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 박태환을 볼 수 있을까

'3년간 국가대표 자격박탈 족쇄' 불공정한 재기의 룰스물일곱 살 선수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은데…대가 치르고 반성한다면 '재기 허락되는 사회' 올까?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기대를 모았던 남자축구가 예선 탈락하자 우스갯소리가 유행했다. "축구장에 물 채워라. 박태환 수영하게" "축구장에 물 얼려라. 김연아 피겨하게" 이 대회 수영 남자자유형 400m에서 박태환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모두 제쳤다. 아시아선수가 올림픽 수영 자유형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72년만의 일이다. 세계 수영사의 일대 사건이었다. 건장한 체격에 맑은 눈빛을 띠고, 수줍은 표정을 짓는 박태환은 단박에 '국민 남동생'이 됐다. 박태환의 시작은 불운했다. 열다섯 살 소년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한국선수단 최연소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그러나 물속에서 킥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실격 당했다. 부정출발이었다. TV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뭐야? 쟤?"하고 어이없어 했다. 자신도 경기장 화장실에서 두 시간이나 울다 나왔다고 한다. 실은 심판의 실수와 선수단의 무지가 합작해 빚은 해프닝이었다. 심판이 "준비(Take your marks)"라고 지시하면 선수들은 출발대 앞부분에 적어도 한 발을 걸친 채 정지자세를 취한다. 그 다음 출발신호가 울린다. 그런데 당시 심판은 선수들이 정지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돌연 "제자리로(Stand please)"라고 지시했다. 경기중단 선언인 셈인데, 국제수영연맹의 출발규칙에도 없는 내용이다. 잔뜩 긴장해있던 박태환이 그 소리를 출발신호로 잘못 들었던 것이다. 물에서 나온 박태환은 실격이라고 생각했다. 뒤늦게 심판이 불렀지만 어깨를 늘어뜨린 채 탈의실로 들어가 버린 뒤였다. 한국선수단은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판단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른들은 무지했고, 소년은 상처를 입었다.똑같은 장면이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재현됐다. 결과는 달랐다. 중국의 수영영웅, 박태환의 라이벌 쑨양은 남자자유형 1500m 결승에서 출발신호가 울리기 전에 물에 뛰어들었다. 부정출발로 판정되면 실격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재경기 결정이 내려졌다. 국제수영연맹 측은 "장내가 너무 소란스러워 스타트 버저 대신 선수들에게 '제자리로(Stand please)'를 지시했는데 이때 쑨양이 물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재경기 끝에 1위로 들어온 그가 포효하더니 이내 펑펑 울기 시작했다. 경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실격 판정을 받을까봐 너무 두려웠다. 머릿속이 하얗게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스물한 살의 세계적인 수영 스타가 이러할진대 그때 열다섯 살 소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불운을 딛고 일어난 박태환은 4년 뒤 '국민영웅'이 된다. 숭례문 누각이 불길에 휩싸여 무너져 내리는 현장을 두 눈으로 지켜본 국민들의 상처 난 자존심을 어루만져줬다. 신산(辛酸)한 국민들의 마음에 위로와 치유의 행복바이러스를 마구마구 퍼뜨렸다. 뒤를 좇는 후배들에겐 '표상'이고, '롤모델'이었다. 그런 박태환이 지금 나락에 떨어져 있다. 영웅의 몰락, 표상의 해체는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이러쿵저러쿵 전해지고 보태지는 말들이 많지만 귀책사유는 모두 박태환에게 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박태환은 그 대가를 치렀다. 문제는 대가를 치른 그 다음이다. 한국사회는 성공만큼이나 재기에 있어서도 불공정한 구조를 갖고 있다. '금수저'들에게는 재기가 너무나 쉽게 허락되지만 '흙수저'들에겐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1년 8개월 선수자격 정지라는 대가를 치르고 돌아온 박태환에게 다시 3년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고 족쇄를 채우는 것 또한 불공정한 재기의 룰이다. 만약 그가 유력한 정치인이나 재벌, 또는 대한체육회 경기단체장의 아들이라고 해도 이중처벌 규정이 저토록 견고하게 유지될까? 스물일곱 살 수영선수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은데 말이다. 금수저든 흙수저든 그 누구라도, 저지른 잘못에 대해 응당한 대가를 치르고 반성한다면 재기가 허락되는 사회, 공정한 패자부활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 과연 그런 사회에서 내가 살아볼 수 있을까?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박태환을 그럴 가능성의 단서로 만날 수 있을까?/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6-05-17 이충환

[경인칼럼] 창문세를 걷어야 하나

도시민 불편없이 자연경관 보고 즐길 권리 있는 것정부, 경제살리기 구실로 최소한의 규제 마구 완화광화문광장 진경산수 감상 기회마저 잃을까 두려워17세기 영국에는 창문세(Window Tax)라는 세금이 있었다. 유리 값이 워낙 비싸 서민들 주택에는 거의 창문이 없었다. 집에 창문이 있다는 것은 집주인이 부자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왕실이 재정난에 시달릴 무렵인 1696년 12월 31일 영국의회는 주택의 창문 숫자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전대미문의 창문세법을 전격적으로 통과시켰다. 집집마다 창문들이 점차 사라졌다. 서울의 진산(鎭山) 인왕산은 언제 봐도 정겹다. 눈에 익은 풍경들이 겸제 정선(鄭敾)의 대표작품인 인왕제색도(仁旺霽色圖)의 실제 모델이어서 더욱 감회가 새롭다. 겸제는 안견, 김홍도, 장승업과 함께 조선 4대 화가로 한국에 진경산수화란 새로운 지평을 연 대가가 아닌가. 광화문광장에서 세종대왕 동상을 등지고 북쪽을 바라보면 우측으로부터 북촌, 청와대 뒷산 그리고 서촌을 감싸안은 인왕산 등의 스카이라인이 옛 모습 그대로이다. 야은(冶隱) 선생의 '5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란 시구가 흥을 돋운다.서울에서는 한눈에 파노라마처럼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지방도시도 같은 양상이다. 경관이 좋은 곳일수록 흉물스런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사방을 에워 싼 때문이다. 더욱 가관은 땅값이 비싼 곳일수록 빌딩 숲이 너무 지나치다는 점이다. 헬기를 타고 도심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파트와 사무용 빌딩들이 마치 송곳처럼 빽빽하게 하늘을 향해 꽂혀 있는 모습이어서 소름이 돋는다. 국민 절대다수가 조망권을 박탈당한 채 살고 있는 것이다.1960, 70년대 산업화 영향으로 도시가 급속도로 팽창했는데 수익성을 우선한 토목건축논리가 경쟁적으로 도시에 차단벽을 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부터 도시생태계 훼손은 더 심해졌다. 주거난 해소를 위해 2008년 9월부터 향후 10년 동안 500만호의 주택을 건설하기로 하고 재개발, 재건축 대폭 완화와 그린벨트 내의 보금자리주택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도심 내 오피스 및 주거용 건물부지난 해소차원에서 고도제한까지 풀은 탓에 서울 잠실에는 123층짜리 스카이 스크레퍼가 출현했으며 지난해 8월에 입주한 서울 동부이촌동의 래미안 첼리투스는 최고 56층으로 한강변에서 가장 높아 남산과 높이가 맞먹는다. 올 8월 입주예정인 38층의 반포 아크로 리버파크는 한강변의 스카이라인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민족의 젖줄 한강 조망이 완전히 차단될 수도 있어 보인다. 조망 혜택이 클수록 부동산가격이 치솟는 때문이다. 경기도 하남시의 T오피스텔은 실내에서 한강이 보이는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간의 시세 차이가 5천만 원이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는 점입가경이다. 도심 난개발을 막기 위해 1962년 건축법 제정 당시부터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유지해 온 '도로 사선(斜線)제한 규정'을 작년 5월 건축법 개정으로 없앤 것이다. 도로 인근에 건물을 지을 경우 도로에서 사선을 그었을 때 건물높이가 도로 폭의 1.5배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건축법상 별도의 제한규정이 없는 경우 이 조항이 두루 적용되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해치는 '나 홀로' 고층빌딩의 난립을 막는 역할을 해왔는데 최소한의 장치마저 사라진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사선제한 폐지로 투자자들의 수익이 늘어 한해 1조원 이상의 투자 효과가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경치 감상은 계량화가 곤란한 무형자원으로 전형적인 공공재이다. 공기나 햇빛처럼 특정인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에 지장을 주지 않음은 물론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공짜로 구경이 가능한 것이다. 도시민들은 불편 없이 자연경관을 보고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다. 또한 스카이라인을 지켜나가는 것은 도시경쟁력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구실로 손톱 밑 가시들을 마구 뽑아버리고 있으니 이젠 광화문광장에서의 진경산수를 완상(玩賞)할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질까 두렵다. 국민들의 볼거리를 앗아가는 건축물에 창문세를 신설하면 어떨까?/이한구 수원대 교수 · 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 · 객원논설위원

