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3승 26패, 선수 탓만 하는 kt위즈

1승위한 기존선수 보직파괴 ‘변칙야구’ 안돼‘당장 트레이드’하기보다 미래위해 그들을 지켜야프랜차이저 마저 버린 ‘감독 능력’ 팬들 의심 시작1993년 시즌 후 LA다저스 프레어 클레어 단장, 토미 라소다 감독, 프랭크 조브 주치의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178㎝ 78㎏의 체구, 역동적인 투구 폼, 강속구 등 부상을 일으킬 ‘위험의 3박자’를 고루 갖춘 작은 체구의 투수 트레이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그는 17세에 다저스에 입단한 도미니카 출신의 프랜차이즈 투수였다. 이들은 그가 체형과 투구 조건으로는 오래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데 의견일치를 보고, 몬트리올 엑스포스 2루수 델라이노 드실즈와 맞바꿨다. 하지만 이 트레이드가 메이저 리그 역사상 ‘가장 바보같은 짓’이었음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가 미국 메이저리그의 4대 슈퍼에이스 중 한명이었던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즈다. 미국 메이저리그 부자구단들은 자체적으로 팜(farm)시스템을 운영해 선수를 키운다. 재정이 넉넉지 않은 구단은 마이너리그 팀과 계약을 맺어 일정 기간 선수를 위탁 관리하다 실력이 인정되면 메이저리그에 데뷔시킨다. 다저스의 페드로도 이런 경우다. 이들을 프랜차이저(franchiser)라고 한다. 이들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끔찍하다. 뛰어난 프랜차이저를 보유하기 위해 구단이 지출해야 할 돈도 엄청나다. 유망주를 발굴해 계약하고, 다른 팀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그만큼 많은 돈을 선수에게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프랜차이저만을 보기 위해 구장에는 홈 팬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그것이 무시할 수 없는 프랜차이저의 힘이다.지난 토요일 저녁, 연패에 시달리던 kt위즈가 프랜차이즈 선수인 투수 박세웅을 비롯한 이성민, 조현우, 안중열 등 젊은 선수 4명을 롯데로 보내고 대신 5명을 받는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는 소식은 큰 충격이다. 3승 26패(승률 0.103)로 사실상 전력분석이 무의미할 정도가 돼버린 kt위즈가 얼마나 1승이 다급했으면 신인 1차지명한 프랜차이저 선발투수 박세웅을 보내야 했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연패 책임으로 감독이 옷을 벗는 것은 수없이 봤어도, 전도양양한 프랜차이저를 데뷔 첫해 그것도 한달만에 트레이드 하는 것을 그동안 본 적이 없다. 조범현 감독도 이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박세웅을 보낸 것이 득이었는지 실이었는지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그 책임은 반드시 누군가 져야 한다. 확실한 것은 이제 박세웅은 다시는 kt위즈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드로가 다저스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듯이 말이다.kt 위즈가 이 지경까지 된건 야구단 창단을 주도했던 이석채 전 kt 회장이 퇴진하면서 예견됐었다. 지금 모든 매체마다 추가 지원을 통한 자구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걸 모기업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한화이글스의 돌풍은 모기업의 지원 탓도 있지만, 야신 김성근 감독의 뛰어난 리더십에 힘입은 바가 더 크다. 야구는 투수놀음이지만 감독놀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kt위즈 팬들은 비록 전패를 한다해도 열심히 뛰는 신생팀의 패기를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1승을 위해 기존 선수의 보직 파괴를 통한 변칙야구를 해서 젊은 선수들을 혹사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kt 위즈의 투수 운용은 이미 변칙적이다. kt위즈의 미래는 팀내 젊은 선수들이 얼마나 빨리 성장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 당장 전력감이 필요하다고 그들을 트레이드하기보다 미래를 보고 그들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감독의 몫이다. 감독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선수는 오래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kt위즈는 주전으로 뛰고 있는 고참선수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kt위즈가 없었다면 그들은 아마도 어느팀에서도 1군 주전 선수로 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kt위즈는 그들에게 마지막 무대다. 뼈가 부서지도록 뛰어야 하는 이유다. KBO도 놀랐다는 지금의 처참한 기록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누가 뭐래도 감독에게 있다. 26패중 적어도 3~4승은 감독의 능력으로 건질 수도 있었다. 급하다고 해서 프랜차이저 마저 버리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제 팬들이 슬슬 감독의 능력에 심각한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을 조 감독은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5-05-05 이영재

블랙홀의 정치, 망각의 정치

여야, 재보선 의식 성완종수사 물타기 의도 감지박대통령 입장 정국향배 가늠할 분수령될 것청와대,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면돌파가 해법현실의 정치공간에서 국면전환은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적 쟁점도 태풍처럼 특정 지점에서 발생하고 소멸하는 경우도 있고, 서서히 에너지를 규합하면서 확대 재생산되어 다른 이슈들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기도 한다. 한 이슈가 정치사회적 쟁점을 형성하고 모든 사회적 현안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은 다른 이슈로 빠른 속도로 대체된다. 그리고 블랙홀은 이내 소멸하고 만다. 그래서 한국 정치는 블랙홀의 정치요, 망각의 정치다. 아무리 메가톤급 이슈라 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멸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국면전환을 위한 정치공학이 동원되기도 하고, 권모술수와 책략이 난무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는 생물이다.그레고리 헨더슨은 그의 저서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일제시대와 해방 공간,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분석하고 한국 정치의 본질을 정치권력을 향해 몰려드는 소용돌이로 파악했다. 블랙홀의 정치와 망각의 정치가 다이내믹스라는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면서 한국 정치는 소용돌이 정치로 귀착된다. 이는 한국 정치를 불가측의 정치로 귀결시킨다. 헨더슨은 해방 공간의 혼란을 분석했지만 지금의 정치공간 역시 당시의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점차 성완종 전 회장의 노무현 정부 말 특별사면 국면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여권의 ‘국면전환’이 어느 정도 약발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성완종 전 회장의 특별사면이 이루어진 기간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에는 기억하는 인물도 없고 아무 자료도 남아있지 않다. 이 사안이 지루한 소모적 정치적 쟁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사안인 이유이다.‘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검찰의 특별수사팀이 꾸려진 지 2주가 넘었지만 성완종 전 회장의 측근들을 구속한 것 이외에 리스트에 거론된 인사들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정황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인사에 대해서도 수사의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쯤 되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하던 ‘성완종 파동’은 ‘진압’ 국면에 접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블랙홀의 정치가 망각의 정치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한국 정치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다이내믹스 그 자체다.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다른 사안으로 물타기 하려는 의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새누리당이 성완종 특별사면에 대한 검찰수사 촉구와 국정조사 검토 주장까지 나오는 마당이라면 이러한 추론은 더 구체화한다. 여야가 재보선을 의식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의 관점에서 의제 설정을 주도하고, 국면 전환을 꾀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권력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본래 정치는 그런 것이라고 치부하면 된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 국면을 여야, 정치권 전반에 대한 정치개혁과 수사의 단초로 삼겠다고 한다면 그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치개혁과 수사확대의 당위성을 부인할 순 없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한 측과 아무런 단서가 나오지 않은 측을 같은 비중과 무게로 다루고 있는 오류 때문에 당위성은 현저히 권위와 신뢰를 잃는다.새삼 한국 대통령제의 숙명인 집권 3년차 징크스를 거론하지 않아도 임기의 반환점을 앞둔 시점은 국정 동력 회복이냐 리더십 상실이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시기다. 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을 구체적 해법과 입장의 수위가 재보선 결과와 함께 향후 정국의 향배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성완종 정국이 ‘블랙홀’에서 ‘망각’으로 매번 진화하는 한국 정치의 패턴을 또 한 번 일반화하는 전철을 밟을지, 사회적 에너지를 결집하는 진정한 국면전환의 단초가 될지는 이제 청와대에 달려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면돌파가 해법이다. 한국 정치도 망각의 정치 늪에서 빠져나올 때가 됐기 때문이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5-04-28 최창렬

그 나물에 그 밥

세계 장수기업들 CEO 검증작업 무척 엄격오너들도 회사를 개인사유물로 인식하지 않아물려받은 기업 건강하게 키워 후세대로 물려줘야지난달 말에 일본 N경제신문의 K기자가 오랜만에 나에게 전화를 했다. 조현아 파문으로 물의를 빚었던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 참관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장을 목격했다며 나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다는 것이다. 수화기 너머로 K기자의 야릇한 미소까지 감지되었다.조현아부사장 건으로 기업가치 훼손이 심각해 주주들의 경영진에 대한 질타가 당연함에도 정작 주총에선 이 문제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소액주주 한명이 따지고 들다 주최 측의 제지로 흐지부지 된 것이 고작이다. 조양호 회장의 퇴직금은 50%나 인상되었으며 구설수로 언론의 주목을 받던 장남 조원태 부사장은 3년 임기의 사내이사에 재선임되었다. 경영진 문책은커녕 오히려 상(?)을 주어 격려하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K기자의 질문에 잠시 주저했다.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는 자칫 양국 간의 국익(國益)문제가 대두될 수 있어 조심스러운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한일관계가 미묘한 상황에서 일본의 ‘대표’ 신문에 한국 ‘대표’ 기업의 경영행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야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니 말이다. 낮 뜨거운 질문이란 판단에 K기자가 얄밉기까지 했다. 많은 이들은 땅콩회항사건을 한국재벌 특유의 족벌세습경영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관리자본주의도 정답은 아니다. 1932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시장을 지배했던 전문경영인체제는 과거의 오너경영시대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업이 성장하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아돌프 벌리(Adolf Berle)의 라이프사이클이론에 의문이 드는 것이다. 반면에 앤더슨(Ronald Anderson)과 리브(David Reeb)는 가족기업의 성과가 비가족기업보다 더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가족기업이 더 발전할 확률이 높다는 주장이다. 세계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호시료칸(法師旅館)을 비롯한 세계 대다수 장수기업의 세습경영이 상징적인 사례이다. 이씨왕조의 조선은 1392년에 건국해서 1910년 멸망할 때까지 518년 동안 존속했다. 1천년 역사의 로마제국과 1299년부터 1922년까지 623년 동안 유지했던 터키의 오스만제국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이다. 조선의 스파르타식 세자교육 프로그램인 서연(書筵)이 주목된다. 세자들은 일년 내내 하루 종일 강도 높은 제왕학 교육을 받았다. 아침수업인 조강(朝講)부터 주강(晝講, 오전수업), 석강(夕講, 오후수업)은 물론이고 요즘 고등학교 ‘야자’에 해당하는 야대(夜對)수업까지 받느라 예비권력자들은 늘 잠이 부족했다. 수시로 시험을 봤는데 성적이 못미치면 비록 장자라 하더라도 왕이 되지 못하고 궁궐에서 쫓겨났다. 역대 27명의 왕 중에서 장자가 왕이 된 경우는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경종 등 총 7명에 불과하다. 군주들은 왕자의 인성교육에 각별히 공을 들인 것이다.세계 장수기업들의 CEO 검증작업은 무척 까다롭다. 경영자로서의 기본소양은 물론 국민으로서의 의무 이행 유무가 주요 체크포인트이다. 금융재벌 로사차일드의 최고경영자가 되려면 반드시 군복무를 마쳐야 한다. 또한 장수기업 오너들은 기업을 개인사유물로 인식하지 않는다. 주주가치보다 기업의 영속성과 화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건강하고 가치 있는 기업으로 발전시켜 다음 세대에 성공적으로 물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의식이 ‘알파와 오메가’인 것이다. 스튜어드쉽(청지기정신)이 각별히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국내적으로 환갑을 넘긴 기업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경영권이 창업 3, 4세대로 넘어가고 있어 더욱 주목된다. ‘부자는 3대를 넘기기 어렵다’는 속설이 동서고금의 진리인 탓이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부(富)가 3대까지 유지되는 비율은 10%에도 못미친다. 창업 3세(世)까지 생존하는 기업의 비율은 14%정도이다. 10대 경제대국 타령이 민망하다. 해외언론들이 조소(嘲笑)하는 해프닝은 더 이상 없어야할 텐데./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4-21 이한구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

