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박근혜의 미소가 보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는 숙명적인 배경이 있다.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의 영향이다. 어느 자식이 부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자식은 부모의 얼굴이자 영혼이다. 부모의 유전자로 구성된 육체와 부모의 양육으로 조련된 인격을 바탕으로 세상에 도전하고 응전하며 그늘을 키워가는 나무와 같다. 자식을 보면 그 부모를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은 동서고금 통용되는 경험칙이다. 박 대통령은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천부적 정치인이다. 짐작건대 그녀가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정치본색인 그녀의 유전자 형질상 다른 일을 하기보다는 평생 칩거를 택했을 것임을 감히 단언할 수 있다.박 대통령이 정치권에 처음 등장했을 때 대중은 박정희와 육영수의 모습을 동시에 목격했다. 박정희가 누군가.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며 안팎의 정적들과의 대립을 불사하고 철혈의 리더십으로 시대와 맞섰던 인물이다. 산업화의 업적이 창대해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원칙을 강조하고 약속을 앞세우며 원칙없는 타협을 배격할 때마다 대중은 박정희의 유전자를 확인했다. 반면 육영수는 박정희의 독재를 무마할 정도로 온화한 미소의 주인공이었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낮은 곳으로 내려가 따뜻한 미소만으로 온기를 불어넣을 줄 알았던 퍼스트레이디였다. 박 대통령이 수많은 선거 현장에서 환한 미소를 지을 때면 유권자들은 그 미소에서 육영수를 떠올렸다.물론 박 대통령은 오랜 정치 경험으로 자신만의 리더십을 키워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전혀 다른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 오늘의 대통령이다. 국정 현안이 그 시대와 다르고 국력과 국격이 그 시절과는 천양지차이다.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선택한 것은 동시대인 박근혜의 리더십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박정희와 육영수를 대입하는 것은 그야말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부모없는 자식이 없다. 대통령 박근혜의 정치적 자산이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했을 때부터 축적된 것으로 보면 더욱 그렇다.그래서 아쉽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에서 유독 아버지 박정희의 모습이 뚜렷한 점 말이다. 정치 입문 시절부터 아버지의 후광이 짙었던 탓일까. 박 대통령은 스스로 정한 원칙에 엄격했다. 남성들의 이전투구판에서 여성성에 안주할 수 없었던 한국형 정치 현실도 그녀에게 부친의 카리스마를 강요했을지 모른다. 모든 남성이 어려워하는 박 대통령의 엄격한 이미지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범접할 수 없는 권위에 짓눌려 직언이 불가하다는 측근들의 하소연에는 자포자기의 심경이 묻어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몸에 밴 카리스마에 쩔쩔매는 측근보다는 직언을 서슴지 않는 대장부다운 측근의 부재를 아쉬워할지도 모르겠다.이쯤에서 박 대통령이 어머니의 미소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육영수의 미소에 내포된 포용과 화합의 리더십을 회복했으면 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걸출한 지도자의 권위만으로 운영할 수 없는 나라이다. 전 계층이 산업화 혹은 민주화에 매진했던 시절을 극복한 나라이다. 정치적 향도들의 시대는 저물었다. 계층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욕구가 엇갈리는 다양성이 이 시대의 특징이고 이에 부응하는 정치적 덕목은 포용과 화합과 조정이다. 대통령의 권위만으로는 사회 통합이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미소가 융합의 촉매가 될 때 화학적 통합이 가능하다. '정적(政敵)들과의 오찬'에서 파안대소하는 오바마는 미국 정치가 살아있음을 보여준다.박 대통령의 눈에는 아버지의 권위와 어머니의 포용이 있다. 우리를 위협하는 북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서늘한 눈매로 맞서라. 그들은 오금이 저릴 것이다. 그리고 고단한 오늘을 사는 국민들과는 어머니의 선한 미소로 만나라. 국민들은 위안받을 것이다. 아버지의 서늘한 눈매와 어머니의 선한 미소 사이에 박 대통령만의 리더십이 존재할 것으로 믿는다./윤인수 서울본부장

2013-03-13 윤인수

만약에…

'만약에 이랬다면'이라는 가정법은 역사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은밀하고도 매혹적인 물음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디데이 하루 전날인 1944년 6월5일, 유럽 전역에 불어닥친 폭풍우가 갑자기 멈추지 않았다면? 그래서 상륙작전이 실패했다면? 1973년 10월6일 욤 키푸르(대 속죄일)에 이집트와 시리아가 동시에 침공할 것을 알면서도 선제공격하지 않고 침공을 당했던 골다 메이어 등 이스라엘 수뇌부들이 만약 두나라를 선제공격 했다면? 그래서 전 세계로부터 침략국이라는 비난을 받고 결국 미국으로부터 군수지원을 받지 못했다면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존재했을까?하긴 멀리 외국의 예를 들 필요도 없다. 만약 지난 대선에서 야권이 안철수로 단일화가 이뤄져 안철수가 대통령이 됐다면 지금 정치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터무니 없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만약 민주당이 이번 박근혜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안을 화끈하게 받아들여 그래서 큰 일 없이 무난하게 새 정부가 출범됐다면 눈치 빠른 안철수 전 교수가 노원병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할 수 있었을까? 뭐 그런 식이다. 아니면 말고 식. 그러나 한번 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끔찍한 가정법 말이다.언론계 종사자들의 평균수명이 가장 짧다는 의학계의 정설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갖는다. 지난해 대선이 끝난 후 어찌됐건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큰 정치적 이슈는 없어 좀 무료한 시간을 보낼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번 기회에 담배도 끊고, 어디 헬스클럽에 등록해 새록새록 불러오는 저 지방덩어리를 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나라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나라다. 남이 편한 꼴을 못보는 독특한 민족성을 갖고 있는 나라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본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왠지 한번쯤 시비를 걸고 싶어하는 게 우리의 빛나는 민족성이다. 정치부 기자들의 편한 꼴을 그들이 봐줄리 없다.담배를 피게 만들고 술을 먹게 만든다. 대선 패배의 책임 때문에 입이 열 개라도 그 입을 다물고 당 결속에 매진해야 할 민주당이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정부조직개편안에 발목을 잡으면서 정국이 대혼란 속에 빠졌기 때문이다. 전도유망한 장관 후보자는 대한민국 정치판의 수준을 개탄하면서 스스로 장관직을 포기하고 출국해 버렸다. 취임한 지 8일 밖에 안 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은 대국민 호소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헌정 초유의 사태'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입 끝을 파르르 떨었다.만약 민주당이 한번 봐주었다면. 눈 질끈 감고 화끈하게 밀어주었다면. 그런데 민주당은 그러고 싶지 않았나보다. 한술 더 떠 청문회에 나오는 장관 후보자에게 약을 올리듯 판에 박힌 5·16에 대한 반복되는 질문, 거기에 곤혹스러워 하는 장관 후보자들을 보며 비웃는 표정, 요즘 초등학생들이 사용하는 화법보다 낮은 수준의 말들을 늘어놓는 국회의원들의 짜증나는 어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만약 국회의원에게도 청문회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법을 만들어 거기를 통과해야만 금배지를 달아준다면? 만약 어떤 이유에서건 단 한번이라도 감옥에 갔다 온 사람은 평생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는 법을 만든다면? 정치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국민'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거다.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들에 대한 혐오. 그런데 정작 국회의원들은 그것을 모른다. 만약 안다면? 국민들이 국회의원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극도의 적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안다면? 부끄러워 할까.지난 대선기간 종편채널 시사프로에 나왔던 진보 정치평론가들이 선거 후 한동안 잠잠하더니 다시 시사프로에 하나 둘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의 절대적 우세를 장담했던 이들이다. 태생적으로 '촉'이 발달한 이들이 다시 슬금슬금 종편에 출연하는 것은 이번 보궐선거의 판이 생각보다 무척 커졌다는 얘기다. 이번 결과에 따라 정치판은 합종연횡이 이뤄질 만큼 메가톤급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안철수 전 교수의 출마 선언으로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만약 안철수 전 교수가 당선된다면? 그래서 한심한 정치판을 갈아 엎자고, 당장 국회의원 수를 반으로 줄이자고 '국민'에게 호소한다면? 그래서 민주당이 해체된다면?/이영재 논설위원

