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세금 내기 아까운 나라

평범했던 주부 김옥주(53)씨의 인생은 한순간에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허리디스크와 고혈압에다 공무집행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8가지 죄목으로 올해 초에는 검찰에 기소까지 된 것이다. 2011년 2월 17일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면서 악착같이 모았던 예금 2억원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 화근이다. 돈을 떼인 사람들 대부분이 자갈치시장 인근의 60, 70대 노인들이어서 김씨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사태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결국에는 돈 잃고 몸까지 망친 기막힌(?) 신세로 전락했다. 부산저축은행사태는 이후 26개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등 사상 최대의 금융사고로 비화되었다. 피해자수가 10만명을 넘고 사회적 비용만 물경 27조원에 육박한 것이다. 오너 경영인들의 '벼룩 간 빼 먹는' 악질범죄와 부실한 금융감독이 빚은 합작품이나 '88클럽'규정이 결정적이었다. 노무현 정부 3년차인 2005년에 재정경제부는 "영업활동 규제는 최대한 풀어주되 건전성 감독은 더욱 강화한다"며 98건의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내용의 '제로베이스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그중 하나가 '88클럽'인데 자기자본비율 8%이상, 고정 이하(연체 3개월) 여신비율이 8%이하의 조건을 충족한 우량저축은행들을 지칭했다. 당시 금융당국은 모든 저축은행에 한 법인에 최대 80억원까지만 대출하도록 강제했으나 '88클럽'조건을 충족한 은행에 한해 대출제한을 풀어주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투자를 겨냥한 저축은행업계가 정부에 집요하게 로비해서 얻은 결과였다. 저축은행들은 88클럽 가입을 위해 후순위채를 경쟁적으로 팔았으나 부동산거품 붕괴로 막대한 혈세 낭비와 서민경제를 거덜 냈다. 그러나 이 사태와 관련해서 책임지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제도를 고친 지 6년만에 사고가 터졌으나 관련자들 모두는 이미 공직을 떠난 것이다. 지난해 수많은 투자자들을 울린 동양증권 불완전판매사건도 규제완화가 빚은 해프닝이다. 사기나 다름없는 범법행각에 또다시 서민들만 당했다. 세월호 대참사는 압권이었다. 1985년까지 20년으로 묶여있던 여객선 선령을 2009년에 다시 30년으로 늘렸다. 해운사들이 경영난을 이유로 선령규제를 풀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자 청와대와 국민권익위원회가 서둘러 국토해양부에 개선책 마련을 지시함으로써 민원 6개월만에 해운법 시행규칙을 바꾼 것이다. 해운사들은 선령제한에 따른 업계손실액이 200억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물 배의 수명을 연장하는데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서울대 해양시스템공학연구소가 선주들 모임인 한국해운조합에 낸 '현행 여객선 선령제한의 적정성 판단 및 개선방안 연구'에서 "20년 이상 된 노후선박은 구조적 강도를 결정짓는 선체의 강판, 항해장비의 노화가 함께 발생한다"고 지적했으나 그뿐이었다. 불과 200억원의 추가이익을 얻자고 무리하게 규제를 풀어준 탓에 이로부터 5년이 흐른 지난 4월 16일 476명을 태운 세월호는 총체적 부실을 안은 채 침몰한 것이다. 고질적인 권경(權經)유착이 초래한 비극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 했다. 또한 규제는 시소와 같아서 제거할 때 좌면우고(左眄右顧)는 필수적이다. 국가는 사회적 약자들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을 더욱 강화해도 모자랄 판에 작금 정부는 '대못' 운운하며 군사작전 하듯 서둘러 제거했으니 탈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혼 없는 천민자본보다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공복(公僕)들이 더 밉상이다. 생선가게 고양이보다 못한 인사들이 공직을 독식한 인상이니 말이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거듭된 재발방지 다짐도 국정최고책임자의 구태의연한 립서비스 쯤으로 폄훼하는 듯하다.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똑 같은 연출이 되풀이되는 형국이니 말이다.국민들은 언제, 어디서, 누가 또다시 날벼락(?)을 맞을지 전전긍긍이다. 용한 무당을 찾아 액막이굿이라도 벌여야 할 지경이다. 종합소득세 납부의 달이다. 세금 내기가 아깝다는 느낌이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5-20 이한구

기업윤리를 다시 생각한다

시장경제를 믿는 자도 기업인의 과도한 탐욕에는 탄식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시장경제의 제창자인 아담 스미스조차 이득에만 눈이 먼 탐욕을 경계했다. 그는 '도덕 감정론'이란 저서에서 '하느님은 미워하는 사람에게 탐욕을 심어주고 파멸시킨다'라고 말하고 있다. 탐욕만 가진 인간은 무너진다는 경고를 준 것이다.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인들은 욕심을 조절하지 못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전 국민을 놀라게 한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의 무모한 탐욕은 조절장치가 망가진 야욕의 끝을 보여준 셈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에는 너무도 적극적이지만 고객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서는 한 치의 배려도 없는 어이없는 윤리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그 낮은 윤리수준이 우리 사회 곳곳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기업윤리의 실상은 이미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구분 없이 윤리와 도덕 점수는 낙제점이 많았다. 대우그룹의 파산에서부터 한보 정태수 회장의 해외 도피, 저축은행의 줄도산, 동양그룹의 파산 등에서 기업윤리의 희망적인 파편을 본 적이 없다. 도대체 왜 이 정도까지 윤리수준이 추락하게 되었는지 안타까움이 너무 크다. 우리는 일본과 미국의 선진기업들을 추월하고자 했지만, 그들이 가꿔온 윤리의식은 따라잡지 못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기업윤리 수준이 높다. 일본 기업은 직원에 대한 배려가 많으며 이윤을 사회에 돌려준다는 의식도 강하다. 일본기업의 강한 윤리의식은 자신들의 영웅인 시부사와 에이치의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그의 책인 '논어와 주판'의 영향이 컸다. 그는 사혼상재(士魂商材), 즉 선비와 같은 절개와 도덕, 그리고 상인으로서의 재능을 겸비하는 것이 기업가의 이상임을 강조했다. 1930년 이전 일본기업들은 시부사와의 영향권에서 탄생했다. 마쓰시타 전기를 비롯해서 샤프와 히타치 등은 시부사와 정신의 계승자답게 사회에 대한 높은 책임감을 보여주었다. 또 이 정신은 현재까지 잘 전수되어 신생 기업들조차 윤리 경영에 적극적이다. 우리가 아직 일본경영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남아있는 것이다. 미국의 기업가정신에 대해서도 우리는 반쪽만 학습한 편이다. 부를 추구하는 기업가의 욕망이 국가의 성장 동력이라는 점은 학습했지만, 기업가의 최고 덕목인 위험을 돌파하려는 도전정신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했다.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가정신은 자신의 주머니만 채우면 된다는 안일한 정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기업가정신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 수익을 창조하려는 유전자를 말한다. 우리는 아쉽게도 미국 기업가정신의 진면목인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정신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직 기업가의 부에 대한 욕망을 통해 사회가 발전한다는 표면적인 논리만 받아들이다 보니, 시장을 어지럽히고 사리사욕만 채우려는 것도 기업인의 덕목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급기야 엉터리 장사꾼들이 설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 오해가 있다. '기업은 이윤을 만드는 것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오해가 바로 그것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옳은 말도 아니다. 경제적 가치의 창출은 사회에 큰 도움이며 기업의 고용효과는 중요한 사회 공헌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얻고 그것을 기업가가 가져가도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 오해로 인해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기업가의 금전 지상주의를 인정해 주고 그 욕망을 견제하는 것에는 소홀했다. 그 결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은 전혀 없고 오직 쉬운 사업모델을 발굴하여 개인 주머니만 불리는 방책이 능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기업윤리 체계가 망가진 상황임을 생각할 때, 개인적 차원의 의식전환에만 맡겨 놓을 상황은 아니다. 개인의 무모한 탐욕은 두려움을 통해 균형을 이뤄야 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규제 완화는 필요하지만, 안전과 생명을 담보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규제가 철저해야 한다. 정부도 엄해야 할 때는 제대로 엄해야 한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05-13 손동원

대학 특성화사업 어디로 가는가?