진정한 차별화는 ‘품(品)과 혼(魂)’을 담아야자신만의 분야에 집념어린 ‘장인 정신’ 필요자부심과 목표 이루려는 ‘강한 의지’도 필수필자는 졸저 ‘기업 생로병사의 비밀’의 출판 이후, 한 기업의 미래 비결이 무엇일지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런데 사실 그 답이 쉽지 않다. 기업 판세가 워낙 변화무쌍할 뿐 아니라, 밀림에서의 경쟁과 같아서 우발적인 생존비결이 난무하기 때문에 미래의 생존 요인을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믿는 가장 강력한 비결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 독보(獨步)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독보적 존재란 많은 사람의 무리에서 벗어나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것, 즉 다른 곳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존재를 말한다. 영어권에서는 ‘온리 원(only one)’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표현의 의미도 좋다. 결국 ‘너만이 할 수 있어’라는 경지에 올라야 ‘독보’가 된다. 미묘한 흥분을 주는 말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경지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쉼 없는 훈련으로 내공을 쌓아야 겨우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높은 경지라고 해서 이 비결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글로벌 기업에만 해당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해다. 작은 골목 안의 자영업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세상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유일한 된장찌개, 최고의 건강을 주는 김밥, 뭐 이런 것들이 미래를 지배하는 비결이 된다는 것이다.미국 페이팔 기업의 창업자인 ‘피터 틸’은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다. 그의 책 ‘제로 투 원(Zero to One)’의 선풍적인 인기 때문인데, 그 인기는 그가 금융과 IT기술의 융합분야인 ‘핀테크(FinTech)’의 원조기업인 ‘페이팔(PayPal)’을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신생 창업자들에게 간결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세상에 없는 것을 개척하여 독점적 가치를 누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1 to n’의 생각에서 벗어나, ‘제로 투 원’으로 전환하라고 권장한다. 이 권장은 언젠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블루오션’ 개념과도 맥이 통하는 말이다. 독보적인 존재가 성공한다는 메시지는 실제로 많은 석학과 영웅들의 삶에 담겨있다. 세계적인 생물학자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윌슨 박사가 젊은 과학자들에 권장하는 글에 의하면, 그는 한마디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도전하라고 말한다. “총소리와 떨어져서 행진하라. 군대에서는 총소리에 맞춰서 행진해야 하지만 과학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즉, 무리를 따르지 말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길로 걷는 과학자의 성공을 권장하는 것이다. 조선의 성군 세종(世宗) 임금도 그의 생각 속에 ‘이(異)’와 ‘별(別)’을 깊이 박아두고 ‘다름’을 존중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이런 철학적 입장이 세종실록에 수도 없이 많이 담겨있으며, 그의 많은 업적의 내면에 스며들어 있다. 1429년(세종11년)에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說)’의 서문에서 “오방(五方)의 풍토가 같지 아니하여 곡식을 심고 가꾸는 법이 각기 적성이 있어 옛글과 다 같을 수는 없다”고 말하며 농법의 차이를 직시하고 있다. 그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한글(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에도 역시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라는 차별성 철학이 깊이 작동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의 시선으로 보면 당연한 말로 들리겠지만, 중화사상에 물든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고였음을 간파해야 한다.실제로 마케팅 교과서의 제 1계명이 바로 차별화라는 것을 기억해 보자. 그것은 남과 달라야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차별화한다고 해서 겉모습의 치장만을 떠올린다면 그건 잘 못 이해한 것이다. 진정한 차별화는 민낯에 분칠하는 선으로는 절대 도달하지 못한다. 자칫하다간 손님의 관심을 잃는 ‘분칠한 퇴기(退妓)’가 될 수 있다. 진정으로 남과 다르기 위해서는 ‘품(品)’과 ‘혼(魂)’이 담겨야 한다. 여기서 ‘품’이란 장인으로서의 집념이자 책임감이다. 자신만이 한 분야의 가장 깊은 속살을 보고야말겠다는 집념 어린 장인정신을 말한다. 이는 제조업에도 적용되며 국숫집 같은 작은 식당에도 적용된다. ‘혼’이란 자신만의 정신과 열정이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저 높은 목표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 등을 이르는 말이다. 독보적 경지에 오르려는 기업들의 묵묵한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5-04-14 손동원

산자와 죽은자, 진실과 사실 사이에서

현정부 실세들 거론된 56자 메모 ‘성완종 리스트’당사자 부인할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실 밝혀야‘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故事 교훈 새겨야성완종 리스트로 온통 시끄러운 아침 신문을 뒤적이다가 문득 이런 얘기가 생각났다. 중국의 왕조사를 기록한 십팔사략의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天知地知子知我知)’는 고사(故事) 말이다. 환관의 횡포와 탐욕으로 뇌물이 성행했던 후한 시대에 청신(淸臣)으로 꼽히던 양신이란 관리가 있었다. 그가 제법 넓은 영토를 다스리는 군수(郡守)가 됐을 때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양지를 지향하는 사람은 많고 권력에 줄 대기 좋아하는 세태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군의 하급관청인 현의 현령이 승진청탁을 위해 한밤중에 몰래 많은 금품을 가지고 와서 양진에게 건네며 ‘지금은 밤이 깊으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받으라는 의미였겠지. 그러자 양진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알고 있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하고 꾸짖으며 금품을 물리쳤고 말문이 막힌 현령은 부끄러워 사죄하고 그대로 물러갔다는 것이다. 세상 아무도 모를 것 같지만 비밀은 없다는 교훈이다. 서양에도 이와 비슷한 ‘벽에도 귀가 있다(Walls have ears)’라는 경구가 있다.자원외교 비리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생을 마감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현 정부 실세들의 이름이 기록된 56자의 메모와 죽기 직전에 모 신문과 진행한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세간의 여론은 죽음을 결심하고 남긴 메모와 인터뷰에 설마 거짓이 있을까 라며 신빙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동정론도 한몫 거들고 있다. 거론된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며 ‘터무니없는 얘기, 황당무계한 소설 같은 시나리오로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뛰고 있다. 단돈 1원이라도 받았다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배수의 진까지 치면서 말이다.사실이 어떻든 간에 파문은 커지고 있고 후유증도 깊어질 조짐이다. 오죽하면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을까. 검찰 역시 특별수사팀을 가동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모든 의혹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응당 그래야 하겠지만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사건을 폭로한 당사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남은 건 56자의 메모와 언론사와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녹취록뿐이다. 사건을 뒷받침할 다른 증거들을 어느 구석에 보관해 놨는지, 있다면 그걸 확보할 수 있을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런 막막한 상황에서 검찰은 칼을 빼 들었다.국민들은 망자가 남긴 이야기들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검찰이 밝혀내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명쾌하진 않을지 몰라도 최선을 다해 진실에 접근할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우려스러운 건 이런 정치적인 사건의 경우 항상 뒷말이 남았다는 점이다. 후유증이 꼭 있었다는 얘기다. 어떻게 정리되든 미진한 구석은 있게 마련이다. 최선을 다한 수사라도 정치라는 색안경으로 바라보면 부족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래도 지금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 부딪치는 것이다.당사자들도 부인만 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밝혀야 한다. 언론 역시 진상규명에 필요한 일이 있다면 협조해야 한다. 국민들도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나무라지만 말고 기다려줘야 한다. 역사를 되새김질해보면 어떤 나라든지 돈과 관련된 추문들은 항상 있어 왔다. 그럼에도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었던 건 끊임없는 자정기능 덕분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고 태양을 피한다고 빛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진실은 지금은 가려질지 몰라도 언젠가는 모습을 나타내고 그림자를 길게 드리워 후세를 경계할 것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고사의 교훈은 현재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2015-04-13 박현수