2013-03-06 이영재

소탐대실의 부메랑효과

원시시대 특유의 문화 중에 토템신앙이란 것이 있다. 씨족 혹은 부족별로 각각 고유의 수호신들을 섬겼는데 주요 숭배대상은 호랑이나 곰, 사슴, 물고기 혹은 밀이나 보리, 귀리 등과 같은 동식물로서 원시인들의 먹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농사법을 모르던 시절 한곳에 오래 머무를수록 자원이 고갈되어 공동체 전체가 멸종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식량인 동식물 개체수가 줄어들면 다시 풍성해질 때까지 한동안 남획을 금지하고 보호에 만전을 기했는데 이런 관습이 원시사회의 발전은 물론 토템인 동식물이 조상신 혹은 마을지킴이 등으로 승화했던 것이다.바야흐로 봄철로 접어들고 있으나 불사춘(不似春)이다. 각종 생필품 가격인상 도미노는 설상가상이어서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염려되는 지경이다. 금년도 경기전망도 신통치 못하다. 내수가 갈수록 축소되는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내수비중은 2001년 71.6%에서 2005년에는 60.7%로, 2011년에는 47.9%로 주저앉아 G20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가계와 기업간의 지속적인 소득격차 확대가 결정적 원인이다. 2000년 이후 기업소득의 연평균 실질증가율은 무려 16.4%에 달한 반면에 가계소득 증가율은 2.4%에 불과한 것이다. 가계기업간 소득격차가 OECD회원국들 중 헝가리에 이어 2번째로 높다. 세계적으로 매우 유례가 드문 현상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노동시장 유연화에다 기업들의 수익중시경영의 소산이다. 글로벌경영은 새로운 도전이어서 현금을 최대한 끌어모으는 등 안전판을 조기에 확보해야 했다. 오너자본주의에 순응해야하는 것은 또 다른 옵션이었다. 시간도 경제적 약자편이 아니었다. 고임금의 정규직이 저임금의 비정규직으로 빠르게 대체되었으며 대기업들의 무차별적인 대공세에 자영업자들마저 한계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빈곤율은 OECD 평균보다 1.3배나 높으며 빈곤탈출률의 대세하락은 점입가경이다.가계부채 1천조원 시대 도래는 불가항력이었다. 마른 수건을 짜듯 절약을 해도 가계 빚은 눈덩이처럼 커지기만 했던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금리의 장기하향추세에도 이자총액은 오히려 증가해 민간소비를 더 압박한다는 점이다. 가계부채 원리금부담률(DSR)은 OECD 최고수준이다. 작금 내수대기업들의 영업이익률 둔화도 유의해야할 대목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후유증 탓이기도 하나 서민들의 지갑두께가 점차 얇아진 것이 더 큰 요인이다. 소탐대실의 부메랑효과가 우려된다.총수요진작이 현안이어서 '나 홀로'호황을 누려온 수출이 주목된다. 그러나 세계경기 침체로 인한 실적부진으로 성장기여도가 곤두박질하고 있다. 설혹 수출이 획기적으로 제고된다 해도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해외생산 비중을 늘리는 탓에 실익은 별로이다. 설비투자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어 난망이다. 시설투자 증가율이 1990년대의 7.6%에서 2000년대에는 5.7%로 낮아진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파동 이후에는 크게 낮아져 2008~2012년간에는 3.8%에 불과하다.국내외적인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탓이다. 기업들의 엄청난 내부유보금이 국내투자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공공지출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같은 기간 정부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한 것이 상징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이는 효과가 극히 제한적일 뿐 아니라 단발적이어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버핏세' 도입 등 증세론도 거론되고 있으나 조세저항은 언감생심이고 물가를 자극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박근혜정부는 성장과 복지를 선택했다. 대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여전해 전체 거시지표를 염두에 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재정건전성을 훼손하더라도 소외계층에 대한 공적 부조를 강화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고용 없는 성장에다 자갈논에 물 붓는 격이어서 성과는 미지수이다. 분배구조 개선 등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통한 서민경제 회생이 전제되지 않는 한 백년하청일 전망이니 말이다. 이명박 정부의 낙수효과론이 반면교사이다. 파이를 키우기 위해 당장의 허기를 감내했던 원시인들의 지혜가 돋보인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3-02-26 이한구

소셜 벤처를 키우자

자신이 입다 버린 어릴 적 '블루 스웨터'에서 큰 기회를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다. 2001년 뉴욕의 재클린 노보그라츠는 자신이 입던 '블루 스웨터'를 아프리카의 한 소년이 입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본 후, 부유층과 빈곤층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사업에 투신한다.이것이 최초 비영리 벤처캐피털인 '어큐먼 펀드(Acumen Fund)'를 창업하는 배경이다. 실로 세상의 변화가 빠르다. 비즈니스의 근본 개념 자체가 변하고 있고, 또 사업 기회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오기도 한다. 빈곤문제라든가 혹은 취약계층문제와 같은 사회적 고민을 해결하는 비즈니스가 이제는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할 변화이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회의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와 경제 양극화의 심화 등 일련의 문제들을 겪으면서, 자본이 지배하는 시스템을 바꾸려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 이미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소셜 벤처' 등과 같은 새로운 기업 모델들이 언급되는 것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이러한 새로운 기업모델 대안 중, '소셜 벤처'의 위상이 특이하다. 소셜 벤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상업화하는 신생기업을 말한다. 그것은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조해서 사회 시스템을 혁신하려 한다는 점에서 다른 기업모델들과 차별된다.또한 벤처라는 단어를 품고 있으므로, 기술혁신을 통해 창조적인 비즈니스를 만드는 것도 특징이다. '변화 창조자'를 육성하는 세계적인 기관인 아쇼카(Ashoka) 재단의 설립자인 빌 드레이든은 소셜 벤처기업가에 대해 특별한 정의를 내린다.그는 소셜 벤처기업가를 "사람들에게 고기를 잡아 주거나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고기 잡는 산업을 혁명적으로 바꾸려고 돌파구를 여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여기서 고기 잡는 산업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한다는 발상에 주목해야 한다. 소셜 벤처는 기존 기업세계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회 시스템의 변혁'과 '시장의 전환점이 될 만한 비즈니스 모델의 창조'라는 두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이 존재이유인 것이다.일반 '사회적 기업'이 빈곤층을 위해 기부하거나 노동취약계층을 고용하는 공헌을 한다면, 소셜 벤처는 그들보다 진정한 사회변혁을 이루려는 혁신 기업가정신에서 한 발 앞서는 편이며, 또 운영의 묘에 따라 협동조합의 외형을 갖출 수도 있어서 유연성도 높은 편이다.소셜 벤처가 더욱 매력적인 것은 사회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공공성이 강하면서도 엄청난 부(富)의 원천을 발굴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그동안 우리는 비즈니스라고 하면 인구의 상위 10%에 해당하는 부유층에만 초점을 두었지만, 이제는 '나머지 90%'를 위한 사업이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 줄 보물단지로 인식되고 있다.예를 들어, 인도(印度)와 방글라데시에서 전기조차 들어가지 않는 극빈층을 위해 시작된 태양광 발전이 큰 시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사례이다. 또한 세계적인 생활가전, 위생용품 업체 중에서 이미 빈곤층 시장에서 상당 수익을 얻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이런 큰 가능성을 가진 소셜 벤처를 키울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소셜 벤처' 개념은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벤처 인프라를 활용하고 또 그 경험을 활용할 수 있어 좋은 출발을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소셜 벤처라는 개념부터 낯설어 하며, 그것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소셜 벤처도 벤처기업이다.다만 사회적 고민을 사업적으로 풀어보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들도 신생기업으로서 실패위험도 크며, 초기 투자자금이 필요하기도 하다.벤처를 육성해 본 경험을 살리면서 혁신 아이디어가 살아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창업보육 프로그램의 장단점을 돌아보면서 소셜 벤처의 보육 방안도 찾아야 할 것이다.또 벤처열풍을 소셜 벤처로서 회복할 방책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소셜 벤처가 미래의 먹을거리를 창조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13-02-20 손동원

터키도 지금 '강남스타일'

지난달 하순께부터 지난 7일까지 보름간 터키 남부지역을 돌았다. 이슬람 국가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친근한 나라이기에 꼭 가보고 싶었다. 이스탄불에서부터 이즈미르 에페소 파묵칼레 안탈리아 콘야 갑파도기아 국경지대인 안타키아와 가지안텝까지 남부지방은 거의 둘러보았다.터키 민족은 본래 돌궐족으로 고구려시대 군사적 동맹관계를 통해 당나라의 침략을 물리쳤던 역사를 가졌기에 우리나라를 형제국으로 역사교과서에 기록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지중해성 기후가 겨울이 우기(雨期)라고는 하지만 푸근한 날씨가 계속됐다.서기 500년대 돌궐족(투르크=터키族)이 중앙아시아 몽골을 근거로 돌궐(突厥)제국을 세웠을 때는 지금의 우리의 얼굴 모양과 비슷한 몽골인의 얼굴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唐)나라에 쫓겨 서쪽으로 옮겨 가는 과정에서 이란, 아랍인들과 혼혈하여 서양사람을 더 닮은 지금의 터키 사람들이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6·25 당시에도 미국 영국에 이어 1만5천명의 군인을 파병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당시 우리 전쟁 고아들을 터키군이 많이 거두어 먹여살렸다고 한다. 터키 병사들은 부대에 고아들을 데리고 와서 씻기고 먹이기도 했다.2002년 월드컵 축구에서 한국과 4강에서 만났던 나라. 아직은 개발도상국에 있기는 하지만 경제성장률 8~9%대의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건설 붐이 일어 어디서나 건물을 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절버스로 에페소로 가던 중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르자 한 무리의 터키 초등학생들이 나타났다. 점퍼차림의 나를 보자마자 "강남스타일" "코레아"를 동시에 외쳤다. 나도 모르게 "강남 스타일"을 외치며 말춤을 추기 시작하자 같이 따라 했다. 어떤 어린이는 처음 춰보는 나보다 훨씬 동작이 유연했다.가지안텝 공항에서 이스탄불로 오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쁘게 생긴 터키 아가씨가 우리 일행에게 다가왔다. 영어는 못한다며 터키 말로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며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탤런트에 대해 우리보다 더 잘 안다.다음에 오면 자기 집에 꼭 들르라며 아예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어떻게 한국인인줄 알았느냐고 통역이 물으니 내가 입고 있는 점퍼를 보고 알았단다. 여자는 파마 머리 모양만 봐도 금세 알아본다고 했다. 휴대전화에 녹음돼있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들려주기도 한다. 비행기 탑승시간까지 우리를 놓아주질 않은 병원에 근무한다는 23살의 아가씨는 잠깐동안의 만남도 아쉬운지 일일이 포옹을 해준다.지난해 12월에는 터키 TV 오디션 '터키 갓 탤런트'라는 프로그램에는 7세 어린이가 싸이 '강남스타일'로 도전장을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 어린이는 블랙 수트(정장)에 싸이 특유의 선글래스까지 착용, 완벽한 '리틀 싸이'로 변신했다.또 한국어로 '강남스타일'을 부르며 '말춤'까지 선보여 심사위원들과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이스탄불의 바자르 시장에서도 점포의 종업원들마다 '강남스타일'을 외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한국 사람인 것에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음은 물론이다.한국 사람들과 터키 사람들이 친해져야 하는 진짜 이유는 '강남스타일'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고구려와 돌궐의 동맹, 한국전에 참전했던 혈맹, 한일월드컵에서의 3~4위전 만남. 볼 것도, 과일을 비롯한 먹을 것도 많은 나라였지만 사람들이 너무 따스했다. 유럽의 재정위기에 굴하지 않고 8~9%의 경제성장을 이루는 나라다.3월부터는 양국 국회에서 이미 통과된 한국과 터키의 FTA가 발효될 전망이다. 지금도 한국 자동차와 택시가 터키 거리를 누비고, 사람들의 손에는 한국산 휴대전화가 들려져 있다. 조상 때부터 친했던 터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개강하면 터키 유학생 하산을 꼭 찾아 커피라도 한 잔 나눠야겠다.