수도권 및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의 시행을 앞두고 대학별로 예술관련 통폐합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대학특성화사업은 본래 국내 대학들이 학과 설치, 학생 선발, 교육과정 운영 등에 있어서 특성과 차별성이 없고 모든 대학이 전 학문분야에 걸쳐 백화점식으로 학과를 설치 운영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대학 교육의 획일화가 초래되고 있다는 진단에서 출발한 사업이었지만 결점이 한 둘이 아니다. 3월에는 서일대 연극과와 문예창작과 폐지 방침이 알려졌으며 서울시내 사립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예술 관련학과 통폐합을 둘러싼 내부 진통이 심각한 실정이다. 현재 교육부는 '수도권 및 지방대학 특성화사업'을 추진하면서 평가 지표에 정원 감축 가산점을 부여하고, 대학별 졸업생의 취업률을 반영하고 있다. 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지원 기준은 대학별 구조조정 결과에 대한 가산점이다. 2017년까지 10% 이상 감축시 5점, 7~10% 미만 4점, 4~7% 미만 3점을 반영하는데, 이같은 정원 감축이 사업단 선정의 결정적 변수가 되고 있다. 재정이 어려운 대부분의 지방 대학은 이 사업에 목을 매달 수 밖에 없다. 대학의 규모와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감축 인원만 평가하여 일률적으로 정원 감축만 유도하는 사업이 되고있는 것이다. 이 평가제도는 대학에서 취업률이 낮은 예술계열 학과를 통합 또는 폐과하는 사태마저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예술분야 학과의 평가 기준으로 취업률을 삼는 것은 예술분야의 직업 특성이나 현실과는 동떨어진 탁상행정이 아닐 수 없다. 문화예술 관련 졸업생들은 상당수가 자유직업인 예술가로 활동하며, 설사 취업을 한다해도 4대보험을 납부해줄 수 있는 규모의 직장은 예술분야에서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술학과 학생들의 취업률을 대학 평가에 반영해 논란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교육부는 2011년 9월 학자금 대출 및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을 선정하는데 취업률을 주요 평가기준으로 삼았고, 예체능 관련학과 비중이 높은 대학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게 돼 반발을 부른 적이 있었다. 대학 특성화가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할 우려는 그뿐 아니다. 현행 평가지표 가운데 대학의 시스템 개혁 분야에는 학과 통폐합이 포함되어 있으며, 대학 거버넌스 및 인사행정제도 혁신 분야에는 국립대학의 총장직선제 관련 규정을 폐지하지 않을 경우 각종 지원의 불이익을 주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때문에 대학가에서는 초등학교 반장도 직선제로 뽑는데 대학 총장을 간선제로 선출해야 하느냐는 자조 섞인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의 열악한 재정 상황이라는 발목을 잡고 대학 운영 구조를 정부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 한다는 불만이 높아가고 있다. 미래사회는 융합형 창의 인재를 필요로 하고 창의성과 상상력의 중요한 토대는 문화예술이다. 문화예술 역량은 창조화사회의 기반이기 때문에 지금은 문화예술발전에 투자를 늘리고 특히 문화예술교육의 질적 양적 확대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특히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서 문화예술 전문 인력의 양성이 절실한 실정이며, 그 역할을 대학이 맡을 수 밖에 없다. 사정이 이런데 대학교육 현장에서는 인문예술관련 학과의 통폐합이라는 역주행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향후 한국의 문화 경쟁력에 치명적인 약점이 될 공산이 크다.정부는 취업률 중심의 대학 평가 정책을 철회하고 대학이 본연의 창의 인재 양성 기능을 다할 수 있는 지원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할 것이며, 부작용을 낳고 있는 대학특성화사업의 추진 방향은 시급히 수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대학 평가제도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인 문화융성과 모순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자가당착의 우를 범하고 있다. 한편 대학도 교육부의 평가 기준에 맞춘 획일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지양하고 미래지향적인 인재 양성을 목표로 대학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4-05-06 김창수

'잔인(殘忍)한 달' 4월을 보내며

온 천하가 통곡하고 있는 4월의 마지막 날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중략)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의 장편 시 '황무지'의 한 구절이다. 제1·2차 세계대전 후 주검들과 뒤덮여 있는 땅에서 새싹과 꽃들이 피어나는 걸 보고 잔인한 달이라고 엘리엇이 표현했다는 해석도 있다. 지금도 진도 앞바다 한가운데서 아우성치고 있을 못다 핀 어린 주검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온다. 그토록 잔인했던 4월에 어른들의 무책임으로 내던져진 이 고귀한 목숨들이 너무 가엾다. 할 말이 없다.4월 16일 오전 9시 29분 필자의 휴대전화에 '진도 해상서 350여명 탄 여객선 조난신고, 침수중'이라는 문자가 떴다. 눈과 귀를 의심했다. 모 통신사가 실시간으로 제공해 주는 뉴스다. 이어 9시 58분에는 '경비정, 헬기 동원 120여명 구조', 10시 18분 '여객선 좌초, 190명 구조', 11시 22분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11시 27분 '여객선 완전 침몰… 승객은 전원 탈출한 듯'이라는 희망적인 소식들이었다. 그러나 오후 1시 41분 '107명 실종, 생사불명'으로 상황이 뒤바뀌었다. 공식발표는 구조에서 실종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고 실종자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늘었다. 서서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 같은 중앙재해대책본부와 언론의 확인 없는 발표와 보도로 국민들의 혼란은 더해갔다. 그러나 합동수사본부가 28일 밝힌 실종 학생의 '기다리래'라는 마지막 카톡 시간은 세월호가 물속에 가라앉은 오전 10시 17분이었다. 선장이 탈출한 뒤 31분이나 지난 뒤였다. 조금만 더 대처가 빨랐다면 많은 사람을 구조했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퇴선명령을 내렸다던 선장의 새빨간 거짓말이 드러났고, 선장이 속옷 차림으로 배에서 빠져나오는 생생한 모습의 동영상도 공개됐다. 이로써 11시 이후의 '전원구조, 탈출' 등은 모두 허위발표와 보도로 드러난 셈이다. 얼마만큼 초동대처를 하지 못한 채 허둥댔는지를 알 수 있다. 중앙재해대책본부의 세월호 탑승인원 발표만 공식적으로 6번이나 바뀐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구조의 골든타임을 이미 놓쳤고, 어느 한 구석 제대로 작동되는 시스템이 없었다.부처마다 우왕좌왕했다. 대통령이 사고 현장에 내려가 가족들과 구조대책을 약속했지만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국회의원과 고위 공무원은 기념사진이나 찍는다. 교육부장관은 실종자 가족들이 오열하는 진도체육관 의자에 걸터앉아 컵라면을 먹는다. 청와대 대변인은 끓이지도 않았고, 계란도 넣지 않았는데 뭘 그러느냐고 두둔한다. 이쯤되면 한심한 수준을 넘어선다. 해양경찰서장은 80명이면 많이 구조한 것이라고 말한다. 승객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할 선장과 승무원들은 470여명의 목숨을 내버려둔 채 탈출했다가 지금 감옥에 가 있다.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현재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모든 영역에서 잘못된 관행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국가 운영체계의 틀을 확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암을 도려내는 것처럼 침몰위기의 나라를 살리겠다는 의지로 곪아터진 부분에 대한 과감한 수술을 단행해야 한다. 무사안일한 생각으로 책임을 다하지 않는 공직자들은 대통령의 약속대로 퇴출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정부도, 정치권도, 사회도, 국민 모두 통렬하게 반성하자.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암적 요소들을 척결하자. 애꿎게 희생된 이들에게 사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아직도 실종된 아이를 찾지 못해 통곡하는 어버이들의 찢어지는 가슴을 버려두고 그토록 잔인한 4월은 저만치 가고 있다. 얘들아, 대한민국은 할 말이 없단다. '너희들 앞에 영원한 죄인은 어른들이다. 미안하다. 고이 잠들거라.' 이 말밖에는…./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4-29 이준구

20년 전 베이징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20년 전. 그러니까 1995년 4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베이징에 주재하는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정치권ㆍ정부ㆍ기업이 모두 잘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예를 들어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게 실수였다. 대한민국 최대 그룹 총수가 겁없이 정부와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한 이 말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2년전 대선에서 현대 정주영 회장과 대권을 다투었던 김영삼 대통령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이 회장의 말을 정치에 도전하는 거대한 경제권력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말 한번 잘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국민과는 달리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정곡을 찔린 청와대와 정치권은 발끈했다. 특히 김영삼 정부는 당시 끊임없이 터지는 대형사고로 인해 깊은 상심에 빠져 있었다.1993년 3월 78명이 사망한 '구포역 무궁화호 전복사고', 그해 7월 68명이 사망한 '아시아나 733편 목포 추락사고', 10월 292명이 사망한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94년 10월 32명이 사망한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잇달아 터졌다. 이 회장 발언이 있던 95년 4월에도 101명이 사망한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그리고 두달 후 6월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문민정권은 치명적인 결정타를 맞았다. 그리고 97년 8월 228명이 사망한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가 일어났다. 이 회장 발언 이후 삼성은 발언 배경과 진의를 해명하느라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이 회장의 말은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의 발언은 그후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수준을 이야기할 때 자주 오르내리는 '명언'이 됐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사고 앞에서 할 말을 잃은 국민은 지금 깊은 슬픔에 잠겨있다. 하지만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20년 전 이 회장이 '3류 정부 4류 정치'라고 일갈했던 그때와 지금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게 있다면 언론이 하나 더 추가된 정도다. 이번 사고로 3류로 전락한 정부는 스스로 '무정부 상태'를 연출했다. 컨트롤타워는 붕괴됐고 대책본부와 해경, 해군, 해양수산부가 제각각 따로따로 움직이고 있다. 어디 이 뿐인가. 시신안치소를 방문한 해양수산부 장관을 동행한 공무원은 "기념사진을 찍자"고 말했다가 유가족의 분노를 사고 결국 사표를 냈다. 교육부 장관은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컵라면을 먹다 구설수에 올랐다. 먹는 게 무슨 죄가 있으랴마는 모두 울고 있는데 혼자 컵라면을 먹고 있는 장관을 상상해 보라. 3류라는 말조차 과분할 정도다.정치권도 다를 게 없다. 사고 초기 사고 현장을 찾아 사진을 찍으려던 정치인들은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트위터에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자작시를 올렸다가 망신을 자초하거나, 해경 경비정을 타고 현장을 방문했다가 "국회의원직이라는 특권으로 실종자 가족은 타지 못한 경비정을 탔다"는 논란에 시달린 정치인도 있었다. 그 와중에 당의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폭탄주를 마신 여권 시장 후보, "(구조가 더딘 것) 이 정도면 범죄 아닐까"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린 야당 초선의원에게는 고생하는 잠수부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며 혹독한 비난이 쏟아졌다.언론의 '추락한 품격'은 더 큰 문제였다. 4개의 지상파 방송, 4개의 종편방송, 2개의 뉴스전문채널에서 경쟁하듯 쏟아내는 뉴스로 국민들은 넋이 빠져 있다. 한 종편방송 진행자는 구조된 학생에게 친구의 죽음을 묻다가 여론의 질타를 당했고, 또 한 종편방송은 민간 잠수부라는 신분이 불분명한 여성을 생중계로 연결했다가 보도국장이 공식 사과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방송사간의 경쟁이 나은 비극이었다. 이번 사고에서 언론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컸던지 취재기자가 유가족에게 폭행을 당하는가 하면 마침내 유가족들이 언론 보도 자제를 요청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20년 전 문민정부와 정치권이 한 기업인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고 3류를 1류로 바꾸려는 노력을 했다면 세상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정권이 네번 바뀌었다. 이 회장의 삼성은 지금 세계 최고의 기업이, 대한민국은 IT 최강국이 되었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는 여전히 3류에 머물러 있고, 대형 참사는 계속 터지고 있으며 그로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고 있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4-04-22 이영재