스토리 노믹스 시대와 도시의 준비

장이모우감독 ‘西湖의 전설’ 재구성 뮤지컬 대성공지자체 차원의 스토리콘텐츠 성과 이끌어 내스토리텔링센터 설치·축제프로그램 개발 급선무20년 이후의 세계 산업구조는 1, 2차 산업혁명보다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향후 15~20년 사이에 전개될 3, 4차 산업혁명은 3D 프린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각각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미래사회가 기술혁신에 의한 신산업으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물부족 현상의 심화와 바다의 자원가치 증대로 인해 물 산업과 해양산업은 더욱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콘텐츠 산업의 기초인 스토리산업도 가장 유력한 미래산업의 하나로 거론된다.스토리가 부를 창조하는 스토리 노믹스 시대의 도래는 이미 여러 영역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콘텐츠 회사 월트디즈니사의 2011년도 영업 이익은 75억 달러였는데, 도요타 자동차 회사의 영업이익 66억달러보다 많다. 영국의 동화작가 조앤 롤링은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의 성공으로 1조원 대의 부호가 되었으며 10년 후 재산 총액은 64조원에 도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해리포터 시리즈라는 판타지 스토리가 애니메이션, 영화, 캐릭터, 출판 등의 문화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생 효과가 무려 300조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던 영국인들이 스토리텔러 조앤 롤링의 몸값은 어느 나라와 비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스토리로 성공한 도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차대전으로 폐허가 된 영국의 코벤트리(Coventry)시는 도시의 전설을 이용하여 재생에 성공한 사례이다. 코벤트리시의 상징은 레이디 고다이버(Lady Godiva)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11세기경의 실존인물로 무거운 세금으로 신음하던 농민들을 위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시위를 벌여 결국 영주의 감세를 약속받은 숭고한 여성이었다. 고다이버 이야기는 문학과 미술, 음악, 캐릭터 등으로 다양하게 재현되고 있다. 중국의 항저우가 관광도시로 성공한 것도 도시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항저우의 역사와 문화, 전설과 민담을 흥미롭게 구성한 가무극 ‘송성천고정(宋城千古情)’은 매일 공연하지만 늘 만석이다. 항저우의 대표적 관광지인 서호(西湖)도 밤이 되면 실경 뮤지컬 ‘인상서호’(印象西湖)의 무대로 바뀐다. 장이모우 감독이 서호의 전설을 재구성한 이 뮤지컬은 2007년 초연 이후 매년 10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으며, 공연 수익금만 연간 120억원이 넘는다니 대단한 성공이다. 우리나라도 이야기 산업의 중요성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 3월 ‘이야기 산업 진흥법’이 국회에 발의되어 국가 차원의 지원이 조만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경북 안동시의 경우 역사 인물을 스토리텔링한 창작공연에 집중 투자, 뮤지컬 ‘왕의 나라’와 ‘원이 엄마’, ‘퇴계연가’, ‘부용지애’ 등을 제작 공연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중 뮤지컬 ‘왕의 나라’는 고려 공민왕이 안동으로 몽진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2011년 제작되었는데, 2013년부터 유료공연으로 전환된 이래 매회 입장권이 매진되었으며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의 초청 공연도 매회 매진을 기록하며 지자체 차원의 스토리 콘텐츠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성공사례만 보면 스토리텔링과 콘텐츠 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이지만 시행착오가 더 많다. 우리나라 각 지자체의 스토리텔링은 관광지 안내에 활용하는 초보적 수준이다. 스토리텔링이 콘텐츠 산업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원천소재(One Source)를 발굴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도시의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성공적인 이야기는 감동과 흥미를 줄 수 있는 동시에 시대를 넘는 숭고한 가치를 지닌 이야기들이다. 지방정부의 역할은 지역 문화자산 중 감동적 서사의 ‘씨앗’을 발굴하여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되는(Multi Use) 스토리텔링 산업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다. 그중 스토리텔링센터와 같은 기구의 설치와 스토리텔링 축제와 같은 프로그램의 개발이 급선무로 보인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04-07 김창수

연정이 준 선물 경기도 생활임금

시급 6천810원… 정부 최저임금 보다 1천230원 많아남지사, 새누리당 소속 단체장으로는 최초 도입앞으로 정치판에 어떤 영향 미칠지 지켜 볼 일이다경기도 생활임금이 시작됐다. 지난 25일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도 생활임금위원회가 제시한 생활임금 시급 6천810원을 받아들인 덕분이다. 광역단체로는 서울에 이어 두번째다. 위원회가 제시한 액수가 서울시 생활시급 6천687원보다 많아 어느정도 감액을 예상했지만 남 지사가 선뜻 사인을 해 오히려 담당자들이 적지않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생활임금 지급 대상은 경기도 소속 직접 고용근로자 401명이다. 이들은 기존 임금보다 월 최대 24만5천원에서 최소 11만1천원의 임금상승 효과를 얻게 된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최대 293만9천원, 최소 133만2천원이 상승하는 효과다.생활임금은 ‘근로자가 가족을 부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말한다.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주거비와 식비 등 최소 생계비용 외에 의료비와 문화비 등도 포함한 임금이란 뜻이다. 지자체가 직접 고용하거나 위탁·용역을 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니 많을수록 좋다. 재정이 든든하다면 1만원을 넘겨 준들 아무 문제 될 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온갖 무상시리즈로 지자체들은 돈이 없다고 난리다. 곳간이 비었다고 중앙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생활임금도 모두 도민, 시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도가 올해 생활임금 지급에 필요한 예산은 총 12억 원이다.경기도 생활임금은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 시급(5천580원)보다 1천230원이 많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월 142만3천원(6천810×월 근로시간 209시간)으로 최저 임금제로 받는 월급보다 25만6천780원 많다. 생활임금은 수원시(6천600원), 부천시(6천50원)도 이미 시행 중이다. 모두 새정치민주엽합 소속 단체장들이다. 경기도는 생활임금이 민간사업장으로도 자연스레 확대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민간기업 근로자에게 ‘생활임금제’를 적용하면, 사실상 이들의 급여를 올려주는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면 좋겠지만 형편상 그렇지 못할 경우 여전히 최저임금제를 적용받은 대부분의 민간기업 근로자들의 소외감과 반발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기도는 알아야 한다. 경기도 생활임금이 자칫 노사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게 그런 이유다. 연정이 없었다면 경기도 생활임금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생활임금은 8대 도의회때 새정치민주연합 주도로 전국 광역단체 중 최초로 조례가 제정됐지만, 도가 재의를 요구하며 파행을 겪었었다. 당시 도는 “생활임금은 최저임금 등을 고려해 산정되는 것으로 근로조건에 관한 국가사무이고, 도 소속 근로자의 임금·인사와 관련된 결정은 도지사의 고유한 권한인데 조례는 이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문수 지사 역시 “최저임금도 못받는 근로자가 169만명이고 도내 임금체불액이 3천600억원이다. 현실을 안 보고 이상만 보고 조례를 만들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반대했다. 그러나 남 지사가 취임해 연정을 추진하면서 정책과제로 합의됐고 마침내 시행에 이르게 됐다. 경기도의 생활임금제가 연정이 준 선물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새정치연합은 생활임금을 법제화 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김경협 (새정치) 의원은 지자체 조례로 생활임금을 결정해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야당이 ‘적정임금’ 개념에 생활임금이 포함된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그만큼 생활임금은 민감한 사안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감안해 적정임금 개념을 법으로 구체화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도가 생활임금을 전격 실시한 것이다. 이로써 남 지사는 새누리당 소속 단체장으로는 처음으로 생활임금을 도입한 지자체장이 됐다. 지난 10일 경기도를 방문해 남 지사를 만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경기도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이 바로 생활임금 조례”라며 남 지사를 치켜 올리고 “공공부문의 생활임금이 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중앙정부까지 전면적으로 실시돼야 한다”고 밝혔다는 점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기도 생활임금이 앞으로 정치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 볼 일이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5-03-31 이영재

복지는 ‘무상(無償)’이 아니다

복지지출 늘리고 무상확대 위해 재원조달 필수국가가 뭔가를 나눠줄 것이라는 인식 접근 안돼소득재분배 기능 실효성 발휘할때 복지국가 완성내년 총선과 19대 대선 승부를 가를 정치, 사회, 경제적 쟁점 중 무상복지 논쟁은 가장 핵심 이슈가 될 전망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이슈는 현재 야당의 승리 요인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지난 대선에서도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대선 승부를 결정지었던 사회경제적 어젠다였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공약은 경제 활성화 정책에 밀려 추동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시대 정신이란 점을 부인할 수 없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면 복지 논쟁은 여전히 여야 간, 보수와 진보 세력 간 민감한 사안이다. 무상복지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선택 문제로 모아진다. 즉 복지에 대한 철학과 인식의 차이에 기인하는 정책의 차이로 귀결된다. 복지지출을 늘리고 무상복지를 확대해 나가기 위해서는 복지재원의 조달이 필수다. 선별적 복지는 소득 수준에 연동한 복지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논리적 타당성을 부인할 수 없다. 재원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막연하게 보편적 복지에 집착하는 행태는 도그마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선별적 복지가 갖는 원천적인 한계도 무시할 수 없다. 기초적인 분야에서조차 예산 부족을 이유로 선별적 복지의 프레임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누진적 세금에 의한 복지 정책의 확대는 요원해진다. 유럽이 국민소득 1만5천달러 수준일 때 케인즈 주의에 입각한 복지이론을 발전시키고 보편적 복지를 확충해 나간 경험을 간과해선 안된다. 세계적 경기침체속에서 복지 규모를 축소해 나가려는 일부 유럽 국가의 경우를 선별적 복지의 모델로 삼는 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신에 기인한다. 어느 영역도 재원이 남아 복지를 시행하는 것은 아니다. 특수성에 입각한 선별적 복지 채택이 논리적 정합성을 갖는다 해도 사안마다 선별적 복지로 접근한다면 포괄적 복지의 길은 요원해진다. 유럽 국민들이라고 조세 저항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국가의 복지 프로그램에 대해 정부나 국민 모두가 의지와 애착을 가짐으로써 복지 국가는 부단히 발전되어 왔다. 또한 복지의 과부하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국가 역할의 축소 경향에도 불구하고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 지출은 지난 10년간 느린 속도이지만 꾸준히 증가했다. 복지국가란 사회 구성원 개인이 시장논리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탈 시장화’와 가족에게 의존하는 노후에서 해방되는 ‘탈 가족화’의 두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시장과 가족에 내재하는 원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고용보험, 연금 등의 사회보험과 교육과 보육 등의 사회 서비스의 제공이 복지국가의 핵심이다. 어떠한 수준의 복지를 지향할 것인가의 문제는 조세부담률을 여하히 조정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아직 한국사회의 궁극적인 복지수준에 대한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빈부격차는 일반적인 신자유주의 국가들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는 단순히 경제적 층위에서의 격차의 차원을 넘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대표되는 계층 간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길은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과 포괄적 복지로의 정책을 점진적으로 심화시켜 나가는 방법 외엔 대안이 없다. 선별적 복지가 단기적으로는 분야별 정책적 정당성을 지닐 수 있으나 사회에 구조적으로 내재하는 격차의 문제를 해소하기엔 원천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복지에 대한 사회학적 인식과 철학이다. 복지를 국가가 뭔가를 나눠주는 것이라는 시혜적 차원에서 접근해선 안 된다. 조세정책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충분한 실효성을 발휘하고 같은 수준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때 복지국가는 완성될 수 있다. 어설픈 선별적 복지의 논리는 부자와 빈자 모두의 지지를 잃을 수 있다. 복지는 국민이 응당 받아야 할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라는 인식이 보편화 될 때, 복지가 무상으로 제공되는 것이라는 공짜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는 무상논쟁이 표를 얻기 위한 선거공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상’이라는 용어의 수정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5-03-24 최창렬

