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대통령의 지지율

박근혜 정권 출범이후 처음으로 국정수행에 대한 평가에서 부정이 긍정을 능가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지율은 이슈와 현안에 따라 등락이 교차한다. 그러나 국정수행에 대해 부정평가가 긍정을 앞섰다는 의미는 단순 지지율 하락의 함의와는 다르다. 지난해 정권 초 인사 실패로 지지율이 하락할 때도 나타나지 않았던 현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질렀다는 것은 정권이 신뢰를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진대 그 소이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국정수행에 대한 평가라고는 하지만 국민들은 정권에 대한 지지율로 받아들인다. 최고집행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권력의 수입이다. 정책집행을 권력의 지출이라 한다면 권력을 추동하는 원천이 되는 수입은 지지율이다. 대통령이 임기동안 국회의석에 관계없이 주어진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권력구조적 관점에서 대통령제의 가장 큰 장점은 정치안정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를 지탱하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권력누수현상은 불가피한 것이 대통령제의 숙명이기도 하다. 이러한 레임 덕은 대체로 임기 말 측근과 친인척에서 유래하는 것이 역대 정권에서 경험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지 1년4개월여를 맞는 시점에서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본 동 시기의 지지율은 결코 좋은 성적이 아니다. 세대로는 50대 후반, 지역적으로는 영남, 이념적으로는 보수 성향 유권자의 강고한 지지가 있다 하더라도 민심은 바로미터의 역할을 한다. 바로 그 결과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상승이다.결정적 요인이 인사난맥이다. 이는 시민사회, 국민과의 소통 부재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권력 핵심과 시민사회 인식의 간극이 벌어지는 것은 시대정신에 대한 성찰 부재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명의 총리후보자 낙마가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책임성과 대표성이다. 국정의 최고 집행권자가 국민에 대해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제도가 대통령제다.정홍원 총리 유임은 청와대의 설명대로 국정공백 최소화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국민이 납득할만한 이유라고 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 후 정부의 무능한 대처에 책임을 지는 정치적 행위가 정 총리의 사의표명이었다면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두 명의 총리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청문회 제도 탓으로 돌린다면 이는 본말의 전도(顚倒) 그 자체다. 대통령이 5월19일 '눈물의 담화'에서 밝힌 '국가 대개조'는 국민에 대해 책임지는 정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책임정치의 실종에 대해 국민은 지지의 철회로 민심을 표출하고 있다.2기 내각의 인사청문회가 진행중이다.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는 법적 하자가 없다. 그러나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7·30재보선을 앞둔 인사청문회는 딜레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후보를 낙마시키면 인사실패를 자인하는 결과가 되고 이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지지율의 하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임명권을 행사한다면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 의사를 묵살한 것이 되므로 지지율은 더 하락할 수 있다. 이도 역시 인사문제다.정공법이 답이다. 검증이 소홀해서 국민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후보가 국회의 인사청문 벽을 넘지 못하면 정치적 유불리와 무관하게 민의에 화답하는 것이 권력의 수입을 늘려가는 길이다. 왕도가 없다. 권력은 반만 행사할 때 더 커진다. 남의 의사에 반(反)해서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것이 권력이라는 말은 권력에 대한 사회과학적 정의(定義)일 뿐이다. 보다 큰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뀔 수 있다. 상승할 수도, 더 하락할 수도 있다. 민심은 요동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민심의 추이가 왜 바뀌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은 전략적으로도, 당위적으로도 반드시 필요하다. 권력의 논리에 함몰되지 않는 철저한 반추와 자기성찰은 지지율을 다시 상승하게 할 수 있는 원천이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4-07-08 최창렬

침묵의 소리

'대학을 밟지 마시오'.서울 모 대학 학생들이 만드는 교양지 '중앙문화' 최근호의 커버스토리 제목이다. 운동권 학생 K씨의 '정의가 없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기에 학교를 그만 둔다'는 대자보 내용이 핵심이다. 대학의 가치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유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학내투쟁과 함께 구성원들의 동참을 호소했음에도 반향 없는 현실에 실망했던 탓이다. 자퇴생 K씨는 물론 그를 외면하는 동료 학생들과 이 문제를 다루는 학생기자 모두의 '안녕하지 못한' 실상이 간취되었다. 이 땅의 절대다수 젊은이들 또한 이 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7080가수 사이먼 앤 가펑클의 감미로운 '침묵의 소리' 멜로디가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졸업'의 장면들과 오버랩 되어 뇌리를 스친다. '졸업'은 미남청년 벤이 부모 친구인 로빈슨부인 및 그녀의 딸 엘레인과 동시에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을 묘사한 작품으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대학졸업과 함께 백수가 되는 설정도 당시엔 생경했거니와 사회규범의 허용치를 크게 넘어선 주인공 벤의 일탈 때문이었다.1950~60년대의 미국인들은 부지런히 일해서 초유의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청년들의 대학진학률이 급격하게 높아져 1960년 400만명도 못되던 대학생수가 1975년에는 무려 1천만명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오일쇼크에서 비롯된 스태그플레이션이 수많은 대학생들을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로 전락시켰다. 풍요로운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다음 세대들이 성년이 되어 벼락을 맞은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아메리칸 드림도 깨졌다. 근면성실해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불안과 고물가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1960~70년대의 미국은 마피아, 마약과 히피, 로큰롤과 헤비메탈, 펑키음악, 청바지 등의 시대로 기억된다. 이 무렵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들을 '비트제너레이션'으로 불렀다. '패배의 세대'라는 의미로 현대산업사회로부터 이탈해서 개성의 해방을 부르짖는 무정부주의 경향의 집단을 의미한다. '호밀밭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코필드는 붉은 베레모를 삐딱하게 쓰고 시도 때도 없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문제아였다. 이들 중 일부는 과거의 안일함에 사로잡혀 빈곤 속에서 삶을 마감했다. 이성을 앗아간 정신적 환각은 그들의 신앙(?)이었다. 오늘날 국내 비트족의 상황은 더욱 참담하다. 전후의 경제위기는 청년들의 좌절과 반항문화를 수반했는데 기존의 문화를 거부했던 히피족은 그래도 낭만적이며 애교스런(?)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청년들은 기성문화나 질서에 대한 불만표출은커녕 아예 무반응으로 일관하니 말이다. 엄혹한 경제현실 앞에 젊은이들의 기가 질려버린 것이다.1990년대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은 일본의 뒤를 이어 새로운 세계 공장으로 부상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들은 공산품을 미국에 수출해서 만성적 무역적자에서 겨우 벗어났다. 그러나 미국의 달러화 절하 압박이 화근이었다. 외국자본이 철수하고 수출이 곤두박질했으며 자산시장의 거품이 빠지는 등 경제는 재앙수준으로 급전직하했다. 단기간에 수십만 개의 기업이 사라지고 직장인 4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식 경영 대신에 연봉제와 노동유연화란 글로벌 스탠더드가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초반 학번들은 스스로를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 불렀다.2008년의 금융위기는 점입가경이었다. 상환능력이 부족한 미국 가계에 대한 무차별적 대출세일 후폭풍이 국제금융시장을 강타했다. "광란의 파티는 일단 시작되면 곧 걷잡을 수 없이 전개 된다"는 서양의 속담이 입증된 것이다. 개방 폭이 큰 신흥국일수록 심한 내상(內傷)을 입었다. 한국은 10년 전의 위기를 수습하기도 전에 또다시 강타 당했다. 물신주의가 팽배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각국 경제의 동조화 심화로 비트족의 확대 재생산이 불가피하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침묵의 소리는 사회적 암"이란 노랫말에 눈길이 간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7-01 이한구

승리하는 조직의 비결, 상하동욕(上下同欲)

