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나의 삶, '만년 하위' 국가의 '평균점 이하'

인천·경기주민 삶의 만족도 전국 평균치↓이번에 선출된 광역·기초단체장등 787명이들이 할 일은 OECD 삶의 질 조사에서고생스럽게 살아가는 주민들 살피는 것우리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가늠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지표로 '국민 삶의 질'이 있다. 경제성장이 삶의 질과 직결되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됨에 따라 시민참여, 주관적 웰빙 등 비물질 부문을 포함시켜 국내총생산(GDP) 위주의 지표를 보완했다. 국제적 지표로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가 대표적이다. 각 국가의 소득과 교육수준, 실업, 환경, 건강, 종교, 평균수명, 문자해독률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는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지표다. 소득, 직업, 공동체, 교육, 환경, 시민참여, 건강, 삶의 만족, 안전, 일과 생활의 균형 등으로 국가별 삶의 질을 평가한다. 이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만년 하위다. 36개국 가운데 2013년 27위, 2014년 25위, 2015년 27위에 머물렀다. 2개 국가가 늘어난 2016년도에도 28위, 지난해 역시 29위로 점점 더 주저앉고 있다.히말라야 고산지대의 작은 나라 부탄에서도 삶의 질 지수가 발표된다. '국민행복지수'다. 1인당 국민소득은 겨우 3천 달러에 불과하지만 국민의 97%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는, 세계 제1의 행복국가다. 유엔 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 해법 네트워크(SDSN)'가 부탄의 이 행복지수에서 착안해 2012년부터 해마다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를 발표하고 있다. 2018년 최신 보고서에선 핀란드가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2015년 155개 국가 중 47위, 2016년 58위, 2017년 56위였고, 2018년엔 156개 국가 중 57위였다. 이 SDSN 지표를 기준으로 할 경우 부탄의 2015∼2017년 평균 순위가 97위라고 하니 뜻밖이다.북미정상회담과 지방선거에 관심이 집중되는 동안 우리 국민의 삶의 질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달 초 발표한 '국민 삶의 질 여론조사'다. 가족, 건강과 의료, 자녀양육과 교육, 주거환경, 일자리와 소득, 사회보장과 복지, 자연환경과 재난안전, 문화와 여가 등 우리 국민들의 삶의 질을 구성하는 요소를 8개 부문으로 나누어 삶의 만족도와 관심사를 파악하기 위해 실시했다. 응답자들의 거주지 비율을 보면 인천·경기가 30.3%로 가장 많았다. 인천과 경기지역 주민들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삶에 대한 전반적 만족도가 6.2점으로 전국 평균 6.4점보다 낮다. ▲건강과 의료 6.6점 (평균 6.7점) ▲사회보장과 복지 5.5점 (〃 5.8점) ▲자녀양육과 교육 6.2점 (〃 6.4점) ▲일자리와 소득 5.6점 (〃 5.8점) ▲자연환경과 재난안전 5.6점 (〃 5.8점)으로 전국 평균치보다 낮았다. 삶의 걱정거리로는 ▲건강과 의료 (55.9%) ▲일자리와 소득 (52.6%) ▲사회보장과 복지 (31.1%) ▲자녀양육과 교육 (29.8%)을 꼽았다. 건강과 의료를 제외하곤 모두 전국 평균치를 웃돈다. 인천과 경기지역 주민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팍팍한 지 짐작케 하는 수치들이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응답자의 48.8%가 5년 뒤 자신의 삶의 질이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지방선거가 끝났다. 인천·경기지역에서 2명의 광역단체장과 41명의 기초단체장, 179명의 광역의원과 565명의 기초의원이 지역주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이들 787명의 선출직이 할 일이란 오로지 OECD 삶의 질 조사에서 만년 하위로 주저앉은 국가, 그 만년 하위 국가가 실시하는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조차 평균점 이하의 신산(辛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천과 경기지역 주민들을 살피는 것이다. 깃발이 온통 파랗거나 띄엄띄엄 빨갛거나 상관없는 일이겠다. 덧붙여 '이부망천' 망언이나 '여배우' 스캔들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 입고 비위 상한 지역주민들을 위로하는 데에도 마음을 내어주길 바란다. 사건의 장본인이 아니더라도 그 책임은 이번 선거에서 선출된 이들 모두의 몫이기 때문이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8-06-19 이충환

[경인칼럼]분노 조절장애 사회

개개인의 인성이나 공동체 질서 붕괴로사회·경제적 스트레스가 결정적 요인인듯공자 가라사대 "세상의 모든 길흉화복은자신에게 달려있고 모든 일은 결국 내탓""내 탓이오!" 90년대 초에 천주교계에서 벌인 사회운동의 슬로건이다.고 김수환 추기경이 자신의 티코 승용차 뒷 유리에 '내 탓이오'라는 스티커를 붙인 것을 계기로 천주교 평신도협의회가 캠페인을 전개해서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불법 끼어들기와 신호위반 등이 비일비재하고, 운전자들이 백주대로에서 멱살잡이하는 등의 목불인견들이 빈번히 목격되던 시기였다. 추기경님의 점잖은 훈계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며 한동안 회자되었다.근래 들어 주말 오후의 서울 도심 거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과 문재인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들로 몸살을 앓는다. 작년 초부터 거의 한주도 거르지 않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보무도 당당하게(?) 대로를 누비는 것이다. 서울에서만 태극기집회 개최횟수가 70회에 육박한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주말 저녁마다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든 소시민들이 박근혜정부를 강판시키더니 이번에는 보수단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한국의 아크로폴리스광장은 '네 탓'을 연호하는 무리들로 만원사례여서 외국인 방문객들은 의아하다. 요즘의 우리네 인심은 각박하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버럭 소리를 지르지 않나 지하철 내에서 눈길이라도 잘못 주었다간 낭패 당하기 일쑤인 것이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모 그룹 회장 사모님의 패악질 유튜브 영상은 압권이었다. 이혼건수가 3쌍 중 1쌍으로 세계제일의 이혼대국인 스웨덴에 버금간다.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인 세태이니. 자신의 잘못이 명백함에도 나라님 탓으로 돌리는 석기시대의 관습도 부지기수이다. 여의도 국회 앞이 365일 소란한 이유이다. 오죽했으면 참여정부 시절에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짓도 못 해먹겠다"며 푸념해댔을까. 대한민국은 이미 '네 탓'공화국이 되었다. 또한 5천만 국민 전체가 집단 분노조절장애란 중병에 걸린 듯하다. 일찍이 존 S. 밀이 '불만족한 소크라테스'를 지지했지만 작금의 국내 상황은 지나치다는 인상이다. 유엔 지속가능개발연대(SDSN)는 2012년부터 매년 3월 20일에는 세계 150여 국가의 행복지수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물리적 지표들에 근거해서 작성한 행복지수가 얼마나 실제상황을 반영하는지는 의문이나 잘 사는 나라, 정부가 투명하고 관용이 지배하는 나라, 평균수명이 긴 나라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복지천국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항상 최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순위는 첫해인 2012년에 156국 중 56위를 기록했었는데 금년에는 57위로 별 변화가 없다. '동양의 북유럽'이라 불리는 일본의 행복지수 순위도 한국과 '도토리 키 재기'이다. 만연한 '네 탓'현상은 사회불안의 주요 변수이나 한국의 행복지수와는 상관관계가 없는 듯하다. 개개인의 인성이나 혹은 공동체질서 붕괴, 짧은 민주주의 역사 등에 눈길이 가나 사회경제적 스트레스가 결정적 요인으로 판단된다.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픈 법인데 금수저 타령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절정을 이룬다. 아시아 선진국 중 한국의 부패지수가 가장 높다는 홍콩 정치사회리스크컨설턴시(PERC)의 설문결과는 점입가경이다.'국풍(國風)81'이 떠올려진다. 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전두환 정부가 민족문화의 계승과 대학생들의 국학에 대한 관심 고취를 명분으로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치른 문화축제이다. 전국 194개 대학의 6천여 명의 학생들과 전통 민속인 및 연예인 등이 참여해 총 659회의 공연을 벌였는데 주최 측에서는 연인원 1천만 명이 참여했단다. 가요제가 특히 인기를 끌었는데 '잊혀진 계절'의 이용과 '불놀이야'의 홍서범이 이때 혜성처럼 등장했다. 당시 허문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1주기를 앞두고 군사정권에 대한 학원가의 저항을 약화시킬 목적 때문이었으나 집단지성을 현혹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공자 가라사대 "세상의 모든 길흉화복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모든 일은 결국 내 탓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8-06-12 이한구