2016-05-10 이한구

[경인칼럼] '법의 날'을 기념하며

내 것만 주장하고 상대방 배려안해 사회갈등 촉발구성원간 경쟁 너무 치열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서로 법과 질서 철저히 지키고 역지사지 자세 필요지난 4월 25일은 제53회 '법의 날'이었습니다. '법의 날'은 1958년 미국 변호사협회장 찰스 라인의 제창에 따라 당시 사회주의국가의 '노동절'에 대항하는 의미로 처음 제정된 뒤, 1963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법의 지배를 통한 세계평화대회'에서 세계 각국에 '법의 날' 제정을 권고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1964년 4월 30일 국회의 건의를 거쳐 대통령령 제1770호로 5월 1일을 '법의 날'로 제정, 공포하였습니다.그 후 정부는 2003년 기존의 5월 1일이던 '법의 날'을, 1895년 구한말 당시 근대적 사법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재판소구성법' 시행일인 4월 25일로 변경한 뒤, 정부행사 간소화 방침에 따라 대한변호사협회와 법무부 주관 하에 격년제로 법조계 대표들의 기념사, 훈·포장 시상식을 비롯하여 어린이 1일 법체험교육, 음악회 등의 문화행사를 개최해 오고 있습니다.인간은 본래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어느 사회든지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과 단체들 사이에는 항상 갈등이 있기 마련이고,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갈등은 조기에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개인 간에는 주먹질이, 국가 간에는 전쟁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그러나 인간은 신에 비해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갈등을 평화적 합리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지적, 이성적 능력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으로부터 분출된 분쟁을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성적, 평화적으로 해결하여 사회갈등을 해소하는데 조력하는 것이 법조인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법이라는 것은 결국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상식과 규율을 성문화한 것으로서 그 저변에는 아마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이와 관련하여 공자님은 '논어' 이인(異仁) 편에서 "방어리이행이면 다원이라(放於利而行, 多怨)", 즉, "사사로운 욕심을 좇다보면 많은 원한을 사게 마련이다"고 말하였고, '논어' 위령공(衛靈公) 편에서는 그 제자인 자공(子貢)이 평생 실천해야 할 한마디가 무엇인지를 묻자 "기서호인져, 기소불욕 물시어인이라(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즉, "그것은 바로 관대함(용서)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성경에도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고 말씀하신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회에서 항상 요구되어 오던 덕목으로서 누구나 다 아는 양심의 명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공자님이나 예수님의 위 가르침은 사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역지사지'의 자세와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우리사회의 대부분의 갈등은 어느 일방이 또는 쌍방 모두가 내 것만 주장하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데서 비롯되고, 그 결과 수년간에 걸친 지루한 송사로 이어지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범죄를 저질러 형벌을 받기도 합니다.이에 대하여 어떤 이는 우리 사회가 너무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이러한 갈등이 유난히 많다고도 이야기하지만, 2천여년 이전에 이미 공자님과 예수님이 모두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이러한 현상은 비단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결국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서든지 항상 존재해온 개인 간의 갈등과 사회 내 갈등을 해결하는 길은 사회구성원 서로 간의 약속인 법과 질서를 보다 철저하게 준수하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한번 더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할 것입니다.제53회 '법의 날'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법과 질서가 지켜지는 한 차원 더 높은 성숙한 선진사회로 나아가기를 기대해 봅니다./박영렬 법무법인 성의 대표변호사박영렬 법무법인 성의 대표변호사

2016-05-03 박영렬

[경인칼럼] 여소야대는 순항할까

대선에 맞춰진 구도 3당체제의 원심력 크게 작용합당·정책연대·후보단일화 등 연합정치 펼쳐질 것집단지성 명령 어기면 한국정치는 또 구태 되풀이20대 총선 결과 나타난 여소야대 정국의 운용 형태는 한국정당정치에서 실험 모델이 될 것이다. 민주화 이후 치러진 최초의 총선거에서 한국헌정사상 최초로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된 이후 14대, 15, 16대 까지 선거 결과는 여소야대 정국으로 귀결되었다. 여소야대는 국민의 선출에 의해 구성된 입법부와 행정부 권력의 이원적 정통성에 입각한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를 구성하게 된다. 그러나 여소야대 정국은 집권세력이 주도적으로 입법과 정책 등을 추진할 동력을 상실함으로써 국정의 교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역기능적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반면에 여소야대 정국을 계기로 당청관계의 변화와 여야의 소통이 강화된다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권의 정책이나 입법 연대에 의해 정부여당이 추진하고자 하는 국정과제가 난관에 봉착하고 정국경색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집권세력들은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바꾸려는 인위적 정계개편의 시도를 해 왔다. 1990년 1월의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3당의 합당은 민주자유당이라는 거대공룡여당의 탄생을 가져왔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도 결국 임기 말의 레임덕을 막지 못했다. 20대 총선 결과는 13대 총선의 여소야대와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당시에는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이 125석을 차지했고, 제1야당인 평화민주당은 70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 35석으로 집권당이 제1당의 지위는 유지한 가운데의 여소야대였다. 그러나 20대 총선은 새누리당이 원내 1당의 자리를 내준 결과로 나타났다. 3당 합당은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정권을 연장하려는 민정계와 소수세력으로서 대권을 쟁취하려는 민주계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정치공학이 개입한 민심의 왜곡이었다. 이번 선거 결과 제3당의 존재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중 어느 당이 20대 국회 개원때 1당의 위치를 차지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어느 당도 국회내에서 일방적 우위를 점하지 않은 상황에서 재적 의원 과반의 찬성이 필요한 일반정족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민의당의 38석은 결정적이다. 향후 국민의당이 정책과 이슈에서 보여줄 가치지향과 집권당과 제1야당 사이에서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가 주목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제3당인 국민의당의 캐스팅 보트의 역할도 국회선진화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쟁점법안 통과 때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없다. 국민의당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어느 당과 연대해도 180석의 요건을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대 국회에서 3당의 존재가 맹목적 편향과 대립의 악순환을 끊고 절충과 합의의 정당문화 정착에 기여한다면 분점정부는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다. 반면 제3당의 존재감 부각을 위한 등거리 거리두기로 사안마다 정치공학만 난무하는 정당체제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대 국회 개원 이후의 정당체제에서 여소야대의 순항여부를 가늠하기 어렵다. 모든 정치사안이 대선에 맞춰질 수밖에 없는 구도에서 3당체제의 원심력은 어느 때보다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이른 국민의당과 새누리당의 연정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원 구성이 끝나고 각 당의 전열이 재정비 되고 나면 국정감사와 정기국회를 거치면서 20대 국회와 3당체제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그리곤 대선정국으로 급속히 빨려들어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든 정치적 상상력이 동원된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이 이루어질 개연성이 높다. 합당일 수도 있고, 정책연대나 후보 단일화 논의 등 각종 연합정치가 펼쳐질 것이다. 개헌 정국의 점화도 배제할 수 없다. 1988년 선거를 정초선거, 또는 중대선거로 부르는 이유가 이번 20대총선에 적용될지 알 수 없지만 대선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정치공학도 민심의 바다를 거스를 수 없음을 이번 선거는 정확히 보여주었다. 집단지성의 명령을 거스른다면 한국정치는 또 다시 구태와 퇴행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6-04-26 최창렬

[경인칼럼]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서의 섬

섬 태생 시인들 관광·개발로 훼손시키는데 분노섬의 매력은 시학의 원천이자 이야기의 고향영원무궁 이어갈 가치 살리는 대원칙 지켜야최근 인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섬예술 레지던시 사업은 주목할 만하다. 작가 지원사업인 섬레지던시 사업은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예술적 영감의 원천인 섬을 살리면서 동시에 섬 주민들에게는 문화예술의 향기를 체감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섬을 예술과 문학, 특히 시적인 영감을 주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섬을 주제로 한 시문학 작품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섬에서 나고 생활한 시인들의 활동이 의외로 역력하다. 덕적도의 장석남, 문갑도의 이세기, 자월도의 김영언 시인을 떠올려 보면 섬은 시인을 기르는 땅이라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또 요절한 기형도 시인 역시 연평도 태생이라는 걸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장석남에게 덕적도는 시심의 요람이다. 밀물이 모래를 적시는 소리에서 '아버지'를 느낄 정도로 그의 시는 섬에서 생활한 원형체험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세기 시인의 시집 '먹염 바다'나 '언손'에 나타난 정서도 섬사람들의 터전인 바다와 갯티 그들의 체취인 갯내로 오롯하다. 자월도 출신 김영언의 시집 '아무도 주워 가지 않는 세월'에는 서해의 섬과 섬사람들의 정서를 생생하게도 옮겨 놓았다. 섬에서 태어나 섬사람들의 생활과 말을 거듭해서 들어 왔으며,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시의 리듬과 조화시키는 비결을 터득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들의 작품들이 그저 유년체험이나 정서의 원천이나 향수를 환기하는 대상으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날로 척박해지는 섬 생활의 고통이 있으며, 정부나 기업이 관광과 개발의 이름으로 오래 살아야 할 섬을 망가뜨리려는 소행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도 크다. 장석남의 '덕적도', 이세기의 '굴업도', 김영언의 '한리포 전설'은 시인들의 꿈집이었던 아름다운 서해의 섬들이 사라질 위기에 대한 긴박한 경고이자 세상에 보내는 절절한 호소문이기도 하다. 섬은 바다로 둘러싸인 땅이다. 물길로 어디로든 갈 수 있을 듯 하지만 실은 하루 두차례 드나드는 조석(潮汐)처럼 하루 한두 차례의 뱃길로만 사람이 오갈 수 있는 고립된 장소이다. 절해(絶海)의 장소성은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연을 더 깊이 생각하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게 만든 것인지 모른다. 섬사람들은 이웃의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안다고 말한다. 아침저녁으로 마주치지만 정작 이웃의 속사정은 모르고 살아가는 도시인들과 달리 섬에서는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다.섬은 마지막 남은 이야기의 고향이기도 하다. 서해의 섬에는 망구할매나 개양할미같은 창세 신화로부터 섬과 지명유래담은 물론 조선시대의 전설까지 숱한 이야기들이 아직까지 전승되고 있다. 도시에서는 개발의 광풍에 휩쓸려 사라지고 없는 풍속이다. 섬의 매력 중의 하나는 마르지 않은 시학의 원천이자 이야기의 고향이라는 점이다. 섬 관광과 섬 개발 사업의 미명하에 섬이 가진 자연과 경관의 매력은 물론 섬의 풍속과 섬사람들의 마음씨까지 훼손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물론 섬 주민들이 언제까지 불편한 교통과 낙후한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주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가꾸어 가되, 영원무궁 이어가야 할 섬의 가치들도 살려 나가야 한다는 대원칙을 지키는 도서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말이다./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6-04-19 김창수

[경인칼럼] 인천의 정치적 민도(民度)가 낮다고?

