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 이케아 스타일과 한국인의 공작본능

60개 쇼룸에 직원없는 ‘무관심 콘셉트’ 성공요인과잉친절은 고객에 방해 ‘자율적 상품선택’ 배려내가 산 물건 직접 만든다는 ‘제작 본능’ 자극이케아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12월 18일 경기도 광명시에 1호점을 연 다국적 가구 기업 이케아 코리아가 최근 밝힌 경영 성과에 의하면, 올 한해 총 3천8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고 한다. 누적방문객은 총 670만명, 회원프로그램인 이케아 패밀리로 등록한 고객도 60만6천명으로 집계됐다. 관련업계가 매출 추산액이 2천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또 메르스 여파로 인한 유통업 수요침체까지 감안하면 이례적인 성과다. 경기연구원의 발표에 의하면 수도권 성인남녀 10명중 4명이 이케아를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고양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이 이케아 모시기에 나선 것은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이케아 광명점이 문을 열었을 때, 60개의 쇼룸에 직원을 배치하지 않은 전시장 운영 전략을 회의적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 ‘무관심 콘셉트’야말로 성공 요인의 하나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일반 매장에서 보는 과잉 친절이나 지나친 호객행위는 고객의 선택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가구의 선택은 용도, 가구의 재료와 색깔과 기능과 디자인, 주택의 구조, 가격 등 복합적 요인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므로 차분히 생각하면서 선택해야 하는 상품이다. 이케아는 매장 고객들에게 쇼룸부터 충분히 둘러보고 구매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이 ‘의도적 무관심’에 대해 불편하다는 고객도 적지 않지만 대부분은 자율적 선택을 위한 ‘배려’로 받아들인다.이케아가 파는 가구는 반제품이다. 차로 싣고 가서 조립해야 하는 ‘불편한’ 상품이다. 부품을 나사나 볼트로 조립하는 수고를 가격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케아는 가구를 판 것이 아니라 현대인에게 결핍된 자아 존재감, 예들 들면 대량생산된 완제품과 서비스의 홍수 속에서 한동안 잊어버렸던 공작본능(Homo Faber!)을 자극하면서 내가 ‘선택한’ 물건, 내가 ‘만든’ 물건이라는 감성을 소구(訴求)하는데 성공한 것이 아닐까? 이케아의 성공 요인은 친환경 재료 사용, 구성품을 플랫팩(Flat-Pack)에 포장함으로써 창고공간을 극소화하여 유통과 매장 관리비용을 줄인 원가절감 전략, 1인 가구의 증가, 가구를 내구재가 아니라 소비재로 인식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등 다양하다. 그런데 일본이나 중국에서 외면받은 이케아가 한국상륙에 성공한 요인은 무엇일까? 중국 소비자들은 막 완제품과 자본주의 서비스의 단맛(?)을 맛보고 있는 단계라는 점, 반대로 일본인들이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DIY를 실현하고 있었던 사정이 요인일 수 있다. 일본의 DIY 스토어는 4천여개에 달하며 매출액만 32조원에 달할 정도이다. 도시별로 건립된 시민예술촌을 이용하는 일본인들의 공예품 제작 수준은 거의 장인급이다.한국의 미디어를 달구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가운데 다양한 요리방법을 소개하는 이른바 ‘먹방’ 프로그램도 공작본능을 자극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국인이 즐기는 음식의 상당수는 반제품이다. 비빔밥이나 냉면, 찌개류나 구이류 심지어 짜장면도 먹는 사람의 손길로 완성된다. 한국인의 타고난 공작본능은 여가시간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생활 스타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어쩌면 유별난 공작본능을 제대로 발휘할 여건이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 생활문화예술 지원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면, 우리의 여가문화가 한층 창조적이고 생산적 문화예술활동으로 꽃필 것이라고 ‘예언’해본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 ·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김창수 객원논설위원 ·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12-22 김창수

[경인칼럼] 인천의 방송, 그 문제를 푸는 방법

방송콘텐츠, 철저하게 공공재 관점에서 접근시, 인큐베이팅 설립통해 인천관점 적극 반영지상파·유선·위성방송과 특정채널 사용 계약세계 4대 골프 국가대항전으로 꼽히는 ‘프레지던츠컵’ 대회가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지난 10월 인천 송도에서 치러졌다. 대회기간 골프 좀 친다는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이 인천 송도로 집중됐다. 하지만 이런 세계적인 이벤트가 내 땅에서 열리는데도 인천은 관련된 방송콘텐츠 하나 제대로 제작하지 못했다. 이것이 인천의 방송현실이다. 그래서일까. 뜻있는 이들은 방송주권을 외치고, 지상파 TV방송국의 설립 또는 유치를 주장한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2015년 11월 4일 경인칼럼 ‘KBS 인천지역국이 필요한가?’)나는 지난번 칼럼에서 ‘인천의 방송’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론으로서 논의의 초점을 플랫폼(platform)에서 콘텐츠(contents)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지상파방송국을 새로 만들거나 유치하는 데 무리하게 힘을 쏟지 말자는 것이었다. 짚어보았듯이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난관들이 존재한다. 그 장애물들은 인천만의 노력으로 제거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방송콘텐츠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지상파 TV방송국도 없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가능하다. 생각만 바꾸면 가능한 일이다. 인천시가 방송콘텐츠 인큐베이터(incubator) 역할을 하면 된다.인큐베이터는 온도와 습도 등 생식과 성장에 필요한 모든 환경조건을 최적 수준으로 조절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요즘에는 주로 창업과 관련해 쓰이는 개념이지만 방송콘텐츠를 제외한 인천의 여타 문화산업부문에서 이미 적용되고 있다. 영화 부문에서는 인천영상위원회가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애니메이션과 웹콘텐츠 부문에서는 인천정보산업진흥원이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콘텐츠는 상업적 지향이 허용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철저하게 공공재(public goods)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방송콘텐츠가 본래 갖게 되는 공익성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인천시가 방송콘텐츠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내는 방법은 두 가지다.첫 번째 방법은 순수하게 인큐베이터로만 기능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가칭 ‘인천방송콘텐츠진흥원’과 같은 구체적인 인큐베이팅 조직의 설립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 이러한 공적 인큐베이팅 조직을 통해 지난번 칼럼에서 강조했던 ‘인천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방송콘텐츠, 인천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주장하는 방송콘텐츠, 인천의 품격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세련된 방송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한 전략수립과 재원의 합리적 투입이 가능해진다.또 하나의 방법은 인큐베이터와 방송사업자의 기능을 함께 하는 것이다. 지상파방송사업자·종합유선방송사업자·위성방송사업자 등과 특정 채널의 전부 또는 일부 시간을 쓰기로 계약하고 그 채널을 사용하는 방송콘텐츠 공급업자, 즉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Program Provider)가 되면 된다. 현행 방송법은 지방자치단체의 방송사업자 진입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 이를 잘 활용하면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지역의 지상파방송을 통해 인천의 방송콘텐츠를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더불어 제작비와 운영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의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국들에게는 지원과 상생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돈이 없다고? 지레 겁먹을 일이 아니다. 인천지역에는 훌륭한 방송장비와 설비를 갖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와 같은 공공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이러한 공공 인프라와 전략적으로 연대하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정말 없는 것은 돈이 아니라 방송에 대한 지식과 방송환경에 대한 이해다. 그게 없어서 여태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5-12-15 이충환

[경인칼럼] 동반성장과 하자아파트

공공기관 건설 하자율 2012년이후 ‘30%이상 급증’최저가 낙찰제·업체 과당경쟁 ‘덤핑수주’ 원인납품업체 ‘저품질 관급자재 조달’ 더 큰 문제최근 모 중년여성은 이웃사촌이 다른 동네의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는 소식에 “축하드려요. 주공아파트로 옮기셨다지요?”란 인사를 건넸다 민망한 경험을 했다. 순간 상대방 여성의 안색이 바뀐 것이다. 당황한 나머지 작별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되돌아섰다고 한다. 그 아줌마는 새로 입주한 아파트가 명품(?)이 아니어서 자존심이 상해있던 차에 하자 문제까지 겹쳐 부지불식간에 표정이 굳어졌던 것이다. 10년지기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아 찜찜했단다. 아파트 하자분쟁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하자 신청건수는 2010년 69건에서 금년 9월 현재 2천880건이 접수되는 등 최근 6년간 총 7천741건에 이른다. 공공기관이 건설한 아파트일수록, 또한 근래에 지은 공동주택일수록 불량공사 시비건수가 많다. 관련 법률시장규모도 갈수록 커지면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최근 5년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전국적으로 총 32만330세대의 공공임대아파트를 분양했는데 이중 하자발생 건수는 6만9천266건에 달했다. 하자율이 2010년까지 10% 내외였으나 2012년 이후로는 30%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 골조 균열과 기기작동 불량, 변전실, 소방설비 등 입주자 안전과 직결되는 시설 하자가 전체의 17%를 점했다. 서울시 산하의 SH아파트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확인되었다. 지난해 하반기에 입주한 서울 마곡지구 6천730가구에서 130건의 하자 민원이 발생한 것이다. 가구당 하자 민원은 6.7건으로 평균 4.2건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무주택 서민들의 평생소원인 ‘마이 홈’과 취약계층의 주거품질 향상을 주 임무로 서민아파트 공급을 도맡다시피 한 LH공사와 SH공사 아니던가. 입주민들이 깐깐해진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최저가 낙찰제가 일차적 원인이다. 공공기관이 건설공사를 발주할 때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에 공사를 주는 제도로, 1962년 도입 이후 수차례 폐지 및 재도입 과정을 반복하다 2001년부터 본격 시행돼 올해로 15년째 유지되고 있다. 부동산시장 침체에 따른 건설업체간 과당경쟁이 초래한 덤핑수주도 한 요인이다. 저(低)품위의 관급(官給) 건설자재 사용은 하자발생에 더 큰 책임이 있어 보인다. 절대다수의 건설전문가들은 최근 하자증가의 직접원인으로 건설자재문제를 들고 있다. 2009년에 중소기업 지원 및 육성목적으로 마련된 ‘공사용 자재 직접구입제도’에 따라 공공기관이 일반건설 20억 원 이상, 전문건설 3억 원 이상의 공사를 집행할 때 중소기업청이 지정한 시멘트, 가드레일, 철근 등 총 123개 중소기업 제품에 대해서는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한다. 2008년에 폐지되었던 것이 다시 부활했는데 중소기업청의 관급자재 사용규제는 과거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 근래의 경제부진과 양극화 확대에 따른 동반성장 붐을 타고 위력을 발하는 것이다.관급자재의 경우 정부가 사전에 일괄구매해서 공사현장에 제공하는 대신 해당 자재비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만 시공사에 결제해 주어 수주업체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 LH는 물론이고 대다수 공공공사 현장에서는 레미콘, 아스콘, 싱크대, 위생도기 등은 더 좋은 품질의 제품구입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설혹 기준에 못 미치는 공사 자재들이 배달되어도 불만을 제기할 입장이 못 된다. 납품업체에 어필이라도 하면 “당신하고 계약한 것이 아니니 주는 대로 받아라”라며 핀잔을 듣기 일쑤이다. 이들의 비위를 건드렸다 자재 납품시한을 어겨 인건비 상승 및 지체보상금 부담 등 낭패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관급자재 조달시장에서는 납품업체가 갑(甲)인 것이다. 정부나 서울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LH나 SH공사 입장에선 부실시공 시비에 항변도 제대로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이었을 것이다. 날로 치솟는 서민들의 주거부담을 고려할 때 공공주택 건설사업의 당위성이 매우 크다.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확대는 금상첨화이다. 그렇다고 서민아파트의 하자보수비용 증가, 구조물 수명단축, 주거만족도 저하 등을 방치할 수는 없지 않는가./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12-08 이한구