[경인칼럼]선거 이후 국회는 어떤 모습일까

헌재가 내린 국민투표법 개정도 하지 않고국회의장 인선도 미뤄가며 스스로 법 어겨이러한 관행·타성 지속될 개연성 높아자정안하면 시민은 국회에도 촛불 들 수도지방선거가 일주일 후로 다가왔으나 선거의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다. 한반도 평화라는 초대형 이슈에 가린 선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어느 선거보다 투표율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정세 변화가 갖는 세계사적 의미와 북미정상회담 변수가 여타의 선거 쟁점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시대착오적 인식이 선거를 일방적인 구도로 기울게 만든 요인이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남북정상회담을 정치쇼라고 치부하는 한국당의 시대착오적 반공주의에 입각한 정세인식은 선거를 더욱 기울어진 구도로 흘러가게 하고 있다. 제1야당은 문재인 정권의 지난 1년 동안의 소득격차의 심화, 최저임금의 경제적 부작용 등 여러 사회경제적 쟁점 등을 제기하면서 선거를 정권심판의 구도로 끌고 갈 때 선거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나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당의 인식은 유신과 권위주의 시대의 냉전적 사고에 갇혀있다.문제는 선거 후의 정치지형의 변화 여부다. 현재의 국회 구도는 시민의 개혁과 혁신에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여소야대의 정당지형은 개혁의 동인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제약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은 여당으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정당구도를 변화시킬 유인을 상대적으로 감소시킨다. 지금의 국회와 정당체계에서 개혁의 동인을 발견할 수 없다. 재보궐 선거로 국회 의석의 변화가 예상되지만 지방선거가 정당구도 자체의 변동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개발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의 왜곡되고 구조화되었던 자본과 권력의 불의한 동거, 시민사회의 계층 간 모순과 대립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화가 지체된다면 한국사회의 본질적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지난 1/4 분기의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 계층의 소득격차는 더욱 심화됐다. 사회적 격차의 일상화, 소득 불평등의 심화는 진보 정권이 집권했다고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화된 사회적 구조 때문이다. 개혁과 혁신은 시민의 자발적인 지지와 동의를 바탕으로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는 집단이 세력으로서 변화를 추동하고 개혁을 이끌 때 가능하다. 민주주의는 시민사회의 갈등을 조직화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시스템이다. 지방선거 이후에 여야 정당들은 시민사회의 갈등과 균열을 반영하는 정당체제로의 변화를 견인해야 한다. 지금의 정당구도로는 아무 개혁도 할 수 없다. 지난 1년의 정당체제가 이러한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촛불로 상징되는 시민세력은 가시적 적폐뿐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구조적 적폐의 청산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회는 물론 개혁세력으로 자칭하는 세력조차 이에 부응하기커녕 높은 지지율에 안주하면서, 결국 자유한국당 염동열·홍문종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적폐란 바로 이러한 위선적 태도를 지칭한다.국회는 헌법재판소가 내린 국민투표법 개정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회법에 정한 국회의장 인선도 미뤘다. 도려내야 한 관행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이렇게 법을 어긴다. 이런 국회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자유한국당은 본회의 한 번 열기 어려울 것이란 사실을 뻔히 알면서 6월 임시국회를 소집했다. 의장단과 원구성에는 일절 협조하지 않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에도 이러한 관행과 타성이 지속될 개연성이 높다. 촛불의 압력과 시민의 요구에 의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났다. 물론 헌법 절차에 따라 국회는 재적 2/3가 탄핵에 찬성했지만 국민의 압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회가 국민의 압력에 의해 자정하지 않으면 시민은 국회에도 촛불을 들 수 있다. 지방선거 이후에 보수와 진보 각 진영은 정당재정열을 통하여 갈등과 균열의 조정자로서의 국회의 위상을 찾아야 한다. 주권자를 구시대적 통치의 객체로 인식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법 어기기를 식은 죽 먹듯이 할 수는 없다. 시민은 통치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8-06-05 최창렬

[경인칼럼]철저해야 할 북·미회담 막후관리

양측 실무협상속 벌어질 디테일 전쟁에서숨어 있던 악마가 해코지 하는일 없어야우리가 상상했던 장면 훼손 가능성도 차단문대통령, 운전중 브레이크에 발 올려놔야남북회담 역사의 핵심 증인인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회고(피스메이커)에 따르면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던 남북회담의 결과 이면에는 피말리는 막후협상이 있었다. 일례로 노태우 대통령 임기 중반에 열렸던 남북고위급회담이 그랬다. 공산권의 붕괴와 한·소 수교, 한·중 무역대표부 설치로 고립무원 처지에 놓인 북한이 남한의 제의를 수락해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린 건 1990년 9월 5일이었고 그해 연말까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3차회담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에 집착하느라 1년 가까이 회담을 지연시켰고, 결국 91년 12월에 가서야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을 공동 채택할 수 있었다. 임 전 원장은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했던 노태우 정부"였지만 "남북합의 사항을 실천에 옮길 시간을 영영 잃어버리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임 전 원장이 대북특사로 성사시킨 2000년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도 6·15남북공동선언 합의에 도달하기 까지 문구 하나에서 부터 공동선언 서명을 정상들이 할지 말지 등 치열한 수싸움이 벌어졌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김일성 유해가 안치된 금수산궁전 방문 여부'는 정상회담 진행중에도 논란이 됐고, 결국 우리측 주장대로 방문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이처럼 역사적 합의의 막후는 협상주역들간의 총성없는 전쟁으로 얼룩진다.새삼스레 임 전 원장의 회고를 돌이켜 보는 이유는 현재 진행중인 남·북·미 삼각정상회담과 관련한 두 가지 관점 때문이다.먼저 남북정상의 '4·27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의 실효를 담보할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서 우리가 중재자를 자임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중재자의 입장을 여러번 강조했거니와, 급기야 이낙연 총리가 지난 27일 "미국이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선 한국이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밝히기에 이르렀다. 핵보유국 북한의 위협에 가장 크게 노출된 대한민국이 한반도 비핵화, 북한 핵폐기 협상의 당사자에서 배제되는 건 비현실적이다. 남북화해와 평화공존, 비핵화와 관련해 중요한 합의를 이루었던 지난 남북회담의 역사의 주역은 남북이었다. 물론 그 배경에 미국이 있었고 남북이 미국을 염두에 둔 간접화법 외교를 펼친 것이 사실이지만, 회담 주역은 당사국인 남북이었다.그래서 자연스럽게 남·북·미 정상회담에서 차지하는 대한민국의 막후 역할을 주목하게 된다.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실현이라는 대북 협상을 성공시키기 위해, 한·미 동맹이 역할 분담을 한 결과 표면적으로 우리가 중재자 역할을 맡았다 해도, 막후에서 CVID식 북핵폐기 협상의 당사자로서 국면관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가령 미국의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최근 상원에서 북한 CVID와 미국 CVIG,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핵폐기'와 '북한체제보장'의 교환 및 북미 비핵화조약의 상원인준 카드를 공개했다. 이 카드가 밀도높은 사전조율 과정을 거친 한·미간의 막후 합의 결과인지 아닌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북한의 핵무력 완전포기는 체제의 살과 뼈를 도려내주는 최후의 선택이다. 트럼프에게 북·미 비핵화합의는 노벨평화상과 연임보장 카드다. 협상태도는 사생결단식이지만 회담의 최종결과는 예측불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양측 실무협상에서 벌어질 디테일 전쟁에 숨어있던 악마가 우리를 해코지 하는 상황은 절대 발생하면 안된다는 점이다. 정청래 전 의원은 2차 남북정상회담 직후 "현실의 속도가 상상의 속도보다 더 빠르다는 걸 눈앞에서 보고 있다"고 논평했다. 현재의 남·북·미 삼각정상회담에 대해 더없이 적절하고 정확한 표현이다. 다만 현실의 속도가 지나쳐 대한민국이 상상하던 장면을 훼손할 가능성은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 운전석에 앉은 문 대통령이 운전대를 잘 잡는 것은 물론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고 있어야 할 이유이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8-05-29 윤인수

[경인칼럼]생활문화의 개념과 문화예술교육

시민들 여가시간 활용 문화예술 학습이나창작활동 통해 자기계발하는 공동체 활동정부·지방, 창조적 활동 영위할 수 있도록환경·제도 정비 최우선 정책으로 삼아야사회변동의 가속화에 조응하는 문화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도 빨라지고 있다. 초고령화, 노동시간의 지속적 감소와 여가의 증대에 따른 문화소비 및 문화생활 욕구 증대, 가족구조의 변동에 따른 개인화 및 자기실현 욕구 등이 대표적이다. 시민이 문화의 소비자에서 창조의 적극적 주체로 등장하게 되며, 아울러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문화예술의 비중이 높아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시민'과 '일상'을 중심으로 한 문화정책, 생활문화의 중요성이 대두된 배경이다. 새로 제정된 '문화기본법'에는 시민들이 문화예술의 소비자나 향유자를 넘어 창조적 문화예술활동의 주체임을 확인하고 시민들의 능동적인 활동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도 '지역과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 시대'를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그런데 생활문화의 개념은 아직 생성중이다. 일반적으로 시민들의 자생적 문화예술 분야의 취미 활동을 '생활문화', 혹은 '시민문화'라고 부르고 있으나 아직 의미와 범주가 명료하게 정립되지 못하고 있는 개념이다. 생활문화는 원래 민속학에서 사용해온 용어로 의식주 생활을 비롯한 가족생활, 음주, 놀이문화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어 그 외연이 너무 넓다. 한편 지역문화진흥법에서 '생활문화'는 '지역의 주민이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자발적이거나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행하는 유·무형의 문화적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개념도 여전히 추상적이다.전문예술의 대응개념으로 '생활문화예술' 혹은 '생활예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그 모호성을 일정하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문화활동의 현장에서 생활예술과 전문 예술의 영역의 구분이나 전문예술가와 아마추어 예술가간의 엄밀한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구분의 목적도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생활예술 활동에 전문예술인이 참여할 수 있듯이 두 영역의 활동이 교류소통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일상생활 속에서 문화 예술 활동(culture and art in life)이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voluntary participation)하여 문화예술 공동체를 이뤄가는 활동(community)이라 할 수 있다. 즉 생활문화예술은 '시민들이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문화예술의 학습이나 창작 활동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계발하는 자발적 공동체 활동'이다. 생활문화예술에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생활과 밀착된 활동, 시민 주체인 활동, 자발적인 참여, 공동체 활동 등이다.이제 정부와 지방정부가 시민들이 창조적 문화예술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정비하는 정책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아야 한다. 시민생활문화 동호회 등 문화예술 프로슈머(prosumer)를 육성 지원하기 위해 지자체가 우선 추진해야 할 과제는 생활문화예술종합계획의 수립, 시민생활문화 지원 센터 건립과 운영, 생활문화지원 프로그램 등이다.시민문화예술교육이 시민생활문화의 기초이다. 시민생활문화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시민문화예술 역량의 확대가 필요하고 시민문화예술역량은 시민문화예술교육을 통해서 확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시민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문화예술의 시민화, 시민의 예술인화를 이룰 수 있으며, 생활문화시대와 문화도시의 실현도 앞당길 수 있다./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8-05-22 김창수

