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문제는 탁아야!

국가 살리기 위해선 아이 많이 낳아야 하는데워킹맘 걱정 더는 '국공립어린이집' 증설 시급2305년후에도 대한민국 존재위해 반드시 실현솔직히 치매만 신경 쓰면 될 줄 알았다. 어느 세월에 미수(米壽)에 이른 어머니와 고희(古稀)를 훌쩍 뛰어넘은 장모를 보면 더욱 그랬다. 당장 두 분의 왕성한 정신력을 보면 괜한 걱정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어디 예고하고 방문하는 손님이던가. 주변에 노인성 치매를 앓는 어른을 모시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기에 그들 가족이 겪는 고통이 예사롭지 않았다. 도대체 이 난제를 개인에게만 맡기고 있는 국가의 심보는 뭐란 말인가. 늘 불안과 걱정 그리고 불만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런데 치매만 문제가 아니란 걸 요즘 피부로 느낀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한 건 서울 사는 딸이 집으로 들어오기로 하면서부터다. 분양받은 아파트 입주까지 남은 날들과 부부의 출퇴근 거리를 감안한 결정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엊그제 돌잡이 이벤트를 치른 외손자의 육아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당장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50대 중반의 아내까지 자기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돌보는 '독박육아'가 애당초 가능치 않은 상태였다.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녀석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결론은 '당연히'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래서 주변의 어린이집 형편을 살펴보기로 했다.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으로 보낼 요량으로.아뿔싸! 그런데 이게 무슨 난리냐. 보낼 곳이 없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 '맡길만한' 곳이 없는 게 아니라 '맡길' 곳이 아예 없다. 사는 곳을 포함해 국공립어린이집 3개가 한꺼번에 새로 문을 여는 데도 불구하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 특히 지난 해 태어나 만 0세반으로 들어가야 하는 영아들은 바늘구멍조차 없는 상태였다. 3개 국공립어린이집을 합쳐 고작 6명이 수용 가능한 최대인원이라니. 입소신청 개시일 오전 10시부터 접수를 시작한다고 했다. 일찌감치 1시간 전부터 PC 앞에 앉은 딸이 달리기 총성이라도 기다린 듯이 정각에 접수시켰음에도 우리 집 아이는 62명 중 55번째였다. 같은 1순위 중에서 우선배정 조건을 갖춘 신청자들이 계속 들어오면서 그마저 순위도 하염없이 뒤로 밀려나갔다. 국공립어린이집 신청에 훨씬 앞서 대기신청 해두었던 민간과 가정어린이집조차도 순위는 여전히 두 자리 수였다. 몇 달을 기다려야 할지 모를 일이다. 이러다간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에서야 겨우 자리가 날까. 지난해 신생아수가 30만 명대로 줄어들었다. 2000년 공식통계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그때의 딱 반 토막이다. 특히 지난해 11월 출생아수 2만7천명은 월별 역대 최저치다. 일찌감치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한 인구학자는 "2305년 인구소멸로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국가는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이제야 모두들 실감하는 분위기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이구동성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축하금을 주니, 출산장려금을 지원하겠다느니 부산을 떤다. 아이를 낳는 게 애국이라고 젊은 부부들을 몰아붙인다. 애국의 반대는 매국 아닌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매국노 소리를 들을 판이다. 이쯤 되면 국가적 협박수준이다. 하지만 '탁아(託兒)'의 현실이 저러하니 낳아도 키울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아기엄마들이 왜 국공립어린이집만 찾느냐는 지적도 할 수 없다. 국가시스템으로서의 탁아시설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못됐다' '과하다' '쏠린다' 나무랄 수 없다.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학대사건들이 그 이유다.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선 아이를 낳아야 한다. 아이를 낳게 하려면 국가적으로 육아(育兒)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육아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선 탁아(託兒)문제의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 '탁아'야말로 국가의 존립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에 국공립어린이집을 40%대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그 어떤 공약보다도 이 공약만큼은 반드시 실현되길 바란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2305년 이후에도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을 터이니./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8-01-30 이충환

[경인칼럼]공짜 점심은 좋지만

문정부 정책 하나하나 많은 비용부담 요구의무지출 비율 많고 보편적 복지 점입가경잠재성장률 낮아 재정지출 속도 조절 필요문재인정부의 '포용적 복지'정책이 탄력을 받고 있다. 포용적 복지란 과거의 '선(先)성장, 후(後)복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복지와 성장이 조화를 이루는 복지정책으로 배경은 현재의 한국사회가 생활과 노동, 경제와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위기라는 인식에 근거한다. 유엔이 각국의 소득과 기대수명, 자유와 사회적 지원, 부패지수 등을 종합해서 발표하는 2017년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은 156개 국가 중에서 56위에 랭크되어 있다.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스위스 등 전통적 복지국가들이 최상위권을 차지했는데 빈부격차가 적은 데다 정치사회적 안정이 특징이다.'행동하는 지성인'으로 유럽인들의 추앙을 받던 존 스튜어트 밀은 빈곤과 불평등의 축소를 사회발전의 요체로 지적하고 이를 위해 '개인들의 양식과 배려가 결합된 사회'의 실현을 요구한 바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복지란 시혜(施惠)가 아니라 인권"이라 강조했다. 헌법 제34조 2항에도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지닌다'고 명시했다.지난해 8월 문 대통령은 국민 모두가 의료비 걱정에서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며 미용과 성형을 제외한 모든 의료행위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내용의 소위 '문재인케어'를 발표했다. 환자의 부담이 큰 선택진료비, 상급 병실료, 간병비 등 3대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단계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경증치매환자도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도록 지원을 확대하고 60세 이상 치매 의심환자에 대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검사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했다. 2022년까지 5년간 30조6천억원을 투입해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또한 금년 1월부터 실업급여를 인상하고 월 보수 190만원 미만 근로자를 한 달 이상 고용한 30인 미만 고용 사업주에게 근로자 1명당 매월 13만원씩 지원하기로 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460만여 명이 혜택을 볼 예정이다. 올 9월부터는 0~5세 아동이 있는 가정에 양육수당과는 별도로 월 10만원씩 아동수당을 지급하기로 해 홀벌이 가구 등의 기대가 크다.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하위 70%에 지급되는 기초연금 지급액도 5만원씩 올리는데 어르신 빈곤 완화차원에서 2021년까지 월 30만원으로 인상할 계획이다.정책 하나하나마다 엄청난 비용부담이 요구되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공짜점심은 없는 법이어서 당장 이번 달부터 건강보험료가 작년보다 2%가량 오른다. 고용노동부는 2019년 1월부터 고용보험료 23% 인상방안을 확정했다. 20년간 묶였던 국민연금 보험료도 금년 상반기 중에 올릴 예정이다. 지속가능하며 일관된 추진을 위해서는 소요재원의 꾸준한 확보가 생명인데 특히 의료는 서비스 받는 국민과 환자가 편할수록 수요가 갑작스럽게 커지는 경향이 있어 우려가 크다.복지와 성장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한 고전적 처방인 재정정책에도 확신이 안 선다. 세계적으로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재정의 경기부양 기능에 회의적인 시각이 힘을 받고 있다. 알베르토 알레지나 하버드대 교수는 정부 지출을 늘렸을 때보다 재정적자를 해소하고자 대규모로 정부 지출을 축소한 이후에 오히려 경제성장이 관찰되었다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2016년 기준 중앙 및 지방정부 부채는 717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43%란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일본이 237%로 세계 최고이고 이탈리아(132%), 미국(127%), 캐나다(114%) 등에 비해 한국의 재정 건전성이 양호한 것이다. 최근 10여 년 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무상급식, 기초연금,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 등 복지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에도 비교적 선방했다. 그러나 의무지출 비율 증가속도가 빠른데다 이 정부의 보편적 복지정책은 점입가경이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른 잠재성장률 저하와 고령인구 증가는 설상가상이어서 재정지출의 속도조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정부란 무조건 나라 빚을 많이 지고 본다"는 독일 최고의 경제학자 하노 벡 교수의 질타가 돋보인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8-01-23 이한구

