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행정대집행

[경인일보=]명산에는 등산객이 몰리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먹거리촌이 형성된다. 많은 곳이 무허가 불법영업으로, 매년 고발과 벌칙금, 전과자의 악순환을 거치면서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곳이 생활전선이며, 적게는 수년 많게는 수십년 장사를 해 온 터전이기 때문이다. 떠나서는 그만큼의 생활을 영위하기도, 자신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지 모른다. 자연보전구역이나 상수도보호구역 등 영업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곳에서의 영업이 이뤄진 이유지만, 당시 행정당국이 이들의 행위를 인정적인 면에서 눈감아 준 것도 한몫 했을 터다. 기간이 길어지면서 수가 늘게 됐고 개중(個中)에는 돈벌이가 커져 내놓기 섭섭하고 못마땅해 단속 등 행정기관의 법적행위에 항의하며, 불법영업을 이어가는 기업형 식당도 있을 수 있다. 시작은 몇 안 되는, 구멍가게 규모여서 인정에 끌린 면이 있었다면 끝은 한바탕 실력행사로 아수라장이 되곤 한다.광교산 무허가 보리밥집이 철퇴를 맞았다. 인정법에 끌리고 마찰을 우려해 경고만이 연례행사였던 전례에서 탈피, 이번에는 포클레인 등 중장비를 동원해 대대적인 원상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상수원보호와 환경개선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명제를 앞세워 수원시가 철거를 예고했고, 광교상우회에서 받아들여 자진철거키로 하면서 여타 지역에서 봐 왔던 충돌은 다행히 발생하지 않았다.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아픔은 이들의 호소에서 느낄 수 있다. 토박이들은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으로 인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업주들이 자진해 철거에 나선 만큼 시에서 상인들과 공존할 수 있는 좋은 해결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당부의 말로 아쉬움을 달랜다.광교산은 주말이면 수원뿐 아니라 인근 수지와 의왕 등 수도권 일대의 등산객이 인산인해를 이뤄 전진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을 정도로 명산이다. 자연스럽게 등산객의 허기를 채울, 땀을 씻고 잠시 쉬어 갈 공간인 먹거리촌, 보리밥집이 생겼고 유명세를 타면서 모임을 하고 맛집을 찾는 시민들이 몰리는 명소가 됐다. 시 살림에도 보탬이 돼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특수성이 아니라면 양성화해 상권을 살리는 방향으로 조치가 이뤄졌어야 하는 곳이 광교산 밥집이다. 따라서 반대급부가 분명히 있다. 광교산과 보리밥집은 동의어처럼 연관지어져 있다. 기우일 수도 있겠으나, 즐겨 찾던 맛집이 사라졌다는 것은, 주말이면 등산객을 싣고 오던 관광차는 물론이요 수원시민들의 발길도 뜸해질 수 있다는, 그래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가정이 가능하다.수대에 걸쳐 지켜온 주민들이 1971년 6월 개발제한구역 및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부터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아왔다. 무허가 영업은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한 데 대한 보상이라는 인식이 크게 자리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상수원구역에서의 무허가 음식점 영업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 맞다. 광교산 보리밥집은 무허가 불법이 허용됐다는 데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며, 용인이 돼 왔다는 점에서 철거와 함께 이들의 생계를 위한 대책도 나왔어야 하지 않았을까. 더욱이 다툼이 10여년을 끌어왔고, 상인들과 광교산을 찾는 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기 위해 TF팀까지 가동하고 있으면서도 철거 전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느낌이 강하다.시의 행정대집행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또한 관선이든 민선이든 몇 대를 걸쳐 법과 원칙이 작동하지 못한 기간만큼 그곳에서 삶을 영위해 온 주민들의 생활은 고착화돼 있다고 봐야 한다. 새로운 세계를 적응하기 위해서는 기간이 필요하며, 지금부터라도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당사자인 상인과 지역 주민, 산과 보리밥을 연상짓고 늘 그곳을 찾던 시민 등…, 행정당국만이 아닌 고른 의견을 청취하는 것도 환경개선과 지역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앞으로는 첫 단추를 어긋나게 끼우지 않도록 매뉴얼을 만드는 일에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잘못이 되풀이되면 행정당국도 시민도 모두가 고단해진다.

2011-06-28 조용완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재발걱정 없나

[경인일보=]저축은행 부실이 남긴 상처는 매우 깊어 보인다. 사정(司正)의 최후 보루인 감사원의 고위 인사와 금융감독원 수장까지 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탓이다. 경찰이 절도행위를 거드는 모양이었으니 힘없고 빽(?)없는 서민예금자들만 날벼락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부실은행 오너들의 파렴치 범죄로 인한 손실보전에 거금(巨金)이 소진됐는데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자금이 투입될지 가늠되지 않는다. 캐면 캘수록 고구마줄기처럼 부실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니 말이다.앞으로가 더 문제다. 또 한 차례의 구조조정 쓰나미가 임박한 때문이다. 저축은행들의 결산마감일이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왔으니 말이다. 부동산경기 침체가 계속된 데다 올해는 부실문제까지 불거져 저축은행들의 올해 경영실적은 예년보다 나쁠 전망이다. "하반기에 저축은행에 대한 추가 영업정지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그렇다"는 답변이 시사하는 바 크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대출 비중이 높고 재무구조가 열악한 자산 1조원 이상의 대형 3곳과 5천억원 이상의 중형 1곳이 살생부에 오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미 2차 수술준비를 끝내고 작전개시 명령만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대책 발표 시기도 머지않은 듯하다. 저축은행의 영업실적이 공표되는 8월 이전에 작전을 개시할 가능성이 크다.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에 대한 우려로 저축은행들은 벌써부터 크게 긴장하고 있다. 전국의 수많은 소액예금자들도 불안해 하기는 마찬가지다. 주목되는 것은 그간의 준비상황이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로 구성된 저축은행 구조조정태스크포스(TF)는 저축은행에 한해 다음달 1일부터 실시예정이었던 국제회계기준(IFRS)의 적용시한을 5년간 연장했다. IFRS를 당장 적용할 경우 대손충당금이 일시에 불어나 부실이 더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89개 저축은행의 468개 부동산 PF에 대한 전수조사를 완료, 부실채권을 선별해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인수중이며 부실 PF대출 처리기간도 종전의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해 주었다. 지난해 7월 캠코에 부실채권을 넘긴 61개 은행 중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 미만인 17곳에 대해서는 6개월 유예도 허용했다. 부적격 대주주들에 대한 심사작업도 이달 중에 완료할 계획이다.후순위 채권 피해자 구제방안을 강구하고 대부업체가 보유한 고객 신용정보를 저축은행이 공유케 해서 경영개선을 유도할 방침이다. 그동안 제도권 금융기관들은 대부업체의 고객신용정보를 확인할 수 없어 대출부실이 빈발했던 것이다. 여신전문 출장소 설립 요건을 대폭 간소화하는 한편 뱅크런에 대비해 저축은행들에 최대한의 실탄(현금) 확보를 강요했다. 덕분에 일반예탁금은 지난 1월의 2조3천100억원에서 5월 말에는 3조1천500억원으로 증가했다. 저축은행 수신고가 작년 말 77조원에서 73조원으로 축소되는 등 안전한 곳으로의 자금이동도 고무적이다. 김석동 위원장은 연착륙에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다.관건은 구조조정재원의 확보다. 지난 3월 예금자보호법을 개정해서 15조원의 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을 마련, 이 중 4조8천억원은 8개 부실저축은행의 예금가지급 등에 소진했다. 매각작업에 추가로 2~3조원이 더 지출될 예정이어서 하반기 구조조정에 투입할 재원은 6~8조원 가량이다. 감독당국은 이 자금만으로 최대 8~9곳까지 구조조정할 수 있다며 공적자금 조성설을 일축했다.그러나 이 정도만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려 3조원 이상의 아이들 머니(idle money)가 저축은행 경영을 압박하는 터에 '눈가림 감사' 제재를 의식한 회계사들의 엄격한 회계감사까지 예고돼 부실규모는 정부 예상보다 더 커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2차 충격의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했다. 서민예금자들이 또다시 낭패하지 않도록 보다 신중한 사전준비를 당부한다.

