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부실감사가 화근이다

13년 전 외환위기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재계 3위의 대우그룹을 비롯한 30대 재벌의 3분의 1이상이 맥없이 무너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1997년 12월 한달 동안에만 무려 3천여 기업들이 줄도산하는 등 외환위기 3년 동안 기업부도 건수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였다. 덕분에 서울은행, 조흥은행, 외환은행, 제일은행, 한미은행, 동화은행 등도 막대한 부실대출로 주인이 바뀌거나 간판을 내려야 하는 비운을 맞았다. 거리마다 실업자들로 넘쳐나는 생경한 모습에 민초들은 경악했었다.정부는 경제 주권을 담보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급전 200억 달러를 차용해서 수습하는 한편 재발방지대책을 강구했다. 재벌들의 과도한 차입을 근절하기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를 부활하고 은행에 대한 금융감독을 한층 강화했다. 또한 기업 오너들의 고질적인 황제경영을 견제하기위해 사외이사제를 도입했다. 엉터리 외부감사로 일관했던 회계법인에 대해서도 철퇴를 가하겠다고 약속했다.그러나 결과는 어떠한가. 금년 들어 2차에 걸친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통해 확인된 것은 실망 그 자체다. 수많은 서민예금자들이 또다시 화이트칼라범죄의 표적이 되었던 것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2천만원이 예금된 저축은행 통장을 언론에 공개했음에도 뱅크런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실대출 근절을 공언했으나 립서비스에 불과했다.금융 감독 당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 새마을금고나 진배없는 동내 서민금고에 '은행' 명칭을 부여해서 시중자금의 대거 유입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2000년대 말부터 저축은행의 프로젝트파이낸싱(PB)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했음에도 수수방관했던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8·8클럽' 운운하던 모 저축은행의 BIS비율이 불과 1년도 못돼 마이너스 12%로 수직낙하한 점이다. 마치 1960년대 초에 불거진 증권파동이 연상된다. 이런 감독기관이 왜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회계법인들의 구태(舊態)도 여전하다. 이번에 새로 퇴출된 토마토, 제일 등 7개 저축은행들에 대한 감사보고서에서 모두 '이상 없음'으로 판정한 때문이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회계법인들의 면면이다. 프라임과 제일2저축은행의 회계감사를 맡았던 삼일회계법인은 국내 최대의 회계법인으로서 지난 외환위기때도 부실감사로 여론의 지탄을 받았었다. 에이스와 파랑새저축은행의 감사를 맡은 안진회계법인는 4대 메이저 중 하나다. 스타 회계법인들의 감사결과가 이 정도이니 나머지 감사보고서는 오죽하겠나. 유명 회계법인의 대표를 역임한 모 회계사의 "회계법인이 일감을 주는 고객(기업)의 뺨을 어떻게 때릴 수 있겠는가"란 귀띔이 시사하는 바 크다. 퇴출 저축은행들을 허위감사한 회계법인들에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할 것이다.사외이사들의 한심한 작태는 점입가경이다. 상법에는 감사위원회의 3분의 2 이상을 사외이사로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외이사들의 역할이 돋보이는 이유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들의 사외이사들은 대전지방국세청장, 감사원장, 금융감독원 고위간부 출신 등 경력이 화려하다. 그런데 대영, 제일, 토마토, 프라임 등 4곳의 경우 작년 7월부터 올 3월까지 총 59차례의 이사회가 열렸으나 사외이사들이 안건처리에 제동을 건 사례는 단 한건도 없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사외이사들이 본연의 임무는 외면한 채 악질 오너경영인들의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부실한 감시체제를 보강하기 위해 정부는 2001년 6월에 내부고발자 보호목적의 부패방지법을 제정했다. 지난달 30일부터는 공익신고자보호법이 효력을 발휘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 또한 문제가 있다. 돈이면 저승사자라도 부리는 판에 내부고발자 색출은 식은 죽 먹기인 탓이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우선하는 직업윤리 내지는 의리를 우선시하는 우리네 정서와도 부합하지 않는다.제동장치 없는 기업오너들의 황제경영이 경제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도처에 숨겨진 부실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되지 않는 때문이다. 상궁지조(傷弓之鳥)의 기우(杞憂)이길 희망한다.

2011-10-04 이한구

중소기업에게 글로벌화란 무엇인가

중소기업에 글로벌화가 중요한 이유는 좁은 시장이 넓어지는 매력 때문이다. 특히 첨단산업에 속한 중소기업일수록 좁은 내수시장을 극복하는 돌파구로서 의미가 크다. 네덜란드 필립스(Philips) 같은 기업은 자국 내수시장이 작았지만 다른 유럽시장과 북미시장으로 진출하여 의료장비 사업에서 성공했던 것이다. 시장이 넓어야 연구 개발에 투자할 동력이 커지는 것도 불변의 진리이다. 내수시장이 크면 기술발전이 앞당겨지곤 하는데, 특히 기술진화의 초기단계에서는 내수시장 규모의 효과가 큰 편이다.의료기기 분야를 볼때, CT촬영기술을 발명한 미국은 자국 내부의 큰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GE(General Electric)라는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 냈다. 한편 내시경 분야에서는 위암환자시장이 넓었던 일본의 올림푸스(Olympus) 기업이 초기의 세계시장을 주도하게 되었다. 기술발전의 초기단계에서는 이렇게 내수시장이 큰 국가의 기업들이 주도권을 갖게 된다.큰 내수시장 덕택에 얻은 산업 주도권은 더 큰 연구개발 투자를 유인한다. 예를 들면 1900년대 초반까지 독일은 당시 대학의 연구 능력에 힘입어 화학산업에서 최강자로 군림했는데, 1920년대 들면서 미국은 독일을 제치고 화학산업에서 최강자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주도권 변화는 미국 정부와 산업계의 막대한 연구개발비 투자 때문이었다. 미국은 이 기세를 몰아 1950년 이후 화학산업에 뿌리를 둔 염료산업과 제약산업의 리더가 되며, 더 나아가 이들 산업과 연관된 바이오테크놀로지(BT)라는 첨단 영역을 개척하게 된다. 바이오산업을 주도하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 중반이었다. 이처럼 시장의 크기가 준 인센티브가 첨단산업의 주도권으로 연결되게 된다.한국의 첨단산업은 태생적으로 작은 내수시장을 극복해야 하는 숙명적 과제를 유산으로 물려받고 있다. 특히 바이오산업과 같은 개척해야 하는 업종의 중소기업에 글로벌 시장의 의미는 크다. 최근 인터넷과 교통수단의 덕택으로 작은 중소기업들도 세계시장에 진출할 기회가 많아졌다 하더라도, 중소기업이 글로벌 현장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적인 중소기업의 글로벌화 경로를 보면, 제일 먼저 판로(販路)가 국제화되고, 그 다음에 인적자원의 국제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본과 경영시스템이 국제화된다. 대부분의 글로벌화 추진 기업들은 이 과정의 중간 어딘가에 있게 된다.실제로 글로벌화에 임하는 중소기업에 묘책은 따로 없다. 그래서 무턱대고 '지사(支社)'를 설립하여 해외시장을 개척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히든 챔피언'의 저자인 독일의 헤르만 지몬 박사는 이를 '저돌적 방법'이라고 표현한다. 이 방법은 기업가가 사전 전략이나 구체적인 계획없이 저돌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여 성과를 일궈내는 전략을 말한다. 차후 이 저돌적 방법이 지속되다가 차후 체계적 방법으로 대체되는 것이 중소기업들이 글로벌화를 추진하는 과정인 것이다.여기서 중소기업이 글로벌 무대로 나서는 것을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라는 뜻만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것에는 글로벌 판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뜻이 포함된다. 바이오산업의 예를 든다면, 글로벌 제약회사의 움직임을 모르면서 우리 바이오산업을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숙명적인 작은 내수시장 문제를 극복하려면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만드는 새로운 물결에 민감해야 하는 것이다.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중소기업의 글로벌화는 상당기간이 필요한 험난한 사업이라는 점이다. 추진 과정에서 많은 상처가 발생하며, 기업 당사자는 엄청난 좌절을 이겨내야 하는 고단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를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첨단산업에 뛰어든 중소기업의 숙명이다. 숙명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즐겨야 한다.

2011-09-27 손동원

바람의 '육체'