[경인칼럼]개헌 핵심은 대통령 권한 분산이다

권력구조 개편, 대통령제 같이 '4년중임' 하되내각제적 요소 없애고 권한 나누면 野도 동의정치적 접근보다 국민여론·실현 가능성 무게개헌 국민투표와 지방선거와의 동시실시가 여야의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개헌 특위가 6개월 연장됐지만 그동안 특위의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미루어볼 때 기대 걸 일은 아닌 듯하다. 게다가 여야간에 권력구조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합의 가능성은 낮다. 권력구조 합의가 안 되면 기본권 확대와 지방분권 강화를 담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헌의 요체는 현행 대통령제의 개편이다. 87체제 이후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인식이 개헌의 당위성의 논거다. 권력구조 측면에서 여야의 합의가 거의 불가능해 보이긴 하지만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실질적인 대통령 권한 분산을 헌법에 담는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다. 군사정권의 퇴장 이후 1987년 만들어진 현행 대통령제는 제3공화국의 강한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하면서 권력분립과 상호견제를 강화했다. 그러나 현행 권력구조는 순수 대통령제에 비하여 여전히 제도 및 운영에서 권력분립의 정도가 낮고 대통령에로의 권력집중이 강하다. 이는 국회와 대통령의 마찰이 일상화되는 요인이기도 하다. 여야의 적대적 대립은 국회와 대통령의 갈등과 중첩적으로 작용하며 반목의 정치를 일상화한다. 현행 헌법의 내각제적 요소인 국무총리 제도,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 국무위원의 의원직 겸직 허용 등의 제도는 국회의 영향력 증대 보다는 대통령 권력 강화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엄격한 권력분립을 기본정신으로 하는 대통령제에서 의회와 내각의 융합을 기본으로 하는 내각제 제도의 원용은 대통령 권력의 강화 요인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는 중앙집중적이고 강한 기율을 바탕으로 하는 정당제도와 맞물리면서 국회에서는 대통령 정당 대 반대당의 대립구도가 고질화되고 있다. 결국 내각제적 요소는 대통령이 입법부의 정치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대통령의 권력집중을 강화시킴으로써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서의 위상보다 삼권위에 군림하는 양상을 띠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한 대통령의 임기와 국회의원 선거 주기의 불일치로 분점정부, 즉 여소야대 가능성의 증대는 국회의 행정부 견제 강화보다는 대통령과 국회의 상시적인 마찰로 국정 운영의 교착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여야 합의가 어려운 권력구조 변경은 차후에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권력구조에 대한 공감을 넓혀가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국민 여론은 여전히 대통령제에 대한 선호가 높다. 대통령제를 유지하려면 실질적인 권력분산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개헌이 필요하다. 핀란드와 오스트리아의 경우는 헌법에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성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야당은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하고 있다. 국회가 합의하는 국회 선출 총리와 국민 직선의 대통령이 권력을 분산하는 이원집정부제는 국민의 국회에 대한 신뢰가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또한 이원집정부제는 그동안 대통령-국회 간의 정치적 쟁투로 점철된 한국적 현실에서 대통령-총리의 선출된 권력의 이원적 정통성(dual legitimacy)의 대립이라는 위험요소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공한 이원집정부제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들은 내각제 및 내각제와 유사한 형태의 권력구조를 장기간 운용한 경험이 있는 정치체제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권력구조 개편의 방향은 순수 대통령제와 같이 4년 중임으로 하되 내각제적 요소의 제거와 함께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면 야당이 이에 동의하지 않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정치이론적인 접근보다 국민여론과 실현가능성에 무게를 둔 개헌 논의가 절실하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육대학원장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육대학원장

2018-01-16 최창렬

[경인칼럼]"정부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1조원 넘는 무안공항 KTX 철도 왜 필요한지전북 동네마다 수백억 역사 짓는 이유 말해야'원삼·모현 IC 재검토' 명확한 입장도 밝히길정부가 서울~세종 고속도로 원삼과 모현 IC 설치를 재검토하기로 한 건 지난해 11월이다.기획재정부는 용인시 구간 전반에 대해 적정성 재검토를 위해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용역작업을 맡겼다. 사업비 증가에 따른 절차로, 타당성을 다시 따져보겠다는 것이나 지역에서는 둘 중 하나는 물 건너간 것으로 낙담한다.용인은 발칵 뒤집어졌다. 이들 두 IC는 지난해 말 삽을 뜰 예정이었다. 수용 대상 토지와 보상가 책정이 통보된 상황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무술년 새해, 용인시 일출 행사장에서 주민들은 'IC가 설치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영하의 추위에도 시민들이 줄을 지어 서명했다. 시의회는 지난달 '서울~세종 고속도로 원삼·모현 IC 원안 존치 결의안'을 전원 동의로 채택했다. 성난 주민 200여 명은 기재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용인시가 경기연구원에 의뢰해 실시한 타당성 조사에서 모현 IC는 B/C(비용편익비)가 3.07, 원삼 IC는 1.92로 사업성이 충분했다. 기재부는 이 조사가 제대로 됐는지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한다. 주민들은 정부가 갑자기 핸들을 돌린 이유가 궁금하다. 2년 전 마을을 찾아와 '용인에 2개의 IC 설치가 확정됐다'고 전한 국토부와 도로공사는 말이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예산은 기재부 소관이지만 설마 확정된 사안을 바꾸겠느냐"고 궁색한 변명을 했다고 한다.모현 IC 공사비는 700억원, 원삼 IC는 400억원 안팎이다. '정부가 공사비 몇 푼 아끼자고 국민과 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추운 거리에 나선 주민들은 "정부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한다.정부는 호남 KTX 광주송정~목포 노선을 유지하고 무안공항으로 가는 16.6㎞ 지선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지난해 말 호남고속철도(KTX) 광주송정~무안공항~목포 노선(77.6㎞)을 깔자고 합의했다. 2조4천731억원에 달하는 예산안도 통과시켰다. 이렇게 되면 노선이 'ㄷ'자로 휘고, 사업비는 1조1천억원 더 들어간다. 혈세를 쏟아부어 고속철도를 무궁화 노선으로 만든다는 비판에 정부는 귀를 닫았다.언론은 물론 정치권도 의문을 제기한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3천억원 짜리 공항에 KTX 경유를 위해 1조3천억원을 쏟아붓겠다고 한다"면서 경제 타당성 조사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정부는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국회가 예산을 세웠으니 우리는 실행하면 된다는 태도다.전북에서는 고속철도 역사(驛舍) 사이에 또 역을 만들겠다고 해 지역이 갈라섰다. 혁신도시 역을 만들자는 쪽과 승객 감소를 우려한 인근 역 주민들 사이가 틀어진 것이다. 역 사이가 20㎞도 안 된다. 수백억 들여 고속철을 완행열차로 만들자는 이상한 계획이다.대한민국 사회는 온갖 프레임(틀)에 갇혀 나아가지 못한다. 정부는 이념과 계층, 지역, 세대로 나뉘고 쪼개진 프레임을 깨뜨리자고 한다. 그래야 나라의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어느 정부라도 지역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역차별은 더 나쁘다. 그런데 지긋지긋한 '지역 프레임'은 더 강하게 조여오는 느낌이다. 수도권 역차별이란 말은 일상화된 지 오래지만, 해도 너무한 일들이 벌어지니 할 말을 잃게 된다.정부는 원삼·모현 IC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1조원 넘는 혈세를 쏟아붓는 무안공항 KTX 철도는 왜 필요한지 설명해야 한다. 전북에는 왜 수백억원을 들여 동네마다 KTX 역사를 지어야 하는지 말해야 한다. 정부가 합리적 근거와 이유를 들어 이런 의문을 모두 거둬들인다면 용인시민은 추운 거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홍정표 논설실장홍정표 논설실장

2018-01-09 홍정표

[경인칼럼]관광 만능주의는 위험하다

원주민 일상 파괴·경제적 어려움까지 가중여행자중심 관광 '주민중심'으로 전환 필요지속가능성 지표 '사생활 보호'로 설정돼야몇 년 전 제주에 신혼집을 마련한 가수 이효리가 몰려드는 관광객들에게 "우리집은 관광코스가 아니다"라고 호소했지만, 그저 스타가 겪어야 할 유명세 정도로 여겼다. 여행이 일상화되고 마을이나 도시의 일상생활 공간이 새로운 여행지로 부상하면서, 주민들의 거주환경이 악화되고 주민들이 고통받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이처럼 관광활성화로 인한 정주환경 훼손 현상을 지역개발사업의 결과로 원주민이 내쫓기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빗대어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이라고 부른다. 서울 종로구의 북촌한옥마을과 이화마을, 통영 동피랑 마을, 인천 송월동 동화마을 등 한때 관광지로 다른 지자체의 부러움을 샀던 곳들이 밤낮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주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북촌 한옥마을 주민들에게 휴일은 끔찍한 시간이다. 내국인부터 중국, 일본 등 외국인까지 연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이곳은 특히 휴일에는 마을 전체가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방문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눌러대는 셔터 때문에 언제 사생활이 노출될지 모른다. 빨래를 내다 널지 못하고 여름에도 문을 열어 놓을 수 없어 신경쇠약 증세를 호소하는 주민도 있다. 마을은 방문자들의 추억과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소품으로 소비되고, 주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배경이 되는 것이다. 무단촬영 뿐 아니라 쓰레기 투기, 낙서, 흡연과 소음, 주차난 등 피해유형은 다양하다. 참다못해 마을을 떠나는 주민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관광지 원주민들의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이화동 벽화마을의 주민들이 인기벽화 '해바라기'와 '잉어'를 페인트로 지워버린 사건이다.유럽의 관광도시들도 관광객 과다유입으로 인해 물가와 임대료 상승이 가속화되고 원주민들이 도시를 떠나고 있는 현상 때문에 고민이 깊다. 시민들이 관광객의 방문을 거부하는 대규모시위가 발생하거나 노골적인 관광객 혐오증이 확산되는 등 정부의 관광정책에 항의하는 반관광운동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바르셀로나는 호텔 신축을 불허하고 숙박공유시설의 단속으로 연간 3천만명을 상회하는 방문객 숫자를 줄이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암스테르담은 방문자들로부터 하루 숙박에 10유로의 관광세를 징수하는 방안, 유적지에 기념품 상점의 입점을 제한하는 등 과잉관광을 조절하여 주민의 생활을 보호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북촌한옥마을처럼 마을이 관광지로 부상했지만 집값과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는 역설적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 여행자 예절교육, 유의사항 안내판 설치, 야간 관광제한 등의 방안은 미봉책이다. 우리 정부의 대형 국책사업들은 이같은 대량관광으로 인한 주민들의 일상파괴 현상에 대한 고민이 없다. 정부와 지자체의 관광연계주의, 관광만능주의는 이미 주민들의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관광활성화로 원주민들의 일상이 파괴되고 경제적 어려움까지 가중시킨다면 누구를 위한 관광인가를 되물어야 한다. 주민의 삶을 담보로 한 관광우선정책은 주객전도 정책이며, 시민의 일상생활을 민속촌으로 만드는 것은 인권차원에서도 문제의 소지가 크다. 여행자 중심의 관광은 원주민 중심으로 전환하고, 관광정책에서 '지속가능성'의 핵심지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보호하는 것으로 설정되어야 한다./김창수 인천발전硏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발전硏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8-01-02 김창수