인천시 정권이 바뀌면서 인사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는 한편으론 새 시장에게 공정한 인사를 바라는 희망 메시지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새 권력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권력은 마치 왁자지껄한 시장(市場)과 같다. 권력자 주변은 시장 바닥처럼 항상 사람들로 들끓게 되며, 사람 장막에 갇힌 권력자는 환상에 도취된다. 또 권력이 사라지는 날 시장 사람들은 새 권력에 붙어 버린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 반복됐던 권력자 주변의 모습이었다. 모든 조직원은 권력에 따라 움직이는데, 공무원 조직은 특히 그렇다. 그들은 권력의 도움으로 조직 위계질서 사다리의 상단부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 그것이 공무원의 본능이다. 오죽하면 공무원에게 왜 사냐고 물으면 승진하기 위해 산다고 답한다고 한다.이런 공무원 조직을 이끌고 성공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손자병법은 그 최고의 비책으로 '상하동욕(上下同欲)'을 말한다. 즉, 최고 장수에서부터 말단 병사까지 모두가 같은 꿈을 꾸는 군대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최고위층부터 말단 조직원까지 같은 꿈을 꾸는 조직은 인화(人和)와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천시(天時)와 지리(地利)가 좋아도 인화가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 인천시 조직에서 '상하동욕'이란 유정복 당선자의 비전이 전 조직원에게 공감되는 상태를 말한다. 모든 공무원들이 시장(市長)과 같은 마음으로 신나게 움직여준다면 성공할 수 있다. 유능한 지휘관이 병사들로부터 공감을 얻으려면 자신부터 진정한 헌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즉, 진정성이 없는 소통은 공감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랫동안 '의리'를 외쳐온 연예인 김보성이 최근 진정성의 화신(化身)으로 등극한 사례도 그것을 말해주는 교훈이다. 새 권력이 들어서면 조직은 표면적으로 응집력이 높아진다. 그러나 소명의식을 공유하지 않는 응집력은 의미가 없다. '이 사회에 무엇을 공헌할 것인가'라는 소명의식이 없다면 응집력이 높아질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조폭 조직을 응집력이 높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오해다. 응집력은 '같이 뭉쳐 있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응집력은 소명의식에 대한 공감에서 나온다. 조폭 집단은 이 소명의식이 없기 때문에 응집력이 높지 않고, 표면적으로 의리와 복종 등과 같은 허상만 있을 뿐이다. 많은 조폭 영화에서 드러나듯, 보스의 뒤에서 칼을 꽂는 하극상이 빈번하고 자리다툼이 치열한 이유는 바로 소명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폭 두목은 조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수익을 만들어 주어야 생존할 수 있다. 이것은 공감하는 소명의식이 없는 조직을 이끄는 것이 얼마나 고난한 일인가를 잘 보여준다. 유 당선자가 설정하는 소명의식이 확정된다면, 그 다음 과제는 그것을 조직원들이 공감하게 하는 작업이다. 이는 유 당선자의 진정한 헌신에도 달려있지만, 조직내 신뢰와 믿음을 높이는 시스템 구축에도 영향을 받는다. 공무원 조직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으로 소위 '당근'과 '채찍'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들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완결 조건은 아니다. 우선 조직원들을 격려하는 '당근'을 생각해보자. 당근이라는 보상만으로 조직원들을 움직이려는 건 부족한 생각이다. 제정 러시아 시절 한 군대에서 벼룩을 잡아오면 포상금을 주는 제도를 설계했었다. 벼룩을 없애고자 했던 보상책이었지만, 놀랍게도 러시아 병사들은 보상을 늘리기 위해 오히려 벼룩을 키웠다. 즉, 벼룩을 없애기는커녕 벼룩이 더욱 늘어난 것이다. 보상책으로만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이런 모순을 낳는다. 사람은 자신이 자신을 통제한다는 생각이 들어야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 또한 '채찍'이라는 처벌만으로도 조직원들을 움직일 수 없다. 미국의 어린이 집은 직장 맘에게 픽업 마감시간을 주고, 그 마감시간을 넘기면 벌금을 부과했다. 이 벌금(채찍)으로 지각이 줄어들 것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지각 횟수가 두 배로 늘어났다. 지각한 대가로 벌금만 내면 늦게 가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했던 것이다. 역시 스스로 움직이는 동력을 주지 않는 한 벌칙으로도 조직원들을 움직일 수 없다. 민선 6기 인천을 이끌 유정복 당선자가 '상하동욕' 조직을 만들어 공무원들의 신바람 속에서 인천시의 도약을 이뤄내길 진심으로 바란다.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06-24 손동원

개방성과 미래 도시

개방성(openness)은 도시가 추구해야 할 주요한 가치이다. 제국주의의 시대였던 19세기와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점철된 20세기에 개방성이나 국제주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북한이나 쿠바 같은 체제 수호를 위한 농성(籠城)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와 규모가 큰 도시들은 저마다 글로벌 국가, 글로벌 시티를 표방하며 개방성을 강조한다. 지식과 정보 역시 개방될수록 더 많은 은총을 내린다. 누리꾼들이 만들어 가는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은 공유된 정보를 재가공하거나 보완하면서 다중(多衆)의 집단지성을 실현해 나간다. 개방성의 확장은 사회 발전의 주요한 방법이자 결과이다. 사회의 민주화도 시민의 참여와 수평적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것이므로 개방성의 구현인 셈이다. 개방성은 문화 정책에서도 중요하다. 문화 분야에서 개방성이란 시민들이 문화시설이나 프로그램을 쉽게 이용할 수 있고 시설의 운영 및 정책수립 과정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이는 향유 가능성 측면에서의 접근성, 과정과 절차라는 측면에서의 공정성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가치이며,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대한 접근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사업에 대한 접근성, 시설운영에 대한 접근성, 운영 방식과 의식 등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시민들이 정보의 제약이나 시·공간적 한계, 경제적·심리적 부담 등으로 인해 문화향유에 어려움을 느끼는 환경이라면 개방성이 담보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개방성은 시설과 공간은 물론 프로그램, 조직운영에 이르기까지 관철되어야 할 미션이라 할 수 있다.도시공간도 개방성을 지향해야 한다. 고층화 밀집화 현상은 현대도시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환경과 교통, 안전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도시인들은 고층빌딩이 밀집된 시가지에서 일과를 보내며 주택도 고층아파트인 경우가 많다. 도시인들의 영혼은 위압감과 폐쇄감 속에서 일상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주말이면 교외로 탈출하는 도시인들이 주로 찾는 곳은 산이나 들판, 해변, 옛 마을이나 유적들이다. 이들 장소의 공통점 중 하나는 개방적 경관으로 폐쇄와 위압의 공간을 벗어나 개방의 공간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방성은 도시 재생의 수단이자 목표이기도 하다. 쇠퇴일로를 걷고 있던 일본의 전통산업도시 가나자와시(金澤市)를 일약 창조도시의 성공 모델로 전환시킨 핵심 프로젝트는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 가나자와시민예술촌, 우미미라이 도서관 건립 등 문화 기반시설 확충을 들 수 있다.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은 2004년 개관과 동시에 국제적 명소로 떠올랐으며 도시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넓은 정원 위에 원형 유리벽으로 지어진 이 미술관은 시민들이 외부정원 어디에서나 내부로 들어가 저녁 10시까지 무료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개관 1년 만에 도시 인구의 3배인 158만명이 입장할 정도의 명소가 되었는데, 바로 '문도 없고 문턱도 없는' 개방주의 콘셉트의 승리라 할 수 있다. 도시 공간의 개방성 구현을 위한 연구 성과는 상당히 축적되어 있다. 건축과 경관미학에서 개방성은 조망점에서 건축물을 올려다보는 각도인 앙각(仰角), 건축물의 입면적 그리고 오픈스페이스의 면적 등을 변수로 측정한다. 앙각이 클수록, 건축물의 입면적이 넓을수록 개방성은 감소한다. 반대로 앙각이 작을수록, 입면적이 좁을수록, 오픈스페이스의 면적은 넓을수록 개방성은 증대된다. 드높은 마천루를 세워 도시의 랜드마크로 만들려는 시도는 안전과 환경, 정서적 측면에서 시대착오적이다. 미래도시는 광장이나 오픈스페이스와 같은 수평적 경관요소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도시인들의 무의식까지 상쾌하게 만들어야 한다. 생태하천을 복원하고 방치되어 있는 해변을 친환경적 워터프론트로 바꾸어 나간다면 지역주민은 물론 도시의 방문자들에게도 커다란 기쁨이 될 것이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4-06-17 김창수

의병장의 손자 한민구 국방장관 내정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한민구 전 합참의장을 국방장관으로 내정하고 인사청문요청서를 5일 국회에 제출했다.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 시절부터 한봉수 의병장의 손자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한 의병장은 충북 청원에서부터 의병을 일으켜 충청지역은 물론 평택 장호원, 심지어 강원도 횡성까지 종횡무진하며 일본군을 무찌르는 등 유격전술의 명장으로 '번개대장'으로 불린다. 항일 독립운동가의 피가 흐르고 있는 손자 한민구 장군이 국방장관에 내정된 1일은 제4회 의병의 날이자 호국보훈의 달이 시작되는 날이어서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박 대통령은 요청서에서 "한 후보자가 40여년간의 군 복무 기간 국방부 정책기획관, 수도방위사령관,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 등을 두루 역임하면서 국방정책의 발전과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해온 전문가로서 위중한 안보상황 아래서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방태세를 튼튼히 할 수 있는 최적임자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한민구 내정자는 합참의장 재임 시절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한 대응과 '아덴만 여명 작전'을 직접 지휘했던 경험이 있는 데다 항일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훌륭했던 할아버지 못지않게 손자 또한 비범한 사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35년 전(1979~82년) 사병으로 근무할 때 나는 한민구 대위를 중대장으로 모시게 됐다. 당시만 해도 시설이나 장비가 열악한 데다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문화가 자리잡은 어려운 시절이었으나 사병들을 마치 동생처럼 대해주던 인자한 분이었고, 소대장과 선임하사들 모두 한 가족과 같이 그를 따랐다.전투지원중대의 특성상 장비가 많고 훈련 또한 다른 부대보다 잦았다. 형제처럼 뭉쳐진 부대 분위기는 연대전투단훈련 사단기동훈련 팀스피리트 보전포합동훈련 등에서 최상의 전투력을 발휘했다. 한민구 중대장은 육사와 서울대에서 전사학을 공부해 각종 전투 상황에 따라 탁월한 전술능력을 갖춘 지휘관이었다. 유창한 영어실력은 미국의 고위 장성들이 대전차방벽을 방문할 때마다 브리핑을 도맡게 했다. 문무를 겸비했다는 세간의 평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결혼식을 올린 뒤에는 부대 옆 단칸방에서 노모를 모시고 신혼생활을 한 효자이기도 했다.어느 날 서무병인 나를 부르시더니 노랗게 바랜 케케묵은 자료를 내밀었다. 일과 후 시간날 때마다 연대(年代)별로 또박또박 정리를 했다. 그의 할아버지인 한봉수 의병장의 항일독립운동 자료였다.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기록을 그때부터 꼼꼼하게 챙긴 것을 보면 아직도 그의 핏속에는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관학교 출신 대위들에게 주어진 사무관 전직의 기회를 마다하는 것을 보고 그때 나는 이미 한민구 대위의 앞날을 조심스레 예견했다. 그의 품성과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지만 한번 맺은 인연을 지금까지 놓지 않고 지속하는 의리파다. 내가 제대한 이후 1982년 소령에 진급한 후 육군사관학교 전사학 교관으로, 전방 사단의 대대장, 연대장으로 또 영예로운 장군진급과 주요 보직을 맡을 때마다 군내(軍內) 선후배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온 그다. 식사를 하며 장군으로 부르면 굳이 중대장으로 부르라고 주문하시는 겸손함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꼼짝없이 그를 중대장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합참의장 시절인 2011년 1월 해적에게 피랍된 주얼리호(1만t급)를 소말리아 인근 해상에서 구출해 국내외의 찬사를 받았다. 자신이 이름지은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것이다. 아이티 구호활동을 위한 파병부대 이름도 가뭄에 단비 내리듯 하게 한다는 의미로 하여 '단비부대'로 지은 이가 그다. 지금의 정세는 북한의 제4차 핵실험 가능성과 서해 5도에서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한민구 내정자와 같은 문무를 겸비한 전략기획통의 국방장관이 더욱 필요하다. 내가 겪은 '한민구 중대장'의 인품과 능력이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 것처럼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확신한다./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6-10 이준구