2011-06-21 이한구

중소기업 육성의 진정한 의미

[경인일보=]21세기 들면서 독일경제의 성장세가 만만치 않다. 지난 90년대만 해도 독일 장인제도의 종언이라는 표현이 설득력을 가졌던 적이 있다. 특히 독일의 전통적인 강점이었던 전자 및 광학 분야에서조차 일본에 밀려나면서 독일경제시스템에 대한 의문이 강화되었던 것이다. 그랬던 독일경제는 다시 부활해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중소 부품·소재 업체들의 성장세가 특히 두드러진다. 최근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높은 중소기업군(群)을 지칭하는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을 비롯해서 다양한 글로벌 강소(强小)기업 리스트에 많은 독일기업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이러한 독일의 성장세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중소기업 정책이다. 독일은 산업육성 측면에서는 여러 유럽 국가들과 연합하여 움직이지만, 중소기업 정책에서만은 독립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독일이 선택한 중소기업 정책의 핵심은 공정경쟁의 조성이다. 여기서 공정경쟁이란 기업간 정당하고 치열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여 진정으로 실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성공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구체적으로 첫째, 효율적인 경쟁자들이 활발히 경쟁하는 여건조성. 둘째, 혁신을 추진하는 중소기업을 우대하는 환경조성으로 요약된다.한국경제에서 중소기업 정책이라고 하면 시장에서 실패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을 돕는 후생적 의미가 강한 편이다. 그래서 한계에 도달한 중소기업에 세제혜택을 주거나 자금을 대출해주는 것 등이 전형적인 수단이었다. 그런데 독일이 보여주었듯이 성공하는 중소기업 정책은 한계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아니다. 독일은 공정경쟁 정책을 통해, 역량 있는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고 또 한계기업들은 퇴출시키면서 경쟁력을 회복했다. 독일의 최근 성공은 공정한 경쟁이야말로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최선책임을 다시 일깨워준 것이다.특히 첨단·고부가가치화를 소망하는 인천경제에 독일의 중소기업 정책은 소중한 교훈을 준다. 첫째, 중소기업 정책은 경쟁력을 키워주는 것이라는 교훈이다. 특히 산업근대화의 기조였던 제조집적지를 탈피하고 고부가가치화로 전환하려는 인천경제에는 의미가 큰 교훈이다. 인천경제에 필요한 첨단지식 중소기업군을 키우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혁신역량을 갖춘 중소기업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실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키우는 정책 인센티브가 제대로 작동할 때, 인천경제는 글로벌 실력자들로 가득할 수 있을 것이다.둘째, 정책성과를 쉽게 평가하려는 욕구를 버려야 한다. 정책입안자의 입장에서는 정책성과를 쉽게 계량화하는 방책을 선호한다. 그래서 정책입안 시점에서부터 수혜 대상을 확정하고자 한다. 정책대상을 확정하는 좋은 정책이 바로 기업인증제도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벤처인증제도인데, '벤처기업'이라는 브랜드를 인증해 주고 그 기업들에 세제혜택 등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인증제도의 편리함은 벤처기업 인증 수(數)라는 계량적 지표에 의해 정책을 평가받는다는 점에 있다. 이 때문인지 기업인증은 점차 이노비즈(INNOBIZ·기술 혁신형 중소기업) 또한 사회적 기업과 같은 다양한 범위로 확대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중앙정부의 인증을 넘어서 지역별 인증제도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중앙정부의 기준에 미달되는 기업들을 지역에서 문턱을 더 낮추어서 인증을 주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 왜냐면 도덕적 해이가 더욱 심해져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설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인천경제의 자부심은 중소기업을 통한 산업화에 대한 공헌이었다. 그런데 인천의 새로운 소망은 산업화 시대의 단순 제조집적지에서 벗어나 첨단·고부가가치화에 성공한 중소기업들의 메카로서 도약하는 것이다. 이 소망을 이루는 비결은 실력 있는 기업을 키워주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을 질책하는 공정경쟁 조성뿐이라는 지혜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1-06-14 손동원

창조적 시민과 미래도시

[경인일보=]이상 도시에 대한 로망 혹은 도시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은 언제나 소중하다. 최근 도시문제와 폐단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지난 세기에 추구해 온 도시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전면적이고 입체적 비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장기계획이 부재한 계획은 결국 전략없는 전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나 국가가 장기 전략이 없거나 단지 메타포로만 제시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비현실적인 이상주의도 문제지만 유토피아적 비전에 입각하지 않는 단기 계획들이란 말 그대로 대중추수주의나 유행의 모방에 급급해 지속성을 갖기 어렵거나 공공재원의 낭비로 귀착될 가능이 높기 때문이다. 사회의 변화속도가 수십 년의 미래를 예측하는 장기적 구상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일 수 있다. 당파적 관점 때문에 의미있는 지난 정부나 타 정당의 정책이나 실험을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많다. 참여정부가 공들여 만든 '비전 2030'이 현 정부에서 참고하거나 인용하지 않는 것이 그 사례다.이상 도시의 꿈을 비현실적이라 할 수 있을까? 자동차 회사들은 모터 쇼에 출품되는 콘셉트 카(concept car)를 통해 회사가 지향하는 스타일과 기술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모터쇼에 제시되는 콘셉트 카는 당장 생산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미래형 모델이어서 상당수가 폐기되기도 하지만, 이상적 디자인과 기능을 매개로 자동차 회사는 소비자와 소통하며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미국 애리조나주 사막 한가운데 건설된 친환경 생태도시 '아르코 산티'는 사막위의 낙원으로 불리는 현존하는 유토피아 도시의 하나다. 생태건축학자인 파울로 솔레리가 설계한 아르코 산티 사람들은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하고 유기농법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며, 차없이 걸어다니는 환경친화적 유토피아다. 이 미국판 무릉도원의 콘셉트를 일반적인 현대도시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태적 가치의 극한을 실험해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아르코 산티는 현존하는 유토피아 도시라는 찬양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한국의 여러 도시가 모델로 삼고 있는 도시의 미래는 문화도시다. 한국의 경우 문화도시를 '문화 예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도시'로 생각하고 있으나, 이 개념이 제기된 유럽에서 문화도시는 도시의 공공적 인프라가 얼마나 인간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으며 또 독창적인가 하는 기준으로 선정된다. 즉 유럽에서 문화도시는 특정한 이벤트가 아닌 도시 정책과 행위 속에 얼마나 많은 인간주의가 담겨져 있는가가 평가의 기준이 되고 시민의 일상의 삶과 도시의 공간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가를 말해주는 척도였던 것이다. 문화도시의 핵심 가치가 인간주의의 구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의 인프라 중심으로 사고한 것은 유럽과 한국이 처한 환경적 차이에 기인한 것이다.최근 새로운 도시 패러다임으로 부상한 창조도시론의 전략은 도시가 가진 고유 자원과 가치를 재발견하고 생산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패러다임의 특징은 창조적 시민이야말로 미래도시를 구현할 자원이자 주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학습하는 도시'(learning city)가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학습도시는 도시인들이 능동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공유함으로써 도시의 미래를 담당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능동적 학습이 도시와 사회 전체로 확대 심화될 때, 도시가 변화에 적응하고 장애물을 극복하며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학습도시란 도시 내부의 곳곳에 오류를 점검하고 반성하는 시스템을 구비한 도시이기 때문이다.대표적 창조도시론자인 찰스 랜드리가 스스로 '반성하는 도시'로서의 학습도시가 창조도시보다 더욱 강력한 메타포(이상적 도시 비전)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2011-06-07 김창수

'정치쇼'라도 보고 싶다

[경인일보=]참으로 이게 나라인가. 부족사회인가. 곳곳이 제몫찾기 전쟁이다. 지금은 좀 한숨을 돌렸다지만, 정말 가관이다. 세종시로 온 나라를 들쑤셔놓더니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등장했다. 이어서 과학비즈니스벨트, LH(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 이전 문제로 나라가 사분오열됐다. 국익이나 나라는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지역이익뿐이다.시발은 동남권 신공항의 백지화다. 아직 신공항의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아 당장 건설하는 것은 국익에 반한다는 것이 정부의 결론이다. 어찌보면 뻔한 결론이었는지 모른다. 한 식구라던 영남권이 남북으로 갈려져 있는 상황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 올릴 수 있었겠는가. 예상대로 이 지역들은 난리가 났다. 삭발을 하고, 떼거지로 항의집회를 열었다. 국회의원들의 말투를 보면 여당의원인지, 야당의원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오히려 여당쪽 의원들의 목소리가 더 컸다. 정부는 내친 김에 과학벨트와 LH의 이전 문제까지 결론을 내버렸다. 때늦은 결론은 다분히 지역적 분배 성격이 강했다. 그런 만큼 그 파장도 컸다. 신공항때와 마찬가지로 단식 농성에 삭발 시위로 이어졌다. 도지사는 물론이고 국회의원까지 예외는 없었다.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도, 장관을 지낸 이도 가세했다. 국익에는 늘 뒷전이었던 국회의원들도 지역문제라면 열일을 제쳐놓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쟁을 조정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분열의 중심에 선 모양새다.정부도 참 한심했다. 어느 것 하나 명분있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설득력도 부족했다. 그냥 뻔한 술수가 지역민들에게 읽혔다. 결과가 훤히 보이는데 마냥 시간만 끌어온 꼴이다. 그러다 보니 해당 주민들 입장에선 얼마나 허탈하고 분노가 치밀었을까. 이해도 간다. 요즘 정부가 하는 일이 뭐하나 시원하게 해법을 제시하는 게 없지 않은가. 그렇다 치더라도 국익은 제쳐두고 오직 지역민에만 파고드는 영호남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좀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고, 얄밉기까지 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우린 왜 '이런 정치인들이 없을까'하고 내심 부러움이 앞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 정치인들의 행동은 그 지역에선 정작 '정치쇼'로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속이 훤히 보이는 '오버액션'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모양이다. 지키질 못할 약속을 남발하고, 생색내기에 급급하고, 일이 터지고 나면 앞장서서 걱정하는 체하는 일종의 쇼 말이다. 일이 벌어졌을땐 가만있다가 다 끝난 후에 난리를 펴고 있다는 눈총인 셈이다. 그렇다면 인천 국회의원들은 어떠한가. 인천은 요즘 어느 때보다도 굵직굵직한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누구 하나 몸을 던져 해결하려는 사람이 없다. 특히 중앙무대에서 힘을 보태야 할 인천 출신 국회의원들은 늘 뒷전이다. 아예 잠수를 탔다는 말이 옳을듯 싶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요즘 부쩍 지역구에서 얼굴을 내민다고는 하는데, 정작 지역현안에 대해선 꿀먹은 벙어리다. 겨우 한다는 것이 지역 언론의 기고를 통해 내는 목소리가 전부다(총선팸플릿용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인천은 2014 아시안게임이 지척인데, 아직 주경기장은 삽질도 못했다. 정부가 설계변경 승인을 이유없이 질질 끌다가 뒤늦게 승인했고, 정부의 예산 지원은 한 푼도 못받을 판이다. 또 인천만 건설과 수도권쓰레기매립지 매립기간 연장 등등. 중앙부처와 얽힌 현안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그 중심에 서서 현안을 조정하고, 중앙정부와 맞붙어서 예산을 따내야 할 우리의 선량(選良)들은 보이질 않는다. 인천시장이 야당 소속이라서 여당 의원들은 돌아가는 '꼴'만 보고 있단 말인가. 그럼 야당 의원들은 어디서 뭐하고 있는가. 참 답답한 노릇이다. 차라리 '정치쇼'라도 좋으니, '인천의 목소리'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줄 수는 없을까.