한국 사회는 서울대 융합대학원 안철수원장이 일으킨 '안풍(安風)'의 풍향과 정체에 대한 논의로 온통 뜨겁다. 문득 김해자 시인의 '바람의 육체'가 떠오른다. 그 시의 한 구절- "새벽 산길 도망갈 길 없는/ 모퉁이에서 마주친 바람/ 그에게선 산하를 떠돌다 온 행려의 냄새가 났다". 시인은 바람과 대면(對面)하고 행색과 체취를 느껴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바람이 불지 않는 시간은 없지만, 빛과 소리에 취한 우리는 바람의 존재를 망각하고 지낸다. 바람이 사나운 소리를 동반한 폭풍이 되어 삶의 터전을 뒤흔들 때에야 새삼 그 위력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뿐, 가뭇없이 사라진 바람처럼 바람에 대한 우리의 기억도 말끔히 지워버린다.'안풍'이라 부르는 현상의 팩트를 복기해보자. 9월 2일 한 인터넷신문에 '안철수, 서울시장 출마 검토'라는 내용의 기사가 한 인터넷 신문의 기사가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의 톱기사로,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의 뜨거운 화제가 되면서 바람은 시작되었다. 여론조사기관들은 안 원장이 출마한다면 압도적 표차로 당선될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앞 다퉈 내놓았다. 닷새간 정국을 강타한 '안철수 돌풍'은 지난 6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안 원장이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면서 서울시장 보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상식적으로 그의 불출마 선언으로 안풍은 멎어야 했으나, 이번엔 대선 주자로 부각되면서 박근혜 대세론을 위협하는 지지율로 나타났을 뿐 아니라 안원장에 대한 지지율은 고스란히 그가 '양보'한 서울시장 후보 박원순 이사에 대한 지지로 옮겨 갔다.안원장에 대한 지지율 폭등사태 한국은 물론 외국의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외형적으로 그는 닷새 동안 서울시장 출마를 고민하다가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 바람이 휩쓴 흔적은 역력하다. 위기감에 휩싸인 여야 정치권은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황급히 제시하는가 하면, 대선과 관련해서는 대세론의 위기를 지적하는 이도 있다. 그러니 여타의 대선후보들의 존재감은 아득해질 수 밖에 없다.안철수원장에 대한 지지율 폭등사태를 '태풍'이나 '돌풍', 혹은 '쓰나미'와 같은 돌발적 자연재해로 비유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아직 그 본질에 직핍(直逼)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안풍의 몸통은 자연인 안철수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 원장은 행정이나 정치적 경험이 없다는 점을 발견하고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은근히 견제구를 날려보는 사람도 있다. 그가 행정이나 정치판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다는 능력 검증론을 제기해보지만 그는 일반인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정신을 발휘해 성공을 이룬 '걸어 다니는 위인'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걸어온 최연소 의과대학장,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램인 V3백신을 개발하여 프로그래머, 국내 유수의 소프트웨어 CEO로, 카이스트 경영학 교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 원장 등은 과감한 도전의 역정이다.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풍'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안풍이 '돌풍처럼' 우리 앞에 출현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심각한 소통부재 상태에 빠져 있거나 소통의 메커니즘이 불구화돼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 사회적 소통의 임무는 정당과 정치인들의 역할이요 책임이다. 사실 대의제에 입각한 정당정치의 위기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통은 대화(dialogue)이며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는 쌍방향식 문제해결 방식이다. 이는 결정된 내용을 통보하거나 설명하는 일방적 말하기 방식인 홍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대화가 실종된 정치, 홍보를 소통이라고 여기는 사회는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그 바람의 방향도 위력도 알 수 없는 불통 사회다. 이 점에서는 미디어의 책임도 적지 않다. 여론을 대변하거나 민심의 저류를 검침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2011-09-20 김창수

안풍(安風)과 추석이후…

'추석 행복하게 보내셨나요?' 새벽부터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하도 많은 문자들이 쏟아지는 통에 건성으로 읽고 지워버리는 것이 습관화 된 필자도 잠시 색다른 내용에 눈길이 멈춰섰다. '안철수 얘기 좀 했나요?' 아~하 그랬지, 엊그제 추석 차례상 앞에 모처럼 함께 한 친지들의 대화 주제는 단연 안철수와 곽노현, 그리고 강호동이었다. 정치인도,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도 없는 평범한 집안 식구들이 모였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제가 그쪽으로 흘러갔다가 그쪽에서 끝났다.좀 색다른 문자 메시지를 보낸 그 사람은 '족집게 도사'라도 된단 말인가. '천만에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하도 '안철수, 안철수'라고 말해서 추석안부 겸 그렇게 여러 사람에게 보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물가에 찌든 살림, 취업 못해 빈둥대는 자식 걱정 등이 주 메뉴가 돼야 할 자리가 이들 세 사람이 차지한 셈이다.그렇다면 '안철수 신드롬'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예전에 보지 못한 신선함과 그 반전이다. 지지율 50%인 사람이 5%에 깨끗이 양보하는 상식을 뛰어 넘는 통쾌한 반전이 답답한 국민들의 가슴을 때려 열광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인물에 그 정파, 식상함으로 찌든 우리 정치판에 던지고 떠난 그의 '메시지 여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철옹성이라는 박근혜의 지지도까지 단숨에 뛰어 넘지 않았는가. 국민들은 그래서 더욱 짜릿해 한다.문제는 우리 정치권이 보는 '안철수 돌풍'에 대한 해석이다. '그건 거품이다', '바람이 오래 갈 것이다. 아니다', '안 교수가 정치할 것이다. 안한다' 등등.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을 단순히 그의 출마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게 문제다. 바닥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지금 민심은 그의 출마에 달려 있는게 아니다. 안철수 같은 정치인이나 세력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여·야 기존 정치권에 대한 피로감에 지쳐있다. 우린 지금 좌우와 보수·진보로 갈려 얼마나 많은 논쟁을 하고 있는가. 그 밥그릇 싸움에 나라꼴이 되는 게 없이 지리멸렬한 요즘 안 교수와 같은 사람들에게 빠져들고 있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래서 기존 정치세력이 아닌 제3의 정치세력의 등장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안철수와 달리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국민 MC 강호동은 어떠한가. 사퇴한 후보에게 2억원을 주고도 선의로 줬다는 궤변이나 수억원을 탈세하고도 일시적 방송은퇴 선언이라는 각본에 짠듯한 변명은 신선함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더욱 질타의 강도가 커지는 모양이다. 국민들은 구차한 변명보다는 안철수처럼 '아닌건 아니다'라고 하는 쿨한 답변에 더욱 매료된다.추석 이후 정치권은 당분간 '안풍'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인천 등 지역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즐거워야 할 추석 명절이 그 파장이 어디로 튈지 몰라 유난히 힘겨운 '민생탐방 여정'이었다는 게 정치인들의 전언이다. 한나라당은 이대로 가다간 인천에서 1~2석도 못 건질세라, 벌써부터 대폭적인 물갈이론이 고개를 든다. 긴장하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어부지리만 믿다 현 수준을 넘지 못할까 노심초사라고 한다. 과연 제3의 정치세력이 등장할 것인가. 냉가슴을 앓고 있는 게 기존 정치권의 속사정이다.안철수는 자의로 정치권의 주연 자리에서 하차했지만, 정치권은 좋든 싫든 그가 중심선에 서 있다. 사람이 아니라 그가 남긴 메시지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나를 통해 대리 표현된 것 같다'는 그의 말처럼 그 메시지의 파괴력은 추석 연휴 이후에도 점점 커질 전망이다. 노자(老子)는 말하기를 "억지로 하는 자는 실패할 것이고 잡으려 하는 자는 잃어버린다"고 했다. 고(故)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은 "얻으려면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교수가 던진 메시지와 일맥 상통한다. '지키느냐, 빼앗느냐'의 승부수 정치. 과연 우리 정치권이 살아남기위해 어떻게 변할지, 두고 볼일이다.

2011-09-13 김은환

기초가 튼실해야

거미가 집을 짓고 있었다. 시골의 어느 농장에서다. 빨랫줄을 주 기둥으로 삼아 한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 놈을 처음엔 무심코 보고 있다 이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어서 또 망가질 것이고 그러면 다시 짓는 일을 반복할 텐데…, 측은지심이 발동해 아예 다른 곳으로 거미를 옮기려는 시도도 해봤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잠자리와 나비 모기 파리 등 먹거리가 거기보다 풍부한 곳이 없었다. 잠시 더 그 놈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망설임도 작은 실수도 없이 촘촘히 기초를 다지며 그물망을 완성해 가는 정교한 집짓기는 환경에 적응하며 태생 때부터 해오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잘 학습된 유전정보의 결정판이다.거미집은 비·바람을 막는, 추위에 견디기 위한 보금자리가 아니다. 먹이에 신속하게 대처해야 하는 생명줄이다. 노출돼 있어 투명해야 하고, 더 확실히 해야 하는 전제 조건은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기초가 튼실하지 못하면 비·바람에 견딜 수 없다. 생존경쟁에서 패자로 남아 결국엔 종이 사라지게 된다. 한 나라가 부강해지고 국민들이 복된 삶을 누리기 위한 필요 조건도 다르지 않다. 인간이 다른 것은 행복조건이 여건에 따라 천태만상이라는 것이다.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종사자, 도시와 농촌생활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정상인과 장애인 등 복잡한 구조를 하고 있다.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오지의 단순함과는 비교도 하지 않을 만큼 대한민국 국민들의 욕구분출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물론 모두에게 공통분모는 있다. 건강한 삶이다.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가 최대 이슈다. 등록금·교육·의료 등 대상의 폭을 넓혀 가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고, 그 전면에 전면 무상급식과 선택적 무상급식이라는 먹거리가 놓여 있다. 행복지수와도 그 맥을 같이 한다. 같은 사안을 놓고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마땅치 않기는 하나 나름의 주장에 일리가 있어 편들기도 나뉘어 논쟁이 뜨겁다. 주장들을 간단히 살피면 '선별적 복지'의 장점으로 낮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대상의 변동에 따라 유연한 서비스의 변화를 줄 수 있고, 서비스의 질이 좋다는 것을 들고 있다. 단점으로는 서비스 대상자가 한정되며, 대상자에게 낙인이 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보편적 복지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마찰에 대한 완충장치의 역할을 함으로써 사회적 안정성을 도모하고, 중산층에서 저소득층으로의 계층 이동을 완화하며, 낙인이 없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들인 비용만큼 효율적인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으며, 경직된 관료제적 구조의 한계로 대상의 변동에도 유연한 서비스의 변화가 어렵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장·단점은 보는 시각과 의식에 따라 달라지게 되며, 또한 예산배분의 적정성 등으로 인해 논쟁은 끝을 보이지 않고 진행형이다. 더욱이 우리의 토론현장은 상대방의 주장에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철옹성을 쌓고 있어, 건강한 복지를 위한 난상토론이 아닌 승리를 쟁취해 정국을 선도하기 위한 도구쯤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급식의 정점에는 교육이 있다. 학생 먹거리에 교육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극히 비교육적인 낙인과 눈칫밥을 먹지 않아야 하는, 모두가 공평무사해야 한다는 논리다. 모두 똑같은 음식을 눈치보지 않게 차별없이 제공하는 보편적 가치의 음식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보편적일 수 없는 것들이 널려 있다. 부모의 재산정도에 따라 많은 교육이 선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일부에서는 사는 지역과 거주하는 아파트로도 학생간 차별이 이뤄진다. 교육은 차별을 두지 않아야 하지만,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차별을 부정해서도 안 될 것이다. 낙인과 눈칫밥 등 삶의 차이로 인한 차별은 교육현장인 가정과 학교에서 부모와 교사가 교육적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 옳을 듯싶다. 차이를 인정해야 하고, 이로 인해 나타나는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도 참교육이 아닌가 싶다. 그래야 기초도 튼실해진다.