출신지역 안 가리고 정당도 편애않는 '고유의 성향'지역발전·나라살림 잘 할것 같으면 '지지하는 특성'이번에도 그 특유함 나타나니 함부로 평가 안 하길인천이 대한민국 선거사에서 주연급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1985년부터다. 이 해 2월 12일 실시된 제 1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인천은 대구와 함께 당당히 시·도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도의 하위 행정단위가 아닌, 직할시로서의 인천 투표율이 공식적으로 집계됐다. 당시 인천 인구수는 131만2천여 명, 확정선거인수는 81만3천500여 명이었다. 277개 투표구에서 투표가 진행된 결과 80.7%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전국 투표율 84.6%보다 3.9%P 낮은 수치였다. 13개 시·도 가운데 충북이 90.4%로 일등을 차지했고, 인천이 꼴찌였다.투표율과 관련한 인천의 '흑역사(黑歷史)'는 이렇게 시작된다. 4년 뒤인 1988년에 치러진 13대 총선에서는 투표율 70.1%로 서울 69.3%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를 차지했다. 이제 임기를 끝내는 19대 국회의원들을 선출했던 2012년 총선의 득표율은 51.4%, 다시 꼴찌였다. 12대부터 19대까지 모두 여덟 차례 치러진 총선에서 인천은 꼴찌 3번, 꼴찌 바로 윗자리를 5번 기록했다. 영남 정치세력이 집권하든 호남 정치세력이 집권하든 인천은 늘 최하위권에 자리했다. 최하위 투표율과 함께 인천의 선거를 특징짓는 것은 여당으로 향하는 표심(票心)이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인천 유권자들은 지역구 7석 가운데 6석을 여당인 민주정의당에게 몰아주었고, 1992년 14대 총선에서도 민주자유당에게 5석을 주었다. 김영삼 대통령 재임 중인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11석으로 늘어난 지역구 의석 가운데 9석을 신한국당에게 안겨주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0년 16대 총선 땐 새천년민주당에게 6석을 주어 우세승을 거두게 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용돌이 속에서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에게, 이명박 대통령 임기 초기인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에게 지역구 12개 가운데 9개를 주었다. 인천으로서는 12대 총선에서의 민주정의당 2석, 신한민주당 2석이라는 결과와 최근의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6석, 민주통합당 6석으로 이뤄진 균형이 사실 낯선 상황인 셈이다.이처럼 역대 총선에서 인천이 보여준 최하위권의 투표율과 한결같이 여당에게로 향하는 표심을 일부에서는 정치적 민도(民度)가 낮은 탓이라고 깎아내린다. 심지어 인천의 여론주도층 내부에서조차 자조(自嘲)가 만연해 있다. 그러나 인천에는 타 지역이 절대 따라할 수 없는 고유한 투표 행동양식이 존재한다. 영남은 늘 영남사람에게 무더기 표를 주고, 호남은 언제나 호남사람에게 몰표를 주지만 인천은 출신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정당도 편애하지 않는다. 나라살림 잘할 것 같으면 어느 지역 출신이든 표를 준다.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어느 정당이든 지지한다. 인천만의 정치적 무편식(無偏食), 무편향성(無偏向性)이다. 영남정권이든 호남정권이든 일관되게 여당을 지지하는 표심은 서울의 무게에 짓눌려 숨을 할딱이는 인천을 살려보려는 갈망이었을 것이다. 오늘, 또 한 번의 총선을 치른다. 막장으로 시작하더니 끝도 오리무중이다. 무소속은 당선돼서 새누리당 간다고 읍소하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서로 내 표 갉아먹는다고 아우성이다. 매일 전화기를 울려대던 여론조사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인천이 표심의 전통을 좇을지, 표심의 변화를 보여줄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도 정치적 무편식과 무편향성이라는 인천만의 투표 행동양식만큼은 발현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투표율 같은 것으로 인천을 함부로 평가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낡고 진부한 해석의 틀로 인천 특유의 선거문화를 정치적 민도가 낮음을 뒷받침하는 증좌로 만들어버리는 오류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아, 그렇긴 하지만 이번엔 솔직히 전국투표율이 좀 높아졌으면 좋겠다. 인천의 투표율도 최하위권을 탈출하면 좋겠다. 그래야 '심쿵' 설현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저토록 애쓴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나도 지금 아내 손 잡고 투표하러 간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6-04-12 이충환

[경인칼럼] 귀농정책 성공하려면

귀농인들 "시골사람들 냉대한적 있었느냐" 목청토박이들 "개인주의문화 거슬린다" 거부감'기존주민과 부조화' 역귀농 원인 상당한 비중지난해 8월 제주도청 소속 공무원이 현지 언론사의 기자로부터 협박 및 폭행을 당하고 제주시 연동의 한 상가건물 4층에서 투신했던 사건이 있었다. 충격인 것은 그의 자살동기였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에 "토착 언론의 횡포"에 시달렸다며 제주도 특유의 괸당문화를 고발한 것이다. 괸당이란 친척, 혈족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나 이웃 간에도 친척처럼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함을 의미한다. 덕업상권(德業相勸)과 환난상휼(患難相恤)로 상징되는 공동체사회를 지탱해온 매우 소중한 문화유산이나 이방인들에겐 종종 배타적인 패거리문화, 이지메문화로도 작용한다. 대표적인 국가가 일본이다. 재일동포들이 오늘날까지 1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어도 이들은 여전히 남의 나라 백성인 것이다. 일본의 상징인 '대화(大和)'란 자기들만의 하모나이징인 것이다. 한국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혈연, 학연, 지연 등에 근거한 동류(同類)문화가 도처에서 확인된다. 특히 제주도는 육지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데다 조선시대에는 죄인들의 유배지로 전락해 도민들의 유대의식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웃사촌에겐 정상가격으로, 외지인에겐 바가지를 씌우는 식의 이중가격이 상징적이다. 그러나 국장급 고위공무원이 극단적 선택으로 괸당문화의 부당함을 호소할 정도이면 너무 심했다. 오죽했으면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병상을 찾아 사과까지 했을까. 유래지규(由來之規)가 '글로벌 제주'의 발목을 잡을 개연성이 크다.농촌사회의 텃세문화가 주목된다. 귀촌귀농의 점증이 배후요인이다. 국내적으로 귀농이 주목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부터였다. 대량실직을 배경으로 절박한 이들이 먹거리를 찾아 농촌을 찾았던 것이다. 이후 장기 저성장에 기인한 만성적 실업난은 귀농을 부채질했다. 급격한 산업화가 낳은 신중년들의 전원(田園)으로의 회귀욕구는 설상가상이었다. 이따금씩 전해지는 억대 부농 뉴스는 20~30대 젊은이들까지 유혹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농촌에서 스마트농업 창업을 시도한 것이다.정부를 비롯한 지자체들의 귀촌, 귀농드라이브는 주마가편이었다. 도시에서는 과잉인구에 기인한 주거난, 교육난, 교통난, 생계난에 시달리는 반면에 농촌은 빈곤과 고령화, 공동화 등으로 경제기반 침식이 확대재생산 되었던 것이다. 국제적인 자원내셔널리즘은 또 다른 당위였다. 농어촌의 지자체들은 경쟁적으로 정착지원금과 주택마련자금, 농업자금, 신규영농 지원 등 한 보따리의 선물(?)을 제공했으며 정부는 저리의 농지구입자금 알선 및 양도소득세 감면은 물론 농지에 대한 사전소유 규제도 풀어주었다.2000년 이후 귀농, 귀촌가구 수는 해마다 20% 이상 늘어났다. 2014년에만 낙향건수는 총 4만4천586가구로 전년 대비 37.5%나 증가했다. 경기도를 찾는 귀농·귀촌인구는 2012년 7천671가구에서 2014년 1만1천96가구로 2년새 62.8%나 늘었다. 경기도청은 이들이 귀농·귀촌에 성공할 수 있도록 내년부터 맞춤형인 '따복농장'을 운영키로 했다. 그러나 문제도 많다. 역귀농(逆歸農)인구도 동반상승하는 것이다. 역귀향의 정확한 데이터는 확인할 수 없으나 간과는 금물이다. 영농실패 내지 실망스런 소득, 자녀교육 애로 등이 원인이나 농촌사회 활착에 대한 마찰적 장애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의 귀농귀촌 실태조사에 따르면 텃세 등 기존주민과의 부조화가 수입 감소, 생활불편 다음으로 비중이 큰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기도 여주의 한 귀농인은 이장들의 횡포와 왕따, 길들이기 등으로 고통이 심하다며 '도시에선 언제 시골사람들을 냉대한 적 있었느냐'며 목청을 높였다. 토박이들도 할 말이 많다.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히 꿰는 지경인데 귀농인들의 개인주의문화가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동구 밖에 '귀농 안받는다'는 현수막이 걸릴 정도이다. 문화갈등이 귀농의 걸림돌로 작용할 개연성이 크다. 조광조 선생에게서 새로운 향약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나./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6-04-05 이한구

[경인칼럼] 4월 13일은 이세돌의 묘수를 착점하는 날

긴박한 국제정세·글로벌 경제위기 극복 할 시점'국민 심복' 자처하며 출사표 던진 많은 후보자들혁신·창의적 일꾼인지 유권자는 슬기롭게 선택해야세기의 대결로 일컬어지며 전세계인의 관심을 모았던 인공지능 알파고와 대한민국의 바둑기사 이세돌과의 대결은 아쉽게도 이세돌 기사가 4대1로 패하였지만 이세돌 기사는 제4국에서 신의 한 수라고 할만한 기발한 묘수로 알파고를 뒤흔들며 인공지능을 굴복시켜 귀중한 1승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대국기간 동안 보여준 인간의 불굴의 의지와 도전정신, 인공지능이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아름다운 인간미 등을 보여 줘 또다른 측면에서 승리하였다.인공지능 알파고는 1천202개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와 176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탑재하고 1천대의 서버를 활용하는 시스템으로 움직이며 CPU 한 대당 1초에 1천회 이상 시뮬레이션을 거쳐 최적의 수를 착점함으로써 2분 이내에 1초당 10만개의 수를 계산하여 바둑을 둔다고 하니 이번 대결은 아무리 바둑천재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알파고의 연산능력을 이기기는 힘들었다는 분석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이세돌 기사는 3판을 내리 패배한 후 제4국에서 기가 막힌 78번째 묘수를 착점하여 난국을 타개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켜 결국 인공지능을 굴복시키고야 말았으니 가히 인간승리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세기의 대결에서 인공지능과 맞섰던 주인공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이 자랑스럽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인간의 능력을 전세계에 과시한 이세돌 기사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바둑판에서 펼쳐지는 온갖 변화무쌍한 현상은 오묘한 삶의 이치와 흡사하여 흔히 바둑을 인생살이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작금의 복잡다기한 국제정세와 세계경제, 그리고 이에 맞물려 굴러갈 수밖에 없는 국내 정치 및 경제 상황은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대결처럼 긴장되고 고민스럽다. 바야흐로 당면한 위기상황에 대한 정확한 형세판단과 이를 타개할 묘수가 필요한 시기이다. 슬기로운 형세판단을 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다 죽음에 이르는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과학적 분석사례가 냄비속 개구리 실험이다.상온의 물이 담긴 냄비속에 개구리를 넣어 두고 서서히 온도를 올렸더니 개구리는 점점 따뜻해 지는 온도에 기분이 좋아 즐겁게 유영하다가 온도가 한계치를 넘어서는 것도 모르고 넋을 잃은 나머지 결국에는 뜨거운 물에 익어 죽고 마는 것이었다. 이미 10여 년 전에 세계적인 기업 컨설팅사 맥킨지가 기업의 평균 수명에 관하여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1935년도 90년에 달하던 기업의 평균 수명이 1975년에는 30년으로 줄더니 1995년에는 22년으로 단축된 것으로 조사되어 충격을 주었는데 최근 경제전문가의 분석에 의하면 2015년의 기업체 평균수명은 15년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급변하는 경제상황과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창의적인 혁신과 미래지향적인 도전을 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애플사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일에 오래 머무르지 마십시오. 다음에 어떤 일이 있을지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자신의 철학을 밝힌 바 있는데, 그는 평생을 혁신적인 기술개발로 인간의 삶을 바꿔놓았다고 인정받는 위대한 업적을 남김으로써 단순히 현실에 적응하는 정도를 뛰어 넘어 선구적인 기업가로서의 성공사례를 보여 주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박한 국제정세와 위기의 글로벌 경제상황에 대한 정확한 형세판단과 이를 극복할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에서 국내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임박하여 연일 언론은 온통 정치뉴스로 가득차 있다. 국민의 심복을 자처하며 출사표를 던지고 있는 수많은 후보자들이 과연 냄비속 개구리인지 이 시대가 요구하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일꾼인지 위대한 우리 국민은 슬기롭게 구별해 낼 것이다. 오는 4월 13일 전국의 투표소에 운집한 온 국민의 손끝에서 알파고와 이세돌의 제4국 78번째 묘수가 착점되는 순간이 기다려진다./박영렬 법무법인 성의 대표변호사박영렬 법무법인 성의 대표변호사