2011-05-31 김은환

국방개혁

[경인일보=]국방(國防)의 목표는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 전쟁을 방지하고 다른 나라의 도전을 억제하는 데 있다. 군사적인 발전과 전쟁규모의 대형화, 복잡한 국제관계로 인해 자국의 힘만으로는 방위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각 국이 상호공동방위와 집단방위체제를 유지하려는 이유다. 전쟁이 불가피하면 총력을 기울여 이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국방이다. 전제 조건은 당연히 자국의 경제력과 국방력이다. 나부터 실력을 갖추고 국제 세력을 쌓아야 튼실하고 안전보장을 위한 신뢰의 폭을 넓힐 수 있다.'국방개혁 기본계획 11-30'이 논란이다. 자주국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방개혁은 의존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도 크겠으나, 우리가 살고 있는 영역을 지켜낸다는 자발적 선언의 자긍심이 더 크게 다가와야 한다. 의욕과 자신감, 즉 사기가 없으면 그 군대는 전쟁에서 반은 지고 들어가게 된다. 잘된 개혁은 천안함·연평도 사건 대응과정에서 드러난 취약점을 보완, 불안해 하는 주민과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다. 20년간 작전지휘와 행정이 분리 운영됨에 따른 비효율성도 개선하게 되며, 오는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시에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그런데 개혁의 주체인 육·해·공군이 사분오열의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갈등요소가 해소되지 못하면 개혁은 의미가 반감되며 국방은 장담할 수 없다.육군이 일방통행식으로 만든 개혁안에 해·공군이 발끈한 후 사태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발단은 각 군의 의견수렴과 조절 등의 절차를 생략한 데서 비롯됐다. 개혁안 검토단계에서도 그렇고, 발표를 앞두고도 3군 합동참모회의 또는 군무회의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문가 토론회 역시 마찬가지다. 개혁진행과정에서 나타난 일련의 행태를 보면 특정 군을 위한 개혁이라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지휘체계도 늘어나 복잡해지고 해·공군의 전문성은 고려대상에서 제외됐다는, 비전문가적 개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강군계획의 핵심인 상부구조 개편을 통한 군의 합동성 강화에 차질을 빚으면서 오히려 국방력 강화가 멀어지는 듯한 느낌마저 받게 하고 있다.국방은 체제의 개혁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다. 흔히 말하는 군기가 바로서야 한다. 비리가 군 내부에서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현실에서의 국방은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 한참 지난 예전의 일은 차치하고서라도 최근 벌어진 사건만 살펴도 국방은 요원해 보인다. '포(砲) 쏘니 두동강' 기사가 떴다. 국력이 한참 떨어지는 저개발국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의 일이다. 무자격 업자가 만든 불량 대공포가 수입 규격품으로 둔갑, 훈련도중 두 동강이 났다. 청와대를 포함 수도권 상공을 지키는 35㎜ 대공포도 불량품으로 균열 등이 발생해 제 기능을 발휘못한, 충격적인 군납비리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핵심 장교와 군무원들이 민간 건설업자의 각종 청탁에 맥없이 무너지고, 더욱이 해군의 최신예 214급(1천800t) 잠수함 3척 모두에 운항중 고정 나사가 풀리거나 절단되기도 했다니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고 있다. 이러한 군 기강으로 국방을 수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국방개혁은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이루지 못하면 평화나 안위, 자유는 외세의 힘에 의해 좌우된다. 군사력을 키우는 것은 영역을 지키며 행복한 삶을 구현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다. 국방개혁에 의해 완성돼야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가 않다. 국방개혁 차질의 원인이 각 군의 이기(利己)로 인한 불협화음 때문으로 비치고, 군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 일부가 작전을 수행할 수 없는 고철덩어리로 보이며, 뇌물 수수 등 비리로 군 내부가 얼룩져 있다. 국민들이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적을 알고 있는 것과 대비하는 것은 다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안 것만으로 백전불태(百戰不殆)를 이룰 수 없다. 체제와 장비로, 마음자세로 대비하고 꾸준히 담금질해야 한다. 강군으로 가는 길이다.

2011-05-24 경인일보

양심불량시대의 자화상

[경인일보=]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심리학과 폴 에크먼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하루에 200번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는 우리네 언설은 약과인 것이다. 인간이란 매우 정직하지 못한 존재임을 방증하는 것이다.공직사회의 거짓행위가 빚은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어선 느낌이다. 금융감독원이 설립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한 터에 이번에는 강원도 화천군에서 구제역방역 관련 대리근무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작년 말부터 곳곳에 방역초소를 설치하고 공무원 1인 2교대, 주민 3명 3교대로 조를 편성했는데 야간근무 당번인 일부 공무원들이 일용직을 대신 투입하고 일당 8만원의 야근수당을 챙겼던 것이다. 화천군에서만 15억원이 부당 지출됐는데 국민들은 "화천뿐이겠는가"라는 반응이다. 지난 겨울 기록적인 혹한만큼이나 구제역이 전국을 초토화시켰으니 말이다. 주목되는 것은 공직자들의 세금도둑질이 구제역에만 국한된 사실이 아니란 점이다. 천재지변시 비상대기가 일상화한 터에 공무원들의 일상근무에서도 부당한 초과근무사례들이 비일비재한 탓이다.공직자들의 양심불량행위는 이뿐 아니다. 지난 3월에는 인천경찰청 소속 한 경찰관이 특진을 위해 허위공적서를 제출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최근 경기도교육청의 자체감사에서는 부서회식비 마련을 위해 가짜로 출장비를 수령하고 교원들의 경력이나 근무성적을 조작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다. 뒷돈 제공을 담보로 유흥업소들의 일탈을 외면하는 투캅스(?)들이 근절되지 않는 가운데 스폰서 판검사들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권(利權)과 밀접한 부처 공무원 및 정치인들이 유관기업들의 법인카드를 사용하는 관행은 비밀도 아니다. 공기업들의 부실경영도 이와 무관치 않다.법을 집행하는 공직사회의 반칙과 비리가 끊이지 않는 형국이니 민간부문은 오죽할까. 과도할 정도의 배당을 통해 기업을 빈사지경에 이르게 함은 물론 대주주들의 불법비자금 조성사례들도 끊이지 않고 있다. 물타기 증자, 주가조작 등으로 개미투자자들을 울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상속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그룹을 통째로 자손들에게 상속해 주는 사례들은 일상화됐다. 감독이 소홀한 금융기관들의 서민예금자 등치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부산저축은행 임직원 20여명은 무려 120개의 서류상의 회사를 설립하고 친인척이나 지인들을 바지사장으로 앉힌 뒤 월급명목으로 6년간 수백억원을 빼돌렸단다.오너들이 관련된 기업범죄는 속성상 단독범행이 불가능해 임직원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요즘에는 기업들의 인재관도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 4월 삼성화재가 올해 승진한 신임과장 184명에게 훌륭한 간부가 되기 위한 자질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전략수립 및 실행력'에 44%가 지지한 반면에 '근면성실한 태도'는 8%에 불과했다. 유연한 사고와 행동이 우선시됨을 상징한다. 마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이다. 그런 때문인지 우리 사회는 한국전쟁이후 최대의 국난(國難)으로 치부되던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극복했다. 침체의 늪에 빠진 일본인들이 부러워할 만도 했다.그러나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조는 수많은 서민들의 상실감과 양극화를 초래했다. 정직과 성심으로 일관한 장기근속자들이 무능력한 희귀동물(?)이 된지 오래고 '티끌모아 태산'은 촌스런 우화쯤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심지어 초중등 학생들간에 모범상은 '바보상'으로 치부되는 형편이다. 정부는 대형 비리가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근절장치 마련을 강구하고 있으나 그럴수록 규제는 더욱 강화돼 자본주의경제 특유의 활력이 점점 줄어든다. 절대다수 선량한 서민들의 영락이 초래한 사회적 비용의 점증도 간과할 수 없는 형편이다. '착한 자본주의'를 강조하는 세계적 추세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물신주의에 매몰된 부정직한 행위들이 우리사회 전체를 위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정직과 성실 그리고 자율로 무장한 이를 최고의 인재로 치부하는 도요타자동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것이다.