법으로도 '전관예우'를 막을 수 없다면

현재 TV에서 방영중인 '개과천선'은 대형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를 다룬 드라마다. 거대 로펌 에이스 변호사 김석주. 재판에 이기기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철한 그가 우연한 사고로 기억을 잃은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고 건전한(?) 변호사가 된다는 법정드라마다.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로펌대표 차영우는 능력이 출중한 판사 전지원을 자신의 로펌으로 스카우트 하기 위해 협상을 벌인다. 지원이 고집을 꺾지 않자 "변호사 출신 대법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정확히 15년 뒤 그자리(대법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 각서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대형 로펌 대표가 공직을 움직일 정도로 막강하다는 뜻이다. 비록 드라마지만 이 부분에서 등골이 오싹했다. 실제 대한민국 대형 로펌의 힘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대형 로펌의 힘은 이제 누구도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다른 말로 하면 대한민국은 이미 '로펌공화국'이 된지 오래다. '법과 원칙'의 상징이었던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조차 서 보지 못하고 낙마했다. 검사 시절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맡아 여·야 현역 의원들은 물론이고 당시 정권의 실세들까지 감옥에 보내는 강단을 보였던 그였다. 검사와 대법관 시절 재산 공개때마다 항상 최하위권을 기록해 '안대희 그 자체가 청렴'이라는 평도 들었다. 그러나 '전관예우'의 관행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전관예우. 그리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한 대학을 나오고 평범한 직장을 다니다가 평범하게 회사를 관둔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대한민국은 오래 전부터 '전관예우 공화국'이었다. 평범한 국민들만 몰랐을 뿐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공직에 전관예우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전관예우의 고리를 끊기 위해 대통령도 나섰지만 과연 그 튼튼한 연결고리가 끊길지는 비관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어느 누구보다도 관료·검사·법관 출신 중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총리 정홍원, 법무부장관 황교안, 외교부장관 윤병세가 모두 대형 로펌 출신이다. 이들은 공직에 있다가 퇴임한 후 로펌으로 갔다가 다시 공직으로 돌아온 케이스다. 당시 야당 의원들이 황 법무부 장관을 가리켜 "대형 로펌이 황 내정자가 고위 공직자가 될 것을 기대하고 16억원을 줬다면 전관예우에서 나아가 '후관예우', '쌍관예우'인 셈"이라고 몰아붙였었다. 현직에 있는 공직자들은 변호사나 회계사 개업을 하고 있는 선배가 어느날 갑자기, 총리나 장관으로 회귀하는 게 신경쓰인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전관예우'보다 더 염두에 두고 예우를 갖춘다는 것이다. 이것이 '후관예우'다. 이같은 전관·후관예우가 문제가 되자 이를 금지하는 '공직자 윤리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은 퇴직한 고위 관료가 법무법인 등 사실상 로비스트로 활동하다가 다시 공직에 취임하는 경우 제한을 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지만 일반 변호사를 개업하면 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법의 허점이 있는 것이다. 야당이 최근 '안대희 방지법'이라 명명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5월 임시 국회 회기 전까지 발의하겠다고 한 이유다. 김능환 전 대법관. 그는 퇴임 다음날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평범한 서민의 삶으로 돌아가 국민의 영웅이 됐었다. 그러나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즉 '말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맹자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5개월만에 대형 로펌으로 돌아갔다. 국민이 받은 충격은 컸다. 세상 일이 쉬운 게 없다. 그렇다면 전관예우는 어떻게 막아야 하나. 첫째, 법원과 검찰이 사건을 투명하게 처리하고 사회단체와 언론은 끝없이 그들을 감시해야 한다. 둘째, 국민들 즉 의뢰인이 전관에 대한 '믿음'을 버려야 한다. 물에 빠진 의뢰인들에게 전관의 유혹은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전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재판에 승소한다는 그 '믿음'이 없어지지 않으면 전관예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안될 경우 마지막 세번째, 평생 공직에서 국가가 주는 녹을 먹었으니 이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선비같이 청빈한 삶을 살아 달라고 감성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도 말처럼 쉽지가 않다. 개과천선의 사전적의미는 '범죄자가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 작가가 그런 제목을 붙인 것은 슬프게도,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 많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4-06-03 이영재

총리론

헌법은 국무총리에 대해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다른 조항에서는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적고 있다. 이른바 '책임총리'의 근거조항이다. 그러나 역대 총리는 거의 내각의 상징적인 존재로 그치기 일쑤였다. 대통령제의 특성상 불가피하다. 명망가형 총리, 화합형 총리, 관리형 총리, 정무형 총리 등 총리의 출신 배경이나 성향에 따라 붙인 작위적인 분류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정국이 요동치고, 민심이 이반될 때 총리를 포함한 내각에 책임을 묻는 정치적 행위는 민심의 소재에 부응한다는 면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총리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큰 이유이다. 따라서 제한적인 총리의 역할 범위 내에서라도 국민이 납득하고 정서에 부합하며 시대정신에 응답할 수 있는 인물을 써야 함은 불문가지이다.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에 많은 성찰과 뼈저린 회한을 남기고 있다. 정경유착과 민관유착이 대참사를 야기한 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관피아의 혁파 없이는 한국사회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고 있음도 확인했다. 이의 처방으로 공직사회 개혁과 공정한 사회로의 개혁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차분하게 돌아보고 먼 원인과 가까운 원인에 대한 구분 없는 몰아치기식의 진단과 처방은 또 다시 많은 모순을 원점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대참사가 우리 사회에 치열하게 던지고 있는 화두는 한국사회의 총체적이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다. 관료와 민간의 유착은 왜 생겼으며 이념적 간극은 왜 더 벌어지는가에 대한 숙의이다. 부정부패가 왜 구조적인 문제로 고착화됐는가에 대한 진단이 우선되어야 한다. 경제적 근대화는 국가의 압도적 우위를 결과했으며, 시민사회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권위주의 정권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억압했고 산업화의 명분으로 인권은 배제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권과 인간의 가치보다는 자본과 이윤의 논리가 절대시되는 물신주의가 배태되었다. 국가권력과 관료가 주도하는 근대화 과정에서 관과 기업의 유착은 애당초 예정된 수순이었다. 관피아는 단순히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고도성장은 시장물신주의에 입각한 황금만능주의의 극대화를 가져왔고 이는 관료와 민간의 유착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양극화는 심화됐고, 이념과 지역 차원의 불화는 좀처럼 치유되지 않는다. 상위 소득이나 하위 소득 계층 가릴 것 없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유난하고 유별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 치부할 수위를 벗어난지 오래다. 그래서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경제민주화가 헌법 조항에 들어가고, 대선 과정에서 여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든 것이 아닌가. 대통령 담화가 있은 다음 날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차관회의를 열어 대통령 담화의 조치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을 다음 달 초까지 마련하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여전히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관료주의의 획일화 모습이다.안대희 국무총리 지명자는 부정부패 척결과 공직사회 개혁을 다짐했고, 공정과 법치에 입각하여 총리 업무를 수행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좋은 말들이다. 공직사회의 대부분을 검찰로 지낸 사람다운 얘기이며 부정적으로 평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찢기고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치유하는 화합과 탕평의 정신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모든 처방은 임기응변에 그칠 수밖에 없다. 부정부패 척결과 법치, 공정은 검찰권의 행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릿발 같은 법치 이전에 한국사회의 심연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는 부정부패 척결과 공직기강의 확립은 일시적인 사정 드라이브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안대희 총리 내정자가 놓치면 안 될 부분이다. 시대정신을 통찰하는 지성과 냉정한 상황인식이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연결될 때만이 책임총리도 가능하다는 사실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 안대희 내정자는 검찰총장이 아닌 국무총리직을 수행해야 한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4-05-27 최창렬