[경인칼럼] ‘핵노답’ 대한민국 19대 국회

여야, 느닷없이 세비동결 선언 “인상 몰랐다” 딴청각종 비리혐의 의원직 상실 무려 22명 ‘최악 국회’답이 없는 ‘엄청나게 한심한 19대’ 일주일 남아의회주의자였던 김 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렸던 지난 26일 국회는 모든 것이 잿빛이었다. 국회를 삼킬 듯 쏟아지는 눈발 때문인지 숙연함이 국회를 휘감아 돌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일시에 반전되는 일이 일어났다. 서로 잡아 먹지 못해 늘 으르렁거리던 여·야 예결위 간사의 느닷없는 공동성명 발표 때문이었다. 영결식 후 이들이 함께 발표한 성명서에는 “오늘은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 날”이라며 “그분이 남겨주신 유지를 받들어 의회주의 정신에 따라 여야 간 정쟁이 아닌 화합과 상생의 예산국회를 만들도록 여야 간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며 “국회의원 세비 3% 증액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고자 세비 인상분을 반납한다”고 적혀 있었다. 자신들의 봉급에 해당하는 세비를 올리려다 반발 여론이 예상밖으로 빗발치자 하루 만에 세비 동결을 선언하며 불 끄기에 나선 것이다. 이날 여·야 운영위원들은 한결같이 세비 인상을 몰랐다고 딴청을 부렸다. 예산안 심사 자료에 국회의원 세비 항목이 별도로 나와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거짓말이다. 이날 우리를 더 웃기게 만든건 성명서의 결론부분이었다. 야당 간사는 ”김 전 대통령이 내년도 세비 인상을 거부하고 국민들의 고통에 동참하겠다는 여야 간사들의 (협력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고 기쁜 마음으로 국민의 곁을 떠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당 간사도 ”YS께 드리는 마지막 보답“이라고 말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이날 여야간사의 발표는 19대 국회 앞에는 늘 ‘사상 최악’이라는 관형어가 붙어 다니고 왜 개그 프로였던 ‘봉숭아 학당’이라고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19대 국회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는 ‘최악의 국회’로 기록될 것이다. 의원실에 카드단말기를 설치한 의원,대낮에 호텔방에서 그렇고 그런짓을 한 의원 등 그 근거는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지만, 우선 철도비리 혐의를 받은 조현룡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7일 의원직 상실형을 확정받으면서 19대 국회에서는 각종 비리 혐의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의원이 무려 21명에 이르렀다. 성폭행 혐의 등으로 지난 10월 자진 사퇴한 심학봉 전 새누리당 의원까지 포함하면 22명이 공직선거법 위반과 금품수수, 입법 로비 등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의원 중에선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과 박지원 새정치연합 의원이 2심까지 집행유예로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선고를 받았다.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무소속 박기춘 의원과 입법로비로 기소된 새정치연합의 신계륜·신학용 의원이 1심 선고를 앞두고 있고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이완구 새누리당 의원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역대 이런 국회는 없었다. ‘무능한 국회’라고 평가 받던 18대 국회에서도 지방자치단체장 출마 등으로 퇴직한 경우를 제외하고,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의원은 16명에 불과(?)해 이와 비교할 때 19대 국회는 연이은 정쟁과 파행으로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는 물론 ‘윤리 의식’마저도 최악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여야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세비의 대폭 삭감을 약속한 바 있다. 당시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당 소속 의원 전원의 서명을 받아 일반수당을 30% 삭감하고, 특별활동비를 폐지하는 내용의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 새누리당도 동의했지만 3년째 감감무소식이다. 이런 최악의 국회를 만든건 물론 정치인들의 잘못이 제일 크지만 이런 국회를 만들어준 유권자의 잘못도 이에 못지 않다. 일하는 국회는 국민이 만들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온라인상에서 주로 쓰는, 인터넷 은어인 ‘노답’은 영어 ‘NO’ 와 우리말 ‘답’ 이 결합된 것으로 ‘해결방법이 없다’는의미로 사용된다. 즉 하는 짓이 변변치않거나 정말 멍청하게 행동하는 경우일때 주로 쓰인다. 그런데 이 말 앞에 ‘핵(核 )’이라는 글자 한자가 더 붙으면 상황은 더 끔찍해 진다. ‘핵노답’. 엄청나게 답이 안 나온다는 뜻으로 하는짓이 ‘엄청나게’ 한심하다는 뜻이다. 19대 국회는 ‘극혐(극도로 혐오하다)’까지는 아니더라도 말 그대로 ‘핵노답’이다. 핵노답 대한민국 19대 정기 국회도 이제 일주일 남았다./이영재 논설위원이영재 논설위원

2015-12-01 이영재

[경인칼럼] YS에 대한 인천 기억과 인물 재조명

강화·옹진 편입과 송도 갯벌매립 신도시조성 결정하나회 해체 ‘軍정치개입 차단’ 군부통치 종식시켜산업·민주화… 지금의 대한민국 만들어 낸 디딤돌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수 놓았던 민주화 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김 전 대통령은 6년 전 세상을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양김으로 불리며 부국강병이 최우선이라는 산업화 세대의 국가우선론에 끈질기게 저항하고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의 법칙은 거스를 수 없다지만 한 시대를 이끌었던 두 사람을 모두 보내니 새삼 허망하고 안타깝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인천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인천이 지금처럼 넓은 면적을 가진 국제도시로 자리매김 한데는 그의 공이 크다. 강화와 옹진을 경기도에서 떼어내 편입시켰고 김포의 검단면이 인천의 시계로 들어온 것도 김 전 대통령 재직시절이다. 갯벌로 남아있던 송도 앞바다를 매립해 신도시를 만들도록 결정한 것도 그였고 인천공항을 세계적인 공항으로 키우도록 한 것도 그였다. 지금 인천의 모습은 기실 김 전 대통령에 의해서 자리매김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어쩌면 김 전 대통령은 투옥과 연금이 반복되고 국회의원직에서 조차 제명당하던 1970~80년대의 엄혹한 시기를 민주화의 소명의식으로 버텼고 그 과정에서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의 성지로 자리매김하며 수도권의 민주화 전진기지 역할을 해온 인천에 대해 동지의식이나 부채의식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한 갑론을박은 현대사에 굵은 족적을 남긴 이승만과 김구 박정희와 김대중에 대해서처럼 현재 진행형이지만 꼭 첨언 하고 싶은 게 있다. 미시적으로 보지 말고 거시적으로 보고 부분으로 판단하지 말고 전체를 보고 평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며 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과 전격 합당해 여당정치인으로 변신한 김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시비가 분분하지만 92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 보여준 행보는 왜 합당을 결심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93년 취임하자마자 그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전격적인 방식으로 하나회를 해체하고 군의 정치개입을 원천 차단해 40여년을 이어온 군부 통치를 종식 시켰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며 전광석화처럼 금융실명제를 도입했고 95년 민선 단체장을 선출하면서 반쪽짜리 지방자치를 진정한 지방자치로 전환했다. 감(感)의 정치인으로 불린 정치인답게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난제들을 더운 여름날 찬물에 식은 밥 말아먹듯 후루룩 해치웠다. 3당 합당만으로 비난하기엔 공이 더 크지 않을까. 되돌아보면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갈등은 숙명적이기도 하다. 하루에 밥 한끼 먹기도 힘들고 미국의 원조에 국가 재정의 거의 대부분을 기대야 했던 시절에 부국강병이 최우선이며 생계문제 해결이 민주주의보다 앞선다는 산업화의 논리는 절박하기조차 하다. 그럼에도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존중해야 하고 진정한 부국강병을 위해서라도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민주화 세대의 주장도 강한 호소력이 있다. 누구의 논리가 옳고 그른지를 여기서 따지고 싶지는 않다. 분명한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로 지향하는 가치는 서로 달랐지만 둘 다 우리 역사의 소중한 유산이라는 사실이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낸 디딤돌이라는 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우리 사회도 이제는 인물에 대해 좀 관대해지고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곪은 상처에 현미경 들이대듯 미시적인 부분까지 후벼 파지는 말자는 얘기다.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에 대해 공은 좀 높이고 과는 좀 낮추면 어떨까. 신이 아닌 인간에게 공과(功過)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평가는 각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다. 그렇다면 시선을 여유롭게 하면 어떨까. 가뜩이나 인물이 없는 시대에 그래도 존경할만한 사람이 한 두 사람 있는 것도 나쁘진 않으니까. 현대사의 거목들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이제는 좀 후해졌으면 싶다. 그게 갈등과 분열을 줄이고 소통과 화합하는 길이기도 하다./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2015-11-24 박현수