2011-09-06 조용완

세금논쟁의 유의점

미국의 세금 논쟁이 점차 힘을 받고 있다. 일개 신용평가사의 기습펀치에 휘청거릴 정도로 미국의 재정 적자가 심각한 터에 투자 천재 워런 버핏이 부자증세로 불을 지핀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지를 선언하자 공화당은 전가보도인 '증세=경기침체'론으로 즉각 응수했다. 버핏이 "세율을 낮추면 일자리가 더 줄어든다"며 증세론을 거듭 강조하자 공급측 경제학의 리더인 아더 레퍼가 재차 반대 논리를 펴는 등 판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세계증시 불안이 키포인트다. 미국의 재정 적자는 치료불가인데다 유럽은 각국간의 이해가 맞물려 조기 수습은 난망이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잇따라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도이치뱅크는 중국경제 침체 우려에 주목하면서 힘을 보탰다. 경제란 사람들의 심리에 절대적 영향을 받는 만큼 비관적 전망이 우세할수록 불황이 현실화하는 법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대위기- 의 임박 예언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또한 미국의회가 올 11월까지 1조5천억달러의 예산감축안을 확정해야 하는 터에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까지 예정돼 있어 세금 논쟁은 미국은 물론 세계적인 화두로 부상할 개연성이 크다.한국은 수출액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이고 미국과 유럽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특히 높은 국가다. 이번의 증시 대폭락이 이를 방증한다. 나라 곳간의 건전성 여부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가 채무는 올해 435조5천억원으로 2007년에 비해 무려 45.5%나 급증했다. 국가채무통계 작성 이래 최고 수준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 차원에서 정부가 대규모 재정투입을 한 탓이다. 현 정부내내 계속된 감세 조치로 재정수입 증가율이 다소 둔화됐음에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4%로 여전히 양호한 편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것은 못된다. 공공기관들의 부채를 포함한 광의(廣義)의 국가채무액이 2010년 기준 1천637조원에 달하고 외채 또한 4천억달러에 육박한 탓이다. 저출산·고령화에다 양극화 심화에 따른 재정 부담 증가는 설상가상이다.개별경제주체든 정부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한 가장 안전한 투자는 재무구조의 건전화다. 6·25전쟁 이래 최대의 국난(國難)으로 치부되던 지난 1997년 외환위기를 조기에 수습할 수 있었던 것도 튼실한 국가재정 때문이었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이고 금융시스템이 취약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은 나라 곳간뿐이다. 야당 일각에서는 감세 철폐와 부유세 신설을 통한 재정건전성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감세정책 지속과 2013년 균형 재정 달성으로 화답했다. 대책으로 일몰(日沒)이 도래한 비과세 감면을 최대한 종료하고 부족분은 인천공항공사 등 공기업 매각을 통해 벌충할 요량이다. 그러나 정부재산 매각을 통한 재정 확충은 이미 선진국에서 용도 폐기된 정책으로 바람직한 수단이 못된다.비자금·소득탈루·뇌물 등 지하경제에 눈길이 간다. 지하경제 규모가 클수록 재정위험도는 높은 법이다. 남유럽 재정위기가 사사하는 바 크다. 지하경제가 GDP에서 점하는 비율의 경우 그리스와 포르투갈은 20%이상이고 스페인은 19.2%이며 이탈리아는 무려 25%다. 국내의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17~18%인 174조원으로 조세탈루액이 최대 29조원에 이른단다. 인터넷도박과 암시장에 흘러든 블랙머니가 280조원을 상회한다는 주장도 있다. 탈세분만 제대로 징수한다면 그동안 감세로 인한 재정손실 충당 및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균형 재정 달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사회정의 구현과 국가신인도 제고, 분배불균형 시정 등 부수효과도 크다. 노무현 정부의 사례처럼 증세로 인한 국력 낭비도 간과할 수 없다.장기간의 개방경제화로 천문학적인 국내 자금이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재벌부문의 급신장이 상징하듯 국내 지하경제 규모도 크게 신장됐을 것이다. 목하 정부는 역외(域外)탈세 단속 운운하고 있으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국내외 탈세와의 전쟁 당위성은 점차 커지는데 말이다.

2011-08-30 이한구

산학협력은 지역발전 시작이자 완성

한창 키가 자라야 할 때 크지 못하면 마음에 상처가 남는다. 지식경제의 메카로서 성장 기회를 맞은 인천경제가 빠른 성장궤적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산학협력 자체를 지역발전의 엔진으로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지역발전이라는 과제는 이제 '지식'없이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최고의 지식공급자인 '대학'이 논의의 한복판에 들어서게 된다. 실리콘밸리에서 스탠퍼드 대학, 베이징에서 베이징대와 칭화대, 핀란드 울루에서 울루대학의 역할이 바로 대학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위력을 입증하는 사례들이다. 이제 대학실험실에서 내놓은 첨단연구결과는 학술적 산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업 원재료이거나 혹은 기존 산업계를 뒤흔드는 혁신상품으로 상업화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학에서 산출하는 지식의 경쟁력에 따라 지역기업들의 성장 속도가 결정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대학이 지역혁신의 주체로 부각된 것은 미국경제의 성장과정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의 혁신시스템 역사를 보면 오래전부터 대학이 혁신을 주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1930년대 이후 국방연구를 비롯한 상당부분의 국가연구비가 대학에 투입되었고, 산업체의 연구도 일부 자체(in-house) 연구를 제외하고는 대학과 공동으로 추진되었다. 이랬기 때문에 미국경제에서는 대학이 혁신지식을 뿌려주는 주체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은 상황이 달랐다. 1970년대 이후는 정부출연연구소가, 1985년 이후는 대기업 R&D센터가 한국 혁신시스템의 중심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학은 지식공급자보다는 산업체에 인재를 공급하는 기관으로 만족해야 했었다. 그러나 지식경제로 접어들면서 한국의 대학들에도 지식공급자라는 시대적 책무가 부여되었고, 공동연구와 기술교육 등을 통해 지역산업과 교류하고 있다. 이렇게 지역경제의 성장엔진으로 자리매김한 산학협력에 다음의 대책들이 보완된다면 더욱 효과가 높아질 것이 틀림없다.첫째, 대학이 주도하는 지식교류 네트워크가 만들어져서 산업계와 대학사이의 지식교류가 지속되어야 한다. 미국의 샌디에이고가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유명해진 이유는 캘리포니아 대학(UCSD)을 중심으로 지식교류망이 튼튼하게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그 지식교류망의 대표사례로서 '커넥트(CONNECT)'라는 모임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그것을 통해 연구자, 기업가, 투자자들이 지식을 교환하고 합성하면서 수많은 성공 바이오 벤처기업들을 탄생시키고 성장시켰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둘째, 대학으로부터의 지식공급 유형도 다원화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의 지식전달 메커니즘 유형은 대학이 특정 산업체와 약속에 의해 지식을 전달하는 유형에 한정된 실정이다. 이 유형은 지식교류의 참여자들이 연구결과를 전유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대학지식이 일반 잠재창업자들에게 뿌려지는 소위 확산(spillover)의 효과는 거의 없다. 기업가정신이 풍성한 실리콘밸리에서 스탠퍼드대학이 공급한 지식을 익명의 잠재창업자들이 학습하여 창업하고 그 성공에 의해 창업계보가 형성되는 것을 볼 때, 대학지식이 지역경제에 뿌려지는 통로의 다원화에 대해 생각할 시점이다.셋째, 대학과 산업간 공동연구의 공간에 대한 계획이 설정되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실질적인 공동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대학실험실이 공동연구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기업실험실은 아직 열악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멀리 본다면, 기업의 실험현장에서 공동연구가 진행되는 쪽으로 유인책이 필요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기업실험실이 공동연구의 현장이 될 때, 산학협력의 효과가 기업에서 결실을 맺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동연구로 계획되었지만 대학과 산업체가 실제로는 독립연구를 하는 관행도 이제 벗어나야 한다. 무늬만 공동연구로서는 이제 더 이상 실효가 없다.이제 지역경제의 발전은 산학협력에서 시작하고 완성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것을 정확히 인식하는 지역에 기회가 온다.