[경인칼럼]인천광역시장들의 '나쁜' 공약

지상파방송 고작 2개로 타지역에 비해 열악KBS·MBC 유치 역대 후보들 모두 실패이제는 시선을 플랫폼에서 콘텐츠로 옮기고인큐베이터·방송사업 겸하는 방법 선택해야우리나라 큰 도시의 방송생태계는 '지상파방송 + 케이블TV + IPTV + 위성방송'으로 구성된다. 수도권을 제외한 권역별 대도시의 경우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공사(KBS) 지역총국, 문화방송(MBC)의 계열사네트워크인 지방MBC, 그리고 SBS와 가맹사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지역민영방송이 그 지역의 지상파방송군을 이룬다. 특수목적을 띤 지역 지상파방송들도 있는데 주로 라디오 종교방송들이다. CBS, 극동방송, 가톨릭평화방송, 불교방송, 원음방송이 주요 도시에 지역국을 두고 있다. 교통방송인 TBN네트워크도 지상파방송군에 속한다. 비지상파방송으로는 케이블방송, IPTV, 위성방송이 있다. 케이블방송에는 5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CJ헬로, 티브로드, 딜라이브, CMB, 현대HCN가 운영하는 각 지역 케이블방송 외에도 개별 케이블방송, 즉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존재한다. IPTV는 3대 통신사가 초고속인터넷망을 이용하는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를 말한다.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는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 상공 3만6천km에 떠 있는 올레1호 위성을 통해 콘텐츠를 전송한다. IPTV와 위성방송은 지역방송이 없다. 각 지역의 지상파방송과 케이블방송이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면 IPTV와 위성방송은 전국구 국회의원인 셈이다.부산을 살펴보자. 대표적 지상파방송으로 KBS부산방송총국과 부산MBC가 있다. 부산·경남을 방송권역으로 하는 지역민방 KNN도 존재감을 뽐낸다. 부산CBS, febc부산극동방송, CPBC부산가톨릭평화방송, BBS부산불교방송, wbs부산원음방송 등 종교방송과 TBN부산교통방송, 부산영어방송과 같은 특수방송도 지상파방송군에 속한다. 케이블방송으로는 티브로드, CJ헬로, 현대 HCN 계열의 8개사가 있다. 대구와 광주의 방송생태계도 이와 비슷하다. 대전 역시 일부 종교방송 지역국만 없을 뿐 대동소이하다. 이런 도시들과 비교하자면 인천은 열악하다 못해 애처로운 수준이다. 지상파방송은 고작 두 곳, 경인방송iFM과 TBN경인교통방송 뿐이다. 지상파 지역민방TV는 허가조건과는 달리 인천을 벗어난 경기도 부천시에 연주소(演奏所)를 두고 있다. 그 공백을 케이블방송인 CJ헬로 북인천방송, 티브로드 남동·새롬·서해방송 등 MSO 계열사 4개와 개별SO 남인천방송이 메우고 있다. KBS인천방송총국과 인천MBC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역대 인천시장들이 공약이나 정책과제로 밀어붙여봤으나 모두 실패했다. 서울과 '같은 하늘'을 이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지리적으로나 경영측면으로나 설립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인구 300만을 넘어서도 불가(不可)의 이유만큼은 불변이다. 그 '이유'와 '답변'만을 탓할 계제(階梯)는 아니라고 본다. 저쪽의 논리에도 타당성이 있다. 엄정하게 따지면 이쪽의 대응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잘 모르면서 목소리만 높였거나, 정치적 셈법에만 관심이 있었거나, 탁상공론만 거듭한 결과다. 지금이라도 관점과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첫째, 시선을 플랫폼(platform)에서 콘텐츠(contents)로 옮겨야 한다. 방송과 미디어환경은 빛의 속도로 바뀌는데 지상파방송국 유치나 이전에만 매달렸다간 '죽었다 깨어나도' 답을 찾지 못한다. 둘째, 인천시가 인큐베이터(incubator)가 되어야 한다. 앉아서 기다려봐야 감은 떨어지지 않는다. 까마귀가 따먹거나 그 자리서 말라비틀어질 뿐이다. 순수한 인큐베이터로만 기능하는 방법과 인큐베이터와 방송사업자의 역할을 겸하는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셋째,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지역영상콘텐츠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가 재원의 합리적이고 효율적 배분, 제작역량의 발굴과 지원, 하드웨어의 구축과 활용, 최적의 플랫폼 확보와 같은 일련의 프로세스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을 새로 갖추거나 통합해서 운영한다면 '열 방송국 부럽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선출된 시장의 결연한 의지와 약속이 또다시 '수포(水泡)'와 '공약(空約)'이 되는 나쁜 반복의 사례를 하나쯤 없애야하지 않겠는가./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8-05-15 이충환

[경인칼럼]제왕학(帝王學)

국내 대기업 후손들 화려한 학벌에 이중국적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도 미국 시민권 보유해외 성공한 오너들 상상 이상의 자식교육훌륭한 후계자로 키웠기에 기업 장수 누려유구한 역사의 한국 위계(位階)문화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갑질의 대명사로 치부되던 피자회사 창업주가 여론의 몰매로 퇴진하더니 금년 1월에는 현직 여검사가 미투 운동에 불을 지피고 최근에는 대한항공 근로자들이 전대미문의 오너경영진 퇴진운동까지 벌이고 있는 것이다. '땅콩회항' 악몽이 가시기도 전인데 조양호 회장의 부인과 막내딸까지 패악질(?)을 해댔으니 다이아몬드수저 가족의 그릇된 선민의식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 회장은 자식들을 잘못 가르쳤다며 또다시 머리를 숙였다. 동양의 제왕들은 자식교육에는 과도할 정도로 공을 들였는데 대표적 사례가 정관정요(貞觀政要)이다. 중국 당(唐)나라의 역사가 오긍(吳兢)이 당태종(서기 627-649)의 제위 24년 치적을 기록한 것으로 제왕학(帝王學) 교과서로 으뜸이었다. 태종 이세민은 재위기간 내내 수많은 현자(賢者)들을 중용하고 군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의 직언과 고간(苦諫)을 경청했던 걸출한 지도자로 칭송된 때문이다. 당태종의 정치철학은 유교적 민본(民本)으로 예악(禮樂), 인의(仁義), 충서(忠恕), 중용지도(中庸之道)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총 40편으로 구성된 정관정요는 역대 당나라 군주들이 애독했음은 물론 후일 송(宋), 요(遼), 금(金), 원(元), 명(明)대의 제왕들이 즐겨 읽곤 했다.국내의 제왕학은 왕민(王民)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서연(書筵)이 상징적이다. 왕세자로 하여금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익히게 해서 인정(仁政)의 리더십을 쌓도록 하는 것이다. 고려 중엽에 시작한 서연은 이성계가 1392년에 세자관속(世子官屬)을 설치하면서 내용과 질이 풍부해졌다.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정2품정8품 관료 24명이 세자교육을 전담할 정도로 태조의 후계자 교육열은 각별했다. 세자는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스승인 서연관(書筵官)의 특별지도를 받는데 거의 매일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다.무력으로 형제들을 도륙하고 아버지를 함흥차사로 만들었던 태종 이방원 또한 세자교육에 공을 들였다. 석학인 성석린(成石璘)과 권근(權近) 등을 서연관(書筵官)으로 봉했다. 그러나 왕세자 양녕대군은 공부를 멀리하고 온갖 못된 질과 주색잡기로 소홀하더니 급기야는 중추(中樞) 벼슬을 지낸 곽선의 첩 어리(於里)를 범해 폐세자(廢世子)가 되어 궁에서 쫓겨났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태종은 서연(書筵)을 폐하는 한편 양녕의 비행(非行)을 도왔던 구종수, 구종지, 이오방 등을 참수했다. 양녕대군의 장인 김한노(金漢老)의 직첩을 몰수하고 죽산으로 귀향을 보냈다. '칼이 곧 법'이던 조선시대에도 하늘(?)은 금수저를 엄히 징벌했다.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 했던가. 동서를 막론하고 장수(長壽) 기업의 비결은 훌륭한 후계경영인을 키우는 것이다. 성공한 기업인들이 자식교육에 상상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이다. 해외사례들은 차치하고라도 국내 대기업 오너 후손들의 학력은 화려하다. 특히 재벌 3, 4세로 갈수록 학벌은 단연 세계최고이다. 명문유치원을 거쳐 대학에 이르기까지 최상의 코스를 밟음은 물론 미국유학은 필수코스이다. 국적세탁도 유행이어서 대부분의 다이아몬드수저들은 이중국적자이다. 글로벌경영을 하려면 탈(脫)한국은 필수적(?)이란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도 미국 시민권자로 알려졌다. 국내의 모 인사가 10여 년 전에 인도 콜카타의 세계 1위 철강기업인 아르셀로미탈스틸 본사를 견학 때의 목격담이다."그곳을 방문했을 때 앳된 얼굴의 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허리를 굽힌 채 열심히 사무실 바닥을 쓸고 있었다. 회사의 청소부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미탈스틸 오너의 아들이었다. 귀한 회장님의 아들이 청소를 하다니…" 3대 총수 후보자 아디티야 미탈이 경영수업을 받는 중이었다. 그는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지금은 부친 락시미 미탈 2대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상속받아 승승장구하고 있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8-05-08 이한구