2011-05-17 이한구

클러스터 리셋, 인천경제 도약의 열쇠

[경인일보=]경제정책 중에는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정권의 운명과 함께 버려지는 정책이 있다. 클러스터 정책이 바로 그렇다. 클러스터 정책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지역혁신 수단이지만, 지난 정권의 꼬리표가 달린 탓인지 최근 관심이 급격히 떨어진 상황이다. 그런데 인천이 클러스터 정책을 반드시 살려내야 하는 이유는, 인천경제에 클러스터의 성패에 의존하는 중요사업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우선 경제자유구역이 대표적이며, 벤처집적 공간인 제물포스마트타운, 바이오산업 육성, 산업단지 고도화 등 인천의 전략사업들이 놀랍게도 모두 클러스터를 통해 성패가 결정되는 상황인 것이다.한번 관심에서 벗어난 정책을 다시 되살리려면 부분적인 수정으로는 부족하다. 이 경우 대폭적인 수술을 통해 새로운 관심을 유인해야 한다. 인천의 클러스터 정책은 이러한 대전환이 필요한데, 그 대전환을 '클러스터 리셋(reset)'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여기서 '리셋'의 의미는 마치 컴퓨터가 잘 돌아가지 않을 때 재부팅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 현재까지 힘없이 돌아가는 패턴을 바꾸기 위해서는 재부팅과 같은 대규모 수술이 필요한 것이다.'클러스터 리셋'의 첫 번째 계명은 '클러스터 유형을 구분하라'이다. 모든 클러스터를 동일하게 접근했던 것이 지난 정책의 오류였다. 현재 인천경제의 전략 클러스터들도 모두 유형이 다르고 발전 동력도 다르다. 구체적으로 제물포스마트타운은 벤처기업 클러스터이며, 바이오산업은 대기업 주도 클러스터, 또한 산업단지는 중소제조업체 클러스터로 구분된다. 특히 이들을 움직이는 인센티브 체계의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벤처기업 클러스터에서는 벤처기업가와 벤처투자자들의 만남이 특별히 중요하다. 투자자금이 있는 공간에 벤처기업가들이 모여든다는 진리에서 인천이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금융정황상 벤처투자자금을 인천내부에서 자급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인천 벤처기업 클러스터 전략에서 투자자금만은 서울의 것을 활용하도록 지역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투자자금까지 지역 완결성을 가지려는 것은 당분간은 과욕일 것이다.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인천시 자체적인 벤처육성펀드를 준비해야 하는 것도 분명하다.한편 바이오 클러스터는 삼성이 중심에 설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정책의 핵심은 삼성이 자체(in-house) 연구소의 R&D결과를 독식하는 것을 넘어서서 지역내부로 파급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기업 실험실과 지역내 바이오연구자 사이의 연구협력이 중요할 것인데, 초기단계에서는 인천시 주도로 시정부/대학/대기업 삼자협력(triple-helix) 발전모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산업단지의 경우 클러스터 전략이 중소제조업체들에 업종전환 혹은 혁신학습의 기회가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런데 실상은 오랜 관행 탓인지 산업단지소속 기업들만의 내부교류에 그치는 편이다. 지역대학 및 산단 외부기업들과의 교류가 촉발되어 진정한 개방형 혁신을 이루는 것이 큰 과제이다.'클러스터 리셋'의 두 번째 계명은 클러스터를 움직이는 '화폐'가 지역내부에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화폐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화폐만큼 가치를 지니며 또한 참여자들 사이에 흘러 다니는 속성을 가진 재화라는 뜻에서이다.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성공사례에서 볼 때 클러스터를 움직이는 화폐는 '지식'과 '자금'이다. 즉, 창조적 기업가와 인재들은 지식과 자금을 얻기 위해 모여드는 것이다. 이 두 화폐의 원활한 유통을 정책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면 클러스터의 자생력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한번 잘 못 들어선 정책습관을 버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인천경제로서는 다른 선택이 없다. '클러스터 리셋'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역경제 도약의 가치가 너무 높은 것이다.

2011-05-10 손동원

뒤집어 본 인문학 열풍

[경인일보=]인문학에 대한 대중적 열기가 몇 년째 지속되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마이클 샌델의 정치철학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대학과 각종 도서관이나 문화 기관의 프로그램, 백화점 문화센터, 동사무소에 이르기까지 인문강좌가 개설되어 수강생을 끌고 있다. 대학이 개설하는 최고경영자 과정도 인문학강좌로 진행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으며, 일부 기업에서는 사원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유치하는가 하면 신입사원 채용에 인문학 전공자를 늘리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인문학 열풍은 1980년대의 사회과학 열기에 비견할 만한데, 사회과학 열풍의 진원지가 대학이었다면, 인문학 열풍은 기업과 사회전반의 현상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또한 본래 이공계 중심으로 출발했던 대학에서 학제를 개편하여 인문학 과정을 강화하고 통섭인문학 혹은 융복합 과정으로 인문학과 과학의 융합 시도도 늘어가고 있다. 이쯤하면 인문학은 위기가 아니라 가히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인문학 열기가 이례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이미 1990년대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 열풍이 그 조짐을 보여 주었듯이, 물신주의로 황량해진 우리 삶의 내면과 환경을 되돌아보려는 대중적 욕망의 흐름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압축 성장의 신화를 창조했지만, 정작 주인공들에게 질주하는 기관차처럼 오직 속도와 성과만 요구해왔다. 경제 위기 이후에 파급된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개인이 삶의 가치나 사회적 정의를 고민하는 것을 사치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그 점에서 본다면 최근의 인문학 열풍은 가장 비인문학적인 시대에 불고 있는 수상쩍은 흐름인 셈이다.인문학 열풍을 유도하는 진원지 중의 하나는 기업이다. 기존의 정보산업을 넘어 창조산업(문화산업) 중심으로 급속하게 이동하고 있어 효율성 중심으로 경영해온 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지닐 수는 없다는 것을 경영자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의 인문학 열풍이 자본과 기업의 갱신의 수단으로 동원되어 '인문정신' 본연의 기능과는 무관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추진해온 '인문한국 프로젝트'도 인문학 진흥의 한 계기이다. 이 지원사업도 본래 목적과 달리 과제의 선정과 평가에서 정치적 판단이나 관료적 관점이 개입하여 인문학과 연구자들을 순치(馴致)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인문학 열풍이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정작 인문학연구의 본산이 되어야 할 대학의 인문학 관련학과의 입지는 위축되고 있으며, 학제 개편시 우선적 통폐합 대상이 되고 있다. 교양 강좌에서도 문학과 역사, 철학 과목 대신 취미나 취업 관련 인기 과목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시민대상의 인문학 강좌와 출판물이 인문학을 대중화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상품화의 길을 걸어갈 때 시장논리에 편승하여 호기심이나 위안물이 될 가능성도 엄존한다.인문학이 황폐해진 현대인의 영혼과 삶의 환경을 재성찰하는 에너지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런데 인문학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는 일과 인문학의 실용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목표로 삼아야 하지만, 전자가 더 근본적이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 점에서 본다면 우리사회의 인문학 열풍 현상을 가장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주체는 대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대학은 산업화 사회를 거치면서 기업과 사회의 분업 구조를 대학에 이식하여 인력양성소처럼 만들어 오지 않았던가? 인문학은 지식이나 기술과 달리 인간과 사회를 총체적으로 관조하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지혜의 학문이라는 점을 재확인해야 한다.인문학자들의 과제는 단순히 인문학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시민들과 인문학적으로 사유하는 방법을 토론하는 일이다. 시민들은 고전 읽기를 통해 과거를 재조명하고 현재와 미래를 투시하는 힘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일, 그 가치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장에서 실천하기 위한 지혜에 대한 목마름이다.

2011-05-03 김창수

4·27 재·보궐 선거 이후

[경인일보=]참으로 지루했다. 또 짜증스러웠다. 왜 이리 정치권이 변하지 않는단 말인가. 평소 정도(正道)를 걷겠다고 공언하던 사람도 정치판에 끼어들면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준 재·보궐 선거가 오늘(27일)이면 끝이 난다. 투표만 남겨놓은 상태다. 후보들의 당락도 오늘 늦은 저녁이면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 과연 누가, 어느 당이 승자가 될 것인가. 최대 관심지역인 분당과 김해지역 국회의원, 강원도지사 선거에선 누가 축배를 들 것인가. 그래도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그렇다면 표심은 어디로 쏠렸을까. 민심을 모르니 표심을 알 턱이 있나. 억지로 예측 아닌 추측을 해 보면 여·야가 1:2나 2:1로 결론이 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변수가 있다. 바로 연령대의 투표율이다. 투표율의 높낮이에 따라 뜻밖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여든, 야든 싹쓸이의 패배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정치권이 신경을 바짝 곤두세운다.사실 이번 재·보궐 선거는 국회의원 의석수로 보면 몇 자리도 안 된다. 통상 승부처로 보는 수도권도 겨우 한 자리다. 그런데 왜 정치권이 이 야단이란 말인가. 그 속내는 따로 있다. 당장의 이번 선거 결과보다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 있다는 게 그 속내다. 내년 선거야말로 여야 정치권으로선 '죽느냐, 사느냐'의 선거다. 정권을 '쥐느냐, 빼앗기느냐'가 더 실감나는 표현일 것이다. 예상외의 과열 양상은 정치권이 이번 선거결과를 바로 내년 선거전의 분수령으로 보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선거판이 의사당보다 더 많은 국회의원들이 총동원됐다고들 한다. 현장에선 정당은 정당대로, 대선 후보들은 후보대로 대리인을 통해 이미 치열한 헤게모니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한다.내일이면 그 후속 드라마가 예고돼 있다. 선거의 결과를 두고 정치권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의 '삼류 소설'을 마구 써댈 것이다. 선전했다느니, 민심의 결과라느니, 아니면 참패에 따른 책임론 등등. 또 온갖 수사를 동원한 기선잡기에 나설 것이고, 예전에 보지 못한 정치적 술수도 등장할 것이라는 것이 뻔한 시나리오다. 그 '삼류 소설'은 결국 정치판에 회오리 바람을 몰고 와서 정치판도를 바꿀 수도 있다. 그래서 정치권이 더 긴장하는 모양이다.초점은 단연 분당이다. 향후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바로 분당의 선거결과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심이 바로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다. 그가 당선된다면 야권내 차기 대권주자로서 매우 유리한 고지에 오르겠지만, 낙마한다면 아마 대권 도전의 꿈조차도 접어야 할지 모른다. 반대로 한나라당 강재섭 전 대표가 승리를 한다면 정국 주도권싸움에서 다시 여권에 힘이 실릴 수 있다. 그가 패한다면 한나라당은 공천 책임론 등 당내가 자중지란에 빠질 수도 있다. 그 또한 '퇴역 정치인' 명단에 이름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이번 4·27 선거의 결과는 향후 정국 운영은 물론이고 대선 정국과도 맞물려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따라서 내년 총선과 대선을 향한 정치권의 승부수는 이미 던져졌다. 어찌 보면 오늘의 투표 결과는 기세의 판단이나 어디로 튈지의 방향만을 정하는 수순에 불과한지 모른다. 아직 총선까진 일년, 대선까지 일년 반 이상이나 남았지만 선거운동 기간의 경계선은 사실상 무너졌다. 이미 대권 대열에 서 있는 김문수·오세훈 등이 엉뚱한 곳에서 입을 열기 시작하지 않았는가.문제는 국민들이 겪어야 할 정치적 피로감이다. 상생(相生)보다는 다툼에 익숙한 우리 정치권을 볼 때 그 기간이 너무 길다는 데 있다. 이래저래 피곤한 정치계절의 시작,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차라리 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즐기면서 관전하면 어떨까. 과연 누가 제대로 된 인물인지, 어느 정당이 교만하지 않고 국민을 섬길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 보는 일도 생각을 바꾸면 즐거운 일이다. 때 이른 정치의 계절. 좀 짜증스럽긴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즐기면서 누가 최적의 인물인지 꼼꼼히 따져보자.