2011-08-23 손동원

해방과 함께 '숨은 神' 아마테라스

얼마전 요시하라(吉原)라는 한 일본인의 회고담을 흥미롭게 읽었다.해방 전후의 인천 체험을 담은 이 회고록에는 인천신사의 제례를 주관하던 궁사(宮詞)였던 이소노(磯野)가 인천신사의 신체(神體) 은닉 과정에 대해 증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소노의 증언에 따르면 인천신사에는 탁구공 크기의 검은 색 옥사리(玉砂利)가 신체로 보관되어 있었는데, 해방 직후인 8월17일 오후 4시에 인천신사의 궁사들과 인천부윤, 부두관리국장이 입회한 가운데 인천 앞바다의 한 지점에 그 신체를 가라앉혔다는 것이다.인천신사의 신체를 숨긴 사실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그의 증언에 크게 새로운 사실은 없다. 다만 은닉 당시에 입회자가 누구였는지를 밝혔고, '○○지점'이라고만 알려진 장소를 '인천항 앞바다 한 가운데'라고 조금 구체화했을 뿐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숨은 신'의 은닉처에 대해 굳게 함구하고 있는 것은, "언젠가는 다시 신전으로 맞아들일 때를 기다리는 임시조처"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처럼 해방 직후에 일본인들이 벌인 소란 중의 하나는 한국에 설치했던 신궁과 신사에 보관된 신체를 숨기는 일이었다. 천상의 최고 신이자 천황의 조상인 아마테라스 오오미가미(天照大神)를 비롯한 제신들의 신체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느라 전전긍긍했다. 실제로 8월15일 저녁 평양 신사를 비롯한 전국 중요 신사에 대한 방화와 파괴가 시작되었다. 신사 건물은 가장 일본적인 건축물이자 잔혹한 식민통치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조선총독부는 '일본과 조선은 한 뿌리이며 일체'라는 이른바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조선인을 천황의 신민으로 만드는 정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했다. 신사참배는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군국주의 표상이었다. 일본인들의 민간신앙이었던 신도(神道)를 국가종교로 둔갑시켜 일본인은 물론 조선인들에게도 강요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총독부는 신사의 건립을 독려하여 1945년 6월까지 전조선에 신궁(神宮) 2곳, 신사(神社) 77곳, 면 단위에 건립된 소규모 신사 1천62곳이 세워졌으며, 각급 학교 등에는 '호안덴(奉安殿)'을 세우고, 각 가정에는 '가미다나(神棚)'라는 가정 신단(神壇)까지 만들어 아침마다 참배하도록 하였다.현인신인 천황이 항복 선언을 하게 되자, 최고 신 아마테라스도 '숨어야하는' 사태가 온 것이다. 초유의 사태를 맞아 조선총독부와 신궁의 궁사(宮詞)들이 8월16일 대책회의를 하고 작성한 시나리오는 전 조선의 신궁과 신사에 '강림'해 있던 신들을 하늘로 되돌아가도록 하는 이른바 '승신식(昇神式)'을 올리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령은 승신식으로 하늘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신사에 보관하고 있던 신의 상징인 신체가 문제였다. 신체는 신령이 깃든 거울, 구슬, 칼 따위로 참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다. 총독부에서는 8월16일에서 17일까지 전국의 신사에 승신식을 거행할 것과 중요한 신궁과 신사의 신체는 항공편으로 '봉환'하고 불가능할 경우 적절히 은닉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던 것이다. 그러나 경성의 조선신궁에 보관해 오던 신체인 메이지 천황의 보검만 항공편으로 반납되었을 뿐 대부분의 지방 신사의 신체는 땅속에 파묻었으며, 드물게는 인천의 경우처럼 바다에 던져 넣었다. 애써 '모신' 신들을 하늘나라로 되돌려 보내고 신체를 땅에 파묻는 참으로 기이한 의식이었다.일제가 '황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강요한 신사참배는 처음부터 종교인들을 비롯한 민중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기독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의 교역자와 신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참배거부 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신사참배에 대한 한국인들의 극도의 반감은 해방 직후 대부분의 신사에 대한 방화와 파괴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신앙은 강요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벌인 '승신식' 소동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일이었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2011-08-16 김창수

정치인과 약속이행

약속은 지켜질 때 그 의미가 존재한다. 지켜지질 않을땐 '헛약속', 즉 식언(食言)이요, 공약(空約)이 된다. 좀 심하게 말하면 사기다. 철강 왕 앤드류 카네기는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한번 약속한 일은 상대방이 감탄할 정도로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탈무드에서도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약속을 실천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했다. 약속이행만큼 세상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없다는 얘기다.우린 수많은 약속을 하면서 또는 받으면서 살아간다. 약속이 잘 지켜지는 사회를 두고 '신뢰사회'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린 신뢰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이런 물음에 선뜻 답하기란 쉽지 않다. 너무나 많은 속임을 당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켜지는 약속만큼이나 크고작은 약속들이 헌신짝 버리듯 이행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은 것이 요즘 세태다. 정치인들은 더욱 공약(空約)을 남발한다. 정치인이라면 국민들에게 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약속을 통해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요즘 불행하게도 약속은 지키지 않으면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정치인들이 더욱 인기가 있는건 왜 그럴까. 참 아리송한 세상이다.그럼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과의 약속을 어떻게 이행했을까. 일반 정치인들처럼 공약(公約)을 남발하고 공약(空約)하긴 매 한가지다. 인천을 좀 한정해서 살펴보면 역대 대통령이 쏟아낸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진 것이 손꼽을 정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천경제자유구역에 한해 모든 예산의 1순위로 지원하고, 임기중에 인천을 동북아에서 가장 번영한 중심도시로 건설하는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훗날 참여정부의 치적으로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성과를 내세우겠다고까지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 약속은 결국 '정치적 수사'에 그친채 임기를 마쳤다.이명박 대통령도 취임 초 인천을 방문해서 많은 약속을 했다. 우선 인천경제자유구역의 활성화를 위해 TF팀을 구성해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수도권 규제 완화를 들고 나온 것은 그의 핵심 공약이 됐다. 아직 임기를 마친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결국 공약(空約)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실 수도권 규제는 진작부터 재고해야 할 문제였다. 수도권 발전이 곧 비수도권의 투자를 빼앗아간다는 폐쇄국가의 허무맹랑한 논리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이미 수도권 집중문제로 고민하던 영국·프랑스·일본 등 선진국의 예를 봐도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고 있지 않은가. 이들 나라들이 일찌감치 수도권 규제를 폐지 또는 완화를 통해 세계 경제의 선두주자 경쟁을 벌이고 있는 판에 고작 10만㎢도 못되는 땅에 4천800만 인구가 밀집해 사는 나라에서 무슨 수도권이니, 지방이니 편을 가른단 말인가. 이 대통령이 퇴임후 진정 '경제대통령'으로 평가받길 원한다면 이 공약부터 지키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최근 인천지역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인천항과 인천공항 등 수도권에 위치한 항만과 공항 자유무역지역에서도 일반제조 공장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개정이 추진된다는 소식이다. 마음 놓고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해서 국제경쟁력을 높이겠다고 지정한 인천의 자유무역지역 449만8천㎡에서조차도 단순포장이나 운송 보관만이 허용되고 있다니 말이 되는가. 현장에서 제조, 조립해서 곧바로 공항과 항만을 통해 상품을 수출해야만 수출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마당에 이마저도 봉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수도권 규제로 인한 허울뿐인 자유무역지역이 된 셈이다.현실이 이렇거늘 언제까지 수도권 규제만 고집하는 구시대적 사고자들에게 놀아날 것인가. 국가간에 FTA가 속속 체결되는 요즘은 누가 뭐라 해도 세계경제권은 한마당이 됐다. 세계경제의 흐름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국제 경쟁력에서 늘 뒤처지게 마련이다. 위정자라면 때론 비판받더라도 고집스럽게 해야 할 일이 있다. 국민과의 약속 이행도 그 중 하나다. 새삼 사목지신(徙木之信·위정자는 백성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이란 고사성어가 떠오른 시점이다.

2011-08-09 김은환

자원봉사

재해복구 자원봉사활동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기업·사회단체·봉사단체에서 조직적으로, 또는 개인이 각종 정보망을 통해 참여할 곳을 정해 구슬땀을 흘린다. 노력 봉사는 기본이며 기능적 봉사가 눈에 띄게 활발해지는 등 다양화하고 있다. 국민들의 높아진 시민의식이 보인다. 반면 재해에 대비하는 수준은 아직도 후진국형이다. 폭우시 가장 우려되는 산사태는 세계적인 추세로 홍콩·대만·일본 등 인근 나라의 예만 보아도 대비 정도를 알 수 있다.방재에 만전을 기한다 해도 피해지역을 다 막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토부·기상청·자치단체 등의 통합시스템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우리의 경우 인재의 범위가 넓은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기후변화로 위험적인 요소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대비는 땜방식 복구다. 과학적 체계적인 복구시스템을 말하고 있지만, 단기간 퍼붓는 비의 양이 매년 기록을 경신하며 산기슭 마을과 저지대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복구 시스템이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면서 피해가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사업도 예산도 선택과 집중의 실패다. 그 빈자리를 자원봉사자가 메우며 버티고 있다.우리의 자원봉사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예는 2007년 12월 7일 태안 해상에서 터진 미증유(未曾有)의 기름유출사건이다.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의 이름을 따 '삼성-허베이스피릿호 원유 유출 사고'로도 불리며, 유출된 원유도 엄청나 1만2천547㎘에 이른다. 1997년 이후 10년 동안 발생한 3천915건의 사고로 유출된 원유(1만234㎘)를 앞지른다는 통계이고 보면 그 양을 짐작하게 된다. 범위도 상상을 초월해 인근 해안지역을 넘어 진도·해남에 이어 제주 추자도 해안까지 퍼져 양식업과 해수욕장·어장·양식시설 등 바다와 관련된 모든 산업이 망가졌다.태안 등 6개 시·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후 1차 해상방제는 2008년 1월8일, 도시지역 해안방제는 같은해 10월10일 마무리 됐다는 보고가 있다. 이 또한 인재로 10년 또는 30년이 될지 기약하기 힘든 방제를 초 단기간내에 일단 끝내고 폐허가 된 해상산업이 활기를 되찾게 한 일등 공신은 자원봉사였다. 사고 발생 한달 만에 매서운 바닷바람에도 서해안으로 향한 자원봉사자의 수가 50만명을 넘었다. 연 참여인력은 213만2천322명이고, 이중 순수 자원봉사자가 122만6천730명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기름덩이를 제거하는 현장에 참여치 못한 많은 국민들은 성금으로 대신했다. 태안기름유출사건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진화한 자원봉사활동의 동력이 된 이례적인 반전 드라마를 연출한 사례다.자원봉사자가 고통받는 이웃에게 힘이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헌신적이며 마음이 따뜻하다. 훼손된 국토를 살리고, 생업을 잃은 지역민에게 삶의 터전을 만들어 줘야 하는 정부와 사건 책임자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이 이들에게는 있다. 매년 되풀이 되는 수해 등 재난사고로 지칠만도 하지만, 재난현장에는 늘 이들이 있으며, 새로운 얼굴들도 매년 등장한다. 자원봉사가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이다. 기쁨은 나누면 두배가 되고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다. 고통이 기쁨으로 바뀌면 재기의 힘은 몇배가 된다. 힘을 실어 주는데 일조하는 것도 자원봉사다.IT 강국인 우리의 자원봉사활동은 업그레이드중이다. 소셜네트워크(SNS)가 그 중심에 있다. 평소 관심있던 민간단체(NGO)에 등록해 놓고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적극적인 참여자가 늘고 있다. 개인의 봉사활동 접근성을 쉽게 해주기도 하지만 위험지역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 전파하기도 한다. 정보의 폭이 넓어지면서 걱정스러운 것은 대비에 항상 늦는 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봉사에 대한 회의다. 자원봉사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것은 재해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희생 뒤에는 희망이 보여야 한다. 재해로 인한 피해가 줄어들지 않으면 이웃에 희망과 힘을 주는 자원봉사의 열정도 식을 수도 있음이다. 정부에 달려 있다.