[경인칼럼]어떤 권력구조이어야 하나

개헌 주제, 실질적 다당제 효과 나타내야어떠한 정부 형태이든 집권세력 내부견제·감시시스템 없으면 오만해지기 마련여야 개헌안에 이를 담보할 장치 안 보여권력구조의 변경이 핵심인 개헌 국민투표와 지방선거의 동시 실시는 무산됐다. 그러나 '87체제'의 변경은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의 분산뿐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강화는 물론 지방분권의 확대 등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야당은 6월 개헌안 합의, 가을 개헌이라는 일정을 제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정치권 행태로 미루어볼 때 무망한 말이다. 일단 권력구조에서 여야의 개헌안이 충돌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4년 연임제는 야당이 내놓은 국회 선출 총리와 직선 대통령이 권력을 분점하는 사실상의 이원집정부제의 권력구조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와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어떠한 권력구조가 돼도 각 제도가 갖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이는 개별국가의 정치적·문화적 배경, 특히 헌정사적 특수성에 따라 달리 적용되기 때문에 어느 제도의 우위를 논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는 내각제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때문에 정부형태의 선택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불편한 동거가 필연적으로 가져올 수밖에 없는 대통령 권한 집중이라는 근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제출한 4년 대통령 연임제에는 이러한 문제를 지양하고자 하는 고민의 흔적이 배어있지 않다. 야당이 제안한 정부형태도 대통령과 총리의 이원적 정통성(dual legitimacy)의 충돌이 가져올 수 있는 국정 교착의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다. 현실적으로 개헌 동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연내 개헌이 가능할지 여부를 떠나 개헌의 지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갈등이 정치 내부로 적절하게 수렴될 때 지속가능한 정치체제다.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가 대표성과 참여, 책임성인 이유이다. 시민사회 내에서의 상충하는 갈등의 수렴을 통해 사회 구성원의 이해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정당체제는 물론 어떠한 권력구조도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대통령의 권력분산이 필요한 이유도 권력집중이 가져오는 부패와 독선이 시민의 삶의 문제를 정치권에 반영하는 데에 결정적 장애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하에서 제도권이 중요한 사회적 갈등을 정치적으로 제도화하지 못함으로써 한국정치는 이중적인 갈등구조를 내포한다. 즉 시민의 삶의 문제가 치열하게 제도권내에서 토론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정치의 본령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권력구조의 변경 여부 못지않게 실질적인 다당제의 효과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가 개헌의 주요한 주제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란 갈등의 제도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시스템이다. 지금의 정당체제는 집권당과 제1야당, 두 거대정당의 독점에 입각한 정당 카르텔 구조와 친화적이다. 여야 3당과 교섭단체가 있지만 다당제의 협력과 타협의 원리에 기반하는 정당구도가 아니다. 이는 압도적 여야 두 정당의 존재로 여타 정당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정치적 공간 자체가 형성될 수 없는 구조 때문이다. 정당들의 정치적 이해에 입각한 정치공학만이 정치엘리트들의 행동준칙이 되고 있는 구도에서 시민사회의 균열이 제도권 내로 투입됨으로써 삶의 수준이 나아지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는 집권세력 내부의 적절한 견제와 감시가 가능한 시스템의 도입이다. 어떠한 정부형태가 돼도 권력내부의 견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권력은 오만해지기 마련이다. 여야의 개헌안에 이를 담보할 제도적 장치가 보이지 않는다. 적대적 갈등과 공존이 교차하는 지금의 정당체제에서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여야 각 정당이 고집하는 권력구조에서 한 발 물러나 무엇이 시민의 삶에 친화적인 권력구조인가를 고민한다면 연내 개헌도 의외로 가능할 수 있다. 지나친 정치적 상상일지 모르겠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8-05-01 최창렬

[경인칼럼]대전환 시대에 진입한 대한민국

권위 기반으로 조직된 사회규범 급속 해체4차산업혁명 세대의 통제 할 수 없는 세상남북·북미정상회담, 한반도 정세 변화 예고구성원 모두 대변혁 책임 나눠지는게 중요정체를 대기는 힘들다. 확실한 건 우리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직감이다. 격변과 전환이 일상이었던 대한민국이다. 전쟁위기설이 극성을 부려도 대수로이 여기지 않던 국민이다. 그랬던 국민들이 나라 안팎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의미있는 사건들에 내포된 메시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차원 이동에 버금가는 대전환의 기운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먼저 규범의 전환이다. 권위를 기반으로 조직된 사회의 규범이 급속히 해체되는 중이다. 권위가 권위로 대체되던 권위 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찰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시발이었다. 정상적인 선출권력의 권위가 시중의 조롱거리로 전락해 무너졌다. '미투'가 뒤를 이었다. 고은, 이윤택. 오래 묵은 문화권력의 권위도 수렁에 빠졌다. 안희정, 정봉주. 진보권력 권위의 일각이 무너졌다. 대한항공 직원 1천여명은 SNS결사체를 만들어 그룹 총수 일가의 비리, 추행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 권위의 해체가 일상이 되고 크고 작은 권력의 붕괴가 속출하고 있다.저차원 대 고차원이 대립한 결과다. 2차산업혁명 세대가 고리타분한 권위의식으로 4차산업혁명 세대의 대중을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정보와 네트워크로 무장한 4차산업세대는 구세대의 규범과 권위를 부정한다. 조현아, 조현민 두 자매는 자기 세대의 규범에서 벗어나 아버지 세대의 규범에 갇혀있다가 불행을 자초했다. 슈퍼네트워킹 사회의 새규범을 만들고 있는 신세대의 분노는 잔인하다. 보수정치를 궤멸시켰다. 규범의 전환을 예고한 경고장이었다. 진보정치, 진보시민사회단체도 권위적 규범에 연루된 혐의가 확인되면 똑같이 당한다. "그래서 우리는 망했다"는 절규는 자유한국당의 몫이지만, 새 규범으로의 위치이동은 보수, 진보 모두의 과제다.대전환의 기운은 한반도 정세의 급변에서도 뚜렷하다. 마치 전례 없는 역사적 사건을 향해 특별한 우연과 인물들이 결집하는 느낌이다. 장난처럼 등장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더니 한반도 운명의 판관으로 등장했다. 제네바 유학파인 북한의 김정은은 지난해의 그 사람이 맞나 싶다. 문재인 대통령의 등장은 더욱 극적이다. 역사의 신이 한반도 운명을 바꾸려고 필요한 인물을 모으기 위해 박근혜를 버렸나 싶어서다.4·27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는 필연적으로 한반도 정세 대전환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연쇄 정상회담의 결과가 북한의 비핵화를 완벽하게 실현해내면 한반도는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전환된다. 반대의 결과에 이른다면 북한핵 제거를 위한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다. 회담 결과는 한반도라는 물리적 공간의 의미도 새롭게 규정할테고, 우리의 공간의식도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 비핵화 평화체제 쪽이라면 반도의 반쪽에 갇혔던 대한민국의 공간적 제약이 크게 완화되면서 경제, 사회, 문화의 총량도 확대될 것이다.전환은 혼란을 수반한다. 전례 없는 대전환의 시기라면 혼란의 규모와 범위도 그에 상응한다. 사회규범의 대전환은 삶의 방식과 태도의 수정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미투에 걸리냐"는 어리석은 질문으로 시대의 전환을 조롱해봐야 혼자 고립될 뿐이다. 대한항공 직원들의 단톡방에 혀를 차는 피해의식으로는 기업을 경영하기 힘들다. 보수정당의 과거에 견주어 자신의 도덕적 권위를 유지하는 진보권력은 시대정신을 걸머질 수 없다.국가의 운명이 대전환의 역사적 시공간에 진입하고 있다. 국가를 구성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 앞에 놓여진 시대적 책무가 무겁다. 공동체 내부를 흔드는 사회규범 전환의 혼란을 극복하는 동시에 역사적 대전환의 시대에 대응하는 일이 가벼울리 없다. 어려운 시대에 무거운 과제인 만큼 동시대인으로서 대한민국 각계각층의 구성원 모두가 책임을 나눠지는 품앗이가 중요하다. 우리가 제대로 감당해 지금 겪고있는 사회규범 전환의 혼란을, 국가 대전환 시대를 예비해 주어졌던 시련이자 역사의 배려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8-04-24 윤인수

[경인칼럼]'갑질' 근절책을 찾아야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 직원에 물벼락·욕설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는 '언어폭력'형법상 모욕죄 해당… 처벌 가벼운게 문제직장·권력에 의한 '폭력' 차단방안 마련 시급대한항공 조현민 전무의 이른바 '물벼락 갑질'로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조 전무는 대한항공 광고대행을 맡고 있는 한 업체와의 회의 자리에서 광고팀장인 직원에게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자 분노하여 직원의 얼굴에 물을 뿌리고 욕설을 퍼붓다 못해, 나중에는 직원을 회의장에서 쫓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조현민 전무는 2014년 이륙 중이던 기내에서 땅콩서비스에 불만을 품고 난동을 부린 혐의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한한공 조현아 부사장의 친동생이어서 여론의 화살은 대한항공 총수 일가 전체로 향하고 있다. '갑질'이란 신조어는 피해자의 인격을 모독하고 파괴하는 범죄행위에 비해 가벼운 느낌을 주는 말이다. 아마도 '갑질'이 계약서 상의 '갑'과 '을'에서 비롯된 일종의 비유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외국 언론사들도 한국 재벌가의 '갑질'에 해당하는 번역어를 찾지 못한 탓인지 'gapjil'이라는 우리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말의 세계화 가운데 부끄러운 사례가 될 모양이다.'갑질'의 본질은 언어폭력으로 나타난다. 언어폭력은 욕설이나 인격모독적인 조롱으로 나타나지만 성차별적 발언이나 인사상의 협박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들에게 굴욕감과 깊은 상처를 남긴다. 피해자들은 조직 내의 하급자이기 때문에 2차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 '땅콩회항' 사건의 피해자였던 박창진 사무장은 사건 이후 스트레스, 신경쇠약, 공황장애 등을 진단받았고 1년여의 휴직 끝에 회사에 복귀했지만 팀장에서 일반 승무원으로 직급이 강등되고 직원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등 2차 피해를 겪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 재벌가 임원들의 전근대적 횡포를 의미하는 '갑질'이라는 말, 그리고 갑질의 전형적 사례인 '땅콩회항'이나 '물벼락 갑질'이라는 표현은 사태의 본질을 희화화하는 듯해서 마뜩치 않다. 근본 원인은 기업과 직원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재벌의 계급의식이겠으나 다분히 흥미위주로 사건을 대하는 태도도 문제다. 재벌과 권력의 '갑질'을 다루는 우리 언론의 태도나 시민의식이 더 진지하고 예리해져야 하겠다. 경찰이 조현민 전무를 수사하면서 폭행혐의에만 주목할 경우 물컵을 던진 방향이 피해자의 얼굴 쪽인지 바닥 쪽인지가 쟁점이 되는데 이는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얼굴에 물을 뿌린 특수폭행 못지않게 언어폭력에 의한 인격모독이 더 중대한 범죄이다. 언어폭력에 대한 처벌이 가볍다는 것은 문제이다. 언어폭력은 형법상 모욕죄에 해당된다. 형법 제311조의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에 대한 처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조현아 부사장에 이어 조현민 전무의 행동이 알려지자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비행(非行)을 알리는 제보가 이어지는 한편 대한항공의 회사명칭도 차제에 바꿔야 한다는 국민 청원도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일탈행위가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가브랜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더 시급한 과제는 직장이나 사회적 위계에서 상급자나 권력에 의해 행해지는 일상적인 폭력, 내재적인 폭력을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찾는 일이다./김창수 인천발전硏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발전硏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8-04-17 김창수

[경인칼럼]인천의 색(色)

