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개헌은 정치혁신이 전제돼야

양당체제의 한국정치 독과점 구조 많다는 지적소선거구제에서 다양한 세력 의견반영 쉽지않아합의제로 바꿀 수 있는 정당·선거제 변화 절실우리 정치가 마주해야 할 '블랙홀'이 있다. 문자 그대로 다른 현안을 하나의 거대담론으로 흡수할 폭발력과 휘발성을 갖고 있는 개헌이다. 1987년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9차개헌 이후 5년 단임제가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는 기본인식에서 출발하지만 주장하는 시기와 주체에 따라 정치적 셈법은 제 각각이다. 한국정치에서 개헌은 어떤 형태로든 넘어야 할 산이다. 지난 대선때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지난 10월6일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기자회견에 이어 두번째로 '개헌 블랙홀론'을 언급했다. 개헌을 공약한 대선때의 상황과 지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없다.개헌의 초점은 정부형태의 변경이다. 4년중임제·이원집정부제로 대표되는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가 가장 큰 줄기다. 4년 중임제는 레임덕 방지라는 이유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지만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연임을 가능하게 해 대통령권력 비대화의 이유로 내세우는 현재의 개헌론과는 기본적으로 배치되는 면이 있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과 의회의 이원적 정통성(dual legitimacy) 문제때문에 정국의 교착이 발생할 수 있는 대통령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정파가 다른 대통령과 총리의 경우에는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형태중에서 가장 최악의 조합이 될 수도 있는 제도다. 반면 내각제는 의회주의라는 대의제의 성격을 가장 잘 살릴 수는 있어도 총선에서 과반 획득 정당이 없는 상태에서는 정치불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개연성이 높다.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인 2008년 '개헌의 적기'라고 개헌을 촉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했으나 추동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차피 개헌은 정국의 대격변을 초래할 대형의제다. 차기를 노리는 대권주자나 현직 대통령이 개헌에 소극적이면 개헌은 추진되기 어렵다.한국정치의 실질적 양당체제가 가져오는 독과점구조에 대해서는 많은 지적이 제기돼 왔다. 새누리당 아니면 새정치연합 밖에 없는 현재의 '적대적 공존' 정당체제에서 정치가 제대로 작동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는 대통령에의 권력집중, 청와대가 결정하지 않으면 공기업 인사도 이뤄질 수 없는 '제왕적'체제와 맞물려 있다.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소외세력이 대표되지 않는 구조를 사회균열을 제대로 대표해 낼 수 있는 정당체제로 바꾸기 위한 제도적 디자인이 절실하다.찬성하는 숫자가 많아서 채택하는 다수결과 다수의 의견에서 소외된 의견을 반영해 전체적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합의제는 근원적으로 다르다. 우리나라와 같이 단순다수제를 기본으로 한 소선거구제에서 사회의 다양한 세력이 대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순진한 발상이다. 비례대표제의 확대실시를 통한 합의제로의 발전에 대한 의견이 많은 이유다. 사회 갈등이 정당체제에 수렴돼 관리되지 않으면 사회갈등은 그만큼 증폭된다. 정당체제와 선거제도의 변화가 그래서 절실하다.5년 단임의 대통령제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어떠한 권력구조를 선택하느냐, 시기는 언제인가 등의 문제가 남아있다. 그러나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한 해법을 구하기란 현재로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내에서도 친박과 비박 사이에 견해가 다르고, 여야간 셈법이 다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권력구조 변경에 국한하자는 측과 기왕 개헌을 하려면 시대에 맞지 않는 이념적 문제와 경제사회적 차원에서도 손질을 해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개헌은 백가쟁명식의 다양한 논의만 무성하지 추진을 위한 로드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국전환과 정치적 주도권을 잡기위한 정치공학적 동인이 기본이고, 대통령제에서 권력을 잡기 어려운 정치세력이 정치판 자체를 바꾸려는 유인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의제로의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선거제도와 정당제도 등의 정치제도적 디자인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어떠한 개헌도 한국정치를 제 궤도에 올려놓을 수 없다. 현재 한국의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이를 추동할 시대적 지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4-10-14 최창렬

연정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들

하든 말든… '너희들만의 리그' 도민들 무관심도정 마비속 '연정' 고집에 상당수 불안감 느껴남지사, 표 던진 50.43% 유권자 마음도 헤아려야요즘 경기도 공무원 사이에서 '김말남초(金末南初)'라는 말이 나돈다. '김문수 말 남경필 초'를 줄임말로 정권 말기의 무기력함, 정권 초기의 어수선함이 경기도에 공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경기도 연합정치, 이른바 '경기연정'에 발목이 잡혀 도정이 휘청거리는 것에 대한 공무원들의 자조섞인 푸념이다. 어느 정권이건 출범 초기에는 활기가 넘치게 마련이다. 의욕이 지나치게 과해서 '과유불급'을 우려할 정도다. 이는 국가정권이건 지방정권이건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도정은 지금 구멍이 뻥 뚫려있다. 공백상태다. 절대 선(善)으로 미화되는 연정 때문에 산하기관 통폐합, 조직개편은 모두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오죽하면 '남 지사는 연정인지 도정인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와중에 민선 6기 출범 이후 첫 번째 추경에서 도의 역점사업 예산이 연정 파트너에 의해 전액 삭감됐다. '대한민국 정치사의 첫발', '어렵지만 꼭 가야 할 길'이라며 의미를 부여한 경기 연정의 현주소다.그럼에도 남경필 지사는 취임 100일을 맞아 더 파격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도의회와 예산을 공동 편성하고 인사권도 공유하는 이른바 '분권형 도지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논의된 야당 몫 사회통합부지사를 넘어 도정을 야당과 아예 공유하겠다는 파격적 제안이다. "도의회가 남경필 들러리냐"며 사회통합부지사 추천을 거부해 온 도의회 새정치민주연합 내 연정 반대 그룹조차 경악했다는 메가톤급 제안이다. 물론 법적인 문제로 당장 실현이 불가능하지만 이 정도면 연정에 대한 남 지사의 생각이 '소신'을 뛰어넘어 '집착'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그러면서 남 지사는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시행착오와 갈등, 불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연정은 남경필의 정치철학이자 굽힐 수 없는 소신"이라고 말했다. 끝까지 연정 '실험'은 계속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연정을 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나뉜다. 무관심과 불안함. 현재 연정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보다 경기도민의 무관심이다. 내 지역에서 내가 뽑은 도의원 이름 석 자도 모르는데 연정을 하든 말든 그것은 '너희들만의 리그'라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한심한 행태를 보는 것도 지겨운데, 도의회는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관심있는 사람들은 도의 모든 정책이 연정과 맞물리면서 도 정책이 겉돌고 있는 것에 오히려 짜증을 낸다.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만했으면 하는 도민들도 만만치 않다. 특히 도의회와 예산을 공동 편성하고, 인사권을 공유하겠다는 말에 도민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럴려면 상위법인 지방자치법을 뜯어고쳐야 하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혹시 임기내내 이 법과 씨름하는 남 지사를 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벌써부터 볼멘 소리다. 이럴 바에 차라리 한수 이북을 야당에 떼어주든가 차라리 당적을 옮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남 지사의 연정 실험은 게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남 지사의 행보를 지켜보는 불안한 시선이다. 지난 선거에서 남 지사는 야당 후보와 0.8%포인트, 불과 4만3천157표로 초박빙 승리를 거뒀다. 이는 유권자의 절반이 야당 도지사를 열망했다는 뜻도 된다. 도의회도 새누리당 50석, 새정치민주연합 78석으로 여소야대가 됐다. 이러니 연정을 통해 도정 운영을 꾸려 나가야 하는 것은 외견상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일 지난 선거에서 분권형 도지사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아마 당선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 지사는 의원시절 당에서 개혁성향 의원으로 분류됐다. 그래서 '여당 내 야당'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지나치게 좌편향이란 지적도 받았다. 이런 언행이 보수층들에게 강한 반감을 사는 경우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파격적인 행보가 전혀 낯선 것도 아니다. 도정이 마비되면서까지 연정을 고집하는 남 지사의 모습에서, 많은 도민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 뜻에서 남지사는 지난 '세월호 정국'속에 치러진 선거에서 표를 준 50.43%의 유권자 상당수가 남경필 개인이 아닌, 새누리당을 보고 표를 던졌다는 가정하에 지금의 연정 '실험'을 불안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도 반드시 헤아려야 한다. 특히 대권에 뜻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4-10-07 이영재