2011-08-02 조용완

사정(司正) 당위성은 큰데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사건이 터진 지 6개월이 지났으나 마무리는커녕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되었으니 말이다. '카더라'식 루머가 항간에 떠도는 와중에 국정조사 증인 채택을 둘러싸고 청와대는 물론 과거권력과 미래권력 핵심실세들의 명단까지 들먹이는 탓이다.피해규모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데다 범죄연루자들이 금융감독원, 국세청, 감사원, 법조계, 청와대, 언론인, 국회의원 등 전방위적이어서 충격이 더했다. 감독기관이 눈감아주고 정치권이 뒤를 봐주었으니 은행예금을 통째로 가로채는 것쯤은 '땅 짚고 헤엄치기'격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부산 자갈치 아줌마들만 날벼락을 맞았다.한국에는 3대 불가사의한 조직이 있다. 작금 여론의 표적대상으로 부상한 해병대 예비역모임인 해병대전우회와 호남향우회, 그리고 고려대교우회 등이다. 이 조직들의 연(緣)줄이 유난히 굵은(?) 탓인데 주목할 것은 대한민국이 '연의 사회'란 사실이다. 탯줄이 혈연사회를 지탱해주는 근간이듯이 고향, 출신학교, 특수집단 등은 사회적 연결고리이자 입신출세의 든든한 밧줄이며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아무리 생면부지의 인사라도 서너 사람만 거치면 그 사람의 족보까지 캘 수 있는 곳이 한국이다. 부패커넥션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이다. 부산저축은행 대주주 및 경영진은 지연, 학연 등을 이용해서 서민예금자들을 등친 것으로 확인되었다.부패는 정보의 독점과 왜곡, 은폐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불식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용인할 수도 없다. 뇌물을 매개로 한 부패와 시장경제 및 자원배분은 역(逆)의 상관관계에 있어 독과점과 부(富)의 편재, 고비용, 기업가정신 약화, 외국자본 유입저해 등 국가경쟁력을 훼손할 뿐 아니라 국제무역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부정부패는 전 세계 기업활동비를 10%가량 증가시키며 개발도상국 조달계약 규모의 25%에 상당하는 비용을 추가로 발생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입증한다.부패인식지수가 세계 최고인 핀란드에서는 공적(公的) 정보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을 대대적으로 허용해서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한 비리소지를 원천 차단했으며 싱가포르가 부패에 대한 무관용(zero tolerance)정책을 일관해서 세계유수의 '청정국' 브랜드를 확보한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최근 들어 영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강도 높은 뇌물규제법(Bribery Act)을 실시중이며 중국도 부패 방지에 공을 들이고 있다. 부패척결 없이는 선진국 진입이 불가능한 탓이다.작금 정부는 공정사회 운운하며 부패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인상이다. 이 정부는 권력형 비리, 공직자비리, 친인척비리, 토착비리 등을 척결하겠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언했으나 가시적 성과는커녕 국민들의 상실감만 증폭되는 때문이다. 내년 선거의 향배마저 가늠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여당 내에서조차 반(反)부패 목소리들이 점차 커지는 실정이다.정부가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시위를 계기로 사학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한 터에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대기업들의 변칙 MRO(소모성물품 구매대행) 자급행위의 근절을 공언했다. 또한 지도층을 중심으로 한 병역비리를 점검하고 탈세자에 대한 조사를 거론했다. 부유층의 재산 해외도피 조사와 근로자 임금체불 및 불공정한 임금문제까지 바로잡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민정수석비서관 등 핵심 사정라인에 대한 교체작업을 완료한 상황이다.미국, EU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계기로 국제적인 투명성 제고압력은 설상가상이다. 그러나 집권 하반기의 사정(司正)작업이 성공을 거둔 전례(前例)가 없어 기대는 금물이다. 기업친화형 정부의 태생적 한계도 기대치를 낮추는 요인이다. 조기 레임덕 또한 걸림돌이어서 자칫 '무늬만 사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너서클 내의 유력한 범죄혐의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구태의연한 '유전무죄'식 사정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어 보인다. 어떤 식으로 사정할지 지켜볼 일이다.

2011-07-26 이한구

창업계보(系譜), 지역경제 일으키는 힘이다

창업은 지역경제의 꽃이다. 특히 양질(良質)의 창업이 많을수록 지역경제가 얻는 효과는 더욱 커진다. 기술 역량이 높은 우량 벤처기업의 창업은 고용효과 뿐만 아니라, 지역산업구조를 개편하여 혁신지역으로 변모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본래 벤처기업은 기술로 승부하는 만큼 고용효과가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최근 중소기업청의 발표에 의하면, 벤처기업의 5년 평균 고용증가율은 12.65%로 대기업(2.26%)과 일반중소기업(4.99%)의 평균고용증가율보다 최소 2.5배에서 최대 5배에 달할 정도라고 한다. 우량 벤처창업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우는 중요한 통계로 생각된다.한국경제는 모든 행정단위별로 창업 활성화에 주력했지만, 아직 정확한 해답을 얻지는 못했다. 감춰진 해법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창업 활성화의 숨겨진 비결은 '창업계보(系譜)'이다. 창업계보란 지역기업에 고용되었던 사람들에 의해 그 지역에서 창업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창업계보를 통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의 실리콘밸리다.1938년 휴렛패커드(HP) 창업에서 시작된 실리콘밸리가 정작 세인의 관심을 끈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57년 '페어차일드 반도체' 설립에서 부터다. 이 기업은 '쇼클리 반도체'에서 근무하던 8인이 창업한 회사였는데, 이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실리콘밸리가 반도체 창업의 계보를 이루는 모태가 된다. 페어차일드 설립 6년 후 고든 무어(Moore)와 로버트 노이스(Noyce)에 의해 '인텔(Intel)' 기업이 탄생하는 등, 페어차일드는 36개의 창업기업을 낳은 것으로 알려진다. 심지어 대표적 벤처캐피털 기업인 '클라이너 & 퍼킨스'도 그 계보에 속한다. 실리콘밸리에서 '클라이너 & 퍼킨스'가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벤처캐피털 업종의 모태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성공적인 창업계보 구축 과정이 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첫째, 연고(緣故)가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창업계보를 이루려면 연고주의를 건전하게 잘 살리는 것에 해답이 있다. 연고주의를 무조건 전근대적 방식으로 취급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지역경제를 살리는 합리적 해법으로 보아야 한다. 창업 초기에는 인력, 자본 및 판로 측면에서 많은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창업자가 익숙한 곳 그리고 인맥이 살아있는 지역에서 기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무래도 유리하다. 특히 연고의 불합리성을 극복하려면, 학연과 지연을 넘어서는 직장연(職場緣)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나타나듯이, 근무지에서 형성된 연고가 주도적으로 창업계보를 형성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렇게 직장연으로 창업계보가 만들어지는 것은 전통적 연고주의와는 구별되는 합리적 연고주의를 한국경제에 주입하는 의미도 갖는다.둘째, 창업계보는 철저히 기술 분화를 따라 이뤄져야 한다. 실리콘밸리 사례에서 볼 때 완전히 동일한 기업을 증식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기술적 분화를 따라 부화된, 즉 연관성은 있지만 새로운 기술 돌파구를 열어주는 창업이 살아나야 한다. 예를 들어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기술적으로 통합 서킷(integrated circuit)이라는 틈새를 공략했는데, 이는 모태기업인 '쇼클리 반도체'가 트랜지스터 분야에 주력한 것과 차별화된다. 또한 페어차일드의 아들(子)격인 '인텔'은 차세대 기술 분화를 포착하고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볼 때, 창업계보는 동종 업체들 사이의 단순 경쟁을 늘이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분화를 따라 새로운 성장 경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만 하는 것이다.대학에서 젊은 청년들에게 창업가의 꿈을 권면하지만, 기업가의 삶이 얼마나 힘든가를 생각하면 큰 소리로 강조하기도 어렵다. 그들이 외로운 빈 들판에서 시작하기보다는 연고지역에서 성숙한 사업 모델을 도출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귀중한 창업 지원조건은 없을 것이다.