안철수의 '현실정치'와 '새정치'

현실정치와 권력정치는 종종 동의어로 혼용되어 사용된다. 그러나 권력정치가 권력의 획득이라는 목표를 위해 수단을 정당시하는 것임에 반해, 현실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 정치라는 평범한 명제에서 출발한다. 현실정치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인사들에 대한 진지한 설득과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과정으로부터 출발한다. 물론 자파세력을 포진시키는 것, 세력간의 다툼이 현실정치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불가피한 쟁투의 모습이 권력정치로 치환되지 않으려면 현실정치가 새정치로 보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실정치와 새정치는 반드시 상호모순적이지 않다. 안철수 대표는 현실정치와 새정치를 자신의 편의에 따라 정의하고 행동했던 것이 아닌가 되돌아봐야 한다. 안철수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었던 기초선거 무공천은 좌절됐다. 그리고 기초무공천과 새정치를 과도하게 등치시킨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는 빛이 바랬다. 그러나 새정치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새정치의 내용이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 명분이었던 기초무공천은 애당초 새정치를 담보할 수 없었다. 또한 통합의 고리로도 미약했다. 안철수 의원이 부딪쳐야 했던 현실정치의 벽과 김한길 대표가 직면했던 당내 리더십의 위기가 만난 지점이 합당이라는 주장이 정파적 혐의가 짙어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기초공천을 둘러싼 논란으로 안철수 입지의 약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다음이 더 문제다. 기초무공천 철회 이후 보여준 안 대표의 정치행태다. 개혁공천을 들고 나왔다. 그 자체가 문제될 건 없으나 개혁공천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안철수 대표 측과 구 민주당, 특히 친노진영의 공천 다툼으로 비치고 있고, 광주지역 의원들의 윤장현 후보 지지 선언은 그 자체로 개혁공천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안철수 대표가 대표직을 걸었던 기초무공천의 명분은 기초선거에서 국회의원들의 후보 줄세우기를 혁파하고 지방자치의 본래 뜻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야권의 정치적 상징성이 강한 광주에서 안철수 측 인사에 대한 의원들의 지지선언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개혁공천은 불가피하게 현역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물갈이를 수반할 수밖에 없고 상당수 현역단체장과 의원들이 구 민주당 계열이라면 계파대립은 불가피하다. 기초공천을 둘러싼 계파갈등으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들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고, 정당지지도조차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개혁공천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논거와 명분을 갖추지 못하면 야권의 자중지란은 가속화될 수 있다. 5:5 공천 지분의 기계적 균형에 집착해서는 개혁공천도, 지방선거의 승리도 장담할 수 없다. 자파 세력 심기에 집착하는 모습은 개혁공천의 정신을 훼손시킨다. 기계적 물갈이는 현역단체장과 의원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어느 선거에서나 물갈이가 공천개혁의 화두로 등장한다. 특히 총선거에서 물갈이 비율이 높기로는 세계적으로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없다. 그러나 아직 한국의 의회가 물갈이를 잘 해서 세계에서 정치 모범생이 됐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17대 국회가 그랬고, 18대 국회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물갈이에 또다시 새정치의 모든 것을 거는 우를 범한다면 안철수 대표는 학습효과와는 아예 담을 쌓은 정치초년생이라는 비아냥에 시달릴지 모른다. 안철수 대표가 할 일은 새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현실정치에서 자파 세력을 포진시키지 못하고는 후일을 장담할 수 없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가 특정 계파의 좌장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자리매김했다면 새정치란 말을 입에 담아선 안된다. 구시대 정치와 같은 문법으로 정치를 얘기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새정치는 민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피곤한 영혼들이 왜 삶에 대해 좌절하는지, 아직도 새정치 화두는 왜 유효한지를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때, 거대 양당 구조를 깨겠다던 안철수가 바로 그 거대정당 '호랑이 굴'에 들어간 보람의 단초라도 열릴지 모른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4-04-15 최창렬

도전 받는 한국 기업문화

금년 1월 2일 캄보디아에서 개발독재시절의 YH여공 폭력진압과 흡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공수부대가 파업현장을 무력으로 제압해서 노동자 5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한 것이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의류업체들이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저임금 시정을 요구하는 노동운동에 군대를 동원한 혐의를 받은 것이다. 권위주의와 황금만능의 천민적 경영도 도마에 올랐다. 진실이야 어떻든 한국기업문화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것 같아 개운치 못했다. 경우는 다르나 국내 간판기업들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발견된다. 세계최대의 직장평가 사이트인 '글라스도어'에는 세계IT업계 5위 삼성전자와 61위 LG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에 대한 현지인들의 리뷰 글들이 상당한데 부정적인 평가가 유달리 많아 보인다. 푸른 눈의 리뷰어들은 해당 기업의 전현직 근로자들이어서 영향력이 큰데 주목되는 사례로는 "직장상사가 부하직원에 큰소리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상사가 매우 무례하고 폭력적이다", "출근이 1분이라도 늦으면 직장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으며 일을 다 끝내도 퇴근 못하고 윗사람 눈치를 본다", "경영자들은 늘 회사위기만 강조하면서 정신 차리라는데 너무 식상하다", "회의에선 참석자 중 직급이 가장 높은 대장 혼자만 떠든다"는 등 날을 세운 것이다. "한국기업에 근무한 탓에 삶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고백은 가히 충격적이다. 호주 출신의 방송인 샘 해밍턴은 고참에게 절대복종해야 하는 한국적 정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글로벌스타 운운이 민망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의 기업가정신으로 무모할 정도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캔두(can do)정신, 톱다운(top down), 캐치업(catch up) 등을 지적했는데 군사문화적 색깔이 특히 강하다. "한번 해보기는 해봤어?"하며 부하직원을 다그치던 정주영 왕회장과 '실패하면 우리 모두 영일만 앞바다에 빠져죽자'며 포항제철소 건설을 독려하던 기업가 박태준이 연상된다. 군인정신이야말로 산업화기의 한국경제를 견인한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1961년 5·16쿠데타 이래 1990년대 중반 문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군에서 예편한 수많은 고급장교들이 전역과 동시에 공기업 혹은 민간 대기업의 최고경영자에 임명되었다. 기업가 계층이 절대 부족하던 시절에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에서 간부로 성장한 엘리트들이 돋보였던 탓이다. 퇴역 혁명동지들에 대한 복지차원의 배려도 한 이유이나 군사정부의 '속전속결'식 경제개발사업에 지휘관 경력은 다다익선이었던 것이다. 이후부터 국내 기업들은 돌관경영으로 세계를 누볐고 그 와중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은 유수의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는 간과해 문화충돌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21세기는 문화경영의 시대이다. 문화경영이란 경영의 뿌리이며 정신적 지주인 기업문화에 근거하여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다. 기업문화는 특정 기업의 경영자와 근로자들이 공유하는 가치관, 신념, 이념, 습관, 규범, 전통, 기술 등을 전부 아우르는 것으로 자본설비나 노동력, 원료 등에 버금가는 중요한 생산자원이다. 20세기말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세계화, 정보화, 산업민주화가 급진전되면서 기존의 과학적 관리방식이 한계에 직면했던 것이다. 현대 기업문화의 공통적인 특성은 혁신지향, 실패를 용인할 줄 아는 도전문화와 열린 경영, 속도 중시, 브랜드가치 극대화, 고객지향, 사회공헌 등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문화들이 점차 글로벌 스탠더드화한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이를 '제3의 물결혁명'으로 명명했다. 한국기업 특유의 문화적 특수성도 고려해야하나 '돼지발의 진주' 혹은 갈라파고스식의 문화 지체(遲滯)는 곤란하다. 'Z이론'의 창시자 W. G. 오우치 교수는 "조직의 최대 특징은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최선의 것을 끌어내는데 있다"고 설파했다.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 못하는 기업문화는 오히려 독(毒)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4-08 이한구