공기업 개혁은 정치혁신부터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인사에 대해 말들이 많다. 얼마 전 관광공사 감사에 78세 고령의 코미디언 자니 윤씨를 임명하더니 이번에는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을 대한적십자사 신임 총재로 지명한 것이다. 관광공사 감사는 회사 살림을 감시하고 책임지는 사장 다음 고위직으로 회계 지식은 물론 관광산업에 대한 식견이 필수적이다. 한적은 남북한간 중요 창구 역할을 하는 곳으로 대통령이 명예총재, 국무총리가 명예부총재를 맡는 준정부기구인 만큼 수장은 덕망과 사회적 신임이 두터운 원로들이 맡는 것이 관행이었다. 최연소에다 첫 기업인 출신인 김 차기총재와 희극인 윤 감사는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 당선을 위해 적극 헌신했던 탓에 보은성의 낙하산 인사란 평가다.박 대통령의 '낙하산은 없다'는 공언과 배치되는 결과여서 주목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장하나 의원이 지난해 11월 박 정부들어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장 78명을 조사한 결과 43%인 34명이 낙하산 인사로 MB정부의 낙하산 비율 32%보다 훨씬 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지난 연말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파티는 끝났다'며 공공기관 개혁을 강조한 이후 새로 기관장에 임명된 35명중 정치인 출신은 15명으로 3배나 격증했다. 박 정부가 집권 2년차인 점을 감안할 때 향후 공공기관에 대한 낙하산 인사는 심화될 개연성이 크다.문제는 공기업 개혁이다. 박 대통령은 금년도 신년기자회견에서 "올해 공공부문 개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 예고한 바 있다. 새누리당은 19일에 '과대부채' '과잉복지' '과잉기능'의 공기업 개혁 7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300여곳의 공공기관 부채 총액은 523조원으로 정부채무 482조원을 능가하는데다 부채 비율도 216%로 최근 4년만에 무려 2배가량 증가했다. 세금으로 갚아야할 적자성 채무가 70% 이상인 등 부채의 질 악화는 점입가경이다. 전국 지방공기업 396곳의 빚도 근래 빠르게 불어 총 부채가 74조원에 이른다. 내수 부진에 따른 양극화 확대 등 공공지출 수요는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데 경제성장은 게걸음이어서 빚더미공화국의 불명예마저 배제할 수 없다.정부와 여당은 공기업들의 방만경영에 칼끝을 겨누었다. 개혁 방향은 매각·민간개방·경쟁도입 등으로 정했다. 박 대통령은 여론몰이를 해서라도 이번만큼은 반드시 악폐(?)를 뿌리 뽑겠다는 각오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점차 커지는 국민적 원성을 강조하며 독전(督戰)중이다. 2016년 총선까지 '표장사'를 방해할 걸림돌도 없어 물실호기로 판단하는 눈치이나 성과는 금물이다.공기업노조는 눈덩이 부채의 원인이 과잉복지보다 정부사업을 공기업에 전가하고 공공요금을 원가 이하로 책정한 탓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니 말이다. 세종시와 혁신도시, 보금자리주택과 4대강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윤태범 방송통신대 교수의 "공공기관 노동자들에 책임을 물으려면 그들이 방만 경영할 수 있을만한 권한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 권한이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에 눈길이 간다. 야당도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공기업노조에 전가하고 있다는 입장이어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작업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소관 부처의 산하 공공기관 보호 타성 불식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각 부처 고위 공무원들은 산하 공기업을 퇴직후 '제2 철밥통'으로 당연시하는 실정에서 제 밥통 뺏는 작업에 스스로 동참하겠는가. 소리만 요란했던 역대 정부의 공기업 개혁 실패가 방증이다.낙하산 인사가 화근이다. 출근 첫날부터 노조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낙하산 사장'이 공기업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공기업의 방만경영은 낙하산 경영진과 노조의 합작품"이란 항설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민영화도 정답이 아니다. 최근 영국 스코틀랜드의 독립시도가 반면교사다. 관피아와 정피아 청산없는 공기업 개혁은 공염불이다. 인사가 만사라 했다. 그러나 더 시급한 것은 정치혁신인데 박근혜 정부는 독배(낙하산 인사)부터 먼저 들고 있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9-30 이한구

사회적 경제에 대한 세가지 오해

오해가 깊어지면 오류를 범한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오해가 바로 그렇다. 특히 다음 세 가지 오해는 오랫동안 사회적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괴물들이다. 하루속히 오해가 해소돼 진정한 사회적 경제의 진면목을 살려야 한다. 첫 번째 오해는 진보이념의 독점물로 보는 오해다. 사회적 경제는 이념과 관련이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개념이다. 좌파의 독점물도 아니며 우파가 소홀히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세상을 건강하게 만들자는 노력일 뿐이다. 두 번째 오해는 이윤과 무관하다는 오해다. 사회적 경제도 하나의 비즈니스다. 이윤과 무관한 비즈니스는 없다. 이윤을 무시하면 기업이 이미 아니다. 이는 사회적 경제가 사회복지 및 시민단체와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유명한 사회적 기업인 '탐스 슈즈(Tom's Shoes)' 사례를 보자. 이 기업은 고객에게 한 켤레의 신발을 팔면 빈곤국의 아이에게 새로운 한 켤레를 기부한다. 저개발국의 빈곤문제 해결을 담고 있지만 신발 판매를 통한 수익성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세 번째 오해는 지속가능성이 낮아 곧 도태될 것이라는 견해다. 사회적 경제의 앞날은 매우 밝다. 어떤 의미에서는 폭발적인 성장 조짐조차 예견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성장동력은 바로 '똑똑한 제조업'과의 결합이다. 하드웨어 제조를 넘어 소프트웨어와 결합하는 새로운 장르를 말한다. 새로운 장르를 통해 우리 인간의 상황을 읽는 제품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사회적 경제와 잘 어울린다. 특히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이라는 신개념에 의해 제조의 복잡함이 크게 줄어들고 있어 더욱 고무적이다. 크라우드 소싱이란 다수의 참여자들이 의견을 모아 제품을 만들어 가는 방법을 말한다.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다수의 참여자들에 의해 디자인과 제조 역할이 분담되면서, 시장에서 통할 수 있도록 사업 아이디어를 다듬게 된다. 구체적으로 킥스타터(Kickstarter)라는 크라우드 소싱 사이트를 보라. 그곳에서는 초기 발명품에 다수 참여자들의 아이디어가 보완돼 시장에서 먹힐 제품으로 다듬어진다. 이는 향후 사회적 기업의 수익모델 도출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제조 과정에서 대중의 의견이 반영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경제에서 효과를 높일 수밖에 없다.사회적 문제의 해결이란 실상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때 성공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닌가. 대중들이 참여하는 인터넷공간에서 참여자들의 협력에 의해 시장에서 공감을 얻을 제품을 만들어내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는 특히 많은 사회적 기업에 커다란 장애물이었던 '시제품 제조'를 도울 것으로 본다. 과거 거대한 설비투자를 해야 시제품이 나오던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상황이다.사회적 경제는 미래를 주도할 핵심으로 발돋움할 것이 분명하다. 과거 어떤 경제철학도 해결하지 못했던 영역, 즉 비즈니스와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두 과제를 넘나들며 꽃을 피울 보물이다. 정치적 가치도 매우 높다.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되면 근본적으로 복지수요 자체가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라 시민들로부터 정치적 호응이 넓어지게 된다. 이렇듯 사회적 경제의 미래 가치는 경제적·정치적으로 매력적이다.인천시 조직개편에서 '사회적 경제' 명칭이 폐지될 거라는 소문이 안타깝다. 조직구조에서 '사회적 경제' 명칭이 없어진다면 인천의 사회적 경제 활동이 매우 위축될 것이 분명하다. 조직구조의 전면에 표현되는 것 자체가 주는 상징적 힘이 크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는 이제부터 꽃을 피울 것인데, 인천시가 그것을 정책의 후방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오히려 사회적 경제와 같은 미래형 주제를 살려서 인천시정의 폭발력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데 말이다. 깊은 오해를 넘어 시대의 흐름을 조망하면 오류를 면할 수 있다. 인천시가 미래형 정책 어젠다의 선점 경쟁에서 더 이상 밀려나지 않길 바란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09-23 손동원

한국의 나무 인천의 나무

소나무는 한국인들이 사랑하고 한국을 표상하는 나무다. 한국을 표상할 수 있으면서 한국인에게 사랑받아야 할 나무 중의 하나로 소사나무를 추천하고 싶다. 지난 여름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의 소사나무 군락지가 피서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소사나무의 가치를 다시 깨닫게 됐다. 무엇보다 척박한 환경을 견디는 소사나무의 강인한 기질이 우리 민족과 닮았다. 또 고목나무를 연상시키는 구불구불한 줄기와 작은 잎사귀가 어우러진 모습은 한국인의 자연미적 취향과도 잘 어울린다.소사나무는 이미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나무다. 분재용으로 태어난 나무라고 불릴 정도로 분재목으로 인기가 높다. 잎 크기와 줄기의 모양, 투박스러운 질감 때문에 분재용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분재업자나 애호가들이 소사나무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가지를 억지로 구부려서 분재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또한 소사나무가 지닌 독특한 조형성 때문에 겪어야 하는 수난(?)인 것이다.마니산 참성단의 소사나무도 유명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소사나무는 비록 높이는 4.8m, 수령은 150여년에 불과하지만 마니산 정상을 촬영한 사진 작품속에서는 실제보다 훨씬 크고 신비한 나무처럼 보인다. 다른 문화재급 노거수들에 비하면 크기나 나이는 내세울 게 없지만,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神檀樹)나 신의 거처인 천상과 인간의 지상을 연결하는 우주목(宇宙木)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나무다. 한 줌의 흙도 변변치 않은 참성단 돌 틈에서, 바람막이 없는 산 정상에서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뎌온 나무의 모습이 참성단에 오른 이들에게 더욱 경건한 느낌을 주고 실제보다 큰 나무로 여기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소사나무는 강한 바람이나 척박한 토양에도 잘 자라는 억센 나무다. 해풍을 막아야 하는 영흥도 주민들이 소사나무로 방풍림을 조성한 이유다. 모래와 자갈 투성이의 해변에서 해풍과 맞설 나무로 가장 적당했던 것이다. 하늘로 키를 높이기보다는 옆으로 줄기를 늘려 가는 소사나무의 '겸손한' 생존전략 덕에 어민들은 바람을 막고 그늘을 얻을 수 있었다. 이가림 시인이 '소사나무 숲'에서 영흥도 십리포의 소사나무 숲을 황해의 파도와 해풍에 맞서는 '방파제'이자 '바리케이드'이며, 십리포 해변을 지키는 '옹이투성이의 노인들, 최후의 민병대'라고 노래한 것도 그 강인한 생존력에 대한 경외감 때문일 터다.영흥도 십리포 소사나무 군락지는 방풍림으로 조성된 국내 최대 군락지로 어촌생활문화 자원의 가치도 지니고 있어 국가적으로 보호해야 할 숲이다. 그러나 인천시와 옹진군은 피서객 편의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보호림 훼손을 방치하고 있다. 피서객들이 산책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되 취사행위나 야영은 금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내유일의 천연보호림의 가치를 설명해 관광객이나 국민들이 스스로 소사나무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소사나무는 서해의 옹진군 백아도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바람이 드센 해변이나 산 정상부에 서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천지역 일대의 수목을 연구해온 권전오 박사는 소사나무의 분포와 서식 특성이 인천의 정체성에 부합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인천 시목(市木)으로 지정된 목백합은 인천과는 그리 연고가 없는 나무다. 인천시가 소사나무와 소사나무 군락지에 더 관심을 갖고 인천의 명물로 가꿔 나가는 정책을 제안해야겠다. 소사나무는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닌 나무일 뿐 아니라 그 군락지나 자생지도 관광지로 가꿔 나가야 할 장소들 아닌가. 게다가 한국 특산종인 소사나무는 분재로 각광받고 있듯이 경제적 가치도 풍부한 생물유전자 자원이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4-09-16 김창수

