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창업교육, 전공과정 돼야하는 이유

창업, 열정만으론 성공못해 '전문적 학습' 필요아이디어발굴 등 현실접목 실전교육 제공돼야기업가정신 구비한 청년배출 가능성 더욱 커져최근 창업 열기가 어느 때보다 높다. 대학 내 창업 동아리도 활성화되고, 스타트업의 성공 스토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벤처붐 시절 이후 가장 큰 열풍으로 생각된다. 물론 여전히 생계형 창업의 비중이 높다는 염려가 있지만, 곳곳에서 청년들의 높은 창업의지를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창업 열기가 높아질수록 지난 1990년대 후반의 벤처붐 시절이 남긴 교훈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벤처붐 당시 많은 청년들이 벤처창업 열풍에 내몰렸었다. 그들은 테헤란로의 작은 벤처들이 야전침대에서 자면서 성공하던 벤처신화에 열광했다. 그 신화를 좇아 많은 청년들이 창업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벤처붐이 꺼진 이후 드러났다. 당시 청년 기업가들은 혹독하게 변한 벤처 환경에 대한 대처능력을 갖추지 못했었다. 벤처창업으로 단번에 큰 돈을 버는 것에 대한 의지만 있었지 무엇이 진정으로 창업자가 갖춰야 할 덕목인지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코스닥시장에 들어갈 수준의 창업자들조차 기업사냥꾼의 유혹과 속임수에 바로 넘어가버렸다. 벤처와 코스닥이 통째로 국민과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정규 군사교육을 받지 못한 채 전쟁터로 나간 병사를 학도병이라고 한다. 그들은 전투의 기초기술인 총검술과 사격 등을 훈련받지 못하고 전쟁터에 투입되어, 오직 열정만 가진 미숙한 군인들이다. 더 이상 창업 학도병을 전쟁터에서 전사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창업은 열정만 갖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창업에 관한 지식, 정서, 덕목 등에 대해서 전문적인 학습이 있어야 한다. 현실적인 성공 가능성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훌륭한 군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사업체를 꾸려가다 보면 다양한 상황을 맞게 된다. 그런데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적절한 대응을 모르게 된다. 특히 기업가로서 기대되는 윤리의식을 망각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미국의 스탠포드 및 MIT 대학에서 기업가정신 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대학문을 나서기 전에 기업가정신을 제대로 익히고 나가게 하는 것이다. 기업가정신이란 단순히 기업가로서의 덕목과 생각방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가로서 성공하기 위한 스킬과 상황대처능력들을 포함하고 있다. 지난 벤처붐 시절 기업가들의 미숙한 대처와 기업사냥꾼들의 교활한 유혹에 의해 벤처정신은 질책의 대상이 되었고, 코스닥시장은 투기장으로 오해를 받게 되었다. 그 이후 각고의 노력을 통해 벤처 정신은 다행히 명예를 회복한 셈이지만, 코스닥시장은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당시 기업사냥꾼들의 유혹에 넘어간 코스닥기업들이 많다는 사실은 바로 철저한 기업가정신이 없었다는 입증이다. 여전히 투자자의 손실을 고려하지 않는 코스닥기업에 대한 염려가 있기 때문에 코스닥시장은 성장 추세로 들어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업가정신 함양의 필요성이 반영되어 지난 수년간 대학에서 창업 교육은 빠른 속도로 증가해왔다. 그런데 그 창업교육들은 대체로 교양 교육에 그쳤다. 이처럼 교양 교육도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창업에 대한 전공 교육이 이뤄지는 것이다. 교양 과정은 체계적인 학습이 가능하지 않게 된다. 이런 점에서 창업 교육의 대전환이 요청되는 것이다. 단순히 성공한 기업가들의 강연만으로 기업가정신이 완성되지 않는다. 창업 아이디어 발굴, 기술사업화, 특허사업화, 창업인턴십 등 현실과 접목된 실전형 전문교육이 제공되어야 완성도가 높아진다. 하나의 전공으로서 창업교육이 진행되면 기업가정신을 제대로 구비한 청년들을 배출할 가능성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대학원 과정을 통해 창업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것도 시급하다. 앞으로 창업전문 교육을 담당해줄 전문 인력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이는 경영학 교육의 대전환이 될 가능성도 많다. 기존 경영학 교육이 대기업 임원에게 적합한 교육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것이 창업 교육과 접목하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창업 교육이 전공 과정으로 들어서는 것의 가치는 이만큼 높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12-16 손동원

신기루(蜃氣樓)의 문화적 가치

월미도 해상에 레이저쇼 같은건 어떨지?대형건물 스크린 삼아 천변만화 풍경 재현은?쇠퇴 구도심 새로운 관광자원 되지 않을까비현실적인 이야기나 토대가 취약한 사물, 근거가 없는 말을 가리킬 때 흔히 사상누각(砂上樓閣), 혹은 공중누각(空中樓閣)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상누각이나 공중누각이라는 말은 모두 신기루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신기루는 바다나 사막에서 먼 곳에 있는 물체가 공중에 떠올라 보이거나 거꾸로 비쳐 보이는 현상이다. 신기루의 다른 명칭은 해시(海市)인데, 일본에서는 '나고노 와다리' 혹은 '하마소비'라고 부른다. 신기루라는 명칭을 보면 신(蜃) 대합이나 이무기를 말한다. 고대인들은 이 풍경들이 거대한 조개나 이무기가 뿜어낸 입김이 누대나 성곽의 형상을 나타낸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영어로는 미라지(mirage)인데 사물을 비춰주는 거울(mirror)이라고 여겼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기묘한 현상이 빛의 굴절현상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사람은 수학자 G.몽지만이다. 신기루는 지표나 수면 부근의 대기와 그것에 접한 대기 간에 기온 차가 클 경우, 두개의 서로 다른 기온층 사이를 빛이 통과할 때 굴절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세계적으로 이름난 신기루 발현 장소는 중국 산둥성 옌타이의 펑라이거(蓬萊閣) 앞바다와 이탈리아 메시나 해협이다. 펑라이거 앞바다의 신기루는 주로 늦은 봄과 여름 사이에 나타나는데 서너시간 계속되며 거대한 배나 다리·산·도시 모습으로 바뀌는 대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봉래각 신기루가 나타날 때면 이 광경을 보러 수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이탈리아 메시나해협에서는 공기의 온도가 높아지고 물이 잔잔해지면, 구름위로 아름답고 웅장한 항구도시의 모습이 반영되고, 다시 그 위에 제2, 제3의 도시가 솟아올라 현란한 탑이나 화려한 궁전같은 장관이 겹겹이 펼쳐진다고 한다.우리나라의 경우 인천 앞바다가 유명한 신기루 발현처였지만 잊혀진지 오래다. 월미도 왼편 해상의 수평선에는 봄철 바람이 없는 날이면 섬모양, 커다란 선박이나 건축물 모습이 마치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출현했다는 1930년대 신문기사에서 종종 보인다. 고려시대 문호인 이규보의 수필 '계양산에서 바다를 보다'를 보면 '산에 올라 조수가 밀려오는 것과 해시(海市)의 변괴를 구경했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당시에도 인천의 신기루는 큰 구경거리였음을 알 수 있다.신기루가 부정적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상상적 신기루의 산물이라할 수 있는 판타지는 문학이나 음악·영화의 한 장르로 분류되고 있을 만큼 많이 창작되고 대중적 인기가 높다. 오랫동안 민속놀이로 이어져온 불꽃놀이나 그 현대적 재현인 불꽃축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신기루라 할 수 있다. 신기루나 불꽃놀이의 매력은 환상적 풍경이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기루는 홀연히 나타나 짧은 시간동안 유지되다가 사라지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일이나 현상이다. 바로 출현의 의외성과 순간성, 비현실적 환상적 아름다움이 신기루와 판타지의 매력인 셈이다.뜬금없이 신기루 타령을 하는 것도 신비로운 자연현상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그 현상의 발현처인 월미도나 인천 내항 일대의 문화 콘텐츠로 재현할 수 없는가 하는 발상 때문이다. 신기루를 다시 볼 수 없다면 인천의 축제프로그램으로 월미도 해상에 인천의 신기루를 재현하는 해상 레이저 쇼 같은 건 어떨까? 아니면 대형 건축물을 스크린 삼아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를 설치해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풍경을 디지털로 재현한다면 쇠퇴하는 구도심의 새로운 매력물이 되고 관광자원이 돼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신기루 같은' 생각은 또 어떨까./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4-12-09 김창수