2011-04-26 김은환

지역개발은 지역주민이 우선돼야 한다

[경인일보=]중앙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하남시 감북동 감북보금자리 개발 지구지정은 철회돼야 한다. 정부는 서민들의 주거안정이라는 명분으로 민주적 절차인 여론수렴 등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LH(한국토지주택공사)를 통해 주택개발을 위한 지구지정을 발표했다. 이에 지역주민들은 지구지정 취소를 위한 헌법소원과 함께 자신들의 생존권 사수를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역과 주민을 생각했다는 정책이 지역에 적용되면서 주민들을 분노케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지난달에는 하남지역 단체장인 이교범 시장과 홍미라 시의회의장, 서경석 한국기독교연맹 재개발대책위원장, 이 지역 검사장 출신인 박영렬 변호사를 비롯해 1천여명의 주민이 참여하는 생존권사수 결의대회가 개최됐다. 또한 종교와 시민단체가 연계하는 대형 집회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자칫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을까 염려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LH 이지송 사장은 "주민들의 뜻이 그렇다면 주민들의 뜻을 국토해양부에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분노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하남시 감북동 지역주민들이 이처럼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십년동안 개발제한구역으로 재산권제약을 받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정부에서 타지역 주민들을 위해 일방적으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생업을 전폐하다시피하고 지구지정 취소를 요구하고 있는 이들의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이들의 생존권이 지구지정과 연관돼 있어서다. 이들 대부분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농토 등 삶의 터전을 잃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다. 이러한 이들의 몸부림을 정부는 헤아려 줄 의무가 있다.국가적인 사업이 아닐뿐더러 국익에 도움되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이지송 사장이 현명하게도 "합리적인 결정을 위해서는 사업 타당성 조사와 용역결과가 나오는 9월 말께 수익성 등을 종합 검토해 사업포기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주민들과 지자체가 원치 않는 개발을 일방적으로 진행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또한 감북지구에 대한 지구지정 재검토를 국토해양부에 정식 건의키로 함에 따라 상황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하지만 주민들은 더욱 확실한 정부 책임자의 표명을 원하고 있다.감북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대책위는 "아무리 국책사업이라 해도 그 지역주민들과 지자체 의견을 실질적으로 수렴하는 기능이 전혀 없는 일방적인 절차는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엄청난 비용을 투자해 이미 도시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도시의 지역적 특성과 청사진에 역행하는 잘못된 지구지정이 이번에 생기게 됐다는 것이다. 대책위는 "하남시와 시의회, 감북동 주민은 혼연일체가 돼 주택지구지정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반드시 지구지정을 철회시켜 자치주권을 확보할 것"이라며, 지난달 28일 LH 앞에서 주장 관철을 위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물론 이지송 사장의 발언에 힘입어 진행하기로 했던 천막농성은 이튿날인 29일 낮 12시를 기해 완전 철수했지만 아직까지도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한 시민은 "감북 주민과 하남시가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진행해 온 미래 청사진과 이번 보금자리정책은 일말의 공통분모조차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국토해양부는 감북보금자리 지구지정을 즉시 철회하고 앞으로도 감북동은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 어떠한 정부대책과 대안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감북동 주민의 90% 이상이 지구지정 자체에 대해 철회를 요구하는 가장 큰 이유다.앞서도 말했듯 서민들의 주거안정이라는 명분으로 해당 지역주민들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개발을 진행하는 것은 그동안 지역 기반을 토대로 점진적이고 자주적으로 도시건설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해 온 주민들을 무시하는 처사인 것이다. 지역개발은 지역의 특성을 살려야 하며, 이는 지자체와 지역주민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지원과 철저한 관리 감독으로 만약의 사태인 일탈을 막는 것이 돼야 한다.

2011-04-19 이강범

실패로 끝난 반값아파트 정책

[경인일보=]이명박정부 서민정책의 대표 아이콘인 로또아파트가 사라질 예정이다. 국토해양부가 추진한 '보금자리주택 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된 때문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반값아파트가 예상되는 보금자리주택지구의 용지가격을 주변시세의 80~85%로 상향조정하는 것이다. 민간 보금자리주택의 추가도 이채롭다. 이변이 없는 한 국회통과가 예상되어 당장 내년부터 효력을 발할 전망이다. 올해 초 청약을 마감한 서울 강남 세곡과 서초 우면 보금자리주택지구의 아파트 분양가는 주변시세(3.3㎡당 2천만~2천500만원)의 46~42%에 공급되어 극소수의 당첨자들은 대박행운을 얻었었다. 반면에 수도권 대부분의 보금자리주택 분양가가 주변시세의 80~90%인 점을 고려할 때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었다. 지난 2009년 8월 27일 이 대통령의 "시세의 반값에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공언이 불과 2년 반 만에 식언(食言)이 된 것이다.백척간두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직접적인 이유였다. 총부채가 125조원에 이르는 터에 하루 이자비용만 100억원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빚을 내어 보금자리주택을 짓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가 주문한 올해 목표 18만호를 짓는 데 20조원이 필요하단다. 오죽했으면 지난 2월 27일에 개최된 국토해양부 LH 합동워크숍에서 직속상관(?) 정종환 장관의 압박에 이지송 LH 사장이 무려 5시간 동안이나 침묵으로 저항했을까. 이유는 또 있다. 당초 정부는 수도권의 그린벨트 약 100㎢를 해제하고 정부예산 120조원을 투입, 향후 10년간 전국에 보금자리주택 150만 가구를 건설해서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공급하기로 하고 조기실현에 '올인'했던 것이다. 2009년 10월에 최초로 6만 가구를 공급하는 등 MB정부 3년간 보금자리주택 31만 가구가 승인되었다. 그러나 대기수요 증가에 따른 주택매매거래 침체 및 민간주택 공급량 급감이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에 직면했던 것이다. 그동안 부동산전문가들은 반값아파트가 민간주택시장을 위축시킨다며 목청을 높였으나 정부는 "보금자리주택은 청약저축통장을 가진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청약 예부금통장을 활용하는 민간분양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일관했었다. 덕분에 뉴타운사업도 줄줄이 된서리를 맞았다. 반값아파트정책은 전세난에도 한몫 거들었다. 지난해 4월 모 언론기관이 전국의 성인 남녀 2천13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2%가 장차 보금자리주택 청약대기 내지는 집값하락을 예상해 주택구입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정부가 헐값 아파트 공급에 주력한 나머지 서민대상 임대주택 건설에 소홀히 한 점이다. 정부가 발표한 주택공급계획의 경우 2008~2018년 사이 보금자리주택은 150만 가구를 공급하는 반면에 영구임대, 국민임대 등 공공임대주택은 80만 가구에 불과한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 노무현정부 5년 동안의 임대주택 공급실적 46만6천여 가구와 대조적이다. 양극화가 갈수록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은 설상가상이었다.그 동안 정부는 주택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각종 부동산대책을 펴는 한편 집값 안정을 위해 보금자리주택 건설에 진력했으나 결과는 부동산경기 침체와 전세난만 가중시켰다. 그 와중에서 주택담보대출은 점증해서 가계대출 800조원의 절반에 육박하고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세계 최고수준인 160%에 근접하는 등 경고등이 켜졌다. 반값아파트를 없애 민간건설경기를 부추기려는 정부의 고민은 이해된다. 그러나 앞으로 서민들의 보금자리주택 수요가 정부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할지는 의문이다. 강남족(?)의 꿈을 접어야 하는 서민들의 실망감은 고사하고 벌써부터 경기도 하남 미사, 시흥 은계, 인천 구월지구 주민들은 주변시세보다 높다며 불만인 실정이니 말이다.조령모개(朝令暮改)식 반값아파트정책에 실망이 크다. "MB정부의 부동산정책에서 철학이나 비전에 바탕을 둔 일관된 흐름을 찾기 어렵다"는 손재영 건국대 교수의 지적이 돋보인다.