[경인칼럼]미디어교육의 즐거움

60대 은퇴자의 ‘치매노모 일생’ 국무총리상40대 아빠의 드론 영상콘텐츠 공모전 대상 기분좋았던 한해… 기대하시라 내년 ‘시즌2’김○○ 씨는 60대 중반의 은퇴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다. 얼마 전까지도 현역으로 뛰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엉뚱하게도(?) 영상공모전 시상식장에 섰다. 지난달 13일 서울에서 열린 '2017 시청자미디어대상' 시상식이다. 방송통신위원회와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주최한 이날 시상식에서 다큐멘터리 '어머니, 더 사셔도 돼요'로 대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60∼70대 육남매는 매주 토요일, 인천의 한 요양원을 찾아간다. 지난 8년간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다. 그곳에는 치매에 걸린 100세 노모가 있다. 발병 4년째 되던 지난 2009년, 92세의 어머니를 결국 요양원으로 모셨다. 병세가 깊어져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영상은 어머니의 일생을 회상하고, 그 사랑과 희생에 감사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 형제 누이가 우애를 더해 간다는 내용으로 20분간 이어진다.어머니의 일생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였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던 중 2015년 2월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매달 마련하는 시청자교양아카데미의 강연포스터를 보게 됐다. 그 달의 강연자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제작한 진모영 감독. 주제가 '다큐멘터리영화의 이해'였다. 그날 이후 센터가 제공하는 기획과 구성, 동영상 제작, 영상 편집, 다큐멘터리 제작 등 상설미디어교육 강의를 하나하나 듣기 시작했다. 이번에 출품한 작품도 다큐멘터리 제작 과목의 수료작이다. 수상 한 달 뒤인 지난 14일, 센터에서 열린 '시청자의 날' 행사에 그를 초대해 다시 작품을 보고 소감을 들었다. 행사장은 이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이 작품은 마침 다음날 KBS 1TV '열린채널'을 통해 방송돼 전국의 시청자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고△△ 씨는 이제 막 40대에 들어섰다. 초롱초롱한 눈빛의 딸을 가진 아빠다. "공돌이 대학생이 몇 년 뒤 직장인이 되어서도 영상은 저에게 '너무 재미있는 것'이었지만, 현대를 사는 모두에게 그렇듯 취미에 그 이상을 바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그에게 늦은 사춘기가 찾아왔다. 새로운 일을 찾던 중 가족들과의 여행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영상을 본 이가 공모전 응모를 권유했다. "이런 저런 생각들과 고민들로 자존감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을 때 쯤 '인천에서 드론공모전 하는데 거기 출품해보세요'라는 댓글을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제 영상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도 하고, 용기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첫 주최한 '2016 드론 영상콘텐츠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올해도 여러 공모전에서 잇따라 입상했다. 지난 14일에는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전국으로 확대 시행한 '2017 드론 영상콘텐츠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해 방송통신위원장상을 받았다. 지난해에 이은 수상이었다. 며칠 뒤 그가 센터장과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 덕분에 암울했던 시기에 용기 얻어 공모전에 도전할 수 있었고, 공모전을 통해 스스로 많이 배우고, 성장한 2017년 한해가 된 거 같아 다시 한 번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마침 대상을 받았던 그 주에 다른 공모전에서 행정안전부장관상을 받았다는 사실도 메일을 통해서 알게 됐다.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의 보람이 컸던 한 해였다. '전 국민 생애맞춤형 미디어교육'의 현장인 시청자미디어센터를 운영하는 즐거움을 만끽했던 한 해였다. 특히 두 분의 수상자 덕분에 기분 좋게 한 해를 마감한다. 이제 내년부터는 인천광역시와의 새로운 파트너십을 시작한다. 초대 센터장으로 부임한 이후 줄곧 그 필요성을 강조해왔던 터다. 기대하시라,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 시즌2!/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7-12-26 이충환

[경인칼럼]유통업 고난의 시대

빅데이터·인공지능 등 '4차산업혁명' 코앞어느 순간 상업도 사라지지 않을까 두렵다 창조적 파괴에 따른 서민경제 위축 더 큰일지난달 경인일보가 인천의 대표 책방이 '책도 파는 빵집'으로 변신한 것을 개탄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동인천역 맞은편에서 65년째 영업 중인 대한서림은 10여 년 전까지 6층 건물 전체가 서점이었으나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다는 내용이다. 학생인구 감소에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의 발달이 직접 원인이다. 필자 자신도 오프라인 서점을 찾은 지가 언제(?)인가 싶다. 핸드폰으로 도서 검색부터 결제까지 일사천리인 것이다.요즘은 만나는 자영업자들마다 이구동성으로 경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나쁘다며 한숨을 쉰다. 국세청의 발표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문구점과 식료품가게는 12%, 신발가게는 13%, 가전제품 매장은 3%씩 줄었다. 골목상권을 위축시켰던 대형마트와 백화점까지 위험지경에 처했다. 롯데와 신세계, 현대 등 백화점 3사는 향후 3년간 신규출점 중지를 선언한 상황이다. 과거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둔화되었지만 국민총소득은 꾸준하게 늘었다. 국민들이 소득이 늘어도 미래가 불안해서 함부로 지갑을 열지 못하는 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갈수록 실업률이 높아지는 와중에 언제 일자리가 없어질지 모르는 지경인데 함부로 소비지출을 늘릴 간 큰 사람들이 있겠는가. 금년 2분기의 총저축률이 36.9%로 1998년 3분기 이후 2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 시사하는 바 크다. 소탐대실의 천박한 자본주의가 초래한 결과이다. 전자상거래의 급신장은 설상가상이다. 시간을 허비하며 발품 파는 수고는 물론 점포 내에서 물건을 뒤적이다 주인 눈총을 받는 부담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오프라인상점 보다 가격이 매우 저렴한 것은 금상첨화이다. 상인들도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 길목 좋은 점포를 지닐 필요가 없다. 무일푼의 구글 창업자들이 남의 집 차고에서 창업한 것이 상징적인 사례이다.우버와 에어비앤비로 대표되는 공유경제 비즈니스의 확산도 주목된다. 특히 중국의 공유경제 활성화가 이채롭다. 자전거, 우산, 휴대폰 배터리, 세탁기, 헬스기구, 수면방 등 사업영역이 전방위로 확산 중인 바 공산주의시절 경험과 맞물려 공유경제는 혁신적인 사업모델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자본 진출 등의 여파로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각국 정부들이 규제에 팔을 걷어붙이는 추세이나 대세는 거를 수 없어 장기적으로 유통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해외직구 열풍은 국내의 '돈맥 경화'에 한몫 거들었다. 지난달 전세계 네티즌들을 유혹했던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와 중국 광군제(光棍節)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이 기간 중에 해외직구가 최고조에 달했다. 파격적인 가격 덕분인데 미국과 중국의 유통업체들은 쇼핑기간 중에 제품 값을 무려 10분의 1까지 인하했던 것이다. 65만원 짜리 명품청소기를 3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주목되는 것은 국내의 해외직구 증가속도가 경이적이란 점이다. 2001년 1천300만 달러로 전체 소비재 수입액의 0.07%에 불과하던 해외직구 금액은 지난해에는 16억4천만 달러로 격증했는데 금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20억 달러를 돌파할 예정이다. 해외직구는 대행업체나 오픈마켓 등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으나 갈수록 소비자와 소비자간, 소비자와 제조업체 사이의 직거래 물량이 획기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매킨지글로벌연구소(MGI)는 지구촌의 총생산(GDP)이 매년 1%포인트 정도 증가하는 반면에 2030년까지 최대 8억 명이 실직할 것으로 내다봤다. 무한경쟁에다 정보통신 발달에 따른 가성비에 주목한 스마트몹(smart mob)들의 맹활약이 세계물가 인하에도 상당히 기여했다. 아직은 사이버 상거래업체의 주가가 상종가이나 이 업태 또한 낙관은 금물이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과 드론 등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이 코앞에 닥친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 미용이나 음식점 등 비교역재를 취급하는 서비스업을 제외하면 유통업이 빠르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공룡처럼 어느 순간에 상업도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그나저나 창조적 파괴에 따른 서민경제의 위축이 더 큰일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7-12-19 이한구