세금 내기 아까운 나라

평범했던 주부 김옥주(53)씨의 인생은 한순간에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허리디스크와 고혈압에다 공무집행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8가지 죄목으로 올해 초에는 검찰에 기소까지 된 것이다. 2011년 2월 17일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면서 악착같이 모았던 예금 2억원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 화근이다. 돈을 떼인 사람들 대부분이 자갈치시장 인근의 60, 70대 노인들이어서 김씨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사태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결국에는 돈 잃고 몸까지 망친 기막힌(?) 신세로 전락했다. 부산저축은행사태는 이후 26개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등 사상 최대의 금융사고로 비화되었다. 피해자수가 10만명을 넘고 사회적 비용만 물경 27조원에 육박한 것이다. 오너 경영인들의 '벼룩 간 빼 먹는' 악질범죄와 부실한 금융감독이 빚은 합작품이나 '88클럽'규정이 결정적이었다. 노무현 정부 3년차인 2005년에 재정경제부는 "영업활동 규제는 최대한 풀어주되 건전성 감독은 더욱 강화한다"며 98건의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내용의 '제로베이스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그중 하나가 '88클럽'인데 자기자본비율 8%이상, 고정 이하(연체 3개월) 여신비율이 8%이하의 조건을 충족한 우량저축은행들을 지칭했다. 당시 금융당국은 모든 저축은행에 한 법인에 최대 80억원까지만 대출하도록 강제했으나 '88클럽'조건을 충족한 은행에 한해 대출제한을 풀어주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투자를 겨냥한 저축은행업계가 정부에 집요하게 로비해서 얻은 결과였다. 저축은행들은 88클럽 가입을 위해 후순위채를 경쟁적으로 팔았으나 부동산거품 붕괴로 막대한 혈세 낭비와 서민경제를 거덜 냈다. 그러나 이 사태와 관련해서 책임지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제도를 고친 지 6년만에 사고가 터졌으나 관련자들 모두는 이미 공직을 떠난 것이다. 지난해 수많은 투자자들을 울린 동양증권 불완전판매사건도 규제완화가 빚은 해프닝이다. 사기나 다름없는 범법행각에 또다시 서민들만 당했다. 세월호 대참사는 압권이었다. 1985년까지 20년으로 묶여있던 여객선 선령을 2009년에 다시 30년으로 늘렸다. 해운사들이 경영난을 이유로 선령규제를 풀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자 청와대와 국민권익위원회가 서둘러 국토해양부에 개선책 마련을 지시함으로써 민원 6개월만에 해운법 시행규칙을 바꾼 것이다. 해운사들은 선령제한에 따른 업계손실액이 200억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물 배의 수명을 연장하는데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서울대 해양시스템공학연구소가 선주들 모임인 한국해운조합에 낸 '현행 여객선 선령제한의 적정성 판단 및 개선방안 연구'에서 "20년 이상 된 노후선박은 구조적 강도를 결정짓는 선체의 강판, 항해장비의 노화가 함께 발생한다"고 지적했으나 그뿐이었다. 불과 200억원의 추가이익을 얻자고 무리하게 규제를 풀어준 탓에 이로부터 5년이 흐른 지난 4월 16일 476명을 태운 세월호는 총체적 부실을 안은 채 침몰한 것이다. 고질적인 권경(權經)유착이 초래한 비극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 했다. 또한 규제는 시소와 같아서 제거할 때 좌면우고(左眄右顧)는 필수적이다. 국가는 사회적 약자들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을 더욱 강화해도 모자랄 판에 작금 정부는 '대못' 운운하며 군사작전 하듯 서둘러 제거했으니 탈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혼 없는 천민자본보다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공복(公僕)들이 더 밉상이다. 생선가게 고양이보다 못한 인사들이 공직을 독식한 인상이니 말이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거듭된 재발방지 다짐도 국정최고책임자의 구태의연한 립서비스 쯤으로 폄훼하는 듯하다.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똑 같은 연출이 되풀이되는 형국이니 말이다.국민들은 언제, 어디서, 누가 또다시 날벼락(?)을 맞을지 전전긍긍이다. 용한 무당을 찾아 액막이굿이라도 벌여야 할 지경이다. 종합소득세 납부의 달이다. 세금 내기가 아깝다는 느낌이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5-20 이한구

기업윤리를 다시 생각한다

시장경제를 믿는 자도 기업인의 과도한 탐욕에는 탄식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시장경제의 제창자인 아담 스미스조차 이득에만 눈이 먼 탐욕을 경계했다. 그는 '도덕 감정론'이란 저서에서 '하느님은 미워하는 사람에게 탐욕을 심어주고 파멸시킨다'라고 말하고 있다. 탐욕만 가진 인간은 무너진다는 경고를 준 것이다.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인들은 욕심을 조절하지 못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전 국민을 놀라게 한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의 무모한 탐욕은 조절장치가 망가진 야욕의 끝을 보여준 셈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에는 너무도 적극적이지만 고객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서는 한 치의 배려도 없는 어이없는 윤리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그 낮은 윤리수준이 우리 사회 곳곳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기업윤리의 실상은 이미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구분 없이 윤리와 도덕 점수는 낙제점이 많았다. 대우그룹의 파산에서부터 한보 정태수 회장의 해외 도피, 저축은행의 줄도산, 동양그룹의 파산 등에서 기업윤리의 희망적인 파편을 본 적이 없다. 도대체 왜 이 정도까지 윤리수준이 추락하게 되었는지 안타까움이 너무 크다. 우리는 일본과 미국의 선진기업들을 추월하고자 했지만, 그들이 가꿔온 윤리의식은 따라잡지 못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기업윤리 수준이 높다. 일본 기업은 직원에 대한 배려가 많으며 이윤을 사회에 돌려준다는 의식도 강하다. 일본기업의 강한 윤리의식은 자신들의 영웅인 시부사와 에이치의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그의 책인 '논어와 주판'의 영향이 컸다. 그는 사혼상재(士魂商材), 즉 선비와 같은 절개와 도덕, 그리고 상인으로서의 재능을 겸비하는 것이 기업가의 이상임을 강조했다. 1930년 이전 일본기업들은 시부사와의 영향권에서 탄생했다. 마쓰시타 전기를 비롯해서 샤프와 히타치 등은 시부사와 정신의 계승자답게 사회에 대한 높은 책임감을 보여주었다. 또 이 정신은 현재까지 잘 전수되어 신생 기업들조차 윤리 경영에 적극적이다. 우리가 아직 일본경영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남아있는 것이다. 미국의 기업가정신에 대해서도 우리는 반쪽만 학습한 편이다. 부를 추구하는 기업가의 욕망이 국가의 성장 동력이라는 점은 학습했지만, 기업가의 최고 덕목인 위험을 돌파하려는 도전정신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했다.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가정신은 자신의 주머니만 채우면 된다는 안일한 정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기업가정신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 수익을 창조하려는 유전자를 말한다. 우리는 아쉽게도 미국 기업가정신의 진면목인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정신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직 기업가의 부에 대한 욕망을 통해 사회가 발전한다는 표면적인 논리만 받아들이다 보니, 시장을 어지럽히고 사리사욕만 채우려는 것도 기업인의 덕목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급기야 엉터리 장사꾼들이 설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 오해가 있다. '기업은 이윤을 만드는 것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오해가 바로 그것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옳은 말도 아니다. 경제적 가치의 창출은 사회에 큰 도움이며 기업의 고용효과는 중요한 사회 공헌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얻고 그것을 기업가가 가져가도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 오해로 인해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기업가의 금전 지상주의를 인정해 주고 그 욕망을 견제하는 것에는 소홀했다. 그 결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은 전혀 없고 오직 쉬운 사업모델을 발굴하여 개인 주머니만 불리는 방책이 능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기업윤리 체계가 망가진 상황임을 생각할 때, 개인적 차원의 의식전환에만 맡겨 놓을 상황은 아니다. 개인의 무모한 탐욕은 두려움을 통해 균형을 이뤄야 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규제 완화는 필요하지만, 안전과 생명을 담보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규제가 철저해야 한다. 정부도 엄해야 할 때는 제대로 엄해야 한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05-13 손동원

대학 특성화사업 어디로 가는가?

수도권 및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의 시행을 앞두고 대학별로 예술관련 통폐합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대학특성화사업은 본래 국내 대학들이 학과 설치, 학생 선발, 교육과정 운영 등에 있어서 특성과 차별성이 없고 모든 대학이 전 학문분야에 걸쳐 백화점식으로 학과를 설치 운영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대학 교육의 획일화가 초래되고 있다는 진단에서 출발한 사업이었지만 결점이 한 둘이 아니다. 3월에는 서일대 연극과와 문예창작과 폐지 방침이 알려졌으며 서울시내 사립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예술 관련학과 통폐합을 둘러싼 내부 진통이 심각한 실정이다. 현재 교육부는 '수도권 및 지방대학 특성화사업'을 추진하면서 평가 지표에 정원 감축 가산점을 부여하고, 대학별 졸업생의 취업률을 반영하고 있다. 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지원 기준은 대학별 구조조정 결과에 대한 가산점이다. 2017년까지 10% 이상 감축시 5점, 7~10% 미만 4점, 4~7% 미만 3점을 반영하는데, 이같은 정원 감축이 사업단 선정의 결정적 변수가 되고 있다. 재정이 어려운 대부분의 지방 대학은 이 사업에 목을 매달 수 밖에 없다. 대학의 규모와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감축 인원만 평가하여 일률적으로 정원 감축만 유도하는 사업이 되고있는 것이다. 이 평가제도는 대학에서 취업률이 낮은 예술계열 학과를 통합 또는 폐과하는 사태마저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예술분야 학과의 평가 기준으로 취업률을 삼는 것은 예술분야의 직업 특성이나 현실과는 동떨어진 탁상행정이 아닐 수 없다. 문화예술 관련 졸업생들은 상당수가 자유직업인 예술가로 활동하며, 설사 취업을 한다해도 4대보험을 납부해줄 수 있는 규모의 직장은 예술분야에서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술학과 학생들의 취업률을 대학 평가에 반영해 논란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교육부는 2011년 9월 학자금 대출 및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을 선정하는데 취업률을 주요 평가기준으로 삼았고, 예체능 관련학과 비중이 높은 대학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게 돼 반발을 부른 적이 있었다. 대학 특성화가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할 우려는 그뿐 아니다. 현행 평가지표 가운데 대학의 시스템 개혁 분야에는 학과 통폐합이 포함되어 있으며, 대학 거버넌스 및 인사행정제도 혁신 분야에는 국립대학의 총장직선제 관련 규정을 폐지하지 않을 경우 각종 지원의 불이익을 주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때문에 대학가에서는 초등학교 반장도 직선제로 뽑는데 대학 총장을 간선제로 선출해야 하느냐는 자조 섞인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의 열악한 재정 상황이라는 발목을 잡고 대학 운영 구조를 정부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 한다는 불만이 높아가고 있다. 미래사회는 융합형 창의 인재를 필요로 하고 창의성과 상상력의 중요한 토대는 문화예술이다. 문화예술 역량은 창조화사회의 기반이기 때문에 지금은 문화예술발전에 투자를 늘리고 특히 문화예술교육의 질적 양적 확대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특히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서 문화예술 전문 인력의 양성이 절실한 실정이며, 그 역할을 대학이 맡을 수 밖에 없다. 사정이 이런데 대학교육 현장에서는 인문예술관련 학과의 통폐합이라는 역주행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향후 한국의 문화 경쟁력에 치명적인 약점이 될 공산이 크다.정부는 취업률 중심의 대학 평가 정책을 철회하고 대학이 본연의 창의 인재 양성 기능을 다할 수 있는 지원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할 것이며, 부작용을 낳고 있는 대학특성화사업의 추진 방향은 시급히 수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대학 평가제도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인 문화융성과 모순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자가당착의 우를 범하고 있다. 한편 대학도 교육부의 평가 기준에 맞춘 획일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지양하고 미래지향적인 인재 양성을 목표로 대학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4-05-06 김창수