군대는 '썩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

남자들 둘만 모이면 군대 얘기다. 실역을 필한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2박3일간 밤을 새워 해도 모자란다. 여자들이야 지긋지긋하다고 한다. 여기에 군대에서 비오는 날 축구하던 얘기까지 나오면 지긋지긋하다못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런데 요즘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온통 군대 얘기다. 총기를 난사해 전우들을 죽인 임병장, 선임들의 구타에 못 이겨 사망한 윤일병 사건 등으로 온통 관심이 군대이기 때문이다. 군에 보낸, 또는 보낼 아들이 있는 엄마들도 초조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인다. 모두 다 귀한 자식들을 둔 부모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나 역시 늦게 둔 막내가 아직 사병으로 복무중이어서 뉴스에 귀를 기울이기는 마찬가지다.또 군대 얘기다. 1979년 9월 101보충대(지금의 306보충대)로 입대했으니 꼭 35년 전이다. 신병 훈련도중 나는 처음으로 폭력을 목격했다. 신병교육대 중대장이 소대장(교관)의 무릎을 발로 차는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조인트'를 날리는 것이었다. 이내 소대장은 저 멀리 도망쳤다. 장교끼리의 폭력을 직접 목격했으니 사병간의 폭력은 미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던 시절이다. 후반기 교육이 시작될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 10·26 사태다. 이등병 신세에 전쟁이 나는 줄 았았다. 완전군장을 꾸리고 전쟁채비를 했다. 두려움 그 자체였다.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자대로 가자마자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났다. '별들의 하극상 전쟁'에 영문도 모른 채 끼여 한 축이 돼버렸다. 정말 정신차릴 수가 없었다. 동작이 느리다는 이유로 고참병들에게 혼도 많이 났다. 툭하면 집합당해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정신교육과 얼차려를 받았다. 곧이어 발생한 광주민중항쟁 등 암울한 시대적 상황들은 군생활을 더욱 힘들게 했다.그래도 당시는 나라의 위기상황에서 모두가 사명감이 있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여서인지 나라를 지킨다는 자긍심이 있었다. 목욕시설은커녕 우물물도 제대로 안나오던, 지금과는 비교가 안되는 열악한 여건이었다. 그런데도 그때 그시절의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은 내무반에서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며 힘들었던 시간들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엄격한 군기속에 극한 상황을 이겨내는 남자들만의 끈끈한 전우애가 있었다. 그때의 전우들과 35년이 지난 지금도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경조사를 챙기는 이유다.그러나 지금의 군대는 많이 달라진 게 사실이다. 예전에 비해서 엄청나게 좋아진 시설이나 보급품, 선후임 관계 등이 그것이다. 요즘 신세대 병사들이 나약해진 것 아니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핵가족 시대에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때로는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유롭게 자란 원인도 있을 것이다. 민주화도 좋다. 신세대 사병들의 트렌드를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군의 생명은 군기다. 나아가 군인들은 사기와 명예를 먹고 산다. 그런데 요즘 군에 대한 신뢰가 말이 아니다. 군대는 마치 매맞으러 가는 곳처럼 돼버렸다. 국가수호에 대비해 교육훈련에 열중해도 모자랄 판에 비전투적 요소에 전력이 너무 소모되는 게 안타깝다.어느 대통령이 한 말이 생각난다. "군대 가서 뺑뺑이 돌고, 몇 년씩 썩고 온다." 군통수권자가 군을 불신하는 듯한 발언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대통령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2003년 발간된 '성공하고 싶다면 군대에 가라'의 공동저자였다. 사회에서 성공을 거둔 많은 사람들이 군복무가 '시간 낭비'가 아닌,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디딤돌'과 미래발전의 귀중한 기회로 활용했다고 말한다. 나 역시도 군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군대를 가는 것이 '썩으러' 간다거나 '때우러' 간다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 군복무를 자기발전의 계기로 삼을 때 병영문화는 지금보다 훨씬 건전해질 것이다. 누구의 말처럼 군대는 결코 '썩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9-02 이준구

정치와 법치

정치란 시민사회에서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가능의 예술이다. 법치는 공동체적 합의인 법률의 강제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 정치적 해결과 사법적 처리는 영역을 달리 하지만 상호대립적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사회에서 종종 발생되는 문제중의 하나가 정치가 갈등조정이라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법치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관행이다. 정치가 법치의 명분으로 명시적으로 정치이기를 포기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정치와 법치가 선순환의 구조를 갖기 보다는 상호배타적으로 작동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국사회에서 정치가 국민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고 갈등조정에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치는 상이한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신뢰를 바탕으로 합의를 도출하는 작업이다.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유가족은 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의 수립,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라는 기본방향에 있어서 지향점을 같이 한다. 그러나 각론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유가족과 이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야당의 어중간한 입장, 이는 법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린다는 여당의 생각에서 접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여야의 재협상 결과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정한 유가족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시 꺼내들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진상조사위에 부여하는 문제는 세월호 특별법의 쟁점이 특검 추천권을 여하히 배분하느냐의 문제로 가닥이 잡히면서 수그러들었던 문제다. 그러나 유가족이 다시 초강수를 둔 것은 여당은 물론 야당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40일이 넘게 단식을 하고 있는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길 원하지만 거절당하고 있는 마당에서 유가족들이 재협상 결과를 선뜻 받아들일 명분도 마땅치 않다. 정치가 다시 가동돼야 할 대목이다.유가족이 야당과만 꼭 협상의 파트너가 돼야 하는 것도 논리적 정합성이 떨어진다. 여당과 유가족이 대치의 모양새가 되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더 이상 재재협상은 없다는 여당의 강고한 입장으로 볼 때 진전된 내용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제는 여당이 나서야 한다. 쟁점은 비교적 하나로 모아지고 있다. 유가족이 수사권과 기소권의 진상조사위 부여를 주장하고 있으나 여당이 나선다면 특검 추천권으로 쟁점을 모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여야협상의 틀을 넘는 정치가 나서야 된다는 의미다. 유가족의 아픔에 진심으로 다가가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유가족이 이미 정치화돼 있다는 일각의 인식은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관련된 전체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정형화된 단견의 소산일 뿐이다.5월19일 대통령의 담화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유가족의 적극적 동참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전의 5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유가족과의 만남에서 "진상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장을 지켜보신 유가족들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영오씨가 대통령 면담을 신청한 것에 대해 청와대가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가 합의해서 처리할 문제로 대통령이 나설 일은 아니다"며 거부입장을 밝혔으나 특별법이 국회 입법사안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경제관련 입법이나 민생관련 입법에 대해 국회를 비판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논리적 타당성 여부를 떠나 청와대가 일상적 정쟁적 사안을 대하는 정치적 문법에서 한 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정치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법치에 천착하는 모습과도 거리가 있다. 세월호 참사를 보는 관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다. 세월호 특별법의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여당의 지도부가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청와대가 유가족을 적극 설득하는 모습을 보일때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세월호 특별법의 해법의 물꼬가 트이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세월호 특별법의 가장 주요한 행위인자는 유가족들임을 인식할 때 정치가 작동될 수 있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4-08-26 최창렬