2011-04-12 이한구

삼성 바이오와 인천경제

[경인일보=]최근 삼성그룹이 바이오사업의 본거지로 송도를 선정하고 대규모 투자를 추진한다는 선언이 있었다. 그동안 지역경제를 주도할 '중심'이 없던 인천에게 삼성의 투자는 큰 호재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인천경제의 '진정한' 도약이라는 관점에서 침착하게 정돈할 이슈들이 있다. 그 이슈들은 다음 두 쟁점이다. 첫째, 삼성 바이오가 주는 실질적인 효과에 대한 이해다. 이 이슈는 기존 디스플레이와 휴대폰에서의 효과와 대비되는 바이오 효과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포인트다. 둘째, 삼성 바이오가 밟을 전략적 경로에 대한 이해다. 삼성은 우선 기존 IT제조업에서의 노하우를 살리는 전략을 선택하고 경험을 축적한 후 바이오 신약 분야를 공략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에 따른 인천경제 주체들의 대응전략이 포인트다.첫째, 삼성 바이오가 인천경제에 남길 진정한 효과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바이오산업이 지역경제에 남길 효과는 기존 삼성이 경북·구미의 휴대폰사업에서 남겼던 결과와는 다르다. 삼성이 주도했던 기존 IT제조업 클러스터에서는 중소부품업체들이 모여들고 지역 고용시장이 확대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바이오사업이 지역경제에 주는 효과는 이와 다르다. 바이오 클러스터가 형성된다 하더라도 고용 증가 혹은 부품업체 집적이 발생하지 않는다. 굳이 기대한다면 바이오 발명이 주특기인 연구 벤처기업들이 모여들 수는 있다.그렇지만 이들은 노동집약적 기업이 아니므로 고용효과는 그다지 높지 않다. 오히려 바이오 클러스터가 주는 가장 명확한 효과는 '지식'을 지역에 공급하는 효과다. 바이오 업체들이 증가하면서 지역에 유용한 바이오 지식이 풍성해진다. 이렇게 지역에 지식이 풍성해지면, 지역 우수 인재들의 벤처창업이 증가하며 기존 제조업체들의 지식산업으로의 전환도 활발해진다. 또한 창조인력이 모여들면서 도시 자체가 창조도시로 변모하는 효과도 발생한다. 종합적으로 바이오산업은 IT제조업의 효과와는 달리 창업과 지식창조 측면의 효과를 지역경제에 남기는 것이다.둘째, 삼성은 바이오 역량을 축적하기 위해 초기에는 자신의 과거 장점에 기대는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즉, 바이오 중에서도 가급적 제조업과 유사한 분야를 먼저 선정하고, 이를 통해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후 바이오 신약시장에 도전할 것으로 예견된다. 삼성 스스로도 우선 CMO(원료의약품 생산)방식으로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사업에 집중할 것임을 밝히고 있는데, 이것은 독창적인 연구개발사업이 아닌 제조업 방식임을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서 CMO방식은 원청업체로부터 의약품 주문을 받아 생산하는 방식으로서 삼성에게 익숙한 사업 모델이다.이러한 단계적 접근은 바이오 신약사업이 투자금액이 크고 위험이 높기 때문에 성급하게 승부를 걸 수 없다는 현실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삼성 바이오의 추진단계는 바이오시밀러 단계와 바이오신약 단계로 구분될 것인데, 각 단계마다 상이한 대응전략이 요청된다. 바이오시밀러 단계에서는 초급 수준의 인력수요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며, 바이오 신약 단계에서는 고급 연구인력 공급에 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바이오시밀러 단계에서 바이오 신약단계로 진행되면서 점진적으로 지역대학으로부터 첨단연구결과의 수혈과 연구협력이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인천은 알고 보면 바이오 인프라가 강한 지역이다. 그동안 구심점이 없어서 폭발력을 모으지 못했을 뿐이다. 지역 대학들의 바이오 연구역량이 높은 편이며, 국내 최초 CMO업체인 '셀트리온'이 위치하고 있다. 미국 GMP기준을 갖춘 국내 유일 시설물인 '생물산업기술실용화센터'도 소재하고 있으며, 또한 향후 바이오 제약의 원료로 활용할 수 있는 해양수산물도 풍성한 곳이다. 삼성 바이오를 계기로 모든 바이오 역량이 집결되어 인천경제의 도약을 창조해주기 바란다.

2011-04-05 손동원

한국 사회의 다문화 의식

[경인일보=]한국은 다문화 사회일까? 이주노동자나 국제결혼의 증가로 외국인 이주자가 12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는 최근의 통계를 보면 우리 사회가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는 평가는 사실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의 수의 증가만으로 우리 사회를 다문화사회라 부르기는 어렵다. 여전히 제도나 의식 수준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주자들의 상당수는 차별을 감수하거나 단속 대상인 불법 체류자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 정착해 일하게 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부의 정책은 이주노동자의 정주화를 막거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단속과 추방에 집중되고 있는 실정이다.최근 결혼 이주자를 포함한 가족을 '다문화 가족'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다문화 가족이란 명칭은 두 가지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우선 개념의 혼란이다. 다문화 가족은 국제결혼이나 혼혈인이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인종주의를 회피하려는 배려로 만들어진 용어다. 그런데 이 용어로 인해 다문화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가치가 궁색해졌을 뿐 아니라 차별성을 감소시키려는 애초의 의도와 무관한 또 다른 차별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다문화 가족' 정책의 대부분이 저 출산 위기 해결이나 복지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어서 낡은 통합주의적 문제의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다문화 가족 정책은 외국인과 외국문화를 존중하고 상호 공존을 지향하는 다문화정책이 아니라 '한국인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단일문화' 정책에 가깝다.이주노동자들이나 결혼 이민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한국인 특유의 혈통 중심주의나 단일민족 신화에 근거한 폐쇄적 국민관 때문이다. 현재 250여개의 우리나라 성씨 중 절반이 넘는 130여 성씨가 중국을 비롯한 일본, 여진, 위구르 등지에서 온 귀화 성씨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단일 민족 이야기는 신화임이 분명하다. 이민족의 귀화는 멀리 고조선 시대로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국제적 개방국가였던 고려시대에는 무려 60여 성씨가 귀화했다고 한다. 세계화시대에는 한국인들이 세계 각국으로 진출해 세계인들과 함께 살아가듯이 이주자들도 사회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개방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유네스코가 2005년 말 '문화다양성협약'을 채택했던 사실을 상기해보자. 이 협약은 154개국 가운데 148개국의 압도적 찬성을 얻어 통과되었는데, 문화적 관점에서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최초의 국제 협약이다. 이 협약의 정신은 2001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한 '문화다양성 선언'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문화 다양성은 교류와 혁신, 창의성의 원천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공동의 유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캐나다 정부는 다문화주의를 아예 국시(國是)로 정한 바 있다. 캐나다 정부는 각국으로부터 유입되는 다양한 문화들을 단일한 문화로 통합하기 보다는 각 민족 고유의 문화를 인정하고 이를 계승 발전시켜 캐나다 문화를 창조하는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문화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캐나다 정부의 다문화주의 정책은 다방면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소수 종족으로 남아 있는 인디언과 이누이트들을 위한 학교의 설립과 여러 민족 고유의 문화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이주자들이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어 나가는 것은 당면한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국가의 미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다문화사회를 위한 준비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다문화의 가치와 핵심을 재확인하는 일일 터이다. 이주자들이 자신들의 고유문화를 간직한 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기여하는데 요긴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의 전제는 스스로 낡은 단일민족 신화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국력과 해당국가의 국민을 동일시하는 오류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2011-03-29 김창수

용기있는 선진의식

[경인일보=]"장애인특수학교 및 장애인복지시설 건립을 환영한다." 광교신도시 입주예정자들의 입장이다. 주민반대가 심해 주택가 등 도심에는 설립이 어려웠던 시설중 하나가 장애인복지시설이었다. 대표적인 이유가 '집값 떨어진다'다. 사회공동체에서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상으로 환영한다는 말 자체가 모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뒷마당에는 안된다'는 님비가 우리 사회에 뚜렷한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으면서, 장애인시설을 밀어내는 등의 부작용이 당연시되고 있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여하튼 장애인관련 시설을 배척하는 인심이 대세인 상황에서의 입주환영은 한단계 선진화된 용기있는 행동임에 틀림없다.장애인복지에 대한 역사는 깊다. 기록으로는 근대 이전인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와는 차이가 나 비교거리가 될 수 없지만, 복지는 어느 시대건 행복지수를 높이는 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장애인을 독립된 명칭없이 병자와 동일하게 처우했다고 한다. 이들의 구휼제도는 임시적·사후대책적으로 시행한 것으로 돼 있다. 고려시대는 삼국시대와는 달리 맹인들을 위한 직업대책이 있었다. 고려 초부터 국가에서 복업(卜業)을 과거제도에 포함시켜 복인을 선발했으며, 그 중 매복맹인(賣卜盲人)에 관한 기록이 있다.조선시대에 와서는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구휼사업이 제도적으로 이뤄진다. 복업이 명과학(命課學)으로 개칭돼 잡학교육을 받았고, 관현맹인(管絃盲人)이 음악관련 직업을 가졌다. 정조 7년에는 벙어리와 고자는 자력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고 맹인은 복술(卜術)을, 절름발이는 그물 짜는 일 등을 통해 자립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종 31년(1894) 미국인 선교사 홀(Hall)여사가 맹인학생을 집에서 양육한 것이 한국 최초의 장애인에 대한 보호와 교육으로 보고 있다.그후 발전을 거듭, 장애인관련 복지법령이 만들어지고 개정되면서 장애인의 복지에 관한 사항을 종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법률이 제정됐다. 장애인복지법이 그것으로,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권리의 보장, 장애발생의 예방과 장애인의 의료·교육·직업재활·생활환경개선, 장애인의 자립·보호 및 수당의 지급 등 복지증진 및 사회활동 참여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을 통한 사회통합을 기본이념으로 삼았다. 이러한 내용의 법제정은, 이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아야 함에도 구분지어 차별을 받아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차별은 진행형이다. 한쪽에서는 장애인시설 입주를 반기는 반면 비슷한 시기에 다른 지역에서는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그렇다고 반대 주민들을 나쁘다고 몰아세울 수도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사회전반적인 인식이 개선되지 않았고, 주민들의 재산목록 1호인 집의 값이 장애인시설 입주로 하향 평준화된다는 데서, 심정적으로는 안타까우면서도 좋아할 주민은 없을 듯하다. 이중성격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일상 깊숙이 뿌리내려 있는 것이다. 이를 극복,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인식의 전환을 위한 교육 등 장기적인 대책과 뜻있는 사회구성원들이 움직임을 구체화해야 한다.그래서 광교입주예정자 대다수가 선뜻 받아들이기로 한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고무적인 것은 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적극적이라는 데 있다. 입주자 총연합회가 최근 카페에 특수학교설립관련 언론보도 내용을 게시하면서 달린 댓글에서 감지된다. '우리 모두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 장애인특수학교 설립을 환영한다', '환영합니다. 장애우들도 잘 가꾸어진 좋은 환경에서 학교생활을 하면 정신적으로 훨씬 더 안정되어 질 것 같다', '명품 광교에 명품 장애인특수학교가 설립돼 모두 함께 살아가는 광교가 되길…', '(댓글이) 환영 일색이군요. 마음이 뿌듯합니다. 저 역시 환영합니다' 등의 글들이 게시됐다. 최근 올린 41명의 회원중 1명만이 반대입장을 밝힌 것으로 집계됐다. 사회이슈화해 선진의식의 출발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1-03-15 조용완