품앗이 산업이 뜬다

카쉐어링 등 공유경제형 국내 기업들 속속 생겨리프킨 “3차 산업혁명 개도국서 빠르게 진행” 주장IT강국에 부합되게 육성 ‘창조경제’의 답육아품앗이, 과외품앗이, 하객품앗이, 재능품앗이, 관광품앗이…. 품앗이란 농촌에서 소수의 농민들 간에 상부상조하는 것으로 모내기와 추수, 지붕 올리기, 김장하기 등이 주요대상이다. ‘품(勞動)’과 ‘앗이(受)’를 결합한 한국 고유의 민속용어로 ‘두레’와 함께 농촌사회를 지탱해온 대표적인 공동체적 생산 관행이었으나 산업화로 사라지는 추세다. 그런데 최근 들어 농촌이 아닌 도시를 중심으로 품앗이 문화가 다시 부활한 것이다. 해외에서도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유사한 사례들이 간취되고 있다.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의 우버(Uber)엑스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일시적 운휴(運休) 상태의 자가용 승용차와 운전자의 품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운수업체다. 회원 상호 간에도 언제, 어디서나 이용 가능해 품앗이와 매우 흡사한 신종 비즈니스인 것이다. 2010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후 글로벌화·디지털화에 편승해서 급성장한 결과 전 세계 40개국 170여 도시에서 성업 중이다. 우버 택시의 잠재적 시장가치는 2천억 달러로 도요타자동차에 버금간다.회원제 렌터카 기업 짚카(Zipcar), 미국판 벼룩시장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 빈 숙소활용업체 에어비앤비(Airbnb), 도서교환 웹사이트 페이퍼백스왑(Paperbackswap.com), 레고세트 스왑사이트 플레이고(Pleygo)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카쉐어링과 장난감 빌려 쓰기 등 공유경제형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서울 노원구에서는 지자체가 관내 홀몸노인들의 빈 주거 공간을 대학생들과 함께 이용하도록 하는 새로운 상생모델을 시도하고 있다. 공유경제(sharing economy)란 ‘물건을 소유하는 개념이 아닌 서로 빌려 쓰는 경제활동’이라는 의미로 2008년 로렌스 레식 하버드대 교수가 처음 사용했다. 자원이용의 효율성을 높여 낭비를 최소화한다는 측면에서 친환경적일 뿐 아니라 물가안정효과도 커 경제적이다.‘노동의 종말’로 유명세를 탔던 제러미 리프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한계비용 제로사회’에서 자본주의는 조만간 사라지고 ‘협력적 공유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계비용이란 물건을 하나 더 생산할 때 발생하는 추가비용인데 기업들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이 비용을 줄이려 노력한다. 그러나 한계비용이 제로가 되면 상품가격도 제로에 근접해 시장교환이 불가능하다. 이윤이 지탱하는 자본주의가 시장의 탁월한 성공 때문에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리프킨은 한계비용 제로현상이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수백만 소비자들이 아무런 대가 지불없이 파일 공유서비스를 통해 음악·동영상·지식·뉴스·전자책 등을 자체적으로 확대 재생산해온 것이다. 덕분에 음악과 영화산업이 흔들리고 수많은 신문과 잡지가 폐간됐으며 출판시장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한계비용을 제로로 낮추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기술이 바로 ‘슈퍼 사물인터넷’(IoT)이다. 수십억 개에 달하는 센서가 모든 기기와 전기제품·도구·장치 등에 부착돼 촘촘한 신경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사물과 인간을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미국인의 약 40%가 소셜미디어 사이트나 온라인 동호회, 협동조합 등을 통해 생활필수품은 물론 편의품과 기호품까지 공동으로 이용하는 등 이미 협력적 공유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차를 나눠 타고, 여행할 때는 서로 집을 바꾸는 등 시장의 ‘교환가치’는 협력적 공유사회의 ‘공유가치’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2030년에는 100조 개가 넘는 센서가 전 세계로 분산된 지능형 네트워크로 인간과 자연환경을 연결할 것으로 추산한다.리프킨은 제3차 산업혁명(협력적 공유경제)으로 수십만 개의 사업체와 수억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날 예정인데 “이 혁명이 선진국보다 개도국에서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단정했다. 실의에 빠진 장그래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IT 강국에 부합하는 품앗이산업 육성에서 창조경제의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3-17 이한구

비약적 성장은 특별한 만남에서 온다

류성룡과 이순신, 서로 믿었기에 위대한 효과 얻어저커버그, 숀 파커 만나 페이스북 전세계로 확대새로운 인물과 이색적 조합하면 더 큰효과 발휘최근 한 방송국의 드라마 덕분에 ‘류성룡’과 ‘징비록’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다. 징비록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류성룡이 그 처절한 교훈을 반드시 후세에 전해줘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집필한 기록서다. 류성룡은 퇴계 이황에게 수학하면서 동인(東人) 쪽 인물로 분류되지만 서인(西人)과의 당쟁에도 비교적 초연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당시 국가 위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본 몇 안 되는 경륜지사 중 한 명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류성룡을 이순신을 천거한 인물로 기억한다. 당시 무관도 아닌 문관 관리에 불과하던 이순신을 수군(水軍) 책임자로 천거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고 심지어 뇌물을 먹은 것이라고 모함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류성룡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이순신은 역사의 물꼬를 바꿀 정도로 위대한 결과를 낳았다. 류성룡과 이순신이라는 조합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임진년에 이미 일본군에 점령당했을 것이다. 이렇게 특별한 사람들의 만남은 위대한 일을 만든다.그러면 류성룡의 이순신에 대한 확신은 어디서 온 것일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어린 시절에 시작됐다. 류성룡과 이순신은 모두 서울 건천동 출신이다. 이순신의 둘째 형인 이요신이 본래 류성룡의 친구였지만, 점차 류성룡과 이순신 사이가 더욱 가까워지고 둘 사이는 관중과 포숙처럼 아끼는 사이로 발전했다. 두 사람은 오랜 관찰과 경험을 통해 서로의 능력을 정확히 알게 된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류성룡은 중요한 순간에 이순신을 주저 없이 추천했던 것이다. 즉, 숙성된 지식과 확신이 있었기에 위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즉흥적 통찰에서 얻은 만남으로 특별한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특별한 만남은 기업에도 중요하다. 우리가 아는 세계적 기업 중 특별한 만남에 의해 비약적으로 큰 기업들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페이스북(Facebook)이다. 페이스북은 본래 하버드 대학생들 사이의 교류, 좀 더 나아가 보스톤지역 대학들을 연결하는 교류망으로 시작했던 사업이었다.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와 친구들은 그 정도 수준의 SNS로 스케일을 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커버그가 숀 파커를 만난 이후에는 스케일이 완전히 달라져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확대되었다. 이렇게 스케일을 키운 장본인이 바로 숀 파커이다. 그는 1990년대 말 인터넷 버블 시절 냅스터 기업의 창업자로 유명한데 많은 창업 경험을 통해 어떤 사업이 성공하고 어떻게 해야 비즈니스가 확대되는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묘사된 숀 파커의 대사에서 그의 야심을 잘 읽을 수 있다. “마크, 너는 지금 대학 사이를 연결하고 있지만, 나는 대륙을 연결하고자 한다.” 숀 파커는 실제로 저커버그에게 많은 벤처캐피털을 소개하면서 비약적인 사업 성장을 주도하게 했다. 만약 저커버그와 숀 파커의 만남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페이스북은 없었을 것이다.구글 창업자들과 경영 천재인 에릭 슈미트의 만남도 특별한 결과를 낳았다. 1998년 스탠퍼드 대학원생이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새로운 방식의 검색 서비스를 출범시킨다. 이후 지속해서 성공 가도를 달려 왔지만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2001년 경영 천재인 에릭 슈미트를 공동 대표로 영입한다. 이때가 바로 프로그래머 중심의 운영을 넘어 비로소 경영 시스템을 갖추는 순간이었다. 창업자 두 사람과 슈미트 사이의 조합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이 경쟁력을 갖춘 구글은 없었을 것이라는 평이 많다. 이처럼 절체절명의 국가위기를 넘기는 장면, 한 기업의 비약적 성장에는 ‘특별한 만남’이 개입되어 있다. 작은 위기와 보통의 성장과는 달리 폭발적으로 비약하는 힘의 원천이 바로 그 특별한 만남인 것이다. 이는 큰 도약을 꿈꾸는 중소기업과 청년들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새로운 인물과 이색적인 조합을 취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기존 방식대로 움직이는 농사꾼의 방책보다 개인기를 갖춘 인물들의 결합을 지향하는 사냥꾼의 전략이 더 효과가 높다는 권장이다. 급속한 변화들이 가득할 미래 세상에서는 특별한 만남이 주는 성공 방정식은 더욱 효과가 높아질 것으로 예견된다.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5-03-10 손동원

