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정치권의 안이한 증세 타령

역사를 반추하다보면 미스터리한 일들이 많다. 아득한 옛날은 고사하고 비교적 최근의 사실(史實)들 속에서도 의아한 일들이 자주 확인되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식민지기(18~20세기)의 인도역사이다. 인도는 3세기에 가까운 기간의 대부분을 영국 동인도회사의 관리를 받았는데 이 회사는 영국정부와는 무관한 순수 민간무역업체였다. 동인도회사는 이윤극대화를 위해 최소통치비용으로 인도를 경영했다. 세계최대 규모의 대륙국가가 한 기업에 의해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점이 이채롭다.19세기 중반 동인도회사가 해체되면서 인도에 대한 지배권이 영국정부에 이양되었다. 영국이 지배한 영역은 오늘날의 인도는 물론이고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미얀마와 북서쪽의 페르시아 남부와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등 인도대륙 전체를 아울렀다. 당시 인도대륙의 인구수는 무려 4억여명인 데 비해 인도총독부 소속 브리튼출신의 군인, 경찰, 일반행정직 공무원 총수는 수천명에 불과했다. 인력증원에 따른 재정 부담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상최대의 대영제국 형성을 위한 물적 기초가 확립되었던 것이다. 덕분에 영국은 1857년 세포이폭동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이후에도 재정지출 최소화원칙은 유지되었다. 영국 특유의 '작은 정부'관이 간취되는 대목이다. 대선이 임박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증세론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이 불을 지피고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구체적인 증세액까지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아직 신중한 입장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세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터여서 복지재원의 추가소요가 불가피하나 기존 세출구조하에서의 염출이 곤란한 것으로 판단한 때문이다. 공공부문의 살림형편은 어떠한가. 중앙 및 지방정부의 국가채무는 435조원에 GDP대비율이 35%로 경제협력기구(OECD) 평균 103%에 한참 못 미쳐 지표상으론 매우 유망하다. 또다시 빚을 내서 복지재원으로 충당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으나 대외발 악재가 여전해 부담이 큰 것이다. 4대강사업처럼 공기업들에 국책사업을 떠넘기는 식으로 국가재정에서 직접 조달할 수도 있으나 이 또한 녹록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의 총부채 규모가 지난해 말 기준 508조원으로 국가채무를 훨씬 능가한 것이다. 공공기관의 채무까지 포함하면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은 70%를 초과하는 실정이다.부채를 감당할 만큼 자산이 충분하다면야 별문제이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공공기관의 자산은 연평균 10.3% 증가한 반면에 부채는 16.8%나 불어났다.자산보다 부채가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것이다. 수익성 악화는 또 다른 변수이다. 공기업의 매출액대비 영업이익률은 2010년 7%에서 2011년에는 5%로 하락했는데 금년 성적은 더 나쁠 전망이다. 적자기관도 수두룩하다. 증세론이 힘을 받는 이유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공공부문의 살림규모가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이다. 사업성은 차치하고 무조건 덩치만 키우고 보는 식이니 말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 재벌의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가 공공부문에서 재현되는 형국이다. 고질적인 방만경영의 심화는 점입가경이다.빚잔치로 거덜날 지경의 모 지자체가 공유재산을 매각해서 직원들에게 올 추석특별상여금을 지급한 사례가 상징적이다. 공공기관의 요직은 구태(舊態) 정치인과 퇴출관리들의 꿀단지로 전락한 것도 주목거리이다. 공직사회 전체가 세금이란 화수분에 도취한 인상이다. 이런 구조하에서 어느 유권자가 증세론에 동의하겠는가. 또한 거론 중인 부유세의 경우 서민층에 전가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의 의지가 문제이지 공공부문 슬림화를 통한 복지재원 염출은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 증세타령만 하는 미래 권력들의 구시대적 발상에 실망이다. '작은 정부'의 참의미부터 깨쳐야 할 것이다.

2012-10-23 이한구

'중소기업부' 찬성하나 조건이 있다

우리 중소기업의 위상을 말해주는 숫자는 '998860'이다. 그것은 전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며, 전체 근로자의 88%가 중소기업 근로자이고, 전 국민의 60%가 중소기업 가족이라는 뜻이다. 대선(大選) 정국에서 중소기업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숫자이다. 표심(票心)이 중요해지면서 중소기업인의 마음을 얻으려는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부로 승격시키는 방안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무책임한 립서비스에 비해서는 반가운 제안이기는 하지만, 정부조직 격상만으로 중소기업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것은 오산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을 보는 철학이 제대로 서는 것이며, 기존 정책에서 부족했던 측면과 새로운 시대적 요청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물론 많은 중소기업인들은 '중소기업부' 승격에 찬성한다. 그 이유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정책 기능이 강화된다는 점을 내세우지만, 내심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중소기업부' 승격에는 찬성하지만, 조금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이제 중소기업 관할 정부 조직은 무조건 중소기업의 생존을 늘려주는 관청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중소기업 정책은 앞으로 '시혜성'과 '성장성'이라는 두 관점을 구분해서 추진하길 바란다. 여기서 '시혜성'이란 사회 안정 측면에서 보호해야 할 기업군(群)에 대한 지원책이며, '성장성'이란 경제체질 강화 측면에서 키워야 할 기업군(群)에 대한 육성책이다. 중소기업 정책에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시혜성'과 '성장성'의 균형이다. 기존 정책은 '시혜성'에 너무 치우친 편이어서, 중소기업이 시장 경쟁력은 약하지만 정부 정책에는 우등생인 '마마보이'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제 한국 경제가 요소투입형 발전에서 혁신형 성장을 요청받고 있다. 대기업군(群)만으로는 이 혁신형 성장을 감당하기 어렵다. 중소부품업체들에서 혁신이 나와야 글로벌 경쟁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중소기업들이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견인차로서 부상해야 하며, 그들에게서 '일류 기업'이 나와야 한다. 우량 중소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호령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을 받아들여야 하며, 또 일류 중소기업을 키우는 것은 존속형 중소기업들을 생존시키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앞으로 중소기업 정책 중 차별화 정책의 비중이 높아져야겠다. 차별화란 우량 종(種)과 불량 종(種)을 구별하는 정책을 말한다. 우량 기업에 자부심을 갖게 하고 자원 배분의 왜곡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이 차별화 정책이 바로 중소기업의 성장 통로를 여는 정책의 단초이다. 한정된 총량속에서 움직이는 자원배분에서, 발전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가야할 정부지원이 경쟁력없는 곳으로 흐르는 건 좋지 않다. 만약 정책 지원에 의해서만 겨우 생존하는 중소기업들에 자원이 흘러간다면 그건 분명히 자원배분의 왜곡이다. 이러한 왜곡은 중소기업 전체의 유인체계를 왜곡시켜 건실하게 경영하는 중소기업들의 의지마저 꺾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카테고리 킬러'가 나오기 어렵다.우량 싹이 더욱 잘 될때, 우수 인력이 중소기업에 몰려들고, 청년들의 창업 꿈이 더욱 많아지며, 투자 자금이 중소기업쪽으로 몰려들 수 있다. 이처럼 차별화 원리만 제대로 서도 악순환에 빠진 한국 중소기업 문제의 상당부분이 해소될 수 있다. 하버드 대학 교수인 마이클 포터는 국가경쟁력을 '글로벌 기업의 모국(母國)이 되는 것'으로 정의했다. 가슴에 와닿는 국가경쟁력의 정의이다. 일류 글로벌 기업을 키우자면, 일류 중소기업이 일류로 대접받아야 한다. 이것이 중소기업의 위상을 높이 사고 그들을 진정으로 대접하는 방법이다. 이런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식해야만 '중소기업부' 승격도 진정한 의미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2012-10-16 손동원

문제는 '내부'의 위기다

구미시에서 발생한 불산가스 누출 피해가 확산되자 정부가 사고발생 12일 만에 이 일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불산가스는 구미공단뿐 아니라 전국의 화학공단에 대량으로 저장 유통되고 있는 유독물질이다.문제는 유독물질과 위험요소가 너무 많아서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원자력 발전소도 가동이 중지되는 사태가 빈번해지고 있으며, 이웃나라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국가적 위기 사태를 겪고 있다.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일찍이 경고한 바 있듯이 산업화를 통해 구가한 물질적 풍요가 사회를 총체적으로 위협하는 '위험사회'(risk society)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일련의 사태는 과학기술 신화에 대한 철저한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다.'위험사회론'이 사회의 물적 토대와 외적 환경의 위기를 경고한 것이라면, 최근 우리 사회의 몇 가지 징후는 사회의 '내부'가 위기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사회의 내부란 가정과 학교처럼 개인이 보호되고 교육받는 공간이다. 그중 가족과 가정의 위기는 가장 심각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발표에 의하면 1990~2002년간 의도적 살인사건으로 죽은 여성 가운데 46.4%는 배우자이거나 내연·동거관계인 남성의 손에 살해당했으며 이들 상당수가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폭행·학대받았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밝힌 가정폭력 통계도 충격적이다. 가정폭력을 경험한 가정이 전체 가정의 53.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두 집 중 한 집에서 가정 폭력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폭력의 발생수도 최근 10년간 1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초·중·고교생의 자살 사유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원인이 가정불화(37.5%)인 것으로 나타났다.최근 끔찍한 성폭행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어 시민들은 뉴스 보기가 두렵다고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그런데 성폭행 가해자의 과반수도 일반적 예상과는 달리 가족이나 친인척, 연인, 직장 상사와 동료, 이웃사람과 같이 피해자와 가까운 사람들이다. 역시 '내부'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지표이다. 개인의 안식처가 되어야 할 가족과 집이 갈등과 폭력으로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가족을 둘러싼 바깥 고리인 학교와 일터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을 주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학교와 직장은 오직 성적과 성과를 기준으로 줄 세우고 있어 학생들과 직장인들은 만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실업률과 비정규직이 증가하면서 사회의 불안지수가 높아지고, 가정 경제의 기반도 취약해지고 있다. 가계부채가 위험 수준에 육박하고 있으며 부동산 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이른바 '하우스 푸어' 문제도 가족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수입의 대부분을 보육비와 교육비로 지출하고 있어서 '저녁이 있는 삶'은 요원하다. '내부'의 위기를 초래한 일반적 원인 중의 하나는 도시화 현상일 것이다. 가족과 집이 위치한 이웃과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한국사회가 압축 성장하면서 새로운 가족관이 정립되지 못한 문화적 지체현상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상당수의 남성은 여전히 봉건시대의 유산인 가부장적 사고로 가족들을 바라본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는 서로 독립적이고 동등한 인격체로서 정서적 경제적인 동반자로 여겨야 하지만 소유하고 지배하는 대상으로 여기려는 경향이 유물처럼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가족은 가장 작은 사회이지만 우리 사회의 미니어처이다. 가족이 겪고 있는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우리사회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위기의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이다. 우리의 대선 후보들이 이런 '내부'의 위기, 서민 가정이 처해있는 위기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고 진검 승부하기를 희망한다.