2013-02-12 이준구

힐링 코드를 돌아본다

'힐링' 코드가 어느 겨를에 우리의 일상에 넘쳐나고 있다. 예능프로와 출판에서 시작한 힐링문화에 음식과 외식산업, 건강과 여행산업의 마케팅도 의존하려는 기세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후보들이 직간접적으로 힐링 코드를 내세우거나 활용한 바 있다.힐링(healing)이란 본래 상처난 몸이나 마음을 치유한다는 말이니 의사나 종교인들의 전담 분야이다. 90년대 이후 몸과 마음의 건강을 강조한 웰빙(well-being) 코드가 트렌드였는데 몇 년 사이 힐링이 대세가 되었다. 지금의 힐링 열풍은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자기계발 열풍과 결합되면서 강력한 문화코드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상처받은 사람들의 영혼과 마음을 달래고 삶의 의지를 북돋워 주는 일을 해주는 멘토들의 역할은 소중하다. 그런 역할을 자임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는 따뜻해질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힐링이 문화코드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와 개인들의 삶이 그만큼 절박해졌다는 역설적 방증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무턱대고 반기기만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이같은 현상을 신자유주의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로 인해 좌절감과 무력감에 빠져든 결과로 분석한다.힐링해야 할 상처는 대부분 국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럽발 경제위기와 세계 경제의 침체 속에서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성장의 결과는 대기업과 일부 계층이 독식하고 중산층은 저소득층으로 추락하고 있다. 빈부 격차가 급격하게 확대된 상황에서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경제 위기는 고스란히 서민 경제의 위기로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실업률과 비정규직이 증가하면서 사회의 불안지수가 높아지고, 가정경제의 기반도 취약해지고 있다. 가계부채가 위험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생겨난 '하우스 푸어'들에게, 늘어만 가는 교육비가 힘겨운 서민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당분간 꿈이다.대선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갈등과 상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른바 세대간 갈등이다. 지난 대선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니라 2040세대와 5060세대가 총력전을 치르듯 투표한 결과였다. 51 대 48이란 근소한 차이로 승패는 결정되었지만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중산층의 감소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지역갈등도 해결될 조짐이 요원한 판국에 세대갈등까지 추가된 것이다. 그런데 두 세대들이 직면하고 있는 좌절과 불안감도 따지고 보면 그 뿌리는 경제적 요인이다. 청년들은 학비와 일자리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베이비부머인 50대는 주택과 노후문제로 불안한 형국이다.예능프로에서의 힐링이나 이른바 양산해 내는 힐링상품들을 보면 상당수는 함량 미달이어서 기껏 '하루만의 위안'을 넘어서기 어렵다. 수술이 필요한데 자가치료를 권하거나, '험한 세상'과 무관하게 '착하게 살자'는 식의 해묵은 교훈들을 새로 포장한 상품들인 경우가 많다. 그러한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 개인들이 앓고 있는 뿌리깊은 우울증이 치유될 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개인을 좌절시킨 원인이나 구조적 문제와 정면으로 대면하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무력감을 운명론과 순응주의로 대체해 버리는 위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진짜로 힐링해야 할 대상은 상처받는 개인들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절박하게 만들고 국민들의 일상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사회구조이기 때문이다. 최대의 힐링은 민생이며 소통불능에 빠진 사회의 복원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 그리고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주체는 국가와 정부, 정치인들이며 사회 지도층들일 것이다. 정치가들은 국민들의 절망감에 의존하여 표와 인기를 얻을 것이 아니라 약속대로 '사회의 힐링'에 나서야 한다.

2013-02-06 김창수

박근혜의 해피엔딩을 희망한다

어머니 육영수를 적의 흉탄에 잃었다. 파리 유학을 접고 귀국해 어머니 대신 고운 한복 차림으로 국빈을 맞이하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떠맡은게 스물세살 무렵. 아버지 박정희도 천수를 다하지 못했다.측근인 김재규의 권총에 숨을 거두었다. 쿠데타로 집권해 한강의 기적에 이르기까지 거인의 족적을 남긴 아버지의 서거 이후 그녀는 철저하게 대중의 시선 밖에서 은둔했다. 장장18년이다.은둔의 세월을 채운 건 배신이었다.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 동생들의 크고 작은 말썽이 행여 부모의 업적에 누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세월은 또 얼마나 길었는가. 인내하고 침묵하는 일 말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운명일까. 아니면 한 시대의 완성을 위한 역사의 소환이었을까. 박근혜는 얼굴엔 육영수의 미소를 머금고 흉중엔 박정희의 뚝심을 품고 정치에 입문했다. 아버지의 후광과 어머니의 선업이 그녀를 든든하게 받쳐주었다. 그녀의 원칙과 소신은 대쪽 이회창을 압도했고, 그의 낙마 이후에는 야당으로 전락한 보수당의 잔다르크로 떠올랐다.천막선거로 탄핵역풍을 정면돌파했고 진두지휘한 모든 선거에서 승리해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그녀가 보수의 희망으로 빛나던 시절 진보정권은 지리멸렬했다. 박근혜는 이명박과의 대통령후보 경선에서의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는 그 순간부터 대안없는 차기 대권후보로 우뚝 섰다.박근혜는 정치의 한 복판에서 아버지의 정적들을 만났다. 북한의 김정일과 만난게 2002년. 그는 어머니 육영수 시해의 사주자인 김일성의 아들 아닌가. 사적으로는 원수의 처지이지만 공적으로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악수를 나누어야 하는 남북의 2세 정치지도자들. 박근혜가 바로 그 장소 그 시간에 품었을 인간적 소회는 문학적 상상력에 맡겨야 한다.2004년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았다. 박정희의 시대적 맞수였던 그에게 아버지 시대의 박해를 사과했다. 다행히 김대중은 그녀에게 "지역갈등 해소의 적임자"라는 덕담으로 화답했다.박근혜가 밟아 온 삶의 궤적에 고인 스토리 정도면 토지에 버금가는 대하소설도 가능하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에 출중한 스토리텔러가 있었다면 선거가 조금 더 쉽지 않았을까. 18대 대통령당선인 박근혜는 오는 2월 25일 대통령으로서 청와대에 들어간다. 핏물이 가시지 않은 아버지의 옷을 빨며 남들이 평생 울 만큼의 눈물을 흘렸다"던 그 청와대다. 33년3개월만에 국민이 선출한 최고권력자로 복귀한다.박근혜가 난관에 부딪혔다. 김용준 총리지명자 때문이다. 장애를 극복한 청렴한 전 헌법재판소장의 맨 얼굴에 국민은 실망했다. 기대가 높았던 만큼 충격도 클 수밖에. 그나마 김 총리지명자는 자진사태 용단을 내렸다. 박근혜의 첫 시련이 고비를 넘었다. 하지만 이같은 시련은 계속 될 것이다. 원칙과 소신이 간단없이 시험대에 오를 테니 그렇다. 원칙과 소신만큼 포용과 통섭의 리더십을 새롭게 자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박근혜의 해피엔딩을 희망한다. 대통령 박근혜의 역사적 의미는 각별하다.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종결할 것인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가 가능할 것인지, 세대와 계층과 지역의 반목을 해소할 수 있을지,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이루어낼지. 이 모든 것이 박근혜 정부가 5년 뒤 어떤 마침표를 찍을지에 달려있다. 그녀가 해피엔딩으로 마침표를 찍는다면 우리는 비로소 역사의 그늘에서 벗어나 시대의 전환을 이룰 수 있다."한 개인이나 계급이 권력을 잡게 되면 그 순간부터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관계 또는 계급의 독자적 이익을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알면 바로 그때부터 스스로를 숭배하기 시작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다.권력을 향한 무서운 경고다. 박근혜는 지금 자신이 살면서 마주했던 역사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봐야 한다. 시련을 극복할 용기와 지혜가 보일 것이다. 역사가 아버지에 이어 자신을 소환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2013-01-30 윤인수

