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응답하라, 1999 벤처붐!

지난 과거를 돌아볼 때 특별한 감동을 주는 대목이 있다. 대체로 엄청나게 일이 잘 풀렸던 시기이거나, 혹은 혹독한 역경을 겪었던 시절이 그런 대목이 된다. 최근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따뜻이 적신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그 코드를 정확히 짚었다. 그 드라마는 1994년에 대학에 입학한 청년들의 사랑과 낭만을 그리면서 20년 전 시대상들을 담으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IMF 경제위기 시절과 같이 어려웠지만 지나고 보면 낭만적인 과거들을 회상시키며 시청자들을 드라마에 집중하게 했다.한국 중소기업의 역사에서도 이렇게 뭉클하면서도 기묘한 시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1999년, 즉 벤처붐이 절정이던 시기이다. '벤처붐'이라고 말하는 시기는 1999년과 2000년 상반기까지 약 18개월 정도의 기간을 말한다. 이 시기는 인터넷 버블과 닷컴 열풍을 기반으로, 벤처업계로 엄청난 투자금액이 몰리고 코스닥시장이 급성장했던 시기이다. 이때 벤처 인프라들이 정상적인 기대보다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가 추락했기 때문에 그저 거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벤처붐 시절의 숨겨진 효과들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그 시절에 엄청난 원천기술이 잉태되었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지금 '다이얼패드'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독자 분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현재 너무도 익숙한 '인터넷 전화'라는 분야에서 최초로 상업화를 성공시킨 기업이 바로 '다이얼패드'였다. 지난 1999년 새롬기술의 자회사로서 실리콘밸리 동북부 포천 드라이브에서 창업했던 '다이얼패드'는 잠시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현재 인터넷 전화의 최강자 자리는 '스카이프(SKYPE)'가 차지하고 있지만, 그 원천기술은 우리 기업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1999년이 특별한 이유는 다이얼패드 외에도 다른 몇 가지 원천기술들이 탄생했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생활 속으로 깊이 파고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기술도 이 시기에 탄생했다. 그 이름은 '싸이월드'이다. 이 '싸이월드'도 최초의 기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파고를 넘지 못하고 아쉽게 실패했다. 현재 '페이스북(Facebook)'의 가치와 시장지배력을 생각하면 더욱 아쉬울 따름이다.창조적인 원천기술이 벤처붐 시기에만 나왔다는 것을 간단하게 볼 수 없다. 분명하게도 그 시기에는 창조 에너지가 엄청나게 강했다. 그것을 놓친다면 지난 역사의 중요한 의미를 놓치는 셈이며, 창조적 기업을 잉태할 수 있는 조건을 놓치는 셈이다. 조직이론가인 스틴치콤(Stinchcomb) 박사가 설파했듯이, 기업은 탄생 시점의 시대적 상황에 지대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창조 에너지가 넘치는 시대에 탄생하는 기업은 창조 역량이 높게 마련이다.놀랍게도 벤처붐이 종료한 2001년 이후부터 우리는 원천기술을 좀처럼 얻지 못하고 있다. 구태여 꼽는다면 '카카오톡' 정도가 세계시장을 놀라게 할 수준의 기술력이 아닐까 싶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벤처붐 시기를 돌아보며 '응답하라'고 요청하는 감정이 특별하다. 창조적 기업을 낳으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벤처붐 시기에서 시사점을 얻는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대추 한 알도 다 그만한 세월과 조건 속에서야 나온다.이제 '벤처붐'을 거품으로만 보던 견해는 바뀌어야 한다. 코스닥 시장에서 변동성이 활발했고 기업공개(IPO)도 풍성했다. 그에 따라 벤처 투자도 시장에 넘쳐났다. 그것을 지켜보는 젊은 창업자들은 희망을 잉태했다. 그들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열정을 불태웠으며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했다. 이런 모습들이 바로 오늘 우리가 원하는 창조경제의 싹일 것이다. 당시 벤처 열기를 급격히 추락시킨 '묻지마' 투자와 비도덕적인 기업사냥꾼과 같은 문제를 해결한다면 벤처붐의 효과는 결코 사소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류시화의 시구(詩句)인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이라는 구절이 새삼 가슴에 닿는다. 지난 벤처붐 시절 우리는 좋은 기회를 잘 다스리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그 경험은 이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역사란 오래된 미래이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02-19 손동원

창조 사회의 기반을 주목할 때

인류의 문명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징후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제3의 물결'이라 칭한 정보화 사회를 넘어 전개되는 우리 시대를 흔히 '창조화'사회라고 부르고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경제와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에 도달하였다고 보는 관점이다. 도시의 비전을 '창조도시'로, 기업 경영의 비전도 '창조'가 강조되고 있으며, 우리정부도 국정 과제로 '창조경제'를 내세우고 있다.'창조화 사회'라는 개념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지만 대량생산형 공업사회에서 탈공업사회로의 전환은 선진국의 보편적 현상임은 분명하다. 선진국의 경우 서비스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컴퓨터와 IT관련 직종, 카피라이터, 변호사, 회계사, 연구자 등의 직종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여러도시에서 영화와 음악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연극, 미디어 아트 등의 문화산업이 침체일로에 있는 제조업을 대신하여 지역의 성장과 고용을 견인하는 사례도 많다. 문화산업의 발전은 그 자체로 고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원동력이지만, 도시문제에 대한 창조적 해결방식을 제공하는 다양한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며, 친환경적이며 고유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한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점이다.창조화 사회의 도래를 알리는 몇 가지 사례를 보자.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마크 주커버그가 불과 26세의 나이에 불과하지만 소셜 네트워크 프로그램인 페이스북을 개발하여 불과 6년만에 230억 달러 가치의 기업인 페이스북 닷컴의 최고 경영자가 되었다. 현재 주커버그의 개인 재산만 약 7조8천억원에 달한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도 신화의 주인공이다. 교사출신의 가난한 프리랜서 작가였던 롤링은 판타지 소설의 성공으로 일약 1조130억원의 재산을 가진 부호가 되었으며 10년 후에 롤링의 재산 총액은 64조원에 도달한다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해리포터시리즈라는 판타지 서사가 애니메이션, 영화, 캐릭터, 출판 등의 문화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생 효과가 무려 300조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롤링이 영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다.우리나라의 경우, 이충렬 감독의 다큐 영화 '워낭소리'의 총 제작비는 5천만원이었다. 극장 개봉 후 300만 관객 입장권 매출액만 190억원이었다.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은 현재 유튜브 다운로드 19억 뷰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 뮤직 비디오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1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다.이러한 사례가 몇몇 천재의 신화가 아니라 차츰 사회 전 부면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주는 문화적 창안물이 사회와 경제의 중심이 되는 사회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모든 것은 '아름다움'으로 통하는 시대, 미학이 삶의 전 영역을 지배하는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움'과 '감동'이 예술이나 취향의 영역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도시와 국가의 생존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는 전환기를 살고 있는 것이다.지금은 창조신화의 토대와 환경이 무엇인가를 논의할 때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해서 거위 배를 가를 수 없듯이 창조성의 결과에 집착하는 한 영원히 창조성의 성과를 얻을 수 없다. 최근의 창조적 신화는 전적으로 창조적 인력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금 국가와 지방정부는 창조인력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의 조성과, 창조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에 '올 인'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임기 내에 창조경제의 '열매'를 거두겠다고 서둘러서는 곤란하다. 먼저 학교와 기업이 바뀌어야 하고 정부가 '창조적'으로 진화해야 한다. 사업마다 '창조'와 '창의'를 붙여 놓는다고 창조사회가 되지는 않는다. 창조성은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자면 사회는 더 자유롭고 더 다양해야 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자유롭고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융합될 때 창의성은 발현될 것이기 때문이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4-02-12 김창수