담배 한 개비

담뱃값 2천원 대폭인상 앞뒀는데…금연운동·세수증대·서민들의 불안감…얽혀있는 방정식 어떻게 풀어질지 궁금여야 합의로 담뱃값을 2천원 인상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야당은 1천원의 인상안을 제시했지만 결국 2천원 인상을 고수해 온 정부·여당안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세수 증대 목적이 아니라고 밝히지만 서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1만4천원 하는 담배도 있다. 그래서 뉴욕에는 1개비씩 파는 낱개 담배가 있다. 1970년대 우리나라 광화문 종로에서도 노점상에서 낱개 담배를 팔았다. 일명 '까치담배'가 다시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1970년대 어렵던 군대시절 훈련소나 자대생활 중 졸병 고참 할 것 없이 최고의 기호품이 담배였다. 물론 비흡연자는 제외다. 한때 비흡연자에게는 담뱃값 대신 돈으로 주었다지만 그때는 안 피우는 사병들에게도 다 배급했다. 50분 훈련 후 조교가 외친다. '담배 1발 장전' 하면 훈련병들은 '발사' 하고 외치면서 담배를 꺼내든다. 꿀맛이었다. 어느 친구는 길이가 짧은 화랑담배 한 개비로는 양이 모자라다고 두 개비 이상을 연신 뿜어댔다. 이틀에 한 갑씩 한 달이면 15갑이 지급됐다. 그러나 담배 배급도 끊어진 군에서 이젠 10만원 조금 넘는 이등병의 월급으로는 4천500원의 담뱃값을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 사병들도 담배를 끊어야 할 경우가 내년부터는 생길 판이다.담배를 말할 때 시인 오상순을 빼놓을 수 없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붙이기 시작한 담배를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놓지 않았다고 한다. 호도 아예 담배꽁초를 연상케 하는 공초(空超)다. 그는 보통 하루에 180여 개비를 태웠다는 것이다. 20개비들이 담배 아홉 갑을 피웠으니 지금 생각하면 상상이 안 될 정도다. 순진무구의 영혼으로 살다 간 천상병 시인도 '나의 가난은'이라는 시에서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한 잔 커피와 갑속의 두둑한 담배…'라고 노래했다. 담배를 끊었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고민이 생기면 가끔 담배를 얻어 피웠다고 한다. 마지막 길을 가려고 오른 부엉이 바위에 다다랐을 때도 고인은 담배를 찾았다고 한다. 아쉽게도 동행한 경호과장은 담배가 없었다. 담배를 가져오려는 경호과장에게 '됐다'고 하고는 세상을 등졌다. 숨지기 전 담배 한 개비를 물었더라면 어찌 됐을까 상상해 보는 이도 있다.이처럼 담배의 엄청난 폐해를 알면서도 담배를 피워본 사람은 나름대로의 효능을 안다. 생리적인 안정감뿐 아니라 심리적인 안정감도 주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음이 공허하다거나 괴로울 때 피우는 담배는 풀리지 않는 갈증과 답답함을 해소해 주기도 한다. 어떤 의사는 담배를 끊으려다 받는 엄청난 스트레스보다 차라리 피우라고 하는 경우도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유독 한국 성인 남성의 흡연율이 높다. 지난해 기준 42.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두 번째다. 특히 30~40대 남성들의 흡연율은 각각 54.5%, 48.0%로 2명 중 한 명은 담배를 피운다. 최근 흡연율이 낮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골초 국가'다. 한국인들의 새해 결심 가운데 가장 많은 게 금연이고, '작심삼일(作心三日)'을 대표하는 것도 금연 결심이다.1996년 국민건강증진법이 발효되면서 흡연이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담배와의 전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공공기관마다 금연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했고, 요즘도 텔레비전의 공익광고에는 담배의 독성과 폐해가 자주 등장한다. TV드라마에서마저 흡연장면을 퇴출시켰다. 담배연기에는 무려 4천여가지의 독성화학물질이 들어있고, 이 중 20여종은 발암물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그래서 요즘처럼 담배 피우는 사람이 천대받는 때도 드물다. 예전 같으면 담배끊는 사람을 '독한 놈' 취급을 했다. 지금은 안 끊으면 그 취급을 당한다. 담뱃값의 대폭 인상을 앞두고 금연운동, 세수증대, 서민들의 불안감, '담배 한 개비'에 얽혀 있는 방정식이 어떻게 풀어질지 궁금하다./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객원논설위원

2014-12-02 이준구

'벼락부자' 꿈꾸는 이 시대 놀부들에게

삼성SDS 상장으로 더 크게 부자된 삼성가 세자녀내달 제일모직 상장… 재산 천문학적으로 또 늘어나사회정서 감안 어떻게든 국민 달래는 해법 내놔야흥부가 '벼락부자'가 되자 놀부는 배가 아팠다. 흥부는 금은 보화는 물론 그 유명한 화초장까지 챙겨 줬지만 놀부의 배는 더 아팠다. 놀부는 그날부터 집 처마 밑에 앉아 제비가 날아오기만을 기다렸으나 마음씨 고약한 놀부집에 제비가 날아올 리 없었다. 안되겠다. 직접 제비를 찾아 나서야겠다. 놀부는 "제비 몰러 나간다~~~제비 후리러 나간다~"를 부르며 제비를 잡으러 나갔다. 흥보가의 '제비 후리러 가는 대목'이다. 한때 이 소리는 이동전화 CF로 사용돼 유명세를 탔다. 중중모리 장단으로 거들먹거리며 나가는 놀부의 탐욕스러운 모습을 뛰어나게 묘사해 흥보가 최고의 대목으로 꼽힌다.살기 팍팍한 지금, '벼락부자' 이야기로 서민들의 마음이 뒤숭숭하다. 삼성 SDS 상장으로 벼락부자가 된 이건희 삼성회장의 세자녀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과 그 주변 사람들 때문이다. 원래 부자였지만 더 큰 부자가 된 그들을 서민들은 부러움 반, 시기 반의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다. 지난 14일 삼성 SDS가 상장 되면서 이들은 '벼락부자'가 됐다. 상장 첫날 주가만으로도 삼남매 지분가치는 4조8천억원대에 이른다. 하지만 서민들은 이들이 적은 비용을 투자해 대박을 맞았다는데 주목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주당 1천180원에 108억원어치 삼성SDS 지분을, 이부진·이서현 사장은 주당 1천112원에 각각 34억원씩을 투자해 이 부회장은 약 277배, 이부진 이서현 두 사람은 약 291배의 투자 수익률을 올렸다. 1999년 23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해 3자 배정 방식으로 세 자녀에게 넘긴,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의 핵심이었던 이학수씨와 김인주씨도 각각 1조원, 5천여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이들 역시 '벼락부자'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과 헐값 3자 배정은 2009년 삼성특검 수사와 재판을 통해 불법 판정을 받았다. 삼성그룹이 불법 경영권 승계를 시도한 게 인정된 것이다.다음달 18일 삼성 세자녀들은 제일모직(구 에버랜드)상장으로 또 '벼락부자'가 된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주식 3천136만9천500주(25.1%)를 보유하고 있다. 이부진·이서현 사장도 각각 지분 8.37%씩을 보유하고 있다. 상장예정가 5만3천원 기준으로 주식가치는 이 부회장은 1조3천100억, 두 딸은 각각 5천500억원에 이르게 된다. 상장 뒤 최고 공모가의 2배까지 오른다고 가정할 때 주당 10만원 안팎으로 보면 삼성가 3남매가 보유한 제일모직의 주식가치는 4조원이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SDS에 이어 제일모직 상장까지 두달 사이 이들의 재산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세 자녀는 1996년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 전환사채(CB)를 주당 7천700원에 96억원어치를 매입했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스스로' 내놓은 전환사채를 사들인 것인데 당시 삼성에버랜드 주가는 주당 8만5천원대였다. '특혜'란 말이 나와 이 부회장의 제일모직 지분취득은 삼성SDS 지분취득과 함께 삼성 특검에서 경영권 편법승계와 관련해 수사대상에 올랐었다.물론 주식 헐값 인수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이미 끝났다.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아무리 합법적이어도 불과 47세, 45세, 42세에 수조원의 재산가가 된다는 것을 쉽게 납득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법보다 더 강한 '국민정서법'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떻게든 국민을 달래는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때맞게 야권에서는 불법으로 취득한 주식으로 발생한 차익소득을 국가로 환수하는 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이학수 특별법(불법이익 환수법)'이다. 벼락부자가 되고 싶었던 놀부는 소원대로 제비다리를 부러뜨리고 치료해준 대가로 그토록 갈망하던 박씨를 손에 넣었다. 박속에서 꾸역꾸역 쏟아져 나올 금은 보화를 그리며 양지바른 곳에 박씨를 묻고 박이 잘 자라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가 모두 다 아는 사실 그대로다. 흥보가를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속에는 '벼락부자'를 꿈꾸는 수많은 우리사회의 놀부들에게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는 조상들의 가르침이 담겨있다. '벼락부자'가 반드시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4-11-25 이영재

정치혁신의 방향

여당, 강고한 기득권 프레임에서 벗어나야야당도 고질적 계파주의 탈피해야 혁신 가능보여주기식이라면 국민들과 멀어질수 밖에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보수혁신위원회와 정치개혁실천위원회를 가동하고 있으나 국민들과 유리된 그들만의 혁신 프레임에 갇혀 있다. 여야의 혁신안은 그동안 늘 제시돼 왔던 방안들로서 새로운 정당체제로의 변화를 담보할 내용들을 담고 있지 못하다. 최근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가 내놓은 안은 불체포특권 내려놓기, 출판기념회 금지, 무노동 무임금 겸직 금지, 세비 동결 등 낯익은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새누리당 의총에서 반대에 직면했다. 국회의원들에 대한 불신이 임계점에 다다른 상태에서 제기된 혁신안에 대해 새누리당 의총에서 불만이 제기됐다니, 국민들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 정치권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출판기념회 금지와 본회의 불참 의원에 대한 세비 삭감에 법리적 문제가 따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동안 정치권이 보여준 행태에 비춰 볼 때 혁신적 대안이 아니고서는 의원들의 모럴해저드를 막을 길이 없다.한국정치는 타협과 협상에 익숙하지 못하다.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거대여당과 거대야당이 시민사회의 균열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소수의 의견이 정치적 의사로 형성되지 못하는 정치에서 정당의 존재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예산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는 후진적 한국정치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다. 상임위를 거치면서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보다 15조원이나 증액된 예산안은 무상복지를 둘러싼 여야간 논쟁의 공허함을 보여주고 있다.새누리당이 내세우는 보수의 혁신은 개혁적 보수를 지향함으로써 기득권에 집착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다. 새누리당이 표면적으로는 무상복지를 과도한 복지가 경제활성화에 짐이 되고 경제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지만, 논쟁의 핵심이 법인세 등 직접세의 증세를 둘러싼 논쟁이고 보면 새누리당이 대기업의 이해에 포획돼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최근 새누리당 일각에서 법인세를 일시적으로 인상해서 경제적 효과를 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정당이 모든 계층을 대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혁적 보수가 새누리당이 나아갈 방향이라면 특정 세대와 지역의 지지에 연연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를 대표할 수 있는 정당체제로의 전환에 정당혁신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정당혁신은 정치개혁의 차원과 연계돼야 한다. 정치제도와 선거제도 혁신, 당청관계의 개선 등 정치 전반에 대한 개혁은 최종 심급에서 정치가 제 본령을 다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안위와 특권에 집착하고 기득권에 몰입하는 행태가 지속되는 한 정치 자체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오픈 프라이머리나 당권·대권 분리, 상향식 공천 등은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표출되고 이익이 집약될 수 있기 위한 방편으로 작동될 때 의미가 있다. 당내 계파의 존재도 경쟁과 협력을 통해 정책을 토론할 수 있는 기제로 기능할 때 존재가치가 있다.정당체제가 국민의 의사를 집약해 수렴함으로써 계층간의 갈등이 원만하게 제도권내에서 수렴되는 것이 건강한 정당체제다. 그러나 정치권의 혁신 노력은 그러한 정치의 기능과 정당문화를 견인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에 천착하지 못한다. 보여주기식의 혁신은 국민들과는 유리될 수밖에 없다. 새정치연합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권·당권 분리 역시 그들만의 기득권을 둘러싼 논쟁과 다름없다. 여당은 강고한 기득권의 프레임에서, 야당은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계파주의에서 탈피할 때 여야 정치권의 정당혁신이 이뤄질 수 있다. 여야의 혁신이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지향하는 이념적 성찰이 전제되지 않으면 또 한 번의 신장개업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4-11-18 최창렬