권력, 그 달콤한 유혹

요즘 전직 장차관들과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현직 고위공무원과 일부 정치교수들은 좌불안석이다. 외출할 때는 물론 사우나에 갈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휴대폰을 꼭 들고 다닌다. 집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잠잘 때도 머리맡에 두고 밥 먹을 때도 식탁 위에 두고 먹는다.수신 확인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한다. 자칫 배터리가 방전되면 배고픈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한다. 외출시 예비 배터리 하나쯤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은 필수다. 이토록 휴대폰을 애지중지하는 것은 입각 소식이 날아올까 봐서다. 곧 총리가 정해지면 각 부처 장관들도 임명될 것이다.혹시 자신이 낙점되었다는 연락이 왔는데 받지 못하면 거절하는 뜻으로 받아들일까 휴대폰에 목을 매고 기다리는 것이다. 권력의 맛이란 이렇게 무서운 법이다. 고기도 먹어본 자만이 맛을 안다고, 권력도 누려 본 자만이 그 맛을 알 것이다.어려운 고시에 통과해 서기관이 되고 차관이 되고 장관도 하고 심지어 퇴직 후 국회의원이라는 덤까지 온갖 영화를 누리고도 은퇴할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권력, 그 달콤한 유혹을 뿌리쳤다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그토록 주구장창 권세를 누렸건만 불러준다면 당장 달려가고 싶은 게 권력의 속성이다.징비록이 주는 교훈=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은 읽을 때마다 가슴이 저민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좌의정이었다. 왕의 바로 옆에서 전란을 지켜본 최고 관직에 있던 사람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과의 관계, 명나라의 구원병 파견을 위해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던 비굴한 상황마저 정확하게 기록한 책이다.또한 그의 눈에 비친 전란의 비참함, 문관, 무관들의 성향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이순신에 대한 평가에 상당부분 할애한 것도 놀랍다. 그러나 유성룡은 정유재란 이듬해 북인들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박탈당했다. 고향 하회로 돌아가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징비록' 집필이었다. 징비란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당파간의 정쟁만 벌이지말고 또다시 닥칠지 모를 전란에 대비해야 한다는 명재상의 충언이자 고언이다. 뒤늦게 선조가 조정으로 복귀해 달라고 수차례 불렀지만 그는 일절 응하지 않았다. 자신의 몫은 거기까지라는 것이다. 전란 중에 관직을 박탈당하고 다시 영의정에 오르는 우여곡절을 겪었던 그에게 더 이상의 관직은 무의미하고 허무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위정자들의 잘못으로 전란중 수많은 백성들의 비참한 주검을 직접 보았던 그가 더 이상 백성들을 돌본다는 것 역시 위선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징비록'을 대한민국 정치인들과 고위공무원들, 이번에 영광스럽게 입각할 공직자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권력보다 국민 생각 헤아리는게 중요=탕평인사라는 미명아래 전 정권하에서 수차례 장관직을 지낸 사람들의 이름이 총리, 장관 하마평에 수없이 오르내리는 것은 우리나라의 비극이다. 더욱이 종편채널에 나와 얼굴을 알리고 어쩌구 저쩌구 떠들다 앵커가 "만일 전화 오면 가시겠습니까"라고 질문하면 어색한 웃음으로 어물쩍 넘기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가증스러움을 넘어 소름마저 끼친다.나는 그들이 후세를 위해 재임시 겪었던 일들을 진솔하게 책으로 집필했다는 소식도 들어본 적이 없다. 다시는 이런 우를 범하지 말라고 가감없이 재직시 실정과 실책을 솔직히 밝히는 전직 정치인, 장차관들이 왜 우리 옆에 없는 것인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고위공직자들의 말 한마디가 먼 훗날 후세에게 귀한 교훈이 된다는 것을 머리 좋은 그들이 모를리 없다.자리 하나 차지하는데 자칫 책 한권이 걸림돌이 되는 것을 머리 좋은 그들은 우려했을 것이다. 운 좋으면 권력을 다시 잡아 몇 년간 행복할 수 있는데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400여년 전에 시골의 한 초가에서 쓰여진 '징비록'이 지금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백성을 진심으로 위하는 위정자들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하는 충신보다 일신의 영달에 혈안이 되어있는 자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나 많다. 그들에게 국민의 무너지는 한숨이 들리고, 쏟아지는 눈물이 보일 리 없다. '징비록'의 글귀 한줄 한줄이 오늘따라 너무 슬프다.

2013-01-23 이영재

IMF의 두 얼굴

재작년 5월 스릴러 영화의 거장 커티스 핸슨 감독이 만든 '투빅 투페일(Too big to fail)'이란 제목의 영화가 출시된 적이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미국이 아슬아슬하게 수습해 나가는 과정을 묘사한 다큐멘터리 형식이었는데 리먼브라더스은행 파산 장면이 인상적이었다.영원의 상징처럼 인식되던 세계 4위의 공룡은행이 한순간에 맥없이 무너진 것이다. 이 영화는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의 탐욕과 이를 부채질한 미국정부와의 야합이 빚은 범죄로 규정했다.한국민들에겐 더 깊고 큰 상처가 있다. 1997년 1월 23일 한보그룹 부도로 표면화된 위기가 갈수록 확대되자 다급했던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21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담보로 경제주권을 넘겼다.IMF는 재정지출 축소와 증세, 은행 폐쇄와 금융긴축, 공기업 헐값 매각과 노동시장 유연화 등 규제완화를 요구했다. 30대 재벌의 절반이 좌초하는 등 2만2천여 기업들이 무더기로 부도를 맞았는데 그중 7천여 기업은 흑자도산했다.무려 250만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었다. 대마불사신화에 도취된 수많은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돈을 빨아들여 몸집을 키운 것이 화근이었다. 작금의 양극화와 평생직장 종식, 경제불안 심화, 캔두(can-do)정신 실종 등은 16년 전 악몽의 유산(遺産)이다.이 무렵 인도네시아는 IMF로부터 100억 달러를 지원받는 대신 벨트타이트 프로그램을 강요받은 결과 1998년 한 해 동안에만 경제규모가 13%나 위축되었다. 태국도 수술후유증으로 극심한 몸살을 앓았다.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당시 세계은행 부총재였던 조시프 스티글리츠 교수가 IMF의 초긴축처방이 그릇되었다며 목소리를 높였음에도 막무가내였다. 저금리에 근거한 빚잔치를 공공의 적으로 간주, 과감하게 척결했던 것이다. 국제금융자본의 진입장벽까지 일거에 허물어버렸다. 채무국들에게 소방수 IMF는 피도 눈물도 없는 저승사자였던 것이다.그런데 근래 들어 IMF에 이상기운이 감지된다. 지난해 10월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총재가 뜬금없이 1990년대 말의 아시아외환위기 대처가 잘못되었다며 처음으로 실수를 인정한 것이다. 후임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한술 더 떠 독일의 시장근본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그리스 등에 강요하고 있는 긴축을 완화할 것을 촉구했다. IMF의 입장변화는 이론적 측면에서도 감지된다.지난 3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에서 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올리비에 블랑샤르가 사견(私見)임을 전제로 유럽의 쥐어짜기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논증(論證)한 것이다. 재정적자 1유로를 줄이는데 따른 생산감소분이 1유로보다 더 크다는 것이 요지이다. IMF가 포르투갈을 비롯한 인근 국가들의 재정적자 목표를 완화한 것이 시사하는 바 크다.블랑샤르는 미국의 재정절벽 해법에 대해서도 동일한 논리로 훈수했다. 미국도 유럽 국가들처럼 긴축은 불가피하나 추진속도를 늦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일 미국 의회는 개인소득 연 40만 달러 이상 계층에 한해 소득세율을 인상하고 정부지출 자동삭감 시한을 다음 달까지 연장하는 내용에 동의했다.미국은 재정적자 규모가 물경 1조 달러로 세계최대임에도 초저금리의 빚의 향연을 묵인한 것이다. 살인적인 고금리로 국부(國富)를 거덜 냈던 아시아의 경우와는 정반대이다. 미국과 유럽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터여서 함부로 허리띠 조르기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이다. 시장신뢰에 치명적인 대마불사신화가 금융의 본고장에서는 여전히 진행형인 것이다.오죽했으면 헤지펀드의 귀재 조지 소로스가 "금융위기를 다루는 과정에서 아시아 국가들에겐 금리를 인상하도록 하고 미국과 유럽에선 금리는 낮춘 것은 도덕적 해이"라며 날을 세우겠는가.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했는데 과거 혹독한 대가를 지불했던 금융약소국들만 억울하게 생겼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인 IMF의 두 얼굴에 실망이 크다.

2013-01-16 이한구

중소기업 시대 명분은 충분하다

박근혜 당선인은 역대 대통령 중 중소기업에 가장 많은 애정을 쏟는 대통령이 될 듯 싶다. 줄곧 한국경제를 중소기업 위주로 운영할 것임을 표현하면서 '중소기업 대통령'을 자임하고 있어 기대가 크다.그런데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꾸려가려면 그것을 통해 한국경제의 현안이 해결된다는 명분이 필요할 것이다. 얼마 후부터 중소기업 위주의 정책에 대해 다양한 쟁점과 도전이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무엇보다 제한된 요소와 자원을 어떤 부분에 투입할 것인가에 대한 쟁점이 부각될 것이며, 또한 한국경제의 당면과제인 '일자리'와 '혁신' 문제를 중소기업이 과연 해결하는지에 대한 도전이 등장할 것이다. 이들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명분을 갖고 있어야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현재 가장 중요한 명분은 '중소 제조업'이라는 테마이다. 이는 케케묵은 전통적인 주제로 보이지만, 실상은 한국경제의 현안인 일자리와 혁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세계경제는 이미 중소 제조업 경쟁으로 진입했는데, 가장 적극적인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미국은 지난 시절 서비스업 중심의 전략을 반성하면서 제조업 르네상스의 깃발을 내세운 지 벌써 2~3년이 되었으며, 독일은 탄탄한 경쟁력을 갖춘 중소 제조업체들을 중심으로 유럽 경제위기를 뚫고 고속성장을 누리고 있다.이들이 중소 제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집중하는 이유를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특히 대기업 위주의 경제에서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전환하려고 한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가졌던 큰 오해는 제조업은 비선진국 산업이자 사양산업인 것처럼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면을 정확히 이해하면 그렇지 않다.혁신과 일자리 측면에서 제조업의 가치는 실제 놀랍다. 첫째, 제조업이 있는 곳에 연구개발(R&D)이 따른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제조업이 인근에 있을 때 과학자들이 자신의 발명을 직접 검증할 수 있었고 또 그 발명을 상업화할 수 있었다.생산현장이 멀다면 연구개발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혁신이 줄어든다는 발견이 쌓이고 있다. 독일 기계 산업의 높은 경쟁력에 대해 생산기술과 연구개발을 독일 내에서 공유한 덕분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미국이 제조업을 다시 자국 땅으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 전략을 펼치는 이유도 연구개발과 혁신을 강화하려는 방편인 것이다.둘째, 일자리 창출 능력에서 제조업만큼 우수한 산업도 없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제조업은 서비스업에 비해 5배나 더 큰 일자리 창출효과를 낸다고 한다. 일자리 창출이 국정의 핵심 어젠다가 된 우리 입장에서 제조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이슈임이 분명하다.미국 정부는 지난 2~3년 동안 제조업 부흥에 노력한 결과, 제조업에서 2010년에서 2011년 동안 약 32만8천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는데 이는 2.7%나 늘린 유례없는 실적이다. 또한 제조업은 높은 임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다. 서비스업이 일자리 창출 영향력에서도 떨어지지만 주로 낮은 임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과 비교된다.셋째, 부가가치 측면에서도 제조업의 가치는 크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제조업 1달러 생산은 1.4달러의 가치를 낳지만, 서비스업 1달러 생산은 0.7달러의 가치를 낳는 데 그친다고 한다. 제조업은 자체 혁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연관 서비스업의 혁신을 유인하는 효과까지 있다고 알려진다.중소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지속하려면, 국민들에게 그것이 한국경제의 현안을 해결하는 정책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중소 제조업이 주는 일자리와 혁신 측면의 높은 가치는 그 믿음의 단초로서 충분하다.또한 중소 제조업은 주로 부품소재 분야이기 때문에, 이 분야가 발전한다면 기존 대기업의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득력이 따라온다. 갈림길에 선 선택의 시점에서, 중소기업의 발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 혜안(慧眼)에 큰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거친 파고를 뚫고 반드시 중소기업 성공시대를 활짝 열어주기 바란다.