‘미래’ 라는 현실

가족보다 스마트폰·사이버공간에 의존하는 현실윤리적 삶 실천 않을땐 도전의 희생물 될 가능성 커‘미래 시나리오 맞대응’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2월22일에 올해 첫 황사주의보가 발령되었고, 이튿날 서울과 경기도·인천시에 황사경보가 내려졌다. 하늘을 덮은 흙먼지로 야외활동이 거의 어려운 수준이었다. 일주일만인 3월2일, 중국 내륙에도 강력한 황사경보가 내려졌다. 연이은 황사경보는 과학영화 ‘인터스텔라’에 묘사된 지구상황을 보는 듯해서 더 우울하다. 영화 속의 지구는 먼지폭풍이 수시로 불어와 옥수수 재배만 가능한 상태로 묘사되었다. 실내의 그릇도 먼지 때문에 뒤집어 두어야 할 정도의 절망적 일상을 보내야 하는 지구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우주로의 탈출이다. 최근의 미래 보고서에 나타나는 상황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에 가깝다.미래예측 가운데 기후변화 시나리오는 가장 우려스럽다. 2009 코펜하겐 기후정상회의에서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지만 탄소배출량 제도는 계획대로 실천되지 않고 있다. 25년 이후인 2041년 께 지구 평균기온은 2℃ 상승 한계선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 건조지대가 확장되고 사막화된 토양이 늘어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처럼 미세먼지 폭풍은 도시를 주기적으로 강타한다. 극지방 빙하가 녹아내리고 해수면이 상승하면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해변 주거지는 사라지게 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밝힌 시나리오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2100년께 우리나라 국토의 4.1%(4천149.3㎢)가 바다에 잠길 수 있다고 한다. 광역지자체별로 보면 전남 34.6%, 충남 20.5%, 전북 14.8%, 인천 11.3%, 경기 7.3%에 해당한다. 지자체 면적 대비 범람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인천으로, 도시 전체 면적의 절반에 달하는 45.5%가 바다에 잠기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도 우리가 직면한 도전이다. 정보학자들은 지난해에 일어난 일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로 러시아에서 개발한 ‘유진’이라는 인공지능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사건’이 있었다. 튜링테스트는 영국 천재적 수학자였던 앨런 튜링이 컴퓨터의 능력을 감별하기 위해 고안한 프로그램이다. 튜링테스트가 고안된 지 65년만의 일이다. 정보학자들 사이에서는 ‘유진’이 실제로 우리가 기대하는 인공지능에는 미달한다는 지적도 있으나 인공지능의 능력은 급속하게 확장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2045년이면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컴퓨터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 이전에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되고 택시와 화물자동차, 대리운전 기사의 일자리를 없앨 것으로 예상된다. 옥스퍼드 대학이 2013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향후 20년 이내에 현재 직업 중 절반가량이 ‘로봇’ 또는 ‘컴퓨터’로 대체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의료기술과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2045년께 인간의 평균수명은 130세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된다. 유전자의 비밀이 해독되고 줄기세포를 비롯한 다양한 세포재생 기술로 육체의 ‘불로장생’이 실현되는 것이다. 죽음에서 멀어진 인간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초고령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사랑, 가족, 직업, 종교의 의미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이며 엄청난 변화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그런데 미래의 도전이 50년이나 100년 후의 문제가 아니라 당면하고 있는 절박한 현실이자 현안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황사바람 속에서, 이웃이나 가족보다 스마트폰과 사이버 공간의 네트워크에 더 의존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초고령사회도 이미 도래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국가나 도시, 개인들의 대처는 미온적이고 더디다. 인공지능보다 윤리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기획하고 실천하지 않을 때 우리는 미래라는 도전의 희생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눈앞에서 현현하고 있는 미래의 도전 ‘시나리오’들을 성찰하고 효과적 ‘프로젝트’로 응전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인 것이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03-03 김창수

집권 3년차, 박대통령의 ‘골든타임’

진보·보수 막론 모든 언론서 비난 화살전직 대통령들의 회고록은 일종의 자기항변지금 이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음을 명심해야세월이 참 빠르다. 어른들은 나이 들면 시간의 빠르기가 나이에 비례한다고 말하곤 했었다. 80대는 80㎞의 속도로 50대는 50㎞로 시간이 달린다는 것이다. 40대만 해도 ‘흥’하고 코웃음을 쳤었다. 그러나 50대로 접어드니 시간이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빠르다. 오늘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지 꼭 2년이 되는 날이다. 한걸음 더 내딛는 내일은 취임 3년차에 접어들게 된다. 벌써 3년차라니. 60대의 박 대통령은 60킬로의 속도로 달렸을 법도 하지만 ‘벌써?’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대통령 임기가 5년이라해도, 대선기간과 겹치는 마지막 5년째를 빼면, 실제로 권력의 절반이 지난 셈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소신껏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기간도 불과 2년 남은 셈이다. 마라톤으로 따지면 반환점을 돈 것이다.정치인도 따지고 보면 연예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듯하다. 눈물겨운 데뷔 시절이 있다가, 운이건 실력이건 천금같은 기회를 잡아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면 그의 이름 앞에 어느덧 ‘스타’라는 관형어가 붙는다. 그리고 몇년동안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다 여지없이 내리막길을 타게 된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몇 선을 하다가, 원내대표와 당대표를 거치는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다, 운이 좋으면 대권에 도전하게 되고, 선거에서 이기면 권력의 최정상에 오르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대권을 손에 쥔 박 대통령은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면서 정치인 박근혜 시절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국가 발전 지도’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다. 그런데, 보수 진보 막론하고 모든 언론이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박 대통령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집권 2년동안 황사속을 걷듯 모든게 애매모호했을 뿐 손에 잡히는 정책이 없었다는 것이다. 국정원 댓글사건, NLL 논란으로 1년이 지났고, 세월호 사건과 정윤회 파동으로 1년을 홀랑 까먹었던 박 대통령 입장에선 모든 걸 남의 탓으로 돌릴만큼 억울할 만도 할 것이다. ‘퉁퉁 불어터진 국수…우리 경제 불쌍’이라는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MB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둘러싼 논란이 지금도 진행중이다. 낯뜨거운 자화자찬과 지나친 자기방어. MB가 부리나케 회고록을 내놓았다는 것은 그만큼 할말이 많았다는 것을 뜻한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는 날 언론은 경쟁하듯, 맞으면 좋고 틀려도 그만인 소설같은 ‘정치 비사’를 쏟아낸다. 너무도 터무니 없다고 느낀 전직 대통령은 대변인을 통해 항변하고 싶지만 이미 권력은 남의 손으로 넘어간 후다. 우리의 정치는 떠난 대통령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떨어진 권력은 철저히 외면한다. 새로운 권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직 대통령은 얼마나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을까. 전직 대통령들이 퇴임하자 마자 앞다퉈 회고록을 출간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 항변으로 봐야 한다.인간은 늘 후회를 하며 살아가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문득, “아 그때 그랬더라면…” 하고 아쉬워 한다. 공자도 최후의 20년을 제자들과 광야를 배회하면서 끝없는 번뇌와 후회속에 살았다. 그게 인간이다. 바로 지금 이 시간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했던 것인지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당선에 가장 큰 힘을 보태준 것은 50대였다. 박 대통령이 그들로부터 지지받은 것은 천막당사에 나가 앉을지언정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원칙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50대들조차 등을 돌리고 있다. 왜 그들이 뒷모습을 보이는 지 박 대통령은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는 다음날, 언론들은 박근혜 정권 비사로 신문지면을 가득 채울 것이다. 출처도 불분명한 야사들이 춤을 출 것이다. 그때 항변 한들 아무 소용없다. 지금이 중요하다.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골든 타임’이 시대의 화두가 된 것처럼, 대통령에게도 ‘골든 타임’이라는 것이 있다. 이미 흘러간 2년은 어쩔 수 없더라도 집권 3년차를 맞는 지금이 ‘골든 타임’이며 이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음을 박 대통령은 명심해 주길 바란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5-02-24 이영재

행정한류의 그늘

세계적 ITC 강국답게 e정부는 세계최고 수준전자정부서비스의 지속적 업그레이드 불문가지납세자편의에 수많은 컴맹들 또 얼마나 시달릴지수도권 중견기업에 다니는 ‘컴맹’ K부장은 지난주에 또 한 번 곤욕스러운 연례행사를 치렀다. 수년째 봉급은 제자리이나 주거비와 자녀교육비 등은 갈수록 올라 한 푼이 거금이어서 절세 필요성이 더욱 커졌으나 연말정산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꼭지(?)가 돈다.‘13월의 세금폭탄’ 탓만 아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임금근로자들은 교육비, 의료비, 보험료영수증 등 1년 치 증빙자료들을 한꺼번에 경리부서에 넘기면 그만이었지만 근래에는 각자의 소득정산업무를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탓이다. 올해에는 정산방식이 종전과 달라 K부장은 더 곤혹스러웠다. 같은 처지의 동료들처럼 IT에 능숙한 젊은 부하 직원들의 도움이 절실하나 매번 신세를 지는 것도 너무 부담스러웠다. 자신이 컴맹이란 사실을 사내에 더는 노출시키기도 민망해 이번엔 자력으로 난제(?)를 처리했다.각종 소득공제 영수증은 반드시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에서 발급받은 것이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전자세정인 홈택스(hometax.go.kr)를 이용하려면 공인인증서가 필요한데 홈페이지 접속과 함께 스미싱이나 파밍 등 각종 사이버 금융사기 경고 팝업들이 K부장을 긴장시켰다. 마지막 통과의례는 각종 세무자료를 항목별로 PC에 입력하는 작업이다. 회사에서 입력관련 설명서를 첨부했으나 생경한 용어들이 많아 해득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또한 입력시 실수 염려는 물론이고 작업을 종료했어도 제대로 잘한 것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어 개운치 못하다. 더 낸 세금은 되돌려준다고는 하나 회사 일만 해도 오버로드인데 언제 신경을 쓰겠는가 말이다. ‘세금도둑’이란 오명은 더더욱 반갑지 않다.1천600만 명의 임금근로자 중 연말정산 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종합소득세 신고철인 매년 5월에는 세무서마다 인산인해의 컴맹 납세자들로 한바탕 소동을 치른다. 과도기적 현상이라고는 하나 전자정부의 대가치고는 너무 크다는 인상이다. 오로지 조세수입에만 공을 들일 뿐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소홀한 정부의 전체주의적 발상에 실망이다.전자정부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서 최소비용으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를 의미한다. 행정문서의 부처 간 전자교환 및 전자결재, 영상회의시스템, 데이터 구축에 따른 정보의 공동활용 등으로 조직 및 절차의 슬림화를 도모해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민원인들은 행정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정보통신망을 이용함으로써 실익이 크다. 그리고 국민과 정부 간의 의견교환이 한층 빈번해져 정책의 신뢰성을 높이는 등 행정의 창조적 파괴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대한민국은 세계적인 ITC 강국답게 e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말 유엔이 발표한 2014년 세계 전자정부 평가에서 우리의 ‘정부 3.0’은 2010년, 2012년에 이어 3회 연속 세계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 전자정부서비스는 기존의 민원신청 위주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융합한 최첨단의 서비스(‘O2O’)로의 진화가 임박한 지경이다. 한국의 행정시스템에 대한 세계의 관심과 열기가 뜨거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e정부 프로그램의 수출실적도 괄목하다. 2002년 처녀수출 이래 매년 수출액이 증가한 결과 작년에는 전년보다 13% 증가한 4억7천만 달러를 기록한 것이다. 지능형교통시스템(ITS), 관세시스템(UNI-PASS)이 대표적인 효자 수출상품이나 최근에는 국민신문고, 안전통계시스템까지 추가되었다. 올해부터는 대기업들에도 전자정부사업 참여의 길이 열려 수출전망은 한층 밝아졌다. 정부는 전 세계에 ‘행정 한류’ 바람을 일으킬 각오로 올해에는 관련 예산을 파격적으로 증액했다. 전자정부서비스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는 불문가지이다. 스마트시대에 부합하는 정부서비스의 효율화, 투명화는 세계적 추세인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또 얼마나 많은 K부장들이 ‘행정 한류’의 그늘에서 시달릴까. 이미 3세기 전에 조세행정의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납세자들의 편의를 강조했던 애덤 스미스가 돋보인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2-03 이한구