2011-07-19 손동원

백령도 잔점박이 물범 이야기

백령도 잔점박이 물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백령도 물범은 1982년 천연 기념물(331호)로 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물범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2005년 멸종위기야생동물로 지정된 것이 한 계기였는데, 이후 물범의 생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고 다큐 영화로 제작되거나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물범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의 마스코트로 선정되어 더욱 집중적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백령도 잔점박이 물범은 여러모로 특이한 해양생물이다. 고래를 제외하면 서해안 유일의 해양 포유류로서, 유전자 검사 결과 이들은 북태평양 점박이 물범과 동일한 개체이지만 고유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오랜 세월동안 황해의 해역 생태계에 적응하여 진화한 집단으로 파악되고 있어 그 정착과정도 흥미로운 연구과제이다.잔점박이 물범은 둥근 얼굴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코를 벌름거리는 모습은 천진난만한 아이를 연상케 한다. 바닷물에서 자맥질할 때면 날렵하지만 바위섬에 올라 통통한 몸통을 땅에 대고 기어다니는 모습도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 물범의 '몸매'는 육상에서 진화하여 바다로 되돌아간 해양 포유류들이 바다에 적응한 결과이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체온을 유지하고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 유선형의 둥근 몸으로 바뀌었으며, 오래 잠수하기 위해서 귀와 콧구멍은 여닫을 수 있는 구조로 진화하였다 한다.백령도 물범의 이동 경로는 한국과 중국 북한 해역에 걸쳐 있다.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물범들은 3월부터 12월까지 백령도 근해에서 보낸 다음 북한 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중국 발해만까지 이동하여 얼음바다 위에서 새끼를 낳고 겨울을 보낸 다음 이듬해 3월경 다시 북한 해역을 따라 남하하여 한해를 보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물범을 '백령도 물범'이라 부르는 것은 한해의 대부분을 백령도 일대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물범류들은 북위 45도 이북의 북극권에서만 서식한다. 물범이 북극권에 서식하는 이유는 얼음 위에서 새끼를 낳는 해양포유류이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백령도 물범은 38도 이남에서 서식하고 있다.그런데 한때 8천마리를 헤아리던 이 점박이 물범의 개체수는 현재 1천마리 이하로 급감하여 백령도에서 확인되는 개체수는 200~300 마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산업화에 따른 서식환경의 파괴가 주된 요인이다. 중국 측의 불법 포획과 백령도 물범바위 근해의 어로활동도 개체수 감소의 원인이다. 중국도 이 물범을 국가중점보호동물로 지정하고 우리도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하였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집단 서식지가 어민들의 주된 조업 구역이기 때문이다. 물범의 서식지 보호는 어민들의 어로활동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큰 과제이다. 생태관광으로 어민들 어획 손실을 보상하는 방안이 하나의 대안일 수 있겠다. 그래서 물범의 효과적인 보호를 위해서는 인천시와 해양수산부, 문화재청이 머리를 맞대어야 하며, 중국과 북한과도 보조를 같이해야만 이룰 수 있다.잔점박이 물범이 지금 우리에게 긴급 조난신호를 보내고 있다. 불법 포획과 서식지 환경 악화로 멸종의 위기에 몰린 물범들은 그냥 두고 마스코트만 보고 즐거워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시안 게임 개최 이전에 물범 보호를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기회에 아시아의 해양 포유류 보존을 위한 여러나라의 지혜와 경험을 모으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면 인천아시안게임이 한결 품격 높은 행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백령도 잔점박이 물범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비단 환경보호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 이래 '동아시아의 화약고'로 다시 긴장의 파고가 높아진 서해의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2011-07-12 김창수

송영길 인천시장과 1년

시간은 '금'이라고 했던가.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송영길 인천시장이 새로운 변화와 희망을 얘기하며 힘차게 출발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차에 접어들었다. 시간의 수레바퀴는 참 빠르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시간은 금이라고 했나 보다.그렇다면 임기 4년중 1년을 넘긴 송 시장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젊음과 변화의 상징이라는 그가 제대로 시정을 장악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단 말인가. 점수로 따지자면 몇점이나 받고 있을까. 최근 취임 1주년을 맞아 각 언론 매체들이 내린 평가를 종합해 보면 그리 높은 점수가 매겨지질 않는다. 칭찬보다는 질책이 많아 보인다. 어떤 경우는 혹평에 가깝다. 공동정부 구성에 참여할 만큼 후원자적 위치에 있던 시민단체들조차도 좋은 평을 내놓질 않는 것을 보면 언론의 평가가 그렇게 무리한 것만은 아닌 듯싶다.송 시장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억울하겠다. 본인이 1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중요한 진전을 이룬 소중한 한 해라고 생각하는데, 왜 이리 혹평만 내린단 말인가. 빚더미인 인천시정을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왔고, 송도에 삼성바이오까지 유치하는 등 할만큼 했는데 평점이하라니 '말이 됩니까'하고, 내심 서운할 법도 하다. 그러나 시장에 대한 평가는 그를 뽑아준 시민들 몫이니, 자신이나 측근이 나서서 대놓고 평을 내릴 수도 없지 않은가. 차라리 그 평을 겸허하게 듣고 옷소매를 다시 여밀 수밖에….그럼 송 시장이 왜 이런 평가를 받고 있단 말인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말이다. 정답은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행정에 있다. 구호나 말만 무성했지, 뭐하나 시원하게 매듭 된 게 없는 1년이었다는 것이 평가절하의 핵심이다. 거창한 구호로 출발한 '경제수도 인천건설'도 그렇고, 인천의 빚이 7조원이니, 8조원이니, 10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등 '빚타령'만 했지, 정작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행착오도 한 몫 했다. 2014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건설을 두고 짓네 마네 하고 허송세월 하더니, 도화지구나 루원시티 등 인천의 대표적인 재개발 사업도 혼선을 거듭했다. 이를 두고선 '우유부단(優柔不斷) 행정'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일각에선 안상수 전 시장의 개발위주의 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올 땐 좀 안타깝기까지 하다. 가장 점수를 많이 깎아 먹은 것은 역시 측근 앉히기 인사다. '친분 인사' 수십명을 곳곳에 앉힌 것을 두고 MB의 '고소영 내각'이나 송 시장의 '연나라(연세대·전라도) 인사'나 뭐가 다르냐는 따가운 시선이다. 한 시민단체가 지난 4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송 시장이 지난 1년동안 한 인사중 정당·학연·지연 등을 통한 낙하산 인사가 무려 73명에 달한다고 한다. 본인도 이렇게 많았나 하고 깜짝 놀랐을 법하다. 역대에 이런 법은 없었다. 최소한의 측근은 몰라도 인천시의 각 산하기관 곳곳에 배치한 것으로 드러났으니, 어떤 쓴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문제는 시민사회와 송 시장 측근과의 인식 차이가 너무 크다는데 있다. 측근 챙기기 인사라는 지적에 대해 실력있는 사람을 배치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참 어이가 없는 인식 차이다. 언론이나 시민단체가 지적한 것들이 송 시장을 깎아내리기 위한 비판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정치인이 큰 일을 하려거든 늘 열린 귀를 가져야 하고, 한순간의 치욕도 참아내는 인내가 필요하다. 지금 나오는 비판들이 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얼토당토 않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이 시점에서 송 시장이 보여 줘야 할 것은 '결단의 모습'이다. 측근들과의 선긋기 결단, 비판자들과의 소통의 결단, 현안을 참모들에게만 미루지 말고 직접 챙기는 결단 등등. 확실한 '결단의 모습'이 요구되는 취임 2년차다.우린 늘 초심을 얘기한다. 초심불망(初心不忘), 물망초발심(勿忘初發心)이라고 했던가. 말 그대로 처음 마음먹은 것을 잊지 말고, 그 마음가짐을 유지하자는 뜻이다. 송 시장이 지금 가슴에 담아야 할 가장 절실한 말일지 모른다. 매일 매일 초심을 잊지 않는 일이야말로 송 시장이 구상하는 '큰 그림', '큰 정치'의 시작이 아닐까.

2011-07-05 김은환

행정대집행

[경인일보=]명산에는 등산객이 몰리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먹거리촌이 형성된다. 많은 곳이 무허가 불법영업으로, 매년 고발과 벌칙금, 전과자의 악순환을 거치면서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곳이 생활전선이며, 적게는 수년 많게는 수십년 장사를 해 온 터전이기 때문이다. 떠나서는 그만큼의 생활을 영위하기도, 자신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지 모른다. 자연보전구역이나 상수도보호구역 등 영업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곳에서의 영업이 이뤄진 이유지만, 당시 행정당국이 이들의 행위를 인정적인 면에서 눈감아 준 것도 한몫 했을 터다. 기간이 길어지면서 수가 늘게 됐고 개중(個中)에는 돈벌이가 커져 내놓기 섭섭하고 못마땅해 단속 등 행정기관의 법적행위에 항의하며, 불법영업을 이어가는 기업형 식당도 있을 수 있다. 시작은 몇 안 되는, 구멍가게 규모여서 인정에 끌린 면이 있었다면 끝은 한바탕 실력행사로 아수라장이 되곤 한다.광교산 무허가 보리밥집이 철퇴를 맞았다. 인정법에 끌리고 마찰을 우려해 경고만이 연례행사였던 전례에서 탈피, 이번에는 포클레인 등 중장비를 동원해 대대적인 원상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상수원보호와 환경개선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명제를 앞세워 수원시가 철거를 예고했고, 광교상우회에서 받아들여 자진철거키로 하면서 여타 지역에서 봐 왔던 충돌은 다행히 발생하지 않았다.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아픔은 이들의 호소에서 느낄 수 있다. 토박이들은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으로 인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업주들이 자진해 철거에 나선 만큼 시에서 상인들과 공존할 수 있는 좋은 해결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당부의 말로 아쉬움을 달랜다.광교산은 주말이면 수원뿐 아니라 인근 수지와 의왕 등 수도권 일대의 등산객이 인산인해를 이뤄 전진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을 정도로 명산이다. 자연스럽게 등산객의 허기를 채울, 땀을 씻고 잠시 쉬어 갈 공간인 먹거리촌, 보리밥집이 생겼고 유명세를 타면서 모임을 하고 맛집을 찾는 시민들이 몰리는 명소가 됐다. 시 살림에도 보탬이 돼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특수성이 아니라면 양성화해 상권을 살리는 방향으로 조치가 이뤄졌어야 하는 곳이 광교산 밥집이다. 따라서 반대급부가 분명히 있다. 광교산과 보리밥집은 동의어처럼 연관지어져 있다. 기우일 수도 있겠으나, 즐겨 찾던 맛집이 사라졌다는 것은, 주말이면 등산객을 싣고 오던 관광차는 물론이요 수원시민들의 발길도 뜸해질 수 있다는, 그래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가정이 가능하다.수대에 걸쳐 지켜온 주민들이 1971년 6월 개발제한구역 및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부터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아왔다. 무허가 영업은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한 데 대한 보상이라는 인식이 크게 자리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상수원구역에서의 무허가 음식점 영업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 맞다. 광교산 보리밥집은 무허가 불법이 허용됐다는 데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며, 용인이 돼 왔다는 점에서 철거와 함께 이들의 생계를 위한 대책도 나왔어야 하지 않았을까. 더욱이 다툼이 10여년을 끌어왔고, 상인들과 광교산을 찾는 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기 위해 TF팀까지 가동하고 있으면서도 철거 전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느낌이 강하다.시의 행정대집행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또한 관선이든 민선이든 몇 대를 걸쳐 법과 원칙이 작동하지 못한 기간만큼 그곳에서 삶을 영위해 온 주민들의 생활은 고착화돼 있다고 봐야 한다. 새로운 세계를 적응하기 위해서는 기간이 필요하며, 지금부터라도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당사자인 상인과 지역 주민, 산과 보리밥을 연상짓고 늘 그곳을 찾던 시민 등…, 행정당국만이 아닌 고른 의견을 청취하는 것도 환경개선과 지역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앞으로는 첫 단추를 어긋나게 끼우지 않도록 매뉴얼을 만드는 일에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잘못이 되풀이되면 행정당국도 시민도 모두가 고단해진다.