2012-10-09 김창수

'쿠오바디스' 베이비부머

1960년대 중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책가방은커녕 보자기에 둘둘 말아 어깨와 등을 가로질러 질끈 동여맸다. 미국에서 원조받은 옥수수죽과 빵을 학교에서 만들어 나누어 먹었다. 점심시간에 죽을 한 술씩 떠 입맛을 다시다 만 아이들은 모두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다. 이름하여 '중간놀이' 시간. '올해는 일하는 해, 모두 나섰다~~~.'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남녀 구분없이 음악에 맞춰 삽질하는 모습을 하며 무용을 했다. 한 반에 70명이나 되는 콩나물교실도 모자라 2부제 수업을 했다.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 초기.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외식이라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어머니와 먹은 100원 짜리 짜장면. 그래도 그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고깃국도 설날·한가위·생일 등 1년에 2~3번 먹어보는 게 고작이다. 추운 겨울 퇴근하는 아버지를 마중하기 위해 형과 같이 버스 정류장으로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나간다. 아버지께서 사주시는 따끈따끈한 국화빵이라도 몇 개 얻어먹기 위해서다. 교회 마당이나 동네 공터에서는 땅거미가 져 공이 안 보이는데도 축구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회택·김정남·이세연 등 청룡팀이 당시 유일한 우상이었을 때다.'58년, 개띠'들의 자화상이다. '58년, 개띠'들은 우리나라 베이비부머(baby boomer)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베이비부머란 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5년부터 산아제한 정책이 도입되기 직전인 1963년까지 태어난 세대들을 말한다. 이들의 은퇴 대열이 벌써 시작됐다. 경기불황이 극심해지면서 대기업들은 이미 소리없이 인력 감축을 진행하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이 타깃이다. 상시 구조조정 체제에 돌입한 건설업종은 말할 것도 없고, 제약·정유·자동차 등 전체 업종을 망라한다. 이 여파는 협력사나 중소기업으로까지 영향을 미친다. 다행스럽게 목숨(?)이 붙어있다손 치더라도 길어야 몇 년이다.한국전쟁 이후 이 시기에 태어난 인구는 약 820만명이고, 현재는 710만명 정도라 한다. 이 중에서도 1958년생에 이르러 출산이 절정에 이르렀다. 중·고교를 추첨으로 입학하기 시작한 이른바 '뺑뺑이' 세대이자, 소(牛)판 돈으로 대학에 갔다고 해서 우골탑(牛骨塔)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세대들이다. 10대1이 훨씬 넘는 경쟁률을 뚫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유신과 휴교령에 맞서기도 했고, 산업화의 역군이면서도 민주화를 앞당긴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40대에 들어서 IMF 외환위기로 거리로 내쫓겼는가하면 수 년전 글로벌 금융시장 위기로 정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밀려난 '사오정'들. 격변의 현대사를 목격했고,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건설에 일익을 담당한 사람들이다.전체 인구의 14.6%에 이르는 이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한국 사회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집단이다. 49~57세. 아직 한창 일할 나이에 한 나라의 거대집단이 아무런 대책없이 직장에서 내몰린다면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초고령화 사회를 촉진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큰 손해다. 청년 실업자인 '이태백'이 수두룩한 마당에 무슨 베이비부머 걱정이냐 반문할지 모르지만 평생 국가와 사회가 기른 인재들을 한 순간에 버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정년 연장이 거론되기도 하고, 임금피크제가 시행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아직은 없다.이번 대통령 후보들도 베이비부머이거나 이에 준하는 세대들이다. 아직 공약들이 구체화되지 않아서인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선진국형 국가로 자리잡기 위해선 베이비부머에 대한 정책이 중요한 어젠다가 될 수도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의 이면(裏面)에는 은퇴대책으로 너도나도 집을 내다 팔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경제성장과 복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앞으로 이들에 대한 재취업과 고용촉진 대책에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은 더욱 중요하다. 이를 먼저 뼈저리게 인식하는 대선 후보가 누구일지 700만이 넘는 베이비부머들은 주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2-10-02 이준구

역사는 함부로 소환할 수 없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결국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었다. 9월 24일 기자회견. 박 후보는 "5·16과 유신, 인혁당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아버지 박정희 시대의 대한민국의 시작과 끝이 헌정파괴의 역사였음을 인정한 것이다.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그래야 할 민주주의 가치"라고도 했다. 경제기적이라는 목적을 위해 독재라는 수단을 선택한 아버지의 잘못을 시인한 것이다.박근혜후보 독재 선택한 아버지 잘못 시인기자회견후 대선지형 변화 따지는 정치인 분주편향된 인식으로 역사적 사실 보는일 경계해야지금 박 후보의 심정은 어떨까. 아버지의 역사를 옹호해야 하는 딸의 처지와 아버지의 역사를 비판하는 여당 대통령후보의 입장이 상충하는 충격으로 몸은 고단하고 마음엔 거친 파도가 일렁일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는 "아주 힘든 일이었을텐데 아주 참 잘했다. 국민통합으로 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정말 필요한 일을 했다.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역대 대선정국에서 상대후보에 대한 이같은 헌사는 없었다. 대권을 놓고 사즉생의 경쟁을 벌이는 판국이라도 아버지를 부정할 수 없는 딸이자 부정해야만 하는 대통령후보 박근혜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차린 것이니 아름답다.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박 후보의 기자회견을 두고 정치공학적 셈법으로 분주하다. 박 후보에게 딸로서가 아니라 대선후보로서 박정희 시대의 과오를 인정하라고 강제했던 세력들이 그렇다. 박 후보의 기자회견이 갖는 역사성, 진정성에 대한 평가는 뒷전이고 기자회견 이후의 대선지형 변화를 탐지하느라 정신이 없다. 박 후보를 기자회견장에 밀어세운 새누리당 내부세력이나 야당의 대선캠프들은 지지율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회견만으로는 안된다. 반성과 사과의 진정성을 실천으로 보여달라"며 공세의 차원을 상향조정하고 나섰다. 역사공방을 벌이는 여야 정치인들의 역사인식이 이처럼 천박하다.며칠 후면 추석이다. 많은 후손들이 차례상에 선조의 넋을 모실테고 생전의 모습을 기억하며 상념에 빠질 것이다. 우리의 상념 속에서 그들은 어떤 존재일까. 좋았던 추억과 아팠던 기억이 수없이 교차하지만 그저 그리운 내 아버지나 어머니로 기억될 것이 틀림없다. 애정도 바래고 증오도 퇴색해 그냥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 말이다.역사를 소환하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무수한 개인, 다양한 세력, 대립하는 이념, 충돌하는 가치들이 그 시기를 관통했던 시대정신 속에서 종횡으로 소용돌이치다 퇴적된 것이 역사이다. 어느 한 개인, 한 세력, 하나의 이념, 하나의 가치만을 지목해 이것이 정의였고 나머지는 모두 틀렸다고 단언할 수 있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역사를 자의적으로 함부로 소환하면 안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역사를 소환하려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현재의 역사공동체에게 소환의 목적과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안목과 양식이 있어야 한다.박 후보가 정치입문 초기에 아버지의 공과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표현하고 시대의 피해자와 동석했다면 지금 겪고 있는 고단함을 진작 면했을 것이다. 딸로서 아버지의 입장에서만 역사를 소환하고 해석한 결과로 인한 고초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반대로 박 후보에게 5·16을 연좌시키고 유신의 굴레를 씌우려는 야권은 박정희 시대의 어둠만을 소환하고 있지만 이 또한 반쪽짜리 역사인식이기는 마찬가지다. 그 결과 박정희 시대의 밝음을 기억하는 세력에 짓눌려 대선 때마다 단일화에 목매는 처지가 된 지 오래됐다.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모두 역사의 물레를 앞에 두고 새로운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뽑아내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지 말고 역사인식의 편향을 경계해야 하거니와 함부로 역사를 소환하려는 무모한 시도는 더더욱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 스스로 역사가 될 것이므로.