영종도 카지노 사업 성공 하려면

드디어 시작된다. 말도 많고 염려도 많았던 영종도 카지노 사업의 문이 열렸다. 한국관광의 새 시대를 여는 이 사업은 일자리 창출을 포함하여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재 거론되는 경제적 파급효과만 봐도, 2018년까지 약 8천명 이상의 직간접 고용효과, 1조3천억원의 경제생산 효과, 600억원의 세수 기여효과를 낼 것으로 알려진다. 인천경제뿐만 아니라 국가경제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규모이다. 영종도가 '한국판 라스베이거스'로 변모되는 꿈도 가져볼 만하다.카지노와 같은 관광리조트 사업이 성공하려면 정확한 예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만약 섣부른 가정을 했다간 큰 실패를 낳을 수 있다. 테마파크와 관광리조트 사업으로 유명한 미국 디즈니랜드 회사도 큰 시련을 맞은 적이 있다. 그들은 미국의 LA와 올랜도, 일본 도쿄에 이어 4번째로 추진한 파리 인근의 테마파크 조성사업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정성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디즈니랜드는 파리 프로젝트에 최고의 분석팀을 투입했다. 그들은 예상 방문객 숫자, 방문객이 머무는 시간, 주위 동심원 내 인구밀도, 날씨 패턴, 소득 수준 등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고려하여 예측 모델을 도출했다. 물론 앞서 성공했던 기존 3개 테마파크의 경험수치도 반영시켰다. 분석팀은 1천100만 명의 방문객 숫자와 평균 체류 3일이라는 예측 값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예측은 빗나갔으며 그에 기초했던 파리 프로젝트는 장기간 고전하게 된다. 가장 결정적인 착오는 방문객이 평균 하루만 체류하는 오류였다. 이로 인해 테마파크뿐만 아니라 숙박시설과 음식점들이 한동안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이렇게 디즈니 파리 프로젝트가 실패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잘못된 가정에서 초래된 것이다. 다른 테마파크는 45가지 놀이기구가 있었지만 파리는 불과 15가지 놀이기구만 설치한 채 개장했었다. 방문객으로서도 하루면 충분했다. 분석팀의 누군가 무의식적으로 다른 테마파크와 동일할 것으로 가정했던 것이다. 영종도의 카지노 사업에서는 이런 섣부른 가정이 절대 없어야 한다. 초기의 잘못된 가정은 대참사를 낳는다. 지나친 장밋빛 전망도 금물이다. 영종도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오늘 현실의 돌다리를 냉철하게 두드려야 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변화 시나리오를 바로 세워야 한다. 영종도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 사업은 어쩔 수 없이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만약 중국이 자국 산업을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내린다면 우리는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대책을 미리 강구하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중국은 이미 카지노 사업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주강 삼각주의 심장부인 헝친다오 신구에 100억 위안(약 16억천만 달러)을 투자해 복합리조트를 건설하려고 한다. 또 그곳에 미국의 최대 카지노 자본인 '라스베이거스샌즈'를 유치하여 호텔과 복합쇼핑단지를 건설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이런 사업은 다른 지역으로 확대될 것이다. 우리가 중국의 동향과 전략에 대해 잘못된 가정을 세운다면 영종도 사업은 큰 시련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 내부의 카지노 전략에 대해서는 특별히 촉각을 세울 필요가 있다. 한편 일본도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맞춰 4개의 카지노 리조트를 추진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기존의 마카오와 싱가포르가 주도하던 아시아 카지노 시장에 중국과 일본이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형국이다. 아시아권에서 카지노 대전(大戰)이 본격화된다고 볼 때 영종도에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우리 입장만 생각하면 실수한다. 우리가 목표하는 시장을 노리는 경쟁자들의 움직임을 잘 봐야 성공전략이 나온다. 모든 이득 상황은 경쟁자의 움직임에 따라 변한다. 영종도의 새로운 기회는 우리의 초기 밑그림, 그리고 경쟁판세를 읽는 혜안에 의해 성패가 갈릴 것이다. 영종도 사업이 진정으로 성공하려면, 그 험난한 미래를 무시하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04-01 손동원

이야기로 소통하는 도시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고령화하고 있어 이에 대비한 주택정책과 사회문화정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 인천시의 경우 2022년 65세 노인인구 비율이 14%를 넘어서는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28년에는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강화군과 옹진군은 2001년 이전에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도심의 고령화는 원도심 지역의 재생의 제약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도시 정책의 전반적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도시의 고령화로 인한 문제는 원도심 지역의 슬럼화로 이어져 전반적인 쇠퇴를 초래할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원도심 지역의 노령화는 제조업을 비롯한 전통 산업의 쇠퇴와 부동산 하락의 한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로 인한 해당 지역의 기초자치단체의 도시재생투자 소홀을 낳게 되어 도시 경쟁력은 더욱 취약해지는 악순환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 현상은 비단 인천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 전체의 문제이다. '젊은 수도권, 늙은 지방'이라는 통념이 무너지고 있다. 수도권 주요 도시들의 고령화 속도가 오히려 비수도권보다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고령화에 대비한 도시 인프라와 주택 수요 변화를 예측하고 변화에 부합하는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고령화에 대비하여 원도심 지역 도시계획의 고령친화적 개발이 당면한 과제이다. 병원, 공원 등을 주거시설과 가까운 거리에 배치하는 고밀도 복합주거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또 1인가구와 고령가구의 급격한 증가에 대비하여 상권 형성이 활발하지 않은 역세권을 중심으로 노인전용 임대주택부지를 공급하는 방안, 무장애 주택과 노인친화형 디자인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도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다.그런데 노령화에 대비한 도시계획과 주택 대책과 별도로 사회· 문화적 정책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고령친화적 도시계획이 의도와 달리 원도심 지역을 고령화 지구로 기정사실화하고 도심 실버타운으로 고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도시 공간이 생애주기별로 구획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원도심 지역에는 청년층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여 청년세대가 유입되어 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세대 균형적 도시재생전략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사업 중에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자원 봉사자 양성 프로그램이 있다. 유치원 등 유아교육기관에서 어린이들에게 선현들의 미담이나 전래동화를 재미있게 들려 줄 수 있는 스토리텔러 할머니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2009년 대구 경북에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전국으로 확대되어 현재 약 1천명의 이야기 할머니들이 3천여 곳의 전국 유아교육기관에서 이야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이 프로그램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어르신을 발굴, 이야기 구연 양성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 후에 유치원, 초등학교로부터 파견 요청을 받아서 이야기를 구연하고 있다. 이야기를 통해 조손(祖孫) 세대간의 문화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며, 옛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는 아이들의 인성함양에도 기여할 수 있으며, 고령화 시대 노인층의 여가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성공적 프로그램을 지역별로 특성화한다면 그 파급효과가 배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래동화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야기에 도시와 마을이야기를 추가하는 것이다. 세대간 소통의 전령인 이야기 할머니들은 마을의 이야기를 통해 이웃과 이웃을 소통하는 역할도 톡톡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누리는 문화적 차이는 크지만, 실제로 일상에서 세대들은 공존하고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세대간 공유문화의 폭이 클수록 사회는 안정적으로 유지 발전될 수 있다. 도시계획에서 세대와 세대가 공간적으로 구획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듯이, 문화적으로도 세대가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노소동락(老少同樂)'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하여 지원할 필요가 있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4-03-25 김창수

3월의 교정 그리고 새내기들

몇 달만에 캠퍼스가 북적거린다. 이제 갓 대학생활을 시작한 14학번 새내기들의 발걸음이 사뭇 가벼워보인다. 넓은 대학 교정이 어디가 어딘지 몰라 어리둥절하기도 하지만 눈동자들은 호기심에 가득 차 있다. 학생들을 실은 학교버스는 정문과 후문 언덕을 연신 오르내린다. 교내 곳곳에는 선배들이 부스를 차려놓고 한 명의 새내기들이라도 자신들의 동아리로 끌어들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새학기에나 볼 수 있는 풍경이어서 정겹다. 낯선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새내기들의 모습도 풋풋하다. 파릇파릇하다 못해 싱그런 새내기 대학 1학년을 프레시맨(freshman)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성중립적이지 않은 표현이라 하여 'first-year student(퍼스트이어 스튜던트)로 부르는 주도 있지만 우리에겐 아직도 프레시맨이 문자 그대로 신선해 보인다.들뜬 분위기를 나타내는 3월의 교정에서 주인공은 단연 신입생이다. 일부 대학의 특정 학과에서 선배들이 신입생 군기잡기에 나서 말썽을 빚었다는 소식이 우리를 슬프게도 하지만 그래도 3월 한 달만큼은 누구에게서나 환영과 사랑을 받는 존재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과는 환경이 사뭇 달라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때는 교실 앞에 크게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같은 시간에, 같은 선생에게 배웠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밥을 먹었다. 1년내내 어울리는 사람들도 한정돼 있었다. 맘대로 반을 바꿀 수도 없다. 선택권이 하나도 없으니 차라리 부담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그런데 대학에 입학하니 새내기들은 나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강 신청을 하느라, 수업시간표를 짜느라 곤혹을 치러보기도 했다. 게다가 뭘 입을지, 뭘 먹을지, 뭐를 해야할지 완전히 내 책임인 동시에 내 자유다. 한꺼번에 주어진 자유가 오히려 새내기들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늘어난 자유와 선택권이 오히려 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누리는 자유만큼 책임이 뒤따른다. 12년간 보통교육을 받는 동안 부모와 교사 등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왔지만 이제는 그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 본인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간의 고생스럽던 대학입시 준비와 학업으로부터 벗어나 해방감을 만끽하고자하는 욕망도 있을 수 있다. 미팅과 곧 다가올 봄축제,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한 낭만적이고도 즐거운 대학생활을 꿈꾸기도 할 것이다.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대학을 학문 연구와 진리 탐구의 상아탑, 낭만의 전당이라 일컫는 것도 사치가 돼버린지 오래다. 대학가에도 '무한경쟁'이라는 단어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점차 강화되는 상대평가 지침에 따라 절반 가까운 학생들이 'C' 이하의 성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교수들의 가슴도 저미도록 아파온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일렬로 줄을 세워야 한다. 그냥 영화의 제목일 뿐이다. 청년실업이 두려워 아예 1학년 때부터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에 나선다. 긴 인생행로를 놓고 볼때 대학이 취업의 도구만은 아닐진대 이같은 현실이 안타깝다. 아무튼 대학 1학년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열정적인 시간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 '나는 누구인가'에서부터 '어떻게 만들어갈까, 어디로 가야 할까'에 대한 해답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학생으로서의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생활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책은 몇 권이나 읽을 것인지, 여행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일도 중요하다. 대학생으로서의 첫 한 달이다. 무한한 꿈과 도전을 통해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새내기들이 되기를 기대한다./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3-18 이준구