정서진 석양·강화 갯벌색 등 10가지 색 모호하고 선명치 않고 창의성도 없어도시정체성 색으로 표현 고무적 불구시민 대표할 역할 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뉴욕은 '노랑'이다. 맨해튼 차도를 가득 메운 노란색 택시 '크라운빅토리'는 수많은 영화에서 뉴욕을 상징한다.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에서 캐리는 늘 노란색 택시를 타고 다닌다. 맨해튼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뉴욕, 아이 러브 유(New York, I love you)'는 노란색 택시에 뉴요커 두 남자가 좌우의 문으로 동시승차하면서 시작된다. 뉴욕은 '빨강'이다. 1969년 버지니아 주의 관광슬로건 '연인들을 위한 버지니아(Virginia is for Lovers)'에서 힌트를 얻은 빨간 하트의 'I♥NY'은 가장 성공한 도시브랜드다. 뉴욕의 애칭 '빅애플(Big Apple)'에서 직관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색상 또한 빨강이다. 기념품 티셔츠나 머그잔에 선명한 빨간색 사과는 이 도시를 추억하는 강렬한 이미지다.그러나 뉴욕의 공식 색상은 노랑도 빨강도 아니다. 뉴욕시 깃발에 사용되는 색은 파랑과 오렌지색이다. 파란색은 페이스북 로고에 사용되는 이른바 '페이스북 블루'에 가깝다. 오렌지색은 네덜란드의 흔적이다. 1648년 에스파냐로부터 네덜란드의 독립을 이끈 지도자 빌렘 1세는 '오라녜 공작(Prins van Oranje)'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영어로 말하자면 '오렌지 공작(Prince of Orange)'이다. 예서 유래된 오렌지색은 이후 네덜란드인이 가장 사랑하는 색상이 됐다. 뉴욕은 원래 이들 네덜란드인들이 맨해튼섬을 원주민들로부터 사들여 '뉴암스테르담'이라고 이름붙인 곳이었다. 깃발의 색상은 그런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피츠버그는 '아즈텍 골드(Aztec Gold)' 색상으로 유명하다. 교각을 갖춘 정식 교량만 400개가 넘는 이 도시에서 특히 유명한 세 개의 다리 '쓰리 시스터즈(Three Sisters)'는 13세기 아즈텍문명을 연상시키는 빛바랜 금색으로 칠해져 있다. 해질 무렵 파이어리츠 홈구장인 PNC파크 외야석 너머로 보이는 '아즈텍 골드'의 로베르토 클레멘테 브리지와 앨러게니 강, 그리고 고층빌딩들의 조화는 가히 환상적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장으로 꼽히는 이유다. 2001년 피츠버그역사경관재단이 중심가의 교량 색상을 바꿔보면 어떨까라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2015년 온라인 투표에서도 앤디 워홀 브리지를 은색으로, 레이첼 카슨 브리지를 녹색으로 각각 바꾸면 어떻겠는가라는 물음에 85%가 '아즈텍 골드를 유지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며칠 전 인천을 대표하는 10가지 색상이 발표됐다. 인천 바다색, 인천 하늘색, 정서진 석양색, 소래습지 안개색, 강화 갯벌색, 개항장 벽돌색, 문학산 녹색, 참성단 돌색, 팔미도등대 백색, 인천 미래색이다. 10년 전 서울시가 단청빨간색, 한강은백색, 남산초록색, 고궁갈색, 꽃담황토색, 서울하늘색, 돌담회색, 기와진회색, 은행노란색, 삼베연미색 등 10개 색상을 대표색으로 선정한 것과 꼭 닮았다. 경주시가 5년 전 금관 금색을 대표색으로 앞세워 화랑 적색, 불국 홍색, 동해 청색, 남산 녹색, 서라벌 황색, 첨성 자색, 삼국 흑색 등 8가지 상징색을 발표한 것과도 유사하다. 도시정체성을 색으로 표현하고 정리하겠다는 생각은 고무적이다. 문제는 인천의 그 색들이 모호하고, 선명하지 않으며, 창의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인천 하늘색과 서울 하늘색은 어떻게 다르지? 문학산 녹색과 서울 남산의 초록색과 경주 남산의 녹색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지? 소래습지 안개색은 어떤 색이지? 인천 미래색은 아무래도 현실적이지 않잖아? 인천을 '단박에' 나타낼 수 있는 색은 없나? 신문지면을 통해 활자로써만 소식을 접한 나로선 더더욱 감이 잡히질 않는다. 상징색은 특정한 집단을 대표하고, 그 집단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이번에 발표된 인천의 상징색이 인천시민들에게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8-04-10 이충환

[경인칼럼]헛발질 미세먼지대책

국내 대기오염 결정적 요인 '중국 공해'다 아는 사실 정부는 애써 '외면'싱가포르, 연무 시달리자 인도네시아 압박우리도 '적극적 환경외교' 촉구한다우리 국민들의 미세먼지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 지난 2월 27일 환경재단 심포지엄에서 다음소프트가 국민들의 환경건강부문 '사회관심 키워드' 빅데이터 분석결과를 발표했는데 미세먼지는 2013년 13위에서 2015년에는 6위로 급상승했다가 2016년부터는 부동의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미세먼지가 어린 자녀들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 때문에 해외이민을 고려 중인 학부모들도 급증하는 추세이다. 국내의 미세먼지 농도와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악의 수준이다. 미국의 비영리 민간 환경단체인 '보건영향연구소(HEI)' 자료에 따르면 인구가중치를 반영한 한국의 미세먼지 농도는 1990년에는 26으로 당시 OECD 평균치(17)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데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후인 2015년의 OECD 평균치는 15로 낮아졌으나 한국은 29로 더 높아졌다. 한국은 터키와 함께 OECD 35개 회원국들 중에서 공기가 가장 나쁘다. 건강에 매우 유해한 오존 농도 또한 같은 기간 OECD 평균치는 떨어진 반면에 한국은 더욱 높아졌다. OCED 오존농도 순위는 바닥에서 네 번째로 중국보다 못하다.정부는 2005년부터 2024년까지 2차례에 걸쳐 10년 단위의 '수도권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을 추진 중이다. 수십조 원 가량의 혈세를 투입해서 대도시의 미세먼지와 이산화질소 등을 파리나 도쿄 같은 선진국 도시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 매연과 비산먼지 과다배출 사업장 단속과 차량의 배출허용기준 강화, 저공해 차량 보급, 경유차 배출저감 장치 부착 등을 지속 추진한 것이다. 그 결과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2004년 59에서 2012년에는 41로 감소하다 2013년부터 증가세로 돌아 2016년에는 48로 다시 높아졌다. 지난해 6월 한 달 동안 시범적으로 추진한 '노후 화력발전소 가동중지' 조치로 미세먼지 농도는 평년대비 1.1% 축소에 그쳤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지난 2월 22일에 인천시 보건환경연구원이 공개한 '인천 주요지역 미세먼지 오염원 평가'이다. 인천지역 내부 대기오염물질 배출원별 초미세먼지 기여도는 발전소가 35%로 가장 많고 선박건설기계 24%, 공장 15%, 자동차 12% 등이다. 서울 등 수도권에 전기를 공급하는 인천의 9개 발전소에서 초미세먼지가 가장 많이 발생했다. 자동차 중심의 수도권 미세먼지 저감대책이 인천에선 효과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정부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쏟아냈다. 부산지역의 미세먼지의 주범은 부산항에 정박한 수많은 선박들에서 배출된 벙커C유 유독가스로 비중이 44.5%임에도 정부는 차량운행 단속만 강요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헛발질 말고 지역사정을 잘 아는 지자체에 환경단속권을 넘길 것을 요구했다. 대기질 개선목적의 막대한 세금투입과 사회적 비용 대비 성과가 부진한 이유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이 2016년 5·6월에 미국 NASA의 관측용 항공기로 서울 상공의 대기질을 측정한 결과 초미세먼지 기여율은 국내 52%, 국외 48%로 확인되었다. 국외 요인 가운데 34%가 중국이란 결론을 냈다. 대기오염이 비교적 덜한 계절에 측정했음에도 이 정도인데 황사철인 3·4월에 측정했다면 어떠했겠는가? 국내 대기오염의 결정적 요인은 월경(越境)공해인데 중국의 경제성장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대기오염 물질이 확대재생산 되는 탓이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정부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작년 8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제기된 미세먼지 관련 민원건수는 3월 초 기준 1천350건인데 이중 중국발 미세먼지 해결청원이 절반을 넘는다. 개중에는 "중국발 미세먼지를 거짓된 연구조사로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는 등의 거친 항의문구도 확인된다. 인공강우로 한반도의 공기를 세척할 수도 없고 민초들은 답답하다. 근래 들어 연무(煙霧)에 시달리는 싱가포르가 주변국들과의 연대를 통해 인도네시아를 압박해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적극적인 환경외교를 촉구한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8-04-03 이한구