[경인칼럼] 국면 전환의 정치학

‘국정화 이슈’ 예산심의·민생법안 논의자체 차단여 ‘발빠른 전환’-야 ‘만성 무기력’ 기대 부응못해여권 ‘의제설정’ 야당 압도… 與, 다음카드가 궁금가치판단이 배제되는 정치는 패권정치로 흐르기 십상이다. 가치의 지향이라는 정치의 본령이 낯설어진지는 오래됐다. 다이내믹스와 불가측의 정치가 일반화되고 있는 정치현실이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로 마냥 합리화될 수는 없다. 여야 정당 내부의 역학관계와 권력지형의 변화 등 정치적 현상들은 정치 그 자체의 동력으로 추동된다. 이는 권력정치적 관점에서의 정치현상이다. 그러나 정치가 권력을 추구하는 본질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또 한편의 간과할 수 없는 영역이 계층간의 사회경제적 간극을 메꾸고 분출되는 갈등을 관리하는 정치 본연의 임무다. 여권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를 제기한 이후 정부의 국정화 확정 고시가 있었고,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의 반발을 민생발목잡기로 야당을 몰아붙였다. 정기국회 기간의 상당 부분을 뜬금없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소진하게 된 원인 제공자는 여권이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찬반 여부와 무관하게 국면을 재빨리 전환하여 야당에게 역공을 취하는 형국이다. 야당은 이슈에 끌려다니면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정국은 야당의 지지율 상승과 연결되지 않고 오히려 새누리당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나는 한국정치의 역설을 목도한다. 정국을 주도하려면 의제 설정에 능해야 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당위 여부와는 별도로 국정화 이슈는 정기국회의 예산심의와 새누리당이 그토록 강조하는 민생법안의 논의 자체를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야당은 전선을 형성하고 공세적으로 나왔으나 교과서 정국에서 이슈를 주도한 측은 여당이었다. 이후 유승민 의원 부친 상가에서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의 TK 물갈이 관련 발언이 있은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언급한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 달라’는 이른바 총선심판론은 정치권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국회에 대한 압박과 새누리당 비박에 대한 경고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야당이 선거개입 가능성을 거론하고 나왔으나 이슈화시키지 못했다. 12일에는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이 이원집정부제를 의미하는 반기문 대통령과 친박 총리의 조합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정치권은 또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청와대는 부인했으나 발언자가 친박계 핵심이라는 점에서 여러 정치적 상상력이 동원되었다. 청와대와 친박사이에 교감이 있었는지, 아니면 청와대의 암묵적 묵인하에 친박 내부의 총선 이후 개헌에 대비한 공론화 과정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권은 언제든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개헌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을 만들어 갈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여권의 국면 전환에 정치권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다. 야당이 개헌을 제기했다면 민생을 팽개친 정략적 발상이라고 집중포화를 맞고 지지율은 곤두박질할 것이다. 지난 대선 때도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선점한 측은 새누리당이었다. 야당 정체성의 핵심을 자신들의 의제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고 결과는 새누리당의 대선 승리로 이어졌다. 민주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의 한 사람인 아담 쉐보르스키는 민주주의란 ‘결과의 불확실성을 제도화’한 체제라는 함축적 정의를 내린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정치는 단기적 국면에서는 불가측성이 지배적이나, 중장기적으로는 쉐보르스키의 말과는 정반대로 ‘결과의 확실성의 제도화’로 가고 있다. 여권의 발 빠른 국면전환과 야당의 만성화되고 고질화된 무기력증이 만들어낸 합작품이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하고 있다. 대안정당으로의 가능성이 전무하다시피 한 야당에게서 정권교체의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2030과 전통적 야당 지지자들이 한국사회의 변화 가능성을 찾을 공간은 전무해진다. 정치가 현실 속에서 승부를 내야 하는 게임의 성격이라는 권력정치에 무게를 둔다면 국면전환의 정치기술은 필요악이다. 규범적 정치학의 관점에서 이를 비판하는 것은 부질없는 약자의 푸념이다. 세대효과와 60대 이후 세대의 인구 구성비의 상대적 증가, 그리고 장년 이상 세대의 높은 표의 결집도를 감안한다면 정치지형 자체가 야당이 불리하다. 게다가 의제 설정과 국면 전환의 정치공학은 여권이 야당을 압도한다. 다음 장면에서의 여권의 국면 전환용 카드가 궁금해진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5-11-17 최창렬

[경인칼럼] 도시 브랜드와 도시 거버넌스

‘I.SEOUL.U’ 독자적 의미 전달능력 못 갖춰 논란브랜드 제정할때 전문가·시민·외국인 참여 필수각 주체 소통하는 실용적 거버넌스체계 고민해야서울시가 2016년부터 사용할 새 도시브랜드로 ‘아이·서울·유(I.SEOUL.U)’를 선정 발표했으나, 곧바로 의미가 모호하다는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서울시는 9억원을 들여 개발한 새 브랜드에 대한 논란이 새로운 이름에 대한 관심의 표현으로 낙관하고 있지만 산통치고는 너무 커 보인다. 브랜드 슬로건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며, 정치적 이해관계도 암암리에 작동되게 마련이다. 그런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겠지만, 몇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새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는 국내 여러 도시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서울시의 새브랜드는 선정 과정과 조어 방식을 보면 혁신적 요소도 많다. 특히 브랜드 선정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새브랜드는 시민 사전투표, 시민심사단 1000명의 현장투표, 전문가 심사단 현장투표 결과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선정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10만명 이상의 서울 시민이 투표에 참여했다고 하니 거버넌스의 모범사례라 할만하다. 또 서울시의 새 브랜드는 도시명에다 ‘Dynamic’, ‘Colorful’ ‘Fly’ 과 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종래의 브랜딩 방식을 벗어나 시민(‘I’)을 브랜드의 핵심요소로 도입했다. 이런 명명법은 국제적 트렌드를 반영한 국내 첫 사례라 할 수 있다. 서울시의 새 브랜드가 논란의 대상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브랜드가 독자적 의미 전달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시 브랜드는 설명 없이도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직접적인 환기 효과를 위해 기업이나 도시들은 브랜드 제작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뉴욕시의 브랜드 ‘I ♥ NY’에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하트가 뉴욕의 특산물인 사과를 의미한다는 설명이 추가되기도 하지만 이는 디자이너들의 주관적 스토리텔링으로 일종의 덤일 뿐 몰라도 그만이다. 암스테르담의 ‘I amsterdam’(내가 바로 암스테르담!), 독일 베를린의 ‘Be Berlin’(베를린이기에!)과 같은 슬로건 역시 단순하며 설명의 여지가 없다. 오히려 단순성 때문에 의미도 풍부해지고 여운도 남는 것이다. 전달력이 떨어지는 브랜드에 ‘공존’이나 ‘플랫폼’과 같은 추상적 해석을 덧붙이려 하니 네티즌들의 반응은 더 까칠하다. 차라리 설명 없이 브랜드만 내놓은 것만 못하다.서울시의 새 브랜드는 읽는 맛이 없다. 오히려 ‘아이. 서울. 유’는 툭툭 끊어 읽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베를린의 슬로건 ‘Be Berlin’은 ‘Be’를 반복 사용하여 두운 효과를 활용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의 ‘I amsterdam’은 ‘I am’과 ‘Amsterdam’을 중복 철자를 축약한 끝말잇기의 즐거움이 들어 있다. 이 같은 음운 효과는 영어 원어민들이 선호하는 표현 관행으로 리듬감과 즐거움을 주며, 기억하기에도 좋다. 코카콜라(Coca-cola)가 탄산음료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된 데는 상품명의 기여가 크다는 분석도 있다. 서울시의 브랜드 제정과정에 시민참여 방식이 이벤트 중심으로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베를린시나 싱가포르의 브랜드 제정과정은 참고가 될 수 있다. 베를린시는 2008년부터 무려 4년 동안 시민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외국인 참여 이미지 조사와 국제적 홍보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여 성공한 사례이다. 싱가포르의 브랜드 ‘유어 싱가포르(Your Singapore)’도 본래는 관광청 슬로건이었는데 시민들과 관광객의 호응을 확인한 다음에 공식 도시 브랜드로 채택했다. 도시 브랜드 제정은 종합예술이자 도시가 가진 거버넌스 능력의 실험이다. 거기에는 디자인과 마케팅 전문가는 물론 언어와 스토리텔링 전문가, 시민과 외국인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각 주체가 쌍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실용적인 거버넌스 체계에 대한 집중적 고민이 필요하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11-10 김창수

[경인칼럼] “KBS 인천지역국이 필요한가?”

‘가치 재창조·정체성 회복’에 더할 나위없는 무기방송국·네트워크에만 집착하다보니 답 못찾아‘인천의 관점’ 적극 반영하는 방송콘텐츠가 필요지난해 3월, 존함을 대면 누구나 다 알만한 지역원로를 찾아뵙고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의 설립 목적과 역할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드린 뒤 막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는 인천에 KBS 지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원로의 하문(下問)은 필시 부산, 대전, 강릉 등 전국 18개 시에서 총국 또는 지국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KBS 지역국을 염두에 두신 게다.“있으면 좋겠으나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답했다. 공영방송인 KBS의 인천지역국이 있으면 분명 좋을 것이다. 인천시가 부르짖고 있는 ‘인천 가치의 재창조’나 ‘인천의 정체성 회복’에 더할 나위 없는 무기가 될 것이다. 서울의 그늘에 갇혀 ‘지역문화’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인천사회에 생기를 불어넣는 동력이 될 것이다. ‘인천의 관점’이란 것이 생겨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KBS 인천지역국 유치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간절한 인천의 바람과는 달리 수도권이라는 단일한 문화적 생활환경에서 독자적인 제작시스템을 갖춘 지역국을 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더군다나 인천시청에서 여의도 KBS 본사까지는 직선거리로 20km 남짓한 지척이다. 지금 수원에 있는 KBS 경인방송센터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지역국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뉴스를 위해 기능한다. 이러한 구조로는 ‘인천 가치의 재창조’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시간이 흘러 올해 7월, 인천의 한 언론인단체가 주최한 ‘방송주권 찾기’ 토론회에서 ‘인천의 방송’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그러나 도출된 대안들도 설득력이 약하다. 케이블TV와 IPTV는 유료방송이다. 방송권역도 저마다 다르고, 네트워크도 제각각이다. 시청자의 보편적 접근권이 허용되지 않는 방송시스템이다. 또 다른 대안으로 거론된 인터넷과 모바일 인터넷 기반의 인천N방송은 얼핏 맞춤의 해결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천N방송은 태생적으로 ‘소박한’ 콘텐츠 유통 플랫폼(contents circulation platform)이다. 인천시와 구청의 공공정보 제공, 동호회나 교회와 같은 폐쇄이용자그룹을 위한 방송서비스, 전통시장과 소상인 홈쇼핑서비스 등을 하도록 설계됐다. 인천이 필요로 하는 ‘무기’나 ‘동력’으로서의 방송과는 거리가 멀다.그렇다면 남은 대안인 지상파방송의 인천 이전은 가능할까? 이 방안은 경기도 부천에 둥지를 틀고 있는 민영방송 OBS를 전제한 것이라 생각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대가가 따른다. 연주소가 인천에 있어야 한다는 허가조건이 있었긴 하나 현실은 경기도 소재 방송국이다. 상대적으로 큰 시장인 경기도를 떠나 인천으로 오는 대신 인천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특혜 시비와 형평성 논란이 우려된다. OBS 유치 명목으로 버스터미널시설이 일반상업시설로 바뀐 것부터가 이미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다. ‘인천의 방송’을 두고 이처럼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은 논의의 초점이 플랫폼에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방송국과 네트워크에만 집착한다. 이것만 있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 같다. 그러나 제아무리 선로를 잘 깔고 승강장을 편리하게 만든 들 기차가 달리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그 기차는 다름 아닌 콘텐츠다.보편타당한 가치관과 세계관에 바탕을 두되 인천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방송콘텐츠, 인천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주장하는 방송콘텐츠, 인천의 품격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세련된 방송콘텐츠가 필요한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인천의 방송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는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제작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콘텐츠와 우월한 제작 역량만 갖추면 플랫폼은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 ‘삼시세끼’ ‘신서유기’의 나PD가 어디 플랫폼을 가리던가? ‘인천의 방송’, 그 논의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5-11-03 이충환