2012-09-26 윤인수

응답하라! 박근혜

요즈음 한 케이블방송에서 방영되고 있는 '응답하라 1997'이 꽤 인기다. 아니 폭발적이다. 특히 이말삼초(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 세대들에겐 신드롬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다. 평균 시청률은 3.7%, 최고 시청률은 5.52%다. 케이블방송에서 이 정도의 시청률이면 공중파에선 40% 이상이다. 대박이 터진 것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는 드라마에 대한 뒷담화로 홍수를 이룬다. 한때 '세시봉'의 재조명으로 50대들이 열광했던 것에 버금간단다. 드라마의 완성도도 최상이다. 스토리나 배우들의 연기도 압권이다.20대 후반·30대 초반세대 사이 신드롬캐릭터·배경 보면 단순한 성장드라마 아냐박근혜후보 역사문제 해답 담겨있어드라마의 배경은 부산. 이것도 의외다. 대부분 드라마가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드라마는 발상의 전환으로 부산을 택했다. 진득한 부산사투리. 시간은 1997년 부산의 한 고등학교와 2012년 그 고등학생들의 동창회 모임이 교차로 보여진다. 1997년. 생각하기도 싫은 IMF가 터진 해다. 한달 뒤 대통령 선거도 있었다. 선거 덕분에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감정도 최고조에 달한 해이기도 하다. 대통령 선거가 뭔지 어른들이 지역감정으로 핏대를 세울 때 고등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나? 이 드라마는 전부는 아니지만 비중있게 그것을 조명한다. 아이돌 그룹 H.O.T와 젝스키스의 광팬의 처절한 싸움이 있었다. 그들의 싸움은 김대중 지지자와 이회창 지지자들의 싸움 이상이다. 드라마는 그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일종의 청소년 성장드라마다. 그런데 뜯어보면 청소년 드라마도 아니다. H.O.T의 광팬인 주인공 시연의 아버지는 전라도, 어머니는 부산 출신이다. 지역 감정이 드센 시절임을 상상해 보라. 반에서 꼴등인 시연을 좋아하지만 고백을 못하는 윤제는 전교 1등 모범생이다. 그런데 윤제의 형 태웅도 시원을 좋아한다. 그런데 문제는 태웅의 캐릭터다. 학력고사 전국 수석을 했지만 사범대를 진학하고 교사생활을 하다 그걸 접고 벤처회사를 차린다. 성공한 태웅은 벤처 주식을 모두 사회에 기부하고 대학 교수가 된다. 시대는 2012년으로 바뀌고 대학교수 태웅은 대통령 선거에 나선다. 낯익은 구조다. 혹시 안철수? 그럴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시청자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단순한 '성장통'을 다룬 청춘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 박근혜 후보의 아킬레스건인 20대, 30대가 열광하고 있다. 제작사도 당황할 정도다. 드라마의 인기가 높자 '응답했다 2012'를 스페셜로 제작해 내놓았다. 1997과 2012. 무슨 함수관계가 있어 보인다. 모두 선거가 치러지는 해다. '인혁당사건'과 관련 역사의식 비판을 받고있는 박근혜 후보는 20·30대 지지율 답보에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응답하라 1997'에 그 해답이 담겨 있다. 권력도 전교 수석도 서울대 법대도 이 드라마에선 중요하지 않다. 학벌에 대한 갈등은 전혀 없다. 재산 역시 중요하지 않다. 목숨을 걸어도 좋을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만 있을 뿐이다. 드라마는 15년동안 가슴속에 묻어 둔 추억을 삐삐·pc통신·슬램덩크·다마고찌같은 온갖 코드로 그냥 건드리고 있을 뿐인데 20·30대가 열광한다. 박근혜 후보가 이 드라마를 반드시 봐야하는 이유다.박근혜 후보는 아직도 40년 전에 일어난 일들에 연연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답답하고 고집스러울 정도로 역사의식에 스스로 얽매여있는 것이다. 수많은 보수들이 '응답해라! 박근혜'라고 비명처럼 외쳐도 역사문제에 관한 한 묵묵부답이다. 보수들이 멘붕상태까지 이른 것도 박근혜의 이런 고집이 대통령의 자리에 가서도 계속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이다. 50대들은 암울했던 70·80년대 일어난 수많은 정치적 사건들을 꺼내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별로 좋은 기억도 없고 온통 암흑빛인 그시절을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지도 모른다. 50대의 과거와 20·30대의 과거가 다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데 정작 역사의 한 가운데 서있어 오히려 먼저 나서서 털어버려야 할 박 후보가 더 집착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 '응답했다! 박근혜'라는 답이 와야 그들은 편하게 투표장에 갈 것이다.

2012-09-19 이영재

건강보험 두 살림 접어야

직장인들의 국민건강 보험료 부담이 또다시 늘어난다. 지난달 말 정부는 임금 외에 사업이나 이자, 배당, 연금 등으로 인한 종합소득이 7천200만원이 넘는 직장가입자 3만4천여명에게 상당액의 건보료를 추가 징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원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건보재정 적자에 있다. 근래 들어 해마다 적자 규모가 확대된 결과 누적적자액이 무려 1조3천여억원에 이른 때문이다. 앞으로는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은 누적적자액 규모가 2013년 1조5천억원, 2014년 3조1천억원, 2015년 4조7천억원 등으로 추정한 바 있다. 병원 문턱이 낮아진데다 빠른 속도의 고령화가 결정적이다. 진료비 허위부당청구 및 리베이트관행이 여전한 것은 또 다른 이유이다. 임금근로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장기간의 내수부진으로 실질임금 상승률은 답보상태인 반면에 건보료 부담액은 갈수록 늘기만 했으니 말이다. 이번에 보험료를 더 내야하는 샐러리맨들은 부아가 치밀어 오를 지경이다. 근검절약해서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이자 혹은 임대수입 등 가외소득을 올린 것을 정부가 마치 범죄행위나 한 것처럼 치부하는 인상이니 말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직장가입자들이 전체 건보료 수입의 80%를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총가입자 중 지역가입자수가 30%를 상회함에도 20%밖에 부담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소득이 전혀 파악되지 않는 지역가입자 비중이 무려 56%에 달하는 탓이다. 그중에는 상당한 규모의 자산을 소유한 얌체 부자들도 수두룩하다. 면세점(免稅點) 이하의 쥐꼬리 근로소득에까지 어김없이 건보료를 징수하면서 4천만원 미만의 금융소득에는 예외를 두는데 대해서도 유감이다. 의료급여 보장비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1인당 건강보험료는 무려 53%나 올랐음에도 보장성은 60%로 답보상태인 것이다. 어쩌다 한번 병원 신세라도 질 양이면 온통 비급여 투성이여서 민간 보험회사들의 배만 불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미국의 전철을 답습하는 것 같아 우려가 크다.앞으로가 더 문제이다.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은 지난달 9일 직장·지역 가입자를 불문하고 실현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개편안을 내놓은 것이다. 골자는 직장가입자의 부담을 현재 수준보다 13%정도 늘리는 대신 지역가입자 부담은 절반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개편안에 논란의 소지가 있어 다소간의 손질은 불가피하나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건보료를 물리겠다'는 방침이 확고해 유리지갑들의 건보재정 기여율은 현재의 80% 수준보다 더욱 높아질 것은 불문가지이다. 아무리 국민 개(皆)보험제라 해도 보험은 수익자부담이 원칙이어서 보험료를 많이 낼수록 더 많은 혜택을 받아야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소득이 높을수록 국민건강 보험료 혜택이 줄어든다는 지난 4월 보건복지부의 분석 내용이 상징적이다. '봉' 신세인 직장가입자들은 소태 씹는 심정일 것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꿴 것이 화근이었다. 2000년 김대중 정부가 직장과 지역건보를 무리하게 통합했던 것이다. 그러나 강산이 변하도록 정부는 모순 제거는커녕 정부가 마땅히 책임져야할 의료취약계층 보호비용을 봉급쟁이들에 억지로 떠맡긴 꼴이 되고 말았다. 젊을 때 조금 더 부담하다가 은퇴한 후에 혜택을 누리게 해준다는 정부의 설득명분에 수긍할 직장가입자들이 얼마나 될까. 국민연금처럼 건강보험의 미래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는 터이니 말이다. 또한 무리할 정도의 건보료 징수에 지역가입자들의 혈압도 점차 높아지는 중이다. 연간 6만 건에 이르는 보험민원 발생이 시사하는 바 크다. 한 지붕 두 가족의 불편한 동거 강요는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의 국민의료보험체계의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구조조정 무풍지대인 건보공단의 방만경영도 목불인견이다. 더 이상의 낭패가 없도록 직장과 지역 분리를 통한 투 트랙의 건보 운영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2012-09-11 이한구

장수기업 비결시대에 따라 변한다

살아남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한 기업이 장수(長壽)한다면 무언가 비결이 있다는 얘기다. 본래 기업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기업의 평균수명은 12년6개월에 불과하다. 1970년대의 포춘 500대 기업 중 3분의 1이 13년 뒤에 사라지는 정도였다. 이렇게 기업 생존 판도가 급변하다보니 기업에게 장수비결은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과연 우리나라 장수기업의 비결은 무엇일까?우리나라에도 100년 이상의 장수기업들이 있다. 국내 최초기업인 116년 역사의 '두산'(1896년 창업)을 비롯해서 '동화제약'(1897년 창업, 115년)과 '서울신문'(1904년 창업, 108년)들이 바로 그들이다. 또 100년에 약간 못 미치는 장수기업에는 '성창기업'(1916년 창업), '삼양사'(1924년 창업), '유한양행'(1926년 창업) 등이 있다. '성창기업'은 1916년 설립 이후 96년간 목재업에 집중했으며, '삼양사'는 88년동안 제당사업에 집중한 기업이다. '유한양행' 역시 86년동안 제약업이라는 한우물을 파며 장수해온 기업이다. 1945년에 창업한 해방둥이 기업들('한진', '태평양', '중외제약' 등)은 현재 67년 역사를 통과하고 있다.이들 장수기업은 공통 비결이 있다. 첫째 한 가지 사업에 집중하는 '한우물경영', 둘째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짠돌이 경영', 셋째 돌다리도 수도 없이 두드린 뒤 건넌다는 '보수(保守)경영' 등이다. 이 공통 비결은 '위험을 가급적 최소화하면서 억척같이 수익을 좇고 보수적으로 원가를 절감했다'로 집약된다.그런데 이 장수비결들은 영원한 비결이 아니다. 한국경제에서 현재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업종인 반도체, 자동차,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업체들에게 한우물을 파고, 비용을 줄이며, 보수경영을 하라고 요청할 수 없다. 그들의 싸움은 위험에 도전하며 R&D에 투자하고 혁신을 창조하는 것에서 결정된다. 그러면 과거 장수비결과 현재의 우량기업의 비결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시장에 있다. 과거 장수기업은 내수시장을 상대하면 됐지만, 현재 우량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즉, 과거 우리 장수기업들이 주로 상대했던 내수시장에서는 보수경영이 적합했다. 우리 내수시장은 시장규모도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인 점령이 가능했고, 또 다른 국가의 글로벌 업체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보호장치도 있었다. 그런데 이 시장 범위가 바뀌면서 장수전략도 변하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산업에서 내수시장의 범주를 넘어선 글로벌 시장경쟁에 편입되었으며, 이에 따라 글로벌 판세를 주도하는 실력과 경쟁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해외시장에서 뿐만 아니라 내수시장에서의 전쟁에서도 혁신 없는 보수경영은 오히려 위험하다. 또한 비용만을 줄이려다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놓치는 것은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와 같다. 과거 많은 장수기업들을 낳은 제약업종에서 이 고민이 특히 심각하다. 제약업체들 중에는 장수기업뿐만 아니라 30년 이상 흑자를 기록한 기업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그러나 FTA 및 바이오산업의 성숙 등과 같은 새로운 여건에서는 원가절감과 내수시장 영업력으로는 해외 거대 업체들을 상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렇게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는 보수적 위험회피는 오히려 독(毒)이 된다. 현재 한국의 대표산업인 반도체,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자동차, 조선 산업 등 선도업체들의 성장경로를 보면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지속적으로 혁신하는 것만이 장수비결임을 확인할 수 있다.이렇게 장수기업이 되는 진로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과거 장수기업의 비결만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물론 자신이 대처할 시장이 여전히 내수시장이라면 과거 장수비결을 그대로 따르면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이 그렇듯이, 글로벌 시장에 나가거나 혹은 우리 시장에서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해야 한다면, 혁신과 R&D투자만이 장수비결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장수기업 비결을 시대와 조건을 뛰어넘는 영원한 바이블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류의 시작이다.