2011-06-28 조용완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재발걱정 없나

[경인일보=]저축은행 부실이 남긴 상처는 매우 깊어 보인다. 사정(司正)의 최후 보루인 감사원의 고위 인사와 금융감독원 수장까지 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탓이다. 경찰이 절도행위를 거드는 모양이었으니 힘없고 빽(?)없는 서민예금자들만 날벼락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부실은행 오너들의 파렴치 범죄로 인한 손실보전에 거금(巨金)이 소진됐는데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자금이 투입될지 가늠되지 않는다. 캐면 캘수록 고구마줄기처럼 부실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니 말이다.앞으로가 더 문제다. 또 한 차례의 구조조정 쓰나미가 임박한 때문이다. 저축은행들의 결산마감일이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왔으니 말이다. 부동산경기 침체가 계속된 데다 올해는 부실문제까지 불거져 저축은행들의 올해 경영실적은 예년보다 나쁠 전망이다. "하반기에 저축은행에 대한 추가 영업정지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그렇다"는 답변이 시사하는 바 크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대출 비중이 높고 재무구조가 열악한 자산 1조원 이상의 대형 3곳과 5천억원 이상의 중형 1곳이 살생부에 오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미 2차 수술준비를 끝내고 작전개시 명령만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대책 발표 시기도 머지않은 듯하다. 저축은행의 영업실적이 공표되는 8월 이전에 작전을 개시할 가능성이 크다.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에 대한 우려로 저축은행들은 벌써부터 크게 긴장하고 있다. 전국의 수많은 소액예금자들도 불안해 하기는 마찬가지다. 주목되는 것은 그간의 준비상황이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로 구성된 저축은행 구조조정태스크포스(TF)는 저축은행에 한해 다음달 1일부터 실시예정이었던 국제회계기준(IFRS)의 적용시한을 5년간 연장했다. IFRS를 당장 적용할 경우 대손충당금이 일시에 불어나 부실이 더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89개 저축은행의 468개 부동산 PF에 대한 전수조사를 완료, 부실채권을 선별해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인수중이며 부실 PF대출 처리기간도 종전의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해 주었다. 지난해 7월 캠코에 부실채권을 넘긴 61개 은행 중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 미만인 17곳에 대해서는 6개월 유예도 허용했다. 부적격 대주주들에 대한 심사작업도 이달 중에 완료할 계획이다.후순위 채권 피해자 구제방안을 강구하고 대부업체가 보유한 고객 신용정보를 저축은행이 공유케 해서 경영개선을 유도할 방침이다. 그동안 제도권 금융기관들은 대부업체의 고객신용정보를 확인할 수 없어 대출부실이 빈발했던 것이다. 여신전문 출장소 설립 요건을 대폭 간소화하는 한편 뱅크런에 대비해 저축은행들에 최대한의 실탄(현금) 확보를 강요했다. 덕분에 일반예탁금은 지난 1월의 2조3천100억원에서 5월 말에는 3조1천500억원으로 증가했다. 저축은행 수신고가 작년 말 77조원에서 73조원으로 축소되는 등 안전한 곳으로의 자금이동도 고무적이다. 김석동 위원장은 연착륙에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다.관건은 구조조정재원의 확보다. 지난 3월 예금자보호법을 개정해서 15조원의 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을 마련, 이 중 4조8천억원은 8개 부실저축은행의 예금가지급 등에 소진했다. 매각작업에 추가로 2~3조원이 더 지출될 예정이어서 하반기 구조조정에 투입할 재원은 6~8조원 가량이다. 감독당국은 이 자금만으로 최대 8~9곳까지 구조조정할 수 있다며 공적자금 조성설을 일축했다.그러나 이 정도만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려 3조원 이상의 아이들 머니(idle money)가 저축은행 경영을 압박하는 터에 '눈가림 감사' 제재를 의식한 회계사들의 엄격한 회계감사까지 예고돼 부실규모는 정부 예상보다 더 커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2차 충격의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했다. 서민예금자들이 또다시 낭패하지 않도록 보다 신중한 사전준비를 당부한다.

2011-06-21 이한구

중소기업 육성의 진정한 의미

[경인일보=]21세기 들면서 독일경제의 성장세가 만만치 않다. 지난 90년대만 해도 독일 장인제도의 종언이라는 표현이 설득력을 가졌던 적이 있다. 특히 독일의 전통적인 강점이었던 전자 및 광학 분야에서조차 일본에 밀려나면서 독일경제시스템에 대한 의문이 강화되었던 것이다. 그랬던 독일경제는 다시 부활해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중소 부품·소재 업체들의 성장세가 특히 두드러진다. 최근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높은 중소기업군(群)을 지칭하는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을 비롯해서 다양한 글로벌 강소(强小)기업 리스트에 많은 독일기업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이러한 독일의 성장세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중소기업 정책이다. 독일은 산업육성 측면에서는 여러 유럽 국가들과 연합하여 움직이지만, 중소기업 정책에서만은 독립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독일이 선택한 중소기업 정책의 핵심은 공정경쟁의 조성이다. 여기서 공정경쟁이란 기업간 정당하고 치열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여 진정으로 실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성공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구체적으로 첫째, 효율적인 경쟁자들이 활발히 경쟁하는 여건조성. 둘째, 혁신을 추진하는 중소기업을 우대하는 환경조성으로 요약된다.한국경제에서 중소기업 정책이라고 하면 시장에서 실패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을 돕는 후생적 의미가 강한 편이다. 그래서 한계에 도달한 중소기업에 세제혜택을 주거나 자금을 대출해주는 것 등이 전형적인 수단이었다. 그런데 독일이 보여주었듯이 성공하는 중소기업 정책은 한계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아니다. 독일은 공정경쟁 정책을 통해, 역량 있는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고 또 한계기업들은 퇴출시키면서 경쟁력을 회복했다. 독일의 최근 성공은 공정한 경쟁이야말로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최선책임을 다시 일깨워준 것이다.특히 첨단·고부가가치화를 소망하는 인천경제에 독일의 중소기업 정책은 소중한 교훈을 준다. 첫째, 중소기업 정책은 경쟁력을 키워주는 것이라는 교훈이다. 특히 산업근대화의 기조였던 제조집적지를 탈피하고 고부가가치화로 전환하려는 인천경제에는 의미가 큰 교훈이다. 인천경제에 필요한 첨단지식 중소기업군을 키우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혁신역량을 갖춘 중소기업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실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키우는 정책 인센티브가 제대로 작동할 때, 인천경제는 글로벌 실력자들로 가득할 수 있을 것이다.둘째, 정책성과를 쉽게 평가하려는 욕구를 버려야 한다. 정책입안자의 입장에서는 정책성과를 쉽게 계량화하는 방책을 선호한다. 그래서 정책입안 시점에서부터 수혜 대상을 확정하고자 한다. 정책대상을 확정하는 좋은 정책이 바로 기업인증제도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벤처인증제도인데, '벤처기업'이라는 브랜드를 인증해 주고 그 기업들에 세제혜택 등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인증제도의 편리함은 벤처기업 인증 수(數)라는 계량적 지표에 의해 정책을 평가받는다는 점에 있다. 이 때문인지 기업인증은 점차 이노비즈(INNOBIZ·기술 혁신형 중소기업) 또한 사회적 기업과 같은 다양한 범위로 확대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중앙정부의 인증을 넘어서 지역별 인증제도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중앙정부의 기준에 미달되는 기업들을 지역에서 문턱을 더 낮추어서 인증을 주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 왜냐면 도덕적 해이가 더욱 심해져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설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인천경제의 자부심은 중소기업을 통한 산업화에 대한 공헌이었다. 그런데 인천의 새로운 소망은 산업화 시대의 단순 제조집적지에서 벗어나 첨단·고부가가치화에 성공한 중소기업들의 메카로서 도약하는 것이다. 이 소망을 이루는 비결은 실력 있는 기업을 키워주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을 질책하는 공정경쟁 조성뿐이라는 지혜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1-06-14 손동원