[경인칼럼] 나라밖 국사 훼손은 어쩌나

中 짝퉁가이드들 유커에 잘못된 관광안내 ‘수두룩’자격미달 현지인이 독점 활동 ‘질 저하’역사전쟁만 할게 아니라 ‘한국사 날조’ 신경써야“코끼리는 보지 못했으나 악어는 수두룩했다. 악어는 인육(人肉)을 먹는 공포의 괴물이다. 몇몇 야만인들은 악어 뱃속에서 절반쯤 먹어치운 어린이 시체가 한꺼번에 셋이나 나온 경우도 목격한 적이 있다고 했다.”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열대우림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멜표류기로 알려진 이 책은 1668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최초로 간행된 이래 1670년에는 프랑스어로, 1672년에는 독일어로, 1704년에는 영어로 각각 번역 출판되어 유럽전역에 퍼졌다. 신라의 왕도(경주)는 중국 시안(西安)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며 삼국시대의 의복과 금속활자는 중국 것과 똑같다. 고려청자는 당삼채(唐三彩)를 흉내낸 것이며 자격루(물시계)와 측우기는 모두 중국에서 들여간 것이다. 한글은 창살을 본 따 만들었고 허준은 대장금의 스승이다. 정조는 중국의 신하인 탓에 화성행궁을 북경 자금성의 화장실 만하게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여전히 중국의 속국(屬國)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전부 가짜로, 진품은 모두 일본에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최근에 수집한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들의 안내오류 사례들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언감생심이고 일본의 식민사관보다 더 심하다. 우리나라 땅에서, 그것도 조상들의 얼이 서린 역사현장에서 무자격 관광가이드들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고유의 문화유산을 유린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희화(戱化)하는데는 불쾌하다 못해 어이가 없다. 역사문맹인 국민들이라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근래 들어 급증한 외국인 방한객수가 배후요인이다. 국내방문 외국인수가 2008년 689만 명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1천420만 명으로 6년 만에 2배나 신장한 것이다. 중국인 유커(遊客)들의 방한 격증은 점입가경이어서 작년 기준 외국인 관광객 2명 중 1명이 중국인이다. 중국인 대상의 싸구려 관광이 근본원인인데 유커들의 ‘통 큰’쇼핑에 주목한 국내 여행사와 면세점간의 치열한 경쟁이 한몫 거들었다. 돈이면 지옥도 마다않는 저질가이드들의 기승은 압권이었다. 중국관광객수가 폭증한 반면에 한국정부 공인의 중국어 관광안내통역사수가 턱없이 부족한 때문이다. 정부는 2009년 9월부터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제를 실시해 매년 1, 2회 필기와 면접시험으로 선발하고 있으나 중국어 관광가이드 합격률이 지나칠 정도로 낮다. 한국인 응시자들에게 중국어시험이 특히 어려운 탓이다. 반면에 중국인들에겐 땅 짚고 헤엄치기여서 중국인 및 중국동포 등이 국내에 대거 몰려와 중국어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다. 중국관광객 유치실적 상위 30위 전담여행사 관광가이드들 중 중국국적 75%, 대만국적 9%인데 반해 한국국적은 16%에 불과한 점이 상징적이다. 이방인 가이드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케 했으니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관광통역안내사 필기시험에서 한국사와 관광자원해설 교과목의 점수비중이 각각 40%와 20%로 압도적인데다 각 과목별로 60점 이하는 불합격인데 중국인들이 어떻게 난관(?)을 극복했는지 의아하다. 더욱 문제는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방한할 때 동반입국한 중국인 현지가이드들이다. 이들은 중국에서의 출발부터 귀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정을 거의 독점적으로 소화해내고 있는데 그 숫자 또한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쇼핑센터에서 제공하는 매출액의 18% 리베이트에 관광객들이 주는 팁이 전부이니 양질의 관광안내서비스 제공은 언감생심이다. 유커들이 다시 몰리고 있다. 메르스로 한산했던 서울 명동거리에 점차 활기가 돌아 반갑다. 삼삼오오의 2030대 중국인 여성관광객수가 크게 증가했다. 가이드의 도움 없는 배낭여행이 세계적 대세인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해외여행붐이 아직 초기단계임을 감안할 때 향후 패키지방한객의 점증도 불문가지이다. 국내 관광업체들 간의 과당경쟁은 또 다른 변수이다.만리장성은 중국의 역사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정부의 짝퉁가이드 근절대책은 별로이다. 국사전쟁만 할 것이 아니라 나라밖의 한국사 및 고유문화 날조에도 신경써야하지 않겠나./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10-27 이한구

[경인칼럼] 우리는 언제 만나러 갑니까

실향민들 66년째 가족 생사조차 모르는 한많은 사연‘영변군 남송면 천수동 117’ 형은 동생 못보고 그만…상봉단에 누락된 ‘1세대들 만남’ 정부가 답해 줘야대문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골목길 끝까지 따라왔던 동생이 형을 쳐다봤다. “형, 아무래도 안되겠어. 난 집에 갈래.” 잡았던 손을 스르르 풀며 동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어 갔다. 형은 뛰어가는 동생을 향해 외쳤다. “한달 뒤에 올게!” 1949년 여름 어느 날, 평안북도 영변군 남송면 천수동 117번지 앞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형은 동생과 그렇게 헤어졌고, 한달뒤 돌아가겠다는 형은 6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대가족이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포탄이 떨어졌다. 혼비백산.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이 말한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반은 여기 남고 반은 내려가라. 그리고 곧 다시 만나자.” 그래서 가족의 반은 남쪽으로 내려오고 반은 그냥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들도 지금까지 가족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지 못하고, 그 나이 많은 어른 역시 세상을 떠난지 한참 지났다. 실향민 중 이 정도 슬픈 사연이 없는 집은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몇 안되는 가족이 모이면 어른들은 고향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동생 이야기로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6·25 전쟁 얘기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어린 나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른들이 모이면 왜 무용담을 풀어 놓듯 오랜 시간이 지난 고리타분한 얘기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지, 마치 장롱속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처박혀 있는 빛바랜 사진들을 보고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게 먼 옛날 얘기가 아니었다. 불과 10여년전에 끝난 전쟁 이야기였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을 붉게 물들였던 2002년 월드컵으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면 우리 아이들이 고리타분하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월드컵이 열린 지도 벌써 13년이 지났다. 그때 어른들도 불과 10여년전에 끝난 동족상잔의 비극을 어제 일처럼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헤어질때 가족들은 마치 엄숙한 행사의 대미를 장식하듯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불렀다. 일종의 가족가(歌)였다. 이미 어른들은 한참 취해 있었고 어린 우리들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하도 많이 들어서 가사 정도는 외울 수 있었다. 이 노래 뿐만이 아니다. ‘애수의 소야곡’ ‘불효자는 웁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 나이는 어렸지만 우리는 그 정도의 노래는 다 따라 불렀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왠지 이 노래가 가장 슬펐다.지금 금강산에서 이산 가족 상봉행사가 열리고 있다. 96가족, 389명의 남측 상봉단과 이들과 만나는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은 동반 가족을 포함해 141명, 모두 합해도 500여명 남짓이다. 지난달 9일 대한적십자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무작위 컴퓨터 추첨은 로또를 방불케 할 정도로 무려 662.9대1을 기록했다. 추첨장에는 머리가 하얗고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추첨과정을 지켜보다 추첨에 떨어지자 눈물을 흘리며 쓸쓸히 발걸음을 돌렸다. 지금 생존한 이산가족 중 80살 이상 고령자가 3만5천997명이다. 이들의 요구는 오직 하나다. 만나게 해주지 못한다면 생사확인이라도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 정권은 물론 역대 어느 정권도 생사확인 조차 해주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지난해 2월 마지막 이산가족 상봉 이후로 4천807명의 실향민 1세대가 세상을 떠났다. 영변군 남송면 천수동 117번지에서 이별 장면을 연출했던 형도 그토록 보고싶던 동생을 만나지 못하고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정치권은 예나 지금이나 정부에 상봉 정례화 등 활성화 방안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새정치연합은 남북이산가족 상봉의 일회성 이벤트화를 지적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당은 그렇다 치고 과연 야당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야당이 여당이었던 시절 햇볕정책과 동시에 이산가족 생사확인을 강력히 요구하고, 그것만 관철시켰어도 이산가족의 슬픔이 지금처럼 처절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상봉단에서 누락된 1세대 실향민들은 그리운 가족을 언제 만나러 가는지 이제 현 정부가 답해야 할 때다./이영재 논설위원이영재 논설위원