'잔인(殘忍)한 달' 4월을 보내며

온 천하가 통곡하고 있는 4월의 마지막 날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중략)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의 장편 시 '황무지'의 한 구절이다. 제1·2차 세계대전 후 주검들과 뒤덮여 있는 땅에서 새싹과 꽃들이 피어나는 걸 보고 잔인한 달이라고 엘리엇이 표현했다는 해석도 있다. 지금도 진도 앞바다 한가운데서 아우성치고 있을 못다 핀 어린 주검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온다. 그토록 잔인했던 4월에 어른들의 무책임으로 내던져진 이 고귀한 목숨들이 너무 가엾다. 할 말이 없다.4월 16일 오전 9시 29분 필자의 휴대전화에 '진도 해상서 350여명 탄 여객선 조난신고, 침수중'이라는 문자가 떴다. 눈과 귀를 의심했다. 모 통신사가 실시간으로 제공해 주는 뉴스다. 이어 9시 58분에는 '경비정, 헬기 동원 120여명 구조', 10시 18분 '여객선 좌초, 190명 구조', 11시 22분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11시 27분 '여객선 완전 침몰… 승객은 전원 탈출한 듯'이라는 희망적인 소식들이었다. 그러나 오후 1시 41분 '107명 실종, 생사불명'으로 상황이 뒤바뀌었다. 공식발표는 구조에서 실종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고 실종자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늘었다. 서서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 같은 중앙재해대책본부와 언론의 확인 없는 발표와 보도로 국민들의 혼란은 더해갔다. 그러나 합동수사본부가 28일 밝힌 실종 학생의 '기다리래'라는 마지막 카톡 시간은 세월호가 물속에 가라앉은 오전 10시 17분이었다. 선장이 탈출한 뒤 31분이나 지난 뒤였다. 조금만 더 대처가 빨랐다면 많은 사람을 구조했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퇴선명령을 내렸다던 선장의 새빨간 거짓말이 드러났고, 선장이 속옷 차림으로 배에서 빠져나오는 생생한 모습의 동영상도 공개됐다. 이로써 11시 이후의 '전원구조, 탈출' 등은 모두 허위발표와 보도로 드러난 셈이다. 얼마만큼 초동대처를 하지 못한 채 허둥댔는지를 알 수 있다. 중앙재해대책본부의 세월호 탑승인원 발표만 공식적으로 6번이나 바뀐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구조의 골든타임을 이미 놓쳤고, 어느 한 구석 제대로 작동되는 시스템이 없었다.부처마다 우왕좌왕했다. 대통령이 사고 현장에 내려가 가족들과 구조대책을 약속했지만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국회의원과 고위 공무원은 기념사진이나 찍는다. 교육부장관은 실종자 가족들이 오열하는 진도체육관 의자에 걸터앉아 컵라면을 먹는다. 청와대 대변인은 끓이지도 않았고, 계란도 넣지 않았는데 뭘 그러느냐고 두둔한다. 이쯤되면 한심한 수준을 넘어선다. 해양경찰서장은 80명이면 많이 구조한 것이라고 말한다. 승객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할 선장과 승무원들은 470여명의 목숨을 내버려둔 채 탈출했다가 지금 감옥에 가 있다.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현재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모든 영역에서 잘못된 관행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국가 운영체계의 틀을 확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암을 도려내는 것처럼 침몰위기의 나라를 살리겠다는 의지로 곪아터진 부분에 대한 과감한 수술을 단행해야 한다. 무사안일한 생각으로 책임을 다하지 않는 공직자들은 대통령의 약속대로 퇴출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정부도, 정치권도, 사회도, 국민 모두 통렬하게 반성하자.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암적 요소들을 척결하자. 애꿎게 희생된 이들에게 사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아직도 실종된 아이를 찾지 못해 통곡하는 어버이들의 찢어지는 가슴을 버려두고 그토록 잔인한 4월은 저만치 가고 있다. 얘들아, 대한민국은 할 말이 없단다. '너희들 앞에 영원한 죄인은 어른들이다. 미안하다. 고이 잠들거라.' 이 말밖에는…./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4-29 이준구

20년 전 베이징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20년 전. 그러니까 1995년 4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베이징에 주재하는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정치권ㆍ정부ㆍ기업이 모두 잘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예를 들어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게 실수였다. 대한민국 최대 그룹 총수가 겁없이 정부와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한 이 말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2년전 대선에서 현대 정주영 회장과 대권을 다투었던 김영삼 대통령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이 회장의 말을 정치에 도전하는 거대한 경제권력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말 한번 잘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국민과는 달리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정곡을 찔린 청와대와 정치권은 발끈했다. 특히 김영삼 정부는 당시 끊임없이 터지는 대형사고로 인해 깊은 상심에 빠져 있었다.1993년 3월 78명이 사망한 '구포역 무궁화호 전복사고', 그해 7월 68명이 사망한 '아시아나 733편 목포 추락사고', 10월 292명이 사망한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94년 10월 32명이 사망한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잇달아 터졌다. 이 회장 발언이 있던 95년 4월에도 101명이 사망한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그리고 두달 후 6월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문민정권은 치명적인 결정타를 맞았다. 그리고 97년 8월 228명이 사망한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가 일어났다. 이 회장 발언 이후 삼성은 발언 배경과 진의를 해명하느라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이 회장의 말은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의 발언은 그후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수준을 이야기할 때 자주 오르내리는 '명언'이 됐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사고 앞에서 할 말을 잃은 국민은 지금 깊은 슬픔에 잠겨있다. 하지만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20년 전 이 회장이 '3류 정부 4류 정치'라고 일갈했던 그때와 지금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게 있다면 언론이 하나 더 추가된 정도다. 이번 사고로 3류로 전락한 정부는 스스로 '무정부 상태'를 연출했다. 컨트롤타워는 붕괴됐고 대책본부와 해경, 해군, 해양수산부가 제각각 따로따로 움직이고 있다. 어디 이 뿐인가. 시신안치소를 방문한 해양수산부 장관을 동행한 공무원은 "기념사진을 찍자"고 말했다가 유가족의 분노를 사고 결국 사표를 냈다. 교육부 장관은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컵라면을 먹다 구설수에 올랐다. 먹는 게 무슨 죄가 있으랴마는 모두 울고 있는데 혼자 컵라면을 먹고 있는 장관을 상상해 보라. 3류라는 말조차 과분할 정도다.정치권도 다를 게 없다. 사고 초기 사고 현장을 찾아 사진을 찍으려던 정치인들은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트위터에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자작시를 올렸다가 망신을 자초하거나, 해경 경비정을 타고 현장을 방문했다가 "국회의원직이라는 특권으로 실종자 가족은 타지 못한 경비정을 탔다"는 논란에 시달린 정치인도 있었다. 그 와중에 당의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폭탄주를 마신 여권 시장 후보, "(구조가 더딘 것) 이 정도면 범죄 아닐까"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린 야당 초선의원에게는 고생하는 잠수부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며 혹독한 비난이 쏟아졌다.언론의 '추락한 품격'은 더 큰 문제였다. 4개의 지상파 방송, 4개의 종편방송, 2개의 뉴스전문채널에서 경쟁하듯 쏟아내는 뉴스로 국민들은 넋이 빠져 있다. 한 종편방송 진행자는 구조된 학생에게 친구의 죽음을 묻다가 여론의 질타를 당했고, 또 한 종편방송은 민간 잠수부라는 신분이 불분명한 여성을 생중계로 연결했다가 보도국장이 공식 사과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방송사간의 경쟁이 나은 비극이었다. 이번 사고에서 언론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컸던지 취재기자가 유가족에게 폭행을 당하는가 하면 마침내 유가족들이 언론 보도 자제를 요청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20년 전 문민정부와 정치권이 한 기업인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고 3류를 1류로 바꾸려는 노력을 했다면 세상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정권이 네번 바뀌었다. 이 회장의 삼성은 지금 세계 최고의 기업이, 대한민국은 IT 최강국이 되었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는 여전히 3류에 머물러 있고, 대형 참사는 계속 터지고 있으며 그로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고 있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4-04-22 이영재

안철수의 '현실정치'와 '새정치'