고용불안이 경제를 망친다

비정규직, 8월현재 600만명 넘어서 '사상 최고'양날의 칼로서 가공할 폭발력 지닌 '시한폭탄'소비부진→저성장→고용불안심화 '빈곤 악순환'금년 달력도 마지막 한 장 남았다. 내년도 국내외 경제에 눈길이 가나 장밋빛 전망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 4분기 연속 '0%'대의 저성장을 지속해온 터에 생계형 대출마저 증가하는 추세인데 수출여건도 신통치 못하다. 내외수 성장세가 동반 약화되면서 저성장이 장기화할 우려마저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정부의 을미년 4%성장 호언이 메아리처럼 들린다. 저임금의 비숙련 노동이 주목된다. 마른수건 짜기가 재연될 조짐이 큰 탓이다.국내의 임금근로자 총수 대비 비정규직의 비중은 32.4%로 약간씩 줄어드는 추세이나 그 숫자는 점차 불어나 올해 8월 현재 사상 최고인 600만명을 넘어섰다. 1년만에 13만명이 증가한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임시직·일용직 등을 포함할 경우 경제활동인구의 30%를 훨씬 능가하는 840만명으로 추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정규직 반드시 해소'공약에 역행하는 결과여서 눈길이 간다.정규직과의 소득격차 확대는 설상가상이다. 고용노동부가 3만1천663개 표본사업체 소속 근로자 82만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는 2008년 134만9천원에서 작년 298만5천원으로 5년만에 무려 2배이상 벌어졌다. 2013년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47.0%에 불과했다. 퇴직금과 상여금, 시간외 수당 등은 물론 사회복지 혜택까지 축소중인데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비정규직들의 수입은 더욱 낮아진다. 장기간의 저성장에다 간접노동 확산도 한몫 거들었다.파견·업무위탁·노무도급·사내하청·외주·분사·근로자공급 등으로 근로자들을 실제 사용하는 사업주는 근로조건 등 일체의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제도적으론 법적 고용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면책특권을 누린다. 1998년 IMF사태 이후 비숙련의 상시지속업무를 아웃소싱으로 전환하면서 작금 '단가 후려치기'는 예사며 '10년을 일해도 신입사원'들이 양산되고 '바지사장'도 성업중이다. 지난달 20일 새정치민주연합 이석현 국회의원의 분석에 의하면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중인 사업장 3곳중 1곳에서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차별개선을 위한 정부의 노력 또한 줄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헛구호일 뿐이다.정규직으로의 전환율이 매우 낮은 것은 또 다른 주목대상이다. 지난 10월2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영국·독일·프랑스·네덜란드·일본 등 16개국을 대상으로 한 '2013년 비정규직 이동성 국제비교'에서 한국은 정규직 전환율이 선진국중 가장 낮은 국가로 자칫 수많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열악한 일자리의 덫(trap)에 걸릴 위험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1990년대말 버블붕괴를 계기로 평생직장은 빠르게 위축됐다. 기업들은 재무지표 개선이란 소기의 성과를 거뒀으나 임금수준이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한 비정규직이 대량발생하면서 민간소비는 서서히 둔화됐다. 수출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질됐으나 2008년 미국의 비우량채권사태를 계기로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고용불안의 망령은 청년들의 자립의지 위축 내지는 출산율의 확대재생산을 결과해서 고령화를 더 촉진했다. 계층간·세대간 갈등우려는 또 다른 고민이다. 종신고용의 나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이야기다.비정규직 문제는 양날의 칼로서 가공할 폭발력을 지닌 시한폭탄이다. 비정규직→소비부진→저성장→고용불안 심화 등 빈곤의 악순환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가 현안이나 가격기구를 통한 자율적 해결은 난망이다. 국제공조를 통한 비숙련노동문제 청산을 주문한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에단 켑스타인 교수는 "정부는 고용불안 노동자들이 변화하는 경제상황에 적응하도록 도와줄 책임이 있다"고 역설했다. OECD는 총수요진작을 위해서라도 각국 정부들이 비정규직 축소에 팔을 걷어붙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 고용불안은 더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어 보인다.끓는 냄비 속 개구리를 닮아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4-11-11 이한구

대학 창업보육 과세 하면서 창조경제 성공 가능한지

외형상 '산학협력단'일뿐 공공성 여전히 지배'공간 빌려주기' 관점은 시대흐름 뒤떨어진것인센티브조차 없는데 '임대사업자 규정' 안돼우리나라 창업보육의 역사도 15년을 넘어섰다. 지난 1990년대 후반 벤처강국의 의지를 담아 신생 벤처들을 키우는 입주시설로서, 대학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출범했었다. 그동안 스타 기업을 많이 키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실적이 부끄러운 수준은 아니다. 가장 최근의 공식 통계인 2012년 말 기준으로, 입주기업 5천123개, 고용인원 1만7천276명, 매출액 1조6천592억원에 달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위상을 보인다. 그런데 특이한 사항은 전국 창업보육센터 276개중 75%인 207개가 대학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대학이 창업보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창업보육을 공공재(public goods)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즉, 신생 벤처에 혜택을 베푸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러다보니 비용과 수익을 철저히 계산하는 영리조직에서는 창업보육을 맡을 이유가 없었다.창업보육에서 수익을 얻기 어렵다보니 많은 창업보육센터들이 적극적이지 못하다. 최소한의 외형을 유지하는 선에 머무는 기관도 많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수익 인센티브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창업보육시스템에서 양질의 벤처창업을 기대하기 어렵다. 창업보육은 신생기업에 혜택이 되지만 창업보육센터 입장에서도 최소한 숨을 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학의 창업보육을 임대사업자로 규정하고 세금을 부여하려는 정책이 대학 창업보육을 흔들고 있어 안타깝다. 이 정책에 의해 사립대의 경우 재산세를 내고 국립대는 국유재산 사용료를 내야하는 상황에 몰려있다. 대학은 현재 보육공간의 입주기업들에게 최소한의 사용료를 얻는다. 물론 영리적인 가격 설정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공공성 기조로 운영됨에도 임대사업자로 규정하는 것이다. 대학은 공간활용도로만 따진다면 창업보육보다 더 높은 수익을 노릴 수 있지만 공공성에 충실하고자 전략적 결정도 하지 못하고 있다.이 문제에 대한 중소기업청의 해결 의지와 달리 다른 부처들의 오해로 정책혼선을 빚고 있다. 이미 금년 3월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창업보육센터를 대학시설로 인정하고 재산세 100%감면 방침을 정리한 바 있다. 그러나 과세당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들의 오해는 대학의 창업보육이 대학 고유사업이 아니라는 점, 그래서 산학협력단이 최소한의 수익을 얻는다는 점을 지목한다. 그런데 창업보육은 본래 대학고유사업이었지만, 산학협력단 조직 출범에 의해 외형만 이관됐을 뿐이다. 대학의 재량적 전략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분장만 산학협력단 소속으로 넘어간 것이다. 즉, 외형상 산학협력단으로 넘어갔을 뿐 실제는 공공적 속성이 여전히 지배하는 것이다.이제부턴 오히려 창업보육을 통한 창조경제의 성공의 길을 논의해야 한다. 그래야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스타 벤처들을 낳을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창업보육은 이미 비즈니스의 하나로 인식된 지 오래다. 창업보육은 공간 제공뿐 아니라 경영 멘토링과 사업자금을 제공하면서 수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로 진화해 왔다. 즉, 신생 벤처에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지분을 얻고 그 지분회수에 의해 수익을 얻는 모델이 된 것이다. 최근에는 엑셀러레이터라는 변종 사업자가 등장해서 엄청난 수익을 얻고 있다. 현재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벤처인 우버(Uber)와 에어비앤비(Airbnb) 기업들이 '와이-컴비네이터(Y-combinator)'라는 엑셀러레이터에서 키운 벤처임에 주목해야 한다.이런 판국에 창업보육을 '공간 빌려주기'로 보는 관점은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것이 분명하다. 대학 산학협력단이 얼마의 수익을 얻는지, 형식논리에 더 이상 빠져있을 틈이 없다. 대학의 창업보육은 그 자체가 완결판이 아니라 창조경제를 움직이는 시작점인데, 여기에 활력이 없다면 창업 강국의 희망은 불가능한 꿈에 불과하다. 수익 인센티브조차 없는 창업보육을 임대사업자로 규정하고 과세하면서 어떻게 창조경제를 성공할 수 있겠는가./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11-04 손동원

安不忘危(안불망위)