2015-10-20 이영재

[경인칼럼] 이순신 장군의 수군 본영을 내륙에 둔다면

해경, 세종시에 있다면 상황대처 늦고 피해도 커지역정치권, 이전설 나도는데 어물쩍 거리기만서해 지키고 어민 보호하기 위해선 인천소재 당연지금 서해에선 꽃게잡이가 한창이다. 매일 수백 척 어선들이 만선의 꿈을 안고 백령도 등에서 조업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가장 힘든 건 국경을 침범해 불법조업을 하는 것도 모자라 어린 꽃게들까지 싹쓸이하는 중국어선들이다. 대규모로 움직이는 중국어선들은 우리 어민들이 설치해 놓은 어구를 훼손하는 것은 물론 주인인 한국어선들을 향해 위협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이런 중국어선들을 제압하고 어민들을 보호해 주는 게 해경이다. 인천에 본부를 두고 있는 해양경비안전본부는 현장에 가까운 만큼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어 어민들 보호와 불법 조업으로 인한 피해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북방 한계선을 수시로 침범하는 북한에 맞서 해군과 함께 서해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실도 해경본부가 인천에 있어야 하는 당위성에 한몫한다.현장성은 그만큼 중요하다. 해경이 해안도시인 인천에 있지 않고 내륙에 있게 되면 바다에서 일어나는 각종 상황에 대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고 그만큼 피해도 커진다. 임진왜란때 바다에서 왜적을 막아낸 이순신 장군의 수군 본영을 현장인 바다가 아닌 내륙에 두고 왜적을 막으라는 말과 같다는 얘기다.이처럼 상황이 명백한데도 해경본부의 세종시 이전설이 가시화되고 있다. 흐린 날 초가집에 연기 스며들듯 올해 초부터 나오던 이전설이 지금은 거의 기정사실처럼 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된 데에는 사돈이 땅을 사든 말든 난 모르겠다며 외면해온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인천의 정치인 중에는 현 정부에서 큰 역할을 하는 중량급들도 여럿이고 야권에서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는 의원들도 여럿이다. 그런 이들이 정작 중요한 지역 현안에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이전설이 가시화될 때까지 지역 정치인 중 누구도 적극적으로 반대하거나 목소리를 높였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지역 여론이 들끓고 시민들의 이전반대운동이 시작되고서야 뒤늦게 어물쩍거리는 현실은 도대체 힘 있는 정치인들을 뒀다 어디에 써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해경본부가 세종시로 이전한다고 해서 그 지역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본부인력을 모두 합해야 300여 명 남짓이다. 이런 조직을 이전하겠다며 힘을 낭비하고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정부의 할 일이 아니다. 세종시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성장산업을 유치하는 데 노력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마찬가지로 해경이 인천을 떠난다고 해서 인천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전을 반대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영해를 지키고 국가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서해의 중요성과 어민을 보호하기 위한 해경의 역할을 감안 하면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현장과 가장 가까운 인천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이유 때문이다. 한국과 북한·중국이 마주하고 있는 서해의 안전은 국가안보와도 직결된다. 서해의 풍부한 어족자원을 보호하고 이곳에 터 잡아 살아가는 어민들을 지키며 해상방위를 위해서는 해경이 현장에 있어야 한다. 그게 요즘 유행하는 현지화 전략이다.인천은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 인천에 있는 각종 기관과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은 전담팀까지 꾸려가며 움직이는데 인천의 대응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행여나 송도의 휘황한 불빛과 겉멋에 취해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해경 이전은 명분도 이유도 없고 실리도 없다.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 문제고 연평도 등 북방 5도를 비롯한 서해 어민들의 생존권과도 직결돼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바다를 책임지는 해경본부를 내륙으로 옮기는 것은 이순신 장군의 수군 본영을 함경도나 서울에 두겠다는 것처럼 한심한 발상이다. 한국과 북한·중국이 맞부딪치는 서해는 국가안보의 최전선이며 수십만 어민들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해경은 인천에 남아야 한다. 그게 순리고 국가이익에도 부합한다./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2015-10-13 박현수

정치 복원을 잃은 한국정치

당청, 유승민 사퇴이후 다시 수직적 관계 순치 형국새정치, 당안팎 내홍·분열 심화로 갈등 고착화 양상야, 정부 견제 동력 잃고… 여, 존재감 찾기 어려워1996년의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국회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다. 그리고 그 해 말 김영삼 정권은 노동법 날치기 통과를 강행하고 1997년도 초의 수서 비리와 이후 닥친 김현철씨 구속 등 가파른 레임덕은 김영삼 정권을 식물정권으로 전락시켰다. 임기 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6%대였다. 정권은 김대중 정부로 넘어갔다.내년 총선은 1996년의 15대 총선 이후 20년만이다. 그리고 다음 대선의 시기도 그 당시와 같다. 청와대로서는 15대 총선을 반면교사 삼아 20대 총선에 박근혜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방패막이가 되어 줄 수 있는 측근 친위그룹의 의원들을 여의도에 입성시키려 할 것이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구 방문때는 대구지역 출신 의원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반면 대구 경북 출신의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과 신동철 정무비서관이 박 대통령을 수행했다. 이른바 ‘유승민 찍어내기’때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은 대구지역 의원들에 대한 압박과 경고의 의미로 읽히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측근 그룹에 대한 공천에 대한 의지를 의도적으로 대외에 천명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며칠 후 인천행사 방문 때 새누리당 인천출신 의원들이 모습을 나타낸 것과 대조적이다.박근혜 정부의 출범 이후 첫 해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국정의 축을 상실했고, 다음 해인 2014년은 세월호 참사가 갈 길 바쁜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 올해는 메르스 사태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과 이로 인해 조성된 남북긴장을 적절히 관리함과 동시에 방중외교 성과 등으로 국정 지지율은 박근혜 대선 후보 당시로 복원되었다.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청와대 독무대 정국이 여의도 정치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는 평가에 이론(異論)이 없다. 정부 여당은 박근혜 정권이 임기 반환점을 돈 이후 노동개혁을 최대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노·사·정 타협과 함께 한국노총이 이를 수용함에 따라 노동개혁의 전망도 밝아 보인다. 이는 정국 주도권 장악으로 귀결된다. 게다가 10월에 예정되어 있는 한·미정상회담과 10월 말 또는 11월 초 개최가 유력한 한·미·일 정상회담에 이어 연말까지 줄줄이 잡혀 있는 다자외교 행사들을 무난하게 치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청와대가 국정의 주도권을 장악해 가면서 새누리당의 존재감은 희미해져 가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오픈 프라이머리에 정치 생명을 걸겠다’고 하면서 내년 총선에서 청와대의 영향력을 배제하려고 하지만 이미 새누리당 당헌·당규의 우선 추천제까지 수용이 가능하다고 한 김무성 대표로서는 청와대에 판정패 한 형국이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퇴진 이후 당·청 관계는 다시 수직적 관계로 순치되어가고 있는 형국이다.새정치연합은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과 혁신안이 통과되었으나 야권 외부로부터의 압박에 기인하는 원심력은 강화되고 있다. 당 안팎의 내홍과 분열상이 심화하고 있다. 혁신안이 발표될 때마다 제기돼 오던 계파 갈등은 국민공천제로 잠시 관심이 비껴갔으나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천정배 의원 발 신당 창당과 분당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의 갈등은 구조적이며 고착화돼 가고 있는 양상이다.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의 승리를 점치는 전망은 현 단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참패로 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건강하지 못한 야당은 갈등을 조정하고 최소화할 수 있는 정당체제의 강화와 모순적으로 작용한다. 실제 현재의 여당이 그렇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지지율 격차가 크지만 여당 지지율은 야당의 무능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미 야당은 내부의 권력다툼에 청와대를 견제하고 비판할 동력은 물론 의지도 상실했다.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건강한 야당, 입법부의 한 축임을 인식하는 지성있고 품격있는 여당의 존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내년 총선에서 청와대의 입김이 강화된다면 정치실종과 정치부재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당·청과 여권 내부의 역학관계에서의 적절한 조화와 상호 견제가 절실하다. 한국정치에서 정치복원은 현재로서는 연목구어(緣木求魚)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5-10-07 최창렬

‘지옥 불반도’의 풍자와 현실

희망없는 미개지 떠돌다 삶 마감한다는 스토리텔링 젊은이들 꼬인심사 지적은 말꼬리 잡기식 비난일 뿐 입시지옥·청년실업 대책없으면 ‘탈조선’ 폭발할 수도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는 ‘지옥불반도’나 ‘헬조선’과 같은 유행어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지옥불반도는 블리자드사의 리니지게임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 나오는 가상 지역을 패러디한 것이다. 지옥불반도의 관문인 ‘출생의 문’을 지나면 바로 ‘노예전초지’가 나온다. 이 곳을 지나면 ‘대기업의 성채’가 나타나는데 이 성채를 넘지 못하면 ‘자영업 소굴’, ‘치킨사원’, ‘백수의 웅덩이’ 등을 전전해야 한다. ‘공무원 거점’이나 ‘정치인의 옥좌’도 안전지대이지만 대기업 성채보다 공략하기 어려운 요새들이다. ‘이민의 숲’이 있으나 탈출은 어렵다. 결국 희망도 없는 미개지를 떠돌다 탑골공원에서 삶을 마무리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 이 풍자의 스토리 라인이다. 네티즌들에게 ‘헬조선’은 지옥불반도의 동의어다. 한국의 옛 명칭인 ‘조선’에 지옥이란 뜻의 접두어 헬(Hell)을 붙인 합성어로 지옥 같은 한국이란 표현이다. 헬조선의 사람은 금·은·동·흙·똥수저로 상징되는 다섯 계급으로 나뉜다. 금이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평민들은 ‘탈조선’을 꿈꾸지만 그 실현은 불가능하다. 헬조선 담론이 부상하자, 한국을 지옥에 빗댄 표현의 과격성에 대한 지적도 있고, 모든 문제를 사회 탓으로만 돌린다는 개인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GDP 세계 11위, 국민소득 3만달러의 우리나라를 지옥에 비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헬조선 담론이 신랄하고 공격적인 비판을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풍자에 속한다는 점을 전제로 해야 한다. 풍자(諷刺)적 표현에서 공격의 목적은 잘못된 현실의 교정과 개량이지 파괴나 폐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가 크다. 탈춤의 대사나 행동은 양반과 신분사회에 대한 신랄한 조롱과 풍자를 담고 있지만 해학을 통한 카타르시스의 효과가 더 크다. 네티즌들의 ‘탈조선’이니 ‘죽창’이니 하는 표현 속에서도 부정적 형식의 언어를 통해 현실극복의 계기를 찾으려는 무의식이 엿보인다. 한국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탈’ 한국을 꿈꾸어 볼 뿐이다. 죽창도 반란의 무기가 아니라 사회비판의 상징일 뿐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표현의 과격성이 아니라 풍자가 담고 있는 현실이다. 이 신조어가 일부 젊은이들의 뒤틀린 심사가 증폭된 것이라는 지적은 말꼬리 잡기식의 비난일 뿐이다. 몇 가지 지표를 보자. 유엔아동기금(UNICEF)이 조사한 바로는 한국 청소년의 평균학습 시간은 주당 60시간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으며, 학업스트레스 지수도 50.5%로 가장 높다. 이에 따른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취업의 문턱도 가장 높다. 청년 실업률은 10.3%에 달하고 체감지수는 11.3%다. 취업자들도 상당수는 불완전 고용 상태에 있다. 한국 청소년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9.1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그것도 11년 연속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회원국이 감소 추세인데 대한민국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옥불반도의 ‘노예전초지’나 ‘백수의 웅덩이’는 객관적 지표로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인 셈이다. ‘지옥불반도’는 조국 탈출을 꿈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청년세대가 스스로 그린 심리지형도이자 자신이 처한 절망적 현실에 대한 풍자적 스토리텔링이다. 이 풍자화에 더러 해학의 요소가 적지 않지만,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은 임계치에 달한 청년세대들의 고통과 분노가 더 크기 때문이다. ‘헬조선’ 담론이 비판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은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다. 그동안 복지를 강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입시 지옥과 청년실업이 완화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기존의 대책이 언 발에 오줌누기식에 불과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 청년세대의 상상적 ‘탈조선’이 어떤 형태로든 폭발할 수 있다.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09-29 김창수