2016-03-29 박영렬

[경인칼럼] 공당(空黨)의 공천(空薦)

권력투쟁 수단·정파적 이해 관철 시키는 도구 전락여야 독선적 '공천활극'에 유권자 어떻게 답할지 궁금제도 개선·보완 없이는 정당정치 민주주의 정착 요원20대 총선의 후보 등록이 내일로 다가왔다. 공식선거 기간을 남겨두고 있으나 여야 정당의 정책과 공약이 선거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변수가 되기는 애당초 틀렸다. 정책에 대한 쟁점 축이 형성되어 있지 않고 정당들의 공약도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 19대 총선의 무상복지와 급식 등의 의제가 여야간 선거쟁점으로 떠오른 것과 대조된다. 선거를 앞둔 정당의 이합집산과 탈당 등이 낯선 모습들은 아니지만 이번 선거처럼 공천 난맥의 극치를 보인 적은 없었다. 현실정치는 권력정치(power politics)의 관점에서 봐야 제대로 보인다. 도덕주의적 관점은 정치현상을 직시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역설적으로 현상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게 하기 일쑤다. 정치는 권력 쟁취를 위한 쟁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가 오로지 권력만을 탐하는 게임이라면 정치는 존재할 수 없다. 명분과 이상의 적절한 타협이 정치다. 정당을 통하여 갈등이 관리되지 못한다면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정치의 고전적 정의도 의미를 상실한다. 공직자 후보를 추천함으로써 정당은 정치적 충원 기능을 갖는다. 공천을 통한 정치적 충원은 유권자와 당원의 의사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정당은 국민의 혈세로 정당보조금을 받는다. 그것도 선거가 있는 해는 막대한 액수의 선거보조금까지 받는다. 공천이 정당 내부의 일이지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자의적으로 이루어지면 안 되는 이유다. 공천(公薦)이 정도(正道)가 실종된 공천(空薦)으로 전락하고 있다. 여야 정당들의 공천 드라마에 헌법 1조가 명시하고 있는 주권의 담지자로서의 국민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상향식 공천'은 어설픈 정치이론을 말하는 아마추어들의 논변으로 치부됐다. 국민이라는 추상적 집합체는 권력정치를 신봉하는 세력에게는 단 맛을 안겨주는 수단으로 인식될 뿐이다. 최소한의 명분도 파당을 노골화하는 데 방해가 되면 과감히 폐기된다. 금도(襟度)가 생략된지는 이미 오래다. 명분과 현실을 조화시키는 기술이 정치고, 그래서 정치는 생물이며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천이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정파적 이해를 관철시키는 도구로 철저하게 전락한 정치공간에서 이상과 실리의 접점을 모색하는 정치는 폐기됐다. 여야의 공천은 패거리 정치의 전형이다. 새누리당과 집권세력의 공천활극은 자신들만의 패거리로 국정을 독점하겠다는 권위주의 시대의 망령이 어른거리는 전형적 구시대적 정치 퇴행을 부추기고 있다.정책과 공약이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는 이번 총선은 선거구도가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야권의 분열은 선거연합을 통한 야권의 연대 자체를 실종시키고 있다. 연합정치가 사라진 공간은 국민의당 수장의 거친 정치적 수사로 메꿔지고 있다. 수도권에서의 연대를 이뤄낼 만한 정치력은 야당 지도자들에게 원천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 오로지 공천갈등과 공천탐욕만 난무했다. 공천의 잡음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지도부의 비례대표 공천 탐욕으로 민심 이반을 가속화시킨다. 이번 총선에서의 관심이 집권당의 과반 획득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압도적 승리를 하느냐에 쏠려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화 이후 일반화된 여소야대의 분점 정부는 17·18·19대 때는 집권당의 과반 획득으로 나타났다. 물론 한 두 석의 근소한 여대야소였다. 여당에서 공천 배제된 의원들의 무소속연대의 가능성이 열려있으나 구심을 형성할 리더십의 부재로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예단하기 어렵다. 집권세력의 노골적이고 퇴행적 진박 마케팅이 수도권에서 민심의 심판에 직면한다면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의 쟁점법안 통과 의석인 180석을 획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거프레임 변수와는 다른 차원에서 여야 정당들의 독선적 공천활극에 유권자가 어떻게 화답할 지 궁금하다. 공천제도에 대한 제도적 개선과 보완이 전제되지 않는 한 정당정치를 통한 실질적 민주주의의 정착은 요원하다. 그래서 믿을 건 총알보다 강하다는 유권자의 투표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6-03-22 최창렬

[경인칼럼] 인공지능과의 인간의 공진화

더욱 빠른속도로 진화 '전문분야'부터 대체할 듯인류·국가 미래 운명도 좌우할 '인공지능 혁명''300억 투자하겠다'는 우리정부 태평스럽기만인공지능 열풍이 한국에 불고 있다. 게임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벌인 바둑대결이 가져온 효과이다. 세계인의 이목도 이 빅이벤트에 쏠려 있다. 북한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발사로 동북아정세가 요동치고 있고, 한 달 앞의 총선으로 국내 정치도 연일 대형 뉴스를 쏟아내고 있지만 '세기의 대국'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다. 마지막 대국은 국내 방송사들이 모두 생중계에 나섰다. 직관과 창의력을 놓고 기계와 인간이 정면승부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기계'의 본격적인 등장을 알리는 이 대국은 인류사 혹은 문명사의 변곡점이 될 것이며,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도 만만치 않다.사실 인공지능의 출현에 대해 인공지능의 시조인 엘런 튜링이 예고한 바 있으며, 상당한 수준의 시제품이 개발되어 이미 활용되고 있다. 1997년 체스 세계챔피언을 꺾은 IBM 인공지능 '딥블루', 2014년 미국 퀴즈쇼 제퍼디의 역대 우승자들을 꺾은 'IBM왓슨' 등이 대표적이다. 알파고는 바둑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경우의 수에 대해 신경망 알고리즘을 통해 해결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인간과 가장 유사한 인공지능이다.갑자기 출현한 인공지능의 위력에 대한 경계심도 높아졌다. 기상예보용 인공지능의 예측 성능에 대해서는 불평하지만, 유독 인공지능 앞에서는 공포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인간의 고유기능이라고 '믿어 온' 능력과 일을 기계가 가로채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일 것이다. 우리가 알파고를 대신하여 바둑을 두고 있는 아자황 박사처럼 되지 않을까하는 의문 말이다. 인공지능이 초래할 사회적 변화는 혁명적이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총 702개 직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30년까지 이 직업들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47%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한다. 그중 판사의 경우 사라질 확률이 40%에 달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문직종으로 분류됐다. 판결은 법률 조문, 검사가 제출한 공소장과 증거물 등을 바탕으로 유무죄 여부와 형량을 결정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더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다. 두 번째 분야는 의료분야이다. 딥 러닝으로 의료데이터를 읽는 방법을 숙지한 인공지능은 의사보다 암진단이 정확하며 빠르다. 딥 러닝을 이용해 방사선 사진, MRI, CT스캔, 현미경 사진 등에서 악성 종양이 있는지를 신속 정밀하게 판정할 수 있는 시스템은 이미 완성단계에 있다.인공지능은 더욱 빠른 속도로 진화하며 미래 사회의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가장 전문적인 직업 분야부터 대체해 나갈 것이다. 중요도는 높지만 시민들의 불신이 크고, 개발에 따른 수익도 보장되기 때문이다. 특히 학습과 교육 혁명의 대비는 눈앞의 과제이다. 지식과 정보의 축적과 처리 방식은 인공지능의 몫이다. 인간은 알고리즘과 같은 문제해결 방법의 창의적 설계자가 되어야 하고 인공지능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번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모두의 승리이다. 구글딥마인드는 인공지능 개발의 성과를 보여주었다. 인간대표 이세돌이 4국에서 보인 묘수는 기계의 신경망을 혼란시켰고, 알파고가 제2국에서 우변 침투 묘수를 보여주었으니 서로 크게 배웠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과 함께 진화해온 것이었다면 미래는 인공지능과 인간이 공진화(co-evolution)하며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인류의 미래, 국가 미래의 운명도 좌우할 인공지능 혁명에 대한 한국의 대비는 어떤가? 구글이 인공지능사업에 33조원을 투입해 왔는데, 향후 3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발표는 참으로 태평스럽기만 하다./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6-03-15 김창수