청년 창업자여, 해적이 되라

낭만창업자 절박한 순간 돌파할 수 있을지 의문기업가로서 성공위해 목숨 건 승부사정신 결핍불굴의지·위험돌파 용기 가슴깊이 담겨 있어야#1, 전자공학과 3학년생으로서 1년 전 창업 아이디어를 잉태했다. 동료 4명과 함께 창업 팀을 구성해서 창업 경진대회에 참여했고 과분한 상(賞)도 받았었다. 경진대회에서 우리를 주목한 전문가들로부터 조언과 멘토링도 받았다. 최근 정부로부터 사업자금을 지원받으니 더욱 비장해 진다. 그런데 언제 창업을 해야 할까? 막상 창업을 생각하면 두렵다. 다른 멤버들도 빨리 창업하자고 하지는 않으니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2,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최하는 이매진 컵에서 2등상을 받았다. 수상작은 '핑거 코드', 시각 및 청각 장애인들이 읽을 수 있는 장갑 모양의 장치와 그것을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였다. 당시 빌 게이츠를 놀라게 했던 아이디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창업하기에는 국내시장 규모가 작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런 정황 속에서 창업을 하진 못했다. 그런데 7년 후인 2014년 MIT 대학생들이 '핑거 리더'라는 이름으로 실시간으로 인쇄된 글자를 읽어주는 '웨어러블(wearable)' 기기를 개발했다. 이들은 곧 바로 창업했고 실리콘밸리의 투자 자금이 연일 몰려들고 있다.최근 청년창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 언론도 청년창업에 관한 기사를 연일 쏟아낸다. 실제로 청년창업은 크게 늘고 있다. 작년 신설법인 중 3천493곳이 30대 미만이 창업한 곳이다. 그런데 청년창업에는 겉으로 드러난 면과 다른, 감추어진 그들만의 속살이 숨겨져 있다. 다만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필자가 오랜 세월 청년창업을 지도한 경험에서 볼 때, 청년창업의 실상은 표면적 현상과는 다른 면이 많다. 이제부터라도 표면적인 화려함 에 도취되기 보다는, 그 속살을 들춰내고 실상과 허상을 같이 봐야만 진정으로 청년창업 강국으로 도약할 것으로 믿는다.청년창업의 열기가 집결하는 곳이 바로 창업 공모대회다. 수많은 창업 공모대회마다 청년들로 넘쳐난다. 이를 두고 우리 청년창업자 층이 탄탄하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니다. 정작 그들 중에는 창업기업가로서 일생을 걸겠다는 절박감을 가진 청년들은 많지 않다. 실상은 창업경험을 즐기는 낭만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현실의 치열한 경쟁과 좁은 관문이 주는 두려움에 맞서기 위한 방책으로 창업을 선택한 청년들이다. 그들에게 청년시절의 창업경험은 일종의 '스펙 쌓기'다. 마치 1980년대 대학생들이 대학가요제 참가를 희망하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그들에게 부족한 점은, 창업 기업가로서 성공하려는 즉 목숨건 승부사로서의 기업가정신이다. 이것이 청년창업 열기라는 표면뒤에 숨겨진 뒷면이다. 심지어 상금에 눈먼 상금사냥꾼들도 있다. 그들은 공모대회마다 참여해서 상금을 타내는 것을 주목적으로 삼는다. 이런 스펙창업자와 상금사냥꾼은 치열한 창업정신이 부족한 '낭만적 예비창업자'다. 실제 창업 자체는 그들에게 목표는 아니다. 대학시절의 추억만으로도 행복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의 행복 뒤에는 부조화가 있다. '낭만'과 '창업'이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부조화가 바로 그거다. 창업자의 길이 순탄할 수는 없다. 자신의 일생을 건 치열한 집념이 있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창업자는 언제 만날지 모르는 낭떠러지에서 추락하지 않으려는 오기와 절박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창업을 낭만으로 생각하는 창업자가 그런 절박한 순간을 돌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초기 창업은 했다고 하더라도, 소위 창업 3~4년에 발생한다는 '죽음의 계곡'의 위기 속에서는 버티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스티브 잡스가 남긴 교훈 중 '해군이 되려하지 말고 해적이 되라'는 말이 있다. 오늘의 우리 청년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우리 청년창업에는 기업가정신이라는 근본이 결핍돼 있다. 자신의 일생을 거는 불굴의 의지, 위험을 돌파하려는 집념과 용기가 가슴 깊숙한 곳에 담겨야 한다. 해적 정신을 갖자는 스티브 잡스의 표현이 오늘따라 절실하게 들린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5-01-27 손동원

'장그래'와 베이비부머

'장그래법' 되레 비정규직 양산 부작용 낳을수도청년세대·은퇴자 경제적 곤란 상실감과 우울감임금피크제나 잡셰어링 같은 제도도입 적극 검토지난해 우리 국민은 세월호 침몰 사건에 대한 탄식으로 보내며 우리사회의 안정망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확인하고 분노하는 해였다. 또 드라마 '미생'을 보면서는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청년세대의 일상과 삶의 불안과 절망을 새삼스럽게 돌아보는 한해이기도 했다. 안팎의 불안이 우리사회와 개인들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프로바둑기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입단 문턱에서 좌절하고 종합무역상사의 비정규직 사원이 된다. 그의 소망은 정규직 사원이 되는 것이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장그래는 낙하산이라는 질시도 아랑곳하지 않고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정규직이 되는 꿈을 이루지 못한다. 바둑판에서 생존의 최소 조건인 '두 집'을 내지 못한 것이다.현실은 드라마보다 훨씬 각박하다. 청년실업 400만을 넘어서고 있다. 비정규직의 애환 이전에 취업의 문턱도 통과하지 못해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말 기준 고용동향은 수치상으로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취업자 수가 전년도에 비해 53만3천명 늘면서 12년만에 최대 폭 증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업자 증가세를 주도한 것은 50대이상 연령층이었으며, 청년실업률은 9.0%로 사상 최고수준을 보이고 고용의 질이 오히려 악화된 측면도 있었다.정부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기간을 35세이상 근로자 본인이 원할 경우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놨다. '미생'의 주인공 이름을 본 따 '장그래법'이라는 명칭을 붙였지만 근본적인 대책이라 하기 어렵다. 불안한 비정규직의 연장책으로 비판받고 있듯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부작용도 낳을 가능성이 있어 꼼꼼한 보완책이 필요하다.우리 사회의 20대들은 인턴으로 고용됐다가 계약종료와 함께 버려지거나 비정규직의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두 집'을 내지 못해 미생마로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장그래'들의 삶이라면, 완생이라고 믿고 있던 '대마'가 한 순간에 미생마로 바뀔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떨고 있는 것이 50대가 처한 현실이다. 50대는 주로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이다.내년부터 60세 정년연장법이 시행되면서 인건비 부담을 우려한 기업들이 올해와 내년에 걸쳐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 형태로 정년 전 퇴직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 중 50년대생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됐던 2011년에 이어 올해는 간신히 직장에서 버티고 있는 60년대생 베이비부머의 '퇴직 쓰나미'가 덮쳐올 것으로 예상된다. 내수침체와 저성장의 늪 속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비극은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노후준비 없이 정년을 맞이한 50대들은 상당수가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다. 그런데 베이비부머들이 뛰어들고 있는 우리나라의 자영업은 선진국에 비해 그 비중이 2배이상 높다. 음식업의 경우 5년 평균 생존율이 27%에 불과한 개미지옥이라는 점이다.우울한 베이비부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구책 중의 하나는 은퇴자들의 최대 자산인 부동산을 처분하거나 집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 도심의 주택을 정리하고 외곽이나 농촌지역으로 이주하는 것도 선택지 중의 하나다. 도심과 외곽지역의 부동산 가격차가 크기 때문에 차액을 노후자금으로 쓸 수 있다. 전원지역이나 농촌지역으로 옮길 경우 주거비와 생활비가 훨씬 적게 들어간다. 그러나 노후자금의 절대액이 부족한 사람들은 일정기간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에 생활권을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다. 청년세대와 은퇴자들이 겪어야할 경제적곤란 상실감과 우울은 우리사회가 '다걸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우리사회의 장그래들과 베이비부머들을 위해 임금피크제나 잡셰어링(일자리나누기)과 같은 고용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01-20 김창수