송도국제도시의 다리 이름

피츠버그의 다리 명칭들 역사적 인물등 연관 행정편의에 만든 순서로 명명된 ‘송도교’ 한심 지리적 정보등 의미·배경 담은 이름 지어주길 ‘킹캉’ 강정호가 속해 있는 메이저리그 파이어리츠의 홈 피츠버그는 강의 도시이자 다리의 도시다.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위쪽으로는 앨러게니강이, 아래쪽으로는 머낭가힐러강이 흐르고, 두 강이 합류하는 지점 ‘골든트라이앵글’에서 1천579km 오하이오강이 새로 시작된다. 지난 2001년 폭파 해체될 때까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던 파이어리츠의 홈구장 이름이 그래서 ‘쓰리 리버스 스타디움(Three Rivers Stadium)’이었다. 카네기의 철강제국으로 이름을 날렸던 도시의 역사에 걸맞게 이 세 개의 강 위에 446개의 철골조 다리가 놓여 있다. 한때 2천 개를 넘었다는 피츠버그의 다리들은 저마다 기록과 일화를 안고 있다. 머낭가힐러강을 가로질러 시내 중심가를 연결하는 길이 361m의 스미스필드가 다리(Smithfield Street Bridge)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철골조 트러스교다. 1883년에 건설된 이 다리는 국립역사건축물로 지정돼 있는, 국보급 유산이다. 앨러게니강의 40번가 다리는 ‘워싱턴 크로싱 브리지(Washington crossing Bridge)’로도 불린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조지 워싱턴이 버지니아주에서 청년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중요한 임무를 띠고 이 강을 건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쓰리 시스터즈(The Three Sisters)’는 앨러게니강을 차례로 가로지르는 6번가, 7번가, 9번가 다리를 일컫는다. 모두 100년도 더 됐다. 269m 길이의 6번가 다리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영웅 로베르토 클레멘테를 기리는 뜻에서 ‘로베르토 클레멘테 다리(Roberto Clemente Bridge)’로 이름을 바꿨다. 7번가 다리는 피츠버그 태생의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을 기념하기 위해 ‘앤디 워홀 다리(Andy Warhol Bridge)’라는 새 이름표를 달았고, 9번가 다리는 20세기를 움직인 책으로 꼽히는 ‘침묵의 봄’의 저자이자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을 기리고자 ‘레이첼 카슨 다리(Rachel Carson Bridge)’로 명칭을 바꾸었다. 피츠버그의 다리 이름은 이처럼 유서 깊은 지명 또는 도로 명칭이나 지역 태생의 역사적 인물들과 연관이 있다. 이런 피츠버그의 다리들과 견주어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송도국제도시의 다리 이름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만들어진 순서대로 이름을 붙이다 보니 송도1교, 송도2교, 송도3교다. 제3경인고속도로 고잔톨게이트를 지나 인천대교 방면으로 달리면 나타나는 순서이기도 한데 지난달 신항을 연결하는 송도4교가 개통되면서부터는 그마저도 헛갈린다. 송도4교가 가장 먼저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리적 특성이나 정보적 의미, 역사성이라곤 털끝만치도 고려치 않고 그저 행정편의에 따라 이름을 붙이다 보니 빚어진 ‘문화적 참사’다. 지금부터라도 시민공모를 통해 새로운 명칭을 부여하겠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글로벌캠퍼스교’ ‘컨벤시아교’ ‘아트센터교’ 등과 같이 각각의 다리가 갖고 있는 지리적 정보를 살려도 좋고, ‘신순성교’ ‘장면교’ ‘고유섭교’와 같이 지역이 낳은 인물을 기리는 이름도 좋다. 송도국제도시에 둥지를 튼 국제기구나 기업의 명칭을 따서 ‘GCF교’나 ‘삼성바이오교’라고 붙여도 무방하고, 아예 그룹본사를 유치할 수만 있다면 ‘포스코교’ ‘삼성교’ ‘현대교’라고 해도 시비 걸지 않겠다. 다만 이 다리들을 건너는 시민이나 여행객들이 그 의미나 배경에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한 그런 이름을 지어주길 바란다. 그 이름이 1교, 2교, 3교, 4교라면 평생 건너다닌들 무슨 의미로 남겠는가. 오래전 잠시 머물렀던 피츠버그의 기억이 강 위에 빗살처럼 촘촘하게 놓여 있던 옅은 황금빛 ‘아즈텍 골드’ 색상의 다리들로 시작되는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이름과 품고 있는 이야기의 힘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 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재단 센터장▲ 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 센터장

2015-09-22 이충환

노동개혁 소탐대실 일 수도

정규직 축소, 경제체질 약화·사회적 비용 증가시켜 청년실업해소 도움 안되고 경제권력 대기업 이동만 ‘비정규직 줄여야 잠재성장률 상승’ IMF지적 주목해야 박근혜정부의 기세가 대단하다. 지난달 휴전선 지뢰폭발을 계기로 북한의 예봉을 꺾더니 지난 13일 1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노사정위원회의 대타협까지 이끌어냈으니 말이다. 최대 쟁점인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와 ‘저성과자 일반해고’ 등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할 경우 정부 단독으로라도 노동개혁을 위한 입법절차에 착수한다고 최후통첩을 했던 것이다. 청년 및 비정규직을 비롯한 국민 대다수가 노동개혁을 지지하는 만큼 승리를 확신하는 인상이다. 노동계가 배수진을 치는 등 일전불퇴의 각오여서 전대미문의 대충돌마저 우려되었는데 다행이다. 수출부진과 가계소득 감소로 전년 동기대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 2분기에는 2.2%로 곤두박질했다. 일본식 장기불황 터널에 진입했다는 평가마저 들린다. 세계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그룹 마윈 회장의 “요즘 너무 사업하기 어렵고 세계경제도 안 좋다. 앞으로 15년 후에는 30년 이상 생존한 기업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9일 다보스포럼에서의 경고가 섬뜩하다. 이번 노동개혁의 핵심은 정규직 고임금을 삭감해서 청년고용확대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대·기아차 양사의 임금 평균이 9천400만∼9천700만원으로 1인당 국민총소득(GNI)과 비교할 때 현대·기아차는 3.3배, 도요타는 1.7배”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는 일부 대기업들의 사례일 뿐 절대다수 근로자들은 여전히 고단하다. 노동계가 반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1996년 세모(歲暮)에 김영삼정부가 날치기 통과시킨 노동법 이후 저임금 비정규직을 확대 재생산한 탓에 삶이 팍팍해졌는데 또다시 노동자들의 몫을 줄이겠다니 말이다. 부실경영에 제재 대신 혈세로 벌충해주는 정부의 이중 잣대에도 불만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총 168조7천억원의 공적자금이 부실대기업에 투입되었는데 회수율은 65%이다. 예금보험공사와 캠코의 발행채권과 차관이자 55조원, 정부발행 국채이자 24조원 등 80조원을 포함하면 공적자금 회수율은 44%에 불과하다. 오너경영인들이 기업자금을 세탁하면 그만인 것이다. 신자유주의 노동개혁은 금상첨화여서 대기업들은 천문학적인 내부유보금을 확보했다. 올 1분기 30대그룹의 현금잔고는 710조원이다. 공기업 유보까지 합치면 나라살림 규모 2년치를 훨씬 능가한다. 청년실업률이 높아진 것은 갈수록 잠재성장률이 추락한 때문으로 서민들의 지갑두께가 얇아지면서 민간소비도 덩달아 줄어든 것이 결정적이다. 고용불안 → 소비위축 → 투자부진 → 비정규직 확대 → 고용불안 등 악순환이 성장동력을 갉아먹은 것이다. 소득감소 사례가 상징적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5년 2분기 국민소득’에 따르면 2분기 실질국민소득(GNI)은 전(前)분기보다 0.1%포인트 줄었다. 2분기 실질국내총생산(GDP) 증가율 0.3%에 못미친다. 직전 분기대비 국민소득이 감소세를 보인 것은 2010년 4분기의 -1.9% 이후 4년 반 만에 처음이다. 임금유연화가 양질의 청년일자리 증가를 담보할 수 있을까. 결론은 ‘글쎄올시다’이다. 정규직 축소는 경제체질 약화 및 사회적 비용 증가만 촉진할 뿐 청년실업난 해결에는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경제권력이 대기업으로 이전되는 것은 설상가상이다. 오히려 고용불안 해소에 올인해야 할 시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한국은 50%를 초과하는 비정규직 수를 줄여야 잠재성장률이 올라간다”는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인세 인상 혹은 천문학적 규모의 기업내부유보금을 풀어서라도 청년고용을 확대하자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일본경제가 강산이 2번 바뀌도록 버텨온 비결은 특유의 종신고용과 가계의 높은 저축성향이다. 내수시장은 수출과 함께 경제성장의 양대 축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정책은 오매불망 수출일변도의 저임금 비정규직 양산에만 꽂혀있다. “미국 경제위기는 레이건정부 이후 지속된 반(反)노동적 경제정책이 노동자들의 구매력감소를 초래했기 때문”이란 폴 크루그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질책이 돋보인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9-15 이한구