깊은강이 멀리 흐른다

드라마 '정도전'의 열풍이 뜨겁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에 푹 빠진 아내와 딸에게 TV리모컨을 빼앗긴 남편들이 모처럼 주말저녁 리모컨을 빼앗아 와 정도전 삼매경에 빠져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지난 9일 정도전은 시청률 16.5%를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같은 시간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도 '개그 콘서트'도 따돌린 놀라운 기세다. 이성계와 이인임, 정도전과 이방원의 갈등이 더 깊어지고, 마침내 조선건국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당분간 아내들이 남편으로부터 리모컨을 빼앗기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왜 남자들이 지금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혁명가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했던' 한 사나이에게 열광하고 있는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격동의 시기, 타락한 고려왕조를 뒤엎고 조선을 설계한 '고려가 버린 아웃사이더'에게 왜 중장년들은 이토록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걸까. 불황으로 숨도 못 쉬던 서점가 서가에도 정도전 일색이다. '소설 정도전'에서부터 '정도전 연구'에 이르기까지 정도전과 관련된 서적만 50권이 넘는다. 방송계나 출판계 모두 정도전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훌륭한 학자 정도전이 역심을 품는 개혁가가 된 것은 이인임과의 불화로 나주로 유배를 떠나면서부터다. 9년이라는 길고 길었던, 그리고 가난하고 외로웠던 긴 유배생활이 없었다면 조선정신의 바탕이 되었던 위민의식은 싹트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이 무려 519년 동안 망하지 않고, 도도한 강물처럼 멀리 멀리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은 정도전이 초석을 다진 조선의 건국이념 때문이었다. 우리가 조선이 500년만에 '망했다'고 하지만 조선은 500년동안 '망하지 않은' 보기드문 왕조국가였다. 조선은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왕이 주인이 아니라 백성이 주인인 나라가 조선이었다. 왕의 독단을 거부하는 신하가 있었고, 왕의 행차를 백성이 꽹과리를 치면서 막고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직접 왕에게 호소하는 이른바 '격쟁(擊錚)'이 가능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큰 전쟁을 겪고도 무려 280년이나 더 유지된 나라가 조선이었다. 성리학의 영향으로 조선은 검소하고, 도덕적이고, 문화적인 삶을 영위했다. 조선 몰락의 원인은 정조대왕 사후 60년간 이어진 세도정치였다. 무려 60년 세도정치에도 조선이 망하지 않은 것은 인본주의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선왕들이 백성에게 끼쳤던 덕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세도정치가 끝나고 50년이 더 지난 후에 조선이 망했으니 도대체 그 끈질긴 생명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바로 정도전이 만든 조선건국 이념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나라의 진정한 주인은 백성'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정도전의 이념이 염증나는 지금 우리의 정치와 맞물려 이 드라마에 중장년 남성들이 넋을 놓고 있는 것이다. 성종때 완성한 경국대전이라는 위대한 법전은 정도전이 만든 '조선경국전'이 바탕이 되었다. '조선 경국전'은 정도전이 500년 후를 내다본 조선의 근본이었다.새정치를 표방하면서 '100년이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과 사실상 합당을 선언했다. 겨우 100년을 내다본 그 였지만 그것조차 포기하고 날름 민주당의 품에 안겨버려, 안철수 새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국민들을 멘붕에 몰아 넣었다. 차라리 100년정당 운운하지 않았다면 배신감도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책사라는 윤여준 전 장관이 '이 자가 나한테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 알아야겠다' 정도의 화법도 국민의 분노에 미치지 못한다. 따지고보면 신당 창당 선언이후 정도전의 시청률이 동시간대 1위로 올라선 것이 괜한 것도 아니다. 미국의 양대 정당, 민주당과 공화당의 연륜은 1792년, 조선에서 위대한 왕 정조로 인해 문화가 화려하게 꽃을 피고 있던 그 먼곳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장장 200여년을 흘러와 지금의 미국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이다. 엘 고어가 2000년 대선에서 총 투표수에선 부시보다 54만3천895표를 더 얻고도 선거인단 투표에서 패배, 이를 깨끗하게 승복한 것도 깊은 강처럼 흘러왔던 미국 민주주의의 저력 때문이다. 거저 얻어진게 아니라는 뜻이다. 조선의 이념을 만든 정도전의 정치사상이 조선을 얼마나 깊은 강으로 만들었는지, 창당과 합당을 식은죽 먹기로 해 치우는 한국의 정치인들은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4-03-12 이영재

통합과 분열, 어느 쪽이든 야권 몫이다

정치 현실은 요동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정치는 생물이라고들 한다. 정당간의 합당이나 정책연합, 선거연합 등 연합정치는 정치지형의 변화를 추동하는 주요 기제들이다. 1990년의 3당 합당, 1997년의 DJP연합, 2002년의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 시도 등이 광의의 연합정치의 일환들이다. 그러나 3당합당은 밀실야합이라는 비판에 직면했고, DJP연합은 이념지향이 전혀 다른 정치세력간의 지역연합이라는 부정적 평가에 노출됐다. 2002년의 후보 단일화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정치가 연합정치의 긍정적 면보다는 부정적 면이 부각되는 이유는 선거를 앞두고 권력획득만을 위한 정치공학적 연대라는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3당 합당은 여소야대 현상을 타파하기 위한 여권의 계산과 제2야당이었던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내각제를 관철시키기 위한 김종필의 셈법이 맞아떨어진 것으로서 정계개편을 가져왔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렇듯 정치세력간의 합종연횡은 정계개편의 요인으로 작용한다.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이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 어떠한 변화를 불러올지 아직은 예단하기 힘들지만 집권당과 야권의 대립각을 선명하게 하면서 경사진 운동장을 정지작업하는 효과는 있다. 이는 정치지형의 변화를 초래하고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정계개편을 가져올 수 있는 폭발력 있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 등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거대정당의 독점 구조를 비판했는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또 하나 지난 대선 과정에서 당시 안철수 교수가 정치혁신이나 정치개혁 등 새로운 정치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문재인 후보와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는데 지금의 민주당이 새정치를 담보할 만큼 혁신했는가 의문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질문들에 답하지 못하면 통합신당의 미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이 신당이 야합이나 기존의 구태 정치처럼 선거를 목전에 두고 정치적 이해에만 기반한 선거공학적 이합집산인지, 야권 통합의 지평을 여는 훌륭한 연합정치인지를 판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4년전 5회 지방선거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의 연대가 위력을 발휘했다. 게다가 무상급식 어젠다로 야권이 선거 이슈를 선점하는 효과와 맞물리면서 야권의 승리로 연결됐다. 물론 지방선거가 정권 출범후 2년이 넘은 시점에서 치러짐으로써 정권심판론과 중간평가의 논리가 작동될 수 있는 정치상황적 요인도 한 몫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통합신당이 지난 지방선거와 같은 '연합'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를 예견하기에 변수가 너무나 많다.우선 통합과정에서 이해관계의 충돌을 절충해 나가고 야권이 단일대오를 형성할 수 있을지가 변수다. 민주당이나 새정치연합 내부의 정치적 의사 수렴이 생략되었기에 향후 추인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반발이나 잡음이 갈등으로 표출된다면 통합은 빛을 발할 수 없다. 통합의 명분이 두 정치세력 구성원들의 실리보다 앞선다면 신당은 순항할 수 있다. 그러나 창당과정에서 지도부 구성이나 당직 배분,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공천을 둘러싼 이해의 충돌들이 노골화되면 이번 신당은 최악의 '통합'이 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한국정치에서 분열하는 쪽은 패배했고, 통합하는 세력은 선거에서 승리했다. 물론 예외가 있으나 비교적 일관되게 작동되는 정치적 함수다. 신당 추진이 야합이나 구태를 상징하는 이합집산이 아니고, 진정한 야권의 통합이 되기 위해서는 각 정치세력이 기득권을 양보하는 대타협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새정치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삶의 정치'를 먹고 사는 진보적 어젠다로 구체화하고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이러한 요건이 충족되면 선거에서의 승리는 물론 한국정치 지형을 바꾸는 정치발전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통합을 견인할 리더십, 새정치의 구체적 실천, 민생에 천착하는 진정성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신당 시도는 참담한 실패를 결과할 것이고, 한국정치에서 또 하나의 이합집산이라는 정치적 퇴행의 전형을 기록하게 될 것이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4-03-05 최창렬

[경인칼럼]힘 실릴 영어공용화

예능학원들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전국적으로 1만6천여개이던 피아노학원이 10% 이상 사라졌는데 미술학원 폐업은 이를 훨씬 능가한다. 대신 영어나 수학, 논술 등 주요 과목학원엔 아이들이 넘쳐나는데 영어 사교육 확대가 압권이다. 2009년에 7천700개이던 영어학원수가 지난해에는 1만 곳을 초과한 것이다. 입시경쟁이 초등학교로 확대된 때문이나 청년실업난과 조기영어바람까지 가세해 매년 10조원 이상이 영어사교육을 위해 소진된다. 또한 한국인들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2만 시간 이상을 영어습득에 할애하고 있으나 투자대비 성과는 별로이다. 스위스의 교육기업인 에듀케이션 퍼스트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영어능력은 전세계 비영어권 60개국 중 24위에 랭크된 것이다.비영어권 국민들의 영어 열공(熱工) 배후에는 세계화가 도사리고 있다. 자본주의의 외연적 확대는 냉전시대를 청산했다. 노동력을 제외한 모든 경제적 자원의 국제적 이동성을 높인 때문에 지구촌의 요소생산성이 제고된 결과 세계인들이 물질적 풍요의 혜택을 누린 것이다. 반면에 신자유주의의 그늘(=장기불황)은 더욱 짙어졌는데 분배문제가 결정적이다. 특히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국내외적으로 빈부격차는 훨씬 심해졌다.최근 미국에는 민간소비 훈풍이 감지되고 있으나 정부의 고민도 깊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산업지형에 반갑지 않은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중산층 산업이 쇠퇴하고 럭셔리 및 대체재 산업이 점점 비대해지니 말이다. 지난 3일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이 발표한 "2012년 미국 전체 소비의 38%를 소득 상위 5%인구가 담당했다"는 내용이 상징적이다. 유럽과 일본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동소이하다. 민간소비의 핵인 중산층이 무너져 내리면서 저성장체제가 장기화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상위 0.1% 사람들이 모이는 다보스포럼의 금년 주제가 양극화문제인 지경이다.국내적으로 성장문제, 주거문제, 사교육문제, 수출경쟁력문제 등이 산적했으나 부(富)의 편재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소득분포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353으로 위험수준(0.4)에 육박할 뿐 아니라 OECD 34개 회원국 중 6번째로 높다. 지난 한 해 동안에 10만 명이 새로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생계형 창업의 80%가 불과 1, 2년 만에 사업을 접는 실정이니 말이다. 과거 봉건사회에서도 지금처럼 분배불균형이 심한 적은 없었다는 지적이다. 불황형 장기침체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세계화와 디지털화(=기계화)가 초래한 결과이다. 작금의 디지털화는 단순히 기계가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 지능까지 대신하는 지식집약형 기계화인 것이다. 빌 게이츠, 주커버그, 스티브잡스 등 극소수의 앙트레프리너와 혁신기술자들에 부가 집중되는 '지식의 지배'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반면에 후진국으로의 끊임없는 생산거점 이전 탓에 절대다수인 비숙련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높은 실업률, 임금 하락 등 혹독한 시련의 계절을 맞았다. 국내의 경우 1991~2007년 사이에 연평균 1만1천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한국은행의 연구에 눈길이 간다. "모든 사람은 인간답게 살 권리와 실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권리를 가진다"는 세계인권선언의 제23조는 빛이 바랬다. 만인을 위한 자유주의질서와 평화와 번영이란 세계화의 비전도 실현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미국 하버드대학의 닐 퍼거슨 교수는 무역과 기독교를 앞세운 미국식 제국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단정했다. 국제공용어로 영어의 비교우위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또한 미숙련 노동력의 위상 악화는 불문가지여서 국제공조를 통한 세계경제 시스템 개선이 유효한 해법이나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각자 호랑이굴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형편이어서 서울 강남의 젊은 엄마들이 모태영어도 모자라 젖먹이들을 닦달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언어제국주의는 언감생심이고 영어공용화가 대세인 것 같아 씁쓸하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2-25 이한구