1등주의, 서열화 만을 추구하는 사회

'삼성식 대학순위' 교육부에서 또 발표할까 걱정'일류대 합격·일류기업 입사' 1등인생 보장안돼더 성숙한 사회되려면 1등주의·서열문화 버려야1990년대 중반이니 한 20년쯤은 됐나 보다. 교육 분야를 주로 취재했던 기자시절이다. 사회적으로 고교 서열화 논란이 가열되고 '1등주의 심리'를 우려하던 때다.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고교와 대학을 서열화하지 않겠다는 기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수능 수석합격자, 각 대학의 수석합격자, 고교별 대학합격자 수, 지원가능대학 분포 등을 앞으로 보도하지 않겠다는 자율실천강령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언론에서도 '1등, 최고, 전국 최초, 세계 최초'라는 단어는 기자들이 가장 좋아한다. 독자들의 입맛에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들은 그 이후 수능 수석과 대학 수석합격자가 발표될 때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이 없어졌다. 수석합격자의 학교와 집을 찾아다니며 앞다퉈 취재경쟁을 벌이는 수고도 사라졌다.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이같은 현상이 사라지고 말았다. 국내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1등 서울대가 1996년 이후 10년간의 고교별 합격자 현황을 보도자료로 배포한 것이 화근이었다. 서울대의 의도는 지역균형 선발로 합격자 배출 고등학교가 다양해졌다는 것을 알릴 의도였다지만 기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보충취재에 들어간 기자에 의해 지난 10년간 서울대에 진학시킨 고교와 합격자 수가 낱낱이 공개됐다. 그 기자 역시 1등을 자처하는 신문사 소속이었다. 10년간 서울대 합격자의 고교별 현황에 목말라하던 일부 독자들의 갈증을 씻어준 것이다. 그 기자는 교육부 기자실 1년 출입금지 조처가 내려졌음은 물론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해프닝이었다.이후 서열화를 없애는데 보탬이 되자던 기자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지금 언론에는 온통 서열화 아니면 1등만이 존재한다. 서울대를 비롯해 사법시험 합격자의 고교별, 대학별 숫자가 큰 관심이다. 외국어고 출신이 사법시험 수석합격자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기사는, 내 자녀의 1등주의에 빠진 학부모들을 외고나 특목고만을 고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법률관련 전문지에서 유일하게 매년 발간하는 '법조인○○'이라는 책이 있다. 현직 판·검사에서부터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전체 사법시험 합격자의 사진과 프로필이 실려있다. 수천 쪽 분량이다. 부록에는 출신 고교별, 대학별 색인이 일목요연하게 나온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로 매긴 일종의 고교, 대학 서열표나 다름없다. 서울대와 사법시험. 물론 1등들이 가는 곳이다. 서울대 출신이라고 모두 취업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서울대의 지난 해 순수 취업률은 61%를 조금 웃돈다. 지난 1월 수료한 사법연수생 가운데 절반 이상은 진로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도 1등의 자리를 찾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삼성의 총장추천제가 여론의 화살을 맞고 없었던 일로 끝났지만 그 후유증은 아직도 남아있다. 아무리 삼성이 1등 기업이고, 대학은 취업난을 겪고 있다지만 삼성의 이번 대학별 인원 할당 조치는 상아탑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오만함의 극치였다. 자기네들 입맛대로 대학을 서열화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대학 총장의 권위를 인정했다면 면접만으로 뽑아야 옳을 일이었다. 더욱이 추천서에는 총장이 자필서명해야 한다며, 그것도 이메일로 일방 통보했다. 자칭 글로벌 1등기업이라는 삼성으로서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었다. 대학은 삼성의 서류전형 업무 대행업체가 아니다. 기업이 인재를 총장에게 추천해달라고 요청할 때 정중하게 하는 것이 기본 예의다. 벼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 않는가.지난 달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구조개혁방안에는 모든 대학을 최우수~매우 미흡까지 5등급으로 분류해 정원 감축에 차등을 두고 퇴출까지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역시 대학을 한 줄로 세워 서열화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은 지금 뼈를 깎는 고통 속에 자구노력 중이다. 대학에서도 학령인구의 대폭적인 감소를 모르는 바 아니다. 어느 대학이 부실한지, 교육수요자인 학부모와 학생들이 더 잘 안다. 절박한 심정의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할 일이다. 다만 이번에 문제가 된 삼성식 서열에 따른 1~200등 대학 순위가 또 교육부에 의해 밝혀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세상을 사는데 1등만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일류대에 합격했다고, 일류기업에 입사했다고 1등 인생이 보장되는 건 더욱 아니다. 1등주의와 서열문화.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하기 위해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의식들이다./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2-05 이준구

피도 눈물도 없이…

존재감 알리려고 쏟아낸 발언 아쉬움만분명한건 정치인들만 냉정한건 아니다이젠 유권자도 아주 독해졌다는 사실정치판은 피도 눈물도 없다. AI가 창궐하고, 전 국민 개인정보가 탈탈 털려도 정치판은 6·4 지방선거를 향해 거침없이 진격중이다. 정치인은 피도 눈물도 없다. 어제의 적이 오늘 동지가 되고, 오늘 동지가 내일 적이 된다. 손바닥 뒤집는 건 다반사다. 얼굴이 두껍지 않으면 정치를 하지 말라는 성현의 말을 곱씹어 보는 요즘이다.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최근 어느 모임에서 박근혜 정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현장에서 직접 들었던 기자가 귀를 의심했을 정도였다니 보통 강도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김 지사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민주화의 이름하에 귀중한 취임 초기 1년을 허송세월했다"며 "작년 한 해가 매우 중요했는데 임기 초반 대통령이 내내 답답했다"고 말했다. 기초선거 공천제에 대해서는 "공천권을 주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정치개혁의 첫걸음"이라며 새누리 당론과 정면배치되는 발언도 쏟아졌다. 이런 김 지사의 발언을 두고 말들이 많다. 직설적 발언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김 지사의 발언에 대해 "박 대통령이 아니라 김 지사 본인이 자신의 임기말을 허송세월했다고 이야기하는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받아쳤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뜻이다. 정우택 최고위원도 "스스로 자극적인 자해적 발언을 통해 큰 선거를 앞두고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은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특유의 직설화법 때문에 숱한 설화(舌禍)를 남겼던 김 지사다. 2년전 소방서 119 전화(電禍)사건은 수십건의 패러디로 재생산돼 인터넷상에서 회자됐다. 김 지사는 최근 경기지사 불출마 입장을 밝힌 뒤 정부와 여당을 향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일각에선 이같은 행동이 당내 기반이 없는 김 지사가 당 복귀를 앞두고 존재감을 보이려는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정치의 한 단면이라는 견해도 있다.이날 발언의 압권은 김 지사의 자화자찬에서 정점을 이뤘다. 김 지사는 "경기도가 지난해 매우 어려웠지만 우리는 빚을 한 푼도 내지 않았고 부채 없이 4천억원의 감액추경으로 군살을 모두 뺐다"고 말했다. 경기도청 광교 신청사 이전사업 중단과 관련해서는 "공무원과 광교 주민이 모두 신청사를 짓자고 했지만 (내가) 스톱시켰다"며 "공무원이 공공청사가 부족해서 일을 못하는 게 아니다. 급식비를 깎아가며 도청부터 지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과연 김 지사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김 지사는 광교신도시 도청이전문제와 관련, 집권 2기내내 광교주민과의 끊임없는 갈등을 빚어왔다. 또 평택 브레인시티 사업지구 해제 절차 지연과 관련해서는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등 우유부단한 도정이 논란거리였다. 또한 최대 역점사업이었던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와 USKR(유니버설스튜디오코리아리조트)사업은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 산하 지방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은 이제 구조조정없이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다. 어디 이뿐인가. 지난해 세수예측을 잘못해 극심한 부동산 거래 침체로 4천500억원의 세수결함이 발생하기도 했다. 예산부족 이유를 내세워 무상급식 지원예산 860억원을 전액 삭감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모두 경제상황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태다.나는 김 지사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무척 아쉬워하는 사람중 한 명이다. 김 지사는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대권의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이런 결정을 내린 모양인데 세상의 이치가 꼭 그렇지도 않다. 이인제·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들도 모두 그런 생각으로 그 좋다는 지사직을 버리고 피도 눈물도 없는 판에 뛰어들었다가 대권은커녕 여전히 강호를 배회중이다. 그런면에서 3선 지사가 돼서 숙원사업이었던 GTX, USKR 사업을 완결지어 주었다면, 경기도민은 끝까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그 진정성에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 쏟아냈던 이번 발언이 아쉬웠던 것도 그런 이유다. 어차피 보궐선거를 위해 다시 돌아올 생각이라면 더 그렇다. '제2의 이재오'가 될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분명한건 정치인들만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유권자도 피도 눈물도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이제 유권자도 아주 독해졌다./이영재 논설위원

2014-01-29 이영재

6·4 지방선거의 경우

선거환경은 집권당 새누리가 유리하게 보여지방권력까지 싹쓸이 견제심리 발동예상 변수정치엘리트들 입신위한 선거로 전락해선 안돼6월 지방선거의 구도가 어떻게 짜여지느냐는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주요 변인이다. 정권안정론 대 정권심판론 중 어느 어젠다가 유권자에게 투영되느냐가 선거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할 것이다. 물론 지역과 인물도 승패의 주요 요인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방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변수 중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선거구도다. 선거단체장 선거가 실시된 이후 치러진 다섯 번의 선거는 2회 지방선거가 실시된 1998년의 김대중 정부 때를 제외하곤 모두 여당의 패배였다. 그래서 지방선거는 '여당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단 2회 지방선거는 정권 출범 후 불과 3개월 남짓이 지난 시점에서 치러졌다. 그리곤 모두 2년 3개월 이상 지난 후 실시됐다. 김대중 정부때 여권이 승리한 것은 대선의 후광효과가 컸기 때문으로 보이며, 정권심판론이 작동되기 어려운 시점이었다. 결국 2회 때를 제외하곤 중간평가론이 작동된 결과로 보아야 한다.올해 지방선거는 어떨까. 우선 시기적으로 정권견제론이 형성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중간평가적 성격이나 정권심판론이 작동되기엔 정권 출범 후 1년 3개월 남짓이라는 시점의 애매성이 있다. 세대별 차이가 있겠으나 전반적인 선거 분위기에서 유권자들의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정권심판론보다는 더 크게 작용할 개연성이 크다. 게다가 현재 정당지지율에서 볼 때 각종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정당요인과 후보요인이 동시에 반영되는 것이 선거의 기본 동인이지만 지방선거에서는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더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거시적인 요인에서는 이렇듯 민주당에 비해 새누리당이 선거환경 측면에서 유리해 보인다. 또한 안철수 의원측이 새누리당보다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표를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면 선거공학적 차원에서 새누리당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그러나 반대논리도 가능하다. 현재 행정부 권력과 의회권력을 새누리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권력까지 특정 정당이 싹쓸이 하는 것에 대한 견제심리의 발동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변인 중 하나다. 회고적 투표의 관점에서 중간평가와 정권심판과는 다른 맥락이다. 전망적 투표의 관점에서도 논리적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경제학의 파레토 최적의 논리와 형평의 이론으로 비유할 수 있다. 황금분할까지는 아니더라도 균형과 견제의 민주주의의 원리가 집단적 선택인 선거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도권에서 인물론이 변수로 개입될때 환경적 요인과는 다른 양상이 선거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반대논리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즉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인천시장 등 수도권 승패가 지방선거의 분수령이 된다고 볼 때 여당의 승리를 점치기 어렵다는 예상도 무시할 수 없는 논리적 정합성을 가지고 있다.새해가 되자마자 정치권의 관심은 지방선거로 쏠리고 있다. 당연하다. 정치현상에서 선거보다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선거는 민주주의에서 민심의 향배와 국민의 집단 지성을 담보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정치과정이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논할 때 민의의 왜곡을 꼽는다. 정치권이 선거공학적 측면에서 정파의 유불리를 따지는 동안 지난 해의 정치부재와 정치실종에 대한 비판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집권세력의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에 대해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찾기 어렵다. 선거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정치과정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엘리트들의 입신을 위한 장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선거과정에서 정권에 대한 기대와 권력에 대한 비판이 균형을 이루어갈 때 선거는 비로소 정치공학적 연례적 행사가 아닌 민주주의의 퇴행을 방지하는 기제로 작동될 수 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가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와 이를 적절히 견제하지 못한 정치세력에 대한 평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이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4-01-21 최창렬