[경인칼럼]적폐청산에 시한은 없다

사회적 불평등·이기주의 만연·계층 갈등보수정권들 권력 사유화·헌정농단 가능근본적 치유위해 적폐 행위자 단죄 필요주권자의 요구에 따라 국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한지 1년이다. 적폐는 어둡고 깊다. 촛불민주주의의 압도적 요구는 적폐청산이다. MB와 박근혜 정권은 국가의 공식적 제도와 기구를 무력화하고 주권자를 통치의 객체와 사찰의 대상으로 여겼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자의적으로 권한을 남용하고 주권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권력을 사유화한 위임민주주의의 전형을 MB와 박근혜 정부는 보여줬다. 이러한 헌정유린을 단죄하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출발이었던 국회 탄핵 이후 한국사회는 변하고 있는걸까. 적폐수사는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이 냉전반공주의에 편승하여 사회의 특권과 불평등 구조를 고착화시켰던 과거 청산의 출발에 불과하다. 권위주의적 사회 운영 방식의 타파도 적폐청산이 전제될 때 가능하다. 이번에도 수구세력의 저항과 반동에 의해 적폐가 묻힌다면 사회의 왜곡된 구조의 변혁은 불가능하다. 적폐청산과 한국사회의 미래가 동의어인 이유이다. 적폐청산 수사가 박근혜 정부의 공직자·민간인 사찰 의혹과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은 물론 이명박(MB) 정부 국가정보원의 댓글 공작과 군 사이버 사령부의 여론조작 등 국가기관의 반헌법적 행위로 확대되고 있다. 또한 MB 정부 국정원과 청와대의 블랙 리스트와 화이트 리스트 관여는 물론 BBK에 대한 다스 투자금 회수 개입 등의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MB 정부 국정원과 군의 정치개입 의혹 사건의 규명을 위해 MB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하다. 또한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의 최정점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진상을 규명할 수 없다. MB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야당은 적폐청산을 '감정풀이'와 '정치보복'의 프레임으로 설정하고 수구보수의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을 거부하며 정치적 희생양 코스프레로 국면전환을 꾀하고 자유한국당은 국민의 대의기구가 탄핵을 의결한지 1년이 된 시점에서 논평 한 마디 내지 않았다.한국사회의 그릇된 관행과 왜곡되고 일탈된 퇴행적 행위를 바로잡는 일에 기간의 제한은 가당치 않다. 해방 직후 친일세력이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킴으로써 일제의 잔재는 청산되지 않았고 이후 권위주의 정권의 냉전주의에 편승한 기득권 세력의 특권화는 결국 적폐를 낳았다. 또 다시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 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시작된 지난 '보수'정권들의 헌법유린 행위에 대한 수사는 이제 불과 4개월을 넘지 않았다. 일부 보수언론과 수구세력을 중심으로 적폐청산 피로감이 언급되는 등 수사의 차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적폐수사의 피로감은 세월호 때 등 주요 국면마다 등장하곤 했다. 피로감 프레임을 통해 국면전환을 꾀하는 반역사적 행태다. 연말이라는 시기는 적폐청산과 아무 관련이 없다.자유한국당은 적폐수사를 '청산을 빙자한 정치보복'이라며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로 국면전환을 꾀하고 있다. 프레임의 전환을 통해 반전을 노리는 정치공학이 현실정치(real politik)의 일부라는 점을 받아들인다 해도, 이에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규범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냉전반공주의에 편승하여 각종 사회경제적 자원을 독점했던 세력의 기득권화는 사회경제적 격차를 가속화시키고, 불평등 구조의 고착화로 이어진다. GDP 규모에 걸맞지 않는 사회적 불평등과 이기주의의 만연, 사회적 연대와 배려의 실종, 계층간 갈등의 심화는 지난 보수정권들의 권력의 사유화와 헌정농단의 토양위에서 가능했다. 이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 적폐의 주된 행위인자들에 대한 단죄는 반드시 필요하다.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을 대치시키는 구도는 뒤틀린 프레임이다. 반민특위의 해체의 명분은 안보위기와 국론분열이었다. 유신독재는 안보와 국민총화를 내세우고 정치적 배제와 억압을 일상화했다. 국론분열과 안보위기를 내세우는 낡은 보수의 역사적 퇴행에서 불의한 정권을 지탱했던 수구의 데자뷰를 본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육대학원장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육대학원장

2017-12-12 최창렬

[경인칼럼]'이국종' 에게 뭔 일이?

환자 더 많이 살려낼수록 적자 늘어나고의사들은 죄인 취급되는 '중증외상센터'국민 생명 더 지킬수 있는 지원정책 기대수년 전, 아주대병원 외과의사 이국종을 단독 인터뷰 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병원장과 대학 관계자를 통해 압력을 넣었다. 대학 선배인 홍보팀장에게는 "타사가 먼저 만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돌아가며 풀(pool) 인터뷰를 하는 바람에 낙종도, 특종도 없었다.이국종은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면서 세상에 이름 석 자를 알렸다. 언론은 그를 또 다른 영웅이라 불렀는데, 진짜 공적(功績)은 따로 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현실과 필요성을 알린 것이다. 대통령 지시로 전국 권역별로 중증외상센터가 개설됐고, 의료헬기로 환자를 나르게 됐다. 온전히 그의 힘이었다.세월에 묻혔던 그가 북한군 병사가 JSA를 넘어선 이후 다시 언론 앞에 섰다. 총알을 다섯 발 맞았다는 병사를 거뜬하게 치료했고, VIP 병실로 옮겨진 사진이 공개됐다.시간이 지났어도 그는 여전했다. 안경 쓴 마른 얼굴에, 눈빛은 차가웠다. 환자가 궁금한 기자들에게 정치권과 정부, 언론에 대한 비판을 격정적으로 쏟아냈다. 북한 병사에 대해서는 '살 것'이라고 짧게 언급했다.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와 이국종에게 뭔 일이 있었는가.2011년 석 선장 치료비 2억원은 아주대병원이 떠안았다. 병원 측은 2015년 말 1억원을 손실 처리했다. 치료를 받을 당시부터 제기됐던 치료비 문제는 끝내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석 선장과 이 교수에게 훈장을 주면서도 비용 부담은 모른 체 했다.중증외상센터가 지난 6개월간 헬기로 실어나른 응급 외상 환자는 150명이 넘는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100병상인데, 의사는 고작 10명이다. 인턴과 레지던트는 찾아볼 수 없고, 모두가 전문의들이다. 간호사는 환자 1명당 1명 선이어야 하는데 3명이 넘는다. 새로 배치된 간호사 10명 중 4명은 중도에 그만둔다. 새내기 일도 중견 간호사가 한다.응급의과 허요 교수는 이국종을 보좌하는 3년 차 전문의다. 한 달 30일 가운데 8~10일 야간 당직을 선다. 36시간 연속 근무가 다반사다. 그는 "사명감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다"면서 "악조건에도 센터가 운영되는 게 놀랍고 자랑스럽다"고 했다.환자들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위중한 상태로 실려온다. 복부 외상은 대장과 위장, 간과 허파 등이 다발 손상되는 경우가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인정하는 의료 수가는 주 질환 100%, 나머지 부 질환은 70%만 인정한다. 환자가 많을수록 적자가 늘어난다는 이국종의 주장은 이상한 수가 책정에 근거한다. 병원은 적자만 쌓이는 외상센터가 달갑지 않다. 센터 손실만 연간 10억 원을 넘는다고 한다. 환자를 더 많이 살려낼수록 적자는 더 커진다. 센터 의사들을 '죄인'으로 내모는 구조다.이국종은 심신(心身)이 지칠 대로 지쳤다고 한다. 동료들에게 "헬기서 줄 타고 내려가다가 사고로 떨어져 죽었으면 차라리 후련하겠다"며 괴로움을 호소한다. 동료인 배기수 교수(소아과)는 언론 기고문에서 "극심한 피로와 우울을 겪는 그에게 남은 욕심이란 한 명이라도 더 살려내자는 것이다. 귀순 북한군 병사가 이국종에게 이 세상에 한 번 더 호소할 기회를 주었다. 국민의 생명과 가정을 지켜내는 중증외상센터가 더 이상 죄악이 되면 안 된다는 그의 절규를 듣고, 무엇이 급하고 소중한지를 분별해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대통령이 말하는 '나라다운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정부와 국회는 외상센터 예산을 대폭 늘리겠다며 호들갑이지만 '국민이 안전한 나라'는 아직 먼 듯하다. 배 교수에 따르면 '아마존 밀림 야자나무에서 떨어지나, 국내 공사 현장에서 떨어지나, 사망 확률은 별반 차이가 없는' 게 대한민국이다./홍정표 논설실장홍정표 논설실장

2017-12-05 홍정표

[경인칼럼]문화자치와 지역문화 진흥법

문화재단 자율성 높이는 '총액예산제' 도입 시급지역문화 특성화위한 고유 자원 평가·분석 필요'정부, 기본방향 제시한다'는 취지로 개정 바람직 문화 분야에서의 분권과 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가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17 문화자치연속포럼'은 전국의 문화기획자와 문화정책연구자들이 권역별로 모여서 지역문화와 문화분권의 현주소와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무엇인지를 공론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문화영역에서도 분권과 자치는 오랫동안 당위 명제처럼 여겨 왔지만, 과연 지방이 현 시점에서 '수권 능력'이 있느냐는 다소 '우울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이같은 진단은 지역의 문화현실에 대한 자기반성인 동시에 문화자치가 호락호락한 과제가 아님을 확인케 해주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열악한 지역의 현실을 문화 분권을 유예하는 근거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황폐한 지역문화 현장은 정부주도의 문화정책이 지역 문화의 자생력을 위축시켜온 결과이기 때문에 중앙정부는 더 신속히 그리고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해야, 시행착오를 줄이고 문화자치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 문화분권과 자치에서도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천명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역의 자기결정권, 책임성, 자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 주도의 정책으로는 지역문화생태계 지속성이나 창의성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된다. 정부의 공모 사업은 지역문화의 표준화 현상을 낳고, 국립 문화 시설 유치를 둘러싼 지역 간의 경쟁을 유발하여, 정부에 대한 지역의 의존성을 높였다.지역 문화재단의 정부 의존성을 줄여야 한다. 현재 각 시도에 설립된 문화재단은 지역의 대표적 문화지원기구이지만, 대부분 재정구조가 취약한 실정이다. 이로 인해 지역 문화재단의 고유사업은 위축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위탁한 사업 비중이 늘어나면서 정부 대행기구화 하고 있다. 문화재단의 자율성을 높이고 고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총액예산제의 도입이 시급하다.지역문화진흥, 문화분권의 주체가 지방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문화자치의 관점에서 보면 '지역문화진흥법'에 나타난 계획 수립과 시행 주체는 뒤집혀져 있다. 이 법에는 지역문화진흥의 기본계획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수립·시행·평가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지역문화의 특성화나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 등과 같은 사업의 계획까지 중앙정부가 맡아서 수립할 수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분권과 자치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은 지역별로 상이한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해야 하며, 지역 문화의 특성화를 위해서는 지역의 고유 자원에 대한 면밀한 평가와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역문화진흥계획을 지역문화계와 소통하면서 수립하는 것은 지방정부의 권리이다. 중앙정부의 역할은 지방별 기본계획이 원활하게 시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물론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계획은 별도로 수립되어야 하며 그 계획의 수립은 정부의 책임이자 권한에 속한다. 따라서 '지역문화진흥법' 제6조는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기본계획은 광역시도가 수립한다. 정부는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국가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기본방향'을 제시한다"는 취지로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김창수 인천발전硏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발전硏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7-11-28 김창수