응답하라, 1999 벤처붐!

지난 과거를 돌아볼 때 특별한 감동을 주는 대목이 있다. 대체로 엄청나게 일이 잘 풀렸던 시기이거나, 혹은 혹독한 역경을 겪었던 시절이 그런 대목이 된다. 최근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따뜻이 적신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그 코드를 정확히 짚었다. 그 드라마는 1994년에 대학에 입학한 청년들의 사랑과 낭만을 그리면서 20년 전 시대상들을 담으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IMF 경제위기 시절과 같이 어려웠지만 지나고 보면 낭만적인 과거들을 회상시키며 시청자들을 드라마에 집중하게 했다.한국 중소기업의 역사에서도 이렇게 뭉클하면서도 기묘한 시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1999년, 즉 벤처붐이 절정이던 시기이다. '벤처붐'이라고 말하는 시기는 1999년과 2000년 상반기까지 약 18개월 정도의 기간을 말한다. 이 시기는 인터넷 버블과 닷컴 열풍을 기반으로, 벤처업계로 엄청난 투자금액이 몰리고 코스닥시장이 급성장했던 시기이다. 이때 벤처 인프라들이 정상적인 기대보다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가 추락했기 때문에 그저 거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벤처붐 시절의 숨겨진 효과들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그 시절에 엄청난 원천기술이 잉태되었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지금 '다이얼패드'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독자 분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현재 너무도 익숙한 '인터넷 전화'라는 분야에서 최초로 상업화를 성공시킨 기업이 바로 '다이얼패드'였다. 지난 1999년 새롬기술의 자회사로서 실리콘밸리 동북부 포천 드라이브에서 창업했던 '다이얼패드'는 잠시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현재 인터넷 전화의 최강자 자리는 '스카이프(SKYPE)'가 차지하고 있지만, 그 원천기술은 우리 기업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1999년이 특별한 이유는 다이얼패드 외에도 다른 몇 가지 원천기술들이 탄생했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생활 속으로 깊이 파고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기술도 이 시기에 탄생했다. 그 이름은 '싸이월드'이다. 이 '싸이월드'도 최초의 기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파고를 넘지 못하고 아쉽게 실패했다. 현재 '페이스북(Facebook)'의 가치와 시장지배력을 생각하면 더욱 아쉬울 따름이다.창조적인 원천기술이 벤처붐 시기에만 나왔다는 것을 간단하게 볼 수 없다. 분명하게도 그 시기에는 창조 에너지가 엄청나게 강했다. 그것을 놓친다면 지난 역사의 중요한 의미를 놓치는 셈이며, 창조적 기업을 잉태할 수 있는 조건을 놓치는 셈이다. 조직이론가인 스틴치콤(Stinchcomb) 박사가 설파했듯이, 기업은 탄생 시점의 시대적 상황에 지대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창조 에너지가 넘치는 시대에 탄생하는 기업은 창조 역량이 높게 마련이다.놀랍게도 벤처붐이 종료한 2001년 이후부터 우리는 원천기술을 좀처럼 얻지 못하고 있다. 구태여 꼽는다면 '카카오톡' 정도가 세계시장을 놀라게 할 수준의 기술력이 아닐까 싶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벤처붐 시기를 돌아보며 '응답하라'고 요청하는 감정이 특별하다. 창조적 기업을 낳으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벤처붐 시기에서 시사점을 얻는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대추 한 알도 다 그만한 세월과 조건 속에서야 나온다.이제 '벤처붐'을 거품으로만 보던 견해는 바뀌어야 한다. 코스닥 시장에서 변동성이 활발했고 기업공개(IPO)도 풍성했다. 그에 따라 벤처 투자도 시장에 넘쳐났다. 그것을 지켜보는 젊은 창업자들은 희망을 잉태했다. 그들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열정을 불태웠으며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했다. 이런 모습들이 바로 오늘 우리가 원하는 창조경제의 싹일 것이다. 당시 벤처 열기를 급격히 추락시킨 '묻지마' 투자와 비도덕적인 기업사냥꾼과 같은 문제를 해결한다면 벤처붐의 효과는 결코 사소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류시화의 시구(詩句)인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이라는 구절이 새삼 가슴에 닿는다. 지난 벤처붐 시절 우리는 좋은 기회를 잘 다스리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그 경험은 이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역사란 오래된 미래이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02-19 손동원

창조 사회의 기반을 주목할 때

인류의 문명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징후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제3의 물결'이라 칭한 정보화 사회를 넘어 전개되는 우리 시대를 흔히 '창조화'사회라고 부르고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경제와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에 도달하였다고 보는 관점이다. 도시의 비전을 '창조도시'로, 기업 경영의 비전도 '창조'가 강조되고 있으며, 우리정부도 국정 과제로 '창조경제'를 내세우고 있다.'창조화 사회'라는 개념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지만 대량생산형 공업사회에서 탈공업사회로의 전환은 선진국의 보편적 현상임은 분명하다. 선진국의 경우 서비스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컴퓨터와 IT관련 직종, 카피라이터, 변호사, 회계사, 연구자 등의 직종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여러도시에서 영화와 음악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연극, 미디어 아트 등의 문화산업이 침체일로에 있는 제조업을 대신하여 지역의 성장과 고용을 견인하는 사례도 많다. 문화산업의 발전은 그 자체로 고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원동력이지만, 도시문제에 대한 창조적 해결방식을 제공하는 다양한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며, 친환경적이며 고유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한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점이다.창조화 사회의 도래를 알리는 몇 가지 사례를 보자.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마크 주커버그가 불과 26세의 나이에 불과하지만 소셜 네트워크 프로그램인 페이스북을 개발하여 불과 6년만에 230억 달러 가치의 기업인 페이스북 닷컴의 최고 경영자가 되었다. 현재 주커버그의 개인 재산만 약 7조8천억원에 달한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도 신화의 주인공이다. 교사출신의 가난한 프리랜서 작가였던 롤링은 판타지 소설의 성공으로 일약 1조130억원의 재산을 가진 부호가 되었으며 10년 후에 롤링의 재산 총액은 64조원에 도달한다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해리포터시리즈라는 판타지 서사가 애니메이션, 영화, 캐릭터, 출판 등의 문화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생 효과가 무려 300조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롤링이 영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다.우리나라의 경우, 이충렬 감독의 다큐 영화 '워낭소리'의 총 제작비는 5천만원이었다. 극장 개봉 후 300만 관객 입장권 매출액만 190억원이었다.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은 현재 유튜브 다운로드 19억 뷰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 뮤직 비디오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1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다.이러한 사례가 몇몇 천재의 신화가 아니라 차츰 사회 전 부면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주는 문화적 창안물이 사회와 경제의 중심이 되는 사회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모든 것은 '아름다움'으로 통하는 시대, 미학이 삶의 전 영역을 지배하는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움'과 '감동'이 예술이나 취향의 영역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도시와 국가의 생존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는 전환기를 살고 있는 것이다.지금은 창조신화의 토대와 환경이 무엇인가를 논의할 때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해서 거위 배를 가를 수 없듯이 창조성의 결과에 집착하는 한 영원히 창조성의 성과를 얻을 수 없다. 최근의 창조적 신화는 전적으로 창조적 인력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금 국가와 지방정부는 창조인력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의 조성과, 창조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에 '올 인'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임기 내에 창조경제의 '열매'를 거두겠다고 서둘러서는 곤란하다. 먼저 학교와 기업이 바뀌어야 하고 정부가 '창조적'으로 진화해야 한다. 사업마다 '창조'와 '창의'를 붙여 놓는다고 창조사회가 되지는 않는다. 창조성은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자면 사회는 더 자유롭고 더 다양해야 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자유롭고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융합될 때 창의성은 발현될 것이기 때문이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4-02-12 김창수