문제 많은 지방대 육성법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 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지방대육성법)이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에 경기인천지역 대학생들이 매우 실망하는 분위기이다. 지방대 살리기는 당연하나 너무 지나쳤다는 반응이다. 경인지역 대학생들은 학벌에서는 '인서울' 학생들에 치이고 취업에선 자칫 지방대에 밀릴 수도 있어 참담하다.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지방대 출신이란 이유로 원서조차 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방대출신 채용할당제 도입이 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가 된 배경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초에 공공부문 신규 채용의 30% 이상을 지방대 출신자로 충원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지방대육성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 한해 종래 5급 공무원에만 적용되던 지방인재 특별채용제를 7급까지 확대, 해당지역 학생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전체 채용인력의 최소 20% 이상을 선발하고 총장 추천을 받아 채용하는 인원수도 지난해 80명에서 2017년까지 120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인 민간기업도 일정비율 이상을 지역인재를 채용하도록 강제하기로 했다. 삼성 등 대기업이 작년에 지방대생 채용비율을 크게 늘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현재 수도권 고교출신이 대부분을 점하는 지방대의 의대, 한의대, 치대, 약대, 로스쿨 등에 대해서도 해당 지역 고교출신 신입생을 일정비율 이상 뽑는 '지역인재전형'을 부활하기로 했다. 지방대는 해당 지역 학생들을 우대하는 전형방식으로 작년에만 68개 대학이 총 8천834명을 선발했었다. 그러나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원자격을 특정지역 출신으로 제한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취약하다고 판단해서 2014년에는 중지했던 것이다.박근혜정부는 지방대 살리기를 위해 재정지원도 확대하기로 결정하고 올해부터 매년 2천억원 규모의 '지방대학 특성화사업'을 시행, 향후 5년간 총 1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상의 내용들을 무리 없이 추진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했던 탓에 지난해 7월 새누리당의 발의로 지방대 육성법을 새로 마련한 것이다.그러나 이 법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데 첫째, 역차별 시비이다. 수도권 4년제 대학수는 전국의 10%정도이나 몇몇 대학을 제외하면 서울소재 대학에 비해 경쟁력이 현격히 떨어지니 말이다. 수도권대학 취업률이 지방대 평균에 못미치는 이유이다. 그러나 안전행정부는 현재 저소득층이나 장애인의 선발처럼 정원 외로 공직자들을 뽑기 때문에 역차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소수자우대정책도 한몫 거들었다. 지방대가 국내 고등교육 인력의 63%를 양성하고 지방이 국내총생산의 53%를 담당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지방학생 특별배려는 당연하다는 식이다.지역인재들의 지방대 우선배정에 대해서도 수도권 학생 및 학부모들이 집단으로 반발할 수도 있어 보인다. 수도권대학 인기학과에도 서울 및 경인지역 학생들의 우선배정을 요구하면 어쩔 것인가. 더욱 문제는 법의 실효성이다. 지방대 육성법 제정의 목적은 지방학생들을 해당 지역의 인재로 양성해 지역발전에 이바지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졸업 후 이들을 강제로 해당 지역에 붙들어둘 수 없다. 헌법에서 규정한 거주 및 직업선택의 자유에 배치되는 때문이다.대학 슬림화 작업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지속적으로 막대한 혈세를 투입하고 수도권대학들의 발목을 잡았음에도 지방대는 성장은커녕 날개 없는 추락 중이다. 저출산은 설상가상이어서 2018년에는 고교졸업자수가 대입정원보다 적어진다. 재정지원 중단과 대학폐쇄 등 보다 강도 높은 극약처방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방대학 육성법으로 지방대를 대거 지원하겠다는 것은 정부가 대학구조조정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에 눈길이 간다. 이 정부의 '지방대 살리기' 내용도 포장만 바꿨을 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수도권 역차별 시비는 고사하고 대학경쟁력만 떨어뜨릴 수도 있어 걱정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4-01-14 이한구

진정한 성장 사다리를 놓자

중소기업, 중견기업 도약위한 통로 빨리 열려야대기업위주 성장 벗어날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대기업능력에 中企역량 갖추면 글로벌시장 호령창조경제의 원년이었던 작년은 중소기업들에 큰 감동을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많은 중소기업들이 불편함을 토로한다. 창조경제 패러다임이 시작되면 중소기업에 큰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대체로 불발탄(不發彈)에 그쳤다. 특히 기업 세무조사가 강화되면서 많은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역차별 정서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현실은 이랬지만 '경제민주화'와 같이 실체도 정확지 않은 개념을 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었다. 종합적으로 조금 실망스러운 한 해였지만, 우리는 지난 일 년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고자 한다. 기차를 잘 달리게 하려면 선로(線路)를 놓는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갑오년 아침, 중소기업의 희망 열차는 이제 달리고 싶다. 중소기업의 희망이란 다름 아닌,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또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소위 '성장 사다리'가 구축되어 차곡차곡 성장 통로가 열리는 상황을 말한다. 대기업이 선전하고 있지만 한국경제에서 허리가 약한 것이 단점인 상황에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도약하는 통로가 빨리 열려야 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과제이다. 그래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성장 사다리'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넓어진 것이다.그런데 많은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구분만 있을 뿐, 진정한 의미의 '성장 사다리'는 없다. 사다리를 사이에 두고 올라온 자와 올라가지 못한 자를 구분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오르지 못한 자가 사다리에 몸을 던져 한발 한발 오르는 열정을 유인하는 것이다. 성장 사다리를 타고 오르려는 기업들의 열의에 대한 생각 없이, 사다리를 사이에 놓고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 대한 구분을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우리가 당초 '성장 사다리'에 대한 관심을 높였던 이유가 바로 많은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을 보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 핵심은 사라지고, 오히려 중소기업에 돌아갈 혜택과 중견기업이 누릴 혜택의 비교라는 쟁점으로 번지는 것은 변질된 상황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장 사다리를 놓는 것은 중소기업들이 성장 사다리에 몸을 던져 확실하지 않은 먼 길을 떠나려는 마음과 또 올라간다는 확신이 없더라도 그 사다리를 믿어보겠다는 마음을 이끌어내는 작업임을 명심해야 한다.성장 사다리는 '강물'과 같아야 한다. 즉, 그것은 하나의 고정된 분류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며 흐르는 실체여야 한다. 강물의 역할은 자신에 몸을 맡기는 물체들을 흘려서 결국 강을 건너게 하는 것이다. 그 역할에 충실한다면, 강물에 의해 건넌 자와 건너지 못한 자의 분포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이 성장 사다리의 구축은 그동안 대기업 위주의 성장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들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 핀란드의 노키아가 무너지는 것을 보라.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노키아가 미국 MS에 인수된 이후, 핀란드는 침착하게 창조 능력을 갖춘 벤처기업들로서 노키아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제 체질의 변화는 하루 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하이테크 벤처의 씨를 뿌렸고, 또 그들에게 열정과 욕망을 유도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도 대기업의 능력 위에 중소 부품업체들의 역량이 더해진다면 분명 글로벌 시장을 호령할 수 있다. 미국의 신흥시장 투자전문가인 루치르 샤르마 박사가 한국경제의 미래를 밝게 보는 이유도 바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보완된 상태를 예견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명확하게 판명된 성공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80년대를 풍미한 가객(歌客) 김광석의 '나무'의 노랫말이 새삼 떠오른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하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펼치려 하오." 갑오년 새해에는 청마(靑馬)의 등과 같이 믿음직한 성장 사다리가 구축되어 더 많은 중소기업들이 성장하길 기대한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4-01-08 손동원