불신을 권하는 사회

러시아에서 예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 한토막. 농부가 밭에서 요술램프를 발견했다. 램프를 문지르자 요정이 나타나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농부가 말했다. "이웃집에 젖소 한마리가 생겼는데 가족이 다 먹고도 남을 만큼 우유를 얻었고 결국 큰 부자가 됐어." 그러자 요정이 말했다. "그럼 이웃처럼 젖 잘나오는 젖소 한마리 구해 드릴까요? 아니면 두마리?" 농부가 대답했다. "아니, 이웃집 소 좀 죽여줬으면 좋겠어."웃자고 한 얘기인데 속마음이 들킨 것처럼 괜히 콕 찔린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저 농부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다. 세월호 특별법을 합의하면서 끝까지 당리당략에 주판알만 튕기는 여·야 수뇌부도 이런 마음이 아닐까해서다. 남이 잘되는 꼴을 못보고, 심지어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고, 시기와 질투심이 하늘을 찌른다는 사람이 주변에 의외로 너무 많다. 말이 질투, 시기지 따지고 보면 모두 불신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러시아의 농부가 이웃집 주인이랑 신의와 의리로 맺어진 돈독한 사이였다면 저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둘의 사이는 불신 때문에 갈등하고 있는 사이였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그렇다. 지독한 불신사회다.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 몸에 칭칭감고도 남는 삼손이 와도 도무지 무너뜨릴 수 없는 불신의 벽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세대와 세대 사이에, 아니 여기 저기에 수없이 솟아나 있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다. 지금같은 망국적인 불신의 벽은 태어나서 보다보다 처음이다. 이러다 '불신병'이 치유가 어려운 한국의 고질병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겁이 난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 지경이 됐을까. 멀리 갈 것도 없다. 정치권을 보면 해답이 나온다. 우리사회에 정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 크다. 정치의 힘이 세다보니 사사건건 정치에 휘둘리게 된다. 아직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해서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못된 습성이 있다. 비공식적이지만, 한국 정치인들의 '정치쟁점화' 능력은 전 세계 1위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정쟁화 시키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치권이 마음만 먹으면 이쑤시개 하나도 정쟁화 시킬 수 있는 게 한국 정치인이다. 물론 혼자의 힘으로 될순 없다. 여기에 여당이건 야당이건 우호적인 언론과 종편채널의 도움을 받고, SNS를 가미하면 딱 떨어지는 정쟁화의 조건을 갖추게 된다. 대한민국 모든 불신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가 다르고 '어'가 다른데도 '어'라고 말해놓고 '아'였다고 우기는 게 우리의 정치다.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면서,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국민에게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말하는 게 한국정치다. 이런 허세는 여전히 그들이 '정치가 세상을 바꾼다'고 착각하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한때 국회의원이었던 내가 아는 지인은 "금배지를 달면 세상이 100배는 행복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죽어도 이 배지를 빼앗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게 다 덧없지만, 금배지가 그만큼의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국회의원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눈곱만치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는 단언했다. 결국 그 마약같은 '달콤한 유혹'을 떨치지 못해 거짓말을 하게 되고, 없는 말을 만들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게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정치로 세상을 바꾸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돈을 받고 '입법로비'하고, 출판기념회를 열어 돈을 거둬들인다.프란치스코 교황이 숨막히는 4박5일의 일정을 끝내고 돌아갔다. 교황이 떨어뜨려 놓고 간 말 중 10%만 주워 담아도 우리 사회의 불신병은 치유될 것이다. 물론 국민보다 정치인들과 위정자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교황이 떠나던 날 TV에 나와 누가 한 말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게 들린다. "지금 아무도 안 믿어요. 정치인도 안 믿고, 정부도 안 믿고, 언론도 안 믿고, 국과수도 안 믿고, 검찰·경찰도 안 믿어요." 거기까지는 좋았다. 마지막 한마디 "그런데 교황은 믿어요." 불행하게도 교황은 이제 이곳에 없다. 지지든 볶든 이제 남아 있는 우리끼리 해결해야 한다. 그나마 교황이 머물던 100시간동안 잠잠했던 불신의 불꽃은, 이제 또다시 활활 타오를 것이다. 그게 지금 두려운 것이다. 교황님 돌아와 줘요. 우릴 여기에 팽개쳐 두고 혼자 떠나시면 어떡해요./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4-08-19 이영재

경제활성화 전제조건

중국의 부패추방운동에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대 이권집단 석유방(幇)의 좌장이자 장쩌민 국가주석의 심복인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처벌이 임박한 때문이다. 권력투쟁, 이데올로기 강화, 법치(法治) 확립 등 설이 분분하나 중국인들은 판관 포청천이 부활했다며 크게 반기는 분위기이다.국내에서도 부패척결에 대한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중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정부가 비리를 방치한 탓에 도처에서 구린내가 진동하고 있음을 개탄하는 것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부패정도를 지수화해 매년 세계 각국의 랭킹을 발표한다. 부패인식지수(CPI)는 각 나라 공무원과 정치인들 사이에 부정부패가 어느 정도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인식을 수치화한 것으로 국가청렴도나 기업경영·신용평가 등에 영향을 미치는데 경제력과 부패 간에는 반비례한다는 점이다. 후진국일수록 부정축재가 심한 것이다.지난해 한국은 조사대상 176개국 중 46위로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이다. 더 걱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의 부패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2009년의 39위를 정점으로 2011년 43위, 지난해 46위 등으로 순위가 계속 뒤로 밀린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비리 청산을 호언했으나 집권후 CPI는 더욱 떨어졌다. 경제와 비리가 동반성장하는 기현상이 확인된 것이다.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OECD가 발표한 '2014 더 낳은 삶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36개 조사대상국 중 29위를 기록했다. 홍콩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PERC)가 발표한 한국의 부패지수는 작년의 6.98에서 금년에는 7.05로 아시아 16개국 중 중국과 함께 바닥권을 형성했다. PERC는 한술 더 떠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부패수준이 남아있는 유일한 선진국"으로 "고위층의 부패가 특히 심각하다"고 지적해 '대한민국=관피아공화국'이란 국제공인(?)을 받았다. 부패국가로 낙인찍히면 해외자본 유치는 물론 자국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때 상당한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구시대적 성과만능주의가 여전히 유효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과정은 중요치 않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인 것이다. 유전무죄 인식이 발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가 압권이었다. MB정부는 2008년 집권과 함께 국가청렴위원회를 국민권익위원회로 축소통합했다. 또한 반부패나 청렴성 등을 불필요한 규제로 간주해서 2005년 3월에 정부와 기업, 정치와 시민사회 간에 체결한 투명사회협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국가청렴위는 김대중정권 말기인 2002년 1월에 부패방지위로 출범해서 2005년 7월 명칭을 변경한 것이다. 반부패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확산을 위한 시민적 의지나 노력이 퇴색한 것은 설상가상이다. 작금 세간에 '빨갱이'타령의 빈번한 회자가 반증이다.박근혜 정부는 한술 더 떴다. 후보시절에 재벌의 전횡을 견제하는 내용의 '소액주주의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제'와 '다중대표소송제'의 도입을 공언했으나 집권과 함께 '나몰라라' 하고 경제민주화 멘토인 김종인 교수까지 내친 것이다. 관피아 척결을 목적으로 한 '김영란법'이 1년여 동안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어서 세월호가 공리주의의 발목을 잡았다. 천민자본과 해운탐관들의 야합이 대형 참사의 배후요인이란 지적이 힘을 받은 탓이다. 정부는 지난달 말에 부패척결추진단을 발족하고 비리의 발본색원을 선포했다. 검찰의 정치인 및 해피아 관련 수사가 신호탄으로 추정되나 성과는 의문이다. 집권 중반의 박 대통령이 오매불망 효율성만 강조하니 말이다.미국 하버드대의 존 롤스 교수는 "정의는 사회제도의 으뜸가는 덕목"이라 설파했다. 국가부패지수가 1단위 감소하면 GDP는 무려 2.64%씩 상승한다.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경제활성화는 연목구어란 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8-12 이한구

천재 기업가 배출하는 창업자형 대학 가능한가

청년 취업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국내 대학 중 졸업자의 취업률이 60%를 넘는 대학은 손꼽을 정도로 적다. 그중 공무원 혹은 대기업과 같은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는 비율만 따지면 더 상황은 비참하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청년 창업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져 왔다. 그런데 창업과 연관된 통계지표에서 아직까지 속 시원한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한국사회에서 창업이 꾸준히 늘고는 있지만, 내면을 보면 생존에 급급한 생계형 자영업의 창업 비중이 40%에 달하는 문제를 노출한다. 생계형 창업은 주로 숙박 및 음식료 부문 등 영세 서비스업에서의 창업을 말한다. 음식점의 경우 우리는 인구 1천명당 12.2개꼴인데 미국은 1.8개에 그친다는 비교는 우리의 생계형 창업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가치를 창조하는 기회추구형 창업은 51%에 그치는 실정이다.가치 창조형 창업이 많아져야 창업효과가 제대로 나온다. 자영업 창업의 80%는 2년후 실패하고 말며 파급효과도 거의 없다. 그러면 문제는 생계형 창업을 벗어나 기회추구형 창업을 확대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된다. 문제의 근원은 우리 사회에서 창업 교육과 실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것에 있다. 해결은 대학이 나서서 창업에 대한 기초소양을 학습시키고, 창업전략과 기업가정신을 전수시킬 때 해결될 수 있다. 대학에서 창업교육을 활발하게 제공하면, 음식료 등만이 아니라 보건의료·사회복지·교육·문화예술 등으로 창업분야가 확대될 수 있다. 1990년대 프랑스에서 사회서비스업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높이고 자격제도를 만들어 관련 일자리를 매년 6%씩 늘렸다는 것도 참고할만하다.결국 해답은 대학의 변화에 있다. 즉, 대학이 창업 기업가형 대학으로 변모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 '페이스북(Facebook)'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의 스토리가 나온다. 하버드대학에서의 탄생 초기부터 수많은 난관과 그에 대한 창업자의 돌파과정이 묘사된다. 저커버그와 같은 청년들이 쉽게 창업으로 뛰어든 것은 미국 대학에 녹아있는 창업권장 문화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미국 스탠퍼드와 MIT 등의 대학에서 '기업가 센터(entrepreneurship center)'를 운영하면서 학생 창업자를 양성하며 그들의 성공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맡는 것이 바로 기업가형 대학의 모델이다. 물론 우리는 미국과 여건이 다소 다르지만, 대학에서 기업가 정신을 확대하고 창업자의 성공을 지원하는 것은 그대로 따라도 될 만큼 가치가 높다. 21세기 대학을 창업자형 대학으로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학의 교육과정에서, 또 실험실 연구에서, 창업의 꿈과 도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창업의 성공 가능성이 당장 높지 않다고 하더라도 대학에서 창업을 경험하고 실패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MIT나 하버드 대학은 최근 '창업 이머전(field immersion)'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학생 창업팀을 발굴해 창업하도록 지원하는 교육과정이다. 이것은 다른 창업기업의 현장에서 인턴십을 하거나 관찰학습을 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른 실전(實戰) 교육이다. 우리 대학도 이런 실전 창업 프로그램을 시작할 역량이 모자라지 않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인력이 있고 네트워킹 능력도 있다. 다만 각기 파편적으로 움직여 왔기 때문에 이를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 체계를 갖추기만 하면 된다. 또 대학은 창업 경험자와 동문 기업가를 중심으로 학생 창업팀을 멘토링할 수 있는 고유 장점을 갖고 있다. 또한 실패한 벤처기업가를 '상근 기업가'로 지정해 활용할 수도 있다. 이런 구체적인 멘토링이 성공하게 되면 청년 창업자의 꿈은 현실이 되는 것이다.한국 대학이 진정으로 창업자형 대학으로 변모한다면,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인 청년실업과 일자리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될 뿐아니라, 페이스북의 저커버그와 같은 천재 창업자를 곧 보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08-05 손동원