[경인칼럼] '침묵하는 다수'와 트럼프의 유혹

잘 살지 못하는 중장년층 백인계 '낀세대'들 지지사회적 금기, 제멋대로 허물어뜨리는 것에 '환호' 도처에 깔린 우리 불만세력과 그들은 정녕 다를까?'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는 국가나 집단 내에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놓고 표현하기를 꺼려하는 불특정 다수를 일컫는다. 주로 보수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반전시위가 한창이던 1969년 11월 3일 연설에서 "특정한 시각을 가지고 거리로 나와 자신의 시각을 나라 전체에 강요하려는 소수에 의해 국가의 정책 방향이 좌지우지된다면 내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했던 선서를 지키지 못하는 셈"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반전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하며 "그래서 오늘 밤 저는 여러분, 즉 우리 미국 시민들 중 침묵하시는 다수의 분들에게 지원을 요청합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1년 전 대선에서 승리하며 30년 넘도록 지속된 민주당 우위를 종식시킨 닉슨의 자신감이다. 닉슨 이후 45년 만에 다시 미국이 '침묵하는 다수'에 주목하고 있다. 공화당의 '문제적'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 때문이다. 그의 유세현장에는 "침묵하는 다수가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적은 피켓이 진을 친다. 닉슨의 '침묵하는 다수'는 하얀 나무울타리로 둘러싸인 집에 살면서, 규칙을 따르고, 세금을 잘 내며, 시위 같은 건 하지 않는, 평범한 중산층 시민들이었다. 그런데 트럼프의 '침묵하는 다수'는 닉슨의 그들과 다르다. 미국 주요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의 '침묵하는 다수'는 잘 살지 못하는 중장년층 백인계층이다. 경제적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한 '낀 세대'다. 어떤 세대보다 미국 사회에 불만이 많이 쌓여 있는 계층이다. 자신의 경제상황, 불법 이민자들, 미국의 추락하는 국제적 위상에 불만을 갖고 있는 상당수 공화당 지지자들이다. 트럼프는 이들을 지지기반으로 삼아 공화당의 선두주자로 질주하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의 '침묵하는 다수'가 사회적 금기(social taboos)의 해체에 대해서도 환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인종차별, 종교박해, 여성비하 등 미국사회가 아슬아슬하지만 그런대로 애써 지켜오고 있는 사회적 금기들을 제멋대로 허물어뜨리고 있다. 히스패닉계 멕시코 불법이민자들을 강간범과 마약중독자들이라고 비하하고, 무슬림에 대해선 사원들을 모두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여성혐오성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해 8월 폭스(Fox) TV 주최로 열린 공화당 대선주자 합동토론회의 진행자였던 여성앵커 메긴 캘러에 대한 '피' 망언이 대표적인 예다. 심지어 그녀를 '빔보(Bimbo)'라고 비아냥댔다. 섹시하지만 '골 빈' 여자를 칭하는 비속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침묵하는 것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흑인, 여성, 무슬림 등 특정 집단에 대한 괴롭힘 금지에서 출발한 것이 지금은 너무 과도해져서 자칫 잘못하면 직장을 비롯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불편한 세상이 됐다고 푸념한다. 트럼프는 그런 자신들을 대신해서 속 시원하게 할 말(?) 하면서 박탈감을 달래주는 존재다. 그래서 지지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지금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만세력이 도처에 포진해 있다. 세대, 계층, 진영 간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대로 커져 있는 상태다. 사회 전체를 짓누르고 있는 긴장감은 폭발 직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한 달 후면 우리도 선거를 치른다. 지금대로라면 1여다야(一輿多野) 구도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경쟁양상은 복잡하기만 하다. 선거구획정마저 늦어져 이름을 알릴 기회조차 없었다. 이런 난장판 선거에 뛰어든 이들이 '트럼프의 유혹'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 조선족 동포, 탈북자들을 표적으로 삼거나 우파와 좌파, 기독교도와 불교도가 서로 나뉘어져 한 치 양보 없는 대치국면을 펼칠 경우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처할까. 우리 사회의 '침묵하는 다수'는 트럼프의 '침묵하는 다수'와 정녕 다를까. 트럼프가 원맨쇼를 펼치고 있는 미국선거판이 단순히 재미로만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6-03-08 이충환

[경인칼럼] 전통시장 닮는 오픈마켓

작년 온라인거래 48조… 20년만에 유통산업 지각변동품질과 상관없는 광고비 과다지출 부작용도 증가지속가능성 위해 윤리경영과 시장질서 복원 필요온라인쇼핑의 폭풍 성장이 주목된다. 지난해 온라인매체들을 통한 판매액은 48조원으로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의 매출액 40조2천734억원을 능가했다. 전자상거래가 오프라인을 제치고 유통산업의 중심으로 부상한 것이다. 국내에 e커머스 업태가 출현한 지 20년 만에 유통산업의 지각변동이 초래됐다.오픈마켓의 성장세가 특히 두드러졌다. 한국의 오픈마켓 시장규모가 2009년 9조7천억원에서 2014년에는 20조원으로 급신장해 전체 온라인 매출액의 40%를 점한 것이다. 오픈마켓이란 수수료만 지불하면 누구나 온라인상에서 점포를 개설해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장터로 가격이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1995년 미국 이베이가 개인과 소규모 판매업체들이 자유롭게 상품을 거래하도록 한 '중개'형 인터넷 플랫폼을 개설한 것이 효시이다. 국내적으론 G마켓, 옥션, 인터파크, 11번가 등이 대표적인 사이트로 이들은 시스템을 제공하는 대가로 상품을 런칭한 상인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2000년대 이후 종합인터넷 쇼핑몰보다 오픈마켓이 매출과 수익성 면에서 안정적일 뿐 아니라 장기적인 수익구조를 시현하고 있어 통신판매업태들 중 성장성이 가장 높다. 바쁜 현대생활에다 염가로 구입이 가능해 젊은 층들이 선호하는 것이다. 모바일쇼핑 이용자 수가 크게 증가하고 사용자 연령대 또한 계속 늘어나는 추세여서 이 시장은 더욱 확대될 예정이다. 쿠팡, 티몬,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SNS) 3인방까지 모바일쇼핑의 덩치를 키우는 중이어서 점입가경이다. 세계최대인 중국의 알리바바가 T-mall에 '한국상품 판매전용관'을 설치하고 미국의 아마존도 국내진출을 서두르고 있어 파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오픈마켓의 부작용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오픈마켓 사업자들이 입점업체들에 광고비와 부가서비스 사용명목으로 판매수수료의 9배가 넘는 금액을 징수했다고 발표했다. 품질과 무관하게 광고비를 많이 낼수록 노출순서가 앞서는 구조여서 광고서비스를 사지 않는 상품은 순위가 맨 뒤로 밀려 사실상 판매가 불가능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14년 오픈마켓 입점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과다한 판매수수료 및 광고비 요구와 같은 불공정행위를 한 번 이상 겪은 중소상공인이 82.7%이고 불분명한 비용을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정산한 경우도 40.3%에 이른다. 장터운영자들의 갑(甲)질이 도를 넘은 것이다. 입점업체들은 G마켓과 옥션의 합병 이후 더 심해졌단다.국내 오픈마켓시장은 G마켓, 옥션, 11번가 등 3사 독과점구조이다. 이들 3사의 시장점유율이 97%인 것이다. 마켓쉐어 1, 2위인 G마켓과 옥션은 이베이코리아 소속으로 한 식구이다. G마켓, 옥션, 11번가의 패션잡화 판매수수료가 12%로 똑같은 점도 눈길을 끈다. 오픈마켓의 입점수수료는 8~12%이나 광고비를 감안하면 백화점 수수료(28.32%)보다 높단다. 플랫폼 제공업체들이 땅 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매년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이유이다. 오픈마켓의 장점은 저렴한 비용으로 누구나 창업할 수 있다는 점인데 정도가 심하다는 인상이다. 그러나 정부는 오픈마켓의 경우 관련 법률의 적용대상이 아니어서 제재가 어렵단다. 소비자 불만 고조도 간과할 수 없다. 구매한 제품들이 광고내용과 다른 허접한 것들이 비일비재하나 구매자와 판매자간에 분쟁이 야기될 때마다 온라인몰 사업자들은 발뺌하기 일쑤이니 말이다. 지난해 10월 법원은 티몬사이트에서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전기용품이 팔린 데 대해 티몬 편을 들었다. 소셜커머스는 판매자와 고객 간의 단순한 중개자일 뿐 제품에 문제가 있더라도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들에 면죄부를 준 것으로 우려가 크다.못된 송아지 엉덩이에서 뿔난다고 걸음마 단계에 있는 온라인장터가 벌써 전통시장을 닮아가고 있다. e커머스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인데 첩경은 윤리경영이다. 글로벌 공룡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오픈마켓 스스로 생태계 복원을 당부한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6-03-01 이한구

[경인칼럼] 희망과 열정의 쌍고동을

유태인들 수천년 떠돌았지만 비관·자포자기 안해불행 닥치면 더 창의적·열정적 노력으로 위기극복우리도 불안한 환경탓만 말고 정면돌파로 우뚝서야우수, 경칩에는 대동강이 풀린다고 하였는데 요즘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초래된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와 양극화, 청년실업 문제 등 뭐하나 시원하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아 답답합니다만, 잠시 고개를 돌려 인천항으로 가보겠습니다. "쌍고동이 울어대는 이별의 인천항구, 갈매기도 슬피 우는 이별의 인천항구…". 대한민국 중장년층, 특히 인천시민이면 친숙한 '이별의 인천항'이라는 대중가요 가사입니다. 이 노래가 1954년, 전쟁직후에 발표된 노래라서 그런지 애절하기 그지없습니다, 가사만 보면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항구에서 저 항구로 떠나는 선원들의 애환을 노래한 것이지만, 사실은 전쟁으로 부모 형제, 삶의 터전을 모두 잃어버린 나라에서 먹고 살려고 새 터전을 찾아 항구를 떠나는 우리 모두의 슬픈 마음을 노래한 것으로 들립니다. 얼마나 사는 것이 힘들고 희망이 보이질 않았으면 작약도의 등대불만 가물거린다고 노래했을까요. 그 후로 우리는 피나는 노력과 불굴의 의지로 난파된 대한민국호를 다시 출항시키고, 세계1등 공항인 인천공항도 탄생시켰습니다. 이제는 이별만 슬퍼하는 우울한 항구가 아닙니다. 희망과 열정의 항구입니다. 어떻든 항구는 이별의 아쉬움과 만남의 기쁨이 교차하는 인생살이의 축소판 같습니다. 항구에 울려 퍼지는 쌍고동은 어떤 이에게는 아쉬움과 슬픔을 가려주기도 하지만 목표지점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열정과 희망의 나팔소리이기도 합니다. 이제 다시 시간과 장소를 거슬러 올라가 1871년 영국 런던으로 가 보겠습니다. 당시 사무엘이라는 18세의 유태인 소년이 있었는데 그의 가정은 부모와 11명의 형제가 동유럽의 유태인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흘러들어와 매우 가난하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그의 아버지는 선물로 일본행 편도 3등선실표를 주었습니다. 사무엘은 런던에서 일본 요코하마로 향하는 배 한 귀퉁이에 몸을 실었습니다. 수십일 간의 항해 끝에 일본에 도착한 사무엘은 주민들이 바닷가 모래와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것을 발견하고, 조개껍질을 이용하여 장식품을 만들어 영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보내 팔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무엘의 생각은 적중했습니다. 사무엘은 조개껍질로 나전칠기 상자를 만들어 영국으로 보내 팔았는데 요즘 말로 대박이 났습니다. 사무엘은 그 이후에 석유사업에 눈을 돌려 역시 대성공을 하게 됩니다. 그 회사가 바로 쉘(Shell)입니다. 그런데 쉘의 로고가 조개껍질 모양입니다. 사무엘은 어려웠던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조개껍질 모양을 로고로 삼았고, 회사를 팔 때도 회사가 존속하는 한 조개모양의 상표를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유태인의 저력을 봅니다. 바로 흩어지고 떠나는 것이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이를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합니다. 유태인은 주변 민족으로부터 끊임없는 핍박을 당하고 수 천 년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들은 항상 생존의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을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또 나라가 없었기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사무엘처럼 18세의 어린 나이에 런던에서 일본까지 가는 배를 타야만 했고, 일본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이들은 삶 자체가 위기의 연속이었고,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체화하게 된 것입니다. '앙스트블뤼테(Angstblute)' 절체절명의 순간에 피는 꽃이라는 말입니다. 유태인들은 수 천 년 동안 나라도 없이 떠돌아 다니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자포자기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무엘처럼 미지의 세계를 향해 3등선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극한 불행이 닥쳤을 때 평소보다 더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한 사례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베토벤도 청력을 상실한 이후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지만 교향곡3번 '영웅'을 시작으로 불후의 명곡 '합창'을 완성하였습니다. 우리도 불안한 주변 환경을 원망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둘러싼 위기요인들을 정면으로 돌파하여 결국 세계인들 앞에 우뚝 서야 할 것입니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이즈음 봄눈 녹듯 남북관계가 해결되고, 대한민국 항구마다 열정과 희망의 쌍고동이 울려 퍼지기를 기원해 봅니다./박영렬 법무법인 성의 대표변호사박영렬 법무법인 성의 대표변호사