[경인칼럼]'실질적' 민주주의와 개헌

노동·복지등 사회적 평등 지향성 담아내야권력구조, 순수대통령제로 변화 고민 필요여야, 의미있는 권력분산 위한 정치력 절실헌정사를 보면 1948년 헌법이 제정되고, 1952년의 발췌개헌, 1954년 사사오입 개헌, 1960년의 내각제 개헌을 거쳐 삼선개헌과 유신헌법, 1980년의 7년 단임의 선거인단에 의한 대통령 간선제, 1987년 형식적 민주화로 상징되는 개헌 등 총 아홉 차례의 개헌이 있었다. 그러나 4·19 혁명의 결과인 3차 개헌과 6월 항쟁의 산물로서 국민의 열망이 반영된 9차 개헌을 제외하고는 정당과 주권자의 참여가 배제된 개헌으로 점철되어 있다. 권력구조의 변경이 독재자의 권력욕구와 권위주의 체제의 지속을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권위주의적 방법을 통하여 정치권력에 의해 국민에게 강제로 부과되었던 개헌이었다.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헌법 개정은 최소정의적 민주주의를 여는 단초로서 주기적이고 공정한 선거를 정착시켰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절차적'인 민주화였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실질적' 민주주의로 이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개헌의 골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우선 노동과 복지 등에서 사회적 평등을 지향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완성시켜 나가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최소정의적 접근에서의 민주화는 실질적 민주화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경제적 양극화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이를 통한 평등의 실현 등의 실질적 내용의 민주주의를 위하여는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절실하였다. 그러나 제도화는 지체되었다. 제도화의 요체는 정치학자 필립 슈미터의 말처럼 민주화와 헌법화이다. 민주화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참여·대표·책임의 구조를 통한 사회적 갈등과 균열의 반영이다. 헌법은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다. 이는 결국 정치의 문제로 집약된다. 따라서 이번 개헌에서 평등의 실현이라는 가치의 구현은 권력구조의 변경 못지 않게 중요하다.둘째, 헌법 개정의 핵심은 권력구조다. 한국 대통령제는 내각제적 요소와 절충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통령의 법률안 제출권, 국무위원과 국회의원의 겸임, 정부의 예산편성권 등의 내각제적 요소가 대통령의 권한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순수대통령제로의 변화를 고민해 봄직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 이러한 내용은 담겨있지 않다. 결국 권력분산의 당위를 여하히 충족시키느냐가 개헌의 핵심이다.정당으로 조직되고 대표되는 정치과정의 활성화, 즉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반이 확대되고 이를 토대로 사회의 균열과 갈등이 정당체제에 반영되는 시스템을 제도화하는 것이 민주주의다.헌법이 제정되었던 1948년은 극한적 좌우익의 대립으로 혼돈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권위주의 정치와 군부독재의 시대가 더 길었던 1950년대부터 1987년 민주화에 이르는 기간까지 자유민주주의적 헌법은 정치현실과 크나 큰 간극을 초래했다. 이는 헌법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을 낳았고, 헌법은 현실과 유리된 상징적 선언에 머물은 측면이 강했다. 1980년 5공화국 헌법이나 1972년의 유신헌법에서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선언에서 헌법과 정치현실 사이의 극단적 괴리를 발견할 수 있다. 기본권, 지방분권 조항, 권력분산 등의 조항이 국민의 광범한 참여와 논의하에 이루어지느냐의 여부는 그래서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치사회의 구성원에 의한 광범위한 동의와 참여에 입각하지 않은 헌법이 실질적 규정력과 효과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의 운명을 예단하기 어렵다. 권력구조에서 여야의 생각의 차이는 절충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실시가 가능하려면 5월 4일까지 여야 합의안이 나와야 한다. 정부개헌안이 표결에 부쳐지면 부결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월등히 높다. 집권여당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대통령 개헌안이 개헌을 촉발시킬 촉매제의 역할을 넘어 개헌 동력 자체를 무산시키지 않도록 여야 모두 개헌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시기는 그 다음의 문제다. 실질적 민주주의와 의미있는 권력분산을 위해 여야의 정치력이 절실하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육대학원장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육대학원장

2018-03-27 최창렬

[경인칼럼]보수 재건이 절실한 이유

한국보수는 현재 '죽은 나무' 재기 힘들듯합리적 세력 뭉쳐 과거와 완전 결별해야새 정강정책·인재로 재건위한 전략 필요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6% 이상의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다. 총리 시절을 포함하면 무려 24년을 집권하게 된다. 우리가 역사에 독재자로 새겨넣은 박정희도 20년 집권에 이르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국민 저항이 미미한 러시아의 정치 풍경은 낯설다. 중국도 개헌을 통해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 가도를 열어 놓았다. 재외 중국인과 지식층을 중심으로 반발이 있지만 저항 대신 조롱 수준으로 울분을 푸는 정도다. 푸틴과 시진핑의 장기집권 추구는 높은 경제 성장률과 초강대국 재건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두 사람의 강력한 지도력이 상승작용을 한 덕분이다.다만 양국 지도자의 독재적 장기집권을 대중들이 무한정 인내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역사는 정답을 알고 있다. 문명국의 역사는 1인, 1당 독재정권이 필연적으로 부패하고 순수한 권력의지가 시간에 의해 침식되면서 결국 자유의지로 무장한 대중에 의해 전복된 무수한 사례를 적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부마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 정신을 새 헌법 전문에 추가하자는 이유도 독재 필멸의 역사법칙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자는 의도일 것이다.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을 두 나라에 빗대는 것은 무리인 줄 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지 1년이 안됐고, 진보진영의 독주도 진영 자체의 도덕적 장점, 정치적 업적, 경제적 성취 보다는 보수진영의 한 없는 추락 덕분이라서다. 문제는 진보의 독주와 보수의 재기불능이라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진보의 자만과 보수의 자포자기 심리가 굳어지는 양상이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 진보의 장기집권을 위한 플랜과 전략이 거론되고, 진보성향의 누리꾼들은 진보의 장기집권을 위해 보수의 싹을 잘라야 한다는 공세의 전위가 된지 오래다. 반면 보수진영은 대의정당의 무기력과 유력 대변자가 고갈된 현실에 환멸을 느끼며 침묵하거나 냉소하며 가치 상실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물론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여서 1당 장기집권은 가능해도 1인 독재는 불가능하다. 그렇더라도 현재의 정치지형이 고착돼 진보 장기집권의 길이 열린다면 그 자체로 위험한 일이다. 자민당의 시선만으로 역사를 보고 민주의 가치를 전유하는 일본의 왜곡된 민주주의는 유의해야 할 선례다. 보수의 궤멸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가치 독점의 폐해를 낳고 있다. 현 정부가 노동의 가치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자본의 역할은 위축되고 있다. 노동권은 레프트윙이고 자본은 라이트윙이다. 한쪽 윙플레이어에 의지하면 슈팅 찬스는 절반으로 축소된다. 지금 한국엔 자본의 역할을 대변해 줄 보수가 없다. 4·5월 남·북, 미·북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정책변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결과에 이를지 짐작하기 힘들지만 결과에 대한 보수의 검증은 필요하다. 남북문제는 대한민국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진보와 보수의 교차 검증은 이성적인 문제 해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한쪽의 일방적 견해에 전체의 운명을 맡기는 건 위험하다. 그런데 자칭 안보 도사, 보수가 사라졌다.죽은 나무에서 꽃이 피기를 기대한다면 어리석고 참담한 일이다. 한국 보수는 지금 죽은 나무다. 미투가 진보진영을 강타해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소원대로 민주당 후보들이 미투 범벅이 된다 해도 보수 진영의 재기는 힘들어 보인다. 전망과 정책 그리고 인물에 이르기까지 자체 동력이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보수의 혼을 잠식하는 상황도 환장할 일이다. 결국 죽은 나무를 뽑아내고 새 나무를 심어야 한다. 혼이 있는 합리적 보수세력이 뭉쳐 과거와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고, 시대정신을 담은 새 정강정책을 성안하고, 시대정신의 어법을 구사할 새로운 인재를 향해 삼고초려해야 한다. 6·13 지방선거를 잔명을 이어가는 미시적 전술이 아니라 보수 재건의 거시 전략의 수순으로 활용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건강한 보수의 재건은 건강한 진보와 대한민국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8-03-20 윤인수

[경인칼럼]장소성 회복의 첩경

'변질된 공간' 시민 접근 가능한 영역으로 재생즉물적 발상은 '복고심리 자극' 일회성에 불과진정한 기억, 장소가 겪은 고통·시련 되살려야 장소성의 회복은 도시재생과 마을만들기 사업 도시와 지역혁신 사업에서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장소성(placeness)란 장소가 갖고 있다고 여기는 고유한 성격이나 분위기, 혹은 사람들이 느끼는 독특한 감정이다. 일반적으로 일정한 지역이나 건축물을 가리키는데 '공간(space)'이나 '장소(place)'라는 말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으나 그 어감은 대조적이다. '장소'라는 말은 오래된 성터나 고향 마을과 같은 곳을 환기한다면, '공간'은 현대적인 건축의 내부나 합리적으로 구획된 영역, 혹은 신화 속의 환상적 배경 등을 가리킨다. '장소'는 낯익고 정겨운 곳으로 받아들이지만 '공간'은 낯선 곳으로 여긴다. 공간과 장소의 차이는 단순히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영역의 소유나 점유방식, 기능상의 특성과 관련되는 것이다.장소는 마을의 빨래터나 실개천에 놓인 징검다리처럼 구체적이며 주변의 다른 장소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분명하다. 그만큼 투명하고 가시적이다. 장소와 관련된 기억은 상대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것들이다. 장소는 비교적 좁은 면적을 차지하며 한 점으로 수렴되는 양상을 띠고 있어 아늑하고 친근한 곳으로 체험된다. 장소는 주체의 특수한 기억이 아로새겨져 있지만 대체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하는 곳이다.공간은 대학의 강의실이나 호텔의 객실과 같은 곳이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규칙적으로 구획되어 있으며 고유성이 없는 숫자나 기호로 구분된다. 공간은 특정한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영역이므로 주체의 행위를 은연중 강요한다. 자동차는 도로 위에 올라서면 달려야 하고 교실은 공부하는 곳이고 공장은 제품을 만드는 곳이며 미술관에 들어서면 '진지하게' 그림을 감상해야 한다. 공간은 기능 때문에 더 규격화되고 균질적으로 바뀌며 거대한 아파트 단지처럼 사람들에겐 정서적으로는 더 낯선 곳이 된다.근대 이후의 사회적 변화는 산업화와 이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도시화였다. 거주자의 입장에서 보면 도시화야말로 정든 장소를 낯선 공간으로 바꾼 제1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는 삶의 영역과 터전들이 자본에 의해 사적 소유로 점유되면서 삶터가 가지고 있던 공동체적 성격과 본래의 아우라(aura)를 상실하고 만 것이다. 서울 중구 소공동의 환구단(원丘壇)은 조선시대와 대한제국기 제천행사가 열렸던 국가사적지지만 시민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의 환구단 유적은 조선호텔의 정원처럼 여겨지고 있는 실정이다.장소성의 회복이란 터가 가지고 있던 공유 기능의 회복이다. 개인이 점유하거나 상품으로 변질된 공간을 다시 시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공유 가능 영역으로 만드는 것이다. 특정한 지역이나 터전이 주민과 가졌던 본래의 관계, 사회적 역할과 정서적 기능을 살펴보고 현 시점에서 복원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야 한다. 치밀한 고증을 통해 망각된 이야기들, 역사와 기억을 되살려 내야 한다. 즉물적 발상이나 일방적 기억에만 의존한다면, 그것은 대중의 복고심리를 자극하는 일회용 소모품이 되고 만다. 장소성은 장소의 기억과 이야기이다. 진정한 기억이란 미담이나 신화도 있지만 장소가 겪어온 고통이나 시련도 마땅히 되살려야 하는 것이다./김창수 인천발전硏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발전硏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8-03-13 김창수