세월호 침몰후 또 터진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잊어선 안될 참사들편안함 속에서도 항상 위태로움 망각해선 안돼'주역'의 계사전(繫辭傳)에 "是故君子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그러므로 군자는 태평할 때에도 위기를 잊지 않고, 순탄할 때에도 멸망을 잊지 않으며, 잘 다스려지고 있을 때에도 혼란을 잊지 않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가정과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국가 사회 가정에서 안정과 위기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태평한 시기라 하더라도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위기와 어려움에 대비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을 너무 쉽게 잊고 산다.세월호 참사가 난 지 반년이다. 그런데 며칠 전 또 애꿎은 사람 16명이 희생됐다. 그렇지 않아도 세월호의 아픔을 너무 쉽게 잊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던 차다. 사고의 원인 속에는 우리가 잠시 기본을 망각했던 것이 자리한다. 27명의 사상자를 낸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는 또다시 사고공화국의 망령이 되살아나게 했다. '내일의 성장은 오늘의 안전에서 시작됩니다'. 사고 나기 불과 사흘 전 광화문 광장에 국무총리, 관련부처 장·차관, 공공기관장 및 관련 시민단체 등 600여 명이 모여 외친 슬로건이다. 정홍원 총리는 이날 "일상생활에서부터 안전을 지키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성남 판교사고는 국가안전대진단 행사를 비웃기나 하듯 발생했다.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위기와 어려움에 대비해야 한다고 수천년 전부터 고전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그건 교과서에 나오는 말일 뿐이다. 대통령은 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답답해할 것이다. 세월호에 담겨있던 총체적인 비리의 모습들을 지켜본 게 엊그제다. 끝까지 책임을 따져 묻겠다고 했지만 그 책임 소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 책임도 가려지기 전에 또 판교참사 책임에 대한 공방이 시작됐다. 세월호의 외양간을 고치기도 전에 또 부실한 외양간이 연달아 무너지고 마는 상황이다. 이제 내 몸은 내가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결국 그럴 수밖에 없어 보인다.금요일이면 서울캠퍼스로 간다. 한남대교를 건너기도 하고 때로는 반포대교를 건넌다. 학기 초엔 오전 7시30분쯤 수원에서 출발했더니 한남대교 위에 차들이 밀린다.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한다. 혹시라도 무너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래서 둘째주부터는 아예 6시에 출발한다. 빨리 다리를 건너려는 욕심에서다. 잇단 사고를 보면서 나의 걱정이 진짜 걱정인지, 기우(杞憂)인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성수대교 붕괴가 떠올라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어떤 때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엘 가도 천장을 쳐다보게 되고 발걸음마저 조심스럽다. 터널 천장의 락볼트도 부실시공했다는 소리에 터널 지나기도 무섭다. 어딜 가나 온통 마음이 조마조마한 건 나뿐일까. 이쯤되면 요즘 사람들이 배타기를 꺼리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겠다.20년 전 난데 없이 한강다리 상판이 무너져내려 버스와 자동차가 한강에 '풍덩' 빠지고 애꿎은 시민과 학생들 32명이 물에 빠져 죽고 17명이 부상당한 걸 기억해보자. 생각하기조차 싫은 황당한 일이었다. 오죽하면 해외토픽 톱뉴스였겠는가. 21일 서울시는 성수대교를 비롯한 전체 한강다리에 대해 안전점검하는 행사를 가졌다. 내년 6월이면 502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937명 부상, 6명이 실종돼 모두 1천445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20년이다. 한국전쟁 다음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인명피해로 기록된 치욕의 날이다. 세월호는 물론 모두가 잊어서는 안되는 큰 사고들이다.기억을 너무 잘하는 것도 병이다. 살면서 고통스러웠거나 힘들었거나 당황스러웠거나 우울했던 기억들을 잊지 않고 생생히 기억한다면 그것 또한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망각(忘却)의 기능이 있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잘 기억하고 잊어버려야 할 것을 잘 잊어버리는 것이 건강한 뇌다. 우리가 겪은 대형사고는 잊으면 또 당한다. 安不忘危(안불망위)를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객원논설위원

2014-10-21 이준구

개헌은 정치혁신이 전제돼야

양당체제의 한국정치 독과점 구조 많다는 지적소선거구제에서 다양한 세력 의견반영 쉽지않아합의제로 바꿀 수 있는 정당·선거제 변화 절실우리 정치가 마주해야 할 '블랙홀'이 있다. 문자 그대로 다른 현안을 하나의 거대담론으로 흡수할 폭발력과 휘발성을 갖고 있는 개헌이다. 1987년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9차개헌 이후 5년 단임제가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는 기본인식에서 출발하지만 주장하는 시기와 주체에 따라 정치적 셈법은 제 각각이다. 한국정치에서 개헌은 어떤 형태로든 넘어야 할 산이다. 지난 대선때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지난 10월6일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기자회견에 이어 두번째로 '개헌 블랙홀론'을 언급했다. 개헌을 공약한 대선때의 상황과 지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없다.개헌의 초점은 정부형태의 변경이다. 4년중임제·이원집정부제로 대표되는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가 가장 큰 줄기다. 4년 중임제는 레임덕 방지라는 이유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지만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연임을 가능하게 해 대통령권력 비대화의 이유로 내세우는 현재의 개헌론과는 기본적으로 배치되는 면이 있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과 의회의 이원적 정통성(dual legitimacy) 문제때문에 정국의 교착이 발생할 수 있는 대통령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정파가 다른 대통령과 총리의 경우에는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형태중에서 가장 최악의 조합이 될 수도 있는 제도다. 반면 내각제는 의회주의라는 대의제의 성격을 가장 잘 살릴 수는 있어도 총선에서 과반 획득 정당이 없는 상태에서는 정치불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개연성이 높다.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인 2008년 '개헌의 적기'라고 개헌을 촉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했으나 추동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차피 개헌은 정국의 대격변을 초래할 대형의제다. 차기를 노리는 대권주자나 현직 대통령이 개헌에 소극적이면 개헌은 추진되기 어렵다.한국정치의 실질적 양당체제가 가져오는 독과점구조에 대해서는 많은 지적이 제기돼 왔다. 새누리당 아니면 새정치연합 밖에 없는 현재의 '적대적 공존' 정당체제에서 정치가 제대로 작동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는 대통령에의 권력집중, 청와대가 결정하지 않으면 공기업 인사도 이뤄질 수 없는 '제왕적'체제와 맞물려 있다.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소외세력이 대표되지 않는 구조를 사회균열을 제대로 대표해 낼 수 있는 정당체제로 바꾸기 위한 제도적 디자인이 절실하다.찬성하는 숫자가 많아서 채택하는 다수결과 다수의 의견에서 소외된 의견을 반영해 전체적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합의제는 근원적으로 다르다. 우리나라와 같이 단순다수제를 기본으로 한 소선거구제에서 사회의 다양한 세력이 대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순진한 발상이다. 비례대표제의 확대실시를 통한 합의제로의 발전에 대한 의견이 많은 이유다. 사회 갈등이 정당체제에 수렴돼 관리되지 않으면 사회갈등은 그만큼 증폭된다. 정당체제와 선거제도의 변화가 그래서 절실하다.5년 단임의 대통령제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어떠한 권력구조를 선택하느냐, 시기는 언제인가 등의 문제가 남아있다. 그러나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한 해법을 구하기란 현재로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내에서도 친박과 비박 사이에 견해가 다르고, 여야간 셈법이 다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권력구조 변경에 국한하자는 측과 기왕 개헌을 하려면 시대에 맞지 않는 이념적 문제와 경제사회적 차원에서도 손질을 해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개헌은 백가쟁명식의 다양한 논의만 무성하지 추진을 위한 로드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국전환과 정치적 주도권을 잡기위한 정치공학적 동인이 기본이고, 대통령제에서 권력을 잡기 어려운 정치세력이 정치판 자체를 바꾸려는 유인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의제로의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선거제도와 정당제도 등의 정치제도적 디자인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어떠한 개헌도 한국정치를 제 궤도에 올려놓을 수 없다. 현재 한국의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이를 추동할 시대적 지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4-10-14 최창렬

연정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들

하든 말든… '너희들만의 리그' 도민들 무관심도정 마비속 '연정' 고집에 상당수 불안감 느껴남지사, 표 던진 50.43% 유권자 마음도 헤아려야요즘 경기도 공무원 사이에서 '김말남초(金末南初)'라는 말이 나돈다. '김문수 말 남경필 초'를 줄임말로 정권 말기의 무기력함, 정권 초기의 어수선함이 경기도에 공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경기도 연합정치, 이른바 '경기연정'에 발목이 잡혀 도정이 휘청거리는 것에 대한 공무원들의 자조섞인 푸념이다. 어느 정권이건 출범 초기에는 활기가 넘치게 마련이다. 의욕이 지나치게 과해서 '과유불급'을 우려할 정도다. 이는 국가정권이건 지방정권이건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도정은 지금 구멍이 뻥 뚫려있다. 공백상태다. 절대 선(善)으로 미화되는 연정 때문에 산하기관 통폐합, 조직개편은 모두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오죽하면 '남 지사는 연정인지 도정인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와중에 민선 6기 출범 이후 첫 번째 추경에서 도의 역점사업 예산이 연정 파트너에 의해 전액 삭감됐다. '대한민국 정치사의 첫발', '어렵지만 꼭 가야 할 길'이라며 의미를 부여한 경기 연정의 현주소다.그럼에도 남경필 지사는 취임 100일을 맞아 더 파격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도의회와 예산을 공동 편성하고 인사권도 공유하는 이른바 '분권형 도지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논의된 야당 몫 사회통합부지사를 넘어 도정을 야당과 아예 공유하겠다는 파격적 제안이다. "도의회가 남경필 들러리냐"며 사회통합부지사 추천을 거부해 온 도의회 새정치민주연합 내 연정 반대 그룹조차 경악했다는 메가톤급 제안이다. 물론 법적인 문제로 당장 실현이 불가능하지만 이 정도면 연정에 대한 남 지사의 생각이 '소신'을 뛰어넘어 '집착'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그러면서 남 지사는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시행착오와 갈등, 불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연정은 남경필의 정치철학이자 굽힐 수 없는 소신"이라고 말했다. 끝까지 연정 '실험'은 계속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연정을 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나뉜다. 무관심과 불안함. 현재 연정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보다 경기도민의 무관심이다. 내 지역에서 내가 뽑은 도의원 이름 석 자도 모르는데 연정을 하든 말든 그것은 '너희들만의 리그'라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한심한 행태를 보는 것도 지겨운데, 도의회는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관심있는 사람들은 도의 모든 정책이 연정과 맞물리면서 도 정책이 겉돌고 있는 것에 오히려 짜증을 낸다.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만했으면 하는 도민들도 만만치 않다. 특히 도의회와 예산을 공동 편성하고, 인사권을 공유하겠다는 말에 도민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럴려면 상위법인 지방자치법을 뜯어고쳐야 하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혹시 임기내내 이 법과 씨름하는 남 지사를 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벌써부터 볼멘 소리다. 이럴 바에 차라리 한수 이북을 야당에 떼어주든가 차라리 당적을 옮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남 지사의 연정 실험은 게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남 지사의 행보를 지켜보는 불안한 시선이다. 지난 선거에서 남 지사는 야당 후보와 0.8%포인트, 불과 4만3천157표로 초박빙 승리를 거뒀다. 이는 유권자의 절반이 야당 도지사를 열망했다는 뜻도 된다. 도의회도 새누리당 50석, 새정치민주연합 78석으로 여소야대가 됐다. 이러니 연정을 통해 도정 운영을 꾸려 나가야 하는 것은 외견상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일 지난 선거에서 분권형 도지사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아마 당선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 지사는 의원시절 당에서 개혁성향 의원으로 분류됐다. 그래서 '여당 내 야당'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지나치게 좌편향이란 지적도 받았다. 이런 언행이 보수층들에게 강한 반감을 사는 경우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파격적인 행보가 전혀 낯선 것도 아니다. 도정이 마비되면서까지 연정을 고집하는 남 지사의 모습에서, 많은 도민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 뜻에서 남지사는 지난 '세월호 정국'속에 치러진 선거에서 표를 준 50.43%의 유권자 상당수가 남경필 개인이 아닌, 새누리당을 보고 표를 던졌다는 가정하에 지금의 연정 '실험'을 불안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도 반드시 헤아려야 한다. 특히 대권에 뜻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4-10-07 이영재