3D프린터 시대의 일상과 문화

3D프린터(3D-printer) 혁명이 다가오고 있다. 3D프린터는 그대로 입력된 설계도면 대로 3차원 입체 물건을 찍어내는 기계다. 이 프린터의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입력한 디지털 설계도에 따라 플라스틱이나 금속 물질을 노즐로 분사해 켜(layer)를 쌓아올리듯 물건을 만든다. 금형 제작의 단계 없이 물건을 바로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크게 절감된다. 다만 프린터라는 명칭이 가진 고정관념 때문에 관련분야의 종사자들 외엔 이 혁신적 발명품이 몰고 올 변화상을 아직 짐작하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입체사출기(立體射出機)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3D 프린터 기술이 제조업의 혁명 혹은 3차 산업혁명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전방위적 파급효과 때문이다.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3D프린터의 기술 개량과 생산비 절감이 이뤄지면서 전 세계 제조업 지도를 완전히 바꿔 놓을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2012년 47억 달러였던 3D프린터 시장은 2019년 138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제조업의 혁명으로 불리는 3D프린터 기술은 이미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에서도 100만원대의 보급형이 판매되고 있을 정도다. 이미 자동차와 항공기 부품 등 정밀기계에서 3D프린터의 강점이 입증되었다. 의료분야에서는 인공관절과 인공뼈, 인공치아 등을 비롯한 이식용 인공장기를 만들어 환자에게 이식하고 있다.3D 프린팅 기술이 산업구조 변화는 물론 시민생활과 문화에 미칠 영향을 주목하고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머지않아 3D 전용 스튜디오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네 사진관들이 3D스튜디오로 재탄생하는 셈이다. 스튜디오에서는 고객의 얼굴이나 전신상을 입체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3D프린터는 시민들의 여가생활 패턴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제작 동호회가 급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3D 프린팅 과정을 통해 개인들은 창의적 물건을 만들면서 창작 욕구를 실현할 수 있다. 또 일상에서 필요한 생활용품이나 기념품을 직접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캐릭터, 인형이나 완구, 장신구, 교육 보조재료 제작이 극히 간편해지게 될 것이며, 가정에서도 생활용품은 직접 제작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 소비생활도 바뀔 수 있다. 지금은 전자상거래로 주문한 물품이 가정으로 배달되지만, 앞으로 물품의 디자인 파일만 구입하고 물건은 집에서 프린트하는 풍경을 볼 날이 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한 다양한 직업군이 생겨날 것이며, 기술의 특성상 1인 기업의 창업도 급속히 증가할 전망이다.관광기념품 가게의 변화도 예측된다. 초콜릿이나 캔디를 고객이 원하는 모양으로 즉석에서 제작해 줄 수 있다. 고객의 얼굴이 부조된 기념주화, 관광지를 배경으로 한 입체 인물상이나 부조(浮彫)물이 기념사진을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화가나 미술인들이 3D프린터를 활용하면 훨씬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기념품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3D프린터가 넘어야 할 장벽은 많다. 범죄 집단이 무기 제작이나 기존 상품의 불법 복제에 사용될 우려가 높다. 기술적으로는 프린팅 속도를 높여야 하며, 플라스틱 중심인 프린트 원료를 다양화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3D프린터는 색채를 표현하지 못하고 있으며 당분간 개선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디자인이나 회화, 조각 등 조형 예술인들의 기술과 창의성이 접목된다면 새로운 예술 장르가 생겨날 수도 있다.3D 프린팅 기술개발에 투자해 3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한편 그 신기술의 보급과 활용, 산업고도화와 일자리 창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기술개발이 주로 중앙정부와 기업의 역할이라면 활용은 지방정부나 문화산업 분야의 과제가 될 것이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4-07-30 김창수

청년들은 우리의 희망이라면서…

청년들은 우리의 희망이라고 한다. 기성세대들은 추억을 먹고 산다지만 젊은이들은 꿈을 먹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는 청년들이 희망을 잃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비싸다는 대학 등록금을 내고 졸업하자마자 대다수가 실업자로 전락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인데도, 너도나도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로 나서는데도, 대학 도서관은 취업준비생들로 가득하다. 대학의 낭만은 온데간데 없이 눈앞에 닥친 실업난으로 고통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청년 일자리 창출, 고용확대 등을 외치는 정부의 대책은 이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릴 뿐이다.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외쳤거늘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마땅하게 일할 곳조차 없다. 부지런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고,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취지였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면 경제적으로 독립해 사회적 기반을 잡아가는 게 순리다. 그러나 대다수는 아직도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눈칫밥을 먹는 처지다. 부모들 역시 자녀의 취업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기성세대와 신흥세대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1970년대 종로와 광화문 일대에 학원가가 형성됐다. 가고 싶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는 필수, 3수는 선택'이란 유행어도 있었다. 지금의 대학가에는 '5학년은 필수, 6학년은 선택'이라는 말이 있다.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가 되면서 졸업을 유예하는 이른바 '대학 5학년족'이 늘고 있는 것이다. 확실한 취업을 위해 몇 학점을 남긴 채 졸업을 미루고 대학교를 한 학기 이상 더 다니는 어정쩡한 상태다. 졸업 후 백수가 되는 것을 피해 대학 울타리 안에서 머물면서 취업의 기회를 엿보는 새로운 트렌드다. 이들은 노심초사하며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 사회는 젊고 우수한 인력이 낭비되는 손실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더욱이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사회에 던져지는 이들 중 많은 사람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일부는 비싼 등록금을 대기 위해 아르바이트와 학자금을 빌려서 등록금으로 충당했기 때문이다. 적게는 2천만원에서 4천만원이 넘는 빚쟁이가 돼 꿈을 송두리째 잃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나라 청년 고용률은 40%대로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이마저도 고용의 질적인 면과 실질 대졸자의 고용률만을 근거로 통계를 낸다면 수치는 훨씬 더 떨어진다. 그런데도 대졸 신규 채용 규모가 지난해보다 대폭 늘어난다는 소식은 없다. 경기는 침체되고 대기업이나 부자들은 지갑을 아예 닫았다. 정치권은 표를 얻기 위한 말뿐인 정책만을 남발한다. 이마저도 정책은 뒷전이고 대신 정쟁에만 몰두한다. 국론은 좌우, 동서, 남북으로 갈린 채 갈 길을 잃고 있다. 그래서 청년들은 취업을 하지 못하는 서러움보다 기성 세대들의 행태에 더 희망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잠재적 안티(anti) 세력으로 발전하면서 사회통합과 국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또 대선 후보들은 너도나도 '반값 등록금'을 공약했다. '청년 일자리 창출'도 단골메뉴다. 등록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대학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데다 재원마련도 이뤄지지 않았다. 일자리 창출 대책은 취업의 눈높이를 낮추라는 것과 대학생 창업을 지원하겠다, 공기업 인턴을 확대하겠다는 게 고작이다. 국민들을 속이는 것도 모자라 대학생과 청년들에게까지 거짓말을 했으니 이들이 무슨 희망을 갖겠는가. 이제 더 이상 젊은이들의 꿈을 짓밟아서는 안 된다. 이들이 더 큰 자괴감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확실하고도 획기적인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 일할 능력자를 방치하는 것과 일자리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청년들은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통렬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7-22 이준구

7월 30일, 우리는 투표장 간다

7월30일 우리 정치사상 가장 규모가 큰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다. 15석. 전체 국회의원수의 5%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이번 선거가 15대0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압승이 예상되기도 했었다. 여당의 과반수가 무너져 여소야대 국회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모든 것이 야당에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됐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후유증이 여전히 진행중이고, 문창극 총리지명자 낙마, 골라도 참 희한하게 고른 2기 내각 몇몇 장관 후보들, 이전투구였던 여당 전당대회, 여기에 결정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하락 등 모든 게 야당에 유리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금,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는 "5석만 얻어도 잘하는 선거"라고 말할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전략공천' 때문이다. 행태는 여·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분위기는 야당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서울 동작을에 광주 광산을에서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선거사무소까지 차렸던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광주 광산을에는 '광주의 딸'이라는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내리 꽂았다'. 무려 3곳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이번 선거의 핵심인 수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다보니 '여우비' 같은 민심이 변덕을 부리고 있다. 언제 비를 내릴지 모르게 알쏭달쏭하다. 그런 민심이 이번엔 들끓고 있다. 이런 터무니 없는 공천으로 치러지는 재보선이 무슨 필요가 있냐는 '무용론'도 나온다.사실 이번 선거에 들어가는 예산도 만만치 않다. 대충 140억여원의 혈세가 투입된다. 여기에 사회적 비용까지 계산하면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이번 선거를 치르는 이유는 공직 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당선무효, 임기 중 각종 비리로 인한 피선거권 상실, 지방선거 출마로 인한 중도사퇴가 원인이다. 쓸데없는 선거비용 낭비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선거 출마를 하기 위한 의원직 사퇴와 범법행위로 인해 의원직을 박탈당했을 경우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에게 선거관리경비를 전액 혹은 일정 부분을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이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만일 이런 제도가 있다면 국회의원들의 무책임한 의원직 사퇴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선거법을 위반하거나 뇌물을 받는 정치인들도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리의 선거법이 모두 정치인들을 위한 법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재보선에는 매우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이번 선거는 휴가철이 최고 피크인 7월30일 펼쳐진다. 유권자들은 더위를 피해 산과 들로 휴가를 떠날 것이 뻔하다. 역대 휴가철에 치러진 그동안의 국회의원 재보선을 보면 4곳에서 치러진 2006년 7월26일 선거에 역대 최저치인 24.8%, 8곳에서 치러진 2010년 7월28일 선거에서는 34.1%를 각각 기록했다. 2000년 이후 총 14차례의 국회의원 재보선 평균 투표율이 35.5%였던 것에 비해 휴가철 투표율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다만 오는 25·26일 15곳의 재보선 지역구에서 치러지는 사전투표가 얼마나 투표율을 올릴지 관건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선거가 6·4 지방선거의 연장선에서 다시 한 번 박근혜 정부의 중간평가를 갖는 정치적 의미가 큰 점이 투표율을 높일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실제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와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가 분당에서 맞붙었던 2011년 4·27 재보선에서는 8곳의 평균 투표율이 43.5%를 기록했었다. 그러나 야당이 이번 선거를 박근혜 중간평가로 몰고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천후유증으로 야당이 입은 상처의 깊이가 만만치 않고, 자칫 '중간평가' 운운했다 역풍 맞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7월30일 우리는 투표장으로 가야한다. 이번 선거는 여·야 누구를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정치권에서 '과반수 확보' 운운하는 것은 괜한 볼멘소리다. '국회 선진화법'으로 의석 과반수는 그저 상징성만 있을 뿐 큰 의미도 없다. 투표를 포기한다면 앞으로도 우리 지역구에는 우리와 상관없는 누군가가 계속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 것이다. '늘 그랬으니까'라고 눈감아 주면 마치 관성의 법칙처럼, 정치권은 당연한듯 또다시 전략공천을 자행한다. 이런 선거를 완전히 없앨 수 없다면, 7월30일 우리는 투표장에 가야 한다. 그리고 두눈 부릅뜨고 지역에서 일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 유권자는 정치권의 주물럭거림에 좌지우지될 만큼 이제 바보가 아니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4-07-15 이영재