2012-09-04 손동원

도시와 기념물, 그리고 이야기

에펠탑의 경제적 가치가 무려 616조원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이탈리아 몬자-브리안자 상공회의소(CCMB)가 최근 유럽의 주요 기념물·유적들을 이미지, 브랜드 가치, 경관가치, 고용 창출 효과, 관광객 수 등 10가지 지표를 토대로 평가한 것이다. 이 연구에 의하면 프랑스 파리의 랜드 마크인 에펠탑의 경제 가치가 무려 3천430억 파운드(약 616조원)에 이른다니 놀랍고 부럽다. 다른 기념물·유적의 경제적 가치평가도 제시되었는데, 로마의 콜로세움은 약 129조원,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파밀리아 성당은 약 127조원, 이탈리아 밀라노의 도오모 성당은 약 11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89년 세워진 에펠탑은 매년 관광객 800만명이 찾고 있는 유럽 최고의 관광명소이다. 616조원은 프랑스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에 해당한다고 하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더구나 에펠탑은 유럽 도시의 기념물 유적 가운데 최상위 7위 안에 들어간 다른 기념물이나 명소의 경제가치를 합한 것보다도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평가 결과는 도시의 랜드마크나 창의적 기념물이 갖는 중요성을 재확인시켜준 것이다.에펠탑이나 콜로세움과 같은 역사적 명소는 아니지만 방문객을 불러들이는 매력적 상징물을 가진 도시는 의외로 많다. 인어공주 이야기를 조형물로 만들어 유명해진 코펜하겐이나, 물고기의 몸에 사자의 얼굴을 한 머라이언(Merlion)으로 유명한 싱가포르도 그 사례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항구에는 항구를 상징하는 작은 인어공주 동상이 있다. 가스텔레트 요새가 있는 해안에 위치한 이 인어공주 상은 조각가 에드바르트 에릭슨이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참고로 하여 자신의 아내를 모델로 하여 만든 조각이다. 80㎝에 불과한 작은 동상이지만 코펜하겐을 찾는 관광객이 반드시 방문하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그런데 코펜하겐 항구의 '외로운' 인어공주가 최근 꿈에 그리던 왕자를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코펜하겐 북부의 항구에 인어공주의 짝이 됨직한 멋진 왕자 상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 왕자 상은 인어공주상과는 50㎞나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인어공주와 비슷한 자세로 앉아 인어공주를 바라보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코펜하겐 사람들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한다.싱가포르의 머라이언상 이야기도 재미있다. 머라이언상의 머리는 사자이고 몸은 물고기의 모습을 한 석상(石像)으로 싱가포르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 상징물은 옛날 수마트라 왕자가 새로운 영토를 찾아 이곳에 당도했을 때 흰 갈기를 가진 사자가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지역을 '사자의 도읍'이라는 뜻의 '싱가푸라'라고 이름 지었다는 지명유래에 착안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낮에는 분수를 내뿜고, 밤이면 조명을 받으며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머라이언 상의 늠름한 모습은 많은 관광객을 모으고 싱가포르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기게 하는 명물이 되었다. 머라이언 공원의 연간 방문객은 800만명에 달하는데 그 핵심적 매력물은 싱가포르의 신비한 전설을 들려주는 머라이언상이라 한다. 해양설화와 도시 공간을 결합시켜 매력적인 장소를 창조해낸 대표적 사례이다. 싱가포르 당국은 머라이언 공원 외에 또 다른 머라이언상을 세웠는데, 센토사 섬에 위치한 높이 37m의 거대한 머라이언 타워가 그것이다. 밤이면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이 머라이언상은 섬 전체를 조망하는 전망탑으로도 쓰인다. 철탑 하나로 616조원의 가치를 창조한 파리, 인어공주 이야기를 도시에 재현하고 재현된 조각 작품을 소재로 다시 새로운 로맨스를 창조한 코펜하겐, 단순한 지명유래담에 상상력을 보태 항구 도시의 매력과 가치를 높인 싱가포르의 사례에 견주어 보면,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기능주의의 과잉으로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시멘트 숲으로 남아 있는 도시에 이야기와 감동을 이입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소'로 바꾸는 일을 실천할 때가 되었다.

2012-08-28 김창수

대한민국도 모병제(募兵制)?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선출되면서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이 다가왔다. 정치권과 국민 모두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권획득을 위한 여야(與野)의 정쟁은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양상이다. 정권획득은 전적으로 표와의 싸움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표를 먹고 산다고 하지 않는가. 표심(票心)을 사기 위한 공약들도 난무한다. 재탕, 삼탕도 많다. 그 중의 하나가 모병제다.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후보인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의 공약이다. '100만 가구 신혼주택 무상융자'와 함께 들고 나왔다.20대들의 정치 참여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투표권을 가진 만 19세를 포함한 20대 유권자의 수가 약 760만명에 이른다. 전체 유권자 수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20~30대에게 관심을 끄는 신혼주택 무상융자, 사병복무기간 단축 등과 함께 젊은이들의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대권 후보들도 이들을 겨냥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정치인들은 20대 유권자들이 강력한 정치적인 힘이라는 것을 각종 선거를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특히 모병제는 전방의 총기사건이 발생했을 때나, 또 최근 치러진 여러 선거를 통해 심심찮게 등장했다. 김 후보는 '군대가 젊은이의 꿈을 빼앗을 수 없다.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하려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꿈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군대 안에 월 200만 원 정도를 받는 양질의 일자리 20만 개를 만든다는 것이다. 또 징병제 폐지로 감축된 청년들이 경제활동에 종사함으로써 약 35조원의 GDP 상승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했다. 김 후보의 말대로라면 군대는 젊은이들의 꿈을 빼앗는 곳이 된다. 병장으로 제대한 김 후보나 '군대에서 썩는다'는 발언을 한 상병 출신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군대에 대한 생각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신성한 병역의 의무가 국민의 4대 의무에 들어 있다. 젊은 시절 몸바쳐 국가의 존립요소인 영토를 수호했다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 더 많다.또한 세계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분단국가이다. 모든 국민이 병역의 의무를 지니는 국민개병제(皆兵制)는 그동안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온 힘의 원천이다. 외부와 차단된 병영생활이 젊은이들에게는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기는 하다. 사실이 그렇다. 그러나 애국심과 극기심의 배양, 인간관계의 확장, 자존감의 회복 등 군생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소중한 경험들이 있다. 인생의 예행연습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어떤 꿈을 빼앗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하기는 '병역면제 트리오' 정부라니,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병역 면제자 투성이의 정부'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사회지도층 자녀의 병역면제 비리도 한동안 매스컴을 장식했다. 본인들이야 정당하게 면제처분을 받았다지만 곧이 듣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당당하게 군복무를 마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컸다. 런던올림픽 축구 일본과의 3, 4위전을 병역혜택이 걸린 경기라고 표현한 국민들이 많았다. 경기 전 브라질의 기자가 '일본과의 경기에서 지면 한국 선수들은 군대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통쾌하게 동메달을 땄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의 감정일까? 올림픽, 아시아경기대회 메달리스트들에게 국위선양을 이유로 병역혜택을 주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연금 포상금 등 보상을 주고 있지 않은가.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과의 형평성이 고려돼야 한다. 모병제. 아직은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다. 병력을 줄여 장비를 현대화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자리라 생각하고 지원하는 자가 얼마나 될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 후보들이 공약으로 선뜻 내세울 게 아니다. 찬반의 논란이 첨예하게 대립하겠지만 국민적인 공감대와 주변 여건이 성숙돼야 한다. 공론화 과정과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때가 올 것이다. 100세를 사는 시대에 20개월이라는 기간 나라를 위해 젊음을 투자하는 것은 평생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012-08-21 이준구