공기업 개혁은 정치혁신부터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인사에 대해 말들이 많다. 얼마 전 관광공사 감사에 78세 고령의 코미디언 자니 윤씨를 임명하더니 이번에는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을 대한적십자사 신임 총재로 지명한 것이다. 관광공사 감사는 회사 살림을 감시하고 책임지는 사장 다음 고위직으로 회계 지식은 물론 관광산업에 대한 식견이 필수적이다. 한적은 남북한간 중요 창구 역할을 하는 곳으로 대통령이 명예총재, 국무총리가 명예부총재를 맡는 준정부기구인 만큼 수장은 덕망과 사회적 신임이 두터운 원로들이 맡는 것이 관행이었다. 최연소에다 첫 기업인 출신인 김 차기총재와 희극인 윤 감사는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 당선을 위해 적극 헌신했던 탓에 보은성의 낙하산 인사란 평가다.박 대통령의 '낙하산은 없다'는 공언과 배치되는 결과여서 주목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장하나 의원이 지난해 11월 박 정부들어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장 78명을 조사한 결과 43%인 34명이 낙하산 인사로 MB정부의 낙하산 비율 32%보다 훨씬 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지난 연말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파티는 끝났다'며 공공기관 개혁을 강조한 이후 새로 기관장에 임명된 35명중 정치인 출신은 15명으로 3배나 격증했다. 박 정부가 집권 2년차인 점을 감안할 때 향후 공공기관에 대한 낙하산 인사는 심화될 개연성이 크다.문제는 공기업 개혁이다. 박 대통령은 금년도 신년기자회견에서 "올해 공공부문 개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 예고한 바 있다. 새누리당은 19일에 '과대부채' '과잉복지' '과잉기능'의 공기업 개혁 7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300여곳의 공공기관 부채 총액은 523조원으로 정부채무 482조원을 능가하는데다 부채 비율도 216%로 최근 4년만에 무려 2배가량 증가했다. 세금으로 갚아야할 적자성 채무가 70% 이상인 등 부채의 질 악화는 점입가경이다. 전국 지방공기업 396곳의 빚도 근래 빠르게 불어 총 부채가 74조원에 이른다. 내수 부진에 따른 양극화 확대 등 공공지출 수요는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데 경제성장은 게걸음이어서 빚더미공화국의 불명예마저 배제할 수 없다.정부와 여당은 공기업들의 방만경영에 칼끝을 겨누었다. 개혁 방향은 매각·민간개방·경쟁도입 등으로 정했다. 박 대통령은 여론몰이를 해서라도 이번만큼은 반드시 악폐(?)를 뿌리 뽑겠다는 각오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점차 커지는 국민적 원성을 강조하며 독전(督戰)중이다. 2016년 총선까지 '표장사'를 방해할 걸림돌도 없어 물실호기로 판단하는 눈치이나 성과는 금물이다.공기업노조는 눈덩이 부채의 원인이 과잉복지보다 정부사업을 공기업에 전가하고 공공요금을 원가 이하로 책정한 탓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니 말이다. 세종시와 혁신도시, 보금자리주택과 4대강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윤태범 방송통신대 교수의 "공공기관 노동자들에 책임을 물으려면 그들이 방만 경영할 수 있을만한 권한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 권한이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에 눈길이 간다. 야당도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공기업노조에 전가하고 있다는 입장이어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작업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소관 부처의 산하 공공기관 보호 타성 불식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각 부처 고위 공무원들은 산하 공기업을 퇴직후 '제2 철밥통'으로 당연시하는 실정에서 제 밥통 뺏는 작업에 스스로 동참하겠는가. 소리만 요란했던 역대 정부의 공기업 개혁 실패가 방증이다.낙하산 인사가 화근이다. 출근 첫날부터 노조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낙하산 사장'이 공기업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공기업의 방만경영은 낙하산 경영진과 노조의 합작품"이란 항설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민영화도 정답이 아니다. 최근 영국 스코틀랜드의 독립시도가 반면교사다. 관피아와 정피아 청산없는 공기업 개혁은 공염불이다. 인사가 만사라 했다. 그러나 더 시급한 것은 정치혁신인데 박근혜 정부는 독배(낙하산 인사)부터 먼저 들고 있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9-30 이한구

사회적 경제에 대한 세가지 오해

오해가 깊어지면 오류를 범한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오해가 바로 그렇다. 특히 다음 세 가지 오해는 오랫동안 사회적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괴물들이다. 하루속히 오해가 해소돼 진정한 사회적 경제의 진면목을 살려야 한다. 첫 번째 오해는 진보이념의 독점물로 보는 오해다. 사회적 경제는 이념과 관련이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개념이다. 좌파의 독점물도 아니며 우파가 소홀히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세상을 건강하게 만들자는 노력일 뿐이다. 두 번째 오해는 이윤과 무관하다는 오해다. 사회적 경제도 하나의 비즈니스다. 이윤과 무관한 비즈니스는 없다. 이윤을 무시하면 기업이 이미 아니다. 이는 사회적 경제가 사회복지 및 시민단체와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유명한 사회적 기업인 '탐스 슈즈(Tom's Shoes)' 사례를 보자. 이 기업은 고객에게 한 켤레의 신발을 팔면 빈곤국의 아이에게 새로운 한 켤레를 기부한다. 저개발국의 빈곤문제 해결을 담고 있지만 신발 판매를 통한 수익성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세 번째 오해는 지속가능성이 낮아 곧 도태될 것이라는 견해다. 사회적 경제의 앞날은 매우 밝다. 어떤 의미에서는 폭발적인 성장 조짐조차 예견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성장동력은 바로 '똑똑한 제조업'과의 결합이다. 하드웨어 제조를 넘어 소프트웨어와 결합하는 새로운 장르를 말한다. 새로운 장르를 통해 우리 인간의 상황을 읽는 제품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사회적 경제와 잘 어울린다. 특히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이라는 신개념에 의해 제조의 복잡함이 크게 줄어들고 있어 더욱 고무적이다. 크라우드 소싱이란 다수의 참여자들이 의견을 모아 제품을 만들어 가는 방법을 말한다.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다수의 참여자들에 의해 디자인과 제조 역할이 분담되면서, 시장에서 통할 수 있도록 사업 아이디어를 다듬게 된다. 구체적으로 킥스타터(Kickstarter)라는 크라우드 소싱 사이트를 보라. 그곳에서는 초기 발명품에 다수 참여자들의 아이디어가 보완돼 시장에서 먹힐 제품으로 다듬어진다. 이는 향후 사회적 기업의 수익모델 도출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제조 과정에서 대중의 의견이 반영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경제에서 효과를 높일 수밖에 없다.사회적 문제의 해결이란 실상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때 성공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닌가. 대중들이 참여하는 인터넷공간에서 참여자들의 협력에 의해 시장에서 공감을 얻을 제품을 만들어내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는 특히 많은 사회적 기업에 커다란 장애물이었던 '시제품 제조'를 도울 것으로 본다. 과거 거대한 설비투자를 해야 시제품이 나오던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상황이다.사회적 경제는 미래를 주도할 핵심으로 발돋움할 것이 분명하다. 과거 어떤 경제철학도 해결하지 못했던 영역, 즉 비즈니스와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두 과제를 넘나들며 꽃을 피울 보물이다. 정치적 가치도 매우 높다.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되면 근본적으로 복지수요 자체가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라 시민들로부터 정치적 호응이 넓어지게 된다. 이렇듯 사회적 경제의 미래 가치는 경제적·정치적으로 매력적이다.인천시 조직개편에서 '사회적 경제' 명칭이 폐지될 거라는 소문이 안타깝다. 조직구조에서 '사회적 경제' 명칭이 없어진다면 인천의 사회적 경제 활동이 매우 위축될 것이 분명하다. 조직구조의 전면에 표현되는 것 자체가 주는 상징적 힘이 크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는 이제부터 꽃을 피울 것인데, 인천시가 그것을 정책의 후방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오히려 사회적 경제와 같은 미래형 주제를 살려서 인천시정의 폭발력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데 말이다. 깊은 오해를 넘어 시대의 흐름을 조망하면 오류를 면할 수 있다. 인천시가 미래형 정책 어젠다의 선점 경쟁에서 더 이상 밀려나지 않길 바란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09-23 손동원