대통령의 지지율

박근혜 정권 출범이후 처음으로 국정수행에 대한 평가에서 부정이 긍정을 능가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지율은 이슈와 현안에 따라 등락이 교차한다. 그러나 국정수행에 대해 부정평가가 긍정을 앞섰다는 의미는 단순 지지율 하락의 함의와는 다르다. 지난해 정권 초 인사 실패로 지지율이 하락할 때도 나타나지 않았던 현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질렀다는 것은 정권이 신뢰를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진대 그 소이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국정수행에 대한 평가라고는 하지만 국민들은 정권에 대한 지지율로 받아들인다. 최고집행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권력의 수입이다. 정책집행을 권력의 지출이라 한다면 권력을 추동하는 원천이 되는 수입은 지지율이다. 대통령이 임기동안 국회의석에 관계없이 주어진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권력구조적 관점에서 대통령제의 가장 큰 장점은 정치안정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를 지탱하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권력누수현상은 불가피한 것이 대통령제의 숙명이기도 하다. 이러한 레임 덕은 대체로 임기 말 측근과 친인척에서 유래하는 것이 역대 정권에서 경험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지 1년4개월여를 맞는 시점에서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본 동 시기의 지지율은 결코 좋은 성적이 아니다. 세대로는 50대 후반, 지역적으로는 영남, 이념적으로는 보수 성향 유권자의 강고한 지지가 있다 하더라도 민심은 바로미터의 역할을 한다. 바로 그 결과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상승이다.결정적 요인이 인사난맥이다. 이는 시민사회, 국민과의 소통 부재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권력 핵심과 시민사회 인식의 간극이 벌어지는 것은 시대정신에 대한 성찰 부재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명의 총리후보자 낙마가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책임성과 대표성이다. 국정의 최고 집행권자가 국민에 대해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제도가 대통령제다.정홍원 총리 유임은 청와대의 설명대로 국정공백 최소화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국민이 납득할만한 이유라고 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 후 정부의 무능한 대처에 책임을 지는 정치적 행위가 정 총리의 사의표명이었다면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두 명의 총리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청문회 제도 탓으로 돌린다면 이는 본말의 전도(顚倒) 그 자체다. 대통령이 5월19일 '눈물의 담화'에서 밝힌 '국가 대개조'는 국민에 대해 책임지는 정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책임정치의 실종에 대해 국민은 지지의 철회로 민심을 표출하고 있다.2기 내각의 인사청문회가 진행중이다.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는 법적 하자가 없다. 그러나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7·30재보선을 앞둔 인사청문회는 딜레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후보를 낙마시키면 인사실패를 자인하는 결과가 되고 이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지지율의 하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임명권을 행사한다면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 의사를 묵살한 것이 되므로 지지율은 더 하락할 수 있다. 이도 역시 인사문제다.정공법이 답이다. 검증이 소홀해서 국민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후보가 국회의 인사청문 벽을 넘지 못하면 정치적 유불리와 무관하게 민의에 화답하는 것이 권력의 수입을 늘려가는 길이다. 왕도가 없다. 권력은 반만 행사할 때 더 커진다. 남의 의사에 반(反)해서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것이 권력이라는 말은 권력에 대한 사회과학적 정의(定義)일 뿐이다. 보다 큰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뀔 수 있다. 상승할 수도, 더 하락할 수도 있다. 민심은 요동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민심의 추이가 왜 바뀌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은 전략적으로도, 당위적으로도 반드시 필요하다. 권력의 논리에 함몰되지 않는 철저한 반추와 자기성찰은 지지율을 다시 상승하게 할 수 있는 원천이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4-07-08 최창렬

침묵의 소리

'대학을 밟지 마시오'.서울 모 대학 학생들이 만드는 교양지 '중앙문화' 최근호의 커버스토리 제목이다. 운동권 학생 K씨의 '정의가 없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기에 학교를 그만 둔다'는 대자보 내용이 핵심이다. 대학의 가치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유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학내투쟁과 함께 구성원들의 동참을 호소했음에도 반향 없는 현실에 실망했던 탓이다. 자퇴생 K씨는 물론 그를 외면하는 동료 학생들과 이 문제를 다루는 학생기자 모두의 '안녕하지 못한' 실상이 간취되었다. 이 땅의 절대다수 젊은이들 또한 이 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7080가수 사이먼 앤 가펑클의 감미로운 '침묵의 소리' 멜로디가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졸업'의 장면들과 오버랩 되어 뇌리를 스친다. '졸업'은 미남청년 벤이 부모 친구인 로빈슨부인 및 그녀의 딸 엘레인과 동시에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을 묘사한 작품으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대학졸업과 함께 백수가 되는 설정도 당시엔 생경했거니와 사회규범의 허용치를 크게 넘어선 주인공 벤의 일탈 때문이었다.1950~60년대의 미국인들은 부지런히 일해서 초유의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청년들의 대학진학률이 급격하게 높아져 1960년 400만명도 못되던 대학생수가 1975년에는 무려 1천만명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오일쇼크에서 비롯된 스태그플레이션이 수많은 대학생들을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로 전락시켰다. 풍요로운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다음 세대들이 성년이 되어 벼락을 맞은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아메리칸 드림도 깨졌다. 근면성실해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불안과 고물가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1960~70년대의 미국은 마피아, 마약과 히피, 로큰롤과 헤비메탈, 펑키음악, 청바지 등의 시대로 기억된다. 이 무렵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들을 '비트제너레이션'으로 불렀다. '패배의 세대'라는 의미로 현대산업사회로부터 이탈해서 개성의 해방을 부르짖는 무정부주의 경향의 집단을 의미한다. '호밀밭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코필드는 붉은 베레모를 삐딱하게 쓰고 시도 때도 없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문제아였다. 이들 중 일부는 과거의 안일함에 사로잡혀 빈곤 속에서 삶을 마감했다. 이성을 앗아간 정신적 환각은 그들의 신앙(?)이었다. 오늘날 국내 비트족의 상황은 더욱 참담하다. 전후의 경제위기는 청년들의 좌절과 반항문화를 수반했는데 기존의 문화를 거부했던 히피족은 그래도 낭만적이며 애교스런(?)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청년들은 기성문화나 질서에 대한 불만표출은커녕 아예 무반응으로 일관하니 말이다. 엄혹한 경제현실 앞에 젊은이들의 기가 질려버린 것이다.1990년대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은 일본의 뒤를 이어 새로운 세계 공장으로 부상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들은 공산품을 미국에 수출해서 만성적 무역적자에서 겨우 벗어났다. 그러나 미국의 달러화 절하 압박이 화근이었다. 외국자본이 철수하고 수출이 곤두박질했으며 자산시장의 거품이 빠지는 등 경제는 재앙수준으로 급전직하했다. 단기간에 수십만 개의 기업이 사라지고 직장인 4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식 경영 대신에 연봉제와 노동유연화란 글로벌 스탠더드가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초반 학번들은 스스로를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 불렀다.2008년의 금융위기는 점입가경이었다. 상환능력이 부족한 미국 가계에 대한 무차별적 대출세일 후폭풍이 국제금융시장을 강타했다. "광란의 파티는 일단 시작되면 곧 걷잡을 수 없이 전개 된다"는 서양의 속담이 입증된 것이다. 개방 폭이 큰 신흥국일수록 심한 내상(內傷)을 입었다. 한국은 10년 전의 위기를 수습하기도 전에 또다시 강타 당했다. 물신주의가 팽배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각국 경제의 동조화 심화로 비트족의 확대 재생산이 불가피하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침묵의 소리는 사회적 암"이란 노랫말에 눈길이 간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7-01 이한구

승리하는 조직의 비결, 상하동욕(上下同欲)