2013-01-09 손동원

인천 600년과 계사년

지난 2012년은 유달리 사건도 많고 탈도 많은 임진년이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는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가 강화로 피난했던 해인 1232년(고려고종 19년)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1592년(선조 25년)도 모두 임진년이었다니, 우리가 지난해 겪은 일들은 오히려 액땜 정도로 위안해야겠다.이제 2013년, 계사년(癸巳年)의 새해가 시작되었다. 올해로 지명을 얻은 지 600년인 지방이 여럿 있다. 인천시를 비롯하여 경기도의 고양시와 양주시, 용인시, 충북 제천시, 전남 함평군 등 전국의 지자체가 지명 600돌을 맞이하여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개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600년 '묵은' 지명은 대부분 조선 태종 13년에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고려시대의 군현체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명명된 것으로 당시 이웃 군현과 통폐합되거나 지위가 격하된 경우도 있으나 이후 600년 동안 같은 땅이름으로 '장기지속(Longue Duree!)'해온 것만도 장엄하지 않은가. 사람으로 따지면 회갑을 10번째 맞이하는 10주갑(周甲)에 해당하며, 30년을 한세대로 치면 무려 20세대가 바뀌어 갔으니 참으로 장구한 역사이다.이 가운데 인천의 변화는 극적이다. 1413년 당시 기초 단위였던 군(群)에서 도호부로, 직할시로, 광역시로 바뀌면서 지금은 한국 제3의 도시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려시대의 인천의 위상은 인주 이씨가 고려왕실과 7차례나 중첩된 혼인관계를 맺을 만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고려시대의 인천 지명이었던 경원(慶源)이니 인주(仁州)니 하는 지명은 고려 왕실의 왕비들이 태어난 고향이라는 말이며 '고려 왕실 경사의 근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대체로 도호부격의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올해는 제물포 개항 13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1883년 개항이 이뤄지면서 수도 한양의 방어 진지였던 제물포는 국제항구도시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제물포개항은 조선정부의 능동적 의지가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요구를 수용하여 이뤄졌다는 점이다.개항과 동시에 조선은 세계열강의 이권 쟁탈장으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의 식민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제물포 개항이 자랑스러운 역사는 아니지만, 한국 근대사의 가장 중요한 분수령에 해당하므로 그 과정을 찬찬히 되새겨 봐야할 것이다. 1883년 제물포 개항은 인천이라는 도시의 역사에서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 파급된 문화 변동의 결과는 오늘의 한국, 오늘의 한국인에게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계사년에 기억해야 할 문화적 '사건' 하나가 더 있다. 600년 전인 1413년(조선 태종 13년) 계사년에는 조선왕조실록의 첫 작업인 태조실록 편찬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왕별로 기록한 편년체 사서로,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기본 사료이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및 국보 제151호로 지정돼 있다.조선왕조가 국력을 기울여 사료편찬사업을 지속했던 것은 단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보는 '거울'이라고 인식하였기 때문이었다.600년 '묵은' 땅이름을 돌아보면서 인천을 비롯한 여러 도시들이 해야 할 일은 그동안 변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살펴보는 일이다. 경계해야 할 일은 행사치레에 급급하여 애초의 동기나 목적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변화의 현상만 주목하게 되면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게 된다. 변화 속에서도 변화하지 않는 것, 구조적 요인이 무엇인지도 찾아야 한다. 인천이라는 도시는 예나 지금이나 '바다'에 의존하며 변화 발전해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이 도시의 미래도 결국 '바다'에 달려 있다는 점일 터이다. '미추홀'이라는 가장 오래된 인천의 지명이 '해상도시'를 의미하듯이.

2013-01-02 김창수

심판대에 오를 박 당선자의 인재등용

'고소영S라인', '회전문 인사'. 이명박 정권의 인사 스타일을 두고 한 말이다.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서울시청 출신들을 국가의 주요 보직에 대거 등용한 것을 두고 일컬은 일종의 비아냥이다.비판적인 시각에서 보았던 측면도 있겠지만 실제로 앞에 거론된 출신들이 많이 중용됐던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에 당선되면 선거때 혼신의 힘을 쏟은 측근들을 무시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자신이 부리기 좋고, 또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기에 그렇다. 회전문 인사의 경우도 그렇다. 인재가 없는 것도 아닐텐데 한 사람에게 돌려가며 자리를 주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박근혜 제18대 대통령 당선자는 이를 인식한 듯 탕평인사와 통합을 원칙으로 내걸고 있다. 그래서 선대본부장을 지낸 '친박'의 좌장격인 김무성 전의원을 비롯한 많은 측근들이 공직에 대해 손사래를 치며 낙향한 것으로 전해졌다.멋진 사람들이다. 비서실장과 대변인들을 기용하면서도 박 당선자는 '친이'계를 중용했다. 이도 일단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윤창중 수석대변인의 임명을 놓고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야당은 물론 보수 언론들마저 윤 대변인의 임명에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처음부터 '옥에 티'라 할까?대표적인 보수논객인 윤 대변인의 임명에 대해 야당은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논평했다. 윤관석 의원은 윤창중 수석대변인에 대해 "48% 문 후보 지지자들에 대해 '국가전복세력', '반대한민국세력', '정치적 창녀' 등 온갖 막말을 대선 당시 뿐만 아니라 대선 이후에도 쏟아내고 있는 전형적인 국민분열 획책 인물"이라고 평가했다.보수언론들마저도 자극적인 표현으로 야당을 비판하는 칼럼을 연재한 그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이날 임명 직후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지독한 고민 속에서 (수석대변인 수락을) 결심했다"며 "거절하려 했지만, 박근혜 당선자의 첫 번째 인사여서 거절하는 건 참으로 힘들었다"고 했다.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윤창중 수석대변인은 25일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서 취임인사를 겸한 첫 기자회견을 갖고 "제가 쓴 글과 방송에 (출연해 한 말에) 의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많은 분께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말했다.또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국정철학인 국민대통합과 약속 대통령, 민생 대통령의 의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임명과 관련해 박 당선자와 개인적인 인연이 전혀 없고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고 했다.박 당선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임명했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해 우호적인 글을 많이 쓴 이백만씨를 홍보수석으로 임명한 것과, 윤창중 대변인이 야당측을 비판하고 박근혜 후보에 대해 우호적인 칼럼을 많이 연재한 때문에 임명된 것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아무튼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첫 인사에 대해 뒷맛이 남아있는 것 같아 개운치가 않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인사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제나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인물들을 주요 보직에 등용하는 일은 피하는 것이 마땅하다.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섀도우 캐비닛'을 구성하는 즈음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 링컨 루스벨트 레이건 오바마 등 많은 미국의 대통령들이 자신의 정적을 비서실장이나 장관 등 주요 보직에 임명함으로써 환영을 받았고,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보여줬다. 비록 정적이라 하더라도 실력과 덕을 갖추고 국민들로부터 신망받는 인물이라면 과감하게 발탁해야 한다.'인사는 만사'라고 했다. 올해 총선과 대선 등 양대 선거에서 나타난 분열을 하나로 통합하는 길 중의 하나는 탕평인사다. 문재인 후보도 패배후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기대한다고 했듯이 통합, 포용, 상생이 국정운영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청나라 관리 심문규가 충언했듯 하늘은 한 세대에 충분히 쓰고도 남을 인재를 내려준다. 주위에서만 찾지 말고 높은 데서 눈을 크게 뜨고 인재를 골라야 시빗거리가 줄어들 수 있다.