中企는 동반성장정책을 어떻게 봐야하나

[경인일보=]최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동반성장에 대한 높은 사회적 관심은 중소기업들에는 분명한 호재(好材)이지만, 혹시 중소기업들이 지나친 정책효과를 기대해 성장의 본질을 오해하는 상황이 염려스럽다.동반성장에 내포된 '협력'이 가진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오히려 중소기업의 성장대책이 정확하게 보일 것으로 믿는다. 보통 경제정책에는 근본적 치유책과 일시적 완화책이 있는데, 분명한 것은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정책은 근본적 치유책이 아니고 일시적 완화책이라는 점이다. 동반성장정책이 아무리 주효하다해도 마지막 과실의 차이는 결국 중소기업의 몫으로 남을 것임이 분명하다.많은 사람들이 대·중소기업 사이의 협력을 순리(順理)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프랑스 사회철학자 장자크 루소의 설명을 들어보자. 루소는 사슴사냥 스토리를 통해, 인간은 협력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협력하지 못하는 허망한 존재임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가 말하는 사슴사냥 스토리는 이렇다. 사슴사냥은 양쪽에서 사슴을 몰아야 하는 두 사람이 짝을 이루는 사냥이다. 이렇듯 사슴사냥은 두 사람의 협력 작품이어서, 상대방이 끝까지 협력해 주어야만 사슴사냥에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사슴사냥 도중 각자 옆으로 뛰어가는 토끼를 보았다고 하자. 여기서 사슴은 협조를 통해 얻는 사냥감이지만, 토끼는 혼자서도 잡을 수 있는 사냥감이다. 토끼라는 각자의 사냥감이 생기면서, 두 사람이 끝까지 협력하면 사슴을 얻지만 각자는 토끼를 잡는 것이 유리한 상황이 된다. 이 상황에서 철학자 루소가 지적하는 것은 두 사람은 결국 상대방의 비협력에서 나올 위험을 회피하려고 사슴 대신 토끼를 잡고 만다는 것이다. 이처럼 협력은 당연한 순리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의 인센티브를 충족시킬 때 얻을 수 있는 경제적 대상물인 것이다.협력의 어려움을 인식할 때,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 완성되려면 다음 두 과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하나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이윤을 쥐어짜려는 일방적 욕망을 조절하는 과제다. 이 과제는 대기업 측의 윤리적 성숙도를 높이는 것이 해법이다. 현재 대기업은 높은 바게이닝 파워를 이용해 이득 욕망을 높이고 있는데, 이는 바로 낮은 윤리의식의 반영물이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사회의 변혁을 위한 중요한 의제, 즉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수준 격차 축소를 통한 젊은 인재들의 중소기업 결집이라는 사회적 변혁의 걸림돌 해소라는 명분으로 설득력을 높여야 한다. 분명 대기업이 자신의 욕망을 합리적으로 조절한다면 충분히 그 사회적 변혁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근본적으로 향후 경제전쟁은 대기업 혼자만의 경쟁이 아니고 부품·소재 중소기업들을 포함하는 기업생태계 차원의 전쟁이라는 설법도 유효할 것이다.또 하나의 과제는 중소기업 쪽에 해법이 있다. 현재 동반성장을 막는 핵심 상황은 대기업이 납품단가통제에서 이득을 얻는 상황인데, 대기업이 다른 방법으로써 더 큰 이득을 얻도록 패러다임을 바꾸는 해법이 필요하다.예컨대 대기업이 기술혁신에 의해 이득을 충분히 얻게 되면 기존에 얻던 납품단가통제 쪽에 관심을 낮추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대기업들의 자체적인 기술혁신도 중요하지만, 동반성장의 관점에서는 중소기업 쪽에서 기술적 돌파구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 지식경제시대에 들면서 대기업에 기술적 돌파구를 열어준 경우 동반성장의 사례가 많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때마침 우리 대기업들은 추격경제를 넘어서면서 전인미답의 미지(未知)의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선도혁신전략을 요청받고 있다. 이 시점에서 중소기업 쪽으로부터 혁신 돌파구를 제공받고 그 것이 이윤창출의 원천이 된다면, 대기업 쪽의 동반성장에 대한 인센티브는 더욱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결국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의 과실은 혁신역량이 높은 중소기업들에서 극대화될 것임을 예견하며, 이 지혜를 중소기업들이 놓치지 말기 바란다.

2011-03-01 손동원

마트료시카 인형과 '이야기'의 힘

[경인일보=]마트료시카는 둥근 모양의 목각 인형이다. 이 인형을 열면 그속에 작은 인형들이 겹겹이 들어 있는데 보통은 네 개에서 아홉 개, 많게는 수십 개에 이르는 인형이 인형의 몸통 속에 차곡차곡 들어차 있다.러시아어로 마트료시카는 어머니를 뜻하는 '마티'에서 유래했다하니 러시아인들은 이 인형을 통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민속신앙을 상기한다.1891년 예술가 세르게이 말루틴이 디자인하여 발표한 뒤 일약 러시아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이 인형의 기원에 대해서는 일본 목각인형 '다루마'(達磨)나 '시치푸쿠친'(七福神)이라고 보는 견해가 주류다.백년 남짓한 세월동안 이 전통인형은 러시아의 어느 거리나 상점에서도 만날 수 있는 대표적 문화상품이 되었다. 제작 방법에 따라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저가 상품과 장인이나 예술가가 고객의 주문을 받아 직접 제작하는 고가의 애호가용으로 나뉜다. 그 종류도 다양해, 러시아 전통적 머리수건을 쓴 홍안의 농촌 여인을 기본으로, 기독교 성인들, 러시아 혁명 영웅 등이 대종을 이루었으나 점차 시대상을 반영해 비틀즈나 세계적 스포츠 스타, 미국 대통령, 심지어는 오사마 빈 라덴의 모습을 묘사한 것도 있다.미국의 한 수집가는 6천종의 마트료시카를 소장하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종류가 제작되었는지를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생산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0년 한해에 1천만 세트가 제작 판매되었다고 하니 요즘 말로 '대박' 문화상품임이 분명하다.그런데 이 목각 인형이 러시아인과 외국인의 관심을 받는 문화상품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 하나는 외래문화를 러시아적 전통문화와 지혜롭게 융합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인형의 형상은 외국에서 빌려왔으되 거기에 러시아 신화를 윤색함으로써 고유한 문화로 만든 것이다.이것은 모든 문화의 생성원리다. 외래 문화에 토착문화를 적절히 가미할 때 새로운 문화가 창조된다는 것이다.두 번째 특징은 다양성이다. 마트료시카 인형은 둥근 목각의 재질만 유사할 뿐 그 형상은 천태만상(千態萬象)이다. 인형을 모으면 시사만화가 되고, 역사 인물전이 되고, 대중적 스타의 전시장이 될 정도다.더 중요한 특징은 마트료시카 인형에 '부착된' 풍부한 이야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러시아인들이 일본 원산의 인형을 풍요와 다산의 수호신처럼 여기게 된 것은 인형과 연관되는 다양한 신화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인형이 우랄지방의 고대 신화에 나오는 여신 '주말라'의 형상이라고 믿는가 하면, 어떤 이는 모스크바 근교의 옛 왕국에 살았다는 '황금여인' 전설과 연관짓는 사람도 있다. 이들 여신의 몸속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 있거나 삼라만상을 담고 있다는 특징이 공통적이다.이런 특징은 미국의 마텔사가 제작해 성공한 여자인형 바비와 대비된다. 바비도 1959년에 출시된 이래 미국과 세계로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간 문화상품으로, 점차 기능과 외모 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바비의 성공 비결은 소녀들의 자의식과 환상적 몸매에 대한 욕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바비인형에는 신화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없다.마트료시카의 성공담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이야기'의 힘이다. 이야기는 사물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야기로 인해 한갓 나무 조각에 불과한 인형이 생명을 지닌 존재나 신비한 능력을 지닌 존재처럼 변신한다.최근 모든 도시들이 문화도시 혹은 창조도시를 표방하며 도시의 매력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도시의 매력은 쾌적한 도시공간과 더불어 도시와 도시의 장소에 깃들인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고대 신화일 수도, 최근의 역사적 사건일 수도, 그 곳에 산 인물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작가를 비롯한 예술인의 또 다른 사명은 우리가 사는 삶터에 서려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이다.이야기가 깃든 공간이 정겨운 장소, 매력적인 도시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2011-02-22 김창수