어둠의 마을을 밝힌 예술가 이야기

리우칸 마을 '인공 태양거울' 설치예술가 제안'청계천 생태복원' 소설가 故박경리 선생 제시기존 공간에 대한 관심과 창의적 표현력 강해지난해 가을 감동적 뉴스 중의 하나는 노르웨이 리우칸 마을 이야기였다. 화제의 마을은 주민 3천명가량의 작은 도시로 산간 협곡에 위치해 있어서, 해마다 9월과 3월 사이에는 해발 1천883m의 산그늘에 가려 어둠의 마을이 된다. 마을 주민은 가을부터 겨울까지 햇볕을 쬐기 위해 곤돌라를 타고 산 중턱까지 올라가야 했다. 햇볕을 쬐지 않으면 비타민 부족으로 구루병에 걸리고 우울증도 심해지기 때문이다. 2005년에 이 마을로 이사온 마르틴 안드레센이라는 설치예술가는 햇볕을 쬐러 산으로 올라가야만 하는 주민들을 보면서 산중턱에 거울을 설치하여 마을을 비추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처음 마을 사람들은 실현 가능성도 믿기지 않는데다 큰 예산이 투입되는 것도 탐탁지않게 여겨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차츰 안드레센의 아이디어에 대한 예술가들과 주민들의 지지가 늘어나면서 마침내 인공태양거울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한 기획단이 꾸려졌다. 리우칸 시장도 태양거울 프로젝트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약 9억원에 달하는 모금이 이뤄져 결국 실험은 성공하였고, 리우칸 마을은 어둠에서 해방되었다. 리우칸 마을의 인공태양거울 이야기가 노르웨이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알려지면서 이를 보러 방문하는 국내외 관광객이 늘고 있다. 어둠의 마을이 일약 관광명소로 바뀌어 거울이 주민 소득에도 보탬이 되는 일석이조가 된 것이다.리우칸 마을의 인공태양거울프로젝트는 한 예술가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였지만 자신의 이웃과 삶터에 대한 배려와 고민의 결과이다. 이처럼 문화예술인의 상상력이 도시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상당수의 예술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과 장소를 관조하고 투시하면서 작업하기 때문에 도시 공학자만큼이나 자신의 삶터를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인들이 도시와 마을 공간을 둘러볼 여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의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하고 시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돌아가신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년에 생명사상을 실천하는 일에 앞장선 박경리 선생은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시민모임을 오래 이끌었는데, 을씨년스런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대신 청계천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경리 선생이 꿈꾸었던 청계천은 시냇물을 복원하여 수달과 너구리가 살 수 있고, 천변에는 상추를 심고, 한국적인 주택을 세워 우리문화, 생명 존중의 자연주의적 공간을 수도 한복판에 만드는 것이었다.최근 욕망의 정글로만 여겨온 도시에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마을 만들기' 사업이 그것이다. 그동안 투자의 수단으로 여기던 주택과 투기의 눈으로만 바라보던 구도심 지역을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만들어 보려는 시도들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부동산 경기 때문에 중단된 재개발 사업의 대안으로 선택한 고육지책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몇몇 지역에서 마을의 문제를 지역운동가들과 주민들이 스스로 해결하는 공동체를 회복해가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예술가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으며 기존의 공간을 창의적으로 해석하여 새롭게 표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 예술가들의 활동은 그 자체로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되며, 이들의 자유로운 표현과 행동도 주민들의 관습화된 일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계기가 된다.예술인과 마을의 관계가 늘 조화로운 것은 아니다. 예술인들의 활동이 주민들과 갈등을 빚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홍대 앞을 문화의 거리로 만든 예술가들처럼, 예술인들의 활동으로 쇠락한 도심이 활성화되게 되면 높아진 작업실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는 역설적 상황도 발생한다. 이런 역설을 알면서도 구도심의 미로 같은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는 '마을 예술가'들이 있다. 새해에는 마을 예술가들처럼, 리우칸 마을을 밝힌 안드레센처럼, 시민들도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와 마을을 찬찬히 되돌아 봤으면 좋겠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3-12-31 김창수

그대, 고향에 가지 못하리

65년 길고 긴 고향길 그리다 돌아가신 큰아버지北 다녀온 두 전직대통령, 가족생사 확인 안해줘실향민 1세대 위로조차 못받고 지금도 세상떠나평생을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두 눈이 짓물렀던 백부께서 지난달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사실 갑작스러운 것도 아니다. 약간의 감기 기운이 있었고, 두 달 전 폐렴진단을 받아 병원치료중이었으며, 무엇보다 백부의 연세는 87세였다. 100세시대라는데 87세에 명을 달리 하신게 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죽음은 늘 슬픈 법이다. 백부는 3년 전 기독교에 귀의했다. 젊은 시절 그때 지식인들이 그랬듯 마르크스에 심취하기도 했을 정도로 지적 욕구에 충만하던 분이었다. 교회에 그저 건성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은 분명할 터, 마치 종교연구가처럼 성서를 탐독했고 '성서읽기'를 신앙의 의미로나 학문의 의미로나 꽤 충실하게 독파했다. 하지만 나는 백부가 백발이 성성한 늦은 나이에 교회를 찾아가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문을 외우고 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다.백부는 임종시 "나 천국으로 먼저 갈래"라고 말했다고 현장에 있었던 목사가 말했다. 백부에게 문병을 왔다가 졸지에 임종을 지켜보게 된 목사는 절박한 순간에 그런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튼실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홍조띤 얼굴로 "기적이… 기적이…"라며 말했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서 임종을 지켜본 사촌매형의 의견은 달랐다. 백부께서 '나 고향으로 돌아갈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귀향'에 병적이리만큼 집착했던 백부의 마음을 잘 알고있는 나는 어쩌면 사촌매형의 말이 맞을 줄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긴 천국이면 어떻고 고향이면 어떻단 말인가. 백부의 고향은 영변이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한 귀절 '영변의 약산 진달래 꽃'의 그 영변, 아니다. 남한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핵시설로 더 유명한 그 곳. 정확히 말해 평안북도 영변군 남송면 천수동 107.백부는 서울에 가고 싶었다. 1주일만이라도 도대체 남한의 분위기가 어떤지 체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풍문만이 호기심을 채워주지 못했고, 당신이 직접 별천지라는 서울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렵게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떠나는 날, 아홉 살 막내 동생이 같이 가겠다며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의 손을 꼭 잡고 집을 떠나는데 동생은 동네 어귀에서 갑자기 형의 손을 뿌리치며 "형만 갔다 와! 나 안 갈래, 난 엄마랑 있을거야!"라며 뒤도 안보고 집 앞에서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는 어머니한테 뛰어갔다는 것이다. 고향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게 꼭 65년 전 일이었다. 등을 보이며 뛰어가던 동생의 모습이 평생 가슴에 사무쳤다고 백부는 늘 말하곤 했다. 그때 그 막내의 손을 꽉 잡고 있었더라면 하면서 못내 아쉬워했다. 그말을 할 때마다 바로 아래 동생, 즉 나의 아버지는 언제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2000년 8월 15일. 평양시민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순안공항에 도착하던 날, 백부는 무척 흥분된 모습이었다. "이제 고향에 갈 날이 며칠 안 남았다. 고향에 못가도 식구들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생사는 확인해 주겠지"라고 백부는 굳게 믿었다. 남한의 대통령을 평양까지 불러들이는 '햇볕정책'의 위력이 저럴진대, 생사 확인 정도야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감감무소식이었다. 서신 교환까지 바란건 언감생심이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 그후 노무현 등 좌파정권 10년동안 누구도 백부에게, 이 땅의 실향민 1세대들에게 '당신들이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해 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국가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점 사과한다'라고 말하며 위로해 준 대통령은 없었다.백부께서 천국에 갔는지 고향으로 갔는지 나는 모른다. 장장 65년의 길고 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3년의 절절한 신앙생활에서 터득한 천국의 존재 중 어느 것이 가슴속에 더 사무칠지도 헤아리기 어렵다. 분명한 건 백부가 이제 우리 곁에 없다는 것. 현재 생존해 있는 실향민 1세대들은 5만명 남짓이라고 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고향을 그리워하며 생을 마감하는 실향민도 있을 것이다. 이번 장성택 사태로 실향민들의 마음이 얼마나 요동을 치고 있을지 불을 보듯 뻔하다. '통일은 벼락같이 올 것'이라는 백부의 말처럼 북한 사태가 통일의 물꼬를 터줄지 지금 실향민들의 손은 떨리고 있다./이영재 논설위원

2013-12-18 이영재

프레임 대 프레임

새 정부 출범 이후 정치권에서 많이 등장하는 용어 중 '프레임'이라는 말이 있다. 뼈대나 골격을 의미하는 프레임이 정치에서는 정치를 관통하는 기본 구조를 의미하는 용어로 쓰인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종북' 프레임, '안보' 프레임, '대선불복' 프레임 등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용어로서 '전쟁'이란 용어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예산' 전쟁, '입법' 전쟁 등이 그 예일 것이다. 정치의 정의가 갈등의 조정이고, 어느 학자의 말처럼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 할지라도 정치란 세력 대 세력의 쟁투 과정임이 분명하고, 종국에는 권력의 획득이 목적이다. 전자가 규범적 의미라면, 후자는 정치현실에서 권력정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정치는 양자의 적절한 조화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정치에서 전쟁의 의미가 더욱 강조된다면 국민의 삶은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프레임은 객관적 의미에서 분석을 위한 틀로서가 아니라 정국의 핵심 쟁점을 호도하고, 정파적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유용하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프레임 전쟁이다.지난 대선을 전후해서 프레임의 대표 주자는 단연 안보 프레임이다. 그 뒤를 잇는 것이 대선불복 프레임임은 말할 것도 없다. 안보 프레임은 종북 프레임으로 연결된다. 이 프레임의 매개변수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이다. 일견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과 종북 논란이 무관해 보이나 국정원의 댓글 개입 의혹이 출발이었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여부가 쟁점이었기에 직간접적인 연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가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고, 검찰 수사를 둘러싼 여야의 인식 차이, 지난 대선의 공정성 여부를 문제 삼는 일부 종교계의 비판과 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선언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주장 등이 얽히고 있다. 국가기관의 대선 관련 의혹의 얼개가 안보 관련 사안이며, 사이버 상에서의 유포와 게시가 의혹의 중심이고 보면, '종북'과 '대선불복' 프레임은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그런데 프레임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종북 프레임과 대선불복 프레임은 주로 여권이 구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민주당은 대선불복이 아니라고 하는데 새누리당은 대선불복의 틀로 야권을 몰아가려 하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물론 민주당의 애매한 태도도 이러한 프레임을 키우는 원인을 제공하긴 했지만 보다 근원적인 것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여권 핵심부의 태도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수사 방해, 검찰총장 '찍어내기' 논란 등으로 축소·은폐 의혹을 키운 측면이 크다. 여권의 입장은 알려진대로 '재판 결과를 지켜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재판은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의 극히 일부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애써 외면하려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야권 일각과 종교계 일부, 비판적 시민단체에서 간헐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대선 불복 언급은 비판받아 마땅할 뿐만 아니라 부적절한 발언이다. 정황적 근거가 '합리적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해도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도 아직은 의혹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관련성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의 대선 불복과 박 대통령 사퇴 주장은 국민정서상으로나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논리적으로 비판하면 된다. 국민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 또한 민주주의다. 국정원 개혁 특위 가동 자체를 여권이 연기할 일은 더욱 아니다. 여권의 과잉 반응은 적절치 않다. 이쯤에서 이른바 '프레임 전쟁'은 멈춰야 한다. '전쟁'이 '정쟁'으로 구체화되면서 여야, 모두 패자이다. 여권이 프레임을 활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이 그 적기(適期)다. 상생의 길을 제껴두고, 왜 공멸의 길로 가려 하는가./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3-12-10 최창렬