[경인칼럼]포스코건설 '인천철수설'

송도에 근무하는 임직원만 5천명 웃돌아 현실화 된다면 당장 일자리 창출 '직격탄' 시·정치권등 사태 관망하는것 같아 '답답'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개관한 것은 삼년 전 8월이었다. 한 해의 절반도 훌쩍 넘어선 시점이었다. 미리 편성돼 있는 예산을 갖고 그럭저럭 교육커리큘럼을 구축하긴 했으나 마음 한 구석 불안함이 남았다. 인천은 방송문화의 불모지다. 그 흔한 메이저방송사의 지방네트워크나 총국도 하나 없다. 20년 전 가까스로 iTV가 개국해 드디어 사막에도 싹이 돋나 싶었는데 2004년 말 정파된 이후로 다시 방송의 암흑기가 이어지고 있는 도시다. 시청자미디어센터가 뿌리를 내리기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미디어리터러시 운운하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봐야 빈 메아리가 될 게 자명했다. 뭔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길만한 강력한 요소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시청자교양아카데미'다. 한국의 방송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저명한 인사들을 인천으로 초청하자. 그들로부터 직접 얘기를 듣고, 그들에게 직접 질문을 하고, 그들과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자.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포스코건설의 도움이 컸다. 프로그램 기획이 늦게 이뤄진 탓에 초청인사들의 강연사례비와 프로그램 운영비를 마련하기가 막막했다. 당시 인천시는 재정위기 탓에 돈 얘기 꺼낼 상황이 되질 못했다. 며칠 고민 끝에 포스코건설 이사를 만났다. 프로그램의 공익성을 설명했다. 그리고 강조했다.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는 인천시민을 위한 미디어교육기관이고, 미디어문화기관이고, 미디어복지기관이다. 그 센터가 송도국제도시에 자리 잡고 있다. 송도국제도시는 포스코건설의 상징이지 않은가. 센터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은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이자 책임이다. 그렇게 시작된 프로그램이 지금도 '시청자교양아카데미 시즌3'이란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방송기자, PD, 아나운서, 카메라감독 등이 자유학기제를 실시중인 중학교 현장을 찾아간다. 반응도 반응이려니와 보람 또한 큰 지역사회 기여프로그램이 됐다. 올해부터는 인천의 사라져가는 노포(老鋪)와 어르신들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아카이브사업 '오래된 가게-30일간의 작업'도 시작했다. 센터의 미디어제작단과 봉사단이 함께 참여하는 사회공헌프로그램이다. 이 또한 포스코건설의 도움을 받고 있다.이런 일이 계기가 돼 포스코건설과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요즈음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포스코건설이 인천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송도국제도시 국제업무지구(IBD) 개발 사업파트너인 미국 게일과의 갈등이 원인이란다. 이리저리 타진해보니 아직은 소문 수준이다. 그렇지만 그런 소문이 떠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답답한 일이다. 그 깊은 속사정이야 일반인들이 알기 어렵고 굳이 알 필요도 없다. 다만 그런 일이 현실이 될 경우 초래될 결과에 대해선 솔직히 우려스럽다. 센터에 도움이 되고 아니고를 떠나 인천시민으로서 갖는 걱정이다. IBD 개발 초기 수십억 달러의 투자유치를 약속했던 게일사의 실제 실적은 아주 미미하다. 그 갭을 메운 게 포스코건설이다. IBD에 아예 사옥을 신축했고, 2천명이 넘는 임직원들이 이곳에서 근무한다. 2010년부터 포스코 글로벌 R&D센터, 포스코플랜텍, 포스코건설엔지니어링, 포스코대우 등 포스코그룹 계열사의 이전도 잇따랐다. 현재 송도국제도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포스코그룹 임직원 수만 5천명을 웃돈다. 인천으로 집을 옮긴 그 가족들까지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규모다. 하물며 그 상징성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일의 중심에 있는 포스코건설의 인천철수설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현실화된다면 당장 일자리 창출에 '직격탄'이 된다. 송도국제도시의 공동화(空洞化)는 '안 봐도 비디오'다. 내년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핫 이슈'가 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나, 인천시나, 지역정치권이나 다들 너무 느긋하게 사태를 관망하는 것 같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7-11-21 이충환

[경인칼럼]외환위기 20년과 은행

은행들 가계대출 치중 부채 1400조원 달해더 심각한 것은 세계적 저금리시대 끝 보여20년전과 같이 이자놀이 올인 서민만 고통지금부터 꼭 20년 전인 1997년 11월 21일 밤 10시에 신임 임창열 경제부총리가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름도 생경한 IMF에 대한민국의 경제주권을 통째로 넘긴다는 선언으로서 이날은 제2의 국치일이다. 다급했던 정부는 IMF와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일본, 미국 등에서 국제통화기금 역사상 최대 규모인 583억5천만 달러를 조달했다. 이 무렵 국내 금융권의 부실채권이 은행 33조1천억원, 종금사 5조1천억원 등으로 파산지경이어서 정부는 금융기관을 살리려고 IMF사태를 자초했던 것이다.국제금융자본은 한국에 급전을 제공한 대가로 첫째 경상수지 흑자를 목표로 한율 격상과 수입억제, 외화반출 규제, 고금리정책을 요구했다. 둘째,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 불건전한 금융기관 정리와 재벌 계열사 간의 채무보증 금지 및 주력업종 위주의 슬림화와 셋째, 정리해고제 도입을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강요했다. 자본시장 자유화를 통한 외국인투자에 유리한 환경조성은 점입가경이었다.천정부지의 환율에다 살인적인 고금리에도 서민들은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 1997년 12월 30일 내무부가 전국 시도의 부단체장 회의에서 전 국민이 장롱 속에 깊이 감춰둔 금붙이 수집운동에 나서줄 것을 당부하면서 전국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 새마을운동중앙연합회, 귀금속업계와 주택은행과 (주)대우, 고려아연 등이 앞장섰다. 할머니들은 애지중지하던 금반지를, 신혼부부들은 자녀 돌반지를 내놓았다. 모금운동 한 달 만에 무려 117t가량을 모아 세계인들을 경악케 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국내 은행들의 무덤이었다. 대마불사 신화에 도취된 은행들이 30대 재벌에 경쟁적으로 여신공세를 펴다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동반부실의 늪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은행들은 두 번 다시는 재벌들의 덩치를 불리는데 부역(?)하지 않겠다며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정부는 금융기관을 회생시키고자 천문학적인 세금을 투입했다. 정부와 예금보험공사, 캠코, 한국은행 등이 출자와 출연 등으로 마련한 공적자금은 총 168조원으로 1998년 정부예산의 2.4배나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공적자금의 대부분은 재벌들의 자금줄이던 우리, SC제일, 하나, 국민, 신한, 시티은행 등의 심폐소생을 위해 투입했다. 그러나 금년 상반기까지 총 115조2천억원이 회수됐을 뿐 미수금 50여조원은 납세자 몫이다. 지표로만 보면 작금의 경제상황은 20년 전보다 나아졌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외환보유액은 332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4천억 달러에 육박한다. 기업의 부채비율도 1997년 말 425%에서 100% 이하로 축소되었으며 은행의 건전성도 많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은행들의 영업행태를 보면 크게 실망이다. 은행의 대출자산에서 제조업의 비중은 1995년 40%에서 2001년에는 24.6%로 급락했는데 이런 추세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반면에 가계대출 비중은 같은 기간에 27.1%에서 44.1%로 두 배 가량 증가했다.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러난 이유이다. 20년 전에는 기업부채가 화근이었지만 지금은 1천400조원으로 뛴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가계채무 증가세가 가처분소득 성장세를 상회하면서 20년 전보다 가계부채는 양뿐만 아니라 질도 좋지 않다는 지적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세계적으로 저금리시대가 끝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표정관리하기 바쁘다. 시중은행들은 금년 상반기에 이어 3분기에도 사상 최대치 실적을 경신한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20년 전과 똑같이 이자놀이가 전부이다. 자본자유화시대에 부합하는 해외시장 개척 내지 신사업 발굴 등 국민적 여망은 외면한 채 주택담보 대출에 올인 한 결과이다.뒷간 찾을 때와 다녀온 후가 다르다는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 재벌들에 뒷돈 대주지 말라했더니 대신에 고단한 서민들의 뒷덜미를 잡은 것이다. 작금의 내수경기 부진에 은행들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땅 짚고 헤엄치는 시중은행들을 보노라면 본전 생각이 간절하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7-11-14 이한구