[경인칼럼]다큐 '커피 한 잔의 윤리'

태국 치앙라이 고산지대 커피 재배마을 배경제작비·장비 부족으로 40분짜리 단조롭지만인천지역 영상콘텐츠 제작 새로운 모델 제시지난 2월 9일 낮, 지역민방 OBS를 통해 특집다큐멘터리가 방송됐다. 태국 북부 치앙라이 고산지대의 커피 재배마을을 배경으로 한 '커피 한 잔의 윤리'다. 커피 재배를 통해 자립하고 있는 아카족과 라오족 등 소수민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팡콘마을에선 마을공동체를 위한 희망프로젝트를 추진하고, 파히마을 학교에선 134명의 학생들에게 무료급식을 시행하고 있다. 인접국가인 미얀마에서 오는 학생들도 40명이나 된다. 전통적으로 양귀비 재배로 불안한 생계를 이어오던 소수민족들은 30여 년 전 태국정부의 권유에 따라 양귀비를 버리고 커피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확물의 질 향상과 판로 개척이 늘 문제였다.그들의 고민은 '공정무역(fair trade)'이라는 글로벌 캠페인과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저개발국가의 가난한 생산자와 노동자들이 만든 물건을 공정한 가격에 거래함으로써 경제적 자립을 돕는 이 캠페인에 참가하고 있는 인천공정무역단체협의회가 바로 그 접점에 있었다. 협의회는 4년 전 치앙라이 현지의 생산자모임인 요크커피협동조합을 방문해 생산계약을 맺었다. 다큐멘터리는 협의회 관계자들이 파히, 팡콘, 리체 등 현지 마을들을 방문해 경작지와 도정시설을 둘러보고 재배농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다.대부분의 시민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인천은 우리나라 제1호 '공정무역도시'다. 국제공정무역도시를 인증하는 비영리 국제단체인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Fair Trade Towns International)로부터 지난해 11월 '공식인증(officially recognized)'을 받았다. 위원회가 인증한 아시아지역 도시는 2월말 현재 9개뿐이다. 일본은 구마모토를 비롯한 4개 도시가 등재돼 있고, 타이완에선 타이베이가 유일하다. 이러한 공정무역의 필요성과 공정무역도시를 지향하는 인천의 노력을 제대로 알리지 못해 늘 갑갑해하던 김정렬 협의회 상임이사가 지난 2015년 연말 무렵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를 찾아왔다. 좀 도와달라고 했다.제작비는 많진 않지만 인천시가 협의회에 지원하는 공적 자금이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적임자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잘 몰라서 그렇지 인천지역에는 영상전문역량이 넉넉하다. 인천독립영화협회 여백 감독이 흔쾌히 참여를 수락했다. 촬영장비와 편집시설은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지원하기로 했다. 완성된 콘텐츠를 '태울' 플랫폼은 제작 마무리단계에서 찾기로 했다. 이듬해 1월 치앙라이의 커피 수확철을 맞아 첫 촬영이 시작됐다. 편집이 다 끝난 시점이 그해 겨울이었으니 제작에 꼬박 일 년이 걸린 셈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콘텐츠가 적절한 플랫폼을 찾는데 다시 반 년 이상의 시일이 소요됐다. 첫 시도라서 경험치가 부족했다.'커피 한 잔의 윤리' 러닝타임은 다큐멘터리치곤 좀 짧다싶은 40분이다. 요즘 영상물에서 빠지면 섭섭한 드론 촬영분도 없다. 카메라의 시각도 단조롭다. 제작비와 활용 가능한 장비, 그리고 제작인원이 태부족이었던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큐멘터리는 지역 영상콘텐츠 제작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대개의 영상물에서 부정적 이미지의 프레임에 굳게 갇혀있던 인천이 이 다큐멘터리에선 글로벌 도시로서 가져야 할 자세와 정체성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성숙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감독의 시선이 지향하는 도시의 비전은 높고 긍정적이다. 또한 재원의 합리적 배분, 잠재역량의 발굴과 지원, 하드웨어의 구축과 활용, 최적의 플랫폼 확보 등 일련의 작업들이 합당한 주체에 의해 체계적으로 수행된다면 인천 영상문화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확장된다. 'KBS인천총국 유치'나 'OBS 인천복귀'와는 다른 얘기다. 인천은 지금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영상콘텐츠정책을 필요로 한다. 다큐멘터리 '커피 한 잔의 윤리'가 그 단서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8-03-06 이충환

[경인칼럼]재벌총수의 깜짝쇼

오랜 관행처럼 돼버린 대기업 총수 '깜짝쇼'그들이 보여준건 '화장실 다녀온 뒤의 모습'국민들의 반응은 '반기업정서'만 부추길 뿐 올겨울의 동장군은 유난했다. 역대급 맹추위가 빈번하게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장롱 깊숙이 처박아 두었던 겨울옷들을 잔뜩 껴입어도 별로였다. 뒤뚱거리며 오가는 행인들의 모습에서 절로 웃음이 나기도 했다.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 했던가. 날씨가 추운 만큼 서민경제도 얼어붙을 수밖에 없는 탓이다. 문재인 정부는 가진 자들에 족쇄를 채우면서 서민들에게는 포괄적 복지와 저녁 있는 삶을 제공한다며 경기 진작에 팔을 걷어붙여도 윗목의 냉기가 전혀 가시지 않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삼성이 느닷없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지난 7일 세계 1위의 삼성전자가 평택 고덕산업단지의 반도체 캠퍼스에 세계 최대 규모의 새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 관련 반도체 신규수요에 부응해 시장 주도권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무려 30조원을 투자해 기존의 1공장과 같은 규모로 2020년까지 완공한단다.평택을 비롯한 경기남부권 주민들은 초대형 개발호재에 반색했다. 지난해 7월 평택 1공장 가동 후 1일 평균 1만2천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었으며 월평균 500억 원의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있었다는데 또다시 쌍둥이 공장을 건설하겠다니. 공재광 평택시장은 삼성의 2기 투자로 163조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일자리 44만개 창출이 예상된다며 기대치를 높였다. 서민들이 설 대목을 거의 체감 못할 정도로 내수가 꽁꽁 얼어붙은 지경이어서 반가운 것은 사실이나 개운치는 못했다. 이 뉴스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석방 이틀 만에 발표된 것이다. 이 부회장은 작년 2월 17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433억원대의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된 지 353일 만에 2심 재판부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때문이다. 해방이후 최대의 정경유착 혐의를 정부가 너그럽게 용서(?)해준데 대한 사례인지 혹은 나라님도 못하는 경제 살리기를 재벌은 할 수 있다는 과시의 메시지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재벌총수들의 '깜짝쇼'는 오랜 관행이었다. 1966년 9월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협의가 세간에 불거지자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부랴부랴 한비 주식 전부(51%)를 국가에 헌납하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고 선언했다. 국민들은 거듭 충격을 받았다. 국내최고 기업이 잡범수준의 밀수입에 연루되었다는 점이 첫 번째였으며 둘째는 개인기업의 오너경영인이 사회물의로 퇴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병철의 총수직 복귀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대 이건희 회장의 경우 2007년 김용철 변호사 양심선언에 따른 특검수사로 4조5천억 원의 비자금을 차명계좌로 숨긴 사실이 확인되면서 국민들은 또다시 경악했다. 이 회장은 1조4천억원의 사회 환원을 공언하며 총수직을 전격 사퇴했다.그러나 10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건희 회장의 약속은 실천되지 않고 있다. 현대차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확인된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2008년 693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900억 원대의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정몽구 회장을 수감 73일 만에 특별사면했다. 당시 정 회장은 8천400억원의 사재(私財)를 사회에 환원할 것을 약속했으나 10년이 지나도록 장학금 지급, H-온드림 펠로 육성, 다문화가정 지원 등 이행실적은 2% 정도에 불과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2013년까지 해당 금액만큼의 계열사 주식을 정몽구재단에 넘겼으므로 약속을 이행했다고 언급했다. 언제까지 어떤 방법으로 환원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터여서 불감청(不敢請)이나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재벌들의 언론플레이는 위의 사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두 푼도 아니고 거금을 흔쾌히 내놓기 어려울 것이나 지금까지 재벌총수들이 국민들에게 보여준 행태는 화장실 다녀온 뒤의 모습이다. 세계유수의 명문기업 성장비결은 사회와의 원활한 소통이다. '깜짝쇼'는 국민들의 반기업정서만 부추길 뿐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8-02-27 이한구