2012-12-26 이준구

분노와 저주의 폐허에서 장미는 필 것인가

오늘은 18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4천만명이 넘는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차기 대통령을 지목하는 날이다. 어제 일기예보대로라면 아침 날씨는 꽤 추우리라. 날씨뿐이랴.투표소를 향하는 유권자들의 마음도 추우리라 짐작해 본다. 어제까지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분노와 저주의 언어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분노와 저주를 대리해 투표하는 처지에 몰렸으니 마음이 시린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절반의 진영에 포함돼 나머지 절반을 배격하는 선택, 괴롭지 않겠나.이번 대통령 선거는 모처럼 양자대결로 뜨거웠다. 보수진영은 열외없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우산 아래 집결했다. 진보진영은 우여곡절 끝에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게 단일화의 월계관을 진상했다. 그래서였나. 안철수의 단일화 곡예와 이정희의 무개념 원맨쇼 말고는 무미건조했던 선거전이 막판에 달아올랐다.국민들은 신사와 숙녀의 페어플레이를 기대했다. 그럴 만도 했다. 박근혜와 문재인은 지금과 같은 정치는 안 하겠다고 공언했다. 정치쇄신은 피할 수 없는 대선화두로 자리잡았다. 안철수를 중심으로 새정치 희구세력이 정치개혁을 시대정신으로까지 승화시켜 놓은 덕도 컸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안철수가 몇 번의 투정과 몽니 끝에 자진 하차한 뒤 양자대결이 현실화되면서 보수와 진보 진영의 분노와 저주가 곧바로 부활했다. 박빙의 판세가 전개되자 새정치의 희망을 노래하던 그 입으로 저주와 독설을 쏟아내고, 국민통합을 약속하던 선한 미소는 적개심에 불타는 표정으로 돌변했다. 한때 박근혜와 문재인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안철수가 낙마하자 정당이 현실을 장악했고 새정치의 꿈은 쓰레기통에 처박혔다.여야의 공방에 실체적 진실은 유효한가. 아니다.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보자. 민주당측은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악성댓글 작성반을 운영했다며 20대 국정원 여직원을 지목했다. 이후 과정은 모두 건너뛰자.여하튼 경찰이 그녀의 컴퓨터를 들고가 조사했고 결과를 발표했다. 댓글작성 흔적이 없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경찰의 조사를 인정하지 않았다. 문재인 후보의 사과를 요구하는 새누리당의 역공과 경찰의 부실수사를 성토하는 민주당의 재반격이 어제까지 격렬하게 반복됐다. 국가정보기관과 공권력까지 무력화시키는 선거판의 생리를 체득해서일까.검찰은 국정원이 제출한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선거 전에는 열어보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련한 경찰과 영리한 검찰은 무책임한 우리 선거문화를 선연하게 비추는 수많은 거울 중 하나이다.유권자들은 역대 대선과 마찬가지로 이번 대선에서도 미래를 노래하는 후보와 정당을 만나지 못했다. 정당과 후보들은 미래를 역설했지만 실현할 수단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다. 그들이 말하는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누가 인내해야 하는지 말한 적도 없다.청년실업과 정년연장을 동시에 실현하는 식의 공허한 미래를 열거했을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미래가 도래하면 특정한 계층과 세대는 개미지옥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행복하다는 막연한 미래에서 승부가 나지 않으니 결국 그들은 마타도어와 흑색선전이라는 마약을 삼켰다.상대를 집권불가 세력으로 세뇌시키는 흑색선전에 후보와 당이 앞장서고 지성인들은 진영의 앞잡이로 전락해 추임새를 넣었다. 이렇게 새정치가 화두였던 18대 대선은 한국적 구태로 초토화됐다. 대한민국 유권자 대다수가 누가 대통령이 돼도 괜찮겠다는 희망 대신 절대 당선되면 안 되는 누군가를 버리는 선택을 위해 오늘 기표소 장막 안에 설 것이다.그래도 기권은 안 된다. 스스로 선거에서 열외시키는 일이야말로 작금의 정치와 같이 무책임하다. 특히 부동층이 궐기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관찰의 결과를 한 표로 표시해야 한다. 그래야 분노와 저주의 폐허에서 장미를 피울 수 있다. 장미는 단 한 모금의 물만으로도 꽃을 피운다. 내 한 표가 그 한 모금의 물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2012-12-19 윤인수

또 다시 안철수씨에게

많이 추워졌습니다. 지난 4월 청명 이후 다시 편지를 띄웁니다. 추운 날씨에 지원유세 다니느라 고생이 많겠습니다. 18대 대선 예비후보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유세를 전격적으로 나서면서 여러 가지로 만감이 교차하겠지요.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출마 선언 발표 시기를 늦추는 바람에 지지자들의 애간장을 어지간히 태우셨지요. 지난 9월20일 마침내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라는 대형 현수막 밑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출마를 선언할 때의 모습과 출마 포기선언 때의 떨리던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을 맴돕니다.출마포기 이후 많은 사람들은 과연 문 후보의 지원압력을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시련'을 극복하지 못할 것을 보았습니다. 안철수진영에 있던 세력들중 일부가 문 후보의 지지를 집요하게 추궁할 것이고 성격상 견뎌낼 수 없다고 본 것이지요. 결국 문 후보 지지를 선언했고 진영은 와해됐습니다.지지자들에게 단 한마디 해명없이 지난 6일 '오늘이 대선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라며 문 후보에 대한 무조건지지를 선언하면서 대선은 또다시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문재인'보다 '안철수'를 연호하는 소리를 다시 들으니 기분이 어떻습니까.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무의미하지만 만약 '새정치'라는 기치를 내걸고 혼자의 길을 고집스럽게 걸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부풀려진 인기'였건 '새정치의 열망'이었건 정치쇄신을 지독히 염원했던 '국민'들만 보고 "나는 여도 아니고 야도 아니다"라면서 앞으로 꿋꿋하게 걸어갔다면 어찌됐을까.아마도 그 정치적 신념에 박수를 보낸 지지자들이 생각보다 많았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도와주겠다면서 민주당에서 넘어온 세력, 이른바 '트로이의 목마'를 거둬들인 것이 첫 번째 실수였습니다. 기존의 정치세력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안철수 그 자체'에 열광했던 47%의 지지자들은 주변에 정치인들이 몰려든 것에 상당히 실망했습니다.두번째 실수는 '단일화프레임'에 스스로 갇혀 버린 것입니다. 문 후보와의 만남을 받아들이고 단일화를 전제로 13개항에 합의했던 그날 밤 '최고의 악수'를 두었던 것이지요. 문 후보를 만나 단일화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캠프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리겠다는 무언의 압력이 상당했겠지요. 여기에 스스로 후보직을 포기해도 잃을 것이 없다는 '꽃놀이패'라는 자기모순에 빠졌을거라 생각합니다.결국 '장고 끝에 수'를 두었지만 그 결과는 두고보면 알겠지요. 하지만 상대들은 단일화 논의과정에서 절대 이길 수 없는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9단'의 고수들이었습니다. 단일화협상 선언이후 지지율이 하락한 것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새정치'에 목말랐던 지지자들이 실망했다는 뜻이지요. 그러다보니 불안했겠지요. 정치쇄신을 갈망하던 지지자들만 쳐다보면 되는 것인데 지나치게 좌고우면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입니다.결국 문 후보의 손을 잡았습니다. 이것이 5년후 다시 돌이켜볼 때 세 번째 실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지유세를 하면서도 이번 대선 후 전개될 '안철수 정치'를 염두에 두고 있겠지요. 그래서 '문재인 후보 지지해 달라'라고 선뜻 말하지 못하고 '꼭 투표 합시다'라고 선관위 직원처럼 말하는 심정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왠지 쓸쓸해 보입니다.아직도 출마를 선언하던 날의 지지자들의 함성을 선뜻 지우지 못하고 나름대로 '안철수 정치'를 한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그 함성이 5년동안 귓가에 맴돌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한국정치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최단시간에 무려 40%가 넘는 지지를 지속적으로 받은 것은 지금의 정치에 혐오를 느끼는 국민이 상당수였기 때문입니다.누가 대통령이 되건 앞으로 험난한 여정이 기다릴 것입니다. 정치판은 맹수들로 가득한 아프리카 사바나의 초원보다 훨씬 무서운 곳입니다. 끝없는 도전과 그로인한 시련이 계속될 것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미 루비콘강은 건넜고 넘은 다리를 태워버렸으니. 앞으로 정치여정을 꿋꿋하게 걸어가길 바랍니다. 추워졌습니다. 건강 유의하기 바랍니다.

2012-12-12 이영재

경영 비결은 충성심 제고

중국 한(漢)나라 건국 무렵의 일화이다. 하루는 항우가 유방을 살해할 목적으로 그를 초대해 연회를 베풀고 동생 항장에게 칼춤을 추게 했다. 춤을 추면서 항장이 다가갔으나 유방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유방의 목숨이 경각간에 있었던 것이다.순간 유방의 측근인 번쾌가 비호같이 연회장에 난입해서 항우에게 창끝을 겨누었다. 항장이 유방을 칠 경우 자신은 항우를 요절내겠다는 의도에서였다. 의표를 찔린 항우는 번쾌를 '훌륭한 장수'라며 칭찬하면서 유야무야하고 말았다. 충신 번쾌 때문에 한왕조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연말 업적평가시즌에 즈음한 샐러리맨들의 표정이 밝지 못하다. 일년 내내 불황타령으로 일관한 터에 내년 경기전망마저 신통치 못한 때문이다. 명퇴신청을 받는 기업들이 하나, 둘씩 늘고 있다는 소식에 오금이 저린다. 내년 연봉협상을 앞두고 평가점수를 한 점이라도 더 올리려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승진을 앞둔 회사원들의 심정은 더욱 절박하다.직장 상사가 후배사원들의 공을 가로채는 후안무치는 물론 다면평가를 채택하고 있는 경우 거꾸로 부하직원들의 눈치를 살피는 진풍경마저 간취된다. 한치 앞이 예단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빚은 해프닝이다.기업의 존재이유는 이윤에 있다. 민간기업의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이 담보되어야 지속적 투자가 보장되고 임직원들의 먹거리까지 담보되는 탓이다. 매출액 극대화와 비용 최소화야말로 알파요 오메가인 것이다.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도 한 요인이다. 국내경제가 산업화단계에서 후기산업사회로 이행한 것은 점입가경이었다.글로벌 스탠더드가 대안이었다.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를 계기로 국내 기업들의 경영패러다임은 종래 일본식 경영에서 미국식 경영으로 대체되었다. 종신고용은 노동시장 유연화로, 연공서열형 임금은 업적위주의 생산성임금으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GM의 잭 웰치 회장은 기업경영의 전범(典範)으로 자리매김했다.성과는 단기간에 입증되었다. 기업들의 고질적인 부채경영이 완화되었을 뿐 아니라 내부유보금은 사상 최대를 기록 중이다. 국내경제규모 또한 확대되었으며 무역 1조 달러클럽에도 가입했다. 그 와중에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현대중공업, SK에너지, 포스코 등은 글로벌기업으로 급부상했다.현대경영학의 구루인 피터 드러커가 격찬할 정도이다. 1세기 동안에 구축된 경영시스템을 불과 10년 만에 완전히 바꾼 점을 고려할 때 국내 자본의 위력이 대단하다 싶다.반면에 부작용도 컸다. 고용 없는 성장의 가속으로 인해 기술적, 구조적 실업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임금근로자들 간의 양극화 심화는 또 다른 주목거리이다. 종업원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빠른 속도로 약화되는 것은 설상가상이다.내부고발 및 산업기술 빼돌리기 건수가 점차 증가하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기업 스스로 판옵티콘에 갇힌 죄수신세 격이어서 향후 관리비 앙등은 불문가지이다. 작금의 경제민주화 요구도 범상히 넘길 사안이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 추이와도 상관관계가 높다. 근시안적 경영이 빚은 부작용이다.일전 경인일보와 인천경영포럼이 주최한 조찬회에 초대된 리노공업의 이채윤 대표이사는 "직원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것이 돈을 버는 원천기술"이라며 휴머니즘경영을 강조했다. 연전에 삼성경제연구소가 "기업들의 지나친 효율추구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와 맥을 같이한다.조직에 대한 구성원들의 로열티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무형자산이다. 일본이 저성장의 늪에 빠져있음에도 '일본식 경영'을 고집하는 이유이다. 산업화기의 '한강의 기적'도 같은 맥락이다.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일본 교세라그룹 이나모리 가쓰오 창업자의 '경영의 진정한 목적은 종업원의 행복'이란 가르침에 귀기울여야할 때이다.