[경인칼럼]정당 재정렬이 긴요하다

작금의 '통합 논의' 각당 인물 입신 도구 불과개혁 필요한데 現 정치는 구체제 연장 도울뿐집권당, 개혁연대 위한 적극적 통합 모색해야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정부와 대표자들을 실질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 절차를 가진 체계로서 대표성·책임성·반응성 등을 핵심 가치로 한다. 정당은 갈등의 표출, 집약, 조정, 정책화의 과정을 거치는 제도화의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구현해 나간다. 따라서 정당정치의 성패가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좌우한다. 한국정당은 서구의 정치선진국의 정당사와 견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정당의 생성에서 소멸까지의 주기가 짧다. 정당의 빈번한 이합집산은 정당이 시민사회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대표체계로서 기능하지 못함을 방증한다. 규범적 당위의 여부를 떠나 선거 전후의 정당의 분당 및 합당 등의 분화는 한국정당정치의 기본 공식이 되었다. 정당의 분화는 연합정치의 측면과 정치의 역동성이라는 측면에서 일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당의 연합도 일정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현실정치의 공간이지만 최소한 유권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하다. 정치공학적 연대를 마냥 비난할 수도 없겠지만 현실과 이상의 조화라는 정치의 본령이란 면에서도 무분별한 정당의 이합집산은 퇴행적 정치를 결과하기 일쑤다. 지금의 정당체계는 불안정한 구도다. 여소야대라는 분점정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해 총선 결과는 지금의 여당이 과반을 획득하지 못했다. 물론 야당때 치른 선거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로 정치지형은 급변했다. 탄핵을 전후해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화했다. 박근혜 정권의 부도덕성과 민주주의를 유린한 국정농단은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그 집권세력의 일각을 형성했던 정당으로서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진정성을 국민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고 알지 못한다. 오직 박근혜의 출당이 통합의 명분으로 포장되고, 친박청산의 핵심으로 치부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당은 이미 정치적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다. 한국당은 박근혜 정부를 창출한 세력으로서 국정농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기존 정책과 가치를 재정립하지 못하고, 구시대적 체질과 수구적 행태는 나아진 게 없다. 바른정당과의 통합도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이합집산에 불과하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연대 등 여러 정당연합이 거론되고 있지만 정권교체 이후의 정당지지도의 급변을 고려한다면 정당재정열이 더욱 긴요하다. 야당의 통합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정당체제 변화는 유의미한 정계개편으로 연결되는 데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현단계에서의 유권자의 표심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른정당 내에도 이념의 차이가 상존하고, 국민의당 역시 호남중진과 안철수 측근들의 노선의 차이도 단순한 다양성의 차원을 넘는다. 그렇다면 현직 대통령 파면이라는 미증유의 상황을 반영하는 정당지형의 변화가 더욱 필요하다.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정당체제는 표피만 다당체제이다. 다당체제란 과소대표되고 있는 계층의 이해를 표출해 낼 수 있는 정당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바른정당 일부의원의 한국당 복귀는 표심의 보정이 아니라 탄핵 전의 수구적 정당지형으로의 회귀다. 촛불시민혁명은 적폐청산을 요구하고 있으나 '혁명'은 정의로운 '미래'와 시민적 평등의 보편화가 이루어질 때 완성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정당체제에서 이는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다. 기득권 동맹의 구조적 공고화, 시민적 연대와 유대의 실종, 배려와 관용의 부재 등의 사회적 현상이 일상화되는 한국사회의 총체적 개혁에 지금의 정당구도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작금의 통합 논의가 각 정파에 속한 인물들의 입신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혁명을 하지 못한다면 혁명에 가까운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는 구체제의 연장을 도울 뿐이다. 집권세력도 내년 지방선거 이후를 의식하지 말고 개혁연대를 위해 지향이 맞는 정파와의 적극적 통합을 모색해야 한다. 높은 지지율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육대학원장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육대학원장

2017-11-07 최창렬

[경인칼럼]미국우선주의와 한반도

국제기구 탈퇴·일방적 협정 파기 선언 잇따라트럼프, 한·일·중 방문 앞두고 '이익 우선' 압박적절한 대응과 북핵 해결 인식차 줄이는게 관건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교육과 문화 교류를 위한 국제협력기구인 유네스코(UNESCO)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유네스코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가입을 승인한 것에 대한 항의로 6년간 분담금 납부를 미뤄오다가 결국 탈퇴라는 초강수를 던진 것이다. 미국은 지난 6월 세계각국이 온실가스 축소를 위해 노력해온 결정체인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해 국제적 비난을 받고 있는 중이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세계무역기구(WTO),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각종 국제기구를 창설하면서 이를 통해 미국의 국가적 이익과 영향력을 관철해왔지만 지금은 가시적 손익을 기준으로 국제기구에서 탈퇴하거나 일방적인 협정 파기를 선언하고 있다. 국제기구 탈퇴와 파기 행진은 오바마의 성과 지우기인 'ABO(Anything But Obama) 와 관련된다는 해석도 있지만, 트럼프식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에 따른 것이다.미국우선주의가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훼손하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방적 외교는 계속되고 있다. 국가 신뢰도의 저하나 우방국들 간의 관계 훼손을 감수하더라도 당장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식이다. 미국우선주의의 후폭풍은 국제적으로 파급된다. 미국이 균형자의 역할과 책임에서 물러난 자리는 국가와 집단간의 무한 대결장으로 화할 공산이 크다. 이라크나 시리아와 같은 분쟁지역의 갈등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최근 미국은 이란과의 핵협정을 '불인증'했다. 이 조치로 핵 비확산체계의 위기감과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한반도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월 7일 서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갖고 국회를 찾아 연설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방문에 앞서 5일 일본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양자회담을 하고, 8일에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날 예정이다. 트럼프를 맞이하는 아시아 각국 정상의 표정은 각양각색이다. 트럼프와의 공조 강화로 국내 정치적 위기를 극복한 아베 총리의 표정은 밝지만, 중국 시진핑 주석의 얼굴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은 미-중간 최대 현안인 무역불균형 문제를 대북 제재와 연계하는 지렛대로 활용하여 압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맹국인 미국 대통령을 맞는 한국 정부의 속내도 복잡하다.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 없이 당면한 북핵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말폭탄으로 위기를 오히려 고조시키고 있으며, 한미 통상무역의 기축인 자유무역협정(FTA)의 폐기까지 거론하고 있다. FTA 개정 협상 국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미국 측의 요구를 어떤 식으로든 제기 할 것이다. 미국-이란 핵협상을 무효화한 배경에 미국의 무기 상업주의가 있다는 분석이 있다. 만약 트럼프의 관심이 동아시아의 핵위기의 항구적인 해결이 아니라, 이를 지렛대로 삼아 한국과 일본에 방위비 분담, 무기 구매를 요구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방위비 분담요구나 무기구매, 그리고 FTA 개정 압박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동시에,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한미간 인식의 차이를 최소화하는 것이 외교적 과제이다./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7-10-31 김창수

[경인칼럼]정찬민의 길 공재광의 길

송탄상수원보호구역 해제 놓고 '갈등' 틀어져12월 존치여부 용역결과 발표 따라 처지 갈려 결과 승복 감정 풀고 상생지혜 모으는게 '정치'정찬민 용인시장과 공재광 평택시장은 닮은꼴이다.정 시장은 신문기자 생활을 접고 정치에 입문했다. 공 시장은 서기보(9급)로 공직에 입문, 청와대 행정관(서기관, 4급)을 하다 출사표를 던졌다. 정치를 위해 생업(生業)을 내던진 '벤처 유전자(DNA)'를 나눠 가졌다. 둘 다 초선에, 자유한국당이다.201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체면을 세웠고, 남경필 도지사를 일으켰다. 당시 새누리는 세월호 참사 여파로 쑥대밭이 됐다. 도내 대도시는 죄다 민주당이 점령했다. 정찬민이 버틴 용인만 예외였다. 평택은 초반부터 시종 새누리 페이스였다. 남 지사는 민주당 김진표 후보에 4만3천177표 차로 신승했다. 평택 2만3천496표, 용인 처인구 1만2천330표 우세가 명운을 갈랐다. 취임 초 남 지사는 '평택과 용인에 예산을 많이 줘야겠다'고 했다.그런데, 둘 사이가 싸늘하다. 사석은 물론 공식 행사에서도 같이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덕담은 없고, 서운함을 감추지 않는다. 같은 당에, 이웃사촌 지자체장 사이라기에는 참으로 불편하고 어색한 일이다. 둘이 틀어진 건 송탄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둘러싼 갈등에서다.38년 전, 정부는 평택 시민들의 식수원 보호를 위해 진위천 상류인 용인시 남사면 일대를 보호구역으로 묶었다. 팔당 광역상수도망이 연결돼 쓸모는 적어졌지만 규제는 풀리지 않았다. 용인 땅에 집을 짓는데 평택시장의 도장을 받아야 했다. 남사면 길거리는 여전히 1980년대 풍경인 영화 세트장이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족쇄를 풀어달라며 악을 썼다. 용인시의회가 힘을 보탰고, 시의회 의장이 1인 시위를 했다.정 시장도 나섰다. 2015년 가을 시민 1천 명과 함께 평택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시장 나오라'는 함성이 십 리 밖까지 들렸다.공 시장은 출장을 핑계로 나타나지 않았다. 정 시장은 분노했다. 비겁하게 꽁무니를 뺐다는 거다. 용인이 지역구인 이우현 의원도 그를 비난했다. "시장으로서 책임감이 부족하고 정치 감각도 떨어진다"고 했다. 평택 원유철 의원과 함께 4명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모습을 그렸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공 시장은 "남의 집 앞에 몰려와 떼쓰는 게 단체장이 할 일이냐"고 반문한다. 정치쇼에 말려들지 않고 평택시민만 바라보겠다고 했다.경기도 중재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늦어지긴 했지만 3자가 합의해 용역에 착수했다. 올 상반기 설명회를 연 경기연구원은 12월 초 결과를 발표한다. 결론은 났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보호구역 해제냐 존치냐. 어느 쪽이든 또 한차례 태풍이 몰아칠 것이다. 양쪽 다 만족하는 결론은 기대할 수 없는 사안이다.존치 여부에 따라 정 시장과 공 시장 처지도 확연히 갈리게 된다. 12월이면 내년 지방선거가 6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물 전쟁'은 지역 민심을 가를 결정적 변수가 분명하다. 두 사람 다 죽도록 뛰어도 부러지고 찢긴 보수당 깃발로는 재선(再選)이 가물가물한 판이다.용역 결과는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온전한 결정체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을 쓰는 건 남 지사가 감당치 못할 부담이고, 그럴 이유도 없다.용인은 벌써 수십 년 족쇄가 풀릴 것으로 예단한다. 평택은 물러설 생각이 없다. 어느 한쪽은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두 사람의 정치력이 절실한 이유다.정 시장과 공 시장은 결과에 승복하되 구원(舊怨)을 풀고 마주 앉아야 한다. 그래야 살 길이 보일 것이다. 나만 살자는 게 아닌 상생의 지혜를 이끌어내는 게 정치(政治)가 할 일 아닌가. 둘은 어느 길을 가려는가./홍정표 논설실장홍정표 논설실장