[경인칼럼]'포스트 평창'의 정치학

북한 핵실험 동결 등 '비핵화 단초' 명분으로한미군사훈련 공세적 성격 완화 한국의 역할보수정당의 정치적 유연성·냉철한 인식 절실평창올림픽은 한반도 긴장을 잠시 유예시켰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 전격 제안은 대북제제 완화, 한미 균열 등을 노린 전략적 사고가 개재됐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북의 계산이 무엇이든 올림픽에서의 안보위협을 제거하고 향후의 불가측성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모멘텀을 마련했으니 남북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의 행위 주체자들은 상생의 결과를 얻어낸 셈이다.문제는 '평창'이후다. 포스트 평창의 모호성은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펜스 부통령의 올림픽 개막식에서의 의식적인 북한 무시 행동은 비핵화 없는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확고한 미국의 의지를 전달했다. 물론 미국은 '대화'를 언급하고 있으나 역시 방점은 비핵화 의사가 없는 북한에 대한 군사 옵션을 포함한 최대의 압박에 찍혀있다.남북대화와 북미대화의 선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반도는 다시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미국은 '핵 있는 평화'를 용인하지 않는다. 올림픽 이후 한미연합군사 훈련이 재개되고 이에 반발하여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이 이어진다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한국은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관리할 숙명적 과제를 안고 있다. 북한의 사정권에 있는 일본은 미국과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이렇듯 한반도 주변 당사자들의 셈법은 각기 다르다.한미, 남북, 북미, 미중 등 양자 및 다자의 중층적 논의구조에서 교집합을 도출해 내지 못하면 한반도 정세는 시계제로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역시 관건은 북한이다. '핵 있는 평화'를 원하는 북한의 생각은 한반도를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게 할 수 있다. 북한이 핵 동결이나 비핵화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 없이 북미대화의 물꼬를 틀 수 없다는 상황인식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는 한반도 안보위기 해소의 관건이다. 그러나 핵 동결이나 미사일 발사의 중단 등의 과정을 거쳐 비핵화로 접근하는 로드맵에 대해 부정적인 미국의 경직된 태도도 한반도 문제의 불안요소다. 북한과 미국의 유연성이 동시에 요구되는 이유이다.문제는 국내정치다. 국제정치와 국내정치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한반도 논의구조에서 국내정치는 국제정세 못지 않은 결정력을 지닌다. 한국정치에서 안보변수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한다면 평창 이후,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상상력과 가변성은 극대화될 것이다. 정치권은 지방선거 모드로 전환되고 지지율이 밀리는 보수정당은 안보이슈를 최대한 활용하여 지지층 결집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북한 변수는 역대 지방선거에서 보듯이 특정 정파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2010년 천안함 폭침에도 불구하고 당시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지방선거 전에 발표됐으나 역시 여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수정당들은 여전히 안보이슈를 극대화해서 선거경쟁에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한국의 낡고 박제된 정치문법 때문이다.보수일각의 극우적 안보인식과 박제된 냉전적 사고는 복잡다단하게 전개되는 한반도 안보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하는 결정적 요소들이다. 여론을 설득하지 못하면 북미대화를 위해 북한과 미국을 중재해야 하는 한국정부의 상대적 자율성은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여건'에는 미국을 설득시키는 일 못지않게 국내여론의 지지도 포함된다. 지방선거에서 안보보수를 내세운 '색깔론' 등 기존의 프레임이 일정 부분 보수층을 자극한다면 '한반도 운전자론'의 운신 폭은 현저히 좁아진다.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의 동결 등 비핵화의 단초를 열 공간을 확보하고 이를 명분으로 한미연합군사훈련의 공세적 성격을 완화시키는 조치를 취하게 하는 것이 한국의 일차적 관문이 될 것이다. 평창 이후의 한반도 상황을 여하히 관리하느냐는 이념의 차원을 넘는 영역이다. 보수정당의 정치적 유연성과 냉철한 상황인식이 절실하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육대학원장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육대학원장

2018-02-20 최창렬

[경인칼럼]'맏형' 수원시가 사는 법

어느 정치인 "이웃지자체 큰형 격인 수원시매사 구실 못해 시끄럽고 요란해 부끄러워"어울려 살려면 양보하고 손해 볼 줄 알아야2013년 입주한 용인시 영덕동 청명센트레빌 아파트는 수원시 원천동과 영통동 사이 U자 형태로 둘러싸여 있다.수원이 생활권이고, 어린이들은 1.1㎞ 떨어진 용인 흥덕초등학교에 다닌다. 등굣길은 왕복 8차로 도로가 가로막는다. 200m 거리에 수원 황곡초등학교가 있지만 다닐 수 없다. 초등학교 배치는 해당 지자체 거주자로 제한된다.입주민들이 수원시로의 편입을 원하는 이유다. 용인시는 학군이라도 조정하자 했으나 진전이 없다. 수원시는 급할 게 없고, 용인시는 답답하다.화성시 등 5개 지자체가 광역화장장을 건립하기로 했다. 님비(NIMBY)를 극복하자는 고육책이다. 2013년, 화성시 매송면 숙곡1리가 후보지로 결정됐다. 의기투합 3년 만이다. 화장로 13기, 장례식장 6실, 봉안시설 2만 6천440기, 자연장지 3만8천200기를 갖춘 대형 종합장사시설이다. 한숨 돌리는가 했는데,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수원시 호매실지구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화성시는 무연·무취·무색의 첨단시설이라 피해가 없다고 설득했다. 후보지와 호매실간 거리는 2㎞가 넘고, 칠보산이 가로막았다. 호매실 주민들은 편서풍을 타고 먼지가 넘어온다 주장했다. 팩트(Fact)는 뭉개지고, 감정만 쌓였다. 양측의 눈과 귀가 수원시로 향했다. '안된다'고 했다. 화성뿐 아니라 부천·안산·시흥 ·광명이 함께 주저앉았다.수원은 용인·화성·의왕·안산·군포 5개 지자체와 접한다. 도 수부(首府) 도시에 인구가 가장 많다. 맏형 격이다. 그런데 형님을 바라보는 동생들 눈길이 곱지 않다. 노골적으로 불만과 불평을 하는 지경이 됐다. 용인·화성시와는 경계 조정과 군 공항 이전을 두고 다툰다. 경계조정이 어긋나면서 의왕시와도 서먹하다.수원시는 딴청이다. 이웃 간에는 다툼과 시비가 있기 마련이라고. 양보할 생각이 없고, 손해 보는 일은 더 안된다는 태도다. 주변이 시끄럽자 중앙정부에 손을 내밀다 면박만 받았다.수원은 전에 빚진 게 있다. 1990년대 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계동 시립화장장은 골칫거리가 됐다. 외곽으로 이전을 추진했다. 수차례 진통 끝에 용인시계와 접한 하동으로 옮기게 됐다. 지금의 연화장이다. 용인시와 시민들의 이해와 동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수원시 하수를 걸러내는 종말처리장의 주소는 화성시 송산동이다. 최신 기법이라도 모든 악취를 없앨 수 없다. 화성시와 시민들은 냄새나는 혐오시설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상생의 마음이다.동네 한복판이 된 군 공항 이전은 수원시의 숙원이다. 경계선까지 개발된 마당에 굉음을 내며 전투기가 오르내리는 건 주민들의 인내 치를 넘어선다.후보지가 된 화성시는 '죽어도 안 된다'고 결기를 다진다. 대구와 광주는 공항 이전이 저만치 나갔으나 수원만 꼼짝 못하고 있다.광역화장장이 들어선다 했을 때 서수원 주민은 반대할 수 있다. 그런데 수원시와 염태영 시장까지 나서 힘을 보탠 건 과했다. 화성시민과 채인석 시장은 분노했다. 당위와 논리가 밀려나는 '군 공항 결사반대'의 속내는 구원(舊怨)일 것이다.얼마 전, 수원의 정계 인사가 이런 말을 했다. "수원은 이웃 지자체들의 맏형 격인데, 구실을 못하니 시끄럽고 요란하다. 답답하고 부끄러운 노릇이다."어울려 살려면 때로 양보하고 손해 볼 줄 알아야 한다. 집안 맏형이라면 어찌해야 할지 말할 필요도 없다. 형님이 너그러워야 가정이 편하고, 형제간에 어깨동무한다.'언눔' 전우익 선생(2004 작고)은 평생을 경북 봉화에서 자연과 벗하며 살았다. 그가 꾸짖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홍정표 논설실장홍정표 논설실장

2018-02-13 홍정표

[경인칼럼]블록체인기술과 문화지형의 변화

디지털 콘텐츠 유통혁신 예고 제도 필요자유로운 거래 공동체 활성화 잠재력도정보 공유·분산 '민주주의 새모델' 유추4차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는 정부가 정작 암호화폐 앞에서 혼선을 자초하고 있다. 암호화폐의 실체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거래소 폐지를 공언했던 법무부 장관은 국민들의 항의가 폭주하자 거래 실명제 도입으로 물러섰다. 역기능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유시민 작가도 암호화폐를 두고서는 사회적 기능은 없고 대중을 현혹하는 악으로 '단죄'하기에 급급하다. 암호화폐란 컴퓨터가 연결된 네트워크가 거래내역을 보증하는 온라인상의 가치 교환행위를 말한다. 화폐를 관리하는 기관이 존재하지 않고, 실물이 없다는 점에서는 전통적 화폐와는 다르지만 '거래와 지불'을 보증하고 있기 때문에 화폐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현재 거래중인 1천여종의 암호화폐가 있으며, 시가총액은 570조원에 달한다. 10년내 블록체인 플랫폼이 세계 GDP의 10%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는 '실체없는 신기루'라고 비난하나 버블논란과 무관하게 '실체'이며 대세임을 입증한 것이다. 월마트는 블록체인 기술에 사물인터넷을 결합하여 중국 업체들이 납품하는 돼지고기의 사육과정과 육질, 유통경로와 위생상태를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다. 무역거래에서 수출입의 전과정을 하나의 체인으로 연결하여 실시간 확인 가능한 선박물류시스템의 블록체인화를 추진하는 나라도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문화콘텐츠 시장의 지각변동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닥(Kodak)사가 개발 완료한 사진 거래용 암호화폐 '코닥코인'과 블록체인 기반의 사진 거래 플랫폼인 '코닥원'이 대표적이다. 사진가가 코닥원에 사진을 등록하여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고 사진 사용에 대한 저작권료를 자동으로 받는 블록체인 시스템이다. 이 기술은 다른 콘텐츠에도 적용될 수 있다. 콘텐츠 저작권 저작물을 등록하면 저작권 정보가 입력된 블록이 형성된다. 등록된 저작물을 소비자가 내려받으면 원작자에게 저작권료가 자동으로 지급된다. 블록체인 기반의 플랫폼에서 콘텐츠 거래는 극도로 단순화된다. 소비자들은 수수료 없이 콘텐츠를 구입할 수 있으며, 저작자들은 높은 가격으로 대량 판매가 가능하다. 사진이나 영상, 음반 등 디지털 콘텐츠 유통 혁신을 예고하고 있어 제도적 대비가 필요하다.블록체인 기술은 지역과 공동체를 활성화할 수 있는 잠재력도 지니고 있다. 중개자나 관리자 없이도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지역암호화폐 거래망을 구축하게 되면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 지역주민의 기부나 봉사활동 결과를 지역 암호화폐시스템에 입력해두면 나중에 전통시장이나 지역 가맹점, 문화공연장 등에서 환산한 액수만큼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최근 지역 암호화폐 '노원(NW)'을 발행한 서울시 노원구의 창조적 실험이 성공했으면 좋겠다.블록체인 기술에서 보안(security)은 역설적이다. 전통적 보안은 정보를 한곳으로 모으고 타인들의 접근을 봉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에서는 네트워크가 확장되고 분산될수록 보안성도 강화된다. 정보의 공유와 분산으로 더 안전한 거래를 보장하는 블록체인 '기술'에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을 유추할 수 있다. 정보 독점과 집중으로 비대해진 권력의 폐단을 분산과 개방의 원리로 극복할 가능성 말이다./김창수 인천발전硏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발전硏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8-02-06 김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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