국회의원 답게 살고 계십니까

내일부터 19대국회 마지막 국정감사 돌입 기업인 불러놓고 망신주고 호통치다 끝낼건지 특권의식 모두 내려놓고 국민위한 국감 펼쳐야 국회의원을 지낸 인사에게 의원시절 가장 좋았을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열중 일곱은 ‘국정감사’라고 말한다. 돈이 태산같이 많은 재벌총수도, 해외유학을 다녀왔다는 기관장들도 의원들의 호통 앞에서 죄인처럼 고개 숙이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의원도 있다. 특히 재벌총수 소환을 놓고 벌이는 대기업의 기막힌 로비는 받아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니들이 국감 맛을 알아!”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오직 국회의원만이 그 맛을 아는 국정감사가 내일부터 두번에 나뉘어 열린다. 공교롭게도 이번 국감은 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다. 300명의 국회원이 내년 총선에서 모두 당선 될리 없으니 아마도 상당수 의원에게는 이번 국정감사가 의원시절 마지막 국정감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의원들은 마지막 국정감사를, 국민들을 위해 ‘국회의원답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미 증인신청을 두고 벌써 한바탕 난리 굿판을 벌였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얼마나 대단한 로비가 벌어졌는지 증인 채택이 예상됐던 총수 상당수가 명단에서 제외됐다. 국정감사를 앞둔 여의도는 늘 뜨겁다. 국감이 ‘기업 길들이기’, ‘총수 망신주기’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총수를 증인에서 빼기 위한 치열하고 뜨거운 로비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로비는 입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봐달라고 손바닥을 비빈다고 해서 들어 줄 의원들도 아니다. 오면 가는 게 있고 가면 오는 게 있어야 한다. 증인 신청을 무기삼아 기업에 노골적으로 지역구 민원이나 친인척의 취업문제 해결을 압박하고 후원금을 요구하는 행태는 이제 감춰진 비밀도 아니다. 이번 국감도 예외없이 앞에서는 증인에게 호통을 치고 뒤로는 사리사욕으로 기업인들을 괴롭힐 것이 뻔하다. 어느 의원이 어떤 총수를 증인으로 신청했는지 ‘증인실명제’를 실시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런 폐단 때문이다. 국정에 도움이 된다면 대기업 회장 등 재계인사들을 불러 증언을 들어야 한다. 공적 자금이 투입됐거나 , 예산이 들어간 사업을 맡았거나, 부당노동행위같은 공공성이 강한 사안과 관련돼 있는 경우 등에 한해 예외적으로 기업인을 부르는 게 원칙이다. 롯데사태에서 드러났듯, 대기업의 경우 문제가 발생했을 시 상당수 책임이 회장에게 있다. 해외로 재산 빼돌리기부터 불법 상속, 노사문제, 심지어 총수 자녀들의 갑질논란까지, 이를 따지고 진실을 밝혀 법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 총수 소환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동안 기업인을 불러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망신 주고 호통 치다 끝난다. 19대 국정감사도 그렇게 끝나게 될 것이다. ‘국정감사 무용론’을 넘어 ‘폐지론’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의원이 직업군(群)으로 전락한 지는 오래됐다. 국민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국회의원을 명예직으로 전환해 세비를 주지 말자는 주장은 생계형 국회의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이 나올 때마다 의원들은 입법부를 모독한다며 발끈한다. 그런 말을 듣지 않으려면 또 반복되는 얘기지만 이제 특권의식을 모두 내려놔야 한다. 이번 국정감사 피감기관은 지난해보다 100개 늘어난 799개다. 기간 동안 이를 다 들여다 본다는 게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기간을 늘리자고 할 수도 없다. ‘상시 국감’이 좋겠지만 이럴 경우 의원들의 ‘상시 갑질’로 피해가 더 커 나라 경제에 혼란을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5%에 불과한 건 국가적으로 비극이다. 이 보다 더 끔찍한 건 이런 사실은 국회의원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주 상당수 국회의원들은 7대 종단이 캠페인성으로 벌이는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에 참여했다. 여야 의원들이 모여 “국회의원답게 살겠습니다”라는 결의문을 낭독했다. 국회의원답게 사는게 무엇인지 모르는 국민들은 이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차라리 ‘특권을 모두 내려 놓겠습니다. 그 증거로 세비를 반으로 줄이겠습니다. 말로 하면 못 믿을 테니 법으로 만들겠습니다’라면 모를까. 하여튼 내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 ‘국회의원답게’ 제대로 된 국정감사를 보여주길 바란다. /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5-09-08 이영재

개혁, 그 지난(至難)함에 대하여

정부, 4대개혁 추진 공감대 어떻게 끌어낼지 ‘걱정’ 노동계 설득 위해선 기업들 기득권 일부 포기해야 대다수에게 선한 일, 특정 집단에겐 악한 일 될수도 모든 개혁은 선하고 옳은 것인가. 선한 의도로 시작된 일들은 반드시 선한 결과로 귀결되는가. 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노동과 교육, 공공부문과 금융 등 4대 개혁을 보면서 드는 의문들이다. 개혁의 방향과 목표가 옳다고 해서 반드시 그대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후세에선 잘한 일이라고 평가받는 일들도 당대에선 혹독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권세가들에게 눌려 억울하게 노비로 전락한 양민들을 구제하고 권력의 힘에 의해 빼앗긴 토지를 원주인들에게 돌려줘 국가 근간이 되는 농민층을 강화하겠다며 고려 공민왕 시절 신돈에 의해 시도된 개혁정책이 있었다. 후세의 사가들이 방향은 맞다고 평가했지만 당대에선 기득권층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해 실패로 귀결됐다.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개혁이 얼마나 힘들고 지난(至難)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 숱하게 있다. 개혁으로 손해를 보는 기득권층의 반발과 저항은 집요하고 거세다. 이런 저항을 얼마나 합리적이고 능숙하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개혁의 성패가 결정되는 예(例)들을 들먹이는 것은 옳은 방향 설정과 강고한 의욕과 넘치는 힘으로 성공하는 개혁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현 상황을 진단하고 내놓은 정부의 개혁 의지와 원론적인 방향이 틀리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개혁이 후대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걱정되는 것은 개혁이 선한 의도로 시작됐으며 좋은 결과로 귀결돼야 한다는 점을 어떻게 설득시켜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를 원만하게 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다. 정부가 추진하는 4대 개혁 중에서도 노동개혁 문제는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부분이다. 노동계는 개혁의 핵심인 임금피크제와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으로 이어진다는 실증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유연화 역시 양질의 고용창출을 통한 고용시장 확대가 아닌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비극적인 실업상태를 지속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달리 생각하면 인구증가율이 1% 내외에 머물고 있는 현실에서 정년연장은 필연적이지만 연장된다고 해서 얼마나 많은 수가 혜택을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50대 중반이면 현장에서 내몰리는 작금의 현실이 60세 정년을 보장한다고 해서 쉽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개혁에 대한 기업들의 입장은 임금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임금피크제와 해고요건을 쉽게 하는 노동시장 유연화에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청년고용 확대 문제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미지근하다. 정부의 개혁에 기대 내 밥그릇 확대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노동개혁의 당위로 설명하는 일부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화와 과보호 문제는 우려스럽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신규 노동력의 시장 진입을 막아버리려는 행태는 개선돼야 한다. 현대판 음서제로 비난받는 일자리의 대물림 현상도 마찬가지다. 노동계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기득권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그걸 위해서는 재벌개혁을 함께 추진하는 방향설정도 필요하다. 롯데 사태와 대한항공의 여객기 회항 사건에서 보듯 일부 재벌들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10% 미만의 지분을 갖고 수십, 수백조의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잘못된 지배구조는 당연히 개선돼야 한다. 개혁의 진정한 과제는 기득권화한 기업과 노동계를 설득하는 일이다. 기득권을 빼앗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개혁은 미래를 향한 것이고 기득권의 강고함은 현실이다. 개혁의 핵심은 철옹성처럼 단단한 기득권의 벽을 어떻게 허물 것인가에 있다. 자신들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일부 노조와 일부 기업들의 기득권을 깨트릴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개혁이 가능하다. 선한 의도로 시작한 일이라고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대다수에게 선한 일이라도 특정한 집단에게는 악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게 개혁의 함정이기도 하고 역사의 교훈이기도 하다.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2015-09-01 박현수