2017-10-24 홍정표

[경인칼럼]내 아이가 1등 하는 비법

한정된 자원 '주의력' 마저 스마트폰에 빼앗겨발전하는 기술력에 의존할수록 지적능력 퇴보인류문명 종말 초래 휴대전화 잠시 거둬들이자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세계 최대의 봉제완구 생산국이었다. 전 세계 교역량의 70% 이상을 한국산이 차지했다.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간 '테디베어'나 '산타베어'같은 곰 인형들이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뉴욕 백화점의 윈도를 점령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어린이를 위해 개최한 백악관 연말파티에 한국산 곰 인형을 안고 나타났다. 미국과 서유럽 어린이들의 로망이 생일이나 연말에 테디베어나 산타베어 선물을 받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있는 집이면 곰 인형 한 마리씩은 꼭 있었다. 곰 인형을 끌어안고 공감과 상상의 힘을 키웠다. 그런데 이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완구가 아이들의 곁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테디베어나 산타베어가 떠난 아이들의 손에 들려 있는 건 이제 최첨단 디지털완구, 스마트폰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버려둬도 되는 것일까. 지난 7일자 월스트리트저널 '토요 에세이'에 주목할 만한 글이 실렸다. "스마트폰은 어떻게 마음을 납치하는가(How Smartphones Hijack Our Minds)"라는 제목이다. A4용지 7장 분량의 글은 스마트폰과 인간 지적 능력의 상관관계를 다룬 여러 실험들을 인용한다. 재작년 미국 텍사스대학의 인지심리학자 아드리안 워드 교수와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고 캠퍼스(UCSD)의 연구진이 UCSD 학부생 520명을 대상으로 두 가지 실험을 했다. 어떤 일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가용인지능력'과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지를 알아보는 '유동성 지능'에 관한 것이었다. 유일한 변수는 스마트폰과 피실험자의 거리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스마트폰을 눈 앞 책상 위에 둔 학생들은 나쁜 점수를 받았다. 스마트폰을 아예 다른 방에 두고 온 학생들의 점수가 높았다. 주머니나 핸드백에 넣은 학생들의 점수는 중간이었다. 지난 4월 한 저널에 발표된 아칸사스 대학생 16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선 스마트폰을 지닌 채 시험을 치른 학생들의 성적이 스마트폰을 강의실에 가져오지 않은 학생들의 성적보다 나빴다. 작년 영국의 91개 중학교에서 실험한 결과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면 학생들의 시험성적이 올라갔다. 특히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우리의 지적 능력이란 것도 결국 한정된 '주의력 자원'이 적절하게 할당된 결과인데 그 한정된 자원을 스마트폰이라는 녀석에게 먼저, 그리고 대부분을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10년간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우리의 생각과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워드 교수팀은 일상생활이 스마트폰으로 통합되는 현상이 학습, 논리적 추론, 추상적 사고, 문제 해결, 창의력 등 중요한 정신적 능력이 감쇠되는 이른바 '두뇌 고갈(brain drain)'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두뇌가 스마트폰의 발전하는 기술력에 의존하면 할수록 인간의 지적 능력은 퇴보한다는 경고다. 스마트폰은 이미 언제든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납치(hijack)'할 수 있는 초정상자극(supernormal stimulus)이 되어 버렸다. 스마트폰에 빠진 보통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얻는 정보를 마치 자신이 생산한 정보처럼 느낀다. 재갈매기가 자신이 낳은 진짜 알보다 더 크고 알록달록한 알을 더 열심히 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른들이 그러할진대 아이들의 경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스마트폰은 인류문명의 결정판이지만 동시에 인류문명의 종말을 초래하는 단서가 될 것 같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의 손에서 조용히 스마트폰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대신 그 작고 여린 손에 곰 인형 한 마리씩 들려주는 것이다. 내 아이가 1등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인류문명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7-10-17 이충환

[경인칼럼]블라인드 채용 잘 될까?

민간기업, 정부에 잘 보이기 위한것 아닌지취업희망자들에게 기업선택 자유 보장되듯채용권, 이윤 중요시하는 기업의 고유 영역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으로 잘 알려진 베네치아의 카니발은 이탈리아 최대의 놀이문화이자 브라질의 리우카니발, 프랑스의 니스카니발과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꼽힌다. 베네치아카니발은 매년 1월말과 2월 사이에 시작해 사순절(四旬節) 전날인 참회의 화요일(Mardi Gras)까지 약 10일 동안 진행되는데 이때 이태리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서 300만 명 이상이 '물의 도시'를 찾아 공동향연을 즐긴다.베네치아카니발은 가면무도회로도 유명한데 축제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 준비한 각양각색의 얼굴가리개와 독특한 의상으로 치장하고 베네치아 거리 곳곳을 누비며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이다. 옛날에 이 지방의 서민들이 가면을 쓰고 귀족놀이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귀족들에게까지 널리 퍼졌는데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1년 내내 탈바가지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단다. 조선시대 전국각지에서 성행한 상민(常民)들의 산대놀이가 연상된다. 바야흐로 취업시즌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국내최대의 청년취업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취업준비생들 간에 금년 하반기 채용관련 최대 이슈는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방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2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모든 청년들이 학벌이나 학력, 지연, 혈연 등의 불평등에서 벗어나 "동일한 출발선에서 오로지 실력만으로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며 올해 공공부문 채용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주문했을 뿐 아니라 민간기업에도 도입을 적극 권유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신분의 귀천을 불문하고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 공정한 기회 제공 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존 롤스의 정의론에 근거한 발상이다. '모든 인간은 사회적으로 동등한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공리주의의 대전제와도 일맥상통한다. 문재인정부는 시장경제체제의 최대 특징인 효율성 보다는 휴머니즘에 입각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회보장 등이 조화된 복지국가체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잘 나가는 대기업은 물론 금융기관의 공채스케줄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은 새 정부의 코드에 맞춰 일제히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했다. 평년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신입행원을 선발하는 우리은행은 100% 블라인드 면접을 통해 선발한다고 공표했다. 롯데, CJ,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대기업의 30% 이상이 동참을 선언했다. 중견기업들까지 아우르면 그 숫자는 상당하다.백지면접으로도 불리는 블라인드면접은 면접자들이 피면접자들의 출신학교나 출생지, 가정환경 등에 대한 아무런 기초자료 없이 면접을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면접 전에 기본적인 서류심사는 하지만 면접 자체에서는 이력서의 내용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방식이다. '비정규직 제로시대 개막'이라는 슬로건을 표방한 신정부 출범의 첫 번째 이벤트(?)여서 수험생들의 기대가 매우 크다. '저(低) 스팩이라도 합격할 수 있다'는 뜬금없는 소문도 떠돈다. 참여정부 때 사교육을 잡는다며 '춤만 잘 춰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쇼킹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학벌과 학력, 혈연, 지연 불문의 공정한 신입사원 선발이 가능할까? 공공부문은 몰라도 민간기업의 블라인드 채용은 정부에 잘 보이기 위한 립서비스는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취업희망자들에게 기업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듯이 채용권은 기업의 고유의 영역인 탓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윤극대화이다. 기업가들은 이윤을 위해서는 염라대왕과도 흥정을 마다않는 존재들이다. 또한 이런 행위가 시장경제 특성상 일자리 창출이나 양질의 상품 공급 등 최대행복의 원칙과도 배치되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 주는 식당 주인에게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언급한 이유이다. 아시아 특유의 족벌주의적 네트워크는 또 다른 돈벌이 기회이다. 이번 취업 대시(大市)에서는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관행이 잦아들지 궁금하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7-10-10 이한구