현실정치와 권력정치는 종종 동의어로 혼용되어 사용된다. 그러나 권력정치가 권력의 획득이라는 목표를 위해 수단을 정당시하는 것임에 반해, 현실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 정치라는 평범한 명제에서 출발한다. 현실정치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인사들에 대한 진지한 설득과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과정으로부터 출발한다. 물론 자파세력을 포진시키는 것, 세력간의 다툼이 현실정치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불가피한 쟁투의 모습이 권력정치로 치환되지 않으려면 현실정치가 새정치로 보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실정치와 새정치는 반드시 상호모순적이지 않다. 안철수 대표는 현실정치와 새정치를 자신의 편의에 따라 정의하고 행동했던 것이 아닌가 되돌아봐야 한다. 안철수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었던 기초선거 무공천은 좌절됐다. 그리고 기초무공천과 새정치를 과도하게 등치시킨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는 빛이 바랬다. 그러나 새정치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새정치의 내용이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 명분이었던 기초무공천은 애당초 새정치를 담보할 수 없었다. 또한 통합의 고리로도 미약했다. 안철수 의원이 부딪쳐야 했던 현실정치의 벽과 김한길 대표가 직면했던 당내 리더십의 위기가 만난 지점이 합당이라는 주장이 정파적 혐의가 짙어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기초공천을 둘러싼 논란으로 안철수 입지의 약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다음이 더 문제다. 기초무공천 철회 이후 보여준 안 대표의 정치행태다. 개혁공천을 들고 나왔다. 그 자체가 문제될 건 없으나 개혁공천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안철수 대표 측과 구 민주당, 특히 친노진영의 공천 다툼으로 비치고 있고, 광주지역 의원들의 윤장현 후보 지지 선언은 그 자체로 개혁공천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안철수 대표가 대표직을 걸었던 기초무공천의 명분은 기초선거에서 국회의원들의 후보 줄세우기를 혁파하고 지방자치의 본래 뜻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야권의 정치적 상징성이 강한 광주에서 안철수 측 인사에 대한 의원들의 지지선언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개혁공천은 불가피하게 현역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물갈이를 수반할 수밖에 없고 상당수 현역단체장과 의원들이 구 민주당 계열이라면 계파대립은 불가피하다. 기초공천을 둘러싼 계파갈등으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들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고, 정당지지도조차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개혁공천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논거와 명분을 갖추지 못하면 야권의 자중지란은 가속화될 수 있다. 5:5 공천 지분의 기계적 균형에 집착해서는 개혁공천도, 지방선거의 승리도 장담할 수 없다. 자파 세력 심기에 집착하는 모습은 개혁공천의 정신을 훼손시킨다. 기계적 물갈이는 현역단체장과 의원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어느 선거에서나 물갈이가 공천개혁의 화두로 등장한다. 특히 총선거에서 물갈이 비율이 높기로는 세계적으로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없다. 그러나 아직 한국의 의회가 물갈이를 잘 해서 세계에서 정치 모범생이 됐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17대 국회가 그랬고, 18대 국회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물갈이에 또다시 새정치의 모든 것을 거는 우를 범한다면 안철수 대표는 학습효과와는 아예 담을 쌓은 정치초년생이라는 비아냥에 시달릴지 모른다. 안철수 대표가 할 일은 새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현실정치에서 자파 세력을 포진시키지 못하고는 후일을 장담할 수 없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가 특정 계파의 좌장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자리매김했다면 새정치란 말을 입에 담아선 안된다. 구시대 정치와 같은 문법으로 정치를 얘기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새정치는 민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피곤한 영혼들이 왜 삶에 대해 좌절하는지, 아직도 새정치 화두는 왜 유효한지를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때, 거대 양당 구조를 깨겠다던 안철수가 바로 그 거대정당 '호랑이 굴'에 들어간 보람의 단초라도 열릴지 모른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4-04-15 최창렬

도전 받는 한국 기업문화

금년 1월 2일 캄보디아에서 개발독재시절의 YH여공 폭력진압과 흡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공수부대가 파업현장을 무력으로 제압해서 노동자 5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한 것이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의류업체들이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저임금 시정을 요구하는 노동운동에 군대를 동원한 혐의를 받은 것이다. 권위주의와 황금만능의 천민적 경영도 도마에 올랐다. 진실이야 어떻든 한국기업문화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것 같아 개운치 못했다. 경우는 다르나 국내 간판기업들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발견된다. 세계최대의 직장평가 사이트인 '글라스도어'에는 세계IT업계 5위 삼성전자와 61위 LG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에 대한 현지인들의 리뷰 글들이 상당한데 부정적인 평가가 유달리 많아 보인다. 푸른 눈의 리뷰어들은 해당 기업의 전현직 근로자들이어서 영향력이 큰데 주목되는 사례로는 "직장상사가 부하직원에 큰소리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상사가 매우 무례하고 폭력적이다", "출근이 1분이라도 늦으면 직장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으며 일을 다 끝내도 퇴근 못하고 윗사람 눈치를 본다", "경영자들은 늘 회사위기만 강조하면서 정신 차리라는데 너무 식상하다", "회의에선 참석자 중 직급이 가장 높은 대장 혼자만 떠든다"는 등 날을 세운 것이다. "한국기업에 근무한 탓에 삶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고백은 가히 충격적이다. 호주 출신의 방송인 샘 해밍턴은 고참에게 절대복종해야 하는 한국적 정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글로벌스타 운운이 민망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의 기업가정신으로 무모할 정도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캔두(can do)정신, 톱다운(top down), 캐치업(catch up) 등을 지적했는데 군사문화적 색깔이 특히 강하다. "한번 해보기는 해봤어?"하며 부하직원을 다그치던 정주영 왕회장과 '실패하면 우리 모두 영일만 앞바다에 빠져죽자'며 포항제철소 건설을 독려하던 기업가 박태준이 연상된다. 군인정신이야말로 산업화기의 한국경제를 견인한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1961년 5·16쿠데타 이래 1990년대 중반 문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군에서 예편한 수많은 고급장교들이 전역과 동시에 공기업 혹은 민간 대기업의 최고경영자에 임명되었다. 기업가 계층이 절대 부족하던 시절에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에서 간부로 성장한 엘리트들이 돋보였던 탓이다. 퇴역 혁명동지들에 대한 복지차원의 배려도 한 이유이나 군사정부의 '속전속결'식 경제개발사업에 지휘관 경력은 다다익선이었던 것이다. 이후부터 국내 기업들은 돌관경영으로 세계를 누볐고 그 와중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은 유수의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는 간과해 문화충돌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21세기는 문화경영의 시대이다. 문화경영이란 경영의 뿌리이며 정신적 지주인 기업문화에 근거하여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다. 기업문화는 특정 기업의 경영자와 근로자들이 공유하는 가치관, 신념, 이념, 습관, 규범, 전통, 기술 등을 전부 아우르는 것으로 자본설비나 노동력, 원료 등에 버금가는 중요한 생산자원이다. 20세기말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세계화, 정보화, 산업민주화가 급진전되면서 기존의 과학적 관리방식이 한계에 직면했던 것이다. 현대 기업문화의 공통적인 특성은 혁신지향, 실패를 용인할 줄 아는 도전문화와 열린 경영, 속도 중시, 브랜드가치 극대화, 고객지향, 사회공헌 등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문화들이 점차 글로벌 스탠더드화한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이를 '제3의 물결혁명'으로 명명했다. 한국기업 특유의 문화적 특수성도 고려해야하나 '돼지발의 진주' 혹은 갈라파고스식의 문화 지체(遲滯)는 곤란하다. 'Z이론'의 창시자 W. G. 오우치 교수는 "조직의 최대 특징은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최선의 것을 끌어내는데 있다"고 설파했다.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 못하는 기업문화는 오히려 독(毒)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4-08 이한구

영종도 카지노 사업 성공 하려면

드디어 시작된다. 말도 많고 염려도 많았던 영종도 카지노 사업의 문이 열렸다. 한국관광의 새 시대를 여는 이 사업은 일자리 창출을 포함하여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재 거론되는 경제적 파급효과만 봐도, 2018년까지 약 8천명 이상의 직간접 고용효과, 1조3천억원의 경제생산 효과, 600억원의 세수 기여효과를 낼 것으로 알려진다. 인천경제뿐만 아니라 국가경제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규모이다. 영종도가 '한국판 라스베이거스'로 변모되는 꿈도 가져볼 만하다.카지노와 같은 관광리조트 사업이 성공하려면 정확한 예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만약 섣부른 가정을 했다간 큰 실패를 낳을 수 있다. 테마파크와 관광리조트 사업으로 유명한 미국 디즈니랜드 회사도 큰 시련을 맞은 적이 있다. 그들은 미국의 LA와 올랜도, 일본 도쿄에 이어 4번째로 추진한 파리 인근의 테마파크 조성사업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정성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디즈니랜드는 파리 프로젝트에 최고의 분석팀을 투입했다. 그들은 예상 방문객 숫자, 방문객이 머무는 시간, 주위 동심원 내 인구밀도, 날씨 패턴, 소득 수준 등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고려하여 예측 모델을 도출했다. 물론 앞서 성공했던 기존 3개 테마파크의 경험수치도 반영시켰다. 분석팀은 1천100만 명의 방문객 숫자와 평균 체류 3일이라는 예측 값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예측은 빗나갔으며 그에 기초했던 파리 프로젝트는 장기간 고전하게 된다. 가장 결정적인 착오는 방문객이 평균 하루만 체류하는 오류였다. 이로 인해 테마파크뿐만 아니라 숙박시설과 음식점들이 한동안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이렇게 디즈니 파리 프로젝트가 실패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잘못된 가정에서 초래된 것이다. 다른 테마파크는 45가지 놀이기구가 있었지만 파리는 불과 15가지 놀이기구만 설치한 채 개장했었다. 방문객으로서도 하루면 충분했다. 분석팀의 누군가 무의식적으로 다른 테마파크와 동일할 것으로 가정했던 것이다. 영종도의 카지노 사업에서는 이런 섣부른 가정이 절대 없어야 한다. 초기의 잘못된 가정은 대참사를 낳는다. 지나친 장밋빛 전망도 금물이다. 영종도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오늘 현실의 돌다리를 냉철하게 두드려야 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변화 시나리오를 바로 세워야 한다. 영종도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 사업은 어쩔 수 없이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만약 중국이 자국 산업을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내린다면 우리는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대책을 미리 강구하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중국은 이미 카지노 사업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주강 삼각주의 심장부인 헝친다오 신구에 100억 위안(약 16억천만 달러)을 투자해 복합리조트를 건설하려고 한다. 또 그곳에 미국의 최대 카지노 자본인 '라스베이거스샌즈'를 유치하여 호텔과 복합쇼핑단지를 건설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이런 사업은 다른 지역으로 확대될 것이다. 우리가 중국의 동향과 전략에 대해 잘못된 가정을 세운다면 영종도 사업은 큰 시련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 내부의 카지노 전략에 대해서는 특별히 촉각을 세울 필요가 있다. 한편 일본도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맞춰 4개의 카지노 리조트를 추진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기존의 마카오와 싱가포르가 주도하던 아시아 카지노 시장에 중국과 일본이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형국이다. 아시아권에서 카지노 대전(大戰)이 본격화된다고 볼 때 영종도에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우리 입장만 생각하면 실수한다. 우리가 목표하는 시장을 노리는 경쟁자들의 움직임을 잘 봐야 성공전략이 나온다. 모든 이득 상황은 경쟁자의 움직임에 따라 변한다. 영종도의 새로운 기회는 우리의 초기 밑그림, 그리고 경쟁판세를 읽는 혜안에 의해 성패가 갈릴 것이다. 영종도 사업이 진정으로 성공하려면, 그 험난한 미래를 무시하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04-01 손동원