한국의 나무 인천의 나무

소나무는 한국인들이 사랑하고 한국을 표상하는 나무다. 한국을 표상할 수 있으면서 한국인에게 사랑받아야 할 나무 중의 하나로 소사나무를 추천하고 싶다. 지난 여름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의 소사나무 군락지가 피서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소사나무의 가치를 다시 깨닫게 됐다. 무엇보다 척박한 환경을 견디는 소사나무의 강인한 기질이 우리 민족과 닮았다. 또 고목나무를 연상시키는 구불구불한 줄기와 작은 잎사귀가 어우러진 모습은 한국인의 자연미적 취향과도 잘 어울린다.소사나무는 이미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나무다. 분재용으로 태어난 나무라고 불릴 정도로 분재목으로 인기가 높다. 잎 크기와 줄기의 모양, 투박스러운 질감 때문에 분재용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분재업자나 애호가들이 소사나무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가지를 억지로 구부려서 분재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또한 소사나무가 지닌 독특한 조형성 때문에 겪어야 하는 수난(?)인 것이다.마니산 참성단의 소사나무도 유명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소사나무는 비록 높이는 4.8m, 수령은 150여년에 불과하지만 마니산 정상을 촬영한 사진 작품속에서는 실제보다 훨씬 크고 신비한 나무처럼 보인다. 다른 문화재급 노거수들에 비하면 크기나 나이는 내세울 게 없지만,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神檀樹)나 신의 거처인 천상과 인간의 지상을 연결하는 우주목(宇宙木)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나무다. 한 줌의 흙도 변변치 않은 참성단 돌 틈에서, 바람막이 없는 산 정상에서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뎌온 나무의 모습이 참성단에 오른 이들에게 더욱 경건한 느낌을 주고 실제보다 큰 나무로 여기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소사나무는 강한 바람이나 척박한 토양에도 잘 자라는 억센 나무다. 해풍을 막아야 하는 영흥도 주민들이 소사나무로 방풍림을 조성한 이유다. 모래와 자갈 투성이의 해변에서 해풍과 맞설 나무로 가장 적당했던 것이다. 하늘로 키를 높이기보다는 옆으로 줄기를 늘려 가는 소사나무의 '겸손한' 생존전략 덕에 어민들은 바람을 막고 그늘을 얻을 수 있었다. 이가림 시인이 '소사나무 숲'에서 영흥도 십리포의 소사나무 숲을 황해의 파도와 해풍에 맞서는 '방파제'이자 '바리케이드'이며, 십리포 해변을 지키는 '옹이투성이의 노인들, 최후의 민병대'라고 노래한 것도 그 강인한 생존력에 대한 경외감 때문일 터다.영흥도 십리포 소사나무 군락지는 방풍림으로 조성된 국내 최대 군락지로 어촌생활문화 자원의 가치도 지니고 있어 국가적으로 보호해야 할 숲이다. 그러나 인천시와 옹진군은 피서객 편의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보호림 훼손을 방치하고 있다. 피서객들이 산책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되 취사행위나 야영은 금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내유일의 천연보호림의 가치를 설명해 관광객이나 국민들이 스스로 소사나무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소사나무는 서해의 옹진군 백아도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바람이 드센 해변이나 산 정상부에 서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천지역 일대의 수목을 연구해온 권전오 박사는 소사나무의 분포와 서식 특성이 인천의 정체성에 부합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인천 시목(市木)으로 지정된 목백합은 인천과는 그리 연고가 없는 나무다. 인천시가 소사나무와 소사나무 군락지에 더 관심을 갖고 인천의 명물로 가꿔 나가는 정책을 제안해야겠다. 소사나무는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닌 나무일 뿐 아니라 그 군락지나 자생지도 관광지로 가꿔 나가야 할 장소들 아닌가. 게다가 한국 특산종인 소사나무는 분재로 각광받고 있듯이 경제적 가치도 풍부한 생물유전자 자원이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4-09-16 김창수

군대는 '썩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

남자들 둘만 모이면 군대 얘기다. 실역을 필한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2박3일간 밤을 새워 해도 모자란다. 여자들이야 지긋지긋하다고 한다. 여기에 군대에서 비오는 날 축구하던 얘기까지 나오면 지긋지긋하다못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런데 요즘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온통 군대 얘기다. 총기를 난사해 전우들을 죽인 임병장, 선임들의 구타에 못 이겨 사망한 윤일병 사건 등으로 온통 관심이 군대이기 때문이다. 군에 보낸, 또는 보낼 아들이 있는 엄마들도 초조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인다. 모두 다 귀한 자식들을 둔 부모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나 역시 늦게 둔 막내가 아직 사병으로 복무중이어서 뉴스에 귀를 기울이기는 마찬가지다.또 군대 얘기다. 1979년 9월 101보충대(지금의 306보충대)로 입대했으니 꼭 35년 전이다. 신병 훈련도중 나는 처음으로 폭력을 목격했다. 신병교육대 중대장이 소대장(교관)의 무릎을 발로 차는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조인트'를 날리는 것이었다. 이내 소대장은 저 멀리 도망쳤다. 장교끼리의 폭력을 직접 목격했으니 사병간의 폭력은 미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던 시절이다. 후반기 교육이 시작될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 10·26 사태다. 이등병 신세에 전쟁이 나는 줄 았았다. 완전군장을 꾸리고 전쟁채비를 했다. 두려움 그 자체였다.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자대로 가자마자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났다. '별들의 하극상 전쟁'에 영문도 모른 채 끼여 한 축이 돼버렸다. 정말 정신차릴 수가 없었다. 동작이 느리다는 이유로 고참병들에게 혼도 많이 났다. 툭하면 집합당해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정신교육과 얼차려를 받았다. 곧이어 발생한 광주민중항쟁 등 암울한 시대적 상황들은 군생활을 더욱 힘들게 했다.그래도 당시는 나라의 위기상황에서 모두가 사명감이 있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여서인지 나라를 지킨다는 자긍심이 있었다. 목욕시설은커녕 우물물도 제대로 안나오던, 지금과는 비교가 안되는 열악한 여건이었다. 그런데도 그때 그시절의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은 내무반에서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며 힘들었던 시간들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엄격한 군기속에 극한 상황을 이겨내는 남자들만의 끈끈한 전우애가 있었다. 그때의 전우들과 35년이 지난 지금도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경조사를 챙기는 이유다.그러나 지금의 군대는 많이 달라진 게 사실이다. 예전에 비해서 엄청나게 좋아진 시설이나 보급품, 선후임 관계 등이 그것이다. 요즘 신세대 병사들이 나약해진 것 아니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핵가족 시대에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때로는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유롭게 자란 원인도 있을 것이다. 민주화도 좋다. 신세대 사병들의 트렌드를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군의 생명은 군기다. 나아가 군인들은 사기와 명예를 먹고 산다. 그런데 요즘 군에 대한 신뢰가 말이 아니다. 군대는 마치 매맞으러 가는 곳처럼 돼버렸다. 국가수호에 대비해 교육훈련에 열중해도 모자랄 판에 비전투적 요소에 전력이 너무 소모되는 게 안타깝다.어느 대통령이 한 말이 생각난다. "군대 가서 뺑뺑이 돌고, 몇 년씩 썩고 온다." 군통수권자가 군을 불신하는 듯한 발언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대통령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2003년 발간된 '성공하고 싶다면 군대에 가라'의 공동저자였다. 사회에서 성공을 거둔 많은 사람들이 군복무가 '시간 낭비'가 아닌,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디딤돌'과 미래발전의 귀중한 기회로 활용했다고 말한다. 나 역시도 군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군대를 가는 것이 '썩으러' 간다거나 '때우러' 간다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 군복무를 자기발전의 계기로 삼을 때 병영문화는 지금보다 훨씬 건전해질 것이다. 누구의 말처럼 군대는 결코 '썩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9-02 이준구

정치와 법치

정치란 시민사회에서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가능의 예술이다. 법치는 공동체적 합의인 법률의 강제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 정치적 해결과 사법적 처리는 영역을 달리 하지만 상호대립적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사회에서 종종 발생되는 문제중의 하나가 정치가 갈등조정이라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법치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관행이다. 정치가 법치의 명분으로 명시적으로 정치이기를 포기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정치와 법치가 선순환의 구조를 갖기 보다는 상호배타적으로 작동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국사회에서 정치가 국민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고 갈등조정에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치는 상이한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신뢰를 바탕으로 합의를 도출하는 작업이다.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유가족은 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의 수립,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라는 기본방향에 있어서 지향점을 같이 한다. 그러나 각론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유가족과 이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야당의 어중간한 입장, 이는 법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린다는 여당의 생각에서 접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여야의 재협상 결과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정한 유가족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시 꺼내들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진상조사위에 부여하는 문제는 세월호 특별법의 쟁점이 특검 추천권을 여하히 배분하느냐의 문제로 가닥이 잡히면서 수그러들었던 문제다. 그러나 유가족이 다시 초강수를 둔 것은 여당은 물론 야당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40일이 넘게 단식을 하고 있는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길 원하지만 거절당하고 있는 마당에서 유가족들이 재협상 결과를 선뜻 받아들일 명분도 마땅치 않다. 정치가 다시 가동돼야 할 대목이다.유가족이 야당과만 꼭 협상의 파트너가 돼야 하는 것도 논리적 정합성이 떨어진다. 여당과 유가족이 대치의 모양새가 되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더 이상 재재협상은 없다는 여당의 강고한 입장으로 볼 때 진전된 내용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제는 여당이 나서야 한다. 쟁점은 비교적 하나로 모아지고 있다. 유가족이 수사권과 기소권의 진상조사위 부여를 주장하고 있으나 여당이 나선다면 특검 추천권으로 쟁점을 모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여야협상의 틀을 넘는 정치가 나서야 된다는 의미다. 유가족의 아픔에 진심으로 다가가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유가족이 이미 정치화돼 있다는 일각의 인식은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관련된 전체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정형화된 단견의 소산일 뿐이다.5월19일 대통령의 담화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유가족의 적극적 동참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전의 5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유가족과의 만남에서 "진상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장을 지켜보신 유가족들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영오씨가 대통령 면담을 신청한 것에 대해 청와대가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가 합의해서 처리할 문제로 대통령이 나설 일은 아니다"며 거부입장을 밝혔으나 특별법이 국회 입법사안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경제관련 입법이나 민생관련 입법에 대해 국회를 비판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논리적 타당성 여부를 떠나 청와대가 일상적 정쟁적 사안을 대하는 정치적 문법에서 한 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정치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법치에 천착하는 모습과도 거리가 있다. 세월호 참사를 보는 관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다. 세월호 특별법의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여당의 지도부가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청와대가 유가족을 적극 설득하는 모습을 보일때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세월호 특별법의 해법의 물꼬가 트이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세월호 특별법의 가장 주요한 행위인자는 유가족들임을 인식할 때 정치가 작동될 수 있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4-08-26 최창렬