2016-02-23 박영렬

[경인칼럼] 조선 붕당 VS 한국 정당

개성공단 중단 '결단'·'통치' 국민신뢰 전제돼야野 "총선용 與정치공학적행위" 비난 설득력 없어진영논리 여론몰이 '국회-국민' 대립시키는 언술북한의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안보 이슈가 새해 벽두를 강타하고 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여론은 거의 팽팽하게 갈린다. 개성공단 전면중단에 대해서도 찬반 어느 한쪽으로 공론이 모아지지 않는다. 여론조사 업체와 의뢰기관에 따라 찬반 수치도 갈린다. 안보나 경제 영역의 전문가가 아닌 일부 미디어 연사들의 종일 방송이 여론을 정부 쪽으로 기울게 할 개연성은 상존한다. 여야 정치권이 북한의 도발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사드와 개성공단 이슈에 대해 일치된 국론을 도출해 내지 못하는 상황은 낯설지 않다. 20대 국회의원 선거는 55일 남았다. 그런데 선거구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새삼 호들갑 떨면서 정치권을 나무랄 일도 아니다. 어차피 유권자들은 큰 관심이 없고 역대 거의 모든 선거때도 선거구는 선거를 코 앞에 두고 획정됐으니 하는 말이다. 17대 총선거는 불과 선거일 37일전에 선거구가 확정됐다. 지난 19대 선거 때도 40여일 전에 선거구가 획정됐다. 그에 비하면 아직은 시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하는 19대 국회라고 하면 크게 이상할 일도 아니다. 어차피 선거는 치를테고, 선거무효 소송 등은 차후의 문제니까. 쟁점법안이란 현안들도 여야가 크게 합의 못할 쟁점들도 아니다. 소위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치의 수준이 그것 밖에 안 되는 상황은 우리의 시민사회의 수준과도 맞물려 있다. 새삼 사회경제적 격차와 이에 대응하는 시민 및 시민사회를 논한다는 것도 부질없어 보인다. 혼돈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말 만큼 현재 한국사회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도 없을 것 같다. 갈등과 현안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해 가는 방식의 문제의 어설픔은 항상 사회를 갈등으로 내몬다. 옳고 그름과 선악에 집착하는 도덕주의적 관점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야의, 보수와 진보의,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각자도생에서 관용과 타협의 민주주의에 관한 토론은 어딘가 격에 맞지 않고 어색해 보인다. 사안마다 철저히 논리 전개의 방식이 다르고 이의 당연한 귀결로서 일말의 유대와 연대를 찾기 어려운 우리네 삶의 모습은 점차 사회 구성원들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내몰고 있다. 개성공단의 전면중단으로 입주 기업이 입을 피해보다는 엄중한 안보이익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둘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전면 부정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개성공단의 중단이 법적으로 정당했느냐는 논란은 어차피 정치의 영역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다 높은 층위의 정치를 왜 우리의 지도자들은 의식하지 않는가. 정치와 통치의 차이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국민이 주인이고, 국민의 위임을 받아 대의제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국가에서도 어차피 지도자의 '결단'과 '통치 행위'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 결단이 사후에라도 국민들의 추인과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정치 일상에서 집권측이 상대를 설득하고 반대자를 납득시키는 지난(至難)한 정치력과 노력에 기반해 왔다는 국민의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개성공단의 갑작스런 중단이 20대 총선거에서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 하는 여권의 정치공학적 행위라는 야권 일각의 비판도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개성공단이 남북관계에서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실질적인 경제적 효과를 차치하고서라도 갑작스런 중단이 124개의 입주기업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미치는 당혹과 절망 등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개성공단의 중단이 북에 대한 제재의 고삐를 죄고 북의 미사일 도발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정치적 예측의 근거도 과학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역풍도 예견하는 심모원려(深謀遠慮)는 찾아볼 수 없다. 지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공론화보다는 진영 논리와 선입견에 입각한 여론몰이는 국회를 국민과 은연 중에 대립하게 만드는 언술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정당의 형해화와 정당정치의 실종이 객관과 이성이 전제된 공론화를 막고 있다. '백성의 하늘은 먹는 것'이라고 했던 맹자와 이에 바탕했던 성리학이 이학(理學)에서 예학(禮學)으로 중심이 옮겨가면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정신은 사라지고 붕당의 권력다툼의 명분으로 전락했던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정당은 붕당의 긍정적 의미조차도 상실했다. 국가적 이슈를 둘러 싼 갈등을 조정하고 공론을 모아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6-02-16 최창렬

[경인칼럼] 문화지구의 패러독스와 신포동 대책

문화예술이 추방된 곳은 특색없는 상업지구일뿐인천시·중구, 건물 직접 매입하는 정책전환 시급앵커시설 조성 소상공인·문화예술인들에게 임대해야아카시 나무야말로 토사구팽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개항기에 들어온 외래종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우리의 산을 망치게 할 목적으로 심었다는 누명을 쓰고 있지만 실은 황폐한 지력을 회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는 효자다. 아카시 나무는 박토를 아랑곳하지 않고 뿌리를 내린다. 콩과식물이라 공중 질소를 스스로 고정시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비옥함 때문에 웃자란 아카시 나무는 쓰러지기 시작한다. 아카시 나무가 일군 땅에는 다른 식물종들이 자리 잡아 번성한다. 아카시 숲의 천이(遷移)과정은 문화예술이 애써 일구어 놓은 도시공간이 상업자본으로 대체되는 도시 재생의 과정과 흡사하다. 문화예술로 특정 지역이 활성화가 이뤄지면,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가 올라가고, 결국 문화예술 활동이 어렵게 되거나 예술가 그룹이 추방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일어난다. 대학로와 홍대 입구를 문화공간으로 활성화시킨 주역도 이곳에서 입주하여 활동한 문화공간과 예술가들이었다. 홍대 입구와 대학로에 유흥상권이 늘어나면서 창작실 임대료가 급격히 오르자 새 영토를 물색하던 예술인이 찾은 곳이 문래동의 철공소 거리였다. 그런데 문래동도 지역상권이 살아나 상업공간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어 개척자들은 조만간 또 다른 박토(薄土)를 찾아 떠나가야 할 운명이다.인천 신포동과 개항장 문화지구에 그 같은 역설이 반복될 조짐이 역력하다. 구도심의 낙후한 풍경과 다소 쓸쓸하지만 덜 번잡스러운 거리, '착한 가격'에 손님을 반겨주는 정겨움, 예술인들이 작업하기에 적당한 공간들이 있었다. 예술인 레지던시 공간과 문화기관이 자리 잡고 특색있는 갤러리와 북카페와 공방들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일대의 상가가 되살아나고 어두웠던 골목길이 한층 밝아졌다. 또 인천 내항 개방과 인천시와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프로젝트가 가시화되면서 지역 명소로 바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이다. 최근 2~3년 사이에 상가건물의 매매가와 임대료는 30%가량 올랐으며, 5년 전과 비교하면 50% 이상 치솟았다. 문화공간과 예술인들의 새로운 입주는 물론 유지도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보면 빈곤지역 또는 재개발 필요 지역이 자연스럽게 개발의 물살을 타게 만드니 당장은 균형발전의 목적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이 과정에서 건축주나 땅 주인들, 부동산업자들은 상당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남은 자'들의 행복은 지속 가능할까? 문화가 없는 도시, 특색 없는 동네가 오래 번성하기는 힘든 법이다. 결국 지역사회의 입장에서는 큰 손실이다. 특성화해야 할 마을을 프랜차이즈의 영토로 훼손시켜버렸기 때문이다.그런데 문화예술이 추방된 자리는 특색 없는 상업지구일 뿐 고유의 장소성은 사라지고 매력도 퇴색하게 된다. 추방되는 것은 문화예술인뿐 아니다. 비싼 임대료로 인해 전·월세로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도 떠나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큰 손실이다. 프랜차이즈로 대체된 문화지구를 관광객이 찾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정책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보조금이나 임대료 융자와 같은 소극적 지원정책으로는 상업자본과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인천시와 중구가 개항장 문화지구의 중요한 건물들을 직접 매입해야 한다. 매입한 건물은 지역 특성을 대표할 수 있는 앵커시설로 조성하여 소상공인이나 문화예술인들에게 임대하여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6-02-02 김창수