이야기로 소통하는 도시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고령화하고 있어 이에 대비한 주택정책과 사회문화정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 인천시의 경우 2022년 65세 노인인구 비율이 14%를 넘어서는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28년에는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강화군과 옹진군은 2001년 이전에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도심의 고령화는 원도심 지역의 재생의 제약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도시 정책의 전반적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도시의 고령화로 인한 문제는 원도심 지역의 슬럼화로 이어져 전반적인 쇠퇴를 초래할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원도심 지역의 노령화는 제조업을 비롯한 전통 산업의 쇠퇴와 부동산 하락의 한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로 인한 해당 지역의 기초자치단체의 도시재생투자 소홀을 낳게 되어 도시 경쟁력은 더욱 취약해지는 악순환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 현상은 비단 인천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 전체의 문제이다. '젊은 수도권, 늙은 지방'이라는 통념이 무너지고 있다. 수도권 주요 도시들의 고령화 속도가 오히려 비수도권보다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고령화에 대비한 도시 인프라와 주택 수요 변화를 예측하고 변화에 부합하는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고령화에 대비하여 원도심 지역 도시계획의 고령친화적 개발이 당면한 과제이다. 병원, 공원 등을 주거시설과 가까운 거리에 배치하는 고밀도 복합주거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또 1인가구와 고령가구의 급격한 증가에 대비하여 상권 형성이 활발하지 않은 역세권을 중심으로 노인전용 임대주택부지를 공급하는 방안, 무장애 주택과 노인친화형 디자인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도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다.그런데 노령화에 대비한 도시계획과 주택 대책과 별도로 사회· 문화적 정책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고령친화적 도시계획이 의도와 달리 원도심 지역을 고령화 지구로 기정사실화하고 도심 실버타운으로 고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도시 공간이 생애주기별로 구획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원도심 지역에는 청년층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여 청년세대가 유입되어 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세대 균형적 도시재생전략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사업 중에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자원 봉사자 양성 프로그램이 있다. 유치원 등 유아교육기관에서 어린이들에게 선현들의 미담이나 전래동화를 재미있게 들려 줄 수 있는 스토리텔러 할머니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2009년 대구 경북에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전국으로 확대되어 현재 약 1천명의 이야기 할머니들이 3천여 곳의 전국 유아교육기관에서 이야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이 프로그램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어르신을 발굴, 이야기 구연 양성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 후에 유치원, 초등학교로부터 파견 요청을 받아서 이야기를 구연하고 있다. 이야기를 통해 조손(祖孫) 세대간의 문화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며, 옛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는 아이들의 인성함양에도 기여할 수 있으며, 고령화 시대 노인층의 여가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성공적 프로그램을 지역별로 특성화한다면 그 파급효과가 배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래동화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야기에 도시와 마을이야기를 추가하는 것이다. 세대간 소통의 전령인 이야기 할머니들은 마을의 이야기를 통해 이웃과 이웃을 소통하는 역할도 톡톡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누리는 문화적 차이는 크지만, 실제로 일상에서 세대들은 공존하고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세대간 공유문화의 폭이 클수록 사회는 안정적으로 유지 발전될 수 있다. 도시계획에서 세대와 세대가 공간적으로 구획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듯이, 문화적으로도 세대가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노소동락(老少同樂)'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하여 지원할 필요가 있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4-03-25 김창수

3월의 교정 그리고 새내기들

몇 달만에 캠퍼스가 북적거린다. 이제 갓 대학생활을 시작한 14학번 새내기들의 발걸음이 사뭇 가벼워보인다. 넓은 대학 교정이 어디가 어딘지 몰라 어리둥절하기도 하지만 눈동자들은 호기심에 가득 차 있다. 학생들을 실은 학교버스는 정문과 후문 언덕을 연신 오르내린다. 교내 곳곳에는 선배들이 부스를 차려놓고 한 명의 새내기들이라도 자신들의 동아리로 끌어들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새학기에나 볼 수 있는 풍경이어서 정겹다. 낯선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새내기들의 모습도 풋풋하다. 파릇파릇하다 못해 싱그런 새내기 대학 1학년을 프레시맨(freshman)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성중립적이지 않은 표현이라 하여 'first-year student(퍼스트이어 스튜던트)로 부르는 주도 있지만 우리에겐 아직도 프레시맨이 문자 그대로 신선해 보인다.들뜬 분위기를 나타내는 3월의 교정에서 주인공은 단연 신입생이다. 일부 대학의 특정 학과에서 선배들이 신입생 군기잡기에 나서 말썽을 빚었다는 소식이 우리를 슬프게도 하지만 그래도 3월 한 달만큼은 누구에게서나 환영과 사랑을 받는 존재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과는 환경이 사뭇 달라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때는 교실 앞에 크게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같은 시간에, 같은 선생에게 배웠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밥을 먹었다. 1년내내 어울리는 사람들도 한정돼 있었다. 맘대로 반을 바꿀 수도 없다. 선택권이 하나도 없으니 차라리 부담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그런데 대학에 입학하니 새내기들은 나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강 신청을 하느라, 수업시간표를 짜느라 곤혹을 치러보기도 했다. 게다가 뭘 입을지, 뭘 먹을지, 뭐를 해야할지 완전히 내 책임인 동시에 내 자유다. 한꺼번에 주어진 자유가 오히려 새내기들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늘어난 자유와 선택권이 오히려 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누리는 자유만큼 책임이 뒤따른다. 12년간 보통교육을 받는 동안 부모와 교사 등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왔지만 이제는 그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 본인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간의 고생스럽던 대학입시 준비와 학업으로부터 벗어나 해방감을 만끽하고자하는 욕망도 있을 수 있다. 미팅과 곧 다가올 봄축제,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한 낭만적이고도 즐거운 대학생활을 꿈꾸기도 할 것이다.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대학을 학문 연구와 진리 탐구의 상아탑, 낭만의 전당이라 일컫는 것도 사치가 돼버린지 오래다. 대학가에도 '무한경쟁'이라는 단어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점차 강화되는 상대평가 지침에 따라 절반 가까운 학생들이 'C' 이하의 성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교수들의 가슴도 저미도록 아파온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일렬로 줄을 세워야 한다. 그냥 영화의 제목일 뿐이다. 청년실업이 두려워 아예 1학년 때부터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에 나선다. 긴 인생행로를 놓고 볼때 대학이 취업의 도구만은 아닐진대 이같은 현실이 안타깝다. 아무튼 대학 1학년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열정적인 시간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 '나는 누구인가'에서부터 '어떻게 만들어갈까, 어디로 가야 할까'에 대한 해답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학생으로서의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생활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책은 몇 권이나 읽을 것인지, 여행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일도 중요하다. 대학생으로서의 첫 한 달이다. 무한한 꿈과 도전을 통해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새내기들이 되기를 기대한다./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3-18 이준구

깊은강이 멀리 흐른다

드라마 '정도전'의 열풍이 뜨겁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에 푹 빠진 아내와 딸에게 TV리모컨을 빼앗긴 남편들이 모처럼 주말저녁 리모컨을 빼앗아 와 정도전 삼매경에 빠져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지난 9일 정도전은 시청률 16.5%를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같은 시간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도 '개그 콘서트'도 따돌린 놀라운 기세다. 이성계와 이인임, 정도전과 이방원의 갈등이 더 깊어지고, 마침내 조선건국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당분간 아내들이 남편으로부터 리모컨을 빼앗기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왜 남자들이 지금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혁명가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했던' 한 사나이에게 열광하고 있는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격동의 시기, 타락한 고려왕조를 뒤엎고 조선을 설계한 '고려가 버린 아웃사이더'에게 왜 중장년들은 이토록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걸까. 불황으로 숨도 못 쉬던 서점가 서가에도 정도전 일색이다. '소설 정도전'에서부터 '정도전 연구'에 이르기까지 정도전과 관련된 서적만 50권이 넘는다. 방송계나 출판계 모두 정도전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훌륭한 학자 정도전이 역심을 품는 개혁가가 된 것은 이인임과의 불화로 나주로 유배를 떠나면서부터다. 9년이라는 길고 길었던, 그리고 가난하고 외로웠던 긴 유배생활이 없었다면 조선정신의 바탕이 되었던 위민의식은 싹트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이 무려 519년 동안 망하지 않고, 도도한 강물처럼 멀리 멀리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은 정도전이 초석을 다진 조선의 건국이념 때문이었다. 우리가 조선이 500년만에 '망했다'고 하지만 조선은 500년동안 '망하지 않은' 보기드문 왕조국가였다. 조선은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왕이 주인이 아니라 백성이 주인인 나라가 조선이었다. 왕의 독단을 거부하는 신하가 있었고, 왕의 행차를 백성이 꽹과리를 치면서 막고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직접 왕에게 호소하는 이른바 '격쟁(擊錚)'이 가능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큰 전쟁을 겪고도 무려 280년이나 더 유지된 나라가 조선이었다. 성리학의 영향으로 조선은 검소하고, 도덕적이고, 문화적인 삶을 영위했다. 조선 몰락의 원인은 정조대왕 사후 60년간 이어진 세도정치였다. 무려 60년 세도정치에도 조선이 망하지 않은 것은 인본주의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선왕들이 백성에게 끼쳤던 덕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세도정치가 끝나고 50년이 더 지난 후에 조선이 망했으니 도대체 그 끈질긴 생명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바로 정도전이 만든 조선건국 이념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나라의 진정한 주인은 백성'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정도전의 이념이 염증나는 지금 우리의 정치와 맞물려 이 드라마에 중장년 남성들이 넋을 놓고 있는 것이다. 성종때 완성한 경국대전이라는 위대한 법전은 정도전이 만든 '조선경국전'이 바탕이 되었다. '조선 경국전'은 정도전이 500년 후를 내다본 조선의 근본이었다.새정치를 표방하면서 '100년이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과 사실상 합당을 선언했다. 겨우 100년을 내다본 그 였지만 그것조차 포기하고 날름 민주당의 품에 안겨버려, 안철수 새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국민들을 멘붕에 몰아 넣었다. 차라리 100년정당 운운하지 않았다면 배신감도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책사라는 윤여준 전 장관이 '이 자가 나한테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 알아야겠다' 정도의 화법도 국민의 분노에 미치지 못한다. 따지고보면 신당 창당 선언이후 정도전의 시청률이 동시간대 1위로 올라선 것이 괜한 것도 아니다. 미국의 양대 정당, 민주당과 공화당의 연륜은 1792년, 조선에서 위대한 왕 정조로 인해 문화가 화려하게 꽃을 피고 있던 그 먼곳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장장 200여년을 흘러와 지금의 미국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이다. 엘 고어가 2000년 대선에서 총 투표수에선 부시보다 54만3천895표를 더 얻고도 선거인단 투표에서 패배, 이를 깨끗하게 승복한 것도 깊은 강처럼 흘러왔던 미국 민주주의의 저력 때문이다. 거저 얻어진게 아니라는 뜻이다. 조선의 이념을 만든 정도전의 정치사상이 조선을 얼마나 깊은 강으로 만들었는지, 창당과 합당을 식은죽 먹기로 해 치우는 한국의 정치인들은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4-03-12 이영재