언제까지 소 잃고 외양간만 고치려나

정부, 규제 완화한다며 '안전' 팽개친 의정부화재또다시 시작된 당정의 사고방지 관련입법 착수근본적 방법 찾는건 요원한 일인지 답답하기만또 인재(人災)가 발생했다. 경기도재난안전본부에 의하면 지난 10일 의정부시 의정부3동 오피스텔 밀집지역에서 발생한 불로 26살 한모씨 등 4명이 숨지고 124명이 부상했다. 이재민은 225명으로 집계됐다. 모든 사고는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인재(人災)인 게 틀림없지만 이번 의정부 도시형생활주택화재는 인재(人災)임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정부가 전·월세 대책으로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지난 2009년 도시형 생활주택 건축을 장려했다. 그러면서 주차장건설 기준, 소음 기준, 건물 간 거리와 진입로 폭 규제 등을 대폭 완화했다. 이 때문에 화재가 발생한 건물들은 1.2∼1.5m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건물 간격이 6m 이상 돼야 하는 일반 아파트 기준에 크게 못 미친다.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규제를 완화한다며 '안전'을 팽개친 대가가 5년 만에 대형 화재참사로 돌아왔다.'10층 이하' 건물은 '11층 이상'보다 안전할 거라며 각종 안전규정을 느슨하게 적용한 소방정책도 참사를 막지 못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불이 시작된 대봉그린아파트와 바로 옆의 쌍둥이 건물 드림타운Ⅱ는 10층짜리 주거용 오피스텔로 스프링클러조차 없었다. 현행 소방법은 11층 이상 건물에만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래서 2013년 11월 입주를 시작한 이 건물들은 지난해 10월 소방검사에서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두 건물은 주차장으로 쓰는 1층 필로티(개방형 공간)에도 소방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았지만 아무 제재를 받지 않았다. 차량 20대 미만의 주차장은 소방시설 규제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대봉그린아파트 1층 주차장은 천장 환기구가 막혀 있던 탓에 화염과 연기가 주변으로 솟아오르면서 피해를 키웠다.더욱 슬픈 것은 '외양간 고치기'가 또다시 시작됐다는 것이다. 당정은 조만간 긴급협의회를 열어 사고방지를 위한 관련 입법에 착수한다고 한다. 완강기 설치 의무가 없는 11층 이상에도 완강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비상탈출로를 더 확보하는 한편,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소방차 진입로를 확대 정비하는 방안 등이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안전처는 한술 더 뜬다. 화재발생시 대형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건축물 외부 마감재 기준을 강화키로 하고 '이명박정부'에서 주택보급 확대를 위해 안전규제를 완화한 도시형생활주택의 화재 취약성에 대해 전수 조사할 방침이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잠을 자면서도 공무원들은 '규제완화'를 생각하라 했지만 이번 화재의 책임을 은근히 이명박정부의 규제완화 책임으로 돌리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도시형생활주택과 관련, 당초 건축사들을 비롯한 건축관련 전문가들로부터 문제 제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주차장확보 문제라든지, 건물간의 이격거리가 너무 좁다는 점이 지적됐고, 300가구 미만은 아파트 사업승인이 아닌 일반 건축물로 간주해 허가를 단순화하는 등 '빨리빨리 문화'가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들의 생활편의를 위함이라지만 이 같은 법은 또 있다. 국토해양부가 지난 2012년부터 다중주택이나 다가구주택에 설치하는 발코니는 개소 수와 관계 없이 모두 확장해 거실 등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발코니 등의 구조변경절차 및 설치기준'(고시)을 개정했다. 언제 또 건물구조 상 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지난해 우리는 마우나오션 리조트 붕괴를 시작으로 세월호 참사, 고양 시외버스터미널 화재, 장성 요양병원 화재, 임병장 총기난사, 판교 환풍구 추락 참사, 담양펜션 화재, 오룡호 침몰 등의 대형사고로 수 많은 목숨들을 잃었다. 사고발생은 육(陸)·해(海)·공(空)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외양간 고치기에만 급급하다.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하지만 소를 잃지 않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는 건 요원한 일인지 답답한 마음이 드는 새해다./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1-13 이준구

아버지가 울고있다

새해 벽두부터 남북대화가 이슈로 떠올랐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로 당장 정상회담이 열릴 것처럼 언론들이 난리다. 남북대화를 통해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야 하는 것은 국민들이 원하던 바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남북대화에 성급히 뛰어들었다가 자칫 '쪽박'을 찰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열렸던 남북대화 학습효과로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벌써 이를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신년인사회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보다는 "통일이 이상이나 꿈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 구현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준비와 실천에 최선을 다해 나아가겠다"고 원론적으로 밝힌 것은 '보여주기식'의 남북정상회담은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옳은 지적이다.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걸 요즘 새삼 깨닫는다. 아직도 헌법에는 여전히 주적(主敵)인 북한, 그 곳의 지도자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를 대한민국 종편들이 앞 다퉈 생방송으로 내보냈어야 했었느냐는 나중에 논하기로 하자. 순전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나는 북한의 대남매체가 을미년 새해 벽두부터 '대화'와 '통일'을 일제히 쏟아내고 있는 것이 미심쩍다. 심지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강도높은 대북 제재 행정명령을 내리고, 우리가 그 말에 동의했음에도 우리 정부와 박 대통령을 비난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그동안 우리는 남북대화 직후, 이해할수 없는 북측 태도와 그들의 뒤통수 치기 전략에 수없이 많은 정신적, 물질적 상처를 입었다. 남북대화는 양측이 진정성 있는 접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성과를 차근차근 쌓아올릴때 비로소 효력을 발생하기 시작한다. 양측의 고위급 관계자들이 판문점에서 또는 서울이나 평양을 왕래하면서 회담을 갖는다고 해서 남북대화가 진정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포옹을 하고, 합의서를 작성했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좋아졌는가. 그때 뿐이었다. 2007년 판박이처럼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다고 남북관계가 달라진 건 없다. 오히려 서해교전이, 천안함 폭침이, 연평도 포격이 일어났으며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햇볕정책으로 남북관계가 가장 좋았다는 김대중정부 시절, 실향민 1세대들이 원했던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생사확인.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만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살아 있다면 서신왕래. 편지를 보내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의 거부로 무산됐다. 그럼에도 김대중·노무현정권은 이를 강력히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로또 복권 당첨같은 몇번의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만일 그때 두 정권이 남북대화 결렬을 감수하면서까지 북에 생사확인과 서신왕래를 강력히 요구해 관철했다면, 남북관계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희망을 걸었던 남북대화의 기대감이 산산이 부서졌을때, 받는 상실감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남북관계의 화해는 1세대 실향민들의 생사확인, 서신왕래, 가족 상봉 3박자가 체계적으로 이뤄질때 진정성을 갖는다. 위대한 통일을 이룬 독일은 몇번의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변함없이 생사확인과 서신왕래, 그리고 만남이 이뤄진 후 통일의 기쁨을 맛보았다. 우리는 남북이 분단된 후 이땅에는 다양한 빛깔을 가진 정권들이 탄생했었다. 모든 정권마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했지만 그것은 모두 '보여주기식'에 불과했고, 남북대화를 정치적으로 이용만 했을 뿐이다. 실향민의 아픔을 자신의 일처럼 절절히 느끼면서, 그들을 위해 남북관계를 풀어 보려고 했던 정권은 단언컨대 아무도 없었다. 을미년 새해 벽두부터 고위급 남북대화가 논의되고 있다. 이번에 남북대화가 이뤄진다면,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1세대 실향민을 위해서라도 생사확인과 서신교환을 우선 추진해보길 바란다. 실향민 1세대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이번에도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가질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정치성이 가미된 남북대화로 더이상 1세대 실향민들이 실망감으로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된다. 자신들의 부모가 고향과 가족이 그리워하며 무려 70년동안 울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런 마음가짐으로 진정성있게, 차근차근 남북 관계 개선에 임해주길 바란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5-01-06 이영재

정치복원이 절실하다

지난해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둘러 싼 NLL정국, 이석기내란 음모사건 발표와 법무부의 통진당해산심판 청구 등의 정국이 지나고 갑오년 새해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으로 출발했다. 의미있는 화두였다. 그러나 남북관계 개선에 필요한 최소한의 활로도 열지 못하고 빛바랜 구호에 그쳤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재난에 대한민국의 적나라한 적폐가 민낯을 드러냈다. 세월호특별법제정 과정에서 진영논리가 작동하면서 '정치'는 설자리를 잃었다. 청와대와 주파수 맞추기에 급급한 집권여당과 무능한 야당의 적대적 공존의 당연한 귀결이다. 인사실패가 늘 지적돼 왔지만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월호참사 이후 두 총리후보자의 낙마와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은 불통논란을 재연시켰고 폐쇄적 국정 운영의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이념갈등에서 비롯된 종북논란은 헌정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을 가져왔다.정치로 풀어야 할 난제와 의혹들은 사법의 영역으로 떠밀리고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는 한국정치의 일상이 돼가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덕목인 관용이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정치사회적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귀착지는 진영 논리다. 진영논리의 구조적 요인은 남북분단이지만 분단이라는 특수성만이 아직도 강조된다면 이보다 더 퇴행적일 수 없고, 냉전적일 수 없다.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적대와 대립의 프레임은 결국 정치의 왜소화와 퇴행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권력의 최고정점이 제시하는 방향성은 정치 자체를 왜곡시킨다. 세월호특별법 협상과정에서 여야의 2차 합의안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유족과 야당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여당의 마지막 결단"이라고 함으로써 여당의 자율성과 '정치'기능을 결과적으로 봉쇄했다. '청와대문건 유출'사건에서 수사의 방향이 정치권력에 의해 구도자체가 설정되는 현실에서 실체적 진실의 규명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여전히 항간의 의혹에 대해 검찰의 수사를 믿을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해산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 낸 역사적 결정"이란 대통령의 언급은 통진당 당원 전체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의 발빠른 착수로 연결됐다.한국정치의 퇴행적요소를 배척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전제돼야 한다. 여당이 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야당이 책임을 방기하는 현실이 소통을 가져올 리 만무하다. 지난 해와 올해의 박근혜 정부 2년을 관통하는 프레임은 사안이 결국 진영 논리로 귀결되고 편가르기로 귀착되면서 역설적으로 두 이념적 극단이 '공생'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정치복원의 주체는 역시 정당이다. 정당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사회적 갈등은 관리될 수 없다. 갈등의 완전한 해소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갈등을 최소화하고 불거진 이해의 상충이 제도권내에서 건강하게 토론될 때 이해를 달리하는 집단간의 최소한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전제한다면 이의 메카니즘은 역시 정당정치일 수 밖에 없으며, 균열의 조정과 합의 도출은 정당의 몫으로 귀결된다.집권당이 중심을 잡고 민심의 소재를 정확히 청와대에 알리고 대통령에 대해 시민사회의 비판과 지적을 여과없이 전달해야 한다. 대통령도 정당의 자율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집권당 지도부가 청와대의 심기를 과도하게 의식하는 현재의 당청관계에서 여당의 존재감은 초라할 수 밖에 없다. 청와대와 당과 정부가 권위를 가지고 각자의 위상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야당은 2·8전당대회를 계기로 고질화된 계파온존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혁신도, 미래의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는 야당에게 지지를 보낼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정치의 복원없이 정책이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없다. 정치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리더십이 아쉽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교수