창조적 시민과 미래도시

[경인일보=]이상 도시에 대한 로망 혹은 도시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은 언제나 소중하다. 최근 도시문제와 폐단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지난 세기에 추구해 온 도시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전면적이고 입체적 비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장기계획이 부재한 계획은 결국 전략없는 전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나 국가가 장기 전략이 없거나 단지 메타포로만 제시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비현실적인 이상주의도 문제지만 유토피아적 비전에 입각하지 않는 단기 계획들이란 말 그대로 대중추수주의나 유행의 모방에 급급해 지속성을 갖기 어렵거나 공공재원의 낭비로 귀착될 가능이 높기 때문이다. 사회의 변화속도가 수십 년의 미래를 예측하는 장기적 구상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일 수 있다. 당파적 관점 때문에 의미있는 지난 정부나 타 정당의 정책이나 실험을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많다. 참여정부가 공들여 만든 '비전 2030'이 현 정부에서 참고하거나 인용하지 않는 것이 그 사례다.이상 도시의 꿈을 비현실적이라 할 수 있을까? 자동차 회사들은 모터 쇼에 출품되는 콘셉트 카(concept car)를 통해 회사가 지향하는 스타일과 기술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모터쇼에 제시되는 콘셉트 카는 당장 생산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미래형 모델이어서 상당수가 폐기되기도 하지만, 이상적 디자인과 기능을 매개로 자동차 회사는 소비자와 소통하며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미국 애리조나주 사막 한가운데 건설된 친환경 생태도시 '아르코 산티'는 사막위의 낙원으로 불리는 현존하는 유토피아 도시의 하나다. 생태건축학자인 파울로 솔레리가 설계한 아르코 산티 사람들은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하고 유기농법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며, 차없이 걸어다니는 환경친화적 유토피아다. 이 미국판 무릉도원의 콘셉트를 일반적인 현대도시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태적 가치의 극한을 실험해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아르코 산티는 현존하는 유토피아 도시라는 찬양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한국의 여러 도시가 모델로 삼고 있는 도시의 미래는 문화도시다. 한국의 경우 문화도시를 '문화 예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도시'로 생각하고 있으나, 이 개념이 제기된 유럽에서 문화도시는 도시의 공공적 인프라가 얼마나 인간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으며 또 독창적인가 하는 기준으로 선정된다. 즉 유럽에서 문화도시는 특정한 이벤트가 아닌 도시 정책과 행위 속에 얼마나 많은 인간주의가 담겨져 있는가가 평가의 기준이 되고 시민의 일상의 삶과 도시의 공간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가를 말해주는 척도였던 것이다. 문화도시의 핵심 가치가 인간주의의 구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의 인프라 중심으로 사고한 것은 유럽과 한국이 처한 환경적 차이에 기인한 것이다.최근 새로운 도시 패러다임으로 부상한 창조도시론의 전략은 도시가 가진 고유 자원과 가치를 재발견하고 생산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패러다임의 특징은 창조적 시민이야말로 미래도시를 구현할 자원이자 주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학습하는 도시'(learning city)가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학습도시는 도시인들이 능동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공유함으로써 도시의 미래를 담당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능동적 학습이 도시와 사회 전체로 확대 심화될 때, 도시가 변화에 적응하고 장애물을 극복하며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학습도시란 도시 내부의 곳곳에 오류를 점검하고 반성하는 시스템을 구비한 도시이기 때문이다.대표적 창조도시론자인 찰스 랜드리가 스스로 '반성하는 도시'로서의 학습도시가 창조도시보다 더욱 강력한 메타포(이상적 도시 비전)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2011-06-07 김창수

'정치쇼'라도 보고 싶다

[경인일보=]참으로 이게 나라인가. 부족사회인가. 곳곳이 제몫찾기 전쟁이다. 지금은 좀 한숨을 돌렸다지만, 정말 가관이다. 세종시로 온 나라를 들쑤셔놓더니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등장했다. 이어서 과학비즈니스벨트, LH(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 이전 문제로 나라가 사분오열됐다. 국익이나 나라는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지역이익뿐이다.시발은 동남권 신공항의 백지화다. 아직 신공항의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아 당장 건설하는 것은 국익에 반한다는 것이 정부의 결론이다. 어찌보면 뻔한 결론이었는지 모른다. 한 식구라던 영남권이 남북으로 갈려져 있는 상황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 올릴 수 있었겠는가. 예상대로 이 지역들은 난리가 났다. 삭발을 하고, 떼거지로 항의집회를 열었다. 국회의원들의 말투를 보면 여당의원인지, 야당의원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오히려 여당쪽 의원들의 목소리가 더 컸다. 정부는 내친 김에 과학벨트와 LH의 이전 문제까지 결론을 내버렸다. 때늦은 결론은 다분히 지역적 분배 성격이 강했다. 그런 만큼 그 파장도 컸다. 신공항때와 마찬가지로 단식 농성에 삭발 시위로 이어졌다. 도지사는 물론이고 국회의원까지 예외는 없었다.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도, 장관을 지낸 이도 가세했다. 국익에는 늘 뒷전이었던 국회의원들도 지역문제라면 열일을 제쳐놓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쟁을 조정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분열의 중심에 선 모양새다.정부도 참 한심했다. 어느 것 하나 명분있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설득력도 부족했다. 그냥 뻔한 술수가 지역민들에게 읽혔다. 결과가 훤히 보이는데 마냥 시간만 끌어온 꼴이다. 그러다 보니 해당 주민들 입장에선 얼마나 허탈하고 분노가 치밀었을까. 이해도 간다. 요즘 정부가 하는 일이 뭐하나 시원하게 해법을 제시하는 게 없지 않은가. 그렇다 치더라도 국익은 제쳐두고 오직 지역민에만 파고드는 영호남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좀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고, 얄밉기까지 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우린 왜 '이런 정치인들이 없을까'하고 내심 부러움이 앞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 정치인들의 행동은 그 지역에선 정작 '정치쇼'로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속이 훤히 보이는 '오버액션'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모양이다. 지키질 못할 약속을 남발하고, 생색내기에 급급하고, 일이 터지고 나면 앞장서서 걱정하는 체하는 일종의 쇼 말이다. 일이 벌어졌을땐 가만있다가 다 끝난 후에 난리를 펴고 있다는 눈총인 셈이다. 그렇다면 인천 국회의원들은 어떠한가. 인천은 요즘 어느 때보다도 굵직굵직한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누구 하나 몸을 던져 해결하려는 사람이 없다. 특히 중앙무대에서 힘을 보태야 할 인천 출신 국회의원들은 늘 뒷전이다. 아예 잠수를 탔다는 말이 옳을듯 싶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요즘 부쩍 지역구에서 얼굴을 내민다고는 하는데, 정작 지역현안에 대해선 꿀먹은 벙어리다. 겨우 한다는 것이 지역 언론의 기고를 통해 내는 목소리가 전부다(총선팸플릿용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인천은 2014 아시안게임이 지척인데, 아직 주경기장은 삽질도 못했다. 정부가 설계변경 승인을 이유없이 질질 끌다가 뒤늦게 승인했고, 정부의 예산 지원은 한 푼도 못받을 판이다. 또 인천만 건설과 수도권쓰레기매립지 매립기간 연장 등등. 중앙부처와 얽힌 현안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그 중심에 서서 현안을 조정하고, 중앙정부와 맞붙어서 예산을 따내야 할 우리의 선량(選良)들은 보이질 않는다. 인천시장이 야당 소속이라서 여당 의원들은 돌아가는 '꼴'만 보고 있단 말인가. 그럼 야당 의원들은 어디서 뭐하고 있는가. 참 답답한 노릇이다. 차라리 '정치쇼'라도 좋으니, '인천의 목소리'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줄 수는 없을까.

2011-05-31 김은환

국방개혁

[경인일보=]국방(國防)의 목표는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 전쟁을 방지하고 다른 나라의 도전을 억제하는 데 있다. 군사적인 발전과 전쟁규모의 대형화, 복잡한 국제관계로 인해 자국의 힘만으로는 방위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각 국이 상호공동방위와 집단방위체제를 유지하려는 이유다. 전쟁이 불가피하면 총력을 기울여 이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국방이다. 전제 조건은 당연히 자국의 경제력과 국방력이다. 나부터 실력을 갖추고 국제 세력을 쌓아야 튼실하고 안전보장을 위한 신뢰의 폭을 넓힐 수 있다.'국방개혁 기본계획 11-30'이 논란이다. 자주국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방개혁은 의존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도 크겠으나, 우리가 살고 있는 영역을 지켜낸다는 자발적 선언의 자긍심이 더 크게 다가와야 한다. 의욕과 자신감, 즉 사기가 없으면 그 군대는 전쟁에서 반은 지고 들어가게 된다. 잘된 개혁은 천안함·연평도 사건 대응과정에서 드러난 취약점을 보완, 불안해 하는 주민과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다. 20년간 작전지휘와 행정이 분리 운영됨에 따른 비효율성도 개선하게 되며, 오는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시에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그런데 개혁의 주체인 육·해·공군이 사분오열의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갈등요소가 해소되지 못하면 개혁은 의미가 반감되며 국방은 장담할 수 없다.육군이 일방통행식으로 만든 개혁안에 해·공군이 발끈한 후 사태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발단은 각 군의 의견수렴과 조절 등의 절차를 생략한 데서 비롯됐다. 개혁안 검토단계에서도 그렇고, 발표를 앞두고도 3군 합동참모회의 또는 군무회의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문가 토론회 역시 마찬가지다. 개혁진행과정에서 나타난 일련의 행태를 보면 특정 군을 위한 개혁이라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지휘체계도 늘어나 복잡해지고 해·공군의 전문성은 고려대상에서 제외됐다는, 비전문가적 개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강군계획의 핵심인 상부구조 개편을 통한 군의 합동성 강화에 차질을 빚으면서 오히려 국방력 강화가 멀어지는 듯한 느낌마저 받게 하고 있다.국방은 체제의 개혁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다. 흔히 말하는 군기가 바로서야 한다. 비리가 군 내부에서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현실에서의 국방은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 한참 지난 예전의 일은 차치하고서라도 최근 벌어진 사건만 살펴도 국방은 요원해 보인다. '포(砲) 쏘니 두동강' 기사가 떴다. 국력이 한참 떨어지는 저개발국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의 일이다. 무자격 업자가 만든 불량 대공포가 수입 규격품으로 둔갑, 훈련도중 두 동강이 났다. 청와대를 포함 수도권 상공을 지키는 35㎜ 대공포도 불량품으로 균열 등이 발생해 제 기능을 발휘못한, 충격적인 군납비리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핵심 장교와 군무원들이 민간 건설업자의 각종 청탁에 맥없이 무너지고, 더욱이 해군의 최신예 214급(1천800t) 잠수함 3척 모두에 운항중 고정 나사가 풀리거나 절단되기도 했다니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고 있다. 이러한 군 기강으로 국방을 수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국방개혁은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이루지 못하면 평화나 안위, 자유는 외세의 힘에 의해 좌우된다. 군사력을 키우는 것은 영역을 지키며 행복한 삶을 구현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다. 국방개혁에 의해 완성돼야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가 않다. 국방개혁 차질의 원인이 각 군의 이기(利己)로 인한 불협화음 때문으로 비치고, 군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 일부가 작전을 수행할 수 없는 고철덩어리로 보이며, 뇌물 수수 등 비리로 군 내부가 얼룩져 있다. 국민들이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적을 알고 있는 것과 대비하는 것은 다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안 것만으로 백전불태(百戰不殆)를 이룰 수 없다. 체제와 장비로, 마음자세로 대비하고 꾸준히 담금질해야 한다. 강군으로 가는 길이다.

2011-05-24 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