통합과 분열, 어느 쪽이든 야권 몫이다

정치 현실은 요동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정치는 생물이라고들 한다. 정당간의 합당이나 정책연합, 선거연합 등 연합정치는 정치지형의 변화를 추동하는 주요 기제들이다. 1990년의 3당 합당, 1997년의 DJP연합, 2002년의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 시도 등이 광의의 연합정치의 일환들이다. 그러나 3당합당은 밀실야합이라는 비판에 직면했고, DJP연합은 이념지향이 전혀 다른 정치세력간의 지역연합이라는 부정적 평가에 노출됐다. 2002년의 후보 단일화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정치가 연합정치의 긍정적 면보다는 부정적 면이 부각되는 이유는 선거를 앞두고 권력획득만을 위한 정치공학적 연대라는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3당 합당은 여소야대 현상을 타파하기 위한 여권의 계산과 제2야당이었던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내각제를 관철시키기 위한 김종필의 셈법이 맞아떨어진 것으로서 정계개편을 가져왔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렇듯 정치세력간의 합종연횡은 정계개편의 요인으로 작용한다.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이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 어떠한 변화를 불러올지 아직은 예단하기 힘들지만 집권당과 야권의 대립각을 선명하게 하면서 경사진 운동장을 정지작업하는 효과는 있다. 이는 정치지형의 변화를 초래하고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정계개편을 가져올 수 있는 폭발력 있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 등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거대정당의 독점 구조를 비판했는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또 하나 지난 대선 과정에서 당시 안철수 교수가 정치혁신이나 정치개혁 등 새로운 정치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문재인 후보와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는데 지금의 민주당이 새정치를 담보할 만큼 혁신했는가 의문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질문들에 답하지 못하면 통합신당의 미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이 신당이 야합이나 기존의 구태 정치처럼 선거를 목전에 두고 정치적 이해에만 기반한 선거공학적 이합집산인지, 야권 통합의 지평을 여는 훌륭한 연합정치인지를 판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4년전 5회 지방선거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의 연대가 위력을 발휘했다. 게다가 무상급식 어젠다로 야권이 선거 이슈를 선점하는 효과와 맞물리면서 야권의 승리로 연결됐다. 물론 지방선거가 정권 출범후 2년이 넘은 시점에서 치러짐으로써 정권심판론과 중간평가의 논리가 작동될 수 있는 정치상황적 요인도 한 몫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통합신당이 지난 지방선거와 같은 '연합'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를 예견하기에 변수가 너무나 많다.우선 통합과정에서 이해관계의 충돌을 절충해 나가고 야권이 단일대오를 형성할 수 있을지가 변수다. 민주당이나 새정치연합 내부의 정치적 의사 수렴이 생략되었기에 향후 추인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반발이나 잡음이 갈등으로 표출된다면 통합은 빛을 발할 수 없다. 통합의 명분이 두 정치세력 구성원들의 실리보다 앞선다면 신당은 순항할 수 있다. 그러나 창당과정에서 지도부 구성이나 당직 배분,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공천을 둘러싼 이해의 충돌들이 노골화되면 이번 신당은 최악의 '통합'이 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한국정치에서 분열하는 쪽은 패배했고, 통합하는 세력은 선거에서 승리했다. 물론 예외가 있으나 비교적 일관되게 작동되는 정치적 함수다. 신당 추진이 야합이나 구태를 상징하는 이합집산이 아니고, 진정한 야권의 통합이 되기 위해서는 각 정치세력이 기득권을 양보하는 대타협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새정치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삶의 정치'를 먹고 사는 진보적 어젠다로 구체화하고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이러한 요건이 충족되면 선거에서의 승리는 물론 한국정치 지형을 바꾸는 정치발전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통합을 견인할 리더십, 새정치의 구체적 실천, 민생에 천착하는 진정성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신당 시도는 참담한 실패를 결과할 것이고, 한국정치에서 또 하나의 이합집산이라는 정치적 퇴행의 전형을 기록하게 될 것이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4-03-05 최창렬

[경인칼럼]힘 실릴 영어공용화

예능학원들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전국적으로 1만6천여개이던 피아노학원이 10% 이상 사라졌는데 미술학원 폐업은 이를 훨씬 능가한다. 대신 영어나 수학, 논술 등 주요 과목학원엔 아이들이 넘쳐나는데 영어 사교육 확대가 압권이다. 2009년에 7천700개이던 영어학원수가 지난해에는 1만 곳을 초과한 것이다. 입시경쟁이 초등학교로 확대된 때문이나 청년실업난과 조기영어바람까지 가세해 매년 10조원 이상이 영어사교육을 위해 소진된다. 또한 한국인들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2만 시간 이상을 영어습득에 할애하고 있으나 투자대비 성과는 별로이다. 스위스의 교육기업인 에듀케이션 퍼스트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영어능력은 전세계 비영어권 60개국 중 24위에 랭크된 것이다.비영어권 국민들의 영어 열공(熱工) 배후에는 세계화가 도사리고 있다. 자본주의의 외연적 확대는 냉전시대를 청산했다. 노동력을 제외한 모든 경제적 자원의 국제적 이동성을 높인 때문에 지구촌의 요소생산성이 제고된 결과 세계인들이 물질적 풍요의 혜택을 누린 것이다. 반면에 신자유주의의 그늘(=장기불황)은 더욱 짙어졌는데 분배문제가 결정적이다. 특히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국내외적으로 빈부격차는 훨씬 심해졌다.최근 미국에는 민간소비 훈풍이 감지되고 있으나 정부의 고민도 깊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산업지형에 반갑지 않은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중산층 산업이 쇠퇴하고 럭셔리 및 대체재 산업이 점점 비대해지니 말이다. 지난 3일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이 발표한 "2012년 미국 전체 소비의 38%를 소득 상위 5%인구가 담당했다"는 내용이 상징적이다. 유럽과 일본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동소이하다. 민간소비의 핵인 중산층이 무너져 내리면서 저성장체제가 장기화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상위 0.1% 사람들이 모이는 다보스포럼의 금년 주제가 양극화문제인 지경이다.국내적으로 성장문제, 주거문제, 사교육문제, 수출경쟁력문제 등이 산적했으나 부(富)의 편재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소득분포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353으로 위험수준(0.4)에 육박할 뿐 아니라 OECD 34개 회원국 중 6번째로 높다. 지난 한 해 동안에 10만 명이 새로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생계형 창업의 80%가 불과 1, 2년 만에 사업을 접는 실정이니 말이다. 과거 봉건사회에서도 지금처럼 분배불균형이 심한 적은 없었다는 지적이다. 불황형 장기침체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세계화와 디지털화(=기계화)가 초래한 결과이다. 작금의 디지털화는 단순히 기계가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 지능까지 대신하는 지식집약형 기계화인 것이다. 빌 게이츠, 주커버그, 스티브잡스 등 극소수의 앙트레프리너와 혁신기술자들에 부가 집중되는 '지식의 지배'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반면에 후진국으로의 끊임없는 생산거점 이전 탓에 절대다수인 비숙련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높은 실업률, 임금 하락 등 혹독한 시련의 계절을 맞았다. 국내의 경우 1991~2007년 사이에 연평균 1만1천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한국은행의 연구에 눈길이 간다. "모든 사람은 인간답게 살 권리와 실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권리를 가진다"는 세계인권선언의 제23조는 빛이 바랬다. 만인을 위한 자유주의질서와 평화와 번영이란 세계화의 비전도 실현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미국 하버드대학의 닐 퍼거슨 교수는 무역과 기독교를 앞세운 미국식 제국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단정했다. 국제공용어로 영어의 비교우위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또한 미숙련 노동력의 위상 악화는 불문가지여서 국제공조를 통한 세계경제 시스템 개선이 유효한 해법이나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각자 호랑이굴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형편이어서 서울 강남의 젊은 엄마들이 모태영어도 모자라 젖먹이들을 닦달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언어제국주의는 언감생심이고 영어공용화가 대세인 것 같아 씁쓸하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2-25 이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