지속가능성장의 조건

계사년 끝자락에 즈음해서 내년도 국내외 경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세계경기의 바닥이 차츰 확인되는 때문이다. 중국경제의 평년작 전망에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그리고 유럽경제에서 긍정적인 조짐들이 확인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아베노믹스의 엔저효과가 내년 중에 본격화할 개연성도 커 보인다.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신흥국들의 명년실적이 최소 금년만큼은 될 것이라며 세계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한국경제는 올해보다 약간 호전될 것으로 예측했다. 대외의존도가 G20국가들 중 최고여서 세계경기와의 동조화경향이 한층 커진 때문이다. 갈수록 엥겔계수가 커지는 서민가계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금상첨화이다. 신년운수 점처럼 적중하면 좋고 설사 잘못되더라도 책임추궁 당할 리도 없으니 말이다. 일자리 창출이 당면현안이나 동북아 긴장국면, 가계부채, 환율폭탄 등 곳곳에 암초들이 도사리고 있어 편치만은 않을 예정이다. 경제입법과 관련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해묵은 성장논쟁이 재연될 조짐이다. 박근혜정부가 경제활성화에 방점을 찍은 터에 대기업들은 그동안 쌓아놓기만 했던 막대한 규모의 현금을 풀어 투자를 늘리겠다며 '손톱 밑 가시' 제거를 주문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키는 규제 해소에 팔을 걷어붙였다. 여당의 대선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는 아예 실종된 듯하다. 그러나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주장은 정반대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상기될 정도로 민간소비 부진이 매우 심각해 대기업을 더욱 옭아매야 한다는 것이다. 내수 진작이 키포인트이다. 분배구조 악화에 따른 민간소비 위축이 한국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최대요인으로 부상한 것이다. 반세기동안 일관되게 지속된 성장지상주의가 낳은 부산물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주주자본주의의 강요는 설상가상이었다. 국민 대다수가 배금주의와 이기주의의 노예로 전락한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근면과 정직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보로 취급되는 실정이니 말이다. 성공한 기업인들이 국민적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과도 상관관계가 높다. 더 큰 문제는 효율과 형평간의 양립이 곤란하다는 뿌리 깊은 인식이다. 심지어 형평이 '공공의 적'으로 매도되는 형국이다. 성장과 분배가 상충관계에 있다는 것은 고전학파 이래 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명제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공정분배를 균등분배로 잘못 파악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균등분배가 성장의 지속에 질곡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20세기말 동구권 몰락이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효율과 형평은 상호 보완관계일 수도 있다. 사회계약주의 철학자 롤스(J. Rawls)의 경제정의론에 눈길이 간다. 타인을 사회생활의 동료로 간주,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즐거움이 자신의 행복한 삶에 기여한다는 공동체적 인식이 출발점이다. 한편 후생경제학에선 생산의 효율성과 분배의 형평성이 모두 충족되었을 때 국민들의 경제적 후생이 극대화된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경제정의란 효율성과 형평성이 모두 충족된 상태를 의미한다. 문제는 공정한 분배인데 이는 생산에 기여한 정도에 비례해서 각자의 몫을 결정하는 것이다. 즉 성과에 따른 차등분배이다. 균등한 기회의 제공도 필수요건이다. 참여기회를 갖지 못한 자에게 차별적 결과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정의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롤스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생산과 관련해서 자신의 능력과 창의력이 발휘되도록 동등한 기회를 제공할 것을 요구한다. 지속가능성장을 위해서는 올바른 시장규범 확립을 통한 지하경제 최소화와 음성소득 차단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 제도경제학 개조(開祖) 베블렌(T. Veblen)은 놀고먹는 유한계급이 많을수록 창조경제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낙수효과에 의존할수록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자본주의의 건강성 담보 없는 '코리안 드림'은 공염불인 것이다. 투자유인 제고와 내수활성화가 조화된 청말띠 해를 기대해 본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3-12-04 이한구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반대말이 아니다

중소기업을 살려서 한국경제를 도약시키자고 말하면, '대기업의 주도력을 빼앗자는 것이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중소기업을 키우다가는 대기업이 쌓아 온 기업가정신을 낮출 수 있다고 말하는 편견도 나온다. 아마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서로 제한된 자원을 나누는 경쟁자로 생각하는 듯싶다. 그런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이해이다. 중소기업을 육성하자는 것은 대기업을 버리자는 뜻이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를 이해관계의 충돌이라는 대립으로 보는 것은 불필요한 이념 과잉의 하나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반목과 경쟁의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서로 동일한 목표를 향해 가는 전우(戰友)이다. 분명하게도 한국경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이라는 양대 축(軸)이 살아나야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한국경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대기업 중심으로 꾸려왔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위상을 높이자는 주장에 염려가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 쪽의 혁신 없이는 이제 경제발전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현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말할 필요도 없이, 중소기업들이 만드는 부품에서부터 혁신이 발생해야 대기업의 경쟁력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즉, 창조적인 스마트폰 부품 없이 대기업이 주도하는 스마트폰 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는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호흡을 맞춰 탱고를 추는 협력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을 견인하기도 할 것이며, 다른 경우 중소기업의 혁신이 대기업의 성장을 견인하게도 될 것이다.글로벌 시장 판세를 볼 때에도 부품소재 영역의 강소(强小)기업들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독일 경제가 '히든 챔피언' 기업들을 토대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히든 챔피언 기업들은 부품·소재를 취급하기 때문에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상당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가진 중소기업들인데, 그들의 창조적 역량에 의해 국가경제에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부터의 중소기업 육성은 우량 중소기업들의 실력이 쭉쭉 뻗어나가야 한다.강소기업을 키울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강소기업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하청관계도 변화해야 한다. 한국경제는 조립 산업에서 강했었는데, 그 성장 과정에서 중소 부품업체들은 대기업이 구축한 먹이사슬의 하단에 위치했었다. 강소기업은 그 하청구조에 종속되지 않고 글로벌 시장을 상대하는 독립전문기업이 되어야 한다. 달리 표현하면 강소기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범용 기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술력을 가져야 독립전문기업이 될 수 있다. 이런 수준에 올라야만 대기업에게 동급의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강소기업이 늘어나게 되면 한국경제는 변하게 될 것이다. 생물학에서는 생태계 조건을 바꾸는 종(種)을 '생태공학자'라고 부르는데, 강소기업들이야말로 한국경제에서 생태공학자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종이다. 강소기업들의 성공은 다른 중소기업들의 모델이 될 것이며, 결국 중소기업 전체로 혁신성이 퍼지는 효과를 만들어 낼 것으로 믿는다.이런 의미에서 중소기업 정책에서도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중소기업에게 혜택을 늘려주는 정책에서 벗어나, 우량 중소기업, 즉 강소기업을 늘리는 정책에 눈을 돌려볼만 하다. 기존 중소기업 정책의 골격인 시혜적(施惠的) 입장을 다시 돌아볼 필요도 있다. 특히 첨단기술 중소기업들에게는 체질 강화를 할 수 있는 정책이 중요하다. 이들마저 나약하게 보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앞으로 중소기업 정책은 '시혜'와 '경쟁' 사이의 묘수풀이에서 성패(成敗)가 판명날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퍼즐이지만 일단 성공적으로 풀어낸다면, 우리가 그동안 쌓아 놓은 대기업의 경쟁력 위에 중소기업에서 성장한 강소기업의 힘에 추가되어 진정으로 강한 국가경쟁력을 만들어 낼 것이다. 중소기업을 키우는 가치는 이처럼 크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3-11-27 손동원

