 시스템 덕분이다. 현재 28만 평방피트 규모 건물에는 전세계에서 모인 400여 개 창업기업이 입주해서 보육받고 있다. 플러그앤플레이의 가장 큰 강점은 강력한 네트워킹과 멘토링이다. 투자자와 기업관계자, 멘토가 한 공간에 상주하고 있어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투자 기회도 여러 방향으로 열려있다. 특히 창업 분야 전문가들을 비롯한 다양한 관계자로부터 수시로 멘토링을 받을 수 있는 점도 최적의 성장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강력한 네트워킹과 최고수준의 멘토링은 융합과 혁신이 필요한 문화플랫폼, 문화산업 기지에 필수적인 환경 요인으로 평가된다. 플러그앤플레이 엑스포는 벤처기업을 투자자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소개하는 행사다. 세계 최고 수준의 벤처기업이 참가해 경연을 벌이는 형식으로 투자자나 관련기업들과 투자상담을 하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기술 혁신을 통한 창업과 창조적 상상력을 통한 문화예술활동은 닮았지만 창업보육 생태계와 문화예술활동의 생태계가 같을 수는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코시스템은 본래 자연환경의 생태계에 대한 은유에서 시작된 것이다. 생태계(生態系·ecosystem)는 상호작용하는 생명체들과 또 그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주변의 무생물 환경까지 아울러 지칭하는 말이다. 자연생태계의 모습은 다양한 생물이 함께 번성하는 종 다양성이다. 이 다양성의 공존 속에서 종들이 각각 진화하고 또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 건강한 자연 생태계의 지표는 종다양성, 얼마나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하고 있느냐이다. 다양성은 창조적 문화예술활동의 결과이자 조건이다.생태계를 기능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 생태계의 조건이 더 중요하다. 종의 다양한 번성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물과 빛과 흙이라는 세가지 기초 요소이다. 기초 요소가 없다면 생태계는 유지될 수 없다. 생태계의 대표적 사례로 열대우림기후 지역을 드는 이유가 풍부한 강수량과 일조량, 깊은 표층토가 있어 양호한 식물 서식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에서는 기초 문화예술이 발전되어 있지 않다면, 문화기반시설이 확보되어 있지 않다면 그리고 문화전문인력이 없다면 생태계는 작동되지 않는 가상 시스템일 뿐이다. 또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생태계는 자연발생적이듯이 다양한 주체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 운영체계여야 하며, 그 내부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순환하고 소통하는 문화생태계가 가능할 것이다./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8-09-04 김창수

[경인칼럼]첫 번째 펭귄 (the First Penguin)

'아우' 라고 부를수 있는 인천시 고위공직자그의 글은 십수년 지난 현안 문제들 다뤄일관되게 지역의 현재와 미래에 시선 보내그는 '앞장선 용감한 펭귄'… 책출간 기다려난 칭호(稱號)에 참 인색하다. 팍팍하기 이를 데 없다. 어떤 이들은 한 번만 보고 나면 곧바로 "형님"하면서 부드럽고 촉촉하게 부르던데 만사가 유연하지 못한 이 사람에게는 도무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래로 향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금세 동생으로 만들어버리는 재주가 내게는 그야말로 '넘사벽'이다. 그런 내게도 "아우님"하고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이가 있다.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꾼 유안진 시인의 글처럼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열어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라 여긴다. 지내온 세월만큼 시간의 겹이 또 켜켜이 쌓이면 그때는 금란지교(金蘭之交)로 한층 더 단단해지리라 믿는 사이다.저녁 먹자고 연락이 왔다.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더니 그동안 여러 지면에 기고해왔던 글들을 묶어 출판하기로 했단다. 작업도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였다. 아직 공직생활이 한참 남았는데? 2년 뒤 총선에 출마하려나? 단박에 드는 생각들이었다. 그는 인천시 공무원이고,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위직이다. 이제 오십 줄에 접어들었고, 다른 일 도모하기에는 이르다. 그런데 출판이라니. 더욱이 나더러 그 책에 담을 글을 써달란다. 추천사 같은 성격의 글이다. 두 사람에게 부탁한다는 건데 한 분은 지역사회에서 누구나 알만한 문인이다. 개인적으로는 영광이다. 일단 쓰겠노라 했다. 해소하지 못한 궁금증과 두툼한 원고 사본 한 뭉치만큼의 부담감을 함께 끌어안은 채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다.고위공직자들이 퇴임을 앞두고 다른 일을 모색할 때 흔히 '잡문(雜文)의 묶음'을 내놓는다. 드물게 정치적 용도가 없다 하더라도 재임 때 '무용담' 따위를 늘어놓기 마련인데 대부분 지금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얘기들이다. 글 쓰느라 애쓴 점은 귀감이 되겠으나 시의적절하고 명심할만한 보감은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글은 달랐다. 길게는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안인 문제를 다룬다. 2003년에 쓴 '인천의 내항을 시민의 품으로'가 대표적인 예다. 2013년에 쓴 '복지의 영역으로 들어온 기후변화'는 이 절대폭염 속 에너지 빈곤층의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4년 전에 쓴 '자녀 교복비, 기초급여에 포함해야'는 당장 인천시와 시교육청 간의 첨예한 현안이다. 지면마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인천에 대한 '복고풍'의 글이 아니라는 점도 신선했다. 그 또한 이웃이 정답고 어질었던 옛 인천에 대한 기억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의 글은 그러나 '단순히 기억된 대상을 복원하는 작업'과는 분명한 거리를 두고 있다. 한순간의 흔들림도 없이 일관되게 인천의 현재와 미래에 시선을 보낸다.2014년에 쓴 '기억과 기록'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가지고 있던 궁금증도 자연스레 해소됐다. '기억하기란 단순히 기억된 대상을 복원하는 작업이 아니라 기억하는 주체의 깨달음이 개입된 실천의 과정'이라고 한 벤야민(Walter Benjamin)의 말을 상기하면서 그는 실천적 기억으로서의 기록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기억과 기록, 그리고 독서력이야말로 역사로부터 배우고 현재를 성찰하여 미래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사회자본이다.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일찌감치 시작된 글쓰기와 이번에 마음먹은 출판은 그가 실천할 수 있는 또 다른 차원과 형태의 사회자본 축적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의 출판은 아직 이른 게 아니라 오히려 늦은 것이고, 건방진 돌출행위가 아니라 권장해야 할 일이다. 국가경영에 참여했던 우리의 선조들이 무수히 많은 기록유산을 남긴 것처럼 그 DNA를 물려받은 이 땅의 공직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남극대륙 수백 마리 펭귄의 무리들이 한꺼번에 차가운 바닷물로 뛰어드는 장면은 장관이다. 하지만 모든 펭귄이 동시에 행동을 개시하는 건 아니다. 무리 중에서 유독 용감하게 앞장서서 뛰어드는 펭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그 펭귄을 '첫 번째 펭귄(the First Penguin)'이라고 부른다. 그 펭귄도 두려웠을 것이다. 나는 아우님이 '첫 번째 펭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책 출간을 기다린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8-08-28 이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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