[경인칼럼]개혁 위한 협치의 리더십 필요

지금은 개혁을 혁명처럼 추진할 엄중한 시점정권이 분발해 여야협치 위한 정책연대 형성연정수준의 관행으로 제도화 시켜 나갈 필요문재인 대통령 지지도는 여전히 높다. 임기 초 감성적 소통행보와 이전 정권에서 보지 못했던 탈권위적 행보는 정권이 내세운 개혁 어젠다 등과 맞물려 역대 최고 수준의 지지로 이어졌다. 청와대와 내각 인사도 시민단체와 개혁적 인물들의 발탁으로 참신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초보적 수준에서도 걸러낼 수 있는 인사검증의 실패, 외교·안보 라인의 엇박자와 북핵 등 안보 위기 국면은 이명박 정권 등 지난 정권의 적폐청산 작업에도 불구하고 개혁 동력 확보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국회 인준 이후에도 여권으로서는 예산은 물론 각종 입법에서 야당과 사안마다 힘겨운 협상을 해야 할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다. 정권이 직면한 대내외적 위기 중 안보위기는 상황변수에 따른 유연한 대처가 요구된다. 대내적으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국정원의 정치와 선거개입, 방송 장악 시도 등 적폐 청산은 시민적 지지가 뒷받침되어야 동력을 받을 수 있다. 여소야대 상황을 돌파하려면 시민적 지지를 국회에 투영시킴으로써 야당이 협조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하는 야당이 여권의 정책과 입법에 반대로 일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소야대는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1987년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 이후 여소야대는 오히려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여소야대의 분점정부는 여러 형태로 여대야소로 바뀌곤 했다. 1990년의 3당합당이 대표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정당구도가 재편될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오히려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보수통합론으로 이어질 확률이 보다 높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정책연대나 통합의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의당 내부의 안철수 세력과 호남 중진과의 결별의 경우의 수를 생각할 수 있으나 이를 추동할 결정적 계기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에 대한 높은 시민적 지지가 여소야대 국회에서의 주도권 확보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개혁은 물 건너간다. 정치이론적으로 여소야대의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는 청와대와 정부여당 등 집권세력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제왕적 권력으로 비판받는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측면의 장점보다 실제 정치공간에서 국정의 교착이라는 단점이 부각되는 경우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입법 권력이 집권세력의 가치 지향을 정략적으로 막기 때문이다. 의회의 다수파가 야당과 연정을 통해 내각을 구성하는 내각제는 이러한 문제가 원천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대통령제는 내각제에 비해 연정과 협치가 어려운 한계를 노출한다. 대통령제에서의 여소야대 정당구도는 의회권력과 대통령 권력의 두 선출 권력이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을 여당이 효율적으로 뒷받침할 수 없는 근본적 제약을 안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의 정당 구도에서 제1야당이 여당과의 타협과 절충의 대상이 되기에 한계가 있다. 집권세력과 정책지향은 물론 추구하는 이념적 가치에서 공통분모를 발견하기 힘들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과의 협치의 정치적 관행을 확립해 나가지 않으면 국정 교착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극우보수의 준동을 불러오는 역사에서 반동은 늘 있어왔다. 우리 사회의 극우의 그늘은 깊고 넓다. 아직도 색깔론의 낡은 프레임을 들먹거리는 세력과 박근혜의 석방을 외치는 인사들이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보다 정교한 전략과 전술을 국면마다 적절히 배합하는 노련한 리더십과 조정 역할이 필요하다. 지금은 혁명을 개혁처럼, 개혁을 혁명처럼 추진해야 하는 엄중한 시점에 와 있다. 정권이 분발해야 한다. 여야 협치를 위해 일차적으로 정책 사안별 연대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정 수준의 협치의 관행을 제도화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갈 방안이 절실하다. 정치는 당위와 현실의 조화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여권의 협치의 리더십이 절실하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육대학원장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육대학원장

2017-09-26 이미선

[경인칼럼]사교육 망상

십중 여덟 3수 해서라도 대학 가는 '이상한 나라'청소년들 다양한 진로 탐색·준비 환경 조성돼야금수저 독식·흙수저 대물림 극복 교육부가 할일#A(57)는 마흔 가까이 늦둥이 딸을 얻었다. 6살 때 유치원과 예능학원에 보냈다. 바이올린 선생님은 딸이 소질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사교육은 끊고 바이올린만 가르쳤다. 멘델스존을 연주하는 딸이 대견하고 기뻤다. 자라면서 걱정이 커졌다. 레슨비가 만만치 않았다. 아내가 피자 가게를 열었다. 둘이 벌어도 늘 버거웠다. 그렇게 12년이 지났다. 예술고 3학년 딸은 국내 유명대학에 가지 못하면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날벼락이다. 딸과 같은 생각이라는 아내와 크게 다퉜다. A는 "딸 키우느라 생활이 쪼들리고 삶이 오그라들었다"며 "더는 해 줄 마음도 능력도 없다"고 했다. 정년을 앞둔 경찰 얘기다.#영업직 회사원 B(57)는 중학생 딸과 아들을 미국으로 보냈다. 둘 다 유학을 졸랐다. 국내에서 사교육을 시켜야 한다면 유학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밤낮으로 일했지만 대학에 가면서 경제적 압박이 더 심해졌다. 한계선을 넘었다. 두 자녀는 휴학계를 내고 귀국했다. 딸은 알바를 했고, 아들은 군에 갔다. 딸은 복학해 학위를 받았다. 국내로 왔지만 취업하지 못했다. 아들은 복학을 포기하고 국내에 남았다. 대학 중퇴 학력으로 전공과는 무관한 일을 한다. B는 "후회는 없다. 그래도 앞날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회사원 C(48)는 딸(고2)을 실업계에 보냈다. 사교육비가 부담이었고, 대학을 안 가도 되는 세상이라 믿었다. 어느 날 딸이 대학에 가고 싶다며 인문계로 전학하고 싶다고 했다. 편입하면 내신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정시를 준비하려면 낯선 과목에 매달려야 한다. 딸은 정보고에 다니면서 대입을 준비하고 있다. C는 "실업계 학생은 대학이 더 절실해진다"면서 "딸도 주위 환경을 이겨내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교육부가 '2021 수능개편안'을 1년 미뤘다. 김상곤 장관은 "충분한 소통과 공론화를 통해 합리적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취임 전 공언(公言)에서 한 발짝 물러선 것이다. 외고·자사고 등 특목고 폐지 구상도 저항에 막혔다. 대신 일반고와 동시에 학생들을 뽑기로 방향을 틀었다. 특목고를 무력화하겠다는 미련은 여전하다.수능을 바꾸고 특목고에 재갈을 물려도 사교육은 달라질 게 없다. '강남 도사'는 새 틀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고 호객할 것이다. 맞춤형 사교육을 위한 사교육 컨설팅까지 생겨나는 판이다. 수십 년 전 무덤에 들어간 고입 재수생이 환생할지 모른다.고려대 허태균 교수는 '공부 못하는 자식을 대학 보내려 사교육 시키면 안 된다'고 한다. 그 돈 모아 자녀들 창업자금으로 주라는 거다. '적어도 2억 원은 모을 수 있고, 아이가 나중에 기사자격증이라도 따면 중장비를 사줄 수 있다. 2대 정도는 거뜬하다. 하나는 직접 끌고, 한대를 임대하면 대기업 직원 부럽지 않다. 사교육비 쏟아부은 자식이 백수가 되면 줄 돈도 없고, 그 자식은 결국 남의 자식 중장비 기사가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입시 철이다. 수시모집이 한창이고, 수학능력고사가 코 앞이다. 응시생이 처음 6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는데 경쟁은 더 치열하다. 전국 사찰과 교회가 합격을 기원하고 수능 고사장이 생중계된다. 고교생 열 중 여덟이 3수를 해서라도 대학에 가고야 마는 '이상한 나라'다.장삼이사(張三李四)가 사교육에 매달리고 실업계가 대입 전선에 뛰어들면 입시 문제는 풀어낼 도리가 없다. 청소년들이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고 준비하는 환경과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그래야 사교육 경쟁, 금수저 독식, 흙수저 대물림을 극복할 수 있다. 그게 정부가, 교육부가 할 일이다. 제도를 바꿔 사교육을 없애고 계층 사다리를 복원한다는 발상은 망상(妄想)이다. 역대 정부가 다 그랬다. 정부가 다시 그 길을 가겠다고 한다./홍정표 논설실장홍정표 논설실장

2017-09-19 홍정표

[경인칼럼]'욜로' 스타일을 돌아본다

미래나 남이 아닌 '현재 자신의 행복' 위한 삶 과소비로 생활비 충당위해 노예노동에 '허덕''하나뿐인 내인생' 찰나주의로 즐기는건 곤란2017년의 대한민국은 욜로 열풍으로 뜨겁다. 욜로 라이프는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 핵심 키워드로 선정될 정도이다. 욜로(YOLO)라는 말은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미래 또는 남이 아니라 '현재와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여 소비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말한다. 욜로족은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지상과제였던 내 집 마련, 자녀교육, 노후 준비가 아니라 지금 당장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취미생활, 자기계발 등에 돈을 아낌없이 쓴다. 극단적 현세주의의 뿌리를 한국 문화의 특성에서 찾을 수도 있겠으나, 그 직접적 토양은 '헬조선'으로 풍자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암울한 지표들이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의 증가로 불완전 고용률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저금리로 무의미해진 저축, 너무 올라 '내집마련'의 꿈조차 어려워진 주택가격, OECD 회원국 중 최고의 청소년 자살률과 같은 지표들은 청년세대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현재의 만족을 추구하는 삶의 양식으로 기울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열풍의 지속성은 미지수이다.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자리잡기도 전에 여가산업의 사냥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욜로 마케팅의 심리전략 : 인생은 한번 뿐이니 마음껏 지르세요! '욜로의 이름으로' 개인을 호명하고 욕망을 선동하면 욜로의 '지름신'들은 '감읍하며' 응답한다. 마케터들은 해외여행 패키지 상품에서 1인용 식음료에 이르기까지 고급화 전략으로 '욜로들'의 소비심리를 충동하고 있다. 소비지향적 욜로 스타일은 부작용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과소비로 인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더 많이 일해야 한다면 '한번 뿐인 인생'은 여가비용을 위한 노예노동으로 허덕이게 될 것이다. 욜로족의 삶은 본인의 희망과는 무관하게 관광산업이 조장하는 욕망의 포로가 되고, 일상은 자본의 새로운 영토, 내부 식민지로 바뀐다.개인주의가 문제가 아니다. 다만 자기에 대한 진정한 배려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사회와 같은 '확장된 자아'에 대한 배려와 무관치 않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불완전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모두는 하나를, 하나는 모두를'(All For One, One For All)을 배려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 일하는 부모,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땀 흘리는 자원봉사자들은 보람을 느낀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부모와 친지와 이웃과 학교와 사회는 물론 자연의 일부와도 그물처럼 연결된 공동체의 일원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식의 찰나주의는 삶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소모하고 탕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이 불가역적인 흐름에서 '현재'만을 분리해 낼 수 없다. 오늘 밤이 새면 '내일'은 오늘이 되고, 계절이 지나면 내년이 올해가 된다. 내일 때문에 오늘을 저당 잡힐 수는 없지만, 내일 몫까지 오늘 탕진하는 것은 곤란하다. 무엇보다 문화자본이 디자인한 라이프스타일이 내 인생일 수는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삶의 질을 높이는 대안적 여가와 독창적 생활양식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하나 뿐인' 내 인생을 그만그만한 욜로 스타일, 욜로 상품의 소비로 대신할 수는 없지 않은가?/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7-09-12 김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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