생활문화 지원정책 절실하다

국내 도시들은 비중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문화도시를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문화예술을 발전시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발전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문화도시란 시민들의 문화향유의 양적 질적 확대는 물론 대다수의 시민들이 문화 창조의 주체가 되어 자율적이고 일상적인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정부와 지자체의 문화정책은 문화예술 인프라 확충을 통한 문화예술 향유 수준을 향상시킨다는 하드웨어 위주의 '고색창연한' 방법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예술인들은 문화예술 작품을 창작(생산)하고 시민들은 그 생산물을 향유(소비)하며 정부를 비롯한 공공영역은 이 향유 활동을 확대할 수 있는 공간인 문화시설을 확충한다는 전략인 것이다.이 같은 공급자 중심의 정책은 대다수의 시민들이 문화 예술의 수동적 소비자로만 머물러 있게 만든다. 시민은 문화예술을 일상적으로 향유하는 소비자를 넘어 문화예술의 능동적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화예술 지원 정책에서 문화예술 활동 주체를 기준으로 직업적이고 전문적인 문화예술가나 그 활동과 아마추어적 문화예술로 구별하고 있지만, 문화예술 활동 현장에서 그 차이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문화예술 통계를 보면 인천시민의 경우 동호회 참여 경험은 8.7%이며, 문화예술 동호회 활동을 희망하는 비율은 약 30%에 달하고 있다. 시민문화 활성화는 이러한 시민들의 자발적 노력을 어떻게 지원하는가에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지원정책은 아직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생활문화에 대한 관심 부족은 현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생활체육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규모와 비교해 보면 전무하다고 해도 좋다.이제 문화예술의 향유자나 대중문화의 소비자, 객체에 머물러 있는 시민들을 문화예술의 능동적 주체, 생산의 주체가 되도록 지원하는 일을 문화예술 정책의 중요한 목표로 설정해야 할 시점이다. 생활문화의 활성화를 통해 시민들은 물질적 성공신화의 유혹, 속도에 대한 강박증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관조하고 성찰하며 대안적 생활 스타일을 만들어나가며 스스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시민문화의 활성화는 시민들의 취미활동을 지원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쇠퇴한 구도심을 재생하는 동력으로, 창조경제와 관광을 활성화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일본 가나자와시(金澤市)는 시민문화 활성화를 통해 도시 발전을 이룬 대표적 사례이다. 가나자와시는 시민생활문화를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섬유산업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시민예술촌을 조성한 뒤 시민들에게 제공하였다. 시민예술촌은 창작연습과 발표공간 등 다양한 장르의 공방으로 꾸며 시민들이 연중 무휴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자나와 시민예술촌은 시민들 스스로 문화를 창조하는 주체가 되는 거점, '창조계급의 산실'을 만들어 낸 사례이며, 이 창조적 에너지는 지역의 공예산업과 문화산업으로 연쇄 파급되고 있으며, 시민예술촌 자체가 외지인의 중요한 방문 장소가 되어 관광산업에 미치는 효과도 막대하다.시민생활예술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우선 실태조사를 통해 시민들의 자발적 문화활동 현황과 정책 수요를 조사한 다음 필요한 제도적 정비와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이다. 시민들의 자발적 문화예술활동에 가장 기초적인 지원은 창작 교육, 연습, 공방, 발표에 필요한 복합문화공간(시민예술촌)을 지원하는 것일 터이다. 다만 이러한 시민예술촌 조성 사업은 상당한 예산이 소요되므로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체육시설과 유휴공간이나 폐공장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민생활문화에 대한 지원을 통해 더 많은 시민들이 창조적 예술활동을 하고, 예술활동이 생활화할 수 있는 효과적 지원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3-11-20 김창수

취업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취업 시즌이다. 올해의 막바지 취업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경기불황이 지속되면서 해가 갈수록 취업이 어렵다. 내로라하는 대기업 경쟁률은 수십대1을 넘어, 100대1을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공무원 시험은 수백대1이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 조사 결과 올해 신입사원들의 대기업 평균 경쟁률은 31.3대1이다. 중소기업은 6대1로 대기업 선호현상이 여전하다. 무선통신 대기업 L사는 100명 모집에 1만8천명이 응시해 180대1의 최고 경쟁률을 보였다. 경쟁률만 봐도 으스스하다.대학을 졸업하면 경제적으로 독립해 사회적 기반을 잡아가는 게 순리다. 부모들 역시 자녀의 취업 걱정에 노심초사한다. 취업을 할 때까지 뒷바라지를 계속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때로는 기성세대와 신흥세대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 IMF 이전만 하더라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큰 어려움없이 괜찮다는 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하지만 IMF 이후 한국 경제가 내리막 길을 걸으면서 대학과 사회구조 등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지원자가 폭증하다보니 주요 기업들은 취업준비생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다양한 스펙을 요구하고 인·적성검사 등 각종 시험을 부과한다. 그래서 입사시험준비를 하는 사설학원도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대학입시 이상의 또다른 시험이 청년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대학들도 비상이 걸리기는 마찬가지다. 교육부의 대학평가 지표에 취업률 통계가 20%를 차지하면서 졸업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를 기준으로 부실 대학이 가려지고 각종 정부 지원에서도 제외된다. 각 대학들이 마음을 졸이는 이유다. 그러나 학생들이 갖고있는 취업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크다보니 성과가 생각만큼 나타나지 않아 대학이나 학생, 모두의 고민이 크다.대학도 시대에 맞춰 발빠르게 변화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의 모든 역량을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생산·공급'하는 것에 집중해서는 곤란하다. 요즘처럼 취업이 어렵다고 해서 대학을 취업학원이나 기업의 인력공급처로만 인식한다면 슬픈 일이라는 의미다. 대학은 진리 탐구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여 학문 연구와 교수 활동이 이뤄지는 고등교육기관이라는 본래 의미를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현대사회는 인문학적 소양을 비롯한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만 진정한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 어느 시중은행 입사서류는 오로지 졸업장이었다. 읽은 도서를 중심으로 토론을 통해 신입 행원을 선발했다. 인문학적 소양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선한 발상이었다. 반응도 좋아 이같은 전형방법은 점차 기업에서 각광을 받을 전망이다.현대는 100세를 살 수 있는 시대다. "청년들이여, 당장의 취업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마라! 가슴을 활짝 펴고 미래의 꿈을 펼쳐라"하면서 나는 아직도 학생들에게 책을 많이 읽고,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데 젊음을 투자하라고 강조하고 있다.'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 나는 이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무엇때문에 대학에서 학문을 하는가?'젊은이들이 자신에게 해야 할 끝없는 질문이다. 취업뿐만 아니라 취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평생 본인에게 던져봐야 하는 질문이다. 인생의 한 과정을 겪고있는 때다. 가슴쓰린 추억이, 때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도 있다. 이 과정은 지나갈 것이고 지나가면 또 그리워지는 게 젊음이다. 당장에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는 것은 20대 젊음의 특권이다. 가슴을 활짝 펴고 머나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자./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교수, 객원논설위원

2013-11-12 이준구

누구를 위한 국정감사였나

국정감사가 끝났다. 역대 국감중 '최대 성과'를 거두며 막을 내렸다. 여기서 '최대 성과'란 '시간 버리고 예산을 축내는 이런 국정감사를 계속해선 안된다'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해주는 성과를 거뒀다는 뜻이다. 국정감사는 여당보다는 야당에게 유리한, 야당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그러나 야당은 '국정원 댓글공방'의 망령을 뒤집어 쓰고 스스로 진영논리를 만들면서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번 국감은 그만큼 야당에게 최악이었다. 그렇다고 여당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역대 국감중 이번처럼 여당의 존재가 신기루 같았던 것은 처음이었으니 말이다.이번 국정감사의 압권은 10월15일 정무위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에서 일어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임준성 한성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수입차 업계의 부품가격 담합에 대한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임 대표 왈, "저희는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회사이고, 자동차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국정감사장은 순간 얼어 붙었다. 민주당 의원이 수입차 한성모터스 사장을 부른다는 것을 부동산 임대업을 하고 있는 같은 이름의 다른 회사 대표를 부른 것이다. 위장하도급 불법파견 문제로 출석한 삼성전자 서비스대표도 엉뚱한 질문을 받고 당혹감에 빠졌다. "삼성전자 서비스는 AS때 사용되는 부품을 삼성전자로 부터 받느냐"라는 엉뚱한 질문 때문이다. 국감장은 멘붕에 빠졌다. 전문성이 부족한 국회의원들 때문이다.더 놀라운 것은 기업대표가 무려 3시간을 기다려 받은 질문이었다는 것이다. 14일 환노위 국감에서는 늦은 밤 11시40분 위원장은 증인과 참고인이 자리에 있는지 출석을 체크하는 일도 벌어졌다. 갑의 횡포를 따지는 국감장에서 국회의원들이 최대 슈퍼갑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국감에 불려나온 기업인들의 입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당연했다. 소환된 기업 대표들마다 "이미 공정위에서 시정명령 요구를 받은 대로 조치를 취했는데 왜 국감장에 와야 하는지 납득이 안 간다"며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고 아우성쳤다. 한 외국기업 대표는 "자정까지 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내줘서 다행"이라며 한국 국회의원들의 서슬퍼런 권위에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이번 국감은 피감기관이 628곳 이었다. 국감이 부활된 지 25년 중 사상 최대 규모였다. 그러니 부실한 것은 당연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대포장해서 벌어진 일이다. 우리 국회의원의 전문성과 능력에 비해서는 절대 할 수 없었지만 밀어붙였다. 애초부터 답변을 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니 의미없는 질문들이 넘쳐났다. 최악의 국감답게 '이런 국감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며 국감폐지론을 주장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국감폐지가 불가능하다면 상시국감도 하나의 대안이 될수 있지않겠냐는 의견도 개진됐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과연 상시국감을 감내할 수 있을 지는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만일 상시 국감이 이루어질 경우 우리 국회의 수준에 비추어 볼때 대한민국은 일년 내내 국감을 치르다 결딴이 날 것이다. 상시국감이라는 것이 사안이 발생하면 해당 상임위에서 즉시 감사를 하는 것인데, 우리 정치수준으로 볼때 일부러 감사거리를 만들어 정쟁의 장으로 삼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국감을 받아야 하는 피감기관의 입장에서 볼때 자칫 업무가 마비되고, 기업은 제대로 돌아갈 지도 의심스럽다. 국정감사 망국론이 나오는 이유다.국회의원들이야 피감기관으로부터 깍듯한 대우을 받아 잘 모르겠지만 25년동안 단 몇 번을 제외하곤 늘 치욕스런 구태가 재현되고 있는 것은 국가나 국민들에게 매우 불행한 일이다. 공무원이건 기업인이건 피감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국회의원들로부터 호통을 듣고, 반말이 섞인 멸시와 조롱으로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매년 되풀이되는 '국회의원을 위한 국감'이라면, 이런 국감은 차라리 폐지하는 게 옳다. 만일 폐지가 어렵다면 면책권 뒤에 숨어서 막말을 일삼는 의원들의 그 잘난 특권을 박탈하고, 국감이 끝난후 의원들의 순위를 매겨 하위 50등 의원들을 대상으로 낙선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래야 국회의원들도 국감장에 빈 가방을 들고 출근하지 않을테니 말이다./이영재 논설위원