1등주의, 서열화 만을 추구하는 사회

'삼성식 대학순위' 교육부에서 또 발표할까 걱정'일류대 합격·일류기업 입사' 1등인생 보장안돼더 성숙한 사회되려면 1등주의·서열문화 버려야1990년대 중반이니 한 20년쯤은 됐나 보다. 교육 분야를 주로 취재했던 기자시절이다. 사회적으로 고교 서열화 논란이 가열되고 '1등주의 심리'를 우려하던 때다.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고교와 대학을 서열화하지 않겠다는 기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수능 수석합격자, 각 대학의 수석합격자, 고교별 대학합격자 수, 지원가능대학 분포 등을 앞으로 보도하지 않겠다는 자율실천강령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언론에서도 '1등, 최고, 전국 최초, 세계 최초'라는 단어는 기자들이 가장 좋아한다. 독자들의 입맛에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들은 그 이후 수능 수석과 대학 수석합격자가 발표될 때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이 없어졌다. 수석합격자의 학교와 집을 찾아다니며 앞다퉈 취재경쟁을 벌이는 수고도 사라졌다.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이같은 현상이 사라지고 말았다. 국내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1등 서울대가 1996년 이후 10년간의 고교별 합격자 현황을 보도자료로 배포한 것이 화근이었다. 서울대의 의도는 지역균형 선발로 합격자 배출 고등학교가 다양해졌다는 것을 알릴 의도였다지만 기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보충취재에 들어간 기자에 의해 지난 10년간 서울대에 진학시킨 고교와 합격자 수가 낱낱이 공개됐다. 그 기자 역시 1등을 자처하는 신문사 소속이었다. 10년간 서울대 합격자의 고교별 현황에 목말라하던 일부 독자들의 갈증을 씻어준 것이다. 그 기자는 교육부 기자실 1년 출입금지 조처가 내려졌음은 물론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해프닝이었다.이후 서열화를 없애는데 보탬이 되자던 기자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지금 언론에는 온통 서열화 아니면 1등만이 존재한다. 서울대를 비롯해 사법시험 합격자의 고교별, 대학별 숫자가 큰 관심이다. 외국어고 출신이 사법시험 수석합격자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기사는, 내 자녀의 1등주의에 빠진 학부모들을 외고나 특목고만을 고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법률관련 전문지에서 유일하게 매년 발간하는 '법조인○○'이라는 책이 있다. 현직 판·검사에서부터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전체 사법시험 합격자의 사진과 프로필이 실려있다. 수천 쪽 분량이다. 부록에는 출신 고교별, 대학별 색인이 일목요연하게 나온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로 매긴 일종의 고교, 대학 서열표나 다름없다. 서울대와 사법시험. 물론 1등들이 가는 곳이다. 서울대 출신이라고 모두 취업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서울대의 지난 해 순수 취업률은 61%를 조금 웃돈다. 지난 1월 수료한 사법연수생 가운데 절반 이상은 진로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도 1등의 자리를 찾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삼성의 총장추천제가 여론의 화살을 맞고 없었던 일로 끝났지만 그 후유증은 아직도 남아있다. 아무리 삼성이 1등 기업이고, 대학은 취업난을 겪고 있다지만 삼성의 이번 대학별 인원 할당 조치는 상아탑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오만함의 극치였다. 자기네들 입맛대로 대학을 서열화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대학 총장의 권위를 인정했다면 면접만으로 뽑아야 옳을 일이었다. 더욱이 추천서에는 총장이 자필서명해야 한다며, 그것도 이메일로 일방 통보했다. 자칭 글로벌 1등기업이라는 삼성으로서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었다. 대학은 삼성의 서류전형 업무 대행업체가 아니다. 기업이 인재를 총장에게 추천해달라고 요청할 때 정중하게 하는 것이 기본 예의다. 벼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 않는가.지난 달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구조개혁방안에는 모든 대학을 최우수~매우 미흡까지 5등급으로 분류해 정원 감축에 차등을 두고 퇴출까지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역시 대학을 한 줄로 세워 서열화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은 지금 뼈를 깎는 고통 속에 자구노력 중이다. 대학에서도 학령인구의 대폭적인 감소를 모르는 바 아니다. 어느 대학이 부실한지, 교육수요자인 학부모와 학생들이 더 잘 안다. 절박한 심정의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할 일이다. 다만 이번에 문제가 된 삼성식 서열에 따른 1~200등 대학 순위가 또 교육부에 의해 밝혀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세상을 사는데 1등만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일류대에 합격했다고, 일류기업에 입사했다고 1등 인생이 보장되는 건 더욱 아니다. 1등주의와 서열문화.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하기 위해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의식들이다./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2-05 이준구

피도 눈물도 없이…

존재감 알리려고 쏟아낸 발언 아쉬움만분명한건 정치인들만 냉정한건 아니다이젠 유권자도 아주 독해졌다는 사실정치판은 피도 눈물도 없다. AI가 창궐하고, 전 국민 개인정보가 탈탈 털려도 정치판은 6·4 지방선거를 향해 거침없이 진격중이다. 정치인은 피도 눈물도 없다. 어제의 적이 오늘 동지가 되고, 오늘 동지가 내일 적이 된다. 손바닥 뒤집는 건 다반사다. 얼굴이 두껍지 않으면 정치를 하지 말라는 성현의 말을 곱씹어 보는 요즘이다.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최근 어느 모임에서 박근혜 정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현장에서 직접 들었던 기자가 귀를 의심했을 정도였다니 보통 강도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김 지사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민주화의 이름하에 귀중한 취임 초기 1년을 허송세월했다"며 "작년 한 해가 매우 중요했는데 임기 초반 대통령이 내내 답답했다"고 말했다. 기초선거 공천제에 대해서는 "공천권을 주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정치개혁의 첫걸음"이라며 새누리 당론과 정면배치되는 발언도 쏟아졌다. 이런 김 지사의 발언을 두고 말들이 많다. 직설적 발언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김 지사의 발언에 대해 "박 대통령이 아니라 김 지사 본인이 자신의 임기말을 허송세월했다고 이야기하는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받아쳤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뜻이다. 정우택 최고위원도 "스스로 자극적인 자해적 발언을 통해 큰 선거를 앞두고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은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특유의 직설화법 때문에 숱한 설화(舌禍)를 남겼던 김 지사다. 2년전 소방서 119 전화(電禍)사건은 수십건의 패러디로 재생산돼 인터넷상에서 회자됐다. 김 지사는 최근 경기지사 불출마 입장을 밝힌 뒤 정부와 여당을 향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일각에선 이같은 행동이 당내 기반이 없는 김 지사가 당 복귀를 앞두고 존재감을 보이려는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정치의 한 단면이라는 견해도 있다.이날 발언의 압권은 김 지사의 자화자찬에서 정점을 이뤘다. 김 지사는 "경기도가 지난해 매우 어려웠지만 우리는 빚을 한 푼도 내지 않았고 부채 없이 4천억원의 감액추경으로 군살을 모두 뺐다"고 말했다. 경기도청 광교 신청사 이전사업 중단과 관련해서는 "공무원과 광교 주민이 모두 신청사를 짓자고 했지만 (내가) 스톱시켰다"며 "공무원이 공공청사가 부족해서 일을 못하는 게 아니다. 급식비를 깎아가며 도청부터 지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과연 김 지사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김 지사는 광교신도시 도청이전문제와 관련, 집권 2기내내 광교주민과의 끊임없는 갈등을 빚어왔다. 또 평택 브레인시티 사업지구 해제 절차 지연과 관련해서는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등 우유부단한 도정이 논란거리였다. 또한 최대 역점사업이었던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와 USKR(유니버설스튜디오코리아리조트)사업은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 산하 지방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은 이제 구조조정없이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다. 어디 이뿐인가. 지난해 세수예측을 잘못해 극심한 부동산 거래 침체로 4천500억원의 세수결함이 발생하기도 했다. 예산부족 이유를 내세워 무상급식 지원예산 860억원을 전액 삭감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모두 경제상황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태다.나는 김 지사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무척 아쉬워하는 사람중 한 명이다. 김 지사는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대권의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이런 결정을 내린 모양인데 세상의 이치가 꼭 그렇지도 않다. 이인제·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들도 모두 그런 생각으로 그 좋다는 지사직을 버리고 피도 눈물도 없는 판에 뛰어들었다가 대권은커녕 여전히 강호를 배회중이다. 그런면에서 3선 지사가 돼서 숙원사업이었던 GTX, USKR 사업을 완결지어 주었다면, 경기도민은 끝까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그 진정성에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 쏟아냈던 이번 발언이 아쉬웠던 것도 그런 이유다. 어차피 보궐선거를 위해 다시 돌아올 생각이라면 더 그렇다. '제2의 이재오'가 될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분명한건 정치인들만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유권자도 피도 눈물도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이제 유권자도 아주 독해졌다./이영재 논설위원