불신을 권하는 사회

러시아에서 예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 한토막. 농부가 밭에서 요술램프를 발견했다. 램프를 문지르자 요정이 나타나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농부가 말했다. "이웃집에 젖소 한마리가 생겼는데 가족이 다 먹고도 남을 만큼 우유를 얻었고 결국 큰 부자가 됐어." 그러자 요정이 말했다. "그럼 이웃처럼 젖 잘나오는 젖소 한마리 구해 드릴까요? 아니면 두마리?" 농부가 대답했다. "아니, 이웃집 소 좀 죽여줬으면 좋겠어."웃자고 한 얘기인데 속마음이 들킨 것처럼 괜히 콕 찔린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저 농부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다. 세월호 특별법을 합의하면서 끝까지 당리당략에 주판알만 튕기는 여·야 수뇌부도 이런 마음이 아닐까해서다. 남이 잘되는 꼴을 못보고, 심지어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고, 시기와 질투심이 하늘을 찌른다는 사람이 주변에 의외로 너무 많다. 말이 질투, 시기지 따지고 보면 모두 불신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러시아의 농부가 이웃집 주인이랑 신의와 의리로 맺어진 돈독한 사이였다면 저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둘의 사이는 불신 때문에 갈등하고 있는 사이였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그렇다. 지독한 불신사회다.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 몸에 칭칭감고도 남는 삼손이 와도 도무지 무너뜨릴 수 없는 불신의 벽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세대와 세대 사이에, 아니 여기 저기에 수없이 솟아나 있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다. 지금같은 망국적인 불신의 벽은 태어나서 보다보다 처음이다. 이러다 '불신병'이 치유가 어려운 한국의 고질병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겁이 난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 지경이 됐을까. 멀리 갈 것도 없다. 정치권을 보면 해답이 나온다. 우리사회에 정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 크다. 정치의 힘이 세다보니 사사건건 정치에 휘둘리게 된다. 아직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해서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못된 습성이 있다. 비공식적이지만, 한국 정치인들의 '정치쟁점화' 능력은 전 세계 1위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정쟁화 시키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치권이 마음만 먹으면 이쑤시개 하나도 정쟁화 시킬 수 있는 게 한국 정치인이다. 물론 혼자의 힘으로 될순 없다. 여기에 여당이건 야당이건 우호적인 언론과 종편채널의 도움을 받고, SNS를 가미하면 딱 떨어지는 정쟁화의 조건을 갖추게 된다. 대한민국 모든 불신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가 다르고 '어'가 다른데도 '어'라고 말해놓고 '아'였다고 우기는 게 우리의 정치다.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면서,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국민에게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말하는 게 한국정치다. 이런 허세는 여전히 그들이 '정치가 세상을 바꾼다'고 착각하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한때 국회의원이었던 내가 아는 지인은 "금배지를 달면 세상이 100배는 행복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죽어도 이 배지를 빼앗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게 다 덧없지만, 금배지가 그만큼의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국회의원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눈곱만치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는 단언했다. 결국 그 마약같은 '달콤한 유혹'을 떨치지 못해 거짓말을 하게 되고, 없는 말을 만들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게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정치로 세상을 바꾸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돈을 받고 '입법로비'하고, 출판기념회를 열어 돈을 거둬들인다.프란치스코 교황이 숨막히는 4박5일의 일정을 끝내고 돌아갔다. 교황이 떨어뜨려 놓고 간 말 중 10%만 주워 담아도 우리 사회의 불신병은 치유될 것이다. 물론 국민보다 정치인들과 위정자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교황이 떠나던 날 TV에 나와 누가 한 말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게 들린다. "지금 아무도 안 믿어요. 정치인도 안 믿고, 정부도 안 믿고, 언론도 안 믿고, 국과수도 안 믿고, 검찰·경찰도 안 믿어요." 거기까지는 좋았다. 마지막 한마디 "그런데 교황은 믿어요." 불행하게도 교황은 이제 이곳에 없다. 지지든 볶든 이제 남아 있는 우리끼리 해결해야 한다. 그나마 교황이 머물던 100시간동안 잠잠했던 불신의 불꽃은, 이제 또다시 활활 타오를 것이다. 그게 지금 두려운 것이다. 교황님 돌아와 줘요. 우릴 여기에 팽개쳐 두고 혼자 떠나시면 어떡해요./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4-08-19 이영재

경제활성화 전제조건

중국의 부패추방운동에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대 이권집단 석유방(幇)의 좌장이자 장쩌민 국가주석의 심복인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처벌이 임박한 때문이다. 권력투쟁, 이데올로기 강화, 법치(法治) 확립 등 설이 분분하나 중국인들은 판관 포청천이 부활했다며 크게 반기는 분위기이다.국내에서도 부패척결에 대한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중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정부가 비리를 방치한 탓에 도처에서 구린내가 진동하고 있음을 개탄하는 것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부패정도를 지수화해 매년 세계 각국의 랭킹을 발표한다. 부패인식지수(CPI)는 각 나라 공무원과 정치인들 사이에 부정부패가 어느 정도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인식을 수치화한 것으로 국가청렴도나 기업경영·신용평가 등에 영향을 미치는데 경제력과 부패 간에는 반비례한다는 점이다. 후진국일수록 부정축재가 심한 것이다.지난해 한국은 조사대상 176개국 중 46위로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이다. 더 걱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의 부패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2009년의 39위를 정점으로 2011년 43위, 지난해 46위 등으로 순위가 계속 뒤로 밀린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비리 청산을 호언했으나 집권후 CPI는 더욱 떨어졌다. 경제와 비리가 동반성장하는 기현상이 확인된 것이다.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OECD가 발표한 '2014 더 낳은 삶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36개 조사대상국 중 29위를 기록했다. 홍콩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PERC)가 발표한 한국의 부패지수는 작년의 6.98에서 금년에는 7.05로 아시아 16개국 중 중국과 함께 바닥권을 형성했다. PERC는 한술 더 떠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부패수준이 남아있는 유일한 선진국"으로 "고위층의 부패가 특히 심각하다"고 지적해 '대한민국=관피아공화국'이란 국제공인(?)을 받았다. 부패국가로 낙인찍히면 해외자본 유치는 물론 자국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때 상당한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구시대적 성과만능주의가 여전히 유효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과정은 중요치 않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인 것이다. 유전무죄 인식이 발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가 압권이었다. MB정부는 2008년 집권과 함께 국가청렴위원회를 국민권익위원회로 축소통합했다. 또한 반부패나 청렴성 등을 불필요한 규제로 간주해서 2005년 3월에 정부와 기업, 정치와 시민사회 간에 체결한 투명사회협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국가청렴위는 김대중정권 말기인 2002년 1월에 부패방지위로 출범해서 2005년 7월 명칭을 변경한 것이다. 반부패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확산을 위한 시민적 의지나 노력이 퇴색한 것은 설상가상이다. 작금 세간에 '빨갱이'타령의 빈번한 회자가 반증이다.박근혜 정부는 한술 더 떴다. 후보시절에 재벌의 전횡을 견제하는 내용의 '소액주주의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제'와 '다중대표소송제'의 도입을 공언했으나 집권과 함께 '나몰라라' 하고 경제민주화 멘토인 김종인 교수까지 내친 것이다. 관피아 척결을 목적으로 한 '김영란법'이 1년여 동안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어서 세월호가 공리주의의 발목을 잡았다. 천민자본과 해운탐관들의 야합이 대형 참사의 배후요인이란 지적이 힘을 받은 탓이다. 정부는 지난달 말에 부패척결추진단을 발족하고 비리의 발본색원을 선포했다. 검찰의 정치인 및 해피아 관련 수사가 신호탄으로 추정되나 성과는 의문이다. 집권 중반의 박 대통령이 오매불망 효율성만 강조하니 말이다.미국 하버드대의 존 롤스 교수는 "정의는 사회제도의 으뜸가는 덕목"이라 설파했다. 국가부패지수가 1단위 감소하면 GDP는 무려 2.64%씩 상승한다.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경제활성화는 연목구어란 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8-12 이한구