광복 67년 정치권만 제자리

전국을 가마솥 처럼 달구던 폭염이 한풀 꺾였다. 가장 뜨거웠던 여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그보다 뜨거운 런던 승전보 덕분이었다. 사격 부터 시작해 축구로 대미를 장식하기까지 대한민국 선수단이 펼쳐낸 런던 드라마에 푹 빠져 국민 모두 한국인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 시간이었다. 이제 런던 올림픽은 끝났다. 덩달아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제법이고, 열기가 높았던 만큼 다시 돌아온 대한민국의 현실은 스산하다.오늘은 광복 67주년이자 건국 64주년을 맞는 날이다. 일제로부터 국권을 회복하고 대한민국이 건국된 바로 그 날이다. 그 세월동안 대한민국은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우리가 이룬 한강의 기적은 독일이 성취한 라인강의 기적보다 더욱 선명하다. 정말 맨주먹으로 이룬 기적이라서다.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들 중 오직 대한민국 만이 기적의 국가로 칭송받고 있다. 그 기적의 후예들이 런던 올림픽에서 세계 5위의 기록을 세웠다. 올림픽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변했다. 승패에 집착했던 세대가 뒷전에 물러앉고 경기 자체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전면에 나섰다. 그들은 박태환이 은메달을 따자 "여름엔 시원한 은메달이 낫다"고 위로했다. 박태환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신의 은메달을 자랑스럽게 깨물었다.일제의 36년 수탈로 헐벗고 동란으로 폐허가 된 한반도가 이제는 적어도 남녘에서 만큼은 세계와 어깨를 겨루는 무역대국으로 면모를 일신했다. 독재정권의 산업화 과정과 저항세력의 민주화 과정을 압축적으로 성공시킨 결과이다. 그리고 이제 스포츠를 스포츠로 즐길 줄 아는 신세대들이 나라의 주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구세대는 신세대의 국가관이나 애국심 결핍을 비난할 지 모르지만 자유분방한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대한민국 광복의 증거이다. 과거에서 자유롭고 얄미울 정도로 현실적이면서도 외세의 부당한 시비에 분노하는 그들이 대한민국이 기르려했던 한국인 아닌가.세대는 바뀌고 한국인은 진화하는데 퇴행적, 퇴폐적 구태를 벗지 못하는 정치가 세대의 순환을 방해하고 진화하는 한국인의 유전자를 오염시키고 있다. 정치권은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으로 나뉘어 세대를 초월해 대치한지 오래됐다. 이미 벗어났어야 할 낡은 프레임에 갇혀 불신과 대립, 적대와 증오의 게임을 벌이고 있으니 구체제의 폐해가 극심하다.이미 정권을 주고 받은 세력들이고 국가운영이 얼마나 힘든지 경험한 세력들이다. 서로 이해하고 타협할 수 있는 국정경험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두 세력은 적대감에서만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 그들은 상대를 실패한 과거에 연좌시키는 경쟁에만 몰두한다. 야권은 박근혜에게 쿠데타와 유신을 연좌시키고, 여권은 야권 후보들에게 그들 보스의 실패를 연좌시키는 식이다. 그들은 상대에게서 미래를 보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들도 미래를 상상할 필요가 없다. 이념과 지역을 중심으로 한 퇴행적 지지기반이 그들에게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을 앗아간 것이다.신세대 입장에서는 그들이 적대하게 된 역사적 연원에 어둡다. 구세대들이 편을 갈라 대립하는 이유를 잘 모른다. 신세대가 안철수에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철수는 그들의 언어로, 그들이 익숙한 방식으로 그들의 주제를 이야기하고 그들의 고민을 위로한다. 안철수는 정치적인 밑천 없이 박근혜와 1등을 다투고 민주통합당을 불임으로 만들고 있다.해방되고 건국한 지 반세기가 훨씬 지났음에도 정치권의 시계는 해방전후의 혼란에서 멈춰있다. 인물 중심으로 권력이 오가고 정상배들이 유력정치인에 기대 권력을 희롱하는 양상도 비슷하고, 국리민복보다 이념과 전선에 매몰돼 사리분별 없이 막말과 폭력을 불사하는 행태가 그 때와 무엇이 다른가. 국격은 올라가고 국민들도 달라졌는데 정치만 광복 67년, 건국 64년 동안 제자리이다. 정치가 퇴행과 구태에서 벗어나는 날 대한민국의 광복과 건국은 완성된다.

2012-08-14 윤인수

흉년에 재산 불리더니…

금년 정치권의 최대화두는 경제민주화이다. 그러나 의미가 모호해 뜻풀이를 둘러싼 해프닝도 빈발하고 있다.일전 새누리당의 이한구 원내대표가 "기회의 공정, 공정한 부담, 공정한 거래, 불공정경쟁방지, 불균형 해소를 의미한다"고 했다가 김종인 선대위원장으로부터 "시장경제발전과정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부족한 자"로 면박을 당한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도 "경제민주화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자칫 경제적 평등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시프 스티글리츠까지 헷갈려할 정도이다. 경제민주주의의 요체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의 기회의 평등이나 문제가 많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으며 가난의 대물림 탓에 자칫 빈곤층의 생존권까지 위협을 받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정치가 경제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현대국가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왜곡된 분배구조를 바로잡아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민주주의를 사회민주주의라고도 한다. 제18대 대통령선거운동 양상은 종래와는 사뭇 다르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까지 이구동성으로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온 것이다. 재벌을 공격대상으로 삼은 것도 똑같다. 재벌 때리기의 강도(强度) 내지는 '짝퉁' 시비만 다를 뿐이다. 서민들 및 중산층의 생활이 어려워진 반면에 재벌을 포함한 대기업들이 승승장구한 것이 직접적인 배경이다. OECD 회원국들의 빈부격차는 상위 10% 부자의 소득이 하위 10%의 소득보다 9배이다. 그러나 한국은 10배로 평균보다 더 나빠진 것이다. 지난 4년간 15대 재벌의 계열사수는 427개에서 778개로 64%나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무려 73%가량 늘었다. 재벌들이 주로 동네슈퍼나 빵집, 통닭집, 꽃집 등 골목시장을 접수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고용률은 제자리이며 실업률은 오히려 증가했다. 청년실업률 점증은 설상가상이다. 민생경제가 날로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명박정부 4년 동안에 더 심해졌다는 주장도 한몫 거들었다. 오죽했으면 새누리당의 김태호 경선후보가 '탱크로 골목시장을 밀어붙였다'고 격하게 표현했겠는가. 경제기사도정신 운운은 딴 나라의 얘기일 뿐이다. 유력주자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마저 이례적으로 재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및 부당내부거래를 근절하며 신규 상호출자를 불허하고 무분별한 중소기업 진출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중소도시에의 대형유통점 입점 불허와 불공정한 하도급관행도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신설하고 큰 기업일수록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도 했다. 임태희 후보는 한술 더 뜬다.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를 '경제살인죄'로 간주해서 엄히 처벌하고 신규는 물론 과거의 순환출자까지 해소하겠다고 언급한 것이다. 연기금 주주권 행사를 통한 재벌견제강화도 곁들였다. 통합진보당은 아예 재벌해체를 들고 나왔다. 민주통합당은 이참에 재벌을 바로잡겠다며 각오가 대단하다. 출자총액제 부활과 순환출자 전면해소, 고질적인 일감몰아주기와 내부거래를 엄단하기로 했다. 금산분리 관철 및 재벌세를 신설하고 소득상위 1%에 과세를 강화하기로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한층 무겁게 하고 재벌 소속사에 대한 연기금의 지분비중을 늘려 재벌을 정부가 직접 컨트롤하겠다는 것이다. 세금 없는 재벌의 편법승계 악습도 뿌리를 뽑을 예정이다. 다크호스 안철수 교수가 변수이나 그의 재벌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중소기업 영역침범, 부당내부거래, 지배구조개선에 대한 압박은 불가피하다. 야당이 집권하면 최악이어서 재계는 벌써부터 몸을 사리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도처에 암초가 있어 말잔치로 끝날 개연성이 농후하다. 사방 백리 안에 굶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며 재산은 만석 이상 늘리지 않도록 하고 흉년에는 특히 재산을 불리지 말라는 경주 최부잣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돋보인다.

2012-08-08 이한구

그래도, 대한민국 시계는 돌아간다

2012년 7월22일 AM 11.30: 아름양이 실종 6일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범인은 이웃 마을에 살고 있는 김점덕으로 그가 성폭행으로 4년 징역형까지 살고 나왔다는 것을 그 누구도 동네사람에게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성폭행 전과자의 허술한 관리 때문이다. 아름양 역시 범인을 '이웃집 아저씨'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비보를 접한 국민들은 분노와 슬픔으로 심장을 짓누르는 통증을 느낀 하루였다.2012년 7월23일 PM 11.00: 안철수 원장이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했다. 이날 출연이 대권으로 가는 길이나 정치적 쇼라는 비난이 따르지 않겠느냐는 사회자 질문에 "진정성이 있는지 진심인지의 판단은 국민이 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장장 8개월동안 출마 여부로 국민의 인내심을 충분히 테스트한 그의 행보에 진정성이 있는지 국민들은 알지 못한다. 아무튼 그 프로 덕분에 안 원장의 지지율은 급상승했다.2012년 7월24일 PM 2.00: 이명박 대통령이 예정에 없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취임 이후 벌써 6번째 대국민 사과다. 대통령은 "사이후이(死而後已ㆍ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하겠다는 뜻)의 각오로 더욱 성심을 다해 일하겠다"며 쓰기는 쉽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사자성어로 국민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대통령의 사과가 마음에 절실하게 와닿지 않았다. 그만큼 마음의 상처가 컸기 때문이다. 다음날 청와대는 은진수 전 감사위원의 가석방 논란에 휩싸였다.같은 날 같은 시간: 새누리당의 대선 경선 첫 TV토론회가 열렸다. 초반 기선 제압을 위한 주자들간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김문수는 박근혜 전 위원장의 올케 문제를 언급, '만사올통'이라며 신 사자성어를 만들어냈다. 박 전 위원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날 저녁 방송뉴스에는 새누리당 경선보다 오히려 대통령 사과문 발표가 큰 비중으로 다뤄졌다. 새누리당은 같은 날 같은 시간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가 경선열기에 고춧가루를 뿌렸다고 대노했다.2012년 7월25일 AM 11.00: 중국에서 국가안전위해 혐의로 체포됐다가 114일 만에 풀려난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씨가 중국내 구치소에 구금됐을 당시 전기고문 등 수많은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외교통상부는 이와 관련 중국 측에 사실 관계 확인을 요청하면서 엄중히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국민들은 중국이 미국이나 러시아 국민에게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이렇게 고문할지 궁금해하며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에 분통을 터뜨렸다.2012년 7월26일 PM 8.43: 통합진보당 이석기ㆍ김재연 의원에 대한 제명안이 부결됐다. 두 사람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회의장을 나섰다. 이 의원은 "진실이 승리하고 진보가 승리했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경악했다. 주사파의 승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통진당 수백여명의 당원이 탈당의사를 표한 것으로 집계되면서 당의 존립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는 모양새다. 이제 통합진보당이 찢어질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국민은 없다. 정말 황당하고 기괴한 일이다.2012년 7월27일 AM 10.00: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검찰의 마지막 소환통보에 응하지 않았다. 민주당 대변인은 방송에 출연해 "검찰 수사의 과정·의도가 뻔하기 때문에 민주당이 장단을 맞춰 줄 필요가 없다"며 "8월에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는데 새누리당은 회기 일정에 대한 협의는 안하고 '방탄 국회'로 노래를 하고 있다"며 궤변을 늘어놓았다.그러나 버티던 박대표는 마침내 검찰에 자진출두했다. 역시 정치 9단의 노련한 정치수였지만 때는 늦었다. 민주당의원들은 의원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이미 마음의 상처를 받았으니까. 역시 정치란 때가 중요하다.2012년 7월30일 AM 2.19: 기특한 우리의 여궁사 3명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제 2주일 동안 치킨집은 호황을 누리고 국민들은 정치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올림픽 열기에 깊이 빠져들 것이다. 그렇게 지지고 볶아도 대한민국 시계는 잘도 돌아간다. 다만 오심에 물든 런던올림픽 펜싱경기장의 시계만 멈춰섰을 뿐.