2014-01-29 이영재

6·4 지방선거의 경우

선거환경은 집권당 새누리가 유리하게 보여지방권력까지 싹쓸이 견제심리 발동예상 변수정치엘리트들 입신위한 선거로 전락해선 안돼6월 지방선거의 구도가 어떻게 짜여지느냐는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주요 변인이다. 정권안정론 대 정권심판론 중 어느 어젠다가 유권자에게 투영되느냐가 선거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할 것이다. 물론 지역과 인물도 승패의 주요 요인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방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변수 중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선거구도다. 선거단체장 선거가 실시된 이후 치러진 다섯 번의 선거는 2회 지방선거가 실시된 1998년의 김대중 정부 때를 제외하곤 모두 여당의 패배였다. 그래서 지방선거는 '여당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단 2회 지방선거는 정권 출범 후 불과 3개월 남짓이 지난 시점에서 치러졌다. 그리곤 모두 2년 3개월 이상 지난 후 실시됐다. 김대중 정부때 여권이 승리한 것은 대선의 후광효과가 컸기 때문으로 보이며, 정권심판론이 작동되기 어려운 시점이었다. 결국 2회 때를 제외하곤 중간평가론이 작동된 결과로 보아야 한다.올해 지방선거는 어떨까. 우선 시기적으로 정권견제론이 형성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중간평가적 성격이나 정권심판론이 작동되기엔 정권 출범 후 1년 3개월 남짓이라는 시점의 애매성이 있다. 세대별 차이가 있겠으나 전반적인 선거 분위기에서 유권자들의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정권심판론보다는 더 크게 작용할 개연성이 크다. 게다가 현재 정당지지율에서 볼 때 각종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정당요인과 후보요인이 동시에 반영되는 것이 선거의 기본 동인이지만 지방선거에서는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더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거시적인 요인에서는 이렇듯 민주당에 비해 새누리당이 선거환경 측면에서 유리해 보인다. 또한 안철수 의원측이 새누리당보다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표를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면 선거공학적 차원에서 새누리당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그러나 반대논리도 가능하다. 현재 행정부 권력과 의회권력을 새누리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권력까지 특정 정당이 싹쓸이 하는 것에 대한 견제심리의 발동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변인 중 하나다. 회고적 투표의 관점에서 중간평가와 정권심판과는 다른 맥락이다. 전망적 투표의 관점에서도 논리적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경제학의 파레토 최적의 논리와 형평의 이론으로 비유할 수 있다. 황금분할까지는 아니더라도 균형과 견제의 민주주의의 원리가 집단적 선택인 선거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도권에서 인물론이 변수로 개입될때 환경적 요인과는 다른 양상이 선거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반대논리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즉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인천시장 등 수도권 승패가 지방선거의 분수령이 된다고 볼 때 여당의 승리를 점치기 어렵다는 예상도 무시할 수 없는 논리적 정합성을 가지고 있다.새해가 되자마자 정치권의 관심은 지방선거로 쏠리고 있다. 당연하다. 정치현상에서 선거보다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선거는 민주주의에서 민심의 향배와 국민의 집단 지성을 담보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정치과정이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논할 때 민의의 왜곡을 꼽는다. 정치권이 선거공학적 측면에서 정파의 유불리를 따지는 동안 지난 해의 정치부재와 정치실종에 대한 비판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집권세력의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에 대해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찾기 어렵다. 선거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정치과정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엘리트들의 입신을 위한 장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선거과정에서 정권에 대한 기대와 권력에 대한 비판이 균형을 이루어갈 때 선거는 비로소 정치공학적 연례적 행사가 아닌 민주주의의 퇴행을 방지하는 기제로 작동될 수 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가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와 이를 적절히 견제하지 못한 정치세력에 대한 평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이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4-01-21 최창렬

문제 많은 지방대 육성법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 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지방대육성법)이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에 경기인천지역 대학생들이 매우 실망하는 분위기이다. 지방대 살리기는 당연하나 너무 지나쳤다는 반응이다. 경인지역 대학생들은 학벌에서는 '인서울' 학생들에 치이고 취업에선 자칫 지방대에 밀릴 수도 있어 참담하다.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지방대 출신이란 이유로 원서조차 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방대출신 채용할당제 도입이 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가 된 배경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초에 공공부문 신규 채용의 30% 이상을 지방대 출신자로 충원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지방대육성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 한해 종래 5급 공무원에만 적용되던 지방인재 특별채용제를 7급까지 확대, 해당지역 학생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전체 채용인력의 최소 20% 이상을 선발하고 총장 추천을 받아 채용하는 인원수도 지난해 80명에서 2017년까지 120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인 민간기업도 일정비율 이상을 지역인재를 채용하도록 강제하기로 했다. 삼성 등 대기업이 작년에 지방대생 채용비율을 크게 늘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현재 수도권 고교출신이 대부분을 점하는 지방대의 의대, 한의대, 치대, 약대, 로스쿨 등에 대해서도 해당 지역 고교출신 신입생을 일정비율 이상 뽑는 '지역인재전형'을 부활하기로 했다. 지방대는 해당 지역 학생들을 우대하는 전형방식으로 작년에만 68개 대학이 총 8천834명을 선발했었다. 그러나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원자격을 특정지역 출신으로 제한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취약하다고 판단해서 2014년에는 중지했던 것이다.박근혜정부는 지방대 살리기를 위해 재정지원도 확대하기로 결정하고 올해부터 매년 2천억원 규모의 '지방대학 특성화사업'을 시행, 향후 5년간 총 1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상의 내용들을 무리 없이 추진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했던 탓에 지난해 7월 새누리당의 발의로 지방대 육성법을 새로 마련한 것이다.그러나 이 법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데 첫째, 역차별 시비이다. 수도권 4년제 대학수는 전국의 10%정도이나 몇몇 대학을 제외하면 서울소재 대학에 비해 경쟁력이 현격히 떨어지니 말이다. 수도권대학 취업률이 지방대 평균에 못미치는 이유이다. 그러나 안전행정부는 현재 저소득층이나 장애인의 선발처럼 정원 외로 공직자들을 뽑기 때문에 역차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소수자우대정책도 한몫 거들었다. 지방대가 국내 고등교육 인력의 63%를 양성하고 지방이 국내총생산의 53%를 담당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지방학생 특별배려는 당연하다는 식이다.지역인재들의 지방대 우선배정에 대해서도 수도권 학생 및 학부모들이 집단으로 반발할 수도 있어 보인다. 수도권대학 인기학과에도 서울 및 경인지역 학생들의 우선배정을 요구하면 어쩔 것인가. 더욱 문제는 법의 실효성이다. 지방대 육성법 제정의 목적은 지방학생들을 해당 지역의 인재로 양성해 지역발전에 이바지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졸업 후 이들을 강제로 해당 지역에 붙들어둘 수 없다. 헌법에서 규정한 거주 및 직업선택의 자유에 배치되는 때문이다.대학 슬림화 작업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지속적으로 막대한 혈세를 투입하고 수도권대학들의 발목을 잡았음에도 지방대는 성장은커녕 날개 없는 추락 중이다. 저출산은 설상가상이어서 2018년에는 고교졸업자수가 대입정원보다 적어진다. 재정지원 중단과 대학폐쇄 등 보다 강도 높은 극약처방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방대학 육성법으로 지방대를 대거 지원하겠다는 것은 정부가 대학구조조정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에 눈길이 간다. 이 정부의 '지방대 살리기' 내용도 포장만 바꿨을 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수도권 역차별 시비는 고사하고 대학경쟁력만 떨어뜨릴 수도 있어 걱정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1-14 이한구

진정한 성장 사다리를 놓자

중소기업, 중견기업 도약위한 통로 빨리 열려야대기업위주 성장 벗어날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대기업능력에 中企역량 갖추면 글로벌시장 호령창조경제의 원년이었던 작년은 중소기업들에 큰 감동을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많은 중소기업들이 불편함을 토로한다. 창조경제 패러다임이 시작되면 중소기업에 큰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대체로 불발탄(不發彈)에 그쳤다. 특히 기업 세무조사가 강화되면서 많은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역차별 정서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현실은 이랬지만 '경제민주화'와 같이 실체도 정확지 않은 개념을 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었다. 종합적으로 조금 실망스러운 한 해였지만, 우리는 지난 일 년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고자 한다. 기차를 잘 달리게 하려면 선로(線路)를 놓는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갑오년 아침, 중소기업의 희망 열차는 이제 달리고 싶다. 중소기업의 희망이란 다름 아닌,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또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소위 '성장 사다리'가 구축되어 차곡차곡 성장 통로가 열리는 상황을 말한다. 대기업이 선전하고 있지만 한국경제에서 허리가 약한 것이 단점인 상황에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도약하는 통로가 빨리 열려야 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과제이다. 그래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성장 사다리'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넓어진 것이다.그런데 많은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구분만 있을 뿐, 진정한 의미의 '성장 사다리'는 없다. 사다리를 사이에 두고 올라온 자와 올라가지 못한 자를 구분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오르지 못한 자가 사다리에 몸을 던져 한발 한발 오르는 열정을 유인하는 것이다. 성장 사다리를 타고 오르려는 기업들의 열의에 대한 생각 없이, 사다리를 사이에 놓고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 대한 구분을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우리가 당초 '성장 사다리'에 대한 관심을 높였던 이유가 바로 많은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을 보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 핵심은 사라지고, 오히려 중소기업에 돌아갈 혜택과 중견기업이 누릴 혜택의 비교라는 쟁점으로 번지는 것은 변질된 상황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장 사다리를 놓는 것은 중소기업들이 성장 사다리에 몸을 던져 확실하지 않은 먼 길을 떠나려는 마음과 또 올라간다는 확신이 없더라도 그 사다리를 믿어보겠다는 마음을 이끌어내는 작업임을 명심해야 한다.성장 사다리는 '강물'과 같아야 한다. 즉, 그것은 하나의 고정된 분류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며 흐르는 실체여야 한다. 강물의 역할은 자신에 몸을 맡기는 물체들을 흘려서 결국 강을 건너게 하는 것이다. 그 역할에 충실한다면, 강물에 의해 건넌 자와 건너지 못한 자의 분포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이 성장 사다리의 구축은 그동안 대기업 위주의 성장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들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 핀란드의 노키아가 무너지는 것을 보라.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노키아가 미국 MS에 인수된 이후, 핀란드는 침착하게 창조 능력을 갖춘 벤처기업들로서 노키아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제 체질의 변화는 하루 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하이테크 벤처의 씨를 뿌렸고, 또 그들에게 열정과 욕망을 유도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도 대기업의 능력 위에 중소 부품업체들의 역량이 더해진다면 분명 글로벌 시장을 호령할 수 있다. 미국의 신흥시장 투자전문가인 루치르 샤르마 박사가 한국경제의 미래를 밝게 보는 이유도 바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보완된 상태를 예견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명확하게 판명된 성공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80년대를 풍미한 가객(歌客) 김광석의 '나무'의 노랫말이 새삼 떠오른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하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펼치려 하오." 갑오년 새해에는 청마(靑馬)의 등과 같이 믿음직한 성장 사다리가 구축되어 더 많은 중소기업들이 성장하길 기대한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01-08 손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