천재 기업가 배출하는 창업자형 대학 가능한가

청년 취업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국내 대학 중 졸업자의 취업률이 60%를 넘는 대학은 손꼽을 정도로 적다. 그중 공무원 혹은 대기업과 같은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는 비율만 따지면 더 상황은 비참하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청년 창업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져 왔다. 그런데 창업과 연관된 통계지표에서 아직까지 속 시원한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한국사회에서 창업이 꾸준히 늘고는 있지만, 내면을 보면 생존에 급급한 생계형 자영업의 창업 비중이 40%에 달하는 문제를 노출한다. 생계형 창업은 주로 숙박 및 음식료 부문 등 영세 서비스업에서의 창업을 말한다. 음식점의 경우 우리는 인구 1천명당 12.2개꼴인데 미국은 1.8개에 그친다는 비교는 우리의 생계형 창업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가치를 창조하는 기회추구형 창업은 51%에 그치는 실정이다.가치 창조형 창업이 많아져야 창업효과가 제대로 나온다. 자영업 창업의 80%는 2년후 실패하고 말며 파급효과도 거의 없다. 그러면 문제는 생계형 창업을 벗어나 기회추구형 창업을 확대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된다. 문제의 근원은 우리 사회에서 창업 교육과 실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것에 있다. 해결은 대학이 나서서 창업에 대한 기초소양을 학습시키고, 창업전략과 기업가정신을 전수시킬 때 해결될 수 있다. 대학에서 창업교육을 활발하게 제공하면, 음식료 등만이 아니라 보건의료·사회복지·교육·문화예술 등으로 창업분야가 확대될 수 있다. 1990년대 프랑스에서 사회서비스업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높이고 자격제도를 만들어 관련 일자리를 매년 6%씩 늘렸다는 것도 참고할만하다.결국 해답은 대학의 변화에 있다. 즉, 대학이 창업 기업가형 대학으로 변모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 '페이스북(Facebook)'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의 스토리가 나온다. 하버드대학에서의 탄생 초기부터 수많은 난관과 그에 대한 창업자의 돌파과정이 묘사된다. 저커버그와 같은 청년들이 쉽게 창업으로 뛰어든 것은 미국 대학에 녹아있는 창업권장 문화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미국 스탠퍼드와 MIT 등의 대학에서 '기업가 센터(entrepreneurship center)'를 운영하면서 학생 창업자를 양성하며 그들의 성공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맡는 것이 바로 기업가형 대학의 모델이다. 물론 우리는 미국과 여건이 다소 다르지만, 대학에서 기업가 정신을 확대하고 창업자의 성공을 지원하는 것은 그대로 따라도 될 만큼 가치가 높다. 21세기 대학을 창업자형 대학으로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학의 교육과정에서, 또 실험실 연구에서, 창업의 꿈과 도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창업의 성공 가능성이 당장 높지 않다고 하더라도 대학에서 창업을 경험하고 실패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MIT나 하버드 대학은 최근 '창업 이머전(field immersion)'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학생 창업팀을 발굴해 창업하도록 지원하는 교육과정이다. 이것은 다른 창업기업의 현장에서 인턴십을 하거나 관찰학습을 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른 실전(實戰) 교육이다. 우리 대학도 이런 실전 창업 프로그램을 시작할 역량이 모자라지 않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인력이 있고 네트워킹 능력도 있다. 다만 각기 파편적으로 움직여 왔기 때문에 이를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 체계를 갖추기만 하면 된다. 또 대학은 창업 경험자와 동문 기업가를 중심으로 학생 창업팀을 멘토링할 수 있는 고유 장점을 갖고 있다. 또한 실패한 벤처기업가를 '상근 기업가'로 지정해 활용할 수도 있다. 이런 구체적인 멘토링이 성공하게 되면 청년 창업자의 꿈은 현실이 되는 것이다.한국 대학이 진정으로 창업자형 대학으로 변모한다면,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인 청년실업과 일자리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될 뿐아니라, 페이스북의 저커버그와 같은 천재 창업자를 곧 보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08-05 손동원

3D프린터 시대의 일상과 문화

3D프린터(3D-printer) 혁명이 다가오고 있다. 3D프린터는 그대로 입력된 설계도면 대로 3차원 입체 물건을 찍어내는 기계다. 이 프린터의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입력한 디지털 설계도에 따라 플라스틱이나 금속 물질을 노즐로 분사해 켜(layer)를 쌓아올리듯 물건을 만든다. 금형 제작의 단계 없이 물건을 바로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크게 절감된다. 다만 프린터라는 명칭이 가진 고정관념 때문에 관련분야의 종사자들 외엔 이 혁신적 발명품이 몰고 올 변화상을 아직 짐작하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입체사출기(立體射出機)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3D 프린터 기술이 제조업의 혁명 혹은 3차 산업혁명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전방위적 파급효과 때문이다.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3D프린터의 기술 개량과 생산비 절감이 이뤄지면서 전 세계 제조업 지도를 완전히 바꿔 놓을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2012년 47억 달러였던 3D프린터 시장은 2019년 138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제조업의 혁명으로 불리는 3D프린터 기술은 이미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에서도 100만원대의 보급형이 판매되고 있을 정도다. 이미 자동차와 항공기 부품 등 정밀기계에서 3D프린터의 강점이 입증되었다. 의료분야에서는 인공관절과 인공뼈, 인공치아 등을 비롯한 이식용 인공장기를 만들어 환자에게 이식하고 있다.3D 프린팅 기술이 산업구조 변화는 물론 시민생활과 문화에 미칠 영향을 주목하고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머지않아 3D 전용 스튜디오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네 사진관들이 3D스튜디오로 재탄생하는 셈이다. 스튜디오에서는 고객의 얼굴이나 전신상을 입체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3D프린터는 시민들의 여가생활 패턴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제작 동호회가 급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3D 프린팅 과정을 통해 개인들은 창의적 물건을 만들면서 창작 욕구를 실현할 수 있다. 또 일상에서 필요한 생활용품이나 기념품을 직접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캐릭터, 인형이나 완구, 장신구, 교육 보조재료 제작이 극히 간편해지게 될 것이며, 가정에서도 생활용품은 직접 제작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 소비생활도 바뀔 수 있다. 지금은 전자상거래로 주문한 물품이 가정으로 배달되지만, 앞으로 물품의 디자인 파일만 구입하고 물건은 집에서 프린트하는 풍경을 볼 날이 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한 다양한 직업군이 생겨날 것이며, 기술의 특성상 1인 기업의 창업도 급속히 증가할 전망이다.관광기념품 가게의 변화도 예측된다. 초콜릿이나 캔디를 고객이 원하는 모양으로 즉석에서 제작해 줄 수 있다. 고객의 얼굴이 부조된 기념주화, 관광지를 배경으로 한 입체 인물상이나 부조(浮彫)물이 기념사진을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화가나 미술인들이 3D프린터를 활용하면 훨씬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기념품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3D프린터가 넘어야 할 장벽은 많다. 범죄 집단이 무기 제작이나 기존 상품의 불법 복제에 사용될 우려가 높다. 기술적으로는 프린팅 속도를 높여야 하며, 플라스틱 중심인 프린트 원료를 다양화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3D프린터는 색채를 표현하지 못하고 있으며 당분간 개선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디자인이나 회화, 조각 등 조형 예술인들의 기술과 창의성이 접목된다면 새로운 예술 장르가 생겨날 수도 있다.3D 프린팅 기술개발에 투자해 3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한편 그 신기술의 보급과 활용, 산업고도화와 일자리 창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기술개발이 주로 중앙정부와 기업의 역할이라면 활용은 지방정부나 문화산업 분야의 과제가 될 것이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4-07-30 김창수

청년들은 우리의 희망이라면서…

청년들은 우리의 희망이라고 한다. 기성세대들은 추억을 먹고 산다지만 젊은이들은 꿈을 먹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는 청년들이 희망을 잃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비싸다는 대학 등록금을 내고 졸업하자마자 대다수가 실업자로 전락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인데도, 너도나도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로 나서는데도, 대학 도서관은 취업준비생들로 가득하다. 대학의 낭만은 온데간데 없이 눈앞에 닥친 실업난으로 고통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청년 일자리 창출, 고용확대 등을 외치는 정부의 대책은 이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릴 뿐이다.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외쳤거늘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마땅하게 일할 곳조차 없다. 부지런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고,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취지였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면 경제적으로 독립해 사회적 기반을 잡아가는 게 순리다. 그러나 대다수는 아직도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눈칫밥을 먹는 처지다. 부모들 역시 자녀의 취업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기성세대와 신흥세대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1970년대 종로와 광화문 일대에 학원가가 형성됐다. 가고 싶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는 필수, 3수는 선택'이란 유행어도 있었다. 지금의 대학가에는 '5학년은 필수, 6학년은 선택'이라는 말이 있다.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가 되면서 졸업을 유예하는 이른바 '대학 5학년족'이 늘고 있는 것이다. 확실한 취업을 위해 몇 학점을 남긴 채 졸업을 미루고 대학교를 한 학기 이상 더 다니는 어정쩡한 상태다. 졸업 후 백수가 되는 것을 피해 대학 울타리 안에서 머물면서 취업의 기회를 엿보는 새로운 트렌드다. 이들은 노심초사하며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 사회는 젊고 우수한 인력이 낭비되는 손실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더욱이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사회에 던져지는 이들 중 많은 사람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일부는 비싼 등록금을 대기 위해 아르바이트와 학자금을 빌려서 등록금으로 충당했기 때문이다. 적게는 2천만원에서 4천만원이 넘는 빚쟁이가 돼 꿈을 송두리째 잃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나라 청년 고용률은 40%대로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이마저도 고용의 질적인 면과 실질 대졸자의 고용률만을 근거로 통계를 낸다면 수치는 훨씬 더 떨어진다. 그런데도 대졸 신규 채용 규모가 지난해보다 대폭 늘어난다는 소식은 없다. 경기는 침체되고 대기업이나 부자들은 지갑을 아예 닫았다. 정치권은 표를 얻기 위한 말뿐인 정책만을 남발한다. 이마저도 정책은 뒷전이고 대신 정쟁에만 몰두한다. 국론은 좌우, 동서, 남북으로 갈린 채 갈 길을 잃고 있다. 그래서 청년들은 취업을 하지 못하는 서러움보다 기성 세대들의 행태에 더 희망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잠재적 안티(anti) 세력으로 발전하면서 사회통합과 국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또 대선 후보들은 너도나도 '반값 등록금'을 공약했다. '청년 일자리 창출'도 단골메뉴다. 등록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대학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데다 재원마련도 이뤄지지 않았다. 일자리 창출 대책은 취업의 눈높이를 낮추라는 것과 대학생 창업을 지원하겠다, 공기업 인턴을 확대하겠다는 게 고작이다. 국민들을 속이는 것도 모자라 대학생과 청년들에게까지 거짓말을 했으니 이들이 무슨 희망을 갖겠는가. 이제 더 이상 젊은이들의 꿈을 짓밟아서는 안 된다. 이들이 더 큰 자괴감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확실하고도 획기적인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 일할 능력자를 방치하는 것과 일자리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청년들은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통렬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7-22 이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