2012-07-31 이영재

벤처붐, 거품만은 아니었다

지난 10여년전 '벤처붐'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벤처붐'이라고 말하는 시기는 1999년과 2000년 상반기까지 18개월 정도의 기간을 말한다. 이 시기는 인터넷 버블과 닷컴 열풍이 중첩되면서 벤처업계로 엄청난 투자금액이 몰리고 코스닥시장에서 벤처기업의 가격이 이상적으로 상승했던 기간이다. 정상적인 기대보다는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가 추락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저 거품이라고 생각한다.과연 '벤처붐'은 거품만을 남겼나? 보통 거품이라는 표현은 실질은 없고 허상만 가득했다는 의미이다. 당시 인터넷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있었고, 또 그것을 기반으로 닷컴 기업들이 우후죽순 탄생했다가 무너지고 한동안 '옥석가리기'가 진행되었던 현실을 돌아보면 거품이라는 견해도 어느 정도 맞는 듯싶다. 그러나 이제서 드러나는 것은 벤처붐 시기에 놀라운 창조적 기술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세계 최초의 창조적 기술은 아무 때나 낳을 수 없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벤처붐 이후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페이스북'은 현재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최강자이다. 그런데 그 SNS의 최초 기술을 개발한 사업자는 한국의 '싸이월드'였다. '싸이월드'는 벤처붐이 한창이던 1999년에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국내시장에서 성공하다가 2005년 이후 해외진출에서 실패했다. 지금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페이스북'보다 앞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개발해서 시작했다는 사실에 새삼 자부심을 느끼지만, 후발주자에게 시장지배력을 내준 아쉬움과 교훈이 남는다. 인터넷 전화서비스에서는 '스카이프(Skype)'라는 기업이 현재 최강자이다. 2003년 8월 룩셈부르크에서 시작했으며 현재 이베이가 인수해서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인터넷 전화의 최초 기술도 우리가 챔피언이었다. 새롬기술은 '다이얼패드'라는 서비스를 벤처붐 시절인 2000년 6월에 시작했다. 서비스 시작 8개월만에 1천만 가입자를 돌파했는데, 이후 수익성 개발에 실패하여 '야후'에 매각되었다가, 이것이 다시 9천500만 달러에 '구글'에 매각되었다. 인터넷 전화에서 글로벌 시장 지배자의 위치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은 크지만, 우리가 인터넷 전화의 원천기술을 가진 사업자를 보유했었다는 점이 한편 놀랍다.우리의 최초 기술개발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mp3 플레이어 사업이다. 새한정보시스템이 1998년 '엠피맨'을 공개했고, 한때 미국 시장의 22%를 점령한 바 있는 '레인콤(현재 아이리버)'도 선전했었다. 2005년 이후 아이팟, 아이튠즈 등과 같은 애플의 공략에 의해 경쟁력을 잃고 있지만, 우리가 스티브 잡스의 애플에 앞서 mp3 플레이어의 종주국이었다는 사실에 씁쓸한 자부심이 남는다.이들은 모두 세계 최초의 기술이었지만 동일 산업군의 해외 후발기업에 시장지배권을 넘겨준 원천기술의 실패사례이다. 국내의 초기시장에서는 통했었는데, 세계시장으로 넘어가는 사이의 간격을 넘지 못했다. 그 교훈을 깊이 연구해야겠지만, 일단 벤처붐이란 시기에 이런 기술이 우리 손에서 나왔다는 점부터 재인식해야 하겠다. 현재 우리 벤처업계에서 '세계 최초'라는 말은 더 이상 없다. 그만큼 창의성이 현저히 떨어진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벤처붐 시절에 여러 개의 세계 최초 원천기술이 나왔던 것을 우연으로 볼 수는 없다. 우리가 벤처붐 시절을 냉철히 재인식한다면 세계 최초의 창조적 기술을 낳을 수 있는 기반을 이해하게 될 것으로 본다. 벤처붐은 분명 거품만을 낳은 것은 아니다. 벤처붐이 창조를 유인하는 조건을 조성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으로 본다. 적절한 탐욕을 유인하는 약간의 빈틈, 코스닥시장의 상승, '묻지마 투자'까지는 아니지만 투자의 집중 등의 조건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벤처붐을 돌아보면서, 어느 정도의 거품은 한편에서는 실체가 없는 허상을 낳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창조적 기술을 낳는 양날의 칼임을 다시 실감한다.

2012-07-24 손동원

문화의 공공성과 문화기본법

'공공성(公共性)'에 대한 논의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공공성이란 공공재의 독점이나 사유(私有)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다수의 이익 실현이나 공정한 운영을 내포하고 있는 사회 정의이다.그렇다면 공공성 논의의 증대는 환영해야 할 현상일 테지만, 실상은 우리사회가 심각한 공공성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우울한 징표라는 점이다.신자유주의와 글로벌리즘이 세계와 국민국가로 파급되면서 '효율성과 경쟁'이라는 시장논리가 모든 사회와 조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성의 위기는 현 정부들어 정점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철도와 공항과 같은 사회 인프라의 민영화 논란들, 영리병원 도입을 둘러싼 논쟁들은 효율성을 명분으로 한 민영화론과 공공 가치론이 첨예하게 대립한 사례이다.문화예술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화기반시설의 확충과 운영에서 나타나는 공공성의 훼손이다. 역대 정부가 문화의 공공 인프라 확충을 역점적으로 추진해 온 결과 2010년 말 기준 전국의 문화기반 시설은 공공 도서관 759개소, 등록박물관과 미술관은 800개소, 문예회관은 192개로 나타나고 있어 선진국 기준에 근접하고 있다.그런데 시설은 대대적으로 확충되었으나 운용예산과 인력, 프로그램 부족으로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시설이 늘어났다.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내놓은 것이 국공립예술기관 민영화였다. 결과는 공공성을 훼손하고 국민부담만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영화하지 않은 시설들도 마찬가지이다. 효율성과 수익성을 경영지표로 삼고 있어 상업주의가 문화를 질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의 공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답보상태이다. 2006년, 문화평등권에 기초한 '문화헌장'이 제정될 무렵까지는 문화의제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문화헌장'에서는 문화적 권리를 '시민의 평등한 권리'로 정의하였다. 즉 모든 시민은 계층, 지역, 성별, 학벌, 신체조건, 소속집단, 종교, 인종 기타에 의한 어떠한 차별도 받음이 없이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인식은 문화의 속성을 잘 반영한 명쾌한 표현이다. 안타깝게도 헌장에서 천명된 시민의 문화권은 선언에 머물러 있을 뿐 이를 실현할 법률이나 기구는 마련되지 못했다. 문화예술의 공공성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문화에서의 공공성은 시민이 문화의 소비자가 아니라 창조의 주체로 문화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다. 그리고 특정계층이나 계급의 전유물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문화여야 한다. 문화는 공공 복리의 한 분야이기도 하다. 문화가 획일적이거나 전체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역문화나 소수자 문화를 배려하여 다양성이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문화정책의 수립과 집행, 문화기관의 운영은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이 같은 문화 공공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선언으로 남아 있는 '문화헌장'과 같은 요강(要綱)을 제도화하는 일이다. 문화기본법의 제정이 그 관건이 될 것이다. 문화기본법은 문화생활을 인간답게 사는 삶의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헌법의 최소한도의 문화생활을 누릴 권리와 사회적 책임을 법률화하는 것이다. 문화기본법이 제정되면 문화현장의 풍경은 바뀔 것이다. 문화행정이나 문화시설의 '생산성'을 판정하는 기준은 수익률이나 효율성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제공한 문화 프로그램의 질과 다양성이 될 것이다. 문화기관과 시설은 본연의 목적으로 돌아가 시민들의 문화환경 개선과 예술 생태계의 조성에 주력하는 흐름이 형성될 것이다. 아울러 문화기관과 시설들은 그 운영 방식을 문화시민의 능동적 참여를 위해 더욱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또 전문성 강화를 위해 유연하고 개방적인 조직으로 변화시켜 나갈 것도 기대된다.