2013-11-05 이영재

집권당의 역할

집권당과 야당의 대립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다. 또한 정치의 본질은 갈등의 표출이며 갈등을 제도화 한 것이 민주주의이다. 갈등을 여하히 집약시키고 제도화해서 최소화 하느냐에 정치력이 달려있다. 그러나 대선 이후 여야의 대립은 건강한 갈등과 대치의 수준을 넘는 것이다. 대선 국면에서 불거진 대화록 유출 의혹,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여부, 대화록 공개를 둘러싼 갈등으로부터 검찰총장의 사퇴 파동 등 국면과 현안을 달리하면서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 속에서 공히 여야가 정파적 계산하에서 행위하고 정쟁으로 연결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국가 기관들의 일탈 행위에 대한 문제 제기를 정쟁으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일련의 정치적 쟁점의 본질은 국정원의 댓글과 트윗 등 여론 조작 의혹이며 이것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느냐의 여부이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외압설이 제기되고, 검찰총장과 특수수사팀장의 사퇴 및 경질이란 사태도 불거졌다. 각종 사안의 본질이 가려지고, 사실 관계의 규명이란 명분으로 진실이 호도되어서는 더욱 안된다.정홍원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의 형식을 빌려 박근혜 대통령은 지루하게 이어지는 정쟁적 측면의 해법을 제시했다. 총리의 대독(代讀)형식을 논하기 앞서 내용에서 진전된 바가 없다.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챙기는데 협조해 달라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국정원 댓글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구조 개혁 등의 현안들을 정쟁으로 보는 관점에서 사태 해결의 단초를 찾는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청와대의 인식이 바뀌지 않고, 최고 권력의 의중과 심기를 살피는 무력한 집권당의 존재가 계속 된다면 총리의 담화에서 밝힌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더라도 정국 대치와 민생 챙기기는 요원해질 수 있다. 여야의 시국을 보는 인식의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야당의 문제 제기를 정치적 공세로 보고, 정쟁으로 치환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사태의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 국회 의석 반수를 넘는 집권당이 국민의 대표자격으로 청와대에 정국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야당에게도 정쟁적 요소를 삼가고, 대선 불복으로 비칠 수 있는 발언과 행동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해야 한다. 그리고 야당을 대선 불복 프레임으로 가두려는 시도를 접어야 하고, 야당도 헌법 불복 프레임으로 여당을 몰고 가려는 자세를 중단해야 한다. 두 프레임은 공히 설득력도 없고, 효력도 없는 지극히 정쟁적 요소와 다름 없기 때문이다.정권 출범 8개월이 넘도록 한 치의 진전도 없는 지루한 공방의 터널을 벗어나고, 여야 정치인들의 진부한 '민생' 주장이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당이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 비판적 성찰에 근거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밝혔듯이 박근혜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에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고, 받지도 않았다. 국정원의 댓글 공작 의혹도 지난 정권의 일이라는 데도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정권의 일탈 행위를 호도하려 하거나, 행여 수사의 축소나 은폐에 대해 방조하거나 암묵적으로 묵인하는 순간 이는 현 정권의 과오로 치환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런 귀책 사유가 없는 정권이 국정원 등 국가기구들의 여론 조작 의혹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현재 나타난 정황 증거들을 바탕으로 책임자 처벌과 국정원 개혁 등에 대해 원론적 수준이나마 의지를 보이고, 포괄적인 차원에서 유감을 표명할 때 사태 해결의 단초가 보인다. 여권의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정치적 공세로만 일관한다면 역풍은 야당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상식이다. 해법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해결의 키는 여권이 가지고 있다. 대선 불복 논란이 정치적 쟁점화한다는 사실 자체가 납득되지 않지만, 이것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정국에 대한 반증(反證)이다. 또 다시 집권 1년을 정쟁으로 허비할 것인가./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3-10-29 최창렬

재벌들의 구태(舊態)경영

"S그룹의 모 회장은 자동차광이다. 한때 재규어, BMW, 벤츠, 로터스, 람보르기니에 이르기까지 20여대의 자동차를 소유했고, 그래서 번듯한 디자인팀이나 판매망도 없이 이미 과잉인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었다. 40억 달러를 쏟아부어 만든 자동차회사를 단 한 푼도 못받고 경쟁업체에 넘겼다."1997년 외환위기가 한창일 무렵의 모 일간지의 기사내용이다. 재벌총수의 브레이크 없는 권력 남용이 초래한 해프닝이었다.당시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302억 달러를 지원받아 급한 불을 끄는 대신 경제주권을 통째로 IMF에 넘겼다. 이후부터 경제주체들은 살인적인 고금리와 고환율로 극심한 몸살을 앓았다. 시중은행을 비롯한 수많은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헐값에 외국인에 팔렸다. 대마불사의 신화도 깨져 대우그룹을 비롯한 30대 재벌의 절반가량이 좌초되었으며 수백만명의 직장인들이 한꺼번에 실업자로 전락했다. 한국전쟁이후 최대의 국난(國難)으로 치부될 만큼 국민 모두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정부는 금융기관 및 대기업들의 부채청산에 혈세 64조원을 투입하는 대신 재벌개혁을 요구했다. 결합재무제표 도입, 상호지급보증 해소, 재무구조 개선, 주력업종 선정, 지배주주와 경영진 책임강화 등이었다. 외부감사기능을 한층 강화하고 사외이사수 확대 및 감사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했다. 지주회사제도 이때 도입되었다.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도고 놀란다 했다. 웅진, STX, 동양그룹 등 중견재벌들의 잇따른 부도가 15년 전의 고통스런 기억을 떠올리게 하니 말이다. 구태(舊態)경영도 재확인되었다. 진작 청산되었어야할 고질적인 악습들이 여전한 것이다.중견재벌들 좌초의 결정적 이유는 유동성 부족이다. 장기간의 부동산경기 위축에다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가세해 사업전망이 매우 불투명한 터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부실기업들을 연이어 인수한 때문이다. 부채비율의 경우 동양그룹은 2007년의 147%에서 작년 말에는 무려 1천231.7%로 수직상승했으며 같은 기간 STX는 170%에서 256.7%로 늘어 30대 재벌 평균 83.2%를 크게 상회했다. 웅진은 빚만 무려 10조원에 달한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제대로 상환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른 것이다. 문어발 경영이 자기 발등을 찍은 꼴이다.더욱 안타까운 것은 경영진들의 늑장대응이다. 2, 3년 전부터 이상신호가 감지되는 등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오너경영인들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동양그룹은 동양증권, 동양매직, 한일합섬, 레미콘, IT사업 등의 매각을 통한 유동성 조기확보 의견을 묵살하고 기업어음(CP) 불완전판매로 버텼다. 또한 작년 3월부터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할 때까지 구조조정 전담부서장을 업무파악도 전에 수시로 갈아치워 시간만 허비했다는 지적이다. 모그룹의 회장은 임직원들의 직언(直言)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다. 무능한 아첨꾼들이 회장 주변에 '인의 장막'을 친 탓에 판단을 흐려 낭패보고 말았다는 소문이 항간에 떠돈다.오너경영인의 무소불위 권력이 화근이다. 2009년 출자총액제한제 폐지는 금상첨화였다. 전제주의 경영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효율성을 최고 가치로 삼는 만큼 신속성과 일사불란한 조직행동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황제경영은 대체로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크다. 제왕적 경영자가 전지전능할 수는 없는 탓이다. 총수들이 순환출자를 이용해서 1%도 못되는 주식지분으로 그룹경영을 전횡하는 것은 또 다른 고질이다.사외이사제와 감사위원회는 무용지물이며 외부감사제 강화도 말뿐이다.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장치도 부실하긴 마찬가지이다. 600조원에 육박하는 30대 재벌의 눈덩이 채무와 경제력집중 심화는 또 다른 주목대상이다.천문학적인 수업료를 지불한 대가치곤 성과가 너무 초라하다.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을 어찌 처리할지 지켜볼 것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3-10-22 이한구