2014-12-30 최창렬

오죽하면 해상시위 할까

중국 어선 서해5도 '싹쓸이 불법조업' 심각中어민 해양안전본부 단속대원 안 무서워해생존권 위협받는 어민들 생계대책 요구 당연"해경이 없어지면 큰일인디. 중국 어선들이 무서워 조업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구먼."지난 5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의 해양경찰 해체 발표에 대한 전라도 신안군 어민들의 반응이다. 그러나 당시 세월호 침몰여파로 나라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여서 불만을 표출하기도 조심스러웠다. "나라님께서 하신 일이니 어련히 잘 하시겠는가"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지난 7일 겨울의 진객 '흑산홍어' 조업에 나선 어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중국어선들이 우리 해역에 떼로 몰려들어 그물에 걸린 생선은 물론 해상에 설치한 어구들까지 몽땅 훔쳐간 것이다. 지난달부터 홍어잡이에 나선 신안군의 흑산도 어선 6척은 작게는 1천만원에서 최고 6천만원 가량의 재산손실 피해를 입었다.백령도·연평도·대청도 등 서해 5도 어민들의 처지는 더욱 절박하다. 지난 수개월간 중국어선 500~700척이 대규모 선단을 이뤄 서해최북단 어장을 유린하는 것도 모자라 우리 어선들을 바다에서 내쫓고 있는 것이다. 물도 제대로 새지 않을 정도로 올이 촘촘한 그물로 바다 밑바닥까지 훑는 탓에 어족 자원의 씨가 마를 판이다. 지난 11월 26일 어민 160여명이 소청도 남쪽해상에서 시위를 벌였다. 서해 5도는 생계터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며 정부에 대해 집단이주대책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옹진군 어민들의 데모는 현재진행형이다.동해안에서도 무리로 몰려다니며 싹쓸이하는 등 우리 바다를 자기네 안방처럼 마음대로 누빈다. 울릉도의 오징어 어획량은 2002년 8천731t에서 지난해에는 1천813t으로 급감해서 '울릉도오징어'타령이 민망하다. 중국어선들의 우리 영해내의 불법 조업은 갈수록 심해지면서 해적행위 격증 내지는 심지어 단속하는 해양경찰에 대한 무력시위도 다반사다.한국과 중국의 합의에 의해 매년 1천600척의 중국어선이 우리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들어와 6만t을 어획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3천~4천척이 마구잡이로 남획(濫獲)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산정책연구소는 2012년의 피해규모를 1조3천500억원으로 추정했다. 당해연도 국내 연근해어업 생산량의 62%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는 중국어선 1천~1천500척이 불법조업한 경우를 전제한 것이어서 실제 손실규모는 수조원대에 이를 것이다.우리 해경에 나포될 경우 담보금이 척당 수천만~수억원에 불과해 불법조업으로 거둬들이는 수익이 훨씬 큰 때문이다. 올해 불법조업이 특히 심했던 것은 또 다른 이유이다. 매년 500여척 내외를 단속했으나 금년엔 중국어선 단속실적이 50%로 격감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상당수의 인력과 장비가 진도 사고현장에 동원돼 단속 여력이 매우 취약해진 것이다. 해경의 해체는 설상가상이었다. 해양경찰청이 경찰이란 이름이 빠진 해양안전본부로 변경되면서 중국어선들이 단속대원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다. 해경해체 소식에 중국어민들은 만세를 불렀다는 소문이다. 해양경찰로부터 육지경찰로 업무이관 과정에서 상당기간 동안의 시행착오 내지는 업무분장이 제대로 안돼 빚은 혼선은 화를 더 키웠다.앞으로가 더 큰일이다. 해경청이 신설된 국가안전처 해양안전본부로 편입되면서 해상공권력이 약화돼 효율성이 떨어질 공산이 큰 것이다. 일선의 해양경비안전서는 초동수사권을 확보했으나 관련된 다른 위법사항에 대한 보강수사는 일일이 육지경찰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일본 등이 해상기관을 잇따라 강화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중 FTA 체결에 따른 국내수산업의 피해가 불가피한 터에 중국어선들의 불법조업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격앙된 일부 어민들은 화염병을 제작해 자체적으로 불법어로에 대항하겠다는 소문도 들린다. 불법조업을 원천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영해내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또한 우리의 바다는 5천만 국민을 부양하는 소중한 식량창고다. 치안부실로 생존권을 위협받는 어민들이 정부에 생계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4-12-23 이한구

창업교육, 전공과정 돼야하는 이유

창업, 열정만으론 성공못해 '전문적 학습' 필요아이디어발굴 등 현실접목 실전교육 제공돼야기업가정신 구비한 청년배출 가능성 더욱 커져최근 창업 열기가 어느 때보다 높다. 대학 내 창업 동아리도 활성화되고, 스타트업의 성공 스토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벤처붐 시절 이후 가장 큰 열풍으로 생각된다. 물론 여전히 생계형 창업의 비중이 높다는 염려가 있지만, 곳곳에서 청년들의 높은 창업의지를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창업 열기가 높아질수록 지난 1990년대 후반의 벤처붐 시절이 남긴 교훈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벤처붐 당시 많은 청년들이 벤처창업 열풍에 내몰렸었다. 그들은 테헤란로의 작은 벤처들이 야전침대에서 자면서 성공하던 벤처신화에 열광했다. 그 신화를 좇아 많은 청년들이 창업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벤처붐이 꺼진 이후 드러났다. 당시 청년 기업가들은 혹독하게 변한 벤처 환경에 대한 대처능력을 갖추지 못했었다. 벤처창업으로 단번에 큰 돈을 버는 것에 대한 의지만 있었지 무엇이 진정으로 창업자가 갖춰야 할 덕목인지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코스닥시장에 들어갈 수준의 창업자들조차 기업사냥꾼의 유혹과 속임수에 바로 넘어가버렸다. 벤처와 코스닥이 통째로 국민과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정규 군사교육을 받지 못한 채 전쟁터로 나간 병사를 학도병이라고 한다. 그들은 전투의 기초기술인 총검술과 사격 등을 훈련받지 못하고 전쟁터에 투입되어, 오직 열정만 가진 미숙한 군인들이다. 더 이상 창업 학도병을 전쟁터에서 전사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창업은 열정만 갖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창업에 관한 지식, 정서, 덕목 등에 대해서 전문적인 학습이 있어야 한다. 현실적인 성공 가능성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훌륭한 군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사업체를 꾸려가다 보면 다양한 상황을 맞게 된다. 그런데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적절한 대응을 모르게 된다. 특히 기업가로서 기대되는 윤리의식을 망각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미국의 스탠포드 및 MIT 대학에서 기업가정신 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대학문을 나서기 전에 기업가정신을 제대로 익히고 나가게 하는 것이다. 기업가정신이란 단순히 기업가로서의 덕목과 생각방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가로서 성공하기 위한 스킬과 상황대처능력들을 포함하고 있다. 지난 벤처붐 시절 기업가들의 미숙한 대처와 기업사냥꾼들의 교활한 유혹에 의해 벤처정신은 질책의 대상이 되었고, 코스닥시장은 투기장으로 오해를 받게 되었다. 그 이후 각고의 노력을 통해 벤처 정신은 다행히 명예를 회복한 셈이지만, 코스닥시장은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당시 기업사냥꾼들의 유혹에 넘어간 코스닥기업들이 많다는 사실은 바로 철저한 기업가정신이 없었다는 입증이다. 여전히 투자자의 손실을 고려하지 않는 코스닥기업에 대한 염려가 있기 때문에 코스닥시장은 성장 추세로 들어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업가정신 함양의 필요성이 반영되어 지난 수년간 대학에서 창업 교육은 빠른 속도로 증가해왔다. 그런데 그 창업교육들은 대체로 교양 교육에 그쳤다. 이처럼 교양 교육도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창업에 대한 전공 교육이 이뤄지는 것이다. 교양 과정은 체계적인 학습이 가능하지 않게 된다. 이런 점에서 창업 교육의 대전환이 요청되는 것이다. 단순히 성공한 기업가들의 강연만으로 기업가정신이 완성되지 않는다. 창업 아이디어 발굴, 기술사업화, 특허사업화, 창업인턴십 등 현실과 접목된 실전형 전문교육이 제공되어야 완성도가 높아진다. 하나의 전공으로서 창업교육이 진행되면 기업가정신을 제대로 구비한 청년들을 배출할 가능성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대학원 과정을 통해 창업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것도 시급하다. 앞으로 창업전문 교육을 담당해줄 전문 인력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이는 경영학 교육의 대전환이 될 가능성도 많다. 기존 경영학 교육이 대기업 임원에게 적합한 교육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것이 창업 교육과 접목하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창업 교육이 전공 과정으로 들어서는 것의 가치는 이만큼 높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12-16 손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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