2012-12-05 이한구

중소기업을 위한 변명

일본의 경제전문가 오마에 겐이치는 "한국의 대기업은 납품단가를 깎지만 일본 중소기업은 자기 고유의 특화된 기술이 있기 때문에 납품단가를 함부로 깎지 못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우리는 그동안 이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했고 또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도 약했다. 대기업 경쟁력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중소기업들이 특별한 기술력이 없기 때문에 가격경쟁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가능하다고 말해왔다.그러나 우리 중소기업들은 억울하다. 기술개발을 하고 싶지 않아서 범용기술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들의 의지 및 실력 부족 탓으로 질책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오히려 원인은 대기업 쪽에 있다. 문제의 시작은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에 의해 중소기업이 얻는 이윤이 워낙 적다는 것에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거래에서 이윤의 상당부분을 대기업이 가져가는 관행이 문제의 뿌리인 것이다.이윤이 적기 때문에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창조적인 기술개발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으며, 우수한 기술 인력을 채용하는 것도 어렵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기술력으로 승부하기보다는 대기업의 하청구조에서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지게 된 것이다.2011년 기준으로 중소기업의 임금수준은 대기업의 63.2%에 그쳤다. 2000년대 초반에는 대기업 임금의 70% 수준이었지만, 중소기업의 임금이 60% 초반대로 떨어진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대·중소기업 사이의 임금격차가 더욱 커졌다는 것은 총 이윤에서 대기업의 몫이 커졌지만 중소기업에 돌아가는 몫은 줄어들었다는 실상을 드러낸다.이는 우리 경제에서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을 견인할 것이다'라는 낙수(落水)효과가 매우 취약하다는 지적과 무관하지 않다.우리 중소기업들이 기술력 향상의 의지가 없다는 질책은 오해이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중소기업들의 연구개발 노력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연구개발 지출액을 매출액으로 나눈 값인 '연구개발 집중도'라는 지표로 계산해 볼 때, 중소기업 평균은 1.75%로써 중견기업의 평균 1.11%와 대기업 평균 1.15%에 비해 더 높다. 즉, 중소기업군(群)은 상대적으로 낮은 매출액에도 불구하고 기술력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에 더욱 적극적인 것이다.우리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부족한 원인은 대기업의 지배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의해 중소기업은 적정의 이윤을 확보할 수 없는 실정이고, 이에 따라 창조적 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연구개발비 재원이 부족하다.대기업은 중소기업이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이윤을 보장해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 중소업체들 사이에선 자신의 이익 수준을 공개하기를 극도로 꺼리는 관행이 있는데, 이는 자신의 이익 수준이 공개되면 더 납품단가를 줄이려는 압력이 들어오기 때문인 것이다. 심지어 정보 공개를 두려워하여 코스닥시장에 등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중소기업들이 있을 정도이다.우리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려면 이러한 구조적 악순환을 해결해주어야 한다. 그 악순환을 해소하려면, 우선 중소기업에 적정 이윤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그 이윤 중 연구개발비와 우수 인력을 유지하는 인건비가 사용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들이 범용기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기술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악순환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기업들이 이윤 확보 욕구를 잠시 참고 중소기업을 배려하는 정책적 유인책이 제공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때마침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성장을 위해 잠시 참아주는 '배려'와 '기다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도 넓어지고 있다.이렇게 공감이 높은 시점에서 대기업들이 통 큰 배려를 보여준다면 분명히 큰 박수를 받고 사회적 인식도도 높아질 것이 확실하다.대선 정국이 무르익고 있다. 대선 주자들이 중소기업의 기술력 향상을 위한 정책에 더욱 적극적이기를 바라며, 이를 통해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2012-11-28 손동원

해수부 부활과 해양도시의 과제

해양수산부의 부활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해수부는 2009년 이명박 정권이 작은 정부를 명분으로 국토부와 농림부로 분리 통합되면서 폐지되었으나, 주요 대선후보들이 부활을 공약하고 있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해수부 부활은 정부부처개편의 1순위가 될 전망이다. 관련 부처의 공무원들은 업무효율성이 떨어질 가능성을 제기하며 반대하고 나섰다. 부처직원들의 주거지 문제도 적지 않다.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을 코 앞에 두고 있는 국토부 소속 해양담당 직원 1천800명은 다른 도시로 또 '이사'를 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국가들이 해양강국을 표방하고 투자를 강화하는 추세인데다, 해양정책총괄부서는 미래 성장동력인 해양 영토와 자원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해수부 폐지는 시행착오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해수부 폐지 이후 해운항만 분야 6천억, 해양환경 분야 4천억원 가량의 예산이 감축되어 그동안 관련사업도 상당히 위축된 실정이다. 해양 수산 관련업계, 부산과 인천과 같은 대표적 해양도시가 해수부 부활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나선 것은 그 때문이다. 향후 해양도시들 사이에는 해수부와 관련 기관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해양도시란 해양 환경이나 해양산업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도시이다. 따라서 해상과 해변에 거주시설이나 항만·공항 등을 건설하여 해양의 공간과 자원을 이용하여 발전하는 도시로, 해양 인프라를 구축하여 다양한 해양 자원 이용을 극대화하려는 도시 발전 전략을 추진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 인천이나 부산, 목포나 여수 같은 항구 도시들이 한국의 해양도시이다. 부산은 각종 해양관련 기관과 시설을 갖춘 도시일 뿐 아니라 오래전부터 '해양수도'를 표방하며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해수부 부산유치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최근 부산을 방문한 박근혜 후보가 해수부 부산 유치를 시사하는 언급을 하였다가 타도시의 항의를 받은 후 유치 후보지 중의 하나로 검토중이라고 해명했으나 부산 민심을 의식하고 있는 속내까지 숨기지는 못하고 있다.문제는 정부가 이른바 '투포트(Two-Port)' 정책이라는 부산과 광양 중심의 정책을 펴는 바람에, 정작 수도권 관문항인 인천항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양인프라를 특정도시에 집중하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남해안 중심의 해양 정책은 황해와 경기만의 해양도시를 소외시킴으로써 비중이 증대하고 있는 대중국, 대북한 교역과 수도권 물류 소통, 경기만의 해양자원 관리가 방치되는 역차별 현상을 낳았다. 해양 인프라는 특정지역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동해안과 남해안, 서해안의 특성과 장기적 전망에 기초하여 균형있게 분산되어야 할 것이다. 해수부의 입지도 정치적 배려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해양 행정과 정책 기능을 수행하기에 적합한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해수부의 부활이 정부부서 개편이나, 해수부 유치 경쟁으로 귀결될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해양과 해양 문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미래지향적 해양 정신을 갖추어 해양 대국으로 발전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해양 경영의 성패가 국가의 운명을 가른 적이 많았다. 동아시아 해양 경영의 개척자였던 장보고를 권력투쟁의 와중에서 척살한 신라는 곧 패망의 길을 걸었다. 왕건을 비롯한 서해안의 해양 세력에 의해 건국된 고려는 세계에 그 이름을 알린 문화 국가로 발전했으나, 해양봉쇄 정책을 유지했던 조선은 강제 개항으로 국권마저 침탈당해야 했다. 인천의 경우 1883년 개항 이래 해양도시로 성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해양 정책과 행정은 늘 중앙 정부의 '처분'에 맡겨 왔다. 이제부터라도 해양 정책과 기구를 전면적으로 재점검하는 한편, 서해안의 해양자원과 문화를 연구하는 해양 연구기관을 비롯한 교육기관의 설립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2012-11-20 김창수