[경인칼럼] '나쁜 도시' 인천

11살 소녀 학대·초등생 시신 훼손된채 발견…미디어 '인천 ○○사건'으로 표현 이미지 실추'아이 키우기 무서운 곳' 낙인… 가치재창조 고민 필요1997년 iTV 인천방송 개국과 동시에 선보인 '리얼TV-경찰24시'는 소위 킬러콘텐츠였다. 6mm 카메라앵글이 범죄 현장을 꾸밈없이 전달하는 다큐멘터리는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구성은 단순했다.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를 카메라가 좇는 형식이다. 범인 검거과정이 여과 없이 안방으로 전해졌다. 주인공은 인천경찰청 형사기동대 소속 강력반 형사들. 화면에서는 언제나 긴박감이 묻어났다.제작진이 안정적인 시청률을 즐기고 있을 즈음 문제가 발생했다. 인천의 여론 형성층이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경찰24시'가 인천의 이미지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화면에 등장하는 범죄현장은 죄다 인천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 또한 대부분 인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뜩이나 삶의 질이 떨어지는 도시로 낙인 찍혀 있는데 지역의 방송이 그런 인천의 이미지를 더 나쁘게 만들고 있다는 문제 제기는 일면 타당했다. 결국 제작진은 서울과 경기도로 소재를 확대했다. '나쁜 도시' 인천의 이미지를 그런 식으로라도 '물타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최근 인천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아동학대 사건은 그때 일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2014년 4월, 썩은 기저귀와 이불 등 쓰레기가 가득한 집에서 어린 4남매가 생활하고 있다는 언론보도는 아동학대의 또 다른 형태인 아동방임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언론은 '인천 쓰레기집 4남매' 등으로 기사제목을 달았다. 2015년 1월, 한 어린이집에서 밥을 먹던 네 살배기 여자아이가 김치를 남겼다는 이유로 보육교사로부터 가혹한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CCTV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 일은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란 이름표를 달았다. 2015년 12월, 친부와 그 동거녀에 의해 2년 동안 집안에 감금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하던 11살 어린 소녀가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했다. 몸무게는 겨우 16kg. 다섯 살짜리 아이만 했다. 뼈가 앙상한 소녀가 먹을 것을 허겁지겁 입에 가져가는 모습은 이 땅 모든 부모들을 울렸다. '인천 11살 소녀 학대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가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경기도 부천에서 학교를 다니다 사라진 한 초등학생이 4년 만에 인천의 한 가정집 냉장고에서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된다. 범인은 이번에도 친부다. 3년 전 인천으로 이사하면서 아이의 훼손된 시신도 함께 옮겨왔다. 이번 사건에서도 '인천'이 언급되는 까닭이다. 대도시(metropolis)는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부조리와 모순의 응집체다. 기회를 찾고자 모여든 대도시에서 사람들은 억울하게 기회를 박탈당한다. 행복하고자 모여든 대도시에서 사람들은 늘 동반하는 불행과 맞닥뜨린다. 살고자 모여든 대도시에서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 나간다.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인천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런데 똑같은 대도시인데도 서울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OOO사건'이 되는데 인천에서 발생하면 왜 '인천OOO사건'이 되는 것일까. 왜 인천만 유독 '나쁜 도시'의 이미지가 켜켜이 쌓여져가는 것일까. 한번 나쁜 이미지가 만들어지면 또 다른 나쁜 이미지가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된다. 미디어는 그것을 부채질하는 대표적인 기제다. 인천이 그 덫에 걸려든 것일까. '인천 가치 재창조' 열기가 뜨겁다. 필요성에 동의한다. 그러나 사업의 철학과 방법론에 대해선 좀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선(善)한 이미지가 억지로 만든다고 해서 만들어지겠는가. 축구, 야구, 짜장면, 쫄면의 '최초' 기록만으로 '나쁜 도시' 인천의 이미지를 씻어낼 수 있는가. '아이 키우기 무서운 도시'라는 이미지가 저토록 강한데 말이다. 남편 출퇴근 편리한 부천에서 다섯 살과 두 살배기 아들을 키우고 있는 처제는 송도국제도시로 오고 싶어 했다. 교육환경이 좋다고 했다. 그러다 요즘 말이 없다. 왜 그럴까. 처제는 왜 말이 없어졌을까./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6-01-26 이충환

[경인칼럼] 경제부진 은행 탓이 크다

금융기관, 1997년 외환위기 직후부터 서민상대 돈놀이대출로 집 장만 할부로 차 사고 생활비는 신용카드로…결국 고용불안·민간소비 위축 '빚에 눌린 경제' 만들어경제성장률과 소비지출이 증가한 이유는 노동의 대가로 얻은 가처분소득이 늘어난 결과가 아니라 각종 개인채무가 증가한 때문이다. '마케팅의 대부'로 불리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필립 코틀러 교수의 미국경제에 대한 진단이다.1970년까지 미국인들의 신용대출은 전무했으나 2012년에는 가계부채가 11조1천300달러로 불어났다. 부동산 담보대출이 전체의 70%인 7조8천100달러이고 학자금대출 9천905달러(8.9%), 신용카드 8천498달러(7.6%) 등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980년 68%에서 2014년에는 113%로 증가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나 중산층 대부분이 카드론으로 가계수지 결손을 충당한 때문이다. 미국인 67%가 신용카드를 소지하고 있으며 2014년 미국가정의 평균 신용카드 대출액은 1만5천607달러로 평균임금의 40%에 달한다.톱니효과라는 게 있다. 소득이 높아지면 소비수준도 동반 상승하는 반면에 소득이 줄 때는 소비의 동시축소가 어려워 경기하강 속도를 늦추는 것을 의미한다. 비올 때를 위해 준비한 우산이 빛을 발할 상황이나 미국인들의 저축률은 실망 그 자체이다. 2012년도 국별 가계저축률은 중국 50%, 프랑스 16.1%, 독일 11%이나 미국은 4%에 불과하다. 1인당 GDP가 미국보다 높은 노르웨이도 8.1%이다. 미국인 중 20%는 아예 한 푼도 저축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절대 다수 미국인들이 '꿈질'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금융기관들의 파행적 돈놀이가 화근이다. 담보 없이도 대출이 가능한 신용카드가 단연 인기였다. 심지어 대출 무자격자들에게도 모기지론을 권했다. 신용평가기관들의 '귀에 걸면 귀고리'식 평가는 주마가편이었다. 자유를 빌미로 브레이크 밟기를 주저한 규제기관의 무책임은 도를 넘었다. '가계부채가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의 진원지였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 향후 10년 동안 미국정부가 갚아야할 이자액만 무려 5조 달러에 이른다. 은행의 개인 상대 이자놀이에 국가경제가 거덜 난 것이다. 그럼에도 서민들은 여전히 신용카드를 긁어대고 있다. 부가가치의 대부분이 은행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한국은 미국보다 더 심하다. 2014년 GDP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6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용카드 보유율은 89%로 세계 1위이다. 월평균 가계소득은 2005년 289만원에서 2014년에는 430만원으로 10년 만에 48.7% 증가했으나 같은 기간 지출은 41.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성향은 낮아지고 저축성향은 커지는 법이나 작금의 개인저축률은 5%를 겨우 넘어섰다. 단기간의 가계부채 급증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의 경우 미국은 34년 만에 45% 증가했으나 한국은 불과 10년 만에 34%나 늘었다. 금융비용 누증(累增) 탓에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한국 금융기관들이 개인상대 돈놀이에 팔을 걷어붙인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부터였다. 당시 GDP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10조원의 공적자금 덕분에 기사회생한 시중은행들이 기업금융보다 리스크가 훨씬 적은 소매금융에 올인 한 것이다. 사람들은 대출받아 집을 사고 할부금융을 이용해 마이카를 장만했으며 일상의 생활비는 신용카드를 긁어 벌충했다. 2003년 카드대란이 상징적이다. 이명박정부 이후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모기지론, 카드론, 할부금융 등은 고용불안과 함께 민간소비 위축의 일등공신이다. 한국경제도 미국처럼 빚이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업을 위한 신용시스템에서 출발한 자본주의가 이제는 가계소비를 위한 대출시스템으로 전락했으며 금융자본은 다른 경제분야에서 쥐어짜 낸 돈으로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산업으로 둔갑했다. 돈 먹는 괴물의 식탐 한계가 가늠되지 않는다. 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미국 MIT대학의 찰스 킨들버거 교수의 "경제적 재앙 전에는 거의 대부분 가계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경고가 귓전을 맴돈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6-01-19 이한구

[경인칼럼] 종편 사용설명서

정치평론가들 뚜렷한 정치색 띠며 '입담 과시'정치발판의 수단 삼으려는 사람들 점점 많아져개국 5년째… 출연진 이력제 못할것도 없지 않은가종합편성채널, 즉 종편이란 뉴스·드라마·교양·오락·스포츠 등 모든 장르를 방송하는 채널을 가리킨다. 지금 대한민국은 종편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2011년 12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4개의 종편이 출범할 때만 해도 종편이 이렇게 성공을 거둘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막강한 자금력과 오랜 연륜의 지상파 방송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종편들이 적자에 시달렸다. 그러나 2012년 대통령 선거는 종편에 도약(?)할 수 있는 기회였다. 돈 적게 들이고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쏟아졌다. 시사 뉴스 프로그램은 제격이었다. 시청률도 잘 나왔다. 출연진 몇 명이 나와 하루 종일 정치얘기만 하면 되니 제작하기도 편했고 비용도 저렴했다.종편들이 개국할 당시 대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컸던 시기다. 그러다 보니 듣지도, 본적도 없던 사람들이 '정치평론가'라는 이름을 달고 종편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국민들은 이들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정치평론가라고 생각했다. 대학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학자라는 신분 때문에 처음엔 신뢰가 갔지만 그들이 '정치교수'라는 것이 밝혀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정인과 특정정당을 노골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4개 종편을 돌아다니며 출연하는 20~30명의 소위 정치 평론가들이 점점 뚜렷한 정치색을 갖고 특정인과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중립적 시각에서 정치판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이런 경향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사주의 입장에 따라, 프로그램 제작진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출연진들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이들의 이력을 제대로 밝히는 경우는 드물다. 야당에 우호적으로 발언하는 평론가의 이력을 보면 한때 야당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냈거나 야당과 관계가 있는 일을 했던 사람인 경우가 많다. 물론 여당 지지 평론가도 마찬가지다. 하도 교묘해서 종편사용설명서가 필요할 정도다. 그런데 학습효과때문인지 시청자들이 출연진의 정치적 성향을 다 꿰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평론가들의 얘기만을 듣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간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심리를 갖고 있다.올해는 종편들이 개국 5년째를 맞는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질을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돈 적게 들이고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시사 뉴스 프로가 홍수를 이룬다. 국민의당이 총선 3개월을 남겨 놓고 정당을 급조해 총선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종편 덕분이다. 종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시사뉴스프로그램을 내보내는 종편이야말로 홍보 수단으로는 최고이기 때문이다. 권노갑 전 의원의 탈당 기자회견을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게 종편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신속성도 좋지만 정보의 과잉은 문제다. 종편 덕분에 우리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너무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만나 정치 얘기를 하면 서로 아는 게 많기 때문에 지려고 하지 않는다. 뚜렷한 정치적 신념으로 무장되어 있으니 논쟁으로 번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어른들, 특히 남자들은 삼삼오오 모이면 정치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무슨 얘기를 하나 엿들어 보면 이 아저씨들, 모르는 게 없다. 알아도 너무 많이 안다. 모두 '정치도사'들이다. 종편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종편을 정치 발판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이들이 한 두명이 아니다.지난 11일 새누리당은 6명의 인재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김무성 대표가 영입 인사를 직접 소개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국민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섯명 모두 그동안 4개 종합편성채널, 즉 종편 시사 프로그램 단골 출연진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종편 개국이래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그래서 최근 국회의원 출마자들은 최소 6개월 전 종편 출연을 금지 시키고, 시사 뉴스프로에 출연하는 패널들의 이력을 반드시 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축산물도 이력제가 있는데 종편 시사 뉴스프로 출연진 이력제를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이제 종편은 시청자들이 사용설명서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될 개국 5년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이영재 논설위원이영재 논설위원