2012-07-17 김창수

여름방학과 독서

축제로 시끌벅적했던 대학의 낭만을 뒤로 하고, 과제 중간고사 기말시험을 치르다 보니 4개월간의 16주가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다. 신입생들은 뭐 하나 제대로 한 것 없이 후딱 지나가 버린 한 학기가 아쉽다 못해 허전하다는 느낌일 것이다. 경쟁심을 부추기는 상대평가이다 보니 학점을 후하게(?) 주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불행 중 다행인지 모르지만 40명에 가까운 수강 학생 가운데 성적에 이의를 제기한 학생은 두 명에 불과했다. 이메일을 통해 조목조목 답해 주고 또 위로했다. 이에 수긍하는 학생들에게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지난 한 학기 공과대학 학생들의 '글쓰기' 수업을 맡았었다. 강의 첫날 독서를 무척이나 강조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 필수적이라는 말과 함께 그 중에서도 책을 많이 읽자고 했다. 책과 벗하는 것은 비단 글쓰기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의 전당이다. 당연히 책 속에 길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독서를 너무 게을리하고 있다는 것은 각종 통계 수치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 달에 한 권 남짓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를 독서의 해로 선포하고, 국민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책 읽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증대시키는 일은 곧 국민의 삶의 질과 품격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중에는 책을 많이 읽은 경우가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졸이 최종 학력이다. 국회의원 시절 원고 없이 6시간 이상을 연설했다. 세계 권위의 대학에서 받은 명예박사 학위만 20개다. 책을 많이 읽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이다.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하버드대학 졸업장보다 더 소중한 것은 책읽는 습관'이라고 했다. 기업형 카페 '민들레 영토'의 창업자 지승룡씨나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씨 모두 어려움을 겪던 시절 2천~3천권의 독서를 통해 성공한 케이스다.이처럼 독서의 힘은 놀랍다. 시카고대학에서 시행하는 '시카고 플랜'을 보면 더욱 놀랍다. 1892년 존 록펠러가 세운 미국의 사립 종합대학교이지만 그저 그런 삼류대학이었다. 1929년 로버트 허친스 총장이 부임했다.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인 서양, 동양의 철학 고전을 비롯한 각종 고전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학습하게 하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졸업시키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로 하여금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질문, 사물의 근원에 대한 호기심 등 입체적이고, 깊은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 그 결과인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1929년을 기점으로 하여 지금까지 시카고대학교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를 무려 80명 가까이 배출했다.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도 다름 아닌 독서광들이다. 4년간 졸업할 때까지 학생들의 평균 독서량은 800권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이라는 대학들의 평균 독서량은 불과 20여권이란다. 학점관리와 취업에 얽매이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한다.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시카고 플랜에는 못 미치지만 우리 대학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에게 지난해부터 필독서를 지정해 주고 시험을 치르도록 하고 있다. 졸업논문 제출 자격에 필독서 시험통과 여부를 반영할 계획도 갖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시도라고 생각한다.기나긴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학생들에게 책 읽기에 몰입해 볼 것을 권장한다. 독서를 통해 상상력을 길러 보자. 다양화 다변화된 사회에서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을 해 보자. 책 읽기를 생활화하여 교양을 쌓고 상식을 겸비하는 것이 취업준비의 지름길이자 미래를 살찌우는 첩경이다.

2012-07-11 이준구

'박근혜 對 박근혜'

알려지지 않은 비사 한토막. 지난 17대 대통령선거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당내 경선 전후로 시종일관 여론조사 1위를 차지했고 결국 역대 대선 최다표 차이로 경쟁후보들을 누르고 당선됐다. 당시 이 후보의 당선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던 만큼 무수한 비선 조직이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경쟁을 벌였고, 무수한 전략보고서가 쏟아졌다. 그 중에 한 문건의 제목은 '이명박 대 이명박'이었다. 제목 자체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을 뿐 아니라, 내용 또한 용비어천가식 혹은 아전인수격 대선전략이 아니라 이 후보가 고치고 개선해야 할 내용으로 시종일관했다고 한다. 이 후보측은 이 보고서를 비중있게 수용했다는 후문이다.그러나 최시중, 박영준에 이어 만사형통(萬事兄通)의 바로 그 형님 이상득 전의원까지 검찰 문지방을 넘은 마당이고, 청와대의 국정 독주를 감안하면 '이명박 대 이명박'의 경고는 이 대통령 당선과 함께 사장된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이를 거론하는 이유는 당시 대선을 나홀로 질주하던 이명박 캠프에도 그나마 내부를 각성시킬 자경(自警) 시스템이 작동했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에게도 지금 '박근혜 대 박근혜'라는 보고서가 절실해 보인다. 박 의원은 현재 여론의 지지추세로만 보면 새누리당의 확정적 대선후보일 뿐 아니라 여야를 통틀어 대통령 집무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인물이다. 이는 당내 경선은 물론, 대선 본선에서도 경쟁후보들에게 박근혜가 명확한 타도의 대상이라는 의미이다. 반면 박 의원의 입장에서는 상대와의 전선과 접촉면을 최소화하면서 현재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대선 당일까지 끌고가려 할 것이다. 한 체급 낮은 상대와의 전면전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회피가 가능할지이고, 상대의 체급이 현재와 같을 것이냐이다. 가능하지 않고 같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박 의원은 김문수 경기지사, 이재오·정몽준 의원, 임태희 전대통령비서실장 등 군소 후보들의 오픈프라이머리 실시, 선거인단 확대 요구를 외면했다. 룰을 바꿀 수 없다는 그녀의 한마디에 당내 누구도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여론은 박 의원의 정치스타일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김 지사가 토로한 한 마디가 무섭다. 그는 같이 경선을 하겠다는 후보들의 요구에도 전화 한통 없었던 박 의원에게 "모욕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김 지사가 모욕감에 치를 떨었다면 그 자체가 박 의원에게는 비극이다. 상대에게 모욕을 주는 정치는 큰 정치인의 덕목이 아니다.당내 경선에서 박의원이 보여준 정치 리더십은 통합, 포용, 존중, 공존이 아니라 갈등, 배척, 무시, 독단으로 여론에 투영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리더십이 박 의원의 원칙론으로 포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측근들이 앞장서서 박 의원의 원칙론을 변호하고 있다. 하지만 높은 성에서 자기만의 원칙을 고수하는 리더십이 21세기형 통치스타일에 부합하는지 새롭게 주목하는 여론의 동향을 측근들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박 의원에게 이를 정면으로 보고하고 시정하는 사람이 없을 뿐이다.여론 지지율만 보면 민주통합당 대권후보들은 지금 저체중 후보들이다. 장외의 안철수도 국민을 지루하게 한 벌을 받는지 지지율이 추락중이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어 낼 야권후보 단일화 스토리는 결코 작지 않다. 누가 됐든 야당 단일후보는 박 의원이 모욕하고 무시한 당내 군소 후보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상대일 것이다.박 의원이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라서 해보는 말이다. 지금과 같은 정치 스타일이 그대로 통치 스타일로 전환된다면 국민이 외로울 것 같아서 말이다. 총선 후 몇달이 지나도록 박 의원의 육성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지금 박 의원에게는 '박근혜 대 박근혜'라는 보고서가 필요하다. 누가 박 의원의 목에 자경의 방울을 달아줄 것인가. 아니 김문수 이재오 정몽준이 이미 달아주었다고 봐야 하나?

2012-07-03 윤인수

당신의 멘탈은 건강한가

멘붕이라는 신조어가 대유행이다. '멘탈(정신)과 붕괴'의 합성어로 '멘탈이 붕괴됐다'라는 뜻이다. 정신건강이 훼손됐다는 의미다. 멘붕은 인터넷용어로 시작했다. 게임아이템이 갑자기 사라졌다든지, 키보드배틀에서 졌을때 받는 충격을 멘붕이라고 표현한 것이 대중화된 것이다. 이제 실생활에서 당혹스럽거나 창피한 일을 당했을 때 또 그런 상황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이나 행동을 하면 멘탈이 붕괴되었다라고 표현한다. 당황스럽거나 격한 분노가 끓어올라 사람의 상태나 감정이 평소같지 않게 맛이 갔다면 그게 바로 멘붕인 것이다. 민주통합당 대선주자인 손학규 상임고문은 방송출연에서 4·11 총선에서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패한 뒤 큰 충격을 받았다며 '멘붕'이란 신조어를 구사해 눈길을 끌었다. 손 고문은 라디오에 출연해 "멘붕이란 유행어를 아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멘탈 붕괴? 그 정도야 안다. 다 이긴 총선에서 졌을 때, 이런 걸 멘붕이라고 하나 했다"고 말했다. 정치인들도 멘붕상태를 겪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5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 경기에서 극심한 슬럼프에 빠진 롯데 자이언츠 황재균은 자신의 모자에 '멘붕 탈출'이라는 문구를 적어넣어 눈길을 끌었다. 운동선수에게 멘탈은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지금 대한민국은 멘붕의 시대다. 멘탈이 거의 정상치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대선출마를 확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만 하고 있는 안철수도, 아무리 해도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아 경선룰을 바꾸지 않으면 출마를 포기하겠다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나 이재오 의원 역시 멘붕의 초기증세거나 이미 멘붕상태에 빠져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험한 흥행보다 40%의 지지율을 방패 삼아 묵묵부답으로 버티고 있는 박근혜도 대선이 가까워 오고 예기치 못한 지지율 변화가 온다면 분명 멘붕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MB도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내곡동 사저 매입논란이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돌아가고 심지어 국정조사까지 거론되는 상황에 그 역시 현재 멘탈이 정상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이제 80이 훨씬 넘은 실향민 1세대들은 종북파 논란에 휩싸인 의원들의 국회 입성을 보고 심각한 멘붕상태를 겪고 있는 중이다. 김정일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그들이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국회의원들의 행동에 심각한 정신붕괴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불법 경선논란과 당권과 비당권파로 나눠져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이는 통합진보당의 멘붕은 상당히 진행된 사태고 강원도에서 단 한 석의 의원도 배출하지 못한 민주당의 수뇌부들이 강원도 고성에 몰려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라'며 벌인 촉구 결의대회 역시 멘붕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정치인들은 그렇다 치고 104년 만에 겪는 가뭄으로 지금 농민들은 슬픈 멘붕상태를 겪고 있다. 타들어가다 못해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을 보면서 자식을 잃은 부모처럼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저 농부들의 모습을 보는 우리들조차 멘탈이 붕괴되는 느낌이다. 가계부채에 허덕이다 못해 고리사채업자를 찾아가야 하는 중산층의 멘탈도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부동산시장의 장기침체로 입주도 하기 전에 하우스 푸어(house poor)로 전락한 계약자들은 입주를 포기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매일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는 그들의 멘탈은 이미 붕괴돼 버렸다.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폭력으로 인한 멘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신조어는 우리 세태를 가장 정확하게 진단하는 바로미터다. 멘붕이 2012년 최고의 신조어로 자리매김한 것은 전 국민의 멘탈 붕괴가 예사롭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 삼일절(31세까지 취직못하면 취직길이 막힘)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가 될 것을 생각해야 함) 등의 신조어 역시 이 시대의 청년들의 멘탈 상태가 어떤지 가늠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멘탈 상태는 어떤가. 잘 모르겠다. 일부는 이미 무너졌고 일부는 복구 중이며 일부는 이제 막 초입단계에 접어들었다. 당신의 멘탈은 건강한가.