끝나지 않은 입시전쟁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엊그제 끝났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인 입시전쟁은 시작됐다. 언론에서는 범죄와의 전쟁, 학교폭력과의 전쟁, 쓰레기와의 전쟁 등 수많은 것들을 전쟁에 비유한다. 그래서 '~와의 전쟁'이라는 끔찍한 표현을 자제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수험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은 총칼만 안 들었지 그야말로 실제 전쟁을 방불케 한다. "한국인은 본능적으로 대학입시일의 의미를 알고 있다. 이 날은 12년 공부의 결실을 보는 날이며, 한 인간의 평생 운명과 신분이 결정되는 무시무시한 '계급전쟁의 날'이다. 때문에 온 나라가 초긴장 살얼음판이다. 전국의 출근 시간이 늦어지고 비행기가 제시간에 뜨고 내리지 못하며 버스와 전철, 택시 등이 총동원되고 경찰과 구급차가 출동한다." 강준만 교수의 저서 '입시전쟁 잔혹사'라는 책의 표지에 적혀 있는 문구다. 어떤 이는 한국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2년 동안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사다리를 오르던 아이들을 밑바닥으로 떨어뜨려 버리는 날이라고 잔인하게 표현하기도 했다.생존경쟁의 본격적인 막이 오른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에게는 30~40년 동안 지속돼온 당연한 현실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큰 뉴스거리다.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별을 보고 등교해 별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몹시 안타까운 눈초리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너무 고달프다. 성적을 비관하여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도 자주 일어난다.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들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아마도 수험생보다 더 초조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경험자라면 모두가 느낄 정도다. 입시위주의 교육과 출세지향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이 같은 현실이 안타깝지만 12년 공부를 단 한번으로 결정짓는 수능시험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어쩔 수 없이 경쟁 사회에서 1위가 있으면 꼴등도 있는 법이다. 인생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달콤한 표현도 지금은 귀에 들리지 않을 때다.오로지 다른 학생과 비교 대상이 되는 것과 공부하는 능력에도 한계는 있는 법인데 성적이라는 잣대를 들이대 비교하는 것이 두렵다. 이러한 현실을 알지만 대선 후보들은 입시제도 개선에 관해서는 구체안이 없다. 설건드려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나 역시 고교시절 일류 대학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모든 수험생이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수험생의 필수(?)라던 재수의 방황 속에서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철없는 고민도 했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무엇을 할 때 가장 신나고 재미있었는지, 어떤 공부를 하면 나의 미래가 행복해질까만을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 이미 고유의 개성과 특성을 갖는다. 내가 인생의 주인공이자,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깨달으면 된다. 공자는 논어의 옹야편에서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고 했다. 인생에 있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바람이 곧 즐기는 것이 아닐까 한다.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느라 정신없을 때다. 부모님의 희망사항도 들어야 하고, 또 주변의 권고도 귀담아야 한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생항로가 험난해진 경우가 많다. 점수에만 맞춘다거나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대학과 학과를 결정한다면 자신이 갖고 있는 고유의 개성을 잃고 의미없는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다.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의 시대에 무조건 일류 대학이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트렌드를 읽어내야 한다. 10~20년 후에는 어떤 분야가 세상을 주도할지 모를 일이기에 그렇다. 행복은 분명 성적순이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성적은 자신의 능력에 맞는 목표를 세우고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을 때 얻는 만족의 성적표다.

2012-11-13 이준구

단일화가 점거한 2012 대선마트

18대 대통령선거 상품 진열대가 획기적으로 변할 조짐을 드러내자 여론이 주목하고 있다. 진열대에 촘촘히 세워져 경쟁하던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라는 상품 중에서 문재인, 안철수 두 상품이 '1+1' 기획상품으로 새로 출시된다는 빅 뉴스 때문이다. 다소의 불만을 무릎쓰고 문재인, 안철수를 골라야 했던 야권 지지층이나 개혁희구 세력들은 환호하고, 심지어 박근혜를 고집스럽게 구매하던 보수 유권자들까지 기획상품의 면모가 궁금해 매대 앞에서 장사진이다.지각있는 사람들이 '문재인 안철수 1+1'이 공정거래에 위반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소비자들이 원한다는 함성 속에서 그저 모기가 앵앵대는 소음일 뿐이다. 또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1+1'이 문재인, 안철수 마니아층 상당수의 반발과 구매포기로 이어져 시장에서 실패할 것이라 예상한다.즉 '문철수'가 되면 안철수의 개혁희구 세력들이, '안재인'이 되면 문재인의 정통야당 지지세력이 시장에서 이탈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소비자의 지갑, 유권자의 표를 노리는 상품기획자들이 이런 위험을 방치할 리 없다. 그래서 가치연합을 강조한다. 문재인, 안철수 두 봉지를 투명테이프로 거칠게 묶어내는 것이 아니라, 정권교체의 건빵과 개혁의 별사탕을 섞어 제공하겠다는 상품기획이다. 그럴 듯하다.이제 2012 대선마트엔 단일화 기획상품전이 매장의 전면을 장악할 모양이다. 상품기획자들은 소비자들과 참여하는 단일화 이벤트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단일화의 대표상품으로 누가 적당한지, 화학적 단일화를 위한 조건을 놓고 수시로 거리 시식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미 상당한 시간을 단일화 이벤트를 예고하는 티저광고를 쏟아낸 마당이니 소비자의 주목도는 압도적이다. 단일화 지지층은 연일 언론매체에서 쏟아지는 단일화 드라마를 즐길 것이고, 박근혜 구매자들은 "우리는 뭐 재미있는 이벤트 없나" 하고 짜증내며 TV 전원을 끄거나 묵음으로 시청하는 괴로움을 감수해야 할 형편이다.그래서 '문재인, 안철수 1+1' 상품기획자들에게 주문한다. 단일화 상품기획을 반드시 성공시키라고 말이다. 만일 단일화의 결과물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그동안 대선마트 전체를 교란시킨 혼란의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두자는 것이다.'1+1'의 결과가 100원짜리 박근혜를 매대에서 쫓아내려 단순히 50원, 60원짜리 문재인, 안철수를 겉봉지와 안봉지 과대포장했거나, 가치연합이랍시고 연합의 비율과 연대의 배합을 기계적으로 절반씩 섞은 것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이다. 소비자, 아니 유권자들도 이미 학습효과가 있으니 이번의 단일화 기획상품전의 결과를 끝까지 주목한 후에 최종선택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적어도 아직까지 상품선택을 미룬 소비자라면 더욱 그렇다. 잔치판에 난데없는 딴죽이라 지적하면 할 말 없지만, 18대 대선마트에 입장한 소비자의 선택 기준이 단일화 이벤트 하나로 집약된 상황에서 단일화 결과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어떤 선택도 가능하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이런 상황은 야권 스스로 조성한 것이니 종결된 상황의 결과에도 책임지는 것이 공정하고 당연하다.참 박근혜는. 안타깝다. 세 상품 중에선 그래도 커 보였던 박근혜가 갑자기 왜소해지고 소비자의 시야에서 희미해졌으니 말이다. 그녀를 사랑하는 보수 유권자들은 속이 얼마나 쓰릴까. 진작에 포장을 바꾸든지 내용물을 혁신해야 했다는 뒤늦은 후회에도 소비자들의 공감이 없다.역사의 과오를 인정해 역사의 영광을 복원하는 역사적 통찰과 드라마틱한 상상력의 부재가 주식회사 새누리의 비극이다. 이제라도 소비자에게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이벤트를 발굴하든지, 아니면 야권의 단일화 블랙홀이 스스로도 소멸시키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2012-11-06 윤인수

아버지와 아들

옛날에 야당 정치인들의 정체성이 싫다는 아버지와 새벽 야음을 틈타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을 독재자라고 생각하는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부자간의 의견은 늘 엇갈렸고 정치얘기만 나오면 서로 티격태격 다투고 한 두달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여당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아버지가 싫어서 '60세 이상은 투표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대들었던 아들은 아버지에게 호되게 뺨을 맞은 적도 있었습니다. 서슬퍼런 그 시절, 친구 중 몇 명은 데모를 하다 감옥에 갔고 그 친구들처럼 적극적으로 데모에 참가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을 스스로 자책하던 그 아들은 어렵게 구한 금서들을 탐독하며 '민주화의 꿈'을 키웠습니다.그런 아들이 아버지는 늘 걱정스러웠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착취당하는 노동자'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재벌' 등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로 열을 올리는 아들을 보면서 아버지는 혹시 '저놈이 데모하다 감옥에 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습니다.아버지는 아들과의 논쟁에서 아들의 논리정연한 말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의 말이 때로는 옳기도 했지만 6·25때 공산당이 싫어서 북한 고향을 등지고 내려 온 아버지는 "공산당이 얼마나 무서운지 너는 모른다"며 "우리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어 안보가 제일이다"라고만 되풀이 했습니다. 그럴수록 아들은 "미국보다는 북한이 편하다"라며 대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해방부터 6·25가 일어났던 5년간 고향에서 일어났던 그 끔찍한 일들을 주마등같이 떠올리며 치를 떨었습니다. 가끔 38선을 넘던 이야기를 하면 아들은 오히려 화를 벌컥 냈습니다. 아버지는 속이 상합니다. 고향에 두고온 부모 생각에 눈물을 훔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늘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영원히 대통령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전두환의 7년은 지나갔고 6·10항쟁으로 이땅에 민주화가 찾아왔습니다. 전두환은 백담사로 쫓겨 났고, 그의 친구 노태우가 대통령이 됐습니다. 아들은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몇 번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단 한번의 의심도 없이 여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아버지를 아들은 가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모두 4명의 대통령이 탄생했으며 20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아들은 이제 머리에 하얀 눈이 내린 중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장성했습니다.30년전 아들이었던 그 아버지는 이제 아들과 마주 앉았습니다. 대선은 50일 남았고 두 사람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를 두고 논쟁을 벌입니다. 안철수의 '모호함'과 문재인의 '친노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아버지와 박근혜의 '역사의식'과 '불통'이 싫다는 아들이 또 대립합니다. 기가 막히게 30년전 그의 아버지와 자신이 벌였던 논쟁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민주화'라는 말이 '새로운 변화'와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바꿔보자'는 아들과 '안정이 제일이다'라고 말하는 아버지. 한치의 양보도 없는 아들의 모습에서 아버지는 30년전 자신의 아버지와의 논쟁에서 자신이 아버지를 얼마나 심하게 몰아붙였는지 그 생각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아버지가 자신과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진저리를 쳤던 아들은 어느새 자신이 보수가 되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독재정권 타도'를 부르짖던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옛날 자신이 아버지에게 쏟아냈던 말들을 이제 아들에게 고스란히 듣고 있습니다. 논리를 내세운 아들의 주장에 '안정이 제일'이라고 주장하는 자신을 보면서 서글펐고 말이 통하지 않는 아들을 보면서 세대간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지 무섭고 두렵기조차 합니다. 그러나 세월은 또 흘러갈 것입니다. 또다른 변화가 올 것이고 아들이 장년이 되면 그때 비로소 자신을 이해할지 모른다고 아버지는 생각합니다.

2012-10-30 이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