진부한 선거제도 혁신안들

여야 정치개혁 명분, 실상은 이해득실 ‘수 싸움’근본적 혁신없이 물갈이로 젊은 피 수혈 ‘헛일’유권자 바른선택·정치구조 변경 없다면 ‘백약 무효’정치가 사회적 약자와 소득 하위계층에게 현재의 사회경제적 지형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줄 때 진정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 바꿀 수 없다는 절망은 투표율의 저하로 연결되고 종국적으로 철옹성처럼 구조화되어 있는 기득권 구조를 깰 수 없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겨가고 신분 상승의 기회는 제한적인 상황에서 사회적 연대에 기반을 둔 공동체 의식은 의미를 상실한다. 정치가 미래에 대한 비전과 지향을 보여주지 못할 때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민주화 이후 정치허무주의는 상당 부분 야당의 무기력에 기인한다. 민주당 계열의 정당들은 김대중과 노무현 두 대통령 임기를 제외하고 줄곧 야당이다. 1990년 1월의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등장한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등극은 보수대연합을 알리는 팡파르였다. 사실상의 프레임 정치의 서막이다. 3당 합당을 보수대연합으로 보든 유권자의 선택을 왜곡한 인위적 정계개편으로 보든 1990년대 이후 한국 정치의 흐름을 바꿔 놓은 분수령이다. 이후 야당은 각 계파로 공천과 지분권을 둘러싸고 분열했다. 이념과 노선에 따른 진화가 아니었다.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의 패배 이후 이어지고 있는 야당의 무기력은 구조적이다. 야당의 선거지형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정치구조의 변화와 수권정당의 가능성으로 귀결될 때 정치는 다이내믹스를 찾는다. 여권도 지금의 위계적 질서의 당·청 관계에서 벗어나 변화를 추동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이 지난 후, 미래권력과 지는 권력 사이의 역학관계 변화에서 차기의 승리를 모색하는 판에 박힌 정치공학에서 벗어날 모멘텀을 찾을 수 있다.변화와 혁신은 개인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전망과 연결될 때 의미를 갖는다. 정치의 변혁이 정치권에 머무른다면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 한국정치에서 권력구조의 변경이 주된 논쟁적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개헌논의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도혁신이 국민과 유리될 수밖에 없음도 같은 논리의 연장이다.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가 현역 의원 20% 공천 배제안을 내놓았다.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모르지만 전략공천 20%까지 감안하면 물갈이 비율은 40%까지 달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정치에서 물갈이는 여야 정당 전가의 보도였다. 민주화 이후 역대 선거에서 현역의원 교체율은 40%를 넘나든다. 물론 야당의 교체율이 여당보다 10% 이상 뒤지지만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17대 국회때는 초선 의원의 비율이 60%를 넘었다. 그러나 ‘젊은 피’의 수혈은 한국정치를 ‘물갈이’하지 못했다.오픈프라이머리 도입 여부,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을 둘러싼 여야의 갈등은 정치개혁이란 거창한 명분을 내걸지만 실상은 각 정파의 이해득실에 관한 치열한 수 싸움에 다름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빠지지 않는 공천 ‘물갈이’ 논란도 예외가 아니다.미국이나 일본 등의 상하원 선거나 중의원 선거 때 정치신인의 비율은 우리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낮다. 정치가 다양한 이해를 표출하고 관리함으로써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를 지향해 나가지 못하는 귀책(歸責)을 ‘고인 물’에서 찾아선 안된다.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고 처방해야 함에도 진단부터 틀렸으니 처방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하다. 한국정치의 딜레마와 프레임 정치의 악순환은 오픈프라이머리, 비례대표 비율 증가, 물갈이, 당내조직도 변경 등의 하드웨어를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고인 물’이 고여있는 어항을 청소하지 않는다면 ‘젊은 피’는 기존의 피와 화학적으로 결합한다. 보다 근본적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 권역별 비례대표의 도입과 비례대표 의석 증가가 영호남에서의 교차투표로 특정지역에서의 일당우위체제를 무너뜨린들 그들이 여전히 청와대와 당 지도부의 심기에 기속(羈束)된다면 이는 개악(改惡)의 전형이다. 유권자의 바른 선택과 더불어 정치구조의 변경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백약이 무효다. 정치권의 혁신 논의는 너무 도식적이고 진부하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5-08-25 최창렬

미로도시와 정위 감각

도시 확장땐 방위식 지명 정보 기능 잃어 ‘혼란’행정구역 명칭 변경으로 새지명 부여 신중 기해야‘굴포천 복원’ 도심주거환경 회복 큰 역할 기대도시들은 자꾸만 미로를 닮아 가고 있다. 구불구불한 길들은 없애거나 직선화하고, 다양한 모양과 표정의 가옥들을 허물고 비슷비슷한 주택으로 바뀌었다가 점점 기하학적인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최종 목표인 것처럼 말이다. 홀로 길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도시의 곳곳에 서있는 마천루가 위치를 대략 가늠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늘 볼 수 있는 것도 산정에서 내려다 볼 때 외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매트릭스같은 도시에서 믿을 것이라곤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의 지도 앱이다. 위치파악시스템(GPS)없이 생활할 수 없는 도시인들의 황량한 영혼, 손상된 정위(正位) 감각을 회복할 길은 없는 것일까.정위감각이란 생명체들의 생명활동의 필수적인 능력이다. 식물의 뿌리는 아래로 향하고 가지는 태양을 향한다. 철새들은 수백, 수천 킬로의 하늘을 착오없이 오가면서 한해를 보낸다. 연어처럼 강에서 태어난 회귀어종들은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되돌아와 알을 낳고 일생을 마친다. 이런 신비한 능력을 정위 본능과 관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사람들도 나침반이나 지도 없이도 감각을 통해 지각되는 환경 단서와 지리적·공간적 특징을 활용하여 적절하게 방향정위(orientation)를 하는 능력을 본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도시화 과정과 별도로 지명부여나 주소체계도 정위감각을 뒤흔든 원인이다. 대도시의 행정구역 명칭도 주요한 환경 단서와 지표 중의 하나이며 방위개념이 포함된 지명은 직관적인 방향 정보이다. 서울의 경우 도시 확장이 이루어졌지만 중구, 동대문구, 서대문구, 성북구 등의 행정구역 명칭은 이동자의 정위에 여전히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는 지명이라 할 수 있겠다. 정치적 중심을 정부청사가 있는 광화문 일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가 확장되거나 행정중심지가 이동할 경우 방위식 지명은 방향정보의 기능을 잃어버려 혼란을 불러일으키게 된다.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생활공간에 알맞은 이름을 부여하여 사용해왔다. 지명 속에는 해당 지역의 경관이나 자연적 특성이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거주민들의 생활상, 지역에 대한 생각이나 희망과 같은 사회적 특징도 담겨 있어서 지역의 역사나 문화적 변화상이 투영된 문화유산의 성격이 다분하기 때문에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잘못 명명된 땅이름, 특히 행정구역 명칭의 변경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지명을 부여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평소에 지역별로 지명조사를 실시하여 오류나 문제가 있는 명칭을 미리 확인하고 대안명칭 및 개선 기본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유서깊은 전통지명과 어감이 좋은 순우리말 고유지명을 선별하여 권장지명 목록을 작성해둔다면 지명 오류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한편 도시별로 추진하고 있는 재생사업 과정 속에서, 버려두었던 언덕이나 개천의 기능을 복원시키고 잊혀진 땅이름들을 되찾고, 잘못된 지명을 바로잡는다면 시민들의 정위감각을 회복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점에서 본다면 최근 인천시 부평구가 굴포천 유역 일대를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 전략은 주목할 만하다. 이미 굴포천의 일부는 복원되어 시민휴식과 문화활동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만약 굴포천 유역 재생이 계획대로 추진되어 상류까지 복원된다면 부평구의 도심주거환경과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부평의 장소성을 회복하는 데에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08-18 김창수

찍으세요, 당신의 삶은 ‘다큐’입니다

매 순간 일상을 찍고 보는 ‘영상의 개인화시대’흩어지고 잘리듯 삶도 제대로 연결 안될때 많아참고 견디며 감동적인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자이윽고 음식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릇 위에 놓인 요리는 정갈하다. 음식과 그것을 담아낸 그릇의 색상도 저마다 맞춤이다. 흰색 도기 위에 살짝 놓인 녹색 채소, 검고 붉은 칠그릇 속에 담긴 하얀 생선살, 보라색 햇가지를 감싸고 있는 겨자빛깔 튀김옷과 대나무접시. 정해진 순서대로 하나씩 하나씩 선을 보이는 요리는 그때마다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자, 그렇다면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다음 행동은? 흠흠, TV속 셰프를 흉내내며 음식내음을 맡는다? 꼴깍, 침을 삼키며 한 점 조심스럽게 집어 맛본다? 천만에. 아니다. 절대 아니다. 다음 순서는 그게 아니다. 다들 스마트폰을 꺼낸다. 그리고 저마다 음식을 찍기 시작한다. 20대 후반의 딸과 아들도, 50대 엄마도 한결같다. 찍은 영상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한 뒤 비로소 흡족한 표정으로 말한다. “식겠다, 빨리 드세요.”우리 가족 얘기다. 아니 대한민국 사람들 얘기다. 너나 할 것 없이 찍는다. 찍은 다음 그 다음 일을 시작한다. 소셜네트워크나 블로그에 올리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도, 그럴 생각이 아예 없는 사람도 일단은 다 찍는다. 찍고 본다. 찍은 다음 그 쓰임을 판단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바람직하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따지고 논하는 것 자체가 무색하다. ‘스마트영상시대’니 하는 말은 오히려 진부하고 식상하게 들린다. ‘영상의 개인화(personalization) 시대’다. 개인의 일상이 영상으로 시작되고 영상으로 끝나는 희한한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찍은 영상의 대부분이 파편적이고 분절적이라는 안타까움이 있긴 하지만.나의 일터는 시대를 관통하는 이런 흐름의 한복판에 있다. 시민들이 영상미디어를 잘 이해하고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최적의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일이다. 영상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촬영장비와 시설도 ‘공짜로’ 빌려준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표정과 목소리들이 방송콘텐츠의 형식으로 곳곳에 널리 퍼져나가도록 돕는다. 영상과 미디어교육을 통해 헌법정신을 살리고, 우리의 민주주의제도가 지속가능토록 일조하는 일이다. 내가 일하는 시청자미디어재단의 미션은 그래서 ‘시청자의 방송참여와 권익증진을 통해 국민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다.시청자미디어재단의 광역권 6개 센터 가운데 하나인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13일로 첫 돌을 맞는다. 지난 1년 동안 연인원 5만여 명의 시민들이 센터를 찾았다. ‘코딱지’ 유치원생부터 ‘은발’이 눈부신 70대 어르신까지 그 스펙트럼은 넓었다. 센터는 어린이들에게 즐거운 놀이터였다. 자유학기제나 미디어거점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겐 진로모색과 창작의 공간이었다. 사·오십대 중년들은 새로운 배움터로 삼았으며, 어떤 이들에겐 재기의 디딤돌이었다. 정년퇴직자나 노령세대들에겐 삶의 질을 유지시키는 복지공간이었다. ‘자뻑’이라고 나무라셔도 할 수 없다. 센터를 찾는 이들에게 제각기 알맞은 크기와 모양의 ‘힐링공간’으로 기능했노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영상의 시대’이긴 하나 우리가 매 순간 찍고 있는 영상이 파편적이고 분절적이듯이 우리의 삶도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우리 각자는 어려운 순간을 참아내며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는, 잔잔하지만 감동적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다. 찍고, 스토리를 입히고, 자르고 붙이고 편집해서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면 된다. 그래서 나는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를 찾는 시민들에게 오늘도 이렇게 말한다. 자, 마음껏 찍으세요, 여러분의 삶은 모두 ‘다큐’입니다./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5-08-11 이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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