인천시 정권이 바뀌면서 인사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는 한편으론 새 시장에게 공정한 인사를 바라는 희망 메시지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새 권력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권력은 마치 왁자지껄한 시장(市場)과 같다. 권력자 주변은 시장 바닥처럼 항상 사람들로 들끓게 되며, 사람 장막에 갇힌 권력자는 환상에 도취된다. 또 권력이 사라지는 날 시장 사람들은 새 권력에 붙어 버린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 반복됐던 권력자 주변의 모습이었다. 모든 조직원은 권력에 따라 움직이는데, 공무원 조직은 특히 그렇다. 그들은 권력의 도움으로 조직 위계질서 사다리의 상단부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 그것이 공무원의 본능이다. 오죽하면 공무원에게 왜 사냐고 물으면 승진하기 위해 산다고 답한다고 한다.이런 공무원 조직을 이끌고 성공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손자병법은 그 최고의 비책으로 '상하동욕(上下同欲)'을 말한다. 즉, 최고 장수에서부터 말단 병사까지 모두가 같은 꿈을 꾸는 군대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최고위층부터 말단 조직원까지 같은 꿈을 꾸는 조직은 인화(人和)와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천시(天時)와 지리(地利)가 좋아도 인화가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 인천시 조직에서 '상하동욕'이란 유정복 당선자의 비전이 전 조직원에게 공감되는 상태를 말한다. 모든 공무원들이 시장(市長)과 같은 마음으로 신나게 움직여준다면 성공할 수 있다. 유능한 지휘관이 병사들로부터 공감을 얻으려면 자신부터 진정한 헌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즉, 진정성이 없는 소통은 공감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랫동안 '의리'를 외쳐온 연예인 김보성이 최근 진정성의 화신(化身)으로 등극한 사례도 그것을 말해주는 교훈이다. 새 권력이 들어서면 조직은 표면적으로 응집력이 높아진다. 그러나 소명의식을 공유하지 않는 응집력은 의미가 없다. '이 사회에 무엇을 공헌할 것인가'라는 소명의식이 없다면 응집력이 높아질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조폭 조직을 응집력이 높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오해다. 응집력은 '같이 뭉쳐 있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응집력은 소명의식에 대한 공감에서 나온다. 조폭 집단은 이 소명의식이 없기 때문에 응집력이 높지 않고, 표면적으로 의리와 복종 등과 같은 허상만 있을 뿐이다. 많은 조폭 영화에서 드러나듯, 보스의 뒤에서 칼을 꽂는 하극상이 빈번하고 자리다툼이 치열한 이유는 바로 소명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폭 두목은 조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수익을 만들어 주어야 생존할 수 있다. 이것은 공감하는 소명의식이 없는 조직을 이끄는 것이 얼마나 고난한 일인가를 잘 보여준다. 유 당선자가 설정하는 소명의식이 확정된다면, 그 다음 과제는 그것을 조직원들이 공감하게 하는 작업이다. 이는 유 당선자의 진정한 헌신에도 달려있지만, 조직내 신뢰와 믿음을 높이는 시스템 구축에도 영향을 받는다. 공무원 조직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으로 소위 '당근'과 '채찍'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들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완결 조건은 아니다. 우선 조직원들을 격려하는 '당근'을 생각해보자. 당근이라는 보상만으로 조직원들을 움직이려는 건 부족한 생각이다. 제정 러시아 시절 한 군대에서 벼룩을 잡아오면 포상금을 주는 제도를 설계했었다. 벼룩을 없애고자 했던 보상책이었지만, 놀랍게도 러시아 병사들은 보상을 늘리기 위해 오히려 벼룩을 키웠다. 즉, 벼룩을 없애기는커녕 벼룩이 더욱 늘어난 것이다. 보상책으로만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이런 모순을 낳는다. 사람은 자신이 자신을 통제한다는 생각이 들어야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 또한 '채찍'이라는 처벌만으로도 조직원들을 움직일 수 없다. 미국의 어린이 집은 직장 맘에게 픽업 마감시간을 주고, 그 마감시간을 넘기면 벌금을 부과했다. 이 벌금(채찍)으로 지각이 줄어들 것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지각 횟수가 두 배로 늘어났다. 지각한 대가로 벌금만 내면 늦게 가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했던 것이다. 역시 스스로 움직이는 동력을 주지 않는 한 벌칙으로도 조직원들을 움직일 수 없다. 민선 6기 인천을 이끌 유정복 당선자가 '상하동욕' 조직을 만들어 공무원들의 신바람 속에서 인천시의 도약을 이뤄내길 진심으로 바란다.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06-24 손동원

개방성과 미래 도시

개방성(openness)은 도시가 추구해야 할 주요한 가치이다. 제국주의의 시대였던 19세기와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점철된 20세기에 개방성이나 국제주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북한이나 쿠바 같은 체제 수호를 위한 농성(籠城)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와 규모가 큰 도시들은 저마다 글로벌 국가, 글로벌 시티를 표방하며 개방성을 강조한다. 지식과 정보 역시 개방될수록 더 많은 은총을 내린다. 누리꾼들이 만들어 가는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은 공유된 정보를 재가공하거나 보완하면서 다중(多衆)의 집단지성을 실현해 나간다. 개방성의 확장은 사회 발전의 주요한 방법이자 결과이다. 사회의 민주화도 시민의 참여와 수평적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것이므로 개방성의 구현인 셈이다. 개방성은 문화 정책에서도 중요하다. 문화 분야에서 개방성이란 시민들이 문화시설이나 프로그램을 쉽게 이용할 수 있고 시설의 운영 및 정책수립 과정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이는 향유 가능성 측면에서의 접근성, 과정과 절차라는 측면에서의 공정성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가치이며,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대한 접근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사업에 대한 접근성, 시설운영에 대한 접근성, 운영 방식과 의식 등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시민들이 정보의 제약이나 시·공간적 한계, 경제적·심리적 부담 등으로 인해 문화향유에 어려움을 느끼는 환경이라면 개방성이 담보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개방성은 시설과 공간은 물론 프로그램, 조직운영에 이르기까지 관철되어야 할 미션이라 할 수 있다.도시공간도 개방성을 지향해야 한다. 고층화 밀집화 현상은 현대도시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환경과 교통, 안전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도시인들은 고층빌딩이 밀집된 시가지에서 일과를 보내며 주택도 고층아파트인 경우가 많다. 도시인들의 영혼은 위압감과 폐쇄감 속에서 일상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주말이면 교외로 탈출하는 도시인들이 주로 찾는 곳은 산이나 들판, 해변, 옛 마을이나 유적들이다. 이들 장소의 공통점 중 하나는 개방적 경관으로 폐쇄와 위압의 공간을 벗어나 개방의 공간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방성은 도시 재생의 수단이자 목표이기도 하다. 쇠퇴일로를 걷고 있던 일본의 전통산업도시 가나자와시(金澤市)를 일약 창조도시의 성공 모델로 전환시킨 핵심 프로젝트는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 가나자와시민예술촌, 우미미라이 도서관 건립 등 문화 기반시설 확충을 들 수 있다.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은 2004년 개관과 동시에 국제적 명소로 떠올랐으며 도시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넓은 정원 위에 원형 유리벽으로 지어진 이 미술관은 시민들이 외부정원 어디에서나 내부로 들어가 저녁 10시까지 무료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개관 1년 만에 도시 인구의 3배인 158만명이 입장할 정도의 명소가 되었는데, 바로 '문도 없고 문턱도 없는' 개방주의 콘셉트의 승리라 할 수 있다. 도시 공간의 개방성 구현을 위한 연구 성과는 상당히 축적되어 있다. 건축과 경관미학에서 개방성은 조망점에서 건축물을 올려다보는 각도인 앙각(仰角), 건축물의 입면적 그리고 오픈스페이스의 면적 등을 변수로 측정한다. 앙각이 클수록, 건축물의 입면적이 넓을수록 개방성은 감소한다. 반대로 앙각이 작을수록, 입면적이 좁을수록, 오픈스페이스의 면적은 넓을수록 개방성은 증대된다. 드높은 마천루를 세워 도시의 랜드마크로 만들려는 시도는 안전과 환경, 정서적 측면에서 시대착오적이다. 미래도시는 광장이나 오픈스페이스와 같은 수평적 경관요소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도시인들의 무의식까지 상쾌하게 만들어야 한다. 생태하천을 복원하고 방치되어 있는 해변을 친환경적 워터프론트로 바꾸어 나간다면 지역주민은 물론 도시의 방문자들에게도 커다란 기쁨이 될 것이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4-06-17 김창수