2016-01-12 이영재

[경인칼럼] 새해만 되면 소망하는 것들…

지난해 풍자로 회자됐던 ‘헬조선인·수저계급론…’청·장년세대들 어둡고 답답한 현실 애처롭게 견뎌올해엔 절망 없는 희망의 사다리 놓여졌으면…잿빛 구름이 낮게 드리워지고 미세먼지가 공간을 가득 메운 회색빛 세상은 답답하고 암울하다. 희망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꿈은 현실과 유리된 환상이 되어 허공을 맴돈다. 한여름날 뜨거운 햇살을 견디며 사막을 건너는 상인들에게 죽음을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듯 그런 세상 그런 세월을 견디며 살아 내려면 비상한 각오로는 부족하다. 해학과 풍자로 시름을 달래며 고통을 견뎌내는 것도 절망의 사막을 건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지난 한해 우리 현실이 그랬던 듯싶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단어가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를 뜻한다는 헬조선(Hell朝鮮)이었으니 말이다. 뜻이 너무 끔찍하고 무서워 이건 아니다 싶기도 했지만 취업에 절절매고 현실에 절망하는 아이들을 돌아보니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수저로 구분하는 신계급론도 그렇다. 부모의 재산에 따라 금수저·은수저·동수저·흙수저로 계급이 나뉘고 부모 자산 20억원 이상, 또는 가구 연수입 2억원 이상이 되어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따라 붙는다. 흙수저는 부모 자산 5천만원 이하, 가구 연수입 2천만원 이하를 의미한단다. 이걸 보면서 내 자식들은 어느 계급인지 약삭빠르게 계산하다가 아주 빠른 동작으로 생각을 지웠다. 아무리 살펴도 금수저나 은수저는 절대 아니니 아이들에게 딱히 할 말이 없어서다. 팍팍하고 답답한 현실에 절망한 이 땅의 청춘들이 지난 한해 이런 풍자와 해학을 통해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견뎌내며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오려고 아주 질긴 생명력으로 죽을힘을 다했다. 애처롭고 애틋하다. 그나마 청춘들이야 이렇게라도 울분을 토하지만 어중간한 처지의 장년 세대도 힘들긴 똑같았다. 60세 정년을 보장한다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40대 늦춰 잡아도 50대 퇴직이 당연시되는 게 현실이다. 그것도 모자라 ‘사람이 미래다’라고 외치던 어느 대기업은 ‘사람이 귀찮다’며 20대 신입사원들까지 희망퇴직이라는 참으로 고운 언어로 포장해 퇴출해 버렸다. 물론 나중에야 여론의 눈치가 무서워 담쟁이덩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철회하긴 했지만 말이다.한국이 놀라운 60가지 이야기라는 것도 한동안 회자 됐다.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고, 복지 지출은 꼴찌다. 성 평등 순위는 136개국 중 111위다. 노인 빈곤율 1위에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도 OECD 평균보다 쉽다. 그런데도 더 쉬운 해고가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한국이 놀라운 60가지 이유’ 중 몇 가지 사례다. 60개의 뉴스 화면을 갈무리한 합성 사진은 ‘한국이 헬조선인 60가지 이유’와 수저계급론의 근거로 세간에 오르내렸다.바라건대 올해는 더 이상 이런 얘기들이 화제의 중심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절망을 요구하는 강제퇴직도 없었으면 싶다. 일자리 창출한다면서 비정규직만 잔뜩 양산해놓고 일자리 늘었다고 흰소리하는 일도 그만두었으면 한다. 맨날 쌈질만 한다고 욕먹는 정치권도 올해는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줬으면 좋겠고 그런 정치권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며 책임을 슬그머니 떠넘기는 일도 없었으면 싶다. 힘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으면서 이런 푸념밖에 할 수 없는 기성세대인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젊은 세대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절망이 지배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낭떠러지에도 끝이 있고 어둠이 아무리 깊어도 햇살은 스며든다는 평범한 진리가 실현되는 그런 새해였으면 좋겠다. 잿빛구름 걷어내고 미세먼지도 날려버리면서 진흙탕 속에서도 연꽃이 피고 쓰레기 더미에서도 생명의 싹이 움트듯 그렇게 절망의 슬픈 곡조를 넘어 희망의 기쁜 노래와 환희의 불빛이 찾아들기를 소망한다. 돌아보면 세상이 그렇게 팍팍하기만 한 건 아니다. 계층의 사다리를 타고넘는 우리 사회의 역동성도 아직은 남아있다고 믿는다. 어렵고 힘들어도 자신만의 꿈을 꾸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 의해 사다리는 다시 놓여 지고 세상은 조금 더 앞으로 간다. 새해를 맞으며 풀죽은 목소리지만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그거라도 하고 싶다./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2016-01-05 박현수

[경인칼럼] 안철수의 딜레마

탈당후 여론조사·호남서 기대치 높아 ‘뒷심 발휘’구태정치 조금이라도 퇴행 시킨다면 ‘새정치 성공’대권에만 집착하지 않는 정치적 각성과 성찰 절실안철수 의원의 탈당이 총선거를 앞둔 정당의 이합집산이라는 낯설지 않은 한국정치의 데자뷰를 보게 될지, 의미 있는 정당체제의 재편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한국정치에서 탈당과 분당, 창당이 선거를 앞두고 극적인 통합과 연대로 이어지는 분열과 통합의 역사는 고비마다 이어져 왔다. 한국정치사는 통합과 분열의 정치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회주의의 역사적 경험과 정당정치가 뿌리내린 서구의 정치선진국에 비하여 한국은 정당의 역사가 일천하다. 또한 민주 대 반민주의 정치구도에서 정상적인 정당의 성장을 경험하지 않은 한국에서 선거승리만을 위한 정당의 이합집산은 각종 선거를 전후해 발생하는 일상사가 되었다. 1987년의 통일민주당의 분당으로 평화민주당이 창당되고 그 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첫 대선 때 통일민주당의 김영삼과 평화민주당의 김대중으로 분열된 민주세력은 정권창출에 실패했다. 이듬 해 치러진 13대 총선은 대한민국 정당사 최초로 여당이 과반 획득에 실패하는 여소야대의 분점정부 상황을 초래한다. 결국 1990년 3당 합당은 민자당이라는 거대여당을 탄생시킨다. 결과적으로 여권의 통합으로 1992년의 14대 대선의 승자는 여당의 김영삼으로 귀결된다. 15대 대선 때 신한국당의 경선에 불복해 탈당한 이인제 후보의 대선 출마는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의 패배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2007년 야권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통합되었으나 이명박후보에게 정권을 넘겨줘야 했다.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은 민주당과 합당하여 통합민주당으로 총선을 치렀으나 결과는 참패였다. 그리고 4년전 12월에 민주통합당으로 또 한번 야권은 통합되지만 19대 총선도 야권의 패배였다. 같은 해 18대 대선도 승리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의 몫이었다. 통합이 승리를 백 프로 담보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분열하는 세력은 선거에서 고배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한국정치사의 교훈이다.안철수 의원의 탈당 이후 안 의원은 생각보다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나 호남에서의 안 의원에 대한 기대가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옛 새정치민주연합)의 양당체제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한계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아직은 개인 안철수와는 별개의 ‘안철수 현상’에 대한 기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야당의 무능으로 강고해지기만 하는 청와대와 여권의 오만에 실망하는 양심적 보수와 알량한 패권에 안주하여 집권세력에 대한 견제와 대안 제시에 실패한 더불어민주당에 등을 돌리는 합리적 진보세력은 무당파로 속속 편입되고 있다. 이들이 중도보수와 중도진보를 형성한다. 결국 선거정치에서의 승리는 이들 중도파의 지지에 달려있다. 안철수의 실패한 듯이 보였던 ‘새 정치’, 여전히 실체를 알기 어려운 ‘새로운 정치’는 그래서 여전히 우리 정치의 본질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안철수의 딜레마가 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세력간의 다툼이다. 단기필마로 적진을 헤집고 초토화시킬 수 없다. 정치의 본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집단을 묶어내고 그들의 이해와 갈등을 표출·관리함으로써 다양성과 통합이라는 일견 상충하는 가치들을 조화시키는 데에 있다. 극에 치우쳐 있는 보수와 대척의 진보 사이에 존재하는 중도의 무당파들에게 정치적 참여를 확대시킬 수 있다면, 지역에 기반하고 낡고 흘러간 정치적 문법에 익숙한 구태의 정치적 퇴행을 조금이라도 역류시킬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새 정치는 성공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고도의 정치기술이 필요하다. 현실과 이상의 조화, 실리와 명분의 공생, 사실과 가치의 동거가 황금비율로 분할되어야 한다. 이상과 명분, 가치만이 존재하는 그런 정치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실리와 현실, 사실의 벽이 너무도 견고하다는 데에 있다. 세를 확장시켜야 하는 현실정치적 측면과 ‘새 정치’는 양립 가능한가. 안철수 신당의 창당 이후 새 인물의 영입을 상수로 한다 하더라도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에서 탈락한 비주류, 호남 인사들의 합류가 없으면 교섭단체의 구성이 벽에 부딪친다. 그렇다고 이들을 받아 들인다면 안철수 의원이 표방하는 새 정치와는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지도 문제다. 그래도 중도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대표해 낼 수 있다면 한국정치발전의 단초를 볼 수는 있다. 여기에는 대권에만 집착하지 않는 정치인 안철수의 정치적 각성과 성찰이 절실하다. 안철수 신당의 방정식은 정치적 언사와 수사처럼 그렇게 녹록치가 않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 · 용인대 교수최창렬 객원논설위원 · 용인대 교수

2015-12-29 최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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