세계 100대 혁신기업이 많아지려면

며칠 전 미국의 톰슨 로이터가 2013년 세계 100대 혁신기업 명단을 발표했다. 우리 기업 중에는 삼성전자, LG전자, LS산전 등 3곳이 선정되었는데, 28개 기업이 선정된 일본에 비해 9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이어서 실망과 염려가 적지 않다. 이번 발표를 보니 우리가 그동안 삼성전자의 실적에 의해 착시(錯視) 속에서 살고 있었던 듯싶다. 즉, 삼성전자 외 다른 모든 곳에서도 일본을 추월한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아직 일본에 비해 혁신수준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종(警鐘)이었다. 우리는 이 경종을 계기로 최소한 두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첫번째는 많은 업종에서 아직 추격 전략의 가치는 높다는 교훈이다. 한국경제의 성장에서 추격(catch-up)이라는 단어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글로벌 선도 기업을 타깃으로 설정하고 그들을 추월하는 것이 바로 추격 전략인데, 우리는 그 추격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성장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한 몇몇 글로벌 초우량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경제전략 전체를 추격 전략에서 혁신선도 전략으로 옮기려는 분위기가 등장했다. 그런데 그렇게 전체적으로 전략 축을 옮길 일이 아니다. 혁신과 창조의 경쟁 시대로 접어든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아직 모든 곳에서 추격 전략을 버릴 정도의 수준은 아닌 것이다. 추격 전략을 벗어 던질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서의 고민은 소정의 초우량 기업에만 해당한다. 우리는 현재 혁신선도 전략과 추격 전략을 모두 추진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두번째 교훈도 중요하다. 우리는 보통 혁신을 말할 때 주로 대기업 위주의 혁신을 말한다. 그러나 대기업들에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 쪽의 혁신 성과가 없으면 밑힘이 부족한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지난 몇 년간의 세계 혁신기업 리스트에 우리는 몇 개의 대기업이 고정적으로 올라섰을 뿐이다. 이것이 주는 메시지는 대기업만으로는 혁신기업 숫자가 늘어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중소기업의 혁신은 중소기업만의 이슈가 아니다. 중소기업 제품을 부품으로 구입하는 대기업에도 큰 혁신을 준다. 부품 쪽의 혁신은 대기업의 자체 혁신만으로 얻을 수 없던 새로운 경쟁력을 주는 일이다. 어쩌면 한국경제가 이제부터 얻을 수 있는 혁신 중 가장 많은 분량의 혁신이 나올 영역일 수 있다. 대기업 쪽에서도 중소기업의 부품소재 연구개발 실력이 높아지는 것이 자신들의 혁신 역량을 높인다는 인식의 전환을 확실히 해야 한다.물론 중소기업의 혁신에는 조심해야 할 염려거리도 있다. 중소기업 쪽에서 대기업들이 자체(in-house) 연구소를 활용했던 실적을 모방하여 사내 연구소 설립에 많은 관심을 쏟아왔다. 그래서 사내 연구소를 가질 만한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도 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곤 했다. 때마침 중소기업 연구소에 대한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그 추세는 급격히 확대되었다. 그런데 정부 지원금을 확보하기 위해 유명무실한 수준의 연구소가 늘어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위험을 낳을 수 있다.문제는 정부의 R&D 지원이 사내 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중소기업의 연구개발을 돕는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의 연구개발 능력을 키운다는 취지는 유지하더라도 정책 시행은 얼마든지 운영의 묘(妙)에 의해 성과가 달라질 수 있다. 능력 있는 중소기업이 사내 연구소를 갖고자 하는 의도를 말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권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까지 정부가 연구소를 설립하도록 유인할 필요는 없다. 중소기업의 혁신은 대기업과 같이 자체 연구소를 세워야만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중소기업에 연구개발을 유인할 때 대학을 매개체로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가 클 것이다. 대학과 공동연구를 유인하는 쪽으로 지원 방향을 설정한다면, 중소기업은 실질적인 혁신을 얻으면서 동시에 연구소 설립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3-10-15 손동원

한국 발(發) 인문주의의 과제

최근 우리정부의 정책을 보면 수세기전 유럽을 풍미했던 문예부흥기를 방불케 한다. 르네상스를 관류하는 정신 중의 하나는 인문주의라 할 수 있는데, 현정부 들어서서 인문정신은 국정과제인 '문화융성'을 실현하는 과정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두 나라간 인문유대 강화활동을 제안하여 이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인문정신문화계 인사'를 청와대로 초청하여 인문학 활성화와 문화 융성 방향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한국연구재단이 매년 420억원의 연구비를 대학에 지원하고 있는 인문한국(HK) 프로젝트까지 감안한다면 최근 정부의 인문정신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주목할만하다. 인문정신과 관련한 더 중요한 움직임은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국회에 제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인문정신문화 진흥법'제정 작업일 것이다. 인문정신문화 진흥법은 우리 사회의 인문적 전통과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고양하여 삶을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인문정신문화의 진흥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14, 15세기 르네상스기의 인문주의가 신의 굴레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인간성을 옹호하고 수호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삼았다면, 21세기 한국발 인문주의는 물신주의로부터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잃어버린 가치의 회복, 변화된 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가치관 정립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눈부시게 발전한 미디어와 정보 혁명은 역설적으로 사회구성원들을 개인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새로운 공동체의 회복이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전례 없이 빠른 산업화 과정을 거쳐 온 것도 한 배경이 된다, 이로 인해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최소의 시간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물량적 생산과 속도가 지상과제인 시대,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인사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창조성이 사회 각 분야의 화두가 되고 있는데, 특히 성장동력이 떨어진 한국경제의 혁신을 위한 핵심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 경제의 활로를 '창조경제'에서 찾고 있다.이처럼 인문정신을 강조하는 배경을 살펴보면 이 시대가 문화적 전환을 요구하는 시대라는 방증이며 자본주의 축적의 위기의 시대라는 것을 말해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인문정신의 강조는 인문학과 같은 특정한 학문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변화, 다시 말해 철학의 대전환에 방점을 찍어야 하고 그럴 경우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다만 인문정신의 강조는 목표와 방법 과정에서 인문적이어야 한다. 인문주의의 목표는 자유롭고 평등하며 진실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민주주의적 가치와 전통을 확립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긴밀하게 연관되어야 하며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논의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인문정신의 강조가 계몽주의로 흘러가는 것도 특히 경계해야 한다. 정부의 인문정신 관련 정책이 우리사회 전반의 인문학 열풍을 일정부분 반영하고 있기는 하나 다분히 국민교양 방식이다. 위로부터의 문화운동은 성공한 사례가 흔치 않다.한중문화교류에서 인문유대의 강화 역시 추상화 되면 두 국가가 공유하고 있는 한자문화나 유교문화를 매개로 한 교류 이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어쩌면 교류의 출발점은 공통문화요소에서 찾되 그 목표는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여 자국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자원으로 삼아나가는 데 둘 필요가 있다. 또 국가 단위보다는 도시나 분야, 부문별 교류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인문정신의 회복이 가장 절실한 곳은 한국의 정치현실인지도 모른다. 정치쟁점이 되고 있는 대통령기록물 문제를 보면 대통령기록물이 제도의 문제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오직 상대당을 공략하기 위한 정쟁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3-10-08 김창수

화성시민은 '핫바지'가 아니다

黑猫白猫 住老鼠 就是好猫(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1970년대 말부터 덩샤오핑이 취한 중국의 경제정책이다. 실용주의를 비유한 표현으로 중국을 발전시키는 데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무관하다고 주장한 그는 이 이론을 내세우며 실용주의적 노선을 제시했다. 이달 말 치러질 화성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도 지역 발전을 위해 누가 더 잘할 것인지 토박이든, 낙하산이든 관계없다는 논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경기도민과 화성시민들은 지금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아들 의혹으로 물러난 것이나,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표를 내던진 것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화성갑 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누가 공천될지에 관심이 쏠려있다. 친박계 '거물'인 서청원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가 이 지역에 출사표를 던져 유력한 여당 공천 후보자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현재는 서 전 대표와 김성회 전 의원으로 최종 압축된 상태로 이번 주 내로 공천자가 발표될 예정이다.이를 놓고 화성 토박이 출신인 김 전 의원은 "화성에 단 한 달이라도 살아 봤느냐"며 "보궐선거 출마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한 "서 전 대표의 정치 재개를 두고 야당의 공세가 이미 시작됐다"면서 "정치 혁신을 해 온 새누리당과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주고 있다"고 서 전 대표를 압박했다. 서 전 대표의 주장도 만만찮다. "내가 나서야 당내 화합과 소통을 할 수 있다. 애초부터 보선에 출마한다면 수도권에서 당당하게 심판을 받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송산그린시티 및 유니버설스튜디오, 동서연결 고속화도로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데는 큰 정치를 해본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낙하산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외가가 화성으로, 본인도 6·25때 화성군 일왕면(현 의왕시 왕곡동) 외가에서 피란생활을 했다고 한다.공직자추천심사위원장인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지난달 23일 라디오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 "서 전 대표와 같은 전국적인 스코프(scope·범위)를 가진 분이 와서 화성을 좀 키워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충청 출신인 서 전 대표도 이곳에 외가의 연고가 있다"고 했다. 심사위원장인 당 사무총장이 이렇게 말했을 정도면 서 전 대표로 기울어졌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홍 사무총장은 본인이 한 말에 아차 싶었는지 엊그제는 한 라디오에서 '청와대에서 내정을 했다느니 하는 서청원 전략공천설'에 대해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부인하면서 한 발 물러섰다.이러한 가운데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이 지난달 29일 귀국해 화성갑 보선 출마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청원 전 대표가 공천을 받는다면 그 대항마로 경기도지사를 지낸 손 고문을 지목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화성갑 지역은 전통적으로 농촌지역이다. 여권 강세지역이기는 하다. 그러나 옛날처럼 핫바지가 아니다. 더 이상 어리석은 시골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략공천으로 서청원 전 대표나 손학규 상임고문의 빅매치가 이뤄진다 해도 표심이 어디로 갈지는 누구도 모른다. 자고로 시험에 붙고 떨어지는 것이나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송산그린시티나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큰 인물이 없어 늦어지는 게 아니다. 국가의 곳간이 비고, 경기침체로 민간사업시행자가 돈이 없어 지지부진할 뿐이다.본래 경기도내 대도시나 신도시 지역에는 지역 출신이 아니더라도 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을 지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주민들 자체가 외지에서 많이 와서 살고 있는 이유도 있고, 정치적인 성향이 같아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화성갑 지역은 토박이들이 대부분 살고 있는 지역이다. 물론 토박이 주민들 중에도 '흑묘백묘(黑猫白猫)'의 논리를 가진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다. 새누리당이든, 민주당이든, 민심은 천심이다. 다른 당이든 아니면 무소속이든 지역발전만 이루면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신이나 재기를 위해 이리 저리 기웃거리는 모양새는 안 된다. "한국 국회의원 선거에서 장기를 두는 식으로 누구는 어디에 보내고 누구는 어디로 공천을 결정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미국은 동네에서 최소 5년은 살아야 연방의원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김창준 전 미연방 의원의 말이 생각나는 요즈음이다./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교수, 객원논설위원

2013-10-01 이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