의병장의 손자 한민구 국방장관 내정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한민구 전 합참의장을 국방장관으로 내정하고 인사청문요청서를 5일 국회에 제출했다.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 시절부터 한봉수 의병장의 손자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한 의병장은 충북 청원에서부터 의병을 일으켜 충청지역은 물론 평택 장호원, 심지어 강원도 횡성까지 종횡무진하며 일본군을 무찌르는 등 유격전술의 명장으로 '번개대장'으로 불린다. 항일 독립운동가의 피가 흐르고 있는 손자 한민구 장군이 국방장관에 내정된 1일은 제4회 의병의 날이자 호국보훈의 달이 시작되는 날이어서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박 대통령은 요청서에서 "한 후보자가 40여년간의 군 복무 기간 국방부 정책기획관, 수도방위사령관,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 등을 두루 역임하면서 국방정책의 발전과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해온 전문가로서 위중한 안보상황 아래서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방태세를 튼튼히 할 수 있는 최적임자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한민구 내정자는 합참의장 재임 시절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한 대응과 '아덴만 여명 작전'을 직접 지휘했던 경험이 있는 데다 항일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훌륭했던 할아버지 못지않게 손자 또한 비범한 사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35년 전(1979~82년) 사병으로 근무할 때 나는 한민구 대위를 중대장으로 모시게 됐다. 당시만 해도 시설이나 장비가 열악한 데다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문화가 자리잡은 어려운 시절이었으나 사병들을 마치 동생처럼 대해주던 인자한 분이었고, 소대장과 선임하사들 모두 한 가족과 같이 그를 따랐다.전투지원중대의 특성상 장비가 많고 훈련 또한 다른 부대보다 잦았다. 형제처럼 뭉쳐진 부대 분위기는 연대전투단훈련 사단기동훈련 팀스피리트 보전포합동훈련 등에서 최상의 전투력을 발휘했다. 한민구 중대장은 육사와 서울대에서 전사학을 공부해 각종 전투 상황에 따라 탁월한 전술능력을 갖춘 지휘관이었다. 유창한 영어실력은 미국의 고위 장성들이 대전차방벽을 방문할 때마다 브리핑을 도맡게 했다. 문무를 겸비했다는 세간의 평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결혼식을 올린 뒤에는 부대 옆 단칸방에서 노모를 모시고 신혼생활을 한 효자이기도 했다.어느 날 서무병인 나를 부르시더니 노랗게 바랜 케케묵은 자료를 내밀었다. 일과 후 시간날 때마다 연대(年代)별로 또박또박 정리를 했다. 그의 할아버지인 한봉수 의병장의 항일독립운동 자료였다.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기록을 그때부터 꼼꼼하게 챙긴 것을 보면 아직도 그의 핏속에는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관학교 출신 대위들에게 주어진 사무관 전직의 기회를 마다하는 것을 보고 그때 나는 이미 한민구 대위의 앞날을 조심스레 예견했다. 그의 품성과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지만 한번 맺은 인연을 지금까지 놓지 않고 지속하는 의리파다. 내가 제대한 이후 1982년 소령에 진급한 후 육군사관학교 전사학 교관으로, 전방 사단의 대대장, 연대장으로 또 영예로운 장군진급과 주요 보직을 맡을 때마다 군내(軍內) 선후배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온 그다. 식사를 하며 장군으로 부르면 굳이 중대장으로 부르라고 주문하시는 겸손함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꼼짝없이 그를 중대장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합참의장 시절인 2011년 1월 해적에게 피랍된 주얼리호(1만t급)를 소말리아 인근 해상에서 구출해 국내외의 찬사를 받았다. 자신이 이름지은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것이다. 아이티 구호활동을 위한 파병부대 이름도 가뭄에 단비 내리듯 하게 한다는 의미로 하여 '단비부대'로 지은 이가 그다. 지금의 정세는 북한의 제4차 핵실험 가능성과 서해 5도에서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한민구 내정자와 같은 문무를 겸비한 전략기획통의 국방장관이 더욱 필요하다. 내가 겪은 '한민구 중대장'의 인품과 능력이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 것처럼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확신한다./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6-10 이준구

법으로도 '전관예우'를 막을 수 없다면

현재 TV에서 방영중인 '개과천선'은 대형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를 다룬 드라마다. 거대 로펌 에이스 변호사 김석주. 재판에 이기기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철한 그가 우연한 사고로 기억을 잃은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고 건전한(?) 변호사가 된다는 법정드라마다.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로펌대표 차영우는 능력이 출중한 판사 전지원을 자신의 로펌으로 스카우트 하기 위해 협상을 벌인다. 지원이 고집을 꺾지 않자 "변호사 출신 대법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정확히 15년 뒤 그자리(대법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 각서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대형 로펌 대표가 공직을 움직일 정도로 막강하다는 뜻이다. 비록 드라마지만 이 부분에서 등골이 오싹했다. 실제 대한민국 대형 로펌의 힘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대형 로펌의 힘은 이제 누구도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다른 말로 하면 대한민국은 이미 '로펌공화국'이 된지 오래다. '법과 원칙'의 상징이었던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조차 서 보지 못하고 낙마했다. 검사 시절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맡아 여·야 현역 의원들은 물론이고 당시 정권의 실세들까지 감옥에 보내는 강단을 보였던 그였다. 검사와 대법관 시절 재산 공개때마다 항상 최하위권을 기록해 '안대희 그 자체가 청렴'이라는 평도 들었다. 그러나 '전관예우'의 관행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전관예우. 그리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한 대학을 나오고 평범한 직장을 다니다가 평범하게 회사를 관둔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대한민국은 오래 전부터 '전관예우 공화국'이었다. 평범한 국민들만 몰랐을 뿐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공직에 전관예우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전관예우의 고리를 끊기 위해 대통령도 나섰지만 과연 그 튼튼한 연결고리가 끊길지는 비관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어느 누구보다도 관료·검사·법관 출신 중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총리 정홍원, 법무부장관 황교안, 외교부장관 윤병세가 모두 대형 로펌 출신이다. 이들은 공직에 있다가 퇴임한 후 로펌으로 갔다가 다시 공직으로 돌아온 케이스다. 당시 야당 의원들이 황 법무부 장관을 가리켜 "대형 로펌이 황 내정자가 고위 공직자가 될 것을 기대하고 16억원을 줬다면 전관예우에서 나아가 '후관예우', '쌍관예우'인 셈"이라고 몰아붙였었다. 현직에 있는 공직자들은 변호사나 회계사 개업을 하고 있는 선배가 어느날 갑자기, 총리나 장관으로 회귀하는 게 신경쓰인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전관예우'보다 더 염두에 두고 예우를 갖춘다는 것이다. 이것이 '후관예우'다. 이같은 전관·후관예우가 문제가 되자 이를 금지하는 '공직자 윤리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은 퇴직한 고위 관료가 법무법인 등 사실상 로비스트로 활동하다가 다시 공직에 취임하는 경우 제한을 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지만 일반 변호사를 개업하면 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법의 허점이 있는 것이다. 야당이 최근 '안대희 방지법'이라 명명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5월 임시 국회 회기 전까지 발의하겠다고 한 이유다. 김능환 전 대법관. 그는 퇴임 다음날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평범한 서민의 삶으로 돌아가 국민의 영웅이 됐었다. 그러나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즉 '말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맹자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5개월만에 대형 로펌으로 돌아갔다. 국민이 받은 충격은 컸다. 세상 일이 쉬운 게 없다. 그렇다면 전관예우는 어떻게 막아야 하나. 첫째, 법원과 검찰이 사건을 투명하게 처리하고 사회단체와 언론은 끝없이 그들을 감시해야 한다. 둘째, 국민들 즉 의뢰인이 전관에 대한 '믿음'을 버려야 한다. 물에 빠진 의뢰인들에게 전관의 유혹은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전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재판에 승소한다는 그 '믿음'이 없어지지 않으면 전관예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안될 경우 마지막 세번째, 평생 공직에서 국가가 주는 녹을 먹었으니 이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선비같이 청빈한 삶을 살아 달라고 감성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도 말처럼 쉽지가 않다. 개과천선의 사전적의미는 '범죄자가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 작가가 그런 제목을 붙인 것은 슬프게도,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 많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4-06-03 이영재

총리론

헌법은 국무총리에 대해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다른 조항에서는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적고 있다. 이른바 '책임총리'의 근거조항이다. 그러나 역대 총리는 거의 내각의 상징적인 존재로 그치기 일쑤였다. 대통령제의 특성상 불가피하다. 명망가형 총리, 화합형 총리, 관리형 총리, 정무형 총리 등 총리의 출신 배경이나 성향에 따라 붙인 작위적인 분류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정국이 요동치고, 민심이 이반될 때 총리를 포함한 내각에 책임을 묻는 정치적 행위는 민심의 소재에 부응한다는 면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총리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큰 이유이다. 따라서 제한적인 총리의 역할 범위 내에서라도 국민이 납득하고 정서에 부합하며 시대정신에 응답할 수 있는 인물을 써야 함은 불문가지이다.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에 많은 성찰과 뼈저린 회한을 남기고 있다. 정경유착과 민관유착이 대참사를 야기한 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관피아의 혁파 없이는 한국사회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고 있음도 확인했다. 이의 처방으로 공직사회 개혁과 공정한 사회로의 개혁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차분하게 돌아보고 먼 원인과 가까운 원인에 대한 구분 없는 몰아치기식의 진단과 처방은 또 다시 많은 모순을 원점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대참사가 우리 사회에 치열하게 던지고 있는 화두는 한국사회의 총체적이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다. 관료와 민간의 유착은 왜 생겼으며 이념적 간극은 왜 더 벌어지는가에 대한 숙의이다. 부정부패가 왜 구조적인 문제로 고착화됐는가에 대한 진단이 우선되어야 한다. 경제적 근대화는 국가의 압도적 우위를 결과했으며, 시민사회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권위주의 정권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억압했고 산업화의 명분으로 인권은 배제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권과 인간의 가치보다는 자본과 이윤의 논리가 절대시되는 물신주의가 배태되었다. 국가권력과 관료가 주도하는 근대화 과정에서 관과 기업의 유착은 애당초 예정된 수순이었다. 관피아는 단순히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고도성장은 시장물신주의에 입각한 황금만능주의의 극대화를 가져왔고 이는 관료와 민간의 유착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양극화는 심화됐고, 이념과 지역 차원의 불화는 좀처럼 치유되지 않는다. 상위 소득이나 하위 소득 계층 가릴 것 없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유난하고 유별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 치부할 수위를 벗어난지 오래다. 그래서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경제민주화가 헌법 조항에 들어가고, 대선 과정에서 여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든 것이 아닌가. 대통령 담화가 있은 다음 날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차관회의를 열어 대통령 담화의 조치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을 다음 달 초까지 마련하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여전히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관료주의의 획일화 모습이다.안대희 국무총리 지명자는 부정부패 척결과 공직사회 개혁을 다짐했고, 공정과 법치에 입각하여 총리 업무를 수행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좋은 말들이다. 공직사회의 대부분을 검찰로 지낸 사람다운 얘기이며 부정적으로 평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찢기고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치유하는 화합과 탕평의 정신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모든 처방은 임기응변에 그칠 수밖에 없다. 부정부패 척결과 법치, 공정은 검찰권의 행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릿발 같은 법치 이전에 한국사회의 심연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는 부정부패 척결과 공직기강의 확립은 일시적인 사정 드라이브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안대희 총리 내정자가 놓치면 안 될 부분이다. 시대정신을 통찰하는 지성과 냉정한 상황인식이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연결될 때만이 책임총리도 가능하다는 사실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 안대희 내정자는 검찰총장이 아닌 국무총리직을 수행해야 한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4-05-27 최창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