벌써 때가 왔단 말인가

[경인일보=]벌써 '때'가 된 모양이다.아직 선택의 날은 1년이 넘게 남았는데 선량(選良)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손으로 별 따기라고 할 정도로 지역구내에서 좀처럼 얼굴 보기가 힘들었던 국회의원들도 요즘 종종 눈에 띈다. '철새'들도 돌아왔다. 선거때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철새'들이 좀 일찍 왔다. 돌아온 용팔이처럼 그 활보가 심상치 않다. 동창회나 신년 모임은 물론이고, 지역의 각종 행사에도 기웃거린다. 감투욕도 노골적이다. 역시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방증이다.따져보니 그 시기가 예년에 비해 좀 빨라졌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내년 총선은 파동이 클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변혁과 물갈이가 극심할 것이고, 민심 또한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를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19대 총선은 대선과 맞물려 그 변화의 파장은 현재 시계 제로다. 그래서 현역들의 불안감이 더 역력하다. 공천은 공천대로, 지역의 표심은 표심대로,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아 보인다. 지역주민들의 정치 불신도 이전보다 훨씬 심화됐고, 현 정부 여당에 대한 불만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상대적으로 여당이 많은 인천의원들은 스스로가 '위험수준'이라고들 말한다. 그래서 일까. 연초부터 아예 지역구에 내려와 지역주민들과 스킨십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의원들이 부쩍 늘었다.연초에 경인일보 등 한국지방신문협회가 조사한 여론조사를 보면 내년 총선때 현 국회의원을 지지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률이 38.1%로, '지지할 것'의 36.7%보다 높았다. 사실상 부정의 답에 가까운 '모르겠다'고 답한 경우도 25.3%나 됐다. 이 조사결과만 봐도 현역들의 조바심은 엄살이 아니다. 이런 낌새를 챘나. 역시 '정치 철새'들의 눈치는 고수급이다. 정치 9단쯤은 못돼도 이젠 몇 단쯤은 됐나 보다. 선거를 치른 뒤 몇 해가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던 이들이 갑자기 연초부터 안부 메시지를 보낸다. 또 각종 모임장소에선 얼굴을 마주치기 일쑤다. 주민들과의 스킨십 강도도 예사롭지 않다. 수십년 째 반복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행태들이다.때 이른 정치의 계절. 과연 이들의 요즘 행태가 표심으로 이어질까. 어림 없는 일이다. 이 시대의 유권자들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 표(票)는 의도적인 이미지 관리나 스킨십만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유권자들을 감동시키지 못하고서 어떻게 표심을 얻겠다는 건가. 인천의 현역 국회의원은 12명. 과연 이들 중에 19대 국회에 입성할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성급한 예측이지만, 현시점에서 투표를 할 경우 안심할 사람은 손꼽을 정도라는 게 지역정가의 분석이다. 왜 이럴까.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은 있겠지만, 단적으로 말해서 의정활동이 문제다. 의원 한 명당 1년에 5억원 이상의 세금을 쓰면서 과연 감동을 주는 정치를 하고 있는가. 국회의원은 헌법 제 46조 제2항에 따라 국가 이익을 우선하고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도록 돼 있다. 소속 정당의 꼭두각시가 아닌 국가를 위해 소신있는 의정활동을 펴고 있느냐는 것이다. 또 인천의 각종 현안해결을 위해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본 적은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졌을 때, '난 이랬소'라고 자신있게 말할 의원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고 철새 정치인들이 유리하다는 얘긴 더 아니다. 이들이야 말로 그동안 국가와 지역을 위해 뭔 일을 했으며, 준비된 자세를 갖췄는지 보여줄 차례다. 평소에는 어디서 뭘 하다가 때가 되면 나타나는가. 그것이 더 궁금할 따름이다. 유권자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서 국민 운운하며, 유권자들을 속이려다가 큰 코 다친 '정치꾼'이 한둘이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아직 늦진 않았다. 그동안 낙제 점수를 받았다 치더라도 아직 1년여라는 시간이 남아있다. 만회할 시간은 충분하다. 현역은 현역대로, 철새나 신인은 신인대로, 국가와 지역을 위해 헌신 봉사할 프로젝트를 보여줄 시점이다. 오는 4월 재보선이 끝나면, 총선 열기가 거세질 전망이다. 과연 19대 총선에선 어떤 인물이 금 배지를 달지, 내년 4월 총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2011-02-15 김은환

우울증

[경인일보=]전의경의 부대 이탈행위와 자살 등 극한 방법으로 세상을 등지는 일이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원인은 상급자(집단생활 부적격자)의 구타와 가혹행위다. 국가가 젊은이들을 불러 모아 사회의 질서를 지키게 해놓고, 이들의 생활근거지에서의 무법적 행위를 방치한 결과다.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환자가 양산되면서 불미스런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근무를 시민들과 같이 하면서 집회 시위를 막으려면 그 긴장감의 강도는 분명 군인과 다르다. 이들은 항상 긴장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무만으로도 압박에 의한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과도하다. 그래서 내무생활은 긴장감을 풀어줘 다음 업무를 준비하는데 도움을 주는 인간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물론 긴장감을 일정 부분 유지하기 위한 규율은 필요하다. 이를 구실로 한 선임병의 괴롭힘은 또다른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강박관념에 억눌려 늘 불안감을 안고 생활하는 공간이 되고 만다. 폭탄의 안전고리가 빠져 터지기만 기다리는 불안정한 상태다.전의경 선임자의 구타와 가혹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경찰청은 사건이 발생하면 으레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약속해 왔다. 최근에는 구타 가혹행위자와 관리감독을 태만히 한 지휘요원에 대해 형사 입건하고 인권교육과 전의경 인권침해신고센터를 만드는 등 그동안 나온 근절 매뉴얼 중 가장 강력한 대책을 발표했다. 결과는 판정패다. 경찰청의 조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며칠 지나지 않아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한 후임병들이 근무지를 이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경찰청장이 진화에 나섰다. 관련 부대 해체라는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 더이상 나올 대책이 없어 보인다.기강 해이가 실제 시위현장에서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선임병이나 지휘관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쇠파이프나 죽창 등으로 무장한 폭력적인 시위대와 맞서는 상황에서 긴장하지 않으면 병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긴장감 유지는 필요하며, 엄격한 규율이 사고를 예방하는 효과적인 하나의 방안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지휘관들도 긴장감을 유지하고 정신을 번쩍 차리라는 의미에서 데모 현장에 나갔을 땐 구타를 눈감아준다고 한다. 이같은 관행이 내무생활에 까지 이어지면서 인격 모독과 가혹행위 형태로 나타나게 되며, 이는 또다른 사고의 전조가 돼 사태를 키워왔다. 데모 현장이든 내무반이든 관행이 없어져야 하는 이유며, 이러한 악습이 전통처럼 전해지면서 되풀이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부대 부적응이라는 개인적인 이유외에 우울증 환자를 양산하는 위험지역이다.우울증은 자살의 최대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통제가 어려운 우울증의 특징은 90%가 긍정적이고 10% 정도만 부정적이어도 그 10%에 예민하게 집착해 많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10%의 부정적인 면이 다 없어져야만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우울증을 앓는 이들은 겉으론 무기력하고 우울해 보이나 "사고 체계안에선 그 부정적인 면을 향해 굉장히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 소견이다. 전의경 사건의 경우 부대 이탈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죽음이라는 극단으로 이어지는 사건이 꽤 된다.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몰고 온 정신적 신체적 고통과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백혈증 사망 등 끔찍한 일들이 부대내에서 터져 나왔다. 우울증이 원인이다.전의경은 군인과 다르다. 사회 질서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현장에서 겪는 고충의 크기는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간접 경험으로는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부대원은 물론이요 관리·지휘 요원의 꾸준한 관리와 지속적인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이와 함께 반드시 살펴야 하는 것이 트라우마(trauma)다. 심리학에서 영구적인 정신장애를 남기는 충격, 즉 정신적 외상을 뜻한다. 큰 사고나 사건을 당한 사람이 외상이나 정신적 충격때문에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면 불안해지는 증상이다. 업무성격상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구타와 가혹행위는 이러한 불안 증세를 더욱 키우게 된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예방만이 근본 대책이다.

2011-02-08 조용완

방관과 실기(失機)가 키운 전세난

[경인일보=]전셋값이 무려 93주 연속 상승 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2009년 4월 첫주 이후 1년9개월 가까이 매주 상승한 것이다. 그동안 전국의 집값은 4.9% 오른 반면에 전세금은 무려 14%나 인상되었다. 작년말 은행권의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2009년보다 22% 늘어난 12조8천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중이고 금리 또한 작년 5% 내외에서 올들어 6%대 후반까지 올라 세입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전세 대란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서히 잉태되었다. 2000년대 들어 물가 상승률을 밑도는 저금리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집주인들이 점진적으로 전세를 월세로 돌린 때문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전국적인 도시재개발사업은 설상가상이었다. 서민주택들이 한꺼번에 대량으로 사라졌으니 말이다. 차제에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매진했으나 역부족이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임대주택사업도 활성화되지 못했다.2008년에 불거진 글로벌 금융 위기는 또다른 복병이었다. 공교롭게도 주택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건설사들이 주택 공급을 대폭 줄인 때문이다. 그나마 신규 물량도 중대형 중심이어서 전세 수요가 많은 85㎡미만의 중소형은 상대적으로 적게 공급했다. 시세보다 저렴한 보금자리주택을 대거 공급한 것도 전세난을 부채질했다. 셋집을 전전하면서도 '무주택요건'만 채우면 언젠가는 싼 집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매매 대기수요가 전세로 전환된 것은 '옥상옥'이었다. 향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크지않은 상황에서 굳이 집을 구입할 이유가 없었던 탓이었다. 정부의 수수방관은 더 큰 패착이었다. 23년 전부터 전세난이 예견되었음에도 정부는 집값 잡기에만 올인했을 뿐 전세 문제는 등한시했던 것이다. 작금의 전세난은 공급 부족과 저금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나 정부의 소극대응 탓이 더 컸다.새해들어 정부가 서둘러 전세대책을 마련했다. 9만7천 가구의 공공 소형 분양임대주택의 경우 공사기간 단축을 통해 조기에 공급하고 올해중에 공급 예정인 매입임대주택 2만 가구도 가능한 상반기에 조기 매입해서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에 제공할 예정이다. 국민주택기금의 전세자금 5조7천억원을 2~4.5%의 저리로 지원하며 전세자금 대출 요건을 완화했다. 임대주택에 대한 세제지원 요건 개선을 통한 민간임대사업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 주택법을 빨리 개정토록 했으며 지자체와의 협의를 통해 재개발, 재건축 시기도 최대한 분산하고 부동산중개업소들의 전셋값 담합에 대한 감시도 강화하도록 했다.그럼에도 전세 가격은 여전히 상승기류를 타는 중이다. 중소형 전세 물건 부족에서 시작된 전세난은 서울 도심에서 외곽으로, 다시 경기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빈집이 많았던 용인, 고양, 파주 교하지구의 전세 물건들이 모두 소진되었다. 심지어 전세대란은 대학촌까지 강타함으로써 신학기를 앞둔 대학생들을 크게 긴장시키고 있다. 전세대책의 약발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이번엔 정부가 늑장대응한데다 전세대책도 도시형 생활주택 공급에만 치우쳐 지역별, 수요자별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때문이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올해중에 총 21만 가구의 보금자리주택 공급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상의 대책들이 다소 시간을 요하는 것들이어서 당장 발등의 불을 끄기에는 역부족이다.설이 지나면 신혼부부와 학군 수요까지 가세, 전세난은 한동안 더 심해질 전망이다. 인플레 우려에 따른 금리의 추가 인상도 간과할 수 없다. 정부의 방관과 실기(失機)가 전세난을 키운 것 같아 답답하다.

2011-02-02 이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