2012-06-26 이영재

청계천 헌책방의 생존전략

50대 이상 장년층의 서울 청계천에 대한 기억은 헌책방이다. 청계천 3가에서 5가에 이르는 도로변 상가에 빼곡히 들어찬 100곳 이상의 중고서점들이 돈 없는 독서광과 수험생들을 유혹했던 것이다. 침침한 조명에 매캐한 냄새로 찌든 좁은 책방 안을 헤집고 다니며 손때 묻은 책더미를 뒤적거렸으니 말이다.그러나 지금은 20~30곳에 불과, 이곳이 한때 국내 최대의 중고서적시장이었다는 언급이 무색할 지경이다. 서점 대형화의 격랑에다 인터넷서점까지 가세함으로써 초토화된 탓이다. 그럼에도 청계천 헌책방들이 명맥을 유지하는 비결은 틈새시장을 공략해서 염가의 유아용 도서, 패션잡지, 고서적 등으로 전문화한 것이다.대형마트 강제휴무제가 시작된 지도 2개월째로 접어들었다. 갈수록 의무휴업 점포수가 점증하면서 지난 10일에는 대상업체수의 70% 이상이 동시에 휴점,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이나 기대에 못미친다는 반응이다.서울 망원시장상인회 대표의 "최근 방문객이 15% 가량 늘었으나 아직은 매출이 오르지 않았다"는 답변이 시사하는 바 크다. 시장경영연구원만 풍선효과가 서서히 가시화하고 있다는 반응이다.대형마트 쪽에서는 지각변동의 신호들이 감지된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빅3'는 이달 매출손실액이 1천400억~1천600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죽상이다. 기업형 슈퍼마켓(SSM)까지 포함하면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은 자명하다.관련업계는 금년 매출이 10조원가량 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네 빵집, 순대, 떡볶이 등 골목상권까지 싹쓸이 하는 등 게걸스런 식탐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대형마트에 입점해 있는 약국, 안경점, 식당, 옷가게 등의 임대상인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대형점포에 매장을 오픈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반제재를 받아 영업 및 임대료 손실이란 이중고에 시달려야 하는 때문이다. 납품업체들도 울상이다. 대기업의 주문축소 물량을 전통시장 공급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는 있으나 물류비 부담증가 내지는 자금회전율이 떨어져 채산성이 악화될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유통대기업의 비정규직 고용감소도 눈에 띄게 증가하는 추세다. 두달여의 강제휴무로 '빅3'에서만 계산원, 주말 알바, 주차요원 등 '88만원'짜리 일자리수가 3천개나 사라졌다. 살아남은 비정규직도 편치 못하다. 일감 축소로 시급(時給) 근로자의 임금이 줄어들어 생계에 위협을 받는 사례도 비일비재한 것이다. 노동강도 또한 커져 불만도 누적되고 있다. 매출 축소를 이유로 직원수를 늘리지 않아 업무량이 늘어난 것이다.반면에 엉뚱한(?) 이들만 횡재했다. 지난 주말 서울 창동의 하나로마트 매장 내의 계산대마다 손님들이 수십 미터씩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농수산물 매출액 비중 51%' 이상인 대형마트는 규제대상에서 제외된 결과이다. 쇼핑몰로 등록된 대형점과 백화점도 주말특수를 누렸다. G마켓, 옥션, 11번가, 롯데닷컴 등 오픈마켓은 또 다른 수혜자였다. 대형마트 강제휴무가 시행된 이후 신선식품 등의 온라인매출이 급증한 것이다. 반쪽정책이란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이다.가장 타격을 받은 측은 소비자들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었으니 말이다. 심야 및 주말쇼핑 규제에 맞벌이부부들은 분통이 터진다. 장보기를 포기하는 이들도 점증하는 느낌이다. 장기간의 내수부진에다 유럽발 재정위기 여파로 명품소비까지 위축되는 실정인데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아버리면 어찌되겠는가.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영세상인 살리기 정책은 크게 잘못되었다. 초가삼간까지 태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대선을 의식한 정치권은 유통대기업 옥죄기를 더욱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나 만시지탄이다. 유럽이나 일본처럼 안전판의 사전강구가 전제되었어야 했음에도 역대정부는 대물 키우기에만 올인했던 것이다.전통시장을 대체제로 인식하는 한 해법은 없어 보인다. 니치마켓에 주력한 청계천 헌책방들의 생존전략이 돋보인다.

2012-06-20 이한구

'벤처판 신데렐라' 언제나 나올까

최근 실리콘밸리는 다시 벤처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2011년 벤처투자자금이 역대 최대 규모인 291억달러(약 34조원)를 넘어섰고, 또한 신생 벤처기업들의 투자회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금년 4월 SNS의 최강자인 페이스북은 실리콘밸리를 놀라게 하면서 사진 앱 개발회사인 '인스타그램'을 10억달러(약 1조1천500억원)에 사들였다. 인스타그램은 직원 13명에 불과하고 창업한 지 약 2년에 불과한 작은 신생벤처였다. 또한 '애플'과 '구글' 같은 강자들도 신생벤처를 사는데 거리낌이 없다. 애플은 '시리'라는 음성인식 벤처를 2억달러에 인수한 바 있고, 구글은 모바일 광고회사인 '애드몹'을 7억5천만달러에 인수한 것을 포함해서 2010년에만 48개 기업을 인수했다. 미국 대기업은 엄청난 금액을 주고 신생벤처를 인수하곤 한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필요한 기술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기술을 얻는데 서슴없이 투자한다. 대기업은 벤처가 시작한 비즈니스를 완성해서 수익을 올리며, 벤처는 기술을 넘겨주고 투자회수를 한다. 이런 신생기업의 성공을 본 청년들은 저마다 기업가로 성공할 꿈을 가꾼다. 자연스럽게 창업이 늘어나고, 기술이 발전하며, 성공기업이 증가한다. 이처럼 대기업이 벤처캐피털로서 역할을 해주면서 건전한 기술생태계가 완성된 것이다.국내에서는 대기업이 벤처를 사들이며 신데렐라를 낳는 스토리가 왜 없을까?그 이유는 절대적 지위를 가진 우리 대기업들은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벤처를 사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갑'의 위치에서 단가를 깎고 기술을 가로채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벤처의 기술 출구는 막혔다고 보아야 한다. 기술 출구가 막힌 벤처는 고전 끝에 도산하게 되고, 이렇게 사라지는 벤처를 보면서 청년들은 꿈을 접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 한국경제의 창업환경이며 기술생태계의 단면이다. 심지어 우량 벤처들도 고사(枯死)하며, 신생창업은 시들해지는 우울한 모습이다.대기업의 중소벤처기업 인수를 보고, '유망기업을 잡아먹었다'고 표현하는 사회 일각의 부정적 인식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는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벤처를 인수하는 '벤처판 신데렐라' 사례가 일단 나오기만 하면 해소될 것으로 본다. 물론 여전히 후려치기로 벤처를 인수하게 되면 사회적 인식이 좋아지지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이런 점에서 벤처기술을 사는 쪽인 대기업의 의식전환이 매우 중요하다. 벤처를 육성하는 것이 결국 대기업에 보상을 줄 것이라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한편 벤처기업 쪽에서도 정당한 가격을 쳐줄만한 기술이 있어야 한다. 특히 '벤처판 신데렐라'가 되려면 독창적인 사업모델이 될 만한 기술을 갖춰야 한다. 앞서 말한 '인스타그램'만 보아도 페이스북이 꼭 필요한 기술을 보유했다. 페이스북이 10억달러를 지불한 것은 '인스타그램만이 가진' 기술의 가치였다. 그 기술에는 모바일 폰으로 찍은 사진을 바로 편집해서 소셜공간에 공유하는 기술, 라이브 필터, 인스탄트 쉬프트, 원클릭 회전 등이 포함된다. 또한 인스타그램은 경쟁사인 '패스(Path)'가 갖지 못한, 트위터처럼 누구에게나 승인 없이 팔로잉하는 개방형 플랫폼이 있었다. 이렇듯 경쟁사와 차별되는 히든카드가 있었기에 매력적이었던 것이다.우리 IT대기업들도 벤처기술을 사야하는 상황으로 이미 진입했다. 금년 삼성전자가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엠스팟(mSpot)'을 880만달러(약 100억원)로 인수한 것이 한 사례이다. '엠스팟'은 모바일 기기에 음악과 동영상을 전송해주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 소프트웨어 업체였다. 국내 IT대기업들의 벤처 인수 필요성이 증가한다는 것은 대기업의 실력을 보완해 줄 기술역량을 갖춘 벤처에 기회가 열린다는 의미이다. 대기업의 인식전환과 혁신기술을 장착한 벤처창업이라는 과제가 아직 남아있지만, 한국 땅에서도 '벤처판 신데렐라'가 탄생할 수 있는 초기 싹이 보이는 것만은 분명하다.

2012-06-13 손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